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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배우로서 경력을 쌓아왔다.
우선 뮤지컬이 좋았다. 노래 부르는 걸 되게 좋아했었거든. 그런데 연기랑 노래를 같이 가져갈 수 있는 게 뮤지컬이니까.
노래를 좋아했다면 가수를 생각할 수도 있었을 텐데.
그런 생각도 잠깐 했었다. 실제로 제의도 들어왔었고. 군대 가기 전, 스무살 즈음이었나. 그런데 만약 그러려면 계약을 해야 되고 5년 동안 1년에 앨범 한 장씩 내야 된다는 식으로 얘기하더라. “그러면 난 연기는 못하나요?” 그랬더니 안 된다고, 가수에 전념해야 한다고 하길래 안 한다고 했던 적이 있었지.
요즘 주말극에 출연하고 있는데 드라마 연기는 어떤가? 나름대로 잘 적응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김치 치즈 스마일>(이하, <김치>)로 처음 방송할 당시에 감독님과 PD님들이 ‘원투쓰리’(스튜디오 카메라)를 처음하는 데도 정말 빨리 적응한다고 하더라. 그 전에 ‘드라마시티’도 해봤지만 거기선 세트촬영도 다 ENG카메라로 찍었으니까. 하지만 처음엔 연기 자체가 어색했다. 계속 카메라 앵글에서 벗어나기도 했고.
나름대로 고충이 있었나 보다.
사실 내가 연극이나 뮤지컬에선 우는 연기를 잘 하는 편이다. 그런데 예전에 ‘드라마시티’로 처음 방송 카메라 앞에 섰을 때였다. 타이트 바스트샷(T.B.S)을 잡고 한 페이지가 조금 넘어가는 대사를 혼자 쭉 치면서 울어야 되는 씬이 있었다. 앵글 다 잡아놓고, 조명도 다 설치됐고, 이제 나만 준비하면 다 되는 건데 끝까지 울지 못하겠더라. ‘티어스틱(tear stick)’도 발라보고 안약도 넣어봤지만 안 되는 거다. 그때 감독님께서 내가 눌린 거 같다고 하시더라. 이 사람들에게 눌렸다는 표현을 하시더라고.
그 뒤로 카메라 앞에서 눈물 연기를 할 기회가 없었나?
그 이후에 <김치>에서는 다행히도 우는 씬이 없었고, 시트콤에선 울 일이 별로 없잖아. (웃음) 그 뒤로 <라이프 특별조사팀> 거의 마지막 회 즈음에 야간 촬영인데 우는 씬이 있었다. 진짜 소주를 몇 잔 마시고 갔었다. 내 캐릭터가 아빠라고 부르던 좋아하는 아저씨의 유품을 만지면서 대사도 없이 그냥 우는 씬이었는데 그때는 바로 눈물이 나더라. 술기운 탓이었나 모르겠는데. (웃음) 그래서 딱 두 번 만에 오케이 싸인을 받고, 그 씬 끝나자마자 드라마씨티 감독님한테 전화해서 말했다. “저 드디어 울었어요.” (웃음) 잘 했다고 하시더라. 처음엔 이렇게나 적응을 못했다.
나름대로 기울인 노력이 있었을 것 같은데.
우선 촬영장을 많이 다녔었다. 나는 탤런트나 영화배우들이 대단하게 보였다. 촬영장에서 보면 배우가 스태프들에게 둘러싸여 있지 않나. 저 상태에서 어떻게 연기하나 싶더라. 막상 직접 해보니까 처음엔 역시나 어색하더라.
의외다. 무대에서 많은 관객을 앞에 두고 연기해왔으니 오히려 수월하지 않을까 생각되는데.
느낌의 차이가 있다. 관객은 직접 돈 내고 온만큼 열심히 보려는 의지가 있지만 스태프들은 그 느낌이 아니니까. 그 기가 그 기가 아니다. 다르더라. 그래서 내가 눌리더라고. 사람 수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부담감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것 같다. 카메라 렌즈나 조명도 생소하고.
<그들이 사는 세상>에서 함께 출연했던 최다니엘 씨가 예전에 했던 인터뷰에서 연기할 때 엄기준 씨의 포스가 장난 아니다라고 하던데.
그냥 좋자고 해주는 말 아닐까. (웃음)
하지만 오랫동안 무대에서 연기를 해온 만큼 무대 장악력이 씬 장악력으로 이어지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무대에서 연기를 오래 해왔기 때문에 얻었다고 자신할만한 자산이 있나?
자신감까진 모르겠지만 우선 씬이 하나 있으면 이 씬에서 전달해야 될 목적이 뭔지 디테일 하게 파악된다. 씬이나 작품 분석력이 생겼다고 할까. 물론 드라마했다고 그런 걸 모른다는 건 아니다. (웃음) 그냥 좀 더 디테일하다는 거지. 어차피 드라마는 장면을 따고, 따고, 이런 경우가 많지만 고정해놓고 쭉 가게 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럴 땐 집중의 끝을 놓치지 않고 가려고 노력하게 되는데 그런 경우에 유리한 거 같다. 무대에서는 거진 그런 식으로 가니까, 드라마는 집중이 안 되면 그냥 죄송합니다, 하고 다시 가기도 하지만 무대에선 무조건 끝까지 집중력을 잡기 위해 노력해야 되기 때문에 그런 훈련은 충분했던 것 같다.
무대에서 나름 유명세를 얻었지만 최근 방송에 출연한 짧은 기간에 얻은 유명세가 오히려 먼저 인식되는 거 같다.
아마 지금 10년 넘게 연극이나 뮤지컬을 했던 나를 아는 사람이 이만큼이면, (작은 원을 그리면서) 2년도 채 안된 사이에 드라마 몇 편으로 나를 알게 된 사람이 훨씬 더 많지 않을까. 그건 어쩔 수 없는 일 같다. 그런 인지도도 어느 정도 신경 써야겠지. 다만 아직은 방송을 시작한지 2년 밖에 안 됐으니까 좀 더 방송 연기에 적응해야 될 거 같다. 아직은 이쪽에서 보면 신인이니까. 그리고 아무래도 실력으로 인정받아야 오래가겠지.
주연 욕심도 없진 않을 텐데.
없다고 얘기하면 거짓말이지. 그런데 우선 요즘 주연배우를 하려면 일단 기본적으로 잘 생겨야 된다. 나는 사실 잘 생긴 배우 쪽은 아니잖아. 나이도 벌써 서른 중반이고. 뭐, 조연으로 가는 게 차라리 금방 기회를 얻기 쉽지 않을까. 나는 그냥 둘 다 좋다. 조연이든, 주연이든.
아까 춤 못 추는 3대 대니로 꼽힌다는 오만석 씨나 이선균 씨는 요즘 영화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혹시 시나리오 제의를 받아본 적은 없나?
없다. 요즘은 워낙 시장도 워낙 안 좋고.
영화에 출연하고 싶은 생각도 없진 않을 텐데.
나도 그러고 싶은데 안 불러준다. (웃음) 예전에 오디션 본 적은 많다. 유해진 선배 나왔던 <트럭>이나 천호진 선배 나왔던 <GP506>이나, 꽤 많았지. 그런데 잘 안 됐고. (웃음)
하지만 여전히 티켓파워가 있는 배우로 꼽히고 있다.
(조)승우가 지금 군대간 사이에 빨리 1위가 돼야 하는데! (웃음)
얼마 전에 공연했던 <밑바닥에서>의 흥행성적이 괜찮은 편이었다고 들었다.
다행히도.
본인 덕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김수로 선배님을 무시할 순 없지. 아마 내년에도 수로 형과 연극 한 편을 같이하게 될 거 같다. 작품은 이미 정해놨고 개관 날짜만 잡히면 된다. 수로 형한테 말했더니, “봄쯤 하자, 봄쯤.” (목소리를 따라 하면서) 이러더라. (웃음)
원래 김수로 씨는 고전연극에 정통한 배우다. 하지만 그 동안 코믹한 캐릭터로 지나치게 소모된 감이 없진 않다. 아무래도 방송이나 영화가 인지도를 얻기에 좋은 매체이긴 하지만 그만큼 쉽게 이미지가 고착화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두렵진 않나?
두려움은 없지만 내 고집을 언제까지 가져갈 수 있을지 나도 잘 모르겠다. 분명히 어느 순간 무너질 때가 있겠지. 하지만 그렇게 무너지더라도, 그래도 엄기준은 연기를 잘했으니까 라는 소리를 듣고 싶다. 1년에 한 편씩이라도 연극을 하려는 이유도 그걸 위해서다. 결론은 저 놈은 뭘 시켜도 잘 하니까, 못하진 않으니까, 그런 소리가 듣고 싶은 거다.
10년을 넘게 무대에서 활동해오면서 혹시 자신의 길을 의심해본 적은 없나?
앞만 보고 온 거 같다. 어떻게 하면 연기를 잘할 수 있을까. 다만 딱 한번 딜레마가 온 적이 있었다고 해야 하나. 그러니까 여태껏 조금씩 나아지는 모습을 보이면서 열심히 걸어왔는데 한번 정체된 느낌을 얻게 된 순간이 있었다. 2003년 정도였나, 앞으로 갈 길은 놓여있는 거 같긴 한데 계속 올라가도 끝은 보이지 않고, 그렇게 계속 제자리 걸음 하고 있는 거 같았다. 같이 연극하는 누나한테 그에 대해서 물어보니까 극복할 방법은 없다고 했다. 그냥 네가 꾸준히 열심히 하면 어느 순간 뭔가가 좀 나올 거라고만 얘기해 주시더라.
지금은 어떤가? 무대에서 벗어나 드라마를 하는 만큼 도전적인 기분을 느끼기도 하겠지만 한 편으로 환경이 변한 만큼 또 다른 매너리즘이 오기 쉬운 상황이 아닐까.
로마에 가면 로마 법을 따라야지. 난 그렇게 생각한다. 상황에 따라서 마음껏 바꿀 수 있는 것도 배우의 능력이 아닐까.
5월부터 뮤지컬 <삼총사>를 공연할 예정이다. 박건형 씨와 ‘달타냥’ 역할에 더블 캐스팅 됐는데 ‘삼총사’에서 달타냥은 아토스와 함께 인상적인 캐릭터라고 할 수 있다.
이번 공연은 특별히 아토스나 달타냥에 포커싱이 맞춰져 있진 않다. 브루투스나 아라미스까지 네 캐릭터에게 동등하게 포커싱이 맞춰져 있다. 각자 자기만의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기 떄문에 특별히 주인공이 누구라고 말하긴 어렵지. 그런 면에서 보면 원작보다 달타냥과 아토스의 비중이 없어졌다고 할 수 있을 정도랄까.
지금 출연 중인 주말연속극 촬영과 함께 리허설도 병행하고 있겠다.
덕분에 종종 리허설에 빠질 수 밖에 없어서 건형 씨한테 미안해 죽겠습니다. (웃음)
스케줄이 겹치면 아무래도 힘들 텐데, 사실 이런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지 않나.
<김치>때도 <미친 키스>와 <실연남녀>를 같이 했으니까.
그렇게 스케줄을 병행하면 체력적으로 무리가 올 텐데.
그래서 링거 맞아가면서 했다. (웃음) 그 때까지만 해도 링거주사라는 걸 한번도 안 맞아봤는데 어느 날 아침에 <김치> 첫 씬을 찍으려는데 갑자기 핑 돌더니 나도 모르게 주저앉게 되고 식은 땀이 나더라. 혜영이 누나와 같이 촬영할 때라서 혜영이 누나한테 얘기했더니 자기가 잘 아는 데가 있다고, 좋은 주사를 놔주는 곳이 있다고 알려줬다. 그래서 거기 가서 주사 한대 맞고, 그 이후로 <김치>끝날 때까지 한 달에 한 대씩 맞아가면서 활동했다. 그런데 무슨 20만원이나 해. 한 시간 반 만에. 너무 비싸. (웃음)
여러 역할을 병행하면 캐릭터 간의 혼선이 생기는 경우는 없나?
