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엘르>를 넘기는 당신은 여자 아닌가? 빤한 질문 아니냐고? 그렇다면 혹시 <엘르> 보는 남자본적 있나? 이것도 빤한 질문인가?
남자들은 <엘르>를 보지 않는다. 이게 무슨 자폭 테러이고 자학 공갈인가 싶겠지만 경험상 대부분의 남자들은 그렇다. 궁금하다면 한번 직접 물어보시라. “<엘르> 챙겨봐”라고 말하는 남자가 얼마나 있는지. 물론 전제조건이 있다. 질문을 받을 그가 일단 패션에 대한 학문적인 관심 혹은 산업적인 관련이 없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잡지보는 것 자체를 낙으로 자처하는 남자 역시 여기서 말하는 그 ‘남자’가 아니다. 여기서 말하는 ‘남자’의 자격이란 최소한 손을 뻗어서 닿는 위치에 놓인 잡지를 한번쯤 훑어볼 정도로 잡지에 완벽하게 무관심하지 않은 남자를 의미한다. 감히 장담하건대, “몇 번 본적 있어”라고 말하는 남자를 만나기가 생각보다 어려울 거다.
<엘르>를 읽지 않는 그들은 흔히 여성 패션지라고 일컫는 대부분의 매거진을 보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여성’ 혹은 ‘우먼’이란 단어로 수식되는 매거진 대부분이 마찬가지다. 그들은 여자들이 주독자층을 차지하는 잡지에 관심이 없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보이시한 여자’는 있어도 ‘걸리한 남자’는 없다. 남자 옷을 입은 여자가 패셔니스타 대접을 받을지 몰라도 여자 옷을 입을 수 있는 남자는 구경거리가 되고도 남는다. 정말 왜소한 체격의 남자가 아니고서야 골격의 구조상 입을 수 있는 옷조차 드물다. 단적으로 남자는 치마를 입지 않는다. 물론 당신은 “마크 제이콥스는 치마를 입잖아!”라고 반박할 수 있다. 그렇다면 솔직하게 답해보시라. 당신의 애인에게 치마를 입힐 자신 있나? 혹시 스코틀랜드의 전통의상인 킬트(kilt)로 딴지 거는 사람은 반사. 게다가 남자들은 립스틱이나 코스메틱에 관심을 가질 이유도 없다. 마찬가지로 그 아이템과 관련된 업종에 종사하는 이들이 아니라면 말이다.
반대로 여자들 중엔 남성 패션지를 본다는 심지어 즐겨본다는 여자가 생각보다 적지 않다. 그리고 그건 그녀들이 남성복을 입을 수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여자는 남자에게 관심이 많다. 그럼 남자가 여자한테 관심이 없냐고? 그럴리가. 다만 서로에게 갖는 관심이나 호기심이 다를 뿐이지. 예를 들자면 여자는 남자에게 넥타이를 매줄 수 있다. 남자도 여자의 집업 드레스의 지퍼를 올려줄 순 있지만 그건 엄연히 다른 행위다. 남자가 남자의 넥타이를 매주는 거 봤나? 웬만해선 시도하지 않는 행위다. 하지만 여자는 여자의 지퍼를 올려줄 수 있다. 남자의 복식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는 동성인 남자보다 이성인 여자에게 주어진다. 여자가 남자의 영역을 침범하는 건 자연스럽단 말이다. 그리고 그러고 싶어한다. 대부분의 여자는 자신의 남자를 자신의 기준대로 변화시키는데 능하다.
반대로 남자는 여자의 취향에 관여하고 싶은 생각이 없다. 최소한 그 취향이 눈뜨고 볼 수 없는 재앙이거나 집안 기둥뿌리 뽑아먹는 재난이 아닌 이상에야 그렇다. 대부분의 남자는 자신의 여자를 변화시키고 싶은 욕망이 없다. 선물을 하는 방식에서도 그런 차이가 보인다. 남자는 대부분 그 여자가 갖고 싶은 것이나 갖고 싶을 만한 것을 선물한다. 후자일 땐 대부분 값비싼 것을 선택한다. 하지만 그녀들은 자신이 선물하고 싶은 것을 찾는다. 자신의 남자가 자신의 취향대로 변신할 수 있길 기대한다. 정리하자면 여자는 남자에게 입히고 싶은 것을 선물하고, 남자는 여자를 벗길 수 있는 것을 선물한다. 이성에 대한 남녀의 욕망이 대단히 다르다는 것이다. 어쨌든 그들은 당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잘 모른다. 그러니 그들에게 바라는 걸 영리하게 어필해보시라. 그게 그의 주머니 사정을 깡그리 무시하는 것만 아니라면 그에게도 대단히 편안한 일일 테니까. 물론 그가 당신을 사랑한다는 전제하에서. 그리고 당신이 아까 앞에서 언급한 그런 ‘남자’가 아닌 여자라는 전제하에서.
아름다운 것에 끌리는 건 본능이다. 누구나 미를 탐한다. 그래서 수술한다. 코를 높이고, 턱을 깎고, 눈을 키운다. 설마 그랬다고 고개를 숙이지는 마라. 당신에겐 죄가 없다. 죄인은 따로 있다.
강남의 한 지하철역 출구는 인생 역전했다는 남녀들의 자랑으로 도배돼 있다. 그중 한 여성은 성형수술 후, 결혼했단다. 그 옆에 나열된 남성은 프러포즈를 했단다. 국가적으로 결혼을 장려하는 시대에 성형외과가 국익에 앞장서고 있으니 이만한 경사가 또 있을까. 게다가 한 남성은 취업까지 했단다. 나라님도 구제하지 못한 청년 실업자들을 성형외과가 구한다. 그 놀라운 행적의 주체라며 패기 넘치는 광고를 집행한 건 바로 인근에 16층 빌딩을 독점한 어느 성형외과였다. 얼굴을 바꾸면 인생이 달라진다. 할렐루야!
일단 사람들의 눈길을 끄는 것이 광고의 기본적인 목적이라면 어떤 의미에선 대단한 성공이다. 그 출구를 오르내리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광고를 쳐다보고 일행과 수군대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손가락질하고 수군대며 깔깔대는 모습이 그리 통쾌하진 않았다. 만약 그 성형 광고 모델이 김태희 같았다면 그녀들은 마냥 그렇게 손가락질할 수 있었을까. 성형이 누군가의 인생을 얼마나 탈바꿈시키는지 몰라도, 이 풍경은 분명 어딘가 놀랍다. 은밀하게 감춰져 있던 욕망이 지하철역 벽에 적나라하게 펼쳐져 욕망의 주체들과 마주본다. 외모도 이젠 하나의 스펙이 됐음을 부정하지 않는 패기 넘치는 카피가 되레 신선했다. 문득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 출구를 통과해 성형외과의 문턱을 넘었을지 출구조사라도 해보면 어떨까 생각했다.
강남의 특정 지역을 배회하면 가끔 마스크로 얼굴 대부분을 가린 여성들과 마주치기 십상이다. 마스크로 채 가려지지 못한 얼굴 외곽까지도 시퍼렇게 부어 올라 통증을 상기시킨다. 살이 찢기고 뼈가 깎이는 고통이 전이된다. 무섭다. 그네들의 그런 외형이 무서운 게 아니다. 그만한 통증을 감내하고서라도 사고 싶은 인생이 있다는 건 그 고통을 감내하지 않고선 극복할 수 없는 현실이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게다가 그것이 자신의 인생을 완벽하게 뒤바꿀 수 있다고 믿을 수 있는 기회라면 추구해야 마땅한 현실인 거다.
송나라 시대부터 중국에서 미의 기준은 기이하게도 작은 발이었다. 그냥 작은 발이 아니라 작게 만든 발이었다. 당시 중국 여아들은 네다섯 살 무렵이면 네 발가락이 발바닥에 밀착될 정도로 발을 뒤틀어 천으로 동여맸다. 딸에 대한 애정이 깊을수록 어머니는 발을 더욱 세게 조였다, 작은 발을 가지면 시댁의 가문이 달라졌으니까. 가장 이상적인 발의 크기는 9cm 정도였다고 한다. 이런 풍습은 1000년 동안 이어졌다. 이른바 전족이다. 전족을 하면 걷기가 불편했기에 집안일을 하지 않고 부축할 하인이 있는 상류층 아녀자들을 중심으로 확산됐지만 서민층도 이를 따라 했다. 두 발로 설 수 없어서 무릎으로 기면서도 아름다운 발을 포기할 수 없었다. 1884년 서태후가 전족 금지령을 내린 뒤에도 이런 전통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전족을 한 여성에 대한 남성들의 선호는 여전했고, 여성들 또한 쉽게 발을 풀어놓지 못했다.
미의 가치나 기준은 시대별로 지역별로 달랐다. 다만 추구하는 방식은 대체로 유사하다. 중국에서 성행한 전족과 같은 사례는 더러 발견된다. 이디오피아의 수르마족은 여전히 성년이 된 소녀의 입술을 찢어서 쟁반을 끼우는 의식을 치른다. 나이가 들수록 쟁반의 크기는 커진다. 이는 기본적으로 남성에 대한 복종의 의미를 담고 있지만 입술에 끼운 쟁반의 크기가 클수록 혼인할 남성이 지불하는 지참금의 액수가 커지기 때문이기도 하다. 중세 유럽의 여인들이 코르셋을 입고 허리를 옥죈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사회적 수준과 문화의 차이에 따라서 행해지는 방식의 차이만 있을 뿐 본질은 크게 다를 바 없었다. 혼인을 앞둔 여성들은 남성적 권위가 강했던 당대의 분위기 속에서 통용되는 미적 기준에 부합하며 더 나은 혼인 조건을 충족하고자 했다. 그것이 유일하게 당대 여성들의 사회적 지위를 높일 수 있는 통로였기 때문이다.
성형은 사회가 가리키는 미적 기준에 충족하고자 신체의 손상을 감수한다는 점에선 중국의 ‘전족’이나 이디오피아의 ‘쟁반 입술’과 유사한 현상처럼 보인다. 하지만 성형이 전족이나 쟁반 입술과 구별될 수밖에 없는 건 온전히 당사자가 선택한 결과라는 데 있다. 전족이나 쟁반 입술은 커뮤니티의 강압을 통해서 이뤄지는 완벽한 폭력이다. 그저 감당해 내야만 하는 일종의 재앙이다. 하지만 성형은 선택이다. 부모로부터 발을 동여매어지거나 성년이 돼 입술이 찢긴 채로 쟁반이 끼워지는 것과는 엄격한 격차가 있다. 그만큼 선택에 대한 결과적 책임도 온전히 본인의 것이 된다. 하지만 과연 성형이 온전히 개인의 선택을 통한 결과라고 정의될 수 있을까.
여자든, 남자든, 살아 있는 유기체라면 아름다운 것을 좋아하고 추구하고 동경하기 마련이다. 하물며 꿀벌도 자신의 관점에서 예쁜 꽃의 꿀을 빨아들이는 법이니까. 그런 미적 추구의 방편이 살을 찢고 뼈를 깎는 고통이라 할지라도 타인이 나서서 손가락질할 권리는 없다. 다만 그런 욕망이 마치 누구나 그래야만 할 것처럼 부추기고 전파될 때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몇몇 케이블 채널에선 시청자에게 성형수술을 제공하는 프로그램들이 방송되고 있다. 평소 사회생활에 지장을 받을 정도로 외모 콤플렉스가 심한 이들에게 성형의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치유의 기회를 주겠다는 것이 이 방송의 모토다. 확실히 성형수술을 받은 여성은 달라 보였다. 단지 외모가 변해서가 아니다. 표정에서 발산되는 생기가 그랬다. 긍정적인 결과다. 단편적인 결과만을 보면 그렇다는 말이다.
