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벽적인 화이트 칼라가 지배하는 정돈된 식탁과 책상 위로 시선이 미끄러져 나간다. 그리고 그 공간만큼이나 단정하게 머리를 빗어 넘긴 남자가 시야로 들어온다. 그의 눈빛은 때때로 공허하다. 그 남자의 시선에 놓인 초점이 종종 현재가 아닌 과거로 맞춰진 탓이다. 유년시절의 한 페이지가 투명한 창 너머의 광경 기억 너머에서부터 소환된다. 그리고 그 기억은 15세 시절의 열병과 함께 찾아온 기이한 러브스토리에서 출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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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행가 가사의 기원을 찾아서. <슬픔보다 더 슬픈 이야기>(이하, <슬픔보다>)는 정리하자면 이렇다. 좀 더 친절히 말하자면 어떤 유행가 가사에 담긴 실화를 찾아가는 이야기다. (실제로 이승철이 연기하는) 이승철은 자신의 필이 꽂힌 어느 무명 가수의 노래말을 작사한 작사가를 찾아 가지만 찾을 수 없다. 그 사연을 얘기하자면 길다. 그리고 <슬픔보다>가 바로 그 사연을 담은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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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숙한 장례미사가 진행 중인 성당을 메운 하객들 가운데 홀로 서있는 월트 코왈스키(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아내의 장례식을 치르는 중이다. 짧은 백발과 뚜렷한 주름의 굴곡은 그의 세월을 짐작하게 만드는 나이테와 같다. 부인에 대한 애도로 굳은 표정이 일그러진다. 엄숙함이 지배하는 장례미사 가운데 그의 심기를 거슬리는 일들이 눈 앞에 가득하다. 장난을 치며 히죽거리는 손자들과 피어싱이 눈에 띄는 손녀는 핸드폰을 만지작거리기 바쁘다. 그의 입술 한 쪽이 일그러진다. 장례미사가 끝난 뒤 집에 돌아온 그는 옆집에 이사온 동양인들을 보게 된다. 그의 입술 한 쪽이 또 한번 일그러진다. 그가 사는 동네엔 동양인을 비롯한 유색인종 이민자들이 늘어만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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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영화화된브이 포 벤데타(V for vendetta)’의 작가이기도 한 앨런 무어의 걸작 그래픽 노블왓치맨(Watchmen)’은 과거의 사실을 허구의 재료로 삼아 새롭게 쌓아 올린 역사다. 바꿔 말하자면 실존의 이름으로 포장한 거짓의 세계관이다. 베트남전과 닉슨, 그리고 아프가니스탄을 경계로 한 소련과 미국의 미사일 전쟁 위협, 핵전쟁의 우려로 상징되는 세3차 세계대전까지, 역사적 메타포로 치장된 작품 너머의 현실은 사실을 인용한 허구에 불과하다. 베트남전을 승리로 이끈 미국과 3선에 성공한 닉슨 대통령까지, 현실을 가장한 텍스트와 이미지로 구성된 그 세계는 엄연한 가상이다. 그 모든 건 착란의 발상에서 비롯된다. 케네디 암살 이후 대욱 강경해진 동서진영의 대립이 발병시킨 폭력의 징후와 공포의 착시로부터 잉태된 거대한 허구가 암울한코스튬 히어로(costume hero)’의 스토리텔링을 출산시키기에 이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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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양된 목소리 너머로 사진과 기사가 흐른다. 1980년대를 주름잡았던 프로레슬러의 전성기가 언어로 구술되고 이미지로 비춰진다. 영광의 나날들이 전설처럼 전해진다. 환호와 열광이 빗발치던 지난 세월을 넘어 눈앞에 들어서는 건 어느 적막한 대기실의 풍경. 작은 의자에 몸을 의지한 채 가쁜 숨을 몰아 쉬는 그는 고단하고 힘겨워 보인다. 영광의 세월을 지나 노쇠한 육체는 여전히 그 세월을 연장하기 위해 부딪히고 내던져진다. 사나이는 여전히 자신의 전설을 놓지 못한다. <더 레슬러>는 전설을 먹고 사는 어느 루저를 위한 송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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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인불명의 괴질에 감염된 사람은 얼굴의 모든 구멍으로 출혈을 일으키다 발작 끝에 심장이 멈춰 사망한다. 