픽사 애니메이션은 통통 튀는 ‘룩소 주니어’의 등장으로 시작된다. 이 꼬마 전구에 불이 켜지기까진 긴 시간이 필요했다.
어려서부터 활쏘기를 좋아한 공주 메리다는 전통적인 혼인 관계를 강요하는 어머니의 마음을 돌리고자 마녀의 주술을 빌린다. 그 주술은 단순히 어머니의 마음을 돌리는 대신 어머니를 곰으로 만든다. 메리다는 사람들 몰래 곰으로 변한 어머니와 성을 빠져 나와 주술을 풀 방법을 찾아나간다. 픽사의 13번째 장편 애니메이션 <메리다와 마법의 숲>은 디즈니 특유의 동화적인 클리셰들을 극복의 대상으로 비트는 대신 그 고유의 감동을 과녁처럼 걸어놓고 일일이 적중시킨다. 지극히 순진해서 온전히 공감할 수 없는 몇몇 대목도 존재하지만 결국 마음을 울린다. 디즈니의 순수한 세계관과 픽사의 정교한 작법이 어울리며 디즈니 고유의 전통적인 감성을 새로운 기술로 계승한다. 픽사의 최고 브레인 존 래세터(John Lasseter)는 애초에 디즈니 애니메이터를 꿈꿨고, 한때 디즈니 애니메이터였다. 그가 지휘하는 픽사가 그린 그림이 디즈니의 그것과 닮아 보이는 건 우연이 아니다.
2006년 1월 24일, 디즈니의 공식 발표가 있었다. 74억 달러 상당의 거액으로 픽사를 인수하겠다는 것. 이 놀라운 소식은 1991년, 픽사의 장편 CG 애니메이션 제작 투자에 대한 디즈니의 결정에서 비롯된다. 당시 디즈니의 셀 애니메이션이 지배하던 시대에서 CG로 장편 애니메이션을 제작한다는 건 일종의 허풍이었지만 픽사의 창립자 에드 캣멀(Ed Catmull)은 오래 전부터 그 날을 준비해왔다. 이미 단편 CG 애니메이션 <틴 토이>(1988)가 아카데미 최우수 단편 애니메이션 부문을 수상했고, 디즈니의 <인어공주>(1989)나 <라이온 킹>(1994)의 부분 CG작업에 참여하며 투자 가치를 스스로 증명했다. 처음 두 회사의 관계는 디즈니의 일방적인 권한이 중시되는 주종관계에 가까웠다. 그 관계는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평단의 찬사 속에서 전세계적으로 3억 6천만 달러 이상의 수입을 올린 <토이 스토리>(1995)로 시작된 픽사의 역사는 곧 CG 애니메이션의 개척사가 됐다.
디즈니와의 계약 만료일인 2005년을 앞둔 2004년 초, 픽사의 최고경영자 스티브 잡스(Steve Jobs)가 계약 연장 협상 중단을 발표했다. <토이 스토리> 이후로 <벅스 라이프>(1998), <토이 스토리 2>(1999), <몬스터 주식회사>(2001), <니모를 찾아서>(2003)로 승승장구했던 픽사였다. 그는 그 해 픽사의 4분기 실적 발표에서 픽사의 작품 배급을 바라는 메이저 배급사가 적어도 네 곳은 된다고 밝혔다. 다음날 픽사의 주식이 3% 올랐고, 디즈니의 주식은 2% 떨어졌다. 디즈니는 자사 영화 제작비의 45% 가량을 픽사의 수입으로 충당하는 상황이었다. 심지어 CG 애니메이션의 반향에 밀려서 뒷방 늙은이 신세가 된 셀 애니메이션 제작 중단마저 선언한 상태였다. 디즈니는 내부적인 진통 끝에 당시 스티브 잡스와 반목하던 최고경영자를 해고했다. 일종의 신호였다. 인수 합병 논의는 곧 시작됐다. 마침내 미키 마우스는 룩소 주니어를 샀다. 사실상 무릎을 꿇었다.
픽사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존 래세터는 디즈니 애니메이션 사업부의 수석책임자로 임명됐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디즈니 셀 애니메이션의 전통을 복원한 <공주와 개구리>(2009)와 <라이온 킹> 이후로 처음 북미 2억 달러 이상, 전 세계 5억 달러 이상의 흥행을 거둔 디즈니 애니메이션 <라푼젤>(2010)을 기획했다. 존 래세터는 디즈니가 설립한 캘리포니아 예술학교, 일명 ‘칼아츠’를 수료한 뒤, 디즈니에 입사했다. 그리고 당시 디즈니의 보수적인 분위기 속에서 덧없는 상실만을 체감하다 끝내 해고당했다. 존 래세터는 디즈니 재직 당시 자신이 구상했던 작품의 일부 배경의 CG 구현이 가능한지 자문하고자 에드 캣멀을 찾았었다. 에드 캣멀은 그가 당시에 보기 드물게 CG에 흥미를 지닌 애니메이터란 점에 주목했고 디즈니에서 해고당한 그를 픽사로 끌어들였다. 자신들에게 부족한 예술적 감각을 존 래세터가 채워줄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컴퓨터공학을 전공한 에드 캣멀은 일찍이 컴퓨터 그래픽을 이용한 애니메이션 제작에 심취해있었다. 1970년대 초에 이런 생각은 대단히 앞서나갔거나, 그저 헛소리였지만 그는 뜻이 맞는 인재들을 규합해 나갔다. 뉴욕 공과대학 컴퓨터 그래픽스 연구소에서 결성된 팀은 <스타워즈>를 연출한 감독 조지 루카스의 ‘루카스필름’ 산하의 그래픽 부서로 편입됐다. 그곳에서 컴퓨터로 애니메이션을 만들 수 있는 최적의 기술을 연구해나갔다. 그들은 회사 입장에선 낭비라 이해될 그 작업을 지속하고자 회사의 눈을 가리기 위한 기능적인 업무들을 충실히 수행했다. 이를 테면, 컴퓨터 그래픽과 관련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개발이나 CG를 이용한 광고 비주얼 제작 따위의 일 말이다. 그 당시 이는 결코 매력적인 비즈니스 모델이 아니었다. 에드 캣멀은 쓸모 없게 보이는 애니메이터들을 고용하는 것에 끊임없이 불만을 표했던 조지 루카스를 설득하고자 안간힘을 썼다. 가능성의 조각들이 흩어지는 것을 수시로 막아야 했다.
결국 우여곡절 끝에 애플에서 퇴출당했던 스티븐 잡스에게 인수된 그들은 비로소 ‘픽사(PIXAR)’라는 이름을 얻었다. ‘영화를 찍다’라는 의미의 스페인어 ‘픽서(Pixer)’를 변형한 것이었다. 스티브 잡스 역시 마냥 관대한 투자자는 아니었다. 픽사를 500만 달러에 인수한 스티브 잡스는 10년 간 인수비용의 10배가 넘는 투자금을 쏟아 부어야 했으니 관대해질 수도 없었다. 다행인 건 그가 재능을 이해하고 지원할 수 있는 직관과 인내를 지녔다는 사실이었다. 그는 <토이 스토리>의 성공가능성을 예견했고, 투자를 멈추지 않았다. “우리의 동료, 친구, 멘토였던 스티브 잡스에게 이 영화를 바칩니다.” <메리다와 마법의 숲>의 엔딩 크레딧에서 떠오르는 이 문구는 “우주를 깜짝 놀라게 하자”고 곧잘 말했던, 픽사의 오늘에 기여한 마지막 조력자에 대한 그리움을 전한다.
“예술은 기술을 변모시키고, 기술은 예술에 영감을 준다.” 존 래세터의 말처럼, 픽사는 기술과 예술이 손을 잡아 이룰 수 있는 최상의 결과물을 대중에게 전파하는 혁신적인 애니메이션 스튜디오다. ‘브레인트러스트(Brain Trust)’는 이런 가치관을 대변하는 제도다. 작품을 제작하는 어느 감독이나 프로듀서가 벽에 부딪혔을 때, 브레인트러스트를 소집한다. 존 래세터, 앤드류 스탠튼(Andrew Stanton), 브래드 버드(Brad Bird) 등 픽사의 브레인들이 모인다. 그리고 토론한다. 의견을 피력할 뿐, 결정하거나 강요하지 않는다. 결정은 소집을 요청한 당사자의 것이다. “예술은 팀 스포츠다”라는 픽사의 캐치프레이즈처럼, 그들은 창조적인 놀이에 창조적인 놀이터가 필요함을 잘 알고 있다. 누군가 즉흥적으로 반짝이는 아이디어를 내면 그 옆의 누군가는 그 아이디어에 그럴싸한 디테일을 붙이고, 또 누군가는 새로운 전환점을 제시한다. 소통의 가능성을 마음껏 열어둔다. 우리가 사랑하는 픽사의 애니메이션들은 그렇게 탄생했다. 이런 사실은 하루 아침에 사라진다 해도 이상하지 않은 팀이었던 픽사의 오늘을 안도하게 만든다.
<라따뚜이>(2007)에서 봤던 아름다운 파리의 전경, <월-E>(2008)의 황홀한 우주, <업>(2009)의 놀라운 비행, 그리고 <토이 스토리 3>(2010)의 심금을 울린 안녕까지, 우리가 픽사라는 이름 아래 만났던 그 사랑스러운 찰나들이 존재할 수 있었던 건 실로 다행이기 때문이다. 그건 예언자도 몽상가도 아닌, 실현가능성에 대한 의지를 밀고 나간 현실주의자들의 꿈을 통해서 완성된 현실이다. “말도 안 되는 무언가가 벌어진다고 생각할 때마다 실제로 일이 생길 것이다.” 에드 캣멀의 말처럼 픽사는 상상의 선을 긋는 대신, 그 선을 뛰어넘음으로써 새로운 세계를 구축하고 있다. <토이 스토리>의 그 대사처럼, “무한한 공간, 저 너머로!(To infinity, and beyond!)”
