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을 꿈꾸지 않았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음악이 길이 되고, 생이 됐다. 재즈 보컬리스트 나윤선은 음악을 통해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고, 새로운
삶을 만난다. 그리고 이 세계보다도 넓은 음악적 여정을 꿈꾼다.
‘내가 이 극장에서 공연할 수 있는 날이 올까?’ 20년 전, 파리 유학 중 우연히 지나가던 샤틀레 극장 앞에서, 나윤선은 생각했다. 그리고 2013년
나윤선은 샤틀레 극장에 있었다. 객석에 앉아 있는 것이 아니라 무대에 서있었다. 1600석이 넘는 좌석을 빈틈 없이 꽉 채운 관객들 앞에서 노래했다. “놀랍게도
꿈이 실현됐으니 그때 제 기분은 뭐라고 표현할 수 없었죠. 그것도 전석 매진이 되는 상황이라 더욱 감회가
깊었습니다.” 1860년에 지어진 파리의 샤틀레 극장은 파리의 예술가들에겐 그야말로 꿈의 무대다. 나윤선은 그렇게 꿈의 무대에 올랐다. 그리고 같은 해, 재즈의 성지라고 일컬어지는 뉴욕의 ‘블루노트’로부터 초청을 받아 이틀 동안 네 차례의 공연을 펼쳤다. 재즈의 본고장
미국 안에서도 최고의 재즈 뮤지션들을 배출한 재즈의 산실 블루노트에서 말이다. “재즈 뮤지션에게 미국
시장은 언제나 숙제 같은 느낌으로 다가오는 것 같아요. 앞으로 더 많은 시간을 미국 활동에 할애하려
해요. 어쨌든 미국에서의 첫 숙제는 비교적 잘 마친듯해서 매우 만족하고 있어요.”
간절함과 절실함만으로 무언가를 이룬다는 건 어려운 일이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지나가는 일상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 순간 마주치게 되는 운명의 좌표가 등장한다. 뒤늦게야
그것이 마냥 지나치던 일상이 아니라 일정한 방향을 향해 가리키던 지표의 연속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우린
그걸 재능이라고 부른다. 재능은 삶을 내버려두지 않는다. 나윤선이
재즈 보컬리스트가 된 것도 어쩌면 그래서다.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대학을 졸업하고 대기업에 취업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일이라고 생각해서 패션회사에 지원했어요. 입사 경쟁률이 높은 회사였고, 합격해서 운이 좋다고도 생각했죠. 그런데 우연한 계기로 회사를 그만
뒀을 무렵 뮤지컬 <지하철 1호선>의 주인공 역을 맡게 됐죠.” 혹시 뮤지컬 배우로서의 꿈이 있었던
것일까? “뮤지컬 배우가 되겠다는 생각은 해본 적 없었어요. 당시
음악을 하던 친구가 제 노래를 녹음한 카세트 테이프를 뮤지컬 연출자인 김민기 선생님께 들려드렸더니 선생님께서 경험이 일천한 저를 주연으로 캐스팅하셨어요. 그 뒤로 두 편의 뮤지컬에 더 출연했어요. 정말 우연의 극치죠.” 하지만 그 ‘우연의 극치’가
재즈 보컬리스트 나윤선이란 미래를 발굴한 셈이다.
뮤지컬 무대에서의 경험은 나윤선의 유전자에 잠재된 재능을 흔들어 깨웠다. 음악을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만들었다. 클래식 합창단 지휘자인 아버지와 뮤지컬 배우였던 어머니 사이에서
자란 나윤선은 ‘공연장의 백스테이지가 놀이터 같은’ 유년시절을
보냈다. 그녀에게 음악이란 매일같이 열고 닫는 방문 같은 것이었을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그녀는 문턱을
넘기로 했다. 본격적으로 음악을 배워보고자 결심했다. 다만
그것이 재즈여야 했던 이유는, 프랑스로 유학을 가야 했던 이유는 단순했다. “무언가를 배우기엔 이른 나이가 아니었기 때문에 클래식을 공부하기엔 조금 늦은 것 같았고, 친구의 권유로 재즈를 선택했어요. 그런데 미국이 아닌 프랑스 유학을
선택한 건 제 전공이 불문학이었기 때문이에요. 개인적으로 샹송을 매우 좋아하기도 했고요.” 단순하지만 명확했다. 그렇게 프랑스로 유학을 떠났고, 재즈 보컬리스트 나윤선의 역사가 시작됐다.
사실 나윤선의 공연에선 재즈 보컬리스트로서의 일관성보단 다채로운 음악적 영향력이 감지된다. 나윤선의 무대는 록과 팝, 일렉트로니카, 포크, 국악 등 다양한 음악적 자장을 재즈로 흡수해버리는 장이다. 자신의 것으로 만든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재즈라고 말한다. “세상의 모든 음악에 관심이 있어요. 대부분의 재즈 뮤지션들도 저와
비슷할 거라고 생각하고요. 재즈는 어떤 장르의 음악이라도 자신만의 것으로 재해석하는데 적합한 음악이거든요.” 어쩌면 그건 그녀의 곁에 좋은 음악적 동지들이 존재하는 덕분일지도 모른다.
벌써 7년째 함께 무대에 오르고 있는 기타리스트 울프 바케니우스는 세계적으로 인정 받는
최정상급의 연주자다. 그리고 아코디어니스트 뱅상 뻬라니와 콘트라베이시스트인 씨몽 따이유도 재능을 인정
받는 연주자다. 이처럼 재능 있는 연주자들과 함께 ‘나윤선
콰르텟’이란 이름으로 무대에 오를 수 있다는 건 나윤선에게 그들을 매혹시킬만한 실력이 있다는, 역설적 증명이다. “좋은 연주자들과 함께 무대에 오른다는 건 자신의
역량을 극대화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둔 것과 같아요. 그런 면에서 지금 함께 활동하는 뮤지션들은
정말 제게 최고의 가능성이라 할 수 있겠죠.”
나윤선은 1년 동안 전세계를 돌며
100회 정도의 공연을 소화한다. 전세계의 수많은 팬들 앞에 서고 노래한다. “다양한 관객을 만날 수 있다는 건 뮤지션에겐 큰 행운이에요. 같은
레퍼토리를 공연해도 관객에 따라 그 느낌은 완전히 달라지니까요.” 하지만 1년에 절반 이상을 해외에서 보내야 한다는 건 어떤 의미에선 고되고 힘든 여정일 것이다. 하지만 나윤선은 아직도 그 여정을 통해 얻게 될 무언가를 기대한다. “어느
유명 연주자가 인터뷰에서 ‘당신은 어디에 사세요?’라는 질문에
‘호텔에서 살아요’라고 답한 것을 보고 한참을 웃었어요. 실제로 연주 여행을 하다 보면 대부분의 시간을 길 위나 호텔에서 보내게 되니까요. 녹록한 일이 아닌 건 사실이에요. 하지만 항상 설레는 마음이 있죠. 저는 항상 제 음악적 여정을 여행이라고 생각해요. 정말 많은 여행을
하며 살아가는 제 모습을 보게 되고요. 낯선 곳에서 만나는 생경한 풍경과 사람들도 제겐 때로 큰 영감으로
다가옵니다. 지금도 항상 어떤 사람들을 만나게 될까라는 설렘으로 비행기에 올라요.”
이미 잘 알겠지만 나윤선은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재즈 보컬리스트다. 그녀의
목소리가 귀에 닿길 염원하는 팬들이 전세계 곳곳에 존재한다. 한류라는 단어가 등장하기 전부터 나윤선은
세계를 누볐다. 그런 그녀에게 한국의 무대에 선다는 건 지금 어떤 의미일까. “모든 무대가 소중해요. 하지만 한국에서 공연할 땐 조금 다른 느낌이
있죠. 공연 시작 전엔 좀 더 긴장이 되는데 막상 시작하면 해외에서보다 편안해지는 경향이 있어요. 아무래도 집에 돌아왔다는 안도감과 관객과의 정서적 공감이 좀 더 크게 느껴져서 그런 게 아닐까 싶어요.” 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여정이란 집으로 돌아오는 길일지도 모른다. 되돌아올
곳이 있다는 믿음으로 보다 멀리 나아갈 수 있다. 나윤선은 모든 공연의 끝에서 ‘아리랑’을 부른다. 그
무대의 끝에서 자신이 돌아올 곳을 되돌아보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한국보다 세계에서 더 유명한 뮤지션’이란 수사도 그녀에겐 딱히 중요하지
않다. 그녀에겐 보다 넓은 세상이 있고, 더 큰 음악이 있다. “음악 활동을 하면 할수록 어렵다는 생각이 들어요. ‘아직도 연습할수록
실력이 느는 것 같다.’ 어느 80대 원로 연주자가 농담처럼
했던 이야기인데 저는 그게 농담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항상 새롭고 젊은 음악을 하는 게 제 음악적 목표에요. 아직 저 앞에 멀리 가야 할 길이 있다고 생각해요.” 나윤선은 젊은
뮤지션이다. 아직 서야할 무대가 많다. 그리고 다시 한번
소중하고 큰 의미를 되새길 때가 왔다. 오는 12월, 한국에서의 공연을 앞둔 나윤선은 다시 집으로 돌아와 안도감과 정서적 공감을 확인하고 더 넓은 세상을 여행할
계획이다. 내년 3월엔 다시 프랑스 샤틀레 극장의 무대에
선다. 세계보다도 더 넓은 음악적 여정을 향해 나아간다. 여전히
그리고 앞으로도.
