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은 승패로 기록된다. 하지만 거기 사람이 있었다. 전쟁은 승패보다도 생사의 문제로 기억돼야 한다. 전쟁이라는 명분에 휘말리며 삶과 죽음의 경계를 건너야 하는 인간들의 존재는 승패로서 기록되는 역사적 명제 아래 손쉽게 지워진다. 전쟁은 영문도 모른 채 생사의 기로로 떠밀린 인간들의 지옥도다. <고지전>은 이를 대사로서 명확하게 전달한다. “빨갱이가 아니라 전쟁과 싸우는 거다. 그러니 살아남는 게 전쟁으로부터 진짜 이기는 길이다.” 전쟁이 승패가 아닌, 생존의 문제임을 강력하고 확실하게 피력하고 환기시킨다. 물론 이는 숱한 전쟁영화들이 다루고 언급해온 이야기다. 하지만 <고지전>은 사람 죽이는 전장의 비극을 전시하고 눈물을 요구하는 수준을 넘어서 그 지옥도 속에서 이유도 알 길 없이 서로를 죽이고 죽어나가는 이들의 참혹한 비극에 주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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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지전> 단평

cinemania 2011. 7. 12. 01:40

<고지전>의 주제는 명확하다. 빨갱이가 아니라 전쟁과 싸우는 거다. 그러니 살아남는 게 전쟁으로부터 이기는 거다. 전쟁이 승패가 아닌, 생존의 문제임을 거듭 환기시킨다. 물론 숱한 영화들이 해왔던 이야기다. 하지만 <고지전>은 사람 죽이는 전장의 비극을 넘어서 무엇을 위해서 싸우는지 알 길이 없는 전장에서 죽음을 조장하고 방관하는 치들에 관한 분노와 서러움으로 나아간다는 점에서 한편으로 의미심장하다. 땅따먹기에 열중하는 윗대가리들이 탁상공론에 열중하는 가운데 살기 위해서 죽이고 죽는 청년들의 모습은 단순히 전장이 아닌 이 사회에도 만연한 부조리 가운데 하나다. <고지전>은 전장을 통해서 이 땅의 부조리한 역사적 환기까지 나아가는 진보적인 전쟁영화다. 장훈은 확실히 스스로 물건임을 증명하고, 선배 배우들의 열연 속에서도 자신의 이름을 뚜렷이 각인시키는 신예 이제훈이 인상 깊게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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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햇살을 받고 정제된 소금과 맑고 깨끗한 천연의 물, 기름진 토양 위에서 자란 콩. 깊은 맛이 우러나는 좋은 된장을 만들기 위한 기본적인 재료들. 하지만 이 모든 재료들이 마련된다 하여 꼭 좋은 된장이 빚어질 수는 없는 법. 이 모든 재료를 빚어낼 손의 정성도 중요하고, 오랜 시간 제 몸에 된장을 품을 장독대가 튼실해야 하며 풍부한 햇살과 적절한 바람을 맞을 시간이 필요하다. 그 모든 조건을 완벽히 갖춘다면 필히 깊고 풍부한 맛이 담긴 된장을 빚어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이상의, 모든 조건을 다 갖췄다 해도 다다를 수 없는 궁극의 맛을 선사하는 특별한 된장의 비결 그것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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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크릿> 단평

cinemania 2009. 11. 20. 15:31

아내가 살인했다. 아니, 살인한 것 같다. 형사인 남편이 살인현장에서 발견한 물증들은 정확하게 아내를 진범으로 겨냥하고 있다. 대학동기인 동료형사에 대한 불리한 증언마저 고지식하게 해낼 수 밖에 없었던 원칙주의자 형사는 남편으로서 기로에 선다. 남몰래 물증의 은폐와 훼손을 감행한다. 그러나 수사가 거듭될수록 은폐하거나 훼손할 수 없는 증거들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하지만 이미 돌아올 수 없는 길을 건넜다. 그리고 도무지 돌아설 수 없는 일이다. <세븐 데이즈>의 각본을 쓴 윤재구가 직접 메가폰을 잡은 <시크릿>은 전자와 마찬가지로 공공적인 윤리에 발붙여야 할 이를 피해자와 가해자 사이에 얹어놓은 뒤 벌어지는 개인적 갈등을 다룬다. 윤리적 죄의식에 등돌린 채 개인적 불행에서 헤어나기 위해 내달릴 수록 상황은 진창으로 떨어진다. 가치관의 갈등을 느끼는 인물의 심리는 <시크릿>에서 전반적인 긴장감을 직조해내기 위한 궁극적 핵심과 같다. 동시에 빠르게 나열되는 컷과 숏을 통해 정보량을 증가하는 <시크릿>은 단서들의 교차와 충돌을 통해 비밀을 한 꺼풀씩 벗겨가는 스릴러다. 일단은 그렇다.

 

<시크릿>은 인공적인 영화이자 그것을 애써 가리지 않는 작품이다. 말끔한 슈트를 차려 입은 형사의 옷 매무새부터 시작해서 끝없이 단서를 벌려나가는 내러티브의 형태까지, 영화는 좀처럼 현실을 끌어안을 생각이 없다는 듯 모든 것들을 연출적 시공간으로서 치장한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스릴러로서 단서를 벌려나가는 이야기가 딱히 인상적이지 않을 때, 이 모든 건 허세가 된다. <시크릿>은 기본적인 비밀의 깊이를 유지하지 못하면서 그 수면 위에 단서를 마구 흩뿌린다. 사연의 단초는 쓸만했다. 도입부의 몽타주도 꽤나 인상적이다. 문제는 그 사연의 설계다. 비장한 표정으로 자꾸 패를 던지는데 그 결과가 초라함을 벗어나지 못한다. 비밀은 여간 해서 모른 체하기 어렵고, 결말부에 다다라 영화가 제 입으로 설명하는 비밀의 정체란 구차하기 짝이 없다. 게다가 그 끝에 매달린 사족은 명백한 낭비다. 허물처럼 벗겨지는 단서들 사이에 감춰진 비밀의 정체란 정작 허망하다. 감춰야 할 것은 제대로 감추지 못하면서 지나치게 많은 것들만 드러낸다. 비범한 척 패를 돌리지만 결과적으로 뻥카 같은 반전 앞에 허세로 몰락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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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은 일개 개인이 아니라서 (개인적인 처신까지도) 국민적 동의와 수반적 회의를 거쳐야 하거든요. <굿모닝 프레지던트>에서 등장하는 대사는 일면 의미심장하다. 국민의 손과 발이 되겠다던 대한민국 현직 대통령의 취임사처럼 대통령은 국민을 대신해 국가를 운영하는 업무를 수행하는 직책이자 전국민적 동의를 등에 업고 대표성의 권위를 등에 업은 권력자다. 그만큼 대통령은 어느 개인으로서의 삶을 전면에 내걸 수 없는 대의적 존재로서 의무를 지닐 때 그만큼의 권력을 함께 보장받는다. 그리고 <굿모닝 프레지던트>는 국민적 동의를 통해 절대적 권력을 얻었다는, 그 대통령에 관한 드라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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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신지옥> 단평

cinemania 2009. 8. 6. 16:00

사라진 동생 소진(심은경)을 찾아나서는 희진(남상미)이 맞닥뜨리는 상황을 대변하는 건 형사 태환(류승룡)의 잦은 대사다. 그게 말이 돼? 당연히 말이 될 리가, 좀처럼 믿을 수 없는 일 앞에서 당연한 질문. 하지만 그게 말이 되건 말건 간에 누군가는 믿을 수 없는 일을 겪는 세상. 말 그대로 불신지옥, 누군가가 믿어줄 수도 없는 일을 홀로 감당해야 하는 사람의 삶이란 이토록 괴롭고 처연하다. 지독한 믿음을 지닌 자들이 만들어낸 지옥에 믿을 수 없는 자가 갇히게 되는 상황은 공포 그 자체다.

 

<불신지옥>은 자신의 광기를 전도하는 자들의 믿음이 만들어낸 지옥도다. 믿는 자들의 광기에 치여 사는 인간들의 눈에 비친 세상은 때때로 공포가 된다. 건조한 톤으로 내려앉은 영화는 시종일관 서늘한 낯빛으로 긴장감을 조성하고 복도식 아파트와 지하실과 같은 한국적 풍경을 적극 활용한 호러적 연출은 꽤나 인상적인 이미지를 구축한다. 무엇보다도 <불신지옥>(한국식)기독교무속신앙을 묘사의 대상으로 삼은 건 형태적으로 전혀 무관해 보이는 두 종교가 사실상 한국 사회 내에서 뿌리깊은 병리적 맹신을 전도해왔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대형 체육관에 모여 통곡의 기도를 드리는 것이나 종을 울리고 춤을 추며 굿판을 벌이는 행위는 실상 그 믿음의 외벽에 놓인 자들에게 기괴한 감상을 부르는 병리학적 현상에 불과한 것이다. 믿는 자들이 만들어낸 광기는 믿지 않는 자들의 눈에 공포를 비춘다.

 

믿을 수 있는가, 믿을 수 없는가의 물음은 종교와 신앙이라는 단어 안에서 반복돼왔다. <불신지옥>은 그 물음에 답변할 개인적 권리를 침해하는 자들의 광기를 공포로 치환한다. 믿음의 본질과 무관하게 그 형태 자체에 미쳐버린 자들은 자신의 주변에 놓인 자들을 파괴하는 형태로 그 믿음을 전도해나간다. <불신지옥>은 연출적 면모와 주제적 접근 모든 면에서 주목 받을만한 작품이다. 초자연적인 분장을 빌리지 않고 실생활의 표정만으로 섬뜩한 공기를 형성하는 배우들의 연기도 훌륭하다. 다만 지나치게 모호한 해석을 부르는 결말이 조금 아쉽다. 마치 좀 더 하고 싶은 말이 있었는데 입을 급하게 다무는 느낌이랄까. 강한 이미지적 자극을 원하는 관객이라면 정적인 영화의 분위기에 지루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다. 그럼에도 <불신지옥>은 근래에 보기 드물었던 장르적 성취를 드러낸다. 뛰어난 연출력과 연기력을 기반으로 소재의 특성을 세계관에 반영하는데 성공했다. 근 몇 년간 국내 관객을 질식시키던 수준 이하의 호러를 잊어도 될만큼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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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 지상주의가 대한민국 20대를 고시라는 무덤에 매장해버린 세태 속에서 <7급 공무원>이란 제목은 의미심장한 예감을 부른다. 하지만 예감은 예감일 뿐, 오해하지 말자. 코미디, 그것이 진리다. 첨단 기기를 이용한 첩보행위 도중에도, 지상과 수상을 넘나드는 추격전 도중에도, 긴박한 육박전이 동원되는 액션 도중에도, 어김없이 다리에 힘 풀릴만한 엇박자가 연출된다. 진지한 상황 가운데서도 해프닝을 일삼는 캐릭터와 분위기 파악엔 안중 없는 대사의 합은 매번 웃음을 안겨주고야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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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승룡 인터뷰

interview 2008. 5. 30.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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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타>의 원년 멤버다. 아직도 <난타>로 기억하는 사람도 많을 것 같다.
너무 오래했다. <난타>를. 5년 동안 했으니까. 사실 난 영화 하려고 프로필 찍어본 적도 없고, 오디션을 본 적도 없다. 내가 <난타>이후로 접한, 대사가 있는 정극이 연극 <웰컴 투 동막골>이었다. 알다시피 장진 감독이 연출한 작품이었고. 장진 감독은 한번 연을 맺으면 끌고 간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장진 감독의 다음 영화에 합류하다 보니까 또 자연스럽게 영화 쪽으로 합류하게 된 거 같다.

