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출신 배우답게 또박또박한 발음이 인상적인
펠리시티 존스는 유년시절부터 배우가 되길 꿈꿨고, 꿈을 이뤘다. 그리고
이젠 세계가 사랑하는 배우로 거듭나고 있다. 보는 이를 기분 좋게 만드는 커다란 미소만큼이나 큰 재능과
매력으로.
“레이저 블래스터는 대단히 신나는 경험이었어요. 스톰트루퍼의 공격을
피하는 것도 재미있었고요. 스톰트루퍼는 정말 빨리 움직이기 때문에, 적응하는데
엄청난 노력이 필요했지만 말이죠!” 테마파크에 다녀온 뒤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한 어린 소년의 상기된
얼굴이 떠오르지 않는가. 사실 이는 <스타워즈> 시리즈 안에서 최초로 기획된 스핀오프 <로그 원: 스타워즈 스토리>(이하,
<로그 원>)의 촬영을 마친 펠리시티 존스의 입을 통해 나온 말이다. 그녀는 최근 미국 ABC채널의 나이트쇼인 '지미 키멜 라이브'에 출연해
<로그 원>에서 연기한 진 어소의 레고 피규어가 나왔다며 자랑하기도 했다. 그럴만한 일이다.
올해 12월말에 공개될 예정인
<로그 원>에서 펠리시티 존스가 연기한 '진
어소(Jyn Erso)'는 우주의 질서를 무너뜨리고 독재적인 권력을 장악한 제국군에 대항하는 반란군
특공대에 가담해 제국군이 건설 중인 전투용 인공행성 '데스 스타'의
설계도를 탈취하는 작전을 수행한다. "진 어소는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자라왔고, 신체적으로도 작고 왜소하지만 누군가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신념이 있기 때문에 이를 통해 자신의 동료에게 힘을
불어넣고 동기부여를 줄 수 있다. 결과적으로 큰 용기를 갖게 만든다."
펠리시티 존스의 말처럼 진 어소는 아웃사이더에 가까운 신분을 갖고 있지만 강인한 믿음을 통해 악에 맞서고 선의에 힘을 불어넣는, <스타워즈> 세계관의 새로운 아이콘이 될 인물이다. 흥미로운 건 작년 12월에 공개된
<스타워즈: 깨어난 포스>와 마찬가지로 <로그 원>에서도 세상을 구할 새로운 영웅상으로 여성 캐릭터가
등장한다는 것이다. 기존의 <스타워즈> 세계관에서의 여성이란 여왕 혹은 공주로서 타고난 신분을 견뎌야 하는 숙명에 갇혀 있었던 것을 염두에 둘
때 이는 가히 세계관의 진화에 가깝다. 그러니까 펠리시티 존스는
<스타워즈>라는 전설적인 시리즈를 현재진행형의 우주로 띄워 올리는 핵심 동력인
셈이다.
<로그 원>을
연출한 감독 가렛 에드워즈는 펠리시티 존스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강인함, 부드러움 혹은 풍부한 감수성, 대부분의 배우들은 이중 한 가지 요소만을
지니고 있지만 펠리시티 존스는 이 모든 것을 갖고 있다. 누구나 친구가 되고 싶어지는, 매우 친근한 매력을 갖고 있다." 대단한 찬사다. 그리고 펠리시티 존스에 관해 이토록 대단한 찬사를 남긴 건 가렛 에드워즈만이 아니다. 2011년 선댄스영화제 특별 심사위원상을 수상한 멜로드라마 <라이크
크레이지>의 메가폰을 잡은 감독 드레이크 도리머스 역시 펠리시티 존스에 대한 특별한 첫인상을 언급한
바 있다. “그녀의 얼굴을 클로즈업해보니 그 동안 캐릭터가 겪어왔을 것이라 짐작되는 온갖 슬픔이 그
얼굴에 담겨있었다. 우린 다같이 ‘오 마이 갓, 바로 그녀야!’라 말했다."
펠리시티 존스가 출연한 최근작 중 하나인 <인페르노>의
감독 론 하워드 역시 마찬가지다. "펠리시티 존즈는 지적인 반짝임으로 가득한 배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친근하면서도 편안하게 인상으로 다가온다."
2014년에 공개된 영화 <사랑에
대한 모든 것>은 스티브 호킹과 그의 첫 번째 부인이었던 제인 와일드의 실화를 스크린에 옮긴 작품이었다. 제인 와일드는 영국의 케임브리지 대학의 인문학과에 진학해 물리학도였던 스티브 호킹을 만나 연인이 됐고, 그가 루게릭병을 앓으며 시한부 선고까지 받았음에도 모두의 만류를 무릅쓰고 결혼을 선택한 여인이었다. <사랑에 대한 모든 것>은 제인 와일드가 쓴 동명의 자서전을
바탕으로 영화화한 작품이기 때문에 관객들은 제인 와일드를 연기한 펠리시티 존스의 시선으로 영화를 보는 셈이라 할 수 있다. 또한 루게릭병으로 무너지고 다시 일어서는 스티브 호킹의 젊은 시절을 보는 것만큼이나 그에게 힘과 용기를 불어넣는
제인 와일드의 서사가 중요한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 제인 호킹 역을 맡은 펠리시티 존스는 생애 첫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로 노미네이트되는 영광을 얻었다. "제인 호킹을 만난다는 건 굉장히 흥분되고
초조한 일이었다. 항상 그녀를 존경해왔는데, 밝은 성격과
뛰어난 결단력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굉장히 관대한 느낌을 받았다. 결국 제인과 스티븐은 용기 있는 방식에
대한 생각을 전환시켜준 인물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펠리시티 존스가 말하는 제인 와일드가 앞서서 감독들이
말한 펠리시티 존스와 유사하게 느껴지지 않는가. 지적이면서도 편안한 인상으로 풍부한 감정을 연기한다는
펠리시티 존스와 밝고 관대하면서도 뛰어난 결단력을 지닌 제인 와일드 사이에는 거리감이 없어 보인다.
아마 펠리시티 존스가 지적인 느낌을 주는 건 실제로 그녀가 지성을 겸비한 배우이기 때문일 것이다. 부드럽고 세련된 옥스퍼드 액센트를 구사하는 펠리시티 존스는 옥스퍼드대학의 단과대학 중 하나인 워드험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했고 차석으로 졸업한 이력을 갖고 있다. 그런 그녀가 배우로서의 꿈을 갖게 된 건 그녀
어머니 덕분이었다. 영화와 연극에 대한 관심이 남달랐던 어머니 덕분에 어린 시절부터 많은 영화와 연극을
보게 됐고, 자연스럽게 배우가 되고 싶다는 꿈을 갖게 됐다. 그리고
유년 시절부터 연기 수업을 받으며 12살 무렵부터는 TV영화와
드라마, 연극 무대에서 아역배우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어린
나이부터 연기를 시작한 건 굉장한 행운이었다. 20여 년의 경험을 통해 정말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으니까. 주목 받지 못했던 시절에 실수를 만회하는 방법들을 알게 됐다는 것도.” 그리고
이제 만인이 주목하는 배우가 된 그녀는 자신이 경험하는 그리고 더욱 크게 경험하게 될 유명세에 대해서도 단단한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 “무슨 일을 하든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고 믿는다. 그것이야말로 제대로
된 책임감을 갖는 방식이니까.”
