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대신 1수. 윤태호는 바둑의 한 수를 두듯 <미생>을 그려나간다. 한 수 한 수 현실과 이상의 대국이 펼쳐진다. 그 안에서 수많은 성공과 실패가 지어지고 허물어진다. 그래서 미생이다.
단행본 네 권의 판매부수가 10만부를 넘었다.
사실 출판사와 계약한 건 다섯 권이었고 1년 연재하면 끝나는 분량이었으니 그것만 하고 털어내자고 생각했다. 그런데 한 10수 지나면서 힘이 실린다는 느낌이었다. 특히 날개 달린 대리가 나오는 에피소드를 지날 땐 이거 길게 갈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미생>은 웹툰이지만 단행본으로 보는 맛도 괜찮더라.
사실 <미생>은 단행본 페이지로 먼저 만들고 나서 한 컷씩 떼어 웹상에 붙인 작품이다. 보통 온라인에서 상하로 나뉜 컷과 컷의 간격에 삽입된 내레이션이나 대사엔 임팩트가 있다. 그런데 책에선 스크롤 방식으로 보면서 멋있다고 생각했던 그 대사가 구석의 작은 컷 안에서 훅하고 지나가니 그런 느낌이 덜 산다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책으로 먼저 보다가 기다리기 감질나니까 온라인으로 넘어온 독자들 중엔 오히려 책이 낫다는 이들도 있다. 결국 받아들이는 독자들마다 의견이 다르더라.
바둑과 직장을 소재로 둔 만화를 제의 받은 후 연재까지 3년이 걸렸다고 들었다.
위즈덤하우스에서 제안한 건 바둑의 10계명이라 불리는 ‘위기 10결’을 통해서 직장인들의 처세를 설파한다는 컨셉트의 작품이었다. 10년 전부터 바둑꾼들의 이야기를 생각했지만 그 제안을 받아들이긴 힘들었다. <이끼>는 준비부터 완결까지 5년이 걸렸다. 그렇게 보면 내가 60세까지 할 수 있는 작품이 몇 타이틀 안 되는데 <이끼>를 끝낸 마당에 직장인들의 처세에 관한 만화나 한다는 걸 받아들이기 힘들었지만 일단 계약금을 받았고, 그 제안을 배려해야 한다는 스트레스도 적지 않았다. 그렇게 2년을 보내고서야 지금의 방향을 제시했다. 도리어 출판사에선 고마워했다. <이끼>가 영화화되고 유명해지는 과정을 보면서 작가가 알아서 잘할 텐데 괜히 앞질러간 게 걱정됐다더라. 반대로 난 2년 동안 시간을 보내고서야 다른 방향을 제시한다는 게 마음에 걸렸었다(웃음). 3년간 작품을 준비하는데 한번도 날 흔든 적이 없었다. 그런 배려 덕분에 더 좋은 결과가 나온 것 같다.
직장생활 경험이 없으니 취재원이 필요했을 텐데.
6수 연재할 때까지 취재를 거절 당해서 취재원을 못 만났다. 그래서 초반엔 회사 모습이 좀 두리뭉실하게 그려졌다. 사회경험이 많은 직장인들도 볼 텐데, 내가 자신이 없었으니까. 그러다가 한 지인으로부터 상사맨인 남자친구를 소개받고 시작됐다.
6수까지? 불안하지 않았나?
계약상 더 이상 연재를 미룰 수 없었다. 역시 계약은 위대하더라(웃음). 기업 홍보팀에 전화하면 매번 거절당했다. 지금 생각하면 다행이지. 만약 공식적인 루트로 조언을 받았다면 기업의 이미지를 염려하느라 하고 싶은 이야기를 못할 수도 있었을 거다. 그분들 입장에선 반기업적으로 느껴지는 정서가 포함될 수도 있고.
지금은 취재원들이 알아서 찾아올 것 같다.
메일이 엄청 온다. 특히 요르단 에피소드에선 취재 협조를 자원하는 주재원 분들이 많았다. 하지만 말에 문맥이 있듯이 취재에도 결이 있다. 너무 많은 사람의 이야길 듣게 되면 충돌 지점이 생기겠더라. 물론 사진 자료나 기본적인 정보는 감사하게 받았지만 맥락을 흔들만한 디테일이 유입될까 조심스러워서 함부로 사람을 만나진 않았다.
시점을 유지하는 주체를 명확하게 두고 다양한 팩트만 수집했다는 말처럼 들린다.
그렇다. <미생>의 원 인터내셔널은 취재원들과 함께 만든 가상의 회사다. 그 회사의 폼은 일반적으로 여러 회사에 해당될 수 있다. 그런데 그 설립에 참여하지 않았던 이가 끼어들면 전혀 다른 방향성이 생길 수 있다는 게 염려스러웠다.
당신에게 직장 경험이 없었던 것처럼 장그래도 직장을 처음 경험한다.
장그래의 보고서 작성 에피소드를 위해서 취재원들에게 긴 문장을 짧게 축약한 보고서 작성 사례를 제시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렇게 결과는 갖고 있었지만 그 과정을 그리는 건 내 몫이었다. 그 과정을 찾아가는 게 재미있었다. 나와 장그래가 똑같이 발전한 셈이다. 과거 미술로 인해서 좌절했던 내 경험이 장그래의 대사로서 삽입됐을 수 있고, 데뷔 전 문하생 시절의 후회나 반성이 장그래의 인턴 생활과 겹쳤을지도 모른다.
인물의 상황에 공감하면서 자기 현실을 늘어놓는 댓글이 자주 보인다.
다들 알아서 자기 고백을 해주니까 제2의 취재가 된다. 가끔씩 올라오는 이견들도 악플과 다른 진지한 애정이 느껴진다. <이끼>때와는 상반된 체험이다.
공감대를 키우기 위한 의도적인 설정은 없었나?
93년도의 데뷔작을 독자 입장에서 처음 봤을 때 그 작품이 너무 모자라 보였다. 제3자가 된 거지. <미생>에서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어떤 주의나 주장을 펼치기 보단 목격하듯 묘사하자는 거다. 내가 내 데뷔작을 봤던 것처럼 독자들이 자신들의 생활을 제3자의 입장으로 목격하는 느낌을 주고 싶었다. 그래서 최대한 대사를 소박하게 쓴다. 문장이 현란하면 특정한 누군가의 정체성처럼 느껴지지만 문장이 소박하면 자기 이야기처럼 들리지 않나.
<야후>나 <이끼> 그리고 <미생>의 사연은 주인공들의 실패와 절망에서 비롯된다. 하지만 <야후>의 김현이나 <이끼>의 류해국은 불처럼 뜨겁게 번지는 인물이라면 <미생>의 장그래는 물처럼 차갑고 유하게 흐르는 인물이다. 작가의 변화가 반영된 결과처럼 보인다.
최근에 이런 얘길 들었다. “드디어 작품에서 어머니가 나오네요.” 깜짝 놀랐다. 전작들에서 주인공의 심리에 영향을 미치는 건 모두 가부장이었던 거다. <로망스>에선 장인어른이 모델이었고, <야후>나 <이끼>, <그 남자는 거기 없었다>도 아버지와 연관된 이야기였다. 사실 <이끼>로 단단하게 매듭을 지은 느낌이 있었다. 가부장이란 정서에 기대서 창작해왔던 시절이 <이끼>로서 결산된 느낌이랄까. <미생>엔 확실히 모성애적인 코드가 있다. 영업 3팀에서도 모성애적인 연민이 강하지 느껴지지 않나.
개인적인 삶에서 계기를 찾을 순 없을까?
한번은 고향 가족들과 지리산에 놀러 갔는데 어머니께서 딸에게 물으셨다. “아빠가 무서워? 엄마가 무서워?” 그러니까 엄마는 화를 많이 내도 이해해주는 느낌이 있지만 아빠는 아무 것도 모르면서 화만 내니까 무섭다고 했다(웃음). 한편으로 서운한 이야기지만 확실히 아내가 잘하고 있음을 확신했다. 가끔 집에 들어가면 아내가 애들한테 화낼 때 아내에게 짜증내면서 뭐라고 했다. 그런데 막상 초등학교 6학년이 되는 큰 애는 엄마가 자기를 공격하는 게 아니라는 걸 정서적으로 믿는 거다. 아내의 힘을 느꼈다. 아무래도 이런 경험이 이야기도 변화시키는 것 같다.
<이끼>는 보는 사람도 힘이 들어가는 작품이었다. <미생>은 반대다. 그건 작가도 비슷하게 느끼리라 생각한다. 물론 마감은 항상 힘들겠지만(웃음).
프롤로그에선 자기 연민에 빠진 인물이 나온다. 슬픔을 먼저 던져주고 진행하는, 전형적인 내 패턴인데 그걸 딱 보니까 과거처럼 하기 싫어졌다. 나이를 먹으니까 몸이 어떻게든 조금은 자라있어서 예전에 입던 옷을 그대로 입을 수 없으니까 갈아입을 때가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그래라는 이름도 특이하다.
그 이름은 3수에 등장하는데 거의 3수 시작 직전에 생각한 이름이다. 당시에 ‘예스(Yes)’라고 쓰인 티셔츠를 입고 오피스텔에서 담배를 피우다가 거울에 비친 단어를 보고 ‘그래. 장그래?’하는데 어감이 착 붙더라. 그리곤 여자가 ‘안녕’하면 남자는 ‘그래’하는 걸로 여자 캐릭터는 ‘안영이’로 지었다(웃음). 바둑에서 오래 사는 돌을 부르는 장생을 생각하기도 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아찔하지(웃음).
<미생>의 캐릭터들은 저마다 축을 잡고 저마다의 시점과 합리를 설득한다.
다양한 직장인들이 그들 자신을 투사할 수 있도록 다양한 캐릭터를 만드는 게 목표였다. 주인공은 그런 이들을 드러내는 가이드 역할을 하는 거다. 워커홀릭인 오차장이 있고, 위아래의 교량 역할을 하는 김대리, 권위적이진 않지만 대리보단 무게감이 있는 천과장 같은 이가 그들이다. 그들과 경쟁하면서도 함께 일하는 동료로서 염려해주는 옆 부서의 팀원들도 있다. 워낙 회사의 인물군이 다채로우니까 의식적으로 캐릭터를 설정하고 묘사하기 보단 스토리의 이슈에 따라서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인물을 배치하는 요령이 생긴다.
