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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은 괜찮겠지? 친구가 물었다. 난 답했다. 괜찮지 않아도 살긴 살겠지. 뒷북이지만 한 해가 지났다. 원래 한 해가 지날 땐 지난 해가 찰나처럼 느껴지기 마련인데 참 길었더라. 2008년은 정말 한 해가 길었다. 군대 이후로 이렇게 긴 1년은 처음 느꼈다. 그 분 덕분이다. 덕분에 수명이 길어진 것 같아요. 퍽도 고맙군요. 퍽이나! 어쨌든 한 살을 더 먹었다. 어느덧 스물 여덟, 이십 대가 뉘엿뉘엿 저물어가는 와중이다. 아직은 어리다고 자부하는 와중에도 동갑내기들과의 대화 속에서 늙어감을 느낀다. 벌써부터 노후에 민감한 동갑내기들은 적금에, 펀드에, 보험에, 곳간을 메우기 위해 여기저기 눈을 돌린다. 내일을 위해 오늘을 포기하고 또 포기한다. 젊었을 때 대비해야 한다고 끊임없이 현재를 밀어내고 내일로 밀려간다. 오늘도 나는 나인데 왜 오늘을 즐길 수 없나. 뿌리깊은 불안이 이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 현재에 만족할 수 없고, 미래를 안심할 수 없게 만든다. 살 수 없게 만든다. 그저 살아남을 뿐이다. 어떻게든 꾸역꾸역 먹고 사는 고민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인간으로 길들인다. 오늘을 즐겁게 산다는 것이 힘들어지고 있다. 뉘엿뉘엿 저무는 20대의 끝자락에서 낭만이 사치처럼 느껴진다. 역시 로또라도 찍어야 할까나.
(프리미어 'SIDE 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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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림동에 갔다. 고시촌에 갔다. 친구를 만나러 갔다. 광주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그 친구는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다 학교를 때려치우고 고시 준비를 하고 있다. 올해로 삼 년째다. 대학을 때려치웠다는 점에서는 나와 비슷한 국면이 있다. 양상은 다르지만 결과적으론 비슷한 법이다. 묘한 연대감이 느껴진다.
그 친구를 찾은 건 현재 기획중인 기사를 위해 자잘한 인터뷰와 사진 촬영을 위해서였다.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였다. 수염이 덥수룩했고, 머리가 길었다. 내가 본 그 친구의 가장 파격적인 외모였다. 신림동이 널 이렇게 만들더냐. 여하간 그랬다. 사진을 먼저 찍고 스튜디오 식구들이 먼저 떠난 뒤 우린 온전히 친구 사이로 다시 돌아왔다. 밥을 먹고, 커피를 한 잔 했다. 대략 4시간 가까이 대화를 나눴다. 대부분이 세태에 대한 이야기였다. 무겁고 진지했다. 나이 먹은 티를 냈다. 그보다도 요즘 세태가 그렇다. 이런 대화를 나누게 만든다.
가장 파격적인 문화적 총아였던 90년대의 10대가 IMF를 맞아 붕괴된 가정환경 속에서 급보수화된 세대로 탈바꿈됐다는 점은 상당히 놀라운 일이다. 나 역시도 20대를 맞이하기 직전, 아버지의 끔찍한 사업 실패로 상당히 급변적인 상황을 맞이했다. 집은 좁아졌고, 한때 물과 가스와 전기가 끊긴 집에서 덩그러니 뒹굴어 보기도 했다. 아버지는 사라졌고, 어머니는 끈질기게 자식을 살렸다. 난 그래서 여전히 뒤늦게 돌아온 아버지를 존경하지 않는다. 상처는 오래가는 법이다. 아물더라도 통증은 남는다.
고시촌에 박혀서 20대를 보내는 친구는 말했다. 이 곳을 벗어나야지. 쓴웃음을 지었다. 이 친구 말고도 수많은 20대가 대한민국의 공무원이 되기 위해 고시촌에 머무른다. 안정적인 직장이 꿈과 희망이 돼버린 20대의 풍경이 좁디 좁은 방안에 다닥다닥 붙어서 끈적거린다. 그나마 그 친구는 열려있었다. 그 친구도 그 현실이 끔찍하다 했다. 다행이었다. 어느 누군가는 그 현실의 끔찍함을 인지하지 못한 채 담담하게 자신의 삶으로 받아들이며 그 매트릭스가 자신에게 주어진 당연한 운명인 것처럼 인지할까 겁이 난다.
저마다 꿈이 다르고 삶의 모토가 다를진대 대한민국 20대의 삶은 기이하게 한 방향을 향하고 있는 듯하다. 안정된 직장과 노후 보장만이 젊음을 소진할만한 유일한 대안이 되어간다. 누가 20대를 이렇게 만들었나, 라는 질문은 더 이상 불필요하다. 게다가 이 문제적 패러다임을 야기한 시대적 징후는 세대를 건너 10대를 공략하고 어린 유년의 추억마저 삭막하게 옥죈다. 강자생존의 경쟁구도만이 이 땅의 진리로 강변되는 이 현실은 실로 지옥이다. 신림동 고시촌에 머문 수많은 청춘들의 삶 속엔 저마다의 꿈이 있어야 온당하다. 하지만 그들은 바늘구멍을 지나려는 낙타처럼 살아간다. 개중엔 낙오하는 이도 있을진대 누구나 승자를 꿈꾼다. 대열은 유지된다. 강자가 살아남는 세상을 일개 장관이 천명하는 정신분열 같은 세상에서 그들에게 대안은 없다. 슬프게도 그것은 꿈이 아니다. 그저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일 따름이다. 그게 현재 대한민국 20대의 현실이다. 불행하게도 그렇다. 눈을 뜨니 잔인한 배틀로열에 끌려왔다. 어떤 이는 절규하다 나가떨어지고 약삭빠른 어떤 이는 난도질에 취해서 흥얼거린다.
긴 대화를 나눈 친구와 헤어졌다. 올해가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 했다. 3년을 그렇게 보낸 친구는 여전히 웃음을 잃지 않았다. 그래서 문득 서글펐다. 좀 더 밝은 미소를 짓는 법을 모르는 친구가 아니다. 이제 좀 더 자신을 알아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그 친구에겐 다른 날개가 있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오늘이 그 친구의 날개를 가뒀다. 대한민국에선 하나의 날개가 통용된다. 누구에게나 하나의 규격이 적용된다. 그 규격에 맞지 않은 이는 도태된다. 날 권리를 척결한다. 그 친구가 올해만큼은 성공하길 바라면서도 씁쓸해진다. 이상한 나라의 20대는 이렇게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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