과거 드라마나 영화 더빙 경력이 많으셨으니까 더빙 자체에 대한 어려움은 없었을 것 같습니다.
그 자체엔 어려움이 없었어.
그렇지만 혹시 애니메이션 더빙과 실사영화 더빙 사이의 어떤 차이를 느끼신 바가 없었을까 궁금합니다.
아무래도 이제 만화영화에서의 표현은 조금 과장되거든. 인물이 소리지르거나, 호흡한다거나, 과장이 많죠. 그래도 <업>은 사실적인 표현을 많이 쓰더라고. 공상과학영화나 치고 받는 액션 영화는 외형적인 걸 중시하니까 좀 다를 수 있겠지만 일반영화 같은 경우, 과거의 고전이나 명화 같은 작품은 상당히 신중하게 접근하지 않으면 안 된단 말이에요. 실질적으로 과거의 명배우들이 나와서 표현하는 건 개인적인 톤 깊이가 있으니까 따라 하기가 쉽지 않다는 거에요. 그러니 후시 녹음에서 그런 걸 보완할 수 있겠느냐란 문제가 생기거든요. 그런 건 오히려 자막을 흘려서 관객들에게 배우의 목소리를 직접 듣게 하는 것이 작품을 이해할 수 있는 정서를 부여할 수 있다고 봐요. 그런데 만화는 그렇지 않고, 약간 과장하면 되는 거니까, 그리고 아무래도 표현이 단순하니까, 아마 그런 차이가 있을 거에요.
애니메이션 더빙에 대한 거부감은 없었나요?
처음에는 하지 않으려 그랬지. 무슨 만화 더빙까지 하라고 그러냐 싶었어. 그런데 주최측에서 상당히 간곡하게 요청을 하더라고. 캐릭터가 성격상 나하고 비슷하다, 영화가 아주 좋다, 그러면 한번 보자. 그래서 봤더니 아주 좋아. 특히 요즘 어린이용 만화라는 게 죄다 살벌하고, 삭막하고, 거칠고 좀 그렇더라고. 어린이용 만화는 좀 환상적이어야지. 그래서 어린애들이 그 만화를 보고 꿈을 그릴 수 있어야 돼. 맑고 깨끗하고 고운 정서를 집어넣어야 되는데 거칠고 전투적인 것들이 횡행한단 말이야. 지금도 텔레비전 보면 여러 만화가 나오는데 그림도 이상하고 제대로 된 것이 하나도 없어. 메시지도 없고. 그런데 <업>은 환상적이면서도 사랑이 있고, 교훈적인 메시지가 있단 말이에요. 그런 점에서 대단히 감동적이고 상당히 좋은 영화란 생각이 들어요.
웬만한 실사영화보다도 디테일한 표현력을 구사하기도 하죠.
그럼, 표현이 아주 디테일하잖아요. 대단히 사실적이죠. 내가 우리 학교 아이들에게 그런 얘기를 해요. 이런 만화영화는 봐라. 거기에 연기의 기본이 담겨있다. 2중, 3중 적인 연기의 깊이가 나오지 않더라도 기본적인 연기의 개념은 이 작품에서 충분히 설명이 되고 있다. 표정이라던지, 제스처라던지, 발성이라던지, 이런 부분을 심도 있게 보면서 연기의 기본을 익힐 수 있다는 얘기란 말이에요. 애 표정도 그렇고, 영감 표정도 그렇고, 인형이 나올 뿐이지 사람이 나오는 것과 똑같아. 아주 기본에 충실한 영화란 말이에요.
작년에만 드라마 세 편을 하셨고, <라이프 인 더 씨어터>라는 연극으로 무대에 오르기도 하셨습니다. 아무래도 체력적으로 부담을 느끼신 적은 없으셨나요.
사실 우리 부계 쪽은 (체질이) 좀 약해요. 그런데 다행히도 강한 모계 체질을 타고 나서 내가 우리 어머니한테 감사하고 있지. 매일 같이 하루 동안 해야 할 일정이 과제처럼 나오는데 아직까진 한번도 그 과제들을 빼먹은 적이 없어요. 거의 다 수용했단 말이죠. 오늘 같은 날도 어제 (새벽) 4시에 <굿모닝 프레지던트>촬영이 끝났단 말이에요. 지금 내 파트가 3개 정도 남았는데 내 앞에 임시 파트를 찍고 나서 2시 반부터 촬영을 시작했다가 한 3시 50분 정도에 끝났나. 그런데 내가 오늘 8시에 MBC 골프동호회 때문에 필드에 나가야 된단 말이에요. 약속이 돼 있으니까, 못 가면 안되지. 그래서 거의 못 자고 거기 가서 골프치고 온 다음에 지금 여기에 온 거란 말이지. 그러니까 책임감이 중요해요. 내가 맡은 일은 쓰러지기 전까진 충실히 이양해야 된다고 생각하다 보니까 그렇게 하게 되는 거지.
<굿모닝 프레지던트> 촬영 이야기가 나와서 말이지만 영화도 정말 오랜만이십니다. 2006년도 즈음에 <모두들, 괜찮아요?>와 <파랑주의보>로 오랜만에 영화에 복귀하셨죠. 그 이후로 다시 첫 영화입니다.
70년대 중반까지 하고서 거의 못했으니까 한 20년 동안 공백기가 있었던 거지. 그 다음부턴 한국영화가 내려가기 시작했고 그 이후에 생긴 영화들은 너무 젊은 영화라 우리가 출연하기엔 적절치 않았으니까. 그러니까 한 3~4년 전에 잠시 나와서 한국영화의 현상 변화를 봤더니 너무 많은 변화가 왔다라는 거에요.
아무래도 공백이 길었던 만큼 현장 시스템의 변화를 절실히 체감하시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그럴 정도로 영화계를 떠나 있었던 건 아무래도 환경의 변화에서 기인한 바가 크지 않았나 싶은데요.
70년대 중반 이후로 한국영화가 주저앉아버렸던 거지. 그리고 80년대 들어서 제작되는 작품이 적어지기 시작하면서 그 당시 흥행감독들조차 안되겠다 싶어서 작품 세계를 바꾸면서 자기 변신을 시작하던 때란 말이죠. 그렇게 성공한 케이스가 임권택 감독인데 어쨌든 난 그 무렵이 한국영화의 변혁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 무렵에 상대적으로 텔레비전이 바빠지기 시작하니까 영화 쪽에 신경 쓸 수도 없었고, 이상하지만 그 동안에 프로포즈도 없더라고. 내가 인위적으로 기피한 건 아니야. 그런 조건 때문에 영화에 뜸했던 거지. 게다가 아무래도 테레비 드라마 작업 조건 때문에 스스로 찾아 다니면서 영화를 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고. 그래서 생긴 공백이었다고 생각하면 될 거 같아요. 아무래도 요즘 한국영화가 작품성보단 흥행성에 기준을 두고 제작되고, 그렇기 때문에 젊은 주인공 위주의 영화를 만들게 되니까 나이 먹은 사람들이 낄 수 있는 조건이 아니었던 거지. 물론 TV도 마찬가지지만. 그런데 근래 와서 한 명, 두 명, 나이 먹은 배우들이 제대로 된 평가를 얻게 되니까 점점 참여 폭이 넓어지는데 아무래도 나 역시 이런 일환으로 이번 영화에 참여할 수 있는 게 아닌가 싶어.
최근에 봉준호 감독은 김혜자 씨가 있기 때문에 <마더>가 가능했다고 말했습니다. 아무래도 배우를 존중하는, 그리고 배우의 관록을 제대로 가늠할 수 있는 감독이 있다는 건 고무적인 일이 아니었을까요?
그럼. 그런데 외국에서는 다 그렇잖아. 영화의 영역이 다양하단 말이에요. 그래서 역량 있는 배우들을 가지고 연기 중심의 영화도 만들 수도 있는 거고, 메시지를 만들 수도 있는 거고, 그럴수록 화제가 다양해지니까. 서양에서는 아직도 그런 가치가 공존하고 있단 말이에요. 그런데 우리는 유행하는 소재가 하나 생기면 다 그 쪽으로만 몰려가서 어느 한쪽이 비어버린다고. 그 동안 그래서 나이 먹은 사람들이 낄 수 있는 영역이 없었지. 한 땐 텔레비전도 그랬으니까. 젊은 배우들 고액 출연료를 주다 보니 출연료 문제도 생기고, 그러니까 다른 부분은 다 빼버리게 되는 거에요. 무슨 홀어머니, 아니면 홀아버지, 이런 식으로 구성하는 경향도 생기고. 그런데 요즘 많이 달라진 게 그것만 가지곤 안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현시점에서 나타나기 시작한 것 같아. 요즘 텔레비전에서도 다양한 소재가 생기고 영화에서도 생기고, 이런 것들이 바람직한 현상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 가운데서 우리도 뭔가 진로를 모색해야 되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고요.
미스터리 스릴러 같은 영화에서 노수사관을 연기해보고 싶다는 희망을 피력하셨던 적이 있었죠.
김성종 씨의 미스터리 작품들을 영화로 만들면 어떨까 싶은데, ‘어느 창녀의 죽음’같은 작품에서 나오는 오영수라는 캐릭터가 상당히 재미있단 말이에요. 외국에서도 나이 먹은 배우들이 노련미를 발휘하는 캐릭터로 등장하는 미스터리들이 있잖아요. 그런 경향에서 요즘 젊은 친구들의 다이나믹한 액션도 필요하겠지만 노련한 수사관의 관록을 보여주면서 신구(新舊)가 같이 어울리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재미있지 않을까 싶은데, 과거 불란서에서 장 가방(Jean Gabin)이 알랭 들롱(Alain Delon)과 같이 출연한 갱 영화-<암흑가의 두 사람>(1973)-처럼 말이죠. 관록 있는 배우의 노련미가 관객에게 신뢰를 주고 영화를 버텨나가게 만드는 믿음을 주는 존재가 될 수 있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미스터리라는 게 사실 대단히 과학적이고 계산적인 분야라서 나름 재미있지 않을까 생각하는데 그만큼 쉬운 장르는 아니겠지만 배우로서 한번 해볼만한 재미있는 조건이 아닐까 싶은 거에요.