영업3팀은 굉장히 이상적인 팀이다. 능력과 배포가 있는 상사들과 발전하는 막내 사원들이 직위에 따라 역할을 수행하고 부조리가 없으며 체계가 잘 돌아간다. 영업3팀 자체가 <미생>의 주제이자 작가의 이상이라고 본다.
분명히 그렇다. ‘미생’은 완생으로 가는 길인데, 사실상 완생이란 이룰 수 없는 꿈과 같다. 대부분은 진짜 자기 꿈을 이루지 못하고 다른 삶을 살다가 어느 순간엔 그 꿈을 잊는다. 하지만 성인으로서의 이상도 있는 거다. 그걸 묘사하고 싶었다. 다른 부서를 통해선 어쩔 수 없는 현실의 각박함을 보여준다면 영업 3팀은 그 자체로서 내가 짐작한 직장인들의 이상향을 그리고 싶었다. 당신은 이런 욕망과 열기를 안고 입사하지 않았나? 이런 상사를 꿈꾸지 않았나? 어쩌면 그들의 현실에 존재하지 않더라도 꿈꿨을지도 모르는 그런 것들 말이다. 그러니까 <미생>인 거다.
하지만 결국 현실을 자각하게 만든다. 고졸인 장그래가 정사원이 되기 어려울 거란 대사가 등장할 땐 뼈아픈 기분마저 들더라.
요르단 사업 에피소드가 끝나고 ‘당연히 이 정도면 장그래도 정사원 돼야지!’란 댓글이 많이 보였다. 그래서 그 에피소드를 지난 해의 사업 실적과 10대 성과를 공개하는 2013년도 시무식 장면으로 연결했다. 독자들 입장에선 영업3팀의 요르단 사업이 대단한 이슈였고, 장그래가 큰 일을 한 것처럼 보이지만 만화 속의 대기업 차원에서 엄밀하게 보자면 그 이전에 비리 과정의 유무와 관계없이 이미 존재했던 사업을 다시 한번 세팅한 것뿐이다. 사업 자체를 올바르게 되돌린 측면은 있지만 회사의 성과로선 당연한 업무였을 분이니까 장그래가 부각될 이유가 없었던 거다.
현실적이라서 더욱 가혹하다.
스토리상 항상 고민하는 지점이다. 장그래가 잘된다고 이 사회의 계약직 사원들이 다 잘되는 건 아니다. 물론 작품이 리얼리티만을 담아야 되는 건 아니지만 지나치게 현실을 무시하는 것도 기만이다. 특히 <미생>이 많은 지지를 얻은 건 독자들이 당면한 실질적인 고민을 대변했기 때문인데 장그래가 정사원이 되면 그걸 무시하는 게 아닐까 싶었다. 그래서 ‘장그래 정사원 시켜라!’ 이런 댓글들이 늘어서 나조차도 거부하기 어려워지기 전에 못을 박았다.
낙관적인 거짓말은 할 수 없지만 긍정적인 비전은 제시할 수 있다.
그래서 고민했다. 그런 비참함으로 끝내야 될까. 그래서 ‘지금의 회사만이 당신의 전부는 아닐 거야’라는 대사를 넣었다. 정사원이 되지 못했다고 장그래의 인생이 실패한 건 아니니까. 큰 상금이 걸린 대국에서 패한 바둑기사들은 ‘한판의 바둑이 끝난 거지’ 그러고 만다. 살다 보면 수많은 바둑판을 마주하니까 그저 한판일 뿐이다. 그 초연한 태도가 정말 매력적이다.
바둑 실력은?
10급 정도.
10급은 어느 정도 수준인가?
18급에서 1급으로 올라가고, 승단하면 초단에서 9단으로 올라간다. 10급보다 밑이면 대단히 못 두는 건데, 바둑의 재미를 느끼는 초입 단계랄까. 수는 낮지만 바둑TV에서 유명한 기사의 대국에 관심을 갖고 지켜볼 수 있는 정도?
어떻게 입문했나?
문하생 때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다. 작가 선생님들께서 가끔 바둑을 두셨는데 어른스러워 보이고 멋있더라. 그래서 바둑을 배웠다. 그런데 패배감 관리가 안되더라. 지고 나면 아까 뒀던 바보 같은 수가 계속 떠오르고 너무 분하고 약 올랐다(웃음). 남들은 하루에 서너 판도 두는데 난 한 판만 둬도 진이 다 빠졌다. 그래도 관련 서적을 읽는 건 재미있어서 그쪽으로 빠졌다. 바둑인들의 삶은 알수록 대단하다. 조치훈 9단은 교통사고가 났는데도 휠체어를 타고 와서 바둑을 둔 휠체어 대국이 유명하다. 그때 누가 왜 그렇게 바둑을 두냐고 물어보니까 이렇게 답했다. “어차피 바둑, 그래도 바둑.” 남들한텐 바둑일 뿐이지만 자신한텐 바둑이 전부라는 거다. 대단한 비장함이 느껴진다. 바둑 기사들의 정수가 남긴 어록들을 보면 흉내낼 수 없는 어떤 경지가 느껴진다.
단행본의 ‘작가의 말’에서 바둑을 자기 패배조차도 복기하는 유일한 일이라고 했다. 그 문장을 읽고 새삼 바둑에 대해서 새롭게 인식했다.
대여섯 살부터 바둑을 둔 영재급 아이들 중 몇몇은 연구생이 된다. 감정 정리도 잘 안될 것 같은 그 꼬맹이들도 가만히 앉아서 복기한다. 그 아이들이 패배의 감정을 어떻게 관리할까, 마음을 단단하게 만들고자 어떻게 노력했을까, 이런 생각을 하면 연민이 생긴다. 바둑이 어려운 건 상대적이기 때문이다. 격랑의 사춘기에 연구생이 되어 승수를 채우고 입단하고자 할 텐데 이창호나 이세돌 같은 천재들이 많으면 아무래도 어렵다. 실력이 늘어도 자신보다 더한 천재를 만나서 패배하면 실력이 낮은 거다. 그런 과정을 견딘 아이들이 사회에 나오면 그 단단한 마음으로 바라보는 세상이 어떨까 궁금했다.
부모로서의 심정도 더해질 것 같다.
아이에게 연민이 들 때가 있다. 분명히 이런 상황에선 슬플 거 같은데 웃고 있을 때가 있다. 그걸 보면 슬프다. 이 정도는 참아낼 수 있으니까 걱정하지 말라는 뜻인데 부모 입장에선 그렇게 애가 성장하는 모습을 보는 게 마냥 기쁘지만은 않더라.
인생이 바둑이라면 본인은 어느 정도 수를 둔 거 같나. 어떤 판국이 보이나?
포석은 다 지난 정도? 이 판이 어떻게 될 거 같다고 어느 정도 정돈된 형세랄까. 나란 사람이 사회에서 어떻게 살아갈진 대충 정해진 거 같다. 큰 자리들을 보면 내가 확보한 지점도 있고, 남에게 넘어간 지점도 있고. 이제 중반 이후에 끝내기를 어떻게 잘 처리할지가 문제다. 한 집이라도 더 확보할 수 있도록 정당하게 잘 싸울 수 있는 판을 짜야 한다. 디테일하게 모든 단계가 중요한 시기가 온 거 같다.
칸 영화제는 잘 다녀오셨나요? 만만치 않은 일정을 소화하셨을 것 같은데요. 칸에 가서 당일 하루는 쉬고, 그 이튿날 시사하고요. 그 이튿날은 아침부터 밤까지 15분 간 딱딱 끊어서 인터뷰 쭉 했고요. 영화를 보고 어찌나 박수를 쳐주는지, ‘나를 되게 좋아하나 보다’ (웃음) 그런 생각이 들 정도였어요. 그 다음 이튿날에 한국 와서 하루 뒤에 언론시사회 하고, 오늘은 VIP시사회한다고 하는데 내가 이걸 하고 있다는 게 완전히 신기하다 싶을 정도로 계속 하고 있네요.
체력적으로 힘드셨을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건강 관리가 중요할 것 같은데요.
힘들어요. 되게 힘든데, 평소에 건강 관리는 하죠. 운동을 조금씩 해요. 러닝 머신도 하고, 아령 같은 걸로 하는 운동도 하고요. 그렇게 해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웃음) 운동은 하루마다 하는 건 아니고, 종종 할까, 말까, 한 시간쯤 고민하다가 슬슬 걸어가서 한 시간 반쯤 놀다가 쉬다가 그렇게 하고 오죠. (웃음) 그래도 하고 나면 '난 운동했다' 그런 기분 때문에 하지 않은 것보단 훨씬 기분이 좋아져요.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것도 중요할 것 같은데요.
전 무조건 자요.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으면 머리가 터질 것처럼 아파서요. 그냥 무조건 자요. 자지 않으면 펑펑 터질 것 같아요.
나이에 비해 피부도 너무 고우세요. (웃음)
왜 그럴까. 일단 담배피지 마세요. (웃음) 난 이제 담배 끊은 지 12년 째 됐는데요. 그때부터 서서히 좋아지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20일에 한번씩 피부 케어도 받아요. 적어도 한 달은 넘기지 않아요.
봉준호 감독의 전작을 보셨나요?
<살인의 추억>은 봤어요.
어떻게 감상하셨나요?
저는 돌아다니는 걸 싫어하니까 영화를 극장에서 잘 안 봐요. 비디오 테이프로 나온 다음에 보니까 1년 뒤에나 영화를 보게 되는데 뒤늦게 <살인의 추억>을 보면서, ‘우리나라에 저런 불란서 영화 같은 영화가 있네, 멋있다’, 그런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그 즈음에 봉준호 감독과 얘기하게 되고, 정말 좋았죠. 내가 좋아했던 영화의 감독이 저에게 그렇게 해주겠다고 하니.
봉 감독 별명은 아세요? 봉 테일이라고 하는데.
