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적인 폭발력과 훈훈한 외모로 무대를 누비던 조정석은 지금 대중 앞에 한 발 다가섰다. 나약할 리 없는 집념으로, 보다 섹시하고 강렬하게.
조정석을 만난다고 하자 생각보다 많은 여자들이 관심을 보였다. 그에게 뭔가 특별한 매력이 있나? 그가 평소와 달리 수염을 길렀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풋풋한 청년의 얼굴을 지우는 대신 강렬한 남성의 인상을 그려넣었다. 도발적인 여인 앞에서도 쉽게 흔들리지 않는 남자의 야심. 그렇게 조정석을 위한 화보 밑그림이 완성됐다. 촬영 당일, 반바지와 티셔츠를 입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촬영 장소를 찾은 조정석은 마냥 사람 좋아 보이는 시원한 미소의 소유자였다. 잠시 후, 모든 준비가 끝나고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순간, 장난기 가득하던 청년의 얼굴에 강인한 인상이 들어찼다. 역시 배우는 배우다.
조정석은 뮤지컬계의 스타였다. 알 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었지만 아는 사람만 알았다. 고개를 들어 올려다 보지 않으면 볼 수 없는 밤하늘의 별처럼, 공연장을 찾지 않은 이들에게 조정석이란 이름은 그저 생소했다. 하지만 그는 분명 반짝이고 있었다. 단지 가리킬 손가락이 필요했을 뿐이다. <건축학개론>의 납뜩이와 <더 킹 투하츠>의 은시경이 가리키는 대로 수많은 이들이 고개를 들어 비로소 별을 봤다. 5:5 가르마를 탄 납뜩이의 정곡을 찌르는 대사에 포복절도했던 관객들은 극장에서 집으로 돌아와 TV를 켰다. 핏이 딱 떨어지는 제복 혹은 수트를 입은 말끔한 외모와 강직한 성격의 훈남 은시경이 눈에 들어왔다. 물론 대부분 처음엔 몰랐다. 그리고 갸우뚱하다 뒤늦게 놀랐다. “인물 자체가 다르니까 “얘가 얘야?” 이런 사람들이 많았다고 하더라. 어떻게 두 캐릭터를 같이 연기했냐는 질문도 많이 받았다. 보여지는 시기가 비슷하니까 오해하는 분들이 많았다.” 일찌감치 촬영을 마친 첫 영화가 그 뒤에 제작된 첫 번째 공중파 드라마와 맞물린 시기에 개봉했다. 영화와 드라마가 함께 주목받았다. 진정한 ‘골든 타임’이었다. 운이 좋았다. 하지만 하늘은 스스로를 돕는 자를 돕는다 하지 않던가.
뮤지컬 <스프링 어웨이크닝>의 무대에서 조정석을 눈여겨본 이들이 있었다. 곧 뮤지컬 지망생들의 도전을 그린 드라마 <왓츠업>에 그가 캐스팅됐다. “드라마 촬영 일정상 공연은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일단 드라마에 집중하자고 마음먹었다.” 그러나 막상 편성이 보류되면서 1년 동안 지난한 촬영 스케줄이 이어졌고, 경력에 구멍이 생겼다. 주변에선 시간을 탕진하고 있다며 우려했지만 조정석은 시간을 투자하며 담담하게 때를 기다렸다. “지금이야말로 영화나 드라마를 해볼 수 있는 시간이라 생각했다. 시간에 쫓기고 싶지 않았다.” 결국 <건축학개론> 오디션으로 기회를 잡았고, 2011년에 방영된 <왓츠업>을 본 이제규 감독은 그를 <더 킹 투하츠>에 불러들였다. 믿음으로 얻은 수익이었다. 더 큰 이윤을 요구할 차례였다.
조정석을 쏘아 올린 신호탄이 된 납뜩이를, 조정석이 납득하긴 어렵지 않았다. 다만 이용주 감독의 주문처럼 관객을 웃길 수 있을 것인가가 관건이었다. “집에서 TV로 보는 건 대수롭지 않지만 커다란 스크린으로 처음 영화를 보는데 내가 나올 때마다 미치겠더라. 중반부터 긴장이 풀렸다. 납뜩이가 제 역할을 못하면 어떡하나 걱정했었는데 사람들이 내가 나올 때마다 웃는 거다.” 납뜩이가 없는 <건축학개론>이란 얼마나 심심했을까. “어떡하지, 너?” 같은 납뜩이의 명대사가 조정석의 애드리브였단 사실은 그의 캐스팅이 진정한 신의 한 수였다고 믿게 만든다.
<건축학개론>과 <더 킹 투하츠> 이후로 조정석은 80년대를 배경으로 하는 코믹한 시대극 <강철대오: 구국의 철가방>의 촬영을 마쳤다. <방가! 방가!>의 감독 육상효의 새로운 연출작으로 80년대 미군문화원을 점거한 대학생들의 에피소드를 그린 이 코미디물에서 그는 ‘민중가요계의 조용필’로 불리며 기타를 치고 노래했다. 조정석은 일찍이 클래식 기타리스트가 꿈이었다. 하지만 연기자가 되면 어떻겠냐는 교회 전도사의 권유로 한 달간 개인 레슨을 받고 시험을 친 서울예전에 합격했다. 일종의 계시였다. 후에 개인적인 사정으로 중퇴했지만 그에겐 이미 또렷한 길이 열려 있었다. ‘가족 대부분이 부정적’이었지만 조정석은 ‘자신을 굳건하게 믿었다.’ 그리고 그 믿음이 결과를 명예처럼 간직한다. “기본적으로 내가 한 작품들에 자부심을 지니고 있다. 지난 작품들을 모두 기억한다.”
무대에 데뷔한 2004년부터 2010년 초까지 조정석의 시간에는 빈틈이 없었다. “일복이 많아서 쉴 틈이 없었다. 작품 끝나면 바로 작품하고, 작품 하면서도 다른 작품을 했으니까.” 단 한 번, 연습도 공연도 없었던 2주를 통째로 쉬었던 걸 제외하면 6년간 최소한 이틀에 한 번꼴로 무대에 올랐다. 6개월간 일주일에 8회 공연 그러니까 200회 가깝게 공연된 <스프링 어웨이크닝>에서 모리츠 역으로 단독 캐스팅됐을 때도 6개월간 매일 일정한 시간마다 그 무대에 올라 모리츠가 되어 목숨을 끊었다. 그래서 붙은 별명이 ‘매일 죽는 남자’다. 조정석의 믿음이란 그런 성실함과 집념을 담보로 둔 것일지 모른다. “하고 싶으면 확실히 해야 된다. 칼을 한 번 꺼냈으면 제대로 휘둘러야 되니까.” 공연이 끝나고 자신이 느낀 문제나 새로운 욕심들을 기록해 둔 ‘배우일지’도 그 칼을 제대로 휘두르기 위한 칼집이다. 그는 단단한 욕심으로 스스로를 단련해왔다.
<건축학개론> 이전에도 영화에 출연할 기회는 두 번 정도 있었다. 오디션에 합격했던 <바람피기 좋은 날>과 조승우의 추천으로 캐스팅이 유력했던 <고고 70>이 바로 그것. 하지만 공연 중인 작품들과 스케줄이 맞지 않았다. “공연 같은 경우, 오래전부터 공연장 대관을 준비하고, 출연 계약도 일찍 한다. 그 정도 의리는 있어야 된다고 생각했다.” <바람피기 좋은 날>은 <헤드윅> 때문에, <고고 70>은 <이블 데드> 때문에 포기했다. 영화를 도전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당장 해내야 할 일을 팽개치는 건 용납할 수 없었다. “공연을 하면서 겪어온 순간들을 무시할 수 없다.” 그에게 무대란 고향이자 뿌리다. 공연에 입문한 초기 시절 또한 잊을 수 없다. “2005년에 <그리스> 할 때 공연 끝나고 선배들과 술 한잔하다가 택시비가 없으니까 막차 끊기기 전에 뛰쳐나와서 막차를 타거나 막차를 놓치면 찜질발에서 잤다. 생생하게 기억난다.”
“잘 웃고 장난기도 많지만 눈물 흘리는 건 싫어한다.” 강하게 보이고 싶은 게 아니다. 단지 스스로가 약해지는 게 싫을 뿐이다. 12년 전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도 홀로 지쳐 쓰러져 울면서도 누군가의 앞에선 의연해야 했다. “어차피 앞으로 겪어야 할 경험을 조금 일찍 경험했다. 그래서라도 약한 모습을 보여주는 게 싫었다.” 일흔이 넘는 어머니를 모시면서 기울어가는 가세를 지지해야 했던 것도 그런 이유 중 하나일지 모른다. 2004년, 데뷔작 <호두까기 인형>에서 ‘사람도 아닌 1인 다역’을 연기하는 조정석의 무대를 처음 본 그의 어머니는 눈물을 쏟았다. “처음으로 내 공연을 보셨는데 보고 나서 우시더라. 이렇게 힘들게 일해서 돈을 버는구나, 하시며 눈물을 흘리시는데 당황스러웠다.” 그 뒤로 아들의 출연작을 모두 챙겨본 어머니였다. 가끔 촬영이 없는 날 어머니와 함께 <더 킹 투하츠>를 볼 때면 TV 속 아들의 얼굴에 미소를 띄우시는 어머니를 보며 뿌듯함을 느꼈다.
결혼에 대한 생각이 많은 것도, ‘화목한 가정을 꾸리는 것이 인생의 큰 목표’인 것도 어쩌면 그래서다. 하지만 ‘당장 누군가를 미친 듯이 사랑할 자신이 없는’ 지금은 ‘아직 아닌 거 같다.’ 지금은 해야 할 일이 있다. <우아한 세계>의 감독 한재림이 연출하는 고려시대 사극 <관상>에서 조정석은 송강호, 김혜수, 이정재와 함께 촬영을 준비 중이다. <건축학개론>을 본 한재림 감독은 ‘괜찮은 배우가 있다’며 조정석을 추천했고 <더 킹 투하츠>를 본 송강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으로 오디션을 거치지 않고 선택받았다. 그것도 그가 좋아하는 감독과 배우들과 함께. “이제 다시 출격이다. 출격.” 설렘이 가득한 미소로 내뱉는 단단한 각오. 그것 참, 결코 약해질 리 없는 관상 아닌가.
