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홀에 빨려 들어가기 직전인 한 행성에서 부모의 기지로 우주선에 탑승한 한 아이가 탈출에 성공한다. 그리고 바로 옆 행성에서 탈출한 또 다른 아이와 평행선을 그리며 우주를 비행하다 함께 지구에 불시착한다. 비슷한 운명을 타고난 두 아이는 판이한 외모만큼이나 대립적인 성장기를 보내고 결국 최고의 적수로 자라난다. 초능력을 통해 온갖 사랑을 독점하며 자란 ‘훈남’ 아이는 메트로시티의 영웅 ‘메트로맨’이 되고 ‘비호감’이었던 아이는 메트로시티의 악당 ‘메가마인드’가 되어 끊임없이 맞선다.
영웅질도 딴지를 거는 악당이 있어야 인정 받을 수 있듯, 악당질도 가로 막는 영웅이 있어야 할만한 법이다. <메가마인드>는 영웅이 사라진 도시에서 활개치다 스스로 심심해졌음을 깨닫게 된 악당의 딜레마를 그린다. 관심 받고 싶어서 악명을 떨쳤지만 그 관심을 부각시켜줄 영웅질이 없으니 악당은 자연스레 초조해진다는 것이 <메가마인드> 속 악당의 면모다. 분명 순진한 이야기다. 진짜 악당이 아닌, 관심을 얻기 위해 악당을 흉내 내는 법을 익힌 이의 사연이 결국 <메가마인드>의 본체인 것이다. 이는 교육의 중요성을 상기시키는 교훈적 메시지로 연결된다. 칭찬 받고 자라지 못한 아이는 어떻게 비뚤어지는가에 관한, 장난끼 가득한 우화라고 할까.
물론 <메가마인드>는 그리 심각하지도, 진지해질 생각도 없는, 웃음기를 가득 머금은 위트적인 작품이다. 다양한 히어로 무비의 메타포들을 잔뜩 끌어들인 뒤, 그 평면적인 이미지들을 전시하고 그 안에 담긴 패러다임들을 가볍게 조리한다. 또한 <슈퍼배드>와 같이, 영웅의 활약상을 묘사하고 숙명에 가까운 고독한 심리를 포착해내는데 초점을 맞춘 슈퍼히어로 무비의 최근 경향을 위트 있게 패러디하는, 안티-안티히어로물에 가깝다. ‘모태 영웅’ 슈퍼맨과 ‘스킨헤드’ 악당 렉스 루터를 연상시키는 <메가마인드>의 메트로맨과 메가마인드는 히어로 무비의 컨벤션이나 다름 없는 이미지를 입고서 히어로 무비의 패러다임을 전복시킨다.
천부적으로 영웅 기질을 타고난 아이와 반대로 강력한 비호감의 기운을 풍기는 아이는 영웅과 악당으로 자라나 각자 유명세를 떨친다. 셀리브리티와 같은 만인의 영웅 메트로맨의 인기와 자신이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 아님을 깨닫고 인생 방향을 악당으로 전향한 메가마인드의 악명은 대조적인 동시에 협조적이다. 영웅과 악당이라는 이분법적 관계의 교묘한 공존 체제를 풍자적으로 묘사하면서도 이를 유머로서 승화시키는데 주력한다는 점에서 유쾌하다. 동시에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은 몰라도 사랑 받고 태어난 아이가 세상의 평화에 이바지한다는, 단순하지만 명확한 교훈을 전달한다. 특유의 과장된 연출로 익살스러운 위트를 던지는 동시에 넘치지 않는 감동을 수확해내는 드림웍스의 방법론이 또 한번 통했다.
‘픽사(PIXAR)’가 늘 수준 이상의 성적을 유지하는 모범생이라면 ‘드림웍스(Dreamworks)’는 머리는 뛰어나지만 때때로 노력이 부족해서 열등한 모습을 드러내곤 하는, 게으른 우등생 같다. 마치 ‘좋은 예’와 ‘나쁜 예’가 뚜렷하다고 할까.드림웍스의 신작 <드래곤 길들이기>는 그 중에서도 좋은 예라 할 수 있는 작품이다.
