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화지'에 해당되는 글 141건

  1. 2010.12.13 군대가 트렌드냐.
  2. 2010.03.31 피렌체에 대한 단상
  3. 2010.02.21 목소리만 크면 해설하겠다.
  4. 2010.02.19 어른이 아이를 망친다.
  5. 2010.01.01 한 해가 갔다.
  6. 2009.12.26 편두통 2
  7. 2009.12.10 마감
  8. 2009.12.03 점과 선
  9. 2009.12.03 나는 잘 살 것이다. 1
  10. 2009.11.11 진정한 루저로 사는 법

군대가 트렌드냐.

도화지 2010. 12. 13. 00:16

군대가 트렌드다. 군필자 연예인들을 모아서 출연시키는 군바리 버라이어티가 만들어진단다. 연평도에서 죽어 나간 군인도 있고, 여전히 찜질방에서 절망적인 오늘을 버티는 현지 주민도 있는데, 엄한 놈들이 특혜는 죄다 보는 인상이다. 물론 가장 큰 스타덤은 보온병 출신의 안상수였지만. 한쪽에서는 군입대를 기피한 연예인에게 뜨거운 삿대질을 날리면서도 어느 한쪽에서는 금메달과 병역의무의 교체를 공식적으로 딜하도록 허하는 세상. 아닌 이도 일부 있지만 대부분은 입대를 지옥문처럼 여기면서도 막상 2년 정도만 삐대고 사회에 나오면 그 지난한 시간을 완장처럼 차고 목소리 키우는 골목대장들의 사회화 지론. 이 모든 것이 분단과 오욕의 역사가 낳은 21세기의 위험한 코미디. 북한이 우리의 주적이라는 사상 교육을 다시 확립하면서도 아랍에미리트에 원자로 수주해먹겠다고 해병대의 젊은 청년들을 수출하는 역설. 입대영장에 끌려들어온 청년들의 피를 경제적 이익 창출과 연결하겠다는 미필 국회의원들의 합리적 애국심. 대한민국, 젊은 아들까지 팔아먹고 흥하면 행복하겠더냐. 그렇게 살림살이 좀 나아지면 좋겠더냐. 자랑스러운 태극기 앞에 무궁한 영광을 바치는 건,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하는 건, 대체 누구의 자식들이더냐. 국회에서 레슬링하는 전투력은 전방에서 펼쳐보일 수는 정녕 없는 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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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민용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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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돌아왔다. 피렌체를 보고 왔다. 다녀 오니 남는 건 흩어져 나갈 기억과 그 기억을 조금이나마 붙들어줄 사진들이더라. 사진은 많이 찍어서 정리할 엄두가 나지 않고, 할 말도 너무 많아서 기록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 당장 급한 마감이 끝나면 적당히 여행기를 정리하고 사진도 정리할 생각이다. 그냥 버려두고 방치하기엔 큰 경험이었고, 좋은 시간이었다.

 

내 인생에서 피렌체의 두오모를 오를 날이 올 거란 생각은 한 적 없다. 현실은 때로 꿈꾸지 못한 것들을 이루게 함으로서 무언가를 꿈꾸게 만든다. 그런 날이었다. 어쨌든 나는 다시 내 삶이 놓인 곳으로 돌아왔고 다시 복잡하게 살 것 같다. 꿈 같은 시간은 지났고 난 다시 현실을 살아야 한다. 하지만 꿈은 유효하며 그 꿈이 있을 때 삶이 보다 나아질 수 있음을 알았다. 난 아직 어리고 짧은 사람이지만 이 짧은 여행이 내 자그마한 나이테의 동선을 조금은 넓혀주지 않았을까, 문득 기대하고 있다.

