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은 영화를 상영하는 곳이다. 그래서 누구나 영화를 보러 극장에 간다. 하지만 요즘 극장은 영화만
상영하는 곳이 아니다. 사람들은 영화 이상의 체험을 기대하기 시작했다.
아내와 영화를 한편 보기로 했다. 극장부터 골랐다. 코엑스 메가박스에 새로 단장한 프리미엄 상영관 ‘부티크 M’을 찾기로 했다. 스마트폰으로 예매사이트에 접속해서 영화를 고르고, 두 좌석을 선택한 후 결제를 했다. 5만원이 결제됐다. 그러니까 영화 티켓 두 장의 가격이 무려 5만원이다. 티켓을 금으로 만들었나? 종이였다.
상영관 이름이 스위트룸이라고 했다. 흔한 극장 상영관처럼
1관이라고 부르는 대신 101호라고 했다. 상영관이
아니라 호텔룸에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실제로 호텔식 서비스를 지향했다.
넓고 편안한 리클라이너 체어에서 다리를 쭉 뻗고 거의 눕다시피 앉아서 영화를 볼 수 있다. 게다가
에비앙 생수를 웰컴 드링크로 제공한다. 입구에서 무릎담요를 나눠주고 자리엔 슬리퍼도 놓여있다. 룸서비스도 가능하다. 영화 시작 전에 좌석 측면에 있는 벨을 누르면
직원이 와서 주문을 받는다. 팝콘이나 나초 대신 피자를 주문했다. 화덕에서
구운 조각피자로 유명한 ‘피자리움’이 입점해있었기 때문이다. 플라스틱 용기에 담긴 와인도 판다. 그뿐만이 아니다. 홍대 부근의 유명한 커피 전문점인 앤트러사이트를 비롯해 타발론 티, 오설록
아이스크림도 상시 판매한다. 어쨌든 2시간 30분에 달하는 영화를 보면서 리클라이너 체어의 안락함을 실감했지만 동시에 영화가 재미없다면 숙면을 취하게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다행히도 나는 흥미로운 영화를 보고 있었고,
잠들 일은 없었다.
부티크 M과 같은 상영관이 낯설게 느껴진 것은 아니다. 이미 유사한 형태의 프리미엄 상영관은 존재해 있었으니까. CGV 골드클래스가
대표적인 모델이다. CGV에선 일찍이 식사와 영화관람을 연동해서 즐길 수 있는 ‘시네 드 셰프’와 같은 시스템을 운영하기도 했다. 롯데시네마 역시 샤롯데라는 프리미엄 상영관을 운영하고 있다. 메가박스
부티크 M은 후발주자다. 이미 존재하는 프리미엄 상영관 시장에
뛰어든 건 지금의 시장에서 유효한 기획이라고 판단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메가박스에선 지난해부터
다양한 형태의 상영관을 기획해왔다. 과거의 자동차 극장을 연상시키는 드라이브 M과 건물의 옥상에 설치된 텐트와 캠핑 의자에 앉아 야외에서 영화를 관람하는 글램핑 상영관인 오픈 M이 눈에 띈다. 둘 다 영화 관람 외적인 경험을 서비스한다는 공통점이
눈에 띈다. 특히 가족 단위 관객들을 위한 배려가 눈에 띄는데 어린 유아가 있는 부부가 쉽게 극장을
찾지 못하는 환경을 생각하면 상당히 유용한 서비스처럼 보인다. 바비큐나 와인, 맥주와 함께 영화를 즐길 수도 있다. 전통적인 영화관의 관습에서
벗어나 영화 관람과 동반할 수 있는 체험적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는
21세기에서 영화를 본다는 행위의 의미가 조금 달라지고 있음을 시사한다. 입맛을 돋우는
음악처럼, 영화 또한 감각적 소품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의미다.
CGV에선 멀티플렉스 대신 컬처플렉스란 언어를 동원하며 새로운 방향성을
정립했다. 컬쳐플렉스는 영화뿐만 아니라 외식이나 쇼핑, 문화체험
등 영화 외적인 다양한 경험과 연계된 서비스를 선택할 수 있는 공간성의 연계나 확장을 의미한다. 대표적으로 CGV청담시네시티엔 다양한 식당과 커피 전문점, 라이프스타일 편집숍이
층층마다 자리해있다. 기존의 골드클래스보다 한층 더 업그레이드된 ‘더
프라이빗 시네마’와 오페라 극장의 박스석 형태로 제작된 커플석만으로 상영관 좌석을 채운 ‘스윗박스 프리미엄’과 같은 상영관은 영화 관람에서 서비스의 형태가
중요한 기준이 되는 관객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대변한다. 롯데시네마 역시 새롭게 문을 연 롯데월드몰의
‘롯데시네마 월드타워’에 ‘시네
파크’라는 광장 형태의 공간을 마련했는데 이는 영화 이외의 문화적 체험을 전달하려는 다른 극장들의 정책과
유사하다. 그러니까 결국 이런 체험적 다양성을 부여하고자 하는 흐름은 극장산업의 화두인 셈이다.
물론 여전히 대부분의 사람들은 영화를 보기 위해 극장을 찾는다. 다만
어떤 방식으로 영화를 볼 것인가라는 선택권이 넓어졌고, 관객들은 기꺼이 고민하고 선택하며 기다린다. 이를 테면 최근에 화제가 된 <인터스텔라>의 아이맥스 열풍이 그렇다. <인터스텔라>나 <그래비티>를
아이맥스 상영관에서 보길 고집하는 배경엔 ‘좀 더 큰 화면에서 보고 싶어서’라는 단순한 욕망을 넘어서 ‘두 영화를 관람하는 최적의 관람 방식이
아이맥스 상영관이기 때문’이라는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에 따른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이는 영화가 주는 감각적 체험을 최대한 극대화시키고자 한다는 점에서 영화관람이란 행위를 엔터테인먼트적인 체험으로서
보다 확실하게 소비하길 원하는 이들이 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3D 상영 방식의 일반화 또한 궤를 같이
하는 사례다. 제임스 카메론의 <아바타>의 전세계적인 흥행 이후로 디지털 상영관이 확대되고 3D 상영이
영화 상영 방식으로 자연스럽게 정착해 버린 건 어떤 체험을 계기로 관객들의 감각적 경험이 확장되고 정착된 덕분이다. 그리고 이런 체험 감각에 대한 수요는 새로운 체험적 방향을 도모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체험의 확장을 통해 훈련된 감각을 고스란히 체감하길 바라는 관객의 정착이 극장 상영 문화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입체적인 사운드로 청각적 체험을 극대화시킨 돌비 애트모스 음향 시스템도 장착된 상영관을 선호하는 관객이 늘어나고, 개인 좌석마다 설치된 헤드셋을 통해서 영화 사운드를 홀로 독점하는 상영관이 출현한 것도 새로운 감각적 체험을
통한 학습효과라 할 수 있다. 영화의 음향에 따라서 좌석의 진동을 체감하도록 하는 비트박스관과 오감을
자극하는 4D 상영관의 공감각적 체험 또한 다르지 않다. 특히
4D는 기존의 영화관람 형태를 롤러코스터적인 감각적 엔터테인먼트로 밀어붙인다는 점에서 가장 극단적인
방식의 영화적 체험이라 할 수 있다. 관객들은 시각적 체험을 넘어서 다양한 감각적 체험이 가능하다는
학습효과를 얻었고, 그런 시장의 수요를 파악한 극장은 진화하고 있다.
21세기의 극장들은 영화의 관람방식을 다양하게 세분화하고, 영화 관람 외적인 서비스의 확장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전통적으로
극장은 쉽게 찾을 수 있는 문화적 공간으로서 역할을 견인해왔다. 동일한 티켓 가격으로 각기 제작비가
다른 영화를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다는 점에서 영화는 문화적 경험을 제공하는 가장 중요한 콘텐츠이기도 했다. 그만큼
극장 산업이란 대중의 기호에 민감한 공간이기도 하다. 지금 극장문화의 변화란 결국 대중의 변화와 무관하지
않다는 의미다. 과거와 달리 이제 영화는 손쉽게 볼 수 있는 것이 됐다. 또한 IPTV를 통해서 한동안 부재했던 영화의 2차 판권 그러니까 홈 씨어터 시장이 순식간에 정착됐다. 영화란 언제든
쉽게 볼 수 있는 무언가가 됐다. 그만큼 극장이 보다 다양한 방식으로 진화해야 하는 건 필연적이다. 커다란 스크린만으로 극장의 경쟁력을 논한다는 건 시대착오적이다. 관객들은
이제 보다 다양한 경험을 원한다. 영화 그 이상의 영화관을.
신해철과 서태지는 90년대를 관통하는 뮤지션이자 메신저였다. 하지만 신해철이 언어로서
세상과 충돌하는 사이, 서태지는 언어의 미로 속에 자신을 숨겨왔다. 죽은
신해철은 말을 남겼고, 산 서태지는 말을 아낀다. 신해철의
말은 죽어서도 살고, 서태지의 말은 살아있는지 알 길이 없다.
신해철이 죽었다. 벼락처럼 떨어진 비보 주변으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나름의 방식으로 죽은 이를 추모했다. 밀물처럼 추모의 말들이 달려와
바다를 이뤘다. 신해철이 세상을 떠난 다음날 서태지도 말을 했다.
<유희열의 스케치북> 녹화 현장이었다. 서태지는
“힘들지만, 힘을 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신해철은 내가 데뷔하기 전부터 ‘재즈카페’, ‘나에게 쓰는 편지’ 등의 명곡을 만들었고, 나도 듣고 자란 세대다. 누구 보다 영향을 많이 받았다. 특히 노래 가사는 내 마음을 너무 흔들어놨다. 나도 그런 가사를
쓰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서태지가 신해철의 음악에
영향을 받았다는 말은 이상하지 않다. 하지만 서태지가 신해철처럼 가사를 쓰고 싶다고 생각했다는 건 어떤
식으로든 의외였다.
신해철의 가사는 직설적이다. 피해가지 않는다. 투수로 치자면 직구 일변도의 투수였다. 그래서 종종 홈런을 얻어맞기도 했지만 대부분 강속구를 구사하며 호쾌하게 미트를 때렸다. 수비수의 도움을 받을 일이 별로 없었다. 특별히 해석을 부르는 가사를
쓰거나 부르지 않았다. 가사가 가리키는 지향점이 명확하다. 반대로
서태지의 가사는 은유적이거나 지나치게 상징적이다. 투수로 치자면 맞춰 잡는 변화구 투수였다. 가끔씩 정면승부를 시도하며 삼진을 잡기도 했지만 대부분 유인구를 던져서 맞춰 잡았다. 그만큼 수비수의 도움이 절실하다. 쉽게 말하자면 팬덤의 지원사격이
중요하다. 단어를 나열한 형태만 봐도 의도라는 것이 불확실하게 느껴지는 언어인 만큼 애정을 바탕에 둔
의미부여가 중요해진다.
