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에노 주리의 백치미적 연기가 인상적인 <신부의 수상한 여행가방>은 뮤지컬 성향까지 가미된 만화적 취향의 코미디다. 기시타니 고로가 자신의 첫 연출작으로 코미디를 선택했다는 건 일면 의외다. 최양일 감독의 <달은 어디에 떠있는가>를 통해 현장 경험을 시작한 기시타니 고로는 그 이후로 만만치 않은 사내이거나 진중한 남성으로서 각인돼왔다. “내 안에는 <개 달리다>의 강렬한 캐릭터도 있고 그 밖에도 배우로서 연기했던 다양한 요소가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신부의 수상한 여행가방>은 배우로서 좀처럼 드러내지 못했던 기시타니 고로의 또 다른 취향을 드러낸 결과물이다. 무엇보다도“내가 보고 싶은 걸 찍는 방식”으로 작업에 임한 기시타니 고로는 “내 안에 있는 엔터테인먼트 요소들을 다 이끌어내서 1시간 40분 동안 완전히 달려보자는 생각”으로 <신부의 수상한 여행가방>을 완성했다.
결혼을 앞둔 예비신부는 예기치 못한 살인에 휘말리며 시체 유기를 계획한다. 하지만 생각대로 하면 된다는 모CF카피가 새빨간 거짓말이라는 걸 증명하듯 그녀를 기다리는 건 엉뚱한 소동극의 연속이다. 비현실성이 강하게 자각되는 영화적 상황의 나열 속에서도 설득력 있는 감정을 전달할 수 있는가가 중요한 관건이었다. 기시타니 고로는 명확한 연출적 목표를 지니고 현장을 통제했다. “기상천외한 스토리를 지닌 이 작품을 보통의 영화 찍듯 리얼하게 표현하면 도저히 성립할 수 없을 거라 생각했다.”그래서 기시타니 고로는 모든 상황을 “오버액션으로 끌어올렸고”, 덕분에 “춤과 노래가 들어가는” 방식이 강구됐다. 과할 정도로 감정을 조장하는 매 상황은 취향이 반영된 결과라기 보단 확실한 연출적 목표를 품고 스토리에 어울리는 표현을 선택한 결과물인 셈이다.
“이 작품을 찍으려고 생각해서 준비하고 시작하게 된 건 2년 전이다.” 기시타니 고로가 갑작스럽게 연출을 계획한 것은 아니었다. 게다가 <신부의 수상한 여행가방>이외에도 기획을 고려할만한“다른 후보들”도 많이 있었다. “난치병에 걸린 사람에 관한 이야기라던지, 차분한 심리묘사가 요구되는 영화”를 구상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기시타니 고로가 <신부의 수상한 여행가방>을 자신의 첫 번째 작품으로 선택한 이유는 다른 게 아니다. “일본에 없는 타입의 영화를 만드는 것.” <마츠코의 혐오스러운 일생>만큼이나 기구하고 <달콤, 살벌한 연인>만큼이나 엉뚱하지만 보다 낙관적인 웃음과 여운을 전달하는 <신부의 수상한 여행가방>은 차분한 드라마타이즈 형식의 여운을 맺거나 적막한 개그를 구사하는 일본 코미디들과 분명 궤가 다른 작품임에 틀림없다. 그만큼 그런 분위기에 자연스럽게 녹아 들어갈 여배우의 역할이 중요했다. 그리고 기시타니 고로는 “아슬아슬하게 밸런스를 조절하지 못하면 너무 오버가 되거나 분위기를 떨어뜨릴 수 있는 역할”로서 “우에노 주리 이외엔 누구도 생각하지” 않았다. 그리고 기시타니 고로가 “연기에 있어서 최고”라 생각한다는 우에노 주리는 그 기대를 충분히 보상할만한 연기를 선물했다.
배우로서 오랫동안 현장을 누빈 중견배우가 메가폰을 잡고 현장에 서는 느낌은 어색하지 않았을까. 오히려 반대다. “배우일 때는 오늘 촬영할 신에서 그 역할을 잘 해낼 수 있을지 불안해서 언제나 현장에 가기 싫었다. 그러나 오히려 감독으로서 현장에 갈 땐 신나서 뛰어갔다.” <신부의 수상한 여행가방>은 기시타니 고로에게 현장의 새로운 재미를 만끽하게 만든 작품이다. 어쩌면 앞으로 기시타니 고로의 연기를 만날 기회가 현저히 줄어드는 건 아닐까. “배우로서 가끔 어떤 역할에 대한 굶주림을 느끼게 되면 그 방향으로 가게 된다. 감독과 배우로서의 밸런스도 마찬가지 아닐까. 연출적 갈증이 생기면 아마 다시 연출을 하게 되겠지. 결국 해보지 않고선 알 수 없는 결과론적인 일이다.”물론 기시타니 고로에겐 “찍고 싶은 영화가 많다”. 그러나 현재 기시타니 고로는 “내년에 공연할 연극 대본에 대한 생각으로 매진”돼 있다. 아직 차기 연출작에 대해 정해진 건 아무 것도 없다. 그러나 기시타니 고로는 예감한다. “만일 다음 영화를 찍게 된다면 이번 작품과 완전히 다른 작품을 만들지 않을까 싶다.” 또 한번 기시타니 고로가 메가폰을 잡으면 그의 이면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길 것이다.
“사실 이 작품은 가방을 끌면서도 즐겁게 뛰어가는 우에노 주리의 라스트신을 위해 찍은 작품이나 다름없다. 어쩌다 보니까 다시 사람을 죽이게 된 여자가 어두운 상황에 처했음에도 내일 다시 즐거운 일을 만날지 모른다는 긍정적 기대를 품고 뛰어가는 상황을 그리고 싶었다.” 기시타니 고로의 말처럼 <신부의 수상한 여행가방>은 비극 속에서도 긍정을 쫓아가는 역방향의 희망을 그리는 영화다. 사실 이런 기시타니 고로의 긍정적 태도는 부정적 상황 속에서도 긍정적 희망에 대한 끈을 놓지 않은 과거의 경험을 통해 얻어진 것일지도 모른다. “20대엔 굉장히 가난했지만 연극배우를 꿈꾸며 아르바이트를 하면서까지 연극레슨을 받기도 했다. 그렇지만 한번도 연극을 그만 두겠다고 생각한 적 없다. 그 가난했던 20대가 내겐 굉장히 중요한 순간이었다고 생각한다.” 결국 기시타니 고로는 어두웠던 과거의 환경 속에서도 미래적 빛을 향한 집념으로 오늘을 이뤘다. 어쩌면 그가 선택한 감독으로서의 길은 어떤 특별한 야망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새로운 행복을 꿈꾸는 긍정의 발전으로 이뤄진 자연스런 결과가 아닐까. “훌륭한 인생을 살았다고 말할 순 없지만 적어도 후회가 필요 없는 소중한 순간을 보냈다고 생각한다.”그렇게 기시타니 고로는 어제를 넘어 오늘로 소중한 순간을 이어나가는 중이다.
인간이 된 인형이 바라보는 세상을 그리는 <공기인형>은 배두나의 ‘돌 플레잉’ 덕분에 국내에서도 화제가 된 작품이다. 그러나 <공기인형>에서 인형은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관점을 대변하는 대리적 존재란 점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그만큼 고레에다 히로카즈에겐 자신의 관점을 잘 이해하면서도 인간이 된 인형으로서의 기이한 매력을 잘 살려줄 수 있는 배우가 필요했다. “원래 배두나의 팬이었다”는 고레에다 히로카즈에게 배두나는 “기회가 되면 꼭 한번 일해보고 싶은 배우”였다. 하지만 배두나를 <공기인형>의 주인공으로 떠올리고 낙점할 수 있었던 건 “인형이 마음을 갖고 살아 움직이는 만큼 언어가 어눌해도 상관없겠다”는 판단이 섰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 <공기인형>을 완성한 이후로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확신은 보다 굳건해졌다. “배두나가 아니었다면 이 역할은 존재할 수 없었을 거라 생각한다.” 물론 부산국제영화제 상영 중 GV가 있던 날, 딸의 작품을 보러 온 “배두나 어머니의 반응이 너무나 궁금해서 객석 반응에 신경 쓰지 못해” 아쉬움도 남았단다.
사실 <공기인형>은 “20페이지 분량의 원작만화”로부터 출발한 기획이었다. “찢어져서 구멍이 난 채 버려진 인형에게 인형이 좋아했던 사람의 숨을 불어넣어주는 순간을 그린” 동화적 세계관의 원작으로부터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건져 올린 건 “인형의 눈에 자신의 시선을 오버랩시켜서 세상을 바라본다는 발상”이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보다 적나라하게 현실을 관통하길 원했다. <공기인형>은 ‘에어돌(air doll)’, 일명 ‘섹스돌’이라 불리는 성인용 섹스 인형을 의미하는 제목이다. 현실을 직설적으로 바라보는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무덤덤한 감성이 시니컬하게 표면 위로 떠오른 셈이다. 하지만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바라보는 건 “일상의 빛나는 순간”이다. “지극히 평범한 일상에서의 시간이나 공간이 얼마나 소중하고 값진 것인지 보여주고 싶다.” 비극과 회의로 치장되기 쉬운 현실을 고스란히 발췌해 살필 뿐, 결코 비관하지 않는다.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정적인 분위기로 영화를 지배하는 가운데 크고 작은 소란을 배치하며 묘한 활기를 놓치지 않는다. 그리고 그 끝에서 날카롭게 찌르고 들어오는 한 순간의 출렁임을 통해 객석을 진동시켜 울림을 연출한다. 지극히 일본적인 사건과 배경을 담은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작품들이 전세계적으로 호평을 얻어온 것도 그런 보편적 감성과 무관하지 않다. “당시 도쿄에서 일어난 사건을 세밀하게 그린 <아무도 모른다>를 본 미국 관객은 우리 동네에서도 그런 사건이 일어나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것 같다”는 의견을 표했고, 감독 자신의 어머니를 영화화한 것이라 생각한 “<걸어도 걸어도>는 스페인에서도, 토론토에서도, 프랑스에서도, 자신의 어머니 이야기라 이야기하는 관객들”을 마주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이를 “참 신기한 일”이라며 멋쩍게 웃어넘기지만 이런 일련의 경험이 깨닫게 한 분명한 진리를 단호한 목소리로 전한다. “철저하게 국내적인 걸 파고드는 것이 결국 그 끝에 놓인 보편성과 통하는 게 아닐까.”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자신의 작품이 일본을 벗어나 전세계인의 일상 속에 내재된 빛나는 순간과 소통하고 있음을 알고 있다.
나이 듣고 깜짝 놀랐다. 당연히 외모만 보고 10대인 줄 알았거든. 대부분 이런 반응 아니던가?
(웃음) 다들 그렇게 얘길 하더라.
민증 검사도 자주 받을 거 같다.
난 담배를 피우진 않지만 친구들 심부름으로 편의점에서 담배를 살 때도 종종 있다. 그럴 때마다 가끔씩 신분증 검사를 하더라. (웃음) 술자리에서도 신분증을 갖고 가지 않으면 안 된다. 요즘은 신분증 없이 술집에 가면 부모님한테 전화를 한다. 그래서 신분확인을 한다고 부모님한테 전화를 한 적도 있다.
대세는 동안이라 기분 나쁜 일은 아니겠지만, (웃음) 나름대로 불편함이 있겠다.
그래도 일단 나는 좋다. 덕분에 교복도 계속 입혀주시고. (웃음)
조만간 부산에서 무용 공연을 한다고 들었다.
10월 22일, 23일 이틀간 부산 국악원에서 큰 공연에 참여한다. 그 이틀 공연을 위해서 3개월 동안 연습했다. 지금 선생님께서 부산에 계셔서 서울과 부산을 바쁘게 움직이고 있는데 9월까진 그래야 할 것 같다. <푸른 강은 흘러라>개봉할 때까진 서울에 있다가 내려가야 할 테니까. 아마 부산영화제 시작과 함께.
한국예술종합학교를 졸업했다. 한국무용을 전공했다고 들었는데 연기에 입문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전통예술원 한국무용과를 2007년도에 졸업했다. 내가 학교를 다닐 때만 해도 전통예술원은 영상원과 같은 건물을 사용했다. 그때는 배우도 많이 부족한 상황이었고, 영상원에선 1~2학년 때는 다른 외부 작품을 못하게 돼있었다. 그래서 외부에서 연기자를 구하는 경우가 많았다. <기린과 아프리카>의 김민숙 감독님이 그때 <사과>라는 단편 뮤지컬 영화를 처음 만든다면서 춤이 필요하다 하셔서 내가 우연찮게 그 작품에 참여했고 그걸 인연으로 계속 영화를 하게 됐다.
처음엔 배우로서 영화에 참여한 게 아닌가 보다.
<사과>에선 연기를 한 게 아니라 춤을 췄다. 그러다 김민숙 감독님의 두 번째 영화인 <그림자>에서 배우들 안무랑 트레이닝을 맡았는데 거기서 김민숙 감독님께서 “네가 꼭 했으면 하는 역할이 있다”고 하시더라. 약간 정신상태가 좋지 않은 관기 역할을 맡았는데 그 역할도 대사는 거의 없었다. 그 역할을 하고 나니까 김민숙 감독님이 자기 졸업작품을 같이 했으면 좋겠다고 하셨고 그게 처음으로 주연을 맡았던 단편 <기린과 아프리카>였다. 그렇게 연기를 시작한 게 내 인생의 큰 전환점이 됐다. 덕분에 큰 기회도 많이 생겼고.
<기린과 아프리카>로 미장센 단편영화제에서 상까지 받았다.
정말 부담스러웠다. ‘이건 뭐지?’ 싶을 정도로. (웃음) 그때 상을 받고 나서 난 무용만 해야겠다 싶을 정도로 겁이 났다. 처음으로 주연을 맡은 작품으로 연기상을 받게 된 것도 그렇고, 잠깐 짧은 한때라도 나에게 많은 관심을 준다는 것만으로 큰일이 나는 건 아닐까 무서웠다.
갑작스럽게 상까지 받으니 얼떨떨했을 것 같다. (웃음) 그래도 한편으론 나름대로 좋은 계기가 됐다.
현장이 너무 재미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기억에 남고, 그 다양한 사람들이 하고 싶은 걸 열심히 한다는 것에 반했다. 어렸을 때부터 무용을 해왔기 때문에 내 분야에 대한 열정을 잊고 있었던 것 같은데 영화를 하면서 그런 걸 다시 되새기는 계기기 됐던 게 아니었나 싶다. 내 춤을 형성하는 시기는 있었지만 내가 나를 스스로 형성하는 시기는 별로 없었던 거다. 김예리란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서 나 스스로도 모호했고, 내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전혀 고민하지 않았는데 영화를 하면서 그런 고민을 하게 됐다. 현장에서 많은 사람들과 대화를 하면서 도움을 받았다. 그래서 영화를 계속 하고 싶어졌다.
연기는 영화라는 결과물을 통해 자신이 표현한 걸 확인할 수 있는 기회가 확실하지만 무용은 실시간으로 펼쳐지는 무대 공연이라서 자신이 표현한 걸 직접 확인할 기회가 드물다. 그런 피드백의 차이에서 오는 감흥도 다르진 않던가?
사실 무용은 긴 시간을 연습하고 난 다음에 하루, 이틀 공연으로 끝난다. 그러니까 그 무대에서 여태까지 쌓아온 모든 것을 한번에 터트리는 거라 그 자리에선 어떤 수정도 불가능하다. 영화는 혼자서만 하는 게 아니라 많은 사람들끼리 조금씩 쌓아온 걸 여러 번 반복해서 좀 더 좋은 효과를 낼 수 있게끔 만드는 작업이다. 그래서 결과물이 중요한 건 무용보다 영화 같다. 과정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결과물이란 생각이 든다. 그래서 다른 분야라는 걸 느꼈고. 사실 무용은 무대공연이다 보니까 충분한 기록이 남지 않는다. 그런데 영화는 결과물이 너무 확실하고 기록적이다. 두 달 사이에 내 얼굴이 달라져서 다른 사람으로 보여지는 것도 재미있었다. 무용을 할 땐 계속 나 스스로를 단단하게 만드는 느낌이지만 영화는 자꾸 내 자신을 다른 모양으로 바꿔보는 것 같아서 재미있다. 다른 사람의 인생을 잠깐이나마 경험할 수 있는 거랄까? 일종의 축복이지.
무용은 언제부터 시작한 건가?
정식으로 시작한 건 입시를 준비하기 시작했던 4학년 때부터였지만 무용은 정말 어릴 때부터 했다. 두 살이 좀 넘었을 때였나? 그때 우리 집이 제천에 있었는데 그 당시 제천에 어린이집이 없었다. 어디 맡겨놓을 곳이 없다 보니까 무용학원에 맡겨졌다. (웃음) 그때부터 뛰어다니는 걸 좀 좋아했다.
영재교육을 받은 셈이네. (웃음)
그런 건 아니고. (웃음) 엄마가 아는 분이 무용을 하기도 했고, 무용학원엔 언니들도 많다 보니까 거기 가서 놀아라, 이런 식이었지.
결국 학창시절 내내 무용에 전념한 셈인데 어머니께서 돈독한 후원자가 되셨나 보다.
어머니께서 학구열이 높으시다. 내가 무용을 하고 싶다고 얘기하니까 그럼 좀 더 좋은 곳에서 좋은 선생님들한테 배워야 하니 서울로 가야 된다고 말씀하시더라. 그래서 국립국악중학교 시험을 봤고 운 좋게 붙었다. 그 뒤로 국립국악고등학교에 진학했고 예종까지 부모님의 덕으로 순탄하게 갔다. (웃음)
아무래도 무용에 재미를 느꼈으니 무용을 해야겠다 마음먹었겠지만 종종 다른 걸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었나?
아마 그 당시 내 주변의 또래 친구들도 비슷한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싶은데, 사실 무용 밖에 해본 게 없어서 뭔가에 도전해본다는 생각 자체가 큰 두려움이었을 거다. 해본 게 없어서 뭘 해야 할지 모르는 거? ‘내가 이걸 해도 되나?’라는 생각이 드는 거다. 아마 대학을 졸업한 이후에 많은 생각을 갖게 되고 변한 거 같다.
영화를 통해 교복을 입게 될 기회도 많았다. 오랜만에 교복을 입는 기분은 어땠나?
교복을 입을 때마다 기분도 좋았고 신기했다. 사실 고등학교 시절을 누리면서 살았던 거 같진 않다. 예민한 시기였지만 난 생각보다 무디게 지낸 것 같다. 그래서 그런 예민한 상태로 순수한 감정을 느낄 수 있는 상태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게 좋았다. 막상 사람을 그렇게 만들어놓으면 또 그렇게 되더라. 그래서 교복은 입을 수 있는 한 계속 입어보고 싶다. (웃음)
계속 여고생 역할을 한다는 게 특별히 걸리진 않나 보다.
다른 사람들은 계속 여고생을 연기하는 게 위험하지 않냐는 질문들을 많이 하지만 나는 무리해서 내 이미지를 바꾸고 싶진 않다. 하는 데까지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 같다. 그리고 그냥 학생 신분을 갖고 있을 뿐이지, 항상 같은 여고생 역할을 하는 건 아니다. 매번 다른 자아를 가진 여고생을 연기하는 거니까 나에겐 다 다른 사람처럼 보인다. 양복을 입은 비즈니스 맨도 똑같지 않을까? 여고생도 똑같이 보일 뿐이지, 다 다른 사람이다.
원우라는 여고생으로 출연한 <바다 쪽으로, 한 뼘 더>가 본인의 장편 출연작 중 첫 개봉작이 됐는데 아무래도 기면증을 앓는 여고생을 연기한다는 게 특별하지 않았을까 싶다.
사실 기면증을 앓고 있다는 점보단 원우 자체를 많이 생각했다. 원우가 어렸을 때부터 계속 아팠으니까 스스로에게 짜증이 많이 나있지 않을까 짐작했다. 오랫동안 병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그렇지 않을까. 본인 스스로 통제할 수 없다 보니까 짜증도 많이 나고, 그 병을 계속 끌어안고 있다는 것 자체도 힘들 거다. 그렇지만 불치병이다 보니까 자꾸 잊어버릴 거 같았다. 자기가 아프다는 걸 잊고 있다가 그 병이 도지는 순간마다 스스로 자꾸 꺾이는 기분을 느낄 거라 생각했고 그런 부분에 중점을 두고 연기했다. 그런데 오히려 나에겐 <푸른 강은 흘러라>의 숙이가 조금 더 어려웠다. 왜냐면 원우는 서울에 사는 아이니까.
아무래도 원우는 환경적으로 익숙한 공간에서 연기하는 캐릭터라 숙이에 비해 그런 부분에서의 짐은 가벼웠을 것 같다.
원우를 준비하면서 지나가는 고등학생들을 많이 관찰했고 나는 고등학교 때 어땠었나 생각했다. 기면증에 대한 자료도 많이 봤고, 자전거를 타거나 넘어지는 연습도 많이 했다. 그러면서 구체화되는 것들이 조금씩 생기더라. 그런데 숙이는 국어교과서의 문학작품에서 나오는 영희나 철이 같은 애들이라 감이 잘 안 왔다. 그래서 처음엔 많이 힘들었지만 점점 단순하게 생각해보려고 노력했다. 감독님도 숙이는 참 단단하고 밝은 힘이 있는 아이라고 얘기하셨기 때문에 내가 지닌 어떤 에너지를 많이 끌어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사실 연변말 외엔 특별히 참고하거나 준비할 수 있는 뭔가가 없어서 촬영이 들어가기 전까진 많이 불안했다. 그 상황 자체에 들어가보지 않고선 알 수 없는 것들이 많았다.
숙이는 전형적인 모범생처럼 보인다. 자신의 고등학교 시절은 어땠을까?
나도 모범생이었던 것 같다. 자기 주장이 그렇게 강하지 못했고, 시키는 걸 잘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평범한 학생이랄까. 다 같이 이걸 해야 된다 하면 그걸 꼭 해야 된다고 생각하는 애였다. 이걸 안 할 수도 있는 건 아닌가라는 생각은 별로 못했으니까. 사실 고등학교 땐 춤을 추는 게 너무 좋았고 그게 내가 살아남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적은 친구들 안에서도 경쟁이 치열했기 때문에 내가 살아남으려면 열심히 춤을 추는 수밖에 없다고 믿었고 그만큼 여유가 없었다. 내 자신이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내가 어떤 성격인지, 이런 게 중요하기보단 내 춤이 항상 먼저였다. 김예리가 중요한 게 아니라 김예리의 춤이 더 중요한 시기였다. 그런 게 지금 와서 약간 후회된다. 그런데 숙이는 그런 아이 같지 않더라. 본인이 어떤 사람인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어떤 것이 옳은지, 정확하고 분명하게 아는 아이였다. 같은 모범생이면서도 분명한 자아를 형성하고 있는 아이란 점에서 나완 분명히 다르다.
<푸른 강은 흘러라>는 <바다 속으로, 한 뼘 더>보다 먼저 촬영된 영화다. 첫 주연작을 맡은 장편영화이기도 했는데 연변까지 가서 영화를 찍었다.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사실 <기린과 아프리카>를 하고 나서 아무 것도 한 게 없었다. 그냥 그렇게 한 해가 넘어간 다음에 단편 두 작품을 했고 그 뒤에 <푸른 강>을 하게 됐는데 그래서 부담스럽더라. 사실 뭘 해야 할지도 몰랐고, 그냥 시키는 거라도 잘 해야 되겠다는 생각이 많아서 연변말이라도 잘 하는 게 가장 큰 목표였다.
연변 말이 처음엔 외국말처럼 들리더라. (웃음) 마찬가지로 본인에게도 익숙하지 않은 말이라 애먹지 않았을까 싶더라. 나름대로 트레이닝 과정도 있었을 것 같고 적응을 위한 노력이 있었겠지.
연변 예술대학에 있는 친구들이 많이 도와줬다. 다 나와 또래였고, 그 중 동갑이었던 친구도 있었다. 그 친구가 항상 옆에 붙어서 연습시켜줬고 그쪽에서 연변 말을 익숙하게 듣다 보니까 차이점도 알게 됐다. 우선 무슨 말이든 계속 해보는 게 중요했고, 그 친구들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 하나씩 알려준 덕분에 생각보다 쉽게 배웠다.
한국, 그것도 서울에 사는 사람에게 연변은 낯선 곳이다. 교실에서 버젓이 담배를 피우는 학생들의 모습 자체만으로도 생소하더라.
사실 <푸른 강은 흘러라>는 그쪽 현실보다 좀 더 극적으로 꾸며진 이야기이긴 하다. 그런데 연변 사회에서 담배는 되게 일찍부터 배우는 거라 그런 것들이 그리 큰 문제가 아니라고 해서 조금 놀랐다. 거기도 서울만큼 문화적 변화가 빠르다. 한국의 모든 물품들도 시장에 가면 다 있고, 한국 3사 방송을 텔레비전으로 바로 볼 수도 있다. 그래서 그 친구들이 정체성의 혼란을 느끼지 않을까 걱정도 많이 되더라. 그런데 다행히도 그 친구들은 자신들 스스로를 중국인이라 얘기하고 그에 대해 큰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그런 부분에서 혼란은 없을 것 같아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다만 경제적 여건은 따라오지 못하는 가운데 아이들의 이상은 빨리 변하고, 뭔가를 하고 싶지만 따라주지 않는 상황에 놓여있어서 겪는 혼란이 많아 보였고 그런 것들이 안타깝더라. <푸른 강은 흘러라>와 또 다른 문화적 차이도 있고, 사회적인 문제도 있다. 그 전까진 그런 생각을 해보지 않았다가 막상 그런 현실과 부딪히니까 오히려 내가 당혹스러워지는 것들도 많았다.
연변까지 가서 영화를 찍는다 하니 부모님 반응이 어땠을까 궁금하다.
사실 우리 부모님은 아직까지 당연히 내가 무용을 할 거라 생각하고, 그런 것에 대해선 잘 모르시는 편이다. <기린과 아프리카>로 상을 받았을 때도 그냥 웃으시면서, “이런 것도 있구나” 하시더라. 강미자 감독님은 학교에서 뵀던 분이고, “이런 일이 있어서 연변에 가게 됐다”하니까 잘 다녀오란 식으로 말씀하셨다. 해외로 공연을 가는 경우도 있었으니까 그리 큰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으셨던 것 같다. 덕분에 부담스럽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푸른 강은 흘러라>에선 상당히 일차원적인 대사도 많이 나온다. 예를 들면 “너는 나를 실망시킨다.”라던가, 직설적으로 감정을 전하는 대사가 많이 등장한다. 그런 대사의 정서가 좀 간지럽더라.
물론 익숙한 어투는 아니었다. (웃음) 물론 연변 사는 친구들도 그런 문학적인 어투를 사용하진 않는다. 다만 모든 친구들이 영화에 몰입하려는 마음을 갖고 있었고 거기에 자연스럽게 따라서 대화했기 때문에 그런 어투가 어색하다는 생각을 못했다. 이미 철이도 철이였고, 숙이도 숙이였고, 미옥이도 미옥이였기 때문에 그게 힘들다는 생각은 못했던 것 같다.
중반부에 당구장 외벽을 풀샷으로 잡은 우중 신에서 무용동작이 나온다. 그 장면을 보니까 무용전공자라는 걸 확실히 알겠더라. (웃음) 어떤 요구가 있었나?
촬영과 프로듀서를 맡았던 이지상 감독님께서 촬영 당일에 얘기하시더라. 당구장 신을 이렇게 찍어보는 게 어떻겠냐고. 그 얘길 듣고 잠깐 고민했다. 거기서 많은 움직임을 보여줄 수도 없는 거고, 큰 율동을 보여줄 필요도 없는 거니까 숙이의 어떤 감정만 잘 표현되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렇게 한번 해봤다.
그 장면에서의 동작은 자신이 직접 연출한 것이겠지?
사실 직접 짰다고 하기도 뭐하다. 그냥 몇 번 손 들고 만 건데. (웃음)
아무래도 자신의 무용 동작을 직접 관람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기회가 아니었을까. (웃음) 예기치 않게 연기를 시작했지만 연기를 통해서 연기 외적으로 특별한 영향력을 얻은 바는 없나.
춤추는 것도 어렵지만 연기도 어려운 일 같다. 게다가 나는 연기를 많이 공부한 사람이 아니라서 늘 부족하다고 느낀다. 그만큼 연기 잘 하는 분들을 보면 부럽다. 그리고 그런 생각이 든다는 것 자체가 내겐 새로운 일이다. 그럴 때마다 내가 욕심을 부리고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고 한편으로 걱정도 된다. 작품을 할 때마다 다른 모습을 보여줘야 할 것 같은데 항상 똑같은 김예리처럼 보이니까. 내가 보기엔 쟤도 김예리고, 얘도 김예리고, 다 똑같은 사람 같아서 연기라는 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아직은 얼마나 자신을 버리고, 비워야 되는지도 잘 모르겠고, 정말 한참 멀었다. 너무나 어려운 일이란 생각만 는다. (웃음)
<푸른 강>에서는 또래 배우들과 함께 호흡을 맞춘다는 점에서 편하지 않았을까.
