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인>은 노무현에 관한 영화이되, 노무현을 위한 영화는 아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노무현이란 말을 통해서 환기되고 복기되는 영화인 것 같다. 이 시대의 첨예한 갈등 한복판에 <변호인>이란 영화가 놓여있다.
이미 잘 알려진 것처럼 <변호인>은 고 노무현 대통령에 관한 실화를 영화화한 작품이다. 제작 초기부터 그리고 영화가 개봉된 지금까지도 <변호인>에 관한 말의 8할도 여기서 비롯됐다. <변호인>이 ‘노무현에 대한 영화’라고 알려지면서 이 영화는 그 어떤 영화보다도 정치적인 영화로서 인식된다. 하지만 <변호인>은 고 노무현 대통령의 변호인 시절의 영화라기 보단 고 노무현 대통령이 변호인 시절에 변호를 맡았던 부산 학림 사건, 흔히 말하는 ‘부림사건’에 관한 영화로서 설명할 때 보다 명확해지는 작품이다.
‘부림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평범한 독서모임을 운영하던 대학생들이 빨갱이 조직원으로 몰리면서 강제 연행되어 악랄한 고문을 당하고 강제적인 자백을 실토한 뒤 재판에 회부됐고 이미 정해진 각본의 결말을 향하듯 일방적인 분위기로 강행된 재판 속에서 노무현을 비롯한 당시의 변호인단 3인이 조작된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고 불공정한 재판에 항의했지만 부당한 형 집행이 이뤄졌다. 당시 구속된 22인 중에선 부산지역의 대학생을 비롯해서 교사와 직장인들도 포함돼있었는데 개중의 몇몇은 재판 당일에서야 처음 대면하는 이들도 있었다고 한다. 쿠데타를 통해서 정권을 장악한 군사정권에서 자신들의 정치적 정당성을 확보하는 방식으로서 활용했던 대국민 빨갱이화 조작 사건, 이른바 용공 조작 사건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히는 것이 바로 이 부림사건이다.
<변호인>이란 영화가 부림사건을 관통하며 말하는 바는 명확하다. 국민과 국가의 관계란 일방적으로 충성을 바쳐야 할 지배와 피지배의 관계가 아니라는 것. “국민이 곧 주권이다.” 그만큼 국가라는 거대한 울타리를 사유화가 가능한 권력으로 인식하고 이를 남용하는 무리의 부조리한 행위에 대한 고발, 그것이 <변호인>의 주제의식에 가깝다. 사실 <변호인>이 공적인 사건을 환기시키는 묘사의 방식에서 균형을 잘 잡고 있다고 말하긴 조금 망설여진다. 다만 기본적으로 어긋나있지 않으며 명확한 정황을 되짚고자 노력하고 있다는 점에선 나름대로 객관성을 확보하고자 하는 발화의 방식에 대한 고민이 엿보인다. 어쩌면 폭압적이고 몰염치한 권력의 시대에서 선악의 구도가 명백한 탓에 그 균형 자체를 담아낸다는 것이 무의미한 것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시대에 죄를 물을 순 없겠지만 그런 시대가 있었다는 것에 대한 이해도 필요한 건 사실이다. 무엇보다도 이 영화를 제대로 작동시키는 건 송강호라는 배우 자체의 존재감이다. 아마 <변호인>은 올해 개봉된 <더 테러 라이브>, <집으로 가는 길>과 함께 배우의 연기력이 영화의 완성도에 얼마나 기여할 수 있는가를 논하기 적절한 사례로서 두고두고 회자될 것이다.
지난 12월 18일에 개봉된 <변호인>은 개봉 첫 주에 약 500여 개의 스크린을 확보했고 관객 170만 명을 동원하며 박스오피스 1위에 올랐다. 개봉 전부터 개봉관 확보에 대한 걱정을 비롯해서 흉흉한 소문이 돌았던 영화였다. 개봉 전부터 영화에 관해서 할말이 많은 사람들이 많아 보이는 영화였다. 개봉 전부터 포털사이트의 평점에선 양극화된 싸움이 한창이었다. 1점 아니면 10점. 절대적인 지지와 절대적인 반대가 맞서는 극단적인 대치 상황. 영화에 대한 감상과 무관한 자기 선언. 이는 바로 우리 사회의 갈등 국면을 대변하는 상징적인 바로미터나 다름없다.
