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출연작들이 개봉할 때와 기분 자체가 다르지 않나?
사실 그럴 수 밖에 없는 거 같다. 어느 작품에 애정이 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니라 진짜 너무나 오랜 시간을 투자하고 준비했던 작품이 개봉하는 시기라 감회가 남다를 수 밖에.
자신의 얼굴이 걸린 포스터를 보는 기분은 어떤가?
그냥 그걸 보면 개인적으로 좀 더 영화에 대한 애정이 커지지 않나 싶다. 아, 진짜 내 영화가 시작되는구나, 라는 생각. 사실 영화라는 게 촬영이 끝나고 사람들에게 소개되기까지 시간이 조금 걸리니까 처음 촬영하는 순간의 설렘이나 미뤄져 있던 내 기억 덕분에 영화를 다시 시작하는 느낌이 든다고 할까.
힘들거나 위험해 보이는 신이 많더라. 특히 차 지붕에 매달려서 가는 장면은 보는 것만으로도 아찔하던데.
실제로 진짜 고속도로에서 찍은 장면인데 그 차가 봉고라 스틱이었기 때문에 덜컹덜컹할 때마다 움찔했다. (웃음) 그 장면뿐만 아니라 스키점프에서 점프하는 신 빼고는 배우들이 직접 모든 걸 거의 다 했으니까.
스크린으로 봐도 스키점프 대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 보는 장면은 아찔하더라. 직접 그 위에 선 사람의 입장이 궁금해질 만큼.
진짜로 말로 설명이 안 되는 거 같다. 좀 높아서 무섭겠지, 정도가 아니다. 수직 높이가 50~70m 정도 되는데 스키장비를 착용하고 그 나무 바에 앉아서 몸을 지탱하고 있으면 내 마음대로 내 몸을 컨트롤할 수 없다. 그러니까 어떻게 할 방법이 없다. 와이어를 달고 있지만 만의 하나 사고로 내려가게 된다면 그냥 무조건 뛰어야 된다. 사실 그냥 뛰면 되지, 이건 아니잖아. (웃음) 느껴본 사람만 알 수 있다고 할까.
훈련과정은 캐릭터가 아니라 진짜 배우들이 훈련받는 것 같더라. 단지 연기로서 훈련을 흉내 낸 게 아니라 진짜 훈련이나 다름없는 장면이었다.
나 같은 경우, 거의 쉬지 않고 계속해서 2년 정도 작품을 해왔기 때문에 <국가대표>를 위해 합숙훈련을 시작했을 땐 늘 불규칙적인 생활과 적은 운동량에 몸이 약해져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3개월 동안 하루 종일 운동만 해야 되는 생활을 겪다 보니까 처음엔 몸이 체력적으로 적응하기 위해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그래도 오히려 그 덕분에 많이 건강해졌던 것 같다. 그리고 사실 촬영 때는 훈련을 통해 우리가 익혀오고 몸으로 기억한 것들을 잊지 않기 위한 훈련들을 계속 했다. 훈련하는 장면을 촬영하는 건 3개월 동안 땀 흘린 합숙기간 덕분에 좀 수월했지.
혈기왕성한 남자끼리 모여서 땀 흘려가며 찍었던 만큼 얻게 된 추억도 많을 것 같다. 분위기 메이커라고 할만한 사람은 누구였을까?
성동일 선배와 하정우 형, 두분. 늘 촬영장에서 분위기 메이커가 된다. 재미있는 얘기를 해서 그렇기도 하지만 늘 현장에서 지치고 힘들 때 동생들과 같이 장난도 치고, 덕분에 으쌰으쌰 하면서 힘도 내게 되고.
연기적으로 의지가 되는 부분도 있었을 것 같다.
굉장히 많았지. 사실 성동일 선배나 하정우 형은 워낙 많은 작품을 해오신 분들이고 연기력이야 이미 검증된 분들이니까, 사실 우리 동생들만 잘 하면 되는 거였다. 근데 전혀 그런 부담감은 갖지 않고 촬영했다. 같이 즐기고 같이 호흡하면서 작업했고 그렇게 그분들과 같이 호흡하면서 따라가다 보니까 우리가 못할 거란 생각이 전혀 안 들더라. 에너지를 많이 받은 덕분에 좋은 장면이 나오고 좋은 연기가 나올 수 있었던 것 같다.
함께 고생했던 만큼 전우애와 같은 기분을 느꼈을 것 같다. 뭔가 해보자는 기분도 들었을 거 같고.
그 긴 시간 동안 그런 게 없었다면 아마 마지막까지 이렇게 즐겁게 촬영하기 힘들었을 거다. 단순히 촬영 기간이 긴 걸 떠나서 육체적으로 힘들고 정신적으로도 지칠만한 촬영이 많았다. 오랜 기간 동안 그렇게 촬영하면서 계속해서 끝까지 으쌰으쌰 할 수 있었던 건 비슷한 또래 남자들끼리 워낙 마음이 잘 맞아서가 아니었을까. 덕분에 공부도 많이 됐고.
최근 흥철처럼 활달하고 외향적인 성격의 캐릭터를 자주 연기하는 것 같다. <커피프린스 1호점>의 자뻑 하림이나 <오감도>의 지운도 그랬고.
그러니까 그런 모습들이 분명히 나한테도 있는 거 같다. 그런데 기본적인 생활 패턴이라던가 어떤 모습에선 차이가 있다. 작업 현장에서는 장난도 치고 말도 많이 하기도 하다가 기본적인 생활 자체에선 딱히 그렇지도 않으니까.
왜 자신을 캐스팅했는지 김용화 감독에게 물어본 적 있나?
안 물어봤다. 그러니까 갑자기 물어보고 싶네. (웃음) 글쎄, 그냥 나에게서 흥철이의 모습을 담아낼 수 있는 어떤 공통점을 찾으셨을까. (웃음)
자신의 나이보다 어린 역할을 맡아오고 있다. 최근 <오감도>에선 아예 고등학생 역할을 맡기도 했는데 흥철도 20대 초반의 나이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동안인 덕분이겠지만, (웃음) 오히려 그 덕분에 생긴 콤플렉스는 없나?
연기를 시작하기 전엔 동안인 얼굴에 콤플렉스가 있었는데, 오히려 연기를 시작하면서 많이 줄었다. 연기를 시작하고 나서는 사실 크게 느끼지 못했다. 오히려 그 덕분에 <커프>의 하림이도 있을 수 있었고, 얻은 게 많으니까. 동안이란 소릴 들을 수 있을 때 많이 듣고 싶다.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잖아. (웃음)
그렇다면 왜 과거엔 그게 콤플렉스였을까?
남자들하고 어울리는 거 좋아하고, 운동 좋아하고, 그렇게 약간 마초적인 성격이 강했던 거 같다. 그래서 또래 친구들보다 어려 보이는 외모에 콤플렉스가 있었던 거 같다.
사실 어릴 땐 조금 나이 들어 보였으면 하는 마음이 있으니까.
나도 어느 누구처럼 그랬던 거 같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부에 진학했다. 그만큼 연기에 대한 진로를 염두에 두고 학업에 접근했다는 의미 같은데.
사실 입시 준비하면서부터 시작했다. (웃음) 진짜 잘 몰랐다. 우리 학교가 가진 전문적인 커리큘럼이나 학교가 가진 특성 자체를 잘 몰랐다. 연기 분야로 입시를 준비하는데 그 당시 우리 학교에 가장 먼저 입시가 있었다. 게다가 국립대라 등록금도 싸고, 단지 그 이유로. (웃음)
그 학교에 가고 싶어도 못 간 학생이 듣게 된다면 부아가 치밀지도 모를 대답인데. (웃음)
진짜 그만큼 내가 이 학교에 문외한이었다. 그런데 사실 그 당시 아무 것도 안하고 그냥 우리 학교 입시를 목표로 그에 맞춘 준비만 했기 때문에 그땐 너무 가고 싶었다.
한예종은 입시에서부터 실기를 굉장히 중시하는 편이다.
실기를 굉장히 많이 보고 연기뿐만 아니라 굉장히 많은 것들을 본다. 이건 그냥 나중 얘기지만, 만약에 이 학교를 떨어졌다면 아마 나는 대학을 못 갔을 거다. 모든 걸 그냥 이 학교 기준에 맞춰서 준비했었기 때문에 이 학교 못 들어가면 난 다른 데 못 들어가겠구나, 할 정도로 그 기간 동안 모든 걸 올인해서 준비했으니까. 다행히 천만다행이었지.
그 순간만큼은 연기에 인생을 걸었다고 말해도 될 거 같은데. (웃음) 결국 대학을 가기 위한 수단으로서 연기를 선택한 셈인데, 결과적으로 지금 연기자로서 살고 있다. 진짜 연기에 인생을 걸어야 한다고 느낀 건 언제부터인가?
우리 학교의 가장 큰 설립 목표가 연극인을 양성하는 것이었다. 우리가 배우는 연기를 비롯해서 모든 작업 자체가 연극을 하는 사람을 만들기 위한 것이었기 때문에 처음 학교를 들어가서는 그냥 연극 배우가 되겠구나, 라고 생각했었다.
동기부여가 늦었던 만큼 고민도 많았을 것 같다.
연기에 대한 애정이나 욕심이 생기고 진짜 한번 제대로 배우라는 말을 들어봐야겠다고 생각하게 된 건 2년 정도 학교를 다니게 됐을 때부터인 거 같다. 그 전에 거의 1년 반 정도는 학교에 들어가서 고민을 많이 했다. 연기를 계속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실력도 없고, 재능도 없는 거 같고, 그래서 진짜 실제로 이걸 그만 두고 다른 길을 찾아야 할지 고민하면서 학교를 잠깐 떠나있다가 다시 학교에 돌아오게 되면서 그때부터 제대로 평생 여기에 올인하자고 마음먹었다.
작품마다 얻어지는 감흥이 다를 것 같다. 특히 <커피프린스 1호점>은 본인에게 특별한 작품이 아닐까. 처음으로 자신에게 캐릭터라는 걸 부여한 작품이니까.
나한테 분명 특별한 의미가 있는 작품이다. 물론 그 전작들에서 내가 맡았던 역할들도 역시 너무 하고 싶고 욕심나는 작품들이었지만 작품 때문인지 다른 이유 때문인지 몰라도 노력했던 것과 기대했던 것만큼 관심이나 주목을 받지 못한 건 사실이었으니까. <커프>는 그런 점에서 맞물린 만족감을 준 작품이다. 하고 싶다는 욕심과 진짜 재미있을 거 같다는 기대감, 그리고 작품이 가진 힘과 대중적 관심이 너무나 잘 맞물렸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하림이라는 캐릭터로 기억될 수 있었던 거 같고. 그걸 통해서 좀 더 많은 작품을 선택할 수 있는 폭과 기회도 많이 제공됐고 그런 의미에서 나에게 굉장히 특별한 작품이다. 하나의 큰 재산을 얻었다고 할까. 사실 선배들에게 그런 얘기를 많이 들었다. 드라마는 3개월이라고, 3개월 지나면 어차피 다 잊혀진다고, 그만큼 관심도 수그러들 거고 새로운 뭔가를 또 보여주지 못한다면 그렇게 오래 가지 않는다고. 그런데 나는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긴 시간 동안 하림이라는 인물로 기억되고 있는 거 같다. 어쩌면 아직 내가 그 이후로 사람들에게 기억될만한 작품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어떻게 보면 오랫동안 내가 맡았던 캐릭터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다는 것만으로 나는 하나의 큰 재산을 얻은 게 아닐까. 소위 흥행했다고 말하는 영화라 해도 그 작품의 제목과 배우는 기억해도 그 배우가 했던 역할의 이름이 뭐였는지 기억한다는 건 쉽지 않다. 오히려 어떤 사람들은 나에게 내 이름은 몰라도 캐릭터 이름을 알고 불러주는 게 서운하지 않냐고 물어보지만 나는 이미 3년이나 지난 하림이라는 이름을 아직도 기억해준다는 것 자체가 감사하다.
<커피프린스 1호점>을 통해서 바리스타가 됐다면, <국가대표>에선 스키점프 선수가 됐다. 연기 이전에 어떤 특정한 분야의 전문성을 몸에 익힐 필요가 요구될 필요가 있었다. <국가대표>는 육체적 완숙도를 보여주는 전문스포츠 선수가 돼야 한다는 점에서 좀 더 분명한 준비 단계가 필요한 작업이었다.
대부분의 배우들이 그렇겠지만 시나리오를 받고 영화를 준비하기까진 스키점프 자체가 생소했다. 사실 어떻게 보면 짧다고 말할 수 있는 기간 동안 긴장을 풀지 않고 몰입해서 훈련한 덕분에 뭔가 많은 걸 습득할 수 있었던 거 같다. 오랜 시간 준비하고 훈련했다면 그 긴 시간 동안 계속해서 긴장이 풀어지면서 나태해지거나 소홀해져서 몸으로 기억하고 체득하는 게 오히려 더 힘들 수도 있었을 것 같다. 영화상에서 진짜 어설프게 선수가 되어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사실이지만 진짜 준비된 상태를 보여줘야 했기 때문에 3개월이라는 시간 동안 진짜 선수 같은 수준에 도달해야 했다. 준비된 상태에서 어설픈 건 할 수 있지만 어설픈데 준비된 상태를 보여줄 순 없으니까. 그래서 코치나 선수들 모두 3개월 동안 굉장히 긴장하고 몰입해서 훈련했다. 그래서 짧다면 짧은 시간 동안 몸에 체득한 걸 바로 영화에 적용시킬 수 있었던 것 같다. .
흥철이 스키점프 국가대표가 되는 건 방 코치의 딸 수연에게 첫눈에 반한 탓이다. 흥철에겐 멜로 라인이 있다. (웃음) 사실 그것이 영화에서 급작스러운 감정적 변화를 묘사하고 있다고 생각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연기하는 당사자의 의견이 궁금하다.
사실 영화로 보여지는 부분이 그렇게 많지 않은데 그건 흥철이가 수연을 만나서 사랑에 빠지고 그 사랑이 커져서 절실해진다는 설명들이 많은 부분 생략된 탓이다. 근데 그건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감독님하고 얘기하면서 찾아나간 부분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그렇게 사랑에 빠질 수 있다고 느꼈다. 사실 영화에서도 찾아보면 흥철이 그렇게 사랑에 빠져서 절박해질 수 밖에 없는 요소들이 굉장히 많거든.
어떤?
음, 일단 흥철이란 인물 자체가 표현하는데 거침이 없고 좋고 싫음에 있어서 단순하다. 그런 인물이 마음에 드는 사람을 만났어, 너무나 좋아. 그런데 밥이라는 장애물이 중간에 있기 때문에 그 사랑이 더 절박해지고 욕심이 날 수 밖에 없다. 사실 실제로도 그럴 때가 많거든. 그런 문제없이 너네 둘이 잘 만나봐, 그래서 둘이 매일 만나고, 사랑하고, 좋기만 하면 오히려 다른 생각도 들고, 사랑이 주춤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누군가 자꾸 너네 만나면 안돼, 방해하거나 내가 소홀하면 다른 사람과 잘 될 거 같은 기분이 든다면 사람은 더 절실해지고 절박해질 수 밖에 없거든. 빨리 내 여자로 만들어야 될 거 같고. 실제로 밥이라는 인물이 중간에서 흥철을 자극하는 요소가 되어주고, 끊임없이 그런 요소가 된다. 그래서 사람들이 어떻게 그런 사랑에 빠져, 그래도 난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순진하진 않지만 그만큼 솔직한 인물이기 때문에 순수한 사랑을 할 수 있는 거다. 너무 놓치고 싶지 않고 절실한 사랑을 만났기 때문에 그만큼 거침없이 표현하고 싶고, 그런 게 흥철이기 때문에 가능한 거 같고.
스키점프 신은 <국가대표>에서 절정을 이루는 부분이다. 보는 것만으로 시원함이 느껴진다. 사실 CG의 공헌도가 큰 신이기도 한데 그 장면을 촬영할 때 완성된 화면에 대한 궁금증이 크진 않았을까? 물론 어떻게 만들어질지, 100% 완성된 결과가 궁금하긴 했다. 그런데 사실 그 장면에서의 CG는 경기장 사이드의 배경이나 관중들에게 쓴 게 전부다. 나머지는 다 우리가 직접 만든 것이라서 사실 실제로 찍은 점프 영상들을 보는 게 우리에겐 더 감동적이고 짜릿한 흥분을 전하는 것 같다. 오히려 이게 어떻게 보여질까, CG가 어떻게 잘 입혀질까, 그런 걱정을 했는데 진짜 좋은 영상이 나온 거 같다. 사실 우리도 그 장면에서 들어가는 CG를 보면서 어떤 게 CG인지 헷갈렸다. (웃음) 어디까지가 CG고 어디까지가 실사지? 막 그랬다.
한번쯤 진짜 점프해보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나?
어떨 땐 그런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래서 선수들이 부러웠던 적이 많았다. (웃음) 그 느낌이 뭔지 직접 느낄 수 있다는 게 너무 부러운 거다. 우린 너무 무섭고 공포가 장난 아닌데, 어떻게 이런 까마득한 높이에서 뛰어내려서 맨몸으로 하늘을 느끼는 기분은 도대체 어떨까, 정말 너무 궁금했다. 15m부터 시작해서 30m, 60m, 이렇게 점프대가 많은데, 우리가 계속 훈련했을 때 아마 다들 15m나 30m에서는 뛸 수는 있을 정도의 실력은 됐을 거다. 코치님도 그랬었으니까. 만약 직접 뛰었다면 아마 한 30m 정도는 가능하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그래서 선수들이 부러웠다. 정말. (웃음)
만의 하나 사고가 생기면 정말 큰일이니까, 아무리 실력이 있었다 해도 결코 뛰어선 안 되는 일이었을 거다.
영화가 그냥 끝나버리니까. 재수없으면 살짝 다친 걸로 끝나지 않을 수 있으니까.
원래 스키는 탈 줄 알았나?
나랑 재환이랑 재응이는 스키 자체를 처음 타봤다.
그럼 올 겨울엔 스키장에 꼭 가야겠다.
스키에 대한 재미나마 마저 느껴야지. (웃음)
저마다의 삶 안에서 난관 속에 놓여있던 청년들이 국가대표가 되어 전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점프를 한다. 배우로서 좀처럼 넘기 어려운 장애물을 만날 수도 있고, 예상하지 못했던 난관을 만날 수도 있다. 그런 난관을 극복함으로써 더더욱 주목 받을 기회가 늘지 않을까.
배우로서 계속 점프하고 싶다. 실제 국가대표 선수들도 그렇게 열악한 환경 속에서 점프를 해왔고, 그 가운데 점점 더 좋은 성적을 내면서 끊임없이 계속 점프하고 있다. 계속 점프를 할 수 있는 게 더 중요하다. 한번 뛰어내릴 때마다 넘어지냐, 착지하냐, 에 연연하기 보단 계속해서 뛰고 점프하다 보면 더 나은 자세로 날고 착지할 수 있다는 기대감이 생길 거 같다. 계속해서 쉬지 않고 뛰면서 좀 더 멋지고 아름답게 날고 착지할 수 있다는 기대감과 희망을 이어나가고 싶다.
‘스토리 슈퍼바이저’의 역할을 구체적으로 설명해달라.
한 시간 반이라는 한정된 시간 안에서 방대한 스토리를 영화적으로 제대로 구성하기 위해 항상 디렉터와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스토리를 슈퍼바이징(supervising)하는 것, 즉 말 그대로 전체적인 스토리를 관리해나가는 게 슈퍼바이저다.
작년에 서울에서 ‘픽사 20주년 기념전’이 열렸다. 그곳에서 방대한 스토리보드를 봤던 기억이 나는데 다양한 모델링을 바탕으로 만들어낸 데이터를 하나의 결과로 유출한다는 게 흥미로웠다. 즐기지 않고서야 불가능하다고 생각될 정도로 대단한 작업이었다.
(웃음) 물론 DVD에 추가된 영상을 보면 실제로 게임도 하고 노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런 모습조차도 진지한(serious) 작업의 일환이다. 모든 사람들이 사실성이 담긴 현실적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서 노력한다. 재미있는 그림을 그리는 와중에도 쉴새 없이 아이디어를 던지고 끊임없이 캐릭터 디자인이나 스토리에 수정을 가한다. 애니메이터인 동시에 스토리텔러로서 활약한다. 디자인, 스토리, 등 모든 과정의 가능성을 열어놓는 것이 픽사의 작업 방식이다.
러셀의 모델이 <업>에 앞서 상영된 단편 <구름조금>의 디렉터인 ‘피터 손’이라고 들었다.
실제 러셀의 모델은 2명이다. 첫 번째는 내 이웃에 살고 있는 소년인데 실제로 보이 스카우트 소속이며 그 소년의 활발한 모습이 러셀의 모티브가 됐다. 또 한 명의 모델은 방금 말했던 ‘피터 손’이다. 그는 굉장히 유쾌한 동료라서 러셀의 성격에 많은 영향을 줬다. 실제로 외모도 굉장히 흡사하다. (웃음) 보다시피 러셀에게선 동양인 소년의 느낌이 많이 난다. 아시아적 요소가 투영된 할리우드 메이저 영화가 좋은 영화로 탄생하게 됐다는 점에서 한 명의 아시아 인으로서 굉장한 자부심을 느낀다.
근래에 픽사에서 만든 작품들을 보면 노골적인 코미디를 자제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슬랩스틱이나 입담을 통해 끊임없이 코미디를 구사하는 드림웍스와 확연한 차별점이 나타난다.
코믹한 요소들을 많이 첨가해서 사람들을 재미있게 만들 수도 있다. 하지만 과거 디즈니는 개그적인 요소를 남발하면서 사람들을 웃기기만 할 뿐 심정적으로 영향을 주지 못했다. 그런 부분을 방지하고자 항상 스토리를 벗어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개그적인 요소를 추가하고 그 가운데서 부가적으로 엔터테인먼트를 발생시키는 스토리를 구상해 나가고자 한다.
픽사는 항상 작품의 중심을 이야기라고 강조해왔다. 그만큼 스토리 슈퍼바이저를 맡고 있는 당신이 픽사의 중책을 담당하는 인물 가운데 한 명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 같다. 픽사에서 이야기를 담당한다는 것이 당신에게 어떤 의미인가?
픽사에서 스토리 슈퍼바이저로 일하는 걸 큰 행운이라고 느낀다. 나는 필리핀 출신인데 어렸을 때 글쓰기에 대한 사전 교육을 받은 경험이 없었다. 그저 TV나 영화로 이야기를 보는 게 전부였다. 29살 때 미국으로 이주했을 때도 직업이 없었고 애니메이션을 할 수 있을 거란 생각도 못했다. 하지만 어쩌다 보니 몇 년 뒤에 픽사에 있게 됐다. 내겐 큰 행운이었다고 생각한다. ‘존 라세터’나 ‘피트 닥터’, ‘앤드류 스탠든’ 같은 픽사의 애니메이터 겸 스토리텔러들이 내 작업을 인정해주고 존중해주면서 받아들이고 있다는 점에 대해서 굉장히 큰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
당신의 개인 홈페이지에서 당신이 직접 그린 캐릭터 ‘Nina’를 봤다. 단지 스토리 슈퍼바이저이기 이전에 캐릭터 디자이너로서의 능력이 돋보였다.
스토리 슈퍼바이저로 일하기 전에 프로덕션 디자이너, 캐릭터 디자이너로서 작업을 해왔다. 스토리 슈퍼바이저란 단순히 스토리만 다루는 게 아니라 전체적인 제작과정이나 캐릭터 디자인도 관리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예전에 내가 가진 경력들이 현재 스토리 슈퍼바이저로 일하는데 있어서도 많은 도움이 된다.
픽사는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인 창작 조직이다. 그만큼 개별적인 분야의 전문가들의 의견을 조합하고 조율하는 과정이 중요할 것 같다.
많은 전문가가 모여있다 보니까 혼란스런 부분도 있지만 디렉터가 스토리텔러로서 작업을 이끌어 간다는 점은 분명하다. 각자의 의견이 일어나는 걸 막지 않는다는 건 그만큼 많은 가능성을 수렴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는 부분이다. 그렇지만 많은 목소리가 일어나서 혼란스러울 수도 있는 법이다. 그렇기 때문에 항상 최종적인 결정권이 감독에게 있다는 건 중요하다. 감독의 결정 이후로 모든 언쟁들은 종료가 되고 그 결정에 맞춰서 작업이 진행된다.
<업>은 픽사 최초의 3D애니메이션이다. 3D는 새로운 시각적 자극을 제공한다. 그런 시각적 자극의 강도가 높아질수록 이야기의 역할이 보다 중요해지는 게 아닐까.
일단 절대적인 대원칙은 스토리가 우선돼야 한다는 점이다. 3D가 시각적으로 강렬한 인상을 주기 때문에 그에 압도돼서 스토리 자체를 간과할 수도 있을 거다. 하지만 그건 픽사에서 추구하는 방식이 아니다. 3D나 뭐가 됐던 간에 스토리가 제1의 전제조건이란 점은 변화가 없을 것이다.
당신이 추구하는 스토리의 방향은 어떤 것인가?
나는 사람들에게 감정적으로 영향을 줄 수 있는 스토리를 만들고 싶다. 특히 <업>에서는 칼과 러셀을 통해 세대간의 갈등을 극복하고 화합하는 과정을 그리고 싶었고 결국 주변의 모든 사람끼리 서로 돕고 살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다.
<업>의 스토리는 어디서 시작된 것인가?
아내와의 사별 후 홀로 남겨진 노인이 남은 인생의 방향을 선택한다는 설정에서 스토리를 만들어나갔다. 홀로 조용히 남은 인생을 정리할 것인지, 어린 시절부터 간직해왔던 꿈을 이룰 것인지, 이에 대한 고민을 하는 노인의 심리로부터 만들어진 스토리라고 볼 수 있다.
근래 픽사의 작품들이 선사하는 스토리는 로맨틱하다. 그런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비결이라도 있나? (웃음)
특별한 비결 같은 건 없다. (웃음) 다만 이야기가 진행될 때마다 필요한 요소를 첨가할 뿐이다. 요리사가 사랑한다는 <라따뚜이>같은 경우나 로봇이 운명적인 사랑을 기다리는 <월-E>, 그리고 운명적인 존재와 사별한 노인이 등장하는 <업>처럼, 다양한 옵션들이 존재한다. 그게 픽사만의 특별한 방식이라 말할 수 있는 건 아닐 거다. 스토리 전개상 필요하겠다 싶은 옵션들을 삽입하는 형태로 그런 이야기들을 만들어 나간 것뿐이다.
<업>의 초반부 무성 시퀀스가 인상적이었다. 클래식한 무성 영화를 보는 느낌이랄까. 픽사의 작품들이 종종 고전영화적인 장면들을 연출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영화적인 요소들을 삽입하는 것 역시 픽사의 특별한 방침은 아니다. 단지 이야기에서 필요로 하는 방식일 때 삽입이 요구된다. <업>의 초반부에서 칼과 엘리 커플의 역사를 설명하는 장면은 칼의 지난 인생들을 설명하기 위한 필요에 의해 삽입된 거다. 영화적인 방식이 픽사의 고유한 요소는 아니다. 단지 필요에 따라 삽입될 뿐이다.
픽사의 작업엔 언제부터 참여했나?
2004년이 처음이었다. 그때 시작했던 작품이 <카>였고, <라따뚜이>, <월-E>, 그리고 <업>까지 차례로 참여하게 됐다.
‘라이팅 슈퍼바이저(lighting supervisor)’라면 조명 감독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 역할에 대해 설명해달라.
‘라이팅 디렉터(director)’는 간단히 말해서 무대장치를 가상의 온라인 공간에 설치하는 일이다. 영화제작의 마지막 단계에 실시되며 영화의 스토리와 색감 등을 가장 마지막으로 꾸며주는 단계라고 생각하면 된다.
이번에 라니(Ronnie Del Carmen) 씨와 함께 국내 컨퍼런스에 참여해서 강의도 했다고 하던데.
이번 세미나의 컨셉이 ‘비주얼(visual) 스토리텔링’이었기 때문에 이에 포커스를 맞출 수 있는 주제가 무엇일지 고민했다. 내가 ‘라이팅 디파트먼트(department)’에 있으니까 라이팅을 먼저 강의하고, ‘레이아웃(ray-out)’에 대한 강의를 병행했다. 카메라로 어떻게 프레임을 잡고, 어떻게 찍을 것인지 결정하는 게 일단 중요하지만 날씨에 따라서 프레임을 바꿔야 되는 경우도 있다. 그만큼 라이팅과 레이아웃이 상호협력적인 관계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어떤 식으로 카메라 렌즈를 고르고, 장면에 따라서 어떤 식으로 카메라가 움직이고, 그에 따라 어떻게 프레임을 할 것인지, 그리고 그 프레임 안에서 어떻게 캐릭터가 움직일 것이지, 이 모든 것들이 스토리텔링과 직접적인 관련을 짓고 있다. 그런 모든 요소를 통해 복선과 암시를 주면서 스토리를 강화시키는 거다.
구체적인 방법에 대해서 예를 든다면?
일단 칼라가 주는 상징성이 있다. 예를 들어서 <업>의 엘리 같은 경우 엘리의 색깔이 있다. 엘리가 나올 때마다 무의식적으로 핑크가 나온다. 처음에 칼과 엘리의 결혼식 장면에서도 핑크가 보인다. 나중에 병원에서도 핑크고, 자세히 보면 원피스도, 헤어 밴드도 핑크색이다. 나중에 엘리가 죽은 후에 칼이 혼자서 쓸쓸하게 돌아갈 때 집 창문에 저녁 노을이 핑크 색으로 비치는데 칼이 문을 닫고 들어갈 때 핑크빛이 사라진다. 엘리가 죽어서 결국 칼의 생활에서 없어졌다는 의미다. 칼의 피부만 봐도 처음에 엘리가 떠나고 혼자 고립된 생활을 할 때는 저채도의 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에 회색에 가깝다. 그런데 나중에 모험을 마친 칼의 피부색을 보면 생기가 넘치는 핑크색이다. 그러니까 사실 <업>은 라이팅과 레이아웃으로 스토리를 어떻게 강화시킬 수 있을지 많은 계산이 들어가고 상당한 연구가 이뤄진 작품이다.
CG애니메이션에서 조명의 역할이란 무엇인가.
나도 그런 질문을 많이 받는다. 컴퓨터에서의 조명은 무엇일까. 사실 실사랑 똑같다. 실사에서 영화 찍을 때 무대 장치에 무대 세트 조명이 없으면 정말 깜깜하지 않나. 그러다가 스포트라이트가 하나 생기면 거기서부터 점점 화면이 구성된다. 컴퓨터에서도 조명이 없으면 실사처럼 컴컴한 화면이 된다. 예를 들어서 이 카페를 컴퓨터에서 만든다고 생각하면 컵 하나씩 모델링을 다 만든 뒤에 조명도 하나하나 다 만든다. 다만 실사와 다른 건 실사에서는 하나하나를 모두 만들어야 되기 때문에 시간이 많이 걸리지만 우리는 하나만 만들고 나머지를 커트하면 된다. 그래서 천 개, 백 개, 금방 만들 수가 있다. 하지만 그런 테크닉이 다를 뿐 우리가 하는 것은 실제 영화와 마찬가지로 스토리텔링을 위한 목적이란 점에선 변함이 없다. 다만 하이 테크닉을 사용하는 것뿐이다.
<업>을 비롯한 픽사의 애니메이션을 보면 기계적 질감의 색채라기 보단 좀 더 회화적인 느낌이 난다.
일단 디렉터가 이번 영화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컨셉이 이거라고 설명하면 프랙티컬(practical)한 작업 이전에 ‘디오라마(diorama)’를 이용해 전체적인 테스트를 해본다.
<업>에서 라이팅 파트에서 고려한 것은 무엇인가?
<업>같은 경우, 피트 닥터가 2006년에 라이팅 분야 전체에게 이메일을 보내서 자기가 어떤 라이팅 컨셉을 하고 싶은지 말했다. 그 중 하나가 복잡한 장면을 심플리케이션(simplaication)하게 만들어서 캐릭터가 돋보이게 하는 것인데 그 장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라이팅으로 보여주는 거다. 예를 들어서 지금 인터뷰를 하고 있는 당신 시선에선 내 얼굴이 부각돼야 한다. 그런데 어쩌면 이런 컵이 밝아서 시선을 빼앗길 수 있다. 그럴 경우엔 인위적으로 컵을 약간 어둡게 한다. 왜냐면 사람의 눈이라는 건 콘트라스트(contrast), 대비가 강한 곳이나 밝은 부분에 시선이 가기 마련이니까 그런 방식으로 시선을 유도할 수 있다. 두 번째는 질감 같은 부분인데 러셀이 매고 다니는 배지 띠 한 가운데가 비어있다. 나중에 칼이 그 빈자리에 반질반질한 질감의 캔 뚜껑을 붙여주는데 그 때 질감의 대비가 심하게 느껴진다. 둔탁한 질감과 반질반질한 질감을 대비시켜서 사람의 시선을 유도하는 거다. 장면 하나하나가 실사에 기반을 두고 라이팅이 된 것이 아니라 이 스토리와 이 장면에서 어떻게 보여야 될 것인가에 대해서 철저한 분석과 공부를 하고 라이팅을 적용한다고 생각하면 된다.
작년에 서울에서 픽사 20주년 기념전이 열리기도 했는데 거기서 픽사는 각 분야의 프로페셔널이 모인 장인 집단이란 생각이 들었다. 마치 자신들의 작업을 즐기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고.
