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 패를 읽을 수 있다면 게임은 유리해지기 마련이다. 도박이란 게 그렇다. 주식도 마찬가지다. 그래프의 변화를 읽는 자가 돈의 주인이 된다. <작전>은 그래프의 변화를 읽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출발선이 다른 사람들은 주식을 통해 작전을 펼친다. 주가의 흐름을 읽는 정도가 아니라 주가의 흐름을 만드는 사람들이다. 대사를 빌리자면 대한민국 경제를 만드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덕분에 주식에 관련된 전문용어가 난무하고 이에 관한 언어들이 삽시간에 흘러간다. 다양한 정보가 현란한 영상과 함께 스크린 속을 활보한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 딱히 인지하거나 숙지할 필요는 없다. <작전>은 주식에 대한 복잡한 이해를 바라는 영화가 아니다. 주식은 <작전>이란 영화를 설계하기 위한 일종의 매물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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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기이한 일이다. 노인의 육체를 안고 태어난 아이는 아버지의 사랑을 받지 못한 채 버려진다. 그럼에도 무럭무럭 자라고 점차 젊어진다. 그렇게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이하, <벤자민>). 스콧 피츠제럴드의 동명 단편을 160여분으로 펼쳐놓은 영화의 서사엔 군더더기가 없다. 원작의 뼈대에 붙은 살점들이 꽤나 탁월하다. 노인의 육체를 지니고 태어난 벤자민 버튼(브래드 피트)이 점차 젊어지는 와중에 벌어지는 갖가지 사건들은 이야기 장악력이 대단하다. 벤자민 버튼의 신체적 현상 자체가 모든 사건을 역설적으로 재생시킨다. 하지만 <벤자민>은 단순히 그 흥미로운 현상만으로 눈길을 끌고 말 영화가 아니다. 한 남자의 특별한 삶을 관통하는 애틋한 러브스토리는 실로 깊은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육체와 정신의 상관관계에 대한 진지한 고민만큼이나 그 중후한 로맨스의 깊은 상호작용이 실로 감동적이다. 서로 다른 서사 안에 놓인 두 남녀의 로맨스는 운명적인 모순을 품고 있으나 무언의 진심을 통해 감정을 유지하고 끝내 보존한다. 흥미로운 사건(A Curious Case) 속에 놓인 감정의 파고가 실로 인상적이다. 기이하지만 실로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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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전> 단평

cinemania 2009. 1. 29. 12:20

<작전>은 주식은어다. 이 은어를 직접 사주하는 자를 알았다면 귀담아둬라. 적어도 주식에 관한 큰 손으로 통할 가능성이 크다. 그들은 증권시장의 고급정보에 근접해있으며 투자자본이 넉넉하다. 운에 맡기는 개미가 아니라 계획대로 움직이는 프로다. 자본을 투하해 거품을 풀고 그 거품에 휩쓸린 눈먼 돈을 낚아채고 떠난다. 등 떠밀린 아마추어들은 기도나 하다 땅을 칠 따름이다. <작전> <타짜>의 유사품이다. 손모가지를 잘라도 도박판으로 돌아와 자멸하는 타짜처럼 주식에 운명을 건 투자자들이 설계한 큰판을 그린다. 이를 자본주의적 욕망이라 규정한다. 영화에서 난사되는 주식전문용어 사이에서 아랑곳하지 않고 버틸 수 있는 건 이 덕분이다. 주식에 대한 이해 따위를 바라는 게 아니다. 주식은 그저 자본주의적 교훈을 매도하기 위한 설계도구일 뿐이다. 직설적인 설교 속에서 빠르게 회전되는 이미지와 대사들이 현란하게 어울린다. 스토리는 명확하다. 권선징악의 테두리를 완성하기 위해 내달린다. 하지만 어딘가 얄팍하다. 자본주의적 실리에 대항하는 윤리적 심판을 그리는 양 하더니만 결말은 배신이야, 배신. 부정한 자를 꾸짖는 척 가진 자를 위한다. 이율배반이다. 눈먼 돈은 남보다 내가 갖는 게 낫다는 대사는 풍자가 아니라 진심이었나. 연극배우의 고단한 보람을 예상케 하더니 번쩍이는 BMW로 기를 죽인다. 모로 가도 성공한 놈이 난 놈일 뿐, 교훈 따윈 그저 한탕주의를 가리고 싶은 허세나 다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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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린보이> 단평