<변호인>을 관통한 스크린 밖의 관객들의 감상은 과거에 대한 안타까움에 머물지 않는다. 오히려 현실 안에서 영화에 대한 신뢰와 지지가 보다 단단해지는 인상이다. <변호인>에 대한 감상의 방향이 실화 자체가 지닌 가혹함에 대한 분노 이상으로 작금의 현실에 대한 호소나 공감으로 확장된다는 말이다. 그리고 영화가 아닌 하나의 상징으로서 권장하거나 부정해야 될 무언가가 돼버린 인상이다. 진보와 보수라는 진영 간의 싸움 안에서 <변호인>은 뜨거운 감자가 되는 것 같다. 야당 국회의원들이 <변호인>에 대한 관람 여부를 선거 운동하듯 알리는 것도 이런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이 영화가 말하는 건 시대적인 정의 그리고 보편적인 상식에 가깝다. 그럼에도 누군가는 이 영화를 ‘노무현에 관한 찬양’이라며 힐난한다. 한편에선 우리가 꼭 봐야할 영화라며 호소한다. 한편에선 <변호인>이란 영화를 보면 종북세력이 된다. 한편에선 <변호인>이란 영화를 보지 않으면 민주주의의 몰락에 기여하는 존재라도 되는 것처럼 호도한다. 그들에게 있어서 <변호인>이란 그저 한편의 영화가 아니다. 지금 현실에서 자신들의 입장을 증명하기 위한 필사적인 도구인 셈이다. 자신의 블로그에 <변호인>에 관한 리뷰를 남긴 영화평론가 이동진을 향해서 비판적인 댓글이 달렸다. 지식인으로서의 정치적인 입장이 없다는 것이 골자였다. 댓글을 남긴 이에게 있어서 <변호인>이란 자신의 정치적인 입장을 드러내야만 하는 것이란 의미일 테다. 그에게 있어서 <변호인>이란 영화는 그저 영화가 아닌 셈이다.
심지어 다른 한편에선 영화를 관람하지 않고도 싸지를 수 있는 촌평이 쏟아진다. 심지어 ‘공산주의 혁명을 기도했던 반국가 범죄사건’에 대한 진실을 왜곡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위인도 등장했다. 시절이 하수상한 것 이상으로 우리에게 하수상하지 않았던 시절이나 있었는지 눈과 귀를 의심할만한 작태들이 뻔뻔하게 고개를 들고 커밍아웃하는 시대에서 <변호인>과 같은 영화가 돋보이지 않고 배길 수나 있을까. 엄밀히 말하자면, <변호인>을 돋보이게 만드는 건 여전히 스스로 불신의 탑을 쌓고 자신만의 국민을 보호하는 공권력이고 그 공권력을 통해서 자신의 권력과 수익을 보장받는 보신주의자들의 파렴치한 행태에 있다. <변호인>과 그 주변반응을 ‘노무현의 영화’를 두고 벌어지는 갑론을박에 대해서 친노와 일베의 갈등으로 일반화시키는 것 역시 그리 적절한 태도인지는 모르겠다. 이 영화를 둘러싼 공기는 생각 이상으로 포괄적이고 상징적이다. 그냥 이 시대 자체의 양상처럼 보인다.
<변호인>은 어쩌면 누군가의 말처럼 시대를 잘 만난 영화일지도 모르겠다. 하수상하다 못해서 보고 듣고도 의심할만한 일들이 시시때때로 눈과 귀를 바늘처럼 찌르고 들어온다. 하지만 <변호인>이 잘 만날 시대가 하루 이틀이었나. 아마 한반도에 대한민국이라 칭하는 국가가 세워진 이래로 <변호인> 같은 영화가 개봉하지 못할 만큼 무기력한 시대만 아니라면 이 영화를 흥행시킬 시대는 적지 않았다. 다만 그런 시대가 21세기를 넘어선 지금에서도 머리를 들 수 있다는 사실이 새삼스레 놀라울 뿐이다. 민주주의를 천년왕국 정도로 해석했던 이들에겐, 정치라는 것이 대단히 불쾌한 술자리 대화 소재로 인식했던 이들에게도 충격과 각성을 준다고 말하는 시대에서 <변호인>이란 영화는 정말 대단한 흥행 요건을 갖춘 상업영화일수밖에 없다. 이 영화가 시대를 선택한 것이 아니다. 시대가 이 영화를 떠받들게 만든다. 시대는 보다 우울해지고 있다. 그만큼 관객은 더 들 것이다. 이것도 다 ‘놈현 탓인가?’ 무서워서 대통령 욕도 하기 힘들어진 작금의 시대 탓이라고 여겨지는 건 그저 오해인가?