버크섬은 바이킹 부족의 고향이다. 그들은 오래 전부터 자신들의 가축을 약탈하고 목숨을 노리는 용과 맞서며 살아왔다. 그렇기에 강인하고 용맹한 전사가 되는 건 그들에게 있어서 가장 큰 꿈이자 업이었다. 부족 내에서 가장 용맹한 전사로 통하는 바이킹 족장 스토이크는 용을 괴멸시키기 위해 그들의 거주지를 찾아내길 원한다. 하지만 그 전에 더욱 더 큰 고민은 그의 아들 히컵이다. 도무지 전사와는 거리가 먼 체격과 성격을 지녔음에도 아들은 용과 맞설 수 있다고 주장하며 번번이 사고만 치니 말이다. 하지만 어느 날, 스토이크의 고민은 말끔히 해결된다. 약골이라 용과 맞서기 어려울 것이라 믿었던 아들이 그 누구보다도 용을 다루는 재능이 대단하다는 것. 하지만 덕분에 히컵에게는 아버지가 모르는 고민이 하나 생긴다.
<드래곤 길들이기>는 드림웍스라는 브랜드의 네임밸류 안에서 잉태된 기존의 작품들과 다른 특이점을 발견할 수 있는 작품이다. <슈렉>시리즈의 성공 이후로 드림웍스 애니메이션들은 의인화된 캐릭터들의 활약상에 초점을 맞춰 왔다. 동물의 탈을 썼을 뿐, 인간이나 다름없는 캐릭터들의 활동을 통해 위트를 건져내는 방식으로서 드림웍스의 애니메이션은 유효했다. 하지만 <드래곤 길들이기>는 명확하게 인간과 자연의 대비를 그리는 작품이다. 용과 대립하는 인간들의 세계관을 통해 두 대상 간의 교감을 그린다는 점에서 자연과 인류의 경계가 중첩적이던 전작과 뚜렷하게 다른 지향점을 지니고 있다.
무엇보다도 <드래곤 길들이기>에서 주목할만한 점은 <아바타>의 대단한 흥행 이후로 전세계적인 현상으로 확산되고 있는 3D영상의 구현이다. <드래곤 길들이기>는 <아바타>이후로 스크린에 가장 탁월한 3D영상을 구현하는 작품이라 자부할만한 작품이다. 물론 두 작품 사이에 간극은 있다. 실사를 바탕으로 구현한 <아바타>의 3D영상과 달리 <드래곤 길들이기>는 기본적으로 CG애니메이션의 툴을 바탕으로 제작된 3D영상을 활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보다 두 작품의 완성도를 단순 비교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드래곤 길들이기>는 분명 <아바타>이후로 3D영화라는 포맷 안에서 한 획을 그었다고 해도 좋을 작품임에 틀림없다. 3D기술을 볼거리로서 충분히 활용하는 동시에 단순하고 명료한 스토리에 적절한 감동적 요소를 삽입하는데 성공함으로써 작품 자체에 대한 감상적 몰입도를 극대화시키고 있다. 드림웍스의 전작인 <몬스터 vs 에이리언>이 습작과 같은 3D애니메이션이었다면 <드래곤 길들이기>는 완성형에 가깝다.
무엇보다도 <드래곤 길들이기>는 드림웍스의 메인 프랜차이즈였던 <슈렉>시리즈의 뒤를 잇는 포스트 드림웍스 시리즈로서 빈자리를 채울만한 작품이라 단언해도 좋다. 이미 새로운 시리즈 제작에 착수한 <쿵푸팬더>처럼 <드래곤 길들이기>의 시리즈 기획 역시 이미 공표된 상태다.다만 그 동안 드림웍스가 시리즈를 거듭하며 작품의 완성도를 유지하지 못했던 전례들을 생각해본다면 불안한 예감이 동반되는 것도 사실이다. 데뷔에 성공한 캐릭터를 밑천으로 삼아 방향을 염두에 두지 않은 채 무작정 서사적 레일만 깔고 전진해나가듯 시리즈를 거듭하는 방식은 <쿵푸팬더>와 <드래곤 길들이기>를 통해 새로운 국면 전환에 성공한 드림웍스가 고민해야 할 지점이라 할만하다.