오히려 되게 재미있다. 혼선이 생길 까봐 조심하게 되니까 집중하게 만들어주는 것도 있는 거 같다. 혹시나 내가 ‘싸친’을 연기하고 있는데 ‘승현’이 나오진 않겠지, 라는 생각. 반대로도 생각할 수 있고.
특별히 연기해보고 싶은 역할이 있나?
다양한 종류의 여러 역할을 맡아보고 싶지만 정말 해보고 싶은 역할은 완전히 싸이코 같은 극단적인 역할이다. 궁극적으로 내가 연기자로서 꿈꾸는 지점이나 목적이라 말할 수 있는 건 나이 일흔을 먹고도 연기할 수 있는 배우가 되는 거다. 그러려면 중간에 매장당하면 안되겠지. (웃음)
미니홈피에서 ‘Tesla’의 ‘Love song’이 나오던데 좋아하는 노래인가 보다.
95년도에 밴드를 결성해서 콘서트도 하고 그랬던 적이 있었다. 그 때 항상 들었던 게 락발라드였다. 아무래도 내가 부를 수 있는 쪽으로 노래를 듣게 되니까. 그 때 한참 좋아해던 노래가 ‘Love Song’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길거리에서 그 노래를 듣게 돼서 갑자기 생각나길래 나중에 싸이에서 찾아서 그 노래를 깔아놨다.
그 노래를 불러줄 사람을 찾는 것도 중요하지 않을까. 이제 결혼도 생각해야 할 나이인데.
아니. 나는 좀 더 이 쪽 바닥에서 쐐기를 박고 결혼하려고. 그리고 우리 어머니께서 정말 감사하게도 결혼하라는 압박도 안 주신다. 넌 아직 철이 없으니까 좀 더 철들고 나서 결혼하라고, 안 그러면 며느리가 정말 힘들 거라고. (웃음)
좋은 사진엔 스토리텔링이 담겨있다. 시퀀스를, 씬을, 내러티브를, 스토리텔링을 예상하게 만드는 훌륭한 프레임이 된다. 그리고 사진을 찍다 보면 언젠가 알게 된다. 인물 사진이 정말 어렵다는 것을. 인물 사진이 어렵다는 건 인물과의 소통이 필요한 까닭이다. 어떤 풍경을 배려하는 완벽한 구도를 찾는다는 것과 조금 다른 차원의 재능이나 경험치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색다른 프레임을 연출하거나 뷰파인더 너머의 공간을 발견하는 것과 다른 차원의 자질이 필요하다.
좋은 인물 사진은 아름다운 표정, 멋진 제스처를 연출하는 것에 멈추지 않고 그 이상을 전달한다. 마치 베어진 기둥 단면 나이테처럼 인물의 인생을 대변할만한 어떤 단면 그 자체가 된다. 모든 인물에겐 저마다의 드라마가 있다. 훌륭한 사진가는 그 인물의 드라마를 결정적 순간에 담아 영원히 보존한다. 유섭 카쉬(Yousuf Karsh)는 아마도 그런 사진가 중 한 사람이라고 불려도 손색이 없는 인물일 것이다. 그가 찍은 수많은 명사들의 사진엔 저마다의 드라마가 담겨있다. 벽에 걸린 얼굴들을 따라 걷다 보면 잔잔한 우아함에서 거친 격정을 아우르는 수많은 인물들의 다양한 삶을 넘나드는 느낌을 얻는다. 유섭 카쉬의 자화상 포트레이트
이번 전시회는 보스톤미술관에서 소장 중인 유섭 카쉬의 빈티지 프린트(vintage print) 중 65점을 직접 공수해왔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여기서 빈티지 프린트란 작가가 직접 인화한 오리지널 프린트를 의미하며 사진엔 작가의 자필 사인이 있다. 사실 사진은 그림과 달리 필름을 통해 많은 복제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희소성의 가치가 없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필름이란 것도 결국 인화가 반복되면 그만큼 수명이 단축된다는 점에서 보존적 속성의 한계에 갇힌 물질이라는 건 두말할 필요가 없다. 물론 요즘은 은염사진 보다도 디지털로 출력되는 사진들이 대세를 이루기 때문에 빈티지 프린트의 희소가치는 두말할 필요도 없다. 사진이든 그림이든 오리지널은 의미가 있는 법이다. 이번 전시회의 가치도 이런 점에서 분명 뜻 깊은 의미를 지닌다. 윈스턴 처칠, 오드리 햅번, 알버트 아인슈타인, 피델 카스트로, 파블로 피카소, 슈바이쳐, 테레사 수녀, 등. 분야를 막론하고 세계 각지의 유명 인사들을 필름에 담아낸 유섭 카쉬는 마치 그와 공존했던 20세기 명사들의 일생을 단 한 장의 이미지로 대변하기 위해 살아온 것마냥 수많은 작품을 남겼다. 유명 인사의 얼굴을 볼 수 있다는 건 분명 좋은 이벤트가 된다. 하지만 단지 그 얼굴을 구경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얻을 수 있다면 그건 분명 인생에 있어서 좋은 경험이 된다. 카쉬의 사진을 볼 수 있다는 건 누군가의 인생에 있어서 좋은 경험이 될만하다. 그의 사진이 인물의 인생 전체를 대변할 순 없는 건 사실이다. 그건 어느 누구라도 할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그 인물의 인생을 짐작하게 만들 수 있다는 건 분명 대단한 업적이다. 적어도 카쉬의 사진은 그 이상에 도달한다. 물고 있는 시가를 강제로 뺏어서 찍었다는 윈스턴 처칠의 으르렁거리는 표정과 흔들림 없이 우아하게 머무는 오드리 햅번, 총명하면서도 깊고 순수한 아인슈타인의 눈동자, 하이라이트와 암부가 선명하게 교차하는 파블로 피카소의 풍경 등, 어느 작품 하나도 쉽게 건너뛸 수 없을 만큼 인상적이다. 개인적으로 이번 전시회에서 눈을 뗄 수 없었던 사진은 많았지만 그 중에서도 마음에 깊게 각인된 건 파블로 카잘스(Pablo Casals)의 사진. 스페인 출신의 첼리스트 음악가인 그는 바흐의 ‘첼로 무반주 연주곡’을 발굴하고 끝내 하나의 완벽한 형태로 완성한 거장이다. 카쉬는 어느 여타의 인물들과 달리 첼로를 연주하는 그의 뒷모습을 필름에 담아냈는데 엄숙한 풍경 속에서 우아한 선율이 흐르듯 신비로운 한 컷이라 말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이 사진엔 기묘한 페이소스가 넘실거리는데 스페인 내전 이후, 프랑코의 독재정권으로부터 미국으로 망명해 살았던 파블로 카잘스의 삶을 떠오르게 한다.
파블로 피카소
마더 테레사
재클린 케네디 오나시스
헬렌 켈러와 폴리 톰슨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그레이 아울
이번 전시회는 당초 8일로 끝날 예정이었으나 15일부터 앙코르 전시가 재차 열린다 하니 기회를 놓친 이들에겐 반가운 소식이 될 것 같다. 클림트전처럼 네임밸류에 비해 수준은 형편없는 전시회가 있는 반면, 이처럼 명성만큼이나 내용도 흡족한 전시회도 있다. 가격도 클림트전의 절반가인 8천원 수준이다. 이 정도 가격에 이런 전시를 즐길 수 있다는 건 분명 대단한 혜택이다. 누구나 DSLR을 액세서리처럼 지니고 다니며 셔터를 낭비하듯 눌러대는 세상 속에서 카쉬의 한 컷들은 쉽게 도달할 수 없는 경지의 깊이를 선사한다. 인물에 대한 깊은 배려와 고심의 흔적이 역력한 그가 선택한 찰나에 담긴 인물들은 이로서 영원을 산다. 단지 얼굴이 아닌 인생을 기록한다. 당신에게 이 전시회를 권하는 건 그 때문이다. 당신은 한 장의 사진이 아니라 인물 자체를 만나게 될 것이다. 카쉬는 그것을 가능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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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개봉이다. 기분이 어떤가?
많이 긴장되지. 영화에 대한 반응이 좋지 않아도 문제지만 반응이 너무 좋아도 긴장된다. 최대한 담담해지려고 애쓰는데, 일단 지금은 어떤 결과가 나올지 궁금하다. 얼마 전에 하늘 씨랑도 얘기했지만 차라리 개봉해서 1주차가 빨리 지났으면 차라리 좋겠다. 뚜껑은 열어보지도 않았는데 분위기만 좋으니까 이게 오히려 힘들더라.
시험 뒤, 성적표 받기 직전의 기분이겠다.
차라리 빨리 봤으면 좋겠다.
세 번째 영화인데 앞의 두 영화와는 기분이 좀 다르지 않을까. 나름대로 이만큼 넉넉한 규모의 예산을 가지고 촬영에 임한 영화는 처음이지 않나.
아직 상업영화니, 저예산영화니, 그런 차이를 제대로 느껴본 것 같진 않다. 처음 했던 <방문자>는 말 그대로 연기의 ‘연’자도 몰랐을 때 그냥 무작정 했던 영화고, 두 번째인 <영화는 영화다>는 지섭 씨가 3년 만에 복귀하는 상업영화이긴 했지만 김기덕 감독님이 제작자로 나선 영화이기도 했다. 나도 드라마만 하다가 영화로 옮겨 타는 정식 작품이었기 때문에 일단 잘해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연기를 잘해야겠다. 내용 자체도 남자끼리 붙는 영화다 보니까 연기가 뒤지면 안 되겠다 싶더라.
드라마로 인지도를 쌓았던 만큼 영화는 일종의 도전이라고 볼 수도 있었다.
드라마에선 연기력 논란 같은 게 없었는데 영화에서 그런 게 나오면 어떡하나 걱정이 됐다. 캐릭터도 드라마와 완전히 상반된 캐릭터였기 때문에 무조건 잘해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촬영을 끝내고 나서 분에 넘치는 상도 많이 받았지만 그런 긴장감이 강했기 때문에 개운한 느낌이 없었다고 할까. 카메라 앞에서 떨었던 생각밖에 나지 않고, 상은 다 남들 때문에 받았던 거 같기도 하고. 그래서 그런 느낌을 좀 덜어버릴 수 있는 뭔가를 빨리 해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는데 그게 <7급 공무원>이 됐다.
아까 카메라 앞에서 긴장됐다고 했는데 작품을 거칠수록 그 역시 많이 경감돼 간다는 걸 느끼지 않나. 혹은 어떤 작품이 한 순간 그런 계기가 됐을 수도 있고.
어느 순간 한 작품 찍고 나니까 확 편해졌다고 할 수는 없다. 말 그대로 매번 여러 작품을 하게 되면서 경험적으로 조금씩 바뀌는 거 같다. 계속 한 작품 해나갈 때마다 전 작품보다는 나아지는 건 맞다.
<영화는 영화다>에서 수타는 거칠고 남성적인 역할이라서 기존에 맡았던 캐릭터와 대비되는 느낌이 있었는데 그런 이미지를 연출한다는 것 자체에서 오는 쾌감이 있진 않았나?
그런 걸 느끼기엔 시간적으로나 많은 여건들이 너무 힘든 상황이었다. 그러니까 준비가 잘된 여유 있는 상태에서 그런 연기를 할 수 있었던 거라면 신인상 받을 때 눈물이라도 흘렸을 텐데, 오히려 반대로 연기를 하는 도중에도 제대로 하고 있는 건지, 맞는 건지도 모르면서 조바심 내고 경직된 느낌이 강했다. 오히려 이제 <7급 공무원>으로 하고 싶은 걸 했다는 기분이 들어서 오히려 지금 시원하다. 이제는 영화 카메라 앞에서 떨지도 않을뿐더러 내가 하고 싶은 걸 해냈기 때문에 지금이 오히려 좀 시원해진 거 같다.
