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익스피어 해석의 권위자로 꼽히는 감독
케네스 브래너는 언젠가부터 셰익스피어의 것이 아닌 세계를 탐하기 시작했다. 셰익스피어를 등진 것이 아니다. 셰익스피어의 어깨 너머로 새로운 세상을 탐구한다는 말이다.
케네스 브래너가 마블 유니버스와 디즈니 왕국에 접근하는 방식은 기존에 자신이 해왔던 ‘셰익스피어적인’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는 <토르: 천둥의
신>(2011)에 대해 이렇게 생각했다. “이건 거대한 규모 안에서 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기회다. 거창한 허구의
시나리오 한가운데 있는 인간의 이야기.” 그리고 그는 <신데렐라>(2015)에 대해서도 명확한 관점을 고수했다. “처음 이 작업에 관여하게 됐을 때 이렇게 말했다. ‘내가 생각하는
큰 그림이 뭔지 알 거다. 그건 그 길에서 벗어나는 거야’라고.” 공통분모는
단 하나였다. “이건 셰익스피어로부터 비롯됐다.”셰익스피어적인 관점 안에서 이는 모두 지극히 가능한 이야기였던
것이다.
대부분의 배우 출신 감독들과 달리 브래너는 처음부터 배우이자 감독이었다. 그는
자신의 경력 초기부터 카메라 뒤에 서서 ‘액션!’과 ‘컷!’을 외쳤다. 물론
자신의 연출작에서 주연을 맡게 되는 경우엔 예외였지만. 그리고 그의 데뷔 연출작인 <헨리 5세>(1989)부터
그 예외적인 경력이었다. 휴전 중이던 프랑스와의 백년전쟁을 재개하며 프랑스에 상륙해 대승을 거둔 영국의
왕 헨리 5세에 관한 작품으로 대단히 비장하고 엄숙한 분위기로 일관된 작품이다. 동명의 셰익스피어 희곡을 각색한 이 작품을 통해 처음으로 감독 경력에 발을 디딘 브래너는 이 작품으로 아카데미
감독상 부문과 남우주연상 부문 후보로 지명되며 전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된다. 그의 차기작 <환생>(1991)이 할리우드에서 제작된 것도 그런 덕분이다.
<환생>은 40여 년의 세월을 넘나드는 전생과 윤회에 관한 미스터리물이다.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시제에 따라 흑백과 컬러 영상으로 전환되는 이 작품은 여러 면에서 알프레도 히치콕의 서스펜스 감각을 연상시킨다. 실제로 브래너 역시 이런 영향력을 언급한 바 있다. “항상 히치콕을
사랑했고, <환생>의 준비를 시작할 때부터 <다이얼 M을 돌려라>(1954)를
비롯해 <레베카>(1940), <스펠바운드>(1945), <오명>(1946) 등 수많은 히치콕의
영화들을 다시 봤다.”그리고 당시 브래너의 부인이었던 엠마 톰슨과
함께 자신의 영화에서 주연을 맡은 브래너에게 이 작품은 비평적으로도, 상업적으로도 성공적인 결과물이었다. 하지만 그에게 확고한 명성을 안겨준 건 결국 히치콕이 아니라 셰익스피어일 수밖에 없었다.
<헛소동>(1993)은
케네스 브래너라는 감독에게 있어서 대표작으로 꼽힐 만한 작품이다. 브래너 자신과 엠마 톰슨은 물론 덴젤
워싱턴, 키아누 리브스, 케이트 베킨세일, 마이클 키튼 등 대중적으로 친숙한 배우들이 대거 등장하는 이 작품은 셰익스피어의 동명 희극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셰익스피어의 희곡 가운데서도 가장 유쾌한 작품이라 알려진 것처럼 브래너의
<헛소동>은 연극적인 연출력이 두드러지는, 유쾌하고
낭만적인 기운이 충만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칸국제영화제 경쟁부문 후보로 오르기도 했다. 이러한 성공에 고무된 덕분인지 브래너는 대작의 야심을 품게 됐는데 영국계 여류 작가인 메리 셸비의 고전 소설 <프랑켄슈타인>을 영화화하는 것이었다. 게다가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가 공동제작자로 참여했고, 로버트 드
니로가 주연으로 합세하며 큰 그림이 완성됐다. 브래너의 <프랑켄슈타인>은 대중적인 성공을 거뒀지만 그의 전작들에 비하면 지독하게 심각하고 무거운 작품이었다. 특유의 위트나 페이소스가 실종된 이 작품에 대해서 평단의 반응은 이례적으로 차가웠다. 하지만 진정한 야심작은 따로 있었다.
브래너가 직접 각색하고 연출한 <햄릿>(1996)은 셰익스피어가 집필한 희곡에 완벽하게 부합하는 영화적인 원형을 만드는 작업이었다. 무려 네 시간에 달하는 러닝타임은 그런 노력이 반영된 결과라 해도 좋을 것이다. 원작에 등장하는 주옥 같은 대사가 고스란히 영화에서 발음되고, 모든
장면들이 존재하는 <햄릿>의 실사판은 여전히 브래너의
것이 유일하다. 높은 완성도를 평가받은 로렌스 올리비에 감독의
<햄릿>(1948) 역시 그런 한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게다가 브래너의 <햄릿>은
셰익스피어만을 위한 제단이 아니라 브래너 자신을 세우는 새로운 무대이기도 했다. 엘리자베스 여왕 시대의
중세 덴마크를 배경에 둔 셰익스피어의 원작과 달리 빅토리아 여왕 시대의 19세기 덴마크로 시대배경을
옮긴 브래너는 이를 통해 보다 현대적인 인상의 <햄릿>을
완성했다. 또한 대사와 인물에만 집중하는 연극적인 연출 대신 다양한 몽타주를 동원하는 영화적 기법을
통해 지극히 영화적인 <햄릿>을 완성해냈다. 또한 에너지가 넘치는 브래너 특유의 연기가 반영된 햄릿은 그 어느 햄릿보다도 재기발랄한 개성이 있다. 브래너에게 <햄릿>은
감독으로서 가장 절정의 경력이었다고 말해도 좋을 작품이다.
<햄릿> 이후로
4년이 지나서야 발표한 <사랑의 고통이 사라지다>(2000)와 그로부터 다시 6년이 지나 공개된 <당신 좋으실 대로>(2006)는 모두 셰익스피어의 희곡을
영화화한 결과물이었지만 그는 셰익스피어라는 이름을 통해 새로운 영광을 얻진 못했다. ‘추락’이라는 단어가 어울리는 상황은 아니었지만 새로운 전환점이 필요하다는 건 확실했다. 주드 로와 마이클
케인이 출연한 <추적>(2007)은 부조리극의
대가 해롤드 핀터의 각본을 브래너 영화화한 작품으로서 그가 연극이라는 초심으로 되돌아간 듯한 인상을 준다는 점에서 각별한 인상을 준다. 그 이후로 그는 셰익스피어의 그림자에서 벗어난 것처럼 할리우드에서 최적화된 상업적 블록버스터를 연이어 연출했다. <토르: 천둥의 신>과
액션 스릴러물인 <잭 라이언: 코드네임 쉐도우>(2014) 그리고 <신데렐라>까지, 그의 최근작들은 셰익스피어의 인장이 명확했던 브래너의
과거와 완벽하게 분리된 인상이다. 하지만 그는 지금 자신을 매료시킨 셰익스피어처럼 또 다른 무언가에
매료되고 있을 뿐일지도 모른다. “동화는 2000년이 넘는
지난 세월 동안 다양한 문화권 안에서 구전돼서 손쉽게 응용됐고, 많은 각색을 거쳐왔다. 보다 적극적인, 더욱 21세기적인
캐릭터로, 새로운 느낌의 신데렐라를 만드는 게 중요했다.”셰익스피어에 주목하고 해체시킨 방식으로 슈퍼히어로와 고전동화의 세계관을 응시한다.
브래너의 연출 차기작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 일련의 뉴스에서는 그가 <토르>의 새로운 시리즈에 복귀를 희망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물론
결과는 아직 발표되지 않았다. 확실한 건 케네스 브래너의 연출 차기작이 셰익스피어라는 자장 안에서 맴도는
작품이 아닐 것이란 예감이다. 아마도 그럴 것이다. 언젠가
그가 셰익스피어라는 중력으로 다시 발을 디딜지 몰라도 지금의 그는 분명 셰익스피어를 넘어선 우주로 유영하고 있다.
그건 확실하다.
바야흐로 배달 음식 전성 시대다. 집에서 미식을 즐길 수 있다니, 얼마나 편리한가. 하지만 그 식사가 과연 즐거웠던가?
주말마다 강림하는 귀차니즘 속에서도 꼬박꼬박 허기는 찾아왔다. 배는
고프지만 밥을 하긴 귀찮았다. 밥을 차려 먹은 뒤 설거지를 해야 하는 것도 귀찮았다. 나도, 아내도. ‘귀찮으면
나가 죽어야지’라던 어머니의 명언이 떠올랐지만 나가 죽기도 귀찮았고 배는 고팠다. 하지만 우리가 누군가. 배달의 민족 아이가. 그래서 한동안 새로 이사간 동네에서 가장 맛있는 중국집을 찾아내는데 공력을 쏟았다. 인터넷으로 검색을 하고, 대략적인 리뷰를 살피고, 괜찮아 보이는 중국집에 전화해서 주문을 했다. 그리고 그렇게 몇
달이 지나고 나서야 가장 맛있는 중국집을 찾았다. 하지만 짜장면이 물렸다. 결국 내 입에게 미안해서 외출을 했다. 잘 알고 있었던 것처럼 동네엔
괜찮은 식당이 많았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서촌에 살면서도 배달 유전자가 충만한 민족성에 의지하며 주말
끼니를 연명했던 지난 날이 문득 서글퍼졌다.
배달의 민족이란 말은 반쯤은 우스갯소리지만 반쯤은 틀린 말도 아니다. 이
땅에선 조선시대부터 일찌감치 음식 배달 문화가 있었으니까. 18세기 조선 후기의 학자인 황윤석의 <이재일기>에 따르면 냉면을 주문해서 배달해 먹었다는 대목이
나온다. 교방문화가 발달한 진주에선 관아의 기생들이나 부유한 가정집에서 진주냉면을 배달시켜 먹었다고도
한다. 일제강점기 시절인 1906년에 창간한 일간지 <만세보>엔 음식 배달에 관한 광고가 게재되기도 했다. 그렇다. 우린 정말 배달의 민족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지금은 배달의 민족의 역사가 꽃피는 전성기라 해도 좋을 것이다. 아침에도, 한낮에도, 한밤중에도, 새벽녘에도, 무엇이든 주문하세요. 배달을 해주지 않는 가게도 걱정하지 마라. 배달을 대행하는 업체가 있으니까. 전화를 걸 필요도 없다. 스마트폰 액정을 몇 번 터치하면 결제까지 손쉽게 되는 배달앱이 있으니까. 최근엔
전국 팔도 맛집의 음식을 당일 혹은 익일에 배달해주는 ‘미래식당’이란
사이트도 생겨났다. 목포의 민어회를 서울의 방안에서 받아 먹을 수 있단다. 배송비는 고작 3천원 정도. 세상
좋아졌다. 전국의 음식을 집에 앉아서 맛볼 수 있는 시대라니. 그러니까
내가 사는 그 집이 미식 문화의 미래라는 것이다. 항상 같은 식탁에 앉아서 다양한 식당의 메뉴들을 맛볼
수 있다는 말이다. 편리하다. 하지만 어딘가 허무하지 않은가.
누구나 식사를 한다. 연료를 채운다.
