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피드 스케이팅 중계에서 제갈성렬의 해설 방식 때문에 적잖이 논란이 있는데, 개인적인 의견을 하나 던지자면 딱히 그 해설 방식이 좋은 편은 아니라고 본다. 해설자가 아니라 왠 응원단장이 중계석에 앉아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느낌이고, 때때로 응원을 강요하는 태도가 즐겁지 않다. 그 방식을 재미있게 관람하는 사람이 있건 없건, 말 그대로 해설이라는 전문성 안에서 뚜렷한 제스처를 보여주지 못한다면 해설자가 있을 필요가 무언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어느 집 안방에 앉아서 시청할 누군가와 다를 바 없는 소리를 한다면 딱히 해설자가 필요하지도 않겠더라. 어쨌든 소리를 지르고, 흥분하는 건 이해하겠는데, 그 놈의 ‘잘 하고 있어요’레퍼토리 말고 ‘뭘 잘 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말해야 하지 않겠나. 이런 식이라면 누구라도 목소리만 크면 해설하겠다. 해설자마다 저마다의 다양한 개성이 있을 순 있지만 지금 제갈성렬의 문제는 해설을 하지 않고 응원만 하고 있다는 점에 있다. 최소한 자신의 기능적 역할을 충족시킬 수 있고서야 감정적 사족을 덧붙이는 게 옳은 거 아닌가. 다 떠나서 망할 SBS중계부터 짜증나지만.
활강, 도약, 비행, 착지로 이뤄지는 스키점프의 과정은 기승전결의 과정이다. 높은 스키점프 대를 신속하게 미끄러져 내려온 뒤, 하늘로 붕 떠올라 멀리까지 날아가서 사뿐히 내려앉는 스키점프는 그 짧은 과정만으로 드라마틱한 이미지를 연출한다. <국가대표>는 대한민국 스키점프 국가대표의 실화로부터 기승전결의 드라마를 추출하는 영화다. 동계올림픽 불모지나 다름없는 이 땅에서 대한민국 스키점프 국가대표 선수들이 일궈낸 현실을 발판으로 삼아 허구를 도약시킨다.
유년 시절 미국으로 입양된 밥(하정우)은 ‘알파인 스키’미국국가대표 자격을 버리고 어머니를 찾기 위해 고국으로 돌아온다. 방송을 통해서까지 어머니를 수소문하지만 별다른 성과가 없는 밥에게 그의 전력을 아는 방 코치(성동일)가 찾아와 국가대표 스키점프 선수 자리를 제안한다. 그러나 “대한민국이 나를 미국에 삼천만 원에 팔아 넘겼다”고 말하는 밥을 설득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이어지는 방 코치의 답변이 정곡을 찌른다. “너도 이용하라고, 대한민국.”밥의 마음이 움직인다. 비로소대한민국 스키점프 국가대표 선수단이 위용(?)을 갖추기 시작한다.
밥과 함께 대한민국 스키점프 국가대표를 구성하게 되는 나머지 4명의 청년들은 저마다 굴곡이 깊은 사연을 품고 있다. 학창시절, 도 대표 알파인 스키 선수로 활약하며 메달을 목에 걸기도 했지만 약물복용사실이 발각되어 수상 자격을 박탈당한 흥철(김동욱)과고깃집을 운영하는 아버지의 권위에서억눌리듯 살아가지만흥철의 팀 동료로서그와 함께 메달을 박탈당했던 알파인 스키 선수 출신재복(최재환)이 선수단에 참여한다. 그리고나이든 할머니와 정신지체 증상이 있는 동생 봉구(이재응)를 돌보며 힘겹게 살아가지만 입영 날짜를받아들고 고민하는청년 가장 칠구(김지석)가 선수단에합류한다. 청년들은 저마다의 목적을 두고 방 코치의 제안을 수락하게 된다. 자신을 버린 어머니를 찾기 위해서, 군대를 면제받고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서, 아버지의 억압에서 벗어나 자신의 욕망에 솔직해지기 위해서,심지어 한 눈에 반한 여자의 이목을 끌기 위해서, 국가대표를 허락(?)한다.