픽사가 좋은 영화를 만들 수 있는 이유는 픽사를 구성하고 있는 사람들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커뮤니케이션이 이뤄지지 않는 사람들끼리 모이면 좋은 아이디어도 흥미롭지 않은 아이디어가 될 수 있다. 반면에 괜찮긴 한데 그리 익사이팅하지 않은 아이디어도 좋은 사람끼리 모이면 흥미로운 아이디어로 발전할 수 있다. 픽사가 자유로운 문화를 추구하는 건 사람이 릴렉스해야 좋은 아이디어가 자유롭게 나오기 때문이다. 크리에이티브한 아이디어는 공부해서 나오는 게 아니라 자유롭게 생각하고 놀면서 얘기를 하는 순간에 나올 수도 있다. 그런 문화가 자연스럽게 자리 잡혀 있음으로써 그런 분위기를 형성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서울대에서 미대를 졸업했다고 들었다. 처음부터 픽사에서 일해야겠다고 마음 먹고 미국으로 떠난 건 아닐 것 같은데, 픽사에서 일하게 된 경위가 궁금하다.
(웃음) 맞다. 내가 처음으로 픽사의 ‘룩소 주니어(Luxo Jr.)’를 접하게 된 건 오래 전 한국에 있을 때였다. 처음에 전등이 막 ‘통통통’ 뛰어오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 저렇게 단순한 사물에 어떻게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건지 신기하더라. 이미 많은 사람들이 열광한 이후에 뒤늦게 알았다. 픽사란 회사가 있다는 건 그때 알았다. 나중에 뉴욕에서 컴퓨터 아트를 공부하면서 그런 문화에 대해서 알게 됐다고 할까. 그 전엔 솔직히 애니메이션에 큰 관심이 있던 게 아니었다. 오히려 설치미술이나 인스톨레이션(installation)과 같은 순수 아트 쪽에 관심이 많았다. 그런데 뉴욕의 컴퓨터 아트과에선 분야에 대한 구분을 두지 않더라. 비주얼을 하고 싶으면 비주얼을 하고, 페인팅을 이용한 인스톨레이션이나 영상을 추구할 수도 있다. 여러 가지가 가능한 환경에 있다 보니까 자연히 그런 환경에 나도 노출된 거 같다. 그러면서 한국에서 생각했던 것보다 픽사가 훨씬 크고 사람들이 가고 싶어하는 회사라는 걸 알게 됐다. 미국에 가서야 알았다. 그렇다고 픽사를 가야겠다고 생각한 건 아니었다.
그렇다면 픽사는 어떻게 가게 된 건가?
내가 만든 졸업작품이 순수 미술 성향의 실험적 애니메이션이었는데 상상 외로 반응이 좋았다. 학생 오스카에 노미네이트되기도 하고 PBS에서 방송도 됐다. 히로시마 국제애니메이션영화제에서 상영되기도 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나에게 인터뷰 기회가 왔다. 처음에 ‘PDI 드림웍스’에서 <슈렉2>작업에 참여했는데 그 때쯤 되니까 픽사의 문화에 대한 정보도 얻게 되고, 점점 픽사에 가고 싶더라. 결국 드림웍스에서 일하다가 2년 후에 픽사로 옮겼다.
픽사에서 일한다는 것이 본인에게 어떤 의미를 부여하나?
각기 다른 나라에서 왔기 때문에 문화를 공유하는 부분도 많다. 예를 들어서 <업>을 끝낸 다음에 터키 이스탄불에 갔었는데 내 오피스 옆에 있었던 친구가 터키사람이었다. 그렇게 로컬(local)과 같이 생활하면서 좋은 문화체험을 할 수 있었고 이렇게 인터내셔널한 사람들과 만나서 문화를 공유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는 것이 행복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렇게 재능 있고 똑똑한 친구들과 같이 있음으로 인해서 무언가 계속 배울 수 있다는 점이 정말 좋다. 픽사 내엔 ‘PU(Pixar University)’라는 게 있는데 업무 후 오후 시간에 많은 수업을 제공한다. 수업의 종류도 많고 퀄리티도 굉장히 높다. 한국에서 접하지 못했던 수업들이 많고 그런 것들이 나에겐 배움의 기회가 된다는 점에서 굉장히 좋다.
혹시 문화적 차이를 느낀 적은 없었나?
나는 한국에서 모든 교육을 받고 간 셈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보다 의견을 공유하는 부분이 자유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는 학교 다닐 때 손들어서 질문할 수도 없고, 어떤 한 사람이 얘기할 땐 조용히 듣기만 해야 되는데 미국은 항상 기본적으로 토론이 일반화돼 있다. 지금까지 교육받았던 것들에서 벗어나 그런 문화에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을지는 개인적으로 노력해야 된다. 나는 그런 부분에서 나를 향상시키기 위해서 프레젠테이션(presentation) 클래스, 액팅(acting) 클래스, 보이스(voice) 클래스까지 들었다. (웃음) 어떻게 하면 영어로 언어를 바꾸면서 내 목소리를 잘 전달할 수 있을 것인지 나름대로 노력을 많이 하고 있다.
지금은 라이팅 분야에서 일하고 있지만 다른 분야에 대한 욕심은 없을지 궁금하다.
나도 나중에는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작업을 했으면 좋겠다. 전부 다 해봤으면 좋겠다. 예전에 졸업 작품은 ‘미니(mini) 디렉팅’이었지만 내가 다 한 거다. 상당히 많은 시간이 걸리고 힘든 작업이었지만 굉장히 재미있더라. 지금은 라이팅에서 근무하고 있지만 라니 님도 강의하는 스토리텔링 클래스를 비롯해 PU에서 많은 걸 배운다. 내가 직접 레이아웃을 하진 않더라도 관심이 많아서 공부하고 그렇게 견문을 넓힌다고 할까. 내가 해야 하는 것보다도 거기서 얻을 수 있는 지식들이 많으니까 그 안에서 내가 찾아서 많이 배우려고 한다.
픽사는 항상 이야기를 중시한다. 그만큼 다른 분야의 지원이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결과물이 좋다는 건 그만큼 내부적인 합의가 잘 이뤄지고 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저희끼리도 첫째도 스토리, 둘째도 스토리, 셋째도 스토리, 라고 말한다. 사실은 모든 파트가 스토리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사실 라이팅 파트라고 생각하면 세트를 아름답게 만드는 미학적 관점으로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것은 물론이고 더 중요한 건 화면의 어떤 부분이 스토리를 중요하게 묘사하는지, 그리고 그 부분에 어떻게 시선을 유도할 수 있는가다. 캐릭터도 그 캐릭터를 하나 개발하면 그게 끝이 아니라 스토리에 맞지 않는 부분은 변형시킬 수 있다. 그렇게 유기적인 관계 안에서 개발이 이뤄진다고 생각하면 될 거 같다.
이렇게 한국에 돌아와서 자신의 일을 피력할 수 있다는 것도 큰 보람이 아닐까.
나에게도 파이팅한 일이랄까. 정말 많은 분들이 진심으로 원하고 있다는 것도 기쁘고, 실제로 강의장 안에서의 에너지도 굉장히 좋더라. 컨퍼런스에서 너무나 많은 분들이 호기심에 찬 눈빛으로 강의를 너무 재미있게 들어서 놀랐다. 이렇게 호응이 좋을 줄은 몰랐다. 이번에 강의한 내용들은 내가 픽사에 있으면서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부분들을 많이 가져오려고 노력했던 것들이다. 이렇게 지식을 공유한다는 건 너무나 좋은 일 같다. 사람들이 같이 하나가 되는 듯한 느낌이었다. 라니 님도 너무 좋았다고 하시더라.
픽사는 인터내셔널한 창작집단이다. <업>의 러셀과 같은 동양인 꼬마 캐릭터가 영화에서 등장할 수 있는 것도 그런 배경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 아니었을까.
픽사는 미국에 있는 사람들 뿐만 아니라 전세계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 영화를 만든다. 그리고 인터내셔널한 사람들이 있기에 그런 의견이 반영되는 것 같다. 그런 것들이 모두 다 픽사의 좋은 원동력이 된다고 생각한다.
의외의 사실. 인터뷰를 다시 했다. 며칠 전 한스러운 인터뷰 후기를 남겼던 이석원 씨와 다시 한번 인터뷰를 했다. 인터뷰어의 요청에 의한 것이었다. 지난 21일 인터뷰 이후로 이틀이 지난 23일, 이석원 씨에게 문자와 메일이 왔다. 내용은 인터뷰를 다시 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일단은 어떤 식으로라도 환영할만한 사안이었다. 뭔가 이대로 정리해서는 안될 말들을 두서 없이 담아온 기분이었기 때문에 당연히 나로선 쌍수를 들어 환영할만한 제안이었다. 물론 한편으로 두려운 기분도 들었다. 이번에도 수준 이하의 인터뷰를 했다고 느낀다면 좌절감은 두 배가 될 것이니까. 그 이전에 굳이 지난 인터뷰를 온전히 털어버리고 다시 한번 시간을 투자해서 인터뷰를 하길 원한다는 인터뷰이의 요청이 새삼 놀라웠다. 영화 홍보를 위해 한 시간 정도를 봉사하듯 활용하는 배우들과의 인터뷰가 식상해짐을 느끼기 쉽던 지난 경험담 사이에서 좀처럼 경험하지 못할 신선한 기분을 느꼈다. 뭔가 할 말을 다하지 못하고 중간에서 인터뷰가 끊긴 것 같다는 메일의 내용이 너무나 또렷한 진심 같아서 안심이 됐다. 게다가 말을 할 수 없는 상태이니 전화가 어렵겠다는 내용을 보니 이석원 씨답다는 생각이 들어서 다시 한번 만나보고 싶었다. 그는 공연 전에 목을 필사적으로 아낀다. 어쨌든 날을 잡았다. 월요일 홍대에서 인터뷰 약속을 잡았다.
지산 밸리 락 페스티벌 마지막 날이었던 어제, <언니네 이발관>도 무대에 섰다. 이석원 씨가 피곤하지 않을까, 혹시나 목이 심하게 좋지 않아서 인터뷰가 어렵진 않을까, 별별 생각을 다했다. 날씨가 살짝 흐렸다. 소나기가 온다고 했다던데, 시사회가 끝나고 젖지 않은 땅을 보고 살짝 겁이 났다. 뒤늦게 비가 오면 어쩌나. 괜히 이래저래 민감했다. 다행히도 이석원 씨의 목은 괜찮았고, 비도 오지 않았다. 2시간 30여분 정도 인터뷰를 했다. 장황한 질문을 날리고, 우문을 반복하는 내 버릇은 여전했다. 하지만 지난 인터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흥미로운 답변을 얻었다는 생각이 든다. 남은 건 기사로 이야기하는 것뿐이겠지. 인터뷰가 끝나고 이석원 씨는 녹취가 힘들겠다는 걱정을 보탰다. 이 역시도 인터뷰어에게 처음으로 듣는 말이라 신선했다.
난 녹취할 때 인터뷰어의 답변을 토씨 하나 틀리지 않게 녹취하고자 노력하는데 그건 어디까지나 원래 말의 형태를 중시하고 싶기 때문이다. 그래서 때때로 잘 들리지 않는 발음 하나마저도 어떻게든 파악하고자 애를 쓰곤 하는데 그건 분명 스트레스다. 물론 편집은 가미된다. 구어체 문장을 그대로 기사화한다면 전혀 알아먹을 수 없는 말이 될 것이다. 다만 원래 의미를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본래 인터뷰어의 화술마저 느껴질 정도로 원래적 답변의 형태를 보존할 수 있다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에 비슷한 시도를 하지만 도저히 그 발상의 형태를 보존하지 못하는 결과물이 아직은 부끄러운 수준이라, 뭐, 그렇다. 허세 같은 말이 될지 모르지만 난 적어도 내가 쓰는 글이 기록으로서의 가치가 있길 바란다. 그리고 기록으로서 누군가에게 활용될 것이라 믿는다. 내가 누군가의 글을 그렇게 활용하듯이, 어느 누군가도 그럴 것이다. 그러므로 그만큼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고 믿는다. 물론 그 노력이 결과물의 성과로 치환되지 못하는 게 문제겠지.
어쨌든 다행이다. 사실 지난 인터뷰가 후회스러운 찰나에 이석원 씨가 날 살렸다고 하니, 이석원 씨는 정말 그랬냐며 그렇다면 참 다행이라고 했다. 어쨌든 약속대로 이전에 했던 인터뷰 녹음 파일은 삭제했고, 새로운 녹음 파일이 그 자리를 다시 채웠다. 파일명은 같지만 내용물은 전혀 다른 것이다. 인터뷰를 마치고 이석원 씨와 헤어진 뒤 지하철을 타고 홍대에서 집이 있는 신사동에 다다르니 어느 새 해가 졌더라. 산들산들 바람이 불었다.
배우와 감독을 주로 인터뷰하지만 때때로 영화와 무관한 인물을 인터뷰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최근 두 번의 인터뷰가 그랬는데 <이끼>의 원작자인 윤태호 작가와 <언니네 이발관>의 리더이자 보컬인 이석원 씨가 그 주인공이었다. 원래 <이끼>는 영화화된다는 말이 나오기 전부터 일찌감치 보고 있었고, 영화 제작자들이 탐낼만한 작품이라고 생각해왔다. 다만 강우석 감독이 의외였을 뿐이다. 다만 <이끼>의 영화화는 윤태호 작가의 <야후>도 인상적으로 봤던 나에게 윤태호 작가를 만나기 좋은 빌미나 다름없었다. 질서정연한 언변을 구사하는 분이었다. 사진 촬영을 제하고도 2시간 가량의 인터뷰를 진행했다. 사실 2시간 동안 말하기 듣기에 집중한다는 건 그만큼 피곤한 일이다. 그럼에도 집중력이 떨어지지 않았던 건 그만큼 논리 정연하게 말을 풀어내는 윤태호 작가의 언변 덕분이었던 것 같다.
윤태호 작가와 마찬가지로 <언니네 이발관>의 모든 앨범을 소지한 나에게 이석원 씨 역시 대단한 관심을 부르는 인물이었다. 최근 이석원 씨는 CinDi 트레일러를 연출했는데 이를 빌미로 인터뷰를 청했고 응답을 얻어 인터뷰가 이뤄졌다. 하지만 전자와 달리 이석원 씨 인터뷰는 아쉽다. 여기서 아쉬움이란 이석원 씨가 아닌 나를 겨냥한 것이다. 나름대로 많은 준비를 했지만 뭔가 질문의 핀트가 엇나가는 느낌이었다. 1시간 10분 가량의 인터뷰를 진행했는데 인터뷰 중반부엔 늪에 빠져서 허우적거리듯 권태로운 질문에 허덕였다. 이런 인터뷰를 마치고 나면 상대에게 미안해진다. 상대가 할애한 시간을 흥미롭게 활용하지 못한 인터뷰이의 역량 부족이 한스러워진다. 다소 냉소적이지 않을까 생각했던 이석원 씨는 예민해 보이지만 섬세하고 배려적이었다. 현학적인 질문은 좀 더 구체적이어야 했고, 어째서 몇 가지 질문은 누락시켜버린 것인지 모르겠다. 단지 수면이 부족했기 때문일지도, 혹은 정신 산만한 장소 탓일지도 모른다고 푸념한다 한들 결과적으론 좀처럼 기회가 나기 어려울 아까운 시간이었다. 뭔가 그럴 듯한, 특별한 질문을 던지고자 했던 것도 아닌데 평범함조차 밑도는 수준의 인터뷰를 하고 만 기분이다. 여러모로 씁쓸한 뒷맛이 남는다. 해소되지 못할 앙금이 무겁게 내려앉았다.
인터뷰는 참 어렵다. 난 종종 내가 생각해도 멍청했다 싶을 만한 질문을 던지곤 하는데 그리고 나선 도저히 수습할 길을 찾지 못해 대화를 어그러뜨리고 있다는 위기감 속에서 홀로 자멸한다. 기본적으로 인터뷰는 대화라고 생각한다. 대화를 나눠야 한다. 하지만 난 종종 노골적으로 질문을 던지고 답변을 얻기 원하는 사람처럼 군다. 참 어려운 일이다. 하면 할수록 그렇다. 차라리 멋 모를 때가 편했던 것 같기도 하고. 많은 사람을 만나고 그 사람들의 생각을 훔쳐본다는 건 매력적이지만 그것도 가능한 사람의 이야기다. 난 그저 우문 앞에 현답을 던져주는 고마운 인터뷰어들 덕분에 연명하고 있을 뿐이다. 때때로 느끼는 아득함은 괜한 것이 아니다. 과연 애초에 이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맞았나 싶을 만큼.
유일하게 제 시기에 정상적으로(?) 개봉되는 첫 영화다.
사실 다른 감독들에겐 지극히 정상적인 사실이겠지만 나로서는 유일하게 처음으로 제 때 개봉되는 영화라서 감개무량하다. 비관적으로 생각하면 지금까지 내 팔자가 그랬던 건데 어쨌든 이 기쁨을 누리기도 전에 이를 잠식하는 두 가지 사건이 생겨서 기분이 좀 거시기하다.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을 맞았고, 뜻하지 않게 안티 <반두비> 세력들이 엄청난 악성 댓글을 올리는 바람에, 그래도 일단 개봉된다는 건 좋은 거지. 이번 계기를 통해서 다음 작품들은 이제 시차를 두지 않고 완성될 때마다 제 때 개봉했으면 좋겠다. (웃음)
<반두비>가 친구란 의미의 방글라데시 단어라고 들었다.
사실 현지 발음대로 부르면 ‘반도비’가 맞다. 그런데 <반도비>라고 쓰면 반도에 내린 비? (웃음) 아무래도 굳이 ‘반두비’라는 발음을 선택한 건 귀엽고 사랑스러운 느낌의 어감 때문이다. 이미 예전에 우리나라에서 ‘반두비’라는 제목의 동화책이 나왔더라. 어느 초등학교에 전학 온 방글라데시 출신 어린이와 한국 아이들의 우정을 다룬 내용인데 그 제목을 발견하는 순간 그 친근함에 필이 꽂혔다. 미국에서 ‘어륀지’라고 부를지 몰라도 한국에서는 ‘오렌지’라고 하는 것처럼, ‘머다나’보단 우리나라에선 ‘마돈나’가 익숙한 것처럼 ‘반두비’라는 어감이 내겐 느낌이 왔다. 이게 비록 외국어라서 처음 듣는 사람들이 무슨 뜻이냐고 물을 수 밖에 없는 제목이지만 국경을 초월하는 유니버셜한 느낌이 나한테 와 닿아서 과감하게 제목으로 선택했다.
밝은 분위기의 영화를 만들겠다는 열망이 네이밍 단계에서 이미 실현된 것 같다. (웃음)
욕심인지 모르지만 무의식적으로 투영된 느낌이다. 전작인 <나의 친구, 그의 아내>는 열 명 중에 한 명도 제목을 제대로 기억하는 분이 없다. 중요한 건 그 사이에 콤마(,)가 있다는 건데 민용준 기자도 항상 그거 안 넣더라. (웃음) 사실 <나의 친구, 그의 아내>가 어려운 제목이긴 한데 이걸 영어로 번역하면 <My friend & his wife>, 상당히 시적인 음율이 가진 제목이 된다. 어쨌든 이번만큼은 발음하기 편한 제목을 붙이고자 하는 의지가 강했지.
<방문자>와 <나의 친구, 그의 아내>도 정치적 메타포가 노골적으로 반영된 영화지만 <반두비>는 그보다 적나라한 대사나 행위를 통해 현실정치를 손가락질한다.
내 작품이 정치적으로 해석될 수 밖에 없는 건 한국 사회의 현실이 그렇기 때문이다. 그리고 왜 그런 영화가 만들어졌을까 하는 것도 한국 사회의 현실이 그렇기 때문이고. (웃음) 작품을 만들 때 난 항상 시대의 공기와 함께 호흡하고자 하는 자세를 염두에 둔다. 그렇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내가 그 작품을 만드는 상황이 영화에 반영된다. <반두비>를 촬영하기 직전에 격렬한 촛불 시위가 있었고, 서울시 교육감 선거도 있다 보니 그런 게 자연스럽게 주인공들의 일상적인 배경으로 자리를 하게 되더라. 애초부터 정치적인 메타포를 넣고자 했던 건 아닌데 자연스럽게 작품을 만드는 상황의 분위기가 그렇게 돌아가고, 그 상황을 보는 내 시선이 자연스럽게 작품에 녹아 들어서 그렇게 됐다. 그래서 그렇게 완성된 영화를 보다가 나도 놀라는 경우가 있고. (웃음)
<반두비>가 실화를 모티브로 제작된 영화라고 들었다. (신동일 감독은 한 여고생이 자신이 다니던 학원선생님과 함께 부모를 살해하고 학원비를 탈취했던 사건이 <반두비>의 배경이 됐다고 밝힌 바가 있다.) 그 사건을 영화로 만들겠다고 생각했던 건 언제부터였나.
정확히는 2001년 한 11월 즈음에 어느 지하철 안이었던 것 같다. 지하철 선반에 놓인 스포츠신문을 우연히 보다가 그 기사를 보고 충격을 받았다. 그래서 이걸 무조건 영화로 만들어야겠다며 혼자 상상의 나래를 펼치긴 했지만 그걸 바로 추진할 순 없었다. 그 당시는 내가 <신성가족>이라는 단편을 만들었지만 장편영화로 데뷔하기 전이었고 그 당시 한국영화 제작현실이 이런 소재의 영화를 만들기 어려운 주변 여건이었으니까. 그러다 <나의 친구, 그의 아내> 완성하고 나서야 이제 본격적으로 만들어야지 싶었고 그로부터 5년이 지난 2006년에서야 가능하게 된 셈이다. 그러니까 그 동안 계속 언젠가 영화로 만들겠다고 내 마음 언저리에 계속 묻어뒀던 소재가 된 거지.
그 실화가 당신에게 흥미를 부여한 지점이 궁금하다. 그 사건인가, 그 사건을 둘러싼 환경인가?
사람들을 놀라게 할만한 자극적인 사건이었는데 무엇보다 내가 주목했던 건 그 사건을 일으킨 여고생을 그렇게까지 만든 사회의 구조적 모순과 그렇게까지 상황을 어긋나게 만든 현실에 대한 분노, 그리고 그런 죄악을 저지른 여학생에 대한 안타까움이었다. 자극적이고 재미있는 소재에 대한 흥미보단 사회현실에 대한 분노와 개인에 대한 애처로움이 복합적으로 작용을 한 셈이지.
그런데 그 사건을 직접적으로 묘사할 생각은 없었던 건가? 결국 모티브가 된 그 사건을 그대로 영화화시키진 못한 셈이다.
내가 포기했지.
그 모티브로부터 전혀 다른 형태의 <반두비>가 완성된 건 어느 연유인가?
불과 17~18살 밖에 안된, 꿈과 이상에 대한 상상의 나래를 펼쳐야 할 나이의 여학생이 반인간적이고 패륜적인 범죄를 저지른 것에 대한 안타까움과 분노가 작용해 영화를 만든 건 맞지만 실제로 영화는 그 실화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형태로 완성됐다. 비록 2001년도에 있었던 사건이지만 지금도 입시 문제에 대한 강박으로 자살하는 학생들이 계속 나오고 있다. 이런 걸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선 나름대로 영화를, 예술을 한다는 사람이 그런 현실을 외면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궁극적으로 여고생이 주인공인 영화를 통해서 청소년들에게 조금이라도 응원과 격려를 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컸다. 유감스럽게도 청소년 관람불가가 나왔지만. (웃음)
여고생이란 소재는 결국 그 실화에서 발췌된 셈인데 그 과정에서 이주노동자 캐릭터를 연결하게 된 착상의 시작이 궁금하다. 둘 사이엔 연관성이 없어 보이기 때문에 당연히 궁금할 거다. 실화를 재현의 소재로 다뤄서 영화로 만드는 건 여러 가지 윤리적 문제 때문에 포기했지만 여고생을 주인공으로 둔 영화 자체가 중요하다고 생각했으니까 <반두비>를 만들기로 마음먹었다. 대신 두 여고생 얘기로 풀자고 결심했지. 한 명은 지금의 민서처럼 가난한 아이, 또 한 명은 유정이라는 아이인데 아버지가 학원장이라서 학원 선생들이 집에 와서 개인교습을 해주는 유복한 부잣집 아이였다. 그리고 둘은 절친한 친구인데 어쩌면 여성판 예준과 재문 같은 관계라 볼 수 있는 우정 얘기로 다루고 있었다. 어떻게 보면 유정이라는 애는 앞날이 보장된 애다. 반면 민서라는 아이는 다른 친구들처럼 과외를 제대로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자기 용돈도 넉넉치 않다. 한마디로 경제적으로 자유롭지 않은 아이다. 요즘 서울대 진학하는 애들 대부분이 안정적인 부르주아 집안의 자식들이더라. 개천에서 용 나는 건 이제 거의 불가능할 정도지. 어쨌든 내가 얘를 대학 보낼 방법을 고민하면서 찾다 보니까 사회 봉사활동으로 포인트를 얻어서 대학에 갈 수 있는 제도가 있다는 걸 알았다. 그래서 이주노동자에게 한국말을 가르쳐주는 아이디어가 생각났고 거기서 카림이라는 제3의 인물이 나왔다. 그런데 이대로 시나리오를 썼다가 제작은 포기했다. 작품 활동 몇 번 해보고 나니까 직감적으로 이 이야기는 현재 한국에서 만들기 힘들다는 생각이 들어서. (웃음)
어째서?
유정이는 좀 있는 집 아이니까 있어 보이는 환경이 필요했다. 그러니까 미술비용이 많이 들 거 같았고, 그만큼 제작비가 더 들 수 밖에 없는 거다. 그래서 고민하다가 아예 유정을 날려버리고 민서와 카림 얘기로 집중하자 생각해서 카림이 남자주인공이 됐다. 그러니까 우연히 드라마의 필요성에 의해서 대상이 된 인물로 생각했던 이주노동자가 작품이 더 구체화되고 심화되는 과정에서 단순한 대상이 아닌 주체로 자리매김하게 된 셈이다.
그렇다고 그것이 당신과 전혀 무관한 본질은 아닐 것 같다. 사회적 약자를 캐릭터로 내세운다는 점에서 또 다른 흥미가 발생하지 않았을까 싶은데.
기본적으로 나에게 사회적 약자에 대한 관심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 아닐까. 내가 민서와 카림을 주인공으로 얘기하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한 건 둘 사이에 공통점이 있기 때문이다. 카림이 존재적으로 아웃사이더라면 민서는 시기적으로 아웃사이더다. 카림 같은 경우는 이방인으로서 한국사회 하층민의 존재를 대변한다. 민서 같은 경우, 가장 에너지틱하고 젊음을 발산해야 할 십대 후반 사춘기 시기에 입시 이데올로기에 젊음을 저당 잡힌 채 자기 인생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시기를 보낸다. 아웃사이더라는 동질성이 형성하는 드라마적인 상상의 나래가 펼쳐지더라. 덕분에 이렇게 전무후무한 관계가 만들어졌다.
어쩌면 원래 시나리오대로 두 여고생을 중심으로 한 영화였다면 <나의 친구, 그의 아내>와 비슷한 관계를 그렸을지도 모르겠다. 결국 <반두비>의 민서와 카림은 마치 <방문자>의 호준과 계상의 관계와 비슷한 측면이 있다. 결코 예상하지 못했던 관계가 형성되고 방향성을 얻는다.
언뜻 봐서는 전혀 무관한 사이처럼 보이는 관계도 눈에 보이지 않을 뿐 다 연관돼있다고 생각한다. 또 내 나름대로 그런 가치관을 갖고 있기 때문에 그런 관계를 연관시킬 수 있는 거 같다. 물론 그 관계는 우호적일 수도 있지만 적대적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여고생과 이주노동자는 우호적인 관계가 자연스럽다고 생각했다. 물론 이주노동자보단 여고생이 한국사회에서 계급적으로 우위에 섰다고 할 수 있고, 거기서 둘 사이의 갈등도 발생한다. 하지만 자신은 편견이나 선입견으로부터 자유롭고 독립적이라 생각하는 민서가 자기에게도 속물적이고 차별적인 시선이 있다는 걸 어느 순간 자각하면서 변모하는 모습이 영화의 어느 순간에 보여진다. 관계 속에서 인간의 변화가 그려진다는 게 중요했다.
일반적인 한국인이라면 카림과 같은 이주노동자 외국인에 대해 보편적인 포비아를 공유할 수 밖에 없지 않을까. 당신은 어땠나?
나도 포비아가 있었던 거 같다. 다만 내가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을 통해 형성된 가치관 때문인지 몰라도 강한 거부감을 느낀 적이 없었을 뿐이다. 기본적으로 ‘내츄럴 본(natural born)’까지는 아니더라도 사회적 약자에 대한 연민이나 애정이 좀 강하게 형성된 것 같다. 그래서 ‘여호와의 증인’이 주인공인 영화도 거리낌없이 만들 수 있었던 거 같고, <나의 친구>에서 다룬 미용사나 요리사는 서민, 노동자 계급에 해당된다고 생각한다. <반두비>도 후진국 유색인종이나 무슬림처럼 타자화된 사람을 다루고 있지만 그에 대한 거부감은 애초에 없었던 거 같다. 이주노동자 문화제 같은 곳에서도 친절함을 느낀 적은 있지만 경계심이 든 적은 없었으니까. 안타까운 건 그런 편견들이 너무나 불합리하고 비이성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문제를 영화로 다뤄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엄청난 제노포비아 현상이 인터넷 댓글을 통해 펼쳐진다는 것에 놀랐다.
어느 정도 예상했던 잠재적 수준이 있었음에도 예상보다 높은 수위의 공격이 이어졌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리고 예상했던 것과 직접적인 체감의 강도차도 다를 것 같고.
내 자신이 잘 났다는 건 아니지만 솔직히 말해서 이렇게 덜 떨어진 인간들이 많다는 것에 대해서 충격적이었다. (웃음) 너무 안타깝지. 친절하게 대사로도 나오지만, <반두비>의 주제는 ‘Open your mind. 마음의 문을 열어’다. 상대방은 마음을 열려고 하는데 굳이 그런 걸 절대적으로 거부하거나 외면하려는 분이 계시다는 게 안타깝다. 하지만 그 분들도 소통의 대상이다. 그래서 그 분들을 만나보고도 싶다. 만나서 서로에 대한 오해나 선입견을 허무는 계기로 삼았으면 좋겠고, 본인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지 몰라도 그 분들께서 꼭 영화를 보셔야 할 것 같다. 오히려 영화를 보지 않았기 때문에 심하게 매도하는 게 아닐까. 영화를 보여주면 내 진심을 조금이라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어쩌면 그 분들에게 <반두비>가 조금이나마 변화의 계기가 될 수 있을 것 같고.
2001년도의 사건을 모티브로 했지만 배경은 엄연히 현재다. 여고생들의 실상에 대한 취재도 필요했을 것 같다. 2001년도에 알게 된 그 사건과 도입부 여고생들의 방과 후 시퀀스가 좀 맞닿아 있는 거 같다. 일종의 맹아라고 할까. 그 사건엔 서울대에 가야 한다는 여고생의 강박관념과 이에 갈 수 있다는 허위의식을 부추긴 학원장의 역할이 있었다. 짧은 시퀀스지만 현재의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두 여고생의 모습은 실제 사건의 여고생을 짓누르던 강박관념을 연상시킬만한 짧은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그 학생들이 주고 받는 대사들은 내가 특별히 지정한 대사가 아니라 내가 준 모티브를 바탕으로 그 아이들끼리 직접 만든 대사였다. 나는 방학 되면 뭐할지, 학원과 관련해서 스스로 너희가 대사를 만들어봐, 라는 간단한 가이드만 제시했다. 리허설하면서 들어보니까 그 친구들의 보편적인 정서나 가치관을 반영하는 대사처럼 들려서 생동감이 느껴지더라. 실제 고등학생들의 영어점수에 대한 고민이나 방학기간 학원 문제가 자연스럽게 반영됐다. 방학이면 학생들이 여행을 가거나 책을 읽으면서 자기 정신을 살찌워야 되는데 오히려 방학에 더 집중적으로 입시공부를 해야 한다는 게 솔직히 안타깝고 비극적이지. 민서가 돋보이는 건 그런 안타까움에 저항하거나 다른 방법을 모색하기 때문이다. 그 도입부에서 친구들과 반대방향으로 가는 민서의 행동 자체가 드라마가 되는 셈이지.
드라마적으론 비논리적 상황을 연출하지만 논리적 형태의 현실참여적 발언들이 그 비논리를 중화시키는 역할로서 작동하는 부분도 있는 것 같다. 그만큼 작품이 불균질하게 느껴진다.
브레히트는 연극 도중 관객이 몰입하는 순간에 디테치(detach), 이화를 시켜버린다. 직접적으로 관객에게 말을 걸어버린다던가, 엉뚱하게 노래를 부른다던가, 결국 영화로 따지면 관객은 영화를 보고 있지만 영화 속에 담긴 세계가 단지 허구의 세계가 아니라는 걸 인지하면서 영화를 감상하는 거다. 나에게도 영화보다 중요한 건 현실이라는 걸 환기시키는 욕망이 있는 것 같다. 의도적으로 그런 걸 느끼면서 거리감을 두는 것 같기도 하고 그런 부분을 느끼면서 뭔가를 곱씹거나 생각하게 된다. 결국 그런 것들이 드라마가 진행되는 동안 균열을 일으키거나 혼돈을 발생시켜서 극적 몰입을 방해하거나 떨어뜨리기도 하는데 그게 내 작품의 특징이 아닐까. 단점 같기도 하고, 장점 같기도 하고, 그런 점에서 반응이나 평가가 엇갈리는 거 같기도 하고. 어쨌든 내 작품이 불균질한 건 사실이다.
