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언 고슬링은 할리우드의 만년 유망주 같은 배우였다. 각기 다른 세 편의 작품으로 관객 앞에 나선 그의 2011년은 일종의 선언과 같았다. 그의 잠재력이 폭발했다. 그의 시간이 온 것이다.
2011년 칸 국제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한 니콜라스 윈딩 레픈의 <드라이브>(2011)는 궁극적으로 유령 같은 한 남자의 러브스토리다. 그에게는 가족도 없다. 말수도 없다. 딱히 정체를 아는 이도 없다. 이름조차 들어본 적 없다. 확실한 건 그가 운전 하나는 기똥차게 잘한다는 것. 낮에는 카체이싱 전문 스턴트맨으로, 밤이면 범죄자들을 실어 나르는 운반책으로, 그는 살아간다. 핸들과 기어가 그의 두뇌이자 심장인 것마냥. 그런 그가 이웃의 한 여자에게 마음을 준다. 그로 인해 예기치 않게 낭떠러지 같은 상황에 몰리지만 그는 결코 핸들을 꺾지 않는다.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그녀에 대한 순정으로 엑셀을 밟아 직진한다. 운전석에 앉아 있는 건 라이언 고슬링이었다.
미국의 영화평론가 로저 에버트는 고슬링의 연기가 할리우드에서 1960년대 배경의 전통적인 이름 없는 영웅들을 연기한 클린트 이스트우드나 알랭 들롱을 연상시킨다고 평했다. 그리고 <블리트>(1968)의 스티브 맥퀸까지 언급했다. 그들은 하나 같이 과묵했고, 차가웠지만, 순정적이었다. <드라이브>에서 고슬링은 미세한 표정의 변화와 눈빛, 제스처만으로 극명하게 감정을 전달한다. 무엇보다도 그의 연기적 스타일이 전통적인 고전 배우들의 레퍼런스를 동원하게 만든다는 건 흥미로운 대목이다. 사실 그는 오래 전부터 그 자리에 있었고, 만년 유망주 같은 배우로 꼽혀왔다. 그리고 지난 해, 고슬링은 성공적인 한 해를 채웠다.
캐나다 출신의 고슬링이 엔터테인먼트 산업에 처음 발을 들인 건 12세 무렵이었다. ‘우주비행사나 경찰 아니면 소방관이나 무엇이든 하는 것’이 인생이라 생각했던 소년에게 새로운 삶을 부추긴 건 신문의 디즈니 채널 어린이 TV쇼 <미키 마우스 클럽>의 공개 오디션 공고였다. 그는 갔고, 참여했고, 합격했다. 댄서 지망생이었던 그는 브리트니 스피어스, 크리스티나 아길레라 그리고 여전히 우정을 자랑하는 저스틴 팀버레이크 등이 타고난 끼를 과시하던 무대의 주인공이 아니었다. 게다가 당시 고슬링은 재보다 잿밥에 더 관심이 많았다. “그들이 촬영하는 동안 나는 그저 디즈니랜드에서 많은 놀이기구를 탔다.” 물론 이것이 의미 없는 경력은 아니었다.
그 후, 몇 편의 아동용 TV시리즈에 출연했던 고슬링은 학업을 중단하고 LA로 건너가 폭스 키즈 채널의 <영 헤라클레스>를 촬영하던 중, 마음이 꿈틀거림을 느꼈다. “더 많은 시간을 캐릭터와 함께 하고 다른 방식으로 캐릭터를 시도할 수 있도록, 영화를 하길 원했다. 그래서 나는 말했지. ‘TV는 이제 됐어.’” <리멤버 타이탄>(2000)으로 스크린에 입문한 그는 바로 다음해 배우로서의 결심을 완전히 굳혔다. 선댄스영화제 심사위원 대상을 수상한 <빌리버>(2001)에서 고슬링은 광기에 가까운 극단적 신앙을 지닌 네오 나치 청년을 연기했다. 비록 미국 내 극장 상영이 이뤄지지 않았지만 영화를 본 평단은 대부분 그의 연기를 높게 평가했다. 그리고 고슬링은 변화를 자각했다. “내게 변화가 왔다. 마치 나의 내면을 담아낼 수 있는 공간이 생긴 것처럼 느껴졌다.”