초창기 멤버라서 자부심이 강할 것도 같은데. 브로드웨이도 다녀왔고.
브로드웨이 뿐 아니라 외국을 너무 많이 다녔지. 누구도 안 부러울 만큼. 유럽 17개국은 그냥 기본이었고. 스코틀랜드, 아일랜드, 노르웨이, 두바이. 여기저기 막 다녔지. 너무 좋았다. 국가대표라는 마인드가 생길 정도로 자부심도 엄청 컸고. 난 등에 태극기까지 오바로크해서 달고 다닐 정도였으니까. 사실 지금은 로컬 쇼(local show)나 코리아 하우스처럼 관광객을 위한 쇼 형식이 돼버려서 약간 아쉽긴 한데, 어쨌든 외화를 벌어들이는 문화 상품이니까.

장진 감독과 1년 차 선후배 사이라던데. 대학 시절부터 친분이 돈독한 사이였나 보다.
그렇지. 졸업작품도 같이 했는데. 내가 주인공을 맡은 <길>이라는 작품이 있다. 전위극 <까>를 만든 강만홍 교수 작품. 그 때 우리 반 멤버가 황정민, 정재영, 장진 감독, 임원희. 와~! 진짜 빵빵 하지 않아? (웃음) 다 우리 반이었어. 내가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최고네. (웃음)

전에 장진 감독이 <거룩한 계보> 시절 인터뷰 때 류승용 씨가 대학 시절 연기가 좋았다고 칭찬했던 게 기억난다. 그런데 의외로 졸업 후 선택한 건 <난타>였다. 대사 한마디 없는.
배우마다 시작하는 지점과 정점, 그리고 하향 곡선 같은 게 각각 있잖아. 난 그시기가 내 동기들이나 다른 배우들에 비해 조금 다르거나 늦었을 뿐이지. 나이를 먹거나 안주하게 되면 할 수 없는 작업이 있다. 그게 <난타>같은 거지. 사실 영화는 배우의 길을 걷고자 하면 언제든지 할 수 있다고 생각했거든. 물론 지금 이렇게 된 게 당연한 결과라거나 이렇게 될 줄 알았다는 게 아니라, 차근차근 하다 보면 언젠간 할 수 있겠단 마음이 있었다. 하지만 <난타>같은 건 나이가 들면 절대 하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지. 직접적인 계기는 뉴욕의 라마마 극장에 <두타>가 초대받아서 공연하러 갔다가 거기서 <스톰프(stomp)>와 <튜브(tubes)>같은 넌버벌 퍼포먼스(non verbal performance) 공연을 봤다. 막 두들기는. 그리고 왜 우리나라엔 저런 게 없을까 생각하다가 귀국했는데 송승환 대표님이 <난타> 오디션을 보더라. 그래서 옳다구나 하고 오디션 본거지.

뉴욕에 가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을 텐데. 경제적인 여유가 있었던 것도 아닐 테고.
여비를 우리가 대서 고생했지. 밥도 다 사먹고, 비행기표도 우리가 사서 갔으니까. 그래도 그냥 뉴욕이란 곳에 가보고 싶었다. 그것도 연극을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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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적으로 그게 지금은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 필모그래피 적으로도 특별해 보이고.
사실 필모그래피 적으론 전혀 도움이 안 되지. 왜냐면 영화감독이나 영화 관계자들은 대사와 연기를 원하기 때문에. 물론 지금에 와선 도움되는 프로필이 됐지만, 아무 경력이 없는 배우에겐 되려 도움이 안 된다. 만약 <난타> 배우 출신이 영화오디션을 보러 와서, “저 <난타> 했습니다.” 그러면 도움이 안 되지~! 대사를 한마디도 안 했는데~! (웃음) 그런 면에 있어서 내가 <난타>를 좋게 홍보할 수 있는 사례가 된다면 좋겠다. 그런 배우들도 얼마든지 잠재력이 있다는 걸. <점프>나 <난타>에 출연하는 배우들처럼, 배고프지만 열정을 가진 친구들을 돌아볼 수 있는 어떤 계기가 됐으면 좋겠어요. 나로 인해서.

재미있는 이야길 들었다. 장진 감독과 10년 동안 별다른 연락을 안 하다가 연기를 하고 싶어서 찾아갔었다고.
사실 난 그때 대안이 장진 감독밖에 없었다. 내가 장진 감독한테 간 그때가 서른 둘 정도였으니까. 내가 다른 극단에 가기에는 나이가 굉장히 애매했다. 게다가 대부분의 극단은 동인제 시스템이라 오디션 봐서 들어가기도 어려웠고. 그래서 그때 학연이란 것에 처음으로 도움을 받았지. 장진 감독을 통해. 그리고 그 전엔 장진 감독도 바빴고, 나도 바빴고. 사실 그땐 내가 술을 많이 마시던 때였다. (웃음) 장진 감독은 지금의 직함을 위해서 진짜 열심히 일하고 있었고. 나도 <난타>로 창작 욕구를 한참 풀어내고 있었고.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이렇게 되기 위해서 각자의 길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었던 거 같다. 언젠가는 서로의 필요에 의해서 만날 인연이었는지도 모르지.

정재영 씨와도 대학 동기다. 거기서부터 이어진 인연이라 <거룩한 계보>에서의 어울림은 당연히 자연스러울 수 밖에 없었을지도 모르고. 정준호 씨한테는 미안한 이야기지만 난 정준호보단 류승룡이 더 인상적이었다. 그런데 표면적으론 거의 드러나지 않았다.
근데 지금 <황진이>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황진이>가 <거룩한 계보>처럼 마케팅하는 게 당연하다. 솔직히 그게 자본주의니까. 아무래도 스타들이 관객의 눈길을 끌기엔 적합하지. 물론 <거룩한 계보> 당시에 조금 서운한 감은 있었지. 사실 세 친군데~! (웃음) 근데 지금은 오히려 잘 됐다고 생각한다. 왜냐면 만약 장진감독이 날 밀어준답시고 ‘정재영, 정준호, 류승룡’ 이렇게 올렸는데, “어? 누구야?” 이러는 것 보단 나중에 영화를 보고 “어? 정재영하고 정준호밖에 없는 줄 알았는데 류승룡도 눈에 띠던데? 왜 이 배우는 포스터에 없지?” 이럴 수 있으니까. 그리고 이런 말 듣는 게 더 통쾌하다! (웃음) <황진이>도 마케팅 팀에서 필요한 만큼만 나를 적당히 활용하는 것 같다. 솔직히 마케팅은 상업적이어야 할 자본주의적 메카 아닌가? 그래서 이번에도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마케팅이 날 활용하는 게. 그리고 이런 모습은 내가 어느 정도에 와 있는가를 알 수 있는 척도가 된다. 기자시사 때 무대인사를 하느냐, 그리고 기자 간담회에 참석하느냐 뭐 이런 것들 있잖아. 무대 인사만 하고 기자 간담회 때 빠지느냐 안 빠지느냐. 이게 굉장히 예민한 부분이 될 수도 있다.

<황진이> 때도 기자 간담회 후 포토 타임 때, 사진 기자들 요청으로 다시 올라왔던 기억이 난다.
마케팅 팀이 실수를 했다. 되게 당황했지. 내 차례를 빼먹다니. (웃음) 그런데 많이 겪어본 일이기 때문에 오히려 무덤덤했지. 오히려 그런 걸 겪어봐서 다행인 거 같다. 나중에 꼭 그런 후배들한테 배려하고 싶다는 마음을 지니고 있으니까. 그 마음을 너무 잘 알기 때문에. 왜 그, 뻘쭘한 거 있잖아! 뻘쭘한 거! (웃음) <천년학> 때는 어떤 기자가 “이번 작품을 임하면서 임권택 감독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셨는지, 조재현 씨, 오정해 씨, 오승은 씨 이야기해 주세요.” 이러더라. 물론 무비스트는 아니었고. (웃음) 그러니까 재현이 형이 마이크를 들더니 어디 기자냐고 묻고 “배우도 기본이 있어야 되듯 기자도 기본이 있어야 한다. 이렇게 넷이 앉아있을 때 똑같은 질문을 할 땐 나중에 (코멘트를) 자르는 한이 있어도 넷에게 질문을 하는 게 예의다.”라고 하더라. 후배에 대한 배려였지. 재현이 형도 연극 출신이니까.

내심 고마웠겠다.
꽤 고마웠지. <거룩한 계보> 때, 현장 공개를 처음 해봤다. 갑자기 장진 감독이 “야, 승룡이! 너도 해!” 그래서 얼떨결에 끌려갔지. (웃음) 근데 그때 얼굴 표정 다시 보면 되게 슬프다. 기자 간담회 때 파란 마이에 흰 와이셔츠 입었는데, 재영이가 옷 빌려줘서 입은 거다. 내가 이런데 서도 될지 싶을 만큼 너무 어색했다. 그런데 재영이가 갑자기 정준호씨와 자기 가운데에 날 껴 넣는 거다. 그러더니 양쪽에서 막 어깨동무하고. 사실 그때 난 삐뚤어져 있었던 것 같다. 열등감이란 게 사람을 추하게 한다. 사실 난 열등감이 없는 남자라고 자부했었는데 아니더라. 결국 <거룩한 계보> 관련 사진에 그게 남더라. 만약 정재영, 정준호, 나 이 순으로 섰으면 난 잘렸겠지. 사실 요즘에 <황진이> 때도 많이 느끼거든. (웃음) 재영이가 그걸 안거지. 그래서 날 못 자르게 하려고 가운데 넣고 어깨동무까지 한 거다. 나중에 재영이가 그 얘기를 하더라. 그런 자그마한 배려가 솔직히 고맙더라.