요즘 각광받는 후배 배우들 가운데 연극 무대 출신 배우가 많습니다.
당연한 건 지금 화술들이 다 엉망진창이라고. 영화도 마찬가지지만 텔레비전에 나오는 젊은 친구들 보면 말이 안 돼. 말을 못해. 말은 못한다는 게 벙어리란 뜻이 아니라 일상용어가 그런대로 통할 뿐 캐릭터가 구축이 안 된다는 말이야. 왕을 하면 왕이 나와야 되는데 왕 같지가 않고 모자라고 바보 같은 왕이 나온단 말이지. 그런데 그 왕들이 그런 왕들이 아니란 말이야. 인물을 표현하고 해석할 땐 이중, 삼중의 깊이를 가지고 표현해야 되는데 단순히 표피의 일면식만 가지고 표현해버린단 말이야. 껍데기만 보인단 말이지. 결국 시늉만 하고 마는 거야. 학예회 수준이라고. 그런 건 누구나 다 해. 변호사면 변호사답게, 젊은 대학생이면 대학생답게, 수준에 어울리는 지적 표현이 나와야 할 텐데 그게 안 된단 말이야. 우리가 드라마를 보면 좋은 조건을 가진 주인공들이 나와서 뭔가 얘기하는데 맨날 지적 표현이 안 되고 있어. 쉽게 얘기하면 깡패나 양아치는 잘 하는데 그 외의 캐릭터는 잘 안 된단 말이야. 본인들도 의식해. 그게 왜 그러냐. 화술이 안되기 때문에. 가장 우선적으로 배우의 필연적 조건은 언어구사력이란 말이야. 그런데 이게 요즘 무시되고 있다고.
아무래도 배우로서의 경험적 내공보다도 자신의 이미지를 돋보이게 할만한 캐릭터에 치중하기 때문이 아닐까요.
그것보다도 그런 사람들을 선발해서 쓰는 조건이 잘못된 거에요. 충분한 훈련을 시켜서 화술을 터득시키고 이만하면 자기표현을 할 수 있겠다는 판단이 설 때 등장시켜야 되는데 이건 초벌구이도 안하고 그냥 나온단 말이야. 과수원에서 과일 따다가 농약도 안 닦고 그냥 내놓는 거란 말이지. 사과 하나를 따더라도 일일이 포장하고 이만하면 먹음직스럽겠다 싶어서 내놨을 때 팔리는 거지, 농약 묻은 거 그냥 따가지고 내놓으면 팔리겠냔 말이야. 우리가 지금 드라마를 그런 식으로 만들고 있는 거야. 사실 우리 젊은 친구들이 좋은 능력과 자질을 가지고 있어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훈련을 안 시킨 거란 말이야. 기초가 취약한 바람에 그렇게 된 거야. 그건 본인들에게도 상당히 안타까운 문제고, 시청자들을 위해서도 상당히 안타까운 일이지.
대학교 강단에도 서고 계신다고 들었습니다.
내 수업시간은 일주일에 하루 4시간이에요. 단지 내가 그것만 하려면 학교 나가는 의미가 없어요. 그걸로는 가르칠 수 있는 게 없다고. 그래서 내가 너희들이 정 필요하다면 내 시간을 할애하마, 그렇게 한 7년 전부터 워크샵을 시작한 거야. 한 학기 동안 레퍼토리를 준비해서 석 달 동안 매일 연습합니다. 저녁 10시부터 밤 11시까지. 일단 화술부터 진행해. 말부터 시작하는 거야. 내가 절실히 느끼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석 달을 매일 연습한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완성도가 6~70% 밖에 안 돼. 그 때 말하지. 봐라, 연기란 게 이렇게 어려운 거란 말이야. 너희들 TV보고 그게 연기의 다라고 생각하면 안 돼. 이번엔 다시 학부 3학년들을 데리고 똑 같은 작업을 가을에 해야 돼요. 그걸 7년째 하고 있다고.
학생들이 힘들어하진 않나요. 일단 선생님도 힘든 일이 아닐까 싶은데요.
나한테도 그래. “괜히 고생해서 할 필요 없지 않냐.” 사실 나도 월급이라고 주는 거 별거 없거든. 그런데 일주일에 하루 4시간은 아무 의미가 없어. 소위 연기를 하려는 애들에게 보탬이 되지 않아. 내 양심에 비췄을 때는 그래. 내가 비는 시간은 매일 나가요. 그럼 일주일에 4~5번은 나가게 된다고. 최소한 3번 정도는 나간단 말이야. 내 작업 끝내고 밤 늦게라도 가니까. 사실 이 아이들도 일주일에 내 강의는 4시간만 때우면 되는데 매일같이 나와요. 그게 보통 힘든 게 아니란 말이야. 옆에서 그러지. “저녁에 놀기도 해야지. 괜히 시간 아깝게 이럴 필요 없지 않냐.” 그런데 그게 아니라는 거야. 재미있는 건 석 달 동안 한 명도 빠지지 않는다는 거. 한 명도 안 빠져. 자기들이 부족하다고 느끼면 밤 새면서 같이 작업하는 거야. 이게 지금 7년째 내려오는 거야. 그러니까 2학년이 들어오면 나한테 하는 첫 인사가 이거야. ‘3학년 될 때까지 계실 겁니까’ 물어보는 거야. 왜? 지네 선배들한테 듣는 게 다 있거든. 그렇게 해야 연기를 좀 터득할 수 있는 거에요.
연기에 대한 기술적 지도와 함께 연기에 접근하는 자세를 함께 수업한다 말해도 될 것 같습니다.
연출자들은 어떤 식으로라도 얘기를 해줘야 되는데 화술이 되지 않기 때문에 자기가 직접 구체적으로 표현할 수가 없잖아요. 그런데 새가 모이를 물어다 먹이듯 초보자들에게 직접적으로 설명이 필요한 방송이 있어요. 그걸 바탕으로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거란 말이죠. 그런데 그 기본이 안되면 창의력도 발휘될 수 없어요. 배우가 되겠단 아이들이 대사는 못하면서 괜히 춤추고 노래만 한단 말이야. 희곡이나 영화에서 지적이고 철학적인 캐릭터나 대단히 높은 수준의 인격체가 될 땐 대사만으로 그 캐릭터가 나와줘야 되는데 지금 이런 식으로 어떻게 그런 캐릭터가 나오겠냔 말이야. 그걸 석 달 동안 훈련하는 거야. 내 방식이 다 정확한 건 아니겠지만 적어도 내가 배우니까 비슷하게는 가르칠 수 있단 말이지.
그래도 칭찬해주고 싶은 후배 배우분들도 있을 것 같습니다.
좋은 후배들 많지. 용모나 자질은 다 훌륭해. 다만 좀 더 구체적인 훈련을 더해서 연기에 대한 개념을 이해시키고 말하는 법, 표정 쓰는 법, 동선, 이런 것도 터득시켰으면 하는 거지. 이런 걸 뛰어넘는 게 문제라는 거에요. 한 6개월만 가르쳐도 좋은 재목이 될 거라고 생각하는데, 그러니 그네들 문제가 아냐. 사용하는 사람들이 문제인 거지. 그러다 보니 그 좋은 소재를 가지고도 제대로 꽃피우지 못하고 한 두 작품 하다가 안타깝게 밀려나는 거란 말이야. 좋은 배우들은 많지. 여자 같은 경우는 여럿이 있지만 예를 들어서 고두심, 김해숙, 김영애, 이런 일련의 배우들, 김혜자는 더 말할 것도 없고. 더 아래로 내려오면 김희애, 그리고 하희라, 이런 애들, 아주 야무지게 잘한단 말이야. 제대로 연기를 해요. 남자들도 마찬가지고. <베토벤 바이러스>를 같이 했지만 김명민 같은 경우 캐릭터를 대단히 깊게 연구하고 만들어냅디다. 자세도 진지해. 그런 배우들이 좋은 배우가 되는 거야. 평생 연기할 수 있는 배우가 되는 거란 말이지. 단순히 돈 버는 스타의 개념하곤 다른 거야.
톱스타의 위치를 점하면서 좀처럼 작품 활동을 하지 않는 배우들이 눈에 띄는 건 사실이죠.
연예인도 수익이라는 걸 무시할 수 없으니까 이것 저것 다 하긴 해야 되는데, 저게 배우인지 연예인인지, 모델인지 구별이 안 되는 사람이 많아. 배우는 아무래도 텔레비전이든, 영화든, 연극을 하든, 출연해서 연기를 함으로써 그 진가가 나오는 거지. 광고만 하면 그 진가를 발휘할 수 없단 말이지. 적절하게 돈 버는 것도 중요하지만 적절한 시기에 제 연기력을 지속시키기 위해서라도 작품에 출연했으면 하는데 왜들 출연도 안 하는지 그 이유를 잘 모르겠단 말이야. 결국 그러다가 어느 정도 나이가 들고 한 40대쯤 되면 그 동안 쌓아왔던 게 다 없어져버리는데.
<업>처럼 좋은 애니메이션이 나올 수 있는 건 모든 과정을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아무래도 우리 사회에 결과가 중시되고 과정이 간과되는 현상이 강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특별한 결과를 쫓아가면서도 과정을 무시하는 풍토가 그런 면에서도 영향을 미치는 것 같고요.