올해 신해철과 서태지는 모두 오랜만에
새로운 앨범을 발표했다. 신해철은 7년만이었고, 서태지는 5년만이었다. 신해철은
올해 말에 넥스트의 신보를 발표할 예정이었다. 그래서 <라디오스타>에 출연했을 때 서태지에게 “제대로 한번 붙어보자”고 으름장을 놓기도 했다. 서태지의 활동 재개가 확정된 시점이었다. 서태지는 새 앨범 발매에 앞서서 방송 출연을 결정했다. 그가 결정한
건 유재석이 진행하는 <해피투게더>였다. 방송 전부터 서태지가 등장한다고 예고편을 떠들썩하게 틀었다. 22년
만에 못다한 말을 한다고 했다. 하지만 이미 누구나 다 아는 서태지의 지난 시절을 떠들썩하게 떠들 뿐이었다. 특별한 건 없었다. 서태지의 아들 이름이 ‘삑뽁이’라는 것 외엔 새로울 것도,
기억날 것도 없었다. 오히려 그 이후에 출연한 <뉴스룸>에서 유효한 이야기가 나왔다. 앵커 손석희가 뼈 있는 질문을
던져준 덕분이었다. 손석희는 서태지의 ‘소격동’이 녹화사업을 비롯한 과거의 정치사를 건드리고 있다는 세간의 추측과 해석에 대한 물음을 던졌다. 서태지는 명확하게 선을 그었다. “노래를 만들 땐 정치는 고려하지 않는다. 예컨대 예쁜 한옥 마을이
사라지는 것에 대한 마음만 다뤘다”고 했다. 다만 “80년대 서슬 퍼런 시대를 표현하지 않고는 ‘소격동’이란 곡을 설명하기 힘들다. 그래서 들어간 거다”라고 부연했다. 서태지의 언어가 시대를 겨냥하고 있다고 믿는 이들에겐
상당히 실망스러운 답변이었을지도 모른다.
사실 이런 경우가 처음은 아니었다. 2009년에 발매된 서태지의 8집 앨범에 수록된 ‘T’ik T’ak’을 두고 세간에선 이것이 현정권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 실제로 그 즈음에 코엑스에서 펼쳐진 서태지의 게릴라 콘서트에서
서태지는 시대적 흉흉함을 우회적으로 피력하며 ‘시대유감’을
부르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특별히 그 노래가 정권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는지 직접 말한 적이 없었다. 여기서 중요한 건 서태지의 본의와 무관하게 서태지에게 무언가 명확하게 바라는 바가 있는 대중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서태지의 언어가 시대적 부도덕과 불합리를 좀 더 명확하게 꿰뚫어주길 바란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건 서태지와 상관 없는 바람이었다. 손석희는 서태지의 신곡
중 하나인 ‘크리스말로윈’의 가사에 등장하는 ‘산타’의 의미에 대해 물었다. 서태지는
그것이 ‘나쁜 권력자’라고 했다. ‘교활한 권력자, 교활한 직장 상사, 그런게 될 수 있을 거 같다’고 부연했다. 그러니까 동화 속에 등장하는 악마인지, 이 세계에 존재하는 어느
나쁜 권력자인지 알 길이 없는 ‘환상 속의 그대’다.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랄까.
신해철의 언어는 언제나 명확하고 확실했다. 서태지는 좀처럼 말을 하지
않는 사람이었지만 신해철은 할 말이 많은 사람이었다. 심지어 현정부를 향한 촌철살인도 서슴지 않았다. "이명박대통령은박정희대통령의향수를가지고있는지모르겠지만국민들이지금보고있는모습은전두환의모습이다. 박정희의모습이아니다.”그런태도는지지자를만들어내는동시에적대자가등장하는이중적계기가되기도했다. <백분토론>에후드티에장갑을끼고나온것에대해서세간의비판여론이일자그는자신의미니홈피계정에"후드티에장갑을끼고나온것은분명일부에게 '익숙지않은모습'일수있다. 하지만 '익숙하지않은모습'이반드시 '옳지못한모습'은아니다"라고논평했다. 그에게는정해진편이없었다. 단지불합리한권력을내세우는다수와맞서는사람이었다. 하지만그의언어는불합리한권력을찌르기위한창으로서만존재하지않았다. 반대로그는약자에게관대한사람이었다. 신해철의생전마지막기록이라할수있는JTBC의 <속사정쌀롱>에서그는 "내가
다른 미래에 대한 계획을 세울 수 있는 상태에서 비전을 세우는 것과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흘리는 땀은 다르다. 운전하다가 기름이 떨어졌을 때 보험사에서 최소한 주유소까지 향하는 기름을 넣어주는, 최악의 절망에 빠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 복지. 환경적 여건이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백수를 일방적으로 비난할 순 없다"고 주장했다.
그의 언어는 그의 노래 가사와도 일맥상통한다. “너의 꿈을 비웃는 자는 애써 상대하지 마(‘해에게서 소년에게’)”라고 용기를 주거나 “난 아직 내게 던져진 질문들을 일상의 피곤 속에 묻어버릴 수는 없어(‘The
Dreamer’)”라고 다짐하거나 “어른이 될 때까지 아무 생각도 하지 말라 했었죠. 지금은 그게 습관이 됐어요 아무런 생각이 없어(‘매미의 꿈’)”라고 꼬집어 말한다.
서태지도 한때는 “왜 바꾸지 않고 마음을 졸이며 젊은 날을 헤매나!”라고 외치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허공에 대고 일갈하는
것처럼 공허하다. 제도를 바꾸라는 건지, 그런 교육제도 속에
머무르는 학생들의 태도를 바꾸라는 건지, 명확하지 않다. 통일을
염원하거나, 교육제도와 물질만능주의를 비판해도 명확한 비판의 대상이 부재한다. 서태지는 ‘시대유감’을
‘이 시대에 유감이 있다고 말하는 노래’라고 했다. 그런 노래의 가사가 “검게 물든 입술. 정직한 사람들의 시대는 갔어. 숱한 가식 속에서 오늘은 아우성을
들을 수 있어”라고 겉핥기에 그치는 건 가사유감이다. 명확한
건 제목뿐이다. 서태지의 솔로 앨범 가사들은 대부분 자의적인 해석을 통한 의미 부여를 동반하지 않으면
언어의 가치가 불확실해진다. 최소한 “네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뭐야. 그 나이를 쳐먹도록 그게 뭔지 몰라”라는 언어를
구사하는 신해철과 비교하자면 더욱 그렇다. 시대 비판이라는 언어로 처세를 하고 있다는 인상마저 든다. 그리고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리스너의 판단’이라는 말로 모호함만 증폭시킨다.
<해피투게더>에선
서태지의 90년대 활약상을 훑으며 찬사를 거듭했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서태지는 90년대의 영광 이후로 보여준 것이
드물다. 현실의 언어를 구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2009년, 서태지가 모아이섬에서 신비를 노래할 때 국민들은 촛불을 들고 현실과 싸우고 있었다. 서태지의 노래와 노래 밖 현실의 괴리가 선명했다. 신해철이 죽은
이후 적지 않은 사람들이 신해철이 생전에 뱉었던 노래와 말을 유언처럼 주워들었다. 죽은 신해철의 언어로부터
위로를 느낀다. 멋대로 해석해도 좋을 말장난이 아니라 시대를 관통하는 언어가 존중 받는 건 당연하다. 흉흉한 세상에선 위로가 되는 말이 더욱 귀하다. 신해철의 죽음은
그래서 시대유감이다. 그 가운데서 서태지는 ‘소격동’의 추억을 노래한다. 소격동의 녹화사업은 단지 기억의 재현일 뿐이다. 개인적인 옛 기억이 예쁘게 추억될 뿐이다. 유감이다. 누가 죽고, 누가 살았는지 헷갈린다.
음악을 꿈꾸지 않았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음악이 길이 되고, 생이 됐다. 재즈 보컬리스트 나윤선은 음악을 통해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고, 새로운
삶을 만난다. 그리고 이 세계보다도 넓은 음악적 여정을 꿈꾼다.
‘내가 이 극장에서 공연할 수 있는 날이 올까?’ 20년 전, 파리 유학 중 우연히 지나가던 샤틀레 극장 앞에서, 나윤선은 생각했다. 그리고 2013년
나윤선은 샤틀레 극장에 있었다. 객석에 앉아 있는 것이 아니라 무대에 서있었다. 1600석이 넘는 좌석을 빈틈 없이 꽉 채운 관객들 앞에서 노래했다. “놀랍게도
꿈이 실현됐으니 그때 제 기분은 뭐라고 표현할 수 없었죠. 그것도 전석 매진이 되는 상황이라 더욱 감회가
깊었습니다.” 1860년에 지어진 파리의 샤틀레 극장은 파리의 예술가들에겐 그야말로 꿈의 무대다. 나윤선은 그렇게 꿈의 무대에 올랐다. 그리고 같은 해, 재즈의 성지라고 일컬어지는 뉴욕의 ‘블루노트’로부터 초청을 받아 이틀 동안 네 차례의 공연을 펼쳤다. 재즈의 본고장
미국 안에서도 최고의 재즈 뮤지션들을 배출한 재즈의 산실 블루노트에서 말이다. “재즈 뮤지션에게 미국
시장은 언제나 숙제 같은 느낌으로 다가오는 것 같아요. 앞으로 더 많은 시간을 미국 활동에 할애하려
해요. 어쨌든 미국에서의 첫 숙제는 비교적 잘 마친듯해서 매우 만족하고 있어요.”
간절함과 절실함만으로 무언가를 이룬다는 건 어려운 일이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지나가는 일상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 순간 마주치게 되는 운명의 좌표가 등장한다. 뒤늦게야
그것이 마냥 지나치던 일상이 아니라 일정한 방향을 향해 가리키던 지표의 연속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우린
그걸 재능이라고 부른다. 재능은 삶을 내버려두지 않는다. 나윤선이
재즈 보컬리스트가 된 것도 어쩌면 그래서다.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대학을 졸업하고 대기업에 취업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일이라고 생각해서 패션회사에 지원했어요. 입사 경쟁률이 높은 회사였고, 합격해서 운이 좋다고도 생각했죠. 그런데 우연한 계기로 회사를 그만
뒀을 무렵 뮤지컬 <지하철 1호선>의 주인공 역을 맡게 됐죠.” 혹시 뮤지컬 배우로서의 꿈이 있었던
것일까? “뮤지컬 배우가 되겠다는 생각은 해본 적 없었어요. 당시
음악을 하던 친구가 제 노래를 녹음한 카세트 테이프를 뮤지컬 연출자인 김민기 선생님께 들려드렸더니 선생님께서 경험이 일천한 저를 주연으로 캐스팅하셨어요. 그 뒤로 두 편의 뮤지컬에 더 출연했어요. 정말 우연의 극치죠.” 하지만 그 ‘우연의 극치’가
재즈 보컬리스트 나윤선이란 미래를 발굴한 셈이다.
