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출연작의 개봉을 기다리는 것과 특별히 다른 느낌이 있나? 흥행이 어떤 영화보다 궁금한 영화다. 저희 영화가 걸고 있는 모토가 요즘의 관객들과 만났을 때 어떤 반응이 올 지 궁금하지, 과연 흥행하게 될지, 아니면 몇몇 매니아층이 좋아하는 영화로 끝날 것인지, 궁금하다. 대중들의 지지를 얻는 영화가 될 것인지.
2000년에 인터넷에서 상영된 <다찌마와 LEE>는 선풍적인 반응을 이끌어냈다. 사실 예상 밖으로 뜨거운 반응이 아니었을까 싶은데. 그걸 그냥 우리끼리 재미보고 말자는 생각으로 만든 건 아니니까. 물론 실험적인 부분이 있었고 인터넷 관객들의 일부가 그런 면을 좋아해줄 거라고 생각만 했을 뿐, 그 정도로 많은 분들이 좋아해줄지는 몰랐다. 그런데 그게 벌써 8년 전이다. 그리고 이번엔 정말 완전 상업영화로 나가는 거니까, 과거의 그것에 비해 다른 지점의 긴장감이 있다.
<다찌마와 LEE>는 당신을 코믹한 배우로 단정짓게 만드는 요인이기도 했다. 배우로서 당신의 이미지에 결정적인 단초를 제공한 셈이다. 나에겐 독이 되고, 약도 되는 영화였다. 하지만 이번에도 독이 될 수 있을지언정 이 영화를 한번 완성시켜보고 싶었다. 인터넷용만이 아닌 상업용으로도 한번 캐릭터를 만들어보고 싶었던 거지. 물론 그것을 완성하는 건 감독이지만 그 작업을 같이 해보고 싶었던 거다. 그래서 후회는 없다. 다만 이왕이면 관객들도 많이 사랑해줬으면 하는, 그런 기대감이 있을 뿐이다. 배우로서의 고민은 좀 더 나중에 하게 될 거 같다.
첫 번째로 주연을 맡은 영화이기도 했다. 다만 그것이 극장판이 아닌 덕에 그 당시엔 좀 가벼운 마음으로 연기할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나름 촬영 분위기도 상당히 유희적이었을 것 같고. 재미있었다. 이런 경우가 다 있을까, 신기하기도 했고. 극장에서 상영되는 영화가 아니라 인터넷에서 상영되는 영화가 이런 반응을 얻을 수 있다는 것도 의외였지. 인터넷 영화라는 게 사실 전무후무한 작품이니까. <다찌마와 LEE>이후로도 인터넷 영화가 나오긴 했지만 그만큼의 반향을 부른 영화는 솔직히 없지 않았나. 게다가 요즘은 그런 시도도 없고, 그런 게 지금 생각해보면 재미있더라. 그게 이제 상업영화로 다시 탄생했기 때문에 감회가 새로운 건 있다. 대신 책임감도 그 때보단 더 따르고, 그런 양면성이 생기는 거 같다.
그 뒤로 몇몇 작품의 주연을 맡게 된 것이 <다찌마와 LEE>와 무관하지 않을 듯하다. 하지만 그 당시 주연을 맡았던 두 영화가 흥행에 실패했다. 개인적으론 부담을 느낄만한 상황이 아니었나. 그게 내 인력으로 안 되는 거니까, 쉽게 얘기하면 주춤했다고 할 수 있지. 근데 배우가 항상 잘 나갈 수만은 없지 않나. 그건 하나의 과정으로 받아들여야겠다고 생각했다. 주연을 맡았던 두 편의 영화가 크게 흥행은 못했지만 그 뒤로도 작품을 꾸준히 하긴 했었고, 그래서 후회는 없다. 관객의 선택을 못 받은 것에 대한 아쉬움은 남지만 그 선택을 통해서 하나의 공부를 한 셈이니까. 좋은 추억이라고, 나쁘지 않은 경험이었다고 생각한다.
연극배우로 활동하던 당시 무대에서 활동하던 배우 중, 요즘 쟁쟁한 연기자로 꼽히는 이가 많다. 그 당시 내가 운이 좋았던 게 최민식 선배님이나 설경구 선배님이나 송강호 선배님 같은, 소위 유명해졌다고 할만한 배우 분들이 했던 연극을 다 볼 수 있었다. 내 동기였던 황정민 씨나 정재영 씨도 원래 연극을 했었고. 정말 생각해보면 화려했던 멤버였다. 그 당시엔 연극 판에서 소문난 좋은 재원들이었다고 해야 하나. 그 때는 정말 잠재력 있는 좋은 배우들이 많았다. 정말 대학로에서는 이름만 대면 알 정도로 연기 잘 하시는 분들이 넘쳤으니까. 어쩌면 그 분들이 오늘날 명성을 얻은 게 당연한 결과물이란 생각이 든다. 물론 요즘에도 그런 재원들이 있다면 몇 년 뒤 빛을 발하겠지. 앞으로도 더 많은 분들이 나올 테고.
극단 ‘목화’에서 4년 동안 활동했었다. 과거에 했던 인터뷰를 보니 힘들어서 극단에서 나왔다는 대답이 있던데 어떤 점이 본인을 힘들게 했나. 4년 정도 있었으니까. 일단 영화를 좀 하고 싶었던 내 입장에서 극단은 나와야 될 거 같더라. 나름대로 건방진 결정이었지.(웃음) 결단이라고 해야 하나. 한 다리라도 걸치면 소속감이란 게 생겨서 극단에 있으면서 영화를 모색하기 힘들더라. 물론 과감히 나왔지만 그 선택도 어려웠다. 그 뒤로 영영 연극을 못할 것 같단 느낌도 들고, 내가 잘 나가는 배우도 아니었고, 그저 영화 한두 편 짧게 해본 게 전부고. 그래도 일단 나와야겠다고 생각했었다. 그 결정에 후회는 없다. 그냥 적당할 때 나왔다고 생각한다.
주변에 지인들의 반응은 어땠나? 사실 내가 한두 살 먹은 애도 아니었고, 학생도 아니었고, 나름대로 일종의 프로였지 않나. 그 결정에 대해 주변에서 가타부타 할 수는 없었을 거다. 격려는 해줄지언정. 연극하는 선배라도, 너 왜 나가, 임마, 사실 이럴 순 없으니까. 물론 선생님께서는 처음에 말리셨지. 하지만 결국, 네 선택이 정 그렇다면 그렇게 해라, 하시더라. 지금 생각해보면 고맙고 감사한 일이다. 이제 세월이 지나서 종종 뵙게 되면 적당할 때 잘 나간 거 같다는 말씀 해주시더라.
그 당시 연극 무대에서 활동하던 배우들로부터 얻은 자극도 있었을 것 같다. 일종의 경쟁심이 발생했을 수도 있고. 대부분 형들이었기 때문에 경쟁심까지는 아니었다. 하지만 자극은 됐지. 저렇게 잘 되는 배우들도 있구나. 나도 열심히 해야지. 이런 시너지 효과는 있었다. 참 연기 잘하시네. 저분 죽인다. 이러면서 정말 열심히 해야겠구나, 스스로를 채찍질했다. 나한테는 행운이었던 거지. 그런 분들 연기를 연극으로 볼 수 있었다는 것 자체로 내가 영향을 많이 받았으니까. 정말 세상에 연기 잘 하는 사람이 많다는 걸 충분히 느꼈다.
장진 감독과의 인연으로 영화에 발을 들였다. 그런데 한때 장진 감독이 만든 ‘수다’를 떠나면서 서로 사이가 안 좋아진 게 아니냐는 소문도 돌았다. 물론 이것이 오해임을 스스로 해명했지만 이젠 장진 사단이라기보단 류승완 사단이라고 불려야 하는 게 아닐까 싶다. 나는 지금도 장진 사단이라고 하고 싶다. 장진이란 사람 때문에 운 좋게 영화를 시작하게 됐으니까. 어떤 사람들은 서로 사이가 안 좋은 게 아니냐고 생각하지만 지금도 가끔 만난다. 얼마 전에도 장진 선배가 일요일마다 하는 ‘북카페’라는 라디오 프로에 출연했었고. 아무래도 내가 장진 사단이 아니라서가 아니라 지금 찾고 있는 캐릭터가 나랑 맞지 않아서 같이 작업할 기회가 없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언젠가 자연스럽게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란 생각도 하고.
<주먹이 운다>에 출연한 이후로 <식객>의 제작과 개봉이 미뤄지는 까닭에 본인 의사와 무관한 공백기가 형성됐다. 사실 그 중간에 케이블 영화에 두 편 출연하기도 했는데 아무래도 노출이 빈번하지 않은 탓에 묻히는 경향이 있었다. 나름대로 고민이 많은 시기가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배우는 누구나 침체기가 있다고 본다. 하는 족족 매번 뻥뻥 터질 수는 없으니까. 그리고 난 나름대로 활동했다. <코마>도 케이블 영화로서 최초의 시도나 마찬가지였다. 무엇보다도 그 전까지 내가 했던 캐릭터와 다르다는 게 마음에 들어서 했다. 물론 상업영화를 많이 하고 싶었지. 없어서 못한 것일 수도 있고. 결국 그런 상황이 2년 간의 공백으로 보였을지 모르지만 그래도 난 그 자리에 있었던 거다. 다만 출연했던 영화가 어쩌다 보니 미뤄지고 해서 그렇게 된 거다. 사실 공백이라고도 할 수 없는 거다.
그렇게 맘대로 풀리지 않는 상황이 힘든 부분이 아닐까 싶다. 코믹한 캐릭터로 깊게 각인된 것도 사실 본인의 의도가 아니었듯이. 그건 어쩔 수 없는 거 같더라. 만약 누군가가 임원희 하면 코미디가 떠오른다고 해서 내가 그러지 말라고 하는 것도 웃기지 않나. 그렇게 하려고 한 건 아니지만 과정이 그렇게 흘러갔고, 어차피 그렇게 보신다면 그것도 내 책임이니까. 내가 할 수 있는 몫은 스크린에서 나름대로 더 좋은 코믹 연기를 하던지, 내가 코믹연기만 하는 배우가 아니란 것을 생각할 수 있게 만드는 것 뿐이다. 만약 이 인터뷰에서 내가 그렇지 않다고 써주세요, 라고 해 봤자 대중이나 관객들이 그 기사만 보고 날 판단할 것도 아니고. 자연스럽게 흘러온 만큼 앞으로 어떻게 또 흘러가느냐가 중요하겠지.
박찬욱 감독의 <쓰리, 몬스터>에서 연기했던 테러리스트를 생각해보면 보여주지 못한 바가 분명 있을 거란 생각도 든다. 나도 매우 아끼고 좋아하는 캐릭터다. 기회가 된다면 그런 역할도 하고 싶다. 나에겐 소중한 캐릭터다.
<실미도>에서 원희 같은 역할도 입담이 재미있는 인물이긴 했지만 희화화된 인물은 아니었다. 비현실적인 캐릭터가 아니라 지극히 리얼한 캐릭터였지. 물론 극의 숨통을 틔워주듯 희극적인 면을 책임지는 점도 있었다. 사실 내가 그렇게 코믹한 연기만 한 것도 아닌데 ‘다찌마와 리’가 셌나 보더라. 생각보다 안 그랬다고 나는 생각하는데 말이다. 한 두 가지가 아니라 다양한 이유가 겹친 거 같아요. <재밌는 영화>같은 경우도 좀 컸고.
사실 진지한 상황에서 발생하는 코미디가 당신의 장기처럼 보인다. 그런 점에서 <재밌는 영화>는 조금 과장된 코미디란 점에서 불편했던 게 아닐까 싶다. 나도 <재밌는 영화>가 대한민국 최초의 패러디 영화란 점에서는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그런데 거기서도 보면 시치미 뚝 떼고 하는 연기가 많다. 나는 표정이 이상해진다거나 그런 적 없다. 다만 나름 새로운 시도였기 때문에 아쉬움이 남는 영화다. 그 뒤로 패러디 영화가 안 나왔으니까, 만약 그 영화가 성공했다면 아류작들이 많이 나왔겠지. 그래서 내 바람은 <다찌마와 리>가 흥행해서 꼭 류승완 감독이 만들지 않더라도 그런 키치적인 발상이나 B급 같은 장르가 많이 나와도 좋을 거 같다. 한국영화가 요즘 되는 것만 가고, 너무 몸을 사리지 않나. 거기에 숨통을 틔워서 작지만 다양한 시도가 나올 수 있다면 관객이나 한국영화한테도 좋은 게 아닐까 싶다.
아무래도 극장에서 과연 이게 먹힐 것인가가 가장 큰 고민이겠다. 가장 큰 고민이고 걱정이지. 인터넷에서 보던 분들이 예매권을 가지고 뛰쳐나올 것이냐, 얼마나 다운로드를 안 받고 극장으로 뛰쳐나올 것이냐. 그런 점에서 입 소문이 참 무섭다. 이거 별로니까 다운받아 봐도 돼, 이런 게 아니라, 재미있더라, 하면 빨리 보고 싶어서 극장을 찾겠지. 이미 <다찌마와 리>라는 배는 떠났으니 그건 운명에 맡겨야지.
류승완 감독이 ‘다찌마와 리’를 다시 하자고 했을 때 기분은 어땠나? 생각이 좀 많았지. 물론 합시다, 하긴 했는데 내가 예전에 생각했던 것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는 거다. 그 때 내가 그것 때문에……(웃음) 하지만 일단 그런 걱정을 하면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그런 건 나중에 걱정하고, 과거의 ‘다찌마와 리’와 다르게 캐릭터적으로 나름 더 고급스럽게 보여줘야 할 그런 부분의 고민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이번 영화를 계기로 과거에 했던 연기를 다시 봤을 것 같은데, 과거에 자신이 했던 연기를 종종 다시 보는 편인가? 생각해봤자 어차피 다 지나간 거니까, 난 과거에 했던 걸 자주 보진 않는다. 물론 이를 계기로 해서 예전 <다찌마와 LEE>를 다시 보긴 봤지. 재미는 있는데 아무래도 유치하더라. 그 당시에 골 때리는 기발함으로 다가왔던 영화였지만 시간이 지났으니까. 요즘에 만약 다시 그대로 인터넷에서 보여준다면 과연 어떨까. 요즘 세대가 빠르지 않나. 최근에 놀랄만한 얘길 들었다. 물론 특이한 경우일지도 모르겠지만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을 보고 연기 잘 하는 신인 배우 나왔다고 어떤 사람이 그랬다는 거다. 이병헌 씨를 두고. (웃음) 웃기지 않나? 그리고 요즘 다시 상영하는 <영웅본색>에서 우리 세대는 달러에 불 붙이고 이런 장면을 멋있다고 생각했는데 요즘 세대는 웃는다더라. 저기에 왜 불 붙여, XX, 이러면서. (웃음) 감각이 다른 거다. 놀랍더라. 요즘은 그만큼 빨리 잊혀지고, 빨리 변한다. 그래서 나도 모르겠다. 그런 그들이 이 <다찌마와 리>를 어떻게 볼지.
<다찌마와 LEE>에서는 난이도 높은 액션 장면에서는 대역을 노골적으로 보여줬다. 반면 이번 작품에선 거의 티가 나지 않더라. 잘 가린 덕분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본인이 직접 연기한 씬도 꽤 많았던 거 같다. 아무래도 액션에 대한 대비가 중요했을 것 같다. 그 전에 만들었던 것처럼 대충하면 요즘 관객들이 쳐다보기나 하겠나. 액션은 업그레이드하기 위해 많이 노력했다. 예전처럼 대역한 티를 팍팍 내서 재미를 줄 수도 있었겠지만 그런 재미를 배제한 다른 재미를 주고자 특별한 장치를 많이 했지. 많이 공을 들이긴 들였다.
그래서인지 <다찌마와 LEE>NG컷과 달리 이번 <다찌마와 리>NG컷에서는 고통을 호소하는 장면이 많았다. 실제로 오토바이 씬과 썰매 씬은 꽤 위험해 보였다. 부상에 대한 두려움은 없었나? 액션은 몇 번 찍어봤으니까, 힘든 것도 알고, 힘들어야 관객이 즐겁다는 것도 안다. 힘든 걸 알면서 하는 만큼, 힘들어서 보람이 있다는 것도 안다. 멋있지 않나. 그게 액션의 매력인 거 같다. 솔직히 어디가 크게 다쳤다고 할만한 건 없지만 잔부상이 많았다. 소위 말하면 까지는, 타박상이 많았지. 그래서 어디가 터지고 그래야 다쳤다고 말하고 기사로 생색낼 수 있는 건가, 싶기도 하더라. (웃음) 찰과상 이런 건 사실 티도 안 나니까.
사실 촬영현장은 치열했을 것 같다. 하지만 현장의 상황과 반비례하게 영화는 상당히 호쾌하다. 영화를 보고 나서 본인이 지닌 연기적 경험으로서의 기억과 영화적 결과물 사이의 아이러니를 느끼지 않았을까 싶다. <독비도>에 나왔던, 외팔이 검객의 만주 벌판 씬을 촬영한 영종도가 벌판이라 정말 추웠다. 추위 때문에 엄청 고생했던 기억이 난다. 아수라장, 아비규환이 따로 없을 정도로 정말 힘들었다. 썰매액션 같은 경우는 아마 세계적으로 최초일거다. (웃음) 외투 타고 내려간 사람은 처음이니까, 누구도 해본 적 없고, 아무런 노하우가 없는 상태에서 어떻게 될지 서로 모르니까 거의 연구하면서 찍다시피 하고 그래서 고생도 많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재미있는 일이다. 스키장을 오르락 내리락 하면서 이리 찍고, 저리 찍고 했던 기억이 난다. 새로운 시도란 점도 특별하고.
썰매 씬은 돌발적인 경우가 많았을 텐데. 제어가 잘 안되니까. 외투를 타고 내려가다 보니 쭉 내려가다가 제어가 안되면 구르기도 하고, 잘 내려가다가 갑자기 안 미끄러지는 경우도 있고. 그런 노하우가 없어서 위험한 것도 많았다. 설원에서 타는 차, 스노우 모빌(snow mobile)이라 하나, 거기에 매달려 내려가면서 카메라로 찍고 그랬는데 종종 위험한 순간도 있었지. 가파른 경사에서 내려가며 찍다 보니까.
마음가짐 자체가 과거와 다를 수 밖에 없었을 것 같다. 마음가짐이란 건 당연히 달라야 했다. 액션뿐만 아니라 연기적으로도 그렇고. 우리가 2000년에 했던 그런 치기 어린 장난과는 다르지 않나. 몇 십억을 책임져야 되는 입장이고, 극장에 거는 영화니까 관객들이 돈 아깝지 않을만한걸 보여드려야 하기 때문에. 그리고 코미디란 게 원래 어렵기도 하고.
캐릭터적으로 좀 더 비장한 느낌이 가미됐다. 좀 진지해졌지. 2000년의 ‘다찌마와 리’는 어디서 나타난 지도 모르는 일종의 협객이자 건달이었지만 이번엔 그가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 일제시대의 첩보원이 된 셈이다. 물론 캐릭터가 완전히 달라진 건 아니다. 일단 뿌리는 그대로 있고 그래서 ‘다찌마와 리’라고 부르는 거고. 그런데 그가 좀 더 점잖아지고, 진지해진 거지. 여러 캐릭터가 있지만 내가 중심을 잡고 가야 하는 것이기도 했고. 더 웃겨보지 그랬어, 라고 말하는 분이 혹시나 있을지도 모르지만 다찌마와 리의 진지함 속에서 오는 웃음을 주려고 했다. 심지어 구르는 장면조차도 진지하지 않았나. (웃음)
구르는 와중에 나오는 어이쿠, 하는 추임새가 상당히 재미있다. 그게 안 들어가면 다찌마와 리가 아니지. 사실 구르면서 좀 더 많은 소리를 냈는데 원래 사운드에 묻힌 건지 잘 안 들리더라. 어~허, 어~허, 하는 이런 것도 있었는데 그게 안 들리더라. (웃음)
사실 다찌마와 리는 애드립이 가미되기 쉬운 캐릭터 같지만 실제로는 대사의 합이 치밀하게 짜인 상태이기 때문에 즉흥적인 것을 가미할 엄두가 나지 않았을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실제로 본인도 애드립을 잘 안 한다고 들었다. 이번에도 애드립은 별로 없었나? 별로 없다. 왜냐면 대사 자체가 문어체라서 섣불리 애드립을 할 수 없게 만들기도 한다. 처음에 마담 장의 대사 봐라. 외부인의 손길이 닿을 수 없는 이 곳에서 누군가의 눈빛이 느껴지는 건 긴장 때문에 생긴 나의 착각이겠지? 대사가 어려워서 입에 붙지도 않는다. (웃음) 이런 대사를 가지고 애드립을 하기란 힘들지. (웃음) 물론 약간의 애드립은 있긴 있지만 그게 채 10%가 되지 않을 거다. 철저히 계산된 대사를 해야 하니까 다른 배우들도 아마 별로 없었을 거다.
아무래도 대사 자체가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장문의 대사를 외우는 것도 애먹을만한 일이 아니었을까 싶은데. 이 영화는 시적인 문어체 대사들이 기교로 작용하면 끝나는 거다. 그걸 재미로 받아들여야 하는데, 그게 참 어려운 거 같다. 난 시종일관 진지하기 때문에 그걸 지루하게 느끼지 않게 만드는 것도 관건이고. 예를 들면 만주 벌판 씬에서 국경 살쾡이가 다찌마와 리를 찾아와서 그냥 싸우면 되는데 멋있게 한마디씩 주고 받는다. ‘죽을 때가 되니 제삿날을 부르는구나.’ ‘뜸을 들여야 음식이 맛있는 법.’ 그런데 요즘 영화는 안 이렇지만 옛날 영화는 진짜 이랬거든. ‘네가 아직 내 주먹 맛을 못 봤구나.’ 이런 식으로 일장연설을 하지 않고 바로 싸우면 어색했던 시대니까. 그런데 요즘은 그게 아니지 않나. 그냥 팍팍 치고 나가는 시대니까. 그런 옛 것의 즐거움을 주려고 잊고 있던 것들을 끌어낸 거지. 그게 재미없다고 하면 할 수 없는 거지만, 그런 과거의 기법들을 요즘 관객들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궁금하다.
다찌마와 리는 정체불명 자체를 매력으로 끌고 가는 특이한 캐릭터다. 족보도 없는 듣도보도 못한 캐릭터지. (웃음) 걔가 어디서 태어났는지, 형제는 있는지, 과거에 대해서 캐려고 할 필요가 없다. 그냥 다찌마와 리는 다찌마와 리다. 그게 재미있는 거 아닐까? 그리고 다찌마와 리는 무엇이든 갖다 붙여도 다 얘기가 된다. 류승완 감독님하고 농담처럼 얘길 했는데 다찌마와 리가 어느 여고에 교생으로 간 거다. 그렇게 만든 얘기가 ‘여고개담’, 부제가 ‘다찌마와 리 여고 교사가 되다’ 여고에서 다찌마와 리가 여학생들과 함께 귀신들과 싸우는 거지. (웃음) 갖다 붙이면 안될 얘기가 없다. 내년 여름에 대비해서. (웃음) 물론 장난으로 한 얘기다. 그냥 그렇게 된다는 거지.
호환이 그만큼 용이한 캐릭터란 의미다. 다찌마와 리가 미래에 갈 수도 있고, 터미네이터와 맞붙다. 이런 식으로. 이러니까 점점 <영구와 땡칠이>처럼 되는구나. (웃음) 이래저래 재미있는 발상이 아닐까 싶다.
아까 말한 만주 벌판의 대결씬처럼 고전액션영화에서 차용한 장면도 더러 있다. 이번 <다찌마와 리>를 위해 참고한 몇몇 작품이 있을 것 같다. 박노식 감독님의 <악인이여, 지옥행 열차를 타라>가 제목으로 차용된 건 권선징악이란 영화의 주제가 서로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라고 알고 있다. 이렇게 사소한 것부터 중요한 것까지, 과거 액션영화에서 여러 가지 소스를 따왔기 때문에 어떤 특정영화뿐만 아니라 60년대부터 80년대까지의 한국영화는 볼 수 있는 대로 다 찾아서 봤다. 주성치의 <희극지왕>과 같은 설정도 가미됐고, <서극의 칼>을 의도적으로 재연한 장면도 있고.
아무래도 <다찌마와 리>의 즐거움은 정색하는 코미디가 아닐까 싶다. 특히 그 압록강, 두만강, 흑룡강 씬은 정말 배짱이 두둑하더라. (웃음) 내가 봐도 심하더라. (웃음) 현장에서 농담으로, 화면을 좀만 내리지, 이거 너무 뻥이 심한데, 그랬었다. 그리고 한강대교도 좀 가고, 흑룡강이면 좀 저기 서강대교도 가고 그러지, 너무 성수대교에서만 찍어. (웃음) 농담이고, 물론 그게 의도가 있는 거니까.
사실 이만큼 파격적인 실험영화도 없다고 여길 지경이다. 사실 그저 웃는 관객에게 반대로 무너진 성수대교를 생각헤라, 이런 건지도. (웃음) 그걸 정말 기발한 시도로 받아들이면 영화는 성공한 건데, 장난치고 앉아있네, 쌈마이들, 이러면 끝나는 거다. (웃음) 그러니까 이 영화는 좋게 보면 기발해서 용서가 된다. 반대로 좀 트집잡고 들어가자면 트집잡을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과연 이 영화가 어떻게 될까.
‘다찌마와 리’의 가르마 넓이도 변했다. 2:8에서 3:7비율로 미묘하게 옮겨진 것 같더라. 그것도 사실 의도된 변화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의도된 거다. 사실 예전엔 거의 9:1이었지. 그런데 이번엔 옛날 배우들처럼 보이려고 정확한 8:2로 멋을 낸 거다. 나름대로 그 당시 멋이었으니까. 의상도 자주 갈아입지 않나. 사실 옷도 그 시절로 치자면 촌스럽진 않다. 세련된 다찌마와 리를 보여주려고 노력했다. 다른 배우들도 마찬가지고. 악당들도 그 당시의 멋을 내려고 노력했고, 여배우들도 그 당시의 화장법, 그 당시의 유행했던 옷을 입고 나온다.
사실 시대적인 분위기가 감지된다. 사실 그 지점이 과거 <다찌마와 LEE>와 이번 <다찌마와 리>의 차이가 아닐까 싶다. 그 당시 사람들이 그렇다기 보단 그 당시 영화 속 연기가 그랬다는 걸 보여주는 거지. 물론 그 당시 말은 못 들어봤지만.
시대극에 어울린다는 생각이 든다. 시대극? 그런 말은 처음 들어보는데.
목소리의 발성톤이 사극에 어울릴 거란 생각이 든다. 한번도 염두에 둔 적은 없나? 이렇게 하면 사극이 들어오겠다, 라는 게 가능한 것도 아니니까. (웃음) 옛날부터, 왜 사극이 안 들어오지? 이런 생각은 해본 적 있다. 목소리가 코믹해서 그런가? ‘(목소리를 내리깔고) 들라 해라’ 나름 어울리는데. (웃음) 하지만 한번도 제의가 들어온 적이 없다.
아직도 코믹한 장르의 시나리오 제의가 주로 들어오는 편인가? 아직도 그런 편이지. 하지만 그게 많이 상쇄됐다. 2000년에 <다찌마와 LEE>끝나고 3~4년 정도 그랬는데 그 뒤로는 여러 역할이 많이 들어왔었고. 또 모르지. 이번에 다시 그렇게 돌아갈지도.
다시 연극무대로 나가 보고 싶은 생각은 없었나? 하고 싶었는데 못하고 있는 거지. 그리고 하긴 해야 한다. 다만 자꾸 영화를 하게 되야 하니까 미뤄지는 거다. 사실 연극도 날 찾아줘야 하는 거지. (웃음) 어쨌든 그런 마음은 갖고 있다. 어차피 난 지금도 연극에서 연기를 배웠다고 생각하니까. 물론 심심찮게 연극은 들어온다. 못해서 아쉽지.
종종 멜로 영화를 하고 싶다는 의견을 표했었다. 농담 반 진담 반처럼 보이지만. 그게 약간 와전된 바가 있다. 물론 하고는 싶지. 그런데 하고 싶은 장르를 꼭 찍어서 말해주라고 해서 그냥 농담처럼 멜로, 이런 것뿐이다. 사실 하고 싶은 게 한두 가지겠어. (웃음)
‘다찌마와 리’라는 역할이 본인에겐 중요한 전환점이 아닐까 싶다. 과거 배우로서의 인지도를 넓히게 만들어 준 캐릭터였다면 이번엔 또 한번 배우로서의 중간결산과 같은 의미가 아닐까 싶다. 반복이란 표현보단 새로운 시작이란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본다. 좋은 결과가 나서 여러 가지 장르적인 발전에도 기여한다면 나 자신에게도 좋은 거고 보람된 거니까 관객의 관심과 사랑을 받았으면 하는 게 가장 큰 바람이다. 그리고 그 다음부터가 중요한 거 같다.
낯을 좀 가리는 편인 거 같다. 맞다. 낯을 좀 가리는 편이다.
아무래도 영화에서 보여준 호방한 이미지를 생각한다면 의외처럼 보인다. 영화에서 보여준 그런 캐릭터대로 살자면 차라리 평상시에 살기 힘들다. 지치지. 사람이 진지할 때도 있고, 안 그럴 때도 있고, 여러 가지가 있지 않나. 영화적으로 기대하는 건 다 어쩔 수 없는 거라고 생각한다. 내가 그런 이미지만 가지고 있는 건 아니지만 영화적인 이미지도 나에게 담겨 있는 것이겠지. 다만 실제로 그런 이미지처럼 살거라 생각하니까 그런 경우가 발생하는 것이겠지만. 사실 그렇게 살면 미친 놈처럼 보일 거다.
그런 성격으로 연기를 마음먹게 된 사연이 궁금하다. 어쩌다가 학교에서 연극반 활동을 시작했는데 그게 즐거웠다. 내가 잘 하는 게 있네, 뭐 이런 거. 내가 이걸 하면 참 행복한데 성격이 문제될 리가 없는 거지. 성격을 바꿀지언정 그게 좋으니까. 그래서 많이 적응했던 거 같다. 물론 일부로 바꾸려고 했던 건 아니었고 사람들과 어울려서 공동 작업하면서 자연스럽게 바뀐 것 같다. 바뀌려고 노력했다기 보단 그렇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하니까.
연기를 통해서 스스로를 극복하게 된 측면도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렇게 거창할 것까진 없지만 있다고 볼 수 있죠. 내 스스로가 거기에 맞춰져 가는 거니까.
어쨌든 이제 우리는 통성명이 필요 없는 사이가 됐다. 지옥행 급행열차는 안타도 되겠지. (웃음)
1.정신줄이 녹아 내릴 정도로 미친 듯이 더웠다. 하루 전날, 갑자기 컨택된 인터뷰 준비로 잠도 2시간 밖에 못 잤다. 덕분에 상태 많이 안 좋았다. 난 인터뷰를 앞두곤 상당히 긴장한다. 뭔가 하나라도 더 봐야 할 것 같고, 질문지가 빽빽하게 채워지지 않으면 불안하다. 아직 경험미숙을 벗어나지 못한 건지, 내 어설픈 완벽주의 기질 덕분인지는 모르겠지만 여하간 은근히 괴롭고도 설레는 작업이다.
2.알리샤 키스의 내한 공연에 다녀왔다. 아는 이의 협찬으로 무려 공짜로 봤다. 가히 신의 은총에 버금가는 행운일지라. 어쨌든 알리샤 키스 우왕ㅋ굳ㅋ ㅠㅠb
3.베이징 올림픽이 개막했다. 못 봤다. 몰랐다. 말이 돼냐고? 1번 글 참조. 난 오늘 거의 맛이 간 상태였다.
4.엄청난 호재까진 아니더라도 약간의 좋은 소식이 있었다. 일발적인 것이 아니라 나름 장기적인 부분이라 다행스럽기도 하고. 여하간 어떤 고민은 살짝 해소될 것 같기도 하다. 물론 완전한 것은 아니다. 불안요소는 여전히 도사리고 있다. 이건 방심하느냐의 문제와 관련된 영역이 아니라서 답답한 면도 있지만 결과적으로 내 스스로 타파해나가야 할 구석이 있는 문제다.
5.진로에 대한 조언을 얻었다. 어쨌든 결국은 내가 결정해야 한다. 성향도 중요하지만 경험도 중요하다. 가장 중요한 건 타이밍이다. 때를 놓치면 덫에 걸리거나 늪에 빠진다. 물론 난 아직도 잘 모르겠다. 나 이러고 있어도 되나?
6. 말복이었다. 난 개고기를 한번도 먹어보지 못했다. 물론 그것을 혐오할 생각은 없다. 그건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문화적인 영역이므로 함부로 손가락질해서는 안된다라고 스스로 믿고 있다. 여하간 요즘처럼 기운이 허할 때 그것이 엄청난 효과를 부여한다면 한번쯤 시식해볼만한 것이 아닐까 생각도 한다. 물론 우리 집 강아지를 대상으로 하는 말은 아니다. 얘는 사이즈만 봐도 아니다.
전작들의 개봉을 기다릴 때와 기분의 차이가 있나? 다른 기분? 있지. 기대가 돼! 관객들이 이 영화를 상업영화로 봐줄 지가. 난 이 영화를 대체적으로 상업영화라고 생각하는데, 결말은 상업적이지 않거든. 해피엔딩도 아니고, 불편하잖아. 근데 만약 성공한다면 나는 정말 행운이지.
마음에 걸리는 바가 있는 건가? 있지. 왜 없어? 대부분 질문이, 순이가 남편을 사랑하지도 않는데 월남에 왜 가냐? 다 그 질문뿐이야. 사랑하지 않아도 갈 수 있다, 난 그러는데, 사랑하지 않는데 왜 가요, 자꾸 그러니 염려돼.
결말부 때문에 고심하는 과정이 있었나? 아니야. 되려 거꾸로 마지막 장면을 처음부터 시나리오에 박아놓고 쓴 거야.
그럼 엔딩이 <님은 먼곳에>의 모티브로 작용한 건가? 그렇지. 그렇게 위험한 선택을 가다가 갑자기 하겠어? 처음부터 박아놓고 간 거지. 그리고 정점에 도달하기 위해서 온도를 계속 올리는 거지.
전작들도 이렇게 출발한 영화가 있었나? 난 영화마다 다 그래. 항상 라스트를 정해놓고 간다고. <왕의 남자>도 라스트를 박아놓고 간 거야. <황산벌>도 그렇고, <라디오 스타>도 그렇고.
예전부터 생각했지만 당신은 결혼이라는 제도 자체에 시니컬한 측면이 있어 보인다. 응! 시니컬해!
이번 작품은 그에 대해 가장 노골적인 태도를 드러낸 것 같다. <즐거운 인생>이 제일 노골적이지. 거긴 대사가 나오잖아. 내가 빨리 결혼해야 너와 이혼하지. 거기선 아예 읊잖아. 결혼이 갖고 있는 의미와 결혼이 제도화되는 것의 의미는 다른 거야. 난 결혼제도의 시작을 이렇게 봐, 물론 궤변이야. (웃음) 과거 어떤 수컷끼리의 투쟁이 있었는데 거기서 살아남은 승자가 불안해진 거야. 내가 지금 힘이 빠지면 저 새끼들이 나를 치러올 것 같아. 그럼 수컷들에게 족쇄를 채워야 되잖아. 족쇄를 채우는 방법은 단 하나야. 결혼시켜서 애 낳게 한 뒤, 한 집안에 다 몰아넣어야 돼. 그럼 처자식 달린 놈이 함부로 살 수 없게 되는 거지. 현대사회의 남자들은 회사 때려 치고 싶은데 못 때려 쳐. 왜? 처자식 때문에 그렇잖아. 그게 결혼제도의 숙명이야! (웃음) 억압된 결혼제도가 긍정적인 결혼의 시제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스스로 퇴행적 제도로 몰락하는 거지. 끊임없이 발목을 잡혀 사는 그런 현실을 영화로 시비 거는 거지. (웃음) 사회에 긴장을 던지는 것이 예술의 기능이야. 어쨌든 영화는 대중 예술이잖아. 사회가 통념으로 갖고 있는 것에 자극을 주는 거라고. 해석은 각자 사회인과 관객이 알아서 하는 거야. 예술가가 그것까지 답을 내려줄 순 없잖아.
당신의 영화는 현실을 배경으로 하는 판타지처럼 보인다. 영화가 다 판타지지. 다 뻥구라인데. (웃음)
하지만 당신의 영화는 주변부의 현실을 생생히 조명하거나 역사적 배경을 구현하는데 주력함으로써 사실적 배경을 결코 간과하지 않는다. <님은 먼곳에>도 베트남전이라는 역사적 사건이 영화의 현실성을 환기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럼! 나는 없는 얘길 하지 않아. 기본적으로 있는 얘길 다르게 보는 거지. 그러니까 현실에 토대를 둔 이상을 보는 것이지. 판타지라는 것은 없는 세계를 그려내는 거야. 그런데 내가 보기엔 전부 다 있었던 사실에 근거해서 어떤 새로운 어딘가를 향하고 있는 거야.