<푸른 강> 촬영이 굉장히 지연됐었다. 그래서 감독님도 힘들어 했고 거기 있는 연변 친구들도 본인들의 일이 있는데 그걸 접고 영화에 참여한 것이었기 때문에 힘들어했다. 그런데 그 친구들은 또래라서 단합이 잘 된 거 같다. 맨날 우리끼리 술을 마셨다. 양꼬치에 맥주를 마셨는데 또래끼리 있다 보니까 할 얘기도 많았고 재미있었다. 그냥 같이 있는 것만으로 편하더라. 그런 게 연기에도 많은 도움이 됐던 거 같다. 그 친구들과 허울 없이 지내면서 나도 자연스럽게 숙이가 됐다.
연변 맥주는 맛있나?
맛있다! 양꼬치도 맛있고. 그 친구들이 지역 내에서 맛있는 곳을 자주 데려가서 음식은 잘 먹었다. (웃음) 그래서 돌아와서도 많이 생각나더라. 종종 생각나서 다시 먹고 싶다고 그 친구들한테 연락도 한다. 우리학교 앞에 양꼬치 집이 하나 있는데 가끔 거기서 양꼬치에 맥주를 마시기도 한다. (웃음)
그래도 그 맛이 나진 않겠지.
그렇지. 그 맛이 아닌 거지. (웃음)
<바다 쪽으로, 한 뼘 더>와 같이 중견배우들과 함께 호흡을 맞추는 건 어땠나?
박지영 선배님은 나를 처음 봤을 때 얘가 너무 낯가림 없이 대하니까 놀라셨나 보더라. 사실 나는 개인적으로 박지영 선배님을 TV에서 많이 봤기 때문인지 너무 친근했다. 그래서 편하게 접근하게 된 것뿐인데. (웃음) 서여사 님은 감독님 어머니였는데 이미 준비된 서여사나 다름없는 분이었다. (웃음) 박지영 선배님도 그렇고, 서여사 할머니도 마치 소녀처럼 나를 예뻐해 주셨다. 진짜 엄마나 할머니처럼 도란도란 앉아서 농담하고, 밥 먹고, 자고, 이런 기분이라 어려움은 없었다.
<푸른 강은 흘러라>외에도 아직 개봉을 기다리는 출연작이 있다. <귀향>이란 작품에도 출연했다고 들었는데.
<바다 쪽으로, 한 뼘 더>를 하기 전에 <귀향>을 먼저 찍었지만 <바다 쪽으로>가 찍자마자 바로 급하게 개봉을 해서 더 늦게 개봉을 하게 됐다. 내 입장에선 걱정이 좀 된다. 올해 <바다 쪽으로>가 먼저 나왔고 후반기에 <푸른 강>도 개봉하고 좀 더 있으면 <귀향>도 선보이게 될 텐데 이렇게 한꺼번에 출연작을 보여주면 내가 가진 걸 금방 다 드러내버리는 기분이라 걱정된다. ‘다음에 어떻게 해야 되지? 이제 연기를 하면 그만 해야 되나? 이제 나를 불러주지도 않으면 어쩌나’라는 생각도 들고. 사실 배우는 누군가가 선택해주길 기다리는 직업인데 누군가로부터 선택 받지 못하면 어쩌나 싶어진다. 내가 의도한 건 아니지만 이렇게 일년 동안 출연작이 겹치는 것도 마냥 좋아하기 힘든 일인 거 같다. 부담이 좀 된다.
오히려 연기에 대해 알아갈수록 감지되는 어려움이 커지는 게 아닐까 싶다.
차라리 생각이 없는 게 편했다. 잘 모르는 게 약이라고, 모르면 용감하다는 말이 맞더라. 알면 알수록 무섭다. 처음엔 리딩하는 것도 그렇게 어렵다는 생각을 안 했지만 요즘은 리딩이 너무 어렵다. 앉아서 대사를 한다는 것도 너무 어렵고 누군가에게 연기를 보여주는 것도 어려운 일 같다. 그만큼 점점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느낀다.
사실 무대에서도 비슷한 경험이 있었을 것 같은데.
무대에서도 비슷한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처음 무대를 섰을 땐 잘 모르고 섰지만 어느 순간 무대에 선다는 게 무섭더라. 그런데 그 순간을 잘 넘기면 그 안에서 즐거움도 많이 찾게 된다. 무대나 영화나 비슷한 시기가 오는 것 같다. 그래서 이 고비를 잘 넘겨야 될 텐데 싶어진다. 좀 더 책임감을 갖고 충실하게 작품에 임해야 될 것 같다.
<귀향>에서의 캐릭터는 기존의 밝은 이미지와 좀 상반되는 것 같더라.
좀 피폐한 고등학생 미혼모로 나온다. 스스로가 원하지 않게 어떤 상황에 계속 휩쓸려 가는 아이다. 사회나 어떤 현실 속에서 궁지에 내몰리는 캐릭터랄까. 나름대로 재미있게 찍었다. (웃음)
<파주>의 본예고편이 공개됐는데 짧게나마 등장하는 게 보이더라.
아마 잠깐 나올 거다. (웃음) 나도 아직 예고편조차 못 봐서 <파주>에 대해선 어떤 말을 하기가 어렵다. (웃음) <파주>는 나 자신이 많이 부족하다는 걸 느끼게 만들고 연기가 쉽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어준 작품이다. 대화가 부족하면 힘들다는 걸 알았다. <바다 쪽으로>를 끝내고 거의 바로 <파주>에 들어가다시피 했기 때문에 준비할 시간이 없었다. 그런데 내가 오만했다. 그렇게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았거든. 감독님이나 서우 양과 친해지면서 많은 얘기를 할 수 있었어야 했는데 그렇게 못한 게 후회된다. 연기가 쉬운 게 아니라는 걸, 이렇게 함부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란 걸 많이 배웠다.
확실한 건 지금까지 출연작 가운데 처음으로 본인 나이와 비슷한 연령 때의 캐릭터를 연기했다는 게 아닐까.
그건 그렇다. 빗나가는 성격을 지닌 모난 역할도 해보고 싶었는데 그럴 기회가 와서 좋았다. 26살이 돼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성인 역할을 할 기회가 조금씩 늘고 있다. 어쨌든 <파주>에선 좀 불량하다. (웃음)
우연인지 모르겠지만 지금까지 주로 여자 감독들과 작업해왔다.
여복이 많다. (웃음) 나름대로 좋았던 점 중 하나였던 거 같다. 여자 감독님들 영화의 주인공 대부분은 여자고, 여자 캐릭터를 더 빛나게 해준다. 그래서 여자 감독님들이 주는 역할을 맡으면서 내가 더 돋보일 수 있었던 거 같다. 그런 점에 대해서 감사하고 있다. 여자감독님들은 나에게서 다양한 면을 많이 봐주는 거 같다. 물론 남자감독님들과도 작업해봤고 남자감독님들도 좋은 분들이 많다. 어떤 한 분은 농담처럼 말씀하시더라. “넌 남자 감독들이 좋아하는 얼굴이 아니야. 그래서 여자 감독님이 너한테 그렇게 콜을 하는 거야.” (웃음)
본인의 말처럼 연기를 한다는 건 자신이 살아보지 못한, 혹은 살아볼 수 없는 다른 삶을 체험할 수 있는 기회라 할 수도 있을 거다. 실생활에서 결코 느낄 수 없는 대리만족을 할 기회도 생길 테고.
분명히 그런 건 있다. 다만 얼만큼 내 자신을 없애고 난 다음에야 그 캐릭터를 형성해 넣어야 하는 건지 아직 잘 모르겠다. 그러니까 내가 보기엔 좀 더 그 사람이 되지 못하고 하나같이 그저 다 내 안에서 나온 김예리 같기만 한 거다. 그런 점에서 부족함을 느끼고 좀 더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다양한 캐릭터를 연기하면서 이건 내가 할 수 있겠다, 할 수 없겠다, 이런 한계에 직접 부딪혀보고 싶다.
어쩌면 현재가 스스로의 연기에 동원되는 경험적인 밑천의 한계를 느낄 때일지도 모르겠다. 적당한 경험이 쌓이다 보니 더 많은 욕심이 생길 것 같고.
어느 친구가 얘기한 게 있다. 배우는 소모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너무 많은 역할을 해서도 안되고 신중하게 선택해야 한다고. 그 말이 정말 맞는 거 같다.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서 걱정이 많아졌다. 강미자 감독님도 말씀하시길, 예리가 할 수 없는 것도 해야 된다고, 그래야 더 좋은 배우가 될 수 있다고 하셨는데 그 말이 아마 그 말인 거 같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돼서 정말 연기를 할 줄 아는 배우가 돼야 좋은 역할을 많이 할 수 있는 거란 말씀을 해주시더라.
종종 현장에서 캐릭터로 연기를 하다 다시 실생활의 김예리로 돌아올 때 특별한 기분을 느낀 적은 없나.
특별히 다른 건 없다. 그냥 그렇게 일하다가 집에 와서 쉬고, 또 일하고, 이럴 뿐이지. 물론 무용은 큰 공연을 해도 크게 이슈가 안되지만 좋은 영화는 작은 영화라 해도 많은 사람들이 봐주고 많은 일이 생기다 보니까 그런 부분에 대한 부담감은 좀 생긴다. 난 그냥 지금 이대로도 참 좋은데 생각하기도 하고, 잘 해나가는 게 참 어렵겠다는 생각도 자꾸 든다.
작품을 거치면서 두려움이 커지는 걸 느끼나?
무대에서는 한번 넘어지고 벌떡 일어나서 다시 잘하면 격려해주는 게 있지만 영화는 그렇지 않은 거 같다. 보는 사람의 시선에 따라 달라지고, 정말 잘해야 된다는 생각이 요즘 들어서 많아졌다. 그 사람이 성실하고 좋은 사람이라는 게 중요한 게 아니고 말 그대로 정말 잘해야 되는 거더라.
프로는 말 그대로 결과를 통해 평가를 얻게 되니까.
현장에서 못됐고 성격이 안 좋더라, 이런 얘기가 중요한 게 아니라, 저 사람은 연기 잘하잖아, 그 한마디가 중요한 거 같다고 느꼈다. 일단 이건 타협이 없구나, 영화는 정말 잘해야 되는 거구나, 이런 생각이 들었다. 좀 냉혹하다고 해야 하나? 한번 딱 꺾이면 다른 사람들이 더 이상 봐주지 않겠구나, 라는 생각도 들고.
어쩌면 그런 것들을 깨닫는 과정 자체가 배우로서 욕심이 커지는 수순이란 생각이 든다. 한편으론 지금 배우와 무용가로서의 삶을 병행하기 때문에 느끼는 혼란도 있지 않을까 싶다.
다들 나에게 하나만 해야 되는 게 아니냔 이야길 많이 한다. 그런데 나는 지금 이대로도 굉장히 좋다. 이렇게 연기할 수 있는 것도, 춤을 출 수 있는 것도 감사한 일이다. 난 원래 크게 욕심내지 않는 편이다. 물론 내가 성공하고 싶어진다면 그게 욕심이 될 수도 있겠지. 그런데 지금 상태에서는 내가 할 수 있는 두 가지 모두 최선을 다하고 싶다. 그래서 어떤 한 가지를 버려야 해서 후회하게 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할 수 있는 만큼 두 가지를 충실히 잘 해나가고 싶다. 그런데 정말 만약에 어느 하나를 택하라 한다면 아마 춤을 추지 않을까.
아직까진 무용을 통해 얻은 것들이 많기 때문에 그런 생각이 당연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 배우로서 욕심이 자라고 있고 후에 배우로서 더 많은 애착이 생길지 모를 일이다.
예전엔 그냥 거의 놀러 가는 수준으로 현장에 갔다. 욕심도 없었고 책임감도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확실히 욕심이 난다. 내 스스로 연기를 잘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건 그것을 위해 어떤 다른 부분을 희생할 각오가 돼있다는 게 아닐까 싶다. 사실 영화는 기록이 남는 건데 내가 못하는 모습을 남긴다는 건 가슴이 아픈 일 같다. 보고 싶지 않아지니까. 그래서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잘 하고 싶어진다.
그래도 지금까진 잘한다는 소리를 많이 듣고 있지 않나.
사실 못한다, 잘한다, 기준이 애매하니까. (웃음)
본인의 연기에 대한 기대감이나 관심이 깊게 형성되지 않은 상황에서 적절하게 요구되는 기대감만큼의 몫을 해내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사실 나에게 많은 기대를 하지 않은 것도 사실이고, 그냥 내 욕심만 늘어가는 것 같다. 그냥 여기까진 잘 해온 거 같은데 지금 여기가 문제가 아니라 앞으로가 문제인 거 같기도 하고. 다만 어떤 일을 하더라도 걱정하다 주저하진 않았으면 좋겠다. 해보고 나서 안되더라도 후회 없이 해보고 털고 잘 일어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연기와 무용을 병행하면서 생기는 시너지는 없나?
<귀향>때 신선한 경험을 했다. <귀향>촬영 때 무용 공연을 준비하고 있었던 상황이라 스케줄이 꼬였는데 정서적으로 무거운 상태의 아이를 연기하는 거라 역할 자체도 어려웠고 촬영을 하고 나면 진이 막 빠져서 힘들었다. 그런데 무용 연습을 하면서 그런 어려움을 누르고 잊으면 차차 잘 개어낼 수 있었다. 한쪽에선 피폐하고 힘들어도 반대쪽은 풍요로워질 수 있다는 걸 느꼈다. 내 안에 쌓인 걸 배설할 수 있는 여유로운 공간이 생겨서 좋았다. 두 가지가 서로 완충이 되는 걸 느꼈다. 그래서 이 두 가지를 같이 해야겠구나, 마음먹었던 것 같기도 하다. 재미있었다. 신기하기도 했고.
입구를 만들면 출구도 만들어야 하는 법이니까. 그런데 부모님께서는 두 가지를 병행한다는 것에 대해 걱정이 있으시진 않나.
어머니께서는 걱정하신다. 진로를 빨리 정해야 되는 거 아니냐고 종종 말씀하신다. 다른 친구들은 무용 공부도 더 해나가면서 선생님이나 무용수로서 입지를 점점 다지는 시기에 너는 그러지 못하는 거 같은데 괜찮은 거냐고 걱정하신다. 그런데 나는 적어도 서른 전까진 하고 싶은 건 다 해봐야 하는 게 아니냔 생각이 든다. (웃음) 내가 이기적인 것일 수 있겠지만 다행히 부모님께서 그런 부분을 많이 봐주시고 계신 것 같다. 저러다 말겠지, 이런 생각으로. (웃음)
일단 지금은 한참 즐겨도 좋을 나이니까. (웃음)
연기 덕분에 무용하는 것도 즐거워졌다. 예전엔 동작 하나 안되면 그것 때문에 스트레스도 많이 받고 내가 좁아지는 걸 느꼈다. 그런데 연기를 하고 난 뒤로 스스로 여유로워지는 것 같기도 하고 무용도 즐겁게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예전엔 그렇지 못했으니까. 입시를 위해 준비해야 한다는 강박도 있었고. 내가 무용수로서 좋은 신체적 조건을 가진 사람도 아니었기 때문에 그런 부분에 대한 스트레스도 컸지만 요즘은 좀 그런 고민으로부터 자유로워졌다. 그래서 힘든 연습을 하는 것도 즐겁다.
어쩌면 연기를 통해서 삶이 한 뼘 더 늘었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사실 지금은 무용이나 연기를 다 못하게 되더라도 뭔가 하면서 살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마저 한다. “내가 뭐든 못하겠어? 뭐라도 하면서 풀칠은 할 수 있겠지?” 이런 몹쓸 생각을 하기도 한다. (웃음)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이후로 오랜만에 보는 것 같다. 사실 애기 가지려고 쉬고 있었다. 그래서 살도 쪘고, 여러모로 홍보하기 적절한 시기는 아닌데 홍보하러 다닐 사람이 별로 없어서. (웃음)
아무래도 <날아라 펭귄>이 인권위 영화인 덕분에 인터뷰 중에 영화 외적인 질문이 많았을 것 같다.
내가 사교육 열풍에 관련된 영화를 찍었다고 해서 거기에 대한 혜안이나 결론을 갖고 있는 건 아니다. 그런 게 있다고 해도 사견에 불과하지 않나. 내게 어떤 집행권한이 있는 것도 아니고. 사담이야 나눌 수 있지만 그런 질문을 받게 되면 아무래도 대답하기 버겁다. 엄마로서 어떻게 자식을 교육할 거냐, 물으시는데 사실 내가 그걸 어떻게 알겠어. 지금 낳아본 적도 없고, 일단 그냥 엄마나 됐으면 좋겠는데. (웃음) 계속 그런 질문을 받았는데 나도 내가 아직 어떤 엄마가 될진 모르겠다. 대충 넘기듯 대답하고 있긴 한데 대답하기 어려운 부분인 거 같다. 워낙 큰 문제이기도 하고, 내가 아직 현실로서 맞닥뜨린 부분도 아니니까.
어쩌면 <날아라 펭귄>을 통해 간접경험을 얻었다고 봐도 되겠다.
그렇지. 처음 들어본 단어가 많았다. ‘선행학습’. 무슨 뜻인지는 알지만 선행학습을 해야 된다고 말한다는 엄마들 얘기는 처음 들어봤다. ‘태글리쉬’ 이런 용어도 처음 들어봤고. 정말 아빠 말대로 민족의 혼이 담긴 우리나라 운동을 왜 영어로 가르치니? (웃음) 어쨌든 그렇게 알게 된 것들이 있다. 물론 <날아라 펭귄>이 굉장히 새로운 문제를 다루는 영화가 아니고 주변에서 자주 접할 수 있는 문제를 다루는 이야기라서 많이 공감하면서 찍을 수 있었다.
아이를 낳는 건 최근에 와서 결심한 문제인가?
그 전엔 일을 하면서 출산까지 겹치는 것이 버거울 거 같아서 피했는데 요즘엔 낳아봐야겠다 싶어지더라. 그래서 남편한테 “낳을까요?” 물으니까, “예. 낳읍시다.” 해서 결정했다. (웃음)
아무래도 예정에 없던 작품을 한 셈인데.
계획했던 작품은 아니었지. 드라마 하는 와중에 굉장히 어려운 과정을 겪고 있다는 소리를 듣게 됐다. 캐스팅도 안되고, 제작비도 없는 상황이라 같이 하면 도움이 될 것 같아서 하게 됐다. 주말 드라마는 일주일에 5일 정도 촬영하고 이틀 정도 쉬니까 그때마다 가서 촬영했다.
체력적인 부담은 없었나?
있었지만, 사실 드라마에서 내 분량이 조금 적어서. (웃음) 무엇보다 마음의 부담이 없었고 스트레스도 별로 없었다. 그냥 연기하기 전에 약간의 긴장감이나 의심들이 조금 있었지만 내게 압박을 줄 만큼은 아니었지. 오히려 현장이 즐거워서 가고 싶고, 가면 편안했다. 촬영 준비할 때 옆방에서 쪽잠을 자더라도 재미있고 그랬다.
<날아라 펭귄>은 사실 옴니버스적 형태에 가까운 영화다. 결국 주부이자 직장인으로서 가정과 회사를 배경으로 한 두 가지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셈인데 그 두 환경은 본인에게 생소한 풍경이 아니었을까.
우리나라 회식 문화를 겪어본 적이 없다. 영화 현장에도 어른들이 있지만 직장의 상사와 부하의 관계는 아니니까, 그런 상황을 잘 이해할 순 없었다. 게다가 영화 하는 여자들은 담배도 많이 피니까 회의할 때 보면 위 아래 막론하고 다 꺼내 물잖아. 부장님 있다고 담배 못 피우고 이런 거 없지. 그래서 그런 모습이 생소하긴 했다. 그래도 배우들이 전부 돈도 받지 않고 좋은 마음으로 모여서 그랬는지 찍을 때마다 분위기가 좋았다.
에피소드가 변하면서 주연에서 조연으로 비중이 이동된다. 같은 인물이지만 다른 역할을 하는 셈인데 그 와중에서도 캐릭터의 일관성을 유지해야 한다는 게 중요했을 것 같다.
사실 처음엔 감독님께서 조금 걱정하셨다. 두 번째 에피소드에는 유명한 사람이 조연 캐릭터로 나오니까 관객 입장에선 뭔가 해주길 바랄 수도 있고, 앞선 에피소드와 캐릭터가 연결돼야 할 텐데 완전히 분리된 환경에서 캐릭터를 어떻게 연결시켜 보여줄 것인가에 대해 걱정하시는 것 같더라. 그런데 좋은 분위기에서 자연스럽게 하게 된 거 같다. “요즘 애들은 진짜 용감하다.”, “과장님, 한잔 하세요.” 이런 대사들이 원래 대본에 있었던 건 아닌데 자연스럽게 분위기를 커트하면서 상황을 정리할 수 있게 나오더라. 물 흐르듯이 분위기가 흘러가서 재미있었다. 게다가 누구 하나가 애드립을 쳐도 거슬리지 않았다. 자기 캐릭터에 맞게 적재적소에서 소박한 애드립을 치고 개인적인 욕심으로 균형을 깨뜨린다는 느낌이 전혀 없었다. 그래서 고맙더라.
아무래도 그런 애드립을 잘 받아주는 상대가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기도 했을 것 같다.
누구라도 이 작품에 좋은 걸 해야겠다 싶었을 거다. 그러니 상대방이 충분히 납득할만한 상황을 연출하려 했을 테고. 사실 개인적인 분량이나 캐릭터에 대한 욕심으로 나오는 애드립은 다 알거든. 전체 흐름을 깨니까. 다들 진짜 직장 동료들처럼 궁합이 잘 맞았던 것 같다. 그리고 그렇게 매번 상을 잘 차려주는데 궁합이 잘 맞아야지. (웃음) 우리가 개런티는 못 받아도 밥상은 잘 받는다면서 항상 즐겁게 촬영했고 그런 분위기에서 어깃장 놓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
최근에 홍상수 감독님의 <하하하>에도 노 개런티로 출연했다고 들었는데.
전부 감사패만 받았다. 물론 통영에서 촬영할 때 숙박이나 숙식은 제공해줬지. 그거 말고는 받은 건 없었다. 돈이 너무 없으셔서 안 받을 수 밖에 없었다. (웃음)
작품에 대한 신뢰가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 아닐까 싶은데.
홍상수 감독님에겐 영화를 만드는 자신만의 완벽한 시스템이 있다. 작품에 대한 신뢰도 신뢰지만 그런 독창적인 시스템을 경험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았다. 그리고 작품 자체가 <하하하>잖아. 한 여름의 흥겨움 같은 거랄까. 그런 기분으로 한 달을 보내면 좋겠다는 생각도 있었다. 그래서 가벼운 마음으로 참여했다. 물론 슛 들어가니 술도 세게 먹어야 했고 가볍지만은 않았지만.
사실 홍상수 감독님 영화가 겉보기엔 가볍게 찍은 것 같지만 상당히 계산적이고 집요하게 촬영된다고 들었다. 현장에서 아침마다 대본을 주신다. 물론 그게 미루고 미루다가 방송 전날 주는 드라마 쪽대본 같은 건 아니고. 이건 매일 아침마다 정해진 시간에 나오는 거니까 조급하거나 불안하지 않다. 아침마다 쓰시는 건데 매일 하나씩 받을 때마다 너무 놀랍다. 앞뒤의 엮임, 짜임, 구성, 뒤깎기, 이런 것들이 너무 절묘하다. 그래서 지금 대사 하나를 다르게 하고 싶다가도 다음에 이게 어떻게 연결될지 모르고 내가 발견하지 못한 연결이 있을 수도 있으니까 마음대로 할 수가 없다. 감독님이 써준 대사 하나하나가 굉장히 중요하게 다가오고 그 상황 속 행동들에 신중하게 접근하게 된다. 카펫 짜는 거 보면 그냥 착착착 짜는 거 같지만 정교한 그림이 나오잖아. 그런 느낌이다. 마치 슥슥 찍는 거 같은데 그 안에 짜여짐은 정말 깜짝 놀랄 만큼 정교하지.
예전에 김태우 씨와 유준상 씨를 인터뷰했는데 비슷한 말을 하더라. 아침마다 대본 받는 재미가 쏠쏠하다고.
가슴이 두근두근 거릴 정도로 설렌다. 뭐가 나올까, 이러다가 딱 나오면 제일 먼저 받아가지고 정말 푹 빠질 정도로 반해서 그걸 싹 빨아들이고 싶어진다. 그날 그날 재미가 있다.
마치 재미있는 연재소설 다음 편을 기다리는 기분일 거 같다. <날아라 펭귄>도 이야기가 재미있더라. 인권위에서 만든 영화라는 선입견을 가질 필요가 없을 정도로.
나는 다른 사람이 봐도 재미있어 할까 걱정되더라. 너무 여러 인물이 나오고 클라이막스가 확실한 것도 아니라서 걱정했는데 생각보다 시사 반응이 좋은 거 같다. VIP시사 때는 아무래도 다 영화에 애정을 갖고 오신 분들이 오시니까 호의적일 수 있지만 뒤풀이에서 새벽 2시 반까지 얘기가 끊이지 않는 거다. 집안 얘기는 하지 않던 사람들도 자기 자식 얘기, 부모 얘기, 요즘 교육문제 얘기, 이런 이야기로 자리가 파할 줄 모르더라. 사실 뒤풀이 분위기를 보면 그 영화를 점칠 수 있는데 분위기가 참 좋더라. 그래서 약간 헷갈린다. 이 영화가 이렇게 재미있나, 이 분위기로 보면 되게 재미있는 건데, 그런 생각이 들었다.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하나 이상씩 공감할만한 지점이 있을 테니까.
그런데 이번에 임 감독님한테 사람들이 왜 이렇게 여자들이 전부 다 드세냐고 했다던데. (웃음) 남자들이 다 안쓰러울 정도로. 그래서 내가 농담으로 “감독님은 지금까지 영화에서 항상 남자 편이었잖아요.” 막 이랬다. (웃음) 옛날에는 남자다움이 한 가지 모습이었다면 요즘 남자들은 돈만 벌어와선 안되고 다양한 걸 요구 받고 그만큼 다양한 대처가 필요하지 않나. 그래서 남자들도 어려움이 많겠다는 생각이 든다. 자식 교육이나 이런 측면에 대해서는 대부분 엄마들의 파워가 센 것 같기도 하고.
“요즘 엄마들이 문제야.” 라는 대사를 할 때 재미있었다.
자기가 인식하지 못하고 그냥 지나쳐서 그렇지, 우리는 누구나 인권문제에 있어서 가해자이기도 하고 피해자이기도 하다. 내가 나도 모르게 어떤 사람의 인권을 침해한 적 있고, 내가 침해당하고도 모를 수 있는 거다. 사실 조금만 신경 쓰고 배려하면 서로 존중해줄 수 있는 부분인데 그걸 못하다 보니까 집단적으로 가해자나 피해자가 될 수 밖에 없는 것 같다.
엄마가 악착같이 그려지지만 사실 아이만큼이나 엄마의 삶도 고단하다.
엄마도 자기의 다른 모든 것들을 접고 아이에게 올인하는 거니까. 그래서 부부의 인권도 이야기를 만들어서 넣어야 된다는 말이 있었다. 예를 들어서 남편이 자기랑 방에 들어가서 자자 그러는데 와이프는 계속 애만 잡고 늘어지고, 둘째를 낳자는데 둘째 교육비는 어떻게 감당하냐면서 아내가 남편과 잠자리를 거부한다던가, 이런 부부의 인권문제도 넣어야 한다는 얘기를 했다. 그런데 그러자니 얘기가 너무 길어지니까 줄였지.
요즘처럼 육아가 힘든 일이 된 시절도 없는 것 같다. 지금 애를 낳기로 결심한 마당에 두렵진 않나? 정말 어려운 일 같다. 그냥 눈 딱 감고 한번 낳아보는 거지, 그런 생각 다하면 못 낳을 거다. 많은 것들이 변하는 일이라 생각한다. 결혼으로 환경이 좀 변하더라도 서로 잘 맞춰서 배려하면 기존의 자신을 많이 바꾸지 않고도 잘 살 수 있다. 그런데 아이를 낳는다는 건 기존의 나를 엄청나게 바꿔야 되는 일이다. 몸으로든, 마음으로든, 환경적으로든, 시간적으로든, 변화 없인 낳을 수도, 키울 수도 없을 것 같다. 그 변화가 두렵기도 하고, 정말 보통 일이 아닌 거 같아서 무섭다는 생각도 든다.
친구분이나 지인들 가운데 엄마가 된 사람도 많을 텐데.
많지. 친구들, 선배들.
그런 친구들과의 대화에서 종종 괴리되는 기분을 느낀 적은 없었나?
엄마들끼린 너무나 중요한 문제라서 밤이 새도록 얘기한다. 정보를 주고 받고, 받아 적고, 그리고 또 한참 또 얘기하고, 자기 자식 한탄하다가, 공교육 환경 욕하기도 하고. 난 그런 대화에 끼지 못하고 그냥 옆에서 맥주나 마시거나 안주나 만들어주고 그랬지. 그런데 나 역시도 많이 들어왔던 부분이라 그런 걸 무시할 순 없다.