마르크스를 비롯해서 당신에게 정치적인 영향력을 행사한 인물에 대한 언급은 몇 번 정도 이뤄졌다. 하지만 허구적인 영향력을 미친 작가는 한번도 언급되지 않은 것 같다.
영향을 받았다기 보단 내가 관심 있었던 작가라면 두 명이다. ‘프란츠 카프카’와 ‘베르톨트 브레히트(Bertolt Brecht)’. 내가 2년 전쯤에 프라하에 들렀던 적이 있는데 카프카 박물관에서 카프카에 대한 상징적 유물들을 보면서 카프카가 지닌 기괴함이나 기묘함을 느꼈다. 언캐니(uncanny)하다고 할까. 대학교 때 카프카의 부조리한 태도에 미세하게나마 비이성적인 측면의 영향을 받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브레히트는 당시 주된 흐름이었던 아리스토텔레스의 서사이론과 정반대에 가까운 소외효과(alienation effect)와 같은 서사 이론을 창립했다. 예를 들어서 여러분은 지금 연극을 보고 있습니다, 라는 걸 인지하게 만드는 건 지극히 이성적인 방식이다. 나는 내 작품이 이성과 감성이 혼재된 형태로 이뤄졌다고 생각한다. <사과>를 만든 강이관 감독과 친분이 있는데 내 세 작품을 다 보고 내 작품은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작품이라 규정하더라. 어느 정도 일리가 있는 거 같지만 난 내 작품이 꼭 그렇지만은 않다고 생각한다. 논리적으로 정리하기엔 오묘한 구석이 있는 거 같다. 의외지만 데이빗 린치 영화를 좋아한다. 내가 그런 영화를 만든 적은 없고, 만들기도 힘든 작품이지만 논리적으로 정리할 수 없는 데이빗 린치의 기괴한 세계관이 흥미롭고 매력적이다. 내 작품의 엉뚱함은 분명 그런 취향과도 관련이 있을 거다. 또라이나 변태 같은 면도 있는 거 같고. (웃음)
사실 <반두비>에서 선정적이라고 지적될만한 문제적 장면은 유사 성매매 업소에서의 신과 민서와 카림의 침대 신이 아닐까 싶다. 그 부분에 대한 염려는 전혀 없었나?
그 장면이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을 받는 구실이 된 장면 같긴 한데, 어떻게 생각하는가는 관객들의 몫이다. 드라마가 긴장과 이완의 연속이라고 본다면 그 장면들은 상당히 긴장할만한 장면이다. 로맨틱코미디처럼 진행되는 영화를 무장해제된 상태로 관람하다가 충격을 먹을 수 있는 장면이랄까. 세대를 막론하고 낯설고 불편해질 수 있는 장면 같은데 나이가 많을수록 더 불편할 가능성이 크겠지. 정서적으로나 경험적으로나 성에 대한 다양한 상상을 해본 적이 없을수록 충격적일 거다. 여고생이 얼굴 시커먼 남자를 자기 집에 데려와서 같이 밥을 먹고 침대에서 그런 행위를 한다는 것 자체가 도덕적으로나 상식적으로 용납되지 않을 테니까. 사실 그 동안의 드라마 흐름을 다른 느낌으로 전환시키거나 벽을 형성하는 부분이라 할 수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장면이 왜 들어갔는가에 대해 말하자면 민서가 그런 행동을 한 이면과 배경을 관객들이 생각해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건 관객들이 메워줘야 하는 부분이기도 하고. 어쩌면 신동일표 영화가 그래서 그런 거 같다. (웃음) 보기엔 단순하면서도 논리적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불편한 무엇이 있다고 할까. ‘싸우스 코리아(South Korea)’의 강렬한 현실이 영화에 반영되는 거 같기도 하고. 엉뚱한 이야기일지 몰라도 박찬욱 감독님의 영화가 상당히 불균질하지 않나. 갑자기 이야기와 관계없는 유머나 농담이 어처구니 없게 튀어나오기도 하고. 나와 전혀 다른 세계이긴 하지만 창작자 입장에서 그 분에 대해서 이해되는 측면도 있다. 완성된 모양새나 형태에 대해서 괜히 시비 걸고 싶거나 스스로 파괴하고 싶어하는 욕망이 있어서 그런 장면들이 나온다고 봤을 때 나 역시도 드라마 공식이라 할만한 것들을 죽비로 내려치고 싶은 생각이 들기 때문이랄까. 대부분의 상업영화들이 관객들을 롤러코스터에 태우듯 여러 감정을 겪게 만들지만 난 그 사이에 멈춰서 잠깐만 기다려달라고 스톱을 외치고 싶어진다. 그게 친숙하게 다가오는 분들은 반갑기도 하고, 신선함을 느끼겠지만 그렇지 않은 분들은 분노를 일으키거나 완성도에 흠이 생긴다고 지적하기도 하더라.
민서가 유사 성매매 업소에서 선생님을 만난 뒤 함께 고기를 먹는 장면으로 전환되는 시퀀스가 재미있었다. ‘이게 첫 번째 상담인 거 아세요?’라는 민서의 대사가 상당히 인상적이었는데 불순한 신 뒤에 되레 긍정적인 방향의 드라마가 형성된다는 게 상당히 흥미로웠다.
평범하고 안정돼 보이는 현상이나 관계의 수면을 뒤집어 보면 때때로 그 아래 용광로처럼 부글부글 끓고 있는 지점이 발견된다. 결국 임계점이나 비등점에 달하면 터질 거다. 난 창작하는데 있어서 전복적인 상상력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걸 잠깐 뒤집어보고 의심해보면 새로운 이면이 보일 수 있다. 어처구니없게 만난 두 사람이 그 불편한 사건 직후에 삼겹살을 맛있게 먹는 상황에서 코미디가 만들어질 수 있는 것처럼 뒤집어서 관계를 바라보면 인생 자체가 어처구니 없는 코미디처럼 보일 때가 있다. 엉뚱하다고 볼 수 있고, 단순히 유머러스하다 말할 수 있지만 평온해 보이는 관계의 이면에 포진한 끓는 점을 표출시켜보고 싶었다. 평범한 수위의 비범함이 있고, 비범한 수위의 평범함이 있는 것처럼.
전복적인 상황을 통해서 창작적 영감을 얻는다면 요즘 같은 세태는 정말 창작을 부추기는 텃밭이나 다름없겠다. (웃음)
내가 요새 상당히 기시감을 많이 느낀다. 한국사회에서 가장 격동기였던 87년에 한참 감수성이 예민했던 나이이자 대학교 1학년이었는데 지금 왜 그때로 돌아간 거 같을까? (웃음) 지금 87년이 다시 돌아온 거 같다. 그 당시 정치적 민주화 정도나 사회적 성숙 정도가 지금과 비슷한 느낌이다. 한마디로 22년을 쇠퇴했다고 할까. 그 당시 집회나 데모 현장에서 느꼈던 잡힐지 모른다는 불안이 지금도 든다면 지난 20여 년간 민주주의가 많이 발전하고 자유로운 세상이 됐다는 우리 나름대로의 성취감이 착각이나 신기루처럼 보일 정도로 많은 것들이 훼손되고 붕괴되는 실정이다. 조심스럽게 말하자면 거의 ‘파시즘X’, ‘유사 파시즘’이라 불릴만한 현상들이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지금의 내가 대학생 당시 느꼈던 감정을 느끼다 보니 다시 대학생이 된 것 같기도 한데, (웃음) 그렇다고 젊은 시절로 돌아간 것도 아니고 사고수준이 22년 전으로 후퇴했다는 것도 아니라면 이 사회가 지금 22년 전 현실을 생각나게 만든다는 것이겠지. 한마디로 비극적인 코미디다. 다만 비극인지 코미디인지 분간이 잘 안될 뿐이지.
웬만한 부조리극은 명함을 내밀 수 없는 현실이랄까. (웃음) 지금 현 대통령이시고, 알고 보면 학교 선배님이신 청와대의 그 분이, (웃음) 어제 중도라는 표현을 하셨지만 아마 그 단어의 뜻을 알고 얘기하신 것 같지가 않더라. (웃음) 보수라는 분이 자신의 실용주의를 중도라고 말씀하시는 거 보면 얼마나 불안하고 스스로 몰렸다고 생각해면 저러나 싶은 생각이 들고 그래서 그 분을 좀 편안하게 해드리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웃음) 3년 반을 이 나라의 대통령으로 편치 못하게 사시는 것보단 차라리 그 분께서 안락함을 찾으셨으면 하는 생각이 들고, 아마 그 힌트가 담긴 <반두비>를 보면 마음의 위안을 찾지 않으실까. (웃음) 그래서 그 분이 좀 보셨으면 좋겠는데. <방문자> 만들 때도 어렴풋이 그런 생각이 있었거든. 그 당시 전세계를 지배하는 최고의 권력자였던 부시가 <방문자>를 봤으면 하는 바람이 은근히 있었는데, (웃음) 이번에도 좀 그렇다. <반두비>를 보고 웃을 수 있는 여유를 가진 대통령이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 물론 제가 지금 현직 대통령을 조롱하는 건 아니다. (웃음) 나름대로 이렇게 얘기했지만 이게 다 그 분 잘못은 절대 아니거든. 그 분을 뽑은 천만 명의 어리석은 선택이 더 문제지.
사실 제스처만 봐도 당신은 상당히 조심스럽고 섬세한 사람처럼 보인다. 그럼에도 영화는 과감하고 급진적이다.
내가 현실에서 풀지 못하고 상상만 하거나 행동하지 못하는 것들이 영화 속에서 구체화되거나 드러나는 게 아닌가 생각된다. 만약 내가 현실에 만족하고 있거나 생각했던 욕구가 풀어지는 상태라면 굳이 작품을 만들 동기부여가 없었을지도 모른다. 지금까지 내가 만든 세 작품은 현실사회의 부조리나 모순, 인간사이의 질곡 같이 계속 심화되고 산재하는 문제들, 즉 내 개인적으로뿐만 아니라 한국사회에서 다뤄야 한다고 생각되는 것들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런 부분들이 종종 세고 강렬하게 묘사될 뿐, 사실 나 자신은 굉장히 평범한 사람이다. (웃음)
백진희 씨를 만났었다. 상당히 주관이 뚜렷한 친구더라.
그렇게 똑부러지는 면 때문에 내가 캐스팅한 거 같기도 하고.
처음으로 외국인을 배우로 캐스팅했는데 쉬운 과정은 아니었을 것 같다.
사실 나에게 있어서 모든 작품은 캐스팅부터 모험이었다. <방문자>에서 계상 역할하는 강지환 씨나, <나의 친구, 그의 아내>의 지숙을 연기한 홍소희 씨나 주연들을 당시 신인배우로 캐스팅했으니까. 세 번째 작품 <반두비>도 두 친구가 아마추어다. 두 친구를 폄하하려는 뜻은 아니고 연기 경험이 전무한 그 둘을 캐스팅하는 것도 나에겐 모험이었다는 의미다. 게다가 외국인이 주인공인 영화다 보니 굉장히 리스크(risk)가 많았다. 하지만 다행히 마붑이라는 친구가 똑똑하고 지적이었기 때문에 나로서는 커뮤니케이션하는데 어려움이 없었다. 오히려 진희하고 커뮤니케이션이 더 힘들었지. (웃음) 그건 아무래도 마붑이 맡은 카림이라는 캐릭터가 마붑에게 정서적으로나 경험적으로 매치가 되는 덕분에 그렇게 어렵진 않았던 거 같다.
양해훈 감독이 카메오로 등장하는 장면도 재미있었다.
몇몇 내 지인들이 카메오 출연을 했는데 사람들이 항상 양해훈 감독을 언급하는 걸 보니 효과적인 캐스팅이 아니었나 싶다. (웃음) ‘내수 시장을 살려야 된다’는 명대사도 만들어졌고. (웃음) 나도 듣는 순간 센스 있다고 생각했는데 <반두비>를 찍고 전세계적인 금융위기가 왔다. 그 위기의 대안은 내수시장을 살리는 거 아닌가. 알고 보니 상당히 선견지명이 들어간 대사였다. (웃음)
사실 최고의 카메오는 당신이 아닐까. 엔딩 즈음에 당신 얼굴을 모르는 사람이라면 진짜 방글라데시 사람이라고 생각할 정도였다. (웃음) 종종 우디알렌과 비교되기도 하는데 직접 연기를 해볼 생각은 없나?
만약 그러면 한국영화계에 쿠데타적 사건이 되는 거지. 결국 배우들의 세계가 균열이 생기고, 세력 판도가 바뀌는 거라서, 농담이고! (웃음) 적절하다 싶을 때 내가 나올 수 있을 것 같긴 하다. 하지만 본격적인 연기는 말 그대로 쿠데타이기 때문에 난 그저 작품의 맛깔스런 양념이 되면 그만이지.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웃음)
전작을 연출하는 과정에서 배우들과 의견이 일치하지 않아서 어려움을 겪었다고 고백한 적이 있다.
다행히 나는 배우들 운은 있었던 거 같다. 물론 배우들 입장에선 감독 운이 있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웃음) 어느 작품을 하건 충돌은 딱 한번씩 있었다. 오히려 그 충돌이 전화위복이 돼서 서로 힘을 모으고 좋은 장면을 연출할 수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그만큼 충돌은 필연적인 과정이었던 것 같다.
아무래도 아까 말했던 비논리적인 흐름을 서사에 익숙한 기성 배우들에게 설득한다는 게 어려운 지점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런 점에서 백진희 씨와 같은 신인 배우를 설득하는 작업은 좀 더 수월하지 않았을까.
신인들은 백지 상태니까. 감독이 어떻게 리드하는지, 어떻게 힌트를 주느냐, 에 따라서 자신만의 색깔을 지닐 수 있고, 이를 통해 스스로 백지를 가득 채우기도 한다. 그런 면에서 길들여지지 않은 신인이 더 자유롭게 자기의 끼를 표출하거나 재능을 발산할 수 있는 것 같다. 괜히 어줍잖게 경험한 친구들한테 이렇게 한번 해봤으면 좋겠다, 라고 하면 자기가 가진 경험의 한계에 막혀버리곤 하더라. 진희나 마붑 같은 경우, 백지 상태라는 게 오히려 풍성한 가능성을 끌어내기 좋았던 거 같았다. 겉멋든 연기자보다 경험이 없더라도 열정에 충만한 신인을 더 선호할 수 있는 건 이런 덕분이다.
두 인물의 버디무비라는 형식에서 <반두비>는 <방문자>와 비슷한 관계구도를 그리는 영화다. 두 영화의 공통점은 두 사람이 서로에게 끼치는 영향력이 발생시키는 개개인의 변화를 전체적인 방향성으로 전환한다는 점에 있다. 그 방향성은 단지 영화 안에서 머무는 게 아니라 궁극적으로 객석과 상응하려는 시도로서 이뤄지곤 한다.
또 다시 변증법 얘기가 나오는데 민서라는 ‘정’ 혹은 ‘반’과, 카림이라는 ‘정’ 또는 ‘반’이 충돌하고, 교감하고, 화합하는 ‘합’이 만들어진다고 할 때, 인물들마다 다 그런 방향성을 얻게 되는 것 같다. 인물과의 관계나 드라마를 만들 때 인물들에게 주어지는 역할 속에서 자연스럽게 그런 관계가 만들어지는 것 같고, 결국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받음으로써 서로의 모습을 닮아가고 서로 자신의 부정적인 면을 긍정적으로 전환해나간다. 나는 내가 그리는 인물 캐릭터들에 대해서 양존하는 감정을 동시에 느낀다. 한 편에선 그들에게 감정을 이입하기도 하지만 또 다른 한편에선 그들에게 객관적인 거리를 두고 응시하기도 한다. 사실 관객들을 한 인물에게 감정이입시켜서 롤러코스터처럼 드라마를 끌고 가는 게 그리기 쉬운 방식일 수도 있지만 내 작품은 그 인물에 대해서 잠시 돌이켜보게끔 하는 장치들이 장착되고 그런 이질적인 리듬을 통해서 인물을 바라보거나 인물이 관객을 바라보게 만드는 시선의 교차가 발생하는 것 같다. 사실 내 작품은 스펙터클을 강화할만한 여건이나 제작 토대가 열악한 편이기 때문에 인물들이 들락날락하면서 형성되는 드라마가 중요하다. 그만큼 인물을 그린다는 건 나에게 흥미로운 작업이다.
관계는 항상 당신 작품의 핵심을 이룬다.
어떤 소재의 작품이라도 인간관계를 다루는 것만으로 풍성한 이야기가 만들어질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편의상 지금까지 내 작품을 관계 삼부작이라고 했지만 계속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만들어나갈 것 같다.
<방문자>나 <반두비>처럼 가장 먼 관계를 이야기할 땐 긍정적인 방향성을 발생시키지만 <나의 친구, 그의 아내>처럼 가장 가까운 관계를 이야기할 땐 부정적인 방향성을 발생시킨다.
<나의 친구, 그의 아내>의 예준과 재문 같은 경우는 10년에 걸친 우정이라지만 둘 사이엔 계급의 벽이 자리한다. 예준은 승승장구하는 외환딜러로서 자기 자리가 계속 상승하는 친구지만 재문은 그럴 수 없는 존재고 결국 둘 사이의 친근함을 가로막는 권력이란 문제가 대두되고 이런 문제의식이 기본적으로 깔릴 수 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가족이나 부모, 형제, 친구 같은 사소한 인간관계 속에서 권력이 형성되고 본인의 의지와 무관하게 지배하거나 지배당하는 상황에 놓이면 문제가 생기는 것 같다. 솔직히 내가 그런 관계를 경험하고 있다고 생각하기도 하고 그만큼 나로선 당연히 그런 관계에 관심이 갈 수 밖에 없다. 반면 전혀 맺어지지 않을 것 같은 관계지만 같이 어깨를 맞대고 나란히 갈 수 있는 관계라면 여지없이 관계를 맺어주고 싶은 생각이 든다. 여고생과 이주노동자는 이질적이고 모순적인 거리가 느껴지는 관계지만 서로의 차이가 존재할 뿐, 공통분모가 있다. 변증법적으로 비적대적 모순관계이기 때문에 서로의 존재나 처지를 이해하게 되면 서로를 이해해주는 이해와 연민의 관계로 거듭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일부로 관계를 만들고자 그런 건 아니지만 자연스럽게 그런 현실적 필요성이 무의식적으로 형상화되는 게 아닌가 싶다.
변화 역시 항상 당신의 테마다. 성장이라 말할 수도 있지만 당신 영화를 성장이라는 단어로 정의하자면 왠지 불순한 태도 같다. 성장은 결국 그것을 말하는 대상과 그것을 통해 말해지는 대상 간의 이해관계가 우열관계로 해석될 수 있는 강제적 용어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최소한 당신 영화에서 등장하는 캐릭터보다 나은 사람이 아닌 바에야 그 캐릭터들의 변화를 성장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말을 듣고 보니까 성장이란 말은 왠지 강제적인 느낌이 들고, 상대의 변화일 수도 있지만 스스로의 변화라고 봤을 때 적절한 표현인 거 같다. 어쨌건 내가 쓰는 표현이지만 드라마 자체에서 인물은 세 가지 변화 구도를 지닌다. 스스로 변하거나, 변절되거나, 혹은 여전하거나. 민서는 분명 스스로 변하는 인물이다. 직접 자신의 손으로 음식을 먹거나 그게 익숙지 않아서 때때로 포크를 쓰는 것처럼 사소하지만 자기 스스로 삶에 적응하거나 인생을 개척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변화를 드러내는 순간이 있다. 영화의 결말에 등장하는 신에서 관객들이 그렇게 느껴준다면 좋겠다. 민서가 변했고 관객도 변했다고, 조금이라도 스스로가 변화되길 갈망하길 바란다.
당신 영화는 항상 그 변화를 통해 희망을 모색하는 느낌이다. 전반적인 비관으로 가득 찬 느낌의 <나의 친구, 그의 아내>에서도 결말만큼은 그 무거운 공기로부터 해방되는 느낌이었다.
어떤 연출자나 감독들은 인간은 변할 수 없다고 생각해서 비관적이거나 비극적으로 인물을 묘사하기도 하지만 난 기본적으로 내 스스로가 삶이나 인생, 사람에 대해서 낙관적이고자 하는 생각이 비관보다 강하다. 어떻게든 희망의 요소를 조금이라도 드러내고 싶어진다. 그래야 삶에 가치가 있다는 믿음이 생기고, 그런 가치가 조금이라도 존중되고 공유될 수 있을 때, 이 빌어먹을 세상이 바뀔 수 있는 게 아닐까. (웃음)
<반두비>와 <방문자>에서 민서와 호준은 변하는 사람들이고, 계상과 카림은 변화를 이끌어내는 인물들이다. 역할을 달리해서 말하자면 계상과 카림의 역할을 하는 건 당신이고 궁극적으로 민서와 호준과 같은 변화의 몫은 관객인 셈이다.
<반두비>가 예전영화보다 훨씬 더 직설적이고 불편한 면이 있는 것도 사실이고, 사실 이주노동자와 여고생이 관계를 맺는다는 게 결코 가벼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아까도 말했던 것처럼 고등학생이 주인공인 영화인 만큼 소재 자체가 주는 무거움을 경쾌하게 고등학생 눈높이에 맞춰서 만들고자 했던 건 대중들이 <반두비>를 훨씬 편하게 받아들이고 그만큼 영화가 관객에게 쉽게 다가갔으면 했기 때문이다. 만약 민서가 식사하는 엔딩신에서 캐릭터의 변화를 감지하는 동시에 영화를 감상하던 자기 자신에 대해 측은한 마음을 얻거나 일상적인 변화가 필요하다고 느낀다면 나는 내 영화를 통해 최상의 성취를 이룬 게 아닌가라고 생각한다.
전작들이 사회적 제도나 분위기에 대한 환기였다면 <반두비>는 보다 공격적인 정치적 구호의 뉘앙스가 보다 강하게 피력된다. 특정인물을 적확하게 적시하기도 하고. 이 부분에 대한 호불호가 <반두비>에 대한 장단으로 맞서는 것 같다.
특정인물이 영화에서 묘사되거나 언급되는 것에 대해서 반응이 엇갈리더라. 직설적이라서 통쾌하고 좋다는 반응을 보이는 분도 있지만 그런 실제인물에 대한 언급을 통해 완성도에서 시비를 얻었다는 것에 대한 아쉬움을 표하기도 하더라. 굳이 누군가에 대한 직설적인 언급이나 묘사가 안돼도 충분히 정치적 완성도를 지닌 작품인데 오히려 그런 묘사가 작품에 마이너스를 불렀다고 보시는 분들이 계신다. 사실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영화는 없으니까 내 영화도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영화가 아니라고 봤을 때, 내가 왜 그런 특정인물을 굳이 영화에 넣었는지에 대한 고민만이 내겐 중요한 문제가 된다. 그만큼 절실했기 때문인 거 같기도 하고 그만큼 예민해졌기 때문인 거 같기도 하다. 일부로 넣으려고 했던 건 아닌데 내가 영화를 만들 때 시대적 상황이 자연스럽게 날 그렇게 부추긴 거지. 민서가 몸담고 있는 공간과 배경의 배후에 특정인물이 있을 수 밖에 없다 보니 이게 자연스럽게 묻어간 것뿐이지, 무조건 넣어야 된다는 강박관념을 지녔던 건 아니다. 나를 그렇게 만든 시대가 문제지. 내가 문제가 아니다. (웃음) <반두비> 시나리오의 초고가 난 건 사실 고 노무현 대통령 말기였지만 <반두비> 제작이 가시화된 건 MB정권 초기였고, 이제 정권이 2년 정도 지나는 중에 영화가 개봉됐다. 내 작품이 시대적 공기와 호흡한다고 본다면 시나리오를 쓸 때와 영화를 만들 때 분위기가 워낙 달라지기 때문에 되게 시대적 공기가 자연스럽게 묻어나는 게 어쩔 수 없는 일 같기도 하다. 어쨌든 내 작품에 그런 파격을 가져다 주신 현직 대통령님과 현 정권에 감사와 유감을 동시에 표합니다. (웃음)
사실 영화에 현실적 지표들을 온전히 투영했을 때 장단점은 명확하다. 영화의 시대적 배경이나 공간성을 명확히 적시한다는 장점도 있지만 영화적 리얼리즘이 훼손될 수 있다는 단점도 있다.
<반두비>에서 시대성을 분명하게 느끼는 게 좋은 건지, 안 좋은 건지 모르겠지만 그냥 어쩔 수 없이 묻어나는 거 같다. 사실 시나리오를 보고 아쉬움을 느꼈던 분들이 완성된 영화를 보고 놀라더라. 시나리오엔 잘 표현되지 않는 부분들이 영화를 찍을 때 자연스럽게 프레임 안으로 들어오고 나간다. 나 자신도 시나리오를 보고 밋밋하다고 생각했던 부분들이 영화에서 좋아졌다고 생각한다. 저는 이상하게도 시나리오보다 완성된 영화가 더 느낌이 좋다는 말을 예전부터 계속 들어왔는데 왜 그런가는 잘 모르겠다. 그냥 내가 뭘 넣어야겠다는 강박관념이 없었던 걸로 보아서 무언가를 넣게 만든 시대가 나에게 선사한 선물이 아닌가 생각한다. (웃음)
<반두비>를 비롯한 당신의 작품들은 항상 정치적인 시선이 강하게 인지되는 탓에 장르적 자질이 많이 가려진다고 생각한다. 순수하게 장르에 입각한 작품을 만들어볼 생각은 없나?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장르를 굉장히 경멸했다. 그런데 지금은 생각이 좀 변했다. 우리나라에서 종종 상투적으로 ‘당신 작품의 장르는 무엇이냐?’라는 질문을 하는데 난 그런 질문이 정말 무식하다고 생각한다. 하나의 작품이 하나의 장르로 수렴된다는 게 있을 수 없다고 본다. 인생에서 어떤 날은 공포 같은 나날이 되고, 어떤 날은 코미디 같은 나날이 되고, 어떤 날은 멜로 같은 나날이 된다. 인생 자체가 장르적 혼합이라고 본다면 영화도 이렇게 풍성한 장르가 될 수 있는데 꼭 하나의 코미디, 스릴러, 액션, 이렇게 단순화시키는 게 아이러니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의도한 건 아니지만 <방문자>는 코미디 같은 느낌의 영화가 됐고, <나의 친구, 그의 아내>는 스릴러 같은 느낌의 영화가 됐다. 이번에 <반두비>는 하이틴 로맨스나 로맨틱 코미디, 넓게는 휴먼드라마로도 불린다. 내가 본능적으로 장르에 대한 거부감을 느꼈지만 내가 잘 풀 수 있는 장기가 코미디는 아닐까 싶어지더라. 어떤 특정 장르를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기본적으로 장르 공부를 해본 적도 없다. 하지만 위트, 해학과 같은 유머로서 인물을 다루고, 관계를 그려나가는 방식에서 남들과 다른 면이 있다면 그 두 가지 장점을 장르와 결합해서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아직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다음 작품 얘기를 하자니 좀 그렇지만, (웃음) 다음 작품은 그래서 뭔가 다른 형태의 결과가 나올 거 같기도 하다.
차기작에서 지금의 생각들이 깊은 영향력을 미칠 것이라 생각하는 건가?
다음 작품 같은 경우는 좀 더 대중과 소통하고자 하는 욕망이 있기 때문에 장르의 요소가 더 강화될 순 있겠지. 나도 내가 잘할 수 있는 장르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장르를 경멸했던 예전과 달리 지금은 장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자고 생각한다. 내가 좋아하는 영화나 감독이 많지만 그 가운데서도 코엔 형제 영화를 편차 없이 선호한다. 코엔 형제 영화는 블랙코미디적이면서도 어떤 작품은 스릴러가 강하고, 어떤 작품은 로맨스가 강해지고, 그렇게 장르가 자유자재로 변형되지 않나. 나도 내가 가진 특성이 장르와 결합할 때 결과물이 나로서도 궁금하고 보다 재미있는 작품이 나오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당신의 정치적 의식은 차기작에서도 배제될 순 없을 것 같다.
내 작품의 주제는 심플하다. 내 작품에 미학적 야심이나 야망이 있는 것도 아니고 단지 서로 연대하자는 주제의식이 강할 뿐이지. 그 토대가 우정과 환대라는 거고, 그만큼 소박한 건데 사람들에게 서로의 벽을 허물고 마음의 문을 열자고 말하는 게 단순 명료하면서 쉬운 거 같지만 지금은 그런 기본적인 생각들을 전하는 게 오히려 힘들다. 그래서 그런 걸 호소한다는 게 보다 절실한 가치를 품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반두비>의 주제는 ‘마음을 열어’라는 대사로 압축된다. 사실 이는 <방문자>를 비롯해 당신의 전작들을 관통하는 일관된 주제나 다름없다.
민서가 마음의 문을 열 수 있는 동기부여의 존재는 카림이다. 내 작품이 불과 2억 2천짜리 제작비로 만든 작은 영화지만 보다 많은 분들이 보면서 뭔가 하나를 얻어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건 타자에 대한 깨달음이나 자기 자신에 대한 성찰일 수 있고, 그것이 부담이 되기보단 하나의 즐거움으로써 유쾌하게 이 작품을 만끽하거나 즐길 수 있는 계기가 된다면 좋겠다. 아쉽게도 고등학생들이 볼 수 없게 됐지만 1시간 47분짜리 영화가 오히려 3년 동안 수업시간에 읽고 듣는 교과서보다도 자기 삶의 방향이나 인생에 대해서 더 많은 생각을 가능하게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발 딛고 있지만 깨닫지 못하고 있던 사회 현실에 대해서 인지하게 만들면서 자신을 새롭게 변화시키는 동시에 자신이 몸담고 있는 현실을 바꿔버렸으면 하는 바람을 얻게 된다면 내 나름대로의 진심이 얼마 정도나마 느껴지는 셈일 테니 나로서는 작품을 만든 보람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90년생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학교는 일찍 갔더군요.
제가 빠른 90년생이에요. 원래 지금 2학년이 됐어야 했는데 <반두비>를 찍느라 휴학을 해서 이제 2학기에 복학하려고요.
연극영상학 전공인데.
예. 연출 배우고 있어요.
연기가 아니라 연출 지망생인가요?
원래 연극영화과에 가고 싶었지만 아버지께서 반대하셔서요. “연기는 대학가서 학원이라도 다니면서 시작할 수 있는 길도 있다지만 만약 대학부터 그 길을 선택했다가 나중에 그 길이 너랑 맞지 않거나 여러 가지 일 때문에 그만 두게 됐을 땐 네가 할 게 없지 않냐. 여러 가능성을 열어놓고 해라.” 하셨죠. 그래도 관심 있는 분야가 이 쪽이다 보니까 연기가 안 된다면 연출 쪽으로라도 가자 싶어서 이렇게 됐어요.
연극영화과에 가는 건 반대하셨지만 연출 공부는 반대하지 않으셨나 보군요.
분야에 대한 반대는 아니셨어요. 공부를 하라는 거죠. 학생의 본분은 공부인데 공부를 벗어나서 다른 걸 하는 건 아니라고, 네가 아직까지 부모 밑에 있으면 부모님 말씀을 따르라고 하셨어요. 연기한답시고 괜히 애가 붕 떠서 이도 저도 아닌 채 시간만 낭비할까 봐 걱정되신 거 같아요. 그런데 연출과 간다고 하니까, 거긴 시나리오 쓰는 것도 배우고 그렇게 공부하는 바가 있으니까.
아무래도 기본적인 원칙을 중시하시는 편이신가 봅니다.
맞아요. 그런 걸 중요시 하세요. 저는 어릴 때 아빠의 그런 면들이 이해가 안 됐어요. 청소년 때나 사춘기 때. 이런 말 하면 안될 거 같은데, 아빠가 너무 틀에 박히신 게 아닌가라고 생각할 때가 있었죠. 그런데 제가 이렇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교를 다니다가 연기라는 사회생활을 하는 셈이잖아요. 부모님이 제어해주실 수 있는 부분이 하나도 없고 제가 스스로 알아서 해야 되는 사회 생활을 하는 건데, 그러다 보니 아빠가 하신 말씀이나 저를 키우신 방식이 옳았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되는 거 같아요.
어머니께서도 반대하신 건가요? 그리고 영화에 출연한다니 아버지 반응은 어땠나요?
엄마는 전적으로 해주시려고 하거든요. 원래 고등학교 때부터 하고 싶었던 건데 대학교 와서 영화도 찍고, 그렇게 조금씩 하니까 좋아하세요. 그래도 아빠는 이제 학교 돌아가면 학업에 열중하라고 하시죠. 엄마는 그냥 신기해하고 좋아하시는 거 같아요. 친구분들 만나면 가끔씩 얘기한다고 하시더라고요. 우리 딸 영화 나오고, CF도 어디어디 나왔다고. (웃음)
부모님께서 혹시 <반두비>를 보셨나요?
부모님은 아직 못 보셨어요. 제가 장난으로 엄마한테, “보고 싶어?” 그랬더니, “아니, 별로.” 그러셔서, “보고 싶으면 돈 주고 사서 봐.” 그러니까 됐다고, 안 보겠다고 그러시는 거에요. 아무래도 표를 드려야 보실 거 같아요. (웃음)
조금이라도 연출 공부를 한 셈인데 그 덕분에 생겼다고 할만한 변화는 없을까요?