스키점프 불모지나 다름없는 대한민국에서 스키점프 국가대표로 발탁된 5명의 선수들은 세계와 맞서기 전에 열악한 국내 실정 안에서 고군분투한다. 동계올림픽 유치를 노리는 무주의 스키점프 시설 공사장 주변에서 먼지를 마시며 러닝을 하거나 폐쇄된 놀이공원 후룸라이드를 스키점프대로 직접 개조하면서 연습을 거듭하는 모습은 그 이미지 자체만으로 고생스럽다.오합지졸이나 다름없는멤버들의팀워크를 다져나가는 과정에서 개개인 간의 갈등이 도출되고 내분이 발생하며, 심지어외부에서 돌출된 알력으로 선수단이 와해될 위기를 연출하기까지 하는 국가대표단의 상황은 오리무중의 연속이라 구차하기 짝이 없다.
지나치게 쉽게 진전된다는 인상을 부여하는서사 속에서 헐거운 이음새를 종종 노출하곤 하는 <국가대표>가 뛰어난 이야기적 자질을 지니고 있다고 말하긴 어렵다. 선수들의 개별적인 사연들은 지극히 상투적인 드라마의 개연성 위에 각자 자리를 잡은 채 계산적으로 미끄러져 내려간다. 저마다 착지하고자 하는 감정적 목표가 확실한 영화 속 사연들은 때때로 개연성을 보장할만한 경사각을 구축하지 못한 채 무리수를 두고 단독질주를 감행하며 각기 미끄러져 내려가는 탓에 전체적인 호흡을 어지럽힌다.결국 개연성을 확보하지 못한 사연들이 각자 내달리는 탓에 각자의 사연이 저마다의 지점에서 선전하지만 궁극적으로 총합적인 이야기의 스코어를 깎아먹는다. 그럼에도 그 스토리를 즐길 수 있게 만드는 건 상투적인 예감에 미묘한 오차범위적 효과를 발생시키는 유머의 순발력과 실화라는 원천적 동력이다. 지극히 계산적인 진지함을 연출하곤 하는 사연을 유연하게 중화시키는 입담이 구사되고 심각한 위기 속에서도 여유를 끼워 넣는 배반적 설정이 상투성을 둘러싼 사건을 순발력 있게 대체한다.
가장 확실한 밑천은 실화다. 실화를 밑그림으로 허구를 덧칠함으로써 가산점을 획득하고 감점을 얻었지만 사실상 현실이라는 원색이 환기되는 결말부에 다다라 그 모든 스코어는 무의미해진다. 비인기종목의 서러움과 지정학적 편견, 열악한 제반 조건을 이겨내고 올림픽 무대에서 괄목할만한 성적을 낸 선수들의 땀과 눈물을 압축하는 이미지와 텍스트의 절대적 질량이 현실적 기반 위로 부피를 확보한 드라마의 허구보다도 효과적인 페이소스를 발생시킨다. 대한민국이라는 열악한 현실 자체가 품고 있는 페이소스의 자질이 스포츠 영화로서의 쾌감에 정당한 상승을 부여하며 허구에 가속력을 부여한다. 특히 <국가대표>는 스포츠 영화로서 앞선 어떤 전례보다도 탁월한 이미지를 선사한다.
후반부에 등장하는 스키점프 신은 앞서 덜컹거리던 드라마의 단점을 잊게 만들 만큼 압권의 쾌감을 선사하고 성기게 진전되는 허구 속에서도 서서히 숙성되던 마이너리티적 감수성을 일거에 폭발시킨다. 마치 스크린을 통해 스키점프 경기를 단체관람하고 있다는 착각을 부를 정도로 생생하게 묘사되는 스키점프 신은 직선으로 내리 뻗은 스키점프 대를 타고 내리는 활강의 속도감과 도약의 쾌감, 그리고 비행의 체공감과 착지의 성취감을 고스란히 이미지로 구현한다. 스키점프 신의 이미지는 그 자체만으로 감정적 오르내림을 선사하는 기승전결의 압축적 이미지나 다름없다. 무엇보다도 캐릭터들의 고군분투를 정당하게 보상하는 신이란 점에서도 매끄러운 인과 관계가 발견된다. 서사와 묘사의 연동이 매끄럽다.
