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비메탈의 하위장르 중 하나인 데쓰메탈은 죽음과 악마 숭상의 뉘앙스를 연출하는 가사와 퍼포먼스라는 외부적 형태가 특성으로 정착된 장르다. 흉악한 가사와 극악한 무대 매너를 통해 광적인 팬덤을 형성한 세기말적인 장르는 그 폭력성을 방출하는 의식적 행위를 통해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발생시킨다. 메탈 음악이 메인스트림을 석권한 핀란드나 동유럽의 국가 중 실질적으로 죽음을 추앙하는 데쓰메탈 그룹이 존재한다고 하나 실질적으로 뮤지션 대부분은 무대와 일상이 분리된 이중적 삶을 살아가는 경우가 태반이다. <디트로이트 메탈시티>(이하, <DMC>)는 그런 현실성에 착안한 설정을 허구적 캐릭터와 스토리로 발전시킨 작품이다. 특히 장르적 구별 없이 음악산업의 인프라가 전방위적으로 구축된 일본의 상황을 염두에 둔다면 일본에서 이를 소재로 둔 만화가 등장했다는 것도 딱히 놀랍지 않다.
스웨디쉬 팝(Swedish pop)과 같은, 자칭 스위트 팝 가수를 꿈꾸는 네기시 소이치(마츠야마 켄이치)는 청운의 꿈을 품고 상경한 도쿄에서 가수가 되기 위해 기획사를 찾아간다. 그러나 스위트 팝이 아닌 데쓰메탈 밴드 ‘디트로이트 메탈시티(DMC)’에서 극렬한 퍼포먼스를 펼치며 악명을 떨치는 ‘크라우저 2세’로 활동하며 신분을 속이며 살아간다. 지극히 소심하고 내성적인 네기시 소이치가 짙은 분장으로 제 얼굴을 감추고 무대에 올라 크라우저 2세로서 과감한 퍼포먼스를 펼쳐낸다는 설정은 욕망과 현실이 괴리된 캐릭터의 부조리를 유머로 치환한다. 특히 와카스키 키미노리의 동명 원작만화의 에피소드를 충실히 영화적 상황으로 반영한 <DMC>는 유치하듯 쾌활하고 황당하듯 기발하다. 물론 때때로 지나치게 진지한 척을 하며 간지러운 페이소스를 주입하는 광경이 발견되기도 하나 전반적으로 엉뚱하게 전개되는 상황의 위트가 독창적인 매력분포도를 이룬다.
가장 눈에 띄는 건 마츠야마 켄이치다. <데스노트>영화판에서도 L을 연기했던 전력이 있는 마츠야마 켄이치는 <DMC>에서도 소심한 네기시 소이치와 과격한 크라우저 2세를 오가며 만화캐릭터 전문배우라 불려도 좋을 정도로 탁월하게 캐릭터를 소화했다. 만화적인 독창성을 훼손하지 않는 동시에 영화적 사실감을 만족시킨다. 자칫 잘못하면 코스프레 수준의 유치함으로 몰락하기 좋은 캐릭터를 영화적 형태로 구현한다. 결국 <DMC>의 특이성을 보장하는 캐릭터가 성공적인 표현력을 갖춘 덕분에 영화적 설정 역시 힘을 얻는다. 또한 영화는 원작의 주요한 에피소드를 영화화에 고스란히 활용하고 있으면서도 독자적인 서사의 변주를 통해 영화적 가능성을 그려나간다.
물론 <DMC>는 유치한 슬랩스틱 개그처럼 가볍고 산만한 웃음을 주는 영화다. 여기서 가볍고 산만한 웃음은 깊이에 대한 지적이라기 보단 방식을 설명하기 위해 동원된 수사다. 대단한 교훈에 도달하거나 걸출한 각본으로 승부하는 영화라기보단 재기발랄한 캐릭터와 황당한 소동극으로 무장한 개그콘서트나 다름없다. 원작과 달리 과하게 변주된 드라마가 종종 간지럽지만. 흉폭한 가사의 노래를 부르며 과격한 퍼포먼스를 구사하는 크라우저 2세와 순진하지만 소심한 우엉남 네기시 소이치 사이를 오가는 에피소드는 효과적인 웃음을 제공한다. 단편적인 에피소드로 나열되는 원작과 달리 서사적 형태의 드라마로 변주된 영화는 매니악한 소재를 보편적인 드라마로 엮어낸 원작만큼이나 즐겁다. 취향의 제한이 엄격하지 않다면 음악영화로서의 묘미도 만끽할 가능성이 크다.
일단 ‘젤리클 고양이’를 알고 있다면 당신은 뮤지컬 <캣츠>를 아는 사람이라고 볼 수도 있겠군요. 물론 T.S.엘리엇의 ‘지혜로운 고양이가 되기 위한 지침서(Old possum’s book of practical cats)’를 읽었기 때문이야! 라고 반박할 수 있다는 점에 유의해야겠죠. 하지만 이미 원작보다 유명해져 버린 뮤지컬을 먼저 염두에 둔다는 게 그리 어리석은 일은 아니겠죠?
