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대신 1수. 윤태호는 바둑의 한 수를 두듯 <미생>을 그려나간다. 한 수 한 수 현실과 이상의 대국이 펼쳐진다. 그 안에서 수많은 성공과 실패가 지어지고 허물어진다. 그래서 미생이다.
단행본 네 권의 판매부수가 10만부를 넘었다.
사실 출판사와 계약한 건 다섯 권이었고 1년 연재하면 끝나는 분량이었으니 그것만 하고 털어내자고 생각했다. 그런데 한 10수 지나면서 힘이 실린다는 느낌이었다. 특히 날개 달린 대리가 나오는 에피소드를 지날 땐 이거 길게 갈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미생>은 웹툰이지만 단행본으로 보는 맛도 괜찮더라.
사실 <미생>은 단행본 페이지로 먼저 만들고 나서 한 컷씩 떼어 웹상에 붙인 작품이다. 보통 온라인에서 상하로 나뉜 컷과 컷의 간격에 삽입된 내레이션이나 대사엔 임팩트가 있다. 그런데 책에선 스크롤 방식으로 보면서 멋있다고 생각했던 그 대사가 구석의 작은 컷 안에서 훅하고 지나가니 그런 느낌이 덜 산다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책으로 먼저 보다가 기다리기 감질나니까 온라인으로 넘어온 독자들 중엔 오히려 책이 낫다는 이들도 있다. 결국 받아들이는 독자들마다 의견이 다르더라.
바둑과 직장을 소재로 둔 만화를 제의 받은 후 연재까지 3년이 걸렸다고 들었다.
위즈덤하우스에서 제안한 건 바둑의 10계명이라 불리는 ‘위기 10결’을 통해서 직장인들의 처세를 설파한다는 컨셉트의 작품이었다. 10년 전부터 바둑꾼들의 이야기를 생각했지만 그 제안을 받아들이긴 힘들었다. <이끼>는 준비부터 완결까지 5년이 걸렸다. 그렇게 보면 내가 60세까지 할 수 있는 작품이 몇 타이틀 안 되는데 <이끼>를 끝낸 마당에 직장인들의 처세에 관한 만화나 한다는 걸 받아들이기 힘들었지만 일단 계약금을 받았고, 그 제안을 배려해야 한다는 스트레스도 적지 않았다. 그렇게 2년을 보내고서야 지금의 방향을 제시했다. 도리어 출판사에선 고마워했다. <이끼>가 영화화되고 유명해지는 과정을 보면서 작가가 알아서 잘할 텐데 괜히 앞질러간 게 걱정됐다더라. 반대로 난 2년 동안 시간을 보내고서야 다른 방향을 제시한다는 게 마음에 걸렸었다(웃음). 3년간 작품을 준비하는데 한번도 날 흔든 적이 없었다. 그런 배려 덕분에 더 좋은 결과가 나온 것 같다.
직장생활 경험이 없으니 취재원이 필요했을 텐데.
6수 연재할 때까지 취재를 거절 당해서 취재원을 못 만났다. 그래서 초반엔 회사 모습이 좀 두리뭉실하게 그려졌다. 사회경험이 많은 직장인들도 볼 텐데, 내가 자신이 없었으니까. 그러다가 한 지인으로부터 상사맨인 남자친구를 소개받고 시작됐다.
6수까지? 불안하지 않았나?
계약상 더 이상 연재를 미룰 수 없었다. 역시 계약은 위대하더라(웃음). 기업 홍보팀에 전화하면 매번 거절당했다. 지금 생각하면 다행이지. 만약 공식적인 루트로 조언을 받았다면 기업의 이미지를 염려하느라 하고 싶은 이야기를 못할 수도 있었을 거다. 그분들 입장에선 반기업적으로 느껴지는 정서가 포함될 수도 있고.
지금은 취재원들이 알아서 찾아올 것 같다.
메일이 엄청 온다. 특히 요르단 에피소드에선 취재 협조를 자원하는 주재원 분들이 많았다. 하지만 말에 문맥이 있듯이 취재에도 결이 있다. 너무 많은 사람의 이야길 듣게 되면 충돌 지점이 생기겠더라. 물론 사진 자료나 기본적인 정보는 감사하게 받았지만 맥락을 흔들만한 디테일이 유입될까 조심스러워서 함부로 사람을 만나진 않았다.
시점을 유지하는 주체를 명확하게 두고 다양한 팩트만 수집했다는 말처럼 들린다.
그렇다. <미생>의 원 인터내셔널은 취재원들과 함께 만든 가상의 회사다. 그 회사의 폼은 일반적으로 여러 회사에 해당될 수 있다. 그런데 그 설립에 참여하지 않았던 이가 끼어들면 전혀 다른 방향성이 생길 수 있다는 게 염려스러웠다.
당신에게 직장 경험이 없었던 것처럼 장그래도 직장을 처음 경험한다.
장그래의 보고서 작성 에피소드를 위해서 취재원들에게 긴 문장을 짧게 축약한 보고서 작성 사례를 제시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렇게 결과는 갖고 있었지만 그 과정을 그리는 건 내 몫이었다. 그 과정을 찾아가는 게 재미있었다. 나와 장그래가 똑같이 발전한 셈이다. 과거 미술로 인해서 좌절했던 내 경험이 장그래의 대사로서 삽입됐을 수 있고, 데뷔 전 문하생 시절의 후회나 반성이 장그래의 인턴 생활과 겹쳤을지도 모른다.
인물의 상황에 공감하면서 자기 현실을 늘어놓는 댓글이 자주 보인다.
다들 알아서 자기 고백을 해주니까 제2의 취재가 된다. 가끔씩 올라오는 이견들도 악플과 다른 진지한 애정이 느껴진다. <이끼>때와는 상반된 체험이다.
공감대를 키우기 위한 의도적인 설정은 없었나?
93년도의 데뷔작을 독자 입장에서 처음 봤을 때 그 작품이 너무 모자라 보였다. 제3자가 된 거지. <미생>에서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어떤 주의나 주장을 펼치기 보단 목격하듯 묘사하자는 거다. 내가 내 데뷔작을 봤던 것처럼 독자들이 자신들의 생활을 제3자의 입장으로 목격하는 느낌을 주고 싶었다. 그래서 최대한 대사를 소박하게 쓴다. 문장이 현란하면 특정한 누군가의 정체성처럼 느껴지지만 문장이 소박하면 자기 이야기처럼 들리지 않나.
<야후>나 <이끼> 그리고 <미생>의 사연은 주인공들의 실패와 절망에서 비롯된다. 하지만 <야후>의 김현이나 <이끼>의 류해국은 불처럼 뜨겁게 번지는 인물이라면 <미생>의 장그래는 물처럼 차갑고 유하게 흐르는 인물이다. 작가의 변화가 반영된 결과처럼 보인다.
최근에 이런 얘길 들었다. “드디어 작품에서 어머니가 나오네요.” 깜짝 놀랐다. 전작들에서 주인공의 심리에 영향을 미치는 건 모두 가부장이었던 거다. <로망스>에선 장인어른이 모델이었고, <야후>나 <이끼>, <그 남자는 거기 없었다>도 아버지와 연관된 이야기였다. 사실 <이끼>로 단단하게 매듭을 지은 느낌이 있었다. 가부장이란 정서에 기대서 창작해왔던 시절이 <이끼>로서 결산된 느낌이랄까. <미생>엔 확실히 모성애적인 코드가 있다. 영업 3팀에서도 모성애적인 연민이 강하지 느껴지지 않나.
개인적인 삶에서 계기를 찾을 순 없을까?
한번은 고향 가족들과 지리산에 놀러 갔는데 어머니께서 딸에게 물으셨다. “아빠가 무서워? 엄마가 무서워?” 그러니까 엄마는 화를 많이 내도 이해해주는 느낌이 있지만 아빠는 아무 것도 모르면서 화만 내니까 무섭다고 했다(웃음). 한편으로 서운한 이야기지만 확실히 아내가 잘하고 있음을 확신했다. 가끔 집에 들어가면 아내가 애들한테 화낼 때 아내에게 짜증내면서 뭐라고 했다. 그런데 막상 초등학교 6학년이 되는 큰 애는 엄마가 자기를 공격하는 게 아니라는 걸 정서적으로 믿는 거다. 아내의 힘을 느꼈다. 아무래도 이런 경험이 이야기도 변화시키는 것 같다.
<이끼>는 보는 사람도 힘이 들어가는 작품이었다. <미생>은 반대다. 그건 작가도 비슷하게 느끼리라 생각한다. 물론 마감은 항상 힘들겠지만(웃음).
프롤로그에선 자기 연민에 빠진 인물이 나온다. 슬픔을 먼저 던져주고 진행하는, 전형적인 내 패턴인데 그걸 딱 보니까 과거처럼 하기 싫어졌다. 나이를 먹으니까 몸이 어떻게든 조금은 자라있어서 예전에 입던 옷을 그대로 입을 수 없으니까 갈아입을 때가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그래라는 이름도 특이하다.
그 이름은 3수에 등장하는데 거의 3수 시작 직전에 생각한 이름이다. 당시에 ‘예스(Yes)’라고 쓰인 티셔츠를 입고 오피스텔에서 담배를 피우다가 거울에 비친 단어를 보고 ‘그래. 장그래?’하는데 어감이 착 붙더라. 그리곤 여자가 ‘안녕’하면 남자는 ‘그래’하는 걸로 여자 캐릭터는 ‘안영이’로 지었다(웃음). 바둑에서 오래 사는 돌을 부르는 장생을 생각하기도 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아찔하지(웃음).
<미생>의 캐릭터들은 저마다 축을 잡고 저마다의 시점과 합리를 설득한다.