아직은 실감나지 않는 일이겠지만 자식을 어떻게 기르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이나마 해본 적은 없나?
자세히는 안 해봤다. 그냥 음악도 좋아하고, 책도 좋아하는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 아니면 너무 경쟁관계에 매달리는 사람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정도? 만약 아빠 닮으면 음악 좋아하고 엄마 닮으면 책 좋아하겠지. 우리 둘 다 누군가를 이기거나 1등이 되는 것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니까 아이도 그렇게 컸으면 좋겠다. 이 정도만.
막상 아이를 기르다 보면 욕심이 커질 수도 있을 텐데.
막상 닥쳐보면 모르는 거니까. (웃음)
아이를 갖는 것에 대해서 남편인 장준환 감독과 많은 상의를 한 건가?
이 험난한 세상에 아이를 낳는 게 잘하는 짓이냐, 이런 얘기부터 시작해서 몇 명을 낳을 것인지도 생각했다. 유명한 사람의 아이로 태어난다는 것 자체가 부담주진 않을까 싶어서 아이한테 좀 미안하기도 하고. 그리고 그렇게 불리는 것 자체가 이상하기도 하다. 이런 저런 얘기를 많이 했지.
아이를 낳고 배우로서의 활동에 제한이 생길 수도 있다.
이미 워낙 제한이 많았기 때문에. (웃음) 애 낳기 전에 이미 애 엄마 역할도 많이 했고, 여러 가지를 했기 때문에 하기 나름이지, 뭐.
멜로영화 주인공으로서 기회도 확연히 줄어들지도 모른다.
사실 나한테 로맨스의 주인공이라고 생각되는 정통 멜로도 별로 없었잖아. 그런데 이젠 좀 해보고 싶더라. 예전엔 욕심도 없었다. 그런 작품보단 다른 작품이 좋았고. 그런데 이제는 사랑을 알 거 같기도 하고, 물론 완전히 아는 건 아니겠지만 내가 생각하던 20대 초반의 설레고 앞뒤 모르는 사랑이 사랑의 전부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된 거 같다. 이젠 누군가를 너무 사랑해서 가슴 아파하는 그런 표현들을 할 수 있겠다고, 해보고 싶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앞으로 1년은 쉬려고 하니까 모르겠네. (웃음) 오히려 나이가 들어서 30대 중반이 되니까 멜로가 생각이 난다.
성숙한 사랑이야기의 주인공을 꿈꾸나 보다.
사랑에도 깊이가 있겠지. 사랑은 늘 철없는 거고, 늘 이기적인 거라지만 이렇지 않을 수도 있는 다른 사랑?
결혼은 스스로에게 어떤 변화를 가져다 줬다고 생각하나?
글쎄, 사실 결혼하고도 계속 일을 했고, 내가 살던 환경에서 계속 살게 됐으니까 그렇게 큰 변화는 별로 없었던 것 같다. 내가 하도 결혼 안 한다 그래서 최대한 변화 없게 했나? (웃음) 물론 이런 생각은 든다. 결혼하고 나서 아직까진 웃는 시간이 더 많았고, 다른 사람들도 내가 더 부드러워진 거 같다고 얘기하는 거 보면 결혼하길 잘됐네 싶어진다. 그리고 노인문제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됐다.
노인문제?
시어머니를 모시는데 시어머니 연배가 80세가 넘으셔서 나한테는 할머니나 다름없다. 그런데 노인문제는 정말 개인의 문제가 아닌 거 같더라. 개인의 문제가 아니고 사회적 문제인데 너무 개인적으로만 해결하고 있는 것 같다. 사회적으로 같이 고민했으면 좋겠더라. 육아나 교육도 그렇듯이 노인문제도 같이 고민해야 하는 문제가 아닌가 생각하고 있다.
아무래도 공공의 영역에서 해결돼야 할 사안들마저 개인들에게 떠맡겨지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가 많은 것 같다.
이런 생각도 해봤는데, 나라에서 시립, 공립유치원 많이 만들잖아. 유치원을 만들 때 법적으로 노인시설도 같이 만들게 하는 거다. 그렇지 않으면 허가를 안 내주는 거지. 아침에 애들이 유치원에 할머니, 할아버지랑 같이 버스 타고 갔다가 오후에 같이 오는 거다. 프로그램 따로 하더라도 밥은 같이 먹고. 그럼 애들이 뭘 먹는지 할머니, 할아버지가 다 볼 수 있고, 애들이 어떻게 생활하는지도 충분히 볼 수도 있을 테고.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최근에 그 영화 뭐였더라. ‘미야자키 하야오’의 최근 애니메이션?
<벼랑 위의 포뇨>?
거기 보면 양로원이랑 유치원이 같이 있는 시설이 나온다. 그걸 보고 ‘내가 생각하던 게 저건데! 저런 게 정말 만화에 나오다니 일본은 저런가?’ 생각했다.
교육학과를 전공했다.
맞다. 그런데 교육학을 열심히 공부하지 않아서. (웃음) 내 손으로 레포트를 써본 적도 별로 없고.
교육학 전공자가 연기를 하게 된 경위가 궁금한데.
다들 의아해한다. ‘사카모토 준지’라고, <KT>라는 영화를 만든 일본 감독을 만난 적 있는데 그 분도 교육학과 출신이라더라. 그 분도 교육학과 출신을 영화계에서 만나기가 어렵다면서 놀라던 게 기억난다. (웃음) 사범대 나온 사람만의 특징이 있는데 처음부터 교사가 되려고 마음먹고 온 사람들이라서 그런지 제도에 순응을 잘한다. 도덕, 법률, 규범을 어기는 사람도 별로 없고 성향적으로 착하다. 그래서 MT같은 데 가서도 놀아도 밀가루에 찹쌀떡 넣어서 빼먹고, 2인 3각 게임 경기하고, 이러고 논다. 덕분에 문과대나 다른 과 사람들이 보면 우릴 애 취급하면서 되게 비웃고. (웃음) 분위기가 좀 다르긴 하지. 그런데 나는 입학하자마자 연극반이며 국악반이며 하는 게 많았다. 다른 공부들에 관심이 더 많다 보니까 대학생활에서 그런 게 주가 됐고, 교육학이 부가 됐지.
만약 전공대로 직업을 선택했다면 <날아라 펭귄>에 나오는 회식 문화를 경험했을지도 모를 일이었을 텐데.
학교 회식도 만만치 않다더라. 거기도 나이별로 쫙 이렇게, (웃음)
<태왕사신기>로 드라마 데뷔를 했는데 당시 연기적 논란이 많았다. 사실 지금까지 작품 활동하면서 그런 경우는 처음이었던 것 같은데 당황스럽지 않았나?
그때는 뭐, 경황이 없었지. 현장 자체도 경황이 없었고. 매일 대본도 바뀌고, 어떻게 흘러갈지도 모르고, 그래도 온에어(on air)는 100% 이뤄져야 하니까 촬영은 해야 됐고, 그렇게 쉼 없이 넘어갔다. 후반에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까지 같이 작업하느라 바빴지. 사실 <태왕사신기>현장은 보통의 드라마 현장이나 영화 현장과도 달리 좀 특별했다. 박상원 선생님 말에 따르자면 제3의 현장이랄까. “네가 지금 드라마를 경험하고 있는 게 아니다.”라고 할 정도였으니까. 그 말 듣고 나니까 ‘난 드라마를 해보려고 한 건데 억울하네’ 생각되더라. (웃음)
<내 인생의 황금기>를 통해 다시 한번 브라운관 연기에 도전했다. 끝까지 해봐야 한다고 생각하고 적응할 때까지 해볼 거다. (웃음) 아직 내가 좋아하는 작품, 나랑 잘 맞는 작품을 못 만났다고 생각해서 그럴 수도 있고. <내 인생의 황금기>때 감독님이 나한테 그러시더라. 남들 드라마 30년 하면서 겪을만한 안 좋을 일들을 어떻게 드라마 두 편에서 다 겪어보냐고. 이럴 정도로 일도 많고, 탈도 많았다. 어쨌든 내가 선택한 거니까 이렇게 겪다 보면 나중에 좋은 날 오겠지. 아마 또 하게 될 거다. 다만 어떤 방식으로든 그 작품에 대해서 미리 알 수 있는 작품을 만나고 싶다. 사실 정보를 많이 안 주거든. 늘 바뀔 수 있는, 제대로 되지 않은 정보만 주고. 그래서 내가 미리 좋아하는 마음을 듬뿍 담을 수 있는, 마음 붙이려고 뒤늦게 노력하지 않고 시작부터 애정을 듬뿍 갖고 시작할 수 있는 작품을 만났으면 좋겠다.
드라마 현장에서 얻은 신선한 자극은 없었나.
있었지. 신선한 자극이라기 보단 약이 되는 부분이랄까. 선생님들께서 좋은 말씀도 많이 해주시면서 도와주시기도 했고, 가르쳐주시기도 했고. 덕분에 선생님들이 대단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어쨌건 6개월 동안 일주일에 5일씩 어떤 작품에 출근하듯이 레이스 하나를 끝냈다는 기분이었다. 그만큼 나한테는 큰 경험이었다.
연기 잘한다는 남자 배우들과 호흡을 맞춰왔는데, 항상 상대배우의 연기를 눙치듯 연기한다는 기분이 들 때가 있다.
어느 영화 메이킹에서 보니까, ‘모건 프리만’이 그랬던가? 연기의 본질은 리액션이라고. 내 연기는 상대 배우에 따라서 편차가 큰 거 같다. 이건 상대방 탓은 아니고, 내가 상대방을 많이 탄다고 해야 될까? 만약 10번 슛을 들어간다고 하면 그때마다 상대방의 연기가 변하지 않아도 내 리액션은 계속 변할 거다. 감독님들도 나한테 그런 얘기 정말 많이 한다. 내 샷이 아니어도 변할 때가 있다고. 상대방이 어떻게 하든 내 분량을 따먹을 수 있어야 하는데 나는 그걸 잘 못한다. 맥을 놔버리는 경우가 굉장히 많다. 그게 내 단점이다.
그만큼 상대의 기운에 따라 어떤 능동성이 나올지 모르기 때문에 기대되는 면도 있지 않을까.
그 기운에 굉장히 좌지우지되는 거 같다. 조금 덜 그래도 될 거 같은데, 그걸 조절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런데 아직 거기까진 기술이 없나 보다. 앞으로 더 좋아지겠지.
사실 남들보단 당사자니까 민감하게 느껴지는 부분일지도 모르겠다. 최소한 연기파 배우라고 인정받지 않나. (웃음)
누가 그러더라. 연기파 배우 그게 얼마나 웃긴 말이냐고. 요리파 주방장? 이런 말과 똑같다고. (웃음) 주방장은 당연히 요리를 해야 되는 거고, 배우는 당연히 연기를 해야 되는 거잖아. 연기파 배우란 말이 그만큼 웃긴 말이라고 누가 써놓은 글을 보면서 ‘지당하신 말씀입니다’라고 끄덕였던 기억이 난다.
어쩌면 그만큼 본질에 접근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는 말일지도 모른다. 어쨌든 10년 정도 매년마다 한 작품 이상씩은 작품 활동을 해왔는데 아무래도 애를 낳고 나면 지금보단 자중하게 될 공산이 크겠다.
쉬면서 한번 앞으로의 10년도 한번 생각해봐야지. 대학졸업하고 스물여섯에 시작해서 한 10년 했으니까 서른 여섯부터는 다시 좀 생각을 해봐야겠다. 이걸 계속 할건지 말 건지도 생각해보고, (웃음) 계속하면 어떻게 할건지 고민해보고.
지난 시절을 자주 돌이켜보나?
많이 돌이켜보진 않는데 그런다 해도 정말 좋은 기회가 많았으니까 아쉬움이 남거나 그렇진 않을 거 같다. 별다른 욕심은 없다. 많은 작품을 하지 못하더라도 좋은 작품을 만나게 되기만을 바랄 뿐이다. 좋은 작품 한편 하면 그 작품을 준비하고, 촬영하고, 후반 작업하고, 홍보하고, 개봉하는 몇 달 동안 계속 그 작품의 영향을 받는다. 작품 자체나 그 작품을 함께 한 사람들의 영향을 받기도 하고, 나중에 또 어디서 상영이 돼서 누군가 그 영화를 보면 피드백도 많이 오게 된다. 아무리 큰 상을 받아도 순간이다. 즐거운 것도 순간이다. 그런데 좋은 작품을 만나면 그 작품을 둘러싼 모든 것들이 오랜 시간 동안 나에게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 그게 진짜 소중한 거 같다.
연기자로서 살아오는 과정 속에서 뒤늦게 얻은 깨달음이 아닐까 싶다. 스스로에 대한 변화를 느낄 때가 있나?
옛날엔 이렇게 생각했다. 프리(프로덕션) 때 준비하고, 슛 가면 연기하고, 홍보 끝나면 쉬어야 된다고. 그런데 그게 아닌 거 같다. 난 촬영할 때가 제일 즐겁고 행복하니까 그때 제대로 노는 거고, 촬영하지 않을 때 일해야 되는 거 같더라. 준비하는 일. 좋은 작품을 만나기까지 준비를 게을리 하면 안되겠단 생각이 이제서야 좀 든다. 그 전에는 왜 이런 생각을 하지 못했나 모르겠다. 무조건 쉬어야 되고, 심지어 제발 날 그냥 방치해줬으면 하는 생각까지 했다. 하긴 작품을 하면서 나를 너무 괴롭혔으니까 그랬을지도 모르지. 그런데 촬영할 때가 진짜 재미있게 노는 순간이란 걸 알았고, 더 재미있게 놀 순 없겠더라. 그러니까 이젠 그 사이에 열심히 준비하고, 준비가 됐을 때 좋은 작품을 만났으면 좋겠다.
이제 당분간은 아이 생각만 해야 할 텐데, 아이는 딸이 좋겠나, 아들이 좋겠나? (웃음)
나는 아무나 괜찮은데 시어머니께서 아들을 바라시니까 삼신 할머니께서 참조해주셨으면 좋겠다. (웃음)
(홍보사로부터 선물 받은 포뇨 인형을 보는 최강희 씨에게) 이런 만화 캐릭터들을 좋아하나 봐요.
예. 이거 잠깐 보고 있어도 될까요? 어제 이거 봤거든요. ‘포뇨’.
어제요?
DVD 나왔길래 빌려봤어요.
애니메이션을 원래 좋아하시나 봐요.
이런 캐릭터 중에서 욕심나는 역할이 많아요. <벼랑 위의 포뇨>를 보면서는, 소스케 엄마 기억나세요? 막 차 거칠게 몰고. (웃음) 그런 엄마 캐릭터가 탐났고요. 옛날에 <시간을 달리는 소녀>에서 나오는 주인공도 탐났는데 아무래도 제 나이도 그렇고, 아무도 그걸 안 만들어줘서……(웃음)
예전 인터뷰에서 캐릭터가 끌리면 작품도 끌린다는 말을 했더군요.
지금도 그래요.
어떤 캐릭터가 주로 끌리세요?
일단 제가 봤을 때 매력적이라고 느끼는 건데요. 그래서 제가 소수의 인물을 많이 연기한 거 같아요. 결핍이 있다던가, 그런 게 매력적으로 보이니까요. 사실 <애자>도 내용은 보편적이잖아요. 어쩌면 캐릭터에 끌렸다고 볼 수 있어요. 엄마 캐릭터나 제 캐릭터나 다 세잖아요. 그런 점이 많이 끌렸어요. 그러면서도 사람들한테 공감을 줄 수 있고. 그런데 <달콤한 나의 도시>에선 오은수가 끌리지 않았어요. 그건 그냥 제 나이를 연기해보고 싶어서 선택했죠. 제 나이대의 속물이 되어가는 과정을 연기해보고 싶어서.
<애자>에서는 고등학생 시절부터 지금 자신의 나이와 비슷하게 다다를 정도로 성장해가는 인물을 연기했습니다. 그만큼 학생시절에 어울리는 생기발랄함 같은 것들까지 표현이 되는 배우가 애자를 연기했어야 했겠죠. 아무래도 최강희 씨가 캐스팅된 건 그런 부분에서의 기대감이 반영된 것일 테고요.
그렇겠죠. 그리고 그런 묘사는 가능하지만 사실 전 그렇게 생기발랄한 사람은 아니거든요. 그런데 묘사가 가능하다고 생각하시나 봐요. 그리고 저는 그렇게 들어오는 선에 맞춰서 결정하고 따라가는 거고요.
사실 캐릭터로서의 최강희 씨는 상당히 생기발랄한 사람처럼 느껴지는 측면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반적인 관객들도 최강희 씨에 대한 이미지를 그렇게 인식하는 경우가 적잖은 거 같고요. 그런데 정작 최강희 씨는 스스로가 생기발랄한 사람이 아니라고 느끼시나 봐요.
못 느껴요. 사실 제가 가진 생기발랄함은 좀 거칠어요. 아직 제가 봐도 그렇고 남이 봐도 그렇고, 표현방법에 있어서 서투른 사람인 거 같아요. 그게 다른 사람에게 매력으로 다가갈 수 있고, 그래서 제 주변에서 저를 선택해준 사람도 있지만 아직 좀 거칠거나 서툴어서 오류가 많은 사람이에요.
그렇다면 자신이 연기하는 캐릭터가 자신과 동떨어진 사람이라고 느끼는 경우도 적지 않을 거 같은데요.
저는 고등학교 졸업하자마자 연기생활을 시작해서 사회경험이 거의 없어요. 그런데 저는 보통 사람들을 연기해야 하니까 제 일부의 모습을 과장해서 막 하는 거죠. 착한 역을 맡으면 제 착한 모습을 과장시켜서 연기하고, 엉뚱한 캐릭터를 맡으면 엉뚱한 연기를 하고, <달콤, 살벌한 연인>같은 경우에서도 제 숨겨진 모습을 연기했고요. 그런 것 외에 나머지는 다 다르다고 느끼죠. 그래서 경험을 많이 해보려 해요. 책을 읽기도 하고, 한 5~6년 전에는 커피숍에서 아르바이트도 해봤고요.
아르바이트요?
예. <맹가네 전성시대>끝나고.
사람들이 많이 알아봤을 텐데요.
귀찮으면 그냥 아니라고 그러면 돼요. (웃음) “최강희 씨 아니세요?” 그래도 아니라고 그러면 “닮았네요.” 그러고, 그럼 닮았다는 소리 많이 듣는다고 말하고. (웃음) 이런 분도 있었어요. “최강희 씨 보다 예쁘네.” 그럼 감사하다고. (웃음)
자신이 연기하는 캐릭터를 보면서 스스로 알지 못했던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는 경우도 있지 않나요?
그전에는 그렇게 많이 느끼지 못했는데 <애자>보면서 느꼈어요. <애자>에는 제 모습을 과장시킬 게 없을 정도로 저와 많이 달랐으니까요. 과연 최강희가 가능할까, 스스로 자문하고 시작한 작품인데 결과를 딱 봤을 때 다르다고 느끼기도 했고요. <애자>를 보고 집에 왔는데 <달콤한 나의 도시> 재방송을 하는 거에요. 그리고 그걸 보니까 두 사람이 다른 거에요. 얼굴은 똑같이 생겼잖아요. 머리 짧은 것도 비슷하고. 그런데 너무 달라서 그때는 스스로도 놀랐죠. ‘아, 그래도 내가 헛수고 하지 않았구나’ 생각했어요.
<애자>에서는 캐릭터의 생활력이 드러난다는 점에서도 기존의 캐릭터와 다른 지점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새로운 모습을 보여줄 수 있겠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선택한 바는 없었나요?
이전까진 변화나 변신에 대한 계획은 없었어요. 제가 보여드릴 수 있는 걸 최대한 다 보여드리는 게 1번이라고 생각했죠. 그리고 그렇게 보여드린 다음에 나에게 나올 게 없어서 사람들이 나를 싫어하면 이 일을 그만 해야지 그랬는데 <애자>로서 용기가 좀 생겼어요. 그러니까 <애자>가 첫 도전인 거에요. 옛날에는 저한테 있는 것 중에 지금 해볼 수 있겠다 싶은 것만 선택했지만 이번엔 다른 걸 선택했잖아요. 덕분에 자신감이 좀 생겼어요. 앞으로도 제게 있는 것만 나오는 게 아니라 저한테 없는 것도 선택해서 다양한 캐릭터를 해보고 싶어졌죠. 말 그대로 다양한 캐릭터를 연기할 수 있는 사람이 배우라고 했을 때 지금 제가 배우랑 좀 더 가까워지고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해요.
도전이라는 단어가 확고하게 들립니다. 아무래도 스스로 어울리지 않다고 느끼는 캐릭터를 선택하기까지의 각오가 와 닿은 단어이기도 하고요.
그래요. 도전한 거 맞아요. <달콤한 나의 도시>때도 도전이었지만 <애자>는 제게 완벽히 없는 모습이니까요.
그에 앞서 말씀하신 자신감은 캐릭터를 선택하는 과정에서 느낀 건가요, 아니면 영화를 끝내고 난 뒤에 얻어낸 감정인가요?
선택하는 데선 자신감이 있을 수 없죠. 용기가 필요하죠. 진짜 고민 많이 했어요. 제가 보여줄 수 있는 것도 많고, 멋진 역할이고, 제가 이렇게 표현하는 거 우리 엄마한테도 보여드리고 싶고, 이런 제 연기를 많은 사람이 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할 거 같아서 하고 싶은데 자신이 없는 거에요. 그런데 그 수간 안 하면 후회할 거 같다는 생각이 든 거죠. 그래서 질러놓고 본 거에요. 그 다음에 생각하자. 그래서 그 다음부턴 그냥 노력만 열심히 했어요. 사투리도 배우고, 주변에 애자 같은 사람들 있으면 그 캐릭터의 거친 행동이나 표정을 눈에 담아놓고. 그러면서도 반신반의했죠. 이걸 흉내 낸다고 되겠어? 그렇게 생각했는데 그 사람의 일상을 전부 다 보여주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의 일부분을 떠서 드러내는 거니까 세분화해서 표현할 수 있었던 거 같아요. 그리고 재미도 느꼈고요.
사실 <애자>는 모녀 관계를 다룬 신파라고 할 수 있는 작품이죠. 하지만 일반적인 신파에 비해 웃음이 많이 동원되는 영화이기도 합니다. 그 웃음은 대부분 엄마와의 일상적인 대면 가운데 발생하고요. 어쩌면 실생활에서의 어머니와의 관계를 많이 돌이켜볼 수 있는 대목이 아니었을까 싶은데요.
있었죠. 저도 엄마랑 툭탁툭탁 하니까요. 딸은 기본적으로 다 그래요. 아들은 덜 그러죠. 대신 아들보다 딸이 더 깊어요. 사사로운 정들, 미운 정, 고운 정, 왜 그런 거 있잖아요. 쓸데 없이 말해서 싸우는 거. 불필요한 말 같은 거. 나가면서 괜히 궁시렁궁시렁. 애자도 그러잖아요. “절간에 돈 쳐다 바른다고 뭐 죽은 사람이 살아나길 해, 뭘 해?” 안 해도 될 말을 해서 엄마 속을 건드려놓고 엄마가, “네 지금 뭐라 그랬노?” 화내면, “아무 말 안 했다.” 그러고. 그런 과정들이 남이 보기엔 웃기지만 누구나 일상적인 일이죠. 서로 사랑하기도 모자란 판에 굳이 서로를 자극한단 말이에요. 그게 우리나라식 모녀 관계의 특징 같아요. 자극해놓고 미안해하기. 알고 보면 서로 제일 많이 미안해하잖아요. 저도 많이 그러거든요. 엄마가 맨날 차 뒷좌석에 타요. 애자 엄마처럼. 아무렇지 않게 ‘음.’하시면서 뒤에 딱 앉아있어요. 사모님처럼. 그럼 전 기사고. (웃음) 친구처럼 타면 되잖아요. 그래서 “엄마는 옆에 타면 되지, 왜 맨날 뒤에 타?” 툭 던지죠. 사실 이것도 그냥 가면 되는 건데 꼭 그렇게 돼요. 부모님들은 항상 말해주지 않는 게 많으니까 뭔가 이유가 있을지도 모른단 생각이 들긴 해요. 어쨌든 엄마는 아직도 항상 뒤에 타요. (웃음)
<애자>에서처럼 앞자리가 무서우셔서 그런 건 아니겠죠?
그렇진 않으세요. (웃음) 그리고 가만히 앉아계시면 괜찮은데 막 다 뒤지고, 쓰레기 정리하고, 이러면 진짜 또 막 신경 쓰이는 거에요. 난 그냥 이렇게 편한 게 좋다고, 내가 치울 거라고 해도 엄마는 다 치우고, 그렇게 치우고 나면 내가 뭔가 찾으려 보면 또 없어지고. 그렇게 투덜투덜하는 게 영화에서 좀 과장되게 나타나는 거죠. 사실 전 애자보다 착해요. (웃음) 그리고 저도 공감이 가는 그런 모습이 일반 사람들에겐 더 공감이 가지 않을까 싶었어요. 그리고 약간 겸연쩍잖아요. 영화에서 엄마랑 딸 얘기 나올 때 너무 착한 딸 나오면 좀 그렇잖아요. 그런데 <애자>는 보러 와도 일단 자신감이 생긴단 말이에요. 내가 쟤보단 나으니까. (웃음) 그러니까 좋을 거 같아요. 피부로 드러나는 감정들이 좋은 거 같고요. 진지한 사건이 있는 것도 아니고.
저희 누나에게 엄마랑 같이 보라고 했더니 못 보겠다고 하더라고요.
왜요? 쑥스럽다고?
찔릴 거 같대요.
아~~! (웃음) 엄마랑 딸이랑 보면 좀 그럴 거 같긴 하죠. 그런데 저희 엄마나 저희 엄마 또래 정도 되시는 배우 분들도 <애자>를 많이 보셨는데 다들 자기 엄마 생각난대요. 그래서 괜찮은 거 같아요. 그 연세에도 자기 엄마 생각할 수 있으니까요. 성장기 시절의 엄마, 자기가 못해줬던 엄마, 이런 모습들.
밖에서는 다들 어른이지만 막상 집에 들어가서 엄마 앞에 가면 다들 애가 되는 것 같아요. 엄마도 때때로 자식 앞에선 애처럼 투정 부리시는 거 같고요.
우리가 지금은 이렇게 점잖게 있지만 집에 들어가면 정말 누가 볼까 봐 창피하잖아요. (웃음) 별거 아닌 걸로 막 싸우고. 그런 가족간의 비밀은 누구나 있는 거 같아요. 그만큼 가까운 관계니까.
이전까진 어머니께 방송에 나오는 것조차도 귀띔해드리지 않는다고 하셨는데 <애자>는 처음으로 어머니께 보여드리고 싶어서 선택한 영화라고 말씀하셨더군요.
대본 선택할 때부터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어쩌면 <애자>를 통해 딸로서의 진심을 담아서 전달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나 봅니다.
맞아요.
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고 들었는데요.
예. 예전에 돌아가셨죠.
그런 점에 있어서는 애자와 최강희 씨 사이에 닮은 점이 있다고 느꼈어요. 애자 역시 어린 시절에 아버지를 잃었으니까요.
아, 그러네요?
그런 부분에서 캐릭터와 모종의 공감대를 이룬 적도 있었을 거 같습니다.
초반에 애자가 엄마를 진짜 싫어하잖아요. 엄마도 애자가 보기도 싫다고 하고요. 그런데 엄마와 누워서 화해할 때가 많이 생각났죠. 제가 엄마를 생각하면서 찍기도 했지만 그 부분만큼은 저희 아빠가 많이 겹치는 유사 경험이 있거든요. 제가 청소년드라마 <나>를 찍던 스물한 살에 아빠가 돌아가셨는데 돌아가시기 전에 두 달 정도 아프셔서 아빠 곁을 지켜야 할 때가 있었죠. 영화에서 엄마랑 애자가 병원에서 탈출해서 회 먹으러 나가잖아요. 그런 것처럼 저도 병원에서 몰래 아빠를 빼내서 바람 쐬고 그런 적이 있었거든요. 그러면 안 됐는데. 사실 아빠랑 되게 어색한 사이였어요. 그런데 아빠가 돌아가실 때가 가까워져서 그러셨는지 몰라도 저한테 병원 침대에 올라와서 같이 자면 안되겠냐고 하시는 거에요. 전 너무 싫었죠. 지금 거기에서 병수발 드는 것도 싫었는데. 좋아하는 관계도 아니고, 아빠를 잘 알지도 못해서 어색한 상황에서 그러고 있으니까. 그런데 거기서 아빠랑 같이 자면서 처음으로 대화도 해보고 아빠가 미안해하는 만큼 저도 미안해하다 휠체어를 타고 같이 나왔어요. 그렇게 화해한 거죠. 그러면서 하루 동안 좋은 추억을 만들었던 기억이 있어요.
그런 기억이 없었다면 아빠에 대한 기억도 달라졌겠죠.
