잭 스나이더는 자신만의 감각으로 세상에 섰다. 최근 주춤한 행보를 보였지만 그는 여전히 주목 받는 감독 중 하나다. 그리고 그 길 위에서 또 한번 스스로를 증명할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저녁은 지옥에서 먹자!’고 외치던 근육질 스파르타 전사들의 결전을 그린 <300>(2007)으로 할리우드 흥행감독 대열에 들어선 잭 스나이더는 아드레날린의 갑옷을 입은 스파르타 마초들의 액션과 반대편에 선 페티쉬적인 취향의 여전사들의 액션을 그려냈다. 시공간을 초월한 걸파이터들의 액션이 징검다리처럼 이어지는 <써커 펀치>는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카타르시스의 이미지로 그득한 판타지 액션물이다. 블루스크린을 등지고 세트로 축조된 테르모필레 협곡 사이에 진을 치며 페르시아 적군을 상대하던 <300>의 배우들과 마찬가지로 <써커 펀치>의 여배우들 역시 병풍처럼 둘러쳐진 블루스크린 앞에서 가상의 적들을 향해 대검을 휘두르고, 기관총을 난사하며 뛰고 굴렀다. <300>이 불끈거리는 비장함으로 무장한 근육질 전사들의 액션이 오르가슴과 같은 쾌감을 부르는 작품이라면 <써커 펀치>는 막대사탕처럼 가늘고 길다란 소녀들의 몸놀림이 쿨하게 전시되는 환각의 약물과도 같다.
<새벽의 저주>(2004)부터 <가디언의 전설>(2010)까지, 잭 스나이더는 이름난 원작들을 자신의 감각이 담긴 프리즘에 비추어 스크린에 새롭게 투사해내는 작업을 거듭해왔다. <써커 펀치>(2011)가 그의 경력 안에서 특별하게 읽히는 건 그런 이유에서다. 스나이더가 연출한 장편 영화 필모그래피 중에서 유일하게 원작이 없는, 온전히 그의 머리 속에서 잉태된 첫 번째 영화라는 점에서 말이다. 또한 <써커 펀치>는 그가 연출한 실사영화 가운데 유일하게 미국에서 R등급을 받지 않은 작품이기도 하다. 자신의 각본으로 연출한, 다시 말하자면 온전히 자신만의 세계관에서 펼쳐진 작품이 가장 대중친화적인 수준의 이미지로 연출됐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있다.
사실 스나이더는 영화감독이기 전에 발군의 감각을 자랑하던 영상가였다. 칸 국제광고제 황금사자상 수상을 비롯해서 전세계적으로 실력을 인정 받는 CF감독이자 뮤직비디오 감독이었던 그는 와이드스크린을 이용한 영화적인 촬영방식과 역동적인 스타일, 속도감 있는 편집술, 서사적 완결성으로 정평이 나있었다. 이런 그의 경력들은 결과적으로 오늘날 그의 영화들을 위한 예고편과 같았다. 죠지 A. 로메로의 전설적인 고전 호러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1979)을 리메이크한 <새벽의 저주>는 그런 연출적 감각을 증명하는 신호탄이었다. 숨을 조이듯 천천히 다가오는 로메로의 좀비들과 달리 총구에서 튀어 나오는 탄환처럼 무서운 속도로 질주해 오는 스나이더의 좀비들은 단도직입적인 서스펜스와 압도적인 스릴을 발생시킨다. 무엇보다도 사회정치적인 메타포를 품은 원작의 메타포를 완전히 휘발시키고 롤러코스터적인 긴장감으로 점철된 호러물을 완성해낸 스나이더의 둔갑술은 주목할만하다.
스나이더가 본격적으로 자신의 장기를 드러낸 건 두 편의 그래픽노블을 통해서였다. 미국 그래픽노블의 대가로 꼽히는 프랭크 밀러와 알란 무어의 걸작을 각각 영화화한 <300>(2007)과 <왓치맨>(2009)은 비주얼리스트로서 스나이더가 지닌 차별적인 스타일을 증명하고 선전하는 작품이었다. 두 작품은 카메라 스피드 램핑 기법을 활용하며 액션 시퀀스의 속도감을 조절하며 감상의 카타르시스를 증폭시키고 과잉된 스타일로 시각적인 현혹을 부른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스나이더가 연출한 이 두 작품에는 보다 근본적인 공통적 특성이 잠재돼있다. 무채색에 가깝게 톤다운된 채도를 입은 <300>의 풍광은 이를 통해 극의 현실적인 감각을 희석시킨다. 이런 비사실적인 색채 감각은 오래된 기록 역사를 기초로 구축된 신화적인 무용담에 보다 환상적인 에픽의 숨결을 불어넣었다. 반대로 실제적인 냉전시대의 세계사를 기초로 허구적인 창작력을 접목시킨 <왓치맨>은 대비적인 명암을 통해서 보다 과장된 극적 분위기를 조성하고, 빛과 그림자가 공존하는 대비적인 명암의 이미지를 연출해낸다. 이는 사실적인 세계관을 밑그림 삼아 우울한 자조와 진보적인 관점을 채색한 픽션의 진지한 태도를 견지한다. 이는 스나이더가 두 원작의 스타일을 얼마나 잘 이해하고 있으며 그것이 스크린 속에서 어떻게 구현되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충실한 답변이었다. 다만 알란 무어의 그것은 일반적인 코스튬 히어로들의 활약 대신 암담한 냉전시대의 분위기와 핵전쟁의 잠재적 공포를 절망적으로 투영해낸 결과물이었다. 스나이더는 이런 원작의 성향을 단순화시키기 보다 그 복잡한 시대적 메타포들을 보다 무게감 있게 완성하는데 주력했다. <왓치맨>에 드리운 기대 이하의 흥행성적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다.
제임스 카메론의 <아바타>(2009)를 필두로 전세계에 불어 닥친 3D영화 열풍 이후에 제작된 <가디언의 전설>은 그 유행의 열차에 올라탄 어떤 승객 가운데 하나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작품은 단지 3D입체에 기대어 롤러코스터적인 체험을 부여하는 작품의 수준에 멈추지 않았다. 판타지 장르 문학에 깃든 신비를 아름답고 황홀한 이미지로 구현한 이 작품에서 3D영상의 입체감은 그 영상미를 돋보이게 만드는 수식의 장치로서 탁월하게 기능한다. 무엇보다도 육박전과 공중전이 난무하는 올빼미들의 전투는 <300>의 전사들을 떠올리게 만든다. 스나이더는 이 애니메이션에서도 자신의 인장을 확실하게 새겨 넣었다.