투명하게 부서지는 햇살 아래 반짝이는 에메랄드 빛의 바다, 바스러진 산호초 가루들의 결이 고운 해변 그리고 김아중. 멕시코의 풍요로운 휴양지 칸쿤에서 만난 김아중은 폭풍처럼 몰아치던 어제에서 벗어나 다시 수면 위에서 고요하게 빛나는 내일의 지평선을 바라보며 서 있었다.
누군가 그랬다. 칸쿤에 가면 낙원을 보게 될 거라고. 하지만 낙원까지의 여정은 순탄치 않았다. 인천에서 날아올라 일본 나리타, 미국 댈러스에서 각각 세 번의 아침을 나눠 보낸 뒤에야 비로소 멕시코 칸쿤의 오후로 들어섰다. 24시간 남짓한 여정을 지나 도착한 칸쿤에선 해가 저물어가고 있었다. 절기상 겨울이라 해가 일찍 진다는 현지 가이드의 설명이 무색할 정도로 한낮의 열기를 머금은 초저녁 공기가 더운 바람을 훅 불어대는 칸쿤은 곧 어두운 낯빛을 드러냈다. 인천을 벗어난 이후로 처음 맞이하는 밤이었다. 어둠을 가로질러 30분가량 달려 리조트에 다다라서야 두 번의 경유와 장거리 비행으로 켜켜이 쌓인 피로를 씻어 내렸다. 리조트 주변으로 내려앉은 어둠 너머로 넌지시 바다가 보였다. 파도 소리가 들렸다. 그 막연했던 인상을 뒤로하고 눈을 감았다. 그리고 세상이 밝아지고 나서야 비로소 제대로 눈을 떴다. 낙원이 거기 있었다. 아름답다거나 찬란하다는 말보다 거창한 수사가 무엇일까 잠시 생각하다 이내 접었다. 그 어떤 언어를 떠올릴 시간 대신 이곳을 두 눈에 담을 시간이 더 절실했으니까. 그리고 그곳에 김아중이 있었다. 눈부신 절경 속에 자리한 그녀는 칸쿤의 태양과 함께 뜨겁게 빛나고 있었다. 먹구름 하나 보이지 않는 하늘처럼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칸쿤에서.
화보 촬영을 즐긴다는 느낌이 들더군요.
사실 화보 촬영이 재미있어요. 순간순간 몰입하고 표현하다 보면 어떤 자의식도 생기지 않아요. 내 얼굴은 이 부분이 콤플렉스인데, 이런 생각도 들지 않아요. 순간순간 컷이 잘 나오지 않아도 개의치 않아요. 어차피 최종적으로 베스트 컷이 선택될 때니까.
어릴 때부터 배우를 꿈꿨다던데, 특별한 계기라도?
어릴 때 설날이나 추석에 TV에서 특집 단막극을 방영하는데 주로 고두심 선생님이나 윤여정 선생님 같은 분들이 시련을 이겨내는 며느리 역할을 많이 했죠. 그런 단막극을 볼 때마다 엄마가 그렇게 울었어요. 그리고 드라마가 끝나면 오히려 얼굴이 한층 밝아져서 명절 음식을 장만하시는데, 그렇게 엄마를 울리고 웃기는 단막극이 엄마에게 어떤 활력소였을까, 생각했죠. 나도 저 TV 안에 들어가고 싶다. 나도 사람들을 웃겼다가 울릴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 꿈이 구체화된 건 언제부터였죠?
당시 구체적인 계획을 세울 순 없었지만 나름대로 명확했던 거 같아요. 저렇게 TV에서 나오는 사람이 될 거고, 저렇게 사람을 웃기고, 울리고 싶다고. 그러다가 중고등학교 때 노래하고 춤추는 걸 즐기다가, 가수 제의를 받고 실제로 준비하는 중에도 궁극적으론 연기가 하고 싶었어요.
<미녀가 괴로워>가 개봉된 것도 벌써 6년 전이네요.
작품이 흥행에 성공했고, 여전히 제 대표적으로 꼽히지만 개인적으로도 특별한 작품이었어요. 특수분장 때문에 육체적으로 힘들었고 신인으로서 첫 단독 주연을 맡아야 한다는 부담도 컸지만 현장에 나가면 사랑받고 있다고 느꼈고, 정말 재미있었으니까요. 마치 놀이터로 나가면서 오늘 하루도 신나게 놀자는 느낌? 그래서 그 현장을 잊지 못하나 봐요.
<미녀는 괴로워>로 큰 관심을 얻었습니다. 배우로서 분명 좋은 일이겠지만 개인적으론 당황스럽기도 했을 것 같아요.
그땐 사실 기쁨을 누릴 만한 여유가 없었고 오히려 갑작스러운 관심이 무서웠죠. 물론 <미녀는 괴로워>가 잘되리란 짐작은 있었어요. 기본적으로 여자들이 좋아하는 이야기였고, 볼거리나 스토리가 재미있다는 확신이 있었으니까 분명히 관객들에게 외면받진 않을 거라 생각했어요. 하지만 로맨틱 코미디의 흥행 기록을 얻고, 여우주연상까지 받는 건 상상도 못했죠. 신인으로서 여우주연상을 받는다는 게 오히려 무서웠고요.
솔직히 기대 이상으로 굉장히 잘해냈다는 인상이었습니다.
기대보다 잘했다는 말이 뒤집어서 얘기하면 사실 기대하지 않았다는 거잖아요(웃음). 그건 제가 배우로서 신뢰를 쌓지 못했다는 의미고, 여전히 미흡하고 어리단 말이겠죠. 그렇다고 미의 대명사나 ‘핫’한 아이콘으로 분류될 만한 스타라고 하기에도 애매하고, 그 사이에 떠 있는 느낌이 들 때가 많았어요. 어쨌든 칭찬받으면 좋아요. 물론 이제 목표는 김아중이 나온 드라마나 영화는 기대된다는 말을 듣는 거죠. 그래야만 좋은 작품을 많이 할 수도 있을 테고.
그 6년 전과 지금은 무언가 달라진 것이 있다고 느끼세요?
사실 막 시작했을 땐 두려운 게 별로 없었죠. 1등이 되겠다는 생각보다 지금 이 일을 하는데 만족하면서 자신감도 충만했으니까. 그런데 점점 더 많은 관심을 받을수록 오해나 편견에 휩싸이고, 하고 싶은 작품과 인연을 맺지 못하게 되는 과정들이 생기면서 지금의 저를 불완전하게 만들었어요. 그런 경험들이 저를 견고하고 단단하게 만들었다고 하기엔 아직 불완전한 사람인 거 같아요. 여전히 좋은 작품에 대한 갈증도 심하고, 내가 왜 이것밖에 못할까라는 자책을 신인 시절보다도 더 많이 하게 되니까요.
최근 영화 <26년>의 개봉 소식이 들리더군요. 예정대로 2008년에 <29년>이란 제목으로 제작됐다면 <미녀는 괴로워> 이후의 차기작이 될 작품이었죠.
전체 리딩도 끝냈고, MT까지 다녀온 상태였는데, 크랭크인을 5일 앞두고 무산됐어요. 정말 허무했죠. 승범 오빠는 저보다 더 오래 기다렸기에 더 안타까워했어요. 이해영 감독님과 배우끼리 모여서 노 개런티로 연극이나 저예산영화로라도 제작할 수 있지 않을까 얘기한 적도 있어요. 그런데 그렇게 할 수 있는 스케일의 작품이 아니더라고요.
선택했던 작품이 촬영 직전에 물거품이 되면 당장 차선책이 없으니 한동안 활동에 공백이 생기잖아요.
사실 <29년> 이전에 한 10개월 정도 기다렸던 작품도 있었어요. 그렇게 두 작품이 무산되니까 2년 정도 공백이 쉽게 생기더라고요. 사실 <29년>에 대한 애착이 굉장히 강했어요. <29년>을 선택한 건 역사적 배경이나 웹툰의 유명세 때문이 아니라 오로지 그 캐릭터가 너무 좋았기 때문이에요. 가끔 시나리오를 보고 나면 가슴이 먹먹해지면서 계속 그 인물이 생각나서 보고 싶고, 정말 살아 있는 사람 같다고 느껴지는 이상한 순간들이 있어요. 미진이가 그런 아이였죠.
<29년> 이전에 기다렸던 또 다른 작품이 있었다는 사실은 처음 알았어요.
감독님들이 작품을 준비하면서 간단한 트리트먼트만 말씀해 주시고 다른 작품 하지 말고 기다려 달라고 부탁하는 경우가 있잖아요. 순진했죠. 진짜 기다린 거에요. 보통 다른 작품을 하면서 양해를 구하고 일정을 조율하면서 기다리잖아요. 저는 그게 의리 같은 거라고 받아들여서 진짜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기다렸어요. 결국 그게 제 영화가 되질 않더라고요. 맨날 광고만 찍고, 까다롭게 작품을 고른다는 이야기까지 듣게 되니까 서운했죠. 두 작품이 연달아 무산되니까 개인적으로도 힘들었고요.
<26년>의 제작사는 <29년>을 제작했던 청어람이었는데, 캐스팅 제의를 받지 않았나요?
이해영 감독님이나 류승범 선배나 저나 다 프러포즈 받았어요. 그렇지만 이번에도 완벽하게 제작할 수 있는 여건인지 확실하지 않았고 우리 세 명의 스케줄을 다시 맞추는 것도 쉽지 않았죠. 무엇보다도 저희 셋 중 누구 하나라도 빠지면 하지 말자고 했어요. 우리가 생각했던 <29년>이 아닐 거니까. 그렇다면 완전히 다른 영화로 다른 인물들끼리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어쨌든 미진이가 되지 못한 아쉬움은 크지만 그 영화가 이 세상에 나올 수 있다는 사실은 기뻐요. 잘됐으면 좋겠어요.