하지만 기름에도 등급이 있듯이 음식에도 등급이 있다. 맛있는 음식과 맛없는 음식이 존재한다. 채울 것이냐, 맛볼 것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식사에서 가장 중요한 건 일단 맛있는 음식 즉 ‘미식’이다. 하지만 그게 전부인가. 미식, 나, 로맨틱, 성공적? 아니아니, 그럴리가. 대부분의
사람은 홀로 식사하길 꺼린다. 혼자 밥을 먹는 ‘혼밥족’이 늘어난다 해도 삼삼오오 테이블을 채운 이들 사이에서 홀로 밥을 먹는 건 어색한 일이다. 그건 우리가 오래 전부터 밥을 먹는 행위만큼이나 밥을 먹는 경험을 중요하게 생각해왔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 밥만 먹고 사는 게 아니었던 거다. ‘어떤 밥을 먹을 것인가’라는 물음만큼이나 중요한 건 ‘어떻게 밥을 먹을 것인가’라는 물음이기도 하다. 식사라는 건 결국 ‘무엇을 먹을 것인가?’라는 물음을 넘어서 ‘누구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왜
먹을 것인가?’라는 다채로운 물음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경험이다. 씹고, 먹고, 맛보고, 즐기는
미각적인 경험을 넘어서 말하고, 듣고, 웃고, 감정을 교류하는, 일종의 공감각적인 경험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시간과 장소를 정하고, 찾아가서 만나고, 시간을 보내는 것, 식탁이 단지 음식을 올려놓고 먹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와 마주앉아서 시간을 공유하는 것임을 깨닫고, 만끽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식당에서 지불하는 돈은 단지 음식값만이 아닐 것이다. 시간과 관계를
소비하는 비용까지 포함된 내역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음식과 함께 소비한 경험에 대한 지불이라 이해하는
게 옳을 것이다. 그만큼 여유가 필요한 일이다. 집에서 음식을
만들고, 차리고, 먹고, 치우는
과정 또한 마찬가지다. 식사를 하기 위해선 생각 이상으로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미식의 경전으로 꼽히는 저서 <미식 예찬>의 저자 브리야 샤바랭은 “그대가 무엇을 먹는지 말하라. 그러면 나는 그대가 누군지 말해보겠다”고 썼다. 우리는 때가 되면 선택한다. 무엇을 먹을 것인가. 그 선택에는 다양한 기호만큼이나 각자의 사정도
포함돼 있다. 아침 출근길에 김밥을 사가는 여자는 사무실에서 업무를 보면서 김밥을 먹을 것이다. 이렇듯 우리는 음식을 씹으면서 우리의 시간과 일상도 함께 씹어 삼킨다. 포털사이트에서
‘야근’과 ‘야식’이란 단어를 함께 검색해보면 야근에 대한 괴로움과 야식에 대한 즐거움이 함께 쏟아진다. 야식이 좋아서 야근할 리는 없다. 야근해야 한다. 고로 야식을 먹어야 한다. 야식문화는 어쩌면 피로사회의 단면이다. 그렇다면 배달문화의 발달 역시 피로사회의 단면 어디쯤을 차지하고 있을 것이다.
바쁘고 고된 삶에서 여유 있는 식사란 사치다. 유럽의 어느 나라에선 서너 시간 동안 저녁을
먹는다는 것이 배달의 민족으로선 이해할 수 없다. 물론 서너 시간 동안 저녁을 먹는 게 선진문화인가
아닌가가 중요하다는 게 아니다. 저녁을 먹는데 서너 시간을 쓸 수 있는 여유가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 배달음식의 편의는 인정한다. 그리고 배달음식의 종류가 다양해진다는
건 식당을 찾아갈 여유가 없는 이들에게도 다양한 미식을 즐길 기회가 늘어난다는 것이니 그나마 다행이다. 하지만
먹고 살기 위해서 먹고 사는 재미를 포기해야 하는 아이러니라니, 배달의 민족으로 태어난 것이 죄라면
정말 죄인 것 같다.
“’커먼 그라운드’ 가봤어?”라는 질문을 받았다. 커먼 그라운드라는 곳이 뜨는 공간이란 말이었다. 들어보니 컨테이너 박스를 쌓아서 만든 공간이라 했다. 새로운 일은
아니다. 영국 런던의 컨테이너 쇼핑몰 ‘박스파크’나 뉴질랜드의 ‘리스타트’ 등
컨테이너 박스로 만든 건물의 사례는 이미 적지 않다. 서울 논현동의 ‘플래툰
쿤스트할레’나 한남동 블루스퀘어의 전시관 ‘네모’ 등, 국내에서도 처음이 아니다. 다만
커먼 그라운드는 컨테이너 박스로 지어진 건물 가운데 전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를 지닌 건축물이라고 했다. 본래
택시회사 부지였던 공터를 코오롱인더스트리FnC(이하: 코오롱)에서 매입해서 컨테이너 박스를 쌓아 올렸다고 했다. 공식 홈페이지에선
커먼 그라운드가 어떻게 세워졌는지를 일목요연하게 보여주는 고속 촬영 동영상을 볼 수 있었다. 그 영상을
보니 직접 두 눈으로 그 실체를 확인하고 싶어졌다.
커먼 그라운드가 들어선 곳은 광진구 자양동, 더 직접적으론 건대 부근이라고
했다. 7호선 건대 입구역 6번 출구로 나와서 조금 걸어가니
파란 컨테이너들이 눈에 들어왔다. 멀리서 보니 항구에 적재된 컨테이너들을 보는 기분이라 그 너머에 파란
바다가 펼쳐질 것도 같았다. 어쨌든 양쪽으로 나뉘어 길게 공간을 감싸는 형태로 이어져 쌓인 두 동의
컨테이너 박스엔 다양한 매장들이 들어서있다. 공식적인 보도자료에 따르면 56개의 패션 브랜드와 16개의
F&B, 1개의 문화공간으로 구성돼 있다고 했다. 두 동의 패션 브랜드는 각각 남성용, 여성용으로 나뉘어 있다. 층마다 동마다 분위기는 조금 다르다. 악세서리 매장을 비롯한 여성 브랜드가 집결된 한 동은 길게 이어지는 컨테이너 구조에 따라 동선이 이어지는 탓에
약간 통로가 비좁은 동대문 패션몰의 분위기를 연상시키는 반면 남성용 브랜드가 모인 다른 한 동은 상대적으로 여러 개의 컨테이너가 뻥 뚫려서 이어진
구조 덕분에 동선에 여유가 있는 아울렛 매장처럼 느껴졌다.
흥미로운 건 코오롱에서 운영하는 이 공간에서 코오롱 산하의 패션 브랜드를 찾아볼 수 없다는 사실이다. 인디 디자이너 브랜드나 스트리트 패션 브랜드 등 소위 동대문 상권을 통해서 패션계로 진입하는 혈기왕성한 젊은
브랜드들로 포진돼 있었다. 그리고 컨테이너 박스 안팎을 채우는 것도 젊은 피였다. 커먼 그라운드를 누비는 이들 대부분은 10대 혹은 20대쯤으로 보이는 남녀였다. 둘이서 혹은 삼삼오오끼리. 커플 혹은 친구들끼리. 20대 초반쯤으로 보이는 젊은 커플에게 대뜸
커먼 그라운드가 마음에 드냐고 물었더니 그렇다고 했다. 이유를 물었다.
“쿨하잖아요.” 커먼 그라운드는 젊은 공간이었다. 세워진
지 오래 되지 않았기 때문에 하는 말이 아니다. 어린 것과 젊은 건 다른 이야기다. 육체보다도 정신의 문제다. 컨테이너로 만들어서가 아니라 컨테이너로
이런 공간을 만들 수 있다는 발상이 이 공간에 모여드는 이들의 정신적 나이를 규정하게 만든다.
광장에서 환호성이 들렸다. 자전거 묘기를 하는 이들의 공연이 펼쳐지고
있었다. 규칙성 없이 광장 위로 산재해 움직이던 이들이 자연스럽게 모여들었고, 원형의 벽이 형성됐다. 광장 안에 작은 광장이 생겼다. 커먼 그라운드를 주목하게 만든 건 분명 공터를 세워진 컨테이너 박스 자체겠지만 커먼 그라운드에 온다면 광장을
통하게 될 것이고, 광장을 주목하게 될 것이다. 광장 한가운데
서면 좌우로 광장을 감싸듯 이어진 컨테이너 박스 위로 아래를 내려다 보는 이들과 눈이 마주치기 십상이다. 덕분에
난간에서 내려다 보는 클러버들 사이에 둘러싸인 클럽의 댄스 플로어에 선 기분이 들었다. 광장엔 푸드
트럭 세 대가 컨테이너 하나를 가운데에 끼고 어깨를 기댄 것마냥 서있다. 트럭마다 각기 다른 종류의
음식을 판매한다. 음료나 맥주도 주문할 수 있다. 다들 그
주변에 앉거나 서거나 하며 음식을 기다린다 대부분 맥주 한 병씩을 제 앞에 두거나 손에 들고 있었다. 다들
먹고 마시며 웃고 떠든다. 불편하다기 보단 즐길 만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쿨하다.
어쩌다 문득 커먼 그라운드 옆으로 동네 주민
정도로 보이는 할머니가 구부정하게 무심히 걸어가는 풍경을 보았다. 왁자지껄한 젊음 옆에서도 세월은 무심하게
흘러간다. 커먼 그라운드는 누구에게나 열린 공간이다. 하지만
누구나 즐길 수 있는 놀이터는 아닐 거다. 물론 세상의 모든 재미를 쫓을 필요는 없다. 자신에게 어울리는 놀이터를 찾으면 된다. 들어왔던 길을 따라 나오며
깨달았다. 커먼 그라운드는 내게 어울리는 놀이터가 아니라는 것을. 서른
살 중반의 나이가 됐기 때문인지, 쿨하지 못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상관
없었다. 물론 그 활기가 싫진 않았다. 그저 내 것이 아니었을
뿐이다. 나는 그걸 인정하기로 했다. 쿨하게.
여자가 없다. 남자가 없다. 만날 사람이 없다.
소개팅에 나오는 여자도 많고, 남자도 많은데, 정작
내 여자는, 내 남자는 없다. 소개팅만 계속된다.
“좋은 여자 없냐?” 남자1호가 물었다. “좋은 남자 없어?”
여자1호도 물었다. 일단 남자랑 여자는 있구나. 그래서 난 아무런 부담 없이 널 내 친구에게 소개시켜주기로 했다. 그런데
남자1호가 여자1호의 사진이 보고 싶다고 했다. 여자1호에게 사진을 하나 달라고 했다. 여자1호는 살짝 볼멘소리를 했지만 사진을 주겠다고 했다. 전제가 있었다. “그럼 나도 볼래.”
남자1호에게도 사진을 달라고 했다. 군말 없이
사진을 보냈다. 중간에서 두 사람의 사진을 봤다.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 ‘위
사진은 실물과 다를 수 있습니다’라는 경고 메시지를 띄워줘야 할 것인가 잠시 생각해보기도 하였으나 내
친구에게 관심을 더 보이며 날 조금씩 멀리하던 너를 보며 될 대로 되라고 생각했다. 뭐, 약간의 과장은 있지만 위조 수준은 아니니까. 어쨌든 두 사람은 심판의
날, 아니 날짜를 정했다고 했다.
그런 만남이 어디서부터 잘못됐는지 난 알 수 없는 예감에 조금씩 빠져들고 있을 때쯤 남자1호에게 연락이 왔다. 괜찮았냐고 물었다. “아니, 뭐, 나쁘진
않았어.” 그러니까 괜찮은 거냐고 물었다. 그러자 친구가
‘음…그런데’라고
운을 떼더니 2% 부족한 느낌을 나열했다. 굳이. 여자1호에게 끌리지 못한 이유를 시시콜콜하게 늘어놓았지만 남자1호에겐 명확한 이유가 있었다. “내 스타일이 아니야.” 그리고 ‘내 스타일이 아님’을
스스로 다짐하는 이유가 덕지덕지 붙어있을 뿐이었다. 여자1호에게
문자가 왔다. 여자1호에게선 긍정적인 뉘앙스가 느껴졌다. 적극적인 표현이 동원되진 않았지만 무스크향과 같은 여운이 은은하게 느껴졌다.
