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에서 공개된 <매란방>의 러닝타임이 147분으로 알고 있다. 어제 내가 본 건 118분이었는데 중국에서 상영된 건 어떤 버전인가? 중국에서 상영한 것도 베를린 버전과 같은 147분짜리였다.
혹시 118분 버전은 봤나? 편집에 어디까지 관여한 건가?
공교롭게도 아직 보진 못했다. 사실 영화사 측으로부터 한국 사정에 맞춰서 러닝타임을 줄인다는 말은 미리 들었다. 배급사에서 나름대로의 사전에 맞춰서 부탁한 것이라 생각하니 반감을 갖거나 크게 염두에 두진 않았다. 일단 러닝타임을 줄였다고 하니 조정된 부분이 어떤 부분일 거란 예감은 든다. 그리고 중국이 아닌 한국이나 다른 나라의 사정은 잘 모르기 때문에 이런 요청에 대한 이해를 할 수 있다. 다만 수입사의 판단이 옳은 방향이길 바랄 뿐이다.
예전에 펑 샤오강 감독을 만난 적이 있다. 펑 샤오강 감독은 아시아에서 제작되는 블록버스터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에 대항하는 수단이라고 했다. 어떻게 생각하나?
펑 샤오강 감독이 그때 어떤 시점에서 그런 말을 하게 된 건지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감독마다 조금씩 생각이 다를 수 있다. 할리우드 영화에 대항하기 위해서 중국도 블록버스터 영화를 만들어야 된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나는 자신의 나라가 지닌 아름다운 문화와 역사를 영화에 담아내고 이를 관객에게 보여주는 것에 큰 의미가 있다고 본다. 미국 영화 중에서도 훌륭한 영화들이 관객들에게 영향을 준다. 실질적으로 지금 전세계적으로 미국 문화 자체가 우세한 위치에 놓인 건 확실하다. 만약 한국이나 중국 감독이 자기 나라의 역사적인 전쟁을 영화로 찍었다면 다른 나라 사람들 대부분을 이해시키긴 힘들 거다. 하지만 <라이언 일병 구하기>같은 경우는 다들 서양문화를 이해하는 만큼 쉽게 받아들인다. 만약 <슬럼독 밀리어네어>를 인도감독이 인도영화처럼 찍었다면 세계시장에서 지금처럼 인정받기 힘들었을 거다. 그렇지만 우리 문화와 역사 속의 중요한 부분들을 우리가 영화로 표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매란방>에서 일본군 장교가 경극의 위대함을 이야기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것도 그런 맥락의 일종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중국이 위대하다는 의도로 접근한 대사는 아니다. 실제로 매란방은 일본으로 서너 번씩 건너가 공연을 했고, 이를 통해 일본 친구들을 알게 됐다. 그 장면은 실제로 있었던 이야기였다. 그 당시에 일본군은 무력으로 중국을 점령할 수도 있었지만 문화를 정복함으로써 중국을 완전히 점령하려고 했다. 영화에서 일본과 중국의 갈등을 좀 더 디테일하게 보여줄 수 있는 5분 정도의 분량을 편집과정에서 잘라냈는데 만약 그 장면이 남아있다면 이런 부분을 좀 더 보여줄 수 있었을 거라 생각한다.
우리가 경극에 대해서 인식하게 된 건 <패왕별희>와 같은 중국영화의 영향력 덕분이기도 하다. 혹시 중국 내에서는 경극을 소재로 한 다른 장르나 매체가 제작되고 있나.
아직도 중국 내에서 많은 관객들이 경극을 좋아하고 보기 때문에 여전히 공연이 이뤄진다. 특히 북쪽지방 사람들은 더더욱 경극을 좋아하는 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을 이용해서 다른 컨텐츠를 만들기 보단 여전히 경극 자체가 존재하고 있다. 경극은 높은 경지의 예술 세계를 보여주는 예술이므로 영원히 존재하길 바라지만 지금 현재로선 완전히 대중적인 예술이라 말하긴 힘든 측면이 있다. 물론 예전엔 아주 대중적인 예술이었지만 지금은 그렇다고 말할 수 없다. 경극은 현실주의적인 예술이 아니다. 무대 위에서 어떤 동작이나 도구를 사용하는 형식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동작이나 표정으로서 모든 것을 나타내는 예술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경극이 서양에 끼친 영향도 크다고 생각한다. 서양의 유명한 감독, 배우, 평론가들에게 영향을 미쳤고 그들 가운데 경극을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도 있다.
예를 들자면?
구체적으로 예를 들면 찰리 채플린과 매란방은 굉장히 많은 교류를 하는 친구관계였다. 찰리 채플린의 무성영화를 보면 알겠지만, 가령 예를 들어서 컵을 들고 물을 마신다면 실제로 컵은 없지만 컵을 들고 물을 마시는 동작만 하지 않나. 사실 이런 것들이 매란방과의 교류를 통해서 얻은 영향의 결과가 아닐까 짐작한다. 그리고 러시아의 세르게이 에이젠슈타인 감독은 매란방이 연기하는 장면을 실제로 찍었었고 여전히 그 영상이 남아있기도 하다. 그러니까 매란방은 단지 중국에 국한되는 인물이 아니라 당시 유명한 세계의 대가들과 교류하고 그들에게 직접적으로 영향을 행사했다는 걸 알 수 있다.
매란방이 세계에 영향을 미쳤던 것처럼 당신의 작품도 세계에 영향을 미친 바가 있을 거다. 15년 전 상영됐던 <패왕별희>를 여전히 기억하는 사람이 있고, 그 영화를 통해 경극을 처음 알게 된 사람들도 있을 거다. 자신의 작품이 타국인들에게 문화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걸 의식해본 적 있나? 혹은 반대로 자신이 타문화의 영향력을 얻었다고 할만한 경험은 없나?
실제로 내가 다른 관객들에게 큰 영향을 줬는지 스스로 잘 느끼긴 어렵다. 나는 문화혁명을 겪은 세대였고, 문화혁명으로 당시에 노동자가 됐다. 사실 제대로 교육받지 못했고, 문화를 만끽할 수 있는 환경을 만나지 못했다. 어떤 사람들은 때때로 나를 영화 대가라고 부르는데 나는 그렇게 생각해본 적이 없다. 다만 문화를 제대로 느낄 수 없는 환경 속에서 자랐기 때문에 우리가 가진 문화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생각하게 됐다. 스스로 자부심을 느낄 수 있는 건 우리가 가진 문화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한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겐 더더욱 필요한 부분이 아닐까 싶고. 물론 나는 민족주의자가 아니다. 다만 서양의 문화를 그대로 따라가고 싶지 않다. 우리 문화 속에서도 불합리한 부분들이 있는 것처럼 서양문화 속에서도 불합리한 부분들이 있기 때문에 그것을 맹목적으로 따라가고 싶진 않다.
<매란방>은 예술가에 대한 일대기를 담은 영화다. 예술가라 할 수 있는 당신이 그 이야기를 선택한 것에 대한 계기가 있을 텐데.
<매란방>은 예술가가 자기 인생을 사랑하기 때문에 얻게 되는 어려움과 공포를 극복해나가는 영화다. 자신을 버리고 관객들에게 모든 것을 내어준 배우다. 유일하게 서방국가에서 경극을 보여줬던 배우이기도 했다. 일본 침략기엔 자신을 버리고 다시 배우로서 살아가고자 결심하기도 한다. 영화의 도입부에서 종이 족쇄를 차는 백부의 모습은 그 시대의 예술인들의 현실을 드러내는 장면이다. 다양한 매체와 접하지 못하고 그만큼 자유롭지 못했던 형편을 보여준다. 그래서 결국 예술가로서 자유롭고자 하는 의지를 보여주고 싶었던 작품이다.
<매란방>은 크게 세 맥락으로 구성된 영화다. 사실 세 번의 사건 속에서 매란방보단 그 주변부를 차지하는 인물에게서 얻어지는 극적인 감정이 크다. 궁극적인 의도가 궁금하다. 그리고 혹시 다른 방식의 이야기를 구상해보진 않았나?
실제로 매란방이란 인물에겐 많은 일이 있었지만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한 사건이라 생각되는 세 부분을 단락으로 나눠서 각자 세 명의 인물을 거치는 방식으로 묘사했다. 처음에 스승님과의 대결에서 매란방이 비록 승리자가 됐지만 사실 승리 이후에 모든 것이 공허하다는 걸 느낀다. 결국 성공이라는 것조차도 그 뒤에 남는 건 아무것도 없는 공허함뿐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전쟁과 같은 어떤 외부의 압력에 의해 무대에서 자신의 예술 생활을 할 수 없게 된다는 건 어떤 예술가에게라도 굉장히 힘들고 어려운 일이다. 결과적으로 매란방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인생의 세 단락을 통해 매란방이란 인물을 보여주고자 했다. 만약 다른 방식의 이야기를 생각한다면 다른 사람을 통해 매란방을 보여주는 방식을 택하지 않았을까.
<패왕별희>와 <매란방>은 당신이 만든 작품이란 점만으로도 비교되기 좋은 영화다. 벌써부터 그러는 분위기고. <패왕별희>는 15년 전 작품이다. <매란방>은 실재 역사적 인물을 이야기한다는 점에서 <패왕별희>와 전혀 다른 작품이다. 일단 연기하는 인물들이 다르지 않나. <패왕별희>에서 장국영이 연기한 데이는 사회를 주도하는 주류라 할 수 있는 중심인물이 아니라 변두리의 인물이었고 그렇기 때문에 그 사회 속에서 늘 긴장관계를 지니고 살았다. 결국 그 사회가 발전하는 변화 속에서 적응할 수 없었던 인물이다. 그래서 자살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던 인물로 그려진다. 그에 반해서 매란방은 그에 반해서 늘 중심에 있었던 인물이다. 매란방은 물처럼 흘러가는 인물이었다면 데이는 불처럼 꺼져가는 운명이다. 매란방은 부드러운 저항가란 점에서 실제 아시아인과 많이 닮았다고 생각한다.
두 인물 사이에서 발견할 수 있는 공통된 화두는 없을까?
인물이 다르긴 하나 두 인물을 통해서 느껴지는 바는 있다. 어떤 어려움이 닥쳤을 때 그것을 극복하려 하면 할수록 더 큰 어려움을 겪게 되는 거 같다. 단지 나는 매란방이 이를 더 포용할 수 있는 힘을 갖고 있었던 거라고 생각한다. <매란방>을 통해서 포용하는 인간을 표현했다고 생각한다.
<패왕별희>의 장국영과 <매란방>의 여명을 비교한다면 어떤가?
장국영이라는 배우는 굉장히 민감하고 내적으로 불 같은 폭발력을 지니고 있는 배우였다고 생각한다. 그에 비해서 여명은 마치 차분한 검객처럼, 혹은 불교를 공부하는 승려처럼 조용한 방식으로 자신을 표현하는 배우다.
몇 년 전부터 아시아 합작영화들이 활발히 제작됐다. 이에 대한 의견이 궁금하다.
아시아인이 느낄 수 있는 어떤 공통된 소재나 주제를 이용해서 아시아인들끼리 좋은 영화를 함께 작업할 수 있다면 괜찮지 않을까. 이젠 이런 합작영화가 더 이상 소수의 사례가 아니라 보편화된 단계로 올라섰기 때문에 기회가 된다면 합작영화에 참여해보고 싶기도 하다. 한국도 괜찮고, 일본도 괜찮고, 혹시 어느 회사랑 합작하면 미래가 밝을지 당신이 알려줄 수 있다면 그것도 좋겠다. (웃음)
혹시 마음에 담아두고 있는 이야기가 있나?
그리고 싶은 이야기는 많다. 다만 어떤 이야기들은 영화적으로 표현하는데 있어서 어려움이 있을 거 같고, 어떤 이야기들은 관객들이 과연 그 이야기를 영화로 보고 싶을까라는 의문이 든다. 지금 하고 싶은 이야기 중 하나는 내가 소년 시절 문화혁명 당시, 남쪽 지방인 운남 열대야 지방의 자연 속에서 생활하면서 겪었던 인생에 관한 이야기다. 평범한 삶이긴 했지만 자연환경 속에서 얻었던 역경과 사랑, 이상을 비롯한 청춘 시절의 충동 같은 감정들과 그로 인한 다양한 사연에 대해서 한번 꼭 다루고 싶다. 다만 그게 관객들이 보고 싶어할만한 이야기일지 잘 모르겠다.
예민한 접사를 통해 누군가의 생채기를 세심하게 더듬어 가는 시선의 끝엔 영문을 알 수 없는 어떤 죽음이 존재한다. <우리집에 왜왔니>(이하, <우리집>)는 비극적이라 단정짓기 쉬운 결과를 통해 시작되는 영화다. 물론 영화엔 어떤 비극적 암시가 없다. 그 비극은 단순히 상황 그 자체에 대한 해석에 불과하다. 실상 영화적 태도와 무관하다. 온전히 영화의 태도를 빌려서 말하자면 이건 비극이 아니다. 그러니까 어떤 이의 특별한 사연일 뿐이다. 그 죽음은 누군가의 기억을 다시 온전히 되돌리는 계기가 된다. 김병희(박희순)는 다시 한번 기억을 따라간다. 그 기억엔 이수강(강혜정)이 있다. 만남부터 이별까지 결코 평범할 수 없었던 한 여자가 있다. 이야기도 거기서 시작된다.
김병희는 막 생을 끊으려던 참이었다. 아내를 잃은 뒤로 그에게 있어 삶이란 그저 버거운 일이었다. 세상은 감옥처럼 답답하기만 했다. 삶을 포기하는 시도가 그저 처음은 아니었다. 어쨌든 이제 막 벽에 못을 박고 노끈을 묶어 자신의 목을 조일 고리를 만들었고 설마 몸의 무게를 지탱하지 못할까 잡아당겨보기까지 했던 차였다. 그리고 결심의 순간, 고통과 환희가 교차하는 그 중요한 순간, 예상치 못했던 일이 생겼다. 그녀가 등장했다. 거짓말처럼, 불쑥 찾아와 남의 집에서 ‘다녀왔습니다’라고 말하는 그녀는 불미스럽게 그의 결단을 또 한차례 꺾어버린다. 이수강과 김병희의 만남은 생소하듯 자연스럽게 이뤄진다. 누군가의 인생을 급격히 틀어버린 혹은 다시 제자리로 튕겨버린 우연은 그토록 현실감 없게 일방적으로 찾아온다. 심지어 엽기적이라 느껴질 만큼 기막힌 방식으로.
현재를 축으로 차근차근 되짚어 나열되는 과거는 김병희의 1인칭 시점과 내레이션을 통해 재구성되는 시점과 이수강의 과거를 플래쉬백하는 시점으로 나뉜다. 현재에서 파생된 병렬 구조의 과거가 나란히 배열된다. 두 사연의 간격은 동떨어진 것처럼 무관하지만 동시에 현재를 떠받드는 궁극적 인과의 실마리가 가려져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동일하다. <우리집>은 그 사연의 끝에 무엇이 놓여있는지, 그리고 그 사연이 무엇을 가리키며 시작되는지, 강한 호기심을 부르는 영화다. 모든 호기심의 축은 이수강이란 인물에게서 시작된다. 그녀의 정체를 비롯한 모든 행위는 물음표를 소환하지 않고선 감당할 수 없는 것이다. 이수강의 사연이 큰 테두리라면 김병희의 사연은 핵심에 가깝다. 관객이 <우리집>을 통해 머금게 될 호기심은 입체적이라서 흥미로운 것이다.
