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적인 폭발력과 훈훈한 외모로 무대를 누비던 조정석은 지금 대중 앞에 한 발 다가섰다. 나약할 리 없는 집념으로, 보다 섹시하고 강렬하게.
조정석을 만난다고 하자 생각보다 많은 여자들이 관심을 보였다. 그에게 뭔가 특별한 매력이 있나? 그가 평소와 달리 수염을 길렀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풋풋한 청년의 얼굴을 지우는 대신 강렬한 남성의 인상을 그려넣었다. 도발적인 여인 앞에서도 쉽게 흔들리지 않는 남자의 야심. 그렇게 조정석을 위한 화보 밑그림이 완성됐다. 촬영 당일, 반바지와 티셔츠를 입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촬영 장소를 찾은 조정석은 마냥 사람 좋아 보이는 시원한 미소의 소유자였다. 잠시 후, 모든 준비가 끝나고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순간, 장난기 가득하던 청년의 얼굴에 강인한 인상이 들어찼다. 역시 배우는 배우다.
조정석은 뮤지컬계의 스타였다. 알 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었지만 아는 사람만 알았다. 고개를 들어 올려다 보지 않으면 볼 수 없는 밤하늘의 별처럼, 공연장을 찾지 않은 이들에게 조정석이란 이름은 그저 생소했다. 하지만 그는 분명 반짝이고 있었다. 단지 가리킬 손가락이 필요했을 뿐이다. <건축학개론>의 납뜩이와 <더 킹 투하츠>의 은시경이 가리키는 대로 수많은 이들이 고개를 들어 비로소 별을 봤다. 5:5 가르마를 탄 납뜩이의 정곡을 찌르는 대사에 포복절도했던 관객들은 극장에서 집으로 돌아와 TV를 켰다. 핏이 딱 떨어지는 제복 혹은 수트를 입은 말끔한 외모와 강직한 성격의 훈남 은시경이 눈에 들어왔다. 물론 대부분 처음엔 몰랐다. 그리고 갸우뚱하다 뒤늦게 놀랐다. “인물 자체가 다르니까 “얘가 얘야?” 이런 사람들이 많았다고 하더라. 어떻게 두 캐릭터를 같이 연기했냐는 질문도 많이 받았다. 보여지는 시기가 비슷하니까 오해하는 분들이 많았다.” 일찌감치 촬영을 마친 첫 영화가 그 뒤에 제작된 첫 번째 공중파 드라마와 맞물린 시기에 개봉했다. 영화와 드라마가 함께 주목받았다. 진정한 ‘골든 타임’이었다. 운이 좋았다. 하지만 하늘은 스스로를 돕는 자를 돕는다 하지 않던가.
뮤지컬 <스프링 어웨이크닝>의 무대에서 조정석을 눈여겨본 이들이 있었다. 곧 뮤지컬 지망생들의 도전을 그린 드라마 <왓츠업>에 그가 캐스팅됐다. “드라마 촬영 일정상 공연은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일단 드라마에 집중하자고 마음먹었다.” 그러나 막상 편성이 보류되면서 1년 동안 지난한 촬영 스케줄이 이어졌고, 경력에 구멍이 생겼다. 주변에선 시간을 탕진하고 있다며 우려했지만 조정석은 시간을 투자하며 담담하게 때를 기다렸다. “지금이야말로 영화나 드라마를 해볼 수 있는 시간이라 생각했다. 시간에 쫓기고 싶지 않았다.” 결국 <건축학개론> 오디션으로 기회를 잡았고, 2011년에 방영된 <왓츠업>을 본 이제규 감독은 그를 <더 킹 투하츠>에 불러들였다. 믿음으로 얻은 수익이었다. 더 큰 이윤을 요구할 차례였다.
조정석을 쏘아 올린 신호탄이 된 납뜩이를, 조정석이 납득하긴 어렵지 않았다. 다만 이용주 감독의 주문처럼 관객을 웃길 수 있을 것인가가 관건이었다. “집에서 TV로 보는 건 대수롭지 않지만 커다란 스크린으로 처음 영화를 보는데 내가 나올 때마다 미치겠더라. 중반부터 긴장이 풀렸다. 납뜩이가 제 역할을 못하면 어떡하나 걱정했었는데 사람들이 내가 나올 때마다 웃는 거다.” 납뜩이가 없는 <건축학개론>이란 얼마나 심심했을까. “어떡하지, 너?” 같은 납뜩이의 명대사가 조정석의 애드리브였단 사실은 그의 캐스팅이 진정한 신의 한 수였다고 믿게 만든다.
<건축학개론>과 <더 킹 투하츠> 이후로 조정석은 80년대를 배경으로 하는 코믹한 시대극 <강철대오: 구국의 철가방>의 촬영을 마쳤다. <방가! 방가!>의 감독 육상효의 새로운 연출작으로 80년대 미군문화원을 점거한 대학생들의 에피소드를 그린 이 코미디물에서 그는 ‘민중가요계의 조용필’로 불리며 기타를 치고 노래했다. 조정석은 일찍이 클래식 기타리스트가 꿈이었다. 하지만 연기자가 되면 어떻겠냐는 교회 전도사의 권유로 한 달간 개인 레슨을 받고 시험을 친 서울예전에 합격했다. 일종의 계시였다. 후에 개인적인 사정으로 중퇴했지만 그에겐 이미 또렷한 길이 열려 있었다. ‘가족 대부분이 부정적’이었지만 조정석은 ‘자신을 굳건하게 믿었다.’ 그리고 그 믿음이 결과를 명예처럼 간직한다. “기본적으로 내가 한 작품들에 자부심을 지니고 있다. 지난 작품들을 모두 기억한다.”
무대에 데뷔한 2004년부터 2010년 초까지 조정석의 시간에는 빈틈이 없었다. “일복이 많아서 쉴 틈이 없었다. 작품 끝나면 바로 작품하고, 작품 하면서도 다른 작품을 했으니까.” 단 한 번, 연습도 공연도 없었던 2주를 통째로 쉬었던 걸 제외하면 6년간 최소한 이틀에 한 번꼴로 무대에 올랐다. 6개월간 일주일에 8회 공연 그러니까 200회 가깝게 공연된 <스프링 어웨이크닝>에서 모리츠 역으로 단독 캐스팅됐을 때도 6개월간 매일 일정한 시간마다 그 무대에 올라 모리츠가 되어 목숨을 끊었다. 그래서 붙은 별명이 ‘매일 죽는 남자’다. 조정석의 믿음이란 그런 성실함과 집념을 담보로 둔 것일지 모른다. “하고 싶으면 확실히 해야 된다. 칼을 한 번 꺼냈으면 제대로 휘둘러야 되니까.” 공연이 끝나고 자신이 느낀 문제나 새로운 욕심들을 기록해 둔 ‘배우일지’도 그 칼을 제대로 휘두르기 위한 칼집이다. 그는 단단한 욕심으로 스스로를 단련해왔다.
<건축학개론> 이전에도 영화에 출연할 기회는 두 번 정도 있었다. 오디션에 합격했던 <바람피기 좋은 날>과 조승우의 추천으로 캐스팅이 유력했던 <고고 70>이 바로 그것. 하지만 공연 중인 작품들과 스케줄이 맞지 않았다. “공연 같은 경우, 오래전부터 공연장 대관을 준비하고, 출연 계약도 일찍 한다. 그 정도 의리는 있어야 된다고 생각했다.” <바람피기 좋은 날>은 <헤드윅> 때문에, <고고 70>은 <이블 데드> 때문에 포기했다. 영화를 도전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당장 해내야 할 일을 팽개치는 건 용납할 수 없었다. “공연을 하면서 겪어온 순간들을 무시할 수 없다.” 그에게 무대란 고향이자 뿌리다. 공연에 입문한 초기 시절 또한 잊을 수 없다. “2005년에 <그리스> 할 때 공연 끝나고 선배들과 술 한잔하다가 택시비가 없으니까 막차 끊기기 전에 뛰쳐나와서 막차를 타거나 막차를 놓치면 찜질발에서 잤다. 생생하게 기억난다.”
“잘 웃고 장난기도 많지만 눈물 흘리는 건 싫어한다.” 강하게 보이고 싶은 게 아니다. 단지 스스로가 약해지는 게 싫을 뿐이다. 12년 전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도 홀로 지쳐 쓰러져 울면서도 누군가의 앞에선 의연해야 했다. “어차피 앞으로 겪어야 할 경험을 조금 일찍 경험했다. 그래서라도 약한 모습을 보여주는 게 싫었다.” 일흔이 넘는 어머니를 모시면서 기울어가는 가세를 지지해야 했던 것도 그런 이유 중 하나일지 모른다. 2004년, 데뷔작 <호두까기 인형>에서 ‘사람도 아닌 1인 다역’을 연기하는 조정석의 무대를 처음 본 그의 어머니는 눈물을 쏟았다. “처음으로 내 공연을 보셨는데 보고 나서 우시더라. 이렇게 힘들게 일해서 돈을 버는구나, 하시며 눈물을 흘리시는데 당황스러웠다.” 그 뒤로 아들의 출연작을 모두 챙겨본 어머니였다. 가끔 촬영이 없는 날 어머니와 함께 <더 킹 투하츠>를 볼 때면 TV 속 아들의 얼굴에 미소를 띄우시는 어머니를 보며 뿌듯함을 느꼈다.
결혼에 대한 생각이 많은 것도, ‘화목한 가정을 꾸리는 것이 인생의 큰 목표’인 것도 어쩌면 그래서다. 하지만 ‘당장 누군가를 미친 듯이 사랑할 자신이 없는’ 지금은 ‘아직 아닌 거 같다.’ 지금은 해야 할 일이 있다. <우아한 세계>의 감독 한재림이 연출하는 고려시대 사극 <관상>에서 조정석은 송강호, 김혜수, 이정재와 함께 촬영을 준비 중이다. <건축학개론>을 본 한재림 감독은 ‘괜찮은 배우가 있다’며 조정석을 추천했고 <더 킹 투하츠>를 본 송강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으로 오디션을 거치지 않고 선택받았다. 그것도 그가 좋아하는 감독과 배우들과 함께. “이제 다시 출격이다. 출격.” 설렘이 가득한 미소로 내뱉는 단단한 각오. 그것 참, 결코 약해질 리 없는 관상 아닌가.
자신의 9번째 작품을 완성하려는 감독은 깊은 고민에 놓였다. 그의 초기작은 영화사에 길이 남을 걸작으로서 명성을 누리고 있지만 근래에 그가 만든 작품들은 졸작이라는 오명 속을 헤맨다. 그에게 팬이라고 접근하는 이들도 그의 초기작을 칭송하면서 그의 근작에 대해서는 말문을 닫는다. 시나리오조차 탈고하지 못한 그는 영화 제작을 발표하는 기자회견장에서조차 중간에 달아날 정도로 심각한 강박을 느끼고 있다. 이탈리아 영화계의 거장 귀도 콘티니(다니엘 데이 루이스)는 자신의 새로운 영화를 갈망하지만 좀처럼 창작적 수렁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 과정에서 그는 자신의 9살 유년 시절과 어른으로서 자라버린 현재 사이를 방황하며 자신의 주변에 자리한 여인들과 조우한다.
이탈리아의 네오리얼리즘 거장 페데리코 펠리니의 대표작 <8과 1/2>을 모티브로 삼은 브로드웨이 뮤지컬 <나인>을 다시 동명 그대로 스크린에 투영한 롭 마샬의 <나인>은 <8과 1/2>과 <나인>의 사이에 놓인 작품이다. 그러니까 <8과 1/2>과 <나인>이 각각 1/2처럼 더해진 결과물이랄까. 페데리코 펠리니가 완성한 자전적 고뇌가 다시 영화적으로 재현되는 동시에 뮤지컬 무대를 위해 마련된 퍼포먼스는 스크린에서 재현된다. 사실상 <나인>은 그 제목 자체만 보더라도 페데리코 펠리니의 <8과 1/2>보다도 뮤지컬 <나인>의 영화화라고 해야 맞는 말이겠지만 다시 영화적 형태로 재현되는 영화 <나인>의 형상은 원작의 중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다. 결국 <나인>이 페데리코 펠리니를 염두에 둔 결과물이 아니라 할지라도 두 작품에 대한 비교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사실 <나인>은 단순히 그 캐스팅의 면면만으로도 이미 범상치 않은 외모를 지녔다. 귀도 역의 다니엘 데이 루이스를 비롯해 마리온 꼬띠아르, 페넬로페 크루즈, 니콜 키드먼, 케이트 허드슨, 주디 덴치, 소피아 로렌, (‘블랙 아이드 피스’의) 퍼기까지, <나인>은 영화에 출연하는 배우의 이름을 열거하는 것만으로도 스펙터클을 전시해버린다. 마치 조명이 점멸하듯 귀도의 곁에 등장하고 퇴장하는 여배우들은 그 자태만으로 <나인>의 매혹을 이룬다. 그 여배우들이 저마다의 음성과 몸짓으로 스크린을 수놓는 몇 장면은 <나인>을 기억하게 만드는 결정적 순간이 된다. 배우들의 매력 그 자체를 캐릭터에 반영하고 여과 없이 스크린에 전시하는 <나인>은 그 이미지를 화려한 포장지처럼 두른 작품이다. 그 외형적인 화려함만으로도 <나인>은 분명 간과할 수 없는 풍요로운 볼거리임에 틀림없다.
뮤지컬 <나인>은 <8과 1/2>의 서사를 기본적인 골조로 삼되 뮤지컬 형식 자체를 통해 원작과 다른 차별화를 이루는데 성공했다. 영화 <나인>은 뮤지컬의 형태를 다시 스크린에 이양한다는 점에서 분명 원작의 궤도를 벗어난 차별성을 지닌 작품이다. 하지만 무대적인 연출 형식을 통해 스크린 원작과 온전히 다른 차원의 영역적 특성을 획득한 뮤지컬 <나인>과 달리 스크린에서 펼쳐지는 <나인>은 영화적 형식으로 회귀했다는 점에서 원작의 형태가 환기될 가능성이 다분해졌다. <8과 1/2>의 서사가 축이 되는 뮤지컬의 영화화에서 <나인>은 그 서사적 형태를 연출하는 방식에서 온전히 <8과 1/2>의 자장 안에 놓여 있으며 뮤지컬 <나인>의 가무마저 차용한다.
<8과 1/2>과 뮤지컬 <나인>을 끌어안은 영화 <나인>은 두 영역을 탁월하게 봉합하지도, 어느 한 영역을 확실히 선택하지도 못한 채 배회한다. 시네마와 뮤지컬의 불편한 동거를 보는 것 같다. 뮤지컬 영화로서의 포만감은 부족하고, 원작에 대한 영화적 해석은 빈곤하다. <시카고>를 연출한 롭 마샬이라는 타이틀과 이를 수식하는 배우들의 이름은 그 자체로 반짝이는 외형을 이루지만 견실한 영화적 내면으로 잠입해 들어가지 못한다. 배우 고유의 개성만으로도 캐릭터들은 반짝거리지만 캐릭터 자체로서 태양처럼 발광하는 것이 아니라 배우로부터 비춰진 매력을 달처럼 반사시켜 빛을 발한다. 덕분에 <나인>은 때때로 캐릭터가 아닌 여배우들이 출연하는 콘서트를 보는 것 같다. 결국 그녀들이 만들어내는 인상적인 장면들은 순간적 전율로서 찰나를 지배할 뿐, 영화적 흐름을 만드는데 실패한다. 지속력이 약한 대신 압도적 순간이 틈틈이 나열된다. 결국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압도적인 퍼포먼스 시퀀스가 차례를 기다리듯 나열되고 이에 대한 기다림도 선망된다. 작품에 대한 지속적인 몰입이 쉽게 무산된다.
그럼에도 <나인>은 단지 그 인상적인 몇 장면의 우월함을 통해 온전히 가치가 폄하될 수 없는 영화다. 세트장에 들어선 귀도를 따라 빛을 떨어뜨리며 음영의 대비를 선명히 이루는 오프닝 시퀀스 이후의 광경은 무대적 연출 기법을 스크린에 반영하는 <나인>의 진가를 드러내는 순간이다. 기라성 같은 여배우들이 만들어내는 퍼포먼스는 단지 그것만으로 <나인>을 ‘it movie’로 만든다. 특히 마리온 꼬띠아르는 <나인>에서 재발견에 가까운 성과를 드러낸다. 무엇보다도 ‘Be Italian’을 열창하며 정열적인 퍼포먼스를 선사하는 퍼기의 무대는 단지 그 신만을 떼어놓고 반복해서 되새김질하고 싶을 정도로 <나인>을 볼만한 가치가 있는 영화로 만든다. 결국 <나인>은 감독의 재능보다도 이를 압도하는 뮤즈들의 향연으로서 보다 높은 가치를 전하는 무대인 셈이다.
헤비메탈의 하위장르 중 하나인 데쓰메탈은 죽음과 악마 숭상의 뉘앙스를 연출하는 가사와 퍼포먼스라는 외부적 형태가 특성으로 정착된 장르다. 흉악한 가사와 극악한 무대 매너를 통해 광적인 팬덤을 형성한 세기말적인 장르는 그 폭력성을 방출하는 의식적 행위를 통해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발생시킨다. 메탈 음악이 메인스트림을 석권한 핀란드나 동유럽의 국가 중 실질적으로 죽음을 추앙하는 데쓰메탈 그룹이 존재한다고 하나 실질적으로 뮤지션 대부분은 무대와 일상이 분리된 이중적 삶을 살아가는 경우가 태반이다. <디트로이트 메탈시티>(이하, <DMC>)는 그런 현실성에 착안한 설정을 허구적 캐릭터와 스토리로 발전시킨 작품이다. 특히 장르적 구별 없이 음악산업의 인프라가 전방위적으로 구축된 일본의 상황을 염두에 둔다면 일본에서 이를 소재로 둔 만화가 등장했다는 것도 딱히 놀랍지 않다.
스웨디쉬 팝(Swedish pop)과 같은, 자칭 스위트 팝 가수를 꿈꾸는 네기시 소이치(마츠야마 켄이치)는 청운의 꿈을 품고 상경한 도쿄에서 가수가 되기 위해 기획사를 찾아간다. 그러나 스위트 팝이 아닌 데쓰메탈 밴드 ‘디트로이트 메탈시티(DMC)’에서 극렬한 퍼포먼스를 펼치며 악명을 떨치는 ‘크라우저 2세’로 활동하며 신분을 속이며 살아간다. 지극히 소심하고 내성적인 네기시 소이치가 짙은 분장으로 제 얼굴을 감추고 무대에 올라 크라우저 2세로서 과감한 퍼포먼스를 펼쳐낸다는 설정은 욕망과 현실이 괴리된 캐릭터의 부조리를 유머로 치환한다. 특히 와카스키 키미노리의 동명 원작만화의 에피소드를 충실히 영화적 상황으로 반영한 <DMC>는 유치하듯 쾌활하고 황당하듯 기발하다. 물론 때때로 지나치게 진지한 척을 하며 간지러운 페이소스를 주입하는 광경이 발견되기도 하나 전반적으로 엉뚱하게 전개되는 상황의 위트가 독창적인 매력분포도를 이룬다.