그러더니 명확한 기대감을 분사했다. “혹시 나에 대해서 별 말 안 해?” 나는 여자1호에게 약을 줬다. 모르는
게 약이다. 그는 당신에게 반하지 않았다.
남자1호는 당연히 애프터 신청을 하지 않았다. 안부도 묻지 않았다. 여자1호도
당연히 안부를 묻지 않았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물론
소개팅 한번 한 게 대단한 인연이라는 게 아니다. 다만 그렇게 단 한 번의 만남으로 어떤 가능성이 깔끔하게
정리된다는 것이 신기했다. 지나치게 낭비가 없는, 효율적이지만
삭막한 엔딩이랄까. 소개팅의 애프터는 남자가 잡는 것이 무언의 룰이다.
연락이 없는 남자를 기다린다는 건 엔딩크레딧이 다 올라간 뒤 불이 켜진 상영관의 텅 빈 풍경을 목격하는 것과 같다. 반대로 말하자면 소개팅에서 여자가 차일 일은 물리적으로 희박하다. 어떠한
기미도 없는 남자에게 스스로 무덤을 파듯 먼저 연락하는 여자가 아닌 이상에야 그렇다.
여자2호는 난감했다. 어제
소개팅을 했던 남자에게 카톡이 왔기 때문이다. “오늘 하루 행복하세요.”
여자2호는 일전에도 이런 문자를 받아본 적이 있었다. 통신사
상담원에게 요금 관련 문의를 하고 통화를 마치면 이런 문자가 왔다. 그 문자에 답을 하진 않았다. 하지만 이 카톡엔 답을 하고 싶었다. 그 남자에게 호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적절한 답변을 찾지 못했다. “네. 오늘 하루 행복할게요!” 당연히 이상하다.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아침인데 벌써 하루가 끝난 느낌이다. 세상에서 가장 친절한 말투로 시련을 주는 남자의 카톡
앞에서 여자2호는 무기력해졌다. 일부로 이러는 걸까. 설마 어장관리인가.
나는 그 사연을 듣고 의아했다. 정말 어장관리일까? 놀아본, 지금도 노는 남자2호는
말했다. “쑥맥이네. 요즘 같은 세상에 관심도 없는데 다음날
연락하는 애가 누가 있어. 그리고 선수라면 그렇게 어설프게 안 던지지.
최소한의 대화는 형성시켜야 할 거 아냐. 호감은 보이고 싶은데 요령이 없네. 뭘 몰라.” 그렇다. 그는
그저 답답한 남자였을 뿐이다. 필연적으로 호감지수가 하락한다. 그리고
여자2호의 의심도 정당했다. 소개팅에서 만난 남자들의 의지
없는 호의에 닳고 닳아서 생긴, 일리 있는 의심이었기 때문이다. 여자3호는 요즘 소개팅에서 만난 남자들은 희한할 정도로 의지가 없다고 했다. “호감이
있다고 생각했고, 대화도 잘 되는데 관계에 진전이 없는 거야. 계속
같은 자리를 뱅 도는 느낌? 문자를 주고 받거나 통화를 할 땐 사귀는 것 같은데 막상 만날 의지도 안
느껴지고, 뭐하자는 건지 모르겠어.” 맞다. 뭐 하자는 건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 남자도. “1등은 아니어도 3등 안에 드는 여자는 갖고 싶진 않지만 잃고
싶지도 않거든. 어차피 소개팅은 계속 잡혀 있고, 잡힐 거고, 그러니까 1등짜리 여자를 만날 수도 있잖아. 하지만 3등짜리 여자를 놓치고 싶지도 않지. 그 이상의 여자를 만날 거라 확신할 수 없으니까.” 남자2호의 말이다.
하지만 어장관리가 남자만의 특권은 아니다. 남자3호는 말한다. “대답만 잘하는 느낌이랄까. A를 물어보면 정확히 A만 답하는 거지. 내가 다시 B를 물어보지 않는 이상 진전이 안돼. 그런데 막상 만나자면 또 만나고. 그러면 또 어쩌자는 건가 싶지.” 언제나 상냥하고 친절하게 남자의 물음표에 응답하지만 스스로 물음표를 제시하진 않는다. 문자를 주고 받는 동안에도, 만나서 대화를 하는 동안에도, 남자가 궁금해하는 사연은 들려주되, 스스로 궁금해하지 않는다. 애프터 신청의 칼자루는 남자가 쥐고 있지만 애프터 신청이 넘어오는 순간 그 칼자루의 칼을 뽑는 건 여자 몫이다. 여자가 칼을 쥐게 된다. 하지만 여자 입장에서도 잡고 싶진 않아도
놓치고 싶지 않은 남자가 있다. 마찬가지다. 소개팅 기회는
널려 있고, 언젠가 엑스칼리버를 뽑을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최소한 쓸만한 칼이다 싶은 건 일단 뽑고 본다. 손에 쥐고 버리더라도.
칼자루만 쥔 남자가 발을 동동 굴리건 말건. “어차피 선택은 남자가 하잖아. 그러니까 사실상 남자한테 선택을 많이 받는 여자는 상대적으로 도도해질 수밖에 없지. 남자가 지 잘난 거 알듯이 여자도 지 잘난 거 아는 거지. 그렇게
잘난 값을 하는 거야. 남자는 계속 그녀의 주가를 올려주는 거고.” 여자4호의 말이다.
주마다 평균적으로 1회 이상의 소개팅을 한다는 남자4호에게 소개팅은 습관이다. 그는 소개팅이 있는 날에도 술약속을 마다하지
않는다. 술자리에서 소개팅 결과를 물어보면 항상 무덤덤하게 말한다. “잘
안됐어.” 애초에 기대가 크지 않다. 아이러니한 일이다. 이별의 효율성은 높은데 만남의 효율성은 떨어진다니, 소개팅의 목적이
완벽하게 어긋난다. 물론 타석수와 타율은 비례하지 않다. 두
타석에서 안타 하나를 친 타자가 10타석에서 안타 네 개를 친 타자보다 타율이 높은 것처럼. 하지만 어쨌든 타석수가 많으니 안타를 칠 수 있는 절대적 기회가 많아지는 건 사실이다. 100타석에 섰는데 안타 하나를 못 칠까. 한 방이면 된다. 하지만 그 한 방이 없다. 스트라이크존에 꽂히는 공이 적지 않은데
내가 기다리는 공이 오지 않아서 방망이를 좀처럼 휘두르지 않는다. 성격이 좋으면 좋겠다고 하지만 얼굴도
예쁘고, 교양도 있고, 스펙도 좋았으면 좋겠다. 좋으면 더 좋은 게 아니라 다 좋아야 좋다. 가진 것보다 갖지 못한
것이 더 크게 보인다.
“남자한테 청담동에 있는 바에 가자고 하는 여자들의
심리가 뭔지 알아? 자기를 위해 얼마나 쓸 수 있는지 보려고 데려가는 거야. 칵테일 한 잔 마시면 4만원 정도는 그냥 깨지니까.” “소개팅할 때 차는 일부로 안 가져가. 만약 데려다 주기 싫은
여자를 만나게 됐을 때 주차장 입구에서 ‘잘 가요’하고 헤어질
수 없잖아. 그래서 그냥 택시 태워서 보내는 거지. 그리고
마음에 드는 여자는 같이 택시 타고 가서 데려다 주면 되잖아.” “솔직히 마음에 들지 않는 남자가 집에
데려다 주는 것도 신경 쓰이지. 혼자 사는 집의 위치를 공개하고 싶지도 않고. 여러 모로 부담스러워.” 남자가 하는 말도, 여자가 하는 말도 저마다의 합리가 있고, 저마다의 이기심이 있다. 다만 인내심은 드물다. 남자든, 여자든, 나름의 기대를 안고 소개팅에 나오지만 생각보다 절박하지 않다. 여자도, 남자도 없어서 없다고 말하는 게 아니다. 단 한번의 만남을 통해서
너무 많은 것을 판단하려 한다. 마치 로또 같다. 다음 주가
되면 새로운 로또를 살 수 있다. 하지만 그 주에도, 다음
주에도 당첨확률은 한결 같이 희박하다. 가능성이 희박한 로또 당첨번호를 기다리듯 주말이 되면 소개팅
장소로 나간다. 마치 죽지 않기 위해서 절정이 없는 이야기를 매일 밤 이어나가는 셰헤라자데의 천일야화처럼
절정도 결말도 없는 일일야화가 덧대어지고 덧대어진다. 일회적인 인연만 덧대어지고, 덧대어진다. 그래서 잘난 사람은 잘난 대로 솔로고, 못난 사람은 못난 대로 솔로다. 그리고 항상 여자도, 남자도 없다. 소개팅만 넘친다. 어렵다. 어려워.
남자는 여자를 원한다. 여자도 남자를 원한다. 하지만 남자도, 여자도 깨는 상대는 원하지 않는다. 존중 받길 원한다. 그 남자, 그 여자가 만난 깨는 여자, 깨는 남자.
WHAT
MEN WANT
솔직히 남자가 여자한테 매너라는 걸 기대하진 않지. 남자가 바라는
게 얼마나 있나? 그런데 정말 항상 일관되게 별로다 싶은 지점은 있지.
이유는 모르겠는데 왜 여자들은 항상 늦는 건지 알 수가 없어. 집에 시계가 없나? 아니면 시계 보는 법을 안 배웠나? 10분 정도, 그래, 괜찮아. 20분? 그래, 뭐 괜찮아. 30분? 좀 열 받지. 그 이상은 말할 필요도 없고. 이유는 모르겠지만 대부분의 여자들은 남자를 처음 만날 때 좀 늦어도 된다고 생각하는 거 같아. 아니, 늦어야 된다고 생각하는 거 같아. 남자보다 일찍 오면 조금 없어 보인다고 생각하는 건지는 몰라도 아무튼 그래.
그래서 처음 여자를 만날 땐 이미 어련히 알아서 늦겠지 생각하고 있어. 어쩌다 그러는 게
아니라 10명 중에 7명은 그러니까. 이해가 된다기 보단 면역이 된 거지.
사실 밥값 내고, 차값 내고, 술값
내고, 영화비 내고, 아깝진 않아. 다만 성의의 문제지. 가격이 아니라 횟수의 문제라고. 최소한 초면에 여자한테 밥값 내라고 할 남자가 어디 있어. 그리고
처음 만났는데 밥 먹고 나서 헤어져? 그거 뭐냐. 요즘 유행한다는
소셜 다이닝이야? 아무튼 커피라도 한 잔 하지. 대부분 그때
좀 깨지. 전혀 계산할 생각이 없다라는 게 딱 보이거든. 지갑에
손도 안대. 지문 인식 지갑이라 손 대면 결제되나? 아무튼
내는 시늉이라도 해주면 좋은데 얘는 이미 얻어먹을 준비가 돼 있는 거야. 나도 사람인데, 최소한 물질적으로 착취당한다는 기분이 드는 건 별로잖아. 내 카드랑
만나려고 나왔어? 그냥 두 가지 생각이 들지. 얘는 정말
개념이 없거나 나한테 마음이 없거나. 어떤 식으로든 긍정적일 수가 없지. 아무리 예뻐도 매너가 없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어. 내가 그나마
주선자 얼굴 봐서 예의를 차리는 거지. 네가 예뻐서가 아니라 너와 나의 연결고리 때문이라고. 돈이 아까운 게 아니야. 까놓고 커피값 정말 비싸다고 해도 2만원 안팎이지. 성의가 없잖아.