 

어쨌든 돌아왔다. 뒤늦게 새삼스럽지만 그렇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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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드 스케이팅 중계에서 제갈성렬의 해설 방식 때문에 적잖이 논란이 있는데, 개인적인 의견을 하나 던지자면 딱히 그 해설 방식이 좋은 편은 아니라고 본다. 해설자가 아니라 왠 응원단장이 중계석에 앉아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느낌이고, 때때로 응원을 강요하는 태도가 즐겁지 않다. 그 방식을 재미있게 관람하는 사람이 있건 없건, 말 그대로 해설이라는 전문성 안에서 뚜렷한 제스처를 보여주지 못한다면 해설자가 있을 필요가 무언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어느 집 안방에 앉아서 시청할 누군가와 다를 바 없는 소리를 한다면 딱히 해설자가 필요하지도 않겠더라. 어쨌든 소리를 지르고, 흥분하는 건 이해하겠는데, 그 놈의 잘 하고 있어요 레퍼토리 말고 뭘 잘 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말해야 하지 않겠나. 이런 식이라면 누구라도 목소리만 크면 해설하겠다. 해설자마다 저마다의 다양한 개성이 있을 순 있지만 지금 제갈성렬의 문제는 해설을 하지 않고 응원만 하고 있다는 점에 있다. 최소한 자신의 기능적 역할을 충족시킬 수 있고서야 감정적 사족을 덧붙이는 게 옳은 거 아닌가. 다 떠나서 망할 SBS중계부터 짜증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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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인터넷에 떠돌아다닌다는 모 중학교 졸업식 뒤풀이 사진을 봤다. 이를 건네 준 지인은 충격적이라 했다. 물론 충격적인 사건은 맞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딱히 그것이 비정상적인 일은 아니라 생각했다. 요즘 같은 시대에서 그런 일이 벌어졌다는 게 딱히 놀랍지 않다는 말이다. 아이들은 어른을 보고 자란다. 그리고 그 아이들이 보고 배우는 팔 할의 과정은 학교에서 이뤄진다. 교육적 현실이 비참할 때, 아이들의 현실은 끔찍해지고, 결국 우리 사회가 처참한 꼴을 면치 못한다. 요즘 아이들이라서 그런 게 아니다. 요즘 우리네 현실이 그래서 그런 것뿐이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는 고금의 진리처럼, 어른들의 나쁜 짓을 아이들은 그리도 쉽게 잘 배울 뿐이다. 상식과 윤리를 가르치지 않는 세상에서 아이들은 보다 비상식적이고, 비윤리적인 행동을 매우 자연스럽게 해나갈 것이다. 고로 당신이나 나는 혀를 차며 손가락질할 자격이 없다. 적어도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어른이라면 이를 보고 기막혀 하기 보단 슬퍼하는 것이 마땅하다. 그만큼 이 시대가, 이 사회가, 이처럼 슬프고 비참한 꼴로 돌아가는 것이다. 물론 이게 보편적인 정서는 아니겠지. 하지만 대부분의 병폐는 극단의 꼴로 드러나는 법이다. 우리 사회의 극단은 이미 갈 때까지 가고 있다. 그것이 당신과 무관하다고 생각할 때 이는 보다 처참해질 것이다. 당신과 무관하다 믿었던 그 사실이 언젠가 당신의 아들과 딸의 현실이 되어 그 처참한 상황을 직접 마주하고 싶지 않다면 보다 현명해져야 할 것이다. 어른들이 아이들을 망치고 있다. 부정할 수 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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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가 갔다.

도화지 2010. 1. 1. 00:57

모두 다 새해 복 많이 받길. 물론 새해 복은 셀프니까 각자 마음껏 챙겨 넣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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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두통

도화지 2009. 12. 26. 17:30

하루의 반나절을 누워있었다. 명확하게 머리를 반으로 가르고 왼편 측두부를 찌르고 들어오는 통증에 온전히 짓눌려 있었다. 편두통이 왔다. 간만이었다.

 

매우 어렸을 적이었다. 생애 처음으로 극장이란 곳에 갔던 날이었지. 가족 모두가 함께 손을 잡고 매우 건전한 <베어>를 보러 갔다. 하지만 내게 <베어>는 기억날만한 장면이 없는 영화다. 볼 수가 없었으니까영화가 시작된 직후안구부 주변을 비롯한 머리의 절반을 얼얼하게 만들 정도로 갑작스럽게 찔러대는 통증이 표피의 안으로부터 진동하듯 전해졌다. 엄마에게 매달려 징징거리다 가까스로 잠이 들었던 어린 나는 후에 눈을 떠보니, 통증의 소멸과 함께 <베어>의 그 명장면을 지켜볼 수 있었다. 곰이 사람에게 자비를 베풀던 그 감동적인 장면을 나는 맥락 없이 그 파편적인 이미지만으로 감상했다. 덕분에 내게 <베어>란 영화는 그 장면만으로 대변되는 영화가 돼버렸다. 긴 필름의 너비는 그저 숭고한 이미지 한 조각으로 남았다.