그렇겠다. 지금 그 때 생각하면 감회가 새롭겠다. <황진이>에서는 중심인물 중 한 명 아닌가.
그런데 앞으로 그런 후배들이 많이 올라오겠지. 무대 인사엔 오고 기자 간담회 때는 안 오는. 이번에 <황진이> 때도 (오)태경이나 (정)유미 같은 애들이 막 뻘쭘한 게 보이더라. 왜냐면 올라가야 되는지 안 올라가야 되는지 헷갈리니까. 내가 막 당황했던 거 있잖아. <박수칠 때 떠나라> 때도 아무도 말을 안 해주는 거야. 홍보 팀이던, 마케팅 팀이든. 알아서 빠지라는 식이지. 근데 무대인사는 하라 그러고. 이번에 태경이나 유미한테도 그런 모습이 느껴지더라고. 그래서 내가 도와줬지. 그러니까 무대 인사를 시키던 나중에 간담회에 빠지던 그 기준에 따라서 준비가 안 된 배우들한테는 사전에 적절한 코멘트나 배려가 있어야 할 것 같다. 당황하지 않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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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수가 많지는 않지만 나름대로 유명세를 탈만한 작품이 많았다. 물론 본인 연기가 인상적이었지만 감독이나 동료 배우를 잘 만난 덕인 것 같기도 하고.
난 복이 많은 것 같다. 물론 내 뒤에서 하느님께서 도와주시는 덕분이지만. 일단 장진 감독처럼 유니크(unique)한 글을 쓰는 사람의 작품으로 첫발을 디딘 것부터가 복이었지. 그리고 <열혈남아>하면서 설경구 선배를 만났고. 그리고 임권택 감독님의 작품에 출연하게 됐고. <소나기는 그쳤나요>를 보고 캐스팅을 하셨단다. 어쨌든 감독님께서 총명하실 때 그분의 작품을 했다는 게 영광이지. 흥행의 성패를 떠나서. 가을에 겨울잠을 자려고 먹이를 많이 먹듯이, 에너지 충전을 굉장히 많이 한 것 같다. 앞으로 연기하는데 있어서 필요한 에너지들을, 임권택 감독님을 통해서. 촬영장에서 해야 되거나 하지 말아야 될 행동들, 또한 임하는 자세들 그런 것들을 너무 많이 배웠지. 임권택 감독님한테. 그리고 거기서 조재현 선배를 만났고. 그리고 또 <황진이>의 장윤현 감독님은 정말 조용한 카리스마다. 배우의 감정선을, 특히 여배우의 감정선을 가장 잘 표현해 낼 수 있는 그런 감독인 것 같다. 그리고 또 송혜교 씨나 (유)지태란 친구를 만났고. 계속 그렇게 연결이 되는 것 같다.

배우나 감독에 상관없이 영화를 하는 대부분의 사람들과 돈독해지는 편인가 보다. 실제로 그렇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은 것으로 아는데.
그건 내가 스타가 아니기 때문인가? (웃음) 영화는 혼자 하는 작업이 아니잖아. 화가나 시인이나 음악가들과 달리 영화는 철저하게 같이 하는 작업이니까. 차승원 씨도 같이 하는 배우들하곤 일단 굉장히 친해지려고 노력을 많이 하거든. 왜냐면 연기할 때 불편하니까. 물론 촬영 후에 모든 사람들과의 관계가 남는 건 아니지만 한번이라도 지방에 내려가서 동거동락하며 지낸 친구들은 다 담는 편이다.

처음 카메라 앞에 섰을 당시 느낌은 어땠나?
너무 편했다. 아마도 처음엔 <아는 여자>였기 때문에 너무 편했던 것 같고. 가벼운 씬이었으니까. 두 번째는 <소나기는 그쳤나요>의 농부 연기였는데 그것도 너무 편했다. 시골이잖아. 난 그런 게 편하거든. (웃음) 사실 난 개인적으로 <고마운 사람>이 너무 편했던 것 같아. 텐션(tension)이 없잖아. 나도 편한 호흡의 연기가 어울릴 수 있겠다고 느낀 게 <고마운 사람>이었지. 사실 긴장하기 시작한 건 <거룩한 계보> 때였지. 아무래도 앞의 영화보단 역할도 커지고 상업적인 성격이 강해지니까 내가 씬을 책임져야 된다는 걸 느꼈거든. 그리고 눈앞의 카메라가 관객과 소통하게 되는 지점이란 걸 깨달았거든. 저 렌즈가 10만 명의 눈이 될 수도 있지만 백만 명의 눈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니까. 또 대형 스크린으로 보는 눈도 있지만 DVD를 통해서, 아니면 추석날 TV를 통할 수도 있잖아! (웃음) 렌즈를 눈으로 딱 느끼는 순간, ‘아, 이게 장난이 아니구나’ 싶더라. 그만큼 촬영 기간 동안 자기 관리도 중요하게 되고. 대사나 이런 것도 자연스럽거나 그렇지 못하게 그 날 현장 분위기 때문에 대사도 연기가 어색하게 되는 경우도 있는데 그게 평생 남을 장면이라 생각하면 두고두고 후회될 것 같더라.

단순한 질문일지 모르지만 연극의 무대와 스크린의 카메라의 차이를 느꼈다면?
일단 영화는 이야기의 흐름과 무관하게 상황에 따라서 뒤죽박죽으로 씬을 가져가니까 그런 부분이 힘든 것 같다. 마지막 장면을 제일 처음 찍기도 하고, 첫 장면을 제일 마지막에 찍기도 하고. 근데 그게 영화만의 마력인 거 같아. 마치 퍼즐처럼 맞춰가는 작업이니까. 그리고 각각의 분야를 지닌 수십 명의 사람들과의 작업을 통해 완성된다는 점도 연극과 달리 영화를 리얼리티에 가깝게 만드는 작업이지. 또 대형 스크린을 통해 결과를 보게 된다는 것도 재미있고. 인터넷 관객 수치 등으로 평가를 살필 수 있다는 것도 묘하고. 연극은 관객과 그때그때 다이렉트(direct)로 호흡하고 느끼니까 그날그날에 따라 틀리잖아. 그런 짜릿함의 차이가 있는 것 같다.

연극과 상대적으로 영화만의 매력을 느껴본 적은 없나? 영화는 이런 거구나 싶은.
정말 짜릿한 건, 영화가 배우 혼자서 하는 게 아니라는 거지. 조명이나 기타 여러 가지 효과들이 배우를 돕는다. 사실 연극은 배우들과의 호흡, 연습량, 즉 배우들의 역량이 작품을 판가름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영화는 감독의 현장 디렉션에 따라 상황이 변하기도 하고, 분장, 조명 같은 장치적 효과가 배우의 결점을 채워주기도 한다. 그런데 막상 현장에 있으면 그걸 잘 모르지. 스크린의 결과를 보고 그분들한테 감사하는 거지. 그래서 갑자기 막 문자 보내게 되고. (웃음) 분장이나 빛을 통해 배우의 연기를 더욱 깊고 진하게 전달할 수 있게 되고. 내 부족한 연기를 채워주는 사람들한테 감사할 수 밖에.

영화의 장치적인 효과를 많이 느꼈나 보다.
많이 느꼈지! 음악도 그렇고. 무엇보다 <황진이>를 통해 조명과 카메라를 알게 됐다. 이제야 비로소! 그 전엔 그냥 연기만 하면 되는 줄 알았지 그런데 <황진이>는 촬영하고 조명, 분장 이런 효과에 유난히 공을 많이 들이길래 유심히 지켜보곤 했다. 촬영 기간이 길기도 했지만. 감정을 따라잡는 조명, 그거 알아? 분위기에 따라서, 반전에 따라서. 배우의 눈빛을 살려주는. 놈이가 옥사에서 이야기하다가 눈가가 갑자기 은빛이 되는 순간, 소름이 쫙 끼치더라. 그건 조명의 힘이거든. 못 느꼈나?

음..솔직히..
그럼 안 되는데! (웃음) 황진이와 옥사에서 대화를 나누는 씬에서 눈가에 은빛이 쫙 돈다. 눈물이 올라오는 순간을 조명으로 딱 잡아준 거지. 그때 너무 소름 끼치더라.

앞으론 그런 부분에 대한 고려도 많아지겠다. .
먼저 영화 캐릭터 전체에 대한 고민이 많이 있어야 되겠지. 전체 영화에서 내가 해야 될 몫이 있으니까. 물론 혼자만 잘 하겠다고 발버둥치는 건 보기 싫고, 영화에 내 캐릭터를 잘 녹여낼 수 있게 감독님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과 의견을 나눠야겠더라. 그리고 현장 당일 날은 정말 베스트를 해야지. 후회 없이. 한 컷, 한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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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열은 <황진이>에서 가장 입체적인 캐릭터다. 비열하지만 가장 솔직한 인간적 욕망을 드러내는 캐릭터. 그리고 내면적인 캐릭터를 만들어야 하지만 동시에 사극이니까 그 시대에 걸맞은 외관을 위한 노력도 있었을 거다.
<스캔들>에서 배용준 씨 캐릭터를 만든 분장 팀 한필남 팀장님이 외피적인 모습 때문에 굉장히 많이 고민했지. 왜냐면 내가 너무 없어 보이니까. (웃음) 재력가이자 권력가이며 쿨한 바람둥이고, 샤프한 척도 해야 되고, 그런데 그러기엔 내가 너무 없어 보이는 거지. 굉장히 많이 고민했다. 외피적인 모습을 만들려고 노력을 많이 했지. 살도 많이 빼고. 사실 극 초반이 힘들었다. 희열이란 캐릭터가 지니고 있는 속내, 까놓고 말하면 바람둥이지. 난 술도 안 마시고, 룸싸롱 같은데 가서 여자 끼고 놀아본 적도 없다. 그래서 그런 모습이 너무 어색한 거야. (웃음) 그래서 그걸 이겨내려고 초반엔 노력했었고, 그 뒤로는 쉽게 풀렸던 거 같다. 희열 같은 인물은 지금 이 시대에도 있고 앞으로도 있을 것이고. 결국 옛날부터 계속 있었던 거지. 그런 놈 죽으면, 그런 놈 하나 태어나고. 권력에 대한 야망과 여자에 대한 소유욕을 지녔지만 겉으론 드러내지 않는 이중적인, 이런 인물들은 항상 있었지. 평소엔 평강(平康)하지만 외부적인 자극이 닥치면 분노가 일어나고 막 질투도 일어나는 건, 인간 누구에게나 있거든. 나도 있고, 기자님에게도 있고. 난 그런 지점에서 접근했다. 주변 환경에 따라서 누구나 그럴 수 있다라는 생각으로 접근했지.

