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링 스톤즈’가 길 바닥의 구르는 돌멩이만큼의 관심거리도 안 되는 이에게 이 영화를 권하기란 힘들지 모를 노릇이다. 그럼에도 이 영화에 담긴 공연이 어떤 극영화만큼이나 가치 있는 것이라 말할 수 있는 근거는 그 무대가 롤링 스톤즈의 것이기 때문이다. 1962년 런던의 클럽에서 데뷔해 ‘비틀즈(Beatles)’와 함께 브리티쉬 인베이션(British invasion)의 신화를 쌓아 올린 로큰롤의 악동들은 환갑이 넘은 나이에도 단단한 팀워크를 자랑하며 여전히 패기만만하게 살아있다. 2005년, 13번째 정규앨범 타이틀 ‘A bigger bang’을 발표하며 이뤄진 월드투어이자 최다수익을 기록한 공연으로 기네스북에 기록된 ‘Bigger Bang tour’ 중 뉴욕의 비콘 극장(Beacon Theater)에서 이뤄진 공연실황을 담아낸 <샤인 어 라이트>는 이 밴드의 거창한 역사를 뜨겁지만 담백하게 소개하는 스포트라이트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69년, 마이클 워드라이가 우드스톡 페스티벌을 촬영한 20시간 분량의 필름을 4시간 가량으로 편집해 <우드스톡>을 완성한 장본인이 마틴 스콜세지임을 제시한다면 <샤인 어 라이트>의 설득력은 더해진다. 게다가 밥 딜런의 도발적인 이미지들을 생생히 기록하며 뮤지션의 모호한 내면을 들춤으로써 그 아우라를 강건하게 재생하는 <노 디렉션 홈: 밥 딜런>(2005)을 경험한 누군가라면 소통이 난해한 뮤지션에 대한 탁월한 접근을 이룬 마틴 스콜세지의 내공을 이미 알고 있기에 <샤인 어 라이트>의 무대가 변변찮은 라이브 클립에 불과하지 않을 것임을 예감할지도 모른다. ‘롤링 스톤즈(Rolling Stones)’의 공연실황 라이브클립으로 치부(?) 당할 수도 있는 이 작품을 주목해야 할 필요가 있음을 주장하고 싶다면 이 공연실황을 카메라에 온전히 담아낸 이가 뉴욕의 필름 거장 마틴 스콜세지라는 점이 든든한 근거가 되어줄 것이다.
공연을 앞둔 롤링 스톤즈 멤버들의 여유로움과 공연 셋리스트를 기다리는 마틴 스콜세지의 초조함을 대비시키며 출발하는 <샤인 어 라이트>의 초반부는 긴 세월 동안 자기 존재를 증명하며 살아남은 뮤지션과 영화감독의 치열한 대립구도를 은밀하게 드러낸다. 밴드의 생존력을 여전히 무대에서 증명하는 뮤지션의 풍모와 필름을 관통한 시선으로 긴 세월을 관조한 영화감독의 치열한 자의식은 중후한 관록의 형태로 융합되어 영화에 기운을 불어넣는다. 이는 결국 공연을 기다리는 공연장의 관객들만큼이나 카메라를 통해 무대를 보게 될 관객들의 긴장을 불어넣는데 적합한 역할을 한다. 라이브 무대가 펼쳐지기 전, 마틴 스콜세지는 공연 이전의 풍경들을 끌어와 무대의 열기를 이루기 위한 발화점의 온도를 찾는다. 비로소 롤링 스톤즈의 무대가 시작되기 직전까지 무대를 향한 객석의 열기는 적절한 온도로 상승하고 이내 마틴 스콜세지의 슛 사인과 함께 시작되는 첫 번째 넘버 ‘Junpin’ Jack Flash’와 함께 세차게 가열된다.