아마 올해 12월에 <로그
원>이 공개된 이후로 펠리시티 존스의 입지는 분명 달라질 것이다.
<스타워즈>라는 신화적 세계관의 아이콘이 되어 전세계를 누비게 될 그녀는 훌륭한
가능성을 지닌 배우에서 전세계가 사랑하는 배우로 거듭날 것이다. 게다가 시고니 위버와 함께 출연한 신작
판타지물 <몬스터 콜>, 니콜라스 홀트와 함께
출연한 액션 스릴러물 <아우토반>까지 그녀의 다채로운
매력을 다양하게 제시할 작품들이 연이어 줄을 서있다. 그리고 그녀의 미래가 보다 기대되는 건 그녀가
이 모든 과정을 진지하면서도 성실하게 받아들일 줄 아는 배우이기 때문이다. "배우로서 산다는
게 특권이라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어느 날 갑자기 이뤄지는 일이란 없다. 영화란 수많은 사람들의 감정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기에 늘 쉽게 선택할 수 없고, 결과적으로 내가 선택한 작품에 대한 해법을 스스로 고민하며 발견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그녀는 이미 자신만의 공식을 찾았고, 답을 찾아가고 있다. 한 걸음씩, 정직하게.
한국을 비롯해 아시아에서도 최초다. 한강의 맨부커상 수상은 대단한
일이다. 하지만 이는 한강 홀로 쌓은 탑이 아니다. 그렇다고
한국이 거들었다는 말은 아니다.
지난 5월 17일 <채식주의자>의 작가 한강이 맨부커상을 수상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단언컨대 한반도에서 맨부커상의 존재 자체를 아는 한국인은 출판 관계자를 제외한다면 굉장히
드물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강의 맨부커상이 전국적인 화제가 된 건 이 상이 정말 대단한 상이라는
것을 각인시키는 언론의 헌신적인 보도 덕분이었다. 그 어느 나라보다도 노벨상을 염원하는 한국인들에게
맨부커상이 노벨상과 함께 세계 3대 문학상에 꼽히는 것이라고 주지되는 순간 한강은 이미 메시아 같은
존재가 됐다.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내어주는 내 문장이니라. 그런데
말입니다. 한강은 어떻게 맨부커상을 수상했을까?
한강이 수상한 맨부커상은 본래 영국의 연방국가에서 출판된 영어소설을 대상으로 하는 문학상이었다. 한강이 수상한 부문은 2005년에 신설된 인터내셔널 부문인데 영국의
비연방국가에서 출판된 소설을 영어로 번역한 소설을 후보작으로 선정하고 수상작을 가린다. 그러니까 <채식주의자>를 영어로 변역한 <The Vegetarian>이 맨부커상을 수상하게 만든 결정적 계기가 됐다는 의미다. 그리고 맨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은 원작자와 번역자가 모두 수상자로 호명된다.
소설을 번역한다는 것을 그저 언어의 형태를 바꾸는 수준으로 이해하는 게 아니라 언어에 새로운 숨을 불어넣는 결과물로서 원작을 집필하는
것과 동등한 위치에 두고 평가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타국의 정서를 자국의 언어로 이해시키는 작업이란
점에서 번역된 소설은 제2의 창작에 가깝다. 맨부커상은 그
가치를 인정한다는 점에서 더욱 값지다.
사실 맨부커상을 수상하거나 말거나, 한강은 이미 뛰어난 작가였다. 그래서 한강에게 몰리는 찬사란 새삼스럽지만 이처럼 훌륭한 작가를 제대로 조명할 기회가 왔다는 건 분명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한편으로 마음이 걸리는 건 열광의 기저에 놓인 어떤 심리들 때문이다. <채식주의자>는
2007년 10월 30일에 발표된 소설이다. 출간 당시엔 그 주의 종합 베스트셀러 순위 20위권에도 들지 못했다. 출판사의 공식 통계에 따르면 맨부커상 수상 직전까지 8년 7개월 동안 대략 6만권의 책이 팔렸다고 한다. 3월에 맨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최종 후보에 올랐다는 소식이 타전된 이후 4만부
이상이 판매됐으니 실질적으로 맨부커상과는 무관한 판매량은 2만권 정도인 셈이다. 해외에서 상을 타기 전후의 상황이 극명하게 갈린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인의 하루 독서시간은 6분에 불과하다. 정말 이상한
일 아닌가. 이처럼 소설을 읽지 않는 나라에서 매년마다 한국인 작가가 노벨문학상 후보에 오를 것을 기대한다는
것은.
물론 한강의 맨부커상 수상이 한국 문학계에 새로운 활기가 될 수 있다는 건 고무적인 일이다. 최근 신작소설 <종의 기원>을
발표한 작가 정유정을 인터뷰로 만났을 때 그녀는 이와 같이 말했다. "우리나라는 문학으론 변방국가나
다름 없는데 한강 작가가 기회를 열어준 셈이니 박수를 쳐주고 싶다. 아마 작가들 대부분 그렇게 생각할
거다." 그러니까 <채식주의자>의 맨부커상 수상이 해외에 번역돼 있는 한국소설을 주목하게 만들거나 한국소설을 번역하고자 하는 관심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한강 작가 덕분에 독자들이 소설에 대한 관심이 많아졌다"는 정유정의 말 역시 유효하다. 최근 서점가에선 전년 대비
소설의 판매량이 급증했다. 소설에 대한 관심이 소설을 읽는 행위로 이어진 것이다. 하지만 이런 현상이 얼마나 긴 지구력을 안고 달릴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누군가가
어느 대단한 상을 수상하지 않는다면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결국 가장 중요한 건 한국이 국제적으로 문학계의
변방국가로 분류된다는 것보다도 한국 안에서 문학 자체가 변방에 놓여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사실일 것이다.
한강의 맨부커상 수상을 누고 한 신문에선 '맨부커상이 K픽션의 문을 열었다'는 헤드라인을 내걸었다. 언제부턴가 한국사회에선 모든 분야의 앞머리에 K라는 성씨를 붙이면
해외진출이 가능하다는 미신이 생긴 것 같다. 혹은 이뤄졌다는 착시를 느끼는 것 같다. 어느 개인의 노력으로 차린 밥상에 숟가락만 얻겠다는 심리가 읽힌다. 사실
K픽션은 한국에서도, 영국에서도 그 어디에서도 생소한 말이다. 데보라 스미스는 '소주'나 '만화'를 '코리안 보드카'나 '코리안 망가'로 표현하자는
편집자의 제안을 거절하며 이렇게 설득했다고 한다. "한 국가의 문화를 다른 국가에서 파생된
것으로 보고 싶지 않다." 이 대목에서 ‘K픽션’은 소주를 코리안 보드카라고 명명하는 행위와 유사하게 보이지 않는가? 실체가
없는 K픽션은 과연 한국문학을 대변하는 언어가 될 수 있을까? 영국소설을 E픽션이라고 부른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그럴 리가.
