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 오전 11시 30분, 강남구 신사동의 에브리싱 노래연습장에서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주재로 ‘음악산업 진흥중기 계획발표’가 개최됐다. SM엔터테인먼트에서 운영하는 멀티플렉스 공간이라고 했다. 대중음악산업에 관련된 다양한 인사들과 취재진을 수용하기에 장소는 비좁아 보였다. 이 자리에서 유인촌 장관은 “미국 빌보드차트와 견줄 만한 한국 대중음악(K-POP) 차트와 미국 그래미상 같은 대중음악 시상식을 만들겠다.”고 공언했다. 공신력 있는 음악산업 기본통계를 마련해 이를 바탕으로 보다 공정하고 투명한 심사시스템이 구축된 대중음악시상식을 개최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통해 국내음악산업의 권위를 높이고 한류를 재점화하겠다고 천명했다.
비주류 음악산업 지원정책안 발표가 뒤따랐다. 우수신인을 발굴해 각종 방송과 음악 페스티벌에 연계시키고 후원하겠다는 내역이다. 상암동 콘텐츠홀을 리모델링해서 대중음악전문공연장을 구축하겠다는 계획도 공개됐다. 현재 리모델링이 진행되고 있는 올림픽홀은 차후 대형공연장으로서, 상암동 콘텐츠홀은 인디나 신인 뮤지션을 위한 공간으로 전용화시키겠다는 구상이다. “향후 5년간 국고 1275억을 투입해서 지난 해 8440억 원이었던 국내 음악시장을 1조 7천억 단위 규모로 성장시켜 세계 10권 음악시장으로 도약시킬 것” 유인촌 장관은 당당한 포부를 밝혔다.
같은 날 오전 10시 30분, 한국언론프레스센터 기자회견장에서 한국대중음악상 수상 후보와 개요를 발표하는 기자회견이 있었다. 음악평론가와 전문기자, 교수 등 52명의 선정위원단의 심사로 선정된 수상후보작들이 공개됐다. 올해로 6회를 맞이하는 한국대중음악상 시상식은 26일 저녁 7시 건대 새천년홀 대공연장에서 거행될 예정이었다. 이지선 한국대중음악상 사무국장이 문광부 담당자로부터 소식을 전해들은 건 지난 18일이었다. 지원금이 축소되거나 지원 자체가 철회될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하루가 지난 19일, 문광부 담당자는 지원금 전달이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전했다. 시상식 예정일을 불과 일주일 앞둔 시점이었다.
소신주의
한국대중음악상은 문화연대와 문화일보의 공동주관으로 시작됐다. 당시 선정위원 중 한 명이었던 문화일보 문화부 기자가 문화일보 사업부를 설득해 광고수익을 지원하는 형태로 한국대중음악상의 재정을 마련했다. 하지만 대안적인 시상식을 모토로 둔 대중음악시상식이 언론사의 산하에서 행사를 거듭한다는 것에 대한 내부적 이견이 발생했다. 대안적 취지가 중요하다는 판단이 내려졌다. 독립된 단체를 설립해 행사를 진행시키고자 했다. 하지만 상업성과 타협하지 않는 방식으로 재정확보를 충당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가장 좋은 방식은 정부의 지원을 요청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통로가 없었다. 문화예술위원의 문예진흥기금이나 서울문화재단의 시민활동공모사업은 시민 예술 활동을 지원하는 정책이다. 기획단체인 한국대중음악상은 대상이 될 수 없다. 상시적이지 않은 시상식은 지원요건이 없다. 하지만 2회까지의 경력을 담보로 선정위원장을 비롯한 선정위원 몇 명이 문화산업부 국장을 찾아가 설득했다. 결국 3회부터 5회까지 3년에 걸쳐 문광부의 지원이 이뤄졌다. “교부신청서는 사전에 어느 정도 지원에 대한 약속이 이뤄지지 않고선 제출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임의적인 요청이 아니라 사전 신청에 대한 합의에서 비롯된 행정상의 절차다. 3년 동안 그 과정을 거쳐 지원을 받았고 올해 역시 작년 12월부터 지속적으로 지원 규모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 이지선 사무국장의 말이다.