이재준이 손바닥을 오므렸다 폈다 하는 동작이 재미있더라. 그 외에도 캐릭터의 소심함을 대변하는 작은 동작들이 많았는데 그런 디테일한 설정은 직접 생각해 낸 건가?
맞다. 내가 다 만들었다. 이번 영화에서 대본이 차지하는 비중이 거의 60%면, 현장 애드립이나 분위기 파악하는 게 거의 3~40% 됐을 정도로 연구를 많이 해갔다.
원래부터 캐릭터의 디테일을 많이 설정하는 편인가?
특유의 손동작을 비롯한 애드립은 드라마에서부터 조금씩 해왔다. 그게 대본을 받아서 연기하는 주연배우의 의무라고 내 나름대로 생각한다. 작가가 쓴 대본을 대사로 받아들여서 읽기만 하는 건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거기에 뭔가 조금이라도 생명력을 불어넣기 위해서 나 스스로가 그런 작업을 즐긴다. 나를 거쳐간 대본에 새로운 디테일을 가미하는 걸 개인 자신만의 연기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마치 성룡 영화 끝에 나오는 NG장면이나 오우삼 영화에서 매번 나오는 비둘기처럼 트레이드 마크라고 할 수 있을만한.
방금 성룡과 오우삼을 말했는데 액션 영화를 좋아하는 편인가?
액션 영화는 원래 좋아하지만 그보단 기존의 성룡이란 배우를 많이 좋아한다.
타격감이 느껴지는 액션 영화를 좋아하는 편인가 보다.
아니, 그런 것과는 좀 다른 차원이다. 정말 어려서부터 성룡영화를 봤지만 단 한번도 재미없다고 느꼈던 적이 없었다. 그렇다고 성룡영화가 나에게 꿈과 희망이나 어떤 메시지를 줬다고 할 순 있는 부분이 있는 건 아니지만 극장에서든 TV로든, 영화를 보는 2시간 동안에는 아무 생각 없이 그 영화에 빠져서 즐길 수 있었다. 그리고 영화는 그래야 된다고 생각한다. 물론 드라마도 그렇고. 장르라던가 영화적 특성상 무언가 메시지를 담는 것도 좋지만 가장 기본적으로 재미있는 영화라고 생각해서 선택한 영화는 말 그대로 재미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7급 공무원>도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과 용기를 주는 영화라고 말은 못하겠다. 하지만 나는 <7급 공무원>이 말 그대로 편하게 웃으면서 즐길 수 있는 영화라고 생각해서 찍었고 그게 이 영화의 가장 큰 강점인 거 같다.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영화다.
사실 <7급 공무원>이 스토리가 훌륭한 영화는 아니지만 코미디로서의 장점이 그런 단점을 상쇄할만큰 탁월한 영화라고 생각한다. 이 영화의 코미디를 간과한 채 스토리를 지적하고 물고 늘어진다면 영화 대사처럼 ‘장난 한번 치니까 죽자고 덤벼드는’ 꼴이 될 거다. (웃음) 나는 일반관객과 함께 이 영화를 봤는데 관객반응이 상당히 좋다고 느꼈다. 일반시사에서 무대인사도 몇 번 한 걸로 아는데 혹시 상영관 분위기를 훔쳐본 적은 없나?
일단 여러 사람들과 함께 영화를 두 번 정도 봤다. 제일 처음에 했던 기술시사에서 스태프들과 같이 한번 봤는데 이게 웃어야 하는 영화임에도 반응이 너무 없어서 그 당시에 완전히 충격을 먹었었다. 그런데 다음날 신림동에서 이벤트 시사가 있다는 말을 듣고 신림동까지 모자를 뒤집어 쓰고 갔었다. 거기서 조금 안심이 되더라. 다시는 죽어도 기술시사엔 안 가야지. (웃음)
왜 그렇게 다들 무덤덤했을까.
다들 아는 내용이기도 하고. 배우가 처음 영화 보면 자기 연기부터 보듯이 조명은 조명보고, 분장은 분장보고, 그렇게 관점포인트가 다르니까 아무래도 그런 것 같다. 하지만 나는 그런 광경을 처음 봤으니까 너무나 충격을 받아서 당시엔 밤에 잠도 못 잤다. (웃음)
이런 코미디 영화를 봐주는 관객이 웃지 않는다면 배우입장에서는 당연히 긴장되겠다.
배우는 관객들에게 보여지기 위해 연기를 하는데 그에 대한 반응이 냉담하면 작업 자체가 무의미해지는 것이겠지.
드라마부터 영화까지 줄곧 주연을 맡아왔다. 나름대로 입지를 다지는데 성공했다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런데 주연이라면 작품 자체의 얼굴이니만큼 부담되는 부분도 없지 않을 거다. 그런 부담감에서 자유로운 편인가?
나는 엄청 심하다. 드라마 할 당시만 해도 시청률에 엄청 민감했거든. 아까 얘기했던 것과 좀 겹치는 부분이지만 말 그대로 사람들이 봐주라고 연기하는데 안 봐줘서 시청률이 낮으면 그것만큼 힘든 일이 없다. 그렇게 되면 일차적으로 떠오르는 게, ‘내가 연기를 못해서 그러나’, 아니면 ‘내가 스타가 아니라서 인지도나 없기 때문에 그런 건 아닌가’, 이런 식으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 예전에 아침드라마 할 땐, 방송 나간 다음날 아침 6시, 7시부터 ‘TNS’사이트 들락날락 거리면서 시청률을 확인할 정도로 신경을 많이 썼다. 게다가 난 드라마 같은 경우 매번 운 없게도 30%넘는 드라마들하고 계속 같이 붙었다. <황진이>, <쩐의전쟁>, <뉴하트>, 다 30%넘은 드라마거든. 우리 드라마가 상도 많이 받고 절대 나쁜 작품이 아니었는데 매번 빛을 못 봤다. 특히 미니시리즈 같은 경우는 거의 밤을 새고 고생해서 찍는데 반응이 없으면 미친다. 뭐라고 말로 하기엔 그런 게 너무 힘들지.
작품에 대한 자부심이 크지만 성적이 따라주지 않기 때문에 더 마음이 안 좋았을지도 모르겠다.
많이 안 좋지. 그런 상대적 박탈감으로 유독 힘들었지만 다행히도 <영화는 영화다>를 하면서 짐을 벗을 수 있었던 거 같다. 물론 <영화는 영화다> 하나뿐이라 이런 말이 우습긴 하지만 지금 <7급 공무원>반응이 좋다 보니까 그런 답답한 징크스를 한번 더 시원하게 해소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바람이 큰 게 사실이다.
첫 영화가 신동일 감독의 <방문자>였다. 사실 국내에서 개봉이 불투명한 저예산 영화이기도 했고 마음에 걸리는 부분은 없었나?
그 당시는 내가 뮤지컬을 끝낸 뒤 아침 드라마 같은 작품에서 조연이나 단역을 했던 시기였다. 그런데 그 뒤로 찾아주는 이도 없고, 일이 없더라. 오히려 조금 연기 맛을 보고 좀 더 해보고 싶어질 때부터 일이 끊기니까 그게 너무 힘들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내가 <방문자>를 시작하게 됐을 당시에 연기에 대해서 고뇌했던 건 아니었다. 몇 개월 동안 일거리도 없어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을 때 그저 주인공 오디션이란 말에 혹해서 오디션을 보러 갔었다. 내용 자체도 ‘여호와의 증인’이란 종교적 소재를 다룬다니 이게 재미있다고 느꼈겠나. 사실 처음엔 대본 내용도 잘 모르고 영화에 대해서 정말 아무 것도 몰랐다. 그냥 단지 주인공이란 단어 하나 때문에 연기가 하고 싶었고, 카메라 앞에 서고 싶었지. 처음엔 그런 좋지 않은 의도로 시작했다. 하지만 작업을 하게 되면서 나중엔 좀 변하게 됐다. 결과적으로 대본을 열심히 파면서 연기하게 됐고 덕분에 <방문자> 막바지에 있었던 <굳세어라 금순아> 오디션도 통과할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결과적으로 나에겐 좋은 작품이었던 셈이다.
배우로서 연기 욕심이 앞선다는 건 부끄러운 일은 아닐 거다. 그런 욕심이 자신에게 있어서 어떤 자양분을 얻는 계기가 됐으니까 결과적으론 양화라고 봐야지. 그런데 최근 몇몇 인터뷰를 보니 배우 이전에 특이한 경력이 있다고 밝혔더라. 우여곡절 끝에 회사에 입사했고, 전공도 그래픽 분야던데, 연기를 생각한 계기는 뭔가?
아버지께서 영화를 좋아하셔서 어렸을 때부터 영화를 되게 많이 봤다. 교인들이 일요일에 교회 나가는 것처럼 나는 당연히 일요일은 극장가는 날인지 알았다. 아버지께서 항상 동네에 있는 동시상영극장에 가셨는데 아들이 하나뿐이다 보니까 항상 데리고 가셨지. 그렇게 자연스럽게 영화를 접했다. 사춘기 때는 멋있는 장면이나 여배우와의 키스 씬을 보면서 나도 배우가 되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을 갖곤 했다. 그런데 영화를 좋아하는 집안 분위기에 노출돼있다 보니까 그런 생각이 없어지지 않더라.
아버지께서 아들이 배우라는 사실을 좋아하시겠다.
많이 좋아하시고 뿌듯해하신다.
배우로서의 진로를 구체적으로 계획하게 된 건 언제인가?
군대 있을 때 생각했다. 뭔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해봐야 나중에 나이를 먹고 그래도 후회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지. 군대에서 인생설계를 하면서 확고하게 정리가 됐다. 서른이 되게 전까지 20대를 내 꿈에 투자해보겠다는 생각을 했다.
뮤지컬을 통해 데뷔했고, 드라마로 이름을 알렸다. 지금은 영화를 통해 인지도를 넓히는 중이다. 연기를 꿈꾸게 만든 계기가 영화였던 만큼 영화에 애착이 있을 것 같다.
뭐, 그런 건 없다. 그냥 중요한 건 배우, 연기였다. 지금 와서도 느끼는 건 드라마나 영화나 다양한 장르를 겪어보니까 작업환경이나 찍고 나서의 분위기만 다를 뿐이더라. 물론 영화 두 작품 해놓고 영화에 대해서 뭘 안다고 말할 수 있겠나. 단지 그냥 카메라 앞에 설 땐 마찬가지로 처음엔 항상 떨렸던 거 같다.
드라마와 영화는 제작 과정의 차이보다도 결과물의 감상 방식에 따른 차이가 두 매체의 차이를 두드러지게 만든다. 영화는 아무래도 스크린으로 보는 만큼 브라운관을 통해서 자기 얼굴을 인식하게 되는 드라마와 판이한 감상을 줄 것 같다.
처음엔 짜릿했지. 솔직히 이런 느낌을 알게 된 건 <방문자>때보단 <영화는 영화다>기술시사에서였다. 스크린을 보는 동시에 웅장한 사운드가 들리는데 정말 짜릿했다. TV브라운관을 통해서 내 연기를 볼 때는 다른 집에 있는 사람들이 내 작품을 어떻게 보는지 모른다. 그런데 극장에선 바로 옆에 있는 사람의 웃음소리나 숨소리를 느끼면서 볼 수 있다는 게 정말 엄청난 매력인 거 같다.
자신이 만든 결과물에 대한 누군가의 반응을 살핀다는 것 자체가 재미있는 일이 될 거 같다. 그런데 최근 인터뷰 기사에서 아나운서 양성 학원에 다닌다는 말을 했더라. 목소리에 대한 문제라도 느낀 건가?