두 인물에게 걸쳐지는 의문은 사실상 영화 내에서 서로의 존재감을 보좌하는 것이다. 물론 두 사람의 삶엔 어떠한 연관도 없다. 단지 밑바닥까지 내려앉은 삶을 어떤 방식으로 소화하느냐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재앙처럼 다가온 진실로 인해 한 순간 좌초된 삶을 맞이한 병희와 스스로의 감정에 지나치게 충실한 나머지 관계의 결렬에 적응하지 못하고 비사회적 인물로 몰락한 수강은 헤어날 수 없는 지경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점에서 엇비슷하다. 결과적으로 그 만남은 지독한 우연에 불과한 것이지만 동거와 공모는 필연처럼 이뤄진다. 그 기이한 연대는 지독하게 비현실적이지만 그 비현실적인 형태 안에서 드러나는 현실적인 사연들이 감정적 동의를 구축하고 이 모든 총합이 이야기에 설득력을 덧씌운다.
정체불명의 해프닝처럼 시작된 사연이 양파껍질처럼 거듭 벗겨지며 사연의 실체에 접근할 때 얕은 호기심은 점차 깊은 연민으로 번진다. <우리집>은 분명 비극적인 사연인 까닭이다. 하지만 실상 영화는 담담하며 때때로 역설적인 유머를 장착하기도 한다. <우리집>은 너무나도 부조리한 광경을 연출하기 때문에 한편으로 해학적인 인상마저 풍기는 영화다. 그 죽음엔 어떤 불행의 기운이 감지되지 않으며 궁극적으로 그 죽음은 누군가의 인생을 다시 복구시킨다. 게다가 한 여자의 오랜 착각은 누군가에게 있어서 지독한 간섭이거나 악몽이기도 하지만 실상 스스로를 파멸시키는 구실이란 점에서 연민을 부르고 한편으론 위안을 준다. 수강의 과거를 모두 벗겨낸 이야기는 핵심적으로 병희의 사연을 벗기며 핵심을 들어선다. 그 지난한 과정을 바라보는 가운데 아이러니하게도 삶의 의지를 되새겨버린 남자의 인생을 좌초시킨 근본을 비로소 고백한다.
지나친 우연이라 할지라도 무리가 아닌 사연에 감화될 수 있는 건 그 안에 놓인 진실이 만만하지 않기 때문이다. 현실은 비현실적이라 믿어지는 것들을 통해 유지되고 지탱된다. 필연은 어쩌면 우연을 쌓아 올린 결과에 불과하지 않다. <우리집>은 첫인상이 낯설어 생소하지만 보면 볼수록 누군가를 닮았다고 생각되는 이야기다. 스스로의 비극에 갇힌 이가 누군가의 담담한 비극을 마주한 뒤 자신의 비극으로부터 탈출하게 된다는 이야기는 실상 부조리해서 불공평해 보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수긍할만하다. 사실상 자신의 비극을 인식하는 병희와 수강의 태도가 겉보기와 무관하게 너비를 벌린 까닭이기도 하다.스토킹과 납치, 자살미수로 거칠게 포장된 사연이 너른 공감대를 이룰 수 있다는 점에서, 심지어 역설적으로 미소를 발생시키고 이를 연민까지 발전시킨다는 점에서 <우리집>은 특별한 사연이다.
물론 본질적으로 사연의 형태는 여전히 비극에 가깝지만 그 비극의 중심에 놓인 자들은 죽음으로서, 혹은 그 죽음을 인지하게 됨으로써 자신의 비극으로부터 탈출한다. 물론 영화의 마지막 물음엔 답이 없다. 그건 그저 그랬기 때문일 뿐이다. 이유는 중요치 않다. 단지 그것이 어떤 방식으로 결과를 보여줄 수 있는가가 중요할 뿐이다. 대부분의 필연이라는 게 어차피 우연처럼 시작되는 것처럼, 그들은 그렇게 엽기적으로 만나 애틋하게 헤어진다. 그 만남 속에서 비극은 비극을 구출하고 미련 없이 소진된다. 게다가 영화는 노숙자로 대변되는 사회적 약자를 묘사하는데 있어서 공정한 시선을 견지한다. 일방적인 동정의 여지를 발생시키기 보다도 그 현실을 과감히 묘사함으로서 대안의 의지를 촉구한다. 정치적 주장이나 투쟁이 아닌 시선의 견지 자체로 하나의 쟁점을 마련한다. 이는 분명 공정한 시선이라 그만큼 깊은 배려다.
오랜만에 특별한 개성을 유감없이 발휘한 강혜정의 캐릭터에 대한 반가움도, 번거로운 과제나 다름없는 1인칭 나레이션을 탁월하게 소화한 박희순의 대단한 소화력도 <우리집>을 보좌하는 훌륭한 일원이다. 무엇보다도 엽기적이라 할만한 사연의 테두리 안에서 보편적인 감수성을 야기시키는 <우리집>은 황수아 감독의 데뷔작이란 점에서 분명 새로운 발견이라 할만한 성과다.
<천하무적>이란 타이틀은 우리가 아는 그런 의미가 아니다. ‘세상에 적(敵)이 없다’는 의미가 아니라 ‘도둑(賊)이 없는 세상’을 의미한다. 두서없이 출발하는 이야기는 대략적으로 단명하다. 소매치기 왕보(유덕화)는 그의 연인이자 동료인 왕려(유약영)와 떠돌아다니며 도적질로 삶을 연명한다. 그런 어느 날 왕려는 개과천선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내고 왕보와 깊은 갈등 국면에 들어선다. 그러다 우연히 사근(왕보강)을 만난 왕려는 그의 순수한 천성에 감화되고 고향으로 내려가는 기차에서 왕보와 호려(유게)의 일당으로부터 사근의 돈을 지켜주겠다고 다짐한다.
<야연><집결호>를 통해 국내에 알려진 펑 샤오강 감독의 2004년도 작품인 <천하무적>은 사실 기교적으로 뛰어난 이야기는 아니다. 영화에서 비중 있게 다뤄지는 소매치기 씬이나 소매치기들 간의 결투 장면은 지나친 눈속임으로 일관하다 못해 때때로 한심할 정도다. 잔상이 심한 슬로모션을 통해 동작을 파악하기 힘든 영상으로 무마하는 소매치기 장면에서 디테일한 손놀림 따위를 기대했을 관객의 심리를 뻔뻔하게 반감시키고 만다. 결과적으로 영화에서 소재를 활용하고 묘사하는 방식으로부터 어떤 기대를 지녔다면 일찌감치 포기하는 편이 좋다.
다만 일면 타당한 구석도 있다. 사건의 전개보다는 개과천선을 바라는 캐릭터의 심리적 변화가 그렇다. 사건의 갈등을 심화시키고 의문을 야기시키는 그 변화의 본질은 궁극적으로 새로운 생명을 위한 배려라는 점에서 수긍할 수밖에 없는 측면이다. 그 변화의 정체를 깨닫게 되는 시점부터 영화의 감정은 어느 정도 허무맹랑한 구석에서 탈출한다. 하지만 <천하무적>의 성찰을 높이 평가할만한 자신은 없다. 변화의 양상이 타당할 뿐, 그것이 깊은 감동을 부를만한 수준은 아닌 덕분이다.
동시에 소매치기라는 소재를 통해 발생하는 기교적 기대감은 철저하게 망연자실해진다. 내용물도 중요하지만 기본적인 기능에 충실한 그릇을 마련하는 것도 중요하다. 물론 <천하무적>의 문제는 그 어느 쪽도 확실한 감흥을 주지 못한다 점이겠지만. 때때로 허세로 가득 찬 화면과 음악을 접하고 있노라면 이것이 고의적으로 웃음을 야기시키는 의도에 속한 것인지, 아니면 정말 실소를 부르는 풍경인지 헷갈릴 지경이다. 유덕화조차도 위안이 되지 못하고 동정을 부르는 느낌이다. ‘천하무의(意)’와 ‘천하무실(實)’의 연속이다. 의미도, 실속도, <천하무적>에선 얻을 수 없다.
이번이 첫 방한이 아니다. 뭔가 특별한 일정이라도 보냈나.
여명(이하, '여'): 와서 보니까 홍보사에서 영화 홍보를 위해 스케줄을 많이 잡아놓은 덕분에 일단 일하느라 시간이 없다. 같이 온 스텝들은 딱히 할 일이 없으니까 남대문도 다녀 왔다는데. (웃음) 홍콩에서 한국이 TV에 나오는 걸 보고 놀러 가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을 하는데 막상 맨날 오게 되면 일만 하고 간다. 가끔 그냥 편하게 거리를 걸어 다녀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장쯔이(이하, '장'): 어제 간 극장은 새로 만든 극장인지 좋더라. 한국의 영화 산업이 빨리 발전하는 것처럼 보이더라. 여: 처음 한국에 온 게 12년쯤 된 거 같은데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로 친숙하다. 그 시간 동안 여러 번 와서 그럴까. 물론 잠깐씩 머물 수 밖에 없었지만 몇 주마다 한번씩 오가던 곳처럼 그 시간차가 너무 짧게 느껴진다.
<매란방>은 경극을 소재로 한 영화다. 현재 중국에서 경극에 대한 인지도가 어느 정도인가? 여: 일단 내가 사는 홍콩에도 경극의 일종인 ‘오극’이라는 홍콩식 지방 경극이 있다. 그러나 홍콩은 워낙 작은 도시고, 시장도 작기 때문에 점점 ‘오극’은 많이 없어지는 추세다. 그래서 정부에서 보호차원으로 일정한 기간을 정해서 공연하기도 한다. 그래도 중국은 워낙 도시들이 크니까 계속해서 꾸준히 경극이 공연되는 기회가 많아지는 걸로 안다. 최근엔 ‘매란방 대극장’이라는 게 생겨서 매란방을 기념하는 동시에 많은 경극을 선보일 수 있는 기회들이 마련되고 있다.
본인은 경극에 대해서 얼마나 아는 수준이었나? 여: 나도 그렇지만 젊은 사람들 대부분은 경극에 대한 깊은 지식이나 인지는 없다. 매란방만 해도 우리 역사에 이런 인물이 있었고, 그가 얼마나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는지 학교 교과서를 통해 소개되는 이야기 정도만 알게 됐을 뿐, 깊은 지식은 없었다.
그만큼 요즘 젊은 세대들에겐 생소한 영화로 받아들여지지 않았을까. 여: <매란방>을 본 젊은 사람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 당시 매란방이 살았던 연예계가 지금과 얼마나 다른지를 이해하면서 재미를 느낀다고 한다. 동시에 그 당시나 지금이나 인간사는 비슷하다는 걸 느낀다. 단지 핸드폰이 없어서 전보를 쳐서 연락하는 것처럼 기술적인 환경의 차이만 있을 뿐, 사람이 살아가면서 자기가 하는 일, 사랑과 같이 겪어내야 할 감정, 이런 인간사는 그때나 지금이나 다를 게 없다. 자신이 선택한 길을 어떻게든 극복하는 걸 보면서 예나 지금이나 시대적 차이만 있을 뿐, 사람 사는 건 다 똑같다는 걸 느낀다면 <매란방>이 의미 있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한편으로 맹소동의 헤어스타일이 그 당시 유행이었는데 지금도 유행되곤 하지 않나. 그조차도 예나 지금이나 비슷하다. 시간이 흘러도 어디에 있어도 사람 사는 건 마찬가지다. 어제 기자회견에서 사진기자들의 플래쉬가 영화를 다시 플래쉬백하는 느낌이었다. (웃음) 영화로 치자면 미래가 되는 지금 내 앞의 기자들의 플래쉬가 그때보다 빨리 터진다는 것만 다르지. (웃음) 살아가며 느끼는 감성은 시대와 무관하게 비슷하다고 느낀다.
연기에 임하기 전에 준비과정이 있었을 것 같다. 장: 경극을 훈련하는 과정이 힘들었지만 재미있었다. 경험이 전무한 예술을 배운다는 것도, 실제 인물을 모방한다는 것도 쉽지 않았다. 2달 정도의 훈련 기간을 거치면서 그 인물 자체가 되려고 노력했고 그 덕분에 촬영 당시엔 그냥 그 인물이 됐다. 돌아보면 즐거운 작업이었다. 여: 우리 같은 후배에겐 먼 사람이기 때문에 역사부터 공부했다. 한 세기 이전의 성취감을 따라잡는다는 건 대단한 노력을 필요로 하는 일이다. 그 당시 주변 환경과 모습이 어땠는가에 대한 세심한 연구와 토론을 거쳤다. 그에 근접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다.
장쯔이 씨는 남장 배우 ‘맹소동’을 연기했다. 소감이 궁금하다. 장: 일단 첸카이거 감독님과 영화를 한다는 것 자체가 좋았고 실제로 존재하는 인물을 연기한다는 것도 행복한 일이었다. 항상 내가 새롭게 도전할 수 있는 캐릭터를 만난다는 건 흥분되는 일이다. 물론 경극을 배우는 과정은 사실 상당히 힘들었다. 몸의 자세부터 작은 손동작이라던가, 입 모양까지 다 배워야 하는 탓에 힘들었지만 그런 과정들이 내 자신에겐 큰 도전이었고 그래서 즐거웠다. 맹소동의 분량이 그렇게 많은 건 아니지만 때때로 맹소동을 좋아해주거나 그로부터 신선한 생동감을 느끼고 받아들이는 걸 보면서 좋은 경험을 마쳤다고 생각했다. 매란방과 가슴 아픈 사랑을 나누지만 영화에서 햇빛처럼 밝은 부분을 차지하는 역할이라고 본다.
반대로 여명 씨는 여장 배우를 연기하는데 그만큼 여성적인 제스처를 익히기 위한 노력이 있었을 것 같다. 그리고 혹시 그로 인한 특별한 에피소드는 없었나?
여: 사실 영화로 보여진 연기가 생활의 일부가 된 것처럼 큰 어려움은 없었다. 무대 위에서는 여자 같지만 무대 밖에서는 남성적이지 않나. 촬영 중에 특별히 신경 쓴 바는 없었고 그냥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오히려 감독님이 잘 연출해준 덕분이다. 사실 영화를 만드는 동안 정신적으로 전력을 다해서 임했기 때문에 그 안에서 발생한 사건들을 에피소드처럼 전하면 그 모든 과정 자체가 단순하게 이야기될 수 있는 여지가 생길 것 같아서 그에 대한 말은 삼가겠다. 그냥 배역 그 자체로 생활했다고 생각한다. 아름다운 추억을 훼손하지 않고자 배려하는 거니 이해해달라.
<패왕별희>의 장국영과 비교하는 사람도 많을 것 같다.
여: 비교되는 것에 대한 부담은 없다. 장국영은 존경하는 배우다. 외부에서 비교하는 걸 좋아한다 해도 내가 그 비교에 참여할 생각은 없기 때문에 상관없다.