배우의 얼굴만큼이나 그 표정을 둘러싼 풍경으로 기억되는 영화들이 있다. 그와 그녀의 사연이 담긴, 방이 있는 영화 속 풍경으로 당신을 안내한다.
맘마미아!
<맘마미아!>는 전설적인 스웨디시 팝그룹 아바의 명곡들로부터 모티프를 삼아 기획된 뮤지컬이다. 1999년 런던 초연 이후로 브로드웨이 진출을 거쳐 현재까지 160여 개국에서 공연된 롱런 뮤지컬로 거듭났다. 그림 같은 지중해 가운데서도 백미에 가까운 그리스 해변가를 배경으로 주옥 같은 넘버들이 하나의 러브스토리를 치장하는 이 작품이 동명의 뮤지컬 영화로 기획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다. 영화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가상의 뮤지컬 무대가 자아내는 환상을 살아있는 풍경으로 전시해내는 일이었다. 제작진은 촬영 한 달 전부터 최상의 무대를 찾고자 그리스 전역을 뒤졌고, 스포라데스 제도의 스키아토스 섬과 스코펠로스 섬, 다무하리 섬이 최고의 병풍이 되리라 확신했다. 그 중에서도 스코펠로스 섬은 <맘마미아!>가 선사하는 진경의 핵심지다. 푸른 지중해를 병풍처럼 두른 스코펠로스 타운은 붉은 지붕을 쓰고 하얀 회벽으로 몸을 감싼 아기자기한 주택들이 능선을 따라 얼굴을 내밀고 앉아 있는 고지대 마을이다. 온화한 아치형 창문으로 시원한 바닷바람과 아름다운 풍경을 선물하는 이 주택들은 춤과 노래의 향연을 위한 천혜의 무대였다. 아기자기한 장식들이 눈에 띄는 복식 구조의 주택은 경쾌한 가무에 입체적인 동선을 치장한다. 집 안팎 곳곳에 자리하며 일상을 영위하던 인물들은 계단을 오르고 내리거나 창문을 여닫고 때때로 뛰어내리며 스크린을 역동적인 뮤지컬 무대로 탈바꿈시킨다. 그림 같은 카스타니 해변을 비롯해서 소피(아만다 사이프리드)가 세 아버지들과 처음 마주하는 아그논다스, 그리고 소피의 결혼식을 위해 긴 계단을 오르던 도나(메릴 스트립)가 옛 연인의 고백을 애절하게 뿌리치는 아기오스 요다니스 성당, 그리고 그 모든 풍경을 조망하는 영화 속 그 집에 머무를 수 있다면 스스로 인생의 승자가 됐다고 자부해도 좋을 것만 같다. 영화 속 그 노래, “The winner Takes it all”처럼.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
저널리스트 출신 작가 엘리자베스 길버트의 자전적인 여행 에세이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는 한 여인이 행복을 찾아 나서는 3막 3장 여행기다. 영화는 그 일탈의 경험이 기록된 활자를 영상으로 치환하며 일탈의 충동을 보다 입체적으로 부추긴다. 뉴욕에서 안정적인 결혼 생활을 꾸려나가던 리즈(줄리아 로버츠)는 그 편안한 삶이 자신을 서서히 풍화시키고 있다는 위기를 느끼기 시작한다. 결국 그녀는 결혼을 비롯해서 손에 쥐고 모든 것들을 과감히 놓은 채 1년 간의 순례를 결심한다. 풍요로운 진미가 넘치는 이탈리아 로마에서 먹고, 명상으로 마음을 정화시키는 인도의 아쉬람에서 기도한 뒤, 소박한 일상을 영위하며 새로운 운명을 발견해내는 발리에서 사랑하는, 한 여인의 이 모든 여정은 영혼의 허기를 채우고자 떠나는 순례나 다름없다. 그 모든 여정의 종착지 발리는 새로운 삶을 위한 약속의 땅이다. 현대적인 물질 문명의 침입이 상대적으로 덜한 발리의 자연적인 경관으로 둘러싸인 리즈의 집은 안온한 인상을 부른다. 목재로 건축된 친자연적인 이 주택 곳곳에 놓인 창과 문은 자연을 향해 마음껏 열려있으며 이는 곧 자신을 놓고, 새롭게 가다듬던 리즈의 여정이 비로소 새로운 삶을 향해 나아갈 차례에 놓여 있음을 대변한다. 자신의 새로운 삶을 위한, ‘더 큰 균형’을 찾아간 그녀는 비로소 발리에서 새로운 연인을 만나게 되며 그 앞에서 다시 한번 고민하고 갈등하지만 두려움 속에 머물던 지난 날을 떠올리며 새로운 사랑 앞에서 뒤돌아서지 않길 다짐한다. 누군가에게는 더없이 사치스럽게 보이는 고민이겠지만 쳇바퀴 도는 삶 속에서 지쳐가는 현대인 누구나 한번 즈음은 꿈꿔봤을 진짜 일탈이 담긴 이 영화는 대리만족으로서가 아닌, 당신에게 진짜 일탈을 촉구하는 일종의 안내서다.
언 애듀케이션
영국의 유명한 소설가 닉 혼비는 저널리스트 출신의 저술가 린 바버가 한 잡지에 기고한 짧은 회고록 에세이에 사로잡혔다. 이를 바탕으로 한 편의 시나리오를 완성한 그는 끝내 영화 제작까지 관여했다. 바로 그 영화가 <언 애듀케이션>이다. 17세 소녀 제니(캐리 멀리건)는 옥스포드 진학을 기대할 정도로 뛰어난 학업성적을 자랑한다. 하지만 스스로는 보수적인 부모와 엄격한 학교에 갇히듯 살고 있다 여기며 작은 일탈로 숨통을 열어두길 원한다. 딱딱한 라틴어 공부보다는 첼로 연주와 샹송을 즐기고 프랑스 파리에서의 삶을 염원한다. 기회가 찾아온다. 우연히 인연을 맺게 된 중년남자 데이빗(피터 사스가드)과 만남을 거듭하던 제니는 그로부터 제공 받는 다양한 경험을 통해 학교와 집을 오가던 일상에 대한 필요성을 잊기 시작한다. <언 애듀케이션>은 전통적인 영국드라마의 서정적인 분위기와 함께 전쟁 직후인 1960년대 영국의 일상적인 풍경들을 사실적으로 그려낸다. 샹송과 재즈, 올드팝을 즐기던, 테일러드 복장의 말쑥한 청년들과 심플한 스타일과 짙은 눈화장의 첼시룩 여성들이 주류를 이루던 당시의 풍경이 재현된다. 빈티지한 데코와 장식들로 가득한 실내 인테리어들도 눈에 띈다. 오늘날 오랜 멋과 정취를 지닌 스타일로 인식되는 빈티지풍의 실내 정경은 단아하고 소박한 1960년대 영국의 현실을 대변한다. 고리타분한 가치관 속에 갇혀있다 믿는 제니에게 그 모든 것은 벗어나야 할 낡은 풍경에 불과하다. 하지만 결국 잘못된 선택으로 삶이 뒤틀린 이후, 제니에게 그 풍경은 곧 새로운 기회를 되찾기 위한 안식처가 된다. <언 애듀케이션>은 안온한 일상 속에서 새로운 자극을 꿈꾸던 소녀가 백일몽과 같이 짧고 강렬한 경험을 거친 뒤 얻게 되는 큰 깨달음에 관한 영화다. 그리고 제목에서 명시하는 ‘교육’이란 바로 그 시행착오조차 품어줄 수 있는, 새로운 기회를 주는 배려이자 덕목이라는 것을 이 영화는 가르치고 있다.
아멜리에
소녀는 어려서부터 특이했다. 아니, 어쩌면 특별했다. 아버지의 손길에 심장박동이 빨라진 탓에 심장병 진단을 얻었고, 소녀는 쉽게 외출을 허락 받지 못한 탓에 자신의 외로움을 함께 견뎌줄 친구를 스스로 만들어야 했다. 그 덕분인지 아멜리(오드리 토투)금붕어의 자살마저 눈치챌 정도로 누군가의 마음을 읽는, 남다른 재주를 얻게 됐다. 그런 어느 날, 화장실에서 우연히 발견한 누군가의 오래된 소지품을 발견한 그녀는 주인을 찾아나선 뒤 결국 그 물건들을 되돌려주는데 성공하며 대단한 보람을 얻게 된다. 누군가의 행복이 자신을 기쁘게 한다는 것을 체감한 그녀는 주변의 모든 이들이 행복한 감정을 얻을 수 있기를 갈망하며 그들이 모르는 선물을 준비한다. 프랑스가 배출한 귀여운 여인 아멜리는 사실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여인이다. 어려서부터 혼자에 익숙한 그녀는 그 외로움을 달래고자 타인의 행복을 위한 대리만족의 일상으로 도피해나간다. 강렬한 레드톤으로 채워진 아멜리의 방은 그녀의 욕구불만을 간접적으로 발산시키고 이를 대리 충족시키는 공간인 셈이다. 화려하고 강렬한 컬러가 방 안에 가득하지만 소박하고 귀여운 도구들로 채워진 그 방의 정경은 아멜리의 마음을 대변한다. 타인으로부터 괴리된 자신만의 공간 속에 숨겨둔 욕망의 도피처이자 사랑 받고 싶은, 혹은 사랑하고 싶은 여자로서의 심리를 유일하게 보관하는 비밀스러운 공간인 것. 결국 사랑을 갈구하면서도 그 사랑에 다가서길 망설이는 아멜리의 불안은 그 상대를 방 안에 들이는 순간 눈 녹듯 사라진다. 남에게 결코 보여주지 않았던 강렬한 염원 속에 그토록 바라던 사랑이 찾아온다. 이 사랑스러운 로맨틱 코미디는 마음의 열쇠를 여는 남녀의 만남에 관한, 판타지 같은 러브스토리다.
제우스가 만들어낸 인간들과 마찬가지로 올림푸스의 신들도 욕망하는 존재다. 엄밀히 말하자면 그리스 신화에서 등장하는 다양한 신의 군상이란 현대적 의미에서 당시 인간들이 만들어낸 허구적 세계관 속의 가공적인 캐릭터에 가까운 것이다. 곧 그리스 신화란 오늘날에 있어서 내러티브가 존재하는 판타지의 소스로서 유용하다. 인간을 탄생시켰다지만, 인간에 의해 창작되었고, 인간을 지배한다지만, 인간에 의해 완성된, 인간사의 또 다른 판본이나 다름없다. 특히나 창작력의 고갈에 다다를 정도로 컨텐츠의 소비가 극대화되고 리메이크가 득세하는 요즘의 시대에서 그리스 신화와 같이 방대한 세계관은 분명 아이템에 목마른 창작자들의 구미를 당길만한 화수분의 세계일 것이다.