드라마 할 때는 전혀 못 느꼈지만 <영화를 영화다>를 하고 나니까 발음이나 목소리 톤에 대한 지적이 조금씩 들렸다. 물론 그런 것에 전혀 개의치 않으려 한다. 하지만 내게 시간이 있을 때 그런 부분을 조금만 보완하면 오히려 그런 측면을 내 장점으로 승화시킬 수 있을 거 같았다. 그래서 먼저 부족한 부분을 채우기 위해서 공부를 하게 됐다.
종종 대사를 할 때 목소리 톤이 급격한 하이톤으로 올라간다고 느껴지긴 하더라.
사람 목소리가 다 똑같을 순 없다. 물론 기본적으로 사람들이 원하는 연기나 발음, 발성은 당연히 중요하지. 그런데 사람의 감정이 올라가다 보면 말 그대로 목소리가 갈라질 수도 있지 않나. 특히 연기를 표현함에 있어서 그런 부분이 자연스러움이 될 수도 있다고 본다. 모든 발음을 있는 그대로 전달하는 게 연기의 전부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처음엔 목소리 기본톤이 하이톤이라서 내가 잘못된 건 줄 알고 무조건 고치려고 했지만 지금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대신 시청자나 관객들이 그 의사만 제대로 알 수만 있을 만큼 너무 벗어나지 않는 한도 내에서 연기할 수 있으면 그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을 거라 생각한다. 발음이나 발성이 좋은 ‘FM(Field Manual)’연기자도 많겠지. 나는 내 연기가 ‘AM’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정말 많은 종류의 사람이 있는 것처럼 많은 종류의 배우도 있다고 생각한다. 만약 많은 분들께서 지적해주시는 게 있고 그걸 내가 고치거나 다듬을 수 있다면 다음 작품을 위해서도 좋은 일이겠지. 딱 그 정도까지만 생각하려고 한다.
일단 대화를 나눠보니 당신이 상당히 조심스러운 사람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당신이 연기한 캐릭터들은 때때로 과감하다. <7급 공무원>의 재준은 소심한 듯 고집이 세고, <영화는 영화다>의 수타는 건방지고 자존심이 세다. 드라마에서는 때때로 뺀질거리는 캐릭터를 보여주기도 했다. 연기를 통해서 가끔씩 자신도 모르는 스스로를 발견하는 경우를 느낀 적은 없나?
그러니까 ‘나에게 이런 면이?’ 이런 거다. 덕분에 내게도 배우의 피가 흐른다고 생각할 수 있는 거 같고. 물론 내가 잘할 수 있을 것 같은 부분이 쉽게 보이는 대본이 잘 읽히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배우는 연기변신이 필요하니까 쉽지 않을 것 같은 생소한 캐릭터에 도전하기도 하는데 솔직히 그만큼 겁도 난다. ‘내가 과연 이걸 표현할 수 있을까?’ 그러나 막상 하면 하게 된다. 그러면서 내 자신에게 놀라기도 하고, 그런 매력 때문에 이 일을 놓을 수 없게 되는 거 같다. 오히려 같은 것만 계속 하면 물리겠지. 매번 작품을 선택할 때 저번엔 이런 역할을 했으니까 이번엔 다른 느낌을 얻을 만한 캐릭터를 선택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겁도 나지만 그걸 즐길 수 있는 거 같다.
<7급 공무원>은 캐릭터를 연기하기 위해서 배워야 되는 것도 많았을 거 같다. 펜싱을 하기도 하고, 말을 타기도 하고, 심지어 총 잡는 법이라도 익혀야 할 것 같고.
오히려 나는 다 배우지 않았다. 수지는 베테랑 요원이기 때문에 뭐든 잘해야 되니까 배우는 게 맞는데 재준은 뭐든 의욕만 앞서고 서툴러야 하니까 어설픈 그대로 보여주는 게 재준의 모습이라 생각해서 오히려 일부로 배우거나 연습하지 않았다. 단지 내가 그 촬영장에서 타게 될 말이나 오토바이는 일단 연기를 위해서 경험만 해보는 정도로 타기만 해봤지. 그래서 많은 분들이 불안하다고 연습 좀 해야 되지 않냐고 하긴 했다. 그런데 일단 처음에 한번 접해보면 내가 할 수 있을지, 없을지, 느껴지지 않나. 한번 해보니까 현장에서 어설픈 상태로 어느 정도 가능할 것 같아서 일부로 배우지 않았다.
말 타는 장면의 어설픔은 연기가 아니었던 건가. (웃음) 나름대로 실제적인 캐릭터에 접근하려고 노력하나 보다.
어떤 캐릭터라도 그 인물의 희로애락을 보여주기 위해 일부로 디테일한 작업을 하는 편이다. 아무리 악한 사람이라도 그 사람에게 착한 부분이 1%라도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기 때문에 그런 부분까지 살리려고 노력하고 싶다.
캐릭터의 희로애락은 표현하려 애쓰는 만큼 본인의 희로애락도 잘 챙기는 편인가?
글쎄. 정작 나는 잘 표현하지 못하기 때문에 아마 그렇게 연기로나마 뭔가를 표현하려고 하는 게 아닐까.
<7급 공무원>의 이재준은 자신의 애인에게조차 신분을 속이며 살아야 한다. 반대로 자신은 연예인으로서 신분을 노출하고 살아야 되는 처지다.
개의치 않으려고 많이 노력하는 편이다. 내가 예능 출연을 하고 싶지 않은 건 일단 연기자로서 자기가 맡은 바만 잘하면 되지, 그런 곳에서 사생활까지 말해가며 사람들에게 웃음을 줄 필요까진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분명 스트레스를 받기도 한다. 사람들의 시선을 많이 받을수록 인기가 올라가지만 너무 사소한 거 하나까지도 노출되고, 전혀 뜻하지 않은 구설수까지 생기니까. 어떤 분들은 그런 게 다 관심의 표현이라고 말씀하시고 그만큼 좋은 점도 있지만 그런 덕분에 힘든 부분도 많다. 내 위치가 조금씩 올라갈수록 자유롭던 활동범위가 예전보다 점점 좁아진다는 걸 느낀다. 그러면서 이젠 밖에 노출되는 것도 최대한 자제해야 되고, 뭔가를 많이 해보거나 즐겨야 할 시기에 집에 혼자 있는 내 자신을 보면서 내가 꿈을 위해서 한 걸음씩 다가서는 건 맞지만 이렇게 사는 게 내 삶이 맞긴 맞는 건지 스스로 의문이 들 때도 있다.
연기를 그만 두지 않는 이상 스스로 극복해내야 할 수 밖에 없다.
말 그대로 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도 있으니까 조금이나마 더 좋은 점을 찾으려고 노력해야지. 어쩔 수 없는 직업 특성상 많은 관심을 필요로 하는 만큼 책임져야 할 부분들이 많이 늘었다는 건 감내해야 할 사실이니까 원치 않았다 해도 내가 하는 일을 위해선 조금이라도 여유를 가지려고 한다. 이왕 오픈해야 되는 부분이라면 최대한 재미있게 즐겨보려고 노력하는 쪽으로 많이 바뀌는 거 같다.
그 동안 많은 여배우와 호흡을 맞춰왔다. <7급 공무원>에서 호흡을 맞춘 김하늘 씨는 예전에 미니시리즈 <90일, 사랑할 시간>를 함께 하며 이미 한차례 호흡을 맞춘 경험이 있다. 예전에 함께 작품을 했던 상대를 만나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는데 확실히 편하지 않던가?
일단 상대방의 대사톤이 어떤 스타일인지 알고 있기 때문에 대본을 읽는 것부터 편하다. 그리고 리액션의 연기라고도 하듯이 상대방이 연기를 잘하면 내 부족한 부분까지 채워지고 내 연기에도 시너지 효과가 난다. 일단 김하늘 씨가 캐스팅됐다고 하길래 그 부분에 대해서는 일단 안심했다. ‘김하늘’하면 이미 연기적으로 인정받은 배우니까. 두 번째는, 연기도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하는 거니 처음엔 어색함이 있다. 그만큼 교감을 위해서 친해져야 한다. 그러려면 밥도 먹어야 되고, 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그게 잘 안되면 연기할 때, 이 사람이 어떤 톤으로 준비해왔을까 궁금해도 물어보기조차 어렵게 된다. 그런데 하늘 씨와는 워낙 잘 아는 사이다 보니까 그런 과정을 몽땅 다 들어낼 수 있었다. 처음 만나자 마자, “내일 시간 돼? 대사 한번 맞춰보자.” 이런 말이 바로 나오는 거지. 그런 시간들이 축소되면서 조금 더 빨리 연기에 몰입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당신과 김하늘 씨가 영화의 에이스라면 류승룡 씨와 장영남 씨는 조커와 같다. 조연배우들의 뒷받침이 그만큼 효과적이고, 안정적이었다.
류승룡 선배님과는 함께 붙어서 연기하는 경우가 많아서 많은 걸 느낄 수 있었다. 무전기로 대화하는 장면 같은 경우는 내 분량을 먼저 다 찍은 걸 선배님이 보고 거기에 맞춰서 연기하는 식으로 이뤄졌다. 서로 연기를 맞춰볼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아무래도 그래서 본인이 준비해온 것들이 있더라도 그것들을 정해진 상황에 맞춰서 어쩔 수 없이 바꿔야 하는 경우도 많았을 텐데, 그럼에도 내 연기에 맞춰서 그 상황을 너무나 맛깔스럽게 살려주셨다. 주인공이 나오지 않는 씬에서 재미있는 톤이 이어진 건 다 선배들 덕분이었던 거 같다.
이재준은 상당히 고집이 센 캐릭터다. 상관에게 노트북 비밀번호도 절대 안 알려준다. (웃음) 그리고 <영화는 영화다>의 수타는 상당히 자존심이 센 캐릭터다. 재준과 수타는 그만큼 자기 욕심이 강한 캐릭터다. 당신도 어떤 욕심을 갖고 사는 사람인가?
욕심이라기 보단 목표를 위해 가는 사람이라고 하고 싶다. 쉽게 얘기해서 지금 내 위치는 주연배우를 맡고 있긴 하지만 톱스타도 아니고, 톱스타와 주연 사이에 있는 애매한 위치라고 생각한다. 연기나 스타성을 모두 지닌, 말 그대로 정상의 톱배우를 목표로 두고 있는 건 맞다. 이왕 연기자로 사는 거 당연히 정상에 서고 싶지. 정상을 판단하는 척도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일단 나는 아직 내가 생각하는 수준에 못 다다랐기 때문에 그만큼 위로 올라가기 위해서 더 노력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25살에 데뷔했으니 요즘 연기자들에 비해서 빠른 데뷔는 아니다. 어떤 불안함은 없었나?
있었지. 그렇기 때문에 나는 그 당시에 이미 계획이 있었는데, 서른 되기 전에 자리를 못 잡으면 연기를 그만 둬야겠다고 생각했었다. 대신 인생을 걸고 한번 해보는 것이니만큼 내 20대를 다 바쳐서 내 꿈을 펼쳐보자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막상 시작하고 나니까 서른이란 나이는 가까이 오는데 돈 한 푼도 벌지 못하고, 친구들은 다 하나씩 자리잡아가는데 난 앞날에 빛이 없고, 정답을 가르쳐주거나 어떤 얘기도 해주는 사람 없이 모든 걸 다 혼자 해야 된다는 걸 느껴서 정말 힘들었다. 다행히도 스물 아홉에 했던 <굳세어라 금순아>가 잘돼서 연기를 계속 할 수 있게 됐지만 그 당시 스물아홉이라는 나이를 앞두고 얼마나 많이 불안했겠나. 결과적으로 지금에 와서 잘 됐지만 중간에 정말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도 많았다. 막상 서른이 되면 어떻게 할까 고민도 됐고. 20대를 다 바쳐서 여기까지 왔는데 막상 계획대로 버리고 가자니 20대가 아깝지 않을까 싶은 거지.
서른이 넘었는데도 아직 연기를 하고 있으니 일단 성공한 셈이다.
일단 그런 셈이지. 하지만 지금부터 또 잘해야 된다. 꿈을 갖고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 다들 그렇듯이.