어쨌든 한강의 맨부커상 수상은 대단한 성취다. 게다가 한국뿐만 아니라
아시아 최초의 수상자라는 점에서도 이는 분명 대단한 사건이다. 무엇보다도 맨부커상 수상이 <채식주의자>뿐만 아니라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소재로 삼은 한강의 또 다른 수작 소설 <소년이 온다>를 더불어 주목하게 만들고 있다는 점에서도 바람직하다. 한강이
맨부커상을 수상한 날은 5월 17일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수상소감을 이렇게 시작했다. "깊이 잠든
한국에 감사 드린다." 그리고 다음날 잠에서 깬 한국에서 한강의 맨부커상 수상 소식을 전하는
어느 뉴스의 헤드라인은 이랬다. "한국 문학의 쾌거."
그렇게 한국은 한강이 차린 밥상에 숟가락을 얻게 됐다. 진정한 한강의 기적이다.
<뒷담화: 감독이 미쳤어요>와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에 출연한 정은채는 뒤늦게 행운을 체감하고 있다. 물론 그 행운은 그녀 스스로 얻은 것이다. 혹은 이미 그녀에게 있었거나.
1년 전 즈음이었다. <여배우들>을 연출했던 이재용 감독이 새롭게 연출한 페이크 다큐 <뒷담화: 감독이 미쳤어요>(이하: <뒷담화>)의 촬영 현장에 정은채가 있었던 것이. 그리고 <뒷담화>에 게스트로 출연한 홍상수 감독의 영화사 PD는 촬영 현장에서 만난 정은채를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이하: <해원>)을 준비 중이던 홍상수 감독에게 추천했다. 그렇게 홍상수 감독으로부터 연락이 왔고, 만났고, 첫 주연작을 얻었다. “홍상수 감독님의 오랜 팬이었어요. 언젠가 인지도가 쌓여서 한번 같이 작업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빨리 기회가 오리라 생각 못했죠.” 그렇게 촬영이 끝난 지 1년여 만에 개봉하는 두 영화의 개봉일은 우연히도 2월 28일, 개봉일이 같다. 나란히 베를린국제영화제에도 초청됐다. “<뒷담화>는 3일만에 3회 차로 촬영이 끝났어요. 그리고 홍상수 감독님 작품은 늘 촬영 회차가 얼마 안되잖아요. 이번에도 2주 동안 7회차 정도? 너무 금방 촬영이 끝난데다가 지난 3월에 촬영해서 벌써 1년 정도 시간이 흘렀는데 이렇게 엄청난 결과로 돌아올 줄 몰랐죠.”
사실 두 영화의 현장 분위기는 완벽하게 대조적이었다. <뒷담화>는 촬영 현장에서 사라져버린 감독이 모니터를 통한 ‘원격 연출’로 영화를 완성한다는 컨셉트의 페이크 다큐다. 단순히 컨셉트에 불과한 것이 아니었다. 촬영 현장의 배우들은 실제로 멘붕을 경험했다. “이재용 감독님이 배낭을 매고 혼자 미국으로 가셨대요. 촬영장에 감독님이 없으니까 나중엔 정말 모든 배우들이 실제로 패닉에 빠졌어요. 뭘 해야 될지도 모르는데 감독님께선 화상으로만 소통하시고, 그 와중에 화면은 계속 끊기고(웃음). 촬영 막바지엔 감독님이 강북 어느 호텔방에서 보고 있다는 루머도 돌았어요. 그래서 당했구나 생각했는데 또 어제 들어보니 정말 가셨다는 거에요. 아무도 못 믿겠어요(웃음).”
<해원>은 <뒷담화>와 다른 차원에서 신선한 경험이었다. 홍상수 감독은 촬영 당일 오전에 당일 분량의 시나리오를 집필해서 배우들에게 나눠주는 것으로, 실제 음주 연기를 지시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당일에 어마어마한 대사량을 소화해야 한다는 걱정은 있지만 그 전날 밤에 뭐가 나올지 아무 것도 모르는 백지상태라서 오히려 마음이 편했어요. 마음을 비우고 현장에 가서 그 순간에 부딪히는 감정들과 분위기에 압도당한 채 촬영하는 거죠. 물론 어떤 관객들은 홍상수 감독님의 영화 속 캐릭터들이 실제 배우들의 모습이 아닐까, 저 대사가 애드리브가 아닐까 생각하는데 절대 그렇지 않아요. 마음에 드실 때까지 대본대로 치밀하고 정교하게 찍으세요. 술 먹는 신에서도 수위 조절이 되지 않는다 싶으면 자제시키시죠.” 사실 이 모든 경험은 영화전문지를 정기구독할 정도로 영화를 좋아하는 정은채에게 일종의 확인이었다. “항상 주시했기 때문에 뜬금없거나 당황스럽기 보단 역시 듣던 대로구나 싶었죠.” 그녀에게 영화는 단지 좋아하는 것 이상의 진짜 취미다. “중학교 때 처음으로 혼자 극장에 갔는데 그 느낌이 너무 좋았어요. 어떤 영화를 본다는 것보다도 혼자서 몰두하면서 영화를 본다는 것 자체가 너무 즐거웠죠.”
그녀는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는데 익숙하다. 그건 8년간의 영국 생활로 인한 결과이기도 하다. 그녀가 4살이 될 무렵, 영국 주재원으로 발령이 난 아버지를 따라서 온 식구가 영국으로 건너가 2년을 살았다. 그녀에겐 기억도 가물가물한 시절이었지만 아버지가 기억하는 영국은 특별했나 보다. 중학생인 딸을 홀홀단신으로 영국 런던에 보냈으니 말이다. 덕분에 그녀는 말이 통하지 않는 이국 땅의 가톨릭 계열 미션 스쿨에서 엄격한 기숙사 생활을 하며 외부와 철저히 차단된 학창 시절을 보냈다. 거기서 배우로서의 꿈이 자라났다. “5년간 손바닥만한 기숙사 방이 제 모든 공간이었어요. 오로지 작은 컴퓨터 모니터로 세상과 소통할 수 있었는데 문득 그 프레임에 들어가 살고 싶어졌어요. 배우가 되면 그 안에서 살 수 있잖아요.” 세인트 마틴 아트 스쿨에 진학해서 텍스타일 디자인을 공부한 것도 ‘특별히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예술의 매력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학교 2학년 무렵 휴학계를 내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잠재된 욕망을 더 이상 잠재워서만은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가장 중요한 건 제 마음이라는 확신이 있었어요.”
한국에 돌아와 고향인 부산을 떠났지만 연고도 없는 서울은 런던보다 더 잿빛 같았다. 그럼에도 그녀는 배낭을 멘 채 지하철에 올라서 대학을 돌며 학생들의 단편영화, 졸업영화에 출연했다. 그리고 확신했다. 연기가 역시 생각대로 잘 맞는 일임을. “내 마음이 확실해서 선택했다면 그게 잘못된 선택임을 알게 돼도 후회가 남진 않아요.” 그런 남다른 고집은 꿈 같은 경험으로 이어졌다. <해원>의 촬영장엔 그녀가 너무나도 좋아한다는 샬럿 갱스부르의 어머니인 제인 버킨이 나타났다. 한국에 공연을 온 제인 버킨은 홍상수 감독의 팬임을 밝혔고, 이는 <해원>의 촬영장을 방문하는, 영화에 출연하는 계기로 이어졌다. “서촌 뒷골목에서 제인 버킨을 만나니까 이상했어요. 꿈 같았죠(웃음).” 그녀가 동경하는 샬럿 갱스부르는 뛰어난 배우이지만 훌륭한 싱어 송 라이터이기도 하다.