지금껏 스나이더의 작업 대부분은 어느 작가들이 상상력을 통해 그려낸 허구의 존재들을 스크린에 소환해내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대부분 성공적이었다. 하지만 <써커 펀치>는 평단의 비아냥과 참담한 스코어를 봤을 때 그에게 있어서 최대의 재앙이었다. 과연 <써커 펀치>는 스나이더의 실패작인 것일까? 사실 <써커 펀치>는 <인셉션>(2010)과 비슷한 부류의 작품이다. ‘인셉션’과 ‘킥’을 반복하며 꿈의 층위적 구조를 설계하고 그 층마다 종류가 다른 액션 시퀀스들을 채워 넣는 <인셉션>의 전략과 같이 <써커 펀치> 역시 무의식이라는 가상의 시공간에 파편적인 액션의 유희를 채워 넣는다. 다만 <써커 펀치>는 <인셉션>과 같은 논리적인 장치들로 관객을 설득시키지 않는다. 이는 서사적 실패라기 보단 고의적인 도발처럼 보인다. 어쩌면 <써커 펀치>는 스나이더의 세계관을 이루는 자질들이 총동원되어 나뒹구는 비주얼의 전장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는 지금 놀란 형제의 무한한 신뢰 속에서 <슈퍼맨>의 새로운 시리즈를 찍고 있다. 그리고 그 작업에 대해서 지대한 관심이 모이는 건 여전히 그의 재능에 대한 관심이 식지 않았음을 대변한다. 그러니 이제 다시 새로운 영광을 준비할 때다.
미국과 영국만큼이나 호주 역시 주목할만한 배우의 산실이다. 오늘날 할리우드에서 입지를 차지한 호주 출신 스타의 새로운 계보를 잇는 건 바로 애비 코니쉬다. 샤를리즈 테론이나 니콜 키드먼을 연상시키는 그녀는 유년 시절 자칭 톰보이였으며 자애심이 강했다. 호주영화협회 여우주연상을 차지하며 ‘아찔한 십대’ 배우로 떠오를 수 있었던 것도 어쩌면 이런 자애심 덕분이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2006년, 코니쉬는 히스 레저와 호흡을 맞췄던 <캔디>와 리들리 스콧의 <어느 멋진 순간>으로 호주와 할리우드를 오가며 무대를 넓혀나간다. 특히 비운의 시인 존 키츠의 연인으로 등장한 <브라이트 스타>(2009)는 당돌하면서도 우아한 코니쉬의 기품을 발견하는 자리였다. 박력 있는 여전사로 열연한 <써커 펀치>(2011)에서 이미지 변신에 성공한 코니쉬는 <리미트리스>(2011)를 통해서 성인배우로서의 커리어를 완벽하게 이행한다. 그녀는 이제 더 이상 유망주가 아니다. 반짝이는 별이 새롭게 떠올랐다.
체코 서부에 자리한 카를로비 바리는 유럽에서 가장 사랑 받는 온천 휴양지다. 매년 7월이면 이 온화한 마을에 새로운 열기가 더해진다. 카를로비 바리 국제영화제가 열리는 것. 올해로 46회를 맞이하는 이 영화제는 한때 사회주의 체제의 억압으로 고난에 직면했지만 끝내 자리를 지키고, 동유럽과 제3세계 영화들을 위한 ‘다른 시선’을 견지하는 영화제로 뿌리를 내렸다. 주드 로가 출연한 트레일러 공개와 함께, 7월 1일부터 9일까지 전세계 영화를 포용하는 온화한 축제가 펼쳐진다.
니콜 키드먼은 ‘될성부른 나무’였다. 키드먼을 ‘떡잎부터 알아본’ 제작자들은 그녀를 발 빠르게 할리우드로 인도했다. 일찍이 할리우드의 뮤즈 자리를 수성한 그녀는 여전히 가지를 뻗고 있다.
하와이 호놀룰루에서 태어난 키드먼은 호주 출신의 부모와 함께 시드니로 건너가 유년시절을 보낸다. 어려서부터 활동적이었던 키드먼은 발레를 배우고자 찾은 호주 유소년 씨어터에서 연기에 관심을 얻게 된다. 175cm에 달하는 장신이었던 열네 살 무렵, 영화 데뷔를 이룬 그녀는 우월한 유전자만큼이나 타고난 재능이 있었다. 1987년에 방영된 TV미니시리즈 <베트남>으로 호주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키드먼은 <죽음의 항해>(1989)로 할리우드 제작자들의 눈길을 끈다.
일본의 한 영화제에 참석 중이던 키드먼은 톰 크루즈의 측근으로부터 차기작 계획을 묻는 전화를 받는다. 토니 스콧의 <탑 건>(1986)으로 할리우드의 큰손이 된 크루즈는 <폭풍의 질주>(1990)로 심기일전을 다짐하던 차였다. LA로 키드먼을 초대한 그는 그녀와 출연 계획을 상의한다. 이는 키드먼의 할리우드 진출에 관한 이야기이자 세기의 커플이었던 키드먼과 크루즈의 인연에 관한 서두이기도 하다. 1990년 크리스마스 이브에 부부 서약을 맺은 두 사람은 론 하워드의 <파 앤드 어웨이>(1992)에서 또 한번 호흡을 맞춘다. 아일랜드의 보수적인 귀족 집안에서 자란 진보적인 여인이 자립을 꿈꾸며 미국 땅을 밟은 뒤, 한 남자의 야심에 동참하는 과정은 키드먼의 현실을 연상시키는 것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녀는 ‘톰 크루즈의 아내’라는 그림자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빛을 발산하기 시작한다.
