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바다

도화지 2009. 10. 18. 03:29

이번 부산영화제는 내게 휴양이었으면 좋겠다 생각했다. 작년엔 첫날부터 마지막 날까지 머무르며 취재 틈틈이 영화를 봤고 12편 정도를 봤다. 하지만 올해는 금요일 늦게나 내려가 수요일 밤에 내려왔고 영화는 딱 2편을 보고 말았다. <파주> <카페 느와르>와 같은 한국 화제작은 딱히 부산에서 볼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하얀 리본>이나 <브라이트 스타>도 보고 싶었지만 시간대가 어중간해서 포기했다. 기봉 <복수>만 볼 수 있다면 여한이 없을 거라 생각한 탓도 크다. 서울에서 이 영화를 보게 될 일은 어지간하면 없으리라 생각했던 탓도 크다. 작년에 부산에서 <참새>를 보지 못했다면 영원히 스크린으로 보기 힘들 영화 중 한편으로 기억됐을 것이란 긴장감도 작용한 바가 컸다. 덕분에 딱 <복수>만 보고 말았다. 만족한다. 그냥 이 한 편이면 됐어, 란 생각이 들 정도로 내겐 인상적인 영화였다.

 

술은 참 많이 먹었지. 이상하게도 술자리가 많았다. 게다가 이상하게도 올해는 뭔가 일정이 타이트해. 바다 보러 가야지, 했건만 내려가서 3일 정도는 바다 근처도 못 갔다. 이게 다 망할 센텀시티 탓이지. 올해는 기자회견이 열리는 신세계 문화홀과 프레스센터를 가려면 신세계 매장을 가로지르거나 돌아야 했다. 덕분에 센텀시티로 가는 택시에 몸을 싣고 해운대를 뒤로 한 채 삭막하게 백화점 건물 따위에서나 뱅뱅 돌아야 했던 거다. 동선이 길어진 탓에 중간에 남는 시간이 적어서 기사 칠 시간도 애매해졌고, 덕분에 꽤나 어수선했다. 지난 해 그랜드호텔 꼭대기 기자회견장에서 보던 해운대 전경이 그립더라. 부산영화제는 주말에 일정이 미친 듯이 몰리는데 덕분에 주말엔 좀 빡셌더랬지. 어쨌든 폭풍 같은 주말을 날리고 주초가 되니 조금 한가해져서 바다도 보고, 이래저래 광합성도 했다. 어쨌든 또 한 번의 부산영화제가 끝났다. 그리고 사무실이 있는 강남 골목을 걷다 이 골목을 빠져나가면 바다가 나오지 않을까 하는 심각한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는 중이다. 무엇보다 부산영화제에 내려갔다 오면 1년이 지나가고 있다는 걸 절실히 느끼게 된다. 내년에도 부산에 내려갈 수 있을까. 어느 덧 날씨도 꽤나 쌀쌀해졌다. 첫눈도 왔다던데, 이제 바야흐로 겨울인가. 어쨌든 또 다시 안녕,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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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민용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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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푸른 산호초 섬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남은 평생을 휴양처럼 살고 싶어라. 전직수영국가대표 출신인 천수(김강우)의 꿈은 팔라우섬으로 가는 직행 티켓을 끊는 것이다. 이에 필요한 건 돈이다. 많은 돈이 필요하다. 짧은 시일 안에 많은 돈을 만질 수 있는 곳은 도박판이다. 도박판에서 인생 한방을 노리는 천수의 꿈은 야무지다. 하지만 꿈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패 한번 잘못 봤다가 패가망신의 지름길로 들어선다. 팔라우섬은 커녕 장기를 팔게 생겼다. 그런 천수 앞에 강사장(조재현)이 나타나 ‘마린보이’가 될 것을 명령한다.


Posted by 민용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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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기라곤 하지만 물고기처럼 보이진 않는다. 인면어라고도, 금붕어라고도 불리지만 엄밀히 말해서 물고기 흉내를 내고, 그렇게 추정되는 정체불명의 캐릭터다. 심지어 생의 비밀에 대한 일언반구의 설명도 없다. 포뇨의 아버지를 자처하는 후지모토가 인간임에도 어떻게 물 속에서 온전히 사는 건지, 흡사 바다의 여신처럼 보이는 그란만마레가 포뇨의 어머니라는 건 어떻게 해석할 수 있는 건지 막막하다. 실상 별반 상관없다는 듯 그렇다. 답 없는 수수께기처럼 묘연하지만 신화처럼 비범하다. 67세를 넘긴 재패니메이션의 거장 야마자키 히야오의 <벼랑 위의 포뇨>는 단순한 유아적 발상을 통해 순수의 경지를 선사한다.

Posted by 민용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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