밴드 메이트의 영화 <플레이>에서 빼어난 노래실력을 뽐냈던 정은채는 지금 미니 앨범을 준비하고 있다. “소속사 사무실에도 말하지 않고 프로듀서하는 친구와 같이 준비했어요. 한번 해보자는 식으로 진행했는데 어쩌다 보니 5곡이 완성됐어요. 만약 작은 공연장에서라도 노래할 수 있게 된다면 좋지 않을까 싶어요.” 재능이 많은 만큼 하고 싶은 일도 많다. 하지만 중요한 재능은 따로 있다. 연기란 것이 타인의 인생을 대신해서 살아보는 일이라 생각하면 그녀에겐 더없이 천직이다. “사람에 대한 호기심도 많고, 만남에 대한 두려움도 없어요. 누군가 쉽게 관심을 갖지 않는 사람들의 삶이 궁금해요.” 이국적인 외모에서 느껴지는 예민함과 달리 그녀는 시종일관 유쾌하게 웃으며 솔직하고 시원하게 생각을 늘어놓았다. “이야기가 잘 통하는 사람이 좋아요. 이야기가 잘 통한다는 건 삶의 방식이나 취향에 있어서 여러 가지 크고 작은 것들이 잘 맞는다는 거죠.” 그리고 말을 이었다. “연애는 아주 중요한 부분이고 늘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 유쾌하고 솔직한 잔향이 쉽게 흩어지지 않았다.
분노를 추스르지 못하는 남자는 자기 주변의 모든 것을 스스로 파괴한다. 그로 인해서 주변의 모든 것으로부터 스스로 동떨어진다. 그에게 세상은 거대한 쓰레기통과 같다. 패악을 자행하는 이들은 역겹고 그들에게 복무하듯 살아가는 약자들의 무기력도 꼴사납다. 그 분노의 뿌리는 개인적인 사연에 닿아 있다. 그 누구도 해결해줄 수 없는 상실의 뿌리가 그의 화를 부추긴다. 메울 길이 없다. 그런 어느 날, 한 여인을 만났다. 울화가 치민 채로 들이닥쳤던 어느 가게의 한 구석에서 무너져있던 그에게 그녀가 말을 걸었다. 조셉(피터 뮬란), 한나(올리비아 콜맨)를 만나다.
서로에게 이방인이었던 두 남녀의 만남은 모든 인연과 마찬가지로 우연을 가장한 필연이 된다. 좀처럼 자신의 화를 이기지 못하던 조셉은 그 모든 화를 스스로 감내하듯 받아들이는 한나를 만나 새롭게 거듭나기 시작한다. 한나에게 마음을 열어나가던 조셉은 그녀의 미소 뒷면의 극악한 현실을 대면하게 되고,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며 종종 자신의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지만 자신이 해내야 할 무언가를 생각하게 된다.
<디어 한나>는 자기 자신을 잃어버린 한 남녀에 관한 사연이다. 자신의 삶을 채우던 절반의 희망을 잃어버린 조셉은 남은 자리에 절망을 한 가득 채우며 살아간다. 자신의 삶을 무겁게 짓누르는 폭압으로부터 자유롭길 갈망하는 한나는 매일 같이 그 무기력한 현실을 체감하며 살아간다. 그들에게 삶이란 언제부턴가 요원해진 단어였다. 두 사람은 거칠고 성기게 조우하지만 결국 애틋하고 절실하게 서로를 당긴다. 거대한 결핍으로 자라난 가시를 세우던 남자와 끔찍한 폭력의 공허에 시달려 텅 빈 삶에 움츠려 들던 여자는 서로를 통해서 가시를 꺾고, 몸을 세운다.
두 남녀의 만남, 비극 속에서 샘솟는 희망의 여지, 이는 사실상 암담한 터널 같은 여정을 앞두고 있다. 영화는 어줍잖게 희망이나 긍정을 논하지 않는다. 지독한 비극에 내몰린 이들에게 어쩌면 지극히 당연할 수 밖에 없는 범위의 선택을 담담하게 내민다. 그래서 더욱 충격적이다. 모든 것이 잘 될 거야, 라는 희망만으로 뛰어넘을 수 없는 비극의 질곡으로 인물을 내려 보낸다. <디어 한나>는 비극을 외면하지 않음으로써 희망을 직시하는 영화다. 운명적인 태도로서 희미한 긍정으로 비극을 덮는 대신, 그 비극을 돌파하는 방식으로서 비극을 극복해낼 수 있음을 직시한다.
어쩌면 충격적인, 허나 지극히 그러할 수 밖에 없는 결말부의 한 대목에 다다른 대부분의 관객들은 무너져 내린 마음을 쓰다듬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진정 비극이라기 보단 비극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탈출구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 <디어 한나>는 비극을 뛰어넘기 위해서 맞불 같은 비극을 선택한 여인의 용기와 그 용기를 북돋아준 한 남자의 새로운 인생에 관한 이야기다. 끔찍하게 처연하지만 아연하게 아름다운, 마음을 후려갈기는 힐링 무비다.
“내 이름은 빅터 매이너드(빌 나이), 나이는 54세, 직업은 청부 살인업자, 커피 한 잔 하겠소?” 소음기 달린 총의 방아쇠를 주저하지 않고 신속하고 정중하게 당기는 남자, 매이너드는 명문 킬러 가문의 후손으로 타겟을 놓친 적 없는 프로이자, 미혼의 싱글남이다. 그리고 어느 날, 한 여자에 대한 청부살인 청탁을 받게 된다. 그 여인의 이름은 로즈(에밀리 블런트), 부동산 업자로 위장한 갱단 두목에게 가짜 렘브란트 자화상을 팔아 거액을 챙겼다. 그녀를 죽일 기회를 엿보며 미행하던 매이너드는 번번이 기회를 놓치고 주시하던 중, 제멋대로인 그녀를 살해한다는 것에 대해서 저항감을 느낀다. 심지어 그녀를 구하려다 죽을 위기에 빠진다. 그리고 그 순간, 갑작스럽게 등장한 청년 토니(루퍼트 그린트)가 그들을 죽음으로부터 구한다.
1993년에 제작된 동명의 프랑스 영화를 리메이크한 <와일드 타겟>은 ‘말괄량이 길들이기’에 나선 ‘레옹’의 사연을 그린 듯한 로맨틱 코미디다. 목표물을 사랑하게 된 킬러, 킬러가 사랑한 말괄량이 그리고 순진한 청년, 이 세 캐릭터가 뒤엉켜 이루는 좌충우돌의 전복적 상황과 끝 모를 사연을 지켜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자기 생활에 엄격하며 결벽이 있는 중년의 킬러와 밥 먹듯 소매치기를 하고 무책임하게 주의를 벌려놓는 여인 그리고 때때로 모자라 보일 정도로 순진하지만 킬러를 꿈꾸는 청년, 저마다 뚜렷한 성격을 지닌 세 인물이 같은 배를 탄 운명이 되어 벌이는 우여곡절의 항해는 우스꽝스러운 가운데서도 귀엽고 훈훈한 감정을 발화시킨다.
