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만의 출연작입니다.
개봉일이 다가오니 시험 보는 수험생 같은 느낌이 드네요. 시험문제를 빨리 봤으면 좋겠다는 설렘도 있고, 한편으론 긴장감이나 걱정도 많고, 초조함과 부단함이 복합적으로 섞인 기분이에요.
여러 가지 면에서 특별한 기대감이 있었을 것 같습니다. 시도적으로, 작품적으로, 개인적으로도.
사실 굳이 <쌍화점>이 아니라도 유하 감독님과는 한 작품이라도 같이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죠. 하지만 제게 섭외가 들어왔을 땐 좀 의아하기도 했어요. 어쨌든 <쌍화점> 시나리오를 보고 왕후 역할에 푹 빠져서 진짜 꼭 해보고 싶어졌죠. 제 스스로 연기자라는 일을 갖고 살아간다면 한번쯤 꼭 해보고 싶은 역할일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욕심이 많이 났죠.
심리적인 변화가 캐릭터를 입체적으로 만드는 양상입니다.
단아하고 아름답고 고결한 느낌이 있는 반면, 굉장히 강한 카리스마가 있고 냉정한 면모도 있으니까요. 그런 이중적인 면모를 지닌 왕후의 모습을 생각하면 어떤 배우라도 한번쯤 연기하고 싶어지지 않을까 싶어요.
겉으로 보여지는 면과 안으로 숨겨진 면을 적절하게 드러내야 한다는 점에서 난관도 있었을 겁니다.
쉽지 않았죠. 쉽지 않으리란 생각 때문에 한번 경험해보고 싶었던 것도 사실이었고요. 경험하고 나니까 역시나 유하 감독님께서 많은 것을 가르쳐주시고 일깨워 주셨다는 걸 느꼈어요.
유하 감독님의 전작들은 보셨죠?
예.
전작인 <말죽거리 잔혹사>나 <비열한 거리>처럼 유하 감독이 남성을 중심에 둔 작품에서 여성 캐릭터의 비중은 다소 미비합니다. <쌍화점>도 두 남자가 중심이 되는 영화죠. 여성 캐릭터가 소외되진 않을까라는 걱정은 없었습니까?
일단 왕후는 영화를 끌고 가는 인물에서 제외되는 건 사실이에요. 하지만 왕후는 없어서는 안 되는 인물이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분량이 많이 나오느냐, 영화를 끌고 가는 캐릭터냐, 를 떠나서 얼마나 임팩트가 있는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왕후는 없어서는 안될 인물이고, 영화의 모든 사건에 연루된 인물이기 때문에 영화에서 배제되지 않을 거란 믿음이 있었어요. 유하 감독님은 남자들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드시는 경우가 많지만 남자의 이야기 가운데서도 여자가 빠지면 안 되는 상황이 굉장히 많잖아요.
남자 사이에서 존재감을 드러내는데 성공했다는 인상이 남더군요. 어쩌면 저에 대한 기대치가 크지 않아서 그런 게 아닐까요? (웃음)
많이 드러나지 않았기 때문일 수도 있겠죠. 아무래도 포커스는 두 남자에게 맞춰졌으니까.
(웃음)
노출 연기가 과감했습니다. 전작인 <색즉시공2>에서 얇게나마 노출씬이 있었는데 어쩌면 그때 단단해진 바가 있기에 이번 결정이 가능했던 게 아닐까 싶은데요.
사실 <색즉시공2>는 노출연기가 아니었다고 생각해요. 그건 단지 인서트에 불과한 상상씬에서 기술적 착오로 인해서 노출되지 말아야 할 부분이 나왔던 거고, 그게 저에게 어떤 경험이 됐다는 생각은 안 하니까요. 저는 <색즉시공2>에서의 경아 역할이 좋아서 연기했지만 노출을 염두로 두진 않았을 때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저는 <색즉시공2>가 <쌍화점>을 선택하는데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쌍화점>을 선택하고 끝내기까지 저는 처음이란 생각과 신인이란 생각으로 모든 걸 버리고 시작해야겠다는 용기밖에 없었죠.
분명 부담되는 결정이었을 텐데 무엇을 통해 용기를 얻었나요?
제 앞길을 이끌어 주실 분은 감독님밖에 안 계셨고 그 길의 지도는 <쌍화점>이라는 시나리오였죠. 어느 누군가가 제게 득이 될만하다 생각하는 무언가를 저에게 주시면 오히려 그건 짐이 됐어요. 유하 감독님께서는 공부한다고 이거 저거 참고하거나 찾아보는 걸 싫어하셨거든요. 오로지 순수한 왕과 왕후와 홍림을 원하셨고 그 사이에 뭔가가 들어가서 포장되는 걸 굉장히 싫어하셨어요. 그래서 <쌍화점>에 있어서는 외적인 부분을 신경 쓰지 않아야 했고요.
하지만 부담되는 건 사실이었을 텐데요. 개인적으로 그런 부담을 극복하기 위한 마음의 준비가 필요했을 것 같습니다.
이걸 끝내고 나서 어떻게 하겠다, 사실 이럴 정도로 저는 정치적인 사람이 못돼요. 전 감정적인 사람이거든요. 그리고 <쌍화점>에서의 베드씬은 몸이 얼만큼 노출되고 어떤 자세가 나오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니까요. 베드씬을 위한 베드씬이 아니에요. 클로즈업이 굉장히 많이 나오죠. 그 부분이 가장 많이 걱정되고 우려되는 부분이었어요. 몸과 자세는 감독님께서 잡아주신 포지션대로 하면 되지만 표정이 클로즈업되는 경우엔 제가 감정을 받아들이고 인지하지 못하면 얼굴로 표정이 나오지 못하니까, 그 부분이 사실 가장 큰 부담이었어요.
<쌍화점>을 통해 단순히 노출연기를 했다는 것 이상의 어떤 경계를 넘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도 그런 생각을 했어요. 연기적인 선도 그렇고, 저에 대한 선도 그렇고, 제 연기 생활에 있어서 어떤 큰 산을 하나 넘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어쩌면 스스로도 그런 터닝포인트를 염두에 둔 선택이 아니었을까요?
그렇게 생각해본 적은 없어요. 그냥 여태까지 제가 선택한 작품의 폭이 그다지 넓지는 않았어도 언제나 즐겁게 일하자는 생각으로 생활을 꾸려왔으니까요. 절 만족시키면서 행복하게 일하자는 건데, 가만히 보면 제가 지금껏 했던 작품 중 인기가 많았던 캐릭터와 닮은 이미지를 붙잡고 순탄하게 갈 수 있는 기회도 있었지만 전 그게 싫었어요. 어떤 맹목적인 한가지 이미지로 많은 분들에게 어필하는 것 자체가 정체된 느낌이니까요. 그래서 <색즉시공2>도 하게 됐고 그 후로 찾은 게 <쌍화점>이었죠. 그래서 어쩌면 지금까지 했던 제 역할들의 이미지가 전부 다르게 보일 수도 있을 텐데 저는 그게 만족스러워요. 내가 이번 한 작품 하고 나면 남들이 이렇게 보겠지? 그러면 그 다음 작품은 어떤 걸 하고 그 다음 작품은 어떤 걸 해야지. 이런 정치적인 생각은 아직까진 잘 모르겠어요. 해본 적이 없어서.
왕후는 수동적인 여자였지만 홍림과의 로맨스를 통해 적극적인 여자가 됩니다. 캐릭터의 심리적 변화에 공감하는 게 관건이었을 거 같습니다.
왕후는 원에서 공주로 있다가 정치적인 정략 결혼으로 고려에 와서 한 남자를 지아비로 섬기고 살아야 하는데 알고 보니까 이 사람이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있는 거죠. 그 모든 걸 받아들여야 하는 만큼 홍림에 대한 감정이 미움과 시기와 질투를 넘어선 감정이지 않을까, 라고 감독님이 저에게 말씀하셨어요. ‘그게 연민일까? 아니면 동정일까? 아니면 동질감? 지효야, 어떤 걸까?’ 감독님이 이렇게 물었을 때 저는 단지 여자가 갖는 시기나 질투 이상의 것이란 왕후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게 왕후고, 왕후는 모든 걸 받아들여야 되고, 감싸야 되고, 내색하지 않아야 되는 외로운 사람인 거에요. 그러다가 제 자리가 위태로워지고 지아비로 섬기는 왕의 자리가 위태로워지고 고려라는 나라가 위태로워지니까 정치적인 모든 상황을 배제하지 못하고 여자로서는 정말 치욕스런 상황을 받아들여야 하잖아요. 그래서 대리합궁을 했는데 제가 생각하는 대리합궁과는 너무나도 달랐던 거죠.
의외의 결과를 낳게 되는 계기가 돼버리죠. 감독님께서 그런 말씀을 해주셨어요. 굉장히 연하디 연한 연시가 바늘로 콕 찔렸을 때 내용물이 터져 나오는 것과 같다고. 다만 왕후로서 난 터지지 않았다고 믿으면서 내용물을 감추다 보니까 거짓말을 하게 되고 자기 스스로까지 속이게 되는 거죠. 그러다가 아예 겉잡을 수 없이 흘러나오니까 아예 오히려 그거 하나만 보고 가버리는 거에요. 감독님께서 그렇게 예를 들어서 말씀해주시니까 많은 이해가 갔어요.
아무 것도 몰랐던 여자가 처음으로 뭔가를 깨닫고 느끼게 됨으로써 변화를 겪는 셈이기도 합니다.
그렇죠. 한번도 그런 경험은 없었으니까.
그래서 홍림과 왕후의 입장은 비슷했다고 느껴집니다. 홍림 역시 자신의 욕망 자체를 인식할 겨를 없이 왕에 대한 충성심만으로 모든 행동을 당연시했던 것뿐이니까요. 그래서 홍림과 왕후의 사랑은 로맨스이기도 하지만 동병상련의 연대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렇죠. 그렇기 때문에 왕이 홍림에게 갖는 감정이 질투 시기를 더 넘어선 거라고 감독님이 말씀을 하셨던 거고요.
왕후가 유일하게 기댈 수 있는 대상이 되는 셈이죠.
그렇게 왕후가 점점 한 사람만을 불같이 사랑하는 여자로 변해가기 때문에 점점 이 세 사람의 관계가 얽히고 설키고 거짓말하게 되고 배신하게 되고 슬픔과 상처가 남고 파국으로 치닫는 것 같아요.
아까 말했듯이 왕후는 사랑을 통해 소극적인 여자에서 적극적인 여자로 변합니다. 그렇다면 본인은 어떤 사람이라 생각됩니까?
둘 다? (웃음) 사실 저는 항상 제 안에 있는 부분들을 늘 하나씩 꺼내서 보여드리려 노력하거든요. 그래서 <여고괴담3>의 진성이, <썸>의 예진, <궁>의 효림이, <주몽>의 예소야, <색즉시공2>의 경아, <쌍화점>의 왕후까지, 모두 다 제가 가지고 있는 것에서 조금씩 부각시켜서 보여드리는 거죠. 저에겐 이 부분도 있고, 저 부분도 있기 때문에 왕후라는 캐릭터를 표현할 수 있었던 거 같아요. 양면성을 다 가지고 있으니까. 이건 연기하시는 분들이 전부 느끼는 감정이 아닐까, 생각해요. 각자 제 안에 있는 부분에 숨결을 불어넣어서 캐릭터를 만들지 않을까.
연기를 하면서 발견한 측면도 있지 않을까요. 연기를 하다 보면 자신의 모든 것을 끌어낼 때도 있고, 만들어 낼 때도 있고, 그러다 보면 자신에 대한 이면을 발견할 때가 있을 것 같고요.
정말 많죠. <여고괴담3>부터 많이 느꼈어요. 아, 이래서 연기를 하나보다라고 느끼며 시작했다가 점점 한 작품씩 하면서 나이를 한 살 한 살 먹어가니까 내가 이런 모습이 있었나 싶고, 내가 이런 모습이 있었는데 참 많이 변했구나, 이게 나이가 들고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건가, 원래 내겐 이런 면이 있었는데 많이 없어졌구나, 이런 생각들이 들고. 이렇게 계속 성향들이 많이 바뀌는 거 같아요. 그렇게 깨닫고 느끼면서 안 좋은 건 버리거나 놓게 되고, 새로운 건 재발견해서 부각시키게 되고, 그런 거 같아요.
<여고괴담3> 당시를 생각하면 감회가 남다를 것 같습니다. 카메라 앞에 서는 기분도 당연히 다를 테고.
그럼요. 그 때는 정말 애기였어요. 애기. 뱃속에서 바로 태어나 응애, 하고 우는 애기였죠. (웃음)
아무 것도 몰라서 무서운 게 없었을 때였을지도 모르죠. 나이대가 비슷한 배우들과 함께 어울리듯 연기할 수도 있었고, 그만큼 심리적으로도 안정되는 바가 있었을 테고요. 반면 차기작인 <썸>에서는 반대로 부담이 크지 않았을까 싶어요.
부담이 사실 굉장히 많았어요. 왜냐면 첫 작품을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끝내놓고서 갑자기 80억짜리 블록버스터의 여주인공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부담이 컸죠. 게다가 장윤현 감독님과 작품을 해야 한다는 압박감부터 처음으로 남자배우를 상대배우로 만나게 되니 어떻게 다가가야 할지 부담스럽더라고요. 지금 생각해보니 정말 그때도 지금만큼이나 참 많이 힘들었던 작업을 했었네요.
결과적으로 흥행마저 좋지 않아서 나름대로의 마음고생이 더해졌을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제가 캐릭터를 제대로 표현하지 못해서 지적당했던 부분도 많았고요. 아무래도 예산이 크다 보니까 기대치가 높아졌고 그만큼 흥행이 따라주지 못해서 속상했죠.
그 뒤로 약간의 공백이 있었습니다. 음, 그런데 저는 <여고괴담>한 뒤에 1년 정도 공백이 있었고요. <썸>후로도 1년 정도 공백이 있었죠.
1년 단위로 작품을 한 셈이군요.
예. 어떻게 그렇게 됐어요. 그러다가 이제 <궁>을 하게 되고, <궁>을 할 때까지도 한 5개월에서 8개월 정도 쉬었던 거 같고요. <궁>끝내고 <주몽>할 때도 그 정도 쉬었던 거 같고요. 그렇게 여태까지 계속 달려왔네요, 지금까지.
드라마는 영화와 리듬감이 달랐을 텐데요.
많이 다르더라고요. 저는 현장의 템포가 그렇게 빠른 줄 모르고 아침에 가서 라면 하나 먹겠다고 그랬다가 깜짝 놀랐어요. 모두 다 저만 기다리고 계시더라고요. (웃음)
아무래도 현장의 분위기를 몰랐을 테니까.
잘 모르는 데다가 신인이니까 정말 큰 실수를 범한 셈이죠. 그러니까 영화는 시간은 꼭 지켜야 되지만 여유가 있잖아요. 드라마는 여유가 없더라고요.
아무래도 준비기간이 짧으니까요. 영화는 캐릭터를 만들어서 들어간다면 드라마는 연기를 하면서 그 캐릭터가 되어가는 셈이라 볼 수 있고.
그리고 드라마는 얘기를 할 기회가 별로 없더라고요. 이렇게 (손가락으로 전방을 찌르면서) 일방적으로만 표현돼요. 그래서 많이 당황스러웠던 기억도 나요.
리액션이 많이 배제되죠. 그런 면에 있어서는 영화가 연기자 입장에선 더 바람직하다고 생각될 수도 있을 텐데요.
드라마를 하고 나니까 영화에서 얻지 못하는 장단점이 있어요. 드라마는 굉장히 순발력을 요하는 작업이다 보니까 한 작품 끝내고 나면 저도 모르게 순발력이 늘어 있고, 영화는 저도 모르는 사이에 깊이가 깊어져 있으니 이 두 가지를 짬뽕시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웃음) 그런 생각을 해보곤 해요. 하지만 그만큼 뭐 하나 쉬운 게 하나도 없잖아요. 영화도 그렇고, 드라마도 그렇고.
오디션을 통해서 <여고괴담>에 출연하게 됐습니다. 연기 자체에 대한 호기심이 가득했을 것 같은데요. 그 지점이 연기자로서의 출발점이라 말할 수 있을 것 같고요.
호기심이기도 하고, 뭔가 새로운 도전에 대한 희망이기도 했었고, <여고괴담>이라는 타이틀 자체가 워낙 유명했기 때문에 그런 기대감도 사실 굉장히 많았었죠. <여고괴담>에 출연하는 것에 대한 기대감보다도, <여고괴담>이라는 작품이 어떻게 만들어질까에 대한 기대감이 많았던 거 같아요. 내가 이 작품의 오디션을 보게 된다는 것만으로 신기해지는 것도 있었고요.
많은 여배우들의 등용문이 됐죠. 드라마를 거친 뒤 다시 영화를 하게 된 뒤로 연기적으로 달라진 지점도 있을 것 같아요.
정말 많이 다른 게 영화 같은 경우엔 여유가 있는 반면 깊이 파고들 수 있고 뭔가 생각을 하게 되고 혼자 해낼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주잖아요. 드라마는 그게 아닌 거에요. 저 혼자 모든 걸 다 해내야 되고, 제거는 제가 챙겨야 되고, 누구 하나 챙겨주지 않았고. 그렇게 영화에 대한 장단점과 드라마에 대한 장단점을 다 느끼고 나니까, 오히려 저는 접목해보고 싶더라고요. 이런 거 있잖아요. 현장은 드라마처럼, 촬영은 영화처럼. 이런 느낌이요. 이런 거 괜찮지 않아요?
감독님께서 좋아하실지 모르겠네요.
(웃음) 아마 무지 힘들겠죠. 처음부터 끝까지.
대화를 하다 보니 적극적인 면모가 많이 느껴집니다.
얘기하다 보면 그래요. (웃음)
연기할 때도 캐릭터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파고드나요? 모든 것을 알아내고 구축해야 성미가 풀린다거나.
다른 작품도 물론 그랬겠지만 이번 작품은 특히 신경을 썼던 게 감독님한테 매달렸어요. 왜냐면 모든 정답을 감독님만이 알고 있었기 때문에 감독님에게 캐릭터와 상황이나 시나리오에 대해서 끊임없이 물어보고 그랬던 게 제가 할 수 있는 가장 최대한의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 개인적으로.
마치 학생이 선생님에게 질문하는 모습이 생각나네요. 정말 그랬어요! 저한테는, 진짜 그랬어요.
선생님 입장에서는 그런 학생이 예뻐 보이는 법이죠. 유하 감독님은 적극적으로 디렉팅을 주시는 편이던가요?
아까 연시 얘기 했듯이 그렇게 늘 리액션을 주셨어요. 여기서 눈빛의 흔들림조차도 관객들에겐 어떻게 전달될 수 있는지 생각하시고 목소리의 톤과 말투 하나까지도 신경쓰셨고.
본인이 생각했던 어떤 지점도 있었을 거에요. 그런데 그렇게 디테일한 디렉팅으로 캐릭터를 디자인해주면 분명 본인의 생각과 충돌되는 지점도 있었을 겁니다.
충돌은 있었지만 거기 집착하면 그 순간부터 저의 한계에 부딪히는 거죠. 그래서 제 안에 있는 제 것을 버리고 감독님이 주신 옷을 입어야 하는데 이 옷이 어떻게 입어야 맞는지 몰라서 제대로 입지를 못하는 거에요. 그래서 이걸 입을 때까지 수없이 테이크를 가고 수없이 감독님과 얘기하고 감독님은 수없이 저에게 디렉션을 주셨어요. 지효야, 이 사각형을 한번만 더 접으면 될 거 같은데, 접을 때 손가락 세 개를 이용해서 반반씩 잡아서 접어봐. 이렇게 디테일한 디렉션을 주실 때도 있으셨고 아까 연시의 예를 드는 것처럼 디렉션을 주실 때도 있었고 굉장히 다양한 디렉션을 주셨어요.
구체적으로 말씀하신 덕분에 그대로 이행하면 되는 것도 있는 반면 반대로 스스로 답을 찾아야 되는 요구도 있었을 겁니다.
돌려서 말하면 자꾸 생각하게 되죠. 고민하게 되고, 이게 뭐지, 자꾸 찾고 싶은 거에요. 충동심이 장난이 아닌 거죠. 매 한 순간이 고통스러운 나날이었던 거 같아요. 그런데 시간이 지난 지금은 이제 조금이라도 저에게 무언가가 오면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그런 좋은 습관도 생겼어요.
대중들은 배우들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잘 사냥하기도 합니다. 특히 <쌍화점>처럼 선정적인 마케팅을 펼치는 영화의 배우들은 씹기 좋은 대상이 되기도 하죠.
저는 제가 상처받을 짓을 잘 안 해요. 그냥 인터넷은 안 하면 되는 거고, 그런 얘기를 들을만한 행동을 안 하면 되는 거니까요. 그래서 자꾸 저를 절제시키는 거 같아요. 자제를 많이 하고. 이젠 그게 좀 익숙해진 거 같아요. 스스로가.
이제 곧 29살이 됩니다. 서른이 1년 남았군요.
이제 내일 모레 그 시기가 왔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겠네요. (웃음)
중요한 시기인 거 같습니다. 배우로서나 한 사람으로서나, 지금까지는 보이는 것에 충실하게 따라왔다면 이젠 뭔가 찾아가고자 하는 욕심도 생기지 않을까 싶고요.
제 입장이 커지고 제 생각의 폭이 달라진다면 저는 그것 또한 제가 미리 생각할 부분이 아닌 거 같아요. 저는 그냥 제가 좋아하는 걸 하면 되는 거고, 제가 싫어하는 걸 안 하면 되는 거고, 그런 정치적인 부분은 아직까지 생각하고 싶지 않기 때문에, 그런 건 사무실에서 생각하시겠죠? (웃음) 제 개인적으론 그렇게까지 제약을 받으면서 생각하고 싶은 생각은 없어요. 제가 너무 이기적일까요? (웃음)
자신의 의사 정도는 필요하죠. 다만 때때로 타협해야 하는 상황도 올 테니까요. 배우에게 이미지를 포장하는 문제도 때론 중요한 전략처럼 활용되기도 하고요.
아직까진 제 안에 있는 걸 끌어내야 되는 시기인 거 같아요. 저는 아직까지 저를 빚어서 어떤 모양으로 만들까 생각할 순 있어도 저에게 어떤 색깔을 입히며 어떤 옷을 입혀야 되는지를 모르기 때문에 제 기량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아직 한 것보단 안 한 게 더 많고 그래서 조금 더 경험이 쌓이게끔 가려는 거죠. 결국 그 경험치가 제게는 너무나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시간들이 되지 않을까요?