서로 상대방을 어떻게 생각하나? 여: 장쯔이 씨는 내면이 꽉 찬 배우다. 관객들을 매료시킬 수 있는 연기를 한다. 사실 데뷔 이후로 10년 동안에 출연작이 10여 편 정도 밖에 안 된다. 그만큼 배우로서 하나하나 신중하게 선택하고 최선을 다해서 연기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더 많은 도전을 할 수 있고 더 좋은 작품을 보여줄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을 갖게 하는 배우라고 생각한다. 신인 때 찍었던 무협영화 한편(<와호장룡>)이 크게 흥행한 만큼 그 이미지에 지배당할 수도 있었을 텐데 스스로가 그 동안 새로운 장르와 작품을 선택해왔다. 최근엔 본인이 직접 제작한 현대물도 찍었다는데 이런 움직임을 보면 많은 관객들이나 나 같은 배우의 입장에선 앞으로 더 많은 것들을 볼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대감을 갖게 한다. 그만큼 장쯔이라는 배우를 보는 관객들이 행복해질 수 있지 않을까. 장: 여명 씨는 매란방처럼 젠틀하고 우아한 면이 있는 반면에 가끔씩 어린 아이처럼 순수한 모습을 보여주곤 한다. 이렇게 오랜 시간 동안 연예계 톱스타로 살아왔으면서 그런 모습을 간직한다는 건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참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우린 워낙 친한 관계이고 평상시에 배우라는 의식을 안하고 산다는 공통점이 있다. 덕분에 현장에서 연기를 하려고 의식한다기 보단 최대한 편안하게 촬영에 임했다. 영화에서 매란방과 맹소동이 즐겁게 웃는 장면을 보면서 평상시 서로를 편하게 느낄 수 있는 우정이 있기 때문에 함께 교감하는 모습들이 연기를 통해서도 자연스럽게 나올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싶었다. 그래서 현장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의식하지 않고 편안하게 생각할 수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여명 씨의 말대로 장쯔이 씨는 <와호장룡> 이후로 다양한 캐릭터를 연기하고 있다. 장: 지금까지의 작품을 보면 분명 그 때보단 범위가 넓어진 거 같다. 최근에 소지섭 씨와 찍은 <소피의 복수>에서 내가 연기한 인물의 나이는 스물 대여섯 정도인데 실제로 내 모습은 열 일곱, 여덟 정도로밖에 안 보이더라. 내 입으로 이런 말하긴 미안한데, (웃음) 다들 그렇게 말하는 걸 들었고 비단 내 생각만은 아니다. (웃음) 덕분에 배우로서 나이에 연연하지 않을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지금 내 실제 나이보다 어린 역할을 하더라도 자연스럽게 보일 수 있다는 경험을 얻었다. 반대로 나이가 많은 역할을 해도 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배우로서 연령을 맞춰서 연기하는 범위도 훨씬 넓어진 것 같다.
장쯔이 씨는 예전에 <야연>으로 내한하기도 했다. 당시 한국 멜로 영화에 출연하고 싶다고 했는데 이번에 소지섭 씨와 함께 <소피의 복수>로 호흡을 맞췄다. 장: 아, 그건 한국영화가 아니니까 아직 이뤄진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웃음)
함께 호흡을 맞추는 건 어땠나? 장: 일단 소지섭 씨는 중국어 대사를 해야 했기 때문에 공부하느라 힘들었을 거다. (웃음) 영화에서 상반신 육체가 나오는 장면이 있었는데 덕분에 아름다운 근육을 봤다. 아쉽게도 여명 씨는 근육을 보여줄 기회가 없더라. (웃음)
혹시 여명 씨는 함께 연기를 해보고 싶다고 할 만큼 인상적인 한국 여배우가 있나? 여: 항상 이런 질문 받을 때마다 화제를 바꿔보고 싶다. (웃음) 어떤 남자배우가 어떤 여자배우와 일하고 싶다고 말하는 건 단지 하루 동안의 뉴스 거리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만약 어떤 영화사가 아시아의 모든 배우들을 캐스팅할 역량이 되고 그 영화에 투자할 수 있는 생각이 있으며 최소한 10편까지 찍을 수 있는 시리즈를 기획할 수 있다면 일년에 오직 그 영화 한 편만 나와도 될 것 같다. (웃음)
매란방을 연기하면서 직접 화장을 하기도 했는데 배우로서 화장하는 게 어색한 일은 아니었을 거 같다. 여: 연기할 때도 화장하는 걸 별로 좋아하진 않는다. 다만 <매란방>에선 화장도 준비의 일종으로서 하나의 예술 안에 포함되는 행위라고 본다. 그렇기 때문에 그게 단순히 일상적인 화장과 비교할 순 없는 거 같다.
<매란방>에서 원화는 백부로부터 무대를 떠나라는 유언을 얻는다. 하지만 결국 배우의 길을 걷는다. 본인들도 배우로 살아가면서 얻는 자부심도 있지만 그만큼의 난관도 느낄 것 같다. 배우로서의 삶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 장: 일단 배우로서 살아가면서 얻는 장점이 단점보단 많다.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고, 그만큼 사회가 주는 책임감을 받아들이면서 생활을 한다. 다만 사생활에서 많은 제약이 있고, 가끔 미디어에서 기사를 팔기 위해서 없는 이야기를 지어내기도 한다. 그럴 땐 힘들지만 그런 작은 문제 때문에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이 일을 포기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배우로서 어떤 사람이 되어가거나 연기를 하면서 그걸 표현해내는 과정은 굉장히 행복한 일이다.
“자신의 연기가 행복이 아니라 불행이 될 수 있음을 알았다.”는 매란방의 대사가 배우로서 의미심장하지 않던가? 그리고 연예인으로서 ‘종이족쇄’를 차고 있다는 느낌을 얻을 때가 있나?
여: 예술가는 누군가가 사랑을 얻어서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지만 그 사람의 많은 것을 점유하게 되면 그것도 결국 불행이 될 수 있다. 맹소동이 매란방을 떠나가는 것도 정답인지에 대해선 잘 모르겠다. 물론 내가 감히 매란방의 선택을 대신할 순 없다. 다만 나 역시도 사랑보다 일을 선택하게 될 것 같다. 나 역시도 연예인으로서 감내해야 할 운명적인 아픔이 있다. 장: 많은 사람들은 다른 직업을 갖고 살아가지만 누구나 자신의 일 가운데서 결정해야 할 문제들을 맞닥뜨리게 된다. 나 역시도 어떤 실제적 경험이 영화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때때로 영화 속 감정이 현실의 감정과 충돌하는 경우도 없진 않다. 여: 요즘 장쯔이 씨한테 ‘종이 족쇄’가 있었는데 지금은 조금 풀린 거 같다. (웃음) 나도 예전에 우리 집 커튼 사이로 사생활을 찍어가는 이들을 대면하곤 했다. 가끔 파파라치들 떄문에 속도 위반을 하면서도 피해야 할 때도 있고. 이런 부자연스러운 상황에 대해서 감내해야 하는 측면이 없진 않다.
만약 자식이 배우를 하고 싶다고 한다면 어떻겠나? 장: 만약에 내가 낳은 자식이 배우가 되느냐, 안 되느냐, 라는 문제는 그 아이가 선택할 일이다. 만약 배우를 하고 싶다고 한다면 엄마로서 배우를 하며 겪게 됐던 좋지 못했던 경험까지 다 가르쳐주고 싶다. 여: 난 스무 살 때부터 서른 다섯 살까진 자식이 생기면 죽어도 배우는 못하게 할 거라고 생각했다. 왜냐면 우리 집안엔 다시 나 같은 배우가 나올 수 없을 테니까. (웃음) 만약 자식이 생긴다면 아들보단 딸을 갖고 싶다. 아들을 낳으면 아버지로서 너무 많은 기대를 할 거 같다. 그런데 그 아들이 내가 기대하는 바에 미치지 못하면 기분이 좋지 않겠지. 하지만 딸이라면 내가 충족시켜야 할 기대가 많지 않을까. 딸은 내게 있어서 성공적인 걸 보여주지 못해도 다 받아들일 수 있을 거 같다. 혹시나 아들이 연예계 계통에 있다면 절대 얼굴이 알려지는 일은 못하게 할 거라 결심했다. 예를 들어 프로듀서라던가, 그러니까 뒤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하게끔 할 거다. 물론 이건 다 내 생각에 불과하고, 정말 그런 상황이 왔을 땐 운명에 따르게 될 거다. 다만 나는 훌륭한 아버지가 되기 위해서 지금부터 엄격한 가치관을 갖고 있을 뿐이다. (웃음)
최근 홍콩영화가 많이 침체됐다. 여: 예전엔 분명 홍콩영화가 좋았던 시절이 있었고, 잘되는 시절이 있었다. 지금이 만약 냉기라면 분명히 다음엔 더 좋아지는 기회가 올 거라고 생각한다. 주식도 내려갈 때가 있으면 올라갈 때가 있는 것처럼 모든 일엔 기복이 있다. 관객들은 항상 새롭고 자극적인 뉴스를 원한다. 영화도 그런 면에서 관객들을 자극시킬 수 있고 새롭게 볼 수 있는 것들을 찾아서 성장해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현재 중국영화는 검열이 심해서 표현의 제약이 많은 게 사실이다. 장: 듣기로는 한국도 옛날엔 영화를 찍거나 상영하는 데 있어서 많은 제약이 있었다고 들었다. 심의도 거쳐야 되고, 절대 보여질 수 없는 부분도 있고. 그런데 이젠 등급제도 정착되고 관객들이 많은 영화들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고 들었다. 중국 영화는 아직 심의 제한이 있어서 다양한 소재를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만약 예전에 심의가 자유롭지 못했던 한국에서 <올드보이>의 혀가 잘리는 모습과 같이 폭력적인 묘사를 담은 영화가 상영될 수 있었을까? 지금이기 때문에 그런 영화가 나올 수 있었다고 본다. 영화는 인간의 심정을 눈으로 보는 표현의 문화다. 중국도 점점 올라가는 단계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소재를 선택할 수 있는 범위가 넓어진다면 더 많은 관객들이 중국영화를 선택하게 될 거라고 생각한다.
할리우드 대작들이 시장을 넓혀가고 있다. 여: 시간에 따라서 모든 변화가 이뤄진다. 할리우드는 뭔가를 만들고 싶다고 생각하기 쉽다. 예를 들면 <트랜스포머>같이. 하지만 아시아인들은 뭔가를 생각해도 실질적으로 실현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창의력이 약해질 수 밖에 없다. 너무 비슷한 소재만 나올 수 밖에 없는 것도 그런 환경의 제약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영화란 새로운 것을 창작해나가는 일인만큼 영화를 만드는 창작자들이 해야 할 일은 새로운 인재를 통해 공간을 넓혀나가는 것이다. 난 배우로서 연기를 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런 부분에 있어서 많은 도움을 줄 순 없겠지만 영화를 만드는 한 사람으로서 그런 노력에 동참하고 싶다.
<매란방>에서도 보이듯 자본과 예술은 어느 정도 필연성이 있다. 여: 좋은 예술이 나오려면 돈 많고 용감한 사람이 투자해야 한다. (웃음) 게다가 지금처럼 영화계 시장이 좋지 않을 땐 투자자들이 잘 선택해서 투자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여기서 내가 한 발자국 나가야 할지, 물러서야 할지, 고민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아마 다른 전세계 영화시장도 마찬가지로 어떻게 하면 영화를 더 잘 만들 수 있을까라는 고민을 하고 있지 않을까. 관객들은 어차피 재미있는 영화를 보고 싶어한다. 그 숙제는 우리가 풀어가야 한다. 전세계 어디에나 예술가는 존재하고 그들은 자신의 길에서 노력하는 방식으로 세계에 공헌하고 있다. 그리고 난 <매란방>을 통해 어떤 어려움이 있고 힘들다 해도 그것을 적극적으로 이겨나가는 모습을 표현하고자 했다.
백부는 경극 배우였다. 그는 배우로서 명성을 누렸고, 최고의 명예를 얻었다. 하지만 백부는 광대였다. 광대란 명예를 쌓아 올려도 한 줌 바람에 허물어지기 좋은 운명에 불과했다. “경극배우로 성공해도 멸시를 벗어날 수 없다. 무대를 떠나라.” 백부의 유언장을 읽어 내려가던 어린 원화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고개를 돌린다. 연기를 가르칠 선생님이 왔다. 백부는 원화에게 무대를 떠나라 했지만 운명은 원화를 무대 위로 올려 보낸다. <매란방>은 배우로서의 삶을 면치 못했던 어느 한 사람의 운명을 담아내기 위한 그릇이 된 이름이다.
중국의 전설적인 경극 배우 ‘매란방’의 실존적 삶을 영화화했다는 <매란방>은 한 인물의 인생 속에서 격정적인 사건을 추출해 서사적으로 나열한다. 페이드 인과 페이드 아웃의 반복으로 진전되는 상황은 3번의 점프컷을 통해 크게 분할된다. 유년시절 스승으로 모시던 대배우와의 대결, 성장한 매란방(여명)과 맹소동(장쯔이)의 만남과 이별, 그리고 미국 진출 이후 일본과의 전쟁에 휘말린 매란방의 역경. 3조각으로 나뉜 서사엔 저마다 극적인 사연이 존재하며 이는 <매란방>이란 스토리텔링을 분할하는 카테고리처럼 질서정연하게 나열된다. 그 중심엔 어김없이 ‘매란방’이 있다. 그러나 그는 사건의 근원이 되는 주체라기 보단 모든 사건에 연루된 객체로서 그 자리를 지킨다. 사건의 배경이 되어 병풍처럼 존재한다.
물론 유년 시절의 서사는 매란방이라는 인물의 기초적인 서사를 드러낸다는 점에서 흥미를 자극한다. 서양연극을 공부했다는 구여백(손홍뢰)은 원화를 만난 뒤 관료직을 버리고 원화의 정신적 지주가 된다. 결국 타성에 젖은 경극 배우들의 전통적 관념에 대항하고자 하는 구여백에게 감화된 매란방은 자신의 스승과 대결을 펼친다. 물론 그 대결의 주체는 매란방이 아니다. 진보적인 구여백과 ‘경극의 대왕(伶界大王)’이라 지칭되던 보수적인 대배우의 대립 안에서 매란방은 승부를 결정짓는 도구로서 존재할 뿐이다. 하지만 적어도 그 국면 안에서 매란방이 느끼는 정서적 애환이 백부의 유언을 환기시키며 일종의 감흥을 부른다. 대배우의 쓸쓸한 몰락과 이를 지켜보는 매란방의 부채와 자신의 미래에 대한 어떤 예감이 매란방의 감정을 주체적으로 해석하게 만든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매란방>에서 묘사되는 ‘매란방’은 전반적으로 반사율이 낮은 인물이다. 공허하며 한편으로 단조롭다. 인물 자체에 대한 매력을 느낄만한 여지가 많지 않다. 흥미로운 건 매란방의 주변부를 차지하는 서사이며 그 서사에 참여하는 주변인들이다. 씬의 감정을 지배하는 건 대배우이거나 맹소동이거나, 일본군 장교다. <매란방>에서 ‘매란방’은 주체의 위치를 선점하면서도 주체적인 감정을 야기시키지 못한다. 실제 인물의 서사가 그러했는지 알 길이 없지만 적어도 영화상에서는 그렇다. 좀 더 엄밀히 말하자면 유년 시절 이후 여명이 연기하는 매란방의 서사가 이에 해당한다. 유년 시절을 지나 성인이 된 시점부터 매란방이란 인물의 관점은 흐리멍텅해진다.
매란방은 대단한 사연 속에서 감정을 지배하는 역할을 선점하지 못한 채 그저 존재한다. 유년 시절 이후로 나열되는 두 번의 큰 사건 속에서 매란방은 무색무취의 형태로 그저 늙어갈 뿐이다. <매란방>은 주인공을 날려버린 배경 사진과 같다. 그 여백에서 발견되는 이미지나 주변부에서 고조되는 감정에 흥미를 느낀다면 다행이겠지만 매란방에게 흥미를 느낄 수 없는 매란방 이야기라는 점에 의문을 품기 시작한다면 감상 자체가 텅 비는 꼴을 면치 못할 가능성이 크다. 다만 찰리 채플린도 영감을 얻었다는 매란방의 실제연기는 확인할 길이 없지만 경극이 소리를 절제한 무대극으로서 무성영화에 어떤 영향을 끼쳤을지 정도는 가늠할 수 있게 만든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 영화는 매란방의 삶이 관객에게 어떤 영감을 주지 못할 정도로 심심하다는 것을 확신하게 만든다.