19곡의 셋리스트로 이뤄진 공연은 관객들의 열광만큼이나 멤버들의 나이를 믿기 힘들 정도로 무대에 넘치는 활력을 거침없이 분출한다. 간단히 말하면 이건 끝내주는 공연이다. 앙상하지만 섹시하게 하늘거리는 몸동작으로 열정적인 보컬을 선사하는 믹 재거의 무대 장악력과 <캐리비안의 해적>에서 조니 뎁이 연기한 잭 스패로우의 모델로 알려진 키스 리차드의 독특한 패션만큼이나 시선을 빼앗는 기타연주와 무대매너는 단연 훌륭하다. 또한 키스 리차드의 기타를 보완하는 로니 우드와 그들의 뒤에서 차분하게 드러밍에 집중하는 과묵한 찰리 와츠는 파수꾼처럼 무대를 든든하게 이룬다. 또한 '화이트 스트라입스(White Stripes)'의 잭 화이트, 블루스의 장인 버디 가이와 팝의 뮤즈 크리스티나 아길레라가 게스트로 등장하며 특별한 즐거움을 더한다. 총 16대의 카메라는 세련되면서도 박력 있게 무대 너머로 흐르는 열기를 생생하게 포착한다. 특히 곡 사이사이에 등장하는 롤링 스톤즈의 과거 인터뷰 장면을 비롯한 기록들은 롤링 스톤즈의 오랜 여정을 서술하며 무대의 저력에 깊은 감상을 부여한다. 오랜 관록으로 카메라를 조율하는 마틴 스콜세지의 깊은 음악적 조예는 인물에 대한 탁월한 접근적 시선을 더하며 <샤인 어 라이트>에 깊이 있는 열광을 부른다. 게다가 그것은 관객의 얼굴을 클로즈업하지 않으면서도 그 무대를 바라보는 관객의 표정을 예상하게 만드는 힘을 발휘한다. 만약 당신이 누군가가 지켜봤던 공연을 보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당신이 바라보고 있는 스크린이 무대처럼 느껴진다면 그건 착각이 아닐 것이다.
<샤인 어 라이트>는 그저 롤링 스톤즈의 명곡들이 담긴 라이브 실황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스크린을 통해 무대를 재현하는 일종의 체험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롤링 스톤즈의 무대와 그것을 바라보는 마틴 스콜세지의 시선은 거대한 관록의 시너지를 이룬다. 연륜 있는 필름거장은 위대한 라이브 제왕의 무대에 영원을 헌정한다. 그리고 그 무대를 바라볼 주체는 바로 관객이다. 비로소 2시간 여의 공연이 끝나고 무대 밖으로 퇴장하는 밴드의 뒤를 쫓는 카메라는 하늘로 솟아올라 뉴욕의 거대한 야경을 비춘다. 그 풍경과 함께 흐르는 넘버 ‘Shine a light’의 가사, ‘shine a light on you’처럼 조명은 무대를 비추지만 그건 결국 객석에 앉은 당신을 위해 비춰지는 빛이다. <샤인 어 라이트>는 당신을 위해 마련한 VIP석이다. 실로 그 무대를 즐길 줄 아는 관객에게 <샤인 어 라이트>는 실로 비좁은 상영관의 좌석을 박차고 일어나 몸을 흔들며 환호하고 싶을 만큼 전율적인 흥분을 선사한다.
당초 예정됐던 8시가 조금 넘어서 오프닝 게스트인 태양의 공연이 시작됐다. ‘기도’와 ‘나만 바라봐’를 불렀는데 무대 연출에 어느 정도 능한 느낌이 들었다. 다만 곡의 절반이상을 립싱크로 잡아먹는 라이브는 그다지 매력이 없었다. 물론 여성 팬들은 엄청난 소리를 질렀지만. 라이브 연주가 아닌 MR이라 음향도 썩 좋지 않았다. 뭐 그저 오프닝 게스트일 뿐이었다. 흥을 돋우기엔 나쁘지 않았다. 생각해보면 그저 1집 솔로 가수일 뿐이다. 물론 유명한 아이돌 그룹의 멤버이기도 하지만. 어쨌든 의미를 부여한다는 것 자체에 어폐가 있을 듯. 이것이 불만스러운 문장으로 보인다면 그저 오해요. 허허.
태양의 공연이 끝나고 30분에 시작될 예정이던 알리샤 키스의 공연은 역시나 지체됐다. 내한 공연은 언제나 30분 정도 늦게 시작하는 게 관례라는 걸 이미 숙지하고 있었으므로 크게 개의치 않았다. 물론 실내는 살짝 더웠고, 스탠딩 좌석은 살짝 술렁였다. 8시 45분 즈음 스태프로 보이는 외국인 2명이 무대에 나와서 관객에게 파도타기를 유도했지만 그다지 큰 호응은 없었다.
9시 즈음, 드디어 공연이 시작됐다. 자리를 잡은 세션들의 연주가 시작됐고 관객석은 시끄러워졌다. 그리고 알리샤 키스의 등장! 엄청난 환호와 함께 메인 스테이지가 시작됐다. 전체적으로 음향에 대한 큰 결함은 없었다. 잠실실내체육관의 현실을 고려한다면 상당히 괜찮은 사운드를 뽑아냈다고 생각한다. 특히 알리샤 키스의 보컬은 가히 명불허전이었다. 게다가 직접 피아노를 연주하며 노래하는 그녀를 본다는 것 자체에 커다란 의미가 있었다. 뭐 별다른 이유가 필요할까.