실화라는 질량을 유지한 채 허구의 부피를 늘려나가고 그 가운데 느슨해지는 드라마의 밀도가 발견되지만 궁극적으로 절대적인 질량을 보존하는 실화의 묵직함이 영화적 감수성을 보완한다. 엄밀히 말하자면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이 그랬듯, <킹콩을 들다>가 그것을 복기했듯, <국가대표> 역시 실화에 밑진 영화다. 유머가 적절히 곁들어진 신파를 2시간이 넘는 러닝타임에 나열해도 궁극적으로 현실을 대변하는 자막 한 줄의 위력에 닿지 못한다. 여전히 대한민국 스키점프 국가대표가 5명 밖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현실을 환기시키는 엔딩의 한 줄 자막이 <국가대표>가 부지한 2시간 여의 러닝타임보다도 위력적인 울림을 전한다. 헝그리 복서에 대한 기억이 낡았을 뿐, 대한민국은 여전히 촌스러운 마이너리티의 신파가 산재하는 세상이다. 경제적 지표를 자랑스럽게 전시하면서도 먹고 사는 문제에 촌스럽게 매달리는 대한민국은 여전히 스포츠 루저들을 양산하고 영화는 이를 착취한다. 그런 점에서 스포츠 루저들을 ‘자랑스럽고 무궁한 영광’에 도매금처럼 팔아먹지 않는 <국가대표>는 어느 정도 정치적으로 공정한 스포츠 신파라 인정할만하다.
피겨스케이팅은 대한민국에서 미지의 영토다. 대한민국 국민 대다수에게 동계올림픽이란 쇼트트랙에서 금메달이 몇 개 확보되는가가 중요한 관심사였다. 김연아는 2010년 밴쿠버 동계올림픽의 강력한 금메달 후보로 떠오르고 있다. 우리 생각이 아니다. 취재경력만 21년째이신 미국 체육기자계의 달인, ‘시카고 트리뷴’의 필립 허쉬 선생의 말씀이다. 2010년 동계올림픽이 한국인에게 관심을 끌 만한 이유가 하나 늘었다.
연아 서곡
피겨스케이팅은 얼음 위에서 하는 발레다. 손끝 하나까지도 우아하게 나빌레라. 그러나 청중의 박수로 보답되는 낭만적인 공연예술이 아니다. 심사위원들이 점수를 매기고 합산해서 평균을 내고 발표한다. 살얼음판이다. 넘어질 때마다 감점이 따른다. 완벽한 연기를 펼쳐야 다시 무대에 오를 가능성이 높아진다. 지난 10월 23일부터 27일까지, 미국 워싱턴주 에버렛에서 열린 2008~2009 1차 그랑프리 ‘스케이트 아메리카’에서 김연아는 우승을 차지했다. 2위와의 점수차는 무려 20점이 넘었다. 그럼에도 김연아는 경기가 끝나고 말했다. “냉정하게 말해서 플레이가 완벽한 건 아니었다.”우승을 차지해도 실수는 마음에 걸린다. 완벽한 연기야말로 궁극의 목표다.
대부분의 점프는 점프 직전, 전진방향에서 등(Backward)을 돌리고 이뤄진다. 점프와 회전을 마친 후, 착지할 때도 같은 상태에서 착지한다. 악셀(Axel)점프만이 전진하는 정면(Forward)을 향한 상태에서 곧바로 이뤄진다. 착지는 다른 점프와 마찬가지다. 등 방향으로 뒤돌아 착지한다. 덕분에 일반적인 점프보다 0.5회전이 많다. 트리플 악셀(Triple Axel)은 3.5회전이다. 가장 많은 회전이 이뤄지는 점프다. 성공하면 8.2점을 얻는다. 트리플 악셀이 궁극의 기술이라 불리는 건 이 때문이다. 김연아와 동갑내기인 아사다 마오는 트리플 악셀을 구사한다. 반면 김연아는 트리플 악셀을 구사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김연아는 아사다 마오에게 뒤지지 않는다. 궁극의 기술은 없지만 김연아에겐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김연아의 비상
최근 몇 년 사이 아사다 마오는 고민을 얻었다. 점프 후 넘어지거나 휘청거리지 않아도 감점을 얻었다. 그녀의 버릇 때문이다. 어느 발을 사용하는가, 어느 방향으로 뛰는가, 스케이트 날의 양 엣지(edge)가 어느 방향으로 기울어지는가에 따라 점프는 구분된다. 점프는 총 여섯 가지로 나뉜다. 그 중, 아사다 마오를 괴롭히는 건 플립(Flip)점프와 럿츠(Lutz)점프다. 그녀를 괴롭히는 건 세 번째 항목이다. 엣지의 방향이 매번 지적 대상이다.