부모자식은 아무리 미워도 끊을 수 없는 사이 같아요. 영화에서 엄마가 애자한테 사고 얘기를 하지 않았지만 만약 엄마가 심각하게 잘못해서 집안이 아주 큰일을 당했고 그걸로 인해서 엄마와 관계를 의절하겠다 결심하더라도 그런 결심은 한번에 무너질 수 있을 만큼 지울 수 없는 관계인 거 같아요. 사실 제가 우리엄마를 생각하고 대입시키면서 연기에 몰입하려고 하진 않았어요. 아빠를 특별히 생각하지도 않았고요. 그런데 대기하면서 눈물이 많이 났던 거 같아요. 우는 신이 아니었는데도 그냥.
지금은 딸의 입장에서 생각할 수 밖에 없지만 언젠가 엄마가 된다면 엄마로서의 입장도 더욱 잘 알게 되겠죠. 나이가 더 든다면 엄마를 연기할 날도 올 거고요. 막연한 질문이지만 한번이라도 엄마라는 역할을 연기하는 자신에 대해서라도 생각해 본적 없나요?
없어요. 못할 거 같아요. 새댁 정도는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웃음) 그건 제가 할 수 있을 때 할 거 같아요. 애자도 할 수 있을 때 한 거니까요. 상상도 안 되고.
도저히 가늠할 수 없나 보죠.
예. (웃음)
대부분 최강희 씨를 말할 때 4차원이라는 수사를 동원합니다. 본인이 스스로를 그렇게 규정한 말을 듣게 됐을 때 기분은 어떤가요?
저 스스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지만 그런 짓을 했으니 그런 말을 듣나 싶어요. 오해할 수 있겠다 생각하죠. 그리고 나쁘게 부르는 건 아닌 거 같고, 귀엽게 봐주시는 거 같아서 다행이고요. 지금은 제 스스로 그런 이미지를 바꾸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쉽게 우울해지는 성격이라고 들었습니다. 혼자 있을 땐 생각도 많아진다고 들었고요.
저는 혼자 있을 때 생각을 많이 하고 그만큼 우울해지는 것 같아요. 우울한 감성을 좋아해서 즐기는 편이기도 하고요. 등 따시고 배부르면 아무 생각도 안 나잖아요. 그럼 약간 섭섭할 때도 있죠. 그래서 그런 순간을 즐기고 싶어요. 앞으로 다시 또 못 올지도 모르는 순간이잖아요. 물론 힘들었던 때로 돌아가긴 싫죠. 하지만 그 순간은 그때뿐이고 그때에만 얻을 수 있는 감성들이 있으니까요. 지금도 그렇게 생각해요. 빨리 누릴 수 있는 감성들은 미리 누려놓자고. 지금처럼 깨끗한 집이 아니라 옛날에 단칸방 같은 곳에 모여 살면서 다같이 잠자고 그럴 땐 좀 싫었죠. 그래도 그 때 맡았던 냄새나 온기는 잊을 수 없단 말이에요. 지나고 나면 다 소중한 거 같아요.
어려운 과거도 지나고 나면 추억이 되니까요.
대신 돌아가긴 싫죠. 그러니 그것도 누려야 할 때 누려야 하는 것 같아요.
개인적인 생각이 많은 만큼 혼자만의 공간에 대한 애착도 클 것 같습니다.
저 작업실 생겼어요. 친구 작업실에서 한 평만 빌려서 제가 꾸며놨거든요. 그 한 평에 텐트를 쳐 놓은 적도 있었고요. 지금은 TV를 갖다 놓고 DVD를 가득 쌓아놨어요. 제 공간이 생긴 거죠.
무엇을 위한 공간일까요?
(한참 생각하다가) 그러게. (웃음) 그냥 상징적으로 좋던데요. 제 공간이 있다는 게.
그냥 그 누구에게도 구애 받을 필요 없는 한 평짜리 자유군요. (웃음)
전 독립해서 살 생각이 추호도 없는 사람이에요. 엄마가 나가라 그래도 싫은 사람이거든요. (웃음) 그냥 엄마랑 계속 사는 게 좋고, 계속 살고 싶고, 그러면서도 개인공간은 갖고 싶잖아요. 그래서 그냥 내 공간이 있다는 게 좋아요. 그냥 갈 데가 있다는 거? 월세인데요, 한 평에 15만원. (웃음)
주변에 친한 분들이 몇 분 있잖아요. 몇 달 전에 압구정CGV에서 김숙 씨와 송은이 씨와 함께 있는 걸 우연히 본 적이 있어요.
제가 누구와 같이 있는 걸 본 사람이 있다면 아마 그 분들과 목격될 가능성이 커요.
누구나 자신에게 편한 사람을 만나게 되는 건 당연하지만 최강희 씨는 편애하는 지인들도 정해져 있을 것 같습니다.
그냥 정하는 건 아닌데 편한 사람만 만나다 보니까 반복적이에요.
최강희 씨에게 편한 분들이란 어떤 사람일까요?
저희 언니들하고 만나면 진지한 대화를 아예 안 해요. 속 얘기를 잘 안 하죠. 그냥 만나서 노는 거에요. 그게 너무 좋아요. 속마음 물어보고 안 그래요. 제 힘든 얘기하면 개 무시당하고 막 놀려대거든요. 공감해주고 위로해주는 그런 집단이 아니에요. 그래서 좋아요.
속마음을 털어놓지 못하면 답답해지진 않나요?
사실 잘 털어놓기도 했고, 예전에 털어놓는 사람도 있었어요. 언니들은 놀려서 안 하고. (웃음) 그런데 점점 못하겠어요. 자꾸 털어놓다 보면 말이 다른 데서 자꾸 이상하게 변하니까요. 추측이 많은 사람들은 제가 말을 안 했겠거니 생각하시는지 제가 하지도 않은 행동조차 앞서서 고민해주는 경우도 있고, 그런 게 조금 걸려서요. 그래서 요즘은 잘 얘기하지 않아요. 그래서 미니홈피를 많이 좋아해요. 알듯 모를 듯 음악으로 대신 얘기할 때도 있고 그래요.
고민을 직접적으로 공유하기 보단 간접적으로 자신의 마음을 덜어내는 게 편한가 봅니다. 우울한 감수성이 짙은 음악도 좋아하는 것 같더군요. 직접적인 대화보단 그런 매체에 감정을 담아서 흘려 보내는 것에 익숙하다고 말할 수 있겠네요.
맞아요. 해소가 돼요. 나름대로 공유도 되는 것 같고. 그리고 종교.
종교요?
기독교를 믿는데요. 요즘 자꾸 통일교라는 사람이 많아서, 4차원이라고 생각하셔서 그런지 최강희 통일교가 검색어에 뜨는 거에요. (웃음) 그런데 기독교고요. 매주 교회에 가요. 저는 원래 눈물이 별로 없는 편이에요. 친구들하고 그런 진지한 얘기도 잘 안 하고요. 그런데 교회 가서 한번씩 비워내는 거 같아요. 욕심도 비우고, 화내보기도 하고. 만약 그런 신앙이라도 없었으면 꽤 갑갑했을 거 같아요.
교회는 언제부터 다녔나요?
원래 어렸을 때부터 다녔어요. 그런데 지금은 같이 다니는 사람이 많아져서 더 열심히 다녀요.
원래부터 독실했던 건가요, 아니면 어느 순간부터 종교를 통해 마음이 편해진다는 걸 느낀 건가요.
예나 지금이나 저는 항상 제가 어느 곳에서 무얼 하든 저를 응원해주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해요. 예전에 어떤 여자가 자전거를 타고 가는 장면이 나오는 공익광고를 봤는데 리와인드로 진행되는 광고였어요. 자전거가 점점 뒤로 가다가 갑자기 여자가 교복을 입고, 어느 순간 더 어려져서 초등학생, 유치원생이 되더니 어느 순간 뒤를 딱 보면 엄마가 손을 잡고 있는 거에요. 항상 뒤에 있었다는 거죠. 전 제 엄마랑 보이지 않는 신이 제게 그랬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많이 우울하지 않았던 거 같고. 제가 어떻게 살아도 나쁘지 않게 사람 흉내를 내면서 살 수 있는 건 엄마가 저를 위해 기도해준 탓이라고 생각해요.
나름대로 긴 경력을 유지하며 배우로 살아오고 있어요. 배우로 살아간다는 건 어떤가요?
좋아요. 제 성격에 해소도 많이 되고요. 그러니까 해소라 하는 건, 사실 제가 그 사람을 웃길 수 있는 사람은 아니더라도 연기로 이 사람을 웃기면 이 사람이 웃기로 되어있고, 울고 싶은 적은 없어도 울어야 하는 연기가 있다면 속을 끄집어내서 한번 울 수도 있고요. 그런 부분에서 제가 해소되는 것 같아요. 제가 지금 당장 잘할 수 있는 게 연기이기도 하고요. 어떻게 굴러오다 보니까 아직 여기 있는데 사실 <애자>하면서 연기를 때려 칠까 했던 적도 있었어요.
왜요?
잘 안 되는 거 같아서요. 그래서 고민했죠. 내소사 신에서, 엄마랑 싸우는 장면 찍을 때 아침에 찍고, 해질 때 즈음에 다시 찍을 기회가 있었어요. 그 동안 쉬어야 되는데 쉬면서 꼼짝달싹할 수 없는 거에요. 밥을 먹을 수도 없고. 앞에 부분에서 잘한 건지 도통 모르겠다 싶은 거에요. ‘내가 이걸 잘 표현하고 있는 건가’ 싶고, ‘이건 너무 어려운 직업이구나’ 생각이 들어서 ‘끝나고 다른 걸 알아볼까, 내가 뭘 잘하나’ 생각해봤는데 잘 하는 것도 없고 할 수 있는 것도 없는 거에요. 보니까 그나마 제가 할 줄 아는 것 중에서 연기를 제일 잘 해요. 그래서 죽기 살기로 해야겠다 싶었어요. 그래서 그 다음부터 열심히 찍었죠.
예전엔 이런 고민을 해본 적이 없었나요?
한번도 없었죠. 아니, <달콤한 나의 도시>때 한번. <달콤한 나의 도시>때부터 전 사춘기였던 거 같아요. 제 나이 때 역을 맡으니까 오히려 되게 심리적으로 불안정한 거에요. 제가 어디 속해있는지도 모르겠고. 연예인인지, 배우인지, 어른인지, 중간인지, 다 헷갈렸어요. 연기도 기술인지, 순수함인지, 다 섞여버려서 혼란스러웠죠. 그래서 그때 한번 욱해서 고민했던 적이 있는데 아마 당시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을 거에요. 당장 때려 칠까 했는데 돈이 없어서 못하고 있다고. 그런데 지금부터 하는 건 제 선택이에요. 이게 참 좋은 직업이구나 깨달았으니까요. 좀 더 얘기하자면 주변 친구들을 우연히 만나서 얘기하다 보면 다들 고민이 많더라고요. 다른 걸 하고 싶어도 현실상 모아둔 돈이 없으니까 다른 걸 할 수 없고, 디자인을 공부하고 싶다 해도 회사원이니까 섣불리 뭘 하고 싶어도 할 수 없고. 그래서 나는 참 좋은 직업을 갖고 있구나 싶어졌어요. 할 줄 아는 걸 좋아서 하고 있으니까. 그런 생각이 들어서 참 다행이다 싶었죠.
98년도에 <여고괴담>으로 스크린에 데뷔하셨죠. 그 전에 95년도부터 청소년드라마로 연기를 시작했고요. 그 당시에 자신의 모습은 어떻게 기억하시나요.
더 좋아요. 더 맘에 들어요! (웃음) 연기는 좀 못했는데요. 잘했던 건 지금보다 더 잘했어요. 아무 것도 없는 순수한 진정성 같은 거, 그런 건 다시 하래도 못할 걸요. 그건 그때만 가능한 거 같아서 지금도 저는 그것들이 너무나 소중해요. 지금도 분명 지금뿐일 거에요. 나중에 연기를 더 잘한다 그래도 이렇게 마음을 달고 살 순 없을 거에요.
예전 생각은 자주 하시나요?
저는 작년에도 데뷔작을 다시 봤어요. 저는 작품을 모으는 타입이 아니라서 하나도 가진 게 없어요. 그래서 제가 자료를 가진 게 없어서 팬들한테 동냥해서 봤지만 볼 때마다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빛난 시절이란 생각이 들어요. 지금도 저한테 되게 소중한 것이라 의심치 않고요.
큰 욕심은 없어도 작은 집착이 커 보입니다.
집착이 너무 크죠. (웃음)
언젠가 <애자>를 다시 보게 될 날도 오겠죠.
그럴 거 같아요. 사실 전 엄마보다는 제가 빨리 죽었으면, 아니, 같이 죽었으면 좋겠어요. 엄마가 저보다 먼저 가실 거 아니에요? 그런 생각하면 겁나요. 그게 너무 무서워요. 가끔씩 전 그래요.
아무래도 엄마가 최강희 씨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이라 생각되는 만큼 애착도 대단하겠죠.
집착해요. (웃음) 지금 <애자>얘기 하시니까 느끼는 건데 나중에 <애자>를 다시 보게 되면 되게 슬플 거 같아요. 지금부터 잘 해야겠어요.
<애자>를 지난 최강희 씨에게 남은 변화는 무엇인가요?
용기가 좀 생긴 거? 자신감이 좀 생긴 거? 그리고 엄마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가 좀 많아진 거. 그리고 관객 분들도 이런 기회를 얻었으면 좋겠어요. 저는 <애자>가 줄 수 있는 건 그것밖에 없는 거 같거든요.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 기회가 있을 때 해야 된다는 거?
<절청풍운>은 <무간도>이후로 다시 홍콩 느와르라고 불리던 홍콩영화의 컨벤션을 복기하는 영화같다. 맥조휘(이하, '맥'): <무간도>로부터 시간이 많이 흘렀다. 그런 가운데 홍콩 영화가 중국 시장에 진출하게 됐고, 중국과 합작으로 제작하게 되는 경우가 생겨났다. 그만큼 중국 시장에 맞춰야 되겠지만 우린 홍콩 사람인 이상 홍콩 스타일을 추구할 수 밖에 없고, 홍콩인이기 때문에 홍콩 이야기를 할 수 밖에 없다. 그런 근본적인 이유 때문에 홍콩 스타일이 되살아날 수 밖에 없었던 게 아닌가 싶다.
<절청풍운>은 금융비리를 주도하는 기업인과 공권력 사이의 충돌을 다룬다. 그 가운데서 물질주의적 욕망에 휩쓸린 개인적 갈등이 중요한 줄기를 이룬다. 금융 비리를 수사하던 형사들이 물질주의적 욕망에 현혹되어 범죄를 공모한다. 단지 영화적 분위기를 이루기 위한 소재적 선택일 수도 있겠지만 어쩌면 현재 세태에 대해서 느끼는 지점을 반영한 스토리가 아닐까 궁금하다. 장문강(이하, '장'): 관계적 설정에 관한 부분 가운데 우리가 살아가는 매일의 생활 속에서 가져온 것들이 있다. 서울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홍콩은 2007년에 주가가 폭등했다. 그래서 그 당시 홍콩에서는 주식을 사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물질주의가 팽배했었다. 그리고 이런 물질주의와 공권력에 대한 문제는 현대 도시를 살아가는 이들이 매일 부딪히게 되거나 이미 부딪힌 문제다. 누군가는 이런 상황에 관심을 가져야 된다. 아무래도 일단 우리가 관심을 가진 문제였기 때문에 이런 영화를 찍게 됐지만 만약 누군가 일찍 관심을 가지고 있었더라면 이런 영화를 찍지 않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맥: 한가지 더 말하고 싶은 건 금융범죄다. 금융위기가 일어났는데 이 위기의 막후를 차지하는 세력이 있다. 그런데 사실 모든 영화 속에서 은행을 턴다던가, 살인이라던가, 이런 것들은 다뤄지지만 진짜 심각한 금융범죄는 다뤄지지 않는다. 이건 현재 홍콩에서도 나타나는 문제다. 금융사범들은 당연히 감옥에 가야 할 사람들이지만 이 사람들은 만약 구금된다 해도 1~2년 후에 풀려나곤 한다. 이들을 정제하기란 사실 굉장히 어려운 문제다.
어쩌면 작은 도둑 위에 있는 큰 도둑을 잡는 이야기이자 거대한 범위의 권선징악을 묘사하는 영화라고 할 수 있겠다. 그 이전에 비극적 형태의 결말을 묘사하는데 물질주의적 욕망에 이끌려 잘못된 선택을 한 소시민적 형사들의 비극을 묘사한 이후에 그 비극을 잉태한 거대한 배후에 대한 복수적 처단을 그린다. 소시민적인 인물들의 비극을 묘사하는 방식도 징벌적인 태도로 읽힌다. 장: 작은 도둑이나 큰 도둑이나 똑같다는 걸 먼저 강조하고 싶다. 범죄를 지었다면 거기에 합당한 처벌을 받아야 된다. <절청풍운>은 세 형사의 시각을 통해 상황을 바라보는데 이를 통해서 사람들의 공감대나 동정심을 이끌어 내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실제 상황으로 보자면 이들은 범죄 행위를 저질렀으니 분명 벌을 받아야 된다. 물론 이 사람들은 작은 범죄자라고 할 수 있다. 사실 그 막후에 악한 세력들이 있으니까. 하지만 똑 같은 죄인이므로 영화에서 그런 악당들과 구별하지 않는다. 영화의 결말에서 그 소시민적 죄인과 막후의 세력들이 같이 떨어져 죽지 않나. 크던 작던 잘못은 잘못이라고 얘기하고 싶다는 동기에서 그런 결말을 만들었다.
<무간도>도 그렇지만 <절청풍운>도 인물이 관계적 엇갈림이나 우연찮게 사건에 휘말리는 인물의 딜레마를 묘사한다. 어떤 상황이나 관계에 휘말리는 인물의 심리에 흥미를 느끼는 것 같다. 맥: 스토리가 재미있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영화 속에서 보다 관심을 갖게 되는 건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 그리고 인간성 문제다.
<무간도>부터 지금까지 유위강 감독을 포함해서 세 사람의 공동작업이 많았다. 이렇게 세 사람이 지속적으로 공동 작업의 관계를 이어나갈 수 있게 만드는 이유가 뭘가?
맥: 익숙해서? (웃음) 장: 금전적인 요인이 가장 크다. 최근 홍콩에선 금전적으로 영화 제작 규모가 계속 줄어들고 있다. 이상적인 예산을 확보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그래서 영화 한편을 제작할 때, 몇 명의 감독이 함께 따라붙어서 제작하면 이를 분담할 수 있다. 예를 들어서 한 명의 감독이 제작하게 된다면 질적인 부분은 포기하고 가자, 이렇게 되지만 <무간도> 같은 경우엔 여럿이 같이 제작했기 때문에 28일 내에 영화를 만들 수 있었다. 한 명의 감독이 제작했다면 질적인 부분도 보장할 수 없고 속도도 맞추지 못했을 거다.
현재 한국도 제작비를 절감하는 문제에 대해서 고민 중이다. 한국의 영화시장에 대해서 아는 바가 있나? 장: 구체적으로 한국의 상황이 어떤지에 대해서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예전에 한국영화가 굉장한 호황을 누렸을 때 <데이지>를 찍었는데 영화사 사장을 비롯한 관계자들이 1주일 찍었을 뿐인데 이걸로 돈을 많이 벌 수 있겠다고 호언장담했다. 그런데 이젠 시장이 포화상태에 이르렀고, 현실을 직면해야 될 시기가 된 거 같다. 시장이 위축된다는 걸 느끼면 그만큼 제작에 들어가는 비용을 절감해야 되는 현실을 직감해야 한다. 홍콩에선 스태프나 배우, 감독, 작가, 기계 설비를 맡은 인력들도 예전엔 어느 정도 최고 수준으로 받았지만 지금은 가격을 많이 줄여야겠다는 상황에 다다르게 됐고, 지금 홍콩은 가격이나 임금 수준을 내리기로 결정하자마자 바로 수준이 확 내려갔다. 맥 감독도 한때 조감독이었는데 예전에 조감독을 할 때 임금수준은 지금 조감독의 2배 정도였다. 그 때는 굉장히 쉽게 돈을 벌었다. 지금은 예전에 고용해서 쓰던 스태프의 절반도 미치지 못하는 숫자로 영화를 제작하고 있다. 조감독 시절엔 한 번에 2편의 영화를 찍고 있을 때도 있었고, 어떤 배우는 한 번에 7편 정도의 제작에 참여할 때도 있었는데 지금은 전혀 그럴 수 없다. 지금 홍콩은 그런 상황에 직면했는데 지금 한국은 어느 정도인지 모르겠다. 한국의 상황이 홍콩처럼 벌어질지는 모르겠지만 어쩌면 한국이 직면한 현상도 홍콩의 90년대에 직면한 문제와 비슷한 문제가 많을지도 모른다. 사실 홍콩에서 이런 상황이 벌어질 것이다라고 이런 문제들을 직시한 사람도 있었지만 그걸 직시하지 못한 사람들은 굉장히 참담한 결과를 맞이하게 됐다. 결국 그건 살상력이 큰 도태라고 할 수 있다. 결국 도태되지 않는 게 중요할 것 같다. 맥: 사실 한국영화의 가장 큰 장점은 다양한 소재라고 생각한다. 홍콩 영화는 중국과 합작해야 되고 결국 중국상영을 염두에 둬야 된다. 중국상영을 고려하면 결국 소재 폭도 제한된다. 이런 문제를 겪지 않는 한국이 매우 부럽다.
그런 현실적 어려움 속에서도 감독이자 제작자 입장에서의 자구책이 궁금하다. 장: 아까 임금 문제에 대해서 주로 얘기했지만 여러 가지 문제를 동원해서 이 문제를 타계하려고 한다. 예전엔 좋은 시나리오를 써야겠다는 고민에만 집중했다면 지금은 여기에 돈이 얼마나 들어갈지, 이런 것들을 고려하면서 이 장면이 꼭 들어가야 하는 장면인지 생각한다. 될 수 있으면 간단하고 절약할 수 있는 방식의 시나리오를 쓰려고 한다. 어쩌면 그게 우리 팀의 장점이라고 볼 수도 있다. 왜냐면 우리 두 명이 있음으로 해서 전체적인 과정을 보다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서 만약 여기에 돈을 얼마나 들였는지, 어떤 방식으로 사용했는지, 이에 대해서 정확하게 알면 돈을 아낄 수 있다. <절청풍운>만 해도 33일만에 영화를 완성했다. 분업이 잘돼있다는 건 분명 우리 팀의 장점이다.
지금 현재 홍콩 영화가 아시아 영화권에서 차지하는 역할이란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나? 장: 사실 굉장히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다. (웃음) 갈수록 모르겠다. 1997년에 홍콩이 중국으로 반환되면서 홍콩도 중국의 일부분이 됐다. 그러므로 영화를 구분할 때도 홍콩영화가 아니라 중국영화라고 해야 되는 셈이다. 예를 들어서 미국영화를 가지고 LA영화라고 하거나 뉴욕영화라고 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90년대에는 홍콩영화, 중국영화 이렇게 구분했다지만 그 후로 10여 년간 이런 식으로 구별하지 않았다. 홍콩은 굉장히 자유로운 도시이고, 금융 허브라 할 수 있고 상조(相助)의 도시라고 할 수도 있다. 이런 많은 요소를 합쳐서 홍콩이란 지역적 위치를 정의할 순 있지만 아시아 영화권에서 점하고 있는 위치에 대해선 내가 감히 뭐라고 말하긴 어려울 것 같다.
자본의 문제가 많은 것을 좌우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과거 홍콩영화의 황금기라고 불리던 시절로부터 많이 멀어졌지만 현재 홍콩 영화의 최전선을 이끄는 건 앞의 두 사람을 비롯해서 유위강 감독이나 해외에서 거장이라 불리는 두기봉 감독 등이 있다. 홍콩영화가 앞으로 어떤 비전을 가져야 할지 생각해본 바가 있나? 장: 홍콩은 지금까지 기술적인 문제에 많이 부딪혔다. 배급이나 마케팅이 부족했고 극장도 문제가 많았다. 홍콩은 부동산 가격이 매우 비싸서 극장사업을 해나가기 어려운 실정이다. 우리의 비전이라면 전세계인들이 모두 이해할 수 있는 영화를 만들자는 거다. 오늘 극장에서 우리 영화를 상영하면서 반응을 살펴보니 홍콩이나 중국 관객의 반응과 매우 유사하더라. 그래서 내심 굉장히 기뻤고, 이는 우리가 고민해온 것들이 성과를 거두었음을 증명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우리는 계속해서 이런 방향으로 작품을 완성해나갈 거다. 여전히 좁은 식견으로부터 얻은 비전일지 모르지만 이런 희망이 실제로 현실화되길 바란다. 맥: 최근 홍콩영화가 대륙으로 진출해야 되는 상황이지만 아무리 대륙이나 세계시장에 진출했다 하더라도 일단 홍콩 내 사람들이 우리 영화를 보지 않으면 그건 실패한 것이다 다름없다. 만약 우리의 비전은 우선 홍콩 시장에서 성공하고 외부로 나가자는 것이다.
2년 전 인터뷰 당시에 지하철을 타고 다닌다고 했던 기억이 납니다. 요즘에도 그런가요?
예. 덕분에 이런 일도 있었어요. <요가학원>촬영하기 전에 3개월 동안 요가를 배우러 다닐 때, 차를 끌고 다닌 적도 있었지만 지하철을 타고 다닌 적이 더 많았거든요. 항상 요가매트를 들고 지하철을 탔는데 어느 날 제 친구에게 전화가 온 거에요. 너 요즘 요가배우냐고. 그래서 그거 어떻게 알았냐고 물어보니까 누가 인터넷 카페에 올렸다고 하더라고요. (웃음)
사진에 찍힌 건가요?
사진은 아니고, 글이 올라왔어요. 지하철에서 차수연 씨를 봤는데 요가매트를 옆에 끼고 신문을 읽고 있더라. (웃음) 그래서 아, 이런 일도 있구나 싶었죠.
드라마도 2편이나 출연했는데 몰라볼 리 없죠.
그런데 그렇게 비중 있는 역할이 아니었잖아요.
하지만 브라운관으로 얼굴을 노출됐을 때 얻게 되는 인지도는 때론 상상 이상이니까요. 실제로 알아보는 사람도 많아졌을 거 같고요.
그래도 아직까진 그렇게 신경이 쓰일 정도는 아니에요. 가끔씩 물어보는 사람이 있긴 있어요. 그런데 대부분 그냥 아니라고 하면 아닌가 보다 하고 그냥 가버려요. (웃음)
2년 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하시군요. (웃음)
똑같죠. (웃음) 지금은 요가 때문에 살이 많이 빠지긴 했는데 그것 빼곤 다 비슷해요. 생활하는 것도 그렇고, 여전히 지하철 타고 다니는 것도 그렇고.
그때 제가 장쯔이 닮았다는 말씀을 드렸었죠. 그 뒤로 이런 말을 또 들어보진 않았나요?
가끔씩 들어요. 아직은 누굴 닮았다는 말이 따라다니는 거 같아요. 아직까진 제가 확실한 이미지를 보여주지 못해서 그런 말씀들을 하시는 거 같아요.
<요가학원>의 나니는 궁극적으로 마리오네트 같은 캐릭터입니다. 마치 껍데기만 남은 사람 같다고 할까요. 그만큼 철저하게 감정이 배제된 사람처럼 보이기 위한 노력이 있었을 것 같습니다. 일단 감독님께서 제 이미지가 나니와 잘 어울리는 것 같다고 생각하셔서 서슴없이 제게 그 캐릭터를 주셨지만 그 이후로 나니라는 캐릭터의 내적인 면을 어떻게 보여줘야 될지 서로 많은 고민이 있었어요. 공포에서는 선악이 분명히 나눠져야 되는데 보통 악역이라면 독하게 생겼거나 이미지가 센 사람들이 캐스팅되는 경우가 많잖아요. 그런데 이번 같은 경우는 그 반대 이미지로 저를 캐스팅하셨으니까 조용하고 차가운 이면의 카리스마를 어떻게 뿜어져 나오게끔 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 감독님과 많은 얘기를 했던 거 같아요. 그런 소스들 중 하나가 말투라던가, 말을 하기 전과 후의 호흡이라던가, 아니면 나니 만의 걸음걸이나 동선들이었죠.
일반적으로 감정을 담은 대사는 자의적으로 호흡을 통제하거나 조율할 수 있지만,
음율이 있죠.