가장 눈에 띄는 건 마츠야마 켄이치다. <데스노트>영화판에서도 L을 연기했던 전력이 있는 마츠야마 켄이치는 <DMC>에서도 소심한 네기시 소이치와 과격한 크라우저 2세를 오가며 만화캐릭터 전문배우라 불려도 좋을 정도로 탁월하게 캐릭터를 소화했다. 만화적인 독창성을 훼손하지 않는 동시에 영화적 사실감을 만족시킨다. 자칫 잘못하면 코스프레 수준의 유치함으로 몰락하기 좋은 캐릭터를 영화적 형태로 구현한다. 결국 <DMC>의 특이성을 보장하는 캐릭터가 성공적인 표현력을 갖춘 덕분에 영화적 설정 역시 힘을 얻는다. 또한 영화는 원작의 주요한 에피소드를 영화화에 고스란히 활용하고 있으면서도 독자적인 서사의 변주를 통해 영화적 가능성을 그려나간다.
물론 <DMC>는 유치한 슬랩스틱 개그처럼 가볍고 산만한 웃음을 주는 영화다. 여기서 가볍고 산만한 웃음은 깊이에 대한 지적이라기 보단 방식을 설명하기 위해 동원된 수사다. 대단한 교훈에 도달하거나 걸출한 각본으로 승부하는 영화라기보단 재기발랄한 캐릭터와 황당한 소동극으로 무장한 개그콘서트나 다름없다. 원작과 달리 과하게 변주된 드라마가 종종 간지럽지만. 흉폭한 가사의 노래를 부르며 과격한 퍼포먼스를 구사하는 크라우저 2세와 순진하지만 소심한 우엉남 네기시 소이치 사이를 오가는 에피소드는 효과적인 웃음을 제공한다. 단편적인 에피소드로 나열되는 원작과 달리 서사적 형태의 드라마로 변주된 영화는 매니악한 소재를 보편적인 드라마로 엮어낸 원작만큼이나 즐겁다. 취향의 제한이 엄격하지 않다면 음악영화로서의 묘미도 만끽할 가능성이 크다.
최근 몇 년 사이 신예 감독과 중견 감독의 작품에 고루 출연하고 있다.
사실 자신의 나이를 기준으로 배우를 선택하는 감독은 없을 거다. 나이가 많기 때문에, 아니면 젊기 때문에 선택의 취향이 나뉘는 건 아닌 거 같고, 순전히 작품에 맞을 거 같은 배우를 선택하겠지. 어쨌든 내 입장에서 보자면 좋은 경험이 된다. 베테랑 감독님들과 작업해보고, 떠오르는 신인 감독님들과도 함께 해보면 배우로서 스스로 그에 맞게끔 처신하는 법을 알게 된다. 김유진 감독님은 배우로서 편한 분이다. 일단 아버지 같은 믿음을 줘서 안정적인 느낌이지. 반대로 신인 감독들은 일단 시나리오 단계부터 아이디어나 감성적인 부분이 톡톡 튄다. 아무래도 나보다 경험이 적은 만큼 내가 조언해줄 수 있는 부분도 있고. 양쪽에서 그런 면을 다 배울 수 있다는 게 내겐 플러스가 된다. 어느 한군데 치중하지 않고 폭넓게 대응할 수 있으니까. 나도 아직까진 배우는 단계인 만큼 그런 부분들을 다 흡수할 수 있다면 앞으로도 무형의 도움이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김씨표류기>는 기발하고 실험적인 스타일의 젊은 영화다. 시나리오를 처음 읽었을 때 어떻게 받아들였나?
독특하고 디테일하고 세심했다. 가만히 내용을 들여다보면 감독의 철학도 담겨있더라. 다만 그걸 누구나 쉽게 공감할 수 있을 정도로 무겁지 않게 다룬다. 시나리오 단계에서 그런 점이 너무 좋았다. 무거운 걸 무겁게 얘기하지 않고, 힘든 걸 힘들게 얘기하지 않고, 유머와 위트로 풀어나간다. 하지만 그냥 웃기려고 만든 작품이 아니라는 게 느껴진다. 예를 들면 ‘만화 삼국지’나 ‘만화 천자문’ 같은 느낌? 나이 있는 분들이 어린 애들에게 ‘삼국지’ 읽었냐고 물어보시잖아. 꼭 읽어야 된다 하고. 그렇지만 어린 애들한테 ‘삼국지’가 너무 길고 어렵다. 그런데 그걸 만화로 풀면 그림이 곁들여지니까 이해가 좀 더 쉽고 재미있게 볼 수 있지. 물론 글로 읽는 것보다 깊이는 얕아질 수 있겠지만 일단 표면적으로 접해보기라도 해야 그걸 생각해볼 수 있는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잖아. 두 번 보면 전보다 재미는 떨어지겠지만 오히려 작가가 뭘 말하고 싶었는지 조금 더 분석할 수 있을 테고. 그렇게 의도를 표현하는 방식이 좋았다.
시나리오만으로 어느 정도 결정을 내린 건가?
물론 감독님은 만나보고 결정해야지. 한번도 못 봤으니까. 다만 이럴 땐 감독님이 양아치만 아니면 된다. (웃음) 그런 사람 있잖아. 글만 잘 쓰는 사람. 그럼 또 난감하거든. 어쨌든 감독님을 만나니 생각이 너무 괜찮더라. 이러면 좋지.
<천하장사 마돈나>는 보고 <김씨표류기>를 결정했겠지.
원래 시나리오를 읽고 감독님을 만나보기 전에 미리 봤어야 되는데 그 때 아마 <강철중>촬영이 끝날 즈음이라 영화는 못보고 감독님부터 만났다. 그리고 출연결정을 내린 다음에 영화를 봤는데 역시 선택을 잘했다고 생각했다. 그 이전에 작품이 어떻고, 상도 많이 받았고, 그렇게 일단 들은 얘기가 있기도 했지만 일단 보내준 시나리오 자체만 봐도 그냥 영화를 안 보고 감독님을 만나도 될 것 같다는 믿음이 생겼지. 그런데 <마돈나>는 어차피 두 감독이 만들었으니까 사실 누가 만든 건지 잘 모르잖아. 이해영 감독이 만든 건지, 이해준 감독이 만든 건지. (웃음) 사실 난 두 분이 형제인 줄 알았어. 대부분 소문이 형제라고 하기도 하고, <마돈나>자체가 그런 영화니까 둘이 사귀는 거 아닌가라는 소문까지 돌던데. (웃음) 물론 만나기 전엔 진위를 판단하기는 힘들었다. 일단 만나보니 형제도 아니었고 애인도 아니고, 과 동기더라. (웃음) 여하튼 직접 만난 뒤에 <천하장사 마돈나>를 보고 나서 더 확신이 생기더라.
밤섬을 무대로 찍었는데 사실 모든 장면이 밤섬 같진 않더라. 사실은 되게 적은 분량만 밤섬에서 찍었다. 서울시에서 딱 8회 차만 허락해줬다. 우리나라 영화 중 처음이라고 하던데 <괴물>도 협조를 요청했지만 법 때문에 불가했더라. 이번에는 주로 밤섬에 대한 이야기니까 시나리오도 전하고 그랬음에도 불구하고 8회 차 이상은 허락이 안됐고 나이트 신조차 허락이 안됐다. 그리고 그 8회 차도 막판에 간신히 허락된 거다. 처음에는 허락이 안 됐거든. 8회 차 빼고 나머지는 충청도 쪽에서 밤섬과 비슷한 곳을 찾아서 부분부분 찍은 뒤에 나머지는 다 CG로 처리했다. 내 분량의 70% 정도에 CG가 들어간다더라.
밤섬이라는 공간의 특이성이 영화의 독특한 양식을 이룬다. 사람이 많은 도심 한 복판에 그런 무인도가 있고 그 안에서 홀로 표류하는 남자라는 설정이 독특하지만 대도시 소시민의 비애가 투영된다는 점에서 보편적인 정서적 동의가 이뤄지는 느낌이다.
그래서 어떤 캐릭터 분석이나 사전준비가 필요 없었다. 내가 김씨가 될 수 있고, 길거리를 다니는 누군가가 김씨라고 할 수도 있으니까. 사람이 가장 어려운 상황에 처했을 때 누구나 한번쯤 그냥 힘들어서 못 살겠다, 짜증나서 못 살겠다, 이런 얘기를 할 수 있잖아. 어쩌면 그런 심정에서 김씨도 죽으려고 했겠지. 그런데 사실 미끄러져서 떨어졌을 수도 있고, 차가 확 지나가는 바람에 놀라서 떨어졌을 수도 있고. (웃음) 사실 떨어지려는 데까지만 보여줬지, 떨어지는 건 안 보여주잖아. 어쨌든 우연히 살아난 김씨가 걸치고 있던 양복을 하나씩 벗어버리면서 그 섬에 적응하는 과정은 어쩌면 정재영이 스태프들 앞에서 옷을 하나씩 벗고 그 상황에 적응해가는 과정 그 자체였다.
스태프들 앞에서 혼자 벗고 있는 게 어색했을 거 같다.
<실미도>를 빼면 이렇게 빤스만 입고 카메라 앞에 서본 적도 없으니까. 그나마 <실미도>는 남자끼리 다같이 잠깐 벗고 항상 러닝셔츠라도 입고 있잖아. 그리고 <김씨표류기>에서 배우는 유일하게 나 혼자였다. 느낌이 달라. 처음에는 딱 찍을 때만 벗고 있었다. 웃통 까는 거 자체가 창피하더라고. 하루 이틀 그렇게 했는데 점점 김씨처럼 익숙해지니까 그냥 분장차에서 벗고 나와서 혼자 빤스만 입고 돌아다녔다. (웃음) 정재영도 완전히 김씨가 됐던 거지. 또 그래야 될 거 같았고. 그러니까 감독님도 좋아하더라. 속으로 ‘김씨가 됐구나.’ 그랬을 걸.
무인도에 표류하는 인물이다 보니 독백에 가까운 대사가 많고, 내레이션 분량도 상당하다. 사실 내레이션이라는 게 간단하게 읽어 내려가면 끝나는 작업 같지만 배우에겐 상당히 고민스러운 부분이 된다.
대본 상에서 읽을 땐 재미있고 와 닿는 감정이 좋았는데 막상 ADR(Automatic Dialog Replacement, 후시녹음)을 할 때 내레이션을 하니까 뭔가 자꾸 잘 맞지 않고 어색하더라. 이게 지금 내가 나한테 하는 말인지, 아니면 제3자가 나한테 하는 말인지, 아니면 관객들이 나한테 하는 말인지, 말 그대로 그냥 내레이션인지, 그 톤을 잡기가 되게 힘들었다. 그래서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고, 이게 맞는 거 같기도 하고, 저게 맞는 거 같기도 하고, 어떻게 하면 너무 무겁고, 그래서 굉장히 힘들었다. 이걸 어떻게 읽어야 할지 알듯 말듯 하다가도 다 붙여놓고 보면 때론 감정이 너무 많이 개입된 거 같고, 어떨 때는 너무 많이 개입되지 않은 거 같고. 결국 어떻게 어떻게 하다 보니까 최종적으로 이렇게 됐다. 처음엔 쉽게 생각했는데 촬영할 때보다 더 까다로웠다.
김씨가 밤섬에 갇힌다는 설정은 나름 기발하다지만 반대로 비상식적인 상황이라 납득의 과정이 필요하다. 궁극적으로 중요한 건 그 섬에서 빠져 나오지 않겠다는 김씨의 결심이지만 그 결심 이전에 섬에서 고립되는 상황을 설득시키는 것에 대한 고민이 있었을 것 같다. 사실 그게 가장 큰 문제였다. 예를 들어서 물에 막 들어가면서 ‘할 수 있다’고 혼자 중얼거리거나 얕은 데서 막 뛰어들고, 그런 모습이 사실 조금 과잉된 감정이거든. 무슨 죠스라도 나올 것처럼 공포감을 갖는다는 게 어쩌면 일반적인 감정이 아닐 수 있지만 그렇게 조금 과잉으로 해야 될 것 같았다. 김씨가 물에 대한 큰 공포감을 갖고 있다는 걸 보여주면 그 다음부터 물에 얼씬도 하지 않아도 상관없을 테니까. 사실 뗏목을 만들어서 나간다거나 어떻게든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거 같다고 느끼기 전에 일단 캐릭터가 물을 통해 원천 봉쇄되는 느낌을 줘야 했다. 그러려면 조금 비현실적인 것처럼 보이더라도 김씨가 물에 경기를 일으킨다고 느낄 정도의 한방으로 조율해줘야 더 이상 설명할 필요도 없어진다. 초반에 그 부분을 넘고 나면 이제 김씨가 자연스럽게 이 섬에 있게 되는 거니까, 그 다음부턴 자기가 스스로 나가지 않으려 하니까 문제가 안 되잖아. 그래서 초반이 사실 문제였다. 비현실적인 느낌을 벗어나면서도 어떻게 확실히 설득시킬 수 있을까. 그게 해결되지 않으면 계속 몰입을 못할지도 모르는 문제고.
현실적인 리얼리티보단 상황을 납득시킨다는 게 중요했던 것 같다.
그렇지. 잘못 하면 관객들도 계속 의문에 쌓일 수 밖에 없으니까. ‘왜 안 나가? 나갈 수 있는데.’ 이래 버리면 틀린 거다. 그래서 그 부분을 신경 많이 썼다.
이해준 감독이 무대인사에서 <김씨표류기>를 보고 자장면을 먹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하기도 했던 만큼 이 영화에서 ‘자장면’은 의미심장한 소품이다. 물론 여기서 ‘자장면’을 먹는다는 건 단순한 식욕의 문제가 아니다.
이해준 감독이 단순하게 얘기했지만 영화가 자장면을 너무 맛있게 보여줘서 자장면이 먹고 싶어지는 건 아닐 거다. 자장면 광고를 보고 자장면을 먹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과 다른 문제지. 결국 자장면을 왜 먹고 싶은가라는 거다. 자장면을 먹고 싶게 만들려고 ‘농심’에서 몇 십억 수표 받고 협약 맺어서 두 시간짜리 광고를 찍은 것도 아니잖아. (웃음) 옛날에는 자장면을 귀해서 못 먹었다. 그러니 무조건 자장면을 먹어야지. 졸업식 때나 무슨 특별한 날이면 무조건 자장면이다. 하지만 요즘 우리에게 자장면은 아무데서나 먹을 수 있는 흔해빠진 음식이다. 오늘은 오랜만에 자장면이나 먹어볼까, 라고 하는 시대가 됐잖아. 그렇게 자장면의 위치가 변하는 동안 우리가 뭔가를 잊고 살지 않았는지를 생각할 수 있다.
코믹한 상황이 여럿 등장하는데 그게 단순히 기능적인 코미디가 아니더라.
사실 표류 아닌 표류를 하는 김씨의 설정이 황당해서 웃기기도 하겠지만 적어도 보통 사람보다 못한 삶을 살고 있는 걸 보면 그냥 웃자고 만든 거라 느끼진 않겠지. 초심이라던가, 잊고 살았던 작은 것들을 다시 생각해볼 계기도 될 수 있고. 지금 힘들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극복할 수 있는 용기를 얻을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러면서 나도 한번 자장면을 먹어볼까 생각하기도 하고. 그런데 그냥 단순히 자장면을 먹고 싶다는 결과만 생각하다 보면 사실 본질이 없어지지. 김씨가 자장면 먹는 걸 보고, “‘농심’하고 뭔가 커넥션이 있구만.” 이렇게 생각하는 분들은 이제 약간 본질을 흐린 거지. (웃음)
사실 상대의 연기에 능청스럽게 반응하는 리액션이 당신의 장기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사실 <김씨표류기>는 리액션을 받아줄 상대가 없는 영화다. 마치 일인극의 모노드라마 같은 느낌일 수도 있는데 그 가운데 코믹한 감정을 이끌어내야 하니 다른 방향의 리액션을 모색했을 것 같다. <김씨표류기>는 기존의 <아는 여자>나 <바르게 살자>처럼 코미디를 위한 코미디를 해서는 안 됐다. 그냥 캐릭터 자체가 쌓여서 나오는 코미디, 캐릭터 자체가 어떤 상황에 처해져서 보이는 코미디가 되니까 그냥 코미디라고 생각해선 안 된다. 그냥 최대한 절실하게 보이는 상황과 내가 주고 받는 액션과 리액션을 통한 코미디였다. 그러니까 적절한 상황과 맞물린 절실함에 공감하면 관객들이 재미있게 볼 것이고, 절실함이 아니라 과잉이라고 생각하면 처음엔 평범하지 않다고 생각해서 재미있을 수 있지만 결국 계속 보다 보면 지루해지지. 그래서 김씨의 코미디는 처음엔 덜 웃겨도 그 상황을 지속적으로 밀고 갔을 때 캐릭터의 감정이 쌓이면서 점점 재미있어지는 코미디랄까? 어쩌면 코미디라기 보단 그냥 그 상황에서 해야 될 의무였던 거 같다.
‘자장면이 희망이다’라는 말까지 등장하고. 여자 김씨가 배달시켜 준 자장면을 남자 김씨가 돌려보내는 건 결국 자장면을 먹는 것보다도 자장면을 만들어내는 게 중요하다는 걸 보여주는 대목이다. 어떤 결과보다도 과정 자체가 인간에게 의미가 된다는 것이 감동을 부르는 측면이 있다. 종종 배우라면 선택의 기로에 설 때가 있지 않을까 싶다. 연기적 성취의 의미가 발견될만한 실험적 작품과 소모적인 연기를 요구하지만 결과적인 흥행성이 보장되는 작품 사이에서 갈등하는 경우는 없었나.
나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항상 선택의 기로에 있는 거 같다. 사실 지금 세상이 과정보다 결과를 중요시한다. ‘어떻게 만드느냐’보단 ‘뭘 만드느냐’가 중시되는 세상이다. 내 입장에서는 7:3정도. 작품이 먼저지만 그렇다고 해서 작품이 완전한 10은 아니다. 흥행적인 부담이 전혀 없다면 그것도 완전히 무책임한 거지. 일단 좋은 과정이 있으면 당연히 좋은 결과가 있어야 인지상정인데, 그렇지 못하면 사실 속상하잖아. 하지만 과정이 후지고 목적도 후진데 결과만 좋으면 그게 더 실망스럽다. 그럼 앞으로는 저렇게 만들어야 되나. 나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냥 흥행만 바라보고 해야 될까. 이렇게 막 해도 되는구나, 싶어지니까. 정말 열심히 노력했다면 결과가 좋지 않아도 최선을 다했다는 위안이 생긴다. 결과보다 과정 속에서 최선을 다하는 순수한 열정이 남는다. 간혹 어떤 사람들은 잔머리 대충 굴려서 영화 하나 뚝딱뚝딱 만들어놓고 이렇게 하면 영화가 되는 거 아니냐고 말한다. 마치 공장에서 찍어내듯 대충 얼마 정도 들여서 어떻게 기획하면 된다고. 요즘 세상에선 그게 더 합리적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을 보면 속상하고 안타깝지. 흥행배우라는 말도 좋지만 그보단 연기를 잘하는 배우, 진심이 있는 배우, 이런 칭찬에 비해 가치가 떨어진다. 개인적으로 <김씨표류기>를 선택해서 일단 내 한은 다 풀었다. 과정이 너무 좋았으니까.
편수가 늘어가고 입지가 구축될수록 작품을 선택함에 있어서 그런 갈등이 치열해질 것 같다. 아무래도 개인의 욕심만을 생각할 입장도 아니고, 부양할 가족이 있다는 것도 고민의 한 축이 되는 게 아닐까 싶고.