영국 배우의 관록을 대변하는 빌 나이를 비롯해서 스타로 떠오른 신예 에밀리 블런트와 루퍼트 그린트 그리고 <셜록>을 통해서 보다 확실한 입지를 구축하고 있는 마틴 프리먼까지, 실력 있는 영국 배우들로 채운 캐릭터들은 영화에 다양한 감정을 채색하고, 영화는 이로써 감상적인 흥미를 확장해낸다. <와일드 타겟>은 비범한 야심작이라기 보단 깜찍한 소품에 가깝다. 로맨틱 코미디가 줄기를 이루는 가운데, 액션과 스릴러의 잔가지가 쏠쏠하게 영화를 장식한다. 엉뚱하고 기발한 아이디어가 이야기의 예상범위를 곧잘 벗어나곤 하는데 때때로 스토리텔링의 논리를 어긋나게 만드는 우연적인 상황이 발견되긴 하나 그마저도 위트로 연결된다. 그 모든 요소가 깨알 같은 애정을 부르는, 깜찍한 로맨틱 코미디다.
가이 리치의 <셜록 홈즈>는 아서 코난 도일의 원작팬들에게는 이단에 가까운, 혹은 막연하게나마 지적인 영국 신사 이미지의 탐정 아이콘 셜록 홈즈를 연상하고 있을 대부분의 관객들에게도 낯선 인상이었을 것이다. 차분하면서도 치밀하게 정보를 수집해하가는 추리력의 대가라기 보단 호전적으로 주먹을 날리며 본능에 가까운 인지력을 통해서 사건을 예견해나가는 셜록 홈즈는 캐릭터에 대한 일반적인 기대를 넘어서는 이질적인 존재로 그려진다. 영화화된 <셜록 홈즈>는 코난 도일의 소설을 빌린 스핀오프라고 이해했을 때 보다 쉽게 받아들여질 만한 결과물이다. 실질적으로 영화의 원안이 된 건 각본에 참여했던 리오넬 위그램의 코믹북이기도 했다.
<셜록 홈즈>는 원작에서 등장하지 않았던 가상의 캐릭터 블랙우드(마크 스트롱)를 셜록 홈즈에 대적하는 악으로 설정하며 고전적인 추리물을 거대한 음모론의 세계로 확장해낸다. 사교 집단의 수장으로서 국가의 안위까지 위협한다는 블랙우드는 셜록 홈즈에게 액션 히어로로서의 활약상을 덧씌우기 위한 수단처럼 보인다. 하지만 영화가 구상한 세계관의 스케일에 비해서 그 대칭점에 놓인 블랙우드의 존재감이 상대적으로 미약하여 그 세계관 자체가 낭비가 되는 맹점이 발견된다. 하지만 셜록 홈즈와 왓슨(주드 로)을 버디무비의 구도로 세워 넣으며 위트와 활기를 불어넣으며 캐릭터로서의 매력을 어필하는데 성공했다. <셜록 홈즈: 그림자 게임>은 전작에서 얻어낸 가능성, 즉 새롭게 재해석된 캐릭터의 활약상을 보다 구체화하는데 성공한 인상이다.
조커의 등장을 알리는 <배트맨 비긴스>의 엔딩처럼 <셜록 홈즈>에서도 코난 도일의 원작에서도 소개되는 셜록 홈즈의 숙적 모리아티(자레드 해리스)의 등장을 예고하며 엔딩 크레딧을 올린다. 이 속편에서 모리아티는 악의 위압감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무턱대고 벌려 놓은 인상이 강했던 <셜록 홈즈>의 세계관에 비해서 보다 확장된 전세계적인 음모론을 메우고도 남을 만한 존재감을 드러낸다. 괴짜 기질의 천재로 그려지는 셜록 홈즈가 종잡을 수 없는 활력을 구축하는 것과 반대로 차분한 카리스마로 극을 지배하는 모리아티의 존재감은 극 전반에 적절한 서스펜스를 새겨넣으며 영화의 음모론적 세계관을 보다 근사하게 정착시킨다. 셜록 홈즈와 왓슨은 모리아티가 설계한 체스판을 어지럽히고 분쇄하는 모종의 말처럼 움직이는데, 팽팽하게 맞붙는 셜록 홈즈와 모리아티의 대비가 흥미롭다. 자레드 해리스의 중후한 연기 또한 인상적이다.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셜록 홈즈와 주드 로의 왓슨 듀오는 전작만큼이나 활력적인 버디무비의 위트를 자아내고, 가이 리치 특유의 스타일리시로 치장된 액션 시퀀스는 인상적인 순간을 포착해낸다. 특히 중후반부에 고속 촬영으로 묘사되는 숲 속 추격 시퀀스는 이번 속편에서 가장 유려하게 회자될만한 한 수다. 물론 셜록 홈즈라는 내피보다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라는 외피가 선명하게 눈에 띄는 이 시리즈는 예측불가능한 배우의 가능성이라는 장점과 캐릭터 본연의 매력이 상실된 단점을 여전히 고스란히 끌어안고 있다. 다만 암묵적인 로맨스의 노스텔지어와 후반부의 반전적인 상황을 통해서 자기 희생의 가치를 발견할 수 있는데, 이는 야생마와 같은 캐릭터의 성숙을 발견할 수 있다는 점에서 보다 발전적이다. 또한 이질적인 캐릭터의 형태도 두 편의 시리즈를 거듭하며 좀 더 익숙해지는 형세다.
이성적인 추리물의 세계관을 감각적인 액션과 활극적인 캐릭터의 구도로 팽창시킨 이 시리즈는 보다 공고해진 자기 논리를 통해서 본격적인 프랜차이즈로서의 진정한 동력을 얻어냈다. 캐릭터에 관한 프롤로그 같았던 전편에 비해서 <셜록 홈즈: 그림자 게임>은 진정한 출발점이라 불릴 만한 속편인 것이다.
제임스 맥어보이는 화려한 스타이기 보단 현실적인 사람이다. 그에게 유명세란 그저 거추장스러운 짐이다. 그는 직업 연기자의 삶을 꿈꾸고 있다. 연기로 삶을 사는, 이상적인 현실주의자인 것이다.
성 토마스 아퀴나스 중등학교 재학 시절, 제임스 맥어보이는 신부가 되길 마음먹었었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라서가 아니었다. “아프리카에 가서 세상을 바꾸고 싶었다.” 일곱 살의 나이에 부모의 이혼을 경험한 맥어보이는 여동생과 함께 글래스고 외곽의 드럼채플에서 자랐다. 실업자와 범죄자가 넘쳐나는 드럼채플의 거친 분위기 속에서도 자상하고 엄격한 외조부모는 맥어보이를 밝고 건강하게 보살폈다. 하지만 집을 벗어나서 만큼은 항상 누군가의 눈에 띄지 않게 조심해야 했다. 비좁은 세계의 폭력을 경계하며 자란 아이가 더 넓은 세계를 동경하는 건 어쩌면 본능이다. 맥어보이는 독립에 대한 야심이 컸다. “위험한 지역에서 자라게 되면 나이가 들면서 현실이 그런 야심을 두들겨 부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내 경우에는 결코 그렇지 않았다.” 그의 말이다.