‘매란방’이 <패왕별희>의 데이(장국영)가 연기한 실존인물이었다는 점에서, 그리고 두 인물이 경극배우라는 점에서 <매란방>과 <패왕별희>는 누군가에게 비교하고 싶어지는 영화가 될지 모른다. 물론 그것이 필요한 수순일지는 의문이다. 단지 두 영화가 평행선에 놓기 좋은 비교군의 조건을 지닌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경극을 소재로 한 첸 카이거 감독의 작품이란 공통분모가 선명한 까닭이다. 하지만 단순히 여명과 장국영의 연기력을 비교한다거나 두 작품의 우열을 논한다는 건 사실상 부질없는 일이다. 어떤 면에서 <매란방>은 <패왕별희>보다도 훌륭한 기능적 완성도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실존적 재현과 허구적 창작의 너비만큼이나 두 작품은 엄밀히 전혀 다른 이야기다. 애초에 타고난 환경과 천성이 다른 두 인물의 서사에 우열의 잣대를 부여한다는 건 어딘가 무지막지한 태도다.
사실 118분 가량의 상영시간으로 국내에서 개봉될 <매란방>에 대해 이야기하는 건 어떤 면에서 무색한 일처럼 느껴진다. 국내 수입사에서 가위질 했다는 30분의 서사를 확인할 길이 없기 때문이다. 첸 카이거 감독의 승인을 얻었다지만 감독 스스로도 편집본을 확인하지 못했다는 결과물을 놓고 이야기한다는 건 어딘가 무색한 일이다. 실질적으로 영화상에서도 무성의한 편집의 결과들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매란방>은 위대한 경극배우, 좀 더 포괄적으로 한 시대를 풍미하던 예술가가 인생과 세월의 풍파 속에서 어떻게 견뎌내는가를 재현하는 드라마다. 30분이 잘려나간 국내개봉판의 모습에서 매란방의 수난이 오버랩된다. 마치 그것은 문화적인 정서나 이해 차이로 경극의 묘미를 느끼지 못하고 이를 멸시하는 타지인들의 무지한 태도와 다름없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진기자가 판곤과 비슷한 제스처를 주문하니 완강하게 거절하더라. 그 인물을 지금 느닷없이 하라면 안돼. 인물을 잡은 상태에서 시작했다면 아무리 지치더라도 갈 수 있는데 이렇게 지친 상태에서는 갑자기 들어갈 수 없지.
아무래도 인물에 몰입하기 위한 충분한 과정이 필요하니까.
그런 것도 있고, 너무 오래되기도 했고, 느닷없이 그게 되는 게 아닌 거지. 그리고 사실 지금 들어가고 싶지도 않아. 영화 끝났는데 왜 그 인물을 다시 경험해. 지옥인데.
판곤은 완전한 악인이다. 그 악랄함을 표현하는 방식에 대한 고민이 있었을 것 같다.
부담이 많았지. 일단 범인을 미화하는 영화들이 많잖아. 멋있게 포장한다거나, 반역설적인 비장미를 풍기기도 하고, 최소한의 자기 합리성을 부여하기도 하지. 이를테면 <비상구는 없다>는 남창을 하다가 성불구가 된 남자가 성적으로 방탕한 여자들을 응징한다는 내용이었는데 이런 경우엔 내적 동기라도 있잖아. 그런데 <실종>은 그런 걸 다 없애고 무시하는 거지. 처음 대본엔 약간이나마 과거를 설명하는 부분이 있어서 이 사람이 이래서 저렇게 됐구나, 라는 느낌을 줄 수 있었지. 그런데 다 걷어냈어. 그냥 날것으로 들이밀자고.
상당히 불쾌한 캐릭터였다. 연기하는 당사자에 대한 이미지가 걱정될 정도로.
결국 그 부담은 배우한테 오는 거지. 이렇게 해도 될까, 생각하기 마련이잖아. 그래도 내가 그 동안 참 다양한 역할을 해온 만큼 이제 와서 ‘저 사람 진짜 나쁜 사람 아냐?’라고 느낄 사람은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관객에 대한 믿음이랄까. 한번 해보자, 싶더라고.
작년 즈음에 했던 인터뷰에서 판곤이란 역할에 대한 감이 안 잡혀서 불안하다고 했더라.
그랬을 거다. 아마. 초반에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싶었다. (<그것이 알고 싶다>를 통해) 내가 고발한 적은 있어도 내가 반대의 입장이 된 적이 없는데 그 입장을 어떻게 이해하고 연기할 수 있을까 싶더라. <수>(2007)에서 연기했던 구양원을 다시 떠올려 보기도 했고.
잠깐 <수>에 관해 이야기해보자. 흥행에 실패했지만 연기적으로는 꽤나 인상적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개인적으로 매우 안타까운 영화라고 생각한다. 우선 연기자로서는 참 만족스럽게 했던 영화였으니까. 처음 가성을 써봤고, 인물을 살아있게 만들었다고 자부했다. 그런데 영화가 흥행이 안되니까 그냥 쉽게 넘어가버렸지. 개인적으로 같은 동포이자 민족으로서 최양일이란 인물에 대한 애정도 있었다. <피와 뼈>를 보면 참담하잖아. 양석일이라는 재일동포 작가가 쓴 소설이 원작인데 양씨는 제주도 성씨야. 원래 제주도 인구가 30만 명이었는데 ‘4.3항쟁’당시 6만 명이 죽었지. 그 때 좌우에서 죄다 죽이니까 제주도 사람들이 일본으로 밀항도 많이 했거든. 그래서 다 어디로 갔겠어. 일본 하부로 밀려들어간 거지. 야쿠자 행동대원 중에 제주도 사람이 그렇게 많았다잖아. 그런데 최양일 그 양반이 ‘4.3항쟁’을 영화로 꼭 찍어보고 싶다는 거야. 재일교포 사회에서는 ‘4.3항쟁’이 80년대 광주나 똑같거든. 그런데 <수>가 웬만큼 됐어야 그것도 가능한 거지. 게다가 일본과 한국의 영화 현장은 경우가 달라서 어려운 점도 있고.
아무래도 악인을 연기할 때 임팩트가 크다. 예전에도 악인을 연기한 적은 없지 않았지만 <수>의 구양원은 악인이라는 본질 자체에 대한 세계관을 스스로 구축한 상태에서 그 자체를 드러내는 느낌이었다. 내가 지금까지 지식인을 많이 연기했는데 사실 지식인을 연기하는 건 쉽다. 다들 비슷하니까 조금씩만 바꾸면 돼. 조금 비굴해지거나, 조금 더 섹스를 밝히면 된다. 별 거 아니다. 그렇게 하면 된다. 그런데 <수>를 하면서 느꼈던 건 악인은 굉장히 어렵더라는 거다. 왜 악한지를 모르니까. 난 악한 마음을 가져본 적이 없으니까. 난 싸움도 안 하는데 내가 왜 사람을 죽여. 난 논쟁도 싫어하고 싸움도 싫어한다. 중학교 때 이후로 여태까지 싸움이란 걸 해본 적이 없어. 그런 개인적인 이유 때문에 접근이 잘 안 되니까 이래선 안 되겠다 싶더라. 이 인간을 관통하는 게 뭘까 생각했다. 구양원은 자기 조직원에 대해서는 의사 가족주의로 가족애처럼 같이 간다. 그런데 그 바깥에 대해서만큼은 굉장히 깊은 적개심을 갖는 거지. 까닭 없는 적개심을 갖고 해보면 되겠다 싶었지. 그리고 이미 배태곤(<초록물고기>)을 통해 내적으로 충분히 합리적인 적개심을 갖는 방식을 경험했기 때문에 적개심을 가지고 캐릭터를 들여다보는 건 어렵진 않았다. 그러니까 사람이 한없이 잔인해지더라. 그래서 그때 덕분에 굉장히 즐겁게 영화를 찍었다. 만족스러웠지. 그걸 <실종>에서도 다시 한번 적용시켜보려 했지.
판곤을 연기하는 과정에서도 그런 의문을 해결하는 과정이 있었을 텐데.
판곤은 싸이코패스의 전형이라 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리고 어렸을 때 굉장히 큰 정신적 충격이나 사건이 있었던 거야. 자기가 아버지를 돼지 우리에 밀어 떨어뜨려서 뇌진탕으로 죽었다는데 그게 얼마나 아프겠어. 살의를 가졌던 건 아니지만 아버지를 죽였으니까. 그래서 엄마랑 옆에서 울다가 시체를 어떻게 하지 못하고 그냥 무서워서 떠났을 거 아냐. 그런데 다음 날 가보니까 돼지가 시체를 뜯어먹은 거야. 그리고 마음에 엄청난 비밀이 남는 거지. 그런데 이제 그 고통을 어떻게 감내해. 자기 합리화인 거지. 아버지가 어머니를 폭행했으니까, 등등. 그렇게 시간이 가면서 이미 아버지를 죽인 죄책감은 없어지고 나밖에 안 남는 거지. 난 괜찮은 놈인데, 똑똑한 놈인데, 예술가인데, 자신만의 나르시스만 보면서 자신만의 기준이 생기기 시작하는 거야. 그러니까 윤리나 도덕, 규율이고 뭐고 없고, 가족도 없고, 아무 것도 없이 나밖에 없는 자. 이걸로 키를 잡고 대본을 들여다 보니까 그대로 관통이 되는 느낌이더라. 그래서 그걸 핵심으로 삼고 들어가서 디테일을 붙였다.
구양원이 자신의 상황을 통해서 악인으로서의 운명을 이해한 사람이라면 판곤은 그냥 무의식 중에 자신의 악행 자체를 합리화시켜버리는 질환적 인물이다. 판곤은 그 심성 자체를 감당해야 한다는 점에서 어려운 역할이 아니었을까 싶은데.
그런데 키를 잡고 들어가면 어렵지 않다. 사실 연기할 때 디테일을 많이 찾아서 구축하고 캐릭터를 만들면 머리 속이 복잡해진다. 그런데 이건 다 필요 없는 거야. 다 필요 없고 오로지 나밖에 없어. 모든 걸 다 무시한다는 방식으로 키를 잡으면 그냥 들어가게 된다. 그런 다음에 상황에 던져지는 거지. 상황에 던져지면 그냥 그 때부터 그 자체로 살면 되는 거고.
그럼 촬영이 시작되면서부터 그 캐릭터에 완전히 동화될 수 있었던 건가.
처음부터 키를 잡았고, 이렇게 가면 된다는 걸 알았던 거지. 그래서 대본을 충분히 숙지하고 갈 수 있었다. 물론 찍는 도중에 좀 더 디테일을 붙이면서 간 건 있다. 장면 속 상황에 직접 들어가면 대본에 쓰여져 있는 것보다 훨씬 디테일이 느껴질 때가 있거든. 예를 들면 분쇄기 앞에서, “통째로 가는 건 처음인데, 기계가 괜찮을라나.” 이 대사는 내가 현장에서 하자고 한 거다. 그런 느낌이 드는 거야. 개 장수에게, 내가 목숨을 끊을 테니까 시체만 같이 옮기자고 협상한 뒤 도끼나 톱을 챙기잖아. 그 전까진 그렇게 쪼개서 갈아왔다는 이야기지. 그런데 이 경우는 그럴 시간이 없었던 거야. 언니가 자꾸 찾아오고 불안하니까 일단 묶어서 입만 막고 분쇄기에 넣어둔 거지. 그런데 그 여자를 다시 꺼내기 귀찮은 거지. 무거우니까. 그래서 그냥 갈기로 한 거야. 그런데 이 기계가 괜찮을까, 그런 걱정이 되더라니까! (웃음)
그 끔찍한 대사의 출처가 본인이었단 말인가. (웃음)
내가 감독한테 이렇게 하자고 그랬지. 그랬더니 “(머리를 감싸면서)우리 괜찮을까요, 이렇게 찍어서? (옆을 보면서)이거 정말 괜찮은 거냐?” 하더라. 그런데 연출부 애들한테 물어보면 걔네들이 말을 하겠어. 결국 하세요, 하고 이렇게 한 거지. (웃음)
마치 판곤과 대화하는 것 같다. (웃음) 결국 그 살인마의 입장에서 모든 상황을 생각하게 될 정도로 그 역할에 몰입했다는 것처럼 들린다. 바깥에서 볼 땐 살인마지만 내 입장에서는 살인마가 아닌 거지. 사람을 죽이기는 하는데 죄의식이 없잖아. 판곤인 나는 즐겁게 살자고 동생을 잘 잡아놨는데 언니가 나타났으니 언니 잘못이지. (웃음) 그래서 나중에 네 탓이라고 하잖아. 너 때문에 동생이 죽은 거라고. 이빨은 다 뽑아놓고. (웃음) 그 사람 입장에서는 그렇잖아. 논리는 정확한 거지.
그런 캐릭터를 그런 식으로 연기하고 나면 배우 본연에게도 어떤 영향력이 남을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드는데.
어떤 영향?
그런 캐릭터의 정신 세계를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게 어쩌면 개인적으로 심리적인 손상을 감내하는 행위가 아닐까.
이런 정도의 인물을 연기했을 때 오히려 상처가 남을 거 같진 않다. 쉽게 말해서 흉물인데, 워낙 나와 다른 사람이고, 참 드문 사람이잖아. 도리어 난 <경마장 가는 길>이나 <오! 수정>같은 영화에서의 연기가 배우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본다. 이를테면 은주가 했던 <주홍글씨>같은 경우는 상처가 될 수 있는 거지. 더군다나 은주는 어렸으니까. 그런 연기를 자주 하다 보면 평상시에도 그런 비슷한 감정에 쉽게 이입돼버리기도 하고.
오히려 본래 자신과 캐릭터 사이의 격차가 클 때 오히려 캐릭터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수 있다는 말인가?
맞다. 그리고 사실 나는 <실종>같은 영화를 별로 보지 않았다. 김성홍 감독이 <쏘우>라는 영화를 봤냐고 했는데 본 적이 없었다. <올가미>나 <손톱>은 봤지. 그건 국내 영화였고 그 당시 한국영화는 서로 다 봐줄 때였으니까. <양들의 침묵>은 워낙 유명하니까 봤고. 그런데 <쏘우>라는 영화는 처음 들었어. 솔직히 관심이 없었지. 그래서 그걸 찾아봤는데 그냥 '공포 영화는 저렇구나'라고 생각했다. 다만 판곤을 연기하는데 있어서 참고 삼을만한 건 하나도 없었다. 그냥 어느 순간 어떻게 맥을 잡고 나니까 더 이상 연구가 필요 없더라. 그냥 하면 되는데 뭘 자꾸 연구해. 공포스럽게 찍는 건 감독의 몫이고, 나는 그냥 판곤만 하면 되니까.
혹시 캐릭터에 대한 의견 충돌은 없었나?
배우가 그 인물로서 자유롭게 살고 있다면 감독은 알아서 구성을 이끌고 가는 거다. 전적으로 감독을 신뢰하고 가야 한다. 경험으로 봐서 촬영 중간에 감독하고 의견이 달라져서 충돌하는 경우는 대개 감독이 옳아. 배우는 자기 인물 관점에서만 보지만 감독은 여러 인물을 충돌시켜서 정리를 해야 하기 때문에 훨씬 더 과학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이거든. 처음 대본을 받고 이에 관한 토론을 하는 과정은 얼마든지 길어도 상관없고, 토론을 좋아하는 감독도 많다. 그런데 최종적으로 그 대본대로 찍겠다고 한 다음엔 전적으로 믿는 게 맞다. 괜히 중간에 끼어봐야 망가진다. 막상 한 4~5회 들어가보고 나서야 ‘아차’ 싶을 때도 있지만 그땐 이미 늦은 일이다. 그땐 교정하려고 해도 이미 관성이 붙어서 가니까 교정되지 않는다. 대본 논의 과정에서 충실히 손봐야지, 나중에 다툰다고 될 일이 아니다.