물론 차후의 고민을 떠나서 현재의 성과, 즉 <드래곤 길들이기>는 상당히 인정받을만한 성과에 가깝다. 명확한 기승전결로 이야기의 줄기를 뚜렷하게 세우고, 교감과 성장이라는 테마에 대한 진지한 접근을 통해 명료한 감동마저 거둔다. 또한 다양한 디자인과 개성을 캐릭터와 순발력 있는 위트를 통해 탁월한 오락적 재미를 더한다. <드래곤 길들이기>는 오락영화로서의 평형감각과 기술과 연출의 균형감각이란 어떤 것인가를 보여주는 교과서적인 사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대한 큰 스크린을, 3D상영관을 찾길 권한다. 지갑을 열수록 재미는 극대화될 것이다.
한국에 자주 방문하는 편이다. 이번이 8번째 방문이다. 한국에 오는 건 매우 특별한 의미가 있다. CJ엔터테인먼트가 드림웍스(Dream works)의 초창기 투자 멤버였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을 거다. 그래서 마치 가족을 방문하는 느낌이다.
한국영화산업에 대한 흥미와 이해가 어느 정도 인가?
한국시장에 대한 특이점이 몇 가지 있다고 생각한다. 우선 한국이 국제적으로 탑 텐 시장 중 하나인 것은 분명하다. 한국시장의 특성 중 하나는 영화 제작과 영화 상영 모두가 매우 중요한 시장이란 점이다. 한국영화 산업기반이 탄탄할 뿐만 아니라 한국영화 자체가 성공적으로 제작되고 외국영화들도 한국시장에서 매우 좋은 성과를 올린다는 점에서 양면성을 모두 갖추고 있다. 매우 건실한 영화 산업과 시장을 함께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한예슬 씨가 한국에서 더빙을 맡았는데 목소리 연기자 섭외에 직접 관여했다고 들었다. 캐스팅 기준이 궁금하다. 그리고 한예슬 씨를 실제로 만났는데 인상이 어땠나?
드림웍스의 애니메이션은 47개 언어로 더빙된다. 우리가 목소리 캐스팅에서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목소리의 멜로디다. 한예슬 씨는 훌륭한 배우이기 때문에 그 배역을 충분히 연기로서 소화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목소리의 멜로디가 아름답기 때문에 이 역할에 가장 접합했다. 물론 목소리만큼이나 인물도 출중하더라. (웃음) 유머 감각도 빼어난 편이다. 게다가 지금 캘리포니아에 가족도 있고, 본인도 거주한 경험이 있어서 이에 관해 즐거운 대화를 나눌 수도 있었다.
<몬스터 vs 에이리언>(이하, <몬스터>)에 사용된 ‘인트루 3D(Intru 3D)’란 어떤 기술인가.
우리가 3년 전 즈음에 발견한 첨단기술로서 우린 이것이 좋은 기회라 생각하여 앞으로 모든 드림웍스 애니메이션을 이 기술로 제작하자고 결정했다. 과거엔 3D를 놀이공원에서 체험하는 매체로 생각했다면 이젠 이 새로운 기술이 3D를 영화상영체험과 영화제작방식에 혁신을 부를 것이라 예상한다. 우리가 보다 더 적극적으로 스토리텔링에 참여할 수 있도록 만들어 줄 뿐만 아니라 영화체험 자체를 바꿀 것이라 생각한다. <몬스터>가 이런 기술력을 활용한 첫 작품이 됐다는 점에서 높게 평가하고 있다. 한번 보는 것이 천마디 보다 낫다는 말처럼 아마 내가 하는 삼천 마디보다 한번 직접 체험해보는 게 나을 거다.
드림웍스와 마찬가지로 경쟁 스튜디오라 할 수 있는 픽사(PIXAR)에서도 3D 애니메이션 제작에 착수할 것이라 밝혔다. 3차세대 매체로서 주목받고 있는 3D영상의 산업적 가능성이 어느 정도라고 생각하나?
3년 반 전에 우리는 <폴라 익스프레스>를 아이맥스 3D로 제작했다. 그때 이 기술이 앞으로 우리의 미래적인 방향성이라고 생각했다. 현재 우리뿐만 아니라 많은 제작사들이 3D로 영화를 촬영하거나 제작하는 작업에 들어갔다. ‘조지 루카스’, ‘스티븐 스필버그’, ‘피터 잭슨’, ‘폭스(FOX)’, ‘디즈니’, ‘픽사’ 등 수많은 제작자나 제작사에서 3D를 활용하고 있다. 이런 측면에서 3D 기술의 미래가 상당히 밝지 않은가 생각한다.