<페스티발> 엔딩에서 카메오로 출연한 것도 이해영 감독님과의 인연 덕분이었나요?
시나리오 보고 싶다고 하니까 모니터링하라고 주셨어요. 그런데 읽어보니까 하고 싶어졌죠. “저 이거 하고 싶어요(웃음)!” 그런데 엔딩에만 나올 줄은 몰랐어요. 중간중간 뭔가 더 있을 줄 알았죠(웃음).
올해 부산국제영화제 레드 카펫 현장의 베스트 드레서로 꼽히기도 했는데 정말 오랜만에 공식석상에서 본다는 기분이었어요.
얼굴을 자주 비추는 편이 아니니까 늘 오랜만이더라고요. 그런데 이번 부산국제영화제 레드 카펫은 처음이었죠.
으레 매년 참가했을 거라 생각했어요.
전시되는 느낌이 부담스러워서 레드 카펫을 즐기지 못하는 편이에요. 물론 부산국제영화제의 다른 행사엔 참가한 적 있었죠. 스타 로드처럼 팬들과 소통하는 느낌의 행사에선 떨리지 않거든요.
오랜만에 출연한 영화 <나의 PS 파트너>가 개봉을 앞두고 있다는 점도 레드 카펫에 선 계기가 아니었을까요?
사실 <나의 PS 파트너>가 부산국제영화제 프리 마켓에 나왔던 작품이었어요. 아무래도 연말 개봉 전에 어떤 영화를 찍었는지 알리고 싶기도 했죠.
<나의 PS 파트너>는 <미녀는 괴로워> 이후로 6년 만의 영화에요.
사실 개인적인 사유로 몇 번 거절했어요. 지난해 제가 세금을 과소납부했던 문제가 있었잖아요. 세금 같은 부분은 잘 몰라서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어쨌든 제가 잘못한 거니까요. 게다가 저에겐 유난히 좋지 않은 소문도 많은 거 같아요. 그런 상황들이 한꺼번에 스트레스로 밀려와서 너무 힘들었고, 작품을 할 만한 상태가 아니었죠. 아무것도 할 수 없었어요. 그래서 시나리오는 재미있었지만 여건이 안 되는데 마냥 붙잡고 있으면 안될 것 같아서 두세 번 정도 거절했죠. 그런데 제작사 쪽에서 우린 그런 거 개의치 않는다고 많이 기다려 주셨죠.
왜 자신을 캐스팅하는지 물어본 적 있나요?
솔직히 꼭 김아중이 아니면 할 수 없다고 생각한 건 아니었을 걸요(웃음). 사실 <29년>의 PD였던 분께서 투자배급사 담당 PD로 자리를 옮기면서 먼저 연락을 주셨어요. 요즘 왜 영화 안 하냐고, 자기 때문에 그런 거 같아서 마음이 무겁다고. 그렇게 해서 제의를 받았죠.
6년 만의 영화가 또 로맨틱 코미디네요.
한때는 <미녀는 괴로워>로 큰 사랑을 받았는데 비슷한 영화를 하면 사람들이 저를 로맨틱 코미디 배우로만 보지 않을까 걱정돼서 다른 장르를 해야 된다는 고민이 있었어요. 그 이상의 로맨틱 코미디를 보여줄 수도 없을 거 같았고요. 아무래도 오랜만에 다시 영화로 돌아오면서 부담을 덜고 익숙하게 다가가고 싶었어요. 가볍게 한 작품 하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죠. <싸인>을 하면서 좀 힘들었거든요. 회마다 인물이 몇 명씩 죽어 나가고, 맨날 범인과 심문하고, 그런 무거운 상황을 연기하는데 너무 치였어요. 제 나이 또래의 여자들을 표현할 수 있는 밝은 작품을 하고 싶었는데 마침 <나의 PS 파트너>를 만났죠.
일반적인 또래 여자들에게 공감대를 느끼나요?
제 주변 친구들이 결혼에 대한 고민을 많이 털어놔요. 20대 후반부터 30대 초반 여자들의 연애는 20대 초중반의 연애랑 또 다르거든요. 30대에 접어들면서 결혼과 타협할지, 직장에서 투사처럼 굳세게 살아남을지 고민하는데 굉장히 결연해요(웃음). 지금 제 또래 여자들의 고민이 자연스럽게 녹아 있는 인물이니 꼭 하고 싶었어요.
사실 그동안의 역할들이 평범하진 않았죠.
성형수술로 페이스오프하고, 뚱뚱해졌다가 날씬해지고, 아니면 시체를 부검하고, 드라마에서도 톱 스타로 나왔으니까요. 김아중은 생활 연기가 안 될 거 같아, 항상 어떤 특징이나 개성이 뚜렷한 캐릭터만 했으니까 밋밋한 캐릭터 연기는 어려울 것 같아. 이런 얘기도 종종 들었어요. 제 스스로도 이런 연기를 할 수 있는지, 어떤 캐릭터의 설정에 기대서 연기하는 건지, 캐릭터의 기능적인 설정을 다 떼낸 평범한 여자를 소화해 낼 수 있을지 의문이 있었어요. 나름대로 진실되게 연기한다고 했는데 사람들이 어떻게 볼지 궁금하고 걱정돼요.
유명세를 얻은 뒤에 무언가 잃어버렸다고 생각할 때가 있나요?
여자들은 서른 살 즈음에 오춘기가 온다고 하잖아요. 사실 스스로 여자 중에선 꽤 대담하고 열린 생각을 가진 성숙된 인간이라고 과대평가했었어요. 지난 몇 년 동안 여러 가지 일을 겪고, 사람들의 이면을 보면서 개인적으로 너무 힘들었어요. 스스로도 ‘서른 맞이 대잔치’ 한다고, 삼재를 한꺼번에 맞이하는구나 싶었죠(웃음). 서른 살이 되고 나서야 많이 순진했고, 몰라도 너무 모른다는 걸 알았어요. 낯선 사람들조차 저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어떤 편견까지 안고 저를 대하는데 저는 그들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채 원래 모습대로 솔직하게 대할 수밖에 없잖아요. 결국 남자든 여자든, 이해관계가 있든 없든, 제가 아무리 솔직해도 누군가의 편견 안에서 극복할 수 없는 괴리가 생기니까 힘들더라고요. 결국 사람들이 생각하는 이미지에 타협할 수도 없으니까 완벽하게 분리돼서 사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인 거 같아요. 그러니까 계속 외로워지는 거죠.
외롭다고 느끼나요?
한 스물여덟, 스물아홉까진 외롭다는 거 잘 몰랐어요. 그렇다고 어릴 때처럼 하루하루가 마냥 즐겁다거나 내년은 또 다른 삶이 펼쳐질 것 같다는 기대감이 부풀어서 살진 않잖아요. 그렇지 않아요(웃음)? 적당히 현실과 타협하고, 스스로를 점점 냉정하게 평가하면서 포기할 건 포기하고, 그렇게 조금씩 외로워지는 거 같아요.
예기치 않게 작품 활동이 뜸해졌던 탓일지도 모르겠어요.
정말 쉬고 싶지 않아요. 사실 데뷔할 때 “어떤 영화 하고 싶어요?” 물으면, “페미니즘 영화하고 싶어요” 막 이랬어요(웃음). 어릴 떈 <바그다드 카페> 같은 여성주의 영화를 하고 싶었어요. 물론 아직도 그렇긴 해요. 많은 여배우들이 꾸는 꿈이기도 하고. 얼마 전 <철의 여인>을 봤는데 매 순간마다 소름이 돋는 거에요. 정말 말도 안 되는 장면에서 울었어요. 메릴 스트립이 혼자 남편의 허상에 대고 중얼중얼 얘기하면서 TV 리모컨으로 채널을 돌리는 손을 비추는 인서트 컷이 나오는데 그걸 보고 운 거에요. 그녀가 너무 외로워 보였나 봐요.
평소 시나리오를 찾아 읽을 정도로 많이 본다던데.
시나리오와 실제 영화가 구현됐을 때의 차이를 보는 게 좋아요. 일단 시나리오를 읽으면서 나름대로 영화의 이미지를 상상하고 나중에 영화가 어떻게 나왔는지 비교하죠. 시나리오를 보면 항상 감상평을 남겨요. A4 용지 절반에서 한 장 사이 정도로 쓴 감상을 컴퓨터에 저장했다가 나중에 영화를 보고 나면 그렇게 저장해 둔 글 아래에 이어서 느낌을 남겨요. 뭐가 비슷했는지, 뭐가 달랐는지.
언제부터 생긴 습관인가요?
저한테 직접 들어오는 시나리오가 있잖아요. 최소한 거절하더라도 왜 거절했는지 정확히 알고 그것이 좋은 판단이었는지 반성해 보고 싶었어요. 그러려면 꼼꼼히 기억해야 한다고 생각했죠. 그래야 작품을 보는 안목도 높아질 거 같았어요.
스스로에게 엄격한 편인가요?
관대하진 않아요. 특히 일에 있어서 만큼은. 하지만 일을 제외하면 굉장히 게을러요. 개인적인 삶을 위해서 노력하는 건 별로 없어요. 여행을 좋아하긴 하지만.
여행은 자주 다니세요?
사실 여행만을 위해서 떠나는 경우는 많지 않아요. 일단 여름 휴가 시즌은 사람들이 많으니까 일단 피하고, 가을이나 연말 즈음 한겨울에나 한두 번씩?
최근 뉴욕에서 혼자 생활했잖아요. 얼마나 있었죠?
한두 달 정도? 모든 것이 처음이었죠. 혼자 살아본 것도, 혼자 여행을 해본 것도, 외국에서 공부해 본 것도. 꼭 한번 해 보고 싶었는데 해보니까 이젠 혼자 여행도 할 수 있을 거 같고, 어디 가서도 지낼 수 있을 거 같아요.