할리우드와 인디 신을 오가던 고슬링에게 세계적인 유명세를 달아준 건 순정적인 멜로 <노트북>(2004)이었다. 전세계적으로 1억 달러가 넘는 수익을 올렸고, 그 성공 이후로 로맨스물 출연 섭외가 이어졌지만 그는 쉬운 길을 가지 않았다. 진가는 인디펜던트 신에서 보다 확고하게 드러났다. <하프 넬슨>(2006)에서 약물중독자 고등학교 교사를 연기한 고슬링은 생애 첫 오스카 남우주연상 부문 노미네이트를 비롯해서 인디펜던트 스피릿 어워드에서 수상자로 단상에 오르는 영광을 안았다. 그는 촬영 한 달 전, 브룩클린의 한 고등학교에서 그림자처럼 교사의 특성을 관찰했다. 이는 그를 골든글로브 남우주연상 후보로 천거한 <내겐 너무 사랑스러운 그녀>(2007)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실제 인간의 형태와 흡사한 ‘리얼돌’을 사랑한 한 남자의 애틋한 사연을 그린 이 영화에서 그는 실제 인형을 감정적인 대상으로 이해하기 위해 세트에서 실제로 인형과 함께 하룻밤을 묵기도 했다. “사람들은 줄거리를 듣고 웃겠지만 나는 <노트북>보다 훨씬 더 로맨틱하다고 장담할 수 있다”는 그의 말처럼, 인형을 진짜 연인처럼 대하는 남자의 웃지 못할 광경은 진전되는 극 안에서 진실된 감동의 결정을 만들어낸다.
“목적지로 가는 백만 가지 방식이 있겠지만 연기할 대상을 위한 진짜 참고사항이 없을 때, 그건 도전이다.” 고슬링은 메소드 연기에 대한 철학을 드러냈다. 단순히 캐릭터를 숙지하는 것이 아니라 캐릭터와 연기자 사이의 상호적인 교감이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연기하는 캐릭터를 사랑하고 증오해야만 한다. 그들은 사람이다. 그들을 이해하는 것처럼 간단하지 않다.” 물론 시행착오도 존재한다. 안소니 홉킨스와 함께 출연한 법정 스릴러 <프랙처>(2007) 개봉 당시 인터뷰에서 고슬링은 고백했다. “안소니의 연기와 그의 재능을 분석하고 이해하려 노력했다. 결코 할 수 없었지.” 연기 집념만큼은 확실하게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한동안 밴드를 결성하며 음악으로 외도한 고슬링은 <블루 발렌타인>(2010)으로 3년 만에 스크린에 돌아왔다. 경제적인 난관으로 권태기에 이른 한 부부의 지리멸렬한 일상을 다룬 이 작품에서 고슬링은 미셸 윌리엄스와 탁월한 호흡을 선보였다. “이 업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금발을 지닌 두 사람은 그들 세대에서 가장 훌륭한 배우다. 그들이 함께 한 연기를 본다는 건 일종의 스릴이다.” <뉴욕> 매거진의 평이다. 성공적인 복귀 이후, 고슬링은 2011년 최고의 경력을 나열했다. <드라이브>를 비롯해서 <피플>지로부터, “오스카 수상의 가치가 있는 배우가 단지 재미를 주고자 굉장히 섹시한 역할을 맡았다”는 평을 얻은 코미디 <크레이지, 스투피드, 러브>와 조지 클루니의 네 번째 연출작인 정치물 <디 아이즈 오브 마치>가 그것이다.
다작 배우가 아닌 고슬링이 각기 장르가 다른 세 편의 영화로 한 해를 채우며 증명해낸 건, 그가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확실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내는 배우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는 말한다. “나는 테스트될 때까지 기다릴 수 있다.” 물론 지금 그가 기다릴 입장은 아닌 것 같다. 지난해 칸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테런스 맬릭과 윈딩 레픈을 비롯해서 그를 원하는 감독들이 줄을 서있다. 그의 배우 인생에 있어서 최고의 한 해가 지났다. 그의 시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의 잠재력은 여전히 폭발하고 있다.
‘팝’한 아이돌이었던 저스틴 팀버레이크는 엔싱크의 마지막 앨범 <Celebrity>(2001) 이후, 홀로서기에 나섰다. <Justified>(2002)로 솔로의 정체성을 선언하고, ‘Sexy Back’으로 완전히 섰다. 그저 팝스타로 돌아온 것이 아니다. <에디슨 시티>(2005)와 <알파 독>(2006)에서 안정된 연기를 선보인 그는 데이비드 핀처의 <소셜 네크워크>(2010)에서 물 만난 고기처럼 재능을 뽐냈다. 냅스터의 창설자 인터넷 프로그래머 숀 파커는 팀버레이크가 품을 만한 야심이었다. 2011년, 팀버레이크는 <배드 티처> <프렌즈 위드 베네핏> <인 타임>으로 스크린에 등장하며 자신을 팝스타의 영역에 가둘 수 없음을 만천하에 알렸다. 물론 론니 아일랜드와 함께 TV쇼에 등장해서 천연덕스럽게 외설스러운 노래를 부르는 팀버레이크가 어디로 튈지는 미지수다. “모두 내 정신성을 알고 싶어하지만, 그건 그냥 나야!” ‘저스트 팀버레이크’, 그저 자신만 알 수밖에.