지금 우리에게 가장 부족한 부분이 그거야. 우리는 탁월한 자질을 가진 민족이야. 개체적으로 대단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우리나라 똑똑하지. 능력 있고 잠재력이 있어. 스포츠뿐만 아니라 각 분야에서도 대체적으로 걸출하잖아요. 삼성을 일부로 띄우는 건 아니고 산업적인 측면에서 삼성의 기술력은 확실히 세계적인 거 아니오. 이렇게 훌륭한 우리 능력을 극대화시킬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야 되는데 거기에 정치가 뒷받침을 해줘야 된다고. 사실 그 동안 목표만 향해서 뛰다 보니까 그냥 지나친 데가 많단 말이야. 기본이 약해졌다 이거지. 이젠 그런 걸 착실하게 다져나가잔 얘기야. 그런 바탕을 다시 다지는 거지. 과거 우리 때는 여러 가지로 분배의 문제가 있었단 말이야. 분배가 충분치 못하기 때문에 요령을 써서 뒷거래를 한다거나 해서 그걸 채워 넣으려 했거든. 그래도 지금은 차이가 느껴진다 해도 대체적으로 잘 나온단 말이야. 그러니 이젠 차분하게 하나씩 인성 같은 부분을 잘 다져서 어디 내놔도 손색이 없는 선진국형 인격체로 발전할 수 있도록 해야 되지 않겠나. 늘 우리 대학생들한테도 얘기하는데 ‘너희들 시집, 장가 가면 애들 잘 키워라. 인성을 바탕으로 해서 제대로 키워라. 어른 보면 인사 꼬박꼬박 잘 하는 아이들, 사회 질서 잘 지키는 아이들, 선생님 말씀 잘 듣는 아이들로 키워라’ 어려서부터 잘 가르쳐야 된단 말이죠.
교육에 대한 문제도 항상 개선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사실 교육이란 게 사회 발전의 잠재력을 가늠해볼 수 있는 지표가 아닐까 생각하는데 우리나라에서의 교육적 가치관은 지나치게 중심을 잡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교육이라는 건 학교와 가정이 일치가 돼야지, 학교 따로, 가정 따로 하면 안 돼요. 학교 선생한테 가서 애 벌 세운다고 따지고, 이딴 짓 하지 말란 말이야. 선생이 애를 특별히 미워하지 않는 이상, 그건 참견하는 소리나 다름없지. 어디 선생님 귓방망이 때리고 발로 걷어차고, 그딴 놈이 어디 있냔 말이야. 그런 놈이 사회에 나와서 뭐가 되겠어. 가까운 나라에선 다 그렇게 하고 있잖아. 일본 같은 곳도 백 년의 교육적 가치관이 전혀 변하지 않고 있다고. 옳다고 생각하니까. 우리는 이놈의 입시교육으로 집약돼서 나머지 교육은 지나치게 무시되고 있어요. 얼마 전에 교육부 장관을 만나서 이런 얘기를 했다고. 대학 가는 것 못지 않게 중요한 게 기본 인성교육이다. 3살, 4살짜리 유아들의 인성교육부터 문제가 있다. 그러니 유치원부터 제대로 교육을 시켜서 초등학교로 가자 이거야. 이런 것도 관심을 좀 가지라고.
예전에 국회의원으로 의정활동도 하셨습니다. 요즘 시국이 어지러운데,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안타깝지. 지금 나뿐만 아니라 우리 국민 전체가 하나의 문제점을 느끼고 있단 말이에요. 과연 국회가 저렇게 극단적인 두 개의 평행선으로 달려야 되는 건가. 한국의 정치 현실이 그런 건가. 지금 우리의 위상이 그 정도 밖에 안되나. 안타깝기 그지없단 말이에요. 중요한 부분은 뭐냐. 어쨌던 간에 우리가 사는 터전은 대한민국이고, 정치의 궁극적인 몫은 대한민국의 번영과 대한민국 국민의 복지라고. 난 그 가치관엔 여야가 없어야 한다고 생각한단 말이야. 방식의 차이는 있을지 모르지만 궁극적인 목표는 같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그 조건을 두고 왜 타협을 못하고 조정이 안되냔 말이야. 왜 무조건 상대한테 반대만 하려 하고, 왜 무조건 밀고 나가야 되느냔 말이야. 이젠 그 놈의 정치가 좀 선진화돼야 될 거 아니야. 과거엔 국민들이 정치 수준을 못 따라간다고 판단했지만 지금은 정치가 우리 수준을 못 따라오는 거 같아요. 이런 부분에서 심각한 자기 반성을 해야 된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아무래도 정치권과 국민들과의 소통이 좀처럼 이뤄지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몇 가지 정책들이 논쟁 사항이 되고 있습니다.
정책이라는 걸 오픈해서 같이 검토하자는 거야. 지금 문제가 되고 있지만 비정규직법이나, 미디어법이라던가, 4대강 문제라던지, 그게 대체 어떤 문제가 있는지 따져보고 구체적으로 까보자는 거야. 국민들한테 구체적으로 설득을 해보라 이거야. 어느 한쪽의 논리만 주장할 수 없는 거 아냐. 상호간의 장단점이 다 있을 테니까. 국민을 설득하도록 만들자 이거야. 그렇게 가야지, 무조건 된다, 안 된다, 이게 뭐냔 말이야. 그러니까 이건 소위 A라는 시스템이 집권했을 때 어느 정도 이룬 발전이 있다면 그 다음에 정치 입장이 다른 B라는 시스템이 집권한다 해도 그 바탕에서부터 시작할 수 있어야 하는 건데, 이게 도로아미타불이라고. 죄다 엎어버리면 맨날 제로섬에서 시작된단 말이야. 이건 국가발전에 상당한 문제가 있는 거지.
아무래도 사회가 발전하는 것과 반대로 정치는 더욱 퇴보하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오히려 정치가 우리 사회 발전에 상당한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이젠 우리끼리 싸울 때가 아니란 말이야. 이젠 어느 정도 민주화를 이뤘어. 그럼 시야를 돌려서 밖으로 평정을 해나가야 될 시기란 말이야. 그러려면 인위적으로 어느 한쪽으로 몰고 가자는 게 아니라 우리가 가진 다양한 역량 가운데 좋은 역량들을 결속하고 합의해서 다 같이 일률적으로 밀고 나가야 될 거 아니야. 거기에 정치가 뒷받침을 해줘야 될 텐데 뭐 하는 짓거리냐 이거야. 그것도 집권을 안 해봤으면 그렇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다 집권해 봤잖아. 이제 정권교체도 가능해졌단 말이야. 그런 의미에서 믿고 맡길 수 있는 정책 개발을 하고 믿음직한 모습을 보이라고 국민들이 선택한 거지,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다, 그럼 어떻게 하자는 거야. 국민들이 선택할 가치가 없어지고, 목표가 없어졌다면 이건 대단히 한심한 얘기가 돼버린 거란 말이야. 그러니 이제 정치가 좀 선진 수준으로 가야 하지 않겠냔 말이지.
한예종 사태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사실 한예종 사태에 대해서는 내가 내용을 잘 몰라서 큰 관심을 두진 않았는데 아무래도 정부 차원의 자체적인 판단이 문제가 된 거지. 일단 나도 정치라는 게 그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 중의 하나야. 그런데 그것도 사실 과거 정권에서 코드 정책으로 싹 입수해버린 결과의 후유증 가운데 하나라고. 앞의 정권에서 한 일도 따져야 한다 이거야. 과거 보수 언론에서도 문제를 지적했지만 한예종도 그렇고, 영화진흥위원회도 그렇고, 그게 예전에 잘 됐다면 누가 뭐라고 말 못한다고. 그런데 결국은 부실하단 말이지. 그러면 이제 새로운 정권에서 문제를 따진단 말이야.
경험적으로 느끼신 바라도 있나요?
내가 중랑구에서 문화원장을 할 때 얘기를 좀 해보자면 그 당시 구청장이나 위원들은 다 내 반대쪽이었어요. 내가 중랑구에서 아직까지 사회복지회 회장을 하면서 이 지역의 복지시스템을 총괄하고 있었지만 나를 필요로 하지 않았고, 하는 것도 싫어해. 특히 이상수 (국회의원) 같은 사람은 내가 정치를 더 이상 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내가 얼씬거리는 것도 싫어한 사람이야. 내가 지역 도내이션(donation)으로 임기를 유지하면서 그때까지 5년을 하고 있었다고. 그러니까 구청장은 어쩔 수 없이 날 모신다고 생각했던 거지. 그래서 내가 성을 냈어. "염려하지 마라. 내가 이걸로 정치영향력을 생각할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다. 그러니 걱정하지 마라." 그랬지만 이미 내부적인 실무 인선은 자기 식구로 만들어 놨어. 사무국장부터 말단직원까지 자기 식구들로 다 박아놨다고. 나만 외톨이야. 그런데 내가 5년 동안 이 친구들하고 일하다 보니 이 친구들이 결국 나한테 다 동화되더란 거야. 그런데 구청장이 다시 내 쪽으로 바뀌었단 말이야. 그러니까 이젠 이 친구들이 내 쪽에서 눈에 가시처럼 보이니까 또 다시 쫓아내려고 하는 거야. 내 아래 사무국장이 우리 쪽이 아니라고 쫓아내려고 드는 거지. 그래서 내가 동반으로 관뒀다고. 왜냐. 이 사람 열심히 했다 이거야. 나하고 정치 입장이 다르지만 열심히 하면 내가 분명히 알아줘야지. 내 밑에서 사명을 가지고 열심히 했는데 이제 우리 쪽에서 자기네 식구를 동원해야 한다고 싫어하는 거야. 새로 온 구의원 놈들이 뻣뻣하게 군다고 싫어하는 거야. 그래서 결국 씹어서 갈아버린단 말이야. 그래서 내가 ‘왜 갈았냐?’ 그랬더니 어쩌고, 저쩌고, 뭐라 그래. 그래서 “내가 5년을 데리고 있던 사람인데 그 사람한테 문제가 있으면 나한테도 문제가 있는 거다. 그러니 나도 관두겠다.” 이러고 나와버렸지. 나는 내 돈으로 밥 먹고, 내 교통비 가지고 다녔지, 거기서 판공비 백원 한 장 쓴 사람이 아니야. 이렇게 운영하는 나한테 하자가 없는데 왜 내가 5년을 데리고 있었던 사람에게 문제가 있다고 자르냔 말이야. 사무국장에게만 책임을 지우고 왜 나만 1년 더 하느냐고, 할 수 없다고 동반 사퇴했어. 그러니 지들이 깜짝 놀라지. 그럴 줄은 몰랐으니까. 오히려 내가 오냐, 그렇게 해라. 그럴 줄 알았지. 양심이라는 게 있는데 말이야.