구스 반 산트의 <투 다이 포>(1995)는 키드먼을 위한 영화였다. 수잔 역을 얻기 위해 구스의 집에 직접 전화를 건 키드먼은 그에게 말했다. “<드러그스토어 카우보이>(1989)를 봤어요. 당신과의 작업을 간절히 원해요.” 수잔은 섹슈얼한 매력을 이용해 남자를 물건처럼 이용하는 팜므 파탈이다. 이는 키드먼이 연기한, 강인하고 순정적인 여인들과 어울리지 않는 인물이었으나 그녀를 통해 키드먼은 골든글로브 여우주연상을 거머쥔다. 19세기 말, 보수적인 영국의 시대상을 배경으로 한 제인 캠피온의 고전 로맨스물 <여인의 초상>(1996)에서 지적이며 당돌한, 미모의 여인 이사벨을 연기한 키드먼은 자신이 그려왔던 도전적인 여인들의 면모에 보다 깊은 감수성을 이입해낸다. 진보적인 여인의 초상에 세심한 심연의 갈등을 새겨 넣으며 자신의 연기적 깊이를 증명해냈다.
스탠리 큐브릭의 <아이즈 와이드 셧>(1999)과 함께 키드먼은 내외적인 고난에 직면한다. 크루즈와 함께 부부로 출연한 이 작품은 금기와 욕망 사이에서 갈등하는 한 남자의 혼돈을 그리고 있으며 키드먼은 전신 노출까지 불사하는, 헌신적 열연을 펼쳤다. 큐브릭에 대한 깊은 애정은 부부의 공동출연으로 이어졌지만 이로 인한 세간의 지독한 관심은 두 사람의 관계에 치명타를 입혔다. 오랜 제작기간이 소요된 이 작품은 급기야 최종편집이 끝나기 전에 찾아온 큐브릭의 죽음으로 기로에 선다. 결국 영화의 불완전한 완성과 함께 두 사람의 관계도 흔들리기 시작한다. 2001년, 골든글로브 시상식장에서 각자 퇴장하는 두 사람의 모습이 포착됐다. 그 뒤로 키드먼은 다시 '힐을 신을 수 있'었지만 '삶이 붕괴되는' 극심한 상실감에 시달렸다.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그 해에 키드먼의 경력은 보다 반짝이기 시작했다. 환락가의 여신 사틴 역을 맡은 바즈 루어만의 뮤지컬 <물랑루즈>에서 다이아몬드와 같이 반짝이는 미모를 자랑한 키드먼은 빼어난 가창력과 안무까지 뽐내며 관객들을 현혹시켰다. 톰 크루즈가 기획자로 참여한 호러 <디 아더스>가 공개된 것도 같은 해였다. 이듬해, 이 두 작품으로 각각 골든글로브 두 개 부문 여우주연상 후보에 오른 키드먼은 <물랑루즈>로 두 번째 골든글로브 트로피를 얻게 된다.
영국의 여류 작가 버지니아 울프의 생에 얽힌 세 여인의 삶을 그린 <디 아워스>(2002)에서 메릴 스트립, 줄리언 무어와 같은 쟁쟁한 배우들과 함께 한 키드먼은 버지니아 그녀를 연기한다. 자살로 생을 마감한 예민하고 우울한 예술가의 생을 연기해내야 했던 키드먼은 인공적으로 제작된 모형 코를 달고 그녀를 연기한다. 자신을 잊은 채 온전히 버지니아라는 인물로 빠져들었다. 이는 여전히 그녀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던 이혼에 대한 아픔을 지울 수 있는 방편이기도 했다. 이는 그녀의 경력에 정점이 됐다. 2년 연속 골든글로브 수상을 이어간 그녀는 수상자 신분으로 오스카 단상에 오르는 첫 영광을 차지한다.
할리우드의 주류배우로 꼽히는 키드먼은 독립영화에서 보다 인상적인 연기를 선보여왔다. 그녀의 캐릭터를 설명하는데 있어서 자주 동원되는 건 예민한 심성과 불안한 정서다. 독립적인 여성의 의지를 강인하게 피력하던 그녀는 점차 히스테리한 여인으로서 존재감을 피력해왔다. 돌발적으로 공기를 불안하게 잠식하는 그녀의 캐릭터들은 극적인 분위기를 강화하는 요소로 영화에 기여해왔다. 연극적인 무대를 날것처럼 카메라에 담아낸 라스 폰 트리에의 <도그빌>(2003)이 178분에 달하는 러닝타임 동안 집중력을 유지할 수 있는 건 온전히 그녀의 연기 덕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탄생>(2004)과 <인터프리터>(2005)에서도 이는 유효하다. 결혼을 앞둔 여인이 죽은 옛 연인임을 자칭하는 소년을 만나 벌어지는 미스터리와 국제적인 정치적 음모에 휘말리는 한 여인의 정체적 모호함에서 비롯되는 서스펜스는 키드먼의 존재감이 발휘된 결과물이다.
미국의 여류 사진가 디앤 아버스의 삶을 모티프 삼은 <퍼>(2006)는 한 여인의 자립을 그린, 잉태적 삶에 관한 이야기다. 픽션과 논픽션의 경계가 모호한 이 작품에서 특유의 예민한 표정으로 등장하는 키드먼은 불안과 설렘의 경계를 부유하던 한 여류 사진가의 거짓말 같은 생에 사실적인 감정을 부여한다. 보다 현실적인 일상에 근접한 <마고 앳 더 웨딩>(2007)이나 <래빗 홀>(2010)에서도 이런 특성은 발견된다. 우연히도 두 작품에서 남편과 갈등을 빚는 아내이자 여동생과의 반목을 거듭하는 누이로 등장하는 키드먼은 각각의 영화에서 부풀어 가는 불화를 찔러 터트릴 것마냥 날이 선 심성을 휘두르는 불안 그 자체다. 롭 마샬의 <나인>(2009)은 키드먼이 여전히 빛나는 외모를 자랑하는 할리우드의 여신 자리에서 내려설 생각이 없음을 대변한다. 하지만 키드먼의 마이너한 감성은 그녀를 메이저 배우로 인식하길 방해하거나 거부하도록 만든다. “나는 영감을 주거나 강박적인 사람들과 일하길 좋아한다.” 가늠할 수 없는 방식으로 자신만의 빛을 발하는 할리우드의 뮤즈, 니콜 키드먼은 여전히 채워지지 않은 미완의 초상이다.