뮤지컬 무대에서의 경험은 나윤선의 유전자에 잠재된 재능을 흔들어 깨웠다. 음악을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만들었다. 클래식 합창단 지휘자인 아버지와 뮤지컬 배우였던 어머니 사이에서
자란 나윤선은 ‘공연장의 백스테이지가 놀이터 같은’ 유년시절을
보냈다. 그녀에게 음악이란 매일같이 열고 닫는 방문 같은 것이었을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그녀는 문턱을
넘기로 했다. 본격적으로 음악을 배워보고자 결심했다. 다만
그것이 재즈여야 했던 이유는, 프랑스로 유학을 가야 했던 이유는 단순했다. “무언가를 배우기엔 이른 나이가 아니었기 때문에 클래식을 공부하기엔 조금 늦은 것 같았고, 친구의 권유로 재즈를 선택했어요. 그런데 미국이 아닌 프랑스 유학을
선택한 건 제 전공이 불문학이었기 때문이에요. 개인적으로 샹송을 매우 좋아하기도 했고요.” 단순하지만 명확했다. 그렇게 프랑스로 유학을 떠났고, 재즈 보컬리스트 나윤선의 역사가 시작됐다.
사실 나윤선의 공연에선 재즈 보컬리스트로서의 일관성보단 다채로운 음악적 영향력이 감지된다. 나윤선의 무대는 록과 팝, 일렉트로니카, 포크, 국악 등 다양한 음악적 자장을 재즈로 흡수해버리는 장이다. 자신의 것으로 만든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재즈라고 말한다. “세상의 모든 음악에 관심이 있어요. 대부분의 재즈 뮤지션들도 저와
비슷할 거라고 생각하고요. 재즈는 어떤 장르의 음악이라도 자신만의 것으로 재해석하는데 적합한 음악이거든요.” 어쩌면 그건 그녀의 곁에 좋은 음악적 동지들이 존재하는 덕분일지도 모른다.
벌써 7년째 함께 무대에 오르고 있는 기타리스트 울프 바케니우스는 세계적으로 인정 받는
최정상급의 연주자다. 그리고 아코디어니스트 뱅상 뻬라니와 콘트라베이시스트인 씨몽 따이유도 재능을 인정
받는 연주자다. 이처럼 재능 있는 연주자들과 함께 ‘나윤선
콰르텟’이란 이름으로 무대에 오를 수 있다는 건 나윤선에게 그들을 매혹시킬만한 실력이 있다는, 역설적 증명이다. “좋은 연주자들과 함께 무대에 오른다는 건 자신의
역량을 극대화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둔 것과 같아요. 그런 면에서 지금 함께 활동하는 뮤지션들은
정말 제게 최고의 가능성이라 할 수 있겠죠.”
나윤선은 1년 동안 전세계를 돌며
100회 정도의 공연을 소화한다. 전세계의 수많은 팬들 앞에 서고 노래한다. “다양한 관객을 만날 수 있다는 건 뮤지션에겐 큰 행운이에요. 같은
레퍼토리를 공연해도 관객에 따라 그 느낌은 완전히 달라지니까요.” 하지만 1년에 절반 이상을 해외에서 보내야 한다는 건 어떤 의미에선 고되고 힘든 여정일 것이다. 하지만 나윤선은 아직도 그 여정을 통해 얻게 될 무언가를 기대한다. “어느
유명 연주자가 인터뷰에서 ‘당신은 어디에 사세요?’라는 질문에
‘호텔에서 살아요’라고 답한 것을 보고 한참을 웃었어요. 실제로 연주 여행을 하다 보면 대부분의 시간을 길 위나 호텔에서 보내게 되니까요. 녹록한 일이 아닌 건 사실이에요. 하지만 항상 설레는 마음이 있죠. 저는 항상 제 음악적 여정을 여행이라고 생각해요. 정말 많은 여행을
하며 살아가는 제 모습을 보게 되고요. 낯선 곳에서 만나는 생경한 풍경과 사람들도 제겐 때로 큰 영감으로
다가옵니다. 지금도 항상 어떤 사람들을 만나게 될까라는 설렘으로 비행기에 올라요.”
이미 잘 알겠지만 나윤선은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재즈 보컬리스트다. 그녀의
목소리가 귀에 닿길 염원하는 팬들이 전세계 곳곳에 존재한다. 한류라는 단어가 등장하기 전부터 나윤선은
세계를 누볐다. 그런 그녀에게 한국의 무대에 선다는 건 지금 어떤 의미일까. “모든 무대가 소중해요. 하지만 한국에서 공연할 땐 조금 다른 느낌이
있죠. 공연 시작 전엔 좀 더 긴장이 되는데 막상 시작하면 해외에서보다 편안해지는 경향이 있어요. 아무래도 집에 돌아왔다는 안도감과 관객과의 정서적 공감이 좀 더 크게 느껴져서 그런 게 아닐까 싶어요.” 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여정이란 집으로 돌아오는 길일지도 모른다. 되돌아올
곳이 있다는 믿음으로 보다 멀리 나아갈 수 있다. 나윤선은 모든 공연의 끝에서 ‘아리랑’을 부른다. 그
무대의 끝에서 자신이 돌아올 곳을 되돌아보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한국보다 세계에서 더 유명한 뮤지션’이란 수사도 그녀에겐 딱히 중요하지
않다. 그녀에겐 보다 넓은 세상이 있고, 더 큰 음악이 있다. “음악 활동을 하면 할수록 어렵다는 생각이 들어요. ‘아직도 연습할수록
실력이 느는 것 같다.’ 어느 80대 원로 연주자가 농담처럼
했던 이야기인데 저는 그게 농담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항상 새롭고 젊은 음악을 하는 게 제 음악적 목표에요. 아직 저 앞에 멀리 가야 할 길이 있다고 생각해요.” 나윤선은 젊은
뮤지션이다. 아직 서야할 무대가 많다. 그리고 다시 한번
소중하고 큰 의미를 되새길 때가 왔다. 오는 12월, 한국에서의 공연을 앞둔 나윤선은 다시 집으로 돌아와 안도감과 정서적 공감을 확인하고 더 넓은 세상을 여행할
계획이다. 내년 3월엔 다시 프랑스 샤틀레 극장의 무대에
선다. 세계보다도 더 넓은 음악적 여정을 향해 나아간다. 여전히
그리고 앞으로도.
좋은 작품이란 걸작의 반열에 오른 작품을
지칭하는 것만은 아니다. 좋은 감독이란 거장의 면모를 지닌 감독을 지칭하는 것만은 아니다. 라세 할스트롬은 바로 그런 작품을 만든 그런 감독이다.
1946년생인 라세 할스트롬은 40여
년에 달하는 연출 경력을 지닌 60대 후반의 노장 감독이다. 하지만
흔히 그만한 경력을 지닌 감독들에게 손쉽게 동원하는 ‘거장’이나
‘대가’라는 단어에 어울린다고 말하기엔 겸연쩍은 구석이 있다. 물론 그가 연출한 작품 가운데선 기억될만한 수작들이 더러 존재한다. 하지만
라세 할스트롬은 대단한 울림을 전달한다고 말할 수 있을 만큼 걸작의 반열에 들만한 작품을 연출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거장이나 대가만이 오랜 시절의 경력을 보장받는 건 아니다. 라세 할스트롬은 개별적인 인생을 아우르는
보편적인 감동을 길어 올리는 범작들을 꾸준히 만들어오며 대중과 호흡해온 감독이다.
라세 할스트롬이란 이름만으로도 짐작하겠지만 그는 미국 출신 감독이 아니다. 스웨덴, 그러니까 북유럽 출신 감독이다. 라세 할스트롬과 함께 동시대 할리우드에서
활동한 북유럽 출신 감독으론 레니 할린을 꼽을 수 있다. 하지만 레니 할린은 할리우드에서 이미 옛날
사람이 된지 오래다. 20세기부터 21세기까지 할리우드에서
끊임없이 작품을 연출해온 건 할스트롬이 유일하다. 과거형에 머무르지 않고 현재진행형으로서 할리우드에
자신의 자리를 고수하고 있다. 물론 할스트롬의 감독 경력이 할리우드에서 시작된 건 아니었다.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태어난 할스트롬은 소위 말하는, ‘떡잎이 노란
아이’였다. 열살 무렵 단편영화를 연출하며 감독으로서의 비전을
찾은 그는 고등학교 시절에 촬영한 다큐멘터리가 TV방송 전파를 타게 되는 경험을 얻기도 했다. 이 경험은 본격적인 TV시리즈 연출 데뷔로 이어졌고, 10여 년간의 TV시리즈 연출자로서 경력으로 나아갔지만 그의 유명세에
일조한 건 세계적인 스웨디시 팝그룹 ‘아바’였다. 아바의 히트곡 대부분의 뮤직비디오를 연출했으며 아바의 공연실황을 담은 다큐멘터리 <아바: 더 무비>(1977)를
발표하기도 했다. 그리고 할스트롬은 1985년에 발표한 영화 <개 같은 내 인생>을 통해서 보다 확실한 미래로 나아간다.
할스트롬은 <개 같은 내 인생>
이전에도 스웨덴에서 몇 편의 영화를 연출했는데 모두 가정을 배경으로 갈등과 화합을 그린 드라마란 점에서 일관성이 있었다. <개 같은 내 인생> 또한 마찬가지다. 병약한 어머니를 둔 소년의 고독하고도 묵묵한 성장기를 그린 이 작품을 통해서 할스트롬은 골든글로브 최우수 외국어
영화상을 수상했고, 아카데미 각본상과 연출상 부문에 노미네이트되면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됐다. 그 뒤로 한동안 스웨덴에서 영화를 연출해오던 그는 홀리 헌터, 지나
롤랜즈 등 당대의 배우들이 출연한 <사랑의 울타리>(1991)를
통해 할리우드에 진출했고 좋은 평가를 얻었다. 그리고 그 후 할스트롬의 가장 인상적인 연출작 중 하나인 <길버트 그레이프>(1993)를 발표한다.