스스로 긍정적인 편인가?
글쎄, 그건 모르겠는데. 그건 아닌 거 같다.
근래 인터뷰 기사를 보면 예전에 회사에 입사해서 쓰레기통을 비웠다는 일화가 등장하던데, 그런 걸 보면 조금 무모할 정도로 용감한 면이 있는 거 같다. 그런 면에 있어서는 긍정적인 사람이라고 볼 수 있지 않나.
단지 뭔가 해야 될 목적이 정해지면 거기에 대해서는 최선을 다하려고 조금 노력하는 편인 거 같다. 그리고 아까 말했던 것처럼 모르면 용감해진다. 회사 들어갈 때도 아무 것도 모르니까 제대로 내밀 학력도 없이 일단 날 써보라고 했던 거고, 심지어 뮤지컬 오디션 볼 때도 그랬다. 말 그대로 모르면 용감하다. 대신 또 하라면 절대 못하지. (웃음)
이제 너무 많은 걸 알아버렸으니까. (웃음) 사실 요즘은 연기를 전공하는 배우도 많은데 본인은 연기를 전공한 것도 아니었다.
연기학원도 다니긴 다녔었다. 하지만 내가 느낀 건 아무리 강의를 듣고 뭘 하는 것보단 현장에서 단역으로라도 대사 한마디 해보는 게 더 낫다는 거다. 이건 내가 나름대로 일궈낸 진리다.
지금까지 당신을 연기자로 키운 건 팔 할이 생활력이었나 보다. (웃음)
그러니까 못하면 노력하는 수밖에 없었지. 일일드라마하던 당시에도 잘리지 않으려고 발버둥쳤던 것처럼, 못하니까 열심히 해야 하는 것 같고, 모르면 용감한 거 같다. 만약에 내가 연기를 잘한다고 생각하거나 얼굴이 정말 꽃미남이라면 그렇지 않았을 수도 있었겠지. 그런데 내 생각엔 내가 뭔가 어정쩡하다고 느끼기 때문에 그걸 다 완벽하게 메우기 위해서 더 열심히 하는 거고, 이런 성격이 장점으로 작용이 되는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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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공연 때문에 바쁘지 않았나요?
얼마 전에 <즐거운 인생>이 끝났어요. 그리고 <스프링 어웨이크닝>이라는 공연에 6월 말부터 들어가서 곧 쇼케이스 연습을 조금 하게 될 거 같아요. 본격적인 연습은 5월부터라 지금은 그렇게 바쁘지 않아요.
<스프링 어웨이크닝>외에 예정된 작품은 없나요?
한일 합작으로 제작되는 4부작 드라마가 하나 있는데 조그만 역이에요. 감독님 때문에 며칠 가서 하게 될 거 같고, 아직은 별다른 건 없어요.
<스프링 어웨이크닝>은 대작 뮤지컬이라고 들었어요. 토니상 8관왕을 차지할 정도로 대단한 작품이라고 하더군요. 본인이 연기할 ‘멜키어’는 꽤나 지적인 캐릭터라던데, <쓰릴 미>에서의 ‘그’도 지적인 남자였고, <작전>의 조민형도 증권 인텔리였죠.
이미지 때문인가 봐요. 별다른 특징이 없는 이미지라서. 어떻게 보면 올곧게 보이는 얼굴 같기도 하다가 어떻게 보면 악해 보이기도 하고, 그렇게 맨숭맨숭하니까 그렇지 않을까 생각이 드네요. 처음엔 그래서 스트레스를 받았어요. 배우는 외모가 중요하잖아요. 그런데 이젠 화면의 모습을 보니까 오히려 그게 좋더라고요. 할 수 있는 것도 많아지고.
도화지 같은 얼굴이라 말할 수 있겠죠. 배우에겐 분명 장점일 수 있을 겁니다. 어쨌든 무대에서 많은 인기를 얻었어요. <작전>외에도 섭외가 들어온 영화는 없었나요?
스케줄이 맞지 않아서 못한 것도 있죠. 그리고 제가 드라마를 두 편 했는데 다 사극이었잖아요. 그래서 사실 현대극이 하고 싶었어요. (웃음) 그런데 <작전>이 들어온 거죠. 주식을 잘 모르는데도 시나리오를 재미있게 봤어요. 물론 비주얼을 비롯해서 여러 가지로 그 동안 맡아왔던 캐릭터와 비슷한 면이 있는 거 같아서 고민이 되긴 했지만 정말 시나리오 하나 믿고 선택했죠. 그냥 감사합니다, 하고 바로 했습니다. (웃음)
증권사 애널리스트를 연기하는 만큼 주식에 대한 어느 정도의 이해를 위한 노력은 있었을 것 같은데요.
처음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 조민형이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했어요. 물론 제가 그 동안 비현실적인 캐릭터를 많이 연기했지만 <작전>은 리얼한 상황을 그리는 이야기가 담긴 영화라고 생각했는데 조민형이란 사람은 현실적으로 거리감이 느껴지더라고요. 제가 볼 때는 나이대도 불분명해 보이고, 한국 사람 같지도 않고, 진짜 이런 사람이 있나 싶었죠. 그런데 증권 브로커 분과 인터뷰를 하면서 그런 부분을 많이 느꼈어요. 그쪽 사람들의 생리라던가 그런 측면을 많이 듣고 감독님과 조금씩 더 얘기해 나가면서 부족한 점을 풀어갔죠. 그렇게 시작했고, 결국 증권 브로커 분과 했던 인터뷰가 큰 도움이 됐어요. 그 분과의 인터뷰 이후로 현실적인 시선을 이해하고 바라보게 됐다고 해야 하나. 그런 느낌을 받았어요.
<작전>에서 조민형을 연기할 때 다양한 제스처가 눈에 띄더군요.
일단 감독님과 얘기를 많이 했어요. 손동작이나 그런 건 감독님이 주문을 많이 해주셨죠. 주먹에 쥐고 있던 완력공도 감독님이 주신 거고요. 일단 노멀하게 베이직(basic)에서 출발해야죠. 얘가 지금 왜 이럴까, 에서 시작하는 거에요. 집중하고 있다는 느낌을 많이 주고 싶어서 그런 제스처에 대한 주문을 많이 주셨고, 아무래도 <쓰릴 미>때 경험이 도움이 됐죠.
<작전>의 배우들은 현장 분위기가 좋았다는 말을 많이 하더군요. 그런데 표정을 보면 진심이 묻어나는 느낌이에요. 술도 많이 마셨다고 하고. (웃음)
정말 박희순과 박용하의 힘이었어요. 다른 좋은 분들도 많았지만, 왜 그렇잖아요. 현장 분위기라는 게 감독님이나 주연 배우 중 누구 하나라도 핀트가 나가버리면 확 가라앉아버리는데 용하 형도 그렇고, 희순 형도 그렇고, 노력을 많이 해주셨죠. 원래 성격이 그런 분들이시기도 하고. 당신들은 힘든 내색 별로 안 하고, 스태프나 후배들까지 챙기고, 더 재미있게 해보려고 하고. 저는 예전에 공연하면서 그런 것도 중요하지만 그냥 내가 더 잘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이번에 영화를 통해서 형들이랑 같이 작업하면서 저런 게 중요하다는 걸 느꼈어요. 술 먹으면서 솔직히 얘기했던 게 있어요. 영화가 잘 안돼도 일단 재미있었다면 된 거다. 정말 우리끼리 재미있게 웃고, 술도 마시고, 생각하면서 즐거웠던 기억이면 일단 된 거라고 말이죠. 그걸 관객 분들도 다 같이 느끼신다면 더욱 좋겠지만. (웃음)
다들 초면이라 처음에 친해지는 것도 관건이었을 거 같은데.
용하 형도 그렇고, 희순 형도 그렇고, 저도 그렇고, 낯을 많이 가려요. 처음에 대본 리딩하고 의상 피팅할 때 셋이 같이 앉으면 볼만했어요. “식사 하셨어요?” “어, 넌 먹었어?” “예.” (침묵) 그러면 한 명이 그래요. “어, 어떻게 할 거야. 이 썰렁한 분위기.” 그럼. “하하하.” 그리고 또 조용해졌다가, “첫 촬영은 언제세요?” “어, 나는 언제야.” “넌?” “전 언제쯤 할 거 같은데요.” “응.” (침묵) 그러면 또 한 명이, “어떡해. 이거. 왜 이렇게 어색한 거야.” 이렇게 무한 반복이죠, 계속. (웃음) 그래서 속으로, “와, 영화 어떻게 찍지. 이 사람들하고.” 그랬었는데 확실히 대한민국 남자들은 술 한잔 먹으면 금방 친해지나 봐요. 전 이번에 6년 끊었던 담배를 다시 피웠거든요. 솔직히 핑계일 수 있지만 그렇게라도 친해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담배 한대 피면서 생기는 유대감도 크게 작용하긴 하죠.
그렇게 어려운 사람들이라. (웃음)
그럼 그 이후로 다시 담배를 피게 된 건가요?
예. 지금도 피고 있어요.
저도 지금 2년 째 금연 중인데, 6년 동안의 기간은 정말 아깝네요.
그런데 담배는 끊는 게 아니라 참는 거라고 그러잖아요. 죽을 때까지 안 피면 죽을 때까지 참는 거라고. (웃음)
그래도 목 관리에 민감한 무대 배우에게 담배는 지양해야 할 기호품이 아닌가요?
이번에 <스프링 어웨이크닝>하기 전까진 담배를 다시 끊어야죠. 술도 끊어야 돼요. 3개월 동안 원캐(원캐스팅)이기도 하고. 5월 달부터 공연 연습에 들어가니까 그 전에 금단 현상까지 생각해서 미리 끊어야 되죠. 그런데 사실 배우라면 이것저것 다 해봐야겠다는 생각도 들더라고요. 핑계 같지만 그냥 나를 풀어놓을 때도 있어야 할 거 같아요. 사실 그 동안 되게 안 그러려고 노력하면서 살았거든요. 담배를 6년 동안 끊은 것도 흐트러지지 않은 나에 대한 상징이었죠. 그런데 요새는 그런 것도 필요하다 싶어요.
항상 무대에서만 연기하다 관객 없는 곳에서 연기를 하게 되면 어떤가요?
스튜디오 같은 곳은 되게 조용하잖아요. 그래서 상대방 연기에 집중할 수 있어서 좋죠. 원래 제가 추구하는 연기는 리얼한 연기에요. 그래서 과장되지 않고 사실감 있는 연기가 개인적인 취향에 맞거든요. 그런 걸 할 수 있게 된 것 같아서 좋았죠. 현장 배우들과 호흡하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을 때도 좋았고요. 특히 희순 형 같은 경우는 워낙 그런 능력이 좋으셔서 저도 몰랐던 호흡을 쉽게 알게 되는 경우도 있었어요. 공연 이삼십 번 해야 알게 되는 호흡이 있거든요. 모르고 올라갔다가 하다 보면 알게 되는 건데 희순 형과 촬영하면서, 비슷한 느낌을 얻곤 했죠. 아! 이런 거.
공연을 하다 보면 페이스를 끌어올리는 지점이 있죠. 하지만 영화는 분할된 리듬으로 이어나가는 작업이라 이질적인 느낌이 없었을까 싶습니다.
일단 준비 과정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감독님이 따로 시간을 내셔서 개인 교습을 많이 해줬어요. 아무래도 감독님은 불안했던 거죠. (웃음) 김수진 대표님이 절 캐스팅하자고 제의하신 건데 감독님은 김무열이 도대체 누굴까 싶어서 공연을 보러 왔다가 <미친 키스>를 보신 거에요. 막 미친 듯이 울고, 소리 지르는 연기를 보셨으니 더 고민을 하신 거죠. (웃음) 저 사람이 과연 조민형을 할 수 있을까, 어딘가 냉철한 구석이 있어야 하는데. 그래서 개인 교습을 많이 해주셨을 거에요.