사실 (인터미션 20분을 제한) 2시간 20분의 공연을 관람하고 나온다고 해도 저 물음표는 사라지지 않아요. 젤리클 고양이를 아냐고 객석에 물음을 던지던 고양이들은 공연 내내 젤리클 고양이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한번도 대답하지 않으니까요. 하지만 젤리클 고양이가 어떤 고양이인지에 대한 고민 따위는 금새 사라질 겁니다. 그리고 다른 건 몰라도 고양이란 동물에 대한 호감 정도는 생길 수 있을 거에요. 중요한 건 사실 젤리클 고양이가 뭘까, 라는 고민 따윈 중요하지도 않다는 거죠. 공연을 보고 나서 저 물음표에 연연하지 않게 되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어쩌면 젤리클 고양이에 대해서 되묻는다는 건 내 이름의 연원을 캐묻는 것처럼 부질없는 일일 거에요. 젤리클 고양이는 말 그대로 ‘젤리클 고양이’일 뿐이라고요. 바로 당신이 2시간 20분 동안 주목하는 무대 위의 고양이들 말이죠.
젤리클 고양이들은 하나같이 고양이의 모든 것을 몸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알다시피 물론 그들은 고양이가 아니에요. 엄연히 사람이죠. 그걸 당신이 알고 있다는 점이 <캣츠>의 묘미입니다. 고양이 분장을 하고, 꼬리를 달고, 고양이의 네발처럼 무릎과 팔로 바닥을 기어 다니다가 고양이처럼 눈을 비비거나 고개를 갸웃하기도 하죠. 그 모습은 실로 고양이처럼 앙증맞거나 도도하고 우아해서 놀라울 지경이에요. 그들은 철저하게 고양이처럼 굽니다. 게다가 그들은 종종 무대에서 뛰쳐내려와 객석 사이를 활보하곤 합니다. 공연이 시작할 때쯤, 무대 위로 슬금슬금 모여들던 고양이들에 집중하다 어느 순간 옆에서 불쑥 튀어나오는 고양이를 발견하고 깜짝 놀라게 될지 몰라요. 그들은 무대 뒤에서 튀어나오거나 무대 위에서 객석으로 뛰어내려와 당신을 바라보며 노래하기도 하죠. 만약 당신이 운좋은 관객이라면 자신을 선택한 고양이와 객석을 거닐게 되는 영광(!)도 누릴 수 있을 거에요. 물론 본인에게 모든 관객의 시선이 모이는 것쯤은 감안해야죠. 하지만 그 눈길에 어떤 부러움이 섞여있다는 점을 염두에 둔다면 그건 결코 나쁜 경험이 아니겠죠? 무엇보다도 최고의 팬서비스는 <캣츠>의 백미라 할 수 있는 오리지널 넘버, ‘Memory’의 한 소절을 한국어로 부르기도 한다는 점이죠. 가히 감동적이에요.
현대무용에 기초한 군무와 독무는 절제된 세련미와 함께 화려한 동선을 자랑합니다. 호사스러운 볼거리임에 틀림없죠. <캣츠>는 연극적인 이야기 흐름보다는 화려한 안무와 흥겹거나 구슬픈 음악을 통해 뮤지컬의 묘미를 철저하게 증명하는 작품이에요. 사실 중심인물의 교체와 함께 단막적인 형식으로 치고 빠지는 <캣츠>의 내러티브 구조는 관객에게 친절한 것은 아닙니다. 이야기의 흐름을 따라가는 동시에 몰입도가 상승하는 관객이라면 이 뮤지컬에 집중하기 힘들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어요. 하지만 <캣츠>는 결코 허술한 뮤지컬이 아니에요. 앞에서 언급한 것과 연관이 있지만 <캣츠>의 이야기 구조가 에피소드 형식으로 나열되는 건 이유가 있어요. <캣츠>가 T.S.엘리엇의 시집에서 모티브를 얻었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시집을 하나의 뮤지컬 형태로 완성함에 있어서 <캣츠>는 그 개별적 장르의 특성을 이야기 구조에 반영하는 결과물이라 할 수 있으니까요. 동시에 그것이 무대 위를 가득 채운 스물아홉 마리 고양이들의 사연을 다채롭게 전달할 수 있는 현명한 방식이기도 합니다.
무대 위를 누비는 고양이들은 하나같이 매력적이고 개성이 넘쳐요. 당신이 평소에 고양이를 혐오하는 사람이라면 그 취향을 다시 한번 재고해보고 싶을 거에요. 게다가 그들의 사연은 하나같이 인간과 다를 바가 없어요. 그들은 각각 무대 앞에 서서 관객들을 향해 자신들의 사연을 노래하곤 하죠. 그들은 다양한 직업에 종사하고 있고, 저마다 제 성격을 지니고 살아가고 있어요. 그 와중에 갈등과 충돌도 발생하지만 사랑과 우정을 나누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들이 펼치는 대장정의 궁극적인 주제는 고양이를 존중해달라는 정중한 부탁이에요. 이렇게 매력적인 고양이가 존중 받을만하지 않나요? 라고 스스럼없이 묻는 그들은 사랑받을 자격이 충분한 낭만고양이임에 틀림없어요. 냉정해 보이지만 사실은 온화하며, 사나워 보이지만 실제로는 앙증맞은, 그런 고양이라고요. 뮤지컬 <캣츠>는 당신에게 지혜로운 고양이를 만나기 위한 안내서가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평소 고양이 울음소리가 재수없다, 라는 편견을 지닌 당신이라면 한번쯤 그들을 만나볼 필요가 있어요. 적어도 이 젤리클 고양이들은 고양이가 얼마나 매력적인 동물인지 당신에게 새삼스럽게 각인시켜줄 만한 지혜로운 고양이임에 틀림없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