주연을 맡은 두 작품이 연달아 개봉됩니다.
사실 너무 운이 좋았어요. <초감각커플>은 1년 된 작품인데 <과속스캔들>이 개봉시기와 우연히 맞아서 서로 개봉시기가 맞아 떨어지게 됐네요. 저는 감사하게 생각해요. (웃음)
말투가 조곤조곤하군요.
맞아요. 조곤조곤하게 말하는 편이에요. (웃음)
영화상에서는 당돌한 이미지인데.
지금 왜이리 축 쳐졌는지 모르겠지만,(웃음) 명랑 쾌활한 편이에요. 촬영장에서는 목소리가 커져요!
어려 보인다는 말 많이 듣죠? 그럼 기분이 어떤가요?
사실 좋을 때도 있죠. 그런데 이제 어리다는 소리 듣고 싶지 않다고 생각할 때도 있어요.
노래를 잘 하더군요. 음색이 참 좋았습니다.
제가 부른 것도 있지만 사실 도움을 받은 부분도 있어요. 편곡을 너무 잘 해주신 덕분에.
가수 생각해본 적 없어요?
아니요! (웃음) 가수할 실력이 안돼요. 한 우물만 파기도 힘든 걸요.
EBS <비밀의 교정>으로 데뷔했죠. 연기는 언제부터 준비했나요?
고등학교 2학년 때 데뷔하게 됐는데 중학교 3학년 때부터 준비했죠.
연기를 하고 싶다는 생각은 언제부터 가졌나요?
중학교 때 영상동아리를 했는데 그때 친구들끼리 작품도 찍고 연기라는 걸 알게 됐어요. 연기를 직업으로 삼는 분들에 대해 가깝게 느낀 것도 그때였고요. 우연찮게 어느 작품으로 상을 받았고 모 회사 관계자분과 친분이 생겨서 오디션도 보고 연기준비를 했어요. 어떻게 보면 지금까지 제 인생에 있어서 최고의 갈림길이었죠.
부모님의 조언이 중요한 시기였을 거에요.
중학교 시절은 아직 어릴 때니까 일을 준비하면서 공부도 하고 그렇게 일단 경험한 뒤 스스로 아니다 싶으면 전향해도 늦지 않게 생각하신다고 하셨죠. 하고 싶은 일을 해보는 게 후회가 남지 않을 거라 생각한다고요. 그래서 연기를 준비하게 됐어요.
학업과 병행하는 게 힘들지 않던가요?
힘들었어요. 처음엔 그냥 일하더라도 학교에 잘 다닐 수 있고 수업엔 조금 빠져도 무리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사실 그게 아니더라고요.
친구들로부터 관심을 많이 받았을 거 같아요.
<왕과 나>할 때는 (유)승호 잘생겼냐고 제일 많이 물어보더라고요. 승호가 TV로 보는 것처럼 실제로도 잘 생겼니, 성격은 정말 왕자님 같니. (웃음) 이렇게 하나부터 열까지 다 물어보고. 그리고 제가 구혜선 언니 아역을 하다 보니까 남자는 구혜선 언니 전화번호를 아냐고 묻고, 여자는 다 승호만 물어봤어요. (웃음)
처음 연기를 하게 됐을 때 나름 기대감도 컸을 텐데 실제로 부딪혀보니 어땠나요?
연기를 마냥 쉽게 생각했던 부분도 있었나 봐요. 카메라 앞에서 대사만 외워서 표현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죠. 감정씬에서 자꾸 감정을 끊었다 다시 가곤 하잖아요. 바스트를 찍고 잠깐 쉬다가 카메라 각도를 달리 잡고 다시 찍는, 이런 식의 감정몰입을 반복하다 보니까 처음엔 적응이 어려웠어요. 감정연결이 뚝 끊기는 게 그림에서 자꾸 보이는 거에요. 감정연결만 하면 될 줄 알았는데 다른 부분들도 다 신경 써야 하고. 머리카락이 약간 한쪽으로 기울었다고 다시 찍는 경우도 생기니까요. 물론 새로운 호기심과 재미를 느꼈던 부분이기도 하지만요.
연극영화과에 진학했어요. 학교에서 체계적인 것들을 익히는 게 현장에서 유용하던가요?
스크린이나 브라운관 연기를 현장연기라 한다면 학교에서는 연극에 관한 연기를 배우기 때문에 사실 배우는 것도 너무 많죠. 현장엔 마이크가 있잖아요. 그런데 연극에서는 발성으로만 소리를 크게 내서 뒤에 있는 관객에게까지 들리게 만들어야 해요. 학교에서는 발성연습을 하고, 호흡하는 법을 배우니까 여러 가지로 도움이 되죠. 연극을 해보고도 싶지만 제가 연극무대에 설 기회는 많지 않을 거 같아서 연극영화과에 지원한 측면도 있거든요. 연극적인 연기를 배우고 싶어서요. 그래서 지금 만족하고 있어요.
공부를 하기 전에 익힌 현장경험이 어떤 면에 있어서 플러스나 마이너스가 된다고 느낄 때는 없었나요?
플러스 요인이 될 때가 있고 마이너스 요인이 상황마다 다르죠. 사실 저는 현장에서 마이크가 있으니까 말을 적게 하는 버릇이 생겼는데 수업할 땐 항상 발성으로 크게 해야 하기 때문에 그런 면이 마이너스가 될 수 있어요. 그러나 일단 대사를 가지고 분석하거나 표정을 통해 표현하는 것에 있어서 친구들보단 경험이 있으니까 플러스 요인이 있기도 해요. 그리고 마이너스되는 부분은 학교에서 채우고요. 현장에서의 마이너스를 학교에서 플러스하는 거 같아요.
자기 얼굴을 스크린으로 볼 때 기분이 묘하지 않았나요?
이상해요. 좋기도 하지만 제 얼굴을 보는 게 어색하기도 하고, 어떤 복합적인 감정이 섞여서 묘한 감정이 드는 거 같아요.
거울 보는 것과는 다르죠?
거울 보는 건 그냥 원래 제 모습을 보고 있는 거잖아요. 표정을 보고 고칠 수도 있고. 하지만 스크린의 모습은 연기니까 어쩌면 꾸며진 모습을 보는 셈이잖아요. 그것도 그렇고 카메라 앞에서는 제가 어떤 모습으로 있는지 잘 모르니까 은연중에 버릇들이 나오기 때문에 스크린의 모습을 막상 보면, 아니, 내가 왜 저기서 왜 저랬을까, 생각하기도 하고. 당연히 거울 보는 것과는 다르죠.
녹음된 자기 목소리 듣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죠.
아! 진짜! 맞아요. 그런 거랑 비슷한 거 같아요. 내 얼굴이 아닌 거 같고.
그래도 자신의 얼굴을 스크린으로 보는 게 벌써 4번째에요. 나름대로 서서히 적응되는 바도 있을 텐데요.
이제 조금씩 제 얼굴에 익숙해져 가는 거 같아요. 사람을 처음 보면 낯선 감도 있지만 그렇게 조금씩 보면서 익숙해져 가는 거잖아요. 관객들도 그렇고, 저도 그렇고. 처음 제 모습을 낯설어하실 수도 있겠지만 조금씩 지나면서 이런 친구가 있었지, 라고 생각하게끔 변화를 줄 수 있겠죠. 그러려면 많이 열심히 해야겠고요.
주변 친구들이나 가족들에게도 어떤 반응이 있었을 텐데요. 아는 사람이 TV에 나오니 신기하다는 말은 안 하던가요?
처음에는 신기해했어요. 그런데 요즘은 그냥 ‘우리 딸 신문에 나왔더라. 힘들지?’ 이런 얘기만 하세요. 사실 큰 작품에 들어가면 부모님과 상의하기 때문에 부모님도 다 아시니까 후에 별말씀 없기도 하죠. 다만 친구들은 일단 모르고 보니까 약간 신기하다고 말하는 거 같아요.
<과속스캔들>의 황정남은 22살 나이니까 지금까지 맡은 역할 중에서 가장 성인에 가까운 캐릭터에요. 실제로 본인보다도 많은 나이고요.
일단 성인에 대한 연기라고 하면 막연한 느낌이 많이 들어요. 솔직히 제가 다른 성인캐릭터 연기를 했다면 모를까, 정남이는 그렇게 철든 엄마가 아니니까 어른이 아니라 성장하는 아이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특별히 성인 연기로서의 부담은 없었어요. 나중에 철든 어른을 연기한다면 부담감이 생기겠죠.
미혼모를 연기한다는 게 사전에 마음 속으로 걸리진 않았나요?
제가 <과속스캔들>이 부담됐다고 말한다면 생애 첫 성인연기라기 보단 미혼모 연기라는 게 맞겠죠. 많이 부담됐어요. 나에게 6살짜리 애가 있다는데 내가 애를 키우는 느낌을 표현할 수 있을까, 싶어서 걱정한 부분이 많았죠. 그런데 애가 엄마라고 잘 따라준 덕분에 다행이었어요.
사실 엄마와 아들이라기 보단,
설마 동생 같아요?
누나와 동생 같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안 되는데.
그게 오히려 자연스럽다는 생각이 들던데요. 22살짜리 엄마가 진짜 엄마처럼 보이면 그게 오히려 비현실적일 수 있죠. 누나 같은 엄마라서 22살짜리 엄마처럼 보이던 걸요.
어쩌면 그게 정남이가 애를 키우는 방법이었을지 모르죠.
좀 이른 질문이지만 혹시 연기하면서 자신이 엄마가 된다면 어떨까, 라는 상상해보진 않았나요?
했죠. 내가 엄마가 되면 어떨까, 라는 생각부터 기동이 같은 아들이 있다면, 까지. 그래서 결혼 늦게 해야겠다는 결론을 얻었어요. 아이는 생각 좀 해보고……
아니, 어쩌다 그렇게 결혼에 대해 염세적인 생각을 품게 된 거죠? (웃음)
모성애를 느끼기 위해서 애를 끼고 살았어요. 애도 계속 저를 엄마라고 부르면서 많이 따랐고, 그렇다 보니까 사실 엄마의 힘겨움을 많이 느낀 거 같아요. 작품을 끝내고 엄마한테 효도 많이 해야겠단 생각도 했거든요. 제 컨디션이 좋고 나쁘고를 떠나서 무조건 아이가 1순위가 되고 그 다음에 제가 되야 하더라고요. 촬영 때문에 힘들어도 아이가 와서 반갑게 인사할 땐 안아줘야 하고, 피곤해서 좀 쉬고 싶은데 그 초롱초롱한 눈으로, ‘엄마, 내가 신기한 거 발견했어. 빨리 와서 봐.’ 이러면 가서 봐야죠. 그리고 아이들은 항상 보는 것에서 끝내면 실망해요. 리액션이 있어야 되죠. 정말 신기하다, 내지는 정말 예쁘다, 이런 리액션이 있어야 기분이 좋아지거든요. 게임도 많이 하는데 게임 도중에, ‘엄마, 이거 봐요. 몇 탄까지 갔어요.’ 이렇게 얘기하면서 게임기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죠. 그럼 분장 고치면서, ‘아, 그랬어요? 우리 아들 진짜 멋있다.’ 이렇게 대꾸해줘야 기분이 좋아져요.
그 정도면 좋은 엄마였네요.
어쩌면 철이 들었다고 말할 수 있으려나. 부모님에게 효도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지속적으로 갔으면 좋겠어요.
차태현 씨가 마케팅 과정에서 많이 부각됐지만 본인의 캐릭터가 이끌어가는 드라마 라인과 감정선도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어요.
사실 조금 나눠가진 부분이 없진 않죠. 다만 주연으로서의 부담감을 아빠(차태현) 혼자서 짊어지고 가신 셈이죠.
극을 이끌어가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낄 수 있는 계기가 아니었을까 싶네요.
사실 <울학교ET>와 같은 조연으로 촬영한 경우가 많으니까요. 감정선의 흐름을 보는데 있어서 갑자기 전체적인 영화를 봐야 하는 때가 온 거죠. 신경 써야 할 부분도 너무 많았어요. 그래서 사실 아빠가 이끌어 주신대로 따라가는 게 제일 중요했던 거 같아요. 그런 걸 알아가는 것만으로도 바빠서.
나이차가 많이 나는 선배와 호흡을 맞추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먼저 다가오시는 편은 아니셨지만 약간 친해지다 보니 쉽게 마음을 여시는 편이셨어요. 워낙 동안이시고 젊게 사시던데요. 요즘 유행하는 인터넷 유머도 잘 아시고. 다만 옛날 영화 얘기할 때 세대차이가 느껴지긴 했죠. 어쩌다 ‘코난’ 얘기를 하게 됐는데 아빠가 ‘요즘에도 코난을 해?’ 그래서 ‘코난 해요.’ 그러면서 얘기하다 보니까 서로 내용이 다른 거에요. 그래서 ‘아빠, 어떤 코난 말하는 거에요.’ 했더니 ‘<미래소년 코난>이지.’이러시는 거에요. 저는 <명탐정 코난>이었거든요. (웃음) 영화 중에 노래 선정도 아빠가 많이 해줬죠. ‘아마도, 그건’이 최용준 씨 원곡이라는 걸 이번에 처음 알았어요. 전 서영은 씨가 리메이크한 노래만 알고 있었죠. 장혜진 씨 노래도 그랬고. 그런 부분에서 차이가 있긴 했죠. 하지만 일상생활에서 장난도 치고 얘기할 때 그런 건 없었어요.
상대적으로 차태현 씨는 본인 덕분에 자신의 나이를 뼈저리게 깨달았을 텐데. (웃음)
아빠가 늘 충격 받더라고요. (웃음) 사실 아빠는 이제 아들도 있잖아요. 혹시 아빠 진짜 아들 찾으셨어요?
아, 모르고 봤는데 나중에 듣고 알았어요. 말미에 나왔더군요.
진짜 닮았어요. 그런데 아빠가 땀이 많아요. 그런데 아들도 요즘 땀이 너무 많이 나서 걱정이라고 고민하세요. 땀 많이 나는 사람의 고충을 잘 아니까 아들은 안 그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자기보다 더 흘리는 거 같대요. 그리고 아빠 목이 두꺼운데 아들도 목이 두꺼워서 셔츠가 잘 안 맞는다고 걱정하시고. (웃음)
당돌한 캐릭터를 연기하는 모습이 카메라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 같더군요.
아직 떨려요. 어색한 면이 없지 않아요. 몸이 경직되는 것까진 아니지만 카메라 앞에서 두근거리는 게 제 마음대로 편하게 움직일 수 있는 건 아니라서요. 아직 그에 대한 고민도 많아요. 언제쯤이면 카메라 앞에서 내가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을까, 라고.
연기가 하고 싶은 일이라 했지만 연기자로서의 길에 얼마나 확신을 갖게 됐는지 궁금하네요.
그건 아까 말한 그 갈림길에서부터 지금까지 제 자신에게 항상 끊임없이 하는 질문이에요. 아직 일에 대한 100%확신은 할 수 없을 것 같은데 간혹 촬영하다 보면 제가 이 일을 선택한 게 잘한 거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물론 연기 이외의 다른 분야에서 흥미를 느끼는지 판단할만한 기회를 얻지 못했기 때문일지도 모르고 아직 일단 연기가 가장 재미있고 연기에 흥미를 느끼니까 그럴 수 있겠죠. 제 영화를 보시고 관객이 웃으면 이 직업에 보람을 느끼는 거 같아요. <울학교ET>의 리뷰 중에 영화를 보고 학창시절 선생님 전화 한 통 드렸다는 글을 봤어요. 제가 나온 영화가 누군가에게 어떤 삶의 영향력을 미치거나 기분이 좋아진다고 할 땐 이 직업을 택한 것에 대해서 즐거움을 느끼죠.
반면 뭔가 뒤늦게 잃어버렸다고 생각되는 일은 없나요?
사실 저 고등학교 때 수학여행을 못 갔어요. 일을 선택하면서 친구관계에서 잃게 되는 게 많이 생기죠. 일 때문에 사람을 많이 만나다 보니 혼자 생각할 시간도 없어지는 거 같고요. 아직 전 아니지만 다른 선배배우들이 방송 같은 곳에서 종종 인기만큼 자기 사생활이 없어진다는 말을 하더라고요. 자기는 나가서 영화도 보고 싶은데 제약을 많이 받는다고 했어요. 결국 얻는 게 있다면 잃는 게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사실 이제 사랑을 꿈꿀만한 나이가 됐어요.
그렇죠. 하지만 그것도 어쩌면 잃는 것 중에 하나가 될 수 있겠죠? 왜냐면 여배우로서의 이미지에 남자친구는 플러스보단 대부분 마이너스로 작용한다고 하시더라고요.
배우에게 사랑 경험이란 중요할 거 같아요. 특히 사랑을 하면 예뻐진다고 하잖아요.
어떤 분이 제게 여배우는 사랑을 해봐야 한다고 그러시는 거에요. 왜냐고 했더니 사랑을 겪어보고 이별을 겪어봐야 한층 성숙된 연기를 할 수 있다고 했어요. 그 말이 맞는 거 같기도 하지만 아직 경험해보진 못해서 전 아직 잘 모르죠.
사람마다 다르니 완벽하게 맞는 말이라 하긴 힘들죠. 그렇다면 혹시 개인적으로 존경하거나 동경하는 배우가 있나요?
전 아직 제 색깔을 찾고 있는 중이라서 어떤 배우가 되겠다는 말은 못하겠어요. 다만 그냥 존경하는 배우나 연기적으로 닮고 싶은 분을 말하라면 전 배종옥 선배님이나 김해숙 선배님을 존경한다고 말씀 드리고 싶어요. 연기적으로 그 분들을 닮고 싶죠.
연륜 있는 분들을 동경하는군요.
다들 그렇게 말씀하시더라고요. (웃음) 어쩌면 제가 드라마를 많이 봐서 그렇게 됐을지도 모르겠어요. 그 분들의 연기를 보면서 같이 울거나 웃게 되는 경우가 많았거든요.
벌써 여기저기서 제2의 국민여동생이라는 타이틀을 붙여주고 있던데.
글쎄요. 사실 그런 문구를 저에게 붙여준다는 점에서 일단 감사해야죠. 하지만 그에 따르는 부담감도 사실 많아요. 원래 국민여동생이라 불리시는 문근영 씨가 해온 것이 많다 보니까 그러다 보면 제게 주는 기대감이 생길 수도 있잖아요. 원하든 원치 않든 그 분과의 비교가 있을 수도 있고. 그런 점에 있어서 그 분이 워낙 잘했으니 부담이 있죠. 제가 따라가야 할 것 같은, 그리고 저는 다른 길을 걸을 수도 있는데 제2의 누구라고 하면 그 분과 똑 같은 길을 걸어야 할 것 같잖아요. 그런 면에 있어서 거부감은 있죠.
배우로서 현장에 있을 때의 자신과 그냥 일상에서 친구들과 있을 때의 본인 사이에 간격이 조금씩 느껴지지 않나요?
계속 왔다 갔다 하게 되는 거 같아요. 현장에 있을 때는 배우 박보영으로서의 책임감이나 해야 할 것들을 생각하고, 마음에 담고 표현해내면서 정해진 할당량을 채워야 하는 부분이 있으니까요. 또 현장에선 한국영화가 힘들다니 이런 얘기를 하지만 친구들을 만나면 얘기하는 게 주제나 소재에 대한 나이대가 맞기 때문에 서로 관심사가 비슷해져요. 현장에서 하지 못하는 사적인 얘기들을 많이 하니까 할말도 많아지는 거 같고요.
저번에 제작보고회에서 차태현씨가 짓궂게 폭로했죠. 원빈 좋아한다고. (웃음)
이제 그거 수습 안돼요! 인터뷰 할 때마다 영화제목이 <과속스캔들>이라고 꼭 스캔들 나고 싶은 배우가 누구냐는 질문을 주시거든요. 원래 그 날도 ‘없다’의 ‘없’이 목젖까지 나왔는데 갑자기 옆에서 (차태현이) ‘왜, W있잖아.’ 이렇게 장난치셔서 종잡을 수 없는 사태가 돼버렸어요. (웃음) 사실 제 친구들에게 말할 때 도진 씨라고 부르기도 하고, 정말 원빈 님이라고 부르거든요. 저에겐 가까이 하기 힘든 분이고 팬으로서 좋아하는 배우죠. 이성적으로 이상형일 수도 있겠지만 사실 좋아하는 배우의 이미지가 더 맞을 거라 생각해요.
본인을 좋아하는 팬도 생길 거에요. 팬을 만나게 되면 어떨까요?
저도 생기겠죠. 나중에? 그럼 일단 기분 좋을 거 같아요. 제가 지금 이렇게 원빈 님을 좋아하는 것처럼. (웃음) 팬이라는 건 좋아하는 사람처럼 생각하면 기분 좋아지고 그런 것일 수도 있죠. 나중에 어떤 분이 좋아한다고 말하면 저도 기분이 좋아질 거 같아요.
배우로서 혹은 연예인으로서 살아가면서 자신의 감정을 속이고 대중 앞에 서야 하는 경우도 생길지 몰라요. 마음은 아픈데 웃어야 한다거나.
저번에 '박보영 악플'이라는 말이 검색어 순위에 떴어요. 어떤 기자 분들의 짜깁기로 작성된 기사에서 비롯됐죠. 악플 내용은 다른 질문에 대한 대답이고, 제2의 문근영이란 말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다른 거였는데 기사 확인해보니까 이게 합쳐진 거 같아요. 사실 제가 말하지 않은 부분에 대한 오해가 생기면 제 속이 많이 상하지만 사실 그런 걸 알아주는 사람은 주위사람뿐이잖아요. 그걸 보는 네티즌 분들이나 관객, 시청자들은 제 이야기를 변명처럼 이해할 수 있고, 그냥 기사로서 접하는 게 편하니까.
브라운관을 거쳐 스크린으로 진출했어요. 다른 공간에 대한 욕심은 없나요?
연극 무대에 대한 욕심은 항상 있었어요. 다만 주변 환경적인 문제로 아직 이뤄지지 못한 것일 수도 있지만 일단 연기가 안되니까요. (웃음) 연극 연기는 어떻게 보면 더 무거운 연기일 수도 있지만 사실 호흡이 길어야 하죠. 그런 부분에 있어서는 나중에 학교를 졸업하고 배운 부분들이 쌓이고 쌓이면 할 수 있을지 몰라요. 다만 지금 아무것도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연극무대에 오르면 제 자신이 싫을 거 같아요. 보시는 관객들도 편하진 않을 거고요.
