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연이 처음 스크린에 모습을 드러낸 건 1997년, <접속>을 통해서였다. 그녀가 <밀양>으로 칸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건 2007년이었다. 정확히 10년 만이다. ‘한국을 대표하는 배우’라는 빤한 수사의 진짜 주인이 된 게 말이다. 그녀는 그저 묵묵히 한발한발 작품을 내디디며 오늘에 다다랐다. 그녀가 또 한번 발을 내딛는다. <카운트다운>으로, 전도연이 돌아왔다.
칸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 수상 이전에도 전도연은 당대 최고의 여배우였다. 그녀는 브라운관과 스크린을 누비며 자신의 스펙트럼을 넓혀나갔다. 백지처럼, 캐릭터의 색을 입었고, 리트머스처럼, 작품에 스며들었다. 그녀가 시작부터 자각이 뚜렷한 배우는 아니었다. “그냥 어리다 보니까 호기심이 많았을 뿐이죠. 처음부터 의식을 갖고 연기한 건 아니었어요.” 그녀를 각성시킨 건 <해피엔드>(1999)였다. <해피엔드>는 파격적인 노출신과 베드신을 요구하는 작품이었다. <접속>(1997)과 <약속>(1998)의 연이은 성공과 <내 마음의 풍경>(1999)으로 좋은 연기적 평가를 얻었던 여배우가 선뜻 집어들 수 있는 작품이 아니었다. “그런 결정을 하려면 제 자신을 납득시켜야 하잖아요. 남들 시선보단 내가 원하는 것에 더욱 귀를 기울기게 된 시기였죠.” 그녀는 표현의 한계를 부수고, 연기적인 영역을 확장할 수 있는 기회임을 알았다. 결국 선택했고, 해냈다.
“언제부턴가 우등생처럼 빤하게 1등 해서 상 받는 게 당연한 배우로 여겨진 것 같아요.” 전도연에게 <밀양>(2007)은 ‘그런 빤함을 뒤엎어주는 작품’이었다. “너 연기 잘하는데, 그냥 연기를 잘 해.” 이창동 감독의 말은 전도연에게 ‘정곡을 찔리는 기분’을 안겼다. 당시 <너는 내 운명>(2005)으로 비평과 흥행이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잡은 전도연은 명실공히 한국 최고의 여배우였다. 이창동은 그런 그녀를 밑바닥으로 끌어내렸다. 흠잡을 곳 없는 ‘정석적인 배우’ 전도연에게 그 이상의 연기를 요구했다. 그녀는 촬영 내내 온갖 의심에 시달렸다. 결과적으로 칸의 여왕이라는 수식어와 온갖 상찬이 뒤따랐다. 하지만 정작 스스로에게는 떨떠름한 일이었다. “뭔가 스스로 달라졌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결국 제 자리였어요. 진짜로 달라졌다고 생각하면 나만의 비법을 가진 것처럼 잘난 척도 해보고 싶어요. 그런데 그게 아니니까요. 정말 모르겠어요.”
충무로는 여배우에게 척박한 땅이다. 매력적인 여성 캐릭터가 등장하는 시나리오를 전달받기란 드문 일이다. 그만큼 경쟁도 치열하다. 실력으로 우위를 점할 수 밖에 없다. 전도연은 작품 작업 중에는 다른 시나리오를 보지 않는다. 밀양에서 <멋진 하루>(2008)에 대한 제의를 받은 전도연은 서울에서 시나리오를 보고 작품을 결정하기로 했다. 비로소 모든 촬영이 끝났다. 그녀는 서울로 올라오며 새롭게 쌓여있을 시나리오들을 기대했다. 하지만 매니저가 건넨 시나리오는 단 하나, <멋진 하루>뿐이었다. “만약 시나리오가 별로였다면 선택하지 않았을 거에요. 그래서 고마웠어요. 제가 좀 더 빨리 차기작을 선택할 수 있게 해줬으니까요.” 언론과 대중은 <멋진 하루>의 전도연을 주목했다. 칸에서의 수상 뒤 첫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작 그녀의 시선은 다른 곳을 향해 있었다. “욕심은 굉장히 많은데, 꿈이 없어요. 꿈은 눈에 보이지 않는 먼 곳에 있는 무엇이잖아요. 전 눈에 보이는 것에 대한 욕심이 많아요.” 목 아래까지 단추를 채우고 반듯하게 몸을 세운 듯한 <밀양>과 달리 옷을 살짝 풀어헤치고 느슨하게 누워있어도 좋을 것 같은 <멋진 하루>는 보다 여유로워진 전도연의 관록이 돋보이는 작품이었다.
“작품이 끝나면 공허하죠. 무언가에 집중하다가 갑자기 하루 아침에 여운도 없이 끝나버리는 거니까. 돌이켜 보면 이 작품이 정말 마지막인 것처럼 보든 열정을 다 쏟아 부었던 것 같아요. 어쩌면 평소에 열정을 쏟아 넣을만한 게 없어서 그럴지도 몰라요. 결국 남는 건 작품이죠.” 그랬다. 마치 마지막인 것처럼, 전도연은 작품을 삼키듯이 쉬지 않고 연기해왔다. 결혼을 했고, 한 아이의 엄마가 되는 과정에서 데뷔 이후로 처음 2년여 간의 공백을 경험한 그녀에게 이제 연기란 무엇일까. “마음 먹으면 얼마든지 일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마음 써야 할 게 많아지니 연기가 더욱 절실한 것임을 알게 됐죠.” 그녀의 구미를 당기는 시나리오는 여전히 드물었다. 그 가운데, <하녀>(2010)는 일종의 오아시스였다. 한국영화 역사상 최고의 걸작으로 꼽히는 김기영의 <하녀>(1960)를 리메이크한 이 작품에서 전도연은 파격의 옷을 가벼운 깃털처럼 걸치듯 연기했다.
허종호 감독의 입봉작 <카운트다운>(2011)에서 팜므파탈의 이미지를 구가하는 전도연은 언제나 그러하듯이 시나리오를 검토했고, 출연을 결정했으며, 제 역할에 정진했다. 최근의 출연작들 가운데 상대적으로 대중성이 두드러지는 스릴러물에서 전형적인 팜므파탈을 연기한다. 전도연의 변신이라는 수사가 으레 따라왔다. 하지만 그녀는 말한다. “변신을 목적으로 작품을 선택해본 적이 없어요. 그저 인물 안에서 새로운 면모를 발견했기에 작품을 선택했고 그 역할에 충실했을 뿐이죠.” 사람들은 그녀에게 묻곤 했다. 지난 번 그 곳은 험준한 봉우리가 아니었냐고, 완만한 능선이 아니었냐고. 하지만 정작 전도연은 다른 곳에 있었다. “여기 오기까지 많은 사람들이 저를 내리막길에 내려놓기도 하고, 꼭대기에 올려놓기도 했지만 그건 제 자신과 상관없어요. 저는 항상 평행선을 걸어왔다고 생각해요.” 그녀는 언제나 일정한 걸음으로 연기적 보폭을 넓혀왔다. 길은 열려 있었고, 그저 걸어왔을 뿐이다. 그렇게 다시, 전도연은 발을 내딛는다. 또 한번 길이 열린다.
이윤기 감독의 신작 <티파니에서의 아침을>촬영 때문에 바쁘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벌써 <국가대표> 이후로 4편의 영화에서 하정우란 이름이 보이더군요. 이미 촬영이 끝난 <페럴렐 라이프>를 비롯해서 현재 촬영 중인 <티파니에서의 아침을>, 그리고 나홍진 감독의 신작 <황해>와 전계수 감독의 차기작으로 예정된 <러브 픽션>까지, 정말 충무로에서 가장 바쁜 배우라 해도 과언은 아닙니다. (웃음) 쉴 틈도 없어 보이는데 체력적인 부담은 없나요?
체력적인 문제는 없어요. 일단 저와 프로덕션끼리 서로 약속했던 부분만 잘 맞아떨어져서 계획적으로 촬영이 준비되고 이뤄지기만 한다면 스케줄은 물리적으로 전혀 무리 없이 돌아가니까요. 중점적으로 생각하는 건 지난 캐릭터를 복제하지 않고 잘 변주해 나가면서 새로운 캐릭터를 창조해낼 수 있는가라는 부분이죠. 배우로서 얼마나 소비되지 않느냐가 최고의 관건이랄까. 상업적인 설득력을 염두에 두면서도 기존에 있었던 영화보다 새롭거나 실험적인 프로덕션, 제작 방식을 생각하면서 작품을 선택하고 있어요. 그런 의미에서 <러브 픽션>은 굉장히 새로운 영화에요.
어떤 점에서 말인가요?
대사의 템포나 리듬, 톤 자체가 굉장히 만화적이에요. 우리가 영화상에서 만나는 일반적인 캐릭터들의 대사 속도보다 2배 정도 빠르거든요. 과거 ‘하워드 혹스’의 작품이나, ‘우디 알렌’의 영화에 나오는 인물들의 대사만큼이나 빨라요. 그런 점에서 유니크(unique)한 면이 있죠. 지금은 제작이 딜레이(delay)돼서 언제 촬영에 들어갈지 미지수지만 분명히 언젠가는 꼭 전계수 감독님과 찍어내고 싶어요.
지금 찍고 있는 <티파니에서 아침을>로 이윤기 감독과 두 번째 만났고, 이미 <황해>를 통해 나홍진 감독과 두 번째 작품을 약속한 상태입니다. 그리고 윤종빈 감독이나 김기덕 감독과도 이미 두 차례씩 작업했죠. 한 감독과 다시 만나서 작업하는 경우의 장점을 그만큼 많이 느끼지 않았을까 싶은데요.
물론 엄청난 신뢰가 생기죠. 전작을 통해서 지지고, 볶고, 많은 이야기를 주고 받고, 모니터를 통해서, 어떤 시간과도 바꿀 수 없는 많은 부분을 공유했으니까요. 감독이 창조해낸 세계와 내가 연기했던 인물이 있는 한편의 영화를 우리가 만든 거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이젠 전반전 없이 본론으로 들어가서 베스트를 뽑기 위해 같은 단계에서도 더 위에 있는 문제들을 움직이게 만들 수 있는 장점이 있는 거죠. 거두절미 할 수 있는.
나홍진 감독의 차기작은 언제 결정하신 건가요?
<추격자>를 끝내고 나서 나홍진 감독님과 윤석이 형하고 같이 또 다른 그림을 그려보면서 이런 거 하면 재미있겠다 싶었던 게 있었는데 그게 <황해>였어요. 작년 여름에 결정했고 그때부터 지금까지도 생각해오면서 준비하고 있죠. 당장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부터 준비해야지, 하는 게 준비가 아니잖아요. ‘구남’이라는 인물이 어떤 인물인지, 감독님을 만날 때마다 얘기를 나눠가면서 장기적으로 자연스럽게 준비를 해나가는 거죠. 이렇게 하다 보면 1년에 많게는 주연작 3편 정도는 충분히 할 수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해요.
지속적으로 몸을 달궈놓아야 할 것 같습니다. 한편으론 또 일상 안에서 몸을 식히는 것도 중요할 것 같고요. 배우로서 에너지를 끊임없이 소비하는 만큼 일상에서 재충전할 수 있는 것도 중요하지 않을까요?
그래서 배우 하정우로서의 삶과 김성훈으로서의 삶에 분명한 차이를 두려고 해요. 예를 들면 연예인이 아닌 일반적인 친구들과 축구팀을 만들어서 조기축구회 아저씨들과 부딪혀보기도 하고, 그 사람들과 같이 밥도 먹는 건 그 안에서 많은 깨달음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죠. 3~40대, 많게는 50대까지, 지금의 남자들이 무엇을 얘기하는지, 무엇을 통해서 삶의 체증을 해소하는지 직접 느끼고 저도 30대 초반의 남자로서 같이 얘기를 나누다 보면 많은 것들이 리프레쉬(refresh)되는 것 같아요. 그만큼 발란스(balance)를 맞춰주는 게 가장 중요하고 이런 생활을 통해 그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다작을 하는 만큼 차기작 선택에 있어서 전작과의 캐릭터적 차별성이 중시되지 않을까 싶군요.
매번 다른 거 같아요. 어떤 배우가 ‘메소드(method)’ 연기를 한다 했을 때, 메소드에도 여러 가지 종류가 있잖아요. 또 다르게 ‘스타니슬라브스키(Stanislavski, 1863~1938)’식의 연기를 할 수도 있고요. 자기의 경험으로 회귀해서 그 안에 놓인 자신만의 무언가를 끄집어내서 표현할 수도 있고, 연기 하나하나를 기술적인 표현 방법으로 구사하며 캐릭터를 만들어가는 방법도 가능하죠. 우는 장면에서도 제 감정을 끌어올리기 보다는 철저하게 기술적으로 우는 연기 자체를 만들어내는 거에요. 이렇게 다양한 표현 방법을 염두에 두는 건 최소한 1년 이상의 장기적인 플랜을 갖고 있기 때문이죠. <국가대표>라는 상업적 작품이 여름에 떡 버티고 있기 때문에 그 이전에 <보트>라는 저예산 예술영화를 찍어도 보완될 수 있는 측면이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그런 조합을 생각하고 나니 더욱 큰 무리는 없겠다는 생각도 들고.
종종 보면 상당히 본능적으로 연기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지만 실제로는 상당히 분석적으로 연기에 접근한다고 들었습니다. 단지 캐릭터의 역할 뿐만 아니라 신 자체의 분석을 통해서 그 안에서의 역할 자체의 높낮이를 제한할 만큼 계산적인 연기를 한다고 하더군요.
아무래도 감독의 연출 스타일에 따라서 연기적 표현 양식이 달라지는데요. 홍상수 감독님은 좀 예외적인 케이스지만, 윤종빈 감독님, 이윤기 감독님, 김영남 감독님, 다들 극사실적인 연출 방식을 선호하는 분들이잖아요. 그런 영화 안에서 배우가 해야 할 것들이 굉장히 많아요. 일단 감독의 연출 스타일이 그렇다면 배우는 철저히 도구이자 오브제(objet)로서 관객들에게 그 신을 잘 설명하고 전달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봐요. 감독들이 컷을 쪼개는 스타일에 따라서 종종 빈 공간이 많이 생기기도 하는데, 쉽게 얘기해서 마가 뜨는-일반적으로 촬영 현장에서 대사와 대사, 액션과 액션 사이에 시간적 공백이 생길 때 ‘마가 뜬다’고 표현한다.- 부분이죠. 그 부분에서 관객에게 얼마나 효과적인 연기를 보여줄 수 있는가가 중요하다고 봐요. 윤종빈 감독님은 원신원컷을 너무나 좋아하는데 종종 인물을 따라잡으며 팬(pan, 카메라를 좌우로 회전시키는 기법)을 하기도 하거든요. 그러면 팬을 하기까지 1, 2초 정도 마가 뜨는 장면이 생겨요. 그렇게 마가 뜨는 장면에서 감독이 원하는 범위를 벗어나지 않고 내가 할 몫이 무엇이 있을지 생각하게 되는 거죠. 내가 그 안에서 해야 할 일들이 많이 있는 것 같거든요. 캐릭터가 변질되지 않고, 스토리가 피해 받지 않게끔 시나리오 상에 명시되지 않은 애드립을 넣어줘도 될 것 같아요. 그 지점에서 내 개성을 조금 더 드러내는 것이 허용되는 것 같고요.
영화에 대한 이해가 없고서야 불가능한 작업이기도 하겠죠. 직접 찍은 단편 영화가 한편 있다고 들었습니다. 직접 카메라를 잡아본 연출적 경험이 연기적 관점에 작게나마 일조한 측면이 없을까요?
어떤 신하고 신을 유기적으로 연결해서 극적 흥미를 높이면서 찍고자 한다면 그 신에서 마지막 컷이 무엇이었는지, 어떻게 연기를 끝냈는지 신경 쓴 후에 그 다음 신의 첫 번째 컷을 구상하죠. 예를 들어서 완전 풀샷으로 끝나는 신이 있어요. 그 풀샷에 제 모습이 담겨있고, 그 다음 신에서 윤석이 형의 타이트 바스트나 타이트 클로즈업이 들어가요. 그럼 여기서 내가 어떻게 연기해줘야 윤석이 형의 타이트 샷이 잘 붙겠다 계산하는 거죠. 캐릭터의 연기를 떠나서 영화적 재미를 주는 극적 연출의 영역까지 고려하는 연기가 가능하면 더욱 극적으로 신이 넘어가는 효과가 생겨요. 아무래도 그런 걸 느낄 수 있었죠.