당신이 말한 <폴라 익스프레스> 아이맥스 3D를 3년 전에 봤을 땐 눈이 많이 피로했다. 이번에 본 <몬스터>은 확실히 그런 불편함이 경감된 느낌은 있었다. 말한 것처럼 이번에 본 3D는 몇 년 전에 봤던 3D보다 훨씬 혁신적으로 개선된 상태다. <몬스터>는 고품질 디지털 영상으로 상영된다. 좌우 대칭이 이루어지고, 흐릿한 화면을 찾아보기 힘들다. 과거의 안 좋았던 부분이 최대한 개선했다. 이 기술은 매우 높은 수준의 이미지와 함께 스크립터나 스토리텔러들의 이야기를 전개할 수 있도록 만들 것이다. 아마 1년 후에도 오늘을 되돌아보면 지난 1년 간 3D 기술이 많이 발전됐다고 생각하게 될 거다. 이렇게 앞으로도 몇 년간 3D 기술이 계속 혁신적으로 발전할 것이라 기대한다.
한국인을 비롯해서 전세계의 재능 있는 인력들이 드림웍스에서 일을 하고 있다. 드림웍스가 인재를 선발하는데 있어서 국적이나 문화적 제약이 없다는 건 얼마나 큰 장점이 되는가?
지금 1700명의 아티스트들이 캘리포니아에서 작업하고 있는데 이중 매우 재능 있는 한국 아티스트들도 많다. 그 뿐만 아니라 기술자와 애니메이터도 많으며 그 중 드림웍스에서 배운 기술을 한국에 와서 나누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다. 이를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우리는 드림웍스를 애니메이션의 UN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그 이유는 35개 국어를 구사하는 사람들이 지금 드림웍스에서 근무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 방방곳곳에 있는 인재들이 지금 드림웍스에서 근무를 해주는 덕분에 우린 많은 도움을 받고 있다고 생각한다.
3D기술이 드림웍스 애니메이션을 차별화시키는 전략이 될까?
3D이전에 우리는 이미 차별화된 회사라고 생각한다. 영화 한편에 1억 5천만 불 정도 규모의 자본을 투자할 수 있는 회사는 실질적으로 세계에서 한두 곳 정도밖에 없지 않나.
작년에 개봉된 <쿵푸팬더>는 2D애니메이션이지만 큰 인기를 모았다. 2D애니메이션의 시장성이 여전한데 3D애니메이션과 병행할 생각은 없나?
병행하진 않을 거다. 모든 영화는 처음부터 3D로 제작될 거다. 다만 현재 대부분의 극장이나 가정 DVD로는 3D영화를 볼 수 없다. 그런 상영관과 가정을 위해서 원래 3D로 제작한 영화를 2D로 출시할 예정이다.
2D애니메이션을 3D애니메이션으로 제작하는데 부가되는 비용은 얼마나 되나?
3D로 제작하는데 추가적으로 드는 비용은 1500만 달러 정도, 전체비용의 약 10%정도가 더 들어간다.
3D애니메이션에 주목하는 건 그만큼 시장의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자신감이 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그런데 3D영상을 보기 위해선 물리적으로 요구되는 조건이 많다. 특히 홈 비디오 시장에서 3D애니메이션은 현재 무용지물 아닌가. 이에 대한 대안도 마련하고 있나?
홈씨어터를 통해서 3D영상을 상영할 수 있는 기술이 개발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 TV모니터에서도 3D영상이 구현되고 편광안경으로 이를 관람할 수 있는 기술이 개발 중이다. 실제로 안경제작사에서도 3D전용안경을 제작한다고 들었다. 미래에는 아마 관객들이 자체적으로 자신만의 영화안경을 갖는 시대가 오지 않을까 기대한다. 실제로 선글라스를 제작하는 회사 ‘오클리(OAKLEY)’에서 개발하는 안경이 있다. 일반적으로 사용할 땐 그냥 편광선글라스지만 영화관 실내로 들어와서 영화를 볼 땐 3D전용안경으로 자동 전환되는 안경을 제작중인 걸로 알고 있다. 지금 밖에 나가서 선글라스를 쓰듯이 극장용 안경을 쓰는 시대가 올 거라 기대하고 있다.