내 감각에 포커스를 맞추려 했다. 내가 느끼는 공간과 냄새, 시야, 용의자를 바라보는 심정까지, 나로서 캐릭터 안에 들어가는 거다. 한번은 컷을 하고 모니터를 확인하는데 내 입장에서 도저히 쓸 수 없어서 다시 한번 가자고 간곡하게 부탁했다. 내가 공감해야 움직일 수 있었다.
본인의 연기를 쉽게 만족하지 못하나?
평생 그럴걸.
이제 오디션이 필요 없는 배우 아닌가?
오디션이 필요 없는 배우는 없다. 최소한 리딩이라도 하면서 현재의 컨디션을 알려야 된다. 당락의 의미를 떠나서 진짜 내가 해도 되는지 질문해야지. 지난 작품에서 이 정도 했으니까 이번에도 그 정도 할 거란 기대만으로 작품에 들어갔다가 무너지면 서로 낭패다. 서울보증보험에서 내 연기를 공증해주는 것도 아니고.
처음 카메라 앞에 설 때는 어땠나?
연기 자체는 동일하지만 영화적 기법에 적응하긴 쉽지 않았다. 각 장면에 어울리는 에너지를 안배하면서 작품 전체의 호흡을 유지해야 한다. <용의자 X>에서도 그 호흡을 놓쳐서 한 컷을 버렸다. 한 장면 찍을 때마다 시나리오를 여러 번 읽어야 했다.
롯데 자이언츠 팬이라고 들었다. 부산 토박이?
나고 자랐지. ‘구도 부산’의 핏줄이 어디 가겠나?
언제 서울로 올라왔나?
초등학교 1학년 때 가족 모두 올라왔다.
부산에서 대학을 나왔다.
서울에서 제일 멀어서 부모님한테 안 걸릴 줄 알았다.
연극영화과를 영문학과로 속인 거?
속인 건 아니다. “아버지, ‘경성대 영흐여하과(발음을 뭉개면서)’입니다.” 그랬더니, “뭐? 영어? 그래? 괜찮네! 알았다!” 그리 된 거지(웃음). 딱히 반대하신 건 아니고, 한 2~3년 하다 관둘 줄 알았다 하시더라.
지금은?
영화에 입문할 때, 새롭게 시작하는 의미로 아버지 성함 좀 빌려 쓰면 안되겠나 여쭸더니, “집에서 가져갈 게 없으니 별 걸 다 가져간다. 맘대로 해라, 마!” 하셨다. 요즘은 항상 로열티 얘기하신다. 언젠가 기회가 되면 공식석상에서 내 이름을 되찾아야지(웃음).
본명이?
원준이다. 조원준.
야구 영화를 두 편이나 했다.
<글러브>에선 야구선수로 나온 게 아니니까. 어느 연말 파티 중에 최동원과 선동렬이 나오는 <퍼펙트 게임>이 제작된다고 들었는데 그 자리에 박희곤 감독님이 있었다. 무작정 가서 “나 야구 잘 안다!” 그랬지. 대뜸 해태 타이거즈 역할을 말하길래 유니폼만 입어도 좋으니 롯데 단역을 하겠다 했다(웃음). 촬영할 때 야구 못하니까 화내더라. “너 야구 잘한다며?” 그래서 말했지. “잘 안다고 했지, 잘 한다고 안 했는데(웃음).”
광주에서 군생활을 했더라.