저도 처음 알았어요. 스태프들이 이야기해주더라고요. 본래 봉 테일이라고. 그러니까 그건 디테일하다는 말이잖아요. 정말 빈틈없는 사람이에요. 예를 들어서 하나도 그냥 지나치는 일이 없어요. 이렇게 저기에 무슨 소품 하나라도 빠진 게 (머리를 가리키면서)이리로 느껴지나 봐요. 제가 많은 영화감독들하고 일해보진 않았지만 드라마도 많이 했으니까, 그냥 제 느낌으로 보자면 정말로 막 촉수가 이리저리 다 뻗쳤는데도 그게 산만하지 않게 정확히 제자리로 뻗치는 것처럼 보여서 놀랐어요.
봉준호 감독과 영화를 찍게 된다 하니 주변에 계시는 분들의 반응이 어떻던가요?
김수현 씨가 옛날에 내가 영화 하려고 할 때 “혜자씨, 영화 하지 마. 영화는 드라마와 달라서 심플하지 않은 것 같아”, 그랬는데 이번에는 봉준호 씨가 감독하니까 하면 좋겠다고 하는 거에요. 내가 특별히 누구하고 얘기한 게 없어서 그것밖에 들은 게 없어요.
단편드라마 <여>에 출연했던 김혜자 씨를 보고 봉준호 감독이 <마더>를 구상하게 됐다고 하더라고요.
봉 감독이 어려서부터 TV를 많이 봤더라고요. <전원일기>도 아주 다 꿰고 있어요. 식구들이 TV를 즐겨보는 가족이었대요. 그래서 어렸을 때부터 TV많이 보고, TV에 나오는 배우들에 대해서도 잘 알고. 그리고 그렇게 연극을 많이 보러 다닌다고 해요. 그래서 낯 익히지 않은 새로운 배우가 필요할 때 캐스팅하죠. 좌우간 일에 대해서 열정을 말릴 수 없을 정도로 부지런한 감독인 거 같아요.
봉준호 감독이 본격적으로 김혜자 씨에게 러브콜을 보낸 건 <살인의 추억> 이후부터라고 들었어요. 배우 입장에서는 마치 열렬한 구애를 받는 것처럼 느껴지지 않았을까요.
행복한 일이죠. 정말 촉망 받는 젊은 감독이 저를 갖고 어떤 영화를 기획한다는 말 자체가 배우로서 저를 너무 행복하게 하는 말이었어요. 실현이 되든, 안 되든, 그랬어요. 전 항상, “5년 전에 생각해놓고 중간에 나한테 말한 거 부담 느껴서 자꾸 진행시키려고 무리하지 마라. 난 나한테 말해준 것만으로 고맙다.” 그렇게 몇 번이나 얘기했어요. “너무 시간도 많이 가고, 난 하루가 다르게 늙어간다. 어떻게 내가 20대 아들의 어머니를 할 수 있겠냐.” 그런데 그럴 때마다, “선생님 아니면 전 이 영화 덮어요.” 그러면서, “선생님 보이는 대로 찍을 거에요.” 그렇게 얘기했어요. 사람들은 김혜자 씨가 안 하면 이거 누구 시킬 거냐고 물었다는데, 그거 다 몰라서 하는 소리라고. 김혜자 선생님 때문에 떠오른 생각이고 만약 안 된다면 없었던 걸로 하겠다고 했다네요. 자기가 계획했던 걸 절대로 바꾸지 않더라고요.
보이는 대로 찍겠다는 말처럼 영화에서 적나라하게 얼굴이 클로즈업되곤 하더군요.
영화를 보니까 어떤 때는 너무 나이 들게 나오고, 어떤 때는 너무 젊게 나오고. 그런데 이 영화가 그냥 한 장면에 머물러서 저 여자를 관찰할 틈을 안 주는 영화에요. 그렇죠? 엄마의 나이가 상관이 되지 않는 영화였어요. 그렇기 때문에 봉준호 감독도 별로 개의치 않았던 거 같아요.
자신의 표정을 구상해본 적은 없으셨나요?
거울 보고 그럴 틈은 없었어요. 수시로 감정이 변해야 되는 상황에서 거울보고 연습할 새가 있어야죠. 끝나고 나서 방에 들어와서 아까 한 걸 가만히 생각해보면서 ‘내가 아까 어떻게 했지’ 하고 가끔 본적은 있어요. 자기 전에 세수하고 와서 그걸 해보자고, 거울을 이렇게 보고 그래 봤지만 그건 아무런 도움이 안 됐어요.
김혜자 씨만이 이 영화를 찍을 수 있다는 봉준호 감독의 공언이 영화를 보기 전까진 실감나지 않았지만 영화를 보니까 그 의미를 알겠더군요. 진짜 알았어요? 아이, 좋아라. (웃음)
스크린에 쏟아져 나오는 김혜자 씨의 표정 자체만으로도 영화가 놀라웠어요. 그런데 그런 표정의 가능성을 봉준호 감독이 이미 예감하고 접근했다는 것이 더욱 놀라워졌어요.
저도 무섭다니까요. 얼마나 영리하고 천재적인 사람일까, 어떻게 나한테서 저런 게 나올 거라 예상했을까. 저도 모르게 그런 표정이 나오게 상황을 몰고 가는 거에요. 그게 일부로 거울 보고 연습해서 지어낸 표정이겠어요? 아니지. 난 깜짝 놀랐다니까. 제 눈이 이렇게 돌아가는 걸 보고, ‘어머나!’ 이랬다니까. (웃음) 왜 사람이 환장하면 눈이 돈다 그러잖아요. 진짜 눈이 돌더라니까. 모니터보고, ‘어머나, 진짜 눈이 뒤집히는구나’ 그랬지.
<마더>는 언제 처음 보셨나요.
정식으로 본 건 칸에서였어요. 여기선 떨려서 못 보겠더라고요. 저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TV모니터도 제 방에서 혼자 했거든요. 내가 나오는데 누가 옆에서 한눈 팔고 딴짓하면 다 느껴지잖아요. 이러면 막 짜증나고 신경질 나기 때문에 혼자 문 꾹 닫아놓고 보고 그랬지. 근데 이제 좀 많이 둥그래져서 같이 보긴 하지만 이번에는 같이 못 보겠더라고요. 특히나 기술 시사에선 거의 완성본을 보여준다는데 불 켜고 난 다음에 사람들 표정이 어떨까 무섭고 민망해서 못 봤어요.
<마더>에서 묘사하는 어머니는 일반적인 모성상으로 이해될만한 평범한 어머니가 아니죠. 어쩌면 그 지점이 <마더>에 대한 흥미가 생길만한 계기가 아니었을까 싶은데요.
그런 어머니였기 때문에 하고 싶었어요. 이제 일상적인 어머니를 너무 많이 했잖아요. 물론 <엄마가 뿔났다>같은 경우는 자기를 찾으려고 애쓰는 조금 다른, 아직도 우리나라 사회에선 잘 받아들여지지 않는 깨인 엄마를 연기했잖아요. 그래서 사실 <엄마가 뿔났다>하기 전까진 굉장히 공백 기간이 길었어요. 그 정도로 하고 싶은 작품이 없었기 때문에. 그런데 <마더>도 이런 엄마였기 때문에 한 거죠.
사실 <마더>에 나오는 어머니는 어미라고 표현하는 게 맞을 것 같아요.
짐승 같죠. 애미도 아니고 어미에요. 그 여자가 화장터에서, ‘우리 아들이 안 그랬거든요’ 이러면서 눈이 이렇게 뒤집어지는 걸 모니터로 보고 깜짝 놀랐어요. 아니, 내 눈이 어떻게 저렇게 되냐고. (웃음) 그니까 그건 어미죠. 개나 짐승이 새끼 낳고 낯선 사람이 들어오면 으르르하잖아요. 그런 것과 똑같이 자기 새끼를 해치려고 하는 것에 대한 반응이 거의 짐승 같았어요, 이 엄마는.
이성적인 합리를 먼저 정립하는 것보다도 본능적인 에너지에 대한 필요성을 먼저 자구할만한 캐릭터가 아니었을까요?
그러니까 아마 전 크게 병 날 거에요. 어느 영화보다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 연기였기 때문에. 그런데 정신은 굉장히 맑아졌어요. 육체는 피곤할지 모르지만 정신은 맑아지고, 새로워졌다고 할까요.
뭔가 새로운 기운을 얻었다고 느끼시는 건가요?
땅을 일군다고 하잖아요. 저는 이 영화를 하면서 그 동안에 저한테 딱딱하게 굳어져있던 속을 다시 일군 거 같아요. 비료도 주고, 나한테 고착돼있던 어떤 생각들, 매너리즘에 빠져있던 것들이 다시 이렇게 새로워지는 느낌을 받았어요.
어머니로서 <마더>에서 연기한 인물의 모성에 대해서 이해하실 수 있으세요?
저는 그렇다고 생각해요. 그런 말이 있잖아요. 자식을 위해 죽을 수도 있는 건 엄마밖에 없다고. 그 말은 곧 자식을 위해 죽을 수도 있지만 자식을 해치려 그러면 죽일 수도 있다는 말이 돼요. 그만큼 아무 것도 안 보인다는 말이 되거든요. 자식을 위해서라면. 물론 관객들은 좀 놀라겠죠. 그렇지만 놀라면서도, ‘그래, 자식이니까 저러지’ 그러실 거 같아요. 그리고 어딘가 부족하고 모자란 애니까 측은하고, 내 목숨하고 바꿨으면 좋겠다 싶은 자식이니까. 저도 정말 걔만 보면 가슴이 너무 아팠어요. 책을 읽으면서부터 도준이란 인물이 너무 가슴 아픈 자식이었기 때문에. 그리고 친구라고는 동네 건달인 진태밖에 없잖아요. 정말 인간 말종이라고, 종자부터 틀렸다고 엄마가 표현하지만 마음 한편으론 고마운 거에요. 내 아들의 친구가 돼주니까.
연기를 오랫동안 해오셨지만 <마더>에서의 김혜자 씨는 기존에 보여주셨던 연기와 차원이 다른 새로운 모습이었다고 생각해요. 그만큼 김혜자 씨께서도 처음이라 할만한 경험이 있지 않았을까 싶은데요.