다양한 직장인들이 그들 자신을 투사할 수 있도록 다양한 캐릭터를 만드는 게 목표였다. 주인공은 그런 이들을 드러내는 가이드 역할을 하는 거다. 워커홀릭인 오차장이 있고, 위아래의 교량 역할을 하는 김대리, 권위적이진 않지만 대리보단 무게감이 있는 천과장 같은 이가 그들이다. 그들과 경쟁하면서도 함께 일하는 동료로서 염려해주는 옆 부서의 팀원들도 있다. 워낙 회사의 인물군이 다채로우니까 의식적으로 캐릭터를 설정하고 묘사하기 보단 스토리의 이슈에 따라서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인물을 배치하는 요령이 생긴다.
영업3팀은 굉장히 이상적인 팀이다. 능력과 배포가 있는 상사들과 발전하는 막내 사원들이 직위에 따라 역할을 수행하고 부조리가 없으며 체계가 잘 돌아간다. 영업3팀 자체가 <미생>의 주제이자 작가의 이상이라고 본다.
분명히 그렇다. ‘미생’은 완생으로 가는 길인데, 사실상 완생이란 이룰 수 없는 꿈과 같다. 대부분은 진짜 자기 꿈을 이루지 못하고 다른 삶을 살다가 어느 순간엔 그 꿈을 잊는다. 하지만 성인으로서의 이상도 있는 거다. 그걸 묘사하고 싶었다. 다른 부서를 통해선 어쩔 수 없는 현실의 각박함을 보여준다면 영업 3팀은 그 자체로서 내가 짐작한 직장인들의 이상향을 그리고 싶었다. 당신은 이런 욕망과 열기를 안고 입사하지 않았나? 이런 상사를 꿈꾸지 않았나? 어쩌면 그들의 현실에 존재하지 않더라도 꿈꿨을지도 모르는 그런 것들 말이다. 그러니까 <미생>인 거다.
하지만 결국 현실을 자각하게 만든다. 고졸인 장그래가 정사원이 되기 어려울 거란 대사가 등장할 땐 뼈아픈 기분마저 들더라.
요르단 사업 에피소드가 끝나고 ‘당연히 이 정도면 장그래도 정사원 돼야지!’란 댓글이 많이 보였다. 그래서 그 에피소드를 지난 해의 사업 실적과 10대 성과를 공개하는 2013년도 시무식 장면으로 연결했다. 독자들 입장에선 영업3팀의 요르단 사업이 대단한 이슈였고, 장그래가 큰 일을 한 것처럼 보이지만 만화 속의 대기업 차원에서 엄밀하게 보자면 그 이전에 비리 과정의 유무와 관계없이 이미 존재했던 사업을 다시 한번 세팅한 것뿐이다. 사업 자체를 올바르게 되돌린 측면은 있지만 회사의 성과로선 당연한 업무였을 분이니까 장그래가 부각될 이유가 없었던 거다.
현실적이라서 더욱 가혹하다.
스토리상 항상 고민하는 지점이다. 장그래가 잘된다고 이 사회의 계약직 사원들이 다 잘되는 건 아니다. 물론 작품이 리얼리티만을 담아야 되는 건 아니지만 지나치게 현실을 무시하는 것도 기만이다. 특히 <미생>이 많은 지지를 얻은 건 독자들이 당면한 실질적인 고민을 대변했기 때문인데 장그래가 정사원이 되면 그걸 무시하는 게 아닐까 싶었다. 그래서 ‘장그래 정사원 시켜라!’ 이런 댓글들이 늘어서 나조차도 거부하기 어려워지기 전에 못을 박았다.
낙관적인 거짓말은 할 수 없지만 긍정적인 비전은 제시할 수 있다.
그래서 고민했다. 그런 비참함으로 끝내야 될까. 그래서 ‘지금의 회사만이 당신의 전부는 아닐 거야’라는 대사를 넣었다. 정사원이 되지 못했다고 장그래의 인생이 실패한 건 아니니까. 큰 상금이 걸린 대국에서 패한 바둑기사들은 ‘한판의 바둑이 끝난 거지’ 그러고 만다. 살다 보면 수많은 바둑판을 마주하니까 그저 한판일 뿐이다. 그 초연한 태도가 정말 매력적이다.
바둑 실력은?
10급 정도.
10급은 어느 정도 수준인가?
18급에서 1급으로 올라가고, 승단하면 초단에서 9단으로 올라간다. 10급보다 밑이면 대단히 못 두는 건데, 바둑의 재미를 느끼는 초입 단계랄까. 수는 낮지만 바둑TV에서 유명한 기사의 대국에 관심을 갖고 지켜볼 수 있는 정도?
어떻게 입문했나?
문하생 때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다. 작가 선생님들께서 가끔 바둑을 두셨는데 어른스러워 보이고 멋있더라. 그래서 바둑을 배웠다. 그런데 패배감 관리가 안되더라. 지고 나면 아까 뒀던 바보 같은 수가 계속 떠오르고 너무 분하고 약 올랐다(웃음). 남들은 하루에 서너 판도 두는데 난 한 판만 둬도 진이 다 빠졌다. 그래도 관련 서적을 읽는 건 재미있어서 그쪽으로 빠졌다. 바둑인들의 삶은 알수록 대단하다. 조치훈 9단은 교통사고가 났는데도 휠체어를 타고 와서 바둑을 둔 휠체어 대국이 유명하다. 그때 누가 왜 그렇게 바둑을 두냐고 물어보니까 이렇게 답했다. “어차피 바둑, 그래도 바둑.” 남들한텐 바둑일 뿐이지만 자신한텐 바둑이 전부라는 거다. 대단한 비장함이 느껴진다. 바둑 기사들의 정수가 남긴 어록들을 보면 흉내낼 수 없는 어떤 경지가 느껴진다.
단행본의 ‘작가의 말’에서 바둑을 자기 패배조차도 복기하는 유일한 일이라고 했다. 그 문장을 읽고 새삼 바둑에 대해서 새롭게 인식했다.
대여섯 살부터 바둑을 둔 영재급 아이들 중 몇몇은 연구생이 된다. 감정 정리도 잘 안될 것 같은 그 꼬맹이들도 가만히 앉아서 복기한다. 그 아이들이 패배의 감정을 어떻게 관리할까, 마음을 단단하게 만들고자 어떻게 노력했을까, 이런 생각을 하면 연민이 생긴다. 바둑이 어려운 건 상대적이기 때문이다. 격랑의 사춘기에 연구생이 되어 승수를 채우고 입단하고자 할 텐데 이창호나 이세돌 같은 천재들이 많으면 아무래도 어렵다. 실력이 늘어도 자신보다 더한 천재를 만나서 패배하면 실력이 낮은 거다. 그런 과정을 견딘 아이들이 사회에 나오면 그 단단한 마음으로 바라보는 세상이 어떨까 궁금했다.
부모로서의 심정도 더해질 것 같다.
아이에게 연민이 들 때가 있다. 분명히 이런 상황에선 슬플 거 같은데 웃고 있을 때가 있다. 그걸 보면 슬프다. 이 정도는 참아낼 수 있으니까 걱정하지 말라는 뜻인데 부모 입장에선 그렇게 애가 성장하는 모습을 보는 게 마냥 기쁘지만은 않더라.
인생이 바둑이라면 본인은 어느 정도 수를 둔 거 같나. 어떤 판국이 보이나?
포석은 다 지난 정도? 이 판이 어떻게 될 거 같다고 어느 정도 정돈된 형세랄까. 나란 사람이 사회에서 어떻게 살아갈진 대충 정해진 거 같다. 큰 자리들을 보면 내가 확보한 지점도 있고, 남에게 넘어간 지점도 있고. 이제 중반 이후에 끝내기를 어떻게 잘 처리할지가 문제다. 한 집이라도 더 확보할 수 있도록 정당하게 잘 싸울 수 있는 판을 짜야 한다. 디테일하게 모든 단계가 중요한 시기가 온 거 같다.
마크 월버그는 어두운 터널을 지나듯 10대를 관통했다. 암담한 어제는 지났다. 다만 결코 잊지 않는다. 이제 그는 가장의 이름으로, 아버지의 이름으로, 가족과 함께 오늘을 산다.
대단한 실력을 지닌 밀수업자였던 크리스는 자신의 어두운 과거를 벗고 새로운 삶을 입었다. 그에게는 아름다운 아내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두 아이가 있다. 가족은 그 남자가 사는 이유다. 그러나 마약밀수업자들의 운반책 노릇을 하던 처남이 얻게 된 큰 빚을 대신 갚기 위해서 다시 밀수를 모색해야 할 상황에 내몰리면서 그의 삶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콘트라밴드 Contraband>는 어느 가장의, 아버지의, 결국 한 남자의 이야기다. 그리고 마크 월버그는 평범한 삶을 꿈꾸는 그 가장의, 아버지의, 한 남자의 사연을 대변한다. ‘딸바보’로 잘 알려진 마크 월버그(Mark Wahlberg)는 할리우드에서도 가정적인 남자로 손꼽히는 남자다. “아이가 생겼을 때, 미치도록 행복했다. 내가 가질 수 없다고 생각했던 삶이 실현됐으니까.” 세계적으로 주목 받는 스타배우이자 행복한 가장으로서의 소임을 다하는 그의 오늘은 한때 결코 기약할 수 없는 미래였다.
