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환(이하 서): 힘들어 보인다.
유지태(이하 유): 난 하나도 안 힘든데, 혜교씨가 진짜 힘든 것 같다. 한국 여배우 중에 이렇게 인터뷰 많이 한 여배우는 없을걸.
민용준(이하 민): <황진이>에 대한 기대감이 크기 때문에 한국영화의 위기의식이 혜교씨에게 덧씌워진 탓도 있을 것 같다. 그런 영화 외적인 부분들로 인한 개인적인 부담감이 있을 법도 한데?
송혜교(이하 송): 연기할 때는 그런 부담감을 느끼거나 생각할 여력이 없었다. 연기만으로도 버겁고 벅찼기 때문에 다른 생각을 못했던 거지. 오히려 요즘 홍보하면서 만나는 기자님들이 하시는 말 한마디 한마디 때문에 더 부담이 되고 있는 게 아닐까.
서: 영화를 본 소감은 어떤가?
송: 처음 그리고자 했던 데로 잘 나온 거 같다. 그런데 작품을 본 모든 분들의 마음에 다 들 수는 없겠지. 처음 의도한대로 작품이 나왔기에 난 만족한다.
유: 메이킹이 마음에 들어서 흡족했지.
민: 원작을 봤겠지만, 개인적인 생각에 원작에 비해 영화는 무게감을 많이 줄인 느낌이다. 로맨스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냈기 때문인 것 같기도 하고.
유: <황진이>는 100억이 든 영화다. 소설이나 영화나 둘 다 대중 예술에 속하지만 두 분야는 각각 상업적으로 소비될 수 있는 규모나 지속성이 다르다. 마켓에서의 유효성을 보자면 소설에 비해 영화는 단기간이다. 아마도 원작을 고스란히 스크린에 옮기기엔 대중과 호흡에 불편한 느낌이 있었을 거다. 그래서 대중성을 살리다 보니 멜로 라인이 부각됐던 게 사실이지. 영화가 관객들에게 쉽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 것도 중요하니까. 단지 영화와 소설의 차이를 꼬집기 보단, 소설을 보는 재미만큼 영화를 보는 재미를 발견했으면 좋겠다. 종종 소설 원작 영화들이 소설에 짓눌리는 경우가 많지 않나? 예를 들면 <제5원소>나 <다빈치 코드>처럼. 난 <황진이>에 관해선 감독님의 선택이 현명하다고 생각한다.
민: <황진이>의 시나리오를 펼치기 전엔 기존의 황진이를 먼저 떠올리고 접근했을 법도 하다. 그런데 시나리오 속 황진이가 그런 관점과 다르다는 점은 묘했을 법도 한데.
유: 그게 우리 <황진이>의 매력이지.
서: 인간 황진이에 집중하기 위한 감독의 의도 때문에 상대적으로 예인 황진이의 모습은 많이 눌렸다. 반면, 놈이 캐릭터는 인간 놈이보다 의적 놈이에 더 많이 집중을 한 느낌이다. 그런데 황진이와 놈이 캐릭터를 함께 살리다보니 영화에 집중하기 힘들단 생각도 들었다.
유: 그럴 수도 있겠지. 하지만 <황진이>의 스토리 라인을 끌고 가는 건 놈이이기도 하다. 원작을 봤다면 알겠지만.
서: 원작은 놈이를 소위 임꺽정 같은 인물처럼 묘사하며 중요하게 다뤘지만 사실 <황진이>를 찾는 관객들에게 그 부분에 대한 기대치는 솔직히 없다고 본다. 황진이의 인생 굴곡과 사랑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놈이의 역할은 충분했을 텐데 굳이 놈이를 부각시켜서 영화에 끌고 와야 했을까란 의문이 들었다.
유: 서로 상호작용을 해야 되는데 방해가 된다고 느낀다면 그건 문제가 있는 거겠지. 편집을 잘못 했을 수도 있는 거고. 하지만 그와 반대로 황진이와 놈이의 교감에 대한 상호작용을 통해 감동을 느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또 황진이에만 집중했다면 예인 황진이를 부각시켜야 했을 수도 있고.
