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영국만큼이나 호주 역시 주목할만한 배우의 산실이다. 오늘날 할리우드에서 입지를 차지한 호주 출신 스타의 새로운 계보를 잇는 건 바로 애비 코니쉬다. 샤를리즈 테론이나 니콜 키드먼을 연상시키는 그녀는 유년 시절 자칭 톰보이였으며 자애심이 강했다. 호주영화협회 여우주연상을 차지하며 ‘아찔한 십대’ 배우로 떠오를 수 있었던 것도 어쩌면 이런 자애심 덕분이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2006년, 코니쉬는 히스 레저와 호흡을 맞췄던 <캔디>와 리들리 스콧의 <어느 멋진 순간>으로 호주와 할리우드를 오가며 무대를 넓혀나간다. 특히 비운의 시인 존 키츠의 연인으로 등장한 <브라이트 스타>(2009)는 당돌하면서도 우아한 코니쉬의 기품을 발견하는 자리였다. 박력 있는 여전사로 열연한 <써커 펀치>(2011)에서 이미지 변신에 성공한 코니쉬는 <리미트리스>(2011)를 통해서 성인배우로서의 커리어를 완벽하게 이행한다. 그녀는 이제 더 이상 유망주가 아니다. 반짝이는 별이 새롭게 떠올랐다.
체코 서부에 자리한 카를로비 바리는 유럽에서 가장 사랑 받는 온천 휴양지다. 매년 7월이면 이 온화한 마을에 새로운 열기가 더해진다. 카를로비 바리 국제영화제가 열리는 것. 올해로 46회를 맞이하는 이 영화제는 한때 사회주의 체제의 억압으로 고난에 직면했지만 끝내 자리를 지키고, 동유럽과 제3세계 영화들을 위한 ‘다른 시선’을 견지하는 영화제로 뿌리를 내렸다. 주드 로가 출연한 트레일러 공개와 함께, 7월 1일부터 9일까지 전세계 영화를 포용하는 온화한 축제가 펼쳐진다.
좀처럼 가릴 수 없는 매력으로 존재감을 발산하는 배우들과 달리 어떤 배우들은 쉽게 드러나지 않는 신비로서 마음을 사로잡는다. 에밀리 블런트, 바로 그녀가 그렇다.
매우 어린 나이부터 런던의 남녀공학 사립학교 ‘Ibstock Place School’에서 교육을 받던 소녀가 심각한 말더듬이 증세를 겪게 된 여덟 살부터였다. 교사였던 어머니는 어린 딸에게 엄격한 교육보다도 치유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갖은 방도를 동원해도 버릇은 쉽게 고쳐지지 않았다. 하지만 12살 무렵, 소녀는 놀라운 변화를 경험한다. 연극을 지도하던 한 교사는 그녀에게 지금까지의 목소리와 다른 악센트를 지닌 캐릭터 연기를 주문한다. 그녀의 불안은 따뜻한 격려로 녹아내렸다. “진심으로 널 믿는단다.” 이는 교묘하고도 영리한 처방이었다. 그 무대에 오른 이후로 소녀의 말더듬이 증상은 씻은 듯이 사라졌다. 그리고 소녀는 그 무대에서 미래를 만났다. 그 소녀의 이름은 에밀리 블런트였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에게 불어온 바람을 그저 지나쳐 보내지 않았다.
사립학교의 삭막한 분위기를 견디기 어려웠던 블런트는 다양한 예술인재를 육성하는 2년제 식스폼 칼리지 ‘Hurtwood House’로 진학한다. 그곳에서 승마와 첼로, 보컬 등 풍부한 끼를 인정받기 시작한 그녀는 2000년 에든버러 축제에서 공연하는 블랙코미디 연극 무대에 발탁된다. 이 무대에서의 연기는 한 유명 에이전트를 사로잡았다. 헬렌 미렌의 에이전트이기도 한 켄 매크레디는 블런트의 재능을 알아보고 그녀의 공식적인 첫 무대를 마련한다. 사실 이는 대단한 확신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일말의 경력도 없는 신인을 대배우 주디 덴치의 상대역으로 무대에 올려 보낸다는 건 결코 쉬운 판단이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블런트는 데뷔작 <로얄 패밀리>를 통해 이브닝 스탠다드 어워드의 신인상마저 거머쥐며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성공적인 데뷔전 이후 <로미오와 줄리엣>으로 한번 더 무대에 올라 연기적 재능을 입증한 그녀 앞에 TV의 러브콜이 이어졌다. 배우로서 경력의 입지를 마련한 것이다.
다시 한번 원점으로 돌아가서 이야기하자면, 블런트는 10년이 조금 넘은 경력을 지닌 배우라는 말이다. 그리고 그 지점에서 블런트의 경력을 현시점에서 다시 한번 정리하자면, 그녀는 분명 입지전적의 상승세를 타고 온 배우다. 물론 10년 여의 경력이 짧다고 말하는 건 아니다. 중요한 건 그녀가 단지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2006)에서 앤 해서웨이를 향해 비아냥거리던 얄미운 동료비서 에밀리를 연기하며 갑작스럽게 세간에 얼굴을 알린 할리우드 조연배우의 성공사례는 아니라는 말이다.