북반구의 겨울이 막바지에 이르는 2월이면 시네필들의 봄, 베를린국제영화제가 열린다. 오는 9일부터 19일까지, 제62회 베를린국제영화제가 개최된다. 프랑스 감독 브느와 자꼬의 신작 <Les Adieux à la reine>(2011)의 상영으로 물꼬를 트는 이번 영화제는 스티븐 달드리와 장이모우의 신작 등이 공개되며 올해 영화계의 첫 번째 흐름을 살핀다. 메릴 스트립의 명예금곰상 수상이 예정된 이번 영화제는 올해에도 어김없이 영화의 봄을 알린다.
카사 드 라 플로라는 디자인 호텔을 추구하는 카오락의 신진 리조트다. 숲을 등지고, 바다를 마주한 천혜의 자연 경관 한가운데서 첨단의 편의를 자랑하는 시설을 갖춘, 최고의 휴식처다.
카오락(Khao Lak)은 태국 남부에 있는 푸켓 북부에 자리한 전통적인 휴양지다. 사시사철 수많은 인파가 몰려드는 푸켓과 달리 성수기에도 한적한 휴양을 즐길 수 있는 카오락은 그야말로 천혜의 휴식처다. 덕분에 유럽 등지의 서양인들에게는 오래 전부터 아지트처럼 애용되던 휴양지로 각광을 받아왔다. 덕분에 카오락에는 100여 개의 리조트가 자리를 잡고 있는데 그 중에서도 팡가 지역에 최근 디자인 호텔을 지향하는 최신식 리조트가 개장해서 눈길을 끌고 있다. 카사 드 라 플로라, 즉 자연 속의 집이라는 의미를 지닌 이 리조트는 현대적인 첨단 설비의 편의를 갖춤과 동시에 자연친화적인 호흡으로 안락함을 더했다.
바다와 숲의 경계처럼 뻗어있는 도로를 따라 길게 누워있는 외관 앞에 다다르면 인공적인 폭포형 분수가 로비로 올라가는 투숙객들을 맞이한다. 넓은 로비의 개방적인 형태는 리조트로 향하는 긴 여정의 피로가 비로소 휴식의 문턱에 들어섰음을 알리는 것만 같다. 그리고 드디어 카사 드 라 플로라의 영토에 들어서면 미로처럼 갈라진, 하지만 결코 길을 잃을 염려는 필요 없는, 작은 길들을 따라 구분된 큐빅 형태의 빌라들을 목격하게 될 것이다. 서른 여섯 개의 큐브형 빌라가 질서정연하게 층위를 이루거나 규칙적으로 나열된 이 리조트는 너르게 펼쳐진 카오락 해변과 울창한 나무들이 자리한 숲을 전후에 두고 있다. 바다를 마주하고, 숲을 등진 이 리조트에서 객실 안과 밖에 자리하게 된다는 건, 그만큼 완벽하게 상반된 경험을 만끽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수직으로 냉정하게 잘라 세운 듯한 콘크리트 외벽의 내부는 이와 반대로 티크목으로 마감되어 온화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이에 노출콘크리트 공법으로 마감된 욕실과 벽면 일부로부터 정갈하면서도 세련된 감각의 조화가 느껴진다. 저마다 꽃의 이름을 딴 36개의 빌라는 9종류의 구조로 구분된다. 그러나 모든 빌라에는 일관된 공통점이 있다. 해변을 응시하는 빌라의 창은 바다를 향해 열려 있는 눈과 같다. 방 안의 침대에 누워있는 순간에도 바다의 수평선이 시선에 들어온다. 또한 모든 빌라에는 개별 풀이 마련돼 있으며 그 주변에는 개인적인 프라이버시를 만끽할 수 있도록 세워진 커다란 울타리가 자연적인 정원 주변으로 둘러쳐 있다. 리조트에서 만끽할 수 있는 가장 풍요로운 경관을 빌라 내부까지 제공하면서도 투숙객의 시간을 외부로부터 철저히 보호한다. 카사 드 라 플로라는 디자인에 대한 만족감과 함께 투숙객의 심리적인 배려까지 추구했다.
비치프론트 그랜드 풀 빌라를 포함한 10개의 비치프론트 빌라들은 리조트에서 해변과 가장 근접한 곳에 위치하고 있다. 마치 해변을 소유했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해변 위에 지어진 집에서 생활하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 특히 해변이 바라보이는 풀은 실로 로맨틱한 감정을 품게 만든다. 한편 복층 구조로 이뤄진 듀플렉스 그랜드 풀 빌라를 비롯한 19개의 듀플렉스 빌라들은 공간의 편의성을 보다 강조한 인상이다. 침실과 욕실, 거실이 명확하게 층별로 분리된 이 공간은 주거적인 편의를 고려하는 이들에게 보다 안성맞춤이다. 비치프론트 라인의 빌라들이 연인들을 위한 공간이라면 듀플렉스 계열의 빌라들은 가족적인 여행을 위한 공간에 가깝다. 만약 보다 간편한 동선을 원한다면 단층 구조로 이뤄진 스튜디오 풀 빌라를 선택해도 좋다. 그 밖에도 최고급 객실인 카사 풀 스위트와 프레지덴셜 스위트가 준비돼 있다. 모든 방의 미니바 이용은 무료로 제공된다. 무선 인터넷 역시 마찬가지다.