민: 둘 다 오랜 연기경력을 지녔음에도 사극은 처음이다. 어땠나?
송: 연기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감정 씬들에 대한 어려움보단, 처음이라선지 사극 대사가 너무 어려웠다. 간단한 의미의 대사들임에도 불구하고, 의도한 대로 나오지 않아서 방황하거나 긴장한 적도 있었다. 그런 것들 때문에 초반에 힘들었고,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지. 그런데 그때마다 감독님께서 도와주시고, 현장 분위기가 익어갈수록 나도 자리 잡기 시작하면서 그런 두려움들도 많이 없어졌다. 그 이후로는 수월하게 진행된 거 같다. 여러 가지로.
서: 기존의 연기와는 다른 점이 많은데 캐릭터를 잡아갈 때 어떤 것에 중점을 두었나?
송: 그런 질문들 참 많이 한다. 그런데 난 지금까지 어떤 모델을 두거나, 어디에 중점을 두면서 계산된 연기를 해본 적이 없다. ‘여기서 난 이렇게 표현을 할 거야.’했을 때, 정말 내가 원하는 대로 표현된다면 난 정말 천재겠지. 물론 계산된 연기를 하시는 분들도 있겠지만 난 그렇게 하고 싶어도 그렇게 되지도 않고. 영화를 찍는 몇 개월 동안 시나리오를 끼고 황진이로 살면서 매순간순간 느끼는 그대로, 그냥 매 순간순간의 몰입으로 연기를 할 뿐이다. 어떤 것에 중점을 두고 하는지는 모르겠고, 어떻게 하는 지도 모른다.
서: 결과적으로 본인의 연기에 대한 느낌은 어떤가?
송: 본인의 연기를 보고 만족하는 배우들은 없지 않나.
유: 잘 했지. (웃음)
송: 난 아쉬운 것도 많고, ‘의외로 나에게 저런 면이 있었구나’싶은 재미있는 부분도 있었고, 반반?
유: 그 정도면 잘 한 거 아냐? (웃음)
송: 억지로 막 이래. (웃음)
민: 개인적으로 혜교 씨의 황진이는 송혜교 절반에 황진이 절반을 섞어놓은 느낌이더라.
유: 연기에 배우의 색깔이 들어간다는 말처럼, 송혜교씨의 색깔이 드러나지 않으면 그 송혜교의 황진이가 아니겠지.
민: 매력적인 캐릭터를 연기한다는 건 배우한테 설레는 일이니까, 그런데 그런 캐릭터를 자기만의 느낌으로 지닐 수 있다면 더없이 특별한 일일 것 같다.
유: 배우는 자기 색깔로 연기하는 게 가장 중요한 거라고 생각한다.
서: 유지태 씨의 색깔은 뭐라고 생각하나?
유: 유지태의 색깔이겠지. (웃음)
서: 정말 만약이지만, <황진이>가 흥행에 실패해도 송혜교는 성공적으로 영화계에 안착할 수 있지 않을까란 생각이 든다.
송: 정말요? 다행이다. (웃음)
서: <파랑주의보> 때는 흥행 참패 여부를 떠나 드라마 속 이미지를 고스란히 스크린에 끌고 왔다는 인상이 있었다.
송: 그건 내가 수락한 거다. 왜냐면 스크린에 처음 진출하는 거고, 내 영향력이 어느 정도인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무작정 큰 역할, 큰 영화에 출연하고 싶지는 않았다. 너무 모험 없이 안전하게 가려는 게 아니냐는 말도 많이 들었지만, 일단 내가 기존에 잘 하는 것들로 새로운 곳에서 시작하고 싶었다. 남들이 뭐라 그러던 간에. 결국 좋은 결과는 안 나왔지만, 그 때 아팠던 건 그 때 다 털어버리면 끝이다. 물론 이번 <황진이>는 잘 됐으면 좋겠지. (웃음) 하지만 얻은 게 많다. 흥행을 떠나서 이렇게 큰 작품을 만났다는 것만으로 행운인 것 같고, 황진이를 연기했다는 것만으로도 영광스럽고, 그것만으로도 난 거의 다 가졌지. 거기서 흥행이라는 것까지 갖게 되면 더욱 좋겠지만, 일단 내가 연기자로서 갖고 싶었던 것들은 다 갖게 된 거 같다.