항상 그런 갈등이 있을 때마다 내가 연기를 왜 시작했는지, 왜 연극을 좋아하게 됐는지, 이런 생각을 통해 조금씩 해결해보려 한다. 내가 돈 때문에 연기를 시작한 건 아니다. 돈 못 버는 거 뻔히 알고 시작했으니까. 일단 좋은 연기자가 되기 위해서, 또 좋은 작품을 하기 위해서 시작했으니까, 대단한 건 못해도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연기를 하고 싶다. 적어도 자장면을 먹고 싶은 마음이 생길 수 있는. (웃음) 그런 마음을 매 작품 매 순간마다 다시 되새김질하려고 한다. 망각의 동물이라서 자꾸 까먹거든. 어느 순간부터 옛날의 소박한 욕심은 어디 가고, 점점 더 큰 욕심들이 자리잡게 되는데 그럴 때마다 잔머리 굴리는 것보다 순수한 마음을 잃지 않는 것이 배우로서 훨씬 더 오래갈 수 있고 발전할 수 있는 길이라고 믿는다. 분명히 그게 정답이다.
‘욕망은 사람을 똑똑하게 만든다’라는 대사처럼 어쩌면 욕망이 배우도 똑똑하게 만드는 것일지 모른다. 배우로서 내외적으로 성장하는 과정 속에서 자신이 다스려야 할 욕망이 커지는 만큼 그 욕망을 컨트롤할 수 있는 역량도 함께 생길 수 있는 게 아닐까. 먹여 살려야 할 가족들이 있는데 당장 내일이라도 돈 한푼 없는 입장이 되면 작품이고 나발이고, 연기고 나발이고 어디 있어. 그때는 또 생활로 가는 거다. (웃음) 단지 그렇게 타협했다고 해서 이렇게 막 쭉쭉 가보자, 이런 건 아니니까. 어느 정도 최소한의 방편이 되면 그 다음에 또 하고 싶은 걸 해보는 거지. 다만 일단 살아야 뭘 하지. 살지도 못하면서 무슨 작품이 어떻고, 좋은 배우고, 그런 건 없다. 일단 김씨처럼 사는 게 제일 중요해. 산 다음에 자장면이지. 지금 죽을 거 같은데 무슨 자장면이야. 처음에 버섯만 먹다가 그 다음에 생선을 먹게 되니 얼마나 좋아. 그런데 어느 새 새도 먹게 되고, 그러다 보면 물고기 먹을 때를 잊어버린다. 어류보다 조류가 맛있으니까 점점 까먹게 된다. (웃음) 그리고 자장면을 발견한 뒤로 옆에 새가 있어도 자장면에 꽂혀있는 거지. 그리고 (여자 김씨가) 여자라는 걸 알았잖아. 자장면을 먹고 나니까 이젠 여자가 보고 싶은 거지. 남자라면 ‘Who are you?’같은 거 했을까? (웃음) 뭘 보고 싶겠어. 그런데 여자라니까 갑자기 너무 보고 싶은 거다. 이게 인간의 욕망이 진화하는 과정 아닐까. 뭔가 하나가 실현돼야 그 다음에 또 얻고 싶은 게 생기고. 그러다가 그런 욕망들이 한 순간에 다 무너지니까 다시 정신을 차리고 다시 원래대로 한강에서 뛰어내리려 했을 때가 생각나지. 그런데 여자 김씨가 뛰어와서 손 한번 잡으니까 희망이 생기고. 어떤 위기가 닥치거나 고민이 생기면 속상하고 그렇지만 결국 이 삶이 반복되는 거 같다. 그러니까 어떻게 보면 너무 속상해할 필요도 없을 거 같고. 그런 교훈은 선배들의 행보를 통해 배우기도 하지만 후배들에게 배울 때도 있고. 책에서 읽기도 하고, 나름대로 혼자 생각도 해보고, 여러 방면에서 종합적으로 한해 한해 계속 축적되는 거지.
남자 김씨의 이름은 초반에 단 한번 민증을 통해서 드러나지만 영화 내내 이름 없는 사람처럼 불리지 않는 존재로서 나타난다. 한때 당신에게도 지독한 무명배우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이젠 누구나 아는 주연급 배우로 이름이 불리고 있다.
사실 지금도 영화를 관심 있게 보는 몇몇 젊은 관객을 제외한 일반 대중들은 나를 그냥 배역으로 얘기하는 경우가 많을 거다. 물론 관계자 분들은 알겠지. 이름이라는 건 항상 표면으로 드러나거나 불려져야 알게 되는데 내 이름은 크레딧에서나 보이고 홍보할 때나 잠깐씩 집중적으로 보일 뿐인데 일반 대중들이 그런 걸 눈 여겨 보진 않거든. 노출이 별로 안되니까 배역으로 말씀하시는 분들이 많은 거 같다. 어디 나왔던 누구, 뭐 이런 식? 그게 속상하지도 않고 개인적으로 이름에 대한 인지도를 높이겠다는 생각을 여전히 하지 않는다. 그냥 저절로 작품이 쌓이면 더 많은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내 이름을 알아가게 될 거다. 그리고 오히려 그런 장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아직까진 내가 신선하다고 느낄 수 있으니까.
혹시 스스로 배우는 이래야 한다라는 어떤 기준을 갖고 있는 건 아닌가?
이게 옳은 길이다, 이게 배우의 길이다, 이런 건 절대 아니다. 모로 가도 다 서울만 가면 돼. 일단 이름을 알리고 배역으로 가도 되고, 그냥 나처럼 소극적인 사람은 이렇게 쭉 가는 거고, 심지어 스포츠 스타가 배우가 될 수도 있는 거다. 단지 나와 비슷한 길을 걷고 있는 후배들이 나를 보면서 저렇게 가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하면 정말 끝까지 해먹을 수 있겠구나, 그럴 수 있잖아. (웃음) 무슨 특별한 철학이 있어서 그러는 게 아니라 그냥 옷을 입는 취향이나, 차를 타는 취향 같은 거다. 그만큼 다 장단점이 있겠지. 이런 내 모습을 특별한 매력으로 느끼는 사람도 있겠지만 반대로 배우로서 겉멋이 들어서 그렇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거다. 단지 나는 그냥 이런 게 편할 뿐이다.
하지만 이젠 적어도 정재영이란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별로 없을 거 같은데. 이제 한 해마다 한 편 이상씩 영화에 출연해오고 있는 만큼 날 몰랐던 분들도 익숙해지는 거겠지. <실미도>때 날 봤던 분이 만약 <김씨표류기>를 보면, “저 사람 <실미도>에 나왔던 사람 아니야?” 이럴 수도 있고. 다만 내가 나온 작품을 다 볼 순 없잖아. 그건 진짜 영화광이고. (웃음) 앞으로도 계속 영화에 불러줘서 연기할 수 있다면 언젠가 ‘저 사람 진짜 오래하네’, 이런 생각을 하는 분도 생길 거고. 심지어 ‘이젠 그만 나왔으면 좋겠다’, 하면서 질린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생기겠지.
배우 이름보다 캐릭터 이름으로 기억되는데 익숙한 것 같다.
사실 그게 배우에겐 제일 행복한 거지.
<아는 여자>나 <거룩한 계보>의 ‘동치성’이란 캐릭터처럼 정재영을 통해서만 떠오르는 캐릭터도 있다.
그것도 이제 몇 번 했으니까. 그 영화를 다 보신 분들은 그게 특이해서 기억하겠지만 그 중에서 한 편만 본 사람들은 또 그렇게 생각하지 않겠지. 일종의 매니아를 위한 이름 짓기랄까.
현재 영화배우들 가운데 무대 출신 배우도 많고 그들 대부분이 중심 배우군을 이루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예전에 류승룡 씨를 만났을 때 정재영, 황정민과 같이 친한 동기들이 연기자로서 활발히 활동한다는 것이 기쁘다고 하더라. 아무래도 함께 무대에서 활동했던 전력이 있는 만큼 전우애가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무대를 자신의 연기적 뿌리로 두고 있다는 것이 연기자로서 어떤 자산을 남겼다고 생각하나?
지금은 이제 연기적 영역에 있어서 연극과 영화, 방송 사이에 경계가 없어진 것 같다. 80년대처럼 연극연기, 영화연기, 방송연기가 다르지 않고, 이젠 일단 리얼리티가 관건이기 때문에 연극으로 활동했던 배우들의 가능성이 커진 거 같다. 연극에서 잘했던 배우라면 방송이나 영화에 와서 하루 이틀 정도나 헤맬 수 있겠지만 대부분 잘한다. 옛날엔 메커니즘이 많이 달랐는데 이젠 거의 다 똑같아서 새롭게 적응할 필요가 없고. 단순하게 연극에서 출발한 배우가 많을수록 좋다는 의미가 아니라 모든 분야에서 배우층이 두꺼워진다는 건 아주 고무적인 일이다. 그래야 고생하는 후배들도 나 같은 얼굴로도 해나가는 사람을 보고 희망을 갖지. (웃음) 어떻게 보면 시대가 변한 덕이다. 옛날에는 잘 생기면 방송으로 가고 못 생기면 연극으로 갔다. 사실 그런 거야. (웃음) 일단 연기력을 떠나서 얼굴로 밀어붙일 수 있어야 탤런트 시험이라도 보고, 그게 안 되는데 연기를 하고 싶다면 연극으로 가야지. 그러나 지금은 오히려 잘 생겨도 연극을 하고 못 생겨도 방송을 하고, 얼굴에 대한 경계가 점점 더 없어졌잖아. 옛날엔 정말 잘 생겨야 했지만 이젠 리얼리티가 중요한 시대라서 평범한 사람이 주인공을 해도 되니까 나 같은 배우는 편해졌지.
김씨가 자살을 결심해 한강에 뛰어드는 것이 육체적 자살이라면 밤섬에서 표류를 결심하는 건 사회적 자살에 가깝다. 결국 후자 역시 삶에 대한 포기지만 결국 그게 희망으로 연결된다. 어쩌면 배우로서 살아오면서 자신의 삶이 밑바닥까지 떨어지듯 자포자기하고 싶었던 순간도 있었을 것 같다. 그걸 희망으로 역전시킨 계기도 있었을 것 같고. 20대 초중반 시절엔 그냥 내가 이렇게 무조건 열심히 하면 잘 되겠지, 무조건 잘만 하면 잘 되겠지, 라고 생각했는데 후반쯤 되니까 조급증이 오더라. 계속 상황에 발전이 없으니까 불안이 생기는데 그걸 나 혼자 계속 짊어지긴 싫잖아. 그러니까 남 탓을 하는 거야. 야, 이거 이러다가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는 거 아냐? 난 정말 가망이 없나? 난 왜 이렇게 운이 없지? 세상 사람들이 왜 날 알아주지 않는지, 내가 왜 누구보다 떨어지는 건지, 나는 괜찮은데 왜 그러는 건지, 결국 다 운이 없다는 탓으로 돌리게 되는 거야.
그 때가 일종의 고비였을 것 같다. 어떤 극복 계기가 있었을 것 같은데.
어머니께서 이런 말씀을 해주신 적이 있다. “운이라는 건 네가 잡으려고 하는 게 절대 아니다. 네가 모르고 지나갔다가 돌이켜봤을 때 알고 보니 그게 운이었던 거지.” 그 순간에는 운인지, 좋았던 건지 나빴던 건지 아무도 모른다는 거야. 생각해보니까 역시 운이 없는 게 아니라 아직까지 내 실력이 모자랐던 거다. 내 탓인가 보다, 이렇게 마음을 싹 바꿔버리니까 고민이 덜어지더라. 그렇다고 다시 자신만만하게 그냥 열심히 하고 잘 하면 되겠지, 이런 건 아니었다. 원초적으로 돌아갔지. 내 실력을 더 키워야겠다, 더 공부해야겠다. 이렇게 방향을 잡으니까 극복이 되더라. 돌이켜보면 운이 없다고 생각했던 그 시절, 한두 신 자리 촬영하던, 힘들게 연극했던, 아무것도 모르고 까불었던 그 시절들이 쌓여서 지금 영화를 하는 정재영이 된 거지. 어느 한 순간 때문에, 어느 한 방을 통해서 이렇게 된 게 아니다. 그런 과정이 쌓여왔기 때문에 현재의 내가 있는 거고,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그런 것들이 다 운이었다. 거기에 운이 있었더라.
하지만 종종 진짜 한방으로 성공하는 사람들이 있지 않나. 젊은 배우 가운데 단 몇 편으로 스타덤에 오르는 친구들도 있다.
어느 한 작품 때문에 대박이 났다고 말해지는 사람들이 있다. 소위 말하자면 이준기 씨 같은 경우, <왕의 남자>한편으로 대박이 났으니까 사람들은 그게 운이라고 생각하지. 그런데 거기서 만약 못했다고 생각해 봐. 사실 <왕의 남자>를 찍을 땐 몰랐을 거야. 얘기 들어보니까 엄청난 경쟁률을 뚫고 발탁됐고 뭔가 절실했던 만큼 최선을 다해서 촬영했고 결국 작품이 잘 나왔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모든 과정이 운이 된 거지. 길거리 가다 캐스팅 됐다고 다 배우 되는 건 아니잖아. 어떻게 보면 잘됐다는 거 하나는 운일지 모르겠지만 나머지는 다 실력인 거지.
최근에 영화나 드라마에 출연했던 배우들이 무대에 서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연극열전2’같은 경우도 그래서 상당한 호응을 얻고 있고. 무대에 설 계획은 없나? 영화나 방송을 통해 인지도가 늘어난 만큼 그 인지도가 연극의 인지도에 도움을 줄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지금으로서 정확한 계획은 없다. 연극과 영화, 방송에 활동의 구분을 두진 않는다. 다만 연극이나 방송 섭외는 영화보단 훨씬 적고, 들어온 작품이 괜찮아도 스케줄이나 시기가 맞지 않을 때가 많다. 의도적으로 연극을 무조건 한 편 해야지, 이런 생각은 안 한다. 예를 들어서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서라던가, 아니면 도와주기 위해서라는 의도적인 마음은 들지 않는다. 그렇게 동정한다는 것 자체가 자존심 상할 수 있거든. 연극은 그런 게 아니고 똑같다고 생각하니까. 잠시 나갔다가 돌아오는 곳이 아니고 영화와 나란히 공존하는 영역이라고 생각한다. 언제든지 할 기회가 되면 하는 거지, 일부로 의도적으로 해야겠다고 마음먹어서 되는 건 아니다.
마지막으로 무대에 섰던 작품이, ‘연극열전’ 첫 번째 당시 공연했던 <택시 드리벌>이었다. 그게 마지막이니까 무대에 선지도 벌써 5년 가까이 됐다. 그런 기회가 생기면 언제든지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내가 연극판을 특별히 도와주겠다는 의도로 무슨 선물을 준다는 건 아무래도 아니지. 내가 연극할 때도 그랬지만 연극을 계속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자존심 상하는 일이다. 누군가 잘됐으니까 돌아와서 도와준다는 느낌을 주면 개인적으론 차라리 오지 말라고 하고 싶어진다. 그런 인상을 주지 않으면서 지금 영화 하는 것처럼 연극을 할 때가 올 거라고 생각한다.
매년마다 출연작이 한 편 이상은 된다. 그런데 작품마다 기복이 느껴지지 않는다. 연기적인 비난을 얻었던 적도 없었고, 출연작마다 어느 정도 이상의 흥행성적도 거뒀다고 할만하다. 사실 낙관적인 이미지 때문에 그런 결과들이 자연스럽게 얻어진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정작 본인은 좀 더 치열하게 사는 사람 같다. 그게 꾸준한 활동의 의무를 부여하는 것 같기도 하고.
사실 내가 영화 아니면 할 것도 없고, 써주는 데도 없으니까. 유일하게 가족을 제외한 내 모든 것을 걸고 달려들 수 있는 건 영화 밖에 없다. 그러니까 일단 뭔가 해야 되는 입장이란 말이지. 예를 들어서 몇 년 사이 공백이 생기면 안 된다. 적어도 일년에 한 작품은 꼭 해야 한다. 그러려면 나한테 들어오는 시나리오 가운데서 일단 선택해야 된다. <김씨표류기>처럼 보자마자 ‘아, 이건 꼭 해야겠다’싶은 작품만 들어오는 것도 아니고, 뭔가 필연적인 선택을 해야 되는 순간도 생긴다. 그럴 땐 최소한 내가 이 작품을 했을 때, 전작 가운데 제일 잘했다는 평가를 듣진 못해도 제일 못했다는 평가는 받지 않아야 된다는 강박관념이 생긴다. 배우가 매번 최고의 작품을 할 순 없다. 그런 작품이 맨날 나한테만 들어오나. 절대 아니지. 내가 그럴 만큼 최고의 배우도 아니고. 내가 처한 위치에서 나한테 들어온 작품 가운데 나름대로 최대한 욕먹지 않을만한 작품을 하고 있지만 그것도 사실 내 마음 먹은 대로 되는 건 아니다. 운도 따라줘야 되고, 여건도 맞아야지. 그럼에도 난 해야 되는 거고.
‘진화는 맛있어지는 과정이 아닐까’라는 대사가 나오는데 배우에게 있어서 진화는 현명해지는 과정이 아닐까 싶다. 지켜야 할 것이 많아지고 성취적 욕망이 깊어질수록 현명해지는 것이 중요할 것 같다.
일단 나도 어떻게 해야 되는 건지 알고 싶다. 매 순간마다 너무 궁금하지. 친한 강호 형은 물어봐도 자기만 오래 하려고 안 알려줘. (웃음) 사실 캐릭터를 어떻게 잡아야 된다는 방법은 없거든. 그런데 나도 궁금한 거야. 좀 쉽게 잡고 싶으니까. 배우로서 어떻게 작품을 선택하고, 어떻게 연기를 하고, 연기 외적으로 어떤 사람들을 만나야 되고, 인터뷰는 어떻게 해야 되고, 어느 정도까지 솔직해야 되고, 이렇게 해야 되는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이 너무 많잖아. 과연 그럴 때마다 어떻게 해야 될까 생각하지. 연예오락프로 같은 데는 원체 나가질 않으니까 주변에서 요즘은 나가야 된다고, 그게 대세라고 하는데 이럴 땐 나가야 되는지, 안 나가야 되는지 모르겠다.
최소한의 자기 기준이 중요할 거 같다. 배우로서 최소한 지켜야 할 소신 정도는 정의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외적인 게 본질을 해치지 않아야 된다고 생각한다. 외적인 게 본질을 해치는 순간 그땐 잘 모르지만 자기도 모르게 점점 더 본질을 갉아먹게 된다. 흥행이 잘되건, 연기를 잘하건, 일단 어딜 나가건, 안 나가건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자기가 알고 있는 연기자의 본질을 얼마만큼 끝까지 지키고 있느냐가 중요하다. 자기가 생각하는 본질을 자신이 죽을 때까지, 아니면 연기를 그만 둘 때까지, 그렇게 끝까지 지킬 수 있다면 그 사람이 가장 현명한 배우가 아닐까. 물론 정답은 없다. 어떤 길을 선택할 것인가는 본인이 각자 선택하는 거다. 단지 자기가 선택한 그 길에서 죽이 되던 밥이 되던 끝까지 지키고 가느냐가 문제겠지. 그 안에서 본질이 흐려지지 않는 수준에서 조금씩 타협해가기도 하면서 죽을 때까지 연기에 대해서, 작품에 대해서 고민해야지. 어느 순간부터 내게 익숙해졌기 때문에 이건 이제 쉬워, 내지는 이렇게 하면 된다, 라는 식으로 매너리즘에 빠지면 안 된다. 아는 척하고, 잘난 척하는 순간에 본질은 흐려지고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변해가는 거지.