유년시절부터 ‘랄프로렌’이나 ‘갭’과 같은 의류 브랜드를 비롯해서 ‘버버리’의 캠페인 모델로도 활약한 바 있는 ‘훈남’이 할리우드에 진출했다는 건 딱히 놀라운 사연이 아니다. 하지만 알렉스 페티퍼에게서는 심상치 않은 조짐이 엿보인다. <트와일라잇>시리즈의 로버트 패틴슨이나 <해리포터>시리즈의 다니엘 래드클래프가 그러하듯이, 폭발적인 인기를 등에 업은 젊은 배우들은 대부분 특정한 캐릭터의 옷을 입고 태어난다. 페티퍼는 올해 초에 차례로 개봉된, <아이 엠 넘버 포>에서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외계인 초능력자로 분한 뒤, <비스틀리>에서 잘생긴 외모를 되찾고자 사랑을 갈구하는 추남으로 변신한 페티퍼는 혜성과 같은 등장을 뛰어넘어 상한가를 달리고 있는 신예다. 현재 후반작업 중인 SF스릴러물 <나우>(2011)에서 아만다 사이프리드, 저스틴 팀버레이크와 함께 이름을 올린 페티퍼는 올해 또 한번 새로운 면모를 과시할 전망이다. 어메이징한 영 건, 알렉스 페티퍼를 기억하라.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침체된 독일 영화계는 ‘오버하우젠 선언’이라 불리는 뉴저먼시네마의 시대를 주창한다. 전통적인 공업도시 오버하우젠은 필름의 혁명 지대로 거듭났다. 그리고 서독단편영화제에서 출발한 오버하우젠 국제단편영화제는 올해로 57회를 맞이하는 최장수 국제단편영화제로서 조지 루카스, 마틴 스콜세지, 데이비드 린치 등, 영화적 혁명을 지지하고 발굴해 왔다. 5일부터 10일까지, 40개 국가에서 모인 470편의 새로운 혁명이 공개된다.
배우의 얼굴만큼이나 그 표정을 둘러싼 풍경으로 기억되는 영화들이 있다. 그와 그녀의 사연이 담긴, 방이 있는 영화 속 풍경으로 당신을 안내한다.
맘마미아!
<맘마미아!>는 전설적인 스웨디시 팝그룹 아바의 명곡들로부터 모티프를 삼아 기획된 뮤지컬이다. 1999년 런던 초연 이후로 브로드웨이 진출을 거쳐 현재까지 160여 개국에서 공연된 롱런 뮤지컬로 거듭났다. 그림 같은 지중해 가운데서도 백미에 가까운 그리스 해변가를 배경으로 주옥 같은 넘버들이 하나의 러브스토리를 치장하는 이 작품이 동명의 뮤지컬 영화로 기획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다. 영화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가상의 뮤지컬 무대가 자아내는 환상을 살아있는 풍경으로 전시해내는 일이었다. 제작진은 촬영 한 달 전부터 최상의 무대를 찾고자 그리스 전역을 뒤졌고, 스포라데스 제도의 스키아토스 섬과 스코펠로스 섬, 다무하리 섬이 최고의 병풍이 되리라 확신했다. 그 중에서도 스코펠로스 섬은 <맘마미아!>가 선사하는 진경의 핵심지다. 푸른 지중해를 병풍처럼 두른 스코펠로스 타운은 붉은 지붕을 쓰고 하얀 회벽으로 몸을 감싼 아기자기한 주택들이 능선을 따라 얼굴을 내밀고 앉아 있는 고지대 마을이다. 온화한 아치형 창문으로 시원한 바닷바람과 아름다운 풍경을 선물하는 이 주택들은 춤과 노래의 향연을 위한 천혜의 무대였다. 아기자기한 장식들이 눈에 띄는 복식 구조의 주택은 경쾌한 가무에 입체적인 동선을 치장한다. 집 안팎 곳곳에 자리하며 일상을 영위하던 인물들은 계단을 오르고 내리거나 창문을 여닫고 때때로 뛰어내리며 스크린을 역동적인 뮤지컬 무대로 탈바꿈시킨다. 그림 같은 카스타니 해변을 비롯해서 소피(아만다 사이프리드)가 세 아버지들과 처음 마주하는 아그논다스, 그리고 소피의 결혼식을 위해 긴 계단을 오르던 도나(메릴 스트립)가 옛 연인의 고백을 애절하게 뿌리치는 아기오스 요다니스 성당, 그리고 그 모든 풍경을 조망하는 영화 속 그 집에 머무를 수 있다면 스스로 인생의 승자가 됐다고 자부해도 좋을 것만 같다. 영화 속 그 노래, “The winner Takes it all”처럼.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
저널리스트 출신 작가 엘리자베스 길버트의 자전적인 여행 에세이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는 한 여인이 행복을 찾아 나서는 3막 3장 여행기다. 영화는 그 일탈의 경험이 기록된 활자를 영상으로 치환하며 일탈의 충동을 보다 입체적으로 부추긴다. 뉴욕에서 안정적인 결혼 생활을 꾸려나가던 리즈(줄리아 로버츠)는 그 편안한 삶이 자신을 서서히 풍화시키고 있다는 위기를 느끼기 시작한다. 결국 그녀는 결혼을 비롯해서 손에 쥐고 모든 것들을 과감히 놓은 채 1년 간의 순례를 결심한다. 풍요로운 진미가 넘치는 이탈리아 로마에서 먹고, 명상으로 마음을 정화시키는 인도의 아쉬람에서 기도한 뒤, 소박한 일상을 영위하며 새로운 운명을 발견해내는 발리에서 사랑하는, 한 여인의 이 모든 여정은 영혼의 허기를 채우고자 떠나는 순례나 다름없다. 그 모든 여정의 종착지 발리는 새로운 삶을 위한 약속의 땅이다. 현대적인 물질 문명의 침입이 상대적으로 덜한 발리의 자연적인 경관으로 둘러싸인 리즈의 집은 안온한 인상을 부른다. 목재로 건축된 친자연적인 이 주택 곳곳에 놓인 창과 문은 자연을 향해 마음껏 열려있으며 이는 곧 자신을 놓고, 새롭게 가다듬던 리즈의 여정이 비로소 새로운 삶을 향해 나아갈 차례에 놓여 있음을 대변한다. 자신의 새로운 삶을 위한, ‘더 큰 균형’을 찾아간 그녀는 비로소 발리에서 새로운 연인을 만나게 되며 그 앞에서 다시 한번 고민하고 갈등하지만 두려움 속에 머물던 지난 날을 떠올리며 새로운 사랑 앞에서 뒤돌아서지 않길 다짐한다. 누군가에게는 더없이 사치스럽게 보이는 고민이겠지만 쳇바퀴 도는 삶 속에서 지쳐가는 현대인 누구나 한번 즈음은 꿈꿔봤을 진짜 일탈이 담긴 이 영화는 대리만족으로서가 아닌, 당신에게 진짜 일탈을 촉구하는 일종의 안내서다.
