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마더>를 봤다. 같이 보고 온 누나는 기분이 더럽다고 했다. 괜히 봤다고 했다. 궁금한 건 엄마 쪽이었다. 밥을 먹다가 물었다. “엄마는 영화에서 그 엄마가 이해돼?”설거지를 하던 엄마가 고개를 돌리더니 답했다. “그럼 당연하지. 게다가 아들이 좀 모자라잖아. 물론 알고 보니까 아들이 완전히 멍청한 건 아니더라만. 결말이 좀 기분 나쁘게 보이는 사람도 있겠지만 어쩔 수 없지.”약간 벙졌다. 아, 역시 그렇더란 말이냐. 물론 그렇다고 유치하게 그럼 내가 그러면 엄마도 그럴 거야, 따위의 간지러운 대사는 날리지 않았다. 어쨌든 까놓고 말해서 영화를 보고 뭔가 그럴 싸한 소릴 지껄였지만 정작 내가 어미의 심정을 어찌 알겠냐. 자기 배 아파서 낳은 자식 없는 수컷에게 모성이란 일종의 판타지고 영원히 알 수 없는 안드로메다의 정서다. 부성과 모성은 천지간의 차이를 둔 다른 세계관이란 말이지. 엄마들은 그것을 이해하고 있더라. 아, 도저히 알 수 없는 세계다. 과연 <마더>를 만든 봉준호는 알고 만든 거냐.물론 <마더>는 봉준호라는 수컷의 한계도 분명 포함된 세계겠지. 어쨌든 엄마의 답변이 놀라웠다. 영화가 놀라운 게 아니라 그런 어미들의 본능이 놀라웠다. 그니까 그만큼 우리 엄마들이 끔찍한 보호 본능을 짊어진 탓에 자기 삶을 뭉개버리면서 살아가고 있는 거구나, 싶어서 숭고한 심정까지 들더라. 진짜 그렇게 끔찍할 정도로 헌신적인 세계관을 품고 아무렇지 않게 제 새끼 먹일 밥을 지어가며 살고 있는 거다. 밥을 꾸역꾸역 넣고 있는 와중에 이 밥알에 깃든 모성을 씹어 삼키는 기분이 들었다. 누나도 나중에 제 새끼를 낳으면 <마더>가 이해될까. 문득 궁금해졌다.
칸 영화제는 잘 다녀오셨나요? 만만치 않은 일정을 소화하셨을 것 같은데요. 칸에 가서 당일 하루는 쉬고, 그 이튿날 시사하고요. 그 이튿날은 아침부터 밤까지 15분 간 딱딱 끊어서 인터뷰 쭉 했고요. 영화를 보고 어찌나 박수를 쳐주는지, ‘나를 되게 좋아하나 보다’ (웃음) 그런 생각이 들 정도였어요. 그 다음 이튿날에 한국 와서 하루 뒤에 언론시사회 하고, 오늘은 VIP시사회한다고 하는데 내가 이걸 하고 있다는 게 완전히 신기하다 싶을 정도로 계속 하고 있네요.
체력적으로 힘드셨을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건강 관리가 중요할 것 같은데요.
힘들어요. 되게 힘든데, 평소에 건강 관리는 하죠. 운동을 조금씩 해요. 러닝 머신도 하고, 아령 같은 걸로 하는 운동도 하고요. 그렇게 해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웃음) 운동은 하루마다 하는 건 아니고, 종종 할까, 말까, 한 시간쯤 고민하다가 슬슬 걸어가서 한 시간 반쯤 놀다가 쉬다가 그렇게 하고 오죠. (웃음) 그래도 하고 나면 '난 운동했다' 그런 기분 때문에 하지 않은 것보단 훨씬 기분이 좋아져요.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것도 중요할 것 같은데요.
전 무조건 자요.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으면 머리가 터질 것처럼 아파서요. 그냥 무조건 자요. 자지 않으면 펑펑 터질 것 같아요.
나이에 비해 피부도 너무 고우세요. (웃음)
왜 그럴까. 일단 담배피지 마세요. (웃음) 난 이제 담배 끊은 지 12년 째 됐는데요. 그때부터 서서히 좋아지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20일에 한번씩 피부 케어도 받아요. 적어도 한 달은 넘기지 않아요.
봉준호 감독의 전작을 보셨나요?
<살인의 추억>은 봤어요.
어떻게 감상하셨나요?
저는 돌아다니는 걸 싫어하니까 영화를 극장에서 잘 안 봐요. 비디오 테이프로 나온 다음에 보니까 1년 뒤에나 영화를 보게 되는데 뒤늦게 <살인의 추억>을 보면서, ‘우리나라에 저런 불란서 영화 같은 영화가 있네, 멋있다’, 그런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그 즈음에 봉준호 감독과 얘기하게 되고, 정말 좋았죠. 내가 좋아했던 영화의 감독이 저에게 그렇게 해주겠다고 하니.
봉 감독 별명은 아세요? 봉 테일이라고 하는데.
저도 처음 알았어요. 스태프들이 이야기해주더라고요. 본래 봉 테일이라고. 그러니까 그건 디테일하다는 말이잖아요. 정말 빈틈없는 사람이에요. 예를 들어서 하나도 그냥 지나치는 일이 없어요. 이렇게 저기에 무슨 소품 하나라도 빠진 게 (머리를 가리키면서)이리로 느껴지나 봐요. 제가 많은 영화감독들하고 일해보진 않았지만 드라마도 많이 했으니까, 그냥 제 느낌으로 보자면 정말로 막 촉수가 이리저리 다 뻗쳤는데도 그게 산만하지 않게 정확히 제자리로 뻗치는 것처럼 보여서 놀랐어요.
봉준호 감독과 영화를 찍게 된다 하니 주변에 계시는 분들의 반응이 어떻던가요?
김수현 씨가 옛날에 내가 영화 하려고 할 때 “혜자씨, 영화 하지 마. 영화는 드라마와 달라서 심플하지 않은 것 같아”, 그랬는데 이번에는 봉준호 씨가 감독하니까 하면 좋겠다고 하는 거에요. 내가 특별히 누구하고 얘기한 게 없어서 그것밖에 들은 게 없어요.
단편드라마 <여>에 출연했던 김혜자 씨를 보고 봉준호 감독이 <마더>를 구상하게 됐다고 하더라고요.
봉 감독이 어려서부터 TV를 많이 봤더라고요. <전원일기>도 아주 다 꿰고 있어요. 식구들이 TV를 즐겨보는 가족이었대요. 그래서 어렸을 때부터 TV많이 보고, TV에 나오는 배우들에 대해서도 잘 알고. 그리고 그렇게 연극을 많이 보러 다닌다고 해요. 그래서 낯 익히지 않은 새로운 배우가 필요할 때 캐스팅하죠. 좌우간 일에 대해서 열정을 말릴 수 없을 정도로 부지런한 감독인 거 같아요.
봉준호 감독이 본격적으로 김혜자 씨에게 러브콜을 보낸 건 <살인의 추억> 이후부터라고 들었어요. 배우 입장에서는 마치 열렬한 구애를 받는 것처럼 느껴지지 않았을까요.
행복한 일이죠. 정말 촉망 받는 젊은 감독이 저를 갖고 어떤 영화를 기획한다는 말 자체가 배우로서 저를 너무 행복하게 하는 말이었어요. 실현이 되든, 안 되든, 그랬어요. 전 항상, “5년 전에 생각해놓고 중간에 나한테 말한 거 부담 느껴서 자꾸 진행시키려고 무리하지 마라. 난 나한테 말해준 것만으로 고맙다.” 그렇게 몇 번이나 얘기했어요. “너무 시간도 많이 가고, 난 하루가 다르게 늙어간다. 어떻게 내가 20대 아들의 어머니를 할 수 있겠냐.” 그런데 그럴 때마다, “선생님 아니면 전 이 영화 덮어요.” 그러면서, “선생님 보이는 대로 찍을 거에요.” 그렇게 얘기했어요. 사람들은 김혜자 씨가 안 하면 이거 누구 시킬 거냐고 물었다는데, 그거 다 몰라서 하는 소리라고. 김혜자 선생님 때문에 떠오른 생각이고 만약 안 된다면 없었던 걸로 하겠다고 했다네요. 자기가 계획했던 걸 절대로 바꾸지 않더라고요.
보이는 대로 찍겠다는 말처럼 영화에서 적나라하게 얼굴이 클로즈업되곤 하더군요.
영화를 보니까 어떤 때는 너무 나이 들게 나오고, 어떤 때는 너무 젊게 나오고. 그런데 이 영화가 그냥 한 장면에 머물러서 저 여자를 관찰할 틈을 안 주는 영화에요. 그렇죠? 엄마의 나이가 상관이 되지 않는 영화였어요. 그렇기 때문에 봉준호 감독도 별로 개의치 않았던 거 같아요.
자신의 표정을 구상해본 적은 없으셨나요?
거울 보고 그럴 틈은 없었어요. 수시로 감정이 변해야 되는 상황에서 거울보고 연습할 새가 있어야죠. 끝나고 나서 방에 들어와서 아까 한 걸 가만히 생각해보면서 ‘내가 아까 어떻게 했지’ 하고 가끔 본적은 있어요. 자기 전에 세수하고 와서 그걸 해보자고, 거울을 이렇게 보고 그래 봤지만 그건 아무런 도움이 안 됐어요.
김혜자 씨만이 이 영화를 찍을 수 있다는 봉준호 감독의 공언이 영화를 보기 전까진 실감나지 않았지만 영화를 보니까 그 의미를 알겠더군요. 진짜 알았어요? 아이, 좋아라. (웃음)
스크린에 쏟아져 나오는 김혜자 씨의 표정 자체만으로도 영화가 놀라웠어요. 그런데 그런 표정의 가능성을 봉준호 감독이 이미 예감하고 접근했다는 것이 더욱 놀라워졌어요.
저도 무섭다니까요. 얼마나 영리하고 천재적인 사람일까, 어떻게 나한테서 저런 게 나올 거라 예상했을까. 저도 모르게 그런 표정이 나오게 상황을 몰고 가는 거에요. 그게 일부로 거울 보고 연습해서 지어낸 표정이겠어요? 아니지. 난 깜짝 놀랐다니까. 제 눈이 이렇게 돌아가는 걸 보고, ‘어머나!’ 이랬다니까. (웃음) 왜 사람이 환장하면 눈이 돈다 그러잖아요. 진짜 눈이 돌더라니까. 모니터보고, ‘어머나, 진짜 눈이 뒤집히는구나’ 그랬지.
<마더>는 언제 처음 보셨나요.
정식으로 본 건 칸에서였어요. 여기선 떨려서 못 보겠더라고요. 저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TV모니터도 제 방에서 혼자 했거든요. 내가 나오는데 누가 옆에서 한눈 팔고 딴짓하면 다 느껴지잖아요. 이러면 막 짜증나고 신경질 나기 때문에 혼자 문 꾹 닫아놓고 보고 그랬지. 근데 이제 좀 많이 둥그래져서 같이 보긴 하지만 이번에는 같이 못 보겠더라고요. 특히나 기술 시사에선 거의 완성본을 보여준다는데 불 켜고 난 다음에 사람들 표정이 어떨까 무섭고 민망해서 못 봤어요.
<마더>에서 묘사하는 어머니는 일반적인 모성상으로 이해될만한 평범한 어머니가 아니죠. 어쩌면 그 지점이 <마더>에 대한 흥미가 생길만한 계기가 아니었을까 싶은데요.
그런 어머니였기 때문에 하고 싶었어요. 이제 일상적인 어머니를 너무 많이 했잖아요. 물론 <엄마가 뿔났다>같은 경우는 자기를 찾으려고 애쓰는 조금 다른, 아직도 우리나라 사회에선 잘 받아들여지지 않는 깨인 엄마를 연기했잖아요. 그래서 사실 <엄마가 뿔났다>하기 전까진 굉장히 공백 기간이 길었어요. 그 정도로 하고 싶은 작품이 없었기 때문에. 그런데 <마더>도 이런 엄마였기 때문에 한 거죠.
사실 <마더>에 나오는 어머니는 어미라고 표현하는 게 맞을 것 같아요.
짐승 같죠. 애미도 아니고 어미에요. 그 여자가 화장터에서, ‘우리 아들이 안 그랬거든요’ 이러면서 눈이 이렇게 뒤집어지는 걸 모니터로 보고 깜짝 놀랐어요. 아니, 내 눈이 어떻게 저렇게 되냐고. (웃음) 그니까 그건 어미죠. 개나 짐승이 새끼 낳고 낯선 사람이 들어오면 으르르하잖아요. 그런 것과 똑같이 자기 새끼를 해치려고 하는 것에 대한 반응이 거의 짐승 같았어요, 이 엄마는.
이성적인 합리를 먼저 정립하는 것보다도 본능적인 에너지에 대한 필요성을 먼저 자구할만한 캐릭터가 아니었을까요?
그러니까 아마 전 크게 병 날 거에요. 어느 영화보다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 연기였기 때문에. 그런데 정신은 굉장히 맑아졌어요. 육체는 피곤할지 모르지만 정신은 맑아지고, 새로워졌다고 할까요.
뭔가 새로운 기운을 얻었다고 느끼시는 건가요?
땅을 일군다고 하잖아요. 저는 이 영화를 하면서 그 동안에 저한테 딱딱하게 굳어져있던 속을 다시 일군 거 같아요. 비료도 주고, 나한테 고착돼있던 어떤 생각들, 매너리즘에 빠져있던 것들이 다시 이렇게 새로워지는 느낌을 받았어요.