설마 끝까지 감독님의 신뢰를 얻지 못하신 건 아니겠죠? (웃음)
그런 의심이 많이 풀렸던 게 두 번째 촬영에 희순 형이랑 같이 주차장에서,
담배 비비는 씬?
예. 담뱃재 씬. 원래 감독님이 예정과 다르게 수정을 했었어요. 거기가 노량진수산시장 위에 있는 옥상주차장이었는데, 멀리 한 곳을 바라보면서 대사를 갑시다, 그러시더라고요. 왜 그러는지는 말씀 안 해주시고. 그래서 희순 형이랑 얘기해봤는데, “아니다. 심리가 이렇다면 이에 행동이 붙어야 분명 더 재미를 줄 수 있다.” 이렇게 결론이 났죠. 나중에 감독님께서 얘기해주신 바론 제가, 그러니까 조민형이 처음부터 무너지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예정대로 가면 제가 무너질 거 같아서 바꾸자고 했던 거래요. 그래서 제가 그냥 제대로 해보겠다고 했고, 희순 형도 그렇게 가자고 해서 원래대로 간 거거든요. 그런데 감독님이 그걸 보시고 제가 안 밀려서 오케이를 했다고 하셨어요. 그런데 저는 안 밀렸다기 보단 정말 희순 형 호흡 받아서 연기한 것뿐이에요. 안 밀리긴요, 어떻게. (웃음)
얼마 전에 박희순 씨를 만났는데 김무열 씨 칭찬이 대단하더군요.
제 홍보대사십니다. (웃음)
촬영하다가 틈나면 사라져서 찾아보면 구석에서 연습하고 있더라고 하던데요.
해야죠. (웃음) 일 이년 전까지만 해도 공연 끝나기 전, 막 공연 때까지만 해도 대본을 봤어요. 그런데 요즘은 대본을 보기 보단 생각을 하는 편이거든요. 솔직히 영화 현장에서 한 씬 찍으려고 4시간을 기다렸다가 한 컷 찍고 이럴 때 있잖아요. 그래서 오락도 하고, (웃음) 머리를 쓰는 거죠. 2시간 전부터 이제 워밍업을, 아까 말씀하신 것처럼 페이스를 올려야 되니까 몸도 살짝 풀면서 준비를 하는 셈이랄까요. <일지매>때, 이문식 선배님께서 연기하시기 전에 혼자서 막 뛰시고, 젊은 배우들 아무도 안 그러는데 그 연기 잘하시는 이문식 선배님이 그러는 걸 보면……
무대 출신 배우들의 특징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무대에서는 NG가 없으니까 그만큼 더욱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잖아요.
제가 드라마나 영화를 몇 번 안 해봤지만 탤런트나 영화배우 중에도 좋은 배우들이 너무나 많아요. 다만 일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느냐, 라는 가치관의 정도 차이가 있을 뿐이겠죠. 비단 무대 배우 분들이 아니라 탤런트 선생님들 중에도 그렇게 하시는 분들도 있거든요. 제가 지금도 많이 부족하지만 만약 무대만 했다면 이 정도도 안됐을 거 같아요.
카메라 앞에서 적응하는 것이 관건이었던 시간도 있었을 겁니다.
제가 ‘드라마시티’에서 처음으로 주인공을 맡았었는데,
<신파를 위하여>말이죠?
예. 거기서 현욱이라는 역할을 맡았는데 그때는 연기에 대해서 잘 몰랐고 특히 방송 카메라에 대해서도 전혀 몰랐을 때에요. 이소은이라는 여자 감독님께서 한 컷 한 컷 찍을 때마다 고개 각도까지 일일이 수정해주실 정도로 디테일한 디렉션을 주셨어요. 보통 드라마는 그렇게 안 찍잖아요. 빨리빨리 넘어가야 되는데. 덕분에 그때 정말 많이 배웠죠. 그 한편으로 많이 배웠어요. 그래서 그 다음에 <별순검>은 편한 마음으로 할 수 있었죠.
그 작품으로 카메라를 이해하게 된 셈이군요.
<신파를 위하여>전에 단편들도 했었지만 전혀 그런 영향이 없었어요. 사전작업 때 감독님과 단 둘이 몇 번 만나서 현욱의 캐릭터에 대해서 얘기하면서 그 안에 숨은 감정들까지 생각할 수 있을 정도로 많이 도와주셨죠.
그 때 순수한 사랑을 추구하는 선생님을 연기했는데 이번 <작전>에서는 비열한 인텔리 주식 전문가를 연기했죠. 두 캐릭터만으로도 극단적인 너비가 발견됩니다. 배우로서 소화하는 감정의 폭이 넓어야 한다는 이야기죠. 그런 감정적 너비를 확보하기 위한 노력도 중요할 것 같습니다.
기본적으로 캐릭터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느냐를 파악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지금 이런 말을 하고 있다는 것 자체, 그러니까 그 말에 중점을 두는 게 아니라 말은 말일 뿐이란 거죠. 하지만 그 안엔 뭔가 있잖아요. 일단 이 사람이 언제 태어났고, 어디서 살아왔고, 뭘 했었는지, 이런 것들이 다 분명해야죠. 저는 악역이라고 해서 비열하게 보여야 된다는 생각은 절대 없어요. 제3자가 바라볼 때 비열함이라는 표현이 생기는 거지, 저는 주관적으로 그런 생각을 할 필요가 없다고 봐요.
관객들은 캐릭터의 드러난 외면을 바라보는 셈이지만 배우는 보이지 않는 내면까지 추적해 입체적으로 파고들어야 한다는 의미처럼 들리는 군요.
연기를 잘 하시는 선배들은 자기가 연기하는 걸 띄워놓고 보죠. 연기 수업에서 그걸 ‘제3의 눈’이라고 하는데, 배우가 가진 눈, 자기를 보고 있는 그 눈을 가져야 된다고 해요. 저도 그걸 갖고 싶어요. 그래서 항상 노력은 하는데, 이번에도 <작전>에서 보니까 역시 갖고 있지 않더라고요. 영화를 보니까. (웃음)
복싱으로 치면 섀도우(shadow) 복싱과 같은 셈이군요.
그렇죠. 다른 생각들을 지우고 한 감정에 100% 몰입한 채 상대방과 연기를 하고 있으면서도 마음 한 켠으론 나 자신을 띄워놓고 내가 연기하는 걸 보고 있어야 한다는 거죠. 그걸 제가 갖고 있는 줄 알았는데요. 이번에 <작전>을 스크린으로 보고 나니까 쥐뿔도 없더라고요. (웃음) 공부를 다시 해야겠다는 생각을 너무 많이 했어요.
어떤 점이 부족하다고 느껴지던가요?
전체적으로 그랬죠. 사실 조민형이란 캐릭터에 대한 이해에서도 부족한 점이 있었던 거 같고, 한편으론 그 캐릭터에 너무 빠져있었던 거 같고. 상대적으로 희순 형이랑 붙는다고 생각하다 보니까 존재감에 대한 부담이 많았나 봐요. (한숨을 쉬다가) 더 얘기하면 너무 자괴감에 빠질 것 같은데. (웃음)
드라마나 영화는 브라운관이나 스크린으로 자신을 다시 확인한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게 느껴질 수 있는 게 아닐까요?
많이 다르긴 하죠. 진짜 라이브의 느낌은 아니잖아요. 영화는 박제하듯 만들어내는 거니까. 그래서 라이브의 느낌을 최대한 살려야 된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그게 너무 부족했어요! 무대를 해왔던 놈인데도 불구하고, 거기서 그건 생각도 못하고 딴 짓을 하고 있더라고요.
음, 갑자기 후회와 반성의 시간이 되고 있군요. (웃음)
사실 요즘 정말 너무 그래요.
작년에 <일지매>에도 출연했었죠. 드라마와 영화의 진행과정에도 차이가 많은데 사전 준비기간이 길다는 점에서는 드라마보단 영화와 무대극의 공통점이 좀 더 강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아무래도 영화가 좀 더 본인에게 수월한 작업이 아니었을까 짐작되는데요.
저 같은 경우는 드라마가 더 편했어요. 다른 배우 분들도 다 그러시거든요. 드라마가 어렵다고, 왜냐면 바로 바로 가야 되니까. 그런데 저는 모르겠어요. 오히려 편하게 갔던 거 같아요. 오히려 영화는 컷이 많다 보니까 그럴 지도 모르죠. 한 씬에서 두 사람의 드라마가 흐르고 대화를 나누고 있는 와중에도 여기서 찍고, 저기서도 찍고, 그래서 그 때 디테일을 하나라도 놓치지 않도록 주의가 필요하거든요. 거기다 대형 스크린에서 상영을 하니까 디테일 하나라도 놓치거나 어디 한 군데라도 텐션(tension)이 들어가있으면 그게 딱 보이거든요. 드라마도 마찬가지겠지만 제 생각엔 영화가 컷이 많기 때문에 배우가 철저하지 않으면, 한 순간 방심하면 바로 드러나요. 배우는 같은 연기를 여러 번 반복해야 되는데, 똑 같은 씬이더라도 지금 가는 걸 언제 쓸지 모르는 거잖아요. 옛날에 한국영화 보면 울고 있던 배우가 앵글이 바뀌니까 안색이 멀쩡해지거나 그런 거, 선수들은 알거든요. 사람이 울 때 나오는 숨이 있는데 그렇게 숨쉬다가 잠시 화면이 바뀌니까 차분해져 있고, 이런 것들. 몸이 지금 데워져 있는지, 안 데워져 있는지, 그런 게 보이니까. 그런 걸 처음부터 끝까지 가져가야 되더라고요. 그런데, 와! 정말 힘들어요. (웃음)
스크린은 브라운관보다 크니까요. 마치 현미경으로 관찰하듯 선명할 수 밖에 없죠.
그렇죠.
최근 인터뷰를 보니까 비 얘기가 정말 많이 나오더군요. 안양예고 동창이라고 말이죠. 그런데 예고 연극영화과에 진학했다는 건 그 때 이미 연기에 대한 진로를 염두에 둔 셈이겠죠.
초등학교 때 오락실에서 오락하고 있는데 동네 선배 형이 머리를 기르고 나타난 거에요. 그 형한테, “머리 어떻게 길렀어?” 라고 물어보니까 안양예고 갔다고, 안양예고 가면 머리 기를 수 있다고 하는 거에요. 그리고, “너도 안양예고 가.” 그러길래, 저도 엄마한테 장난으로, “엄마, 나 안양예고 가서 머리 기를래.” 그랬거든요. 그런데 어머니가 진지하게 생각을 받아들여 버리신 거에요. (웃음) 일산에 있는 연기학원을 보내주셨죠. 그런데 연기가 너무 재미있었어요. 그래서 어렸을 때부터 연기를 하게 됐고, 안양예고 시험은 정말 한치의 의심도 없이 보게 됐죠. 난 연기할 건데 뭐, 이렇게. 그때 경쟁률이 17대 1이었어요. 제 생애 몇 안 되는 높은 경쟁률 중 하나였는데 붙었죠. 그렇게 아무런 의심 없이 연기를 꿈꾸다가 2005년도부터 연기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어요. <지하철 1호선>으로 김민기 선생님 뵙고 그 때부터 디테일한 것들을 파고 들어갔어요. 흰 머리가 나기 시작했죠. (웃음)
‘학전’에서 본격적인 연기자의 마인드를 얻은 셈이네요. 그럼 본인의 연기적 스승이 김민기 선생님이라고 할 수 있는 건가요?
연기자로서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방향성이랄까? 제가 어떻게 연기를 해야 되는지 정확한 틀을 잡아주신 분이 김민기 선생님이셨죠. 그리고 안양예고 다닐 때 김준철 선생님이라는 분이 계셨는데 그분께서 제가 어떤 마음가짐을 가지로 연기를 시작해야 되는지 가르쳐주셨어요. 그러니까 안양예고에 간 건 제가 화분을 산 거죠. 머리를 기르는 것 때문에 화분을 샀어요. (웃음) 그리고 안양예고 시절에 좋은 흙을 담아놓은 거고, 김민기 선생님 만나서 어떤 나무를 심을까 고민하다 씨를 뿌리기 시작한 거에요.