메사추세스주 보스턴 남쪽 교외에 자리한 도체스터에서 태어난 마크 월버그는 줄타기를 하듯 아슬아슬하게 10대를 건넜다. 가난한 집안에서는 불화가 끊이지 않았다. 열한 살 되던 해에 부모의 이혼을 경험한 마크 월버그는 열세 살 무렵 코카인에 손을 댔다. 열네 살의 나이로 학업을 중단했고, 열여섯 살에는 교도소에 수감되기에 이르렀다. 마약과 폭력은 마크 월버그의 유년시절을 기워낼 수 없을 정도로 너덜너덜하게 만들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를 회복시킨 건 가족이었다. 2년 간의 수감 생활을 마치고 가정으로 돌아간 그는 검정고시 자격을 얻었다. 특히 희대의 아이돌 스타로 군림했던 뉴키즈 온 더 블록의 원년 멤버인 친형 도니 월버그는 동생의 삶을 견인하는 든든한 후원자였다. 뉴키즈 온 더 블록의 원년 멤버로 발탁됐지만 스스로 기회를 날려버린 적이 있었던 마크 월버그가 후에 마키 마크라는 힙합 뮤지션으로 데뷔해서 성공을 거둔 것도 제작자로서 서포트해준 형 도니 덕분이었다.
결과론에 가깝지만 마크 월버그가 경험한 이른 일탈은 현재에 다다르기 위해 자신을 위해 마련된 이른 성장통이었다. 아픈 만큼 성숙해진다는 말처럼 이른 나이의 과오는 그만큼 삶의 방향을 일찍 깨닫게 만드는 계기가 된 셈이다.“후회할만한 짓을 많이 했다. 제대로 된 삶을 살게 되기까지 스스로 용서를 구해야 한다. 진정으로 죄책감에서 벗어났다고 느낄 때까지.” 그가 추구하는 ‘제대로 된 삶’은 배우로서 실현됐다. 배우 마크 월버그의 경력에 있어서 방아쇠가 된 건 폴 토마스 앤더슨(Paul Thomas Anderson)감독의 <부기 나이트>다. 7~80년대 미국의 포르노 산업의 열풍과 몰락을 살피는 이 작품에서 마크 월버그는 당대의 포르노 스타로 출연하며 남다른 물건으로서의 자질을 드러냈다. 조지 클루니와 함께 출연한 걸프전 배경의 코미디물 <쓰리 킹즈>와 팀 버튼 감독의 리메이크 SF물 <혹성탈출> 그리고 다채로운 출연진과 캐릭터가 눈길을 끄는 범죄물 <이탈리안 잡> 등으로 할리우드에서 확고한 위치를 만들어나갔다.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디파티드>로 전미 비평가 협회상 남우조연상을 수상하며 연기력을 인정받기도 했다.
유년 시절 온갖 비행을 전전한 콜린 패럴이 야생마 기질의 배우로 성장한 것과 달리 마크 월버그는 완전히 다른 유형의 배우가 됐다. 가족의 불화와 가난으로 인해서 길거리의 비행에 내몰렸던 그가 건강하고 정직한 이미지로 거듭나며 가족적인 가장의 면모를 갖추게 된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그것이야말로 길거리에 내몰려 스스로를 망쳐가던 시절에 그가 꿈꾸던 삶이었고, 영화를 통해서 그런 희망을 회복해나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콘트라밴드>는 마크 월버그의 자전적인 감정을 건드리는 작품이었을지도 모른다. 주연배우뿐만 아니라 직접 제작자가 되길 자처한 그는 자신이 연기한 크리스에 대해서 깊은 공감을 얻었다. “폭력적으로 행동하는 상황도 있지만, 근본적으로 많은 생각을 지닌 사람이라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각각 다른 상황에서 생각과 행동을 이어나가는 방식이 대단히 매력적이었다. 또한 옳은 일을 하려고 노력하는 착하고 성실한 남자다. 문제를 해결하고 아내와 아이들이 기다리고 있는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계속해서 방법을 찾아 나간다.” 가족이 있는 집으로 돌아가고자 사투를 벌이는 한 남자의 고단하고 간절한 여정에 마크 월버그는 기꺼이 동참했다.
아이슬란드에서 제작된 원작 영화를 리메이크한 <콘트라밴드>는 원작의 뼈대를 최대한 살리고 할리우드의 효율적인 제작방식으로 새로운 살을 붙이는 방식으로 완성됐다. 특히 아이슬란드에서 활동하는 감독 겸 배우이자 <콘트라밴드>를 제작하고 원작에 직접 출연한 바 있는 발타자르 코크마쿠르(Baltasar Kormakur)가 연출을 맡았다는 것도 이색적이다. 마크 월버그는 그에 대해서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배우이기도 한 그는 카메라 앞에서도, 카메라 뒤에서도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굉장히 잘 파악한다. 다른 사람과 소통할 줄 알고, 용기를 북돋워 주는 법을 안다.” 뉴올리언즈와 파나마를 오가며 로케이션으로 진행된 촬영은 단 37일만에 종료됐다. 수많은 캐릭터들이 등장하고, 적지 않은 액션 신이 연출된 이 작품이 짧은 시간 안에 완성됐다는 건 결국 제작진들의 신뢰로 구축된 결과일지도 모른다. <콘트라밴드>는 올해 오프닝 첫 주 북미 박스오피스 1위에 올랐다. 현재 마크 월버그는 발타자르 코크마쿠르의 새로운 코미디 연출작에 출연을 결정하고 덴젤 워싱턴과 함께 호흡을 맞출 준비를 하고 있다.
마크 월버그는 소문난 타투 마니아다. 지난 해 그는 자신의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문신 제거 시술을 받았다. 이유는 명확했다. “아이들이 내 문신을 싫어하기 때문에.” 자식들에게 그 광경을 목격하게 만든 건 아버지로서 전하고픈 말이 있었기 때문이다. “문신을 지우는 고통을 보여주면서 어떤 행동에는 책임져야 할 고통이 따를 수 있다는 걸 알리고 싶었다.” 일찍이 삶이 산산조각나는 순간을 체험했기에 그 뼈저린 교훈을 자식들에게 물려주고 싶은 아버지의 진심, 마크 월버그에게 있어서 지금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건 그가 매일 같이 돌아가야 하는 집에 있다. “나는 두 딸과 두 아들이 생기기 전까지 가정적인 편이 아니었다. 하지만 가족이 나를 변화시켰다. 영화에서처럼 가족을 보호해야 한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 생각할 여지도 없는 문제다.” 아버지의 이름으로, 마크 월버그는 오늘을 산다.
충남 예산면 운곡리의 조필성(김윤석)은 한적한 시골에서 치안 유지보다도 집안의 경제난 해소가 더 고민스러운 한량 형사다. 만화방을 운영하며 남편의 쥐꼬리 월급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아내(견미리)의 바가지는 득달같고, 두 딸에겐 매일같이 면목이 없다. 하지만 예기치 못한 행운이 찾아온다. 소싸움 대회를 주관하던 중, 불현듯 찾아온 예감에 아내의 통장을 훔쳐다 판돈을 걸자 열 배의 배당금이 쏟아진다. 하지만 행운은 곧 불운으로 돌변한다. 친구에게 맡긴 배당금을 찾으러 가던 중, 희대의 탈주범 송기태(정경호)를 만나고, 돈도, 자존심도 모두 바닥에 내동댕이쳐진다. 그리고 추격이 시작된다. 거북이 달린다.
<살인의 추억>은 시골이란 정체된 정서의 공간에 스펙터클한 서스펜스를 채우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했다. <추격자>는 추격의 대상을 숨기지 않고도 긴박한 추격전을 만들 수 있음을 (한국의 영화적 토양에서) 증명했다. 신분을 감추지 않는다는 점에서 <추격자>와 유사한 구도를 보유한 <공공의 적>은 형사로서의 제도적 처벌보다도 개인적인 복수심에 근간에 둔 주먹질을 연출한다는 점에서 인상적인 결말을 그린다. 앞서 나열한 세 영화의 공통분모는 무능한 경찰력이다. 과학수사를 운운하거나, 직감을 따라가거나, 혹은 불법을 자행하거나, 범인들은 항상 형사들을 제치고 능수능란하게 빠져나간다. 이는 <거북이 달린다>도 다르지 않다. 다만 여기서 ‘거북이’는 형사를 겨냥한 단어가 아니다. 구체적인 언어를 동원해 설명하자면 ‘시골’의 ‘서민’‘가장’형사다.
향토적 풍경을 바탕으로 축조된 수사물이란 점에서 <거북이 달린다>는 <살인의 추억>과 <추격자>를 연상케 하는 장르적 환경과 구조를 지닌다. 동시에 그 추격의 주체와 객체가 형사와 범인이라는 공적 신분을 벗어나 개인과 개인의 대결 양상으로 치닫는 피날레를 연출한다는 점에서 <공공의 적>이 떠오른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거북이 달린다>는 앞선 세 영화와 활성화된 에너지의 유형이 다르다. 앞선 세 영화가 고체처럼 단단하게 응축된 서스펜스를 기본적인 영화적 질량으로 삼은 장르물이라면 <거북이 달린다>는 액체처럼 유연하게 출렁이면서 종종 넘쳐흐르는 방식의 코미디에 가깝다. 눈에 띄는 건 스토리보다도 캐릭터이며 전반적인 분위기보다도 순발력 있는 리듬이 관건이다.