문광부 담당자는 한국대중음악상 사무국에 지원불가에 대한 이유로 핵심 사업 추진에 따른 예산 부족 때문이라 설명했다. 이 사안이 언론에 전해지자 기자들의 문의와 국회의원 질의가 문광부에 이어졌다. 한국대중음악상 사무국 쪽에서 지원금 교부 신청이 늦었고 그에 따른 행정절차가 늦어져서 지원이 불가능하게 됐다는 문광부의 입장이 보도를 통해 전달됐다. “우리도 기사를 통해서 알게 됐다. 하지만 교부 절차는 예년과 다를 게 없었다. 오히려 올해는 예년보다 빠른 편이었다.” 당초 사무국은 예년처럼 3천 만원 지원을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1월 중, 잘하면 5천 만원까지 지원이 가능할지 모르겠다는 문광부 담당자의 귀띔을 듣고 1월 말, 5천 만원으로 금액을 맞춰서 지원금 교부 신청서를 제출했다. 그러다가 다시 5천 만원까진 어렵겠다는 말이 돌아왔다. 그래서 2주가 지난 2월 10일경에 3천 만원으로 금액을 낮춰서 재교부 신청을 했다. 하지만 19일까지 통장은 채워지지 않았다. 이지선 사무국장은 말한다. “나라 예산이 어떻게 기획되고 운영되는지 일일이 알진 못해도 작년 말부터 어느 정도 예산편성에 대한 논의가 있었고, 지난 3년간 지속됐던 지원이 이렇게 단 시일 만에 끝날 수 있나.”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장을 맡고 있는 김창남 성공회대 교수는 말한다. “정책 방향을 떠나서 인간적인 기본 예의에 대한 문제 아닌가. 3년 전부터 지원이 이뤄진 만큼 우리 측도 그 예상에 맞춰 관례대로 준비해온 부분이 있고, 실무진 차원에서도 어떤 문제가 없을 거란 판단이 있었기에 느닷없는 통보가 당황스러울 수 밖에 없지 않겠나.” 올해 한국대중음악상 사무국은 문광부 지원금 3천 만원과 네이버의 후원금 2천 만원을 더한 5천 만원 가량의 시상식 비용을 예상했다. 그에 따라 시상식 행사로 예정된 건대 새천년홀 대공연장 대관 선금을 지불했고, 예산에 맞춰 트로피 재질을 결정해 제작이 이뤄졌으며 기념음반제작도 이미 마친 상태다. 이미 2천 만원 가량의 비용이 지출된 상태에서 문광부 지원금이 사라진 셈이다. 네이버의 지원은 후원 형태로 이뤄진다. 하지만 조건이 있다. ‘규모와 격식이 있는 시상식이 전개될 때’라는 전제가 붙는다. 음악전문방송사인 ‘엠넷(M.NET)’의 녹화중계도 예정돼 있었다. 하지만 건대 대공연장 대관이 물 건너간만큼 방송 여부도 불투명해졌다. 선금은 지불했지만 문광부 지원 철회로 잔여금의 지불이 불가능해졌다. 결국 대관은 커녕 선금조차 눈먼 돈이 됐다. 네이버 후원금도 반토막이 났다. 없는 살림이 더욱 팍팍해졌다.
문광부의 최성훈 전략컨텐츠산업과 주무관은 이같이 말한다. “예산 수립 과정에서 3천 만원 정도의 단위까지 세세한 예산의 집행이 결정되는 건 아니다. 분야별로 덩어리 단위로 결정돼서 수립된 뒤 부서로 넘어오면 부서별로 집행 금액이 산정되기도 한다. 3천 만원 정도 단위는 과장 선에서 임의적으로 결제를 결정하는 수준이다. 한 마디로 매년마다 집행에 대한 여부가 결정되는 거지, 이미 예정된 바라는 건 없다. 한국대중음악상 역시 지원 결정 후 철회된 게 아니라 검토 중 최종적으로 불가하다는 판단이 내려진 것뿐이다.” 한국대중음악상 지원금액에 대한 결정은 문광부 전략컨텐츠산업과의 자율반사적인 정책이란 셈이다. 대뇌의 지배로부터 어느 정도 자유롭다. 하지만 대뇌의 변화는 신경계 전체에 영향을 준다. 한국대중음악상 지원이 약속된 건 이전 참여정부 정권이었다. 5회 시상식이 열렸던 작년 2월 역시 참여정부의 마지막 임기였다. 이명박 정권이 들어섰다. 정책의 변화가 있다는 의미다. 자율신경계에도 이상조짐이 생기기 마련이다. 예년과 같이 조건반사처럼 대응했던 한국대중음악상 사무국은 뒤통수를 맞았다. 특별한 이상징후를 발견할 수 있었던 것도 아니다. 공교롭게도 유인촌 장관의 ‘한국의 그래미’ 발언 역시 한국대중음악상 기자회견이 있던 4일에 이뤄졌다.