하지만 단지 현실성을 부여하기 위해 베트남으로 간 건 아닌 것 같다. 서양 이데올로기에 대한 반발심이 있었어. 소위 냉전 이데올로기라고 말하는 것의 이념에 대해서. 제1차 세계대전과 2차 세계대전을 지나 발생한 20세기의 전쟁은 19세기에 북유럽에서 생성된 이념에서 비롯된 거라고. 경제학자 마르크스(K. Marx)가 주장한 캐피탈리즘(Capitalism)을 도구로 어떤 집단이 또 다른 명분을 세워서 이데올로기 집단을 만들었지. 그러면서 전쟁이 시작된 거야. 그 전쟁의 끝이 20세기 마지막 전쟁인 베트남 전쟁이라고. 지구 반대편에 와서 서구에서 발생한 이념전쟁이 끝난 거야. 그리고 바로 이전에 있었던 전쟁이 한국전쟁이야. 그런데 한국전쟁은 아직 안 끝났어. 종전이 아니라 우린 전쟁 중이라고. 국제사회에서 아직 휴전으로 돼 있다고. 근데 우리보다 늦게 일어난, 냉전 이데올로기의 마지막 전쟁인 베트남 전쟁은 종전됐고 우리가 한.베 수교한지가 벌써 몇 십 년이나 돼. 그리고 그 다음에 일어난 전쟁은 칸영화제에서 수상한 에밀 쿠스트리챠(Emir Kusturica)의 <언더그라운드>에서도 나오는 보스니아 내전이지. 그건 민족, 종교갈등이라고. 냉전 전쟁이 아니야. 서양은 이미 EU통합까지 하면서 탈이데올로기 시대를 20세기에 맞이했다고. 그런데 우리는 아직도 걔들이 싸놓은 똥에서 콩나물 빼먹고 사는 것과 똑같아. 걔들이 만들어놓은 이데올로기에 지구 반대편의 우리는 지금까지도 자유롭지 못한 거야. 난 이에 불만이 많아. 나만 불만 있겠어? 대한민국 사람들 다 그렇겠지. (웃음) 그런데 이걸 직접적으로 다루기에는 불편한 사람이 너무 많은 거야. 영화를 하면서 불편을 많이 주면 그것도 예의가 없잖아. 그래서 비슷한 걸 하나 해야겠다 싶어서 이제 (베트남전은) 끝났으니까 건드려도 된다 싶었지. 전지적 시점으로 봐도 그렇게 불편할 사람이 많지 않아. 그래서 베트남 전쟁을 이야기하게 된 거야.
베트남 전쟁은 사실 우리의 전쟁이 아니었지만 우리의 전쟁처럼 인식되는 측면도 있다. 우리가 갔으니까 우리의 전쟁이 돼버린 거지. 그리고 남의 전쟁인데 우리가 우겨서 들어간 거지.
사실 엄밀히 말하자면 그건 대한민국 안에서만큼은 남자들만의 전쟁이기도 하다. 그래서 한국여성의 시각으로 베트남전을 바라보는 <님은 먼곳에>의 시점이 특별한 의미를 발생시키는 측면이 발생하는 게 아닌가 싶다. 사실 베트남전에 타국 여성의 시각이 개입된 사례는 드물다. 심지어 전쟁터에 간 위문공연단을 주인공으로 삼은 전쟁 영화는 전세계 영화 백 년사에서 이게 딱 하나야.
<님은 먼곳에>는 무엇으로부터 시작된 영화인가. 사진 한 컷. 인터넷에서 베트남 위문공연 찾아보면 사진들이 쫙 나와. 거기에 패티킴, 현미, 김세레나, 그리고 이금희, 요즘은 우리가 모를만한 이름의 여가수들이 등장한다고. 1960년대 말부터 1970년대 초까지 사진이 왕창 나와. 그 사진 보면 누구나 알아. 아, 이거 완전 영화네. 다만 우리가 먼저 본거지. 먼저 본 사람이 임자잖아! (웃음)
영화에서 순이가 전쟁의 폭력성을 직접 목격하는 건 세 장면이 나온다. 그 세 장면은 순이의 경험으로 진전되어 나열된다. 단순한 목격자의 시선에서 참여자로, 그리고 종래에는 생존의 본능을 통해 상황에 개입시켜버린다. 특히 마지막 단계에서 정만이 노래 부르는 행위는 순이를 통해 학습된 결과다. 그들이 직면한 죽음을 여성과 노래가 구제해준다는 양식에 삽입된 의미가 읽힌다. 여성의 노래라는 것을 영화적 도구로 쓴 것이기도 하지만 거기엔 여성성이 이데올로기를 무화시키는 시선임을 주장하고자 하는 은유적 의미가 내포돼있어. 순이라는 개인이 시어머니, 남편, 친정으로 둘러싸인 가족사에 가둬져 있다가 그 가족사에서 튕겨져 나와 정만을 만나면서 사회사를 이루는 거야. 그러다가 정만과 같이 베트남전에 참전하는 국군과 배를 타면서 국가사가 돼버린 거라고. 그리고 베트남에 도착한 순간, 세계사가 되는 거야. 그리고 맨 마지막에 따귀를 칠 땐 인류사가 되는 거라고. 히스토리(He story)를 허스토리(Her story)로 돌리자고. 그러니까 개인사, 가족사, 사회사, 국가사, 세계사, 인류사, 까지 진행되는 시퀀스(sequence)를 거기에 맞춰놓고 가는 거야.
어느 특정한 시대에 담긴 역사적 맥락을 개괄적이면서도 발전적으로 그려내고 싶었던 건가? 그렇지. 대한민국 현대사의 한 단면을 콕 집어서 쫙 펼쳐놓은 거지.
전장 한복판에서 여성의 시선 아래 무릎 꿇은 남성이 놓여있는 엔딩의 구도도 의미심장하다. 마치 그 모습은 신부님 앞에서 기도 드리는 신자의 모습과도 비슷해 보인다. 일종의 고해성사지. 용서와 구원을 상징화한 컷이야. 난 사랑의 끝은 용서라고 본다고. 순이는 여성성의 위대함을 통해 때려서라도 사랑하지 않는 남편에게 구원받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 거야. 반성한 자만이 구원받을 수 있는 자격이 있어. 반성하지 않은 자는 구원받을 수 없잖아. 구원의 조건은 반성이라고. 반성할 수 있는 기회를 준거야. 순이가 뺨을 딱 치고, 또 치고, 그렇게 세대를 맞고 나면 그제야 끅끅 거리면서 괴물처럼 운다고. 이게 반성의 심정이 나오는 순간이야. 순이는 그때, 밀치면서 용서를 해. 용서한다고. 용서하니까 무너져서 구원받는 거야. 그 구원을 정만도 받아. 그 다음 컷에서. 그 때, ‘대니 보이(Danny Boy)’라는 음악이 배경으로 깔리지.
상길이 구원의 직접적인 대상이라면 정만은 간접적인 대상이라 할 수 있다. 정만이 한국으로 돌아가면 어디 가겠어? 제니한테 가겠지. 사실 정만의 구원 스토리가 이 영화에 굉장히 큰 축인데, 그걸 이해하려면 1970년대 초 한국에 어떤 사회적 현상이 있는지 알아야지. 대한민국은 20세기를 맞이하자마자 일제로부터 수탈당했어. 지배적인 남성성이 거세당했다고. 그리고 몇 년 후, 6.25 동족상잔으로 전부 다 폐허가 됐어. 그럼 남성들은 이제 길바닥에 나와서 뭘 해야 되겠어.
생존을 위해서 돈을 벌어야 되는 거야. 돈의 신화가 시작된 거야. 현재 금권만능주의의 시작이 1960년대 말, 70년대 초, 이 때라고. 그래서 우리는 베트남전에 평화를 지키러 갔다지만 결과적으로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돈을 벌러 간 거야. 사실 한국전쟁이 없었으면 일본의 경제는 이렇게 빨리 일어서지 못했다고. 한국전쟁에 필요한 물자자금을 일본공장에서 죄다 생산했으니까 가능했던 거지. 그것처럼 한국도 한국전쟁 이후에 베트남전을 통해서 경제재건을 할 수 있었던 거야. 그 남자들이 돈의 신화를 만든 거지. 그리고 그때 세계 낙태율1위 국가가 한국이야. 그 때 한국의 문명수준이 애를 지워서라도, 자기를 따르는 여자를 버려서라도 돈을 벌러 가야 하는 거야. 그래서 정만도 갔어.
정만은 결국 그 시대에 놓인 남성성의 상징적 배치라 할 수 있는 것 같다. 정만의 여정은 결국 그 시대적 속성에 대한 일침인가? 정만은 어쩌다 보니 베트콩 땅굴까지 갔을까. 거기서 베트콩이 묻지. 이 무기는 뭐냐? 그러니 정만이, 우리가 공연하고 받은 거다. 우리 돈 벌러 왔다. 그러니까 베트콩이, 한국군도 돈 벌러 왔다. 그러니 정만이, 아니, 한국군은 평화 지키러 왔지, 그러니까, 너 평화가 뭐라고 생각해, 베트콩이 묻잖아. 평화? 우리를 풀어주면 그게 평화지. 정만이 이렇게 대답하니까 베트콩이 총을 들이대잖아. 베트남은 1800년대 말부터 백 년간 프랑스 식민지였어. 내가 가봤는데 땅굴의 실제 총 연장길이가 250km야. 서울에서 대전보다 더 가. 그 땅굴이 손으로 백 년을 판 땅굴이야. 그 나라가 그만큼 어마어마한 나라라고. 그 속에서 그네들은 애를 낳고, 교육시키고, 밤엔 나가서 농사짓고, 그렇게 땅굴 안에서 생명을 부지하면서 평화를 찾으려고 노력했던 사람들이라고. 그런 사람들 앞에서 감히 평화를 그렇게 얘기하니 총맞아야 싸겠어, 안 싸겠어? 당연히 바로 죽여버려야지. 그런데 그 때, 순이가 벌떡 일어나잖아. 남편 만나러 왔어요. 이 남자가 그 말을 알았겠어? 그러니 노래를 부르는 거야. 개돼지가 아니고서야 언어가 다르고 민족이 달라도 인간이 인간으로써 한 여자의 진정성을 알 수 있는 거거든. 결국 총 내려놨어. 그럼 뭐야. 순이가 이들을 구제한 거라고. 살려낸 거야.
결국 노래의 주체가 여성이란 점은 <님은 먼곳에>에서 중요한 구도를 형성하는 지점이 아닌가 생각한다. 땅굴 씬의 마지막에 순이가 ‘님은 먼 곳에’를 부를 때, 베트콩들이 다 같이 하나가 돼서 그 공연을 보고 있잖아. 그 때 정만이 멍하게 지켜보고 있지. 저년이 내 돈줄인데, 저게 우릴 죽음에서 구해내고, 저건 대체 뭘까? 이런 생각을 하고 있겠지. 그러다가 폭탄 터져서 땅굴에서 나왔어. 나왔더니 미군이 막 학살해. 그래서 정만이, 아임 낫 베트콩(I’m not Viet Cong). 아임 코리안(I’m Korean), 이렇게 외쳐봤자 미군 눈엔 다 옐로우(yellow)야. 지금도 한국인, 일본인, 중국인 미국가면 다 옐로우야. 우린 걔들한테 대상화 돼있을 뿐이야. 그 때 저편에서 빵, 하고 미국 장교가 베트콩을 학살하잖아. 그리고 마지막에 그 베트콩 대장을 겨눌 때 정만이 눈을 못 두고 내려. 왜? 저 사람은 정만을 죽일 수 있었어. 근데 순이가 우릴 구해준 거야. 그리고 미군은 아군이라고 생각하는데 오히려 자길 죽이려는 거야. 그러니 염치 없는 거지. 그래도 일단 살아야 될 거 아냐. 그래서 미국국가를 불러. 미군이 봤을 땐 옐로우가 미국국가를 부르니까 이상하잖아. 미국애가 갑자기 애국가 부른다고 생각해봐. 정말 이상하지. 총을 어떻게 겨눠. 저게 뭐야, 이럴 거 아냐. 그런데 긴장해서 가사를 까먹었어. 이 때 성찬이 부르는 노래가 ‘대니 보이’라고. ‘대니 보이’가 어떤 노래야. 서울 이태원에서 제니가 불렀던 노래야. 정만은 그 여자를 버리고 여기까지 왔는데 그 서울에 있던 제니가 부른 ‘대니 보이’가 자기들을 살려준 거라고. 그러니까 이건 서울에 있는 제니가 정만과 일행을 모두 구한 거야. 순이까지 다. 순이는 그전에 베트콩 속에서 일행을 구한 거고.
‘대니 보이’란 노래는 <님은 먼곳에>에서 중요한 장치적 역할을 하고 있는 것 같다. ‘대니 보이’는 아일랜드 민요야. 1800년대 말, 아일랜드 독립전쟁 시절에 자식을 전쟁터에 보내는 아버지가 자식이 오길 기다리다 먼저 죽는 이야기가 담긴 노래야. 얼마나 가슴 아파. 전세계 음악 교과서에 그 노래가 다 실려있어. 그 노래를 우리도 초등학교 때 ‘아 목동아’라는 제목으로 배웠어. 내가 그 장면에서 미국 장교에게 디렉션(direction) 줄 때 이렇게 설명했다고. 표정은 네 맘대로 지어라. 단, 네 어머니가 텍사스 농촌에서 널 기다리며 이 ‘대니 보이’를 부르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아, 알겠다. 알겠지, 당연히. 전세계 다 아는 노래인데. 특히 미국 애들은 그 노래를 더 잘 알겠지. 그리고 맨 마지막에 상길이 주저앉아서 울 때, 그 때 나오는 음악도 ‘대니 보이’야. 그 ‘대니 보이’가 흐를 때, 정만이 그 광경을 쳐다보다가 이제 돌아가는 거야. 결국 어디로 갔겠어? 이태원 가야지! 지가 인간이면! 개돼지 아니고서야. 날 구원해줬는데! 난 위대한 여성성이 그런 것임을 증명하기 위해서 이 영화를 찍은 거야. 근데 이렇게 읽어주는 사람은 거의 없어.
솔직히 말하면 당신의 전작들과 반대로 <님은 먼곳에>는 남성들을 불편하게 만드는 영화다. 반성을 안 해서 그래. 반성에 인색해서 그래. 나는 따귀 맞고 싶었어.
솔직히 속살의 치부를 드러내 보이는 느낌이랄까. 개인적으로 불편한 느낌이 남는 건 그 때문인 것 같다. 그렇지. 자기가 반성을 안 해와서 그래. 반성을 해봐. 너무 편안해. (웃음) 일부로 그렇게 한 거야. 이 영화를 본 남자는 개나 소나 다 똑같아. 내가 <황산벌>에서도 계백의 처를 통해서 비슷한 말을 했어. ‘백제가 망하던 흥하던, 네가 맨날 전쟁터만 죽어라 쫓아다니더니 나한테 죽어라 살아라 하는 게 말이 돼?’ 계백 처 입장에서는 백제가 망하던가, 신라가 망하던가, 상관없다 이거야. 여자의 눈은 그런 거야. 왜? 남자는 어려서부터 집에서 나가 골목에서부터 편가르기를 시작해. 골목대장 정하고 그렇게 거기서 서열화를 익히지. 남성은 본능적으로 이데올로기를 만들어 가는 존재야. 이천년 역사가 그래서 히스토리(He story)라고. 남자들의 이야기인 거야. 그 이데올로기의 모순이 20세기에 발발한 이념전쟁이야. 제1차 세계대전, 2차 세계대전부터, 원자폭탄까지, 이게 다. 르네 마그리트(Rene Marritte)가, 난 더 이상 인간의 이성을 믿지 못하겠다, 고 한 것도 그 때문이야. 그래서 쉬르레알리즘(surrealism), 초현실주의로 가버린 거야. 그래서 유럽이 한 때 초현실주의로 확 덮여버린 거야. 다다이스트(dadaist)들에 의해서. 그니까 난 그런 서열화, 편가르기의 이념을 무화시켜버릴 수 있는 세계관은 딱 하나밖에 없다고 생각해. 여성성, 허스토리(Her story)로 보면 베트콩이든, 한국군이든, 미군이든 똑 같은 놈들이라고. 총 들고 설치는 그 놈이 그 놈들이라고. 베트콩의 부인이나, 총 쏜 미국 장교의 엄마나, 순이나, 순이 엄마나, 순이 시어머니나, 그들이 만나봐. 총질하겠어? 이데올로기 필요해? 그걸 난 이 영화로 설명한 거야.
신파조의 뉘앙스가 강한 제목 때문에 그런 의미가 많이 상쇄되는 측면도 있다고 생각한다. 오독이 가능하지. 어쨌든 그 전에 그래도 내가 70억을 투자자한테 받아야 될 거 아니야. 그런데 내가 이런 말하면 받아낼 수 있겠어? (웃음) 투자자가 미쳤어? 뭔가 거짓말 좀 보태야 될 거 아니야. 난 사기꾼이 돼야 한다고. 남녀간에 사랑이 있고, 전쟁터에서 여자가 남편을 만나고, 이런 공갈을 쳐야 될 거 아냐. 이래야 돈 70억을 타지. 안 그러면 누가 꽁꼬(공짜)로 70억을 주겠어. 20세기 이데올로기를 타파하는 21세기 영화스토리! 이러면 나한테 누가 돈 주겠어? 아무도 못 줘. 난 이 영화를 찍어야겠고, 공갈을 친 거지. 그럼 그 공갈에 또 배신하면 안되잖아. 그럼 그렇게 구색을 맞춰서 찍어야지. 그렇게 돈 타놓고 딴 영화 찍을 수는 또 없잖아. (웃음)
사실 <님은 먼곳에>는 ‘남편 찾아 삼만리’라고 명명될만한 이야기다. 그 이야기 구조 자체가 로맨스를 예감하게 만들고 신파를 상상케 한다. 그건 이미 호머의 ‘오디세이’야. ‘오즈의 마법사’고, ‘심청전’이고, ‘바리데기’야. 이건 내가 만든 이야기가 아니라 수천 년동안 인간이 수도 없이 이야기한 클리셰라고(cliché)라고. 전혀 새로운 게 아냐.
에로스를 연상시키는 구조란 의미다. 그런데 <님은 먼곳에>는 궁극적으로 아가페를 이야기한다. 에로스로 이 영화를 대하면 너무 협소해지지. 인간의 욕망 중에서 소유와 집착이 바로 그거잖아. 여성성도 어미와 암컷으로 나뉜다고. 예를 들어서 열두 살짜리 소녀가장이 있어. 그리고 일곱 살짜리 남동생이 있어. 그걸 보자기에 둘러싸서 이 열두 살짜리가 키운다고 생각해봐. 그럼 그 열두 살짜리 여자애를 어미로 봐야 돼, 암컷으로 봐야 돼? 당연히 어미지! 그게 모성애잖아. 근데 강남에 있는 돈텔마마 같은데 가봐. 마흔 넘은 아줌마가 화장 진하게 하고 있어. 그럼 그게 어미야, 암컷이야? 암컷이지! 나는 지금 어미 이야길 한 거야. 암컷 이야길 한 게 아니라고. 그런데 자꾸 암컷을 갖다 붙이면 억울하지. 안 그래도 암컷은 다음 영화에서 찍으려고 준비해놨어. 여성의 욕망이 끝까지 갔을 때 나타나는 악마성을 내가 보여줄게. 영화가 2시간밖에 허용이 안 되니까 다 넣을 수가 없어. 4시간이면 다 넣었겠지. 2시간 안에 그걸 어떻게 다 설명하냐. 불가능하잖아.
그 작품이 혹시 이전에 무산된 <매혹>인가? 아니야. 지금 최석환 작가가 쓰고 있는 <7번 국도에 사무치다>라는 작품인데 아까도 말했듯이 여성의 욕망의 끝에 드러나는 악마성을 이야기해보려고. <님은 먼곳에>는 어미와 암컷이란 두 여성의 모습 중에서 모성을 더 키운 그런 영화고. 결국 정, 반, 합, 이야. 그 다음에 찍을 영화가 뭔지 나도 너무 궁금해. 여성의 모성에 대한 위대함을 <님은 먼곳에>에서 했으니 그 다음엔 암컷의 욕망에 대해서 그려보고 싶은 거야. 그럼 그 과정에서 또 뭔가 배우겠지. 난 그게 뭔지 몰라. 그저 시나리오 쓰고, 틀거리만 잡아놓고, 거기에 출연할 여배우의의 눈으로 뚫고 지나가면 뭔가 올 것 같아. 그리고 그 다음에는 그것끼리 합쳐진 무언가가 완성되겠지. 가봐야 알 거 같아.
예전에 했던 인터뷰 기사 중에 이런 말을 했더라. 난 씨네필도 아니고 영화적 지식을 가지고 영화를 찍는 감독이 아니다, 라는. 결국 당신의 영화적 자산은 경험에서 발생한다고 볼 수 있다. 이는 영화를 찍는 과정에서 습득된 경험조차도 다음 순간의 작업에 반영될 수 있다는 의미처럼 들린다. 그게 100%야. 정확하게 봤어. 솔직히 나는 네티즌이나 기자들 글에서 지적되는 비판이나 비난이 있으면 그걸 그대로 갖다가 다음 영화에 메워버려. 그럼 영화가 좋아지는 거야. 반성하면 무조건 좋아져. 찍으면 찍을수록 점점 좋아질 수 있는 건 그 때문이야. 내가 학교를 다니면서 영화를 배웠어, 연습을 해봤어, 조감독을 해봤어? 아는 게 없잖아. 그래서 그냥 주변사람얘기 듣고 그대로 하는 거야. 그게 얼마나 쉬운 건데.
사실 전작들을 통해 당신에게 종종 나왔던 지적이 영화 속에서 여성을 희생양으로써 묘사하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솔직히 그건 한국사회에서 일반적인 남성들이 여성을 대하는 보편적인 시선에 가깝게 느껴진다. 하지만 <님은 먼곳에>를 보고 나면 의문이 생긴다. <님은 먼곳에>에서 나타나는 시선은 본래 당신의 것이었다고 판단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그건 당신의 심경의 변화를 반영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동시에 그 변화는 영화를 찍으면서 진행된 양상으로 생각된다. 영화 안에서 그런 변화가 현재진행형으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아까 말했듯이 영화를 찍는 과정에서 얻어진 경험이 다음 씬에서 영향력을 행사한 것이 아닌가 싶다. 정확한 지적이야. 영화를 찍으면서 심경의 변화가 도모된 거야. 감독은 본래 주인공의 내면을 통해서 관객과 소통하는 거라고. 순이라는 인물이 나야. 단지 그걸 수애가 연기했기 때문에 순이로 보여지는 거지. 그 여성의 눈을 통해 그 많은 남성들, 베트콩이든 한국군이든 정만이든 상길이든 죄다 관통해서 내가 관객과 만나는 거라고. 그래서 처음에 2~30분 촬영할 때까진 나도 헷갈려서 수애하고 소통이 잘 안 되는 거야. 이걸 뭐라고 해야 되나, 싶은 거야. 그렇게 가다 보니까 수애가 자연스럽게 순이가 돼버렸어. 월남에 가니까 순이가 돼버린 거야. 그럼 그냥 쭉 가는 거야. 나도 이건 처음 가는 탐험이었기 때문에, 이 탐험의 종점에서 나 스스로 배운 게 너무 많아.
대부분의 감독들은 자의식을 통해 영화를 찍는데 당신은 그 반대다. 난 자의식 없어. 난 무의식이 강해. 자의식과 무의식이 만나면 자의식이 이겨? 무의식이 이겨? 무의식이 이기지. 그러니까 난 무조건 이겨. (웃음) 웬만한 자의식이 와도 내겐 가소롭지. 난 무의식으로 승부하니까.
당신의 영화가 유희적인 속성을 지니는 것도 그런 무의식적인 반응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싶다. 그렇지. 본능에 충실한 거야.
하지만 <님은 먼곳에>는 당신의 유희적인 태도가 최대한 배제된 영화라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당신과 어울리지 않게 <님은 먼곳에>는 사력을 다한 것처럼 보인다. 내가 <님은 먼곳에>전까진 남성끼리, 그것도 지독한 남성영화 4편을 찍었잖아. 그냥 끝까지 가본 거야. 지독한 마초주의의 신봉자같이 영화를 찍었다고. 남자끼리 노는 건 진짜 재미있어. 그런데 여자 하나 끼면 갑자기 분위기 이상해지지. 고스톱을 치던, 뭘 하던, 남자끼리 놀면 편하잖아. 난 평생 그렇게 살았어. 그런데 이번에 여자가 끼니까 불편한 거야. 맘대로 못하겠어. 그래서 조신해진 거야. (웃음) 조신해지다 보니까 유희성이 슬쩍 빠져나가는 거야. 그러다 보니 남성들의 유희가 얼마나 무책임한 행동인지 느껴지는 거야. 지금 내 왼쪽 눈은 여자 눈이라니까. (웃음) 느껴지지 않아? 한쪽은 남자 눈, 다른 한쪽은 여자 눈. 전엔 둘 다 남자 눈이었는데, 이러다가 나중에 다 여자 눈이 될지도 모르지.
나중엔 여자들끼리 노는 영화를 찍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그럴 수도 있어! 거기까지 갈수도 있어. 끝까지 가봐야지, 뭐. (웃음)
그래도 당신에게 영화를 만드는 일말의 목적 정도는 있을 것 아닌가. 계획하지 않을 뿐, 방향만은 확실해. 영화로 세상을 바꾸겠다. 이 오만스러운! (웃음) 모든 인간은 태어나서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이데올로기가 있어. 근데 난 영화밖에 할 게 없잖아. 다른 뭐로 세상을 바꿔. 당신은 글로 세상을 바꾸고자 쓰겠지만 난 영화밖에 없으니까 영화를 하는 거야. 단 세상을 바꾸는데 왕도가 없다는 거지. 그래서 경우에 따라서 뭔 소재가 와도 결국은 다 똑같은 주제야. 이상하지. 어떤 소재가 와도 다 똑같아. 파이프라인(pipe line)이야. 이 파이프라인에 뭐가 들어오던, 쇠가 들어오건, 돌이 들어오건 다 비슷해지는 거지.
사실 당신의 영화는 크건 작건 모두 다 비극성의 테두리를 두르고 있었다. 그런데 그 비극적인 테두리가 특별한 건 그 와중에도 남자들은 놀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게 바로 남자들의 판타지거든. (웃음)
그것을 뒤에서 바라보는 여성들은 혀를 차면서도 그 상황을 비난하진 않는다. 그건 그 남자들이 철이 없을 뿐, 비열하진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성의 모성애가 유발된다. 하지만 <님은 먼곳에>에서 남자들이 처한 비극의 양상은 좀 다르다. 말 그대로 그들은 돈을 벌러 베트남에 간 비겁한 남자들이니까. 유희가 발생할 수 없는 자리에 남자들이 내몰린 셈이다. 유희가 없으니까 당연히 절대 놀 수 없지.
그런데 순이가 그 곳에서 유희를 발생시킨다. 그건 그 동안 당신이 보여준 남자들의 유희가 얼마나 얄팍했는지를 스스로 고백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자성이지. 나는 몰랐던 거지. 이번에 <님은 먼곳에>를 하면서 깨달은 거라니까. 아까 고백했잖아. 나는 계획이 없는 인간이야. 나는 자의식을 버린 지 오래된 인간이야. 난 오래 전에 자의식이 거세돼버렸어. 그러다 보니까 무의식에 의존해서 사는 거야. 그래서 옛날에 내가 인터뷰한 내용 보면 맨날 하는 말이 있어. 내 머리 30%, 남의 머리 70%로 영화 찍는다. 남의 자의식을 받아들이려면 난 무의식적이어야 돼. 내가 자의식이 강한데 남의 자의식을 어떻게 받아들이나. 내가 여자의 자의식을 받아들이려면 내가 무의식이 돼야 가능한 거지. 내 자의식이 강하면 여자의 자의식과 충돌해서 받아들일 수가 없어. 들어올 수 없잖아. 요즘 만든 사자성어가 하나 있는데, 허공무도, 빌 허(虛), 빌 공(空), 없을 무(無), 길 도(道). (웃음) 한 달 전에 만들었어. 이걸 붓글씨로 써서 집에다 붙여놓으려고. 비우고, 비우고, 또 비워서, 모두 다 없애버리고 도를 닦겠다고 결심했어. (웃음)
나도 아까 고백했지만 <님은 먼곳에>는 불편한 영화였다. 하지만 그 불편함이란 건 불쾌함의 의미가 아니다. 영화로부터 전해져 오는 것이 아니라 관람의 행위자인 내 안으로부터 흘러나오는 것이란 의미다. 무엇보다도 이 영화는 무언가를 전달하는 것이지 주입하는 방식으로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에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나는 이 영화를 절대 강요한 게 아니야. 나는 고백을 한 거야. 나의 고백이라고. 모든 작품은 작가의 고백이어야 되는 거야. 만약에 고백이 없다면 난 그 작품을 인정하지 않아. 남의 고백을 가져왔다거나, 자신의 고백처럼 포장했다거나, 그러면 그건 이미 작품으로서 퀄리티(quality)가 떨어졌다고 본다고. <황산벌>도 나의 고백이었고, <왕의 남자>도 나의 고백이었고, <라디오 스타>, <즐거운 인생> 모두 다 나의 고백이야. 내가 얼마 전에 미술 작품 전시회 할 때, 내 작품 제목 중 하나를 ‘고백도 습관이다’라고 지었어. 고백을 자꾸 하다 보면 습관이 돼. 고백하고 나니까 비잖아. 그러니까 자꾸 새로운 고백이 들어오는 거야. 남의 것이 다 들어오는 거야. 먹고 싸고, 먹고 싸고, 계속 순환하는 거야. 내 안에서.
결국 당신의 영화는 자신의 주의나 주장을 담아내고자 함이 아니라 스스로에 대한 인정을 담고 있는 셈이다. 그렇지. 인정해야 극복할 수 있어. 인정하지 않는 인간은 절대로 극복할 수 없어. 인정해야 반성하는 거야. 반성해야 개선할 수 있는 거지.
이쯤 되니 당신의 남성 판타지를 더 이상 즐길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웃음) 몰라. 또 언젠가 확 돌아갈지. (웃음) 내가 지금 쉰 살이니까 앞으로 백 살까진 살아야지. 그럼 아직 50년이나 남았네. 50년 영화 찍을 거니까 알 수 없지. 일단 계속 반성하면서 열심히 잘 찍어야 돼.
당신은 유희적 인간이다. 당신이 노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란 점은 부정하기 힘들 것이다. (웃음) 그런데 일도 많이 했어!
일조차도 노는 것처럼 하지 않나. 맞아. 노는 것처럼 하지. (웃음)
노는 듯이 일하는 것도 능력이라고 본다. 대부분 일반적인 사람들은 일과 놀이를 구분하지 않나. 그건 이 현대사회 자본주의의 모순이고 불행이야. 니체가 인간의 본능 중에 원초적인 것을 세가지로 얘기했다고 하던데, 그건 웃음과 춤과 놀이야. 그건 인간이 갖고 있는 동물적 본능에서 뗄 수 없는 요소라고. 근데 현대 사회에는 자본주의라는 시스템 안에서 웃음과 춤과 놀이를 일과 분리시켜버린 거야. 사실 옛날에 경작사회나 수렵사회에서는 춤추면서 사냥을 하고, 놀면서 경작을 하고 그렇게 웃으며 일을 했다는 거지. 근데 인간의 이성이 지나치게 성공욕망에 사로잡히면서 끊임없이 일에 대한 강도가 높아지고, 그러니까 웃음과 춤과 놀이는 자꾸 분리되는 거야.
아무래도 오늘날의 정서에서는 쉽지 않은 일이 아닌가. 그래서 사람들이 나한테 자꾸 올드하다, 고 하는데 난 올드한 게 좋아.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 빈티지(vintage)가 오래되면 앤틱(antique)이 되는 것처럼. 그런데 빈티지 옷을 입는다고 그 사람이 빈티지해지는 게 아니란 거야. 인간이 빈티지해 져야지. 옷이 빈티지라고 그 사람이 빈티지가 되냐고. 나는 내가 빈티지가 되고 싶어. 그래서 난 좀 올드하고 싶어. 그리고 요즘 ‘쿨하다’는 말을 쉽게 쓰는데, 난 쿨하다는 말을 굉장히 시니컬하다, 냉소적이다, 비겁하다, 이렇게 받아들여. 죽으면 어차피 다 쿨해져. 살아있는 한 ‘핫(hot)’하게 살아야지, 뭘 쿨하게 살아? 죽은 놈처럼. 무슨 좀비야? (웃음) 제발 다들 쿨한 거 좋아하지마. 난 쿨한 거 좋아하는 사람들 보면 가래침 뱉고 싶을 정도야. (웃음) 그런 사람들하곤 소통이 안돼.
그건 당신의 영화가 극한까지 치닫고 나서야 끝을 본다는 것으로 설명이 되는 문제가 아닐까 생각한다. 쿨하다, 라는 말은 극한에 도달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정지하는 속성이 있으니까. 당신이 좋아할만한 단어가 아닐 만하다. 그건 현대사회가 갖고 있는, 소위 매너라는 말로 포장된 비겁함이야. 쿨하다는 말이 개인주의에서 나온 거야. 서양도 개인주의 이전에 집단주의가 있었다고. 광장문화야. 이게 방문화로 온 거지. 개인주의는 내가 당신한테 침해 받기 싫으니까 나도 당신을 침해하지 않겠다는 심리야. 이게 쿨함이라고. 인간은 점점 더 서로가 서로를 소외시키는 기계가 되는 거야. 그래서 더 외로움에 시달려. 그래서 사랑 신화가 생긴 거야. 돈 신화 못지 않게. 온통 로맨스로 모든 결핍을 메우려고 하는 거지. 그게 심해져서 이젠 원 나잇 스탠드(one night stand)까지 나왔어. 그게 쿨한 문화의 현실이라고. 난 쿨한 거 싫어. 혼자서 땅속에 가던, 화장터로 가던, 죽으면 어차피 외로워. 어차피 소외돼. 그럼 살아있을 때 핫하게 살아야지. 왜 살아있는 사람이 쿨하게 살아. 난 그게 너무 싫어. 그래서 내 영화 보면 핫하잖아. 나는 쿨한 영화 못 찍겠어, 빈정상해서 못 찍겠어. 난 냉소주의를 빈정주의라고 해. 그래서 난 온정주의파야.
당신 주변에 믿을만한 동지들이 존재하는 건 그런 점을 좋아해서가 아닐까 싶다. 그럼. 피가 뜨거운 인간들이 모여있지.
최석환 작가와 당신을 떼어놓고 당신의 영화를 말하기란 힘들다. 서로 궁합이 잘 맞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 서로 달라서 그래. 굉장히 달라. 걔는 물리에 강해. 난 화학에 강하고. 걔가 토목과 나왔어. 그러니 물리, 수학 이런 건 꽤나 알고 나왔을 거 아냐. 시나리오는 물리야. 그리고 영화는 화학이라고. 씬(scene)과 씬은 물리라고. 두 개의 텍스트(text)로서의 물리야. 이게 충돌하는 거야. 씬 바이(by) 씬, 난 그 ‘바이’에 드라마가 있다고 봐. 텍스트에서 텍스트로 이동하는 과정.
시에서 한 줄의 행은 텍스트잖아. 그 다음 행 사이에 행간이 있어. 이게 컨테스트(context)야. 하나의 문장이 건너가면서 다른 뉘앙스로 화학반응이 일어나서 감응을 줄 때 그게 시가 되는 거잖아. 아니면 그게 논문이지. 시는 연역법이 아니라 대부분 도치법이거나 귀납법이야. 이 영화는 정확하게 도치법에 따라서 레토릭(rhetoric)을 간 거라고. A와 B는 같고, B와 C는 같으니까, A와 C는 같다, 이게 아니라고. 텍스트(text)를 통해서 컨테스트(context)를 이해했을 때, 훨씬 더 이모션(emotion)이 커진다라는 거야. (탁자 위, 명함과 담배를 양손에 잡고) 명함하고 담배가 땅하고 부딪히면 열에너지가 나와. 이게 난 드라마라고 본다고. 말 그대로 드라마는 화학 작용이야. 내가 잘하는 건 그거야.
상길은 자신이 사랑하는 애인이 있음에도 부모의 뜻에 저항하지 못하고 순이와 결혼한 셈이다. 결말부에서 순이가 상길의 뺨을 때리는 행위는 어쩌면 그에 대한 질책의 의미가 내포된 게 아닌가 싶다. 상길은 그에 저항할 수 있었으니까. 그렇지. 하지만 그건 제도에 대한 원망이라기 보단 제도에 대한 반발이지, 반발. 순이는 상길한테만 비겁했어. 상길이 뭐라 그러는데도 당당하게 대답하지 못해. 내가 수애한테, 이제 순이는 상길이 이후로 자신이 만나게 될 모든 사람한테 단 한번이라도 비겁하게 피해가지 않고 정면으로 돌파하는 인간으로 남게 될 거다, 라고 설명했어. 시어머니한테마저 정면으로 돌파하잖아. 제사를 지내는데, 네가 어땠길래 네 남편이 군대 가고 월남 가냐, 이러니까 (순이가) 상길씨, 애인 있다 아닙니까, 받아 치지. 지금도 며느리가 시어머니한테 자기 남편 바람 핀다는 거 말하는 게 쉽지 않아. 이건 대단한 도발이야. 그 때 당시면 이건 쳐죽일 년 취급 당할 일이야, 암탉이 우는 정도를 넘어선 거지. 이건 역모라고, 역적이야. 그러니까 시어머니가, 본부인이랑 첩이랑 같나? 난 첩자식이라도 데리올끼다, 나가라! 이러잖아. 도발을 했으니까 나가야지. 나갔더니 친정아버지는, 그 집 귀신이 돼라, 그러고 사실 그 때 순이는 선택할 수 있었어. 시댁으로 안 돌아갈 수 있었다고. 자기 발로 나갔으니까. 자기 길을 갈 수 있잖아. 하지만 순이는 예의 바른 여자였던 거지.