서울에서 내려온 날렵한 탈주범과 그를 잡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시골의 느슨한 형사 사이엔 좀처럼 메울 수 없는 빈틈이 보인다. 공권력을 농락할 정도로 두뇌가 비상하고 운동신경 또한 발군인 송기태에게 조필성은 한 주먹거리도 안 되는 적수다. 이는 ‘토끼와 거북이’의 토끼처럼 방심하기 좋은 상대인 셈이다. (동화의 관계를 염두에 둔 제목처럼) <거북이 달린다>는 방심하는 토끼를 쫓아 달리는 거북이의 고군분투를 그린 영화다. 그리고 그 거북이는 시골에 사는 서민이자, 가장이며, 아버지다. 형사의 추격전이라기 보단 촌놈의 사투에 가깝다. 촌스럽고 느슨한 루저의 승리를 연출하기 위한 서사를 그린다. 이성적으로 직조된 것이라기 보단 감정적인 결과물에 가깝다. 그만큼 선악의 관계는 배제되고 개인적인 사연이 중시된다. 형사도, 범인도, 제 나름의 사연이 있다. 다만 그 사연의 비중이 다르고 그만큼 캐릭터에 대한 편애가 형성된다.
드라마틱한 감정을 주조하는 코미디로서 좀 더 효율성이 뚜렷한 <거북이 달린다>는 장르적 동선을 밟아나가는 덕분에 장르적 기시감을 부르지만 종종 느슨하게 풀리는 속도감을 활용해 유머를 발생시키고 드라마틱한 감정을 주조하는데 좀 더 효율성이 뚜렷한 작품이다. 장르적 비범함보단 평이한 드라마로서의 야심이 짙다. 추격전의 구도에 곁가지를 치는 가족주의의 감성으로 이뤄진 <거북이 달린다>는 지극히 단순한 내러티브를 지니고 있지만 종종 명확하게 나아가지 못하고 주춤함으로써 일관성 있는 리듬감에서 벗어나곤 한다. 하지만 연주력의 공백을 메우는 건 배우라는 악기다. 주연과 조연 가릴 것 없이 <거북이 달린다>의 캐릭터를 이루는 배우들은 제 역할에 충실하다. 특히 김윤석은 마치 악센트와 같은 강세를 찍으며 단조로운 이야기에 특별한 음색을 새긴다. 다만 대비를 이루는 캐릭터의 세기가 좋은 형태를 이루지 못해 종종 사연의 중심이 흐트러지는 인상이 감지되고 그만큼 결말부를 장식하는 쾌감이 약해진다.
그럼에도 <거북이 달린다>는 환경을 잘 응용한 코미디이자 배우들의 연기를 지켜보는 재미가 쏠쏠한 오락영화다. 과하거나 부족한 지점이 눈에 띄지만 마이너스와 플러스의 총합의 균형이 적절하다. 무엇보다도 캐릭터가 얻는 마지막 성취를 방해하고 싶지 않다. 촌놈을 위해 배려된 작위적 송가라지만 그 소박한 에너지가 온전히 전달되는 기분이다. 그 순박한 자질이 밉지 않다.
인터뷰를 상당히 많이 했더라.
한 4~50개는 했을 걸. 진짜 ‘Breathless’야. 숨을 쉴 수가 없어. (웃음)
제법 유명인사가 됐다. 방금처럼 싸인을 요청하는 사람도 있고.(오픈된 1층 카페에서 인터뷰를 진행하는 가운데 싸인을 요청하는 팬이 있었다.) 좀 불편하더라. 밖에서 많이 알아보지 않는 게 좋지. 그런 걸 즐기는 분들도 있겠지만 나한텐 별로 즐길 거리가 안 돼. 물론 어느 정도까지는 기분이 괜찮았는데 너무 많아졌거든. 그냥 내가 살아가는 일상이 좋지. 시사회가 열린 극장 9백석에 8백 명 이상이 꽉 차있는 걸 보면 잠깐 ‘와!’하지만 뒤돌아 서서 생각해보면 그 사람들이 다 길 가다가도 날 알아보는 거 아닌가 싶어지니까. 그래서 수염 깎고, 머리 길러야겠네, 이 생각만 하고 있다. (웃음) 물론 아까 그 분은 감사하지. 그렇게 부드럽게 들어오시면 좋거든. 그런데 거칠게 오시는 분들이 있어. 좋은 건 좋아도 싫은 건 싫은 게 인간의 속성이잖아. 아까 그 분은 날 불편하게 하지 않잖아. 그런데 불편하게 하는 사람이 있거든. 언젠가 관객들의 뇌리 속에서 잊혀지겠지. 그때까지 짱 박히려고. (웃음)
일반 관객들과 함께 영화를 두 번 봤는데 매 번마다 관객 반응이 폭발적이더라.
서울극장 무대 인사에 참여하기 위해서 극장에 갔을 때 확실히 느꼈다. 내가 누군가를 열광시키려고 만든 영화는 아닌데 이 사람들이 되게 열광하고 있다는 걸. 그러니까 한번쯤은 누가 뱉어내 줬으면 하는 이야기였는데 아무도 해주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게 아닐까. 그런데 누가 했어. 좀 나쁜 비유 같지만, 처음엔 불편한데 거기에서 내가 미워하는 놈을 누가 대신 때려주는 기분을 느끼는 거야. 그러면서도 자기가 직접 대하고 싸우면서 풀지 못하고 누군가가 대신해줬다는 게 약간 걸리는 사람도 있겠지. 어쨌든 <똥파리>를 보면서 대리배출이 된다고 느끼는 사람이 많은 거 같아. 누구나 쏟아낼 게 있는 만큼 쏟아내야 되는 거 같다. 굳이 아낄 필요도 없고, 있는 대로 쏟아내야 될 거 같다. 다니엘 데이 루이스가 나온 영화를 보면 그 사람이 내 대신 뭔가를 막 쏟아내고 있는 거 같더라. 막 지르잖아. 에너지가 엄청난 배우지. 다 배출시켜버리잖아. 그냥 내 대신 뭘 뱉어주고 있는 느낌이 들어서 개인적으로 되게 좋아한다.
다니엘 데이 루이스는 엄청난 에너지를 담아서 연기하는 사람이다. 최근작인 <데어 윌 비 블러드>는 봤나?
그건 못 봤다. 사실 사람들이 모르는 <크루서블>보면서 미치는 줄 알았어. ‘신은 죽었다!’(포효하듯) 이러는데 죽겠더라고. 우리들이 가진 에너지보다 굉장히 큰 거지. 그 사람은 배우이기 이전에 배출시키지 않으면 안 되는 사람이랄까.
자신을 위해 만든 영화라는 말을 공공연하게 밝혔다. 하지만 그게 단순히 자전적인 영화라는 의미는 아닌 거 같다. 자전적인 이야기는 아니지. 그 안에 내 마음이 다 담겨있다지만 내 얘길 이야기에 가져다 붙일 수는 없잖아. 내 개인적인 얘기를 영화에 그대로 투영한다는 건 좀 이상하지 않나. 그건 복사를 하는 거지.
만약 <똥파리>와 비슷한 경험을 지닌 사람이 자신의 경험을 고스란히 영화로 만든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거다.
그럼 영화 처음부터 끝까지 완전히 증오로 가득가득 차 있겠지. 그걸 누가 보겠어.
그렇다면 자신을 위한 이야기라는 말의 의미가 어떤 범위로 활용된 것인지가 궁금하다.
자신의 이야기가 투영되지 않은 영화를 만드는 감독이 있나. 일기를 쓰는데 남의 일을 쓰진 않잖아. 소설을 통해 완전한 픽션을 만드는 분들조차도 자신의 숨결들을 넣잖아. 그러니까 그 사람만이 쓸 수 있는 소설이 나오고. 그렇게 자신의 일부가 차용된 거지. 나 역시 마찬가지다. 내가 살아온 삶과 환경, 주변의 친구들의 삶과 환경, 그리고 앞집이나 건너 집에 있었던, 내가 봤거나 들었고 그로 인해 느꼈던 것들이 다 들어있지. 그냥 내 마음은 한껏 들어갔다. 가족에 대해 싫다고 느꼈던 마음들은 다 들어갔지. 그렇다고 우리 아버지가 어머니를 칼로 찔러서 죽였나, 아니면 내가 용역소에서 일을 했나. 그건 아니지. 단지 어떤 봐왔던 것에 완전한 상상력이 결합된 산물이지. 다만 그 안에 담긴 마음만 속이지 않으면 될 것 같다.
아까 말했듯이 일반관객과 영화를 두 번 봤다. 처음 볼 땐 나도 영화에 몰입하는 입장이었지만 두 번째는 영화를 보는 관객들의 반응을 틈틈이 관찰할 수 있었다. 재미있는 건 상훈이 욕설을 할 때 낄낄거리던 관객들이 바로 뒤이어 적나라한 폭력에 돌입하니 다들 ‘헉!’하더라. 상당한 충격을 느낀다고 해야 하나. 사실 영화를 보는 관객 대부분은 영화적 수위의 경험을 겪지 못한 사람들이라 그 폭력적 현장을 바라보는 생소함을 적나라하게 표현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 상황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는 느낌이 들더라.
1부터 10까지의 레벨에 따른 수위 차이는 있겠지만 최소한 1정도를 안 겪어본 사람이 이 세상에 있을까? 비단 한국뿐만 아니라. 모든 인간이 부모님을 통해서 이 세상에 나왔고 어떤 기간 동안은 부모와 살아야 한다. 그 과정이 항상 좋았던 건 아니라는 거지. 고마움도 있겠지만 분명히 부딪힘도 있었을 테고. 특히 한국에선 가족이 고마움보단 미움의 대상이 되는 경우도 허다하지 않나. 개념상으로는 제일 가까워야 된다고 생각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제일 멀고 스스로를 제일 힘들게 하는 존재처럼 느끼곤 한다. 집이 부자고 가난하고를 떠나서 그런 개념이 발생한다.