카사 드 라 플로라의 중심부에 자리한 야외풀은 리조트가 자랑하는 명소 가운데 하나다. 바다를 향해 탁 트인 광경만으로도 마음이 상쾌해지는 풀에서 음료나 칵테일, 스낵을 주문하고 망중한을 즐길 수도 있다. 무엇보다도 자연적인 경관을 제공하는 카사 드 라 플로라는 그만큼 친환경적인 설계로 완성됐고 그에 따른 정책을 고수한다. 물을 재활용할 수 있는 시설이 완비된 리조트 내의 모든 수영장 시설에는 화학적인 성분의 소독 물질을 사용하지 않는다. 투숙객과 환경 모두를 배려한 처사다. 친환경적인 성분으로 유명한 태국 고유 브랜드 ‘탄’의 어메니티를 구비해놓은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스파 라 카사’에서 마사지와 사우나 등을 즐기며 긴장과 피로를 푸는 것도 좋다. 또한 비즈니스 업무의 해결이 필요한 이들을 위한 비즈니스 센터나 여유롭게 독서를 즐기고픈 투숙객들을 위한 도서관 시설도 눈길을 끈다. 피트니스 센터 이용과 자전거 대여도 가능하다.
‘라 아란야’ 레스토랑은 태국 고유의 음식들을 기반으로 다국적의 입맛을 사로잡는다. 벽 대신 푸른 바다와 녹색의 잔디를 바라보며 식사를 즐길 수 있도록 오픈된 구조로 설계된 야외 레스토랑은 미각적인 만족감 못지 않게 시각적인 분위기 또한 즐길 수 있는 공감각적인 공간이다. 한편 카사 드 라 플로라에서는 특별한 서비스를 행하는 이가 있는데 그는 ‘드림메이커’라 불린다. 투숙객 모두에게 자신의 존재를 어필하는 그는 누군가의 부탁을 대신 이뤄주는 이벤트 도우미, 이름 그대로 드림메이커로서 활약한다.
만약 보다 적극적으로 카오락의 경관을 즐기고 싶다면 리조트 인근의 관광 명소를 찾아갈 수도 있으며, 리조트에서 마련한 투어에 참여할 수도 있다. 하지만 마치 리조트 앞마당처럼 자리한 카오락 해변의 끝이 보이지 않는 풍경 위를 독식하듯 산책하는 것만으로도 삶이 풍요로워진 기분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최소한 그곳에 머무른다면 시끄러운 소음도, 분주한 일상도, 특별한 목표도 완전히 잊어도 좋다. 첨단의 편의를 제공하면서도 자연적인 낭만을 선사하는 이 리조트는 당신이 머무르는 동안 그 아름다운 풍경으로 당신을 편입시킨다. 숲과 바다의 경계 한가운데에 자리한 카사 드 라 플로라는 당신의 완벽한 휴양을 위해 마련된 안식처다. 휴식이라는 이름의 낙원이 바로 거기에 있다.
Recommendation
디자인 호텔을 지향하는 카오락의 최신 리조트. 큐빅형의 모든 풀빌라로 해변의 풍경이 중계된다.
Rooms 36 (including 2 suites) Restaurant La Aranya
Facilities Swimming pool, pool bar, Spa La Casa, Private Airport Transfer, Library and business center, Fitness centre,Dream Maker Tailor Made
Features Flat-screen TV with wireless keyboard, Wi-Fi internet access,iPod docking station, Espresso machine, Complimentary mini-bar replenished daily
Address 67/213 Moo 5. Khuk Khak, Takuapa, Phang Nga 82190
휴 잭맨은 할리우드의 호주 출신 톱스타 계보를 이어나가고 있는 배우다. 스크린과 무대를 종횡무진하는 그는 언제나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를 외면하지 않았다. 그렇게 그는 할리우드의 중심에 섰다.