하지만 모든 연기가 정확하게 계산과 맞아떨어질 수는 없는 일일 겁니다. 때때로 그런 계산의 오차를 메우기 위한 본능적인 반응이 필요할 때도 있을 거고요.
영화 안의 신마다 초(初)목표가 있잖아요. 각 신마다의 흐름에 따라서 발란스를 맞추는 가운데서도 각 신마다의 초목표에 도달하기 위해서 방법과 수단을 가리지 않고 다양한 시도를 하는 거죠. 계산적인 합을 잘 맞춰서 도달해야 할 신이나 장면이 있고, 어떤 건 그냥 현장에서 그때 그 기분에 한번 맡겨보자, 하게 되는 지점도 있는 거 같아요. <추격자>에서 심리 분석관과의 대질 신은 정확히 3번 째 촬영일에 가서야 촬영할 수 있었어요. 왜냐면 처음엔 그분하고 뭔가 톤이 안 맞았고, 두 번째는 제가 못했어요. 이상했거든요. 그 장면만큼은 계산하지 않았던 장면인데 그 전에 파출소에서, “안 팔았어요, 죽였어요.”하는 장면이나 그 다음에 이 형사가, “그 여자 어떻게 했어.” 물으면 정으로 찍고, 아킬레스를 따서 어쩌고 하는 장면, 그리고 여자 형사에게 냄새 비리다고 하는, 어떻게 보면 중요 포인트가 반복되고 있어요. 그래서 이건 다 철저하게 준비하고 템포까지 계산하면서 연기했지만 마지막에 클라이막스 지점에선 어떤 계산이 설 수 없잖아요. 그래서 그건 굉장히 힘들었어요. 그래서 이건 그냥 현장 가서 내 느낌대로 찾아가서 해봐야겠다, 싶었죠. 계산대로 해보면 뭔가 너무 작위적이 될 거 같아서요.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너무나 흔한 취조 신이 될 수도 있으니까요. 사실 꽃이죠. 스릴러의. (웃음) 그렇기 때문에 무모할 수도 있겠지만 자신 있게 내 필대로 가봐야겠다, 했는데 두 번이나 안된 거에요. 두 번째엔 감독님한테 정말 정중하게 오늘 못 찍겠다 사과드리기도 했죠. 한번 테이크를 갔는데 하고 나니까 너무 작위적이라 민망한 거에요. 그러니까 감독님이, “정우, 너 이제 어떻게 할래. 그만 찍을까.” 하시길래 마지막 한번 더 기회를 달라고 했죠. 결국 그 날 안 찍고 세 번째 날에 촬영장에 갔는데 사실 그날도 느낌이 별로 안 좋았어요. 몸 상태도 안 좋았고. 그런데 거기서 딱 느낀 게, ‘그래. 지영민도 지금 피곤하겠지. 그렇게 시달리고 밤을 새고 얻어터져서 지금 새벽 4시까지 왔는데, 지치겠네. 얘기하기도 싫겠네. 나도 연기하기 싫은데, 부담도 되고, 이걸 써봐야지.’ 했는데 통한 거에요.
<국가대표>는 시나리오도 보지 않고 작품을 결정했다고 들었습니다. 내심 걱정되는 바는 없었나요? 그런 지점과 비슷한 걱정은 있었죠. 시나리오 자체가 많이 거칠었거든요. 스토리는 분명하고, 어떤 상황인지는 알겠는데 그려지는 인물들이 많아서 그런지 조금 산만한 부분들이 있었고요. 하지만 김용화 감독님에 대한 100%신뢰가 있었고, <국가대표>가 상업영화로서 분명한 미덕이 있을 것이란 확신이 있었어요. 그리고 예전에 스키점프를 소재로 한 다큐멘터리를 본 기억에 분명히 이 종목을 영화로 만든다면 관객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줄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어요. 시나리오가 거칠긴 하지만 그걸 100배 이상 덮어줄 장점이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죠. 그래서 처음에 감독님한테 시나리오를 받기 전에 이런 소재에 대한 얘기를 듣고도 충분히 도전해볼 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다고 판단했고요.
사실 <국가대표>는 하정우 씨가 찍은 첫 상업영화라 명명해도 될 것 같습니다. <추격자>가 5백만 관객을 동원하며 상업적인 인정을 받았지만 사실 <추격자>가 처음부터 그 정도로 대단한 인지도를 얻을 것이란 기대감에서 기획된 영화는 아니니까요.
(손을 모으면서) 그렇죠.
그런 점에서 <국가대표>는 전작들과 다른 연기적 접근성이 요구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김용화 감독 같은 스타일에서는 분명 달라져야죠. 일단 컷 수가 너무 많고 편집에 따라서 인물의 입체감이 너무 많이 달라지니까요. 그랬을 땐 최대한 표현을 자제하고 노멀하게 감정의 발란스를 유지해야죠. 일단 과잉수준으로 넘어서면 안 돼요. 이렇게 작품 색깔이나 연출 스타일에 맞게 변할 수 있다면 우려할만한 조건들을 이겨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고요.
그런 점에서 애초에 상업영화임을 인지하고 작품에 들어간 영화는 <국가대표>가 처음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은데요. 그런 이해가 연기에 미치는 영향력이 없었을까요?
아까도 말했던 것처럼 <국가대표>에서는 내러티브 위로는 절대 나오면 안 된다는 원칙이 있었어요. 철저하게 기능적인 역할이라 생각했죠. 다른 배우들을 위해서 희생했다거나 그런 의미가 아니라 그냥 앙상블을 위해서 노력했어요. 표면상으로 중심축은 저였지만 영화의 내러티브 안에서 인물의 변화를 표현하는 절반은 사실 방 코치의 몫이기도 했고요. 이런 발란스를 생각했을 때, 사람들과 부딪히고 갈등 관계를 그리는 각 신마다 수위조절을 어떻게 하느냐가 관건이었어요. 두 번째로 <국가대표>엔 유난히 바스트 샷이 많았고, 김용화 감독의 영화는 음악이 유난히 많은 편이기도 하고, 교차편집도 굉장히 많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제가 조금 더 튀어 보여서 개성이 드러내면 굉장히 언발란스해질 것 같았죠. 그만큼 감정을 최대한 비워내려고 노력했어요. 장면에서 흐르는 음악이 제 감정의 옷처럼 입히게끔, 혹은 편집이나 영화적 장치들로 과장시킨 감정들이 저를 거치면 과잉이라고 보이지 않게끔 제가 서 있는 것, 제가 쳐다보는 것, 이런 행위 속에 담길만한 감정도 비워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최대한 덧붙이지 않으려고, 뭔가를 하지 않으려고 노력했죠. 프레임 안에서 후반 작업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여지나 여백을 열어놓으려고 했고요.
<국가대표>는 연기 이전에 스키점프 선수로서의 자태를 몸에 익히는 작업이 배우들에게 먼저 요구되는 스포츠 영화입니다. 완벽한 기술력을 몸으로 전시할 수 있을 때 설득력 있는 연기도 가능한 영화니까요.
사실 스키점프라는 장면을 담아내기 위해 배우가 맡은 역할은 10%정도 뿐이었어요. 어차피 선수들이 스키점프 장면에서 대역을 맡았고, 배우들은 점프하기 전까지의 모습을 스키점프 장면에 잘 연결시키는 역할이었을 뿐이니까요. 하지만 최대한 어깨 높이는 맞춰줘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스키를 들고 있는 모습이나, 부츠를 만질 때조차 어색하지 않아야 된다고 생각했죠. 점프복을 내 몸이 익숙하게 느끼도록 노력했어요. 그래서 직접 점프복을 갖고 다니면서 집에서도 점프복을 입고 러닝머신을 많이 뛰었고요. 심지어 부츠도 갖고 다녔고. 그런 생활적인 익숙함까지 일반관객들이 디테일하게 느낄 순 없겠지만 거기서 중요한 건 지금 배우가 선수로서 연기하는 것에 대해서 동기 부여를 주는 거죠. 결국 이런 게 대사 연기나 다른 부분에서 분명히 파급 효과를 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고요.
그것 역시 메소드의 기본적인 방식이죠.
그런데 사실 모든 연기라는 게 다 그런 거 같아요. 로버트 드 니로가 <택시 드라이버>를 위해서 3개월 간 택시 운전을 했다는데 그걸 하고, 말고에 따라서 과연 어떤 연기적 차이가 있었을까요. 제 생각에 제일 큰 차이는 그렇게 3개월을 했기 때문에 택시 운전자에 대해서 알 것 같다는 자신감과 확신이 생기고 연기적으로 더 확실한 표현이 가능하게끔 동기부여를 형성해주지 않았을까라는 거죠. 그런 심리적 요인이 가장 큰 효과라고 생각해요.
사실 <국가대표>의 밥은 전작에서 맡았던 캐릭터들보다 평면적인 캐릭터란 생각이 듭니다. 감정의 표현에 있어서도 보다 직설적인 느낌이 들고요. 사실 하정우 씨가 좀처럼 꿍꿍이를 알 수 없는 캐릭터들을 연기해온 덕분이기도 하고요. (웃음)
김용화 감독님의 훌륭한 점 가운데 하나는 매 장면마다 디렉션의 스타일이 다 다르다는 거에요. 감독이면서도 철저하게 관객의 입장에서 쇼트를 바라보고 있는 거죠.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사랑하는 남자가 오랜만에 돌아와서 정말 행복해하는 여자의 표정을 비추는 쇼트가 있는데 감독이 처음에 여주인공한테 그 표정을 주문했을 때는 원했던 표정이 잘 안 나왔대요. 그래서 감독이 “당신이 정말 사랑하는 사람과 성관계 후에 오르가즘을 느낀다고 상상해보고 그 표정을 한번 만들어봐라”. 그랬더니 여배우에게 기막힌 표정이 나왔다고 하죠. 그런 것처럼 김용화 감독도 매 적재적소마다 디렉션의 스타일이 달라요. 그렇기 때문에 영화에 현실적인 요소도 생기고, 배우가 자신의 연기를 끌어내게끔 움직일 수 있게 유도하는 거 같아요. 예를 들어서 <국가대표>엔 기존에 제가 했던 연기적 표현 방식들과 달리 감정이 굉장히 풍부해져서 간지러운 부분이 있죠. 마지막에 버스를 내린 뒤 공항에서 나와서 눈물 흘리는 장면이 있는데 사실 전 그러기 싫다고 했어요. 솔직히 너무 간지러웠거든요. 공항에서도 과연 그렇게까지 감정을 표현해야 하는지, 처음에 감독님에게도 그렇게 질문했어요. 그런데 감독님께서 말씀하셨죠. “안다. 하지만 우리가 모르는 많은 대중들은 이렇게 연기를 해줘야 터칭(touching)을 좀 받는다.” 그래서 납득이 했어요.
<추격자>나 <멋진 하루>처럼 두 명 정도의 인물을 중심으로 서사가 진전되는 영화는 배우들의 반응 하나하나가 묘미가 됩니다. 그러나 <국가대표>처럼 많은 인물이 등장하는 영화에서는 전체적인 조화가 중요하죠. 다양한 캐릭터들이 모여서 이루는 입체감이 관건이기도 하고요. <국가대표>를 보면서 <비스티 보이즈>가 떠오르기도 했는데 그건 아무래도 리더라는 역할 때문이 아니었나 싶어요. 그런데 <비스티 보이즈>는 매니저로서의 느낌이라면 <국가대표>는 맏형 같은 느낌의 차이가 있었죠. 사실 현장에서 또래 배우들 가운데 실제로 맏형 노릇을 했을 거 같은데요. 선배로나 형으로서나 후배들을 지켜보는 입장이 어땠을지 궁금하군요.
같이 연기하는 친구들과 4~5년 정도의 나이차가 있었는데 그만큼 제 나이가 많은 거 같기도 하지만 어떻게 보면 비슷비슷한 느낌이었어요. 그래서 같이 연기하는 친구들이 저를 선후배가 아닌 동료나 친구로 느낄 수 있길 바랬고요. 그들을 도와준다기 보단 편하게 같이 어울리려고 노력했어요. 도리어 그들을 더 높여주고, 그들의 얘기를 들으면서 조언을 한번 구해보기도 하려고 노력했죠. 어쩌면 <멋진 하루>에서 느낀 바가 많았기 때문에 저도 그런 게 아닌가 싶어요. 도연 누나가 저를 계속 서포팅(supporting)해줬다고 느꼈는데 제가 도연 누나로부터 느꼈던 걸 후배들에게 전해주고 싶었거든요.
아무래도 본인이 경험했던 부분이라 더욱 그 중요성을 느낄 수 밖에 없겠죠. <추격자>와 <멋진 하루>의 하정우 옆에 김윤석과 전도연이라는 좋은 배우가 있었다는 사실이 어쩌면 정말 엄청난 기회였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히트>에서 고현정 누나도 마찬가지였어요. 덕분에 어떤 캐릭터로 만나서 같이 어깨를 나란히 한다기 보단 자연스럽게 형, 누나, 하면서 인간적인 유대감을 형성하는 게 어쩌면 배우들의 앙상블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키가 아닐까 생각이 들었죠.
하정우 씨 스스로도 자신과 가장 닮은 캐릭터는 <멋진 하루>의 병운이라고 밝혔던 것으로 아는데 정말 실질적으로 병운이 닮았다는 생각이 드네요.
아, 그래요? (웃음)
제스처라던가, 세세한 몸의 움직임 자체에서 발생하는 뉘앙스가 언뜻 병운을 연상시켜요. <비스티 보이즈>에서의 대사처럼 느낌이 있어요. (웃음) 그런데 사실 연기는 자신이 지니지 못한 것을 창작하는 과정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자신을 고스란히 투영하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자신의 의도와 무관하게 자신이 모르는 것들을 연기를 통해 발견하게 되는 경우는 없었나요?
(손뼉을 치면서) 아! 지금 갑자기 문득 어떤 생각이 떠오르는데, 어쩌면 <국가대표>의 밥, <보트>의 형구, 그리고 대표적으로 <추격자>의 지영민, 이 세 인물은 사실 제 힘으로 연출해낸 캐릭터 같아요. 그리고 <비스티 보이즈><멋진 하루>는 그냥 저에게 있는 그대로 했던 거 같고요. 제가 요즘 채플린 얘기를 많이 하는데 <모던 타임즈>(1936), <위대한 독재자>(1940), <키드>(1921), 이런 작품들을 보면 채플린이 감독이기도 하면서 본인이 직접 그 인물을 연출하기도 하잖아요. 저도 그럴 수 있다면 되게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말 그대로 캐릭터 자체를 하나의 창작으로서 이해하는 방식이라고 해도 될 것 같군요. 사실 채플린은 방랑자적인 캐릭터를 계속 연출하고 사용해왔죠. 하지만 <라임라이트>(1952)같은 경우에는 그냥 있는 그대로 늙은 인간 채플린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줬단 말이에요. 그랬을 때 이런 양면성이 공존해서 캐릭터를 만들어나갈 수 있다면 정말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물론 전자의 부분은 오해의 소지가 생길 수 있고, 복제 논란이 많을 수 있을 거에요. 그래서 관객들이 그런 의미를 좀 알고 제 연기를 본다면 굉장한 재미가 있을 거 같아요. 감히 말씀 드려보자면 이 시대의 채플린, 이런 캐릭터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면 좋을 거 같아요. 짐 캐리가 <에이스 벤추라>같은 영화에서 보여준 재미난 부분들이 있잖아요. 그 배우의 어떤 한 부분이 그렇다는 것을 알고 영화를 봤을 때 더욱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캐릭터가 아닐까요. 너무나 영화적인 캐릭터니까요. 도리어 저의 것을 보여주는 게 또 영화적일 때도 있고요. 그런 의미에서 <추격자>의 지영민, <보트>의 형구, <국가대표>의 밥 같은 경우는 저의 또 다른 다채로움이 반영된 캐릭터라는 점, 만약 그걸 알고 저와 제 영화를 보신다면 충분히 또 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사실 <국가대표>의 밥은 어머니에게 버림받았다는 점에서 <보트>의 형구와 교차되는 지점이 있는 캐릭터입니다. 이렇게 종종 지난 캐릭터와의 연속성이 느껴질 때가 있을 것 같습니다. 다만 하정우 씨처럼 한 작품을 끝내고 바로 차기작에 들어가는 경우, 이렇게 전작의 캐릭터와 연관성이 존재하는 캐릭터를 연기할 때 캐릭터적으로 기시감이 크지 않나요?