문광부는 형평성을 맞추기 위해 골든디스크 시상식도 지원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골든디스크와 한국대중음악상은 체급이 다른 행사다. “골든디스크는 일간 스포츠를 비롯해 기업들의 전폭적 지원을 받는다. 대중음악시상식은 민간단체가 주도하는 시상식이다. 법인도 아닌 단체다. 두 시상식의 지원 철회가 형평성 있는 정책으로 내세워진다는 건 재벌과 서민에 대한 복지 철회를 동등하게 여기는 것과 다를 게 뭔가.” 대중음악평론가이자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인 김작가의 말이다. 골든디스크 공식 홈페이지만 봐도 한국대중음악상과 차이가 확연하다. 스폰서 목록만 봐도 확실하다. 노는 물이 다르다. 두 시상식은 엄연히 목표가 다르다. “한국대중음악상은 기존 방송 매체의 대안적 성격을 지닌 시상식이니만큼 상대적으로 매체들은 방어적 자세가 강해질 수 밖에 없다. 기존 방송들의 지원은 어렵다고 볼 수 있는 셈이다.” 김창남 교수의 말처럼 한국대중음악상은 기업들의 선전효과가 극대화될 수 있는 행사가 아니다. 이지선 사무국장은 말한다. “스폰서기업을 적시해줘야 지원이 쉽다. 기업입장에서는 자신들의 기업명을 딴 xxx상이란 시상식이 거행되는 걸 바라지 않겠나.” 한국대중음악상의 소신으로선 타협할 수 없는 부분이다.
시장주의
지난해 말, 문광부에서 구성한 자문위원단의 ‘음악산업 진흥중기 계획’에 대한 정책적 자문이 있었다.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 중 한명인 박준흠 가슴네트워크 대표가 그 자리에 있었다. “그저 예산수립을 위한 자문일 뿐이다. 시간 소요도 2시간 가량에 불과하다. 예산이 깎일 수 있다는 전제하에 자문이 이뤄진다. 확정안이라기 보단 기획재정부로 들어가기 전 단계 내역에 불과한 셈이다. 어쨌든 그 당시 비주류 음악 지원 정책은 2가지로 명시됐다. 비주류 음악 시상식, 즉 한국대중음악상과 인디 음악에 대한 지원이다.” 예산 편성을 위한 과정에서 한국대중음악상에 대한 고려가 있었다는 말이다. 결제과정에서 배제됐다는 건 결국 상위 단계에서 정책적 고려가 배제됐을 가능성이 있음을 의심케 한다. 문광부 전략컨텐츠산업과의 장치영 사무관은 말한다. “한 가정의 가족은 가장의 결정에 따라야 하는 법이다. 장관이 ‘선택과 집중’을 위해 정부의 통합 시상식을 지원한다고 했다. 그 이상의 설명이 필요하나.”
선택과 집중의 방향은 아직 구체화되지 않았다. 하지만 ‘음악산업 중기진흥 계획발표’에서 눈에 띄는 핵심사업이 있다. 유인촌 장관이 발표한 정책의 골자는 크게 두 가지다. ‘한국의 그래미상 신설’과 ‘비주류 음악산업 지원정책안’, 하지만 후자보단 전자가 눈에 들어온다. 해외방송 연계 인디뮤직 홍보지원이나 우수신인 뮤지션 선정 및 지원, 대중음악 활성화 지원은 이미 지난 정부에서부터 이어져오던 것이다. “모 국회의원 보좌관을 통해 계획안을 전달받아서 원문을 봤다. 사실 인디 씬이 주목 받던 90년대부터 시행됐던 정책들과 큰 변화는 없는 내용이다. 인디 레이블 지원사업이 이미 아티스트 지원 형태로 변형된 것도 재작년이다. 우수 신인을 발굴해 방송이나 페스티벌 무대에 진출시킨다는 것도 예전 정책이다. 명칭만 변했을 뿐 개선안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더라. 사실상 인디 지원은 구색맞추기에 불과하고 시상식과 차트가 핵심사업처럼 보인다.” 이지선 사무국장의 말이다. 새로운 정권에서 비주류 음악산업 지원정책은 큰 변화가 없다는 말이다.