아무래도 실무적인 인사에 대한 개념 자체가 자리잡지 못하고 정치적 파워가 모든 구조를 좌우해버린다는 게 가장 큰 문제가 아닐까 싶습니다.
내 스스로가 코드 인사로 참여했다고 생각되면 정권이 바뀔 때 그냥 나와야 되는 거야. 임기가 있다고 억지를 부리고 앉아있으면 안돼. 자기 역량을 잘 판단해서 자리를 잡아야 된단 말이야. 과연 내가 여기서 적임자인가. 내가 지금 여기 순수하게 능력으로 들어온 것 같나. 만약 코드 인사로 들어왔다 싶으면 정권이 바뀌고 나서 스스로 물러나는 게 그 이전 정권하고 신의를 지키는 거지. 너는 나가도 나는 결단코 고수해야겠다. 이런 매너라면 좀 촌스럽다는 거야. 난 거기서부터 후유증이 나온다고 본다고. 새로 올라온 놈들은 바꾸고 싶지. 말 안 들으니까. 내각이 바뀌는 거나 마찬가지라고. 임기제를 무시하고 강요하는 것도 문제가 있지만 정권이 바뀌어서 코드가 안 맞은 사람이라면 그냥 나와야지. 그런 원칙이나 양식이 있으면 별 문제가 없다고. 지금 우리가 그 부분에선 정리가 안 된다는 건 소위 테크니컬(technical)한 실무진이 딱 정확하게 자리를 잡지 못했다는 거야. 내가 볼 땐 윗대가리들이 갈려도 실무진은 그대로 있어야 된다는 거지. 그런 시스템으로 빨리 발전해야 된다고. 그러려면 적재적소에 인재를 쓰는 기준이 생겨야 되는 거야.
구체적으로 어떤 방안을 생각해보신 적 있으십니까?
내가 늘 얘기하는 거라고. 저번에도 경기도에서 고위공무원 특강을 해달라 해서 그때 이런 얘길 했어. ‘삼국지’만 읽어봐도 거기 다 나와있다. 리더가 되려면 우선 용기가 있어야 된다. 그 다음에 지혜가 있어야 된다. 그 위에 필요한 게 덕이다. 사람을 알아보는 안목이 있어야 된다 이거야. 그리고 그걸 다 갖춘 뒤엔 운이 따라줘야 된다 이거야. 삼국지를 보면 다 나오잖아. 유비가 말이야. 자기를 죽이려던 적장이 붙들려와도 명장이면 잘 모시고 다스려서 자기 사람 만들잖아. 결국 그 사람이 평생을 같이 하고. 이게 치덕이라 이거야. 정치 논리? 전문적으로 공부하거나 박사 논문을 써도 그 이상의 답이 없다고. 제갈공명이 젊은 선비인데 일국의 지도자가 삼고초려를 하잖아. 우리 같으면 와라, 가라, 할 텐데 삼고초려를 해서 그 사람을 모신다 이거지. 이게 인재등용의 안목이라 이거야. 자기보다 더 나은 사람을 자꾸 모신다고. 그 사람이 칼싸움도 못하고, 공부도 못하지만 그 덕이 그 사람을 중심으로 만드는 거야. 수호지도 마찬가지지. 송강은 조그마한 글방 선생이라고. 그런데 그 밑에 백팔호걸이 모이는 것도 덕으로 인재들을 끌어안은 거란 말이야. 옳은 일을 해서 나가는 거란 말이지. 원칙이 있어야 된다 이거야.
아무래도 사람의 문제가 아닐까 싶습니다. 결국 그런 원칙을 얼마나 잘 뿌리내리느냐가 중요할 테니까요.
내가 생각하기에 우리나라에서 국회의원뿐만 아니라 공직을 제대로 하려면 우선 당분간은 개인의 행복권을 포기해야 돼. 행복 누리고, 권세 누리고, 이런 모든 걸 포기하고 오로지 내 사명감과 애국심으로 국가에 봉사하고 자기를 희생해야지. 그렇게 국민을 감동시켜라 이거야. 그런데 불행하게도 우리 역대 대통령 가운데서도 단 한 명도 국민을 감동시킨 대통령이 없어. 노무현도 마찬가지라고. 51%로 당선됐지만 49%의 반대가 있다면 이게 절대적인 반대야. 편을 가르면 이게 평생 반대가 된다고. 그래서 고생을 한 거야. 그 중에서 10%라도 내 편으로 끌어들여야 했다는 거야. 대통령이 되면 나를 격렬히 반대한 놈도 국민의 하나라고 생각하고 이런 안목에서 접근해야 된다 이거야. 지금도 그걸 못하고 있잖아.
지금 <굿모닝 프레지던트>를 촬영 중이고, 가을 즈음에 <거침없이 하이킥 시즌2>도 시작할거라고 들었습니다. 올해도 계속 바쁘시겠네요.
그리고 아마 겨울에는 작년에 찍으려다 못 찍었던 <그대를 사랑합니다>, 그거 들어가야 돼. 그것 때문에 내가 SBS프로그램도 하나 포기했거든요. 9월 초에 시트콤도 시작할 거고. 그렇게 두 작품을 하게 되면 거의 풀(full)로 뛰어야 돼. 그러면서도 이제 저녁에 비는 시간엔 학생들과 씨름해야지. 쉴 시간이 없어.
처음 <거침없이 하이킥>으로 시트콤에 출연하기로 결정했던 경험이 어쩌면 오랜 연기 인생에 있어서 파격적인 결심이 아니었을까 싶은데요. 어쩌면 이번에 애니메이션인 <업>의 더빙을 결정한 것도 파격적이라 느껴질 만한 선택이 아니었을까요?
이번에 했던 고민은 먼저 거하곤 또 다른 거란 말이에요. 구성도 다르고, 인물도 달라지는데 아직 구체적으로 작품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나중에 대본을 봐야 되겠지만 이전 것과는 달라져야 된단 말이야. 그걸 연구하고 있는 거니까. 시트콤이라는 게 아무래도 외형적 설정도 필요하고, 순수한 드라마와 달라요. 나중에 감독과 구체적인 상의를 해야겠지만 그런 부분에서 어떻게 외형의 변모를 가져올 것인지 고민이고, 결국 새로운 캐릭터를 만들어내야 된단 말이야. 아무래도 잘못 표현하면 먼저 작품과 비슷해지지 않을까 걱정되는데 그래서 되도록 예전과 달리 표현해야 되겠다는 생각부터 들어요.
작가에 대한 믿음이 있기 때문에 다시 한번 작품을 선택할 수 있었던 게 아닐까요.
작가나 연출가, 시스템에 대한 믿음이 있는 거에요. 그 동안에 그 사람들의 업적이 있고, 내가 <하이킥>을 하면서 충분히 상업적 코미디를 잘 만들 수 있는 시스템이라고 느꼈다. 그러니까 전적으로 내가 믿는 거지.
이제 연세가 고희(古稀)를 넘기셨는데 아직도 연기자로서 어떤 꿈을 꾸시나요?
지금은 아직까지 날 필요로 하고 있으니까, 필요로 한다면 그 필요에 응할 수 있도록 준비를 하고 맞춰나가야지. 그래서 아직은 쉬고 싶다는 생각은 하지 않고 있어. 해야 될 과제들이 자꾸 있으니까. 다만 나이 먹었으니까 이제 앞날을 장담은 못하지만 지금 내 컨디션으로 봤을 때 아직은 감당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어. 우리 나이가 되면 문제가 되는 게 대사 암기력이 급격히 떨어지기도 하고, 점점 이제 신호가 오는 거야. 녹화현장에 가서도 똑 같은 곳에서 4~5번 NG를 낸다거나 이러면 곤란하구나 싶어지겠지. 연극을 2시간씩 끌고 나갈 때, 혹시 이 대목을 다시 봐야 되나, 이런 위기를 느끼면 이제 관둬야 되는 거야. 그 전까진 필요하면 계속할 생각이야.
‘스토리 슈퍼바이저’의 역할을 구체적으로 설명해달라.
한 시간 반이라는 한정된 시간 안에서 방대한 스토리를 영화적으로 제대로 구성하기 위해 항상 디렉터와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스토리를 슈퍼바이징(supervising)하는 것, 즉 말 그대로 전체적인 스토리를 관리해나가는 게 슈퍼바이저다.
작년에 서울에서 ‘픽사 20주년 기념전’이 열렸다. 그곳에서 방대한 스토리보드를 봤던 기억이 나는데 다양한 모델링을 바탕으로 만들어낸 데이터를 하나의 결과로 유출한다는 게 흥미로웠다. 즐기지 않고서야 불가능하다고 생각될 정도로 대단한 작업이었다.
(웃음) 물론 DVD에 추가된 영상을 보면 실제로 게임도 하고 노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런 모습조차도 진지한(serious) 작업의 일환이다. 모든 사람들이 사실성이 담긴 현실적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서 노력한다. 재미있는 그림을 그리는 와중에도 쉴새 없이 아이디어를 던지고 끊임없이 캐릭터 디자인이나 스토리에 수정을 가한다. 애니메이터인 동시에 스토리텔러로서 활약한다. 디자인, 스토리, 등 모든 과정의 가능성을 열어놓는 것이 픽사의 작업 방식이다.