사실 제가 연기한 캐릭터마다 거의 다 비슷한 점이 있는데요. 전부 다 약간 방랑자 같단 생각이 들어요. 쉽게 예를 들자면 집이 없고, 가족이 불투명하고, 인물의 성장환경이 좀처럼 노출되지 않으면서, 그런 식으로 뭔가 여지가 있어 보이는, 개인적으로 그런 캐릭터를 연기하면 재미를 느끼는 거 같아요. 영화를 찍을 때 저도 제가 재미있어야 연기를 할 수 있거든요. 만약 그런 연관성이 없다면 재미가 없을 거에요. 아니면 반대로 완전히 다른 뭔가가 있어서 느껴지는 재미도 있겠죠. 앞으로 다른 캐릭터를 만나보고 찾아 보면서 그런 재미를 열어나가다 필모그래피가 좀 쌓이다 보면 그 때 또 한번 정리해서 얘기할 수 있는 부분이 있겠죠.
연기뿐만 아니라 피아노, 그림, 무용, 등 정말 다양한 분야에 관심이 많고 어느 정도 실력을 갖추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아무래도 그런 관심은 호기심에서 출발하지만 적당한 관심에 머무르는 경우도 많죠. 그래서 어느 정도 자기 기준 안에서 적당히 성취를 이뤘다 싶으면 쉽게 만족하고 손에서 놓기도 하고요. 마치 이건 이 정도면 됐어, 라는 식이랄까요. 하지만 하정우 씨에게 연기는 아무래도 단순한 관심 이상의 욕망처럼 보입니다. 성취에 대한 깊이 자체가 다르다고 할까요. 어쩌면 다른 관심들이 그만큼 그 연기적 성취를 위해 할애되는 부차적 노력이 되는 것 같기도 하고요.
다 굉장한 연관성이 있어요. 쉬운 얘기로 영화를 찍거나 배우로 살아가는 건 종합예술을 하는 거잖아요. 제가 그런 순수예술에 많이 기대고 영감을 얻게 되는 거 같아요. 아까 말씀하신 것처럼 어떠한 지점에서 더 이상 파고들지 않는 건 충분히 거기에 대해서 얻은 바가 충분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고요. 만약에 미술을 한다, 사진을 찍는다, 그림을 그린다, 그러면 그 가운데서도 어떤 일부분에서만 영감을 얻어요. 어쩌면 그게 다 저를 치우치지 않게 하는 지점일지도 모르죠. 그러한 것들이 오로지 제가 연기를 하고 영화를 찍는데 집중할 수 있게 도움이 되는 것들이죠. 만약 주객이 전도돼서 제가 그 발란스를 놓치고 다른 것들에 빠져들면 일단 묘미는 있겠죠. 가치는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연기가 아닌 다른 분야에 치우치는 건 제가 생각하는 방향 안에서 빗나가는 부분이기 때문에 단지 그것들은 제가 계속 연기적으로 영감을 받고 재료를 얻을 수 있는 부분으로서 가치가 있어요.
사진을 찍는다고 하셨는데 왠지 풍경보단 인물을 더 좋아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아무래도 표정에서 느껴지는 다양성이 캐릭터의 내면을 표정으로 구사하는 배우에겐 좋은 영감을 부를 것 같거든요.
인물 사진을 굉장히 좋아해서 종종 사람들을 찍으러 가요. 많이 찍었고 많이 확보하고 있어요. 종종 어떤 인물들을 봤을 때 특이점들을 많이 발견하게 되는 거 같아요. 사실 배우가 가장 멋지게 보일 때는 그 배우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무표정하게 있는 지점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저한테 연기적 영향력을 굉장히 많이 주셨던 대학 교수님한테도 그런 얘기를 들었거든요. 배우는 무표정의 힘이 제일 중요하다. <대부3>에서도 알파치노가 시칠리아로 넘어가서 아들의 연주를 회상하는 장면 있잖아요. 알 파치노는 아무 것도 안 해요. 선그라스 낀 얼굴로 무표정한 알 파치노의 얼굴에서 회상 장면으로 넘어갔다가 다시 알 파치노 컷으로 돌아오면 안경 벗고 가만히 있죠. 아까 초반에 말씀 드린 것처럼 어쩌면 그 무표정이 그 회상 장면을 넣을 공간을 마련해주는 거라고 볼 수도 있고요. 어쩌면 무표정이라는 건 그 사람의 제일 솔직한 모습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얼굴의 안면근육을 다 풀고 가만히 있는 게 좋아요. 사진을 찍을 때도 사람들에게 최대한 무표정으로만 찍어달라고 얘기하기도 하고요. 그 사진들을 보면 너무 재미있어요.
어쩌면 자신도 몰랐던 자신의 얼굴을 발견할 때라고 할 수도 있겠죠.
맞아요. 사실 우린 어떤 강박 속에 있는 거 같아요. 그림을 그릴 때 사람들은 잘 그려야 된다라는 말을 무의식적으로 실사와 똑같이 그려야 된다라는 강박으로 이해해요. “그림 잘 그리세요?”라고 물어보면, “아, 그림은 젬병이에요.” 어떻게 보면 그림 자체가 그냥 자기 마음대로 그리는 거잖아요. 자기가 생각하는 자동차를 그리고, 자기가 생각하는 꽃을 그리는 건데, 어렸을 때부터 잘 그리고, 못 그리고, 에 대한 말도 안 되는 기준을 갖고 있는 거 같아요. 전 그게 말도 안 되는 거라고 생각해요. 연기도 마찬가지 같아요. 분명히 모든 사람이나 모든 배우들이 자기만의 매력 포인트를 갖고 있는데 그걸 어떤 이상한 기준에 자꾸 맞춰가려고 하는 거 같거든요. 배우로서 어떤 지점에 도달하기 위해선 생각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해요. 자기만의 독특한 개성을 자신만의 매력 포인트로 삼아야죠. 그림을 그린다면 제가 생각하는 그림을 계속 그려나가는 거에요. 그 안에서도 자신과 엄청나게 싸우게 돼요. 내가 그리는 이 꽃이 남이 봤을 때 꽃이 아닌 거 같은데, 이 색은 남이 보면 어딘가 대비가 맞지 않다고 말할 거 같은데, 생각하죠. 하지만 결국 그게 풀리게 되면 제가 원하는 걸 자유로운 의식의 흐름대로 그릴 수 있는 결과에 도달하게 돼요.
누군가의 기준을 쫓아가기 전에 자신의 기준에 따라 모든 걸 해석할 수 있다는 말인가요?
예. 그렇죠.
사실 전작들은 대부분 감정적 여운을 남기고 끝나는 경우가 많았죠. 그만큼 배우 스스로도 감정적인 해소를 느끼지 못하고 영화에서 빠져 나와야 하는 경우가 많았을 것 같습니다. <국가대표>는 결말의 스키점프 신을 통해 모든 감정을 증발시키는 느낌입니다. 배우에게도 그만큼 명확하게 감정을 해소해주는 쾌감이 있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
맞아요! 그랬어요. 그래서 그 마지막 장면을 너무나 좋아해요. 스키점프로 날아가는 장면이나 그 장면에서 나오는 음악이나, 뭔가 해소됐다는 느낌이 들거든요. 감독님은 밥이 자기 인생에 통찰을 했고 모든 걸 받아들였다고 하셨는데 저도 개인적으로 이번 <국가대표>를 통해서 많은 걸 받아들인 부분이 있었어요. 밥이라는 인물을 만나고 나니까 제가 이전까지 연기한 캐릭터들은 너무나 방황하거나 방랑하면서 겉돌지 않았는지 고민하게 됐어죠. 이젠 좀 더 제 자신에 대한 자신감을 갖고 제대로 된 직업도 있는 캐릭터를 만나야겠다 생각도 들었고요. 어쩌면 그 장면 자체가 주는 속 시원함이 지금 저에게 어떤 쉼표가 될 수 있는 게 아닌지, 배우로서 터닝 포인트가 될 수 있는 건 아닌지, 인생의 1라운드를 정리할 수 있는 지점은 아닌지, 이런 생각이 들어요.
촬영 중에 큰 부상도 있었다고 들었는데요.
사실 그 마지막 장면이 촬영 때 살이 제일 많이 올라왔던 신이었어요. 살 퉁퉁 쪄가지고, 감독님께서 “너 때문에 컷이 안 붙는다. 어떻게 겨울하고 여름 사이에 8kg차이가 나냐.” 하소연하셨죠. (웃음) 제가 그때 팔이 부러져서 한달 반 동안 운동도 못하고 스트레스 받다 보니까 먹기만 했거든요. 그래도 다행인 게 그 솔트레이크 장면만 남았었죠. 변명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시간이 많이 흘렀구나, 하는 느낌이 있잖아요. (웃음)
<두번째 사랑>같은 경우는 미국에서 영어로 연기를 했고, <보트>에서는 일본에서 종종 일본어로 대사를 하기도 합니다. 사실 국내 배우가 타지에서 타국어로 연기를 하거나 자국어를 쓰는 외국배우와 호흡을 맞춘다는 건 흔한 기회는 아니죠. 어떤 면에서는 도전에 가까운 일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되게 단순하게 받아들인 거 같아요. 일단 제가 새로운 경험을 마다하지 않는 거 같고요. 어쩌면 지금까지 무모하게 계속 추진해나가고 있었는데 이젠 다져나가야 할 시기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 경험을 축적해야 되고 이를 통해 뭔가를 더 학습해나가야 된다고 생각하니까요. 굉장히 웃긴 얘기일지 모르지만 나중에 뭔가 정말 승부수를 던져야 할 때를 위해서 지금 나이부터 계속 쌓아나가야 되는 게 아닌가 싶어요. 그런 의미에서 그런 새로운 경험들을 마다하지 않고 도전해 나가야 되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도 들어요.
<국가대표>가 개봉했으니 이제 하정우 씨가 또 한번 떠나 보낸 작품이 됐다고 해도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지금 <티파니에서 아침을>을 찍고 있으니 다시 새로운 작품을 맞이한 셈이죠. 이렇게 항상 영화를 보내고 맞이하는 시기가 짧은 만큼 전작과의 친밀감을 덜어내는 것이 새로운 작품에 임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관건이 아닐까요?
제 몸이 재료라면 재료를 달궈놓은 상태에서 또 시작할 수 있는 셈이니까 그것만으로 되게 좋은 거 같아요. 사실 저는 한 작품을 끝내고 새로운 작품에 들어가는, 계속 이렇게 작품을 거듭하는 부분에 있어서 좋은 기억을 갖고 있어요. 옛날에 <카르멘>이라는 연극을 했었는데 그때 엄청난 상처를 받았었어요. 친했던 선배가 공연을 보고 나서 막말을 하는 거에요. “너 연기하는 거 보고 정말 실망했다. 난 네가 연기를 좀 하는 줄 알았는데.” 민망해서 쫑파티도 못 갔어요. 그때 연출자하고도 사이가 안 좋기도 했고, 어린 나이에 여러 가지로 상처를 너무 많이 받았죠. 대인 기피증까지 올 정도였어요. 그런 피해의식이 있었는데 그걸 풀어준 게 <고도를 기다리며>였어요. 그렇게 위축된 상태에서 소극장 공연 한번 재미있게 해보자는 동기들과 함께 무대에 서봤는데 너무 재미있는 거에요. <카르멘>때 했던 고민과 막막함이 완전 풀렸어요. 아, 이게 치유가 되는 구나 싶었죠. 최주봉 선생님께서 하셨던 말씀이, “작품으로 상처를 받으면 다시 작품으로 치유해야 된다. 대신 기 기간을 더 두면 안 된다.” 스키점프도 마찬가지거든요. 스키점프에서도 점프하다 넘어지면 코치가 바로 다시 가서 뛰라고 해요. 왜냐면 그 기억을 없애주려고. 매번 작품을 찍다 보면 슬럼프가 분명히 와요. 상처도 생기고요. 제가 알게 되는 실수에 대해서 쪽팔리고 부끄러워서 견디지 못할 정도로 힘든 지점이 생기기도 하는데 그러면 늘 다음 작품에서 두 번 실수는 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돼요. 그러면서 다음 작품 찍다 보면 예전에 했던 고민들이 녹을 때가 있죠.
어쩌면 지난 고민들을 녹이기 위해서 끊임없이 다음 작품을 찾는 것일지도 모르겠군요.
사무엘 베케트가 <고도를 기다리며>를 쓴 기간이 보름 정도 밖에 안 된다고 하더라고요. 사랑하는 여자랑 몇 날 몇 일 섹스를 하다가 ‘아, 써야겠다’ 해서 제 방에 들어가서 몇 일만에 만들었다고 하죠. 베케트가 그랬듯이 잭슨 폴락도 필이 왔을 때 밤 새도록 그림 그렸다 하고, 그렇게 필이 올 땐 계속 하고 싶잖아요. 지금이 아무리 저에게 다지는 시기다, 그렇게 말하게 된다지만 그냥 지금 저는 너무 하고 싶은 욕망이 충만한 상태 같아요. 저한테 어떻게 이런 다작이 가능하냐고 묻는다면 단순히 너무 하고 싶어서라고 말할 수 밖에 없을 거 같아요.
네오이마주 편집장인 백건영 평론가님의 부탁으로 리스트를 작성하긴 했으나 순위를 뽑는다는 게 여간 쉬운 일은 아닌 것 같다. 여하간 올해 개봉했던 한국영화 리스트를 쫙 펼쳐놓고 작품을 걸러냈다. 인상적이라 생각했던 한국영화의 목록은 이렇다.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추격자> <밤과 낮> <님은 먼 곳에>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다찌마와 리: 악인이여, 지옥행 급행열차를 타라> <멋진 하루> <비몽> <영화는 영화다> <미쓰 홍당무> <서양골동양과자점 앤티크> <나의 친구 그의 아내> <과속 스캔들>까지, 순서는 대략 개봉 순이다. <우린 액션배우다><경축! 우리 사랑>은 보지 못했고, 장률 감독의 <경계> <중경> <이리>를 비롯해서 <어느 날 그 길에서><작별>도 놓친 관계로 결과에 반영될 수 없었다. 여하간 올해 내가 본 한국영화 중에 5편을 선정했다. 지극히 사적이고 순간적인 선택으로 좌우된 리스트일지도 모르니 지나친 간섭은 자제를 요망한다. 이런 개인적인 리스트에 의미를 부여할 이유도 없을 것 같다. 어차피 영화는 영화니까, 누가 최고라고 부추겨주지 않아도 고유의 가치는 보존되는 법이다. 순위는 그저 사족이다. 그렇게 생각한다. 여하간 내년에도 좋은 한국영화를 여러 편 만나길 고대한다.