외모 때문에 주눅들어 살던 여성이 성형수술 후 스튜디오 무대로 당당하게 걸어 나와 카메라를 응시하는 광경은 강남의 한 지하철역 출구에서 목격한 광고와 유사한 구석이 있다. 차이가 있다면 더욱 설득력이 있다는 것이다. 성형이 당신에게 새로운 인생을 선사할 것이라는 달콤한 약속이 TV를 통해서 전파된다. 당신도 이 시대가 요구하는 미의 기준을 갖추고 당신의 가치를 높이라고 속삭인다. 엄연히 말해서 이건 조장이다. 어느 개인의 영역 안에서 벌어지던 일들이 매체를 통해 대중에게 전파되고 전시될 때 그 목적은 뚜렷해진다. 개인에겐 자기 삶을 선택할 권리가 있다. 대부분의 성형 프로그램들은 그 권리에 기생해서 왜곡된 가치를 송출한다. 규격화된 미의 기준을 전시하고, 그런 삶이 보다 나은 미래를 보장할 거라고 무의식을 지배한다.
성형외과(Plastic Surgery)의 영어식 표기는 ‘형태를 만든다’는 의미의 그리스어 ‘플라스틱코스(Plastikos)’에서 유래됐다. 본래의 타고난 인상에 ‘형태를 만든다’는 건 결국 가공의 의미에 가깝다. 타고난 신체를 원석 삼아 새로운 외모를 가공해내는 것이다. 성형외과를 찾은 이들은 다이아몬드로 거듭나길 희망한다. 그리고 성형외과는, 그 이전에 이 사회는 대학졸업장과 외국어 실력만큼이나 코의 높이와 턱의 형태가 당신의 경쟁력이 될 것이라 부추긴다. ‘단지 예뻐지고 싶어서’라는 개인적 취향이 아니라 ‘예뻐져야 한다’는 강박을 일으킨다. 성형수술도, 성형 미인도 죄가 없다. 당신의 삶이 개력될 것처럼 광고하고 방조하는 성형 권하는 사회에서 살고 있다는 것이 죄라면 죄일지도 모르겠지만.
조용하듯 분주하게, 에디터들은 각자의 취향으로 세상을 감별한다. 그렇게 수집된 정보가 모여 매월마다 한 권의 <엘르>로 전파된다.
바야흐로 마감이다. 가을바람이 신선하게 불어오는 이 계절의 주말 한낮에 사무실에서 키보드를 두들기고 있는 것도 그런 까닭이렷다. 어젯밤 ‘불금’을 보내자고 카톡을 날렸던 친구는 ‘마감’이라고 답하니 ‘달거리 할때구나’라고 답장을 보내왔다. 순간 자웅동체라도 되어 에이리언 같은 새끼를 낳아서 놈에게 퀵 배송이라도 보내줘야겠단 상상을 했지만 이럴 때가 아니지. 지금 사무실은 조용하게 분주하다. 컬렉션 기간이 시작되면서 해외 출장을 떠난 몇몇 패션 에디터들의 빈자리가 눈에 띄는 덕분일지도 모르겠다. 마감은 막바지로 치닫고 있다. 키보드 치는 소리가 거진 들리지 않는 걸 보아하니 지금 키보드를 바삐 두들기는 내가 정상적인 마감의 중력에서 이탈하여 비정상적인 궤도 위에서 떠도는 것을 직감한다.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정신차리고, 다시 원고의 경로를 재탐색하자.
여자가 8할인 <엘르> 사무실 책상 하나에 입주한 것도 어느덧 반 년이 지나는 중이다. 제대로 밥벌이를 하고 있는 것인지 축내고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다만 여하간 벌써 계절은 두 번이나 바뀌었다. 관련 업체 종사자나 이 업계에 어느 정도 이해도를 지닌 이들이 아닌 ‘아주 보통의 사람들’은 내가 <엘르>를 만든다 했을 때, 두 가지 반응을 보인다. ‘응?’ 혹은 ‘와!’ 전자는 수컷이고 후자는 여자다. 내 절친한 친구 놈은 진지한 얼굴로 창의적인 질문을 던졌다. “그러니까 네가 한다는 ‘퓨처’ 에디터가 뭐야?” 잠시 네 놈의 인생을 편집해 주는 직업을 어떨까 생각했다. 한 여성 동지께서 물어보셨다. “<엘르>면 패션지니까, 직원 분들도 다 패셔너블하시겠어요.” “음, 그건요. 일단 제 꼴을 좀 보고 말씀하세요. 하하하.” “호호호.” “…” 그래, 뭐, 나는 퓨처 에디터니까.
며칠 전, 동료 선후배 에디터들과 함께 회사 근처의 가까운 커피 전문점에서 잠시 수다를 떨던 중이었다. 다양한 화두 중에 최근 장안의 화제인 <개그콘서트>의 새로운 코너에 등장한다는 ‘꽃거지’로 대화가 흥했다. 한 패션 팀 선배가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하니 후배가 스마트하게 아이폰으로 동영상을 검색했다. 역시, 이런 아이폰이 있다는 것. 그리고 동영상을 보던 선배는 웃음을 터트리는 대신 감탄했다. “와, 옷 되게 잘 입혔다. 레이어드 너무 잘했는데.” 그리고 나는 생각했다. ‘저거 에세이 떡밥인데?’ 어쨌든 이건 ‘일상의 재발견’ 아닌가. 꽃거지에게도 룩이 존재함을 재발견하는, 전문가의 손길이 느껴지는 패션 에디터만의 멘트. 관심사가 무엇이냐에 따라서 보이는 것도 달라지는 법이라더니, 패션 에디터는 꽃거지에게서도 레이어드 룩을 발췌한다.
물론 앞선 문장의 의미 중 절반은 농담이고, 절반은 진담이다. 패션지의 에디터들, 패션, 피처, 뷰티 에디터들이 먹고 사는 방식이란 그들이 지닌 취향을 밑천으로 삼아서 밥벌이를 하는 직업이란 말이다. 고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이는 생각 이상으로 즐거울 수도, 고될 수도 있는 일이다. 취미생활이 아니기 때문이다. 자신의 취향을 좀 더 명확하게 아는 것도 중요하고, 타인의 취향을 좀 더 폭넓게 수집하고 탐색하는 것도 중요하다. 취향도, 성격도, 일하는 방식도, 심지어 저마다의 책상 풍경도 다르다. 중요한 건 이렇게 서로 다른 개개인이 모여서 한 권의 잡지를 매달 만들어나가고 있다는 말이다.
물론 한 권의 잡지가 만들어지기까지의 부단하고 지난한 노력들을 상세히 읊을 순 없겠지만 그 잡지가 만들어지는 과정 안에서 에디터들은 결국 저마다 하나의 요소가 되어 한 권의 잡지에 저마다 녹아 들어간다. 마감 사무실의 풍경이란 결국 매달 제작되는 한 권의 책으로 기록되고 보존되는 것이다. 결국 지금 한 권의 <엘르>를 만들고 있는 이 사무실 안의 에디터들이란 저마다 특별한 취향을 섭렵해서 감별하고 전파하는, 아주 보통의 에디터들이란 말이다. 마감은 여전히 끝나가는 중이다. 어느새, 밤이 찾아왔다. ‘퓨처’ 에디터가 되고 싶은 밤이다.
이건 단순한 영웅전이 아니다. 크리스토퍼 놀란의 ‘배트맨’ 트릴로지는 오늘날의 슈퍼히어로 무비들과 또 다른 전형이다. 혼돈과 절망을 건너 끝내 세상을 구원하는 배트맨의 여정은 여전히 당신의 믿음을 시험하고 있다.
크리스토퍼 놀란의 장편 연출 데뷔작 <미행>(1998)은 단돈 6천불의 예산과 게릴라 슈팅으로 촬영된 작품이다. 이는 미국 내 단 두 개의 상영관에서 개봉된 뒤 4만 8천여 불의 수익을 거뒀다. 최근 놀란이 지휘한 영화들과 비교했을 때 지극히 초라한 규모를 지닌 이 작품은 그의 필모그래피를 관통하는 중요한 단서다. <미행>의 파편적인 서사의 운용은 놀란을 세계적인 입지의 감독으로 승격시킨 <메멘토>(2000)를 떠올리게 만든다. 하지만 영화의 주제 의식은 <인셉션>(2010)과도 흡사하다. 실제로 <미행>에선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연기하는 <인셉션>의 코브와 동명인 또 다른 코브가 등장하는데 그는 도둑질이라는 행위가 타인의 삶에 관여하고, 어떤 의미로는 타인의 욕망을 충족시켜주는 행위라고 주장한다. 이는 타인의 꿈에 침투해서 기억을 조작하고 개인의 삶을 조종한다는 점에서 흡사하다. <미행>의 도둑질이 곧 ‘인셉션’인 셈이다.
놀란이 죽어가던 <배트맨> 시리즈에 새로운 숨을 불어넣을 적임자로 임명됐을 당시, 화두에 오른 건 문에 붙은 배트맨 로고가 등장하는 <미행>의 한 장면이었다. 그가 일찌감치 배트맨의 팬보이였다는 소문이 전파됐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가 배트맨에게 시행한 심폐소생술은 탁월했다. 팀 버튼이 연출한 <배트맨>(1989)이 할로윈의 코스튬 카니발이라면 놀란의 <배트맨 비긴즈>(2005)는 하이퍼리얼리즘의 테러를 주목하는 영화였다. 그러니까 팀 버튼의 그것이 철저하게 악몽 같은 코믹스의 세계관 안에서 복무하며 현실과 괴리된 존재들을 비추는 대신 놀란은 최대한 현실에 두 발을 딛고 이 세계의 폭력 위를 누비는 영웅의 고단함을 추적한다.
<배트맨 비긴즈>는 배트맨 수트의 부품 하나하나의 근원과 기능까지 짚어나간다. 결과적으로 <배트맨 비긴즈>는 <다크 나이트>(2008)와 <다크 나이트 라이즈>를 위한 충실한 매뉴얼이다. 반도체의 단자들을 연결하듯 배트맨을 이루는 물리적, 정서적 인과관계에 크고 작은 디테일을 새겨 넣는 과정을 통해서 브루스 웨인과 배트맨이라는 이중적 자아가 공존할 수 있는 현실적인 장을 마련한다. 이는 단순히 놀란의 고집이나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명확한 인식이자 철저한 기준, 즉 그가 생각하는 영화적 가치를 대변한다. 스크린과 객석 사이의 거리감을 좁히고 일치시킴으로써 상영관을 벗어난 관객이 자신의 영화적 체험을 곱씹을 때, 영화 속 고담과 객석 사이의 거리를 좁히고 일치시킴으로써 그 세계는 무한한 가능성을 확장되고 이로서 완성된다.
<배트맨 비긴즈>가 놀란의 배트맨을 스크린에 세우는 작업 자체로서의 의미를 지닌 작품이라면 <다크 나이트>는 그 완성된 배트맨을 도구 삼아서 고담, 즉 이 세계의 곳곳을 비추고, 살피는 ‘놀란의 본격적인 시선’에 가깝다. 아이맥스 카메라까지 동원된, 전작에 비해서 광대해진 스케일은 <배트맨 비긴즈>에서 어루만진 디테일의 연결을 통해서 보다 손쉽게 확장된다. 물론 히스 레저의 목숨을 건 열연이 <다크 나이트>가 지닌 자질 이상의 성취를 더했다는 걸 간과할 순 없지만 기본적으로 이 작품이 사회를 관통하는 시선과 영웅에 접근하는 방식은 주목할만하다. <다크 나이트>는 ‘이 사회의 대중이 진정한 영웅을 받아들일 수 있는 그릇인가?’라는 물음을 품었다. 고담을 유린하던 조커가 배트맨이 가면을 벗으면 자신도 자수하겠다는 조건을 내걸었을 때, 시민들은 배트맨을 비난하고 자수를 촉구한다. 조커는 대중의 나약하고 이기적인 심리를 파고 들어 헤집는다. 이를 통해서 영웅을 끝내 궁지로 몰아넣는다.