그리고 그런 거 있잖아. 왜 말을 애매모호하게 하는 거야. ‘어디 갈까?’ 물어보면 다 괜찮대. 내가 가고 싶은 곳으로 가재. 그런데 막상 어디 가자고 말하면 이래서
싫고, 저래서 싫고. 이유는 항상 있어. 그럼 차라리 자기가 정하던가. 아니면 신돈을 만나던가. 관심법이라도 써야 되는 건가? 최소한 자기가 싫어하는 거라도 말해주던가. 아니면 알아서 하라고 했으니까 군소리를 하질 말던가. 뭔가 항상
불명확해. 사귀다가도 뭔가 어긋나서 화를 내서 이것 때문이냐고 물어보면 그건 또 아니래. 아니, 무슨 인터스텔라야. 웜홀이라도
넘어가야 이유가 있을 거 같다니까. 섭섭한 게 있으면 그때그때 말하던가. 왜 꼭 쌓아뒀다가 옛날 일까지 다 끌어내서 화를 내고 그래. 그리고
가끔씩 그런 애들 있지. 전 여자친구는 어땠어? 대체 왜
물어봐? 말해주면 빡칠 거면서. 쿨한 척해봤자 결국 다른
식으로 화낸다고. 그리고 자기는 솔직하게 다 말한대. 전
남자친구가 어쩌고 저쩌고. 내가 그 얘기를 왜 듣니. 나한테
소개팅해줄려고? 아니면 셋이서?
아, 그리고 진짜 제일 심한 비매너.
왜 사진이랑 얼굴이 그렇게 달라? 달라도 너무 달라야지.
얼굴이 두 개야? 교체형인가? 그럼 그 얼굴을
달고 나왔어야지 왜 잘못 달고 나왔어. 그래서 가끔씩 자기 얼굴 제대로 달고 나온 여자가 나오면 정말
매너모드지. 커피값? 에이,
됐어. 내가 내면 되지. 이미 완벽한 매너모드인데.
WHAT
WOMEN WANT
처음 만났는데 ‘어디로 갈까요?’라고
물어보는 것까진 괜찮아. 그러면 좀 무난한 곳을 가던가. 전에
처음 만난 남자애가 나를 데리고 불족발을 먹으러 가는데, 정말 열불이 났지. 내가 불알친구야? 사실 처음 만났을 때 어디 가자고 꼬치꼬치 말하면
좀 그렇잖아. 너무 까다로운 사람 같고. 그럼 좀 알아서
무난한 곳으로 가주면 안돼? 아무데나 가자고 했더니 불족발이 뭐니? 불족발이. 이 남자랑 만나면 안 봐도 훤하다. 속 터지겠지. 그리고 정말 최선을 다해서 신경 안 썼다는 게 온몸으로 느껴지는 애들 있지.
그러니까 옷을 잘 입고, 못 입고, 그런 센스를
말하는 게 아냐. 자기 방에서 뒹굴다가 그렇게 약속장소까지 굴러서 나온 것 같은 애들이 있다니까. 여기가 카페냐, 네 방이냐 싶을 정도로. 그럼 다시 굴려서 집에 보내고 싶지. 나름 소개팅이라고 신경 쓰고
나왔는데 왜 이런 꼴을 보고 있어야 되나 싶고. 성의가 없어. 성의가. 아, 물론 나름의 사정이 있을 수도 있어. 이해해. 하지만 내가 계속 이해할 이유는 없는 거잖아. 한번 이해해줬으면 됐지.
어쨌든 밥값은 관례적으로 남자가 내잖아. 그러니까 커피든, 맥주든, 이 다음에 가는 곳에선 내가 계산해야겠다고 생각하지. 그런데 가끔씩 ‘다음 차례는 그쪽이 사세요’ 이런 애들 있어. 어린 시절에
TV 보다가 ‘이것만 보고 공부해야지’ 생각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엄마가 ‘너 공부 안 하니!’ 이러면 공부할
마음이 싹 사라지잖아. 정말 다음 차례가 아니라 다음 생에서도 사줄 마음이 사라지지. 친해진 것도 아니고 처음 만나서 그러면 깨지. ‘나한테 밥 사준
게 그렇게 아까웠나?’ 싶기도 하고.
그리고 밥 먹듯이 전 여자친구 이야기하는 애들 있잖아. ‘전 여자친구는
안 그랬는데’ 이런 애들. 진짜 생각보다 많아. 무슨 알람처럼 뱉는다니까. 그럼 걔한테 다시 가서 잘 하던가. 그나마 그건 양반이다. 난데없이 옛날에 사귀었던 여자친구 욕하는
애들 있거든. ‘전 여자친구는 정말 멍청했어’ 이런 얘기를
아무렇지 않게 하는데 그러면 내가 ‘아, 그 여자는 정말
멍청했구나’ 할까? 얘는 나중에 나도 이렇게 말하겠구나 생각하지. 그리고 왜 꼭 내 얘긴 안 듣고 지 얘기만 해? 모든 이야기가 다
자기중심적이야. 이게 무슨 그래비티야? 내 앞에서 자기 인생을
구구절절 말하는데 입으로 ‘자소서’ 써? 내가 면접관이야? 재미라도 있던가.
그나마 위트 있게 말을 잘 하는 사람이 있어서 듣고 있다가 나도 관심 있는 소재를 말하길래 한 마디 했어. 그럼 좀 들어야지. ‘아, 그래요’하고 다시 또 지 얘기만 해. 전생에 묵언수행하다 죽었나 봐. 그냥 내 귀만 놔둬도 될걸? 자웅동체도 아니고, 자기가 그렇게 좋으면 여자는 왜 만나니? 아, 여자 귀를 좋아하나?
사실 남자가 여자보단 돈에 민감하겠지. 책임감도 들고. 하지만 ‘오늘 영화 보러 갈까?’하면
영화 얘기를 해야지. ‘어? 그래? 그럼 밥도 먹고…’ 얘 뭐니? 누가
너 혼자 내래? 영화를 보자고 했는데 얘는 영화가 아니라 영화값, 밥값, 커피값, 이런 걸 생각하고 있는 거지. 그런 게 보인다니까. 그리고 영화를 선택할 때도 자기가 보고 싶은
영화가 있다고 하면 그러려니 해. 그런데 네가 보고 싶은 영화보다 내가 보고 싶은 영화가 훨씬 대단하고
어쩌고 저쩌고. 자기가 훨씬 우월한 선택을 한다고 설득하는 애들 있잖아. 좀 재수없지. 아, 물론
재수없는 것 중에 최고는 말 놓는 애들 있잖아. ‘어? 내가
오빠네?’ 이러면서. 이게 쿨한 줄 아나 봐? 거기다가 가끔씩 능글능글하게 어영부영 손 잡거나 어깨에 손 올리는 애들도 있어. 팔이 불편하면 깁스를 하던가.
그리고 포르노 보고 성교육 잘못한 남자애들 많잖아. 섹스도 사실 둘이서 함께 교감하려고 하는 건데, 나한테 무슨 서비스
받으러 왔어? 욕구는 넘치는데 무드는 없고. ‘입으로 해줘’ 이런 말하는 애들 정말 입으로 해주고 싶지. 욕을. 얘는 정말 어떻게든 나랑 한번 해볼라고 만난 건가 싶을 정도로, 옷도
벗고, 체면도 다 벗는 애들 있잖아. 완전 깨지. 침대에서 내려오면 나랑 헤어질 거야? 남자는 그게 결승선인 줄 아는데
여자는 거기가 출발점이라고. 몰라도 그렇게 모를까.
언제부턴가 니콜라스 홀트의 영화에서 니콜라스
홀트가 보이지 않았다. 그것이 누구인지 알아보지 못해도 상관 없다는 듯이 그랬다. 그가 바라보는 거울엔 자신의 얼굴보다 중요한 것이 있었다.
“니콜라스 홀트는 굉장히 재미있는 친구다. 배우로서 재능도 있지만 그의 유머 감각을 보면 <어바웃 어 보이> 시절의 소년이라곤 상상할 수 없다. 그러다가도 필요할 때라면 언제라도 연약한 인상의 휴 그랜트처럼 돌변한다.” <잭 더 자이언트 킬러>를 연출한 감독 브라이언 싱어의 말이다.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이하: <매드맥스 4>)에서 함께 호흡을 맞춘 샤를리즈 테론은 그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니콜라스 홀트는 중심이 잘 잡힌 배우다. 그의 전작들을 보기도 했지만 직접 보니 그 재능에 탄복하게 되더라. 직접 스턴트를 감행할 정도로 저돌적이지만 체계적이고 안전한 연기를 추구하고 확실히 몰입한다. 정말 보여줄 게 많은 친구 같다. 앞으로 분명 영화계에 큰 기여를 할만한 재목이다.” 그렇다. 지금 니콜라스 홀트를 말할 때, 굳이 <어바웃 어 보이>의 귀여운 소년까지 기억을 더듬는 이는 드물다. 과거형보다 현재진행형의 시제가 어울리는 배우가 됐기 때문이다. 나이만 먹고, 키만 큰 게 아니었다.
<매드맥스 4>는 무법천지의 디스토피아를 그린 <매드맥스> 시리즈의 속편이다. 멜 깁슨이 주연을 맡았던, 심지어 그의 데뷔작이었던, 무려 1980년에 처음으로 제작된 <매드맥스> 말이다. <매드맥스 4>는 1985년에 발표된 세 번째 속편 이후로 무려 30년 만에 발표되는 네 번째 속편이기도 하다. 1989년생인 니콜라스 홀트에게 있어선 생소한 과거형의 영화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어차피 <매드맥스 4>는 그에겐 지금의 영화였기 때문이다. “실제 촬영장에서 내가 연기할 눅스라는 캐릭터가 운전하는 자동차의 세심한 디자인을 보고 나도 모르게 ‘와우!’라고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메이크업을 통해 지금까지 한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외모로 변신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이 세계관과 이 캐릭터는 굉장히 색다르군.’ 나는 언제나 그런 부분에 욕심이 난다.”
니콜라스 홀트는 자신의 잘난 외모를 망가뜨리는 걸 주저하지 않았다. 어쩌면 그걸 즐기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웜 바디스>에선 기꺼이 좀비 분장을 했고, 두 편의 <엑스맨> 신작에선 새파란 털복숭이 돌연변이가 되길 주저하지 않았다. 아마 특별한 부연설명을 듣지 못했던 관객이라면 ‘저 캐릭터가 니콜라스 홀트라고?’라며 경악을 금치 못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장담하건대 <매드맥스 4> 예고편에 등장하는 그를 알아보지 못하는 이들 또한 적지 않을 것이다. 모래폭풍 속에서 특이하게 개조된 범퍼카를 운전하면서 “오늘 일진 끝내주는데!”라고 외치는, 해골 바가지 같은 얼굴로 하얗게 떡칠한 상체까지 훤히 내놓은 ‘워보이’가 니콜라스 홀트일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건, 뒤늦게 알게 됐건 두 눈이 휘둥그래질 거다. 이는 그의 정교한 특수분장 덕분이기도 하겠지만 그 분장을 완벽하게 자신의 것으로 소화해낸 그의 탁월한 노력 덕분일지도 모른다. “처음 읽은 대본은 대본이라 할 수 없었다. 마치 두꺼운 코믹스북처럼 대사가 듬성듬성 들어있는 이미지뿐이었으니까. 게다가 대사도 낯설었다. 줄넘기를 하면서 대사를 읊으면서 그 리듬감을 찾아야 할 정도였다.”
사실 <매드맥스 4>는 그 세계관의 외형만큼이나 거칠고 험하게 다뤄진 작품이다. 요즘의 여느 할리우드 영화들처럼 블루 스크린에서의 안전한 액션신이 보장된 작품이 아니었다. “진짜 자동차가 있는데 왜 CG로 만들어야 하나?”라고 묻는 감독의 발언만으로도 확실한 분위기가 감지된다. 물론 정말 위험한 신들을 위한 스턴트팀이 준비하고 있었지만 배우들 역시 아찔한 순간을 종종 맞이했다. 하지만 니콜라스 홀트가 이런 험난한 과정을 온몸으로 즐긴 것처럼 보인다면 그건 착각이 아니다. “세상에 한 대씩밖에 없는 차들이 폭주하는 나미비아 사막에서 촬영을 하는데 8기통 혹은 12기통 엔진 소리만 들어도 소름이 돋았다. 덕분에 감독님의 ‘액션’ 소리도 잘 들리지도 않아서 가끔은 뭘 했는지 모르겠다 싶을 때도 있었지만 다행인 건 결국 괜찮았다는 사실이다. 어쨌든 정말 끝내주는 세상을 창조했다.”