맥어보이의 감춰진 끼가 드러난 건 14세 무렵이었다. 당시 두 선생님의 권유로 밴드를 결성하게 됐고, 소위 노는 물이 달라졌다. 옷차림이 달라졌고, 평소에 말도 걸지 못했던 아이들과 친구가 됐다. “내게 쓸만한 상상력이나 창조력이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했던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그리고 16세가 되던 해에 그에게 진짜 꿈을 안긴 사건이 일어났다. 배우 데이비드 헤이먼이 연기 강연을 하기 위해 학교를 찾은 것. 학생들 대부분이 심드렁해있는 사이, 맥어보이는 완전히 그의 말에 매료됐다. 그리고 헤이먼을 찾아가서 묻는다. 자신에게 기회를 줄 수 없느냐고. 6개월 후, 맥어보이에게 전화가 걸려온다. 헤이먼이 제작하는 영화의 단역 오디션 참여를 알리는 것이었고, 맥어보이는 기회를 잡았다. 그는 훗날 회상했다. “나는 쓰레기였다.” 이는 결국 그가 왕립 스코틀랜드 노래 연기 학교에 입학을 결심하는 계기가 됐다.
드라마 스쿨을 졸업한 맥어보이는 무대에서 서서히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조 라이트가 그를 발견한 것도 이 무렵이었다. 점차 브라운관과 스크린 등장횟수가 늘었고, 폴 애보트가 만든 두 편의 TV시리즈 <스테이트 오브 플레이>와 <셰임리스>로 확실한 잔상을 남겼다. 9살 연상인 아내 앤 마리 더프와의 만남을 주선해준 <셰임리스>는 몇 가지 수상 경력을 쥐어주기도 했다. 그리고 그는 <나니아 연대기 – 사자, 마녀 그리고 옷장>(2005)에 참여하기 위해서 뉴질랜드 촬영장까지 날아갔다. 그가 선택한 건 반인반수의 파우누스였다. 이유는 간단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책이다.” <윔블던>(2004) 촬영 당시, 맥어보이는 <반지의 제왕> 트릴로지에 출연한 버나드 힐에게 헬름계곡 전투에 관해서 몇 번이고 묻고 또 물었다. 그는 판타지 광이다. 하지만 그는 다분히 현실적인 사람이었다.
“배우가 될 생각은 꿈에도 없었다. 특별히 그 분야에 지인이 있었던 것도 아니니까. 그저 시작하니까 하나에 그 다음이 따라왔다. 연기가 죽을 만큼 재미있다는 걸 그렇게 알게 됐지만 직업으로서 진지하게 생각하기까진 많은 시간이 걸렸다.” 맥어보이에게 연기는 일종의 현실이었다. 그리고 그가 연기한 캐릭터 대부분에 그런 성향이 반영돼 있다. 멀쑥한 이웃 청년처럼 보이는 맥어보이에게는 묘하게 사람의 마음을 잡아 끄는 구석이 있다. 맥어보이의 도약을 위한 구름판 역할을 해낸 <라스트 킹>(2006)의 게리건은 마치 그를 위해 준비된 캐릭터처럼 보였다. 스코틀랜드 출신인 맥어보이와 게리건 사이에는 공통분모가 적지 않다. 눈을 감고 지구본을 빙빙 돌려 손가락으로 짚은 우간다행을 택한 신출내기 의사의 혈기는 직업의사와 아프리카 봉사를 꿈꿨던 맥어보이의 과거를 연상시킨다. 무엇보다도 게리건은 시작과 끝의 분위기가 극단적으로 대비되는 <라스트 킹>의 분위기를 대변하는 바로미터다. 맥어보이는 그 역할을 해냈다. 혈기왕성한 청년의 유쾌한 미소가 점차 당혹감으로 창백해질 때, 불길한 예감은 현실화된다. 기본적으로 어느 독재자에 관한 고발극인 이 작품이 한 청년의 뼈저린 성장드라마가 될 수 있었던 것도 맥어보이의 그런 표현력 덕분이라 할 수 있다.
<어톤먼트>(2007)의 로비나 <비커밍 제인>(2007)의 톰처럼 맥어보이의 캐릭터들은 비천한 신분이나 상황을 긍정적인 태도로 견뎌내곤 한다. 실제로 그는 어려서부터 긍정적인 성향이 강했다. “항상 어떻게든 다 잘될 거라고 생각했다. 어느 누구에게 의지할 필요 없이 행복해질 거라고.” 유년시절의 불우한 환경을 견뎌내기 위한 반대급부였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이런 긍정적인 인물이 강한 비극에 쓰러질 때 더욱 강력한 페이소스가 형성된다. 애초에 비극적인 예감을 담보로 미소를 짓던 캐릭터들이 끝내 그 현실에 매몰될 때 그만큼 비극적인 것이다. <어톤먼트>와 <비커밍 제인>은 신분차가 빌미가 되어 이루지 못한 로맨스라는 공통점이 있다. 맥어보이의 미소는 그 로맨스의 상실감을 더욱 강하게 증폭시키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이와 반대로 <원티드>(2008)에서 직장 스트레스로 신경쇠약 증세마저 보이던 웨슬리가 정체성을 깨닫고 사무실을 박차고 나와서 킬러로 변모하는 과정은 그 자체로 강력한 쾌감이다. 이는 이 배우가 지닌 극단의 양면성을 드러낸다는 점에서도 흥미롭다.
그는 실패와 좌절을 경험한 캐릭터가 겪는 이후의 삶을 납득시키는 역할을 해내기도 한다. <스타트 포 텐>(2006)은 어려서부터 퀴즈쇼를 동경하던 소년이 값비싼 실수 끝에 교훈을 얻게 되는 과정을 그린다. 근작인 <음모자>(2010)와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2011)에서는 각각 현실의 벽을 넘지 못한 이상적인 패배자로 등장한다. 링컨 암살 공모 누명을 쓴 여인의 변호를 맡게 된 남북전쟁 영웅 에이컨과 돌연변이들의 권리를 인정받기 위해서 인간과의 화합을 시도하지만 분열과 갈등으로 붕괴되는 조직의 리더 자비에의 영화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닮은 통증이 느껴진다.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는 맥어보이에게 이상과 현실의 양면을 모두 충족시켜주는 결과였다. 유년시절 즐겨보던 만화 속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이상적이며 그의 대출금을 갚는데 도움이 된다는 점에서 현실적이다. 그는 말한다. “스릴과 재미를 기준으로 일을 고를 수 있다니 적어도 지금의 나는 운이 좋다. 영원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앞일을 누가 알 수 있나.” 확실한 건 지금 맥어보이가 수배 물망에 활발하게 오르내리는 배우라는 사실이다. 직업배우의 정체성이 공고한, 이상적인 현실주의자가 세계적인 스타로 등극한 것이다.
