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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막한 스크린의 검은 여백 위로 제목이 등장하고, 등장인물을 명시하는 자막이 눈을 깜빡이듯 몇 차례에 걸쳐 뒤따라 나타나고 사라진다. 그러다 마치 감았다 뜬 눈 앞에 비춰지는 어떠한 것들을 대수롭지 않게 쫓아가듯 영화는 시작된다. 상하좌우로 흔들리는 카메라 앵글과 숏을 채우는 인물간의 거리는 일정하되 두서가 없다. 제3자의 곁눈질이거나 무심한 응시처럼 담담하되 시선을 거두지 않는다. <레이첼, 결혼하다>는 기록적인 다큐멘터리의 시야로 위장된 극영화다. 시종일관 무심한 태도로 응시하는 관점이 발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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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드폰은 더 이상 전화기가 아니다. 사진을 찍고, 동영상도 찍고, TV를 보거나 노래도 듣는다. 심지어 인터넷을 하기도 한다. 핸드폰으로 전화만 한다면 촌스런 사람이란 소리 듣기 십상이다. 더 이상 통화가 잘되는가 따위는 좋은 핸드폰의 기준이 아니다. ‘원 소스 멀티 유즈’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물건이다. 시대가 그만큼 좋아졌다. 그리고 그만큼 문제가 발생한다. 핸드폰을 잃어버리면 그만큼 잃어버리는 것들이 많아졌다. 때때로 그 안에 은밀한 개인정보라도 담겨 있다면 심각한 문제로 발전한다. <핸드폰>은 그 심각한 문제를 파고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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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도 찍고, 동영상도 찍고, TV도 보고, 핸드폰으로 전화만 하면 요즘 사람이 아니다. 더 이상 핸드폰은 전화기가 아니다. 그러다 보니 문제가 생긴다. 잃어버리면 비단 전화기 하나 잃어버리는 셈이 아니기 때문이다. 은밀한 개인정보가 노출될 위험이 생긴다. <핸드폰>은 그 지점을 파고 든다. 분실한 자와 습득한 자 사이의 치열한 공방이 벌어진다. 문제는 ‘왜?’라는 질문이다. 핸드폰에 뭐가 있느냐, 가 정답일 것 같지만 실상 그보다 더 복잡하고 중첩되는 상황의 복마전이 기다린다. 단순히 인물과 인물의 문제가 아니라 전 사회적인 어떤 문제의식을 품고 있다. <핸드폰>은 물건에 깃든 세태를 하나의 소재로 승화시킨다. 서비스업에 대한 계급적 풍토와 함께 자본적 노예로 몰락한 서민의 심리적 공황을 결부시켜 객석에 전송한다. 스토리는 빠르고 신속하게 진행된다. 진행의 구조가 허술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단지 임팩트가 집중되지 못한다. 병렬로 나열돼야 마땅한 사연들이 직렬로 이어진다. 조합을 이루지 못하고 순열처럼 늘어서있다. 끝에 다다를 때 즈음엔 전반부의 사연이 깡그리 잊혀진다. 너무 많은 이야기를 담아내서 문제라기 보단 너무 많은 이야기들을 두서없이 묶어버린다. 순간적인 장악력은 존재하나 전반적인 지속력이 흔들린다. 한 사람이 아니라 여러 사람과 번갈아 통화하듯 산만함이 느껴진다. 물론 교훈 하나는 확실하다. 핸드폰 잃어버리지 마시라. 특히나 은밀한 자신만의 사연을 간직한 것이라면 더더욱.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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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집과 좋은 직장, 평온한 삶과 순탄한 일상. 누구라도 행복하다고 믿을만한 인생. 하지만 그 인생의 주인공은 그 삶이 실로 괴롭다. ‘레볼루셔너리 로드’에 사는 헐리 부부의 삶이 그렇다. 이웃에겐 동경의 대상이지만 실상 그네들의 삶은 반복되는 일상에 닳고 닳아 낡은 벽지처럼 빛 바래간다. 삭막한 현재와 달콤한 과거를 대비시킨 프롤로그는 무너져버린 삶의 근원이 자리한 좌표를 예감하게 한다. 파리에서의 삶을 꿈꾸던 달콤한 연인은 ‘레볼루셔너리 로드’에서 권태로운 부부가 되어 살아간다. <레볼루셔너리 로드>(이하, <레볼루셔너리>)는 안온한 삶으로부터 비롯된 깊은 권태의 그림자가 드리운 현실이라는 거짓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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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스쿨 뮤지컬: 졸업반>눈과 귀가 즐거운 작별인사 (0) | 2009.02.03 |