놀란의 ‘배트맨’ 트릴로지 대단원 <다크 나이트 라이즈>는 그럼에도 이 사회에 영웅이 존재해야만 하는 이유에 관한 이야기다. <다크 나이트>에서 스스로 권위의 추락을 선택한 배트맨은 다시 한번 일어서서 고담을 구원할 흑기사가 된다. 배트맨에게 기생하듯 등을 맞댄 숙적 조커와 달리 베인은 철저하게 반체제의 선동가로서 배트맨을 마주보고 선다. 놀란은 말한다. “조커는 확실히 혼돈에 가까운 무정부주의자이자 사악한 유머 감각의 소유자로서 특별한 악당의 전형을 보여줬다. 내게 베인은 이 영화를 위한 밑천이었다. 이번 영화에선 새로운 무언가를 원했다.”조커가 고담을 흔드는 바람, 즉 혼돈 그 자체를 유희하는 악마였다면 베인은 모든 것을 파괴하는 절망의 화신이다. 그리고 이 영화를 본 관객 대부분은 베인에게 뭇매를 맞고 나뒹굴던 배트맨이 끝내 허리가 꺾여 몸을 가누지 못하는 광경에서 묘한 통증을 공유했을 것이다. 기댈 곳이 없다는 건 세상의 끝으로 몰린 절망이다. <다크 나이트 라이즈>는 그런 세상의 끝으로부터 되돌아오는 이야기다. 물론 이성적인 질서와 규범이 무법적인 폭력에 의해 와해되는 풍경을 초월적인 존재의 등장만으로 구원할 수 있다는 믿음은 역설적인 절망이다. 하지만 <다크 나이트 라이즈>는 비관적인 영화가 아니다. 배트맨이 구원한 고담에서 자라난 누군가는 정의로운 신념으로 영웅적인 채비를 차리고, 세계로 나아간다. 배트맨은 말한다. “모두가 영웅이야. 어린 아이의 어깨에 코트를 걸쳐주며 세상이 끝나지 않았다고 희망을 주는 남자도.” 배트맨의 탈을 쓴 브루스 웨인이 지키고자 했던 고담의 가치란, 이 세계의 정의란 그런 것이다. 결국 놀란은 이 세계를 좌우하는 건 배트맨도, 베인도 아닌, 객석의 개개인이라 말하고 있는 셈이다.
놀란의 영화는 항상 진실에 대한 물음을 품고 있다. 그 물음은 일종의 게임의 형식을 취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그 진실을 마주하기까지의 고난과 목도했을 때의 충격을 중요하게 다룬다. <프레스티지>(2006)는 어쩌면 크리스토퍼 놀란의 세계관을 설명하기 위한 가장 좋은 도면일지도 모른다. 마술은 트릭이다. 눈속임이다. 진실을 알게 되면 시시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그것이 훈련된 눈속임이 아니라 위장된 진실이라면? 최고의 마술을 꿈꾸던 두 마술사가 경쟁 끝에 도달하는 진실은 생각 이상으로 놀랍고 끔찍하다. <프레스티지>는 바로 놀란이 품은 진실게임이다. 놀란은 말한다. “자신만의 세계와 논리를 가진 영화들이 관객이 보는 이미지 이상의 의미로 확장될 수 있다.”당신이 바라보는 영화적 세계가 스크린 너머의 허구일 때 우린 안전하지만 그것이 때때로 현실로 튕겨져 나올 때, 영화란 더없이 위험한 도구처럼 보인다. 최근 콜로라도 주의 소도시 오로라에서 벌어진 참혹한 총기 사건도 영화의 잠재적 불안을 조커처럼 속삭이고 부추긴다. 하지만 영화는 결코 이 세계를 망치지도, 구원하지도 않는다. 그 주체는 바로 당신이다. 놀란이 전하는 진실이란 바로 그런 것이다. 결국 우린 믿어야 한다. 당신이 지켜야 할 모든 가치들을, 그리고 우리 자신 스스로를.
(BOX)왜 아이맥스인가?
“아이맥스가 영화를 위한 최고의 포맷으로 발명됐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크리스토퍼 놀란이 <다크 나이트>를 아이맥스 카메라로 촬영한 이유다. 상업영화 최초의 사례였다. 심지어 <다크 나이트 라이즈>는 전작의 두 배에 달하는 55분 분량을 아이맥스 카메라로 촬영했다. 70mm 아이맥스 필름에 담긴 광대한 비주얼은 그 자체로 대단한 볼거리다. 하지만 놀란은 단순한 볼거리를 의식한 것이 아니다. “<인셉션>은 그 특이한 풍경을 포착하기보다 꿈의 리얼리티를 묘사하는 게 중요했기에 아이맥스 대신 핸드헬드 카메라의 현장감을 활용했다. 반면 <다크 나이트>와 <다크 나이트 라이즈>는 아이맥스의 거대한 캔버스에 매우 잘 맞아떨어진다. 그 차이는 영화가 요구하는 방식에 의존한 결과였다.”놀란이 재발견한 아이맥스에 할리우드가 주목하고 있다.내년에 개봉될 <스타트렉: 더 비기닝 2>와 <헝거 게임: 캐칭 파이어>는 아이맥스 카메라로 촬영됐으며 스티븐 스필버그도 적극적으로 관심을 보이는 중이라니, 3D를 잇는 차세대 영화 플랫폼은 아이맥스가 될지도 모르겠다.
오는 10월 11일, 조셉 고든 레빗의 신작 <루퍼>가 개봉한다. 미래의 자신과 사투를 벌이며 시간의 경계를 넘나드는 2044년의 킬러가 됐다. 미래지향적인 배우를 위한 미래적인 캐릭터, 이보다 좋을 수 없다.
의문스러운 여자친구의 죽음이 남긴 단서들을 추적하던 소년은 교내의 마약 밀매 조직과 맞닥뜨린다. 감히, 어리다고 놀리지 말 것. 여느 성인 스릴러물 못지 않은 서스펜스를 자아내는 <브릭>은 2005년 제21회 선댄스 영화제를 열광시켰다. 그리고 <브릭>의 감독 라이언 존슨은 조셉 고든 레빗이라는 넉살 좋은 친구를 얻었다. 그는 이 ‘경이적인 재능을 지닌 배우’가 자신이 그린 어떤 밑그림의 화룡점정을 찍을 붓이라 생각했다. 미래에서 찾아온 자신을 죽여야만 하는 사내의 무용담. 조셉 고든 레빗을 통해서 본격적인 채색을 시작한 이 밑그림은 비로소 <루퍼>라는 이름을 얻었다. 결과적으로 <브릭>은 조셉 고든 레빗에게 단순한 과거적 성취로 떠밀리는 대신, <루퍼>라는 미래를 안내하는 통로가 된 셈이다. <브릭>에서 <루퍼>로 다다르는 7년 동안, 조셉 고든 레빗은 인디펜던트 무비와 블록버스터를 가로지르며 꾸준한 경력을 이어나갔다. 물론 그 간극을 채운 모든 작품들이 조셉 고든 레빗을 위한 수식어 노릇을 해내진 못했다. 하지만 달콤쌉싸름한 로맨스물 <500일의 썸머>, 창의적인 꿈의 해석으로 시공간을 초월한 SF 액션물 <인셉션>, 암투병기를 통한 성장 드라마 <50/50>, 설명이 필요 없는 <다크 나이트 라이즈> 등, 시시한 경력 따윈 잊게 만드는 제목들은 이미 충분했다. 계절처럼 오고 가는 로맨스 앞에서 롤러코스터 같은 희비를 경험한 뒤 가을로 무르익은 인생을 체감하는 <500일의 썸머>의 톰과 규칙적으로 건강한 삶을 유지해왔다 자부했지만 갑작스런 암 진단으로 50%의 생사기로에 서서야 삶을 관망하고 일탈하며 끝내 분노하다 생의 체온을 회복하는 <50/50>의 아담은 어수룩하고 순수한 자연인의 얼굴로 성장통의 공감대를 이끌어내는 조셉 고든 레빗의 진면목을 군더더기 없이 설득한다. 캐스팅보드에 이름을 올렸던 제임스 프랭코가 스케줄의 이유로 하차한 덕분에 탑승한 <인셉션>에서 샤프한 이미지로 등장한 조셉 고든 레빗은 인상적인 무중력 액션을 소화해냈고 결국 <다크 나이트 라이즈>로 환승하는데 성공했다. 거대한 규모의 블록버스터를 창의적인 묘사와 주관적인 메시지의 장으로 소화하는 감독 크리스토퍼 놀런의 블록버스터들, 특히 <인셉션>에서 <루퍼>의 연출적 영향력을 얻었다고 몇 차례 밝힌 라이언 존슨에게 조셉 고든 레빗이 출연한 <인셉션>은 최고의 예시가 됐다. 최근 난감한 사건에 휘말린 뉴욕의 자전거 배달부로 출연한 <프리미엄 러쉬>로 호평을 얻었던 조셉 고든 레빗은 스티븐 스필버그가 지휘하는 <링컨>에서 다니엘 데이 루이스가 연기하는 링컨의 아들로 분할 예정이다. <루퍼>는 이 두 작품 사이에 놓인 조셉 고든 레빗의 현재다. 7년 전 자신으로부터 구체화된 미래가 그의 두 발을 디딘 현실이 되어 과거로 건축된다. 그렇게 조셉 고든 레빗의 시간은 미래로 간다.
<루퍼>에서 연기한 조에 대해 설명해달라.
일단 ‘루퍼(Looper)’는 미래에서 암살되어 과거로 보내진 시체를 처리하는 2044년의 킬러를 지칭한다. 조가 바로 루퍼다. 냉정하고 카리스마 넘치는 최고의 킬러인 그는 어느 날, 30년 후로부터 온 미래의 자신을 만난다. 미래의 조가 브루스 윌리스다. 미래에서 시간 여행은 불법이기에 현재의 조는 미래의 자신을 죽여야 하지만 쉽게 처리하지 못한다. 당연하겠지(웃음)? 결국 서로를 죽여야만 살 수 있는 두 사람의 조가 쫓고 쫓기는 시간여행을 시작한다.
감독 라이언 존슨은 당신을 염두에 두고 조를 구상했다던데.
10년 전부터 <루퍼>를 기획했던 라이언은 <브릭>으로 인연을 맺은 내게서 조에 대한 영감을 얻었고 결국 완성했다고 전해 들었다. 배우로서 굉장히 명예로운 일이다.
라이언 존슨과의 작업은 어땠나?
현존하는 가장 뛰어난 감독 중 하나라 생각한다. 그는 자신의 취향이나 관심사를 영화로 명확하게 보여준다. 스티븐 스필버그나 크리스토퍼 놀런과 비슷하면서도 놀라운 독창성을 가지고 있다. 나는 촬영 중에 많은 질문을 던지는 타입이고 라이언은 그 질문들을 즐긴다. 그만큼 작업도 매우 즐거웠다.
미래의 조인 브루스 윌리스와 닮은 외모를 얻기 위해서 특수분장을 했다.
브루스와 닮아지기 위해서 매일 아침 3시간 동안 분장실에 앉아서 특수분장을 했다. 사실 나와 그의 외모가 너무 다르기 때문에 얼굴 중 몇 부분을 중점적으로 비슷하게 만들었다. 특수분장이 얼마나 다른 사람을 만들어내는지 놀랄 거다.
브루스 윌리스를 자연스럽게 따라 한다.
덕분에 에밀리 블런트가 매일 같이 놀렸다(웃음). 누군가를 잘 흉내 내는 편은 아니다. 단순히 그를 따라 하기보단 내면의 감정을 리얼하게 따라잡고자 했다. 어릴 적부터 브루스의 팬이었고, 그의 모든 영화를 봤으며 그의 대사들을 아이팟에 담아서 계속 들었다. 그가 대신 녹음해준 내 대사도 반복 청취했다. 가장 도움이 된 건 그와 함께 지낸 시간들이었다.
브루스 윌리스와의 액션은 어땠나?
브루스가 지닌 많은 경험 덕분에 안정감을 느끼며 촬영했다. 한번은 그에게 머리를 맞아야 했는데 대 액션스타에게 직접 맞을 수 있다는 쾌감 덕분에 아프다는 것도 잊어버렸다.
실제로 만난 브루스 윌리스는 어땠나?
믿을 수 있을지 몰라도 그는 매우 부드러운 남자다. 마초 스타일의 남자들은 일부러 말을 크게 하고 과한 리액션을 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는 오히려 정반대였다. 조용하면서 강하다고 할까. 주위의 모든 이들을 압도하는 카리스마가 대단하다. 부드럽게 말할 때조차 모두 경청한다. 게다가 매우 쿨해서 함께 일하기 편했다.