그럼 연기는 재미있어요?
이건 정말 재미없으면 못 버틸 일 같아요. 억지로 스타성을 노려서 하는 거라면 버티기 힘들 거에요. 제가 경험을 많이 해보진 못했지만 주변의 지인들을 보면 참 힘들구나, 라고 느낄 때도 있으니까요. 무명 시절을 많이 겪는 분도 있고, 단지 인기를 얻으려 하는 일이라면 스트레스 쌓아가며 잃어야 할 게 너무 많아요. 그래서 그걸 참고 견디는 인내의 시간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만화를 즐겨보나? 굉장히 즐겨보는 편은 아니다. 유명한 만화들은 많이 봤지만 찾아서 보는 스타일은 아니니까. 마음에 드는 작가의 전작을 찾아보는 스타일이다. 작가 전작주의랄까.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이하, <내 생애>)에서 <서양골동양과자점 앤티크>(이하, <앤티크>)원작 만화인 ‘서양골동양과자점’이 살짝 등장했다. 그전부터 영화화를 염두에 뒀나?
내가 처음 본 건 6년 전이고, 곧바로 다음 영화로 만들거라 생각한 건 아니지만 언젠가 내 영화 라인업이 될거라 생각하고 판권을 사뒀다. 의도적으로 넣은 장면이다. 물론 PPL은 아니고,(웃음) 아는 사람은 알았겠지만 그 장면에 관련된 씬이라 생각했으니까. 전남편이 게이였던 신경정신과 여의사가 게이가 나오는 만화를 통해 게이에 대한 열린 시각을 본다고 생각하니 재미있을 거라 생각했고, 30대 여자의사가 만화책을 지니고 다닌다는 상황으로 권위에 대한 선입견을 깨고 싶기도 했다. 만화책 갖고 다니는 30대 여의사라는 귀여운 소품으로 활용된 거 같다.
오래 전부터 동성애를 소재로 삼아왔다.
95년에 내 첫 작품인 단편 <허스토리>를 만들었는데 <여고괴담2>가 이 작품의 소재나 줄거리를 확장시킨 작품이었다. 그 때 처음 우리나라에서 게이 커뮤니티가 처음 생겼고, 게이 친구도 처음 만났다. 게이에 대한 사람들의 무지나 선입견, 편견이 심하고 폭력적인 시기였기 때문에 이를 통해 그 시대에 대한 많은 얘기를 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 이야기를 토대로 삼아 영화를 시작했고 그게 굉장히 터부시된, 환영 받지 못하던 이야기였기 때문에 어떤 종류의 오기도 있었다. 무슨 인권운동처럼 다루기 보단 이야기 속에 잘 녹여서 영화로서 환기시켜줄 수 있을 거라 믿었기 때문에 과감히 시도했다. 성공적인 면도 있었지만 굉장히 불편해했던 사람도 있고, 만드는 과정도 쉽지 않았지.
<앤티크>자체가 시대의 변화를 대변하는 셈이다. <앤티크>처럼 말랑말랑한 소품 드라마 형식의 동성애 영화를 그 당시에 생각이나 했을까. 지속적으로 동성애를 소재로 삼아왔으니 그런 변화가 민감하게 느껴졌을지도 모르겠다.
벌써 <여고괴담2>로부터 9년이나 지났으니 많이 흘렀지. 강산도 변할 시기니까. 예전엔 영화 매체의 차이도 있고 인터넷이 없던 시대라서 가지고 있는 생각들을 나눌 수 있는 공간이 많지 않았지만 지금은 호기심이든 무서움이든 어떤 식으로의 관심이 있고 부딪히고픈 욕구가 있다면 원하는 걸 취할 수 있는 공간이 많다. 덕분에 싫으면 싫다, 좋으면 좋다, 라는 표현이 훨씬 자유로워졌다.
<여고괴담2>를 만들 당시는 어땠나?
<여고괴담2>를 만든 1999년은 영화 홈페이지라는 게 처음 생기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화장실이나 엘리베이터 같은 데서 하던 낙서를 인터넷에 쏟아내고 서로 친구를 만들고 모임을 만들어서 자기들 이야기를 책으로 만들기도 하고. 사람들의 열렬한 환호나 흥분을 접하게 되니까 영화는 짧고 간단한 2시간짜리 상품이라 일순간 소비되고 사라질 수도 있지만 그 잔상이 어떤 사람들에겐 굉장한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걸 잠시나마 느꼈다. 물론 그때 공포영화의 ‘공’자도 모르는 민규동은 자폭하라, 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웃음) 어쨌든 누군가 자극을 받고 자기 감정을 표현하게 만들었다는 것 자체가 좋았다. 아무런 자극이 없어서 이러거나 저러거나 하기보단 자기의 가치관을 표현하게 만들고 그 순간에 발생하는 충돌로 자기 가치관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으니까.
<내 생애>에서는 여고생에서 중년으로 동성애의 대상이 바뀌었다. 어쩌면 더 과감한 선택일 수도 있고. 천호진, 김윤석이라는 낡은 남자들의 로맨스를 가져갔는데 난 많은 사람들이 그 이야기를 잘 소화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포스터에서 잘렸다. 시사회에서도 내가 무대인사하는데 김태현이란 배우가 부모님과 객석에 앉아있더라. 부르지 않은 거지. 왜냐면 그런 이야기가 있다는 걸 사전에 절대 노출하면 안 된다고 상의했나 보더라. 심지어 홈페이지에 스틸 사진도 없다. 개봉 후 한달 후까진 그 배우들은 인터뷰도 안 된다고 막아놨었다. 사실 실제로 보는 사람들이 그 이야기를 그렇게까지 두려워하진 않았던 거 같은데 그것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이 그렇게 두려워할 거라는 선입견이 있었던 거지. 그래서 배우들이 상처를 많이 받았다. 그래서 작은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아직 굉장히 어려운 이야기이구나, 라고 느꼈다.
그런 이야기가 요즘은 트렌드가 됐다.
난 이렇게까지 전면적으로 게이의 정체성이 이야기로 나아갈 수 있을 거라 생각 못했다. 개인적으로 굉장한 애정이 있는 캐릭터지만 트렌디하다는 생각은 전혀 못했는데 게이의 이야기가 사람들에게 이야깃거리가 되고 관심사가 됐다. 싫으면 싫고, 좋으면 좋다고 편하게 이야기될만한 세상인 거지. 10대들 촛불집회 나오는 것처럼 저변도 넓어졌고 그냥 편한 이야기가 된 거 같다. 내 초기영화가 정체성을 고민해서 죽어가는 사람들을 다뤘다면 지금은 이제 자신이 얼마나 많은 성욕을 가졌는지 뻔뻔하게 이야기할 정도로 보통 사람들처럼 그걸 보통의 욕구로 사회에 드러내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다루고 있다. 아무리 불편한 대상이라 해도 솔직한 사람은 편해지기 마련이다. 거리가 좁아지니까. 편한 인물이 등장했고 그만큼 편하게 보는 거 같다. 세상을 진보시키거나 개혁시키겠다는 큰 욕망은 없지만 사람들 자신이 조금 더 넓어진 거 같다고 얘기해줄 때 내겐 즐거운 일이다. 작은 영화가 사람의 인생에 조금이라도 영향을 미쳤으니까.
<앤티크>엔 4명의 주된 캐릭터가 등장한다. 각자 비중이 다르지만 개개인의 캐릭터를 조각케이크처럼 뚜렷하게 보존하고 조각케이크 같은 사연을 통해 전체적인 케이크의 구도를 완성하는 것이 관건이었던 거 같다.
난 화면 자체에 깊이가 있는 걸 좋아한다. <앤티크>는 레이어(layer)에 신경을 많이 썼다. 그 공간에 포커스가 맞는 레이어를 위해 인물들을 계속 연속적으로 뒤쪽에 배치하는 거지. 맨 처음 선우가 나오고 기범이가 나오고 수영이가 나오고 이런 식으로 화면이 흐름을 타는데 그걸 이용해서 주제 라인도 흘러갈 수 있게 하고자 했다. 서브젝트의 병렬을 만든다고 할까. 선우와 진혁의 멜로 드라마가 가장 큰 라인이지만 내면의 상처에 얽힌 미스터리를 풀어내는 진혁이 한 사람 이야기인 거 같기도 하다. 크게 보면 네 사람이 얽혀서 앙상블을 만들기도 하고, 그것들이 복합적으로 보이게 만들려고 시점들을 계속 바꿔서 입장시키고 퇴장시키는데 신경을 많이 썼다. <내 생애>같은 경우는 씬들이 계속 바뀌고 인물들이 가끔가다 만나지만 <앤티크>는 한 공간에서 계속 부딪히니까 다른 방식으로 찾아가게 되더라. 사실 지금 최지호가 맡은 수영이라는 캐릭터가 없는 세 명짜리 버전의 시나리오도 만들었었다. 인물이 너무 많은 것 같아서 세 명만 깊게 가져가는 이야기로 생각했었는데 아무래도 단순한 조연이 아니다 보니 제하기가 아깝더라. 진혁이 어렸을 때부터 20년간 곁에서 지켜줬던 친구라서 주인공의 입체감을 강화시켜주는데 기여를 하는 측면이 있다.
그만큼 비중이 소외될만한데 다른 캐릭터랑 평형을 맞추는 느낌으로 완성됐다.
시나리오에서는 비중이 많지 않았지만 촬영 중에 본인이 많이 찾아갔다. 순간순간 자기 자리를 찾거나 루트를 잘 잡더라. 실제로 텍스트 비중보다 영화에서 가장 많은 부분을 얻어간 캐릭터다. 1분 동안 다른 캐릭터가 막 수다 떨면서 심각하게 고민을 얘기하면 마지막에 이상한 한마디로 포커스를 다 가져가는 거지. 포인트를 하나 짚어준 건 있었다. 어느 씬을 찍든 병풍처럼 서서 앞에 있는 사람의 대사를 들어주는 척하지 말고 그 순간에도 그냥 본래 자기 욕구에 신경 쓰라고 거.
<처녀들의 저녁식사> 남자버전이 아닐까 싶었다. 사실 남자들의 커밍아웃을 수다스럽게 다룬 이야기는 흔치 않으니까.
남자들의 욕구는 너무 단순하고 뻔하지 않나. (웃음) 대부분 남자들 중심이기도 하고. 난 나중에 완성된 영화를 보고 <섹스 앤 더 시티>가 많이 떠올랐다. 도시에서 좌충우돌하는 남자들이 어느 순간 자기 욕구를 놓지 않으려 하기 때문에 힘들게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그려진다는 게.
시대적으로 화두가 될만한 타이밍을 잘 잡았다.
난 조금 앞서 나갔다고 생각했었다. 화두가 어쨌든 호기심이 담기거나 자극적이거나 갇혀있다고 생각한 건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하거나 인지하지 못한다는 의미겠지. 그 안에 분명한 재미가 있는데 그걸 모른다고 생각해서 먼저 치고 나가면 지평을 넓힐 수 있으리라 생각했고 그런 면에 관심이 있었다. 그런데 준비가 너무 오래 걸렸다. 덕분에 되려 지금 생각보다 편하게 받아주니까 반가운 일이다. 다시 말하면 2년 반 전엔 그게 이쯤이면 잘 맞을 거 같다고 판단할만한 것이 아니었겠지.
CG를 활용한 이미지들이 눈에 들어왔다. 사실 만화적인 표현력을 영화로 이전한다는 건 질감의 차이만큼이나 쉽지 않은 일이다.
처음 각색하면서 오는 일반적인 어려움이 있었다. 소설이나 만화나 디테일들이 쌓여서 하나의 인상으로 만들어진다. 그걸 다 제하고 간편하게 만든다 해도 그 이상의 것을 남길 수 있을지에 대한 기술적 고민이 생긴다. 그리고 연재된 만화라서 맥락이 한 줄로 가는 게 아니라 왔다갔다하고, 그러니까 그걸 요약해서 고갱이를 잡아내는 것에 대한 어려움이 기본적으로 있었다. 만화다 보니까 오히려 상상력에 제한을 받는 측면도 있었고. 본래 그림들이 있다 보니 나뿐만 아니라 주변의 모든 사람들에게 각자의 그림이 있어서 어떤 걸 선택할 때마다, 이래야 된다, 저래야 한다, 부침이 많았다.
어울리지 못할 것 같은 장르가 섞여있다. 그만큼 이미지의 대조도 중요하게 고려되지 않았나?
스릴러와 로맨틱 코미디가 동시에 있지만 주안점은 둘 다 놓칠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인물의 화려함과 내면의 어둠에 따라 영화도 굉장히 밝고 어두움의 차이가 크다. 그 격차를 극단적으로 대비시켜서 인물이 자신을 숨겨가듯 영화도 그 형식의 맥락에서 현란함과 가벼운 느낌을 갈 수 있는 만큼 가보자라고 생각했다. 사실 실제로 구상했던 부분은 더 많지만 예산이나 다른 이유로 모두 구현하진 못했다. 우리는 본 게 많지만 봤던 것이 모두 현실에서 구현될 수 있는 건 아니니까. 시간과 비용과 사람 문제가 발생해서. 원래 상상은 좀 더 편하지 않나.
와이프(wipe)나 컷어웨이(cut away) 같은 장면 전환 기법을 많이 활용했더라. 전작 <내 생애>에서도 컷어웨이를 많이 활용했는데 그런 식의 테크닉을 선호하는 편인가?
<내 생애>는 주로 대사나 상황에 씬을 매치 시켰지만 이번엔 그냥 넘어가는 씬이 별로 없다. 아마 많은 사람의 이야기, 긴 시간의 이야기를 압축시켜가는 방식으로 그런 방법들을 찾게 된 것 같다. 최대한 맥락을 찾아서 상상력이 가능한 맥락의 재미를 찾아보려고 했고 그걸 하나의 고유한 스타일로 잡아봤다. 등을 기댈 여유를 안주고 갈 정도의 리듬이랄까. 어떤 사람에겐 굉장히 빨라서 잠깐 눈 길게 깜빡 하면 놓칠만한 것일 수도 있고. 씬의 농도가 짙어서 한번에 다 파악이 안될 정도지만 자꾸 보면 그 안에 정보가 굉장히 많다는 걸 알 수 있는 이런 종류의 영화를 연상해 봤다.
주지훈이 타치바나와 어울리지 않다는 원작 팬들의 성화가 종종 있더라. (웃음)
사실 30대 중반의 이미지가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영화에서 고등학교 시절이 나오니까 설정은 30대 초반으로 했다. 30대가 고등학생으로 나오면 리얼리티가 많이 떨어지니까 고등학생 대역을 써야 한다. 그런데 난 실제 대역보단 한 인물이 10년을 넘기는 사이의 이미지까지 연기해줘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사실을 전하는 게 아니라 그렇게 변한 느낌을 주는 게 필요했다. 그리고 난 적절하게 연령을 맞췄다고 생각한다. 원작이 남자인데 여자로 바뀔 수도 있고, 심지어 노인으로 바뀔 수도 있지. (웃음) 그런 것에 민감해한다는 게 그냥 귀엽다. 애착이 얼마나 있는가를 드러내는 방식이니까. 다만 영화는 영화대로 그 안에서 어울리는 게 있으니까 난 전혀 개의치는 않는다.
원작이 그만큼 인기가 있는 작품이라 더 그런 거 같다.
양적으로 인기가 많은 작품은 아닌 거 같다. 다만 한 사람에게 어필하는 강도가 강한 거 같다. 대사부터 시작해서 이렇게 저렇게 자기들 것이 너무 많아서. (웃음)
사실 남자들이 쉽게 접할만한 작품이 아니다. 만화를 즐겨보는 편도 아닌데 이 원작을 접하게 된 경위가 궁금하다.
감독 친구에게 추천을 받았다. 지금 <키친>이란 요리 영화를 만든 친구인데 레퍼런스로 그 만화를 보고 나에게 추천해서 읽어봤다. 영화로 만들긴 아주 어렵겠지만 영화적인 순간도 있고 재미있다고 느꼈다. 젊고 어린 여자들의 전유물 같은 하이틴 로맨스가 아니라 깊이와 울림이 있는 매력적인 면이 있었다. 그래서 이 작가의 다른 만화도 전부 다 읽었다. 사실 어렸을 땐 만화가 불온 서적 아니었나. 아이들을 불량한 세계로 인도하는 만화와 오락실. (웃음) 그래서 만화가게에서 몰래 만화 보다가 야단을 너무 많이 맞아서 그런지 몰라도 난 소설이 익숙하고 편한 세대였던 거 같다.
‘앤티크’의 미장센도 공을 들인 느낌이다. 고전적이면서도 모던하다 할까. 제목부터 사실 기묘하다. ‘서양골동양과자점’이라니.
우리 한국사회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이름이지. (웃음) 어떤 생각이 드나?
경성 시대 이름 같더라. (웃음)
앤티크를 위한 장소로 기와집이 많은 종로의 한적한 골목을 선택했다. 진혁의 목적은 돈을 버는 게 아니라 자기가 찾고 싶은 사람이 찾아올만한 케이크 가게를 만드는 게 목표다. 빈부나 나이나 계급 같은 정체성과 무관하게 모든 사람이 편하게 올 수 있는 가게를 만들고 싶었다. 그리고 케이크 이름들이 대부분 프랑스어라서 어렵게 느껴진다. 그런 서구적인 공간이 아주 오래된 쌀집이 있었을 법한 건물에 들어온다는 게 영화적인 주제와도 맞는 느낌이 있었다. 우리는 골동품 같은 상처 하나씩 안고 산다, 라는 영화의 전제에 맞게 조화를 맞추려고 했다. 앤티크는 시간이 오래 가서 가치가 생기지만, 케이크는 갓 구웠을 때 가치가 생기고 시간이 갈수록 가치가 점점 없어진다. 영화에서도 이야기하지만 1837년산 접시에 구워서 나온 지 5분 밖에 안된 케이크처럼, 그런 조화가 인생을 음유하는데 적절한 이미지라고 생각했다.
오페라와 케이크를 비유하는 인트로에서 출발한다. <내 생애>에서도 시작은 괴테로, 끝은 니체로 갔다. 재수없지 않나? (웃음)
나름대로 취향을 대변하는 측면이 아닐까 싶다.
책을 읽을 때 책 앞에 항상 짧은 발문이 있다. 그게 나한테는 너무 중요하다. 아마 작가가 자기 이야기와의 연관이 어디서 시작되는지를 한 줄로 응축하는 중요한 메시지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우리가 교과서에서 그런 것들을 외우는데 너무 스트레스를 받았던 사람이기 때문에 보는 것 자체가 너무 싫을 수도 있다. 그래서 그게 강요되는 방식으로 들어가거나 젠체하는 방식으로 표현되는 건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영화적 맥락으로 마땅한 자리가 있을 경우엔 그렇게 표현이 가능하다. <앤티크>엔 어려운 케이크이름이 많이 나오는데 가장 쉬운 케이크 이름이 오페라였고, 오페라는 영화처럼 어떤 이야기와 형식을 가지고 표현하는 고전적 양식의 예술이니까 중의적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 맥락을 통해서, 오페라라는 케이크가 인생의 무대 같은 것이다. 그 맛에 중독된 사람은 반드시 찾아오게 돼있다. 이런 얘기가 가능했다고 본다. 나는 그런 프롤로그가 씨뿌리기라고 생각한다. 나중에 걷어야 되니까.
네 명의 인물이 등장하는데 저마다 장문으로 펼쳐질 만한 사연을 지니고 있다. 이를 축약하고 개별적인 맥락을 유지하는 게 관건이었을 것 같다.
보통 한 달 이상 편집을 해본 적이 없는데 4개월이나 걸렸다. 물론 이번에 컷도 많았지. 이천이백 컷에 74회 차였으니까. 생략된 뮤지컬 컷도 있다. 뮤지컬은 한 씬만 해도 평균 5백 컷씩 쓰게 되더라. 그래서 기술적으로 많은 컷을 배열하는 씬 안에서의 문제도 있었다. 가장 큰 고민은 아무래도 네 명의 이야기가 한 사람의 주변인처럼 치우치지 않으면서도 각자 한 사람의 이야기로 지각될 수 있는 리듬이나 맥락을 찾는 것이었다. 한 1년 정도 시간을 더 주면 1년 내내 편집할 거 같다. (웃음) 적절한 순간에 끊어야 된다. 그게 그 시대에서는 최선의 결과가 되는 거지.
원래 케이크는 좋아했나?
좋아하는 편이다. 담배를 안 펴서 그런지 힘들 땐 단걸 찾는 편이다. 다만 케이크는 비싸서 자주 먹진 못하고. (웃음) 군대에서 먹었던 케이크 맛을 잊을 수 없다. 프랑스 유학 때도 익숙하게 접했었다. ‘꼬르동 블루’라고, 오드리 햅번이 <사브리나>에서 다녔던 유명한 제빵 학교에 다니던 친구가 옆에 살았는데 학교에서 실습하고 남은 케이크를 가져와서 배고픈 외국인들에게 주곤 했다. (웃음) 그래서 낯선 음식은 아니다.
만약 케이크에 대해 잘 몰랐다면 진혁과 같은 양상이 아니었을까 싶더라. 케이크를 전혀 모르던 아마추어가 케이크에 대해서 완벽한 프로페셔널이 되는 과정이랄까.
그건 같은 과정을 겪었다. 영화에서 등장하는 케이크 리스트만 해도 몇 페이지였는데 우리 조감독 중에 한 명이 케이크 담당 조감독일 정도였다. 비슷한 이름이 나오면 안되기 때문에 끝없이 새로운 이름을 찾고, 어떤 이름은 너무 어려우니까 안되고, 재료를 바꾸고, 언제 케이크가 나올지 리드미컬하게 조율하고, 그 안에서 케이크 스스로도 자기 자리 찾느라 고생이 많았다. (웃음) 준비하는 어려움도 있었지만 만드는 어려움도 컸다. NG나면 컷하고 다시 가야 되는데 한번 깨물면 처음 것이 다시 나와야 된다. 다음 컷으로 갈 땐 카메라 위치도 바뀌고. 정말 너무 많은 케이크가 필요하더라. 세트장 밑에 공장을 차려놓고 케이크가 바로바로 올라왔었는데. 3천여 개 정도를 만들었다고 했다. 파티쉐들이 매일 잠도 못 자고 굽고 구워도 계속 모자랐다. 그래서 우리는 빨리 안 온다고, 어떻게 케이크를 기다리느라 촬영을 못하냐고 하소연하고. 그리고 빨리 못 찍으면 조명 때문에 다 녹는다. 녹으면 데코레이션이 바로 무너지기 때문에 모두가 케이크만 나오면 무서워했다. 또 요리 영화들이 겪는 공통적인 어려움이겠지만 수없이 쌓이는 먼지도 적이었고.