그래서 서울말만 썼다(웃음). 어차피 롯데가 맨날 꼴찌하던 때라 군생활에 집중했다.
<솔약국집 아들들>에서 브루터스 리, <글러브>에서 찰스, <맨발의 꿈>에서는 제임스, 외국인 이름의 캐릭터를 자주 맡았다.
그렇네. <솔약국집 아들들> 할 때 영어를 못해서 작가님께 맨날 빌었다. 2형식 이상 쓰면 안 된다고(웃음).
예전에 비하면 정말 샤프해졌다.
살을 빼고 있을 땐 괴롭다. 조절해야 하니까. 작품이 없으면 살이 찐다. 그냥 놓고 지내니까. 스스로 어떻게 변해야지, 라는 건 없다. 뚱뚱해지거나 샤프해지는 건 그 작품에 존재하는 이유가 그렇기 때문이다. 캐릭터의 당위성을 쫓아가는 거지.
배우들이 체중을 조절하는 건 항상 경이롭다.
솔직히 다이어트는 징글징글하다. 처음 한 달은 배가 고파서 자다가도 욕 나온다. 한 달이 지나면 새벽에 <식신로드>를 봐도 괜찮다(웃음). 어느 정도 목표량을 달성하면 스스로에게 상을 줘야 된다. 그 상을 먹겠다고 달리는 거지.
배우에게 다이어트란 캐릭터의 갑옷을 입는 과정이다.
즐기지 못하면 불가능하지. DNA 구조를 바꾼 게 아닌 이상 몸으로 거짓말하는 거잖아. 연기란 빙의도 접신도 아니다. 이성과 감정을 평행하게 두고 항상 외줄을 탄다. 주목 받는 게 부담스러운 건 그래서다. 잘될 수도 있고, 잘 안될 수도 있는데 일정한 기대가 있다는 건 부담스럽지.
<뿌리 깊은 나무>의 무휼이나 <범죄와의 전쟁>의 김판호는 천차만별의 캐릭터인데, 연기 범위가 넓더라.
사실 무휼의 준비 기간은 짧았다. 시놉시스를 보고 딱 꽂혀서 뭐라도 하고 싶어서 잘 알지도 못하면서 나섰다가 칼도 많이 써야 된다 하니, 아차, 싶었지. 결국 중요한 건 무휼이 왜 거기 존재하느냐는 물음이었다. 왕의 호위무사라는데 겉치레로 경호원 노릇만 하는 인물은 아니니까. 무휼에게 이도, 세종이란 사람은 대체 무어냔 말이다. 작가님과 얘기하면서 무휼에게 세종은 곧 조선이란 결론에 닿았다. 그런 마인드로 현장에 가니 무휼이 될 수 있었다. 다양한 의미들을 수용할 수 있는 이성과 정서를 넓히는 게 중요했다. 현장엔 연기를 돕는 스태프들도 많으니 그들을 믿어야 된다. 정답은 작품에 있다.
경험하지 않곤 모를 것 같다.
운 좋게도 트레이닝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았다. 부산엔 배우 인프라가 적다. 서울말을 할 줄 아는 배우도 없으니 번역극을 하면 무조건 무대에 섰다. 덩치 큰 배우도 없고, 자연히 공연을 많이 했지. 많이 한 놈한테 당할 놈 없지 않나. 그래서 20대엔 나이 마흔 다섯이 되는 게 꿈이었다.
마흔 다섯?
그 나이가 된 선배님들의 호흡은 아무리 훈련해도 나오지 않거든. 늙고 싶어서 환장하는 줄 알았다. 막상 나이 서른 되니 30대라 우울해하고(웃음).
나이 서른은 어땠나?
사람들 이야기가 들렸다. 뭔가를 흉내 내기 보단 물 흘러가듯 스스로를 받아들여야 된다는 걸 알았지. 거대한 강의 흐름에도 부딪히는 바윗돌 하나 즈음은 있으니까. 욕심대로 다 되는 것도 아니고, 막연히 자연스럽게 되는 것도 아니었다. 결국 내 마음이 무엇으로부터든 자유로울 수 있어야 했다.
의외로 수다쟁이 같다. 무휼처럼 과묵한 캐릭터는 어떻게 참았나?