3D는 현재 시청각적 자극에 있어서 최종적인 단계에 가깝다. 혹시 그 다음단계라 할 수 있는 공감각적 자극을 활용한 단계로서의 개발을 생각하진 않나? 예를 들면 의자가 움직인다던가.
그런 단계까진 생각하지 않고 있다. 공감각적인 것을 생각하지 않는 이유는 관객들이 이를 지나치게 의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지금 3D를 사용하는 건 관객이 스토리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우리가 나가서 실제로 뭘 만지거나 이동시키면 관객 자체가 거기에 너무 의식해서 스토리텔링에 집중하지 못하는 문제가 생길 거라 생각한다. <몬스터>이 시작될 때 라켓에 달린 페더볼(featherball)이 화면에서 튀어나오는 것처럼 장난을 쳤다. 그리고 그 다음부턴 그런 장난을 하지 않았다. 거기서 보여주고 싶었던 건 이런 것도 가능하지만 <몬스터>에서 보여주고 싶은 건 이런 특수효과가 아니라는 점이다. 그런 효과에 집중하다 보면 결국 관객을 스토리로부터 탈피시키기 때문에 효과마저도 하나의 장난에 지나지 않게 된다. 놀이공원에서는 그런 것이 적용돼도 상관없겠지만 영화에서는 그런 것들이 적용돼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몬스터 vs 에이리언>(이하, <몬스터>)을 선택한 이유가 궁금하다. 일단 캐릭터가 아니라 스토리를 보고 영화를 선택했다. 스토리가 마음에 들면 캐릭터는 자신의 방향에 맞게 만들어가면 된다. 특히 <몬스터>같은 경우 젊은이들에게 남과 다르다는 건 나쁜 점이 아니라 오히려 큰 자산이 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할 수 있다는 점에서 굉장히 마음에 들었다. 예를 들면 ‘거대렐라’는 굉장히 크다는 게 콤플렉스지만 오히려 그것을 통해 친구들도 구하고, 지구도 구한다. 목소리 연기는 캐릭터를 내 몸에서 벗어나 목소리만으로 연기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을 느꼈다. <24>를 찍던 중에 <몬스터>를 했기 때문에 주중에 14시간은 잭 바우어를 연기하고, 주말 5시간은 워 딜러를 연기했기 때문에 균형이 잘 맞았다. <몬스터>는 5살로 돌아가는 것처럼 재미있는 기분을 느꼈다.
캐릭터를 연기하는데 있어서 주안점을 둔 부분은?
캐릭터를 내 자신이 원하는 대로 창조하는 과정이 있었다. 그게 애니메이션의 좋은 점이기도 하다. 내가 예전에 봤던 <벅스 바니>만화 캐릭터의 목소리가 워 딜러 장군과 어느 정도 비슷한 느낌을 얻었다. 그걸 기반으로 좀 더 발전시켜서 워 딜러 장군에 맞는 목소리를 만들었다.
<몬스터> 이전에도 애니메이션에서 목소리 연기를 펼친 적이 있다. 그 밖에도 게임이나 다큐멘터리 내레이션을 맡았던 적이 있다. <24>를 비롯해 그 동안 액션 연기를 많이 했다. 그런 당신에게 목소리 연기가 주는 특별한 의미가 있을까?
다큐멘터리 내레이션은 자신을 그대로 드러내는 작업이지만 <몬스터>를 비롯한 애니메이션은 새로운 캐릭터에 맞게 창조를 하는 작업이다. 낮과 밤, 아니면 오렌지와 사과처럼 목소리 연기와 몸으로 하는 연기는 완전히 다른 영역이다. 일단 애니메이션은 내 몸을 생각하지 않고 감정이나 목소리만으로 연기를 한다는 면에 있어서 훨씬 자유롭다.
3D영상기술은 차세대 영상매체가 될 가능성이 크다. 그 안에선 가상의 3D인물이 진짜 배우처럼 연기한다. 배우로서 이를 지켜보는 느낌이 어떤가?