민: 작품에 대한 욕심도 있었겠지만 연기 변신에 대한 욕심도 분명 <황진이>를 선택하는데 작용했을 거란 생각이 드는데.
송: 그게 없다면 거짓말이겠지만, 기존의 이미지를 벗어버리고 싶다거나 탈퇴하고 싶다는 마음이 강하진 않았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날 지켜보는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이미지를 바꾸고 싶다고 생각했던 것보단, 본인 자체가 기존에 비슷한 인물을 계속 연기하다 보니까 재미도 없고, 흥도 안 나고, 어떤 연기를 해도 성취감도 안 들었던 것 같다.
민: 가끔은 역할에 갇히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송: 기존의 연기가 싫다는 건 아니다. 그냥 너무 많이 하다 보니까 내 스스로가 너무 재미가 없었다. 그렇다고 이제 또 다른 역할을 하고 싶다 해서 무작정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어느 배우건 새로운 역할을 하고 싶고, 또 다른 새로운 역할을 찾지만 그에 반해 영화를 만드는 분들은 그 배우의 한 가지 면만을 보고 비슷한 역할만을 주려고 하는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여러 장르의 캐릭터를 해보지 못하게 되는 것 같더라. 나도 비슷한 컬러(color)의 캐릭터들만 들어오다가 <황진이>라는 작품이 들어온 거지. 그래서 놓칠 수가 없었다.
유: 대부분 연기자들이 악수(惡手)를 두게 되는 게 타입캐스팅(type casting)을 할 때라고 본다. 칭찬받아 왔던 연기와 비슷한 것만 연기하는 거지. 송혜교씨는 이번 영화를 통해 자신이 해오지 않았던 연기를 했으니까 그만큼 값진 게 없겠지.
민: 유지태씨는 영화는 많이 출연했지만 드라마는 출연하지 않더라. 내 기억이 맞다면, 옴니버스 드라마 <유실물>밖에 없는 걸로 안다.
유: 맞다. 그거밖에 안 했다.
민: 특별한 이유라도 있나?
유: 그냥 영화 쪽에 공감대가 많았던 것 같은데. 관객으로서, 배우로서 영화를 좋아했었고. (권)상우랑 종종 서로의 필모그래피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난 영화만 16편을 했는데, 상우도 드라마까지 합치면 대략 나랑 비슷하다. 상우도 열심히 살았지만 나도 열심히 살았지. (웃음) 다만 난 영화를 팠고, 상우는 드라마와 병행한 거지. 결국 비슷한 거 같다.
민: 반면, 송혜교씨는 <파랑주의보> 때부터 드라마에 출연하지 않았다. 그건 영화에 매진하겠다는 의사인가?
송: 물론 영화만 할래, 이런 건 없다. 솔직히 난 영화만의 매력을 아직까진 잘 모르겠다. 이제 <황진이>가 두 번째 작품인데, 컷이 많다보니까 거의 드라마 찍듯이 너무 바쁘게 찍어서 정신없었다. 그래서인지 남들이 얘기하는 그 매력이 어떤 건지 잘 모르겠더라. 하지만 영화도 좋긴 하다. 그렇다고 이거 하나만 쭉 가겠단 생각은 없지. 연기데뷔 10년 만에 영화엔 데뷔했다. 그러다 보니 워낙 탤런트란 이미지가 강하더라. 그래서 이렇게 시작했으니 영화배우란 이름을 듣고 싶다. 그래서 영화 몇 편을 더 한 뒤에 드라마를 병행하고 싶다는 생각은 있다. 그래도 그런 와중에 정말 좋은 드라마가 있으면 할 생각 있다.
유: 생각해보면 나도 진짜 드라마를 했어야 했는데. (웃음) 드라마를 안 한 게 좀 후회가 되네.