남편 군대간 것을 며느리에게 질책하는 시어머니와 결혼한 딸을 내놓은 자식 취급하는 아버지가 공존하는 시대에서 순이의 저항권을 상길의 그것과 같은 무게로 나열하기란 억울해 보인다. 그 당시 여성이 선택할 수 있는 범위란 한계가 명확하지 않나. 순이의 선택권은 사실 부재하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그 당시 사회환경에서 순이가 갈 수 있는 길은 서울역밖에 없어. 그때 상경한 여자의 80%는 구로공단 가서 공순이 했고, 10%는 부잣집 가서 식모살이 했어. 그래도 베트남에 식모라도 보내는 줄 아냐고, 대사로도 나오잖아. ‘남은 쥐를 마저 잡자!’ 나올 때. (웃음) 그것도 아니면 창녀가 되는 거야. 그 당시 여자로서 할 수 있는 일이 그것 밖에 없는 거야. 순이가 그걸 모르겠어? 그 시대 여자들이 얼마나 삶에 대해 고민이 많았는데. 하지만 순이는 그 전에 예의 바른 여자야. 그 집 귀신이 되라는 친정아버지의 말을 따른 거야. 그런데 시어머니는 자기 남편이 6.25때 죽었어. 그런데 아들이 베트남에 가버린 거지. 어떡할 거야. 집에 있던 금붙이 가져다가 베트남 가서 아들 살리겠다고 결심하는 거지. 나중에 그 금붙이를 순이가 베트남 가져가서 트럭 사는데 쓰잖아. 어쨌든 순이가 들어오니까 망망하게 앉아있던 시어머니가 앞장 서라며 나서잖아. 그래서 순이가 결국, 어머니, 제가 갑니다, 과감한 선택이야. 난 이 시퀀스의 설정이 굉장히 탄탄해서 좋다고 생각해. 어쩌면 일반관객들은 좀 지루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 난 침착하다고 생각하는 거야. 침착한 것과 지루한 건 효과나 현상이 비슷하게 나타나지만 누군 지루하게 보고, 누군 침착하게 보고, 그 차이일 뿐이야.
역사란 기제 안에서 사실 여성의 주체성은 함몰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 역사성에 대한 저항적 태도를 순이의 주체의식으로 드러내는 것 같다. 아주 과감하게, 단 앞에 전제를 하나 붙여. 예의 바르게, 밀어붙이는 여자라고. 공양미 삼백 석에 몸을 던지는 심청이도 그런 거 아냐. 바리데기도 그런 여자 아냐. 심지어 잔다르크도 그런 여자야.
전작들에서 등장하던 여성들도 사실 비중이 작아서 국한적으로 태도가 읽혔을 뿐, 소극적인 여자들은 아니었던 것 같다. 특히 <황산벌>에서 계백의 처는 묘하게 순이와 닮은 지점이 있다. 남성에게 일갈하지. 계백 처의 대사가 압축파일이라면 그걸 알집으로 확 풀어버린 게 순이야. (웃음)
결국 <님은 먼곳에>는 수동적인 여성이 능동적인 여성으로 변모하는 로드무비다. 한가지 의문이 드는 건, 순이가 원래 수동적인 여성은 아닌 것 같다는 점이다. 마치 수동적인 태도를 위장한 여성처럼 보이는 경우도 있다. 위장이라기 보단 억압된 여자지. 그 억압성을 풀기 위해서 두 소녀를 장치로 넣었어. 하나는 미군 보충대에서 공연하다가 실수해서 정만한테 따귀 맞고 베란다에서 앉아있을 때, 옆 베란다에서 꼬마애가 문을 열잖아. 여섯 살짜리 여자애야. 순이가 쳐다보니까 그 소녀가 눈으로 말을 해. 언니, 왜 그러고 있어. 언니도 나같이 소녀였던 시절이 있었잖아. 이런 대사를 친다고 생각하라고 내가 수애한테 그랬어. 그랬더니 어떻게 돼. 순이가 씩 웃지. 금방 따귀 맞고 나온 여자가 미친년처럼 씩 웃고 앉았어. 이상하잖아. 그건 감독의 장치야. 그 다음에 길거리에서 정만 일행이 국수를 먹는데 순이는 또 국수도 안 줘. 그냥 뒤돌아 앉아있어. 돈이 없으니까 남자 넷이서만 먹어. 완전히 여성성을 소외시켜버리는 거 아냐. 근데 열여섯 살 정도 먹은 듯한 베트남 여자애가 순이 앞을 지나서 극장에 들어갔다가 갑자기 뛰쳐나오더니 자전거랑 부딪혀서 시선을 환기시키지. 그 뒤로 폭발이 일어나고 미군이 와서 총을 쏘는 거야. 그런데 하필이면 왜 순이 앞에서 죽냐고. 다 의도가 있는 거 아냐. 순이의 억압된 여성성이 죽는다. 순이다, 저건. 수애한테 또 그렇게 설명했어. 억압성이 죽어가니까 순이 안에 평화가 온다. 그니까 그 순간 그 여자애를 바라보는 순이에게 공포와 평화가 같이 오는 표정이 나오는 거야. 그렇게 디렉션을 준거야. 그래도 쟤는 열여섯 살에 죽어가는데도 자기 할 일을 하고 죽었다. 넌 뭐하냐? 그 다음부터 진짜 써니가 되는 거야.
결국 순이가 써니로 변하는 과정은 단순히 남편을 찾기 위한 여정에서 벗어나 자신의 존재적 가치를 찾아간다는 의미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그 순간, 정만을 비롯한 남성들과 순이의 관계가 역전된다. 거기서부터 남자들의 졸렬함이 순이의 주체적 태도와 대비되어 부각되기 시작한다. 순이는 열심히 해서 된 게 없어. 남편 찾으러 가는데, 거기에 정만이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노력한 거야. 결국 미군부대 바에서 ‘수지Q(Suzi Q)를 부르면서 자신이 얻은 달러를 계속 무대 뒤로 집어 던지잖아. 그 다음 씬에서 정만이랑 남자들은 그 달러를 꼬깃꼬깃 펴고 앉았어. 그런데 순이는 용득한테, 중령한테 데려다 달라고 하지. 그래서 갔어. 남편을 만나려면 순이의 의지로 중령과 쇼부를 쳐야 하는 거야. 잠을 자서라도. 그러니까 문을 닫고 자기 의지로 돌아선 거 아냐. 중령은 한번도 꼬신 적이 없어. 중령은 당연히 할말을 한 거야. 가면 죽는다고. 결국 순이가 돈도 다 던져줬는데 남자들은 약속을 지킬 능력이 없는 거지. 결국 용득이 자기 돈 먼저 태워. 그리고 성찬 한번 쳐다봐. 암말도 못해. 철식 봐. 암말도 못해. 그리고 정만은 고개 숙여. 암묵적 동의. 다 걷어. 다 태워. 이 돈이 무슨 돈이야. 순이가 약속을 지켜서 저렇게 남편에게 가려고 하는데 우리는 순이의 약속도 제대로 못 지켜주고, 반성해야 된다고 생각한 거지. 그렇게 구원받은 거야.
결국 돈을 태운 건 그 구원에 대한 지불행위라고 볼 수 있다. 바로 그거지. 정만이 번 돈이 아니라는 거야. 순이는 자기가 돈까지 벌어다 주면서 갔고, 남자들은 선택을 한 거야. 저런 돈을 가지고 간다는 건 남성성을 끝까지 정당화하려는 것 밖에 안되기 때문에 반성을 시킨 거라고. 의도적으로.
순이를 연기하는 수애의 대사는 전체적으로 많지 않은 편이다. 이것이 수애의 모호한 표정과 함께 짐작할 수 없는 감정의 너비를 형성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수애한테 그랬어. 감독님, 주연 배우가 대사가 너무 없어요. 수애가 그래서, 영화에서 제일 저급한 전달방식이 대사야, 라고 내가 그랬더니, 아, 그래요. 몰랐어요, 그러더라고. 그래서, 원래 그래, 그렇게 믿어, 그랬지. 드라마는 블로킹(blocking)이야. 드라마의 어원이 희랍어(希臘語)로 동작, 움직임이라고. 이건 아리스토텔레스가 만든 거야. 움직임 그 자체가 드라마야. 게다가 이건 구조주의 시나리오야. 순이가 구조적 전진을 하게 해놓은 거야. 순이의 움직임이 드라마인 거야. 월남 가는 것, 가는 것이 드라마야. 가서 밴드하는 것. 밴드하는 게 드라마인 거야. 미국에서 끊임없이 실험한 구조주의 시나리오가 이거야. 이야기의 구조적 전진이 서사성에 꼭 필요한 거야. 이게 서사기 때문에 그래. 서사가 아니면 내가 구조적 전진을 강조하지 않아. 서사의 본질은 어떤 인간이 먼 길을 떠나면서 수많은 경험을 하고 그를 통해 상처와 아픔과 고통을 받고, 결국 환골탈태해서 돌아오면 처음에 갔던 내가 아니라는 거야. 그게 서사의 목적이라고. 그것을 수애한테 계속 강조시켰지. 계속, 나는 너한테 감정을 디렉션하지 않는다. 심정만을 설명하고, 동선만 내가 잡아주겠다. 이렇게.
아무래도 <님은 먼곳에>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건 수애의 얼굴이라고 생각한다. 마치 백지같은 순이의 표정이 모든 의미를 함축하는데 좋은 그릇이 된다. 그런데 다들 그저 수애가 예뻐 보인대. 수애가 저렇게 예쁜지 몰랐대. 어제 어떤 기자가 그러더라고. 어떻게 하면 그렇게 앵글을 예쁘게 잡을 수 있냐고. 미치겠어. (웃음) 내가 한 예를 들어줄게. 베란다에 앉아서 꼬마랑 만나는 장면에서 표정 있잖아. 그걸 찍는데, 내가 봐도 너무 예쁜 거야. 그래서 촬영기사하고 조명기사, 미술, 분장까지 불러서, 얘 너무 예뻐. 무슨 ‘보그’ 표지 찍어? 못 생기게 만들어. 빨리. 이렇게 최대한 안 예쁘게 찍으려고 한 거야. 모든 컷을 다. 여배우는 자기 앵글이 어디가 예쁜지 다 알아. 내가 수애한테 그랬어. 너 예쁘게 보이려면 순이가 아니다. 예쁘게 보이려고 하지마. 예쁜 척 하지마. 그리고 카메라도, 예쁘게 잡지마. 그냥 잡아. 잡아서 예쁜 건 할 수 없지만. 조명도, 절대 예쁘게 캐치하려 하지마. 그렇게 찍었는데 수애가 이렇게 예쁜지 몰랐다고 그래. 왜 그런지 알아? 심정이 예뻐서 그런 거야. 내가 심정만 얘기해줬다고 그랬잖아. 마음이 예뻐 보이니까 얼굴도 예쁜 거야. 확실히 한 컷만 놓고 보면 수애가 예뻐 보일만한 얼굴이 하나도 없어. 근데 영화를 보고 나면 정말 너무 예뻐. 저 여자가.
수애에게 그에 대한 설득력을 부여하는 것이 관건이었을 것 같은데,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 같다. 수애가 그랬어. 자기는 연기에 큰 자신이 있는 배우는 아니다. 연기를 하는 기술 좀 가르쳐달라고. 그래서, 연기하지마. 연기하는 기술은 없다. 연기는 창작이야, 연기는 예술이야. 연기는 기술이 아니다. 딱 이렇게 잘라 말했어. 그랬더니, 그래도요, 그러길래, 그래도 뭘 그래도야. 연기하지마! 그랬더니 얘가 연기를 하나도 안 했어. 연기한 장면은 하나도 없어. 내가 연출할 때 연기하는 거 들키면 나한테 다 NG야.
정진영이 정만이 연기를 막 해. 캐릭터를 만들어야 되니까. 그럼 컷. 너 연기하는 거 지금 나한테 들켰어. 나한테 들키면 내 뒤통수를 보고 있는 관객한테 다 들키니까 연기하는 걸 안 보이게 해줘. 그랬더니 너무 잘했어. 연기 안 했으니까. 있는 현실을 그대로 믿고 한 거니까. 내 연출의 원칙은 연출이 보이면 실패했다고 생각하는 거야. 테이크가 뭐 어떠느니, 연출이 빛났느니, 그러면 난 실패한 감독이야. 좋은 영화는 카메라가 보이지 않아야 돼. 카메라가 보이는 영화는 실패한 영화야. 내 기준엔 그래. 그렇지 않아? 난 연출도 안 보이게 하고, 연기도 안 보이게 해. 그래야 이 거짓말이 관객들한테 믿음이 가는 거야. 그래서 스타일을 싫어한다고.
당신의 작품에서 등장하는 캐릭터들의 모습이 그것을 연기하는 배우의 모습과 밀착해 보이는 건 같은 이유일 것 같다. 심지어 신인 연기자들조차 말이다. (이)준기 할 때 어떻게 했는지 알아? 원래 이십 대 남자애들이 그렇잖아. 자기가 좀 남자답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하지. 그래서 담배도 의기양양하게 뻑뻑 피워대고, 그래서, 너 영화 끝날 때까지 현장에서 담배 조심스럽게 펴, 그랬지. 그리고 장항선 선생님이 오니까 벌떡 일어나서 크게, 안녕하세요! 그러잖아. 그래서, 너 그러지마. 인사도 다소곳하게 하고 일어나지마, 그랬지. 그렇게 6개월 동안 살았어. 그러니까 연기지도가 필요 없어. 그냥 그대로 가면 공길이야. 그래서 걔 공길이 빠져 나오는데 6개월 걸렸어. (웃음)
배우자체를 캐릭터로 만들어버리는 거라고 말할 수 있겠다. 그래서 난 연기지도가 필요 없는 사람이야. 난 인간의 캐릭터나 배우의 본능을 끌어내려고 하지, 그 사람의 기술을 끄집어내려고 안 해, 기술은 다 버려버려. 기술을 싹 비우고 나면 그 다음에 본능이 나와. 그걸 잡는 거야. 그게 메쏘드(method) 연기야.
하지만 당신은 캐스팅에 관여하지 않는다고 들었다. 영화사 아침의 정승혜 대표가 항상 주관하는 걸로 아는데. 난 아무나 와도 그렇게 만들어. (웃음) 다른 배우들도 얘기 안 했을 뿐 마찬가지야. 박중훈도 나한테 와선 코미디 안 하잖아. 다른 데 가서는 코미디도 하고 그렇게 망가져도 나하고 할 땐 안 했잖아. 안성기 씨 봐. 안성기 씨 다른 영화에서 연기할 때 연기 패턴이 보이잖아. <라디오 스타>에서 그게 연기한 거 같아? 아무나 와도 된다니까, 나한테. (웃음)
사람과의 관계에 대한 확신이 있을 때만 가능한 이야기 아닐까? 소통의 문제야. 나는 소통을 할 때 필터가 없어. 내가 당신이랑 처음 만나서 인터뷰를 해도, 당신가 어떤 인간인지, 전에 뭘 했는지, 말투가 어떤지, 이런 건 아예 신경 안 써. 그냥 노 필터(no filter)! 다이렉트(direct)! 오로지 정면을 보고 한 다음, 그 뒤로 잊어버려. 왜냐면 다음에 또 다른 사람과 해야 하니까. 그러니까 당신을 잊어버려도 기분 나빠하지마. (웃음) 난 눈 앞에 있는 사람한테 최선을 다할 뿐이야. 배우한테도 그래. 이 배우랑 얘기하면 이 배우랑 최선을 다하고 돌아서면 잊어먹어, 또 다른 배우 만나면 정확하게 그래. 비켜서는 법이 없어. 정면돌파지.
내일을 생각하지 않고 오늘에 충실하자는 잠언적 삶에 가깝게 보인다. 그럼! 내일을 생각하지 않아. 난 계획을 믿지 않아. 옛날에 계획대로 했는데 되는 게 하나도 없더라. (웃음) 당신은 계획대로 다 됐어? 아니지? 난 그래서 계획을 안 해. 어차피 안 믿으니까. (웃음)
<왕의 남자>이후로 1년에 한편씩 영화를 찍고 있다. <님은 먼곳에>는 10개월 만에 나왔어.
심지어 <즐거운 인생>개봉하자마자 <님은 먼곳에>작업에 바로 들어갔다. 설마 이번에도? 들어가야 되는데 이 최작가가 게을러서. 이씨! (웃음) 내가 줄거리 다 불러줬는데 그걸 아직 정리 못했어.
<님은 먼곳에>는 70억의 제작비가 투자됐다. 전작들과 비교해서 이례적이라 할 수 있을 만큼 큰 돈을 들인 셈인데 아무래도 흥행성적이 남길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을 것 같다. 미치는 영향이 크지. 만약 이게 손해를 본다. 그럼 앞으론 이런 영화 안 찍어야지. 찍으면 바보지. 이제 아주 그냥 얄팍한 영화 찍어야지. 제대로 얄팍한 영화는 내가 잘 찍는다니까. (웃음) 쉽게 말해서 맨발로도 찍어. 온 힘을 써서 절대 안 찍어. 이렇게 온 기를 다 뽑아서 찍었더니만 관객이 안 들었어. 그럼 그냥 설렁설렁 찍어야지. 내가 짱구야? 나도 먹고 살아야지. (웃음)
<님은 먼곳에>는 당신에게 특별한 전환점이 될 것 같다. 전작들은 당신의 내부에 있던 것들을 꺼내서 작품에 채워 넣는 작업 같았다면 <님은 먼곳에>는 당신의 내부에 있는 것들과 외부에 존재하는 것들간의 충돌이 느껴진다. 게다가 당신이 처음으로 남성이 아닌, 여성에 개입했다는 점도 새로운 자극이 됐을 거란 예상을 하게 됐다. 놀라운 건, 난 이거 진짜 내 인생에서 특별한 경험이야. 굉장히 나한테는 중요한 위치의 작품이라고. 내 안에서 내 자의식이 스스로 따귀를 맞은 거야. 당신이 불편했다고 그랬잖아. 맞아. 나인들 이걸 만들어가면서 안 불편했겠어? 그걸 인정하는 과정에서 나한테도 엄청난 내면의 변화가 생긴 거야. 처음부터 이걸 계획하지 않았다고. 아, 물론 기본적인 계획은 했지. 그런데 그 계획애 동화되진 않았지. 그런데 따라가다가 당신 말대로 시선에 개입해버린 거야. 이런 경험은 인생에서 처음 해봤어. 그러니 이 작품은 나한테 있어서 진짜 이상한 영화야. 내가 다음에 영화 찍는데 있어서 미치는 영향이 너무 클 거란 말이야.
사실 전작들은 결말부에서 상승하는 느낌이 있었다. 하지만 <님은 먼곳에>는 가라앉는 느낌이다. 결말로부터 얻어지는 감상이 다른 것도 그 때문이 아닐까 싶다. 시선의 변화가 느껴진다. 정확하게 봤어. 당신이 화학적인 인간이라서 그래. 화학을 정확하게 아는 거야. 최작가는 나한테 이런 얘기를 하더라고. 이건 이준익 감독의 제1기 마감작이다. 최작가가 나한테 이 작품이 갖고 있는 의미에 대해서 그렇게 얘기하는 거야. 이 영화는 나에게 1기의 마지막이자 2기의 시작점에 서 있는 거야. 이 다음은 나도 모르는 세상이라고. 이 세상이 내게 그 다음을 가르쳐준 게 없어. 상길이 순이에게 따귀를 맞은 다음에 그들과 그들의 그 다음 인생에 대해서, 난 내가 현존한 삶에서 배운 게 없어. 이제 그 길을 찾아가는 시작점이 여기야. 이 영화의 끝이 내 인생의 새로운 시작이란 걸 제일 먼저 안거야. 그러니까 난 아직 에너지가 식지 않을 수 있는 거야. 지난 5년 동안 1년에 한 편씩 찍고도, 게다가 이 작품은 불과 10개월 만에 찍었고. 그것도 월남까지 가서, 70억까지 썼고. 그러고 와서 지금까지 일주일 동안 인터뷰를 30개씩이나 해놓고서도 아직도 핏대가 서있는 건, 충혈된 상태 그대로 난 이렇게 멈춰있고 싶은 거야. 이 다음에 날 어디로 끌고 가야 할지, 계속 붙잡고 있는 거야. 이걸 놓치지 않으려고. 그 에너지를 꽉 잡고 있는 거지.
변화가 두렵지 않나? 왜 두려워? 즐겁지. 난 항상 매 순간 인생의 벼랑에 서 있었기 때문에 평지가 오면 못 살아. 난 벼랑이 편해. 외줄이 편해. 항상 외줄에 서 있어야 편해. 땅에 내려오면 막 멀미나. (웃음)
<님은 먼곳에>에서 당신의 의도와 결코 무관하게 폭소를 부르는 씬이 하나 있다. 응? 뭐?
‘남은 쥐를 모두 잡자!’라는 플랜카드 걸린 장면에서. (웃음) 아! 그건 우연이야. 그건 작년 10월 달에 찍은 거거든. 이메가가 아직 당선도 되기 전이야. 안 그래도 기자 시사하는데 거기서 다 웃는 거야. 이런 후폭풍이. (웃음)
사실 촛불시위 현장을 둘러보며 종종 당신 영화가 생각난 적이 있었다. 사람들은 물대포를 맞고, 방패에 찍히는 그런 치열한 상황 속에서도 노래하고 춤추며 유희를 발생시키고 있더라. 그 광장에서 말이다. 사실 내가 배후라니까. (웃음) 바로 그거야. 놀고 있는 거지. 내가 영화로 세상을 바꾸고 싶다는 것도 그런 의미야.
사실 논다라는 행위는 결과적으로 예술과 가장 가까운 행위니까. 당신의 유희적 태도는 결국 당신의 예술적 근본이자 자의식이라고 생각한다. 난 자의식이 없는 사람이라니까! (웃음) 난 사실 세상에 대한 증오가 많은 사람이야. 그게 영화에 나와. 유희란 건 그냥 놀자고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니까.
<강철중: 공공의 적 1-1>(이하, <강철중>)의 흥행 소식이 반가울 것 같아요. 지난 출연작들은 아쉽게도 흥행성적이 좋지 않았으니까요. 아무래도 좀 더 많은 사람에게 자신의 이름을 알릴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겠죠. 혹시 실제로 알아보는 사람이 늘었나요? 시선들이 느껴질 때가 있어요. 예전보다 멀리서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어? 어? 이러는 분이 많이 늘었고, 종종 직접 다가와서 영화 잘 봤다고 얘기해주시는 분들도 계시죠. 그러다 보면 정말 많은 분들이 (<강철중>을) 보시긴 보셨구나, 라는 게 아무래도 피부로 느껴져요.
주변의 관심이 늘었다는 게 몸으로 느껴지면 심리적으로 조심스러워지는 측면도 생길 수 있을 텐데요. 그렇죠. 좀 더 조심성 있게 행동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경우가 있어요. 게다가 다들 좋게 말씀해주시니까요.
연기데뷔작은 TV청소년드라마 <반올림>이었죠. 덕분에 <폭력써클>에서 연기한 한종석은 상당히 의외였던 거 같아요. 엉뚱하고 소심해서 웃음을 주던 소년이 저토록 무시무시해질 줄 누가 알았겠어요? 원래 종석이라는 캐릭터로 <폭력써클>오디션을 본 게 아니었어요. 중간에 많이 바꾸게 됐죠. 오디션 보고 나서 이 캐릭터, 저 캐릭터, 바꿔가며 리딩해보고 그랬어요. 재구를 하게 된 적도 있었고요. 그러다가 나중에 감독님께서 종석이를 리딩해봐라, 하셨고 결국 넌 종석이를 해라, 그렇게 됐죠. 제가 처음으로 하게 된 영화니까 당연히 다른 건 생각하지 않고 그저 열심히 해야 되는 거란 마음을 갖고 연기했던 거 같아요.
결국 박기형 감독님이 무언가를 발견하고 종석이라는 인물을 맡기게 됐다고 볼 수 있겠네요. 혹시 그에 대한 구체적인 이유를 언급해주진 않았나요? 감독님께서 저한테 그 캐릭터를 맡기고 싶다고 생각하셨던 게, 종석은 많은 친구들과 대결하는 구도에 서 있잖아요. 일단 거기서 짱인데, 짱은 무조건 크다는 인식이 있잖아요. 캐릭터 분석표를 봐도 원래 종석은 덩치 크고, 키도 큰 친구였거든요. 그런데 감독님께서 그 반대로 생각하게 됐다고 하셨어요. 작고 왜소해 보이지만 날렵한 친구가 나쁜 악당 대장을 하면 어떨까, 달리 표현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서 그랬다고 말씀해주시더라고요.
흔히 말해서 깡다구가 센 친구였죠. (웃음) 눈빛 자체에서 뿜어져 나오는 살기가 무시무시했어요. 나쁜 놈이죠. 지옥에 갈 못된 놈. (웃음) 한종석은 있으면 안 되는 애에요.
사실 쉬운 일은 아니었을 거란 생각이 들어요. 게다가 첫 영화였고요. 나름대로 개인적인 준비과정이 있었을 것 같은데요. 일단 악역이 나오는 남자영화를 많이 봤어요. 감독님께서는 <좋은 친구들 Goodfellas>에서 조 페시 연기를 많이 보라고 하셨고요. 그래서 알겠습니다, 하고 봤죠. 느껴지는 것들이 있더라고요. 나쁜 악당들의 무서움이란 게 느껴졌어요. 그리고 제 느낌을 관객에게 똑같이 느끼게 해줘야겠다고 생각했죠.
그런 질문도 많이 받았을 거 같아요. 원래 좀 한 주먹하고 놀았던 거 아니냐는. (웃음) 물론 아니고요. (웃음) 저는 원래 운동을 했었거든요. 그리고 저희 집이 용인에 있는데 도외지에서 학교를 다녀서 그런지 특별히 나쁜 친구라고 할만한 애는 없었어요. 제가 원래 웃기는 얘기해주는 거 좋아하고 사람들 재미있게 해주는 거 좋아해서 친구들과는 사이가 좋았어요.
팬카페도 있더군요. 아무래도 <폭력써클>을 인상적으로 보셨던 분들이 대다수로 보이더군요. <폭력써클>을 시작으로 많이 늘었죠. 아, 물론 그렇게 많은 분들이 계시는 건 아니고요. (웃음) 그나마 그 전보단 많이 생겼죠. 관심 있게 봐주시는 분들이.
그 분들이 <강철중>을 봤다면 얼마나 반가워하셨을까 짐작이 갑니다. (웃음) <강철중>까지 포함한 세편의 영화에서 항상 고등학생을 연기했습니다. 1학년 두 번, 3학년 한번, 그랬죠.
폭력써클>당시에는 실제 고등학생이기도 했죠? 19살 말, 고3이었죠. 해가 바뀌면서도 촬영을 했어요. 19살 때부터 찍어서 20살 때 종료됐죠.
졸업 후로도 영화를 통해서 고등학교 생활을 연장한 셈이네요. (웃음) <두사람이다>에서는 불량한 학생은 아니었지만 결국 폭력적인 상태로 돌변하는 연기를 했어요. <강철중>에서는 말 그대로 불량청소년이었고요. <폭력써클>이 차기작 캐스팅에 미치는 영향이 존재했던 게 아닐까 싶더군요. 제가 원해서 오디션을 봤고, 제가 정말 필요해서 캐스팅된 거 라면 상관없어요. 하지만 솔직하게 개인적으로 우려가 되는 부분은 있죠. 그런 제 모습을 보신 분들이 강하게 어필된 부분만 인식하실까 봐 조금 우려되는 부분이 있는 거 같아요.
아무래도 부모님께서 우려되시는 부분이 있을텐데요. 마음이 편하시진 않으실 것 같아요. (웃음) 그나마 이번에 <강철중>에서는 어머니께서 덜 그러시더라고요. <폭력써클>때는 정말 너무나 마음이 안 좋으신 게 보이는 거에요. (웃음) 시사회가 끝나고 어머니께, 재미있게 봤어요? 그러니까 그저, 음, 이러면서 말이 없으시더라고요. (웃음) 그래도 아버지는 잘했다고 하셨고요. 그나마 어머니께서 이번에 <강철중>은 마지막에 친구들과 만나서 포옹하고 그렇게 풀어주는 모습이 너무 좋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이제는 좀 더 풀어진 역할 좀 했으면 좋겠다고 하셨어요. 그래서 저도, 그럴게, 그랬죠. (웃음)
연기를 처음 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운동을 했는데 그만두게 됐어요. 그리고 원래 목표가 운동에 관련된 일을 하는 거였지만 한편으로는 영화배우, 탤런트와 같은 연기자가 되고 싶었거든요. 그런데 어쩌다 부상 때문에 운동을 그만 두게 됐는데 그러니까 연기가 되게 하고 싶어졌어요. 막연했던 부분이었는데 구체적으로 정말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됐죠. 그래서 아무 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본격적으로 트레이닝을 받고 기회가 와서 시작하게 됐죠. 사실 <반올림>공개 오디션을 볼 때는 그런 경험이 한번도 없었으니까 전 그냥 시합 나간다고 생각하고 했어요. 어차피 한번 보면 말 사람이지, 이런 마인드로 했었는데 그게 굉장히 득이 됐던 거 같아요. (웃음) 아무 것도 모른 상태에서, 누가 감독님이고, 누가 작가 분인지도 모르고 그냥 했으니까요.
아무래도 관중이 있는 시합에 출전했던 경험이 오디션에도 도움이 된 건 아닐까요? 그리고 연기할 때도 그런 시선들을 극복하는데도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싶은데요. 근데 전혀 다르더라고요. 처음 <반올림>들어갈 때 제가 3주 동안 한의원을 다녔거든요. 많은 스탭들이 쭉 서 있고 카메라 앞에 처음 서보니까 너무 긴장이 돼서 이 주위(얼굴 볼 부위)에 열이 안 가라앉고 다 빨개진 거에요. 왜 그럴까, 해서 한의원에 갔더니 기가 막혀서 그런데요. 너무 긴장을 해서 순간적으로 탁 막혀버렸다나. 그래서 3주 동안 얼굴에 침 맞고 나니까 괜찮아졌어요. 계속 마음으로 떨지 말자, 긴장하지 말자, 다짐했죠. 제가 촬영초반에는 카메라 울렁증이 너무 심하거든요. <폭력써클>하고 <두사람이다>할 때도 그랬고, <강철중>에서도 그랬고, 울렁증이 너무 심해요.
확인해보지 못한 당사자로서는 의외네요. 영화상에서는 그런 흔적을 느낄 수 없었으니까요. 처음 시작할 때가 굉장히 심해요. 그걸 없애려고 혼자 스스로 집중하자, 며 계속 마음 속으로 다짐하죠. 그나마 이제 (벌린 손을 좁혀오면서) 이만큼씩 점차 줄어드는 거 같아요. 초반부 첫 촬영은 너무 떨려요. 죽을 것 같아요. 진짜. (웃음)
작품을 거치면서 극복되는 게 느껴지나요? 크게 나아졌다고 말할 수는 없는데 조금씩은 나아진다는 느낌이 있죠. 예전 같으면 더 심했을 텐데 이번에는 조금 덜 하다는 게 조금 느껴지거나 기간이 좀 더 줄어드는 건 느껴져요.
강우석 감독님은 어땠나요? 무서웠죠! (웃음)
아무래도 편할 수 없는 게 사실이었겠죠. 그런데 왜 무서웠을까요. 말씀이 없으셨어요. 특히 고등학생 역할로 나오는 저희들에겐 더욱 그랬죠. 말씀은 없으시고 종종 소리도 지르시니까. 근데 최근에 감독님께서 인터뷰 하신 걸 보고 왜 그러셨는지 이유를 알겠더라고요. 대선배님들과 저희가 같이 하다 보니 저희들 부분에서 연기 집중력이 떨어지면 영화가 우스워진다고 말씀하셨는데 일리가 있어요. 그래서 일부로 저희 근처에도 안 오셨고, 당연히 저희는 옆에 오시면 모를까 감독님 옆에 함부로 못 갔죠. (웃음) 근데 진짜로 항상 말하는 거지만 아버지 같은 느낌이 있어요. 속으로 따뜻한 가부장적 아버지 같은? (웃음)
강우석 감독님께서 특별히 디렉션은 주시던가요? 일단 준비기간이 길었어요. 첫 오디션 보고 나서 이게 픽스된 게 아니라고 말씀하셨어요. 그리고 촬영 들어가기 전까지 사실 시나리오 전체를 본 적이 없었어요. 항상 쪽대본을 보고 리딩하고, 촬영해보고 그런 식이었죠. 그러다가 감독님께서 이런 부분을 수정해봐라, 라고 조감독님께 말씀하시면 조감독님께서 저한테 이런 부분 이렇게 말씀하셨으니까 염두에 두고 있어, 라고 전달해주시고, 그러다가 어느 정도 픽스된 것 같다는 느낌이 들 때까지도 항상 연습을 많이 했어요. 카메라로 계속 찍고. 결국 본격적인 촬영에 들어가면서 감독님께서 말씀하셨어요. 이전까지 연습했던 건 다 비워라. 네가 맡은 태준 캐릭터만 생각하고, 백지상태가 된 채 와서 내 디렉션에 대해서 반응해야 한다. 결국 현장에서 디렉션을 많이 받았죠.
경험이 많은 감독과 배우들과 함께 연기를 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상당한 자극이 될만한 일이 아니었을까 싶군요. 제가 <강철중: 공공의 적 1-1>에서 연기할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영광이죠. 언제 그런 대선배님들하고, 강우석 감독님하고 해볼 수가 있을지 알겠어요. 만약 제가 오디션에 떨어지고 다른 사람이 캐스팅됐으면 진짜 눈에 불 켜고 봤을지도 몰라요. 진짜 어떻게 하나 보자, 라면서 진짜 이렇게(눈을 부릅뜬 채) 봤을 거 같아요. (웃음)
<강철중>의 안태준은 처음엔 리더가 아니었지만 차츰 리더격으로 성장하는 캐릭터에요. 혹시 본인은 친구들 사이에서 리더 역할을 맡는 편인가요? 저는 주로 이끄는 편이에요. 예를 들어 주말에 친구들을 만나면 무조건 저희 집 가는 거죠. 저희 집으로 가서 짐 풀어놓고, 볼 차러 가자, 이러는 편이죠. 라면을 끓여먹어도 저희 집에서 끓여먹으니까요. 매맞을 때 빼고는 친구들 앞에 나가는 걸 좋아했어요. (웃음)
책상 밀고 앞으로 나가는 거 아니면 말이죠. (웃음) 친한 친구들 성향이 활동적일 거란 생각이 드네요. 본인도 실제로 보니 꽤 호탕한 성격인 거 같고요. 그런 게 너무 좋아요. 저희는 남자학교라서 학교가 엄격한 편이었던 거 같아요. 그래서 규율에 대한 스트레스도 많고, 머리도 못 기르고, 명찰조차 삐뚤어지면 안되고, 그러다 보니까 오로지 친구들하고 노는 걸로 스트레스를 풀었죠.
<두사람이다>에서 최상경 역이 생각나네요. 그 친구도 사실 본래 쾌활한 성격이었으니까요. 그런 거 같아요. (웃음)
그런데 <두사람이다>는 우정출연으로 크레딧에 이름을 올렸더군요. 친분이 있었나요? 오기환 감독님하고 친분이 좀 있었어요. 어떻게 하다가 몇 번 뵙게 됐는데 그러다가 감독님과 가까워 졌죠. 그러다가, 너 이거 한번 하자, 그렇게 된 거에요.
나름대로 역할 비중이 크진 않았지만 준비해야 할 부분이 많아 보이던데요. 펜싱 4개월 정도 배웠어요. 원래 윤진서 씨 전에 (캐스팅됐던) 이수경 씨와 같이 연습하고 있었고 그 뒤로 윤진서 씨와도 연습했죠. 개인적으로 펜싱은 전혀 몰랐는데 취미삼을만큼 특기가 생긴거죠. 한국체대에서 배우고, 서울체고에서도 배웠어요.
원래 운동을 했으니까 운동신경은 좋을 것 같아요. 운동을 해서 좋은 부분이 확실히 있는 거 같아요. 일단 재미있었죠. 보는 것도 좋아하는데 직접 해본다는 게 정말 좋았던 거 같아요.
사실 지금까지 출연한 영화에서 상대방과 대결하는 장면이 꼭 등장했어요. 그런 측면에서는 과거 운동 경험의 덕을 봤을 것 같은데요. 도움은 되죠. 신체를 빨리 릴렉스 시킬 수 있다고 할까요. 그런데 앵글에 담아야 되는 거라서 더 힘든 점도 있어요. 예를 들어 발차기를 해도 카메라에 보이게 차야 되는 거라서요. 제 몸에 익었던 자세를 고쳐야 하는 경우가 있거든요. 그런 건 고치기가 힘들어요. 정두홍 무술감독님께서도, 운동하면 이런 경우엔 고집이 생겨서 오히려 더 안 좋다, 그러시더라고요. 그런 점에서 힘든 게 있죠.