8년 간 직장 생활을 하다가 회사를 그만 두고 극단에 들어가 연기를 시작했다. 원래 연기에 대한 열망이 있었던 건지, 아니면 뒤늦게 연기에 대한 청운을 품게 된 건지 궁금하다. 갈망 같은 건 없었다. 지금은 고인이 된 오페라 연출가 문호근 씨가 큰 형인데 대학교 때 연극을 했었다. 오태석, 정화연 교수나 음악원 이건용 교수 같은 분들과 연극을 하면서 많이 돌아다녔었지. 지금 은행을 다니는 작은 형도 대학교 때 연극을 했다. 내가 중학교 시절부터 그런 걸 보고 컸으니까 난 당연히 대학 가면 그냥 연극하는 줄 알았지. 그래서 대학가서 연극반을 찾았고 1학년 때 뮤지컬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를 영어로 공연했다. 그랬더니 선배들이 배우 하나 들어왔다고 하더라. 사실 이게 꼬드기는 말이었는데 난 낚싯밥인지도 모르고 한때는 내가 정말 잘해서 그러는 줄 알고 연극을 띄엄띄엄 하게 된 거다.
연기를 전업으로 삼아야겠다는 생각을 해보진 못했나.
일단 돈이 없으니까 연극으로 살 수 있을 거란 자신이 없었지. 그래서 취직을 했는데 5~6년 정도 회사에서 지내다 보니까 도저히 못 다니겠더라. 내 인생이 망하더라도 부속품으로 마모되지 말고 내가 좀 결정하고 살자, 그래서 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나가서 할 일이 연극밖에 없었다. 만약 내가 무역회사를 다니다가 그 조직체가 싫어서 떠나 나왔으면 무역은 수출입에 관계하는 에이전트가 많으니까 독립해서 살았을지도 모르겠는데 난 건설회사에 있었기 때문에 뭐가 있겠어. 연극 밖에 할 게 없는 거지.
하지만 연극과 발이 닿을만한 거리에 있었던 것도 아니지 않나.
회사 다니면서 연우무대 공연은 띄엄띄엄이라도 다 가서 봤다. 다만 내가 보고 싶어서 본 건 아니었고, 지금 여의도에서 치과 의사하는 오종우 씨라는 분이 연우무대 창립멤버였는데 표를 팔아달라고 나한테 맡겼던 거다. 큰 형 친구였거든. 20장씩 맡기는데 그게 어디 팔리나. 그래서 결국 회사 친구들 공짜로 보여주기도 하면서 계속 내 돈 내고 20장씩 사준 셈이지. 그 중에 나는 한 장만 쓰는 거고. 그렇게 공연을 쭉 봤다. 그때 무대에 서 있는 박광수도 보게 됐지. 그래서 회사를 나간 뒤 연우무대로 간 거야.
사회 생활을 거친 뒤 연기자로 거듭난 셈인데 그런 과정이 배우로서 사는데 있어서 플러스가 되거나 마이너스가 된 지점이 있나.
굉장히 도움이 안 됐지. 그나마 도움이 됐다고 할 수 있는 건 내가 연우무대에서 극단 살림이나 기획에 관여를 많이 했는데 그건 그런 경험이 나 밖에 없었으니까. 극단에 파일이 없어. 문서 정리가 안돼있더라. 그런 사무적인 정리에선 도움이 됐지만 조직 생활을 오래 한다는 건 그만큼 눈치를 보게 된다는 거라 배우로서의 인생과 상당히 멀어져 있었던 거지.
필모그래피가 한국영화계의 변천사를 대변하는 느낌이다. 1990년대와 2000년대 사이 영화계의 변화가 보인다. 스스로도 많은 변화를 느낄 것 같다. 과거부터 생각해보자면, 87년까진 검열이 무지하게 셌다. 내가 그때부터 영화를 하진 않았지만 영화를 도저히 할 수 없었던 상황이라고 들었지. (안)성기 형 이야기를 들어보면 <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1981)같은 경우는 거의 난도질을 당했다 하더라. 그래서 그 이원세 감독은 그 영화 찍고 나서 이민가버렸다. 그 이후로도 금방 완화된 건 아니다. <그들도 우리처럼>(1989)에서 연기한 김기영은 노동운동을 하는 인물인데 광주에서 시위하는 자료화면을 넣었더니 검열에서 들어내라고 그랬다. 그래서 서울시 뒷골목에서 도심불명의 형태로 바꿔서 끼워 넣었지. 그때까지도 검열이 있었단 이야기다. 그래서 박광수 감독이 말하기를 <칠수와 만수>(1988)는 일부로 88올림픽 직전에 검열 넣었다 한다. 올림픽을 앞두고 외국에서 손님들이 오는데 검열문제로 신문에 보도되면 국제적 망신이니까, 그 시점에 넣어야 좀 덜할 거라 예상했다지.
90년부터 영화에 출연했다. 그 당시엔 완화되던 시점 아니었나.
90년 문민정부 이후부터 검열이 거의 없어지기 시작했으니까 실질적으로 완화됐다고 봐야지. 88년부터 90년 사이에 <그들도 우리처럼>이나 <성공시대>처럼(1988) 사회적 발언을 담은 영화가 만들어진 것도 그런 배경이 됐다. 90년대 초에 나를 캐스팅한 감독들도 그런 이유와 무관하지 않다고 본다. 왜냐면 나는 7~80년대 억압구조를 경험해본 사람이니까.
상업적 감각을 지닌 영화들도 나오기 시작했다.
메시지 중심이 아니라 오락 중심으로 비중이 변해가는 시점이라 말할 수 있겠지. 그런 분위기에서 로맨틱코미디의 새로운 신호탄이라 할 수 있는 <결혼이야기>(1992)도 나온 거다. 그 영화는 철저하게 시장조사를 하고 찍었다. 사람들은 어떤 이야기를 좋아하는지, 그게 성적인 소재를 다룬 스토리라면 누가 연기해야 좋을지, 그런 분위기에서 최민수와 심혜진이 결정된 거지. 주문 생산했다는 의미인데 그런 영화가 나올 수 있었던 것도, 엄청난 히트를 쳤다는 것도, 그만큼 사회가 연성화된 덕분이겠지.
2000년대 들어서 정책적 발언대에 서게 된 뒤로부터 몇 년간 출연이 뜸했다.
나는 원래 99년도 스크린쿼터 투쟁 당시 개입하지 않으려고 무던히 애를 썼다. 거기에 엉켜 들면 일이 안되니까. 난 배우로 살자고 노력했고, 순수하게 연기자 심성을 갖고 싶었거든. 그런데 우연찮게 직접 개입해버리는 계기가 생겼지. 스크린쿼터 1차 투쟁에서 그 문제를 들고 방송에 출연하는 영화계 인사들이 이야기하는 거나 언론에서 얘기하는 게 저렇게 얘기하면 안 되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더라. 소위 우린 약하니까, 란 식의 이야긴데 나쁘게 말하자면 앵벌이를 하는 셈이었지. 물론 실제로 한국영화가 약했던 건 사실이었다. 다만 그러니까 할리우드에 어떻게 대항합니까, 이런 식의 얘기들 밖에 없었던 거지. 그런데 난 무역학과 출신이다. 내 생각에 이건 수출입의 문제고 독과점의 문제로 보였다. 그래서 글을 써야겠다 생각을 한 거야. 그런데 내가 오랫동안 글을 쓰지 않다가 쓰려니까 굉장히 오래 걸리더라. 한 일주일 걸렸나. 워드로 쳐서 프린트한 걸 외출하면서 이창동한테 갖다 줬다. 가까운 일산에 살았거든. (웃음) 그렇게 나갔다 와서 밤에 전화해보니까 다 썼다 그러는 거야. 그런데 가서 보니까 너무 잘 써버렸어. (웃음) 물론 내 문체를 가급적 건드리지 않으려고 노력해서 내 문장은 많이 살아있었지만 중간에 몇 가지 사례를 넣었는데 너무 유려해진 거야. 그래서 “내가 이걸 썼다고 하면 누가 믿냐. 못 내겠다” 그랬더니 짐짓 화를 내더라고. 하루 종일 머리 빠개지게 일 시켜놓고 안 낸다고. (웃음) 그래서 결국 보냈지.
‘씨네21’에 기고했던 글 말인가?
그때 지면편집이 다 끝난 상태라서 뒤에 있는 독자란에 깨알 같은 글씨로 넣게 됐지. 그걸 보고 영화계에서 전부 놀란 거야. 이거 말 되는 논리다. 그래서 동화면세점 앞에서 시위할 때 나보고 연단에 올라가서 얘기하라니까 그걸 간단하게 요약해서 말했지. 그랬더니 언론에서 벌떼같이 달려든 거야. TV카메라 오고, 거기서부터 말린 거지. (웃음)
당시 발언을 주도하는 이들이 있었을 텐데. 87년에 ‘4.13 호헌조치’라는 게 있었다. 당시 국민들은 직선제개헌을 요구했는데 전두환 대통령이 5공 헌법대로 다음 대통령을 뽑겠다고 강행한 거지. 그때 정지영 감독의 주동으로 영화계가 반대성명을 냈다. 그래서 그때부터 정지영 감독이 영화계 일을 쭉 맡아서 했지. 직배반대도 그랬고. 그런데 99년에 느닷없이 내가 거기에 개입되기 시작한 거다. 이창동도, 영상원 교수 심광현도 그 당시 새 멤버였지. 김혜준 사무국장, 양기완 사무처장, 정지영 감독이 원래 있던 멤버들이고. 그 멤버 중심으로 쿼터 투쟁을 했다.
결국 영진위 부위원장까지 맡게 됐다.
2000년에 영화진흥법이 개정돼서 영화진흥원에서 영화진흥위원회로 조직이 개편되는데 정지영 감독이 때려죽여도 위원장을 하지 않겠다는 거야. 연배로 보나, 경력으로 보나, 그 양반이 그 때 위원장을 해야 될 것 같은데 안 한다니까 그 다음 세대로 바통이 넘어왔고 그럼 내가 맡아야 된다는 거야. 그런데 나는 위원장을 하면 안 돼지. 어리니까. 그렇게 부위원장이 된 건데, 막상 그 당시엔 부위원장을 내가 한다고 확실히 약속된 건 또 아니었거든. 조직개편을 앞두고 백지상태라서 어떻게 될진 모르는 거니까. 그때 원래 이런 저런 영화를 해보자는 제의가 있었는데 내가 영진위 들어가게 되면 그걸 어떻게 하겠어. 당시 보수적인 분들, 중도적인 분들, 개혁적인 분들이 막 섞여있어서 충돌이 생기고 그러는 판국이니 이거부터 어떻게 해보자 싶더라.
노사모에 가입한 뒤, 적극적인 정치적 참여가 있었다.
노사모와의 관계가 2002년 3월 즈음에 시작해서 그 해 말까지 계속됐는데 그때가 영화를 완전히 할 수 없게 된 시점이기도 했다. 관객 입장에서 볼 땐 순수한 배우로서의 정체성이 흔들린 거지. 영화배우면서 <그것이 알고 싶다>로 인해 강한 인상이 있었던 가운데 참여가 이뤄졌으니까, 상업배우로서의 가치가 확 떨어진 거다. 그러면서 그때 2년 정도 영화를 못했지. 그 다음부턴 내가 대본을 고르는 입장이 아니라 웬만하면 하는 입장으로 변한 거고. 90년대 후반으로 들어가면서 영화 성향이 바뀌기 시작하는데 지금 되돌아보면 난 그 당시 분위기가 변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걸 받아들이지 않았던 거 같다. 그러니까 여전히 메시지가 강한 영화를 하고 싶었던 거지. 그러니까 영화의 흐름이 달라진 거다. 그런 가운데 영진위나 쿼터 문제부터 말려들기 시작했고.
그래도 90년대부터 활동을 시작했던 배우 중에서 지금까지 활동하고 있는 유일한 배우라고 말해도 될 것 같다.
그 때는 배우가 많지 않았으니까. 90년대 초 중반에 활동을 시작한 남녀배우를 다 합쳐도 열명 이내나 될까. 최민수, 이경영, 강수연, 심혜진, 아무튼 생각해보면 그다지 많지 않았어. 이를 테면 이런 배우들이 캐스팅 되야 영화가 투자된다고 말할 수 있었던 배우들이 열명 안짝이었지.
90년대 당시에도 한국영화제작편수는 활발했지만 점유율은 높지 않았다.
스크린 쿼터 감시단은 90년대 초에 만들어졌는데 그 당시는 직배가 이뤄지면서 한국영화계도 궤멸 상태에 빠졌던 시기였다. 그전까진 외화를 30편만 수입하고, 스크린쿼터 146일이 있었지만 외화 30편은 걸면 무조건 대박이 났다. 한국영화는 쿼터 때문에 억지로 만들어서 편수가 대충 채워졌지만 점유율이 현저하게 떨어졌지. 극장이 직접 당일 날 한국영화 상영작을 구청에 신고했는데 신고만 하고 실제론 외국영화 틀고 그랬다. 직배가 정확히 몇 년부터였는지 기억나지 않지만-88년 시작- 직배 후에 한국영화 점유율이 14%까지 떨어졌던 적도 있다. 스크린쿼터 감시단을 만든 건 정말 생명의 위협을 느껴서 투쟁한 셈인 거지.
당시 쿼터 투쟁에 대해서 반발하는 여론도 형성됐다. 어쩌면 투쟁을 통해 넘어야 할 가장 큰 산이 아니었을까. 당시 서울극장의 곽정환 회장은 원래 데모를 싫어할 만한 양반인데도 쿼터 투쟁을 독촉할 정도였다. “너희들 데모 열심히 해라. 다만 서울극장에 돌만 던지지 마라.” 그랬으니까. 그리고 <쉬리>가 잘된 것도 쿼터 투쟁의 결과라고 말씀해주셨다. <쉬리>가 완성도 있는 오락영화임에는 틀림없다. 그런데 당시는 할리우드 직배사들이 죽겠다고 토로하던 시기였다. 마케팅에 돈을 쏟아 부어도 관객들이 움직이지 않는다는 거다. 다는 아니지만 부분적으로 쿼터 투쟁의 결과라고 본다. 쿼터 사수 시작 당시 쿼터 지지율이 3:7정도로 불리했다. 그런데 두 달 정도 투쟁을 하니까 6:4로 역전됐다. 지켜야 한다는 쪽으로 기운 거다. 할리우드가 지나친 압박을 하고 있고 이렇게 한국영화가 궤멸될 수 있다는 논리가 관객들에게 받아들여진 거야.
결국 쿼터 투쟁이 단순히 스크린 쿼터 사수에 국한된 결과물이 아니란 소리다.
99년에 한국영화 점유율이 24%까지 가 있던 상태였다. 쿼터 투쟁 이후, 영진위가 조직됐고 이를 통해 정부지원이 들어왔다. 그리고 영진위가 투자조합을 만들어서 투자재원도 마련했고, 쿼터까지 단단히 박혔다. 그때부터 국내영화 산업이 확 커지기 시작한 거지. 동시에 능력 있고 상업적인 감각이 있는 감독들이 나타나기 시작하면서 한국영화를 걸면 막 터지기 시작했다. 그런 흐름들이 존재했던 거지.
그런 시기에 오히려 자신은 영화배우로서 작품을 하지 못했다.
한국영화들이 되는 시점에서 나는 영진위로 말리고, 노사모로 말렸지. (웃음) 물론 말린다는 말은 그냥 그렇다는 말이고, 지난 <무릎팍도사>에서도 얘기했듯이 난 길게 생각하고 결정한 사안이었다. 상업영화 배우로서 망하는 길이라는 걸 잘 알면서도 들어갔다.
배우나 연예인의 공적인 코멘트는 때때로 표적이 되기 쉽다. 그런 걸 스스로 그런 바를 몰랐을 것 같진 않다.