<길버트 그레이프>는
길버트 그레이프(조니 뎁)라는 청년에 관한 이야기다. 그는 변변찮은 아르바이트 일을 하며 다섯 가족의 가장 노릇을 해낸다. 아버지를
잃은 이후로 충격에 휩싸여 집에만 틀어박혀 있다가 지나친 과체중이 된 어머니와 정신적인 장애가 있는 막내 동생은 그에게 있어서 언제라도 부둥켜
안을 수 있는 혈육이지만 한편으론 벗어날 수 없는 속박이기도 하다. 하지만 <길버트 그레이프>는 가족애를 부정하거나 비판하는 영화가
아니라 살아가다 보면 어찌할 수 없이 매일 같이 직면할 수밖에 없는 운명론적인 삶에 관한 이야기에 가깝다. 그리고
그러한 삶에 종속된 일상이 무기력하게 추락하지 않고 결국 새로운 기류를 타고 짐작할 수 없는 내일로 나아갈 수 있다는, 응원 같은 결말로 이륙한다. 결핍의 시간을 어제로 밀어내고 충만한
내일을 꿈꾼다.
<길버트 그레이프> 이후로
연출한 <사이더 하우스>(1999)와 <쉬핑 뉴스>(2001), <언피니시드 라이프>(2005) 사이엔 유사한 공통점이 있다. 사생아들을 받아주는
고아원에서 자란 청년의 성장과 정착을 다룬 <사이더 하우스>,
강압적인 아버지 아래서 보낸 유년시절로 인한 자신감이 결여된 삶을 극복해내는 남자의 인생을 살피는
<쉬핑 뉴스>, 모종의 사고로 죽은 아들을 그리워하며 며느리를 원망하고, 친구에게 치명적인 부상을 입힌 곰에게 앙심을 품은 노인의 삶에 관한 <언피니시드
라이프>까지, 자신의 결핍을 극복하거나 그로부터 해방되는
남자들을 다룬다는 점에서 그렇다. 삶의 조류를 거슬러올라가거나 타의적으로 떠밀려가거나 제 자리를 꿋꿋이
지켜나가거나, 저마다 다른 형태로 천착한 결핍을 메우고 치유하는 건 결국 그 주변부에 머무는 관계를
통해서다. 결국 관계를 통해서 자신이 설 자리를 깨닫고, 자신이
의지할 존재를 발견한다. 필연적인 환경이나 불가피한 사건으로 얻은 결핍과 상처가 관계를 통해 치유된다. 평범한 이들의 관계를 통해서 이뤄지는 삶, 그것이 바로 라세 할스트롬의
영화를 관통하는 보편적 정서다.
할스트롬의 작품 속에서 보기 드물게 우화적인 세계관을 지닌 <초콜릿>은 종교적 교리를 바탕에 둔 억압적인 정서를 당연한 규율로 감내하는
마을 주민들 사이에 편입된 한 여인이 개인의 자유를 중시하며 주민들을 계몽한다는 달콤한 저항을 다룬 작품으로서 시대에 매몰되지 않으려는
어느 개인과 그 가치에 주목한다. 그리고 <초콜릿>은 서로 반목하던 세계의 화해와 화합을 그린다는 점에서 근작인 <로맨틱
레시피>(2014)와 연결된다. 뤼미에르에서 프랑스식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프랑스 여인과 인도식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인도 가족들의 갈등과 화해를 그린 이 작품은 결코 서로 손잡지 않을 것 같은 두 세계의
화합을 그린다는 점에서 할스트롬의 세계관에 종속된다. <사막에서 연어낚시>(2011) 또한 중동과 서방 세계의 갈등 속에서 국면 전환을 꿈꾸는 영국 정부와 예멘의 부호가 손을 잡는
과정을 그린다는 점에서 그렇다.
21세기 이후로 할스트롬은 다양한 방면의 영화들을 만들어 왔다. 중세 시대에 숱한 여성들을 매혹시켰다고 전해지는 전설적인 호색가 카사노바에 관한 <카사노바>(2005)나 미국의 대부호인 하워드 휴즈에
대한 자서전을 날조한 작가에 관한 실화를 다룬 <혹스: 욕망의
법칙>(2006)과 같이 남다른 면모를 지닌 이들의 삶을 조명하는 영화의 메가폰을 잡기도 했다. <디어 존>(2010)이나 <세이프 헤이븐>(2013)과 같이 남녀의 절실함을 바탕에
둔 로맨스물을 영화화하기도 했다. 주인에 대한 충심이 강한 강아지의 절절한 사연을 다룬 <하치 이야기>(2009)도 한편으론 새로운 드라마의 영역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라세 할스트롬의 작품들은 어떤 대단한 경지를 선사할만한 걸작에 대한 기대감으로부터
확실히 멀어지고 있는 것 같다. 반대로 그의 영화들은 과거보다 보편적인 사람들의 너른 감정들을 담아내는
드라마로 확장되고 있다. 감독으로서 무엇이 더 옳은 길일지에 대해 말하긴 어렵다. 중요한 건 그의 드라마가 여전히 이 세상에서 유효하다는 사실일 것이다. 세상의
모든 영화가 걸작일 수 없듯이 모든 이의 삶이 위대해질 순 없다. 그리고 그 평범한 삶에도 나름의 위로가
필요하다. 라세 할스트롬의 드라마가 필요한 건 그래서다. 좋은
범작들을 만드는 것, 그것 또한 이 세상에 필요한 재능인 셈이다.
소설
찍는 남자, 라세 할스트롬
라세 할스트롬의 초기 대표작인 <개 같은 내 인생>은 스웨덴 작가 레이다 욘손의 자전적 소설 3부작 가운데 두
번째 작품을 기초로 완성한 작품이다. 그 밖에도 그는 적지 않은 소설을 영화로 연출해왔다. 소설가이자 각본가이며 영화 감독인 피터 헤지스의 소설 <길버트
그레이프>부터 스토리텔링의 대가 존 어빙의 소설 <사이더
하우스>, 영국의 여류 작가 조앤 해리스의 소설을 옮긴 <초콜릿>과 퓰리처상 수상 작가 E. 애니 프롤스의 소설 <시핑 뉴스>, 베스트셀러 작가 니콜라스 스파크스의 소설 <디어 존>과 <세이프
헤이븐>, 영국 작가 폴 토데이의 소설 <사막에서
연어낚시>를 영화화했으며 최근작인 <로맨틱 레시피> 또한 경제전문지 출신 기자인 리처드 C. 모리아스가 쓴 소설 <백 걸음의 여행>을 스크린에 옮겼다.
무명 배우에서 세계적인 스타로 변신했다는
신데렐라 스토리는 할리우드에선 상상할 수 있는 일이다. 가장 최근에도 그런 사례가 탄생했다. 크리스 프랫은 지금 완전히 다른 궤도로 진입했다.
사실 크리스 프랫이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2014)에 승선하기 전까지 완전한 무명 배우에 불과했던 건 아니었다.
올해로 6시즌까지 진행된 TV시리즈 <팍스 앤 레크리에이션>에서 연기한 앤디 역으로 적지 않은
인지도를 얻었고, 크리틱스 초이스 TV어워즈에선 코미디 남우조연상
부문에 노미네이트되기도 했다. 사실 <팍스 앤 레크리에이션>의 앤디는 유쾌한 유머 감각을 지닌 캐릭터란 점에서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의 스타로드와 유사한 구석이 있다. 하지만
외모만을 놓고 본다면 마치 지구의 남반구와 북반구처럼, 믿을 수 없도록 동떨어진 존재처럼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근육질의 육체미를 자랑하는 스타로드와 달리 앤디는 테디베어처럼 둥글둥글한 곡선미가 눈에 선명한
남자이기 때문이다.
크리스 프랫은 한 TV쇼에서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의 출연 제안을 받았을 때 자신이 아내에게 소리쳤던 일화를 밝혔다. “여보! 75파운드나 몸무게를 빼야 되니 빵은 그만 구워!” 반쯤은 농담일지도 모르지만 실제로 그에겐 일종의 절실함이 있었다. 마블
코믹스의 팬이기도 했던 그에게 마블 유니버스의 일원이 될 수 있다는 제안은 그야말로 꿈 같은 일이었겠지만 어떤 식으로든 그의 경력 안에서 전환점을
만들 수 있는 기회였다. “나는 우스꽝스러운 감초 역할에 특화된 편이었는데 그런 역할을 통해서 경력을
쌓는 게 좋을 거라고 생각해서 다른 오디션은 거의 참여하지 않았다. 하지만 <제로 다크 서티>(2012)에 출연한 뒤부턴 연기하고
싶은 배역에 대한 생각이 달라졌고, 매니저를 통해서 새로운 오디션을 찾아갔다.” 바로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말이다.
사실 <제로 다크 서티>에서
크리스 프랫이 특별히 인상적인 역할을 맡았던 건 아니다. 그 이전에 출연했던 <원티드>(2008), <신부들의 전쟁>(2009)이나 <머니볼>(2011),
<5년째 약혼 중>(2012) 등의 작품에서 어떤 배우가 맡았다 해도 상관 없을
만한 역할을 전전해왔다. 그나마 지난해에 제작된 <딜리버리
맨>과 <그녀>에선
각각 극의 중심인물이 지닌 정서적 갈등을 해결하는데 도움을 주는 인물로 등장하거나 중심인물의 정서적 결핍을 긍정적인 태도로 수긍하고 이해하는 인물로서
자리하며 나름의 존재감을 어필할 만한 인물로 등장한 바 있다. 다만 편차가 심해 보이는 체중으로 인상이
자주 변화하는 탓에 크리스 프랫이란 배우에 대한 일관성 있는 인상을 꿰어내기가 쉽진 않았을 거다. 어쩌면
앞서 나열한 출연작들보다도 주연 캐릭터의 내레이션을 맡은 <레고 무비>(2014)에서의 존재감이 보다 확실하게 느껴질 정도랄까.
무엇보다도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의 스타로드를 보며 앞서 열거한 그의 출연작들을 짐작하는 이란 드물 것이다. 단언컨대 그럴 수밖에 없다. 식스팩과 수백 광년쯤은 동떨어진 듯한
체형의 무명배우였던 그의 과거를 연상했을 때 스타로드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다. 사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는 어떤 면에서 크리스 프랫과 처지가
유사한 작품이었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또한
마블 코믹스의 역사를 차지하는 작품이지만 <어벤져스>의
세계관에 비해 상대적으로 인지도가 낮은 세계관이었기 때문이다. 이는 크리스 프랫에겐 좋은 기회였다. “시나리오와 감독의 디렉팅을 벗어나지만 않는다면 뭘 해도 상관없겠다고 생각했다. 그런 게 배우로선 도움이 된다.” 대중에게도 낯선 역할인 만큼 자신의 관점이 새로운 기준이 된다 해도 상관없다는 걸 알았다. 게다가
낯설지 않은 작품이었다. 유년시절 친구를 통해서 우연히 원작 코믹스를 접한 적이 있었고 자신도 그 중
몇 권을 소장할 기회가 있었기 때문이다. 결과론적으론 운명적이란 의미를 붙일 수도 있을 거다. 게다가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는 그의 기대를 넘어서는, 일종의 선물과도 같은 작품이었다. “출연을 결정하기 전에 시나리오를 보지 못했다. 막상 시나리오를
읽었을 땐 내 생각보다 훨씬 좋은 역이라서 안도했지. 시나리오가 아주 웃긴데, 그게 딱 제임스 건 감독 스타일이다. 그는 실제로도 아주 재미있는
친구다.”