몸에 이미 밴 습관을 고치는 건 힘드니까요. 게다가 상대배우들은 사실 그런 경험이 부재한 사람도 많아서 되려 조심스러워지는 경우도 있을 것 같아요. <강철중>에서 교문에서 시비 붙은 상대랑 싸우러 가는 장면이 있잖아요. 그런데 촬영 중에 서로 합이 안 맞아서 저한테 그 분이 입 주변을 잘못 맞았어요. 그래서 자세히 보면 입 주위가 같은 장면인데도 조금 달라요. 그 뒤로 나머지는 며칠 뒤에 다시 찍었거든요.
입이 부었나 보군요. 예. 그래서 이게 나만 잘해도 안되고 이분만 잘해도 안된다는 걸 알았죠. 서로 합이 맞아야 되는 거에요. 간단하게 생각할 건 절대 아니더라고요. 몸만 쓰는 게 아니라 서로의 호흡이란 게 중요하다는 걸 알았어요.
특별히 좋아하는 영화 장르가 있나요? 저는 액션도 좋고, 코미디도 좋지만 휴머니즘을 전달하는 영화가 제일 좋은 거 같아요. 사실적이면서도 인간적인 거, 그런 게 전 되게 좋아요.
감성적인 면이 있나보네요. 혹시 눈물이 많은 편인가요? 조금……눈물 안 날 것처럼 생겼는데 눈물 좀 흘려요. (웃음)
<강철중> 이전까진 대부분 단선적으로 연기했어요. 그런데 <강철중>에서는 나름대로 감정적 변화를 보이는 역할을 연기하게 됐군요. 감정을 연기한다는 게 어땠나요? 제가 이런 생각을 했었거든요. 웃는 연기를 할 때는 진짜 즐거워서 하잖아요. 화난 건 진짜 화나서 해야 하고, 마찬가지로 슬퍼서 울 때는 이 상황이 슬퍼서 울어야 된다고 생각했어요. 만약 다른 생각을 끌어와서 눈물을 흘린다면 그게 합당한 건지, 저는 거기에 대해서는 생각이나 고민이 많았었어요. 이 감정을 그 감정으로 해도 되는 걸까 말이죠. 연예TV프로그램에 나오는 어떤 연기자는 인터뷰 중에 그런 상황에서 다른 생각한다고 하는 분들도 있잖아요. 저는 저런 것에 동의를 못했어요. 그런데 아무래도 제 생각이 맞을 거라고 봐요. 극에서 슬퍼야 맞는 거 같아요.
하지만 연기를 하다 보면 그렇지 않은 상황에서도 그런 연기를 끌어내야 하는 상황이 닥쳐올지도 몰라요. 아직까진 이런 경험이 없었기 때문일지도 모르죠. 감독님께서 이렇게 해야 한다고 하시면 거기에 대해서 항상 생각을 하죠. 종종 제가 생각했던 것과 달리 생각도 못했던 부분이 있으니까요. 하지만 결국 어차피 비슷한 거 같아요. 생각을 못했던 부분이라 해도 감독님이 필요해서 하라고 하시는 것일 테니까, 거기서 최대한으로 그 생각에 맞게 노력하면 된다고 생각해요.
동년배 배우들과 호흡을 맞추는 경우가 많았어요. 그런 경우에는 무의식적으로라도 경쟁의식이 생기진 않던가요. 마음 속으로 선의의 경쟁의식은 있죠. 그래서 더 시너지가 있지 않았을까 생각도 들고요. 그렇다고 내가 좀 더 파이팅 해야지, 이런 건 아니었고요. (웃음)
또래배우들과 함께 있으면 현장 분위기에 적응하기에 편한 점은 있을 것 같아요. 그래서 이번에는 좀 어려웠죠. (웃음) 선배님들이 많다 보니까. 그나마 예전보단 요즘에 선배님들 뵙기가 조금 더 편해진 거 같아요. 영화촬영기간 동안에는 강철중, 이원술로 상대하다 보니 제가 감히 어떻게 할 엄두도 안 났는데 이젠 촬영 끝나고 나서 설경구 선배님, 정재영 선배님, 강신일 선배님, 이렇게 무대 인사도 같이 다니고 하다 보니까 전보다는 마음이 더 편해진 거 같아요. 대화도 더 많이 했고요.
<폭력써클>에서 연기했던 한종석 캐릭터는 몰입도가 상당했을 거란 생각이 들어요. 그렇게 역할에 몰입하고 나면 빠져 나오는 것도 중요하죠. 연제욱: 그게 좀 오래 걸렸던 거 같아요. 맞죠? 형? (옆에 있는 매니저가 고개를 끄덕인다.) 매니저: 한 6개월 정도를 종석이란 캐릭터에 빠져서 종석이로 살았거든요. 저를 포함해서 주위에 사람들이 잘 몰입하라고, 종석아, 종석아, 불렀으니까요. 준비했던 기간까지 합치면 대략 1년 정도의 시간을 종석이로 살았다고 할 수도 있어요. 기간이 좀 걸렸어요. 강하게 사로잡힌 게 있었어요. 매니저: 그래서 이제 그걸 무화 시켜주기 위해서 얘기도 많이 하고, 다른 역을 찾아보고 그랬죠. 아시다시피 역할이 너무 셌잖아요. 연제욱: 영화외적으로 설정을 했던 부분도 있거든요. 종석이는 원래 가난한 집에 살았고 아버지는 포악하고, 따뜻한 어머니가 없는 그런 가정에서 자랐을 거라고 설정을 했죠. 어릴 때부터 극단적인 루저였을 거란 생각으로 완전 몰두했어요.
아무래도 캐릭터에 짓눌리는 면이 있었던 것 같은데요. 아무래도 그런 경험을 겪은 만큼 캐릭터에 몰입하는 것 자체에 대한 걱정이 생기지 않았을까 싶은데요. 지금도 많이 서툴지만, 그땐 너무 많이 서툴러서 몰입하고 빠져 나오는 능력이 현저하게 떨어졌던 탓도 있죠. 경험이 없다 보니까요. 그래도 그것 때문에 배웠으니까 만약에 다음 번에 비슷한 상황이 생긴다면 그 땐 좀 더 쉬워지겠죠.
그런 면에서는 <강철중>이 나름 좋은 간접경험이 됐을 것 같네요. 설경구 씨나 정재영 씨처럼 연기 몰입도가 높은 배우들의 실전을 옆에서 지켜봤으니까요. 두 분과 호흡을 맞추는 장면도 많았는데 어땠나요? 어휴~~~(감탄하듯), 연기를 하면서 눈을 마주치면 자연스럽게 더 끌어올려져요. 연기를 하면서 생각지도 못하게 감정이 끌어올려지는 경우가 있잖아요. 말로 설명하기가 좀 힘들긴 한데 선배님들과 함께 연기를 하면 제 능력이상으로 끌어올려지는 게 있는 거 같아요.
원래 예상했던 게 80~100이라면 120까지 나오더라는 말이죠? 예. 워낙 몰입도가 높으셔서 저까지 더 몰입해서 같이 끌어올려주시는 거 같아요.
까마득한 선배라서 일단 긴장도 많이 됐을 텐데요. 정말 많이 떨렸어요. 태준하고 철중하고 처음 만나는 씬이 설경구 선배님하고 처음 촬영하는 날이었거든요. 제가 선배님하고 한다는 것만으로도 어찌나 떨리던지 진짜, 아~~, 게다가 선배님 눈이 너무 무서워서요. (웃음) 그래서 진짜 많이 떨렸던 거 같아요. 너무 어려웠어요. 진짜 현장에선 너무 어려웠어요.
그 동안 영화 속에서 친구들과의 관계에 얽힌 역할을 맡게 됐는데, 그런 연기를 하다 보면 실제 현실상의 친구들이 그리워지는 순간도 있을 것 같습니다. 전 친구들과 있는 걸 되게 좋아하는 편이기도 하니까요. 다같이 노는 게 너무 좋고 일단 편하잖아요. 서로 특별한 말하지 않아도 그냥 같이 있다는 게 너무 좋으니까요. 그런데 지금은 좀 외로워요. 대부분 다 군대를 갔거든요.
친구들도 <강철중>을 봤겠군요. 다 봤대요. 휴가 나온 친구들도, 공익근무하는 친구들도 봤다고들 하고, 친구들은 다 봤어요.
친구들은 다 군대에 가게 되는 상황에서 본인도 그에 대한 고민이 생기진 않던가요? 아직은 막연한 거 같아요. 피부로 느껴지는 부분이 없어요. 분명 가야 되는 거고 친구들도 대부분 가 있지만 전 아직까진 피부로 느껴지는 부분이 없어요.
처음에 연기를 한다고 했을 때 친구들 반응은 어땠나요? 크게 동요는 안했…...아니, 모르죠. 얘네들이 저한테 표현을 안 해서 나만 모를지도 모르니까요. (웃음) 어쨌든 운동 그만두고 나서 연기트레이닝 받고 <반올림>에 출연하게 됐을 때 애들이 되게 놀랬었죠. 놀라는 그 와중에 그러더라고요. 넌 개그맨 될 줄 알았는데 이럴 줄은 몰랐다고. (웃음) 친구들 반응이 이랬는데, 결국 개그맨 얘기는 이제 안 꺼내더라고요.
개그맨 운운하는 거 보니까 친구들 사이에서 상당히 유머감각이 있는 편이었나 보죠? 아, 제가 학창시절에 한참 배꼽 좀 빼줬죠. (웃음) 한번은 어머니께서 학교 체육대회에 오셨다가 제가 누군지 몰라보셨대요. 그래서 담임선생님한테 제욱이는 어디 있냐고 물었는데 담임선생님이 저기 앞에 나가있는 애가 제욱이라고 그래서 깜짝 놀랐다고 하시더라고요. (웃음) 학교 다닐 때 수업 중에 친구들이 지루해할 때가 있잖아요. 그럼 친구들이 저한테 싸인을 보내요. 그럼 제가 선생님한테 말을 걸기 시작하는 거에요. 이 선생님께서는 뭘 좋아하시지, 생각해서 거기에 대해서 얘기를 꺼내다 보면 선생님께서 더 신이 나셔서 이야길 하시는 거죠. 한번은 친구가 핸드폰을 뺏겼을 때, 그 친구 아버지인 척 해서 핸드폰 돌려받은 적도 있어요. (웃음)
그때부터 이미 싹이 노랬군요. (웃음) 그런데 어머니께서 아들을 몰라보셨다고 했는데 집안에서는 그런 모습을 잘 드러내지 못하는 편이었나 보죠? 그래도 연기를 시작하고 나서 집안의 웃음 코드가 저로 바뀌었죠. 예전에는 학교에 다니는 청소년 특유의 스트레스가 있었던 거 같고, 중학생 때도 운동까지 하다 보니 집으로 돌아오면 오면 11시가 넘었거든요. 그래서 바로 자고 아침7시에 일어나 학교 가야 되니까 어머니께 제 모습을 보여드리기가 쉽지 않기도 했죠. 시합을 보러 오시면 맞고 때리고 그러니까 마음 아파하시는 부분도 있었고요. 그런데 어느 날 그런 저를 보시고 뒤집어지신 거죠. (웃음) 그 때 제가 <웬만하면 그들을 막을 수 없다>시트콤에 나왔던 노란 이소룡 옷을 인터넷으로 주문해서 운동장 가운데서 입고 애들을 웃기고 있었으니까요. (웃음)
어머니께 재미있는 아들이 됐군요. (웃음) 아무래도 연기를 시작하게 됨으로써 나타난 변화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연기자가 된 이후로 스스로에게 감지되는 변화가 있었을 것 같아요. 원래 워낙 활발했지만 좀 더 활발해진 면이 있죠. 무엇보다도 사람들과 대화하는 폭이 더 넓어졌다고 할까요, 예전에는 한가지만 가지고 얘기했다면 이젠 조금 더 생각할 수 있는 게 많아진 거 같아요. 그리고 연기를 시작하고 나서 책을 많이 보게 됐고 영화도 많이 보게 됐고요.
예전엔 운동 때문에 바빠서 못했던 일도 많이 하게 됐을 테고요. 영화는 원래 좋아했지만 책도 많이 보게 됐고 그러려고 노력하게 됐죠.
연기에 대한 막연한 꿈을 현실에서 이뤄가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텐데 막연했던 생각을 확실히 구체화시키는 데는 어떤 계기가 필요하죠. 그런 지점이 있었을까요? 아직 확신할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열심히 더 해야겠다는 투지가 생길 수 있었던 계기는 있었죠. <반올림>때 제가 원래 뚱뚱했었어요. 그런데 중간쯤에 제 수영장 씬이 나오는 에피소드가 있었어요. <반올림>감독님께서 그 장면에 나오려면 넌 살을 빼야 된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런데 그 때 제가 좀 더 내 모습이 화면에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참 하던 차였거든요. 그런 찰나에 감독님께서 살 빼면 너 하고 싶은 거 한번 시켜준다고 그러시는 거에요. 그럼 저 몸 만들 테니까 수영장 씬 넣어주세요. 이렇게 말씀드렸더니, 너 할 수 있냐, 그래서, 할 수 있다, 그랬죠. 결국 살을 뺐고 수영장 씬을 하게 됐어요. 덕분에 일단 외양적으로 변화가 생겼죠. 하지만 무엇보다도, 이걸 하면 이렇게 한번 해주실 수 있겠느냐, 라는 저의 제안을 통해 얻어지는 바가 있었잖아요. 그래서 노력하면 되는 게 있구나, 라는 교훈을 얻었죠.
노력하는 만큼 보답 받는 즐거움도 없으니까요. 그렇게 연기자로서 뭔가 얻어가는 것들이 생길 거에요. 적게는 사람을 얻었다던가, 크게는 정말 자신의 내면적인 성숙을 깨닫게 될 수도 있겠죠. 한 작품을 끝내고 나면 그런 것들이 더 크게 다가오는 순간이 있을 것 같기도 하고요. 아직 출연작 수가 많진 않지만 되려 이럴 때 각각의 작품이 더 소중하게 다가올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어느 순간마다 그렇게 무언가 배우고 있다는 소중함이 있어요. 촬영 중간에도 배워지는 게 있고, 촬영이 끝나고 집에 가는 동안에도 아!(뭔가 떠올리는 표정으로) 이렇게 되는 순간이 있죠. 제 영화를 직접 보게 될 때는 특히 더 그렇죠. 매 순간순간마다 생각해야 되고 고민해야 할 것 같아요. 그러다 보면 알고 싶어지는 것도 많아지고, 그 안에서 아, 그렇구나, 하고 깨닫게 되는 것도 생기죠. 그래서 이번에는 이렇게 해서 이렇게 됐으니까 다음에는 저렇게 해봐야지, 라는 생각도 하게 되니까요.
처음 자신의 얼굴이 TV에서 나오는 걸 보는 순간 기분이 어떻던가요? (웃음) 제가 직접 첫 회 녹화를 했었어요. 근데 보시면 아실 텐데 말도 못해요. 어휴~~! 그때 앞머리도 일자로 잘랐다가 갑자기 촬영이 금방 진행돼서 그것도 웃기고 또 어찌나 뚱뚱한지, 게다가 얼굴은 빨갛고 막 그러는데, 어이구~.(웃음)
스크린은 TV와 또 다른 느낌이었을 것 같은데요. 사실 처음 영화를 볼 때는 죽을 거 같아요. (고개를 도리질 치면서) 부끄럽죠. 전 정말 숨을 안 쉬는 거 같아요.
긴장이 돼서겠죠? 예. 그래서 숨을 죽이는 게 아니라 숨을 안 쉬고 보는 거 같아요. 특히나 그렇게 사이즈가 큰 화면에서 제 얼굴이 나오는 걸 지켜보면 숨이 쉬어지지 않는 기분이죠. (웃음)
자신이 찍힌 영상을 보게 되면 실제로 내가 몰랐던 내 모습을 발견하게 되는 경우도 있을 텐데요. 한종석 같은 경우에서는 정말 내가 이렇게 나쁜 놈이 아닐까, 생각해보긴 했어요. (웃음) 제가 생각해도 한종석은 나쁜 놈이라고 생각되니까요. 그리고 <강철중>에서 학교교문 앞에 찾아온 다른 학교 애가 죽은 친구를 조롱하고 빈정거릴 때도 내가 이렇게 했었구나, 라는 걸 느꼈어요. 저는 제가 거기서 그렇게 했다고 생각 못 했었거든요. 생각했던 것과 다르게 나온 거 같아요. 아무래도 자기 얼굴로 표정을 짓거나 대사를 할 때 모니터로 보면서 하는 게 아니니까 제가 생각한 것들이 있을 테니까요. 물론 세세한 부분들까지 다 머릿속에서 계산된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스크린에서 볼 때는 간혹 그렇게 보여지는 게 있었어요.
학업도 병행해야 할텐데 힘들진 않나요? 지금 휴학했어요. 올 해 다시 들어가려고 생각하고 있어요. 수시나 시험을 좀 보려고요.
학교를 옮길 생각인가요? 그냥 1학년으로 들어가서 입학을 하려고 생각 중이에요.
다니던 학교가 있는데 굳이 학교를 옮기려는 이유가 뭘까요? 학교에서 배우고 싶은 게 분명히 있는데 그게 잘 안 맞더라고요. 제가 공연예술학과다 보니까 뮤지컬을 위주로 하고, 정극 연기수업은 일주일에 한 시간 정도밖에 없었어요. 좀 배우고 싶었던 건 그쪽이었거든요. 그리고 무대연기 경험도 할 수 있었으면 했죠. 연기 외적으로 영화적인 것들을 학문으로 공부할 수도 있을 테고요. 물론 그게 학교에서만 배울 수 있는 게 아니란 건 알아요. 하지만 거기서 얻을 수 있는 게 있다고 생각해요.
직접적인 이론에 대한 중요성도 간과할 수는 없으니까요. 그럼 휴학하게 된 건 연기적 병행 때문이라기 보단 그런 학업에 대한 고민 때문인가요? <폭력써클>촬영 중에 입학하게 됐고, 그 와중에 한 학기가 시작해서 초반에 잘 못 다니게 됐었죠. 촬영이 다 끝나고 나서 제대로 학교를 다니다 보니 이게 아니다 싶은 게 있었어요. 연기이론 같은 걸 배우고 싶었는데 노래하고 춤추고 이러니까 난 이걸 배우고 싶었던 게 아닌데 싶었던 거죠. 공연예술학과라서 뮤지컬 위주로 많이 배우더라고요.
그럼 아무래도 연극영화과를 지망하고 있겠군요. 다음 달부터 고민을 좀 많이 해야 될 거 같아요.
세 편의 영화에서 맞거나 때리는 장면이 나와요. 그게 다 합을 짜서 이뤄지는 연기적 순간이지만 피부와 피부가 맞닿는 느낌이 만만하지 않게 느껴지는 순간이 있을 거에요. 좀 엉뚱한 질문이지만 때릴 때가 편하던가요, 맞을 때가 편하던가요? 둘 다 똑 같은 점은 하나 있어요. 한번에 끝났으면 좋겠다는 거. (웃음) 때릴 때도 한번에 했으면 좋겠고, 맞을 때도 한번에 했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이 들어요.
아무리 연기라지만 미안할 수 있고, 반대로 화날 수도 있으니까요. 실제적으로 유발되는 감정을 억눌러야 하는 순간이 있을 거에요. <폭력써클>때 군인하고 싸우는 장면에서 뺨을 맞잖아요. 거기서 한 여덟 대인가를 살살 맞다가 여섯, 일곱 대를 또 세게 맞았거든요. 그러다 보니 진짜 너무 아픈 거에요. 그리고 종석이가 아무렇지 않게 보면서 맞고 반격해야 하는데 그렇게 한 세대 맞고 나니까 그 다음부턴 이제, 때릴 텐데, 라는 긴장감에 스트레스가 쌓이더라고요. 그래도 전 그냥 연기하던 거랑 똑같이 했다고 생각했는데 형들이, 너 진짜 화났지? 그래서 아니라고 했죠. (웃음)
맞는 순간보다도 그걸 예감하고 기다리는 순간이 두렵게 되니까요. 맞아요. 맞기 전 찰나가 있잖아요. <강철중>에서 설경구 선배님이 부디 센 놈이 경찰 되라, 그러면서 뒤통수 때리는 장면에서도 ‘부디’ 할 때부터, 이제 맞을 텐데, 하면서 긴장했어요. (웃음) 오로지 그저 한번에 오케이가 좋아요. (웃음)
또래 연기자들과 호흡을 맞추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 중 친해진 사람도 있겠어요. <반올림>때 (정)기범이랑은 1년을 함께 촬영해서 너무 친해졌고요. <폭력써클>때 (김)혜성이랑 동갑이라 친해졌죠. <반올림>친구들이나 <폭력서클>때 사람들은 정기적으로 만나는 편이에요.
아무래도 비슷한 나이라서 공감대 형성도 쉽겠죠. 게다가 서로간에 격려나 의지도 될 테고요. <강철중>시사회 때 혜성이가 와서 가운데서 손 흔들고 있더라고요. 그리고 나서 다음 관에 가보니까 <폭력써클>때 친한 형들 다 오셨고요. 형들이 ‘연제욱 파이팅!’ 하는 거에요. 상영관 나가면서 강우석 감독님이 (익살스런 표정으로) ‘뭐? 연제욱 파이팅?’ 이러시는데 어찌나 진땀 나던지. (웃음)
지금까지 고등학생 역할을 해왔습니다. 그런데 아무래도 이제 고등학교 졸업식을 생각해 볼만한 타이밍이 아닐까 싶기도 한데요. (웃음) 지금 생각으로는 성인 연기라고 하면 벽이 있는 거 같아요. 지금까지 고등학생 연기만 했는데 성인 연기를 한다고 생각하니까 어떡해야 하나 싶어지죠. 하지만 한편으로는 다를 바 없다고 생각도 하죠. 분명히 그에 대한 엄청난 노력도 필요하겠지만 제일 중요한 건 집중력인 거 같아요.
막연한 두려움이 있나요? 항상 부담감과 두려움은 있죠. 지금까진 좋은 말씀들을 많이 해주셨으니까 그만큼 당연히 잘해야 된다고 생각도 들고요. 좋게 말씀해주셨는데 다음 번에 어? 이렇게 만들면 싫잖아요. 더 잘 해야겠다, 라는 생각이 그래서 더 드는 거 같아요.
안태준 역할을 위해서 특별한 준비가 있었나요? 살을 좀 뺐어요. 워낙 리딩이나 준비연습을 많이 했지만 개인적으로도 집에 있을 때나 혼자 있을 때는 대본을 많이 읽어봤던 거 같아요. 많이 읽고, 적어보고, 내 스스로 정리해보고, 생각도 많이 하고. 아무래도 혼자서는 연습보단 생각을 많이 했던 거 같아요. 분석도 좀 하고, 아니, 분석이라고 하기엔 웃기고 그냥, 얘는 이럴 거야, 이런 식의 추측이었죠. 다만 <폭력써클>의 한종석하고, <강철중>의 태준이가 모두 강한 면이 있어서 똑같아 보일 까봐 걱정했었죠.
과거에 비해 연기를 임하는 자세가 달라진 점이 있나요? 예전보단 생각하거나 준비하는 부분이 많아진 거 같아요. 종석이 때는 아까 말씀 드린 것처럼 센 영화를 많이 봤거든요. 거기서 느껴지는 걸 관객들에게 그대로 느껴지게 만들어야 된다고 생각하면서 표정 같은 걸 생각하고, 내가 이걸 어떻게 할까, 를 생각했죠. <폭력서클>당시엔 현장에서 박기형 감독님도 많이 잡아주시긴 했죠.
한종석 같은 경우는 조 페시 연기를 많이 참고했듯이 안태준을 위해 참고한 모델은 없나요? 아니요. 안태준은 없었어요. 특별히 감독님께서 말씀이 있으셨다면 봤겠지만 특별히 말씀도 없으셨고요. 그냥 생각을 많이 했던 거 같아요. 그런데 전 누구를 참고하는 건 좋지만 그게 항상 도움이 된다고는 생각 안 해요. 비슷한 캐릭터나 장면에서 느끼는 감정을 파악하고 그걸 관객분들에게 느끼게 해드려야지, 그걸 벤치마킹 한다거나 이런 건 그저 따라 하는 것에 불과하니까요.
자신의 캐릭터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는 거죠? 예. 맞아요.
연기를 시작한 이후로 영화를 보는 관점도 달라졌을 것 같은데요. 예전에 모르고 볼 때는, 말 그대로 ‘영화’를 봤죠. 근데 이젠 진짜 재미있게 봤다면 두세 번은 봐야 돼요. 영화를 보면서 그 안에서 뭔가 끄집어내려는 것도 있어요. 저기서는 저렇게 해야겠구나, 이렇게 하는 것도 괜찮겠구나, 이렇게 생각하게 됐죠.
본인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작품이 있나요? <살인의 추억>같은 경우는 영화감상부에서 활동할 때, 영화관에서 봤어요. 영화가 너무 재미있었고 마치 뭐에 맞은 거 같았어요. 인간극장 같은 자연스러움이 있잖아요. 그리고 어느 날 친구가 <공공의 적> 봤냐고, 그러는 거에요. 그게 뭐야? 그랬더니, 쓰러질 거라고 그래서 보곤 쓰러졌죠. (웃음) <주먹이 운다>같은 경우는 스무 번도 넘게 봤어요. 두 인물에 대해 공감하게 되는 느낌이 좋아서요.
단순히 대비를 위한 캐릭터 구도라기 보단 나름대로 설득력 있는 드라마를 안고 가는 인물이니까요. 극 중 태식이나 상환의 상황에 감정 이입되면서 많이 울었어요. <반올림>할 때 용인에 있는 작은 영화관에서 봤는데 상영관에 세 명 있더라고요. 지금은 그 극장이 없어졌어요. 하여튼 보면서 얼마나 울었는지.
개인적으로 존경하는 배우가 있는지도 궁금하네요. 김윤석 선배님이요. <천하장사 마돈나>에서 동구 아빠로 나왔을 때, 진짜, ‘우와~!’ 했죠. <타짜>의 아귀도 대단했지만 전 동구 아빠가 참 무서웠거든요. 정말 감탄하면서 봤죠. 예전엔 <파이란>보면서 최민식 선배님도 그저, ‘와~!’. 제가 평소에 대단한 걸 보면 ‘와~!’를 많이 하는 편이에요. (웃음)
김윤석 씨나 최민식 씨 같은 배우는 연극무대를 기반으로 연기적 내공을 쌓은 분들이에요. 그런 점도 본인에겐 좋은 교훈이 될 것 같은데요. 저는 아직 무대를 접해본 경험이 없어서 잘은 모르지만 그게 정말 다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해보고 싶어요. 연극을 보러 가면 무대가 바뀌고 그런 순간조차도 엄청난 집중력이 있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그 시간을 위해 투자되는 연습, 그런 것들에 의해서 무대가 철저히 돌아가는 거죠. 그래서 그건 정말 연기적인 부분만큼이나 집중력을 기르는데도 충분히 많은 공부가 될 거라고 생각해요. 물론 엄청 어려울 거라고 생각도 되고요.
연극영화과를 지원하고자 하는 이유를 알 것 같기도 하네요. 어쨌든 그 당시 쓰러지며 봤던 <공공의 적>시리즈에 본인이 출연했군요. 그렇죠! 제가 얼마나 기쁘겠어요. (웃음) 오디션 보면서 이미 하고 싶어 미치는 줄 알았죠. 그래서 아까도 말씀 드렸듯이 만약 다른 친구나 심지어 선배님이 됐더라도 너무 아쉬워서 쌍심지 켜고 봤을 거에요. 물론 같이 오디션 봤던 다른 분들도 그랬겠죠. 쟤가 어떻게 했을까, 라면서.
앞으로 또 본인이 인상적으로 봤던 작품을 만들어낸 감독님들과 함께 작업하게 될 기회가 생길 거에요. 혹시 다음 작품에서 해보고 싶은 역할을 생각해본 적이 있나요? 이제 강한 캐릭터 말고, 좀 선하게 보이는 캐릭터를 연기해봤으면 좋겠어요. 절 보셨던 분들이, 얘가 이런 면이 있네, 라고 생각할 수 있게 말이죠. 반대로 저를 못 보셨던 분들이, 이런 애구나, 했다가 제 전작들을 찾아보시고, 이런 애였어? 이렇게 될 수 있으면 좋겠다 싶어요. 일단 강한 면이 덜한, 부드럽거나 코믹한 연기를 하고 싶죠. 물론 지금은 일단 불꽃처럼 열심히, 화이팅 해야죠. (웃음)
나름대로 한종석이란 캐릭터가 이젠 극복의 대상이 된 셈이군요. 어쨌든 그 캐릭터가 연제욱이란 배우의 데뷔전으로서 깊은 인상을 남겼다는 점에서는 성공적이란 생각이 드네요. 맞아요. 인상을 남길 수 있었던 거 같아요. 이제 그걸 좀 풀어야죠. (웃음)
확실한 건 부모님 입장에서는 선한 역할을 맡아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을 것 같긴 합니다. (웃음) 나름대로 지금까지는 좋은 평가를 얻었어요. 그만큼 아직 드러낸 것이 없기 때문일 수도 있고요. 그에 따라 기대감도 커질 테고 그러다 보면 성장통을 겪기도 하겠죠. 한번쯤은 스스로 고비를 느끼는 시점이 올 수도 있을 거에요. 다들 어느 순간 그런 때가 온다고, 막연하게 힘들고 다 없을 때가 온다고, 말씀해주시더라고요. 그때는 그 때 나름대로 방안이 나오지 않을까요? 기도도 열심히 하고 노력해야죠.
사실 <강철중: 공공의 적 1-1>(이하, <강철중>)은 <공공의 적 2>라고 명명됐어야 하는 작품 같다. <공공의 적2>?
사실 <공공의 적> 시리즈의 원조라 할 수 있는 강력반 형사 강철중이 다시 복귀한 거니까. 그렇지. 1편의 속편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1-1이 됐고.
솔직히 본인도 <공공의 적 2>보단 <강철중>에 애정이 남을 것 같은데. 백배나 당연하다. 솔직히 <공공의 적>이 너무 강렬해서, 바로 이어서 못하겠더라. 게다가 강력반 형사가 만날 적이 있고, 검사가 만날 적이 다르지 않나. 강력반 형사로서 적을 찾기가 힘들어서 직업을 바꿔봤지. 하지만 머릿속에 계속 저 강력반 캐릭터를 살려야 된다는 강박관념이 조금 남아있었다. 그러다가 이번에 <강철중>을 잡으면서 오케이, 이거다, 밀어붙인 거지.
사실 <공공의 적>의 강철중은 오랜만에 본인을 감독으로서 현장에 복귀시킨 캐릭터이기도 했다. 맞다.
그만큼 본인에게는 의미 있는 캐릭터였을 텐데 다시 한번 그 캐릭터를 꺼내 들었다는 건 제대로 진검승부를 해보겠다는 의지의 발로가 아니었을까 싶다. 자신감이었을 수도 있고. 자신감 플러스, 내가 제일 잘하는 장르를 다시 한번 해보자는 거였지.
동시에 한국영화 위기가 공공연해진 상황에서 강우석이라는 이름에 대한 기대감이 <강철중>에 대한 비장감을 덧씌우는 것 같다. 마지막이라고 생각했다. 마지막. 이 영화 판에서 나까지 작품을 꺼냈는데 이게 안되면 나는 문 닫겠다, 난 이제 물러난다. 그렇게까지 절박하게 느껴졌다.
<강철중>에서 이원술이란 캐릭터는 전작의 ‘공공의 적’들과는 다르다. 완전히 다르지.
이전까지의 ‘공공의 적’들은 단선적인 악인이었다. 그냥 나쁜 놈. 머리 안 쓰고 그냥 나쁜 놈.
그에 반해 이원술은 다양한 감상을 부르는 입체적인 캐릭터다. 아무래도 그건 장진 감독의 영향으로 보이는데. 이원술은 분명히 영향이 있다. 다만 (장)진이가 만든 캐릭터를 강우석화(化) 시켜버린 거지. <공공의 적>시리즈의 승부처는 적이다, 적. 강철중이 아니다. 강철중이 만난 새로운 적이 어떻게 하느냐가 이 영화의 흥행결과로 나타나겠지. 그래서 난 정말 웃음을 주고 싶었어. 물론 사람들이 보기엔 참 나쁜 인간인데 영화가 경쾌하니까 덜 나빠 보일 수도 있단 말이야. 애정이 가기 시작하고 그러니까. 그래서 그 웃음 때문에 혹시 덜 미워 보이더라도 그런 걸 시도해보고 싶었어. 이렇게 악당도 웃길 수 있구나. 영화적으로 큰 웃음을 줄 수 있구나. 마지막에 처단할 때 덜 통쾌할 수 있더라도 영화를 보는 동안 재미를 주면 된다고 생각했지. 또 전편의 공공의 적들처럼 재영이가 직접 칼 쑤시고 다니는 것만 하면 사람 지친다. 내용만 바꿨지만 전편 또 보고 있다고 그러면 안되잖아. 본 영화 또 보는 거 같으면. 그래서 정말 새로운 영화하자, 고삐리 양아치도 나오고, 칼잡이도 나오고. 대신 1편의 향수가 있으니까, 이문식, 유해진이 나와야 된다, 그건 분명히 1편을 복기하면서 한번 즐겨라, 하는 부분이지. 그리고 이외의 나머지는 새롭게 한번 즐겨라, 는 것이고. 고삐리와 강철중의 대결도 있고, 이원술과의 대결도 있으니까, 분명 새롭지만 1편과 무관한 영화 같지 않다는 말이지. 그래서 1-1이 딱 맞는 거고.
어쩌면 지금까지의 ‘공공의 적’과 달리 이원술은 관객의 호감을 얻는 캐릭터가 될 수도 있다. 당연하지. 그래야 다음 편이 나온다.(웃음) 이번엔 저게 누구야, 이렇게 되야 한다고. 워낙 연기력이 탄탄한 설경구는 이제 그대로 두고, 이번에는 어떤 적인지, 그 놈을 어떻게 잡을지, 그런 기대치가 있는 거지. 적이 살아줘야 시리즈가 간다니까.
어쨌든 <강철중>은 여러모로 장진의 흔적이 배어있다. (장진 감독이) 설계를 했으니까. 물론 구성은 내가 올렸지만. 설계자의 설계가 나쁜 것이 아니면 구성에 받아줘야 해. 그렇잖아. 현무암 쓸 걸 대리석으로 쓰겠다, 이렇게 재질은 내가 알아서 결정하는 거지만, 그것도 쓸 때부터 나랑 말을 많이 맞췄었기 때문에 당연히 그럴 수밖에.
시나리오 작업에도 어느 정도 관여했다는 말인가? 관여 안 할 수가 없지. 아이디어는 내 아이디어인데.
그래도 장진 감독의 시나리오인 만큼 특색이 상당히 두드러졌을 텐데. 그런 걸 다 걷어내 버렸지.
본인의 연출적 취향에 걸맞게 변형되거나 제거된 게 많은 것 같다. 하지만 나름대로 반영할 수 밖에 없는 부분도 존재했을까? 당연하지. 예를 들면, ‘진아, 이 씬은 내가 못 쓴다. 내가 알아서 바꾸마.’ 그렇게 바꿨지. 그 대신에 전체 틀거리가 좋았기 때문에 내가 어떻게 수정을 하더라도 작가 입장에서 기분 나쁘지 않겠지. 오히려 자기 코미디에 내 코미디를 더 얹어줬으니까 오히려, 감사합니다, 그러는 거지.
고등학생들이 조직에 연루된다는 설정은 누구로부터 착안된 아이디어인지. 어느 분 아이디어가 아니라, 영화 크랭크인한 뒤 한달 만에 이 사건이 실제로 터졌었어. 임성훈의 ‘세븐데이즈’에서 이게 나오는 거야. 조폭이 직업화되고 있다, 이 코너였어. 거기서 조폭들을 인터뷰하는데 조폭들이 어이없는 말들을 하더구먼. 나 이 생활에 만족한다, 나 연봉 얼마 받는데 대우도 괜찮다, 청소년들한테 이 직업이 선망의 대상이 되고 있다. 아니, 뭐 이런 경우가 있어. 사회가 이런 식으로 가도 돼? 이게 다 영화 때문에 이렇게 되는가, 이런 생각도 들고. 영화 속에서 조폭들이 너무 멋있잖아. 드라마에서도 그렇고. 이거 한번쯤 말할 필요가 있겠구나 싶었지. 그 대신에 조폭을 너무 극악하게 그리면 영화가 너무 지저분해져 버린다고.
폭력의 수위가 지나치게 높아지는 건 경계했다는 말인가? 그렇게 폭력성이 가미되면 청소년들 보여주고 싶은데 이 영화는 못 보여줄 것이고, 대신 적을 좀 재미있게 가보자. 그래서 웃고, 즐기고 나오다가도 우리 사회가 이런 면이 있구나, 이 정도만 생각하게 해주면 상업 영화로서 할 도리를 다한 거 아닌가, 그런 판단을 했다.
이전 시리즈보다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굵어졌다. 웃기면서 메시지를 밑에 깔았으니까. 소리 지르지 않고.
장진 감독과 함께 K&J를 설립한 이후, <강철중>은 가장 본격적인 공동작업이기도 하다. 사실 이 전에 <아들>이나 <한반도>로 따로 놀긴 했지만 <강철중>이 우리가 영화사 세워놓고 함께 한 첫 게임이지. 처음 링에 오른 거야.