케이크가 가장 어려운 난관이었겠다.
아무도 예상 못했던 난관이었다. 회차가 늘어나거나 예산이 느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웃음)
사실 먹는 씬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먹는 컷이 그래서 많이 줄었다. 먹으면서 진행하면 열두 배수 정도는 있어야 되는데 나중에는 도저히 그렇게 할 수 없다고 해서 그냥 안 먹고 보는 씬으로 가거나 씬 자체를 바꾸게 됐다. 조희봉 씨 나오는 씬에서도 안 먹지 않나. 사실 그게 어느 정도 먹은 상태로 점프컷이 가야 하는데 그 데코에 한 4시간 걸리니까. 이건 먹으면 안 된다. 케이크에 주의가 안 가게 찍자. 그래서 카메라 위치 바꾸고 살짝 넘어가는 거지.
아무래도 유아인이 나오는 씬이 만만치 않았겠다.
아인이는 많이 먹었다. 끊임없이 먹고 대부분 먹으면서 대사할 때도 많고. 잘 먹더라. (웃음) 그런데 난 3개월 동안 하나도 못 먹었다. 믿어지나? 한 피스(piece)도 못 먹었다. 늘 모자랐고 스태프들 동작이 얼마나 빠른지 우연히 남은 케이크는 잔인할 정도로 해체됐다. 그날 안 먹으면 못 쓰기 때문에 그날 촬영 끝나고 뭐 하다 보면 다 없어졌지.
기자시사회 때 상영 전 무대인사에서 했던 말이 기억난다. 영화를 보고 케이크를 먹고 싶다는 생각을 했으면 좋겠다고. 어쩌면 본인이 촬영장에서 느낀 바가 아닐까. (웃음)
맞다. (웃음) 어떤 영화로 만들고 싶었어요, 하면 할말이 많지만, 영화를 다 보고 나니 케이크만 보면 토할 거 같아요, (웃음) 이런 감상이 나오면 안되니까. 영화를 다보고 나면 케이크 한 조각 먹고 싶은 생각이 들고, 케이크를 먹으면 영화 생각도 나고, 영화가 남겨준 잔상이나 잔향을 다시 한번 음미해보고 싶은 욕구가 남는 영화가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외적으로 발랄하게 포장됐지만 긴장감이 요구되는 스릴러적인 측면이 다른 표정처럼 끼어든다. 대비되는 온도차가 크기 때문에 이를 배열하고 융합하는 과정이 중요했을 거다. 나름대로의 모험이었다고도 생각된다. 포스터처럼 발랄한 이미지로 포장할 수도 있었을 텐데.
많은 사람들의 그런 요구가 있긴 했다. 그런데 난 그리 발랄한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좀 침잠돼있고 조용한 사람이다. 내게 익숙한 게 잘 어울리는 거 같고 편하다. 내가 만화를 봤을 때 막 끌렸던 부분도 힘겨울 수 있는 이야기를 천연덕스럽게 하는 시선이었다. 난 가렵지 않은 부분에 훨씬 끌렸었고 그걸로 이야길 시작했다. 원래 이야기보다 이렇게까지 더 무거워져도 될까, 싶을 정도로 생각했던 부분들이 있었다. 다만 그런 것들에 무게 중심이 치우치지 않게 하려고 가벼울 수 있는 순간에서는 발랄하거나 코믹하게까진 생각하지 못했지만 자연스럽고 편한 이미지들을 많이 구상했다. 반대로 진지할 땐 그것이 하려고 했던 본연의 이야기니까 강하게 해보려고 애썼다. 결과물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발랄하게 풀렸다.
배우들의 이미지가 정형화되지 않은 젊은 배우들이었기에 얻어지는 장점도 있었던 거 같다. 캐릭터 자체가 배우의 캐릭터로 대변되기 보단 확실치 않은 배우의 캐릭터가 영화 속 캐릭터의 여지를 더 확보할 수 있게 만든 측면이 있다.
이 인물이 그냥 그 인물 같은 거지. 기존에 형성된 이미지가 많지 않았으니까. 덕분에 내가 작업할 때 편했던 부분이다. 왜냐면 기존의 것을 벗고 새롭게 간다는 것을 유념치 않고 그냥 구상한대로 마음껏 움직이고 놀아도 되니까. 물론 경험들이 주는 순발력이나 영화 시스템에 대한 이해, 투자와 관련한 어떤 신뢰, 이런 부족한 부분들도 있었지만 영화적 텍스트에서는 분명 그런 것들이 힘을 발휘한 면이 있었던 거 같다. 나이와 육체적인 조건을 맞추는 것도 신인들이 훨씬 용이했던 거 같고.
모델 출신 배우들이 기용된 것도 고의적 아닌가.
어쩌면 현실적이지 않은 이미지인데, 내면의 고민들이 겉으로 보이지 않는 느낌의 화려한 친구들이 기용된 거 같다.
동성애자의 이미지에 대한 오해가 형성되진 않을까.
그런데 영화에 게이가 너무 많이 나와서. 예를 들면 수염을 기른 고창석 씨가 게이바 바텐더로 나오는데 자기 게이 손님을 누가 뺏어가는 걸 질투하는 표정을 날리기도 하고. 선우 애인이라고 찾아오는 사람도 그렇고. 여러 부류의 캐릭터들이 나오지 않나. 그런데 주인공들은 원래 영화에서 다 멋있으니까.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주변 사람들이 실제로 그렇지 않다는 걸 아니까,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게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조차 선입견이 될 수 있다. 그건 영화적인 표상이고, 기호니까.
캐릭터들의 심연에 있는 상처를 끌어올리는 방식이 인간과 인간의 만남과 이해라는 점에서 인상 깊었다. 그리고 나름 심각한 상황에서 인물들은 그 고백에 깊게 개입하기 보단 그냥 무덤덤하게 받아넘기고 서로에게 기댄다.
시선에 대해서는 고민이 많았다. 공통적으로 엄마의 사랑을 못 받은 결핍된 남자들이다. 엄마로부터 버림받거나, 엄마가 무력했거나, 나빴거나 아니면 너무 과했거나, 이런 엄마들로부터 자란 아이들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이것들을 보여줄 때 이게 굉장히 슬프고 힘든 거니까 좀 많이 같이 슬퍼해줘, 란 식으로 강요하고 싶지 않았다. 작게 넘어가지만 절대 잊혀지진 않는, 동정과 연민을 넘어서는 다른 방식의 소통을 보여주고 싶었다. 상처가 잘 치유되지 않는다는 본질적인 시선들을 내세우고, 치유가 안될 건데 그걸 왜 꽁꽁 감아두고 힘든 척하면서 사느냐, 그런 맥락에서 보면 이런 표현방식을 찾을 수 밖에 없었다고 할 수 밖에.
<앤티크>만큼 남자들끼리 껴안는 장면이 많이 나오는 영화도 드물다. (웃음) 그게 어색하지 않은 건 단지 게이가 등장해서가 아니라 남자들간의 연대가 느껴지는 덕분이다.
사실 이 영화는 여자들만을 위한 영화가 아니다. 껴안는 장면도 많고 키스하는 장면도 있지만 스킨십을 통해 동지가 되는 순간들을 표현하고 그 순간의 따뜻함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게 영화적 결론으로도 중요했다. 끝까지 그게 표현 안되면 기능적으로 각각 자기 역할만 맡아서 겉돌 뿐이니까. 촬영할 때도 그런 느낌이 있었다. 이성애자나 동성애자가 껴안는 그런 느낌이 아니라 포옹 외에는 어떻게 표현할 수 없는, 그 외에 다른 소통 방식이 없을 것 같은 순간에 그게 적절하게 일어났다는 느낌이랄까. 진짜 남자들은 잘 안 그런데도 그 순간이 잘 표현됐다면 좋은 거지. 사실 내가 남녀 불문하고 껴안는 걸 좋아한다. 내 문제인가? (웃음)
<앤티크>는 사실 남자들의 연대이면서도 어떤 동세대 남자의 연대기 같다. 젊은 청년들의 연대랄까. 젊은 세대를 관통하는 자립기 같은 느낌도 있다. 아버지 세대를 극복하고 싶은 동세대의 연대랄까. 어른의 몸을 가진 애들이 어른으로 성장해나가는 자립의 이야기 같다. 그런 의미에서 앤티크는 일종의 합숙소가 되는 셈이고.
명백히 성장영화라고 할만한 이야기다. 세대간의 관계라고 생각해보면 아까 엄마 얘기했듯이 상처받은 아이가 되기까지 큰 역할을 한 건 부모님들이니까. 진혁이는 자꾸, 얘는 괜찮다, 괜찮다, 하는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 괜찮은 척하고, 그래서 괜찮을 것 같지만 그런 아이로 변해있는 거다. 그래서 원래 편집되기 전엔, 더 이상 나를 괴롭히지 말고 그만 내버려 두세요, 라고 선언하는 씬도 있었다. 선우도 엄마에 대한 증오감을 자신에 대한 증오감으로 확대시켜서 자기가 더러운 사람이라고 생각하니까 스스로를 막 굴리고 그러니까 무서운 게 없는 사람이 되고, 그게 마성을 만들어주고, 결국 그런 게 너무 불편하고 맨날 사건 사고가 생기고. 사실 영화에서 현실적인 조건이 바뀌거나 달라지는 사람은 없지만 조금 더 자기 박해를 덜하게 됐으니까 좀 더 자기를 사랑하게 되는 이미지로 영화가 정리되니까, 성장이란 건 어쩌면 <앤티크>를 설명하는 가장 적절한 말이 될 수 있겠다.
많은 캐릭터들을 다루지만 그 안에서 자신이 좀 더 신경 쓰는 캐릭터가 있지 않나. 자신을 투영하는 느낌이 드는 캐릭터도 있을 거고.
내가 투영된 캐릭터는 주지훈이 연기한 진혁이다. 난 낸 상처를 잘 알지만 그걸 잘 삼키는 편이고 표현을 잘 안 한다. 그냥 잘 지나가는데 그것들이 많이 쌓여있다가 어떤 순간 너무 힘들거나 고달프면 그걸 단번에 풀고 싶은 욕구가 생긴다. 어디서부터 무엇이 꼬였을까, 어떻게 하면 달라질 수 있을까, 엄청난 변화를 시도해보려고 부단히 애쓰고 힘겨워하는 게 내 스타일 같다. 내가 스스로 낙천적이었으면 좋겠다고 스스로 주문을 거는 편이다. 그리고 내가 좀 더 객관적인 매력을 느끼고, 정말 잘 표현하고 싶었던 인물은 선우였다. 진혁이란 친구와 양날처럼 굉장히 다르지만 한 공간에 붙어있는 친구고, 뭐든지 다 할 수 있지만 정말 갖고 싶은 것 한가지를 가질 수 없는 그런 친구다. 마성이 있지만 정작 얻고 싶은 사랑은 얻지 못한 캐릭터랄까. 그래서 사실적이고 입체적으로 잘 표현하고 싶었던 욕구가 많이 있었다. 재욱이한테 그런 얘길 했다. 앞으로 이렇게 대놓고 욕구를 표현하는 게이 캐릭터는 전무후무할 것이다, 라고. 이건 자본의 입장에서도 부담스러운 거니까. 그리고 그런 캐릭터가 놓일 수 있는 시공간과 이야기 자체가 형성된다는 것도 쉽지 않으니까. 그러니까 여기서 숨거나 꺼려하지 말고 아주 전면적이고 노골적으로 맘껏 표현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내 생애>에서 수많은 인물의 이야기를 다뤄본 학습효과가 <앤티크>를 용이하게 만들어주진 않았을까. 여러 사람의 사연을 만들고 그걸 구조적인 맥락으로 이어나가는 작업의 선례가 있었으니까.
<앤티크>가 쉬웠던 거 같진 않다. 화살표 게임이라는 게 있는데 인물들을 표시해놓고 감정의 방향들을 화살표로 이어서 연관고리를 찾는다. 그런 게 한눈에 파악돼있지 않으면 트랙을 한번 잃게 될 때 덜커덩거리게 된다. 복잡하고 어렵다. 누가 그러던데. 너무 이성적인 영화 같다고. 너무 치밀하게 계산되고 그만큼 머리를 많이 써야 가능한 구조니까. 사실 덜커덩거려야 자연스러울 수도 있는데 그렇게 잘 엮이는 순간이 보이면 너무 이성적으로 느껴져서 무섭다나. 왜 이런 것이 자꾸 내 취향이 되는 걸까 싶지만 그런 걸 통과할 때 쾌감이 있는 거 같긴 하다.
인물들은 변하지만 인물들을 둘러싼 상황은 크게 변하지 않는다. 그래서 영화는 해피엔딩의 양식으로 끝나지만 딱히 낙천적이란 생각이 들지 않는다.
음, 너무 해피엔딩 같지 않았나? 난 해피엔딩에 대한 강박이 영화에 녹아있을까 걱정된다. 결국 지웠지만 원래 시나리오에선 악몽도 더 꾸고 상처가 전혀 치유되지 않았다는 걸 선명하게 보여주는 장면들이 있었다, 행복하게 살아야 된다는 이야기는 아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건 너무 부담되니까. 왜냐면 현실은 그렇게 행복한 것만은 아니지 않나. 그러니까 저 사람들은 영화 주인공이니까 행복해지면 반대로 행복해지지 못하는 우리들에겐 사형선고 같은 거지. 행복해져야 되는데 행복해지지 못하니까. 또 다른 이유는 내가 스스로 정답을 잘 모르는 거 같아서다. 정말 어떡하면 행복해지는지, 그런데 행복해졌으면 좋겠다 생각한다면 어떤 굉장한 희망이 있는 거고, 그럴 수 있다는 작은 위로가 필요한 거니까.
스스로 행복하다고 잘 느끼지 못하는 건 아닌가?
영화 만드는 감독으로서 삶을 돌이켜보면 너무 고통스럽다. 사람들은 엄살이라고 그럴 수도 있겠지만, (웃음) 한편 만들 때마다 한계를 넘어서 몸이 부서질 거 같다. 장미란이 저 무거운 역기를 들고 버티는 고통이 수년은 계속되는 것처럼. 영화를 만드는 과정에서 영화는 내게 구원을 주지 않는 거 같은데 정작 내 영화는 구원을 얘기하고 행복을 예찬하니까 거기서 내가 스스로 소외되는 느낌이랄까. 영화가 세상에 구원이 가능하고 행복이 있다고 강변해버리면 정말로 내 스스로 사람으로서 느끼는 행복과 구원에 대한 이야기와 다른 가짜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거다. 그래서 완전히 닫힌 결말이 아니게 하려고 애쓰는 거 같다. <앤티크>는 거대한 해피엔딩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범인도 못 잡았고, 상처가 치유된 것도 아니고, 기억이라도 제대로 떠오른 것도 아니지만 범인을 찾아서 치유될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깨달음을 얻은 거다. 세상이 변하는 게 아니라 내가 변해야 세상이 변한다, 이런 느낌을 아슬아슬하게 남기는 정도만 취하고 싶었던 거 같다. 원래 마지막에 다시 악몽을 꾸고, 괜찮아지긴 개뿔, 이렇게 투덜거리는 씬이 있는데 그걸 뺀 게 너무 아쉽다. (웃음)
엔딩은 좀 아이러니했다. 그렇게 갈망하던 존재가 실제로 눈 앞에 존재하는 순간을 그리도 무덤덤하게 묘사할 수 있을까 싶었다.
그게 현실적이라 생각했다. 만약 단번에 모든 것이 떠올라서 그 사람을 잡고 사건이 해결되면 우리는 그걸 기적이라고 불러야 한다. 너무 특별한 사람에 대한 혜택 같은 느낌이 안 들게 대단한 상황이 벌어지지 않는 게 좋다고 생각했다. 문장에서 그림들을 봤을 때 이 순간이 매력적인 순간이고 인생을 얘기해주는 순간이라고 생각했었다.
사람의 이야기를 하고 있고, 사람들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셈이다. 영화들을 완성하면서 스스로의 삶에 대해서 돌아보기도 하나?
다양한 사람들을 그리고 다양한 삶을 헤쳐나가는 사람들을 그리는데 나는 왜 저런 식으로 못살까? 이런 질문을 한다. 이성적으론 어떤 어려움이 있을 때 이런 캐릭터처럼 풀어내면 될 거 같다고 마음껏 상상하는데 잘 안 되는 것처럼. 예를 들어서 어떤 어려움을 잘 견뎌낸 캐릭터를 연기한 배우가 영화 밖의 세상에서는 작은 어려움에 막 화를 낸다면 거기서 어떤 괴리감 같은 게 생기지 않을까. 내 영화는 너무 작고, 짧고, 자주 말하지 못하는 이야기라서 그런지 사람들보단 내 자신에게 하는 이야기 같다. 내가 정말 주의 깊게 듣고 싶거나 바라봐야 되는 어떤 세상이나 인물들을 통해서 스스로 자기를 들춰보는 경험인 거 같다. 나중에 내가 정신차리고 보면 내가 잘 챙겨 들어야 할 메시지가 있을 것 같고, 그런 게 다음에 또 이야기될 것들이 아닐까.
내적인 갈등이 보인다. 그렇게 영화를 찍으면서 뭔가를 깨달아가긴 하는 건가??
첫 단편 영화를 찍고 정신과를 찾아갔었다. 증오와 혐오에 시달려서. 늘 대의명분이 같은 사람들끼리 일하는 것 같지만 스태프들의 대의명분이 다 같지는 안거든. 다 자기 자신을 위해서 일하기 때문에 그런 지점에서 오는 충돌이랄까, 그런 것들이 너무 낯설어서 힘겨웠다. 지금도 어려운 조건들 사이에서 겨우겨우 기적처럼 만들어내고 있다. 그 사이의 갈등과 충돌 때문에 힘겨운 점들이 많았었는데 예전에 비해서 그냥 ‘허허’하게 됐다고 할까. 스스로에게도 그렇고, 사람들에게도 그렇고 좀 너그러워진 거 같다. 감독이란 위치가 굉장히 완벽한 걸 요구하기 쉬운데 그럴 수 없는 게 대부분의 현실이니까 그런 걸 인정하게 되는 방식이거나 그렇게 요구하는 만큼 스스로도 완벽해져야 한다는 강박이 있다. 그래서 그 채찍질이 너무 심했지만 스스로 이제 나를 잘 인정하고 게으름도 피우고 요구수준을 낮추면서 편안해지는 요령을 배웠다. 늙는 건가? (웃음) 세상이나 삶을 인정하기에는 부정하고 싶은 것들이 많았는데 지금은 인정할 수 있는 것들이 조금 더 많아진 거 같다.
대화를 하고 나니, 당신 같은 사람이 <앤티크>를 만들 수 있었다는 게 아이러니하다.
(웃음) 항상 그런 질문을 한다. 내가 영화를 한다고 했을 때도 많은 사람이 의아해했고, <여고괴담2>를 만들었을 때도, <내 생애>를 만들 때도, <앤티크>를 만들 때도 의아해했다. 사실 나 스스로도 너무나 의아하다. 반드시 내가 원하는 것들만 일방적으로 만들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상호작용 속에서 만들어지는 거니까. <앤티크>는 내가 지닌 여러 색의 직소 퍼즐 중의 하나일 거란 생각이 든다. 나는 이런 영화를 만들어야지, 라고 품어온 영화가 아니라 태어나서 한번도 생각해본 적 없는, 어떤 춤을 추다가 이상하게 스텝이 바뀌면서 만들어진 느낌이랄까. 나중에 나머지 퍼즐들이 만들어지면 내 색깔도 보이지 않을까? 난 아직 만든 작품이 별로 없어서 내 색깔이라고 할만한 건 그냥 몇 개의 ‘갈지(之)’자 같은 흔적뿐이니까.
몸이 안 좋다고 들었다. 지난 주에 좀 안 좋았지만 이젠 괜찮아졌다. 촬영 스케줄이 타이트했는데 또 홍보 때문에 거의 쉬지 못했거든. 과로 때문에 목에 염증이 심하게 일어나서 소리가 나오지 않을 정도였다.
지금은 괜찮나?
생생하다! (웃음) 병원 가서 응급수술을 했거든. 생살을 찢어서 목 안에 있는 염증을 꺼내지 않았으면 아마 지금까지도 말 한마디 못하고 있을 거다. 이젠 괜찮다.
하지만 컨디션이 완벽하지 않은 상태에서 내색하지 못한다는 게 괴롭진 않았나?
관심 받지 못해서 불러주는 데가 없을 때 정말 더 힘들지. 지금은 저에게 관심 가져주고 불러주는 데가 많아서 오히려 기분은 더 좋다.
필모그래피만 봐도 꾸준히 활동해온 인상인데 그런 걸 느껴본 적이 있나?
꾸준히 많은 작품을 했지만 그 중 관심 받는 작품이 있는 반면, 관심 받지 못하는 작품이 있다. 작품 안에서의 비중에 따라 관심을 받는 정도를 떠나서 작품 자체에 대한 관심만으로도 확연한 차이가 있으니까. 지금은 너무나 감사하게도 많이 예뻐해 주니까 요즘은 아침에 일어날 때부터 너무 좋다. 사실 요즘 잠을 많이 못 자는데도 웃으면서 일어나고 있다. 나도 모르게. (웃음)
<하류인생>이후로 한동안 영화보단 드라마에 주력했다가 작년부터 다시 영화에 주력하는 느낌이다. 날 찾는 곳이 있고, 내가 거기서 배울 것이 있으면 영화든 드라마든 상관없이 필요한 곳으로 이동하려 한다. 영화만 할 거야, 드라마만 할 거야, 그런 건 없다.
주로 어떤 작품에 흥미가 생기는 편인가?
내가 가지고 있지 않은 한가지를 배울 수 있는 것이라면, 내가 가진 9가지는 버리고 그 1가리를 얻으러 갈 수 있다.