3D애니메이션은 굉장히 유망한 기술이며 당연히 장차 차세대 매체로 활용될 거다. 스티븐 스필버그나 제임스 카메론 같은 유명한 감독들도 이에 동의하는 것으로 안다. 이는 관객들을 영화자체에 빠져들게 할 수 있다. 내가 봤던 50년대, 60년대 3D와는 완전히 차원이 다르다. 물론 기술 자체만이 중요한 게 아니라 기술이 어떻게 쓰이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간담회에서 한예슬 씨와 친근한 모습을 보여줬는데 그녀의 첫인상이 어땠나?
일단 목소리 톤이 리즈 위더스푼과 굉장히 비슷해서 깜짝 놀랐다. 드림웍스의 CEO인 제프리 카젠버그는 47개의 언어로 출시되는 <몬스터>가 제각각의 버전에서 제대로 표현되는지 관심이 많고 그만큼 목소리에 민감했다. 그런데 한예슬 씨 목소리를 듣더니 굉장히 마음에 든다고 말했다. 나도 오늘 아침에 처음 봤는데 여성스럽고 사랑스럽게 웃더라.
<24> 시즌7이 조만간 한국에서 공개된다. 시즌7에서 주목할만한 점이 있나?
메시지는 관객들이 픽업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특별히 어느 부분을 봐달라고 말할 수 있는 건 없을 것 같다. 다만 시즌7에서는 잭 바우어가 지난 삶에 대해서 많은 성찰을 한다. 한국에서도 공개된다니 기대가 된다.
오랫동안 잭바우어를 연기하고 있는데 그런 캐릭터와 함께 늙어간다는 건 당신에게 어떤 의미가 있나?
잭 바우어는 계속 진행되는 캐릭터다. 시즌1에 나오는 잭 바우어와 시즌7에 나오는 잭 바우어는 완전히 다르다. 잭 바우어는 굉장히 큰 대가를 치르면서 많은 일을 해나간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변화하는 것처럼 캐릭터도 함께 보완되는 것을 느낀다. 그런 점에서 잭 바우어를 연기하는 동안 배운 바가 많다. 지금도 굉장히 즐기면서 하고 있다. 다만 개인적으로 잭 바우어의 이미지를 나와 연관 지어 생각할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24>가 한국에서도 많은 인기를 얻고 있다. 자신의 작품이 여러 나라에서 많은 인기를 누린다는 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
<24>는 아시아권만 아니라 아프리카에서도 인기가 많다. <24>가 국경과 언어와 문화의 경계성을 초월하는 작품이란 생각이 들고 관객들이 캐릭터에 대해서 그만큼 동감하는 것 같아서 개인적으로 자랑스럽다.
우주에서 날아온 정체불명의 운석이 한 여자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는다. 결혼식 날 거인이 된 수잔(리즈 위더스푼, 한예슬)은 미국 정부가 비밀리에 운영하는 지하기지에서 선배(?) 몬스터들과 함께 ‘거대렐라’라는 이름으로 명명된 채 격리된다. 그러던 어느 날, 외계로부터 정체불명의 거대로봇이 또 미국 땅에 떨어져(!) 무차별 공격을 감행한다. 전군이 동원됐지만 거대로봇에게 맞서긴 역부족이다. 결국 비밀리에 격리돼있던 몬스터들이 출격한다. ‘거대렐라’가 된 수잔과 함께 미씽 링크와 닥터 로치, 밥은 작전에 성공하면 자유로운 신분을 주겠다는 워 딜러 장군(키퍼 서덜랜드)의 약속과 함께 거대로봇을 제압하기 위해 세상으로 나온다.
간단한 줄거리만으로 보자면 박진감 넘치는 SF액션물의 외피가 예상돼지만 <몬스터 vs 에어리언>(이하, <몬스터>)은 나사 빠진 캐릭터들의 우스꽝스러운 행위와 대사를 통해 유머로 발생시키는 스크루볼 코미디에 가깝다. 특히 드림웍스 애니메이션이라는 혈통을 입증하듯 의인화된 몬스터 캐릭터들이 해학적인 위트를 구사한다. 스토리 라인 자체는 결과적으로 단조로운 것이 사실이다. 주지하는 정서적 감흥이 뻔한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다. 하지만 그 식상한 스토리는 어떤 면에 있어서 <몬스터>의 야심에 어울리는 배경이다. 인간을 위협한다고 믿었던 몬스터들이 지구를 구하고, 되레 인간의 혐오를 극복하며 슈퍼히어로에 버금가는 존재로 변태되는 성장스토리엔 나름대로 제 크기에 걸맞은 의미가 있다. <몬스터>의 야심은 심오한 스토리텔링과 어울릴만한 것이 아니다. 스토리는 조연에 가깝다.