 

나중에서야 그 당시 내가 겪었던 통증의 실체를 알게 됐다. 불미스럽지만 편두통의 증상을 자각한 건 중학교 2학년 즈음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교실에서 수업을 들으며 칠판을 보고 있는데 칠판의 절반 정도가 잘 보이지 않기 시작했다. 흔히 말하는 전구증상, 그러니까 밝은 태양이나 전구를 봤을 때 눈에 남는 그 반짝이는 잔상 같은 것이 내 시야의 절반 가량을 덮어버리고 있는 거다. 내 눈이 이상하나 싶었지. 동시에 초점도 흐려지고. 그러다 잠시 후, 마치 안개가 개듯 그런 증상이 완연히 사라진다. 그리고 그때부터 시작이다. 왼편 안구 부근을 비롯해 좌두부 전체로 통증이 밀려온다. 마치 크레센도의 세기와 같이 퍼져나가기 시작하는데 단순히 뻐근한 느낌의 통증에서 어떤 무엇도 할 수 없게 만드는 무차별적 진통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일단 통증이 밀려오면 그 어떤 것도 할 수가 없다. 유일한 처방은 잠을 자는 것이다. 물론 그 파국적인 통증을 견디며 잠을 이루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그래도 잠을 통해 통증을 잊어야 한다. 어차피 그 통증이란 몇 시간 정도가 경과하면 잦아들게 돼있다. 오랜 경험이 알려준 지혜다. 문제는 잠을 이룰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인데, 통증이 점차 격해지며 잠을 이룰 가능성도 희박해지기 때문에 보다 필사적으로 잠에 매달리게 된다. 때때로 심각할 때는 메스꺼움이 느껴지기도 하는데 이건 일종의 멀미 증상과 비슷한 것이다. 두뇌에 가해지는 심각한 통증이 일종의 평형감각까지 마비시킬 정도로 대단한 탓이다. 어쨌든 가까스로 잠을 이루게 되면 성공이다. 그 이후에 잠에서 깨어날 때 즈음, 통증은 어느 정도 가라앉게 돼있다. 물론 그 후에도 그 날 동안은 몸에 힘이 들어갈 때마다 후두부에 날카로운 것이 찌르고 들어오는 듯한 통증이 엄습한다는 걸 느껴야 하겠지만.

 

오랜만에 편두통을 앓았다. 주기적으로 발생하는 건 아니지만 잊을만하면 아주 문득 찾아오는 불청객이 됐다. 그 전구증상이 눈앞에 나타날 때면 긴장될 수 밖에 없다. 그 통증도 통증이거니와, 지금 당장 하던 어떤 것이라도 손에서 놔야 함을 알기 때문이다. 덕분에 어제는 생각했던 일을 절반도 못했다. 지금도 약간의 통증이 잔상처럼 남아있음을 느낀다. 몸에 약간의 힘이 들어가거나 고개를 과하게 돌리면 불현듯 통증이 고개를 내민다. 고등학교 때부터 몇 년간은 월 단위로 주기적인 통증을 맞이해야 했던 기억이 난다. 전구증상의 전조가 나타나면 당장 하던 모든 걸 포기했다. 곧 지긋지긋한 통증이 조금이라도 더 커지기 전에 눈을 붙여야 한다는 것부터 자각해냈다. 다행히 지금은 잦은 일이 아니지만 아주 간혹 문득 그 통증의 실체를 느끼고 나면 여전히 그것이 지긋지긋한 일임을 알게 된다.