나니의 화법은 모든 음절이 또박또박하면서도 어절의 간격이 일정합니다. 상당히 기계적인 어투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아무래도 그런 화법을 설정하고 그에 적응하는 게 중요했을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일반적인 요가 선생님처럼 얘기하는 캐릭터로 생각했어요. 그래서 저희 요가를 전담하셨던 진수원 원장님의 말투를 녹음해서 한 2주 동안 연습했어요. 그렇게 연습해서 감독님께 보여드렸더니 나니라는 캐릭터는 현실적인 캐릭터가 아니기 때문에 현실성 있는 요가 강사처럼 얘기할 필요가 없을 거 같다고, 그런 모습들을 보여주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하시더라고요. 결국 거기서부터 시작된 거 같아요. 무엇보다도 감독님께서 저에게 눈동자가 절대로 움직이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주문을 주셨어요. 일반적으로 사람이 말을 하면 그 말과 함께 감정이 나오잖아요. 그 사람에게서 나오는 감정이 말로 묻어나서 다른 사람에게 전달되는 거니까요. 그래서 감정을 최대한 배제된 것처럼 보이기 위해 눈동자를 움직이지 않은 상태에서 드라이하게 대사를 쳐줬으면 좋겠다는 주문을 받았죠.
어쩌면 지금까지의 출연작 중에서 기능적인 요구가 많았던 작품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겁니다. 방금 말했던 것처럼 캐릭터의 화법 자체도 전략적으로 접근해야 했고, 요가도 배워야 했으니까요.
정말 달랐죠. 일단 나니는 동선의 폭도 좁았어요. 인순과 비교해봐도 인순은 동적인 캐릭터라서 쉽게 눈에 들어오잖아요. 그런데 나니는 할 수 있는 행동들이 제약된 상황이죠. 그런 가운데서도 중심축을 지키고 흔들리지 않는 카리스마를 뿜어내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 많았어요. 여러 가지 장치들을 마련했죠. 아까 말했던 화법이라던가, 걸음걸이, 아니면 무드라(mudra, 수인), 만트라(mantra, 진언), 이런 것들을 몸에 익히는 게 참 힘들었어요. 그런 대사만으로 무서운 감정을 전달해야 되는 사람이기도 했고요. 그리고 긴장돼있기보단 오히려 힘이 빠진 듯한 상태를 유지했을 때 관객에게 더 무섭게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그래서 절대로 긴장된 모습을 보이지 않기 위해서 영화를 준비하는 3개월 동안 저를 버리고 제 몸부터 많이 바꿨어요.
요가 트레이닝을 받으면서 자연스럽게 교정된 부분도 있지 않았나요?
그렇긴 한데 요가로 교정된 건 유연성이었죠. 보통 다른 친구들은 어깨가 많이 내려가 있는 편인데 저는 약간 솟은 어깨라 이게 어떻게 보면 항상 긴장돼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그걸 내리는 작업을 했고, 등을 약간 굽히고 다니는 버릇도 고쳤어요. 당당하고 자신감 있게 보이려면 정자세로 보여야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이런 건 다른 방식으로 원장님과 교정을 잡아야 했거나 따로 집에서 연습이 필요했어요.
요가는 해본 적 있었나요?
캐스팅 되고 나서 감독님과 미팅할 때, 감독님께서 요가는 접해봤냐고 물어보셨어요. 그런데 한번도 안 했다고 하면 다른 사람에게 캐스팅이 넘어갈까 봐 3개월 정도는 해봤다고 거짓말했어요. (웃음) 그랬더니 감독님께서도 다행이라고 하시는데, 오히려 제가 속으로 감독님께서 그렇게 봐주셔서 다행입니다, 싶었죠. (웃음) 그래서 저는 다른 친구들보다 2~3주 정도 더 빨리 시작했어요. 그때부터 미친 듯이 연습했죠.
몸을 움직이는 건 좋아하는 편이에요?
사실 동적인 운동을 되게 좋아해요. 달리는 걸 좋아해서 러닝머신 뛰는 것도 좋아하거든요. 취미로 재즈 댄스도 하고 있었고요. 그런데 요가는 한자리에 머물러서 몇 초 동안 한 동작으로만 있어야 하는 정적인 운동이라 저한테 너무 힘들었어요. 확실히 저는 동적인 운동을 많이 선호하는 편이었던 거죠. (웃음)
그렇다면 나니의 어떤 매력이 차수연 씨를 거짓말쟁이로 만든 걸까요? (웃음)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 감독님께서 저에게 왜 러브콜을 주셨는지 딱 알겠던데요. 그러니까 어떤 역을 할 것 같으니 시나리오 한번 봐라, 단지 이런 이유를 떠나서 시나리오에서 나니 역을 보니까 어떤 이미지 때문에 감독님께서 제게 이 캐릭터를 주신 건지 알게 됐어요. 나니는 단면적으로 보여지는 부분이 적고 감정이 절제된 인물이라서 알 수 없는 신비스런 분위기가 풍기지만 몇몇 신에서는 발랄하고 밝은 모습들이 보여지기도 하고, 끝에 가서는 간미희를 배반했을 때 무너지는 모습까지 드러내잖아요. 이렇게 한 영화 안에서 다양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캐릭터란 점이 끌렸어요. 아직 제가 많은 영화를 해본 건 아니지만 지금까지 제가 쌓아놓은 경력 안에서 보여줬던 모습들을 다 보여줄 수 있는 선물세트 같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럼에도 감정을 절제한다는 측면에서는 기존의 캐릭터와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기존에 연기했던 캐릭터들은 자신의 성격을 온전히 드러내는 경우가 많았으니까요.
그렇기 때문에 더 매력을 느꼈어요. <아름답다>나 <보트>, <여기보다 어딘가에>같은 작품은 캐릭터의 감정적인 부분이 잘 표현된 작품이었고, 저도 감정이 먼저 나가는 사람이라서 그런 감정적인 표현들은 편했죠. 그런데 <요가학원>은 감독님께서 “마지막은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하더라도 그 전까진 모든 감정을 배제해줬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셨어요. 그러니까 “감정의 표출이나 감정적인 표정은 너무나 잘 보인다. 하지만 <요가학원>에서는 그런 감정을 상중하로 나눠서 보여줬으면 좋겠다. 모든 감정을 배제한 상태로 얘기하고, 행동하면서 그런 마음으로 학원생들을 대했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셨죠. 덕분에 <요가학원>을 통해 한가지 배운 거 같아요. 항상 표출만 할 줄 알았지, 그걸 어떻게 조절해야 할진 아직 몰랐으니까요.
지금까지 7편의 영화와 2편의 드라마로 대중에게 알려졌습니다. 3년 차 배우로서 적은 경력은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최근 인터뷰에서 그런 말도 했더군요. <요가학원>이 처음으로 러브콜을 받은 작품이라고요. 맞아요. 처음으로 러브콜을 받았어요. 저에겐 항상 미팅이 있었고, 오디션이 있었고, 감독님들께서 그 역할에 어울린다고 판단됐을 때 작품에 임했었죠. 그런데 <요가학원>같은 경우에는 처음부터 같이 작업했으면 좋겠다, 시나리오를 읽어봤으면 좋겠다, 그렇게 처음으로 러브콜을 받았어요. 그리고 나서 제가 하겠다고 답변한 다음부터 미팅이 이뤄졌고요.
그래서 더욱 영화에 애착이 생겼을지도 모르겠네요.
저한테는 좀 애정이 남는 영화에요. 이전까지는 제가 출연한 영화를 볼 땐 항상 제 자신이나 작품을 객관적으로 판단하면서 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전반적인 스토리나, 아니면 상대 배우와의 관계나 호흡 같은 제 개인적인 부분들이라던가, 전체적인 분위기 안에서 제 단점들을 잘 꼬집어서 봤었거든요. 저럴 땐 저렇게 하면 안 됐었는데, 이렇게. 그런데 <요가학원>은 너무 주관적인 관점에서 보게 돼서 저는 그냥 다 괜찮더라고요. (웃음) 제 연기가 괜찮다기 보단 전반적인 영화 흐름이 나쁘게 보이지 않는 거 같았어요. 그래서 옛날 같은 경우엔 제가 어떻게 했다는 걸 제 스스로 잘 알았기 때문에 다른 분들에게 물어보지 않았어요. 그런데 <요가학원>은 주관적으로 보다 보니까 어디가 모자랐는지, 어디가 잘 안됐는지, 그리고 어디가 좋았는지, 더 듣고 싶어지는 거 같아요.
어쩌면 출연작 가운데서 객관적으로 보지 못한 첫 번째 영화라고 할 수도 있겠군요.
예. 너무 객관적으로 볼 수 없었어요. (웃음)
아무래도 전작들이 개봉할 때와 기분도 남다르겠어요.
그래도 같이 출연한 배우들이 많아서 지금까지 작품 중에 제일 힘이 되는 거 같아요. 어느 무대에 서더라도 같이 긴장할 수 있는 사람이 여섯 명이나 더 있다는 게 힘이 되더라고요.
오늘 오후에 무대인사가 있다고 들었는데 관객 앞에서 무대인사를 하는 기분도 남다르겠어요.
저는 지금까지 일반 관객에게 무대인사를 한번도 해본 적이 없는데요? 이번이 처음으로 도는 거에요.
아, 그런가요? <보트>때도 하지 않았나요?
예. 저는 안 했어요. 제가 나름대로 영화에 많이 출연했지만 대중들에게 이미지적으로 보여질 수 있는 기회는 이번이 처음인 거 같아요. 아무래도 영화 관계자들이나 감독님들은 이제 제 이미지를 잘 알게 돼서 이번 년도부터 많은 영화 제의를 많이 받게 된 거 같지만 대중들에겐 <요가학원>의 나니가 차수연이라는 배우의 이미지를 처음으로 보여줄 수 있는 기회인 거죠.
사실 영화에서 나니의 전사가 조금씩 노출되긴 하지만 전반적으로 과거가 명확히 드러나지 않는 캐릭터입니다. 그래서 아무래도 설득력이 좀 떨어지는 게 아니냐는 말이 있더라고요. 그런 부분에 대한 충분한 부연 설명이 되지 않기 때문에 그걸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이해하기 힘들어 할만한 부분들이 있는 것 같아요.
캐릭터를 연기하는 배우로서도 고민이 깊어질 수 있는 측면이 아니었을까 싶은데요. 캐릭터의 과거를 추측하는 건 결국 배우의 몫이니까요. 그런 부분에 대한 설명은 없었나요?
사실 원래는 저뿐만 아니라 다른 배우에게도 요가학원에 들어올 수 밖에 없는 사연들이 담긴 과거 신이 있었어요. 시나리오 자체엔 더 많은 사연이 있었지만 감독님께서 그걸 영화에서 압축시키시다 보니까 배우들이 그런 설정만 인지하고 연기에 임해야 했어요. 다른 친구들 같은 경우에 외모 콤플렉스를 가지고 요가학원에 들어왔던 것처럼 저 또한 비슷한 콤플렉스가 있었고, 그와 함께 간미희와의 사연을 담은 전사가 있었죠. 아쉬운 부분이긴 해요.
영화가 너무 많은 걸 보여주는 것 역시 딱히 좋은 방식은 아니지만 영화에서 설명이 불충분할 땐 그걸 표현하는 배우에게도 부담이 생길 수 있겠죠.
그런 갭을 줄이는 게 힘든 거 같아요. 보는 사람들 입장에선 좀 더 설명을 해줘야 이해되지 않을까 싶은 경우도 있지만 작업하는 입장에선 이게 너무 지나치게 착하게 설명해주고 있는 게 아닌가라고 생각되는 부분도 있으니까요. 어디에 포인트를 줄지에 대해선 감독님만이 아시는 것이기도 하고요.
<요가학원>은 지금까지의 출연작 중에서 가장 상업영화란 단어에 어울릴만한 작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습니다. 그만큼 아무래도 전작들과 현장 분위기부터 차이를 느끼지 않았을까 싶은데요.
전작들에선 감독님과의 대화가 항상 끊이지 않았는데 이번 <요가학원>에서는 배우들도 너무 많고, 감독님도 따로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아서 감독님과 이야기를 나누는데 할애할 수 있는 시간이 전작들보단 적었던 거 같아요. 인디 영화나 저예산 영화라 할 수 있는 전작들 같은 경우에선 촬영장에서 시간적인 여유가 없기 때문에 촬영에 들어가기 전에 감독님과 충분한 대화를 하고 들어갔거든요. 다만 <요가학원>같은 경우에는 작품에 들어가기 전에 전작들보다 대화를 적게 했지만 막상 현장에선 감독님과 얘기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많았어요. 감독님께서, “다음 주에 이런 식으로 한번 해볼까” 하시면서 소스를 던져주시면 전 거기에 제 상상을 덧붙여서 감독님께 보여드렸고 그러면 감독님께서 또, “그것도 괜찮네?” 이러시고, “그럼 이런 식으로 접근해보면 또 어떨까?” 이렇게 다시 소스를 던져주시고, 계속 그런 식으로 얘기를 하면서 진행할 수 있었던 거 같아요. 마치 선생님과 학생의 관계처럼요.
전작에서는 항상 상대역이 남자였지만 <요가학원>에서는 오로지 여자들에게 둘러싸여서 연기를 했습니다.
시나리오 받았을 때, 나니라는 캐릭터가 먼저 보이긴 했지만 그 주변에 캐릭터가 너무 많았어요. 그것도 남자가 아니라 여자 중심이었기 때문에 다른 배우들이 캐스팅되지 않은 상태에서 만약 7명의 배우들이 다 모이면 정말 많은 불화가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굉장히 많았었죠. 여자 배우 2명만 모여도 분위기가 별로 안 좋아진다는 얘기를 종종 들었거든요. 그런 얘기 못 들어보셨어요? (웃음) 그런데 2명도 아니고 7명인데 이게 과연 잘 풀릴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처음에 저희끼리 미팅을 했던 장소가 요가학원이었어요.
<요가학원>을 찍기 위해서 요가학원에 모였군요. (웃음)
예. 그렇게 1명씩 들어오면서 서로 인사하고 곧바로 유연성을 기르기 위해서 요가를 시작했죠. 서로 말로서 통성명하긴 했지만 그 사람의 이면을 보기 전부터 저희끼린 몸으로 같이 부딪힌 셈이죠. 사실 유진이 빼고 다들 요가를 처음 접해보는 거라서 모두 몸이 힘들고 지치는 상태였고 그래서 더욱 공감대가 형성될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싶어요. 요가 덕분에 서로에게 더 편하고 쉽게 다가갈 수 있었던 거죠.
아무래도 요가 마스터를 연기하는 만큼 영화상에서 보다 숙련된 요가 실력을 보여줘야 한다는 부담은 없었나요?
정말 부담이 많았어요. 저는 요가가 처음이라 <요가학원>에 캐스팅되고 나서 남들보다 3주 일찍 매일 4시간씩 원장님과 혼자서 연습을 했었죠. 제가 3주 동안 열심히 했다지만 좀처럼 되지 않는 동작이 많았어요. 아무래도 3주 만에 될 수 있는 동작들이 아니었던 거죠. 그리고 이제 3주 후에 다른 친구들이 들어왔어요. 그런데 유진이가 오자마자 한번에 제가 못했던 것들을 하는 거에요. 유진이는 5년 전부터 요가를 했거든요. 그래서 그걸 보니까 제가 3주 동안 했던 것들이 너무 허탈해지고, 과연 어떻게 해야 할지 당황스러웠어요. 그때 당시 실력으로 보자면 유진이가 마스터를 해야 되고 제가 유진이 역할을 해야 했던 입장이었던 거죠. 제가 그토록 하려고 했다가 실패했던 동작을 유진이가 한번에 하는 걸 보고 순간적으로 무너져버렸어요. 그 3주 동안 한번도 술을 입에 대지 않았는데 그때 술 한잔 했어요. (웃음) 그리고 어느 정도 집착은 버렸어요. 이게 금방 될 수 있는 문제는 아니구나, 그러니 3개월 안에 최선을 다해서 보여줄 수 있는 최고치의 모습을 보여줘야 되겠다, 이런 생각을 갖고 천천히 다시 시작했어요.
아무래도 기능적으로 해결되지 않는 부분이 생기면 심리적으로도 흔들릴 가능성이 있으니까요. 결과적으로 영화에선 나름대로 제 몫을 해낸 느낌인데요. 힘들었던 만큼 만족감도 크지 않았을까요?
육체적으로도 힘들었지만 심적으로도 많이 힘들었던 작업이었어요. 제가 한번도 겪어보지 못했던 그런 소재였으니까요. 요가 초급 과정의 실력을 갖고 있으면서도 결국은 선생으로서의 완벽한 모습을 보여줘야 했기 때문에 당연히 3개월 안에 그 정도 수준으로 피치를 올려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었거든요. 그만큼 몸도 힘들었지만 캐릭터로서 중심이 흔들리면 안 된다는 심리적 부담이 많았죠. 그런 덕분에 나니에게 많이 배워가게 된 입장이 됐어요. 저를 바꾸게 된 입장인 거죠. 덕분에 몸도 많이 밝아졌고, 이렇게 저를 자제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도 알게 됐고, 제 안에서 여러 가지로 차수연이란 배우를 업그레이드시켜준 영화가 된 거 같아요.
혹시 <요가학원>에서 욕심 나는 다른 캐릭터는 없었나요?
저는 나니가 좋던데요. (웃음) 물론 개인적으로 <요가학원>에서 폭넓은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캐릭터는 인순인 거 같아요. 인순의 강박증은 저 뿐만 아니라 다른 여자 분들도 다 갖고 계실 거에요. 그래서 시나리오를 읽거나 영화를 보면서 공감이 갔죠. 마치 여자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캐릭터 같아요.
<요가학원>은 외모지상주의 세태를 공포로 치환한 작품입니다. 그만큼 여성들이 느끼는 강박도 많이 묘사되고요. 사실 차수연 씨와 같은 배우들이야말로 외모에 대한 강박을 많이 받을 수 밖에 없는 직업이 아닐까 싶은데요. 혹시 지금까지 외모에 대한 콤플렉스를 느낀 적은 없나요? 물론 지금도 충분히 예쁘시지만. (웃음)
저도 외모적인 콤플렉스는 분명히 있어요. 어떻게 보면 저희는 얼굴이 먼저 보여지는 사람이고 그만큼 예쁘고 아름다운 사람에게 눈길이 가기 마련이잖아요. 그런데 그렇게 예뻐서 눈에 띄는 연기자나 배우가 있는 반면에 너무 예쁘지 않더라도 어느 정도 연기적인 매력이 갖춰졌기 때문에 얼굴 자체가 아름답게 보이는 배우도 있는 거 같아요. 갈 길이 다 다른 거죠. 사실 너무 예뻐서 그 배역이 잘 안 보이는 배우들도 있잖아요. 얼마나 짜증나겠어요. 너무 예쁜 게 죄인거지. (웃음) 캐릭터가 보여야 되는데 너무 예뻐서 배우의 얼굴이 보이는 거죠. 저도 너무 예쁜 배우들을 보면 너무 예뻐서 캐릭터가 보이는 게 아니라 그 얼굴밖에 안 보이더라고요. 저 같은 경우는 눈에 띄게 예쁘지 않기 때문에 캐릭터를 쉽게 보여줄 수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해요. 영화 관계자 분들에게 종종 어느 캐릭터를 맡더라도 그 캐릭터를 잘 보여줄 수 있는 얼굴이라는 말씀을 들었어요. 그만큼 저는 캐릭터가 잘 스며들 수 있는 베이스를 갖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캐릭터의 내면적인 부분을 보여주는데 보다 유리한 입장이고 그만큼 연기적인 수준을 많이 끌어올려주면 제 얼굴이 아름답게 비춰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아무래도 장단점이 있는 거죠. 단지 서로 다르다는 걸 인정해야 되는 거 같아요.
차수연 씨도 눈에 띄게 예쁘신 것 같은데요. (웃음) 예전에 전도연 씨를 닮고 싶다고 하셨던 게 기억나네요. 그만큼 자기 역할에 헌신적인 배우를 선망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여배우로서 너무 망가졌다 싶은 모습을 보여주는 건 때로 꺼려지는 일이 아닐까요.
<요가학원>이전에 <집행자>를 찍을 때 윤계상 선배랑 베드신이 있었는데 그 신에서 우리가 너무 시끄럽다고 옆 방에서 조용히 하라면서 벽을 두드리는 장면이 있어요. 그런데 제가 맡은 캐릭터가 좀 당차서 너나 조용히 하라면서 막 소리지르고 도리어 그 벽을 치는 모습이 나와요. 그 한 샷을 찍고 나서 감독님께서 저를 부르시더니, “나는 오케이지만 네가 한번 봐라.”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왜요? 저는 괜찮은데요.” 그러니까 감독님께서, “아니, 여배우가 이렇게 안 예쁘게 나오면 본인에게 좀 그렇지 않아? 다시 찍을래?” 하시는 거에요. 사실 어떤 분들은 카메라에 예쁘게 비춰질 수 있는 각도를 잘 알아서 스크린에서 예쁘게 보이기 위해 그 각도로 비춰지려고 노력하는 분들도 많이 있어요. 솔직히 저는 그 캐릭터로서 확실하게 보이는 게 얼굴이 예쁘게 보이는 것보다 배우로서 더 아름답게 보이는 방법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계속 연기적으로 노력하고 자기 계발을 해서 제 캐릭터가 잘 보이게 되면 그게 저를 아름답게 보여줄 거라 생각해요. 저 역시도 그런 배우가 예쁘게 보이고요. 어쩌면 그게 저와 다른 배우들의 차이일지도 모르죠.
<집행자>얘기가 나왔는데 사실 <집행자>에 차수연 씨가 출연했다는 건 이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알았습니다. 남자배우들에 대한 정보만 공개됐더군요.
홍일점이에요. (웃음) <요가학원> 들어가기 전에 촬영은 다 마친 상태였고요. 올해 11월에 개봉될 거 같아요.
올해에 개봉작 가운데 4편이나 차수연 씨의 이름이 올라가는 셈이군요.
혹시 <보트> 보셨어요? <여기보다 어딘가에>는?
고의적인 건 아니지만 지금까지 차수연 씨 출연작은 다 봤습니다.
와! (웃음)
2년 전 인터뷰에서 <여기보다 어딘가에>의 캐스팅 배경이 하정우 씨의 추천 덕분이라고 하셨죠. 그리고 <보트>에서 하정우 씨와 함께 출연했습니다. 아무래도 안면이 있는 배우와 한 작품에서 만난다는 게 편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그리고 2년 전만 해도 하정우 씨는 떠오르는 신인이었지만 이제 연기력을 인정받는 배우가 됐고요. 그걸 옆에서 지켜본 입장이 어땠을까 궁금하기도 합니다.
하정우 오빠는 그렇게 될 수 밖에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옆에서 보면 배울 점도 많고, 연기에 대한 주관도 뚜렷하신 분이니까요. 에너지가 정말 넘치는 배우에요. 그리고 저도 그 에너지를 받아서 더 좋은 에너지로 쓸 수 있게끔 만들어주는 배우인 거 같고요. 우선 촬영장을 즐겁게 만들어 줄 수 있는 여유를 가진 배우인 거 같아요. 저는 제 것 하기도 바쁘기 때문에 아직까진 그런 여유가 없지만 정우 오빠는 그런 여유로 현장을 즐겁게 만들어주는 동시에 연기에서도 자연스럽게 여유가 묻어 나오는 것 같아요. 그런데 또 얼마나 치밀한 계획과 설정들을 갖고 연기하시겠어요. 저는 아직 많은 경험이 적은 배우라서 여전히 놓치고 가는 부분이 많은데 옆에서 오빠가 그런 부분들을 집어주기도 했어요. <보트>에서 담배 피는 연기를 할 때, 영화에서 보여줄 수 없을 만큼 과하다 싶은 제안까지 주더라고요. “혀로 끄면 참 임팩트 있겠다.” (웃음) 그렇게 할 수 있으면 좋은데 제가 그걸 어떻게 하겠어요. 아니면, “담배를 피우고 나서 컵에 집어넣어봐. 그럼 좀 살 것 같은데.” 그렇게 사소하지만 제가 섬세하게 잡아내지 못한 것들에 대해서 살짝 건드려주곤 했죠. 너무 감사했어요.
<오감도>에서 허진호 감독님의 작품에 출연하셨죠. 허진호 감독님의 작품이라 점만으로도 멜로 연기를 경험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아니었을까요?
<오감도>촬영은 4일 동안 했는데 아직 저에겐 짧은 시간에 그 배역으로 빠져들 수 있는 노련미가 없었기 때문에 쉽지 않았어요. 그저 허진호 감독님을 믿고 멜로라는 장르를 배운다는 생각으로 임했기 때문에 어떻게든 해보려 노력했던 거죠. 그래서 사실 <오감도>인터뷰 때는 기자 분들에게 재미있게 말해드릴 수 있는 게 별로 없었어요.
<오감도>에서 귀신 역할을 맡았고, <별빛 속으로>에서도 귀신 역할이었는데, 이번에 <요가학원>도 사실 귀신에 가까운 역할이었죠. 아무래도 차수연 씨의 인상이 주는 형용할 수 없는 느낌이 있는데요. 아무래도 저는 차수연 씨의 눈동자가 그런 감상을 주는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사실 기자 분들이 도리어 저한테 자신의 신비스런 이미지가 어디서 나오는 거 같냐고 물어보시곤 하는데 저도 지금 말씀하신 것처럼 아마 그런 게 아닐까 생각해요. 제 눈동자에서 묘하고 신비스러운 이미지가 나온다는 말씀들을 많이 하시니까요.
본인이 대답하기엔 좀 쑥스러운 답변이잖아요.
저는 했는데! (웃음) 사실 감독님들께서 다들 그렇게 얘기하셔서 제가 스스로 캠으로 저 자신을 찍어봤어요. 그렇게 보니까 다른 사람들에 비해서 제 까만 눈동자가 흰자 부분을 좀 더 많이 차지하고 있더라고요. 그게 좀 묘한 느낌으로 발산되는 거 같아요. 그래서 큰 눈이 아닌데도 좀 더 커 보이게 만들어주는 효과도 생기는 거 같고요.
사실 지금까지 신비스럽거나 차갑고 속 모를 느낌의 이미지를 어느 정도 각인시킨 측면도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 이미지에서 벗어난 캐릭터를 해보고 싶은 생각이 든 적은 없나요?
아니요. 저는 저에게서 제일 처음으로 보여지는 이미지가 그런 것이라면 먼저 그런 이미지로 성공적인 연기를 보여주고 싶어요. 제가 잘 하고, 잘 보여줄 수 있는 이미지가 정확하게 보이면 이제 또 다른 이미지를 제 안에서 찾으려고 하겠죠. 예를 들어서 정우 오빠는 <추격자>에서 살인자 역할로 성공했잖아요. 그 이후로 살인자 역할은 이제 안 들어온다고 해요. 그런 것처럼 저도 차갑고 신비스런 이미지로 정확히 쐐기를 박아주면 그 다음엔 감독님들께서 또 다른 이미지의 저를 원하지 않으실까요? 제 안엔 또 다른 이미지가 있기 때문에 그 때 그런 이미지를 보여주면 되겠죠.
이윤기 감독의 신작 <티파니에서의 아침을>촬영 때문에 바쁘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벌써 <국가대표> 이후로 4편의 영화에서 하정우란 이름이 보이더군요. 이미 촬영이 끝난 <페럴렐 라이프>를 비롯해서 현재 촬영 중인 <티파니에서의 아침을>, 그리고 나홍진 감독의 신작 <황해>와 전계수 감독의 차기작으로 예정된 <러브 픽션>까지, 정말 충무로에서 가장 바쁜 배우라 해도 과언은 아닙니다. (웃음) 쉴 틈도 없어 보이는데 체력적인 부담은 없나요?
체력적인 문제는 없어요. 일단 저와 프로덕션끼리 서로 약속했던 부분만 잘 맞아떨어져서 계획적으로 촬영이 준비되고 이뤄지기만 한다면 스케줄은 물리적으로 전혀 무리 없이 돌아가니까요. 중점적으로 생각하는 건 지난 캐릭터를 복제하지 않고 잘 변주해 나가면서 새로운 캐릭터를 창조해낼 수 있는가라는 부분이죠. 배우로서 얼마나 소비되지 않느냐가 최고의 관건이랄까. 상업적인 설득력을 염두에 두면서도 기존에 있었던 영화보다 새롭거나 실험적인 프로덕션, 제작 방식을 생각하면서 작품을 선택하고 있어요. 그런 의미에서 <러브 픽션>은 굉장히 새로운 영화에요.
어떤 점에서 말인가요?
대사의 템포나 리듬, 톤 자체가 굉장히 만화적이에요. 우리가 영화상에서 만나는 일반적인 캐릭터들의 대사 속도보다 2배 정도 빠르거든요. 과거 ‘하워드 혹스’의 작품이나, ‘우디 알렌’의 영화에 나오는 인물들의 대사만큼이나 빨라요. 그런 점에서 유니크(unique)한 면이 있죠. 지금은 제작이 딜레이(delay)돼서 언제 촬영에 들어갈지 미지수지만 분명히 언젠가는 꼭 전계수 감독님과 찍어내고 싶어요.
지금 찍고 있는 <티파니에서 아침을>로 이윤기 감독과 두 번째 만났고, 이미 <황해>를 통해 나홍진 감독과 두 번째 작품을 약속한 상태입니다. 그리고 윤종빈 감독이나 김기덕 감독과도 이미 두 차례씩 작업했죠. 한 감독과 다시 만나서 작업하는 경우의 장점을 그만큼 많이 느끼지 않았을까 싶은데요.