어머니로서 <마더>에서 연기한 인물의 모성에 대해서 이해하실 수 있으세요?
저는 그렇다고 생각해요. 그런 말이 있잖아요. 자식을 위해 죽을 수도 있는 건 엄마밖에 없다고. 그 말은 곧 자식을 위해 죽을 수도 있지만 자식을 해치려 그러면 죽일 수도 있다는 말이 돼요. 그만큼 아무 것도 안 보인다는 말이 되거든요. 자식을 위해서라면. 물론 관객들은 좀 놀라겠죠. 그렇지만 놀라면서도, ‘그래, 자식이니까 저러지’ 그러실 거 같아요. 그리고 어딘가 부족하고 모자란 애니까 측은하고, 내 목숨하고 바꿨으면 좋겠다 싶은 자식이니까. 저도 정말 걔만 보면 가슴이 너무 아팠어요. 책을 읽으면서부터 도준이란 인물이 너무 가슴 아픈 자식이었기 때문에. 그리고 친구라고는 동네 건달인 진태밖에 없잖아요. 정말 인간 말종이라고, 종자부터 틀렸다고 엄마가 표현하지만 마음 한편으론 고마운 거에요. 내 아들의 친구가 돼주니까.
연기를 오랫동안 해오셨지만 <마더>에서의 김혜자 씨는 기존에 보여주셨던 연기와 차원이 다른 새로운 모습이었다고 생각해요. 그만큼 김혜자 씨께서도 처음이라 할만한 경험이 있지 않았을까 싶은데요.
처음 해본 게 많아요. 정말. 사실 국내에서는 얼굴을 알아보니까 외국으로 여행을 많이 가도 국내에선 어디 여행을 잘 못 다녀요. 이게 서울에 있는 스튜디오에서만 찍은 게 아니고 영화팀과 같이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찍었잖아요. 관광지가 아닌 곳인데도 ‘우리나라 산천이 이렇게 아름답구나’, 라는 걸 느꼈고, 공기도 맑고, 인정도 좋고, 그런데 사니까 두통도 없어지더라고요. 전 평생 두통을 달고 살았는데 두통도 없어지고, 서울에 있을 땐 배고픈 지도 모르고 그러는데 배도 고프고, (웃음) 그래서 밥 언제 먹냐고 물어보기도 하고. 새로운 일에 대한 열정이 저한테 남아 있다는 게 신기했어요. 저는 저한테 열정이 죽었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 점에서 봉준호 감독한테 감사해요. 저한테 불씨만 남아있던 열정을 다시 타게 해줬으니까.
<마더>는 <마요네즈>(1999)이후로 10년 만에 출연을 결정한 영화에요. 그 사이에 작품 제의가 있었을 것 같은데 한 작품도 하지 않았다는 건 그만큼 마음에 드는 작품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일까요?
같이 하자고 그러시는 분들이 몇 분 계셨지만 내가 TV에서 너무 많이 했던 비슷한 역할들을 보여주셨기 때문이에요. 내가 우선 그런 역할에 싫증이 나는데 누가 그걸 극장까지 보러 오겠어요. 그러니까 차라리 내가 아닌 사람이 하는 게 훨씬 더 나을 것 같은 거에요. 그래서 그 분들한테, “이건 사람들이 전혀 상상하지 못한 사람에게 시키던가 하지, 내가 나가서 하면 무슨 흥미가 있겠느냐”, 그랬어요. 그런데 봉준호 감독은 처음부터 이건 선생님에게서부터 영감을 얻어서 기획한 것이기 때문에 선생님이 안 하신다 그러면 이건 그냥 덮어버린다, 그랬어요.
결국 10년 만에 스크린으로 자신의 얼굴을 본 셈이에요. 그런 점에서도 감회가 남다르지 않았나요?
그러고 보니 그렇네요? 그런 생각은 안 해봤는데. (웃음) 예. 감회가 남다르네요. 정말로. 이제 막 생각하게 됐어요.
오랜만에 영화 현장에서 작업하는 기분은 어땠나요?
드라마 같이 쫓기지 않아서 좋았어요. 말하자면 배우의 창의력이 발휘되기 좋다는 점이 달라요.
아무래도 생각처럼 항상 연기가 잘 되는 건 아니었을 텐데요. 촬영하지 않을 때는 쉬라고 캠핑카가 마련돼있었거든요. 잘 표현이 안될 때는 그 속에 들어가서 울었어요. 답답해서. 내가 이렇게까지 밖에 표현이 안되나 싶어서.
사실 영화 속에선 우는 연기가 거의 없잖아요. 감정을 안으로 눌러 담으면서도 그걸 온전히 드러내야 한다는 점에서 답답한 부분도 적지 않았을 거 같습니다.
어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을 드러내야 되는 거에요. 물론 우는 것도 종류에 따라 다르지만 그래도 우는 건 울면 되니까. 눈물 없이 형언할 수 없는 감정을 표현하라는데 잘 안되잖아요. 그래서 차에 가서 막 울었어요.
그럴 때 봉준호 감독의 반응은 어땠나요?
감독이 달래주러 들어오더라고요. 그래서 나가라고 그랬어요. 해줄 말 있으면 문자로 해주라고. (웃음) 그랬더니 문자를 했더라고, 진짜. ‘아무리 부인해도 세상에 화날 땐 인정하세요’ 괜히 나 위로하려고 그러는 거지. 잘 안된 건 자기가 제일 잘 알잖아요. 그렇게 생각했어요. 많이 배려해주지만 자기 맘에 안 드는 연기는 추호도 봐주는 게 없었어요. 마음에 안 들면 다시 하고, 다시 하고, 그런 점이 저하고 같았어요.
문자도 하실 줄 아세요?
제가 <마더>때문에 처음으로 이 핸드폰을 썼어요. 하도 답답하니까 영화사에서 사줬거든요. (웃음) 그리고 봉 감독이 핸드폰에 취미를 갖게 하려고 문자 하는 법도 알려주고 그랬죠.
인터넷은 할 줄 아시나요?
인터넷은 잘 몰라요. 대신 우리 아들이 좋은 얘기 나왔을 땐 와서 보여줘요. “엄마, 여기 재미있는 얘기 있어. 와봐.” 그래서 읽어주다가, “이거 보려면 쑥 내려.” 그리고 딴 데 가요. 그런데 저는 내리다 보면 다른 게 나와요. 그래서, “얘!” 부르면 “아이, 참, 엄마, 그냥 보지 마세요.” 그러곤 하죠. (웃음) 그런데 나쁜 얘기는 안 보여주겠죠. 좋은 얘기만 보라고.
봉준호 감독이 아들처럼 느껴질 때는 없었을까요?
아~니, 전 그 사람 존경해요. 나이로는 그렇게 생각할 수 있어도 그 사람 하는 거 보면 존경할 수 밖에 없어요. 정말 똑똑한 사람을 보면 존경해요. 그 분은 굉장히 천재적이고요, 정확한 사람이에요. 자기 머리 속에 확실한 그림이 서있어요. 우물쭈물하는 법이 없어요.
봉준호 감독이 연기가 마음에 들지 않아 한다는 걸 느낄만한 주문이 있었나요?
"다 좋은데 한번만 다시 해보세요." (웃음) 나도 찍으면서 봉 감독이 오케이 할 때, “아니, 나도 한번만 더해보고 싶어요” 그래도 자기가 됐다고 생각하면, “아니요, 됐어요”, 그래요. 정말 못 됐어. 진짜로. (웃음)
어쩌면 뭔가 그 이상을 끌어낼 수 있는 기대감에 계속해서 연기를 요구한 건 아닐까요.
봉 감독이 여러 버전으로 해보길 원해요. 그러니까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고, 그러다 보면 저도 모르는 좋은 게 나와요. 어쩌면 틀에 박힌 듯이 할 수 있는 걸 이렇게, 저렇게 해보고 그러니까 더 재미있다는 걸 느끼게 해주더라고요.
외로움을 느낀 적은 없으셨나요? 소통이 불가한 고립된 캐릭터를 연기했는데 그만큼 배우 스스로도 캐릭터의 고립감을 느끼면서 연기해야 하지 않았을까 싶은데요.
맞아요. 그런 점에서 그랬어요. 나하고 소통되는 사람이 없잖아요. 말은 하지만 누구와 말을 주고 받는 게 아니고 나 혼자 중얼거렸다가 무시당하고 그러지, 그러니까 허공에 대고 얘기하는 것 같았어요.
체력적으로도 소모가 많았을 텐데요. 연기적으로 힘들다고 느꼈던 고비가 있으셨나요?
제일 힘들었던 건 뛸 때도 아니고 내 맘대로 연기가 안될 때. 아까 말한 것처럼 형언할 수 없는 표정 지으라고 써 있는데 그게 안될 때 감독은 ‘그게 바로 형언할 수 없는 표정이에요’, 라고 말하지만 어떡하란 말이야, 도대체, 지가 한번 해보라지! (웃음)
영화 안에 모호한 표현이 많더군요. 완전한 정답이나 확신을 주지 않고 의심하게 만드는 부분들이 많잖아요.
저는 책보고 많은 생각을 했어요. 그러니까 말하자면 우리가 책 읽을 때 행간을 읽는다고들 그러잖아요. 그런 것처럼 여기 참 숨은 그림이 많구나 싶었어요. 제 역할에 대해서, 그리고 아들에 대해서도 굉장히 애매하게 표현된 점이 있어요. 그냥 저 사람들은 모자관계일까, 아니면 모자관계이상일 수 있을까, 그런 것도 아주 그렇게 안개 속같이 표현해요. 그러니까 자기가 이해할 수 있는 만큼만 보여준다고 생각해요. 약간 그리스 비극 같은 생각도 들고. 남편에 대해서도 아무 언급이 없잖아요. 골방에 들어가서 사진을 찢을 때도 그 옆엔 애 아빠가 있었겠구나, 이런 암시만 남잖아요. 그러니까 이 남자를 무지무지하게 사랑한 여자였나, 아니면 어떤 사랑을 했길래 저러나 알 수 없어요. 그래서 시작하기 전에 너무너무 많은 생각을 했죠. 그러다가 구상이 점점 추상으로 가는 것처럼 뭔가 구체적으로 많이 생각했다가 붓 하나 찍 긋는 것처럼 연기는 심플하게 한 거죠.
칸에서도 <마더>를 통해 다양한 평을 얻으셨을 텐데요. 아무래도 김혜자라는 배우에 대한 인식과 선입견이 뚜렷한 국내 관객의 기대나 감상과 다른 신선한 반응을 목격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달라요. 그 분들은 <전원일기>도 모르고 아무 것도 모르기 때문에 선입견이 없어요. 그러니까 그냥 원빈의 엄마로 받아들이는 거야. 아마 우리나라 분들은 ‘원빈이 아들이야? 봉준호가 아들 뻘 아닌가’ 그런 선입견이 생길지도 모르잖아요. 그러니까 그건 기자 분들 책임이야. 꼭 이름 옆에 가로치고 나이를 적어서 그렇다니까. (웃음) 나이가 배우를 결박 씌우는 거에요. 그 분들은 오히려 선입견이 없기 때문에 나이가 느껴지지 않는다고 했어요. 영화에서 굉장히 늙어 보일 때가 있지만 어떤 때는 굉장히 젊어 보일 때가 있잖아요.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제 나이를 너무 잘 알죠. 기자들이 자꾸 써주니까, 친절하게. (웃음) 그러니까 배우 나이는 안 쓰는 게 좋을 거 같아요. 그냥 짐작하는 것과 자꾸 이렇게 적어놓은 걸 보는 것하곤 틀리거든요. 제가 몇 살쯤 됐다는 거야 다 알겠죠. 언제적 김혜자인데. 근데 그걸 못박아서 써줄 때와 아닐 때는 또 다를 거 같아요.
사실 중년 배우들을 주인공으로 다룰만한 작품이 우리나라에선 드물기도 하죠.
그렇죠. 그런데 자꾸 이렇게 나이 밝히고 그러니까. (웃음) 이건 농담이고요. 사실 젊은 사람들 얘기가 예쁘잖아요. 보고 나면 재미있고. <마더>처럼 특별한 상황에서 특별한 연기가 요구되는 경우는 흔치 않겠죠. 그렇죠?
작품을 마치고 난 지금은 마음이 어떠신가요?
저는 꼭 작품이 끝나면 아파요. 지금은 아직 시사도 있고, 기자 분들 만날 일도 있고, 개봉하면 인사도 다녀야 되니까 그때까진 안 아플 거에요, 아마. 그런데 그게 다 끝나면 아플 거에요. 많이 아플 거에요.
왜 그럴까 생각해보신 적은 있나요?
맥을 놔서 그럴 거에요. 이 엄마가 떠나가면 아파요. 떠나가면서 나를 병이 나게 하고 갈 거에요. 지금은 아직도 이 엄마가 내 속에 있기 때문에 괜찮은 거겠지.
최근 인터뷰에서 레드 카펫에 대한 환상이 없었다고 밝히셨더군요. 사실 칸 영화제 레드 카펫이라면 배우로서 한번쯤 꿈꿀만한 자리일 텐데요.
저는 이번에 <엄마가 뿔났다>하기 전에 활동한지 너무 오래돼서 백상예술대상이나 KBS 연말 대상 시상식 같은 데서도 레드 카펫을 까는지 몰랐어요. 그 때도 ‘여기 뒷문 없어?’ 그래서 뒤로 들어왔어요. 무안해서. 그건 그냥 젊은 사람들이 예쁘게 입고 관객들 즐겁게 해주는 것 정도로만 생각했지. 저한테 그런 환상은 별로 없으니까요.