<미인도>에서의 1가지는 무엇이었나?
신윤복이었다. 윤복이가 나를 통해서 세상 밖으로 나올 때 내 가슴에서 풀리는 게 상당히 많았다. 그 동안 가슴에 꾹꾹 눌러 담겨있던 감성을 가슴에 묵혀두는 게 아니라 폭발시켜서 밖으로 내던질 수 있는 거지. 그걸 풀어버릴 수 있는 <미인도>라는 공간이 있어서. 덕분에 지금 너무 홀가분하다.
올해가 연기경력 10년째가 되는 해다.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이하, <여고괴담2>)이후 10년만이다. <여고괴담>때는 정말 연기의 이응(ㅇ)자도 몰랐다. 아무것도 모르는 친구가 연기하겠다고 신인 감독님들과 몸 부딪혀가며 배웠던 작품이다. 그 후로 이런 저런 경력을 쌓았지만 <미인도>에서 그렇게 쌓아온 걸 다 무너뜨려서 잠시 내려놓고 <여고괴담2> 당시와 같은 마음가짐으로 작품을 대했다.
10년이 짧은 세월은 아니다. 그런데 김민선이란 배우의 10년은 실감이 안 난다. 외모 덕분일지도 모르겠지만 배우로서 고정적으로 축적되거나 결정적으로 관통할만한 이미지가 없기 때문이 아닌 거 같다.
난 지금까지 한 단계 한 단계 밟아오며 나에게 오는 상황에 대해서 최선을 노력을 다했다. 그래서 여기까지 오게 됐고. 글쎄, 나를 온전히 다 보여줄 수 있는 작품을 아직까지 영화에선 만나보지 못했을지도 모르지. 다만 내실을 다지고 싶단 생각에 연기를 배울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갔다. 나를 버리고 새로운 것에 계속 도전하려 했고, 모험을 하려 했다. 내가 어떤 모습을 가장 잘 보여주는지, 어떤 것이 나와 제일 잘 맞을 수 있는지 스스로 잘 모르는데 내가 하고 싶은 것만 찾게 되면 놓치고 갈 수 있는 부분들이 있지 않을까. 도전과 모험이라는 건 젊음이 있을 때만 가능하다. 그렇게 계속하다 보니까 아마도 그런 활기나 생기가 지속적으로 활발한 이미지를 부여해서 그렇게 보여지는 게 아닐까.
작품에 따라 이미지의 변화가 다분하다. 작품 선택에 따른 의무적 감내일 수도 있지만 개인의 취향도 배제할 수 없는 사안이라고 생각된다. <미인도>도 비슷한 맥락 같다.
<미인도>는 모든 여배우가 탐을 낼만한 작품이다. 지금 베드씬이 과하게 관심을 얻고 있지만 그것보단 아름다운 영상미의 옷을 입고 있다. 자칫 노출에 대해 부담을 가질만한 여배우도 아마 영화를 보면서 부러워할지 모른다. 나도 당연히 시나리오를 보고 여배우의 동물적인 감각으로 이 작품이 그럴만한 작품이라 느꼈다
여배우에게 노출은 쉬운 결정이 아니다. 스스로 자신을 납득시켜야 하는 과정이 필요했을 텐데.
시나리오를 읽는 순간 가슴 한 구석에서 형체가 뚜렷한 녀석이 보였고 연기로서 그걸 풀지 않으면 안될 것 같다는 필연성을 느꼈다. (신)윤복이를 표현하려면 남자에서 여자로 본성을 찾는 과정의 중심에 서 있어야 한다. 그리고 말 백마디 하는 것보다 한 번의 모습으로 보여주는 게 더 완벽하고 더욱 진정성이 생긴다. 단지 인간 김민선은 잘 못하는 부분이라며 선택을 망설일지라도 스태프들이 나를 보호해줄 거라는 믿음이 생기면 그 다음은 어렵지 않다. 그리고 나의 젊은 시절 모습을 담을 수도 있으니 얼마나 좋나.
<미인도>의 신윤복과 어울리는 지점이 있다. 남자로 살아가던 신윤복이 여자의 정체성을 깨닫게 되는 것처럼 본인도 중성적 이미지를 벗어나 여성적인 이미지를 어필하고 싶은 욕심이 없었을까. 난 톰보이 같은 녀석이다. 그만큼 그런 모습을 많이 보여줬고 그런 모습이 내가 세상과 소통하기 가장 편한 방법일 수 있다. 그런데 내가 남들이 보는 정도만큼 나 자신을 보고 있다면 난 더 이상 성장할 수 없겠지. 하지만 윤복이가 남자를 사랑하면서 여자로서의 본성을 찾아냈듯이 나도 김민선이라는 여성성을 안다. 윤복이의 역할을 하면서 나도 모르게 안으로 담고 담았던 여성성이 거꾸로 드러나게 된 거다. 촬영하고 나서 내가 모르던 부분들이 많이 드러나서 나도 새삼스럽게 당황스러웠지만 나에게 이런 여성스러움이 있다는 걸 발견해서 기쁜 측면도 있었다. 세상하고 소통할 수 있는 여지가 더 넓어진 기분이다.
신윤복의 여성성보단 김민선의 여성성을 발견했다는 게 더 맞는 말 같다.
신윤복 그가 피어나다, 그런 문구가 있는데 김민선 그녀도 피어났다. (웃음) 예전의 내 모습과 지금의 모습이 아예 달라졌다는 건 아니지만 내가 많이 넓어졌다. 이제부터 해야 할 작업은 넓어진 작업을 깊이 있게 만드는 거다.
<미인도>는 사실 통속적인 멜로다. 멜로라는 장르를 잘 이해할만한 세월이 지나기도 했다.
적당히 아픔도 알고, 적당히 슬픔도 알고, 소중한 것도 알고, 행복해지는 방법도 아는, 적당한 나이인 거지.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 본능적으로 지금의 나이이기에 가능하지 않을까, 라는 걸 느꼈다.
<미인도>는 10년을 기다린 시나리오라고 말했더라. 전윤수 감독을 직접 찾아갔다고 들었다.
집 근처로 찾아갔다. 감독님께서 마지막으로 시나리오 집필을 수정하러 지방으로 내려가시기 직전이었는데 한 10분 정도 잠깐 얼굴만 뵀다. 열정을 보여드리고 싶었다. 물론 그게 바짓가랑이 잡고 늘어지면서 나 꼭 할래요, 이러는 게 아니라 그만큼의 준비가 됐다는 걸 보여드린 거다. 배우의 자존심은 카메라 앞에서 연기로 보여주는 거라 생각한다. 이 작품이 너무 하고 싶다면서 의자에 가만히 앉아서 기다리기보단 내가 정말 하고 싶을 때 정말 하고 싶다고 직접 말할 수 있는 용기도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게 멋있는 게 아닌가 싶고.
<미인도>로 그것이 실제적으로 가능하다는 걸 체감했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이런 작품 만나게 되면 이렇게 해봐야지, 라고 생각만 했다가 비로소 배운 거지. 물론 그런 작품이 나한테 왔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행복한 일이지만.
사실 국내에서 여배우를 위한 캐릭터를 만나기란 쉽지 않다. 그만큼 욕심이 났을 법한데 배우로서 캐릭터를 연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연기를 위해 뭔가를 익히고 배워야 할 것이 많다는 건 부담이 아니었을까.
가능성만 봤다. 후차적으로 이렇게 되지 않았을까, 라는 걱정부터 했다면 순조롭지도 않고 되게 힘들어했을 거다. 그런 건 하나도 보지 않고 가능성만 보고 뛰어들었다.
일단 그림을 배우는 것이 가장 큰 과제였을 거다.
디테일하게 그리는 건 대역들의 손을 빌렸다. 다만 이게 무슨 그림을 그리는 건지도 모르면서 이 동작이 그저 흉내 내는 것만은 아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첫 번째는 붓만 제대로 잡자, 두 번째는 무슨 그림을 그리는지 모르는 채 흉내내지 말자. 실제로 영화에서 나오는 그림들을 안보고도 설명할 수 있을 정도로 공부했다.
신윤복이란 사람에 대한 이해도 필요하다.
신윤복에 대한 역사적인 공부는 캐스팅 전에 이미 마쳤다. 고서에 나와있는 것부터 후세사람들이 신윤복에 대해서 평가하는 자료들까지, 역사를 거슬러서 공부했다. 나름대로 내가 본 신윤복의 그림에 대한 여러 가지 자료를 토대로 한 역사적 사실을 두고 그 위에 즐거운 상상을 덧입힌 거지.
<바람의 화원>은 봤나?
초반에만 봤다. 요즘은 너무 바빠서 학교도 못 가는 중이라. (웃음)
의식되는 바는 없나?
문근영 씨와 내가 하는 신윤복이 어떻게 보였나?
사실 맥락적으로 많이 다르다. 다만 소재 자체가 동일하기 때문에 선점된 이미지에 후발주자가 비교될 가능성을 배제하긴 힘들 거 같다.
나는 단순해서 그런 건지 몰라도 그런 걱정은 하나도 안 된다. 아마 그런 걱정부터 했다면 여기까지 못 왔겠지. 나는 윤복이다. 그래서 <바람의 화원>의 문근영 씨를 볼 때는 같은 윤복이로 바라보는 게 아니라 시청자의 입장에서 즐기는 드라마로 보게 됐다. 그녀와 비교하는 것에 대해서 나쁘게 생각하지 않고 부담스럽지도 않다 .그냥 즐거운 관심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되려 기분이 좋다.
자꾸 윤복이 윤복이라 하는데,
나 윤복이다. (웃음) 혜원이라고도 부른다.
상당한 애정이 느껴진다. 윤복이, 신윤복이라는 캐릭터는 김민선과 동떨어져서 만들어진 게 아니라 내 발끝에서부터 끌어내진 녀석이기 때문에 또 한 명의 나인 거지. 김민선의 또 다른 자아? 그렇기 때문에 애정이 느껴지는 건 당연하지 않을까? 난 아직까지도 민선이라고 부르는 것보다 윤복아, 윤복아, 하는 게 더 좋은 거 같다.
나도 윤복 씨라고 불러야 할까? (웃음)
윤복 씨는 이상하고. 윤복아, 이래야 된다. (웃음)
촬영장에서도 분위기가 비슷했을 거 같다.
현장에서 민선이라고 하는 분들은 없었다. 대부분 우리 윤복이, 아니면 혜원아. (웃음)
그런 상황들이 캐릭터에 대한 몰입에 도움되는 바가 있었을지 모른다. 다만 그렇게 애정이 남는 캐릭터라면 촬영 후에도 배우에게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을 것 같은데, 어떤가?
나는 나다. 내가 조선 후기 신윤복이라는 인물의 자리로 들어간 것뿐이다. 김홍도를 만나고, 강무를 만나고, 설화를 만나고, 그림을 그리기 위해 나의 성(性)을 버리고 남자로 살아간다. 그렇게 내 인물에게, 나에게 정체성을 주는 거다. 그럼 윤복이가 될 수 있다. 그리고 촬영장에서 벗어나면 나는 내 일상을 지나고 있다. 그럼 나는 김민선인 거다. 그 자리에 가면 사람이 변하는 것과 같다. 시상식에 있으면 격조나 품위가 생기다가도 친구들과 카페에 가면 떠들며 놀게 되는 것과 똑같다. 그 자리의 성격에 맞게 내 모습이 변하는 거지.
모든 사람이 쉽게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너무 집착을 하기 때문이 아닐까. 되려고 집착하고 되지 않으려고 집착하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굳이 벗어날 필요도 없고, 끌어안고 살 필요도 없다. 또 하나의 나니까.
배우로서 뭔가 자신만의 특별한 시각을 느낀 적이 있나.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조금 다른 거 같다. 상대방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고 그 사람의 입장에 대해서 생각하려 한다. 심지어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저 사람은 회사원일 것이고, 저 사람은 애인 만나러 갈 것이고, 이런 식으로 인생을 부여한다. 그냥 지나치는 그 짧은 순간에 보여지는 발걸음만으로. 그건 그 사람에게 애정을 품게 된다는 것이다. 세상을 보는 시각이 이렇게 다르기 때문에 배우로서의 시각이 남들보다 예민하고 감정적일 수 밖에 없는 게 아닐까.
시대극은 인물보다도 시대가 주인공이 될 수 있다. 시대에 대한 이해도 필요하고 시대에 맞게 자신의 톤을 조절하는 것도 중요하다. 내가 캐스팅되기 전에 역사적 사실에 대한 공부를 했던 이유도 그런 게 밑바닥에 쌓여있지 않으면 어떤 상상력을 입혔을 때 상당히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뿌리가 깊고 튼튼히 박혀있어야 꽃이 예뻐지는 거다. 꽃이 예뻐지라고 꽃잎만 닦아주고 좋은 햇빛을 아무리 비춰줘도 뿌리가 튼튼하지 못하면 금방 죽어버린다. <미인도>라는 발칙한 상상이 지금 가능할 수 있는 것도 역사가 있기 때문이다. 난 그렇게 준비된 세상이란 바탕을 보여주는 사람이 되는 것이 목표였다.
처음 연기를 시작했을 땐 그런 것까지 생각하지 못했을 거다.
이런 저런 경험을 해봤기에 가능한 법이지. 고속도로가 어디 있는지 알면서도 차에 타거나 기차에 타지 않고, 걸어서 가볼 수 있는 데까지 가보고 싶다. 강에서 수영도 하고, 자갈밭에서 뛰어보기도 하고, 넘어져서 피도 흘리고, 손을 덜덜 떨어보기도 하다가도 산들바람에 기분 좋아지기도 하고, 꽃도 보고 나무도 보고, 그런 사람이고 싶다.
본인에게 그런 연기적 철학을 정립하게 만들어준 특별한 작품이 있었나.
얼마만큼의 비중을 가지고 있고, 얼마만큼의 퀄리티를 가지고 있느냐를 떠나서 매 작품을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면서 한다. 혹은 첫 작품이라고 생각하기도 하고. 다만 우연적으로, 혹은 필연적으로 겉으로 보여지기에 정말 인생의 터닝포인트처럼 보이는 순간이 있다. 나는 보여지는 터닝포인트를 위해서 매 순간을 그렇게 살아왔고 잘 넘어온 거 같다. <미인도>를 통해서도 속풀이를 제대로 했고 마음껏 연기할 수 있는 공간들이 있어서 정말 행복했다.
하이틴 잡지 모델 출신이다. 현재 동년배의 여배우 중 당시에 함께 활동했던 잡지 모델 출신이 적지 않다.
활동하기 참 좋은 시기에 같이 일을 하게 됐고 그만큼 다른 분야로 연결이 용이했다. 어렸을 때부터 봤던 동료들이 옆에 있다는 게 한편으론 든든하고 의지가 많이 된다. 나는 단 한번도 연기하고 있는 내 모습을 상상해본 적이 없었다. TV도 잘 안보는 학생이었던 나와는 전혀 먼 세상이었다. 모델이나 연기나 처음 했을 때 내가 너무 잘했으면 지금 이 일을 안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너무 잘했다면?
처음에 너무 못하는 거다. (웃음) 당연히 못하겠지. 너무 소극적이었으니까. 누군가가 날 이렇게 바라볼 거라고 생각했던 적이 한번도 없었다. 내 관심 밖이었던 만큼 당연히 카메라 앞에서 내가 어떻게 보여지는지, 어떻게 보여줘야 하는지도 몰랐었고. 너무 소극적이고 부끄러운 사람이라 그걸 통해서 뭔가 관심을 끌고 싶다는 생각은 상상도 못했다. 첫 촬영할 때 그 어색함이 여실히 다가왔다. 그게 너무 창피해서 오기로 모델을 계속하게 된 거다. 그런데 그게 고맙게도 단계적으로 연결돼서 연기도 하게 됐지만 역시나 너무 못해서 또 오기로 계속 달려왔던 거 같다. 그렇기 때문에 고속도로를 안 타고 자갈밭을 걸어왔다고 생각하는 것이 당연한 게 아닌가 싶고.
잘 하지 못한다고 생각하면 일반적으로 위축되기 마련인데. 난 여전히 부끄러운 게 많이 보이는 사람이라 그걸 이겨내는 게 사명이다. 남들이 너무 못해, 라고 얘기하기 전에 내가 보는 내 모습이 너무 못해, 라고 생각하면 그걸 이겨내고 싶은 거지. 사실 내가 연기할 때 가장 행복한 사람이구나, 라는 걸 알았던 건 <가면>에서부터다. 그전까진 배우는 과정이 즐거운 작업이었지만 <가면>때부터 내가 가장 마음 편한 곳이 현장이구나, 이게 내 천성이구나, 현장에서 살아야 되는 사람이구나, 라고 깨닫게 됐다. 내 직업의식이 그 때부터 생기기 시작한 거지. (웃음)
불과 1년 전이다. 10년을 다 채우고 나서야 비로소 그런 생각을 했다는 건가.
시기에 따라서 목표점이 다르지 않을까. 20살 초반의 김민선은 연기를 잘 하자는 오기가 그 목표점이었던 거 같다. 연기를 정말 잘하고 싶었다. 그러다 5년 후에 어머니께서 돌아가시고 난 다음에 그 목표점이 사라진 거 같더라. 그리고 다음 5년 동안 방황하면서 꾸준히 연기했지만 찰나마다 내 안에서 고민이 상당히 많았다. 목표점이 사라지니까 어딜 갈지 몰랐던 거지. 익숙하게 현장에 있긴 하지만 내 안의 생명력을 내가 느끼지 못했던 순간이었다. 그렇게 그 시기를 보내다가 현장에서 사는 내가 너무 행복하다는 느낌을 얻는 순간 나의 목표점이 다시 생긴 거지.
5년 전 돌아가신 어머니에 관한 이야기를 종종 하더라. 어머니가 자신에게 끼친 영향력이 적잖아 보인다.
아마도 내가 그분의 존재감을 살아계실 때 알았다면 지금 이렇게 말할 필요는 없었을 거다. 자식은 그런 거 같다. 너무 가까이 있기 때문에 몰랐던 부분이 그 공간이 비워지고 나면 그게 너무 큰 공간이었다는 걸 그제서야 깨닫게 된다. 우리엄마는 완전 멋있는 분이셨다. (웃음) 남자보다 더 대담하고 어느 여자보다 더 소녀 같았다.
현재 자신의 중성적인 매력도 유전인가 보다. (웃음)
그 어머니에 그 딸? 난 엄마처럼 안될 거야, 라고 했는데 난 엄마보다 더 하는 거지. (웃음) 내가 엄마한테 너무 죄송한 건 내 엄마가 여자라는 걸 까맣게 잊고 살았다는 거다. 가신 다음에야 비로소 우리 엄마도 여자였다는 걸 깨달았다. 너무 어렸지. 내가.
대부분 자식들이 그렇다. 여자라고 인식하기 보단 그냥 엄마인 거지.
엄마는 또 다른 성이라고 생각하는 거다. 남자보다 더 강한 게 엄마라고도 하잖아. 그게 가능한 건 수많은 위험 속에서 내 자식을 보호하는 엄마는 남자보다 강해져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엄밀히 따지면 여자다. 그 누구보다 순수하고 너무 여린 여자. 그리고 앞으로 나 역시도 엄마가 될 것이고.
그리고 분명 아들보단 딸이 어머니를 이해할 수 있는 지점도 있는 거 같다.
여자끼리 통하는 뭔가가 있다. 남자끼리 통하는 뭔가가 있는 것처럼. 몇 자의 단어와 몇 마디로 설명할 수 없는 뭔가가 있다. 우리 어머니께서는 분홍색 립스틱을 좋아하셨다. 그런데 어머니께서 화장을 자주 하시는 분은 아니었고, 거의 안 하고 사셨지. 나중에 알았지만 어머니께서는 아버지를 위해서 빨간 립스틱을 안 바르신 거다. 여자가 가장 아름다워 보이는 시기가 빨간 립스틱이 어울리는 시기다. 난 아직 잘 안 어울리지만. (웃음) 빨간 립스틱을 바르고 싶어도 가족들을 위해서 분홍립스틱을 바르거나 그것조차도 안 바르고 맨 얼굴로 다니신 거다.
결국 어머니는 여자로서보다 어머니로서의 삶을 택한 거다. 여자가 어머니가 된다는 건 결국 나를 버리는 것에서 시작되는 건가 보다. 자식이 생각하기에 그게 아픈 거다. 그럴 수밖에 없으니까. 나도 그렇게 전철을 밟을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가슴이 아픈 거다.
어쩌면 <미인도>에서 신윤복의 삶도 비슷하다. 여자지만 남자로 살았으니까.
그녀는 그런 여자였던 거지. 내 마음이 가는 곳을 그 누구한테도 말 못하는 아픔이 있는 여자지만 제 눈에 비치는 세상을 그림으로 옮길 줄 알았던 대담성을 가진 여자랄까.
신윤복은 자신이 봉인한 여성으로서의 자아에 둔감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신윤복이 여성으로서 사랑을 깨닫게 되는 건 진짜 자신의 삶을 깨닫게 되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김홍도에게 그런 고민들이 무의미하다는 걸 다시 한번 이야기해주고 싶어한 거다. 더 이상 나로 인해서 불행이 없길 바랍니다, 그래서 정사가 이뤄지는 거고.
<미인도>는 배우경력에 있어서 가장 큰 파격처럼 보인다. 그만큼 모험의 여지도 있었고.
나는 급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천천히 생각하고 싶었고, 천천히 찾고 싶었다. 관객은 한 사람이나 어느 상황을 볼 때 자신들의 시각을 가지고 본인이 원하는 것만 본다. 나에게 찾은 모습도 그렇게 발견된 모습일 테고. 그런데 <미인도>를 기점으로 아마 조금 달라지지 않을까,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전형적인 여성처럼 보이고 싶은 마음은 없었나. 어쩌면 <미인도>를 통해 뒤늦게 그런 이미지를 스스로 발견했을지도 모르겠지만.
지금은 아니지만 예전엔 그런 것에 대한 고민이 없진 않았다. 비유를 하자면 담장에 장미꽃들이 만발해있다고 하자. 지나가는 사람들이 보고 너무 예쁘다고 한다. 그런데 과연 그 장미꽃들은 누군가가 와서 예쁘다고 말해주길 기다리고 있었을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누군가의 사랑을 받아야만 내가 사랑 받을 수 있는 존재라고 깨닫는다면 그건 참 가슴 아픈 순간일 거다. 난 이미 날 사랑하고 있고 내가 날 아낀다면 남들이 날 어떻게 봐주는가는 그 다음 문제인 거다. 그건 그리 중요한 얘기가 아닌 거 같다. 지금 <미인도>로 인해서 많은 분들께서 관심을 주시니 기분은 참 좋다. 이렇게 사랑 받을 수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난 그 전부터 이미 내 자신을 아끼고 사랑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 순간에 대해서 휩쓸리고 싶은 생각은 별로 없다. 사람들이 관심 없을 때가 있을 때보다 더 많을 수 있는 법인데 거기에 휩쓸리고 싶진 않다.