물론 엄청난 신뢰가 생기죠. 전작을 통해서 지지고, 볶고, 많은 이야기를 주고 받고, 모니터를 통해서, 어떤 시간과도 바꿀 수 없는 많은 부분을 공유했으니까요. 감독이 창조해낸 세계와 내가 연기했던 인물이 있는 한편의 영화를 우리가 만든 거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이젠 전반전 없이 본론으로 들어가서 베스트를 뽑기 위해 같은 단계에서도 더 위에 있는 문제들을 움직이게 만들 수 있는 장점이 있는 거죠. 거두절미 할 수 있는.
나홍진 감독의 차기작은 언제 결정하신 건가요?
<추격자>를 끝내고 나서 나홍진 감독님과 윤석이 형하고 같이 또 다른 그림을 그려보면서 이런 거 하면 재미있겠다 싶었던 게 있었는데 그게 <황해>였어요. 작년 여름에 결정했고 그때부터 지금까지도 생각해오면서 준비하고 있죠. 당장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부터 준비해야지, 하는 게 준비가 아니잖아요. ‘구남’이라는 인물이 어떤 인물인지, 감독님을 만날 때마다 얘기를 나눠가면서 장기적으로 자연스럽게 준비를 해나가는 거죠. 이렇게 하다 보면 1년에 많게는 주연작 3편 정도는 충분히 할 수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해요.
지속적으로 몸을 달궈놓아야 할 것 같습니다. 한편으론 또 일상 안에서 몸을 식히는 것도 중요할 것 같고요. 배우로서 에너지를 끊임없이 소비하는 만큼 일상에서 재충전할 수 있는 것도 중요하지 않을까요?
그래서 배우 하정우로서의 삶과 김성훈으로서의 삶에 분명한 차이를 두려고 해요. 예를 들면 연예인이 아닌 일반적인 친구들과 축구팀을 만들어서 조기축구회 아저씨들과 부딪혀보기도 하고, 그 사람들과 같이 밥도 먹는 건 그 안에서 많은 깨달음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죠. 3~40대, 많게는 50대까지, 지금의 남자들이 무엇을 얘기하는지, 무엇을 통해서 삶의 체증을 해소하는지 직접 느끼고 저도 30대 초반의 남자로서 같이 얘기를 나누다 보면 많은 것들이 리프레쉬(refresh)되는 것 같아요. 그만큼 발란스(balance)를 맞춰주는 게 가장 중요하고 이런 생활을 통해 그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다작을 하는 만큼 차기작 선택에 있어서 전작과의 캐릭터적 차별성이 중시되지 않을까 싶군요.
매번 다른 거 같아요. 어떤 배우가 ‘메소드(method)’ 연기를 한다 했을 때, 메소드에도 여러 가지 종류가 있잖아요. 또 다르게 ‘스타니슬라브스키(Stanislavski, 1863~1938)’식의 연기를 할 수도 있고요. 자기의 경험으로 회귀해서 그 안에 놓인 자신만의 무언가를 끄집어내서 표현할 수도 있고, 연기 하나하나를 기술적인 표현 방법으로 구사하며 캐릭터를 만들어가는 방법도 가능하죠. 우는 장면에서도 제 감정을 끌어올리기 보다는 철저하게 기술적으로 우는 연기 자체를 만들어내는 거에요. 이렇게 다양한 표현 방법을 염두에 두는 건 최소한 1년 이상의 장기적인 플랜을 갖고 있기 때문이죠. <국가대표>라는 상업적 작품이 여름에 떡 버티고 있기 때문에 그 이전에 <보트>라는 저예산 예술영화를 찍어도 보완될 수 있는 측면이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그런 조합을 생각하고 나니 더욱 큰 무리는 없겠다는 생각도 들고.
종종 보면 상당히 본능적으로 연기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지만 실제로는 상당히 분석적으로 연기에 접근한다고 들었습니다. 단지 캐릭터의 역할 뿐만 아니라 신 자체의 분석을 통해서 그 안에서의 역할 자체의 높낮이를 제한할 만큼 계산적인 연기를 한다고 하더군요.
아무래도 감독의 연출 스타일에 따라서 연기적 표현 양식이 달라지는데요. 홍상수 감독님은 좀 예외적인 케이스지만, 윤종빈 감독님, 이윤기 감독님, 김영남 감독님, 다들 극사실적인 연출 방식을 선호하는 분들이잖아요. 그런 영화 안에서 배우가 해야 할 것들이 굉장히 많아요. 일단 감독의 연출 스타일이 그렇다면 배우는 철저히 도구이자 오브제(objet)로서 관객들에게 그 신을 잘 설명하고 전달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봐요. 감독들이 컷을 쪼개는 스타일에 따라서 종종 빈 공간이 많이 생기기도 하는데, 쉽게 얘기해서 마가 뜨는-일반적으로 촬영 현장에서 대사와 대사, 액션과 액션 사이에 시간적 공백이 생길 때 ‘마가 뜬다’고 표현한다.- 부분이죠. 그 부분에서 관객에게 얼마나 효과적인 연기를 보여줄 수 있는가가 중요하다고 봐요. 윤종빈 감독님은 원신원컷을 너무나 좋아하는데 종종 인물을 따라잡으며 팬(pan, 카메라를 좌우로 회전시키는 기법)을 하기도 하거든요. 그러면 팬을 하기까지 1, 2초 정도 마가 뜨는 장면이 생겨요. 그렇게 마가 뜨는 장면에서 감독이 원하는 범위를 벗어나지 않고 내가 할 몫이 무엇이 있을지 생각하게 되는 거죠. 내가 그 안에서 해야 할 일들이 많이 있는 것 같거든요. 캐릭터가 변질되지 않고, 스토리가 피해 받지 않게끔 시나리오 상에 명시되지 않은 애드립을 넣어줘도 될 것 같아요. 그 지점에서 내 개성을 조금 더 드러내는 것이 허용되는 것 같고요.
영화에 대한 이해가 없고서야 불가능한 작업이기도 하겠죠. 직접 찍은 단편 영화가 한편 있다고 들었습니다. 직접 카메라를 잡아본 연출적 경험이 연기적 관점에 작게나마 일조한 측면이 없을까요?
어떤 신하고 신을 유기적으로 연결해서 극적 흥미를 높이면서 찍고자 한다면 그 신에서 마지막 컷이 무엇이었는지, 어떻게 연기를 끝냈는지 신경 쓴 후에 그 다음 신의 첫 번째 컷을 구상하죠. 예를 들어서 완전 풀샷으로 끝나는 신이 있어요. 그 풀샷에 제 모습이 담겨있고, 그 다음 신에서 윤석이 형의 타이트 바스트나 타이트 클로즈업이 들어가요. 그럼 여기서 내가 어떻게 연기해줘야 윤석이 형의 타이트 샷이 잘 붙겠다 계산하는 거죠. 캐릭터의 연기를 떠나서 영화적 재미를 주는 극적 연출의 영역까지 고려하는 연기가 가능하면 더욱 극적으로 신이 넘어가는 효과가 생겨요. 아무래도 그런 걸 느낄 수 있었죠.
하지만 모든 연기가 정확하게 계산과 맞아떨어질 수는 없는 일일 겁니다. 때때로 그런 계산의 오차를 메우기 위한 본능적인 반응이 필요할 때도 있을 거고요.
영화 안의 신마다 초(初)목표가 있잖아요. 각 신마다의 흐름에 따라서 발란스를 맞추는 가운데서도 각 신마다의 초목표에 도달하기 위해서 방법과 수단을 가리지 않고 다양한 시도를 하는 거죠. 계산적인 합을 잘 맞춰서 도달해야 할 신이나 장면이 있고, 어떤 건 그냥 현장에서 그때 그 기분에 한번 맡겨보자, 하게 되는 지점도 있는 거 같아요. <추격자>에서 심리 분석관과의 대질 신은 정확히 3번 째 촬영일에 가서야 촬영할 수 있었어요. 왜냐면 처음엔 그분하고 뭔가 톤이 안 맞았고, 두 번째는 제가 못했어요. 이상했거든요. 그 장면만큼은 계산하지 않았던 장면인데 그 전에 파출소에서, “안 팔았어요, 죽였어요.”하는 장면이나 그 다음에 이 형사가, “그 여자 어떻게 했어.” 물으면 정으로 찍고, 아킬레스를 따서 어쩌고 하는 장면, 그리고 여자 형사에게 냄새 비리다고 하는, 어떻게 보면 중요 포인트가 반복되고 있어요. 그래서 이건 다 철저하게 준비하고 템포까지 계산하면서 연기했지만 마지막에 클라이막스 지점에선 어떤 계산이 설 수 없잖아요. 그래서 그건 굉장히 힘들었어요. 그래서 이건 그냥 현장 가서 내 느낌대로 찾아가서 해봐야겠다, 싶었죠. 계산대로 해보면 뭔가 너무 작위적이 될 거 같아서요.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너무나 흔한 취조 신이 될 수도 있으니까요. 사실 꽃이죠. 스릴러의. (웃음) 그렇기 때문에 무모할 수도 있겠지만 자신 있게 내 필대로 가봐야겠다, 했는데 두 번이나 안된 거에요. 두 번째엔 감독님한테 정말 정중하게 오늘 못 찍겠다 사과드리기도 했죠. 한번 테이크를 갔는데 하고 나니까 너무 작위적이라 민망한 거에요. 그러니까 감독님이, “정우, 너 이제 어떻게 할래. 그만 찍을까.” 하시길래 마지막 한번 더 기회를 달라고 했죠. 결국 그 날 안 찍고 세 번째 날에 촬영장에 갔는데 사실 그날도 느낌이 별로 안 좋았어요. 몸 상태도 안 좋았고. 그런데 거기서 딱 느낀 게, ‘그래. 지영민도 지금 피곤하겠지. 그렇게 시달리고 밤을 새고 얻어터져서 지금 새벽 4시까지 왔는데, 지치겠네. 얘기하기도 싫겠네. 나도 연기하기 싫은데, 부담도 되고, 이걸 써봐야지.’ 했는데 통한 거에요.
<국가대표>는 시나리오도 보지 않고 작품을 결정했다고 들었습니다. 내심 걱정되는 바는 없었나요? 그런 지점과 비슷한 걱정은 있었죠. 시나리오 자체가 많이 거칠었거든요. 스토리는 분명하고, 어떤 상황인지는 알겠는데 그려지는 인물들이 많아서 그런지 조금 산만한 부분들이 있었고요. 하지만 김용화 감독님에 대한 100%신뢰가 있었고, <국가대표>가 상업영화로서 분명한 미덕이 있을 것이란 확신이 있었어요. 그리고 예전에 스키점프를 소재로 한 다큐멘터리를 본 기억에 분명히 이 종목을 영화로 만든다면 관객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줄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어요. 시나리오가 거칠긴 하지만 그걸 100배 이상 덮어줄 장점이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죠. 그래서 처음에 감독님한테 시나리오를 받기 전에 이런 소재에 대한 얘기를 듣고도 충분히 도전해볼 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다고 판단했고요.
사실 <국가대표>는 하정우 씨가 찍은 첫 상업영화라 명명해도 될 것 같습니다. <추격자>가 5백만 관객을 동원하며 상업적인 인정을 받았지만 사실 <추격자>가 처음부터 그 정도로 대단한 인지도를 얻을 것이란 기대감에서 기획된 영화는 아니니까요.
(손을 모으면서) 그렇죠.
그런 점에서 <국가대표>는 전작들과 다른 연기적 접근성이 요구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김용화 감독 같은 스타일에서는 분명 달라져야죠. 일단 컷 수가 너무 많고 편집에 따라서 인물의 입체감이 너무 많이 달라지니까요. 그랬을 땐 최대한 표현을 자제하고 노멀하게 감정의 발란스를 유지해야죠. 일단 과잉수준으로 넘어서면 안 돼요. 이렇게 작품 색깔이나 연출 스타일에 맞게 변할 수 있다면 우려할만한 조건들을 이겨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고요.
그런 점에서 애초에 상업영화임을 인지하고 작품에 들어간 영화는 <국가대표>가 처음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은데요. 그런 이해가 연기에 미치는 영향력이 없었을까요?
아까도 말했던 것처럼 <국가대표>에서는 내러티브 위로는 절대 나오면 안 된다는 원칙이 있었어요. 철저하게 기능적인 역할이라 생각했죠. 다른 배우들을 위해서 희생했다거나 그런 의미가 아니라 그냥 앙상블을 위해서 노력했어요. 표면상으로 중심축은 저였지만 영화의 내러티브 안에서 인물의 변화를 표현하는 절반은 사실 방 코치의 몫이기도 했고요. 이런 발란스를 생각했을 때, 사람들과 부딪히고 갈등 관계를 그리는 각 신마다 수위조절을 어떻게 하느냐가 관건이었어요. 두 번째로 <국가대표>엔 유난히 바스트 샷이 많았고, 김용화 감독의 영화는 음악이 유난히 많은 편이기도 하고, 교차편집도 굉장히 많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제가 조금 더 튀어 보여서 개성이 드러내면 굉장히 언발란스해질 것 같았죠. 그만큼 감정을 최대한 비워내려고 노력했어요. 장면에서 흐르는 음악이 제 감정의 옷처럼 입히게끔, 혹은 편집이나 영화적 장치들로 과장시킨 감정들이 저를 거치면 과잉이라고 보이지 않게끔 제가 서 있는 것, 제가 쳐다보는 것, 이런 행위 속에 담길만한 감정도 비워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최대한 덧붙이지 않으려고, 뭔가를 하지 않으려고 노력했죠. 프레임 안에서 후반 작업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여지나 여백을 열어놓으려고 했고요.
<국가대표>는 연기 이전에 스키점프 선수로서의 자태를 몸에 익히는 작업이 배우들에게 먼저 요구되는 스포츠 영화입니다. 완벽한 기술력을 몸으로 전시할 수 있을 때 설득력 있는 연기도 가능한 영화니까요.
사실 스키점프라는 장면을 담아내기 위해 배우가 맡은 역할은 10%정도 뿐이었어요. 어차피 선수들이 스키점프 장면에서 대역을 맡았고, 배우들은 점프하기 전까지의 모습을 스키점프 장면에 잘 연결시키는 역할이었을 뿐이니까요. 하지만 최대한 어깨 높이는 맞춰줘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스키를 들고 있는 모습이나, 부츠를 만질 때조차 어색하지 않아야 된다고 생각했죠. 점프복을 내 몸이 익숙하게 느끼도록 노력했어요. 그래서 직접 점프복을 갖고 다니면서 집에서도 점프복을 입고 러닝머신을 많이 뛰었고요. 심지어 부츠도 갖고 다녔고. 그런 생활적인 익숙함까지 일반관객들이 디테일하게 느낄 순 없겠지만 거기서 중요한 건 지금 배우가 선수로서 연기하는 것에 대해서 동기 부여를 주는 거죠. 결국 이런 게 대사 연기나 다른 부분에서 분명히 파급 효과를 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고요.
그것 역시 메소드의 기본적인 방식이죠.
그런데 사실 모든 연기라는 게 다 그런 거 같아요. 로버트 드 니로가 <택시 드라이버>를 위해서 3개월 간 택시 운전을 했다는데 그걸 하고, 말고에 따라서 과연 어떤 연기적 차이가 있었을까요. 제 생각에 제일 큰 차이는 그렇게 3개월을 했기 때문에 택시 운전자에 대해서 알 것 같다는 자신감과 확신이 생기고 연기적으로 더 확실한 표현이 가능하게끔 동기부여를 형성해주지 않았을까라는 거죠. 그런 심리적 요인이 가장 큰 효과라고 생각해요.
사실 <국가대표>의 밥은 전작에서 맡았던 캐릭터들보다 평면적인 캐릭터란 생각이 듭니다. 감정의 표현에 있어서도 보다 직설적인 느낌이 들고요. 사실 하정우 씨가 좀처럼 꿍꿍이를 알 수 없는 캐릭터들을 연기해온 덕분이기도 하고요. (웃음)
김용화 감독님의 훌륭한 점 가운데 하나는 매 장면마다 디렉션의 스타일이 다 다르다는 거에요. 감독이면서도 철저하게 관객의 입장에서 쇼트를 바라보고 있는 거죠.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사랑하는 남자가 오랜만에 돌아와서 정말 행복해하는 여자의 표정을 비추는 쇼트가 있는데 감독이 처음에 여주인공한테 그 표정을 주문했을 때는 원했던 표정이 잘 안 나왔대요. 그래서 감독이 “당신이 정말 사랑하는 사람과 성관계 후에 오르가즘을 느낀다고 상상해보고 그 표정을 한번 만들어봐라”. 그랬더니 여배우에게 기막힌 표정이 나왔다고 하죠. 그런 것처럼 김용화 감독도 매 적재적소마다 디렉션의 스타일이 달라요. 그렇기 때문에 영화에 현실적인 요소도 생기고, 배우가 자신의 연기를 끌어내게끔 움직일 수 있게 유도하는 거 같아요. 예를 들어서 <국가대표>엔 기존에 제가 했던 연기적 표현 방식들과 달리 감정이 굉장히 풍부해져서 간지러운 부분이 있죠. 마지막에 버스를 내린 뒤 공항에서 나와서 눈물 흘리는 장면이 있는데 사실 전 그러기 싫다고 했어요. 솔직히 너무 간지러웠거든요. 공항에서도 과연 그렇게까지 감정을 표현해야 하는지, 처음에 감독님에게도 그렇게 질문했어요. 그런데 감독님께서 말씀하셨죠. “안다. 하지만 우리가 모르는 많은 대중들은 이렇게 연기를 해줘야 터칭(touching)을 좀 받는다.” 그래서 납득이 했어요.
<추격자>나 <멋진 하루>처럼 두 명 정도의 인물을 중심으로 서사가 진전되는 영화는 배우들의 반응 하나하나가 묘미가 됩니다. 그러나 <국가대표>처럼 많은 인물이 등장하는 영화에서는 전체적인 조화가 중요하죠. 다양한 캐릭터들이 모여서 이루는 입체감이 관건이기도 하고요. <국가대표>를 보면서 <비스티 보이즈>가 떠오르기도 했는데 그건 아무래도 리더라는 역할 때문이 아니었나 싶어요. 그런데 <비스티 보이즈>는 매니저로서의 느낌이라면 <국가대표>는 맏형 같은 느낌의 차이가 있었죠. 사실 현장에서 또래 배우들 가운데 실제로 맏형 노릇을 했을 거 같은데요. 선배로나 형으로서나 후배들을 지켜보는 입장이 어땠을지 궁금하군요.
같이 연기하는 친구들과 4~5년 정도의 나이차가 있었는데 그만큼 제 나이가 많은 거 같기도 하지만 어떻게 보면 비슷비슷한 느낌이었어요. 그래서 같이 연기하는 친구들이 저를 선후배가 아닌 동료나 친구로 느낄 수 있길 바랬고요. 그들을 도와준다기 보단 편하게 같이 어울리려고 노력했어요. 도리어 그들을 더 높여주고, 그들의 얘기를 들으면서 조언을 한번 구해보기도 하려고 노력했죠. 어쩌면 <멋진 하루>에서 느낀 바가 많았기 때문에 저도 그런 게 아닌가 싶어요. 도연 누나가 저를 계속 서포팅(supporting)해줬다고 느꼈는데 제가 도연 누나로부터 느꼈던 걸 후배들에게 전해주고 싶었거든요.
아무래도 본인이 경험했던 부분이라 더욱 그 중요성을 느낄 수 밖에 없겠죠. <추격자>와 <멋진 하루>의 하정우 옆에 김윤석과 전도연이라는 좋은 배우가 있었다는 사실이 어쩌면 정말 엄청난 기회였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히트>에서 고현정 누나도 마찬가지였어요. 덕분에 어떤 캐릭터로 만나서 같이 어깨를 나란히 한다기 보단 자연스럽게 형, 누나, 하면서 인간적인 유대감을 형성하는 게 어쩌면 배우들의 앙상블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키가 아닐까 생각이 들었죠.
하정우 씨 스스로도 자신과 가장 닮은 캐릭터는 <멋진 하루>의 병운이라고 밝혔던 것으로 아는데 정말 실질적으로 병운이 닮았다는 생각이 드네요.
아, 그래요? (웃음)
제스처라던가, 세세한 몸의 움직임 자체에서 발생하는 뉘앙스가 언뜻 병운을 연상시켜요. <비스티 보이즈>에서의 대사처럼 느낌이 있어요. (웃음) 그런데 사실 연기는 자신이 지니지 못한 것을 창작하는 과정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자신을 고스란히 투영하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자신의 의도와 무관하게 자신이 모르는 것들을 연기를 통해 발견하게 되는 경우는 없었나요?
(손뼉을 치면서) 아! 지금 갑자기 문득 어떤 생각이 떠오르는데, 어쩌면 <국가대표>의 밥, <보트>의 형구, 그리고 대표적으로 <추격자>의 지영민, 이 세 인물은 사실 제 힘으로 연출해낸 캐릭터 같아요. 그리고 <비스티 보이즈><멋진 하루>는 그냥 저에게 있는 그대로 했던 거 같고요. 제가 요즘 채플린 얘기를 많이 하는데 <모던 타임즈>(1936), <위대한 독재자>(1940), <키드>(1921), 이런 작품들을 보면 채플린이 감독이기도 하면서 본인이 직접 그 인물을 연출하기도 하잖아요. 저도 그럴 수 있다면 되게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말 그대로 캐릭터 자체를 하나의 창작으로서 이해하는 방식이라고 해도 될 것 같군요. 사실 채플린은 방랑자적인 캐릭터를 계속 연출하고 사용해왔죠. 하지만 <라임라이트>(1952)같은 경우에는 그냥 있는 그대로 늙은 인간 채플린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줬단 말이에요. 그랬을 때 이런 양면성이 공존해서 캐릭터를 만들어나갈 수 있다면 정말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물론 전자의 부분은 오해의 소지가 생길 수 있고, 복제 논란이 많을 수 있을 거에요. 그래서 관객들이 그런 의미를 좀 알고 제 연기를 본다면 굉장한 재미가 있을 거 같아요. 감히 말씀 드려보자면 이 시대의 채플린, 이런 캐릭터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면 좋을 거 같아요. 짐 캐리가 <에이스 벤추라>같은 영화에서 보여준 재미난 부분들이 있잖아요. 그 배우의 어떤 한 부분이 그렇다는 것을 알고 영화를 봤을 때 더욱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캐릭터가 아닐까요. 너무나 영화적인 캐릭터니까요. 도리어 저의 것을 보여주는 게 또 영화적일 때도 있고요. 그런 의미에서 <추격자>의 지영민, <보트>의 형구, <국가대표>의 밥 같은 경우는 저의 또 다른 다채로움이 반영된 캐릭터라는 점, 만약 그걸 알고 저와 제 영화를 보신다면 충분히 또 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사실 <국가대표>의 밥은 어머니에게 버림받았다는 점에서 <보트>의 형구와 교차되는 지점이 있는 캐릭터입니다. 이렇게 종종 지난 캐릭터와의 연속성이 느껴질 때가 있을 것 같습니다. 다만 하정우 씨처럼 한 작품을 끝내고 바로 차기작에 들어가는 경우, 이렇게 전작의 캐릭터와 연관성이 존재하는 캐릭터를 연기할 때 캐릭터적으로 기시감이 크지 않나요?
사실 제가 연기한 캐릭터마다 거의 다 비슷한 점이 있는데요. 전부 다 약간 방랑자 같단 생각이 들어요. 쉽게 예를 들자면 집이 없고, 가족이 불투명하고, 인물의 성장환경이 좀처럼 노출되지 않으면서, 그런 식으로 뭔가 여지가 있어 보이는, 개인적으로 그런 캐릭터를 연기하면 재미를 느끼는 거 같아요. 영화를 찍을 때 저도 제가 재미있어야 연기를 할 수 있거든요. 만약 그런 연관성이 없다면 재미가 없을 거에요. 아니면 반대로 완전히 다른 뭔가가 있어서 느껴지는 재미도 있겠죠. 앞으로 다른 캐릭터를 만나보고 찾아 보면서 그런 재미를 열어나가다 필모그래피가 좀 쌓이다 보면 그 때 또 한번 정리해서 얘기할 수 있는 부분이 있겠죠.
연기뿐만 아니라 피아노, 그림, 무용, 등 정말 다양한 분야에 관심이 많고 어느 정도 실력을 갖추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아무래도 그런 관심은 호기심에서 출발하지만 적당한 관심에 머무르는 경우도 많죠. 그래서 어느 정도 자기 기준 안에서 적당히 성취를 이뤘다 싶으면 쉽게 만족하고 손에서 놓기도 하고요. 마치 이건 이 정도면 됐어, 라는 식이랄까요. 하지만 하정우 씨에게 연기는 아무래도 단순한 관심 이상의 욕망처럼 보입니다. 성취에 대한 깊이 자체가 다르다고 할까요. 어쩌면 다른 관심들이 그만큼 그 연기적 성취를 위해 할애되는 부차적 노력이 되는 것 같기도 하고요.
다 굉장한 연관성이 있어요. 쉬운 얘기로 영화를 찍거나 배우로 살아가는 건 종합예술을 하는 거잖아요. 제가 그런 순수예술에 많이 기대고 영감을 얻게 되는 거 같아요. 아까 말씀하신 것처럼 어떠한 지점에서 더 이상 파고들지 않는 건 충분히 거기에 대해서 얻은 바가 충분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고요. 만약에 미술을 한다, 사진을 찍는다, 그림을 그린다, 그러면 그 가운데서도 어떤 일부분에서만 영감을 얻어요. 어쩌면 그게 다 저를 치우치지 않게 하는 지점일지도 모르죠. 그러한 것들이 오로지 제가 연기를 하고 영화를 찍는데 집중할 수 있게 도움이 되는 것들이죠. 만약 주객이 전도돼서 제가 그 발란스를 놓치고 다른 것들에 빠져들면 일단 묘미는 있겠죠. 가치는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연기가 아닌 다른 분야에 치우치는 건 제가 생각하는 방향 안에서 빗나가는 부분이기 때문에 단지 그것들은 제가 계속 연기적으로 영감을 받고 재료를 얻을 수 있는 부분으로서 가치가 있어요.
사진을 찍는다고 하셨는데 왠지 풍경보단 인물을 더 좋아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아무래도 표정에서 느껴지는 다양성이 캐릭터의 내면을 표정으로 구사하는 배우에겐 좋은 영감을 부를 것 같거든요.
인물 사진을 굉장히 좋아해서 종종 사람들을 찍으러 가요. 많이 찍었고 많이 확보하고 있어요. 종종 어떤 인물들을 봤을 때 특이점들을 많이 발견하게 되는 거 같아요. 사실 배우가 가장 멋지게 보일 때는 그 배우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무표정하게 있는 지점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저한테 연기적 영향력을 굉장히 많이 주셨던 대학 교수님한테도 그런 얘기를 들었거든요. 배우는 무표정의 힘이 제일 중요하다. <대부3>에서도 알파치노가 시칠리아로 넘어가서 아들의 연주를 회상하는 장면 있잖아요. 알 파치노는 아무 것도 안 해요. 선그라스 낀 얼굴로 무표정한 알 파치노의 얼굴에서 회상 장면으로 넘어갔다가 다시 알 파치노 컷으로 돌아오면 안경 벗고 가만히 있죠. 아까 초반에 말씀 드린 것처럼 어쩌면 그 무표정이 그 회상 장면을 넣을 공간을 마련해주는 거라고 볼 수도 있고요. 어쩌면 무표정이라는 건 그 사람의 제일 솔직한 모습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얼굴의 안면근육을 다 풀고 가만히 있는 게 좋아요. 사진을 찍을 때도 사람들에게 최대한 무표정으로만 찍어달라고 얘기하기도 하고요. 그 사진들을 보면 너무 재미있어요.
어쩌면 자신도 몰랐던 자신의 얼굴을 발견할 때라고 할 수도 있겠죠.
맞아요. 사실 우린 어떤 강박 속에 있는 거 같아요. 그림을 그릴 때 사람들은 잘 그려야 된다라는 말을 무의식적으로 실사와 똑같이 그려야 된다라는 강박으로 이해해요. “그림 잘 그리세요?”라고 물어보면, “아, 그림은 젬병이에요.” 어떻게 보면 그림 자체가 그냥 자기 마음대로 그리는 거잖아요. 자기가 생각하는 자동차를 그리고, 자기가 생각하는 꽃을 그리는 건데, 어렸을 때부터 잘 그리고, 못 그리고, 에 대한 말도 안 되는 기준을 갖고 있는 거 같아요. 전 그게 말도 안 되는 거라고 생각해요. 연기도 마찬가지 같아요. 분명히 모든 사람이나 모든 배우들이 자기만의 매력 포인트를 갖고 있는데 그걸 어떤 이상한 기준에 자꾸 맞춰가려고 하는 거 같거든요. 배우로서 어떤 지점에 도달하기 위해선 생각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해요. 자기만의 독특한 개성을 자신만의 매력 포인트로 삼아야죠. 그림을 그린다면 제가 생각하는 그림을 계속 그려나가는 거에요. 그 안에서도 자신과 엄청나게 싸우게 돼요. 내가 그리는 이 꽃이 남이 봤을 때 꽃이 아닌 거 같은데, 이 색은 남이 보면 어딘가 대비가 맞지 않다고 말할 거 같은데, 생각하죠. 하지만 결국 그게 풀리게 되면 제가 원하는 걸 자유로운 의식의 흐름대로 그릴 수 있는 결과에 도달하게 돼요.
