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나 경제가 희망을 주지 못하는 현실에서 사람들은 판타지를 찾는다. 그것이 ‘비비디 바비디 부’라는 외계어 같은 주문일지라도 현실을 잊을 수 있다면 잠시라도 외쳐보게 된다. 소녀 아이돌 그룹의 후크송이 유행하는 것도 그것이 지겹고 험난한 현실로부터 도피하기 좋은 발랄한 환청인 덕분이며 <아내의 유혹>과 같은 막장 드라마의 대단한 열풍도 매일같이 펼쳐지는 그 자극적인 작태의 반복이 현실을 잊게 만들 만큼 중독적인 까닭이다. 진지하고 심각한 이야기는 좀처럼 피하고 싶다. 안 그래도 힘들고 괴로운 세상에서 그런 이야길랑 명함도 내밀지 말라는 듯, 모든 문화적 현상들이 가볍고 헐거워진다. 잠깐 보고 말아도 될 정도로 쉽고 간편해야 한다. 인스턴트 식 컨텐츠의 범람은 참을 수 없는 현실의 무거움을 이겨내기 힘든 서민들의 정서와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생각대로 하면 되고’를 밀던 SK텔레콤은 ‘비비디 바비디 부’로 또 한번 자신의 CF송을 유행어로 등극시키는데 성공했다. 멜로디를 가미한 짧은 멘트는 가히 범국민적 주문이 되어 거대한 염원을 담은 원기옥처럼 둥둥 떠 태양을 가릴 수도 있을 것만 같다. 아이러니하지만 현실에서 ‘비비디 바비디 부’따위는 좀처럼 통하지 않는다. 마치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망각과 환각의 세계로 떠나자는 듯 백치미적 행복을 설파하는 이 CF송이 먹히는 건 어쩌면 도저히 변모시킬 수 없을 것만 같은 현실에 대한 무기력 덕분일지도 모르겠다. 정치권의 패악과 서민들의 경제적 몰락, 부유층의 도덕적 해이, 지독한 이념의 반목 가운데서 할 말을 잃고, 갈 길을 잃은 사람들은 그냥 바보가 되는 게 편하다는 걸 잘 안다. 그냥 그렇게 웃지요. 스트레스로 가득한 현실의 양태 속에서 분노로 일관해봤자 사는 꼴이 영 나아지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되면 남은 수순은 그냥 그 매트릭스 안에서 숙주가 되어 잠드는 것이 편하다 믿으며 그렇게 도태될 뿐이다.
정당한 보상을 바랄 수 없을 때 사람들은 대박을 꿈꾼다. 도저히 제 힘만으로 삶의 기반을 온전히 다져내기 힘든 극악의 경우에 누구나 기적을 바란다. ‘비비디 바비디 부’나 그에 앞서 ‘생각대로 하면 되고’를 따라 읊조리던 세태가 단지 그 어절이 좋아서 따위라고 착각할 일이 아니다. 위기를 느끼는 심리적 불안이 목까지 차 올랐으나 좀처럼 그것을 증발시킬 재간이 없어 스스로 무뎌지고 있는 중일 뿐이다. 결혼과 출산을 기피하게 만드는 사회가 얼마나 희망적인가, 를 되묻는다면 가히 절망적이지 않나. 새로운 사회의 구성원을 창출하기가 이리도 열악한 사회라는 걸 직감하는 젊은 세대들의 불안과 좌절은 이미 우리 사회를 디스토피아로 규정할만한 징조나 다름없다. ‘비비디 바비디 부’따위에 길들여지는 건 그 CF송이 기발해서가 아니라 정말 생각대로 하면 되는 사회를 염원하다 못해 잠시나마 그런 척이라도 해보고 싶은 갈망이 만만치 않은 탓이 아닐까. ‘비비디 바비디 부’가 지겨운 건 그 때문이다. 언제까지 이 정체불명의 음절로 조합된 주문 따위로 위안받아야 하나. 분노에 지쳐서 이젠 행복마저 위장하며 살아야 하나. 좀 더 솔직하게 살고 싶다. ‘비비디 바비디 부’라는 위장된 찰나의 환각이 아니라 진짜 행복의 나라로 가야 하지 않겠나.