뭐, 컷하고 떠들면 되니까(웃음). 사실 연기하는 게 어려웠지. 존경하는 선배님들도 많이 계셨고.
술도 많이 먹었나?
어디 가서 술로 안 밀리는데, 선배님들 뵈니까 사람 아닌 사람 많더라. “내가 어제 술을 너무 많이 마셨으니 조금만 먹자.” 그런데 회 한 접시 나오기도 전에 소주 네 병을 까(웃음).
개구진 성격 같다.
덩치가 크고 인상이 험악하니까 상대가 먼저 거부감을 느끼기 전에 먼저 분위기를 풀어보려 노력하게 된다. 사실 대중교통 이용하는 것도 불편했다. 여름에는 땀도 많아서 버스 옆자리에 누가 앉으면 괜히 일어났다. 겨울에 만원 지하철 타도 내 탓인 거 같고. 어쩔 수 없이 대중교통을 이용해야 할 상황이 아니면 걸어 다녔다. 소심했지.
극단에서 무대 연출도 했다던데.
연기를 위한 기능적 역할로서였다. 배우가 자유롭게 노는데 방해되는 요소들을 해체시키는 작업이 연출이라 생각했지. 배우가 되기 위한 워크샵이랄까? 연출할 생각은 죽어도 없다. 하면 안 되는 직업 같다(웃음).
무대에 다시 서고 싶은 생각은?
항상 한다. 태생과도 같은 곳이니까. 잠시 쉬고 있는 것뿐이지.
놓쳤으면 후회했을 것 같은 영화는?
첫 영화였던 <말죽거리 잔혹사>. 길가다가 우연히 만난 군대 고참이 연출부에 있어서 단역을 주더라. 한 장면만 세게 등장했다 사라지는 역할이 있고, 지리하게 병풍처럼 출연하는 역할이 있었다. 이 일을 길게 해야 될 거 같으니 현장에 오래 있고 싶었다. 그런데 정말 항상 어깨에 걸리거나 저 뒤에 서있는 식이더라(웃음). 부산에서 연극할 땐 너무 열악해서 멀티플레이어가 돼야 했다. 조명도 만지고, 분장도 하고, 의상도 맞추고, 글도 써야 된다. 영화 현장의 파트 포지셔닝은 경이로웠다. 현장 스태프들한테 이거 저거 묻고 다니면서 많이 배웠다. 연극적 본질이나 영화적 본질은 달라도 연기적 본질은 똑같다 이거야. 그렇다면 갈 수 있겠다 생각했지.
첫 수업이었던 셈이다.
게다가 돈 받으면서 했지.
아직도 그때 생각나나?
요즘엔 ‘이 정도 뛰고 힘들어? 이 정도도 못 따라가?’ 생각한다. 그렇게 되짚어 보는 것도 좋은 방법 같다. 결국 내가 계속 할 일이니까.
초심이 중요하다?
작품에 대한 고민이 부담으로 변하지 않길 바란다. ‘이런 걸 또 해야 돼?’가 아니라, ‘이거 재미있을 거 같은데!’ 할 수 있어야지. 작품 속 캐릭터를 흥미롭게 생각하고 꾸준히 도전했으면 좋겠다. 어쩌면 준비라는 게 그런 거 같다.
<두사부일체> 마지막 30분에 쓰나미가 밀려온다면? <색즉시공> 마지막 30분에 쓰나미가 밀려온다면? <1번가의 기적> 마지막 30분에 쓰나미가 밀려온다면? 이 질문에 수렴할만한 정답은 <해운대>. 단지 제목은 변경돼야 한다. 또한 바다가 인접한 지역이었을 때 가능하다. 서울 한복판에서 쓰나미를 연출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를 다른 이미지로 치환하는 것도 가능하다. 만약 테헤란 거리 한복판에서 지진이 일어나 건물이 무너지고 사람들을 구덩이로 빠뜨리면 그 영화 제목은 <테헤란>이 될 지도 모른다. 농담이냐고? 글쎄.