호주 시드니 출신인 휴 잭맨은 활동적인 성격의 아이였다. 집안에 머무는 시간보다도 해변에서 놀거나 캠핑을 다니는 시간이 많았다. 기본적으로 여행을 좋아했지만 단순히 여행만을 좋아하는 아이는 아니었다. 호기심이 많았다. 이는 연기에 대한 흥미로 이어졌고, 재능에 대한 발견까지 나아갔다. 무대 경력을 쌓아나가며 재미를 느끼던 잭맨이 배우로서의 진로에 대해서 본격적으로 생각하게 된 건 22살 무렵이었다. 큰 키와 건장한 체격을 지녔으며 춤과 노래 실력이 빼어난 잭맨이 자신의 무대를 꿈꾸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에게 보다 중요한 건 ‘하고 싶다’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였다. 호주의 TV시리즈 <코레일>은 잭맨의 인생에 있어서 잊을 수 없는 작품일 것이다. 상대배우였고, 지금의 아내인 데보라 리 퍼니셔를 만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작품은 불과 한 시즌만에 막을 내렸지만 잭맨은 인생을 함께 할 동반자를 얻었다. 그는 말했다. “아내와의 만남은 그 작품으로부터 비롯된 가장 훌륭한 결과였다.”
대단한 지위에 오른 이들에게는 일종의 전환점이라 불리는 타이밍이 존재한다. 잭맨에게는 <엑스맨>의 히어로로 등장한 2000년이 그랬다. 아다만티움이라는 강철 골격을 지닌 불사의 몸과 다혈질의 성격을 소유한 뜨거운 남자, 울버린은 잭맨을 할리우드의 아이콘으로 격상시켰다. 사실 그 강철손톱은 원래 잭맨의 것이 아니었다. 브라이언 싱어의 <엑스맨>(2000)에서 울버린 역에 내정된 건 더글레이 스콧이었지만 그는 하차했고, 잭맨은 기회를 얻었다. 잭맨에게 있어서 울버린은 하나의 과제였다. 원작 코믹북의 팬이 아니었던 잭맨은 자신이 울버린 같은 남자가 아님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더티 해리>시리즈의 클린트 이스트우드나 <매드 맥스 2>(1981)의 멜 깁슨을 유심히 관찰하거나 마이크 타이슨의 경기 모습을 보며 울버린이 지닌 야수적인 본능, 다혈질적인 난폭성의 잠재력을 이해하고자 했다. 한편 소품에 불과했지만 강철손톱을 달고 연기를 하다가 상대 배우를 찌르거나 자신의 몸에 상처를 내는 등의 실수를 견뎌야 했다.
결과적으로 울버린과 함께 잭맨의 터프한 이미지는 <엑스맨>의 성공적인 스크린 안착을 상징하는 아이콘으로서 전세계에 배포됐다. 하지만 이는 잭맨을 오해하게 만들만한 소지가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2001년에 공개된 그의 출연작 세 편, <썸원 라이크 유>와 <스워드피쉬>, <케이트 앤 레오폴트>는 주요했다. 제각각 장르적인 차이를 지닌 이 세 편의 작품은 하나같이 잭맨에게 소득에 가까운 결과물이었다. 단순한 하드보디 액션 배우로 이해될 수 있었던 그는 1년 만에 다양성을 지닌 배우로서의 가능성을 드러낸다. 특히 부드러운 로맨티스트이자 자상한 아버지로서의 면모는 가장으로서의 삶에 충실한 잭맨의 실생활과 동떨어지지 않은 것이기도 했다.
<엑스맨>의 성공은 자연스럽게 속편의 제작으로 이어졌다. <엑스맨 2>(2003)와 <엑스맨 – 최후의 전쟁>(2006) 그리고 울버린을 주인공으로 삼은 스핀오프 <엑스맨 탄생: 울버린>(2009)까지, 울버린을 연기하는 잭맨은 일관된 이미지 속에서 안티히어로의 고뇌와 분노를 폭발시키는 노하우를 익혀갔다. 사실상 울버린으로 주목 받은 잭맨이 울버린과 같은 하드보디 캐릭터로 방어전을 치를 것은 어떤 면에서 당연했다. 기독교적인 사상을 판타지 액션의 모티프로 삼은 <반헬싱>(2004)의 롤타이틀에 캐스팅된 것도 어쩌면 울버린의 영향이었다. 그러나 <엑스맨>의 세 번째 속편의 공개와 함께 울버린으로서의 사명을 끝낸 직후, 그의 진가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2006년, 대가들과 함께 한 영화 세 편으로 새로운 면모를 드러낸 것이다. 우디 앨런의 <스쿠프>와 대런 아로노프스키의 <천년을 흐르는 사랑>, 크리스토퍼 놀란의 <프레스티지>가 바로 그것. 특히 앞선 캐릭터들과 달리 비열한 면모를 지닌 정치인으로 등장한 <스쿠프>와 질투와 야심으로 사로잡힌 마술사를 연기한 <프레스티지>는 잭맨의 연기적 내면에 대한 증명서에 가까웠다.