뉴욕에 간 특별한 이유라도 있나요?
사실 술도 잘 못 마시고, 클럽을 다니는 편도 아니고, 연애를 하는 것도 아니라서 스트레스 풀 데가 없어요. 또래 친구들은 각자 연애도 하고 돈 벌기도 바쁘니까 만나서 수다 떠는 것도 한계가 있죠. 그래서 몸에서 곰팡이 냄새가 날 정도로 집에만 있었어요. 그게 너무 싫어서 어딘가로 나가고 싶었죠.
의외네요.
사실 일반적인 제 이미지와 실제의 저는 많이 다른 거 같아요. 그래서 들어오는 캐릭터들도 부담스러울 때가 많아요. 사실 제가 얼굴을 봐도 조금 잘 놀게 생겼어요. 술도 잘 마시고, 밤문화도 좀 즐길 거 같고, 패션이나 쇼핑도 좋아할 거 같고, 화장품도 잘 알 거 같고, 그렇지 않아요(웃음)? 정반대죠. 그런 면에선 성실하지 못해요.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겠네요.
평범하게 책이나 영화 보면서 시간을 보내요. 먹는 걸 좋아해서 맛있는 걸 찾아 다니기도 하고, 와인도 좋아하고.
메뉴를 고를 때, 각자 다른 메뉴를 주문하자고 할 때 미식가의 기질이 느껴지더군요.
눈이 반짝반짝 했죠(웃음)? 좋은 음식 먹는 게 좋은 옷 사는 것보다 아깝지 않아요. 좋은 와인을 한 병 먹는 게 좋은 가방 하나 사는 것보다 좋아요. 그래서 외국나가면 비싼 와인도 한 병씩 사 와요. 최근에도 <나의 PS 파트너> 팀들이랑 개봉 전에 모이면 마시려고 한 병 샀어요.
여행이 좋은 이유는 뭔가요?
다른 문화를 체험하길 좋아해요. 외국에 어떤 문화가 있는지 보고, 알고 싶어요. 또래 친구들은 여행을 가면 쇼핑몰이나 클럽 같은 핫 플레이스에 가길 원하는데 저는 언더그라운드에서 가장 ‘핫’한 공연이나 유적지가 궁금해요. 보고 싶은 게 달라요. 항상 현지인에게 질문해요. ‘이 나라 사람들의 평균 수입이 얼마예요?’ 같은 거. 사람들 수입 수준이 얼마인지, 뭐가 발달했는지, 뭐가 유명한지, 그런 게 궁금해요.
원래 호기심이 많은가 봐요.
알면 알수록 알고 싶은 게 많아지는 편이에요. 사실 예전엔 이런 줄 몰랐어요. 그 나라의 전반적인 문화나 문화나 사람들의 경제적인 수준, 종교 같은, 진짜 관심사가 궁금해요.
결국 사람에 대한 관심이네요.
이런 관심을 갖고 멕시코영화를 보는 것과 어느 날 갑자기 멕시코영화를 보는 느낌은 완전히 다르겠죠. 실제로 경험하지 못해서 생긴 선입견들이 있을 거니까요. 이태원에서 데이트를 하면서 브리토를 먹었던 사람과 멕시코의 블루칼라 노동자들이 길거리에서 브리토를 먹는 걸 본 사람이 멕시코영화에서 브리토를먹는 남자의 모습을 봤을 때의 느낌은 완전히 다르겠죠. 결국 사람에 대한 관심일지도 모르겠어요.
지금 본인의 관심사란 무엇인가요?
아직 20대 후반부터 30대 초반의 캐릭터를 연기할 수 있는 나이인 만큼 아직 다양한 캐릭터를 만날 가능성은 적겠죠. 게다가 시나리오는 저뿐 아니라 많은 여배우들에게도 가고, 다른 배우가 할 수 있잖아요. 그래서 같이 작업하는 크리에이터들이 이건 김아중이랑 했으면 좋겠다고 떠올릴 수 있는 걸 표현하고 싶어요. 제가 가진 걸 누군가와 다르게 확실히 보여주고 싶어요.
우디 앨런과 함께 필름 뉴요커로 자리해온 마틴 스콜세지는 전세계 영화의 수호자다. 일흔에 다다른 나이에도 녹슬지 않는 열의와 애정으로 영화를 촬영하고 발굴한다. 언젠가 영화가 될 그 삶에 대하여.
“내 모든 삶은 영화와 종교에 머물러 있다. 어쩌겠나. 그뿐인걸.” 마틴 스콜세지의 유년시절은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현실이었다. 뉴욕 맨하튼 동부의 리틀 이탈리아에서 태어난 스콜세지는 가톨릭계 이탈리아 이민자들이 밀집한 그곳에서 언제나 죽음과 맞닿은 폭력을 목격하거나 내몰리며 자라났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란 스콜세지에게 일종의 동아줄이었다. 영화란 그 ‘비열한 거리’에서 벗어날 수 있는 꿈이었고, 그는 그 꿈을 향해 적극적으로 투신했다.
할리우드의 6~70년대는 영화광들의 시대를 맞이한다. 스티븐 스필버그, 조지 루카스와 같은 흥행사들을 비롯해서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브라이언 드 팔마 등 작가주의적인 성향의 감독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현대영화의 영역을 넓혀나갔다. 무엇보다도 이들은 영화학과 출신 세대들, 즉 아카데믹한 씨네필들이자 테크니션이었다. 뉴욕대학에서 영화를 전공한 스콜세지 역시 그 중 하나였다. 단편을 감독하며 연출자로서의 경력에 시동을 걸던 그는 이탈리아 이민자 가문 출신의 고백적인 작품으로 가속페달을 밟았다.
스콜세지의 데뷔작 <누가 내 문을 두드리는가?>(1968)는 여성을 이분법적인 시선으로 대하는 카톨릭계 이탈리아 이민자 청년의 잠재적 폭력과 이중적인 심리를 다룬 문제적 수작이다. 스콜세지에게는 시대적인 공기를 파악하고 현상의 근원을 살피는 능력이 있었다. 1930년대 미국에서 강압적인 불평등 처우로 가난에 내몰린 노동자들이 무법자가 되어 벌이는 사건을 그린 <공황시대>(1972)를 비롯해서 <비열한 거리>(1973), <택시 드라이버>(1976), <분노의 주먹>(1980) <좋은 친구들>(1990) <카지노>(1995) 그리고 <갱스 오브 뉴욕>(2002)까지, 뉴욕의 이민자 출신 갱단들과 남루한 뒷골목 소시민들을 비춘 스콜세지의 카메라는 가난과 차별이라는 담보로 상환한 비극적 폭력성을 담아냈다. 무엇보다도 스콜세지는 그 척박한 환경에서 생존해나가기 위해서 폭력 그 자체를 유전자에 새긴 듯 살아가는 비열한 갱단들의 이미지를 강렬하고 사실적으로 포착한다. 그 특별한 방식의 삶들을 각자의 방식으로 생존해나가는 이 세계의 일부로서 편입시킨다.
스콜세지는 이주민들로 채워진 뉴욕에 깃든 폭력의 역사를 탐구해낸 작가이기도 하지만 그 이전에 뉴욕이라는 도시의 이면들을 발췌해온 진정한 필름 뉴요커다. 1920년대 뉴욕의 사교계를 배경으로 그린 은밀한 삼각관계에 관한 <순수의 시대>(1993)는 시대극이란 점에서 이례적이나 유럽과 같은 뉴욕 사교계 문화의 풍경을 들춘다는 점에서 그답다. 무엇보다도 뉴욕 상류층의 향락을 살핀 이 작품은 미국의 근간을 이룬 그들 역시 대서양을 건너온 영국의 이주민이란 사실 환기시킨다는 점에서 주요하다. 또한 스콜세지의 이례적인 작품 <특근>(1985)은 뉴욕이라는 도시의 불분명한 정체성을 보다 확고하게 밀어붙인다. 우연히 만난 여인에게 끌려서 한밤중에 집을 나선 한 남자가 처음 마주한 뉴욕의 이방인 같은 여성들과 거듭 만나며 미궁과 같은 하룻밤을 보낸다는 내용의 이 작품은 좀처럼 제 정신으로 살 수 없을 만큼 혼란한 도시의 현실 그 자체를 패닉에 가까운 과장된 스토리텔링으로 녹여낸다.
<쿤둔>(1997)과 <비상근무>(1999)로 쇠퇴의 기미를 지적 받던 스콜세지는 다시 한번 폭력의 역사로 들어선다. 혹독한 뉴욕 이민자들의 역사를 그린 <갱스 오브 뉴욕>은 괴물의 탄생을 그린 영화다. 폭력의 도가니 속에서 안착한 갱단들의 비열한 정서를 그린 스콜세지의 초기작과 달리 폭력 속에서 생존을 터득하고자 본능적으로 체득해 나가는 폭력성, 즉 폭력의 계승을 그린다. 미국의 미스터리한 억만장자 하워드 휴즈의 전기물 <애비에이터>(2004)는 뉴욕의 이주민들이 꿈꾸던 환상, 아메리칸 드림에 근접한 어느 한 남자에 관한 이야기다. 진취적인 도전을 거듭하며 모든 것을 집어삼키듯 뛰어난 수완을 거둔 남자는 끝내 스스로의 욕망으로 자신마저 불사른다.
