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실히 김연아에겐 압도적인 아름다움이 있다. 기능적인 우월함을 초월할만한 예술적 기질이 다분하다. 사실 이번 세계피겨선수권 대회 점수는 전체적으로 인플레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인플레를 감안한 거품을 털어내더라도 김연아의 200점 돌파는 결코 허구가 아니었다고 본다. 참 잘하더라. 쇼트는 정말 완벽했다고 본다. 오히려 기술점수가 2점 정도 높았어도 상관없었다고 생각한다. 프리에선 살코를 실패했지만 크게 흠잡을 구석이 없었다. 자꾸 플립에 어텐션을 지적한다는 사실이 꺼림칙하지만 그런 건 이제 걱정거리도 아니다. 김연아의 스케이트날이 미끄러지기 시작하면 링크 내의 공기가 바뀐다. 심판들의 채점 이전에 관객들이 먼저 알고 일어나 박수를 친다. 누가 봐도 이건 예술이니까.
김연아와 같은 재능이 대한민국에서 등장했다는 건 실로 기적이다. 척박한 땅에서 싹을 틔웠고 잘 살아남아 꽃을 피웠다. 잠재력을 죽이기 좋은 열악한 환경 속에서 고사되지 않고 눈부신 성장을 이뤘다. 무엇보다도 그녀 스스로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내고 있다는 점을 칭찬하고 싶다. 대한민국이 어쩌고, 국민이 어쩌고, 그딴 건 신경 쓰지 않았으면 좋겠다. 자신이 선 링크가 자신의 것이란 것만 염두에 두고 전진하길 바란다. 누군가를 위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자신을 위한 희열을 만끽하길 원한다. 물론 잘 하고 있다. 그녀는 아직도 발전 중이다. 아직 완벽하지 않다는 것이 오히려 고무적이다.
때때로 아사다 마오를 비롯한 김연아의 경쟁자들의 실수에 환호하는 이들을 보면 구역질이 난다. 순위 매기기에 급급한 천박한 근성 앞에서 질릴 때가 있다. 눈 앞에서 펼쳐지는 아름다운 공연을 보지 못하고 순위 결정전에 집착하는 태도들에 토악질을 하고 싶어진다. 난 개인적으로 김연아뿐만 아니라 모든 선수의 베스트를 보고 싶다. 그리고 최종적으론 김연아의 베스트를 보길 원한다. 모든 선수가 자신의 기량을 마음껏 뽐내고 만족할 수 있길 바란다. 순위 매기길 좋아하는 족속들의 천박한 근성을 비웃듯 완벽한 연기들을 펼쳐주길 바란다. 그 무대가 채점을 위한 자리가 아닌 표현의 자리임을 각성시켜주길 원한다.
김연아는 쇼트트랙 밖에 모르는 대한민국에 새로운 관심을 부여했다. 우린 그걸 알아야 한다. 김연아로부터 얻은 혜택이 단순히 ‘대한민국 1등’이란 슬로건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1등은 김연아지, 대한민국이 아니다.다만 우리는 그녀를 통해 새로운 세계를 알게 됐다. 당신이 보고 있는 게 비단 김연아가 아니길 바란다. 우아하게 미끄러지는 이나 바우어와 감각적인 스텝과 스핀, 아름다운 점프, 그리고 음악에 도취된 선수들의 연기. 그 모든 총합을 이루는 피겨 스케이팅을 즐길 수 있길 바란다. 그저 김연아 1등에 목말라서 박수 치고, 혹은 반대로 분개하지 않길 바란다. 당신의 박수나 시기가 그저 1등만을 향하지 않길 바란다. 모든 선수의 열의와 노력을 간과하지 않길 바란다.
김연아도 훌륭했지만 안도 미키도 인상적이었다. 한 해 동안의 부진을 털어내고 정말 훌륭한 연기를 보여줬다. 오늘 프리스케이팅은 어떤 면에서는 김연아보다 뛰어난 느낌도 얻었다. 동시에 김나영 선수도 수고했다. 허리와 무릎에 통증이 있다는데 충분한 치료와 휴식을 통해 완치되길 바란다. 그리고 김연아에겐 감사를. 정말 대단한 것을 보여줬으니. 신기록에 연연하지 않아도 좋다. 그저 언제나 최선을 다해서 자신이 만족할 수 있는, 후회하지 않을만한 경기를 치를 수 있길 바란다. 그저 우린 그 축복 같은 재능을 누리기에 앞서 소양을 갖춰야 한다. 당신이 보고 있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지를 당신은 깨달아야 한다. 그녀의 연기를 볼 수 있다는 건 동시대 인류의 축복이다. 그리고 그 축복이 바로 우리 곁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