희열이 도덕적인 인물은 아니지만 인간적으론 이해할 수 있다는 말처럼 들린다.
난 충분히 그럴 수 있단 생각이 든다. 그 정도의 권력을 지닌 희열이 황진이한테 쿨하게 잘해줬는데, 이 여자가 딴 남자를 사모하고 목 빠지게 기다리면 질투가 안 나겠나?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 서리가 내리지만 남자는 살인한다. 여자들은 딱 끊고 말아버리지. 도마뱀처럼. 그런데 남자는 집요하단 말이야. 그런 면에서 희열은 굉장히 솔직한 인물인 거 같다. 단순한 선악 구도에선 악당이지만 탁 털어놓고 솔직하게 보면 제일 인간적이지. 상대적으로 놈이는 굉장히 유토피아적이고 비현실적인 인물이잖아. 지금 시대를 현재로 옮긴다면 희열은 현직 검사 정도, 되게 잘나가는! 근데 놈이는 자기 앞가림도 못하고 맨날 경찰서 들어갔다 나오고. 그런데 누굴 택하겠냐고, 요즘 여자애들이. 누굴 택하겠어요? (홍보사 이 모씨한테) (웃음)

(당황한) 홍보사 이모 양: 희..희열?
그래. 당연한 거야. 이 대답이! (웃음) 그런데 영화의 매력은 바로 그거지. 비현실적이지만 올바른 것에 대해 생각해보게 하는. 현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사랑에 대한 잘못된 가치관에 경종을 울려주는, 현실적이란 핑계로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가치관들에 경종을 울리는 순수한 사랑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자. 그 말을 하는 것 같아.

희열 같은 경우는 가장 솔직한 질투가 드러난 인물인 것 같다. 그런 면에서 <황진이>에서 가장 현실적인 캐릭터였던 것 같아요.
사실 놈이가 비겁한 놈이지. 안 그래? 황진이 시집간다니까 꼰 지르고 모른 척 하고. 결국 황진이가 기생 된 건 놈이 탓이지. 결국 끝까지 지켜주지도 못하고, 현실도피적인 인물이지. 안 그래? (또 홍보사 직원한테) (웃음) 아, 근데 이러면 홍보 잘못하는 건가? (웃음)

가만히 보니까 남자 배우 복이 참 많다. 정재영 씨부터, 차승원, 설경구, 조재현, 유지태, 정준호 씨.
이범수 씨랑 뮤직비디오도 찍었다. (웃음) 그냥 뭐 고맙지. <열혈남아>에서 윤제문 씨도 같이 했었고.

윤제문 씨는 연극도 많이 하시니까 연대감도 있었겠다.
그렇지. 나랑 동갑인데. 카리스마도 있고. 좋아요. 사람.

가만히 보니까 동갑 배우가 많다. 차승원 씨도 동갑이고.
70년생 너무 많아. 진짜. 정재영, 황정민 같은 내 동기들부터 시작해서. 친하진 않지만 감우성, 이병헌, 김수로, 김혜수 등 진짜 되게 많네! 아, 강성진도 있네. (웃음)

서울 예대 시절의 인맥들에게 도움을 많이 얻고 있는 거 같다. 직접적이든 간접적으로.
사실 공식적인 자리를 떠나 개인적으론 직접 연락하는 경우는 드물다. 서로 매체를 통해서 소식 듣고 그런 편이지. 어쨌든 든든하지. 얼마 전 어떤 잡지 같은 경우에 정민이가 <검은 집>으로 표지 모델을 했고, 중간에 내 인터뷰 기사도 세 면 정도 나오고, 재영이도 <신기전> 때문에 나왔다. 동기 셋이 한번에 딱 나온 거지. 그리고 각자들 다 봤겠지. 근데 서로 “야, 너 나왔더라.” 이렇진 않죠, 우리가. (웃음) 그리고 설마 걔네 들이 “아, 이게 이제 치고 올라오네.” 이러겠어? (웃음) “승룡이 고생하더니 이제 조금씩 주목 받는구나.” 하고 좋아하겠지. 설마 “아, 큰일났네.” 이러진 않을 거 아냐.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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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간의 좋은 자극이 될 것 같다.
음..사실 그런 건 전혀 없고. (웃음) 농담이고, 그렇지. 서로 각자 좋은 자극이 되겠지.

혹시 본인을 자극하는 배우가 있나?
자극뿐만 아니라 담고 싶은, 또 닮고 싶지만 닮을 수 없을 것 같은 배우가 송강호 선배지. 뭐 다들 많이 이야기하겠지만, 연기에 있어서는 거의 멘토(mentor)라고 생각한다. (신)하균이나 재영이나 정민이도 공히 말하는 게 강호 형 연기는 혀를 내두르게 한다고. 왜냐면 너~무 자연스러우니까. 제작자나 작가, 감독이 생각하지 못한 걸 배우가 만들어내니까 소름이 끼치는 거지.

지금까지 맡았던 역할 중 가장 편하게 연기했다 싶은 역할이 있나?
<소나기는 그쳤나요>에서 농부. 그런 수더분한 아저씨 있잖아. 난 그게 너무너무 편하다. 그건 우리 동기들도 비슷할 거다. 우린 헝그리 족이었거든. (정)재영이나 (황)정민이나. 예대 시절에 두 부류가 있었어. 집에 돈 좀 있는 애들, 그래서 그때부터 일찌감치 차 타고 다니는. 근데 정민이나 나는 항상 야상, 등산화, 군복 바지나 입고 다니고. (웃음) <나의 결혼 원정기>나 <너는 내 운명>같은 순박한 연기들이 그런 데서 나오는 거지. 나도 그런 모습들이 그래서 좀 편하고. 물론 그것뿐만 아니라 <사생결단>이나 <피도 눈물도 없이>같은 마초적인 연기도 되잖아. 근데 전자보단 후자가 난이도가 조금 낮은, 쉬운 연기인 것 같다. 평탄한 호흡을 길게 가져가야 하는 연기가 굉장히 어렵지. 그래서 난 그런 연기에 도전하고 싶고.

현재 영화판에서 연기력을 인정받는 배우들을 보면 연극 무대 출신인 경우가 많다. 방금 말한 송강호 씨도 그렇고.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연극을 경험한다는 건 연기자에게 가장 좋은 경험이 아닐까 싶다.
일단 연극은 기본적으로 인간적이다. 먼저 그걸 깨닫게 하고 연기를 어떻게 해야 할지를 가르친다. 무엇보다 굉장히 엄한 곳이지. 그렇기 때문에 작품에 임하는 자세도 틀리고. 연극은 한 대본을 보통 3개월씩 연습을 하잖아. 결국 시나리오를 통한 작품 분석, 인물 분석에 굉장히 많은 도움이 되지. 호흡이나 발음, 발성 같은 것도 아예 안 배운 사람들 보단 낫겠지. 발음이나 발성 때문에 지적 받는 배우들 많잖아. 솔직히.

확실히 연극 출신 배우들은 발성이 좋은 것 같다.
그런데 그게 독이 되기도 한다. 물론 그땐 그걸 빼면 되지. 그러니까 <황진이>같은 경우엔 호통치는 연기가 많아서 발성을 이용할 때가 많았지만 <열한번째 엄마>같은 경우엔 발성을 전혀 안 썼거든. 하지만 분명 발성을 해야 될 때, 그 연습을 안 한 사람은 안 나는 거지. 그런 면에선 굉장히 유리한 거지. 그리고 질문 외적인 이야기지만 오디션을 봐서 그 사람을 얼마나 깊게 알겠어. 사실 연기는 하고 싶은데 기회가 없기 때문에 연극을 먼저 하는 경우가 많지. 난 그렇게 생각한다. 난 운이 좋아서 사진도 안내고 오디션도 안 봤지만 백날 프로필 넣고 오디션 봐도 안 되는 사람이 허다하거든. 영화는 그 바닥에서 검증된 배우들을 위주로 보기 때문에 새로운 인물이 등장하기가 쉽지 않다. 그런 면에서 (유)해진이는 참 대단한 사람이지. 해진이도 단역 오디션부터 시작했으니까. 그렇게 밟아간 경우는 굉장히 드물거든.

유해진 씨와도 같이 공연한 사이 아닌가.
같이 머리 빡빡 깎고 뉴욕 가서 <두타>했지. 고생 많이 했어. 같이 조치원 비데 조립공장가서 한달 동안 일한적도 있는데, 류사장, 유회장 막 이러면서. (웃음) 조치원 공장에서 일하는 아줌마들이 초등학교 선생님인 자기 딸 소개시켜준다고 눌러 앉으라고 막 그랬어. 진짜! (웃음) 왜냐면 일을 너무 잘하니까. 여담인데 한달 아르바이트로 갔다가 우리가 공장 시스템을 바꿔버렸어. (웃음) 너무 비효율적이더라고. 분업도 안되고. 그래서 우리가 되게 효율적으로 만들었지. 그리고 ‘오침(午寢) 시간을 줘야 한다. 그래야 효율적이다.’ 그래서 오침도 했잖아. (웃음) 어쨌든 해진이와는 같이 고생 많이 했지. 그 친구도 혈혈단신 연극하겠다고 청주에서 올라와서 맨날 후배들 자취방 돌아다니면서 자고, 세트 아르바이트도 굉장히 많이 하고.