유려하다가도 몰아치게, 고요하면서도 가열차게, 조 라이트는 특유의 감각적 재능으로 과거와 현재를 관통하고 초월한다. 사운드와 비주얼의 공감각적인 여정, 조 라이트의 길을 돌아본다.
1972년 런던에서 조 라이트가 태어났을 때, 그의 아버지는 65세였다. 그는 아들이 19세가 되던 해에 숨을 거뒀다. 아버지와 함께 했던 그 시절은 라이트의 삶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의 아버지는 꼭두각시 인형극 극단을 설립하고 극장을 운영했다. 그 극장에서 본 인형들의 연기는 살아있는 라이트의 삶을 흔들었다. 사실 소년 라이트는 책상에 앉아서 교과서를 펴고 공부하는 평범한 학생이 될 수 없었다. 소년에게는 난독증이 있었다. 그럴수록 소년은 슈퍼 8미리 카메라로 세상을 비추며 자신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결국 예술학교에 진학한 라이트는 미술과 영화를 전공한 예술대학에서 첫 연출작인 단편영화 <크로코다일 스냅>(1997)을 완성하고 이를 통해서 주목을 얻기 시작한다. “나는 카메라맨이나 디자이너, 혹은 배우가 될 수 없었다. 내가 감독이 된 건 아버지로부터 배웠던 것들 덕분이다. 일반적으로 나는 평범한 삶에 어울리는 법을 잘 알 수 없었던 대신 촬영장에 나가서 영화를 찍고, 내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 그리고 거기에 어떻게 적응해야 하는지 정확하게 깨달았다.”
“나는 몇 년 전부터 행운을 얻고 있다. 내게 일어나는 일들 말이다.” 여기서 라이트가 말하는 행운은 2000년 무렵에 시작됐다. TV미니시리즈로 연출 경력을 쌓으며 궤도에 오르기 시작한 그는 2003년 BBC에서 방영된 4부작 시대극 <찰스 2세>로 영국 아카데미 2관왕에 오르며 새로운 기회를 얻는다. <오만과 편견>(2005)이 바로 그것이었다. 유려한 문체로 시대를 풍자한 당대의 여성 작가 제인 오스틴의 대표작을 스크린에 옮기는 데 있어서 그는 어떤 구상을 지니고 있었을까. 그는 말한다. “내게 각본이 보내지기까지 그 책을 본 적이 없었다.”놀랍게도 그는 잘 모르는 제인 오스틴을 필사하는 대신 각본을 바탕으로 자신의 감각을 끌어올리는데 집중했다. 라이트는 대학시절의 수업에 대해서 이처럼 말했다. “매우 이론적이고 대단히 매력적이지만 나는 실질적으로 내러티브를 지닌 영화를 만들길 원하는 것뿐이다.” 그는 이론 수업에 의지하기 보다 방과후와 주말마다 극장에서 펼쳐지는 현역 배우들의 강습에 참여하며 경험과 감각에 의지하는 법을 깨우쳐 왔다. 원작에 비해서 자립적인 현대의 여성성이 강하게 투영되고, 보다 로맨틱한 감수성이 안개처럼 내려앉은 <오만과 편견>이 탄생할 수 있었던 건 어쩌면 이런 자질 덕분이다. 특히 서정적인 음악과 고풍스러운 영상의 결합은 로맨틱한 기운을 한껏 불어넣는다. 그리고 이는 결국 원작의 유명세보다도 라이트의 이름을 눈여겨보게 만들었다.
성공적인 필름 데뷔 이후, 그의 두 번째 행보는 다시 한번 유명 원작을 각색한 시나리오를 영화화하는 것이었다. 영국의 저명한 소설가 이언 매큐언의 <속죄>의 영화화 작업은 제인 오스틴의 그것과 확연히 다른 일이었다. 교과서에 등장할만한 고전 작가의 작품을 영화화하는 것과 달리 명성이 자자한 동시대 작가의 작품을 영화화한다는 건 “나는 내 심리의 등에서 뛰어다니는 피해망상을 얻었다”고 할 만큼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심리를 압박하듯 일정한 속도로 반복되는 타자기 소리, 발자국처럼 찍히는 활자의 행렬을 이미지와 사운드로 구현해낸 오프닝 시퀀스의 리듬감에서 출발하는 <어톤먼트>(2007)는 사운드와 비주얼을 융화시키는 라이트만의 공감각이 빛을 발한 작품이다. <어톤먼트>의 오스카 음악상 수상의 공은 일차적으로 음악감독 알렉상드르 데스플라에게 돌려야 마땅하겠지만 음악과 영상을 능수능란하게 접목시킨 라이트의 재능도 간과할 수 없다. 서정적인 운율의 클래식한 넘버 위가 흐르는 가운데 투명하게 떨어져 분산되는 자연광은 파국적인 로맨스에 깃든 처연함을 더욱 애잔한 여운으로 밀어 보낸다.
과거 시제의 두 작품을 통해서 연출력을 인정받은 라이트는 <솔로이스트>(2009)를 통해서 현대극에 도전한다. 실화에 기반한 이 작품은 정신적 질환으로 줄리어드 음대를 중퇴한 거리의 악사 나다니엘을 발견한 <LA타임즈>의 인기칼럼니스트 스티브 로페즈가 관찰자로서 그를 찾아가다가 끝내 그와 교감을 이루고 서로의 치유를 돕는 과정을 기술한 칼럼에서 비롯된 기획이다. 단조처럼 우울한 삶 속에서 무기력과 피로감을 느끼는 탓에 쉼표 같은 삶을 찾던 스티브와 도돌이표처럼 반복되는 착란에서 헤어나올 마침표가 필요한 나다니엘, 이 두 사람의 만남을 그린 <솔로이스트>는 영화와 실화의 협연이라 해도 좋을 작품이다. 사실 라이트의 비범한 전작에 비해서 <솔로이스트>는 상대적으로 범작에 가깝다. 하지만 콘트라베이스의 현 위에 떨어진 몇 줄기의 빛을 포착해낸 감각적인 클로즈업 샷과 결을 따라 흐르는 듯한 현악기의 유리 같은 선율, 베토벤 관현악을 듣는 나다니엘의 심상을 빛의 파동으로 표현해낸 환상적인 컬러는 라이트만의 진수를 드러낸다.