 

언제 갑작스럽게 날 쥐고 흔들지 모르는 편두통처럼, 내 삶도 언제 갑작스럽게 어디론가 튕겨 날아갈지 모르듯 흘러왔다. 지난 20대가 그랬고, 최근 몇 년간은 정말 예상 따위란 할 엄두도 날 수 없게 굴러온 기분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 그런 흐름들이 내게 결과적으로 좋은 방향을 향해 이어져왔다는 것이다. 오늘에 만족하고, 오늘에 충실하자 마음먹게 되는 것도 그런 현재 시제의 결과가 내게 있어서 어떤 어제보다도 중요하다는 것을 뼈저리게 깨닫고 있기 때문일지라. 학교에 대한 꿈을 접고, 공부에 대한 애착을 뒤로 한 채, 내게 그것이 어떤 기회가 될 것이라는 야심 따위를 품을 여유도 없이, 일단은 주어진 길을 징검다리 밟듯 따라오며 여기까지 왔다. 여전히 난 대단한 것을 이루리란 야망을 품지 못하고 있다. 내 주제도 알고, 내 능력의 한계도 잘 안다. 다만 난 내게 가능한 길의 끝까지 가보리라, 마음 먹고 있다.

 

세상에 길이 남을 훌륭한 사람이 될 필요는 없다. 다만 내가 쥐고 있는 것들만큼은 죄다 태울 수 있을 것처럼 살아보련다. 쥐고 있는 것이 얼마 많지 않다는 게 걸리지만, 적어도 그런 한 줌의 삶이라도 잘 쥐고 가야지. 최소한 지긋지긋한 고통에서 헤어날 수 없더라도, 내겐 보다 소중한 내일이 있을 거라는 믿음을 품을 수 있도록, 오늘을 걸어가야지. 내 남은 20대 마지막 1년은 내게 있어서 좋았던 시절이었노라, 언젠가 되새길 수 있도록. 어제보다 좀 더 나은 사람이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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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감

도화지 2009. 12. 10. 21:57

새로운 직장에 출근한지도 어느덧 일주일이 됐다. 첫 마감을 끝내느라 처음부터 정신이 없었고, 한편으론 흥미로웠다. 잡지라는 것을 만든다는 게, 에디터가 하는 일이라는 게, 이런 것이라는 걸 알았다. 물론 이번 마감에서 내 기여도는 미비하다. 급작스럽게 맡아서 써 내려간 원고가 있기도 하지만 본격적인 마감은 두 번째부터가 될 것 같다. 어쨌든 이래저래 현재로선 그런 새로운 경험들이 내게 좋은 자극이 된다고 느껴진다. 만나게 된 건 며칠 안됐지만 같이 일하는 선배, 후배도 참 좋은 사람 같아서 좋다. 무엇보다도 기회를 만들어준 편집장님께 감사 드리고 있다. 내 주변엔 나를 인정해주는 사람과, 나를 부추겨 주는 사람과, 나를 수긍해주는 사람들이 참 많다. 이제 와서 새삼 다시 한번 뼈저리게 느낀다. 그러니 난 열심히 살 것이다. 나를 위해서. 좀 더 나은 사람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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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과 선

도화지 2009. 12. 3. 07:02

연애는 엄두가 안 난다. 하지만 사랑은 하고 싶다. 연애를 하기 위해서 누군가를 만날 엄두는 안 나지만 누군가를 사랑하면 연애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누군가 나를 좋아해주는 사람이 생겼으면 좋겠다. 그래서 내가 그 사람을 좋아하게 돼서 사랑할 수 있다면 좋겠다. 딱히 겨울이라 그런 건 아니다. 아니, 그럴지도 모른다. 그냥 그렇다고 핑계를 대보자. 차라리 그게 낫겠다. 누군가에게 고백한다는 건 힘든 일이다. 뻥 차여 시퍼렇게 마음이 부어 오를까, 용기 내어 전한 마음이 냉랭하게 얼어붙을까, 이래저래 걱정스러운 일이다. 다들 사랑은 하고 싶다는데 정작 용기가 없어서 사람을 만나지 못한다. 호감에서 죽어버린 사랑이 어디 한둘이던가. 그건 너나 나나 마찬가지다. 용기 있는 자가 미인을 구한다는 말도 구라는 아닐 게다. 용기가 없으면 미인은 고사하고 여자 곁에 갈 수도 없지.