스콜세지에게 비로소 생애 첫 아카데미 트로피를 안긴 <디파티드>(2006)는 홍콩의 <무간도>(2002)를 보스턴의 풍경으로 변환한 그의 탁월한 접근 방식으로 점철된 작품이다. 비정한 정서가 짙게 드리운 <무간도>와 달리 비열한 거리의 물리적 폭력이 체감되는 <디파티드>는 명분을 중시하던 <무간도>의 인물들과 달리 사적인 지배욕으로 팽배한 사내들의 생존 전장으로 변환된다. 무간지옥의 윤회 대신 비열한 거리 위에서의 구원을 행하는 사내들의 정조는 태평양을 건넌 리메이크작의 진수를 드러낸다. 데니스 루헤인의 소설을 영화화한 <셔터 아일랜드>(2010)는 <케이프 피어>(1991) 이후 처음 연출한 장르물이다. <셔터 아일랜드>는 마치 생존을 위해서 모든 것을 집어삼키던 스콜세지의 괴물들이 끝내 분열증과 망상증으로 내몰려 자신의 존재적 가치를 되묻는 과정에 이른 것처럼 보인다. 결국 죽음을 선택하는 방식으로서 스스로를 구원하는 인물의 태도는 폭력을 관찰해온 스콜세지가 보다 적극적인 답변을 내세운다는 점에서 보다 새롭다.
스콜세지는 끊임없이 자신의 녹을 닦아온 거장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의 첫 가족영화이자 3D로 촬영된 작품인 <휴고>(2011)는 분명 의외의 선택처럼 보인다. 하지만 <휴고>는 가족을 위한 영화도, 3D영화로 만들어지기 위한 영화도 아니다. 뤼미에르가 촬영한 달리는 기차 이후로 움직이는 그림으로서 관람의 대상이 된 영화에 스토리텔링이라는 영혼을 불어넣은 영화의 진정한 창시자 조르주 멜리에스에 대한 내용이 담긴 원작은 스콜세지의 마음을 당길만한 것이었다. 특히 뤼미에르의 달리는 기차 영상을 비롯해서 다양한 무성영화의 레퍼런스들을 3D로 체험한다는 건 진귀한 체험에 가깝다. <휴고>는 움직이는 그림이 영화라는 예술이 되기까지, 무성영화가 오늘날의 디지털 3D영화에 이르기까지 그 모든 역사를 스크린에 집약시킨다. 영화 그 자체를 오마주한다.
스콜세지는 말한다. “영화는 역사다. 영화의 모든 흔적이 사라진다면, 우리의 문화와 우리를 둘러싼 세계, 그리고 각자 서로와 자기 자신을 향한 연결고리를 잃게 된다.” 70세에 이른 나이에도 왕성한 창작력을 발휘하는 스콜세지는 전세계 필름의 발굴과 복원 사업에 힘쓰며 끊어진 필름의 역사를 이어나가고자 안간힘을 쓰고 있다. 영화에 대한 깊은 애정 그 자체를 스크린에 투영하며 대중을 영화라는 마술로 인도하고자 한다. 결코 녹슬지 않는 감각과 애정으로, 영화의, 영화에 대한, 영화를 위한 삶을 살아간다. 영화와 함께 하는 그 삶이 언젠가 영화가 될 것이다.
생각해보자. 만약 당신이 스마트폰으로 ‘스머프 빌리지’를 다운로드 받은 뒤, 이를 운영하는 플레이어라고. 그런 어느 날, 당신 앞에 스머프 몇 명(?)이 나타나 갑작스럽게 당신의 삶에 침입한다면? (오래 전 TV로 보았던 그 스머프들 말고) <개구쟁이 스머프>의 발상은 그렇다. 뉴욕의 타임스퀘어를 활보하는 스머프들을 생각해보자. 쿨한가. 예고편만 보더라도 알겠지만, 영화 <개구쟁이 스머프> 속의 스머프들은 과거에 그들을 보고 자랐던 혹은 다 자란 뒤에 봤던 간에, 그 셀 애니메이션 속에서 살아 움직이던 그들이 아니다. 3D CG 애니메이션으로 변환됐을 뿐이라고 말하기엔 너무나도 달라져 버린 양감이 낯설다. 좋다. 변한 건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그런 변화의 필요성이 좀처럼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영화의 단점들을 나열하는 건 어쩌면 큰 의미가 없을지도 모르겠다. 스토리의 조악함을 설명하기 전에 언급돼야 할 것은 이 영화의 탄생배경에 있을 것이다. 실제와 분리된 자신들의 세계에서 살아가던 스머프들을 굳이 뉴욕으로 끌어낸 건 할리우드의 제작자들이 스머프라는 캐릭터의 상품성을 높게 산 덕분일 것이다. 스머프를 뉴욕으로 끌어내자는 아이디어의 유무보다도 중요했던 건 결국 그 계획의 실행을 위한 제작자들의 의지였을 것이다. 그리고 결국 그 아이디어를 완수하기 위한 시나리오가 계발되고 그 결과가 지금의 결과로 이어졌다. 스머프 탄생 53주년 기념은 이를 위한 마케팅 수단으로 활용할만한 사항이었을 것이다.
앞서 나열한 것처럼, 영화 <개구쟁이 스머프>는 현재 이 작품의 상태로 보건대, 이런 방식의 제작 과정을 짐작하지 아니할 수 없는 작품이다. 단지 이 캐릭터들의 시장성만을 염두에 둔 스토리 개발 과정이 얼마나 대단한 난관이었을지, 시나리오 작가들의 노고가 눈에 선하다. 기본적으로 단순한 스토리지만 순진하다기 보단 유치하고, 선하다기 보단 둔감해 보인다. 보다 중요한 건 이 작품이 <개구쟁이 스머프>란 것이다. 스머프들이 등장한다. 그들을 보고 자란 관객들에게 이 영화 속의 스머프들이란 낯설고 어색한 존재에 가까울 것이다. 매력이 부재하다. 내가 알던 그 파란 피부와도 다를 뿐더라, 내가 알던 그 이름의 캐릭터 같지도 않다. 벨벳 재질의 스머프 탈을 쓰고 그들의 코스프레를 하고 있는 정체불명의 생물을 보는 것만 같다. 심지어 그들이 뉴욕의, 사실은 현대문명의 이기에 심취해서 쇼를 벌일 때, 안쓰럽다 못해서 혐오스럽다는 인상마저 든다.
적어도 양감을 얻은 CG 스머프들의 오리지널인 셀 애니메이션을 체험한 바 없는 요즘의 어린 관객들에게 이런 단점은 딱히 중요한 문제가 아닐 것이다. 그리고 그들 중 대부분은 이 영화가 어떤 수준의 완성도를 지니고 있는가조차 중요하지 않을 것이다. 고로 이 리뷰도 그들을 대상으로 쓰여지지 않았다. 영화 <개구쟁이 스머프> 속의 스머프는 이미 그들을 알고 있던 당신의 기억 속의 그 스머프들이 아니다. 차라리 실사로 연기한 가가멜과 CG로 만들어낸 아즈라이가 되레 그 만화와 실사의 엄격한 간극 아래서 아이러니하게 보다 현실적으로 보인다. 결국 이 스머프들이 대체 왜 뉴욕을 활보하고 있는 것인지 당최 모르겠다고생이 많다. 쿨하지 못해서 미안하지만, 아무래도 내가 알던 그들이 아닌 것을, 그렇다고 매력적이지도 않은 것을, 어쩌겠나. 스크린 너머 스머프들이 정말 ‘스머프’하지 않은 것을. 코스프레 하느라 고생이 많아 보이는 것을.
발레는 가혹한 고통을 딛고 서야 완성되는 예술이다. 온 몸을 지탱하는 발가락 끝에서 전해져 오는 첨예한 고통을 지우고 자신이 두 발을 디디고 선 무대 위에서 자신이 연기하는 캐릭터의 감정에 몰입할 때, 비로소 한 명의 발레리나가 태어난다. 하지만 뉴욕의 발레리나들에게 이는 단지 입문을 위한 과정에 불과하다. 우수한 발레 유전자를 지닌 인재들이 모여드는 뉴욕의 발레 계에서 무대에 설 자격을 지닌 단 한 사람이 된다는 건 어쩌면 가혹한 일이다. <블랙 스완>(2010)은 바로 그 우아한 세계 뒤편에 자리한 치열한 경쟁과 은밀한 암투를 주목한다.
뉴욕시립발레단의 발레리나 니나(나탈리 포트만)는 새 시즌의 공연작인 <백조의 호수>의 프리마돈나를 갈망한다. 하지만 <백조의 호수>가 되기 위해서는 모두가 아는 그 순수하고 고결한 백조, 오데트를 연기하는 것만으로써 이 무대의 주인이 될 수는 없다. 순수한 백조와 함께 요염한 흑조, 오딜을 연기해내는 자만이 그 무대를 차지할 수 있다. 훌륭한 기량을 갖춘 니나는 결국 발레단의 공연 감독인 토마스(뱅상 카셀)로부터 주인공에 발탁되지만 자신이 지니지 못한 요염함을 갖춘 발레리나 릴리(밀라 쿠니스)를 경계하게 되고, 차츰 요염한 흑조 연기에 대한 강박과 두려움에 빠져 든다.
앙상한 영광 밖에 남지 않은 어느 퇴물 프로레슬러의 현재를 조명한 <더 레슬러>로 자신의 경력 안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한 대런 아로노프스키는 또 한번 화려한 발레 무대 뒤편의 혹독한 현실을 정신분열적인 방식으로 묘사해낸다. <블랙 스완>은 예민한 심성을 지닌 발레리나가 자신의 결점에 대한 강박으로 끝내 자기 파멸적인 성장을 이뤄버리는 과정을 면밀하게 연출해낸 작품이다. <더 레슬러>와 마찬가지로 인물의 현실을 둘러싼 갖가지 환경들을 세심하게 스크린에 수집해 넣으며 그 속에 자리한 인물의 심리를 날카롭게 포착해내는 <블랙 스완>에서도 아로노프스키의 장기는 유효하다.