처음 해본 게 많아요. 정말. 사실 국내에서는 얼굴을 알아보니까 외국으로 여행을 많이 가도 국내에선 어디 여행을 잘 못 다녀요. 이게 서울에 있는 스튜디오에서만 찍은 게 아니고 영화팀과 같이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찍었잖아요. 관광지가 아닌 곳인데도 ‘우리나라 산천이 이렇게 아름답구나’, 라는 걸 느꼈고, 공기도 맑고, 인정도 좋고, 그런데 사니까 두통도 없어지더라고요. 전 평생 두통을 달고 살았는데 두통도 없어지고, 서울에 있을 땐 배고픈 지도 모르고 그러는데 배도 고프고, (웃음) 그래서 밥 언제 먹냐고 물어보기도 하고. 새로운 일에 대한 열정이 저한테 남아 있다는 게 신기했어요. 저는 저한테 열정이 죽었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 점에서 봉준호 감독한테 감사해요. 저한테 불씨만 남아있던 열정을 다시 타게 해줬으니까.
<마더>는 <마요네즈>(1999)이후로 10년 만에 출연을 결정한 영화에요. 그 사이에 작품 제의가 있었을 것 같은데 한 작품도 하지 않았다는 건 그만큼 마음에 드는 작품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일까요?
같이 하자고 그러시는 분들이 몇 분 계셨지만 내가 TV에서 너무 많이 했던 비슷한 역할들을 보여주셨기 때문이에요. 내가 우선 그런 역할에 싫증이 나는데 누가 그걸 극장까지 보러 오겠어요. 그러니까 차라리 내가 아닌 사람이 하는 게 훨씬 더 나을 것 같은 거에요. 그래서 그 분들한테, “이건 사람들이 전혀 상상하지 못한 사람에게 시키던가 하지, 내가 나가서 하면 무슨 흥미가 있겠느냐”, 그랬어요. 그런데 봉준호 감독은 처음부터 이건 선생님에게서부터 영감을 얻어서 기획한 것이기 때문에 선생님이 안 하신다 그러면 이건 그냥 덮어버린다, 그랬어요.
결국 10년 만에 스크린으로 자신의 얼굴을 본 셈이에요. 그런 점에서도 감회가 남다르지 않았나요?
그러고 보니 그렇네요? 그런 생각은 안 해봤는데. (웃음) 예. 감회가 남다르네요. 정말로. 이제 막 생각하게 됐어요.
오랜만에 영화 현장에서 작업하는 기분은 어땠나요?
드라마 같이 쫓기지 않아서 좋았어요. 말하자면 배우의 창의력이 발휘되기 좋다는 점이 달라요.
아무래도 생각처럼 항상 연기가 잘 되는 건 아니었을 텐데요. 촬영하지 않을 때는 쉬라고 캠핑카가 마련돼있었거든요. 잘 표현이 안될 때는 그 속에 들어가서 울었어요. 답답해서. 내가 이렇게까지 밖에 표현이 안되나 싶어서.
사실 영화 속에선 우는 연기가 거의 없잖아요. 감정을 안으로 눌러 담으면서도 그걸 온전히 드러내야 한다는 점에서 답답한 부분도 적지 않았을 거 같습니다.
어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을 드러내야 되는 거에요. 물론 우는 것도 종류에 따라 다르지만 그래도 우는 건 울면 되니까. 눈물 없이 형언할 수 없는 감정을 표현하라는데 잘 안되잖아요. 그래서 차에 가서 막 울었어요.
그럴 때 봉준호 감독의 반응은 어땠나요?
감독이 달래주러 들어오더라고요. 그래서 나가라고 그랬어요. 해줄 말 있으면 문자로 해주라고. (웃음) 그랬더니 문자를 했더라고, 진짜. ‘아무리 부인해도 세상에 화날 땐 인정하세요’ 괜히 나 위로하려고 그러는 거지. 잘 안된 건 자기가 제일 잘 알잖아요. 그렇게 생각했어요. 많이 배려해주지만 자기 맘에 안 드는 연기는 추호도 봐주는 게 없었어요. 마음에 안 들면 다시 하고, 다시 하고, 그런 점이 저하고 같았어요.
문자도 하실 줄 아세요?
제가 <마더>때문에 처음으로 이 핸드폰을 썼어요. 하도 답답하니까 영화사에서 사줬거든요. (웃음) 그리고 봉 감독이 핸드폰에 취미를 갖게 하려고 문자 하는 법도 알려주고 그랬죠.
인터넷은 할 줄 아시나요?
인터넷은 잘 몰라요. 대신 우리 아들이 좋은 얘기 나왔을 땐 와서 보여줘요. “엄마, 여기 재미있는 얘기 있어. 와봐.” 그래서 읽어주다가, “이거 보려면 쑥 내려.” 그리고 딴 데 가요. 그런데 저는 내리다 보면 다른 게 나와요. 그래서, “얘!” 부르면 “아이, 참, 엄마, 그냥 보지 마세요.” 그러곤 하죠. (웃음) 그런데 나쁜 얘기는 안 보여주겠죠. 좋은 얘기만 보라고.
봉준호 감독이 아들처럼 느껴질 때는 없었을까요?
아~니, 전 그 사람 존경해요. 나이로는 그렇게 생각할 수 있어도 그 사람 하는 거 보면 존경할 수 밖에 없어요. 정말 똑똑한 사람을 보면 존경해요. 그 분은 굉장히 천재적이고요, 정확한 사람이에요. 자기 머리 속에 확실한 그림이 서있어요. 우물쭈물하는 법이 없어요.
봉준호 감독이 연기가 마음에 들지 않아 한다는 걸 느낄만한 주문이 있었나요?
"다 좋은데 한번만 다시 해보세요." (웃음) 나도 찍으면서 봉 감독이 오케이 할 때, “아니, 나도 한번만 더해보고 싶어요” 그래도 자기가 됐다고 생각하면, “아니요, 됐어요”, 그래요. 정말 못 됐어. 진짜로. (웃음)
어쩌면 뭔가 그 이상을 끌어낼 수 있는 기대감에 계속해서 연기를 요구한 건 아닐까요.
봉 감독이 여러 버전으로 해보길 원해요. 그러니까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고, 그러다 보면 저도 모르는 좋은 게 나와요. 어쩌면 틀에 박힌 듯이 할 수 있는 걸 이렇게, 저렇게 해보고 그러니까 더 재미있다는 걸 느끼게 해주더라고요.
외로움을 느낀 적은 없으셨나요? 소통이 불가한 고립된 캐릭터를 연기했는데 그만큼 배우 스스로도 캐릭터의 고립감을 느끼면서 연기해야 하지 않았을까 싶은데요.
맞아요. 그런 점에서 그랬어요. 나하고 소통되는 사람이 없잖아요. 말은 하지만 누구와 말을 주고 받는 게 아니고 나 혼자 중얼거렸다가 무시당하고 그러지, 그러니까 허공에 대고 얘기하는 것 같았어요.
체력적으로도 소모가 많았을 텐데요. 연기적으로 힘들다고 느꼈던 고비가 있으셨나요?
제일 힘들었던 건 뛸 때도 아니고 내 맘대로 연기가 안될 때. 아까 말한 것처럼 형언할 수 없는 표정 지으라고 써 있는데 그게 안될 때 감독은 ‘그게 바로 형언할 수 없는 표정이에요’, 라고 말하지만 어떡하란 말이야, 도대체, 지가 한번 해보라지! (웃음)
영화 안에 모호한 표현이 많더군요. 완전한 정답이나 확신을 주지 않고 의심하게 만드는 부분들이 많잖아요.
저는 책보고 많은 생각을 했어요. 그러니까 말하자면 우리가 책 읽을 때 행간을 읽는다고들 그러잖아요. 그런 것처럼 여기 참 숨은 그림이 많구나 싶었어요. 제 역할에 대해서, 그리고 아들에 대해서도 굉장히 애매하게 표현된 점이 있어요. 그냥 저 사람들은 모자관계일까, 아니면 모자관계이상일 수 있을까, 그런 것도 아주 그렇게 안개 속같이 표현해요. 그러니까 자기가 이해할 수 있는 만큼만 보여준다고 생각해요. 약간 그리스 비극 같은 생각도 들고. 남편에 대해서도 아무 언급이 없잖아요. 골방에 들어가서 사진을 찢을 때도 그 옆엔 애 아빠가 있었겠구나, 이런 암시만 남잖아요. 그러니까 이 남자를 무지무지하게 사랑한 여자였나, 아니면 어떤 사랑을 했길래 저러나 알 수 없어요. 그래서 시작하기 전에 너무너무 많은 생각을 했죠. 그러다가 구상이 점점 추상으로 가는 것처럼 뭔가 구체적으로 많이 생각했다가 붓 하나 찍 긋는 것처럼 연기는 심플하게 한 거죠.
칸에서도 <마더>를 통해 다양한 평을 얻으셨을 텐데요. 아무래도 김혜자라는 배우에 대한 인식과 선입견이 뚜렷한 국내 관객의 기대나 감상과 다른 신선한 반응을 목격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달라요. 그 분들은 <전원일기>도 모르고 아무 것도 모르기 때문에 선입견이 없어요. 그러니까 그냥 원빈의 엄마로 받아들이는 거야. 아마 우리나라 분들은 ‘원빈이 아들이야? 봉준호가 아들 뻘 아닌가’ 그런 선입견이 생길지도 모르잖아요. 그러니까 그건 기자 분들 책임이야. 꼭 이름 옆에 가로치고 나이를 적어서 그렇다니까. (웃음) 나이가 배우를 결박 씌우는 거에요. 그 분들은 오히려 선입견이 없기 때문에 나이가 느껴지지 않는다고 했어요. 영화에서 굉장히 늙어 보일 때가 있지만 어떤 때는 굉장히 젊어 보일 때가 있잖아요.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제 나이를 너무 잘 알죠. 기자들이 자꾸 써주니까, 친절하게. (웃음) 그러니까 배우 나이는 안 쓰는 게 좋을 거 같아요. 그냥 짐작하는 것과 자꾸 이렇게 적어놓은 걸 보는 것하곤 틀리거든요. 제가 몇 살쯤 됐다는 거야 다 알겠죠. 언제적 김혜자인데. 근데 그걸 못박아서 써줄 때와 아닐 때는 또 다를 거 같아요.
사실 중년 배우들을 주인공으로 다룰만한 작품이 우리나라에선 드물기도 하죠.