올해는 시상식에서 정문으로 들어오시겠죠.
칸에서 그랬으니까 우리나라에서도 그렇게 해야겠죠. 그렇죠? 이번에도 뒷문으로 가면 저 여자는 해외에서만 저러고 국내에서는 안 그런다고 하겠죠. (웃음)
스스로 자식들에게 어떤 어머니라고 생각해보신 적이 있나요? 자식들한테 약간 폐가 되는 엄마일 걸요. 맨날 한심한 말 하고 그러니까. 그렇지 않으면 가만히 앉아있고, 밥 좀 먹으라고 몇 번씩 말을 해야 그래, 그러면서 먹고.
보통 어머니들께서 자식에게 밥 먹으라고 하시는 게 보통인데 말이죠.
집에 가만히 있으면 배가 안 고픈 걸 어떡해. 그러니까 제가 대표적인 엄마상이라는 게 약간 어폐가 있죠. 사람들은 누구나 무엇을 하든 허상이 있다고 생각해요. 배우로서 그 동안 어머니 역을 잘 했으니까 그렇게 얘기하겠죠. 내 사생활은 엉터리였어도.
최근 출연하셨던 <엄마가 뿔났다>의 한자도 집을 나가서 안식년을 갖겠다고 선언하죠. 사실 우리나라의 어머니들은 가족을 위해 헌신하는 것이 당연한 삶처럼 여겨지잖아요. 그런 측면에서 보면 한자도 상당히 이례적인 어머니 상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한자는 상당히 선구자적인 엄마에요. 그런데 보통 자기 친구들도 만나면서 가끔 자기 즐거움을 찾는 주부들도 정말 안식년을 가져야 된다고 그러는데 전 거기에 대해서는 좀 생각을 달리해요. 안식년을 요구할 수 있는 엄마는 정말 가족을 위해서 자기는 하나도 없었던 엄마에요. 이렇게 저처럼 제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 무슨 안식년이 필요 있어요? 이게 안식이지. 오로지 집에서 식구들을 위해 정말 자기를 다 바쳤다고 말할 수 있는 엄마들만 쉬는 시간을 달라고 요구할 자격이 있는 건데 너도 나도 다, ‘집 잘 나왔어’ 이러는 거에요. 물론 어떤 분들은, ‘아니, 그만하면 살지’ 그러시더라만. (웃음) 어쨌든 저는 그래서 김수현 씨가 앞서가는 선구자적인 작가라고 생각해요. 이젠 그런 시대가 올 거에요. 가족만을 위해서 헌신하는 엄마는 점점 없어질 거라고 생각해요.
작품활동을 하지 않을 때는 주로 무엇을 하시나요?
공상해요, 공상. (웃음) 아니면 자요. 복잡하면 잠 오고, 깨 있으면 졸 거 같으니까 그냥 자요. 그렇게 자고 나면 머리가 맑아지니까 그 때부터 책도 보고 음악도 듣고. TV도 재미있는 건 보는데 어떨 땐 그냥 안 키죠. 켜면 쓸데없이 하루가 휙 가버리더라고. 얻은 것도 하나도 없이. 그래서 기분이 안 좋을 때가 있다니까. ‘뭐했을까, 하루 종일’ 이러면서. 그런데 그것도 버릇이더라고요. 눈 뜨면 TV켜버릇하면 그렇게 되요. 그런데 눈 뜨면 좋은 음악을 딱 틀어버리면 또 그렇게 되더라고요. 그러니까 어떻게 습관을 들이느냐에 따라서 달라지는 거 같아.
사람과 어울리는 것보단 혼자 보내시는 시간이 많으신가 보네요.
원래 사람들 많이 있는데 가는 걸 부담스러워하는 성격이라 그냥 혼자 있는 걸 제일 좋아하는 사람이에요. 친구가 없으면 참 불행하다는데, 저는 그런 면에서 보면 불행한 사람인 거죠. 제가 혼자 이렇게 있는 걸 좋아하니까 옆에 친구가 별로 없어요. 그런데도 전부 다 저를 보호해주려고 그러는 거 생각하면 난 참 인복이 많구나, 하나님께 감사하다, 이럴 때가 정말 많아요. 내가 이렇게 나밖에 모르고 내 안에만 갇혀서 사는데도 사람들은 날 이렇게 치유해주려고 하니까. 진짜 하나님께 감사해요.
그런데 수많은 사람을 상대하는 봉사활동도 활발하시잖아요.
저는 세상을 너무 많이 아는 사람을 만나면 힘들어요. 그런데 애들은 모르잖아요. 애들은 배고픈 거, 아픈 거, 그런 것만 알잖아요. 애들하고만 있으면 내 머리가 복잡해지지 않는다고요. 아픈데 약 발라주면 되고, 그런 것만 해주면 되지, 내가 그 사람 생각에 맞춰서 머리 굴려야 되고 그렇지 않잖아요. 전 그런 걸 못하기 때문에 그런 사람들 앞에 가면 기운이 쑥 빠지면서 졸려요, 금방. 그러니까 사람들 많은데 가면 왜 그렇게 졸린 지 몰라. (웃음) 지금은 인터뷰하는 자리니까 말을 많이 하지. 말도 많이 하면 에너지가 굉장히 소진돼요. 그래서 저는 말도 잘 안 해요. 지금 내가 안 하면 안되니까 하는 거지. 잘 써달라고. (웃음)
연기자라는 직업도 사람들과 어울려야 하는 일이지만 그 불편함을 상쇄할만한 가치가 있으니 유지가 가능한 것이겠죠?
저에겐 배우가 직업이기 보단 곧 저의 삶이에요. 물론 ‘어큐패이션(occupation, 직업)’ 란에는 ‘액트리스(actress, 여배우)’라고 써요. 그렇지만 전 직업이 배우라고 생각해본 적은 없어요. 그냥 삶의 일부지.
연기가 삶의 가장 큰 목적이라는 말처럼 들리는데요.
그니까 제 존재의 의미에요. 제가 연기를 안 하고 보이지 않을 때는 죽었다고 생각하면 되요. 살아있어도 제가 작품에 나오지 않으면 그건 그냥 반쪽의 저만 있는 거에요. 아이들 만나고 다니고, 그렇게 반쪽의 삶은 사는 거지만 배우로서의 저는 죽은 거에요.
김중만 작가의 사진을 영정 사진으로 쓰고 싶다고 종종 말씀하신다고 들었어요.
나, 그 말 젊었을 때부터 했어요. 예쁜 사진만 보면 이거 영정사진으로 해야지. (웃음) 습관처럼 입에 달고 다녀서 우리 애들이 질색을 해요. 엄마는 맨날 잘 나온 사진 보면 영정 사진 쓴다고 해서.
영정 사진을 준비한다는 건 사실 인생의 마지막을 준비하는 거잖아요.
저는 그러니까 항상 마지막이 언제가 될지 모른다고 생각하면서 살아요. 그리고 언제가 돼도 상관없어요, 저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없는 건가요?
저는 왜 그런지 어렸을 때부터 죽음이 그렇게 두렵지 않아요. 그러니까 제가 이렇게 오래 사는 게 이상하다니까요. 저희 애들은 아주 질색해. 엄마는 왜 맨날 그러냐고 그러는데 사실이 그러니까. 김중만 씨는 옛날에 한 20년 전에 알았을 때부터 사진을 잘 찍었는데 항상 그 사람이 찍어준 사진보고 이걸로 영정사진 해야지, 그랬기 때문에 그 사람이 매년 영정사진을 바꾼다고 얘기하는 거에요. (웃음)
벌써부터 김혜자 씨의 여우주연상 가능성을 이야기하는 말들이 나오고 있더군요.
저는 그런 말을 참 잘해요. 이거 찍어서 그냥 우리끼리만 봤으면 좋겠다. 사람들이 보는 게 두려워요. 그냥 제가 연기를 좋아하니까 우리끼리 찍어서 우리끼리만 보고 말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항상 해요. 만약 나중에 상을 준다면 상 탈 때는 행복하죠. 그런데 상이 저한테는 그렇게 큰 의미는 없어요.
사실 <마더>까지 단 세 편의 영화를 했지만 그때마다 상복은 있었던 것 같아요.
첫 번째 영화 <만추>도 마닐라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 탔고요. <마요네즈>는 케라라국제영화제에 갔는데 거긴 여우주연상이나 남우주연상이 없었고 작품상만 있는 영화제였어요. 그런데 말하자면 우리나라 지방영화제 같은 거니까 우리나라에서 잘 알려지지 않아서 그렇지, 거기서 <마요네즈>가 그랑프리 탔어요. 유인호 감독님이 가서 타오셨는데 그쪽 신문 1면에 한 장면이 크게 나왔더라고요. 감독님이 그 신문 갖고 와서 저한테 줘서 어디다 잘 간직했는데 지금은 없더라고요. 그래서 미안해.
허벅지에 침 놓는 장면이 인상적이어요. 그 장면이 다양한 해석을 부르는 것 같기도 하고요. 자신의 기억을 봉인한다는 의미가 있는 것 같은데요.
내가 스스로를 찌르는 고통스러움을 통해 마음 속의 아픔을 잊음으로써 그 기억 자체를 잊으려고 한다고, 그냥 저는 그렇게 생각했어요. 그것만으로 나을 거란 생각은 안 해요. 아마 허깨비처럼 살 거에요. 마음은 절벽에서 이미 투신했다는 김남조 시인의 시처럼 그 아들 때문에 죽지도 살지도 못하고 그냥 허깨비로 살겠죠.
결국 이 어머니 역시 김혜자 씨 본인에게 봉인되는 캐릭터가 될 거 같네요. 그러다가 언젠가 이 캐릭터를 다시 꺼내 생각할 때가 오지 않을까요.
저는 흘러간 건 잘 안 떠올리는 편이거든요. 떠올리면 자꾸 잘못했던 것들만 생각나요. 그래서 괴로우니까 안 떠올려요. 그런데 <마더>는 다른 작품보단 저에게 좀 특별한 의미가 있어요. 뭐라고 설명드릴 순 없지만 앞으로도 떠오를 것 같아.
시를 많이 읽으시는 편인가요? 저는 시를 좋아해요. 짧은 단어 속에 너무 많은 뜻이 있어서.
2004년도에 출간된 저서인 <꽃으로도 때리지 마라>에서 헤르만 헤세의 ‘행복해진다는 것’의 시-인생에 주어진 의미는 다른 아무 것도 없다네. 그저 행복하라는 한 가지 의무뿐.-를 인용하면서 이를 반박하셨던 기억이 나요.
예. 그때는 그렇게 생각했어요. 행복해질 의무가 있다는데 이런 애들을 못 봤으니까 그런 말을 했겠지. 천상병 시인의 시에 이런 말이 있어요. ‘어떤 아이가 대문 앞에 울고 있다. 오줌을 싼 벌일까. 이렇게 다섯 여섯 살 먹은 계집아이가 울고 있다. 그러면서 넌 왜 우니. 인생의 무엇을 안다고. 나 같은 사람도 있는데.’ 그런 내용의 시가 있어요. 제가 그 시를 적고 그 밑에다가 ‘선생님, 다섯 여섯 살에도 인생이 뭔지 아는 애들이 여기 있습니다’ 이렇게 썼어요. 다섯 여섯 살에 지네 엄마 아빠가 총맞아 죽는 걸 본 애들도 있고, 이 분도 그 아이들을 못 봤기 때문에 이런 시를 쓰셨구나 했죠. 얼마나 당신이 고통스러웠으면 이런 시를 쓰셨을까.
사실 천상병 시인도 상당히 비극적인 삶을 살았죠.
그렇죠. 그 분 시가 얼마나 비참해요. ‘아이론(iron) 밑의 와이셔츠 같았다’고 하셨잖아요. 아이, 끔찍해. 정말로. 그게 다리미로 다져질 와이셔츠 같다니.
사실 그만큼 남들이 끔찍하다 말하기 쉬운 삶을 사셨죠. 하지만 한편으로 당사자의 시점에서는 그 삶을 부정하지 않았던 것 같기도 해요.
그렇죠. 하늘로 돌아갔다고, 즐거웠다고 이야기하겠다고 하셨으니까.
결국 자신의 이해에 따라 삶의 관점이 달라질 수 있다는 의미일 수 있을 것 같은데요. <마더>의 혜자가 취한 선택 역시도 타인에게는 극악한 선택이지만 당사자에게 있어선 피할 수 없는 운명과 같은 방편이라 말할 수 있을 것 같고요.
그게 그 여자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이었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때때로 자신이 이해하는 자신과 타인이 이해하는 자신의 차이를 느낄 때도 있을 텐데요.
그러니까 어떤 때는 ‘가면의 생’이라는 소설 있잖아요. 그런 게 생각날 때도 있어요.
CF를 통해 어필한 어머니 이미지도 강했던 거 같아요. 요즘엔 사실 출연하시는 CF는 없으신 것 같은데 제의는 꾸준히 들어오나요?
맨날 하기 싫은 CF는 끝없이 들어오는데 저는 안 하는 게 좋으니까 별로 관심은 없어요.
CF를 많이 하는 젊은 배우들이 종종 비난을 받는 경우도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나요?
