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나토 가나에의 추리소설 <고백>은 아이를 잃게 된 미혼모 선생 유코가 학생들이 모인 교실의 종업식 자리에서 밝히는 충격적 고백을 통해 시작되는 이야기다. 독백에 가깝게 느껴질 정도로 일인칭 시점의 서술로 일관되는 소설의 구어체는 유코의 시점에서 출발해서 그녀의 고백 속 사건과 관련된 세 명의 학생과 한 명의 학부모의 시점을 갈아탄 뒤, 다시 유코의 시점으로 갈무리된다. 충격적인 진실을 담고 있는 내용에 비해 비교적 담담한 태도를 유지하는 소설의 화법은 사건을 감정적으로 받아들이기 이전에 이성적으로 이해하고 해부하도록 유도한다. 동시에 단지 교훈적인 메시지에 접근하기 보다는 복수극이라는 장르적 목적에 충실한 결말이 인상적인 작품이다.

Posted by 민용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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풋풋한 아이들로 가득한 어느 교실의 풍경, 하나 같이 손에 우유를 들고 마시는 아이들에게서 활기가 넘친다. 하지만 시끄러운 소음으로 가득한 교실의 풍경은 어딘가 비정상적인 기질로 가득하다. 교탁 앞에서, 그리고 교실을 한 바퀴 도는, 아마도 담임선생님처럼 보이는 한 여인의 말이 학생들을 향하고 있음에도 마치 독백처럼 들리는, 그녀의 말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교실 속 아이들의 무관심한 소음은 그 자체만으로도 묘한 충격을 야기시킨다. 그러나 그녀의 한 마디가 아이들을 압도하기 시작한다. “내 딸을 죽인 사람은 우리 반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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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에서

도화지 2011. 3. 30. 18:58

4시 반 시사회를 보기 위해 회사 앞에서 왕십리로 가는 버스를 탔었다. 몇 정거장 즈음 지나니 중학생 정도 되는 애들이 선생님 인솔 하에 우르르 버스에 올랐다. 한 아이가 빈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옆에 앉아 있던 아주머니가 가방에 밀렸다. 아이에게 한 마디가 넘어왔다. "사람이 있는데 그렇게 마구 앉으면 어떡하니?" 무례하지 않았다. 하지만 아이는 무례하게 받아쳤다. "아, 이 인간 뭐야. 짜증나게." 그리고는 벌떡 일어나 더욱 깊숙한 뒷 빈 자리를 찾아갔다. 아이는 거듭 투덜대고 있었다. 버스를 꽉 채운 아이들은 마냥 시끄러웠다. 문득 <고백>의 오프닝 시퀀스가 떠올랐다. 통제하기 쉽지 않은 미성숙함의 아수라장. 요즘 어린 애들은 예의가 없다는 클리셰 같은 말이 떠오르는 꼰대스러움. 잠시 어지러운 생각이 뒤엉켜 버스 안을 뒹굴다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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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민용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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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벽적인 화이트 칼라가 지배하는 정돈된 식탁과 책상 위로 시선이 미끄러져 나간다. 그리고 그 공간만큼이나 단정하게 머리를 빗어 넘긴 남자가 시야로 들어온다. 그의 눈빛은 때때로 공허하다. 그 남자의 시선에 놓인 초점이 종종 현재가 아닌 과거로 맞춰진 탓이다. 유년시절의 한 페이지가 투명한 창 너머의 광경 기억 너머에서부터 소환된다. 그리고 그 기억은 15세 시절의 열병과 함께 찾아온 기이한 러브스토리에서 출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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