블런트의 매력을 보다 제대로 설명하려면 그녀의 영화 진출작 <사랑이 찾아온 여름>(2004)을 통해야만 한다. 영국 아카데미를 비롯한 유수의 영화제에서 좋은 평가를 얻은 이 작품에서 부유한 가정에서 모범적으로 자라났지만 일탈을 즐기는 소녀 탐신 역을 맡은 그녀는 와이드한 스크린의 너비만큼이나 광활한, 자신의 숨겨진 매력을 마음껏 발산한다. 블런트는 이 작품으로 빼어난 첼로 연주와 승마 솜씨를 선보이는 기회를 얻었지만 그보다도 중요한 건 이 영화가 블런트가 지닌 진정한 매력을 이끌어냈다는 것이다. 도전적인 눈빛에 감춰진 나약한 심성, 대범한 행동성 속에 감춰진 자기보호적 본능, 반항과 굴종의 심리가 부조리하게 얽힌 캐릭터의 이중성을 표현해내는 건 영화의 완성도와 직결된 것이었으며 이를 완벽하게 소화해낸 블런트는 영화가 얻은 찬사를 고스란히 자신의 성과로 가져갔다.
이중성은 블런트의 캐릭터들에게 가장 중요한 요소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는 분명 메릴 스트립과 앤 해서웨이의 영화였다. 그럼에도 블런트의 존재가 빛을 발할 수 있었던 건 일단 비중을 막론하고 캐릭터들의 매무새를 잘 어루만진 각본과 연출의 힘일 것이다. 하지만 역시 배우들의 능력을 간과할 수 없다. 메릴 스트립의 압도적인 연기와 앤 해서웨이의 설득력 있는 면모가 이 영화의 구조를 지탱하고 있다면 블런트를 비롯한 조연들은 그 구조를 빛내는 장식과 같다. 악마 같은 편집장의 시중을 견뎌온 베테랑 비서 에밀리는 실수 연발인 신참 비서 앤디를 향해 냉소적인 눈빛을 날리지만 이는 끝내 편집장의 신임을 얻은 신임과의 역전된 처지 속에서 구겨진 자존심이 반영된 질투로 변모한다. 에밀리를 연기한 블런트는 냉혹한 사회 조직의 질서 속에서 자존심을 통해 스스로를 방어하다 끝내 무너지고 다시 일어서는 한 여인의 심연을 특유의 눈빛으로 소화해냈다. 특히 매사에 자신만만하던 에밀리가 남몰래 눈물을 쏟아낼 때 밀려오는 처연함은 좀처럼 미워할 수 없는 악역의 고충을 연민으로 승화시키는 것이었다. 남편과의 반목을 이겨내기 위해 제인 오스틴의 소설 속 여인들에게 천착하는 <제인 오스틴 북 클럽>(2007)의 프루디나, 성인이 되어서도 자립하지 못하는 열등감으로 방황하는 <선샤인 클리닝>(2008)의 노라 역시 켜켜이 쌓인 내면의 상처를 숨긴 인물의 내면을 통해 연민을 자아낸다.
대영제국의 황금기를 주도한 빅토리아 여왕의 로맨스에 주목한 <영 빅토리아>(2009)는 블런트의 새로운 면모를 선보인다. 이 작품은 여왕의 치적을 나열하는 대신, 우아한 왕실의 풍경 속에 감금된 여왕의 인간적인 로맨스에 주목한다. 그녀는 권력자로서 고독을 감내해야 하는 운명에 매서운 눈빛으로 맞서기도 하지만 사랑을 갈구하는 심약한 여인의 초상을 수용하며 보다 섬세한 감수성을 연출해낸다. 반대로 얌체공처럼 어디로 튈지 모르는 ‘달콤, 살벌한 여인’ 로즈로 등장하는 <와일드 타겟>(2010)은 블런트가 지닌 발랄한 면모를 보다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자신이 죽여야 하는 여인에게 사로잡혀 버린 킬러의 딜레마를 우습지만 귀엽게 그려낸 이 영화에서 블런트의 백치미는 ‘귀여운 여인’ 그 이상이다. 가리거나, 드러나지 않거나, 쉽게 가늠할 수 없는 불확실성으로 블런트의 매력은 정의될 수 있으며 그 사이에서 엿보이는 이중성의 면모가 때때로 그녀를 신비스럽게 치장한다.
때때로 <울프맨>(2010)이나 <걸리버 여행기>(2010)와 같이, 장르적 소품과 같은 작품 속에서 소모되는 시행 착오적 경험을 건너기도 하지만 블런트는 이제 영국과 할리우드를 오가며 활발히 활동하는 세계적인 배우다. 맷 데이먼의 운명적인 뮤즈로 등장하며 시종일관 뛰어다녀야 했던 <컨트롤러>(2011)도 그녀의 매력을 간과하고 있다. 하지만 온몸으로 자신을 표현하는 현대무용수로서 신비로운 몸놀림을 연출하는 그녀의 면모는 운명에 맞서서 한 여인을 선택한 남자의 심경을 공감시키고도 남을만한 것이다. 심각한 말더듬이였던 탓에 말하는 대신 지켜봐야 했던 소녀였던 블런트를 전세계가 주목하는 배우로 도약하게 만든 것도 어쩌면 그 덕분일 것이다. 온전히 드러나지 않는 신비로운 매혹의 뮤즈, 에밀리 블런트는 그렇게 자신만의 빛을 드리우고 있다.