글쎄요. 다 생각이 있어서 하겠죠. CF만 많이 하는 배우도 그게 맞는 사람이 있어요. 많이 해도 별로 싱겁지 않은 사람이 있고, 많이 하면 왜 저러냐, 그런 사람이 있고 그렇잖아요. 그냥 자기 생긴 대로 사는 거 같아요. 그게 누가 충고한다고 될 일도 아니고요. 전 누구 충고할지도 몰라요. 그리고 저도 충고 받는 거 싫어하고, 그냥 저도 생긴 대로 사는 거 같아요. 자기 생긴 만큼 사는 거니까.
꽃을 좋아하신다고 들었어요.
꽃 좋아하죠. 저는 정말로요. 봄에 땅이 아직도 꺼뭇꺼뭇하잖아요. 커다란 소나무 밑에 시커므리한 곳에서 어쩌다 수선화가 노랗게 펴있는 거 보면 눈물이 나더라고요. 이 그늘 밑 시커먼 땅을 뚫고 네가 나왔구나, 싶어서 걔하고 얼마나 많은 얘기를 하는지 몰라요. ‘너 정말 애썼다. 기특하다. 정말로.’ 예전엔 겨울이라 복도에 들여다 놓은 자스민 한 송이가 펴서 아침에 일어나서 문을 열어보니 계단 밑에서 자스민 향기가 얼마나 많이 퍼지는지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어요.
화단도 가꾸신다면서요?
화단 정말로 예뻤는데. 우리 아들이 개를 좋아해요. 개도 조그만 개가 아니고 맹인견하는 레브라도 리트리버 같은 종이니까 걔네 들이 한번 화단을 왔다 갔다 하면요, 꽃들이 다 누워요. 그래서 아들하고 맨날 싸우다 싸우다 제가 포기했어요. 꽃보다는 아들이 중요하지. (웃음) 그래서 한번은 아침에 나가서 봤더니 밤새 개를 풀어놔서 꽃들이 다 짓밟혀 있길래 제가 부은 채로 앉아서 하도 울었어요. 그랬더니 “내가 다 다시 심어줄게.” 그러더라고요. 우리 아들이. 그래서 “다시 심는 게 문제가 아니야. 얘네들도 다 생명이 있고, 생각이 있어. 짓밟혔을 때 생각 좀 해봐.” 그리고 제가 어떤 시인한테 그 얘기를 했더니 그러더라고요. “개들을요. 돌아다니는 나무라고 생각하세요.” (웃음) 그래서 그 다음은 그렇게 생각했어요. 돌아다니는 꽃이라고. 그 대신 정원은 황폐화됐어요.
OBS에서 <김혜자의 희망을 찾아서>란 인터뷰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도 하셨는데요.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천연덕스럽게 질문하시는 모습이 어떤 인터뷰어라도 답변을 피할 수 없게 만드는 기분이 들더군요.
어머, 그걸 봤어요. 고마워요. 진짜. (웃음) 주철환 씨가 자꾸 그걸 하자고 했어요. 주철환 씨와 20대부터 친했었거든요. 그런데 제가 그걸 어떻게 해요. 그랬더니 할 수 있대. 그런데 제가 어떤 때는 ‘알았어, 할게요’ 그랬다가, ‘아니, 못해요’, 이걸 수 십번 반복했더니 나중에 내일 신문 보래. ‘주철환, 김혜자에게 배반당해 자살’ 이런 기사 날 테니까. (웃음) ‘진짜로 그러면 어떡하나. 에이, 설마.’ 이러면서도 저렇게까지 얘기하는데 한번 해보지 싶어서 했어요. 그런데 게스트 오시는 분들에게 항상 부탁하죠. “제가 원래 말하기도 싫어하는데 MC를 하라네요. 그런데 제 말을 못하니까 저 대신 재미있게 얘기 좀 많이 해주세요.” 이렇게 미리 부탁하고 그러니까 그 분들이 오히려 안쓰러워서 얘기를 더 많이 한 거죠. 물론 작가가 있었지만 그 작가가 적어준 건 이분이 이런 일을 했다는 거니까 그걸 참고만 하고 제가 아무 거나 되던 말던 물으니까. (웃음) 어떤 분이 그런 얘기를 하더라고요. 무장해제를 시키는 재주가 있다고. 그런데 그건 재주가 있다기 보단 그냥 궁금한 걸 물은 거에요. 끝나고 나니까 봤다는 사람이 의외로 많네요.
주철환 대표도 봉준호 감독처럼 김혜자 씨에게 계속 러브콜을 보낸 셈인데, 누군가가 자꾸 자신이 생각지도 못한 가능성을 제시한다는 것이 당사자에겐 때때로 놀라운 일이 될 것 같아요.
그러니까 말이에요. 어떨 땐 웃겨요. (웃음) 근데 난 주철환 씨가 한번 이런 글을 쓴 적이 있어서 참 좋았어요. 김혜자는 어머니 역도 잘 하는 배우다. 난 그렇게 써주는 게 좋아요. 무슨 제가 국민엄마에요, 국민엄마는. 솔직히 국민 들어가는 게 너무 많아서 싫어요. 국민오빠, 국민 아버지, 왠 국민이 이리도 많은지. 이 역 저 역 다 잘하는데 엄마 역도 잘한다, 이런 평가가 더 감사하죠.
10년 만에 <마더>로 스크린에 복귀하셨으니 차후에 영화제의가 들어올지도 몰라요.
아직 그런 생각은 안 해요. <마더>가 아직도 꽉 차있기 때문에 충분히 앓고 난 다음에 이게 어느 정도 흥행이 돼서 어느 분께서 제의를 해주신다면 그 때 가서 생각해볼지 몰라도 지금은 아무런 생각이 없어요. 그리고 내가 그때까지 살아있을지 누가 알아. (웃음)
그러니까 건강 검진도 꾸준히 받으셔야,
싫어. 병 있다 하면 어떡해. 아이, 귀찮아요. (웃음) 난 괜찮아. 우리 아들이 이러면 질색해요. 그래도 할 수 없지. 난 별로 죽는 게 무섭지도 않고, 그냥 내 인생을 언제쯤 잘 끝맺었으면 좋겠어요. 그립다, 김혜자, 그 배우, 그렇게만 끝맺었으면 좋겠어. 일찍 죽고 늦게 죽고 이런 건 별로 생각 안 해요. 그러니까 이번 작품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거고, 그러면서 항상 작품을 하죠. 그리고 사실 몰라요. 진짜 내가 5분 후에 무슨 일이 생길지 어떻게 안담? 그런데 자꾸 이런 얘기하니까 이런 생각이 드네요. 내가 이러다 백 살까지 살면 어떻게 하나? (웃음)
경쾌한 멜로디가 선명한 음악과 절묘하게 연동되는 김혜자의 춤사위를 담은 오프닝 시퀀스는 단연 압도적이다. 절망과 안도가 체증처럼 내려앉은 얼굴에선 공유될 수 없을 것 같은 감정의 극단적 너비가 고스란히 발견된다. 휘청거리듯 흐느적거리다 살풀이하듯 리듬을 타며 몸을 들썩이는 팔은 축 져진 듯 늘어지면서도 강약을 맞춘다. 형언할 수 없는 표정과 심정을 유추할 수 없게 중의적인 동작으로 절묘하게 음악과 어울리며 몸을 흔드는 김혜자의 모습은 당혹스럽지만 고요하다. 마치 작은 파문이 일어나기 전의 잔잔한 수면처럼 쨍하고 깨질 것만 같은 아슬아슬함이 위태롭게 감정을 동요시킨다. 강렬하면서도 모호한 오프닝 시퀀스는 정서적인 진동을 도모함으로써 뒤따를 이야기에 대한 의문을 증폭시키고 긴장과 평온의 중의적 상태 가운데서 몰입을 도모한다.
살인마로 몰린 아들의 결백을 주장하는 어머니를 비추는 이야기. 누구라도 분명 모정이 끓어 넘치는 신파를 예감하기 좋은 문장이다. 하지만 애초에 <플란다스의 개>의 지하실 신에서조차 괴담을 통해 교묘하게 서스펜스를 발생시켰던 봉준호 감독의 작품을 경험한 이라면 절절한 신파로 무장한 작품을 기대할 리 만무하다. 모두가 살인마라고 낙인을 찍은 아들 도준(원빈)에 대해 어머니 혜자(김혜자)는 말한다. “우리 애가 그런 애가 아니거든요.”어미에게 모성은 숙명이다. 이성적 믿음을 판별하는 의식을 거치기 이전에 직관적인 보호본능이 둘러쳐진다. 어미의 본능이란 이성을 통해 가늠하기 어려운 본능의 영역이다. 동물적으로 유전된 습성이다. 숭고한 사명이기 이전에 무거운 십자가다. 그리고 <마더>는 살인사건의 진실과 진범을 추적하는 스릴러이기 전에 어미의 심정을 따라잡는 심리극이다.
어머니는 아들을 부여잡고 울기 보단 타이르고, 진범을 뒤쫓거나, 집요하게 캐묻는다. 아들의 결백을 향해 전진해나간다. 누구도 결코 믿을 수 없다는 신념으로 아들을 구하기 위해 백방으로 뛰고 모든 수순을 동원한다. 조금 모자라지만 순박한 아들의 무죄를 밝히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어머니의 모습엔 헌신적인 페이소스보다 광기에 가까운 컴플렉스가 서려있다. 모성이란 본능을 극한까지 밀어붙인 <마더>는 서사적으로 나아가나 서정적이며 심리적 밑바닥까지 헤집는 표정으로 감정의 옆모습까지 그려낸다. 암전된 공간과 배경에서 밀려난 여백은 때때로 서스펜스의 은신처가 되며 배우들은 수집된 감정의 개체 수를 가늠할 수 없게 너른 표정을 드러낸다. 특히 김혜자는 <마더>가 김혜자의 얼굴에서 시작됐다는 봉준호 감독의 고백을 온전히 증명한다. 순수한 광기는 맹신으로 나아가 착란에 도달하고 이내 잔인한 절망의 수순으로 돌입한다. 그 모든 과정의 합리가 김혜자의 얼굴을 통해 이뤄진다. 김혜자의 얼굴은 <마더>를 위해 마련된 최적의 자질이자 유일무이한 시작이고 끝이다.
수없이 흩어진 별개의 지점처럼 인식되는 스토리가 결국 단계적인 복선으로서 재차 의미를 발생시키며 하나의 맥락을 구성하고 이어나가는 과정이 흥미롭다. 물론 발화점의 온도를 붙이기까지의 시간이 길게 요구된다는 느낌을 얻을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어느 정도 온도가 상승한 이후로 이야기는 급격하게 가속을 시작하고 이내 극한까지 내달린다. 전혀 무관할 것 같은 개별적인 지점의 사건들을 하나의 맥락에 놓인 복선으로 꿰어가는 이야기 구조가 탁월하다. 동시에 <마더>는 사실 후더닛(whodunit) 구조의 스릴러에 가까운 형태로 직조된 이야기지만 실질적으론 ‘누구’보단 ‘무엇’에 의문의 무게가 실리는 영화다. 어머니는 진범이 누구인가라는 물음을 따라 걷지만 관객은 끊임없이 아들이 무엇을 보았는가를 주목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어떤 예상과 동떨어진 모자의 전사가 드러나기도 하고,-박카스- 그 관계에 대한 불순한 관점이 동원될만한 중의적 언어가 동원되기도 한다.-잔다- 궁극적으로 (스토리텔러의) 비범한 결단에 가까운 결말의 태도를 확정 짓게 만드는 계기 역시 그 목격에서 비롯된다. 지독한 어미의 본능이 궁극적으로 어떤 자기 파괴의 행위로 도달하기까지의 과정을 지켜본다는 건 그 과정을 이끄는 믿음의 기반이 어떤 진실에 맞닿았고 이를 통해 어머니가 무엇을 결심했는가를 지켜보게 된다는 의미와 같다. 그 결심은 객석에 충격을 전하지만 관객이 비명 지르기 보단 숨을 멎게 만든다.
<마더>는 봉준호 감독의 작품 가운데서 이례적인 풍경을 선사하는 영화다. 로케이션 비중을 극대화시킨 <마더>의 광활한 풍경은 풍요롭기에 더욱 예민하다. 때때로 혜자의 걸음을 수평선의 구도로 원경으로 찍어낸 광경은 애환적이며 인물을 측면에 밀어 넣은 채 온전히 배경을 삼킨 카메라의 구도는 거대한 배경을 통해 인물의 심리적 소외를 전달한다. 그럼에도 이에 곧잘 상반되게 인물의 얼굴을 스크린에 가득 메워 넣곤 하는 클로즈업은 인물의 역동적인 표정을 포착함으로써 보다 깊고 너른 감정의 영역으로 관객을 밀어 넣는다. 특히 인물과의 거리감을 극단적으로 오가는 구도적 변화는 개별적인 영역에서 좀 더 세심한 관찰을 요구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관객의 극적인 몰입을 가중시킨다. 처음으로 2.35:1 와이드 비율의 화면 비를 선사하는 아나모픽 렌즈를 사용했다는 <마더>는 그만큼 풍요롭고 섬세한 풍경을 포착함으로써 그 안에 자리한 인물의 예민한 심리를 더욱 모나게 드러낸다. 특히 대비적인 움직임으로 시작과 끝을 알리는 도입부와 결말부는 <마더>의 입구와 출구로서 잊을 수 없는 이미지를 선사한다. 무엇보다도 음악의 기능성도 간과할 수 없다. <마더>에서 음악은 단순히 감정을 보좌하는 수식어가 아니라 영화의 감정을 온전히 이어주는 접속사와 같다. 오프닝 신을 비롯해 음악과 시퀀스가 함께 어우러지는 광경을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다. <마더>에서 음악은 단순히 감정을 보좌하는 수식어가 아니라 영화의 감정을 온전히 이어주는 접속사와 같다.