1981년에 개봉된 <타이탄 족의 멸망 Clasf of the Titans>을 리메이크한 <타이탄 Clash of the Titans>은 시대의 변화만큼이나 영상기술이 진보했음을 뽐내는 작품이다. 원작이 기술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스톱모션 기법을 활용하며 눈속임에 성공했던 것과 달리 근작은 근사한 CG를 동원하며 비현실성을 현실감 있게 표현해내는데 성공하는 것이다. 하지만 단순히 <타이탄>이 원작을 보다 근사한 이미지로 재활용하는 작품으로서 유효한 것만은 아니다. <타이탄>은 원작을 비롯해서 그리스 신화의 내러티브 자체에 일부 변형을 시도하고, 이를 통해 근본적인 메시지를 얹어내려 한다. 그리스 신화 가운데 헤라클레스나 아킬레스만큼이나 잘 알려진 영웅 페르세우스(샘 워싱턴)에 관한 서사를 스크린에 펼쳐낸 원작처럼 <타이탄> 역시 페르세우스의 영웅담을 현대에 재생한다. 다만 신화의 플롯을 충실히 재현하는 원작과 달리 <타이탄>은 그 플롯을 활용하되 재가공한 뒤, 재해석의 여지를 남긴다.
신과 인간의 혼혈아인 반신반인 ‘데미갓’ 페르세우스는 제우스(리암 니슨)로부터 물려받은 혈통을 범상한 재능이 아닌 저주 받은 운명처럼 여긴다. 자신의 모든 것을 망친 신에게, 보다 직접적으로 하데스(랄프 파인즈)에게 복수를 다짐하고 자신에게 닥쳐오는 운명의 과업들을 하나씩 헤쳐나간다. <타이탄>은 마치 <반지의 제왕>과 <스타워즈>를 비롯해서 갖가지 영웅의 성장물을 뒤섞은 클리셰 범벅의 영화다. 하지만 그 이전에 이 영화에 반영된 것이 그리스 신화란 점을 염두에 둔다면 앞선 작품들의 연관성을 비교하는 건 딱히 효과적인 설명이 될 수 없다. 그리스 신화야말로 현대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서사에 깊게 관여한 스토리텔링의 원형에 가까운 것이기 때문이다. <타이탄>은 페르세우스의 영웅담 가운데 중요한 맥락들을 원형에 가깝게 묘사하면서도 그 의미를 조금씩 변주한다. 메두사의 목을 베고, 페가수스를 타고 하늘을 날며, <타이탄>에서는 크라켄이라 소개되는 괴물을 물리치고 안드로메다 공주를 구한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 모든 에피소드는 페르세우스를 장식하는 무용담으로서 기능을 국한하지 않는다. <타이탄>은 마치 헤브라이즘에 저항하는 헬레니즘적인 영화처럼 보인다. 신의 폭정에 저항하는 인간들의 세계에서 신의 피를 물려받은 페르세우스가 그들의 구원자로서 활약하는 과정은 영웅적인 면모를 드러내는 동시에 휴머니즘의 의미를 역설한다. <타이탄>이 비범한 일관성을 완벽하게 유지하는 영화라고 말하기란 어렵다. 캐릭터의 감정이나 태도는 종종 엇나가거나 방향을 잃고 그 진전을 무시한 채 무리한 선회를 선택하기도 한다. 하지만 한편으로 <타이탄>은 재능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천부적으로 대단한 재능을 타고난 사람이 그 재능을 경멸하는 건 끔찍한 낭비라는 것을, 그리고 그 재능의 활용이 공공의 운명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 것인지, 이는 재능의 가치 자체에 대한 설득에 가깝다.
3D 비주얼을 내세우고 있지만 <타이탄>은 굳이 3D로 관람할 이유가 없는 영화다. 편광안경으로 인해 전반적인 색감이 훼손당하는 동시에 3D 입체효과가 이 영화를 유니크하게 만들 만한 뚜렷한 기능적 값어치를 해내지 못하고 있다. 물론 <타이탄>이 만들어내는 그리스 신화의 이미지들은 (종종 유치하게 느껴지는 부분이 없지 않지만) 괜찮은 볼거리가 된다. 사막에서의 전갈과의 전투나 메두사와의 대결 신을 비롯해서 크라켄이 등장하는 후반부 신은 액션 블록버스터로서 강력한 한 방이다. 배우들의 연기도 적절하다. 최근 할리우드의 블루칩으로 떠오르는 샘 워싱턴은 터프하면서도 강직한 영웅적 면모를 온 몸으로 드러낸다. 신의 세계에서 영웅이 된 인간의 활약상은 비주얼의 성과와 함께 텍스트로서의 흥미를 이끌어낸다. 그리스 신화가 현대에서 오락적으로 유용하다는 걸 증명한다고 할까.
빡빡한 도시의 삶이 버겁다고요? 매일 같이 단조로운 일상이 지겹나요? 일단 그 현실에서 벗어나 잠시 여행이라도 떠날 수 있다면 좋겠군요. 하지만 당장 시간도 없고, 막상 어디로 떠나야 할지 모르겠다고요? 그렇다면 영화라도 한 편 보세요. 그 영화가 당신의 길잡이가 될지도 모릅니다.
때때로 영화는 잊혀지지 않는 기억이 된다. 대사로, 음악으로, 그리고 풍경으로, 관객의 뇌리에 서로 다른 흔적으로 깊게 각인된다. 무엇보다도 인상적인 찰나의 풍경만으로도 잊을 수 없는 영화가 있다. 그리고 그 풍경들은 현실을 벗어난, 또 다른 세계를 꿈꾸게 만든다. 당신이 발 딛지 못했던 세상을 꿈꾸게 만든다. 그리고 이제, 꿈꾸던 당신, 떠나라. 스크린 속 그 풍경으로. 극장에서 만끽했던 환상을 당신의 현실에서 만날 차례다. 머뭇거릴 당신을 위해 여기 몇 가지 좌표를 마련했다.
<사운드 오브 뮤직> 오스트리아 비엔나 잘츠부르크
“도레미파솔라시, 도! 솔! 도!” 7음계를 이용한 ‘도레미송(Do-Re-Mi)’만으로도 유명한 <사운드 오브 뮤직>은 브로드웨이 인기 뮤지컬을 동명 그대로 영화화한 작품이다. 1965년, 전세계적으로 개봉된 이 고전 뮤지컬은 천진난만한 동심과 애틋한 로맨스가 어우러진 작품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발랄한 음표들이 귀를 사로잡는 가운데,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다채로운 경관이 호화롭기 짝이 없다. <사운드 오브 뮤직>의 의상이나 다름없는 그 장관은 모차르트의 고향이기도 한 오스트리아 비엔나의 잘츠부르크에서 빌려온 풍경들이다. 볼프강 호수의 시원한 전경으로부터 시작되는 영화는 호헨잘츠부르크요새가 올려다 보이는 카피텐 광장과 잘차흐강을 건너는 모차르트 교각, 잘츠부르크 대성당과 미라벨 궁전의 정원 등, 잘츠부르크의 고풍스러운 정경 곳곳을 누비며 밝은 음색을 채워 넣는다. 영화 속에서 등장하는 풍경 대부분은 오늘날까지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으며 영화의 흥행 이후로 늘어난 관광객들을 위해 현지에서 운영하는 ‘사운드 오브 뮤직 투어’를 이용할 수도 있다. 하지만 스스로 그 흔적들을 수집해나간다면 더 좋은 의미를 발견할지도 모를 일. 특히 마리아가 아이들과 함께 ‘도레미송’을 연습하던, 알프스를 병풍처럼 두른 몽크스산에 오른다면 씩씩한 걸음을 옮기며 노래하던 아이들처럼 절로 마음이 순수해질 거다.
<브로크백 마운틴> 캐나다 알버타 로키 산맥
울창한 숲과 험한 산세 아래 양떼를 지키기 위해 야영하던 두 명의 카우보이 잭과 에니스는 어느 날, 감정의 선을 넘는다. 산속이라 시차가 커서 밤이면 온도가 급격히 떨어지는 추운 야영지에서 모닥불로 손을 녹이고 좁은 텐트 안에서 뒤엉키듯 잠을 청하던 두 사내는 스스로 짐작조차 할 수 없었던 애틋한 감정이 줄기처럼 자라남을 직감하고 서로를 끌어안는다. 그 금기적인 로맨스의 증인이 되는 건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캐나다 알버타의 로키 산맥이다. 사실 동명원작소설의 작가 E. 애니 프루가 쓴 ‘브로크백 마운틴’은 지도에 존재하지 않는 곳이었고, 미국 와이오밍의 빅혼 마운틴을 모델 삼아 글을 써내려 갔다고 밝혔다. 제작사는 빅혼 마운틴 주변에서 촬영을 시도했으나 여건상 포기한 뒤, 촬영지 선택에 난항을 겪다 비로소 알버타를 찾았다. <브로크백 마운틴>에서 험준하고도 풍요로운 로키 산맥의 풍광은 결말에 다다라 진한 여운을 남길 영화적 감수성을 깊고 너르게 채우는 원천이나 다름없다. 양떼를 몰다 설산이 내려다 보이는 산턱에서 한낮의 망중한을 즐기기도 하고, 깊은 밤에 찾아온 산의 한기를 몰아내며 모닥불을 피운 채 따뜻한 잔에 손을 비비던 두 남자의 추억은 그 인상적인 풍경을 통해 잊을 수 없는 감정적 여운으로 거듭난다. 만약 트래킹과 스키를 즐기는 이라면 그 만년설의 절경을 보다 적극적으로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
<뉴욕의 가을> 뉴욕 센트럴파크
굳이 뉴요커의 꿈을 꾸지 않았다 해도, 뉴욕의 명소들에 대해서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들어봤을 게다. 사실 뉴욕을 말한다는 건 식상한 일임에도 그것을 포기할 수 없는 건 언제나 뉴욕을 그리는 영화들이 인상적인 기억으로 회자될 수 밖에 없는 풍경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뉴욕을 소재지로 둔 너무도 많은 영화 가운데서도 <뉴욕의 가을>은 제목이 직시하는 도시와 계절의 풍경을 풍만하게 드러내는 작품이다. 맨하탄과 브룩클린, 퀸즈, 브롱크스, 스테이튼 아일랜드까지, 뉴욕의 전경을 부감숏으로 포착하며 시작되는 영화는 그 이후로 뉴욕에 배어든 가을의 흔적들을 향해 카메라를 들이민다. <뉴욕의 가을>의 두 주인공 윌과 샬롯의 만남이 시작되는 센트럴파크는 노란 은행잎으로 물든 가을의 향연 그 자체다. 세계 최대의 공원으로 꼽히는 뉴욕 맨하탄의 센트럴파크는 전세계 인종의 교차로라 해도 좋을 뉴욕의 중심에 자리한 뉴요커들의 안식처이자 쉼터이다. 삭막하고 번잡한 도시의 체증을 피해 잠시나마 안식을 부여한다. 그리고 영화처럼 센트럴파크를 거닐다 보면 운명 같은 연인을 만나게 될 수 있지 않을까?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 그네들 역시 센트럴파크에서 마주한 건 그저 영화 속 우연일까, 운명일까? 적어도 후자의 낭만을 부정할 이유는 없을 거다. 그리고 그게 당신의 삶이 된다 해도 이상한 일은 아닐 테고.