cinemania 2009. 1. 26. 20:01

전직 수영국가대표 출신인 천수(강우)는 도박판에서 크게 벌어 남은 인생을 휴양처럼 보내려 한다. 하지만 한번의 실수에 꿈은 날아간다. 패 한번 잘못 봤다가 빚더미에 앉아 패가망신할 처지가 된다. 하지만 일말의 기회가 찾아온다. 마린보이가 되는 것. 바다의 왕자가 아니라 마약밀매를 위한 생체보관함이 돼서 바다를 헤엄쳐 건너야 한다. 수장되기 좋은 운명이나 선택의 여지는 없다. <마린보이>는 일방통행이 예상되는 지점에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러나 다양한 캐릭터로 드라이브를 걸더니 방향표지판을 늘린다. 완벽한 지도를 제시하진 못해도 방향변화에 따른 좌표제시가 적절하다. 진짜 물건인지 뻥카인지 가늠하기 어렵게 제공되는 정보 사이로 흐르는 이야기는 은근히 천연덕스럽다. 인물간의 관계에 끊임없이 변화를 주는 복마전이 거듭되며 흥미를 유발하고 이를 빌미로 단순한 플롯에 지구력이 발생한다. 소품을 활용하는 방식도 제법 인상적이다. 대수롭지 않을 것 같던 순간들이 복선처럼 되새김질되며 이야기를 입체적으로 구성한다. 새로운 발견까지는 아니지만 즐길만한 수위의 기본기를 갖추고 있다. 게다가 시의 적절한 대사까지 겸비한다. 한국을 떠나고 싶다니, 이 나라 국민이 맞군. 대한민국을 뜨고 싶은 청년의 욕망은 결코 영화만의 사연이 아니다. 찰랑거리는 수면처럼 가볍지만 빠져들만한 매력이 있다.

 

(프리미어 'MOVIE 4人4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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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푸른 산호초 섬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남은 평생을 휴양처럼 살고 싶어라. 전직수영국가대표 출신인 천수(김강우)의 꿈은 팔라우섬으로 가는 직행 티켓을 끊는 것이다. 이에 필요한 건 돈이다. 많은 돈이 필요하다. 짧은 시일 안에 많은 돈을 만질 수 있는 곳은 도박판이다. 도박판에서 인생 한방을 노리는 천수의 꿈은 야무지다. 하지만 꿈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패 한번 잘못 봤다가 패가망신의 지름길로 들어선다. 팔라우섬은 커녕 장기를 팔게 생겼다. 그런 천수 앞에 강사장(조재현)이 나타나 ‘마린보이’가 될 것을 명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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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가 직장에 간 사이, 아이가 사라졌다. 그 어느 곳에서도 아이가 보이지 않는다. 경찰청에 전화를 걸어 실종신고를 하니 경찰이 퉁명스럽게 답한다. 24시간 이후에 현장 방문이 가능하다. 24시간이 지났다. 5달이 지났다. 아이를 찾았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어머니는 집으로부터 먼 외딴 곳에서 발견된 아이가 돌아온다는 기차역으로 발을 구른다. 그리고 모자는 상봉한다. 그 감격스러운 순간에 어머니의 표정이 굳는다. 우리 아이가 아니에요. 이를 지켜본 경찰의 표정이 굳더니 입을 연다. 당신이 잘못 본 거에요. 생전 아이를 본 적도 없는 경찰이 평생 아이를 바라보고 살아온 어머니의 기억이 잘못 됐음을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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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 가득 햇살이 가득 찼다. 보기만 해도 따스한 광경이다. 집안 구석구석까지 빛이 들어서있다. 그 광경만으로 반 허공에 뜨는 기분이다. 예쁘게 내려앉은 빛이 곱고 화사하다. 하지만 동시에 어딘가 내 것이 아닌 것만 같은 이질감이 느껴진다. 그 채광 좋은 집엔 젊은 부부가 산다. 자상한 상인(김태우)과 천진난만한 모래(신민아)가 아기자기하게 살아가는 둘만의 공간이다. <키친>은 같은 공간을 공유하는 이들이 어느 정도의 진심을 공유할 수 있는가에 관한 사연이다. 한 공간을 공유하고 있지만 때로 다른 것을 보고 생각하게 된 어떤 이들의 마음을 비추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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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이 등장할 때마다 신상명세를 설명하는 간략한 자막이 따라붙고, 서사의 변화를 표기하는 자막도 타이밍 맞게 등장한다. 이 사연이 결코 거짓이 아님을 강조하듯 빈번하게 자막이 등장하며 화면을 수놓는다. 실제로 <알파독>은 충격적인 실화를 바탕으로 이뤄진 작품이다. 불과 스무 살의 나이에 마약딜러로 성공했지만 결국 미 FBI의 최연소 수배범으로 기록된 제시 제임스 할리우드라는 청년에 관한 서사를 극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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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프타임이 길었지만 후반전은 시작된다. 전쟁의 시작을 선언한 <적벽대전: 거대한 전쟁의 시작>(이하, <적벽대전>)에 이어 본격적인 전쟁으로 돌입하는 <적벽대전2: 최후의 결전>(이하, <적벽대전2>)이 이제야 공개된다. 전편을 통해 전쟁다운 전투만을 하염없이 기다리며 입맛을 다신 어떤 관객들에게 <적벽대전2>는 진정 그들이 보고자 하던 그 적벽대전이나 다름없다(고 믿을 것이다). 하지만 본래 적벽대전의 백미는 그 본격적인 전투가 아니다. 그 전투 직전까지의 판도와 그 전투 이후의 양상이 적벽대전의 묘미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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