연출 쪽을 공부하다 보니까 스태프 분들의 고생을 조금이나마 알 거 같아요. 제가 1학기 때 조명을 배웠는데 그 무거운 걸 나르고, 수업 다 끝났지만 조명이 다 식을 때까지 기다려야 하고, 되게 힘들더라고요. 그래서 영화 찍을 때 스태프 분들에게 조금 더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됐어요. 다만 아직 깊게 배운 게 없어서 영화에 대한 전반적인 시선이 달라졌다거나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아닌데 작게나마 스태프 분들의 노력에 대해 느낄 수 있는 거 같아요.
오디션을 통해서 <반두비>에 출연하셨죠. 오디션에 참가하게 된 경위가 궁금합니다.
제가 맨 처음에 출연한 <사람을 찾습니다>의 이서 감독님이 신동일 감독님과 친하세요. 그래서 이서 감독님이 저를 추천해주셔서 그렇게 처음 뵙고 시나리오를 본 다음에 <반두비> 오디션을 본 거에요.
신동일 감독님은 조금 섬세한 편이시죠.
사람 눈을 안 쳐다보시잖아요. 그죠? (웃음) 감독님과 처음 미팅을 했을 때, 감독님께서 제 눈을 안 쳐다보시는 거에요. ‘내 얼굴에 뭐가 묻었나?’ 생각했어요. (웃음) 그렇게 사적으로 만나면 그러시지만 현장에서는 영화에 대해서 많은 말씀을 해주셨어요. 그래서 오히려 민서 캐릭터를 편하게 연기할 수 있었죠.
그럼에도 신동일 감독님의 영화는 상당히 놀랍게도 세죠. 꽤나 직설적인 발언들도 등장하고요.
그 직설적이라는 걸 누구는 나쁘다고 말할 수도 있지만 저는 그게 좋다고 생각해요. 모든 영화들이 밝은 사회만 그리는 건 사실 이 세상에 희망이 없기 때문에 가상으로나마 영화 속에서 희망을 보여주려고 하기 때문이란 생각이 들거든요. 그런데 <반두비>란 영화는 아닌 거죠. 정말 있는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고 직설적으로 말을 내뱉고 행동하잖아요. 그런데 감독님 혼자서 글을 쓰신다거나 저 혼자서 그에 관한 글을 인터넷에 올린다면 전혀 힘을 낼 수 없잖아요. 그 말에 담긴 메시지가 전달되기 힘든데 이렇게 매체를 통해서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전하는 건 효과적이라 굉장히 좋다고 생각해요. 사람들의 가려운 부분도 긁어줄 수 있고, 현실에 없는 희망을 가식적으로 보여주는 게 아니라 진실된 희망을 주잖아요.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고. 일단 보면서 웃을 수 있는 영화이기도 하고요.
편차는 있지만 신동일 감독님의 두 전작이 공통적으로 무거운 정치적 메시지를 던지는 영화란 점은 명확하죠. 그만큼 <반두비>도 무거운 작품이 되지 않을까 걱정되진 않았나요?
<방문자> 상영할 때 감독님께서 시사회 표를 주셔서 보러 갔던 적이 있어요. 생각 없이 가서 봤는데 재미있더라고요. 그렇지만 약간 무겁다는 생각이 들긴 했어요. 그래서 <반두비>가 청소년에게 많이 보여지길 원하는 영화이니만큼 <방문자>처럼 무겁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영화를 찍게 됐죠. 그런데 <반두비>는 아무래도 여고생이 주인공이라서 그런 건지 몰라도 정말 앞의 두 작품과는 달리 정말 유쾌하고 밝은 영화잖아요. 그래서 감독님께 두 작품에 못지 않게 좋은 성과를 거두신 거 같다고 축하 드렸어요. (웃음)
올 해 전주국제영화제에서 <반두비>가 2개 부문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사정이 있어서 전주에 못 갔는데 폐막 전날이었나, 검색어에 말 오르는 거에요. 그래서 깜짝 놀랐어요. 신기했죠.
그전에 이미 백진희 씨에겐 <반두비>가 첫 주연작이라는 점에서 이미 의미가 분명한 작품이었겠죠.
아무래도 첫 (개봉)영화에서 첫 주연까지 맡아서 뜻 깊은 작품이죠. 사실 기대하지 않고 오디션을 봤거든요. 그런데 주인공이 되니까 막상 부담감도 밀려오더라고요. 찍는 중간중간에 고민을 많이 했어요. 내가 지금 잘 하고 있는 건가. 나중에 완성본을 보고 나서 내가 나한테 부끄럽지 않을까 의심을 많이 했죠. 잘하고 있는 건지, 아닌지.
스스로 그런 의심을 극복하는 게 중요했을 것 같네요.
그런 의심이 많이 드니까 집중을 못하겠던데요. 하나를 하더라도 내가 진짜 잘 하는 게 맞나 싶고. ‘진짜 민서라면 이렇게 행동했을까’, 의심이 드니까 정말 작은 문제도 더 크게 보이는 거에요. 그래서 감독님께도 많이 여쭤봤죠. “감독님, 민서는 왜 이걸 이렇게 해요? 이렇게 하면 아니지 않아요? 보통 아이들이 이렇게 할까요?” 그러니까 감독님이 민서는 특별한 아이니까 이렇게 한다고 하시는 거에요. 초반에 많이 의심했는데 점점 연기를 하면 할수록 민서라는 캐릭터에 제가 동화돼서 그런 의심이 잦아들었어요.
‘동화’됐다는 말이 마치 캐릭터에 빙의됐다는 말과 비슷하게 들리는군요. 자신도 모르게 때론 민서로서 행동하고 말하게 됐다는 의미겠죠.
그런 게 연기의 매력이고 자꾸 하고 싶게 만드는 거 같아요. 처음 시작했을 땐 의문으로 시작하거든요. ‘민서는 왜 이렇게 행동하지? 왜 얘는 이 상황에서 이렇게밖에 못할까. 나 같은 보통 아이나 아무리 튀는 아이들도 이렇게 하지 않을 텐데’ 이러다가 점점 시간이 지나고 촬영이 계속되면서 그냥 제가 민서가 되면서 자연스럽게 그런 행동이 나오는 거에요. 처음에 돌 던지는 장면도 저는 좀 그랬거든요. 부잣집에 돌 던지고 뒷감당을 할 수 있는 집안 배경이 있는 것도 아닌데 어떻게 그런 행동을 할까 싶었는데 막상 그 순간이 되니까 정말 초인종 벨을 누르고 반대편에서 그런 반응을 보이니까 정말 욱해서 돌을 던지게 되는 거에요. (웃음)
<반두비>에서 민서란 아이와 백진희 씨의 거리가 얼마나 될지 궁금하더군요. 영화만 보고 이야기하자면 마치 민서가 백진희 씨 같더군요. 지금도 조금 걱정됩니다. 화나면 영화처럼 손에 쥐고 있는 거 아무데나 던져버릴까 싶어서. (웃음)
아니에요. 영화만 그럴 뿐이에요. (웃음) 일단 저는 민서처럼 극단적이지 않아요. 학교를 그만둔다던가, 카림같이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다고 애정 표현을 적극적으로 할 수 있는 사람도 아니고, 그런 면을 빼고 보면 성격적으로 약간 비슷한 면이 있을지도 몰라요. 민서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아이고 쉽게 욱하는 다혈질 소녀잖아요. 그런 면이 비슷한 거 같아요. 저도 울분을 못 견디거든요. (웃음) 그런 성격이 비슷해서 연기가 수월했던 거 같아요.
민서가 등장할 때, 촛불소녀 부채를 들고 있는 장면이 인상적입니다. 과외비를 이야기하며 민서 주변에 서 있던 소녀들과 명확히 대비를 이루는 이미지입니다. 민서가 또래들과 차별화된 사회적 의식을 명확하게 보여주는 지점이랄까요.
저도 시사문제에 관심이 많아서 시사프로를 즐겨봤기 때문에 민서가 낯설진 않았어요. 민서는 세상에 무관심하듯 무대포인 소녀잖아요. 그런데 민서의 무대포식 행동이 결국 올바른 행동이죠. 요즘 너무 사교육 열풍이 심해서 애들 모두 영어학원에 다니는데 민서가 이를 부정하는 건 형편이 안 돼서 그럴 수도 있지만 그에 저항하고자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네들이나 잘해’라는 대사에 그런 의미가 담겨있잖아요. 물론 제가 그런 부분에 대해서 저항할만한 학생은 아니었지만 관심은 있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나중엔 집까지 쳐들어갔고요. (웃음) 민서는 상당히 터프한 다혈질 소녀에요. 본인은 화가 나면 어떤 편인 것 같아요?
화가 나면 말을 안 해요. 화가 풀릴 때까지 상대한테도 절대 말하지도 않거든요. 집에 들어와서 부모님이 말 시켜도 말을 안 하죠. 화 푸는 방법은 딱히 생각이 나지 않지만 너무 화가 나서 눈물이 나면 울면서 화를 풀 때도 있어요. 막 심하게 분출하는 스타일은 못돼요. 화를 내면 더 커질 걸 알기 때문에. 욱하는 게 심해서 제어가 안될 때가 있거든요. (웃음)
부모님께서도 상대배우를 아실 수 밖에 없었을 텐데 반응이 어떠셨나요?
아셨죠. 막 인터넷도 검색해보시고 그러시는데. (웃음) 처음엔 영화 찍는다고 좋아했는데 상대배우가 하얀 사람도 아니고, 까만 사람이라니 어떻게 연기할 수 있겠냐고, 솔직히 부모님께선 걱정하셨죠. 그렇다고 말씀을 많이 하신 건 아니고 결국 너한테 주어진 거니까 감사하게 받아들이고 열심히 하라고 하셨어요. 그 분도 자기 역할 주어진 데에서 열심히 할 테니까 너도 그 분이 다르다고 생각하지 말고 네 맡은 바를 열심히 하면 된다고 말씀해주셨죠.
<반두비>는 어쩌면 백진희 씨에게 외국인 연기자와 호흡을 맞췄다는 점에서도 두고두고 특별하고 생소한 경험으로 기억될지 모르겠습니다.
제 인생에 있어서 외국인과 이렇게 많은 시간을 보낼 일은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거란 생각이 들어요. 저도 제 자신에 대해서 편견이 없는 사람이라고 믿고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냥 길에서 마주치는 똑 같은 사람이지, 이렇게 생각했는데 막상 계속 마주치고 밥도 같이 먹고, 연기도 하고, 그렇게 다양한 활동을 하니까 부담이 되더라고요. 그런데 저희가 영화 찍기 두 달 전부터 준비를 들어가서 그 동안 얘기를 많이 할 수 있었어요. 그런데 마붑 씨가 한국말을 잘해요. 얘기하다 보니까 다를 게 없다는 걸 느꼈죠. 저도 모르게 제 안에 편견이 있었던 거 같아요. 처음엔 좀 멀리하려고 그랬을 거에요. 그런데 같이 지내다 보니까 어느 새 저도 모르게 그냥 가까워져 있고, 그래서 정말 피부색만 다르지 똑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됐죠.
한국말을 잘 하는 외국사람을 보면 신기할 때가 있죠.
한국말을 너무 잘 해서 신기했어요. 겉보기엔 딱 외국인인데 한국말을 너무 유창하게 하시니까 점점 익숙해지고, 그냥 알고 있는 사람 중에 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된 거 같아요.
서로 다른 생김새를 보고 느끼는 이질감만큼이나 문화적 차이도 개인의 잠재적인 편견을 만들 수 밖에 없겠죠.
그게 어려운 거 같아요. 아무래도 다른 문화권에서 살다 만났기 때문에 생각이나 언어도 같지 않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다른 사람에 대한 편견을 갖고 있지 않을까요. 그런 걸 깨는 게 상당히 힘들 거란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시간을 갖고 차츰차츰 시도해야죠. 처음부터 너무 강하게 마음을 열려고 노력하는 게 아니라 시간을 두고 물 흘러가듯이 계속 얘기하고, 그렇게 1분 볼 거 10분 보고, 10분 볼 거 30분 보게 되면, 시간이 저절로 해결해주는 거 같아요.
당사자만큼이나 감상자들도 독특하다 느낄만한 캐릭터의 어울림이죠.
어떻게 보면 남들과 다른 시작점일 수도 있는데 오히려 이게 이슈가 됐으면 좋겠어요. (웃음) 물론 이슈가 되긴 됐어요. <반두비>에 대한 안 좋은 글들이 벌써부터 너무 많아서요. (마붑 알엄이) 협박 전화도 받으셨다고 인터뷰에 말씀하신 것도 봤는데 그래서 너무 속상해요. 물론 이주노동자 분들 가운데 나쁜 사람도 있겠죠. 한국사람이라고 다 착하고 좋은 건 아니잖아요. 그런데 일부분만 보고 모든 사람들을 평가한다는 건 아니지 않나요. 영화를 보시고 나서 생각을 해보셔도 늦지 않을 텐데 미리 단정짓고 나쁜 글들만 써버리면 다른 사람에겐 상처가 될 수 있는 거죠. 분명히 내용이 뭔지도 자세히 모르면서 아무 생각 없이 그러는 거 같아요.
보지도 않은 사람들이 말이 많죠.
보지도 않으시고, 그냥 지레짐작으로 저럴 거다 하시나 봐요.
어쩌면 본인도 <반두비>를 통해 직접적인 경험을 거친 덕분에 얻은 좀 더 명확하게 세상을 보는 관점을 얻게 된 것일지도 모르죠.
아무래도 제가 <반두비>를 찍지 못했다면 이주노동자가 일하는 현장을 갈 일도 없었을 거고, 그분들이 일하는 모습을 직접 보지 못하고 그냥 듣기만 했다면 지금만큼 심각하게 느끼지 못했을 거에요. 막상 가서 보니까 정말 작업환경이 열악해서 깜짝 놀랐어요. 일하다가 쉬는 장소가 있는데 거기 벗어놓은 신발에 바퀴벌레가 가득 들어가있는 거에요. 냄새도 심해서 머리가 아플 정도고요. 그 분들이 이런 곳에서 일하는 거죠. 저는 그 분들이 그렇게 일해주기 때문에 저희 사회가 돌아가는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요즘 보통 대한민국 청년들은 3D업종에 종사하지 않으려고 하니까 그 분들이 와서 낮은 임금을 받으면서도 그 업종에 종사해서 대한민국이 돌아가는 거죠. 물론 그 중에 나쁜 분들도 계시겠죠. 사람이 살면서 나쁜 마음을 먹을 수도 있고. 그렇다고 그 사람들을 다 나쁜 사람이라고 폄하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반두비>가 청소년 불가 판정을 받아서 본인도 속상하겠어요.
사람들이 <반두비> 검색해보고 19세라는 것만 봐서 그런지 이상한 쪽으로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너무 속상해요. 그런 내용 전혀 아닌데, 노출이 있는 것도 아니고 선정성이 있는 영화라고 생각하지도 않거든요. 그런데 19세 받았다는 이유만으로 그렇게 생각을 박아버리시는 분이 있더라고요. 몰랐는데 오늘도 그런 분을 만났어요. 덜컥했죠. 그런 게 아닌데. 그런 연기를 하지도 않았고 감독님도 그런 의도가 아니었는데.
배우, 혹은 연예인으로 살다 보면 이상한 구설수에 휘말리는 경우도 많습니다. 루머에 휩쓸리는 경우도 있고요.
제가 얼마 전에 그런 책을 읽었어요. 제목이 <루머의 루머의 루머>인데 여자주인공이 루머에 휩싸여서 결국 자살을 하거든요. 그런데 자살하기 직전에 테이프를 녹음해요. 자살에 동기부여를 한 사람들한테 다 한마디씩 남겨서 그걸 돌린다는 내용이죠. 그걸 읽고 나니까 무서운 거에요. ‘무슨 이런 걸로 죽을 생각을 해’ 싶을 정도로 사소한 이유가 모이고 쌓이다 보면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 있겠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저도 정신 똑바로 차려서 흔들리지 않고 내 중심을 제대로 갖고 있으면 덜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그만큼 더 강해져야 하는 거 같아요.
아직 사회적 경험이 많은 편은 아니지만 여자로서 느끼는 불합리를 경험해본 적이 있을 것 같습니다. 만약 그렇다면 <반두비>에서 민서를 연기하면서 어떤 쾌감을 느낄 수도 있었을 것 같고요.
아무래도 여자는 약자라서 보호받기도 하지만 아직까지 대한민국에서 여자이기 때문에 차별 당하고 무시 받는 경우가 많다고 들었어요. 그런데 <반두비>에서는 교복 입은 16살짜리 어린 꼬맹이가 세상을 진두 지휘한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아빠보다도 나이 많으신 분 따귀를 때리고, 그 집에서 행패도 부리고, 자기보다 나이가 많은 카림이라는 청년을 휘어잡기도 하죠. 항상 여자는 약자고, 뒤에서 보호받아야 되고, 눈치도 많이 보잖아요. 일단 남자가 우선이라는 가부장적인 생각들이 많기도 하고. 그래서 희열을 느꼈어요.
<반두비>보다 <사람을 찾습니다>라는 영화에 먼저 출연했죠. 그 작품에 출연하게 된 경위도 궁금하군요.
CF를 통해서 얼굴이 조금 알려졌는지 ‘애니콜 시보소녀’를 찾던 매니저 분이 있었어요. 그 분을 만나게 되면서 저도 회사랑 계약을 했죠. 그분이 ‘너 나랑 일해볼까’ 하신 뒤에 그 분과 처음 미팅을 간 자리가 <사람을 찾습니다>라는 영화 오디션이었는데 딱 된 거에요. 너무 신기하다 싶은 마음으로 촬영을 했죠.
CF를 통해서 카메라를 먼저 접했지만 아무래도 영화는 또 다른 느낌이었을 거에요.
전혀 다르죠. CF는 솔직히 대사보단 표정 위주니까요. 그리고 대사를 하는데 있어서도 동기 부여가 다르잖아요. 얘가 이런 말을 할 땐 이유가 있는 거죠. 그 땐 그런 걸 이해하지 못했나 봐요. 지금 보면 되게 웃기거든요. (웃음) 물론 하면 할수록 어렵다는 걸 느끼는 거 같아요. 제가 아닌 다른 사람이 돼서 그 사람처럼 반응하고 행동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어요.
아무래도 캐릭터와의 거리감을 이해해야 하는 측면의 어려움도 있었겠죠.
민서가 갖고 있는 상처와 외로움을 이해하기 힘들었어요. 아무래도 저와 정반대의 성장배경을 갖고 있으니까요. 저는 부모님이 두분 다 계시지만 민서는 어머니 밖에 없고, 민서는 외동딸이지만 저는 여동생이 두 명이나 있는 큰 언니거든요. 그리고 저희 집은 큰소리 한번 난 적 없을 정도로 단란하기 때문에 저에게 민서는 가족의 화목함을 모르고 자란 소녀처럼 불우해 보였어요. 제가 연기하면서 과연 그런 상처를 이해하고 제가 그런 면을 보여줄 수 있을지 불안했어요. 그런 상처 때문에 민서가 이런 말과 행동을 하는 건데, 내가 그런 걸 이해할 수 있을까 고민을 많이 했죠. 어쨌든 민서란 캐릭터가 저에게 주어진 이상 그만큼 생각을 많이 해야 했어요. 케이크 하나를 먹더라도 정말 민서가 이 케이크를 먹을지, 집에 싸가서 엄마를 줄지, 그 외로움에 대해서 자꾸 생각하다 보니까 민서를 100% 이해하진 못했다 해도 반은 이해할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CF에 출연한 경위도 궁금합니다.
운 좋게도 길거리 캐스팅이었죠. 그리고 일단 사진심사가 먼저 올라간 다음에 감독님과 미팅을 해요. 카메라를 두고, ‘그 자리에서 해봐라’ 이런 식으로 간단하게 촬영한 자료를 감독님과 광고주들이 같이 보시고 회의를 한 뒤에, ‘얘로 가자’ 이렇게 되는 거죠. 그리고 그 자료가 남아서 어쩌다 보니까 이를 통해 계속 하게 되더라고요.
아무래도 그런 과정이 그 당시 본인에겐 상당히 놀랄만한 변화의 연속이었을 텐데요.
신기했어요. 그냥 맨날 공부만 하다가, ‘미팅 있습니다. 오세요.’ 그래서 갔다 오면 일주일 안에 연락이 와서, ‘촬영합니다.’ 그럼 공부하다가 촬영장 가서 촬영하고 오고. 그 순간엔 꿈을 꾸고 있는 거 같죠. 사실 고등학교 시절에 입시 공부하느라 힘들잖아요. 저는 공부를 별로 안 했지만. (웃음) 어쨌든 누구나 힘든데 그렇게 하루 이틀 정도 CF를 찍는 게 저한테 주어진 상이라고 생각했어요. 하늘에서 주어진 상. 정말 특별한 취미생활이 있는 것도 아니라서 그걸 하면서 스트레스가 풀린다는 느낌을 받았거든요. 카메라 앞에 있으면 행복하고, 그래서 관심이나 호기심이 다 이쪽으로 쏠리게 된 건지도 모르겠어요.
그 이전에 꿈은 없었나요?
음, 꿈이 없었어요. 아마 요즘 청소년 대부분이 그럴 거에요. 고등학교에 가서 꿈이 뭐냐 그러면, ‘꿈 없는데요. 그냥 대학교 가서 졸업 잘해서 공무원 시험이나 봐서 공무원이나 돼야죠.’ 대부분 이럴 걸요. 저도 평범한 학생이었고 특별한 꿈은 없었어요. 그냥 공부하라 그래서 공부했고, 시간 나면 친구들이랑 놀았고, 맨날 무의미하게 살았던 거 같아요.
하긴 요즘 초등학생에게 꿈을 물어봐도 서울대 진학이라고 답한다 하더군요. (웃음) 아무래도 어른들이 꿈꾸는 법을 가르쳐주지 못한 탓이죠.
맞아요. 초등학교 때는 꿈이 많았는데 점점 현실이라는 걸 알아가면서 꿈이 사라지는 거 같아요. 그런데 제 동생이 저와 10살 차이 나는데 또 다르더라고요. 동생한테 꿈이 뭐냐고 했더니 없대요. “네 친구들도 그래?” 그랬더니 대부분 그렇다고. ‘또 다르구나’ 생각했죠.
저 어릴 때만 해도 꿈들이 거창했죠.
대통령? (웃음)
박사, 의사, 이런 것도 많았어요. (웃음) 사실 어릴 때 꿈은 어른의 눈높이에 맞춰지는 경우가 많죠. 그러다 어느 정도 나이가 들면 자기가 하고 싶은 구체적인 꿈을 좇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현실성을 파악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만큼 지금은 세상이 각박하니까 중고등학생조차도 사회에 나가서 먹고 사는 길을 먼저 생각하는 건가 보죠. 그만큼 학교 교육이나 사회적 환경이 학생들의 꿈을 억압하고 있다고 말할 수도 있겠어요.
학교라는 공간이 그 시기에 열심히 공부하지 않으면 사회에서 도태된다는 생각을 갖게 만드는 거 같아요. 공부가 정말 열심히 하고 싶어서 해야 하는 게 아니라 강압적으로 해야만 하는 게 돼버렸으니까. 또 우리나라 현실상 공부가 아니라 예체능처럼 다른 분야는 집안이 빵빵하지 않고선 할 수 없기도 하고요. 하고 싶은 건 대학가서 해라, 이런 식이니까 우리나라 학생들은 공부에 너무 얽매여 살 수 밖에 없다고 해야 하나.
주변에서 이렇게 CF도 찍고, 영화도 찍었다 그러면 부러워하는 친구는 없나요?
아니요. 여자애들이 샘이 많아서 그럴 수도 있는데, (웃음) 그런 말은 안 하더라고요. 제 친구들은 하나같이 직설적이에요. “너는 그냥 볼 땐 괜찮은데 TV에서 보면 얼굴이 왜 그렇게 크게 보이냐”고 그런 말이나 하지 부러워하진 않더라고요. (웃음) 각자 자기만의 꿈이 있고 거기에 대해서 열심히 하니까 그럴 지도 모르죠. 겉으로 내색하는 친구는 없어서 속마음까진 모르겠어요.
반대로 시기하는 친구는 없었나요?
있었어요! 제가 예전에 공익광고 찍어서 학교에 사진이 붙어있었는데 거기다 낙서를 엄청 많이 한 거에요. (웃음) 어린 마음에 새벽에 지우러 갈 수도 없고. (웃음)
CF로 카메라 앞에 서게 됐고, 그 다음은 연기에 도전한 셈이죠. 진지하게 연기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된 계기가 또 궁금해지는군요.
처음엔 호기심이었죠. CF로 먼저 시작하면서 조금씩 카메라 앞에 서는 시간이 생기고, 그러다 보니 얼마나 신기해요. 공부만 하던 학생이 CF찍고, TV에 나오고, 돈도 벌고. (웃음) 그렇게 조금씩 호기심이 커져서 관심이 되고, 점점 연기를 하면 어떨까 생각하기 시작했어요. 아마 고2, 고3때부터 강한 계기가 생겼던 거 같아요. 제가 고3때 ‘애니콜 시보소녀’ CF를 하면서 해외촬영을 했는데 연기를 못한다고 감독님한테 혼났거든요. 그게 컸던 거 같아요. ‘내가 연기를 하면 어떨까. 잘 할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이 들면서 오히려 연기가 해보고 싶은 거에요.
주눅이 들어서 일찍 단념할 수도 있지만 반대로 하고 싶다고 생각한 것 보면 민서만큼이나 오기가 만만찮은 성격인가 보군요.
그런 점이 민서와 비슷한 거 같아요. 욱해서 오기가 발동하니까, ‘나도 잘 할 수 있는데’라고 생각하는 거죠. 그리고 거기서 포기하면 어떡해요. 아직 어린데. (웃음) 세상에 쉬운 일은 없잖아요. 다 힘들고 어려워도 그걸 겪으면서 견뎌내고, 지나고 나면 아무 것도 아닌 거니까. 그렇게 결국 잘 되면 얼마나 좋아요.
처음으로 스크린에 뜬 자신의 얼굴을 봤을 텐데 기분이 어땠나요?
실망스럽죠. (웃음) 그냥 <반두비>를 보면서 의문이 들었어요. 오디션장에 예쁜 친구들도 많이 왔을 텐데 감독님은 왜 나를 썼을까. 전 예쁜 얼굴은 아니잖아요. 오디션장 가면 예쁜 친구들 정말 많거든요. 촬영하면서 한동안 잊어버렸는데 큰 스크린으로 제 얼굴을 보니까 다시 한번 그 생각이 나더라고요. 고치고 싶다고 생각되는 부분도 한 두 군데가 아니고. (웃음)
아무래도 얼굴 예쁜 사람 순서대로 배우를 시킨다면 지금 현재 훌륭하게 인정받는 배우 가운데서도 그만 두셔야 할 분이 많을 걸요. (웃음) 아무래도 백진희 씨가 신동일 감독님이 찾는 캐릭터에 어울리는 사람이었겠죠. 전 영화를 보면서 민서의 심드렁한 표정이 인상적이었는데 백진희 씨가 아니었다면 그런 얼굴이 아니었겠죠. (웃음) 어쩌면 자신도 스크린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평소에 알지 못했던 버릇이라도 찾아내지 않았을까 궁금한데요.
있죠. ‘나한테 저런 얼굴이 있었나?’ 싶기도 하고, ‘내가 저렇게 연기했구나’ 깨닫기도 하고.스크린으로 보여지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그런 게 많이 느껴져요. 민서가 아니라 백진희가 보였던 장면도 있어요. 노래방에 카림이랑 같이 가서, “엄마, 특실 비었지? 2시간만 넣어줘.” 이 때, (테이블을 두들기면서) 이렇게 딱딱 치고 가더라고요. 저도 모르게 그냥 한 거에요.
계산하고 의도한 행동이 아니라 자신도 모르는 행위들이 그냥 감지된다는 거죠.
저도 모르게 나와요. 그 말을 하고 나면 이런 행동이 이어지고, 그게 되게 신기했어요.
아직 경험적으로 백지상태에 가깝기 때문에 경험적인 자극의 강도도 크게 느껴질 수 있겠죠.
그 하나하나를 잘 기억해두는 게 중요할 거 같아요. 배우가 되려면 모든 반응에 대해서 기억하고 있어야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이 반응에 대해서 기억해두면 다음에 이와 비슷한 반응이 왔을 때 그 반응과 비교할 수 있겠죠. 살짝 차이는 있겠지만 사람이기 때문에 공통점도 있을 거란 말이에요. 그런 걸 항상 기억하고 염두에 두는 게 중요한 거 같아요.
본인은 사실 적은 경험이라고 느끼고 있는 반면 주변에 자신의 경력을 인식하는 사람들은 본인이 CF를 찍고, 영화에 출연했다는 사실만으로 특별한 시선을 둘 가능성도 있을 겁니다. 스스로 그런 시선을 느낀 적은 없었나요?
대학교 가서 처음 친구들 사귈 때 특히 그랬어요. 제가 이런 일을 한다는 게 알려지니까 친구들이 다르게 보는 거에요. 처음에 그걸 견디기 힘들었죠. 왜 그럴까, 나는 아직 이름도 안 알려졌는데, 버스타도 알아보는 사람도 없는데 왜 저럴까, 생각했죠. 인터뷰는 제 속에 있는 깊은 생각까지 다 얘기할 수 있어서 좋은 거 같아요. 아무래도 친구들과 얘기할 땐 이런 대화를 할 수 없거든요.
유사 성매매 업소에서 아르바이트하는 장면을 연기하는 건 좀 만만치 않았을 것 같습니다.
일단 시나리오 받고 놀랐어요. 성매매하는 곳은 있다는 걸 알았지만 그런 장소가 있는지는 몰랐거든요. 그래서, “이게 뭐에요?” 물어보고 이런 저런 설명을 듣다가 굉장히 놀랐고, 걱정도 많이 됐어요. 그런데 너무 그 부분에 염두를 두다 보니까 영화 전체가 안 보이고 그 장면만 보이게 되더라고요. 감독님께 그 부분에 대해서 걱정된다고 말씀드리고 대화도 많이 나눴고요. 그런데 감독님이나 스태프들이 아무리 신경 써준다 해도 해내는 건 제 몫이더라고요. 그래서 좀 힘들었죠. 하고 나서도 좀 그랬고. (웃음)
남자들이 징그럽진 않던가요?
아니요. 다행히 그 정도는. (웃음)
고등학교를 졸업한지 얼마나 됐나요?
이제 1년 넘었으니까 2년째죠.
약 1년 만에 다시 교복을 입게 된 셈인데.
저는 고등학교 때 사복을 입어서 교복은 정말 오랜만이었어요.
아, 그럼 중학교 이후로 교복을 처음 입는 건가요?
4년 만에 입는 거죠. 그래서 교복 입는 거 좋아요.
본인 나이보다 어린 여고생 역할을 연기한다는 건 어떤가요? 아직 그 당시로부터 많이 지난 나이가 아니라서 그리 어색하진 않았을 것 같은데.
저는 아직까진 교복 입고 학생역할 하는 게 잘 맞는 거 같아요. 외적으로도, 내적으로도 성숙된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아무래도 나이 대가 있는 역할을 지금 하기엔 버겁지 않을까 싶어요. 아직 학생처럼 생각하고, 행동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부분은 이해할 수 있지만 20대 여대생 같은 경우도 아직은 무리가 아닐까 싶어요. 솔직히 대학교도 한 학기만 다녀봤기 때문에 여대생에 대해서도 잘 모르겠죠. 외적으로도 성숙해져야겠지만 동시에 내적으로도 커야 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지금은 잘할 수 있는 걸 하는 게 맞겠죠. 도전이 무서운 건 아니지만 괜히 섣부르게 못하는 걸 할 순 없잖아요. 아직은 자신도 없고, 지금 잘할 수 있는 걸 하는 게 맞겠죠.
독서 좋아하세요?
예. 책 읽는 거 좋아해요.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이 말을 잘할 가능성이 많더군요.
아, 저 말 잘 못하는데. (웃음)
자기 주장이나 주관이 뚜렷한 거 같아요. 사실 요즘 학생들 여건상 독서가 쉬운 취미는 아닐 텐데요.
요즘 학생들은 책 많이 못 읽을 걸요. 문제집 보는 시간이 많지, 책 읽는 시간은 적을 거에요. 저는 최근에 <반두비>때문에 휴학을 해서 남는 시간도 대부분 책 읽는 시간으로 보냈거든요. 어릴 때와 다르게 느끼는 것도 많아진 거 같아요. 간접적으로 많은 걸 상상하고 경험할 수 있으니까.
배우로서도 간접경험은 중요합니다. 그런데 독서는 개인적인 범위 내에서 가능한 취미죠. 그만큼 개인적인 활동이나 사적인 공간을 중시하는 성격이 아닐까 예상할 수 있을 것 같고요.
저는 동적인 사람이 아니라 정적인 사람 같아요. 개인적인 활동을 주로 하거든요. 생각해보면 뭔가 좋아서 환호한 적도 얼마 없거든요. 남들과 소란스럽게 어울리는 걸 별로 좋아하지도 않아요. 어쩌다 친구를 많이 만나도 4~5명 정도 모여 앉아서 수다나 떨고, 그게 다에요. 책 읽고 혼자 생각할 때가 많아요.
자신의 캐릭터나 작품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했을 것 같군요.
작품을 하나 하면 얻는 게 많은 거 같아요. 한 작품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게 되거든요. 얘는 이런 가정 환경에서 살았지만 얘는 어땠을까, 이렇게 사람에 대한 분석을 많이 하기도 하고, 또 아무래도 감독님과 대화하려면 너무 애 같아선 안될 거 같단 생각도 들었어요. 제 자신에 대해서 저도 모르게 점점 생각을 깊게 하게 됐죠. 그러다 보니까 생긴 것과 달리 속이 깊다는 소리도 많이 들었어요. (웃음)
연기가 스스로를 조금이라도 변화시키고 있다고 느껴지는 지점은 없나요?