<맘마미아!> 그리스 스포라데스 제도의 스코펠로스 섬
전설적인 팝그룹 아바의 명곡들로부터 모티브를 얻은 브로드웨이 인기 뮤지컬 <맘마미아!>가 스크린으로 무대를 옮겼다. 영화 <맘마미아!>가 동명의 원작 뮤지컬보다 특별할 수 있는 건 스크린에 펼쳐진 그리스 제도의 그림 같은 풍경들 덕분이다. 촬영에 앞서 한 달 전부터 제작진은 <맘마미아!>의 무대가 될 공간을 찾기 위해 그리스 전역을 샅샅이 뒤졌다. 그 결과 스포라데스 제도의 스키아토스 섬과 스코펠로스 섬, 다무하리 섬을 찾아냈으며 대부분의 바닷가 신을 거기서 촬영했다. 특히 스코펠로스 섬은 <맘마미아!>가 선사하는 아름답고 평화로운 진경의 핵심이다. 에메랄드 빛 바다를 여백처럼 두른 채 붉은 지붕과 하얀 벽으로 이뤄진 집들이 높낮이가 다르게 옹기종기 모여 앉은 스코펠로스 타운의 주택가를 비롯해 서쪽으로 22km 떨어진 카스타니 해변에 펼쳐진 백사장에서 스크린을 통해 봤던 그 모든 풍경들을 직접 확인할 수 있다. 또한 결혼식 신을 위해 100m 높이의 암벽 위에 재건한 예배당도 여전하다. 눈을 정화시키던 스크린 너머의 풍경들이 눈 앞에 펼쳐지는 순간 당신은 어쩌면 모든 것을 다 얻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당신이 그 인생의 승자라 믿어도 좋다. <맘마미아!> 속 그 노래처럼, ‘The winner takes it all’.
뮤지컬 배우로서 경력을 쌓아왔다. 우선 뮤지컬이 좋았다. 노래 부르는 걸 되게 좋아했었거든. 그런데 연기랑 노래를 같이 가져갈 수 있는 게 뮤지컬이니까.
노래를 좋아했다면 가수를 생각할 수도 있었을 텐데.
그런 생각도 잠깐 했었다. 실제로 제의도 들어왔었고. 군대 가기 전, 스무살 즈음이었나. 그런데 만약 그러려면 계약을 해야 되고 5년 동안 1년에 앨범 한 장씩 내야 된다는 식으로 얘기하더라. “그러면 난 연기는 못하나요?” 그랬더니 안 된다고, 가수에 전념해야 한다고 하길래 안 한다고 했던 적이 있었지.
요즘 주말극에 출연하고 있는데 드라마 연기는 어떤가? 나름대로 잘 적응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김치 치즈 스마일>(이하, <김치>)로 처음 방송할 당시에 감독님과 PD님들이 ‘원투쓰리’(스튜디오 카메라)를 처음하는 데도 정말 빨리 적응한다고 하더라. 그 전에 ‘드라마시티’도 해봤지만 거기선 세트촬영도 다 ENG카메라로 찍었으니까. 하지만 처음엔 연기 자체가 어색했다. 계속 카메라 앵글에서 벗어나기도 했고.
나름대로 고충이 있었나 보다.
사실 내가 연극이나 뮤지컬에선 우는 연기를 잘 하는 편이다. 그런데 예전에 ‘드라마시티’로 처음 방송 카메라 앞에 섰을 때였다. 타이트 바스트샷(T.B.S)을 잡고 한 페이지가 조금 넘어가는 대사를 혼자 쭉 치면서 울어야 되는 씬이 있었다. 앵글 다 잡아놓고, 조명도 다 설치됐고, 이제 나만 준비하면 다 되는 건데 끝까지 울지 못하겠더라. ‘티어스틱(tear stick)’도 발라보고 안약도 넣어봤지만 안 되는 거다. 그때 감독님께서 내가 눌린 거 같다고 하시더라. 이 사람들에게 눌렸다는 표현을 하시더라고.
그 뒤로 카메라 앞에서 눈물 연기를 할 기회가 없었나?
그 이후에 <김치>에서는 다행히도 우는 씬이 없었고, 시트콤에선 울 일이 별로 없잖아. (웃음) 그 뒤로 <라이프 특별조사팀> 거의 마지막 회 즈음에 야간 촬영인데 우는 씬이 있었다. 진짜 소주를 몇 잔 마시고 갔었다. 내 캐릭터가 아빠라고 부르던 좋아하는 아저씨의 유품을 만지면서 대사도 없이 그냥 우는 씬이었는데 그때는 바로 눈물이 나더라. 술기운 탓이었나 모르겠는데. (웃음) 그래서 딱 두 번 만에 오케이 싸인을 받고, 그 씬 끝나자마자 드라마씨티 감독님한테 전화해서 말했다. “저 드디어 울었어요.” (웃음) 잘 했다고 하시더라. 처음엔 이렇게나 적응을 못했다.
나름대로 기울인 노력이 있었을 것 같은데. 우선 촬영장을 많이 다녔었다. 나는 탤런트나 영화배우들이 대단하게 보였다. 촬영장에서 보면 배우가 스태프들에게 둘러싸여 있지 않나. 저 상태에서 어떻게 연기하나 싶더라. 막상 직접 해보니까 처음엔 역시나 어색하더라.
의외다. 무대에서 많은 관객을 앞에 두고 연기해왔으니 오히려 수월하지 않을까 생각되는데.
느낌의 차이가 있다. 관객은 직접 돈 내고 온만큼 열심히 보려는 의지가 있지만 스태프들은 그 느낌이 아니니까. 그 기가 그 기가 아니다. 다르더라. 그래서 내가 눌리더라고. 사람 수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부담감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것 같다. 카메라 렌즈나 조명도 생소하고.
<그들이 사는 세상>에서 함께 출연했던 최다니엘 씨가 예전에 했던 인터뷰에서 연기할 때 엄기준 씨의 포스가 장난 아니다라고 하던데.
그냥 좋자고 해주는 말 아닐까. (웃음)
하지만 오랫동안 무대에서 연기를 해온 만큼 무대 장악력이 씬 장악력으로 이어지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무대에서 연기를 오래 해왔기 때문에 얻었다고 자신할만한 자산이 있나?
자신감까진 모르겠지만 우선 씬이 하나 있으면 이 씬에서 전달해야 될 목적이 뭔지 디테일 하게 파악된다. 씬이나 작품 분석력이 생겼다고 할까. 물론 드라마했다고 그런 걸 모른다는 건 아니다. (웃음) 그냥 좀 더 디테일하다는 거지. 어차피 드라마는 장면을 따고, 따고, 이런 경우가 많지만 고정해놓고 쭉 가게 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럴 땐 집중의 끝을 놓치지 않고 가려고 노력하게 되는데 그런 경우에 유리한 거 같다. 무대에서는 거진 그런 식으로 가니까, 드라마는 집중이 안 되면 그냥 죄송합니다, 하고 다시 가기도 하지만 무대에선 무조건 끝까지 집중력을 잡기 위해 노력해야 되기 때문에 그런 훈련은 충분했던 것 같다.
무대에서 나름 유명세를 얻었지만 최근 방송에 출연한 짧은 기간에 얻은 유명세가 오히려 먼저 인식되는 거 같다.
아마 지금 10년 넘게 연극이나 뮤지컬을 했던 나를 아는 사람이 이만큼이면, (작은 원을 그리면서) 2년도 채 안된 사이에 드라마 몇 편으로 나를 알게 된 사람이 훨씬 더 많지 않을까. 그건 어쩔 수 없는 일 같다. 그런 인지도도 어느 정도 신경 써야겠지. 다만 아직은 방송을 시작한지 2년 밖에 안 됐으니까 좀 더 방송 연기에 적응해야 될 거 같다. 아직은 이쪽에서 보면 신인이니까. 그리고 아무래도 실력으로 인정받아야 오래가겠지.
10년 넘게 무대를 지켰는데 그게 개인적인 고집에서 비롯된 결과일까, 아니면 하다 보니까 그렇게 된 건가. 하다 보니까 그렇게 된 부분도 있고. 내가 96년도에 뮤지컬을 같이 했던 이인철 선생님이라는 분이 계시다. 같이 술도 자주 마셨는데 내가 군대에서 휴가 나왔을 때 선생님께서 모노드라마를 하고 계셨다. 그래서 그 공연을 보고 같이 소주 한잔을 하는데 그 때, 계속 연기하고 싶으면 무대에서 10년만 버티라고 말씀하셨다. 사실 그 10년 버티는 게 힘들거든. 그런데 어떻게든 나는 버티게 됐다. 언젠가 TV를 보면서 연기를 못한다고 생각되는 탤런트를 봤다. 누군진 잘 기억나지 않는데 그 분을 보면서, ‘난 저렇게 되지 말아야지’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무대에서 10년을 버티면 ‘저 정도는 아니겠지’라고 생각했고. 어쨌든 궁극적으로는 나도 10년이 지나면 영화든 드라마든 다른 걸 해보고 싶었으니까.