남루한 탄광촌에서 태어난 소년 빌리 엘리어트에게 소녀들의 발레복은 날개였다. 사내에게 어울리는 건 권투 글러브라던 아버지의 고집도 그의 발레복을 벗기지 못했다. 그리고 빌리는 날아오른다. 수줍던 소년의 아름다운 비상, <빌리 엘리어트>(2000)는 전세계에 감동을 실어 날랐다. 댄서의 집안에서 자라나 여섯 살부터 춤을 연마했던 제이미 벨도 새로운 날개를 폈다. 그러나 그는 알고 있었다. “역량을 키우는 것이 거액을 얻는 것이나 큰 로봇으로부터 달아나는 것보다 중요했다.” 더 높고 멀리 날기 위해서는 자신의 날개가 온전히 자랄 때까지 기다려야 함을, 역할의 크기나 비중을 가리기보다도 자신을 성장시키는 것에 기꺼이 몸을 던져야 함을 알았다. 그렇게 자신의 체공시간을 서서히 넓혀왔다. 그리고 그는 더 이상 꿈 많은 소년이 아니다. <더 이글>(2011)에서 무르익은 남성미를 뽐내는 그가 자신의 성숙한 날개를 펼 날도 머지 않았다. 기다림은 끝났다. 이제 다시 날아오를 차례다.
스코틀랜드의 중심지 에든버러는 음악과 연극을 망라한 페스티벌의 메카다. 그리고 에든버러 국제영화제는 에든버러의 다양한 축제를 대표하는 필름 페스티벌이다. 국경과 장르의 구별 없이 풍성하게 마련된 화제작들로 손님들을 접대하는 영화제의 전통은 65회를 맞이하는 올해에도 계속된다. <윈터스 본>(2010), <바빌론의 아들>(2009) 등과 같이 유수의 영화제에서 인정받은 지난 화제작들이 6월 15일부터 26일까지 축제의 메카 에든버러에서 또 한번 스크린을 채운다.
니콜 키드먼은 ‘될성부른 나무’였다. 키드먼을 ‘떡잎부터 알아본’ 제작자들은 그녀를 발 빠르게 할리우드로 인도했다. 일찍이 할리우드의 뮤즈 자리를 수성한 그녀는 여전히 가지를 뻗고 있다.
하와이 호놀룰루에서 태어난 키드먼은 호주 출신의 부모와 함께 시드니로 건너가 유년시절을 보낸다. 어려서부터 활동적이었던 키드먼은 발레를 배우고자 찾은 호주 유소년 씨어터에서 연기에 관심을 얻게 된다. 175cm에 달하는 장신이었던 열네 살 무렵, 영화 데뷔를 이룬 그녀는 우월한 유전자만큼이나 타고난 재능이 있었다. 1987년에 방영된 TV미니시리즈 <베트남>으로 호주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키드먼은 <죽음의 항해>(1989)로 할리우드 제작자들의 눈길을 끈다.
일본의 한 영화제에 참석 중이던 키드먼은 톰 크루즈의 측근으로부터 차기작 계획을 묻는 전화를 받는다. 토니 스콧의 <탑 건>(1986)으로 할리우드의 큰손이 된 크루즈는 <폭풍의 질주>(1990)로 심기일전을 다짐하던 차였다. LA로 키드먼을 초대한 그는 그녀와 출연 계획을 상의한다. 이는 키드먼의 할리우드 진출에 관한 이야기이자 세기의 커플이었던 키드먼과 크루즈의 인연에 관한 서두이기도 하다. 1990년 크리스마스 이브에 부부 서약을 맺은 두 사람은 론 하워드의 <파 앤드 어웨이>(1992)에서 또 한번 호흡을 맞춘다. 아일랜드의 보수적인 귀족 집안에서 자란 진보적인 여인이 자립을 꿈꾸며 미국 땅을 밟은 뒤, 한 남자의 야심에 동참하는 과정은 키드먼의 현실을 연상시키는 것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녀는 ‘톰 크루즈의 아내’라는 그림자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빛을 발산하기 시작한다.