사실 크리스 프랫은 자신과 함께한 동료들의 칭찬을 곧잘 하는 편인데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에서도 주변 동료들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단순히
입바른 말을 잘해서라기 보단 그가 실제로 사려 깊고 친절한 동료이기 때문일 가능성이 다분해 보인다. 그는 <당신은 몇번째인가요?>(2011)라는 영화로 크리스 에반스와
함께 출연한 적이 있었는데 사실 그는 주연을 맡은 크리스 에반스의 역할에 오디션을 봤지만 작은 역할을 맡아야 했다. 하지만 그 이후로 크리스 에반스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고, 크리스
에반스 또한 SNS를 통해 공개적으로 크리스 프랫에 대한 애정을 표한 바 있었는데 두 배우가 모두 마블
유니버스의 히어로로 활약하고 있다는 사실은 우연치곤 기묘한 일이다. 언젠가 <어벤져스>와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의 세계관은 필연적으로 중첩될 가능성도 다분한 만큼 두 배우가 한 스크린에 자리할
가능성도 존재할 것이다.
한편 그는 자상하고 세심한 가장이기도 한데 한번은 동료배우이기도 한 아내 안나 패리스의 머리를 땋은 사진을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올려서 화제가 됐고, 한 영상 인터뷰에서 머리 땋기 실력을 직접 시연해 보이기도 했다. 천연덕스럽게 내년 개봉작으로 예정된 <쥬라기 공원>의 새로운 속편을 홍보하며 1분만에 완벽한 머리 땋기를 선보인
그는 “(머리를 묶을 땐) 고무밴드보단 스크런치라고 불리는
걸 쓰는 게 낫다”는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한편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촬영으로 오랫동안 집을 비운 탓에
아내로부터 생후 13개월이 된 아들이 아빠를 못 알아볼 수도 있으니 낙심하지 말라는 조언을 받았지만
자신을 보고 ‘아빠’라고 불러주는 어린 아들로 인해 눈물을
흘리면서 이 날을 “내 인생 최고의 날이었다”고 고백한 바 있다. 크리스 프랫은 우주를 지키는 영웅을 연기하는 배우이기
전에 자신의 가정에 충실한 남자인 것이다.
크리스 프랫에게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로 마블 유니버스의 주인공이 됐다는 건 배우로서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다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는 일이다. 그는 최근 LA에 있는 한 아동병원을 방문했다. 자신이 영화에서 입었던 의상들을 입고 스타로드로서 아이들을 찾았다. 그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와 관련된 인터뷰 중 자신의 촬영
의상을 챙겨놨다고 고백한 적이 있었다. 이유가 있었다. “만약
영화가 개봉하고 좋은 성적을 거둔다면 아이들을 찾아갈 거다. 영화가 크게 성공해서 아픈 아이들에게 의미로
다가올 수 있을 정도가 된다면, 피터 퀼이나 스타로드가 찾아오는 게 큰 의미가 된다면 그럴 거다. 그럼 이 영화가 내게 진정한 의미가 될 거다. 가장 멋진 건 내
아들이 언젠가 이 영화를 볼 것이고, 어쩌면 내가 어떤 아이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도 있을 거란
사실이다. 그들에게 좋은 롤모델이 되는 거다.” 생각해보면 크리스 프랫은 대부분의 작품에서 선한 인물로서 자리했다. 때때로
우스꽝스러울지언정 그랬다. 그는 본래 따뜻한 심성을 지닌 배우다. 진정한
영웅의 자격을 지닌 사람이다. 그의 식스팩보다 그 착한 마음이 진정한 매력이자 재능일 것이다. 그 마음이 그의 경력에 좋은 영감이 될 것이다. 물론 그의 식스팩을
볼 기회는 유효하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의
속편이 2017년에 공개될 예정이니 말이다. 물론 식스팩보다도
따뜻한 마음이 더욱 매력적인 남자, 크리스 프랫의 유쾌한 행보를 계속 목격하고 싶다.
'리부트’란 우리가 흔히
말하는 ‘재부팅’ 그러니까 컴퓨터를 다시 켠다는 의미를 지닌
단어다. 그러니까 영화를 리부트한다는 건 간단히 말해서 영화를 ‘다시
시작한다’는 말이다. 하지만 같은 방식으로 다시 시작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리부트는 그 대상이 되는 원작이 깔아놓은 철로에 개량된 열차를 올려놓는 작업이 아니다. 열차뿐만 아니라 철로를 싹 갈아엎고 비행장을 만들어버릴 수도 있는 작업이다.
변주의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 다만 그 시리즈의 정체성만은 유지한다. <배트맨 비긴즈>(2005)엔 배트맨이 있고, <맨 오브 스틸>(2013)엔 슈퍼맨이 있다. 제임스 본드가 없는 <007>시리즈가 존재할 리 없다. 매력적인 캐릭터는 시리즈의 미래를 보장하는 뿌리이자 줄기이며 잎이자 꽃이다.
그리고 잘 알다시피 할리우드엔 이미 매력적인 캐릭터들이 차고 넘친다. 그들에게 새로운 숨을
불어넣을 장치가 필요할 뿐이다. 그것이 바로 리부트다.
언젠가 한번 들었던 이야기를 다시 듣는 건 필연적으로 지루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듣지 못했던 이야기가 있다고 하면 궁금해지기 마련이다. 게다가 그것이 상당히 재미있는 이야기였다면 더욱
솔깃해질 수밖에 없다. 배트맨이든, 슈퍼맨이든, 스파이더맨이든, 한결 같이 ‘태생의
비밀’을 안고 다시 돌아오는 것도 그래서다. 대부분의 리부트
영화들이 ‘프리퀄 무비’로 시작되는 건 다분히 전략적인 셈이다. 리부트의 대상이 되는 기존의 작품으로부터 해방돼서 새롭게 설계된 이야기 위에서 자유로운 전개가 가능하다. 이를 테면 <007: 카지노 로얄>(2006)이나 <스타트렉: 더 비기닝>(2009), <혹성탈출: 진화의 시작>(2011),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2011)과 같은 작품은 프리퀄의 형식을 빌려서
시리즈의 리부트를 시도하면서도 완전히 새로운 서사의 발판을 확보함으로써 새로운 이야기의 방향성을 탐색하고 구축한 뒤, 나아가버린다. 무엇보다도 새로운 이야기를 발굴하는 노력보다도 손쉽게
검증된 이야기를 확보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매력적인 방법론이다. 게다가 마블과 DC의 슈퍼히어로물들이 증명한 것처럼 매력적인 캐릭터들의 존재만으로도 이룰 수 있는 이야기의 너비란 그야말로
우주처럼 넓고 광활하다. CG의 발달을 위시한 영상 기술의 발달도 리부트를 부채질한다. 과거의 기술력으론 표현할 수 없었던 이미지의 구현이 완벽하게 가능해진 시대에서 필연적으로 열악할 수밖에 없었던
과거의 영화적 이미지들을 놀라운 볼거리로 발바꿈시키는 것만으로도 리부트의 가능성은 보다 무궁무진해진다. 리부트
열풍은 좀처럼 꺼지지 않고 확장될 것이다. <터미네이터>를
비롯한 수많은 인기 프랜차이즈들이 리부트의 대열에 합류 중이다.
리부트 열풍은 영화계를 넘어서 TV시리즈까지 강타하고 있다. 내년에 방영될 예정인 <히어로즈> 시즌 5는 이미 기존의 시리즈를 리부트하는 방향으로 제작될
것이라고 발표됐다. 또한 고전 시리즈로서 인기를 모았던 슈퍼히어로물인
<플래쉬>도 새롭게 리부트될 예정이다. 또한
리부트 열풍은 영화와 미드의 경계를 넘어선 스핀오프 기획으로 진화 중이다. <어벤져스>의 성공에 힘입은 TV시리즈
<에이전트 오브 쉴드>가 기획된 것처럼 <다크
나이트>의 고든 경감을 주인공으로 둔 또 다른 <배트맨> 프리퀄 시리즈가 미드로 제작 중이다. 스크린과 TV의 경계를 허무는 크로스오버의 시대가 열리고 있다. 어쩌면 새로운
시대가 리부트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손석희가 진행하는 <뉴스9>엔 유난히 독점 보도가 많았다. 이상하다. 타방송사 기자들은 노는 것도 아닐 텐데 왜 <뉴스9>에서만 유독 독점 보도가 많단 말인가. 손석희는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매일같이 출입처에서 나오는
자료 보고 그 바탕 위에서 보강 취재하는데 익숙해지면 자기가 주도적으로 하는 게 아니다. 그런 데 익숙해진
기자의 경우 자율적 취재기능이 상당 부분 떨어져 있다.” <뉴스9>의
공신력은 바로 그러한 기본적인 저널리즘의 원칙을 지키는 데서 나온다. 그리고 손석희의 <뉴스9>은 언론의 직업 윤리란 정의로운 신념을 걸고 싸우는
것이 아니라 진실을 전달할 수 있는 실력을 증명함으로써 가능한 것임을 새삼 깨닫게 만든다.
"<뉴스룸>이추구하는것은지금까지진행해왔던 <뉴스9>과본질적으로다르지않습니다. 한걸음더들어가진실에접근하는것입니다." 손석희의말처럼<뉴스룸>은
기존의 <뉴스9>의 확장판이다. 100분짜리 뉴스라니, 전례가 없는 일이지만 보도국 입장에선 기존의
탐사 보도를 보다 정밀하게 분석하고 전달할 수 있는 호흡을 확보했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다. 기존의 <뉴스9>에서 힘을 발휘했던 손석희의 생방송 인터뷰 능력과
현장성 있는 보도 방식은 100분이라는 시간을 생동감 있게 채운다. 실제로
지난 10월 17일 판교 환풍구 추락사고 당시 <뉴스룸>은 해당 보도를 무려 70분 동안 진행했는데 대부분 현장에 출동한 기자들의 현장 스케치와 현장에 있었던 목격자들과의 통화로 채워졌다. 지금 가장 중요한 사건을 사건 현장에서 급박하게 전한다는 것. 이건 <뉴스룸>이 타방송사들과 차별화된 취재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해외의 ‘뉴스쇼’들처럼 박진감을 연출해내는
능력이 탁월하다고 말할 수 있다. 게다가 갖은 사회적 이슈들이 난무하는 작금의 현실에서 100분짜리 뉴스가 존재한다는 건 어쩌면 당연하다.