언 애듀케이션
영국의 유명한 소설가 닉 혼비는 저널리스트 출신의 저술가 린 바버가 한 잡지에 기고한 짧은 회고록 에세이에 사로잡혔다. 이를 바탕으로 한 편의 시나리오를 완성한 그는 끝내 영화 제작까지 관여했다. 바로 그 영화가 <언 애듀케이션>이다. 17세 소녀 제니(캐리 멀리건)는 옥스포드 진학을 기대할 정도로 뛰어난 학업성적을 자랑한다. 하지만 스스로는 보수적인 부모와 엄격한 학교에 갇히듯 살고 있다 여기며 작은 일탈로 숨통을 열어두길 원한다. 딱딱한 라틴어 공부보다는 첼로 연주와 샹송을 즐기고 프랑스 파리에서의 삶을 염원한다. 기회가 찾아온다. 우연히 인연을 맺게 된 중년남자 데이빗(피터 사스가드)과 만남을 거듭하던 제니는 그로부터 제공 받는 다양한 경험을 통해 학교와 집을 오가던 일상에 대한 필요성을 잊기 시작한다. <언 애듀케이션>은 전통적인 영국드라마의 서정적인 분위기와 함께 전쟁 직후인 1960년대 영국의 일상적인 풍경들을 사실적으로 그려낸다. 샹송과 재즈, 올드팝을 즐기던, 테일러드 복장의 말쑥한 청년들과 심플한 스타일과 짙은 눈화장의 첼시룩 여성들이 주류를 이루던 당시의 풍경이 재현된다. 빈티지한 데코와 장식들로 가득한 실내 인테리어들도 눈에 띈다. 오늘날 오랜 멋과 정취를 지닌 스타일로 인식되는 빈티지풍의 실내 정경은 단아하고 소박한 1960년대 영국의 현실을 대변한다. 고리타분한 가치관 속에 갇혀있다 믿는 제니에게 그 모든 것은 벗어나야 할 낡은 풍경에 불과하다. 하지만 결국 잘못된 선택으로 삶이 뒤틀린 이후, 제니에게 그 풍경은 곧 새로운 기회를 되찾기 위한 안식처가 된다. <언 애듀케이션>은 안온한 일상 속에서 새로운 자극을 꿈꾸던 소녀가 백일몽과 같이 짧고 강렬한 경험을 거친 뒤 얻게 되는 큰 깨달음에 관한 영화다. 그리고 제목에서 명시하는 ‘교육’이란 바로 그 시행착오조차 품어줄 수 있는, 새로운 기회를 주는 배려이자 덕목이라는 것을 이 영화는 가르치고 있다.
아멜리에
소녀는 어려서부터 특이했다. 아니, 어쩌면 특별했다. 아버지의 손길에 심장박동이 빨라진 탓에 심장병 진단을 얻었고, 소녀는 쉽게 외출을 허락 받지 못한 탓에 자신의 외로움을 함께 견뎌줄 친구를 스스로 만들어야 했다. 그 덕분인지 아멜리(오드리 토투)금붕어의 자살마저 눈치챌 정도로 누군가의 마음을 읽는, 남다른 재주를 얻게 됐다. 그런 어느 날, 화장실에서 우연히 발견한 누군가의 오래된 소지품을 발견한 그녀는 주인을 찾아나선 뒤 결국 그 물건들을 되돌려주는데 성공하며 대단한 보람을 얻게 된다. 누군가의 행복이 자신을 기쁘게 한다는 것을 체감한 그녀는 주변의 모든 이들이 행복한 감정을 얻을 수 있기를 갈망하며 그들이 모르는 선물을 준비한다. 프랑스가 배출한 귀여운 여인 아멜리는 사실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여인이다. 어려서부터 혼자에 익숙한 그녀는 그 외로움을 달래고자 타인의 행복을 위한 대리만족의 일상으로 도피해나간다. 강렬한 레드톤으로 채워진 아멜리의 방은 그녀의 욕구불만을 간접적으로 발산시키고 이를 대리 충족시키는 공간인 셈이다. 화려하고 강렬한 컬러가 방 안에 가득하지만 소박하고 귀여운 도구들로 채워진 그 방의 정경은 아멜리의 마음을 대변한다. 타인으로부터 괴리된 자신만의 공간 속에 숨겨둔 욕망의 도피처이자 사랑 받고 싶은, 혹은 사랑하고 싶은 여자로서의 심리를 유일하게 보관하는 비밀스러운 공간인 것. 결국 사랑을 갈구하면서도 그 사랑에 다가서길 망설이는 아멜리의 불안은 그 상대를 방 안에 들이는 순간 눈 녹듯 사라진다. 남에게 결코 보여주지 않았던 강렬한 염원 속에 그토록 바라던 사랑이 찾아온다. 이 사랑스러운 로맨틱 코미디는 마음의 열쇠를 여는 남녀의 만남에 관한, 판타지 같은 러브스토리다.
다채로운 재료 본연의 맛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전주비빔밥의 고장, 한국의 전주는 매년 4월마다 각양각색의 입맛을 지닌 시네마키드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자유, 소통, 독립’의 슬로건을 내건 전주국제영화제는 인디 필름과 디지털 시네마를 위시한 새로운 영화적 발견의 장을 전통적인 한옥의 도시 전주에 마련했다. 4월 28일부터 5월 6일까지, 12회를 맞는 이번 영화제에서도 신선한 영화의 진미를 맛볼 수 있다.
디즈니의 공주로서 화려한 데뷔식을 치룬 앤 헤서웨이는 궁전에 머무르지 않았다. 크고 작은 성장통을 헤치며 길을 닦아왔다. 이제 그녀 앞에 길은 열려 있다. 방향을 정하는 건 그녀의 몫이다.