사실 본인이 오랫동안 장진 감독의 배후세력이기도 했다.(웃음) 난 진이가 한다면 뭐든지 밀었으니까. 심지어 시나리오가 안 좋아도 찍으라고 했으니까.
솔직히 장진 감독의 이야기가 본인의 취향에 부합하는 건 아니었을 텐데. 아니지. 하지만 생각은 비슷해. 다만 표현의 차이가 있지. 예를 들면 <거룩한 계보>도 잘 가다가 갑자기 판타지로 가버리잖아. 그래서 ‘진아, 이거 하지 마라. 위험하다.’ 그러면 절대 아니래. 그래서 ‘야, 총 맞고 비행기 떨어지고, 그게 (말이) 되니? 그게?’ 그 전까지는 꼭 <대부>처럼 멋있게 가잖아. 그러다 어느 순간에 벽 무너뜨린다고 벽에 달려가 박고 있고.(웃음) 그런 거야.
혹시 이 부분만큼은 살려줬으면 좋겠다고 장진 감독이 애착을 보인 부분은 없나? 이것만 살려달라고 할만한 건 내가 아니까 알아서 살려놓지. 애초에 내가 진이 보고, ‘네 맘대로 써라. 내가 못 찍는 건 알아서 걷어내마.’ 그랬더니 ‘감독님 알아서 하십쇼. 전 그냥 분량만 전적으로 채웁니다.’ 그래서 OK 한 거니까.
<강철중>을 <공공의 적>시리즈의 가능성을 책정하는 기준으로 생각하진 않나? 계속 가고 싶다는 뜻이지.
예전에 <투캅스3>같은 경우는 김상진 감독에게 맡기기도 했었다. <투캅스>와 <투캅스2>찍을 때, 너무 고생해서 내가 억만금을 벌어도 다신 이거 못한다 그랬지. 그런데 (김)상진이가 ‘그럼 감독님 이거 저 주세요.’ 그러는 거야. ‘자신 있어? 너?’ 그러니까 ‘네. 제가 청출어람을 보여드리겠습니다!’ 그랬다가 제대로 망해서 시리즈가 문 닫았잖아.(웃음) 지금도 혹시 (누군가가) ‘<투캅스>감독이세요?’ 그러면 ‘아, 아닙니다.’ 이래.(웃음) 어쨌든 그땐 그랬고, 강철중은 3편도 충분히 할 수 있다 이거야. 왜? 적이 바뀐다 이거지. <투캅스>는 적을 쫓는 영화가 아니기 때문에 뭔가 만들어가야 되는 거고, 이게 시트콤이나 다름이 없단 말야, 시츄에이션 코미디. 근데 <공공의 적>은 우리 시대에 또 다른 천인공노할 나쁜 놈, 퍼블릭 에네미(public enemy)가 나타나면 되잖아. 그렇기 때문에 3편 충분히 나올 수 있다 이거야.
혹시 <투캅스3>처럼 이 시리즈도 언젠가 다른 감독한테, 에이, 노! 네버! 노! 안 하면 안 했지. 못 줘, 이제.(웃음) 진짜 못 줘. 그리고 내가 안 하면 설경구가 안 해.
조연들의 매력을 살리는 것도 염두에 뒀을 텐데. 아마 배우들 연기가 나쁘지 않았을 거야. 이번에 조연들을 하나씩 다 살려보려고 주변 배우들까지 내가 하나씩 일일이 다 컨트롤했다고.
사실 <공공의 적>이 인기를 얻은 배경으로 조연들의 힘도 무시할 수 없었다. 그러니까 이번에 <공공의 적>에 나왔던 유해진, 이문식이 드라마 운반하는 브리지(bridge)로 잠깐 나오고, 고삐리 태진이, 칼잡이 문수, 그 다음에 이원술 따라다니는 변호사까지 다 자기 노릇을 하잖아. 영화가 재미있고 완성도가 뛰어나려면 조연의 등장과 퇴장을 명확하게 잡아줘야 돼. 등장하면 왜 등장하는지, 무슨 롤을 해야 하는지 정확하게 주고, 엔딩 아웃 시켜라 이거지. 내가 이번에 주인공만 쫓아다니는 게 아니고 조연들까지 일일이 다 손봤던 건 입체적인 영화를 보여주고 싶다는 의도였으니까.
사실 이문식이나 유해진 같은 경우는 <공공의 적> 개봉할 당시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배우였지.
하지만 지금은 종종 주연까지 맡을 정도로 인지도가 높아졌다. 그런데 너무 작은 역할을 맡기는 게 아닌가 불안함은 없었나? 아니야. 그들이 그 영화로 컸기 때문에 너무나 흔쾌하게 하겠다고 하더라고. 심지어 돈도 안받았잖아. 마치 아버지한테 아들이 뛰어오는 것처럼. 그래서 ‘너희 여기 출연한 거 후회하게 하진 않을게.’ 그랬더니 ‘아, 저희 믿습니다.’ 그러더라. 첫날 크랭크인을 이문식하고 갔고, 다음 날은 해진이하고 갔어. 아주 기분 좋게 찍었지.
언제나 그렇듯 이번에도 당신의 영화에 대한 관심이 크다. 한국영화 점유율이 바닥을 치고 있는 상황이라 더 그런 것 같기도 하고. 기대감일 거다. 영화 잘 되면 또 찍고, (다른 감독에게도) 이 영화 찍게 하고, 저 영화도 찍게 하고, 그렇게 영화판을 몰고 가는 느낌에 대한 기대감. 이번에 <강철중>이 잘되면 한국영화가 어려운데 도움이 되지 않겠냐, 그런 기대 때문일 거다.
아무래도 그런 면에 대해서, 엄청 부담스럽지. 그런데 거기서 만약 진짜 개떡 같은 영화가 나왔다면 그 배신감도 이루 말할 수 없을 거야. 기자들조차도, 쟤는 끝장났다, 이런 식으로 글들 엄청 써 보냈을 거야, 아마. 어이없는 영화 찍었다면, 너마저 이러냐, 너마저, 이런 마음에서 얼마나 많은 분노의 글이 나오겠어. 고등학생들조차 ‘이명박 OUT’ 피켓 들고 다니는데, 언론에서 일개 감독하나 못 죽이겠냐고. 거기에 대해서 난 각오한다니까. 이번에 만약 당신들이 봤을 때, 내가 유머 다 잃어버리고, 드라마도 모르는 놈같이 보이면 날 개같이 밟아도 좋다. 대신 좋으면 칭찬해줘라. 예전에 내가 했던 말이잖아.
사실 예전에 <한반도>당시에 스스로 의도한 건 아니겠지만, 영화 찍고 나니까 한국 해경과 일본 해경이 대치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그런데 <강철중>에서도 비슷한 시의성이 발생한 것 같다. 요즘 시국이 시국인지라 ‘광우병’이란 단어 딱 한번 나오는데도 민감하게 들린다. 사실 그 전에 소 얘기 많이 나오잖아. 처음부터 도축장 씬도 있고. 나중에는 ‘수입산인데 속여 팔면 안되지.’ 이런 대사도 나오고. 후반부에 가면 ‘고기 맛이 어떻습니까?’ 물으면 강철중이 ‘이 맛이지. 한우가. 반성 많이 했구나.’ 이런데다가 광우병 대사까지 나오니까 사람들이 확 기겁을 하는 거지. 근데 4개월 전에 난 그런 의도로 찍은 게 아니라, 이왕 소고기 먹는 거 한우 먹어주자, 우리 농민들 위해서. 그런 뜻으로 한 건데…..내가 마치 무슨 점쟁이도 아니고 말야.(웃음)
아무래도 시사적인 부분에서 영화적 모티브를 얻다 보니 그런 상황이 발생한 게 아닌가 싶다. 사회적인 관심이 많아서 맞아떨어지는 부분이 생기는 거 같아.
사실 최근 경찰 공권력에 대한 부정적 여론도 많은데. 근데 그건 걱정이 안 되는 게, <강철중>은 민생사범 쫓는 거야. 지금 경찰의 과잉진압이 문제가 있는 거지, 실제 강력반 형사들이 소매치기도 안 잡고 강도도 안 잡고 그런 이상한 짓 하는 건 아니잖아. 강철중은 민생사범을 잡는 일개 형사니까 그걸 여기에 비유해서 과잉 진압하는 경찰을 떠올리진 않을 거 같아. 일반시사 해봤잖아. 그럼 거기에 경찰 너무 미화하는 거 아니에요? 이런 의견 나와야지. 근데 정말 나쁜 놈 잡는 거니까. 내가 봤을 땐 그런 염려는 안 해도 될 거 같다.
사실 강철중은 형사가 아니었다면 깡패가 될만한 인물이기도 하다. 그런 측면에서 강철중이란 캐릭터는 그 자체만으로도 힘을 활용하는 방향에 대한 답변이라 해도 될 것 같다. 고삐리들한테, 깡패가 그렇게 되고 싶어? 너 깡패가 부럽냐? 이런 대사 하잖아. 그런데 실제로 그런 애들 많거든. 학교가면 일진회 있잖아. 그런 걸 선망한다는 말이지. 영화보고 나면, 이거 내가 조금 잘못 생각한 거 아냐? 한번쯤이라도 그런 생각이 들지 않을까.
강철중은 한국영화의 자본동원력 안에서 묘사가 가능한 안티히어로 캐릭터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자금으로 할리우드 애들 못 이겨. 우리 정서로 이겨야지. 우리 정서로. 우리 식으로 이겨야 된다니까.
하지만 최근 몇 년 사이에 한국영화도 대작을 제작하는 비율이 늘었다. 시장상황도 그에 기대는 느낌이고. 조금 더 영화인들이 신중해질 필요가 있어. 너무 급하게 찍지 말고, 조금 더 고민하고, 정말 이 시나리오가, 이 내용이 관객들이 보고 싶어하는 건지, 상업영화 찍으면서 최소한의 그런 노력들은 해야 될 것 같단 말이지. 투자하는 사람도 마찬가지고. 편수만 무조건 늘릴 게 아니라 내실 있는 영화들을 만들어주면 관객들이 자연스럽게 한국영화 선택한다. <괴물>이 재미있으니까 보러 간 거지, 누가 보라 그래서 봤냐고, 그러잖아. 그런 관점에서 우린 지금 영화 내실에 힘을 쏟아야 돼.
91년에 찍었던 <스무 살까지만 살고 싶어요> 이후로 각본 작업에 이름을 올리지 않고 있다. 참여하던 안 하던 난 이름을 안 올리니까. 다 참여는 하는데 이름은 빼지. 내가 작가란 이름을 가지면 뭐하냐고. 누릴 거 다 누리는 놈이. 자기가 조금 써놓고 왜 이름 넣는지 모르겠어. 그래서 공로 인정받으려고? 내가 다 썼으면 내 이름을 넣지.
워낙 할 일이 많다 보니 각본까지 도맡지 못하는 게 아닌가 싶었다. 그건 아니고, 내가 촬영할 때 워낙 시나리오 수정을 많이 하기 때문에 미리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버리면 아이디어가 안 나와서 그런 거다. 조금 미흡하더라도 작가에게 쓰게 하는 게 나아. 어차피 내가 고쳐 찍으면 되니까.
글쓰기는 일단 작가에게 맡기고 연출로 승부한다? 물론이지. 만약 내가 고치다가 힘들 때 다시, 이건 네가 고쳐줘야겠다, 그 정도 부탁은 하는 거지.
좀 오래 전 이야기가 되겠지만 강철중이란 캐릭터의 모티브가 궁금하다. 사실 1편 작가들이 뽑아낸 캐릭터다. 내가 꼴통 형사는 그려본 적이 없잖아. <투캅스>는 재미있는 형사였고. 작가가, ‘감독님, 꼴통 형사 이야기 한번 해보실래요? 진짜 나쁜 놈인데 꼴통 형사 이야기, 나쁜 놈이 더 나쁜 놈 잡는 영화.’ 이러더라. 그 때 감이 왔다. 바로 그거다. 화이트 앤 블랙이 아니고, 회색. 그렇게 오케이 한 거지.
그 당시 <공공의 적>으로 오랜만에 감독직으로 현장에 복귀했는데 만약 강철중을 못 만났다면 어땠을까? 그게 아니었으면 아마 복귀 안 했을걸. 그 정도 되니까 내가 복귀했지. 3년 반 만에 영화 찍는 놈이 아무것도 들고 나오지 않으면 바보지, 바보.
<한반도>는 말이 많았었다. 좀 위험했지.
사실 <공공의 적>으로 현장에 복귀한 뒤로 공공의 적 시리즈를 제하면 <실미도>와 <한반도>가 남는다. 두 영화는 이데올로기적이란 점에서 비슷하다. 하지만 <한반도>가 <실미도>에 비해 민감한 반응을 얻었던 건 직설적이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한반도>의 평에 대해서 내가 조금 억울한 부분이 있는데, 난 이런 일이 있다면 우리 이렇게 해야 되는 거 아니에요? 라고 말한 것뿐이야. 나는 판타지로 소리를 질렀는데 사람들은 현실정치로 받아들이고 굉장히 오해를 하더라. 지금 이 세계화 시대에 일본에게 국수적으로 이래야 할 이유가 뭐냐, 굉장히 편협한 인종주의다, 막 이러는 거다. 사실 사상이 없는 영화였고 나한테는 판타지였는데 그렇게 들이대니까. 아, 지금 이 사람들이 영화평을 안 하는구나 싶기도 하고. 너 이런 얘기하면 안돼, 그래서 사실은 되게 당황했어. 억울하기도 하고. 관객한테, 우리 이런 일이 있죠. 그리고 앞으로도 이런 일이 있을 수도 있죠? 이런 동의를 구하려던 거거든. 그걸 전달하는 수단은 웃음이 될 수도 있지만, 영화 보는 동안에 다른 생각 말고 나와 한번 생각을 맞춰보자는 거지. 이런 인물이 있는데 이걸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관객하고 이렇게 얘기하고 소통하고 싶은 거였다. 일반 관객들은 받아주는데, 먹물, 화이트 칼라들, 또는 언론들, 평론가 시각에서 안 받아들이는 거야. 이런 영화는 만들면 안 되는 영화다. 그래서 난 조금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사실 시의성도 컸다. 시의성 플러스 노무현 정권. 이거 이 정권 밀라고 찍은 거 아냐? 이런 오해까지 하니까. 심지어 어떤 사람은 나보고 차기 국회의원 나가시려고 그러죠? 이러고.(웃음) 내가 어이가 없어서.
어쩌면 그런 과정도 다시 강철중을 빼 들게 만든 요인으로 작용됐을 것 같다. 그것 때문에 내가 다시 재미있는 얘기로 돌아왔을지도 몰라. 내가 바보가 아니거든.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처럼 편협한 민족주의자나 국수주의자 개념으로 영화 찍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럼 다시 즐거운 영화 찍어드릴까요? 이런 마음으로 다시 몸풀어본 거라고. 내가 감각이 아직 죽진 않았다고, 연출자로서 비겁하지 않게 연출해보자, 그런 의도도 있고.
사실 처음 강철중이 상대한 공공의 적은 사소한 개인적 범죄자였다. 하지만 속편에서부터 그 범위가 조직적인 형태로 확장되는 느낌이다. <강철중>에서는 확실히 기업적인 조직 자체가 공공의 적이 됐고. 1편의 <공공의 적> 타이틀이 붙을만한 것인가, 약간 회의가 있었다. 천하의 몹쓸 놈이지, 그게 공공의 적인가, 라는 생각이 들더라고. 그래서 <공공의 적 2>에서는 천박한 자본주의자를 하나 건드렸고. 그건 공공의 적이 맞거든. 근데 <강철중>이 사실 공공의 적 중에 가장 사실 공공의 적답지. 그래서 이 영화보시고 어떤 어르신 한 분이 이번엔 정말 공공의 적 같네? 이러더라.
<강철중>에서 등장하는 강철중은 <공공의 적> 당시에 비해 성숙했다는 느낌도 든다. 캐릭터가 성장했다고 볼 수도 있고. 당연히 성장해야지. 세월이 흘렀는데. 인간이 변해가야지.
사실 애초부터 강철중은 정의롭다고 말할 수 있는 인간형은 아니었다. 나쁜 놈이지. 정의롭지 않아.
<공공의 적>에서도 자신에게 상해를 입힌 상대에 대한 사소한 복수심이 발단이 되기도 했었고. 그렇지. 그런 개인적인 원한도 좀 있고.
하지만 <강철중>에서 그는 과거에 비해 사회적인 정의를 구현하고자 노력하는 의지가 좀 더 보인다. 사람이 연륜이 몸에 배면 사고가 달라진다. 당신도 5년 후에 본인의 글이 달라질 거라고. 지금처럼 많이 안 써도 더 짧게 쓰면서 하고 싶은 말 다 하는 글이 나올 거라고. 그것처럼 세월이 흘러가면 사람도 자연스럽게 변한다. 나쁜 짓 했던 놈이 생활인이 되듯이, 그래야 시리즈 안에서 변해가는 이 사람과 함께 우리가 생활해가는 느낌이 들지. 과거가 좋았다고 해서 그대로 다시 가면 그 영화 무슨 재미로 봐.
딸이 많이 자란 것에 대한 영향도 있지 않나 싶은데. 사실 옛날에 가족 거들떠보지도 않았지만 이젠 가족도 중요해진 거지. 그래서 일일교사도 가잖아. 1편 같았으면 일일 교사 갔겠냐고, 걔가.
우린 깡패지만 사회에서는 우리를 이 나라를 이끌어가는 건실한 청년이라고 부른다. 극 중 이원술의 대사에서 나오는 말인데 이는 마치 사회적인 조직체계나 조직문화에 대한 비유처럼 들린다. 실제 건달 아니지만 보면 건달 같은 애들 많잖아. 사회에서도 조직 형태가 그렇고. 일반 회사도 안으로 보면 깡패보다 더한 곳이 많아. 폭력을 안 쓸 뿐이지. 사람 함부로 자르고. 그니까 그 대사를 보면, 건실한 청년으로 불러주니까 깡패 짓 열심히 하다 보면 나처럼 돼, 이런 아주 나쁜 꿈을 던져주잖아. 우리가 지금 이런 시대에 살고 있다, 이런 얘기를 하고 싶은 거지.
강철중은 항상 주먹으로 공공의 적을 처단한다. 그런 응징방식을 묘사하는 건 그 상황에서 발생할만한 쾌감이 본인에게 어떤 영향력으로 작용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내가 만든 캐릭터인데 당연히 내 생각이 안 들어갈 수가 없지. 그리고 내 생각도 당연히 있지만 관객들도 대등하게 배려해줘야지. 우리는 깡패 보면 무서워서 피한다. 근데 영화 속에서 주인공은 피하면 안돼. 아무리 무서워도 들러붙어야 한다고. 그래야 사고가 맑아지고 투명해지는 거지. 우리가 그렇게 생각한다고 해도 우리는 길거리 지나가다가 진짜 깡패들끼리 싸우면 우리는 그렇게 못하지. 도망가야지, 어떡해. 무슨 칼 맞을 일 있어? 그런데 강철중은 그러면 안되지. 거기서 시비를 가려주던지, 다 때려서 무릎을 꿇게 만들던지. 그건 영화적 통쾌함 때문에 해야 하는 거야.
동시에 그것이 어쩌면 본인이 현실에서 지닌 공권력에 대한 불만을 영화적으로 해소하는 측면이 아닌가 싶다. 바람일 수도 있고. 맞다. 나는 강철중 같은 형사가 분명 있다고 본다. 있을 거라고 생각해! 그 사람들이 영화를 보고 오케이 하거나, 또 그렇게 못한 사람들이 보고, 나도 앞으로 이렇게 한다, 그럴 수 있잖아. 내가 형사는 안 해봤지만 실제로 <공공의 적 2>보고 검사들이, 맞아, 검사는 저렇게 해야 돼, 자기들끼리 그랬다는 거 아니야. 강철중 같이 검사라면 저렇게 해야지. 끝까지 물고 늘어져서. 악을 잡아야지. 안되면 총을 들이대는 한이 있더라도.
요즘 안 그래도 시국이 어지럽다. 나는 촛불시위를 보면서 되게 슬펐다. 내가 작업 중이라 참가 못해서 미안하기도 하고. 이젠 우리나라 국민들의 의식이 진짜로 높아졌다. 먹고 사는 문제는 중진국 수준일지 모르나 의식들은 정말 선진국 수준이다. 아줌마들이 유모차에 애태우고 나온 거 보면, 야, 이제 정말 무서운 세상이 됐다, 싶더라. 난 되게 감동받았어.
언젠가 이런 상황이 영화적 모티브가 될 수 있지 않을까?(웃음) 난 더 이상 (영화적으로) 나라를 혼란에 빠뜨리는 감독이 되고 싶진 않아. (웃음)
사실 여성 캐릭터를 못 본지 오래됐다. 한 10년 됐지. 10년. 내가 사실 코미디라면 할 수 있다. 그런데 멜로 드라마 해라, 그런 건 내가 못해. 남녀 사랑이야기 같은 건 못한다고. 엎치락뒤치락 싸우는 건 해보겠다 싶어서 코미디로서 여성 배우가 등장하는 건 앞으로 분명히 나올 거 같은데, 여성스러움을 묘사하는 건 난 못한다.
사실 <마누라 죽이기>나 <미스터 맘마>처럼 여성이 등장했을 때 코미디도 유연해졌던 것 같다. 그건 우리 마누라가 무진장 웃기니까.(웃음) 진짜로. 결혼하기 전에는 안 그랬는데 우리 마누라가 결혼하고 나서 지금은 완전 개그우먼됐어. 옛날에 내가 웃기려고 하면 화내고 그랬는데, 요즘에는 자기가 날 웃기고 그래.
사모님께서 유쾌하신 편인가 보다. 되게 명랑해. 되게 밝고.
다시 한번 여성캐릭터를 앞세운 코미디를 찍어도 될 거 같은데. (웃음) 일단 내가 해보고 싶은 거 한 두 개 먼저 해보고.
사실 최근 시네마서비스 위기설이 심상찮게 돌았었다. 실제 위기다. 실제 지금 심각한 위기라고. 지난 2년 동안 개봉했던 영화들이 다 망했잖아.
시네마서비스의 위기를 한국영화 위기의 실체라고 지적하는 사람도 있다. 사실 우리하고 싸이더스 어려워진 거 보면 당연히 한국영화 전체가 어려워진 거지.
본인은 재미있는 영화의 부재가 한국영화 위기의 가장 큰 원인으로 꼽았다. 기회라고 본다. 진짜 한국영화가 질 높아질 수 있는 기회다.
부가판권이나 극장과 배급의 수익 배분의 구조적인 개선도 시급하지 않을까. 그것도 중요하다. 그런데 더 중요한 건 한국영화의 수준문제다. 수준문제. 사실 요 근래 극장에서 내걸기에 민망한 작품들이 많았잖아. 기자시사에서 보고 민망하지 않았어?
…… 기자들도 답답했을 거야. 어떻게 이런 영화에 3~40억씩 돈들이냐, 이런 영화 있었을 거야. 그러니까 그런 영화들 편수 줄이고, 한국영화 가능성 있구나, 발전하네, 이럴만한 영화들이 드문드문 나와줘야 된다 이거야. 너무 안 나오고 있잖아. 요즘.
그런 실망감이 축적되다 보니 관성적으로 한국영화 자체를 기피하는 관객도 발생하는 것 같다. 그걸 깨주려면 재미있는 영화가 계속해서 나와야 돼. 그래서 내가 보기에는 <강철중>에 그런 기대를 하는 거 같아. 어려움도 극복해주고, 관객들도 만족시켜주고.
반면에 그런 관성이 <강철중>에게도 작동할 수 있다. 당연히 지금 관객들이 너무 안 나오니까, 사실 한국영화를 너무 안 보니까 걱정이 된다. 그러니까 좀 오게 해봐!(웃음)
최근 영화진흥위원회 위원장으로 강한섭 교수가 취임했다. 의견이 궁금하다. 나는 잘 할 거 같은데. 워낙 의욕이 넘치고, 본인도 너무 하고 싶어했고. 그리고 사실 지금 강한섭은 안티가 많다. 그래서 나는 분명 더 잘할 것이라고 본다. 왜냐면 안티가 많다는 얘기는 감시가 많다는 얘기거든. 그래서 난 오히려 적임자라고 생각한다. 잘할 것이다. 내가 저번에 축하한다고 전화했는데 그 때, 당신 정말 잘해야 된다, 여러 명이 주시하고 언론에서 촉각을 곤두세우고 당신을 쳐다보고 있다, 그러니 진흥위원회 똑바로 운영하고 정말 한국영화에 뭐가 도움이 되는지 정말 잘해달라, 그랬다. 그러니까 정말 믿어달라고 하더라. 자기가 3년 동안 한국영화에 큰 도움이 돼보겠다고. 잘할 거다.
지금 사실 제작자나 기획자로서, 한국영화 안에서 산업적으로 많은 짐을 지고 있는데, 종종 감독역할에만 치중하고 싶다는 생각하진 않나. 왜, 정말 하루에 수십 번도 하지. <강철중>기자시사회에서 어떤 기자들이 그러더라. 온갖 이상한 짓 다 하면서도 이 정도는 만드는데, 감독만 하면 정말 어떤 영화가 나올지 너무 궁금하다고.
볼 영화가 많을 텐데, 인터뷰까지 하느라 바쁘시겠군요. 영화들이 계속 있지만, 그 사이마다 하면 될 것 같아요. 어차피 영화는 계속 봐야 하는 거니까.
오늘도 봤을 텐데. 매일 두어 편씩 보고 있죠.
심사위원으로서 영화를 바라보게 될 때, 평소에 영화를 보는 시선과 차이가 발생하는 측면이 있을까요? 영화를 평가함에 있어서 채점을 한다라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보고 저도 별로 좋아하는 일은 아니에요. 그렇지만 그 이전에 관객으로서 영화를 본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해지죠. 미장센 영화제 당시 모토가, 지극히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심사기준? 우리 그런 거 없고, 자기 꼴리는 대로 가면 된다.(웃음) 이거였는데, 지금도 그런 기준을 마음 속으로 변함없이 갖고 있어요. 물론 공식적으로 오피셜(official)한 척하기 위한 심사기준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사실 인엣지(inside edge), 아웃엣지(outside edge) 가지고 채점하는 피겨스케이트 심사위원이 아니기 때문에 영화제 심사위원에게 객관성이란 건 사실 존재할 수 없는 것이기도 하죠. 그래서 제 자신을 영화적으로 가장 새롭고 참신한 느낌으로 흥분시키는 작품들을 만나게 되면 자연스럽게 심사가 되지 않을까 싶어요.
그렇다면 감독님을 흥분시키는 영화란 주로 어떤 영화인가요? 되게 사소해도 되는 거죠?
당연합니다. 전 이상하게 주인공이건 누구건 어떤 인물이 길이든 어디를 뛰어가면 왠지 이상하게 가슴이 막 뛴다고 할까요. 사람이 막 뛰어가면 카메라가 또 따라가겠죠. 뛰어가는 사람을 찍으려면 어쩔 수 없이 따라갈 테니까. 어쨌든 영화의 스토리나 앞뒤 맥락을 떠나서 그런 장면을 보면 이상하게 마음이 벌렁벌렁하면서, 그 영화가 좋아져요.(웃음) 예를 들면 트뤼포의 유명한 <400번의 구타>에서도 보면 고요하게 달리는 장면이 길게 나오잖아요. 그거 봐도 마음이 되게 이상하고, 어제 또 호텔 로비에서 보니까 전주영화제 게스트인 드니 라방이 도착했더군요. 차에서 내리는 걸 봤는데, 그 양반이 옛날에 출연했던 레오 까락스의 <나쁜 피>를 보면 엄청난 달리기 장면이 있잖아요. 컬러풀한 펜스 옆으로 막 지나가는, 그 때 아마 데이빗 보위(David Bowie) 음악이 나왔던 거 같은데 그 장면도 추억처럼 이렇게 떠오르네요. (뛰는 장면들이) 이상하게 저를 흥분케 하는 그런 게 있는 거 같아요. 제가 찍었던 영화에도 대부분 뛰는 장면들이 있기도 했고.
달린다는 이미지가 감독님의 감수성을 자극하는 측면이 있나 봅니다. 모르겠어요. 스트레스 해소가 잘 안 돼서 그러나.(웃음) 사실 저는 잘 뛰지 않거든요. 평소에 운동도 잘 안하고 뛸 일도 별로 없는데, 그래서 왠지 마음만이라도 뛰고 싶나 봐요. 지금 경쟁작 12편을 다 봐야 되는데 그 중 네 편을 봤거든요. 그런데 그 중에 세편에 뛰는 장면들이 있었고, 그 중에 한 편은 특히 아름다운 뛰는 장면이 있었어요. 심사 중이니까 (작품명을) 말씀드릴 수 없지만, 그래서 그 영화의 그 장면이 지금 머리에 되게 아른아른 거리네요.
아까 말했던 드니 라방은 레오 까락스 감독님의 작품에 상당히 많이 출연했었죠. (레오 까락스의) 페르소나죠. 이번에 <도쿄!>옴니버스에서도 또 주인공을 했어요. 드니 라방이.
레오 까락스 감독 작품에 말씀이시죠. 이번에 <도쿄!>덕분에 레오 까락스 감독님도 만나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도쿄!>옴니버스를 찍을 때, 감독들 세 명의 스케줄이 다 달랐어요. 제가 제일 먼저 여름에 찍었고, 가을 겨울에 미쉘 공드리랑 레오 까락스가 각각 찍어서 도쿄에서 같이 촬영이 겹친 적은 없었죠. 그런데 홍보용 사진 찍는다고 해서 세 명의 감독이 딱 하루 모인 적이 있었어요. 스케줄이 아슬아슬하게 맞아서 간신히 성사된 건데 그 때 잠깐 봤어요. 말이 되게 없으시더라고요. 공드리는 되게 수다쟁이고, 덕분에 저랑 이야기도 많이 했고요.
사실 감독님을 포함해서 나머지 두 감독님의 영화적 면모를 생각해보자면 세 분의 조합으로 이뤄진 <도쿄!>라는 작품의 이미지를 상상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엄청 다 제 각각일 것 같아요. 그리고 그런 게 옴니버스의 재미 아닐까요? 세 명이 세 파트로 갔는데 비슷하면 좀…그리고 이제 각자 개성이 강하고 다른데 나중에 곰곰이 생각해보면 묘한 공통점이 있다거나 이런 옴니버스가 베스트일 거 같아요. 그런데 사실 저도 지금은 잘 몰라요. 다른 두 분이 어떻게 찍었는지 시나리오조차 못 봤기 때문에. 이번에 칸 영화제에 가야 저도 이제 볼 테니까요. 그래서인지 제 영화의 프리미어인데도, 남의 영화를 보러 가는 듯하군요. 옴니버스라는 게 기분이 묘하네요. 다른 사람 파트는 못 봤기 때문에, 공드리나 레오가 또 어떻게 했을지.
이번에 <도쿄!>에서 감독님께서 만드신 <흔들리는 도쿄>의 캐스팅도 인상적입니다. 아오이 유우와 카가와 테루유키를 함께 캐스팅한다는 게 만만한 일도 아니었을 것 같고요. 운이 좋았죠. 둘 다 일본에서 정말 엄청나게 바쁘더라고요.(웃음) 사실 근데 이 프로젝트를 하자고 제안이 들어와서 수락한 처음부터 카가와 테루유키는 이미 머리 속에 있었어요. 히끼꼬모리를 주인공으로 한 얘기란 점에서도. 카가와 작품을 예전에도 몇 번 봤지만 칸 감독주간에서 봤던 <유레루>가 결정적이었죠. 2006년에 <괴물>로 칸 감독주간 갔을 때, 같은 섹션에 <유레루>가 있었거든요. 그리고 <유레루>감독인 니시카와 미와를 제가 알고 있었어요. 2003~4년경에 일본의 한 영화제에서 만난 적이 있었는데, <유레루> 이전에 찍었던 작품들도 굉장히 잘 찍었었어요. 데뷔작인 <산딸기>도 성찰적이면서도 좋았고요. 그래서 <유레루>를 기대했었는데 보고 나니 영화도 물론 좋았지만 카가와 테루유키한테 아주 반했죠. 그래서 <흔들리는 도쿄> 처음 준비할 때부터 카가와를 염두에 두고 시나리오를 썼는데 (캐스팅이) 잘 됐어요. 아오이 유우는 저뿐 아니라 어떤 감독들이나 일해보고 싶은 매력적인 여배우인데 사실 반신반의했었어요. 과연 될까 싶어서. 스케줄을 이미 카가와 테루유키에게 맞춰놓은 상태에서 (아오이 유우의) 캐스팅에 들어간 것이기 때문에, 어쩌면 이게 안 될 수도 있겠다, 싶었죠. 카가와 테루유키도 거의 1년 스케줄이 다 나와있는 상태에서 비어있는 블록을 잡아 촬영일자를 잡은 건데, 거기에 또 아오이 유우를 맞춰야 되니까. 게다가 사실 아오이 유우는 더 바쁜 사람이고. 근데 아오이 유우 쪽을 처음 만났을 때, 아오이 유우 측에서, <살인의 추억>을 일본 개봉 당시 봤고 너무 좋아한다. 작품은 꼭 하고 싶다. 근데 스케줄이 조금 복잡하게 됐다, 그래서 한번 성사가 안됐었어요. 그래서 몇 달 지나고, 다른 여배우를 누구로 가야 하나 이렇게 찾아보고 있는 단계에서 다시 연락이 왔어요. 할 수 있게 됐다. 그래서 ‘우훗!’ 쾌재를 불렀어요.(웃음) 제가 원하던 대로 돼서 기뻤죠. 그리고 다케나카 나오토라고, 경력이 더 오래됐지만 일본의 오달수 씨라고 할까요. <쉘 위 댄스>에서 열연을 펼치시기도 했죠. 감독이시기도 하고. 아무튼 그 분께도 말씀 드려봤는데, 그분께서는 한국영화 팬이셨어요. 김기덕 감독님 영화도 좋아하시고, 제 영화도 세 편 다 보셨고 좋아하신다고, 한국영화를 해보고 싶었다면서 흔쾌히 수락하셨죠. 그래서 세 명의 배우가 전부다 바쁜 사람들인데 캐스팅하게 됐어요. 다 잘 돼서 행운이라고 생각해요.
<흔들리는 도쿄> 中 아오이 유우와 카가와 테루유키
<도쿄!>는 감독님께서 처음으로 외국에 나가 찍은 영화이기도 합니다. 사실 로케이션의 문제보다도 언어가 관건이었죠. 영화의 대사가 일본어라서 한국어가 아닌 외국어로 디렉팅을 한다는 게 어떤 느낌인지 궁금했어요. 통역이 있긴 하지만 잘 할 수 있을까, 약간 무섭기도 하고. 하지만 결국 좋은 경험이 됐어요. 재미도 있었고. 외국어로 연출할 수 있겠구나, 이게 이번에 제 개인적으론 가장 큰 수확이었다고 생각해요. 물론 연재미 씨라고, 이제 뛰어난 통역사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기도 하지만 인간의 감정, 배우의 감정이 말로서 표현되는 것만이 아니라는 것을, 그 느낌이나 뉘앙스라는 만국공용어가 존재하구나, 라는 걸 느꼈어요. 자기의 슬픔을 일본말로 표현하건, 불어로 표현하건, 영어로 표현하건, 한국말로 표현하건 그건 결국 슬픔이 되더라고요. 그걸 깨닫게 되니까 어느 순간 되게 수월해졌어요. 비록 낱말들은 못 알아듣지만 배우가 대사를 할 때, 이건 NG다, OK다, 라는 것에 대해서 나중에 점점 느낌이 쉽게 왔고, 배우들도 저와 의사 소통하면서 마음이 잘 통하는지 제 결정에 따르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본질적으로 같은 거라는 걸 알았다는 게 큰 수확이었어요.
시스템의 차이도 많이 느꼈을 거란 생각이 듭니다. 일본은 타이트하죠. 한국은 보통 장편영화를 3~4개월 안에 찍는데, 일본은 한달 반에서 두 달, 대작이라 해도 2달 반 정도에 끝내죠. 스케줄이 되게 빡빡하고, 빨리 끝내는 편이에요. 대신 프리프로덕션(pre-production)부터 치밀하게 준비하는 타입이고, 촬영 중간에 좀처럼 쉬질 않아요. 일주일에 6일이건, 7일이건 쉬는 날 없이 막 가요. 스텝들이 월급제 계약식이라서 제작비 측면에서 촬영 기간에 민감하기 때문에. 사실 한국도 이제 작년에 단체협약이 성사되고 나서 그런 시스템으로 바뀌어가고 있죠. 한국도 아마 미래에 그렇게 되지 않을까 싶어요. 물론 다 장단점이 있겠고요. 일본 스텝들의 직업적인 숙련도나 집중력은 되게 뛰어났어요. 하드 하게 단련이 잘 된 덕분인지. 저보다도 나이가 많은 40대 중반의 직업 조감독과 일을 했었는데, 작품 경험한 숫자도 어마어마하게 많고, 그래서 조감독에 대해 다른 스텝들의 리스펙트(respect)나 권위도 장난이 아니었죠. 그 조감독도 그에 걸맞게 책임감이 강하더군요. 이 현장을 자기가 진행시킨다는 것에 대한 의무감이 강하고, 그만큼 아주 정교하게 시간단위로 스케줄을 짜고. 대신 약간 답답한 면이 있어요. 우리나라 같으면 쉽게 돌파할 수 있을 일인데 왜 저렇게 걱정을 할까 싶은 것들. 같은 일을 되게 어렵게 한다고 할까요. 좋게 말하면 돌다리도 두들겨본다, 고 말할 수 있지만 우리 입장에서 보기엔 왜 저런 걸로 에너지를 낭비할까, 싶은 소심해 보이는 측면이기도 하죠. 각각 장단점이 있는 거 같아요.