<루퍼>의 시나리오를 읽으며 연상했던 영화는 없었나?
스토리만 보면 <터미네이터>와 유사하다. ‘시간여행’이나 ‘타임머신’이란 설정 때문에 <백 투 더 퓨쳐> 같은 작품을 연상할 수도 있지만 <루퍼>는 그와 다른 영화다. 그저 타임머신을 타고 여행하는 영화는 아니니까.
다양한 장르의 영화들을 소화하고 있는데, 특별히 선호하는 장르는 없나?
기본적으로 다양한 영화를 좋아한다. 배우로서 관객들에게 특정한 이미지로 비춰지는 건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영화는 하나의 형태를 지닌 토스터가 아니고 예술적인 장르다. <인셉션>도 대규모 블록버스터였지만 스토리만으론 지금까지의 그 어떤 영화와도 달랐다. 이해하기 쉽지 않은 내용임에도 놀런의 독창적인 비전에 관객들이 매료됐고 큰 성공을 거뒀다. <인셉션>과 <루퍼>는 심플한 액션 영화를 넘어서 많은 철학을 내포하고 있다는 점에서 닮았다.
영화 이외에 도전하고 싶은 분야는?
뮤지컬을 해보고 싶다. <500일의 썸머>로 살짝 맛을 봤지만 아쉬웠다.
영화의 매력이 무엇이라 생각하나?
타인들과 감상을 공유하고 교류할 수 있다는 것. 코미디 영화를 볼 때 옆 사람이 웃으면 함께 웃게 되지 않나. 액션영화도 주변 관객들의 에너지를 공유할 수 있을 때 보다 즐겁다. 내가 매료된 영화에 누군가 반하는 광경은 그야말로 환상적이다.
픽사 애니메이션은 통통 튀는 ‘룩소 주니어’의 등장으로 시작된다. 이 꼬마 전구에 불이 켜지기까진 긴 시간이 필요했다.
어려서부터 활쏘기를 좋아한 공주 메리다는 전통적인 혼인 관계를 강요하는 어머니의 마음을 돌리고자 마녀의 주술을 빌린다. 그 주술은 단순히 어머니의 마음을 돌리는 대신 어머니를 곰으로 만든다. 메리다는 사람들 몰래 곰으로 변한 어머니와 성을 빠져 나와 주술을 풀 방법을 찾아나간다. 픽사의 13번째 장편 애니메이션 <메리다와 마법의 숲>은 디즈니 특유의 동화적인 클리셰들을 극복의 대상으로 비트는 대신 그 고유의 감동을 과녁처럼 걸어놓고 일일이 적중시킨다. 지극히 순진해서 온전히 공감할 수 없는 몇몇 대목도 존재하지만 결국 마음을 울린다. 디즈니의 순수한 세계관과 픽사의 정교한 작법이 어울리며 디즈니 고유의 전통적인 감성을 새로운 기술로 계승한다. 픽사의 최고 브레인 존 래세터(John Lasseter)는 애초에 디즈니 애니메이터를 꿈꿨고, 한때 디즈니 애니메이터였다. 그가 지휘하는 픽사가 그린 그림이 디즈니의 그것과 닮아 보이는 건 우연이 아니다.
2006년 1월 24일, 디즈니의 공식 발표가 있었다. 74억 달러 상당의 거액으로 픽사를 인수하겠다는 것. 이 놀라운 소식은 1991년, 픽사의 장편 CG 애니메이션 제작 투자에 대한 디즈니의 결정에서 비롯된다. 당시 디즈니의 셀 애니메이션이 지배하던 시대에서 CG로 장편 애니메이션을 제작한다는 건 일종의 허풍이었지만 픽사의 창립자 에드 캣멀(Ed Catmull)은 오래 전부터 그 날을 준비해왔다. 이미 단편 CG 애니메이션 <틴 토이>(1988)가 아카데미 최우수 단편 애니메이션 부문을 수상했고, 디즈니의 <인어공주>(1989)나 <라이온 킹>(1994)의 부분 CG작업에 참여하며 투자 가치를 스스로 증명했다. 처음 두 회사의 관계는 디즈니의 일방적인 권한이 중시되는 주종관계에 가까웠다. 그 관계는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평단의 찬사 속에서 전세계적으로 3억 6천만 달러 이상의 수입을 올린 <토이 스토리>(1995)로 시작된 픽사의 역사는 곧 CG 애니메이션의 개척사가 됐다.
디즈니와의 계약 만료일인 2005년을 앞둔 2004년 초, 픽사의 최고경영자 스티브 잡스(Steve Jobs)가 계약 연장 협상 중단을 발표했다. <토이 스토리> 이후로 <벅스 라이프>(1998), <토이 스토리 2>(1999), <몬스터 주식회사>(2001), <니모를 찾아서>(2003)로 승승장구했던 픽사였다. 그는 그 해 픽사의 4분기 실적 발표에서 픽사의 작품 배급을 바라는 메이저 배급사가 적어도 네 곳은 된다고 밝혔다. 다음날 픽사의 주식이 3% 올랐고, 디즈니의 주식은 2% 떨어졌다. 디즈니는 자사 영화 제작비의 45% 가량을 픽사의 수입으로 충당하는 상황이었다. 심지어 CG 애니메이션의 반향에 밀려서 뒷방 늙은이 신세가 된 셀 애니메이션 제작 중단마저 선언한 상태였다. 디즈니는 내부적인 진통 끝에 당시 스티브 잡스와 반목하던 최고경영자를 해고했다. 일종의 신호였다. 인수 합병 논의는 곧 시작됐다. 마침내 미키 마우스는 룩소 주니어를 샀다. 사실상 무릎을 꿇었다.
픽사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존 래세터는 디즈니 애니메이션 사업부의 수석책임자로 임명됐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디즈니 셀 애니메이션의 전통을 복원한 <공주와 개구리>(2009)와 <라이온 킹> 이후로 처음 북미 2억 달러 이상, 전 세계 5억 달러 이상의 흥행을 거둔 디즈니 애니메이션 <라푼젤>(2010)을 기획했다. 존 래세터는 디즈니가 설립한 캘리포니아 예술학교, 일명 ‘칼아츠’를 수료한 뒤, 디즈니에 입사했다. 그리고 당시 디즈니의 보수적인 분위기 속에서 덧없는 상실만을 체감하다 끝내 해고당했다. 존 래세터는 디즈니 재직 당시 자신이 구상했던 작품의 일부 배경의 CG 구현이 가능한지 자문하고자 에드 캣멀을 찾았었다. 에드 캣멀은 그가 당시에 보기 드물게 CG에 흥미를 지닌 애니메이터란 점에 주목했고 디즈니에서 해고당한 그를 픽사로 끌어들였다. 자신들에게 부족한 예술적 감각을 존 래세터가 채워줄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컴퓨터공학을 전공한 에드 캣멀은 일찍이 컴퓨터 그래픽을 이용한 애니메이션 제작에 심취해있었다. 1970년대 초에 이런 생각은 대단히 앞서나갔거나, 그저 헛소리였지만 그는 뜻이 맞는 인재들을 규합해 나갔다. 뉴욕 공과대학 컴퓨터 그래픽스 연구소에서 결성된 팀은 <스타워즈>를 연출한 감독 조지 루카스의 ‘루카스필름’ 산하의 그래픽 부서로 편입됐다. 그곳에서 컴퓨터로 애니메이션을 만들 수 있는 최적의 기술을 연구해나갔다. 그들은 회사 입장에선 낭비라 이해될 그 작업을 지속하고자 회사의 눈을 가리기 위한 기능적인 업무들을 충실히 수행했다. 이를 테면, 컴퓨터 그래픽과 관련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개발이나 CG를 이용한 광고 비주얼 제작 따위의 일 말이다. 그 당시 이는 결코 매력적인 비즈니스 모델이 아니었다. 에드 캣멀은 쓸모 없게 보이는 애니메이터들을 고용하는 것에 끊임없이 불만을 표했던 조지 루카스를 설득하고자 안간힘을 썼다. 가능성의 조각들이 흩어지는 것을 수시로 막아야 했다.
결국 우여곡절 끝에 애플에서 퇴출당했던 스티븐 잡스에게 인수된 그들은 비로소 ‘픽사(PIXAR)’라는 이름을 얻었다. ‘영화를 찍다’라는 의미의 스페인어 ‘픽서(Pixer)’를 변형한 것이었다. 스티브 잡스 역시 마냥 관대한 투자자는 아니었다. 픽사를 500만 달러에 인수한 스티브 잡스는 10년 간 인수비용의 10배가 넘는 투자금을 쏟아 부어야 했으니 관대해질 수도 없었다. 다행인 건 그가 재능을 이해하고 지원할 수 있는 직관과 인내를 지녔다는 사실이었다. 그는 <토이 스토리>의 성공가능성을 예견했고, 투자를 멈추지 않았다. “우리의 동료, 친구, 멘토였던 스티브 잡스에게 이 영화를 바칩니다.” <메리다와 마법의 숲>의 엔딩 크레딧에서 떠오르는 이 문구는 “우주를 깜짝 놀라게 하자”고 곧잘 말했던, 픽사의 오늘에 기여한 마지막 조력자에 대한 그리움을 전한다.
“예술은 기술을 변모시키고, 기술은 예술에 영감을 준다.” 존 래세터의 말처럼, 픽사는 기술과 예술이 손을 잡아 이룰 수 있는 최상의 결과물을 대중에게 전파하는 혁신적인 애니메이션 스튜디오다. ‘브레인트러스트(Brain Trust)’는 이런 가치관을 대변하는 제도다. 작품을 제작하는 어느 감독이나 프로듀서가 벽에 부딪혔을 때, 브레인트러스트를 소집한다. 존 래세터, 앤드류 스탠튼(Andrew Stanton), 브래드 버드(Brad Bird) 등 픽사의 브레인들이 모인다. 그리고 토론한다. 의견을 피력할 뿐, 결정하거나 강요하지 않는다. 결정은 소집을 요청한 당사자의 것이다. “예술은 팀 스포츠다”라는 픽사의 캐치프레이즈처럼, 그들은 창조적인 놀이에 창조적인 놀이터가 필요함을 잘 알고 있다. 누군가 즉흥적으로 반짝이는 아이디어를 내면 그 옆의 누군가는 그 아이디어에 그럴싸한 디테일을 붙이고, 또 누군가는 새로운 전환점을 제시한다. 소통의 가능성을 마음껏 열어둔다. 우리가 사랑하는 픽사의 애니메이션들은 그렇게 탄생했다. 이런 사실은 하루 아침에 사라진다 해도 이상하지 않은 팀이었던 픽사의 오늘을 안도하게 만든다.
<라따뚜이>(2007)에서 봤던 아름다운 파리의 전경, <월-E>(2008)의 황홀한 우주, <업>(2009)의 놀라운 비행, 그리고 <토이 스토리 3>(2010)의 심금을 울린 안녕까지, 우리가 픽사라는 이름 아래 만났던 그 사랑스러운 찰나들이 존재할 수 있었던 건 실로 다행이기 때문이다. 그건 예언자도 몽상가도 아닌, 실현가능성에 대한 의지를 밀고 나간 현실주의자들의 꿈을 통해서 완성된 현실이다. “말도 안 되는 무언가가 벌어진다고 생각할 때마다 실제로 일이 생길 것이다.” 에드 캣멀의 말처럼 픽사는 상상의 선을 긋는 대신, 그 선을 뛰어넘음으로써 새로운 세계를 구축하고 있다. <토이 스토리>의 그 대사처럼, “무한한 공간, 저 너머로!(To infinity, and beyond!)”
<다크 나이트 라이즈>의 아이맥스 관람 열풍이 뜨겁다. 아이맥스 상영관에서 본 배트맨과 일반 상영관에서 본 배트맨이 다르다는 소문도 자자하다. 당연한 이야기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지난 8월 13일 기준으로 개봉 4주차에 접어든 <다크 나이트 라이즈>는 전국적으로 600만 명 이상의 관객을 극장으로 불러모았다. 그 중에서 30여만 명 관객이 아이맥스 상영관에서 배트맨을 목격했다고 한다. ‘아이맥스(IMAX)’와 국내 독점 사용권을 계약한 CJ CGV 극장 체인은 개봉을 2주 앞두고 오픈한 자체 예매 사이트에서 아이맥스 상영관 개관 이래 최대 사전 예매량을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현재 국내에 아이맥스 상영관이 위치한 곳은 서울 3개 극장을 포함한 10개 극장이다. 지난 해 말까지 전세계 아이맥스 상영관 수는 48개국 583개로 집계됐다.