사실 니콜라스 홀트는 좀처럼 평범한 역할에 안주해본 적이 없었다. 그가 특이한 역할에만 주목한다는 말은 아니다. 중요한 건 그가 그 무엇도 불가능하지 않은 배우가 됐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런 시도가 단순히 변신이나 도전이라는 수식어를 뛰어넘는, 표현의 도구가 될 수 있음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나와 캐릭터의 공통점이 적을수록 연기하긴 더 쉬운 것 같다. 영국식 발음으로 연기할 때가 미국식 발음으로 연기하는 것보다 되레 어렵다. 미국인 행세를 하면 어디선가 스위치가 작동해서 나 자신과 손쉽게 멀어지는 느낌이기 때문이다. <매드맥스 4>에서의 특수분장도 그런 것이었다. 거울 너머에 있는, 삭발한 머리에서 이어지는 흉터와 상처로 점철된 얼굴을 보고 앉아 있으면 ‘그래. 확실히 나랑 다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거기서부터 캐릭터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괴상한 분장으로 점철된 그의 얼굴을 보고 헌신이나 희생이란 단어를 생각하겠지만 정작 그에게 특수분장은 날개와 같은 것이었다.
<싱글맨>에 캐스팅됐을 당시 니콜라스 홀트는 한 인터뷰에서 동성애 연기를 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묻자 단호하게 자신의 생각을 드러냈다. “흥미로운 캐릭터였기에 두려움은 없었다. 잠재적으로 동성애자처럼 보일 수 있는 역할이란 이유로 거절한다면 그게 멍청한 거지.” 그가 자신이 분할 캐릭터를 향해 던지는 물음표란 ‘니콜라스 홀트로서 어떻게 보일 것인가?’라기 보단 ‘니콜라스 홀트가 아닌 무엇이 될 수 있는가?’일지도 모르겠다. “열두 살 무렵의 내가 어떤 소년이었는지 잘 떠오르지 않는다”고 말하는 그에게 중요한 건 결국 현재다. 자신의 현재 시제에 놓인 영화에 충실한 물음표를 던지는 것. 니콜라스 홀트는 그렇게 오늘을 산다.
생이란 성공과 실패라는 단어로 손쉽게 구분된다. 하지만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의 영화들은 괴롭고 비루한 일상을 통해서도 이어지는 생을 그린다. 쉽게 꺾이지 않는 생의 가능성을 응시한다.
멕시코 시티에서 태어난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가 보다 넓은 세상으로 나아간 건 17세 무렵이었다. 대서양을 횡단하는 무역선의 물류 창고에서 자고
바닥을 청소하며 여행을 떠났다. 그리고 처음으로 다다른 곳이 바로 바르셀로나였다. 바르셀로나에서의 경험은 그에게 남다른 시각을 제공했다. “바르셀로나는
정말 대단했다. 어떤 모험심을 가진, 매우 어린 시절이었다. 수많은 이웃들을 소개해주는 친구가 생겼고, 끝내주는 경험을 했다. 서로 다른 언어로 대화하는 다양한 인종들로 구성된 모임을 보면서 감탄했다. 탐험을
하는 내게 있어서 정말 쿨한 일이었다.” 직접적으로 곤잘레스
이냐리투가 연출한 <비우티풀>(2010)은 이
당시에 목격했던 바르셀로나에서의 경험이 반영된 작품이다. 그러나 그 이전에 다양한 출신 성분의 사람들이
함께 어우러진 광경을 목격하고 체험했던 여정이야말로 그의 영화관에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한 것 같다.
곤잘레스 이냐리투의 장편 연출 데뷔작인 <아모레스 페로스>(2000)는 이 세계의 너비를 되새기게 만드는 작품이다. 곤잘레스
이냐리투의 고향인 멕시코 시티를 배경으로 둔 이 영화는 각자 다른 영역에서 살아가는 세 인물의 생을 세 개의 시점으로 나열하는 옴니버스 형식을
취하고 있다. 칸국제영화제의 비평가주간에 초청돼 최우수작품상을 수상하기도 했던 이 작품은 찌든 때처럼
거리에 눌러 붙은 폭력성을 묘사하고 퍼즐 같은 서사 구조를 지닌 덕분에 쿠엔틴 타란티노의 작품을 연상시킨다는 평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곤잘레스 이냐리투에게 폭력은 허구적인 소품이 아닌 현실의 언어였다. “나처럼 매일같이 거리에서
폭력이 발생하고 사람이 죽는 도시에서 산다면, 폭력과 죽음은 더 이상 재미있는 일이 아닐 거다. 폭력에는 그에 응당한 결과가 있다는 걸 보여주고자 노력했다. 만약
당신이 폭력을 구사한다면, 그 폭력의 결과는 당신에게 돌아올 거다.”
곤잘레스 이냐리투의 초기작인 <아모레스 페로스>와
<21그램>(2003), <바벨>(2006)은
서사적으로 유사한 형식성을 취하고 있다. 세 부류로 나뉜 개별적인 삶과 그 일상이 부득이한 이유로 타인의
삶과 충돌하고 끝내 이 세계를 에워싸는 사건으로 확장된다. 세 작품은 동일하게 서사를 파편처럼 나열하고
퍼즐 구조의 서사로 진전된다. 다중적인 시점을 통해 서사의 확대와 증축을 꾀하며 입체적 감상을 유도한다. 이처럼 유사한 서사적 형태를 지닌 세 작품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건 우연과 필연을 통해 진전되는 관계의 층위와
현실적인 생의 너비를 체감하게 만드는 관성이다. 어느 개인의 경험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생에게
행사할 수 있는 영향력의 가능성을 짐작하게 만든다. 그럼으로써 이 세계라는 물리적 너비를 포괄할 수
있는 생의 무게감을 실감하게 만든다.
<비우티풀>은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라는 감독의
새로운 영역을 보여주는 작품이었다. 다중적인 시점으로 구성된 옴니버스식 서사를 지닌 전작들과 달리 <비우티풀>은 곤잘레스 이냐리투의 첫 번째 정극이라고 해도
좋을 작품이다. 수미상관의 구조로 이뤄진 이 작품은 생과 죽음의 양면성을 유려한 슬픔과 환희로 승화시키며
시적인 아름다움을 전달한다. 물론 어떤 이들은 이런 감상에 대해서 고개를 갸우뚱할 것이다. 왜냐면 사실 <비우티풀>은
굉장히 참담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전세계 관광객들이 몰려드는 바르셀로나의 빈민가에서 힘겹게 두 자식을
키워나가는 아버지를 주인공으로 둔 이 영화는 그 누구보다도 죽음을 잘 이해하고 있는 남자가 자신에게 드리운 죽음의 그림자를 향해 천천히 걸어나가는
이야기다. 가난과 고통 그리고 배신과 죽음이라는 어둡고 험난한 단어들로 점철된 이 영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름다운 여운을 남긴다 말할 수 있는 건 죽음으로도 부서지지 않는 생의 가치를 시적인 정서로 담아내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곤잘레스 이냐리투의 말처럼, “<비우티풀>은
죽음이 아니라 삶에 관한 영화다. 삶을 향한 찬가다.” 그
비극적인 생의 마감을 지켜보면서도 그토록 평화로운 감상을 얻을 수 있는 건 결국 그 생이 어떤 종착만은 아닐 것이란 믿음을 안겨주기 때문이다. 마치 영적인 기적을 목격하는 듯한 초현실적인 아름다움이 그 영화에 담겨있다.
사실 곤잘레스
이냐리투의 영화는 하나 같이 어둡고 고통스러운 이 세계의 단면들을 수집해 오면서도 생의 가치를 부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생이 살아갈만한 가치가 있음을 역설한다. 마치 “몇 번이라도 좋다! 이 끔찍한 삶이여, 다시!”라고 외쳤던 니체의 격언처럼 그렇다. 다만 이 거대한 비극의 도가니 속으로 내몰리는 인간들의 군상이 어떤 구조 속에 놓여있는가를 통해서 이 삶을
비극으로 내모는 인과와 심리를 제시한다. 곤잘레스 이냐리투의 영화로부터 괴로운 심정을 얻는다는 건 그만큼
이상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 괴로운 서사의 끝에서 되레 감상적 치유를 길어 올릴 수 있는 건 결국
그의 영화가 서로의 통증을 분담하고 공감할 수 있다는 이 세계에 대한 영적인 믿음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버드맨>(2014)은 이런 주장을 뒷받침할만한 확실한 증언과도 같다.
대략 5년 전, 자신이 구상했던 어떤 이야기의 조연 캐릭터를 모티프로 개발된 <버드맨>은 한때 ’버드맨’이란 슈퍼히어로로서 전성기를 누렸던 어떤 배우의 재기를 그린 작품이다. 하지만 <버드맨>은 단순히 어떤 배우의 연기적 재기에 관한 드라마가
아니다. 곤잘레스 이냐리투도 “솔직히 그런 주제엔 전혀 관심이
없다”고 말한다. “인간의 자아가 우리를 끌어올려줄 수 있지만 순식간에 우리를 해칠 수도 있는, 위험한 것임을 알았으면 좋겠다. 그것에 힘을 내주고 휘둘리면 끔찍한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 <버드맨>은 한 퇴물 배우가 자신을
파괴하는 망상과 세간의 비웃음으로부터 삶을 회복해나가려는 과정을 그린다. 그 과정은 때때로 우스꽝스럽다
못해 신랄한 블랙코미디 형태로 묘사되는데 이는 기존에 곤잘레스 이냐리투 영화와 이질적인 감상적 온도를 전달한다.
동시에 명배우들이 시종일관 장대비처럼 쏟아내는 대사량과 그 대사에 세찬 리듬감을 가미하는 드럼 솔로,
그리고 중력으로부터 해방된 듯한 카메라 워크 등 전작들에 비해 보다 화려해진 테크닉들로 영화의 기교적인 밀도가 한층 높아진 인상이다.
무엇보다도 <버드맨>은 보기 드물게 유머러스하고 신랄한 곤잘레스 이냐리투의
첫 번째 블랙코미디이지만 어느 생에 대한 경의를 품은, 그의 다섯 번째 찬가다. 어떠한 예측도 뛰어넘는 이 영화의 결말은 타인들에 의해 손쉽게 실패라고 손가락질 받는 누군가의 삶이 결코 무의미한
것만은 아니라는, 곤잘레스 이냐리투가 응시하는 생의 철학으로 비상한다.
“내 영화들은 내 자신의 연장선이다. 일종의 내 생명과 직결된
경험의 증거들, 매우 드문 선행과 매우 많은 한계들과 함께.”비참한 삶의 형태 속에서도 결코 죽일 수 없는 생의 가능성.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가 응시하는 건 결국 이 세계의 너머가 아닌 자기 자신과 우리 생의 한가운데에 놓여
있는 그것이다.
<버드맨>의
결말에 대하여
아마도
<버드맨>을 보게 된다면 그 결말에 대해서 어떤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엠마 스톤의 ‘빅 아이즈’를
통해서 짐작할 수밖에 없는 그 결말은 원래 예정됐던 결말이 아니었다. 하지만 영화의 촬영이 중반에 다다랐을
즈음 그 결말이 정말 최악이라고 느낀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는 결국 각색가들과 함께 새로운 결말에 골몰했고,
결국 지금 형태의 결말을 완성했다. 그는 지금 형태의 결말에 대해서 굉장히 만족했고, 타당한 결론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본래의 결말을 언급하는
것에 대해서도 극도로 말을 아낀다. “원래의 결말에 대해선 결코 말하지 않을 거다. 매우 황당한 것이니까. 정말 나쁜 것이었다.” 물론 지금의 결말
또한 황당하다고 느낄 관객은 존재할 거다. 이쯤 되면 어떤 결말인지 정말 궁금하지 않나? 보면 안다.