분명 깊게 고민했던 사안이었다. 상업배우로서 심대한 타격을 입을 것이란 걸 알고 시작했지만 정말 굉장히 심각했다. 사실 내가 노사모를 주도했다고 얘기하는 사람도 있는데 그렇지 않다. 실질적으로 캠프회의에 간 적도 없었고, 그냥 강연만 다녔다. 조직 운영은 명계남 씨가 주도했지. 그 양반이 정말 잘 했거든. 다만 내 강연 장면이 담긴 <노무현의 눈물>동영상이 인터넷 사상 최대의 히트를 기록하면서 그렇게 인식된 바가 없지 않다. 아마 그 당시 150만 클릭이었는데 그게 퍼서 옮겨지는 것까지 염두에 두려면 클릭수에 곱하기 4를 해야 얼추 맞아떨어진다고 하더라. 결국 6백만 클릭이 있었던 셈이다. 그때 안약을 넣었다느니, 이런 식의 공격까지 당했던 게 그 동영상을 찾아서 확인하려는 사람이 늘었던 이유 중 하나다. 게다가 뉴스까지 나왔으니까. 심대한 타격을 얻을 거라 생각했는데 치명적이었지. (웃음) 90년대 말에서 2000년 이후부터 활동이 줄고 작품 성향이 바뀌게 된 것도 그것과 무관하지 않았다.
재물을 보면 욕심이 생긴다고 정말 정치를 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던 적은 없나?
나는 연기자로서 여러 번 말했다. 나는 배우다. 내 직업은 배우이고 그 직업을 정치인이나 행정가로 바꿀 생각이 없다. 그러므로 내가 지지하는 후보가 당선된다 해도 그에 따른 어떤 혜택도 받지 않겠다. 그래서 선거가 끝나자마자 연기를 다시 시작하고 싶었고. 정치분야와 관련된 사람들은 국민들에게 심하게 욕을 먹게 될 가능성이 크다. 우리나라 정치는 아수라장이잖아. 다만 아수라장에서 아수라처럼 노는 사람도 있는 반면 아닌 사람도 있는 거지. 유권자들을 설득하는 행위 자체는 대단히 이성적인 행위거든. 다만 한국의 짧은 민주주의 발전 역사에서 그런 행위를 온전히 납득시키는 건 아직 쉽지 않다.
결국 2000년대 초반에 배우로서의 활동에 제약을 받았다. 제도적인 면도 그렇지만 영화 현장에서의 변화가 큰 시기이기도 했다. 그 공백으로 인한 영향력이 있었나?
노사모 활동 직전인 2002년 3월에 촬영이 끝난 <질투는 나의 힘>(2003)이후로 1년 반 정도 현장에 갈 일이 없었지. 결국 <오로라 공주>(2005)현장에서 예상도 못했던 일이 벌어졌다. 심성이 완전히 변한 거야. 난 그냥 하면 될 거라 생각했는데 연기자 심성이 아니더라. 기타 줄이 다 끊어진 것 같은 느낌 있잖아. 배우는 몸이 악기인데 내 줄이 다 끊어졌다는 걸 느낀 거야. 어마어마하게 당황했지. 이게 안 되는 일이라는 걸 몰랐지. 그런 경험이 없었으니까. 결국 <오로라 공주> 끝날 때까지 발버둥을 치다가 <한반도>들어갈 때쯤 다시 배우가 되더라. 사실 얼마 전에 방은진이 만나서 미안하다고 그랬어. 내가 진짜 그렇게 연기자 심성이 날아갔을 줄 몰라서 자신 있게 하겠다고 그랬던 건데 찍다 보니까 아니더라고. 그런데 그때는 내가 너한테 말을 못했고, 그게 미안했다고. 지금 와서 다 끝났으니까 얘기하는 거지만 진짜 그때 죽는 줄 알았다, 그랬지.
고작 몇 년 정도의 공백은 극복할 수 있을 거란 자신감이 있었을 거다.
그랬을 거야. 연기에 대해서 끝없이 고민하고 있었기 때문에 당연히 될 거라 생각했으니까. 어쨌든 <오로라 공주>를 지나면서 다시 배우로서 회복을 했단 말이야. 그게 참여정부 중반 즈음이었는데, 그 당시 참여정부를 둘러싼 논란이 무지하게 많았잖아. 참여정부 씹기가 마치 국민 스포츠처럼 돼 버렸고. 그러니까 너무 속상하고 안타깝고, 한편으로 화도 나는 등등, 그러다 보니 내가 없어지자 싶더라. 그 뒤로 5년 동안 정치발언은 하나도 안 했다. 뭐라고 말해도 논란이 되거나 씹힐 수 밖에 없어졌기 때문에, 아예 칩거를 해버리듯 산에만 다녔던 거지. 그러다가 참여정부가 끝나면서 해방감 같은 게 생기더라. 산에 다니면서 느낀 게 많았다. 연기를 잘 하고 싶은 욕심이 있는 건 당연한 건데 그 외에도 여러 가지 면에서 압박을 받아왔다. <그것이 알고 싶다>를 하면서 느낀 사회적 책임도 있었고, 열심히 해야 한다는 마음이 변치 않더라도 압박을 털어내야 연기가 잘 된다는 걸, 성취도가 높아진다는 걸 늦게 깨달은 거다.
아무래도 연기자로서의 삶보다도 공적인 발언과 참여자로서의 전사를 묻는 질문들이 많아졌다. 그런 질문들에 답변해야 한다는 것에 대한 스트레스는 없나?
참여정부나 MB정부에 대한 평가라던가, 그런 건 할 생각이 없지만 내가 왜 그렇게 살아왔는지에 대한 설명은 감출 필요가 없다. 물어보는 대로 다 이야기할 수 있지.
온전히 배우로서 평가되기란 힘든 일이 될 수도 있다.
글쎄. 솔직히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릴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적어도 선거 국면 때 내가 공개적으로 약속했던 건 지켰다. 그 당시 아무도 안 믿었을지 모르지만 5년이 지나야 입증이 되는 것이었기 때문에 5년이 지난 지금은 입증한 셈이다. 그러나 여전히 난 시민의 정치 참여가 의무라고 생각에 전혀 변함이 없다. 어찌됐건 약속을 지켰고 열심히 내 본업을 하고 있으니까 이제 나를 배우로 봐준다면 참 고맙겠다. 물론 없어지진 않겠지. 그건 내가 살아온 생이니까. 어느 정도 세월은 걸릴 거다. 그러나 적어도 스스로 약속을 지켰다 생각하는 만큼 앞으로 나를 가급적이면 배우라는 이름을 중심으로 봐주신다면 좋겠다. 그런 희망을 갖게 된다.
최근 예년과 달리 스크린이 아니라 브라운관에서도 행보를 거듭하는 건 그런 희망과 무관한 일이 아닐 것 같다.
그런 욕심이 크지. 결국 연기를 계속해야 된다는 거.
웅장한 배경음과 함께 등장하는 위성사진의 부감이 심상치 않다. 이어지는 장면은 버지니아 CIA본부의 복도, 그리고 뚜벅뚜벅 이어지는 누군가의 발걸음. 엄청난 예감을 일으키는 오프닝이 환기시키는 예사롭지 않은 예감은 그 발걸음의 주인공이 방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반 박자씩 엇나가기 시작한다. <번 애프터 리딩 Burn after reading>은 낮은 톤의 목소리로 비범한 척하기 좋은 농담과 같다. 연속적으로 이어지는 해프닝은 결과적으로 ‘얻을 게 없는’결말로 종착된다. 하지만 그 모든 과정은 <번 애프터 리딩>의 단점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라면 모를까.
CIA분석가 오스본 콕스(존 말코비치)의 해임 장면에서 시작되는 영화는 그 시작부터 끝까지 예상할 수 없는 범위로 사건을 부풀려나간다. 오스본과 이혼을 고민하는 케이티(틸다 스윈튼)는 국무부 연방 보안관 해리(조지 클루니)와 내연의 관계이며 그와 전혀 무관한 스포츠센터엔 전신성형을 꿈꾸는 린다(프란시스 맥도먼드)와 낙천적인 동료 채드(브래드 피트), 인자한 상사 테드(리차드 젠킨스)가 있다. 동떨어진 구석에 자리한 두 맥락의 인물들이 동일한 문단에 포섭되는 건 우연한 계기 덕분이다. 스포츠센터에서 발견한 CD한 장이 채드와 린다의 손에 들어가며 거창한 음모론이 꿈틀댄다. 작은 오해는 불미스런 갈등으로 발전하고 동떨어진 세계의 인물들은 이상한 방식으로 서로의 자장 안에 들어선다.
실상 사건의 맥락엔 어떤 본질 자체가 없다. 그저 그 허무맹랑하게 커지는 어떤 사건을 둘러싼 복잡한 관계도가 발견될 뿐이다. 정체불명의 관계도 속에서 맞닥뜨린 개개인들은 불필요한 해석을 덧씌우며 종잡을 수 없는 지경의 수순에 이르고 만다. 사건의 핵심에 놓인 사람도, 사건을 스스로 확대하는 사람도, 정작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파악하지 못한다. 결과적으로 이 모든 사건의 총합은 해프닝에 불과한 것으로 산출된다. 그러나 그 해프닝은 명백한 인과관계를 통해 설득력을 갖춘다. <번 애프터 리딩>은 구심점이 없는 인과관계만으로 온전한 스토리텔링을 형성한다. 눈과 귀를 뗄 수 없게 만드는 이야기꾼의 재능이 녹록하다. 허풍처럼 이야기를 늘어놓지만 그 구술엔 어떤 허세가 없다. 빈틈도 군더더기도 없다. 흘러가는 이야기 자체가 하나의 핵심이다.
결과적으로 이 커다란 해프닝의 의미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 그 자체에 있다. 과장된 음모론에 도취된 이들은 비참한 파국을 맞이하거나 그 무지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그 어느 쪽이라도 결국 본질은 없다. 결국 그 모든 악화일로는 그저 실없는 상상력의 결과에 불과하다. 망상을 통해 음모론을 확장하는 인물들과 그 추이를 관찰하는 건 CIA정보부다. 그들은 린다나 채드의 상상처럼 대단한 음모의 중추가 아니라 그저 퇴임한 정보분석가의 뒤처리나 하는 집단에 불과하다(고 영화는 묘사한다). 결국 그 망상의 음모론은 어떤 실체도 발견하지 못한 채 말이 될 것 같지 않은 상태로 끝난다. 마치 살상무기 없는 이라크 전처럼, 그건 그저 해프닝이다. 그리고 그 해프닝은 속이 빈 형태 자체만으로도 훌륭한 블랙코미디의 자격을 거머쥔다. 실체가 없어서 완벽한 해프닝을 이루는 <번 애프터 리딩>은 그 자체를 통해 거대한 음모론의 지지자들을 완벽하게 조롱한다.
'모든 것은 사소한 법(It is all small stuff)’이다. 다만 그 사소함이 때론 대단한 해프닝을 낳는다는 것. 물론 심각할 필요는 없다. <번 애프터 리딩>은 그저 망상의 세계에서 음모론 놀이를 즐기는 바보들의 향연일 뿐이며 우리는 그저 그들의 어이없는 해프닝을 즐기면 된다. 하나같이 이름값이 대단한 배우들의 부조리한 앙상블 역시 또 다른 백미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로 거장의 반열에 오른 코엔형제는 <번 애프터 리딩>를 통해 깊이와 너비를 모두 갖춘 이야기꾼임을 입증한다. 무엇보다도 다양한 방식의 이야기를 통해 재능을 발휘하는 그들의 행보는 자신들의 재능이 스스로의 삶을 위한 유희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 것만 같다.
지루하다기 보단 판곤의 행위가 너무 흉악해서 보고 있자니 끔찍한 기분이더라.
죽이는 걸 질질 끄니까 그런 면에서 그럴 수도 있겠다. 감독님도 기자간담회에서 말했잖아. 나는 한 사람을 죽여도 바로 죽이지 않고 질질 끌면서 죽인다고. (웃음)
촬영 기간이 얼마나 됐나?
한달 열흘 정도 찍었나. 10억도 안 되는 예산으로 찍은 영화인만큼 촬영도 빠듯했다.
상업영화로 치면 저예산인데 그만큼 감안해야 할 현장의 열악함이 있었을 것 같다.
예산이 적다는 게 영상으로 드러난다는 건 내 입으로 설명할 필요도 없겠지. 다만 배우에게도 영향을 미치는 부분이 있더라. 가령 현장에서 시간적 여유가 없어지는 상황이 생기니까 감독님과 디렉션을 주고받을 만한 여유가 생기지 않았고, 캐릭터를 충분히 잡아갈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벌기도 힘들었다. 추가적인 투자까진 바라지 못해도 시간이라도 더 있어서 커트라도 더 살릴 수 있었다면 좋았을 것 같아서 아쉽다. 사실 요즘은 차라리 홍보비조차 아껴서 영화에 돈을 들일 수 있었다면 좋았을 걸 싶은 생각마저 든다. (웃음)
많이 걱정되나 보다.
기대작이라고 불리는 작품들이 있잖아. 스케일이나 주연배우의 캐스팅, 감독의 브랜드, 아니면 시나리오가 좋았다는 소문과 같은 여러 가지 이유가 그 기대감에 일조하는 기준이 된다. 그런데 <실종>은 예산 규모에 비해 너무 큰 관심을 받고 있는 것 같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커질 수 있으니까. 물론 내 걱정이 너무 앞서간 것도 있다. 어쩌면 내가 이런 영화를 찍어보지 못했기 때문일지도 모르고.
시나리오가 영화보다 더 세다고 들었다.
내가 이런 말 하긴 좀 그런데, 이게 스릴러 영화 시나리오구나 싶었다. 솔직히 나는 머리가 꽉 찬 배우는 아니다. (웃음) 아직 내가 시나리오만 보고 영화를 판단할 수 있을 정도로 많은 시나리오를 접해본 것도 아니고. 그냥 연기해보면 잘 할 수 있겠다, 이런 단순한 계기를 통해 캐릭터에 집중하게 되는 것 같다. 그렇게 멋모르기 때문에 항상 그 씬에 헌신할 수 있는 것일 테고.
잔혹한 장면이 많은데 이미지에 대한 걱정은 없었나. 지난 번 기자간담회에서 말했지만 스릴러 장르에서의 역할이 여배우에겐 쉬운 기회가 아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스릴러 영화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김성홍 감독님이 나를 찾았다. “자현아, 내가 이런 영화를 만들 건데 너를 염두에 뒀다. 다만 상황이 조금 힘들지도 모르지만 참여해줬으면 좋겠다.” 열악한 상황에 대한 두려움이나 그로 인한 판단은 없었다. 그저 스릴러에 대한 지식이 없었기 때문에 감독님을 신뢰할 수 밖에 없었고, 시나리오가 표현한 장면들이 과연 어떻게 묘사될지를 생각하기 급급했지. 이렇게 잔인한 걸 찍고 나면 이미지는 어떻게 하나, 이런 생각은 못했다.
육체적인 어려움이 많았을 것 같다.
예산이 없는 환경에서 그냥 몸을 던질 수 밖에 없었지. (웃음) 몸이 다치거나 그런 건 힘든 일이 아니다. 카메라가 돌아가는 순간엔 그런 건 잊어버린다. 촬영하는 동안엔 모른다. 멍이 들어도 아픈 줄 모르고 그냥 맞고 있지. 물론 컷하고 나면 아파서 난리 나지. 그런데 촬영 끝나고 숙소 들어가면 공허함이 굉장히 심했다. 내가 무슨 짓을 하고 있나, 그러면서. 풍족한 상황까진 아니어도 세팅이 되면 충분한 의사소통을 하면서 시간적인 여유도 벌고 좀 더 괜찮게 할 수 있겠다 싶었는데 그런 상황이 못됐으니까. 내 스스로 부족함을 너무 많이 느낀 거지. 감독님께서 기자간담회에서 배우들에게 고맙다고 말씀하셨던 건 아마도 그런 상황에서도 배우들이 힘들어 하지 않고 몸소 열심히 해준 것에 대한 감사 표시였을 것 같다.