구스 반 산트의 <투 다이 포>(1995)는 키드먼을 위한 영화였다. 수잔 역을 얻기 위해 구스의 집에 직접 전화를 건 키드먼은 그에게 말했다. “<드러그스토어 카우보이>(1989)를 봤어요. 당신과의 작업을 간절히 원해요.” 수잔은 섹슈얼한 매력을 이용해 남자를 물건처럼 이용하는 팜므 파탈이다. 이는 키드먼이 연기한, 강인하고 순정적인 여인들과 어울리지 않는 인물이었으나 그녀를 통해 키드먼은 골든글로브 여우주연상을 거머쥔다. 19세기 말, 보수적인 영국의 시대상을 배경으로 한 제인 캠피온의 고전 로맨스물 <여인의 초상>(1996)에서 지적이며 당돌한, 미모의 여인 이사벨을 연기한 키드먼은 자신이 그려왔던 도전적인 여인들의 면모에 보다 깊은 감수성을 이입해낸다. 진보적인 여인의 초상에 세심한 심연의 갈등을 새겨 넣으며 자신의 연기적 깊이를 증명해냈다.
스탠리 큐브릭의 <아이즈 와이드 셧>(1999)과 함께 키드먼은 내외적인 고난에 직면한다. 크루즈와 함께 부부로 출연한 이 작품은 금기와 욕망 사이에서 갈등하는 한 남자의 혼돈을 그리고 있으며 키드먼은 전신 노출까지 불사하는, 헌신적 열연을 펼쳤다. 큐브릭에 대한 깊은 애정은 부부의 공동출연으로 이어졌지만 이로 인한 세간의 지독한 관심은 두 사람의 관계에 치명타를 입혔다. 오랜 제작기간이 소요된 이 작품은 급기야 최종편집이 끝나기 전에 찾아온 큐브릭의 죽음으로 기로에 선다. 결국 영화의 불완전한 완성과 함께 두 사람의 관계도 흔들리기 시작한다. 2001년, 골든글로브 시상식장에서 각자 퇴장하는 두 사람의 모습이 포착됐다. 그 뒤로 키드먼은 다시 '힐을 신을 수 있'었지만 '삶이 붕괴되는' 극심한 상실감에 시달렸다.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그 해에 키드먼의 경력은 보다 반짝이기 시작했다. 환락가의 여신 사틴 역을 맡은 바즈 루어만의 뮤지컬 <물랑루즈>에서 다이아몬드와 같이 반짝이는 미모를 자랑한 키드먼은 빼어난 가창력과 안무까지 뽐내며 관객들을 현혹시켰다. 톰 크루즈가 기획자로 참여한 호러 <디 아더스>가 공개된 것도 같은 해였다. 이듬해, 이 두 작품으로 각각 골든글로브 두 개 부문 여우주연상 후보에 오른 키드먼은 <물랑루즈>로 두 번째 골든글로브 트로피를 얻게 된다.
영국의 여류 작가 버지니아 울프의 생에 얽힌 세 여인의 삶을 그린 <디 아워스>(2002)에서 메릴 스트립, 줄리언 무어와 같은 쟁쟁한 배우들과 함께 한 키드먼은 버지니아 그녀를 연기한다. 자살로 생을 마감한 예민하고 우울한 예술가의 생을 연기해내야 했던 키드먼은 인공적으로 제작된 모형 코를 달고 그녀를 연기한다. 자신을 잊은 채 온전히 버지니아라는 인물로 빠져들었다. 이는 여전히 그녀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던 이혼에 대한 아픔을 지울 수 있는 방편이기도 했다. 이는 그녀의 경력에 정점이 됐다. 2년 연속 골든글로브 수상을 이어간 그녀는 수상자 신분으로 오스카 단상에 오르는 첫 영광을 차지한다.
할리우드의 주류배우로 꼽히는 키드먼은 독립영화에서 보다 인상적인 연기를 선보여왔다. 그녀의 캐릭터를 설명하는데 있어서 자주 동원되는 건 예민한 심성과 불안한 정서다. 독립적인 여성의 의지를 강인하게 피력하던 그녀는 점차 히스테리한 여인으로서 존재감을 피력해왔다. 돌발적으로 공기를 불안하게 잠식하는 그녀의 캐릭터들은 극적인 분위기를 강화하는 요소로 영화에 기여해왔다. 연극적인 무대를 날것처럼 카메라에 담아낸 라스 폰 트리에의 <도그빌>(2003)이 178분에 달하는 러닝타임 동안 집중력을 유지할 수 있는 건 온전히 그녀의 연기 덕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탄생>(2004)과 <인터프리터>(2005)에서도 이는 유효하다. 결혼을 앞둔 여인이 죽은 옛 연인임을 자칭하는 소년을 만나 벌어지는 미스터리와 국제적인 정치적 음모에 휘말리는 한 여인의 정체적 모호함에서 비롯되는 서스펜스는 키드먼의 존재감이 발휘된 결과물이다.