민: 두 사람은 나이차와 무관하게 데뷔시기가 비슷하고 경력도 그렇다. 그런데 호흡을 맞춘 건 처음인데.
유: 난 영화만 하고, 혜교씨는 드라마만 하고, 그래서 엇갈린 거겠지. (웃음)
송: 난 유지태씨랑 같이 연기할 일이 없을 줄 알았다. ‘저 배우랑은 연기할 일이 있을까? 왠지 없을 것 같아.’라고 생각했었지. 그런데 오히려 조만간 같이 연기하게 되지 않을까 짐작했던 배우와는 인연이 없고, 예상치 못한 분이랑 이번에 한 것 같다. 솔직히 마치 딴 세계의 사람 같았다. (웃음) 근데 만나보니까 안 그렇더라.
민: 애초에 친분 같은 건 전혀 없었나?
송: 전혀 없었다. 그러니까 딴 세계 사람인 줄 알았지! (웃음)
서: 지태씨도 마찬가지였을 것 같은데. (웃음)
유: 글쎄. 난 지금까지 상대배우들에 대해서 심각하게 생각해 본적이 별로 없는 것 같은데. 그냥 송혜교씨 같은 ‘좋은 이미지의 배우와 함께 하는구나. 잘 했으면 좋겠다.’ 정도? 그리고 난 시작할 때보다 끝날 때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 배우와 다시 만나서 연기를 또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그 배우에 대한 가장 좋은 상(像)이 아닐까.
서: 사실 지태씨가 예전에 비해 유독 이번엔 상대배우인 혜교씨 칭찬을 너무 많이 하는 것 같다. 마치 팔불출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웃음)
송: 나한테 힘을 넣어주시려고 그러는 거겠지. 사실 내가 기사 체크하는걸 알거든. (웃음)
유: 아니, 뭐, 잘 한 걸 잘 했다고 얘기하는 거니까.
송: 기자님이 그 말씀하셔서 이제 칭찬 안 하겠다.
서: 뭐, 어차피 이게 인터뷰 없는 걸로 아는데. (웃음)
유: 팔불출이어도 좋다! (웃음) 윤여정 선생님도 혜교씨를 참 좋아하신다. 혜교 씨가 그만큼 잘 한 거지. 나도 좋았다. 재미있었고.
민: 근데 유지태씨의 필모그래피를 살펴보니까 코믹한 연기를 제대로 해본 적은 없는 거 같다. 물론 <주유소 습격 사건>을 했지만 정극적인 코믹 연기는 아니었고.
유: 코믹이야 말로 감독색깔이 굉장히 중요한 장르라고 생각한다. 코미디가 개그화되면 저급해질 경우가 많다. 코메디와 멜로, 호러 같은 영화는 기획영화의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감독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좋은 감독님이 같이 코미디하자고 하면 할 것 같은데. 근데 사실 내가 좀 썰렁하다. (웃음) 다른 식의 코미디를 해야 되겠지.
송: 블랙 코미디같은? (웃음)
민: 혜교씨 같은 경우엔 <순풍 산부인과>의 코믹한 이미지도 어울렸다고 생각한다.
송: 나도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사실 그 당시엔 내 연기보다 고등학생의 나이에 딱 맞았던 것 같다. 사실 그 때 성격은 주위 사람들한테 오해 살만큼 내성적이었으니까. ‘조그만 게 왜 이리 도도해, 새침때기야’, 이런 소리 들을 만큼. 오히려 요즘 더 발랄하고 명랑해진 거 같다. 근데 지금 다시 보면 되게 웃기다. 내 모습 아닌 거 같아. 볼 살이 곧 터질 것처럼 너무 빵빵해! (웃음)
민: 그 때에 비하면 살이 많이 빠졌다.
송: 많이 빠졌지. 그 때는 고등학생이라서 젖살도 있었고.
서: <파랑주의보> 때보다도 많이 빠진 거 같다.
송: 여자 배우들은 늘 다이어트 생각하고 있으니까. 근데 <황진이> 때는 일부로 다이어트 안 하고, 많이 챙겨먹었는데도 많이 빠지더라.