<마더>는 봉준호 감독의 전작들에 대한 기시감을 부르기도 하는데 이는 답습이라 지적될만한 결과라기 보단 참신한 복기에 가깝다. 직접적으로 가깝게 느껴지는 작품은 <살인의 추억>이다. “살인사건이 얼마만이냐.”라는 대사처럼 한적한 도회지의 형사들은 <살인의 추억>만큼이나 뻔뻔하진 않아도 여전히 직감에 의존해 사건을 마무리 짓는데 급급하며 졸속적인 수사방식으로 무능을 전시한다. 동네 바보를 범인으로 몰아가는 강압적 회유는 되풀이되고 용의자의 바지를 벗기는 지하실은 우스꽝스럽게 등장한다. 범인의 현장검증은 여전히 난장판이다. 그 모든 상황의 총합은 <살인의 추억>을 연상시키지만 본질적으로 이는 반대말의 의미로 해석될만한 상황이다. <살인의 추억>의 경찰이 암묵적 합의를 통해 무능을 가리려는 시도를 보인다면 <마더>의 경찰들은 무지의 소산으로 밀어붙인 불확실성의 한계를 스스로 극복하지 못함으로써 무능력을 또 한차례 노출한다. 결국 그 반대말의 끝은 <살인의 추억> 못지 않게 무게가 엇비슷한 정서적 허탈감으로 도달한다는 점에서 동일해진다.
<마더>가 <살인의 추억>을 떠올리게 만드는 구체적인 정황을 지니고 있다면 인물이 공간에 접근하는 방식에서 드러나는 심리적 중압감은 간접적으로 <괴물>에 맞닿아있다. 현서를 찾아 괴물의 본거지를 찾아가는 가족과 진범을 찾기 위해 의심스러운 단서의 현장을 몰래 탐색하는 어머니는 각자 자신의 혈육을 구출하기 위해 동분서주한다는 점에서 닮아있다. 가족이 어머니 개인으로 축소됐다는 점에서 입체적인 동선이 단선적으로 뚜렷해졌을 뿐이다. 그리고 그 공간을 잠입한 어머니의 은폐가 어떤 목격으로 이어지는 상황은 괴물의 본거지인 하수구에 끌려온 현서가 괴물을 피해 하수구 구멍에 은둔하며 괴물을 관찰하는 상황과 비슷한 긴장감을 이룬다. 또한 어두운 음영을 통해 도진이 바라본 것을 관객으로부터 차단시킴으로써 궁극적 단서의 은폐를 확보함으로써 의문의 지속을 유지하고 사각지대의 음산한 서스펜스를 확보한다는 점에서도 출몰의 위협을 물리적으로 구사하던 <괴물>의 기시감을 느끼게 만든다.
사실 봉준호 감독의 전작들은 하나같이 누군가를 찾아 헤매는 이야기란 점에서 동일하다. 잃어버린 애완견을 찾고,(<플란다스의 개>) 살인마를 수사하고,(<살인의 추억>) 딸을 구하기 위해 동분서주하고,(<괴물>) 진범을 추적한다.(<마더>) 하지만 끝내 찾지 못한 애완견과 보지 못한 살인마, 그리고 구할 수 없었던 딸을 맞이했던 것과 달리 <마더>는 유일하게 자신이 쫓는 상대를 목격하게 된다. 아무도 믿을 수 없는 그 동네에서 혈혈단신으로 진범을 찾아 나서는 어머니의 본능적 결의는 결국 결실을 이룬다. 어미의 본능만이 유일하게 제 목적을 이룬다. 뒤늦게 자신이 짊어진 어미라는 십자가가 자신을 골고타 언덕으로 이끌어 채찍질하고 못박히게 만들었음을 뒤늦게 체감한다 해도 만신창이가 된 제 심정을 억누르고 제 새끼의 얼굴을 쓰다듬는 것이 본디 그 어미의 본능에 걸맞은 숙명이라는 것을 육체적 행위로 증명한다. 동시에 사건의 주변부에 놓인 이미지를 통해 시대와 정치적 풍자를 거두던 야심도 <마더>에선 최대한 배제됐다. 무능한 경찰의 이미지는 <살인의 추억>처럼 시대적 열악함과 정치적 불공정을 겨냥하는 수단까지 나아가지 않는다. 다만 위트의 수단이 되고 사건의 전개를 위한 하나의 조건이 될 뿐이다. 지난 세 편의 전작이 동맥과 정맥 주변부의 모세혈관의 흐름까지 적극적으로 반영한다면 <마더>는 오로지 정맥과 동맥의 흐름을 그린 이야기다. 정맥의 판막을 거쳐 멈춰서면서도 서서히 전진하던 이야기가 비로소 심장을 거쳐 동맥으로 뻗어나가듯 가속적이다.
창문은 <마더>에서 종종 관객과 인물의 거리감을 형성하는 중계 창처럼 활용된다. 관객은 그 창을 통해 영화적 상황으로부터 때때로 분리되어 그 상황의 목격자로서 자리잡아야 한다. 창 너머엔 함께 식사하는 모자의 모습이 등장하기도 하지만 사건을 비추는 저편의 진실이 걸어나가는 풍경을 등장시키기도 한다. 두 광경은 모두가 진실이다. 백숙을 찢어 아들에게 먹이려는 어머니의 모습도, 창을 따라 걷는 살인자의 얼굴도 거짓이 아니다. 관객은 두 번의 식사광경을 양 끝에 두고 그 가운데 살인의 목격자가 된다. 양 끝의 이미지는 동일하다. 구도까지 일치한다. 하지만 그 풍경은 대비적이다. 더 이상 온전히 같은 풍경으로서 인식되지 않는 생소한 광경이 된다. 하지만 정작 그 창 너머의 모자는 같은 방식으로 삶을 연장해나간다. 모든 것을 감당한 어머니는 구태의연하게 아들을 위해 어미로서의 본능으로 제 부서진 삶을 가다듬고 일상을 반복한다. 아들을 위해 흐르는 오줌을 지우는 것도, 피를 닦아내는 것도 그 어미의 몫이다.
여기서 모성애는 숭고하다거나 찬사를 얻을 영광이 아니다. 그것은 마치 평생을 짊어져야 할 어미의 업(業)처럼 피로하고 고통스러운 형(刑)과도 같다. 어미는 결국 괴물이 되어 제 자식을 구하고, 평생 살인의 추억을 한처럼 짊어진 채 살아가야 한다. ‘새끼 잃은 어미 속이 썩어 문드러지는 냄새가 십 리 밖까지 진동을 한다.’하지만 정작 어미는 제 속이 썩어 문드러지는 냄새를 맡지 못한다. 그저 제 새끼의 체취를 따라 걸어갈 뿐이다. 그리고 감히 그 삶이 어떠하다라고 함부로 말할 수 없는 건 우리가 모두 다 제 어미의 삶을 밟고 살아온 그 새끼들이기 때문이다. <마더>는 모성애라는 숭고함을 벗겨낸 어미들의 상처와 같은 삶에 바치는 지독하게 순수한 헌사다. 무엇보다도 국민엄마라는 박제 같은 타이틀로 치장된 이미지를 부수고 김혜자가 가늠할 수 없는 표정을 지닌 대단한 배우라는 것을 환기시킨다는 것만으로도 <마더>는 이미 훌륭한 성과로 시작된 작품인 셈이다.
지금 벌써부터 <마더>를 이야기하는데 있어서 반전, 반전, 하게 되는데 그 반전이라는 용어의 쓰임새가 이 영화의 결말을 정의하기 좋은 형태인지 의심스럽다. <마더>의 결말이 놀라운 건 사실이나 그게 극적으로 지속되는 분위기의 예상치를 배반하는 형태의 반전이라 할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 이건 말 그대로 의심되는 문제의 객관식 보기 가운데 가장 정답에 먼 형태라고 생각했던 것이 정답이라는 것을 확인했을 때만큼이나 놀라운 결과일 뿐이다. 그러니 반전에 목매지 말 것. 물론 결말에 대해선 최대한 눈 감고, 귀 막아라. 모르고 볼수록 온전히 재미를 체감할 가능성이 크므로. 물론 입도 닥쳐주는 센스는 잊지 마시고. 너만 재미있게 본다고 장땡은 아니다.
<마더>는 훌륭하더라. 애초에 신파란 예감은 안 했다. 봉준호가 그럴리 없다고 믿었다. 역시나 그랬다.시야는 넓어지고 관점은 깊어졌다. 무엇보다도 봉준호의 유희가 상당히 효과적인 저항이랄까. 전작들의 기시감도 보인다. 물론 답습의 수준이 아니고 고의적인 느낌이지만 상당히 참신한 복기랄까. 김혜자 선생님은 말할 필요도 없고, 원빈도 괜찮았다. 하지만 진구가 더 잘했다고 생각한다. 그 외에 윤제문을 비롯한 조연들의 공헌도도 대단하다. 어느 하나 간과할만한 캐릭터가 없다. 무엇보다 음악이 너무 좋다. 음악과 영상이 달라붙는 게 이거 참 묘기 수준이다. 상당히 고의적 연출 같긴 한데 그게 지나치게 의식적인 결과처럼 보이진 않는다. 이병우의 음악 자체도 좋을 뿐더러 홍경표 촬영감독이 포착한 샷과 봉준호 감독의 연출과 잘 어우러진다. 리듬이 대단하다. 근래에 이병우 씨가 한쪽 귀에 장애가 왔다는데 꼭 완치되길 바란다. 만약 그가 음악을 할 수 없다면 이것은 영화계에서도 치명적인 손실이야. 어쨌든 <마더>는 대단하면서도 재미있는 영화다. 스토리의 탄력도 상당하고 영화적 이미지들이 하나같이 훌륭하다. 물론 결말이 충격적이지만 세상 모든 어미가 그렇지 않겠어, 란 설득력이 대단하다. 모성애라는 게 참 고결하지만 한편으론 지독한 것이라. <마더>는 어머니라기 보단 어미의 본능을 그린 영화다. 그만큼 동물적이고 극악하리만치 순수한 영화다. 지금까지의 봉준호 감독의 영화 중 가장 무겁고 음산한 영화다. 홍보팀이 삽질하는 것만 빼면 참 좋은 영화일 텐데. 시사회장인 아수라장이 따로 없더라. 자리배정 계획은 대체 누가 세운 건지 경력이 의심스럽더라.
볼 영화가 많을 텐데, 인터뷰까지 하느라 바쁘시겠군요. 영화들이 계속 있지만, 그 사이마다 하면 될 것 같아요. 어차피 영화는 계속 봐야 하는 거니까.
오늘도 봤을 텐데. 매일 두어 편씩 보고 있죠.
심사위원으로서 영화를 바라보게 될 때, 평소에 영화를 보는 시선과 차이가 발생하는 측면이 있을까요? 영화를 평가함에 있어서 채점을 한다라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보고 저도 별로 좋아하는 일은 아니에요. 그렇지만 그 이전에 관객으로서 영화를 본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해지죠. 미장센 영화제 당시 모토가, 지극히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심사기준? 우리 그런 거 없고, 자기 꼴리는 대로 가면 된다.(웃음) 이거였는데, 지금도 그런 기준을 마음 속으로 변함없이 갖고 있어요. 물론 공식적으로 오피셜(official)한 척하기 위한 심사기준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사실 인엣지(inside edge), 아웃엣지(outside edge) 가지고 채점하는 피겨스케이트 심사위원이 아니기 때문에 영화제 심사위원에게 객관성이란 건 사실 존재할 수 없는 것이기도 하죠. 그래서 제 자신을 영화적으로 가장 새롭고 참신한 느낌으로 흥분시키는 작품들을 만나게 되면 자연스럽게 심사가 되지 않을까 싶어요.
그렇다면 감독님을 흥분시키는 영화란 주로 어떤 영화인가요? 되게 사소해도 되는 거죠?
당연합니다. 전 이상하게 주인공이건 누구건 어떤 인물이 길이든 어디를 뛰어가면 왠지 이상하게 가슴이 막 뛴다고 할까요. 사람이 막 뛰어가면 카메라가 또 따라가겠죠. 뛰어가는 사람을 찍으려면 어쩔 수 없이 따라갈 테니까. 어쨌든 영화의 스토리나 앞뒤 맥락을 떠나서 그런 장면을 보면 이상하게 마음이 벌렁벌렁하면서, 그 영화가 좋아져요.(웃음) 예를 들면 트뤼포의 유명한 <400번의 구타>에서도 보면 고요하게 달리는 장면이 길게 나오잖아요. 그거 봐도 마음이 되게 이상하고, 어제 또 호텔 로비에서 보니까 전주영화제 게스트인 드니 라방이 도착했더군요. 차에서 내리는 걸 봤는데, 그 양반이 옛날에 출연했던 레오 까락스의 <나쁜 피>를 보면 엄청난 달리기 장면이 있잖아요. 컬러풀한 펜스 옆으로 막 지나가는, 그 때 아마 데이빗 보위(David Bowie) 음악이 나왔던 거 같은데 그 장면도 추억처럼 이렇게 떠오르네요. (뛰는 장면들이) 이상하게 저를 흥분케 하는 그런 게 있는 거 같아요. 제가 찍었던 영화에도 대부분 뛰는 장면들이 있기도 했고.