그렇죠. 그런데 자꾸 이렇게 나이 밝히고 그러니까. (웃음) 이건 농담이고요. 사실 젊은 사람들 얘기가 예쁘잖아요. 보고 나면 재미있고. <마더>처럼 특별한 상황에서 특별한 연기가 요구되는 경우는 흔치 않겠죠. 그렇죠?
작품을 마치고 난 지금은 마음이 어떠신가요?
저는 꼭 작품이 끝나면 아파요. 지금은 아직 시사도 있고, 기자 분들 만날 일도 있고, 개봉하면 인사도 다녀야 되니까 그때까진 안 아플 거에요, 아마. 그런데 그게 다 끝나면 아플 거에요. 많이 아플 거에요.
왜 그럴까 생각해보신 적은 있나요?
맥을 놔서 그럴 거에요. 이 엄마가 떠나가면 아파요. 떠나가면서 나를 병이 나게 하고 갈 거에요. 지금은 아직도 이 엄마가 내 속에 있기 때문에 괜찮은 거겠지.
최근 인터뷰에서 레드 카펫에 대한 환상이 없었다고 밝히셨더군요. 사실 칸 영화제 레드 카펫이라면 배우로서 한번쯤 꿈꿀만한 자리일 텐데요.
저는 이번에 <엄마가 뿔났다>하기 전에 활동한지 너무 오래돼서 백상예술대상이나 KBS 연말 대상 시상식 같은 데서도 레드 카펫을 까는지 몰랐어요. 그 때도 ‘여기 뒷문 없어?’ 그래서 뒤로 들어왔어요. 무안해서. 그건 그냥 젊은 사람들이 예쁘게 입고 관객들 즐겁게 해주는 것 정도로만 생각했지. 저한테 그런 환상은 별로 없으니까요.
올해는 시상식에서 정문으로 들어오시겠죠.
칸에서 그랬으니까 우리나라에서도 그렇게 해야겠죠. 그렇죠? 이번에도 뒷문으로 가면 저 여자는 해외에서만 저러고 국내에서는 안 그런다고 하겠죠. (웃음)
스스로 자식들에게 어떤 어머니라고 생각해보신 적이 있나요? 자식들한테 약간 폐가 되는 엄마일 걸요. 맨날 한심한 말 하고 그러니까. 그렇지 않으면 가만히 앉아있고, 밥 좀 먹으라고 몇 번씩 말을 해야 그래, 그러면서 먹고.
보통 어머니들께서 자식에게 밥 먹으라고 하시는 게 보통인데 말이죠.
집에 가만히 있으면 배가 안 고픈 걸 어떡해. 그러니까 제가 대표적인 엄마상이라는 게 약간 어폐가 있죠. 사람들은 누구나 무엇을 하든 허상이 있다고 생각해요. 배우로서 그 동안 어머니 역을 잘 했으니까 그렇게 얘기하겠죠. 내 사생활은 엉터리였어도.
최근 출연하셨던 <엄마가 뿔났다>의 한자도 집을 나가서 안식년을 갖겠다고 선언하죠. 사실 우리나라의 어머니들은 가족을 위해 헌신하는 것이 당연한 삶처럼 여겨지잖아요. 그런 측면에서 보면 한자도 상당히 이례적인 어머니 상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한자는 상당히 선구자적인 엄마에요. 그런데 보통 자기 친구들도 만나면서 가끔 자기 즐거움을 찾는 주부들도 정말 안식년을 가져야 된다고 그러는데 전 거기에 대해서는 좀 생각을 달리해요. 안식년을 요구할 수 있는 엄마는 정말 가족을 위해서 자기는 하나도 없었던 엄마에요. 이렇게 저처럼 제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 무슨 안식년이 필요 있어요? 이게 안식이지. 오로지 집에서 식구들을 위해 정말 자기를 다 바쳤다고 말할 수 있는 엄마들만 쉬는 시간을 달라고 요구할 자격이 있는 건데 너도 나도 다, ‘집 잘 나왔어’ 이러는 거에요. 물론 어떤 분들은, ‘아니, 그만하면 살지’ 그러시더라만. (웃음) 어쨌든 저는 그래서 김수현 씨가 앞서가는 선구자적인 작가라고 생각해요. 이젠 그런 시대가 올 거에요. 가족만을 위해서 헌신하는 엄마는 점점 없어질 거라고 생각해요.
작품활동을 하지 않을 때는 주로 무엇을 하시나요?
공상해요, 공상. (웃음) 아니면 자요. 복잡하면 잠 오고, 깨 있으면 졸 거 같으니까 그냥 자요. 그렇게 자고 나면 머리가 맑아지니까 그 때부터 책도 보고 음악도 듣고. TV도 재미있는 건 보는데 어떨 땐 그냥 안 키죠. 켜면 쓸데없이 하루가 휙 가버리더라고. 얻은 것도 하나도 없이. 그래서 기분이 안 좋을 때가 있다니까. ‘뭐했을까, 하루 종일’ 이러면서. 그런데 그것도 버릇이더라고요. 눈 뜨면 TV켜버릇하면 그렇게 되요. 그런데 눈 뜨면 좋은 음악을 딱 틀어버리면 또 그렇게 되더라고요. 그러니까 어떻게 습관을 들이느냐에 따라서 달라지는 거 같아.
사람과 어울리는 것보단 혼자 보내시는 시간이 많으신가 보네요.
원래 사람들 많이 있는데 가는 걸 부담스러워하는 성격이라 그냥 혼자 있는 걸 제일 좋아하는 사람이에요. 친구가 없으면 참 불행하다는데, 저는 그런 면에서 보면 불행한 사람인 거죠. 제가 혼자 이렇게 있는 걸 좋아하니까 옆에 친구가 별로 없어요. 그런데도 전부 다 저를 보호해주려고 그러는 거 생각하면 난 참 인복이 많구나, 하나님께 감사하다, 이럴 때가 정말 많아요. 내가 이렇게 나밖에 모르고 내 안에만 갇혀서 사는데도 사람들은 날 이렇게 치유해주려고 하니까. 진짜 하나님께 감사해요.
그런데 수많은 사람을 상대하는 봉사활동도 활발하시잖아요.
저는 세상을 너무 많이 아는 사람을 만나면 힘들어요. 그런데 애들은 모르잖아요. 애들은 배고픈 거, 아픈 거, 그런 것만 알잖아요. 애들하고만 있으면 내 머리가 복잡해지지 않는다고요. 아픈데 약 발라주면 되고, 그런 것만 해주면 되지, 내가 그 사람 생각에 맞춰서 머리 굴려야 되고 그렇지 않잖아요. 전 그런 걸 못하기 때문에 그런 사람들 앞에 가면 기운이 쑥 빠지면서 졸려요, 금방. 그러니까 사람들 많은데 가면 왜 그렇게 졸린 지 몰라. (웃음) 지금은 인터뷰하는 자리니까 말을 많이 하지. 말도 많이 하면 에너지가 굉장히 소진돼요. 그래서 저는 말도 잘 안 해요. 지금 내가 안 하면 안되니까 하는 거지. 잘 써달라고. (웃음)
연기자라는 직업도 사람들과 어울려야 하는 일이지만 그 불편함을 상쇄할만한 가치가 있으니 유지가 가능한 것이겠죠?
저에겐 배우가 직업이기 보단 곧 저의 삶이에요. 물론 ‘어큐패이션(occupation, 직업)’ 란에는 ‘액트리스(actress, 여배우)’라고 써요. 그렇지만 전 직업이 배우라고 생각해본 적은 없어요. 그냥 삶의 일부지.
연기가 삶의 가장 큰 목적이라는 말처럼 들리는데요.
그니까 제 존재의 의미에요. 제가 연기를 안 하고 보이지 않을 때는 죽었다고 생각하면 되요. 살아있어도 제가 작품에 나오지 않으면 그건 그냥 반쪽의 저만 있는 거에요. 아이들 만나고 다니고, 그렇게 반쪽의 삶은 사는 거지만 배우로서의 저는 죽은 거에요.
김중만 작가의 사진을 영정 사진으로 쓰고 싶다고 종종 말씀하신다고 들었어요.
나, 그 말 젊었을 때부터 했어요. 예쁜 사진만 보면 이거 영정사진으로 해야지. (웃음) 습관처럼 입에 달고 다녀서 우리 애들이 질색을 해요. 엄마는 맨날 잘 나온 사진 보면 영정 사진 쓴다고 해서.
영정 사진을 준비한다는 건 사실 인생의 마지막을 준비하는 거잖아요.
저는 그러니까 항상 마지막이 언제가 될지 모른다고 생각하면서 살아요. 그리고 언제가 돼도 상관없어요, 저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없는 건가요?
저는 왜 그런지 어렸을 때부터 죽음이 그렇게 두렵지 않아요. 그러니까 제가 이렇게 오래 사는 게 이상하다니까요. 저희 애들은 아주 질색해. 엄마는 왜 맨날 그러냐고 그러는데 사실이 그러니까. 김중만 씨는 옛날에 한 20년 전에 알았을 때부터 사진을 잘 찍었는데 항상 그 사람이 찍어준 사진보고 이걸로 영정사진 해야지, 그랬기 때문에 그 사람이 매년 영정사진을 바꾼다고 얘기하는 거에요. (웃음)
벌써부터 김혜자 씨의 여우주연상 가능성을 이야기하는 말들이 나오고 있더군요.
저는 그런 말을 참 잘해요. 이거 찍어서 그냥 우리끼리만 봤으면 좋겠다. 사람들이 보는 게 두려워요. 그냥 제가 연기를 좋아하니까 우리끼리 찍어서 우리끼리만 보고 말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항상 해요. 만약 나중에 상을 준다면 상 탈 때는 행복하죠. 그런데 상이 저한테는 그렇게 큰 의미는 없어요.
사실 <마더>까지 단 세 편의 영화를 했지만 그때마다 상복은 있었던 것 같아요.
첫 번째 영화 <만추>도 마닐라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 탔고요. <마요네즈>는 케라라국제영화제에 갔는데 거긴 여우주연상이나 남우주연상이 없었고 작품상만 있는 영화제였어요. 그런데 말하자면 우리나라 지방영화제 같은 거니까 우리나라에서 잘 알려지지 않아서 그렇지, 거기서 <마요네즈>가 그랑프리 탔어요. 유인호 감독님이 가서 타오셨는데 그쪽 신문 1면에 한 장면이 크게 나왔더라고요. 감독님이 그 신문 갖고 와서 저한테 줘서 어디다 잘 간직했는데 지금은 없더라고요. 그래서 미안해.