미운 오리 새끼처럼 어수룩한 외모와 수줍은 성격을 지닌 소녀 미아는 친구들의 따돌림을 받기 일쑤였다. 하지만 그 소녀는 그네들에게 그런 대접을 받을 사람이 아니었다. 어느 날, 두 날개를 펴고 하늘을 날았다는 그 백조처럼 사회지도층 왕가의 피를 물려 받은 공주였다는 소식을 전해 듣게 된 소녀의 일상은 거짓말처럼 뒤바뀐다. 그리고 영화 속에서나 가능한 일은 할리우드에서도 가능한 일이었다. 앤 헤서웨이는 자고 일어났더니 스타가 됐다. 헤서웨이의 첫 번째 영화로 공개된 <프린세스 다이어리>(2001)가 그녀의 무명 시절을 하루 아침에 지워버린 셈이다.
뉴질랜드의 <천국의 맞은 편>(2001) 촬영장에 있던 헤서웨이가 오디션을 위해 태평양을 건넘으로써 그녀의 첫 번째 전환점이 마련됐다. 미약한 경력을 지닌 헤서웨이가 디즈니 공주의 왕관을 하사 받은 건 누구보다도 커다란 눈과 시원한 미소를 자랑하는 미인이라서가 아니었다. 물론 그녀에게는 처음치고는 괜찮은 경력이 있었다. 1999년, 폭스TV에서 방영된 미니시리즈 <겟 리얼>로 카메라 앞에 처음 선 16세의 헤서웨이는 이듬해에 영 아티스트 어워드의 TV시리즈 최우수연기자 부문에 노미네이트됐다. 하지만 <프린세스 다이어리>를 연출한 게리 마샬이 단 한번의 오디션으로 헤서웨이를 선택한 이유는 전혀 다른 곳에 있었다. “오디션 도중 앤이 의자에서 넘어졌고 이로 인해 캐스팅을 결정했다.” 미아 역을 위해서는 자신이 얼마나 어메이징한 여자인지를 깨닫지 못하는 미운 오리 새끼가 필요했다. “본래 나는 존재감이 없는 사람이다”라고 말하는 헤서웨이가 바로 그녀였다.
대부분의 아이돌 스타들이 그러하듯이, 할리우드의 신데렐라가 된 헤서웨이 역시 성장통을 건너야 했다. 디즈니의 공주가 되어 화려한 유명세를 드레스처럼 걸쳤지만 이는 점차 그녀를 불편하게 옥죄기 시작했다. <프린세스 다이어리 2>(2004)의 촬영 일정으로 인해 헤서웨이는 출연 성사를 목전에 뒀던 <오페라의 유령>(2004)을 포기해야 했다. 학창 시절 소프라노로 활동한 바 있는 그녀에게 이는 마치 목소리를 잃는 기분이었을 것이다. “내겐 <프린세스 다이어리>가 전부였고, 이는 당시 내 경력을 가로막는 벽이었다.” <엘라 인챈티드>(2004)와 <프린세스 다이어리 2>와 같이, 밝고 건강한 미소를 요구하는 가족영화들 속에 갇힌 헤서웨이의 갈증은 점차 심화됐다. 또 한번의 공주 놀이를 마친 헤서웨이는 <하복>(2005)에서 자신의 발랄한 이미지에 욕설을 퍼붓듯 파격적인 변신을 시도한다.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의 영화에서 노출 연기와 베드신을 선보인 그녀의 행보는 연기의 질을 떠나 놀라운 사건이었다. 이는 단순한 질풍노도의 일탈이 아니었다. 발랄한 공주로 박제처럼 남지 않겠다는, 일종의 선언이었다.
“내가 창조해낸 어떤 것보다도 그 영화가 더욱 자랑스럽다.” 여기서 헤서웨이가 경의를 표한 그 영화는 할리우드에 진출한 이안의 <브로크백 마운틴>(2005)이다. 두 남자의 애틋한 멜로드라마인 이 작품은 그녀에게 역할의 크기와 반비례한 자신감을 불어넣었다. 사랑스러운 매력으로 치장했던 젊은 날을 지나 결혼 뒤, 가난에 치여 거칠고 억척스럽게 변해버린 여인의 삶, 헤서웨이의 연기는 지난 날을 돌아보게 만들 정도로 인상적인 것이었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2006)의 앤디를 통해 그런 자신감은 구체화됐다. “그건 어떻게 어른이 되는지, 어떻게 어른답게 선택하는지, 희생의 유무가 어떤 후회를 남길 수 있는지에 대한 결과적 차이를 배우는 일이었다.” 악마 같은 편집장의 온갖 시중을 들어야 하는 비서의 고단한 일상이 결코 헛된 희생이 아니었음을 이야기하는 이 영화에서 헤서웨이는 스스로 자신의 삶의 방향을 결정하고 시행착오 속에서 진정한 희생의 의미를 깨닫는 인물을 연기해낸다. 점차 패셔너블해지는 인물을 연기해야 하는 헤서웨이에게는 몸매관리가 필요했고, 그 탓에 “배가 고파서 에밀리 블런트와 함께 손을 잡고 울었다”지만 이 작품으로 헤서웨이는 자신의 성장을 증명하는 동시에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다. 무엇보다도 “이루고 싶었던 모든 것”이었던 메릴 스트립과 호흡을 맞출 수 있었다는 건 그녀에게 더 없는 행운과도 같았다.
성취는 새로운 도전의 밑거름이다. 여류 작가 제인 오스틴의 사랑을 그린 <비커밍 제인>(2007)은 현대판 신데렐라로 익숙한 헤서웨이의 이미지를 생각했을 때, 쉽게 어울릴 수 있는 작품이 아니었다. 그녀 역시 이 영화가 자신을 위한 옷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안의 권유로 마음을 돌린 그녀는 제인 오스틴을 자신에게 맞는 맞춤복으로 완성하고자 노력을 기울였다. 피아노를 연습하고, 방언을 공부하며 고전적인 우아함에 사실성을 새겨 넣고자 했다. 스티브 카렐과 함께 한 첩보물 코미디 <겟 스마트>(2007)에서 액션까지 소화하는 팔방미인으로서 헤서웨이의 경력은 점차 다채로운 색을 띠어가기 시작했다.