큰 변화는 시상식과 차트에 있다. 물론 인디 지원 정책 중 전문공연장 구축도 눈에 띄는 대목이긴 하다. 그러나 플럭서스 뮤직 김진석 이사는 말한다. “솔직히 댄스음악 일색의 아이돌 그룹에게 전문공연장은 절실하지 않다. MR틀어놓고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건 대형홀에서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런 아이돌 가수를 옆에 세워둔 채 그래미를 발언하고 대중음악인을 위한 전문공연장을 언급한다는 건 어딘가 이상하지 않나.” 새로운 정권의 정책 추진력이 새로운 정책에 실릴 것이란 예측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한국의 그래미와 공인차트는 음악산업 진흥을 위한 MB정권의 핵심 탄환인 셈이다. 김진석 이사는 말한다. “일단 흥미롭긴 하다. 다만 중요한 건 지금 유인촌 장관 옆에 누가 있느냐가 아닐까. 그날 보도된 기사 사진을 보니 SM가수 몇 명이 함께 서 있더라.” 김작가 역시 비슷한 맥락이다. “장관이 발표한 장소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SM 엔터테인먼트에서 운영하는 노래연습장에서 그런 발언이 나왔다.” 장소 섭외에 관여했던 한국문화콘텐츠 진흥원의 관계자가 말했다. “호텔 연회장이나 문화부 5층 회견장, 상암동 문화콘텐츠센터, 멜론 악스홀 등 장소에 대한 다양한 고려가 있었다. 그러다 산업적 현장에서 행사를 진행하자는 중론이 있었다. 공연장도 좋지만 음원의 소비가 이뤄지는 사업장이 괜찮지 않을까라는데 의견이 모였다.” 대중음악의 산업적 현장으로 채택된 장소가 노래연습장이라는 의미다. 현정부가 문화적 정책을 바라보는 시각이 도출된다. 창작보단 소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시장주의자의 눈이다.
“한국연예제작가협회와 한국음원제작가협회 주관 하에 정책이 기획된다는 말을 들었다. 음반산업관계자 가운데 메이져 기획사 위주로 참여도가 높아질 가능성이 크다.” 김작가의 말처럼 지난 달 4일, 유인촌 장관의 정책발표가 있었던 노래연습장에선 이덕요 한국음원제작자협회장, 지명길 한국음악저작권협회장, 정광태 연예제작자협회 부회장 등과 같은 유관 단체장과 김영민 SM엔터테인먼트 대표, 양민석 YG엔터테인먼트 대표, 정욱 JYP엔터테인먼트 대표 등과 같은 메이져 연예기획사 대표가 모습을 드러냈다. 정책발표의 맥락은 상하를 염두에 둔 것이나 실질적으로 적극적인 기대효과를 드러내는 건 상층부에 불과하다. 김작가는 말한다. “DJ정부나 참여정부 시절부터 문화산업에 대한 정부의 관점은 산업적 골자에 불과했다. 항상 수출산업의 기반으로 문화를 규정하니 그 끝에 역점을 두는 건 한류다. 이번 정권도 다를 게 없어 보인다.” 장관의 계획 발표가 있었던 당일, KTF뮤직의 주가가 상승했다. 음원시장에 대한 수요를 전망한 투자 움직임이 관측된다. 시장주의자들이 기대심리가 탄력을 얻고 있는 셈이다.