전체적으로 카메라에 잡힌 다채로운 풍경들이 아름답더라. 그만큼 로케이션 이동도 잦았을 것 같고 고생도 많았을 거다.
정말 대단한 건 순제 32억에 100일 74회 차 촬영을 했다는 거다. 매일같이 이동하고 밤새면서 촬영만 했다는 소리다. 그것도 장마철이 한참 피크일 때. 단 하루도 촬영을 미룰 수가 없었다. 그러면 개봉 날짜가 틀려지는 거니까. 후반작업도 한달 반 정도밖에 여유가 없었다. 아주 타이트했지. 서로에 대한 믿음이 없었다면 여기까지 올 수도 없었을 거다. 사극을 어떻게 32억으로 찍어. 정말 그 적은 제작비로 필요 없는 건 아끼고 허리띠 졸라매면서 갔다.
한여름에 겹겹이 한복을 껴입고 연기하느라 고생도 많았겠다.
그건 배우가 견뎌내야 할 몫인 거지. 우리 스태프들도 나름대로 견뎌내야 할 몫이 있었고, 서로 불편한 걸 불평하지 않는 것에 감사하면서 하루하루 최선을 다했다.
처음으로 사극에 출연했다. 사실 외모가 이국적이라 사극에 어울리는 인상은 아니다.
도구는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틀려지는 거 같다. (생각하다가) 연필, 글 쓰는 물건이다. 하지만 연필을 비녀처럼 꽂아도 된다. 혹은 연필로 스트레칭도 할 수 있다. (웃음) 연필은 도구다. 배우도 도구다. 배우가 난 이렇게 생겼으니까 이런 것만 해야 돼, 라고 생각한다면 더 이상의 진전도 없고 성장도 없을 거다. 배우에게 정말 중요한 건 마음가짐이라고 생각한다. 이미 내가 그 안에 들어가 있기 때문에 보는 사람들도 불편하지 않은 거다. 만약 내가 <미인도>를 어색해했다면 보는 분들도 어색해했을 거다.
자신감이 느껴진다.
생각한대로 이뤄지는 것 같다. 내가 피곤하다고 느끼면 정말 피곤한 일이 생기고 행복하다고 느끼면 행복한 일이 생기는 거 같다. 앞서서 걱정하는 것보단 가능성을 보는 게 훨씬 더 값지지 않을까. 그러다 보니까 하루하루 너무 즐겁게 사는 것 같고 재미있다. 사는 게.
도전적이면서도 긍정적이란 생각이 든다.
그만큼 누구보다 삶에 집착과 욕심이 큰 사람일 수도 있다.
지금까지의 작품들 중 가장 큰 규모로 개봉한다더라. (홍보사 직원에게)규모가 어떻게 되지? (홍보사 직원)300개요. 교차 상영하는 거 아냐? 요즘은 통 믿을 수가 없어. (웃음) 그래도 최소한 대체 어디서 영화 상영하냐고 전화는 안 오겠네. (웃음) 예전엔 다들 나한테 전화해서, 도대체 어디서 하는 거야? (웃음) 그러다 보니 다 다운받아서 본다더라.
전도연과 하정우에게 캐스팅 제의를 던진 시점은 각각 <밀양>과 <추격자>가 공개되기 전으로 알고 있다. 원래부터 대중들에게 어느 정도 신뢰감을 주는 배우들이었지만 우연 같은 시의성이 겹쳐서 더 큰 화제가 발생했다. 하정우는 캐스팅하니까 <추격자>가 흥행질주를 달리면서 여기저기 거론되고 전도연에게 제의를 하니까 나중에 깐느에서 상 타더라. 물론 그 전부터 이미 알려진 배우들이었지만 상대적으로 매스컴의 관심을 더 받게 됐다는 건 좋은 거 아닐까.
<아주 특별한 손님>과 마찬가지로 다이라 아즈코의 단편을 원작으로 해서 <멋진 하루>를 연출했다. 그 이전에 <여자, 정혜>도 단편 원작이 있는 작품이고, KBS에서 연출한 <내가 사랑한 집>도 원작이 있다. 개인적으로 원작을 바탕으로 둔 각색을 선호하나? 음, 하다 보니 그렇게 된 거라 그게 나와 맞는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내가 오리지널 시나리오를 안 쓰는 건 아니지만 단편 소설을 원작으로 했을 때 안정감이 확보되니까, 그런 면에서 접근이 편안하다고 할까. 그리고 장편보단 단편이 더 접근하기 편한 것 같고, 명쾌한 주제를 전달하고 끝내잖아. 디테일은 내가 붙이면 되고. 좋은 작가들의 아이디어를 채용하는 셈이지. 물론 앞으로 오리지널 시나리오를 안 쓰겠다는 게 아니라 확실히 여러 가지 면에서 단편을 영화화하는데 장점이 있다는 말이다.
단지 텍스트를 이미지로 만들고 싶어서 단편을 영화화하는 건 아닌 거 같다. 다만 맥락이 잡힌 문장에 다른 수식어를 붙여보고 싶은 게 아닌가 싶다. 내가 생각하는 것들, 내가 해석하는 여지들이 있다. 단편은 그런 것들이 끼어 들어갈만한 여백을 많이 갖고 있기 때문에 그런 작업이 가능한 것 같다.
<멋진 하루>는 같은 원작자의 작품이기 때문인지 몰라도 <아주 특별한 손님>과 유사한 면모가 많이 엿보인다. 어떤 생경한 길 위에서 시점이 시작된다거나 예측하지 못한 지점으로 주인공의 동선이 이동된다던가, 그리고 일단 그 사연들이 뜬금없다. 개인적으로 같은 원작자의 작품을 연속해서 영화화했다는 건 그만큼 그 두 작품에 당신의 취향이 반영됐기 때문이라고 봐도 될 것 같다. 당긴다. 우연함 속에서 어떤 깨달음을 찾아간다는 것? 혹은 찾아내진 못해도 찾아가는 여정, 이건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행태 속에서 누구나 한번쯤 꿈꿀만한 일이다. 그건 부정적인 일탈이 아니라 긍정적인 일탈이니까. 다만 용기가 없어서 누구나 실제론 못하겠지. 그래서 우연한 사건이 벌어지면서 그런 게 가능하면 참 좋겠다 싶더라. 그건 내가, 그리고 다른 사람들도 할 수 있는 거니까, 그렇게 영화를 따라가는 거지.
우연한 과정 속에서 깨달음을 얻게 되는 여정이 결국 필연처럼 느껴진다. 그 우연한 여정을 거친 인물들은 스스로 어떤 미세한 변화를 감지한다. 그건 거대한 변신이 아니라 소소하게 느껴지는 변화다. 그런 작은 변화에 대한 호감이 본인의 영화에 존재한다. 그게 현실적이란 생각이 든다. 물론 영화가 꼭 현실적이어야 될 필요는 없다. 다만 이런 소재가 지닌 장점은 상당히 현실적인 이야기를 던지면서 그것이 엄청난 변화를 부여하진 않더라도 그것이 굉장히 중요한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작은 변화가 얼마나 중요하고 힘든 것인가 얘기한다. 큰 변화보다 작은 변화가 훨씬 더 힘들다는 거지. 꼭 영화가 그런 얘기를 해야 되는지 모르겠다고 할 수 있지만 일단 어떤 매체로든 그런 이야기를 한다는 것 자체가 상당히 중요한 게 아닐까. 우리 대부분은 엄청난 것을 해내야 한다는 강박에 싸여있다. 누구나 1등을 해야 되고, 엄청난 성공을 해야 되고, 많은 돈을 벌어야지, 그런 강박이 부질없다는 걸 알아야 한다. 작은 것을 먼저 느끼고 받아들이는 게 모두에게 필요하지 않을까,
350만원이라는 액수가 그런 의미를 내포하는 것 같다. 350만원이 적은 액수는 아니더라도 그 액수는 희수의 내면적 여유가 어느 정도 너비인지 물질적으로 구체화한다. 그만큼 350만원이란 액수를 정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 같다. 지금 현실에서 사람들에게 가장 애매한 액수가 어느 정도일까를 생각했다. 많은 것 같지만 별 거 아닌 돈 같기도 할만한, 그 정도의 논란이 생길 수 있는 액수를 정하는 게 좋겠다 싶더라. 너무 명확하게 돈이 많거나 적으면 속셈이 드러나버리니까. 그래서 사람들에게 물어봐서 조율을 했다. 얼마 정도가 적절할지, 그리고 그 중간을 선택했다.
그 액수만큼 희수의 애매한 태도도 관건이다. 희수는 자기 입으로 원래는 돈 없다고 하면 잔뜩 욕해주고 오려고 했는데 병운이 돈을 준다고 하니까 동행하게 됐다고 말한다. 결국 희수를 이끈 건 호기심에 가깝다. <아주 특별한 손님>에서의 보경도 비슷한 느낌이 있다. 그런 예기치 않는 상황에서 예측할 수 없게 진전되는 상황에 대한 호기심을 즐기나 보다. 실제로 내게 그런 상황이 생기면 용기가 없어서 못할 거다. 다만 마음 한구석에서 한번 해볼까라는 생각이 들겠지. 그만큼 영화 속 여주인공들은 용기가 있는 거다. 대부분 피상적으로 내 영화 속 캐릭터들이 약하고 여린 사람들이라 생각하지만 사실 내가 그리는 사람들은 가장 용기 있는 사람들이다. 그걸 드러내서 표현하지 못하는 사람들일 뿐이지. 그리고 마지막엔 자기가 원하는 걸 다 성취해간다.
원작의 남자는 때가 묻은 느낌이지만 병운은 좀더 순수하게 묘사된다. 의도적으로 순수한 느낌을 준 건 그게 좀 더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을까 싶어서다. 나쁜 놈 같지만 보다 보면 전혀 그렇지 않은 인간처럼 보이는 거지. 그러려면 소설보단 순수한 어린애 같은 쪽으로 가는 게 맞을 거라 생각했다.
사실 당신의 영화에서 남자들은 대부분 무례하다는 느낌을 준다. 사실 실제로 한국 남자들이 무례하지 않나. 대체적으로 우리나라 사람들 특성 자체가 무례함이라 본다. 자신은 무례하지만 남의 무례함을 참지 못하는, 그게 우리나라 사람의 전형이 아닌가. 다만 그걸 남자를 통해서 보여주는 거지. 사실 여자들도 무례하다. 그래서 이번엔 희수가 만나는 여자들도 다 무례한 거다.
어쩌면 어떤 남자캐릭터는 좀 더 악한처럼 묘사될 수 있는 여지가 있었다. <여자, 정혜>의 삼촌이라던가, <러브토크>에서 써니(배종옥)의 전남편은 맘만 먹으면 정말 사악하게 그릴 수 있는 인물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건 사람에 대한 전형적 태도를 취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 추측된다. 충동적인 상황이 사람을 변화시킨다는 믿음이랄까. 정확히 캐릭터가 이렇다고 설명하는 건 힘들다. 예를 들어 병운의 캐릭터를 두 줄로 얘기해달라면 할 수 없는 거다. 사람은 복합적이니까 단순히 어떤 인물이다라는 식으로 규정이 안 된다. 그리고 주인공과 마찬가지로 주변인물도 규정할 수 없는 거다. 단지 그 순간 극한 행동을 하느냐, 아니면 선한 사람처럼 보이느냐 차이일 뿐이지. 사람들이 생각하기에는 왜 내영화에는 일관적으로 무례하고 여주인공을 고립시키는 남자들이 나오냐고 할 수 있지만 어쩌면 그건 그 상황만 그렇게 된 것일 수도 있는 거다. 그 사람들도 어디선가는 좋은 사람들일 수 있는 거니까. 실제로 착한 사람도 많이 나오는데 착한 사람들은 잘 안 보인다. 반대로 너무나 무례한 인간들은 눈에 잘 띈다.
오프닝 시퀀스의 시선은 어떤 대상을 찾는 것 같은 느낌이다.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는 느낌인 거 같기도 하고, 우왕좌왕하는 느낌인데 희수를 발견한 카메라가 그 뒤를 쫓기 시작할 때는 조심스럽게 뒤를 밟는 느낌이다. 훔쳐보는 느낌이 희수의 캐릭터를 알려주는 거다. 희수는 경마장에서 철저한 이방인이 되는데 자기가 남들에게 이방인처럼 보이지 않았으면 한다. 그런 사람들 있지 않잖아. 어디 가도 사람들 눈에 안 띄었으면 하는, 두리번거릴 수 없는 거지. 슬쩍슬쩍 곁눈질로 사람들의 이목을 피하고 싶은 캐릭터인 거지. 그리고 난 그 정도만 얘기하고 그 다음은 뛰어난 배우가 있으니까 알아서 맡기는 거다.
<아주 특별한 손님>과 마찬가지로 <멋진 하루>도 생경한 이야기지만 각자 그런 생경함을 중화시키는 요소들이 있다. <아주 특별한 손님>은 시골의 이미지가 그런 역할을 했던 것 같다. 그에 반해 <멋진 하루>는 배우들의 연기가 그 역할을 하는 게 아니었나 싶다. 배우들이 영화에 능동적인 느낌을 준다고 할까. 소재 자체가 굉장히 경쾌하고 움직임이 많은 영화일 수밖에 없었다. 그럼 거기에 맞게 캐릭터들도 운율에 따라서 움직여주는 거다. 영화의 음악도 그래서 재즈여야 된다고 생각했다. 저 사람의 움직임이 프리 재즈 같다가도 어느 순간엔 2박자의 구닥다리 재즈 같은 느낌도 있고, 좀 더 뒤로 가면 브라질 리듬이 가미된 음악도 나온다. 더 뒤에 가면 애잔한 느낌이 더해져서 멜로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 장면 자체가 멜로처럼 다가오는 형식을 취하기 때문에 그에 맞춰서 캐릭터들은 다같이 자연스럽게 분위기가 업 되는 거다.
영화마다 사람들이 모여서 왁자지껄해지는 광경이 한두 번씩은 꼭 나오더라. 원작과 상관없이 의도적으로 집어넣은 부분이 있다. <여자, 정혜>에 호프집에서 TV보면서 떠드는 패거리의 장면을 넣은 건 그것이 일상에서 가장 흔한 장면이기 때문이다. <멋진 하루>같은 경우는 두 사람을 군중 속에 집어넣고 싶었다. 그래야 두 사람의 존재가 더 명확해지니까. 그리고 거기서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된다. 병운이 말하지 않았던 병운의 과거가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해서 드러난다던가, 희수가 그런 얘기를 듣고 갑자기 여유를 찾았다는 듯이 담배를 피고, 이런 건 군중 속에서만 벌어질 수 없는 사건이 아니었을까. 나름대로 하나의 효과적 장치라고 생각했다. 군중 속에 인물들을 놓여졌을 때 캐릭터가 생경해지는 순간이 있다. 혹은 뜬금없이 엉뚱해지거나 그로 인해 웃기는 상황도 발생하고. 물론 그게 대단히 웃기진 않고 심심한 느낌이 더불어 나타난다. 그렇게 우리 주변의 캐릭터들을 넣어보는 게 나름의 재미라고 생각했다.
<여자, 정혜>나 <아주 특별한 손님>의 주동인물인 정혜나 보경은 식물적인 여자들이었다. 그에 반해 그녀들의 주변인물들은 상대적인 생동감이 있다. <아주 특별한 손님>에서 김영민 씨가 그런 역할을 했는데 <멋진 하루>에서도 한몫 하더라. 역시나 무례하기도 하고. (웃음) <아주 특별한 손님>의 기용(김영민)이 <멋진 하루>의 병운 같기도 하다. 그런데 어쨌든 결국 미워할 수 있는 인물이 아니다. 단지 우리 주변에 있는 한심한 사람일 수 있는 거지.
영화에 나오지 않고 예고편에만 등장하는 장면이 있더라. 희수가 카페에서 누군가에게 병운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 같던데, 후일담 아닌가? 맞다. 희수가 그 날의 이야기를 거짓말 반, 진심 반으로 얘기하는 후일담 장면이다.
말미에 에필로그 형식으로 병운의 스페인 막걸리 집 간판이 등장하기도 한다. 전작에서는 그 상황 이후, 즉 인물들의 후일담을 드러낸 적이 없었다. 예전엔 시나리오 단계에서 그런 장면이 없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시나리오 자체에 그게 있었고.
전작들에서는 인물의 어떤 변화가 감지되는 지점에서 이야기가 끝나곤 했다. 결국 <어떤 하루>를 통해 처음으로 후일담을 묘사한 셈이다. 이전의 얘기는 그 전에 멈추는 게 맞을 거라 생각했지만 <멋진 하루>는 거기까지 얘기해주는 게 맞을 거라 생각했다. 나름대로의 판단을 내린 거지. 사실 어디까지 보여줄 것인가에 대해서 고민을 많이 하긴 하는데 대부분 시나리오 단계에서 판단을 내린다.
그런데 왜 희수의 후일담은 영화에서 누락된 건가? 원래 두 가지 버전을 생각했었다. 지금 극장에서 상영되는 버전 외에 또 하나의 버전. 지금 버전은 굉장히 스트레이트한 진행이지만 사실 조금 복잡한 편집을 해보고 싶었다. 굉장히 위험한 시도라면 시도일 수도 있고. 원래 후일담 말고도 제3자들이 희수를 이야기하는 장면도 찍었었다. 특별한 사정이 있어서 다른 버전을 안 만든 건 아니고 내가 생각한 다른 버전을 만들기에 내 스스로 몇 가지 결여된 지점이 있다고 판단됐고 이 상태론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을 수 없을 거란 생각이 들어서 편집하는 과정에서 다른 버전을 포기했다.
말을 듣고 나니 그 후일담이 그저 서사적인 에필로그 정도로 배치될만한 사안이 아니었나 보다. 그런 정도가 아니었다. 굉장히 복잡한 거였다.
어쩌면 좀 교차적인 배열 같기도 하고, 약간 모던한 형식의 배열을 취해보려 했는데 그 씬들의 완성도가 떨어졌다.
생각했던 것보다 결과물의 형태가 불만족스러웠나 보다. 생각해보면 전작들에서 주인공 여성들이 자신의 사연을 스스로 말하는 경우도 없었다. 그런데 희수는 스스로 입을 열더라. 그 덕분에 이 영화에서 좀 더 적극적인 느낌이 발생하는 것 같기도 하다. 기본적으로 희수는 이전에 내 영화에 나왔던 여자 캐릭터들과는 다른 인물이다. 희수가 과연 병운이를 왜 찾아갔을까, 물론 자기 하소연까진 아니더라도 희수에겐 확실히 누군가 기댈 수 있는 대상이 필요했던 거다. 그리고 병운이가 그 역할을 해준다. 개입하는 인물이 아니라 희수에게 필요한 걸 들으면서 모른 척 해줄 수 있는, 희수에겐 정말 완벽한 대상인 셈이다. 이유를 딱 떨어지게 설명하진 않지만 희수가 그래서 병운을 찾아간 거라고 나는 생각했다. 야, 이 나쁜 놈아, 이렇게 욕도 하면서 자기 하소연도 슬쩍 던질 수 있는 편안한 대상이 필요했던 건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 녀석 밖에 없는 거지. 그런 목적을 숨기고 갔다.
빚을 남긴다는 건 인연의 고리를 남기고 싶다는 희수의 속마음이기도 하다. 말을 하지 않을 뿐, 그런 느낌이지. 그리고 그건 관객만 아는 비밀이고. 만약에 이 영화를 좋게 느끼는 관객이 있다면 그런 비밀을 공유한다는 기분을 느끼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결말부에서 빚을 둘러싼 두 여자의 구도가 흥미로웠다. 병운을 대신해 빚을 갚겠다는 그 여자에게 희수가 돈을 받지 않겠다고 하자 그 여자는 ‘물러서지 않으실 거죠?’라고 묻는다. 마치 신경전처럼 보였다. 여자들은 병운에게 경쟁적으로 빚을 주려고 한다. 여러 가지 해석의 여지가 있지만 그 장면은 원작을 거의 그대로 재현한 장면이기도 하다. 대부분의 장면들은 뉘앙스를 조금씩 바꿔나갔는데 말미에 그 장면에서 등장하는 그 여자는 원작과 거의 똑같다. 소설을 봤을 때, 엉뚱하지만 그 장면이 여러 가지로 복합적인 감정들을 완성해주는 순간 같았다. 현실에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여자 같기도 하고. 어쩌면 관객에겐 제 정신이 아닌 여자처럼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희수에겐 시사하는 바가 많다. 단순히 착한 여자를 봤다기 보단 자신이 세상에서 많은 것을 놓치고 살고 있다는 걸 그런 엉뚱한 사람을 통해서 느낀다. 하루가 아이러니의 연속이랄까? 마치 이렇게 살지 말아야 돼, 라고 얘기하는 것 같기도 하고. 누가 딱히 교훈을 주는 건 아니지만 인물들을 통해서 희수가 알아서 느끼는 거다.
지금까지 4편의 영화를 찍으면서 항상 여자를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그녀들은 항상 어떤 상처를 지닌 듯 보이고, 영화 속에서 그것들을 점차 치유해 나간다. 그런데 <러브토크>에서 박희순이 연기한 지석은 그 여성들과 심리적으로 유사한 느낌이 있다. 중요한 건 성별이 아니라고 느껴지는 측면이다. 다만 당신이 여성을 대상으로 이야기하는 건 남성보다 여성을 대상으로 둘 때 감성적으로 부합되는 측면이 많기 때문에 여성을 선호하는 것 같다. 소소한 묘사 같은 면에서 좀 더 활용할 수 있는 여지들이 많다고 할까. 그래서 여성을 주인공으로 두는 쪽을 선택한 면이 있다. 사실 남자가 주인공이 돼도 좋다. 다만 그런 소소한 부분들이 달라지겠지.