달린다는 이미지가 감독님의 감수성을 자극하는 측면이 있나 봅니다. 모르겠어요. 스트레스 해소가 잘 안 돼서 그러나.(웃음) 사실 저는 잘 뛰지 않거든요. 평소에 운동도 잘 안하고 뛸 일도 별로 없는데, 그래서 왠지 마음만이라도 뛰고 싶나 봐요. 지금 경쟁작 12편을 다 봐야 되는데 그 중 네 편을 봤거든요. 그런데 그 중에 세편에 뛰는 장면들이 있었고, 그 중에 한 편은 특히 아름다운 뛰는 장면이 있었어요. 심사 중이니까 (작품명을) 말씀드릴 수 없지만, 그래서 그 영화의 그 장면이 지금 머리에 되게 아른아른 거리네요.
아까 말했던 드니 라방은 레오 까락스 감독님의 작품에 상당히 많이 출연했었죠. (레오 까락스의) 페르소나죠. 이번에 <도쿄!>옴니버스에서도 또 주인공을 했어요. 드니 라방이.
레오 까락스 감독 작품에 말씀이시죠. 이번에 <도쿄!>덕분에 레오 까락스 감독님도 만나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도쿄!>옴니버스를 찍을 때, 감독들 세 명의 스케줄이 다 달랐어요. 제가 제일 먼저 여름에 찍었고, 가을 겨울에 미쉘 공드리랑 레오 까락스가 각각 찍어서 도쿄에서 같이 촬영이 겹친 적은 없었죠. 그런데 홍보용 사진 찍는다고 해서 세 명의 감독이 딱 하루 모인 적이 있었어요. 스케줄이 아슬아슬하게 맞아서 간신히 성사된 건데 그 때 잠깐 봤어요. 말이 되게 없으시더라고요. 공드리는 되게 수다쟁이고, 덕분에 저랑 이야기도 많이 했고요.
사실 감독님을 포함해서 나머지 두 감독님의 영화적 면모를 생각해보자면 세 분의 조합으로 이뤄진 <도쿄!>라는 작품의 이미지를 상상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엄청 다 제 각각일 것 같아요. 그리고 그런 게 옴니버스의 재미 아닐까요? 세 명이 세 파트로 갔는데 비슷하면 좀…그리고 이제 각자 개성이 강하고 다른데 나중에 곰곰이 생각해보면 묘한 공통점이 있다거나 이런 옴니버스가 베스트일 거 같아요. 그런데 사실 저도 지금은 잘 몰라요. 다른 두 분이 어떻게 찍었는지 시나리오조차 못 봤기 때문에. 이번에 칸 영화제에 가야 저도 이제 볼 테니까요. 그래서인지 제 영화의 프리미어인데도, 남의 영화를 보러 가는 듯하군요. 옴니버스라는 게 기분이 묘하네요. 다른 사람 파트는 못 봤기 때문에, 공드리나 레오가 또 어떻게 했을지.
이번에 <도쿄!>에서 감독님께서 만드신 <흔들리는 도쿄>의 캐스팅도 인상적입니다. 아오이 유우와 카가와 테루유키를 함께 캐스팅한다는 게 만만한 일도 아니었을 것 같고요. 운이 좋았죠. 둘 다 일본에서 정말 엄청나게 바쁘더라고요.(웃음) 사실 근데 이 프로젝트를 하자고 제안이 들어와서 수락한 처음부터 카가와 테루유키는 이미 머리 속에 있었어요. 히끼꼬모리를 주인공으로 한 얘기란 점에서도. 카가와 작품을 예전에도 몇 번 봤지만 칸 감독주간에서 봤던 <유레루>가 결정적이었죠. 2006년에 <괴물>로 칸 감독주간 갔을 때, 같은 섹션에 <유레루>가 있었거든요. 그리고 <유레루>감독인 니시카와 미와를 제가 알고 있었어요. 2003~4년경에 일본의 한 영화제에서 만난 적이 있었는데, <유레루> 이전에 찍었던 작품들도 굉장히 잘 찍었었어요. 데뷔작인 <산딸기>도 성찰적이면서도 좋았고요. 그래서 <유레루>를 기대했었는데 보고 나니 영화도 물론 좋았지만 카가와 테루유키한테 아주 반했죠. 그래서 <흔들리는 도쿄> 처음 준비할 때부터 카가와를 염두에 두고 시나리오를 썼는데 (캐스팅이) 잘 됐어요. 아오이 유우는 저뿐 아니라 어떤 감독들이나 일해보고 싶은 매력적인 여배우인데 사실 반신반의했었어요. 과연 될까 싶어서. 스케줄을 이미 카가와 테루유키에게 맞춰놓은 상태에서 (아오이 유우의) 캐스팅에 들어간 것이기 때문에, 어쩌면 이게 안 될 수도 있겠다, 싶었죠. 카가와 테루유키도 거의 1년 스케줄이 다 나와있는 상태에서 비어있는 블록을 잡아 촬영일자를 잡은 건데, 거기에 또 아오이 유우를 맞춰야 되니까. 게다가 사실 아오이 유우는 더 바쁜 사람이고. 근데 아오이 유우 쪽을 처음 만났을 때, 아오이 유우 측에서, <살인의 추억>을 일본 개봉 당시 봤고 너무 좋아한다. 작품은 꼭 하고 싶다. 근데 스케줄이 조금 복잡하게 됐다, 그래서 한번 성사가 안됐었어요. 그래서 몇 달 지나고, 다른 여배우를 누구로 가야 하나 이렇게 찾아보고 있는 단계에서 다시 연락이 왔어요. 할 수 있게 됐다. 그래서 ‘우훗!’ 쾌재를 불렀어요.(웃음) 제가 원하던 대로 돼서 기뻤죠. 그리고 다케나카 나오토라고, 경력이 더 오래됐지만 일본의 오달수 씨라고 할까요. <쉘 위 댄스>에서 열연을 펼치시기도 했죠. 감독이시기도 하고. 아무튼 그 분께도 말씀 드려봤는데, 그분께서는 한국영화 팬이셨어요. 김기덕 감독님 영화도 좋아하시고, 제 영화도 세 편 다 보셨고 좋아하신다고, 한국영화를 해보고 싶었다면서 흔쾌히 수락하셨죠. 그래서 세 명의 배우가 전부다 바쁜 사람들인데 캐스팅하게 됐어요. 다 잘 돼서 행운이라고 생각해요.
<흔들리는 도쿄> 中 아오이 유우와 카가와 테루유키
<도쿄!>는 감독님께서 처음으로 외국에 나가 찍은 영화이기도 합니다. 사실 로케이션의 문제보다도 언어가 관건이었죠. 영화의 대사가 일본어라서 한국어가 아닌 외국어로 디렉팅을 한다는 게 어떤 느낌인지 궁금했어요. 통역이 있긴 하지만 잘 할 수 있을까, 약간 무섭기도 하고. 하지만 결국 좋은 경험이 됐어요. 재미도 있었고. 외국어로 연출할 수 있겠구나, 이게 이번에 제 개인적으론 가장 큰 수확이었다고 생각해요. 물론 연재미 씨라고, 이제 뛰어난 통역사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기도 하지만 인간의 감정, 배우의 감정이 말로서 표현되는 것만이 아니라는 것을, 그 느낌이나 뉘앙스라는 만국공용어가 존재하구나, 라는 걸 느꼈어요. 자기의 슬픔을 일본말로 표현하건, 불어로 표현하건, 영어로 표현하건, 한국말로 표현하건 그건 결국 슬픔이 되더라고요. 그걸 깨닫게 되니까 어느 순간 되게 수월해졌어요. 비록 낱말들은 못 알아듣지만 배우가 대사를 할 때, 이건 NG다, OK다, 라는 것에 대해서 나중에 점점 느낌이 쉽게 왔고, 배우들도 저와 의사 소통하면서 마음이 잘 통하는지 제 결정에 따르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본질적으로 같은 거라는 걸 알았다는 게 큰 수확이었어요.
시스템의 차이도 많이 느꼈을 거란 생각이 듭니다. 일본은 타이트하죠. 한국은 보통 장편영화를 3~4개월 안에 찍는데, 일본은 한달 반에서 두 달, 대작이라 해도 2달 반 정도에 끝내죠. 스케줄이 되게 빡빡하고, 빨리 끝내는 편이에요. 대신 프리프로덕션(pre-production)부터 치밀하게 준비하는 타입이고, 촬영 중간에 좀처럼 쉬질 않아요. 일주일에 6일이건, 7일이건 쉬는 날 없이 막 가요. 스텝들이 월급제 계약식이라서 제작비 측면에서 촬영 기간에 민감하기 때문에. 사실 한국도 이제 작년에 단체협약이 성사되고 나서 그런 시스템으로 바뀌어가고 있죠. 한국도 아마 미래에 그렇게 되지 않을까 싶어요. 물론 다 장단점이 있겠고요. 일본 스텝들의 직업적인 숙련도나 집중력은 되게 뛰어났어요. 하드 하게 단련이 잘 된 덕분인지. 저보다도 나이가 많은 40대 중반의 직업 조감독과 일을 했었는데, 작품 경험한 숫자도 어마어마하게 많고, 그래서 조감독에 대해 다른 스텝들의 리스펙트(respect)나 권위도 장난이 아니었죠. 그 조감독도 그에 걸맞게 책임감이 강하더군요. 이 현장을 자기가 진행시킨다는 것에 대한 의무감이 강하고, 그만큼 아주 정교하게 시간단위로 스케줄을 짜고. 대신 약간 답답한 면이 있어요. 우리나라 같으면 쉽게 돌파할 수 있을 일인데 왜 저렇게 걱정을 할까 싶은 것들. 같은 일을 되게 어렵게 한다고 할까요. 좋게 말하면 돌다리도 두들겨본다, 고 말할 수 있지만 우리 입장에서 보기엔 왜 저런 걸로 에너지를 낭비할까, 싶은 소심해 보이는 측면이기도 하죠. 각각 장단점이 있는 거 같아요.
모든 상황에 대해서 세세하게 짚고 나가는 편인가 봅니다. 아주, 매우 그래요. 그래서 믿음직스럽고 안정감은 있는데, 만약 얘네들이 내가 현장에서 아이디어를 바꾸거나 급격하게 변화를 줄 때 어떻게 반응할까, 라는 궁금증이 생기더군요.
특히 한국 현장에서는 그런 변동성이 비일비재하지 않습니까? 그렇죠. 감독이 순간적으로 생각이 바뀐다던가. 그리고 그런 걸 순발력 있게, 탄력 있게 따라오는 게 한국 스텝들의 힘이죠. 사실 일본에서 제가 갑작스럽게 테스트를 몇 번 해본 적이 있긴 있어요.(웃음) 저는 제가 직접 콘티를 세밀하게 그려서 제시하는 편인데 스토리보드가 그렇게 있으니까 일본 스텝들도 좋아하더라고요. 그런데 몇몇 순간에 갑작스럽게 변화를 주면서 어떻게 되나 한번 살펴봤죠. 나름 잘 따라오려고 하더라고요.
시장조사를 했다고 봐도 되겠네요.(웃음) 방금 말씀하신 대로 감독님은 콘티를 상당히 디테일하게 그리기로 소문났던데, 아무래도 완벽하게 이미지 구상을 마친 뒤에 카메라로 그것을 완전히 재현하고 싶어하는 까닭이 아닌가 싶습니다. 공간이나 카메라 워크, 카메라의 위치나 프레임들, 이런 건 실제로 미리 세밀하게 준비하려고 하는 편이에요. 그러니까 완전히 정해진 촬영장소에서 제대로 관찰한 후에, 콘티를 그리죠. 머릿속으로만 담아두는 게 아니라 정말 실질적인 콘티를 하려고 애를 쓰는 편이죠. 다만 그런 화면 속에 배우가 들어갔을 때 발생하는 변화는 필요하다고 봐요. 배우와의 작업에 있어서는 순간순간적인 감정이나, 현장에서의 느낌을 굉장히 중시하는 편인데요. 배우들이 제가 생각하지 못했던 새로운 아이디어나 즉흥 연기 같은 걸 잘 구사하면 되게 좋아하는 편이죠. 드라마나 스토리, 캐릭터의 본질을 해치지만 않는다면 오히려 그런 걸 기대하는 쪽이고요. 오히려 현장에서 변화를 많이 주려고 하죠. (배우들과) 같이 대사도 많이 고치고.
작품마다 공간의 이면이 드러나는 점도 특징이라고 생각합니다. 일상적인 아파트 지하에서 서스펜스가 발생하고, 평온한 이미지의 농촌에서 살인의 스펙터클이 형성되고, 그리고 한강에서 괴물이 출몰한다는 것도 마찬가지고요. 어떻게 보면 괴물이 나오기에는 가장 썰렁한 장소이기도 하죠.(웃음)
작품마다 일반적인 공간의 이미지를 배반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더 크게 보면 공간성 이전에 뭔가 어색하고 안 어울리게 같이 뒤섞여 있는 것들이 있죠. 어떻게 보면 악취미이기도 한데,(웃음) 그런 부조화된 상태라던가, 그런 걸 좋아해서 그런 거 같아요. 그러니까 뭔가 되게 심각하고 장중해 보이는 장소에서 사람은 오히려 되게 조잡하고 뻘쭘한 짓을 한다거나,(웃음) 반대로 방금 말씀하신 것처럼 늘 지나가며 보던 논에서 살인사건이 벌어진다거나. 한강이란 어쩌다 휴일에 가서 오리배나 타는 곳인데 어이없이 거기서 괴물이 활보를 한다거나. 사실 되게 생경한 것들이죠. 예를 들어 울산에 있는 오래된 폐공장의 어두운 지하에서 괴물이 나온다면 분위기도 그럴싸하겠지만 이건 뭐, 자전거 빌려 타던 한강 다리 밑에서 (괴물이) 나오니까 뜨악해지는 거죠. 그런 이상한 부조화를 제가 좀 좋아하는 거 같아요.