<다크 나이트 라이즈> 이전에도 아이맥스 상영관은 존재했다. <다크 나이트 라이즈>의 개봉과 맞물린 아이맥스 관람 열풍과 마찬가지로 2008년 <다크 나이트> 개봉 당시에도 아이맥스 관람 열기가 뜨거웠다. 아이맥스 카메라로 촬영한 <다크 나이트>를 아이맥스 상영관에서 보기 위한 예매 경쟁이 치열했다. <다크 나이트 라이즈> 역시 마찬가지였다. <다크 나이트 라이즈>의 상영시간은 164분, 그 중 아이맥스 카메라 촬영 분량은 55분에 달한다. 아마 아이맥스 상영관에서 영화를 봤다면 아이맥스 촬영 분량이 등장할 때마다 화면 비율이 변하는 것을 관찰한 관객도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만약 당신이 <다크 나이트 라이즈>를 일반 상영관에서 봤다면 55분 정도는 본래의 이미지보다 상하로 절반 가까이 잘려나간 형태로 볼 수 밖에 없었다는 말이다. 그게 대수냐고 묻는다면, 맞다. 대수다. 도입부부터 펼쳐지는 비행기 납치신을 비롯해서 중반부 즈음 등장하는 ‘더 배트’의 이륙 광경 그리고 미식축구장의 함몰로 시작되는 광활한 도시 폭발신, 결말부의 시가전 등 당신이 잃어버린 한 뼘은 보다 몰입도 있는 감상의 너비였다. 아이맥스 카메라로 촬영한 영화들은 우리에게 익숙한 직사각형 꼴의 와이드스크린 즉 시네마스코프 스크린과 달리 정사각형 꼴에 가깝다. 상하의 여백을 채우며 스크린을 가득 채운 광활한 이미지가 구현된다는 것이다.
‘아이맥스(IMAX)’는 1970년대 캐나다에서 개발된 촬영 및 영사 기술이다. ‘이미지 맥시마이제이션(Image Maximization)’ 또한 ‘맥시멈 이미지(Maximum Image)’라는 단어에서 유래된 이 용어는 심심찮게 ‘아이 맥스(Eye Max)’라는 애칭으로 불리기도 한다. 시각적으로 가장 극대화된 이미지를 제공한다는 이 단어의 의미는 예나 지금이나 허풍이 아니다. 아이맥스 카메라가 단지 큰 화면에서 보기 위한 수단이라 생각한다면 한 가지 생각해볼 것이 있다. 큰 화면으로 볼 수 있다는 건 그만큼 월등한 해상도를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 디지털 카메라의 해상도는 필름 카메라를 넘어서는 수준으로 발전했다. 그럼에도 유일하게 디지털 촬영 방식으로 따라잡지 못한 필름 촬영 방식이 바로 아이맥스 카메라다. 현재 최고의 해상도를 자랑하는 디지털 카메라 레드원의 해상도는 아이맥스 카메라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1970년대에 개발된 아날로그 기술을 21세기의 디지털 테크놀로지가 쫓아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만큼 카메라의 조도가 높아서 어두운 나이트 촬영에서도 선명하게 상을 포착할 수 있다. 밤거리를 누비는 배트맨의 활약상을 그린 <다크 나이트>나 <다크 나이트 라이즈>에서 아이맥스 카메라는 보다 탁월한 효과를 발휘한다.
현재 아이맥스 카메라로 촬영된 영화는 모두 네 편이다. 상업영화 최초로 아이맥스 카메라로 부분 촬영된 <다크 나이트>(27분 16초)와 <트랜스포머: 패자의 역습>(8분 54초), <미션 임파서블: 고스트 프로토콜>(23분) 그리고 <다크 나이트 라이즈>. 그렇다면 <다크 나이트> 이전까지 어째서 아이맥스 카메라로 촬영한 영화는 없었던 것일까? 간단하다. 무겁고 비싸기 때문. 전세계에 아이맥스 카메라는 단 4대뿐이다. 카메라 제작비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대체로는 그만큼 시장의 요구가 적기 때문이다. 110kg이 넘는 아이맥스 카메라를 역동적인 극영화 촬영에 활용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일반적인 35mm 필름보다 두 배 너비에 달하는 70mm 필름은 그만큼 더욱 무거울 수 밖에 없다. 또한 아이맥스 카메라의 렌탈 비용도 만만치 않다. 최근 미국의 영화 통계 사이트 박스오피스 모조의 분석에 따르면 <다크 나이트 라이즈>가 원래 예정된 제작 예산 1850만 불을 훌쩍 넘긴 2500만 불의 제작비를 사용했는데 이는 아이맥스 렌탈 비용 때문이라 분석했다. 덕분에 <다크 나이트> 촬영 당시 아이맥스 카메라가 추락하며 박살 나는 장면은 단연 화제였다. <다크 나이트>가 전세계 아이맥스 카메라를 세 대로 줄였다는 우스갯소리마저 돌았지만 최근 크리스토퍼 놀란의 인터뷰에 따르면 카메라는 잘 고쳤다는 후문이다. <다크 나이트 라이즈> 촬영 중 앤 해서웨이가 탑승한 배트 포트가 카메라와 충돌하는 영상이 인터넷에 돌면서 또 한 대가 부서졌다는 루머가 돌기도 했다. 그만큼 아이맥스 카메라에 대한 관심이 이 작품들에 대한 관심과 연결되고 있다는 것이다.
<다크 나이트 라이즈>의 메가폰을 잡은 크리스토퍼 놀란은 심심찮게 3D영화에 대한 거부감을 표현해왔다. 이유는 간단하다. 롤러코스터와 같은 3D 비주얼이 이야기에 대한 몰입도를 방해하는 탓에 영화라는 매체에 대한 감상을 무시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는 아이맥스 카메라로 상업영화를 촬영해야 한다고 누누이 밝혀왔다. 그리고 증명했다. 압도적인 스케일의 광활한 이미지를 통해서 영화의 스토리와 철학에 보다 깊게 빠져들 수 있게 만드는 힘이 있다는 것 말이다. 그리고 그의 시도는 영화 산업 전반을 자극한다. <다크 나이트>에 흥미를 느낀 감독 마이클 베이가 <트랜스포머: 패자의 역습>에서 아이맥스 카메라를 사용했듯이 현재 아이맥스 카메라 촬영을 계획한 작품들이 속속들이 등장하고 있다. 내년에 개봉되는 <스타트렉: 더 비기닝 2>와 <헝거 게임: 캐칭 파이어>가 그것. <아바타> 이후로 3D 촬영이 <아바타>로부터 시작된 것처럼 <다크 나이트 라이즈>로부터 아이맥스 카메라 촬영이라는 새로운 영화적 시도가 제시되고 있는 것이다.
피로는 간 때문만은 아니다. 밥 말리는 말했다. “악은세상을 망치려고 하루도 쉬지 않는데, 내가 어떻게 쉴 수 있겠는가." <추적자>의 백홍석도 그래서 뛰고 또 뛰었다.
정의는 승리한다, 라는 말 쉽게 믿을 수 있는가. 승리가 셀프던가. 정의는 우리 주변에서 늘 손쉽게 패배해왔다. 하지만 99번의 패배 끝에 단 한 번의 정의가 승리하면 대부분 정의가 승리했다고 손쉽게 자축한다. 당연히 그리 돼야 할 일에 기꺼이 감격해야 한다는 건 얼마나 무력한 일인가. 혹자들은 그것이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추적자>에서 유력한 대선 후보로 꼽히는 강동윤은 말했다. “선택의 순간이 오면 그때서야 그 사람의 진짜 모습이 나타납니다. 30억이면 친구의 딸을 죽이고, 총리가 되기 위해선 평생 지켜오던 신념도 버리게 됩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을 하죠. 난 어쩔 수 없었다고. 백홍석 씨,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하는 사람, 본 적 있습니까?”
잘 알려진 대로 <추적자>는 ‘땜빵’용으로 편성된 작품이었다. SBS는 월화미니시리즈 <패션왕>의 후속작으로 <빅>을 편성하려 했으나 KBS2에게 밀린 뒤, <드라마의 제왕>을 주목했으나 캐스팅문제로 <추적자>를 급히 편성했다. 입봉작도 없는 신인작가에 시청률을 책임질만한 스타배우 하나 없는 <추격자>는 몸뚱이 밖에 믿을 게 없는 백홍석과 같은 신세였다. 7월 19일에 종영된 <추적자>의 시청률은 22.6%를 기록했다. 월화드라마 중 시청률 1위였다. 작품의 힘만으로 건져낸 결과였다. 고무적이다. <추적자>는 힘있는 이야기를 엔진 삼아 스피디하면서 리드미컬한 연출력으로 시동을 걸고, 박근형, 김상중, 손현주, 김성령 등 누구 하나 빼놓을 수 없는 배우들이 호연으로 핸들링했다. 매회마다 속도감 있는 액션이 발생하는 가운데 반 박자 빠른 내러티브의 대회전을 통해서 한 뼘씩 예상을 빗겨나간다. 선악의 대립을 웅변하기 보단 복잡다단하게 얽힌 관계의 정치 속에서 끊임없이 발생하는 크고 작은 소용돌이의 방향을 주시하며 지극히 현실적인 음모론을 제시한다.
대기업 회장인 장인과 유력한 대권 후보인 사위는 한 식탁에 앉아 식사할 때조차 상대의 빈틈을 생각한다. 그들에게 세상은 체스판이다. 이기기 위한 싸움을 설계함에 있어서 중요한 건 이용할 수 있는 무기를 파악하는 일이다. 모두가 그들의 말이 될 수 있다. 강동윤은 말한다. “큰 마차가 먼 길을 가다 보면 깔려 죽는 벌레도 있기 마련입니다.” 자신의 친구가 되어달라고 손을 내미는 정치인은 그 손으로 자신의 말을 고른다. 무엇보다도 <추적자>엔 진짜 거물의 표정이 있다. ‘주판 함 놔볼까’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서 회장은 결코 손해 보는 승부는 하지 않는다. ‘자존심은 미친 년이 머리에 꽂고 있는 꽃하고 같은’ 그에게 중요한 건 자신이 건설한 제국의 안녕이다. 그는 연기하듯 아버지의 표정을 짓다가, 다시 회장의 자리로 돌아온다. 결코 싸움에서 지지 않는다. 그는 싸우지 않기 때문이다. 그저 셈할 뿐이다. 자신이 홀로 남는 고독한 순간까지도 그 세계가 작동하는 방식을 계산한다. 부지런한 악당은 끝까지 세상을 피로하게 만든다.
본래 가제는 <아버지>였다. <추적자>의 몸통은 딸을 죽인 진범을 추적하는 아버지의 이야기다. 아버지가 맞닥뜨리는 현실은 녹록하잖다. 사람 하나 매수하기 위해서 돈 10억 즈음은 아무렇지 않게 쓰는 적을 몸뚱이 하나로 버티는 건 피로하고 고단하다. 그가 포기하지 않은 건 ‘수정이 아버지’였기 때문이다. 그에게 중요한 건 정의의 승리가 아니라 자신을 보호하지 않는 정의에 대한 물음이다. 정의란 무엇인가. 가만히 앉아서 쥘 수 있는 것이던가. <추적자>는 결국 당신을 목격자로 만들고 있다. 당신이 행동하지 않으면 정의란 그저 한낱 2음절 단어에 불과한 것이다. 물론 백홍석처럼 달리고 구르라는 말도 아니다. 대선이 올해였던가? 세상을 결정짓는 순간은 마치 도둑의 발걸음처럼 살금살금 다가오는 법이다.
건축가는 집을 짓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건축가는 집을 짓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래서 건축가에게 물었다. 건축가가 대답했다. 하고 싶은 말이 많았다.