손석희의 <뉴스룸>이 새로운 바람을 일으킬지, 무모한 도전으로 회자될진 모르겠다. 공중파 뉴스의 시청률에 비해서
낮은 시청률을 보이는 종편 뉴스로선 모험처럼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뉴스룸>의 영향력은 이미 타방송사의 뉴스를 압도한지 오래다. 브랜드로서의 인지도가 중요하다. 게다가 당장 TV 앞에 앉아서 뉴스를 보지 않아도 <뉴스룸>엔 귀를 기울이는 사람이 많다. 시작한지 한 달이 지나지 않은 <뉴스룸>에 대한 평가가 심심찮게 들린다는 건 이미 <뉴스룸>이 어떤 식으로든 기류를 형성하고 있는 셈이다. 적지 않은 영향력이 감지된다. 지금 한국의 방송 뉴스는 손석희가
있는 뉴스와 손석희가 없는 뉴스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생각해 보면 처음 손석희가 JTBC의 보도국 사장직을 맡는다고 했을 때 많은 이들이 손석희를 의심했다. 하지만
지금 그 누가 손석희를 의심하는가. 지금 손석희를 의심할 수 있는 건 어쩌면 손석희뿐이다. <뉴스룸>에 대한 믿음도 거기에 있다. 손석희는 손석희를 배반하지 않을 것이다.
<카트>는 뜨거운 현실에서 잉태된 영화다. 뜨거움만으로 세상을 바꿀
순 없다. 부지영 감독은 알았다. 공감할 수 있는 온도의
언어가 필요하다는 것을. 영화가 공감의 언어일 수 있음을.
<카트> 개봉이 일주일 남았다
인터뷰를 하도 많이 했더니 이미 끝난 영화 같다.
여성감독으로서의 어려움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았을 거 같다
사실 틀린 말은 아니다. 요즘 대학교 영화과엔 여자가 더 많고 남자보다
성적도 좋다는데 현장 상황은 그렇지 않다. 분장이나 헤어, 의상
쪽엔 항상 여자가 많지만 조명, 촬영, 연출, 제작 분야는 반대다. 그런 걸 보면 남자보다 여자에게 주어지는 기회가
적은 건 맞는 것 같다.
제목은 처음부터 <카트>였나
시나리오 단계에서도 제목은 <카트>였다. 너무 딱딱한 제목이라 바꿔야 하지 않겠냐는 의견이 있었고, 몇 가지 제목을 생각해봤지만 더 나은 게 없었다.
카트는 영화 속에서 중요한 ‘변화’를 대변하는 도구이기도 하다
카트는 고객들이 쇼핑을 위해 이용하는 도구다. 마트 직원들 입장에선
카트가 일자리를 유지시켜주는 도구인 셈이다. 그래서 마트 직원들은 카트의 혜택으로부터 철저히 소외된다. 하지만 파업을 하고 마트를 점거하면서 카트는 저항의 무기가 된다. 카트의
쓰임이 변하듯 사람들도 성장하고 변화한다. 그래서 영화와 맞아떨어지는 제목이라고 생각했다.
2007년, 비정규직 보호법 실행 후 일어난 이랜드의 비정규직 대량해고에서 비롯된 파업이 주요한 모티프가 됐다던데
그렇게 알고 있다. 시나리오 각색 과정에서 다른 비정규직 관련 사례를
비롯한 다양한 사건들을 살펴보고, 1년 넘게 시나리오를 만졌다.
각색 과정에서도 추가적인 취재가 필요했나
보다
과거의 사건이 모티프가 됐지만 지금도 일어날 수 있고, 일어나는 일이니까
현재 상황에서의 리얼리티가 보강돼야 한다고 생각했다. 영화에 등장하는 ‘우린 항상 을입니다’란 스티커는 한 백화점의 직원 탈의실 벽에 붙어있던
것을 반영했다. 조직도를 직원 공간에 붙여놓음으로써 암암리에 실행하는 억압된 관리 체제도 보여주고 싶었다.
<카트>의 리얼리티는 사실적 묘사에 기반을 두고 있지만 실질적으로 이 세상이 원래 이렇다라는 잠재적 인식도 한몫을
거드는 것 같다
이미 대부분 알고 있는 내용일 거다. 굳이 꺼내서 얘기하지 않는 거지. 상업영화로서 의미가 있다는 건 그래서다. 거리감이 느껴지게 ‘비정규직’이란 단어로 설명하는 대신 영화를 보면서 내 처지가 될 수도
있다고 쉽게 공감할 수 있다. 영화를 통해 보다 쉬운 언어로 말할 수 있는 거다.
보고 나면 화가 나는데 우울하진 않아서
좋은 영화였다
화가 났다니 인물들의 정서에 깊게 공감한 것 같다. 선희(염정아)도 화를 내고, 태영이(도경수)도 화를 내니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매스컴을 통해서 이런 사건을 접하게 되다 보니 사람보단 사건을 보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감정이
움직이지 않는 거다. 하지만 영화는 사람으로 접근하니까 공감대가 달라진다. 나는 그게 <카트>의
강점이라고 본다.
소재의 심각함을 끌어안으면서도 대중성을
확보하는 게 관건이었겠다
맞다. 시나리오를 보고 나서 심재명 대표님을 만났는데 “<카트>를 작은 영화로 만들고 싶지 않다”고 하더라. 사실 독립영화로 이런 이야길 하면 약간 빤해 보이는 인상이
있고, 배급 상황도 열악해질 확률이 크다.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상업영화로 만들겠단 생각 자체가 멋있었고, 명필름이라면 가능할 거 같았다. 시나리오에 감동했다며 캐스팅에 응해준 배우들도 고마웠다.
배우들의 열연이 영화에 큰 공헌을 했다
빚을 많이 졌다. 눈빛이나 표정만 봐도 잘하려고 애쓰는 게 보였다. 격한 신들이 적지 않고, 겨울에 물대포도 맞았는데 자신들이 나오는
컷이 아니어도 옆에서 열심히 하더라. 40명 정도의 배우들이 한 장소에서 대기하고, 촬영하면서 진짜 유대감이 생긴 것 같다.
본격적인 파업 전후에 따라 카메라의 움직임이나
컷의 편집이 달라진다
전반부는 차분하게 보여주고 싶었다. 마트에서의 일상을 담담하게 보여주고
싶었다. 진상 고객을 응대하거나 연장근무 명령을 받거나 탈의실이나 휴게실에서 불합리한 처우를 받는 모습까지도. 그래서 파업 전까진 광각렌즈로 전체적인 풍경을 조망할 뿐, 카메라가
나서지 않는다. 후반으로 갈수록 인물들의 갈등이 표출되니 개개인의 심리를 드러내고자 망원렌즈로 접근했다. 사람들이 움직이면 카메라도 춤을 춘다. 계산대 점거 신에선 롱테이크로
전체적인 움직임을 쭉 훑었고, 공권력이나 용역과 대치하는 장면에선 컷을 많이 나눠서 격렬함을 드러내고
싶었다.
영화 속 마트는 세트였다던데
용인에 있는 물류창고인데 외관이 마트와 비슷했고, 내부 공간이 700평이라 적당해 보였다. 그리고 세트 현장과 15분 거리에 숙소를 마련해서 배우나 스태프 모두 출퇴근하듯 현장에 갈 수 있으니 편했다. 산 주변에 덩그러니 있는 곳이라 외부풍경은 다 CG로 만들었다. 영화의 반이 CG다.
대형마트의 협조를 얻기 힘든 영화일 거
같긴 한데, 혹시 시도는 해봤나
하긴 했다. 혹시라도 직원들 공간이나마 찍을 수 있을까 싶어서. 하지만 어떤 식으로든 촬영 시간 확보가 어려웠다. 지금은 24시간 근무 체제가 아니지만 폐점과 개점 사이에 쓸 수 있는 시간이 일곱 시간 정도에 불과해서 물리적으로 촬영이
힘들겠더라. 물론 시나리오를 보여줘도 좋아하지 않았겠지만.
엄마인 선희(염정아)의 각성이 아들 태영(도경수)의 각성을 이끌어낸다는 것이 이 영화의 핵심처럼 느껴진다
희망적인 메시지를 주고 싶었다. 엄마로 인해 발생하는 자신의 변화에
갈등하지만 끝내 엄마와 화해하고 성장하는 과정을 통해 이 영화가 희망적으로 느껴진다. 어떤 분들은 가난의
대물림이라고 말하는데 나는 태영이 엄마와 겪은 갈등과 화해가 어른이 돼서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실상 아무 것도 해결되지 않는 결말이 힘있게
느껴지는 것도 태영의 변화가 희망의 담보가 되는 덕분이다
동의한다. 해고된 마트 직원들이 부당함에 맞서 싸우길 결심한 건 사실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기 때문인데 결국 가족들과 갈등하게 된다. 그런데 아들인 태영이랑 화해하는
선희에겐 해피엔딩인 거다. 그 싸움이 어떻게 될진 몰라도 아들의 이해와 지지를 받는다는 게 중요하다고
본다.
모든 캐릭터에 존재감을 살리는 것도 중요했을
거 같다
그건 배우들이 너무 잘해줘서(웃음)……
사실 나는 도경수만 신경 썼다. 유일하게 연기 경험이 전무한 신인이었기 때문에 공을 들여야
했다.
<괜찮아, 사랑이야>에 캐스팅되기 전에 <카트> 촬영이 끝났다고 들었다. 연기 경험이 전무한 도경수를 캐스팅한 배경이 궁금하다
내가 캐스팅 과정에 관여한 건 아니다. 명필름에선 존재감 있는 인물이
이 역할을 맡아야 한다고 생각했고, 아이돌 캐스팅을 염두에 둔 오디션을 봤다. 캐스팅 디렉터의 안목으로 도경수를 선택했다. 사진으로 봤을 땐 감이
안 왔는데 직접 보니 기대감이 생겼고, 열정이 보였다. 뭔가를
말해주면 잘 받아들인다. 스폰지 같더라. 잘하는 척하거나
계산하지 않고 자신의 바닥까지 드러내며 최선을 다하니까 부족한 게 보이면 바로 말해줄 수 있었다. 그
친구를 대하는 게 수월했다.
<카트>의 결말은 <델마와 루이스>의 결말과 닮았다. 절망적인 형태의 결말인데 이상향으로 돌진하는
쾌감이 닮았다. 절망적인 상황을 체감하면서도 더 강한 의지를 품는 두 여자의 모습에서 버디무비의 특성이
느껴지기도 한다. 전작인 <지금, 이대로가 좋아요>를 비롯한 단편 연출작에서도 두 여자의 관계를
조명한 경우가 많았다
처지나 성격이 다른 여자들이 만나 특별한 관계로 거듭나는 과정에 대한 호기심이 있었다. 사실 가족도 가족이 아니면 같이 살 이유가 없는 사람들일 수 있다. 성격이나
행동도 다 다르고. 그래서 전혀 모르는 사람끼리 만나 유사가족이나 친구가 될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한다. 그런 관심이 모텔에서 만난 두 노동자나 아빠가 다른 자매, 같은
일을 하지만 생각이 다른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 이런 식으로 변주가 되는 것 같다.