 

누군가 내 마음을 받아줄 사람이 있었고, 그렇게 쉴 마음이 있어서 안온했다. 지난 연애가 그랬다. 누군가로부터 마음을 주고 받는다는 것이 그런 정신적 포만감을 안기는 것임을 알지 못했다. 하지만 그만큼 뒤늦게 깨닫는 괴로움이 만만치 않았다. 재회를 반복하며 마음을 몰아치던 세찬 격량을 여러 번 겪고 난 후, 비로소 난 그 평온함을 인정하게 됐다. 그 잔잔한 평온이 날 살게 했다. 아이러니한 일이었다. 마치 지난 교감들을 부정할 것마냥 어느 순간 난 편안하게 그 이별에 안착하고 있었다. 믿을 수 없는 일이지만 그랬다. 연애도 칼로리를 소모하는 일이라고, 그만큼 피곤하고 피로해지는 일일 수밖에. 그 피로감에서 벗어난다는 걸 실감하던 순간에 이별이 가능해졌다. 날 죽일 것 같던 일이 날 살리는 일이 됐다. 조금은 허무했고, 조금은 안도했다. 혼자서도 살 수 있을 것 같아 난 조금 슬펐고, 조금 기뻤다.

 

누군가에게 사랑 받고 싶다. 아니, 사랑하고 싶다. 감정이 부딪히고 뒤엉켜 구르다 이내 나자빠져도 그게 참 좋은 일이었던 것 같다. 누군가 대화할 상대를 쉽게 찾을 수 없는 나이가 되어가면서 자신의 외로움을 무덤덤하게 누르며 어느 새 스스로도 가늠할 수 없는 기분으로 살아간다는 건 참 슬픈 일이다. 누구나 다 외롭다. 매한가지다. 다만 그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이리저리 손을 뻗어보는 사람이 있고, 그 외로움을 회피하려 스스로 움츠려 들어 그 마음을 감추는 사람이 있다. 난 쉽게 움츠려 드는 사람이다. 누군가에게 손을 뻗는 것이 어렵다. 그래서 이 나이 먹도록 이 모양 이 꼴로 살아왔다. 안다. 인정한다. 난 내가 세상 모든 것을 아는 사람처럼 군다는 걸 잘 안다. 그래서 그것이 날 외롭고 위태롭게 만드는데도 스스로 그것을 감추고 덧대려 허둥대면서도 정작 타인 앞에서 꼿꼿이 얼굴을 들고 살아가느라 애쓰는 인간이라는 걸 안다. 그게 자존심이라 믿었던 세월도 있었고, 그래야만 살 수 있을 것 같다고 믿었던 나이가 있었다. 하지만 이젠 아닌 것 같다.

 

세상에서 단 한 사람만 나를 사랑해준다면, 그리고 내가 그 한 사람을 사랑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할 것 같다. 외로운 일이다. 그 단 한 사람을 찾기란, 그리고 그 단 한 사람에게 마음을 열어주기란 참 쉽지 않은 일이다. 우린 점과 같은 존재다. 세상이란 단면 위에서 먼지처럼 흩날리며 살아간다. 그 한 점과 한 점이 만나 선을 이루기란 그만큼 쉽지 않은 일인가 보다. 하지만 이젠 선을 그리고 싶다. 날 이어줄 한 점이 필요하다. 날 이 한 점에서 구해줄 인연이 문득 그리워졌다. 이제 다시 선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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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를 그만 둔다. 정확히 말하자면 회사를 옮긴다. 무비스트를 떠나 새롭게 둥지를 틀 곳은 아쉐뜨 미디어에서 발간하는 비욘드다. 비행기를 타본 적 없는 촌놈이라 잘 모르지만 대한항공 기내지다. 투썸플레이스와 같은 커피점에서도 볼 수 있다. 나도 몇 번 거기서 봤거든. 개인적으로 기획이 좋은 잡지라고 생각했고 자료로서 소장해도 좋을 만하다 느낄 만큼 유심히 읽었던 기억도 여러 번이다. 주제 넘게 원고 청탁을 몇 번 받아서 원고료를 챙겨먹은 적이 있긴 한데 녹을 먹게 될 줄 몰랐다. 모든 것이 11월 중에 순식간에 이뤄진 일이라 반 허공에 뜬 기분도 없지 않다. 초현실적이었다. 제안이 오고, 면접이 이뤄지고, 절차를 밟아, 통보를 받은 뒤, 회사를 떠나고 새로운 회사로 들어가게 됐다. 그렇게 됐다.