어쨌든 일단 이 자리까지 왔습니다. 그 당시엔 그런 것들이 본인의 인생에 있어서 중요한 지점이라는 건 뒤늦게 알았을 텐데요.
사실 저에게 일생일대의 전환점이 된 사건들이잖아요. 그런데 머리 기르겠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했다가 안양예고에 가게 됐고, <지하철 1호선>은 제가 그 당시 아르바이트를 여러 개 하고 그랬었거든요. 그 전에 저는 뮤지컬은 생각도 못했었어요. 그러다가 어떻게 창작 뮤지컬 오디션을 봤다가 합격했는데 그게 저 혼자 오디션을 본 거였어요. 그래서 나중엔 괜찮은 친구 있냐고 물어봐서 친구까지 소개시켜주고, 그렇게 뮤지컬을 하나 했죠. (웃음) 그 뒤로 악극무용단도 하고 그랬는데 어느 순간 연극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우연찮게 <지하철 1호선>이란 작품의 오디션이 있다고 하길래 당일 날 가니까 막 설경구 선배님, 방은진 선배님, 황정민 선배님, 조승우 선배님, 사진이 다 있는 거에요! 뭐, 이런 작품이었어? 그때 알았죠. 그런데 거기에 합격이 된 거죠. 사실 그 전에 영화나 드라마 오디션 수도 없이 봤었거든요. 다 떨어지고 그랬었는데 말이죠.
오디션에서 떨어진 경력이 상당히 많았나 봐요.
굉장히 많아요. 영화만 스무 개가 넘죠. 제가 지금도 연기를 못하지만, 그때는 진짜 못했거든요. 사실 <작전>도 우연찮게 김수진 대표님이 <쓰릴 미>를 보시고 저 사람 시켜야겠다, 그래서 책을 주신 거죠. 저는 복권 이런 거 사면 안될 거 같아요. 바라고 하면 되는 게 없어. (웃음) 솔직히 생긴 것도 특출하지 않고, 연기도 그저 그렇고, 어디서 보지도 못한 애가 붙기는 힘들었겠죠. 공부를 더 해야겠구나, 라는 생각도 있었고. 뭘 하지, 싶어서 학교를 다시 다니다가 커리큘럼도 엉망으로 짜고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 싶어서 갈팡질팡하다가 밖에 나가서 공연을 하자 마음 먹었어요. 그래서 <지하철 1호선>오디션을 봤는데 덜컥, 진짜로 덜컥! 붙었죠. (웃음)
결국 그 역사적인 <지하철 1호선>이 본인에게도 역사적인 공연이 된 셈이군요. 그 뒤로 <어쌔신즈>라는 공연을 했는데 그 때 함께 공연을 했던 멤버가 쟁쟁합니다. 오만석, 엄기준, 상당히 주목 받는 배우들과 함께 공연을 했어요.
만석이 형은 소문만 듣다가 <어쌔신즈>로 처음 봤어요. 그때 오만석 형님이 <헤드윅> 초연을 하고 있었는데 난리가 났었죠. 없던 공연도 생기고 기획사에서 해외 여행까지 보내주고, 그런 스케줄 때문에 연습을 많이 못나왔어요. 그렇게 저희끼리 2주 동안 지지고 볶고 있는데 연습하겠다고 나타나더라고요. 그래서 러프하게 런을 갔는데, 아니, 2주 동안 지지고 볶은 우리를 뛰어넘어서 디테일까지 다 잡아온 거에요. 사무엘 뷔크라는 역할을 맡았는데 약간 광기가 있는 집착성 정신병이 있는 친구였죠. 그 역할이 노래가 없어요. 대신 대통령 암살하러 가기 전에 혼자 뭐라고 지껄이고 그렇게 혼자 독백을 두 세 장면인가 지껄이고 그러는데 혼자 난리가 난 거에요. 저 사람 진짜 뭐지, 이렇게 깜짝 놀랐어요. 저래서 오만석이구나, 저래서 유명한 거구나, 싶었죠. 잘 하더라고요. 그래서 나도 잘 해야겠다, 잘 하고 싶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됐죠.
엄기준 씨와는 <그리스>에 더블 캐스팅되기도 했죠.
그때 기준이 형의 진면목이 나왔죠. 까불까불한, (웃음) 얄밉지만 사랑스러운. 원래 <그리스>의 대니 역할은 무조건 멋있기만 하면 되는데 대니가 나와서 계속 웃기는 거에요. 어떻게 보면 재해석이죠. 그런데 기준이 형은, 나는 춤을 못 추는 거니까 그런 거라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춤을 진짜로 못 춰요. 그래서 아는 사람들은 기준이 형이 <그리스>했다고 하면서 놀리기도 해요. (웃음) 멋있게 춤을 춰서 여자들의 환호를 얻어야 되는데 그냥 웃겨버리더라고요. 하지만 결국 대단한 거죠. 그런 걸 보면서 진짜 많이 배웠고 자극도 돼요. 형들로부터 그 당시에 많이 배웠죠.
노래는 원래 잘 하는 편이었나요? 아니면 노력의 산물인가요?
노래는 연습을 계속 했어요. 어렸을 때부터 노래방가는 걸 진짜 좋아했거든요. 고등학교 땐 학교 끝나고 일주일에 4번씩 가고 그랬어요. 오천 원에 3시간 주고 그런 곳으로 가서 맨날 노래하고 그랬죠. 사실 어렸을 땐 가수 한다고 그러기도 했거든요. 춤추고 노래하는 걸 좋아했어요. 그러다 안양예고 가면서 연기만 했죠. <지하철 1호선> 오디션 보기 전에도 노래 연습 되게 많이 했어요. 아직까지도 레슨 받고 그렇죠. 뮤지컬 쪽에 선수들 되게 많잖아요. 저는 그쪽에 끼면 그다지 잘 하는 정도는 아니거든요. 그저 극 진행에 방해가 안 될 정도?
연기적인 고민이 더 크죠. 제가 충격을 먹었던 게 <지하철 1호선>을 4개월 정도 했을 때 연습실에서 제작일지를 봤거든요. 그런데 거기 오디션 평가 점수가 있는 거에요. 그래서 찾아보니까, 김무열. 노래가 10점 만점에 9점, 그런데 연기는 5점, 3점, 이런 거에요. 그 때 충격이 진짜! (웃음) 혼자서 연기 열심히 연습해야겠다 싶었죠.
또 다시 자학의 시간이 펼쳐지는군요. (웃음) <쓰릴 미>에서 류정한 씨와 호흡을 맞췄습니다. 류정한 씨를 뮤지컬 3대 천왕으로 꼽기도 하잖아요. (웃음) 그런데 대부분 <쓰릴 미>를 보고 온 관객들이 류정한을 보러 갔다가 김무열을 보고 나왔다고 하더군요. 그 경험치 많은 배우와 홀로 호흡을 맞추기 위해서는 단순히 실력 이상의 어떤 정신적 무장이 필요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어쩌면 그만큼 오기가 강한 사람이기 때문에 가능한 게 아닐까 싶더군요.
이쪽 일, 아니, 어느 일을 하는 사람이라도 오기는 있어야죠. 다만 저 같은 경우 이쪽 일이라는 게 들쑥날쑥 하고 성공이 보장된 것도 아니고 자기 계발을 끊임없이 하면서, 그러다가도 운이 나빠서 안 되는 경우도 많잖아요. 저 같은 경우도 당시에 집안이 어려워졌기 때문에 제가 집에 돈을 벌어다 줘야 했는데 그러려면 직장을 구해야 했죠. 그런데 그러진 못하고 아르바이트만 했어요. 그러면서 계속 연습을 했죠. 나름 어렸을 때부터 고생을 많이 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그만큼 끈기도 있는 거 같고. <쓰릴 미>같은 경우는, 그렇죠. 상대방이 3대 천왕님이시고, 저는 한낱 신인인데. (웃음) 나는 진짜 이번에 잘 안되면 완전 사장될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대표님이 흥행이 될까, 말까, 되게 의아해했거든요. 그래서 정한이 형을 시킨 거죠. 정한이 형이라면 일단 흥행은 보장되니까, 천왕님이 막 군중들 몰고 다니시니까. (웃음) 사실 <쓰릴 미>는 작품 자체가 제 취향이기도 했어요. 그래서 열심히 한 것도 있죠. 제 취향이니까. 그런데 저를 좋아해주실 줄은 정말 몰랐어요.
일종의 출세작인 셈이죠.
맞아요. <쓰릴 미>덕분에 드라마 세 편하고 영화 한 편 했으니까요.
<스릴 미>는 참 미니멀한 연극이었어요. 달랑 피아노 한대에 두 남자 뿐인데, 그만큼 배우에게 시선이 몰리기 마련이죠. 그만큼 배우의 집중력이 중요한 작품이었을 거에요.
사실 초연 때는 제가 보여지는 것에 신경을 많이 썼어요. 비주얼에 대해서, 몸짓, 손짓, 걸음걸이라던가, 라이터를 켤 때, 담배 피는 모습, 누워있을 때, 이런 하나하나까지 신경을 썼죠. 그런데 앵콜에선 기본적으로 이미 몸이 편해진 상태라 그런 것들이 자연스럽게 되면서 초반보다 더 많은 걸 시도할 수 있었거든요. 오래 공연하다 보니까 나중엔 몸짓이 자연스럽게 나오면서 그렇게 됐어요. 때때로 오히려 그런 것들에 신경을 쓰다가 확 얼어버리기도 하거든요. 초연 때 그런 경험이 있어요. 노래할 때였나, 대사칠 때였나, 내가 지금 어떻게 보여지고 있을까, 한 순간 의심이 들었는데 바로 그때부터 말리기 시작해서 그 날 공연은 어디 혼자 산으로 다녀와버렸거든요. (웃음) 사람들이 날 보게 만들어야지, 날 보게 하려고 막 봐주세요, 이러는 건 아니었던 거죠.
무대에서는 관객의 반응에 리액션하는 경우도 있잖아요. 하지만 촬영현장에서는 온전히 배우 스스로가 자신의 연기에 대한 반응을 짐작하고 수위를 조절해야 합니다. 자신의 연기에 대한 검증이 온전히 배우 안에서 이뤄진다고 할 수 있겠죠. 그만큼 자신의 연기를 일관되게 유지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닐 거에요.
이번에 희순 형한테 그런 부분을 많이 배웠어요. 처음부터 끝까지 가져가는 호흡에 대해서. 희순 형이랑 연기하다 보니까 정말 자연스럽게 조금이나마 생겼죠. 희순 형이 맨 처음에 막 무게를 잡는 거에요. 그래서 이 양반이 왜 이러실까, 그랬는데. (웃음) 전체적으로 자기가 짜놓은 틀이 있더라고요. 사실 같이 연기하다 보면 상대 배우에게 말리는 경우가 있잖아요. 저도 초반에 나름대로 좀 강하게 가져가야 할 게 있었는데 희순 형을 보면서 자극 받았죠. 첫 촬영 때 의아해지다가 점점, 아! 이렇게 됐거든요. 이번에 시사회 한 걸 보니까 좀 더 알게 됐어요. 두 번째 영화를 하게 되면 더 잘 할 수 있을 거란 생각도 들고. (웃음)
공연에서 몸이 풀리는데 걸리는 시간은 얼마나 소요되는 것 같던가요?