러셀의 모델이 <업>에 앞서 상영된 단편 <구름조금>의 디렉터인 ‘피터 손’이라고 들었다.
실제 러셀의 모델은 2명이다. 첫 번째는 내 이웃에 살고 있는 소년인데 실제로 보이 스카우트 소속이며 그 소년의 활발한 모습이 러셀의 모티브가 됐다. 또 한 명의 모델은 방금 말했던 ‘피터 손’이다. 그는 굉장히 유쾌한 동료라서 러셀의 성격에 많은 영향을 줬다. 실제로 외모도 굉장히 흡사하다. (웃음) 보다시피 러셀에게선 동양인 소년의 느낌이 많이 난다. 아시아적 요소가 투영된 할리우드 메이저 영화가 좋은 영화로 탄생하게 됐다는 점에서 한 명의 아시아 인으로서 굉장한 자부심을 느낀다.
근래에 픽사에서 만든 작품들을 보면 노골적인 코미디를 자제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슬랩스틱이나 입담을 통해 끊임없이 코미디를 구사하는 드림웍스와 확연한 차별점이 나타난다.
코믹한 요소들을 많이 첨가해서 사람들을 재미있게 만들 수도 있다. 하지만 과거 디즈니는 개그적인 요소를 남발하면서 사람들을 웃기기만 할 뿐 심정적으로 영향을 주지 못했다. 그런 부분을 방지하고자 항상 스토리를 벗어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개그적인 요소를 추가하고 그 가운데서 부가적으로 엔터테인먼트를 발생시키는 스토리를 구상해 나가고자 한다.
픽사는 항상 작품의 중심을 이야기라고 강조해왔다. 그만큼 스토리 슈퍼바이저를 맡고 있는 당신이 픽사의 중책을 담당하는 인물 가운데 한 명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 같다. 픽사에서 이야기를 담당한다는 것이 당신에게 어떤 의미인가?
픽사에서 스토리 슈퍼바이저로 일하는 걸 큰 행운이라고 느낀다. 나는 필리핀 출신인데 어렸을 때 글쓰기에 대한 사전 교육을 받은 경험이 없었다. 그저 TV나 영화로 이야기를 보는 게 전부였다. 29살 때 미국으로 이주했을 때도 직업이 없었고 애니메이션을 할 수 있을 거란 생각도 못했다. 하지만 어쩌다 보니 몇 년 뒤에 픽사에 있게 됐다. 내겐 큰 행운이었다고 생각한다. ‘존 라세터’나 ‘피트 닥터’, ‘앤드류 스탠든’ 같은 픽사의 애니메이터 겸 스토리텔러들이 내 작업을 인정해주고 존중해주면서 받아들이고 있다는 점에 대해서 굉장히 큰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
당신의 개인 홈페이지에서 당신이 직접 그린 캐릭터 ‘Nina’를 봤다. 단지 스토리 슈퍼바이저이기 이전에 캐릭터 디자이너로서의 능력이 돋보였다.
스토리 슈퍼바이저로 일하기 전에 프로덕션 디자이너, 캐릭터 디자이너로서 작업을 해왔다. 스토리 슈퍼바이저란 단순히 스토리만 다루는 게 아니라 전체적인 제작과정이나 캐릭터 디자인도 관리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예전에 내가 가진 경력들이 현재 스토리 슈퍼바이저로 일하는데 있어서도 많은 도움이 된다.
픽사는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인 창작 조직이다. 그만큼 개별적인 분야의 전문가들의 의견을 조합하고 조율하는 과정이 중요할 것 같다.
많은 전문가가 모여있다 보니까 혼란스런 부분도 있지만 디렉터가 스토리텔러로서 작업을 이끌어 간다는 점은 분명하다. 각자의 의견이 일어나는 걸 막지 않는다는 건 그만큼 많은 가능성을 수렴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는 부분이다. 그렇지만 많은 목소리가 일어나서 혼란스러울 수도 있는 법이다. 그렇기 때문에 항상 최종적인 결정권이 감독에게 있다는 건 중요하다. 감독의 결정 이후로 모든 언쟁들은 종료가 되고 그 결정에 맞춰서 작업이 진행된다.
<업>은 픽사 최초의 3D애니메이션이다. 3D는 새로운 시각적 자극을 제공한다. 그런 시각적 자극의 강도가 높아질수록 이야기의 역할이 보다 중요해지는 게 아닐까.
일단 절대적인 대원칙은 스토리가 우선돼야 한다는 점이다. 3D가 시각적으로 강렬한 인상을 주기 때문에 그에 압도돼서 스토리 자체를 간과할 수도 있을 거다. 하지만 그건 픽사에서 추구하는 방식이 아니다. 3D나 뭐가 됐던 간에 스토리가 제1의 전제조건이란 점은 변화가 없을 것이다.
당신이 추구하는 스토리의 방향은 어떤 것인가?
나는 사람들에게 감정적으로 영향을 줄 수 있는 스토리를 만들고 싶다. 특히 <업>에서는 칼과 러셀을 통해 세대간의 갈등을 극복하고 화합하는 과정을 그리고 싶었고 결국 주변의 모든 사람끼리 서로 돕고 살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다.
<업>의 스토리는 어디서 시작된 것인가?
아내와의 사별 후 홀로 남겨진 노인이 남은 인생의 방향을 선택한다는 설정에서 스토리를 만들어나갔다. 홀로 조용히 남은 인생을 정리할 것인지, 어린 시절부터 간직해왔던 꿈을 이룰 것인지, 이에 대한 고민을 하는 노인의 심리로부터 만들어진 스토리라고 볼 수 있다.
근래 픽사의 작품들이 선사하는 스토리는 로맨틱하다. 그런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비결이라도 있나? (웃음)
특별한 비결 같은 건 없다. (웃음) 다만 이야기가 진행될 때마다 필요한 요소를 첨가할 뿐이다. 요리사가 사랑한다는 <라따뚜이>같은 경우나 로봇이 운명적인 사랑을 기다리는 <월-E>, 그리고 운명적인 존재와 사별한 노인이 등장하는 <업>처럼, 다양한 옵션들이 존재한다. 그게 픽사만의 특별한 방식이라 말할 수 있는 건 아닐 거다. 스토리 전개상 필요하겠다 싶은 옵션들을 삽입하는 형태로 그런 이야기들을 만들어 나간 것뿐이다.
<업>의 초반부 무성 시퀀스가 인상적이었다. 클래식한 무성 영화를 보는 느낌이랄까. 픽사의 작품들이 종종 고전영화적인 장면들을 연출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영화적인 요소들을 삽입하는 것 역시 픽사의 특별한 방침은 아니다. 단지 이야기에서 필요로 하는 방식일 때 삽입이 요구된다. <업>의 초반부에서 칼과 엘리 커플의 역사를 설명하는 장면은 칼의 지난 인생들을 설명하기 위한 필요에 의해 삽입된 거다. 영화적인 방식이 픽사의 고유한 요소는 아니다. 단지 필요에 따라 삽입될 뿐이다.
픽사의 작업엔 언제부터 참여했나?
2004년이 처음이었다. 그때 시작했던 작품이 <카>였고, <라따뚜이>, <월-E>, 그리고 <업>까지 차례로 참여하게 됐다.
‘라이팅 슈퍼바이저(lighting supervisor)’라면 조명 감독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 역할에 대해 설명해달라.
‘라이팅 디렉터(director)’는 간단히 말해서 무대장치를 가상의 온라인 공간에 설치하는 일이다. 영화제작의 마지막 단계에 실시되며 영화의 스토리와 색감 등을 가장 마지막으로 꾸며주는 단계라고 생각하면 된다.
이번에 라니(Ronnie Del Carmen) 씨와 함께 국내 컨퍼런스에 참여해서 강의도 했다고 하던데.
이번 세미나의 컨셉이 ‘비주얼(visual) 스토리텔링’이었기 때문에 이에 포커스를 맞출 수 있는 주제가 무엇일지 고민했다. 내가 ‘라이팅 디파트먼트(department)’에 있으니까 라이팅을 먼저 강의하고, ‘레이아웃(ray-out)’에 대한 강의를 병행했다. 카메라로 어떻게 프레임을 잡고, 어떻게 찍을 것인지 결정하는 게 일단 중요하지만 날씨에 따라서 프레임을 바꿔야 되는 경우도 있다. 그만큼 라이팅과 레이아웃이 상호협력적인 관계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어떤 식으로 카메라 렌즈를 고르고, 장면에 따라서 어떤 식으로 카메라가 움직이고, 그에 따라 어떻게 프레임을 할 것인지, 그리고 그 프레임 안에서 어떻게 캐릭터가 움직일 것이지, 이 모든 것들이 스토리텔링과 직접적인 관련을 짓고 있다. 그런 모든 요소를 통해 복선과 암시를 주면서 스토리를 강화시키는 거다.
구체적인 방법에 대해서 예를 든다면?
일단 칼라가 주는 상징성이 있다. 예를 들어서 <업>의 엘리 같은 경우 엘리의 색깔이 있다. 엘리가 나올 때마다 무의식적으로 핑크가 나온다. 처음에 칼과 엘리의 결혼식 장면에서도 핑크가 보인다. 나중에 병원에서도 핑크고, 자세히 보면 원피스도, 헤어 밴드도 핑크색이다. 나중에 엘리가 죽은 후에 칼이 혼자서 쓸쓸하게 돌아갈 때 집 창문에 저녁 노을이 핑크 색으로 비치는데 칼이 문을 닫고 들어갈 때 핑크빛이 사라진다. 엘리가 죽어서 결국 칼의 생활에서 없어졌다는 의미다. 칼의 피부만 봐도 처음에 엘리가 떠나고 혼자 고립된 생활을 할 때는 저채도의 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에 회색에 가깝다. 그런데 나중에 모험을 마친 칼의 피부색을 보면 생기가 넘치는 핑크색이다. 그러니까 사실 <업>은 라이팅과 레이아웃으로 스토리를 어떻게 강화시킬 수 있을지 많은 계산이 들어가고 상당한 연구가 이뤄진 작품이다.