대부분의 사건이 미니멀한 한 공간에서 벌어지고 영상적 기교가 최대한 배제된 만큼 배우에게 시선이 집중될 가능성이 큰 영화다. 그만큼 배우의 연기가 중요한 영화이긴 하다.
난 묻어간다는 얘기를 많이 한다. 겸손하자고 하는 말이 아니라 내가 잘한다기 보단, 내가 절반 정도를 만들어 가면 현장의 소품이나 감독님의 연출, 상대배우의 느낌으로 나머지가 채워진다는 말이다. 현장에서 받는 기운으로 내가 그 캐릭터에 묻어가거나 변해갈 수 있다. 그런데 <실종>에선 그럴 수 없었다. 말한 바대로 시선이 갈만한 소품이나 기교가 없는 거다. 그냥 카메라 하나 놓고 그 앞에서 연기하라는 거지. 그 카메라 앞에서 나를 도와주는 사람은 없다. 예를 들어서 <미인도>같은 경우엔 가채라도 있었지. 덕분에 이렇게만 해도(손으로 머리를 쓸어 올리며) 그 동작 하나로 느낌이 변한다. 그냥 방안에 앉아있어도 6천만 원짜리 자개병풍이 최고의 기녀라는 포스를 만들어주거든. 그 방안에 세팅된 가구들이 돈으로 3억 5천 원이었다. 그런 백이 있으니까 내가 고개만 살짝 돌리고 조명만 비춰도 특별한 자세가 발생한다. 하지만 <실종>은 정말 그야말로 눈빛만으로 뭔가를 표현해야 되니까 아직 단련되지 않은 나 같은 배우로서는 힘든 작업이었지. 예산이 적다거나 빨리 찍어야 해서 힘들다기 보다는 그만큼 배우가 해야 할 몫이 많아서 부담이 컸다. 그런데 (손가락을 살짝 벌리며) 내 그릇은 요거밖에 안됐던 거지.
문성근 씨가 지독하게 악랄한 연기를 보여줬다. 자극을 얻었을 것 같다.
그나마 내가 의존할 수 있는 장치는 문성근 선배님의 눈빛이었다니까. 다른 데 의존할 것 없이 그 눈빛만 보고 연기했다. 일전의 인터뷰에서 문성근 선배님의 눈빛이 예사롭지 않아서 무서웠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그건 범인으로 변신해서 연기하는 문성근 선배님의 눈빛이 살인마처럼 무섭다는 의미도 있지만 그것보단 내 기가 빼앗길 만큼 눈빛이 강렬해서 연기하는 게 무섭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상대에게 짓눌릴 수 있다는 위기의식을 느꼈다는 의미일까.
내가 만약 그냥 당하는 입장이었다면 상관없겠지만 그게 아니니까. 만약 뭔가 둘이서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호흡을 맞춰가는 역할이라면 서로 설정을 맞춰가며 호흡을 나누는데 이건 철저하게 피해자와 범인이니까 연기도 대결처럼 펼쳐진다. 그것도 50대가 넘은 대선배 앞이니까. 게다가 남자 가해자와 맞서는 여자 피해자로서 끝까지 페이스를 유지하기 위한 기싸움이 힘들더라.
본인이 에너지의 균형을 맞추지 못하면 영화가 무너지는 셈이니까. 문성근 선배님은 그냥 편안하게 계셔도 아우라가 있으신 분이다. 카메라가 돌면 무슨 칼라렌즈라도 끼는 것 같더라. 눈빛이 이상해져. (웃음) 순간적으로 내가 준비되지 않았다 느껴도 앞에서 눈빛이 확 변해버리니까 나도 같이 긴장하게 됐지.
상대배우의 중요성을 확실히 깨닫게 된 영화였을지 모르겠다.
상당히 중요하더라.
<사생결단>의 지영이나 <미인도>의 설화는 겉으로 강한 척하지만 안으로 여리고 쉽게 무너지는 여자였던 것과 달리 <실종>의 현정은 안에서부터 강한 여자다.
요즘 인터뷰를 하면 이런 질문을 받는다. ‘계속 세고 강한 캐릭터를 맡는데 의도한 바냐.’ 마약 중독자나 팜므파탈 기녀, 색깔이 강한 느낌이긴 했다. 하지만 캐릭터 자체가 딱 만들어져 있는 인물이니까 그걸 내 식대로 이리저리 표현해내는 것에 불과했지. <실종>의 현정은 평범한 여자다. 외유내강이지.
현정은 동생의 죽음에 대해 복수하겠다는 일념으로 강해지는 여자다.
피가 당기는 친동생이니까 무언가에 끌려가는 거다. 덜덜 떨면서 창고 문을 열어보는 게 아니라 그냥 본능으로 가는 거지. 이런 가족애에 대한 설정을 내가 납득했기 때문에 후반부에 강하게 어필할 수 있었던 거 같다. 만약 동생이 아니라 딸이었다면 더했겠지. 예를 들어 <세븐 데이즈>같은 영화나, 올해 개봉한다는 <마더>처럼 자매가 아니라 부모라면 더 강해졌을 거다.
영화에서는 자매 외에 가족이 등장하지 않는다. 부모가 없다는 추측이 가능한데.
원래 시나리오에 그런 설정이 언급된다. 그래서 영화에서도 어필하고자 노력했다.
직접적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관객에게 추측이 가능하게 만들어야 하는 부분이다. 그리고 그게 가능할 때 현정의 모성애적인 감정에 확실히 동의할 수 있다. 그만큼 고민이 필요한 지점이 아니었을까.
내가 그렇게까지 많은 생각을 하면서 연기하는 배우는 아니라. (웃음) 농담이고, 한 씬을 통한 설명 정도로 드러내려 했던 거 같다. 김성홍 감독님은 직접적인 설명을 많이 배제하는 스타일 같다. 예를 들어 홍감독의, ‘그 엄마보다 더 무섭다는 언니?’ 이런 대사 한마디로 넘어가는 식이지. 그리고 부모님 슬하에 있는 자매라면 동생이 늦게 들어오지 않아도 크게 신경 쓰지 않을 수 있는데, 부모가 없기 때문에 안 들어오면 직접 전화해서 꾸중해야 하는 거고. 그리고 동대문에서 일하는 장면을 통해 억척스럽게 동생을 뒷바라지 하는 느낌을 줄 수 있다고 생각했지. 현아도 자기가 의지할 곳은 언니밖에 없다는 걸 아니까 다툰 뒤에 다시 전화로 사과하면서 애교도 떨고, 언니에 대한 의지가 큰 거지.
반대로 동생을 납치한 범인이 아니라 그냥 납치범이라면 같은 상황이라도 이해가 달라지지 않았을까.
내가 동생을 납치하고 죽인 범인한테 다시 납치당하는 언니가 아니라 그냥 납치를 당했다면 그냥 전세홍 씨처럼 공포에 휩싸이는 역할만 납득할 수 있었겠지. 그런데 판곤이 내 동생을 죽인 범인이라 생각하니까 나도 공포보단 분노가 일더라. 저 인간이 나를 어떻게 할까, 이게 아니라 내 동생도 이렇게 당했겠지 싶으니까 미치는 거다. 범인을 죽이고 싶을 정도로 돌아버리는 거지.
그런 감정은 사실 정말 당해보지 않고선 알 수 있다고 말하기 힘들다. 그런 감정을 납득하는 과정이 있었을 것 같다. 힘들었던 건 과연 정말 이런 일을 당한 사람들은 어떨까 싶었던 거지. 물론 영화에서는 그 느낌으로 연기하려 했지만 진짜 그런 가족들의 심정은 겪어보지 않은 이상 모르잖아. 내가 감히 어떻게 그 심정을 대변할 수 있겠어. 마지막에 감형을 유도하기 위해서 정신병을 주문하는 변호사에게 던지는 대사는 그런 고민에서 나온 거다. 혹시 딸 있냐고.
실질적으로 그 대사의 객체는 관객이라 할 수 있다.
그런 감정을 함축적으로 담아낼 수 있는 한마디가 뭘까, 감독님과 상의한 결과 얻은 느낌이었다. 그런 느낌이 잘 살려진 것인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랬다. 변호사에게 하는 말이 아니라 관객에게 던지는 거지. 우리영화에 엔딩은 없다. 영화의 이야기는 마무리됐어도 어딘가 다른 곳에선 똑 같은 사건이 벌어지고 있을지도 모르니까. 심지어 지금 인터뷰하는 시간에도 마찬가지지. 난 그저 스릴러 영화를 해보려고 했는데 어쩌다 보니까 정말 현실적인 비극과 내 주변의 아픔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됐다. 여러 가지로 자아를 성숙시킬 수 있는 계기가 된 것 같다.
실제로 흉악한 범죄가 많이 벌어진다는 점에서 <실종>은 안타까운 현실을 반영한 영화라고 말할 수 있겠다. 특히 여자들은 그런 범죄 앞에서 불특정 다수의 피해자가 될 수 있다. 여자로서 느끼는 공감대가 있었을지 모르겠다.
공감대까지는 솔직히 모르겠다. 사실 상상도 할 수 없는 이야기라고 믿었고, 영화를 찍을 때만 해도 이건 정말 영화니까 가능한 상상이라고 생각했다. 우린 단지 스릴러 영화를 찍은 것 뿐인데 정말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던 사건이 터지고 나니까 영화가 섬뜩한 메시지를 전해주는 영화가 돼버렸다. 사실 내가 강호순 사건에 대해선 잘 모른다. 내가 드라마나 예능 프로는 잘 봐도 뉴스는 잘 안 보거든. (웃음) 그래서 큰 사건만 사람들을 접해서 듣곤 하는데 연쇄살인에 관한 소식을 접하고 나서 느낀 건 정말 무섭다는 것보단 살해당한 분들 가족들은 어떡하나 싶은 마음이었다. 어쩌면 <실종>을 찍은 뒤 생긴 변화일지도 모르겠다. 그 가족들은 평생 안고 살아야 할 아픔이겠지.
영화에서나 벌어질만한 사건이라 믿었던 일이 현실에서 발견된다는 점에서 더욱 끔찍할 수 있겠다. 어쩌면 영화보다 더 끔찍한 건 현실인 셈이랄까.
예전에 감독님께서 <실종>의 모티브를 말씀해주셨다. 우리나라같이 땅덩이도 좁고 호구 조사도 잘 된 나라에서 몇 년 동안 연락이 안 되는 여자들은 다 어디 있을까, 라는 거다. 거기에서 시작됐다고 하더라. 본의 아니게 연쇄살인사건이 터졌고 우리가 현실에 맞아떨어지는 이야기를 상업적으로 쓰려고 했던 건 아닌 거지. 그래서 감독님께서 그런 부분에 스트레스를 받으셨던 것 같다.
1996년에 데뷔했으니 <사생결단>으로 신인상을 수상했던 2006년은 데뷔한 지 10년이 되던 해였다.
김지수 선배님도 <여자, 정혜>로 13년 만에 신인상 받지 않았나? 어쨌든 참, 멀리도 돌아왔다.
배우로서는 꽤나 겸연쩍은 순간일지도 모르겠다. 데뷔 10여 년 만에 신인상이라니.
나에게 있어서 상이란 아무런 느낌도 없었다. 이건 겸손도 아니고, 경솔도 아니다. 난 단순히 그 시상식에 참여하는 여배우 중 하나라는 게 좋더라. 왜냐면 내가 그 자리에 있어도 머쓱하거나 불편하지 않다고 느껴지니까. 내가 노미네이트 돼서 주목을 받았고, 어쩌다 보니 상까지 받았을 뿐이다. 워스트 드레서라도 내가 레드카펫에 설 수 있었으니까 그것만으로 좋았다.
그래도 연기자로서 처음으로 받는 상이었는데. 이런 얘기를 언제 했는지 모르겠지만 또 어디서 말 실수 하느라고 했을 거다. (웃음) 우리나라 시상식이 누가 상을 받고 레드카펫에서 배우들이 어떤 옷을 입는지에 주목하는 것보단 영화인의 축제로 발전했으면 좋겠다. 그래서 영화계에 몸담고 있는 스탭들도 레드카펫을 밟을 수 있고, 누군가가 상을 받으면 현장에서 함께 했던 팀들이 다 같이 무대에 올라가서 축하도 해줄 수 있다면 좋겠지. 아카데미 시상식의 할리웃 스타들도 누구 하나가 상 받으면 그 팀들이 무대에 나와서 축하해주잖아. 그런데 우리나라는 그런 현장에서의 감동이 별로 없는 것 같더라. 그 자리에 있는 게 머쓱한 건 아니었지만 시상식을 끝내고 돌아오니 단순히 그냥 스케줄 하나 끝낸 기분이었다.
그래도 남다른 감회가 있었을 것 같은데.
얼마 전 백지영 씨가 <무릎팍도사>에 나와서 말하더라. ‘사랑 안 해’로 다시 주목 받게 됐을 때 스스로 자신이 잘 견뎌왔다는 걸 칭찬해줬단다. 그리고 예전에 한번 겪어봤듯이 지금 받고 있는 이 사랑이 거품이 될 수 있다는 걸 아니까 그 감정에 쉽게 휘말리지 않게 된다고 하더라. 나도 만약에 연기 시작하고 한 2~3년 만에 신인상을 받았다면 순수한 마음으로 눈물, 콧물을 흘려가면서 좋아했을지 모르겠는데 한 10년 정도가 흐른 뒤라 그런지 위로를 얻는 기분이었다. <사생결단>이란 작품으로 주목을 받았지만 그건 내 연기적 목마름에 어울리는 적재적소와 같은 작품을 만난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생활 탤런트로 타협하지 않고 도전해온 내 인생에 대한 위로랄까? 내가 혼신을 다했던 연기에 상을 준다는 건 이 작품을 통해 표현한 노고가 지금까지 잘 다져오려 했던 내 인생에 대한 칭찬이란 느낌이었지.
그런데 어째서 느낌이 없었다고 말하는 건가?
만약 내가 이 상을 받을 당시 내 힘든 여정을 같이 보냈던 사람들이 앞에 있었으면 눈물이 났을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처음 레드카펫을 밟는 자리에 아는 사람도 별로 없고, 기라성 같은 선배님들이나 탑배우들이 앞에 앉아 있는 가운데 수상을 하게 되니까 그 자리가 낯설고 편하지 않았다. 그냥 얼떨떨한 느낌이었지. 그런 의미다.
그 수상이 인생을 확신할 수 있는 근거가 되진 않았을까. 인생을 연기에 걸어도 될 것 같은 일말의 확신이라도 말이다.
부담과 자신감이 함께 오는 거 같다. 내가 뭔가를 열심히 해내면 인정을 받게 되는구나 싶은, 보답 받는 기분. 그렇게 칭찬받는 기분을 느끼고 내가 또 다시 열심히 해봐야겠다는 원동력이 자신감이겠지. 반대로 이렇게 상을 받았으니 다음엔 얼마나 더 주목을 하실까 싶은 부담도 생긴다. 다른 배우들이야 예쁘니까 상관없지만 난 연기라도 잘 해야 먹고 사는데. (웃음) 솔직히 말하자면 이번에 <실종>찍으면서도 그런 생각이 없지 않았지. 이렇게 자꾸 말하니까 너무 변명 같지만 <사생결단>이나 <미인도>보다 예산이 적고 그만큼 열악하다 보니까 오히려 그 때보다 더 잘해야 되는데 쉽지 않겠다는 느낌을 받았다. 내가 놓치고 가는 게 많아서 큰일났다 싶더라. 그래서 스트레스를 받기도 했고.