정책주의
한국대중음악상은 당초 ‘엠넷’에서 중계 녹화가 예정돼 있었다. 후원의 형식으로 참여한 덕분에 중계권료는 지불하지 않는 형태로 사전협의가 이뤄졌다. 지금까지 ‘엠넷’은 무대 연출까지 참여했던 1회 시상식을 비롯해 한국대중음악상 시상식을 중계를 3번 치른 전력이 있다. 이지선 사무국장은 말한다. “어차피 공중파 방송은 어려울 수 밖에 없다. 그나마 시상식과 취지가 어울린다고 판단되는 EBS에 타전해본 적은 있다. 작년엔 OBS 주철환 사장이 의지를 표명해서 중계되기도 했다. 올해도 원래 ‘엠넷’에서 3월 방송 편성이 약속돼있었다. 하지만 시상식 규모가 축소되면서 일단 유보된 상태다.” 한국대중음악상이 중계 형식의 후원을 ‘엠넷’에 요청했다. 그리고 ‘엠넷’은 이를 수용했다. “이 시상식은 아직 자리를 잡지 못한 케이스다. 하지만 규모와 상관없이 의미가 있다고 판단했다. 동네 강당에서 하더라도 녹화를 위해 나갈 의향이 있다. 우린 음악 전문 방송국이다. 우리마저 공중파처럼 편협하게 메인스트림을 지향한다면 음악적 다양성은 살아남을 수 없다.” 홍수현PD의 말이다. “한국대중음악상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다는 판단도 있었다.”는 문광부 관계자의 의견과 대조적이다. 현장의 의견과 탁상의 의견이 배치된다. 그러나 결정권은 탁상공론을 통해 행사된다.
한국대중음악상은 대안적인 시상식인만큼 기존의 시상식들과 다르게 인디뮤직과 다양한 장르의 음악들을 수상 내역에 포섭했다. 평론가들의 잔치라는 일부 비판도 있었지만 메인스트림과 인디펜던트의 가교 역할로서 역할을 다져나가고 있다는 중평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 조금씩 영향력이 발생하고 있다는 의미다. 문광부는 인디음악 지원사업에 대한 정책을 추진 중이다. 그럼에도 한국대중음악상은 단지 민간단체의 시상식이기 때문에 지원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일반사업자들의 문화관련지원 문의가 매일같이 들어온다. 한국대중음악상만 배려하기 어려운 입장이다.” 최성훈 주무관의 말이다. 현재 국내대중음악시상식 중 주요행사는 4가지로 꼽을 수 있다. ‘하이원 서울가요대상’과 ‘MKMF 뮤직 페스티벌’, ‘골든디스크 시상식’, 그리고 ‘한국대중음악상’이 이에 해당된다. 이중 상업적인 후원과 거리를 둔 시상식은 ‘한국대중음악상’이 유일하다. “상업성과 거리가 있는 의미 있는 행사일수록 정책 지원이 필요하다. 대중음악산업의 주류 업계와 접근성이 높아진다면 얼마나 공정하고 의미있는 시상식이 거행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김창남 교수의 말처럼 ‘객관적인 음악적 성취를 평가하는 시상식’으로서의 가능성에 가장 근접한 것이다.
홍수현 PD는 말한다. “그래미나 한국 고유의 차트를 만드는 것도 좋지만 현재 우리나라 음반업계 현실을 좀 더 명확히 살펴야 할 필요가 있는 게 아닐까.” 차트가 원활히 돌아가기 위해선 집계방식의 공정성도 중요하지만 씬 전체의 활기가 중요하다. 단순히 몇몇 대형 레이블이 지배하는 형태로 음악계가 활성화된다면 결국 차트 집계방식의 공정성도 무색해질 수 밖에 없다. “사업자의 이해관계와 밀접하기 때문에 공신력 있는 차트의 마련이 필요하다. 나라에서 공인차트를 지정할 순 없다. 단지 협의의 장을 마련할 뿐이다. 관보처럼 게재할 수 있는 성격이 아니지 않나. 사업자를 선정하는 과정이 필요하고 저작권 신탁 단체 등과 같은 각종 단체들과의 입장 차를 고려하는 방향으로 추진할 것이다. 해외 홍보 마케팅을 비롯해 국내 콘텐츠 품격의 상승을 위해 필요한 일이다.” 최성훈 주무관의 변이다. 그러나 엠넷 홍수현 PD는 말한다. “차트는 어떤 사람이 만들어도 공정하다고 평가하기 힘들다. 우리도 10년 동안 차트를 유지하고 있지만 4달 마다 차트 선정 방식에 변화를 준다. 음악산업의 변화가 그만큼 유동적이기 때문이다.” 어느 사업자가 선정된다 해도 그 차트를 과연 공신력 있는 차트라고 인정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또한 관료제 조직의 하청 형태로 완성될 차트가 유동적인 시장의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게다가 현재 방송국이나 음반사와 같은 각 사업자마다 개별적으로 집계하는 차트와의 충돌을 감소하는 것도 쉽지 않다.