<멋진 하루>이전까진 주연 배우들이 극 속에서 자기 캐릭터에 철저히 갇힌 인상을 준다. 그래서 감독이 배우들을 철저히 통제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했었다. 전도연 씨도 비슷한 예상을 했다더라. 그런데 막상 직접 연기하면서 최소한의 간섭 외엔 별로 터치하지 않아서 대체 이전엔 어떻게 영화를 찍었을까 더 궁금해졌다고 했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다. (웃음) 전에도 그랬다. 특별히 전도연이라서 간섭을 하지 않은 게 아니라, 하정우도 마찬가지였다. 예전에 작업했던 배우들한테도 필요할 때만 개입하는 게 옳다고 생각했고 앞으로도 그렇게 할 거다.
하정우의 능청스런 대사도 좋았지만 전도연의 리액션이 훌륭했다. 전도연의 리액션이 이 영화의 활력을 원활하게 순환시키는 느낌이다. 무엇보다도 대사량이 상당히 많아졌다. 아마 전부터 대사가 많은 영화를 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예전에는 소재 자체가 대사가 많이 필요 없으니까 못했지만 이번에는 수다스러운 영화라고 규정짓고 수다와 리액션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굳이 비교하자면 우디 알렌 영화같이, 인물 캐릭터들을 보는 재미가 있길 바랬다. 항상 같은 배경에서 배우만 바꿔서 똑같은 짓을 시키는데도 재미있지 않나. 어쩌면 그렇게 배우들도 우디 알렌 영화에만 출연하면 코믹 연기를 생동감 있게들 잘 하는지. 그건 감독의 영향이기도 하지만 영화가 주는 나이브(naive)함과 모던함의 산물이라 생각한다. 예전부터 하고 싶었던 걸 이번에 시도한 거지.
본인이 생각하는 결과물의 예상 범위에서 벗어나거나 모자라다 생각되는 부분이 있나? 내 스스로 완성도에 대해서 만족한다고 얘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정말 가져가고 싶은 것 하나는 가져간 거 같다. 이 영화를 보고 났을 때 한가지 관통되는 느낌은 있었다. 뭐라고 표현할 수는 없지만 그 여행 끝에 느껴지는 쓸쓸한 기운 속에서 마음이 편안하다는 느낌. 그것만큼은 살렸다는 생각이 들어서 다행스럽게 느껴진다. 그건 배우들의 아우라에서 영향받은 느낌도 있을 거고, 나와 배우들의 호흡이 잘 맞아떨어진 상황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기도 하고. 그렇지 않다면 그 하나조차도 못 가져갔겠지.
쉽게 말해서 영화의 말미에 보여지는 희수의 웃음을 관객이 정서적으로 수긍하지 못하면 <멋진 하루>는 실패한 영화가 된다. 그래서 그것까진 된 게 아닌가 싶더라.
매 영화마다 전작의 주연여배우들이 차기작에서 카메오로 출연했다. 사실 어쩌다 한번 해봤는데 이어지게 된 건가, 아니면 애초에 작정하고 시작한 건가? 그냥 철학도 없이 어쩌다 해본 거지. 굉장한 의미는 아니지만 전작의 배우들이 나를 도와줬다는 의미도 있다. 물론 현장에 와서는, 이거 시키라고 오라고 했어? 이렇게 투덜투덜하기도 한다. (웃음) 배종옥 씨 같은 경우는 자기 집으로 와서 목소리 따라고 해서 캔맥주 사 들고 쳐들어가서 녹음기 들고 빨리 하라고 재촉했다.(웃음)
사실 그게 배우들과 원만한 유대감이 없다면 힘든 일이다. 대부분 좋았지. 김지수 씨, 배종옥 씨, 박희순 씨, 한효주 씨, 그 외에도 조연으로 출연했던 배우들도 계속 출연해주시고. 좋으니까 같이 또 하는 거 아닐까. 그 사람들도 내가 싫으면 안 해줄 테고, 나도 그 배우가 맘에 안 드는데 굳이 출연시키려 하지 않을 테고. 서로 즐거우니까 하는 거지.
사실 관객 입장에서는 재미있는 장면이기도 하다. 알고 보면 재미있지. 그런데 모르고 보면 그냥 누가 서 있는지도 모를 거다. 한효주가 어디 있어? 막 이럴 수도 있고. (웃음)
어쨌든 처음에 의도한 건 아니라도 이렇게 계속 이어지게 된 만큼 이젠 이걸 계속적으로 밀고 나가야 될 것 같은 의무가 생기진 않았을까 싶다. 글쎄, 계속 해볼까? (웃음) 지금에 와선 그런 생각이 들어요. 하지만 어느 순간엔 안 되겠지. 만약 내 다음 영화가 사극이라면 전작의 주인공이 사극에 카메오 출연한다는 게 이상할 테고. 그런 건 의미의 연결이 없으니까 잘못하면 장난이 돼버리는데 공교롭게도 지금까지의 영화 4편은 동시대라서 그 인물이 그 자리에 존재해도 아무런 이상이 없는 상황이니까 했지. 억지로 넣을 수는 없다.
그건 관객을 위한 서비스 같지만 오히려 스스로를 위한 위안처럼 느껴진다. 그녀들이 잘 살고 있으리라는 안도감이랄까. 맞다. 정확하게 얘기했다.
그냥 헛소리 하나 한다면 그 중간지점의 이야기를 해봐도 재미있겠다. 배우들이 안 할걸. 너나 가서 해라, 우리가 무슨 네 욕망의 도구냐, 이러면서.(웃음) 아마 창피해서 배우들한테 얘기도 못 꺼낼 거다. 창피해서.
사실 그것이 직접적으로 드러나지 않았을 때 좀 더 생명력이 느껴질 수도 있고. 그걸 의식적으로 하면, 지가 무슨 대단한 짓이나 한다고 배우들 불러서 쇼하고 있냐는 소리 나올 거다. 이전에 내 성격상 못할 거고. 마음으론 하고 싶다고 해도 배우들한테 말도 못 꺼낼 거다. 전도연이나 김지수, 배종옥은 다들 장난 아닌 애들이라 내가 얻어맞을지도 몰라. (웃음) 여배우들이 종종 누나처럼 나를 걱정한다. 그런데 어떤 매체에서 인터뷰 기사의 뉘앙스가 반대로 나왔더라. 여배우들이 나를 물가에 내놓은 어린애처럼 걱정한다고 했는데 기사에는 내가 배우를 그렇게 생각하는 것처럼 쓰였더라. 반대로 여배우들이 날 걱정하지. 제발 좀 돈 좀 벌어라. 제발 좀 극장에 많이 걸리는 영화 좀 하라고.
전도연 씨도 프리 프로덕션 단계에서 감독한테 마음 편히 가지라는 말을 많이 했다던데. 전도연 씨가 걱정 많이 했을 거다. 내가 프리 작업에서 방황을 많이 하거든. 혼자 반쯤 정신 나간 사람처럼 다니니까 배우들이 많이 불안해하지. 저걸 믿고 내가 영화를 찍어야 되나, 걱정 많이 했을 거야. 헛소리하면서 밤새 술 먹고 다음날 정신 없고 그러니 얼마나 신뢰가 안 가겠어.
준비 단계에서 느껴지는 불안감을 철저함으로 상쇄시키려다 보니 고민이 많아지는 게 아닌가. 아무래도 내가 하는 영화가 대단할 게 없잖아. 이슈를 가지고 하는 영화도 아니고, 어쩌면 너무 평범하고 소박하다 보니 대단한 걸 보여줄 수 없다면 뭔가 세심한 뭔가를 해야 되고, 기왕에 완성도도 높여야 하니까. 만약 내가 다른 장르 영화를 했다면 특별히 신경 쓸 부분이 있으니 괜찮을지 모르지만 이건 그렇게 해야만 되잖아. 어쩌면 이건 아무것도 아닌 얘기가 되거든. 그래서 불안하니까 내 속이 많이 썩지.
말 그대로 평범한 것이라 디테일을 살려야 한다는 게 관건이었을 것 같다. 그만큼 프리 작업이 고민스러웠을 테고. 영화를 찍을 때보다 영화를 찍기 전에 시행착오도 많을 것 같다. 아무도 영화화 안 할 것 같은 얘기들이니까 투자 받기도 힘들고, 누구한테 기댈 수 없는 부분들이 있다. 이것도 맞을 거 같고, 저것도 맞을 거 같고, 특별한 정답이 없으니까. 준비 다 해놓고 생각해보면 아닌 거 같아서 다시 뒤집고, 또 뒤집고. 남들이 보기엔 별 거 아닌 듯 하지만 그런 과정이 있어서 만드는 입장에서는 오히려 좀 더 편치 않은 영화다. 그만큼 같이 준비하는 사람들은 더 피곤해지는 거고.
<멋진 하루>는 동선의 변경이 잦다. 물론 <아주 특별한 손님>도 동선의 변화가 있지만 그건 점을 찍고 오는 개념이므로 계속 랠리 포인트가 변경되는 <멋진 하루>가 보다 어려운 작업이었을 것 같다. 거의 대작 수준의 로케이션이었다. 이건 미치지 않고 할 수가 없는 일이랄까.(웃음) 보통 멜로 영화에서 이렇게 많은 장소가 나오진 않지 않나. 그런데 이건 한번 가는 장소는 다시 안 가니까 난리가 아니었지.
기시감을 느낄만한 장소들이 제법 등장한다. 하지만 카메라의 앵글이나 자연광의 느낌이 이국적인 느낌을 부여한다. 그게 목표였다. 촬영팀이나 촬영 감독하고 많은 고민을 했지. 리얼리즘 영화처럼 적나라하게 보여지는 공간을 추구하는 게 아니라 판타지의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게 목표였다. 판타지가 아닌데 판타지처럼 느껴지는 어떤 장치들이 있어야 된다는 게 촬영팀의 관건이었다. 빛을 어떻게 이용할 것인가에 대해서 과학적으로 연구하기도 하고, 마땅한 장소를 수없이 찾아 다니면서 어떻게 이용할 것인지 고민했고. 일반 관객들은 눈치 챌 수 없을 만한 부분이지만 전문가들이 보면 아마, 더럽게 고생했겠구나,(웃음) 느낄만한 지점이 있을 거다.
장소의 고유한 특성을 지우고자 하는 느낌이 있다. 내 영화에서 고집하는 공통점은 무국적성이다. 내 영화에서는 표지판이 거의 안 나온다. 여기가 어느 동네라고 아무도 말하지 않고. <러브토크>때도 로스앤젤레스라는 말은 한마디도 안 나온다. 길거리 표지판도 안 나오고. 물론 마지막에 ‘베이커스필드’가 나오지만 그건 어쩔 수 없이 카메라에 잡힌 거다. 가능하면 카메라 앵글을 잡을 때 최대한 지역성을 감춘다. 예를 들어 우리가 많을 거다.한남 오거리에서 촬영을 몇 번 했는데 카메라를 뒤로 빼면 한남 오거리가 너무나 확연히 드러나서 재미없었다. 그래서 치고 들어가라고 주문하기도 했다. 이런 무국적성을 살려야 거기서 오는 미묘함이 살아난다.
낯설음과 익숙함 사이에 인물을 내려놓고자 하는 건가? 애매모호한 지점에 주인공들을 던져놓는 거지.
영화에서 나오는 정서적 애매함은 그 장소의 속성에서 기인되는 바가 있는 게 사실이다. 그런데 낯선 풍경을 찍어내는 것과 일반적인 풍경을 낯설게 찍어내는 건 다르다. 어느 것에 중점을 두고 촬영하나? 두 가지 다 해당이 된다. 우선은 장소를 찾을 때 후보들을 올리고 그 다음엔 그 장소들로 이동해서 가장 근접한 느낌을 얻을 수 있는 장소로 선택한다. 물론 가끔, 왜 여기서 했을까, 라는 실패한 느낌을 얻기도 하는데 결국 두 가지를 통해서 가장 탁월한 걸 얻는 거다.
가장 좋을 거라 생각했던 장소가 생각보다 별로였다거나 별로라고 생각했던 장소가 생각보다 괜찮았던 경우도 있지 않던가? 경우의 수가 워낙 많았지만 로케이션은 몇 번을 빼고 대부분 만족스러웠다. 노력한 만큼 되는 거라 열심히 하다 보면 실패해도 후회되진 않는 거지. LA에서도 그랬다. 미국 로케이션 매니저가 <러브 토크>는 미국에서 학생 졸업작품 수준의 적은 예산이라고 하더라. 그런데 그 예산으로 할리우드 수준의 로케이션 투어를 하니 가당치도 않은 일이라 하더라. 보통은 그 정도 예산이면 집 하나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한다는데 우린 LA를 다 돌아다녔다.
저예산이기 때문에 걸리는 부분도 있을 거다. 저예산이라 하고 싶어도 못하는 게 너무 많지. 대부분 포기의 과정이다.
반대로 저예산이기 때문에 가능한 이야기일 수도 있다. 그렇다. 이런 얘기를 큰 예산으로 시켜주지도 않을 거고.
<아주 특별한 손님>에 이어서 HD카메라로 찍었다. <아주 특별한 손님>은 HD카메라를 이용한 의도적 기획이었지만 <멋진 하루>는 굳이 HD를 선택할 이유는 없었을 것 같은데. 필름으로 찍어도 상관은 없었지만 기동성 면에서 디지털이 훨씬 도움이 됐다. 필름 쪽은 아무래도 한자리에서 공을 들일 때 유리하다. 디지털에 더 유리한 어떤 외적 요소들이 있어서 그런 건 아니다.
HD카메라는 필름과 달리 필터링이 없어서 적나라한 느낌을 준다. 강렬하게 느껴지지. 그래서 조명치기가 더 힘들다. 지금도 디지털은 계속 바뀐다. 기종도 바뀌고, 점점 나아지고, 데이터도 맨날 바뀌니까 매번 그 데이터에 익숙해져야 한다. 카메라를 다루는 사람들에겐 굉장히 곤혹스러운 일이다. 필름은 이미 완성된 형태라 나름대로 변주가 가능한데 디지털 카메라는 1년이 다르게 바뀐다. 우리가 쓴 기종도 가장 최신 기종이었다.
같은 HD로 찍었지만 <아주 특별한 손님>과 <멋진 하루>의 이미지는 다르다. 단지 시골과 도시의 대조적 환경 때문만은 아닌 거 같다. 이미지의 색감 자체가 달라졌다. 이번에 더 공을 많이 들인 거다. 같은 촬영 감독이고, 비슷한 디지털이었지만 이번에 좀 더 최소한 자연광을 살리면서 인위적으로 할 수 있는 걸 많이 했다. 상대적으로 <아주 특별한 손님>은 짧은 기간 안에 게릴라처럼 찍어서 거칠게 나온 결과물을 노리고 간 것이었고. <아주 특별한 손님>은 가능한 한 자연광 중심으로 갔지만 <멋진 하루>는 인위적 라이팅을 많이 했다. 그런 것들이 아마 좀 더 로맨틱한 느낌을 주더라. 옛날에는 필터를 이용해서 뽀샤시한 느낌을 줬지만 우리 촬영감독이나 내가 그런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최대한 자연광의 느낌을 살리되 크게 드러나지 않는 수순에서 인위적인 라이팅을 가미해서 이것이 로맨스처럼 보이는 효과를 주고자 했다.
사실 로맨스적 행위는 없는데 로맨스의 기운이 느껴진다. 육체는 없는데 정신이 느껴진다고 할까. 그건 마치 남녀의 로맨스가 아니라 자기 자신과의 로맨스 같기도 하다. 그렇다. 자기 연민에 관한 것이다.
당신의 감수성에 대해 배우들의 감정적 동의를 얻는 것도 중요할 것 같다. 내가 다룬 소재 안에서 등장하는 캐릭터의 모습은 누구에게나 있을 것 같은, 혹은 자기 주변에 있을 것 같은 인물들이라 접근이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다만 그걸 통해서 내가 뭘 하려고 하는지 배우에게 전달하는 과정이 어렵다. 물론 너무 친숙한 캐릭터를 연기해야 한다는 건 연기자들에게도 부담일 수 있겠다. 예를 들어 하정우가 <추격자>의 지영민을 연기하는 것도 어렵겠지만 되려 병운이 더 어려웠을 수도 있겠지.
평범한 연출이 힘들듯이 연기도 되려 것이 어렵다? 뭘 보여줄 게 없어 보이니까.
전도연 씨가 말하기를, <밀양>이후로 자신에게 들어온 유일한 시나리오가 <멋진 하루>였다고 하더라. 시나리오가 하나밖에 없어서 내 영화를 했구나. (웃음)
전도연 씨는 시나리오가 너무 좋았다고 했다. 당신의 전작에서 출연했던 배우들의 인터뷰를 보면 다들 시나리오가 재미있었다란 이야기를 한마디씩 하기도 하던데. 그것 참, 의외지?(웃음) 뭐가 재미있다는 건지 잘 모르겠지만 재미있다라기 보단 기특하다는 게 맞는 말 같다. 이런 얘기를 영화화하려는 철없는 애가 있다니 내가 도와줘야겠다, 라는, 배우들의 감정을 건드리는 면이 있는 거 같다. 사실 내 영화가 대단할 것 없이 너무 평범하지만 그만큼 별로 없는 영화다. 배우들은 그런 걸 캐치하는 거 같다. 이런 영화 하나쯤 있어도 될 것 같아 보이는데 없으니 내가 한번 해볼까, 이런 감성을 건드리는 부분이 있었을 것 같다.
배우들은 그만큼 감성이 풍부하기 때문에 더 그럴 수도 있고. 연기 잘하는 배우일수록 시나리오 보는 능력은 가장 뛰어나니까. 내가 같이 작업했던 배우들은 연기라면 둘째가도 서러운 분들이니까 말할 것도 없을 거다. 감독보다도 오히려 시나리오를 더 잘 알지도 모르고. 시나리오를 보면서 스스로 캐치하는 거지. 이미 자기들의 연기패턴이 서있는 배우들이지만 자신의 그림을 그릴 수 있게 하는 이야기라고 판단하지 않았을까. 여백이 많기도 하고, 그런 장점이 있었을지 모르겠다.
남자들끼리 등장하는 장면은 소란스러운 느낌이 강한데 어쩌면 남성을 위시해서 지금의 반대적 형태의 영화를 생각할 것 같기도 하다. 독특한 캐릭터에 대한 욕심이 있다. 병운도 아마 그런 캐릭터라고 할 수 있고. 어딘가에서 봤음직한데 따져보면 실제론 별로 없는 캐릭터. 만약 남자들이 주가 되는 영화를 한다면 내 욕심으론 상당히 독특한 뭔가를 하려고 할 거다. 특이한 코미디가 될 수도 있고.
슬슬 차기작에 대해서 막연하게라도 구상해 볼만한 시간이다. 현재 본인에게 가장 큰 관심을 끄는 게 뭔가? 사실 가장 나를 당기는 건 스릴러다. 항상 강렬한 스릴러를 해보고 싶다는 꿈이 있었지만 예기치 않게 우선순위가 좀 바뀐 거다. 물론 지금까지 할 수 없이 했던 건 아니지만 어쩌다 보니 일관적으로 여자가 주인공인 영화를 해버렸을 뿐이다. 개인적으로 살 떨리는 스릴러 한번 해보고 싶다. <추격자>를 능가하는? (웃음)
예전에 100억 규모의 블록버스터를 준비했다가 무산된 적이 있다고 들었다. 아주 오래 전부터 준비했다가 여러 가지 사정으로 무산됐다. <모던보이>같은 영화였는데 스케일이 더 컸다. 어쩌면 경성을 배경으로 한 기획은 내가 제일 먼저 했을지도 모른다. 원래 먼저 기획하면 안 된다고 하더라. 그래서인지 다른 영화는 다 됐는데 나만 안 됐잖아.(웃음)
아직 그 이야기에 미련이 있나? 버리진 못했다. 다만 지금은 시기가 좀 아닌 거 같다. <로드 투 퍼디션>에 <카툰 클럽>을 섞어놓은 갱스터 영화를 생각했었다. 그것도 실은 판타지다. 일제 시대에 무슨 갱스터가 있겠어, 없지. 가공의 도시를 배경으로 한 갱스터의 암투였다.
규모가 큰 영화를 찍게 된다면 그 자체가 새로운 도전이 아닐까 싶다. 사실 저예산 규모의 영화만 했는데 어려움이 없을까? 안 해봤으니 당연히 이질감이 느껴질지 모를 일이다. 하지만 작은 걸 운용하다가 큰 건 할 수 있지만 큰 예산으로 영화를 찍던 사람이 나처럼 작은 건 못 할거다. 큰 예산으로 할 때는 가능했던 것들이 저예산에서는 아무것도 안되잖아. 다만 적응하기가 어렵겠지. 사실 더 엄청난 것도 있었다. 조선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가 있었는데 그건 2백억 정도 들어야 될만한 스케일이다. 몇 사람한테 얘기하니까 듣는 척도 안 하더라. (웃음)
요즘은 영화계 사정이 좋지 않아서 자금 운용에 무리가 있을 거다. 그걸 타계할 방법이 막연하지. 해외와의 관계 발전도 항상 말로만 하지 실제론 활발한 움직임이 없다. 맨날 똑같은 밥솥 하나 들고 밥은 없으니 누룽지만 긁고 앉아있는 셈이다. 조금만 위축되면 큰 예산 들어가는 건 못한다고 하고 조금만 풀리면 아무 영화나 만드는 것 같고. 이렇게 되면 한국영화의 미래는 없는 거지. 나는 지금 이 상황에서 적당히 타협하고 가는 셈이다. 이런 류의 영화를 하는 것 자체가 내 나름의 타협이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이것조차도 운 좋게 가는 것일지도 모르지. 다 외면했던 시나리오이기도 해서 영화화하기도 힘드니까. <멋진 하루>도 전도연 덕분에 가능했다.
전도연 씨를 캐스팅하기 전까지 확신이 없었나? 물론 전도연이 못했다 해도 다른 좋은 배우들이 있긴 하니까 아마 섭외를 했겠지. 다만 전도연이 <멋진 하루>를 선택해주지 않았다면 그 외에 우리가 거론할 수 있는 배우가 많지 않고 심지어 그들마저 외면해버린다면 못하게 될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시장은 어렵다고 하지만 반대로 대작엔 자본이 몰리는 경우가 생긴다. 영화계의 현실은 자업자득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예전에도 힘들었고 지금도 힘들기 때문에 영화계가 나빠졌다고 해도 특별히 느끼는 바는 없다. 나한테 예전엔 좋은 환경이었나? 마찬가지로 어려웠기 때문에 새삼스레 나빠졌다 말할 것도 없다. 맨날 떠드는 얘기지만 2차 부가판권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온 나라가 다운로드의 천국이다. 이런 상황에서 뭐가 해결되겠나. 영화라는 게 부가판권도 있고 해외 마케팅도 적극적으로 나서야 되는데 우리는 그런 가능성도 잡지 못하는 것 같다. 그러니 작은 영화는 점점 힘들어지고 큰 영화는 사회 현상에 따라 술렁이는 거 아닌가. 차근차근 넓게 보는 눈이 필요한데, 그걸 아직 깨닫지 못하는 건가 보다.