1. <밤과 낮> 홍상수 감독
홍상수의 남자들은 언제나 비루하게 흔들리고 홍상수의 여자들은 그 흔들리는 남자에게 마음을 잘도 열었다 닫곤 한다. 밤과 낮이라는 차별적 서사 안에서 파리와 서울이라는 이질적 공간이 반대편에서 동시에 공존하고 있다는 것이, 그리고 그 동시간에 놓인 반대의 영역적 공간이 물리적 시간을 반대편으로 밀어내며 서로의 차이를 동일하게 보존하고 있음이 체감될 때 이 영화는 온전히 신비롭다. 무덤덤하면서도 일상적인 언어로 되풀이 되는 순간들이 경이롭게 발견된다. 여성의 음부를 세상의 기원이라 말하는 쿠르베의 그림처럼 일상이야말로 가장 탁월한 영화적 공간이 될 수 있음을 <밤과 낮>은 증명하고 있는 게 아닐까. 그리고 그것을 깨닫는 것이야말로 실로 경이로운 영화적 체험이 아닐까. 현실에서 곧잘 보지 못하는 지극히 현실적인 상들이 영화를 통해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2. <미쓰 홍당무> 이경미 감독
<미쓰 홍당무>는 올해의 발견이다. 물론 <추격자>도 발견이라 말해야겠지만 <추격자>는 그보단 성과라고 말하고 싶다. <추격자>가 문법적 응용이라면 <미쓰 홍당무>는 문법의 창작에 가깝기 때문이다. 물론 제작자 박찬욱 감독의 영향력이 종종 엿보이긴 했지만 <미쓰 홍당무>는 분명 이경미 감독의 신선한 재능이 앙칼지게 드러난 수작이다. 전혀 가늠할 수 없는 태도로 보편적인 문제를 건드리는 동시에 생경한 드라마로 호응을 이끌어내고 종래엔 동감하게 만든다. 배우들의 열연도 돋보인다. 이경미 감독만큼이나 공효진과 서우도 발견이라 할만한 재능을 드러냈다. 여성 감독이 빈곤한 한국영화계에서 여성 감독이 만든 여성스토리가 먹혔다는 사실도 고무적이다. 무엇보다도 가장 기이한 창의력으로 말이다.
3. <멋진 하루> 이윤기 감독
오래 전 헤어졌던 전처가 찾아왔다. 350만원을 받기 위해서. 이상한 만남에 이어 이상한 동행이 시작된다. <멋진 하루>는 일종의 로드무비이자 이상한 로맨스 영화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모든 동선과 감정의 궁극적 종착지는 낭만을 통한 치유에 있다. 서울 곳곳의 풍경이 생경하면서도 드넓다. 카메라의 탁월한 구도 감각 덕분이기도 하지만 동행하는 두 사람의 심리 변화가 풍경을 바라보는 시선에 적용되는 인상이다. 단 하루 동안 지속되는 동행엔 지난 로맨스의 낭만이 깃들기도 하고, 삭막한 현실의 암담함이 그늘지기도 한다. 그 만남은 결국 도피적 일탈이 아닌 치유적 여행이 된다. 350만원이라는 적지도 많지도 않은 액수의 금액은 희수의 태도를 애매모호하게 만들고, 지나치게 넘치는 병운의 낙관적 태도는 그 예측불가능한 동선을 그린다. 삭막해서 무료한 삶에 생기가 돈다. 지난 로맨스에서 비롯된 채무관계가 추억을 복원한다. 아이러니하지만 따뜻하다. 해프닝 같은 사연으로 깊은 드라마를 만들었다. 두 배우의 연기만큼이나 깊고 투명한 울림이 인상적이다. 지극히 사소한 방식으로 특별한 감수성을 선사한다.
4. <나의 친구 그의 아내> 신동일 감독
골목을 빽빽하게 메운 차량들로 가득한 이 나라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비극인지, 퇴근하고 나서도 상사의 복귀 명령에 다시 회사로 달려가야 할지 모를 불안감에 떨어야 하는 이 나라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비극인지, 이 영화는 정말 대한민국이라는 연옥을 실감하게 한다. 물론 그런 비극 같은 상황을 엮어내는 타이밍이 절묘하다. 극적인 재미가 충분하다. 관계가 뒤엉키는 찰나가 파국으로 빚어지는 여정들이 흥미롭게 이어지고 펼쳐진다. 정치적인 메타포들이 하나같이 극을 위해 봉사하면서도 때떄로 시치미 뚝 떼고 제 얘기를 한다. 가볍게 유희적이지만 한편으로 진지하게 엄숙하다. 소심한 척은 다하면서 극단적인 세기를 보여준다. 2년 만에 개봉했다는 게, 그리고 고작 4개관에서 개봉됐다는 게 아이러니할 정도의 수작이다.
5. <추격자> 나홍진 감독
이 영화를 이야기하는 건 지루한 일이 됐다. 하지만 <추격자>는 분명 중요한 영화다. 날것의 기운이 곳곳에 배어있다. 그 기운이 장르적으로 밀착해서 완전한 몰입을 발생시킨다. 무엇보다도 이 영화는 단순히 영화적인 영역을 넘어 시사하는 바가 많다. 비범한 재능을 지닌 신인 감독의 성공이, 탄탄한 내공을 지닌 연기파 배우들의 성공이, 그리고 그런 영화를 지지한 관객들의 움직임이, <추격자>의 진면목이다. 정서적으로 암울하고 지독하게 잔인한 이 영화의 악랄함이 끌어낸 호응의 수치야말로 현재 한국 사회를 관통하는 솔직한 정서에 가깝다. 수많은 시상식이 이미 이 영화의 가치를 지겹게 설명하고 있지만 현재 한국영화에서 부족한 어떤 요소가 분명 <추격자>에 존재한다. 물론 이 영화가 좋은 영화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하지만 이 영화는 분명 잘 만든 영화에 속한다. 우린 그것을 구별해야 한다. 이 영화가 이토록 폭발적인 반응을 얻은 배경에 대해서 유념할 필요가 있다. <추격자>가 중요한 건 그 때문이다.
지금까지의 작품들 중 가장 큰 규모로 개봉한다더라. (홍보사 직원에게)규모가 어떻게 되지? (홍보사 직원)300개요. 교차 상영하는 거 아냐? 요즘은 통 믿을 수가 없어. (웃음) 그래도 최소한 대체 어디서 영화 상영하냐고 전화는 안 오겠네. (웃음) 예전엔 다들 나한테 전화해서, 도대체 어디서 하는 거야? (웃음) 그러다 보니 다 다운받아서 본다더라.
전도연과 하정우에게 캐스팅 제의를 던진 시점은 각각 <밀양>과 <추격자>가 공개되기 전으로 알고 있다. 원래부터 대중들에게 어느 정도 신뢰감을 주는 배우들이었지만 우연 같은 시의성이 겹쳐서 더 큰 화제가 발생했다. 하정우는 캐스팅하니까 <추격자>가 흥행질주를 달리면서 여기저기 거론되고 전도연에게 제의를 하니까 나중에 깐느에서 상 타더라. 물론 그 전부터 이미 알려진 배우들이었지만 상대적으로 매스컴의 관심을 더 받게 됐다는 건 좋은 거 아닐까.
<아주 특별한 손님>과 마찬가지로 다이라 아즈코의 단편을 원작으로 해서 <멋진 하루>를 연출했다. 그 이전에 <여자, 정혜>도 단편 원작이 있는 작품이고, KBS에서 연출한 <내가 사랑한 집>도 원작이 있다. 개인적으로 원작을 바탕으로 둔 각색을 선호하나? 음, 하다 보니 그렇게 된 거라 그게 나와 맞는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내가 오리지널 시나리오를 안 쓰는 건 아니지만 단편 소설을 원작으로 했을 때 안정감이 확보되니까, 그런 면에서 접근이 편안하다고 할까. 그리고 장편보단 단편이 더 접근하기 편한 것 같고, 명쾌한 주제를 전달하고 끝내잖아. 디테일은 내가 붙이면 되고. 좋은 작가들의 아이디어를 채용하는 셈이지. 물론 앞으로 오리지널 시나리오를 안 쓰겠다는 게 아니라 확실히 여러 가지 면에서 단편을 영화화하는데 장점이 있다는 말이다.
단지 텍스트를 이미지로 만들고 싶어서 단편을 영화화하는 건 아닌 거 같다. 다만 맥락이 잡힌 문장에 다른 수식어를 붙여보고 싶은 게 아닌가 싶다. 내가 생각하는 것들, 내가 해석하는 여지들이 있다. 단편은 그런 것들이 끼어 들어갈만한 여백을 많이 갖고 있기 때문에 그런 작업이 가능한 것 같다.
<멋진 하루>는 같은 원작자의 작품이기 때문인지 몰라도 <아주 특별한 손님>과 유사한 면모가 많이 엿보인다. 어떤 생경한 길 위에서 시점이 시작된다거나 예측하지 못한 지점으로 주인공의 동선이 이동된다던가, 그리고 일단 그 사연들이 뜬금없다. 개인적으로 같은 원작자의 작품을 연속해서 영화화했다는 건 그만큼 그 두 작품에 당신의 취향이 반영됐기 때문이라고 봐도 될 것 같다. 당긴다. 우연함 속에서 어떤 깨달음을 찾아간다는 것? 혹은 찾아내진 못해도 찾아가는 여정, 이건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행태 속에서 누구나 한번쯤 꿈꿀만한 일이다. 그건 부정적인 일탈이 아니라 긍정적인 일탈이니까. 다만 용기가 없어서 누구나 실제론 못하겠지. 그래서 우연한 사건이 벌어지면서 그런 게 가능하면 참 좋겠다 싶더라. 그건 내가, 그리고 다른 사람들도 할 수 있는 거니까, 그렇게 영화를 따라가는 거지.
우연한 과정 속에서 깨달음을 얻게 되는 여정이 결국 필연처럼 느껴진다. 그 우연한 여정을 거친 인물들은 스스로 어떤 미세한 변화를 감지한다. 그건 거대한 변신이 아니라 소소하게 느껴지는 변화다. 그런 작은 변화에 대한 호감이 본인의 영화에 존재한다. 그게 현실적이란 생각이 든다. 물론 영화가 꼭 현실적이어야 될 필요는 없다. 다만 이런 소재가 지닌 장점은 상당히 현실적인 이야기를 던지면서 그것이 엄청난 변화를 부여하진 않더라도 그것이 굉장히 중요한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작은 변화가 얼마나 중요하고 힘든 것인가 얘기한다. 큰 변화보다 작은 변화가 훨씬 더 힘들다는 거지. 꼭 영화가 그런 얘기를 해야 되는지 모르겠다고 할 수 있지만 일단 어떤 매체로든 그런 이야기를 한다는 것 자체가 상당히 중요한 게 아닐까. 우리 대부분은 엄청난 것을 해내야 한다는 강박에 싸여있다. 누구나 1등을 해야 되고, 엄청난 성공을 해야 되고, 많은 돈을 벌어야지, 그런 강박이 부질없다는 걸 알아야 한다. 작은 것을 먼저 느끼고 받아들이는 게 모두에게 필요하지 않을까,
350만원이라는 액수가 그런 의미를 내포하는 것 같다. 350만원이 적은 액수는 아니더라도 그 액수는 희수의 내면적 여유가 어느 정도 너비인지 물질적으로 구체화한다. 그만큼 350만원이란 액수를 정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 같다. 지금 현실에서 사람들에게 가장 애매한 액수가 어느 정도일까를 생각했다. 많은 것 같지만 별 거 아닌 돈 같기도 할만한, 그 정도의 논란이 생길 수 있는 액수를 정하는 게 좋겠다 싶더라. 너무 명확하게 돈이 많거나 적으면 속셈이 드러나버리니까. 그래서 사람들에게 물어봐서 조율을 했다. 얼마 정도가 적절할지, 그리고 그 중간을 선택했다.
그 액수만큼 희수의 애매한 태도도 관건이다. 희수는 자기 입으로 원래는 돈 없다고 하면 잔뜩 욕해주고 오려고 했는데 병운이 돈을 준다고 하니까 동행하게 됐다고 말한다. 결국 희수를 이끈 건 호기심에 가깝다. <아주 특별한 손님>에서의 보경도 비슷한 느낌이 있다. 그런 예기치 않는 상황에서 예측할 수 없게 진전되는 상황에 대한 호기심을 즐기나 보다. 실제로 내게 그런 상황이 생기면 용기가 없어서 못할 거다. 다만 마음 한구석에서 한번 해볼까라는 생각이 들겠지. 그만큼 영화 속 여주인공들은 용기가 있는 거다. 대부분 피상적으로 내 영화 속 캐릭터들이 약하고 여린 사람들이라 생각하지만 사실 내가 그리는 사람들은 가장 용기 있는 사람들이다. 그걸 드러내서 표현하지 못하는 사람들일 뿐이지. 그리고 마지막엔 자기가 원하는 걸 다 성취해간다.
원작의 남자는 때가 묻은 느낌이지만 병운은 좀더 순수하게 묘사된다. 의도적으로 순수한 느낌을 준 건 그게 좀 더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을까 싶어서다. 나쁜 놈 같지만 보다 보면 전혀 그렇지 않은 인간처럼 보이는 거지. 그러려면 소설보단 순수한 어린애 같은 쪽으로 가는 게 맞을 거라 생각했다.
사실 당신의 영화에서 남자들은 대부분 무례하다는 느낌을 준다. 사실 실제로 한국 남자들이 무례하지 않나. 대체적으로 우리나라 사람들 특성 자체가 무례함이라 본다. 자신은 무례하지만 남의 무례함을 참지 못하는, 그게 우리나라 사람의 전형이 아닌가. 다만 그걸 남자를 통해서 보여주는 거지. 사실 여자들도 무례하다. 그래서 이번엔 희수가 만나는 여자들도 다 무례한 거다.
어쩌면 어떤 남자캐릭터는 좀 더 악한처럼 묘사될 수 있는 여지가 있었다. <여자, 정혜>의 삼촌이라던가, <러브토크>에서 써니(배종옥)의 전남편은 맘만 먹으면 정말 사악하게 그릴 수 있는 인물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건 사람에 대한 전형적 태도를 취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 추측된다. 충동적인 상황이 사람을 변화시킨다는 믿음이랄까. 정확히 캐릭터가 이렇다고 설명하는 건 힘들다. 예를 들어 병운의 캐릭터를 두 줄로 얘기해달라면 할 수 없는 거다. 사람은 복합적이니까 단순히 어떤 인물이다라는 식으로 규정이 안 된다. 그리고 주인공과 마찬가지로 주변인물도 규정할 수 없는 거다. 단지 그 순간 극한 행동을 하느냐, 아니면 선한 사람처럼 보이느냐 차이일 뿐이지. 사람들이 생각하기에는 왜 내영화에는 일관적으로 무례하고 여주인공을 고립시키는 남자들이 나오냐고 할 수 있지만 어쩌면 그건 그 상황만 그렇게 된 것일 수도 있는 거다. 그 사람들도 어디선가는 좋은 사람들일 수 있는 거니까. 실제로 착한 사람도 많이 나오는데 착한 사람들은 잘 안 보인다. 반대로 너무나 무례한 인간들은 눈에 잘 띈다.
오프닝 시퀀스의 시선은 어떤 대상을 찾는 것 같은 느낌이다.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는 느낌인 거 같기도 하고, 우왕좌왕하는 느낌인데 희수를 발견한 카메라가 그 뒤를 쫓기 시작할 때는 조심스럽게 뒤를 밟는 느낌이다. 훔쳐보는 느낌이 희수의 캐릭터를 알려주는 거다. 희수는 경마장에서 철저한 이방인이 되는데 자기가 남들에게 이방인처럼 보이지 않았으면 한다. 그런 사람들 있지 않잖아. 어디 가도 사람들 눈에 안 띄었으면 하는, 두리번거릴 수 없는 거지. 슬쩍슬쩍 곁눈질로 사람들의 이목을 피하고 싶은 캐릭터인 거지. 그리고 난 그 정도만 얘기하고 그 다음은 뛰어난 배우가 있으니까 알아서 맡기는 거다.
<아주 특별한 손님>과 마찬가지로 <멋진 하루>도 생경한 이야기지만 각자 그런 생경함을 중화시키는 요소들이 있다. <아주 특별한 손님>은 시골의 이미지가 그런 역할을 했던 것 같다. 그에 반해 <멋진 하루>는 배우들의 연기가 그 역할을 하는 게 아니었나 싶다. 배우들이 영화에 능동적인 느낌을 준다고 할까. 소재 자체가 굉장히 경쾌하고 움직임이 많은 영화일 수밖에 없었다. 그럼 거기에 맞게 캐릭터들도 운율에 따라서 움직여주는 거다. 영화의 음악도 그래서 재즈여야 된다고 생각했다. 저 사람의 움직임이 프리 재즈 같다가도 어느 순간엔 2박자의 구닥다리 재즈 같은 느낌도 있고, 좀 더 뒤로 가면 브라질 리듬이 가미된 음악도 나온다. 더 뒤에 가면 애잔한 느낌이 더해져서 멜로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 장면 자체가 멜로처럼 다가오는 형식을 취하기 때문에 그에 맞춰서 캐릭터들은 다같이 자연스럽게 분위기가 업 되는 거다.