어쩌면 그게 한국식 장르영화의 리얼리티가 될 수도 있겠습니다. 할리우드 장르영화와 한국영화 사이에서, 그러니까 (미국과) 한국현실 사이에 갭이 크잖아요. 할리우드 장르영화의 특징도 한때는 그게 사실적인 리얼리즘이었는데 그게 이제 장르의 컨벤션(convention)으로 오랜 세월 흘러오다 보니 굳어버린 거죠. 중절모를 쓰고, 기관단총을 쓰는 갱스터가 미국의 과거에, 1930년대 금주법 실행 당시엔 실제로 있었던 거잖아요. 근데 그게 하나의 장르가 되고 컨벤션과 클리셰(cliché)가 된 건데, 우리는 한국현실에 살면서 애초에 그런 미국적 리얼리티가 없이 장르만을 봐왔잖아요. 그 갭 자체가 영화상에 적용돼 들어가버린 거 같아요. 그래서 오히려 (제 영화가) 약간 웃기면서도, 생경하고 특이한 느낌으로 받아들여진 게 아닐까 생각해요.
공간의 이동 경로나 진행 방향에 따라 발생하는 감정의 양상도 다른 것 같습니다. 수직적인 이동이 야기되는 상황에서는 긴장감이 발생하지만 수평적인 상황에서는 처연함이 발생한다고 할까요. <괴물>을 예로 들면 현서(고아성)가 괴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하수구에서 탈출하려 안간힘을 쓸 때는 긴장이 발생하지만 희봉(변희봉)이 괴물과 맞서다 죽는 한강고수부지 씬에서는 처연함이 묻어납니다. 남일이 빌딩에 올랐다가 탈출하는 수직적 상황도 그렇고, 결말부에 강두가 괴물을 저지하는 상황도 수평적이라고 볼 수 있고요. 개인적으로는 비약해보자면 수직과 수평이라는 이미지에 어떤 의미부여가 있었던 건 아닌가 싶더군요. 그렇게 까지 거창하게 생각해본 적은 없습니다만,(웃음) 사실 제가 수직적인 것에 대한 집착은 있어요. <플란다스의 개>에서도 아파트는 수직적인 공간이었죠. 그래서 수평적인 복도에서 현남(배두나)과 윤주(이성재)가 쫓고 뛰어가면서 벌어지는 사건도 있고, 옥상에서 벌어지는 사건이나 깊숙한 지하실에서 벌어지는 사건도 있었고. 그리고 <괴물>은 명백하게 현서가 수직적인 공간에 감금되어 있는 거니까, 수직적인 비극이라고 할 수 있는 거죠. 불과 몇 미터의 높이를 올라가지 못해서 안간힘을 써야 하는 공포와 긴장이 있는 거니까. 그런데 수평이 어떤 감정과 연결됐다고 저는 크게 인식 못했는데 말씀하신 걸 듣고 나니까 <괴물>의 변희봉 선생 장면이나, 특히 <살인의 추억>의 백광호(박노식) 현장검증에서 아수라장에서 마무리되는 장면이 떠오르네요. 거기서 보면 고속촬영으로 흐르는 씬에서 논의 흙탕물이 막 튀고 사람들이 모두 뒤엉키죠. 그런 인간군상들이 어떻게 보면 약간 웃기기도 하면서도 처연하고, 우린 다같이 못난이 들이야, 잡혀온 사람들이나, 형사들이나 다같이, 그런 측면에서 처연하다는 표현이 맞는 거 같아요. 사실 난 잘 몰랐는데, 그랬던 거 같네요.(웃음)
아무래도 <괴물>은 괴물이 등장하는 장면의 비용대비효과를 극대화시키는 게 최대의 화두가 아니었을까 같습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죠.(웃음) 그 한정된 예산을 가지고 제가 사용할 수 있는 괴물 샷의 숫자는 이미 정해져 있었어요. 시나리오에 다 있는 장면이지만 단지 백 몇 십여 숏(shot) 안에 무조건 다 표현해냈어야 하니까 괴물 샷을 예산 때문에 줄여나가야 했죠. 그런데 그게 고통스러운 작업이었지만 할리우드에서도 다 겪는 일이더라고요. 이안 감독의 <헐크>메이킹을 보면 스토리보드상 CG샷이 4백여 개 정도되는데 이거 백여 개 정도를 줄여야 된다고 프로듀서랑 시각효과 감독이 이야기하면 이안이 영어 못 알아듣는 척하면서 눈만 깜빡이는 장면이 있어요.(웃음) 그런 걸 보면서 위안 삼았죠. 동시에 조금 좋게 생각하면 그런 현실적 한계가 저의 창의력을 자극한 부분도 있었던 거 같아요. 괴물이 카메라엔 안 잡히지만 같은 공간 안에 계속 존재하고 있다는 존재감을 유지시키면서 공포감, 긴장감을 유발시켜야 되니까 그런 연출을 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 아이디어들도 더 쥐어짜게 되고, 예를 들어 도입부에서 괴물이 처음 나타났을 때 컨테이너 박스 안으로 들어가는 장면이 있잖아요. 그 안에서 사람들 뒤엉키고, 컨테이너 박스가 이렇게 흔들리고. 그건 CG샷이 아니고 그냥 컨테이너 박스만 뒤에서 기계로 흔든 건데, 관객은 머릿속으로 그 안에 괴물이 존재하고 있다고 생각하게 되고 결국 그 안의 지옥의 아수라장을 예상하는 거잖아요. 그런 긴장감을 어떻게 끌고 가느냐가 관건이었죠. 오히려 좋게 받아들이면 좋은 상황이었던 거 같아요. 게다가 <괴물>이 순 제작비만 백억이 좀 넘은 영화니까 한국 기준으로 봤을 때 대작내지는 블록버스터라고 말하지만 특수효과를 비롯해 찍어내는 내용으로 봤을 때는 정말 저예산 영화나 다름없었거든요. 그래서 오히려 <플란다스의 개>나 <살인의 추억>때보다 저는 더 많은 압박을 느꼈어요. 그 와중에 무사히 끝난 게 다행이긴 한데, 사실 예산이 두 배나 세배로 더 풍족했었더라면 만약에 어떻게 됐을까, 약간 미련이 남는 지점이 있긴 했죠.
해외에서 감독님의 인지도가 높아진 만큼 감독 제의도 심심찮게 들어올 것 같습니다. 그 중에 제작비 여건이 한국보다 좋은 경우도 있을 법 한데요. 영화의 탄생 때부터 있었던 얘기지만 제작비의 지원이 클수록 그에 상응되는 더 많은 간섭이 있죠. 저는 다행히도 좋은 제작자들을 만나서 한번도 간섭 받은 적 없이 제가 하고 싶었던 걸 다 할 수 있었던 거 같아요. 그래서 극장에서 개봉한 제 세편의 영화들은 다 디렉터스 컷일 수 있었고요. 촬영에서건, 편집에서건, 별다른 큰 압박을 받거나 한 적이 없었어요. 그런 게 저의 행운이었다고 봐요. 내가 내 영화를 100% 컨트롤 할 수 있다는 것. 그게 저로써는 가장 중요한 부분이거든요. 이번에 <도쿄!>도 100% 저의 컨트롤로 완성한 영화인데 그게 충족이 된다면 해외에서도 영화를 해보고 싶어요. 근데 만약 그런 점이 잘 보장되지 않는 작업이라면 수천억, 수조를 줘도 별로 의미는 없는 거 같아요. 사실 미국 할리우드에 제 에이전시(agency)가 생긴 덕분에 할리우드 스크립트 시나리오들은 계속 들어오고 있고, 이런 저런 구체적인 제안을 받은 경우도 있었어요. 일본에서도 장편 영화 제안을 받은 적이 몇 번 있었고, 이미 제가 이미 하기로 한 프로젝트들도 일단 있고. 물론 이번에 <도쿄!>의 <흔들리는 도쿄> 30분 짜리를 짧게 경험해본 것처럼 지금은 조심스럽게 짚어보고 있는 상황이라, 선뜻 뭐라 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작품에 대한 컨트롤만 가능하다면 외국에서 영화를 찍어보는 것도 재미있는 일 같아요.
사실 전주국제영화제와 본격적인 인연을 맺은 건 ‘2004 디지털 삼인삼색’을 통해서였습니다. <인플루엔자>라고. 2004년이었죠.
그 작품이 유일하게 감독님이 디지털카메라로 만든 영화이기도 한데요. 같은 방식의 장편영화를 찍어볼 계획은 없을까요? 지금의 트렌드나 산업의 흐름상 어쩔 수 없이 변하게 되는 부분을 떠나서 순전히 개인적으로만 말해보자면 사실 저는 필름광이에요. 필름으로 찍힌 사진을 좋아하죠. 물론 편하니까 디카를 쓰긴 하지만 그래서 가끔 필름으로 사진도 찍고 그래요. 필름에서만 전해지는 이상한 화학적 느낌과 그 맛을 너무 좋아하기 때문에.
네거티브한 질감 같은 것 말입니까? 예. 그래서 어떻게든 저는 필름을 써보려고 버티는 쪽이 될 거 같아요. 물론 마이클 만 영화에서의 HD는 아름답고 박력 있는 느낌을 주긴 하죠. 요즘은 배급의 경제논리로 디지털 상영도 많이 하지만 전 디지털 프로젝터로 상영되는 스크린의 느낌도 좀 싫어요. 순전히 개인적인 취향이 그래요. 그런데 최근에 그런 선입견을 깨뜨린 게 데이빗 핀처 감독의 <조디악>인데 HD로 촬영했더라고요. 바이퍼 카메라로 찍었는데 화면의 품격이나 느낌들이 정말 좋았고, 저 정도가 나올 수 있다면 HD도 해볼 만 하겠다 싶었어요. 중후한 살인 사건 영화임에도 화면이 묘하게 부드러우면서도 아름답고, 하여튼 그 느낌이 독특했어요. 인상적인 경험이었죠. 라이팅(lighting)이나 시각 효과 자체도 뛰어났던 거 같아요.
<이공> 프로젝트 당시에 다른 감독들이 디지털 촬영으로 갔던 것과 달리 혼자 16mm필름을 사용한 것도 그런 애정 때문이었습니까? 그 때는 이제 몇 가지 사정이 있었죠. 그 때 제가 6분짜리 원씬 원테이크를 찍었잖아요. 어두운 다리 밑에 있는 매점 앞부분에서 찍다가, 밖으로 나왔다가, 이게 다 원테이크다 보니까 큰 노출 변화나 밝기 변화가 생기는데 그걸 디지털 6mm카메라로 하자니 극복하기 힘든 핸디캡이 있어서 어쩔 수 없이 반칙을 좀 했죠. 디지털 프로젝트인데 저만 16mm필름으로 찍었으니까.
작품마다 인상적인 캐릭터들이 등장합니다. 세 작품에 등장했던 캐릭터 중 특별히 개인적으로 애정이 컸다고 할만한 캐릭터가 있을까요? 다들 애정이 가지만 딱 하나만 꼽으라면,(잠시 생각하다가) 그냥 열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지만 지금 즉각적으로 떠오르는 한 명은 <괴물>에서의 현서, 고아성 양이네요. 모든 가족이 구하려고 하는 사람이니까, 어쩌면 오브젝트(object)가, 그저 단순히 대상이 될 수 있는 캐릭터인데도 걔는 거기서 더 약한 애를 구하려고 발버둥을 치잖아요. 결국은 끝에 가서 죽음을 맞이하지만 조그마한 남자아이를 보호하고 끝내 자기 아버지에게 인계한 셈이죠. 왠지 현서 생각이 나네.
세 작품은 인물들이 무언가를 찾는다는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강아지나, 범인이나, 현서나. <플란다스의 개>처럼 강아지를 찾아내는 경우도 있지만 결국 진범을 잡지 못한다는 아이러니가 있었죠. 그리고 <살인의 추억>에서 결국 진범을 찾지 못하는 것이나 <괴물>에서 살아있는 현서를 만나지 못한다는 것도 결국 인물들이 이루고자 하는 바가 해소되지 못한다는 맥락적인 공통점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러고 보니까 진짜 뭐가 제대로 성사된 적이 없네요.(웃음) 항상 빗나갔군요. 제가 좀 긍정적인 사고를 해야 하는데.(웃음)
어쩌면 그게 감독님께서 인지하시는 현실적 리얼리즘이 아닐까 생각되는데요. 그들이 하나같이 서민이란 점도 그래서 왠지 의미심장해 보이고요. 사실 살다 보면 참 뜻대로 안 되는 게 많죠. ‘쿵따리 샤바라’가사에도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을 때도 있고’란 가사도 있듯이,(웃음) 되지 않을 때가 되게 많은 거죠. 진짜 그렇죠. 월트 디즈니 영화를 보면 모든 것이 안락하게 봉합되면서 끝나는데 사실 그렇게 되는 게 나쁜 건 아니지만 그렇게 잘 안 되잖아요. 뭔가에 실패하거나 어긋나는 게 우리 삶에 가까운 모습이니까 오히려 관객들이 공감할 수 있는 거 같아요. 때론 좀 씁쓸하거나 잔인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사실 오히려 그게 위로 받는 것일 수도 있지 않을까요. 나도 저랬었지. 그렇지만 계속 살아야지 어쩌겠어. (<괴물>에서) 강두(송강호)도 딸을 못 구했지만 세주(이동호)와 함께 밥을 꾸역꾸역 먹잖아요. 산사람은 계속 살아야 하니까. 그게 한편으로 슬프면서도 약간의 낙관성인 거 같고.