적어도 예고편을 통해 공개된 쓰나미를 기대하고 <해운대>를 찾은 관객이라면 1시간 30여분의 드라마를 견뎌야 한다. 거대한 파도가 밀려오는 파괴적 장관을 목격할 수 있는 건 분명 그 이후에나 가능하니 말이다. 그 1시간 30여분을 채우는 건 옴니버스적 관계를 형성하는 인물들의 다양한 드라마다. 서사의 시작은 이렇다. 내륙에서 먼 바다까지 어업을 나섰던 배 한 척이 거센 폭풍우에 휘말렸고 그 배에 탑선해 있던 연희(하지원)의 아버지가 무거운 철망에 깔려 있다. 그를 구하기 위해 동료들이 안간힘을 쓰지만 무거운 철망은 꿈쩍조차 하지 않는다. 결국 침몰하는 배에서 탈출해 구조헬기에 탑승하게 된 만식(설경구)은 죽음을 방조했다는(, 그리고 그와 함께 병행되는 본질적) 죄책감과 연희를 향한 모종의 감정을 가로지르는 연민으로 연희의 삶을 돌본다.
<해운대>는 서사적 할당량에서 우위를 점한 만식과 연희의 사연 외에도 평행 나열되는 둘 이상의 관계를 확보하며 드라마의 너비를 벌린다. 쓰나미를 경고하는 지질학자 김휘(박중훈)와 그의 전부인 유진(엄정화), 만식의 동생인 해양구조대원 형식(이민기)과 서울에서 내려온 삼수생 희미(강예원), 그리고 연희의 동창이자 동네 백수건달인 동춘(김인권) 등, 다양한 인물의 서사가 평행적인 시선으로 나열된다. 다양한 인물들이 제 각각의 사연을 나열하는 것만으로 드라마의 너비는 확장된다. <해운대>는 다분히 전략적으로 사연을 확장해 나간다. 다양한 인물들을 통해 쌓여 올린 드라마가 일거에 초토화되는 순간, 신파의 쓰나미가 밀려온다. 우호와 갈등의 관계 속에서 감정을 쌓아나가던 캐릭터들이 쓰나미 한방에 서로의 손을 잡고 뛰거나 부둥켜안으며 끝을 예감하거나 죽음을 각오한다. 생존을 위한 몸부림은 <해운대>가 의도한 궁극의 드라마다.
쓰나미 이전까지의 드라마는 파괴를 위해 축조된 건물이나 다름없다. 진전되는 인물의 관계 속에서 한발씩 전진하는 사연이 거대한 재난 앞에서 일거에 전복되는 비극적 참상은 감정을 고양시키는데 분명 효과적이다. 서사의 층위를 쌓아 올리고, 관계의 너비를 확장하던 드라마가 파괴적 재난 앞에서 일순간 무너지는 광경은 참담한 심경을 부른다. 특히 ‘부산’과 ‘해운대’라는 지정학적 입지는 국내 관객에게 이색적인 기시감을 부를 만하다. 할리우드 재난 블록버스터를 통해 이국적 풍경을 바탕으로 둔 재난 스펙터클을 감상해온 국내 관객들에게 <해운대>가 선사하는 국내 입지의 재난 광경은 보다 생동적인 감정을 야기시킬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 파괴적 이미지가 클라이맥스로서 효과적인 스펙터클을 발생시킨다는 것도 어떤 면에서는 분명한 장점이 된다.
‘한국형 블록버스터’혹은 ‘한국형 재난영화’라는 위용처럼 <해운대>는 160억여 원을 투자한 대작이다. 거대한 쓰나미를 구현한 CG는 분명 할리우드의 수준과 비교하자면 보다 떨어지는 결과물임에 틀림없지만 비용 대비 효과를 감안한다면 배려가 가능한 수준이다. 하지만 <해운대>는 160억여 원을 들여 만든 드라마다. <해운대>에서 쓰나미의 역할이란 그 이전까지의 드라마를 전복시키기 위한 용도로서 기능한다. 생각해보자면 그 전까지의 서사는 너비를 벌릴 뿐, 어떤 갈무리가 없다. 그저 한방의 이미지를 통해 서사적 구조가 일거에 무산되는 형식이다. 그 의도는 불순하지 않다. 다만 그 형태를 따져볼 필요는 있다. 거대한 자본을 투영해서 만들어놓은 인위적 이미지가 사실상 드라마를 파괴하기 위한 장치로 활용됐다는 건 어딘가 괴상하다.