관계에 대한 관점이 남다른 것 같다
사실 내가 잘 못해서일지도 모른다. 사람들과 사귀기만 잘해도 인생이
즐거울 텐데.
못한다는 게 어떤 의미일까
나이가 들수록 귀찮아진다(웃음). 사실
영화에선 쉽게 보여주지만 완전히 다른 사람하고 친구가 된다는 건 힘든 일이다. 유유상종이란 말이 왜
있겠나. 그 어려운 일을 영화 속에서 해내면서 희열을 느끼는 것도 같다.
단편 연출작인 <산정호수의 맛>의 주인공은 마트 노동자다. 소재면에서 <카트>와
동일하다
사랑이야기를 연출해 달라는 전주영화제의 제안에 응한 뒤 고민하다가 동네 마트 시식 코너에 있는 아주머니를 봤다. 손님이 없어서인지 멍하게 서있더라. 문득 그 분의 삶이 궁금해졌다. 그래서 마트 노동자가 주인공이 됐다. 우연이었지. 그런데 그 덕분에 <카트>를
하게 됐다.
심재명 대표가 추천했다던데
그 영화를 봤다고 하더라.
<카트>엔 지난 연출작들과 달리 역동적인 신이 더러 있다
파업 신에선 두 가지를 보여주고자 했다. 사람들의 이야기란 점에서
감정이나 정서를 잘 다뤄야 했고, 역동적인 투쟁 광경도 잘 묘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처음으로 무술감독이 있었던 현장이기도 했다. 최대한 다치지 않도록
몸싸움을 해야 하니까 합을 짜줄 무술감독이 필요했는데 개인적으론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게다가 김우형
촬영감독이 워낙 그런 신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서 많이 의지했다.
김우형 촬영감독은 남편이니까 논의도 편했을
거 같다
말을 많이 하는 편이 아니라서 그냥 믿었다(웃음).
개인적으론 다양한 연출 노하우를 습득할
수 있는 현장이었을 거 같다
지난 작품들에 비해 스케일이 큰 영화다. 스태프 수만 첫 영화의 두
배였으니까. 그래서 허덕인 측면도 있지만 전문적인 스태프들 덕분에 수월하게 작업했다. 배우들의 연기를 보고 컷, 오케이만 하면 나머지는 각각의 포지션에
있는 스태프들이 알아서 해결한다. 사전 논의를 거친 작업이라 해도 내겐 놀라운 경험이었다. 영화가 혼자 하는 일이 아니라 협업이란 걸 여실히 느꼈다.
혹시 최규석 작가의 웹툰 <송곳>은 봤나? <카트>와 유사한 관점을 지닌 작품이다
시나리오 각색을 마치고 촬영을 준비할 무렵 연재가 시작된 걸로 안다. 4회
정도까지 보다가 <카트>와 비슷한 장면이 나와서
깜짝 놀랐다. 그 뒤론 보지 않았다. 동일한 주제의식에서
출발한 작품이니 비슷한 국면이 있을 순 있지만 그 장면 자체의 느낌이 너무 비슷해서 영향을 받게 될까 봐 안 봤다. 이젠 봐도 되겠지. 작가님과는 인사를 나눈 적이 있었다.
이 기사가 나가면 아마 <카트>는 개봉 2주차일
거다
일단 손익분기점은 넘었으면 좋겠다. 어쨌든 많은 사람이 봤으면 좋겠다. 12세 관람가니까 12세 이상은 다 봤으면(웃음)? 그래서
우리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관심을 갖게 된다면 좋겠다.
(ELLE KOREA DECEMBER 2014 NO.266 'ELLE interview')
어떤 이의 죽음은 세상에 큰 구멍을 남긴다. 신해철이 죽었다. 세상에 구멍이 났다. 그 구멍으로 폭포처럼 언어가 쏟아진다. 한결 같이 그리움이 고이고
또 고인다. 깊고 너른 상실감 속에서 사람들은 신해철이 남긴 노래와 말을 유언처럼 되짚고 되새겼다. 신해철을 다시 읽는다.
JTBC에서 방영한 <속사정쌀롱>을 봤다. 1회였다. 신해철이
있었다. 웃고 있었다. 따라 웃다가 끝내 울컥했다. 죽은 신해철이 산 사람들을 위로하고 있었다. 실감이 났다. 타 들어가는 성냥의 끝자락을 보는 기분이었다. 정말 마지막이구나. 속이 쓰렸다. 신해철의 죽음을 전해 듣게 된 건 지난 10월 27일 저녁 무렵 방콕의 공항에서였다. 해외 출장에서 돌아오는 길이었다. 스마트폰으로 뉴스를 검색하다가
나도 모르게 ‘헉!’ 소리를 냈다. ‘속보’와 ‘신해철’과 ‘사망’이란 단어가
일렬로 나열돼 있었다. 전광석화처럼 달려든 비보에 어안이 벙벙했다. 그때
갑자기 천둥이 치고 폭우가 쏟아졌다. 비행기는 두 시간 연착됐다. 하늘도
우는 것 같았다. 거짓말 같은 소식 한가운데에서 거짓말 같은 생각만 떠올랐다. 다음날 집에 돌아와 신해철의 음반을 찾아봤다. 마치 깃발이 없는
깃대를 보는 기분이었다. CD 하나를 집어서 플레이 버튼을 눌렀다. 신해철은
노래했고, 나는 코끝이 시큰했다. 과거 <무릎팍도사>에 출연했던 신해철은 ‘욕을 많이 먹으니 죽지 않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유세윤의 말을 이렇게
받았다. “불노불사할 수도 있을 거 같아요!” 세상에 회자될
슬픈 농담 하나가 연착된 비행기처럼 뒤늦게 더해졌다.
신해철이란 사람을 알게 된 건 초등학교 시절이었다. 당시 그는 솔로
앨범을 낸 인기 가수였다. 대학가요제에서 대상을 먹은 가수이기도 했다.
나름 곱상한 외모에 커피잔을 들고 있는 사진이 커버로 쓰인 그의 1집 앨범은 초등학생이
보기에도 그냥 평범했다. TV에 나와서 노래하는, 잘 나가는
인기가수처럼 보였다. 그러다 2집 앨범 활동 중에 대마초를
피워서 경찰에 붙잡혔다고 뉴스에 나왔을 땐 어른들이 혀를 차는 소리를 들었다. ‘머리가 길고, 옷차림이 불량하고, 저럴 줄 알았지’란 식이었다. 그래서 어린 나이에도 왜 저렇게 됐을까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신해철이라는 가수를 좋아하게 된 건 조금 머리가 굵어진 중학생 시절이었다. 넥스트의 2집 앨범인
<The Being>은 내 인생에서 가장 처음으로 접한 명반이었다. 록이 뭔진
잘 몰랐고 그냥 넥스트의 음악이 좋았다. 그리고 가사를 정말 좋아했다.
그런데 20년이 지난 지금 내가 좋아했던 신해철의 가사를 보면서 그 당시 그가 내게 무슨 짓을 한 것일까 생각했다. “난 아직 내게 던져진 질문들을 일상의 피곤 속에 묻어버릴 수는 없어. 언젠가
지쳐 쓰러질 것을 알아도 꿈은 또 날아가네. 절망의 껍질을 깨고."
이게 열네 살짜리 중학생이 즐겨 부를 만한 노래 가사인가. 확실한 건 그의 언어가 학창시절부터
나를 움켜쥐고 흔들었다는 사실일 게다. 신해철은 항상 나 자신의 존재적 가치에 대해서, 나 자신이 취해야 할 삶의 노선에 대해서 노래했다. 나 자신이 어떻게
살아야 한다는 것에 대해서 잘 알게 됐을 때 그것을 방해하는 세상과 맞서서 자신을 지켜내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곤
직접 최전선에 서서 자신을 짓누르려는 사회의 편견과 맞서서 싸우면서도 스스로를 보존해낼 수 있음을 증명하는 사람이었다. 그건 선생님도, 부모님도 알려주지 않던 삶의 방식이었다. 오히려 선생님이나 부모님에겐 쳐다봐서도 안될 길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신해철은 기성세대에게 내 자식을 이상하게 물들이는 나쁜 친구 같은 취급을 받았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흔히 신해철을
독설가라고 말한다. 독설가는 ‘남을 해치거나 비방하는 모질고
악독스러운 말을 잘하는 사람’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신해철이
남을 해치거나 비방하는 모질고 악독스러운 말을 잘하는 사람이었단 말인가. 신해철은 항상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선 어떤 것이라도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이었다. 사람들이 기억하는 신해철의
독설이란 그런 자유를 억압하는 집단이나 힘을 향해 있었다. 불법 다운로드를 받았으면 음악적 평가를 ‘닥치라’고 일갈했고, 동방신기와
비의 노래를 유해매체로 지정하지 말고 국회를 유해매체로 지정하라고 주장했으며 사회적 환경 여건이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백수가 일방적으로 게으르다
비난받아선 안 된다고 충고했다. 정치, 사회, 문화 등 모든 분야를 막론하고 지성을 바탕에 둔 예리한 주관을 정확하게 빼 들었다. 말을 아끼지도, 몸을 사리지도 않았다. 불합리하게 권력을 휘두르며 개인의 권리를 억압하거나 집단의 논리로서 개인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에 대해서 결코
참지 않았다. 이를 테면 안정환이 경기 중 관중석에 난입한 것을 두고 스포츠 선수로서 팬에 대한 존중이
없다고 질타를 받을 때 그가 관중석에 난입한 것은 가족을 욕한 관중 때문에 참을 수 없었던 것이기에 그는 이를 지지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신해철의 언어는 미디어를 통해서 숱하게 왜곡 당했고 대중은 손쉽게 그 언어를 폄하했다.
반대로 그는
개인을 대상으로 말을 걸 땐 격려와 위로를 전하는 사람이었다. 흔히 독설이라 일컬어지는 그의 언어가
대부분 기득권의 폭력과 불합리에 맞섰다는 건 그에 억눌린 개인의 편에 선 목소리이기도 했다는 말이다. 그런
점에서 그의 말은 동일한 의지를 표명한 이들과의 연대이자 응원이며 위로였다. 트위터에서 음악을 한다는
후배가 세상을 살아가기 힘들다고 하소연하자 신해철은 이렇게 답했다. “세상을 바꿀 힘은 없어도 세상의
일부인 자신을 바꿀 힘은 있지 않겠냐.” 신해철은 강자에겐 강자의 언어로, 약자에겐 약자의 언어로서 대화를 나누는 사람이었다. 다만 이 모든
언어가 자신의 내면을 향한다는 점에서 그는 건강한 자아의 보존을 통해서 건강한 세계의 형성을 추구했던 이상주의자였다.