지난 2월 8일에 개최됐던 그래미 시상식은 올해로 51회를 맞이했다. 그래미의 역사는 미국 음악의 오랜 역사를 증명한다. 빌보드 차트 역시 마찬가지다. 영국의 UK차트, 일본의 오리콘 차트도 그 나라의 음악산업의 너비와 깊이를 증명하는 일종의 표지나 다름없다. 그러나 그래미와 빌보드는 행정적인 기획을 통해 이뤄진 결과물이 아니다. 모든 것의 시작은 문화적 성취에서 출발한 자생적 성과다. 다양한 장르적 무브먼트가 태동하고 씬의 활성화가 적극적일 때 그 성취에 대한 명예가 뒤따르기 마련이다. 문광부의 지원을 얻지 못한 한국대중음악상은 오는 12일 학전그린소극장에서 시상식을 거행한다. 김창남 교수는 말한다. “시상식 자체를 최소화하거나 시상식 거행이 어려워지면 선정만이라도 유지하는 방식을 고수하려 한다.” 한국의 그래미가 발표됨과 동시에 한국대중음악상이 존폐의 위기에 놓였다.
문광부 관계자는 말했다. “그래미하려고 한국대중음악상에 지원한다는 건 오해다.” 그저 오해다. 이에 대해 김진석 이사는 말한다. “유지되고 있던 시상식의 지원철회로 존속위기를 부른다는 게 말이 되나. 그래미를 만들기 전에 현재 씬에서 보존할 수 있는 모델을 찾는 게 낫다. 음악의 산업적 측면만 너무 부각하는 거 같다.” 그래미는 선점의 대상이 아니다. 그래미의 시작이 지금의 그래미가 아니었듯이 한국대중음악상도 모를 일이다. 다만 그 싹이 말라가고 있다는 게 문제다. “‘MKMF 뮤직 페스티벌’이 보여준 퍼포먼스는 국내 시상식 중 최고라고 생각한다. 제각각 시상식의 특성에 맞는 권위가 다양하게 자리잡고 발전할 수 있는데 그걸 굳이 인위적으로 통합하려는지 모르겠다.” 홍수현 PD의 말이다. 이해관계가 다른 사업자 사이에서 인위적으로 통합적 사업을 모색하는 건 쉽지 않다. 개별적인 자생력을 채색해 나갈 수 있는 밑그림을 만들어주는 게 오히려 실용적인 방안에 가깝다.
장관의 정책발표 현장에 동석한 원로가수 정훈희가 질문을 던졌다. “대중문화에 기여한 대중음악인에 대한 군면제 혜택을 시행할 의향은 없나요?” 이에 유인촌 장관이 답했다. “가수들도 군대는 반드시 가야 한다. 다만 왕성하게 활동하는 시기에 연기가 가능하거나 연예 활동의 연장선에서 군 복무를 할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한다.” 객석에 앉아있던 관계자 모두가 박수를 쳤다. 샤이니와 태연이 등장해 공연을 펼친 건 그 뒤였다. 노래연습장 기기의 반주에 맞춰 라이브로 공연을 했다. 현장에 있었던 한 기자가 말했다. “정책발표를 취재한다기 보단 자축연을 구경하는 외부인 같았다.” 문광부 관계자는 조만간 정책 실무자들이 음악산업선진국들의 해외실사가 이뤄질 것이라고 전했다. 그들이 과연 무엇을 보고 돌아올지는 모를 일이다. 다만 이미 방향은 정해졌다. 51회 그래미를 동경하는 문광부는 5회 전통의 한국음악시상식엔 관심이 없다. 한국음악산업을 위해 소비될 1275억 원 가운데 한국대중음악상을 위해 할애될 3천만 원은 없는 셈이다. 실로 무심하고 시크한 선택과 집중이다.
(프리미어 'DEEP FOC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