서: 혜교 씨는 지금도 그렇지만 연기할 때 약간 숨넘어갈 듯 대사치는 게 있더라. 호흡을 단절하면서 말하는 게 아니라 한번에 다 하려는 듯한.
송: 내가 약간 흥분하면 나오는 건데, <황진이>에서도?
서: 딱 한 씬에서. 초반에 발 걷고 등장한 이후, 수 놓으면서 대화할 때.
송: 내가 찝찝한 부분이 거기였던 거야! 얘기하지 마시지! (웃음) 그게 초반에 찍은 아씨 시절인데, 그래서 내가 영화를 보며 아씨 시절 나오면 귀를 막아버리잖아. 왜 그건 후시 안했나 몰라? (웃음) 처음인데, 그거 지적하신 분은. 굉장히 예리하네요.
서: 사실 송혜교 씨에게 관심이 많아서. (웃음) 드라마 볼 땐 그게 송혜교의 매력이라 생각했는데 스크린에서는 좀 아니더라.
송: 고쳐야 될 점이지. 매력은 아니고, 솔직히 나도 알고 있다. (웃음)
민: 영화배우로서의 갈망도 있을 것 같다. 특별히 스크린을 통해서 해보고 싶은 역할이나.
송: 해보고 싶은 역할이 정말 너무 많다. 요즘 내가 인터뷰를 통해서 독특한 캐릭터를 해보고 싶단 말을 많이 하기도 했고. 예를 드는 두 작품이 다 박찬욱 감독님 영화인데, <친절한 금자씨>에서 이영애 선배님이 했던 역할이나,
민: 혹시 나머지 작품은 <싸이보그지만 괜찮아>?
송: 맞다. 임수정씨 역할도 되게 매력 있었다. ‘야, 저 예쁜 배우가 저런 모습의 연기까지 되는구나.’라고 감탄하면서 봤으니까. 나도 한번 저런 캐릭터 만나보고 싶단 생각을 했다.
서: 확 와 닿네. 송혜교의 ‘너나 잘하세요.’
송: 그 정도로 독특한 캐릭터를 만나보고 싶다.
서: 그런데 아까 지태씨가 말한 것처럼 정형화된 타입의 연기를 하는 것이 악수가 될 수 있지만, 한편으로 그에 대한 강박관념으로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것도 독이 될 수 있다.
송: 강박 관념으로 도전하는 것보단 그냥 스스로 연기를 즐기기 위해서지. 일단 내가 연기를 즐기지 못하면 관객들도 똑같이 그걸 느낀다고 생각하니까. 일단 내가 메리트(merit)를 느껴야 되기 때문에 찾는 거다. 새로운 걸. 지금까지 지속해왔던 내 연기가 나 자신에게 재미있다면 계속 그걸 해야겠지만 내가 그걸 못 느끼니까.
서: 그럼 그전에 재미없게 한 연기도 있었다는 소리?
송: 비슷한 연기를 하다보니까 너무 많이 해서 새로운 걸 찾는다는 소리죠! 내가 말을 잘 못하나? (웃음)
서: 스타와 배우의 간극이 분명히 있다고 생각한다. 혜교씨 본인이 느끼는 부분이 궁금하다. 본인은 그 간극에서 어느 정도의 위치에 있다고 생각하나?
송: 내가 느끼는 게 대중들이 느끼는 것과 같다고 본다. 일단 나도 배우지만 아직 스타 이미지가 많이 강하겠지. 그렇다고 굳이 그런 이미지를 부술 필요는 없다. 스타라는 이미지도 날 사랑해주시는 팬들이 만들어 주신 중요한 것이니까. 물론 연기를 기준으로 생각한다면 그게 큰 장애물이 될 수도 있겠지. 욕심이 많다고 할 수도 있지만 그 양쪽에 모두 충실하고 싶다. 나이를 한두 살 더 먹고 연기자의 이미지에 점점 더 가까워진다면 한쪽을 포기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두 가지 다 갖고 싶다.