모든 상황에 대해서 세세하게 짚고 나가는 편인가 봅니다. 아주, 매우 그래요. 그래서 믿음직스럽고 안정감은 있는데, 만약 얘네들이 내가 현장에서 아이디어를 바꾸거나 급격하게 변화를 줄 때 어떻게 반응할까, 라는 궁금증이 생기더군요.
특히 한국 현장에서는 그런 변동성이 비일비재하지 않습니까? 그렇죠. 감독이 순간적으로 생각이 바뀐다던가. 그리고 그런 걸 순발력 있게, 탄력 있게 따라오는 게 한국 스텝들의 힘이죠. 사실 일본에서 제가 갑작스럽게 테스트를 몇 번 해본 적이 있긴 있어요.(웃음) 저는 제가 직접 콘티를 세밀하게 그려서 제시하는 편인데 스토리보드가 그렇게 있으니까 일본 스텝들도 좋아하더라고요. 그런데 몇몇 순간에 갑작스럽게 변화를 주면서 어떻게 되나 한번 살펴봤죠. 나름 잘 따라오려고 하더라고요.
시장조사를 했다고 봐도 되겠네요.(웃음) 방금 말씀하신 대로 감독님은 콘티를 상당히 디테일하게 그리기로 소문났던데, 아무래도 완벽하게 이미지 구상을 마친 뒤에 카메라로 그것을 완전히 재현하고 싶어하는 까닭이 아닌가 싶습니다. 공간이나 카메라 워크, 카메라의 위치나 프레임들, 이런 건 실제로 미리 세밀하게 준비하려고 하는 편이에요. 그러니까 완전히 정해진 촬영장소에서 제대로 관찰한 후에, 콘티를 그리죠. 머릿속으로만 담아두는 게 아니라 정말 실질적인 콘티를 하려고 애를 쓰는 편이죠. 다만 그런 화면 속에 배우가 들어갔을 때 발생하는 변화는 필요하다고 봐요. 배우와의 작업에 있어서는 순간순간적인 감정이나, 현장에서의 느낌을 굉장히 중시하는 편인데요. 배우들이 제가 생각하지 못했던 새로운 아이디어나 즉흥 연기 같은 걸 잘 구사하면 되게 좋아하는 편이죠. 드라마나 스토리, 캐릭터의 본질을 해치지만 않는다면 오히려 그런 걸 기대하는 쪽이고요. 오히려 현장에서 변화를 많이 주려고 하죠. (배우들과) 같이 대사도 많이 고치고.
작품마다 공간의 이면이 드러나는 점도 특징이라고 생각합니다. 일상적인 아파트 지하에서 서스펜스가 발생하고, 평온한 이미지의 농촌에서 살인의 스펙터클이 형성되고, 그리고 한강에서 괴물이 출몰한다는 것도 마찬가지고요. 어떻게 보면 괴물이 나오기에는 가장 썰렁한 장소이기도 하죠.(웃음)
작품마다 일반적인 공간의 이미지를 배반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더 크게 보면 공간성 이전에 뭔가 어색하고 안 어울리게 같이 뒤섞여 있는 것들이 있죠. 어떻게 보면 악취미이기도 한데,(웃음) 그런 부조화된 상태라던가, 그런 걸 좋아해서 그런 거 같아요. 그러니까 뭔가 되게 심각하고 장중해 보이는 장소에서 사람은 오히려 되게 조잡하고 뻘쭘한 짓을 한다거나,(웃음) 반대로 방금 말씀하신 것처럼 늘 지나가며 보던 논에서 살인사건이 벌어진다거나. 한강이란 어쩌다 휴일에 가서 오리배나 타는 곳인데 어이없이 거기서 괴물이 활보를 한다거나. 사실 되게 생경한 것들이죠. 예를 들어 울산에 있는 오래된 폐공장의 어두운 지하에서 괴물이 나온다면 분위기도 그럴싸하겠지만 이건 뭐, 자전거 빌려 타던 한강 다리 밑에서 (괴물이) 나오니까 뜨악해지는 거죠. 그런 이상한 부조화를 제가 좀 좋아하는 거 같아요.
어쩌면 그게 한국식 장르영화의 리얼리티가 될 수도 있겠습니다. 할리우드 장르영화와 한국영화 사이에서, 그러니까 (미국과) 한국현실 사이에 갭이 크잖아요. 할리우드 장르영화의 특징도 한때는 그게 사실적인 리얼리즘이었는데 그게 이제 장르의 컨벤션(convention)으로 오랜 세월 흘러오다 보니 굳어버린 거죠. 중절모를 쓰고, 기관단총을 쓰는 갱스터가 미국의 과거에, 1930년대 금주법 실행 당시엔 실제로 있었던 거잖아요. 근데 그게 하나의 장르가 되고 컨벤션과 클리셰(cliché)가 된 건데, 우리는 한국현실에 살면서 애초에 그런 미국적 리얼리티가 없이 장르만을 봐왔잖아요. 그 갭 자체가 영화상에 적용돼 들어가버린 거 같아요. 그래서 오히려 (제 영화가) 약간 웃기면서도, 생경하고 특이한 느낌으로 받아들여진 게 아닐까 생각해요.
공간의 이동 경로나 진행 방향에 따라 발생하는 감정의 양상도 다른 것 같습니다. 수직적인 이동이 야기되는 상황에서는 긴장감이 발생하지만 수평적인 상황에서는 처연함이 발생한다고 할까요. <괴물>을 예로 들면 현서(고아성)가 괴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하수구에서 탈출하려 안간힘을 쓸 때는 긴장이 발생하지만 희봉(변희봉)이 괴물과 맞서다 죽는 한강고수부지 씬에서는 처연함이 묻어납니다. 남일이 빌딩에 올랐다가 탈출하는 수직적 상황도 그렇고, 결말부에 강두가 괴물을 저지하는 상황도 수평적이라고 볼 수 있고요. 개인적으로는 비약해보자면 수직과 수평이라는 이미지에 어떤 의미부여가 있었던 건 아닌가 싶더군요. 그렇게 까지 거창하게 생각해본 적은 없습니다만,(웃음) 사실 제가 수직적인 것에 대한 집착은 있어요. <플란다스의 개>에서도 아파트는 수직적인 공간이었죠. 그래서 수평적인 복도에서 현남(배두나)과 윤주(이성재)가 쫓고 뛰어가면서 벌어지는 사건도 있고, 옥상에서 벌어지는 사건이나 깊숙한 지하실에서 벌어지는 사건도 있었고. 그리고 <괴물>은 명백하게 현서가 수직적인 공간에 감금되어 있는 거니까, 수직적인 비극이라고 할 수 있는 거죠. 불과 몇 미터의 높이를 올라가지 못해서 안간힘을 써야 하는 공포와 긴장이 있는 거니까. 그런데 수평이 어떤 감정과 연결됐다고 저는 크게 인식 못했는데 말씀하신 걸 듣고 나니까 <괴물>의 변희봉 선생 장면이나, 특히 <살인의 추억>의 백광호(박노식) 현장검증에서 아수라장에서 마무리되는 장면이 떠오르네요. 거기서 보면 고속촬영으로 흐르는 씬에서 논의 흙탕물이 막 튀고 사람들이 모두 뒤엉키죠. 그런 인간군상들이 어떻게 보면 약간 웃기기도 하면서도 처연하고, 우린 다같이 못난이 들이야, 잡혀온 사람들이나, 형사들이나 다같이, 그런 측면에서 처연하다는 표현이 맞는 거 같아요. 사실 난 잘 몰랐는데, 그랬던 거 같네요.(웃음)
아무래도 <괴물>은 괴물이 등장하는 장면의 비용대비효과를 극대화시키는 게 최대의 화두가 아니었을까 같습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죠.(웃음) 그 한정된 예산을 가지고 제가 사용할 수 있는 괴물 샷의 숫자는 이미 정해져 있었어요. 시나리오에 다 있는 장면이지만 단지 백 몇 십여 숏(shot) 안에 무조건 다 표현해냈어야 하니까 괴물 샷을 예산 때문에 줄여나가야 했죠. 그런데 그게 고통스러운 작업이었지만 할리우드에서도 다 겪는 일이더라고요. 이안 감독의 <헐크>메이킹을 보면 스토리보드상 CG샷이 4백여 개 정도되는데 이거 백여 개 정도를 줄여야 된다고 프로듀서랑 시각효과 감독이 이야기하면 이안이 영어 못 알아듣는 척하면서 눈만 깜빡이는 장면이 있어요.(웃음) 그런 걸 보면서 위안 삼았죠. 동시에 조금 좋게 생각하면 그런 현실적 한계가 저의 창의력을 자극한 부분도 있었던 거 같아요. 괴물이 카메라엔 안 잡히지만 같은 공간 안에 계속 존재하고 있다는 존재감을 유지시키면서 공포감, 긴장감을 유발시켜야 되니까 그런 연출을 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 아이디어들도 더 쥐어짜게 되고, 예를 들어 도입부에서 괴물이 처음 나타났을 때 컨테이너 박스 안으로 들어가는 장면이 있잖아요. 그 안에서 사람들 뒤엉키고, 컨테이너 박스가 이렇게 흔들리고. 그건 CG샷이 아니고 그냥 컨테이너 박스만 뒤에서 기계로 흔든 건데, 관객은 머릿속으로 그 안에 괴물이 존재하고 있다고 생각하게 되고 결국 그 안의 지옥의 아수라장을 예상하는 거잖아요. 그런 긴장감을 어떻게 끌고 가느냐가 관건이었죠. 오히려 좋게 받아들이면 좋은 상황이었던 거 같아요. 게다가 <괴물>이 순 제작비만 백억이 좀 넘은 영화니까 한국 기준으로 봤을 때 대작내지는 블록버스터라고 말하지만 특수효과를 비롯해 찍어내는 내용으로 봤을 때는 정말 저예산 영화나 다름없었거든요. 그래서 오히려 <플란다스의 개>나 <살인의 추억>때보다 저는 더 많은 압박을 느꼈어요. 그 와중에 무사히 끝난 게 다행이긴 한데, 사실 예산이 두 배나 세배로 더 풍족했었더라면 만약에 어떻게 됐을까, 약간 미련이 남는 지점이 있긴 했죠.
해외에서 감독님의 인지도가 높아진 만큼 감독 제의도 심심찮게 들어올 것 같습니다. 그 중에 제작비 여건이 한국보다 좋은 경우도 있을 법 한데요. 영화의 탄생 때부터 있었던 얘기지만 제작비의 지원이 클수록 그에 상응되는 더 많은 간섭이 있죠. 저는 다행히도 좋은 제작자들을 만나서 한번도 간섭 받은 적 없이 제가 하고 싶었던 걸 다 할 수 있었던 거 같아요. 그래서 극장에서 개봉한 제 세편의 영화들은 다 디렉터스 컷일 수 있었고요. 촬영에서건, 편집에서건, 별다른 큰 압박을 받거나 한 적이 없었어요. 그런 게 저의 행운이었다고 봐요. 내가 내 영화를 100% 컨트롤 할 수 있다는 것. 그게 저로써는 가장 중요한 부분이거든요. 이번에 <도쿄!>도 100% 저의 컨트롤로 완성한 영화인데 그게 충족이 된다면 해외에서도 영화를 해보고 싶어요. 근데 만약 그런 점이 잘 보장되지 않는 작업이라면 수천억, 수조를 줘도 별로 의미는 없는 거 같아요. 사실 미국 할리우드에 제 에이전시(agency)가 생긴 덕분에 할리우드 스크립트 시나리오들은 계속 들어오고 있고, 이런 저런 구체적인 제안을 받은 경우도 있었어요. 일본에서도 장편 영화 제안을 받은 적이 몇 번 있었고, 이미 제가 이미 하기로 한 프로젝트들도 일단 있고. 물론 이번에 <도쿄!>의 <흔들리는 도쿄> 30분 짜리를 짧게 경험해본 것처럼 지금은 조심스럽게 짚어보고 있는 상황이라, 선뜻 뭐라 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작품에 대한 컨트롤만 가능하다면 외국에서 영화를 찍어보는 것도 재미있는 일 같아요.
사실 전주국제영화제와 본격적인 인연을 맺은 건 ‘2004 디지털 삼인삼색’을 통해서였습니다. <인플루엔자>라고. 2004년이었죠.
그 작품이 유일하게 감독님이 디지털카메라로 만든 영화이기도 한데요. 같은 방식의 장편영화를 찍어볼 계획은 없을까요? 지금의 트렌드나 산업의 흐름상 어쩔 수 없이 변하게 되는 부분을 떠나서 순전히 개인적으로만 말해보자면 사실 저는 필름광이에요. 필름으로 찍힌 사진을 좋아하죠. 물론 편하니까 디카를 쓰긴 하지만 그래서 가끔 필름으로 사진도 찍고 그래요. 필름에서만 전해지는 이상한 화학적 느낌과 그 맛을 너무 좋아하기 때문에.
네거티브한 질감 같은 것 말입니까? 예. 그래서 어떻게든 저는 필름을 써보려고 버티는 쪽이 될 거 같아요. 물론 마이클 만 영화에서의 HD는 아름답고 박력 있는 느낌을 주긴 하죠. 요즘은 배급의 경제논리로 디지털 상영도 많이 하지만 전 디지털 프로젝터로 상영되는 스크린의 느낌도 좀 싫어요. 순전히 개인적인 취향이 그래요. 그런데 최근에 그런 선입견을 깨뜨린 게 데이빗 핀처 감독의 <조디악>인데 HD로 촬영했더라고요. 바이퍼 카메라로 찍었는데 화면의 품격이나 느낌들이 정말 좋았고, 저 정도가 나올 수 있다면 HD도 해볼 만 하겠다 싶었어요. 중후한 살인 사건 영화임에도 화면이 묘하게 부드러우면서도 아름답고, 하여튼 그 느낌이 독특했어요. 인상적인 경험이었죠. 라이팅(lighting)이나 시각 효과 자체도 뛰어났던 거 같아요.
<이공> 프로젝트 당시에 다른 감독들이 디지털 촬영으로 갔던 것과 달리 혼자 16mm필름을 사용한 것도 그런 애정 때문이었습니까? 그 때는 이제 몇 가지 사정이 있었죠. 그 때 제가 6분짜리 원씬 원테이크를 찍었잖아요. 어두운 다리 밑에 있는 매점 앞부분에서 찍다가, 밖으로 나왔다가, 이게 다 원테이크다 보니까 큰 노출 변화나 밝기 변화가 생기는데 그걸 디지털 6mm카메라로 하자니 극복하기 힘든 핸디캡이 있어서 어쩔 수 없이 반칙을 좀 했죠. 디지털 프로젝트인데 저만 16mm필름으로 찍었으니까.
작품마다 인상적인 캐릭터들이 등장합니다. 세 작품에 등장했던 캐릭터 중 특별히 개인적으로 애정이 컸다고 할만한 캐릭터가 있을까요? 다들 애정이 가지만 딱 하나만 꼽으라면,(잠시 생각하다가) 그냥 열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지만 지금 즉각적으로 떠오르는 한 명은 <괴물>에서의 현서, 고아성 양이네요. 모든 가족이 구하려고 하는 사람이니까, 어쩌면 오브젝트(object)가, 그저 단순히 대상이 될 수 있는 캐릭터인데도 걔는 거기서 더 약한 애를 구하려고 발버둥을 치잖아요. 결국은 끝에 가서 죽음을 맞이하지만 조그마한 남자아이를 보호하고 끝내 자기 아버지에게 인계한 셈이죠. 왠지 현서 생각이 나네.
세 작품은 인물들이 무언가를 찾는다는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강아지나, 범인이나, 현서나. <플란다스의 개>처럼 강아지를 찾아내는 경우도 있지만 결국 진범을 잡지 못한다는 아이러니가 있었죠. 그리고 <살인의 추억>에서 결국 진범을 찾지 못하는 것이나 <괴물>에서 살아있는 현서를 만나지 못한다는 것도 결국 인물들이 이루고자 하는 바가 해소되지 못한다는 맥락적인 공통점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러고 보니까 진짜 뭐가 제대로 성사된 적이 없네요.(웃음) 항상 빗나갔군요. 제가 좀 긍정적인 사고를 해야 하는데.(웃음)
어쩌면 그게 감독님께서 인지하시는 현실적 리얼리즘이 아닐까 생각되는데요. 그들이 하나같이 서민이란 점도 그래서 왠지 의미심장해 보이고요. 사실 살다 보면 참 뜻대로 안 되는 게 많죠. ‘쿵따리 샤바라’가사에도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을 때도 있고’란 가사도 있듯이,(웃음) 되지 않을 때가 되게 많은 거죠. 진짜 그렇죠. 월트 디즈니 영화를 보면 모든 것이 안락하게 봉합되면서 끝나는데 사실 그렇게 되는 게 나쁜 건 아니지만 그렇게 잘 안 되잖아요. 뭔가에 실패하거나 어긋나는 게 우리 삶에 가까운 모습이니까 오히려 관객들이 공감할 수 있는 거 같아요. 때론 좀 씁쓸하거나 잔인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사실 오히려 그게 위로 받는 것일 수도 있지 않을까요. 나도 저랬었지. 그렇지만 계속 살아야지 어쩌겠어. (<괴물>에서) 강두(송강호)도 딸을 못 구했지만 세주(이동호)와 함께 밥을 꾸역꾸역 먹잖아요. 산사람은 계속 살아야 하니까. 그게 한편으로 슬프면서도 약간의 낙관성인 거 같고.
비약이 될 수도 있지만 감독님의 정치적 자의식이 개입된 측면이라고 생각해봐도 될까요? <괴물>이 괴수장르다 보니까 장르 전통에 맞게 직설적이고 썰렁한 정치풍자를 많이 하긴 했지만 정치 이전에 더 큰 생활, 내지는 삶의 영역인 거 같아요. 사소한 게 안될 때도 많잖아요. 짬뽕시켰는데 자장면 나오고.(웃음) 거대한 정치가 아니더라도 그런 것도 원하는 대로 안 되는 거잖아요. 속상하지만 배가 고프면 자장이라도 먹어야 되는 거죠.
<괴물>은 분명 진보적인 메시지를 품은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 영화는 1300만이라는 스코어를 기록했죠. 단순히 그 머릿수를 개개인의 정치의식으로 온전히 치환하는 건 무리겠지만 정말 많은 수의 관객들이 이 영화를 봤습니다. 그런데 불과 2년 만에 보수 정권이 들어서는 상황이 발생했습니다. 이는 감독님에게 어떤 아이러니한 단상을 줄만한 사안이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괴물>에 의도적인 풍자나 메시지가 있는 건 사실이죠. 그런데 관객 입장에서 받아들이는 건 여러 가지 맥락이 있을 것 같아요. 가까운 지인의 말로는 어린 초등학생 딸래미가 자기 아빠랑 영화를 보고 극장에서 손잡고 나오면서, 아빠도 내가 어디 잡혀가면 저렇게 해줄 수 있어? 이랬다더군요. 그 아이 입장에선 그런 면이 두드러져 보였을 테니까요.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될 때 득표수를 보면 1100만 표 정도되더라고요. 근데 방금 1300만이라고 말씀하신 얘기를 들어보니까 티켓 구매수가 득표수보다 많았군요. 물론 그래서 <괴물>이 잘 났다는 게 아니라.(웃음) 어쨌든 정치적인 투표행위, 정당과 인물을 선택하는 문제와 영화를 감상하는 행위는 다른 거 같아요. 영화는 다층적으로 받아들이는 거기 때문에. 변희봉 선생님을 보면서 자기 아버지가 생각나는 사람도 있는 거고, 미국에 대한 풍자나 정치적인 서브 텍스트들을 민감하게 보는 대학생이나 지식인도 있을 수 있는 거고, 내 아빠라면 어떻게 할까, 하고 울고 웃으면서 보는 꼬마도 있을 수 있고, 그렇게 광범위하게 볼 수 있는 거니까. 영화가 <화씨9/11>같은 마이클 무어 다큐멘터리처럼 어그레시브(aggressive)한 직접적인 정치 다큐멘터리가 아닌 이상, 특히나 극영화들은 대중의 정치적 성향과의 함수 관계 같은 걸 쉽게 짚어볼 수 있는 건 아닌 거 같아요. 훨씬 혼란스럽고 복잡한 문제겠죠. 일단 <괴물>이 약간이건 많이건 진보적인 성향의 풍자를 담고 있고, 그 영화를 1300만이 봤지만 그 다음해에 바로 보수적인 성향의 정권에 1100만여 명의 사람이 투표를 했다는 게 이상하지 않느냐, 라는 논리를 세울 수는 없을 것 같아요. 충분히 그럴 수 있는, 훨씬 더 복잡한 레이어(layer)들이 있다고 보고요.
감상의 방향은 다양할 수 있으니까요. 한편, <살인의 추억>처럼 <괴물>도 절망을 내포하고 있지만 결말부의 느낌은 좀 더 낙천적인 양상으로 전진하는 느낌이 있습니다. <괴물>은 현서가 죽음에도 불구하고 낙천적인 면이 있는 거 같아요. 아까도 얘기했지만 영화가 밥 먹으면서 끝나잖아요. 먹는 걸 계속 강조하는 영화이기도 했고. 혈연관계가 아닌 괴상한 인연의 두 사람이 마주앉아서 꾸역꾸역 밥을 먹잖아요. 낙관적인 면이 있었다고 봐요. 반면 <살인의 추억>은 어쩔 수 없이 어둠을 직시해야 하는 영화였죠. 단순히 제목은 역설적으로 추억이지만, 실제론 추억이라 말할 수 있는 과거가 아니라 해결되지 않은 과거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의 현재란 것이죠. 우리가 80년대에 이렇게 연쇄살인범 하나도 못 잡고 여자들을 보호도 못하고 줄줄이 죽이면서 이런 꼬라지로 살았지만 지금 우리는 안 그래, 이런 안도하는 관점에서 과거를 봐서는 안 된다는 거죠. 그래서 이제 2003년 에필로그를 넣기도 했지만, 박두만(송강호)이 관객을 정면으로 바라보는 라스트 컷을. 과거에 우리가 이렇게 어두운 시절이 있었고, 그렇다면 그 어둠을 지금 우리는 완전히 다 씻어낸 것인가, 그런 질문을 던지는 거였죠. 만약 그걸 강하게 집중해서 봤다면 어둡고 막막해지는 느낌이 있었을 거에요. 좀 부담스러운 면이 될 수도 있었겠죠.
결국 과거나 허구를 통해서 현재와 현실을 환기시키는 셈인데, 그것이 감독님이 추구하는 영화적 리얼리즘이라 할 수 있을까요? 사실 저는 리얼리티, 사실적이고 표면적으로 보이는 것에 대한 관심은 많은데 리얼리즘에 대한 특별한 관심은 없어요. 그걸 추구하지도 않고요. 영화는 판타지라고 믿는 쪽이죠. 대신 한국현실과 판타지가 이상하게 충돌했을 때, 아까 말한 한강둔치에서 뛰어나오는 괴물처럼, 거기서 나오는 생경한 영화적 흥분을 좋아하는 것일 뿐이에요. 대신 내가 한국현실에 대해서 의도적으로 목청 높여 메시지를 부르짖거나 발언을 하고 싶었던 건 아닌 것 같아요. 켄 로치나 올리버 스톤 영화처럼. 다만 제가 한국 사회에 관한 여러 가지 궁금증이나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부분들, 다들 미쳤나 봐, 왜들 저러지, 너무 무서워,(웃음) 이런 공포감은 있죠. 사회에 적응하기 힘들지 않아요? 누구나 힘들잖아요. 아마 한국사회뿐 아니라 모든 사회가 그럴 수 있겠지만 제가 외국에서 못살아봤고 한국에서만 살아봤기 때문에 저한테 사회나 시스템은 그냥 한국사회인 거죠. 그런 것들이 자연스럽게 영화에 투영되는 거 같아요. 다만 제가 어떤 계몽적인 메시지를 던질만한 주의, 주장을 가진 사람은 아니고. 제 자신의 생각에도 항상 회의를 품는 성격이기 때문에, 주장을 하는 데는 되게 소심한 사람이고요. 그저 제가 한국사회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의문이나 도저히 이해를 못할 부분, 막연한 공포감들이 영화에 반영되는 셈이죠. 사실 합동분양소처럼 집단 장례식을 한다는 건 그만큼 사람이 떼로 죽는다는 얘기니까 그것만으로도 엽기적이고 공포스러운 일인데, 그 와중에 거기서도 누군가가 2487차 빼라고 막 소리지르고.(웃음) 사실 우리가 매일같이 겪는 일이잖아요. 누구 차 빼달라는 거. 그게 웃기면서도 되게 슬프고 공포스러운 순간이죠. 그런 이상한 감정들이 한국사회에 용광로처럼 뒤얽혀있다고 보기 때문에 보는 이가 어떤 감정을 느끼건 전 그걸 고스란히 표현하고 싶은 거죠.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현실이 영화적 모티브가 된다는 것이군요. 예! 영화나 드라마가 따라갈 수가 없다니까요. 현실적으로 벌어지는 이 시츄에이션(situation)들을 보면 이게 뭔가 싶은 것들이 많이 보이죠.(웃음) 모든 창작자들이 그렇겠지만 주변 현실에서 받는 자극이나 영감이 큽니다. 소설이나 영화와 같은 타인의 창작물을 보면서 느끼는 자극보다도 제가 살아가고 있는 생활이나 주변, 한국 사회의 어떤 순간순간적 모멘트(moment)에서 자극을 받는 경우가 많죠. 개인적인 경험이나.
그런 순간적 자극을 기록해두기도 하나요? 그럼요. 특히 <플란다스의 개>는 소소한 일상적 디테일을 구성할 때 그런 걸 많이 활용했어요. 휴지를 백 미터 굴리는, 그 너무나 어처구니없는 장면 같은 경우도 실제로 해본 건 아니지만 제가 조감독 때 경제적으로 힘들게 살면서 했던 생각이에요. 조감독 때는 워낙 돈이 없잖아요. 그런데 애는 키워야 되고 생활은 쪼들리니까 맨날 아르바이트하고 그랬는데 그럴수록 예민해지거든요. 돈이 없이 지내보면 알겠지만 슈퍼에 가서 음료수를 살 때 용량 120㎖ 이렇게 써 있으면, 이게 120㎖ 맞는지, 안 맞는지 누가 알아, 누가 재봤어? 이런 생각이 드는 거에요. 아니면, 0.5ℓ 함유? 이 자식들 0.4ℓ넣어놓고 이렇게 파는 거 아냐? 막 이렇게 예민하게.(웃음) 휴지도 보면 겉에 보면 100m라고 써 있는데, 진짜 100m맞아? 이게 과연? 이것도 돈 내고 사는 건데, 운동장100m 트랙 위에 쫙 펴볼까? 이런 상상도 했거든요. 그러다 보면, 이런 건 내가 봐도 너무나 쪼잔하다, 내가 어쩌다 이런 인간이 됐지? 이렇게 생각하면서도 웃기니까 그런 걸 공책에 적게 됐어요. 그러다 그 이상한 시츄에이션들이 이제 시나리오 속으로 들어가게 된 거죠. 그런 경우가 많이 있었어요.
전주영화제가 끝나면 이제 <도쿄!>프리미어가 열리는 칸영화제로 가시겠군요. 이제 한국을 대표할만한 감독으로 꼽히고 있기도 한데. 김기덕 감독님이 대표할만한 분이죠.(웃음)
최근 영화주간지에서 조사한 영화인 파워리스트마다 감독 중에 가장 상위 랭커를 차지했다던데요. 그니까 그게 참 이상한 거에요. 사실 저를 규정하는 가장 명쾌하고 쉬운 방법은 영화 세편 찍은 감독이라는 거에요. 세 편밖에 못 찍었고, 계속 가봐야 알 수 있는 거죠. 저의 유일한 꿈은 임권택 감독님이나 마뉴엘 드 올리비에라(Manuel De Oliveira)처럼 끝까지 현역으로 남아서 영화를 계속 찍는 게 제 유일한 꿈이에요. 그러다 보면 언젠가 한번쯤 걸작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라는 막연한 희망을 가졌기 때문에 계속 하려는 것이기도 하죠. 지금의 파워리스트 같은 건 그저 형식적인 거 같아요. 제가 제작사나 영화사를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고 저는 그저 제가 찍고 싶은 스토리나 저를 흥분시키는 어떤 한 이미지나 장면에만 병적으로 집착하면서 살아가는 삶이니까. 어쩌면 파워리스트에서 조만간 사라지게 될지도 모르죠.(웃음) 만약 그래서 계속 영화를 찍을 수 없다면 개인적으로 영화를 찍을 수 있는 방법들을 마련해봐야겠죠.
하지만 김혜자 선생님이 <마더>에 캐스팅됐다는 게 현재 그 파워를 증명할만한 사례가 아닐까 생각되는데요?(웃음) 김혜자 선생님과 접촉했던 건 <괴물>찍고 나서가 아니고요. <살인의 추억> 그 직후에 처음 연락 드린 거에요. 그니까 <마더>는 <괴물>전부터, 이미 오래 전부터 준비해왔던 프로젝트였고, 김혜자 선생님을 전제로 해야만 성립되는 프로젝트라서 배우가 먼저 정해진 상태에서 시나리오도 쓸 수 있었죠. 김혜자 선생님을 처음 뵌 지는 벌써 4년이 흘렀네요. 선생님도 많이 기다리셨죠.
벌써 <마더>의 차기작도 정해졌다고 알고 있습니다. 2010년도 쯤에 <설국열차>도 제작하실 예정이죠? 2010년이나 2011년쯤에 되겠죠.
아무래도 지금까지 감독님은 한국적 현실을 영화적 배경으로 삼아왔는데 <설국열차>는 원작만 봐도 범세계적인 프로젝트가 될 것 같습니다. 저의 새로운 도전이죠. 그 영화 찍고 나면 많이 늙을 거 같네요.(웃음) 정신과 육체를 많이 리프레쉬(refresh)하면서 잘 버텨야 할 텐데. 대작이 될 거 같아요. <마더>는 내용은 찐하지만 규모는 크지 않을 것 같고요. 아마 <설국열차>는 몸과 마음의 준비를 잘 해야 할 것 같아요.
<알 포인트>만큼이나 <GP506>도 우여곡절이 많았다. 낯선 외국에서 찍느라 힘들었던 <알 포인트>와 달리 <GP506> 촬영현장에서 힘들다는 생각은 별로 들지 않았다. 조금 여유가 생겼다고 할까. 다만 촬영이 중단됐을 때 힘들었지. 이런 말하긴 뭐하지만, 마지막 컷으로 폭파씬을 찍는데 이런 생각이 들더라. 난 평생 우아하게 영화 찍긴 글렀나 보다라는.(웃음) 욕지거리하고 악다구니 쓰는 그런 스타일의 영화만 찍어야 되나 봐. 운명 비슷한 걸 느꼈다고 해야 하나.
<알 포인트>당시 했던 고생이 <GP506>의 불미스러운 과정을 견디는데 도움을 준 건 없었을까. 인내심을 함양시켜줬다던가.(웃음) 아무리 겪어도, 면역이나 단련이 안 되는 일이 있는 것 같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니라서 내 능력과 상관없이 벌어지는 상황을 마냥 바라봐야 했던 게 제일 안타깝고 힘들었지. 지금도 정신적인 후유증이 많이 남아 있는 것 같다. 그러다 보니까 스태프들이나 배우들에게 전우애 비슷한 위계감 같은 것도 좀 생겼나 보다.
자신의 군대 경험이 <GP506>의 모티브가 됐다고 종종 밝혔다. 아무래도 극단적인 상황은 드라마톤으로 만든 것이라 해야겠지만 군대에서 겪은 경험적인 부분들을 극화시킨 게 많다. 물론 지금 군생활 하는 젊은 친구들과 다른 건 많다. 가뜩이나 난 군사독재시절에 군대를 경험하기도 했고. 하지만 흔히 그런 얘기들 하잖아. 아무리 편해도 힘든 게 군대라고, 그런 점에서는 여전히 공통점이 있는 것 같다.
모티브를 얻은 건 오래 전이지만 본격적인 시나리오 집필은 1년 반 전에 이뤄진 것이라고도 했다. 본격적인 집필로만 따지면 1년 반 정도, 다만 구체적인 구상까지 포괄하면 한 3년 정도라고 보면 될 거다. 사실 모티브의 시작이 된 프롤로그는 10년 전에 써놨던 거다. 10년 전에 GP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생각하기 시작했는데 이상하게도 그때 작성된 시놉시스 중 프롤로그만 거의 시나리오 수준으로 디테일하게 작성이 됐다. 그리고 10년 전에 썼던 그 프롤로그를 그대로 <GP506>에 썼지. 물론 그 다음 이야기들은 상황을 많이 바꿨지만 아마 그게 계속 남아있었기 때문에 지금 <GP506>을 만들게 된 건 아닌가 싶다.
그 프롤로그는 분명 연출은 염두에 두지 않고 단지 시나리오로서의 완성만을 염두를 뒀을 텐데. 당연히 그땐 이야기를 완성하려고 했을 뿐, 연출까지는 생각을 안 했었다.
어쩌다 보니 직접 연출하게 됐다. 한번 연출을 하게 된 이상, 투자사에서 바라는 건 다음 작품에서도 연출하는 것이더라. 원래 이 이야기는 두 가지 설정으로 시작했었다. 지금 <GP506>같은 이야기가 하나 있었다면 해학적이라고 할 수 있는 코믹한 설정의 이야기가 있었다. 남북의 현상황도 결부가 되어있는 블랙코미디 같은 느낌. 그렇게 두 가지 설정을 잡아서 제작자들을 만났었는데 제작자들은 코미디 쪽을 많이 선호하더라.
그런데 어떻게 전자를 선택했을까? 코믹한 걸 먼저 만들어버리면 <GP506>을 못 만들 것 같더라. 하드하고, 오소독스(orthodox)한 이야기를 만들고 나서도 코미디를 만들 기회는 있을 것 같아도 코미디를 먼저 만들고 정곡을 찌르는 쪽으로 가긴 좀 힘들겠다 싶어서 <GP506>을 먼저 만들었다. 농담 삼아 이게(<GP506>) 잘 되면 이것도 만들겠다는 식이지.(웃음)
군대와 코믹이란 게 은근히 어울린다. 사실 개인적으로 군대에 있을 때 내무반에 몰래 CCTV하나 달아서 외부인에게 보여주면 이거야 말로 코미디 같겠다는 생각을 종종 했었다.(웃음) 그런 것들이 많이 있지.
사실 군대라는 조직이 조폭성과 비슷한 면도 많다. 그렇지. 그 조직의 특성상.
조폭성을 희화화시키는 것처럼 군대를 희화화시킬 수 있는 것도 어쩌면 같은 맥락이 아닐까 싶다. 그 의견은 좋은 거 같다. 내가 계속 군대이야기를 하게 되는 이유 중의 하나는 조직에 대한, 그런 시스템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고 싶기 때문이니까, 맞네. 사실 난 거기까진, 조폭과 군대를 등차 시켜서 비교해본 적은 없는데 그 얘길 듣고 생각해보니까 정말 비슷한 점이 많아 보인다.
사실 말투 자체도 기이하게 닮았다.(웃음) 언제부터 그렇게 된 건지 모르겠지만. 원래 그게 우리 때는 안 그랬다. 내가 83년 12월에 입대해서 86년 5월 1일에 제대를 했는데 그때까지도 그랬습니까, 알겠습니다, 그랬다가 정확히 언제부터 그렇게 된 건지 모르지만 90년대 후반에 들어서부터, 이렇지 말입니다, 이런 말투들이 등장하는 것 같더라. 근데 난 영화에 그런 말투를 안 쓰려고 굉장히 많이 노력했다. 그건 자칫 잘못되면 ‘동작 그만’ 같은 코미디 프로의 느낌이 날 것 같아서였다. 그래서 나름대로 자기 설정들을 하면서 말투도 준비해온 배우들에게 내가 되려 많이 자제하길 부탁해서 처음엔 배우들이 대개 당황스러워하더라. 자기가 애써 준비해온 설정을 자꾸 커트시키니까. 하지만 우리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에 비해 그런 부분들이 너무 깨는 느낌이라 주객이 전도될 것 같았다. 그래서 통제를 할 수 밖에 없었다.
아무래도 장르를 그릇 삼으려는 의도에 부합한 결과를 얻고 싶었던 거 같다. 미스터리 스릴러를 표방한 다른 장르영화들과 <GP506>이 다른 점은 누가 범인이냐, 어떤 일이 일어났느냐, 에 중점을 두지 않고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이냐, 에 중점을 뒀다는 거다. 누가 범인인지, 가해자인지, 가 아니라 가해자가 곧 피해자고, 피해자가 곧 가해자가 되는 혼돈, 카오스를 표현하는데 역점을 뒀다. 물론 미스터리 스릴러란 장르의 형식들을 취하지만 어디까지만 가져가고, 어디서부터 파괴시켜버려야 할지에 대한 나름대로의 특별한 시도를 해보려 했었다. 그래서인지 영화를 만들면서도 그런 부분에 대해 많은 논란이 있었다.