영화마다 사람들이 모여서 왁자지껄해지는 광경이 한두 번씩은 꼭 나오더라. 원작과 상관없이 의도적으로 집어넣은 부분이 있다. <여자, 정혜>에 호프집에서 TV보면서 떠드는 패거리의 장면을 넣은 건 그것이 일상에서 가장 흔한 장면이기 때문이다. <멋진 하루>같은 경우는 두 사람을 군중 속에 집어넣고 싶었다. 그래야 두 사람의 존재가 더 명확해지니까. 그리고 거기서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된다. 병운이 말하지 않았던 병운의 과거가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해서 드러난다던가, 희수가 그런 얘기를 듣고 갑자기 여유를 찾았다는 듯이 담배를 피고, 이런 건 군중 속에서만 벌어질 수 없는 사건이 아니었을까. 나름대로 하나의 효과적 장치라고 생각했다. 군중 속에 인물들을 놓여졌을 때 캐릭터가 생경해지는 순간이 있다. 혹은 뜬금없이 엉뚱해지거나 그로 인해 웃기는 상황도 발생하고. 물론 그게 대단히 웃기진 않고 심심한 느낌이 더불어 나타난다. 그렇게 우리 주변의 캐릭터들을 넣어보는 게 나름의 재미라고 생각했다.
<여자, 정혜>나 <아주 특별한 손님>의 주동인물인 정혜나 보경은 식물적인 여자들이었다. 그에 반해 그녀들의 주변인물들은 상대적인 생동감이 있다. <아주 특별한 손님>에서 김영민 씨가 그런 역할을 했는데 <멋진 하루>에서도 한몫 하더라. 역시나 무례하기도 하고. (웃음) <아주 특별한 손님>의 기용(김영민)이 <멋진 하루>의 병운 같기도 하다. 그런데 어쨌든 결국 미워할 수 있는 인물이 아니다. 단지 우리 주변에 있는 한심한 사람일 수 있는 거지.
영화에 나오지 않고 예고편에만 등장하는 장면이 있더라. 희수가 카페에서 누군가에게 병운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 같던데, 후일담 아닌가? 맞다. 희수가 그 날의 이야기를 거짓말 반, 진심 반으로 얘기하는 후일담 장면이다.
말미에 에필로그 형식으로 병운의 스페인 막걸리 집 간판이 등장하기도 한다. 전작에서는 그 상황 이후, 즉 인물들의 후일담을 드러낸 적이 없었다. 예전엔 시나리오 단계에서 그런 장면이 없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시나리오 자체에 그게 있었고.
전작들에서는 인물의 어떤 변화가 감지되는 지점에서 이야기가 끝나곤 했다. 결국 <어떤 하루>를 통해 처음으로 후일담을 묘사한 셈이다. 이전의 얘기는 그 전에 멈추는 게 맞을 거라 생각했지만 <멋진 하루>는 거기까지 얘기해주는 게 맞을 거라 생각했다. 나름대로의 판단을 내린 거지. 사실 어디까지 보여줄 것인가에 대해서 고민을 많이 하긴 하는데 대부분 시나리오 단계에서 판단을 내린다.
그런데 왜 희수의 후일담은 영화에서 누락된 건가? 원래 두 가지 버전을 생각했었다. 지금 극장에서 상영되는 버전 외에 또 하나의 버전. 지금 버전은 굉장히 스트레이트한 진행이지만 사실 조금 복잡한 편집을 해보고 싶었다. 굉장히 위험한 시도라면 시도일 수도 있고. 원래 후일담 말고도 제3자들이 희수를 이야기하는 장면도 찍었었다. 특별한 사정이 있어서 다른 버전을 안 만든 건 아니고 내가 생각한 다른 버전을 만들기에 내 스스로 몇 가지 결여된 지점이 있다고 판단됐고 이 상태론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을 수 없을 거란 생각이 들어서 편집하는 과정에서 다른 버전을 포기했다.
말을 듣고 나니 그 후일담이 그저 서사적인 에필로그 정도로 배치될만한 사안이 아니었나 보다. 그런 정도가 아니었다. 굉장히 복잡한 거였다.
어쩌면 좀 교차적인 배열 같기도 하고, 약간 모던한 형식의 배열을 취해보려 했는데 그 씬들의 완성도가 떨어졌다.
생각했던 것보다 결과물의 형태가 불만족스러웠나 보다. 생각해보면 전작들에서 주인공 여성들이 자신의 사연을 스스로 말하는 경우도 없었다. 그런데 희수는 스스로 입을 열더라. 그 덕분에 이 영화에서 좀 더 적극적인 느낌이 발생하는 것 같기도 하다. 기본적으로 희수는 이전에 내 영화에 나왔던 여자 캐릭터들과는 다른 인물이다. 희수가 과연 병운이를 왜 찾아갔을까, 물론 자기 하소연까진 아니더라도 희수에겐 확실히 누군가 기댈 수 있는 대상이 필요했던 거다. 그리고 병운이가 그 역할을 해준다. 개입하는 인물이 아니라 희수에게 필요한 걸 들으면서 모른 척 해줄 수 있는, 희수에겐 정말 완벽한 대상인 셈이다. 이유를 딱 떨어지게 설명하진 않지만 희수가 그래서 병운을 찾아간 거라고 나는 생각했다. 야, 이 나쁜 놈아, 이렇게 욕도 하면서 자기 하소연도 슬쩍 던질 수 있는 편안한 대상이 필요했던 건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 녀석 밖에 없는 거지. 그런 목적을 숨기고 갔다.
빚을 남긴다는 건 인연의 고리를 남기고 싶다는 희수의 속마음이기도 하다. 말을 하지 않을 뿐, 그런 느낌이지. 그리고 그건 관객만 아는 비밀이고. 만약에 이 영화를 좋게 느끼는 관객이 있다면 그런 비밀을 공유한다는 기분을 느끼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결말부에서 빚을 둘러싼 두 여자의 구도가 흥미로웠다. 병운을 대신해 빚을 갚겠다는 그 여자에게 희수가 돈을 받지 않겠다고 하자 그 여자는 ‘물러서지 않으실 거죠?’라고 묻는다. 마치 신경전처럼 보였다. 여자들은 병운에게 경쟁적으로 빚을 주려고 한다. 여러 가지 해석의 여지가 있지만 그 장면은 원작을 거의 그대로 재현한 장면이기도 하다. 대부분의 장면들은 뉘앙스를 조금씩 바꿔나갔는데 말미에 그 장면에서 등장하는 그 여자는 원작과 거의 똑같다. 소설을 봤을 때, 엉뚱하지만 그 장면이 여러 가지로 복합적인 감정들을 완성해주는 순간 같았다. 현실에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여자 같기도 하고. 어쩌면 관객에겐 제 정신이 아닌 여자처럼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희수에겐 시사하는 바가 많다. 단순히 착한 여자를 봤다기 보단 자신이 세상에서 많은 것을 놓치고 살고 있다는 걸 그런 엉뚱한 사람을 통해서 느낀다. 하루가 아이러니의 연속이랄까? 마치 이렇게 살지 말아야 돼, 라고 얘기하는 것 같기도 하고. 누가 딱히 교훈을 주는 건 아니지만 인물들을 통해서 희수가 알아서 느끼는 거다.
지금까지 4편의 영화를 찍으면서 항상 여자를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그녀들은 항상 어떤 상처를 지닌 듯 보이고, 영화 속에서 그것들을 점차 치유해 나간다. 그런데 <러브토크>에서 박희순이 연기한 지석은 그 여성들과 심리적으로 유사한 느낌이 있다. 중요한 건 성별이 아니라고 느껴지는 측면이다. 다만 당신이 여성을 대상으로 이야기하는 건 남성보다 여성을 대상으로 둘 때 감성적으로 부합되는 측면이 많기 때문에 여성을 선호하는 것 같다. 소소한 묘사 같은 면에서 좀 더 활용할 수 있는 여지들이 많다고 할까. 그래서 여성을 주인공으로 두는 쪽을 선택한 면이 있다. 사실 남자가 주인공이 돼도 좋다. 다만 그런 소소한 부분들이 달라지겠지.
<멋진 하루>이전까진 주연 배우들이 극 속에서 자기 캐릭터에 철저히 갇힌 인상을 준다. 그래서 감독이 배우들을 철저히 통제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했었다. 전도연 씨도 비슷한 예상을 했다더라. 그런데 막상 직접 연기하면서 최소한의 간섭 외엔 별로 터치하지 않아서 대체 이전엔 어떻게 영화를 찍었을까 더 궁금해졌다고 했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다. (웃음) 전에도 그랬다. 특별히 전도연이라서 간섭을 하지 않은 게 아니라, 하정우도 마찬가지였다. 예전에 작업했던 배우들한테도 필요할 때만 개입하는 게 옳다고 생각했고 앞으로도 그렇게 할 거다.
하정우의 능청스런 대사도 좋았지만 전도연의 리액션이 훌륭했다. 전도연의 리액션이 이 영화의 활력을 원활하게 순환시키는 느낌이다. 무엇보다도 대사량이 상당히 많아졌다. 아마 전부터 대사가 많은 영화를 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예전에는 소재 자체가 대사가 많이 필요 없으니까 못했지만 이번에는 수다스러운 영화라고 규정짓고 수다와 리액션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굳이 비교하자면 우디 알렌 영화같이, 인물 캐릭터들을 보는 재미가 있길 바랬다. 항상 같은 배경에서 배우만 바꿔서 똑같은 짓을 시키는데도 재미있지 않나. 어쩌면 그렇게 배우들도 우디 알렌 영화에만 출연하면 코믹 연기를 생동감 있게들 잘 하는지. 그건 감독의 영향이기도 하지만 영화가 주는 나이브(naive)함과 모던함의 산물이라 생각한다. 예전부터 하고 싶었던 걸 이번에 시도한 거지.
본인이 생각하는 결과물의 예상 범위에서 벗어나거나 모자라다 생각되는 부분이 있나? 내 스스로 완성도에 대해서 만족한다고 얘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정말 가져가고 싶은 것 하나는 가져간 거 같다. 이 영화를 보고 났을 때 한가지 관통되는 느낌은 있었다. 뭐라고 표현할 수는 없지만 그 여행 끝에 느껴지는 쓸쓸한 기운 속에서 마음이 편안하다는 느낌. 그것만큼은 살렸다는 생각이 들어서 다행스럽게 느껴진다. 그건 배우들의 아우라에서 영향받은 느낌도 있을 거고, 나와 배우들의 호흡이 잘 맞아떨어진 상황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기도 하고. 그렇지 않다면 그 하나조차도 못 가져갔겠지.
쉽게 말해서 영화의 말미에 보여지는 희수의 웃음을 관객이 정서적으로 수긍하지 못하면 <멋진 하루>는 실패한 영화가 된다. 그래서 그것까진 된 게 아닌가 싶더라.
매 영화마다 전작의 주연여배우들이 차기작에서 카메오로 출연했다. 사실 어쩌다 한번 해봤는데 이어지게 된 건가, 아니면 애초에 작정하고 시작한 건가? 그냥 철학도 없이 어쩌다 해본 거지. 굉장한 의미는 아니지만 전작의 배우들이 나를 도와줬다는 의미도 있다. 물론 현장에 와서는, 이거 시키라고 오라고 했어? 이렇게 투덜투덜하기도 한다. (웃음) 배종옥 씨 같은 경우는 자기 집으로 와서 목소리 따라고 해서 캔맥주 사 들고 쳐들어가서 녹음기 들고 빨리 하라고 재촉했다.(웃음)
사실 그게 배우들과 원만한 유대감이 없다면 힘든 일이다. 대부분 좋았지. 김지수 씨, 배종옥 씨, 박희순 씨, 한효주 씨, 그 외에도 조연으로 출연했던 배우들도 계속 출연해주시고. 좋으니까 같이 또 하는 거 아닐까. 그 사람들도 내가 싫으면 안 해줄 테고, 나도 그 배우가 맘에 안 드는데 굳이 출연시키려 하지 않을 테고. 서로 즐거우니까 하는 거지.
사실 관객 입장에서는 재미있는 장면이기도 하다. 알고 보면 재미있지. 그런데 모르고 보면 그냥 누가 서 있는지도 모를 거다. 한효주가 어디 있어? 막 이럴 수도 있고. (웃음)
어쨌든 처음에 의도한 건 아니라도 이렇게 계속 이어지게 된 만큼 이젠 이걸 계속적으로 밀고 나가야 될 것 같은 의무가 생기진 않았을까 싶다. 글쎄, 계속 해볼까? (웃음) 지금에 와선 그런 생각이 들어요. 하지만 어느 순간엔 안 되겠지. 만약 내 다음 영화가 사극이라면 전작의 주인공이 사극에 카메오 출연한다는 게 이상할 테고. 그런 건 의미의 연결이 없으니까 잘못하면 장난이 돼버리는데 공교롭게도 지금까지의 영화 4편은 동시대라서 그 인물이 그 자리에 존재해도 아무런 이상이 없는 상황이니까 했지. 억지로 넣을 수는 없다.
그건 관객을 위한 서비스 같지만 오히려 스스로를 위한 위안처럼 느껴진다. 그녀들이 잘 살고 있으리라는 안도감이랄까. 맞다. 정확하게 얘기했다.
그냥 헛소리 하나 한다면 그 중간지점의 이야기를 해봐도 재미있겠다. 배우들이 안 할걸. 너나 가서 해라, 우리가 무슨 네 욕망의 도구냐, 이러면서.(웃음) 아마 창피해서 배우들한테 얘기도 못 꺼낼 거다. 창피해서.
사실 그것이 직접적으로 드러나지 않았을 때 좀 더 생명력이 느껴질 수도 있고. 그걸 의식적으로 하면, 지가 무슨 대단한 짓이나 한다고 배우들 불러서 쇼하고 있냐는 소리 나올 거다. 이전에 내 성격상 못할 거고. 마음으론 하고 싶다고 해도 배우들한테 말도 못 꺼낼 거다. 전도연이나 김지수, 배종옥은 다들 장난 아닌 애들이라 내가 얻어맞을지도 몰라. (웃음) 여배우들이 종종 누나처럼 나를 걱정한다. 그런데 어떤 매체에서 인터뷰 기사의 뉘앙스가 반대로 나왔더라. 여배우들이 나를 물가에 내놓은 어린애처럼 걱정한다고 했는데 기사에는 내가 배우를 그렇게 생각하는 것처럼 쓰였더라. 반대로 여배우들이 날 걱정하지. 제발 좀 돈 좀 벌어라. 제발 좀 극장에 많이 걸리는 영화 좀 하라고.
전도연 씨도 프리 프로덕션 단계에서 감독한테 마음 편히 가지라는 말을 많이 했다던데. 전도연 씨가 걱정 많이 했을 거다. 내가 프리 작업에서 방황을 많이 하거든. 혼자 반쯤 정신 나간 사람처럼 다니니까 배우들이 많이 불안해하지. 저걸 믿고 내가 영화를 찍어야 되나, 걱정 많이 했을 거야. 헛소리하면서 밤새 술 먹고 다음날 정신 없고 그러니 얼마나 신뢰가 안 가겠어.
준비 단계에서 느껴지는 불안감을 철저함으로 상쇄시키려다 보니 고민이 많아지는 게 아닌가. 아무래도 내가 하는 영화가 대단할 게 없잖아. 이슈를 가지고 하는 영화도 아니고, 어쩌면 너무 평범하고 소박하다 보니 대단한 걸 보여줄 수 없다면 뭔가 세심한 뭔가를 해야 되고, 기왕에 완성도도 높여야 하니까. 만약 내가 다른 장르 영화를 했다면 특별히 신경 쓸 부분이 있으니 괜찮을지 모르지만 이건 그렇게 해야만 되잖아. 어쩌면 이건 아무것도 아닌 얘기가 되거든. 그래서 불안하니까 내 속이 많이 썩지.