할리우드 톱배우 반열에 오른 잭맨은 대작에 출연하며 그 지위를 공고히 다져나갔다. 물론 그 지위가 언제나 안정적인 것만은 아니었다. 잭맨은 고향 호주에서 촬영된 <오스트레일리아>(2008)에서 역시 호주 태생인 니콜 키드먼과 호흡을 맞췄다. 아름다운 자연 경관이 대거 등장하는 이 영화는 대단한 규모와 반비례한 평가를 얻었고, 기대 이하의 흥행성적을 기록했다. <엑스맨>시리즈의 스핀오프 <엑스맨 탄생: 울버린>으로 다시 한번 강철손톱을 빼 들었고 흥행에는 성공했지만 영화적 평가는 대체로 좋지 않았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작인 <리얼 스틸>(2011)은 여러 모로 성공적인 복귀전처럼 보인다. 인간 대신 로봇이 복싱 선수로 활약하는 시대를 그린 SF 기반의 이 영화는 사실상 부자의 관계 회복과 루저의 승리를 그린 휴먼드라마에 가깝다. 자상한 아버지이자 가장으로서의 면모를 드러내곤 했던 그의 일상은 자연스럽게 영화 속 인물의 부성애와 밀착된다.
<엑스맨>에 발탁되기 전까지, 잭맨은 호주에서 무대를 비롯해서 몇 편의 영화와 TV시리즈에 출연했다. <엑스맨>으로 세계적인 스타 반열에 오른 뒤에도 잭맨의 무대 경력을 줄곧 이어져왔다. 브로드웨이까지 진출한 그는 2004년에 공연한 피터 앨런의 <오즈로부터 온 소년>을 통해서 대단한 호평을 이끌어냈으며 토니상 트로피까지 얻었다. 한때 <미녀와 야수>의 무대 위에서 가스통으로 자리한 적도 있는 그에게는 감회가 남다른 영광이었다. 그는 울버린의 강철손톱을 전시하는 사이에도 자신의 연기를 갈고 닦는데 게을리하지 않았다. 성실함은 생활연기자로서 잭맨을 설명하기 위한 유용한 단어일 것이다. 그는 여전히 브로드웨이를 비롯한 무대에서 공연을 펼치고 있다. 그리고 스크린을 통해서 그의 춤과 노래 실력을 구경할 수 있는 기회도 주어질 예정이다. 특히 지난 아카데미 시상식의 사회자로서 특별히 한번 뽐낸 바 있었지만, 브로드웨이를 찾아야만 <킹스 스피치>(2010)로 아카데미를 석권한 톰 후퍼 감독이 연출하는 <레미제라블>(2012)에 캐스팅된 것. 물론 울버린의 강철손톱도 여전히 녹슬지 않았다. 그는 말한다. “모든 것은 디딤돌과 같다.” 휴 잭맨은 여전히 디딤돌을 밟고 서있다.
톰 하디의 경력은 전쟁터에서 시작됐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TV시리즈 <밴드 오브 브라더스>로 연기를 시작한 뒤, 리들리 스콧의 <블랙 호크 다운>(2001)을 통해서 영화에 데뷔한 것. 하지만 그에게는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크리스토퍼 놀란의 <인셉션>(2010)은 좋은 기회였다. 터프한 성격으로 꿈 속을 종횡무진하는 임스는 대중에게 하디의 매력을 ‘인셉션’시키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고독한 내면을 지닌 저돌적인 인파이터로 열연한 <워리어>(2011)의 하디는 강력한 훅처럼 자신을 내던졌다. <렛 미 인>(2008)을 연출한 토마스 알프레드슨의 할리우드 데뷔작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2011)가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 가운데, 보다 강력한 한 방이 예정돼 있다. <다크 나이트 라이즈>(2012)에서 배트맨의 새로운 숙적 베인으로 등장하는 것. “사내라면 이 정도 포부는 돼야지.” <인셉션>의 인상적인 그 대사처럼, 이 남자, 거침 없다.
로버트 레드포드의 후원으로 시작된 선댄스 영화제는 재기발랄한 인디펜던트 필름들의 발굴터로서 각광을 받아왔다. 1월 19일부터 29일까지, 미국 유타주 파크시티에서 열리는 이번 영화제는 31개국에서 모인 110편의 영화가 저마다의 재능을 선보인다. 배우 출신 감독 마크 웨버의 신작 <The End of Love>(2012)와 김소영 감독의 <For Ellen>(2012) 등 27번째 선댄스 키드의 영광을 노리는 후보작들이 파크시티로 집결한다.
제임스 맥어보이는 화려한 스타이기 보단 현실적인 사람이다. 그에게 유명세란 그저 거추장스러운 짐이다. 그는 직업 연기자의 삶을 꿈꾸고 있다. 연기로 삶을 사는, 이상적인 현실주의자인 것이다.