CG애니메이션에서 조명의 역할이란 무엇인가.
나도 그런 질문을 많이 받는다. 컴퓨터에서의 조명은 무엇일까. 사실 실사랑 똑같다. 실사에서 영화 찍을 때 무대 장치에 무대 세트 조명이 없으면 정말 깜깜하지 않나. 그러다가 스포트라이트가 하나 생기면 거기서부터 점점 화면이 구성된다. 컴퓨터에서도 조명이 없으면 실사처럼 컴컴한 화면이 된다. 예를 들어서 이 카페를 컴퓨터에서 만든다고 생각하면 컵 하나씩 모델링을 다 만든 뒤에 조명도 하나하나 다 만든다. 다만 실사와 다른 건 실사에서는 하나하나를 모두 만들어야 되기 때문에 시간이 많이 걸리지만 우리는 하나만 만들고 나머지를 커트하면 된다. 그래서 천 개, 백 개, 금방 만들 수가 있다. 하지만 그런 테크닉이 다를 뿐 우리가 하는 것은 실제 영화와 마찬가지로 스토리텔링을 위한 목적이란 점에선 변함이 없다. 다만 하이 테크닉을 사용하는 것뿐이다.
<업>을 비롯한 픽사의 애니메이션을 보면 기계적 질감의 색채라기 보단 좀 더 회화적인 느낌이 난다.
일단 디렉터가 이번 영화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컨셉이 이거라고 설명하면 프랙티컬(practical)한 작업 이전에 ‘디오라마(diorama)’를 이용해 전체적인 테스트를 해본다.
<업>에서 라이팅 파트에서 고려한 것은 무엇인가?
<업>같은 경우, 피트 닥터가 2006년에 라이팅 분야 전체에게 이메일을 보내서 자기가 어떤 라이팅 컨셉을 하고 싶은지 말했다. 그 중 하나가 복잡한 장면을 심플리케이션(simplaication)하게 만들어서 캐릭터가 돋보이게 하는 것인데 그 장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라이팅으로 보여주는 거다. 예를 들어서 지금 인터뷰를 하고 있는 당신 시선에선 내 얼굴이 부각돼야 한다. 그런데 어쩌면 이런 컵이 밝아서 시선을 빼앗길 수 있다. 그럴 경우엔 인위적으로 컵을 약간 어둡게 한다. 왜냐면 사람의 눈이라는 건 콘트라스트(contrast), 대비가 강한 곳이나 밝은 부분에 시선이 가기 마련이니까 그런 방식으로 시선을 유도할 수 있다. 두 번째는 질감 같은 부분인데 러셀이 매고 다니는 배지 띠 한 가운데가 비어있다. 나중에 칼이 그 빈자리에 반질반질한 질감의 캔 뚜껑을 붙여주는데 그 때 질감의 대비가 심하게 느껴진다. 둔탁한 질감과 반질반질한 질감을 대비시켜서 사람의 시선을 유도하는 거다. 장면 하나하나가 실사에 기반을 두고 라이팅이 된 것이 아니라 이 스토리와 이 장면에서 어떻게 보여야 될 것인가에 대해서 철저한 분석과 공부를 하고 라이팅을 적용한다고 생각하면 된다.
작년에 서울에서 픽사 20주년 기념전이 열리기도 했는데 거기서 픽사는 각 분야의 프로페셔널이 모인 장인 집단이란 생각이 들었다. 마치 자신들의 작업을 즐기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고.
픽사가 좋은 영화를 만들 수 있는 이유는 픽사를 구성하고 있는 사람들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커뮤니케이션이 이뤄지지 않는 사람들끼리 모이면 좋은 아이디어도 흥미롭지 않은 아이디어가 될 수 있다. 반면에 괜찮긴 한데 그리 익사이팅하지 않은 아이디어도 좋은 사람끼리 모이면 흥미로운 아이디어로 발전할 수 있다. 픽사가 자유로운 문화를 추구하는 건 사람이 릴렉스해야 좋은 아이디어가 자유롭게 나오기 때문이다. 크리에이티브한 아이디어는 공부해서 나오는 게 아니라 자유롭게 생각하고 놀면서 얘기를 하는 순간에 나올 수도 있다. 그런 문화가 자연스럽게 자리 잡혀 있음으로써 그런 분위기를 형성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서울대에서 미대를 졸업했다고 들었다. 처음부터 픽사에서 일해야겠다고 마음 먹고 미국으로 떠난 건 아닐 것 같은데, 픽사에서 일하게 된 경위가 궁금하다.
(웃음) 맞다. 내가 처음으로 픽사의 ‘룩소 주니어(Luxo Jr.)’를 접하게 된 건 오래 전 한국에 있을 때였다. 처음에 전등이 막 ‘통통통’ 뛰어오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 저렇게 단순한 사물에 어떻게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건지 신기하더라. 이미 많은 사람들이 열광한 이후에 뒤늦게 알았다. 픽사란 회사가 있다는 건 그때 알았다. 나중에 뉴욕에서 컴퓨터 아트를 공부하면서 그런 문화에 대해서 알게 됐다고 할까. 그 전엔 솔직히 애니메이션에 큰 관심이 있던 게 아니었다. 오히려 설치미술이나 인스톨레이션(installation)과 같은 순수 아트 쪽에 관심이 많았다. 그런데 뉴욕의 컴퓨터 아트과에선 분야에 대한 구분을 두지 않더라. 비주얼을 하고 싶으면 비주얼을 하고, 페인팅을 이용한 인스톨레이션이나 영상을 추구할 수도 있다. 여러 가지가 가능한 환경에 있다 보니까 자연히 그런 환경에 나도 노출된 거 같다. 그러면서 한국에서 생각했던 것보다 픽사가 훨씬 크고 사람들이 가고 싶어하는 회사라는 걸 알게 됐다. 미국에 가서야 알았다. 그렇다고 픽사를 가야겠다고 생각한 건 아니었다.
그렇다면 픽사는 어떻게 가게 된 건가?
내가 만든 졸업작품이 순수 미술 성향의 실험적 애니메이션이었는데 상상 외로 반응이 좋았다. 학생 오스카에 노미네이트되기도 하고 PBS에서 방송도 됐다. 히로시마 국제애니메이션영화제에서 상영되기도 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나에게 인터뷰 기회가 왔다. 처음에 ‘PDI 드림웍스’에서 <슈렉2>작업에 참여했는데 그 때쯤 되니까 픽사의 문화에 대한 정보도 얻게 되고, 점점 픽사에 가고 싶더라. 결국 드림웍스에서 일하다가 2년 후에 픽사로 옮겼다.
픽사에서 일한다는 것이 본인에게 어떤 의미를 부여하나?
각기 다른 나라에서 왔기 때문에 문화를 공유하는 부분도 많다. 예를 들어서 <업>을 끝낸 다음에 터키 이스탄불에 갔었는데 내 오피스 옆에 있었던 친구가 터키사람이었다. 그렇게 로컬(local)과 같이 생활하면서 좋은 문화체험을 할 수 있었고 이렇게 인터내셔널한 사람들과 만나서 문화를 공유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는 것이 행복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렇게 재능 있고 똑똑한 친구들과 같이 있음으로 인해서 무언가 계속 배울 수 있다는 점이 정말 좋다. 픽사 내엔 ‘PU(Pixar University)’라는 게 있는데 업무 후 오후 시간에 많은 수업을 제공한다. 수업의 종류도 많고 퀄리티도 굉장히 높다. 한국에서 접하지 못했던 수업들이 많고 그런 것들이 나에겐 배움의 기회가 된다는 점에서 굉장히 좋다.
혹시 문화적 차이를 느낀 적은 없었나?
나는 한국에서 모든 교육을 받고 간 셈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보다 의견을 공유하는 부분이 자유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는 학교 다닐 때 손들어서 질문할 수도 없고, 어떤 한 사람이 얘기할 땐 조용히 듣기만 해야 되는데 미국은 항상 기본적으로 토론이 일반화돼 있다. 지금까지 교육받았던 것들에서 벗어나 그런 문화에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을지는 개인적으로 노력해야 된다. 나는 그런 부분에서 나를 향상시키기 위해서 프레젠테이션(presentation) 클래스, 액팅(acting) 클래스, 보이스(voice) 클래스까지 들었다. (웃음) 어떻게 하면 영어로 언어를 바꾸면서 내 목소리를 잘 전달할 수 있을 것인지 나름대로 노력을 많이 하고 있다.
지금은 라이팅 분야에서 일하고 있지만 다른 분야에 대한 욕심은 없을지 궁금하다.
나도 나중에는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작업을 했으면 좋겠다. 전부 다 해봤으면 좋겠다. 예전에 졸업 작품은 ‘미니(mini) 디렉팅’이었지만 내가 다 한 거다. 상당히 많은 시간이 걸리고 힘든 작업이었지만 굉장히 재미있더라. 지금은 라이팅에서 근무하고 있지만 라니 님도 강의하는 스토리텔링 클래스를 비롯해 PU에서 많은 걸 배운다. 내가 직접 레이아웃을 하진 않더라도 관심이 많아서 공부하고 그렇게 견문을 넓힌다고 할까. 내가 해야 하는 것보다도 거기서 얻을 수 있는 지식들이 많으니까 그 안에서 내가 찾아서 많이 배우려고 한다.