촬영 내내 그런 스트레스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건가?
작품이 끝나가는 와중에 문득 바보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상황이 좋으면 누가 연기를 못해. 힘들고 열악한 상황일수록 끝까지 페이스를 놓치지 않아야 진정한 배우인 거지. 그래야 더 빛을 발할 수 있는 거지. 완벽하게 세팅된 곳에서 누가 연기를 못하겠어.” 크랭크업 이틀 남겨놓고 깨달았다. 이미 찍을 거 다 찍어버렸는데. (웃음) 정말 내가 아직도 멀었구나 싶더라.
그래도 느낀 바가 있다는 건 분명 긍정적인 계가가 된다.
부딪혀봐야 내게 부족한 걸 알지, 백날 생각해본다고 아는 게 아니라는 걸 알았지. 예를 들어서 내가 마라톤 달리기를 한다면 몇 미터까지 달릴 수 있는지 뛰어봐야 안다. 난 1km는 거뜬해, 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뛰어보니까 800m밖에 못 뛰는 아이였다. 그럼 오케이, 웨이트를 더 하자. 그렇게 1km짜리 작품을 할 수 있는 나를 만들자. 800m의 한계를 넘어서 나머지 200m를 채우자고 생각했지. 이렇게 문제를 발견해나가면서 계속 발전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을 얻었다.
아이들의 어울림이 낳은 웃음소리로 소란스러운 정원엔 햇살이 가득 들어섰다. 어머니의 75번째 생일을 맞아 아들과 딸, 손자와 손녀들이 한 집에 모였다. 오랜 추억을 공유한 형제들의 옛집에서 그네들의 손자와 손녀가 또 다른 추억을 공유하는 중이다. 어머니와 함께 살던 집은 어느 새 할머니가 사는 집이 됐고, 할머니가 된 어머니는 자신의 사후에 유산 처리를 정리하는 중이다. 집안 곳곳에서 놓인 예술품과 고가구, 집기들은 그저 낡고 오랜 삶을 증명하는 소품에 불과한 것이 아니다. 고가를 자랑하는 미술품과 앤티크한 양식의 고가구들은 오르세 미술관에서 탐낼 정도로 예술적 가치를 인정받는 문화적 유산이다. 형제의 추억이 자리한 그 집엔 그만큼이나 값진 가치를 품은 예술적 유산들로 이뤄졌다.
인상파 화가 카밀 코로와 상징주의 회화를 대표하는 오딜롱 르동의 그림, 화려하고 귀족적인 아르누보 양식의 가구들부터 작은 찻잔 하나까지, 문화적 가치가 온전한 산물로 곳곳을 채운 그 집은 마치 박물관과 같은 사명을 띠고 있다. 오랫동안 엘렌느(에디뜨 스콥)가 손수 모은 미술품과 고가구의 보호소를 지키는 근위병처럼 벽을 세우고 문을 열고 닫았다. 하지만 그 집은 자신의 여생이 길지 않을 것을 직감한 엘렌느와 운명을 함께 한다. 엘렌느는 자신의 사후에 그 유산들을 자식들이 잘 처리해주길 바랄 뿐이다. 그리고 어머니의 부탁을 전해들은 큰 아들 프레데릭(샤를르 베르랭)은 집을 원형 그대로 보존하겠다고 다짐한다.
벽에 걸린 그림과 곳곳에 놓인 가구들은 형제들의 추억과 함께 묵어온 것이다. 그것이 고가의 미술품이거나 예술적 가치가 있는 고가구이기 전에 프레데릭은 추억으로서 보존하고자 하는 욕심이 강하다. 그러나 각기 미국과 중국에서 살아가는 아드리엔(줄리엣 비노쉬)과 제레미(제레미 레니에)는 감상보다도 실리를 추구한다. 더 이상 프랑스에서 정착하는 것이 아닌 두 사람에게 오랜 추억이 놓인 집을 보존한다는 건 딱히 이로운 일이 아니다. 프레데릭의 계획은 형제간의 이견을 통해 무산되고 결국 집안의 모든 집기들의 일부는 팔려나가고 대부분 미술관에 기증된다. <여름의 조각들>은 사라지는 것과 보존되는 것의 형태를 관찰하는 영화다. 세계 각지로 흩어진 형제들의 구심점이 되던 어머니의 집은 어머니의 죽음과 함께 처분될 상황에 놓이고 그 집에 놓인 유산 역시 뿔뿔이 흩어질 운명을 맞이한다.
오르세 미술관 20주년을 기념해서 기획된 <여름의 조각들>은 오랜 예술적 가치가 보존되기 힘든 현실과 그것이 현대에서 어떤 방식으로 극복되고 있는가를 제시하는 보고서와 같다. 집 안의 미술품과 고가구들은 형제들의 기억 속에 걸려 있거나 놓여있다. 그들의 추억을 차지하던 지난 일상의 흔적들이 팔려나가고 미술관에 전시되는 상황 속에서도 추억은 온전하다. 단지 그 흔적들이 지난 추억과 달리 온전하게 조립되지 못하고 흩어진 형제처럼 각기 다른 곳에서 보존된다. 아이러니하지만 현대의 미술품들은 더 이상 인간의 삶 속에서 보존되지 못하고 누군가의 금고 속에 감춰지거나 혹은 정해진 시간과 장소에서 전시될 운명에 놓였다. 개개인의 삶에 영감을 주고 함께 공존하는 소품으로서 장식되기 보단 금전적 가치로 평가되고 제도적으로 보호되는 유물로서 가려지거나 보호된다. 물론 이에 대해 불평하는 건 어리석은 일이다. 오히려 그런 방식이 현대로부터 이 가치 있는 산물들을 지켜내고 유전될 수 있는 유일한 해법이기 때문이다.
다만 그런 가치를 공유할 수 없는, 혹은 개인의 추억으로서 사유할 수 없는 현실에 대해서 한번쯤은 의문을 갖게 만든다. 삶을 풍성하게 만드는 아름다운 유산들이 오랜 세월을 전해져 오는 동안 인간의 가치관은 수없이 변모한다. 시대에 따라 부각되는 삶의 기호와 공유하는 의식이 변화하는 가운데 예술적 가치에 대한 견해가 존중될 것이란 예상은 결코 쉽지 않다. 결국 전세대는 후세대를 위해 지켜야 할 것을 보호하고 그것들을 온전히 물려줘야 할 필요가 있다. <여름의 조각들>은 변하는 것 가운데서도 결코 변할 수 없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비록 그 선택이 자신의 추억이 담긴 현실을 분해하고 나누는 일이라 쓸쓸할지라도 어쩔 수 없다. 다만 그 위대한 유산이 누군가의 삶을 통해 자연스럽게 기억되는 추억이기 보단 깔끔한 카탈로그처럼 짜임새 있게 전시되고 설명되는 파편의 역사로 잔존할 수 밖에 없다는 건 한편으로 애석한 일이다.
추억을 보존하기 위해선 이별을 감내해야 한다. 그저 화창한 볕 가운데 아른거리는 아지랑이 너머의 풍경처럼, 지나간 것들에 대한 기억은 보존될 수 없는 현실에서 흐릿해지지만 그만큼 그리움이 깊어질 따름이다. 하지만 추억은 더 이상 예전 그 자리에 놓여 있지 않으며 다른 누군가를 위해 공유된다. 개인의 소유에서 공유를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문화적 혜택을 부여하는 미술관의 기능성은 이처럼 이롭다. 하지만 한편으로 능동적인 삶의 터전에서 문화적 서사를 진전시키지 못한다는 건 한편으로 씁쓸한 일이다. 물론 현명한 답을 얻기란 힘들다. 다만 그런 고민이야말로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감에 있어서 필요한 과업이자 현대의 풍요를 미래로 전해주기 위한 의무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여름의 조각들>은 학술적인 동시에 예술적이며 현실적 고민 속에 미래지향적인 의지를 그리는 작품이다. 또한 현실의 예술적 가치를 후대에 전하기 위한 프랑스의 제도적 고민과 달리 우리는 어떤 고민을 하고 있는지, 한번쯤 심각하게 고민해볼 필요성이 요구된다. 건강한 사회적 합의를 이룬 제도를 통해 인류의 유산을 보존하는 선진국의 가치관이란 아마도 이런 것이 아닐까.
익숙하지 않은 것들은 두려움을 심기 좋은 소재가 된다. 스릴러 장르를 표방하는 많은 작품들이 낯선 곳에서 마주친 낯선 사람을 서스펜스의 발원지로 삼는 것도 비슷한 연유다. 물론 현실을 바탕으로 펼쳐지는 실제적 사건들이 서스펜스를 보좌하는 리얼리티의 배후로 지목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영화보다 영화 같은 현실이 영화에 영감이 불어넣곤 한다. <실종>도 그런 맥락에서 태어난 영화다. ‘보성어부연쇄살인사건’에서 모티브를 얻었다는 김성홍 감독의 변처럼 <실종>은 장르적 외피를 걸치고 세상에 나와 잔혹한 현실을 고발하는데 주력하는 영화다.
의좋은 자매의 즐거운 한때를 담은 핸드폰 동영상으로 시작되는 오프닝 시퀀스는 자매에게 닥칠 비극을 더욱 짙게 체감하게 만드는 보색효과로 기능한다. <실종>은 극초반부터 살인마의 존재를 명확하게 드러내며 분위기를 급속하게 냉각시킨다. 사건의 본질을 추적하는 후더닛(whodunit) 구조의 추리적 물음엔 일말의 관심이 없다. 장르적인 눈속임보단 캐릭터를 통해 발생하는 살기 그 자체를 장르적 중추로 장착한다. 감정적 대립을 이루는 캐릭터 관계를 명확히 노출시킨 뒤, 눈덩이처럼 불거지는 이야기를 굴려나간다.
영화가 필요로 하는 서스펜스는 캐릭터 본연의 존재감 자체를 통해 발산된다. 판곤(문성근)은 관객의 심리 안에서 불안하게 예측하는 수순들을 여지없이 이루고 만다. 변태적인 성욕으로 가득 찬 살인마는 여자를 납치하고, 감금한 뒤, 변태적 성욕을 채우다 결국 살해한다. 그 모든 과정은 캐릭터의 끔찍한 본성을 극대화시키는 묘사의 방식에 가깝다. 이는 캐릭터에 대한 매력이나 동정의 여지로부터 관객을 괴리시키기 위한 의도처럼 보이지만 동시에 그런 의도와 무관하게 결과적으로 캐릭터를 공들이는 양식처럼 보인다. <실종>은 궁극적으로 관객들이 캐릭터에 대한 악의를 품길 원하는 영화다. 인면수심의 싸이코패스, 더 넓게는 사회적인 악에 대한 적의를 품게 만들고자 하는 일념으로 스크린에 살기를 가득 채우고 악의적인 눈빛으로 객석을 응시한다.
사악한 캐릭터의 본능을 묘사하는 전반부의 파괴력은 인정할만하다. 그것에 몸서리를 치는 사람이건, 그것을 흥미롭게 지켜보는 사람이건, 문성근이 연기하는 판곤은 분명 끔찍하고 불쾌한 공기로 객석을 지배한다. 하지만 캐릭터의 잔혹한 본성이 밑천을 드러낸 전반부를 지나 반전의 기운이 담긴 후반부에 돌입하면 그 지배력이 서서히 쇠락한다. 캐릭터의 사악한 기운을 바탕으로 긴장감을 끌어올리던 방식을 통해 전반부를 소진한 영화는 같은 양식으로 후반부를 운영하지만 기시감이 가득한 후반부는 전반부에 비해 지배력이 떨어진다. 캐릭터가 발생시킨 파괴력의 효력이 떨어질 때 즈음, 그것을 대체할 만한 별다른 장치가 발견되지 않는다. 특별한 잔재주를 부리지 않는 우직함은 높이 살만하지만 그것이 특별한 묘미를 선사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퇴색된다. 느슨해진 플롯의 여백을 채우는 건 지속적인 불쾌함뿐이다.
불쾌함은 <실종>의 본질적 의도이자 착시적 판단이다. <실종>은 스릴러라는 장르에 복무하기 보단 현실에 대한 언질을 위해 마련된 영화처럼 보인다. 실종된 동생 현아(전세홍)을 찾아나서는 현정(추자현)의 여정은 판곤에 대한 적의를 복수와 징벌로 매듭짓기 위한 하나의 수순이다. 문제는 그 방식에 있다. <실종>은 <추격자>와 마찬가지로 제 역할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하는 공적 시스템이 개인의 복수를 부추기고 이를 방치한다는 문제의식을 발생시킨다. <실종>에서 실종된 여자를 찾아 뛰는 건 <추격자>와 매한가지로 경찰이 아닌 개인이다. 하지만 <실종>은 이런 문제의식을 하나의 단계로 삼을 뿐, 발전시킬 의도가 없다. 그보다도 오히려 개인의 복수를 정당화시키는 수순으로서 태도를 심화시킨다.
순간적인 복수심에 몰입한 피해자가 가해자를 응징한다는 내용을 문제 삼을 일은 아니다. 이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에서도 종종 발견되는 태도다. 제3자가 당사자의 행위에 가치 판단을 논한다는 건 신중할 필요가 있다. 다만 그것을 묘사하는 것과 주장하는 건 다르다. <실종>은 전자가 아니라 후자 쪽이다. 가치 판단의 주체가 될 관객의 몫을 영화가 낚아챈다. 모든 상황이 종료된 뒤 덧붙게 되는 에필로그는 정치적으로 공정하지 않다고 지적 받아도 딱히 할 말이 없을 정도다. 복수를 묘사하는 수순을 넘어 지지하는 뉘앙스를 풍길 때 <실종>은 덧없이 불순해진다. 제도적 태만이라는 공적 문제를 환기시키지 못하고 되려 개인의 감정을 자극하며 이를 희석시킨다. 동시에 말미에 다다르면 흡사 희생자를 향한 조롱마저 감지된다.
노출이 심한 의상을 입은 두 아가씨가 나이 든 어부에게 배를 태워달라는 가운데 노인의 눈빛이 의미심장하다. 그리고 페이드 아웃 너머로 따라붙는 대사는 소름 끼칠 정도로 불순하다. 본래 의도가 의심스러울 정도로 이상한 태도가 감지된다. <실종>은 불순한 착취로 가득한 영화다. 낙후된 지방성의 이미지는 영화의 말미에 다다를 때면 원시적 기운의 악이 은둔하는 은신처 즈음으로 몰락하고 악랄한 남성을 묘사하기 위해 폭력에 움츠린 여성이 성적으로 착취당하는 과정을 생생히 묘사한다. 그 와중에 복수를 정당화하고 공적 물음이 간과된다. 불쾌함의 근원은 단순히 이미지에서 기인한 것이 아니라 그 태도에서 발생하는 것이라 해도 무리가 아니다. 현실의 악을 설명하기 위한 영화적 방식이라고 이해하고 넘어가기엔 쉽게 해소되지 않는 의혹의 잔상이 강하다. 스릴러에 대한 장르적 접근을 배제한 정치적 선택이었다면 우려할 만한 사안이다. 동시에 그것이 스릴러라는 장르적 이해의 접근 방식이라고 판단된 사안이라면 더욱 우려스럽다. 결국 스릴러적인 묘미도, 현실에 대한 환기도 실종된 채 일그러진 정치적 욕망만 발견된다. 배우들의 열연마저도 착취된 것마냥 안타깝다. 어쩌면 <실종>은 농촌 스릴러라 불리며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았던 <살인의 추억>과 좋은 대조군이 될만한 영화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