줄기차게 소개팅을 하는데도 만날 남자가
없다고 하소연한다. 요즘 남자들 속을 도통 모르겠단다. 만나자는
건지, 말자는 건지, 알 수가 없다. 썸 타는 남자들이 늘었다. 이유가 뭘까?
언젠가부터 A군은 심심찮게 괜찮은 레스토랑을 물었다. 소개팅 때문이라고 했다. 한 주에 한 번씩은 꼬박꼬박 소개팅을 했다. 어차피 같은 여자를 매주 만나는 것도 아닐 텐데 그렇게 열심히 장소를 옮겨 다니는 이유를 물었다. “장소가 중요하니까.” 너무 당연해서 당황스러운 답변이었다. 하지만 곧 삼면에서 불어오는 냉기 같은 멘트에 정신이 맑아졌다. “나도
같은 곳을 여러 번 가면 질리거든. 마음에 드는 여자를 만나지 못하면 최소한 맛있는 음식이라도 먹여야
할 거 아니야.” 유레카! 그렇다. 시간과 돈을 투자했으니 손실을 최소화시켜야 한다. 언제부턴가 남자는
소개팅의 기회비용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처음 만난 여자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식사라도 맛있게 먹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이건 분명 종의 진화다.
사실 이미 기회비용을 이용하는 여자들도 있었다. “심심하니까 소개팅할
때도 있어. 특별히 어떤 남자를 만나고 싶다기 보단 특별한 계획도 없는데 소개팅 제안이 들어오면 그냥
나가는 거야. 맛있는 것도 먹고, 그냥 놀다 들어오는 거지.” B양의 말처럼 어떤 여자들에게 소개팅이란 킬링타임무비 같은 것이었다. 소개팅
자리에서 여자에게 계산을 시키는 남자를 만난다는 건 벼락을 맞을 확률과 비례할 것이니 나갈 준비만 하면 된다. 그래서
여자들은 딱히 마음에 들지 않는 남자라도 두세 번 만나는 게 부담스럽지 않다. 남자들은 계산하라는 말을
하지 않으니까. 그래서 여자들에게 애프터 신청은 중요하다. 소개팅에서
애프터 신청을 받지 못한다는 건 치욕적인 일이란다. 하지만 요즘 남자들은 예전 같지가 않다. 대부분 만나서 헤어질 때까지 매너 모드는 유지한다. 하지만 헤어지면
꺼진 전화기처럼 울리질 않는다. 마음에 들지 않은 여자와의 관계를 한 발 이상 내딛지 않는다. 마음에 들지 않은 여자에게 돈도 쓰고, 시간도 쓰는 건 한번이면
족하다는 거다. 남자의 애프터 신청은 더 이상 매너가 아니다. 확실한
투자다. 어차피 소개팅 기회는 차고 넘친다.
“소개팅에서 만났을 때 진짜 괜찮다고 생각하는 남자들은 대부분 콧대가
높다.” C양이 말한 ‘진짜 괜찮다고 생각하는 남자’의 기준은 무엇일까? 키가 크고, 나이는
적당하고, 학벌도 좋고, 직장도 좋고, 얼굴은 그냥 못 볼 정도만 아니라면야. 왜 얼굴보다 키일까? “키가 큰 남자는 대부분 잘 꾸며놓으면 괜찮아지거든. 얼굴도 잘
생기면 좋고.” 하지만 요즘 그런 남자들은 이미 자신의 몸값을 안다.
시간은 남자의 편이다. 30대 여자들은 소개팅 시장에서 30대
남자들보다 단가가 낮게 책정된다. “원래 대부분의 여자들은 자기보다 더 나은 수준의 남자와 결혼해야
한다고 생각해. 그런데 30대가 넘어가면 점점 자기랑 비슷한
수준의 남자랑만 결혼해도 다행이라고 생각한다니까.” 30대 이후의 미혼 남자들이란 결혼 시기를 놓쳤거나
결혼이 절실하지 않거나 둘 중 하나다. 한쪽은 매력이 없고, 한쪽은
믿을 수 없다. 고로 이상적인 남자를 찾기가 어렵다.
“마음에 드는 여자가 없어”라고
D군은 말했다. 하지만 나는 네가 어제 한 일을 알고 있었다. 마음에 드는 여자는 없어도 여자는 만난다는 사실을. “사실 마음만
먹으면 만날 수 있는 여자는 많지. 하지만 마음에 드는 여자는 정말 없다니까. 그냥 요즘은 섹스하려고 여자 만나는 거 같아.” E군은 잘 생기고, 키도 컸으며 결정적으로 능력이 있었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여자가
많았다. 혹자는 이게 무슨 된장녀 아메리카노 원샷하는 소리냐고 하겠지만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다. 지하철 3호선 타고 다닌다며 당당하게 말하는 남자의 말에 웃어주며
고개를 끄덕이던 여자도 외제차 키를 무심하듯 시크하게 테이블에 올려놓은 남자 옆에 앉는 법이다. 키도
크고, 잘 생기고, 돈도 많아 보이는 남자가 매너도 좋으니까
끌리는 것도 당연하다. 다만 체크인과 체크아웃 시간이 정해진 호텔 같은 남자라서 안타까울 뿐이다. 룸서비스 시간은 정해져 있다. 그의 원나잇에 투숙한 뒤 새로운 방을
찾아야 한다. 제로섬 게임이다. 자신이 머물 방을 찾아야
하는 여자는 반복되는 패턴이 지겹고, 방에 새로운 여자를 끌어들여야 하는 남자는 자신의 욕망이 허망하다.
100세 시대라는데, 인생은
길어졌지만 서로가 어떤 사람인가를 천천히 알아갈 만한 인내심은 줄었다. 여유가 사라졌다. 적자생존의 진화 과정을 거친 동물적 본능으로 더 나은 사람을 선택하고자 만남과 이별을 반복한다. 그러다 보니 선택을 위한 인내심은 증발하고 만남과 이별의 패턴에 대한 익숙함만 남는다. 정말 이상한 일이다. 소개팅을 아무리 해도 남자를 만날 수가 없다니. 소개팅을 하러 나갔는데 음식에 반해야 한다니. 여자들은 성에 차는
남자를 찾기가 어렵다고 말한다. 정말 마음에 드는 남자를 만나면 콧대가 너무 높다고 말한다. 덧셈, 뺄셈 수준이었던 남자들이 언젠가부터 미분, 적분 수준으로 진화했다. 상대적으로 남자들은 여자를 만나는 게 쉬워졌다. 하지만 마음에 드는 여자를 만나기는 역시 어렵다고 말한다. 왠지
이 여자보다 더 괜찮은 여자를 만날 수 있을 거 같다고 생각한다. 어차피 내가 투자한 자리인데 더 나은
선택을 해야 하는 게 도리다. 그리고 여자를 만나지 않아도 놀 사람은 많다. 주변에 결혼하지 않은 친구들도 적지 않다. 플레이보이들이 넘친다. 남자들끼리 모여서 와인을 마시며 수다를 떠는 것도 지겹진 않다. 여자에게
쓰던 돈으로 할 수 있는 게 많다는 걸 깨달았다. 세상은 넓고 기회비용은 많다.
“아무래도 요즘 남자들은 박력이 줄어들었지.” 여자의 입에서 발음된 게 아니다. F군은 계속 발음했다. “사실 여자들도 이젠 남자한테 기댈 필요 없잖아. 나름대로 사회적
지위가 생긴 여자도 많고. 그만큼 남자들이 여자들을 압도할 수 있는 이유가 하나 줄어든 거 아냐. 그러니까 자신감이 떨어질 수밖에. 그러니까 계속 썸만 타는 거지.” 일리 있는 말이다. 터프가이의 시대는 끝났다. 화끈했던 남자들은 맹탕이 됐다. 그러다가 깨달았다. 사랑은 쟁취하는 게 아니라 기다리는 거라고. 나를 보고 자꾸 웃어주는
그녀가 나를 좋아하는 건 아닐까 착각하던 남자들은 그녀의 미소를 닮은 매너로 여자들을 착각하게 만드는 법을 익혔다. 썸 태우는 기술을 익혔다. 경제적인 우월감을 창처럼 휘두르던 남자들은
이제 썸이라는 방패 뒤로 숨는다.
이유는 간단하다. 전통적으로 한국사회에서 남자들은 여자들보다 우월한 존재여야 했다. 그
수단은 경제력이었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남자들의 경제력은 여자를 압도하지 못한다. 그만큼 비슷한 여건을 지닌 또래 여성에게 자격지심을 느끼는 남자들도 늘어났고,
상대적으로 우월한 지위를 점할 수 있는 어린 여자들을 살피게 된다. 그런데 사실 이건 남녀의
관계가 평등해지고 있다는 증거다. 남자들의 지배력이 떨어진 건 여자들의 지위가 상승했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 페어플레이가 가능해졌다. 그렇다면 보다 명확해진다. 남자가 계산하는 게 당연하다는 암묵적 룰도 깨져야 한다. 페어게임을
원한다는 신호는 분명 매력적일 거다. 뺨 맞은 재벌 2세처럼
‘이런 여자 처음인데’라는 인상만 줘도 일단은 성공이다. 남자는 단순하다. 그러니 알려줘야 한다. 남자와 마찬가지로 여자 역시 이 관계에 있어서 동등한 투자자임을 어필해야 한다. 같은 출발선 위에 서 있는 존재임을 깨우치게 만들어야 한다. 물론
남자가 당신의 지갑을 사랑하게 만들어선 안 된다. 그럴 바에야 차라리 ‘썸’을 타고 말지.
데이비드 에이어의 남자들은 언제나 방아쇠를
당긴다. 흉악한 세계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남자들의 사투를 그린다. 자신이
살아온 세상과 닮은 거리에 두 발을 디딘 남자들의 생을 장전한다.
데이비드 에이어는 우직한 감독이다. 그가 연출한 세계관 속의 인물들은
하나 같이 총을 들고 사선을 넘는다. 그리고 그 세계관의 대부분은 LA라는
거대한 도시의 그늘 속에 도사린 위험천만한 범죄 현장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이런 특성은 그의 유년
시절 기억과 상당부분 연결돼 있다. “나는 LA 남부에서 자라면서 ‘고대 LA경찰
시절’이라고 일컬었던 그 시절의 경찰들로부터 항상 달아나야 할 짓을 일삼곤 했다.” 본래
에이어가 태어난 곳은 일리노이주의 소도시였지만 유년시절에 세상을 등진 아버지로 인해 LA 남부의 가난한
친척집에 맡겨졌고 그 험한 거리에서 빛보단 어둠에 익숙한 소년으로 자랐다. 그런 그가 LA를 배경으로 둔 범죄물에 천착하는 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이 단순히 유년 시절의 질풍노도에 대한 빚을 갚기 위해서는 아닌 것 같다. “LA경찰은 다른 기구다. 80년대나 90년대의 경찰조직이 아니다. 현재 그 인근의 치안상태가 반영된 조직이다. 조직이 진화해왔으니
영화도 그런 사실이 반영돼서 진화했다.”