그 이유에 대해서 생각해본 적 있나? 외국 같은 경우는 성인이 되면 적절히 알아서 나가거나 내보내는데 한국은 움켜쥐고 있잖아. 내가 대신 무언가를 해야 되고, 아니면 해줘야 될 것 같고, 이상하게 갖지 않아도 될 부담감들을 지니고 사는 것 같다. 자유로워야 되는데 자유롭지 못한 거랄까. 왜 그렇게 살까. 나는 이제 독립한지 7년 반 정도 됐다. 진작 나왔어야 됐지만 나 역시도 용기가 없어서 늦어졌지. 어쨌든 당연히 나와야 되잖아. 부모님을 끌어안고 평생을 살 건가. 그래야 여자친구도 만나서 여자친구가 집에 올 수 있고, 야한 것도 하지. (웃음) 그게 삶이잖아. 물론 꼭 여자친구뿐만 아니라, 자기 일생에서 친구도 만나고 자기의 공간이 있어야 자기 삶에 대해서 고민도 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기지. 중간에 누구 하나 없이 스스로 혼자 남게 될 때 들 수 있는 생각들이 있잖아. 그런데 집에선 문만 열면 가족인 거야. 연희 같은 경우도 (손가락을 작게 벌리며) 요따만한 집에서 꾸역꾸역 모여 사니까, 문만 열면 가족이 보여. 아무리 좋은 사람이라도 365일, 24시간 계속 따라오면서 보인다면 미치는 거지.
사실 그렇기 때문에 가난할수록 불행에 쉽게 노출되는 게 아닐까. 가난할수록 집도 좁아지고 그만큼 서로에 대한 간섭도 커질 가능성이 생긴다. 그리고 독립이 늦어질수록 가장은 자식들을 부양해야 한다는 책임감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그리고 자식들은 아버지의 경제적 능력에 대한 요구가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일 수 있다. 결국 경제력이 집안의 화목과 직결될 가능성이 커진다. 가난할수록 불화가 생길 가능성이 높아지는 구조가 되는 셈이다. 그리고 그 가난을 방조하는 사회가 그 모든 불행의 배후일 수 있다.
물론 100% 가난이라고 할 순 없지만 개인의 가난보다도 이 사회가 가난했고 한국이 가난했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는 있다. 이건 조금 다른 얘기일 수 있지만 일본에게 지배도 받고, 한국전쟁도 겪고, 그렇게 역사적으로 힘이 없어서 불행했던 나라였던 거지. 그러다 보니까 어느 순간에 아버지들은 가족을 먹여 살려야 되니까 계속 나가서 돈 벌어오는 기계가 돼버렸고, 엄마는 자기 삶의 정체성을 고민하기 이전에 자식들을 가르쳐야 하는 사람이 돼버린 거다. 자식 교육은 엄마, 돈 벌어오는 건 아버지, 그렇게 나뉘어버렸는데 사실 알고 보면 그런 임무를 마땅하게 수행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닐 수 있는 거지. 그냥 같이 더불어 자유롭게 살면 좋을 텐데, 누가 누굴 가르쳐야 한다는 개념이 생기니까. 어쨌건 그래도 엄마는 자식들과 싸우건, 친하게 지내건, 부대끼면서 살기라도 하는데 아버지는 계속 돈 벌어야 되니까 나가서 사느라 가족들과 소통할 시간도 없지. 대다수의 아버지들은 좀 소통이 안되잖아.
<똥파리>는 그런 현실에 대한 이해에서 출발한 영화 같다.
내 가족 안에서 출발했겠지. 주변 친구들의 가족 이야기도 그렇고. 친구들과 중학교 때 가끔 술 먹고 그러면서 가족 이야기가 나오면 대부분 아버지 이야기가 나왔다. “난 싫어! 아버지가!” 이러는 친구가 있었는데 알고 보면 부모님이 이혼해서 아버지가 따로 나가서 살고, 그래서 미워하지만 한편으로 그리움이 있다. ‘애’와 ‘증’이 있지. 대개 그랬던 거 같다.
결국 부모를 부정해봤자 변하는 건 없다. <똥파리>의 증오도 결국 그런 깨달음에 도달하게 위해 증오를 묘사하는 영화가 아닐까.
아버지가 폭력의 괴물이다, 라는 게 아니라 이 사회가 그런 괴물을 만들었다는 거지. 아버지가 누굴 괴롭히거나 때리고 싶어서, 아니면 칼로 죽이고 싶어서 그랬겠어. 사회가 압박을 가하는데 사회적으로 약자이다 보니까 풀어낼 곳이 없지. 그게 이상하게 제일 편하고 쉽게 대할 수 있는 가족 안에서 풀어지는 거지. 사실 불쌍한 거야. 살아가는 숨통이 없으니까. 집에서 셋방살이하듯 소통도 안 되고, 가족으로서 대접도 못 받고, 그렇게 집에 와도 외로워지는 거지. 폭력적이지 않은 아버지들도 마찬가지고. 가장이라는 짐이 왜 아버지에게만 얹어져야 할까. 나는 네 어머니야, 나는 네 아버지야, 나는 당신의 아들이고, 너는 내 아들이야. 이런 구별을 통해 서로 의무를 얹혀주기 보다 좀 친구 같이 살 수 없을까, 라는 고민이 들더라.
상훈은 주먹질과 욕으로 세상과 소통하는 사람이다. 아버지에 대한 깊은 증오만큼이나 그 관계를 끊을 수 없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다. 단지 그 안에서 고립된 거다. 연희와 소통할 수 있는 건 연희가 그 증오를 두려워하지 않고 받아 쳐주는 인물이기 때문이 아닐까. 결과적으로 상훈이 삶을 바꿔보려는 결심을 품는 것도 연희가 어느 정도 계기가 된 거라고 생각한다. 궁금한 건 눈 딱 감고 상훈을 위한 해피엔딩을 마련할 수도 있었을 텐데 당신은 그럴 생각이 없었다는 거다.
만약 (결말부의 상훈이) 그렇게 되지 않았다면 <똥파리>가 <피와 뼈>처럼 됐을 거다. (웃음) 사실 그 자체가 내겐 화해가 되는 거지. 상훈이 죽었다는 건 단지 어떤 한 사람이 없어졌다는 의미가 아니다. 상훈이 사라짐으로써 당연히 사라져야 할 어떤 연결 고리가 끊어지는 거라고 생각한다. 예전에 끊어야 했을 어떤 고리를 이 지점에서 끊기 위해서 라이타 불로 상훈의 제를 지낸 게 아닐까라고, 적어도 난 그렇게 생각한다. 처음부터 그렇게 생각했던 건 아니다. 완성된 영화를 보고 인터뷰를 거듭하면서 계속 느껴지는 게 그렇더라. 결국 상훈을 죽임으로써 화해를 신청하는 거다. 이는 내가 서른 두세 살이 돼서 시나리오를 썼을 당시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이었던 거 같다. <똥파리>는 2006년의 양익준이었던 셈이다.
결국 상훈은 당신의 마음 속에 있던 증오와 미움이었던 것 같다. 만약 그때가 아니었다면 <똥파리>는 어떤 이야기가 됐을까.
사실 잘 모르겠다. 만약 지금 이런 얘기를 한다면 다른 선택을 했었을 수도 있겠지. 이야기 구조가 완전히 바뀔 수도 있고. 어쨌든 내가 지금 <똥파리>시나리오를 다시 쓴다면 조금 변화된 이야기가 나오리라는 건 확실하다. 만약 그 이전에 썼다면 또 다른 이야기가 나왔을지 모를 일이고. 이제야 조금씩 이해도가 생기다 보니까 지금은 화해의 제스처를 취할 수 있는 거고 살가워질 수 있지만 만약 20대 사이에 이런 영화를 만들었다면 더 무거워지거나 악랄해지고 아팠을 거다. 캐릭터 자체가 완전히 미운 사람들로 표현됐을 거고. 나도 이제 많은 고민을 해오면서 가족 개개인의 잘못이 절대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된 거지. 내가 아버지를 미워했지만 사실 아버지의 뒤에는 사회가 있는 거니까 난 결국 사회를 미워하는 것과 같다. 가족을 둘러싸고 있는 아버지가 바로 사회인 셈이다.
<똥파리>는 어쩌면 당신에게 필요했던 비상구였을지도 모르겠다.
화장실이지. 그냥 다 뱉어버릴 수 있는 화장실. 그런데 지금 시원해, 이런 건 아니다. 그냥 난 만들어놨고, 관객들은 감흥을 받을지 모르겠지만 난 이걸 가지고 더 많은 고민을 해야 되겠지. 영화적 고민이 아니라 내 삶에 대한 고민을. 가족이나 사회를 어떻게 바라보고 살 것인가. 그게 <똥파리>이후에 내 고민이 되겠지. 그 고민이 얼추 끝나서 <똥파리>가 정리되고 다시 내 생활을 찾게 되면 그 다음부터 다른 영화를 고민할 수도 있을 거다. 당분간 아무것도 안될 거야. 지금은 그냥 무작정 아무것도 하지 말고 쉬어야겠지. 내 영화는 순위에서 한참 밑에 있을 거니까 그런 거 개의치 않고 다시 하고 싶을 때 하면 되고. 난 영화를 만들고 싶어서 <똥파리>를 만든 게 아니라 단지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데 할 수 있었던 표현의 통로가 영화밖에 없었던 거지. 10년 동안 했던 게 영화니까.