뮤지컬 배우로서 경력을 쌓아왔다. 우선 뮤지컬이 좋았다. 노래 부르는 걸 되게 좋아했었거든. 그런데 연기랑 노래를 같이 가져갈 수 있는 게 뮤지컬이니까.
노래를 좋아했다면 가수를 생각할 수도 있었을 텐데.
그런 생각도 잠깐 했었다. 실제로 제의도 들어왔었고. 군대 가기 전, 스무살 즈음이었나. 그런데 만약 그러려면 계약을 해야 되고 5년 동안 1년에 앨범 한 장씩 내야 된다는 식으로 얘기하더라. “그러면 난 연기는 못하나요?” 그랬더니 안 된다고, 가수에 전념해야 한다고 하길래 안 한다고 했던 적이 있었지.
요즘 주말극에 출연하고 있는데 드라마 연기는 어떤가? 나름대로 잘 적응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김치 치즈 스마일>(이하, <김치>)로 처음 방송할 당시에 감독님과 PD님들이 ‘원투쓰리’(스튜디오 카메라)를 처음하는 데도 정말 빨리 적응한다고 하더라. 그 전에 ‘드라마시티’도 해봤지만 거기선 세트촬영도 다 ENG카메라로 찍었으니까. 하지만 처음엔 연기 자체가 어색했다. 계속 카메라 앵글에서 벗어나기도 했고.
나름대로 고충이 있었나 보다.
사실 내가 연극이나 뮤지컬에선 우는 연기를 잘 하는 편이다. 그런데 예전에 ‘드라마시티’로 처음 방송 카메라 앞에 섰을 때였다. 타이트 바스트샷(T.B.S)을 잡고 한 페이지가 조금 넘어가는 대사를 혼자 쭉 치면서 울어야 되는 씬이 있었다. 앵글 다 잡아놓고, 조명도 다 설치됐고, 이제 나만 준비하면 다 되는 건데 끝까지 울지 못하겠더라. ‘티어스틱(tear stick)’도 발라보고 안약도 넣어봤지만 안 되는 거다. 그때 감독님께서 내가 눌린 거 같다고 하시더라. 이 사람들에게 눌렸다는 표현을 하시더라고.
그 뒤로 카메라 앞에서 눈물 연기를 할 기회가 없었나?
그 이후에 <김치>에서는 다행히도 우는 씬이 없었고, 시트콤에선 울 일이 별로 없잖아. (웃음) 그 뒤로 <라이프 특별조사팀> 거의 마지막 회 즈음에 야간 촬영인데 우는 씬이 있었다. 진짜 소주를 몇 잔 마시고 갔었다. 내 캐릭터가 아빠라고 부르던 좋아하는 아저씨의 유품을 만지면서 대사도 없이 그냥 우는 씬이었는데 그때는 바로 눈물이 나더라. 술기운 탓이었나 모르겠는데. (웃음) 그래서 딱 두 번 만에 오케이 싸인을 받고, 그 씬 끝나자마자 드라마씨티 감독님한테 전화해서 말했다. “저 드디어 울었어요.” (웃음) 잘 했다고 하시더라. 처음엔 이렇게나 적응을 못했다.
나름대로 기울인 노력이 있었을 것 같은데. 우선 촬영장을 많이 다녔었다. 나는 탤런트나 영화배우들이 대단하게 보였다. 촬영장에서 보면 배우가 스태프들에게 둘러싸여 있지 않나. 저 상태에서 어떻게 연기하나 싶더라. 막상 직접 해보니까 처음엔 역시나 어색하더라.
의외다. 무대에서 많은 관객을 앞에 두고 연기해왔으니 오히려 수월하지 않을까 생각되는데.
느낌의 차이가 있다. 관객은 직접 돈 내고 온만큼 열심히 보려는 의지가 있지만 스태프들은 그 느낌이 아니니까. 그 기가 그 기가 아니다. 다르더라. 그래서 내가 눌리더라고. 사람 수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부담감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것 같다. 카메라 렌즈나 조명도 생소하고.
<그들이 사는 세상>에서 함께 출연했던 최다니엘 씨가 예전에 했던 인터뷰에서 연기할 때 엄기준 씨의 포스가 장난 아니다라고 하던데.
그냥 좋자고 해주는 말 아닐까. (웃음)
하지만 오랫동안 무대에서 연기를 해온 만큼 무대 장악력이 씬 장악력으로 이어지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무대에서 연기를 오래 해왔기 때문에 얻었다고 자신할만한 자산이 있나?
자신감까진 모르겠지만 우선 씬이 하나 있으면 이 씬에서 전달해야 될 목적이 뭔지 디테일 하게 파악된다. 씬이나 작품 분석력이 생겼다고 할까. 물론 드라마했다고 그런 걸 모른다는 건 아니다. (웃음) 그냥 좀 더 디테일하다는 거지. 어차피 드라마는 장면을 따고, 따고, 이런 경우가 많지만 고정해놓고 쭉 가게 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럴 땐 집중의 끝을 놓치지 않고 가려고 노력하게 되는데 그런 경우에 유리한 거 같다. 무대에서는 거진 그런 식으로 가니까, 드라마는 집중이 안 되면 그냥 죄송합니다, 하고 다시 가기도 하지만 무대에선 무조건 끝까지 집중력을 잡기 위해 노력해야 되기 때문에 그런 훈련은 충분했던 것 같다.
무대에서 나름 유명세를 얻었지만 최근 방송에 출연한 짧은 기간에 얻은 유명세가 오히려 먼저 인식되는 거 같다.
아마 지금 10년 넘게 연극이나 뮤지컬을 했던 나를 아는 사람이 이만큼이면, (작은 원을 그리면서) 2년도 채 안된 사이에 드라마 몇 편으로 나를 알게 된 사람이 훨씬 더 많지 않을까. 그건 어쩔 수 없는 일 같다. 그런 인지도도 어느 정도 신경 써야겠지. 다만 아직은 방송을 시작한지 2년 밖에 안 됐으니까 좀 더 방송 연기에 적응해야 될 거 같다. 아직은 이쪽에서 보면 신인이니까. 그리고 아무래도 실력으로 인정받아야 오래가겠지.
10년 넘게 무대를 지켰는데 그게 개인적인 고집에서 비롯된 결과일까, 아니면 하다 보니까 그렇게 된 건가. 하다 보니까 그렇게 된 부분도 있고. 내가 96년도에 뮤지컬을 같이 했던 이인철 선생님이라는 분이 계시다. 같이 술도 자주 마셨는데 내가 군대에서 휴가 나왔을 때 선생님께서 모노드라마를 하고 계셨다. 그래서 그 공연을 보고 같이 소주 한잔을 하는데 그 때, 계속 연기하고 싶으면 무대에서 10년만 버티라고 말씀하셨다. 사실 그 10년 버티는 게 힘들거든. 그런데 어떻게든 나는 버티게 됐다. 언젠가 TV를 보면서 연기를 못한다고 생각되는 탤런트를 봤다. 누군진 잘 기억나지 않는데 그 분을 보면서, ‘난 저렇게 되지 말아야지’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무대에서 10년을 버티면 ‘저 정도는 아니겠지’라고 생각했고. 어쨌든 궁극적으로는 나도 10년이 지나면 영화든 드라마든 다른 걸 해보고 싶었으니까.
예전에 <그리스>에서 김무열 씨와 더블 캐스팅으로 공연한 적이 있다. 올해 김무열 씨를 만났었는데 엄기준 씨가 춤을 못 춘다고 하더라.
<그리스>의 역대 ’대니’ 중에서 춤 못 추는 대니가 세 명 있는데, 이거 얘기해도 되려나? (웃음) 오만석, 이선균, 엄기준이라고. (웃음) 순위까진 말씀 드리지 않겠다.
그런데 김무열 씨는 그 당시 당신이 대니를 재해석하는 모습에 놀랐다고 하더라. 춤추고 멋진 척만 하는 대니를 쉴새 없이 입담을 구사해서 웃기는 캐릭터로 만들어버렸다나.
내가 역대 대니 중에서 가장 쌈마이였다더라. 가장 웃기는 대니였다나. (웃음) 사실 그때는 일부로 그런 것도 있었다. 왜냐면 공연이 길어지면 배우들이 많아서 솔직히 매너리즘에 빠지기 쉽거든. 우리끼리 하면서도 재미없다고 느끼는 경우가 있지. 그래서 난 공연 때마다 애드립을 조금씩 바꿨다. 애들 보고 긴장하라고. 그러니까 나름대로 우리도 좀 재미있게 하자는 의미랄까. 물론 정석대로 지켜야 할 약속이란 것도 중요하지만 너무 짜인 대로만 가면 스스로가 일단 지치니까, 내가 즐거워야 관객도 즐거워할 거 아닌가.
아무래도 자신이 그 집단을 이끌 정도의 재량이 되니까 가능했던 일일 수도 있고.
솔직히 그 때 <그리스>멤버들 가운데 내 나이가 가장 많았다. 그래서 연출도 나를 어느 정도 포기한 상태였고, (웃음) 그냥 내 멋대로 했었지. 그래서 애들은 형 오면 즐겁다고 했는데 나는 나중에 대표한테 한 대 맞고. 너 이제 그만 좀 맘대로 해라, 하면서. (웃음)
무대 위에서는 그렇게 익살맞은 모습도 많이 보여주는데 평소 성격도 활달한 편인가?
평소에 잘 못하는 걸 무대에서 하는 거 같다. 사실 난 그렇게 밝거나 유머스럽지 않다. 그래서 그걸 무대에서 대리 만족하려는 것도 있는 거 같다. 평상시에는 얘가 저기 언제 있었냐고 할 정도로 눈에 띄지 않는 편이다. 연습할 때도 말도 거의 없고 가만히 보고 있는 편이고.
방송을 통해 얼굴이 노출되면서 배우에서 연예인으로 영역이 확대된 느낌이다.
연예인이라는 말이 맞겠지. 나한테는 그게 좀 안 좋다고 할까. 배우로 남고 싶은데 연예인이 되면서 상품이 돼버리는 느낌이다. 어쩔 수 없는 현실이긴 하지만 그런 생각이 가끔 들긴 한다.
예전엔 심은진 씨와 스캔들도 났다. 신변잡기까지 관심을 받는다는 건 그만큼 부담되는 일이겠지.
(웃음) 나는 그래서 오히려 이런 생각도 해봤다. 주연 말고, 조연으로 쭉 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라고. 왜냐면 그렇게 되면 크게 상품화되지도 않고 별로 이슈거리가 안될 것 같아서, 그리고 연기는 연기대로 할 수 있고. 게다가 조연은 따먹을만한 배역이 생각보다 많다. 오히려 주연보다 더 많은 사람을 만날 수도 있을 것 같고.
주연 욕심도 없진 않을 텐데. 없다고 얘기하면 거짓말이지. 그런데 우선 요즘 주연배우를 하려면 일단 기본적으로 잘 생겨야 된다. 나는 사실 잘 생긴 배우 쪽은 아니잖아. 나이도 벌써 서른 중반이고. 뭐, 조연으로 가는 게 차라리 금방 기회를 얻기 쉽지 않을까. 나는 그냥 둘 다 좋다. 조연이든, 주연이든.
아까 춤 못 추는 3대 대니로 꼽힌다는 오만석 씨나 이선균 씨는 요즘 영화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혹시 시나리오 제의를 받아본 적은 없나?
없다. 요즘은 워낙 시장도 워낙 안 좋고.
영화에 출연하고 싶은 생각도 없진 않을 텐데.
나도 그러고 싶은데 안 불러준다. (웃음) 예전에 오디션 본 적은 많다. 유해진 선배 나왔던 <트럭>이나 천호진 선배 나왔던 <GP506>이나, 꽤 많았지. 그런데 잘 안 됐고. (웃음)
하지만 여전히 티켓파워가 있는 배우로 꼽히고 있다.
(조)승우가 지금 군대간 사이에 빨리 1위가 돼야 하는데! (웃음)
얼마 전에 공연했던 <밑바닥에서>의 흥행성적이 괜찮은 편이었다고 들었다.
다행히도.
본인 덕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김수로 선배님을 무시할 순 없지. 아마 내년에도 수로 형과 연극 한 편을 같이하게 될 거 같다. 작품은 이미 정해놨고 개관 날짜만 잡히면 된다. 수로 형한테 말했더니, “봄쯤 하자, 봄쯤.” (목소리를 따라 하면서) 이러더라. (웃음)
원래 김수로 씨는 고전연극에 정통한 배우다. 하지만 그 동안 코믹한 캐릭터로 지나치게 소모된 감이 없진 않다. 아무래도 방송이나 영화가 인지도를 얻기에 좋은 매체이긴 하지만 그만큼 쉽게 이미지가 고착화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두렵진 않나?
두려움은 없지만 내 고집을 언제까지 가져갈 수 있을지 나도 잘 모르겠다. 분명히 어느 순간 무너질 때가 있겠지. 하지만 그렇게 무너지더라도, 그래도 엄기준은 연기를 잘했으니까 라는 소리를 듣고 싶다. 1년에 한 편씩이라도 연극을 하려는 이유도 그걸 위해서다. 결론은 저 놈은 뭘 시켜도 잘 하니까, 못하진 않으니까, 그런 소리가 듣고 싶은 거다.
10년을 넘게 무대에서 활동해오면서 혹시 자신의 길을 의심해본 적은 없나? 앞만 보고 온 거 같다. 어떻게 하면 연기를 잘할 수 있을까. 다만 딱 한번 딜레마가 온 적이 있었다고 해야 하나. 그러니까 여태껏 조금씩 나아지는 모습을 보이면서 열심히 걸어왔는데 한번 정체된 느낌을 얻게 된 순간이 있었다. 2003년 정도였나, 앞으로 갈 길은 놓여있는 거 같긴 한데 계속 올라가도 끝은 보이지 않고, 그렇게 계속 제자리 걸음 하고 있는 거 같았다. 같이 연극하는 누나한테 그에 대해서 물어보니까 극복할 방법은 없다고 했다. 그냥 네가 꾸준히 열심히 하면 어느 순간 뭔가가 좀 나올 거라고만 얘기해 주시더라.
지금은 어떤가? 무대에서 벗어나 드라마를 하는 만큼 도전적인 기분을 느끼기도 하겠지만 한 편으로 환경이 변한 만큼 또 다른 매너리즘이 오기 쉬운 상황이 아닐까.
로마에 가면 로마 법을 따라야지. 난 그렇게 생각한다. 상황에 따라서 마음껏 바꿀 수 있는 것도 배우의 능력이 아닐까.
5월부터 뮤지컬 <삼총사>를 공연할 예정이다. 박건형 씨와 ‘달타냥’ 역할에 더블 캐스팅 됐는데 ‘삼총사’에서 달타냥은 아토스와 함께 인상적인 캐릭터라고 할 수 있다.
이번 공연은 특별히 아토스나 달타냥에 포커싱이 맞춰져 있진 않다. 브루투스나 아라미스까지 네 캐릭터에게 동등하게 포커싱이 맞춰져 있다. 각자 자기만의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기 떄문에 특별히 주인공이 누구라고 말하긴 어렵지. 그런 면에서 보면 원작보다 달타냥과 아토스의 비중이 없어졌다고 할 수 있을 정도랄까.
지금 출연 중인 주말연속극 촬영과 함께 리허설도 병행하고 있겠다.
덕분에 종종 리허설에 빠질 수 밖에 없어서 건형 씨한테 미안해 죽겠습니다. (웃음)
스케줄이 겹치면 아무래도 힘들 텐데, 사실 이런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지 않나.
<김치>때도 <미친 키스>와 <실연남녀>를 같이 했으니까.
그렇게 스케줄을 병행하면 체력적으로 무리가 올 텐데. 그래서 링거 맞아가면서 했다. (웃음) 그 때까지만 해도 링거주사라는 걸 한번도 안 맞아봤는데 어느 날 아침에 <김치> 첫 씬을 찍으려는데 갑자기 핑 돌더니 나도 모르게 주저앉게 되고 식은 땀이 나더라. 혜영이 누나와 같이 촬영할 때라서 혜영이 누나한테 얘기했더니 자기가 잘 아는 데가 있다고, 좋은 주사를 놔주는 곳이 있다고 알려줬다. 그래서 거기 가서 주사 한대 맞고, 그 이후로 <김치>끝날 때까지 한 달에 한 대씩 맞아가면서 활동했다. 그런데 무슨 20만원이나 해. 한 시간 반 만에. 너무 비싸. (웃음)
여러 역할을 병행하면 캐릭터 간의 혼선이 생기는 경우는 없나?
오히려 되게 재미있다. 혼선이 생길 까봐 조심하게 되니까 집중하게 만들어주는 것도 있는 거 같다. 혹시나 내가 ‘싸친’을 연기하고 있는데 ‘승현’이 나오진 않겠지, 라는 생각. 반대로도 생각할 수 있고.
특별히 연기해보고 싶은 역할이 있나?
다양한 종류의 여러 역할을 맡아보고 싶지만 정말 해보고 싶은 역할은 완전히 싸이코 같은 극단적인 역할이다. 궁극적으로 내가 연기자로서 꿈꾸는 지점이나 목적이라 말할 수 있는 건 나이 일흔을 먹고도 연기할 수 있는 배우가 되는 거다. 그러려면 중간에 매장당하면 안되겠지. (웃음)
미니홈피에서 ‘Tesla’의 ‘Love song’이 나오던데 좋아하는 노래인가 보다.
95년도에 밴드를 결성해서 콘서트도 하고 그랬던 적이 있었다. 그 때 항상 들었던 게 락발라드였다. 아무래도 내가 부를 수 있는 쪽으로 노래를 듣게 되니까. 그 때 한참 좋아해던 노래가 ‘Love Song’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길거리에서 그 노래를 듣게 돼서 갑자기 생각나길래 나중에 싸이에서 찾아서 그 노래를 깔아놨다.
그 노래를 불러줄 사람을 찾는 것도 중요하지 않을까. 이제 결혼도 생각해야 할 나이인데.
아니. 나는 좀 더 이 쪽 바닥에서 쐐기를 박고 결혼하려고. 그리고 우리 어머니께서 정말 감사하게도 결혼하라는 압박도 안 주신다. 넌 아직 철이 없으니까 좀 더 철들고 나서 결혼하라고, 안 그러면 며느리가 정말 힘들 거라고. (웃음)
요즘 공연 때문에 바쁘지 않았나요? 얼마 전에 <즐거운 인생>이 끝났어요. 그리고 <스프링 어웨이크닝>이라는 공연에 6월 말부터 들어가서 곧 쇼케이스 연습을 조금 하게 될 거 같아요. 본격적인 연습은 5월부터라 지금은 그렇게 바쁘지 않아요.
<스프링 어웨이크닝>외에 예정된 작품은 없나요?
한일 합작으로 제작되는 4부작 드라마가 하나 있는데 조그만 역이에요. 감독님 때문에 며칠 가서 하게 될 거 같고, 아직은 별다른 건 없어요.
<스프링 어웨이크닝>은 대작 뮤지컬이라고 들었어요. 토니상 8관왕을 차지할 정도로 대단한 작품이라고 하더군요. 본인이 연기할 ‘멜키어’는 꽤나 지적인 캐릭터라던데, <쓰릴 미>에서의 ‘그’도 지적인 남자였고, <작전>의 조민형도 증권 인텔리였죠.