<더 레슬러>가 남루한 영광을 덕지덕지 제 몸에 기워 넣은 채 누추한 현실을 버텨나가는 늙은 레슬러의 뒷모습을 애정 어린 연민으로 응시하는 전기라면 <블랙 스완>은 주변부의 기대와 스스로의 결핍 속에서 발전을 갈망하는 젊은 발레리나가 결국 파멸적인 성장을 이뤄나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목격에 가깝다. 마치 뭉뚝한 연필심을 뾰족하게 깎아나가는 것처럼 극도로 첨예해지는 인물의 심리를 위태롭게 포착해내는 <블랙 스완>을 통해 관객은 그 심리상태 속에서 완성되는 발레리나의 연기적 극한을 경이롭게 목격하게 된다. 니나의 심리적 강박과 불안의 다양한 양태들은 악몽에 가까운 혼란으로 구체화되며 점차 실재와 허구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수순으로 돌입한다. 아로노프스키는 인물 당사자의 다양한 경험적 착시를 관객이 공유하도록 이양시키며 이를 통해 인물의 심리적 강박을 관객에게 고스란히 전이시킨다. 이런 방식은 결국 니나라는 인물이 겪게 되는 혼돈을 관객의 감상적 심리로 연동시키고 그런 심리적 긴장감은 극의 말미에 다다라 얻어지는 감상적 전율의 밑천으로 축적된다.
물론 이런 일련의 감상 과정을 이루는 건 아로노프스키의 공이기도 하지만 간과할 수 없는 공헌은 나탈리 포트만의 연기에도 놓여 있다. 이미 익숙해진 할리우드 배우 중의 한 명인 나탈리 포트만은 <블랙 스완>에서 기존의 자신이 해왔던 연기적 보폭 속에 놓여있지만 그 깊이에 있어서 궁극적이라 해도 좋을 만큼의 연기적 극단을 완성한다. 유년 시절 발레 경험이 있는 그녀는 새로운 연마를 통해 사실적인 발레 동작을 구사해내며 자아의 붕괴와 자멸적 파괴를 거듭하는 인물의 성장을 치밀하게 연기해낸다. 이는 단지 탁월하다고 평하는 수준을 넘어 압권이라 해도 좋은 결과물이라 장담해도 좋다. <블랙 스완>에서 나탈리 포트만의 연기는 앞으로 그녀가 배우 생활을 거듭해나가는 과정에 있어서 경력의 전후를 이루는 새로운 기준이 될만한 것이다. 마저 펴 보이지 않았던 날개 한 뼘을 드러냈다고 할까. 또한 <블랙 스완>의 프리마돈나를 보좌하는, 뱅상 카셀을 비롯한 주변의 배우들은 각자의 포지션에서 최선의 연기를 선보인다. 다만 영화와 무관하게, 퇴물 발레리나로 출연하는 위노나 라이더는 마치 자전적인 캐릭터를 연기하고 있다는 착각을 느끼게 만든다.
발가락 끝에 모든 체중을 실어 회전하는 발레리나의 우아한 동작이 실로 위태로운 곡예인 것처럼, <블랙 스완>은 화려하게 날갯짓하는 발레 무대 뒤에서 치열하게 발버둥치는 발레리나들의 세계를 다루며 스포트라이트 뒤로 드리운 어두운 그림자를 조명한다. 사실 이런 점에서 <블랙 스완>은 딱히 새롭거나 신선한 이야기는 아닌 셈이다. 누구나 상상할만한 이면의 세계를 보다 생생하게 비춘다는 것 이상의 놀라움을 넘어서는 영화는 아니라는 의미다. 하지만 그 간편하면서도 식상한 방법론을 자신의 것으로 소화하며 완벽한 몰입의 결과물로 완성해냈다. 궁극의 경지에 다다른 발레리나의 파멸적인 완성은 극한의 긴장감을 넘어 압도적인 아름다움의 형태로서 지울 수 없는 여운을 남긴다. 결말부에 다다라 얻어지는 이런 경이적인 감상은 말 그대로 놀라운 영화적 체험에 가깝다. 성장이나 완성과 마찬가지로 파괴나 파멸 역시 하나의 형태로서의 극단이라는 점을 명심한다면, <블랙 스완>은 우리가 영화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극단의 대리 만족, 바로 체험의 극한인 것이다.
세계무역센터의 붕괴는 미국인들의 가슴에 ‘그라운드 제로’를 남겼다. 트라이베카 필름 페스티벌은 그 위에 피어난 영화제다. 9.11테러를 목격한 미국인들의 상처를 치유하고 뉴욕의 경제적 타격을 만회하고자 시작됐다. 로버트 드니로를 주축으로 미국 영화산업 발전의 근거지인 맨해튼 남부에서 개최된 트라이베카 필름 페스티벌의 의미는 그만큼 남다르다. 오는 4월 21일부터 5월 2일까지 열리는 이번 영화제는 <슈렉 포에버>(2010) 같은 화제작의 공개와 함께 다양한 인디필름들의 경연이 벌어진다.
빡빡한 도시의 삶이 버겁다고요? 매일 같이 단조로운 일상이 지겹나요? 일단 그 현실에서 벗어나 잠시 여행이라도 떠날 수 있다면 좋겠군요. 하지만 당장 시간도 없고, 막상 어디로 떠나야 할지 모르겠다고요? 그렇다면 영화라도 한 편 보세요. 그 영화가 당신의 길잡이가 될지도 모릅니다.
때때로 영화는 잊혀지지 않는 기억이 된다. 대사로, 음악으로, 그리고 풍경으로, 관객의 뇌리에 서로 다른 흔적으로 깊게 각인된다. 무엇보다도 인상적인 찰나의 풍경만으로도 잊을 수 없는 영화가 있다. 그리고 그 풍경들은 현실을 벗어난, 또 다른 세계를 꿈꾸게 만든다. 당신이 발 딛지 못했던 세상을 꿈꾸게 만든다. 그리고 이제, 꿈꾸던 당신, 떠나라. 스크린 속 그 풍경으로. 극장에서 만끽했던 환상을 당신의 현실에서 만날 차례다. 머뭇거릴 당신을 위해 여기 몇 가지 좌표를 마련했다.
<사운드 오브 뮤직> 오스트리아 비엔나 잘츠부르크
“도레미파솔라시, 도! 솔! 도!” 7음계를 이용한 ‘도레미송(Do-Re-Mi)’만으로도 유명한 <사운드 오브 뮤직>은 브로드웨이 인기 뮤지컬을 동명 그대로 영화화한 작품이다. 1965년, 전세계적으로 개봉된 이 고전 뮤지컬은 천진난만한 동심과 애틋한 로맨스가 어우러진 작품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발랄한 음표들이 귀를 사로잡는 가운데,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다채로운 경관이 호화롭기 짝이 없다. <사운드 오브 뮤직>의 의상이나 다름없는 그 장관은 모차르트의 고향이기도 한 오스트리아 비엔나의 잘츠부르크에서 빌려온 풍경들이다. 볼프강 호수의 시원한 전경으로부터 시작되는 영화는 호헨잘츠부르크요새가 올려다 보이는 카피텐 광장과 잘차흐강을 건너는 모차르트 교각, 잘츠부르크 대성당과 미라벨 궁전의 정원 등, 잘츠부르크의 고풍스러운 정경 곳곳을 누비며 밝은 음색을 채워 넣는다. 영화 속에서 등장하는 풍경 대부분은 오늘날까지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으며 영화의 흥행 이후로 늘어난 관광객들을 위해 현지에서 운영하는 ‘사운드 오브 뮤직 투어’를 이용할 수도 있다. 하지만 스스로 그 흔적들을 수집해나간다면 더 좋은 의미를 발견할지도 모를 일. 특히 마리아가 아이들과 함께 ‘도레미송’을 연습하던, 알프스를 병풍처럼 두른 몽크스산에 오른다면 씩씩한 걸음을 옮기며 노래하던 아이들처럼 절로 마음이 순수해질 거다.
