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만에 광주에 다녀왔다. 휴가라고 해봐야 어디 놀러 가는 취미도 없고, 차라리 오랜만에 친구들이 있는 광주나 다녀오자 싶었다. 세월이 많이 지나서 옛날보단 만날 수 있는 친구가 줄었다. 내 무심함의 탓이기도 했고, 말 그대로 세월 탓이기도 했다. 연락을 자주 못하는 만큼 멀어진 친구들도 생겼고, 세월이 지나 어른이 된 탓에 책임질 일이 많아진 친구들은 쉽게 짬을 내지 못하고 제 생활에 얽매여 있었다. 그 와중에도 많은 친구를 만났고, 하나같이 반갑거나 놀라웠다. 결혼을 앞둔 녀석도 있고, 곧 아버지가 될 친구도 있었다. 종종 연락해와서 어느 정도 근황을 아는 녀석도 있었던 반면, 고등학교 졸업 이후로 처음 만나는 친구도 있었다. 많이 컸다. 비로소 실감했다. 내가 참 많이 컸다. 우린 늙어가고 있구나. 비로소 체감했다. 어른이 된 친구들은 제 각각의 방식으로 제 삶을 책임지며 살아가고 있었다. 여전히 갈피를 못 잡은 듯 불안해 보이는 녀석도 있었지만 적당한 확신을 손에 쥐고 앞으로 전진해가는 녀석도 있었다. 3 4, 엄밀히 말하면 3 3일이나 다름없는 일정 가운데서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은 하나같이 그저 반갑기만 했다. 묵혀뒀던 옛 추억들이 세월을 먼지처럼 털고 언어로 재현되고 그때마다 우린 낄낄거리며 또 다른 기억을 파고 들었다. 공유할 수 있는 추억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 자리가 즐거웠다. 오랜만에 내려간 광주는 많이 변했고, 친구들도 많이 변했지만 추억은 여전했다. 그것만으로도 즐겁더라. 다시 올라오기 싫을 만큼 행복했다. 그 기분에 취해서 담배를 다시 물게 됐지만 후회하진 않는다. 언젠가 폐암에 걸려 죽더라도 이 날만큼은 유쾌하게 기억하련다. 추억을 통해 또 다른 추억이 자란다. 친구란 그런 것 같다. 3년 만에 만나도 웃을 수 있는, 그리고 그렇게 만나줄 수 있는 친구가 있다는 게 참 다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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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민용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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