예전에 <그리스>에서 김무열 씨와 더블 캐스팅으로 공연한 적이 있다. 올해 김무열 씨를 만났었는데 엄기준 씨가 춤을 못 춘다고 하더라.
<그리스>의 역대 ’대니’ 중에서 춤 못 추는 대니가 세 명 있는데, 이거 얘기해도 되려나? (웃음) 오만석, 이선균, 엄기준이라고. (웃음) 순위까진 말씀 드리지 않겠다.
그런데 김무열 씨는 그 당시 당신이 대니를 재해석하는 모습에 놀랐다고 하더라. 춤추고 멋진 척만 하는 대니를 쉴새 없이 입담을 구사해서 웃기는 캐릭터로 만들어버렸다나.
내가 역대 대니 중에서 가장 쌈마이였다더라. 가장 웃기는 대니였다나. (웃음) 사실 그때는 일부로 그런 것도 있었다. 왜냐면 공연이 길어지면 배우들이 많아서 솔직히 매너리즘에 빠지기 쉽거든. 우리끼리 하면서도 재미없다고 느끼는 경우가 있지. 그래서 난 공연 때마다 애드립을 조금씩 바꿨다. 애들 보고 긴장하라고. 그러니까 나름대로 우리도 좀 재미있게 하자는 의미랄까. 물론 정석대로 지켜야 할 약속이란 것도 중요하지만 너무 짜인 대로만 가면 스스로가 일단 지치니까, 내가 즐거워야 관객도 즐거워할 거 아닌가.
아무래도 자신이 그 집단을 이끌 정도의 재량이 되니까 가능했던 일일 수도 있고.
솔직히 그 때 <그리스>멤버들 가운데 내 나이가 가장 많았다. 그래서 연출도 나를 어느 정도 포기한 상태였고, (웃음) 그냥 내 멋대로 했었지. 그래서 애들은 형 오면 즐겁다고 했는데 나는 나중에 대표한테 한 대 맞고. 너 이제 그만 좀 맘대로 해라, 하면서. (웃음)
무대 위에서는 그렇게 익살맞은 모습도 많이 보여주는데 평소 성격도 활달한 편인가?
평소에 잘 못하는 걸 무대에서 하는 거 같다. 사실 난 그렇게 밝거나 유머스럽지 않다. 그래서 그걸 무대에서 대리 만족하려는 것도 있는 거 같다. 평상시에는 얘가 저기 언제 있었냐고 할 정도로 눈에 띄지 않는 편이다. 연습할 때도 말도 거의 없고 가만히 보고 있는 편이고.
방송을 통해 얼굴이 노출되면서 배우에서 연예인으로 영역이 확대된 느낌이다.
연예인이라는 말이 맞겠지. 나한테는 그게 좀 안 좋다고 할까. 배우로 남고 싶은데 연예인이 되면서 상품이 돼버리는 느낌이다. 어쩔 수 없는 현실이긴 하지만 그런 생각이 가끔 들긴 한다.
예전엔 심은진 씨와 스캔들도 났다. 신변잡기까지 관심을 받는다는 건 그만큼 부담되는 일이겠지.
(웃음) 나는 그래서 오히려 이런 생각도 해봤다. 주연 말고, 조연으로 쭉 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라고. 왜냐면 그렇게 되면 크게 상품화되지도 않고 별로 이슈거리가 안될 것 같아서, 그리고 연기는 연기대로 할 수 있고. 게다가 조연은 따먹을만한 배역이 생각보다 많다. 오히려 주연보다 더 많은 사람을 만날 수도 있을 것 같고.
주연 욕심도 없진 않을 텐데. 없다고 얘기하면 거짓말이지. 그런데 우선 요즘 주연배우를 하려면 일단 기본적으로 잘 생겨야 된다. 나는 사실 잘 생긴 배우 쪽은 아니잖아. 나이도 벌써 서른 중반이고. 뭐, 조연으로 가는 게 차라리 금방 기회를 얻기 쉽지 않을까. 나는 그냥 둘 다 좋다. 조연이든, 주연이든.
아까 춤 못 추는 3대 대니로 꼽힌다는 오만석 씨나 이선균 씨는 요즘 영화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혹시 시나리오 제의를 받아본 적은 없나?
없다. 요즘은 워낙 시장도 워낙 안 좋고.
영화에 출연하고 싶은 생각도 없진 않을 텐데.
나도 그러고 싶은데 안 불러준다. (웃음) 예전에 오디션 본 적은 많다. 유해진 선배 나왔던 <트럭>이나 천호진 선배 나왔던 <GP506>이나, 꽤 많았지. 그런데 잘 안 됐고. (웃음)
하지만 여전히 티켓파워가 있는 배우로 꼽히고 있다.
(조)승우가 지금 군대간 사이에 빨리 1위가 돼야 하는데! (웃음)
얼마 전에 공연했던 <밑바닥에서>의 흥행성적이 괜찮은 편이었다고 들었다.
다행히도.
본인 덕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김수로 선배님을 무시할 순 없지. 아마 내년에도 수로 형과 연극 한 편을 같이하게 될 거 같다. 작품은 이미 정해놨고 개관 날짜만 잡히면 된다. 수로 형한테 말했더니, “봄쯤 하자, 봄쯤.” (목소리를 따라 하면서) 이러더라. (웃음)
원래 김수로 씨는 고전연극에 정통한 배우다. 하지만 그 동안 코믹한 캐릭터로 지나치게 소모된 감이 없진 않다. 아무래도 방송이나 영화가 인지도를 얻기에 좋은 매체이긴 하지만 그만큼 쉽게 이미지가 고착화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두렵진 않나?
두려움은 없지만 내 고집을 언제까지 가져갈 수 있을지 나도 잘 모르겠다. 분명히 어느 순간 무너질 때가 있겠지. 하지만 그렇게 무너지더라도, 그래도 엄기준은 연기를 잘했으니까 라는 소리를 듣고 싶다. 1년에 한 편씩이라도 연극을 하려는 이유도 그걸 위해서다. 결론은 저 놈은 뭘 시켜도 잘 하니까, 못하진 않으니까, 그런 소리가 듣고 싶은 거다.
10년을 넘게 무대에서 활동해오면서 혹시 자신의 길을 의심해본 적은 없나? 앞만 보고 온 거 같다. 어떻게 하면 연기를 잘할 수 있을까. 다만 딱 한번 딜레마가 온 적이 있었다고 해야 하나. 그러니까 여태껏 조금씩 나아지는 모습을 보이면서 열심히 걸어왔는데 한번 정체된 느낌을 얻게 된 순간이 있었다. 2003년 정도였나, 앞으로 갈 길은 놓여있는 거 같긴 한데 계속 올라가도 끝은 보이지 않고, 그렇게 계속 제자리 걸음 하고 있는 거 같았다. 같이 연극하는 누나한테 그에 대해서 물어보니까 극복할 방법은 없다고 했다. 그냥 네가 꾸준히 열심히 하면 어느 순간 뭔가가 좀 나올 거라고만 얘기해 주시더라.
지금은 어떤가? 무대에서 벗어나 드라마를 하는 만큼 도전적인 기분을 느끼기도 하겠지만 한 편으로 환경이 변한 만큼 또 다른 매너리즘이 오기 쉬운 상황이 아닐까.
로마에 가면 로마 법을 따라야지. 난 그렇게 생각한다. 상황에 따라서 마음껏 바꿀 수 있는 것도 배우의 능력이 아닐까.
5월부터 뮤지컬 <삼총사>를 공연할 예정이다. 박건형 씨와 ‘달타냥’ 역할에 더블 캐스팅 됐는데 ‘삼총사’에서 달타냥은 아토스와 함께 인상적인 캐릭터라고 할 수 있다.
이번 공연은 특별히 아토스나 달타냥에 포커싱이 맞춰져 있진 않다. 브루투스나 아라미스까지 네 캐릭터에게 동등하게 포커싱이 맞춰져 있다. 각자 자기만의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기 떄문에 특별히 주인공이 누구라고 말하긴 어렵지. 그런 면에서 보면 원작보다 달타냥과 아토스의 비중이 없어졌다고 할 수 있을 정도랄까.
지금 출연 중인 주말연속극 촬영과 함께 리허설도 병행하고 있겠다.
덕분에 종종 리허설에 빠질 수 밖에 없어서 건형 씨한테 미안해 죽겠습니다. (웃음)
스케줄이 겹치면 아무래도 힘들 텐데, 사실 이런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지 않나.
<김치>때도 <미친 키스>와 <실연남녀>를 같이 했으니까.
그렇게 스케줄을 병행하면 체력적으로 무리가 올 텐데. 그래서 링거 맞아가면서 했다. (웃음) 그 때까지만 해도 링거주사라는 걸 한번도 안 맞아봤는데 어느 날 아침에 <김치> 첫 씬을 찍으려는데 갑자기 핑 돌더니 나도 모르게 주저앉게 되고 식은 땀이 나더라. 혜영이 누나와 같이 촬영할 때라서 혜영이 누나한테 얘기했더니 자기가 잘 아는 데가 있다고, 좋은 주사를 놔주는 곳이 있다고 알려줬다. 그래서 거기 가서 주사 한대 맞고, 그 이후로 <김치>끝날 때까지 한 달에 한 대씩 맞아가면서 활동했다. 그런데 무슨 20만원이나 해. 한 시간 반 만에. 너무 비싸. (웃음)
여러 역할을 병행하면 캐릭터 간의 혼선이 생기는 경우는 없나?
오히려 되게 재미있다. 혼선이 생길 까봐 조심하게 되니까 집중하게 만들어주는 것도 있는 거 같다. 혹시나 내가 ‘싸친’을 연기하고 있는데 ‘승현’이 나오진 않겠지, 라는 생각. 반대로도 생각할 수 있고.
특별히 연기해보고 싶은 역할이 있나?
다양한 종류의 여러 역할을 맡아보고 싶지만 정말 해보고 싶은 역할은 완전히 싸이코 같은 극단적인 역할이다. 궁극적으로 내가 연기자로서 꿈꾸는 지점이나 목적이라 말할 수 있는 건 나이 일흔을 먹고도 연기할 수 있는 배우가 되는 거다. 그러려면 중간에 매장당하면 안되겠지. (웃음)
미니홈피에서 ‘Tesla’의 ‘Love song’이 나오던데 좋아하는 노래인가 보다.