구본준 한겨레 문화부 책지성 팀장. <두 남자의 집짓기> 저자.
구승회 디자인크래프트 대표이사. <건축학개론> 제주도 ‘서연의 집’ 설계.
김찬중 더_시스템 랩 대표. 폴 스미스 플래그십 스토어 설계.
전숙희 와이즈 건축 소장. 다세대 주택 ‘Y하우스’ 설계.
‘건축’이라는 단어가 발견되는 두 편의 영화 <건축학개론>과 <말하는 건축가>에 대한 남다른 감상이 있을 것 같다.
구승회(이하 ‘승’):약간의 의무감으로 <말하는 건축가>를 봤다. 마지막 장면이 짠하더라. 목욕탕 앞에서 줄 서서 기다리는 아줌마한테 “이거 지으신 분 아세요?” 물어보니, “그걸 어떻게 알아~.” 대답하는데 그 옆에 정기용 선생님이 앉아 있다. 건축가가 열심히 만들어놓은 공간을 일반인들이 잘 쓰면서도 정작 같은 공간에 있는 건축가의 존재는 모른다니 찡했다. 한때 윗세대 건축가들이 국제적이지도 않고 디자인도 못한다고 폄하했다. 지금 와서 보면 그 분들만큼의 퀄리티를 내는 것도 어려운 일이다. 아버지에 대해서 잘 몰랐다는 걸 깨닫는 순간처럼 울컥하더라.
김찬중(이하 ‘찬’): 정기용 선생님께 개인적인 신세를 져서 어떻게 갚아야 할까 생각했는데 타이밍을 놓쳤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영화를 보면서 좀 울었다. <건축학개론>은 건축이 지역과 얼마나 밀접한가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공감했다. 한 사람의 일생에서 공간에 대한 사소한 경험이 기억의 인자로 어떻게 자리잡는지 잘 보여준다. 두 영화는 건축가들이 ‘어떤 기억을 선물할 수 있는가’라는 직업적 소명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좋았다.
전숙희(이하 ‘숙’): <말하는 건축가>는 실제 건축가의 이야기를 가감 없이 들려줬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그래서 반가웠지만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봤다. 사실 영화에서 나오는 정기용 선생님 회고전을 출산 때문에 보지 못했다. 그 이전부터 선생님께서 편찮으시단 말을 들었는데 회고전 준비에 관해 듣고 마음이 덜컹했었다. 건축계가 이분을 보내드릴 준비를 한다는 생각에 속이 상했다. 생각해보면 선생님의 회고전이 많은 건축가들을 묶어주는 계기가 된 것 같다. 살아생전에 메이저 갤러리에서 회고전을 했다는 것도 건축계만의 파티가 아니라 건축계 밖의 사람들에게 호기심을 전달했다는 점에서 바람직했다. <건축학개론>은 아직 못 봤지만 구승회 소장님의 작품이 나온다니 궁금하다.
구본준(이하 ‘본’):사실 건축에 대한 관심이 다른 때보다 높다. 건축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고 느낀 건 건축영화제였다. 건축영화제 1회가 1주일이나 더 연장상영을 했다. 지난 2회 때도 사람들이 굉장히 많이 왔다. 그래서 두 영화가 절묘해 보인다. <말하는 건축가>는 공공건축을 다루지만, <건축학개론>은 사적으로 건축을 다루니까 두 작품을 같이 보면 좋을 거 같다.
한국에서 건축가란 어떤 존재인가?
찬:만약 집이라는 결과물만 중요했다면 <건축학개론>이 존재할 수 없었을 거다. 일을 맡겼더니 어느 날 집이 완성됐더라, 이런 건 소위 집장사라면 모를까, 건축가에게 어려운 일이다. 건축주가 집 짓는 과정 자체를 충분히 즐기고 참여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도 건축가의 역할이다. 의사나 변호사도 그렇지 않나. 적극적인 커뮤니케이션을 통해서 의뢰인이나 환자로부터 좀 더 많은 부분을 끌어내는 거니까. 그 과정에 참여시키고 그에 대한 기억까지 함께 넘겨야 된다. 결과물도 중요하지만 그런 과정의 기억 또한 그 공간에서 살아가는데 큰 힘이 된다.
본:예쁜 집을 짓기 전에 하자 없이 지으려면 시공업자가 건축가의 설계를 잘 지키면서 짓는지 감시해야 한다. 그게 감리라는 영역인데, 시공업자가 설계해서 짓고 검사해서 괜찮다고 넘어가는 건, 자기가 문제 내놓고 100점 맞았다는 거다. 건축가가 건축주를 대신해서 튼튼한 집이 나오도록 시공업체를 견제하고 압박을 가해서 완성도를 높여야 된다. 무엇보다도 집을 짓고 나면 건축사가 영세해서 없어진다는 점이 문제다. A/S를 받을 수 없다. 그러니 처음부터 잘 지어야 한다. 그러니 당연히 건축가한테 맡겨야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은 집 지을 때 복덕방부터 간다.
숙: 일반적으로 대부분의 건축주들은 건축가가 하는 일이 없다고 생각한다. 작년 여름에 우리가 만든 금호동 다세대 주택이 보도되면서 정말 당황스러울 정도로 많은 의뢰가 있었는데 정작 성사되는 건 없었다. 대부분 건축가가 직접 시공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당황한다. 건축가는 공간을 디자인하고 건축주의 요구사항에 맞는 시공자를 만나도록 돕는다. 시공자는 최대 이익을 원한다. 그럼 건축주가 원하는 그림 내에서 최대한 값싼 재료를 쓰고 쉬운 방식대로 짓는다. 건축가들은 그 돈이 제대로 쓰일 수 있게 전체를 봐주는 거다, 그게 돈을 잘 쓰는 방법이다.
찬: 사실 수많은 아이템이 들어가는 큰 덩치의 건축물이 30년 동안 어떠한 문제도 발생하지 않도록 완성한다는 건 어렵다. 재료의 속성도 변할 수 밖에 없으니 분명 문제가 생기기 마련이다. 누구나 건축에 대해서 말할 수 있다. 아카데믹하게 접근하지 않아도 생활 속의 공간을 이야기할 수 있다. 대부분 불만을 말한다. 그 불만들을 긍정으로 바꾸긴 힘들다. 사실 문 손잡이가 흔들거려도 건축주는 건축가에게 따진다. 종합적인 책임자로서 건축가의 위치를 인지하기 때문이다. 한국에 들어와서 일 없을 때 아버지 집을 설계했었는데 덕분에 평생의 욕을 먹고 있다. 하물며 전구 나가는 것도 내 탓이니.(웃음)
승: 이사가면서 돈 좀 아껴보겠다고 우리 집 인테리어를 직접 했는데 지금까지도 매일 혼난다. 와이프가 건축주라서.(웃음) 자문 받으러 오시는 분들은 건축가에게 어떤 믿음을 싣는 경향이 있다. 아플 때 찾아가는 의사가 명의이길 바라는 것처럼. 그래서 움찔하다가 ‘저는 공사는 안 합니다’ 하면서 책임소재에서 빠져 나온다. 많이 얽힐수록 힘든 게 사실이니까. 소비자 입장에서는 믿을 만한 이가 알아서 잘 해주고, 되도록 싸게 하면서도 좋은 퀄리티를 바라는 건 당연하긴 하다. 요즘은 그런 분들이 바라는 바를 건축가로서 잘 듣고 있는지 고민한다. 단순히 액수를 깎아주는 게 아니라 대안적인 방법을 고민하게 된다. 그리고 요즘 사람들은 외국도 많이 다녀서 본 것도 많고 좋은 재료나 디테일은 많이 아는데 막상 그것들을 조합했을 때 어떤 그림이 나올지 잘 모른다.
본:우리나라 건축가들은 어려울 수밖에 없다. 디자인 감각이 워낙 다르니까. 천편일률적인 아파트 인테리어에 길들여져서 공간을 꾸며본 적 없는 사람이 90%니까. 솔직히 자기가 어떤 공간을 원하는지도 잘 모른다. 취향도 없고. 아파트는 편리한 대신 디자인 감각을 거세시킨다.
숙:어떤 공간을 좀 강조한다면 그 건너편은 조용한 것이 들어가야 되는데 대부분 강조되는 것만 고른다. 종합적인 공간을 보지 못하는 거지.
취향은 삶의 질과 깊은 연관이 있다. 취향을 말하기 시작했다는 건 삶의 질이 높아지고 있다는 증거일 수도 있다.
숙: 최근에 집 짓는 것에 대한 문의가 많다. 시공사들이 공급하는 아파트가 아니라 자신들이 짓는 집에 대한 관심이 늘고 있다. 최근에는 한 시공사에서 찾아왔는데 아파트가 아닌 다른 걸 개척해보려 한다는 거다. 적당한 규모의 땅이 있기 때문이라지만 결국 그 수요계층에 대한 판단이 있다는 거다. 주거 문화에 있어서 긍정적인 터닝 포인트라 생각한 게 아파트를 쫓지 않는 세대들이 나왔다는 거다. 사실 집값이 비싸다는 것이 젊은 세대에게 절망을 준다. 특히 아파트는 재산 정도를 파악하기에 용이하다. 어느 건설사가 지었는지, 어느 지역인지, 라는 것만으로 그 사람의 수준을 단정해버릴 가능성이 있다. 주거 형식은 다양성의 가치와 깊게 연관돼 있다.
본: 제일 중요한 건 일상에서의 건축이다. 그리고 사람들이 도시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면 된다. 외국에서 본 골목길은 예쁘던데 우리 동네는 왜 이런지, 쓰레기통 같은 건 좀 더 괜찮은 디자인일 수 없는지, 길에 분전함은 왜 저렇게 많은지, 이런 것들. 가로수길이 좋은 이유는 길에 구조물이 별로 없다는 거다. 그러니까 길 위에서 액티비티가 발생하고 길에 붙어있는 건물과의 상호작용도 좋아진다. 지금까지 한국은 도시에 대한 관심이 별로 없었다. 그저 내 집이 중요했는데 주택 하나가 예뻐지면 그 동네에 또 예쁜 집이 들어서고, 이런 건 의외로 쉽게 번질 수 있다.
찬: 역사적으로 건축이 선발 산업으로 등장했던 적은 없었다. 사회가 고도화될수록 건축은 후발 산업에 가깝게 포지셔닝된다. 산업, 문화, 예술을 포괄한 종합적 성격이 강해지는 탓이다. 건축에 관심을 갖는 사람이 늘어난다는 건 문화적으로 성장했다는 증거다. 그런 시점에서 아까 말했던 두 영화가 때를 잘 맞춘 셈이다. 어쩌면 지금 시점이기 때문에 그런 시장성을 인정받았을지도 모르고.
본: 의사나 변호사는 인생 최악의 순간에 만나지만 건축가는 인생에서 제일 행복할 때 만난다. 일생 동안 집을 두 번 짓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나. 게다가 아직도 대부분 건축가가 아니라 시공업체를 찾아가서 집을 짓는다. 정기용 선생님도 목욕탕이나 마을 공설운동장 같은 걸 만들었는데 건축가가 하니까 확실히 좋다는 걸 알려준다. 2003년에 정기용 선생님께서 순천에 기적의 도서관을 만들기 이전에는 부모들이 어린애들을 데리고 갈 수 있는 도서관이 없었다. 건축가가 하니까 그런 배려들이 생긴 거다. 심지어 순천시청 안에 처음으로 도서관을 전담하는 행정과가 생겼다. 다른 지자체도 비슷한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정기용 선생님께서 거기까지 의도한 건 아닐지라도 도서관 하나가 굉장히 많은 걸 바꿨고, 공공건축이 이렇게 좋아질 수 있다는 걸 보여준 거다. 실제로 건축은 많은 걸 바꿀 수 있다.
서울이라는 공간의 특성이 무엇이라 생각하나?