플립 점프와 럿츠 점프는 유사하다. 점프 직전 등을 돌아 왼발을 축으로 후진하며 밀고 나가는 동시에 오른발의 스케이트 앞날, 토(Toe)를 디딤돌로 튕기며 도약한다. 두 점프를 구별하는 건 점프 직전 축이 되는 왼발 스케이트 날의 엣지 방향이다. 점프 직전 왼발 스케이트 날이 안쪽(인사이드 엣지, Inside edge)으로 기울었느냐, 바깥쪽(아웃사이드 엣지, Outside edge)으로 기울었느냐에 따라 점프가 구분된다. 플립 점프는 인사이드 엣지다. 럿츠 점프는 아웃사이드 엣지다. 아사다 마오는 인사이드 엣지로 두 점프를 모두 소화한다. 그래서 아사다 마오의 럿츠는 ‘플럿츠(Flutz)’라고 불린다. 럿츠 같은 플립 점프인 셈이다. 일종의 눈속임이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사이 국제빙상연맹(ISU)는 점프의 채점기준을 강화했다. 플립 점프와 럿츠 점프에 있어서 엣지 사용을 엄격하게 채점한다. 아사다 마오의 채점표엔 ‘e(Wrong edge)’라는 표시가 발견된다. 표시가 쌓일수록 상위권도 멀어진다.
김연아의 또 다른 라이벌 일본의 안도 미키 역시 점프로 고역을 겪고 있다. 그녀의 경우는 반대다. 아웃사이드 엣지로 플립 점프를 뛰어버린다. 아사다 마오처럼 그녀 역시 감점대상이다. 그래서 그녀는 플립 점프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을 거듭했다. 세 살 버릇은 여든 간다. 유년 시절부터 몸에 밴 습관이 단기간에 고쳐질 리 만무하다. 되려 양화가 악화를 구축했다. 플립 점프 성공률이 절반으로 떨어졌다. 럿츠 점프까지 불안해졌다. 점프를 할 때마다 신경이 곤두섰다. 경기 운영이 그만큼 어려워졌다. 2007~2008 6차 그랑프리에서 안도 미키는 세 번이나 빙판 위에서 미끄러졌다. 안도 미키는 최종 결승전이라 할 수 있는 파이널 그랑프리에 진출하지 못했다. 무대 뒤에서 눈물을 흘렸다.
아사다 마오는 자신의 스타일을 고수하고 경기 운영력을 높이기로 했다. 아사다 마오가 럿츠 점프를 시도할 때마다 1점이 감해진다. 반대로 김연아는 1점이 가산된다. 점프할 때마다 2점 차가 벌어진다. 하지만 아사다 마오에겐 트리플 악셀이 있다. 정확히 세 바퀴 반을 회전하고 깔끔하게 착지하면 8.2점의 고득점을 올릴 수 있다. 아사다 마오의 트리플 악셀이 100%의 성공률을 자랑하는 건 아니다. 실패하면 되려 감점을 얻는다. 정확히 3.5회전을 돌지 못한다면 시도하지 않는 게 낫다. 성공하지 못하면 오히려 낭패다. 트리플 악셀은 0.5회전만큼의 하중과 탄력도 요구된다. 신체적 무리가 따른다. 완벽한 성공을 보장할 수 없는 궁극의 기술이 악재로 돌변할 수 있다. 이탈리아 토리노에서 개최된 2007 그랑프리 파이널에서 아사다 마오는 트리플 악셀을 시도하지 않았다. 아사다 마오는 2위에 머물렀다. 1위는 김연아였다. 김연아는 아사다 마오를 5.24점차로 따돌렸다. 아사다 마오가 트리플 악셀에 성공해 8.2점을 얻었다면 그녀가 1위를 차지했을지도 모른다. 어디까지나 성공했다면 말이다. 5.24점은 현재 김연아와 아사다 마오의 숙명적인 차이다.
미스 뷰티풀
김연아의 점프는 명품점프라고 불린다. 국제빙상연맹(ISU)이 플립 점프와 럿츠 점프를 엄격히 구분해 채점하기 시작한 건 불과 지난 시즌부터였다. 이 엄격한 채점의 덫을 유유히 빠져나갈 수 있는 선수는 교과서적인 점프를 뛴다는 김연아뿐이다. 게다가 김연아의 점프는 높고 멀리 나아간다. 대부분의 선수들은 점프 직전 주행 속도를 줄이지만 김연아는 가속을 유지한 채 점프한다. 다른 선수보다 체공시간이 긴 만큼 회전이 선명하고 시원하게 비행한다. 트리플 컴비네이션 점프(트리플 플립+트리플 토룹)가 정확한 트리플 럿츠와 함께 김연아의 전매특허로 손꼽힌다. 우아하게 미끄러지는 이나바우어(Ina Bauer)와 연결되는 더블 악셀 역시 높게 평가된다. 최근 심사경향이 대부분의 기술요소들을 세부적으로 평가한다는 점은 모든 기술을 고급으로 구사하는 김연아를 유리하게 이끈다. 최근 ‘스케이트 아메리카’에서 김연아는 쇼트 프로그램과 프리 스케이팅 모두 컴비네이션 점프에서 가산점을 얻었다. 고득점의 기반이 됐다.