 

정확히 2 10개월 간 머물렀던 직장을 떠난다. 이미 애초에 내가 처음 앉아 있었던 그 사무실로부터 여러 번 이사한 뒤지만 어쨌든 그렇다. 다사다난했던 직장이었다. 그래도 다들 말하듯 다행이다. 대부분 말하는 바에 따르면, 가장 어려운 시기에 들어와서 가장 잘 됐을 때 나간다. 그래, 그건 사실이다. 많은 일이 있었다. 그 중 많은 일을 만든 건 회사가 어려웠다는 사정이었다. 제대로 월급을 받기도 어려웠던 시절이 만만치 않게 이어지기도 했고, 한 때는 모든 걸 접을까 회의론이 일어나기도 했다. 사무실에 앉아있는 직원이 채 10명 남짓도 되지 않아 손을 호호 불만큼 한산함을 느끼기도 했으며 때론 사무실을 무겁게 짓누르는 침울한 분위기가 싫어서 좀처럼 사무실에 나가기 꺼려질 때도 없지 않았다. 어쨌든 다행이다. 내 덕분은 아니겠지만 최소한 버티는데 한몫을 거들었다는 생색이라도 낼 수 있게 됐다.

 

시원섭섭하다. 새로운 일에 대한 열망이 조금씩 자라기도 했고, 뭔가 반복적인 권태 속에서 자라나는 의심을 억누르기가 쉽지 않았다. 새로운 환경을 접한다는 건 그만큼의 긴장과 설렘을 유발하는 일이라 다양한 채널로서 내게 고무되는 일이다. 걱정조차도 새로운 경험적 자극이란 점에서 유효하다. 더욱이 날 믿어주는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 역시도 그만큼의 책임을 짊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유용하다. 무엇보다도 오프라인 잡지를 만드는 일원이 된다는 사실 자체가 새로운 경험이 될 터이니 개인적으론 좋은 기회라 생각했다. 지금 이 정도 경력 즈음이 새로운 환경을 받아들이는데도 무리가 없는 시기란 점에서도 분명 좋은 시점이라 생각했다.

 

첫 직장에서 많은 사람을 만났고, 떠나 보낸 적은 있었지만 내가 떠날 입장이 되리라 생각해 본적은 많지 않았다. 아니, 불과 정확히 1년 전 그럴만한 계기가 있었지만 어찌하다 무마된 뒤로 예상치 못했던 사안인 건 분명하다. 이별이라는 건 참 아쉬운 일이다. 딱히 많은 교감을 이룬 건 아니지만 매일 같이 그 자리에서 마주 보던 대상과의 익숙함을 잊는다는 건 여러 모로 섭섭한 일이다. 글쎄다. 내 빈자리에 쾌재를 부를 누군가가 있을지는 모를 일이다. 하지만 고생했다는 한 마디로 인사를 던지며 아쉬운 표정을 남기는 이들의 얼굴을 거듭 마주하다 보니 주제넘은 대접을 받는 것 같아 머쓱하기도 하고, 한편으론 지난 세월에 대해서 수긍할 수 있겠다 싶어서 마음이 놓였다. 적어도 누군가에게 민폐 끼치며 살진 않았던 것 같다. 잘나지 못해서 아쉬웠던 적은 스스로 많았다. 다만 적어도 못난 꼴은 남기지 않았나 보다. 그게 다행이다.

 

회사를 떠나던 날, 자리를 정리했다. 내 다음 사람에게 물려줘야 할 자리에서 최대한 내 흔적들을 지워나갔다. 컴퓨터 휴지통마저 정리했다. 책상에 내려앉은 먼지도 닦아낼 수 있는 만큼 닦아냈다. 누구라도 내 빈자리를 채우지 못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뒤에 올 사람을 위해 지난 사람이 해줄 수 있는 건 그 사람의 흔적 따위를 느끼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떠나는 사람은 그대로 사라지면 된다. 남은 건 남은 사람들의 몫이다. 그게 한편으로 후련하다. 무비스트에서 머물렀던 동안, 난 너무나도 많은 부분에 참견했고, 그만큼 스트레스를 키우다 끝내 포기하거나 싸워대다 이래저래 심산이 무너지곤 했다. 한편으로 그 모든 문제들로부터 달아나는 기분도 들지만 이젠 상관없다. 내가 좋아하던 이들과 그런 공적인 사안으로서 얼굴을 붉히고 화해해야 한다는 건 여러모로 괴롭고 고된 일이다. 새로운 직장에선 어지간하면 말을 아끼련다. 보다 체계가 철저한 곳이라면 좋겠다. 그래야만 내가 편해질 것 같다.