이미지 때문인가 봐요. 별다른 특징이 없는 이미지라서. 어떻게 보면 올곧게 보이는 얼굴 같기도 하다가 어떻게 보면 악해 보이기도 하고, 그렇게 맨숭맨숭하니까 그렇지 않을까 생각이 드네요. 처음엔 그래서 스트레스를 받았어요. 배우는 외모가 중요하잖아요. 그런데 이젠 화면의 모습을 보니까 오히려 그게 좋더라고요. 할 수 있는 것도 많아지고.
도화지 같은 얼굴이라 말할 수 있겠죠. 배우에겐 분명 장점일 수 있을 겁니다. 어쨌든 무대에서 많은 인기를 얻었어요. <작전>외에도 섭외가 들어온 영화는 없었나요?
스케줄이 맞지 않아서 못한 것도 있죠. 그리고 제가 드라마를 두 편 했는데 다 사극이었잖아요. 그래서 사실 현대극이 하고 싶었어요. (웃음) 그런데 <작전>이 들어온 거죠. 주식을 잘 모르는데도 시나리오를 재미있게 봤어요. 물론 비주얼을 비롯해서 여러 가지로 그 동안 맡아왔던 캐릭터와 비슷한 면이 있는 거 같아서 고민이 되긴 했지만 정말 시나리오 하나 믿고 선택했죠. 그냥 감사합니다, 하고 바로 했습니다. (웃음)
증권사 애널리스트를 연기하는 만큼 주식에 대한 어느 정도의 이해를 위한 노력은 있었을 것 같은데요.
처음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 조민형이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했어요. 물론 제가 그 동안 비현실적인 캐릭터를 많이 연기했지만 <작전>은 리얼한 상황을 그리는 이야기가 담긴 영화라고 생각했는데 조민형이란 사람은 현실적으로 거리감이 느껴지더라고요. 제가 볼 때는 나이대도 불분명해 보이고, 한국 사람 같지도 않고, 진짜 이런 사람이 있나 싶었죠. 그런데 증권 브로커 분과 인터뷰를 하면서 그런 부분을 많이 느꼈어요. 그쪽 사람들의 생리라던가 그런 측면을 많이 듣고 감독님과 조금씩 더 얘기해 나가면서 부족한 점을 풀어갔죠. 그렇게 시작했고, 결국 증권 브로커 분과 했던 인터뷰가 큰 도움이 됐어요. 그 분과의 인터뷰 이후로 현실적인 시선을 이해하고 바라보게 됐다고 해야 하나. 그런 느낌을 받았어요.
<작전>에서 조민형을 연기할 때 다양한 제스처가 눈에 띄더군요.
일단 감독님과 얘기를 많이 했어요. 손동작이나 그런 건 감독님이 주문을 많이 해주셨죠. 주먹에 쥐고 있던 완력공도 감독님이 주신 거고요. 일단 노멀하게 베이직(basic)에서 출발해야죠. 얘가 지금 왜 이럴까, 에서 시작하는 거에요. 집중하고 있다는 느낌을 많이 주고 싶어서 그런 제스처에 대한 주문을 많이 주셨고, 아무래도 <쓰릴 미>때 경험이 도움이 됐죠.
<작전>의 배우들은 현장 분위기가 좋았다는 말을 많이 하더군요. 그런데 표정을 보면 진심이 묻어나는 느낌이에요. 술도 많이 마셨다고 하고. (웃음) 정말 박희순과 박용하의 힘이었어요. 다른 좋은 분들도 많았지만, 왜 그렇잖아요. 현장 분위기라는 게 감독님이나 주연 배우 중 누구 하나라도 핀트가 나가버리면 확 가라앉아버리는데 용하 형도 그렇고, 희순 형도 그렇고, 노력을 많이 해주셨죠. 원래 성격이 그런 분들이시기도 하고. 당신들은 힘든 내색 별로 안 하고, 스태프나 후배들까지 챙기고, 더 재미있게 해보려고 하고. 저는 예전에 공연하면서 그런 것도 중요하지만 그냥 내가 더 잘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이번에 영화를 통해서 형들이랑 같이 작업하면서 저런 게 중요하다는 걸 느꼈어요. 술 먹으면서 솔직히 얘기했던 게 있어요. 영화가 잘 안돼도 일단 재미있었다면 된 거다. 정말 우리끼리 재미있게 웃고, 술도 마시고, 생각하면서 즐거웠던 기억이면 일단 된 거라고 말이죠. 그걸 관객 분들도 다 같이 느끼신다면 더욱 좋겠지만. (웃음)
다들 초면이라 처음에 친해지는 것도 관건이었을 거 같은데.
용하 형도 그렇고, 희순 형도 그렇고, 저도 그렇고, 낯을 많이 가려요. 처음에 대본 리딩하고 의상 피팅할 때 셋이 같이 앉으면 볼만했어요. “식사 하셨어요?” “어, 넌 먹었어?” “예.” (침묵) 그러면 한 명이 그래요. “어, 어떻게 할 거야. 이 썰렁한 분위기.” 그럼. “하하하.” 그리고 또 조용해졌다가, “첫 촬영은 언제세요?” “어, 나는 언제야.” “넌?” “전 언제쯤 할 거 같은데요.” “응.” (침묵) 그러면 또 한 명이, “어떡해. 이거. 왜 이렇게 어색한 거야.” 이렇게 무한 반복이죠, 계속. (웃음) 그래서 속으로, “와, 영화 어떻게 찍지. 이 사람들하고.” 그랬었는데 확실히 대한민국 남자들은 술 한잔 먹으면 금방 친해지나 봐요. 전 이번에 6년 끊었던 담배를 다시 피웠거든요. 솔직히 핑계일 수 있지만 그렇게라도 친해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담배 한대 피면서 생기는 유대감도 크게 작용하긴 하죠.
그렇게 어려운 사람들이라. (웃음)
그럼 그 이후로 다시 담배를 피게 된 건가요?
예. 지금도 피고 있어요.
저도 지금 2년 째 금연 중인데, 6년 동안의 기간은 정말 아깝네요.
그런데 담배는 끊는 게 아니라 참는 거라고 그러잖아요. 죽을 때까지 안 피면 죽을 때까지 참는 거라고. (웃음)
그래도 목 관리에 민감한 무대 배우에게 담배는 지양해야 할 기호품이 아닌가요?
이번에 <스프링 어웨이크닝>하기 전까진 담배를 다시 끊어야죠. 술도 끊어야 돼요. 3개월 동안 원캐(원캐스팅)이기도 하고. 5월 달부터 공연 연습에 들어가니까 그 전에 금단 현상까지 생각해서 미리 끊어야 되죠. 그런데 사실 배우라면 이것저것 다 해봐야겠다는 생각도 들더라고요. 핑계 같지만 그냥 나를 풀어놓을 때도 있어야 할 거 같아요. 사실 그 동안 되게 안 그러려고 노력하면서 살았거든요. 담배를 6년 동안 끊은 것도 흐트러지지 않은 나에 대한 상징이었죠. 그런데 요새는 그런 것도 필요하다 싶어요.
항상 무대에서만 연기하다 관객 없는 곳에서 연기를 하게 되면 어떤가요? 스튜디오 같은 곳은 되게 조용하잖아요. 그래서 상대방 연기에 집중할 수 있어서 좋죠. 원래 제가 추구하는 연기는 리얼한 연기에요. 그래서 과장되지 않고 사실감 있는 연기가 개인적인 취향에 맞거든요. 그런 걸 할 수 있게 된 것 같아서 좋았죠. 현장 배우들과 호흡하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을 때도 좋았고요. 특히 희순 형 같은 경우는 워낙 그런 능력이 좋으셔서 저도 몰랐던 호흡을 쉽게 알게 되는 경우도 있었어요. 공연 이삼십 번 해야 알게 되는 호흡이 있거든요. 모르고 올라갔다가 하다 보면 알게 되는 건데 희순 형과 촬영하면서, 비슷한 느낌을 얻곤 했죠. 아! 이런 거.
공연을 하다 보면 페이스를 끌어올리는 지점이 있죠. 하지만 영화는 분할된 리듬으로 이어나가는 작업이라 이질적인 느낌이 없었을까 싶습니다.
일단 준비 과정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감독님이 따로 시간을 내셔서 개인 교습을 많이 해줬어요. 아무래도 감독님은 불안했던 거죠. (웃음) 김수진 대표님이 절 캐스팅하자고 제의하신 건데 감독님은 김무열이 도대체 누굴까 싶어서 공연을 보러 왔다가 <미친 키스>를 보신 거에요. 막 미친 듯이 울고, 소리 지르는 연기를 보셨으니 더 고민을 하신 거죠. (웃음) 저 사람이 과연 조민형을 할 수 있을까, 어딘가 냉철한 구석이 있어야 하는데. 그래서 개인 교습을 많이 해주셨을 거에요.
설마 끝까지 감독님의 신뢰를 얻지 못하신 건 아니겠죠? (웃음)
그런 의심이 많이 풀렸던 게 두 번째 촬영에 희순 형이랑 같이 주차장에서,
담배 비비는 씬?
예. 담뱃재 씬. 원래 감독님이 예정과 다르게 수정을 했었어요. 거기가 노량진수산시장 위에 있는 옥상주차장이었는데, 멀리 한 곳을 바라보면서 대사를 갑시다, 그러시더라고요. 왜 그러는지는 말씀 안 해주시고. 그래서 희순 형이랑 얘기해봤는데, “아니다. 심리가 이렇다면 이에 행동이 붙어야 분명 더 재미를 줄 수 있다.” 이렇게 결론이 났죠. 나중에 감독님께서 얘기해주신 바론 제가, 그러니까 조민형이 처음부터 무너지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예정대로 가면 제가 무너질 거 같아서 바꾸자고 했던 거래요. 그래서 제가 그냥 제대로 해보겠다고 했고, 희순 형도 그렇게 가자고 해서 원래대로 간 거거든요. 그런데 감독님이 그걸 보시고 제가 안 밀려서 오케이를 했다고 하셨어요. 그런데 저는 안 밀렸다기 보단 정말 희순 형 호흡 받아서 연기한 것뿐이에요. 안 밀리긴요, 어떻게. (웃음)
얼마 전에 박희순 씨를 만났는데 김무열 씨 칭찬이 대단하더군요.
제 홍보대사십니다. (웃음)
촬영하다가 틈나면 사라져서 찾아보면 구석에서 연습하고 있더라고 하던데요.
해야죠. (웃음) 일 이년 전까지만 해도 공연 끝나기 전, 막 공연 때까지만 해도 대본을 봤어요. 그런데 요즘은 대본을 보기 보단 생각을 하는 편이거든요. 솔직히 영화 현장에서 한 씬 찍으려고 4시간을 기다렸다가 한 컷 찍고 이럴 때 있잖아요. 그래서 오락도 하고, (웃음) 머리를 쓰는 거죠. 2시간 전부터 이제 워밍업을, 아까 말씀하신 것처럼 페이스를 올려야 되니까 몸도 살짝 풀면서 준비를 하는 셈이랄까요. <일지매>때, 이문식 선배님께서 연기하시기 전에 혼자서 막 뛰시고, 젊은 배우들 아무도 안 그러는데 그 연기 잘하시는 이문식 선배님이 그러는 걸 보면……
무대 출신 배우들의 특징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무대에서는 NG가 없으니까 그만큼 더욱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잖아요.
제가 드라마나 영화를 몇 번 안 해봤지만 탤런트나 영화배우 중에도 좋은 배우들이 너무나 많아요. 다만 일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느냐, 라는 가치관의 정도 차이가 있을 뿐이겠죠. 비단 무대 배우 분들이 아니라 탤런트 선생님들 중에도 그렇게 하시는 분들도 있거든요. 제가 지금도 많이 부족하지만 만약 무대만 했다면 이 정도도 안됐을 거 같아요.
카메라 앞에서 적응하는 것이 관건이었던 시간도 있었을 겁니다. 제가 ‘드라마시티’에서 처음으로 주인공을 맡았었는데,
<신파를 위하여>말이죠?
예. 거기서 현욱이라는 역할을 맡았는데 그때는 연기에 대해서 잘 몰랐고 특히 방송 카메라에 대해서도 전혀 몰랐을 때에요. 이소은이라는 여자 감독님께서 한 컷 한 컷 찍을 때마다 고개 각도까지 일일이 수정해주실 정도로 디테일한 디렉션을 주셨어요. 보통 드라마는 그렇게 안 찍잖아요. 빨리빨리 넘어가야 되는데. 덕분에 그때 정말 많이 배웠죠. 그 한편으로 많이 배웠어요. 그래서 그 다음에 <별순검>은 편한 마음으로 할 수 있었죠.
그 작품으로 카메라를 이해하게 된 셈이군요.
<신파를 위하여>전에 단편들도 했었지만 전혀 그런 영향이 없었어요. 사전작업 때 감독님과 단 둘이 몇 번 만나서 현욱의 캐릭터에 대해서 얘기하면서 그 안에 숨은 감정들까지 생각할 수 있을 정도로 많이 도와주셨죠.
그 때 순수한 사랑을 추구하는 선생님을 연기했는데 이번 <작전>에서는 비열한 인텔리 주식 전문가를 연기했죠. 두 캐릭터만으로도 극단적인 너비가 발견됩니다. 배우로서 소화하는 감정의 폭이 넓어야 한다는 이야기죠. 그런 감정적 너비를 확보하기 위한 노력도 중요할 것 같습니다.
기본적으로 캐릭터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느냐를 파악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지금 이런 말을 하고 있다는 것 자체, 그러니까 그 말에 중점을 두는 게 아니라 말은 말일 뿐이란 거죠. 하지만 그 안엔 뭔가 있잖아요. 일단 이 사람이 언제 태어났고, 어디서 살아왔고, 뭘 했었는지, 이런 것들이 다 분명해야죠. 저는 악역이라고 해서 비열하게 보여야 된다는 생각은 절대 없어요. 제3자가 바라볼 때 비열함이라는 표현이 생기는 거지, 저는 주관적으로 그런 생각을 할 필요가 없다고 봐요.
관객들은 캐릭터의 드러난 외면을 바라보는 셈이지만 배우는 보이지 않는 내면까지 추적해 입체적으로 파고들어야 한다는 의미처럼 들리는 군요.
연기를 잘 하시는 선배들은 자기가 연기하는 걸 띄워놓고 보죠. 연기 수업에서 그걸 ‘제3의 눈’이라고 하는데, 배우가 가진 눈, 자기를 보고 있는 그 눈을 가져야 된다고 해요. 저도 그걸 갖고 싶어요. 그래서 항상 노력은 하는데, 이번에도 <작전>에서 보니까 역시 갖고 있지 않더라고요. 영화를 보니까. (웃음)
복싱으로 치면 섀도우(shadow) 복싱과 같은 셈이군요.
그렇죠. 다른 생각들을 지우고 한 감정에 100% 몰입한 채 상대방과 연기를 하고 있으면서도 마음 한 켠으론 나 자신을 띄워놓고 내가 연기하는 걸 보고 있어야 한다는 거죠. 그걸 제가 갖고 있는 줄 알았는데요. 이번에 <작전>을 스크린으로 보고 나니까 쥐뿔도 없더라고요. (웃음) 공부를 다시 해야겠다는 생각을 너무 많이 했어요.
어떤 점이 부족하다고 느껴지던가요?
전체적으로 그랬죠. 사실 조민형이란 캐릭터에 대한 이해에서도 부족한 점이 있었던 거 같고, 한편으론 그 캐릭터에 너무 빠져있었던 거 같고. 상대적으로 희순 형이랑 붙는다고 생각하다 보니까 존재감에 대한 부담이 많았나 봐요. (한숨을 쉬다가) 더 얘기하면 너무 자괴감에 빠질 것 같은데. (웃음)
드라마나 영화는 브라운관이나 스크린으로 자신을 다시 확인한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게 느껴질 수 있는 게 아닐까요?
많이 다르긴 하죠. 진짜 라이브의 느낌은 아니잖아요. 영화는 박제하듯 만들어내는 거니까. 그래서 라이브의 느낌을 최대한 살려야 된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그게 너무 부족했어요! 무대를 해왔던 놈인데도 불구하고, 거기서 그건 생각도 못하고 딴 짓을 하고 있더라고요.
음, 갑자기 후회와 반성의 시간이 되고 있군요. (웃음)
사실 요즘 정말 너무 그래요.
작년에 <일지매>에도 출연했었죠. 드라마와 영화의 진행과정에도 차이가 많은데 사전 준비기간이 길다는 점에서는 드라마보단 영화와 무대극의 공통점이 좀 더 강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아무래도 영화가 좀 더 본인에게 수월한 작업이 아니었을까 짐작되는데요. 저 같은 경우는 드라마가 더 편했어요. 다른 배우 분들도 다 그러시거든요. 드라마가 어렵다고, 왜냐면 바로 바로 가야 되니까. 그런데 저는 모르겠어요. 오히려 편하게 갔던 거 같아요. 오히려 영화는 컷이 많다 보니까 그럴 지도 모르죠. 한 씬에서 두 사람의 드라마가 흐르고 대화를 나누고 있는 와중에도 여기서 찍고, 저기서도 찍고, 그래서 그 때 디테일을 하나라도 놓치지 않도록 주의가 필요하거든요. 거기다 대형 스크린에서 상영을 하니까 디테일 하나라도 놓치거나 어디 한 군데라도 텐션(tension)이 들어가있으면 그게 딱 보이거든요. 드라마도 마찬가지겠지만 제 생각엔 영화가 컷이 많기 때문에 배우가 철저하지 않으면, 한 순간 방심하면 바로 드러나요. 배우는 같은 연기를 여러 번 반복해야 되는데, 똑 같은 씬이더라도 지금 가는 걸 언제 쓸지 모르는 거잖아요. 옛날에 한국영화 보면 울고 있던 배우가 앵글이 바뀌니까 안색이 멀쩡해지거나 그런 거, 선수들은 알거든요. 사람이 울 때 나오는 숨이 있는데 그렇게 숨쉬다가 잠시 화면이 바뀌니까 차분해져 있고, 이런 것들. 몸이 지금 데워져 있는지, 안 데워져 있는지, 그런 게 보이니까. 그런 걸 처음부터 끝까지 가져가야 되더라고요. 그런데, 와! 정말 힘들어요. (웃음)
스크린은 브라운관보다 크니까요. 마치 현미경으로 관찰하듯 선명할 수 밖에 없죠.
그렇죠.
최근 인터뷰를 보니까 비 얘기가 정말 많이 나오더군요. 안양예고 동창이라고 말이죠. 그런데 예고 연극영화과에 진학했다는 건 그 때 이미 연기에 대한 진로를 염두에 둔 셈이겠죠.