2009년, 헤서웨이는 생애 첫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에 오른다. 약물중독으로 재활원을 전전하는 여인이 누나의 결혼식에 참여하며 벌어지는 사건을 그린 <레이첼, 결혼하다>(2008)에서 헤서웨이의 연기는 변신이라는 수사만으로 채워질 수 없는 진화한 연기력을 선보인다. 이 영화로 인해 생애 처음으로 흡연을 경험한 헤서웨이는 단지 방탕한 흉내를 내는 것이 아니라 마치 진짜 몰락의 수렁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여인의 딜레마와 이로 인해 얻은 상처들로 앙상해진 여인의 지독한 트라우마를 표출한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2010)의 하얀 여왕은 헤서웨이가 팀 버튼의 기괴한 세계관조차 어울리는 배우로 자라났음을 실감하게 만든다. <브로크백 마운틴> 이후로 또 한번 제이크 질렌할과의 연기적 궁합을 과시하는 <러브&드럭스>(2010)에서는 파격적인 노출 연기조차 안정적으로 소화해내면서도 다양한 감정을 소화하고 표현하는 능력까지 갖춘 배우로 거듭나고 있다. “영화가 나를 성장시킨다는 건 정말 좋은 일이다. 언제나 10대가 지나면 무엇이 있을지 두려웠기 때문이다. 모두가 그런 건 아니겠지만 그건 내게 대단한 변화였다.” 배우는 경험을 입고 성장한다. 그리고 자신을 성장시켜줄 새로운 경험을 갈아입는다. 헤서웨이는 지금 옷장 앞에 서있다. 자신의 성장에 걸맞은 새로운 옷을 고르고 있다.
빅토리아 항구와 인접한 홍콩섬 북부 지역은 홍콩의 신흥 지역이다. 어퍼하우스는 홍콩의 새로운 중심에서 최상을 자부하는 히든 플레이스다. 당신이 꿈꾸던 홍콩은 거기서 시작된다.
어디론가 새로운 곳을 향해 떠나는 자가 원하는 ‘새로움’이란 어쩌면 이런 것이다. 지금껏 자신이 겪어보지 못한 것을 볼 수 있다는, 자신을 모르는 사람들로부터 방해 받지 않을 수 있다는, 그런 새로움에 대한 기대감. 하지만 홍콩이라는 도시는 이와 다른 차원의 만족을 위한 공간이다. 한두 번 이상은 관람했을 법한 홍콩영화 속의 풍경들이 이 좁은 도시 곳곳에서 데자뷰처럼 당신을 맞이한다. 너무나도 유명한 몇몇 장소들은 언제나 수많은 인파로 북적이기 마련이다. 소위 ‘홍콩 간다’는 말처럼, 홍콩행 비행기에 탑승한다는 건 자신이 꿈꾸던 것을 두 눈으로 똑똑히 확인해보겠노라는 의지에 가깝다. 그렇다면 당신은 선택해야 한다. 전세계 각지에서 모인 낯선 이들에게 치이며 보낸 하루 동안의 피로를 해독하기 위한, 최소한 혼자만의 시간을 보장할 수 있는 나만의 휴식처를 찾아내야만 한다.
마천루를 자랑하는 홍콩에서도 홍콩섬의 빅토리아 항구와 인접한 빌딩들은 거대한 스카이 라인의 핵심을 이루는 곳이다. 그리고 그 장관을 지지하는 퀸즈웨이에 자리한 ‘퍼시픽 플레이스’는 새롭게 각광받고 있는 아이코닉한 쇼핑몰이다. 덕분에 퍼시픽 플레이스 주변에는 현대적인 인테리어를 자랑하는 최고급 신흥 호텔들이 많은데 그 중에서도 다국적 기업 스와이어 그룹에서 설립하고 홍콩 출신의 젊은 디자이너 앙드레 푸가 디자인한 ‘어퍼하우스’는 최근 1년여 사이 홍콩에서 가장 주목 받고 있는 최고급 부티크 호텔이다. JW 메리어트 홍콩 호텔과 한 빌딩을 공유하지만 ‘더 높은(upper)’ 상층부를 차지하는, 이름 그대로 어퍼하우스인 셈이다.
만약 입구 주변에 걸린 거대한 원형의 예술품을 지나쳤다면 다시 한번 이를 주목해 보자. 이는 한국인 조각가 최태훈이 만든 예술품이다. 사람 인(人) 자가 얼기설기 모여 원을 이룬 이 작품은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만든 하나의 세계를 상징하는 인류의 ‘숲(Forest)’이자 전세계 각지에서 모인 투숙객들이 이룬 또 하나의 세계, 어퍼하우스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첫 인사다. 어퍼하우스는 이와 같이 아시아의 예술가들이 만들어낸 다양한 예술품들로 콜라보레이션을 이룬 거대한 전시관이자 입구부터 최상층의 레스토랑까지, 여행자들을 위한 정화의 의식으로 구상된 거대한 예술품이다. 특히 호텔 곳곳에 놓인 둥그렇고 매끄러운 돌 조각들은 순탄한 여정을 기원하듯 마음을 안온하게 도닥인다.
어퍼하우스가 정의한 ‘시적인 오르막 여정(A poetic upward journey)’은 지상보다 높은 곳을 향함으로서, 일상으로부터 탈피한 여행의 가치로 나아가길 바라는 의식이다. 이는 마치 세속의 묵은 때를 벗겨내고 숙소의 정취 속에 머무르는 호시노야 료칸의 그것을 연상시킨다. 입구를 지난 당신을 맞이하는 건 거창한 리셉션 대신 간소한 프론트의 직원들이다. 그들이 한 손에 든 아이패드는 어퍼하우스가 자랑하는 유니크한 아이템이다. 각 방에 비치된 아이팟과 연계되며 이를 이용하는 투숙객들은 자신의 요구를 일일이 직원에게 설명하는 수고를 덜어낼 수 있다.
짐을 풀고 두 다리를 뻗는, 잠깐의 휴식을 위해서 당신은 긴 터널과 같은 에스컬레이터를 올라야 한다. 여행자가 맞이할 여행의 덮개를 벗겨내듯, 어퍼하우스에 들어서기 위한 기다림을 지나면 비로소 편안한 쇼파들이 놓인 로비에 당도한다. 입구에서 본 원형의 구조물이 나무처럼 자라난, 비로소 당신의 본격적인 여정이 시작되고 있음을 축하하는 또 다른 작품에 고무되는 기분이 느껴진다. 엘리베이터에 탑승하기 전, 바로 옆에 놓인 문을 열고 나간다면 거대한 빌딩 사이에서 조용히 숨을 죽이듯 숨어 있는 ‘시크릿 가든’을 만날 수 있다. 작고 아담한 이곳은 당신의 여정에 동참하는 이와 함께 찾아야 할 작은 휴식처다.