최근 <이장과 군수> 주인공도 맡았고, 그런 모습을 보면 한편으로 뿌듯하겠다.
음..사실 이제 터닝 포인트가 필요할 시기지. 해진이가 나보단 부담이 훨씬 클 거다. 지금 그걸 고민해야 될 타이밍이니까. 지금까진 잘 왔잖아. 그런데 지금이 더 중요하잖아. 그래서 아마 해진이가 고민이 많겠지.

<황진이>는 첫 사극 연기였는데 어떻던가?
너무 좋았다. 난 사극 체질인가 봐. (웃음)

사극이랑 꽤 어울리는 캐릭터이긴 하다. 일단 턱수염만 봐도. (웃음) 분장을 안 해도 될 것 같은데?
그래도 분장 도움을 많이 받았지. 보면 알겠지만 눈썹도 다 깎아주고, 수염도 많이 다듬고. 볼도 많이 깎았다. 볼 터치로. (웃음) 옛날부터 내가 탈춤 반이나 민속극 같은 걸 선호했었기 때문에 이번에 많이 도움이 된 거 같기도 하고.

남자 배우 복은 많지만 아직 여자 배우 복은 없는데.
송혜교 씨가 처음이지. 이러면 오정해 씨가 섭섭해할 텐데. (웃음)

그래도 오정해 씨는 극중 거리를 둔 상대였으니까.
나만 많이 좋아하고 그랬으니까. 근데 오정해씨는 되게 특수한 케이스잖아. 국악인이자 음식점 경영자. (웃음) 그리고 또 강의도 하시고, 라디오 DJ도 하시고. 사실 깊은 공감대를 갖기는 힘들었던 거 같다. 그래도 학번은 나와 같았고. 그냥 작품을 떠나서는 편했지

송혜교 씨와의 연기 호흡을 맞추는 건 어땠나?
사실 (송)혜교랑은 호흡이 안 맞아야 잘 나올 것 같은 대립 구조잖아. 베드씬도 그렇고. 처음엔 너무 당황해서 대사도 까먹고 그랬다. “명월이 인사 드리옵니다.” 그러는데, 대사가 생각이 안 나는 거야! (웃음) 다 그렇게 한번 해보라고. 내가 “송도에 있는 모든 기생들이 권주가를 내게 올리는데..” 이대사를 해야 되는데, “아! 잠깐만요!” 그랬다. 대사가 생각이 안 나더라. 첫 촬영 전에 밥도 두세 번 먹긴 했는데 제대로 꾸며놓으니까 어지럽더라. 대사 다 까먹었어. (웃음) 어쨌든 호흡은 잘 맞았다. 그래서 나름대로 연기도 잘 나온 것 같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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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베드씬이 있다는 말을 듣고 망설였다가 15세 관람가라는 걸 알고 출연을 결정했다고 하던데.
사실 베드씬이라기 보단 보료씬이지. (웃음) 음..솔직히 그런 연기는 하고 싶지 않다. 물론 내가 이미지 때문에 안 벗거나 이런 건 아니고. (웃음)

사실 이미 <고마운 사람>에서 보여줄 건 다 보여준 걸로 아는데?
그거랑은 틀리지. 그건 그냥 샤워하는 거잖아. 난 적나라한 베드씬 같은 건 죽어도 못해. “연기인데 뭐 어때?”라고 할 수도 있지만 난 못할 것 같아. 난 못해! (웃음) 만약 내가 그렇게 돈을 벌어다 주면 아내가 기분이 상할 것 같다.

아내에 대한 배려 때문에?
철저하게.

지독하게 가정적이다. (웃음)
난 거기서 오는 행복이 너무 많고 크기 때문에, 가정에 대한 욕심이 연기에 대한 욕심보다 더 크다. 난 무조건 가정이 먼저에요. 물론 가정이 먼저라고 해서 일도 안하고 가정에 처박혀 있자는 건 아니고! 그럼 백수지! (웃음) 어쨌든 가정이 행복하기 때문에 내 일이 잘 되고 있는 거라고 생각한다.

<난타>의 주방장이었는데, 아내를 위해 요리를 해주기도 하나?
평소 집사람이 만든 요리를 내가 맛있게 먹어주는 우리 집사람의 가장 큰 행복이다. 집사람의 요리를 내가 맛있게 먹을 때 내가 행복할 정도로 제일 행복해하거든. 그런 행복을 자주 뺏고 싶진 않은데, 한 달에 한 두 번은 내가 할 수 있는 요리를 해주지. 특별 식으로. 그것도 와이프가 굉장히 행복해하거든. 나 추어탕 같은 건 나 되게 잘 끓이거든.

결혼은 인생에 많은 변화를 부른다. 류승룡 씨같은 경우는 상당히 안정적인 여유를 준 것 같다.
너무 좋다. 집은 어떤 것보다도 편한 안식처다. 온천보다도, 스위트 룸보다 더 좋은. (웃음) 비록 비좁고 조그만 집이지만, 난 우리 집이 제일 편하다. 왜냐면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우리 아내와 아들이 있기 때문에. 우리 아들이 한번 웃어주면 너무 행복한 것 같다. <황진이> 오백만 터지는 것만큼이나. (웃음) 그러니까 일단 지금 행복하게 살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는 거지.

어쨌든 가장으로서 경제적인 고민도 많아졌을 텐데. 그런 점에서 출연 기회가 많아져서 그만큼의 여유도 있을 것 같다.
솔직히 별로 그렇진 않고. (웃음) 사실 그제 세금을 처음 내봤다. 종합소득세. 사실 그전까진 환급을 많이 받았는데 이번엔 몇 백만 원을 그냥 냈다. 그래서 난 되게 당황했거든. 손이 부르르 떨릴 정도로. 그래서 재영이한테 전화했더니 재영이는 비교도 안되게 많이 냈더라. 물론 걔가 많이 낼 줄 알았지만 그 정도인 줄은 몰랐지. 난 아직 그 정도로 서민이다. (웃음) 어쨌든 세금 잘 내야지! 사실 돈이 생기자 마자 부모님 집 옮기는데 다 보탰다. 그래서 지금 돈이 하나도 없어. 마이너스 통장이야. (웃음)

어쨌든 이제 세금도 낼 만큼 수입이 생긴다는 이야기다. 그만큼 연기에 집중할 수 있는 여건은 좋아진다는 의미도 될 듯 한데.
그 동안 연기를 하기 위해서 일을 많이 했지. 가락시장에서도 일했었다. 결혼하고도 10개월 동안 실내 인테리어 일했다. 솔직히 말하면 잡부지. (웃음) 어쨌든 연기를 위해서 이런저런 일을 많이 했지. 생계 유지를 위해서. 이제는 여유로워졌다기 보단 연기를 위한 일만 할 수 있어서 좋다. 그러니까 그 동안은 연기로 생활비를 벌 수 없으니까 그걸 위해서 굉장히 많이 일을 했었거든. 근데 이젠 연기에만 몰입할 수 있고, 그래서 와이프도 굉장히 행복해한다. <아는 여자>나 <박수칠 때 떠나라> 때도 그랬고, 영화 없으면 난 일하러 나갔다. 연극이나 영화 하는 친구들이 일없으면 집에서 놀거나 맨날 술이나 마시는 이런 모습이 너무 싫었다. 그렇게 놀다가 여자 만나서 바람 피다가 이혼하는 사람도 많고, 이런 게 너무 싫었거든. 불과 작년만해도 난 거의, 아, 작년은 바빴구나. (웃음) 재작년만 해도 과수원에서도 일하고, 공장가서 일하고 그랬다. 틈만 나면. 근데 거기서 배운 게 많다. 거기서 만난 사람들 중 재미있는 사람 많거든. 관찰을 많이 했지. 그런 게 연기에 도움이 많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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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농부 같은 역할이 편한 게 아닐까? (웃음)
그런가? 이제 골프장 같은 데를 가봐야 회장님 연기도 할 텐데. (웃음) 하긴 내가 뭐 검사해봐서 검사했나? (웃음)

하긴 뭐 <황진이>에서 사또 역할도 어울리던데.
그렇지. 사또 해봤나? 내가 뭐, (웃음)

혹시 연기라는 길을 택한 걸 후회해 본 적은 없었나?
후회한 적 한번도 없다. 한번도 해본 적 없는 거 같아. 86년부터 했는데.

그럼 반대로 이 길을 택해서 참 다행이다 싶었던 적은?
음..그게 요즘인데. 전도에 도움이 되더라고. (웃음) 어떤 식으로든. 내가 영화도 나오고 그러니까 이 사람도 우리 교회 다닌다는 식으로.

신앙은 아내한테 영향 받은 건가?
내가 전도를 한 건데. 요즘은 그분이 더 독실해졌다. (웃음)

외모에서 풍기는 강한 인상 때문에 거칠고 험한 역할의 섭외가 많이 들어올 것 같은데.
그렇지. 형사 아니면 깡패. 그런데 우리 나라 남자배우들이 거의 그래. 깡패 아니면 형사 아니면 검사. 설경구 선배도 그렇고, 송강호 선배도 그렇고. <열한번째 엄마>도 보면 아마 기절할거다. 아동 학대, 여성 폭력, 도박. 이걸로 이제 악역의 마지막 종지부를 찍고 싶은데~. (웃음) 그런데 환경이 불우한 사람들은 그런 환경이 대물림 되는 경우가 많다. 어쩔 수 없는 환경에 태어나서 그렇게 자랄 수 밖에 없었던 사람들. 난 그 배역에 너무 연민이 가더라. 그리고 저예산 영화지만 시나리오가 너무 좋아서 참여했다. 많이 울었지. 함께 출연한 (김)혜수씨도 보고 많이 울었다.