엄격한 채점 경향에 따라 김연아의 탄탄한 기본기가 빛을 보는 만큼 전체적인 경기 운영도 수월해졌다. 최근 ‘스케이트 아메리카’에서 우승한 김연아는 보다 성숙한 연기를 선보였다. 집중력이 높아졌다. 스파이럴 시퀀스(Spiral Squence)와 스텝에서 예년보다 발전된 기량을 선보였다. 스파이럴 시퀀스는 한쪽 발을 빙판에 대고 반대편 발을 엉덩이보다 높게 든 상태로 3초 이상을 유지하며 미끄러져 나가는 자세다. 김연아는 종종 자신의 스파이럴 시퀀스가 만족스럽지 않다고 했다. 단점을 극복해나가고 있다. 표현력이 한층 성숙해진 것도 관건이다. 일본방송사의 피겨스케이팅 중계진은 종종 김연아를 요염하다고 말한다. 천진난만하다고 표현되는 아사다 마오에 비해 김연아의 연기는 매혹적이다. 움직임과 시선에 격정이 나타난다. 기술적 완성도와 함께 연기적 표현력이 함께 성장하고 있다. 아사다 마오도 김연아의 연기가 자신보다 한 수위라고 인정했다.
피겨스케이팅의 심사결과는 기술점수(TES)와 구성점수(PCS)의 합산으로 이뤄진다. 기술점수란 말 그대로 점프와 스핀, 스텝과 같은 기술요소들을 평가한 결과다. 구성점수란 그 외의 요소들, 풋워크와 무브먼트를 통한 동작의 연결이나 안무의 구성, 음악적 표현력, 퍼포먼스와 스케이팅 능력 등을 평가한 결과다. 구성점수는 예술적 자질을 평가하는 점수라고 봐도 무방하다. 음악에 맞춰 안무가 구성되고 화장과 의상의 컨셉이 정해진다. 피겨스케이팅은 예술적 감상을 부르는 스포츠다. 기술의 구사만큼이나 연기적 몰입도 중요하다. 다양한 기술은 안무와 자연스럽게 어울려야 한다. 스핀을 잘 돌고, 점프를 잘 뛰는 것만이 관건이 아니다. 피겨스케이팅은 종합예술의 요소를 차용한 스포츠다. 음악이 흐르고, 그에 어울리는 안무가 펼쳐진다. 박자에 어울리는 스텝과 스케이팅이 이어지고 규정에 따른 점프와 스핀이 구사된다. 기술적 자질만큼이나 예술적 감각이 중시된다.
시련의 무도
김연아는 7살에 처음 스케이트를 신었다. 그 뒤로 어머니는 차츰 딸의 재능을 눈여겨보게 됐다. 김연아가 스케이트를 처음 탄 7살 시절부터 세계적인 피겨 선수가 된 지금까지 그녀의 곁엔 항상 어머니가 있었다. 김연아가 가는 곳엔 언제나 그녀의 어머니가 대동한다. 한국의 어머니들은 자식을 위해 치맛바람을 불사한다지만 김연아의 어머니는 맥락이 다르다. 한국 어머니들의 치맛바람은 자식을 안정된 길에 안착시키기 위한 노스텔지어다. 입시지옥의 첨탑에서 자식이 우뚝 서길 기원한다. 한국은 피겨스케이트 불모지나 다름없다. 딸을 피겨 선수로 키우는 어머니의 심정을 이해하기란 어렵다. 재능을 능력으로 정착시키는 건 어려운 일이다. 좋은 환경 속에서도 장담하기 힘든 일이다. 엄밀히 말해서 피겨스케이트는 한국에서 비인기종목이다. 가시밭길로 나서는 길이다.