누군가의 기준을 쫓아가기 전에 자신의 기준에 따라 모든 걸 해석할 수 있다는 말인가요?
예. 그렇죠.
사실 전작들은 대부분 감정적 여운을 남기고 끝나는 경우가 많았죠. 그만큼 배우 스스로도 감정적인 해소를 느끼지 못하고 영화에서 빠져 나와야 하는 경우가 많았을 것 같습니다. <국가대표>는 결말의 스키점프 신을 통해 모든 감정을 증발시키는 느낌입니다. 배우에게도 그만큼 명확하게 감정을 해소해주는 쾌감이 있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
맞아요! 그랬어요. 그래서 그 마지막 장면을 너무나 좋아해요. 스키점프로 날아가는 장면이나 그 장면에서 나오는 음악이나, 뭔가 해소됐다는 느낌이 들거든요. 감독님은 밥이 자기 인생에 통찰을 했고 모든 걸 받아들였다고 하셨는데 저도 개인적으로 이번 <국가대표>를 통해서 많은 걸 받아들인 부분이 있었어요. 밥이라는 인물을 만나고 나니까 제가 이전까지 연기한 캐릭터들은 너무나 방황하거나 방랑하면서 겉돌지 않았는지 고민하게 됐어죠. 이젠 좀 더 제 자신에 대한 자신감을 갖고 제대로 된 직업도 있는 캐릭터를 만나야겠다 생각도 들었고요. 어쩌면 그 장면 자체가 주는 속 시원함이 지금 저에게 어떤 쉼표가 될 수 있는 게 아닌지, 배우로서 터닝 포인트가 될 수 있는 건 아닌지, 인생의 1라운드를 정리할 수 있는 지점은 아닌지, 이런 생각이 들어요.
촬영 중에 큰 부상도 있었다고 들었는데요.
사실 그 마지막 장면이 촬영 때 살이 제일 많이 올라왔던 신이었어요. 살 퉁퉁 쪄가지고, 감독님께서 “너 때문에 컷이 안 붙는다. 어떻게 겨울하고 여름 사이에 8kg차이가 나냐.” 하소연하셨죠. (웃음) 제가 그때 팔이 부러져서 한달 반 동안 운동도 못하고 스트레스 받다 보니까 먹기만 했거든요. 그래도 다행인 게 그 솔트레이크 장면만 남았었죠. 변명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시간이 많이 흘렀구나, 하는 느낌이 있잖아요. (웃음)
<두번째 사랑>같은 경우는 미국에서 영어로 연기를 했고, <보트>에서는 일본에서 종종 일본어로 대사를 하기도 합니다. 사실 국내 배우가 타지에서 타국어로 연기를 하거나 자국어를 쓰는 외국배우와 호흡을 맞춘다는 건 흔한 기회는 아니죠. 어떤 면에서는 도전에 가까운 일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되게 단순하게 받아들인 거 같아요. 일단 제가 새로운 경험을 마다하지 않는 거 같고요. 어쩌면 지금까지 무모하게 계속 추진해나가고 있었는데 이젠 다져나가야 할 시기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 경험을 축적해야 되고 이를 통해 뭔가를 더 학습해나가야 된다고 생각하니까요. 굉장히 웃긴 얘기일지 모르지만 나중에 뭔가 정말 승부수를 던져야 할 때를 위해서 지금 나이부터 계속 쌓아나가야 되는 게 아닌가 싶어요. 그런 의미에서 그런 새로운 경험들을 마다하지 않고 도전해 나가야 되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도 들어요.
<국가대표>가 개봉했으니 이제 하정우 씨가 또 한번 떠나 보낸 작품이 됐다고 해도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지금 <티파니에서 아침을>을 찍고 있으니 다시 새로운 작품을 맞이한 셈이죠. 이렇게 항상 영화를 보내고 맞이하는 시기가 짧은 만큼 전작과의 친밀감을 덜어내는 것이 새로운 작품에 임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관건이 아닐까요?
제 몸이 재료라면 재료를 달궈놓은 상태에서 또 시작할 수 있는 셈이니까 그것만으로 되게 좋은 거 같아요. 사실 저는 한 작품을 끝내고 새로운 작품에 들어가는, 계속 이렇게 작품을 거듭하는 부분에 있어서 좋은 기억을 갖고 있어요. 옛날에 <카르멘>이라는 연극을 했었는데 그때 엄청난 상처를 받았었어요. 친했던 선배가 공연을 보고 나서 막말을 하는 거에요. “너 연기하는 거 보고 정말 실망했다. 난 네가 연기를 좀 하는 줄 알았는데.” 민망해서 쫑파티도 못 갔어요. 그때 연출자하고도 사이가 안 좋기도 했고, 어린 나이에 여러 가지로 상처를 너무 많이 받았죠. 대인 기피증까지 올 정도였어요. 그런 피해의식이 있었는데 그걸 풀어준 게 <고도를 기다리며>였어요. 그렇게 위축된 상태에서 소극장 공연 한번 재미있게 해보자는 동기들과 함께 무대에 서봤는데 너무 재미있는 거에요. <카르멘>때 했던 고민과 막막함이 완전 풀렸어요. 아, 이게 치유가 되는 구나 싶었죠. 최주봉 선생님께서 하셨던 말씀이, “작품으로 상처를 받으면 다시 작품으로 치유해야 된다. 대신 기 기간을 더 두면 안 된다.” 스키점프도 마찬가지거든요. 스키점프에서도 점프하다 넘어지면 코치가 바로 다시 가서 뛰라고 해요. 왜냐면 그 기억을 없애주려고. 매번 작품을 찍다 보면 슬럼프가 분명히 와요. 상처도 생기고요. 제가 알게 되는 실수에 대해서 쪽팔리고 부끄러워서 견디지 못할 정도로 힘든 지점이 생기기도 하는데 그러면 늘 다음 작품에서 두 번 실수는 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돼요. 그러면서 다음 작품 찍다 보면 예전에 했던 고민들이 녹을 때가 있죠.
어쩌면 지난 고민들을 녹이기 위해서 끊임없이 다음 작품을 찾는 것일지도 모르겠군요.
사무엘 베케트가 <고도를 기다리며>를 쓴 기간이 보름 정도 밖에 안 된다고 하더라고요. 사랑하는 여자랑 몇 날 몇 일 섹스를 하다가 ‘아, 써야겠다’ 해서 제 방에 들어가서 몇 일만에 만들었다고 하죠. 베케트가 그랬듯이 잭슨 폴락도 필이 왔을 때 밤 새도록 그림 그렸다 하고, 그렇게 필이 올 땐 계속 하고 싶잖아요. 지금이 아무리 저에게 다지는 시기다, 그렇게 말하게 된다지만 그냥 지금 저는 너무 하고 싶은 욕망이 충만한 상태 같아요. 저한테 어떻게 이런 다작이 가능하냐고 묻는다면 단순히 너무 하고 싶어서라고 말할 수 밖에 없을 거 같아요.
내한행사에서 기분이 좋아 보이더라.
기분이 좋다기 보단 한숨 놨다는 게 맞는 말 같다. 왜냐면 아직도 모르겠으니까. 사실 기자시사 전까지 많이 걱정스러웠다. 왜냐면 기존에 내가 보여줬던 연기와 전혀 다른 형태의 연기를 선보이는 거니까. 사실 우리나라 배우들이 SF블록버스터를 쉽게 경험해볼 수 있는 건 아니지 않나. 그 안에선 어떤 것도 처음 해보는 경험이 된다.
만화적 캐릭터를 연기해야 한다는 점에서 망설임이 있었을 것 같다.
유명한 원작만화 안에서도 가장 만화적인 캐릭터를 연기해야 한다는 것 자체가 영화를 선택하는 초반에 긴 시간 동안 고민하게 만들었다. 사실 촬영하는 중간에도 '내가 지금 뭐하고 있는 건가'라는 생각을 많이 했고. 그런데 시에나 밀러도 마찬가지로 그런 딜레마를 토로하더라. 왜냐면 시에나 밀러도 할리웃 블록버스터를 처음 경험하는 거라서 대체 뭘 하고 있는지 어리둥절한 건 둘 다 마찬가지였거든. 더군다나 난 더했고. 맨날 블루스크린 앞에서, ‘네 앞에 차가 지나간다!’, ‘저 뒤에 폭탄이 터진다!’ 이런 말에 맞춰서 장면을 상상하며 연기하지만 좀처럼 와 닿지가 않더라. (웃음) 그래서 영화를 보면서 놀랐다. 내가 저런 걸 찍었다니. 일본에서 시에나를 만났을 때 시에나랑 서로 막 이랬다. “영화 봤어? 놀랍지 않아?” (웃음)
스톰 쉐도우는 칼을 들고 싸우는 캐릭터인데, 남자로서 그런 액션 캐릭터에 대한 로망은 없었나?
(단호하게)없었다. (웃음) 그랬다면 이전에 이미 찍었겠지.
일단 마음에 드는 시나리오는 아니었을 것 같다.
처음 캐스팅 됐을 땐 뭐야, 하고 집어 던졌다. 사실 <지. 아이. 조>가 뭔지도 모르고, 워낙 만화적이라 와 닿지 않더라. "따라와라! 공격하라!" 이런 1차원적인 대사나 지문들이 도처에 있는데. (웃음) 그래도 생각해볼 여지가 있다고 판단한 건 ‘로렌조 D. 보나벤추라’와 ‘스티븐 소머즈’는 웬만한 할리웃 배우들도 간과할 수 없는 조합이라고 들었기 때문이다. 전혀 와 닿지 않는 만화 같은 수준의 시나리오지만 이 사람들이 뭉쳤을 땐 뭔가 이유가 있는 거라고 생각했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에서 중요한 배역이란 것만으로도 주변의 권유도 상당했을 것 같다.
미국에 있는 에이전트를 통해서 <지. 아이. 조>에 대한 인포메이션(information)을 조금씩 얻었다. “꼭 하는 게 좋다. 너무 좋은 찬스다.” 그 쪽에서 자꾸 이러니까 뭔가 있겠지 싶어지더라. 사실 동양인 배우들이 자국에서 어떤 연기를 했건, 얼마나 유명했건, 항상 할리우드에 가면 웃음을 선사하는 캐릭터가 되거나, 칼만 휘두르는 악역이 되는데 나는 그렇게 하고 싶지 않다는 의견을 미국의 에이전트에게 자주 피력했다. 그만큼 내가 뭘 좋아하는지, 뭘 싫어하는지 내 에이전트는 이미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지. 아이. 조>를 권하는 건 ‘다 이유가 있다’고 계속 얘기하니까 나도 곰곰이 생각하게 되더라. 내 연기가 더 많은 사람에게 인정받고 더 많은 사람들이 좋아해주길 바란다면 할리우드에 가는 건 궁극적으로 나를 더 크게 알릴 수 있는 기회니까 좋은 과정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인지도를 넓히기 위해서 정말 이것보다 더 좋은 기회가 또 뭐가 있을까 생각했다. 그러면서 점차 나를 합리화 시키기 시작했다. 첫 술에 배부를 순 없으니까.
결국 최종적인 고민은 자신을 납득시키는 일이었나 보다.
지금이야 세월이 많이 흘러서 이젠 어떤 영화를 좋아한다던가 말할 때 예전의 내 취향과 많이 달라졌다는 걸 느끼지만 사실 난 4살 때부터 극장이라는 공간을 좋아했다. 영화가 무슨 내용인지도 모르면서 단지 극장에서 나오기 싫다는 이유로 연속으로 두 세편씩 영화를 보던 어린 시절도 있었다. 그 때 내가 왜 그렇게 극장을 좋아했나 생각해보면 어린 아이들이 상상할 수 있는 꿈을 적어도 2시간만큼은 현실화시켜서 볼 수 있는 공간이 극장이었기 때문인 거 같다. 무협액션, SF, 날아다니는 캐릭터, 나도 그런 것들을 통해 꿈을 키웠는데 그렇게 생각해보니 내가 많이 변했구나 싶어지는 거다. 나는 왜 다른 사람들에게 그런 기쁨을 줄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을까, 그런 생각을 통해서 나 스스로를 마인드 컨트롤하면서 나름대로 합리화시켰다. 내가 지금 이 일을 선택함으로써 해야 될 것에 대한 즐거움을 찾기 위해서, 그렇게 생각하니까 편하더라.
우리나라에서는 원작에 대한 인지도가 전무한 편이지만 사실 본국에서는 상당한 수준이다.
진짜 신기했던 건 <지. 아이. 조>에 대한 인포메이션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만화인가 생각했는데 미국에 가서 <지. 아이. 조> 팬들의 반응이나 느낌들을 접하고서야 뭔진 몰라도 이게 대단하긴 대단한 거라는 걸 알았다. 미국에 있으면서 '스톰 쉐도우' 피규어(figure) 선물도 많이 받았다. 굉장히 다양한 버전의 만화가 60년대부터 나왔고 내가 맡은 역할이 이미 예전부터 이렇게 많은 피규어로 제작됐다니 유명하긴 유명한 작품이었구나, 라고 생각하게 됐다. 이번에 'CGV 골드 클래스'에서 식구들끼리만 볼 수 있게 시사회를 해줬는데 <지. 아이. 조>에 대해서 좀 알고 나서 보니까 되게 신기해 보이더라. '스네이크 아이즈'나 '스톰 쉐도우'는 정말 유명하고 인기가 많은 캐릭터인데 그 안에서 내가 그걸 연기하고 있다니, 약간 그런 거 있지 않나. 우린 아니지만 <지. 아이. 조> 팬들에겐 그 인물들이 슈퍼맨이나 스파이더맨, 배트맨 같은 인물인 거다. 그런데 출연한 배우 입장에서 그런 유명한 만화 캐릭터를 연기했다는 사실 자체가 뒤늦게 재미있더라.
동양인 배우가 많은데 왜 하필 자신을 택했는지 궁금하진 않았나?
좀 싸서 그런 게 아닐까? (웃음) 감독이 어떤 역할을 캐스팅할 때 객관적으로 누가 더 좋다, 그렇게 비교하면서 판단하는 건 웃기는 일이겠지만 단순히 그렇게 비교하는 것과 또 다른 차원의 문제가 있었을 거라 생각한다. 그냥 그 역할에 맞는 배우가 있구나, 라고 생각했을 거라 믿는다.
사실 지금까지 해외로 진출한 국내배우들의 영화는 개봉 전부터 그 측면을 부각시키는 마케팅이 활발했다. <지. 아이. 조>를 보고 나니 지금까지 공개된 국내 배우들의 해외 진출작 가운데 가장 확실한 비중을 보여준 당사자라는 생각이 들던데 오히려 영화가 공개되기 전까진 스스로 최대한 많이 자제한 느낌이 들더라.
내가 매니저를 잘못 뽑았나? (웃음) 원래 그런 건 매니저들이 하는 일이잖아. 우리 매니저가 둔한 가보네. 좀 뻥뻥 터트리지. (웃음) 사실 너무 많이 포장되면 나중에 보고 나서 얼마나 허무해질지 모르니까, 나는 그냥 조용히 가는 게 좋다고 봤다. 욕먹을까 봐 너무 불안하고, 사실상 좀 부담스러운 일이기도 하고. 나중에 영화 개봉하면 볼 사람은 어차피 보게 될 텐데 내가 뭐 그리 대단하다고 미리 떠들 필요 있나. 나는 사실 (손가락을 작게 벌리면서) '요건'데, 여기선 (손을 넓게 벌리면서) '이렇게' 얘기하니까, 결국 (다시 손가락을 작게 벌리면서) '이걸' 보게 될 텐데, 이게 왜 (다시 손을 넓게 벌리면서) '이렇게' 돼있지? 이럴 수 있잖아. 말로 쉽게 설명할 순 없지만 그렇게 보이고 싶진 않은 거다. 차라리 몰랐는데 보니까 괜찮네, 이렇게 되는 게 낫지.
이번 내한 기자회견 때도 그랬지만 당신을 이야기하는 외국 관계자들은 하나 같이 <달콤한 인생>을 보고 당신을 알게 됐다고 말하는 것 같더라.
물론 업계 사람들이나 되니까 아는 거겠지. 물론 채닝 테이텀 같은 경우는 내가 캐스팅되기 이전에 <달콤한 인생>을 봤다 하더라. 덕분에 그 친구는 날 알고 있었지만 시에나 밀러 같은 경우는 나를 전혀 몰랐다. 촬영 다 끝나고 DVD빌려서 봤다고 했으니까.
10억 정도의 개런티를 받았다고 들었다. 할리우드에서 이병헌이라는 배우의 가치를 환산한 금액이라고 생각해도 좋을 것 같은데.
10억이라는 돈은 거기서도 어마어마하게 큰 돈이다. 심지어 미국의 알려진 배우들도 톱스타가 아닌 이상 그 정도 개런티 받기가 힘들다고 들었다. 할리우드에 진출한 일본배우들도 마찬가지고. 일단 나는 개런티에 대해선 관여하지도 않았다. 왜냐면 에이전트가 있었으니 그건 에이전트가 알아서 할 일이었다. 중요한 건 이게 내 첫 작품인데 개런티 문제로 출연하느냐, 마느냐, 를 결정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는 거다. 이게 나한테 어떤 역할을 하는 영화인가가 중요했지. 그런데 이렇게 많이 받기도 힘들다고 하더라. 우리 에이전트가 힘이 되게 세구나, 라는 걸 실감했다. 사실 되게 유명한 에이전트거든. –이병헌이 소속된 미국 에이전트사 ‘엔데버(Endeavor)’는 자국에서도 톱 클래스 에이전트로 꼽힌다.-
사실 ‘스톰 쉐도우’는 최근 당신이 연기한 캐릭터 가운데 가장 단순해 보이는 캐릭터다. 본인의 욕심을 자제하기 위한 노력도 필요했을 것 같은데 스티븐 소머즈 감독의 특별한 주문은 없었나?
일단 악당은 악당, 선한 사람은 선한 사람, 그걸 딱 구분한 영화인 만큼 캐릭터의 눈빛이나 행동, 말투에서건, 그 구분이 확실히 드러났으면 좋겠다는 욕심이 있었던 것 같다. 왜냐면 워낙 정신 없고 복잡한 이미지가 등장하는 영화라 그것마저도 애매모호하고 깊어지면 안 된다고 생각했나 보다. 캐릭터가 단순한 요소를 맡아주길 원했던 거 같다. 사실 원래 찍을 분량에서는 과연 저 놈이 좋은 놈일까, 나쁜 놈일까, 할만큼 애매모호한 대사나 분량이 있었다. 그런데 그걸 의도적으로 다 잘라낸 거 같다. 확실한 의중까진 모르겠지만 내 추측으로는 2부, 3부를 의식한 거 같다. 지금은 그냥 나쁜 놈, 이렇게 단순 노선으로 나오지만 사실 원래는 약간 묘한 느낌이 있다고 느껴질 만한 지점들이 좀 있었다.
최근 들어서 계속 악역을 연기하고 있다. 아직 국내에서 개봉되지 않은 <나는 비와 함께 간다>나 전작인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에 이어서 <지. 아이. 조>에서도 악역을 맡았다. 다만 지난 두 전작의 두 악역은 <지. 아이. 조>에 비해 상당히 콤플렉스한 악역이란 점에서 차이가 있다.
방금 말했지만 사실 '스톰 쉐도우'도 베일에 싸여있는 미스터리한 인물이다. 과거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영화에서도 짧게 나오지만 사실 그보다 더 깊은 얘기가 있었다. 스포일러가 될 거 같아서 더 말할 순 없지만, (웃음) 원래는 이중적인 느낌이 있었다. 원래 그런 점이 나에겐 매력으로 다가왔기 때문에 편집본을 보고 약간 실망스럽기도 했다. 왜냐면 너무 단순한 악당이 돼버렸으니까. 지금은 뭔가 의중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어쨌든 원래 그런 매력이 있는 인물이었다. 그리고 그런 걸 다 떠나서 아까 내가 말했던 것처럼 <지. 아이. 조> 팬들에게 '스톰 쉐도우'라는 역할이 차지하는 영향력은 엄청나다. 다른 걸 떠나서 그것 하나만으로 기분 좋게 연기할 수 있는 캐릭터였다. <나는 비와 함께 간다>에서의 캐릭터는 나쁜 직업을 가졌고 잔혹한 장면을 연출하는 역할이긴 하지만 사실 굉장히 강한 아픔과 아킬레스건을 지니고 있으며 프로페셔널이 강한 인물이다. 우연찮게 세 작품에서 악역을 맡았다. 사실 세 작품의 제작 시기나 개봉 시기가 다 달랐지만 <나는 비와 함께 간다>와 <놈놈놈>은 촬영 일정이 일부 겹쳤고, 그 다음에 바로 <지. 아이. 조>에 들어갔다. 만약 세 작품을 다 같이 결정해야 하는 문제였다면 모두 다 안 했을지도 모르겠다. 왜냐면 그 이전의 나 같았다면 너무나 신중하게 또 다시 한번 생각하고, 또 다시 생각해보다가 결국 셋 다 못했을 거다.
그런데 결국 세 작품 모두 하게 됐다.
<나는 비와 함께 간다>를 결정하기까지 1년 가까이 고민했다. 그 쪽에서도 이제는 대답할 때가 되지 않았냐며 재촉이 올 정도로 정말 오랜 기간 동안 참 많이 생각했다. 사실 내가 한국에서 좋은 배우로 인정받고 좋은 작품을 할 기회도 생기는 만큼 지금 여기서 안주해도 될 것 같고 꾸준히 연기생활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굳이 모험을 해야 되나 싶었다. 하지만 미국에 있는 분들은 지금처럼 내가 할 수 있을 때 하지 않는다면 언제 또 할 수 있겠냐며 출연을 거듭 권유했다. 트란 안 홍 같은 훌륭한 감독과 서로의 생각과 정서를 공유한다는 건 분명 매력적인 일이다. 생판 다른 환경에서 자라온 그 사람이 과연 나에게서 어떤 느낌을 뽑아내려 하는지, 어떤 면을 이용하기 위해서 나를 선택했을지 점점 궁금해졌다. 결국 <나는 비와 함께 간다>를 결정하고 나니까 <놈놈놈>이나 <지. 아이. 조>를 결정하긴 쉬웠다. 이것도 결정했는데 이것도 한번 해보지, 이런 느낌? 그 시기를 지나고 나니 많이 열렸던 거 같다. 생각을 전환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고 할까.
아까 말했던 것처럼 사실 한국에서 어느 정도 배우로서의 입지를 다진 상황에서 할리우드에 도전한다는 건 일종의 모험이 될 수 있었다. 여기서 쌓아 올린 걸 다 버리고 새롭게 시작해야 한다는 부담은 없었나?
버리고 간다는 느낌보다는 새로운 걸 알게 된다는 느낌? 이미 내가 이건 알게 됐으니까 다른 걸 배운다고 해서 이게 없어지는 건 아니지 않나. 어쨌든 간에 처음 접하고 경험하는 환경이었던 만큼 그 속에서 내 나름대로 발버둥을 쳤던 건 사실이다. 특히 <나는 비와 함께 간다>같은 경우엔 그게 진짜 처음이었으니까 그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서 나름대로 노력했고 그만큼 그 결과에 대해선 정말 뭐라고 얘기할 수도 없을 거 같다.
영어 때문에 처음에 고전했다고 하던데 영화에서는 딱히 그런 느낌을 못 받았다.
나는 내가 언어적인 재능만큼은 복 받은 편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못 하는 것도 되게 많지만 적어도 그 부분은 잘할 수 있는 거 같다. 재수해서 간 곳도 불문과였고. 물론 공부를 안 해서 불어는 별로 못하지만. (웃음) 어느 나라 말이라도 배울 때마다 그 나라 사람들에게 재능 있다는 말을 듣는다. 예전에 <백야 3.98>을 찍을 때 딱 일주일 동안 러시아 말을 현지 한국사람에게 배웠는데 그 사람이 내 발음이 너무 좋다는 거다. 다른 건 몰라도 발음을 익히고 따라 하는 걸 좋아한다. 내가 주워들은 일본어만으로 일본사람들과 대화를 하는데도 다들 발음이 좋다고 말해준다. 그래서 그 부분만큼은 내가 남자답게 자랑해도 되겠구나 싶더라. (웃음)
현지에서 개인마다 보이스(voice) 트레이너가 있을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서 당황했다고 하던데.
처음에 작품을 결정했을 때 영어를 익혀야 된다고 조바심이 났는데 그게 일주일, 이주일 지나니까 무감각해지더라. 어차피 대사도 몇 개 없고 보이스 트레이너도 있다니까 트레이닝 받으면 짧은 시간에 나는 할 수 있겠지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가보니까 한 사람마다 다 붙는 줄 알았던 트레이너가 한 사람 밖에 없고 그 사람 혼자서 모든 주인공들한테 시간을 할애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미국 매니저한테 어떻게 된 거냐고 난리 치면서 빨리 전화로 알아보라고 했다. 그런데 '파라마운트'가 워낙 큰 회사라서 전달된 결과를 듣게 되기까지의 과정만 몇 일이 걸린다. 결국 몇 일이 지나고 나서야 한 시간씩 두 번 정도 트레이닝을 받았다. 그런데 디테일하게 지도해주더라. 나름대로 내 영어 발음이 좋다고 생각했는데 상당히 세밀한 지적을 받게 됐다. 짧은 시간이지만 효과적이었다.
아무래도 기본적인 대사의 형태가 망가지면 그걸 인지한 관객의 극중 몰입도 무너질 수 있기 때문에 세밀하게 지도가 필요하다고 판단한 게 아닐까.
그런데도 의외로 뉘앙스는 안 가르쳐준다. 예를 들면, 내가 스네이크 아이즈를 만나서, “헬로우, 브라더.” 하는 장면 있잖아. 그게 “헬로우! 브라더!”(격양되게) 인지, 아니면 “헬로우, 브라더.” (차분하게) 이건지 나는 모르겠더라. 그래서 내가 트레이너에게 물어봤다. “내가 스톰 쉐도우인데 그게 어떤 역인지 알죠? 스네이크아이즈는 어떤 역인지 알죠? 그럼 이건 어떤 식으로 해야 돼요?” 하지만 절대 가르쳐주지 않는다. 왜냐면 자기가 감독의 월권행위를 한다고 생각하는 거다. 철저한 사람들이다. 내 발음 가운데 장음, 단음을 구별해줄 뿐이다. R발음을 할 때나 L발음을 할 때, A발음과 E발음의 차이점, 그야말로 언어학적인 측면에서만 지도한다.
영어로 연기를 하는 것과 한국어로 연기를 하는 것 사이엔 엄청난 갭이 있다고 생각한다. 아무래도 익숙한 언어로 연기할 때 감정을 전달하기가 훨씬 용이할 테니까. 그나마 <나는 비와 함께 간다>를 먼저 경험한 덕분에 <지. 아이. 조>가 좀 더 수월하지 않았을까 싶은데.
그렇진 않았다. 두 작품은 너무나 생판 다른 극과 극인 영화였거든. 겉에서 보기부터 안의 내용까지 심하게 다른 영화니까. 물론 그런 건 있었다. <나는 비와 함께 간다>를 찍을 땐 적어도 대사 NG는 내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혹시 감독이 여기서 좀 더 이렇게 해줬으면 하는, 감정적인 부분에 대한 지적을 받게 된다면 그 감정에 몰입하고 좀 더 신경 써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일단 대사는 그냥 술술 나오게끔 해놔야 된다는 생각 정도는 있었다. 그런데 대사만 외운다고 되는 건 아니지 않나. 그 대사의 뉘앙스나 발음, 인터네이션(internation, 억양)에 관한 것도 신경 써야 한다. 감독이 어느 부분에 액센트를 줘야 한다고 하거나, 트레이너가 옆에서 ‘지금 여기서 장음을 내야 되는데 왜 단음을 내냐’ 이렇게 얘기하는 걸 듣게 되면 그 순간부터는 감정이 싹 달아난다. 거기까지 신경 써야 된다는 게 참 어렵더라. 사실 ‘에이, 뭐 있겠어. 어차피 인간의 감정이나 사람 사는 모습을 보여주는 건데 얼마나 다르겠어’ 이렇게 좀 얕보면서 쉽게 생각하고 갔는데 오래간만에 코에 땀이 송송 맺혀가며 NG내면서 연기했던 기억이 있다. (웃음)
문화적 차이로 인한 어려움은 없었나?