미국의 여류 사진가 디앤 아버스의 삶을 모티프 삼은 <퍼>(2006)는 한 여인의 자립을 그린, 잉태적 삶에 관한 이야기다. 픽션과 논픽션의 경계가 모호한 이 작품에서 특유의 예민한 표정으로 등장하는 키드먼은 불안과 설렘의 경계를 부유하던 한 여류 사진가의 거짓말 같은 생에 사실적인 감정을 부여한다. 보다 현실적인 일상에 근접한 <마고 앳 더 웨딩>(2007)이나 <래빗 홀>(2010)에서도 이런 특성은 발견된다. 우연히도 두 작품에서 남편과 갈등을 빚는 아내이자 여동생과의 반목을 거듭하는 누이로 등장하는 키드먼은 각각의 영화에서 부풀어 가는 불화를 찔러 터트릴 것마냥 날이 선 심성을 휘두르는 불안 그 자체다. 롭 마샬의 <나인>(2009)은 키드먼이 여전히 빛나는 외모를 자랑하는 할리우드의 여신 자리에서 내려설 생각이 없음을 대변한다. 하지만 키드먼의 마이너한 감성은 그녀를 메이저 배우로 인식하길 방해하거나 거부하도록 만든다. “나는 영감을 주거나 강박적인 사람들과 일하길 좋아한다.” 가늠할 수 없는 방식으로 자신만의 빛을 발하는 할리우드의 뮤즈, 니콜 키드먼은 여전히 채워지지 않은 미완의 초상이다.
유년시절부터 ‘랄프로렌’이나 ‘갭’과 같은 의류 브랜드를 비롯해서 ‘버버리’의 캠페인 모델로도 활약한 바 있는 ‘훈남’이 할리우드에 진출했다는 건 딱히 놀라운 사연이 아니다. 하지만 알렉스 페티퍼에게서는 심상치 않은 조짐이 엿보인다. <트와일라잇>시리즈의 로버트 패틴슨이나 <해리포터>시리즈의 다니엘 래드클래프가 그러하듯이, 폭발적인 인기를 등에 업은 젊은 배우들은 대부분 특정한 캐릭터의 옷을 입고 태어난다. 페티퍼는 올해 초에 차례로 개봉된, <아이 엠 넘버 포>에서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외계인 초능력자로 분한 뒤, <비스틀리>에서 잘생긴 외모를 되찾고자 사랑을 갈구하는 추남으로 변신한 페티퍼는 혜성과 같은 등장을 뛰어넘어 상한가를 달리고 있는 신예다. 현재 후반작업 중인 SF스릴러물 <나우>(2011)에서 아만다 사이프리드, 저스틴 팀버레이크와 함께 이름을 올린 페티퍼는 올해 또 한번 새로운 면모를 과시할 전망이다. 어메이징한 영 건, 알렉스 페티퍼를 기억하라.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침체된 독일 영화계는 ‘오버하우젠 선언’이라 불리는 뉴저먼시네마의 시대를 주창한다. 전통적인 공업도시 오버하우젠은 필름의 혁명 지대로 거듭났다. 그리고 서독단편영화제에서 출발한 오버하우젠 국제단편영화제는 올해로 57회를 맞이하는 최장수 국제단편영화제로서 조지 루카스, 마틴 스콜세지, 데이비드 린치 등, 영화적 혁명을 지지하고 발굴해 왔다. 5일부터 10일까지, 40개 국가에서 모인 470편의 새로운 혁명이 공개된다.
비범한 시작과 달리, 벤 애플렉은 소모적이고 낭비적인 경력 속을 겉돌았다. 하지만 재능은 그가 망가지는 것을 더 이상 허락하지 않았다. 이제야 비로소 그는 진정한 삶의 궤도에 오르고 있다.
두 살 차이가 났음에도 벤 애플렉은 맷 데이먼과 유년 시절부터 절친한 사이였다. 부모의 이혼과 아버지의 알코올 의존증을 지켜보던 어린 애플렉이 데이먼을 만난 건 다행이었다. 보스턴에서 레드삭스 팀의 저지를 입으며 우정을 쌓아온 두 사람은 서로에게 배우로서의 꿈을 고무시키는 대상으로 자리하며 성장해왔다. PBS의 미니시리즈에 출연한 애플렉이 아역배우로서 이른 경력을 쌓았지만 그 이후에도 그는 데이먼과 같은 고등학교를 진학하며 배우로서의 담금질에 동행했다. 그리고 두 사람은 <스쿨타이>(1992)로 동시에 영화계에 진입한다.
애플렉과 데이먼의 공동각본작이자 공동출연작인 구스 반 산트의 연출작 <굿 윌 헌팅>(1997)은 두 사람의 관계를 생각하면 보다 남다른 작품일 수 밖에 없다. 타고난 천재였으나 열악한 환경 속에서 제대로 된 교육도 받을 수 없었던 청년 윌과 그의 자기 방어적 오만과 결핍적인 심리를 치유하는 심리학 교수 션의 관계가 두드러진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대사 중 하나는 애플렉의 몫이었다. “내 생애 최고의 날이 언제인지 알아? 내가 너희 집 골목에 들어서서 네 집 문을 두들겨도 네가 없을 때야. 안녕이란 말도 없이, 작별의 인사도 없이, 단지 떠났을 때.” 공사장에서 맥주를 홀짝이던 척키가 자신의 재능이 놓일 자리를 명확하게 분간하지 못하는 윌에게 던지는 이 대사들은 거친 만큼 심금을 울리는 것이었다. 작품은 큰 성공을 거뒀고, 두 사람의 손에는 오스카 각본상이 쥐어졌다.