김연아의 재능은 유년시절부터 빛을 발했다. 온갖 국내대회에서 곧잘 우승을 차지하곤 했다. 13살 주니어 자격을 얻기 전부터 그녀는 이미 준비돼 있었다. 잘못된 장비는 선수의 부상을 야기시킨다. 전문적인 장비를 요하는 스포츠엔 그만큼의 지출이 따른다. 김연아를 괴롭히는 고질적인 고관절 부상과 발목 부상은 한때 제대로 된 스케이트화를 신지 못한 과거에서 비롯된 사안이다. 특히 열악한 국내환경에서 세계적인 선수를 키우기란 어려운 미션이다. 해외 전지훈련의 필요성이 요구된다. 지출만큼 수입이 발생하지도 않는다. 김연아는 한때 아버지의 사업이 어려움에 직면해 피겨 선수의 꿈을 접을 뻔했다. 세계 정상급 선수가 된 지금, 비로소 기업의 후원을 얻었다. 김연아는 내년에 고등학교를 졸업한다. 10여 개 대학에서 김연아에게 러브콜을 보냈다. 캐나다 토론토에서 훈련 중인 김연아와의 화상면접을 위해 학칙까지 개정한 고려대에 영광이 돌아갔다. 김연아는 체육특기생 자격으로 고려대 진학을 결정했다. 고려대 아이스링크를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안도 미키와 아사다 마오의 모교인 츄코대엔 그녀들의 전용 링크가 있다. 이들은 하루 5시간씩 홀로 링크를 사용하며 세계대회를 준비한다. 아사다 마오와 안도 미키의 훈련 시간이 겹치는 것을 고려해 3억 엔을 들여 새로운 서브 링크를 공사하기도 했다.
일본은 전통적인 피겨 강국이다. 그에 반해 세계대회에서 입상한 한국 피겨 선수는 김연아가 유일하다. 피겨스케이트 불모지 한국에서 김연아는 이례적이다. 그만큼 전무한 관심을 누린다. 김연아는 신체조건이 탁월하다. 유연성이 뛰어나고 기술을 익히는 속도가 빠르다. 길고 가는 팔다리가 섬세하다. 김연아가 국내 피겨스케이트 씬의 척박함을 딛고 세계적으로 도약할 수 있었던 건 어쩌면 온전히 김연아 개인의 자질이 뛰어났기 때문이다. 김연아는 홀로 유일하다. 한국 피겨스케이트의 입지가 큰 도약을 이뤘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한국 피겨스케이트 씬은 아직 이룬 것이 없다. 김연아의 활약은 한국에서 피겨스케이트 선수를 꿈꾸는 이들에게 일종의 희망과도 같다. 넉넉하게 연습할 아이스 링크가 없는 국내 피겨 선수들은 일반인들이 없는 밤늦은 시간에 링크를 대관해 잠을 아껴서 연습하곤 한다. 환경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피겨스케이트가 주목 받는 건 오로지 김연아가 무대에 있을 때에 국한된다. 세계 최고의 자리에 스스로 오른 이에게 일말의 혜택이 주어진다. 맨손으로 절벽을 기어올라야 한다. 피겨스케이팅 전용 아이스 링크가 넉넉한 토론토에서 전지훈련을 하던 김연아는 밤늦은 시간에 훈련을 하지 않아서 좋다고 했다.
김연아의 탱고
이목을 집중시킬만한 스타가 등장할 때 씬은 활기를 띤다. 만약 국제무대에서 선전하게 되면 가치는 천정부지로 솟아오른다. 영국 프리미어리그에 진출한 박지성에겐 보이지 않는 태극마크가 새겨져 있다. 대한민국 국민들은 한국인이 소속된 해외 프로팀에 열렬한 응원을 보낸다. 그들의 활약에 대한민국의 자긍심을 느낀다. 2000년도에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18승을 올린 박찬호는 구국의 영웅이 됐다. 하지만 2001년 허리 부상 이후 부진을 거듭하자 먹튀기 퇴물이라는 비아냥이 쏟아졌다. 심지어 CF찍고 연습 게을리 한 탓이다라는 질책이 쏟아졌다. 2002년 한국에서 개최된 월드컵에서 4강에 오른 대한민국 국가대표팀은 온 국민의 열렬한 사랑을 얻었다. 하지만 올해 베이징올림픽 축구예선에서 탈락한 올림픽대표님은 축구장에 물이나 채우라는 비아냥을 얻었다. 스포츠에서 팬들의 애정은 좌불안석이다. 인기 종목일수록 실력이 반비례하면 쓰나미와 같은 비난이 밀려온다. 꾸준한 실력발휘만이 팬들의 사랑을 독점할 수 있다.