승: 서울의 특성은 아파트다. 어떻게든 안고 갈 수 밖에 없는 독특한 물리적 환경이 아닌가.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이 나올 시점이 아닌가 싶다. 이건 안 좋으니 쓸어버리자는 건 결국 지저분한 집들 다 쓸어버리고 반듯하게 짓자고 하는 무대포 마인드와 다를 게 없다. 요즘 가로수길 말 많지 않나. 이제 옛날 가로수길 아니라고, 너무 상업화됐다고. 맞는 말이다. 그런데 어떤 면에서 보자면 그게 정상이다. 예술가들이 모여서 좋은 분위기를 형성했고, 사람들이 모이고, 가치가 올라가니, 대기업들이 몰려와서 꼭지를 잡고, 그 사람들이 이동한다. 내 생각이 이상적인 건지 좋아지는 곳이 있으면 쇠락하는 곳도 있기 마련이다. 서울시 모든 곳이 다 좋을 수는 없지 않나. 흥망성쇠가 이어지는 생태계가 있다는 건 도시가 살아있다는 증거 아닐까.
찬:다양성이 인정되는 도시라는 면은 좋다. 다만 흑백논리로 구별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잘 사는 동네가 있으면 못 사는 동네도 있고, 지저분한 동네도 있으면 깨끗한 동네도 있다. 이런 다양한 문제가 공존하는 대표적인 도시가 서울이다. 우리가 성격이 급해서인지 그 각각의 영역들은 정체돼있지 않고 늘 변한다. 적응력도 굉장히 빠르다. 좋은 걸 인정하거나 나쁜 걸 바꾸려는 의지도 강한데, 그런 양면을 잘 순화시켜서 조화로운 관계성으로 정립하면 서울이라는 도시가 브랜드 파워를 가질 수 있다는 건 분명하다.
숙: 뉴욕은 볼거리가 집중된 맨해튼이 있지만 그 밖은 험악하기 이를 때 없다. 지하철 타면 누군가 뒤통수 후려칠 것 같기도 하고, 다리 밑은 악취도 심하다. 거기에 비하면 서울에는 산재된 풍경들이 있고, 살만한 공간으로 확산된 도시다. 다만 최근에 양산된 건물들이 많아서 아이덴티티에 대한 고민이 있을 수 밖에 없다. 서울의 다이나믹함을 따라올 수 있는 도시가 없다. 뉴욕에서 일할 때는 대부분 인테리어였다. 건축물을 지어볼 기회는 없기 때문에 기회가 생기면 다들 혈안이 돼서 달려든다. 그만큼 서울은 건축가들에게 좋은 영역이다. 다만 오랫동안 계획하고 짓기보단 너무 서두르는 경향이 있다. 건축을 대하는 태도들이 변하는 만큼 개선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본: 서울에는 아파트가 맞다. 서울에서 어떻게 단독주택을 짓겠나. 땅값도 비싸고. 다만 기왕 짓는 아파트라면 조금 더 합리적이어야 한다. 사실 대부분의 다세대주택은 단독주택을 헐고 지은 거라서 많은 가구수를 고려하지 못한 도로와 붙어있다. 그래서 차도 많이 밀린다. 좀 걸어 다닐만한 길이 많았으면 좋겠다. 내가 사는 도시 좀 예뻐해 보자는 생각이 필요하다. 서울의 가장 큰 매력은 제멋대로의 도시라는 점이다. 뭘 해도 이상하지 않다. 얼마나 재미있나? 모든 실험이 가능한데. 나는 서울이 좋다.
특별히 관심이나 애정을 지닌 지역이나 공간을 꼽는다면?
본: 종로는 가장 오래되고 중요한 지역이지만 아직까지 대표할만한 건물도 없고, 분위기도 성숙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오래된 거리의 매력은 틀림없이 존재한다. 이런 특징이 거리 특유의 분위기로 발전되면 좋겠다. 서로 다른 시간대의 건축이 중첩되며 공존하는, 상업적이면서도 매력적인 거리로 발전하길 기대하고 있다.
숙:소년기를 강남에서 보냈고 유학을 마치고 2년 전 강북에 정착했다. 자연스럽게 형성된 도시조직이나 경관에 끌리는 편인데, 지리, 지형적으로 자연스레 만들어진 강북의 도시조직이 흥미롭다. 개인적으로 몽촌토성에서 도시 구경하는 것을 좋아한다.
승: 한강 둔치를 좋아한다. 어릴 때부터 답답할 때마다 찾아갔다. 성수동 일대나 홍대, 가로수길, 이태원에 관심이 있다. 문화적 환경이 도시 공간의 변화를 끌어낼 지역이 아닐까 본다.
찬:고등학교 때부터 가로수길의 변화를 경험했다. 물리적인 변화는 크지 않지만 상권과 땅값, 사람들의 인식은 놀라울 정도로 변했다. 나이 들어가면서 도시의 진화를 관찰할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다.
해외 건축가들의 국내 영입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다. 여기 모인 분들의 생각은 어떤가?
본: 외국건축가를 들여오는 인식이 문제다. 명품백 사듯이 유명 작가를 부르는 게 아니라 프로젝트 성격에 맞는 외국 건축가를 잘 고르면서 국내 건축가에게도 공정한 기회를 주고 최선의 경쟁을 시켜야 한다. 용산 국제업무지구 프로젝트 등을 보면 외국 건축가의 이름값에만 매달린 느낌이 강하다. 최고의 작품을 철저하게 뽑아내야 한다는 생각이 절실하다.
찬: 해외건축가들의 국내영입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지구상에서 우리나라만큼 역동적으로 프로젝트들이 진행되는 경우가 드물다. 해외건축가들의 자유로운 사고를 경험해볼 수 있다는 점도 좋다. 다만 우리 문화에 대한 단편적 사고로 완성한 결과물을 우리가 짊어지고 가야 한다는 건 이상하다. 건축은 단편적인 일상의 기억을 유지시켜주는 틀로서의 속성이 있다. 브랜드 파워라는 이유로 우리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그들에게 우리의 공간을 맡긴다는 건 잘못된 거다. 국내 건축가들의 수준이 그들보다 뒤지는 것도 아니다. 다만 조직적인 대응과 관리는 떨어진다. 고질적인 문화적 사대주의와 국내 건축가들의 소극적인 태도가 연동된 문제라고 생각한다.
승: 건축주의 눈이 확실히 높아졌다. 그러니 해외 건축가에게 의존하던 시기는 지나갈 거라 생각한다.
<말하는 건축가>는 대중들에게 건축가 정기용을 알렸다는 점만으로도 의미가 있다. 개인적으로 조명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건축가나 건축물이 있을까?
본:이일훈 씨와 주대관 씨의 사회적 건축. 제한된 조건을 어떤 아이디어로 풀어냈는지, 어떤 생각을 펼치고자 하는지가 중요하다.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건 건축가들의 참여가 어려운 저예산 건물과 일상의 건축에서 이뤄낸 작지만 소중한 성과들이 축적되는 것이다.
승: 김성홍 교수가 <길모퉁이 건축>에서 언급한 ‘중간건축’을 만들어내는 건축가들이다. 일상적이고 평범한 건축물을 성실하게 만들어내는 이들이 있다는 걸 알리고 싶다.
숙: 건축가들이 사랑하는 조성룡 선생님의 재생건축도 대중들에게 알려졌으면 한다. <말하는 건축가>에서 정기용 선생님의 동료건축가로 등장하시는데 그 정도로는 아쉽다.
찬: 능력 있는 건축가 대부분이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 인식의 문제를 떠나서 우리나라의 설계비는 창피한 수준이다. 공사비를 아끼면 건물이 나빠지니 설계비를 아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건물은 도면 10장으로도, 100장으로도 지을 수 있다. 다만 고민과 검증의 무게가 다른 만큼 고스란히 공사비의 차이로 연결된다. 고민과 검증이 치열할수록 공사비 운영도 정확해지고 절감 효과와 품질 향상이 따라올 거다.
패션과 건축의 컬래버레이션은 원래 지속적이었지만 요즘에 이르러 보다 활발한 것 같다.
숙: 소비자들에게 자기 브랜드에 대한 총체적 경험을 제공하는 장소를 조직하기 위해서 궁리하는 것 같다. 다른 비즈니스 영역으로 넘어가고자 할 때 이미 구축된 브랜드 가치가 보여지는 공간을 이용한 비즈니스가 효과적이다. 패션과 건축을 소비하고 수용하는 방식은 ‘경험의 소비’란 점에서 공통적이다. 기능적 필요를 넘어서 이미지 소비의 영역에서 패션과 건축은 분명 비슷한 양상이 있다.
본:장 누벨이나 안도 다다오, 프랭크 게리, 요즘은 팝스타가 된 건축가가 많다. 그들의 명성이 브랜드에 부여됐을 때 얻어지는 상업적 작용이 있다면 건축가 입장에서는 기능에 구애 받지 않고 럭셔리하게 작업하면서도 조형성이나 파격성, 추상성을 강하게 실험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내구성이야 기본적인 공간의 원칙만 지키면 되지만 데코레이션은 얼마든지 화려해질 수 있다. 대표적으로 일본 오모테산도와 아오야마에 있는 건물들이 스타 건축가와 럭셔리 브랜드의 욕망이 딱 맞아떨어진 사례다. 일반인들도 오모테산도 프라다 매장 앞에 가서 사진도 찍고 좋아하는 거 보면 그런 화려하고 장식적인 건물이 도시에 필요한 측면도 있다. 그걸 해낼 수 있는 건 바로 그 극소수의 스타 건축가들이다. 건물의 부가가치도 높이면서 대중의 주목까지 끌어내기 위한 자연스러운 현상이니 럭셔리 브랜드들은 건축에 관심이 있을 수 밖에 없다.
찬: 1900년대 중반에 앙리 반 데 벨데(Henry van de Velde)라는 건축가가 남긴 사진 한 장이 있다. 자기가 설계한 집의 공간을 찍었는데 자기가 디자인한 의상을 입은 와이프의 뒷모습도 나온다. 내가 받아들인 건 공간과 의상, 집기들까지 포괄한 토털 아이덴티티, 종합적인 공감각이었다. 패션과 건축의 컬래버레이션은 스페셜리티의 공감대와 종합적인 커뮤니케이션을 중요하게 다루는 오늘날의 문화적 상황의 전반을 대변한다. 서로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을 찾아서 시너지 효과를 내려는 거다. 사실 인더스트리의 속성에서 건축이 훨씬 오래됐지만 패션은 보다 대중적이다. 그리고 건축에도 트렌디한 부분이 있다. 예를 들면 자하 하디드의 팬시한 폼이 그렇다. 심지어 그녀는 패션 분야에서도 리터치를 하고. 건축물이라는 게 엔지니어링이기도 하지만 표피적으로 트렌디해서 패션과 잘 어울린다. 사실 요즘 건축계에서 ‘서피스(surface)’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질감이라는 고유 영역은 패션에서 영감을 얻을 때가 많다.
본: 사실 오래 전에는 건축이 모든 것이었다. 건축의 외벽을 조각하는 사람은 조각가가 아니라 조각공이었다. 화가라는 개념도 16세기까지 없었다. 외벽을 조각하는 사람, 그림을 그리는 사람, 건축의 개념에 다 포함돼 있었다. 근대적인 개념 안에서 회화, 아트, 디자인으로 쪼개진 거다. 패션과 건축의 컬래버레이션은 어쩌면 본래의 총합적인 형태로 돌아간 건축일 수 있는 거다.
건축이란 분야가 복합적인 만큼 건축가라면 다양한 분야에 항상 눈과 귀를 열어둬야 할 것 같다.
중: 학생들에게 늘 건축 외의 것도 많이 봐두라고 말한다. 기본적으로 사람들의 일상부터 사회현상까지 살펴야 한다. 건축가를 마스터의 개념으로 규정한 교과과정이 있는데 리얼리티가 떨어진다. 사람이 사는 공간과 라이프 스타일에 대한 이해와 관심이 아니라 형태적인 관심만을 추구하게 만든다. 그러니 실제로 일을 하면 너무 힘든 거다. 실버 하우스를 짓거나 유치원을 짓겠다는 사람이 노인이나 아이들 심리는 모르고 자기 편한 대로 설계해선 안 된다. 그런데 실제로 그런 상황이 벌어진다. 결국 자기 영감에 의존해서 혼자 죽여주는 걸 만들면 대중과의 괴리가 생긴다. 그런 엘리트주의로 건축주를 가르치려 드는 악순환들이 있었다. 그래도 요즘 젊은 건축가들은 그런 자아도취에서 탈피하고 있다.