“우물쭈물하는 새끼가 제일 싫어.”라는 대사가 인상적이더라. 내가 나한테 하고 싶은 말이다. 내가 너무 선택을 못해왔던 사람이라서 내 스스로를 위해 말하는 거다. 내가 누구를 위해서 이 영화를 만들었어. 관객을 일단 배제해버렸으니 남은 건 나지. 그 다음이 내 주변 친구들, 그리고 또 다른 사람들, 관객들, 이 사회, 순위가 그럴걸. 우물쭈물하면서 살지 말라는 1순위도 나인 거지. 내가 그렇게 살지 못했으니까. 예전에 여자친구 있을 때 어느 술집에서 술을 마실까 선택하지 못하고 40분 동안 끌고 다닌 적이 있었다. 겨울이라 덜덜 떨고 추워죽겠다는데. (웃음) 난 항상 선택이 느리다. 식당에서도 메뉴 하나만 있었으면 좋겠다 싶을 정도로. 사람은 항상 선택하면서 살아갈 수 밖에 없는데 선택하지 못하고 중간지점에 머무르곤 하다 보니까 항상 불안하고 어떻게든 해야 되겠다는 압박을 느낀다. 시나리오를 쓰면서도 그런 걸 많이 느꼈다. 만식이를 좋은 놈으로 그릴까, 나쁜 놈으로 그릴까, 고민에 봉착한다. 그걸 한동안 오래 고민하면 답이 안 나와. 짧고 굵게 고민해야 된다. 좋은 놈으로 하자. 그럼 그 순간, 나쁜 놈은 없어지는 거지.
그 전에 “밖에서는 병신 같은 게 집에서는 김일성 같이 굴라 그래.”라는 대사도 기억난다.
원래 정인기 씨가 자기 와이프 때리는 연기하는 장면에서 원래 좀 더 이어지는 다음장면이 있었다. 상훈이가 “밖에서는 병신 같은 게 집에서는 김일성 같이 군다”고, 정인기 씨를 막 때리는데 와이프가 미친 듯이 맞는 남편을 위해서 상훈에게 울면서 그만 하라고 하잖아. 그 다음 장면이 있었어. 상훈이 의도한 건 아니지만 어떻게 보면 여자를 구해준 거잖아. 그런데 이상한 거야. 너를 이렇게 폭행하고 힘들게 하는 사람을 내가 이렇게 패주는데 얘는 왜 막지? 그래서 쪼그리고 앉아서 그 여자도 뺨을 막 때리면서, “왜 그렇게 병신같이 사냐? 애들이 불쌍하지도 않아? 용기를 내! 용기를 내라고!” 원래 이렇게 소리지르면서 넘어가거든. 그런데 일단 내 연기가 좀 안 좋아서 잘렸지. 한참 딜레마에 빠져 있던 차라.
용기를 내라는 게 어떤 의미인가?
그건 이 세상에 사는 엄마들한테 하는 소리다. 엄마들은 선택을 못하면서 살아왔고 그 삶이 늪인 줄 알면서도 그 익숙함에 빠져버렸다. 맨날 너희 때문에 도망 못 간다고 핑계대지만 명확하게 생각하면 자식 때문이 아니라 자신이 못나가는 거거든. 물론 그것도 어떤 인과관계가 있는 까닭이지만 분명 선택할 수 못하고 사슬에 묶여있는 거지. 어머니와 대화를 오래해 보시면 알 텐데, 어머니도 자기가 제일 행복해야 한다는 걸 안다. 자식을 위해서 반드시 먼저 살지 않는다. 다만 가족이라는 익숙함에 빠져 있다 보니까 핑계를 대면서 나가지 못하는 거다. 정말 살기 힘들면 나가야지, 이혼해야지. 왜 굳이 붙어있으면서 힘든 상황을 연출하는데. 그래서 상훈이 부르짖는 거지. 용기를 내라고. 그러니까 그 우물쭈물하게 되는 순간에 제일 나약하고, 불쌍하고, 멍청해지는 것 같아. 일단 선택을 못하고 있는 상황이거든. 이리로 갈까, 저리로 갈까. 지하도가 있고 지상이 있어. 둘 다 도착해서 만나는 지점은 똑같아. 그런데 어디로 가지, 망설이다 보면 결국 터널과 지상 사이의 돌기둥에 부딪혀서 사고가 나거든. 사실 내 경험담이다. (웃음) 내가 운전한 건 아닌데 한 사람은 지하로 내려가면 된다, 나는 지상으로 가면 된다, 그러고 있으니까 운전자가 어쩔 줄 모르더라. 진짜 부딪힐 뻔 했다니까. 막판에 그 친구가 알아서 꺾더니 가까스로 지하로 갔지. 상훈이 후반부에 선택한 것도 그거겠지. 마지막에 부딪힐 순 없으니까. 일단 내가 죽겠거든. 이제 조금 편해지고 싶은 거지. 막장까지 보고 나니 ‘아, 이제 이렇게 살면 안되겠구나. 좀 더 사람같이 살면 안 될까’라고 생각하겠지.
한강에서 상훈이 연희와 함께 캔맥주를 마시는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 상훈이 자신의 진심을 유일하게 내뱉는 장면이랄까. 연희한테 ‘느그 부모는 잘 사냐?’라고 말하는 거. 은연 중에 비교해보고 싶었던 거겠지. 우리 부모는 이따위로 사니까. 연희 사정을 은연 중에 알 수도 있겠지만 자기가 잘 산다니까 한번 대충 떠보는 거지. 친구들끼리도 우리 집이 거시기할 때, 잘 사냐고 물어보잖아.
“부모한테 잘 해라.” 라는 말이 아이러니하게 들리던데.
지가 그렇게 못 살아왔으니까.
상훈에게 있어서 희망이 되는 대상은 형인이다. 때때로 상훈은 형인이에게 형 같기도 하고, 아버지 같기도 한 모습을 연출한다. 유일하게 자신의 폭력에 대해서 사과하는 대상이기도 하고. 최대한 지켜줘야겠다는 본능이 강해지는 대상이다.
상훈이 선택하지 못하고 살아온 것처럼 어머니나 아버지도 선택을 못하고 살아왔는데 형인이마저도 선택을 망설이며 살고 있다. “플스(PS) 사줘, 말아?” 물어보면 대답을 못해. 근데 상훈이 가는 건 싫고, 그러면서도 사달라고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모르고. 상훈이가 볼 땐 그 모습에서 아마 자기가 느껴졌을 거야. 과거에 동생이 아빠를 말리러 가는 걸 그냥 지켜만 봤잖아. 그때 자기가 말려줬다면 어땠을까 계속 생각하게 되고. 그런 꼴이 보기 싫으면 말리던가, 차라리 집을 나가던가, 뭐라도 선택하면 되는데 그냥 계속 집에서 보고만 있어. 또 그러다 말겠지. 그렇게 우물쭈물하는 순간에 누가 죽어. 영재 뺨을 때리면서 ‘우물쭈물대는 순간에 네 주변에 있는 한 사람 죽어나간다’는 말을 하는 건 자기 마음의 연장이지.
상훈이 영재에게 보내는 감정도 미움은 아닌 느낌이다. 뭔가 자꾸 거칠게 배려하는 것 같다고 할까.
영재는 미워서 때리는 게 아니다. 그런 폭력을 행사하는 건 애를 죽이겠다는 의도가 아니라 거기서 나가고 싶게 만드는 거겠지. 여기로 오지 못하게, 이게 두려운 일이라는 걸 알게끔 하는 상훈의 제스처지. 미워서 때리는 거 같진 않다. 잘 모르겠지만 그런 것 같아.
상훈은 자신에 대한 보호 본능만 남은 존재다. 자신이 배출하는 혐오를 통해서 타인을 단절시키는 방식으로 세상에서 생존한다. 적도 아군도 모조리 패는 사람이다. 하지만 유일하게 연희만큼은 밀어내지 않는다.
비슷한 인간이라고 생각이 되겠지. 혼자 다니는 늑대들은 외롭다. 혼자 먹잇감을 사냥해야 되고 추운 겨울도 혼자 나야 되니까. 이런 놈이 돌아다니다가 같은 늑대를 만나게 된 거야. 얘네 둘은 안 싸워. 왜냐면 비슷하다는 걸 아니까. 그렇게 스쳐 지나갈 수도 있고, 친구가 될 수도 있지. 어쨌든 뭔지 모르겠지만 자기와 비슷하게 느껴지는 거야. 이복누나 같기도 하고, 죽은 여동생 같기도 하고, 형인이 같기도 하고, 왠지 나 같기도 하고. 교복 입은 X만한 고삐리고, 별로 가진 것도 없는 강해 보여. 악은 꽉 차있는데 한쪽은 껍데기가 다 벗겨져서 피가 질질 흘러. 이상하게 설명할 수 없는 끌림이 있는 거지. 그냥 머리로는 설명할 수 없어. 마음으로 느끼는 거지. 나랑 비슷한 건 알아보잖아.
자식들은 자신의 부모를 부정하지만 어느 새 자신의 부모를 닮아간다. 자신이 혐오하는 것들을 부정하면서 어느 새 그와 닮아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똥파리>도 안 닮아가려고 발버둥치는 거는 방법이지. 발버둥이라도 쳐야지. 그래야 변화의 시작점이라도 생기지. 그런데 발버둥을 안 치니까 문제인 거야. 오리도 물에 떠있으려면 발을 굴려야 되는데, 우리는 발짓조차도 안하고 있잖아. 그조차도 하지 않는다면 결국 덮어놓겠다는 거지. 그 밑엔 진짜 징그럽고 무서운 게 있고 그걸 열어보고 소각을 하던, 어디 묻어버리던, 뭐라고 해야 될 텐데 그냥 가려만 놓는 거잖아. 어떤 제스처라도 취해야지. 나는 취한 제스처가 이 <똥파리>지.
상당히 강한 제스처다.