사실 제가 낯을 많이 가리거든요. 처음 본 사람하곤 거의 말을 못해요. 대화를 이어가지도 못하고요. 그런데 이 일을 하면서 그런 게 조금 없어진 거 같아요. 물론 아직도 그런 면이 많이 남아있죠. 잘 모르시는 분들은 화났냐고 묻는 분들도 있어요. 뚱한 표정으로 있으니까. (웃음) 사람 대하는 게 어려워요. 게다가 다들 저보다 나이가 많으신 분들이니까 말 한마디 잘못했다가 괜히 낭패 볼 수 있기 때문에 더 조용해지는 건지도 모르겠어요. 그래서 혼자 있을 땐 더 정적인 거 같아요. 사람들 대하느라 힘들었던 시간을 혼자 있는 시간으로 보상받겠다는 생각이랄까?
어쩌면 더 변할지도 모르죠.
잘 모르겠어요. 그냥 책 읽고 생각하는 시간이 좋아서 계속 이런 식으로 갈 거 같다는 생각을 해요. 그리고 요즘은 사람을 안 만나도 대화할 수 있는 창이 너무 많아요. (웃음)
대화라기 보단 말하는 걸 좋아하는 게 아닐까 싶네요. 자기가 가진 생각을 털어놓을 수 있을 때 말의 재미를 느끼는 게 아닌가 싶어요.
만약 이렇게 인터뷰로 만나지 않고 사적으로 만났다면 주제를 갖고 만난 게 아니기 때문에 대화를 나누기가 힘들 거에요. 그런데 이렇게 인터뷰는 기자님이 물어보시면 저는 답하고, 또 물어보고, 이런 식의 대화가 편하고 좋아요.
<반두비>에서 민서가 주유소 사장님에게 가불을 요청하면서 거짓말로 쌍꺼풀 수술 때문이라고 대답하기도 하죠. 아까 장난처럼 성형 이야기를 했는데 혹시 정말 고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부분이 있나요?
저도 조금 하고 싶긴 하죠. (웃음) 그런데 눈은 정말 고치고 싶지 않아요. 사실 요즘 다들 쌍꺼풀 있는 눈들이잖아요. 물론 안 그런 분들도 계시지만 대부분 그래서 다 비슷비슷해 보이는 거 같아요. 그런 얼굴이 되기 보단 저만의 개성을 확실한 매력으로 둔 얼굴을 갖고 싶거든요. 그리고 그런 개성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게 눈이 아닐까 싶어요. <마더>에서 김혜자 선생님께서 눈 하나로 살아온 세월이나 지금 하려는 이야기를 다 표현하시잖아요. 정말 그런 눈을 닮고 싶어요. 전 외꺼풀이라 깊은 눈매는 아니지만 그래도 외꺼풀만의 매력이 있기 때문에 저는 눈만은 절대 고치고 싶은 생각이 없어요.
<반두비>를 통해 배우로서 시작점을 출발한 셈입니다. 어쩌면 지금이야말로 어떤 꿈이라도 꿀 수 있는 지점일지도 모르고요.
깊이 있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대사 한마디를 던지더라도, 의미? 깊은 의미를 던질 수 있는 그런 것. 김혜자 선생님의 눈빛 반만 따라가도 성공한 게 아닐까 생각해요.
혹시 롤모델이라고 말할 만한 배우가 있나요? 방금 말한 김혜자 선생님?
롤모델은 김미숙 선생님. 눈빛에서 카리스마가 느껴지잖아요. 여자로서도 닮고 싶고, 피부도 너무 좋으시고. (웃음)
관록 있는 분들을 동경하시는군요. 만족하려면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겠어요. (웃음)
그 정도 나이에 그 정도 에너지를 낼 수 있다는 게 너무 부러워요. 아무래도 연기적인 부분이 많이 보이나 봐요.
직접 연기를 해봤기 때문에 좀 더 실감나는 건지도 모르죠.
사실 예전엔 나도 할 수 있겠다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란 걸 새삼 깨닫게 된 거죠. 일단 저런 감정이 쉽게 나올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걸 하나씩 깨우쳐 갈 수 있었던 과정인 거 같아요.
민서처럼 고등학생이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 당시에 비해 지금의 자신이 얼마나 변했다고 생각하나요?
학교에선 틀에 갇힌 주입식 입시교육 위주로 학생들을 다스리잖아요. 그러니까 다른 학생들처럼 주어진 것에만 반응해야 했죠. 1번부터 5번 보기 중에 1번이 답이라면 1번 보기처럼 반응하고 살았는데 이제 학교라는 틀에서 벗어나면서 약간 달라졌다고 생각해요. 보는 시각도, 하는 행동도, 드는 생각도.
그렇다면 <반두비>는 백진희 씨에게 무엇을 남겼다 말할 수 있는 영화일까요?
다른 문화권의 다른 인종, 그것도 한국인이 경멸하는 이주노동자를 친구로 받아들인다는 영화 내용이 신선하다면 신선하다고 할 순 있겠지만 저한텐 둘이 친구가 된다는 게 되게 충격적이었어요. 친군지 로맨스인지 약간 애매하긴 하지만. (웃음) 그런 부분을 깊게 생각하다 보니까 이렇게도 친구가 될 수 있구나 싶더라고요. 생각하는 게 많이 변했어요. 이제 막 싹을 틔운 느낌이랄까. 그전까진 모든 일에 있어서 세상에 회의적이고 부정적인 사람이었는데 그런 것도 많이 없어졌고 사람에 대한 배려에 대해서도 많은 생각을 하게 됐죠. 한 사람 한 사람을 다 배려하려고 노력하게 된 거 같아요. <반두비>를 하면서 친분이 쌓인 스태프분들 한 분 한 분이 소중하다는 감정을 느꼈어요. 저한테 주어진 모든 것들, 저한테 주어진 제 주변의 사람들, 저한테 주어졌던 일들, 저한테 주어지는 일들, 그 모든 것에 감사하는 마음이 생겼어요. 민서도 카림이라는 진정한 친구, 반두비를 만나면서 느끼는 게 많아지고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지면서 숙녀로 성장하잖아요. 나중에 영화 시작할 때와 끝날 때 모습이 정말 다르거든요. 인생에 있어서 한번의 전환점이 된 거죠. 민서에게 카림이 그런 존재인 것처럼 어쩌면 <반두비>가 저에게 그런 존재가 된 건지도 모르죠.
요즘 인터뷰를 많이 하는 것 같던데.
장경아(이하, 장): 거의 매일매일. 송민정(이하, 송): 한 3주 째 계속 했나.
촬영 끝나고 나서 휴식기간은 좀 가졌나요? 손은서(이하, 손): 한 일주일 쉬었나? 오연서(이하, 오): 3월 달에 끝났는데 후시녹음하고 그러느라 계속 모였죠.
촬영장을 떠나서 이렇게 만나면 어떤가요? 유신애(이하, 유): 똑같아요. 오: 지겨워요. 이제 그만 만났으면 좋겠어요. (웃음) 손: 저희가 영화 준비하기 전부터 계속 함께 지냈기 때문에. 송: 기사에 쓰시는 거 아냐. ‘그만 만나고 싶다. 지겹다.’ 이렇게. (웃음)
아무래도 동갑내기 배우들끼리 모여서 촬영현장은 화기애애했을 것 같습니다. 송: 굉장히 화기애애했어요. 유: 완전 시트콤? (웃음) 장: 맞아. 시트콤이었어. 나이도 비슷하니까 즐겁게 촬영한 거 같아요.
<여고괴담> 전작들은 다들 봤나요? 장: 저희는 다 봤는데 (옆에 있는 오연서를 가리키며) 얘만 못 봤어요. 오: 예. 전 공포영화를 못 봐요.
공포영화를 못 보지만 자신이 출연한 공포영화는 봐야 되겠네요. 오: 그래도 저는 언제쯤 귀신이 나올지 대충 다 아니까, 그 때마다 적절히 피하면 되요.
일단 자기 연기를 보다 보면 영화가 잘 보이지 않을 수도 있겠죠. 장: 맞아요. 맞아. 오: 자기만 보게 돼.
아무래도 전체적으로 우울한 감수성이 짙어서 배우 스스로의 기분이 쳐지거나 심리적으로 지치는 순간들이 있었을 겁니다. 혹시 누군가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담당했다고 할만한 분이 계시나요?
장: 아무래도 동갑내기 친구다 보니까 다들 화기애애했던 거 같은데요.
누구 가릴 것 없이 다들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도맡았나 보군요. 오: 아무래도 나이가 같다 보니까 마음이 잘 맞아서. 송: 저희는 만나기만 하면 수다에요. 안 그래도 기자 분들 사이에 말 많다고 소문났다던데요. (웃음)
다들 또래 나이라서 친해지는 것도 어렵진 않았을 거 같습니다. 촬영장을 벗어나서도 서로 어울리는 일은 없었나요? 오: 만나서 영화도 보고 쇼핑도 하고. 그냥 대학생들이나 다름없어요. 송: 촬영이 없을 때도 따로 만나고, 커피도 마시고, 술도 먹고. (웃음) 오: 저희 여고생 아니랍니다! (웃음) 장: 촬영 들어가기 전에 두 달 전부터 이춘연 대표님이나 감독님이 저희를 모아 놓고 연기연습을 시키기도 했고, 지방에서 촬영을 하느라 방을 같이 쓰기도 했거든요. 그게 친해지는데 굉장히 도움이 많이 된 거 같아요. 오: 매일 연습실에 모여서 연습하다 보니까, 그리고 촬영할 때는 숙소를 둘이서 같이 써서 더 친해졌죠.
유신애 씨는 막내였는데 언니들이 잘 챙겨주던가요? 유: 오히려 저는 언니들이 많이 챙겨줬어요. 장: 그런데 신애는 은근하게 사람을 휘두르는 게 있어요. (웃음) 유: (깜짝 놀라면서)? 오: 경아 너한테만 그래. (웃음) 장: 연서가 어느 날 그러는 거에요. 그래서 생각해보니까 숙소 사용할 때도 항상 리모콘은 신애 차지였어. 오: 자기가 졸리면, ‘언니 졸려?’ 이러고 불 꺼버리고 자고. (웃음) 송: 혹시 언니들한테 경쟁심 느꼈니? (웃음)
여자들은 질투가 심하다고 하잖아요. <여고괴담5>도 사실 여자들의 질투를 공포로 표현하기도 하죠. 이렇게 여자 다섯이 모였는데 혹시 경쟁심이 생기진 않았나요? 유: 그거 다 물어보시던데. (웃음) 장: 정말 항상 나오는 질문이지만 서로 너무 안쓰러워서 경쟁할 수 없었어요. 한두 명을 힘들게 몰아붙이는 촬영 스케줄이 많았거든요. 그래서 애들이 다 죽어가듯이 축 쳐져 있으니까 서로 불쌍했던 기억만 나요. (웃음) 오: 촬영을 한 사람에게 몰아줘요. 하루 종일, 아니면 3일에 걸쳐서 한 사람이 촬영 분량을 소화하니까 체력적으로 많이 힘들었죠. 저희끼리 이 날은 소이 데이(day), 유진 데이, 은영 데이, 이런 식으로 불렀어요. 그 날은 하루 종일 걔만 촬영하는 날인 거죠. 송: 자기와 비슷하게 생긴 누군가가 있거나 캐릭터가 비슷하다면 경쟁심이 생겼을지도 모르는데 워낙 다들 개성이 뚜렷해서 그런 생각을 못했던 거 같아요. 오: 저는 고등학교 시절에 주로 같이 어울리는 친구가 열 명이었는데 다들 예고에서 연기를 지망하는 친구다 보니까 누구 한 명이 연기 성적을 잘 받으면 질투하고, 그런 게 미묘하게 있었던 거 같아요. 앞으로는 다 친한 척해도 뒤에서는 욕할 수도 있고, 상대방을 너무 좋아하기 때문에 때론 미워할 수도 있는 거고. 그리고 내가 너보다 더 못한 게 뭘까, 하고 자책하면서 그 친구가 미워지고. 유진이랑 은영이도 사실 소이를 끼워주긴 하지만 은근히 왕따시키잖아요. 그런 게 여자들 사이엔 다 있는 거 같아요.
오랜만에 다시 고등학교 교복을 입는 기분은 어떻던가요? 손: 전 이제껏 계속 맡았던 역할이 고등학생이라서 새로운 감흥은 없었던 거 같아요. 그런데 저희가 진주 내려갔을 때, 저희가 촬영장으로 쓰는 고등학교 학생들이 보충수업 중이었어요. 그렇게 실제 여고생들도 보니까 옛날 생각은 났어요. 송: 좋았어요. 왠지 여고생으로 돌아간 느낌이었고. 저 같은 경우는 머리까지 잘랐거든요. 원래 좀 긴 머리였는데 그렇게 자르고 교복까지 입으니까 여고생이 된 듯한 느낌? 외모부터 바꾸고 나니까 캐릭터에 빠지기가 쉬웠어요. 내가 더 은영이가 된 것 같은 느낌이고. 오: 전 걱정이에요. 머리 잘랐을 때 기분이 좋았는데, 지금은 별로 기분이 좋지 않아서. 영화 보니까 앞으로 시집은 다 간 거 같던데. (웃음) 송: 맞아. 우리 정말 너무 망가졌어. 나도 내가 나올 때 너무 싫었어. 극단적인 신이 많으니까 망가질 것도 충분히 예상은 했지만 그 정도로 망가졌을 줄은 몰랐어요. (웃음) 영화를 보고 나서 들었던 생각이, ‘나 어떡해’. (웃음) 오: 너는 귀여웠다니까. 송: 아니야~. 나도 정말 처참했어. 오: 너는 차라리 귀신이라도 되서 그러니까 그런가 보다 하겠지. 난 사람인데도 그랬잖아. 그리고 나는 살인미수라니까, 살인미수. (웃음) 우리 실장님이 영화보고 나서 그러시는 거에요. ‘연서야, 너 이제 CF 못 찍겠다.’(웃음)
학창시절에 본인들은 어떤 학생이었다고 생각하나요? 자신이 연기한 캐릭터와 비슷하거나 다른 부분도 있을 것 같은데요. 오: 유진이랑 비슷했어요. 공부 열심히 하고, 욕심도 많고. 그런데 포기해야 할 부분은 포기한다는 점에선 다른 편이었죠. 그렇게 집착하진 않았으니까. 장: 솔직히 언주는 착하다기 보단 약간 못난 아이잖아요. 순수해서 더욱 무책임하고 자기가 하는 행동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 모르고 하나밖에 보지 못하는 맹목적인 아이랄까. 제가 어릴 때 언주처럼 좀 그랬던 점이 있거든요. 뭔가 하나에 꽂히면 다른 걸 생각하지 못하고 그것만 봤다고 할까. 그게 남한테 어떤 피해를 주는지 생각 못하는 거죠. 순수함이 가져온 이기주의라고 생각했어요. 다른 분들은 시나리오만 보고 언주를 착한 아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래서 저는 막상 못났다고 생각했고요. 만약 영화를 보신 분들 가운데 언주한테 많이 화가 난 분들이 계시다면 제가 의도한 메시지가 잘 전달된 게 아닐까 싶어요. 이렇게 무모한 행동을 하면 어떤 결과를 낳는지, 그걸 언주와 같은 학생들이 볼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손: 중학교 때나 고등학교 때와 비교해보면 소이와 제가 별로 비슷하진 않았던 거 같아요. 중학교나 고등학교 때 친했던 애들이 같은 학교로 따라오는 경우는 많지 않잖아요. 한두 명만 같은 학교로 가고 그러면 꼭 같이 올라왔던 친구랑 더 친해지고 그랬던 거 같아요. 송: 은영이는 유진이에게 굉장히 의지하는 아이잖아요. 친구 좋아하는 건 비슷해요. 그런데 악랄하게 누구 뒷담화를 늘어놓는다던가, (웃음) 아빠한테 그렇게 맞았다던가, 그런 건 다르죠. 유: 정언이는 화가 나면 다 표출하고, 언니들한테도 당돌하게 대하잖아요. 그런데 저는 화가 나면 다 삼키고 표현을 안 하는 편이에요. 완전 상반된 성격이죠. 낯을 많이 가리면서도 완전히 친한 친구들과 있을 때는 다르고.
자신이 연기할 캐릭터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했을 겁니다. 그만큼 각자 자기 캐릭터에 대한 애정도 만만치 않게 쌓였을 것 같은데요.
오: 저는 유진이가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왜냐면 스무 살도 되지 않은 고등학생이니까 자아가 성립되기 전이잖아요. 자기에게 중요한 남자친구를 뺏기는 것도 큰 충격이었을 테고, 자기와 친한 친구가 임신까지 했잖아요. 들어보면 우리 그룹에 속한 것도 그 남자를 뺏기 위해서라고 나오기도 하고요. 제가 감독님께 인물분석표를 드렸는데 전 유진이가 가톨릭학교에 다니지만 무교일 거라고 썼어요. 그런데 감독님께서, ‘유진이는 절실한 크리스찬이 아닐까’ 말씀하시는 거에요. 그래서, ‘왜요?’ 물었어요. 그러니까 감독님께서 원래 하나님은 자기가 나쁘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벌을 심하게 주신다고, 그러니까 유진이는 자기가 심판자로서 은서를 벌한다고 생각했다는 거죠. 그래서 성당에서 얘를 죽이려고 하는 거고. 나쁜 사람은 벌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랬던 거 같아요. 송: 사람들도 가장 불쌍한 애라고 말하지만 저는 은영이가 너무 불쌍해요. 맨날 아빠한테 얻어터지고, 믿었던 친구한테 이용당하고, 결국엔 자살까지 하잖아요. 그렇게 은영이가 힘들어할 때 누군가 위로해주고 손을 내밀어 줬다면 그렇게 극단적인 상황까진 안 갔을 텐데. 자살을 할 때도 누구 하나 손 내밀어 주는 사람도 없었고. 오: 왜, 내가 네 이름 불러줬잖아. (웃음) 송: 언주도 나만 따라다니잖아. (웃음) 장: 그래서 뭐야, 스토커야? 막 이러고. (웃음) 송: 못된 건 유진인데, 은영이가 제일 얄밉다나. 그래서 은영이만 따라다니고. 왜 은영이만 못살게 구냐고. 너무 불쌍해서 더 애착이 남는 거 같아요. 오: 그런데 은영이가 소문은 다 냈잖아. (웃음) 손: 소이에겐 복합적인 감정이 많아서 힘들었어요. 그리고 애들끼리 있으면, ‘소이가 제일 나빠’ 이렇게 결론이 나는데 저 같은 경우는 아무래도 영화는 그렇게 끝나도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소이가 가장 짠한 삶을 사는 친구가 아닐까 생각했어요. 자기 대신 친구가 죽었다는 죄책감을 느끼고 살아남은 거잖아요. 이 친구가 계속 살아가는 동안에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생각하면 소이가 가장 불쌍하게 느껴져요. 송: 정언이도 살았잖아. 유: 나는 뭐야. (웃음) 오: 정언이는 혼자 행복할지도 몰라. 집에서 엄마 사랑을 혼자서 독차지하고. (웃음) 장: 저는 실제로 연년생 동생이 있거든요. 정언이를 보고 동생이 많이 생각났어요. 학교에 같이 다니니까 집에서는 아무리 미친 듯이 싸워도 학교에서 동생이 어떤 애한테 당하고 있으면 진짜 돌아버리는 거죠. (웃음) 그래서 언주가 죽은 다음에 귀신이 돼서 정언이한테 함부로 하는 친구들을 죽이는 것도 이해가 갔어요. 제가 언주라도 그랬을 것 같고. 저는 정언이가, ‘우리 언니는 이제 다시 돌아올 수 없어’라고 말하면서 복도를 가로지르고 갈 때 솔직히 진짜 눈물이 많이 났어요. 그런 면에서 공감하는 바가 있었죠. 유: 저는 외동딸이고, 언니가 없어요. 그래서 언니가 있는 기분도 잘 모르고, 가족이 죽는 경험도 쉽게 할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그래서 그냥 주변 분들이나 언니들과 이야기도 많이 하고, 간접경험을 많이 얻어보려 했어요.
유신애 씨 말처럼 실제 자신이 경험해보지 못한 부분을 이해하기 위한 노력도 있었을 겁니다. 그 밖에도 각자 느끼는 어려움이 있었을 것 같은데요. 오: 마지막 성당 장면을 찍을 때 한번은 낮 4시부터 다음 날 낮 2시까지 줄곧 제 신만 촬영했었어요. 그러다 보면 진짜 악이 나올 수 밖에 없어요. 정말 실제로 상대방을 바닥으로 끌고 가거나, 잡아 뜯기도 하고, 그렇게 다 실제로 감정이 이입되는 거 같았죠. 그 전엔 누군가를 괴롭히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는데 막상 극한 상황에 몰리는 기분을 느끼니까 뭔가 해야 될 거 같고. 송: 저는 감독님과 굉장히 많은 얘기를 나눴어요. 사실 저보다 감독님이 은영이란 아이에 대해서 더 잘 아실 거 아니에요. 직접 쓰신 이야기니까. 저는 은영이가 자살할 때 불행하게 죽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감독님께서는 행복하게 죽어야 된다고 설명해주셨어요. 그렇게 신마다 제 머리 속에 딱 박히게 설명을 해주셨는데 덕분에 감독님 얘기가 다 끝나면 저 혼자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연기할 수 있었던 거 같아요. 손: 저희끼리 손을 잡는 신도 많았는데, 아무래도 마지막 장면도 그렇고 말보다 눈빛 하나로 소통하는 게 더 좋을 만한 부분이 있어서 그런 게 아니었을까 싶어요.
캐릭터에 대해서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지점은 없었나요? 장: 언주는 친구 때문에 죽잖아요. 그런데 언주는 소이에게 큰 은혜를 입은 것도 없고 뭔가를 받은 것도 없어요. 그래서 그 부분에 대해서 감독님께 백만 번은 여쭤본 거 같아요. 그때마다 감독님께서 하셨던 말이, 만약에 어른의 시선으로 본다면 반드시 어떤 의미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겠지만 고등학생 때는 누군가로부터 뭔가를 받지 않아도 그 사람을 좋아할 수 있는 순수한 시절’이라는 거에요. 그래서 일부로 특별한 의미를 넣지 않으셨다고 하시더라고요. 처음엔 이해가 안 갔는데, 보통 고등학교 시절이나 중학교 시절을 회상해 보니 그게 진짜 맞는 거 같았어요. 만약 누군가에게 뭔가를 받아서 그렇다면 오히려 순수하게 죽거나 희생하진 못했을 거 같아요. 오: 저는 왜 유진이가 그런 들통날 짓을 했는지 모르겠어요. (웃음) 들킬 일이잖아요. 그런데 왜 도대체 저런 위험을 안고 밤에 저런 짓을 하고 있을까 싶어서 좀 이상했죠. 정말 얘는 양심의 가책을 못 느낄까 궁금하기도 하고. 사실 언주도 제가 죽인 거나 다름없잖아요. 은영이도 마찬가지고. 그래서 과연 유진이 얘는 정말 죄책감이 없는 악마일까 생각했죠. 고등학생에게 사람을 죽인다는 생각은 어려운 일이잖아요.
사실 남자가 결코 이해할 수 없는 여자들만의 행위가 있죠. 예를 들면 손을 잡고 같이 화장실까지 간다던가. 송: 그건 여자들만 알 수 있는 세계관이라고 할 수 있죠. (웃음)
그래서인지 여자들의 관계를 동성애로 그리기도 쉬운 거 같아요. 실제로 여고에 떠도는 동성애 소문도 많잖아요. <여고괴담5>에서도 소이를 향한 언주의 마음이 때론 우정이라기 보단 사랑이 아닐까 생각되는 지점도 있고요. 손: 여자들의 우정은 집착으로 번지는 경향이 있어요. 저 친구가 다른 친구들과 더 친한 모습을 보면 질투를 심하게 느끼기도 하고, 그게 결국 집착이 되기도 하는 거 같아요. 유: 남자들은 자존심을 가장 크게 생각하지만 여자들은 관계를 가장 크게 생각한대요. 그래서 그렇게 손잡고 가는 것도 자기가 관계에서 밀려나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이고, 그래서 더 집착하는 거래요. 장: 그런데 언주는 대사만 봐도 충분히 동성애스럽다고 느낄만한 구석이 있는 거 같아요. ‘죽는 날 같이 죽을 수 있을까’그런 것도 있고, 대학교 갈 때까지 함께 있자고 하고. 손: 사실 너무 닭살스런 대사들이 많아서 애들이 되게 힘들어 했었죠. 하는 저희도 너무 닭살스럽고. 오글오글. (웃음) 장: 그런데 저는 그런 상황을 만든 원인이 다 어른이라고 생각해요. 어렸을 때부터 남자들은 나가서 놀아야 된다고 하고, 여자한테는 집안의 유대를 강조하면서 키우잖아요. 명절 때도 여자들은 다 일만 시키고, 남자들은 자기들끼리 놀고, 아무래도 그런 걸 보면서 크니까 여자들끼리 끈끈하지 않을 수 없죠. 오: 외국사람들이 한국여자들끼리 손잡고 다니는 거 보면 이상하대요. 그렇게 보면 그것도 우리나라 여자들만의 고유한 습성인 거 같아.
피를 보는 영화다 보니 피 분장하는 장면도 많더군요. 그것도 사실 고역이지 않던가요?
송: 끈적거려서 몸에 묻으면 굉장히 신경도 예민해지고 짜증나요. 그리고 다른 사람 옷에 묻으면 잘 안 지워지거든요. 그래서 사람들도 다 기피하고. (웃음) 경아가 피 분장을 제일 많이 해서 고생했을 거에요. 저희는 처음에 언주가 그렇게 티를 많이 안 내길래 피 분장에 금방 적응되나 보다 그랬는데 마지막에 제가 피 분장을 해보면서 대체 그걸 어떻게 그걸 참았나 싶었어요. (웃음) 오: 머리를 내밀어서 피를 떨어뜨리는 장면이 있는데 피가 제대로 안 떨어지는 거에요. 계속 분장을 지웠다가 다시 하고 그러니까 나중엔 힘들어서 눈물이 막 나는 거에요. 그 피 분장이 굉장히 짜증나는 작업이에요. 송: 아, 그리고 나 죽을 때 피바다에 누워있었잖아요. 장: 나도 죽었어. (웃음) 송: 피가 차가워서 춥고, 계속 끈적거리니까 그냥 다들 쉬는 시간에 쉬는데 저는 그냥 누워있었어요. 움직일 수가 없으니까. 유: 그래도 언니는 낮에 해서 다행이야. (웃음) 장: 맞아. 제가 떨어져서 죽은 걸 정언이가 발견하고 달려와서 죽은 저를 안고 오열하는 장면이었는데 전 그냥 누워있는 역할이었으니까 제가 열심히 한다고 해서 빨리 끝낼 수 있는 장면이 아니잖아요. 신애 최고의 감정신이라고 할 수 있는 우는 장면이라서, (이빨을 꽉 깨물면서 위협적으로) ‘빨리 끝내라!’이럴 수도 없고. (웃음) 유: 그런데 원래 그 장면이 더 많이 나오기로 했는데 잘 안 나왔지. 처음하고 중간에 은서 언니가 양호실에서 생각하는 그 때 조금 나오고, 끝에 다시 조금 나와야 되는데. 장: 그게 조금 잔인하다고 편집됐거든요. 그래서 처음에만 잠깐 나왔죠.
고생해서 찍은 장면이 영화에서 무심하게 지나가거나 잘 표현되지 않았을 땐 연기자 입장에서는 아쉽겠죠. 유: 저는 특히 머리를 가위로 잘랐던 신 있잖아요. 저는 그게 굉장히 소름 끼치고 무섭게 나올 거라고 기대를 했어요. 저희가 모니터로 볼 때는 굉장히 소름 끼쳤거든요. 그런데 영화를 보니까 뭔가 너무 어설프고. 송: 초딩이 막 폭발하는. (웃음)
진짜 자기 머리였나요? 유: 아니요. 가발. 오: 그런데 본인 머리도 조금 잘렸대요. (웃음) 때리는 신도 영화보다 훨씬 많았어요. 손: 저도 맞는 신이 더 있었는데 다 없어졌고. 오: 머리 잡고, 막 찍고, 뺨도 맞고. 손: 감독님께서 더 가자고 하셔서 더 맞았는데 다 편집됐어요. (웃음) 오: 유진이가 성당에서 격자 모양으로 된 고해성사실에 소이를 가두잖아요. 원래 나중에 문 열고 또 때려요. 손: 성모상으로 저를 또 때리는 장면이 있었는데 그것도 없어졌고. 오: 다행이었어요. 그것까지 나왔으면 큰일날 뻔 했지. (웃음) 장: 저는 정말 깜짝 놀랐던 게 제가 옥상에서 애들 백그라운드로 혼자 서 있다가 사라지는 건데, 그때도 피칠 다하고 옥상에서 혼자 서있었거든요. 그걸 스크린으로 보니까 제가 아니어도 되겠더라고요. 그냥 점같이 있던 애가 갑자기 사라지니까. 오: 게다가 언주가 모니터에서 갑자기 튀어나오는 장면 있잖아요. 그거 하나 찍으려고 경아가 서울에서 진주까지 내려왔었어요. 그 한 컷 때문에. 장: 한 5분 찍었나. 대역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없어서.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이 본인에게 너무 맞지 않아서 하기 싫다고 생각될 때도 있었을 것 같습니다. 손: 처음에 소이 역할 맡았을 때 소이 전체가 다 힘들었어요. 그래서 처음엔 소이를 하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었죠. 그래서 감독님하고도 이야기도 많이 했고.
혹시 다른 캐릭터에 욕심이 나진 않던가요? 오: 처음엔 다 있었대요. 저도 사실 소이가 하고 싶었어요. 손: 전 오히려 유진이 하고 싶었어요. 저희끼린 그랬다는 걸 최근에 알게 됐어요. 오: 진작 알았으면 바꿔달라고 얘기했을 텐데. (웃음) 유: 전 정언이 빼곤 다 하고 싶었어요. (웃음) 저희가 오디션 볼 때 쪽대본이 나왔었는데 그때 제가 보기엔 정언이가 굉장히 당돌하고 화를 잘 내니까 저랑 성격이 너무 달라서 너무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오디션 과정에서 서로 얼굴을 봤겠죠? 송: 1박 2일 때는 다 같이 합숙을 했기 때문에 계속 마주쳤죠. 오: 사실 오디션 기간은 짧았어요. 2주도 안 됐거든요. 처음 오디션 보고 한 이틀 인터미션 지나서 이틀 있다가 2차 오디션 또 보고, 3일 있다가 3차 오디션 보고, 그 뒤로 결과가 바로 나왔으니까. 송: 인터넷에 바로 바로 결과가 떠요.
인터넷으로 확인할 때 긴장되진 않던가요? 어쩌면 영화 보는 것보다 오디션 결과 확인할 때가 더 떨렸을 거 같습니다. (웃음) 송: 그럼요. 클릭할 때 얼마나 떨리는데요. 오: 그래서 찍을 때 더 친해진 거 같아요. 너무 살벌한 경쟁을 이겨냈기 때문에. 송: 전쟁이었죠. (웃음) 서로 같이 힘들었던 걸 아니까 더욱 가족같이 느껴지고, 내가 힘든 만큼 이 친구도 힘들게 왔으니까.
다들 대학생이니까 학교 얘기를 해봐도 좋을 거 같네요. 장경아 씨와 오연서 씨는 같은 학교 같은 과에 재학 중이시죠. 원래 서로 잘 아는 사이였나요? 오: 경아가 학교에 잘 적응하지 못하고 휴학해서 친해질 계기가 없었어요. (웃음) 장: 저도 얼굴만 아는 정도?
송민정 씨 같은 경우는 유일하게 다섯 분 중 연기 관련 전공이 아니더군요. 송: 영문학과 간 건 제가 외국에서 살다 와서 영어 특기자 전형으로 수능을 안보고 토익만 봐서 대학에 갈 수 있었거든요. 그래서 대학 들어가고 연기를 바로 시작했어요. 원래 연극영화과를 갈까 생각했는데 더 멀게 봤을 때 영문학과를 가면 두 분야를 다 경험할 수 있는 거잖아요. 그래서 두 개를 다 고려해서 그렇게 선택한 거죠. 오: 그럼 우리는 뭐가 되니. (웃음) 송: 너희는 그래도 예고 나왔잖아. (웃음) 오: 민정이는 인생이 ‘비비디 바비디 부’에요. 자기가 원하는 대로 인생이 다 이뤄져요. (웃음) 어렸을 때부터 인생 자체에 대한 고민을 해본 적이 없대요. 송: 운이 정말 좋았던 거 같아요. 사실 어렸을 때부터 연기를 꿈꿔온 건 아니었어요. 뉴질랜드 있을 땐 연기에 대한 막연한 생각만 있었죠. 종종 거기서 <가을동화>같은 한국 드라마를 비디오로 봤는데 그럴 때마다 막연하게 연기에 대해서 생각만 한 거죠. 그렇다고 연기를 꿈꿔서 한국에 온 건 아니에요. 한국에 중3 말쯤 와서 고등학교를 다녔는데 그렇게 지내다가 길거리 캐스팅이 돼서 이쪽 일에 발을 딛게 된 거죠. 그렇게 모델부터 시작하게 됐고 점점 여기까지 오게 됐어요.