95년도에 밴드를 결성해서 콘서트도 하고 그랬던 적이 있었다. 그 때 항상 들었던 게 락발라드였다. 아무래도 내가 부를 수 있는 쪽으로 노래를 듣게 되니까. 그 때 한참 좋아해던 노래가 ‘Love Song’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길거리에서 그 노래를 듣게 돼서 갑자기 생각나길래 나중에 싸이에서 찾아서 그 노래를 깔아놨다.
그 노래를 불러줄 사람을 찾는 것도 중요하지 않을까. 이제 결혼도 생각해야 할 나이인데.
아니. 나는 좀 더 이 쪽 바닥에서 쐐기를 박고 결혼하려고. 그리고 우리 어머니께서 정말 감사하게도 결혼하라는 압박도 안 주신다. 넌 아직 철이 없으니까 좀 더 철들고 나서 결혼하라고, 안 그러면 며느리가 정말 힘들 거라고. (웃음)
곧 개봉이다. 기분이 어떤가? 많이 긴장되지. 영화에 대한 반응이 좋지 않아도 문제지만 반응이 너무 좋아도 긴장된다. 최대한 담담해지려고 애쓰는데, 일단 지금은 어떤 결과가 나올지 궁금하다. 얼마 전에 하늘 씨랑도 얘기했지만 차라리 개봉해서 1주차가 빨리 지났으면 차라리 좋겠다. 뚜껑은 열어보지도 않았는데 분위기만 좋으니까 이게 오히려 힘들더라.
시험 뒤, 성적표 받기 직전의 기분이겠다.
차라리 빨리 봤으면 좋겠다.
세 번째 영화인데 앞의 두 영화와는 기분이 좀 다르지 않을까. 나름대로 이만큼 넉넉한 규모의 예산을 가지고 촬영에 임한 영화는 처음이지 않나.
아직 상업영화니, 저예산영화니, 그런 차이를 제대로 느껴본 것 같진 않다. 처음 했던 <방문자>는 말 그대로 연기의 ‘연’자도 몰랐을 때 그냥 무작정 했던 영화고, 두 번째인 <영화는 영화다>는 지섭 씨가 3년 만에 복귀하는 상업영화이긴 했지만 김기덕 감독님이 제작자로 나선 영화이기도 했다. 나도 드라마만 하다가 영화로 옮겨 타는 정식 작품이었기 때문에 일단 잘해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연기를 잘해야겠다. 내용 자체도 남자끼리 붙는 영화다 보니까 연기가 뒤지면 안 되겠다 싶더라.
드라마로 인지도를 쌓았던 만큼 영화는 일종의 도전이라고 볼 수도 있었다.
드라마에선 연기력 논란 같은 게 없었는데 영화에서 그런 게 나오면 어떡하나 걱정이 됐다. 캐릭터도 드라마와 완전히 상반된 캐릭터였기 때문에 무조건 잘해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촬영을 끝내고 나서 분에 넘치는 상도 많이 받았지만 그런 긴장감이 강했기 때문에 개운한 느낌이 없었다고 할까. 카메라 앞에서 떨었던 생각밖에 나지 않고, 상은 다 남들 때문에 받았던 거 같기도 하고. 그래서 그런 느낌을 좀 덜어버릴 수 있는 뭔가를 빨리 해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는데 그게 <7급 공무원>이 됐다.
아까 카메라 앞에서 긴장됐다고 했는데 작품을 거칠수록 그 역시 많이 경감돼 간다는 걸 느끼지 않나. 혹은 어떤 작품이 한 순간 그런 계기가 됐을 수도 있고.
어느 순간 한 작품 찍고 나니까 확 편해졌다고 할 수는 없다. 말 그대로 매번 여러 작품을 하게 되면서 경험적으로 조금씩 바뀌는 거 같다. 계속 한 작품 해나갈 때마다 전 작품보다는 나아지는 건 맞다.
<영화는 영화다>에서 수타는 거칠고 남성적인 역할이라서 기존에 맡았던 캐릭터와 대비되는 느낌이 있었는데 그런 이미지를 연출한다는 것 자체에서 오는 쾌감이 있진 않았나? 그런 걸 느끼기엔 시간적으로나 많은 여건들이 너무 힘든 상황이었다. 그러니까 준비가 잘된 여유 있는 상태에서 그런 연기를 할 수 있었던 거라면 신인상 받을 때 눈물이라도 흘렸을 텐데, 오히려 반대로 연기를 하는 도중에도 제대로 하고 있는 건지, 맞는 건지도 모르면서 조바심 내고 경직된 느낌이 강했다. 오히려 이제 <7급 공무원>으로 하고 싶은 걸 했다는 기분이 들어서 오히려 지금 시원하다. 이제는 영화 카메라 앞에서 떨지도 않을뿐더러 내가 하고 싶은 걸 해냈기 때문에 지금이 오히려 좀 시원해진 거 같다.
이재준이 손바닥을 오므렸다 폈다 하는 동작이 재미있더라. 그 외에도 캐릭터의 소심함을 대변하는 작은 동작들이 많았는데 그런 디테일한 설정은 직접 생각해 낸 건가?
맞다. 내가 다 만들었다. 이번 영화에서 대본이 차지하는 비중이 거의 60%면, 현장 애드립이나 분위기 파악하는 게 거의 3~40% 됐을 정도로 연구를 많이 해갔다.
원래부터 캐릭터의 디테일을 많이 설정하는 편인가?
특유의 손동작을 비롯한 애드립은 드라마에서부터 조금씩 해왔다. 그게 대본을 받아서 연기하는 주연배우의 의무라고 내 나름대로 생각한다. 작가가 쓴 대본을 대사로 받아들여서 읽기만 하는 건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거기에 뭔가 조금이라도 생명력을 불어넣기 위해서 나 스스로가 그런 작업을 즐긴다. 나를 거쳐간 대본에 새로운 디테일을 가미하는 걸 개인 자신만의 연기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마치 성룡 영화 끝에 나오는 NG장면이나 오우삼 영화에서 매번 나오는 비둘기처럼 트레이드 마크라고 할 수 있을만한.
방금 성룡과 오우삼을 말했는데 액션 영화를 좋아하는 편인가?
액션 영화는 원래 좋아하지만 그보단 기존의 성룡이란 배우를 많이 좋아한다.
타격감이 느껴지는 액션 영화를 좋아하는 편인가 보다.
아니, 그런 것과는 좀 다른 차원이다. 정말 어려서부터 성룡영화를 봤지만 단 한번도 재미없다고 느꼈던 적이 없었다. 그렇다고 성룡영화가 나에게 꿈과 희망이나 어떤 메시지를 줬다고 할 순 있는 부분이 있는 건 아니지만 극장에서든 TV로든, 영화를 보는 2시간 동안에는 아무 생각 없이 그 영화에 빠져서 즐길 수 있었다. 그리고 영화는 그래야 된다고 생각한다. 물론 드라마도 그렇고. 장르라던가 영화적 특성상 무언가 메시지를 담는 것도 좋지만 가장 기본적으로 재미있는 영화라고 생각해서 선택한 영화는 말 그대로 재미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7급 공무원>도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과 용기를 주는 영화라고 말은 못하겠다. 하지만 나는 <7급 공무원>이 말 그대로 편하게 웃으면서 즐길 수 있는 영화라고 생각해서 찍었고 그게 이 영화의 가장 큰 강점인 거 같다.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영화다.
사실 <7급 공무원>이 스토리가 훌륭한 영화는 아니지만 코미디로서의 장점이 그런 단점을 상쇄할만큰 탁월한 영화라고 생각한다. 이 영화의 코미디를 간과한 채 스토리를 지적하고 물고 늘어진다면 영화 대사처럼 ‘장난 한번 치니까 죽자고 덤벼드는’ 꼴이 될 거다. (웃음) 나는 일반관객과 함께 이 영화를 봤는데 관객반응이 상당히 좋다고 느꼈다. 일반시사에서 무대인사도 몇 번 한 걸로 아는데 혹시 상영관 분위기를 훔쳐본 적은 없나? 일단 여러 사람들과 함께 영화를 두 번 정도 봤다. 제일 처음에 했던 기술시사에서 스태프들과 같이 한번 봤는데 이게 웃어야 하는 영화임에도 반응이 너무 없어서 그 당시에 완전히 충격을 먹었었다. 그런데 다음날 신림동에서 이벤트 시사가 있다는 말을 듣고 신림동까지 모자를 뒤집어 쓰고 갔었다. 거기서 조금 안심이 되더라. 다시는 죽어도 기술시사엔 안 가야지. (웃음)
왜 그렇게 다들 무덤덤했을까.
다들 아는 내용이기도 하고. 배우가 처음 영화 보면 자기 연기부터 보듯이 조명은 조명보고, 분장은 분장보고, 그렇게 관점포인트가 다르니까 아무래도 그런 것 같다. 하지만 나는 그런 광경을 처음 봤으니까 너무나 충격을 받아서 당시엔 밤에 잠도 못 잤다. (웃음)
이런 코미디 영화를 봐주는 관객이 웃지 않는다면 배우입장에서는 당연히 긴장되겠다.
배우는 관객들에게 보여지기 위해 연기를 하는데 그에 대한 반응이 냉담하면 작업 자체가 무의미해지는 것이겠지.
드라마부터 영화까지 줄곧 주연을 맡아왔다. 나름대로 입지를 다지는데 성공했다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런데 주연이라면 작품 자체의 얼굴이니만큼 부담되는 부분도 없지 않을 거다. 그런 부담감에서 자유로운 편인가?