<해운대>는 일상적 풍경의 파괴를 통해 관객의 공감대를 이끌어낸다. 이는 효과적인 전략이다. 쓰나미로 인해 초토화되는 해운대의 모습 속엔 거센 물살에 밀려나고 정처 없이 떠다니는 비극적 파토스로 가득하다. 일상적 공간이거나 특별한 휴양지로서 ‘해운대’가 지닌 보편성의 특성 안에서 펼쳐지던 그 이전까지의 드라마는 가장 드라마틱한 방식으로 침몰되고 수장된다. 가학적인 유머와 서민적 풍경으로 가득했던 1시간 30여분의 서사가 침몰된 이후로 몰아치는 비극적 신파는 지난 서사의 광경들을 모조리 추억으로 치장해버린다. 엄밀히 말해서 쓰나미 이전까지의 서사가 지닌 단점들을 염두에 둔다면 이건 엄연히 반칙이다. 후반부를 위해 직조된 것에 틀림없는 재난 이전까의 드라마는 개연성을 염두에 두고 조직됐다기 보단 너비를 벌리기 위해 이어 붙인 형태적 사연으로서 종종 선명한 틈새를 드러낸다. 평행적인 비중으로 나열되는 캐릭터 역시 각자 부여 받은 사연의 완성도 안에서 매력의 편차를 발생시킨다.
사실상 <해운대>의 드라마가 뛰어난 밀도를 자랑하는 건 아니다. 게다가 모든 (오락)영화가 뛰어난 밀도의 드라마로서 오락적 가치를 평가받는 것도 아니다. 어떤 식으로든 결론의 형태를 통해 평가를 얻기 마련이다. <해운대>는 자신이 설계한 드라마를 스스로 파괴함으로써 그 평가로부터 한 발 달아난다. 만약 <해운대>가 한국형 재난영화라는 이름으로서 자부할만한 가치가 있다면 그건 오산이다. <해운대>는 단지 파괴적 스펙터클을 선사하는 이미지를 통해 드라마의 약점을 눈속임할 수 있다는 하나의 전례를 드러낼 뿐이다. 사실상 한국적 환경을 제외하면 <해운대>가 ‘한국형’이라고 불려야 할만한 이유도 막연하다. 단지 그것이 할리우드 대비 저예산 블록버스터라는 점에서 감안해야 결과물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해운대>는 할리우드 재난영화들, 혹은 블록버스터들이 곧잘 발휘하는 장점과 곧잘 범하는 단점마저도 하나의 상투성으로 끌어들인 기성품처럼 보인다. 때때로 전시적 욕망을 위해 소모되는 시퀀스가 눈에 띄고, 상황에 걸맞지 않은 유머들이 껑충거린다.
새로운 시도와 모험은 중요하다. 다만 극복할 수 없는 태생적 환경에서 빚어질 결과물의 차이를 인지하면서도 그 방식을 모방하고야 마는 욕망은 도전일까, 허세일까. 한국형 블록버스터는 과연 실제적 가치인가? 할리우드 재난영화가 쌓아온 데이터 안에서 장단점조차 구분하지 못하고 모조리 모방해버린 결과물은 과연 한국적인가. 파괴적인 후반부 30여 분의 스펙터클을 위한 볼모로서 쌓아올린 1시간 30여 분의 서사는 한국형 블록버스터란 미명을 위한 제물인가? 드라마를 덮쳐버리는 스펙터클의 쓰나미가 결국 '한국형' 방식인가? 자본의 위험부담을 감수하고서 만들어낸 결과물의 목적은 무엇인가. 매년 여름마다 국내 극장을 독점하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에 맞서지 못할 한국형 블록버스터라면 과연 그 용도는 무엇에 있나. 그렇다면 과연 할리우드 블록버스터가 아닌 한국형 블록버스터를 봐야 할 이유가 무엇일까. 드라마를 파괴하는 스펙터클, <해운대>는 30여 분의 스펙터클을 전시하기 위해 제물로 바쳐진 1시간 30여 분짜리 임시방편 드라마의 제단이다. 그게 '한국형 재난영화'라 불릴 만한 결과물이라고? 글쎄.