초등학교 때 오락실에서 오락하고 있는데 동네 선배 형이 머리를 기르고 나타난 거에요. 그 형한테, “머리 어떻게 길렀어?” 라고 물어보니까 안양예고 갔다고, 안양예고 가면 머리 기를 수 있다고 하는 거에요. 그리고, “너도 안양예고 가.” 그러길래, 저도 엄마한테 장난으로, “엄마, 나 안양예고 가서 머리 기를래.” 그랬거든요. 그런데 어머니가 진지하게 생각을 받아들여 버리신 거에요. (웃음) 일산에 있는 연기학원을 보내주셨죠. 그런데 연기가 너무 재미있었어요. 그래서 어렸을 때부터 연기를 하게 됐고, 안양예고 시험은 정말 한치의 의심도 없이 보게 됐죠. 난 연기할 건데 뭐, 이렇게. 그때 경쟁률이 17대 1이었어요. 제 생애 몇 안 되는 높은 경쟁률 중 하나였는데 붙었죠. 그렇게 아무런 의심 없이 연기를 꿈꾸다가 2005년도부터 연기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어요. <지하철 1호선>으로 김민기 선생님 뵙고 그 때부터 디테일한 것들을 파고 들어갔어요. 흰 머리가 나기 시작했죠. (웃음)
‘학전’에서 본격적인 연기자의 마인드를 얻은 셈이네요. 그럼 본인의 연기적 스승이 김민기 선생님이라고 할 수 있는 건가요?
연기자로서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방향성이랄까? 제가 어떻게 연기를 해야 되는지 정확한 틀을 잡아주신 분이 김민기 선생님이셨죠. 그리고 안양예고 다닐 때 김준철 선생님이라는 분이 계셨는데 그분께서 제가 어떤 마음가짐을 가지로 연기를 시작해야 되는지 가르쳐주셨어요. 그러니까 안양예고에 간 건 제가 화분을 산 거죠. 머리를 기르는 것 때문에 화분을 샀어요. (웃음) 그리고 안양예고 시절에 좋은 흙을 담아놓은 거고, 김민기 선생님 만나서 어떤 나무를 심을까 고민하다 씨를 뿌리기 시작한 거에요.
어쨌든 일단 이 자리까지 왔습니다. 그 당시엔 그런 것들이 본인의 인생에 있어서 중요한 지점이라는 건 뒤늦게 알았을 텐데요.
사실 저에게 일생일대의 전환점이 된 사건들이잖아요. 그런데 머리 기르겠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했다가 안양예고에 가게 됐고, <지하철 1호선>은 제가 그 당시 아르바이트를 여러 개 하고 그랬었거든요. 그 전에 저는 뮤지컬은 생각도 못했었어요. 그러다가 어떻게 창작 뮤지컬 오디션을 봤다가 합격했는데 그게 저 혼자 오디션을 본 거였어요. 그래서 나중엔 괜찮은 친구 있냐고 물어봐서 친구까지 소개시켜주고, 그렇게 뮤지컬을 하나 했죠. (웃음) 그 뒤로 악극무용단도 하고 그랬는데 어느 순간 연극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우연찮게 <지하철 1호선>이란 작품의 오디션이 있다고 하길래 당일 날 가니까 막 설경구 선배님, 방은진 선배님, 황정민 선배님, 조승우 선배님, 사진이 다 있는 거에요! 뭐, 이런 작품이었어? 그때 알았죠. 그런데 거기에 합격이 된 거죠. 사실 그 전에 영화나 드라마 오디션 수도 없이 봤었거든요. 다 떨어지고 그랬었는데 말이죠.
오디션에서 떨어진 경력이 상당히 많았나 봐요.
굉장히 많아요. 영화만 스무 개가 넘죠. 제가 지금도 연기를 못하지만, 그때는 진짜 못했거든요. 사실 <작전>도 우연찮게 김수진 대표님이 <쓰릴 미>를 보시고 저 사람 시켜야겠다, 그래서 책을 주신 거죠. 저는 복권 이런 거 사면 안될 거 같아요. 바라고 하면 되는 게 없어. (웃음) 솔직히 생긴 것도 특출하지 않고, 연기도 그저 그렇고, 어디서 보지도 못한 애가 붙기는 힘들었겠죠. 공부를 더 해야겠구나, 라는 생각도 있었고. 뭘 하지, 싶어서 학교를 다시 다니다가 커리큘럼도 엉망으로 짜고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 싶어서 갈팡질팡하다가 밖에 나가서 공연을 하자 마음 먹었어요. 그래서 <지하철 1호선>오디션을 봤는데 덜컥, 진짜로 덜컥! 붙었죠. (웃음)
결국 그 역사적인 <지하철 1호선>이 본인에게도 역사적인 공연이 된 셈이군요. 그 뒤로 <어쌔신즈>라는 공연을 했는데 그 때 함께 공연을 했던 멤버가 쟁쟁합니다. 오만석, 엄기준, 상당히 주목 받는 배우들과 함께 공연을 했어요. 만석이 형은 소문만 듣다가 <어쌔신즈>로 처음 봤어요. 그때 오만석 형님이 <헤드윅> 초연을 하고 있었는데 난리가 났었죠. 없던 공연도 생기고 기획사에서 해외 여행까지 보내주고, 그런 스케줄 때문에 연습을 많이 못나왔어요. 그렇게 저희끼리 2주 동안 지지고 볶고 있는데 연습하겠다고 나타나더라고요. 그래서 러프하게 런을 갔는데, 아니, 2주 동안 지지고 볶은 우리를 뛰어넘어서 디테일까지 다 잡아온 거에요. 사무엘 뷔크라는 역할을 맡았는데 약간 광기가 있는 집착성 정신병이 있는 친구였죠. 그 역할이 노래가 없어요. 대신 대통령 암살하러 가기 전에 혼자 뭐라고 지껄이고 그렇게 혼자 독백을 두 세 장면인가 지껄이고 그러는데 혼자 난리가 난 거에요. 저 사람 진짜 뭐지, 이렇게 깜짝 놀랐어요. 저래서 오만석이구나, 저래서 유명한 거구나, 싶었죠. 잘 하더라고요. 그래서 나도 잘 해야겠다, 잘 하고 싶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됐죠.
엄기준 씨와는 <그리스>에 더블 캐스팅되기도 했죠.
그때 기준이 형의 진면목이 나왔죠. 까불까불한, (웃음) 얄밉지만 사랑스러운. 원래 <그리스>의 대니 역할은 무조건 멋있기만 하면 되는데 대니가 나와서 계속 웃기는 거에요. 어떻게 보면 재해석이죠. 그런데 기준이 형은, 나는 춤을 못 추는 거니까 그런 거라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춤을 진짜로 못 춰요. 그래서 아는 사람들은 기준이 형이 <그리스>했다고 하면서 놀리기도 해요. (웃음) 멋있게 춤을 춰서 여자들의 환호를 얻어야 되는데 그냥 웃겨버리더라고요. 하지만 결국 대단한 거죠. 그런 걸 보면서 진짜 많이 배웠고 자극도 돼요. 형들로부터 그 당시에 많이 배웠죠.
노래는 원래 잘 하는 편이었나요? 아니면 노력의 산물인가요?
노래는 연습을 계속 했어요. 어렸을 때부터 노래방가는 걸 진짜 좋아했거든요. 고등학교 땐 학교 끝나고 일주일에 4번씩 가고 그랬어요. 오천 원에 3시간 주고 그런 곳으로 가서 맨날 노래하고 그랬죠. 사실 어렸을 땐 가수 한다고 그러기도 했거든요. 춤추고 노래하는 걸 좋아했어요. 그러다 안양예고 가면서 연기만 했죠. <지하철 1호선> 오디션 보기 전에도 노래 연습 되게 많이 했어요. 아직까지도 레슨 받고 그렇죠. 뮤지컬 쪽에 선수들 되게 많잖아요. 저는 그쪽에 끼면 그다지 잘 하는 정도는 아니거든요. 그저 극 진행에 방해가 안 될 정도?
연기적인 고민이 더 크죠. 제가 충격을 먹었던 게 <지하철 1호선>을 4개월 정도 했을 때 연습실에서 제작일지를 봤거든요. 그런데 거기 오디션 평가 점수가 있는 거에요. 그래서 찾아보니까, 김무열. 노래가 10점 만점에 9점, 그런데 연기는 5점, 3점, 이런 거에요. 그 때 충격이 진짜! (웃음) 혼자서 연기 열심히 연습해야겠다 싶었죠.
또 다시 자학의 시간이 펼쳐지는군요. (웃음) <쓰릴 미>에서 류정한 씨와 호흡을 맞췄습니다. 류정한 씨를 뮤지컬 3대 천왕으로 꼽기도 하잖아요. (웃음) 그런데 대부분 <쓰릴 미>를 보고 온 관객들이 류정한을 보러 갔다가 김무열을 보고 나왔다고 하더군요. 그 경험치 많은 배우와 홀로 호흡을 맞추기 위해서는 단순히 실력 이상의 어떤 정신적 무장이 필요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어쩌면 그만큼 오기가 강한 사람이기 때문에 가능한 게 아닐까 싶더군요.
이쪽 일, 아니, 어느 일을 하는 사람이라도 오기는 있어야죠. 다만 저 같은 경우 이쪽 일이라는 게 들쑥날쑥 하고 성공이 보장된 것도 아니고 자기 계발을 끊임없이 하면서, 그러다가도 운이 나빠서 안 되는 경우도 많잖아요. 저 같은 경우도 당시에 집안이 어려워졌기 때문에 제가 집에 돈을 벌어다 줘야 했는데 그러려면 직장을 구해야 했죠. 그런데 그러진 못하고 아르바이트만 했어요. 그러면서 계속 연습을 했죠. 나름 어렸을 때부터 고생을 많이 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그만큼 끈기도 있는 거 같고. <쓰릴 미>같은 경우는, 그렇죠. 상대방이 3대 천왕님이시고, 저는 한낱 신인인데. (웃음) 나는 진짜 이번에 잘 안되면 완전 사장될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대표님이 흥행이 될까, 말까, 되게 의아해했거든요. 그래서 정한이 형을 시킨 거죠. 정한이 형이라면 일단 흥행은 보장되니까, 천왕님이 막 군중들 몰고 다니시니까. (웃음) 사실 <쓰릴 미>는 작품 자체가 제 취향이기도 했어요. 그래서 열심히 한 것도 있죠. 제 취향이니까. 그런데 저를 좋아해주실 줄은 정말 몰랐어요.
일종의 출세작인 셈이죠.
맞아요. <쓰릴 미>덕분에 드라마 세 편하고 영화 한 편 했으니까요.
<스릴 미>는 참 미니멀한 연극이었어요. 달랑 피아노 한대에 두 남자 뿐인데, 그만큼 배우에게 시선이 몰리기 마련이죠. 그만큼 배우의 집중력이 중요한 작품이었을 거에요.
사실 초연 때는 제가 보여지는 것에 신경을 많이 썼어요. 비주얼에 대해서, 몸짓, 손짓, 걸음걸이라던가, 라이터를 켤 때, 담배 피는 모습, 누워있을 때, 이런 하나하나까지 신경을 썼죠. 그런데 앵콜에선 기본적으로 이미 몸이 편해진 상태라 그런 것들이 자연스럽게 되면서 초반보다 더 많은 걸 시도할 수 있었거든요. 오래 공연하다 보니까 나중엔 몸짓이 자연스럽게 나오면서 그렇게 됐어요. 때때로 오히려 그런 것들에 신경을 쓰다가 확 얼어버리기도 하거든요. 초연 때 그런 경험이 있어요. 노래할 때였나, 대사칠 때였나, 내가 지금 어떻게 보여지고 있을까, 한 순간 의심이 들었는데 바로 그때부터 말리기 시작해서 그 날 공연은 어디 혼자 산으로 다녀와버렸거든요. (웃음) 사람들이 날 보게 만들어야지, 날 보게 하려고 막 봐주세요, 이러는 건 아니었던 거죠.
무대에서는 관객의 반응에 리액션하는 경우도 있잖아요. 하지만 촬영현장에서는 온전히 배우 스스로가 자신의 연기에 대한 반응을 짐작하고 수위를 조절해야 합니다. 자신의 연기에 대한 검증이 온전히 배우 안에서 이뤄진다고 할 수 있겠죠. 그만큼 자신의 연기를 일관되게 유지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닐 거에요. 이번에 희순 형한테 그런 부분을 많이 배웠어요. 처음부터 끝까지 가져가는 호흡에 대해서. 희순 형이랑 연기하다 보니까 정말 자연스럽게 조금이나마 생겼죠. 희순 형이 맨 처음에 막 무게를 잡는 거에요. 그래서 이 양반이 왜 이러실까, 그랬는데. (웃음) 전체적으로 자기가 짜놓은 틀이 있더라고요. 사실 같이 연기하다 보면 상대 배우에게 말리는 경우가 있잖아요. 저도 초반에 나름대로 좀 강하게 가져가야 할 게 있었는데 희순 형을 보면서 자극 받았죠. 첫 촬영 때 의아해지다가 점점, 아! 이렇게 됐거든요. 이번에 시사회 한 걸 보니까 좀 더 알게 됐어요. 두 번째 영화를 하게 되면 더 잘 할 수 있을 거란 생각도 들고. (웃음)
공연에서 몸이 풀리는데 걸리는 시간은 얼마나 소요되는 것 같던가요?
어떤 공연 같은 경우는 초연 때 좋았다가 점점 하향곡선을 그리는 경우가 있고, 어떤 공연은 초반에 정말 형편없다가 진짜 어디까지 올라갈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끝까지 상승 곡선을 그리는 경우가 있죠. 다만 저 같은 경우는 그냥 스물 스물 조금씩 올라가는 둥 마는 둥 하는 거 같아요. (웃음)
스케줄이 2년 사이에 엄청 바빴던 걸로 알고 있어요. <쓰릴 미>와 <김종욱 찾기>, <미친 키스>를 이어오는 사이에 <별순검>이나 <일지매>같은 드라마 스케줄까지 병행했고, 덕분에 겹치기 출연 논란도 있었더군요. 물론 본인이 완성도를 침해하지 않아서 잠잠해졌지만.
그 땐 저도 그랬고 회사도 그랬고 욕심을 많이 냈죠. 왕성하게 활동해야 할 때다 싶었거든요. 솔직히 스케줄도 많이 꼬였어요. 일단 뮤지컬은 1년 전에 이미 확정 라인업이 다 나오는데 드라마는 그렇지 않잖아요. 거기다가 회사끼리의 알력도 있고. 그땐 진짜 몸도 마음도 너무 힘들었어요. 너무 무리해서 하는 거 아니냐, 그런 얘기를 저도 많이 들었거든요. 그 당시엔 그러면 안 되는 거였는데 돌이켜보면 저한테 도움이 많이 되는 시간이었어요. 몸도 마음도 힘들었지만 지금은 그때 정말 많이 늘었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그런데 그렇게 스케줄이 겹쳐서 캐릭터에 혼선이 생기는 경우는 없었나요?
오히려 되게 재미있었어요. 왜냐면 그때 <미친 키스>와 <김종욱 찾기>를 같이 하고 있었는데 <미친 키스>에서는 정말 미친 척을 하다가 <김종욱 찾기>에서는 막 애교부리고, 그러니까 너무 재미있더라고요. 처음엔 너무 힘들고 그래서 어떡하나 싶었는데 좀 적응되니까 재미있어지기 시작하고 오히려 이제 몸을 릴렉스하고, 텐션을 줬다가 다시 릴렉스로 빠지는 그런 테크닉이 엄청 늘더라고요. 완전히 각기 다른 것들을 하다 보니까, <미친 키스>에서는 몸에 텐션이 들어가 있다가 <김종욱 찾기>에서는 딱 빠져야 하니까. 그때 그런 것들을 많이 배웠죠.
<미친 키스>에서 연기한 장정은 꽤나 광기적인 캐릭터였잖아요. 반대로 <김종욱 찾기>의 김종욱은 상당히 팬시한 캐릭터죠. 그 두 작품이 어쩌면 서로에게 나름대로 감정의 출구가 되어준 건 아닐까 싶은데요.
그렇죠. 교집합이 되는 부분도 있지만 전혀 다른 점이 많으니까요. 그런 게 명확히 보일 때 제3자의 눈을 갖게 될 수 있는 거 같아요. 그런 느낌으로 항상 연기해야 되는데, 그런 건 사실 공연이 끝나고 오랜 후에나 남의 공연을 볼 때 생기거든요. 지금 갇혀서 보지 못하고 있는 것들이 분명 있어요. 제가 지금 뒤를 못 보는 것처럼. 그런데 그런 것들이 보였죠. 덕분에 매너리즘에서 벗어나게 됐죠. 어쩌면 그게 가께모찌(동시 출연)의 장점이라 할 수 있을까 모르겠네요.
감정에 몰입한 뒤로 잘 빠져 나오는 편인가요?
사실 연기할 때는 되게 힘들어요. <쓰릴 미>때도 공연이 끝나면 무대 뒤에 들어가서 많이 울었어요. 때때로 “‘그’가 ‘나’를 사랑했나요?”라고 물어보시는 분이 계시는데 저는 모르죠. 왜냐면 전 그걸 정의 내리지 않았거든요. 사랑했건 안 했건, 사랑했는지 안 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가끔 가다 그렇게 될 수 밖에 없는 현실에 너무나 마음이 아팠어요. 그러면 그건 사랑을 했었다는 거겠죠? 그럴 땐 막 무대 뒤에 가서 혼자 울었어요. (웃음) 가끔씩 그럴 때가 있었어요. <즐거운 인생>에서 ‘세기’란 역할을 하면서 한번은 필이 심하게 와서 울기 직전에 가슴 뜨거운 느낌 있잖아요. 그게 며칠을 가더라고요. 밤에 잠을 자려는데 숨을 조금만 잘못 쉬면 눈물이 날 것 같고, 진짜 그런 적도 있었어요. 배우란 직업이 힘든 거 같아요. 정신질환이 생길지도 몰라요. (웃음) 숀 펜이 그러잖아요. 배우는 미친 사람들이라고, 맞는 말 같아요. 그게.
몇 년 동안 연말 결산 기사에서 공연계의 유망주로 줄곧 소개가 되고 있더군요. 매년마다 유망주에요. (웃음)
본인에 대한 기대가 그만큼 지속되고 있다는 의미겠죠.
아직까지 신인으로 봐주시는 건 좋죠. 그런데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벌써 위기감이 들기 시작했고. (웃음) 지금도 ‘세기’같은 나이 어린 역할 고등학교 역할을 맡으면 제 자신이 부끄러운 느낌이 있으니까요. 이제 저도 스물 여덟이잖아요. 서른을 바라보는 이 시점에서 고등학생이라니. (웃음) 다른 어떤 걸 바라봐야겠다는 생각도 들어요. 서른이 되면 내가 어떤 모습으로 변해있을까 기대도 되고, 서른을 잘 맞이하기 위해서 지금부터 탄탄히 잘 준비해야겠다는 생각도 들고.
본인 말대로 이제 서른을 목전에 두는 나이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웃음) 하지만 나이 들어간다는 게 배우에게 나쁜 일은 아닐 거에요. 다만 그 전까지 해보고 싶은 것들이 있을 텐데요.
일단 지금 이렇게 20대를 보내고 나면 아쉬운 것들이 있죠. 나중에 제가 30대가 돼도 물론 20대 연기를 할 수 있겠지만 지금 제가 이해할 수 있는 나이 또래의 연기를 좀 더 많이 해보고 싶은 욕심이 들어요. 그렇게 생각해보면 지금 이 소중한 감정이나 마음을 가지고 다른 연기를 하고 싶지 않은 거에요. 이런 마음이 있을 때 이 마음을 통해 더 포괄적으로 볼 수 있고 더 가깝게 느낄 수 있는 것들을 빨리 해보고 싶다는 욕심이 생기니까요. 제 나이 또래에 맞는, 저와 가까운 그런 것들을 더 많이 해보고 싶어요. 그래서 시간이 얼마 없다는 게 너무 아쉽지만 그렇게 서른이 되면 제가 서른에 느끼는 것들에 대해서 더 많이 경험해보고 연기해보고 싶고요. 서른이 되면 또 그런 것들이 새롭게 다가올 테니까요.