혹시 본인이 해보고 싶은 역할이나 출연하고 싶은 장르가 있나?
난 진짜 웰메이드 휴먼 드라마 하고 싶다. 아름다운 영화 있잖아. 자극적인 영화 말고. <웰컴 투 동막골>에서 재영이가 같은 역할. 인간적이잖아. 아니면 <왕의 남자>에서 감우성 씨 같은. 매력적이잖아. 무엇보다 벗지 않아도 되니까. (웃음) 벗지 않아도 좋은 그런 역할들이 얼마든지 있어. (웃음) <아들>에서 차승원 씨 같은 역할도 되게 좋잖아. 사실 되게 욕심부렸었다. 너무 하고 싶었거든. 근데 그 놈의 인지도. 하아~.(웃음)

장진 감독과 대화 좀 했을 법한데?
장진 감독한테 하고 싶다고 했더니, “승원씨는 이거 2억에 하거든. 되게 싸게 하는 거야.” 그래서 “저 2천에 할게요.” (웃음) 또 그러니까 “야, 차승원 씨는 2억에 2백만을 책임질 수 있는 배우야. 근데 너는 2천 줘도 넌 2만?” (웃음) 그래서 “알았어요.”했지. 물론 반 농담으로 나눈 이야기다. 사실 난 유명해지거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것에 대한 욕심은 없다. 근데 이렇게 하고 싶은 역할을 못하는 경우가 생긴다는 걸 알게 되니까 인지도도 중요하더라. 왜냐면 시나리오가 너무 좋아서 난 하고 싶은데 투자자나 제작자는 인지도 없는 배우는 안 쓰려 하니까 이럴 때 너무 속상한 거다. 그런 면에서 <황진이>는 제작자나 투자자, 감독님한테 너무 감사하지. 왜냐면 내가 캐스팅될 때만해도 <박수칠 때 떠나라>밖에 개봉을 안 했었거든. <열혈남아> <천년학> <거룩한 계보> 이런 건 다 찍기 전이나 찍고 있었고. 장편 하나보고 이 역할을 결정했다는 건 그 분들이 혜안이 있다거나. (웃음)

연기가 자신을 흔든 계기가 무엇이었다고 생각하나?
연기라, 일단은 내가 방황하던 시절, 뭐 솔직히 안 놀아본 사람 없잖아. 중3, 고1때. 난 중3만 마치고 학교에서 배울 건 다 배웠다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그만 두려고 고등학교에 갔지. 그런데 교문에 들어가니까 선생님들이 막 달려오더니 발로 뻥 차고 머리를 막 깎는 거야. 완전 정신 못 차렸지. (웃음) 원래 풍생고 유명하거든. 근데 그때 교화로 연극부에 들게 했다. 그때 했던 게 <방황하는 별들>이란 뮤지컬의 복서였는데 너무 재미있더라. 그래서 그때부터 마음잡았지. 그게 나 뿐만이겠어? 연기를 통해서 많은 사람들이 나처럼 이렇게 바뀔 수가 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더라. 삶이. 어쨌든 교화가 계기가 됐지. 그리고 연기를 하기 위해서 그때부터 다시 공부도 했고. 정말 연기하려고 내가 하기 싫은 영어와 수학을 했다니까! 진짜. (웃음)

개인적으로 가장 큰 바람이나 목표가 있다면.
부끄럽지 않은 아버지 그리고 남편이 되고 싶다. 아들한텐 정말 존경 받는 아버지가 되고 싶고, 아내를 사랑하고 존경하는 남편이고 싶다. 주색잡기를 좋아하면 정말 추하게 늙잖아. 추접하게. 비참하게. 그러고 싶진 않다. 정말 며느리한테도 사랑 받는 멋있는 시아버지나 자랑하고 싶은 아버지가 되고 싶지.

다시 한번 느끼지만 정말 가정적이다. (웃음) 희열이란 캐릭터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여기서 희열이 느껴지면 큰일나지! 그리고 사실 내가 코메디에 자질이 있다. 장진 감독도 그걸 아는데 나중에 히든 카드로 써먹으려고 아직 숨겨두고 있는 거야. (웃음)

이거 기사화 시켜도 될까?
아, 뭐, 상관없다. 혹시 알아? 누가 먼저 배역 줄지? (웃음)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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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민용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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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환(이하 서): 힘들어 보인다.
유지태(이하 유): 난 하나도 안 힘든데, 혜교씨가 진짜 힘든 것 같다. 한국 여배우 중에 이렇게 인터뷰 많이 한 여배우는 없을걸.

민용준(이하 민): <황진이>에 대한 기대감이 크기 때문에 한국영화의 위기의식이 혜교씨에게 덧씌워진 탓도 있을 것 같다. 그런 영화 외적인 부분들로 인한 개인적인 부담감이 있을 법도 한데?
송혜교(이하 송): 연기할 때는 그런 부담감을 느끼거나 생각할 여력이 없었다. 연기만으로도 버겁고 벅찼기 때문에 다른 생각을 못했던 거지. 오히려 요즘 홍보하면서 만나는 기자님들이 하시는 말 한마디 한마디 때문에 더 부담이 되고 있는 게 아닐까.

서: 영화를 본 소감은 어떤가?
송: 처음 그리고자 했던 데로 잘 나온 거 같다. 그런데 작품을 본 모든 분들의 마음에 다 들 수는 없겠지. 처음 의도한대로 작품이 나왔기에 난 만족한다.
유: 메이킹이 마음에 들어서 흡족했지.

민: 원작을 봤겠지만, 개인적인 생각에 원작에 비해 영화는 무게감을 많이 줄인 느낌이다. 로맨스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냈기 때문인 것 같기도 하고.
유: <황진이>는 100억이 든 영화다. 소설이나 영화나 둘 다 대중 예술에 속하지만 두 분야는 각각 상업적으로 소비될 수 있는 규모나 지속성이 다르다. 마켓에서의 유효성을 보자면 소설에 비해 영화는 단기간이다. 아마도 원작을 고스란히 스크린에 옮기기엔 대중과 호흡에 불편한 느낌이 있었을 거다. 그래서 대중성을 살리다 보니 멜로 라인이 부각됐던 게 사실이지. 영화가 관객들에게 쉽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 것도 중요하니까. 단지 영화와 소설의 차이를 꼬집기 보단, 소설을 보는 재미만큼 영화를 보는 재미를 발견했으면 좋겠다. 종종 소설 원작 영화들이 소설에 짓눌리는 경우가 많지 않나? 예를 들면 <제5원소>나 <다빈치 코드>처럼. 난 <황진이>에 관해선 감독님의 선택이 현명하다고 생각한다.

민: <황진이>의 시나리오를 펼치기 전엔 기존의 황진이를 먼저 떠올리고 접근했을 법도 하다. 그런데 시나리오 속 황진이가 그런 관점과 다르다는 점은 묘했을 법도 한데.
유: 그게 우리 <황진이>의 매력이지.

서: 인간 황진이에 집중하기 위한 감독의 의도 때문에 상대적으로 예인 황진이의 모습은 많이 눌렸다. 반면, 놈이 캐릭터는 인간 놈이보다 의적 놈이에 더 많이 집중을 한 느낌이다. 그런데 황진이와 놈이 캐릭터를 함께 살리다보니 영화에 집중하기 힘들단 생각도 들었다.
유: 그럴 수도 있겠지. 하지만 <황진이>의 스토리 라인을 끌고 가는 건 놈이이기도 하다. 원작을 봤다면 알겠지만.

서: 원작은 놈이를 소위 임꺽정 같은 인물처럼 묘사하며 중요하게 다뤘지만 사실 <황진이>를 찾는 관객들에게 그 부분에 대한 기대치는 솔직히 없다고 본다. 황진이의 인생 굴곡과 사랑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놈이의 역할은 충분했을 텐데 굳이 놈이를 부각시켜서 영화에 끌고 와야 했을까란 의문이 들었다.
유: 서로 상호작용을 해야 되는데 방해가 된다고 느낀다면 그건 문제가 있는 거겠지. 편집을 잘못 했을 수도 있는 거고. 하지만 그와 반대로 황진이와 놈이의 교감에 대한 상호작용을 통해 감동을 느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또 황진이에만 집중했다면 예인 황진이를 부각시켜야 했을 수도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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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 둘 다 오랜 연기경력을 지녔음에도 사극은 처음이다. 어땠나?
송: 연기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감정 씬들에 대한 어려움보단, 처음이라선지 사극 대사가 너무 어려웠다. 간단한 의미의 대사들임에도 불구하고, 의도한 대로 나오지 않아서 방황하거나 긴장한 적도 있었다. 그런 것들 때문에 초반에 힘들었고,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지. 그런데 그때마다 감독님께서 도와주시고, 현장 분위기가 익어갈수록 나도 자리 잡기 시작하면서 그런 두려움들도 많이 없어졌다. 그 이후로는 수월하게 진행된 거 같다. 여러 가지로.

서: 기존의 연기와는 다른 점이 많은데 캐릭터를 잡아갈 때 어떤 것에 중점을 두었나?
송: 그런 질문들 참 많이 한다. 그런데 난 지금까지 어떤 모델을 두거나, 어디에 중점을 두면서 계산된 연기를 해본 적이 없다. ‘여기서 난 이렇게 표현을 할 거야.’했을 때, 정말 내가 원하는 대로 표현된다면 난 정말 천재겠지. 물론 계산된 연기를 하시는 분들도 있겠지만 난 그렇게 하고 싶어도 그렇게 되지도 않고. 영화를 찍는 몇 개월 동안 시나리오를 끼고 황진이로 살면서 매순간순간 느끼는 그대로, 그냥 매 순간순간의 몰입으로 연기를 할 뿐이다. 어떤 것에 중점을 두고 하는지는 모르겠고, 어떻게 하는 지도 모른다.

서: 결과적으로 본인의 연기에 대한 느낌은 어떤가?
송: 본인의 연기를 보고 만족하는 배우들은 없지 않나.
유: 잘 했지. (웃음)
송: 난 아쉬운 것도 많고, ‘의외로 나에게 저런 면이 있었구나’싶은 재미있는 부분도 있었고, 반반?
유: 그 정도면 잘 한 거 아냐? (웃음)
송: 억지로 막 이래. (웃음)

민: 개인적으로 혜교 씨의 황진이는 송혜교 절반에 황진이 절반을 섞어놓은 느낌이더라.
유: 연기에 배우의 색깔이 들어간다는 말처럼, 송혜교씨의 색깔이 드러나지 않으면 그 송혜교의 황진이가 아니겠지.

민: 매력적인 캐릭터를 연기한다는 건 배우한테 설레는 일이니까, 그런데 그런 캐릭터를 자기만의 느낌으로 지닐 수 있다면 더없이 특별한 일일 것 같다.
유: 배우는 자기 색깔로 연기하는 게 가장 중요한 거라고 생각한다.