말 그대로 평범한 것이라 디테일을 살려야 한다는 게 관건이었을 것 같다. 그만큼 프리 작업이 고민스러웠을 테고. 영화를 찍을 때보다 영화를 찍기 전에 시행착오도 많을 것 같다. 아무도 영화화 안 할 것 같은 얘기들이니까 투자 받기도 힘들고, 누구한테 기댈 수 없는 부분들이 있다. 이것도 맞을 거 같고, 저것도 맞을 거 같고, 특별한 정답이 없으니까. 준비 다 해놓고 생각해보면 아닌 거 같아서 다시 뒤집고, 또 뒤집고. 남들이 보기엔 별 거 아닌 듯 하지만 그런 과정이 있어서 만드는 입장에서는 오히려 좀 더 편치 않은 영화다. 그만큼 같이 준비하는 사람들은 더 피곤해지는 거고.
<멋진 하루>는 동선의 변경이 잦다. 물론 <아주 특별한 손님>도 동선의 변화가 있지만 그건 점을 찍고 오는 개념이므로 계속 랠리 포인트가 변경되는 <멋진 하루>가 보다 어려운 작업이었을 것 같다. 거의 대작 수준의 로케이션이었다. 이건 미치지 않고 할 수가 없는 일이랄까.(웃음) 보통 멜로 영화에서 이렇게 많은 장소가 나오진 않지 않나. 그런데 이건 한번 가는 장소는 다시 안 가니까 난리가 아니었지.
기시감을 느낄만한 장소들이 제법 등장한다. 하지만 카메라의 앵글이나 자연광의 느낌이 이국적인 느낌을 부여한다. 그게 목표였다. 촬영팀이나 촬영 감독하고 많은 고민을 했지. 리얼리즘 영화처럼 적나라하게 보여지는 공간을 추구하는 게 아니라 판타지의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게 목표였다. 판타지가 아닌데 판타지처럼 느껴지는 어떤 장치들이 있어야 된다는 게 촬영팀의 관건이었다. 빛을 어떻게 이용할 것인가에 대해서 과학적으로 연구하기도 하고, 마땅한 장소를 수없이 찾아 다니면서 어떻게 이용할 것인지 고민했고. 일반 관객들은 눈치 챌 수 없을 만한 부분이지만 전문가들이 보면 아마, 더럽게 고생했겠구나,(웃음) 느낄만한 지점이 있을 거다.
장소의 고유한 특성을 지우고자 하는 느낌이 있다. 내 영화에서 고집하는 공통점은 무국적성이다. 내 영화에서는 표지판이 거의 안 나온다. 여기가 어느 동네라고 아무도 말하지 않고. <러브토크>때도 로스앤젤레스라는 말은 한마디도 안 나온다. 길거리 표지판도 안 나오고. 물론 마지막에 ‘베이커스필드’가 나오지만 그건 어쩔 수 없이 카메라에 잡힌 거다. 가능하면 카메라 앵글을 잡을 때 최대한 지역성을 감춘다. 예를 들어 우리가 많을 거다.한남 오거리에서 촬영을 몇 번 했는데 카메라를 뒤로 빼면 한남 오거리가 너무나 확연히 드러나서 재미없었다. 그래서 치고 들어가라고 주문하기도 했다. 이런 무국적성을 살려야 거기서 오는 미묘함이 살아난다.
낯설음과 익숙함 사이에 인물을 내려놓고자 하는 건가? 애매모호한 지점에 주인공들을 던져놓는 거지.
영화에서 나오는 정서적 애매함은 그 장소의 속성에서 기인되는 바가 있는 게 사실이다. 그런데 낯선 풍경을 찍어내는 것과 일반적인 풍경을 낯설게 찍어내는 건 다르다. 어느 것에 중점을 두고 촬영하나? 두 가지 다 해당이 된다. 우선은 장소를 찾을 때 후보들을 올리고 그 다음엔 그 장소들로 이동해서 가장 근접한 느낌을 얻을 수 있는 장소로 선택한다. 물론 가끔, 왜 여기서 했을까, 라는 실패한 느낌을 얻기도 하는데 결국 두 가지를 통해서 가장 탁월한 걸 얻는 거다.
가장 좋을 거라 생각했던 장소가 생각보다 별로였다거나 별로라고 생각했던 장소가 생각보다 괜찮았던 경우도 있지 않던가? 경우의 수가 워낙 많았지만 로케이션은 몇 번을 빼고 대부분 만족스러웠다. 노력한 만큼 되는 거라 열심히 하다 보면 실패해도 후회되진 않는 거지. LA에서도 그랬다. 미국 로케이션 매니저가 <러브 토크>는 미국에서 학생 졸업작품 수준의 적은 예산이라고 하더라. 그런데 그 예산으로 할리우드 수준의 로케이션 투어를 하니 가당치도 않은 일이라 하더라. 보통은 그 정도 예산이면 집 하나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한다는데 우린 LA를 다 돌아다녔다.
저예산이기 때문에 걸리는 부분도 있을 거다. 저예산이라 하고 싶어도 못하는 게 너무 많지. 대부분 포기의 과정이다.
반대로 저예산이기 때문에 가능한 이야기일 수도 있다. 그렇다. 이런 얘기를 큰 예산으로 시켜주지도 않을 거고.
<아주 특별한 손님>에 이어서 HD카메라로 찍었다. <아주 특별한 손님>은 HD카메라를 이용한 의도적 기획이었지만 <멋진 하루>는 굳이 HD를 선택할 이유는 없었을 것 같은데. 필름으로 찍어도 상관은 없었지만 기동성 면에서 디지털이 훨씬 도움이 됐다. 필름 쪽은 아무래도 한자리에서 공을 들일 때 유리하다. 디지털에 더 유리한 어떤 외적 요소들이 있어서 그런 건 아니다.
HD카메라는 필름과 달리 필터링이 없어서 적나라한 느낌을 준다. 강렬하게 느껴지지. 그래서 조명치기가 더 힘들다. 지금도 디지털은 계속 바뀐다. 기종도 바뀌고, 점점 나아지고, 데이터도 맨날 바뀌니까 매번 그 데이터에 익숙해져야 한다. 카메라를 다루는 사람들에겐 굉장히 곤혹스러운 일이다. 필름은 이미 완성된 형태라 나름대로 변주가 가능한데 디지털 카메라는 1년이 다르게 바뀐다. 우리가 쓴 기종도 가장 최신 기종이었다.
같은 HD로 찍었지만 <아주 특별한 손님>과 <멋진 하루>의 이미지는 다르다. 단지 시골과 도시의 대조적 환경 때문만은 아닌 거 같다. 이미지의 색감 자체가 달라졌다. 이번에 더 공을 많이 들인 거다. 같은 촬영 감독이고, 비슷한 디지털이었지만 이번에 좀 더 최소한 자연광을 살리면서 인위적으로 할 수 있는 걸 많이 했다. 상대적으로 <아주 특별한 손님>은 짧은 기간 안에 게릴라처럼 찍어서 거칠게 나온 결과물을 노리고 간 것이었고. <아주 특별한 손님>은 가능한 한 자연광 중심으로 갔지만 <멋진 하루>는 인위적 라이팅을 많이 했다. 그런 것들이 아마 좀 더 로맨틱한 느낌을 주더라. 옛날에는 필터를 이용해서 뽀샤시한 느낌을 줬지만 우리 촬영감독이나 내가 그런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최대한 자연광의 느낌을 살리되 크게 드러나지 않는 수순에서 인위적인 라이팅을 가미해서 이것이 로맨스처럼 보이는 효과를 주고자 했다.
사실 로맨스적 행위는 없는데 로맨스의 기운이 느껴진다. 육체는 없는데 정신이 느껴진다고 할까. 그건 마치 남녀의 로맨스가 아니라 자기 자신과의 로맨스 같기도 하다. 그렇다. 자기 연민에 관한 것이다.
당신의 감수성에 대해 배우들의 감정적 동의를 얻는 것도 중요할 것 같다. 내가 다룬 소재 안에서 등장하는 캐릭터의 모습은 누구에게나 있을 것 같은, 혹은 자기 주변에 있을 것 같은 인물들이라 접근이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다만 그걸 통해서 내가 뭘 하려고 하는지 배우에게 전달하는 과정이 어렵다. 물론 너무 친숙한 캐릭터를 연기해야 한다는 건 연기자들에게도 부담일 수 있겠다. 예를 들어 하정우가 <추격자>의 지영민을 연기하는 것도 어렵겠지만 되려 병운이 더 어려웠을 수도 있겠지.
평범한 연출이 힘들듯이 연기도 되려 것이 어렵다? 뭘 보여줄 게 없어 보이니까.
전도연 씨가 말하기를, <밀양>이후로 자신에게 들어온 유일한 시나리오가 <멋진 하루>였다고 하더라. 시나리오가 하나밖에 없어서 내 영화를 했구나. (웃음)
전도연 씨는 시나리오가 너무 좋았다고 했다. 당신의 전작에서 출연했던 배우들의 인터뷰를 보면 다들 시나리오가 재미있었다란 이야기를 한마디씩 하기도 하던데. 그것 참, 의외지?(웃음) 뭐가 재미있다는 건지 잘 모르겠지만 재미있다라기 보단 기특하다는 게 맞는 말 같다. 이런 얘기를 영화화하려는 철없는 애가 있다니 내가 도와줘야겠다, 라는, 배우들의 감정을 건드리는 면이 있는 거 같다. 사실 내 영화가 대단할 것 없이 너무 평범하지만 그만큼 별로 없는 영화다. 배우들은 그런 걸 캐치하는 거 같다. 이런 영화 하나쯤 있어도 될 것 같아 보이는데 없으니 내가 한번 해볼까, 이런 감성을 건드리는 부분이 있었을 것 같다.
배우들은 그만큼 감성이 풍부하기 때문에 더 그럴 수도 있고. 연기 잘하는 배우일수록 시나리오 보는 능력은 가장 뛰어나니까. 내가 같이 작업했던 배우들은 연기라면 둘째가도 서러운 분들이니까 말할 것도 없을 거다. 감독보다도 오히려 시나리오를 더 잘 알지도 모르고. 시나리오를 보면서 스스로 캐치하는 거지. 이미 자기들의 연기패턴이 서있는 배우들이지만 자신의 그림을 그릴 수 있게 하는 이야기라고 판단하지 않았을까. 여백이 많기도 하고, 그런 장점이 있었을지 모르겠다.
남자들끼리 등장하는 장면은 소란스러운 느낌이 강한데 어쩌면 남성을 위시해서 지금의 반대적 형태의 영화를 생각할 것 같기도 하다. 독특한 캐릭터에 대한 욕심이 있다. 병운도 아마 그런 캐릭터라고 할 수 있고. 어딘가에서 봤음직한데 따져보면 실제론 별로 없는 캐릭터. 만약 남자들이 주가 되는 영화를 한다면 내 욕심으론 상당히 독특한 뭔가를 하려고 할 거다. 특이한 코미디가 될 수도 있고.
슬슬 차기작에 대해서 막연하게라도 구상해 볼만한 시간이다. 현재 본인에게 가장 큰 관심을 끄는 게 뭔가? 사실 가장 나를 당기는 건 스릴러다. 항상 강렬한 스릴러를 해보고 싶다는 꿈이 있었지만 예기치 않게 우선순위가 좀 바뀐 거다. 물론 지금까지 할 수 없이 했던 건 아니지만 어쩌다 보니 일관적으로 여자가 주인공인 영화를 해버렸을 뿐이다. 개인적으로 살 떨리는 스릴러 한번 해보고 싶다. <추격자>를 능가하는? (웃음)
예전에 100억 규모의 블록버스터를 준비했다가 무산된 적이 있다고 들었다. 아주 오래 전부터 준비했다가 여러 가지 사정으로 무산됐다. <모던보이>같은 영화였는데 스케일이 더 컸다. 어쩌면 경성을 배경으로 한 기획은 내가 제일 먼저 했을지도 모른다. 원래 먼저 기획하면 안 된다고 하더라. 그래서인지 다른 영화는 다 됐는데 나만 안 됐잖아.(웃음)
아직 그 이야기에 미련이 있나? 버리진 못했다. 다만 지금은 시기가 좀 아닌 거 같다. <로드 투 퍼디션>에 <카툰 클럽>을 섞어놓은 갱스터 영화를 생각했었다. 그것도 실은 판타지다. 일제 시대에 무슨 갱스터가 있겠어, 없지. 가공의 도시를 배경으로 한 갱스터의 암투였다.
규모가 큰 영화를 찍게 된다면 그 자체가 새로운 도전이 아닐까 싶다. 사실 저예산 규모의 영화만 했는데 어려움이 없을까? 안 해봤으니 당연히 이질감이 느껴질지 모를 일이다. 하지만 작은 걸 운용하다가 큰 건 할 수 있지만 큰 예산으로 영화를 찍던 사람이 나처럼 작은 건 못 할거다. 큰 예산으로 할 때는 가능했던 것들이 저예산에서는 아무것도 안되잖아. 다만 적응하기가 어렵겠지. 사실 더 엄청난 것도 있었다. 조선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가 있었는데 그건 2백억 정도 들어야 될만한 스케일이다. 몇 사람한테 얘기하니까 듣는 척도 안 하더라. (웃음)
요즘은 영화계 사정이 좋지 않아서 자금 운용에 무리가 있을 거다. 그걸 타계할 방법이 막연하지. 해외와의 관계 발전도 항상 말로만 하지 실제론 활발한 움직임이 없다. 맨날 똑같은 밥솥 하나 들고 밥은 없으니 누룽지만 긁고 앉아있는 셈이다. 조금만 위축되면 큰 예산 들어가는 건 못한다고 하고 조금만 풀리면 아무 영화나 만드는 것 같고. 이렇게 되면 한국영화의 미래는 없는 거지. 나는 지금 이 상황에서 적당히 타협하고 가는 셈이다. 이런 류의 영화를 하는 것 자체가 내 나름의 타협이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이것조차도 운 좋게 가는 것일지도 모르지. 다 외면했던 시나리오이기도 해서 영화화하기도 힘드니까. <멋진 하루>도 전도연 덕분에 가능했다.
전도연 씨를 캐스팅하기 전까지 확신이 없었나? 물론 전도연이 못했다 해도 다른 좋은 배우들이 있긴 하니까 아마 섭외를 했겠지. 다만 전도연이 <멋진 하루>를 선택해주지 않았다면 그 외에 우리가 거론할 수 있는 배우가 많지 않고 심지어 그들마저 외면해버린다면 못하게 될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시장은 어렵다고 하지만 반대로 대작엔 자본이 몰리는 경우가 생긴다. 영화계의 현실은 자업자득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예전에도 힘들었고 지금도 힘들기 때문에 영화계가 나빠졌다고 해도 특별히 느끼는 바는 없다. 나한테 예전엔 좋은 환경이었나? 마찬가지로 어려웠기 때문에 새삼스레 나빠졌다 말할 것도 없다. 맨날 떠드는 얘기지만 2차 부가판권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온 나라가 다운로드의 천국이다. 이런 상황에서 뭐가 해결되겠나. 영화라는 게 부가판권도 있고 해외 마케팅도 적극적으로 나서야 되는데 우리는 그런 가능성도 잡지 못하는 것 같다. 그러니 작은 영화는 점점 힘들어지고 큰 영화는 사회 현상에 따라 술렁이는 거 아닌가. 차근차근 넓게 보는 눈이 필요한데, 그걸 아직 깨닫지 못하는 건가 보다.
<멋진 하루>는 <밀양>이후 전도연 씨의 첫 작품이란 점만으로도 궁금증을 부릅니다. <밀양>은 아무래도 그 이전까지 전도연 씨의 연기에 대한 적정기대감을 파괴할만한 경지였으니까요. 어쩌면 배우가 세상보는 눈까지 달라지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였죠. <밀양>을 보신 많은 분들께서 어딘가 달라졌다고 말씀하셨어요. 전도연이 어련히 알아서 했겠어. 전도연은 안 봐도 잘 했겠지. 언젠가부터 이렇게 1등 해서 상 받는 게 당연하게 생각되는 우등생처럼 뻔한 애가 됐는데 <밀양>이 그 뻔함을 뒤집어 엎었다는 거에요. 생각해보면 그런 것 같아요. 뭔가 흠잡을 때 없이 연기는 잘 하지만 그 이상의 기대감을 주지 않는, 뭔가 더 이상의 호기심을 갖지 않게 만드는, 정말 정석처럼만 연기하는 배우라 느껴지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요.