말은 대본에 써 있는 대로 하면 되지만 표정이나 제스처 같은 느낌의 차이를 이해하는 게 쉽지 않았다. 왜 그 사람들은 그렇게 눈썹을 올리면서 얘기하는지, 왜 그 사람들은 저렇게 손을 사용하는지. 쉬운 예로 평상시에 그 사람들과 사적인 자리에서 대화하다가 나도 모르게, (고개를 작게 끄덕이며) ‘아~!’ 이러면 그 사람들이 되게 이상한 눈빛으로 쳐다본다. 우린 너무나 무의식적으로 그러지 않나. 그게 이상한가 보더라. 그런 것부터도 많이 다르다. 그만큼 열린 마음을 가지고 대해야지 그 문화를 받아들일 수 있고 좀 더 작업이 용이해진다.
할리우드의 현장 시스템에 익숙해지는 것도 중요한 문제였을 것 같다.
그런 것도 소소하게 따지면 많았지. 예를 들면 주연이냐, 조연이냐, 에 따라서 분장차도 달라진다. 조연들을 분장해주는 버스에선 세컨(2nd)이나 써드(3rd)가 분장해주고 헤어도 마찬가지다. 물리적으로 주인공 위주의 시스템으로 돌아간다. 매일 아침 6시에 집합해서 오후 6시까지 촬영이 이뤄지는데 하루 종일 기다리게 만들다가 거의 끝날 시간 다 돼서야 촬영이 없다고 알려줄 때도 종종 있었다. 내 촬영이 없을 거 같으면 조감독이 미리 얘기해줄 수도 있을 텐데, 라고 생각하면 순간적으로 기분 나쁠 수도 있지만 그냥 그런 것조차 즐기고 싶었다. 그냥 '아, 이런 게 있구나' 라고 생각하면서. 지금은 아니더라도 나중에 내가 그런 위치가 될 수도 있을 테고.
촬영을 기다리는 시간이 많았다면 그 시간엔 주로 무엇을 하면서 시간을 보냈나?
운동, 나는 배우가 아니라 무술인이었다. (웃음)
스턴트 분량이나 본인의 액션 소화 분량은 어느 정도였나?
기본적인 발차기나 검술 같은 건 내가 다 했다. 대신 점프하고 뛰어내리는 위험한 건 스턴트가 했지. 그리고 계단 뛰어올라가는 단순 노동 신 있잖아. 할리우드에선 배우를 배려하는 차원에서 그런 건 대역이 해주더라.
함께 연기한 배우들과 호흡을 맞추는 건 어땠나? 어제 내한 기자회견에서는 화기애애하게 보이던데.
그 친구들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소박한 사람들이다. 할리웃 스타라고 의식하거나 잘난 체 하는 일은 전혀 없었다. 어떤 것도 불평하지 않으며 있는 그대로 편한 사람들이다.
그렇지만 아무래도 언어적 차이 때문이라도 처음엔 다소 서먹하지 않았을까.
사실 말이 없는 사람은 친해지기 불편하지 않나. 처음에 내가 그 사람들에게 그렇게 보였나 보더라. 나도 내가 외향적인 성격이라고 생각하는데 그 사람들만큼이나 외향적이지 못했거든. 그 사람들은 마치 처음 보는 사람에게도 몇 년 만난 사람처럼 대하고 그만큼 빨리 친해진다. 그러다 보니까 트레이닝 받는 한달 동안 하루 이틀이 지날수록 점점 더 격차가 심해지는 기분이었다. 그 사람들은 정말 급격히 친해지고, 나는 점점 더 동떨어지고. (웃음) 그리고 초반에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 보니 스태프들이나 배우들에게 이상한 소문까지 났다. 쟤 너무 건방지다, 자기가 동양에서 인기가 많았다고 무게 잡는다, 정확히 어디서 시작된 건지 모르겠지만 그런 소문이 났다고 하더라. 당연히 그런 의도가 아니었지. 사실 워낙 속어도 많이 쓰고 그러니까 내가 대화를 못 따라가는 경우도 많았다. 그래서 괜히 이야기에 끼어들었다가 뉘앙스도 못 알아들어서 괜히 썰렁한 상황을 만드느니 조용히 있자 싶었거든. (웃음) 그냥 말 시키면 대답이나 하는 정도였지. 그런데 내가 생각해도 그럴 거 같다. 그 친구들 입장에선 자기들끼리 다들 친구처럼 지내는데 누가 혼자 가만히 있으면 그래 보일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더라. 그래서 나중에 친해진 다음에 물어봤지. “그런 소문 들었는데 진짜야?” 그랬더니, “누가 그러냐! 말도 안 된다! 너 같이 착한 애가 어디 있냐!” 언제 그랬냐는 듯이. (웃음) 사실 다들 되게 좋은 친구들이다. 특히 마론 웨이언스하곤 정말 친하게 지냈다.
항상 당당한 모습이라 미국에서도 딱히 주눅들진 않았을 거 같은데.
사실 이번에 LA에 가서 홍보할 때는 일본이나 한국에서와는 완전히 반대 상황이 될 거다. (웃음) 그리고 만약 그 이전에 LA에서 내 모습을 봤으면 그렇게 말하지 못했을 거다. 쪼그려 앉아있었으니까. (웃음) 어쨌든 내 베이스는 여기고, 일본도 같은 아시아이기 때문에 베이스라고 할 수 있다. 사실 그 친구들이 입을 떡 벌릴 정도로 일본에서 너무나 성대한 레드카펫 행사가 열렸는데 덕분에 한국 오면서 너무나 부담이 됐다. 한국에서 내가 뭔가를 좀 더 보여줘야 할 것 같았으니까. 그래서 일부로 도착하자마자 호스트로서 파티를 했다. 그 친구들 입장에선 그럴 거 아닌가. 한국은 지금까지 자기들이 가보지 못한 나라인데 그 나라 배우가 옆에 하나 있으니까 ‘너네 나라 왔구나’하게 될 테니까 내가 뭔가 이 친구들을 위해서 한번 뭔가를 해주고 싶었다. 다행히도 다들 너무 고맙고 이 은혜를 잊지 않겠다면서 좋아하더라. 나는 내가 호스트로서 긴장해서 술에 취하지 않은 줄 알았는데 나중에 긴장이 풀리니까 취기가 확 돌더라. 게다가 다음 날 행사 때문에 몇 시간 못 자고 일어나서 취기가 가시질 않았고, 덕분에 어제는 취중에 인터뷰를 했지. (웃음)
최근 공교롭게도 해외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에 계속 캐스팅돼서 한국보다 해외에 있는 시간이 한동안 계속됐다. 향수 같은 건 생기지 않던가?
조금 그랬다. 공교롭게도 <놈놈놈>끝나고 나서 둔황하고 홍콩을 계속 왔다 갔다 했는데 그 일정이 끝나자마자 한국에 조금 있다가 바로 미국으로 갔다. 그리고 미국에서 한 3~4개월 있었나. 그리고 잠깐 한국 들어왔다가 바로 프라하로 갔다. 그렇게 또 한 달 정도 있었고, 거의 1년 이상을 외국에서 보냈다. 미국에서 3~4개월 있을 땐 내가 지금 행복하게 살고 있는 건가라는 생각도 들더라. 결국 어머니께서 못 참으시고 동생과 같이 반찬을 바리바리 싸 들고 잠깐 미국에 건너오기도 했다. 그땐 굉장히 반갑더라.
채닝 테이텀은 부인과 함께 입국했더라. 본인도 결혼 생각이 있을 텐데.
부럽지. 그런데 언제까지 결혼해야 한다는 제한시간이 있다면 빨리 해야겠지만 그런 건 아니니까. 지금 이렇게 바쁜 상황이라고 길가면서 그냥 아무나 골라잡고 '나랑 결혼 하자' 이럴 수는 없잖아. (웃음)
좋은 작품 제의가 많이 들어오는 덕분이겠지만 근래에 휴식 없이 지속적으로 연기를 거듭 해오고 있는 느낌이다. 혹시 개인적으로 스스로 그런 필요성을 느끼는 건 아닌가?
특별한 이유는 없다. 사실 어떨 땐 되게 오래 쉬기도 하고. 사실 <놈놈놈> 이전까지는 작품을 별로 안 하는 배우로 꼽혔다. 어떤 경우는 2년에 영화 한 편할 때도 있었고, 보통 1년에 영화 한편? 그랬는데 <놈놈놈>부터 이상하게 끊임없이 계속 작품을 하게 됐다. 일단 우연이라고 말해야 할 것 같은데 아무래도 내가 활발하게 할 수 있을 때 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하는 일이라는 게 자기가 몸소 뛰어야 되는 일이니까, 내 몸이 아프고 힘들다고 네가 대신 가서 해라 이럴 수 있는 일은 아니지 않나. 누군가 대신 시킬 수 있는 사무직 같은 일이 아니니까. 물론 그렇다고 해서 작품의 질을 따지지 않고 막 구르는 것도 아니다. 다만 좋은 작품이 이렇게 밀려들었을 때는 스케줄만 되면 할 수 있는 게 아닐까. 그리고 그 뒤에 좀 쉬어야겠지.
아무래도 아시아에서는 주목 받는 배우다 보니까 아시아 권역 내에서의 사생활은 제한 범위가 있을 거 같다. 그래서 되레 미국이나 프라하에서 촬영이 이뤄지는 동안만큼은 그런 부분에서 자유롭다고 느껴지진 않았나?
사실 옛날엔 그런 생각도 했다. 이젠 우리나라 배우도 이래저래 입지를 다지고, 이런 저런 과정을 통해서 조금씩 자신을 세계적으로 선보이는 기회가 생길 수 있게 됐지만 몇 년 전까지는 지금처럼 할리우드에 나가는 건 꿈같은 일이었다. 그 때 만약 누군가가 "할리우드 진출할 수 있으면 할거야?" 라고 물었다면 그때야 워낙 꿈 같은 일이니까 당연히 그렇다고 했을 거다. 그런데 아시아에서 유명한 사람이 된 지금은 최소한 지구상의 반 정도가 내가 맘 편하게 여행할 수 있는 나라라면 좋을 거 같다. 모든 걸 훌훌 털어버리고 일반적인 자연인으로서 마음껏 즐길 수 있는, 그게 정말 풍요로운 삶이 아닐까. 본래의 나를 찾거나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는, 평상시에 배우로서 할 수 없는 그런 기회와 장소가 제공된다는 건 분명 좋은 일이니까. 그런 생각을 했는데 어쩌다 보니까 할리우드 영화를 찍게 됐고, 그게 또 어마어마하게 큰 제작비가 들어간 블록버스터라 영화가 개봉되면 전세계적으로 다 보여지게 될 테니까 나를 알아볼 사람이 생길 거다. 물론 아직까진 얼마나 많은 사람이 나를 알아볼 수 있을지, 사실적으로 다가오는 건 없지만 적어도 느낌은 달라지지 않을까. 예전에 여행하면서 돌아다닐 대와 다른 느낌이 있을 거란 말이지. 아직까진 그런 걸 느끼지 못하고 있지만.
나름대로 친한 배우라 할 수 있는 정우성 씨는 오래 전부터 자신의 꿈이 감독이라고 피력해오기도 했다. <쓰리, 몬스터>의 <컷>에서 영화감독 역할을 맡기도 했는데 혹시나 연출에 대한 막연한 생각이라도 없나?
막연하게만 있다. 그건 어렸을 때 꿈이었으니까. 지금은 내가 제일 잘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다. 다만 부담 없는 단편 정도라면 한번쯤 해보고도 싶다.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고, 그런 장이 주어진다면야 언젠가 해볼 만 하지. 사실 배우생활 초반에 내가 영화를 만든다면 이런 영화를 만들면 즐겁겠다 생각했던 것들이 있었다. 대부분 판타지 장르에 가까운 생각이었다. 가끔 영화를 보면서 ‘와, 저게 내 아이디어였는데’ 싶은 작품들도 있었다. <나비효과>가 그랬고 <버뮤다 삼각지대>라는 영화가 그렇더라. 사실 이런 영화가 있는지도 몰랐다가 얼마 전에 TV에서 우연히 조금 보게 돼서 알았다. 그리고 혹시 그 영화 봤나? <더 재킷>?
키이라 나이틀리 나오는?
맞다. 그거. 내가 박찬욱 감독님한테 그 영화 보라고 그랬더니, “재미없잖아” 막 이러면서, “점퍼?” 그러더라. (웃음) 그런데 난 그런 영화를 좋아한다. 기본적인 바탕이 사실적이지만 일부 컨셉이 판타지적인 느낌을 주는 영화가 좋다. 판타지에 대한 호감이 있다. 물론 우리나라에서 판타지 장르가 발달하지 못해서 지금까지 내가 했던 영화들엔 판타지적인 성격이 거의 없지만 나는 나름 그런 걸 좋아하거든. 완전 판타지보단 약간의 판타지적인 요소가 있는 영화. 내 출연작 중에 <번지점프를 하다>도 그런 면이 있어서 좋아한다.
스필버그 감독이 관심을 보였다는 말이 있던데.
일본 프리미어 레드카펫에서 스티븐 소머즈 감독을 만났을 때 제일 먼저 한 얘기가 그거였다. “내가 재미있는 얘기해줄게” 하더니 그런 얘기를 하더라. 마음 속으론 (전화기를 꺼내드는 시늉을 하면서)“그 분 전화번호 어떻게 돼?” (웃음) 이러고 싶었지만 겉으로 쿨한 척, “아, 그랬어?”하고 말았다. (웃음)
아무래도 <지. 아이. 조>를 보고 나서 이병헌이라는 배우의 해외적인 입지를 기대하는 관객이 늘어날 것 같다.
나는 기대를 별로 안 한다. 괜히 큰 배역의 작품만 쫓아다니다가 기존에 내가 가지고 있던 것까지 잃고 싶지 않다. 내가 제일 잘 할 수 있는 건 한국말로 한국정서를 담아내는 한국영화다. 그렇기 때문에 늘 한국영화를 베이스로 삼아서 활동하다가 또 좋은 계기가 생겨서 할리우드에서 또 한번 작품하고 오는 상황이 생길 수 있다면 그게 가장 이상적인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사람 일이란 모르는 거니까, 좋은 감독과 작품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이 나중에 또 생긴다면 그럴 수 있겠지. 한 가지 확실한 건 여전히 동양인들이 할리우드에서 입지를 단단히 다지기까진 많은 시간이 필요할 거란 생각이다. 할리우드엔 중국 배우도, 일본배우도 있고, 심지어 거기로 아예 본거지를 옮기는 배우들이 있다. 그렇지만 그게 과연 좋은 방법인지에 대해선 난 약간 의심을 품고 있다.
처음엔 막연한 기회라고 생각했을지 몰라도 '견물생심'이라는 말처럼 특별한 욕심이 생기진 않던가?
지금까지 어떻게 하다 보니 이렇게 왔다. 어찌어찌 하다 보면 내가 원하는 만큼의 수준으로 모든 일이 이뤄졌다. 그런 만큼 어쩌면 여기에서 그칠 수도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건 한국말로 우리의 정서를 담는 연기다. 물론 정말 좋은 기회가 또 생기면 그때 나가서 또 한편 하고 오면 좋은 거고. 덴젤 워싱턴이 남우주연상을 탄 게 불과 몇 년 전 같은데,-2002년- 그때 논란이 많았다고 한다. 같은 미국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만 막상 흑인이라는 차별의식이 강했다고 한다. 그런데 동양인이 거기에 끼는 건 더 힘든 일이다. 예를 들어서 작품성 있는 영화에서 연기를 잘했다고 해도 후보로 오르는 건 가까운 시일에 가능한 일이 아닐 거다.
데뷔한지 이제 15년이 지났다. 사람들은 당신이 많은 것을 이루고, 얻었다고 생각하지만 혹시 스스로에겐 배우로서 뭔가 더 이루고 싶은 것들이 있을지 모를 일이다.
나는 목표가 없다. 사람들이, “다음 계획이 어떻게 돼요?”, “이제 어떤 역할을 하고 싶어요?”, “어떤 작품을 하고 싶어요?” 하면 정말 할 말이 없다. 왜냐면 나는 정말 계획을 안 세우니까. 계획 없이 뭔가 갑작스럽게 덜컥 하게 됐을 땐 나 또한 설레고 놀라게 된다. 그런 걸 즐기나 보다. 만약 시나리오를 받게 되면 그걸 깨끗한 마음으로 읽어야 그 시나리오가 의도하는 바나 캐릭터를 100% 건드릴 수 있는데, 만약 내가 그 전에 어떤 캐릭터나 장르를 생각하고 있었다면 그게 제대로 읽힐까? 내 생각이 액션에 있는데 멜로가 들어왔다면, “에이, 멜로네.” 이러겠지. (웃음) 그런 것처럼 마음을 비워두는 게 여러 가지로 좋을 거 같다. 그래야 나도 내 팬들과 같이 감동하고, 같이 놀랄 수 있고, 어떻게 될지 모르는 긴장감도 있고.
<지. 아이. 조>가 본인에게 어떤 의미가 될 거라 생각하나?
그 당시엔 몰랐지만 지금 한참 지나고 나서 보니까 <달콤한 인생>이 세계의 수많은 영화업계 사람들에게 나를 주목하게 만드는 작품으로서 의미가 있었다. 만약 <지. 아이. 조>가 성공하고 '스톰 쉐도우'란 역할이 어느 정도만큼이나마 기억된다면 이젠 세계 업계가 아니라 세계 관객들에게 내가 처음으로 다가간 작품이란 의미가 생기겠지. 물론 그건 알 수 없는 미래의 일이다. 끝나봐야 알 수 있는.
<지. 아이. 조: 전쟁의 서막>(이하, <지. 아이. 조>)는 두 사람 모두에게 첫 번째 블록버스터 출연작이다. 특별한 감흥이라도 있었나? 채닝 테이텀(이하 ‘채닝’): 말한 대로 첫 블록버스터라 처음엔 매우 긴장을 한 상태에서 촬영에 들어갔다. 하지만 실제로 연기를 시작하고 나니까 그 어떤 영화와 마찬가지로 연기력에 대한 집중력을 요하는 작품이라는 것을 깨닫게 됐다. 물론 ‘나노마이트’와 같은 것이 존재하는 상상의 세계를 이야기하지만 어쩌면 그런 상상력을 펼칠 수 있는 영화라서 재미있고 즐겁지 않았나 싶다. 궁극적으론 이런 영화에 출연한다는 건 소년 시절의 꿈과 같은 일이 아닐까. 그런 꿈 같은 일을 실행할 수 있어서 너무 기뻤고 재미있었다. 시에나 밀러(이하, ‘시에나’): 이런 대규모의 영화를 촬영할 수 있다는 게 익사이팅했다. 흥미롭고 기대를 많이 했는데 그건 내 커리어의 관점에서 메인스트림, 보다 주류의 영화를 해볼만한 단계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또한 세계적으로 영화 산업에서 현실 도피적인, 순수 엔터테인먼트 영화를 관객들이 많이 찾는 거 같다. 그런 영화에 도전할 수 있어서 좋았다. 역할도 좋았다고 생각한다. 총이나 무기 관련 지식을 얻을 수 있었고, 무술도 배울 수 있어서 흥미로웠다.
원작만화에 대해서는 얼마나 알고 있었나? 채닝: 나는 TV만화로 <지. 아이. 조>를 계속 봐오면서 자랐다. 실제 만화책은 최근 들어서 보게 됐지만 매일 아침 학교 가기 전에 <지. 아이. 조>를 봤고 학교에서 돌아와서는 <선더캣츠>라는 만화에 이어서 <지. 아이. 조>를 보면서 자랐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캐릭터가 ‘스네이크 아이즈’와 ‘스톰 쉐도우’였는데 이들 때문에 어렸을 때 닌자가 되고 싶어했을 정도였다. 그래서 촬영 세트에 와서 내 옆에 실제로 있는 스톰 쉐도우와 스네이크 아이즈를 보면서 ‘와, 이건 너무 쿨하다!’라고 생각했다. (웃음) 내 어릴 적 꿈을 실현하고 있었기 때문에 내가 하는 일이 꿈의 직업이라고 생각했다.
가상의 장면을 상상하면서 블루 스크린 앞에서 연기해야 했다는 점에서도 생소한 경험이 아니었을까. 채닝: 실질적으로 CG가 들어갈 장면을 상상하면서 아무 것도 없는 공간에서 감독님이 이래라 저래라 하는 대로 연기했기 때문에 붕 떠있는 느낌이 들긴 했다. 감독님 머리 속에서 영화가 다 구상된 상태였기 때문에 그를 신뢰하고 그가 지시하는 대로 최대한 동작들을 크게 취해야 연기했다. 저기서 폭발물이 터진다, 그러면 와! 하고 반응해야 했고. 그런 CG효과도 많았지만 실제로 촬영한 액션도 많았다. 예를 들면 ‘코브라’가 ‘듀크’와 ‘립코드’를 공격하는 첫 장면은 다 실제로 촬영됐다. 헬리콥터 추락 장면에서도 실제 현장에서 헬리콥터를 떨어뜨리기도 했으니까.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실제 액션이 훨씬 더 많았다.
채닝 씨는 기자회견에서 한국인 매니저가 있다고 했는데, 혹시 그 덕분에 한국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알게 된 부분이 있었나? 채닝: 실질적으로 한국에서 내가 노출된 부분은 별로 없었다. 그리고 사실 매니저도 미국 뉴저지에서 자랐기 때문에 미국사람에 가깝다. 그래도 한국말을 잘 알고 내게도 가르쳐주려고 노력한다. 사실 처음으로 한국에 왔지만 점점 한국과 사랑에 빠지고 있다. <올드보이>, <달콤한 인생>같은 영화도 감명 깊게 봤고, <좋은 놈 나쁜놈 이상한 놈>도 조만간 보게 될 거 같다. 한국영화들이 좀 더 어둡거나 치열하고 빡빡한 느낌들이 있다고 느꼈는데 이런 부분들에 매료됐고 그만큼 사랑에 빠지는 단계다.
<달콤한 인생>은 어떻게 봤나? 채닝: <달콤한 인생>에서 이병헌 씨의 연기에 감명받았다. 차분하면서도 강인함을 나타내는 모습이 감동적이더라. 이런 연기를 하려면 얼마나 노력해야 하나 싶었다. 개인적으로 강인한 연기를 좋아하는데 내게 필요한 차분함이 있었다. 잔인하기도 하지만 강인하고 세련된 표현을 재미있게 감상했다. 시에나: 리메이크된다는 것 자체가 원작이 얼마나 훌륭했는지를 대변해주는 게 아닐까. 채닝: 할리우드 리메이크작이 원작만큼 잘 표현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든다. 잔인하면서도 아름다운 김지운 감독의 예술적인 열정을 잘 표현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돈과 흥행에 집중하는 할리우드에서 그만큼의 예술성이 살아날 수 있을까. 그래도 일단 덴젤 워싱턴의 연기는 기대된다.
한국영화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 보인다. 원래 관심이 많았나? 채닝: 난 연기 경력이 길지 않다. 한국영화산업이 이렇게 발달됐다는 것도 몰랐다. 내 매니저인 ‘빌 최’가 최근 들어서 한국 영화에 대해 교육 시켜준 덕분에 한국영화산업에 대해서 알게 됐다. 덕분에 그 스타일에 매료됐다.
김지운 감독을 만났다던데. 채닝: 어제 만나서 내가 그 분의 작품을 어떻게 봤는지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고, 이병헌의 작품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눴다. 실제로 그 분이 지금 미국 진출작을 작업한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어제 그 부분에 대한 말까진 나누지 못했다. 뿐만 아니라 내가 어제 너무 많은 한국 배우들과 감독들을 만나서 모든 이들과의 대화를 소화할 순 없었지만 개인적으로 꽤나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시에나: 나는 미국 진출작에 대해서 조금 이야기를 할 기회가 있었는데, 아직은 준비 중이며 대본이 완성되면 우리에게도 보내주겠다고 말씀하셨다. 기회가 된다면 함께 일해도 좋을 거라 생각한다. 아직 그런 단계의 이야기를 할 순 없었지만 대본을 보내주시겠다고 하니 일단 기대가 된다. 개인적으론 훌륭한 감독이라고 생각한다. 기회만 준다면 어느 누구와 싸워 이겨서라도 출연하고 싶다. (웃음) 채닝: 물론 이병헌은 아니고. (웃음)
이병헌 씨와 많이 친해진 것처럼 보이더라. 이병헌 씨가 처음엔 친해지기 어려워서 고생했다는 말을 했던 거 같은데 본인들은 어떻게 느꼈나? 시에나: 이병헌 씨가 농담한 게 아닐까. (웃음) 난 처음부터 친한 것처럼 느꺄졌다. 촬영하면서 계속 농담도 같이 나누고 장난도 쳤기 때문에 개인적으론 많이 친해질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채닝: 처음 촬영 때 이병헌 씨는 ‘코브라’ 그룹이었고, 나는 ‘지. 아이. 조’ 그룹이어서 서로 어울릴 시간이 별로 없었지만 프라하에서 같이 촬영할 기회가 많아지면서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아진 덕분에 좀 더 친해질 수 있지 않았나 생각한다. 물론 언어의 장벽이 있었지만 나는 이병헌 씨를 직접 보기 전부터 그의 작품을 보고 존경해왔기 때문에 친해질 수 있었던 거 같다. 그리고 실제로 나이가 그렇게 많은지 전혀 몰랐다. ‘뷰티풀 맨’, 아름다운 남자라고 생각한다. 물론 오해는 마라. 난 결혼한 남자니까. (웃음) 정말 미남이라서 더더욱 친해지고 싶었던 게 아니었을까 싶다.
아시아에서 이병헌 씨의 인기가 대단하다. 어떻게 느끼나? 시에나: 한국뿐만 아니라 아시아를 돌아다니면서 그가 얼마나 대단한 스타인지 체감했다. 일본 프리미어 행사에서 수 천명의 팬들이 비를 맞거나 뙤약볕 아래에서 그를 기다리는 것을 보면서 아시아에서 그의 입지가 어느 정도인지 알게 됐다. 채닝: 사실 이런 블록버스터 영화가 처음인 만큼 이런 세계적인 환영이나 환대엔 익숙하지 않다. 이병헌과 같은 메가스타와 함께 세계를 돌아다니는 경우도 처음이었다. 그럼에도 많은 인기를 겸손하게 소화하는 모습을 보면 존경스러웠다.
채닝 씨는 부인과 함께 입국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채닝: 신혼인데 영화 때문에 아직 신혼생활을 즐기지 못했다. 신혼여행도 짧게 다녀와서 우리끼린 미니문이라고 부른다. (웃음) 이번 투어가 끝나면 진짜 허니문, 풀문을 다녀올 계획이다.
시에나는 할리우드의 패셔니스타라고 알려졌는데 자신이 그런 이미지를 얻게 된 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 시에나: 패션 아이콘이라는 인식이 어디서 시작되고 발달할 수 있었는지 모르겠다. 사실 이런 이미지로 사람들의 시선을 끈다는 건 연기자로서 방해되는 부분이 많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고의적인 의도는 없었다. 오히려 이런 시선에서 벗어나고자 노력한다. 한동안 스타일리쉬하다는 말을 피하기 위해서 노력했더니 덕분에 왜 이렇게 옷을 못 입고 다니냐면서 악평을 받게 되는 해프닝도 있었다. 솔직히 그 말이 싫어질 때도 많다. 채닝: 옆에서 보면 예술감각이 뛰어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덕분에 특별한 노력을 하지 않아도 눈에 띄는 스타일을 만들어낼 수 있는 게 아닐까.
시에나 씨는 <팩토리 걸>과 <인터뷰>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줬다. 그래서인지 블록버스터 여전사 이미지가 생소했다. 시에나: 나도 솔직히 내 자신이 이런 역할에 어울린다고 생각해본 적 없다. 그래서 처음 대본을 받았을 때 많이 위축됐던 것 같다. 그래도 도전할 수 있는 기회이며 재미있는 역할이라고 생각했다. 순수한 엔터테인먼트 중심의 작품을 할 수 있는 첫 기회이기도 했고. 솔직히 차별화된 여전사 이미지를 보여줄 생각은 없었다. 솔직히 이런 역할은 안젤리나 졸리와 같은 배우가 훨씬 더 훌륭하게 소화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고, 영감을 얻기도 했다. 이런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건 흥미로운 일이다. 다양한 무기를 다루고 무술을 배우면서 악역을 연기한다는 건 하나의 도전이었고 이번 영화가 그런 도전을 실제로 소화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고 생각한다.
채닝 씨는 <스텝업>을 통해 많은 인지도를 얻었다. 이런 블록버스터의 주인공으로 캐스팅된 건 그런 인지도를 어느 정도 인정받은 결과가 아닐까 생각되는데. 채닝: 리스크가 적은 소규모 작품을 주로 해왔던 내가 이런 대규모의 영화를 하게 됐다는 건 내게도 놀라운 일이다. 그만큼 내 커리어에서 봤을 때 좋은 기회이자 도전이라고 생각한다. 이걸 기반으로 다음 단계로 갈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그만큼 첫 시발점이 될 수 있는 작품이라고 믿는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빨리 기회가 왔다. 연기를 하게 될지도 잘 모르는 상태에서 연기에 빠지게 됐고, 좋은 시기에 좋은 작품을 만났다. 이 작품 자체가 로또다. (웃음) 그런 만큼 후속편이 나와서 캐릭터를 이어나갈 수 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