서: 항상 대중과 스타의 입장은 평행선을 달리는 것 같다. 스타이기 때문에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 부분도 있고, 스타이기 때문에 함부로 평가 할 수 없는 부분도 있고.
유: 그런데 난 스타와 배우를 어떻게 나누는지 잘 모르겠다. 솔직히 영화배우는 스타여야만 영화를 할 수 있다. 거대자본을 움직이는 상업영화는 스타여야만 선택 받을 수 있고. 배우와 스타를 어떤 기준으로 나누려하는지? 스타가 아닌 영화배우는 없는 거다.
서: 원론적으로 이야기하면 그럴 수도 있겠다.
유: 원론적이라기 보단, 단적으로 말해서 스타가 없으면 투자가 안 된다. 자본이 움직이지 않으면 영화는 존재하지 않고. 순수예술이 아닌 상업예술이니까.
서: 그렇지만 스타라는 존재 자체가 흥행과 바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잖나.
유: 그렇지. 그런 다음에 작품성과 같이 연동이 되는 건데.
서: 그렇기 때문에 배우들 스스로 그런 생각들을 갖는 것 같다. 본인이 지닌 스타로서의 인기가 연기적 역량으로 더해지면 좋을 것이란 생각을 하니까.
송: 연기하는 순간만큼은 그런 생각을 안 한다. 이런 공식적인 자리에서 비쳐질 뿐이지 거지 일할 때는 그렇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배우가 먼저 그런 말한다고 하셨잖아요. 그런 말을 하게끔 대중들이 그렇게 생각을 해요. 그런 말을 들을 수밖에 없게끔. 우리가 아무리 영화배우라고 외치면 뭐해요. 보는 관객들이 ‘넌 아직 덜 됐어’라고 말하면, 우리가 아무리 외쳐도 인정하지 않는데.
서: 그 평가의 기준을 다르게 볼 수도 있다는 것 아닐까. 단순히 스타와 배우의 구분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유: 난 스타라는 기준에 대한 피해의식 때문이라고도 생각한다.
민: 결국 스타라고 말할 수 있는 기준은 인지도의 여부로 판가름 나는 것 같다. 그게 관객이든, 투자자든. 그건 결국 영향력일 수도 있고. 그리고 그런 구분은 그런 영향력에 대한 반작용일 수도 있다. 방금 말한 것처럼 피해 의식일 수도 있고.
유: 물론 그런 위치를 부러워하는 사람도 있겠지. 스타성을 가지고 있다는 건 엄청 큰 거다. 사람들이 흔히 이야기하는 연기라는 기준은 매체의 특수성이 다 다르기 때문에 섣불리 평가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분명한 건 영화는 스타의 등장을 필요로 하고 스타가 주연을 하는 거지. 그 논리는 뗄 수가 없다. 물론 독립영화는 스타가 등장하지 않아도 되지. 하지만 <황진이>처럼 100억이나 들어가는 상업 영화에서 스타는 굉장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그런 부분을 고려하지 않을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민: 류승룡씨도 하고 싶은 연기를 위해서라도 인지도는 중요한 것 같다고 하더라.
유: 당연히 중요하다. 내가 드라마 안한 것이 후회된다고 했는데 그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연기적인 측면, 드라마 하시는 분들은 정말 순발력이 빠르다. 그런 부분에서 아쉽고, 또 하나는 대중적인 인지도다. 아무래도 드라마가 영화보단 대중적으로 친밀감이 높지 않나. 한류스타들의 파워도 드라마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많더라. 종종 내가 그런 파워를 지니지 못한 것이 아쉽다. 어떤 영화를 한류스타가 하고 싶다고 하면 그 순간 투자는 다 끝난다.
급이 다르다고 할까. 물론 드라마를 했느냐, 안했느냐가 결정적으로 중요한 건 아니겠지만, 분명 드라마를 하면서 얻어지는 부분이 있었을 거라 생각한다. 그런 것들을 내가 너무 한계지어서 생각하지 않았나 싶은 거지. 하지만 내 밥그릇이 영화를 좋아하는 밥그릇이니까 영화를 한 거겠지. (웃음)
서: 그렇다면 본인이 지금까지 끊임없이 캐스팅 될 수 있는 까닭은 뭐라고 생각하나?