 

내일 당장 새로운 직장으로 나간다는 것도 믿기지 않는다. 이러다 다시 예전 직장으로 버스를 타고 가다 뒤늦게 정신을 차릴지도 모르겠다. 내일 출근하면 바로 마감에 투입된다. 다음주까진 정신이 없겠지. 긴장된다. 그 긴장감이 좋다. 그 긴장감 덕분에 설렘도 동반되는 기분이다. 어쨌든 회사를 떠나 집으로 돌아오는 기분이 묘했다. 샤워를 하다 조금 울었다. 그 눈물의 의미는 나도 모르겠다. 마음이 따뜻했다. 잘 가라는 인사도, 잘 됐다는 축하도, 아쉽다는 찡그림도, 하나같이 애틋한 것이라 뒤늦게 견디기 어려웠다. 난 아직도 어리고 한참 모자란 인간이다. 하지만 덕분에 지난 2 10개월 동안 사람 구실하고 살았다. 그리고 예기치 못한 또 다른 계기를 얻었다. 그러니 난 앞으로 더욱 열심히 살겠다. 누구를 위해서 산다는 말은 아니다. 다만 그 누군가를 통해 이뤄진 내 삶을 난 좀 더 소중하게 아끼겠다. 그러니 난 잘 살 것이다. 고마웠다. 당신들이 날 잊더라도 난 그 마음을 잊지 않고 살아가겠다. not forget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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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민용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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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놓고 말하면 피차일반이다. 키 작은 남자가 루저라는 어느 여대생의 발언이나 공공연하게 못생긴 여자를 까대는 어느 남자들의 키득거림이나 천박하긴 매한가지다. 문제는 그것이 어디서 발언되느냐의 차이에 있다. <미수다>에서 떠들어댄 그 여대생의 문제는 자기가 지금 누구 앞에서 떠들고 있는가를 망각하고 있었던데 있다. 제 친구들과 콩다방이든, 별다방이든, 제 방구석에서 전화기를 붙잡고 있던 상황이든, 이럴 때는 어떤 말을 해도 상관이 없었을 게다. 루저니, 혹은 좆병신이니 해도 상관없다. 그건 잡담이고, 농담이고, 뻘소리고, 개소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국으로 방송되는 공중파 TV카메라 앞에 앉아서 쏘쿨하게 키 작은 남자들은 루저라고 떠드는 순간, 그것이 솔직한 생각이었건, 방송국PD가 시켜서 날린 뻐꾸기였건, 제 얼굴에 평화의 댐에 고인 구정물을 방류하는 짓이나 다름없는 셈이다. 한 마디로 생각이 없다. 하지만 그 여대생만 생각이 없어서 그런 말을 한 것이냐. 생각해보자. 도대체 그 놈의 글러먹게 쏘쿨한 솔직함은 대체 누가 훈육한 것이냐. 걔가 특별히 잘나서 혼자 그런 생각을 했을까. 내 말은 아니올시다. 그러니까 까놓고 말해서 그게 일반적인 사회적 풍경의 한 단락 아니더냐. 성형한 년 싫다는 남자들도 일단 착한 얼굴과 몸매 앞에선 질질 싼다. 여자라고 질것이냐. 그러니까 흥분하지 말자. 그 여대생의 잘못이라면 좀 멍청했다는 것뿐, 그 솔직함이 비단 그 여대생뿐만의 천박함이던가. 에라, 이 쌍년아, 하고 손가락질할 필요는 없다. 그냥 그런 썅년을 만나서 혹하지 않을 정도의 눈썰미를 기르고, 심미안을 키우시라. 그것이 당신이 썅년이라 손가락질하는 그녀를 진정한 루저로 만드는 길일 테니. 만약 그걸 못하면 정말 너야말로 평생 루저로 사는 거야. 네 방구석에 쳐박혀서 딸딸이나 치다가 쫑나는 인생인 게지.

 

그나저나 시발, 요즘은 대학교 학비도 비싸다는데, 대체 뭘 하고 다니는 거냐. 개념이라도 좀 어떻게 안 되겠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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