본: 건축은 20년 뒤를 내다봐야 한다. 설계부터 미래를 내다보는 거다. 미래 사회의 모습이나 건축주의 이래도 예측해야 한다. 예지력이 필요하다. 이 시대에 필요한 집이 뭔가를 고민해야 된다. 그게 인문학이다. 건축가는 기술을 개발하는 사람이 아니라 개발된 기술을 조합하는 코디네이터다. 어떤 식으로 기술을 채택할 것인가가 중요하다. 그러니 인문학이 중요하다. 학생들은 선생님들이 철학책 읽으라 한다고 짜증내지만 건축은 항상 사람의 문제를 다루기 때문에 그래야 한다. 건축은 예술적인 기술이다. 자주 쓰는 예인데 추상주의 화가 몬드리안과 유사한 건물을 만드는 건축가가 있었다. 한번은 몬드리안 추상화와 똑 같은 의자를 만들었는데 그 의자 가격이 몬드리안 그림의 20분의 1에 불과했다. 예술은 쓸모가 없어서 비싼 거다. 쓸모를 초월하는 거다. 건축은 쓸모가 있다. 결국 예술이 될 수 없는 거다.
찬: 건축에서 쓰는 소재 대부분은 건축 자체를 위해서 만들어진 게 아니다. 다른 산업에서 넘어온 거다. 알루미늄이나 컨테이너 조립식 주택 같은 경우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그 부유물들을 재활용하는 고민에서 비롯된 결과다. 건축이 자체적으로 새로운 변화를 이끌긴 어렵다. 요즘 등장한 미디어 파사드(Media Façade)도 인터랙티브 아트(Interactive Art)에서 끌어온 방식인데 다른 장르에서 10년 정도 활용된 방식이 건축적으로 전용되는 경우를 많이 봤다. 단열 개념도 그랬고. 어쩌면 배와 자동차와 비행기까지 관심을 갖고 연구했던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는 그런 인더스트리의 사이클을 잘 알았다고 본다. 이런 사이클을 이해해야 장기적인 니즈를 충족시킬 수 있다. 트렌드는 영속적이지 않지만 트렌드의 흐름은 긴 방향을 알려준다.
본:실내 건축 같은 경우 차용이 더욱 쉽다. 티타늄 강판을 건축소재로 생각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비행기나 안경에 먼저 쓰이고 건축으로 왔다. 건축은 보수적이라 안전하게 검증된 것들만 채택한다.
건축가에 대한 로망을 말하는 여자들을 종종 봤다.
승: 난 잘 모르겠는데. 혹시 내게 호감을 보인 여자들이 단지 직업 때문에?(웃음)
찬: 우리 집사람이 내가 <엘르>에서 토크한다니까, 자기를 하라더라. 피부에 와닿는 말 다해준다고.(웃음) 공대생들 가방에서는 공학용 계산기나 공학 관련 책이 나오는데 건축공학과는 스케치북도 나오고 철학책도 나온다. 로우테크와 하이테크가 결합된 느낌이라 인간적이다. 치명적인 단점은 고집이 세다. 아마 건축가의 DNA가 그런 것 같다. 그 정도 고집도 없으면 프로젝트를 끝까지 끌고 가기 힘들다. 직업인으로 봤을 때는 집중도도 높고 낭만이 있어서 멋있어 보일지 몰라도 생활인으로 봤을 때는 나이 들면서 가져다 줄 수 있는 게 고생 밖에 없다.(웃음) 고집이 센 반면 어느 순간 탁 놔버리는 경우도 있다. 책임감 있는 남편으로 데리고 살기에는 살얼음 같이 불안한 느낌이 있을 거다. 게을러서 옷도 맨날 까만 색만 입고.
본:그런데 또 말은 그럴싸하게 한다. 원래 무채색은 모든 색에 코디가 가능하다고, 모든 색을 함유한 색이라고(웃음).
그녀는 야구가 어렵다고 말했다. 어려워서 도무지 흥미가 생기지 않는다고 했다. 어느 날, 그녀가 야구장에 가고 싶다고 말했다. 거짓말처럼 그랬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 야구 결승전, 쿠바와 맞붙은 대한민국 대표팀은 한 점 차 스코어로 승기를 잡은 채 9회말 마지막 수비에 들어갔다. 차세대 국보급 투수로 꼽히는 류현진이 마운드에 올랐다. 승리를 예감했다. 첫 타자로부터 좌전안타를 맞았다. 동점주자가 나간 상황, 두 번째 타자의 희생번트로 주자는 2루까지 진루했다. 안타 하나로도 동점이 될 수 있는 상황에서 두 타자 연속 볼넷으로 1사 만루 상황까지 맞이한 뒤 류현진은 마운드를 내려왔다. 그의 마지막 투구는 스트라이크에 가까웠지만 볼 판정을 내린 히스패닉계 주심은 담담했다. 포수 강민호는 격렬한 항의 끝에 퇴장 명령을 받고 덕아웃에 포수 미트를 내던졌다. 마운드를 이어받은 건 마무리 투수로 정평이 난 정대현이었다. 투수와 포수 즉 배터리가 모두 교체된 채 맞이한 9회말 1사 만루 상황, 정대현의 손 끝에서 볼이 뿌려졌다. 유격수 앞 땅볼! 유격수 고영민이 이를 잡아서 2루를 밟은 뒤, 1루로 송구했다. 대한민국 야구팀이 금메달을 목에 거는 순간이었다.
스피드건에 150km는 찍혔을 거라던 강민호의 터프한 미트 던지기 덕분인지, 무심하고 시크한 정대현의 ‘차도남’ 투구 덕분인지 몰라도 52%의 시청률을 기록한 베이징올림픽 야구 결승전의 시청자들은 자연스럽게 야구장에 모여들었다. 2009년 프로야구 관중은 520만 명을 넘겼다. 전년 대비 100만 명 이상이 늘어난 수치다. 그게 다가 아니다. 분위기가 달라졌다. 예년보다 눈에 띄게 여성관중이 늘었다. 두산 베어스 홍보팀에 따르면 2008년 이후로 경기당 여성 관객 비율이 30% 수준이라고 밝혔다. 2008년 이전까지는 15% 안팎에 머무르던 수준이었다. 680만 명이 넘는 관중을 동원하며 역대 최다 관중수를 기록한 지난해에는 40%에 육박했다. 롯데 자이언츠 홍보팀의 임채무 씨가 전한 부산 사직구장 사정도 이와 비슷하다.
환기되는 사례가 있다. 2002년 한일월드컵 당시 축구의 ‘축’ 자도 몰랐던 대부분의 여성들이 레드카펫처럼 넘실대는 광화문을 비롯한 전국 각지에서 길거리 응원을 즐겼고, 축구를 알게 됐다. 문제는 월드컵이 끝난 뒤, 그 열기를 이어갈 공간을 찾지 못했다는 것. 프로축구에는 그녀들이 기대했던 월드컵의 열기가 없었다. 쉽게 말해서 프로축구는 인기가 없었다. 프로축구 구장의 텅 빈 관중석에서 월드컵 당시의 열기란 겨울 한파 속에서 떠올리는 한여름 무더위 같았다. 월드컵 무대에서 반짝거리던 태극전사들도 프로축구 안에서는 존재감을 잃었다. 프로야구는 달랐다. 출범 30주년을 맞이한 프로야구는 일찌감치 한국의 국민스포츠 자리를 꿰찼다. 팬덤의 스케일과 문화적 저변이 달랐다. 야구장은 만원이었고, 응원의 열기는 대단했다. 야구장에서 한번 놀아봤다는 여성들은 그 매력에 마구마구 빠져들었다. 시원하게 펼쳐지는 그라운드를 생전 처음 본 그녀들은 물결처럼 퍼져나가는 파도타기에 합류하기도 하고 입에 붙는 선수들의 응원가에 목청을 높여보다가 야구장에서 먹는 ‘치맥’ 맛을 잊을 수 없어서 야구장의 단골손님이 됐다. 뒤늦게 발견한 놀이터에서 마음껏 놀았다.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과 베이징올림픽 야구경기를 지켜본 여성들은 2002년 월드컵 때도 그러했듯이 다부진 선수들의 파이팅 넘치는 플레이에 열광했다. 스포츠 스타의 탄생은 곧 그 분야의 관심으로 이어진다. 1994년도 농구대잔치 당시, 연세대와 고려대 농구부는 실업팀들을 꺾으며 파란을 일으켰다. 장동건과 손지창 등 당대 청춘스타들이 대학농구선수로 출연했던 <마지막 승부>에 열광했던 소녀팬들은 농구장을 찾아 젊은 농구스타들에게 드라마의 팬덤을 이입할 수 있었다. 스타성은 곧 상품성이다. 베이징올림픽 결승전에서 태극기를 달고 활약했던 선수들은 스포츠 스타는 스포츠 마케팅의 최전선에 배치된다. 두산 베어스 홍보팀에 따르면 2008년부터 2011년 사이에 여성의 신체사이즈에 맞춰서 출시된 유니폼 판매율이 4배까지 뛰었다. 야구중계 화면에서 유니폼을 입고 응원하는 여성팬의 이미지가 심심찮게 포착됐다. 야구장에 놀러 갔던 그녀들은 야구팬이 돼서 돌아왔다. 프로야구 신에서 새로운 수요를 창출한 그녀들에게 각 구단들의 구애가 시작됐다. 여성팬을 겨냥한 다양한 이벤트를 마련하고 활발히 진행한다. 두산 베어스의 ‘퀸즈 데이’가 대표적이다. 한 달에 한번 핑크색 유니폼을 입고 플레이하는 두산 베어스 선수들은 그날만큼은 팬들을 위해서 뛴다. 스킨십 전략을 통해서 친밀감을 높여나간다. 야구장 분위기가 한결 부드러워졌다.
사실 야구는 즐기기 위해서 학습이 필요한 스포츠다. 즉각적인 액티비티가 뚜렷하게 체감되는 축구와 농구 등과 달리 룰을 먼저 숙지해야 비로소 액티비티가 보인다. 그만큼 확고한 흥미가 자리잡고 있어야 한다. 일찍부터 야구에 흥미를 갖지 못했던 여성들이 견고한 야구팬으로 거듭나는 과정은 그래서 흥미로운 변화다. 본래 한국에서 야구장은 수컷들의 놀이터였다. 1982년, 독재정권을 유지하려는 정책의 일환으로 프로야구가 출범을 했건 말건, 고교야구의 인기를 이어받은 프로야구는 출범 초기부터 대단한 팬덤을 구축했다. 지역 감정이 팽배하던 1980년대의 정서를 확실하게 긁어댄 덕분이기도 했다. 광주 무등경기장에서는 ‘목포의 눈물’을, 부산 사직구장에서는 ‘부산 갈매기’를 불렀다. 응원하는 팀의 패배로 격분한 어떤 홈관중들은 그라운드로 물병을 던지고, 상대팀 선수 차량을 불태우기도 했다. 야구장은 분리와 단절의 정서가 지배하는 한국사회의 병리적 심리가 체감되는 바로미터의 현장이었다. 그만큼 과격했다. 정치적 부조리로 인한 갈등이 스포츠의 팬덤으로 위장한 듯한 불편한 진실.
야구장을 찾는 젊은 여성팬들이 늘어난다는 건 어쩌면 우리 사회가 낡은 시대성을 극복해나가고 있음을 대변하는 사례일지도 모른다. 젊은 남녀 커플이 각자 응원하는 팀의 유니폼을 입고 나란히 앉아있는 야구장의 풍경은 이 사회의 취향과 여유가 한 뼘 늘었음을 증명한다. 서로 다른 취향을 인정하고 승부의 결과를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이 점차 가능해지고 있다. 각자 다른 방향을 응원하면서도 나란히 앉아 있을 수 있다. 게다가 그녀들은 자신이 응원하는 팀에 태생적 의무감을 얹지 않는다. 그저 잘생긴 선수의 플레이가 좋아서 응원하는 팀을 결정했다니, 얼마나 합리적이고 자유로운 선택인가. 지역갈등 따위는 그녀들에게 중요치 않다. 여자는 야구의 미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