<브로크백 마운틴> 캐나다 알버타 로키 산맥
울창한 숲과 험한 산세 아래 양떼를 지키기 위해 야영하던 두 명의 카우보이 잭과 에니스는 어느 날, 감정의 선을 넘는다. 산속이라 시차가 커서 밤이면 온도가 급격히 떨어지는 추운 야영지에서 모닥불로 손을 녹이고 좁은 텐트 안에서 뒤엉키듯 잠을 청하던 두 사내는 스스로 짐작조차 할 수 없었던 애틋한 감정이 줄기처럼 자라남을 직감하고 서로를 끌어안는다. 그 금기적인 로맨스의 증인이 되는 건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캐나다 알버타의 로키 산맥이다. 사실 동명원작소설의 작가 E. 애니 프루가 쓴 ‘브로크백 마운틴’은 지도에 존재하지 않는 곳이었고, 미국 와이오밍의 빅혼 마운틴을 모델 삼아 글을 써내려 갔다고 밝혔다. 제작사는 빅혼 마운틴 주변에서 촬영을 시도했으나 여건상 포기한 뒤, 촬영지 선택에 난항을 겪다 비로소 알버타를 찾았다. <브로크백 마운틴>에서 험준하고도 풍요로운 로키 산맥의 풍광은 결말에 다다라 진한 여운을 남길 영화적 감수성을 깊고 너르게 채우는 원천이나 다름없다. 양떼를 몰다 설산이 내려다 보이는 산턱에서 한낮의 망중한을 즐기기도 하고, 깊은 밤에 찾아온 산의 한기를 몰아내며 모닥불을 피운 채 따뜻한 잔에 손을 비비던 두 남자의 추억은 그 인상적인 풍경을 통해 잊을 수 없는 감정적 여운으로 거듭난다. 만약 트래킹과 스키를 즐기는 이라면 그 만년설의 절경을 보다 적극적으로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
<뉴욕의 가을> 뉴욕 센트럴파크
굳이 뉴요커의 꿈을 꾸지 않았다 해도, 뉴욕의 명소들에 대해서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들어봤을 게다. 사실 뉴욕을 말한다는 건 식상한 일임에도 그것을 포기할 수 없는 건 언제나 뉴욕을 그리는 영화들이 인상적인 기억으로 회자될 수 밖에 없는 풍경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뉴욕을 소재지로 둔 너무도 많은 영화 가운데서도 <뉴욕의 가을>은 제목이 직시하는 도시와 계절의 풍경을 풍만하게 드러내는 작품이다. 맨하탄과 브룩클린, 퀸즈, 브롱크스, 스테이튼 아일랜드까지, 뉴욕의 전경을 부감숏으로 포착하며 시작되는 영화는 그 이후로 뉴욕에 배어든 가을의 흔적들을 향해 카메라를 들이민다. <뉴욕의 가을>의 두 주인공 윌과 샬롯의 만남이 시작되는 센트럴파크는 노란 은행잎으로 물든 가을의 향연 그 자체다. 세계 최대의 공원으로 꼽히는 뉴욕 맨하탄의 센트럴파크는 전세계 인종의 교차로라 해도 좋을 뉴욕의 중심에 자리한 뉴요커들의 안식처이자 쉼터이다. 삭막하고 번잡한 도시의 체증을 피해 잠시나마 안식을 부여한다. 그리고 영화처럼 센트럴파크를 거닐다 보면 운명 같은 연인을 만나게 될 수 있지 않을까?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 그네들 역시 센트럴파크에서 마주한 건 그저 영화 속 우연일까, 운명일까? 적어도 후자의 낭만을 부정할 이유는 없을 거다. 그리고 그게 당신의 삶이 된다 해도 이상한 일은 아닐 테고.
<맘마미아!> 그리스 스포라데스 제도의 스코펠로스 섬
전설적인 팝그룹 아바의 명곡들로부터 모티브를 얻은 브로드웨이 인기 뮤지컬 <맘마미아!>가 스크린으로 무대를 옮겼다. 영화 <맘마미아!>가 동명의 원작 뮤지컬보다 특별할 수 있는 건 스크린에 펼쳐진 그리스 제도의 그림 같은 풍경들 덕분이다. 촬영에 앞서 한 달 전부터 제작진은 <맘마미아!>의 무대가 될 공간을 찾기 위해 그리스 전역을 샅샅이 뒤졌다. 그 결과 스포라데스 제도의 스키아토스 섬과 스코펠로스 섬, 다무하리 섬을 찾아냈으며 대부분의 바닷가 신을 거기서 촬영했다. 특히 스코펠로스 섬은 <맘마미아!>가 선사하는 아름답고 평화로운 진경의 핵심이다. 에메랄드 빛 바다를 여백처럼 두른 채 붉은 지붕과 하얀 벽으로 이뤄진 집들이 높낮이가 다르게 옹기종기 모여 앉은 스코펠로스 타운의 주택가를 비롯해 서쪽으로 22km 떨어진 카스타니 해변에 펼쳐진 백사장에서 스크린을 통해 봤던 그 모든 풍경들을 직접 확인할 수 있다. 또한 결혼식 신을 위해 100m 높이의 암벽 위에 재건한 예배당도 여전하다. 눈을 정화시키던 스크린 너머의 풍경들이 눈 앞에 펼쳐지는 순간 당신은 어쩌면 모든 것을 다 얻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당신이 그 인생의 승자라 믿어도 좋다. <맘마미아!> 속 그 노래처럼, ‘The winner takes it all’.
<사랑해, 파리>는 파리라는 도시로부터 배어나는 낭만적 기운을 로맨틱한 에피소드와 연결한 기획적 옴니버스다. 파리를 배경으로 18편의 옴니버스를 직조한 20명의 감독들은 저마다의 상상력을 통해 파리라는 도시의 환상성을 부추긴다. 사실상 <사랑해, 파리>는 파리라는 도시의 고유적 낭만성을 증명하기 이전에 긴 세월 동안 환상성을 구축한 도시가 로맨스라는 감정을 얼마나 탁월하게 보좌할 수 있는가를 증명한 작품이나 다름없다. <사랑해, 파리>에 이어 새로운 낭만도시 프로젝트의 제작에 착수한 엠마뉘엘 벤비히가 <뉴욕, 아이러브유>로 뉴욕을 새로운 로맨틱 시티로 낙점한 것도 그 도시를 동경하는 이들의 환상을 등에 업은 것이나 다름없다.
18편의 에피소드마다 명확한 구획을 나눈 <사랑해, 파리>와 달리 <뉴욕, 아이러브유>는 각 단편의 시작과 끝을 이어 붙이며 마침표의 영역을 지워버렸다. 주가 되는 단편 사이마다 다리 역할을 하는 짧은 전환점(transition)을 삽입하고 이를 통해 사연을 쉼 없이 이어나간다. 그만큼 매 순간의 감정을 음미할 여유가 줄어든 반면, 다음 작품에 몰입할 대비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산만한 인상을 줄 확률도 적지 않다. 매 단편마다 적확한 마침표를 찍어내듯 경계를 둔 <사랑해, 파리>보단 보다 불친절한 형태로 완성된 <뉴욕, 아이러브유>는 뉴욕이라는 도시의 번잡함을 영화적 구성 그 자체로 승화해버린 것마냥 번잡한 영화인 셈이다.
그럼에도 <뉴욕, 아이러브유>는 뉴욕이라는 도시가 부르는 동경심의 너비만큼이나 풍요로운 로맨스의 만찬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감각적인 영상미를 자랑하는 이와이 슌지를 필두로 11명의 감독이 만들어낸 로맨틱한 상상을, 그것도 다채로운 배우들의 얼굴을 빌려 뉴욕의 사랑담을 그려내는 과정을 지켜본다는 건 일면 의미 있는 일이다. 작품마다의 편차를 떠나 뉴욕이라는 도시를 모티브로 삼은 러브스토리의 향연을 지켜본다는 것만으로도 묘한 감흥이 배어난다. 특히 감각적인 영상미와 함께 황홀한 충격을 선사하는 세자르 카푸르와 고전적 무게감 속에서도 섬세한 감정적 울림을 전달하는 이와이 슌지의 단편은 <뉴욕, 아이러브유>안에서 단연 빼어난 감상을 부여한다. 그 밖에도 장난끼 넘치는 반전을 품은 브렛 라트너와 이반 아탈의 작품, 그리고 수다스럽지만 귀여운 노부부의 애틋한 감정을 깊게 전달하는 조슈아 마스턴의 영화 또한 꽤나 인상적이다. 감독으로 데뷔한 나탈리 포트만의 깔끔한 연출력을 만날 수 있다는 것도 좋은 관심사가 될만한 지점이다.
번잡한 뉴욕의 교차로를 건너듯 연속적으로 펼쳐지는 단편적 상상력을 따라잡는 건 그만큼의 집중력을 요하기에 피곤한 감상을 부여할지 모른다. 동시에 옴니버스의 특성상 작품마다의 편차가 존재한다는 것도 일종의 맹점이 될만한 부분이다. 그럼에도 <뉴욕, 아이러브유>는 그 다채로운 감각과 다양한 상상력을 만끽할 수 있다는 점에서 먹음직스러운 만찬이라 해도 좋을 작품이다. 어느 도시에서나 만남과 이별은 끊임없이 이어진다. <사랑해, 파리>와 <뉴욕, 아이러브유>는 특별한 도시의 로맨스라기 보단 어느 도시를 배경으로 둔 특별한 로맨스적 일화의 총망라에 가깝다. 떨리는 찰나의 이끌림도, 담담한 영원의 엇갈림도, 낮과 밤을 아우르며 도시를 떠돌다 그 거리에 낭만을 켜켜이 채워나간다. 낭만을 먹고 자란 도시는 전인류적 동경을 끌어안고 그 환상을 품에 안은 채 또 다른 낭만을 키워나간다. 그리고 <뉴욕, 아이러브유>는 도시를 위한 낭만의 헌사라기 보단 유려한 도시를 풍경으로 낭만을 증명하는 작업이나 다름없다. 그리고 새로운 낭만은 또 다른 도시로 전파된다. 아마도 인류가 사라지지 않는 한, 사랑을 꿈꾸는 도시의 역사는 계속될 것이다.
다소 유치한 스토리와 조악한 설정이 또렷하게 보이지만 산만한 캐릭터들의 수다스런 조합이 플롯의 빈곤함을 메운다. <슈렉>과 함께 드림웍스의 대표적인 프랜차이즈로 등극한 <마다가스카>의 속편 <마다가스카2> 역시 마찬가지다. 다만<마다가스카2>는 그 타이틀이 무색하게도 더 이상 ‘마다가스카’를 중심에 둔 사연이 아니다. 그럼에도 이 제목이 다시 한번 활용되는 건 이 타이틀의 기시감이 시장성이 유효한 브랜드 네임밸류를 지닌 덕분이다. 전편의 대단한 성공에서 잉태된 기획상품에겐 새로운 자기 정체성보다도 자기 기반의 뿌리가 중요할 따름이다.
