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문호 코맥 매카시가 쓰고 거장 리들리 스콧이 연출한 <카운슬러>를 보면 한숨이 절로 나온다.

Posted by 민용준
,

 

 

가끔은 잘 만들어줘서 고마운 영화가 있습니다. <소원>이 그렇습니다. <소원>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입니다. 그것도 끔찍한 실화이지요. 비극적인 실화를 바탕으로 기획된 영화들은 그 현실을 담보로 삼아서 관객의 공분을 이끌어내고 소비하기 쉬운 형태로 기획되곤 합니다. 영화가 사건을 묘사하는 방식과 그 사건에 대한 인물들의 분노를 발화시켜서 관객들의 마음을 들끓게 만드는 것이죠. 그 과정에서 당사자들의 통증에 대한 공감은 쉽게 무마됩니다. 아마 당신은 그런 영화들 앞에서 여러 번 끓어올랐을 겁니다. 하지만 끓는 점을 지나면 증발하게 되는 법이지요. 그런 종류의 분노는 상영관을 나와서 쉽게 잊혀지기 마련입니다. 그 분노는 당사자들을 위한 위로보단 영화적 소비를 권장하는 전략에 가깝기도 합니다. 일종의 스포츠 경기에서 비롯되는 흥분과도 유사합니다.

Posted by 민용준
,

<잡스>의 실패

cinemania 2013. 8. 26. 03:16

스티브 잡스에 대한 영화를 만든다고 했을 때, 제일 먼저 떠올린 건 아론 소킨이었다. <소셜 네트워크> <머니볼>의 각본가 아론 소킨만이 스티브 잡스의 양면성을 근사한 스토리에 녹일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아무나 해서는 안될 이야기였다. 스티브 잡스라는 이름 자체의 유명세가 그것을 특별한 아이템처럼 둔갑시키니까. 반대로 말하자면 식상하다는 말이지. 이미 925페이지에 달하는 전기까지 출간된 마당에 스티브 잡스가 얼마나 천재적이었고 한편으론 괴팍하고 독선적이며 외로운 사람이었고, 이런 식의 블라, 블라, 블라는 곤란했다. 스티브 잡스라는 사람의 인생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내면을 관통하고 그의 시점에서 발견할 수 있는 예상 밖의 이야기를 길어올릴 수만 있다면 정말 괜찮은 결과물이 나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이런 얘기를 한다는 건 이미 눈치챘겠지만 <잡스>가 그런 관점에서 실패한 영화라는 말이다.

Posted by 민용준
,

 

<폭스파이어>는 혁명이나 테러라는 단어를 연상할 수밖에 없는 영화지만 혁명에 관한 영화만은 아닌 것 같다. 오히려 어떤 시절이나 인물에 대한 노스탤지어에 가깝다. 여성의 인권이 길바닥의 깡통 같았던 1950년대 미국을 배경으로 둔 이 영화는 페미니즘적인 가치관으로 무장한 소녀들이 혈기를 발판으로 한데 뭉쳐 조직으로 거듭나고 점차 세를 규합하다 파국으로 닿는 과정을 그린다. 소녀들의 반시대적인 연대가 공격적인 행위로 나아가는 과정은 장악력 있는 교주 아래 모인 신도들의 맹신처럼 자라고, 근본주의적인 집단의 폭력적 특성과 유사하게 닮아간다.

'cinemania'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래비티> 단평  (0) 2013.10.08
<잡스>의 실패  (0) 2013.08.26
<에반게리온:Q> 단평  (0) 2013.04.18
<킬링 소프틀리>미국이라는 비즈니스 브랜드  (0) 2013.04.05
<지슬> 후기  (0) 2013.04.01
Posted by 민용준
,

 

<킬링 소프틀리>는 오바마의 연설로부터 시작된다. 미국 대통령 버락 오바마가 아니라 2008년 부시 정권 말기에 공화당의 대선 후보 존 맥케인과 경합을 벌이던 민주당 대선 후보 오바마 말이다. 그리고 영화가 이어지는 내내 조지 부시 미국 전대통령이나 오바마, 미국 전 재무부 장관 헨리 폴슨과 같은 정치인들의 연설이나 발언이 심심찮게 귀를 파고 든다. 만약 당신이 브래드 피트가 출연하는 하드보일드한 킬러물 정도를 예상하고 상영관을 찾은 관객이라면 이미 예사롭지 않은 오프닝 시퀀스만으로도 기대가 빗나갔다는 예감이 들지도 모를 일이다.

 

 

Posted by 민용준
,

 

때가 되면 주민등록증을 발급받고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권리를 행사하고 의무를 이행해야 한다. 그것에 대해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좀처럼 따져 묻지 않는다. 그건 마치 누군가의 아들이나 딸이 되는 것과 비슷한 이치라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사실 대항할 필요도 없는 일이다. 모든 것이 공명정대하고 명확하기만 하다면 말이다. 그게 아니라면 따져 물어야 한다. 하지만 역시 대부분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피곤하기 때문이다. 무언가를 바로잡겠다고 나설 때엔 그만한 각오가 필요한 법이다. 어쨌든 아나키스트, 즉 무정부주의자란 말은 있어도 무정부인, 비국가인이란 말은 없지 않은가.