서: 유지태 씨의 색깔은 뭐라고 생각하나?
유: 유지태의 색깔이겠지. (웃음)

서: 정말 만약이지만, <황진이>가 흥행에 실패해도 송혜교는 성공적으로 영화계에 안착할 수 있지 않을까란 생각이 든다.
송: 정말요? 다행이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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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파랑주의보> 때는 흥행 참패 여부를 떠나 드라마 속 이미지를 고스란히 스크린에 끌고 왔다는 인상이 있었다.
송: 그건 내가 수락한 거다. 왜냐면 스크린에 처음 진출하는 거고, 내 영향력이 어느 정도인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무작정 큰 역할, 큰 영화에 출연하고 싶지는 않았다. 너무 모험 없이 안전하게 가려는 게 아니냐는 말도 많이 들었지만, 일단 내가 기존에 잘 하는 것들로 새로운 곳에서 시작하고 싶었다. 남들이 뭐라 그러던 간에. 결국 좋은 결과는 안 나왔지만, 그 때 아팠던 건 그 때 다 털어버리면 끝이다. 물론 이번 <황진이>는 잘 됐으면 좋겠지. (웃음) 하지만 얻은 게 많다. 흥행을 떠나서 이렇게 큰 작품을 만났다는 것만으로 행운인 것 같고, 황진이를 연기했다는 것만으로도 영광스럽고, 그것만으로도 난 거의 다 가졌지. 거기서 흥행이라는 것까지 갖게 되면 더욱 좋겠지만, 일단 내가 연기자로서 갖고 싶었던 것들은 다 갖게 된 거 같다.

민: 작품에 대한 욕심도 있었겠지만 연기 변신에 대한 욕심도 분명 <황진이>를 선택하는데 작용했을 거란 생각이 드는데.
송: 그게 없다면 거짓말이겠지만, 기존의 이미지를 벗어버리고 싶다거나 탈퇴하고 싶다는 마음이 강하진 않았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날 지켜보는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이미지를 바꾸고 싶다고 생각했던 것보단, 본인 자체가 기존에 비슷한 인물을 계속 연기하다 보니까 재미도 없고, 흥도 안 나고, 어떤 연기를 해도 성취감도 안 들었던 것 같다.

민: 가끔은 역할에 갇히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송: 기존의 연기가 싫다는 건 아니다. 그냥 너무 많이 하다 보니까 내 스스로가 너무 재미가 없었다. 그렇다고 이제 또 다른 역할을 하고 싶다 해서 무작정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어느 배우건 새로운 역할을 하고 싶고, 또 다른 새로운 역할을 찾지만 그에 반해 영화를 만드는 분들은 그 배우의 한 가지 면만을 보고 비슷한 역할만을 주려고 하는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여러 장르의 캐릭터를 해보지 못하게 되는 것 같더라. 나도 비슷한 컬러(color)의 캐릭터들만 들어오다가 <황진이>라는 작품이 들어온 거지. 그래서 놓칠 수가 없었다.
유: 대부분 연기자들이 악수(惡手)를 두게 되는 게 타입캐스팅(type casting)을 할 때라고 본다. 칭찬받아 왔던 연기와 비슷한 것만 연기하는 거지. 송혜교씨는 이번 영화를 통해 자신이 해오지 않았던 연기를 했으니까 그만큼 값진 게 없겠지.

민: 유지태씨는 영화는 많이 출연했지만 드라마는 출연하지 않더라. 내 기억이 맞다면, 옴니버스 드라마 <유실물>밖에 없는 걸로 안다.
유: 맞다. 그거밖에 안 했다.

민: 특별한 이유라도 있나?
유: 그냥 영화 쪽에 공감대가 많았던 것 같은데. 관객으로서, 배우로서 영화를 좋아했었고. (권)상우랑 종종 서로의 필모그래피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난 영화만 16편을 했는데, 상우도 드라마까지 합치면 대략 나랑 비슷하다. 상우도 열심히 살았지만 나도 열심히 살았지. (웃음) 다만 난 영화를 팠고, 상우는 드라마와 병행한 거지. 결국 비슷한 거 같다.

민: 반면, 송혜교씨는 <파랑주의보> 때부터 드라마에 출연하지 않았다. 그건 영화에 매진하겠다는 의사인가?
송: 물론 영화만 할래, 이런 건 없다. 솔직히 난 영화만의 매력을 아직까진 잘 모르겠다. 이제 <황진이>가 두 번째 작품인데, 컷이 많다보니까 거의 드라마 찍듯이 너무 바쁘게 찍어서 정신없었다. 그래서인지 남들이 얘기하는 그 매력이 어떤 건지 잘 모르겠더라. 하지만 영화도 좋긴 하다. 그렇다고 이거 하나만 쭉 가겠단 생각은 없지. 연기데뷔 10년 만에 영화엔 데뷔했다. 그러다 보니 워낙 탤런트란 이미지가 강하더라. 그래서 이렇게 시작했으니 영화배우란 이름을 듣고 싶다. 그래서 영화 몇 편을 더 한 뒤에 드라마를 병행하고 싶다는 생각은 있다. 그래도 그런 와중에 정말 좋은 드라마가 있으면 할 생각 있다.
유: 생각해보면 나도 진짜 드라마를 했어야 했는데. (웃음) 드라마를 안 한 게 좀 후회가 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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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 두 사람은 나이차와 무관하게 데뷔시기가 비슷하고 경력도 그렇다. 그런데 호흡을 맞춘 건 처음인데.
유: 난 영화만 하고, 혜교씨는 드라마만 하고, 그래서 엇갈린 거겠지. (웃음)
송: 난 유지태씨랑 같이 연기할 일이 없을 줄 알았다. ‘저 배우랑은 연기할 일이 있을까? 왠지 없을 것 같아.’라고 생각했었지. 그런데 오히려 조만간 같이 연기하게 되지 않을까 짐작했던 배우와는 인연이 없고, 예상치 못한 분이랑 이번에 한 것 같다. 솔직히 마치 딴 세계의 사람 같았다. (웃음) 근데 만나보니까 안 그렇더라.

민: 애초에 친분 같은 건 전혀 없었나?
송: 전혀 없었다. 그러니까 딴 세계 사람인 줄 알았지! (웃음)

서: 지태씨도 마찬가지였을 것 같은데. (웃음)
유: 글쎄. 난 지금까지 상대배우들에 대해서 심각하게 생각해 본적이 별로 없는 것 같은데. 그냥 송혜교씨 같은 ‘좋은 이미지의 배우와 함께 하는구나. 잘 했으면 좋겠다.’ 정도? 그리고 난 시작할 때보다 끝날 때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 배우와 다시 만나서 연기를 또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그 배우에 대한 가장 좋은 상(像)이 아닐까.

서: 사실 지태씨가 예전에 비해 유독 이번엔 상대배우인 혜교씨 칭찬을 너무 많이 하는 것 같다. 마치 팔불출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웃음)
송: 나한테 힘을 넣어주시려고 그러는 거겠지. 사실 내가 기사 체크하는걸 알거든. (웃음)
유: 아니, 뭐, 잘 한 걸 잘 했다고 얘기하는 거니까.
송: 기자님이 그 말씀하셔서 이제 칭찬 안 하겠다.

서: 뭐, 어차피 이게 인터뷰 없는 걸로 아는데. (웃음)
유: 팔불출이어도 좋다! (웃음) 윤여정 선생님도 혜교씨를 참 좋아하신다. 혜교 씨가 그만큼 잘 한 거지. 나도 좋았다. 재미있었고.

민: 근데 유지태씨의 필모그래피를 살펴보니까 코믹한 연기를 제대로 해본 적은 없는 거 같다. 물론 <주유소 습격 사건>을 했지만 정극적인 코믹 연기는 아니었고.
유: 코믹이야 말로 감독색깔이 굉장히 중요한 장르라고 생각한다. 코미디가 개그화되면 저급해질 경우가 많다. 코메디와 멜로, 호러 같은 영화는 기획영화의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감독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좋은 감독님이 같이 코미디하자고 하면 할 것 같은데. 근데 사실 내가 좀 썰렁하다. (웃음) 다른 식의 코미디를 해야 되겠지.
송: 블랙 코미디같은? (웃음)

민: 혜교씨 같은 경우엔 <순풍 산부인과>의 코믹한 이미지도 어울렸다고 생각한다.
송: 나도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사실 그 당시엔 내 연기보다 고등학생의 나이에 딱 맞았던 것 같다. 사실 그 때 성격은 주위 사람들한테 오해 살만큼 내성적이었으니까. ‘조그만 게 왜 이리 도도해, 새침때기야’, 이런 소리 들을 만큼. 오히려 요즘 더 발랄하고 명랑해진 거 같다. 근데 지금 다시 보면 되게 웃기다. 내 모습 아닌 거 같아. 볼 살이 곧 터질 것처럼 너무 빵빵해!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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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 그 때에 비하면 살이 많이 빠졌다.
송: 많이 빠졌지. 그 때는 고등학생이라서 젖살도 있었고.

서: <파랑주의보> 때보다도 많이 빠진 거 같다.
송: 여자 배우들은 늘 다이어트 생각하고 있으니까. 근데 <황진이> 때는 일부로 다이어트 안 하고, 많이 챙겨먹었는데도 많이 빠지더라.

서: 혜교 씨는 지금도 그렇지만 연기할 때 약간 숨넘어갈 듯 대사치는 게 있더라. 호흡을 단절하면서 말하는 게 아니라 한번에 다 하려는 듯한.
송: 내가 약간 흥분하면 나오는 건데, <황진이>에서도?

서: 딱 한 씬에서. 초반에 발 걷고 등장한 이후, 수 놓으면서 대화할 때.
송: 내가 찝찝한 부분이 거기였던 거야! 얘기하지 마시지! (웃음) 그게 초반에 찍은 아씨 시절인데, 그래서 내가 영화를 보며 아씨 시절 나오면 귀를 막아버리잖아. 왜 그건 후시 안했나 몰라? (웃음) 처음인데, 그거 지적하신 분은. 굉장히 예리하네요.

서: 사실 송혜교 씨에게 관심이 많아서. (웃음) 드라마 볼 땐 그게 송혜교의 매력이라 생각했는데 스크린에서는 좀 아니더라.
송: 고쳐야 될 점이지. 매력은 아니고, 솔직히 나도 알고 있다. (웃음)

민: 영화배우로서의 갈망도 있을 것 같다. 특별히 스크린을 통해서 해보고 싶은 역할이나.
송: 해보고 싶은 역할이 정말 너무 많다. 요즘 내가 인터뷰를 통해서 독특한 캐릭터를 해보고 싶단 말을 많이 하기도 했고. 예를 드는 두 작품이 다 박찬욱 감독님 영화인데, <친절한 금자씨>에서 이영애 선배님이 했던 역할이나,

민: 혹시 나머지 작품은 <싸이보그지만 괜찮아>?
송: 맞다. 임수정씨 역할도 되게 매력 있었다. ‘야, 저 예쁜 배우가 저런 모습의 연기까지 되는구나.’라고 감탄하면서 봤으니까. 나도 한번 저런 캐릭터 만나보고 싶단 생각을 했다.