사실 송은정 씨 같은 경우는 <여고괴담5> 이전에 <아랑>이나 <외톨이>같은 공포영화 출연경력이 있죠. 공포영화만 세 번째 출연이네요. 송: 그런데 전편하고 <여고괴담5>에서 캐릭터가 워낙 달라요. 지난 번엔 굉장히 우울한 히끼꼬모리 역할을 했거든요. 그런데 이번에는 밝은 신도 있고, 감정 신도 있고, 그래서 도전해보고 싶었어요. 그만큼 굉장히 좋았던 거 같고요.
나머지 네 분은 연기 관련 전공을 선택해서 진학하셨죠. 그만큼 자기 분야에 대한 의지가 확고하다고 말할 수도 있고, 그만큼 불안감도 있을 것 같은데요. 오연서 씨와 유신애 씨는 예고 때부터 연기 전공을 했죠?
오: 저는 예고 출신이라서 고등학교 때부터 그 생각을 했었는데 사실 저희 같은 예고 출신들은 뭔가 다른 걸 할 수 없다는 생각을 해요. 사실 저와 같은 친구들이 걱정하는 부분은 일단 고등학교 때부터 연기 말곤 배워온 게 없으니까 굉장히 불안하다는 거죠. 연극영화과 나와서 옷가게 하는 사람도 있고, 전혀 상관없는 일을 하는 사람도 많은데 정작 자신은 연기 말곤 도대체 뭘 해야 되는지 모르고. 장점이 있다면 이렇게 계속 해왔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보다 이것만 해야겠다는 의지가 강하다는 거? 왜냐면 제가 할 줄 아는 게 이것밖에 없고, 제가 먹고 살 수 있는 길이 이것밖에 없으니까, 이거 아니면 죽을 거 같다라는 생각이 들 수 밖에 없죠. 유: 저도 어렸을 때부터 또래 친구들과 한 길만 바라봤고, 그렇게 제 주변에 모든 사람들이 그곳만 바라보니까 거기에 더 집중하고 매달리게 되는 거 같아요. 그렇게 매달릴수록 해야 될 건 더 많아지고, 가야 할 길이 더 뚜렷하게 보이고요. 그러니까 연기에 매진하고 싶다는 생각도 들고, 정말 저는 한가지만 하기도 벅차요.
사실 오연서 씨는 다섯 분 중 작품경험이 가장 많습니다. 드라마 경력도 있고, 데뷔작도 <반올림>이었죠. 다른 분들에게 특별히 조언을 주거나 그랬던 적은 없었나요? 오: 다 같은 신인이고, 다 같이 배우는 입장이니까 그런 건 없었어요. 서로서로 많이 배우는 거지, 누굴 조언해줄 입장이 아니니까.
오연서 씨는 유독 누군가를 때리는 장면도 많았죠. 사실 때리는 사람 마음이 더 불편한 법이죠. 오: 맞는 사람들이 저한테 하루 내내 정말 잘해요. (웃음) 그런데 저도 때리는 게 마음 아픈 일이잖아요. 그래도 거의 한번에 오케이 나서 다행이었죠. 최소한 두 번? 그런데 솔직히 못 때리겠어요. 처음엔 너무 살살 때려서 NG나기도 했죠. 송: 살살 때렸는데 신애는 오버 액션하고. (웃음) 오: 정말 살살 때렸거든요. 그냥 약하게 때렸는데 신애가‘악~!’하면서 날아가서. (웃음)
할리우드 액션이었군요. (웃음) 유신애 씨는 지난 출연작이 공포영화인 <고사: 피의 중간고사>였어요. 유일한 필모그래피가 공포였는데 또 한번 공포영화에 출연했네요. 유: 저는 있는 경험이라곤 공포밖에 없으니까, (웃음) 다른 장르가 어떤지 비교조차 할 수 없는 거죠. 그래서 워낙 다른 장르에 대한 호기심이 많아졌어요.
유신애 씨는 아역으로 드라마 <M>에 출연하기도 했는데요. 아이러니하게도 드라마도 공포였군요. 유: 말하기가 창피한 게 정말 조금 나왔고, 사실 그때 기억도 나지 않거든요. 그 이후로는 아무것도 한 게 없었기 때문에 그걸 말하기가 너무 창피해요. 송: <뽀뽀뽀>도 했잖아. (웃음)
손은서 씨와 장경아 씨는 연기나 방송 분야 전공을 선택해서 대학에 진학했습니다. 두 분이 연기를 지망하게 된 사연이 궁금한데요. 손: 저는 원래 일반 인문계 고등학교를 나왔는데 제가 중학교 때와 고등학교 때 관심사가 굉장히 달랐어요. 중학교 때는 성적이나 공부에 관심이 많았지만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나서부터 제가 잘 하는 게 뭔지, 하고 싶은 게 뭔지 모르겠다 싶은 거에요. 그래서 저한테 집중할 시간을 많이 가졌고, 3학년 때 진로를 연기로 정해서 학교를 갔어요. 그런데 연기를 준비하다가 광고 미팅도 가게 되면서 먼저 CF를 찍게 된 거죠. 처음부터 준비했던 건 연기였어요. 장: 전 원래 무용 전공이었어요. 저는 어렸을 때부터 목적이 없으면 굉장히 못 견뎠어요. 초등학교 때부터 예원이랑 서울예고 목표로 무용을 했고 결국 목표로 하던 학교에 들어갔었는데 사실 무용은 제가 원해서 한 게 아니었던 거에요. 초등학교 때는 개념이 없어서 제가 진짜 뭘 원하는지 모르잖아요. 그런데 저희 엄마가 무용하는 모습을 너무 예뻐하셔서 그 때부터 하게 된 건데 중고등학교 때까지는 멋도 모르고 치열하게 한 거죠. 제가 딱 하나밖에 안 보는 성격이라서 그걸 왜 하는지도 모르면서도 불만 없이 굉장히 치열하게 했던 거 같아요. 그런데 서울예고 입학하니까 연기 커리큘럼이 있어서 수업을 받다 보니까 굉장히 무용이랑 많이 다르다는 걸 느꼈어요. 무용은 무조건 선생님 스타일에 맞춰서 해야 되요. 이 선생님이 이게 좋다고 해도 저 선생님한테 가서 이렇게 하면 점수를 안 주기도 하고, 뭔가 예술적 자율성이 없거든요. 그래서 그 때 연기에 굉장히 많은 매력을 느꼈어요. 결국 예고를 고1까지 다니다가 자퇴하고 공부해서 동국대로 진학했죠. 사실 그 전에 집에서 쫓겨날 뻔도 했어요.
장경아 씨는 <여고괴담5: 동반자살>(이하, <여고괴담5>)을 통해 연기자로 데뷔한 셈인데 어땠나요? 스크린으로 자기 얼굴을 보는 것도 처음일 텐데. 오: (영화보기 전에) 되게 신나 있던데. (웃음) 장: 사실 언론시사회라는 게 기자님들이 영화를 보고 평가하는 자리인 줄 알긴 했지만 그래도 우리가 나온 영화를 드디어 본다는 마음에 마냥 신나있었거든요. 그런데 보는 내내 완전 떨렸어요. 연서 손을 꽉 잡고 봤는데 둘 다 떨면서 봤죠. 오: 자기가 나오는 거 보고 자기가 놀라고. (웃음)
귀신 역할이라 좀 놀랐나 보죠. 장: 촬영할 때는 (도수가 있는) 렌즈를 빼고 빨간 컬러 렌즈를 끼고 있느라 모니터링도 잘 못했거든요. 그래서 잘 모르고 봤는데 화면에서 갑자기 막 튀어나오니까 저도 놀란 거에요. 오: 실제 촬영할 때보다 무섭게 나온 거 같아.
손은서 씨는 최근 개봉된 <시선1318>에도 출연했죠. 다섯 분 중 근래 가장 가깝게 개봉된 영화에 출연한 배우라고 해도 되겠군요. 손: 사실 <시선 1318>은 2007년 12월에 3일 동안만 촬영했어요. 그래서 그 당시의 현장감을 <여고괴담5>으로 이어나갔다고 말하기엔 좀 무리가 있죠.
<시선1318>에서 이현승 감독이 연출한 <릴레이>에 박보영 씨와 함께 출연했는데 <여고괴담5>와 정반대의 분위기를 느끼게 만드는 영화입니다. <여고괴담5>에서는 굉장히 우울한 캐릭터를 연기했다는 점에서도 차이가 있고요. 손: 현장 분위기야 화기애애했지만 저는 감정 잡기가 너무 힘들었어요. 소이를 연기하기 위해서 촬영 들어가기 전부터 감정 잡느라 시무룩해져서 힘들어하니까 스태프 분들이 소이 씨는 뭔가 되게 힘들어하는 것 같다고, 우울해하는 것 같다고 말씀하셨대요. 그런데 저는 몸이 힘들어서 그런 게 아니라 감정 때문에 그랬는데 다들 그렇게 이해하신 거 같더라고요.
다들 파란만장하군요. 부모님과의 충돌이나 갈등은 없었나요? 오: 저는 많이 맞았어요. 저희 집은 서울이 아니거든요. 그런데 중학교 2학년 때 연기한다고 올라간다니까 자꾸 어린 게 서울 가겠다고 하니 엄마 마음이 너무 아픈 거죠. 그런데 얘가 말로 해선 듣질 않아서 많이 맞았던 거 같아요. (웃음) 그래도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요즘에는 격려도 많이 해주시고, 저도 많이 힘드니까 새벽에 전화하고 그래요. 손: 저도 지방이거든요. 고등학교 때까지 부산에서 다녔는데 부모님 반대가 많이 심했어요. 부모님께서 반대하시는 걸, 수능 보고 바로 올라가서 입시 준비하겠다면서 아무것도 안 도와주셔도 되니까 그냥 시험만 보게 해달라고 설득했어요. 그렇게 결국 대학교에 합격하고 계속 이 길로 오게 된 거에요. 부모님들은 불안하고 안쓰러우니까 반대하시겠죠. 그래서 저는 좀 더 믿음이 가게끔 노력했던 거 같아요. 송: 저희 엄마는 일단 대학만 제대로 가면 네가 하고 싶은 거 다 하라고 그러셨어요. 그래서 대학교 가고 나서 제가 연기를 시작한다니 굉장히 좋아해주셨는데 지금은 일하고 늦게 들어오니까 걱정도 많이 하세요. 제가 짜증날 정도로. (웃음) 그래도 반갑게 생각하시고 좋아하시는 편이죠. 장: 저는 아까 말한 것처럼 어린 나이지만 7년 동안 쌓아왔던 전공이 있는 거잖아요. 무용계에서는 솔직히 예원이랑 서울예고, 이대가 (엄지손가락을 들면서) 제일 이거거든요. 어떻게 보면 제가 그 상태에서 대학만 잘 간다면 앞날이 보장될만한 커리어를 쌓아온 건데 그걸 한 순간에 다 날려버리겠다고 하니까 부모님께서 굉장히 반대를 많이 하셨고, 맞기도 많이 맞았어요. 학교에서도 선생님들께서 저한테 뭐라고 많이 하시고. 너는 왜 순수예술을 안하고 딴따라를 하려고 하냐, 어떤 분이 이런 말씀을 하셨는데 사실 제가 그 말 듣기 전까진 무용이랑 연기를 병행하자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그 얘길 듣고 나서 자퇴를 하게 된 거에요. 제가 7년 동안 스스로 하고 싶지 않았던 걸 하면서 억눌려있었다고 생각했던 걸 그때 그냥 표출해버린 거 같아요. 그 전엔 엄마한테 그냥 착한 딸이었고, 사춘기 한번 없었거든요. 교복을 줄여 입는다던가, 그런 것도 해본 적 없었고, 그냥 굉장히 착한 딸이었어요. 그런데 그 상황을 계기로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걸 이번엔 좀 말해야겠다 결심했던 거 같아요. 유: 저는 어렸을 때부터 적극 밀어주셨어요. (웃음) 오히려 저희 엄마는 제 얼굴에 뭐 하나만 나도 저녁에 팩 들고 오시고. (웃음)
아무래도 대부분 진로에 대한 불안을 느끼거나 부모님과의 갈등을 극복하는 과정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 만큼 영화에서 묘사되는 인물들의 갈등에 공감대를 느낄 수 있는 지점도 있지 않았을까요?
손: 우리가 하고 싶은 것과 부모님 생각이 너무 다르니까 서로 말이 통하지 않잖아요. 그러다 보니 아예 서로 말을 하지 않게 되고, 오히려 고민은 친구들에게 털어놓게 되니까 친구들과의 관계는 더 돈독해지죠. 그래서 모든 비밀은 친구들과 공유하게 되고. 저희 작품에 공감대를 느끼는 건 그런 점이었어요.
각자 경험차가 있기만 현재 다들 <여고괴담5>을 통해 가장 큰 경험을 얻었다고 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몇몇 분들은 처음이라서 겪었던 시행착오도 있었을 것 같고요. 송: 맨 처음에 촬영할 때 카메라가 뒤통수에 있는지도 몰랐어요. 심지어 제 머리로 카메라를 가리기도 했죠. (웃음) 조명을 거꾸로 받을 때도 많았고. 장: 스태프 오빠가 카메라 초점을 잡아놔서 움직이면 안 되는데 그것도 모르고 멋대로 움직이다 보니까 혼난 적도 많았어요. 그래서 초반엔 친구들 촬영할 때 제 촬영이 없더라도 계속 촬영하는 걸 봤어요. 저는 처음이라 어떤 식으로 촬영해야 되는지 모르니까 좀 힘들었거든요. 그런 부분에 대해서 많이 공부했죠. 연서가 연기하는 걸 보고 많은 걸 배운 거 같아요. 오: 왜 이래, 오늘? (웃음) 그런데 확실히 저희 촬영현장이 너무 좋았어요. 다들 빨리 현장에 적응한 거 같아요. 사실 저는 솔직히 이런 촬영현장이 처음이었거든요. 드라마 같은 경우에는 빨리 찍어놔야 되는 거니까 상황이나 캐릭터에 대해서 이해할 틈도 없이 막 갈 때가 있어요. 그리고 저도 느꼈던 거지만 신인일 때 선배가 와서 뭐라고 혼내면 주눅들고 더 못하게 돼요. 그런데 저희 촬영현장은 그런 게 없으니까 일단 너무 좋아서 뭔가 자기가 가진 것보다 더 보여줄 수 있었던 거 같아요. 장: 연서가 마지막에 성당 신 찍을 땐 정말 구질구질하게 보일 정도로 열심히 찍었어요. (웃음) 진짜 너무 불쌍할 정도였죠. 귀신이 이렇게 죽이러 가기 위해 돌아보는 사이에 바퀴벌레처럼 막 기어가고. (웃음) 소이한테 고해소에 들어가자 그러면서 자기만 나와서 잠가버리고. 송: 비열해. (웃음) 오: 그땐 정말 혼신의 힘을 다했어요. 그런데 이거 우리끼리 너무 자화자찬하는 거 아닌가? (웃음) 경아는 연기가 처음이잖아요. 그런데 자기 힘든 걸 절대 내색 안 해요. 짜증낼 수 있잖아요. 사람들 앞에서 내지 않더라도 뒤돌아서 낼 수도 있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거든요. 그래서 깜짝 놀랬어요. 제가 경력이 조금 더 많다고 해서 이 친구들보다 연기를 잘 하거나 이런 건 아니잖아요. 그래서 이 친구들한테 많이 배운 거 같아요.
아시겠지만 <여고괴담> 시리즈를 통해서 성장한 여배우가 많습니다. 그만큼 이 시리즈에 출연한다는 점 자체만으로 기대가 컸을 것 같고요. 손: 그래서 오디션이 치열했던 거 같아요. 송: 그런데 시사회 전날까지만 해도 기대감이 있었는데 영화보고 나니까 없어졌어. (웃음)
일동: 맞아! 맞아! 나도! 오: 영화 보기 전까지만 해도 우리끼리 서로 칭찬하는 게 자연스러웠는데 일단 영화를 보니까 내 연기부터 시작해서, 진짜 충격 먹었어. 칭찬할 게 없잖아. (웃음) 송: 전 정말 머리가 새하얗게 됐어요. (웃음) 오: 사람들 머리 속에 저런 이미지가 너무 박힐까 봐 걱정도 앞서요. 생각했던 것보다 더 세게 나와서. 그래서 영화를 보는 동안 슬펐어. (웃음)
첫 술에 배부를 순 없는 거죠. (웃음) 그래도 언젠가 이 작품을 다시 되새기는 날이 올 겁니다. 혹시 앞으로 자신이 해보고 싶은 역할이 있나요? 오: 전 그냥 발랄한 역할하고 싶어요. 이번에 이런 역할을 했지만 저 원래 절대 이렇지 않거든요. (웃음) 다음엔 좀 사랑스러운 역할을 해보고 싶어요. 귀엽게 망가지기도 하고. 장: 저는 조금 히스테릭한 역할을 해보고 싶었어요. 그리고 자기 감정을 배제하고 전문적인 직업에 대한 열의를 보여줄 수 있는 캐릭터를 언젠가 해보고 싶어요. 굳이 예를 들자면 <하얀 거탑> 김명민 선배의 여자버전 같은. 손: 전 약간 중성적이거나 액션연기를 할 수 있는 캐릭터를 해보고 싶어요. 사실 <여고괴담5>는 저한테 너무 힘들었어요. (웃음) 송: 저는 발랄하고 코믹하면서도 귀여운, <노다메 칸타빌레>나 <호타루의 빛>같은 드라마에서 나오는 캐릭터 있잖아요. 약간 망가지면서도 재미있고, ‘센빠이(せんぱい)’ 이러면서 선배 졸졸 따라다니는. 그런데 사실 <여고괴담5>에서 제 캐릭터도 발랄하지만 공포영화다 보니까 그런 모습을 부각시키기 어려웠잖아요. 그래서 다음 작품에선 그런 걸 좀 더 보여주고 싶어요. 유: <님은 먼곳에>에서 수애 선배님처럼 파란만장한 인물을 연기해보고 싶어요. <라비앙 로즈>처럼 파란만장하면서 굴곡도 많은 주인공의 일생을 다룬 영화도 좋고.
부모님께서도 영화를 보시고 싶어하실 텐데 걱정되겠어요. 송: 전 아까 전화 드렸어요. 죽는 거 보고 충격 받지 말라고. (웃음) 장: 난 처음부터 죽는데. (웃음) 오: 난 살인미수라고. (웃음) 송: 공범이잖아. 나는. (웃음)
개봉을 앞두고 있는 기분이 어떤가요?
제가 VIP시사회 때 어느 누구도 초대를 못했어요. 어떤 평가를 받을지도 염려스럽고, 저도 그때에서야 처음으로 보는 거라서 아무한테도 얘기하지 못했죠. 그래도 최고로 인정받는 윤석 씨와 짝을 해서 그런지 보시고 난 분들께서 칭찬을 많이 해주셔서 조금 안심이 돼요. 그래서 이젠 다 돈 주고 보라고 하려고. (웃음) 5%정도 긴장감이 풀어지긴 했어요. 그래도 관객들이 어떻게 평가할지 모르니까 조금 겸손한 자세로 기다리는 중이죠.
스크린을 통해 자신의 얼굴을 보는 것도 상당히 오랜만일 텐데요. 그래서 더욱 특별한 기분을 느끼지 않을까 싶습니다.
기분에 대해선 생각할 수 없어요. 그저 어느 부분에서 연기가 좀 튀지 않을까 염려를 많이 했죠. 한두 군데 정도 캐릭터와 조금 어울리지 않게 해맑게 웃었다라고 할까? 저만이 알 수 있는 부분일 수도 있고. 남들이 몰라도 본인은 보이거든요. 아, 저기서 저렇게 하면 안 되는데, 이런 게 있죠. 늘 보여요. 그래서 한번도 연기에 만족해본 적이 없기도 하고.
제작보고회 때는 데뷔하는 심정으로 연기했다고도 하셨죠. 아무래도 드라마 위주로 연기활동을 하다가 영화를 한다는 게 그만큼 부담이 되는 일이었나 보죠?
부담스럽죠. 이미 어느 정도는 다 보여준 느낌이고, 그만큼 다들 아마도 그럴 것이다라고 알고 있는 배우일 텐데 아무래도 스크린에선 괜히 달라 보여야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그리고 역시 영화 촬영이 여러 방면에서 좀 더 섬세해요. 그래서 긴장을 받게 되는 것도 있고. 늘 어떠한 방면이든 이렇게 인터뷰를 하면 무슨 얘기할까 고민되는데 영화 얘기만 나오면 일단 마음이 신인 같아. 제가 신인의 자세로 찍었다고 하니까 사장님이 너무 농담처럼 얘기한대. 진짜라니까! (웃음) 이건 농담 아니에요.
신인이라는 단어엔 설렘과 부담의 중의적 의미가 포함된 게 아닐까요.
그렇죠. 그런데 사실 이번엔 너무 운이 좋았어요. 김윤석이란 배우와 같이 그냥 업혀가는 느낌이랄까? 거북이 등에 탄 느낌? (웃음)
김윤석 씨 때문에 영화를 선택했다는 말씀도 하셨죠.
제 연기가 대형스크린으로 보여진다는 게 너무 두려워서 영화는 거의 다 거절했어요. 그런데 <거북이 달린다>는 상대배우가 김윤석 씨라고 하니 너무 혹하는 거에요. 그러면 대본이라도 좀 봐야겠다 했죠. 그래서 처음으로 이종용 감독님과 미팅을 하게 된 거고요. 만약 윤석 씨 얘기 못 들었으면 대본도 안 봤을 거에요.
대본을 보고 나서 거절해도 상관없지 않나요?
제 입장에서는 대본을 보고 거절하는 게 실례라고 생각돼요. 자신의 작품이라면 누구라도 열과 성을 다하면서 뼈를 깎아가는 느낌으로 썼을 텐데 그걸 보고 나서 ‘저 안 해요’, 이러기는 미안하잖아요. 그래서 작품 자체를 못할 거 같으면 아예 안 봐요. 사실 영화는 워낙 제가 해보지 못했던 장르잖아요. 그리고 오래 전에 한번 했다가 혼이 났던 기억도 있고요. 그 이후로 작업도 철저해야 하고, 집중력도 요하는 작업이라 정말 잘하는 사람들이 영화를 해야 된다고 생각하게 됐거든요. 그래서 어쩌면 <거북이 달린다>도 아예 안 봤을지 모를 일인데 윤석 씨가 출연한다는 말에 보게 된 거죠.
김윤석 씨의 이전 출연작은 얼마나 보셨나요?
<타짜>도 봤고, <추격자>도 봤어요. <추격자>는 남편하고 둘이서 제일 마지막 걸 봤는데 보고 나서 주차장까지 걸어 나오는 동안 너무 섬뜩한 거에요. (웃음) 사실 우리 애기 아빠도 영화를 좋아하는데, 남자 배우 둘 다 너무 매력 있다고 하던 기억이 생생해요. 그래서 이번에 같이 하는 배우가 ‘김윤석’, 그러니까 ‘정말?’ 되묻더라고요. (웃음)
좋은 연기자와 함께 호흡을 맞춰보고 싶은 건 연기자로서 당연한 욕망이겠죠. (웃음) 반면 이연우 감독은 <거북이 달린다>가 첫 번째 장편 입봉작입니다. 오랜만에 찍는 영화에 신인감독이라니 불안한 점은 없었나요?
저를 정말 편안하게 해줬어요. 사실 제가 프로포즈를 받고 한달 동안 이 핑계 저 핑계로 못한다고 했었거든요. 상대배우가 너무 좋아서 대본을 봤고 너무 작품도 좋았지만 그 땐 가족문제가 있었어요. 작년에 아이가 수능시험을 봐야 했고, 저도 개인적으로 쉴 기회가 한번도 없어서 좀 쉬어야겠다고 마음먹었던 때였죠. 그래서 이 핑계, 저 핑계 대면서 못하겠다 그랬는데 그걸 한달 동안 다 받아주셨어요. 제가 촬영장에 적응이 안 될 것 같다니까 자기가 적응하게 해 드릴 거라고. (웃음) 사실 저는 그래요. 일을 하기 전에 사람을 보고 반하거든요. 그래서 작업이 재미있을 거란 생각이 분명히 있어야 일하기가 참 재미있으니까. 그런데 이연우 감독을 보고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젊은 사람이 정말 마음을 편하게 해줬어요. 그래서 제가 ‘원래 배우한테는 이런 건가요?’ 물어보니까, ‘원래 배우한테 최고의 대우를 해주는 게 영화’라며, ‘영화를 한편하고 나서 이 매력에 빠지면 다신 드라마를 할 수 없을 거라고, 그런 설렘을 많이 줬죠. (웃음) 윤석 씨와 함께 호흡을 맞추기 전에 이미 이연우 감독을 많이 믿게 됐고요. 좋은 사람들이 저를 이렇게 원한다니 같이 작업하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죠. 그래서 그냥 한번 해봐야겠다 마음먹었어요.
그렇다면 왜 꼭 자신을 선택하려 하는지 궁금하진 않던가요? 이연우 감독님께 한번쯤 여쭤보셨을 것 같은데요.
물어봤죠. 대본을 보고 왜 꼭 이걸 제가 해야 한다고 생각하냐고. 그런데 처음 한마디가 ‘예뻐서요’, 이래요. (웃음) 사실 그래요. 나이 든 아줌마한테 예쁘다고 하면 좋죠. 그래서 막 웃었지만 ‘그건 제가 썩 좋아하는 답은 아니거든요’. 그렇게 말했더니 어쨌든 저 아니면 안된데요. 사실 저 아니면 안 되는 게 어디 있어요. 저 아니고도 다른 사람이 했더라도 충분히 다른 느낌의 조 형사 부인이 됐을 거에요. 그런데 그 쪽에서 견미리 아니면 안 된다, 라고 프로포즈를 하니까 저도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되는 거죠. 그러다 보니 제가 보여줄 수 있는 조형사 아내가 어떤 걸까, 그들이 날 필요로 한다는데 도대체 날 어떻게 그리고 싶어하는 걸까, 내가 그걸 한다면 어떤 느낌일까, 이런 생각에 약간 흥미가 생기기 시작했죠. 그래서 시작하게 된 거고.
사실 대부분 시골의 아줌마를 연상한다면 조금 살도 찌고 느슨한 이미지로 묘사하는 경우가 태반입니다. 그런데 <거북이 달린다>의 아내는 오히려 그와 반대적인 이미지라 흥미롭더군요. 그 지점에 대해서 생각해보신 적은 없으신가요?
사실 저는 영화를 보면서 일상적으로 조금 더 변형을 줬어야 되는 게 아닌가 싶었어요. 예를 들어서 다섯 살 연상이고, 생활에 찌는 아내라면 기미도 거뭇거뭇하게 올라와 보여야 되고, 머리도 좀 부시시한 파마머리로 갔어야 되지 않나 싶었거든요. 그런데 그건 우리가 너무 통속적으로만 생각해서 그럴지도 몰라요. 이 여자는 아이들 머리도 한 올 한 올 다 빗겨서 한 가닥도 새어 나오지 않게 딱 묶어주잖아요. 또순이 같이, 뭐 하나 흐트러지는 걸 못 보는 그런 느낌의 여자로 가면 어떨까 싶었어요. 좀 깐깐한, 깡 진 느낌? 제 나름대로 그렇게 바꿔보자고 했는데 조금 아쉬운 건 제 모습이 조금 고왔다는 거? 예뻤다는 게 아니라 조금 생각보다 곱게 보였어요. 사실 기본 메이크업만 하고, 라인 하나도 안 그릴 정도로 화장을 거의 안 했어요. 그런데도 화장기가 있어 보이는 게 좀 아쉬웠죠. 그래서 다음에는 저런 걸 어떻게 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봤어요.
본래 얼굴이 어디 갈 순 없죠. (웃음) 하지만 어쩌면 그건 자신만이 민감하게 느낄 수 있는 모습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사실 그 동안 드라마에서는 세련된 도회지 여성의 이미지로 분한 경우가 대부분이었으니까요. 그래서 오히려 그런 캐릭터로 등장한다는 것 자체가 신선하다고 느껴지는 측면도 있었던 것 같고요.
그래도 더 평범해 보여야 하지 않았을까 생각하게 돼요. 체형 자체도 너무 슬림한 게 아닌가 싶고. 그래서 슬림하게 보이지 않으려고 엉덩이에 속옷도 더 넣고 그랬는데도 영화로 보니까 조금 그렇더라고요. 개인적인 제 생각이 이래요.
결과적으론 그런 외모를 통해서 억척스러운 여자라는 공감대를 보여주는 게 관건이었을 것 같습니다.
일상생활에서 ‘억척스럽다’는 단어가 표현이 강하게 들려서 그렇지, 사실 다들 열심히 살지 않으면 어떻게 살겠어요. 이런 형태에서는 이게 맞고, 저런 형태에서는 저게 맞을 뿐, 각자 거기에 잘 맞춰서 살다 보면 다들 억척스럽게 살 수 밖에 없죠. 보통 아줌마들을 보고 억척스럽다고 얘기하는 건 어쩌면 그렇게 열심히 사는 아줌마들이 많기 때문이 아닐까요. 저도 사실 개인적으로 무능한 남편과 함께 사는 아내로서 그런 진심을 표현하고 싶었어요. 사실 조형사가 주인공이라서 나중에 멋있어 지는 거지, 그게 실제 남편이라면 속 터져 죽을 거에요. (웃음) 생각을 해봐, 그게 무슨 형사야. 손가락 잘리고 들어오고, 무술 한답시고 어설프게 폼 잡는 거 보면 어처구니가 없죠. 정경호를 때리려다가 맨날 다른 곳을 찍잖아. 그래서 내가 너무 답답해서 영화를 보다가 (옆자리를 치면서) 진짜 남편한테 뭐라 그랬다니까. 정말 답답해서 저러고 살겠냐고. 너무 영화에 몰입한 거지. (웃음)
조형사의 아내야 말로 진짜 내조의 여왕이죠. (웃음)
진짜 그래요. 만화방에서 하루 종일 양말 뒤집어 가면서, 그런 여자가 어디 있어요? (웃음)
조형사의 아내는 아내이자, 엄마이며, 여자입니다. 단순하게 보이지만 섬세하고 복합적인 내면을 지닌 캐릭터라고 생각합니다. 그만큼 아내로서, 엄마로서의 경험이 요구되는 캐릭터라고 말할 수 있겠죠.
굉장히 연기를 잘 하는 친구들이 있어요. 20대 초반인데도 4~50대 감정을 다 표현하는 친구들이 있죠. 그런데 사실 그 친구들도 몸에 밴듯한 느낌으로 이런 캐릭터를 연기할 순 없겠죠. 아무래도 저희 같은 나이의 배우들은 자신 자체가 그런 여자이기 때문에 그런 걸 의식할 필요가 없어요. 내 남편이 누워있고, 내 새끼가 내 앞에 와 있고, 내가 부업을 할 때, 리액션하는 행동들이 하나같이 일상이니까.
상대배우의 안정감이 주는 시너지도 있었을 거고요.
저희가 하루 만에 만화방에서 세 신을 다 찍었는데 마치 드라마 촬영하듯이 드르륵 찍어서 굉장히 편했어요. 어려움이 없었죠. 그만큼 윤석 씨가 잘 받쳐줬고, 잘 맞았다고 할까. 스폰지 같은, 아니, 그보다도 체형에 맞춰서 흔들리는 물침대? 라텍스 침대에 누우면 신체의 모든 부분이 다 채워지는 느낌이잖아요. 상대가 어떻게 하든 갭이 없게 안착을 해주는, 그런 느낌의 배우였어요. <거북이 달린다>에선 서로 사랑하는 분위기를 은연 중에 보여주지만 사실 사이 좋은 부부처럼 보이는 건 아니잖아요. 그래서 다음에 또 기회가 생기면 심리적인 교감을 주고 받을 수 있는 연기를 같이 해보고 싶은 배우였어요. 이번에는 정말 그저 거북이 등에 탄 느낌이었으니까.
영화에 대한 부담감을 적잖게 말씀하셨는데, 드라마와 비교하자면 어떤가요?
드라마는요. 오랜 시간 시청자들을 젖어 들게 해요. 그래서 처음엔 만약 영자로 시작을 했더라도 끝에 가서 견미리가 되죠. 오래하다 보면 다 제 화(化)되는 거죠. 제가 안 하고 다른 배우가 했다면 또 그 화(化) 되는 거에요. 그렇게 젖어 들어요. 제가 스크린이 무섭다는 건 농담이나 겸손한 말이 아니라 진짜 스크린이 무서워요. 드라마는 ‘쟤 왜 저래’, 그러다가도 그 다음 장면이 나오면 잊어버려요. 그리고 그 다음날 다시 잘하면 되죠.
드라마는 매회마다 만회할 기회가 있다는 점에서도 배우에겐 영화보다 좀 더 관대한 매체라고 할 수 있는 건 사실이죠.
그렇죠. 모니터를 꼭 하고 나서 이번 주 저 신에서 제가 너무 아니었더라도 다음에 만회할 수 있는 신이 있어요. 오늘 못했다면 내일 만회하거나 다른 신에서 강하게 임팩트를 주면 되고, 끝날 때쯤 평가를 한꺼번에 하거든요. 영화는 그게 아니잖아요. 영화라는 건 깜깜한 공간에서 2시간 동안 집중해서 보는 만큼 들통나거든요.돈 내고 영화를 본 뒤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평가를 해버리기 때문에 만족을 못하면 한마디씩 꼭 하잖아요. 그런 순간순간의 평가가 다 오죠. 적어도 ‘누구 때문에’, 이런 소리 듣는 인물이 되고 싶지 않다는 거지! (웃음) 기왕이면 잘 봤다 소리를 듣고 싶죠. 그런데 오히려 연기가 너무 좋더라, 이런 말보단 전반적으로 다 좋았는데 그냥 뭐가 좋았는지 알 수 없을 때 저는 더 좋은 거 같아요. 너무 강해서 딱 보고 나면 뭐가 좋았는지 말할 수 있는 것보단 한번 생각해보게 만든다면 벌써 그 연기에 젖어 들었다는 거니까요.