그에 대한 평가가 엇갈리고 있다. 많이 낯설어하는 것 같더라. 생각해보면 <알 포인트>때도 기자시사 후에 기자들 반응이 굉장히 싸늘했다고 느꼈었다. 그것도 나름대로 유추해보면 어떤 생소함 때문이라 해야 할 것 같다. 공포라는 장르적 형식을 벗어난 생소함이랄까. 어쨌든 <GP506>에 대한 평가들이 극단적으로 갈리는 것도 그 때문인 것 같다. 나도 처음부터 많이 갈릴 것이라고 예상했었고. 그런데 감염의 수위라던가, 그에 관련된 바를 세다고 받아들일 거라 예상하지 못했다. 그래서 관객들의 반응에 조금 당황한 건 그래서다.
많은 이야기를 담기엔 러닝타임이 버거웠던 것 아닌가. 많은 이야기 때문에 그런 것 같진 않다. 산만하다는 의견은 장르의 공식을 쫓아가지 않았기 때문에 나온 거 같다. <GP506>은 과거와 현재를 오간다. 현재에서 GP에 들어온 새로운 수색대원들이 사건을 풀어가는 와중에 어쩌다 그들이 몰살을 당하게 됐을까라는 과거의 이야기가 진행된다. 그런데 사실 현재와 과거의 이야기는 결국 똑같은 이야기다. 그래서 이 똑같은 이야기를 어떻게 보여줄까를 고민했다. 두 이야기를 각자 그대로 풀어가면 시간적인 제약에 오버가 되는 것도 있지만 여러 가지 면에서 비능률적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상징적인 씬들을 통해 계속 진짜와 가짜를 의심하게끔 이야기를 펼쳐갔다. 그런데 아마도 과거부분에서 이야기를 펼쳐가는 게 장르적 공식과 많이 벗어난 것에 혼동을 느낀 게 아닐까 싶다. 장르적 스타일대로 누가 범인인가라는 이야기를 하다가 5분의 3지점에서 그걸 다 풀어져버리고 드라마로 가니까 굉장히 낯설 수 있는 거다. 물론 내가 극복하지 못한 나름대로의 한계도 분명히 있었다. 내 나름대로 이야기나 장르적 플롯을 풀어간 갔음에도 불구하고 산만하게 느껴진다면 그건 내 한계 때문이다. 단지 해석의 측면에서 나름 상충되는 부분들이 있는 거 같다.
<알 포인트>는 전장을 배경으로 함에도 치열한 전투씬 한번 없다. 반면에 <GP506>은 실제 전장이 아닌 곳에서 전장보다 참혹한 상황을 그린다. 아무래도 그건 스스로가 과거의 베트남보다 현재의 GP를 더욱 민감한 사안으로 여기고 있다는 반증 아닌가. 사실 사람이 죽거나 (사람을) 죽인다는 게 무서운 거다. 하지만 군대는 합법적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는 곳이다. 물론 비상상황에 국한된 바겠지만 그런 폭력의 합당화가 아이러니했다. 그런 참상들을 관객들에게 가깝게 다가서게 하고 싶어서 두 번의 총격씬에 공을 들였다. 그 총격전에 참혹하고 끔찍한 느낌으로 다가서길 바랬고, 그렇게 만들기 위해 많이 노력했지.
<알포인트>와 <GP506>은 폭력성의 전의를 묘사한다. 하지만 <알포인트>가 빙의라는 초자연적 방식을 택한 것과 달리 <GP506>이 감염이라는 물리적 방식을 택한 것도 그 때문이 아닐까. 그렇게까지 의식하진 않았다. 집단 최면이나 집단 공황에 대한 메타포(metaphor)를 생각했고, 바이러스에 의한 감염은 그런 상황에서의 공포를 야기시키는 경로라 할 수 있다. 사람들이 감염에 대해서, 너무 정보가 없다, 이야기를 끌고 가다 포기한 거 아니냐, 이런 식의 반응을 보이는데, 거기에 너무 중점을 두면 <레지던트 이블>같은 영화가 될 것 같았다. 사실은 그에 대한 이유들이 다 있었지만 모두 배제시켰다. 정작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그 후에 과연 이 젊은 친구들이 어떻게 될 것인가가 중요했으니까. 나름대로 감염에 대한 상징성을 부여하려고 애썼다.
그 감염이란 게 군대라는 강압적 체제의 지지를 위한 체제적인 훈육, 노골적으로 세뇌와도 결부되는 느낌이었다. 군가를 통해 피와 생명을 요구하는, 그런 것과 마찬가지다. <GP506>에 논란이 많은 건 피상적으로 보여지는 걸 지적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지금 당신이 말하는 것처럼 상징과 알레고리를 통해 해석하는 사람도 있기 때문이겠지. 물론 전혀 엉뚱하게 이야기를 보는 사람도 있지만.(웃음) 물론 나는 관객들 각각이 나름대로 해석하는 게 궁극적으로 맞는다고 생각한다. 다만 스펙트럼이 너무 다양해서 한편으로 재미있지만, 한편으론 비의도적인 맥락이 보이기도 해서 아쉽기도 하다.
<알포인트>도 그렇지만 <GP506>도 많은 해석을 부르는 영화다. 물론 의도적인 건 아니지만 그런 얘기는 많이 들었다. 촘촘하게 짜놓은 이야기를 어떤 한정된 시간 안에 집어넣는 게 내 시나리오 스타일이다. 그렇다 보니까 영화상에서 함축되는 부분도 있고, 떨궈져 나가야 되는 부분도 있고, 군데군데 점프가 되는 부분들이 생긴다. 자기 나름의 해석을 통해 그런 부분을 좋게 보는 분들도 있지만 무책임하다고 지적하는 분들도 있다. 그리고 제작자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항상 내 이야기가 두 시간 안에 담기엔 굉장히 분량이 많다고 한다. 아무래도 난 어떤 한 상황에서, 어떤 한 샷에서, 어떤 한 장면에서, 어떤 하나의 이야기를 하는 것보단 이야기가 화면을 빡빡하게 채워주길 바란다. 예를 들자면 나와 당신이 이렇게 이야길 나누는 와중에 이 옆을 지나는 사람이든, 주변에서 뭔가를 하는 사람이건, 여기저기 일이 동시에 진행되는 듯한 꽉 찬 느낌이라 할 수 있다.
<알포인트>의 프롤로그가 원래 최태인 중위의 전사(前史)에 해당하는 쏭카우 전투였지만 촬영을 못해서 포기했다고 들었다. 본인도 그 부분을 찍지 못해서 상당히 아쉬워 했다고 하던데.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최태인 중위에 대한 이야기는 <알포인트>시점의 전이 됐던, 후가 됐건, 한번 더 해보고 싶다. 물론 후는 전사(戰死)한 상태겠지만. 쏭카우 전투는 최태인 중위라는 캐릭터가 왜 그렇게 시니컬하게 됐는지 잘 설명해주는 부분이다. 무엇보다도 히스토리를 갖고 있는 부분이라 굉장히 안타까웠다. 그래서 <GP506>시나리오 작업을 하면서 적어도 돈이 없어서 못 찍는 부분은 없게 하자고 마음먹었다.
그렇다면 최태인 중위의 쏭카우 전투만큼이나 <GP506>에서 아쉬운 부분은 없었나? GP는 비무장지대 안에 있다. 그곳이 50년 동안 버려진 대자연 속에 외롭게 떠 있는 섬이라고 느껴졌고, 그런 것들을 표현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헌팅도 많이 다녔지만 좋은 장소도 많이 없었을뿐더러 좋은 장소를 찾으면 장비가 못 들어가더라. 우리는 계속 비를 뿌려야 했기 때문에 살수차나 발전차도 있어야 되고, 그 밖에 여러 가지 장비들이 들어가야 되는데 그럴 수 없어서 그 부분을 포기하게 됐고, 결국 시나리오를 다시 썼다. 그래서 GP안에서의 상황들만을 다룬 미시적인 이야기로 가게 됐다. 만약 그런 것들이 가능했다면 지금보다 더 풍부한 상황을 연출할 수 있었을 테니까 그런 건 아쉽지. 아까도 말했지만 총격전은 관객들한테 섬뜩한 느낌을 줄 수 있게 찍고 싶었다. 우리가 특효탄만 7~8천 발 쏘고 피탄효과나 파편효과도 냈지만 그래도 많이 부족하더라. 그래서 그 부분을 좀 더 잘 찍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GP506>은 호러적인 연출로 심리적 불안을 조성하지만 고어적 충격으로 물리적인 타격을 준다. 단순히 공포로 에두를 수 있지만 특정장르로 구분할 수 없는 복합성이 있다. 그 예는 분명하다. 일단 공포스럽게 연출한 씬에서 음악은 많이 배제했다. 심지어 목덜미에서 바이러스에 관한 정체가 발견됐을 때도 음악을 배제했다. 목덜미가 클로즈업될 때, 임팩트를 줄 수 있게 ‘쿵’하는 음악이 들어가야 되는데 그걸 다 빼버렸거든. 그런 방식을 한번도 사용하지 않았다. 난 그게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믹싱을 한 뒤, 영화를 본 몇몇 분들은 그에 대해서 음악을 집어넣는 게 좋지 않겠냐는 의견을 많이 개진했지만 내가 그렇게 의도한 게 아니라서 그냥 그렇게 갔다. 게다가 장르에 어울리지 않게 왈츠를 종종 배경음으로 깔아버리곤 했다. 아마 내가 무의식적으로 장르적인 느낌들을 많이 지워보려고 했던 게 아닌가 싶다. 공포심이 유발되는 부분에서 관객들이 특별한 분위기로 젖어 들게 하려고 그런 스타일로 연출했던 거지. 그래서 그런 부분들을 의식적으로 많이 배제했다.
<GP506>에서 두드러지는 건 아무래도 GP의 미로적인 구조였던 것 같다. 미로의 폐쇄성은 영화에서 많은 역할을 한다. 어떻게 보면 이 영화의 주인공은 GP라고 생각한다. 공간에 대해서 많은 고민을 했고 신경을 썼다. 그 공간 자체가 인간의 정신 밑바닥에 있는 복잡미묘한 느낌일 수도 있고, 우리 스태프 중 누구는 조직이나 시스템을 상징하는 게 아니냐는 얘기도 했다. 그리고 그게 틀린 생각은 아닐 거 같다. 우리가 찍어놓고 편집상에서 백지화시킨 부분에서 우리는 잠수함 속의 토끼와 같은 존재다라는 대사가 있다.
게오르규의 작품에 나오는 ‘잠수함 속의 토끼’말인가? 맞다. 나는 GP가, 좀 더 거시적으로 보면 군대 자체가 우리 사회에서 잠수함 속의 토끼 같은 존재라는 생각을 했다. 병사들이 군대라는 조직적 시스템에 대해 갖는 생각들이 공간으로 표현된다면 이런 느낌이 아닐까. 그래서 GP라는 공간에 의도적인 장치들도 가미했다. 사실 GP안이 영화처럼 그렇지 않거든. 복잡한 파이프 라인이라던가, 콘크리트의 질감이라던가, 그런 부분들에 많이 신경을 썼었다.
그런 공간을 연출한 건 <코마>시리즈를 거쳐서 더 수월했을지도 모르겠다. <코마>에서 등장한 병원의 통로와 GP의 통로엔 유사한 면이 보이더라. 병원 지하의 느낌과 유사한 면도 있었지. 그리고 <GP506>세트팀장이 <코마>때 함께 했던 세트팀장이라 그런 점도 있을 거다.
<알포인트>와 <GP506>의 병사들이 결국 몰살당한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40년의 시대적 격차를 지닌 두 이야기가 군대란 체제 안에서 어떤 방식으로든 파국을 드리우는 건 변치 않는 체제의 속성에 대한 문제제기처럼 보인다. 게다가 <GP506>은 현실을 배경으로 한다는 점에서 더 심각해 보인다. 군대는 앞으로도 그러지 않을까. 군대라는 조직 자체는 끊임없이 자기 쇄신을 해야 되고, 자기 채찍질을 해야 되는 곳이다. 특히 우리는 분단상황을 비롯해 여러 가지 사안들이 있으니까 더더욱 철저해야지. 앞으로도 기회만 된다면 그런 조직이나 시스템이 유발할 수 있는 폭력의 참혹한 결과에 대한 이야기는 계속 해보고 싶다. 그건 자이툰이 됐든, 레바논에 있는 평화유지군이 됐든 상관없다. 물론 내가 해답을 지닌 사람은 아니기 때문에 그저 물음표를 던져주는 거지.
노성규 원사는 은폐된 사건을 밝히려는 사람인데 후에는 모든 걸 함구하는 쪽으로 선회한다. 이는 당신이 현상황의 체제로부터 느끼는 망연자실이 투영된 것 아닌가. 이거 국방부에서 보면 굉장한 블랙리스트가 될지도 모르겠는데.(웃음) 그런 건 당연히 있지. 노성규 원사는 최태인 중위와 더불어 가장 애착이 남는 캐릭터다. 아내 발인 날, 발인을 하지 않고 GP를 가게 된다거나 자기 자식 같은 병사들을 죽여야 하는 상황들 때문에. 나는 그가 내린 결정이 과연 옳은 결정이었냐에 대한 논란도 되길 바라고 있다. 어떤 사람은 그 사람을 파시스트처럼 볼 수도 있고, 군의관처럼 네가 무슨 자격이 있어서 걔네 들을 죽이냐고 따져 물을 수도 있다. 역으로 누군가 손에 피 묻히는 역할을 해야 된다는 딜레마에 빠질 수도 있고. 일단 노 원사는 묵묵히 자기 일을 해낸 사람이다. 내가 경험한 하사관은 두 부류였다. 아주 악랄하고 새디스트 같은 인물도 있지만 반면 아버지 같은 마초형 양반들도 있다. 노성규 원사는 그런 분들에 대한 내 나름대로의 헌사라고 생각한다. 그 양반들이야말로 청춘을 모두 군에 바친 분들이니까. 별 달고 있는 장군 같은 사람들은 청춘을 바쳤다기 보단 그저 출세를 위해 달려온 사람들이고. 그런 것에 대한 내 나름대로의 마음이 노성규 원사에게 들어가 있다. 난 그런 인물이 개인적으로 좋다. 예를 들자면 <아라비아의 로렌스>의 로렌스처럼, 이 사람이 과연 영웅인지, 제국주의의 꼭두각시인지 애매한, 어떨 땐 자기 멋에 취해서 오버하기도 하고. 그런 인물들이 나에겐 굉장히 깊이 각인된다.
혹시 노성규 원사의 선택과 다른 방향을 염두에 둔 적은 없었나? 난 노성규 원사는 그렇게 갈 수 밖에 없으리라고 생각했다. 대신 노성규 원사의 반대측에서 그와 강하게 대립하고 갈등할 수 있는 인물들에 대해 많이 고민했었지. 내가 개인적으로 아쉬움이 남는 것도 그래서다. 사실 군위관이나 유중위는 노 원사의 포스에 대해서 큰 상대가 못 되는 것 같아서 여러 인물들을 생각하기도 했다. 그래서 수색대 소대장을 대위나 소령 정도로 설정해볼까 생각했지만 리얼리티 때문에 포기했고, 자칫 그렇게 되면 지나치게 갈등상황이 노 원사에게 미화될 수 있겠구나 싶었다. 그래서 이게 최선은 아니지만 그나마 제일 낫다는 판단 하에 유중위나 군의관, 때론 선임하사까지 그와 대립하고 갈등하는 상황에 동원했다. 그래도 그런 부분이 조금 아쉽긴 하다. 노 원사와 대립각에 놓인 인물이 좀 더 강했다면 노 원사의 행위가 과연 옳은 행위인지, 옳지 않은 행위인지를 더 확실히 각인시킬 수 있었을 테고 그런 면이 관객들과 의사 소통하기에도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알포인트>가 최태인 중위의 전사를 궁금하게 만들듯이 <GP506>도 노원규 원사의 전사를 궁금하게 만든다. 그런데 그건 인물의 사연을 배제한 채 그들을 단지 이야기를 밀고 가는 역할에 집중시킨 까닭이기도 하다. 그건 본인의 캐릭터 취향에서 기인한 게 아닌가. 어떤 사람들은 나보고 굉장히 드라이(dry)하다더라. 노 원사가 상주로 앉아서 절하는 장면은 네 컷으로 이뤄졌다. 원래 세 컷이었는데 중간에 한 컷을 썰어서 네 커트가 됐다. 그런데 그 장면을 넣을까 뺄까, 백 가지 고민을 했다. 모두 다 일장일단이 있지만 난 노성규 원사의 캐릭터를 위해서 넣기로 했고 그 정도가 제일 적당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전사를 그렇게 네 컷으로 처리해버리니까 조금 더 있는 게 좋지 않았냐는 의견도 있었고 그러면서 내가 드라이하다는 말이 나왔다. 그리고 처음엔 노 원사의 아들을 어머니가 죽어서 관혼상제 명목으로 휴가 나온 군인이라 설정했었다. 그런데 이게 마지막에 노 원사가 다 죽이는 상황이 됐을 때 너무 직설적인 대비가 되는 거 같더라. 그래서 머리에 물도 들인 날라리 여중생으로 설정할까 했는데 그렇게 되면 너무 쓸 때 없는 의미를 두게 될 것 같아서 포기했다. 결국 어린 남자 중학생으로 정했다.
본인이 시나리오를 쓴 <하얀전쟁>과 <알포인트>는 같은 시대를 이야기하면서도 다른 시선을 느끼게 한다. 더 나아가 <GP506>도 마찬가지고. <하얀전쟁>시나리오를 쓸 때 부담스러웠던 건 본격적으로 월남전을 다룬 영화가 처음이란 것이었다.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 그 때 정지영 감독님이 주문하신 건, 후에 시간이 지나서 우리에게 월남전은 무엇이었고, 월남전 참전에 대한 의미는 무엇이었는지에 대한 거시적인 느낌이었던 거 같다. 그 반대로 <알포인트>는 미시적으로 접근했던 거 같다. 월남전에 참전한 젊은 병사들의 개인적인 사연과 더불어 그들이 거기서 어떤 상처들을 받았고 그것들이 그들의 인성이나 인격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그런 것들에 관심이 많았다. <하얀전쟁>은 이데올로기적인 접근을 많이 하려고 노력했다면 <알포인트>는 그와 반대였다. 이렇게 나이를 먹다 보니 그들이 무슨 죄가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이 전쟁에서 범죄행위를 했지만 그걸 범죄라고 인식했을까? 예전에 오지마 나기사 감독의 영화가 생각나기도 했다. 재일교포청년이 누구를 죽여서 교수형을 당했다가 죽지 않고 혼절했는데 그가 깨어나고 보니 과거를 다 잃어버린 거다. 기억상실증에 걸린 사람을 또 죽일 것인가, 말 것인가, 그러다가 결국 다시 사형을 시키는 내용이었다. 과연 월남전에 참여한 개개인들에게 무슨 죄의식이 있었을지, 이들이 과연 자기들이 한 게 범죄행위라는 걸 알기나 할까, 그런 연민이 생각났다. <GP506>같은 경우는 일단 남북의 이데올로기 같은 건 젖혀놓기로 했다. 지금 군대를 가는 젊은 친구들도 그렇게 남북의 이데올로기에 관해 별로 신경 쓰지 않기도 하고. 그냥 이 애들한테 좀 더 집중해보자, 란 생각들을 했지.
<GP506>은 겉으로 강해 보이는 남성들의 나약한 내면을 드러내기도 한다. 특히 영화상에서 남성성을 바탕으로 한 군대의 나약한 본성이 드러나는 것도 그런 이유와 무관하지 않다. 그 나이대가 제일 그렇지 않나. 고등학교를 막 졸업한 스무 살, 스물 한 살 친구들이 군대를 많이 간다는 것에 대해서 난 많이 놀랐고 한편으로 굉장히 안타까웠다. 방황의 시기도 보내지 못하고 그냥 바로 청소년기의 마지막 찰나에 바로 군대를 경험하고 사회로 나오는 거니까. 그리고 제대하면 사회에선 성인 취급을 하지 않나. 이 친구들은 청년기 없이 바로 기성세대화 돼버리는 거다. 그리고 군대에선 체제에 순응하는 요령을 배운다. 내가 군대에서 가장 많이 느낀 건 억압이었다. 훈련소에서 종종 어두컴컴한 밤에 줄 맞춰서 어디론가 막 데려가서 그곳에 도착하면 영화를 상영했다. 그 영화는 주로 탈영했다 죽은 애들 이야기와 같은 국방부 정훈영화들이었다. 그건 결국 군대에서 사고 치지 말고 죽은 못처럼 있다가 제대하라는 억압이었고 그걸 본 뒤, 내무반으로 돌아왔을 때 찝찝함을 잊을 수 없다. 그런 억압들이 군대라는 조직이 조직원을 통제하는 수단이고 난 그게 너무 싫었다. 난 굉장히 피곤하면 군대 꿈을 꾸는데 그런 것들이 그런 억압에 대한 강한 반감이나 저항심 때문에 발생된 것이 아닌가 싶다.
제대한지 오래됐을 텐데 아직도 군대 꿈을 꾸나 보다. 그보다 더 피곤하면 고등학교 꿈을 꾼다.(웃음) 그런 억압에서 비롯된 데미지가 나에겐 굉장히 오래가는 거 같다. 요즘 주변에서 월남전 참전 용사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 사람은 아직도 자다가 마당에 뛰쳐나가서 포복한다더라. 벌써 40년 이상 세월이 지났는데도 그렇다고 한다면 그 사람에게 그런 억압이 얼마나 강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체제의 하위적 폭력에 대한 이야기가 본질이지만 그를 바탕으로 권력을 유지하는 이들에 대한 고발의지도 언뜻 보인다. 내몰린 자들을 배후에서 압박하는 건 그곳에 그들을 내몬 자들이다. 그렇다라고 할 수 있겠다. 일단 내몰린 자들의 이야기란 점은 확실히 맞는 이야기다. 그리고 화면밖에 존재하는 내 몬 자들 역시 무전을 통해서 계속 압력을 가하고, 수사 방향을 전환시키려고 하니까 그것도 맞는 이야기다.
아무래도 궁극적으론 당신의 영화적 뿌리가 반체제적인 것에서 출발한다는 걸 숨기기는 힘들 것 같다.(웃음) 아무래도 난 80년대를 살아왔고, <파업전야>같은 영화에 뿌리를 두고 있으니까, 그런 성향은 분명히 투영돼있을 거다. 나도 그런 부분은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그런 것들이 과연 직설적으로 표출되느냐, 우회적으로 표출되느냐, 그런 문제지. 아무래도 나이를 먹으니까 그런 것들을 되도록 우회적으로 표출하는 게 훨씬 좋지 않겠나 싶어진다.
시대적 변화와도 관계가 있을 것 같다. 분명히 그에 따른 변화가 있지. 그와 함께 나도 퇴색된 부분이 있고, 더 유연해진 부분도 있고, 좀 더 닳아져서 모가 난 부분도 있고. 그래도 아주 커다란 원칙 같은 건 많이 변하지 않았던 거 같다. 그래서 언제나 그것과 갈등하지. 예를 들면 공분을 느끼거나 울컥하는 측면들은 분명히 아직 남아있지만 이젠 내가 총대를 매겠다는 생각이 굉장히 많이 닳아진 거다. 아무래도 가정도 생기고 자식도 있고 하니까 중산층의 꿈이 생겼다고 할까. 그런 부분과 내가 개인적으로 꿈꾸는 부분들과 충돌하게 된다.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 거지.
아무래도 좀 더 작가적 욕심이 늘어난 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직설보단 허구를 가미하고 싶은 창작욕이 늘어난 게 아닐까. 나는 관객들과의 소통이 가장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흥행과 직결되는 사안이기도 하지만 그 이전에 그것이 개인적으로 가장 소중하게 생각해야 하는 부분이라고 본다. 관객들과 소통하기 위해서 어떤 스타일로, 어떤 이야기들을, 어떤 방식으로 전달해야 되는가라는 고민을 많이 하고 있다. 특히 요즘처럼 영화계가 침체된 상황에서 그건 더더욱 중요하다. 어떤 이는 위기에 대한 원인을 자본에서 찾고 있는데 분명히 영화는 많은 자본이 들어가는 산업이기 때문에 그 얘기가 틀린 건 아니다. 하지만 그것보다 좀 더 근원적인 문제가 있지 않을까. 관객들의 패러다임에 어떤 변화가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관객들이 궁극적으로 보고 싶은 이야기가 지금 현재 우리가 만드는 영화들과 괴리가 있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많이 든다. 그렇다면 그게 과연 무엇인가가 중요하겠지. 지금 분명히 관객들은 영화를 하는 우리보다 한발자국 먼저 가있는 거 같다. 그 한발자국이 작을 수도 있고, 클 수도 있지만 그 갭을 메우기 위해서는 그런 것들을 빨리 캐치해야 되는데 쉽게 말하면 선호도가 될 수 있겠지. 어느 누구는 <추격자>처럼 그런 이야기가 대안이라고 하지만 그렇게 단편적이거나 직설적인 것보단 어떤 큰 게 움직이고 있는데 우리가 지금 그걸 쫓아가지 못하는 게 아닌가라는 고민이 든다.
어쩌면 현재 국내 문화산업 전반에 걸친 총체적 문제와 연관된 사항일 수도 있다. 문학이 죽었다고 하는데 사실 시나리오의 기반은 문학이 아닌가. 결국 문학의 죽음은 시나리오의 창구가 되는 이야기의 감소와 연계되는 게 아닐까. 최근에 나온 좋은 미국영화들도 대부분 소설을 바탕으로 한 시나리오로 만들어진 작품이란 점은 우리에게 좋은 선례인 것 같다. 그래서 작가들이 파업도 할 수 있겠지.(웃음) 그런 고민들이 많이 있어야 될 것 같다.세미나든 심포지엄이든, 어떤 형식이 되던 간에 그런 것들이 공유될 수 있는 계기가 있어야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 말한 것처럼 어떻게 보면 문화전반의 문제와 연관된 사안일 수도 있다. 음악도 일개 통신사가 쥐고 흔드는 정도가 돼버리지 않았나. 문화전반적으로 그런 사안에 대해 같이 공유할 수 있는 부분은 공유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각개 약진을 해야 될 부분은 각개 약진을 할지라도 그런 부분은 분명 있어야 될 것 같다.
<알 포인트>현장에서 많이 고독했다고 밝혔었다. <GP506>현장에서는 어땠나? 아주 행복했다.(웃음) <알 포인트>는 마음의 준비를 하고 간 게 아니라 갑자기 발령받아서 간 느낌이었다. 마치 내가 해야 될 고민을 내가 안 해도 되는 고민과 같이 해야 되는 것과 같은 부분들이 있어서 많이 힘들었고 그만큼 고독했다. <알 포인트>당시 경험도 있어서인지 상대적으로 <GP506>현장은 굉장히 행복하게 느껴졌다.
<GP506>은 <알 포인트>에 비해 전체적인 인원이 늘었다. 무지무지하게 늘었지.
그래서 아무래도 현장에 대한 통솔이 <알 포인트>에 비해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일단 인원수가 많으니까 아무래도 의사전달이나 통제가 제대로 안되더라. 그래서 군대식으로 통제를 했지. 예를 들어 대기하는 중에 화장실 갈 사람은 주변에 얘기하고 가라고 지시하고, 디렉션을 위해서 모두 집합시켰을 땐 다 모였는지 모르니까 뒤로 번호 시키고. 이렇게 하다 보니까 내가 마치 중대장 같은 느낌도 들었다. 덕분에 재미있었다.
설마 2인 1조로 다닌 건 아니겠지.(웃음) 그러진 않았다.
인원은 많았지만 <알 포인트>보다 중심캐릭터는 상대적으로 적어진 만큼 캐릭터에 집중하긴 더 수월했을 것 같다. 아무래도 포인트가 있는 인물들은 많지 않았으니까. 그리고 <알 포인트>같은 경우는 전부 방점을 주려고 노력하기도 했었다. 게다가 <알 포인트>는 약간의 차이들은 있지만 배우 대부분에게 비중이 있다 보니까 그 땐 배우들 통제가 굉장히 어렵기도 했다. 근데 <GP506>같은 경우는 인원통제나 외에 배우들의 디렉션에 대한 통제는 더 좋았다. 우리 인원이 그렇게 많았음에도, 게다가 3개월 정도의 공백이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한 명이 일탈 없이 노력해준 게 일단 고맙다. 물론 영화계 시장상황이 안 좋아서 다른 영화촬영이 많이 못 들어간 것도 한몫을 하긴 했지만 그걸로만 설명이 될 수 없는 부분이 분명히 있었다고 본다. 배우나 스태프들에게 영화에 대한 애정도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런 면에서는 굉장히 고마운 부분이지.
<알 포인트>에 출연한 배우들에 비해 연기 경험이 적은 젊은 배우들 위주로 구성된 탓에 천호진 씨에 대한 의존도가 상대적으로 크지 않았을까 싶다. 천호진 씨는 있는 자체로도 힘이 됐다. 가끔씩 연기가 잘 안 되는 친구에게 이렇게 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 라고 그 친구만 들을 수 있게 흘리듯이 한마디 하면 그 친구가 딱 감을 잡더라. 그런 점이 굉장히 좋았지. 배우들이 내게 익숙하지 않고, 나도 배우들한테 익숙하지 않은 처음에는 소통이 잘 안돼서 테이크도 많이 가고 그에 따라 고민도 많이 했는데 테이크가 지나갈수록 서로 익숙해지니까 연기에 대한 것들이 많이 나아지더라. 그렇게 촬영이 진행되면서 몇몇 단역들조차 연기가 좋아지는 것들이 눈에 보이더라.
황석영 작가에게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스스로 밝혔었다. 게다가 <알 포인트>는 황석영 작가의 단편에서 영감을 얻었다고도 했었고. 황석영 선생님은 내 인생을 좀 책임져야 될 필요가 있는 거 같다.(웃음) 지금 내가 여기로 오기까지의 여정은 작가로서 황석영 선생님에 대한 존경심에서 출발했으니까. 지금도 그 분의 작품은 많이 보고 있고. 몇몇 작품을 뺀 대부분의 작품은 보통 열 번 이상 읽었다.
본의 아니지만 <알 포인트>를 찍으면서 감독까지 겸임했고, <GP506>을 찍으면서 제작자까지 겸임하게 됐다. 이러다가 차기작에서는 배우까지 하게 생겼다.(웃음) 다음 작품에서는 배급사까지 차리는 거 아니냐라는 우스갯소리가 나오긴 한다.(웃음) 사실 작가에서 감독으로의 변화는 내게 천지개벽과도 같은 큰 변화였다. 그에 대한 압박도 굉장히 많았고. 그런데 제작자로의 변화는 내게 별다른 영향을 안 미쳤다. 게다가 지금도 제작자로서의 고민은 전혀 안 하고 있으니까. 이름만 제작사 대표일 뿐이지, 제작에 대한 모든 권한은 나와 함께 작업하는 PD들한테 나눠줬고, 앞으로도 나눠줄 거다. 난 비즈니스 쪽은 하지도 않을 거고, 아마 그전에 주변에서 날 말릴 거다.
<알 포인트>와 <GP506>, 그리고 멀게는 <하얀 전쟁>까지, 이 작품들을 관통하는 말은 살고 싶다가 아닐까. 그건 군대를 간 남자들의 공통적인 생각이기도 하다. 본인의 절실한 경험이 영화에 반영된 게 아닐까. 그런 의도는 없었지만 아마 그런 게 없진 않았을 거다. <알 포인트>나 <하얀 전쟁>은 군대 문제를 이야기하지만 정치체제에 대한 것이기도 하고, <GP506>같은 경우는 정치체제에서의 억압이나 중압감보단 군대라는 조직 자체가 갖고 있는 극단적 상황의 폭력성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런 게 항시 존재하는 건 아니지만 그런 상황이 되면 그런 폭력성이 어떻게 나오는가라는, 결국 인간의 존엄성이 상처를 입게 되는 상황을 이야기하는 것이니까. 이 정도까지 되느니 차라리 죽고 말겠다고 할 수 있는 선은 바로 인간으로서 지켜져야 할 최소한의 존엄성이 아닐까.
<GP506>을 반군대적 영화로 보는 사람도 있을 것 같다. <알 포인트> 당시에도 그런 시선이 없진 않았었고. 경계를 좀 해야지. 단순하게나마 그런 반군대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전혀 생각하진 않거든. 아까도 말했듯이 시스템이나 조직자체가 갖고 있는 한계나 문제점을 계속 건드리고 싶어서니까. 물론 내 영화에 대해서 반감을 갖고 공격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100%까진 아니지만 어느 정도는 일리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당신도 군대를 추억할 때가 있을 거다. 군대 제대한 모든 남자가 종종 그렇듯이. 난 아카시아가 필 때면 군대시절이 그리워진다. 우리 내무반이 아카시아 나무가 가득 찬 골짜기에 있었는데 평소보다 조금 늦게 일어나는 일요일 아침에 문을 열면 아카시아 꽃 향기가 내무반에 꽉 차거든. 그래서 담요 같은 걸 밖에 널어놓고 누워서 책도 보고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그런 게 정말 행복했었다. 그 느낌이나, 그 시절들이. 그래서 그 시절만 되면 군대로 가서 그 경험만 잠깐하고 다시 빠져 나왔으면 좋겠단 생각이 들곤 한다.
아무래도 그런 경험들이 영화가 지닌 연민을 부여하게 만든 게 아닐까. 아마도 그럴 거다. 나도 그런 연민에 대한 것들을 더욱 표현해보고 싶었고, 병사들의 그런 모습들을 관객들이 이해해줬으면 하는 마음도 있었다.
순수하게 장르적인 영화를 만들 생각은 없을까? 안 하겠다는 건 아니다. 다만 지금 딱히 떠오르는 게 없을 뿐이지. 막연하게 첩보 드라마를 차기작으로 한번 해보고 싶다는 생각은 있는데 대신 내가 생각한 이야기를 하겠다는 거지. 그것만 된다면 영화가 됐건, TV에서 하는 시리즈가 됐건, 가리지 않고 할 생각은 있다.
그렇다면 요즘 가장 큰 관심사는 뭔가? 영화적으로는 방금 말했던 첩보이야기고, 그 다음의 관심사는 황석영 선생님이 포탈사이트에 연재 중인 ‘개밥바리기 별’, 그리고 셰플 베다라고 하는 칠레 작가의 소설, 그리고 지금 내가 들고 다니는 (가방에서 '김학철 평전'을 꺼내면서) 김학철 선생의 작품에도 관심이 있다. 이 분들에 대한 이야기도 해보고 싶다.
전기적인 것에 대한 관심일까. 이분에 대한 일생이 굉장히 존경스럽다. 기회가 된다면 이분의 얘기를 한번 해보고 싶다.
벌써 데뷔한지 10년이 넘었다. 스스로 뭔가 달라졌다는 게 느껴지나? 아무래도 영화에서 나한테 원하는 게 뭔지 좀 더 잘 보이는 거 같다. 내가 해야 될 부분과 하지 말아야 될 부분도 보이고. 예전 같으면 그걸 잘 몰라서 무조건 플러스 알파를 더 얹어서 하거나, 더 해야 될 부분이 있는데도 멍청하게 안하고 있었던 거 같은데 이젠 그에 조금 더 맞추게 된 거 같다. 물론 아직도 멀었지만! (웃음)
캐릭터에 접근하는 게 좀 더 수월해졌다는 말처럼 들린다. 기술적으로는 조금. 그래도 매번 역할을 만날 때마다 절대 호락호락하진 않지. 작품마다 감독님도 매번 다르고.
작년 한해는 정말 바빴을 거 같다. 2년 동안 쉬었던 걸 몰아서 했으니까. (웃음)
제대하자마자 바쁘게 출연하더라. 그래도 한동안 공백이 있었는데 캐스팅 제의가 꾸준히 들어왔나 보다. 어떤 면에서는 스스로 걱정되는 일이었을 법한데. 죄다 거절하지 못해서 많이 하게 된 것도 있지. 거의 시간되는 대로 출연했다. 근데 나도 많이 바랬다. 군대 있을 동안 나가서 일하고 싶다는 마음이 굉장히 컸으니까. 고마운 일이지.
연예사병을 한번쯤 염두에 두진 않았나? 군대에 있을 때는 자기 생각이 있을 수 없지 않나. 하나마나, 까라면 까야 되니까.(웃음) 나도 전투경찰로 가라니까 간 거지. 아니요. 저 연예사병갈래요. 이럴 수는 없는 거고. 병장 말년, 전경 식으로 말하자면 수경이나 되야 자기 의사표현이나 하고 말 좀 하지. 훈련소에서는 뭘 알았겠어.(웃음) 단지 내게 군대 2년은 너무나 무거운 짐이었기 때문에 빨리 덜어낸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사실 좀 더 일찍 가려고 했지만 그 때마다 캐스팅 제의가 들어와서 결국 애초 생각보다 늦게 가게 된 걸로 알고 있다. 사실 난 입대영장 받고 배우를 시작했다. 영장 받고 이제 군대가야지 했던 게 이제 스물 한 살 때, 98년도니까 10년 전이다. 그래서 군대 가기 전에 재미난일 없을까 하다가 학교 조교로 있었던 매형 권유로 오디션 봤다가 결국 그로 인해 배우생활을 하게 됐다.