세게 풀지 않으면 똑같이 반복된다. 다시 똑같이 돌아간다. 연기할 때 뺨 때리는 장면 있잖아. 미안해서 대충 때리면 처음부터 다시 찍어야 돼. 한번에 때리라고 하잖아. 내가 뭘 풀어놨는데 대충 하면 다시 처음부터 해야지. 그러니까 세게 한번 내보내는 거지. 왜 우물쭈물해. 그냥 확 저질러버리는 거지. 한번씩은 다 선택하잖아. 그런데 가장 불편한 문제에 대해서는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어떤 제스처도 취하지 않아. 삶에 있어서 제일 많은 영향을 끼치는 문제부터 해결해야지. 한국에서 제일 중요한 건 가족이잖아. 그 안에서의 문제를 제일 먼저 고민하고 풀어야 되는데 그걸 놔두고 다른 걸 먼저 하고 있어. 그게 일단 해결이 돼야 연애도 하고, 결혼도 하고, 자기 삶을 사는 거지. 계속 내 삶이 가족으로 인해 지배당하고 영향력을 받는데 어떻게 다른 삶이 가능해. 나는 이제라도 그렇게 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상훈을 단순히 기능적으로 연기한 건 아닌 거 같다. 본인의 잠재된 진짜 감정을 캐릭터에 쏟아낸 느낌이랄까.
당신도 화가 날 때가 있을 거다. 그리고 다들 여러 개의 본인을 갖고 있지 않을까. 나한테도 증오에 차 있는 양익준이 있고, 사랑 받고 싶은 양익준도 있고, ‘푸르나’를 보고 싶은 양익준이 있기도 하겠지. (웃음) 그렇게 수억만 개의 양익준이 있는 건데 그걸 다른 식으로 이야기하면 감정들이겠지. 양익준이 갖고 있는 감정들. 다만 평상시엔 상훈처럼 살면 안 되잖아. 하지만 그런 표현들을 하고 싶을 때가 분명히 있다. 버스 기사 아저씨가 핸드폰으로 통화하면서 버스 운전하는 걸 보면 상상으로, “날 죽일 셈이야? 이 XX놈아, 전화기 안 꺼!” 이러는데 현실에선 가만히 앉아서 보고 있겠지. 그런데 그 상상은 가짜일까? 그거 진짜잖아. 평상시에 그렇게 발설하지 못할 뿐이지 정말 불쾌할 때, “야, 이 XX!”하고 싶잖아. 그런 진실된 상상을 영화 안에서 뿜어내는 거지.
상훈은 당신이 한번쯤 상상하던 상상일 수 있겠다. 그렇다면 상훈은 당신이 평소에 드러내지 못했던 속내를 드러내기 위한 수단이 될 수도 있는 게 아닐까.
예전엔 아버지한테 “왜 그랬어!”라고 얘기하고 싶었던 거지. “왜 그랬어요! 왜! 잘할 수도 있었잖아요!” 그런데 잘 하기 힘든 환경에 노출되어 있었다는 걸 이제야 좀 알게 된 거다. 이 세상이 잘할 수 없게 만들었으니까. 어쨌건 인간한테는 숨구멍이 있어야 된다. 내게는 <똥파리>영화가 숨구멍인 거고, 연기가 숨구멍이었던 거고. 아까 기능적인 연기가 아닌 거 같다는데 나 그렇게 안 한다. 그런 건 할 줄 모른다. 내가 표현하고 싶은 걸 할 뿐이지. 그래서 배우들에게도 연기에 대해서 어떤 언급도 안 하는 거고.
김꽃비 양에게도 들었지만 디렉팅을 전혀 하지 않았다던데. 왜냐면 내 영향을 주고 싶지 않거든. 그 사람들은 자기네 것을 표현하고 쏟아놓는 사람인데 내가 그 사람들한테 “이렇게 쏟아내 줘.”라고 하면 그 사람들 숨구멍은 어디 있겠어. 누구한테 지시 받는 표현은 재미없지. 만약 그렇다면 나도 영화를 찍을 필요가 없고. 캐스팅할 필요도 없고. 아역배우한테도 마찬가지다. 어떻게 해달라는 말 절대 안 한다. 알아서 해야지.
예전에 연출했던 중편 <바라만 본다>에서도 연기를 겸했었다. 상훈은 자신이 연기해야 한다고 확신하고 들어간 건가.
<바라만 본다>는 원래 어떤 친구를 캐스팅하려고 했었다. 그런데 워크샵에서 시나리오가 너무 이상하다는 얘기를 듣고 고민하다가 시나리오를 확 바꾸게 됐다. 그때 캐릭터가 변하더라. 그러다 보니까 그 친구에게 이 캐릭터는 좀 아닌 거 같았다. 그런데 주변에서 네 사랑이 투영된 이야기 아니냐고, 네가 해보라고 부추기는 거다. 나도 욕심이 없었던 건 아니었고, 결국 하게 된 거지. 하지만 <똥파리>는 아예 처음부터 작정하고 한 거였다. 하지만 다음엔 모르겠다.
클라이막스에서 약간 헷갈리는 점이 있다. 영재의 우발인지, 만식의 지시인지.
우발이다. 사실 그 부분은 서로 이해도가 조금 부족했던 부분이 있었다. 환이가 많이 연습하는 스타일이었다. 다른 인터뷰에서도 얘기했지만 집에서 너무 많이 고민해오고 그러길래 시나리오 보지 말라고, 시나리오에 빠지지 말라고 했지. 네가 하는 거니까 제발 그 캐릭터에 빠지지 말라고. 너라면 어떻게 할 건지 판단하라고, 네가 겪어왔던 환경이나 감정을 넣으면 된다고. 자꾸 생각을 통해서 제3의 것들을 만들지 말라는 얘기였지. 그게 아니라면 내가 이환을 캐스팅할 필요가 있나. 차라리 사람 죽인 사람을 캐스팅하지. (웃음) 그런데 환이가 연습을 많이 하고, 제가 볼 땐 자꾸 불필요한 것들을 많이 끌어오는 친구였다. 사실 나는 100% 우발을 생각했다. 그냥 휴지 달라고 해서 휴지 꺼내다가 망치를 발견했고, 망치는 자기 고참을 그걸로 때리니까 뺏어서 챙겨온 거뿐인데 그 때 손에 잡힌 거지. 그래서 내가 이걸 챙겨왔나, 멍해진 찰나에 상훈이가 돌아봐. 어떡하지. 아, XX! 이렇게 된 거지. 그런데 거기서 연출의 역량과 배우의 표현력이 관객에게 혼돈을 준 부분이 있다. 그건 인정한다. 좀 더 설명하자면 영재한테도 차곡차곡 쌓인 게 있으니까. 자꾸만 때리면서 우물쭈물하지 말라고 하잖아. 상훈은 얘를 내보내려고 했던 건데 영재한텐 그게 스트레스였던 거지. 사실 영재도 얼마나 불쌍해. 영재가 진짜로 상훈에게 그렇게 하고 싶었겠어. 세상에 부르짖고 싶었던 거겠지. “왜 나를 이따위로 만들었어. 왜 너는 나보고 병신이라고 해. 나를 좀 내버려둬!”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지만 그게 자신도 모르게 망치로 표현이 된 거지. 시간이 지나고 자신에 대해서 고민할 시간이 되면 엄청난 후회와 번민이 생길 거다. 누군가를 그렇게 해했다는 것에 대해서. 사람을 죽여서 시원하다고 생각할 사람이 얼마나 있겠어.
만약 영재가 계획적 지시에 따라서 이해하게 된다면 만식을 정말 악역으로 인지하는 셈이다. 캐릭터에 대한 이해가 완전히 전복되고 이야기에 대한 접근까지도 변할 수 있다. 결국 영화적 의도가 완전히 다른 것이 될 수도 있다. 이럴 땐 디렉팅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나.
준비를 많이 해오고 자기에게 확신이 없는 배우가 있다. 환이가 그랬던 부분이 있었다. 물론 지금은 변해가고 있기 때문에 아마 다음 작품에서 자기 것들을 많이 보여줄 수 있을 거다. 시행착오의 시기는 누구나 있는 법이다. 그 땐 그 자유로움에 좀 부대껴도 된다. 그리고 어느 정도 넘어가게 되면 대개는 자유로움에 익숙해지거든. 그런데 자유롭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면 그 다음부터 계속 힘들어지지. 자율성을 줬는데 자유롭지 못하면 어떻게 해. 항상 지시에 의해서 움직이다 보면 오히려 혼란에 빠지기 쉽다.
결말에서 영재를 보면 절망적인데 연희를 보면 한편으로 희망을 놓고 싶지 않다. 어쨌든 영화는 어떤 방향으로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퀘스천(question), 쩜쩜쩜(…)이다. 나도 잘 모르니까, 나도 그걸 생각하는 과정 중이거든.
결과적으로 어떤 식으로 방향을 설정해선 안 된다고 믿는 것 같기도 하고.
각자 선택하는 거지. 제가 계속 얘기한 것도 선택이잖아. 스스로 결정하고 우물쭈물하지 않으면 돼지. 이 영화가 무슨 답을 줘. 어떤 책이 누구에게 답을 줄 수 있나? 1 더하기 1은 2다. 그런 산수 문제 정도? 도덕 책이 답을 줘? 그렇게 살면 안 된다. 결국 어떻게 살까 제시를 해주는 것뿐이지. 거기서 선택을 해야 되는 거다. 히틀러가 히틀러의 독재를 선택한 것처럼, 양익준은 양익준으로서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 생각하다 보니까 <똥파리>를 만들어야겠다는 선택을 한 거고. 어떤 관객은 <똥파리>를 보고 진짜 짜증나서 “집에 가서 아버지한테 XX놈아, 한번 해야겠다.” 싶어서 했더니 의외로 아버지가 “시원하냐? 술이나 한잔 하자.” 그럴 수도 있고. (웃음) 그렇게 각자 선택을 하는 거지. 이 영화에 결말은 없다. 이 세상에 결말이 어디 있어. 내가 80살까지 살다 죽어도, 세상은 계속 돌아가지. 다만 최대한 우리가 고민해서 조금 더 환경이 나아지면 누가 편할까. 본인들이 편하겠지. 그렇게 본인들이 최대한 편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나갔으면 좋겠다는 거지. 우물쭈물하면 장기적으로 힘들어 진다. 그리고 나만 힘드나. 내 주변, 가족, 다 힘들어진다. 누군가는 선택해야지.