비약이 될 수도 있지만 감독님의 정치적 자의식이 개입된 측면이라고 생각해봐도 될까요? <괴물>이 괴수장르다 보니까 장르 전통에 맞게 직설적이고 썰렁한 정치풍자를 많이 하긴 했지만 정치 이전에 더 큰 생활, 내지는 삶의 영역인 거 같아요. 사소한 게 안될 때도 많잖아요. 짬뽕시켰는데 자장면 나오고.(웃음) 거대한 정치가 아니더라도 그런 것도 원하는 대로 안 되는 거잖아요. 속상하지만 배가 고프면 자장이라도 먹어야 되는 거죠.
<괴물>은 분명 진보적인 메시지를 품은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 영화는 1300만이라는 스코어를 기록했죠. 단순히 그 머릿수를 개개인의 정치의식으로 온전히 치환하는 건 무리겠지만 정말 많은 수의 관객들이 이 영화를 봤습니다. 그런데 불과 2년 만에 보수 정권이 들어서는 상황이 발생했습니다. 이는 감독님에게 어떤 아이러니한 단상을 줄만한 사안이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괴물>에 의도적인 풍자나 메시지가 있는 건 사실이죠. 그런데 관객 입장에서 받아들이는 건 여러 가지 맥락이 있을 것 같아요. 가까운 지인의 말로는 어린 초등학생 딸래미가 자기 아빠랑 영화를 보고 극장에서 손잡고 나오면서, 아빠도 내가 어디 잡혀가면 저렇게 해줄 수 있어? 이랬다더군요. 그 아이 입장에선 그런 면이 두드러져 보였을 테니까요.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될 때 득표수를 보면 1100만 표 정도되더라고요. 근데 방금 1300만이라고 말씀하신 얘기를 들어보니까 티켓 구매수가 득표수보다 많았군요. 물론 그래서 <괴물>이 잘 났다는 게 아니라.(웃음) 어쨌든 정치적인 투표행위, 정당과 인물을 선택하는 문제와 영화를 감상하는 행위는 다른 거 같아요. 영화는 다층적으로 받아들이는 거기 때문에. 변희봉 선생님을 보면서 자기 아버지가 생각나는 사람도 있는 거고, 미국에 대한 풍자나 정치적인 서브 텍스트들을 민감하게 보는 대학생이나 지식인도 있을 수 있는 거고, 내 아빠라면 어떻게 할까, 하고 울고 웃으면서 보는 꼬마도 있을 수 있고, 그렇게 광범위하게 볼 수 있는 거니까. 영화가 <화씨9/11>같은 마이클 무어 다큐멘터리처럼 어그레시브(aggressive)한 직접적인 정치 다큐멘터리가 아닌 이상, 특히나 극영화들은 대중의 정치적 성향과의 함수 관계 같은 걸 쉽게 짚어볼 수 있는 건 아닌 거 같아요. 훨씬 혼란스럽고 복잡한 문제겠죠. 일단 <괴물>이 약간이건 많이건 진보적인 성향의 풍자를 담고 있고, 그 영화를 1300만이 봤지만 그 다음해에 바로 보수적인 성향의 정권에 1100만여 명의 사람이 투표를 했다는 게 이상하지 않느냐, 라는 논리를 세울 수는 없을 것 같아요. 충분히 그럴 수 있는, 훨씬 더 복잡한 레이어(layer)들이 있다고 보고요.
감상의 방향은 다양할 수 있으니까요. 한편, <살인의 추억>처럼 <괴물>도 절망을 내포하고 있지만 결말부의 느낌은 좀 더 낙천적인 양상으로 전진하는 느낌이 있습니다. <괴물>은 현서가 죽음에도 불구하고 낙천적인 면이 있는 거 같아요. 아까도 얘기했지만 영화가 밥 먹으면서 끝나잖아요. 먹는 걸 계속 강조하는 영화이기도 했고. 혈연관계가 아닌 괴상한 인연의 두 사람이 마주앉아서 꾸역꾸역 밥을 먹잖아요. 낙관적인 면이 있었다고 봐요. 반면 <살인의 추억>은 어쩔 수 없이 어둠을 직시해야 하는 영화였죠. 단순히 제목은 역설적으로 추억이지만, 실제론 추억이라 말할 수 있는 과거가 아니라 해결되지 않은 과거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의 현재란 것이죠. 우리가 80년대에 이렇게 연쇄살인범 하나도 못 잡고 여자들을 보호도 못하고 줄줄이 죽이면서 이런 꼬라지로 살았지만 지금 우리는 안 그래, 이런 안도하는 관점에서 과거를 봐서는 안 된다는 거죠. 그래서 이제 2003년 에필로그를 넣기도 했지만, 박두만(송강호)이 관객을 정면으로 바라보는 라스트 컷을. 과거에 우리가 이렇게 어두운 시절이 있었고, 그렇다면 그 어둠을 지금 우리는 완전히 다 씻어낸 것인가, 그런 질문을 던지는 거였죠. 만약 그걸 강하게 집중해서 봤다면 어둡고 막막해지는 느낌이 있었을 거에요. 좀 부담스러운 면이 될 수도 있었겠죠.
결국 과거나 허구를 통해서 현재와 현실을 환기시키는 셈인데, 그것이 감독님이 추구하는 영화적 리얼리즘이라 할 수 있을까요? 사실 저는 리얼리티, 사실적이고 표면적으로 보이는 것에 대한 관심은 많은데 리얼리즘에 대한 특별한 관심은 없어요. 그걸 추구하지도 않고요. 영화는 판타지라고 믿는 쪽이죠. 대신 한국현실과 판타지가 이상하게 충돌했을 때, 아까 말한 한강둔치에서 뛰어나오는 괴물처럼, 거기서 나오는 생경한 영화적 흥분을 좋아하는 것일 뿐이에요. 대신 내가 한국현실에 대해서 의도적으로 목청 높여 메시지를 부르짖거나 발언을 하고 싶었던 건 아닌 것 같아요. 켄 로치나 올리버 스톤 영화처럼. 다만 제가 한국 사회에 관한 여러 가지 궁금증이나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부분들, 다들 미쳤나 봐, 왜들 저러지, 너무 무서워,(웃음) 이런 공포감은 있죠. 사회에 적응하기 힘들지 않아요? 누구나 힘들잖아요. 아마 한국사회뿐 아니라 모든 사회가 그럴 수 있겠지만 제가 외국에서 못살아봤고 한국에서만 살아봤기 때문에 저한테 사회나 시스템은 그냥 한국사회인 거죠. 그런 것들이 자연스럽게 영화에 투영되는 거 같아요. 다만 제가 어떤 계몽적인 메시지를 던질만한 주의, 주장을 가진 사람은 아니고. 제 자신의 생각에도 항상 회의를 품는 성격이기 때문에, 주장을 하는 데는 되게 소심한 사람이고요. 그저 제가 한국사회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의문이나 도저히 이해를 못할 부분, 막연한 공포감들이 영화에 반영되는 셈이죠. 사실 합동분양소처럼 집단 장례식을 한다는 건 그만큼 사람이 떼로 죽는다는 얘기니까 그것만으로도 엽기적이고 공포스러운 일인데, 그 와중에 거기서도 누군가가 2487차 빼라고 막 소리지르고.(웃음) 사실 우리가 매일같이 겪는 일이잖아요. 누구 차 빼달라는 거. 그게 웃기면서도 되게 슬프고 공포스러운 순간이죠. 그런 이상한 감정들이 한국사회에 용광로처럼 뒤얽혀있다고 보기 때문에 보는 이가 어떤 감정을 느끼건 전 그걸 고스란히 표현하고 싶은 거죠.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현실이 영화적 모티브가 된다는 것이군요. 예! 영화나 드라마가 따라갈 수가 없다니까요. 현실적으로 벌어지는 이 시츄에이션(situation)들을 보면 이게 뭔가 싶은 것들이 많이 보이죠.(웃음) 모든 창작자들이 그렇겠지만 주변 현실에서 받는 자극이나 영감이 큽니다. 소설이나 영화와 같은 타인의 창작물을 보면서 느끼는 자극보다도 제가 살아가고 있는 생활이나 주변, 한국 사회의 어떤 순간순간적 모멘트(moment)에서 자극을 받는 경우가 많죠. 개인적인 경험이나.
그런 순간적 자극을 기록해두기도 하나요? 그럼요. 특히 <플란다스의 개>는 소소한 일상적 디테일을 구성할 때 그런 걸 많이 활용했어요. 휴지를 백 미터 굴리는, 그 너무나 어처구니없는 장면 같은 경우도 실제로 해본 건 아니지만 제가 조감독 때 경제적으로 힘들게 살면서 했던 생각이에요. 조감독 때는 워낙 돈이 없잖아요. 그런데 애는 키워야 되고 생활은 쪼들리니까 맨날 아르바이트하고 그랬는데 그럴수록 예민해지거든요. 돈이 없이 지내보면 알겠지만 슈퍼에 가서 음료수를 살 때 용량 120㎖ 이렇게 써 있으면, 이게 120㎖ 맞는지, 안 맞는지 누가 알아, 누가 재봤어? 이런 생각이 드는 거에요. 아니면, 0.5ℓ 함유? 이 자식들 0.4ℓ넣어놓고 이렇게 파는 거 아냐? 막 이렇게 예민하게.(웃음) 휴지도 보면 겉에 보면 100m라고 써 있는데, 진짜 100m맞아? 이게 과연? 이것도 돈 내고 사는 건데, 운동장100m 트랙 위에 쫙 펴볼까? 이런 상상도 했거든요. 그러다 보면, 이런 건 내가 봐도 너무나 쪼잔하다, 내가 어쩌다 이런 인간이 됐지? 이렇게 생각하면서도 웃기니까 그런 걸 공책에 적게 됐어요. 그러다 그 이상한 시츄에이션들이 이제 시나리오 속으로 들어가게 된 거죠. 그런 경우가 많이 있었어요.
전주영화제가 끝나면 이제 <도쿄!>프리미어가 열리는 칸영화제로 가시겠군요. 이제 한국을 대표할만한 감독으로 꼽히고 있기도 한데. 김기덕 감독님이 대표할만한 분이죠.(웃음)
최근 영화주간지에서 조사한 영화인 파워리스트마다 감독 중에 가장 상위 랭커를 차지했다던데요. 그니까 그게 참 이상한 거에요. 사실 저를 규정하는 가장 명쾌하고 쉬운 방법은 영화 세편 찍은 감독이라는 거에요. 세 편밖에 못 찍었고, 계속 가봐야 알 수 있는 거죠. 저의 유일한 꿈은 임권택 감독님이나 마뉴엘 드 올리비에라(Manuel De Oliveira)처럼 끝까지 현역으로 남아서 영화를 계속 찍는 게 제 유일한 꿈이에요. 그러다 보면 언젠가 한번쯤 걸작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라는 막연한 희망을 가졌기 때문에 계속 하려는 것이기도 하죠. 지금의 파워리스트 같은 건 그저 형식적인 거 같아요. 제가 제작사나 영화사를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고 저는 그저 제가 찍고 싶은 스토리나 저를 흥분시키는 어떤 한 이미지나 장면에만 병적으로 집착하면서 살아가는 삶이니까. 어쩌면 파워리스트에서 조만간 사라지게 될지도 모르죠.(웃음) 만약 그래서 계속 영화를 찍을 수 없다면 개인적으로 영화를 찍을 수 있는 방법들을 마련해봐야겠죠.
하지만 김혜자 선생님이 <마더>에 캐스팅됐다는 게 현재 그 파워를 증명할만한 사례가 아닐까 생각되는데요?(웃음) 김혜자 선생님과 접촉했던 건 <괴물>찍고 나서가 아니고요. <살인의 추억> 그 직후에 처음 연락 드린 거에요. 그니까 <마더>는 <괴물>전부터, 이미 오래 전부터 준비해왔던 프로젝트였고, 김혜자 선생님을 전제로 해야만 성립되는 프로젝트라서 배우가 먼저 정해진 상태에서 시나리오도 쓸 수 있었죠. 김혜자 선생님을 처음 뵌 지는 벌써 4년이 흘렀네요. 선생님도 많이 기다리셨죠.
벌써 <마더>의 차기작도 정해졌다고 알고 있습니다. 2010년도 쯤에 <설국열차>도 제작하실 예정이죠? 2010년이나 2011년쯤에 되겠죠.
아무래도 지금까지 감독님은 한국적 현실을 영화적 배경으로 삼아왔는데 <설국열차>는 원작만 봐도 범세계적인 프로젝트가 될 것 같습니다. 저의 새로운 도전이죠. 그 영화 찍고 나면 많이 늙을 거 같네요.(웃음) 정신과 육체를 많이 리프레쉬(refresh)하면서 잘 버텨야 할 텐데. 대작이 될 거 같아요. <마더>는 내용은 찐하지만 규모는 크지 않을 것 같고요. 아마 <설국열차>는 몸과 마음의 준비를 잘 해야 할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