올림픽에서 선전한 핸드볼은 올림픽이 끝나면 다시 잊혀진다. 기억에 남는 건 올림픽 경기 중 핸드볼 대표팀의 선전뿐이다. 기억에 각인되는 선수보단 팀이 남는다. 핸드볼 스타가 없다. 대중들은 핸드볼 대표팀의 경기를 보며 주먹을 불끈 쥐어도 실업팀 경기에 관심이 없다.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을 보며 눈물을 글썽여도 상황은 좀처럼 변하지 않는다. 비주류가 주류로 올라서기 가장 쉬운 법은 스타를 육성하는 것이다. 하지만 스타를 탄생시키기란 쉽지 않다.
이미지 마케팅의 시대다. 세계정상급 실력을 지닌 박태환과 김연아에게 관심이 모이는 건 운동선수로서 보기 드문 외모를 지녔기 때문이다. 안정환이 화장품 모델로 기용된 건 단순히 축구선수로서의 실력과 연동된 문제가 아니다. 박태환과 김연아는 수영과 피겨스케이팅이라는 새로운 분야의 개척자다. 그들에겐 비인기종목의 열악함을 딛고 일어선 감동의 시나리오가 자연적으로 연상된다. 하지만 열악함을 극복한 이의 고단함보단 열악한 씬의 구세주라는 스팽글한 이미지가 아른거린다. 머리를 염색하거나 경기 전 헤드셋을 끼고 음악을 듣는 박태환은 젊고 패기만만한 왕자님이다. 김연아는 쇼맨십에 능하다. 방송카메라 앞에서 크게 긴장하지 않는다. 자기어필에 능하다. 단순히 무대경험이 많은 까닭일지도 모른다. 스타성이 발견된다. 쥬얼리의 ‘One more time’에 맞춰 ET춤을 춘 아이스 쇼 공연이나 원더걸스의 ‘텔미’춤을 선보인 CF 동영상을 검색하던 팬들은 기꺼이 ‘김연아 빵’을 소비했다. 김연아의 미니홈피엔 그녀의 셀프카메라로 가득하다. 자신을 적극적으로 어필한다. 대중들에게 자신의 이미지를 드러내는데 거리낌이 없다. 페이지마다 공주님을 알현하는 댓글이 주렁주렁 달린다. 왕자님과 공주님의 시대다. 하루 세끼 라면 끓여먹고 챔피언 벨트 차던 헝그리 복서는 옛 노래처럼 잊혀졌다.
김연아는 IB스포츠라는 스포츠 매니지먼트 회사와 계약을 맺었다. 박태환도 소속된 회사다. 이제 잘 나가는 운동선수들은 연예인처럼 매니지먼트 관리를 받는다. 이미지에 걸맞게 실속 있는 마케팅이 연동된다. 스포츠는 엔터테인먼트로 육성된다. 최근 SBS는 국제빙상연맹과 국내 스트리밍판권 독점계약을 맺었다. 국제빙상연맹이 주관하는 경기를 합법적으로 보려면 SBS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실상 김연아의 경기를 독점하고자 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실제로 SBS는 온라인 상에서 김연아의 갈라쇼 영상에 대한 저작권을 행사했다. 온라인 상에 유포된 2008 1차 그랑프리 김연아 동영상을 색출해 제거했다. SBS는 자사 홈페이지를 통해 무료로 중계를 제공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팬들은 김연아를 놓고 트래픽 장사를 하고 있다고 항의했다. 정당한 계약을 통해 저작권을 행사한다고 했지만 뻔한 상술이다. 성화가 빗발쳤다.
세헤라자데
김연아는 각광받는 블루칩이다. 떠오르는 컨텐츠다. 스포츠 스타로서의 기능성을 넘어 자본주의의 최전선에서 논의되는 아이템이다. 형태가 고정된 매물이 아니다. 파급력의 가능성은 짐작하기 힘들다. 다양한 소유의 개념이 형성된다. 분야마다 최대한 김연아를 독점하려 한다. 소비의 행태에 따라 김연아를 활용하고자 하는 목표지점이 다르지만 분야마다 최대한 김연아를 독점하려 한다. 시장에서 마찰이 발생했다. 기업은 김연아를 CF에 기용해 이미지를 확보하려 한다. 미디어는 김연아에 관한 말을 생산하며 관심을 끈다. 대다수의 군중은 김연아를 프리미엄급 이미지로 인식한다. 어떤 팬들은 다양한 형식으로 생산된 김연아를 소비하면서도 그 상업적 태도에 반발한다. 김연아가 가는 곳마다 나타나는 승냥이는 김연아의 열혈 팬들을 지칭한다. 이들은 단지 김연아를 승냥이처럼 쫓아다니는 뿐만 아니라 피겨스케이팅에 대한 전문적 지식에 해박하다. 승냥이가 있다면 이리떼도 있다. 이승엽이나 박지성과 같이 큰 인기를 얻은 운동선수들에 관련한 기사들이 포털사이트 전면에 오르면 여지없이 댓글 전쟁이 이뤄진다. 김연아도 예외는 아니다. 인파가 모이는 곳엔 언제나 잡음이 나기 마련이다.
