단순 명확한 제목처럼 <이태원 살인사건>은 1997년 이태원에서 벌어졌던 햄버거 가게 살인사건에 대한 기록에 의거한 영화다. 이 사건의 첫 번째 문제는 진범을 밝히지 못한 미제라는 것이며 두 번째 문제는 그것이 한국과 미국이라는 지정학적 영향력을 근거에 둔 음모론적 해석의 개입이 가능한 사건이라는 점이다. 마치 잘 빠진 장르물 제목처럼 보이는 <이태원 살인사건>의 핵심도 그 지점에 놓여있다. 영리한 서사 구조나 빠른 속도감 따위는 철저히 배제된 영화는 묵묵하게 그 사건이 한국 사회의 무엇을 건드리고 관통하는가에 치중한다. 문제의식은 좋다. 하지만 영화가 과연 무엇을 말하고 있는 것인가라는 지점이 애매하다. 기록적 사건을 재현하는데 있어서 <이태원 살인사건>이 동원하는 건 진실을 둘러싼 윤리적 공방이다. 스릴러적 오해를 부를만한 제목이지만 그것보단 법정드라마에 가까운 현장성을 지닌 <이태원 살인사건>은 정작 재현의 수준 이상의 무언가를 증명하지 못한다. 사건 자체가 지닌 충격이 전달될 뿐, 영화의 의도는 정작 흐릿하다. <이태원 살인사건>은 수직적인 한미 관계를 어필하고, 윤리적 문제에 천착하면서 이성적 판단이 필요한 지점에선 느슨해지고 만다. 팽팽해야 할 법정신엔 두서가 없고, 좀처럼 긴박감을 얻기가 어렵다. <이태원 살인사건>은 법제도의 맹점을 파고 들어야 하는 영화다. 하지만 자꾸 지루한 도덕 선생님의 훈계처럼 스스로를 치장한다. 결국 남는 건 현실에 대한 찝찝한 단상뿐이다. 그런 감정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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