지금이 지나면 도저히 할 수 없는 연기가 있으니까요.
그래서 지금이 너무 소중해요.
<스프링 어웨이크닝>에서는 마침 고등학생을 연기하는 군요. 인생의 마지막 고등학생 연기가 될지도 모르겠군요. (웃음)
이제 일 이년 후에는 고등학생 역할 못하겠죠. 제가 스물 여덟밖에 안됐지만 거기 있는 친구들은 저보다 어리거든요. 오디션을 보러 갔더니 다들 완전 (굽신거리면서) 이러는 거에요. 저한테! <작전>에서는 맨날, ‘형~.’ 막 이러고 있었는데 거기 가니까 애들이 막 불편해하고, 저랑 같이 연기 맞추고 그러면서 떨고, 그러는데. 너무 무안하죠. (웃음)
지금까지 자신이 생각하는 스스로의 단점에 대해서 상당히 많은 고민을 털어놓은 거 같은데 자신의 결점을 되새김질하는 느낌입니다. 마치 그 단점들을 죄다 소화시켜버리겠다는 일념 같아요. (웃음)
전 계속 발전하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그러려면 당연히 그런 게 필요하죠. 공연후기도 많이 읽어요. 불만 있으면 내 공연 보지 말라 그래. 이런 사람들도 있어요. 말도 안 되는 소리죠. 제 직업은 주관적인 인간이 객관적인 시선을 향해 몸을 던지는 일이잖아요. 물론 주관적인 믿음이 강하지 않으면 객관성 속에서 살아남을 수 없죠. 다만 그 객관성 속에서도 주관이 강해야 자성이 생겨서 객관적인 것들을 끌어 모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이렇게 사람들의 관심이나 시선을 다양하게 끌어 모을 수 있는 소신이 중요하다고 봐요. 그러려면 긍정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무엇보다 재미있다고 느끼면서 해야죠.
다음 영화가 또 돈과 관련된 영화다. <십억>말이지. 내가 믿는 구석이 있다면 그 전에 <우리 집에 왜 왔니>가 개봉해서 <작전>의 이미지를 순화시켜줄 수 있을 거란 점이다.
<십억>도 신인 감독 영화더라. <작전>의 이호재 감독에 이어 계속 신인 감독과 작업하게 됐다.
내가 언제부터 신인 감독 따지는 배우였다고 그런 말씀을. (웃음) 데뷔할 때부터 지금까지 줄곧 신인감독들이 나를 찾아줬고 그 분들의 시나리오에 믿음이 가니까 했던 거지. 내가 조금 풀렸다고 해서 신인 감독하고 안 하는 것도 웃기잖아.
예전 인터뷰를 보니까 송강호 씨가 ‘시나리오보다 감독이 더 중요하다’라고, 그 말의 의미를 알겠다고 했던데.
첫 대본을 받고 감독님을 만나 뵈면 그 분의 인품이나 철학, 생각이라던가, 어떤 사상을 가지고 이 작품을 썼는지 어느 정도 파악이 된다. 100% 옳은 건 아니겠지만 일단 그 분이 생각하는 지점이 드러났을 때 판단이 서면 같이 하는 거지.
<작전>을 선택하게 된 뚜렷한 이유를 묻는다면 뭐라고 말할 건가?
일단 주식이란 소재가 국내영화에선 다루지 않았던 거라서 신선했다. 우리나라엔 정치, 경제, 사회를 다룬 시사성 있는 영화가 많이 드물잖아. 소위 감독이라고 불리는, 철학이 있는 분들이 예술 작업을 하는 데 있어서 사회 풍자를 비롯해 여러 다양한 시도를 했으면 좋겠는데 그런 게 많이 부족하다 느끼던 차였다. 상업영화, 오락영화지만 요즘처럼 경제도 어려운데 주식이란 소재를 가져왔다는 것 자체가 의미 있어 보이더라.
주식 관련 전문용어가 자주 등장한다. 일반인에겐 어려운 용어지만 관객 입장에서 그냥 한 귀로 흘리듯 들어도 상관없게 완성됐기 때문에 문제는 없을 거 같다. 내가 주식을 모르는 입장에서 대본을 이해 못할 정도라면 할 필요가 없겠지. 예술영화도 아니고, 오락영화인데 대중과 소통이 쉽게 안 된다고 생각했다면 안 했을 거다. 내가 주식을 전혀 모름에도 캐릭터를 따라가다 보니까 이건 해도 괜찮겠다 싶더라. 화투를 몰라도 <타짜>를 재미있게 본 것처럼. 나는 진짜 화투로 숫자 세는 것도 모르는데 (영화에서) 땡이 된다고 하니까 땡인가 보다, 이러면서 봤으니까. <작전>도 마찬가지로 어떤 사람이 주식을 사려고 하는지, 팔려고 하는지, 이것만 알면 대충 맞춰가는 거지.
최근 했던 인터뷰가 인터넷에 많던데 또 조폭 연기를 했다는 질문이 많더라. 그런데 사실 조폭이라고 다 똑같은 건 아닌데 다들 그렇게 묻는 거 보면 조폭이 획일적인 이미지란 생각이 든다. 결국 그런 질문이 본인의 이미지를 신경 쓰게 만들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조금 그렇지. 기자간담회 때도 일부로 조폭 얘기는 꺼내지도 않았었다. 그런 선입견이 생길까 봐. 조폭이란 어감 자체가 좀 그렇지. 미국은 마피아잖아. 좀 그럴 듯하지만 조폭은 어감도 안 좋고. 예전에 조폭 코미디가 워낙 많이 나왔기 때문에 ‘또 조폭이야’, 이런 선입견이 나부터도 있는데 관객들은 오죽하겠어. 그래서 웬만하면 얘기를 안 하려고 했는데 기자님들이 자꾸 꺼내시니까. 그게 다른 캐릭터란 걸 얘기하기 위해서 참여하는 편이지.
<작전>을 비롯해서 지금까지 악역 캐릭터를 연기한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사실 악역이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경우도 많을 거 같다. 캐릭터도 좀 더 입체적인 경우가 많고.
그런 면이 없진 않다. 다만 지금 하고 있는 것과 다른 걸 할 수 있다면 좋겠다. 그저 착하고 사랑 받는 역을 선호하는 게 아니라 내가 이번에 센 걸 했으니까 다음엔 유한걸 해서 나의 정신세계를 바꿔보고 연기적인 마인드도 변화시켜보자 이런 거지, 관객에게 사랑 받고 싶으니까 이런 역을 하자, 이런 건 아닌 거 같다.
악역 이미지로 국한될지 모른다는 걱정을 해본 적은 없나?
한번 이런 걸 하면 다시는 안 시킬 것이다, 라고 생각해서 <가족>을 했는데 그런 역이 더 많이 들어오더라. 그때 내가 잘 참은 거 같다. 돈도 많이 필요했고 힘들었지만 그때 좀 늦게 가더라도 참자고 했던 게 지금으로서는 굉장히 큰 도움이 된다. 왜냐면 그때 참고 <러브토크>를 했으니까. <러브토크>의 지석이 너무 답답하고 평범한 역이라고 생각했는데 영화를 보니까 결코 평범하지 않은 역이더라. 그 뒤로 여러 작품을 하면서 배우로서 다양한 층을 지닐 수 있게 되려고 노력을 많이 했다. 그런데 우연찮게 센 역할로 흥행이 돼서 저 사람은 센 연기를 하는 친구다, 라고 생각을 한다면 그건 보는 사람 마음이니 어쩔 수 없지. (웃음) 물론 센 역할이 더 쉽게 각인되는 면도 있고.
황종구는 종종 상황을 유머스럽게 만든다. 진지한 상황을 빗나가게 하는 행위를 한다고 할까. 원래 시나리오 상에서의 캐릭터도 그랬을까?
그렇게 웃기는 캐릭터는 아니었다. 내가 그런 상황 자체에서 ‘척’을 많이 하는 인물로 설정했기 때문이지. 품위 없는 사람이 품위 있는 척을 하니까 그로 인해 생기는 에피소드가 많을 거라 생각했다. 감독님이 쓰신 대본을 봐도 그렇게 폼 잡고 멋있는 척하는 놈이 ‘이 신발 봐, 이게 얼만지 알아?’ 이런 대사를 하는 것 자체가 코미디라고 생각했다. 더 좀스럽게 할 수도 있었지만 일단 진짜 멋스러운 여유가 있고 품위 있게 보여야 격은 살리면서 재미있는 코미디가 나올 것 같더라. 다만 우리끼린 웃음을 참기 힘들 정도로 NG도 내고 재미있게 찍었지만 관객에게 통할까 싶은 걱정은 계속 있었지.
이번에도 나름 센 역할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나름대로 유머를 삽입한 건 그 세기를 줄여보고자 하는 의도도 포함된 게 아닐까.
캐릭터상 이런 게 가미되면 좋겠다 싶었지. <작전>은 상업영화인만큼 웃음이 있다면 좋을 거라 판단했다. 의도했다기 보단 이게 잘 어우러져 공감대가 형성이 되니까 할 수 있었던 거지. 물론 이 캐릭터 자체가 센 느낌을 주는 장면이 여러 번 있기 때문에 독특한 유머가 가미된 인물이었으면 좋겠다 생각한 부분은 있었다.
본인이 염두를 둔 캐릭터가 감독이 생각했던 캐릭터와 충돌하는 경우도 있지 않나.
촬영 들어가고 나서 싸우는 건 이미 늦은 거지. 그땐 감독을 따라가는 게 맞다. 그리고 촬영하기 전에 먼저 컨셉이 섰을 때, 작품을 선택하는 편이고. 대충 내가 어떤 연기를 했을 때 이 작품이랑 맞을지에 대해 생각해보고 나는 이런 지점을 잡고 있는데 감독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도장 찍기 전에 그런 조율을 마치는 편이다. 이번에도 작품 수정고가 몇 편 나왔고 그걸 보면서 감독님한테 믿음이 생겼다. 사실 내 나름대로 연기 컨셉이 잡혀져 있는데 그게 내가 해왔던 그런 류의 연기가 아니라면 나에게도 모험인 셈이다. 이걸 하는 게 맞는지 안 맞는지 계속 되물어 보고 되짚어보고 하는 편이지.
이호재 감독과 조율하는 과정은 순탄했나?
감독님도 내 모습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고 있지만 감독님 스스로도 궁금해하고 두려워하는 지점이 있었을 거다. 처음에 찍기 시작할 때, 내가 품위를 지키려 하고, 톤을 다운시키고, 깔고, 이렇게 가니까, 언제까지 이렇게 할 거냐고 묻더라. 나는 아직 보여주지도 않았고 나도 지금 서서히 적립해가고 있는 건데. 그래서 지금 찍은 것까지 문제가 있냐고 물어보니까, “아니, 문제는 아니고요. 이렇게 쭉 가시진 않을 거죠?” 그러시더라. 감독님도 믿음은 있었지만 걱정이 많이 됐던 거지. 그래서 좀 기다려보라고, “나도 터지는 부분이 있고, 그럴 때 뭔가 이뤄져야 하는데 지금은 아니지 않냐.” 그랬지. 그러다가 자동차에서 허리띠 풀러 주는, 그 장면을 4회 차에서 찍었는데 그때 이 톤으로 가면 되겠다, 라는 판단이 나도 섰고, 감독님도 만족하셨고, 그렇게 계속 갔지. 그리고 중반으로 가면서 유머를 조금씩 넣기 시작하니까 이젠 감독님이, “그쪽으로 너무 가는 거 아니에요?” 그러셔서, “감독님이 생각하는 지점을 간 뒤 번외로 내 걸 갑시다.” 제안했다. 그래서 감독님이 오케이 하면, 내 버전을 다시 갔다. 그 때 막 애드립도 넣었지. 현장 편집에서는 애드립이 하나도 안 들어갔다. 그런데 스튜디오 편집에선 내 애드립이 다 들어갔더라. 어느 정도 가다 보니까 여기선 유머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조금씩 가미를 한 거였다.
그 연기에 의심이 생긴 적은 없었나. 차라리 경험이 적은 배우는,
그냥 마구 밀어붙이는데.
반대로 경험이 많으면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경험에 비춰서 자기 연기에 대해 종종 의심하게 되는 경우가 생길 수도 있을 것 같다.
초반에 걱정이나 의심을 많이 하게 되지만 처음 생각했던 게 맞는 거라 생각하면서 자신을 추스른다. 내가 그려놓은 상이 있으니까 거기에 살을 붙이는 작업이 돼야지, 이걸 다른 방향으로 틀면 내가 무너지고, 이 작품 자체가 무너지는 거라고 생각한다. 작품 들어가기 전에 내가 그려본 상에 자신이 있을 때 도장을 찍는다고 얘기했듯이 그걸 다시 되짚고 되찾아가려고 노력한다. 새롭게 노선을 바꿨다가 나도 망치고 작품도 망칠 수 있으니까. 내가 생각했던 거, 내가 적립해놨던 게 맞을 거라고, 다시 자신감을 100% 채운 뒤 설정을 적립하지.
<작전>에서 그런 의심의 지점이 있었나? 초반에 조금 그랬다. 어느 시점부터 현장 편집을 조금씩 확인하는 편인데, 중반 정도 가니까 클라이맥스로 가는 도중에 좀 정적으로 흐르더라. 여기선 뭔가 보여줘서 긴장감을 살려야 될 거 같은데 내가 생각한 컨셉대로 가버리면 다운될 거 같은 거다. 그래서 노선을 바꿨지. 감독님한테, “이쪽은 좀 세게 가야 될 거 같지 않아요? 여기서 분위기를 잡아주지 않으면 너무 정적으로 가기 때문에 뒤에서 손해보지 않을까요?” 그래서 그렇게 가게 됐다. 내가 생각한 뼈대는 그대로 가되 조금씩 수정을 가했지.
영화를 상업영화와 예술영화로 구분하는 것처럼 연극도 마찬가지다. 목화에서 나와서 대중적인 연극에 몇 편 출연하기도 했는데 그 당시 했던 연기는 분명 목화 시절과 다른 연기였던 거 같다. 좀 더 계산적인 연기랄까. 영화에선 그런 계산적인 연기가 더욱 요구되지 않나.
모든 영화에서 계산적으로 연기한다. 물론 어떤 캐릭터를 만드는 영화가 있는가 하면 인간 박희순이 더 많이 보여지는 영화가 있긴 하다. 일상적인 연기를 할 땐 내가 많이 보여지겠지만 나와 동떨어진 캐릭터를 만들 땐 내가 아닌 부분이 보여지겠지. <나의 친구 그의 아내>나 <러브토크>에서의 평상시 모습은 박희순이 많이 보이는 거 같다. 만약 홍상수 감독님 영화에 출연한다면 정말 인간 박희순이 나오지 않을까. 진짜 술을 먹이신다는데, 내 술버릇도 나오겠지. (웃음) 반대로 캐릭터를 만들고 설정을 붙여서 다른 인물을 연기해야 하는 경우도 있지. 예전에 목화 연극을 12년 동안 하다 보니까 답답함과 염증이 생겼지만 같은 공간, 같은 연출, 같은 배우들 사이에 있어서 매너리즘에 빠지기도 했다. 목화에서 나와서 <록키호러쇼>나 <그리스>, <아트>나 <클로저>를 거친 건 목화와는 다른 연기 톤을 시험해보고 싶어서였다. 이와 마찬가지로 영화마다 다른 연기 톤을 가지고 나를 더 보여주느냐, 아니면 나와 다른 걸 가미하느냐라는 연기 플랜이 생기는 거지.
캐릭터에 인공적인 느낌이 생기지 않아야 한다는 점도 관건이 아닐까 싶다.
그것 자체가 모험일 순 있지. 캐릭터에 지나치게 치중하다 보면 인공적이다, 내지는 과장됐다, 이런 말을 들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조심스럽다. 그래서 얼마나 자연스럽게 만드느냐가 큰 숙제지. 황종구란 역할을 만들면서도 계속 이걸 혹시 받아들이지 못할까, 라는 걱정도 하고 의심하면서 만들어 나갔다. 편하게 보이기 위해서 많은 설정을 하지만 현장에서도 편해지려고 노력하고 끊임없이 이에 대해 공부하는 편이다.
김무열은 요즘 무대에서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는 배우다. 무대 출신 후배에 대한 각별한 애정이 생겼을지 모를 일이다.
일단 기본기가 탄탄하지만 이 친구의 장점은 성실성이다. 준비를 많이 하고 분석 능력이 탁월하더라. 보통 스스로 배역을 준비해올 때 겉모습에 많이 치우쳐서 오히려 진짜 자신의 것을 놓치는 경우가 많은데 이 친구는 정말 많은 준비나 설정을 해왔더라. 촬영장 안에서 자꾸 없어진다. 찾아보면 한쪽에서 연습하고 있더라. 기본기가 탄탄함에도 불구하고 성실성을 갖고 있다는 게 후배지만 믿음직스러웠다.
함께 호흡을 맞추는 씬이 많았다. 그런 면에서의 장점도 있었을 거 같은데. 각자 설정해가는 부분이 있잖아. 나는 이렇게 가게 되면 이 친구 또한 자기대로 해석하지. 연극을 경험했던 친구니까 어떤 설정을 맞춰감에 있어서 열려있는 측면이 있었다. 이 친구와 연습을 많이 했었다. 자동차에 담배 비벼 끄는 씬도 감독님이 설정만 해준 걸 우리끼리 다른 데서 연습해서 완성했다. 그런 재미가 있었지. 내가 이렇게 할 테니까 너 이렇게 해, 이게 아니라, 내가 이렇게 할건데 넌 어떻게 할래, 이럴 때 남자들끼리라도 아기자기한 재미가 있거든. 물론 현장 분위기 자체가 워낙 좋기도 했고. 내가 중간에 연극을 한번 보러 갔었다. 워낙 유명하단 소리를 많이 들어서 같이 작업한 친구니까 보러 갔지. 나는 탁구경기를 보는 줄 알았다. 모든 여자관객들이 (고개를 좌우로 왔다갔다하면서) 김무열만 쫓아다니는 거야, 김무열만. (웃음) 근데 진짜 그럴 만하더라. 이 친구는 룩(look) 자체도 괜찮고, 연기적인 설정이나 감성이 너무 좋더라. 정말 진심으로 박수를 쳐줬다. 그리고 나중에 농담 삼아 얘기했지. 네가 이렇게 연기를 잘하는 줄 알았으면 내가 배려를 안 했을 텐데. (웃음)
극단 목화에서 12년간 있었으니 오태석 선생님 이야기가 빠질 수는 없다. 혹시 본인이 출연한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신 적은 없나?
그런 건 없는데 이번에 상 받았을 때 직접 음성이 왔더라. “너 상받았다며? 축하해! 파이팅!” 눈물이 날 정도로 고마웠지.
목화를 나올 때만 해도 많은 기분을 느꼈을 텐데, 지금 그 당시를 생각하면 만감이 교차할 것 같다.
진짜 기적 같지. 그 12년 동안 연극 판에 있었으면서 영화 판에 가서 내 자리를 잡을 수 있을까 싶었으니까. 내가 인맥이 있는 것도 아니고, 사교적인 성격도 아니고, 잘 적응할까 걱정을 많이 했는데 요즘 내가 이렇게 하고 있다는 게 정말 기적 같다.