어떤 공연 같은 경우는 초연 때 좋았다가 점점 하향곡선을 그리는 경우가 있고, 어떤 공연은 초반에 정말 형편없다가 진짜 어디까지 올라갈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끝까지 상승 곡선을 그리는 경우가 있죠. 다만 저 같은 경우는 그냥 스물 스물 조금씩 올라가는 둥 마는 둥 하는 거 같아요. (웃음)
스케줄이 2년 사이에 엄청 바빴던 걸로 알고 있어요. <쓰릴 미>와 <김종욱 찾기>, <미친 키스>를 이어오는 사이에 <별순검>이나 <일지매>같은 드라마 스케줄까지 병행했고, 덕분에 겹치기 출연 논란도 있었더군요. 물론 본인이 완성도를 침해하지 않아서 잠잠해졌지만.
그 땐 저도 그랬고 회사도 그랬고 욕심을 많이 냈죠. 왕성하게 활동해야 할 때다 싶었거든요. 솔직히 스케줄도 많이 꼬였어요. 일단 뮤지컬은 1년 전에 이미 확정 라인업이 다 나오는데 드라마는 그렇지 않잖아요. 거기다가 회사끼리의 알력도 있고. 그땐 진짜 몸도 마음도 너무 힘들었어요. 너무 무리해서 하는 거 아니냐, 그런 얘기를 저도 많이 들었거든요. 그 당시엔 그러면 안 되는 거였는데 돌이켜보면 저한테 도움이 많이 되는 시간이었어요. 몸도 마음도 힘들었지만 지금은 그때 정말 많이 늘었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그런데 그렇게 스케줄이 겹쳐서 캐릭터에 혼선이 생기는 경우는 없었나요?
오히려 되게 재미있었어요. 왜냐면 그때 <미친 키스>와 <김종욱 찾기>를 같이 하고 있었는데 <미친 키스>에서는 정말 미친 척을 하다가 <김종욱 찾기>에서는 막 애교부리고, 그러니까 너무 재미있더라고요. 처음엔 너무 힘들고 그래서 어떡하나 싶었는데 좀 적응되니까 재미있어지기 시작하고 오히려 이제 몸을 릴렉스하고, 텐션을 줬다가 다시 릴렉스로 빠지는 그런 테크닉이 엄청 늘더라고요. 완전히 각기 다른 것들을 하다 보니까, <미친 키스>에서는 몸에 텐션이 들어가 있다가 <김종욱 찾기>에서는 딱 빠져야 하니까. 그때 그런 것들을 많이 배웠죠.
<미친 키스>에서 연기한 장정은 꽤나 광기적인 캐릭터였잖아요. 반대로 <김종욱 찾기>의 김종욱은 상당히 팬시한 캐릭터죠. 그 두 작품이 어쩌면 서로에게 나름대로 감정의 출구가 되어준 건 아닐까 싶은데요.
그렇죠. 교집합이 되는 부분도 있지만 전혀 다른 점이 많으니까요. 그런 게 명확히 보일 때 제3자의 눈을 갖게 될 수 있는 거 같아요. 그런 느낌으로 항상 연기해야 되는데, 그런 건 사실 공연이 끝나고 오랜 후에나 남의 공연을 볼 때 생기거든요. 지금 갇혀서 보지 못하고 있는 것들이 분명 있어요. 제가 지금 뒤를 못 보는 것처럼. 그런데 그런 것들이 보였죠. 덕분에 매너리즘에서 벗어나게 됐죠. 어쩌면 그게 가께모찌(동시 출연)의 장점이라 할 수 있을까 모르겠네요.
감정에 몰입한 뒤로 잘 빠져 나오는 편인가요?
사실 연기할 때는 되게 힘들어요. <쓰릴 미>때도 공연이 끝나면 무대 뒤에 들어가서 많이 울었어요. 때때로 “‘그’가 ‘나’를 사랑했나요?”라고 물어보시는 분이 계시는데 저는 모르죠. 왜냐면 전 그걸 정의 내리지 않았거든요. 사랑했건 안 했건, 사랑했는지 안 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가끔 가다 그렇게 될 수 밖에 없는 현실에 너무나 마음이 아팠어요. 그러면 그건 사랑을 했었다는 거겠죠? 그럴 땐 막 무대 뒤에 가서 혼자 울었어요. (웃음) 가끔씩 그럴 때가 있었어요. <즐거운 인생>에서 ‘세기’란 역할을 하면서 한번은 필이 심하게 와서 울기 직전에 가슴 뜨거운 느낌 있잖아요. 그게 며칠을 가더라고요. 밤에 잠을 자려는데 숨을 조금만 잘못 쉬면 눈물이 날 것 같고, 진짜 그런 적도 있었어요. 배우란 직업이 힘든 거 같아요. 정신질환이 생길지도 몰라요. (웃음) 숀 펜이 그러잖아요. 배우는 미친 사람들이라고, 맞는 말 같아요. 그게.
몇 년 동안 연말 결산 기사에서 공연계의 유망주로 줄곧 소개가 되고 있더군요.
매년마다 유망주에요. (웃음)
본인에 대한 기대가 그만큼 지속되고 있다는 의미겠죠.
아직까지 신인으로 봐주시는 건 좋죠. 그런데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벌써 위기감이 들기 시작했고. (웃음) 지금도 ‘세기’같은 나이 어린 역할 고등학교 역할을 맡으면 제 자신이 부끄러운 느낌이 있으니까요. 이제 저도 스물 여덟이잖아요. 서른을 바라보는 이 시점에서 고등학생이라니. (웃음) 다른 어떤 걸 바라봐야겠다는 생각도 들어요. 서른이 되면 내가 어떤 모습으로 변해있을까 기대도 되고, 서른을 잘 맞이하기 위해서 지금부터 탄탄히 잘 준비해야겠다는 생각도 들고.
본인 말대로 이제 서른을 목전에 두는 나이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웃음) 하지만 나이 들어간다는 게 배우에게 나쁜 일은 아닐 거에요. 다만 그 전까지 해보고 싶은 것들이 있을 텐데요.
일단 지금 이렇게 20대를 보내고 나면 아쉬운 것들이 있죠. 나중에 제가 30대가 돼도 물론 20대 연기를 할 수 있겠지만 지금 제가 이해할 수 있는 나이 또래의 연기를 좀 더 많이 해보고 싶은 욕심이 들어요. 그렇게 생각해보면 지금 이 소중한 감정이나 마음을 가지고 다른 연기를 하고 싶지 않은 거에요. 이런 마음이 있을 때 이 마음을 통해 더 포괄적으로 볼 수 있고 더 가깝게 느낄 수 있는 것들을 빨리 해보고 싶다는 욕심이 생기니까요. 제 나이 또래에 맞는, 저와 가까운 그런 것들을 더 많이 해보고 싶어요. 그래서 시간이 얼마 없다는 게 너무 아쉽지만 그렇게 서른이 되면 제가 서른에 느끼는 것들에 대해서 더 많이 경험해보고 연기해보고 싶고요. 서른이 되면 또 그런 것들이 새롭게 다가올 테니까요.
지금이 지나면 도저히 할 수 없는 연기가 있으니까요.
그래서 지금이 너무 소중해요.
<스프링 어웨이크닝>에서는 마침 고등학생을 연기하는 군요. 인생의 마지막 고등학생 연기가 될지도 모르겠군요. (웃음)
이제 일 이년 후에는 고등학생 역할 못하겠죠. 제가 스물 여덟밖에 안됐지만 거기 있는 친구들은 저보다 어리거든요. 오디션을 보러 갔더니 다들 완전 (굽신거리면서) 이러는 거에요. 저한테! <작전>에서는 맨날, ‘형~.’ 막 이러고 있었는데 거기 가니까 애들이 막 불편해하고, 저랑 같이 연기 맞추고 그러면서 떨고, 그러는데. 너무 무안하죠. (웃음)
지금까지 자신이 생각하는 스스로의 단점에 대해서 상당히 많은 고민을 털어놓은 거 같은데 자신의 결점을 되새김질하는 느낌입니다. 마치 그 단점들을 죄다 소화시켜버리겠다는 일념 같아요. (웃음)
전 계속 발전하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그러려면 당연히 그런 게 필요하죠. 공연후기도 많이 읽어요. 불만 있으면 내 공연 보지 말라 그래. 이런 사람들도 있어요. 말도 안 되는 소리죠. 제 직업은 주관적인 인간이 객관적인 시선을 향해 몸을 던지는 일이잖아요. 물론 주관적인 믿음이 강하지 않으면 객관성 속에서 살아남을 수 없죠. 다만 그 객관성 속에서도 주관이 강해야 자성이 생겨서 객관적인 것들을 끌어 모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이렇게 사람들의 관심이나 시선을 다양하게 끌어 모을 수 있는 소신이 중요하다고 봐요. 그러려면 긍정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무엇보다 재미있다고 느끼면서 해야죠.
(무비스트)
남현수의 ‘오후의 뮤직’을 진행하는 라디오 DJ
소재만을 살펴보자면 <과속스캔들>은 어떤 오해나 편견을 발생시키기 좋을 만한 여지가 가득하다. 오래 전 혼전 관계로 잉태된 2세가 찾아온다거나, 부모와 자식 간의 갈등 그리고 화합, 아동 캐릭터를 이용한 웃음과 감동 등등, 영화가 끌어 모은 소재들은 예상 범위가 인지되기 좋은 수준의 이야기를 연상시키고 동시에 어떤 착취에 대한 오해를 형성시킬만한 여지도 농후하다. 영화 역시 그 예상범위를 특별히 벗어날만한 파격을 보이고 있다고 말할 수 없다. 그럼에도 <과속스캔들>은 충분히 즐길만하다고 말할 수 있는 가족드라마로 완성됐다. 뻔한 듯한 게 아니라 뻔한데도 즐길만한 구석이 충분하다.
중학교 시절 옆집 누나와 맺었던 첫경험(!)이 22살 먹은 딸로 인해 되살아난다는 설정이나 그 딸이 역시나 6세 손자까지 달고 온 미혼모라는 설정은 겉보기만으로도 상당한 무리수다. 무리수를 헤쳐나가는 돌파력은 캐릭터에서 발생한다. 고정적인 이미지가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유명배우나 신선한 이미지를 어필하기 좋은 신인배우나 존재 자체가 귀여움으로 인식되는 아역배우나 각자의 장점을 적절하게 발휘하고 있다. 캐릭터의 앙상블은 헐겁거나 과하다 싶을 만한 허구적 설정과 맥락을 제자리에 안착시킨다. 그리고 드라마가 전개된다. 결과적으로 <과속스캔들>은 기막힌 사연에서 시작되는 가족드라마이자 어느 남자와 소녀의 성장드라마다.
전복적인 상황과 캐릭터를 앞세운 유머를 통해 재치를 발휘하며 시작되는 영화는 중반부에 이르러 통속적인 슬픔을 자아내고 이내 극복을 통한 대통합 감동모드로 돌입한다. 전반부의 위트가 오밀조밀한 재미를 부여하는 것에 비해 후반부가 다소 작위적인 느낌을 지울 수 없긴 하다. 그럼에도 캐릭터의 매력은 후반부까지 최대한의 힘을 발휘하며 제 능력을 다한다. 지구력 약한 드라마를 순발력 있는 유머로 극복한다. 이는 <과속스캔들>의 오락적 성과를 인정하게 만들 정도의 자질이 있다. 특히 남현수의 6살 손자
한편, 외부적으로 큰 공통점이 발견되지 않음에도 <미녀는 괴로워>가 연상된다. 시사성을 지닌 소재가 보편적인 감정을 야기시키는 까닭이기도 하겠지만 두 영화에서 등장하는 무대의 속성이 캐릭터 스스로 한계를 극복하고 꿈을 이루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 무대에 선 캐릭터를 연기하는 배우가 공통적으로 노래를 잘 한다. 중간중간 등장하는 음악감상의 즐거움은 서브적인 묘미를 부여한다.
(씨네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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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저널리스트 &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 13인의 감독 인터뷰집 <어제의 영화. 오늘의 감독. 내일의 대화.>를 썼습니다. mingun@nate.com by 민용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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