스스로 그렇다고 느꼈던 건가요?
<밀양>때 이창동 감독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너 연기 되게 잘하는데 그냥 연기를 되게 잘 해. 이러시는 거에요. 연기를 되게 잘 한다는 건 말 그대로 연기처럼 보이는 거죠. 그래요. 그 말이 저에겐 충격이었어요. 그렇다고 제가 계산하면서 연기했던 건 아니지만 이창동 감독님께서 그 말씀을 하실 때 정곡이 찔리는 느낌이 들잖아요. 뭐라고 말은 못하겠고 들을 수 밖에 없었죠. 그 때 좌절도 하고, 불안하기도 했고, 그게 대체 뭘까, 뭐가 문제일까, 궁금하기도 하고. 갑자기 뒤돌아보니 모든 게 후회스러워지는 거 있잖아요. 감독님께서, 그 틀을 깨지 못하면 너와 내가 만난 의미가 없어진다, 하셨어요. 아마 감독님께서도 공직에 계셨던 이후로 첫 작품이라 자신에 대한 사람들의 기대나 관심에 부담을 느끼셨던 거 같아요. 물론 그건 제가 느껴온 것과 차원이 다른 것이겠지만. 어쨌든 그래서 그걸 뛰어넘어야 된다는데 도대체 뭔지 모르겠다 싶은 거죠. 뭐에요, 제발 가르쳐주세요, 그래도 감독님께서도 모르겠다 하시고, 너 스스로 답을 찾아라, 이러시니 전 또 얼마나 답답했겠어요.
지금은 그 뒤로 뭔가 달라졌다고 스스로 느끼십니까?
제가 진짜 억울한 건 그게 아직도 뭔지 모르겠다는 거에요. <밀양>을 찍고 나서는 아마 그 영향을 받아서 뭔가 달라지지 않았을까, 달라졌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결국 달라진 것 없이 제 자리에 있더라고요. 차라리 도대체 그게 어떤 차이인지 알면 좋을 거 같아요. 그럼 정말 깐느에서 상 받은 것도 자랑하고 다닐 수 있을 것 같고, 그렇게 되서 잘난 척도 해보고 싶어요. 나만의 비법을 가진 것처럼. 근데 그게 아니더라고요. 정말 모르겠어요.
아무래도 <밀양>은 전도연 씨에게 큰 산이었던 것 같습니다. 험한 일을 겪고 나면 그만큼의 여유가 생기기 마련인데 신애처럼 진폭이 큰 캐릭터를 연기한 이후로 연기에 접근하는 여유가 생기진 않던가요?
그것도 마찬가지인 거 같아요. (잠시 생각하다가) 저는 매번 항상 이번 작품만 잘하면 된다고 생각하면서 해왔기 때문인지 여유가 잘 안 생기더라고요. 끊임없이 달려야 돼, 이 정도까진 아니지만 저는 지금 저도 잘 모르는 미궁 속에 빠진 채 계속 길을 찾아나가는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여유도 잘 안 생기는 것 같아요. 생길 수도 없을 것 같고요. <밀양>에서 신애라는 연기를 했으니까 다음엔 어떤 연기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아, 여유가 생겼어, 이런 게 없더라고요. 그럴 거 같았지만 또 다시 똑같은 과정 속에 빠지고, 다시 힘들고, 그 과정이 다를 뿐 비슷한 거 같아요.
그렇다면 <멋진 하루>는 <밀양>이후로 첫 번째 작품이란 점에서 되려 부담이 있었을 법한데요.
이번 작품이 너무 두렵고 떨렸던 건, 사람들은 이제 전도연이 다음 작품에 어떤 연기를 할지 궁금증을 갖기 시작했는데 정작 저는 그 맛의 비법을 모르고 있다는 거였죠. 아무것도 가진 게 없고, 그때랑 똑같은데 말이죠. 그래서 심판대에 서는 것처럼 너무 무서운 거에요. 잘못하면 사람들이 다 날 잡아먹을 것 같고.
아무래도 <밀양>에 대한 의식을 떨쳐내는 것이 중요했을 것 같습니다.
저보다 오히려 제3자들이 어렵게 생각하는 것 같았어요. 그럴 것이다, 라고. 그런데 저 역시 제3자들의 시선이나 생각들로부터 영향받지 않을 수는 없어서 부담이긴 하죠. <밀양>으로 받게 되는 부담이 크기 때문에 좀 더 빨리 다음 작품을 선택하고 싶었어요. 제가 원래 작품을 작업할 때 다른 시나리오를 읽지 않는데 <멋진 하루>원작은 단편이고 짧아서 밀양에 있을 때 읽어봤어요. 희수 캐릭터는 보이지도 않았고, <여자, 정혜>의 남자버전 같은 이야기라 생각했죠. 책만으론 결정할 수 없고 나중에 시나리오가 나오면 결정하겠다고 했는데 서울로 올라와서 받은 <멋진 하루>시나리오가 너무 고마웠어요. 제가 좀 더 빨리 다음 작품을 선택할 수 있게 해줬으니까요.
<멋진 하루>외에 맘에 드는 시나리오는 없었나요?
아, 갑자기 정곡을 찌르시네요. (웃음) 다른 시나리오가 안 들어왔어요.
예? 정말인가요?
저도 밀양에 꽤 오래있었으니까 서울로 돌아가면 시나리오가 많이 쌓여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없더라고요. 매니저가, 누나, 이게 다에요, 이러면서 <멋진 하루>시나리오를 주는데 어머, 싶었죠. (웃음) 약간 당황스럽긴 했지만 아쉽지는 않았어요. <멋진 하루>시나리오가 너무 좋았으니까. 만약 시나리오가 아니었다면 차라리 선택하지 않았겠죠.
감독님들께서 전도연 씨에 대한 자기 검열이라도 했던 걸까요?
주변에서 많은 분들이 그런 말씀들로 위로를 해주시긴 했지만, (웃음) 그건 아닌 거 같고요. 아무래도 영화계 사정이 안 좋아지면서 영화 제작 편수가 많이 줄어든 탓에 많은 여배우들이 피해를 보지 않았을까 싶어요. 저도 그 중 하나고. 첫 주연작이었던 <접속>이후로 꾸준한 작품활동을 계속해왔습니다. 특별히 기복을 보인 적 없이 꾸준히 작품활동을 해오셨습니다. 제 자신은 내리막길 없이 늘 항상 평행선을 걸어왔다고 말하고 싶어요. 여기 오기까지 많은 사람들이 저를 내리막길에 내려놓기도 하고, 꼭대기에도 올려놓기도 했겠지만 그건 제 자신과 상관없이 저를 보는 사람들의 생각이고, 제가 어떻게 할 수 없는 부분이잖아요. 제 자신은 그냥 평행선을 쭉 걸어왔다고 생각해요.
그래도 자신의 위치에 대해서 인지하게 되는 순간이 있지 않나요? 그럼으로 인해서 어떤 결과에 대한 기대감이나 실망감을 얻을 수도 있고요.
제가 철저하게 제 자신을 제어하는 건 기대감을 없애는 거에요. 그건 스스로에 대한 기대감일 수도 있고, 그 무엇에 대한 기대감일 수도 있어요. 기대했다가 현실에 의해 배반당하는 걸 못 견디겠어요. 그러니까 자꾸 기대감을 스스로 없애버리려고 하는 것 같고요. 그렇기 때문에 그냥 이번 작품 하나만 생각하고, 그 무언가가 있을 다음 날을 생각하지 않는 거죠. 뭘 하더라도 이걸로 인해서 생겨나는 기대를 스스로 제어하는 것 같아요. 그건 실생활에서도 그렇고요. 기대했다가 배반당하는 게 너무 두려워요. 왠지 로또 당첨을 기다릴 때 끝자리 번호 하나 틀린 것처럼 너무 허무하잖아요, 그렇게 되면 어디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될지도 모를 거 같고. 복권을 다시 사야 하나, 말아야 하나. 그런 건 너무 싫어요.
크게 배반당했다는 기분을 느껴본 적이라도 있었나요?
느껴본 적은 없지만, (잠시 고민하다가) 아니, 없진 않겠죠. 소소하게는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으로부터 사소하게 섭섭함을 느끼기도 하잖아요. 생일날은 뭘 해주실까, 생일이니까 오늘은 집에 들어가면 손님들도 많이 와 있고 기쁠 거야,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고. 어렸을 때부터 늘 항상 그런 현실에 대한 좌절을 겪었던 거 같아요. (웃음) 물론 큰 좌절의 계기가 있었던 건 아니지만 그게 싫었나 봐요. 그런 게 은연 중에 배버린 것 같아요. 당연히 이번 여우주연상은 내가 받을 거라 생각했는데 상을 못 받으면 웃고는 있지만 얼굴이 파르르 떨리면서 표정 관리 안 되는 것처럼. (웃음) 어쩌면 그런 경우도 해당될 수 있겠죠.
기대감을 제어한다는 건 그만큼 먼 계획을 잡지도 않는다는 말처럼 들립니다.
이율배반적인 이야기지만 욕심은 굉장히 많은데 꿈이 없어요. 꿈은 눈에 보이지 않는 먼 곳에 있는 무엇이잖아요. 제가 만들어낸 어떤 모습이고. 전 그것보단 눈에 보이는 것에 대한 욕심이 굉장히 많아요. 하나하나 산을 넘는 것 같다고 하셨는데 그게 저한테 주어진 최선의 길이라면 저는 거기에 최선에 다하지, 이것을 넘으면 뭔가가 있을 것이다, 이런 꿈을 꾸는 것 같진 않아요. 만약 그 산을 넘었는데 오아시스가 있다면 그냥 고마운 일이죠.
전도연 씨의 연기가 매 작품마다 절박함을 느끼게 하는 것도 그 때문일까요. 마치 그 순간을 뛰어넘기 위해서 스스로를 소진하는 것 같습니다. 그만큼이나 작품을 끝낼 때마다 공허함이 크지 않을까 싶어요.
작품 끝나면 공허하죠. 뭔가 막 집중해서 열중하다가 갑자기 여운도 없이 하루 아침에 딱 끝나버리는 거니까요. 물론 그런 공허함은 누구나 다 있는 거 같아요. 저는 그걸 절박함이라고 생각해보진 않았는데, 그래요. 절박함이 틀린 말은 아닌 거 같아요. 제가 그런 생각을 늘 하는 건 아니지만 돌이켜 보면 이 작품이 정말 마지막인 것처럼 모든 열정을 다 쏟아 부었던 것 같긴 해요. 어쩌면 별 관심분야도 없고, 취미도 없고 그래서 평소에 뭔가 열정을 쏟을 만한 게 없어서 그렇게 되는 것일지도 몰라요. 일도 그렇지만 사랑도 그렇고요. 다시 무언가가 생길지도 모르지만 그 무언가를 생각하지 않게 돼요. 이게 정말 마지막 선택인 것처럼, 결국 남는 건 작품이죠.
배우로서 원대한 꿈이 없었다 해도 어느 순간 자신이 배우로서 살아가고 있다는 걸 자각하게 되는 계기는 있었을 것 같습니다. 배우로서 살아가야 한다는 걸 문득 인지하게 된 순간 말이죠.
<해피엔드>때였던 거 같아요. 그 전엔 제가 배우인지도 몰랐고 그냥 어리다 보니까 호기심이 많았을 뿐이죠. 배우라는 의식을 갖고 연기하지 않았을뿐더러 사람들이 많이 알아봐주니까 우쭐해지기도 했고. <접속>이 그랬고, <약속>도 마찬가지였죠. <약속>은 <접속>이 잘 되니 그 부담에 밀려서 그냥 얼떨결에 떠밀리듯 한 작품이기도 했고요. <해피엔드>는 나름대로 위험한 시도였고, 무모하다는 말도 들었죠. 무엇보다도 일단 그런 결정을 하려면 제 자신을 납득시켜야 하잖아요. 그 때 처음으로, 난 어떤 배우구나,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나는 예쁜 배우도 아니고, 예쁜 이미지만 쌓아서 결혼한 뒤 잘살 수 있는 배우도 아니고, 결국 나는 내가 원하는 길을 가는 배우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이 뚫렸어요. 그 때 잠깐 생각이 자유로워진 거 같아요. 남들 시선보단 내 자신이 뭘 원하는지에 귀를 더 많이 기울이게 된 시기였고. 내로라할만한 남자 배우들과 호흡을 맞춰왔습니다. 매번 그런 배우들과 함께 연기하다 보면 상대를 의식할 수 밖에 없을 텐데요. 저는 늘 제 자신이 몇 프로 부족한 거 같아요. 그래서 뒤쳐지고 싶지 않은 마음은 있어요. 어쨌든 상대방과 같이 호흡해야 하니까 이건 그냥 제가 못해도 저 사람만 잘하면 되는 작업이 아니잖아요. 그래서 제가 조금이라도 부족해서 혹시 나 때문에 작품에 민폐가 되진 않을까, 이런 마음이 들어서 그걸 채우기 위해서 열심히 했어요. 그러니까 상대방이 저렇게 잘 하니까 난 더 잘해야지, 가 아니라 나도 거기에 맞춰서 더 열심히 해야지, 라는 자극을 받았죠. 물론 경쟁까지는 아니지만.
<멋진 하루>에서 함께 호흡을 맞춘 하정우 씨는 예전에 TV드라마 <프라하의 연인>에서 함께 출연한 적도 있죠. 그 당시 얼굴을 알리기 시작한 신인배우였던 하정우 씨가 지금은 충무로의 블루칩이라는 수식어를 얻었습니다. 배우로서 이렇게 다른 배우의 성장적 변모를 지켜보는 느낌이 궁금합니다.
그냥 어느 순간 하정우란 배우가 배우로서 제 앞에 서 있었어요. <프라하의 연인>때는 제 파트너가 아니라서 함께 집중하며 호흡 맞출 여건이 아니었지만 그때도 이미 하정우 씨는 이미 준비된 배우였던 거 같아요. 단지 시간이 지나서 하정우란 배우와 집중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된 덕분에 그 때 발견하지 못했던 것들을 더 많이 느낄 뿐이지, 하정우 씨는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거 같아요.
스스로가 신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작품의 기준은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제 기준은 시나리오에요. 다른 것보다 절대적으로 시나리오인 거 같아요. 그래서 저는 가끔 신기한 게 있어요. 종종 남자배우들 보면 시나리오를 보지 않고 미리미리 몇 작품을 정해버리잖아요. 송강호 오빠도 그렇고, 너무 신기해요. 물론 강호 오빠는 대부분 다 좋은 감독님들과 작업하긴 했다지만, 아무리 그래도 저 사람은 어떻게 저럴 수 있을까 싶어요. 그래서 어떻게 보면 요즘 같이 어려운 불경기 때는 그럴 수 있는 게 좋을 거 같아요. 왜냐면 미리 찜을 해놓으니까. (웃음) 그런데 저는 그렇게 못하겠어요.
송강호 씨처럼 어느 정도 작품에 대한 신뢰성을 보장받을 만한 이력을 지닌 감독님들의 러브콜이 시나리오보다 먼저 들어온다면 어떨까요?
그래도 전 시나리오 달라고 할 것 같아요. (웃음) 저는 작품을 믿고 가고 싶어요. 그 작품으로 인해서 저란 배우도 있는 거고, 감독님도 있고, 다 있는 거지, 작품을 떠나서 좋은 배우, 좋은 감독이 있는 건 아니잖아요. 그건 예전에도 그랬지만 앞으로도 고집하고 싶어요.
<멋진 하루>도 당연히 시나리오가 선택의 배경이겠죠?
당연히 시나리오였죠. 그 동안 이윤기 감독님께서 좋은 작품들을 만드셨지만 선뜻 보게 되는 작품들은 아니었잖아요. 그래서 결정하고 나서 다시 작품들을 쌓아놓고 봤죠. 어떤 감독님일까 생각하면서 봤어요.