Intro와 중간 Interlude를 제외한 총 14곡의 셋리스트, 그리고 2곡의 앵콜은 1시간 30여분을 꽉 채웠다. 셋리스트는 올해 발표한 세 번째 정식앨범 ‘As I am’에서 가장 많은 7곡이 선곡됐고, 두 번째 앨범인 ‘The diary of Alicia Keys’에서 5곡, 데뷔앨범인 ‘Songs in a minor’에서 3곡, 그리고 Unplugged앨범에 수록됐던 Unbreakable과 어셔(Usher)의 앨범에 수록된 듀엣곡 My boo로 채워졌다. 확실한 건, 스튜디오 앨범보다 라이브에서의 보컬이 더욱 폭발적인 느낌을 준다는 것. 소울풀(soulful)한 보컬링이란 막연한 단어의 의미가 체감됐다. 관객들의 호응도에 따른 무대의 리액션도 상당히 열성적이란 생각이 들었다. 전반적으로 크게 흠잡을 구석이 없는 공연이었다. 국내 공연장의 열악함을 염두에 둔다면 현지에서 공수한 장비와 세션의 능력이 얼마나 큰 역할을 했는지를 평가할만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알리샤 키스의 실력과 무대매너는 가히 관객의 호응을 끌어내기에 탁월했다라 말할 수 밖에.
공연의 말미에 다다를수록 열기가 뜨거웠다. 셋리스트가 진행될수록 공연에 대한 집중력이 높아지는 인상이었다. 특히 스탠딩석에서 볼 수 있었다는 건 꽤나 큰 수확이다. 상당히 대규모의 스탠딩석이 확보된 것이 아님에도 나름 무대와 가까운 곳에서 치이지 않고 여유 있게 공연을 즐길 수 있었다. 그것도 알리샤 키스의 공연을 말이다! 특히나 공연의 말미에 다다라서 두 번에 걸친 앵콜은 작위적(?)인 의도를 통해 관객의 열기를 끌어냈다. 가히 탁월한 무대매너라 할 수 있다. 클라이막스를 만들어내는 능력도 중요한 무대매너란 점을 염두에 둔다면 No one과 If I ain’t got you로 이어진 두 번의 앵콜은 정말 엄청난 희열을 부여했다. 물론 무엇보다도 곡이 적절했다. 전체적인 셋리스트부터 세션의 수준, 보컬의 상태까지 모든 것이 만족스러운 공연이었다.
아무래도 한가지 지적당해야 할 부분은 알리샤 키스의 공연과 무관하게 티켓의 가격이다. 듣보잡 공연 기획사가 비욘세로 반짝하더니 갑자기 돈독이 올랐는지 터무니 없는 가격을 책정했다. 3층 사이드의 A석 가격이 십만 원대라는 게 말이 되나? 잠실실내체육관에 한번이라도 와서 공연을 본 관객이라면 아무리 그 누가 온다 한들, 정신 줄을 놓지 않고서 그 자리에 십만 원의 거금을 소비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덕분에 공연 당일, 인터파크에서 남은 좌석을 반값에 급매하는 초강수를 뒀지만 결국 그럼 초반에 예매한 관객은 뭐가 되겠는가? 이런 식으론 악순환만 도모한다. 결국 제값을 받는 공연조차 되지 못할 것이다. 근래 들어 대형뮤지션들의 내한이 이어지는 분위기 속에서 이런 이상한 외부적 잡음이 언젠가 발목을 잡을 것이다.
언제나 그렇지만 국내에 내한하는 톱뮤지션들의 공연 티켓가는 한번쯤 심각하게 조정 당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물론 뮤지션들은 죄가 없다. 터무니없는 가격 책정에 열 올리는 기획사들에 뇌구조를 파헤쳐야 할 것이다. 특히 입장하는 부근에 널린 초대권 암표상들의 정체가 궁금하다. 그딴 식으로 초대권 남발해서 헐값에 자리를 채울바에야 차라리 티켓가를 2~3만원 낮춰서 좀 더 실속을 챙기는 것도 그들에게 바람직하지 않을까? 관객도, 기획사도, 서로 윈-윈하는 방법은 그것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