'cinemania'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지슬> 후기  (0) 2013.04.01
<007 스카이폴>제임스 본드는 죽지 않는다  (0) 2013.03.16
<내 인생의 마지막 변화구>노인을 위한 변명은 없다  (0) 2013.01.02
<타워> 단평  (0) 2013.01.01
<26년> 단평  (0) 2012.11.23
Posted by 민용준
,

 

분노를 추스르지 못하는 남자는 자기 주변의 모든 것을 스스로 파괴한다. 그로 인해서 주변의 모든 것으로부터 스스로 동떨어진다. 그에게 세상은 거대한 쓰레기통과 같다. 패악을 자행하는 이들은 역겹고 그들에게 복무하듯 살아가는 약자들의 무기력도 꼴사납다. 그 분노의 뿌리는 개인적인 사연에 닿아 있다. 그 누구도 해결해줄 수 없는 상실의 뿌리가 그의 화를 부추긴다. 메울 길이 없다. 그런 어느 날, 한 여인을 만났다. 울화가 치민 채로 들이닥쳤던 어느 가게의 한 구석에서 무너져있던 그에게 그녀가 말을 걸었다. 조셉(피터 뮬란), 한나(올리비아 콜맨)를 만나다.

 

'cinemania'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다크 나이트 라이즈> 단평  (0) 2012.07.18
<은교> 단평  (0) 2012.04.19
<건축학개론>노스탤지어를 위한 성숙한 인사  (0) 2012.03.28
<화차> 단평  (0) 2012.02.23
<휴고> 단평  (0) 2012.02.22
Posted by 민용준
,

 

건축설계를 하는 승민(엄태웅) 앞에 대학교 1학년 시절 알고 지냈던 동창 서연(한가인)이 찾아온다. 불쑥 나타난 그녀는 대뜸 제주도에 집 한 채를 지어달란다. 난색을 표하던 승민은 결국 이를 수락하게 되고 두 사람이 재회한 현재로 인해서 과거의 승민(이제훈)과 서연(수지)이 그들의 기억 속에서 되살아난다. 삐삐로 소식을 전하고, 무스로 머리를 넘기고, 펜티엄 1기가 메모리가 대단하게 느껴지던, 90년대에 그들은 만났었다.

'cinemania'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은교> 단평  (0) 2012.04.19
<디어 한나>마음을 후려갈기는 힐링 무비  (0) 2012.04.03
<화차> 단평  (0) 2012.02.23
<휴고> 단평  (0) 2012.02.22
<철의 여인>마가렛 대처에 대한 모호한 시선  (1) 2012.02.20
Posted by 민용준
,

 

마가렛 대처는 영국 최초로 여성으로서 국회의원이 됐고, 영국뿐만 아니라 서구 사회 최초의 여성 총리로 꼽힌다. 보수당에 몸담고 있던 그녀는 성장 중심의 정책을 우선시하는 보수당의 신념에 철저하게 복무한 인물이다. 10년이 넘도록, 영국 역사상 가장 오랫동안 총리직을 지킨 그녀의 정치적 역정은 파란만장 자체였다. 경제성장과 일자리 창출의 기치를 내걸며 총리직에 당선된 그녀는 영국의 경제적 위기와 실업률 증가 속에서 갖은 비난을 들었지만 영국령인 대서양의 포클랜드를 침공한 아르헨티나 군에게 전면전을 지시하고 끝내 전쟁에서 승리하며 대단한 인기를 얻었으며 이에 고무된 영국의 경제성장을 이룬 인물이다. 테러리스트와 결코 대화를 하지 않는다는 강경한 원칙을 내세우며 철의 여인이라 불리기도 했던 그녀는 임기 말년에 독선적인 태도로 고립됐고, 갖은 테러리즘에 시달리다가 끝내 정치적 편력에 밀려서 총리직을 사임했다.

'cinemania' 카테고리의 다른 글

<화차> 단평  (0) 2012.02.23
<휴고> 단평  (0) 2012.02.22
<언더월드 4: 어웨이크닝> 단평  (0) 2012.02.18
<아티스트>시대착오적인 그러나 시대초월적인  (2) 2012.02.16
<워 호스>마성의 드라마  (0) 2012.02.13
Posted by 민용준
,

흑백의 영상 안에서는 누가 봐도 악당으로 보이는 무리들에게 전기 고문을 당하고 있는 남자가 있다. 심문 , 남자는 감방으로 내던져지지만 자신을 찾아온 강아지의 도움으로 그로부터 탈출한 , 자신처럼 감금돼 있던 여인을 구한다. 객석에 앉은 관객들은 그의 고난에 마음을 졸이다가, 그의 활약상에 통쾌한 웃음을 날린다. 그렇다. 이는 영화다. 흑백무성영화, 그리고 속에서 활약하던 남자는 당대 최고의 무성영화스타 조지 발렌타인( 뒤자르댕)이다. 영화가 끝나고 박수 갈채 속에서 무대에 오른 그는 관객을 향한 팬서비스에 여념이 없다.

Posted by 민용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