마치 경력의 전후를 가르듯 라이트는 연이어 현대적인 작품을 선택한다. 그러나 <어톤먼트>로 데뷔한 시얼샤 로넌을 타이틀 롤로 앞세운 <한나>(2011)는 그의 전력을 염두에 둔다면 분명 파격적이고 이례적인 선택이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도 <한나>는 그의 지난 작품들에 비해서 다른 문법을 지닌 작품이라 말할 수 있다. <한나>는 서사적인 개연성보다는 공간의 변화와 이동을 통해서 극을 전개하고 진전시키는 양상이 두드러지는 영화다. 무엇보다도 원작 소설도, 실화적 모티프도 없는 오리지널 각본으로 완성한 라이트의 첫 영화라는 점에서도 새롭다. 사실 이 작품을 처음 선택한 건 라이트가 아니었다. 바로 캐스팅이 확정된 로넌의 추천을 통해서 라이트가 보다 늦게 합류한 것이다. 그래서일까. 현대적인 판본의 잔혹동화라 해도 좋을 <한나>에서 라이트는 자신이 지닌 공감각을 폭발시키듯 분출해낸다. 특히 노이즈와 전자음에 어울리는 만화경 비주얼은 사이키델릭 그 자체다. 현대적인 판본의 잔혹동화라 해도 좋을 <한나>는 라이트의 필모그래피에서 가장 악랄한 캐릭터들이 등장하는 작품이란 점에서도 중요하다. 자신의 한계를 깬다는 것, 이는 가능성의 확대를 위한 전제조건이다. 그는 보기 드물게 시대성을 초월하는 공감각적 재능을 지닌 연출가다. 그리고 라이트는 말한다. “영화를 만드는 매 순간, 그것이 내게 새로운 무언가를 배울 기회를 주고 있음을 느낀다.” 운명과도 같았던 영화는 여전히 그에게 방향을 가리키는 지표다. 그의 공감각적 여정은 그렇게 새로운 길로 접어들고 있다.
이 마지막 편은 (원작을 읽었다면) 누구나 아는 그 결말로 나아간다. 해리 포터(다니엘 래드클리프)는 필생의 적 볼드모트(랄프 파인즈)가 자신의 영혼을 나눠 숨긴 호크룩스들을 찾아내 파괴해 나간다. 그 과정에서 신변의 위기를 느끼는 볼드모트는 자신의 수하인 ‘죽음을 먹는 사람들’을 동원해서 해리 포터와 그의 주변 인물들을 압박해 나가고 그 위협은 호그와트까지 번져나간다. 그리고 해리 포터와 그를 위시하는 마법사들은 호그와트에서 최후의 결전을 벌인다. <해리 포터>시리즈는 영웅적인 면모를 타고난 해리 포터의 성장통을 다룬 어드벤처 판타지물이다. 그리고 ‘이제 모든 것이 끝난다.’
바야흐로 10년이다. <해리 포터>시리즈가 스크린에 살아 움직이는 실물로 구현되기 시작한 것이 말이다. 그 10년 사이, 솜털 보송보송한 소년은 거뭇거뭇한 수염이 제법 눈에 띄는 청년으로 성장했다. 그리고 그 10년이란 세월 동안 어린 마법사들을 성장시킨 호그와트의 풍경도 어둡고 음산한 세기말적인 기운에 지배당했다. 그 호그와트를, 그리고 그 세계를 구원하기 위해 청년이 된 소년들이 악과 맞선다. <해리 포터와 죽음의 성물 2>는 바로 그 대단원의 결전을 향해 나아가 닿는 시리즈의 마지막 장이기도 하지만 우리가 더 이상 해리 포터라는 아이콘을 기다릴 수 없는, 작별의 인사를 던질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이기도 하다.
영화화된 여섯 번째 시리즈까지와 달리 2부로 나뉘어진 마지막 편 <해리 포터와 죽음의 성물>은 이 시리즈 안에서 가장 좋은 조건을 확보해낸 작품이다. 영화화된 <해리 포터>시리즈가 지닌 최고의 장점이라면 (최소한 원작을 먼저 섭렵한 독자들에게) 스포일러를 염려할 필요가 없다는 점이다. 이는 때때로 단점으로 작동하기도 했는데, 이를 테면 원작에서 느낄 수 있었던 세밀한 요소들의 재미가 서사의 축약 안에서 손쉽게 손실되는 과정이 발생하기도 했던 것이다. 저마다 장대한 서사를 지닌 각 시리즈들이 한 편의 영화로 완성된 것과 달리 시리즈의 마지막을 상하로 나눈 <해리 포터와 죽음의 성물>은 긴밀한 호흡으로 유종의 미를 거두겠다는 야심처럼 보인다. (물론 이는 상품성이 막대한 이 시리즈의 유효기간을 보다 넓게 확보하겠다는 의도로도 읽힌다.)
지난 시리즈들이 언제나 그러했듯이 이번 마지막 시리즈 역시 텍스트를 이미지로 치환해내는 작업에 가깝다. 그리고 전작들에 비해서 보다 너른 러닝타임을 확보한 이번 시리즈는 이를 바탕으로 원작을 텍스트를 보다 충실하게 이미지로 세워 넣는다. 결말을 위한 전초전으로 완성된 지난 1부를 잇는 이번 작품은 전편과 마찬가지로 어둡고 음울하며 비장하게 정해진 결말로 걸어나간다. 그 비장함을 상기시키는 건 어둡고 음울해진 세계 속에서 외롭게 임무를 수행하는 아이들이다. 전편과 마찬가지로 데이비드 예이츠는 핸드헬드와 클로즈업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스크린에 불길한 심리 속에서도 성숙해진 아이들의 비장한 면모를 새겨 넣는데 주력하고 있다. 특히 호그와트에서 펼쳐지는 격전은 이번 작품뿐만 아니라 전 시리즈를 관통하는 클라이맥스다. 그 가운데서 볼드모트와의 숙명적인 대결을 벌여야 하는 해리 포터가 자신의 생을 걸고 그와 맞서야 하는 외로운 임무를 받아들이게 되는 과정은 한 소년의 통과의례적인 통증으로 와 닿는다.
제각각 완성도의 편차를 지닌 이 일곱 편의 시리즈가 비로소 마지막 관문에 다다랐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거대한 이벤트다. 그리고 해리 포터를 지켜보며 성장한 팬들에게도 이는 남다른 의미를 품게 만든다. <해리 포터> 시리즈의 스크린 진출을 가능케 했던 것이 할리우드 자본의 동원이기 이전에 전세계적인 팬덤으로 이뤄진 시장의 형성에서 비롯된 것임을 인식한다면 이 마지막 편을 목도할 팬들의 심정이란 제 자식을 떠나 보내는 어미의 마음과도 비교할만하다. 호그와트에서 마법에 입문한 아이들은 이제 그곳에서 배운 지식과 기술로 세계를 구원해야 한다. 스스로 골고타 언덕에 올라선 아이들은 끝내 자신들의 의지로 세계를 구하며 성장과 성숙의 여정을 완성해낸다. 비로소 ‘이제 모든 것이 끝났다.’ 영국의 가난한 싱글맘 조앤 K. 롤링을 전세계적인 판타지 작가로 등극시킨, 마법 같은 태생 실화를 지닌 이 소설이 영화화되어 지금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머글들은 그 세계를 동경하듯 지켜보고 응원하는 것도 여기까지다. <해리 포터> 시리즈를 보고 자란 이들의 감상이 특별할 수 밖에 없는 건 그들이 애정을 담았던 그 세계와 진짜 이별을 고하고 안녕을 기원해야 하는 애틋함 덕분일 것이다. <해리 포터와 죽음의 성물 2>는 그 애틋한 안녕을 고하는 팬들을 위로하는, 진정한 유종의 미다. 마법은 끝나도, 추억은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