이윤기 감독님의 전작들이 속된 말로 상업적으로 큰 인지도를 얻을만한 영화는 아니었죠. 그런데 전도연 씨와 하정우 씨가 출연한다는 것만으로도 <멋진 하루>가 어쩌면 이윤기 감독님 영화 중 가장 상업적 인지도를 얻을지도 모르겠단 예감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시나리오 상으로는 그렇게 대중적인 영화가 아니었어요. 그래서 흥행에 대한 기대는 약간 접어놓고 시작한 작품이었는데 막상 영화를 보고 나니까 점점 욕심이 나기 시작하는 거에요. 영화도 시나리오보다 훨씬 밝게 나왔고, 요즘 하정우 씨도 블루칩이라니. (웃음) 어려운 감정이 아니라 느껴지는 대로, 생각하는 대로 볼 수 있는 영화니까 좀 많이 봐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멋진 하루>는 이윤기 감독의 전작들과는 좀 다른 느낌이 있습니다. 전작들과 다른 능동성이 느껴진다고 할까요? 그건 아무래도 두 배우의 영향력이 작용한 것 싶습니다. 두 분이 주고 받는 대사의 톤에도 활기가 있고요.
촬영 들어가기 전에 감독님과 프리(pre-production) 작업 하면서 제가 그랬어요. 저러니까 <여자, 정혜>같은 영화를 찍을 수 있으셨지. 아, 나쁜 뜻에서 하는 이야기는 아니고요. (웃음) 맨날 바늘 하나 비집고 들어갈 수 없을 정도로 너무 꼼꼼하게 고민하시는 걸 보고 있으려니까 숨이 턱턱 막히는 거에요. 그래서 제가 오히려, 감독님, 그냥 마음 편히 가지세요, 이랬을 정도니까요. 그래서 촬영에 들어가면 숨막히고 답답할 줄 알았어요. 너무 꽉 조이실까 봐. 그런데 오히려 촬영장에서는 배우에게 전적으로 맡기시고 진행도 너무너무 빨랐어요. 그래서 저는 너무나 놀랐죠. <여자, 정혜>를 비롯한 전작들을 대체 어떻게 찍었을지 너무나 궁금해진 거에요. 프리 작업을 보면서, 아, 저렇게 찍어오셨겠구나, 했는데 오히려 같이 작업하고 나니까 정말 어떻게 찍었을까 싶어질 정도로 놀랐어요. <멋진 하루>는 단 하루 동안의 이야기에요. 하지만 촬영이 하루 동안에 이뤄진 것은 아니니까 긴 촬영기간 동안 그 하루 동안의 감정을 긴밀히 간직하고 이어나가는 게 중요했을 것 같습니다. 다른 작품들도 다 마찬가지였지만 전 감독님들이 웬만하면 (서사에 따른) 순서대로 찍었으면 좋겠어요. 정 그럴 수 없을 경우엔 어쩔 수 없겠지만 웬만하면 말이죠. 저에겐 그게 중요해요. 무시할래야 무시할 수가 없더라고요. 난 희수야, 이렇게 처음부터 극중 인물이 될 수 있게 아니라 저도 그 상황을 겪으면서 그 인물이 돼가는 거니까 겪지 않은 걸 한다는 건 거짓말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번 작품도 거의 순서대로 찍었어요. 다만 어떤 톤을 유지하기 위해서 스스로 노력해야 하는데 저는 제 스스로 신경 쓰지 못해요. 제가 전체적인 걸 보긴 힘드니까요. 아무래도 감독님께서 전체적인 걸 봐주시니까 톤의 일관성을 유지할 수 있게 감독님한테 많이 맡기고 의지하는 스타일이죠.
예고편에 등장하지만 영화에는 나오지 않는 장면이 있더군요. 희수가 마주 앉은 누군가에게 병운에 대한 이야기를 털어놓는 것 같았고요.
개봉시기가 늦춰지면서 감독님께서 편집을 바꾸면서 다른 식의 영화를 만들고 싶으셨나 봐요. 희수가 집 앞에서 친구를 만나서 너스레 떨 듯 얘기하는 장면이 있었죠. 병운이를 만났는데 어쩜 그러니, 로부터 시작해서 이런 저런 얘기들을 하는. 제가 그때 감독님한테 그랬거든요. 분명히 이거 못 쓰실 거에요, 안 쓰실 거에요. 그래도 감독님께서 우기셔서 촬영했죠. 그래서 막 투덜투덜대면서 찍었어요. (웃음) 그런데 그 땐 스모키 메이크업이 아니라 저도 좀 새롭긴 했어요. 하지만 결국 제 말대로 못 썼죠. (웃음) 그런데 저희 영화 편집 정말 잘 하지 않았나요? 시간이 많아서 감독님께서 편집을 다양하게 해보셨나 봐요. 사실 감독님들께서 후반작업이 중요하다고 하시는데 전 그 의미를 잘 몰랐거든요. 편집에 대해서도 잘 모르고. 그런데 후반작업이 길었던 만큼 공들인 보람이 있는 것 같아요.
<멋진 하루>에서 보여지는 서울 시내 곳곳의 풍광들이 낯설지 않지만 이국적인 느낌이 있어요. 실제로 촬영하며 보던 풍경을 영화상에서 보니 어떻던가요?
저도 놀랐어요. 서울 시내 곳곳이 이렇게까지 아름답게 나올 줄 몰랐으니까요. 서울이 아니라 마치 제3의 도시 같잖아요.
자연광을 주로 활용했는데 전도연 씨는 피부가 좋아서 자연광이 두렵지 않을 것 같아요.
그건 아니고요. 이제는 뭐 나이 때문에......(웃음) 무엇보다도 HD카메라가 두려웠어요.
병운 같은 남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옆에 있으면 짜증나고, 없으면 보고 싶고. (웃음)
결국 희수는 병운에게 빚을 일부 남깁니다. 의외의 선택이죠.
소유하고 싶은 욕망일지 모르겠어요. 여자들 특유의. (웃음)
여자로서 그런 희수의 심리가 이해가 가던가요?
희수는 원래 욕심을 부렸던 거잖아죠. 하지만 병운을 만나 예전의 희수로 돌아오면서 결국 욕심을 부린 자기 자신에 대해 반성할 여지가 생기지 않았을까 싶어요. 이게 내 모습이야, 라는. 그래서 그 차용증이 병운에겐 어떨지 모르겠지만 희수에겐 큰 여지를 둔 거란 생각이 들어요. 후에 스페인의 막걸리집 간판이 나오잖아요. 어쩌면 나중에 그 차용증을 가지고 희수가 스페인까지 찾아갈지도 모르죠. (웃음)
남자가 봐도 결코 미워할 수 없는 상대 같아요. 하루 동안 그런 상대와 보낸다는 건 나름 특별한 이벤트가 될 수도 있겠죠. 물론 평생이 된다면 좀 곤란할지도 모르겠지만.
아까 저희 코디 언니가 재미있는 얘길 해주더라고요. 갑자기 누나 동생으로 지내는 남자 관계자 분에게서 전화가 왔는데 뜬금없이, 병운이가 어떤 남자야? 이렇게 물었대요. 알고 보니 시사회에 아는 여성 관계자 분을 초대해서 영화를 보여줬더니 그 분이 그 남자분한테 문자를 보냈던 거에요. 넌 병운이 같은 자식이야, 이렇게. 그래서 코디 언니가 그 분에게, 네 캐릭터가 어떤지 알겠다, 이러면서 전화를 끊었다고 해요. (웃음) 아까 그 얘기 듣고 너무 웃었어요. 넌 병운이 같은 자식이야! (웃음) 사실 찍을 때 짜증이 많이 났어요. 그런 캐릭터가 어딘가에 있다고 생각하니 같이 있는 사람은 얼마나 울화통이 터질까, 너무 짜증나는 거에요. (웃음) 그런데 영화를 보니 병운이가 너무 사랑스러웠어요. 병운이는 떨어져 있어야 알 거 같아요.
같이 있을 때는 모르지만 지나고 나서 생각나는 사람이니까요.
그게 병운이의 매력이 아닐까 싶어요. 굉장히 뜬금없고, 그런 애가 어디 있을까 싶지만 남자마다 다 그런 구석이 있는 것도 같기도 하고요. 곁에 있을 때는 얘가 너무 싫어, 짜증나, 하지만 결국 그게 나름대로 매력이었다는 걸 돌아 돌아 알게 되지 않을까 싶고요.
희수가 돌아왔던 것도 건 그래서일까요?
그럴 수도 있겠죠. (웃음)
이윤기 감독님의 영화에 출연한 여자주인공은 이윤기 감독님의 차기작에 카메오 출연하는 건 아시죠?
아, 이번에도 한효주 씨도 나왔죠. 그런데 전 까메오라 해도 시나리오보고 결정할거에요. (웃음)
(무비스트)
다이라 아즈코의 단편 ‘멋진 하루’를 동명 그대로 영화화한 <멋진 하루>는 우연과 필연이 겹친 두 남녀의 만남이 이뤄내는 하루 동안의 서사극이다. 오래 전 자신의 연인이었던 병운(하정우)에게 역시 오래 전 빌려줬던 350만원을 돌려받기 위해 희수(전도연)가 찾아간다는 사연은 단순하지만 평범하지 않다. 역시나 사연의 진행도 번거롭다. 350만원은 고사하고 자신의 거처조차 없는 변변찮은 신세인 병운은 자신에게서 빚을 받으려면 자신과 동행해서 빚을 융통하러 다녀야 한다고 희수에게 제안한다. 두 사람의 동행과 함께 본격적인 <멋진 하루>가 시작된다. <멋진 하루>는 전사와 후일담이 궁금한 쌍방향의 호기심을 추적하는 로드무비이자 경계가 희미한 로맨스 영화다.
짙은 스모키 메이크업만큼이나 병운에게 냉랭하기 그지없는 희수와 달리 병운은 시종일관 뻔뻔하리만큼 천연덕스럽게 희수를 대한다. 해묵은 두 사람의 관계는 채무관계만큼이나 어색해야 마땅하지만 병운은 그 모든 어색함의 테두리를 거리낌없이 지워낸다. 병운의 능청스런 태도에 희수는 줄곧 짜증을 내지만 점차 태도는 누그러진다. 두 사람의 심리적 관계 변화는 <멋진 하루>에서 가장 중요한 지점이다. 이는 엄밀히 말하자면 희수의 심리적 변화에서 시작되는 파생적 결과다. 희수의 심리는 <멋진 하루>를 지배하는 전체적인 감수성이다. 오랜 과거와 비교해도 전혀 변함이 없는 병운과 달리 희수는 단 하루 동안에도 만감이 교차하는 감성적 변화를 거친다. 병운을 짜증스럽게 대하던 그녀가 병운과 동행하며 그에 대한 태도를 서서히 누그러뜨릴 때, 그 변모의 계기가 되는 건 불현듯 찾아오는 로맨스적 회고다. 병운과 만 하루 동안의 여정을 함께 하는 희수는 그 동선 안에서 과거 로맨스의 추억을 종종 되새긴다. 오랜 과거로부터 변한 것이 없다는 병운은 현재의 희수에게 현실을 가늠하게 만드는 일종의 기준점이다. 희수는 병운을 통해 자신의 현모습을 자각하고 심경의 변화를 일으킨다. 병운은 희수의 감성적 변화를 도모하는 일종의 대비적 거울이다.
영화에서 드러나는 건 대부분 현재 병운의 현실이다. 병운이 자금을 융통하기 위해 만나는 수많은 여성들은 병운의 현실을 구체화시킨다. 희수는 그런 병운의 삶에 경멸의 눈빛을 보내기도 하지만 은연중에 모종의 공감대를 품는다. 그건 한때 350만원을 융통해줬던 과거의 자신과 병운에게 자금을 융통해주는 현재의 여성들에 대한 동질감이다. 관찰과 목격을 통해 수집되는 병운의 사연과 달리 희수의 사연은 좀처럼 드러나지 않는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희수의 감춰진 사연은 어느 순간 스스로의 입을 통해 발설된다. 희수는 병운에게 잠시 나직하게 자신의 어떤 사연을 내뱉지만 병운은 그것을 능청스럽게 눙친다. 결과적으로 그것은 병운의 일시적 배려임이 뒤늦게 드러나지만 그 순간에 선명한 정체를 드러내고자 한 희수의 심리적 변화가 여실히 포착된다. 얕은 표면을 맴돌던 이야기 속에서 좀처럼 드러나지 않으며 심해에 잠겨 있던 진심이 일순간 수면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멋진 하루>는 희수가 잃어버렸던 어떤 날을 찾아가는 만 하루의 여정이다. 350만원이라는 가격은 희수가 내몰린 조급한 심리적 채무를 대변하는 액수이자 만 하루라는 일상의 소소함을 꽉 채우는 계기가 될만한 가격표다.
무엇보다도 <멋진 하루>는 희수와 병운이라는 두 캐릭터의 앙상블이 묘미의 축이다. 이윤기 감독의 전작에서 등장하던 캐릭터들이 극 중 상황에 식물적으로 배양되듯 사건에 종속되어 가던 것과 달리 <멋진 하루>의 희수와 병운은 능동적인 동선 위에 주체적인 해결방식을 도모한다. 이는 두 배우의 영향력이 캐릭터에 반영된 것처럼 보인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하정우의 능청스러운 대사와 행동은 짙은 스모키 메이크업만큼이나 시니컬한 전도연의 표정에 반사되어 더욱 능수능란해진다. <비스티 보이즈>에서 선보인 연기적 방식과 겹치는 면이 발견되긴 하지만 하정우가 펼치는 기막힌 넉살 연기만큼이나 이를 거울처럼 반사시키는 전도연의 리액션이 탁월하다. 두 배우의 조합은 때때로 괴상하게 느껴질 만한 여정에 자연스러움을 녹여낸다.
<아주 특별한 손님>과 마찬가지로 다이라 아즈코의 단편을 영화화한 이윤기 감독의 <멋진 하루>는 전자와 마찬가지로 돌발적인 상황에서 출발하는 만 하루 동안의 특별한 에피소드다. <멋진 하루>는 <아주 특별한 손님>과 마찬가지로 로드무비의 형식을 띠고 있지만 미니멀리즘한 연극적 에피소드에 어울려 보이는 사소한 개연성을 담고 있다. 하지만 신선한 설정에서 지속되는 찰나의 응집력이 세심하게 군집을 이룬다. 인물의 뒤를 조심스럽게 따르거나 멀리서 고개만 살짝 내밀며 인물을 훔쳐보는 수줍은 핸드헬드와 깜빡임 없는 눈동자처럼 신중하게 인물을 지켜보는 롱테이크 역시 영화에 깃든 감성을 대변한다. 물론 커다란 자극이 발생하지 않는 평온한 흐름 안에서 지속되는 이야기는 다소 밋밋한 느낌의 파스텔톤 색채를 반복적으로 감상하듯 지루함을 부여할 가능성도 배제하긴 힘들다.
과거 연인이었던 두 남녀가 동행한 만 하루 동안의 여정은 삭막한 자본의 강요에 채무 된 희수의 낭만을 환기시킨다. 350만원을 받기 위해 오래 전 연인이었던 병운을 찾아나선 희수의 선택은 그만큼이나 삭막한 희수의 삶을 드러내는 지표다. 하지만 이는 어쩌면 무위도식으로 내려앉은 지겨운 삶에 자극을 얻고 싶었던 희수의 몸부림이었을지도 모른다. ‘돈이 없다고 하면 그냥 욕이나 실컷 해주고 싶었던’ 희수가 ‘자신을 따라오면 갚아주겠다’는 병운을 따라나선 건 그 무기력한 삶에 새로운 활력의 계기를, 혹은 무료함으로부터 일탈할 수 있을 것 같은 예감을 쫓아가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물론 지나간 옛 연인과의 일시적 만남은 만 하루의 유효기간이 경과할 때 즈음 이별의 수순을 밟는다. 그리고 차용증은 새롭게 갱신된다. 희수는 왜 병운과의 채무관계를 갱신했을까? 언젠가 희수는 삶이 무료해지고, 일상이 각박해질 때 즈음 또 한번 병운을 찾아갈 것이다. 물론 희수는 병운을 찾아 스페인까지 가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멋진 하루>는 어느 날 한번쯤, 충동적으로 갈망할만한 소소한 그리움을 자연광처럼 투명하게 담아낸 이야기다. 사소한 일상은 아련한 로맨스를 품고 특별해진다. 낭만은 그렇게 때때로 대책 없이 짙어지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