<굿 윌 헌팅>은 두 사람의 경력에 새로운 전기를 만들어준 작품이기도 했지만 두 사람이 비로소 홀로 자신의 경력을 쌓아나갈 출발점을 만들어준 작품이었다. <굿 윌 헌팅>이후로 애플렉은 마이클 베이의 SF블록버스터 <아마겟돈>(1998)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마이클 베이의 작품답게 평단으로부터 융단폭격에 가까운 비아냥을 들었지만 역시 전세계적인 흥행성적을 기록한 이 작품은 애플렉에게 할리우드 흥행배우라는 수식어를 안겼다. 다소 심심하게 들리는 이 훈장은 그의 입지가 가파르게 변하고 있음을 알리는 바로미터였다. 물론 부정적인 의미로도 말이다.
<포스 오브 네이처>(1999)부터 <서바이빙 크리스마스>(2004)까지, 애플렉이 출연한 수많은 작품 가운데 애플렉에게 배우로서 긍정적인 평가를 부여한 작품은 현저히 드물다. 일찍이 애플렉과 두 번의 작업 경험이 있는 인디영화 감독 케빈 스미스의 <도그마>(1999)에서 맷 데이먼과 의기투합하며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것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작품들은 범작 혹은 그 이하의 수준에 머물렀다. 마이클 베이의 전쟁 블록버스터 <진주만>(2001)이나 한때 연인이었던 기네스 펠트로우와 함께 한 로맨스물 <바운스>(2001)는 끔찍한 평가에 시달렸고, 마블 코믹스 원작의 안티히어로물 <데어데블>(2003)이나 필립 K. 딕의 소설을 원작으로 둔 오우삼의 SF액션물 <페이첵>(2003)은 그의 경력에 새롭게 찍힌 얼룩과 같았다. 역시 과거 애인 사이였던 제니퍼 로페즈와 함께 한 로맨틱 코미디 <갱스터 러버>(2003)나 <서바이빙 크리스마스>(2004)와 같은 가족코미디는 웃음거리나 다름 없는 대우를 얻었다. 2003년 골든라즈베리 시상식에서 애플렉은 <페이첵>과 <갱스터 러버>, <데어데블>까지 무려 세 편의 영화로 최악의 남우주연상 후보에 오른 뒤, 그 멍에를 뒤집어쓰는데 성공했다.
사실 2002년도 작품인 <썸 오브 올피어스>와 <체인징 레인스>는 애플렉을 나락으로 떨어뜨렸던 그 수많은 범작들 가운데 보기 드물게 쓸만한 경력이었다. 현실적인 정치적 스릴러였던 두 작품 속에서 공통적으로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인물로 등장했다. 애플렉의 이력을 새롭게 반전시킨 <할리우드랜드>(2006)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실화를 통해 할리우드의 추악한 이면을 그린 이 작품에서 애플렉은 클라크 켄트에 이은 2대 슈퍼맨을 연기했지만 자살로 생을 마감한 조지 리브스로 등장한다. 이는 할리우드 스타로서 화려한 인지도를 쌓아가면서도 경력과 연기적 비난에 직면했던 애플렉의 과거를 연상시키는 대목이기도 했다. 제63회 베니스영화제 경쟁작으로 출품된 이 작품으로 애플렉은 남우주연상 트로피를 거머쥔다. 자신의 본심을 감춘 정치인으로 출연한 <스테이트 오브 플레이>(2009)에서의 연기에 대한 긍정적 평가도 이런 사례와 무관하지 않다.
일찍이 짧은 단편물을 만든 경험이 있다지만 애플렉의 연출 선언은 파격적이었다. 그가 선택한 첫 연출작은 오늘날 미국 스릴러 문단을 대표하는 데니스 루헤인의 동명원작을 영화화한 <곤 베이비 곤>(2007)이었다. 의심 어린 시선 속에서 친동생 케이시 애플렉과 모건 프리먼 등을 캐스팅해서 완성한 이 작품은 완연한 극찬을 얻어냈다. 무엇보다도 이 작품은 보스턴 출신인 애플렉이 지니고 있는 지역적 커뮤니티에 대한 이해와 애정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보다 매력적이다. 이는 척 호건의 범죄소설을 각색한 두 번째 연출작 <타운>(2010) 역시 관통하는 특성이다. 뉴욕을 터전으로 둔 범죄물의 장인 마틴 스콜세지의 시선을 비롯해서 인간 본성에 대한 탐구와 휴머니티의 감수성을 품은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철학을 연상시키는 그의 연출작들은 작품 보는 눈이 없는 배우로 취급 당하던 애플렉의 과거를 완전히 지워버렸다.