드라마는 분절된 형태로 방영이 지속되는 만큼 연기톤의 변화도 어느 정도 수용되는 느낌이지만 영화는 시작부터 끝까지 일관적인 연기톤을 유지해야 한다는 점에서 장점과 단점이 있겠죠.
그런 것도 있어요. 그만큼 그 두 시간 동안 빠져들게 만드는 연기를 했을 땐 그 캐릭터에 젖어 들게 만드는 매력이 있는 거 같아요. 이번에 <거북이 달린다>를 해보고 나니까 다음엔 발랄한 거 내지는 그렇게 삶에 찌든 억척이 아니라 나사 하나 빠진 듯한 느낌의 억척스러움을 해도 재미있을 거 같고. 그러니까 작품에 따라서 이런 생각을 하게 한다는 점에서 좀 다르죠. 영화배우들이 이런 것 때문에 영화 하는 구나 싶기도 하고.
브라운관에 비해 스크린이 크다는 점도 영화가 두려워지는 이유가 아닐까요.
그런 것도 있죠. 그러니까 결국 정말 잘해야 된다는 거, 공동작업인데 나 때문에 (한숨쉬면서)‘아~’, 이렇게 되진 말아야 되잖아요. 물론 어떤 일에나 그런 부담은 늘 있어요. 드라마에도 있고. 다만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그런 두려움이 좀 더 큰 거죠. 그리고 스크린이 크기 때문에 드라마보다 좀 더 섬세한 연기가 요구된다는 점도 있죠. 드라마는 약간 생방송 같다고 할까. 드라마는 원투쓰리(카메라)로 순발력 있게 탁탁탁 넘어가잖아요. 그런데 영화는 서로 약속하고 다짐하듯 디테일하게 들어가니까 장르적으로 요구되는 연기가 다르죠. 그런 면이 드라마와 영화에서 연기를 한다는 장르적 느낌을 다르게 만들긴 해요.
어쩌면 <거북이 달린다>로 두려움이라는 허들을 하나 넘은 셈이라 말해도 좋겠어요.
남의 등을 타서 넘었죠. 솔직히! (웃음) 저 혼자 막 달려가라고 하면 두렵겠지만 너무 푸근한 상대를 만났고, 그 사람이 리드하는 대로 몸만 흔들어주면 될 정도로 편했으니까요. 정말 해피한 거죠. (웃음)
사실 그 동안 영화 제의가 없진 않았을 텐데 그 제의를 20년 가까이 뿌리쳤다는 것도 어떤 면에서는 대단합니다. (웃음)
아까도 말씀 드렸지만 시나리오를 본 영화는 거의 없어요. 강제로 집까지 보내서 2~3개 정도 본 건 있지만 대부분 보기 전에 일단 거절부터 했으니까요. 바쁘다는 핑계를 댔지만 스크린이니까 자신 없었어요. 핑계가 아니라 정말 자신이 없었던 거에요.
자신에게 제의가 들어왔던 작품의 완성된 형태를 보고 나서 아쉬웠던 적은 없었나요?
있었죠. 있었지만 저보다 괜찮은 배우들이 대신 하셨기 때문에 훨씬 좋았다고 생각해요. 이건 드라마도 마찬가지에요. 드라마 제의가 왔을 때, 제가 못하겠다고 생각하면 과감히 못하겠다고 하거든요. 그런데 다른 분이 했기 때문에 진짜 좋아졌다고 생각되는 경우가 있어요. 그럴 땐 저도 기분이 좋아요. 그러면 전 그 감독한테 전화해요. 거보라고, 나 아니어도 너무 좋지 않냐고. 그건 진짜 필요한 선택이라고 생각해요. 욕심이 없다기 보단 그게 시청자나 관객을 위한 진짜 배려라고 생각해요.
단순히 드라마가 아닌 영화를 했다는 것만으로도 배우에 대한 시선이 달라짐을 느낀 부분은 없었나요?
저는 몰랐는데 사람들이 제가 영화를 했다고 하니까 굉장히 신기해해요. “이번에 영화 했지? 보러 가야지.” 이러면 “그래, 봐.” 이러면서도 보면서 뭐라 그럴까 걱정이 앞서요. 그리고 ‘뭐, 늘 저랬는데’, 이럴까 봐 걱정되고요. 배우로서 차라리 너무 다르게 느껴지는 건 좋아요. 그런데 ‘늘 똑같지’, 이러는 건 조금 섭섭하고 서운하죠. 제가 너무 많이 보여진 연기자이기 때문에 어떤 평가를 받을까 그런 것들이 좀.
사실 드라마에서 도시적인 이미지를 어필하는 경우가 많았죠. 그런 면에서 <거북이 달린다>의 시골 형사 아내는 그 이미지만으로 특별한 변화라 인지될 가능성도 적잖습니다.
제가 기존에 몇 년간 해왔던 캐릭터들이 야무지고 도시적인 느낌이 있었죠. 그리고 저는 모르겠지만 남들은 제가 사극에서 굉장히 무게감 있는 캐릭터를 맡았을 때 카리스마가 느껴진다고 해요. <거북이 달린다>에서 아내는 그런 면에서 다른 역할이긴 하죠. 장르를 옮겼기 때문에 시청자가 아닌 관객들이 제 연기를 어떻게 평가할지, 영화 계통에 계시는 분들이 어떤 평가를 할지, 그게 조금 궁금하기도 하고. 그냥 기본적으로 저 정도는 할 줄 알았다, 이 정도만 돼도 전 감사하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제가 아닌 다른 연기자가 했어도 윤석 씨가 잘 맞춰줬을 테고, 그만큼 다른 매력이 있었을 거에요. 저는 ‘나 아니면 안돼’, 이런 생각 별로 안 하거든요. 저희가 선택 받을 때, 저 아니면 안 된다고 하면 행복하긴 하지만 막상 스스로 돌이켜 보면 저 아니면 안 되는 건 아니에요. 다만 색깔이 달라지긴 하겠죠.
캐릭터의 이미지를 통해 배우의 성격을 가늠하는 사람도 적지 않습니다.
역할에 따라서 사람을 멀게 느끼거나 가깝게 느껴는 거 같아요. 예전에 제가 <인현왕후>라는 사극을 할 땐 모든 분들이 다 저한테 착하다고 했어요. ‘아, 착한 사람 왔네’, 그랬어요. 왜 착한지도 모르게 착한 사람이 됐죠. 그런데 <대장금>을 하고 나니까, ‘어휴, 미워죽겠어! 어쩜 그렇게 독하게 해!’ 이러고. (웃음) 그러니까 역할을 잘 맡아야 돼요. 요즘은 우리 애들도 그래요. “엄마, 이젠 그렇게 악역 같은 거 하지마. 사랑 받는 역할만 해.”
자제 분의 수능준비 때문에 <거북이 달린다>를 고사하려 했다는 얘기도 하셨죠. 그리고 지금 말씀하신 대로 악역을 맡지 말라는 자제 분들의 사소한 말이 어머니로서 마음에 걸릴 때가 있을 겁니다. 남들이 보기엔 별 거 아니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정작 본인에겐 큰 고민이 될지 모를 일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그래요. 어쩌다 보니까 오래 일을 하다 보니 제 직업이 배우가 됐죠. 어느 순간에 제가 배우로 평가 받게 된 거에요. 직장인도 마찬가지잖아요. 자기가 하는 일을 열심히 하다 보면 누군가 그런 사실을 평가해주겠죠. 내가 이 분야에서 최고가 돼야지, 이런 게 아니라 그저 연기가 좋아서 어느 날부터 지금까지 배우로서 앞만 보고 뛰었더니 다른 사람들이 너는 연기자라고 평가해준 거에요. 그런데 아이들이 크니까 아이들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어요. 저는 직업보다도 가정이 먼저라고 생각해요. 속된 말로 그런 거 물어보시잖아요. “일이 더 중요해요? 가정이 더 중요해요?” 대부분 둘 다 중요하다고 대답해요. 하지만 전 가정이 더 중요해요. 이상하죠? 사실 이렇게 얘기하면 사회성이 떨어지는 것처럼 보이거든요. 제 일도 중요하지만 제 가족들이 제가 일을 하는 걸 행복하게 생각하고 그럴 때 제 일을 찾는 거지, 제 일을 하기 위해서 가족을 버릴 순 없다고 생각해요. 그렇기 때문에 이젠 남편이나 아이들이 얘기하는 걸 조금씩 생각하게 돼요. 아이들이 조금 크다 보니까 점점 제 역할을 보게 돼요. 깍쟁이 같은 역할이라도 하면, 그런 역할 말고 집에 있는 평범한 엄마하라고. 그럼 이제 제가 설득을 시키죠. 악역이 있어야 주인공도 있고, 선악이 분명해야 드라마가 재미있는 거라고. 그런데 그때마다 이런 생각이 들어요. 아이들이 원하는 게 이렇다니 나도 조금 그렇게 해볼까.
가화만사성이란 말이 생각나네요. (웃음)
(웃음) 그럼요. 집안이 편해야 나와서 일도 잘되죠.
84년도에 탤런트 공채로 연기자로 데뷔했습니다.
84년 3월부터 입사를 한 걸로 됐지만 사실 83년도에 입사했어요. 제가 83학번이라 대학교 1학년이었는데 그때 저는 연기의 ‘연’자도 몰랐죠. 원래 연예인에 꿈이 있던 사람이 아니었어요. 그때 저희가 가수 전영록하면 ‘와~!’하는 세대였는데 저는 그런데 무덤덤했고 오로지 무용밖에 몰랐거든요. 제가 한국무용을 전공했는데 오로지 무용만 생각하는 그런 아이였죠.
그런데 어쩌다 연기자로 입문하신 겁니까?
엄마가 우연히 원서를 갖고 와서 “얘, 한번 원서라도 내보자.” 그러시는 거에요. 그래서 “우리 이런 거 내면 큰일나.” 그랬더니, “얘는, 네가 되겠니. (웃음) 그냥 사진 하나 붙이고 한번 내보자.” 그러시는 거에요. 그래서 머리 빤빤하게 빗고, 엄마 블라우스하고 언니 큐롯(Culotte)바지 입고, 구두 하나 신고, 그렇게 원서 사진 찍어서 하나 붙여 보낸 게, 1차, 2차, 3차 다 통과해버린 거죠. 제 수험번호가 3316번이었어요. 그때 한 6천명 정도가 지원을 했고, 스무 명 정도를 뽑았거든요. 남자 10명, 여자 10명. 그런데 됐어요. 그래서 방송국에 가니까 여자 10명 중에선 저 하나, 남자 10명 중에서 딱 한 명만 연예인의 ‘연’자도 모르는 친구였던 거죠. 있어요. 그 친구도 지금은 그만 뒀는데, 그 친구와 저만 카메라나 연기 경험이 없는 친구였어요. 남들은 다 연극이나 CF경험이라도 있었거든요. 방송국에서 오리엔테이션이 끝나고 쉬는 시간이 되면 다 어디론가 가요. PD중에 선배도 있고 그러니까 다들 찾아가는데 항상 둘만 그 자리에 앉아있어요. 만날 사람도 없고, 그러니까 그냥 앉아있는 거죠. 오리엔테이션에서 워크샵으로 작품을 하나 해보는데 암기력만 좋지, 연기는 어떻게 하는 지도 몰라서 헤맬 때는 이건 내가 할 일이 아닌가 보다 싶었죠.
그래도 어떻게 그만 두지 않고 계속 할 수 있었던 걸까요?
그땐 1년 전속계약을 해서 월급을 줘요. 한편 출연하면 5천원을 의무적으로 주는 거죠. 1년 동안 월급을 받고 이걸 하기로 했으니까 학교는 휴학했고 1년 동안 열심히 다녀야겠다, 싶어서 정말 열심히 했어요. 안 해본 역할이 없었거든요. 1년 동안 단 하루도 안 쉬었어요. 왜냐면 그땐 집전화밖에 없잖아요. 그런데 밤에 갑자기 전화하면 집에 있는 사람이 몇 명 안됐어요. 제가 항상 연락이 되는 사람 중에 껴 있었던 거죠. 그렇게 가면 뭘 시켰느냐, 더빙을 시켰어요. 그때만 해도 드라마가 대부분 후시녹음이었잖아요. 군중 박수, 이런 것까지 나가서 해야 되는 거에요. 초인종 ‘딩동’소리 듣고 ‘누구세요’, 이런 것까지 입맞춰서 이펙트를 넣어주고. 제가 사실 더빙의 천재에요. 그때 1년 동안 다 배웠거든. (웃음) 그리고 그 1년 동안 누가 가르쳐준 게 아니라 그걸로 제가 연기를 배웠죠. 그렇게 1년이 지나서 전속이 풀렸는데 365일 바쁘던 애가 이젠 일이 없는 거에요. 이걸 어떡해야 하나 싶었죠. (웃음)
그게 20년이 넘는 연기자 경력의 시작이었군요. (웃음)
만약 제가 하고 싶었던 무용을 계속 했다면 아마 사랑 받는 무용가가 돼있지 못했을지도 몰라요. 분명한 건 제가 그냥 욕심이나 생각 없이 주어지는 대로 앞만 봤다는 거죠. 어떤 사심이 없었다는 거에요. 동기들이 주인공을 할 때 어쩌면 어린 마음에 아무래도 부럽기도 했겠지. 그런데 막상 질투하기 보단 내가 저기까지 가기 전에 일단 이걸 잘해야 될 거 같다고 생각했어요. 그런 생각이 지금까지 저를 연기자라는 자리에 있게 만든 거 같아요. 그리고 당시에 일에 욕심내면서 스타가 되고자 했던 하던 사람들은 지금은 오히려 다 없어졌어요.
사실 연기의 ‘연’자도 모르고 배우 생활을 시작했던 만큼 아무래도 처음엔 배우로서의 가치관이 없었다고 봐도 무방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분명 이렇게 연기자로서 삶을 지속하고 있는 만큼 배우로서의 자각이 자리잡았다고 말할 수 있는 시점이 있지 않았을까요.
그러니까 그게 주기적으로 와요. 딱 십 년 된 해였는데 그 전까진 도살장에 끌려가는 사람처럼 연기를 했거든요. 일단 대본을 받으면 너무 예민해지고 두려웠어요. 맨날 대본을 껴안고 잤죠. 한 십 년간 정말 일하는 게 즐겁지 않았어요. 그러니까 욕심도 없어지죠. 그런데 십 년 차엔 뭐랄까, 내 연기가 가짜구나 싶었어요. 그 때 45일 동안 연극을 하고 있었는데 매일 밤 무대에 서는 게 도살장에 올라가는 기분이었어요. 관객들 눈이 너무 무서웠고 미치겠는거지. 이건 가짜 연기인데, 이 연기를 갖고 매일 이 관객들 앞에 서는 게 옳은 일인가, 정말 몸살을 했죠. 그래서 그 연극이 끝나고, 그 다음에 들어온 드라마를 제 자신이 만족하지 못하면 이 일을 그만 둬야겠다 생각한 적이 있었어요. 그래서 그 때 아마 본능적으로 열심히 했을 거에요. 그 전까진 제 연기를 모니터할 생각도 못했거든요. 그래서 그 때부터 조금씩 생각했죠. ‘아, 그래. 너도 조금 가능성이 있는 아이구나.’ 그렇게 십 년을 넘겼어요. 그런데 또 한번 십 년 차가 되니까 또 그게 오더라고요. 예전에 <사랑공감>이라는 드라마를 할 때 그래서 굉장히 힘들었어요. 그때 또 한번 느꼈죠. ‘아, 이게 또 나한테 오는구나.’ 정말 잘해야 된다는 느낌. 그걸 지내고 나니까 그 다음이 다시 좀 쉬워졌어요. 그래야만 마음이 조금 편해져요. 같은 일을 이십 년 정도 하니까 좀 익숙해지는 거 같아. (웃음)
그런데 <사랑공감>덕분에 상도 받았습니다.
덕분에. (웃음) 그런 것 때문에 용기를 얻어서 계속 할 수 있는 거에요.
지금 생각하면 인생이 아이러니할 것 같습니다. 생각지도 못했던 일로 자신의 평생을 보내고 있으니까요.
어느 날 밤에 문득 창가에서 제가 여태껏 어떻게 연기자 생활을 했는지 생각해보니 너무 우스운 거에요. 사실 이 길이 아닌 다른 길로 가버릴 수도 있었는데 어쩜 그렇게 싹싹 잘도 빠져 나왔는지, 어쩜 그렇게 잘 버텼는지, 참 아무 생각 없이 버텼네 싶어서요. 어쩌면 욕심이 없어서 버텨진 거 같아요. 최고가 돼야겠다, 연기를 잘 해야겠다, 스타가 돼야겠다, 이게 아니고 그냥 주어진 걸 한 계단씩 오르다 보니까 가능해진 거죠. 자기가 밑바닥부터 올라갔으면 몇 계단쯤 올라온 줄 알잖아요. 그런데 내려가는 건 쉬워요. 그렇게 어느 순간 딱 떨어지면 어떡해요. 그 괴로움을 참기 힘들죠. 그런데 학연이나 혈연, 지연이 없이 제가 이 일을 시작했다는 게 지금까지 오히려 저를 연기할 수 있게끔 해준 거 같아요. 한 계단 한 계단 밟고 올라가다가도 어느 틈엔가 인기 없이 내려올 때도 잘 내려와요. 그냥 툭, 툭, 툭 내려오면 되지, 뭐. (웃음)
스스로는 그렇게 자신을 과소평가하면서도 왜 자꾸 자신에게 연기적인 기회가 주어지는지 의아한 적은 없었습니까?
저는 우리 아이들한테도 이런 얘기를 해요. “지금 당장 최고가 되겠다고 생각하지 마라. 앞만 보면서 열심히 가다 보면 누군가 너를 최고로 만들어주고 있더라. 그걸 너 혼자 만든다고 생각하지마. 주변에서 함께 만들어주는 거야. 주변에서 너 최고야, 라는 소리가 나와야 최고지. 네 자신이 너 혼자 아무리 최고라고 해 봤자 남들이 인정해주지 않으면 네가 최고가 되겠니.” 지나고 보면 참 운 좋았다 싶어요. 저도 자신이 없는데 누가 저를 선택해주지 않았다면 그냥 사장되는 거 아니겠어요. 그런데 운 좋게도 누군가 늘 찾아줘서 행복하게도 늘 그 일을 하게끔 만들어줘요. 그래서 저는 제가 지금 이 자리에 있다고 순간순간 생각할 때마다 웃음이 픽 나요. ‘어머, 네가 이렇게 오랜 세월 동안 연기를.’ (웃음) 사실 여기까지 왔다는 걸 늘 감사해요. <사랑공감> 때는 주인공을 맡고 상까지 받았지만 그 다음에 주연급이 아닌 조연급의 연기를 하니까 어떤 분이 저한테 그랬어요. 저보다 훨씬 스타였던 분인데, “야, 너 이제야 그런 거에서 벗어났는데 왜 그런 역할을 해?” 그러시는 거에요. 그래서 그랬어요. “저는 그냥 견미리니까요. 인기 있는 스타가 아니라 그냥 배우니까요.” 제가 그 맛을 한번 봤다지만 그거 아닌 다른 걸 또 할 수 있는 거잖아요. 그냥 배우라면 하고 싶은 걸 하는 거지, 그 역할에 대해서 크기나 질, 양을 따지겠어요. 질이나 양은 제가 만드는 거죠. 5분을 나와도 5분 동안 제가 충실하면 아마 남을 거에요.
그런 생각들도 사실 당시엔 몰랐지만 뒤늦게 깨닫게 되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사실 그 과정에서는 알기 어려운 사실일지도 모르죠. 다만 어느 정도 세월이 지나고 나니 그런 사실을 뒤늦게 깨닫게 되는 시기가 오는 게 아닐까요.
십 년 지나고 이십 년 지나니까 이런 말을 하지, 십 년 차 되는 해에도 너무 아팠고, 이십 년 차 되는 해에 또 아팠고, 그래서 한편으론 두려워요. 제가 나이가 들어서 이런 두려움이 다시 오면 그 땐 어떻게 극복할까,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 그 때도 또 힘들어 지겠죠. 아마 그때마다 힘들 거 같아요. 그래도 그 때 아팠던 게 지금은 너무 많이 도움이 되니까 앞으로도 참아야겠죠.
나이에 따라 연기할 수 있는 역할에 제한이 생기기도 합니다. 나이가 든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없나요?
아뇨. 그런 것보단 곱게 나이 들고 싶어요. 극단적으로 얘기하면 연기자는 너무 나이 먹어서 할 수 없는 역할도 있고, 너무 젊어서 할 수 없는 역할도 있죠. 참 맞추기 힘들어요. (웃음) 그래도 저는 주름진 얼굴이 친숙하고, 익숙하고, 사랑스러운 인상으로 비춰지고 싶어요. 그런 연기자가 되고 싶어요.
사실 사생활에 대해서 많이 알려진 바가 없습니다. 자신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서 노력하는 편이 아닐까 싶은데요.
인터넷이 무서워요. 그런데 저는 어차피 공인이라 그런 무서움을 감수하지만 아이들이 크니까 그게 아이들에게 많은 피해를 줘요. 그래서 어느 때는 인터넷 사이트에 우리 아이들의 이름을 다 지워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하죠. 걔들은 굉장히 괴로워하거든요. 그리고 차라리 있는 얘기만 하면 괜찮아요. 어느 때 보면 제 딸도 아닌데 제 딸이라고 올라와있을 때도 있다니까요. (웃음) 다만 기분 좋게도 예쁜 애들만 올라와있어서 다행이지. 내 딸보다 훨씬 예쁜 애들이야. 그냥 추측해서 올렸나 보죠. (웃음) 그런데 어쨌든 걔들도 불편할 거 아니에요. 제가 앞에서 얘기했듯이 저는 연기자일 뿐이지, 스타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행동하니까 스포트라이트를 받아서 이슈가 되는 게 별로 재미없어요. 그냥 저에게 주어진 걸 잘 하면 되는 거죠.
<거북이 달린다>가 본인에게 준 특별한 변화가 있을까요?
이제 영화배우가 됐으니까 영화 시나리오는 다 받아서 읽어봐야지! 이런 자신감을 줬어요. (웃음)
다음 드라마에 대한 기사가 벌써 났더군요. 주인공이라던데.
아, 그렇게 나갔더라고요. 사실 해볼까 생각하다가 안 하기로 했어요. 그런데 홍보가 먼저 나가버렸죠. 연령대가 조금 안 맞더라고요. 영화 개봉했으니까 이제 조금 더 쉬어야겠다 싶어요. 이렇게 몇 달 지나가고 찬바람 불 때쯤 다음 작품 생각해보려고요. 이번엔 좀 많이 쉬고 싶어요. 그런데 또 그러다가도 생선가게 아줌마라도 하고 싶은 게 생기면 전 후딱 해버리니까요. 제 마음 저도 몰라요. (웃음)
칸 영화제는 잘 다녀오셨나요? 만만치 않은 일정을 소화하셨을 것 같은데요. 칸에 가서 당일 하루는 쉬고, 그 이튿날 시사하고요. 그 이튿날은 아침부터 밤까지 15분 간 딱딱 끊어서 인터뷰 쭉 했고요. 영화를 보고 어찌나 박수를 쳐주는지, ‘나를 되게 좋아하나 보다’ (웃음) 그런 생각이 들 정도였어요. 그 다음 이튿날에 한국 와서 하루 뒤에 언론시사회 하고, 오늘은 VIP시사회한다고 하는데 내가 이걸 하고 있다는 게 완전히 신기하다 싶을 정도로 계속 하고 있네요.
체력적으로 힘드셨을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건강 관리가 중요할 것 같은데요.
힘들어요. 되게 힘든데, 평소에 건강 관리는 하죠. 운동을 조금씩 해요. 러닝 머신도 하고, 아령 같은 걸로 하는 운동도 하고요. 그렇게 해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웃음) 운동은 하루마다 하는 건 아니고, 종종 할까, 말까, 한 시간쯤 고민하다가 슬슬 걸어가서 한 시간 반쯤 놀다가 쉬다가 그렇게 하고 오죠. (웃음) 그래도 하고 나면 '난 운동했다' 그런 기분 때문에 하지 않은 것보단 훨씬 기분이 좋아져요.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것도 중요할 것 같은데요.
전 무조건 자요.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으면 머리가 터질 것처럼 아파서요. 그냥 무조건 자요. 자지 않으면 펑펑 터질 것 같아요.
나이에 비해 피부도 너무 고우세요. (웃음)
왜 그럴까. 일단 담배피지 마세요. (웃음) 난 이제 담배 끊은 지 12년 째 됐는데요. 그때부터 서서히 좋아지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20일에 한번씩 피부 케어도 받아요. 적어도 한 달은 넘기지 않아요.
봉준호 감독의 전작을 보셨나요?
<살인의 추억>은 봤어요.
어떻게 감상하셨나요?
저는 돌아다니는 걸 싫어하니까 영화를 극장에서 잘 안 봐요. 비디오 테이프로 나온 다음에 보니까 1년 뒤에나 영화를 보게 되는데 뒤늦게 <살인의 추억>을 보면서, ‘우리나라에 저런 불란서 영화 같은 영화가 있네, 멋있다’, 그런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그 즈음에 봉준호 감독과 얘기하게 되고, 정말 좋았죠. 내가 좋아했던 영화의 감독이 저에게 그렇게 해주겠다고 하니.
봉 감독 별명은 아세요? 봉 테일이라고 하는데.
저도 처음 알았어요. 스태프들이 이야기해주더라고요. 본래 봉 테일이라고. 그러니까 그건 디테일하다는 말이잖아요. 정말 빈틈없는 사람이에요. 예를 들어서 하나도 그냥 지나치는 일이 없어요. 이렇게 저기에 무슨 소품 하나라도 빠진 게 (머리를 가리키면서)이리로 느껴지나 봐요. 제가 많은 영화감독들하고 일해보진 않았지만 드라마도 많이 했으니까, 그냥 제 느낌으로 보자면 정말로 막 촉수가 이리저리 다 뻗쳤는데도 그게 산만하지 않게 정확히 제자리로 뻗치는 것처럼 보여서 놀랐어요.
봉준호 감독과 영화를 찍게 된다 하니 주변에 계시는 분들의 반응이 어떻던가요?
김수현 씨가 옛날에 내가 영화 하려고 할 때 “혜자씨, 영화 하지 마. 영화는 드라마와 달라서 심플하지 않은 것 같아”, 그랬는데 이번에는 봉준호 씨가 감독하니까 하면 좋겠다고 하는 거에요. 내가 특별히 누구하고 얘기한 게 없어서 그것밖에 들은 게 없어요.
단편드라마 <여>에 출연했던 김혜자 씨를 보고 봉준호 감독이 <마더>를 구상하게 됐다고 하더라고요.
봉 감독이 어려서부터 TV를 많이 봤더라고요. <전원일기>도 아주 다 꿰고 있어요. 식구들이 TV를 즐겨보는 가족이었대요. 그래서 어렸을 때부터 TV많이 보고, TV에 나오는 배우들에 대해서도 잘 알고. 그리고 그렇게 연극을 많이 보러 다닌다고 해요. 그래서 낯 익히지 않은 새로운 배우가 필요할 때 캐스팅하죠. 좌우간 일에 대해서 열정을 말릴 수 없을 정도로 부지런한 감독인 거 같아요.
봉준호 감독이 본격적으로 김혜자 씨에게 러브콜을 보낸 건 <살인의 추억> 이후부터라고 들었어요. 배우 입장에서는 마치 열렬한 구애를 받는 것처럼 느껴지지 않았을까요.
행복한 일이죠. 정말 촉망 받는 젊은 감독이 저를 갖고 어떤 영화를 기획한다는 말 자체가 배우로서 저를 너무 행복하게 하는 말이었어요. 실현이 되든, 안 되든, 그랬어요. 전 항상, “5년 전에 생각해놓고 중간에 나한테 말한 거 부담 느껴서 자꾸 진행시키려고 무리하지 마라. 난 나한테 말해준 것만으로 고맙다.” 그렇게 몇 번이나 얘기했어요. “너무 시간도 많이 가고, 난 하루가 다르게 늙어간다. 어떻게 내가 20대 아들의 어머니를 할 수 있겠냐.” 그런데 그럴 때마다, “선생님 아니면 전 이 영화 덮어요.” 그러면서, “선생님 보이는 대로 찍을 거에요.” 그렇게 얘기했어요. 사람들은 김혜자 씨가 안 하면 이거 누구 시킬 거냐고 물었다는데, 그거 다 몰라서 하는 소리라고. 김혜자 선생님 때문에 떠오른 생각이고 만약 안 된다면 없었던 걸로 하겠다고 했다네요. 자기가 계획했던 걸 절대로 바꾸지 않더라고요.
보이는 대로 찍겠다는 말처럼 영화에서 적나라하게 얼굴이 클로즈업되곤 하더군요.
영화를 보니까 어떤 때는 너무 나이 들게 나오고, 어떤 때는 너무 젊게 나오고. 그런데 이 영화가 그냥 한 장면에 머물러서 저 여자를 관찰할 틈을 안 주는 영화에요. 그렇죠? 엄마의 나이가 상관이 되지 않는 영화였어요. 그렇기 때문에 봉준호 감독도 별로 개의치 않았던 거 같아요.
자신의 표정을 구상해본 적은 없으셨나요?
거울 보고 그럴 틈은 없었어요. 수시로 감정이 변해야 되는 상황에서 거울보고 연습할 새가 있어야죠. 끝나고 나서 방에 들어와서 아까 한 걸 가만히 생각해보면서 ‘내가 아까 어떻게 했지’ 하고 가끔 본적은 있어요. 자기 전에 세수하고 와서 그걸 해보자고, 거울을 이렇게 보고 그래 봤지만 그건 아무런 도움이 안 됐어요.
김혜자 씨만이 이 영화를 찍을 수 있다는 봉준호 감독의 공언이 영화를 보기 전까진 실감나지 않았지만 영화를 보니까 그 의미를 알겠더군요. 진짜 알았어요? 아이, 좋아라. (웃음)
스크린에 쏟아져 나오는 김혜자 씨의 표정 자체만으로도 영화가 놀라웠어요. 그런데 그런 표정의 가능성을 봉준호 감독이 이미 예감하고 접근했다는 것이 더욱 놀라워졌어요.
저도 무섭다니까요. 얼마나 영리하고 천재적인 사람일까, 어떻게 나한테서 저런 게 나올 거라 예상했을까. 저도 모르게 그런 표정이 나오게 상황을 몰고 가는 거에요. 그게 일부로 거울 보고 연습해서 지어낸 표정이겠어요? 아니지. 난 깜짝 놀랐다니까. 제 눈이 이렇게 돌아가는 걸 보고, ‘어머나!’ 이랬다니까. (웃음) 왜 사람이 환장하면 눈이 돈다 그러잖아요. 진짜 눈이 돌더라니까. 모니터보고, ‘어머나, 진짜 눈이 뒤집히는구나’ 그랬지.
<마더>는 언제 처음 보셨나요.
정식으로 본 건 칸에서였어요. 여기선 떨려서 못 보겠더라고요. 저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TV모니터도 제 방에서 혼자 했거든요. 내가 나오는데 누가 옆에서 한눈 팔고 딴짓하면 다 느껴지잖아요. 이러면 막 짜증나고 신경질 나기 때문에 혼자 문 꾹 닫아놓고 보고 그랬지. 근데 이제 좀 많이 둥그래져서 같이 보긴 하지만 이번에는 같이 못 보겠더라고요. 특히나 기술 시사에선 거의 완성본을 보여준다는데 불 켜고 난 다음에 사람들 표정이 어떨까 무섭고 민망해서 못 봤어요.
<마더>에서 묘사하는 어머니는 일반적인 모성상으로 이해될만한 평범한 어머니가 아니죠. 어쩌면 그 지점이 <마더>에 대한 흥미가 생길만한 계기가 아니었을까 싶은데요.
그런 어머니였기 때문에 하고 싶었어요. 이제 일상적인 어머니를 너무 많이 했잖아요. 물론 <엄마가 뿔났다>같은 경우는 자기를 찾으려고 애쓰는 조금 다른, 아직도 우리나라 사회에선 잘 받아들여지지 않는 깨인 엄마를 연기했잖아요. 그래서 사실 <엄마가 뿔났다>하기 전까진 굉장히 공백 기간이 길었어요. 그 정도로 하고 싶은 작품이 없었기 때문에. 그런데 <마더>도 이런 엄마였기 때문에 한 거죠.
사실 <마더>에 나오는 어머니는 어미라고 표현하는 게 맞을 것 같아요.
짐승 같죠. 애미도 아니고 어미에요. 그 여자가 화장터에서, ‘우리 아들이 안 그랬거든요’ 이러면서 눈이 이렇게 뒤집어지는 걸 모니터로 보고 깜짝 놀랐어요. 아니, 내 눈이 어떻게 저렇게 되냐고. (웃음) 그니까 그건 어미죠. 개나 짐승이 새끼 낳고 낯선 사람이 들어오면 으르르하잖아요. 그런 것과 똑같이 자기 새끼를 해치려고 하는 것에 대한 반응이 거의 짐승 같았어요, 이 엄마는.
이성적인 합리를 먼저 정립하는 것보다도 본능적인 에너지에 대한 필요성을 먼저 자구할만한 캐릭터가 아니었을까요?