홍콩의 어느 호텔보다도 너른 공간을 제공하는 어퍼하우스의 룸에서는 홍콩섬의 너른 풍경 또한 감상할 수 있다. 호텔의 홍보 담당자인 미쉘 라우는 구체적으로 어퍼하우스가 ‘3차원의 시야(three-dimensional view)’를 제공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숲(Green), 도시(city), 바다(harbor)까지, 홍콩에 도착해서 짐을 풀고 행선지를 고민할 어떤 투숙객들에게 이 호텔이 중계하는 모든 풍경들은 처음 마주하는 홍콩의 혜택일 것이다. 이 세 종류의 풍경들은 어퍼하우스가 홍콩 여행에 있어서 얼마나 탁월한 위치를 점하고 있는가를 대변하는 예시로서도 유용하다. 영국식 정원을 옮겨온 듯한 홍콩 공원과 빅토리아 항구, 그리고 빌딩숲까지, 어퍼하우스는 홍콩섬에서 주워담아야 할 풍경들을 병풍처럼 두른 전망대다.
세 종류의 규모로 나뉜 어퍼하우스의 117개 룸들은 세련된 인테리어와 최신 테크놀로지가 집약된 공간이다. 결이 살아있는 원목 재질의 벽에는 장식과 같은 손잡이들이 있으며 이를 잡아당기는 건 선물을 확인하기 위해 리본을 푸는 것과 같다. 여행에 있어서 목욕이란 하루의 일정을 시작하거나 끝내는 의식이다. 커다란 창을 통해 풍요로운 정경이 전달되는 욕실의 욕조에 누워 피로를 희석시킨다는 건 마치 호화로운 도시를 홀로 점하듯 설레는 일이다. 유기농 재료로 만든 바디용품 브랜드 REN의 어메니티를 구비한 어퍼하우스는 여행용 물품으로 채운 파우치까지 무료로 제공한다. 방 안에 놓인 개인용 바는 온전히 당신의 것이다. 맥주와 음료수, 커피와 간식거리까지, 모든 것이 당신에게 무료로 제공된다. 스카이 라운지나 다름 없는 그곳에서 마음껏 맥주나 커피를 마실 수 있다는 건 무엇보다도 근사한 일이다. 가능하면 방안의 모든 것들을 만지거나 열어봐야 한다. 곳곳에 숨겨진 크고 작은 깜짝선물을 확인하는 재미를 놓치고 싶지 않다면 말이다.
보다 더 높은 곳에서 이 모든 장관들을 소유하고 싶다면 ‘카페 그레이 디럭스’로 올라가 보자. 어퍼하우스에서 하늘과 가장 가까운, 49층 정상에 자리한 이 곳은 어퍼하우스가 자랑하는 최상의 서비스다. 한쪽에는 오픈 키친의 레스토랑이, 한쪽에는 바가 자리한, 이 공간은 반짝이는 금장 장식과 물결 무늬의 단아한 원목들이 대비적으로 어울리는, 화려하고 온화한 인테리어의 역동적인 인상으로 손님을 맞이한다. 정상급 셰프 그레이 쿤즈의 손으로 빚어낸 카페 그레이 디럭스가 2011년 미슐랭 가이드에서 별 한 개를 얻었다는 사실은 여기서 주문하게 될 어떤 음식도 당신이 실망시킬 일이 없을 것이라는 강력한 조언이다. 아침 식사가 뷔페식이 아닌 주문식이라는 것도 특별하다. 애프터눈티는 기본이다. 창을 통해 와이드하게 펼쳐지는 홍콩의 전경이 이른 아침에서 늦은 밤까지, 카페 그레이 디럭스의 분위기를 자연스럽게 갈아 입힌다. 진미에 풍경을 곁들여 식사할 수 있는 최상의 공간이다.
약간의 발품과 기다림을 감내할 수 있는 당신은 어퍼하우스의 인근에 있는 가든로드 피크트램 터미널에서 수직에 가까운 가파른 경사의 피크트램을 체험한 뒤, 빅토리아 피크에 올라도 좋다. 그곳에서 당신은 홍콩의 모든 것을 눈에 담아볼 수 있다. 쇼핑의 천국 홍콩에서 특별한 무언가를 위해 얼마든지 지갑을 열 준비가 된 당신에게도 어퍼하우스는 분명 최적의 입지다. 호텔 문을 나선 뒤, 길 건너편에 있는 퍼시픽 플레이스의 출입구로 들어서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한 층 아래로 내려가면 각종 의류 매장들이 즐비하게 펼쳐진다. 인파의 행렬에 휩쓸리듯 자신만의 아이템을 찾기 위한 분주한 경쟁에 시달리듯 공격적인 쇼핑을 감내해야 하는 홍콩의 대형쇼핑몰들과 달리 퍼시픽 플레이스는 넉넉한 보폭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점에서 보다 여유롭다. 3층으로 이뤄진 쇼핑몰은 각층마다 취향을 배려하듯 정돈된 덕분에 동선의 편의가 느껴진다는 것도 좋은 이점이다. 쇼핑 명소가 즐비한 완차이나 침사추이도 지하철 한 정거장 거리에 불과하다. 그리고 어퍼하우스는 하루 동안의 여정으로 짜릿해진 감각을 평온하게 다스릴 수 있는 안식처다. 홍콩에서 온전히 혼자만의 시간과 공간을 얻고 싶다면, 홍콩의 중심에 자리한 어퍼하우스를 소유하라. 당신의 감각을 최상으로 끌어올릴, 홍콩의 히든 플레이스가 거기에 있다.
Recomender
퍼시픽 플레이스 상층부에 자리한 부티크 호텔. 아이팟으로 직접 체크인&아웃은 물론 다양한 룸서비스 주문이 가능하다.
Rooms 117(including 21 suites and 2 penthouses)
Bar and Restaurant Café Gray Deluxe
Facilities Gym, hybrid cars for airport transters and private hire, secondly lawn space and private events, Paperless arrival and departure experience
Features Complimentary In-room bar and espress machine,free Wi-Fi internet, LCD TV with 2.1 surround sound with simple connectivity for PC, Ipod tou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