그저 속수무책으로 일본 전역이 이 괴질로 초토화된다. 그 모든 것이 도쿄에서 시작된다. 일본 열도 전체가 정체불명의 괴질에 감염되어 국가 전복의 위기에 처한다. 문득 <일본침몰>이 기시감처럼 상기된다. 하지만 <블레임: 인류멸망 2011>(이하, <블레임>)은 그보다 좀 더 스케일을 요구하는 영화다. 단순히 일본의 패망만으로 끝날 이야기가 아니다. 인류멸망이라는 거창한 단어는 괜한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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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세주2>에 대한 긴 이야기를 한다는 건 꽤나 무색한 일이다. 홍보카피만으로도 이미 기대감 따위를 낮춰버린 자충수는 꽤나 유효하다. 명품 코미디가 어쩌고 따위를 도배하고 뒤통수를 시속 250마일로 가격하는 듯한 어떤 조폭 코미디 따위에 비하면 꽤나 양심적이다. 물론 그것도 일종의 개그임을 간과해서는 안되지만 여러모로 윤리적임을 감안해야 한다. 아무도 기다리지 않은 속편을 만들었다고 스스로 떠드는 이의 허세는 실로 처량한 것임에 틀림없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 카피만큼이나 영화가 후지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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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 6 17 오전 2시반, 워싱턴 민주당사를 도청하려던 5명의 용의자가 검거됐다. 워싱턴 포스트지의 두 기자는 그 배후를 추적했고, 그 끝자락에 닉슨 대통령이 관련됐음이 기사를 통해 폭로됐다. 차기 대선에서 재선을 노리던 닉슨 대통령의 불명예가 백일하에 드러났다. 닉슨은 이를 적극 부인했지만 결국 여론의 압박이 대단했다. 결국 1974 8, 국회의 탄핵의결을 거쳐 대통령직을 사임하며 닉슨은 자신의 혐의를 인정한다.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워터게이트(Watergate)’ 사건이다. 여기서 워터게이트는 워싱턴 민주당사가 있던 건물의 이름에서 유래됐다. 대부분의 정치 스캔들 명칭에 게이트(gate)란 어미가 붙게 된 것도 이 덕분이다. 어쨌든 닉슨 대통령은 대단한 정치적 영향력을 남긴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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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막한 스크린의 검은 여백 위로 제목이 등장하고, 등장인물을 명시하는 자막이 눈을 깜빡이듯 몇 차례에 걸쳐 뒤따라 나타나고 사라진다. 그러다 마치 감았다 뜬 눈 앞에 비춰지는 어떠한 것들을 대수롭지 않게 쫓아가듯 영화는 시작된다. 상하좌우로 흔들리는 카메라 앵글과 숏을 채우는 인물간의 거리는 일정하되 두서가 없다. 3자의 곁눈질이거나 무심한 응시처럼 담담하되 시선을 거두지 않는다. <레이첼, 결혼하다>는 기록적인 다큐멘터리의 시야로 위장된 극영화다. 시종일관 무심한 태도로 응시하는 관점이 발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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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드폰은 더 이상 전화기가 아니다. 사진을 찍고, 동영상도 찍고, TV를 보거나 노래도 듣는다. 심지어 인터넷을 하기도 한다. 핸드폰으로 전화만 한다면 촌스런 사람이란 소리 듣기 십상이다. 더 이상 통화가 잘되는가 따위는 좋은 핸드폰의 기준이 아니다. 원 소스 멀티 유즈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물건이다. 시대가 그만큼 좋아졌다. 그리고 그만큼 문제가 발생한다. 핸드폰을 잃어버리면 그만큼 잃어버리는 것들이 많아졌다. 때때로 그 안에 은밀한 개인정보라도 담겨 있다면 심각한 문제로 발전한다. <핸드폰>은 그 심각한 문제를 파고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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