허벅지에 침 놓는 장면이 인상적이어요. 그 장면이 다양한 해석을 부르는 것 같기도 하고요. 자신의 기억을 봉인한다는 의미가 있는 것 같은데요.
내가 스스로를 찌르는 고통스러움을 통해 마음 속의 아픔을 잊음으로써 그 기억 자체를 잊으려고 한다고, 그냥 저는 그렇게 생각했어요. 그것만으로 나을 거란 생각은 안 해요. 아마 허깨비처럼 살 거에요. 마음은 절벽에서 이미 투신했다는 김남조 시인의 시처럼 그 아들 때문에 죽지도 살지도 못하고 그냥 허깨비로 살겠죠.
결국 이 어머니 역시 김혜자 씨 본인에게 봉인되는 캐릭터가 될 거 같네요. 그러다가 언젠가 이 캐릭터를 다시 꺼내 생각할 때가 오지 않을까요.
저는 흘러간 건 잘 안 떠올리는 편이거든요. 떠올리면 자꾸 잘못했던 것들만 생각나요. 그래서 괴로우니까 안 떠올려요. 그런데 <마더>는 다른 작품보단 저에게 좀 특별한 의미가 있어요. 뭐라고 설명드릴 순 없지만 앞으로도 떠오를 것 같아.
시를 많이 읽으시는 편인가요? 저는 시를 좋아해요. 짧은 단어 속에 너무 많은 뜻이 있어서.
2004년도에 출간된 저서인 <꽃으로도 때리지 마라>에서 헤르만 헤세의 ‘행복해진다는 것’의 시-인생에 주어진 의미는 다른 아무 것도 없다네. 그저 행복하라는 한 가지 의무뿐.-를 인용하면서 이를 반박하셨던 기억이 나요.
예. 그때는 그렇게 생각했어요. 행복해질 의무가 있다는데 이런 애들을 못 봤으니까 그런 말을 했겠지. 천상병 시인의 시에 이런 말이 있어요. ‘어떤 아이가 대문 앞에 울고 있다. 오줌을 싼 벌일까. 이렇게 다섯 여섯 살 먹은 계집아이가 울고 있다. 그러면서 넌 왜 우니. 인생의 무엇을 안다고. 나 같은 사람도 있는데.’ 그런 내용의 시가 있어요. 제가 그 시를 적고 그 밑에다가 ‘선생님, 다섯 여섯 살에도 인생이 뭔지 아는 애들이 여기 있습니다’ 이렇게 썼어요. 다섯 여섯 살에 지네 엄마 아빠가 총맞아 죽는 걸 본 애들도 있고, 이 분도 그 아이들을 못 봤기 때문에 이런 시를 쓰셨구나 했죠. 얼마나 당신이 고통스러웠으면 이런 시를 쓰셨을까.
사실 천상병 시인도 상당히 비극적인 삶을 살았죠.
그렇죠. 그 분 시가 얼마나 비참해요. ‘아이론(iron) 밑의 와이셔츠 같았다’고 하셨잖아요. 아이, 끔찍해. 정말로. 그게 다리미로 다져질 와이셔츠 같다니.
사실 그만큼 남들이 끔찍하다 말하기 쉬운 삶을 사셨죠. 하지만 한편으로 당사자의 시점에서는 그 삶을 부정하지 않았던 것 같기도 해요.
그렇죠. 하늘로 돌아갔다고, 즐거웠다고 이야기하겠다고 하셨으니까.
결국 자신의 이해에 따라 삶의 관점이 달라질 수 있다는 의미일 수 있을 것 같은데요. <마더>의 혜자가 취한 선택 역시도 타인에게는 극악한 선택이지만 당사자에게 있어선 피할 수 없는 운명과 같은 방편이라 말할 수 있을 것 같고요.
그게 그 여자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이었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때때로 자신이 이해하는 자신과 타인이 이해하는 자신의 차이를 느낄 때도 있을 텐데요.
그러니까 어떤 때는 ‘가면의 생’이라는 소설 있잖아요. 그런 게 생각날 때도 있어요.
CF를 통해 어필한 어머니 이미지도 강했던 거 같아요. 요즘엔 사실 출연하시는 CF는 없으신 것 같은데 제의는 꾸준히 들어오나요?
맨날 하기 싫은 CF는 끝없이 들어오는데 저는 안 하는 게 좋으니까 별로 관심은 없어요.
CF를 많이 하는 젊은 배우들이 종종 비난을 받는 경우도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나요?
글쎄요. 다 생각이 있어서 하겠죠. CF만 많이 하는 배우도 그게 맞는 사람이 있어요. 많이 해도 별로 싱겁지 않은 사람이 있고, 많이 하면 왜 저러냐, 그런 사람이 있고 그렇잖아요. 그냥 자기 생긴 대로 사는 거 같아요. 그게 누가 충고한다고 될 일도 아니고요. 전 누구 충고할지도 몰라요. 그리고 저도 충고 받는 거 싫어하고, 그냥 저도 생긴 대로 사는 거 같아요. 자기 생긴 만큼 사는 거니까.
꽃을 좋아하신다고 들었어요.
꽃 좋아하죠. 저는 정말로요. 봄에 땅이 아직도 꺼뭇꺼뭇하잖아요. 커다란 소나무 밑에 시커므리한 곳에서 어쩌다 수선화가 노랗게 펴있는 거 보면 눈물이 나더라고요. 이 그늘 밑 시커먼 땅을 뚫고 네가 나왔구나, 싶어서 걔하고 얼마나 많은 얘기를 하는지 몰라요. ‘너 정말 애썼다. 기특하다. 정말로.’ 예전엔 겨울이라 복도에 들여다 놓은 자스민 한 송이가 펴서 아침에 일어나서 문을 열어보니 계단 밑에서 자스민 향기가 얼마나 많이 퍼지는지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어요.
화단도 가꾸신다면서요?
화단 정말로 예뻤는데. 우리 아들이 개를 좋아해요. 개도 조그만 개가 아니고 맹인견하는 레브라도 리트리버 같은 종이니까 걔네 들이 한번 화단을 왔다 갔다 하면요, 꽃들이 다 누워요. 그래서 아들하고 맨날 싸우다 싸우다 제가 포기했어요. 꽃보다는 아들이 중요하지. (웃음) 그래서 한번은 아침에 나가서 봤더니 밤새 개를 풀어놔서 꽃들이 다 짓밟혀 있길래 제가 부은 채로 앉아서 하도 울었어요. 그랬더니 “내가 다 다시 심어줄게.” 그러더라고요. 우리 아들이. 그래서 “다시 심는 게 문제가 아니야. 얘네들도 다 생명이 있고, 생각이 있어. 짓밟혔을 때 생각 좀 해봐.” 그리고 제가 어떤 시인한테 그 얘기를 했더니 그러더라고요. “개들을요. 돌아다니는 나무라고 생각하세요.” (웃음) 그래서 그 다음은 그렇게 생각했어요. 돌아다니는 꽃이라고. 그 대신 정원은 황폐화됐어요.
OBS에서 <김혜자의 희망을 찾아서>란 인터뷰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도 하셨는데요.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천연덕스럽게 질문하시는 모습이 어떤 인터뷰어라도 답변을 피할 수 없게 만드는 기분이 들더군요.
어머, 그걸 봤어요. 고마워요. 진짜. (웃음) 주철환 씨가 자꾸 그걸 하자고 했어요. 주철환 씨와 20대부터 친했었거든요. 그런데 제가 그걸 어떻게 해요. 그랬더니 할 수 있대. 그런데 제가 어떤 때는 ‘알았어, 할게요’ 그랬다가, ‘아니, 못해요’, 이걸 수 십번 반복했더니 나중에 내일 신문 보래. ‘주철환, 김혜자에게 배반당해 자살’ 이런 기사 날 테니까. (웃음) ‘진짜로 그러면 어떡하나. 에이, 설마.’ 이러면서도 저렇게까지 얘기하는데 한번 해보지 싶어서 했어요. 그런데 게스트 오시는 분들에게 항상 부탁하죠. “제가 원래 말하기도 싫어하는데 MC를 하라네요. 그런데 제 말을 못하니까 저 대신 재미있게 얘기 좀 많이 해주세요.” 이렇게 미리 부탁하고 그러니까 그 분들이 오히려 안쓰러워서 얘기를 더 많이 한 거죠. 물론 작가가 있었지만 그 작가가 적어준 건 이분이 이런 일을 했다는 거니까 그걸 참고만 하고 제가 아무 거나 되던 말던 물으니까. (웃음) 어떤 분이 그런 얘기를 하더라고요. 무장해제를 시키는 재주가 있다고. 그런데 그건 재주가 있다기 보단 그냥 궁금한 걸 물은 거에요. 끝나고 나니까 봤다는 사람이 의외로 많네요.
주철환 대표도 봉준호 감독처럼 김혜자 씨에게 계속 러브콜을 보낸 셈인데, 누군가가 자꾸 자신이 생각지도 못한 가능성을 제시한다는 것이 당사자에겐 때때로 놀라운 일이 될 것 같아요.
그러니까 말이에요. 어떨 땐 웃겨요. (웃음) 근데 난 주철환 씨가 한번 이런 글을 쓴 적이 있어서 참 좋았어요. 김혜자는 어머니 역도 잘 하는 배우다. 난 그렇게 써주는 게 좋아요. 무슨 제가 국민엄마에요, 국민엄마는. 솔직히 국민 들어가는 게 너무 많아서 싫어요. 국민오빠, 국민 아버지, 왠 국민이 이리도 많은지. 이 역 저 역 다 잘하는데 엄마 역도 잘한다, 이런 평가가 더 감사하죠.
10년 만에 <마더>로 스크린에 복귀하셨으니 차후에 영화제의가 들어올지도 몰라요.