나는 엄청 심하다. 드라마 할 당시만 해도 시청률에 엄청 민감했거든. 아까 얘기했던 것과 좀 겹치는 부분이지만 말 그대로 사람들이 봐주라고 연기하는데 안 봐줘서 시청률이 낮으면 그것만큼 힘든 일이 없다. 그렇게 되면 일차적으로 떠오르는 게, ‘내가 연기를 못해서 그러나’, 아니면 ‘내가 스타가 아니라서 인지도나 없기 때문에 그런 건 아닌가’, 이런 식으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 예전에 아침드라마 할 땐, 방송 나간 다음날 아침 6시, 7시부터 ‘TNS’사이트 들락날락 거리면서 시청률을 확인할 정도로 신경을 많이 썼다. 게다가 난 드라마 같은 경우 매번 운 없게도 30%넘는 드라마들하고 계속 같이 붙었다. <황진이>, <쩐의전쟁>, <뉴하트>, 다 30%넘은 드라마거든. 우리 드라마가 상도 많이 받고 절대 나쁜 작품이 아니었는데 매번 빛을 못 봤다. 특히 미니시리즈 같은 경우는 거의 밤을 새고 고생해서 찍는데 반응이 없으면 미친다. 뭐라고 말로 하기엔 그런 게 너무 힘들지.
작품에 대한 자부심이 크지만 성적이 따라주지 않기 때문에 더 마음이 안 좋았을지도 모르겠다. 많이 안 좋지. 그런 상대적 박탈감으로 유독 힘들었지만 다행히도 <영화는 영화다>를 하면서 짐을 벗을 수 있었던 거 같다. 물론 <영화는 영화다> 하나뿐이라 이런 말이 우습긴 하지만 지금 <7급 공무원>반응이 좋다 보니까 그런 답답한 징크스를 한번 더 시원하게 해소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바람이 큰 게 사실이다.
첫 영화가 신동일 감독의 <방문자>였다. 사실 국내에서 개봉이 불투명한 저예산 영화이기도 했고 마음에 걸리는 부분은 없었나?
그 당시는 내가 뮤지컬을 끝낸 뒤 아침 드라마 같은 작품에서 조연이나 단역을 했던 시기였다. 그런데 그 뒤로 찾아주는 이도 없고, 일이 없더라. 오히려 조금 연기 맛을 보고 좀 더 해보고 싶어질 때부터 일이 끊기니까 그게 너무 힘들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내가 <방문자>를 시작하게 됐을 당시에 연기에 대해서 고뇌했던 건 아니었다. 몇 개월 동안 일거리도 없어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을 때 그저 주인공 오디션이란 말에 혹해서 오디션을 보러 갔었다. 내용 자체도 ‘여호와의 증인’이란 종교적 소재를 다룬다니 이게 재미있다고 느꼈겠나. 사실 처음엔 대본 내용도 잘 모르고 영화에 대해서 정말 아무 것도 몰랐다. 그냥 단지 주인공이란 단어 하나 때문에 연기가 하고 싶었고, 카메라 앞에 서고 싶었지. 처음엔 그런 좋지 않은 의도로 시작했다. 하지만 작업을 하게 되면서 나중엔 좀 변하게 됐다. 결과적으로 대본을 열심히 파면서 연기하게 됐고 덕분에 <방문자> 막바지에 있었던 <굳세어라 금순아> 오디션도 통과할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결과적으로 나에겐 좋은 작품이었던 셈이다.
배우로서 연기 욕심이 앞선다는 건 부끄러운 일은 아닐 거다. 그런 욕심이 자신에게 있어서 어떤 자양분을 얻는 계기가 됐으니까 결과적으론 양화라고 봐야지. 그런데 최근 몇몇 인터뷰를 보니 배우 이전에 특이한 경력이 있다고 밝혔더라. 우여곡절 끝에 회사에 입사했고, 전공도 그래픽 분야던데, 연기를 생각한 계기는 뭔가?
아버지께서 영화를 좋아하셔서 어렸을 때부터 영화를 되게 많이 봤다. 교인들이 일요일에 교회 나가는 것처럼 나는 당연히 일요일은 극장가는 날인지 알았다. 아버지께서 항상 동네에 있는 동시상영극장에 가셨는데 아들이 하나뿐이다 보니까 항상 데리고 가셨지. 그렇게 자연스럽게 영화를 접했다. 사춘기 때는 멋있는 장면이나 여배우와의 키스 씬을 보면서 나도 배우가 되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을 갖곤 했다. 그런데 영화를 좋아하는 집안 분위기에 노출돼있다 보니까 그런 생각이 없어지지 않더라.
아버지께서 아들이 배우라는 사실을 좋아하시겠다.
많이 좋아하시고 뿌듯해하신다.
배우로서의 진로를 구체적으로 계획하게 된 건 언제인가? 군대 있을 때 생각했다. 뭔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해봐야 나중에 나이를 먹고 그래도 후회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지. 군대에서 인생설계를 하면서 확고하게 정리가 됐다. 서른이 되게 전까지 20대를 내 꿈에 투자해보겠다는 생각을 했다.
뮤지컬을 통해 데뷔했고, 드라마로 이름을 알렸다. 지금은 영화를 통해 인지도를 넓히는 중이다. 연기를 꿈꾸게 만든 계기가 영화였던 만큼 영화에 애착이 있을 것 같다.
뭐, 그런 건 없다. 그냥 중요한 건 배우, 연기였다. 지금 와서도 느끼는 건 드라마나 영화나 다양한 장르를 겪어보니까 작업환경이나 찍고 나서의 분위기만 다를 뿐이더라. 물론 영화 두 작품 해놓고 영화에 대해서 뭘 안다고 말할 수 있겠나. 단지 그냥 카메라 앞에 설 땐 마찬가지로 처음엔 항상 떨렸던 거 같다.
드라마와 영화는 제작 과정의 차이보다도 결과물의 감상 방식에 따른 차이가 두 매체의 차이를 두드러지게 만든다. 영화는 아무래도 스크린으로 보는 만큼 브라운관을 통해서 자기 얼굴을 인식하게 되는 드라마와 판이한 감상을 줄 것 같다.
처음엔 짜릿했지. 솔직히 이런 느낌을 알게 된 건 <방문자>때보단 <영화는 영화다>기술시사에서였다. 스크린을 보는 동시에 웅장한 사운드가 들리는데 정말 짜릿했다. TV브라운관을 통해서 내 연기를 볼 때는 다른 집에 있는 사람들이 내 작품을 어떻게 보는지 모른다. 그런데 극장에선 바로 옆에 있는 사람의 웃음소리나 숨소리를 느끼면서 볼 수 있다는 게 정말 엄청난 매력인 거 같다.
자신이 만든 결과물에 대한 누군가의 반응을 살핀다는 것 자체가 재미있는 일이 될 거 같다. 그런데 최근 인터뷰 기사에서 아나운서 양성 학원에 다닌다는 말을 했더라. 목소리에 대한 문제라도 느낀 건가?
드라마 할 때는 전혀 못 느꼈지만 <영화를 영화다>를 하고 나니까 발음이나 목소리 톤에 대한 지적이 조금씩 들렸다. 물론 그런 것에 전혀 개의치 않으려 한다. 하지만 내게 시간이 있을 때 그런 부분을 조금만 보완하면 오히려 그런 측면을 내 장점으로 승화시킬 수 있을 거 같았다. 그래서 먼저 부족한 부분을 채우기 위해서 공부를 하게 됐다.
종종 대사를 할 때 목소리 톤이 급격한 하이톤으로 올라간다고 느껴지긴 하더라.
사람 목소리가 다 똑같을 순 없다. 물론 기본적으로 사람들이 원하는 연기나 발음, 발성은 당연히 중요하지. 그런데 사람의 감정이 올라가다 보면 말 그대로 목소리가 갈라질 수도 있지 않나. 특히 연기를 표현함에 있어서 그런 부분이 자연스러움이 될 수도 있다고 본다. 모든 발음을 있는 그대로 전달하는 게 연기의 전부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처음엔 목소리 기본톤이 하이톤이라서 내가 잘못된 건 줄 알고 무조건 고치려고 했지만 지금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대신 시청자나 관객들이 그 의사만 제대로 알 수만 있을 만큼 너무 벗어나지 않는 한도 내에서 연기할 수 있으면 그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을 거라 생각한다. 발음이나 발성이 좋은 ‘FM(Field Manual)’연기자도 많겠지. 나는 내 연기가 ‘AM’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정말 많은 종류의 사람이 있는 것처럼 많은 종류의 배우도 있다고 생각한다. 만약 많은 분들께서 지적해주시는 게 있고 그걸 내가 고치거나 다듬을 수 있다면 다음 작품을 위해서도 좋은 일이겠지. 딱 그 정도까지만 생각하려고 한다.
일단 대화를 나눠보니 당신이 상당히 조심스러운 사람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당신이 연기한 캐릭터들은 때때로 과감하다. <7급 공무원>의 재준은 소심한 듯 고집이 세고, <영화는 영화다>의 수타는 건방지고 자존심이 세다. 드라마에서는 때때로 뺀질거리는 캐릭터를 보여주기도 했다. 연기를 통해서 가끔씩 자신도 모르는 스스로를 발견하는 경우를 느낀 적은 없나?
그러니까 ‘나에게 이런 면이?’ 이런 거다. 덕분에 내게도 배우의 피가 흐른다고 생각할 수 있는 거 같고. 물론 내가 잘할 수 있을 것 같은 부분이 쉽게 보이는 대본이 잘 읽히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배우는 연기변신이 필요하니까 쉽지 않을 것 같은 생소한 캐릭터에 도전하기도 하는데 솔직히 그만큼 겁도 난다. ‘내가 과연 이걸 표현할 수 있을까?’ 그러나 막상 하면 하게 된다. 그러면서 내 자신에게 놀라기도 하고, 그런 매력 때문에 이 일을 놓을 수 없게 되는 거 같다. 오히려 같은 것만 계속 하면 물리겠지. 매번 작품을 선택할 때 저번엔 이런 역할을 했으니까 이번엔 다른 느낌을 얻을 만한 캐릭터를 선택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겁도 나지만 그걸 즐길 수 있는 거 같다.
<7급 공무원>은 캐릭터를 연기하기 위해서 배워야 되는 것도 많았을 거 같다. 펜싱을 하기도 하고, 말을 타기도 하고, 심지어 총 잡는 법이라도 익혀야 할 것 같고.
오히려 나는 다 배우지 않았다. 수지는 베테랑 요원이기 때문에 뭐든 잘해야 되니까 배우는 게 맞는데 재준은 뭐든 의욕만 앞서고 서툴러야 하니까 어설픈 그대로 보여주는 게 재준의 모습이라 생각해서 오히려 일부로 배우거나 연습하지 않았다. 단지 내가 그 촬영장에서 타게 될 말이나 오토바이는 일단 연기를 위해서 경험만 해보는 정도로 타기만 해봤지. 그래서 많은 분들이 불안하다고 연습 좀 해야 되지 않냐고 하긴 했다. 그런데 일단 처음에 한번 접해보면 내가 할 수 있을지, 없을지, 느껴지지 않나. 한번 해보니까 현장에서 어설픈 상태로 어느 정도 가능할 것 같아서 일부로 배우지 않았다.