유: 한 번도 생각해 본적은 없는데. 요즘에는 결정해도 못 들어가는 영화가 있으니까 요즘에 생각해봐야겠네. (웃음) 영화배우가 영화 찍는 게 뭐 큰일은 아니기도 하고. 영화배우 유지태로서 지금 입장에서 불만은 하나도 없다.
민: 그런데 요즘 연극 무대에 종종 서고 있다. 아무래도 영화에 한정된 자신의 영역을 확장하고자 하는 의지가 아닐까 싶은데.
유: 연극을 하는 건 여러 가지 의미가 있다. 자기 계발도 있고. 영화 연기를 하다 보면 미니멀(minimal)한 연기, 드라이(dry)한 연기를 하게 되고 절제하는 내면 연기들을 많이 하게 된다. 반면 다양한 것들을 채울 수 있는 외향적인 연기를 훈련해야 되는데 연기자로서 무대만큼 좋은 시험대가 없으니까. 내가 영화를 만들고 싶기 때문에 인프라를 형성하려는 의도도 크다.
민: 감독에 대한 열망도 있는 듯 한데, 이미 단편영화도 2편을 만들었다. 어떤가? 연기하는 것에 비해 연출하는 건?
유: 글쎄. 작품 하는 건 크게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연기자는 보여주는 매력이 있다면, 연출자는 만드는 매력이 있는 것 같다.
서: 배우와 감독으로서 지태씨의 자의식은 무엇인가?
유: 그냥 자유롭게 연기 생활을 했으면 좋겠고, 자유로운 영화인이 됐으면 좋겠다. 조지 클루니가 ‘그림이 되기 보다는 화가가 되겠다.’는 이야길 했는데 참 멋있는 비유 같다. 쉽게 말해서 배우보단 감독에 더 열의를 갖고 있다는 말이 될 텐데, 그 사람이 출연한 영화들도 참 매력적이지만 그 사람이 만드는 영화들도 참 멋있는 것 같다. <굿 나잇, 앤 굿 럭> 같은 영화도 그렇고. 자유로운 영화인이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는 거 같다.
민: 유지태씨는 오랫동안 영화계에 몸담고 있었던 만큼, 최근 한국영화 위기라는 상황에 대한 남다른 의식이 있을 법도 하다.
유: 지금까지 해왔던 방법 말고 다른 시스템에 대한 도전을 해봐야 되겠지. 일본 영화나 미국 영화처럼 프로듀서 중심의 영화제작 시도도 필요하고. 한국 영화가 찾아가야 할 길을 제대로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서: <황진이> 이후, 계획이 궁금하다.
송: 올해가 가기 전에 영화 한편 더 하고 싶고, 내년쯤 드라마도 하고 싶다. 계획은 그런데 그렇게 될지 모르겠네. (웃음)
유: 단편영화 한편 만들 생각을 하고 있다. 올해 안에 영화 한 편 출연할 수 있으면 좋겠고.
민: 지태씨는 이제 어떤 연기보다 어떤 영화를 만들고 싶은지 여쭤봐야 할 것 같다. (웃음)
유: 영화는 여러 장르를 생각하고 있다. 연극을 했던 것도 영화화의 일환이 되는 거고. 시놉시스들이 다 영화화될 수 있으니까.
민: 혜교씨는 지금 당장은 푹 쉬고 싶겠지만, 영화든 드라마든 자극적인 캐릭터와 기존의 캐릭터가 둘 다 들어온다면 어떤 캐릭터를 선택할 것 같나?
송: 자극적인 거. 안 해봤던 거.
민: 너무 깨는 역이 들어와도?
송: 두렵지는 않은데, 예쁜 모습 많이 보여드렸는데, 뭐.
서: 그게 불만인 사람도 있을걸. 망가져도 예쁘잖아.
송: 꼭 망가져 드려야 되겠다(웃음).
(무비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