아직 그런 생각은 안 해요. <마더>가 아직도 꽉 차있기 때문에 충분히 앓고 난 다음에 이게 어느 정도 흥행이 돼서 어느 분께서 제의를 해주신다면 그 때 가서 생각해볼지 몰라도 지금은 아무런 생각이 없어요. 그리고 내가 그때까지 살아있을지 누가 알아. (웃음)
그러니까 건강 검진도 꾸준히 받으셔야,
싫어. 병 있다 하면 어떡해. 아이, 귀찮아요. (웃음) 난 괜찮아. 우리 아들이 이러면 질색해요. 그래도 할 수 없지. 난 별로 죽는 게 무섭지도 않고, 그냥 내 인생을 언제쯤 잘 끝맺었으면 좋겠어요. 그립다, 김혜자, 그 배우, 그렇게만 끝맺었으면 좋겠어. 일찍 죽고 늦게 죽고 이런 건 별로 생각 안 해요. 그러니까 이번 작품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거고, 그러면서 항상 작품을 하죠. 그리고 사실 몰라요. 진짜 내가 5분 후에 무슨 일이 생길지 어떻게 안담? 그런데 자꾸 이런 얘기하니까 이런 생각이 드네요. 내가 이러다 백 살까지 살면 어떻게 하나? (웃음)
경쾌한 멜로디가 선명한 음악과 절묘하게 연동되는 김혜자의 춤사위를 담은 오프닝 시퀀스는 단연 압도적이다. 절망과 안도가 체증처럼 내려앉은 얼굴에선 공유될 수 없을 것 같은 감정의 극단적 너비가 고스란히 발견된다. 휘청거리듯 흐느적거리다 살풀이하듯 리듬을 타며 몸을 들썩이는 팔은 축 져진 듯 늘어지면서도 강약을 맞춘다. 형언할 수 없는 표정과 심정을 유추할 수 없게 중의적인 동작으로 절묘하게 음악과 어울리며 몸을 흔드는 김혜자의 모습은 당혹스럽지만 고요하다. 마치 작은 파문이 일어나기 전의 잔잔한 수면처럼 쨍하고 깨질 것만 같은 아슬아슬함이 위태롭게 감정을 동요시킨다. 강렬하면서도 모호한 오프닝 시퀀스는 정서적인 진동을 도모함으로써 뒤따를 이야기에 대한 의문을 증폭시키고 긴장과 평온의 중의적 상태 가운데서 몰입을 도모한다.
살인마로 몰린 아들의 결백을 주장하는 어머니를 비추는 이야기. 누구라도 분명 모정이 끓어 넘치는 신파를 예감하기 좋은 문장이다. 하지만 애초에 <플란다스의 개>의 지하실 신에서조차 괴담을 통해 교묘하게 서스펜스를 발생시켰던 봉준호 감독의 작품을 경험한 이라면 절절한 신파로 무장한 작품을 기대할 리 만무하다. 모두가 살인마라고 낙인을 찍은 아들 도준(원빈)에 대해 어머니 혜자(김혜자)는 말한다. “우리 애가 그런 애가 아니거든요.”어미에게 모성은 숙명이다. 이성적 믿음을 판별하는 의식을 거치기 이전에 직관적인 보호본능이 둘러쳐진다. 어미의 본능이란 이성을 통해 가늠하기 어려운 본능의 영역이다. 동물적으로 유전된 습성이다. 숭고한 사명이기 이전에 무거운 십자가다. 그리고 <마더>는 살인사건의 진실과 진범을 추적하는 스릴러이기 전에 어미의 심정을 따라잡는 심리극이다.
어머니는 아들을 부여잡고 울기 보단 타이르고, 진범을 뒤쫓거나, 집요하게 캐묻는다. 아들의 결백을 향해 전진해나간다. 누구도 결코 믿을 수 없다는 신념으로 아들을 구하기 위해 백방으로 뛰고 모든 수순을 동원한다. 조금 모자라지만 순박한 아들의 무죄를 밝히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어머니의 모습엔 헌신적인 페이소스보다 광기에 가까운 컴플렉스가 서려있다. 모성이란 본능을 극한까지 밀어붙인 <마더>는 서사적으로 나아가나 서정적이며 심리적 밑바닥까지 헤집는 표정으로 감정의 옆모습까지 그려낸다. 암전된 공간과 배경에서 밀려난 여백은 때때로 서스펜스의 은신처가 되며 배우들은 수집된 감정의 개체 수를 가늠할 수 없게 너른 표정을 드러낸다. 특히 김혜자는 <마더>가 김혜자의 얼굴에서 시작됐다는 봉준호 감독의 고백을 온전히 증명한다. 순수한 광기는 맹신으로 나아가 착란에 도달하고 이내 잔인한 절망의 수순으로 돌입한다. 그 모든 과정의 합리가 김혜자의 얼굴을 통해 이뤄진다. 김혜자의 얼굴은 <마더>를 위해 마련된 최적의 자질이자 유일무이한 시작이고 끝이다.
수없이 흩어진 별개의 지점처럼 인식되는 스토리가 결국 단계적인 복선으로서 재차 의미를 발생시키며 하나의 맥락을 구성하고 이어나가는 과정이 흥미롭다. 물론 발화점의 온도를 붙이기까지의 시간이 길게 요구된다는 느낌을 얻을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어느 정도 온도가 상승한 이후로 이야기는 급격하게 가속을 시작하고 이내 극한까지 내달린다. 전혀 무관할 것 같은 개별적인 지점의 사건들을 하나의 맥락에 놓인 복선으로 꿰어가는 이야기 구조가 탁월하다. 동시에 <마더>는 사실 후더닛(whodunit) 구조의 스릴러에 가까운 형태로 직조된 이야기지만 실질적으론 ‘누구’보단 ‘무엇’에 의문의 무게가 실리는 영화다. 어머니는 진범이 누구인가라는 물음을 따라 걷지만 관객은 끊임없이 아들이 무엇을 보았는가를 주목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어떤 예상과 동떨어진 모자의 전사가 드러나기도 하고,-박카스- 그 관계에 대한 불순한 관점이 동원될만한 중의적 언어가 동원되기도 한다.-잔다- 궁극적으로 (스토리텔러의) 비범한 결단에 가까운 결말의 태도를 확정 짓게 만드는 계기 역시 그 목격에서 비롯된다. 지독한 어미의 본능이 궁극적으로 어떤 자기 파괴의 행위로 도달하기까지의 과정을 지켜본다는 건 그 과정을 이끄는 믿음의 기반이 어떤 진실에 맞닿았고 이를 통해 어머니가 무엇을 결심했는가를 지켜보게 된다는 의미와 같다. 그 결심은 객석에 충격을 전하지만 관객이 비명 지르기 보단 숨을 멎게 만든다.
<마더>는 봉준호 감독의 작품 가운데서 이례적인 풍경을 선사하는 영화다. 로케이션 비중을 극대화시킨 <마더>의 광활한 풍경은 풍요롭기에 더욱 예민하다. 때때로 혜자의 걸음을 수평선의 구도로 원경으로 찍어낸 광경은 애환적이며 인물을 측면에 밀어 넣은 채 온전히 배경을 삼킨 카메라의 구도는 거대한 배경을 통해 인물의 심리적 소외를 전달한다. 그럼에도 이에 곧잘 상반되게 인물의 얼굴을 스크린에 가득 메워 넣곤 하는 클로즈업은 인물의 역동적인 표정을 포착함으로써 보다 깊고 너른 감정의 영역으로 관객을 밀어 넣는다. 특히 인물과의 거리감을 극단적으로 오가는 구도적 변화는 개별적인 영역에서 좀 더 세심한 관찰을 요구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관객의 극적인 몰입을 가중시킨다. 처음으로 2.35:1 와이드 비율의 화면 비를 선사하는 아나모픽 렌즈를 사용했다는 <마더>는 그만큼 풍요롭고 섬세한 풍경을 포착함으로써 그 안에 자리한 인물의 예민한 심리를 더욱 모나게 드러낸다. 특히 대비적인 움직임으로 시작과 끝을 알리는 도입부와 결말부는 <마더>의 입구와 출구로서 잊을 수 없는 이미지를 선사한다. 무엇보다도 음악의 기능성도 간과할 수 없다. <마더>에서 음악은 단순히 감정을 보좌하는 수식어가 아니라 영화의 감정을 온전히 이어주는 접속사와 같다. 오프닝 신을 비롯해 음악과 시퀀스가 함께 어우러지는 광경을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다. <마더>에서 음악은 단순히 감정을 보좌하는 수식어가 아니라 영화의 감정을 온전히 이어주는 접속사와 같다.
<마더>는 봉준호 감독의 전작들에 대한 기시감을 부르기도 하는데 이는 답습이라 지적될만한 결과라기 보단 참신한 복기에 가깝다. 직접적으로 가깝게 느껴지는 작품은 <살인의 추억>이다. “살인사건이 얼마만이냐.”라는 대사처럼 한적한 도회지의 형사들은 <살인의 추억>만큼이나 뻔뻔하진 않아도 여전히 직감에 의존해 사건을 마무리 짓는데 급급하며 졸속적인 수사방식으로 무능을 전시한다. 동네 바보를 범인으로 몰아가는 강압적 회유는 되풀이되고 용의자의 바지를 벗기는 지하실은 우스꽝스럽게 등장한다. 범인의 현장검증은 여전히 난장판이다. 그 모든 상황의 총합은 <살인의 추억>을 연상시키지만 본질적으로 이는 반대말의 의미로 해석될만한 상황이다. <살인의 추억>의 경찰이 암묵적 합의를 통해 무능을 가리려는 시도를 보인다면 <마더>의 경찰들은 무지의 소산으로 밀어붙인 불확실성의 한계를 스스로 극복하지 못함으로써 무능력을 또 한차례 노출한다. 결국 그 반대말의 끝은 <살인의 추억> 못지 않게 무게가 엇비슷한 정서적 허탈감으로 도달한다는 점에서 동일해진다.