서: 확 와 닿네. 송혜교의 ‘너나 잘하세요.’
송: 그 정도로 독특한 캐릭터를 만나보고 싶다.

서: 그런데 아까 지태씨가 말한 것처럼 정형화된 타입의 연기를 하는 것이 악수가 될 수 있지만, 한편으로 그에 대한 강박관념으로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것도 독이 될 수 있다.
송: 강박 관념으로 도전하는 것보단 그냥 스스로 연기를 즐기기 위해서지. 일단 내가 연기를 즐기지 못하면 관객들도 똑같이 그걸 느낀다고 생각하니까. 일단 내가 메리트(merit)를 느껴야 되기 때문에 찾는 거다. 새로운 걸. 지금까지 지속해왔던 내 연기가 나 자신에게 재미있다면 계속 그걸 해야겠지만 내가 그걸 못 느끼니까.

서: 그럼 그전에 재미없게 한 연기도 있었다는 소리?
송: 비슷한 연기를 하다보니까 너무 많이 해서 새로운 걸 찾는다는 소리죠! 내가 말을 잘 못하나? (웃음)

서: 스타와 배우의 간극이 분명히 있다고 생각한다. 혜교씨 본인이 느끼는 부분이 궁금하다. 본인은 그 간극에서 어느 정도의 위치에 있다고 생각하나?
송: 내가 느끼는 게 대중들이 느끼는 것과 같다고 본다. 일단 나도 배우지만 아직 스타 이미지가 많이 강하겠지. 그렇다고 굳이 그런 이미지를 부술 필요는 없다. 스타라는 이미지도 날 사랑해주시는 팬들이 만들어 주신 중요한 것이니까. 물론 연기를 기준으로 생각한다면 그게 큰 장애물이 될 수도 있겠지. 욕심이 많다고 할 수도 있지만 그 양쪽에 모두 충실하고 싶다. 나이를 한두 살 더 먹고 연기자의 이미지에 점점 더 가까워진다면 한쪽을 포기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두 가지 다 갖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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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항상 대중과 스타의 입장은 평행선을 달리는 것 같다. 스타이기 때문에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 부분도 있고, 스타이기 때문에 함부로 평가 할 수 없는 부분도 있고.
유: 그런데 난 스타와 배우를 어떻게 나누는지 잘 모르겠다. 솔직히 영화배우는 스타여야만 영화를 할 수 있다. 거대자본을 움직이는 상업영화는 스타여야만 선택 받을 수 있고. 배우와 스타를 어떤 기준으로 나누려하는지? 스타가 아닌 영화배우는 없는 거다.

서: 원론적으로 이야기하면 그럴 수도 있겠다.
유: 원론적이라기 보단, 단적으로 말해서 스타가 없으면 투자가 안 된다. 자본이 움직이지 않으면 영화는 존재하지 않고. 순수예술이 아닌 상업예술이니까.

서: 그렇지만 스타라는 존재 자체가 흥행과 바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잖나.
유: 그렇지. 그런 다음에 작품성과 같이 연동이 되는 건데.

서: 그렇기 때문에 배우들 스스로 그런 생각들을 갖는 것 같다. 본인이 지닌 스타로서의 인기가 연기적 역량으로 더해지면 좋을 것이란 생각을 하니까.
송: 연기하는 순간만큼은 그런 생각을 안 한다. 이런 공식적인 자리에서 비쳐질 뿐이지 거지 일할 때는 그렇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배우가 먼저 그런 말한다고 하셨잖아요. 그런 말을 하게끔 대중들이 그렇게 생각을 해요. 그런 말을 들을 수밖에 없게끔. 우리가 아무리 영화배우라고 외치면 뭐해요. 보는 관객들이 ‘넌 아직 덜 됐어’라고 말하면, 우리가 아무리 외쳐도 인정하지 않는데.

서: 그 평가의 기준을 다르게 볼 수도 있다는 것 아닐까. 단순히 스타와 배우의 구분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유: 난 스타라는 기준에 대한 피해의식 때문이라고도 생각한다.

민: 결국 스타라고 말할 수 있는 기준은 인지도의 여부로 판가름 나는 것 같다. 그게 관객이든, 투자자든. 그건 결국 영향력일 수도 있고. 그리고 그런 구분은 그런 영향력에 대한 반작용일 수도 있다. 방금 말한 것처럼 피해 의식일 수도 있고.
유: 물론 그런 위치를 부러워하는 사람도 있겠지. 스타성을 가지고 있다는 건 엄청 큰 거다. 사람들이 흔히 이야기하는 연기라는 기준은 매체의 특수성이 다 다르기 때문에 섣불리 평가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분명한 건 영화는 스타의 등장을 필요로 하고 스타가 주연을 하는 거지. 그 논리는 뗄 수가 없다. 물론 독립영화는 스타가 등장하지 않아도 되지. 하지만 <황진이>처럼 100억이나 들어가는 상업 영화에서 스타는 굉장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그런 부분을 고려하지 않을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민: 류승룡씨도 하고 싶은 연기를 위해서라도 인지도는 중요한 것 같다고 하더라.
유: 당연히 중요하다. 내가 드라마 안한 것이 후회된다고 했는데 그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연기적인 측면, 드라마 하시는 분들은 정말 순발력이 빠르다. 그런 부분에서 아쉽고, 또 하나는 대중적인 인지도다. 아무래도 드라마가 영화보단 대중적으로 친밀감이 높지 않나. 한류스타들의 파워도 드라마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많더라. 종종 내가 그런 파워를 지니지 못한 것이 아쉽다. 어떤 영화를 한류스타가 하고 싶다고 하면 그 순간 투자는 다 끝난다.
급이 다르다고 할까. 물론 드라마를 했느냐, 안했느냐가 결정적으로 중요한 건 아니겠지만, 분명 드라마를 하면서 얻어지는 부분이 있었을 거라 생각한다. 그런 것들을 내가 너무 한계지어서 생각하지 않았나 싶은 거지. 하지만 내 밥그릇이 영화를 좋아하는 밥그릇이니까 영화를 한 거겠지. (웃음)

서: 그렇다면 본인이 지금까지 끊임없이 캐스팅 될 수 있는 까닭은 뭐라고 생각하나?
유: 한 번도 생각해 본적은 없는데. 요즘에는 결정해도 못 들어가는 영화가 있으니까 요즘에 생각해봐야겠네. (웃음) 영화배우가 영화 찍는 게 뭐 큰일은 아니기도 하고. 영화배우 유지태로서 지금 입장에서 불만은 하나도 없다.

민: 그런데 요즘 연극 무대에 종종 서고 있다. 아무래도 영화에 한정된 자신의 영역을 확장하고자 하는 의지가 아닐까 싶은데.
유: 연극을 하는 건 여러 가지 의미가 있다. 자기 계발도 있고. 영화 연기를 하다 보면 미니멀(minimal)한 연기, 드라이(dry)한 연기를 하게 되고 절제하는 내면 연기들을 많이 하게 된다. 반면 다양한 것들을 채울 수 있는 외향적인 연기를 훈련해야 되는데 연기자로서 무대만큼 좋은 시험대가 없으니까. 내가 영화를 만들고 싶기 때문에 인프라를 형성하려는 의도도 크다.

민: 감독에 대한 열망도 있는 듯 한데, 이미 단편영화도 2편을 만들었다. 어떤가? 연기하는 것에 비해 연출하는 건?
유: 글쎄. 작품 하는 건 크게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연기자는 보여주는 매력이 있다면, 연출자는 만드는 매력이 있는 것 같다.

서: 배우와 감독으로서 지태씨의 자의식은 무엇인가?
유: 그냥 자유롭게 연기 생활을 했으면 좋겠고, 자유로운 영화인이 됐으면 좋겠다. 조지 클루니가 ‘그림이 되기 보다는 화가가 되겠다.’는 이야길 했는데 참 멋있는 비유 같다. 쉽게 말해서 배우보단 감독에 더 열의를 갖고 있다는 말이 될 텐데, 그 사람이 출연한 영화들도 참 매력적이지만 그 사람이 만드는 영화들도 참 멋있는 것 같다. <굿 나잇, 앤 굿 럭> 같은 영화도 그렇고. 자유로운 영화인이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는 거 같다.

민: 유지태씨는 오랫동안 영화계에 몸담고 있었던 만큼, 최근 한국영화 위기라는 상황에 대한 남다른 의식이 있을 법도 하다.
유: 지금까지 해왔던 방법 말고 다른 시스템에 대한 도전을 해봐야 되겠지. 일본 영화나 미국 영화처럼 프로듀서 중심의 영화제작 시도도 필요하고. 한국 영화가 찾아가야 할 길을 제대로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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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황진이> 이후, 계획이 궁금하다.
송: 올해가 가기 전에 영화 한편 더 하고 싶고, 내년쯤 드라마도 하고 싶다. 계획은 그런데 그렇게 될지 모르겠네. (웃음)
유: 단편영화 한편 만들 생각을 하고 있다. 올해 안에 영화 한 편 출연할 수 있으면 좋겠고.

민: 지태씨는 이제 어떤 연기보다 어떤 영화를 만들고 싶은지 여쭤봐야 할 것 같다. (웃음)
유: 영화는 여러 장르를 생각하고 있다. 연극을 했던 것도 영화화의 일환이 되는 거고. 시놉시스들이 다 영화화될 수 있으니까.

민: 혜교씨는 지금 당장은 푹 쉬고 싶겠지만, 영화든 드라마든 자극적인 캐릭터와 기존의 캐릭터가 둘 다 들어온다면 어떤 캐릭터를 선택할 것 같나?
송: 자극적인 거. 안 해봤던 거.

민: 너무 깨는 역이 들어와도?
송: 두렵지는 않은데, 예쁜 모습 많이 보여드렸는데, 뭐.

서: 그게 불만인 사람도 있을걸. 망가져도 예쁘잖아.
송: 꼭 망가져 드려야 되겠다(웃음).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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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민용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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