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작 <폭력의 역사>와 마찬가지로 데이빗 크로넨버그의 <이스턴 프라미스>는 관객을 폭력의 현장에 무덤덤하게 노출시키며 이야기를 꺼내 든다. 날이 선 면도칼은 사람의 목을 갈라 피를 쏟아내고, 약국에 들어와 도움을 청하던 임산부는 발 아래로 하혈하다 쓰러진다. 시작부터 피가 흥건하다. 그 거리엔 피가 흐른다. 포도주를 따르듯 피를 부르는 무리들이 조용히 살아간다. <이스턴 프라미스>는 피의 거래로 거리를 장악한 이들의 살벌한 언약에 발을 담게 된 자의 이야기다. 폭력에 가담한 그 손아귀에서 달아날 수 없다. 더 이상 헤어날 수 없는 침전된 삶에 발목을 잡힌다.

Posted by 민용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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덥다라는 말까지 녹아내렸다.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이다 어느 순간 눈을 번쩍 뜨니 중천에 뜬 해가 이마에 땀방울을 만들어냈음을 알고 구부정하게 등을 뗐다.
박태환이 금메달을 땄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44년만의 쾌거니, 대한민국 만세니, 일단 닥치고 박태환 선수 수고했어요. 남은 경기 일정도 최선을 다해서 많은 노력만큼이나 좋은 성과 거두길.
지구 한편에서는 축제분위기로 떠들썩한데 어느 한편에서는 죽음 앞에 대면한 사람들의 비명과 흐느낌으로 아비규환이 됐다 한다. 쑥대밭이 따로 없다. 죽은 이는 차라리 말이 없다. 살아남은 자들의 슬픔과 고통이 절절하게 남아서 떠돌 뿐.
베이징 올림픽 슬로건이 One World. One Dream이란다. 하나의 세상이라, 그것이 가능할까. 가능했으면 좋겠다. 하지만 실상이 이렇다. 이 순간에도 세상은 각자의 초침을 돌리고 있다. 어떤 이는 새로운 희망을 탐닉하지만 어떤 이는 지독한 좌절을 맞이한다. 해가 뜨는 반대편에서는 해가 진다. 하나의 세상이란 것이 말처럼 쉽다면 올림픽 따윈 필요하지 않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화합과 평화라는 슬로건은 그 반대편에 선 무언가를 경계하는 좌표인 것을, 우린 얼마나 직시하고 있을까. 눈 앞의 유희를 탐닉하고 있을 때, 저 너머에선 그것이 본래 두려워하던 비극이 비웃듯 도사리고 있다.

날씨가 덥다. 세상이 타오르듯 밤이 되도 땅은 식을 줄 모른다. 아이구, 더워. 하긴 나조차도 날 숨막히게 하는 더위가 먼 나라의 비극보다 가깝다. 하나의 세상이란 정녕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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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이 개막됐다. 장예모가 연출한 천이백억 짜리 개막식 공연이 화제다. 역시 중국은 쪽수면 장땡, 이란 반응부터 장예모의 블록버스터 클리셰라는 말까지, 물론 호화롭고 웅장했을 것이다. 물론 난 안 봤다. 관심이 없어서도 아니고, 솔직히 말하자면 오늘이 베이징 올림픽 개막식인지 몰랐다. 맙소사. 그저 오늘 갑자기 잡힌 인터뷰 준비로 2시간 밖에 잠을 못 잤고 날씨가 미친듯이 더웠을 뿐이다. 알았으면 봤겠지. 혀를 차든 우와, 하든 간에 단 한번뿐인 볼거리는 일단 봐두는 게 상책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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