<마더>가 <살인의 추억>을 떠올리게 만드는 구체적인 정황을 지니고 있다면 인물이 공간에 접근하는 방식에서 드러나는 심리적 중압감은 간접적으로 <괴물>에 맞닿아있다. 현서를 찾아 괴물의 본거지를 찾아가는 가족과 진범을 찾기 위해 의심스러운 단서의 현장을 몰래 탐색하는 어머니는 각자 자신의 혈육을 구출하기 위해 동분서주한다는 점에서 닮아있다. 가족이 어머니 개인으로 축소됐다는 점에서 입체적인 동선이 단선적으로 뚜렷해졌을 뿐이다. 그리고 그 공간을 잠입한 어머니의 은폐가 어떤 목격으로 이어지는 상황은 괴물의 본거지인 하수구에 끌려온 현서가 괴물을 피해 하수구 구멍에 은둔하며 괴물을 관찰하는 상황과 비슷한 긴장감을 이룬다. 또한 어두운 음영을 통해 도진이 바라본 것을 관객으로부터 차단시킴으로써 궁극적 단서의 은폐를 확보함으로써 의문의 지속을 유지하고 사각지대의 음산한 서스펜스를 확보한다는 점에서도 출몰의 위협을 물리적으로 구사하던 <괴물>의 기시감을 느끼게 만든다.
사실 봉준호 감독의 전작들은 하나같이 누군가를 찾아 헤매는 이야기란 점에서 동일하다. 잃어버린 애완견을 찾고,(<플란다스의 개>) 살인마를 수사하고,(<살인의 추억>) 딸을 구하기 위해 동분서주하고,(<괴물>) 진범을 추적한다.(<마더>) 하지만 끝내 찾지 못한 애완견과 보지 못한 살인마, 그리고 구할 수 없었던 딸을 맞이했던 것과 달리 <마더>는 유일하게 자신이 쫓는 상대를 목격하게 된다. 아무도 믿을 수 없는 그 동네에서 혈혈단신으로 진범을 찾아 나서는 어머니의 본능적 결의는 결국 결실을 이룬다. 어미의 본능만이 유일하게 제 목적을 이룬다. 뒤늦게 자신이 짊어진 어미라는 십자가가 자신을 골고타 언덕으로 이끌어 채찍질하고 못박히게 만들었음을 뒤늦게 체감한다 해도 만신창이가 된 제 심정을 억누르고 제 새끼의 얼굴을 쓰다듬는 것이 본디 그 어미의 본능에 걸맞은 숙명이라는 것을 육체적 행위로 증명한다. 동시에 사건의 주변부에 놓인 이미지를 통해 시대와 정치적 풍자를 거두던 야심도 <마더>에선 최대한 배제됐다. 무능한 경찰의 이미지는 <살인의 추억>처럼 시대적 열악함과 정치적 불공정을 겨냥하는 수단까지 나아가지 않는다. 다만 위트의 수단이 되고 사건의 전개를 위한 하나의 조건이 될 뿐이다. 지난 세 편의 전작이 동맥과 정맥 주변부의 모세혈관의 흐름까지 적극적으로 반영한다면 <마더>는 오로지 정맥과 동맥의 흐름을 그린 이야기다. 정맥의 판막을 거쳐 멈춰서면서도 서서히 전진하던 이야기가 비로소 심장을 거쳐 동맥으로 뻗어나가듯 가속적이다.
창문은 <마더>에서 종종 관객과 인물의 거리감을 형성하는 중계 창처럼 활용된다. 관객은 그 창을 통해 영화적 상황으로부터 때때로 분리되어 그 상황의 목격자로서 자리잡아야 한다. 창 너머엔 함께 식사하는 모자의 모습이 등장하기도 하지만 사건을 비추는 저편의 진실이 걸어나가는 풍경을 등장시키기도 한다. 두 광경은 모두가 진실이다. 백숙을 찢어 아들에게 먹이려는 어머니의 모습도, 창을 따라 걷는 살인자의 얼굴도 거짓이 아니다. 관객은 두 번의 식사광경을 양 끝에 두고 그 가운데 살인의 목격자가 된다. 양 끝의 이미지는 동일하다. 구도까지 일치한다. 하지만 그 풍경은 대비적이다. 더 이상 온전히 같은 풍경으로서 인식되지 않는 생소한 광경이 된다. 하지만 정작 그 창 너머의 모자는 같은 방식으로 삶을 연장해나간다. 모든 것을 감당한 어머니는 구태의연하게 아들을 위해 어미로서의 본능으로 제 부서진 삶을 가다듬고 일상을 반복한다. 아들을 위해 흐르는 오줌을 지우는 것도, 피를 닦아내는 것도 그 어미의 몫이다.
여기서 모성애는 숭고하다거나 찬사를 얻을 영광이 아니다. 그것은 마치 평생을 짊어져야 할 어미의 업(業)처럼 피로하고 고통스러운 형(刑)과도 같다. 어미는 결국 괴물이 되어 제 자식을 구하고, 평생 살인의 추억을 한처럼 짊어진 채 살아가야 한다. ‘새끼 잃은 어미 속이 썩어 문드러지는 냄새가 십 리 밖까지 진동을 한다.’하지만 정작 어미는 제 속이 썩어 문드러지는 냄새를 맡지 못한다. 그저 제 새끼의 체취를 따라 걸어갈 뿐이다. 그리고 감히 그 삶이 어떠하다라고 함부로 말할 수 없는 건 우리가 모두 다 제 어미의 삶을 밟고 살아온 그 새끼들이기 때문이다. <마더>는 모성애라는 숭고함을 벗겨낸 어미들의 상처와 같은 삶에 바치는 지독하게 순수한 헌사다. 무엇보다도 국민엄마라는 박제 같은 타이틀로 치장된 이미지를 부수고 김혜자가 가늠할 수 없는 표정을 지닌 대단한 배우라는 것을 환기시킨다는 것만으로도 <마더>는 이미 훌륭한 성과로 시작된 작품인 셈이다.
어머니가 직장에 간 사이, 아이가 사라졌다. 그 어느 곳에서도 아이가 보이지 않는다. 경찰청에 전화를 걸어 실종신고를 하니 경찰이 퉁명스럽게 답한다. 24시간 이후에 현장 방문이 가능하다. 24시간이 지났다. 5달이 지났다. 아이를 찾았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어머니는 집으로부터 먼 외딴 곳에서 발견된 아이가 돌아온다는 기차역으로 발을 구른다. 그리고 모자는 상봉한다. 그 감격스러운 순간에 어머니의 표정이 굳는다. 우리 아이가 아니에요. 이를 지켜본 경찰의 표정이 굳더니 입을 연다. 당신이 잘못 본 거에요. 생전 아이를 본 적도 없는 경찰이 평생 아이를 바라보고 살아온 어머니의 기억이 잘못 됐음을 지적한다.
<체인질링>은 아이를 잃어버린 어머니의 고군분투를 그린다. 이 짧은 문장은 눈물겨운 신파를 예상케 하지만 실상 <체인질링>은 치열한 정치적 투쟁의 드라마다. 단지 아이를 그리워하는 모성이 중심이 아니다. 아이를 찾았다고 자위하는 경찰은 제 아이가 아님을 알아보는 어머니를 회유하고 협박하지만 어머니는 이에 끝까지 저항한다. 이는 실화다. 1920년대 미국에서 사라진 아들 월터 콜린스(게틀린 그리피스)를 찾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걸었던 어머니 크리스틴 콜린스(안젤리나 졸리)에 관한 사연이다.
2시간 20분이라는 긴 호흡을 지닌 <체인질링>은 전형적인 선악 구도와 약자의 승리를 꿈꾸는 전형적 스토리텔링을 지니고 있다. 그럼에도 이 사연은 결코 평범하지 않다. 그것이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일 가능성도 있다. 실제를 기반으로 둔 사연은 허구보다도 강한 설득력을 내장하게 된다. 하지만 그 드라마 속엔 강렬한 투쟁의 연대기가 꿈틀거린다. <체인질링>의 모토는 신파가 아니라 저항이다. 모성에서 비롯된 감정적 호소와 함께 권리를 찾기 위한 소시민의 이성적 선언이 내재돼 있다. 물론 기반은 모성이다. 하지만 모성애는 투쟁심으로 나아간다. 부패한 경찰과 착복하는 정치적 시스템 전반에 대한 언질이 한 어머니의 모성애로부터 고발되고 발가벗겨진다.
사연의 형태는 여러모로 충격적이다. 새로운 애완견을 사주듯 실종된 아들 대신 찾아온 다른 아이를 모성애로 받아들이라 강요하는 경찰의 모습은 권위적인 공포를 느끼게 한다. 동시에 이에 저항하는 크리스틴을 되려 몰아세우는 경찰의 만행은 분노를 머금게 한다. 그 종래에 모든 고난을 이겨내고 자신의 권리를 묵살하고 되려 억압한 경찰의 만행을 폭로하는데 성공한 어머니의 승리는 감동을 자아낸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이 모든 사연은 슬프다. 진실은 조작이 가능하다. 그 조작된 진실엔 진실의 외벽으로 밀려난 이들의 처절한 사연이 짓눌려있다. 단순히 순수한 모성애로부터 발생하는 드라마틱한 페이소스를 뛰어넘어 권위적 억압에 저항하는 개인의 순수한 양심을 조명한다.
아이러니하게도 미국의 1920년대를 조명하는 <체인질링>은 대한민국의 현재와 맞닿아있다. 권력을 쥔 자들은 자신들이 만들어낸 진실을 강요하고, 이에 분노하는 소시민들은 저항을 거듭한다. 정경유착이 맞물려 도시를 부패의 온상으로 만들고 조작된 평화를 전시하지만 실상 기저의 소시민들은 불안에 방치된 채 살아간다. 희생자가 나타나면 잘못을 덮고 되려 희생자를 협박한다. 권력의 지배자들은 보이지 않는 공포로 소시민을 지배한다. <체인질링>은 슬픔을 동반한 승리를 꿈꾼다. 그 승리는 아픈 만큼 숭고하다. 조작된 희망이 아니라 진짜 희망을 꿈꿀 수 있는 사회를 위해선 결국 어느 개인의 헌신과 희생이 뒤따른다. 조직적인 체제를 통해 개개인을 억압하는 이들에게 저항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어머니는, 소시민은 말한다. 싸움을 걸지 않되, 마무리는 내가 지어야지. 체제에 굴복한 개인은 약자가 된다. 반대로 체제에 저항한 개인은 강자로 거듭난다. 팔순을 앞둔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제시하는 정의란 이렇다. 대한민국의 가짜 보수주의자들과 달리 미국의 진짜 보수주의자는 적어도 정의를 안다. 안젤리나 졸리의 열연에 찬사를,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혜안에 깊은 경의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