그게 바로 <송어>? 그렇지. 그렇게 <송어>로 시작해 군대라는 짐을 계속 어깨에 얹고 배우 생활을 하다가 결국 <신부수업>까지 끝나고서야 이제 겨우 갔다.
늦게 가면 그만큼 고생인데. 나이 먹어서 가면 안 좋다.(웃음) 군대는 아무것도 모를 때 일찍 갔다 와야겠더라. 그냥 고등학교 끝나고 대학에서 자유를 조금 맛봤다 싶을 때쯤이나. 자유가 완전히 몸에 배어버린 뒤에 가면 더 힘들어지는 것 같다.
군대 가기 직전에 안톤 체호프의 <갈매기>를 공연했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대학 시절 이후로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알고 있다. 혹시 더 있는데 내가 모르는 건가? 아니. 없다. 사실 내가 연극영화과 나오긴 했지만 전공은 영화연출이다. 동국대학교 연영과는 입학하면 2년 동안 커리큘럼이 같다. 영화로 들어왔어도 일단 무대 작업부터 먼저 해야 하고, 선배들 연기할 때 못질부터 먼저 해야 된다. 4학년이었던 이성재 선배님이나 김주혁 선배님이 무대에 오를 때 난 밤새도록 못질해서 세트 만들고, 의상 만들고 그랬다. 하지만 솔직히 난 연출 전공이라 연극에 뿌리를 둔 배우라고 말하긴 빈약한 게 사실이다.
예전에 농담처럼 주인공 친구 전문배우라고 스스로 말했다. 아무래도 조연배우로 인식된 자신의 상황에 대한 우회적 발언이 아닌가 싶다. 내가 인터뷰할 때마다 김인권씨는 조연인데 주연하고 싶지 않느냐, 주연배우를 한다는 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 이런 질문을 상당히 많이 듣게 된다. 그에 대해 내 마음을 솔직히 말하자면 주연은 하고 싶다. 하지만 그건 마치 하늘을 날고 싶다는 것과 마찬가지처럼 느껴진다. 날개를 달고 하늘을 날고 싶다는 게 누구나 지닌 생각이듯, 내가 주연을 하고 싶다는 생각도 그것과 비슷한 거 같다. 물론 그렇다고 내가 하늘을 못 난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다. 주연에 대한 생각은 당연히 갖고 있지만 단지 현실적으로 이에 대한 복잡한 문제들이 있고, 내가 아직 갖추지 못한 부분도 스스로 알고 있다 보니까 그건 아직은 안되겠다고 생각한다. 나를 주인공으로 내세워서 영화를 만든다는 것에 대해서는 아직은 조금 깊이 생각해야겠지. 하지만 열심히 하다 보면 어느 순간엔 김인권 씨가 주연을 해줘야 되겠다, 이런 날이 올 수도 있겠지. 물론 주연이 아닌 조연이라도 굳이 김인권 씨 아니면 안되겠다고 하면 그것도 어디겠냐.
조연이라고 같은 조연은 아니다. <숙명>에서도 캐릭터의 선은 상당히 굵은 편이었으니까. 시나리오에 세 번째 주인공이라 명시되어 있는 만큼 주연급 정도로 생각할 수 있는 비중은 된다. 하지만 난 주연이 확실히 있는 상황에서 도와주는 게 조연이라고 본다. 이번 영화에서 송승헌 씨가 연기한 우민이 확실한 주연 역할이고, 난 주인공 친구 역할로서 모든 사건에 동기부여를 해주는 거니까 말하자면 도와주는 역할로서 조연이 맞지. 우민 역할이 더 동기를 가질 수 있도록, 우민이가 더 불쌍하고 더 피폐해지는 모습을 보일 수 있게 그가 처한 상황을 더 암담하게 만드는, 그래야 영화의 마지막 장면까지 우민이가 끌고 가는 힘이 더 강해지지 않을까, 그런 상황을 염두에 두고 했으니까.
도완은 작년에 연기했던 캐릭터들보다 입체적인 성향을 지녔다. 데뷔작이었던 <송어>의 태주나 <플라스틱 트리>의 수처럼 어떤 트라우마가 보이기도 하고. 일단 그 트라우마가 상처, 결함의 의미로 이해하면 될까?
상처를 지니게 된 근본적 이유라고 할까, 단순히 말하자면 응어리라고 말할 수 있겠다. 그런 연기를 할 땐 내가 배우로서 풀어볼 수 있는, 정확히 뭐라 말할 수는 없지만 내공을 끌어내는 어떤 주머니가 있는 거 같다. 그런 트라우마가 나도 모르게 있을 수도 있다는 말이지. 그러다가 인물과 가까워지면서 그게 나왔을 수도 있고. <송어>에서도 정신 없게 굉장히 열심히 했는데 그때와 느낌이 비슷했다. 뭐랄까, 연기를 통제한다기 보단 그 통제를 벗어나 어느 순간 극단적 흐름을 타게 되는 순간이 있다. 그런 데서 인간의 본 모습이 보이기도 하잖아. 나도 트라우마가 있긴 있는 거 같다. 사람은 누구나 다 비슷하니까.
그런 극단의 연기를 끌어내기 위해서는 자신과 소통하는 과정이 필요할 것 같은데. 인간도 동물이다. 사회에서 묻혀 살면서 도덕에 대한 교육, 학습을 거치고 그것이 몸에 배면서 동물적이고 야생적인 면은 거세당하는 거지. 게다가 요즘 시대가 남성성을 최대한 거세하려는 시대니까. <숙명>도 시대적으로 보자면 가위 들고 잘라버리기 위해 덤벼들만한 것이다. 그건 이 시대에 있어서는 안될 만한 것이거든. 여배우도 마찬가지지만 남자배우라면 자신의 야생성이나 동물적인 무의식과 의사소통을 하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걸 못하면 연기를 할 때 난해해진다. 연기를 해도 자기 안에 있는 그런 부분과 연결을 못하면 재미없어진다. 근데 김해곤 감독님의 영화를 보면 자기 속에 있는 남성성, 야생성하고 의사소통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배우 출신 감독으로서 배우로서의 직업병이 작용한 건지 모르겠지만 그래서 그런 동물성과 자연스럽게 의사소통을 하고 있지 않았을까. 멜 깁슨 감독이 만든 <아포칼립토>나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도 짐승처럼 잔인한 인간의 동물성을 드러내는 것처럼. 그래서 종종 (송)승헌이 형이나 (권)상우 형한테도 멀쩡하게 좋은 역할 다 놔두고 왜 지저분하고 망가진 역할 하냐, 이러는데 사실상 그분들도 자신의 야생성을 끌어내주는 걸 보면 거기에 매혹되고 매료 당하는 거겠지.
사실 <숙명>의 캐릭터 중 도완이 가장 잔인하게 느껴진다. 나 같은 경우는 피가 나오니까. 도완은 자기 몸을 막 그어버리고 그러기도 하고, 솔직히 푹 찌르는 거 보단 쪼잔하게 살짝 그어버리는 게 더 잔인해 보인다. 그렇다 보니까 지저분해 보이는 것도 있고.(웃음)
면도칼로 미진의 얼굴을 긋는 장면은 섬뜩했다. 연기하는 입장에서도 섬찟했다. 내가 사랑하는 여자를 그렇게 한다는 게 그 자체로 상당히 끔찍한 거니까. 물론 그게 감독님이 이야기하는 방식이고 그걸 통해서 감독님이 보여주고자 하는 뭔가가 있었으니까 이해했다. 미진을 놓고 봤을 때, 이 여자도 도완이 못지 않게 밑바닥이다. 술집 나가서 맨날 담배나 뻑뻑 피고, 술이나 마시고, 그 와중에 남자친구라고 하나 사귀는 게 약쟁이지. 그런 상황에서 도완이는 자기도 밑바닥이지만 도완이는 너무 좋으니까 자기 입장에서는, 너 그렇게 살 바에는 내가 네 얼굴 긋고 내가 보살피고 살겠다. 차라리 네가 다른 남자 만나면서 지저분하게 살지 않게 하겠다. 나랑 있자, 는 진심이 포함된 거지. 아무 생각 없이 그걸 행동으로 보여주는 장면이었기 때문에 어떤 면에서는 진실됐다고 말할 수 있다. 이 여자를 끝까지 책임지겠다는 진짜 동물적인 남성의 마지막 결단이니까.
그 애정의 근거가 더 필요할 것 같다. 이렇게 하기 전에 했던 도완은 이미 자기가 죽으려고 했지 않나. 그럼 그건 아마 도완이에게 자기가 죽는 것보다 더 하기 힘든 행동이었을 거다. 만약에 그게 더 쉬웠다면 먼저 여자의 얼굴을 그었겠지. 그리고 그래도 안되면 죽었을 테고. 근데 자기 배를 찔렀는데도 우민이가 와서 살려놓으니까, 안되겠다. 내가 살아있는 이상 미진이가 없으면 안 된다. 미진이를 저렇게 지저분하게 살게 하는 것도 안되고. 난 도완이가 그렇게 생각한다고 느꼈다.
김해곤 감독은 상당히 거칠고 센 입담을 구사하는 편으로 유명하다. 그런 성격에 적응하는 것부터가 중요했을 것 같은데 어땠나? 겁나는 개가 짖기도 잘 한다고, 속으로는 알몸이라 여린 사람이 약점을 가리기 위해 겉으로 화를 잘 내고 욕하는 경우가 많다. 내가 욕하는 것만 봤다면 저 사람 무서운 인간이다, 이렇게 단정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게 아니라서 감독님 욕은 그렇게 지저분하게 들리지가 않는다. 굉장히 동정심이 가는 욕이다. 그래서 난 감독님이 굉장히 인간적으로 느껴진다. <숙명>에서도 부분부분 느껴지지 않나? 진짜 밑바닥에서 살아온 사람들만의 어떤 끈끈한 인간애라던가, 삶에 대한 집착이라던가, 이런 게 욕에 묻어나니까. 사실 예전부터 김해곤이라는 배우 때부터 감독님을 좋아했고, 덕분에 현장에서 만났을 때는 매료가 됐지. 지금 어떤 영화평을 떠나서 김해곤이란 사람이 써내는 대사만 봐도 그냥 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본다.
사실 조연으로 출연하면서 다작하는 경우가 많다. 작년에도 그랬던 것 같고. 그런 경우에는 캐릭터의 다양성을 극복하는 게 중요할 것 같다. 배우가 캐릭터와의 관계를 놔버리면 영화에 도움이 되게끔 연기가 나오긴 나온다. 그러나 그런 연기는 그 배우를 잊혀져 버리게 만드는 게 아닐까 싶다. 조연을 하더라도 그 캐릭터에 대한 애정과 이해가 필요하다. 연기하는 배우가 그걸 이화(異化)시켜 버리면 비호감이 된다. 그저 이 캐릭터가 이런 거 아니겠어?, 이렇게 대충 보여주게 되면 배우로서 생명력이 짧아지는 길이 될 수 밖에 없다. 그게 우리가 흔히 표현하는 가벼워진다, 망가진다, 란 것이 될 수 있는데 사실 그렇더라도 그걸 자신과 동화시켜서 끌고 가면 그건 배우로서 발전적인 연기라고 본다. 근데 그걸 자기로부터 이화시켜버리니까, 놔버리니까, 그럼 결국 관객이 똑같이 느끼는 거지. 저 사람에게 어떤 인생이나 인간미가 느껴져야 되는데 그냥 주연을 위해 도와준답시고 자신을 젖혀놓게 되면 그 배우도 젖혀져버린다. 다양한 역할을 할 때 놓치지 말아야 할 건 이 캐릭터에 내 자신을 동화시켜서 현장에 가져가야 된다는 걸 잊지 말아야 한다는 거다.
자신을 캐릭터와 동화시킨다는 의미를 좀 더 구체적으로 묻고 싶다. 내가 모르는 연기를 하면 안 된다는 거다. 내가 아는 것 내에서 연기해야지, 내 연기가 아니라 나 이외의 것을 끌어다가 연기해버리면 그건 그 캐릭터를 사랑하지 않는 거나 다름없다. 정말 그 캐릭터를 사랑한다면 이 캐릭터가 보여주는 것 중 나에게 있는 것만 남겨놓고 나머지 제 성격을 버리는 거다. 그런 식으로 연기하면 그건 내 모습이지. 내 어딘가에 있는 내 모습이 되는 거거든. 그럼 관객도 그렇게 느낄 테고, 결국 저 배우가 보이는 거다. 내가 그 캐릭터를 놔버리면 애정과 이해를 놓아버리는 것과 다를 게 없고 그 순간, 위험해진다고 봐야지. 어쩌면 그에 비해 조연보다 주연이 편할 수도 있겠다. 시나리오 책 한 권에 캐릭터의 역사가 다 나오잖아. 물론 그대신 그만큼 책임이 큰 거지.
<숙명>은 어떤 전사를 배제하는 것처럼 어느 지점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래서 그 흐름에 대해서 유추해내는 게 중요하지 않았을까 싶다. 도완이란 역할에 대해서도 스스로 포인트를 잡아가야 했을 것 같은데. 도완이 같은 경우에는 내게 없는 부분을 미리 준비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게 있었다. 사실 도완이는 객관적으로 내가 표현할 수 있는 70%를 내게서 가져갔지만 한 30%는 놔버린 게 있었다. 그래서 영화를 보면서 안타까울 때가 있고 종종 감독님이 원망스러운 부분도 있다. 물론 내가 감독님을 너무 좋아하지만 날 좀 잡아주지, 하는. 현장에서 내가 너무 힘에 부쳐서 힘들어 하니까 아예 그냥 놔버리고 가게 될 때가 있었다. 그런 게 이제 나는 보였지. 그리고 관객들도 분명히 그걸 느낄 거다. 물론 거기서는 이제 100% 다 내게서 가져가고 이해할 수 없는 부분도 있기도 했지만 어느 부분에 있어서는 내게 없는 걸 가져다 놓고 스스로, 그냥 이런 거 아니겠어?, 했던 것도 없진 않았었다는 거지. 그래도 한편으로 많이 가져갈 수 있었던 건 감독님이 잡아준 덕분이기도 하다. 만약 내가 내 멋대로 했으면 더 많이 가져갈 수 없었을 텐데 감독님이, 그건 아니다. 도완이는 이거다, 라면서 현장에서 많이 교정해줬거든. 만약에 나대로 했다면 그 캐릭터를 내 맘대로 가져갔을지 몰라도 감독님이 원하는 도완이가 아니었겠지. 하지만 감독님을 내가 이해한다고 해도 서로 완전히 100% 같을 수는 없는 거다. 그걸 끝까지 물고 늘어질걸, 하는 생각이 있었는데 못한 부분도 있지. 만약 그럼 너는 뭐했냐고 하면 나도 나름대로 하긴 했지만 나는 부족하다고 느끼는 거다.
약물 중독에 대한 연기를 위한 구체적인 준비 과정도 있었을 것 같다. 구체적으로 약이 나오는 영화는 죄다 봤다. 다른 배우들은 약 먹은 연기를 어떻게 하는지, 심지어 약을 해본 경험자하고도 만나려 하니까 안 만나 주더라. 그래서 전화통화라도 해봤다. 일단 중독된다는 게 또 사람마다 다르더라. 약의 종류에 따라서도 다르고. 그걸 외형적으로 어떻게 표현하느냐, 의 문제 때문에 영화를 굉장히 많이 봤지. 한 40편 봤나? <레퀴엠>이나 <트레인스포팅>이라던가. <사생결단>에서 추자연 씨가 연기를 정말 잘 했더라. 그래서 상도 받았겠지만, 약에 취해서 씨익 웃는 게 정말 뭔가 있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잘 했다. 약을 먹었을 때의 어떤 흥분이 이런 느낌이구나, 라는 걸 디테일 하게 알아야 했거든. 막 약하고 자지러지게 웃는 모습이 정말 최고조의 기쁨처럼 느낄 수 있어야 하니까. 그리고 그게 끝난 뒤 찾아오는 금단 현상도 마찬가지였지. <친구>의 유오성 씨처럼 추워서 몸을 떠는 식이기도 하고, 장이 뒤틀리듯 속이 쓰린 사람도 있고. 도완이 같은 경우는 장도 아프고, 뼈도 쑤시고, 그래서 밥도 안 넘어가고, 그런 걸 이제 내가 다 가지고 가는 거지.
도완은 칼을 잘 다루는 캐릭터로 묘사되기도 한다. 도완이는 자기 배도 가르고, 여자친구 얼굴도 가른다. 내가 생각하기에 도완이는 상처를 입는다던가, 몸에 피가 난다는 거에 대해 굉장히 익숙한 애다. 우리는 그에 대한 두려움이 있잖아. 주사바늘 하나 들어가는 게 무서워서 병원에 안가는 사람도 많으니까. 근데 도완이는 그게 아니거든. 도완이는 그 공포를 이미 스스로 넘어선 놈인 거지. 그리고 일단 도완이는 송승헌 씨나 권상우 씨처럼 키도 크지 않고, 근육도 좋지 않다. 그래서 면도칼로 쓱 그어보고 피 나는 걸 찍어 먹어보는 식으로 사람들에게 위압감을 주는 거지. 쟤는 함부로 건들면 안되겠다는, 당장은 저놈을 두들겨 팰 수 있다 해도 언제 내 뒤통수에 저놈이 뭘 들이댈지 모르겠구나, 라는 걸 인식시키는 거다. 살아남기 위해서 스스로 극복한 거지. 한편으론 잃을 게 없는 거다. 그래서 남들이 봤을 때는 도완이를 잔인하고, 미친놈이고, 꼴통이라고 하지만 내가 느끼기에 도완이는 그런 행위를 스스로 합리화시키고 있다고 본다. 내가 죽이기를 했어, 목을 따기를 했어, 동맥을 끊었어, 살짝 얼굴에 그냥 몇 바늘 꿰매면 그만인데, 라고 생각하고 있는 거겠지.
도완이는 면도칼이 방패였을까? 걔는 사실 그거 말곤 방패가 없는 거다.
그렇게 생각하면 측은하다. 그 작은 면도칼을 방패 삼아 살아가는 인간처럼 비루한 인생도 없을 테니까. 우리도 마찬가지다. 내가 뭐 특별한 게 있어서 배우 하는 것도 아니고, 몸뚱어리 하나로 연기하는 거니까. 당신도 펜으로 사는 거고. 다들 자기가 가진 재주 하나로 사는 거지. 그게 도완이는 면도칼이었던 거지. 하지만 남한테 피해가 가니까 다수에게 통용되기 힘든 거지.
<숙명>에서 네 남자의 공통점은 자신의 가족에 대한 애착이 있다는 거다. 결국 남자의 숙명이란 자신의 가족을 위해 비루해질 수 밖에 없는 운명인가 싶더라. 나도 그렇지만 남자는 대부분 가족을 위해서 산다. 가족을 위해서 돈 벌어오는 거 아닌가. 자기 꿈도 있고, 하고 싶은 것도 있지만 결국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모두 돈하고 연계될 수 밖에 없으니까 나가서 돈을 획득해오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기 때문에 24시간 자유가 주어진 인생을 다 털어서 돈 벌기 위해 열심히 사는 거지. 물론 하고 싶은 일 하는 사람은 그나마 행운이지만 하기 싫은 일 하는 사람은 처자식을 위해서 여자와 어린이들을 위해서 참고 사는 거겠지.
역시 남자라서 가족에게 약해질 수 밖에 없는 건가. 처자식은 끝까지 지켜야 된다. 남자가 밖에서는 아무리 칼 들고, 발 들고 해도 부모님과 처자식은 지켜야지.
결혼이라는 건 남자에게 안정감을 주기도 하지만 동시에 어떤 책임감을 부여하기도 하는 거 같다. 가장이 되는 것도 모 아니면 도로 가야 한다.(웃음) 가족한테 끌려가면서 허덕이면서 살던가, 확실하게 벌어서 가장으로서 당당히 끌고 가던가. 하지만 애매하게 일 핑계로 가장 못하고, 가장 핑계로 때문에 일 못하고, 이러면 안 되지.
아내를 두고 입대한다는 건 부담이었겠다. (한숨을 쉬고) 부담이 있는 정도가 아니라 많았다. 군대 있을 동안 아기까지 태어났고,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었지. 2년 동안 마음은 집에 있었다. 그러니 군생활이 어땠겠어.
제대 이후, 오랜만에 현장에 복귀한만큼 다시 연기의 감을 찾는 것도 중요한 문제였을 것 같은데. <외과의사 봉달희>(이하, <봉달희>)로 다시 시작해서 다행이었지. 드라마는 바로 반응이 보이니까, 내 연기를 바로 체크할 수 있었다. 만약 일주일에 몇 커트가 있는 영화였다면 익숙해진 연기로 감을 찾는 게 오래 걸렸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봉달희>처럼 빠른 리듬으로 막 흘러가는 드라마의 호흡을 내가 쫓아가다 보니까 어느 순간 이렇게 빨리 됐나 싶더라.
<봉달희>를 통해서 드라마의 대중적 파급력을 실감했을 것 같다. 일단 지명도가 높아지니까 도움이 될 수 밖에 없다. 드라마를 사람들이 좋아하게 되니까 나도 함께 유명해지고 호감을 얻게 되고. <봉달희>의 김형식 감독님은 내겐 은인이다. 내가 제대하자마자 그 역할을 주셨으니까, 거기에 대해서는 굉장히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
요즘처럼 영화시장이 어려울 때는 드라마가 나름대로 기회의 연장일 수도 있는데. 하지만 일단 지금은 영화를 하고 싶다. 드라마가 싫다는 건 아니고, 캐릭터를 따라가고 싶어서. 물론 대본을 봤을 때 진짜 하고 싶은 캐릭터가 있다면 그걸 연기하게 되겠지. 안성기 선배님 말씀대로 인기나 돈을 쫓아가기 보단 일을 쫓는 배우가 되고 싶다. 쉽게 말해서 이거 된다고 하는 말을 쫓기 보단 일을 쫓는 배우 본연으로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들어서.
드라마보다 영화에 대한 애정이 강한 덕분이기도 하겠지. 아무래도 난 영화를 되게 좋아하나 보다. 영화가 스크린을 통해서 나를 관객과 이어준다는 걸 사랑한다. 영화라는 공정이 내가 해왔던 일이기도 하고, 시나리오도 써보고, 연출도 해봤고, 그래서 그런지 이 매체를 굉장히 사랑할 수 밖에 없겠지. 깜깜한 극장에서 나 혼자 즐길 수 있는, 물론 다른 사람들도 존재하지만 깜깜하니까 나 혼자 즐기는 듯한 즐거움이 있지 않나. 편안하게 발 뻗고 온 가족이 보는 것도 좋지만 아무한테도 말걸 수 없는 깜깜한 곳에서 스크린을 보면서 꾸는 꿈이 좋다. 물론 악몽이 될 수도 있지만.(웃음)
그건 드라마보다 영화에 친숙한 탓이기도 할 것 같다. 내가 추구하는 캐릭터도 스크린을 통해서 보여줄 수 있는 것에 가깝다. 그게 때로 TV를 통해서는 방영불가 될지 모를만한 것이기도 하다.(웃음) 그리고 TV가 선호하는 배우는 잘 생기거나 예뻐야 하는 경우도 많고, 재미난 이야기를 그만큼 건전하고 밝게 전달해줄 수 있는 캐릭터도 많으니까, 거기에서 오히려 난 돋보이기 힘든 탓도 있지. 그래서 여러 가지로 영화가 좋다. 영화라는 매체가 있었기 때문에 내가 배우가 될 수 있었고, 영화가 없었으면 오히려 배우를 할 수 없었겠지. 내 감성을 이용해서 연기를 보여줄 수 있어서 영화가 좋다. 그리고 지금 영화가 힘들다고 쉬운 길 찾아가면 말 그대로 내가 내 자신을 증명하지 못하는 거지. 난 내가 영화를 사랑한다는 걸 증명해 보이고 싶다. 사실 한국영화가 가장 흥행했던 2년 동안 난 군대에 있었으니까 그 혜택도 못 누린 거다. 그런데 만약 지금 내가 드라마에 치중하면 오히려 나도 같이 거품이었다고 말하게 될 수 있는 상황이니까, 내가 거품이 아니란 걸 증명하고 싶다. 당분간은 군대에서 벼려왔던 2년이 아까워서라도 남아있어야지.
공백이 길었지만 작년에 드라마 하나에 영화 세편에 출연했다. 그리고 사실 <숙명>도 작년부터 촬영했고, 스스로 힘에 부치는 상황도 있었을 것 같다. 역할을 기다리듯 하는 사람, 그러니까 강한 동기가 생겨서 하는 사람은 다를 수 밖에 없다. 그런 거 없이 그저 끌려가듯이 연기하게 되면 에너지가 딸릴 수 밖에 없지. 이건 체력이 딸리는 것과는 다른 거다. 그래서 배우는 갈급함을 모아둘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걸 모아두지도 않은 채 관객이나 대중들, 시청자들 앞에 서면 그건 안 하느니만 못하게 된다. 요즘 <온에어>에서 송윤아 선배님을 보면 그 연기가 잘했네 못했네 자체를 떠나서 대사 치는 게 바로 그런 거다. 사실 그게 리얼리티 수준을 굉장히 떨어지게 만드는 대사톤이라서 정말 엄청나게 연습하지 않고서는 저렇게 나올 수 없는 대사인데 그걸 끝까지 유지하는 거다. 그게 눈에 보인다. 진심이 보이는 거지. 저분이 이번에 저 캐릭터를 하고자 하는 갈급함이 느껴지는 거다. 그리고 그게 에너지로 느껴지는 거고, 그게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절실함이 있어야 된다는 건가? 그런 게 없으면 강렬한 캐릭터도 소용없다. 뭘 하더라도 관객을 감동시키는데 힘이 부치는 거지.
본인에게 그 갈급함은 얼마나 됐을까. 2년간의 갈급함이었지.(웃음) 그런데 네 작품이나 하니까 이제 많이 떨어지더라. 아직도 남아있는 게 없진 않지만 그걸 몰아서 풀어버리다 보니 오히려 위기감이 올 수도 있겠더라. 그래서 다시 좀 더 모아야 될 것 같다. 게다가 지금 영화판이 힘들다고 해서 냉큼 편한 자리 찾아서 가면 그게 모이지도 않는 거라 다른 생각도 배제하게 되는 거고.
영화가 김인권이라는 배우를 필요로 했기 때문일 수도 있겠지. 지금쯤이면 과거에 자신이 했던 연기를 돌아보게 되는 순간도 있을 텐데. 특히 군대 있을 때는 생각도 많았을 테고. 저거 진짜 못했네. 왜 저렇게밖에 못했을까. 그런 생각이 많이 들지. 나는 영화든 드라마든 작품을 찍고 내 연기를 관객입장으로 보기까지 한 10년 정도 걸리는 거 같다. 그 정도는 되야 완전히 당시 그 기분이 기억의 용량에 밀려서 갱신되고 잊혀져 버리는 것 같다. 그래서 나도 희망이 있지 않나. 앞으로 또 10년 뒤에 도완이가 과연 어땠을까, 하고 다시 보면 왜 저거밖에 못했을까, 이런 생각을 할 테니까. 그렇다면 난 분명 옛날에 했던 거보다 나아졌다는 거 아닐까. 그런 식으로 발전해가야지.
하지만 적어도 그 연기가 그 당시 자신에겐 베스트였을 텐데. 그 당시엔 그랬지. 그런데 그때도 비슷하다. 지금 도완이가 한 30%를 대충했다고 말하는 것처럼 그때도 최고에 달했다고 생각하지만 최고는 아니었다. 심지어는 초창기엔 카메라 앞에서 연기한 뒤 뒤돌아서 그걸 생각하지 말자고 되뇐 적도 있다.(웃음) 물론 지금은 그 정도는 아니다. 어느 순간, 이건 됐어, 이렇게 100%만족스러운 경우도 있고, 아쉬울 때는 한번 더 가자, 는 얘기도 할 수 있으니까. 그런데 그 당시에는 못해놓고, 혼자 속으로 씩씩거리다가 말았지. 모든 배우들 그런 경우 있을걸. 감독이 컷! 오케이!, 하면 (속으로) 오케이 아닌데, 이러는 거.(웃음)
사실 자신의 연기를 만족한다고 말하는 배우를 보기란 드물다. 만족하기란 쉽지 않지. 근데 요즘은 어떤 커트를 해놓고 너무 힘들어서 이제 더 이상은 못하겠다, 이런 경우도 있다. 정신 차려야지. 에너지가 없으면 그렇게 되는 거더라. 에너지가 있으면, 감독님, 한번만 더 하겠습니다!, 이렇게 되는데 그걸 다 써먹고 채우질 못하니까 힘에 부치는 거다.
도완같은 캐릭터에 몰입하다 보면 심리적으로 힘들어지는 순간도 있었을 거다. 심리적으로 날을 세운 캐릭터에 동화되는 연기를 하다 보면 그게 자신에게 전이되기도 할테니까. 오히려 그렇게 했어야 되는데 도완이가 너무 끔찍하기 때문에 내가 몰입을 많이 못했다. 내 집에 딸이 있고 걔한테 영향을 미치면 안되니까. 건달도 처자식 생기면 건달 끝이라고, <넘버3>에서 나오는 말이잖아. 배우도 조심해야 된다.
아무리 그래도 몰입하지 않고서야 연기가 가능하나? 컷이 끊어지고 연기가 끝나고 감독님한테 돌아갈 때, 저 어땠어요?(호들갑스럽게), 이런 식으로 바뀌는 버릇을 들이는 거지. 바뀌지 않고 거기에 계속 몰입해서 집까지 가져가면 감당이 안 된다. 얼마 전에 인터넷으로 <추격자>의 하정우 씨 인터뷰를 봤는데 흰자에 핏발이 서 있더라. 그거 조심하셔야 된다.(웃음) 빨리 빠져 나와야 돼. 관상학적으로 핏발이 선 게 사람 죽이는 건데, 걱정되더라.
캐릭터와 일체화되는 메소드 연기를 지양하나? 아니, 지향하지. 사실 더 그렇게 했어야 했다. 배우가 준비기간까지 포함해서 연기하는 동안, 캐릭터에 녹아 들어서 얼굴의 관상이 바뀔 정도가 돼버리면 가장 좋은 거지. 그러니까 <추격자>가 그런 에너지가 생기는 거잖아요. 그게 에너지죠. 그런 갈급함을 최대한 끌어올릴 수 있는. 다만 캐릭터로부터 빨리 빠져 나오는 기술을 확실하게 가지고 있으면 현장에서 들어가는 게 더 수월한데 그 합일점을 찾는 게 쉽지가 않거든.
대신 입구는 찾기 쉽지만 출구를 찾기가 힘들기 때문에? 출구가 없으면 안 된다. 특히 그런 역할은 출구가 없으면 더욱 안되고. 나도 옛날에 했던 역할의 잔재가 아직까지 남아있는 게 굉장히 많다. 그때마다 다 빼내지 못해서.
어쩌면 도완이란 역할의 출구를 만들어준 건 가족일 수도 있겠다. (잠시 생각하다가)그렇네. 가족을 통해서 잊는 방법이 있네. 매일같이 가족을 만나서 잊게 되는 거니까. 근데 그게 기본적으로 적당한 시간도 필요하겠지. 그건 또 문제다. 하여튼 난 그런 합일점을 빨리 찾았으면 좋겠다. 내 연기가 집에 영향을 주면 안되니까.
<추격자>의 흥행은 고무적이지 않나. 인기에 편승하지 않아도 영화적 완성도와 배우들의 연기력이 훌륭하면 관객들에게 어필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사례 아닌가. 그 동안 투자자나 제작자가 인기에 편승해왔는데 그건 아니지. 이젠 나도 그건 아니라고 얘기하고 싶다. 물론 영화는 상업예술이기도 하지만 상업을 하는 사람이 감독예술은 건드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감독이 작품에 자기 영혼을 담아서 진짜 에너지를 쏟아 붓고, 그 역할에 맞는 캐스팅을 하고, 그렇게 해서 작품의 완성도를 이룰 수 있는 영화만의 신성함은 건드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 나머지 테두리는 그걸 도구로 해서 돈을 버는 분들이 열 배를 벌던, 백배를 벌던 상관없지만 감독예술이라는 영화자체만큼은 건드리면 안 된다. 물론 의견을 제시할 수는 있으되, 감독이 주도권을 잡아야 되고, 감독이 맞추고자 하는 일관성은 건드리면 안 된다. 그리고 감독님들도 그에 맞는 책임감을 확실히 기르고 그 외의 것을, 이 영화를 어떻게 해서 돈을 번다던가, 그런 걸 생각하시면 안되겠지. 난 배우니까 철저하게 감독님이 원하는 연기를 하면 되는 거고.
한국영화의 위기 상황이란 게 그런 의식의 부재에서 원인을 찾을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러니까 이 위기가 감독예술이라는 본연의 의미를 찾아가는 기간이 됐으면 좋겠다. 그걸 찾으면 우리도 할리우드가 부럽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다만 그걸 못 찾고 계속 이대로 그냥 살아남겠다고 상업적인 돈의 논리로 인지도 높은 배우 쓰고, 작가 뭐야, 감독 뭐야, 그런 식으로 하면 답이 없겠지만. 하지만 완성도를 찾아갈 거라 믿는다. 만약 그래서 결국 다 떨어져나가고 C급만, D급만, 분야별로 최하급만 남더라도 상관없다. D급 배우에 D급 감독, D급 투자, 이렇게만 모여도 영화에 일관성이 생기니까 거기에 스피릿이 생기고 그 영화의 완성도가 생긴다.
가장 열악한 밑바닥까지 내려앉더라도 진정성을 찾으면 된다는 말인가? A급 배우에, C급 뭐에, D급 뭐에, 이렇게 일관성이 없어지면 오히려 관객이 진정성을 못 느끼지. 그래서 그냥 최하급만 남더라도, 그 일관성 때문에 빛이 난다고 생각하는 거다.
원래 연출을 지망해서 연극영화과에 진학했던 만큼 그에 대한 관심도 남다를 것 같다. 연출적 마인드로 연기를 하면 도움은 많이 된다. 감독을 더 이해할 수 있고, 감독이 나를 이해시키기가 굉장히 쉬워지니까. 지금으로서는 그런 정도의 연출적 마인드만 지니고 있으면 된다고 생각한다. 물론 내가 감독이 되겠다고 하기엔 아직 재주가 없는 탓이기도 하고. 시적인 표현이든, 내러티브가 있는 이야기든, 이 시대로부터 영감을 받아서 이야기할 수 있는 작가적인 차원의 재주가. 난 배우로서 내 역할 하나 하기에도 아직도 부족하다.
졸업작품으로 예전에 <쉬바스키>라는 영화를 만들기도 했다. 나름대로 제작환경을 이해하는 좋은 경험이었을 것 같은데. 그냥 맨땅에 헤딩하듯이 내가 제작부터 배우까지 다 했으니까. 그때 같이 했던 재승이라는 친구는 시네마서비스에서 <강철중>PD를 맡고 있는데 가끔 전화할 때면 지금도 그때가 좋았다고 한다. 참 좋은 경험이었지. 가장 순수한 걸 해봤다는 그런 만족이 있다. 어렸을 때부터 소꿉장난으로 의사놀이를 해봤던 아이가 의사가 되는 것과 칼싸움했던 아이가 살다 보니 의사가 괜찮은 직업인 것 같아서 의사가 되는 것과는 차이가 있겠지. 어렸을 때 영화가지고 한번 놀아봤다는 게 내겐 남은 거지.
배우 경험이 많은 김해곤 감독과 다른 감독의 차이가 있었나. 다르지. 김해곤 감독님은 현장이나 무대에서도 그러잖아. 우리 배우들만 돋보이면 된다. 욕하려면 나를 욕해라. 굉장히 배우를 중심적으로 캐릭터에 염두를 둔다. 게다가 혹시나 감정 상할까 봐 배우들한테 함부로 하지도 않고. 배우한테는 더 없는 감독이지.
오래 전에 했던 인터뷰에서 종종 자신은 배우가 아니라고 했더라. 사실 배우가 쉽게 되는 게 아니거든. 너무 이상적인 생각인가? 내가 영화에 대해서 너무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것일 수도 있는데, 배우도 마찬가지다. 배우도 그냥 되는 게 아니지.
여전히 스스로를 배우라고 말할 수 없다는 건가? 멀었지.
어느 정도의 연기를 해야 스스로를 인정할 수 있을까? 꿈이 이뤄지는 것만큼 허황된 것이 없다. 만약 내가 요절하면 남들에 의해서도 배우로 평가될 수 있겠지만 살아있는 이상, 그냥 열심히 하겠다는 생각밖에 없다. 나도 그냥 살아가는 사람에 불과하고, 일에 대해서 뭔가를 추구할 뿐이지. 언젠가 이뤄질 것이다라는 생각을 하기 보단 그저 열심히 살려고 한다.
차기작으로 <나쁜 놈이 더 잘 잔다>란 작품에 캐스팅된 걸로 알고 있다. 영진위에서 시나리오 공모전 1위를 한 작품인데 영진위로부터 6억이 투자된 상태다. 캐스팅은 거의 됐고, 시나리오도 고치는 중이다. 감독님이 투자를 더 받아서 영화를 더 풍성하게 만들고 싶어하는데 돈줄이 말라버렸다. 대본이 너무 좋다. 매력이 있더라. 일단 일정이 좀 늘어지면서 기다리는 중이다. 진심을 가지고 열심히 하는데 잘 안되나 보다. 그래도 진심은 통하니까, 어떻게 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