김연아는 좋은 피겨스케이팅 선수다. 김연아가 이룬 성과는 이미 차고 넘친다. 김연아를 칭찬하는데 어떤 이의는 필요치 않다. 김연아가 무대에 오르면 대한민국이 환호한다. 연예인들도 김연아에게 친근감을 표한다. 먼저 친해지고 싶다. 슈퍼주니어의 이특은 김연아가 자신의 일촌신청을 거부했다고 라디오에서 밝혔다. 슈퍼주니어의 팬들이 김연아의 미니홈피를 폭격했다. 뻥이었다. 이특은 뭇매를 맞고 고개를 숙였다. 앙드레김도 김연아를 마중 나갔다. 곧바로 앙드레김을 바라보는 김연아의 표정을 편집해 앙드레김에게 굴욕을 선사한다. 손이 가요. 손이 가. 너도 나도 김연아에게 손이 간다. 무한도전에 출연하기도 하고, 더 스타쇼에 나가서 노래를 부르기도 한다. 본업에 충실하지 못하다. 초심을 잃었다. 힐난이 생겼다. 소비하는 대상이 존재해야 컨텐츠는 유통되기 마련이다. 대중들은 김연아를 보길 바란다. 성공한 선수의 경기도, 사생활도 하나의 소비재일뿐이다. 소비자들이 시끄럽다.
최근 1차 그랑프리에서 처음으로 선보인 ‘죽음의 무도’와 ‘세헤라자데’를 연기하며 김연아는 검은 마스카라로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내년이면 대학에 진학하는 김연아도 성인의 문턱에 다다랐다. 김연아의 미니홈피에선 슈퍼주니어와 동방신기의 음악이 흐른다. 보아를 좋아한다고 했다. 19살 소녀다운 취향이다. 하지만 국민여동생의 유효기간도 얼마 남지 않았다. 피겨 선수는 25세에 이르면 노장으로 분류된다. 김연아는 내년이면 20세가 된다. 김연아의 전성기도 5년 남짓으로 사라질 가능성이 크다. 어쩌면 2010년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정점을 계획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대중들은 스타의 이미지를 추적한다. 김연아에 열광하는 이도, 악플을 다는 이도, 하나같이 자신만의 방식으로 김연아를 소비한다. 김연아의 무대는 오로지 김연아의 것이다. 김연아는 은퇴해도 연예인이 되진 않을 것이라 못박았다. 피겨인으로 남을 것이라 선언했다.
쇼는 관객을 확보해야 이뤄진다. 김연아의 무대도 대중의 관심을 통해 이뤄지는 일종의 쇼다. 하지만 간절함의 주체가 역전된다. 김연아를 원하는 건 대중이다. 오늘날 김연아를 이끌어온 건 빙상연맹도, 팬덤도 아닌 김연아다. 김연아의 상대는 아사다 마오도, 태극마크도, 악플러도 아닌, 자기 자신이었다. 김연아가 있는 곳은 상대를 쓰러뜨리는 링이 아니라 스스로를 세워야 하는 링크다. 김연아는 연기가 끝나면 스스로 고개를 끄덕인다. 그 다음에 관객을 향해 손을 흔든다. 관객은 김연아로부터 발산된 스펙트럼을 관찰하고 제 나름대로 소비한다.
천일야화의 결말을 아는 건 오로지 세헤라자데 밖에 없다. 아무도 모른다. 그 무대에 오르는 것이 대한민국의 미래가 아닌 그냥 김연아라는 것을. 오로지 김연아만이 온전하게 김연아를 안다. 적어도 김연아는 그 무대를 즐기고 있다. 우린 그저 김연아만 바라보고 있다. 그 소중한 우리 연아도 이 시대가 가면 그냥 그렇게 끝날 뿐이라는 것을 아무도 모른다. 대한민국의 빙상의 새로운 역사는 없다. 그저 새로운 김연아만이 그 무대에 있다. 또 다시 굶주린 희망을 쥔 맨손으로 절벽을 올라야 할 뿐이다. 스타가 소멸하면 열악한 씬도 잊혀진다. 언젠가 꿈은 다시 이루어질까. 그건 김연아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