그러니까 아마 전 크게 병 날 거에요. 어느 영화보다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 연기였기 때문에. 그런데 정신은 굉장히 맑아졌어요. 육체는 피곤할지 모르지만 정신은 맑아지고, 새로워졌다고 할까요.
뭔가 새로운 기운을 얻었다고 느끼시는 건가요?
땅을 일군다고 하잖아요. 저는 이 영화를 하면서 그 동안에 저한테 딱딱하게 굳어져있던 속을 다시 일군 거 같아요. 비료도 주고, 나한테 고착돼있던 어떤 생각들, 매너리즘에 빠져있던 것들이 다시 이렇게 새로워지는 느낌을 받았어요.
어머니로서 <마더>에서 연기한 인물의 모성에 대해서 이해하실 수 있으세요?
저는 그렇다고 생각해요. 그런 말이 있잖아요. 자식을 위해 죽을 수도 있는 건 엄마밖에 없다고. 그 말은 곧 자식을 위해 죽을 수도 있지만 자식을 해치려 그러면 죽일 수도 있다는 말이 돼요. 그만큼 아무 것도 안 보인다는 말이 되거든요. 자식을 위해서라면. 물론 관객들은 좀 놀라겠죠. 그렇지만 놀라면서도, ‘그래, 자식이니까 저러지’ 그러실 거 같아요. 그리고 어딘가 부족하고 모자란 애니까 측은하고, 내 목숨하고 바꿨으면 좋겠다 싶은 자식이니까. 저도 정말 걔만 보면 가슴이 너무 아팠어요. 책을 읽으면서부터 도준이란 인물이 너무 가슴 아픈 자식이었기 때문에. 그리고 친구라고는 동네 건달인 진태밖에 없잖아요. 정말 인간 말종이라고, 종자부터 틀렸다고 엄마가 표현하지만 마음 한편으론 고마운 거에요. 내 아들의 친구가 돼주니까.
연기를 오랫동안 해오셨지만 <마더>에서의 김혜자 씨는 기존에 보여주셨던 연기와 차원이 다른 새로운 모습이었다고 생각해요. 그만큼 김혜자 씨께서도 처음이라 할만한 경험이 있지 않았을까 싶은데요.
처음 해본 게 많아요. 정말. 사실 국내에서는 얼굴을 알아보니까 외국으로 여행을 많이 가도 국내에선 어디 여행을 잘 못 다녀요. 이게 서울에 있는 스튜디오에서만 찍은 게 아니고 영화팀과 같이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찍었잖아요. 관광지가 아닌 곳인데도 ‘우리나라 산천이 이렇게 아름답구나’, 라는 걸 느꼈고, 공기도 맑고, 인정도 좋고, 그런데 사니까 두통도 없어지더라고요. 전 평생 두통을 달고 살았는데 두통도 없어지고, 서울에 있을 땐 배고픈 지도 모르고 그러는데 배도 고프고, (웃음) 그래서 밥 언제 먹냐고 물어보기도 하고. 새로운 일에 대한 열정이 저한테 남아 있다는 게 신기했어요. 저는 저한테 열정이 죽었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 점에서 봉준호 감독한테 감사해요. 저한테 불씨만 남아있던 열정을 다시 타게 해줬으니까.
<마더>는 <마요네즈>(1999)이후로 10년 만에 출연을 결정한 영화에요. 그 사이에 작품 제의가 있었을 것 같은데 한 작품도 하지 않았다는 건 그만큼 마음에 드는 작품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일까요?
같이 하자고 그러시는 분들이 몇 분 계셨지만 내가 TV에서 너무 많이 했던 비슷한 역할들을 보여주셨기 때문이에요. 내가 우선 그런 역할에 싫증이 나는데 누가 그걸 극장까지 보러 오겠어요. 그러니까 차라리 내가 아닌 사람이 하는 게 훨씬 더 나을 것 같은 거에요. 그래서 그 분들한테, “이건 사람들이 전혀 상상하지 못한 사람에게 시키던가 하지, 내가 나가서 하면 무슨 흥미가 있겠느냐”, 그랬어요. 그런데 봉준호 감독은 처음부터 이건 선생님에게서부터 영감을 얻어서 기획한 것이기 때문에 선생님이 안 하신다 그러면 이건 그냥 덮어버린다, 그랬어요.
결국 10년 만에 스크린으로 자신의 얼굴을 본 셈이에요. 그런 점에서도 감회가 남다르지 않았나요?
그러고 보니 그렇네요? 그런 생각은 안 해봤는데. (웃음) 예. 감회가 남다르네요. 정말로. 이제 막 생각하게 됐어요.
오랜만에 영화 현장에서 작업하는 기분은 어땠나요?
드라마 같이 쫓기지 않아서 좋았어요. 말하자면 배우의 창의력이 발휘되기 좋다는 점이 달라요.
아무래도 생각처럼 항상 연기가 잘 되는 건 아니었을 텐데요. 촬영하지 않을 때는 쉬라고 캠핑카가 마련돼있었거든요. 잘 표현이 안될 때는 그 속에 들어가서 울었어요. 답답해서. 내가 이렇게까지 밖에 표현이 안되나 싶어서.
사실 영화 속에선 우는 연기가 거의 없잖아요. 감정을 안으로 눌러 담으면서도 그걸 온전히 드러내야 한다는 점에서 답답한 부분도 적지 않았을 거 같습니다.
어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을 드러내야 되는 거에요. 물론 우는 것도 종류에 따라 다르지만 그래도 우는 건 울면 되니까. 눈물 없이 형언할 수 없는 감정을 표현하라는데 잘 안되잖아요. 그래서 차에 가서 막 울었어요.
그럴 때 봉준호 감독의 반응은 어땠나요?
감독이 달래주러 들어오더라고요. 그래서 나가라고 그랬어요. 해줄 말 있으면 문자로 해주라고. (웃음) 그랬더니 문자를 했더라고, 진짜. ‘아무리 부인해도 세상에 화날 땐 인정하세요’ 괜히 나 위로하려고 그러는 거지. 잘 안된 건 자기가 제일 잘 알잖아요. 그렇게 생각했어요. 많이 배려해주지만 자기 맘에 안 드는 연기는 추호도 봐주는 게 없었어요. 마음에 안 들면 다시 하고, 다시 하고, 그런 점이 저하고 같았어요.
문자도 하실 줄 아세요?
제가 <마더>때문에 처음으로 이 핸드폰을 썼어요. 하도 답답하니까 영화사에서 사줬거든요. (웃음) 그리고 봉 감독이 핸드폰에 취미를 갖게 하려고 문자 하는 법도 알려주고 그랬죠.
인터넷은 할 줄 아시나요?
인터넷은 잘 몰라요. 대신 우리 아들이 좋은 얘기 나왔을 땐 와서 보여줘요. “엄마, 여기 재미있는 얘기 있어. 와봐.” 그래서 읽어주다가, “이거 보려면 쑥 내려.” 그리고 딴 데 가요. 그런데 저는 내리다 보면 다른 게 나와요. 그래서, “얘!” 부르면 “아이, 참, 엄마, 그냥 보지 마세요.” 그러곤 하죠. (웃음) 그런데 나쁜 얘기는 안 보여주겠죠. 좋은 얘기만 보라고.
봉준호 감독이 아들처럼 느껴질 때는 없었을까요?
아~니, 전 그 사람 존경해요. 나이로는 그렇게 생각할 수 있어도 그 사람 하는 거 보면 존경할 수 밖에 없어요. 정말 똑똑한 사람을 보면 존경해요. 그 분은 굉장히 천재적이고요, 정확한 사람이에요. 자기 머리 속에 확실한 그림이 서있어요. 우물쭈물하는 법이 없어요.
봉준호 감독이 연기가 마음에 들지 않아 한다는 걸 느낄만한 주문이 있었나요?
"다 좋은데 한번만 다시 해보세요." (웃음) 나도 찍으면서 봉 감독이 오케이 할 때, “아니, 나도 한번만 더해보고 싶어요” 그래도 자기가 됐다고 생각하면, “아니요, 됐어요”, 그래요. 정말 못 됐어. 진짜로. (웃음)
어쩌면 뭔가 그 이상을 끌어낼 수 있는 기대감에 계속해서 연기를 요구한 건 아닐까요.
봉 감독이 여러 버전으로 해보길 원해요. 그러니까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고, 그러다 보면 저도 모르는 좋은 게 나와요. 어쩌면 틀에 박힌 듯이 할 수 있는 걸 이렇게, 저렇게 해보고 그러니까 더 재미있다는 걸 느끼게 해주더라고요.
외로움을 느낀 적은 없으셨나요? 소통이 불가한 고립된 캐릭터를 연기했는데 그만큼 배우 스스로도 캐릭터의 고립감을 느끼면서 연기해야 하지 않았을까 싶은데요.
맞아요. 그런 점에서 그랬어요. 나하고 소통되는 사람이 없잖아요. 말은 하지만 누구와 말을 주고 받는 게 아니고 나 혼자 중얼거렸다가 무시당하고 그러지, 그러니까 허공에 대고 얘기하는 것 같았어요.
체력적으로도 소모가 많았을 텐데요. 연기적으로 힘들다고 느꼈던 고비가 있으셨나요?
제일 힘들었던 건 뛸 때도 아니고 내 맘대로 연기가 안될 때. 아까 말한 것처럼 형언할 수 없는 표정 지으라고 써 있는데 그게 안될 때 감독은 ‘그게 바로 형언할 수 없는 표정이에요’, 라고 말하지만 어떡하란 말이야, 도대체, 지가 한번 해보라지! (웃음)
영화 안에 모호한 표현이 많더군요. 완전한 정답이나 확신을 주지 않고 의심하게 만드는 부분들이 많잖아요.
저는 책보고 많은 생각을 했어요. 그러니까 말하자면 우리가 책 읽을 때 행간을 읽는다고들 그러잖아요. 그런 것처럼 여기 참 숨은 그림이 많구나 싶었어요. 제 역할에 대해서, 그리고 아들에 대해서도 굉장히 애매하게 표현된 점이 있어요. 그냥 저 사람들은 모자관계일까, 아니면 모자관계이상일 수 있을까, 그런 것도 아주 그렇게 안개 속같이 표현해요. 그러니까 자기가 이해할 수 있는 만큼만 보여준다고 생각해요. 약간 그리스 비극 같은 생각도 들고. 남편에 대해서도 아무 언급이 없잖아요. 골방에 들어가서 사진을 찢을 때도 그 옆엔 애 아빠가 있었겠구나, 이런 암시만 남잖아요. 그러니까 이 남자를 무지무지하게 사랑한 여자였나, 아니면 어떤 사랑을 했길래 저러나 알 수 없어요. 그래서 시작하기 전에 너무너무 많은 생각을 했죠. 그러다가 구상이 점점 추상으로 가는 것처럼 뭔가 구체적으로 많이 생각했다가 붓 하나 찍 긋는 것처럼 연기는 심플하게 한 거죠.
칸에서도 <마더>를 통해 다양한 평을 얻으셨을 텐데요. 아무래도 김혜자라는 배우에 대한 인식과 선입견이 뚜렷한 국내 관객의 기대나 감상과 다른 신선한 반응을 목격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달라요. 그 분들은 <전원일기>도 모르고 아무 것도 모르기 때문에 선입견이 없어요. 그러니까 그냥 원빈의 엄마로 받아들이는 거야. 아마 우리나라 분들은 ‘원빈이 아들이야? 봉준호가 아들 뻘 아닌가’ 그런 선입견이 생길지도 모르잖아요. 그러니까 그건 기자 분들 책임이야. 꼭 이름 옆에 가로치고 나이를 적어서 그렇다니까. (웃음) 나이가 배우를 결박 씌우는 거에요. 그 분들은 오히려 선입견이 없기 때문에 나이가 느껴지지 않는다고 했어요. 영화에서 굉장히 늙어 보일 때가 있지만 어떤 때는 굉장히 젊어 보일 때가 있잖아요.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제 나이를 너무 잘 알죠. 기자들이 자꾸 써주니까, 친절하게. (웃음) 그러니까 배우 나이는 안 쓰는 게 좋을 거 같아요. 그냥 짐작하는 것과 자꾸 이렇게 적어놓은 걸 보는 것하곤 틀리거든요. 제가 몇 살쯤 됐다는 거야 다 알겠죠. 언제적 김혜자인데. 근데 그걸 못박아서 써줄 때와 아닐 때는 또 다를 거 같아요.
사실 중년 배우들을 주인공으로 다룰만한 작품이 우리나라에선 드물기도 하죠.
그렇죠. 그런데 자꾸 이렇게 나이 밝히고 그러니까. (웃음) 이건 농담이고요. 사실 젊은 사람들 얘기가 예쁘잖아요. 보고 나면 재미있고. <마더>처럼 특별한 상황에서 특별한 연기가 요구되는 경우는 흔치 않겠죠. 그렇죠?
작품을 마치고 난 지금은 마음이 어떠신가요?
저는 꼭 작품이 끝나면 아파요. 지금은 아직 시사도 있고, 기자 분들 만날 일도 있고, 개봉하면 인사도 다녀야 되니까 그때까진 안 아플 거에요, 아마. 그런데 그게 다 끝나면 아플 거에요. 많이 아플 거에요.
왜 그럴까 생각해보신 적은 있나요?
맥을 놔서 그럴 거에요. 이 엄마가 떠나가면 아파요. 떠나가면서 나를 병이 나게 하고 갈 거에요. 지금은 아직도 이 엄마가 내 속에 있기 때문에 괜찮은 거겠지.
최근 인터뷰에서 레드 카펫에 대한 환상이 없었다고 밝히셨더군요. 사실 칸 영화제 레드 카펫이라면 배우로서 한번쯤 꿈꿀만한 자리일 텐데요.
저는 이번에 <엄마가 뿔났다>하기 전에 활동한지 너무 오래돼서 백상예술대상이나 KBS 연말 대상 시상식 같은 데서도 레드 카펫을 까는지 몰랐어요. 그 때도 ‘여기 뒷문 없어?’ 그래서 뒤로 들어왔어요. 무안해서. 그건 그냥 젊은 사람들이 예쁘게 입고 관객들 즐겁게 해주는 것 정도로만 생각했지. 저한테 그런 환상은 별로 없으니까요.
올해는 시상식에서 정문으로 들어오시겠죠.
칸에서 그랬으니까 우리나라에서도 그렇게 해야겠죠. 그렇죠? 이번에도 뒷문으로 가면 저 여자는 해외에서만 저러고 국내에서는 안 그런다고 하겠죠. (웃음)
스스로 자식들에게 어떤 어머니라고 생각해보신 적이 있나요? 자식들한테 약간 폐가 되는 엄마일 걸요. 맨날 한심한 말 하고 그러니까. 그렇지 않으면 가만히 앉아있고, 밥 좀 먹으라고 몇 번씩 말을 해야 그래, 그러면서 먹고.
보통 어머니들께서 자식에게 밥 먹으라고 하시는 게 보통인데 말이죠.
집에 가만히 있으면 배가 안 고픈 걸 어떡해. 그러니까 제가 대표적인 엄마상이라는 게 약간 어폐가 있죠. 사람들은 누구나 무엇을 하든 허상이 있다고 생각해요. 배우로서 그 동안 어머니 역을 잘 했으니까 그렇게 얘기하겠죠. 내 사생활은 엉터리였어도.
최근 출연하셨던 <엄마가 뿔났다>의 한자도 집을 나가서 안식년을 갖겠다고 선언하죠. 사실 우리나라의 어머니들은 가족을 위해 헌신하는 것이 당연한 삶처럼 여겨지잖아요. 그런 측면에서 보면 한자도 상당히 이례적인 어머니 상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한자는 상당히 선구자적인 엄마에요. 그런데 보통 자기 친구들도 만나면서 가끔 자기 즐거움을 찾는 주부들도 정말 안식년을 가져야 된다고 그러는데 전 거기에 대해서는 좀 생각을 달리해요. 안식년을 요구할 수 있는 엄마는 정말 가족을 위해서 자기는 하나도 없었던 엄마에요. 이렇게 저처럼 제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 무슨 안식년이 필요 있어요? 이게 안식이지. 오로지 집에서 식구들을 위해 정말 자기를 다 바쳤다고 말할 수 있는 엄마들만 쉬는 시간을 달라고 요구할 자격이 있는 건데 너도 나도 다, ‘집 잘 나왔어’ 이러는 거에요. 물론 어떤 분들은, ‘아니, 그만하면 살지’ 그러시더라만. (웃음) 어쨌든 저는 그래서 김수현 씨가 앞서가는 선구자적인 작가라고 생각해요. 이젠 그런 시대가 올 거에요. 가족만을 위해서 헌신하는 엄마는 점점 없어질 거라고 생각해요.
작품활동을 하지 않을 때는 주로 무엇을 하시나요?
공상해요, 공상. (웃음) 아니면 자요. 복잡하면 잠 오고, 깨 있으면 졸 거 같으니까 그냥 자요. 그렇게 자고 나면 머리가 맑아지니까 그 때부터 책도 보고 음악도 듣고. TV도 재미있는 건 보는데 어떨 땐 그냥 안 키죠. 켜면 쓸데없이 하루가 휙 가버리더라고. 얻은 것도 하나도 없이. 그래서 기분이 안 좋을 때가 있다니까. ‘뭐했을까, 하루 종일’ 이러면서. 그런데 그것도 버릇이더라고요. 눈 뜨면 TV켜버릇하면 그렇게 되요. 그런데 눈 뜨면 좋은 음악을 딱 틀어버리면 또 그렇게 되더라고요. 그러니까 어떻게 습관을 들이느냐에 따라서 달라지는 거 같아.
사람과 어울리는 것보단 혼자 보내시는 시간이 많으신가 보네요.
원래 사람들 많이 있는데 가는 걸 부담스러워하는 성격이라 그냥 혼자 있는 걸 제일 좋아하는 사람이에요. 친구가 없으면 참 불행하다는데, 저는 그런 면에서 보면 불행한 사람인 거죠. 제가 혼자 이렇게 있는 걸 좋아하니까 옆에 친구가 별로 없어요. 그런데도 전부 다 저를 보호해주려고 그러는 거 생각하면 난 참 인복이 많구나, 하나님께 감사하다, 이럴 때가 정말 많아요. 내가 이렇게 나밖에 모르고 내 안에만 갇혀서 사는데도 사람들은 날 이렇게 치유해주려고 하니까. 진짜 하나님께 감사해요.
그런데 수많은 사람을 상대하는 봉사활동도 활발하시잖아요.
저는 세상을 너무 많이 아는 사람을 만나면 힘들어요. 그런데 애들은 모르잖아요. 애들은 배고픈 거, 아픈 거, 그런 것만 알잖아요. 애들하고만 있으면 내 머리가 복잡해지지 않는다고요. 아픈데 약 발라주면 되고, 그런 것만 해주면 되지, 내가 그 사람 생각에 맞춰서 머리 굴려야 되고 그렇지 않잖아요. 전 그런 걸 못하기 때문에 그런 사람들 앞에 가면 기운이 쑥 빠지면서 졸려요, 금방. 그러니까 사람들 많은데 가면 왜 그렇게 졸린 지 몰라. (웃음) 지금은 인터뷰하는 자리니까 말을 많이 하지. 말도 많이 하면 에너지가 굉장히 소진돼요. 그래서 저는 말도 잘 안 해요. 지금 내가 안 하면 안되니까 하는 거지. 잘 써달라고. (웃음)
연기자라는 직업도 사람들과 어울려야 하는 일이지만 그 불편함을 상쇄할만한 가치가 있으니 유지가 가능한 것이겠죠?
저에겐 배우가 직업이기 보단 곧 저의 삶이에요. 물론 ‘어큐패이션(occupation, 직업)’ 란에는 ‘액트리스(actress, 여배우)’라고 써요. 그렇지만 전 직업이 배우라고 생각해본 적은 없어요. 그냥 삶의 일부지.
연기가 삶의 가장 큰 목적이라는 말처럼 들리는데요.
그니까 제 존재의 의미에요. 제가 연기를 안 하고 보이지 않을 때는 죽었다고 생각하면 되요. 살아있어도 제가 작품에 나오지 않으면 그건 그냥 반쪽의 저만 있는 거에요. 아이들 만나고 다니고, 그렇게 반쪽의 삶은 사는 거지만 배우로서의 저는 죽은 거에요.
김중만 작가의 사진을 영정 사진으로 쓰고 싶다고 종종 말씀하신다고 들었어요.
나, 그 말 젊었을 때부터 했어요. 예쁜 사진만 보면 이거 영정사진으로 해야지. (웃음) 습관처럼 입에 달고 다녀서 우리 애들이 질색을 해요. 엄마는 맨날 잘 나온 사진 보면 영정 사진 쓴다고 해서.
영정 사진을 준비한다는 건 사실 인생의 마지막을 준비하는 거잖아요.
저는 그러니까 항상 마지막이 언제가 될지 모른다고 생각하면서 살아요. 그리고 언제가 돼도 상관없어요, 저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없는 건가요?
저는 왜 그런지 어렸을 때부터 죽음이 그렇게 두렵지 않아요. 그러니까 제가 이렇게 오래 사는 게 이상하다니까요. 저희 애들은 아주 질색해. 엄마는 왜 맨날 그러냐고 그러는데 사실이 그러니까. 김중만 씨는 옛날에 한 20년 전에 알았을 때부터 사진을 잘 찍었는데 항상 그 사람이 찍어준 사진보고 이걸로 영정사진 해야지, 그랬기 때문에 그 사람이 매년 영정사진을 바꾼다고 얘기하는 거에요. (웃음)
벌써부터 김혜자 씨의 여우주연상 가능성을 이야기하는 말들이 나오고 있더군요.
저는 그런 말을 참 잘해요. 이거 찍어서 그냥 우리끼리만 봤으면 좋겠다. 사람들이 보는 게 두려워요. 그냥 제가 연기를 좋아하니까 우리끼리 찍어서 우리끼리만 보고 말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항상 해요. 만약 나중에 상을 준다면 상 탈 때는 행복하죠. 그런데 상이 저한테는 그렇게 큰 의미는 없어요.
사실 <마더>까지 단 세 편의 영화를 했지만 그때마다 상복은 있었던 것 같아요.
첫 번째 영화 <만추>도 마닐라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 탔고요. <마요네즈>는 케라라국제영화제에 갔는데 거긴 여우주연상이나 남우주연상이 없었고 작품상만 있는 영화제였어요. 그런데 말하자면 우리나라 지방영화제 같은 거니까 우리나라에서 잘 알려지지 않아서 그렇지, 거기서 <마요네즈>가 그랑프리 탔어요. 유인호 감독님이 가서 타오셨는데 그쪽 신문 1면에 한 장면이 크게 나왔더라고요. 감독님이 그 신문 갖고 와서 저한테 줘서 어디다 잘 간직했는데 지금은 없더라고요. 그래서 미안해.
허벅지에 침 놓는 장면이 인상적이어요. 그 장면이 다양한 해석을 부르는 것 같기도 하고요. 자신의 기억을 봉인한다는 의미가 있는 것 같은데요.
내가 스스로를 찌르는 고통스러움을 통해 마음 속의 아픔을 잊음으로써 그 기억 자체를 잊으려고 한다고, 그냥 저는 그렇게 생각했어요. 그것만으로 나을 거란 생각은 안 해요. 아마 허깨비처럼 살 거에요. 마음은 절벽에서 이미 투신했다는 김남조 시인의 시처럼 그 아들 때문에 죽지도 살지도 못하고 그냥 허깨비로 살겠죠.
결국 이 어머니 역시 김혜자 씨 본인에게 봉인되는 캐릭터가 될 거 같네요. 그러다가 언젠가 이 캐릭터를 다시 꺼내 생각할 때가 오지 않을까요.
저는 흘러간 건 잘 안 떠올리는 편이거든요. 떠올리면 자꾸 잘못했던 것들만 생각나요. 그래서 괴로우니까 안 떠올려요. 그런데 <마더>는 다른 작품보단 저에게 좀 특별한 의미가 있어요. 뭐라고 설명드릴 순 없지만 앞으로도 떠오를 것 같아.
시를 많이 읽으시는 편인가요? 저는 시를 좋아해요. 짧은 단어 속에 너무 많은 뜻이 있어서.
2004년도에 출간된 저서인 <꽃으로도 때리지 마라>에서 헤르만 헤세의 ‘행복해진다는 것’의 시-인생에 주어진 의미는 다른 아무 것도 없다네. 그저 행복하라는 한 가지 의무뿐.-를 인용하면서 이를 반박하셨던 기억이 나요.
예. 그때는 그렇게 생각했어요. 행복해질 의무가 있다는데 이런 애들을 못 봤으니까 그런 말을 했겠지. 천상병 시인의 시에 이런 말이 있어요. ‘어떤 아이가 대문 앞에 울고 있다. 오줌을 싼 벌일까. 이렇게 다섯 여섯 살 먹은 계집아이가 울고 있다. 그러면서 넌 왜 우니. 인생의 무엇을 안다고. 나 같은 사람도 있는데.’ 그런 내용의 시가 있어요. 제가 그 시를 적고 그 밑에다가 ‘선생님, 다섯 여섯 살에도 인생이 뭔지 아는 애들이 여기 있습니다’ 이렇게 썼어요. 다섯 여섯 살에 지네 엄마 아빠가 총맞아 죽는 걸 본 애들도 있고, 이 분도 그 아이들을 못 봤기 때문에 이런 시를 쓰셨구나 했죠. 얼마나 당신이 고통스러웠으면 이런 시를 쓰셨을까.
사실 천상병 시인도 상당히 비극적인 삶을 살았죠.
그렇죠. 그 분 시가 얼마나 비참해요. ‘아이론(iron) 밑의 와이셔츠 같았다’고 하셨잖아요. 아이, 끔찍해. 정말로. 그게 다리미로 다져질 와이셔츠 같다니.
사실 그만큼 남들이 끔찍하다 말하기 쉬운 삶을 사셨죠. 하지만 한편으로 당사자의 시점에서는 그 삶을 부정하지 않았던 것 같기도 해요.
그렇죠. 하늘로 돌아갔다고, 즐거웠다고 이야기하겠다고 하셨으니까.
결국 자신의 이해에 따라 삶의 관점이 달라질 수 있다는 의미일 수 있을 것 같은데요. <마더>의 혜자가 취한 선택 역시도 타인에게는 극악한 선택이지만 당사자에게 있어선 피할 수 없는 운명과 같은 방편이라 말할 수 있을 것 같고요.
그게 그 여자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이었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때때로 자신이 이해하는 자신과 타인이 이해하는 자신의 차이를 느낄 때도 있을 텐데요.
그러니까 어떤 때는 ‘가면의 생’이라는 소설 있잖아요. 그런 게 생각날 때도 있어요.
CF를 통해 어필한 어머니 이미지도 강했던 거 같아요. 요즘엔 사실 출연하시는 CF는 없으신 것 같은데 제의는 꾸준히 들어오나요?
맨날 하기 싫은 CF는 끝없이 들어오는데 저는 안 하는 게 좋으니까 별로 관심은 없어요.
CF를 많이 하는 젊은 배우들이 종종 비난을 받는 경우도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나요?
글쎄요. 다 생각이 있어서 하겠죠. CF만 많이 하는 배우도 그게 맞는 사람이 있어요. 많이 해도 별로 싱겁지 않은 사람이 있고, 많이 하면 왜 저러냐, 그런 사람이 있고 그렇잖아요. 그냥 자기 생긴 대로 사는 거 같아요. 그게 누가 충고한다고 될 일도 아니고요. 전 누구 충고할지도 몰라요. 그리고 저도 충고 받는 거 싫어하고, 그냥 저도 생긴 대로 사는 거 같아요. 자기 생긴 만큼 사는 거니까.
꽃을 좋아하신다고 들었어요.
꽃 좋아하죠. 저는 정말로요. 봄에 땅이 아직도 꺼뭇꺼뭇하잖아요. 커다란 소나무 밑에 시커므리한 곳에서 어쩌다 수선화가 노랗게 펴있는 거 보면 눈물이 나더라고요. 이 그늘 밑 시커먼 땅을 뚫고 네가 나왔구나, 싶어서 걔하고 얼마나 많은 얘기를 하는지 몰라요. ‘너 정말 애썼다. 기특하다. 정말로.’ 예전엔 겨울이라 복도에 들여다 놓은 자스민 한 송이가 펴서 아침에 일어나서 문을 열어보니 계단 밑에서 자스민 향기가 얼마나 많이 퍼지는지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어요.
화단도 가꾸신다면서요?
화단 정말로 예뻤는데. 우리 아들이 개를 좋아해요. 개도 조그만 개가 아니고 맹인견하는 레브라도 리트리버 같은 종이니까 걔네 들이 한번 화단을 왔다 갔다 하면요, 꽃들이 다 누워요. 그래서 아들하고 맨날 싸우다 싸우다 제가 포기했어요. 꽃보다는 아들이 중요하지. (웃음) 그래서 한번은 아침에 나가서 봤더니 밤새 개를 풀어놔서 꽃들이 다 짓밟혀 있길래 제가 부은 채로 앉아서 하도 울었어요. 그랬더니 “내가 다 다시 심어줄게.” 그러더라고요. 우리 아들이. 그래서 “다시 심는 게 문제가 아니야. 얘네들도 다 생명이 있고, 생각이 있어. 짓밟혔을 때 생각 좀 해봐.” 그리고 제가 어떤 시인한테 그 얘기를 했더니 그러더라고요. “개들을요. 돌아다니는 나무라고 생각하세요.” (웃음) 그래서 그 다음은 그렇게 생각했어요. 돌아다니는 꽃이라고. 그 대신 정원은 황폐화됐어요.
OBS에서 <김혜자의 희망을 찾아서>란 인터뷰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도 하셨는데요.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천연덕스럽게 질문하시는 모습이 어떤 인터뷰어라도 답변을 피할 수 없게 만드는 기분이 들더군요.
어머, 그걸 봤어요. 고마워요. 진짜. (웃음) 주철환 씨가 자꾸 그걸 하자고 했어요. 주철환 씨와 20대부터 친했었거든요. 그런데 제가 그걸 어떻게 해요. 그랬더니 할 수 있대. 그런데 제가 어떤 때는 ‘알았어, 할게요’ 그랬다가, ‘아니, 못해요’, 이걸 수 십번 반복했더니 나중에 내일 신문 보래. ‘주철환, 김혜자에게 배반당해 자살’ 이런 기사 날 테니까. (웃음) ‘진짜로 그러면 어떡하나. 에이, 설마.’ 이러면서도 저렇게까지 얘기하는데 한번 해보지 싶어서 했어요. 그런데 게스트 오시는 분들에게 항상 부탁하죠. “제가 원래 말하기도 싫어하는데 MC를 하라네요. 그런데 제 말을 못하니까 저 대신 재미있게 얘기 좀 많이 해주세요.” 이렇게 미리 부탁하고 그러니까 그 분들이 오히려 안쓰러워서 얘기를 더 많이 한 거죠. 물론 작가가 있었지만 그 작가가 적어준 건 이분이 이런 일을 했다는 거니까 그걸 참고만 하고 제가 아무 거나 되던 말던 물으니까. (웃음) 어떤 분이 그런 얘기를 하더라고요. 무장해제를 시키는 재주가 있다고. 그런데 그건 재주가 있다기 보단 그냥 궁금한 걸 물은 거에요. 끝나고 나니까 봤다는 사람이 의외로 많네요.
주철환 대표도 봉준호 감독처럼 김혜자 씨에게 계속 러브콜을 보낸 셈인데, 누군가가 자꾸 자신이 생각지도 못한 가능성을 제시한다는 것이 당사자에겐 때때로 놀라운 일이 될 것 같아요.
그러니까 말이에요. 어떨 땐 웃겨요. (웃음) 근데 난 주철환 씨가 한번 이런 글을 쓴 적이 있어서 참 좋았어요. 김혜자는 어머니 역도 잘 하는 배우다. 난 그렇게 써주는 게 좋아요. 무슨 제가 국민엄마에요, 국민엄마는. 솔직히 국민 들어가는 게 너무 많아서 싫어요. 국민오빠, 국민 아버지, 왠 국민이 이리도 많은지. 이 역 저 역 다 잘하는데 엄마 역도 잘한다, 이런 평가가 더 감사하죠.
10년 만에 <마더>로 스크린에 복귀하셨으니 차후에 영화제의가 들어올지도 몰라요.
아직 그런 생각은 안 해요. <마더>가 아직도 꽉 차있기 때문에 충분히 앓고 난 다음에 이게 어느 정도 흥행이 돼서 어느 분께서 제의를 해주신다면 그 때 가서 생각해볼지 몰라도 지금은 아무런 생각이 없어요. 그리고 내가 그때까지 살아있을지 누가 알아. (웃음)
그러니까 건강 검진도 꾸준히 받으셔야,
싫어. 병 있다 하면 어떡해. 아이, 귀찮아요. (웃음) 난 괜찮아. 우리 아들이 이러면 질색해요. 그래도 할 수 없지. 난 별로 죽는 게 무섭지도 않고, 그냥 내 인생을 언제쯤 잘 끝맺었으면 좋겠어요. 그립다, 김혜자, 그 배우, 그렇게만 끝맺었으면 좋겠어. 일찍 죽고 늦게 죽고 이런 건 별로 생각 안 해요. 그러니까 이번 작품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거고, 그러면서 항상 작품을 하죠. 그리고 사실 몰라요. 진짜 내가 5분 후에 무슨 일이 생길지 어떻게 안담? 그런데 자꾸 이런 얘기하니까 이런 생각이 드네요. 내가 이러다 백 살까지 살면 어떻게 하나?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