성 토마스 아퀴나스 중등학교 재학 시절, 제임스 맥어보이는 신부가 되길 마음먹었었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라서가 아니었다. “아프리카에 가서 세상을 바꾸고 싶었다.” 일곱 살의 나이에 부모의 이혼을 경험한 맥어보이는 여동생과 함께 글래스고 외곽의 드럼채플에서 자랐다. 실업자와 범죄자가 넘쳐나는 드럼채플의 거친 분위기 속에서도 자상하고 엄격한 외조부모는 맥어보이를 밝고 건강하게 보살폈다. 하지만 집을 벗어나서 만큼은 항상 누군가의 눈에 띄지 않게 조심해야 했다. 비좁은 세계의 폭력을 경계하며 자란 아이가 더 넓은 세계를 동경하는 건 어쩌면 본능이다. 맥어보이는 독립에 대한 야심이 컸다. “위험한 지역에서 자라게 되면 나이가 들면서 현실이 그런 야심을 두들겨 부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내 경우에는 결코 그렇지 않았다.” 그의 말이다.
맥어보이의 감춰진 끼가 드러난 건 14세 무렵이었다. 당시 두 선생님의 권유로 밴드를 결성하게 됐고, 소위 노는 물이 달라졌다. 옷차림이 달라졌고, 평소에 말도 걸지 못했던 아이들과 친구가 됐다. “내게 쓸만한 상상력이나 창조력이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했던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그리고 16세가 되던 해에 그에게 진짜 꿈을 안긴 사건이 일어났다. 배우 데이비드 헤이먼이 연기 강연을 하기 위해 학교를 찾은 것. 학생들 대부분이 심드렁해있는 사이, 맥어보이는 완전히 그의 말에 매료됐다. 그리고 헤이먼을 찾아가서 묻는다. 자신에게 기회를 줄 수 없느냐고. 6개월 후, 맥어보이에게 전화가 걸려온다. 헤이먼이 제작하는 영화의 단역 오디션 참여를 알리는 것이었고, 맥어보이는 기회를 잡았다. 그는 훗날 회상했다. “나는 쓰레기였다.” 이는 결국 그가 왕립 스코틀랜드 노래 연기 학교에 입학을 결심하는 계기가 됐다.
드라마 스쿨을 졸업한 맥어보이는 무대에서 서서히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조 라이트가 그를 발견한 것도 이 무렵이었다. 점차 브라운관과 스크린 등장횟수가 늘었고, 폴 애보트가 만든 두 편의 TV시리즈 <스테이트 오브 플레이>와 <셰임리스>로 확실한 잔상을 남겼다. 9살 연상인 아내 앤 마리 더프와의 만남을 주선해준 <셰임리스>는 몇 가지 수상 경력을 쥐어주기도 했다. 그리고 그는 <나니아 연대기 – 사자, 마녀 그리고 옷장>(2005)에 참여하기 위해서 뉴질랜드 촬영장까지 날아갔다. 그가 선택한 건 반인반수의 파우누스였다. 이유는 간단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책이다.” <윔블던>(2004) 촬영 당시, 맥어보이는 <반지의 제왕> 트릴로지에 출연한 버나드 힐에게 헬름계곡 전투에 관해서 몇 번이고 묻고 또 물었다. 그는 판타지 광이다. 하지만 그는 다분히 현실적인 사람이었다.
“배우가 될 생각은 꿈에도 없었다. 특별히 그 분야에 지인이 있었던 것도 아니니까. 그저 시작하니까 하나에 그 다음이 따라왔다. 연기가 죽을 만큼 재미있다는 걸 그렇게 알게 됐지만 직업으로서 진지하게 생각하기까진 많은 시간이 걸렸다.” 맥어보이에게 연기는 일종의 현실이었다. 그리고 그가 연기한 캐릭터 대부분에 그런 성향이 반영돼 있다. 멀쑥한 이웃 청년처럼 보이는 맥어보이에게는 묘하게 사람의 마음을 잡아 끄는 구석이 있다. 맥어보이의 도약을 위한 구름판 역할을 해낸 <라스트 킹>(2006)의 게리건은 마치 그를 위해 준비된 캐릭터처럼 보였다. 스코틀랜드 출신인 맥어보이와 게리건 사이에는 공통분모가 적지 않다. 눈을 감고 지구본을 빙빙 돌려 손가락으로 짚은 우간다행을 택한 신출내기 의사의 혈기는 직업의사와 아프리카 봉사를 꿈꿨던 맥어보이의 과거를 연상시킨다. 무엇보다도 게리건은 시작과 끝의 분위기가 극단적으로 대비되는 <라스트 킹>의 분위기를 대변하는 바로미터다. 맥어보이는 그 역할을 해냈다. 혈기왕성한 청년의 유쾌한 미소가 점차 당혹감으로 창백해질 때, 불길한 예감은 현실화된다. 기본적으로 어느 독재자에 관한 고발극인 이 작품이 한 청년의 뼈저린 성장드라마가 될 수 있었던 것도 맥어보이의 그런 표현력 덕분이라 할 수 있다.