주연은 영상이미지다. ‘인트루 3D(Intru 3D)’라 지칭되는 3D영상기술을 통해 구현된 입체적 영상이 <몬스터>의 야심 그 자체다. 시각적 기술의 진일보를 통해 새로운 차세대 엔터테인먼트의 자극을 체험하고 만끽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단순한 이야기일수록 이미지는 단명해진다. 거대로봇과 맞서는 몬스터들의 에피소드는 거대한 사물의 등장을 통해 스케일을 넓히고 스펙터클을 확장하려는 기술적 성취의 전시적 욕망의 부산물에 가깝다. <몬스터>는 시각적 자극을 극대화시킨 3D영상의 엔터테인먼트적 자질이 어느 수준에 도달했는가를 알리는 현대의 지표란 점에서 일단 흥미롭다. 이미 역치의 수준이 실무율의 단계에 들어선 영상의 오락적 기능성을 대체할 입체영상의 현대적 지표가 어느 수준에 다다랐는가를 증명하는 기술적 성과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몬스터>는 되레 자신의 야심과 다른 지점의 사실을 증명하는 영화 같다. 아무리 뛰어난 기술력을 담보로 한 혁신적인 이미지를 장착하고 있다 해도 그것이 어떤 수준 이상의 이야기와 함께 맞물리지 못한다면 영화적 만족도를 주지 못한다는 것. 뛰어난 효과는 뛰어난 영상의 기반이 되지만 그것이 영화의 전부가 될 수 없다. 창작적인 스토리를 기반으로 삼지 못한 이미지는 결국 영화로서의 가치에 도달할 수 없다. 때때로 웃음을 유발하는 캐릭터는 그 자체로 인상적인 매력이 있지만 그것 또한 <몬스터>를 권할 만큼 강력한 매력이라 정의 내리기도 쉽지 않다. <몬스터>는 창작과 기술의 조합에 있어서 과도기적인 작품이다.
우주에서 날아온 정체불명의 운석은 한 여자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버린다. 거인이 된 수잔(리즈 위더스푼, 한예슬)은 미국 정부가 비밀리에 운영하는 지하기지에 격리된 채 ‘거대렐라’라 불리며 선배(?) 몬스터들과 조우한다. 그러던 어느 날, 역시나 외계에서 날아온 정체불명의 거대로봇이 또 미국 땅에 떨어져(!) 무차별 공격을 감행한다. 이에 맞서기 위해 비밀리에 격리돼있던 몬스터들이 출격한다. 간단한 줄거리만으로 보자면 박진감 넘치는 SF액션물의 외피가 예상돼지만 <몬스터 vs 에어리언>(이하, <몬스터>)은 드림웍스 애니메이션이라는 혈통을 입증하듯 나사 빠진 캐릭터들의 행위와 대사를 통해 위트를 유발하는 해학적 작품이다.
주지하는 정서적 감흥이 뻔한 수준을 맴돌지만 단순하다고 폄하할 수 있는 수준의 스토리까진 아니다. 인간을 위협한다고 믿었던 몬스터들이 지구를 구하고, 되레 인간의 혐오를 극복하며 슈퍼히어로에 버금가는 존재로 변태되는 성장스토리엔 나름대로 제 크기에 걸맞은 의미가 있다. 다만 <몬스터 vs 에어리언>(이하, <몬스터>)은 그보다 다른 의도가 명확한 작품이다. 스토리는 조연에 가깝다. 주연은 ‘인트루 3D(Intru 3D)’라 지칭되는 3D영상구현기술을 통한 시각적 자극의 진일보를 체험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그것은 엔터테인먼트에 가까운 속성이다. <몬스터>는 시각적 자극을 극대화시킨 3D영상의 엔터테인먼트적 자질이 어느 수준에 도달했는가를 알리는 현대의 지표란 점에서 흥미롭다. 다만 그 자극이 뛰어난 창작력을 기반으로 삼지 못했을 때 지속적인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는 점을 유념해야 할 것 같다. 때때로 블랙코미디적인 웃음을 유발하는 캐릭터들이 귀엽지만 그것이 이 영화를 권할 만큼 강력한 매력이라 정의 내리긴 쉽지 않다. 기술도 과도기지만 이야기 수준도 과도기적이다.