어제를 기점으로 해서 많은 사람이 떠났고, 장기적으로 남을 예정이 아닌 사람들은 오늘을 고비로 부산을 등 뒤에 둔채 서울로 떠난다.
방에 혼자 남았다. 수요일까지 있을 예정인데 어쩌면 목,금이 될 수도 있을까, 곰곰이 생각중이다.
취재하느라 영화는 많이 못 봤다.
하지만 운 좋게도 GV까지 걸려있는 에릭 쿠 감독의 <마이 매직>과 두기봉 감독의 <참새>를 3일날, 프리머스 해운대에서 연달아 봤다.
<마이 매직>은 내상이 깊은 남자의 담담한 외상을 그린 영화다. 그 남자는 모든 고통을 참아낸다. 그건 그 남자의 능력이다. 하지만 그 학대는 그 남자를 깊에 파헤치고 갈기갈기 찢는게 분명하다. 남자는 담담하지만 피는 흐르고 상처는 남는다. 에릭 쿠 감독의 말처럼 슈퍼 히어로가 아닌 그 남자는 분명 인내라는 능력을 타고 났지만 그보다도 그 인내를 부축하는 힘은 아들에 대한 부성에서 발현된다. 결말은 너무나 슬펐다. 어금니 꽉 깨물고 참아서 가까스로 눈물은 넘치지 않았지만 충분히 울뻔 했다. 우는 게 창피해서는 아니었다. 다만 앞에 나가서 에릭 쿠 감독 사진을 찍어야 했는데 빨개진 눈으로 나서는 게 좀 꺼려졌을 뿐이다. 여튼 <마이 매직>은 정말 좋은 영화다. 그 안엔 벅차오르는 슬픔이 있다. 그건 희망이 아님에도 투명하다. 실로 아름다운 영화다.
<참새>는 대단하다. 두기봉 영화인데 총격전이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이 기이하긴 하지만 그만큼이나 세련되고 우아한 소매치기 씬이 등장한다. 언제나 그렇듯 카메라의 구도는 가히 예술이다. 4남자가 서있는 공간의 대기가 절감된다. 그 장소에서 발생하는 기운이 온전히 시야에 들어온다. 결말부의 수중씬을 보면서 벌떡 일어날 뻔했다. 결코 거짓말 아니다. 나도 모르게 몸이 앞으로 확 젖혀졌다. 대단한 전율이 아우라처럼 몸을 감싼다. 어떤 설명도 필요없다. 결말부의 수중 시퀀스 만으로도 <참새>는 걸작이라 불릴만한 이유를 적절히 제시하고 있다. 마치 연극적인 느낌의 버스터 키튼 식의 유머러스도 즐겁다. 다시 한번 보고 싶은데 과연 개봉하려나, 이런 생각하니 우울하다.
<스카이 크롤러> 야외 상영은 표를 끊었지만 못 봤다. 써야 할 기사도 있었고, 핑계 같은 말이지만 바빴다. 하지만 못 간게 다행이다.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들에겐 꽤나 미안한 말이지만 상영사고가 났다는 말을 듣고 안 가길 천만다행이었다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현장에 있었던 사람들 말을 듣고 보니 국내에서 개봉될 것도 같다. 태원에서 수입했다는데 한글 자막 작업도 상당히 진전된 상태라고 한다.
내려와서 간만에 현장 사진도 찍었고, 뉴스도 줄창 썼다. 명함 지갑을 잃어버렸다가 다시 찾았고, 어젯밤엔 택시에 핸드폰을 놓고 내렸다가 겨우내 찾았다. 우여곡절도 많았다. 예기치 못한 갈등 상황도 있었고, 심각한 충돌도 빚어졌다. 한편으로 예상 밖의 문자도 받았다. 여러가지로 액티브했다. 2박3일 남았다. 좀 더 한산해질 것이다. 그 광경을 보기 위해 부산에 남았다. 오늘밤은 해운대 바닷바람 맞으며 맥주나 한 캔 마셔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