영화화되는 건 비단 소설, 공연, 음악뿐만이 아니다. 작년에 개봉된 <히트맨>을 비롯해 너무도 유명한 <툼 레이더>나 <레지던트 이블>과 같은 사례처럼 오늘날 롤플레잉 게임(RPG)도 영화 제작자들에게 영감을 제공하는 출처가 되고 있다. 특히 자극적이고 스타일리쉬한 이미지에 몰두하고 있는 오락영화의 경향 속에서 어떤 게임들은 충분한 매력을 구가할만하다. 동명의 게임을 모티브로 한 <맥스 페인>도 마찬가지다.
슈팅이 주가 되는 롤 플레잉 ‘맥스 페인’처럼 영화 <맥스 페인>은 총격이 난무하는 액션씬의 스케일을 전시한다. 권총과 리볼버, 샷건과 기관총까지 다양한 총이 등장하는 <맥스 페인>은 분명 여지없는 액션 영화(처럼 보이는 영화)다. 하지만 그보다도 중요한 건 일단 캐릭터의 사연이다. <맥스 페인>은 액션 시퀀스를 지니고 있지만 실질적으로 그리 호쾌한 액션 영화는 아니다. 되려 묵시록적인 분위기가 암울하고 침침하여 시종일관 무겁고 어둡다. 미해결 사건 부서(cold case unit)에 소속된 주인공 맥스 페인(마크 윌버그)의 타이틀을 제목으로 내건 영화는 미궁에 빠진 그의 사연을 추적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전반적으로 어둡고 무거운 이 영화는 게임의 이미지를 그저 모티브로 소환했을 뿐, 게임과의 완전한 연관성을 염두에 둔 것 같진 않다. 다만 종종 액션 시퀀스에서 활용되는 블릿타임이나 슬로우 모션은 게임의 그것을 떠올리게 한다. 물론 <매트릭스>에서 선사한 충격 이후로 이제 그것이 탁월한 성과를 이루지 않곤 맥 빠질 거란 예상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못하는 방식으로 구현된다. 암담한 건 단지 이 영화의 분위기가 아니다. 이 영화 자체가 실로 암담하다. 슈팅에 기반을 둔 롤플레잉 게임을 모티브로 하고 있는 만큼 액션 시퀀스에서 낭비되는 탄환 수는 상당하지만 그것이 큰 감흥을 일으키지 못하는 건 허세가 지나친 탓이다. 지나치게 낭비되는 스타일 앞에서 반응 속도가 느슨해진다.
의외지만 <맥스 페인>이 주력하는 건 이미지가 아닌 스토리다. 단지 게임은 모티브에 불과했을지 모른다. 포스트 9.11의 그림자도 노골적으로 아른거린다. 뉴욕의 톤 다운(tone down)된 색채도 세기말적이다. 묵은 냄새가 나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다. <맥스 페인>은 기존에 이미 써먹을 대로 써먹어서 너덜너덜해진 것들을 콜라주 하듯 스크린에 갖다 붙인다. 그 와중에 뉴욕을 소돔과 고모라처럼 만들고 싶어하고 그 세계의 음모론을 파괴하는 고독한 안티히어로의 그림자를 그려내고자 한다. 하지만 맥스 페인이 바라보는 환각의 도시에서 활공하던 발키리의 무의미한 이미지처럼 <맥스 페인>은 허무맹랑하다. 액션은 기이한 슬로 모션의 강박에서 허우적거리고, 진지하게 흐르는 스토리는 지쳐 쓰러진다. 한가지 확실하게 증명되는 건 포스트 9.11의 영향력이 이 단순 명확한 게임마저도 지독한 허세에 빠지게 만들 정도로 대단했다는 사실이다. 물론 그것이 결코 좋은 영향력이 아니란 점에서 실로 유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