사라진 소녀의 행방을 추적해 나가는 과정 끝에서 놀라운 질문을 던지는 <곤 베이비 곤>은 제도적 정의와 배치되는 인간적인 선택의 딜레마를 그리는 가운데, 인간과 사회의 관계를 유려한 시선으로 조망하는 서정적인 스릴러다. 반대로 <타운>은 늪과 같이 개개인의 발목을 잡고 있는 지역 사회 내의 범죄적인 전통 속에서 새로운 삶을 갈망하는 한 인물의 고뇌를 불안하게 응시하면서도 그 갈망을 끝내 응원하고 구원하는 하이스트 무비다. 근작인 <타운>은 장르적인 클리셰들을 적극적으로 동원한 애플렉의 자기실험에 가깝다. 이 두 작품만으로 애플렉은 거장으로서의 가능성까지 넘보는, 비범한 면모를 새롭게 덧씌우는데 성공했다.
물론 애플렉은 여전히 연기적 가능성을 인정 받는 배우다. 토미 리 존스와 케빈 코스트너, 크리스 쿠퍼 등 관록 있는 노장 배우들이 대거 출연한 <컴퍼니 맨>(2010)에서 애플렉은 하루 아침에 고액연봉자에서 실업자로 내려 앉은 가장을 연기한다. 이 영화로 그는 그 동안 얼마나 소모적인 작품 속에서 낭비적으로 활용됐는가를 스스로 증명한다. 자신만만한 샐러리맨이 실업의 고통과 가장으로서의 위기를 겪다가 다시 재기해나가는 과정은 마치 애플렉의 과거와 현재의 대비만큼이나 실감나는 것이었다. 슈퍼히어로의 고뇌나 영웅적인 면모를 흉내내기 보단 실존적인 고민을 연기할 때, 애플렉은 더욱 돋보이는 배우다. 과거 그는 자신의 경력을 돌아보며 이와 같이 말했다. “내 재능들은 때때로 과용됐고 또한 오용됐다. 나로 산다는 건 쉽지 않다.” 이제 모든 것이 다시 제 자리로 돌아왔다. 애플렉은 다시 진정한 궤도에 오르고 있다.
공원 한가운데서 잠을 청해보고 싶지 않은가. 노숙자가 되라는 말이 아니다. 싱가포르 도심 한가운데에 자리한 포트캐닝 파크 속의 천연 요새, 호텔 포트캐닝으로 당신을 초대한다.
싱가포르의 포트캐닝 파크는 싱가포르 강이 내려다 보이는 고지대 언덕이다. 오랜 과거부터 원주민들에게 ‘금단의 언덕(Bukit Laranga)’이라는 불길한 이름으로 불린 이 곳은 산이 없는 싱가포르에서 전통적으로 군사적 요충지 노릇을 해왔다. 고대 말레이 왕의 궁궐지이자 요새였고, 영국 점령기 시절의 군대 주둔지였으며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싱가포르에 반환된 이후에도 지휘참모대학 부지로 활용됐다. 공원의 이름에 ‘요새(Fort)’라는 의미의 단어가 동원된 것도 그런 전통 덕분이다. 곳곳에서 오래된 군사적 유물을 발견할 수 있는 포트캐닝 파크에 영국군 극동지역 사령본부 건물이 건축된 건 1926년의 일이었다. 그 오래된 군사 건물에 호텔이라는 새로운 옷을 입힐 계획이 새워진 건 2002년이었다. 그리고 2010년 11월, 포트캐닝 파크에 천연의 요새가 공개됐다. 호텔 포트캐닝은 포트캐닝 파크 내에 자리한, 유일하게 싱가포르에서 공원 내에 놓인 호텔이다.
682.7평방킬로미터에 불과한 작은 도시국가라지만 싱가포르에서 이방인이 자연에 둘러싸인 안식처를 찾기란 그전까지 불가능한 일이었다. 요즘의 최고급 호텔들이 하늘로 치솟는 위협적인 위용으로 투숙객들을 압도하는 것과 달리 수평으로 와이드하게 몸을 눕힌 포트캐닝의 외관은 그만큼 편안하고 차분하다. 그 안온한 인상을 안고 입구를 들어서는 순간, 전통과 현대의 조화가 눈 앞에 펼쳐진다. 물론 포트캐닝은 세련된 디자인과 첨단 테크놀로지로 치장한 여느 최신식 호텔들에 못지 않은 설비를 갖춘 호텔이다. 하지만 새롭게 단장된 포트캐닝에는 소위 최신식이라는 수사로 치장한 새로운 호텔들이 금고를 열어도 구할 수 없는 전통적인 체온이 곳곳에 서려 있다.
포트캐닝은 과거와 현재를 잇는, 1926년부터 2011년의 다리와 같은 공간이다. 호텔의 내부는 클래식한 건축물 속에서 펼쳐지는 현대적인 인테리어 박람회장과 같은 인상을 부른다. 엘리베이터를 이용하지 않아도 오르는 것이 어렵지 않은 3층 높이의 호텔을 오르고 내릴 때 고풍스러운 계단을 이용한다면 이 호텔을 이용한다는 것에 대한 만족감은 분명 배가될 것이다. 단적인 예로 이 호텔 속에 위치한 86개의 룸 가운데 하나인 프리미엄 디럭스 룸의 중앙부에는 긴 기둥이 놓여 있다. 이는 1926년에 지어진 건물의 시작부터 그 공간에 자리했던 것이다. 이 기둥을 제외한 모든 기구와 인테리어는 리노베이션과 함께 새롭게 들어서거나 앉혀진 것들이다. 이는 단지 고급스러운 전통적 모티프에서 비롯된 결과물들이 아니다. 포트캐닝은 오랜 과거의 전통들이 현대적인 감각과 어우러져 새로운 가치를 잉태한 르네상스적인 공간이다.
