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화

도화지 2009. 8. 22. 01:30

태어나서 처음으로 여의도 국회의사당에 다녀왔다. 대중 전대통령의 영정에 헌화하기 위해서 옮긴 발길이었다. 물론 단지 그 때문은 아니었다. 그 전에 오전 생방송이 있는 방송스튜디오가 국회의사당과 매우 근접한 곳에 있었던 덕분이다. 이왕 여기까지 온 김에 눈 앞에 보이는 국회의사당에서 헌화라도 드려야겠다는 마음이 간절했다. 사람이 적은 오전이란 점에서도 그랬다. 주말에 시청까지 나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요즘 내 상태를 보면 그럴 재간이 없다는 판단에서도 더더욱 마음이 동했다. 국회의사당까지 터벅터벅 가면서 담배를 피워 물었다. 지난 주부터 다시 담배를 물고 있다. 2년 반만인가. 이게 또 다시 입에 물게 되니 언제 끊었냐는 듯이 자주 찾게 된다. 정문을 지나 영정이 놓인 국회의사당 본관 앞까지 도달하니 줄이 보였다. 오전 10 즈음이라 사람이 많진 않았다. 하지만 햇볕이 뜨겁더라. 기다리는 동안 목덜미가 따가웠다. 어르신들이 많았다. 아무래도 젊은 친구들이 움직이기엔 이른 시간인지라 그럴 것 같았다. 아니면 국회의사당보단 시청을 찾겠지. 나라도 그러고 싶다. 딱히 국회의사당을 선택하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는다. 이 곳은 왠지 내 땅이 아닌 거 같거든. 영정 앞에 서니 마음이 절로 침통했다. 종종 울컥했다. 눈시울이 붉어지는 느낌은 들었지만 넘쳐 보내고 싶진 않았다. 그냥 그랬다. 그래서 하늘을 올려다 보니 푸르더라. 너무나 푸른 하늘에 양떼처럼 구름이 옹기종기 모인 게 아름다웠다. 그렇게 20분 즈음을 기다리다 계단을 올라갈 기회가 왔다. 다시 잠깐 줄을 섰다가 헌화할 차례가 됐다. 영정 앞에서 헌화를 드리고 분향을 하고 묵념을 하고, 아주 짧은 순간 만감이 교차했다.

 

사실 올해 중에 일이 나지 않을까 생각은 하고 있었다. 하지만 역시나 급작스러운 일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는 충격이었다면 김대중 대통령의 서거는 그저 비통했다. 이렇게 시대가 가고 있구나, 라고 묵묵히 넘기기엔 참담한 마음이 앞선다. 외신보도를 마주하니 이처럼 대단한 사람이었나, 새삼 깨닫게 된다. 내 생각보다도 훨씬 더 큰 사람이었다는 실감이 뒤늦게 엄습했다. 유년 시절 광주에서 살았던 나는 김대중이란 이름을 귀가 닳도록 들어왔던 사람이다. 대통령 선거가 있던 다음 날이면 번번히 비통해진 어른들의 표정을 마주했고, 그로 인해 나 역시도 멋모르고 비통해했다. 비로소 그가 대통령에 당선된 다음날, 들뜬 분위기에 함께 들떴다. 김대중이란 이름은 내게 그렇게 기억된다. 그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가에 대해서 많이 들어왔다면, 광주를 벗어나 그가 얼마나 비열한 인간인가라는 욕지기도 많이 들었다. 지금도 누군가는 그의 죽음을 비통해하고, 누군가는 여전히 그를 멸시한다. 난 비통하다. 내 한 시절 속에서 강렬한 기억을 남긴 이름이라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건 난 내가 직접 뽑았던 대통령 한 사람을 잃었고, 처음으로 당선을 기뻐했던 그 이전의 대통령 한 사람을 잃었다. 적어도 누구 말처럼 앞으로 전직 대통령의 죽음을 슬퍼할 일은 없어졌다. 기뻐할 일은 아닌 것 같다. 참 애석한 일이지. 어쨌든 일단은 비통했다. 헌화를 마치고 나오면서 검은 양복을 차려 입은 무리들을 지나쳤다. 그들은 수군거리고 있었다. 무엇을 수군거리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슬퍼하는 것 같진 않았다. 슬퍼하는 사람들이 모여드는 그 자리를 지키는 누군가는 그 이후의 행보를 염두에 두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어쨌든 난 빨리 그 자리를 빠져 나오고 싶어졌다. 담배를 한 대 피워 물고 국회의사당 정문을 빠져 나왔다. 하늘은 여전히 푸르렀다. 그래서 나는 조금 더 마음이 아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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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민용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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