이 영화가 99%의 절망으로 가득하지만 1%의 희망이 있다고 생각되는 건 그 부분에 있다. 영화는 어떤 희망을 보여주지 않는다. 그 안에서 희망을 만들어야 하는 건 관객이다. 결국 영화 밖에 희망이 있다. 이 영화가 절망으로 가득함에도 일말의 희망을 줄 수 있다고 믿는 건 바로 그런 고민을 부르는 지점이 있기 때문이다.
(마주한 두 손바닥의 간격을 벌리면서) 세상의 규정이 이만큼이라면 언젠가는 이만큼 넓어질 수 있다. 증오가 희망으로 변할 수도 있고, 한 사람의 마음이 백 명을 움직일 수도 있는 거다. 나는 <똥파리>를 만들었고 누군가가 그걸 보고 난 이후에 그게 가능해질지 아무도 모르는 거다.
<똥파리>를 보게 된 어떤 관객 가운데 누군가는 영화 속의 현실을 자신의 체험처럼 간직한 사람도 있지 않을까. 영화를 통해서 자신의 과거나 현실을 목격하게 되는 사람은 어떤 면에서 충격을 얻지 않을까. 사실 내부에서 보는 것보다 외부에서 목격하게 될 때 자신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인식하게 되는 경우도 있지 않나. 그 사람들의 관점에서 <똥파리>가 어떻게 비춰질지 궁금하진 않나.
나도 한국에서 태어났고 한국의 가족 안에서 살아왔다. 7년 반 전까지, 그러니까 20대 후반까지, 상황은 조금 달랐을 지 몰라도 뭐가 얼마나 다르겠어. 단지 내가 지금 얘기를 안 하는 건 이게 개인영화로 비춰지면 안 되기 때문이지. 개인사까지 드러낼 필요는 없잖아. 나는 영화로서 보여줬으니 된 거다. <똥파리>가 거짓말하지 않는 그런 영화로만 비춰지면 되는 거다. 내게는 내 개인의 영화고, 어떤 관객이 보면 그 개인의 영화가 될 수 있는 거고. 다만 그들이 이 세계가 어떤 세계인지 고민하고 나는 나대로 상훈이라는 캐릭터를 보면서 반추하기도 하겠지. 나도 어쩌면 저렇게 될 수 있었겠지. 하지만 난 지금 좀 잘 살아오고 있어. 그런데 진짜 그렇게 된 사람들이 상훈을 본다면 그 사람들에게도 뭔가가 오겠지. 그럼 상훈이처럼 다시 새로운 삶을 살아보겠다고 마음먹을 수도 있고. 그런 가능성이 충분히 내포되지 않았을까.
상훈은 대한민국 가족이라는 부조리한 조직에서 잉태된 최악의 괴물이기도 하지만 가장 불운한 피해자이기도 하다. 정도 차가 있을 뿐, 대한민국에서 아들, 딸이라고 불렸던 대다수의 마음 속엔 잠재적으로 상훈이 존재할지도 모르겠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한국에 이런 가족 문화가 60%는 될 거라고, 물론 <똥파리>는 영화인 만큼 특정한 관계의 수위를 더 강하게 묘사했지만 대충이라도 비슷한 경험을 했던 사람들이 그 정도는 될 거라고 했더니 누가 그러더라. 60%는 개뿔, 100%지! (웃음) 누군지 기억은 안 나는데 나보다 나이가 좀 더 있으신 분이 그러더라.
한국에서 자식으로 살아본 사람치곤 <똥파리>에 공감하지 않을 사람이 없다는 이야기겠지. 참 이상한 일 아닐까? 개인적으로는 <똥파리>라는 영화에 공감하는 사람이 많은 사회가 행복한 사회일까 의문이 든다.
한 70%는 다운시켜야지. 완전히 없어지길 바라지도 않아. 그래서 여전히 엔딩에서 영재는 그런 일을 하는 거고.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영재도 그런 일을 하지 않을 수도 있잖아. 각자 그 이후를 살아가면 되는 거지.
오래 전에 했던 짧은 인터뷰를 보니까 <똥파리>이후로 연기와 연출 중 한가지 길을 선택하겠다고 했던데. 그건 그 기사를 쓴 기자 분의 자의적 해석이었다. 그냥 고민을 해보겠다 그랬지. 한번 해서 맛이 들렸는데 연기든 연출이든 그만 두진 않을 거다. 그냥 조금 더 두고 봤으면 좋겠다. 아니면 관심을 끊던가. (웃음) 그냥 내가 살아가면서 결정하면 되는 거니까. 누가 백마디 천마디 하지 않아도 난 이미 내 스스로 결정할 준비가 남들보단 조금 더 돼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똥파리>가 좋다면 <똥파리>를 좋아하면 되지, 나한테까지 좋아한다고 말할 필요는 없는 것처럼.
50개관에서 개봉된다. 어쩌면 상업적인 성공을 거둘 수도 있다. 만약 그렇게 되면 그만큼의 제약이 생길 수도 있는데.
그거 가지고 또 싸워야지. 돈 생기면 이제 지원받지 않고 내가 번 돈으로 영화 찍으면 되잖아. 그래도 모자라면 그때 또 만들었을 전세 빼지. (웃음) 한번 해 봤는데 두세 번 못 하겠어? 한번 해보면 자신감이 붙는다. 나에게 믿음도 생기고. 한 달에 백 만원도 없이 살아본 적도 있는데, 어떻게든 살겠지. (자지러지게 웃음)
<똥파리>는 아버지 세대를 부정하는 영화 같지만 결국 그 본심은 자신의 증오와 그로부터 자행되는 폭력을 극복해야 자신의 삶이 가능해진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 같다. 결국 그 선택은 각자 자신의 몫이다. 당신도 그런 선택을 통해서 여기까지 왔다. <똥파리>도 그 선택의 일종이었고. 그리고 그 이후로 당신에게 주어진 바가 있을 거다. <똥파리>라는 선택이 당신에게 남긴 건 뭔가?
좀 더 많은 가족과의 대화와 통화? 그리고 내가 자랑스럽다? 이렇게 내가 노출되는 부분에서 오는 장점도 있다. 부모님이 TV를 통해서 내가 여태껏 영화 했던 흔적을 보게 되면서 지금까지 그렇게 살았냐고 안쓰러워해 주시더라. 떨어져 있으니까 그리움을 알게 되는 거지. 같이 살면 그립지 않잖아. 그러니까 함부로 하게 되고. 조금 떨어져 살면 더 좋은 관계가 이뤄진다. 대신 한 달에 한두 번씩 자주 만나면 되잖아. 그 정도면 되지, 아닌가? 부모님 두 분끼리 같이 잘 사시고, 난 내 할일 하면서 여자친구 생기면 같이 잘 살면 되고. 다만 너무 안 찾으면 문제가 되지. 가끔씩 전화도 드리고, 찾아야지. 그렇게 살면 그리움도 적정하게 유지되고 괜찮지 않을까 싶다. 그러니까 많은 분들 빨리 자립하세요. (웃음)
자립한 1인으로서 자립하는 시기는 언제가 적당하다고 보나?
좀 없을 때 나오는 게 좋을 거 같다. 그래야 세상을 살면서 성장에 필요한 촉진제를 얻을 수 있는 거 같아. 어떤 부모님이 천억을 갖고 있어서 아들이 백억 갖고 나오면 그게 재미있나? 집에서 사는 거나 거기서 사는 거나. 한 천억 가지고 있으면 집이 한 천 평 되려나? 그럼 같이 살아도 되겠네. 저 멀리서. (웃음) 약간 모자라고 약간이나마 뭔가 하고 싶은 게 있을 때 자립하는 게 제일 좋을 거 같다. 그런 과정이 있어야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힘과 탄력을 스스로 만들어 낼 수 있는, 자신만의 ‘비타민C’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어쨌든 영화는 어떤 직접적인 대안을 제시하지 않는다. 일단 당신이 원한 건 구체적인 대안에 접근하는 건 아니었던 것 같다.
<똥파리>가 무슨 답을 내리는 영화는 아니다. “이걸 이렇게 해라”라고 하는 건 골 빈 선생님이 하는 짓이지. 그림에 소질이 있는 친구에게, “너 그림에 소질이 있는 거 같은데 한번 배워보는 게 어때?”라고 제시할 순 있다. 그런데 주변에서, “배워, 그림 해! 너는 그림 해야 돼.” 이런 말도 안 되는 얘기를 할 필요가 있나. 가능성에 대해서 제시해주는 게 제일 좋지 않을까. 대신 희망을 줘야지. 사람이 잘한다 그러면 진짜 잘한다니까. 그런데 못한다 그러면 진짜 못해. “너 정말 괜찮은 사람이야.”, 그러면 자기가 정말 괜찮은 사람인지, 사랑 받아도 되는 사람인지 고민을 한다니까. 그런데 “너 정말 X같이 생겼다. 너 정말 애가 왜 그러냐?” 그러면 정말 그 말에 빠져서 그렇게 된다니까. 희망을 줘야지, 사람한테. 이 세상도 X같은데, 니기미.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