<어톤먼트>(2007)의 로비나 <비커밍 제인>(2007)의 톰처럼 맥어보이의 캐릭터들은 비천한 신분이나 상황을 긍정적인 태도로 견뎌내곤 한다. 실제로 그는 어려서부터 긍정적인 성향이 강했다. “항상 어떻게든 다 잘될 거라고 생각했다. 어느 누구에게 의지할 필요 없이 행복해질 거라고.” 유년시절의 불우한 환경을 견뎌내기 위한 반대급부였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이런 긍정적인 인물이 강한 비극에 쓰러질 때 더욱 강력한 페이소스가 형성된다. 애초에 비극적인 예감을 담보로 미소를 짓던 캐릭터들이 끝내 그 현실에 매몰될 때 그만큼 비극적인 것이다. <어톤먼트>와 <비커밍 제인>은 신분차가 빌미가 되어 이루지 못한 로맨스라는 공통점이 있다. 맥어보이의 미소는 그 로맨스의 상실감을 더욱 강하게 증폭시키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이와 반대로 <원티드>(2008)에서 직장 스트레스로 신경쇠약 증세마저 보이던 웨슬리가 정체성을 깨닫고 사무실을 박차고 나와서 킬러로 변모하는 과정은 그 자체로 강력한 쾌감이다. 이는 이 배우가 지닌 극단의 양면성을 드러낸다는 점에서도 흥미롭다.
그는 실패와 좌절을 경험한 캐릭터가 겪는 이후의 삶을 납득시키는 역할을 해내기도 한다. <스타트 포 텐>(2006)은 어려서부터 퀴즈쇼를 동경하던 소년이 값비싼 실수 끝에 교훈을 얻게 되는 과정을 그린다. 근작인 <음모자>(2010)와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2011)에서는 각각 현실의 벽을 넘지 못한 이상적인 패배자로 등장한다. 링컨 암살 공모 누명을 쓴 여인의 변호를 맡게 된 남북전쟁 영웅 에이컨과 돌연변이들의 권리를 인정받기 위해서 인간과의 화합을 시도하지만 분열과 갈등으로 붕괴되는 조직의 리더 자비에의 영화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닮은 통증이 느껴진다.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는 맥어보이에게 이상과 현실의 양면을 모두 충족시켜주는 결과였다. 유년시절 즐겨보던 만화 속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이상적이며 그의 대출금을 갚는데 도움이 된다는 점에서 현실적이다. 그는 말한다. “스릴과 재미를 기준으로 일을 고를 수 있다니 적어도 지금의 나는 운이 좋다. 영원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앞일을 누가 알 수 있나.” 확실한 건 지금 맥어보이가 수배 물망에 활발하게 오르내리는 배우라는 사실이다. 직업배우의 정체성이 공고한, 이상적인 현실주의자가 세계적인 스타로 등극한 것이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2010)의 아이콘으로 선택된 건 호주 출신의 미아 바시코프스카였다. 사람들은 의아했다. 팀 버튼이 말했다. “왜냐하면 그녀의 눈을 통해서 당신이 이 세계를 목격할 것이기 때문이지.” 발음만큼이나 생소한 그녀가 배우의 길을 선택한 건 15세 무렵이었다. 구글을 통해서 시드니의 에이전시를 검색했고, 오디션에 참여한 뒤, 연기를 시작했다. 그리고 2008년, HBO의 미니시리즈 <인 트리트먼트>로 미국에 진출한다. 그녀는 올해 동명 고전을 영화화한 <제인 에어>와 구스 반 산트의 신작 <레스트리스>에서 예사롭지 않은 재능을 전시했다. 분위기가 다른 두 영화에서 상반된 캐릭터를 연기했음에도 그녀에게서는 유사한 재능이 읽힌다. 비밀스러움과 신비로움, 나약함과 강인함, 그녀에게는 호기심을 자극하는 힘이 있다. 그야말로 타고난 재능이 아닐까. 바시코브스카는 최근 박찬욱의 할리우드 진출작 <스토커>(2012)의 촬영을 마쳤다.
미국 알래스카주 남부에 위치한 항구 도시 앵커리지는 세계적인 무역 중계지이자 아름다운 경관을 자랑하는 계획 도시다. 그리고 앵커리지는 평균 기온이 영하 10도 아래로 내려가는 겨울과 함께 전세계의 영화들을 맞이한다. 올해로 11회를 맞이하는 앵커리지 국제영화제는 12월 2일부터 11일까지 계속된다. 개막작 <이누크>(2010)의 상영으로 축제의 포문을 여는 이번 영화제에서도 추위를 뚫고 날아온 필름들의 겨울나기가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