감독으로 데뷔하기 전 각본가로서 활동했던 시절에도 그는 LA의
흉악한 단면을 마주한 경찰을 소재로 둔 이야기에 천착해왔다. <트레이닝 데이>(2001), <다크 블루>(2002),
<S.W.A.T. 특수기동대>(2003)를 통해서 저마다 형태가 다른 LA경찰들의 일상을 묘사했다. 그 중에서도 덴젤 워싱턴과 에단 호크가
호흡을 맞춘 <트레이닝 데이>는 그에게 상당히
절실한 작품이었다. “나는 할리우드에서 일하길 원했다. 그래서
나를 위해 전혀 시도되지 않은 무언가를 썼다.” <트레이닝 데이>는
데이비드 에이어가 감독의 지위를 확보한 지금에도 여전히 중요한 경력으로 회자되는 작품이다. 그의 연출작들
가운데 <트레이닝 데이>의 중력 안에 놓여있는
것처럼 보이는 작품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크리스찬 베일 주연의 <하쉬
타임>(2005), 키아누 리브스 주연의 <스트리트
킹>(2008), 제이크 질렌할과 마이클 페냐가 듀오로 등장하는 <엔드 오브 왓치>(2012)는 총격이 난무하는 위험한 거리를
누비는 LA경찰을 소재로 두거나 그와 깊게 연관된 작품이다. 그
중에서도 <스트리트 킹>은 LA경찰의 내부 비리를 고발하게 되는 처지로 몰린 어느 경찰의 사투를 다룬다는 점에서 <트레이닝 데이>와 가장 근접한 관점의 이야기를 끌어안았다. 한편 <하쉬 타임>과 <엔드 오브 왓치>는 무법 천지 같은 LA의 흉악한 풍경 속에서 차를 타고 누비는 두 남자의 동선을 따라간다는 점에서 <트레이닝 데이>와 유사한 시점을 담아낸다. 무엇보다도 세 작품은 <트레이닝 데이>의 누아르적인 결말을 연상시킨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이런
면모는 에이어의 또 다른 연출작인 <사보타지>(2014)와 <퓨리>(2014)에서도 일관되게 이어진다.
그 가운데서도 <엔드 오브 왓치>는 데이비드 에이어라는 감독의 경력 안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작품이다.
1인칭 시점의 캠코더 촬영 컷을 가미하며 페이크 다큐멘터리 형태로 만들어진 이 작품은 LA경찰
두 사람의 동선을 부지런히 쫓으며 생생한 현장감을 부여한다. 제복을 입고 경찰서와 순찰자, 거리를 오가는 두 경찰과 그 주변부를 살피는 카메라는 LA경찰의
실제적인 삶을 직접적으로 대면하는 듯한 체험적인 쾌감과 긴장감을 도모한다. 극적인 형태의 기존 작품들과
형식적으로도 차별적인 인상을 전달한다는 점에서 더욱 두드러지는 면모가 있다. 그저 그런 범작 취급을
받았던 전작들과 달리 대단한 수작으로 평가를 받았던 <엔드 오브 왓치> 이후 에이어가 발표한 <사보타지>는 최정예 마약검거 특수부대가 미궁의 음모에 휘말리는 내용을 그린다. 아놀드
슈왈제네거가 주연을 맡은 이 작품은 전작에 대한 평가와 완벽하게 대비를 이룰 정도로 혹평을 얻었다. 하지만
같은 해에 발표된 <퓨리>를 통해서 에이어는 다시
한번 긍정적인 반응을 이끌어낸다.
<퓨리>는 영화의 배경만으로도 데이비드 에이어의 경력 안에서 이질적인 위치를 차지한 작품이다. LA의 골목을 전전하는 경찰들 대신 제2차 세계대전의 막바지에 치달은
독일 전선에서 탱크에 몸을 실은 미군들이 스크린에 등장한다. 하지만
<퓨리>는 데이비드 에이어의 호기심을 당길만한 세계였다. “할아버지와 외할아버지 그리고 삼촌 등 수많은 친인척들이 전쟁에 참여했다. 나
또한 해군에서 복무했고. 그래서 전쟁이란 내게 항상 사적인 소재이자 가족사 같은 것이었다. 전쟁에 대해 알면 알수록 언제나 이분법적이고, 도덕적인 명분이 있는
일처럼 보였는데 실제로도 그랬다. 그러니까 그건 선악의 대립이었다는 말이다. 다만 참호에서 싸우는 사내들에겐 잔혹한 일이었다. 전쟁은 매우 암담했다. 그걸 보여주고 싶었다. 대단히 긍정적인 결과로 닿았지만 거기엔 사내들이
감당해야 하는 부당한 대가가 있었다는 것을.” 에이어는
이런 깨달음을 바탕으로 <퓨리>를 참혹한 전쟁물
이상의 휴먼드라마로 격상시켰다.
사실 에이어가 연출해온 LA 배경의 범죄물 속에서 경찰들이 감당하는
긴장감은 전장의 그것만큼이나 공포스럽다. <퓨리>는
에이어가 줄곧 그려왔던 두려움의 세계를 보다 사실적인 비극 안에 세워 넣고 밀어가는 작업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퓨리>는 에이어가 그린 새로운 풍경일
뿐 일관성 있는 감정을 담아낸 세계관이다. 게다가 <퓨리>는 에이어의 초기 각본작이었던 <U-571>(2000)과
마찬가지로 제2차 세계대전 배경의 작품이며 수많은 적에게 둘러싸인 잠수함 한 대와 탱크 한 대에 모든
것을 걸고 싸우는 군인들의 사투를 다룬다는 점에서 데이비드 에이어라는 작가의 인장을 재확인시킨다. 물론 <퓨리>의 최후반부 전투신이 지나치게 과장된 무리수처럼
여겨지는 측면이 있지만 <퓨리>가 발하는 휴머니즘의
감동을 가릴 정도는 아니다. 무엇보다도 <퓨리>는 LA라는 지정학적 특수성 안에서 맴돌던 에이어의 세계관에서
벗어나 전세계적인 보편성을 확보하고 완결해냈다는 점에서 발전적인 성취로 여겨질 만하다. 물론 <퓨리> 역시 총을 든 사내들의 세계관이란 점에서 에이어의
세계관은 여전히 같은 동심원 속에 놓여있다. 그는 전장 속을 누비는 사내들의 이야기 외엔 관심이 없는
걸까? 데이비드 에이어표 로맨틱 코미디라는 것도 존재할 수 있을까? 그의
대답은 이렇다. “물론이다. 매우 진지하게, 가능하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일단 당장 그는 2016년 개봉 예정작인 <수어사이드
스쿼드>에 매달릴 예정이다. DC코믹스물 원작인 이
작품은 슈퍼히어로와 대립하는 악당들, 즉 슈퍼 빌런들이 정부 산하에서 죄를 탕감받는다는 명목으로 비밀
임무를 수행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흉악한 범죄물의 세계를 비추던 데이비드 에이어의 카메라가 재생시킬
코믹스의 세계관이라니, 사뭇 궁금하다. 좀처럼 상상하기 힘든
데이비드 에이어표 로맨틱 코미디보다도.
위기의 남자들
데이비드 에이어의 영화 속에선 항상 위기의 남자들이 등장한다. <하쉬 타임>의 짐 데이비스(크리스찬 베일)은 LA경찰을
꿈꾸지만 낙방한 뒤, 위험한 제안을 받게 되고 점차 자신뿐만 아니라 주변 관계마저 파괴할만한 혼돈으로
빠져드는 불나방 같은 남자다. <스트리트 킹>의
톰 러들로(키아누 리브스)는 오발로 인해 동료를 죽였다는
죄책감 속에서 홀로 사건을 마무리하고자 사지로 뛰어들지만 정작 음모의 덫에 갇힌다. <엔드 오브
왓치>의 브라이언 테일러(제이크 질렌할)와 마이클 자발라(마이클 페냐)는
위험천만한 임무를 즐기듯 수행하는 경찰 파트너이지만 히스패닉 갱들로부터 조여오는 위협을 느낀다. <사보타지>의 존 브리처 와튼(아놀드 슈왈제네거)은 특수부대를 이끄는 리더이지만 갑작스러운 팀원들의 죽음을 통해 정체불명의 위기를 느낀다. <퓨리>는 단 한대의 탱크를 둘러싼 독일군들을 맞이하는
탱크 안 미군들의 긴장감을 결연하게 그린다. 생사의 경계를 넘나드는 혹은 그 경계에 놓인 남자들이 주사위를
굴리듯 방아쇠를 당긴다.
울컥했다는 이가 한둘이 아니다. <무한도전>의 ‘토토가’가 잠자던 90년대의 감성을 건드렸다. 90년대 대중음악이란 지금 어떤 의미인가. 90년대 대중음악을 듣고
자란 세 사람이 모여 썰을 풀었다.
민용준(이하
‘민’)다들 <무한도전> ‘토토가(토요일 토요일은 가수다)’는 어떻게 봤나?
김형석(이하
‘김’)재미있게 봤다. <무한도전>의 힘을 재확인하는 기분이었다.
배순탁(이하
‘배’) <무한도전> 다이어리는 특별히 홍보도 안 하는데 100만권이 팔린다더라(웃음). 사실 ‘토토가’에 나온 가수들 대부분은 2000년대 이후의 세대에겐 잊혀져 버린
가수들이라 할 수 있는데 일부로 그런 가수들만 섭외한 건지, 그런 가수들만 섭외된 건지 모르겠다. 어쨌든 기획의 승리라고 본다. 개인적으론 내가 그 노래를 다 기억하고
있어서 놀랐다.
민 뇌가 좀 더 싱싱할 때 들어서인지
몰라도 가사가 저절로 기억나서 따라 부르게 되는 게 신기했다.
배 윤도현이 <나는 가수다>에서 소녀시대 노래를 부를 때 가사가 외워지질
않아서 미치겠다고 했다. 확실한 건 요즘의 가요들과 달리 90년대의
가요엔 스토리텔링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오래 기억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민 ‘토토가’ 이전에도 90년대를
조명하는 기획이 있었다. <응답하라 1997>이나 <응답하라 1994>가 대표적이고, <나는 가수다>도 90년대에
발을 걸친 인상이었다. 작년에 발매된 김동률의 신보도 90년대의
노스탤지어를 건드린 것 같다. 이적이나 윤상 같은 90년대
싱어송라이터가 다시 주목을 받는 과정도 그렇고.
배 사이먼 레이놀즈라는 음악 평론가가
쓴 <레트로 마니아>라는 책이 있는데 레트로에
대해 비판적으로 접근한 책이다. ‘음악에 있어서 더 이상 새로운 것은 없는가’란 식으로. 아무래도 레트로라는 게 과거의 소스를 재생시키는 거니까 먼 과거를 지나 가까운 과거가 레트로의 차례가 됐다고
봐도 될 것 같다. 80년대가 레트로의 대상이 됐던 시대를 넘어서 이젠 90년대가 ‘핫’해질 순서가
된 거 아닐까.
민 90년대 대중음악이란 것이 추억을 넘어 열광의 대상이 되는 인상도 있다. 그건
레트로와 조금 다른 현상 같다.
배 모든 세대마다 자기 세대만의
사운드트랙이 있겠지만 90대는 음악산업이 정점을 찍었던 해이니까 다른 시대에 비해 추억의 밀도가 훨씬
높을 수 있다. 아마 시절을 추억하는 수단이 음악일 수 있는 마지막 세대가 지금의 30~40대일 수도 있을 거 같다. 지금의 10대나 20대는 어쩌면 음악이 아니라 게임이 될 수도 있고.
김 생각해 보면 2000년대에 들어와서 음반시장이 망가진 원인으로 핸드폰을 꼽는 경우도 많았다.
사람들이 핸드폰으로 게임을 많이 하니까 상대적으로 음악을 듣지 않는다는 식이었지.
민 90년대에 대중가요라는 것이 대중문화 안에서 가장 큰 광장 역할을 했고, 거기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었던 세대들이 ‘토토가’를 통해 어떤 추억의
연대를 경험하게 된 것 같다. 그런데 사실 지금도 음악의 소비는 활발하게 이뤄진다. 다만 음반이라는 물리적 형태의 소유가 아니라 음원의 거치 형태라는 점이 큰 차이를 만드는 것 같다.
배 아무래도 경험은 물성을 통해서
극대화된다고 본다. 만지는 개념이 정말 중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90년대는 음반이라는 음악적 물성을 간직한 마지막 시대였던 것 같다. 음반이라는
물성을 경험해보지 못하는 이상 음악이라는 그리움 자체가 형성되긴 어렵지 않을까.
민 ‘토토가’ 이후로 90년대가 대중음악의 전성기였다는 말도 심심찮게 등장한다.
배 부분적으론 동의할 수 있다. 모든 지표들이 그걸 증명해 주니까. 90년대는 대중음악이 문화 소비의
패권을 차지했던 시대였다. 지금은 그 패권이 영화로, 게임으로, 스마트폰으로 넘어갔지.