<세븐데이즈>가 출세작이 됐다. 오랫동안 연기를 해왔지만 한 작품으로 유명세가 생겼다.
그 당시 인터뷰에서도 비슷한 답변을 한 적 있는데, 나는 꾸준하게 많은 캐릭터를 변신해왔는데 그 때는 신경도 안 쓰더니 대중적으로 흥행이 하나 되니까 그걸로 나를 평가한다는 게 자꾸 서운하기도 했다. 그래도 고마운 건 그 작품 하나로 인해서 내 전작들을 찾아본다는 거지. 재평가될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는 것만큼 기분 좋은 일이 없더라.
<작전> 포스터에 얼굴이 대문짝만하게 나왔다.
난 현상수배범인 줄 알았어. (웃음) 사실 그건 권력들 사이에 있는 개미를 표현하는데 의미가 있는 것뿐이지. 내가 뭐 잘 나서 그런 건 아니고. 얼굴이 크게 나오지만, 그런 것뿐이지.
하지만 분명 그 포스터엔 이제 박희순이란 배우의 이름과 얼굴이 영화의 홍보에 득이 된다는 계산도 내포된 셈이다.
용하나 민정이는 충분히 인지도가 있기 때문에 충분히 영화를 이끌어 갈만한 자격이 있는 친구들이지만 나 같은 경우는 많이 약하기 때문에 책임감도 많이 느낀다. 그래서 인터뷰도 많이 하고, 심지어 <해피투게더>까지 나가고. (웃음) 나는 아직 부족한 점이 많으니까 홍보를 위해서도 노력하지.
자신의 인지도가 넓어지고 있다는 걸 의식한 적은 없나? 작품을 선택하는데 있어서 영향력을 느낀다거나.
거기에 대해선 크게 신경 쓰지 않으려고. 평양감사도 자기가 싫으면 못한다는 말도 있잖아.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작품이나 캐릭터의 색깔과 다른 걸 해보려고 노력한다. 그런 게 더 우선이지, 내가 원톱이냐, 투톱이냐, 전면에 서느냐, 후면에 서느냐, 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니까. 그런 부분에 부담을 느끼고 쫓아가다 보면 다치게 되는 모습을 많이 봐왔고, 나 또한 그렇게 되지 않으려고 노력하면서 살아왔다. 내 인생은 수직상승형이 아니라 계단형이다. 그런 걸 일부로 거부하거나 역행할 필요는 없겠지만 쫓아가진 않으려 한다.
인생의 절반 가까이를 연기에 매진했다. 연기가 자신에게 있어서 얼마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고 생각하나? 박희순이란 사람은 재미도 없고, 모험을 즐기지도 않고, 활동적이거나 사회적이지도 못하고, 아는 것도 별로 없고, 콤플렉스도 많은 사람이다. 그런 내가 작품에 임할 땐 자신할 수 없지만 누구보다도 더 모험을 즐기고, 새로운 걸 추구하고, 스스로 깨지는 걸 두려워하지 않으려 노력한다고 생각한다. 연기를 안하고 가만히 집에 있을 때는, 정말 내가 왜 이렇게 재미없게 살지, 나이를 먹으면 변해야 되지 않나, 이런 자책을 하게 되는데 연기하는 동안엔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유머스러움까지, 많은 변화가 있다. 박희순은 30%밖에 없는 거 같고, 70%를 배우로서 사는 거 같다. 그 70%가 있기 때문에 박희순이 행복을 느낄 수 있고 사는데 의미가 생기는 거 같다. 그런데 이 30%는 정말 의미가 없는 거 같다. 내 삶에서 배우가 돼서 연기를 하고 영화를 하면서 만나게 되는 사람들과의 관계가 있는 70%가 내 인생이고, 내 호흡이며, 유일한 취미이자 특기이고, 직업인 거 같다.
그런 당신이 어떻게 연기를 하게 한 건가?
그냥 막연하게 시작했지, 뚜렷한 계기는 없었다. 어쩌면 내가 너무 그래서 그럴지도 모르지. 날 보여주는데 익숙하지 않고, 교우관계도 그렇게 활발하지 않았지만 무대에 섰을 때 조명을 받으면 내가 가면을 쓴다고 생각하고 연기할 수 있는 거니까 이 안에서는 얼마든지 보여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종의 도피나 회피이거나 미지의 세계였던 거 같아.
연기라는 것이 어쩌면 삶을 지탱하는 수단이란 말처럼 들린다. 반대로 연기를 하지 않는 순간에는 그만큼 쓸쓸함을 느끼고 있다는 건데.
연애를 안 해서 그런가? (웃음) 연애를 하면 달라질지 모르지. 사실 요즘 유난히 더 그러는 거 같다. 애인도 없이 한참 바쁘게 연기만 하고 살아와서 그런지 모르겠는데.
나이가 들면서 느껴지는 허전함일지도 모르겠다. 아주 오래 전 이야기가 되겠지만 이런 당신이 연기를 하겠다고 할 때 부모님께서는 뭐라고 하셨나?
아이러니한 게 아무런 끼도 보여드린 게 없었는데 어머니가 당연히 받아들이는 거다. 항상 연극을 하는데 있어서, 너는 잘 될 것이다, 너는 잘되길 빈다, 기도한다, 이런 얘기를 하셨지, 때려 치고 다른 걸 해라, 이런 적은 한번도 없었다. 오히려 남들이 그런 얘길 하면, ‘너나 잘해!’ 이런 식이었으니까. (웃음) 그건 참 고마운 일이지.
장가가라는 말씀은 안 하시나.
하지. 그러니까 주위에 여자 있으면 소개 좀 시켜줘! (웃음) 모든 기자들에게 내가 지금 밑밥을 깔아놓고 있다.
나도 궁한 사람이라서. (웃음) 이제 알아보는 사람도 많아졌을 것 같은데 어떤가?
못 알아본다. (웃음) 일단 내가 알아보는 것 자체를 별로 좋아하지 않기도 하고. 인기를 얻게 돼서 좋은 건 작품이 다양하게 들어와서 내가 작품을 고를 수 있는 여지가 늘어난다는 거다. 내가 영화를 10작품 이상 했지만 사회 생활하는데 아무런 불편함이 없어. (웃음) 나로선 다행이다. 그런데 왜 그럴까 생각해보면 작품 속의 나와 박희순은 너무 많은 차이가 나서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와 너무 다르니까 대입을 못 시키는 거 같아. 그리고 설사 알아본다 하더라도 내가 장동건도 아닌데 뭐, 별로 신경이나 쓰겠어? (웃음)
배우로서의 이미지 외의 모습들은 잘 드러나지 않은 덕분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최근에 <해피투게더>, <놀러와>에 출연했던 것 때문에 약간 걱정된다. 아, 이젠 정말 그런 거 안 하려고. (웃음)
홍보 때문에 예능프로에 출연했나 보다. 어땠나?
죽는 줄 알았지. 진짜 목욕탕에서 찍더라. 그 좁은 데서 카메라 열대 늘어놓고 너 웃겨봐 그러는데 나가고 싶더라. (웃음)
사실 요즘 예능프로들이 좀 공격적이지 않나. 막말도 넘치고. 그래서 어려운 건 없었나.
그렇지. 다만 그냥 자기들끼리 하면 좋겠는데 자꾸 시키니까. 난 좀 내보내줬으면 좋겠는데. (웃음) 질문에 있는 얘기만 물어보면 준비를 해갈 수 있지만 그것도 아니니까. 박명수 씨한테 엄청 혼났지. (웃음)
예능도 그 나름대로의 연기가 필요하다.
‘테이프 갈고 하겠습니다’ 하면서 잠깐 쉬면 힘들어서 늘어져있다가 다시 시작하면 왁자지껄하다. 연기라고 생각하고 하는 거 같더라. 박명수 씨도 녹화 중엔 막 큰소리치더니 다 끝나니까 다가와서, ‘팬입니다. 영화 너무 잘 봤습니다.’ 이러더라.
연기로 치자면 감정에 몰입해서 연기하다가 컷이 된 후 그 감정에서 빠져 나오는 것과 비슷하다 말할 수 있겠다. 혹시 연기에 몰입했다가 빠져 나오는데 어려움을 느끼는 편인가?
감정씬이 너무 많아서 힘든 경우가 있다. 사실 지금까지 개봉작 중에선 가장 힘들었던 게 <남극일기>였다. 재미있기도 했지만 일 년 내내 육체적으로 너무 힘들었는데 지금 이 시점에서 가장 힘든 작품은 <우리 집에 왜 왔니>다. 일단 육체적으로 10키로나 살을 뺐고, 정신적으로도 힘들었다. 아내를 잃고 계속 자살을 시도하는 친구였기 때문에 아픔을 품고 있었다. 그 안에서 또 코믹한 요소도 있다. 연극할 때 어르신들이 하시던 말씀 중에, 비극은 희극처럼 희극은 비극처럼 연기해라, 라는 말이 있다. 코미디가 전반에 흐르고 있는데 그걸 비극처럼 하니까 당사자는 괴롭지. 저예산이다 보니까 24시간 넘게 촬영을 강행하기도 하고, 그 두 달이 지옥 같다고 느낄 정도로 힘들었다.
연기하는 감정에 따라 정신적으로 시달리는 경우가 있나 보다.
<나의 친구 그의 아내>도 통닭 먹고 우는 씬 때문에 하루 종일 감정씬을 했었다. 와이프와 재회하고 헤어지는데 눈물이 계속 나더라. 그렇게 눈물을 닦고 또 통닭 먹는 씬을 찍는데 죽겠더라. 답답하고 너무 힘들었지. 그 씬 찍고 나서 커트를 했는데 갑자기 울음이 터졌다. 그렇게 30분을 대성통곡했다. 내가 그렇게 소리 내서 울어본 적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엉엉대며 울었다. 밤에 다른 씬을 찍어야 되는데 눈이 너무 부어서 얼음찜질하고 몇 시간 있다가 찍을 정도였지.
그렇게 괴로운 경험을 겪게 되면 몰입하는데 있어서 반사적으로 움츠려 들진 않던가?
그렇진 않다. 그런 건 배우로서, 연기에 있어서 그렇게 몰입해야 하는 게 당연한 거지. 그걸 거부하면 연기를 할 수 없다. 연기가 흐르는 데로 배우는 가는 거지.
시장이 좁다 보니 그만큼 선택의 폭도 줄어들 수 밖에 없는 부분이 있을 거다. 시도가 가능한 장르가 제한된 만큼 배우가 선택할 수 있는 캐릭터도 제한되는 경우가 많으니까.
아쉬움이 많다. 스릴러 하나 잘되니 계속 스릴러가 나오고, 내년엔 <과속스캔들>따라 간다는 얘기도 있고. 다들 천편일률적으로 이때다 싶으면 몰리고, 그런 점에 대한 답답함이 있지만 그럴 때일수록 오히려 나는 거꾸로 가는 거 같다. 작년에 한참 스릴러를 많이 찍었지만 <작전>이 새로운 시도처럼 보여서 한 거고, 그전에 <우리 집에 왜 왔니>도 나에겐 새로운 경험이 될 수 있겠단 판단이었다. 스릴러에 원톱은 많이 들어왔다. 하지만 <세븐데이즈>보다 재미있거나 새로운 게 없더라. 형사역할만 들어오는데 굳이 그런 걸 또 하면서 새로운 걸 찾을 수 있는 노력을 허비할 바에야 정말 새롭고 독특한 걸 해보는 게 낫겠다 생각하던 차에 <우리집에 왜 왔니>가 들어왔고, 이건 내가 보여주지 못한 독특한 색깔이 있기 때문에 저예산이든, 원톱이든, 투톱이든 상관없이 하겠다고 했지. 그건 내 선택의 문제지, 나에 대한 강요는 없으니까. 우리 ‘열음’(소속사)이 나한테 많이 맡겨주는 편이다. (웃음)
혹시 외국영화보면서 자신이 해봤으면 좋겠다 싶은 캐릭터가 있었나? <캐리비안의 해적>의 조니 뎁이 연기한 잭 스패로우처럼, 그런 역할을 하면 재미있겠다 싶었던 적은 있었지.
할리우드로 가야겠는데. (웃음) 혹시 다시 무대에 설 계획은 없나?
올해 말에 한번 해야겠다는 생각이 있었는데, 지금 스케줄 때문에 어떻게 될지 잘 모르겠다. 영화가 계속 들어와서.
뭔가 구체적인 계획이 있었던 건가.
아직 구체화된 건 아니고 2년 전부터 생각이 있었는데 영화가 계속 끊이지 않고 들어오니까. 조금 더 미뤘다가 할 수도 있는 거고.
어쩌면 본인의 인지도가 연극의 활성화에 도움이 되는 시점일지도 모르겠다.
거창하게 무슨 기여를 한다거나 그런 건 생각이 없다. 단지 내가 좋아하는 연극 무대에서 관객과 호흡할 수 있었으면 하는 거지. 가수가 공연에서 라이브로 관객과 만나서 신나게 한판 놀 수 있는 것처럼 그런 무대가 그리운 거다.
작년에 <연극열전2>가 꽤나 화제였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이런 시도는 좋고 박수도 쳐줄 수 있다. 다만 영화배우나 탤런트를 무대로 데려와서 예전에 대박난 작품들을 우려먹기처럼 다시 하는 건 별로 안 좋아한다. 창작극을 만드는 새로운 시도 안에 그 배우들이 존재한다면 모르겠지만 배우들을 상품화시켜서 좋은 작품에 끼워 맞추는 건 별로 좋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런 걸로 연극을 대중화시킨다는 건 일시적이고 한시적인 거지, 지속적으로 연극을 발전시키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 집에 왜 왔니>는 완전히 작업이 끝난 건가?
이미 <작전>이전에 끝났다.
개봉이 지연된 셈인데, 사실 이런 경험은 이제 식상할 정도다. <나의 친구 그의 아내>도 그렇고, <바보>도 그렇고, <세븐 데이즈>도 우여곡절이 있었고. 예전에 스스로 곗돈 찾는 기분이라고 말했던 적도 있었던데, (웃음) 배우로서 자신이 출연한 작품을 볼 기회가 미뤄진다는 것에 대한 스트레스는 없나?
지금 했던 작품과 다른 작품을 하고 보여주기 위해서 영화를 선택하는 놈인데 그게 엉망진창으로 만들어지는 사태가 자꾸 발생하고 있다. 그것마저도 운명인 거 같다. 내가 이 작품을 선택하는 게 운명이듯이 이 작품의 개봉이 엉키는 것도 운명이라고 받아들인다. <세븐 데이즈>끝나고 작년에 <우리 집에 왜 왔니>와 <작전>을 찍었는데 그게 올해로 넘어왔다. 그래서 원래 작년 1년이 비는 셈이었는데 그 자리에 <바보>와 <나의 친구 그의 아내>가 왔으니까 오히려 다양성 면에서 잘 됐다 싶은 면도 있었지.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 셈이다. 어쨌든 벌써 다음 영화에 캐스팅됐고 꾸준히 영화에 출연하고 있다. 기회가 늘어나는 건 좋은 일이지만 그만큼 연기 외적으로 짊어지는 부담도 늘어난 바는 없나.
한 작품을 책임져야 한다는 부담도 있고, 다음 작품을 선택하는 과정에서의 어려움도 있고, 내 스스로 새로움을 찾기 위한 모험도 있지만 어차피 난 늦었거든. (웃음) 그러니 더 서두르고 말고 할건 없다. 지금 내가 생각하는 대로 천천히 가면 된다. 이 어려운 상황에서 영화를 찍고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한데 더 이상의 욕심을 부린다는 건 사치지. 작품하고 있는 것만해도 행복하니까.
디즈니 채널에서 방영된 <하이스쿨 뮤지컬>의 마지막 시즌이자 첫 번째 스크린판 <하이스쿨 뮤지컬: 졸업반>(이하, <졸업반>)은 국내 관객에게 분명 낯선 것이다. 미국을 비롯한 영미권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구가한 TV시리즈라지만 생소하기 짝이 없다. 이스트 고등학교 농구부 결승전이 뭐가 그리 중요한지, 그리고 코트 위의 트로이(잭 애프론)를 바라보며 노래하는 객석의 가브리엘라(바네사 허진스)는 대체 어떤 사이인지 알 길이 없다.
그럼에도 <졸업반>을 두둔할 수 있는 건 이 작품의 발랄함이 그 생소함을 압도하는 까닭이다. 흡사 안무처럼 펼쳐지는 농구 코트 위의 플레이부터 뮤지컬의 양식을 노골적으로 선사하는 <졸업반>은 그 무대적 기능성을 과감하면서도 세련되게 구사한다. 여백이 뚜렷한 스토리 라인과 세심하게 다루어지지 못하는 몇몇 캐릭터의 허점이 여실함에도 완성도가 뛰어난 안무와 노래의 기능적 효과를 무시할 수 없다. 때때로 유치하다 싶은 틴에이저의 감수성이 직설적인 가사에 담겨 전달되지만 이에 동반되는 퍼포먼스의 원숙함이 단점을 보완한다.
사실 <졸업반>이 묘사하는 학창시절은 지나치게 낭만적이라 꽤나 동떨어진 세계처럼 보인다. 그건 흡사 <해리포터>의 호그와트 마법학교에서 마법과 관련된 모든 것을 제외시킨 결과가 이스트 고교처럼 보일 정도로 <졸업반>은 꽤나 비현실적이다. 심지어 판타지라 여겨도 상관없다. 그리고 그 지점이 <졸업반>을 비롯한 <하이스쿨 뮤지컬>을 즐기는 묘미다. <하이스쿨 뮤지컬>은 그 이질적인 상황을 만끽하는 것 자체가 대단한 재미로 활용되는 작품이다. 공부 잘하고 춤 잘 추고 노래 잘하고 운동 잘하는 엄친아와 엄친딸들이 모여 환상적인 퍼포먼스를 펼쳐내는 곳이 바로 <하이스쿨 뮤지컬>이다. 물론 때때로 자신들의 진로와 미래에 대해 침울해지기도 하지만 이내 낭만적인 로맨스를 노래하고 혈기왕성한 청춘을 누린다. 그곳에서 심각한 고민은 불필요한 걱정이다. 때때로 마치 뮤지컬 <그리스>의 건전한 버전을 연상시킨다. 10대의 패기와 에너지가 말랑말랑하면서도 단단하게 분출된다.
<졸업반>이라는 부제는 <하이스쿨 뮤지컬>의 종막을 선언한다. 발랄하고 해맑은 청춘들의 사춘기가 지난 일기 속으로 사라지기 직전에 다다랐음을 의미한다. 진로에 대해 고민하는 가브리엘라와 트로이가 이별에 대해 걱정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좋은 시절은 끝났다, 는 어른들의 넋두리처럼 만만찮은 고민에 휩싸인다. 하지만 이런 고민 따위는 그냥 학사모를 던져버리듯 유쾌하게 날리고 그저 내일의 희망을 노래하며 즐겁게 춤춘다. 틴에이저의 감수성은 유치하기보단 명랑하고 끈적거리기 보단 담백하다. 뻔한 결말을 앞두고도 두려움 없이 경쾌하다. 뛰어난 가창력과 원숙한 무대 매너, 현란한 안무와 화려한 미장센에 눈과 귀가 즐겁다. 손발이 오그라드는 대사를 날리는 뻔뻔함을 보상하려면 적어도 이 정도는 돼야 한다. 물론 지옥 같은 이 나라의 입시제도 하에서 이런 환상적인 학창시절 따윈 달나라 이야기 같아서 씁쓸하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