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문> 단평

cinemania 2009. 4. 4. 00:24

<엽문>은 이소룡의 스승이자 영춘권의 계승자라는 엽문(견자단)의 일대기를 그린 작품이다. <무인 곽원갑>이나 <정무문> 혹은 <황비홍>시리즈의 기시감이 드는 건 무리는 아니다. 일제 치하에서 망국인의 정신적 지주가 된 쿵푸 영웅의 일대기를 그린다는 점에서도, 동시에 무예에 조예가 있는 배우의 리얼 액션이 바탕이 된 무술 영화라는 점에서도 전자들과 공통 분모는 뚜렷하다. <엽문>은 일제치하의 역사가 잉태한 시대적 반일 정서를 통해 감정을 고양시킨다. 이는 국내 관객의 동감을 얻을 여지가 있다. 다만 그 민족적 자존심을 시대적 함성으로 승화시킨 광경 속에서 중국 민족주의에 대한 반발심이 우러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혹은 할리우드 슈퍼히어로 물에 익숙한 세대라면 그것들을 보고 난 후와 비슷한 감상을 얻을지 모를 일이다. 다만 그 모든 감정적 판단과 무관하게 <엽문>이 중국 무술영화의 양자로 불릴 만한 자격이 있는 작품임을 부정할 수 없다. 견자단은 자애롭고 여유로운 강자의 풍모를 표현하는데 부족함이 없다. 유연하면서도 폭발력 있는 견자단의 몸놀림만으로도 <엽문>은 특별하다 말할 수 있는 영화다. 우직한 야심을 과감히 뿌리고 거둔다. 과거 중국영화의 향수를 느끼는 세대에겐 반가움을, CG와 와이어액션에 익숙한 젊은 세대에게는 묵직한 압권을 전하고도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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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에서 날아온 정체불명의 운석은 한 여자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버린다. 거인이 된 수잔(리즈 위더스푼, 한예슬)은 미국 정부가 비밀리에 운영하는 지하기지에 격리된 채 거대렐라라 불리며 선배(?) 몬스터들과 조우한다. 그러던 어느 날, 역시나 외계에서 날아온 정체불명의 거대로봇이 또 미국 땅에 떨어져(!) 무차별 공격을 감행한다. 이에 맞서기 위해 비밀리에 격리돼있던 몬스터들이 출격한다. 간단한 줄거리만으로 보자면 박진감 넘치는 SF액션물의 외피가 예상돼지만 <몬스터 vs 에어리언>(이하, <몬스터>)은 드림웍스 애니메이션이라는 혈통을 입증하듯 나사 빠진 캐릭터들의 행위와 대사를 통해 위트를 유발하는 해학적 작품이다.

 

주지하는 정서적 감흥이 뻔한 수준을 맴돌지만 단순하다고 폄하할 수 있는 수준의 스토리까진 아니다. 인간을 위협한다고 믿었던 몬스터들이 지구를 구하고, 되레 인간의 혐오를 극복하며 슈퍼히어로에 버금가는 존재로 변태되는 성장스토리엔 나름대로 제 크기에 걸맞은 의미가 있다. 다만 <몬스터 vs 에어리언>(이하, <몬스터>)은 그보다 다른 의도가 명확한 작품이다. 스토리는 조연에 가깝다. 주연은 인트루 3D(Intru 3D)라 지칭되는 3D영상구현기술을 통한 시각적 자극의 진일보를 체험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그것은 엔터테인먼트에 가까운 속성이다. <몬스터>는 시각적 자극을 극대화시킨 3D영상의 엔터테인먼트적 자질이 어느 수준에 도달했는가를 알리는 현대의 지표란 점에서 흥미롭다. 다만 그 자극이 뛰어난 창작력을 기반으로 삼지 못했을 때 지속적인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는 점을 유념해야 할 것 같다. 때때로 블랙코미디적인 웃음을 유발하는 캐릭터들이 귀엽지만 그것이 이 영화를 권할 만큼 강력한 매력이라 정의 내리긴 쉽지 않다. 기술도 과도기지만 이야기 수준도 과도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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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7 카지노 로얄>은 새로운 징조였다. 젠틀한 매너로 본드걸의 마음을 사로잡는 훈남 스파이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것을. 그리고 22번째 ‘007’ <007 퀀텀 오브 솔러스>(이하, <007 퀀텀>)는 전작의 못다한 이야기를 이어받은 새로운 작전명이다. 전작의 아크로바틱한 오프닝만큼이나 육중한 카체이싱으로 포문을 여는 <007 퀀텀>은 근육질로 대변되는 터프한 마초적 스타일의 제임스 본드가 새로운 대안으로 자리잡았음을 무심하듯 시크하게 증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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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이그나티우스의 동명원작소설을 영화화한 리들리 스콧의 <바디 오브 라이즈>는 실체가 분명치 않은 거짓이 어떻게 세상을 장악하는가에 대한 이야기다. 진실은 거짓에 압도당해 쓸모를 잃고 그 빈자리마저 거짓으로 메워진다. 형체가 없는 거짓이 진실의 육체를 장악할 때 선악의 경계도 희미해진다. 중동과 미국의 전쟁은 실체를 가늠할 수 없는 각축장으로 변질되어 끝을 예측할 수 없게 됐다. 포스트 911의 시대에서 악의 축으로 구분된 이라크는 미군의 로켓세례를 얻었지만 그 반작용은 전세계에서 동시다발적인 테러를 발생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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