픽사는 항상 이야기를 중시한다. 그만큼 다른 분야의 지원이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결과물이 좋다는 건 그만큼 내부적인 합의가 잘 이뤄지고 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저희끼리도 첫째도 스토리, 둘째도 스토리, 셋째도 스토리, 라고 말한다. 사실은 모든 파트가 스토리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사실 라이팅 파트라고 생각하면 세트를 아름답게 만드는 미학적 관점으로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것은 물론이고 더 중요한 건 화면의 어떤 부분이 스토리를 중요하게 묘사하는지, 그리고 그 부분에 어떻게 시선을 유도할 수 있는가다. 캐릭터도 그 캐릭터를 하나 개발하면 그게 끝이 아니라 스토리에 맞지 않는 부분은 변형시킬 수 있다. 그렇게 유기적인 관계 안에서 개발이 이뤄진다고 생각하면 될 거 같다.
이렇게 한국에 돌아와서 자신의 일을 피력할 수 있다는 것도 큰 보람이 아닐까.
나에게도 파이팅한 일이랄까. 정말 많은 분들이 진심으로 원하고 있다는 것도 기쁘고, 실제로 강의장 안에서의 에너지도 굉장히 좋더라. 컨퍼런스에서 너무나 많은 분들이 호기심에 찬 눈빛으로 강의를 너무 재미있게 들어서 놀랐다. 이렇게 호응이 좋을 줄은 몰랐다. 이번에 강의한 내용들은 내가 픽사에 있으면서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부분들을 많이 가져오려고 노력했던 것들이다. 이렇게 지식을 공유한다는 건 너무나 좋은 일 같다. 사람들이 같이 하나가 되는 듯한 느낌이었다. 라니 님도 너무 좋았다고 하시더라.
픽사는 인터내셔널한 창작집단이다. <업>의 러셀과 같은 동양인 꼬마 캐릭터가 영화에서 등장할 수 있는 것도 그런 배경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 아니었을까.
픽사는 미국에 있는 사람들 뿐만 아니라 전세계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 영화를 만든다. 그리고 인터내셔널한 사람들이 있기에 그런 의견이 반영되는 것 같다. 그런 것들이 모두 다 픽사의 좋은 원동력이 된다고 생각한다.
달콤한 막대사탕처럼 알록달록 형형색색의 풍선이 한 가득 하늘을 메운다. 푸른 잔디가 자라는 작은 정원 위로 떠오른 아담한 집 모양 그림자가 드리운다. 방 안에 앉아 비행선을 타고 세계를 모험하는 꿈을 꾸던 소년의 상상처럼 집이 날아오른다. 빌딩 숲을 지나 구름을 스치며 하늘로 날아오르는 집을 타고 모험을 시작한다. <업>은 거짓말 같은 꿈을 진담처럼 그려내는 작품이다. 내려앉은 집 안에서 하늘을 날아 파라다이스 폭포로 향하는 모험을 꿈꾸던 소년은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되어 자신의 피앙새와 다짐했던 꿈을 띄운다. 하늘로 날아오르는 집. 꿈은 이루어진다.
세계에서 가장 창조적인 집단이라 불려도 손색이 없는 ‘픽사(PIXAR)’의 10번째 장편 애니메이션 <업>은 수많은 풍선에 매달려 하늘을 나는 집과 그 집에 사는 노인, 그리고 그 집을 찾은 소년의 모험담이다. 세계에서 유래 없는 성공담 <라따뚜이>와 우주 최강의 SF로맨스 <월-E>까지, 픽사의 근작들은 CG 애니메이션을 회화적 경지로 끌어올렸다 해도 손색이 없는 장관의 이미지를 전시하고 탄탄하고 섬세한 스토리텔링과 연출력을 통해 수려한 감동을 선사한다. 그리고 픽사의 10번째 장편 애니메이션 <업>은 세상에서 가장 낭만적인 모험담이라 불릴만한 자격이 있는 작품이다.
비행선을 타고 파라다이스 폭포로 떠난 모험가 찰스 먼츠를 동경하던 소년 칼 프레드릭슨은 마찬가지로 모험을 동경하는 소녀 엘리를 만나게 된다. 우정으로 시작된 소년, 소녀의 인연은 로맨스로 거듭나고 백년가약의 결실을 맺기에 이른다. 결혼 후에도 파라다이스 폭포로의 모험을 기약한 채 꿈을 저축해나가던 칼과 엘리는 먹구름처럼 일상으로 끼어드는 예측불허의 일상 속에서 꿈을 미루고 여행을 위해 준비했던 저금통을 부수고 또 부수다 얼굴 가득 세월의 흔적만 고스란히 쌓아나간다. 칼의 유년시절에서 출발해 칼과 엘리의 서사를 압축한 무성 시퀀스를 지나 노년이 된 칼의 모습에 다다르는 <업>은 비로소 본격적인 말문을 연다.
칼과 엘리의 만남부터 이별까지의 여정을 간략하게 넘겨가는 무성 시퀀스는 짧은 순간에 진한 감정을 효과적으로 농축시킨다. 그 짧은 서사는 <업>의 서사를 본격적으로 부양시키는 풍선과도 같다. 풍선에 매달린 채 하늘로 떠오르는 집이라는 비현실적 광경을 흥미롭게 감상할 수 있는 건 그 광경 자체가 주는 동화적 아름다움, 혹은 그 광경을 둘러싼 실제적 풍경의 생생함 덕분이기도 하지만 그 상황을 이루기 위한 인물의 결심이 설득력 있는 진심을 전달하는 덕분이다. 비현실적인 동화적 소재에 감정적 색채를 입히고 스토리에 현실성을 주입함으로써 영화를 부양시킨다. 짧은 순간만으로 뚜렷한 정서적 감동이 각인된다.
사별한 부인과의 못다한 꿈을 이루기 위해 모험을 결심하는 칼과 우연찮게 이에 합류하게 된 탐사대 소년 러셀을 중심으로 전진하던 모험담은 말하는 개 더그를 비롯해 희귀 새 케빈까지 끌어안으며 예상 경로를 이탈해나간다. 사실상 <업>의 서사는 명확한 만큼 단순하다. 하늘을 나는 집을 타고 파라다이스 폭포로 향하는 칼과 러셀의 여정을 입체적으로 수식하는 건 재기발랄하고 도전적인 아이디어다. 풍선을 타고 하늘을 날아오르는 집, 그리고 풍선처럼 떠오른 집을 몸에 매달고 다니는 인물들, 통역기를 부착한 덕분에 인간과 대화가 가능한 개 등, <업>은 반짝이는 아이디어를 차례로 등장시키며 창의적인 설계도면을 마련한다. 모험을 동경하던 유년시절을 잊지 않은 노인의 모험담은 요리하는 쥐의 성공담이나 미래로봇들의 로맨스만큼이나 순수하고 창의적인 스토리와 세계관을 품고 있다. 동심 어린 소년의 꿈처럼 순진하지만 반짝이는 아이디어와 재기 발랄한 유머, 형형색색의 캐릭터로 치장한 스토리는 달콤하면서도 풍요로운 매력을 선사한다.
화려하면서도 우아한 이미지 역시 <업>에서 간과할 수 없는 매력이다. 알갱이 하나하나에 컬러를 입힌 듯 다채롭고 선명한 색감을 자랑하는 포도 모양의 풍선이 푸른 하늘을 수놓으며 날아오르는 풍경은 그 자체만으로 탐스럽다. 자연적인 색채 감각과 사실적인 이미지를 누비는 캐릭터들은 그 활약상만으로 실사적 현장감과 만화적 개성을 아우른다. 한편 픽사에서 최초로 제작한 3D 애니메이션이기도 한 <업>은 사실상 3D기술을 시각적 자극의 수단으로 활용하기보단 이미지의 표현방식으로서 수용한다.-여기서 '3D'란 단지 3D렌더링 과정을 통해 공간감을 획득한 CG애니메이션을 손쉽게 지칭하기 위해 국내에서 와전된 형태로 통용된 '3D 애니메이션'이란 용어와 다른 의미인 입체 상영 방식의 3D영화를 지칭하는 의미로 활용됐다.- 즉물감을 부르는 입체효과를 관객의 시각적 눈요기로서 내보내기 보단 공간감을 확보하고 이야기의 생동감을 보좌하는 촉매로서 장치한다. 매 작품마다 이야기를 최우선의 가치로 우대하는 픽사의 모토는 할리우드 애니메이션 산업의 새로운 개척지로 지정된 3D 애니메이션의 세계관 안에서 더욱 확고한 위치를 차지할 것이다. <업>은 그 방향성을 짐작하게 하는 나침반이나 다름없다. 또한 <업>은 보기 드물게 훌륭한 한국어 더빙의 사례로 꼽혀도 좋을 만한 작품이다. 외국산 극장판 애니메이션들의 한국어 더빙이 대부분 아동들을 배려한 결과물에 불과한 것과 달리 <업>의 더빙은 되레 또 다른 형태의 매력을 가미했다 해도 좋을 만큼 탁월하다.
순수한 에너지를 동력으로 사뿐히 날아오르는 <업>은 선명한 꿈을 꾸는 영화다. 현란한 스펙터클도, 빠른 속도감도, 대단한 긴장감도, 거대한 스케일도, <업>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업>에 엄지손가락을, 아니, 두 손을 번쩍 들어 지지할 수 있는 건 그것이 실로 투명한 감동을 전하기 때문이다. 누구나 한번쯤은 꿈꿔봤을 유년시절의 모험을, 순수했던 한 시절에 가능했던 상상의 나래를, 지극히 순수하게 눈 앞에 그려낸다. <업>은 감동이라는 단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증명하는 작품이다. 그리고 픽사는 또 한번 관객에게 로맨틱한 감정을 선물한다. 사랑할 수 있는 영화를 선사한다는 것, 그리고 그 고백을 부끄럽지 않게 만든다는 것, 그것이 바로 픽사가 지닌 로맨틱한 재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