전작과 마찬가지로 속편 역시 일종의 모험담이다. 모험 속에서 캐릭터들은 성장한다(고 묘사된다). 뉴욕의 왕이라 자처하던 동물원의 사자 알렉스(벤 스틸러)가 친구인 하마 글로리아(제이다 핀켓 스미스), 기린 멜먼(데이빗 쉼머)과 함께 동물원을 뛰쳐나간 얼룩말 친구 마티(크리스 락)를 쫓아 담을 넘었다가 마다가스카 섬까지 표류하게 되고 그곳에서 벌어지는 갖가지 사연의 이후로 덧붙여진 사연이다. 새로운 행선지는 아프리카다. 뉴욕을 향해 출발한 비행기가 불시착하면서 그들은 지명이 묘연한 아프리카 대륙으로 떨어진다.
동화적인 <슈렉>의 세계와 우화적인 <마다가스카>의 세계는 의인화를 통해 공통적으로 각자의 세계관을 지탱하고 있다. 인간과 공존하는 동시에 인간과 별다를 바 없는 비인간 캐릭터들의 행위엔 모순을 뛰어넘는 위트가 담겨있다. 물론 <마다가스카>는 <슈렉>보다도 캐릭터에 대한 의존도가 강한 작품이다. 디즈니 동화의 클리셰를 전복시키는 이야기적 태도로 풍자적 웃음을 발생시키는 <슈렉>과 달리 <마다가스카>는 특유의 의인화된 동물 캐릭터들의 수다와 슬랩스틱에 가까운 연기적 액션을 통한 유머로서 관객을 적극 공략한다. 전편과 마찬가지로 속편의 장기도 크게 다를 것이 없다. 네 동물 캐릭터의 성격은 여전하고 그들의 행위는 과거와 별다르지 않다. 장점은 전작만큼의 너비를 유지한다. 캐릭터들은 여전히 수다스럽고 산만하게 뛰어다니며 유희적인 연기를 펼친다.
그에 비해 단점은 좀 더 덩치가 커졌다. 캐릭터의 개성과 조합으로 가려지던 이야기의 열악함이 예전보다 커진 군살을 가리지 못한다. 알렉스의 사연을 축으로 사연의 맥락을 집중시키던 전작과 달리 비해 이번 작품은 각자의 캐릭터를 줄기로 삼아 이야기에 가지치기를 시도한다. 이야기의 유치함은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다. 단지 그 산만함이 예전에 비해 더욱 활발해졌다. 네 캐릭터의 비중을 각자 키워나가다 보니 전체적인 조합이 흐트러진다. 동시에 저마다 가벼운 사연들이 자신의 경로를 고집하는 것처럼 비효과적인 태도도 없다. 질적으로 발전되지 못한 이야기가 양적으로 팽창했다. 결국 극심하게 산만해진 이야기를 작위적인 감동으로 메우려 하나 이 역시 효과적이지 못하다. 전작의 인기에 편승한 기획의 한계가 여실하다.
‘롤링 스톤즈’가 길 바닥의 구르는 돌멩이만큼의 관심거리도 안 되는 이에게 이 영화를 권하기란 힘들지 모를 노릇이다. 그럼에도 이 영화에 담긴 공연이 어떤 극영화만큼이나 가치 있는 것이라 말할 수 있는 근거는 그 무대가 롤링 스톤즈의 것이기 때문이다. 1962년 런던의 클럽에서 데뷔해 ‘비틀즈(Beatles)’와 함께 브리티쉬 인베이션(British invasion)의 신화를 쌓아 올린 로큰롤의 악동들은 환갑이 넘은 나이에도 단단한 팀워크를 자랑하며 여전히 패기만만하게 살아있다. 2005년, 13번째 정규앨범 타이틀 ‘A bigger bang’을 발표하며 이뤄진 월드투어이자 최다수익을 기록한 공연으로 기네스북에 기록된 ‘Bigger Bang tour’ 중 뉴욕의 비콘 극장(Beacon Theater)에서 이뤄진 공연실황을 담아낸 <샤인 어 라이트>는 이 밴드의 거창한 역사를 뜨겁지만 담백하게 소개하는 스포트라이트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69년, 마이클 워드라이가 우드스톡 페스티벌을 촬영한 20시간 분량의 필름을 4시간 가량으로 편집해 <우드스톡>을 완성한 장본인이 마틴 스콜세지임을 제시한다면 <샤인 어 라이트>의 설득력은 더해진다. 게다가 밥 딜런의 도발적인 이미지들을 생생히 기록하며 뮤지션의 모호한 내면을 들춤으로써 그 아우라를 강건하게 재생하는 <노 디렉션 홈: 밥 딜런>(2005)을 경험한 누군가라면 소통이 난해한 뮤지션에 대한 탁월한 접근을 이룬 마틴 스콜세지의 내공을 이미 알고 있기에 <샤인 어 라이트>의 무대가 변변찮은 라이브 클립에 불과하지 않을 것임을 예감할지도 모른다. ‘롤링 스톤즈(Rolling Stones)’의 공연실황 라이브클립으로 치부(?) 당할 수도 있는 이 작품을 주목해야 할 필요가 있음을 주장하고 싶다면 이 공연실황을 카메라에 온전히 담아낸 이가 뉴욕의 필름 거장 마틴 스콜세지라는 점이 든든한 근거가 되어줄 것이다.
공연을 앞둔 롤링 스톤즈 멤버들의 여유로움과 공연 셋리스트를 기다리는 마틴 스콜세지의 초조함을 대비시키며 출발하는 <샤인 어 라이트>의 초반부는 긴 세월 동안 자기 존재를 증명하며 살아남은 뮤지션과 영화감독의 치열한 대립구도를 은밀하게 드러낸다. 밴드의 생존력을 여전히 무대에서 증명하는 뮤지션의 풍모와 필름을 관통한 시선으로 긴 세월을 관조한 영화감독의 치열한 자의식은 중후한 관록의 형태로 융합되어 영화에 기운을 불어넣는다. 이는 결국 공연을 기다리는 공연장의 관객들만큼이나 카메라를 통해 무대를 보게 될 관객들의 긴장을 불어넣는데 적합한 역할을 한다. 라이브 무대가 펼쳐지기 전, 마틴 스콜세지는 공연 이전의 풍경들을 끌어와 무대의 열기를 이루기 위한 발화점의 온도를 찾는다. 비로소 롤링 스톤즈의 무대가 시작되기 직전까지 무대를 향한 객석의 열기는 적절한 온도로 상승하고 이내 마틴 스콜세지의 슛 사인과 함께 시작되는 첫 번째 넘버 ‘Junpin’ Jack Flash’와 함께 세차게 가열된다.
19곡의 셋리스트로 이뤄진 공연은 관객들의 열광만큼이나 멤버들의 나이를 믿기 힘들 정도로 무대에 넘치는 활력을 거침없이 분출한다. 간단히 말하면 이건 끝내주는 공연이다. 앙상하지만 섹시하게 하늘거리는 몸동작으로 열정적인 보컬을 선사하는 믹 재거의 무대 장악력과 <캐리비안의 해적>에서 조니 뎁이 연기한 잭 스패로우의 모델로 알려진 키스 리차드의 독특한 패션만큼이나 시선을 빼앗는 기타연주와 무대매너는 단연 훌륭하다. 또한 키스 리차드의 기타를 보완하는 로니 우드와 그들의 뒤에서 차분하게 드러밍에 집중하는 과묵한 찰리 와츠는 파수꾼처럼 무대를 든든하게 이룬다. 또한 '화이트 스트라입스(White Stripes)'의 잭 화이트, 블루스의 장인 버디 가이와 팝의 뮤즈 크리스티나 아길레라가 게스트로 등장하며 특별한 즐거움을 더한다. 총 16대의 카메라는 세련되면서도 박력 있게 무대 너머로 흐르는 열기를 생생하게 포착한다. 특히 곡 사이사이에 등장하는 롤링 스톤즈의 과거 인터뷰 장면을 비롯한 기록들은 롤링 스톤즈의 오랜 여정을 서술하며 무대의 저력에 깊은 감상을 부여한다. 오랜 관록으로 카메라를 조율하는 마틴 스콜세지의 깊은 음악적 조예는 인물에 대한 탁월한 접근적 시선을 더하며 <샤인 어 라이트>에 깊이 있는 열광을 부른다. 게다가 그것은 관객의 얼굴을 클로즈업하지 않으면서도 그 무대를 바라보는 관객의 표정을 예상하게 만드는 힘을 발휘한다. 만약 당신이 누군가가 지켜봤던 공연을 보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당신이 바라보고 있는 스크린이 무대처럼 느껴진다면 그건 착각이 아닐 것이다.
<샤인 어 라이트>는 그저 롤링 스톤즈의 명곡들이 담긴 라이브 실황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스크린을 통해 무대를 재현하는 일종의 체험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롤링 스톤즈의 무대와 그것을 바라보는 마틴 스콜세지의 시선은 거대한 관록의 시너지를 이룬다. 연륜 있는 필름거장은 위대한 라이브 제왕의 무대에 영원을 헌정한다. 그리고 그 무대를 바라볼 주체는 바로 관객이다. 비로소 2시간 여의 공연이 끝나고 무대 밖으로 퇴장하는 밴드의 뒤를 쫓는 카메라는 하늘로 솟아올라 뉴욕의 거대한 야경을 비춘다. 그 풍경과 함께 흐르는 넘버 ‘Shine a light’의 가사, ‘shine a light on you’처럼 조명은 무대를 비추지만 그건 결국 객석에 앉은 당신을 위해 비춰지는 빛이다. <샤인 어 라이트>는 당신을 위해 마련한 VIP석이다. 실로 그 무대를 즐길 줄 아는 관객에게 <샤인 어 라이트>는 실로 비좁은 상영관의 좌석을 박차고 일어나 몸을 흔들며 환호하고 싶을 만큼 전율적인 흥분을 선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