신해철은 넥스트를 해체한 뒤로 4년간의 영국 유학을 떠났다. 인기 절정의 밴드가 해체된 것도 아쉬웠지만 솔로 활동으로도 청사진을 그릴 수 있는 뮤지션이 홀연히 유학을 떠난다는
건 굉장히 기이한 일이었다. 하지만 프로그레시브 록과 메탈로 다진 음악적 아성을 뒤로 하고 영국에선
테크노 사운드를 파고 들었고, 끝내 ‘크롬(Crom)’이란 이름으로 발표한 앨범들은 상당한 음악적 역량을 과시했다. 그는
한 자리에서 안주하지 않고 꾸준히 정진하는 뮤지션이었다. 그래서
<백분토론>에 나간 것을 후회한다고도 말했다.
세간의 언어에 휘말리면서 음악에 집중하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참기 힘든 세상을
향해 말하고 또 말했다. “이 사회에 문제를 만드는 사람들은 그런 걸 겉으로 숨기고 쉬쉬하는 사람들이
만드는 거지. 얘기를 할 수 있는 사람들은 문제를 안 만들어요. 숨기는
사람들이 문제를 만드는 거예요.” 그런 목소리가 사라졌다.
어차피 누구나 죽는다. 모두 다 언젠간 사라질 운명이다. 하지만 누군가의 죽음은 어느 개인의
소멸이 아니라 어떤 우주의 상실이 된다. 신해철의 죽음이 그렇다. 신해철의 노래는 이 세상에 대한 고민이기도 했지만 결국 이 세상에 속한 나와 당신 자신에 대한
고민이었다. 그는 이 세상의 변화는 개개인의 변화에서 시작된다고 말했다. 그래서 신해철의 죽음은 존 레논의 죽음과 유사한 상흔을 남긴다. 세상에
메울 수 없는 구멍을 내는 죽음이다. 정당한 언어로서 세상의 부당함에 맞서고, 공정하지 못한 기준에 저항하고, 불합리한 윽박을 위트 있는 유머로
대항함으로써 위로와 용기를 줄 수 있는 노래와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언제나 드물고 귀하다. 귀한
사람의 죽음이자 귀한 언어의 소멸이다. 한동안 두문불출하다 6년
만에 <SNL코리아>로 카메라 앞에 선 그는 말했다. “여러분이 나를 못 본 사이에 나는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문장들을 찾아냈다고 생각한다. 딸이 아홉 살, 아들이
일곱 살일 때 들려주던 이야기를 스무 살에도 들려주고 싶다. 공부든 학교든 돈 못 벌어도 좋으니까 아프지만
말아라. 여러분도 마찬가지다.” 그런 그가 아픔을 호소하다
세상을 떠난 것이 벌써 여러 주가 지났다. 울컥함은 현저히 줄었지만 그의 노래와 말에서 느껴지는 절절함이
깊어져 땅이 꺼질 것만 같다. 그래도 어쨌든 산 사람은 두 발을 딛고 살아서 명복을 비는 수밖에 없다. 잘 가세요. 부디 음악만 할 수 있는 곳으로. 안녕, 마왕.
사전에도 없는 단어다. 족보가 없는 말이다. 하지만 어딘가 친숙하다. 예술영화라는 말보단 가볍고, 블록버스터보단 고상하다. 아트버스터가 대중에게 먹힌 데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지난 8월에 개봉된 <비긴
어게인>은 10월까지
330만 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하며 3개월간 다양성 영화 흥행 순위 1위를 수성해왔다. 다양성영화 중엔 최초로 세 자릿수 관객을 동원한
작품이다. <비긴 어게인>이 흥행에 탄력을 받게
된 시점부터 아트버스터라는 단어를 명명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아트버스터는 ‘예술성을 갖춘 블록버스터’라고 정의하는 신조어다. ‘아트’보단 ‘버스터’에 방점이 찍히는 인상이다. 올해 아트버스터라는 단어가 처음 등장한
건 지난 3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의 개봉 직전이었다. 그 이후로 아트버스터는 대단히 보편적인
용어로 빠르게 자리잡았다. 일찍이 2011년에 영화 <북촌방향>의 홍보과정에서 한차례 사용된 바 있었지만 올해만큼의
파급력은 없었다. 미디어뿐만 아니라 대중적으로도 널리 읽히고 발음된다.
<비긴 어게인>을 홍보한 올댓시네마의 김태주 실장의 말에 따르면 이렇다. “예술영화라고
하면 지적인 예술을 즐기는 소수 취향의 영화라고 느껴져서 거부감을 느끼는 관객들이 있다. 그런 거부감을
대중적으로 완화시켜주는 것 같다.” 그러니까 대중들의 입장에선 아트버스터라는 단어가 생각 이상으로 친근하고
쉽게 느껴진다는 말이다. 실제로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그녀>, <프란시스 하>,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 정원> 등 아트버스터라고
불린 영화들에게선 어떤 공통점이 발견된다.
“사실 완성도가 뛰어난 작가주의 감독들의 영화이긴 한데 주제가 가볍게 느껴지고, 표현방식이 예쁜, 소위 ‘달달한’ 영화들이 전반적으로 잘되는 분위기다.” 영화사 그린나래미디어의 유현택
대표의 말처럼 아트버스터라고 명명되는 작품들은 대체로 관객의 취향을 자극하는 경향이 있다. 이를 테면
전체적인 영화의 형태를 즐기는 것만큼이나 영화의 일부가 되는 소품들에 대한 소비 욕구를 자극한다. 그러니까
어떤 관객에겐 아트버스터를 본다는 건 소품숍을 방문하는 것과 유사한 행위가 된다는 말이다. 아기자기한
파스텔톤의 소품이 즐비하게 등장하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이나
미래적인 환경 속에서도 아날로그적인 감수성을 자극하는 온화한 색감이 인상적인 <그녀>는 그 단편적인 이미지의 취향을 소유한다는 것만으로도 일종의 만족감을 부른다. 게다가 아기자기한 디테일과 거창한 스케일은 시각적인 즐거움을 충족시킨다.
KT&G 영화사업팀 팀장 진명현은 아트버스터에 대한 소비 욕구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독립영화들은 저렴해 보여서 싫고, 상업영화는 평범해
보여서 싫은 관객이 존재했던 것 같다. 요즘 소위 아트버스터라고 불리는 예술영화가 그 영역을 잘 파고든
것 같다.” 결국 아트버스터를 본다는 행위를 통해서
스스로 특별해진다는 만족감을 즐기는 관객이 존재할 가능성이 있다는 말이다. 그런 의미에선 도시를 잘
묘사한 영화들의 성적도 하나의 관건이 될 것이라고 진명현 팀장은 말한다. “유명 감독이나
배우보다도 도시가 키워드인 거 같다. 제목에 유명한 도시 이름이 들어간 영화들의 흥행이 나쁘지 않다. 대표적으로 <미드나잇 인 파리>나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이 그랬고, <리스본행 야간열차>도 흥행했다. <프란시스 하>나 <비긴 어게인>도
영화의 배경인 뉴욕을 잘 보여준다. 해외 여행을 꿈꾸는 이들에게 이런 영화들은 낭만적으로 다가올 수
있다.”
SNS가 아트버스터의 열풍을 확산시키는 경향도 있다. 고급스러운 패션이나
라이프스타일을 과시하듯이 자신의 남다른 영화적 취향을 타인에게 전파한다. 영화적인 취향을 통해서 자신을
메이크업하는 거다. 예전에 비해서 영화를 많이 보지만 과거의 시네필과는 달리 진지한 영화적 비평에 심취하지
않는다. 그저 자신이 영화에서 발견한 이미지를 전시하고 음악을 공유하는데 집중한다. 영화에 등장하는 캐릭터나 소품을 활용한 머천다이즈 제작을 통한 마케팅이 활발해지는 것도 그래서다. 포스터와 스티커, 엽서는 물론 텀블러와 같은 제품을 만들어서 시사회나
이벤트를 통해서 배포한다. 저예산 마케팅을 추구해야 하는 다양성 영화들의 필연적인 결과물이기도 하지만
이를 소유하고 싶어하는 관객들의 취향을 적절하게 건드리는 전략이기도 하다. 유명한 셀러브리티나 오피니언
리더들을 대상으로 시사회를 하거나 게스트로 초대해서 관객과의 대화를 마련하는 이벤트가 잦아진 것도 유명인들의 취향을 공유하고 있다는 만족감을 부여한다.
“SNS의 전파속도가 빠른 만큼 어느 영화나 예쁘고 감각적인 아트워크나 감성적인 텍스트를 통한 마케팅이 선행적으로
이뤄지는 거 같다. 대체로 이런 방식은 20~30대 여성
취향에 정확히 적중하는 경우가 많다.” 유현택 대표의 말은 20~30대
여성들이 아트버스터의 주요한 관객층에 속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실제로 네이버의 영화 섹션에서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그녀>, <프란시스 하>와 같은 아트버스터 류의 영화들은 20대 여성의 호감도가 가장 크게 나타난다. 극장 환경의 변화도 주요하다. 과거와 달리 다양성영화를 상영하는 요즘의 예술영화 전용관들은 멀티플렉스 체인에 준하는 쾌적한 환경을 조성한다. CGV 무비꼴라주나 롯데시네마 아르떼처럼, 멀티플렉스에서도 예술영화
전용관이 확대됐다. 극장 환경에 대한 거부감은 남성보단 여성 관객에게 예민하게 다가올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선 바람직한 결과다.
“예전엔 50개
미만의 개봉관에서 상영되는 다양성영화 시장과 200개 이상의 개봉관을 지닌 상업영화 시장으로 분류됐는데
요즘은 100개 전후의 개봉관에서 상영되는 중간 시장이 형성되고 있다.”
유현택 대표의 말처럼 시장의 저변이 확대되고 있다. 이는 여러모로 반길만한 일이다. 다양한 취향을 배려할 수 있는 시장의 확대는 결국 전체적인 시장 규모를 확대시킬 가능성으로 이어질 수 있다. 다만 편식의 가능성은 경계해야 한다. 최근 아트버스터 열풍 속에서
영상미나 음악 좋은 영화를 찾는 경향이 많아졌다. 수입 경쟁이 심해지고 수입 단가가 치솟는 경향이 발생한다. 영화의 투자 비용이 상승할수록 손실 가능성도 높아진다. 이는 전체적인
시장성의 약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아트버스터는 여전히 불명확한 단어다. 그만큼 시장의 미래도 불확실하다. 확실한 건 새로운 시장을 발견했다는
것이다. 보여주고 싶은 영화를 보여줄 수 있다는 것, 보고
싶은 영화를 볼 수 있다는 것, 그건 양쪽 모두에게 중요한 일이다. 지금
아트버스터라는 단어를 발음할 수 있다는 건 그만큼 중요한 기회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