말 타는 장면의 어설픔은 연기가 아니었던 건가. (웃음) 나름대로 실제적인 캐릭터에 접근하려고 노력하나 보다. 어떤 캐릭터라도 그 인물의 희로애락을 보여주기 위해 일부로 디테일한 작업을 하는 편이다. 아무리 악한 사람이라도 그 사람에게 착한 부분이 1%라도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기 때문에 그런 부분까지 살리려고 노력하고 싶다.
캐릭터의 희로애락은 표현하려 애쓰는 만큼 본인의 희로애락도 잘 챙기는 편인가?
글쎄. 정작 나는 잘 표현하지 못하기 때문에 아마 그렇게 연기로나마 뭔가를 표현하려고 하는 게 아닐까.
<7급 공무원>의 이재준은 자신의 애인에게조차 신분을 속이며 살아야 한다. 반대로 자신은 연예인으로서 신분을 노출하고 살아야 되는 처지다.
개의치 않으려고 많이 노력하는 편이다. 내가 예능 출연을 하고 싶지 않은 건 일단 연기자로서 자기가 맡은 바만 잘하면 되지, 그런 곳에서 사생활까지 말해가며 사람들에게 웃음을 줄 필요까진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분명 스트레스를 받기도 한다. 사람들의 시선을 많이 받을수록 인기가 올라가지만 너무 사소한 거 하나까지도 노출되고, 전혀 뜻하지 않은 구설수까지 생기니까. 어떤 분들은 그런 게 다 관심의 표현이라고 말씀하시고 그만큼 좋은 점도 있지만 그런 덕분에 힘든 부분도 많다. 내 위치가 조금씩 올라갈수록 자유롭던 활동범위가 예전보다 점점 좁아진다는 걸 느낀다. 그러면서 이젠 밖에 노출되는 것도 최대한 자제해야 되고, 뭔가를 많이 해보거나 즐겨야 할 시기에 집에 혼자 있는 내 자신을 보면서 내가 꿈을 위해서 한 걸음씩 다가서는 건 맞지만 이렇게 사는 게 내 삶이 맞긴 맞는 건지 스스로 의문이 들 때도 있다.
연기를 그만 두지 않는 이상 스스로 극복해내야 할 수 밖에 없다.
말 그대로 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도 있으니까 조금이나마 더 좋은 점을 찾으려고 노력해야지. 어쩔 수 없는 직업 특성상 많은 관심을 필요로 하는 만큼 책임져야 할 부분들이 많이 늘었다는 건 감내해야 할 사실이니까 원치 않았다 해도 내가 하는 일을 위해선 조금이라도 여유를 가지려고 한다. 이왕 오픈해야 되는 부분이라면 최대한 재미있게 즐겨보려고 노력하는 쪽으로 많이 바뀌는 거 같다.
그 동안 많은 여배우와 호흡을 맞춰왔다. <7급 공무원>에서 호흡을 맞춘 김하늘 씨는 예전에 미니시리즈 <90일, 사랑할 시간>를 함께 하며 이미 한차례 호흡을 맞춘 경험이 있다. 예전에 함께 작품을 했던 상대를 만나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는데 확실히 편하지 않던가? 일단 상대방의 대사톤이 어떤 스타일인지 알고 있기 때문에 대본을 읽는 것부터 편하다. 그리고 리액션의 연기라고도 하듯이 상대방이 연기를 잘하면 내 부족한 부분까지 채워지고 내 연기에도 시너지 효과가 난다. 일단 김하늘 씨가 캐스팅됐다고 하길래 그 부분에 대해서는 일단 안심했다. ‘김하늘’하면 이미 연기적으로 인정받은 배우니까. 두 번째는, 연기도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하는 거니 처음엔 어색함이 있다. 그만큼 교감을 위해서 친해져야 한다. 그러려면 밥도 먹어야 되고, 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그게 잘 안되면 연기할 때, 이 사람이 어떤 톤으로 준비해왔을까 궁금해도 물어보기조차 어렵게 된다. 그런데 하늘 씨와는 워낙 잘 아는 사이다 보니까 그런 과정을 몽땅 다 들어낼 수 있었다. 처음 만나자 마자, “내일 시간 돼? 대사 한번 맞춰보자.” 이런 말이 바로 나오는 거지. 그런 시간들이 축소되면서 조금 더 빨리 연기에 몰입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당신과 김하늘 씨가 영화의 에이스라면 류승룡 씨와 장영남 씨는 조커와 같다. 조연배우들의 뒷받침이 그만큼 효과적이고, 안정적이었다.
류승룡 선배님과는 함께 붙어서 연기하는 경우가 많아서 많은 걸 느낄 수 있었다. 무전기로 대화하는 장면 같은 경우는 내 분량을 먼저 다 찍은 걸 선배님이 보고 거기에 맞춰서 연기하는 식으로 이뤄졌다. 서로 연기를 맞춰볼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아무래도 그래서 본인이 준비해온 것들이 있더라도 그것들을 정해진 상황에 맞춰서 어쩔 수 없이 바꿔야 하는 경우도 많았을 텐데, 그럼에도 내 연기에 맞춰서 그 상황을 너무나 맛깔스럽게 살려주셨다. 주인공이 나오지 않는 씬에서 재미있는 톤이 이어진 건 다 선배들 덕분이었던 거 같다.
이재준은 상당히 고집이 센 캐릭터다. 상관에게 노트북 비밀번호도 절대 안 알려준다. (웃음) 그리고 <영화는 영화다>의 수타는 상당히 자존심이 센 캐릭터다. 재준과 수타는 그만큼 자기 욕심이 강한 캐릭터다. 당신도 어떤 욕심을 갖고 사는 사람인가?
욕심이라기 보단 목표를 위해 가는 사람이라고 하고 싶다. 쉽게 얘기해서 지금 내 위치는 주연배우를 맡고 있긴 하지만 톱스타도 아니고, 톱스타와 주연 사이에 있는 애매한 위치라고 생각한다. 연기나 스타성을 모두 지닌, 말 그대로 정상의 톱배우를 목표로 두고 있는 건 맞다. 이왕 연기자로 사는 거 당연히 정상에 서고 싶지. 정상을 판단하는 척도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일단 나는 아직 내가 생각하는 수준에 못 다다랐기 때문에 그만큼 위로 올라가기 위해서 더 노력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25살에 데뷔했으니 요즘 연기자들에 비해서 빠른 데뷔는 아니다. 어떤 불안함은 없었나? 있었지. 그렇기 때문에 나는 그 당시에 이미 계획이 있었는데, 서른 되기 전에 자리를 못 잡으면 연기를 그만 둬야겠다고 생각했었다. 대신 인생을 걸고 한번 해보는 것이니만큼 내 20대를 다 바쳐서 내 꿈을 펼쳐보자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막상 시작하고 나니까 서른이란 나이는 가까이 오는데 돈 한 푼도 벌지 못하고, 친구들은 다 하나씩 자리잡아가는데 난 앞날에 빛이 없고, 정답을 가르쳐주거나 어떤 얘기도 해주는 사람 없이 모든 걸 다 혼자 해야 된다는 걸 느껴서 정말 힘들었다. 다행히도 스물 아홉에 했던 <굳세어라 금순아>가 잘돼서 연기를 계속 할 수 있게 됐지만 그 당시 스물아홉이라는 나이를 앞두고 얼마나 많이 불안했겠나. 결과적으로 지금에 와서 잘 됐지만 중간에 정말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도 많았다. 막상 서른이 되면 어떻게 할까 고민도 됐고. 20대를 다 바쳐서 여기까지 왔는데 막상 계획대로 버리고 가자니 20대가 아깝지 않을까 싶은 거지.
서른이 넘었는데도 아직 연기를 하고 있으니 일단 성공한 셈이다.
일단 그런 셈이지. 하지만 지금부터 또 잘해야 된다. 꿈을 갖고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 다들 그렇듯이.
스스로 긍정적인 편인가?
글쎄, 그건 모르겠는데. 그건 아닌 거 같다.
근래 인터뷰 기사를 보면 예전에 회사에 입사해서 쓰레기통을 비웠다는 일화가 등장하던데, 그런 걸 보면 조금 무모할 정도로 용감한 면이 있는 거 같다. 그런 면에 있어서는 긍정적인 사람이라고 볼 수 있지 않나.
단지 뭔가 해야 될 목적이 정해지면 거기에 대해서는 최선을 다하려고 조금 노력하는 편인 거 같다. 그리고 아까 말했던 것처럼 모르면 용감해진다. 회사 들어갈 때도 아무 것도 모르니까 제대로 내밀 학력도 없이 일단 날 써보라고 했던 거고, 심지어 뮤지컬 오디션 볼 때도 그랬다. 말 그대로 모르면 용감하다. 대신 또 하라면 절대 못하지. (웃음)
이제 너무 많은 걸 알아버렸으니까. (웃음) 사실 요즘은 연기를 전공하는 배우도 많은데 본인은 연기를 전공한 것도 아니었다.
연기학원도 다니긴 다녔었다. 하지만 내가 느낀 건 아무리 강의를 듣고 뭘 하는 것보단 현장에서 단역으로라도 대사 한마디 해보는 게 더 낫다는 거다. 이건 내가 나름대로 일궈낸 진리다.
지금까지 당신을 연기자로 키운 건 팔 할이 생활력이었나 보다. (웃음)
그러니까 못하면 노력하는 수밖에 없었지. 일일드라마하던 당시에도 잘리지 않으려고 발버둥쳤던 것처럼, 못하니까 열심히 해야 하는 것 같고, 모르면 용감한 거 같다. 만약에 내가 연기를 잘한다고 생각하거나 얼굴이 정말 꽃미남이라면 그렇지 않았을 수도 있었겠지. 그런데 내 생각엔 내가 뭔가 어정쩡하다고 느끼기 때문에 그걸 다 완벽하게 메우기 위해서 더 열심히 하는 거고, 이런 성격이 장점으로 작용이 되는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