김 요즘은 음악을 통한 부가사업들이
보다 중요하다. 패션, 스타일, 마케팅, 일종의 종합선물세트로 기획된다. 90년대는 음악 자체가 주된 소비의 대상이었기 때문에 음악이란 본질에 충실했던 시대였다.
배 사실 ‘토토가’에 나왔던 음악들도 90년대 대중음악신 안에서 일부가 되는 음악이었단 사실이 중요하다. 게다가 90년대는 모든 장르의 음악을 TV로 들을 수 있었던 마지막 시대였다. 고인이 된 신해철의 넥스트가 공중파 가요 프로에서 프로그레시브록을 연주하는 시대였다. 발라드나 댄스음악이 공존했고. 그런 면에선 확실히 회자될만한 가치가
있다.
민 사실 90년대에도 댄스 음악 일변도라 들을 음악이 없다는 비판이 상당했다.
배 ‘토토가’에 나온 가수들은 90년대에 큰 족적을 남긴 가수들이지만 아마 김건모나 엄정화 정도를 제외하면 당시에 진지하게 음악을 듣던 이들에게
대부분 욕을 먹었을 거다. 립싱크 논란도 심했고. 그런 면에서
90년대는 저렇게 좋았는데 지금은 너무 엉망이란 식의 태도는 지양할 필요가 있다.
민 90년대 음악이 향수가 된 건 그 시절의 음악 소비를 주도했던 세대가 나이 들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나이를 먹으면서 자연스럽게 문화 소비의 중심부에서 밀려났는데 ‘토토가’를 통해 자리를 찾았다는 감격이 서럽게
다가오는 지점도 있었던 것 같다.
배 지금의 30대, 40대가 대부분 그랬을 거다. 잠재돼 있던 문화 소비 욕구의 도화선에 불을 지폈다고 할까? ‘토토가’
다음날 음원 차트를 보고 깜짝 놀랐다. 어떤 식으로든 소비를 이끌어냈다는 점에선 긍정적이다. 그런데 주영훈 씨가 100억을 벌었다는 기사가 나온 건 진짜 어이
없더라(웃음).
민 음원 수익 분배 구조에 하등의
관심도 없으면서 기사를 쓴 거 같더라. 그냥 약 판 거지(웃음). 음원 수익이 작곡가에게 돌아가는 게 정확히 몇 % 정도인가?
김 한 4%? 90년대엔 음반이 100만장 팔리면 40~50억 정도 매출이 나왔는데 이젠 다운로드 100만 건이면 1억 수준일 거다. 게다가 스트리밍은 거저 주는 꼴이라 다운로드 수를
현저히 떨어뜨린다.
민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미국에서
아이튠즈를 통해 290만 건이 다운로드돼서 얻은 수익이 28억
정도 된다고 들었다. 그런데 국내에선 360만 건 정도가
다운로드됐는데 싸이에게 돌아간 수익이 6000만원 정도였다더라. 나는
내가 숫자를 잘못 본 줄 알았다.
김 가장 큰 문제는 투자하는 회사에서
유통을 하고, 제작도 하고, 음원 판매 사이트까지 운영한다는
거다. 게다가 미디어까지 갖고 있고, 정상적일 수 없는 구조인
거다.
배 완벽한 갑인 거지. 슈퍼갑.
민 음반시장에서 음원시장으로 넘어오면서
고착된 상황이다.
김 음악종사자들이 발 빠른 대처를
못했다. 머리가 빨리 돌아가는 사람들은 기업에 있고, 음악은
‘쟁이’들이 하니까(웃음). 물론 회사에서도 할 말은 있다. 망도 깔고, 시스템에 투자한 돈이 얼마이고. 하지만 문화사업이 1~2년 보고 가는 게 아니지 않나. 최소한 다른 나라와 비교했을 때 적절한 수익이 배분되고 있는지에 대한 논의 정도는 가능해야 되는데 그런 개념이
전혀 없다.
배 그러니 부가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아이돌만 육성되는 거고, 다양성이 존재할 수 없는 시장이 된 거다. 그런 면에서 90년대는 음악 창작자에 대한 정당한 대가가 주어졌다는
면에선 괜찮은 시대였던 것 같다. 2000년대 이후론 그게 완전히 무너졌으니까.
김 심지어 당시엔 표절 문제가 불거지면
팀도 해체됐다. 지금은 듣기 좋거나 재미있으면 그냥 잘 넘어가는 것 같고.
민 그런데 팀 해체는 좀 가혹했던
거 같다.
김 그만큼 아티스트의 양심에 대한
가치가 중요하게 여겨진 시대였던 것 같다. 창작자가 표절을 했을 때 누군가가 손해를 본다는 물질적 개념보단
창작자가 거짓말을 해선 안 된다는 윤리적 가치관이 대중에게도 절대적이었던 거지. 대중음악이 그만한 가치를
존중 받았던 시대였기 때문일지도 모르고.
민 그러고 보니90년대 대중가요는 싱어송라이터의
시대였던 것도 같다.
배 국내에서 싱어송라이터라는 말이
처음 쓰였던 게 90년대였다. 가수가 직접 작곡, 작사에 참여한 곡이 많았다. 그런 의미에서 요즘 자기 음악을 직접
만들려는 아이돌이 많아진다는 건 긍정적인 거 같다. 단순히 기획사의 인형이 되고 싶지 않은 거다. 샤이니의 종현 같은 친구와도 대화해보면 음악 욕심이 어마어마하게 느껴진다.
김 90년대처럼다시 싱어송라이터가 중요한
시대가 됐다. 아이돌도 아티스트로 변모하길 원하고. 미국도 10년 전엔 백스트리트 보이스 같은 아이돌의 시대였지만 지금은 크리스 브라운 같이 재능 있는 싱어송라이터가 대세다.
민 90년대 아이돌과 지금의 아이돌의 차이는 그런 후천적 욕망에 있는 것도 같다.
김 사실90년대엔 프로듀서라는 개념이
희박했다. 지금은 기획사만의 색깔이라는 게 있지 않나. JYP는
섹시, YG는 힙합, SM은 팬시. 어쨌든 자기 색깔이 분명하니까 팬덤도 그렇게 형성되고 ‘안전빵’ 장사도 가능하다. 그런 색깔은 아티스트 개인이 아니라 회사 차원에서 기획해야 한다. 그래서
프로듀서가 필요한 거다.
배 결국 그런 시스템이 90년대로부터 잉태됐다는 게 중요하다.
김 그래서 3대 기획사의 수장 중 두 사람이 90년대 음악신에서 배출된 사람이란
것에 주목해야 한다. 사실 90년대엔 보편적으로 타당한 노래를
좋아했다. 내가 들어도, 네가 들어도 슬픈 노래. 지금은 그 사람만 할 수 있는 게 추앙 받는 시대다. 1:1의 문화인
거다. 예전엔 미국의 문화, 유럽의 문화란 식으로 구분했다면
지금은 그냥 싸이의 문화가 인정받는 거다.
배 확실한 개성이 요구된다.
김 아카데미에서 수업을 듣는 학생들한테
좋아하는 가수를 물어보면 빅뱅을 많이 답한다. ‘자기들만의 음악이 있어서’라는 게 이유다. 최소한 애들도 나름의 기준으로 아이돌을 판단한다는 거다. 아이돌이
난무하다 보니 소비자의 관점이 진화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민 ‘토토가’는 90년대 음악의 상품성을 창출하는 매대 역할을 했다는 점에선 괜찮은 쇼케이스였다.
배 아마 제작진도 이 정도로 흥할
줄 몰랐을 거다. 거의 장난처럼 시작된 기획이지만 <무한도전>이기에 가능했던 것 같다.
김 미디어의 역할이 그거다. 가치를 부여해서 진열대에 올려 놓는 것. 대중들은 능동적이지 않다. 소수 매니아를 제외하면 대부분 수동적이다. 그걸 미디어가 건드려줘야
한다. DJ 정권 시절에 음원 수익 배분 구조를 국가에서 결정해버렸는데 실질적으로 음반시장 붕괴 이후엔
국내 음악산업 종사자들의 수익이 거의 사라졌다. 당장 먹고 죽을 것도 없어졌다. 그나마 돈벌이가 되는 아이돌을 양산해낼 수 밖에 없는 구조가 됐고, 가요프로그램에서 20팀 중에 18팀이 아이돌로 채워지는 상황이 돼버렸다. 개인적으로 K팝이 롱런하려면 결국 다양성이 중요하다. 마이클 잭슨이 좋아서 미국 팝을 들어봤는데 다 마이클 잭슨 같으면 계속 들을 이유가 없지 않나. 결국 다양성을 끌어내야 한다. 생각해보면 90년대는 음악적 다양성이 폭발하는 시대이기도 했다.
민 음반과 음원으로 음악을 듣는
건 정말 다른 경험인 거 같다. 발품을 팔았다는 보상심리가 생기고, 이
음반의 기회비용을 생각했을 땐 그만큼 열심히 그 음반을 소비해야 한다는 심리가 동원된다. 감상의 밀도가
달라진다고 할까. 음원을 통해 음악을 듣게 되면 이런 과정이 어느 정도 상실되는 것 같다.
김 최근 삼성에서 ‘밀크’라는 음원서비스를
새롭게 공개했다. 기분이 우울하다고 클릭하면 알아서 노래들을 선곡해준다. 이제 내 컨디션만 알려주면 알아서 음악을 골라준다. 그렇게 편안함에
중독되는 거다. 그러면 결국 내 자아가 사라질 것 같다. 편리한
일이지만 사소한 불편함을 삭제했을 땐 경험을 통한 깨달음의 가능성도 같이 삭제될 가능성이 있다.
배 몸을 움직여서 뭔가를 해야 경험이든, 영감이든 발생하는 법인데 그런 몸의 움직임이 계속 지워지는 세대에겐 음악에 대한 기억도 얕아질 수밖에 없다. 내 몸을 움직여서 음악을 득템하는 과정들이 대부분 삭제되니까 음악에 대한 추억 자체도 희미해질 수밖에 없지
않을까? 지금의 10대에게 음악과 연관된 자신의 이야기가
존재할 가능성이 있을지 모르겠다.
민 90년대의 음악 소비가 대화나 접촉 같은 아날로그 방식이었다면 21세기의
음악 소비는 데이터 송신의 디지털 형태로 이뤄진다. 음악을 듣는다는 본질적 경험은 동일하지만 그 과정의
형식과 소유의 방식이 달라지면서 기억의 유효기간도 확연히 달라질 수밖에 없는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토토가’가 어떤 불씨를 살린 측면은 있는 것 같다. 그걸 꼭 활활 타오르게 만들 의무는 없지만 이왕
살린 불씨라면 최대한 지펴보는 것도 의미는 있겠다. 최소한 유의미한 오락거리 하나는 발굴했다는 점만으로도
긍정적이고.
김 어차피 90년대 음악이 주류가 될 순 없지만 비주류가 된 음악을 재조명했다는 건 분명 좋은 시도라고 생각한다. 지난 시대에 대한 가치를 조명하는 시도가 거듭 이뤄져야 한다. 후세대가
봤을 때도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 이해하게 되면 그게 유산이 되는 거니까.
배 우리도 ‘토토가’를 빌미로 90년대 이야기를 하려고 모였지만 요즘 얘기도 많이 했다. 결국 90년대라는 화두를 통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을지에 대한 논의가 가능하단 말이다. 그런 움직임이 더 활발해져야 할 것 같다. 그리고 90년대는 지금과 가장 가까운 과거다. 70~80년대도 소중하지만
지금과는 너무 먼 시대가 돼버렸으니까 90년대를 이야기할 수밖에 없는 것도 같다.
김 90년대를 직접 겪은 사람들에겐 90년대가 현실이었다. 그러니까 지금의 청소년들이 음악을 바라보는 태도를 우리가 지켜보는 상황이 아니라 그 아이들이 겪는 현실로서
이해하는 게 정말 중요할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