포트캐닝의 룸들은 싱가포르를 닮았다. 작지만 있을 것은 다 있는 싱가포르 말이다. 그리고 싱가포르의 도심을 채운 각양각색의 건물들처럼 각각의 룸마다 차별적인 개성이 도드라진다. 사실 ‘스위트 룸’과 ‘프리미엄 럭스’를 제외한 나머지 룸들에서는 공간적인 여유가 부족하다는 첫인상을 느낄 것이다. 하지만 그 아쉬운 너비 속에 머무르다 보면 점차 그 너비와 대비적인 충족감이 채워질 것이다. 만약 짧은 출장 일정으로 싱가포르를 찾았다면 포트캐닝의 디럭스 룸들은 숙식과 업무를 겸비한 개인공간으로서 탁월한 기능성을 보장해줄 것이다. 포트캐닝 파크의 풍경은 욕실의 넓은 창을 거쳐 욕실과 룸의 경계를 이루는 또 다른 창을 통해 풍요롭게 전달된다. 방 안에 앉아서도 남국의 풍요로운 정취가 한껏 전해진다. 물론 버튼 하나로 조종할 수 있는 자동 커튼이 있으니 당신의 프라이버시를 염려할 필요 따위는 없다. 공원과 룸을 중계하는 커다란 욕실의 창이 그래도 부담스러운 당신이라면 프리미엄 룸을 선택해도 좋다. 각 방마다 오픈된 전용 테라스를 지닌 디럭스 가든 룸은 프라이버시를 보장하면서도 편안한 여가를 즐길 수 있다는 점에서도 특별하다. 공통적으로 세련된 디자인과 아늑한 분위기를 지닌 각각의 방들은 저마다 다른 공간적인 실용성을 바탕으로 다양한 취향을 배려한다. 보다 너른 너비를 지닌 프리미엄 럭스 룸과 스위트 룸에서는 이런 모던한 감각과 전통적 품격의 조화를 더욱 풍요롭게 체험할 수 있다. 이 모든 룸들은 비즈니스 호텔과 부티크 호텔의 편의를 절묘하게 보장한다.
미네랄 워터로 가득 채워진, 높이가 다른 세 개의 풀이 유리처럼 반짝이는 수영장은 휴양지의 풀빌라를 꿈꾸던 당신에게 제격이다. 호텔 건물을 제외하면 공원의 녹지가 병풍을 이루는 포트캐닝의 수영장에서 탁 트인 하늘을 바라보며 여유롭게 수영을 즐기다 보면 공원 속 호수를 건너는 듯한 착각에 빠져든다. 호텔의 지하로 내려서면 넓은 홀이 펼쳐진다. 이곳에서는 각종 연회나 미팅, 파티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비즈니스 호텔로서의 규격에 보다 적합하다. 최신식 장비로 무장한 넓은 헬스장도 쾌적하다. 동남아시아의 전통적인 음식들을 주문할 수 있는 비스트로 ‘더 글래스 하우스’와 이탈리안 레스토랑 ‘가토파르도’가 함께 마련돼 있어서 다양한 입맛을 책임진다. 로비 라운지에 마련된 음료와 다과를 들고 잠시 테라스에 나가 망중한을 보내보는 것도 좋은 휴식이 될 것이다.
싱가포르 최대의 번화가인 오차드 로드와 클락 키 사이에 놓인 포트캐닝 파크는 마리나 에어리어나 시티홀, 래플스 플레이스 등, 싱가포르의 관광 요지들을 근접에 둔 싱가포르의 허브다. 포트캐닝은 그만큼 당신이 원하는 싱가포르에 가장 손쉽게 다가갈 수 있는 요충지다. 무엇보다도 도심 한가운데에 자리한, 싱가포르의 허파나 다름 없는 포트캐닝 파크에서 아침을 맞이할 수 있다는 건 한없이 상쾌한 일이다. 빌딩 숲 가운데 자리한 천혜의 ‘그린 아일랜드’에서 단잠을 이루고 깨어날 수 있다는 것. 포트캐닝은 바로 당신의 특별한 휴식을 위해 마련된 도심 속의 천연 요새다.
Recommender
포트캐닝 파크 속에 자리한, 싱가포르 유일의 공원 속 호텔. 제각각의 방마다 유니크한 개성을 자랑한다.
Rooms 78(including 2 suites)
Bar and Restaurant The Glass House, Gattopardo, Tisettanta Lounge, The Lobby Lounge
Facilities Swimming pools treated by a state-of-the-art filtration system, TechnoGym, THANN Sanctuary from Thailand
Features HD TVscreens with satellite/cable TV, complimentary broadband and wireless internet, i-Pod docking system, nespresso mach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