엘리자베스 굿지의 ‘작은 백마’를 원작으로 하는 <문프린세스>는 동화에 가까운 판타지다. ‘해리포터’의 작가 조앤 K. 롤링이 ‘작은 백마’를 유년 시절 즐겨 읽었다는 코멘트는 그저 홍보용은 아닌 듯하다. <문프린세스>에도 ‘해리포터’에 대한 어떤 영향력들이 감지된다. 아버지를 잃은 메리웨더는 의붓 삼촌에게 거둬져 미지의 숲 문에이커로 들어서게 되고 그 안에서 필연적인 운명에 맞서야 한다. 메리웨더의 운명은 해리포터의 그것과 다를 게 없다. 하지만 그 운명을 설명하는 방식이 꽤나 경솔하다. 인내심이 없는 스토리는 스스로 밑천을 드러내기에 급급하다. 호기심이 무르익을 여유도 없이 모든 순간은 간단하고 쉽게 해결된다. 어딘가 초점이 맞지 않는 캐릭터들은 어울리지 못하고 제각각 따로 논다. 모든 것이 부조리적이다. 요즘의 것이라고 믿을 수 없게 촌티 나는 영상은 둘째치고 라도 인과관계에 대한 고민이 결여된 듯한 이야기는 처음부터 끝까지 맥없이 흐르기만 한다. 어색한 슬랩스틱은 애교에 가깝다. 성장, 로맨스, 선악, 모험, 동물, 전설, 등, 판타지의 모든 것이 그 안에 있지만 매력적인 구석을 찾기가 힘들다. 객석을 괴리시킨 채 스크린만 움직인다. 그저 다코타 블루 리차드를 좋은 차기작에서 만날 수 있게 되길 바라는 마음만 간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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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토록 많은 연애 지침서가 존재하는 건 그토록 많은 연애 유형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뻔한 문장들을 읽고 고개를 끄덕이는 건 그 어느 것 하나 확실한 것이 없다는 반증이리라. 그건 마치 오래된 잠언처럼 마땅하고 옳은 일입니다, 싶은 것뿐이다. <그는 당신에게 반하지 않았다> 역시 마찬가지다. 어느 로맨틱 코미디 혹은 멜로처럼 특별한 케이스를 빙자하고 있지만 뻔한 결과론을 담고 있는 게 인지상정. 다양한 커플들의 각기 다른 사연을 버라이어티하게 나열하는 가운데 우연과 필연의 법칙 속에서 엮이고 풀리는 관계를 그려나간다. 주어와 보어의 뉘앙스만으로 감지되듯 남성보단 여성에 대한 편애가 좀 더 강하지만 이는 귀여운 투정처럼 넘어갈만한 문제다. 남성을 여성의 속죄양 취급하는 것도 아니니까. 다만 다양한 에피소드가 일관되게 큰 감흥을 주지 못한다는 건 문제다. 비중 차가 존재하는 각각의 로맨스를 분자 배열한 뒤 충돌시킨 반응의 에너지 값이 생각보다 미약하다. 이름만으로도 만족스러운 배우들의 면면보다 나아 보이는 구석이 없다. 사랑에 목매지도 간과하지도 말라는 것, 결론은 누구에게나 뻔한 교훈이다. 중요한 건 진심이었다. 그러나 나열되는 로맨스 속엔 상황에 대한 인지가 존재할 뿐 진심을 전달하는데 인색하다. 그저 질문을 던지고 농담으로 받아 치듯 헐겁다.
(프리미어 'MOVIE 4人4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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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즈니 채널에서 방영된 <하이스쿨 뮤지컬>의 마지막 시즌이자 첫 번째 스크린판 <하이스쿨 뮤지컬: 졸업반>(이하, <졸업반>)은 국내 관객에게 분명 낯선 것이다. 미국을 비롯한 영미권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구가한 TV시리즈라지만 생소하기 짝이 없다. 이스트 고등학교 농구부 결승전이 뭐가 그리 중요한지, 그리고 코트 위의 트로이(잭 애프론)를 바라보며 노래하는 객석의 가브리엘라(바네사 허진스)는 대체 어떤 사이인지 알 길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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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건한 미사 중 신부의 설교가 시작된다. “확신이 없을 때, 여러분은 어떻게 합니까?” 의미심장한 물음, 약간의 침묵. 항로를 잃어버린 어느 선장의 사연이 이어진다. 항로를 잃어버렸다고 생각한 선장이 별자리의 방향까지 의심하게 된다는 이야기. 이에 덧붙여지는 말. “의심은 확신만큼이나 강력하게 지속됩니다.” 확신과 의심은 모두 다 마음에서 비롯된다. 의심과 확신은 배반적인 언어지만 그 태생의 기반은 마음에서 비롯된다. 의심과 확신은 방향이 다를 뿐, 한 지점에서 출발한 믿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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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태어났다. 축복을 공유해야 할 이들의 얼굴이 하나같이 비통하다. 산모가 죽었다. 그 때문인가. 다들 아이를 경계한다. 아이의 얼굴을 본 아버지의 얼굴은 경악을 품더니 그 아이를 들고 어디론가 미친 듯이 달려간다. 그리고 아이는 버려진다. 팔순 노인의 주름으로 가득한 작은 얼굴과 백내장에 관절염까지 앓고 있는 노쇠한 육체는 막 태어난 아이라는 말을 무색하게 만든다. 노인들의 요양원에서 거두어진 아이는 운명처럼 노인들 사이에서 자라난다. 그곳에서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하이스쿨 뮤지컬: 졸업반>눈과 귀가 즐거운 작별인사 (0) | 2009.02.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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