다소 유치한 스토리와 조악한 설정이 또렷하게 보이지만 산만한 캐릭터들의 수다스런 조합이 플롯의 빈곤함을 메운다. <슈렉>과 함께 드림웍스의 대표적인 프랜차이즈로 등극한 <마다가스카>의 속편 <마다가스카2> 역시 마찬가지다. 다만<마다가스카2>는 그 타이틀이 무색하게도 더 이상 ‘마다가스카’를 중심에 둔 사연이 아니다. 그럼에도 이 제목이 다시 한번 활용되는 건 이 타이틀의 기시감이 시장성이 유효한 브랜드 네임밸류를 지닌 덕분이다. 전편의 대단한 성공에서 잉태된 기획상품에겐 새로운 자기 정체성보다도 자기 기반의 뿌리가 중요할 따름이다.
전작과 마찬가지로 속편 역시 일종의 모험담이다. 모험 속에서 캐릭터들은 성장한다(고 묘사된다). 뉴욕의 왕이라 자처하던 동물원의 사자 알렉스(벤 스틸러)가 친구인 하마 글로리아(제이다 핀켓 스미스), 기린 멜먼(데이빗 쉼머)과 함께 동물원을 뛰쳐나간 얼룩말 친구 마티(크리스 락)를 쫓아 담을 넘었다가 마다가스카 섬까지 표류하게 되고 그곳에서 벌어지는 갖가지 사연의 이후로 덧붙여진 사연이다. 새로운 행선지는 아프리카다. 뉴욕을 향해 출발한 비행기가 불시착하면서 그들은 지명이 묘연한 아프리카 대륙으로 떨어진다.
동화적인 <슈렉>의 세계와 우화적인 <마다가스카>의 세계는 의인화를 통해 공통적으로 각자의 세계관을 지탱하고 있다. 인간과 공존하는 동시에 인간과 별다를 바 없는 비인간 캐릭터들의 행위엔 모순을 뛰어넘는 위트가 담겨있다. 물론 <마다가스카>는 <슈렉>보다도 캐릭터에 대한 의존도가 강한 작품이다. 디즈니 동화의 클리셰를 전복시키는 이야기적 태도로 풍자적 웃음을 발생시키는 <슈렉>과 달리 <마다가스카>는 특유의 의인화된 동물 캐릭터들의 수다와 슬랩스틱에 가까운 연기적 액션을 통한 유머로서 관객을 적극 공략한다. 전편과 마찬가지로 속편의 장기도 크게 다를 것이 없다. 네 동물 캐릭터의 성격은 여전하고 그들의 행위는 과거와 별다르지 않다. 장점은 전작만큼의 너비를 유지한다. 캐릭터들은 여전히 수다스럽고 산만하게 뛰어다니며 유희적인 연기를 펼친다.
그에 비해 단점은 좀 더 덩치가 커졌다. 캐릭터의 개성과 조합으로 가려지던 이야기의 열악함이 예전보다 커진 군살을 가리지 못한다. 알렉스의 사연을 축으로 사연의 맥락을 집중시키던 전작과 달리 비해 이번 작품은 각자의 캐릭터를 줄기로 삼아 이야기에 가지치기를 시도한다. 이야기의 유치함은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다. 단지 그 산만함이 예전에 비해 더욱 활발해졌다. 네 캐릭터의 비중을 각자 키워나가다 보니 전체적인 조합이 흐트러진다. 동시에 저마다 가벼운 사연들이 자신의 경로를 고집하는 것처럼 비효과적인 태도도 없다. 질적으로 발전되지 못한 이야기가 양적으로 팽창했다. 결국 극심하게 산만해진 이야기를 작위적인 감동으로 메우려 하나 이 역시 효과적이지 못하다. 전작의 인기에 편승한 기획의 한계가 여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