<모던보이>개봉이 늦어졌다. 개봉이 늦어질수록 배우는 결과물이 더더욱 궁금해질 것 같다. 다른 사정에 대해서 난 잘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로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서.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후반 작업이 중요했으니까 결과적으로 큰 힘이 된 거 같다. CG는 시간과 공력이잖아.
간담회 때 영화를 본 소감을 말하는데 울 거 같더라. 진짜로 난 울다 갔다. 우리 배우 셋이서 손 꽉 잡고 영화를 봤는데 셋 다 울었지. 만약 옆에 해일 씨 스타일리스트 분이 도와주지 않았다면 상태 많이 안 좋았을 거다. 특히 난 화장도 했으니까, 휴지로 눈가를 꾹꾹 눌러가면서 울었지. 물론 내가 내 연기하는 거 보면서 울고 그런 건 아니다. 이유는 여러 가진데 그냥 그때 다들 개인적인 감정들이 생각났을 거다. 나도 그 때 당시 내 마음이 너무 생각났는데, 그러니까 진짜 눈물 나더라. 그래서 사실 영화가 끝난 다음에 간담회를 할 감정이 안 돼서 집에 가고 싶었다. 안 하면 안 되는 거 알긴 아는데 혼자서 있고 싶었지.
캐릭터에 대한 몰입이 깊은 까닭일 수도 있지만 현장의 분위기에 영향을 받은 바가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촬영장분위기는 일할 때 내 개인적 감정과 아무 상관이 없다. 촬영장이 어수선하다고 내가 해야 될 걸 못하진 않으니까. 내가 못해서 못한다면 모를까, 촬영장분위기가 진지하고 조용하다고 내가 의기소침해지거나 이렇지도 않고. 내가 진지해야 할 무대에 있을 땐 개인적인 문제건, 일 때문이건 상관없다. 물론 촬영장분위기가 어수선하면 좋진 않지. 그렇다고 그게 치명적인 방해가 되는 건 아니다. 일 끝나고 촬영이 종료되면 그냥 자연스럽게 현실로 돌아오게 된다. 다만 <얼굴 없는 미녀>가 안 그랬던 것 같다. <얼굴 없는 미녀>를 통해서 거친 여러 가지 감정의 여운들이 영화가 끝난 후에도 많이 남아있었으니까. 이번에도 좀 그랬다. 조난실이란 캐릭터에서 빠져 나오지 못한 게 아니라 조난실이란 캐릭터를 통해 이 작품을 만나고 이를 통해 겪은 과정에서 얻어진 감정들이 다시 상기됐다. 사실 작품 끝내고 오래 전에 쉬었던 만큼 쉬는 동안은 괜찮았다. 편안했지. 그런데 영화를 보고 그때 그 감정들이 떠오르는 것 같더라.
영화를 직접 보고 난 느낌은 어떤가? 일단 원작과 많이 달라진 부분이 있다는 건 원작을 보셨으면 아실 테고. 다만 그게 우연히 그리 된 게 아니라 애초에 그렇게 정해져서 된 거니까. 난 개인적으로 영화가 전체적으로 맘에 든다. 이게 완벽하게 뛰어나서라기 보단 개인적으로 그 자체가 그냥 맘에 든다. 분야마다 개개인들이 전반적으로 많은 심혈을 기울이기도 했고. 물론 마음 속으로 고통을 겪어가면서 심혈을 기울였다 해도 그런 과정은 대부분 작품에서 드러나지 않는다. 그런데 그런 흔적들이 나타나는 것 같아서 좋다. 그리고 저마다 다른 여운들이 남을 것 같은 영화라서, 난 그 지점들이 좋다.
원작을 먼저 본 건가? 아니면, 시나리오를 먼저 보고 원작을 봤다.
원작을 먼저 접해서 그 내용을 맘에 들어 했다면 시나리오에 납득하긴 힘들 수도 있었을 텐데. 그럴 수도 있지. 성격이 너무 다르니까. 재기발랄함과 발칙함, 그리고 감히 우리가 범접할 수 없을 만한 그 시대의 어떤 기운, 원작엔 그런 기운이 충만하잖아. 영화는 원작과 전혀 다른 태도를 취하고 있지. 사실 내가 했던 영화 중에 원작의 느낌을 잘 살린 작품은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정도 아닌가? <타짜>도 전혀 다르고, 시대가 달랐고 개개인도 다르고 정마담조차 아예 다른 캐릭터였고. 그런 변화를 대중들이 얼마나 많이 공감하느냐의 문제겠지. 하지만 일단 우리는 그렇게 하기로 했고 이에 배우들도 동의했고, 애초에 우리가 본 시나리오가 원래 그랬으니까. 이미 그렇게 결정된 엔딩에서 시작한 시나리오니까 그 핵심적인 기운은 원작과 당연히 다를 수 밖에 없지.
조난실 캐릭터도 원작보다 가미된 점이 많다. 엔딩이 그렇게 되려면 조난실 캐릭터가 달라져야만 했으니까. 그런데 난 원작도 재미있게 봤다. 사실 시나리오와 전혀 다른 느낌이지. 교육을 통해서 엄격한 강요처럼 받아들여지던 시대를 어떤 인물들을 통해 다른 시각으로 그려나갔다는 것. 사실 이해명이란 인물에겐 현실감이 없지만 그 사람이 느끼는 감정이나 정서, 그리고 행위에 대한 묘사가 너무나 기막히더라. 그런 게 재미있었다. 사실 지금도 이해명의 감정이 다 생각난다. 조난실이 어땠는지 기억 안 나도 이해명의 감정은 지금도 다 생각난다.
스스로의 말처럼 결말을 위한 선택이었겠지만 영화에서는 원작과 달리 조난실의 내면적 갈등이 뚜렷하게 드러난다. 모호한 느낌을 가진 원작의 캐릭터보다 그렇게 직시된 감정선을 노출하는 캐릭터가 연기적으로 더 편하지 않았을까? 원래 편한 건 하나도 없다. 뭘 해도 다 불편하고 어렵다. 만약 그게 쉽다면 배우들은 일부로라도 어려운 걸 찾아서 쓸 때 없어 보이는 몰두를 할지도 모르지. 하지만 실은 그게 결코 쓸 때 없는 건 아니다.
캐릭터를 파악하는 것도 관건이었을 것 같다. 조난실은 항상 일정한 거리감을 유지하는 여자다. 연기하는 스스로도 캐릭터와 어느 정도 거리감을 유지하는 게 중요했을 것 같다. 원작에서의 조난실은 그 자체가 묘연해도 되는 여자인 거 같다. 하지만 영화에서의 조난실은 묘연한 매력이 있는 여자가 아니라 묘연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 수 밖에 없는 여자인 거지. 필요에 의해서 묘연해지는, 선택적인 팔색조랄까. 그렇다고 감정이 절대 분명한 건 아니다. 왜냐면 해명이 이미 이 여자의 진심을 알았다 하더라도 조난실은 끝까지 해명에게 가리는 부분이 있으니까. 관객이 눈치채는 순간보다 해명이 늦게 눈치채는 거다. 난 조난실의 감정은 관객을 이해시키기보다 궁극적으로 해명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그 수위를 조절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단지 원작과 다른 건 조난실의 진정이 더 담겼다는 거지.
조난실이란 캐릭터는 스스로를 위장한다. 그건 일종의 연기적 행위처럼 보인다. 연기라기 보단 상황에 맞게 행동할 수 밖에 없는 캐릭터니까, 어쩌면 해명 앞에서는 여러 가지 의미에서 연기를 했을 수도 있지. 처음에 해명은 감정이 앞서서 이 여자가 누군지도 모르고 사랑했지만 조난실은 팀의 일원을 망가지게 한 분노와 총독부에 다니는 남자에게 알아내고 싶은 정보가 있었을 거다. 결국 해명의 기구를 갖다 팔아서 자기 조직의 자금으로 쓰기도 하니까. 하지만 단지 이런 목적을 위해 아틀란티스라는 카페에서 키스를 하고 이 남자의 집에서 잠시나마 함께 살았을까? 어느 정도 호감도 있었을 거다. 그러니 얼마나 머리가 복잡하고 마음은 또 얼마나 심란했겠어. 그 순간엔 필요와 목적에 의해서 연기했겠지만 감정을 절대 숨기지 못하는 순간도 있었겠지.
난투극을 벌이고 나서 함께 만취한 상태로 마주보고 이야기하는 장면에서 애틋함이 전해졌다. 취기 어린 몸짓으로 이해명의 귓가에 대고 조난실이 노래를 들려주는 게 난실이의 진심인 거 같다. 이 철없는 남자를 자꾸 좋아하게 되는 거, 난 사실 이런 남자를 좋아하면 안 되는 입장인데도 웬만큼 독한 마음 먹지 않고서야 마음이 흔들리는 건 이성으로 통제할 수 없는 거지. 이해명이란 사람이 맹목적으로 이 여자를 사랑하는 만큼 그 상대도 그 순수한 진심을 느끼게 되면 달라질 수 밖에 없거든. 난실이 해명에게 해주고 싶었던 얘기는 어쩌면, 난 이런 염원을 하는 사람이야, 이걸 제발 알아줬으면 좋겠어, 이런 게 아니었을까. 난 그래서 그 씬이 개인적으로 좋다. 조난실의 진심이 가장 잘 드러난 느낌이니까. 정말 사랑하는 남자까진 아닐지라도 좋아하는 남자한테 내 진심을 들려주는 것이기도 하고. 어쩌면 절대 알 수 없겠지만 그래도 제발 알아주길 바라는 간절함도 느껴지고.
지금도 스스로도 울컥하는 듯한 느낌이 전해진다. 이건 우리 해명 씨가, 아니 해일 씨가 어떤 인터뷰에서 얘기해서 벌써 기사화 됐으니까 하는 얘기인데, 사실 그게 술에 만취한 상태이기 때문에 상호 동의 하에 두 사람 다 술을 조금씩 먹고 했다. 난 술을 잘 안 먹기 때문에 얼마나 취해야 되는지 잘 몰라서 조심스러웠는데, 해일 씨는 좀 많이 먹었지. 취기를 가지고 연기한 건 처음이었고 내가 취해본 적이 없어서 나도 모르게 취해서 캐릭터를 잊고 실수하거나 촬영에 누가 되는 상황이 올까 봐 두려웠는데 그렇겐 안되더라. 그런데 조금 취한 상태였을까. ‘왜 그 실력으로 무대 뒤에서 노래를 해!’라고 해일 씨가 말할 때, ‘일본 말로 노래하기 싫어서’라고 대답하면서 정말 가슴에서 울컥하던데!(웃음) 신기한 경험이었다.
<모던보이>는 시대적 고증이 잘 된 느낌이다. 시사회에 오셨던 여러 전문가분들도 그러시더라. 그 시대를 연구하는 박사 분들이 여럿 오셨는데 다들 완벽에 가까운 재현이라고 놀라시더라.
올해 초에 ‘인사이트 비쥬얼’이라는 VFX스튜디오에 취재차 들렸다가 <모던보이>CG작업 과정을 본 적이 있다. 경성을 완성하는데 CG의 공헌도가 상당한 걸로 안다. 사실 실제로 배우들이 연기하면서 본 풍경과 영화 상의 경성은 많이 다를 거다. 아무래도 배우들도 영화를 보면서 새로운 감흥을 느꼈을 것 같다. 깜짝 놀랐지. 조선총독부의 복도 천장, 복도 깊이, 하다못해 해명이 일하는 곳의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살, 해명과 신스케가 얘기할 때 살짝 보일 듯 말 듯 일렁거리는 초록빛, 사실 내가 본 건 파란 벽이었을 뿐인데 도대체 실사 조명을 어떻게 했을까? 그리고 도시락 들고 해명이 총독부로 막 들어갈 때 창문에서 신스케가 ‘이해명!’을 외치면서 손 흔들잖아. 난 그거 어디서 찍은 지 알거든. 그건 또 어떻게 한 거야!(웃음) 사실 난 펼쳐진 공간보다 실내공간에서 많이 나오니까, 오픈 세트라 하더라도 블루매트가 멀리 있어서 큰 불편함은 없었다. 그런데 공간에 대해서 감이 안 잡혀서 난감했던 적이 한번 있었지. 미츠코시 백화점 옥상의 호화로운 오픈 레스토랑을 찍을 때, 작은 세트장을 레스토랑이라면서 실제 바닥보다 좀 높여놨더라. 그리고 그 위에 있는 건 테이블과 의자들, 그리고 보조 출연하시는 분들. 그 주변으로 경성 시가지가 보인대. 좀 이상했지. 그런데 CG로 완성된 장면을 보니까 그때 내가 느꼈던 어색함조차 상쇄시켜줄 정도로 놀라운 배경으로 완성됐더라.
그런 상황에서 연기를 하면 분명 어색함을 느낄 수 밖에 없을 거다. 그만큼 연기를 하면서도 뭔가 미완성의 기분을 느꼈을 테고. 꼭 그런 상황이 아니라도 불편한 상황은 많지. 잘 하려고 기를 쓰는데도, 난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데도 난 왜 이걸 진짜처럼 보지 못할까, 싶을 때가 너무 많으니까. 그럴 땐 정말 미치겠다. 그런데 사실 배우는 영화라는 제한된 공간 안에서 움직이고, 노는 거지. 실상 그 공간을 더 힘들어 하는 사람은 연출자고. 그래서 결국 어떤 연출자가 어떻게 운용했느냐에 따라서 배우의 개인적인 완성도와 다르게 또 다른 완성도가 생기는 것 같다. 사실 그래서 배우가 더 초라해 보일 때도 있지. 후진 영화에서 배우가 열연하는 것처럼 가엾어 보이는 것도 없는 것처럼. 그 배우는 얼마나 열성을 다해서 했겠어.
조난실은 결국 대의를 위해서 자신의 진심을 위장하는 바가 있었을 거다. 때때로 배우이기 때문에 종종 영화를 위해서 캐릭터를 자신을 위장하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은 없나? 위장까지는 아니지만 그럴 때는 있었지. 항상 최선을 다해서 하지만 정말 내가 이 난관을 극복하지 못할 때는 편리하게 해왔던 대로, 아주 전형적인 방식으로 했던 적이 있었다. 물론 지금은 그렇게 안 해. 내가 재능이 부족해서, 혹은 아직까지 무언가가 부족해서 할 수 없는 지점이 분명히 있지만 어떤 순간이건 내 감정이 서지 않거나, 감정적이건 논리적이건 어떤 식으로도 납득되지 않는 순간이라면 어떻게 해서든 억지로 연기해선 안 된다는 게 내 입장이다. 그럼 지금까지 모두 다 완벽하게 납득했냐, 라고 묻는다면 물론 그렇진 않지. 그렇지만 그런 근거가 없으면 하지 말아야 하는 거 같다. 그리고 그걸 억지로 시키는 연출자는 결코 좋은 연출가도 아니고.
노래도 잘 하더라. 실제 실력인가, 아니면 시스템 기기를 활용한 건가? 본래 난 성량이 안 좋다. 그런데도 일부로 기계적인 거 별로 안 넣고, 심지어 에코도 안 넣었다. 왜냐면 노래에 조난실의 진심이 있어야 했기 때문에. 물론 일부 불안한 음정은 잡아주셨겠지. 처음 무대에서 부르는 곡은 원래 노래가 되게 어렵다. 그런데 그 노래의 목소리 톤이나 태도가 조난실과 너무 잘 매치돼서 나나 감독님이나 음악감독님이 무리인 걸 알면서도 욕심을 내서 최대한 해보고 안되면 다른 곡으로 하자고 합의했다. 시간이 얼마든지 있어서 가능한 것이기도 했고. 그런데 성량이 안되니까 ‘웅산’이라는 재즈 싱어에게 기본적인 것들을 트레이닝 받았다. 그렇지만 디테일하게 개입하진 않더라. 조난실의 감정이 중요하고 그 감정으로 그 노래를 해석하는 게 중요했지, 내가 재즈 가수로서 테크니컬한 기술을 뽐낼 건 아니었으니까. 대신 기본적인 음률이나 음폭을 잡아주는 건 중요했다. 조난실은 그런 재능이 있는 여자이기 때문에 김혜수도 최소한 그 정도의 재능은 갖춰야 되는 거니까.
영화를 찍으면서 레코딩도 함께 한 건가? 음악감독님이 처음 미팅 때 내 음색만 체크하셨다. 아무 노래나 불러달라 하시곤, 됐습니다, 하시더니 ‘개여울’이라는 곡을 나중에 가져오시더라. 가사가 김소월의 시였기 때문에 우리 민족 정서와 맞아 떨어지고 조난실의 내면과도 맞닿는 게 있었다. 그래서 그 노래 들었을 때 마음이 일렁거리는 게 있는 것도 같았다. 연기하다 보면 그게 더 느껴지기도 하고. 사실 연기하기 전에 레코딩을 다 끝냈는데 나중에 다시 한번 하자고 부탁 드렸다. 실제로 영화에 들어가는 ‘개여울’은 다 끝낸 다음에 한 거다. 그래서 트레이닝 후로 몇 개월 지난 목소리라 가다듬어 지지 않고 거칠지. 사실 개인적으론 처음 부른 노래가 훨씬 매끈하고 기술적인 완성도가 좋다고 생각한다. 그 때는 음폭에 대한 훈련도 잘 된 상태였으니까. 그런데 조난실을 연기하면서 내가 예상했던 조난실의 감정과 달라진 폭을 느꼈고 감독님도 나중에 부른 노래에 그런 감정이 담겨서 나중에 부른 걸 쓰신 거 같다.
자신이 연기한 캐릭터로부터 영향을 받는다고 생각하나? 그런 생각을 해본 적 없지만 받는 게 있겠지? 실은 조난실 준비하면서도 여러 가지 공부도 했고, 작업을 거치는 와중에 영향을 얻은 것도 있고.
어려서부터 연기를 지속한 만큼 개인적으로 갈등도 많았을 거다. 요즘 어린 친구들은 성숙하잖아. 자기가 원하는 것들을 빨리 캐치하고 그 꿈을 향해 구체적인 실천들을 하는 것 같다. 우리 땐 그렇게 못했지. 나도 우연히 광고모델 하다가 영화를 찍었고. 성인 영화였지. 그런 성인 영화 말고 성인 등급의 영화. 그때 내가 만 열 다섯 살이었는데 그 때 했던 역할은 십팔 세 밤무대 여가수였지. 원래 김진아 언니가 내정돼있었는데 언니가 미국에 갈 일이 있어서 그 역할을 수행할 신인을 급하게 찾던 중에 영화사에서 내가 출연한 광고 사진을 본거다. 내가 최소한 대학생은 되는 줄 알았다나. 광고하는 사람들을 통해서 의뢰가 왔다.
첫 광고가 어렴풋이 기억난다. 태권도복 입고 나오던. 그러니까, 그거! 그 광고 찍고 그 회사에서 또 뭘 해달라 그래서 내가 ‘암바사’ 사진광고도 찍었다. 지금 보면 애 같은데 그땐 좀 성숙하게 보였나 봐. 화장을 해서 그랬나.
어린 나이였는데 어떻게 허락하게 됐나? 혼자서 결정할 문제는 아니었을 텐데. 사실 나야 애니까 모르는 거지. 부모님이 안 된다 그러면 안 되는 거였고. 아버지께서 심각하게 반대하셨지. 그땐 <앵무새 몸으로 울었다> <훔친 사과가 더 맛있다> 이런 포스터들이 걸려있던 시대라 영화에 대한 인식이 지금과 전혀 다르기도 했고. 그런데 미성년자 딸에게 그런 제의가 왔으니.(웃음) 그런데 감독님이 아버지가 근무하시는 사무실에 열심히 찾아가셨고, 그 과정에서 시나리오도 좀 바꿨고, 종래엔 학교에도 오셨다. 선생님들도 허락 안 했으니까. 감독에겐 그런 치사한 과정이 있었던 거지. 결국 우여곡절 끝에 하게 됐지만 내가 뭘 알아? 모르지. 광고는 하란 대로만 하면 되지만, 웃어요, 하면 빵긋 웃고.(웃음) 나 진짜 그 때 가관이었다.
박중훈 씨도 그 작품으로 함께 데뷔했다. 중훈 오빠는 배우로서의 욕망이 진짜 있었던 사람이다. <깜보>한다고 처음 합동영화사 갔을 때 장두이 아저씨는 미국에서 아직 안 오셨고, 상대역이라고 중훈 오빠가 왔는데 물빠진 빽바지에다가 청자켓을 입은 모습이 너무 불량해 보이더라.(웃음) 나중에 들어보니까 오빠는 나한테 잘 보이려고 웃었대. 난 웃는 모습조차 너무 불량해 보였고.(웃음) 그런데 실제로 연기할 때 욕심이 대단했고, 적응력도 대단하고, 내가 볼 땐 그 때 이미 처음부터 연기도 잘 했던 거 같다. 머리도 비상했고. 그에 반해 난 너무 평범한 애였지. 조감독님 허리띠 잡고 다니면서 눈 오면 조감독님이 업고 다니기도 했고, 촬영하다 자고.(웃음) 밤을 새본 적이 없었거든. 그 때는 15시간, 16시간이 보통이었으니까. 카메라가 앞에서 돌아가거나 말거나 촬영하다가 졸리면 옷 뒤집어 쓰고 자고 있었다. 그렇게 애가 대충 깨워도 안 일어날 정도로 자니까 어른들 마음이 좀 그랬는지 그날 촬영은 접고. 내가 그렇게 자랐지.
그 나이엔 특별한 경험이었을 거다. 배우라는 개념이 생기기엔 정신적으로 많이 어린 나이였지만 좋았던 건 어른들 틈에 있었다는 거? 학교에 가면 그 또래들만 봤을 텐데, 어른들이 다 유별나잖아. 머리 긴 아저씨도 있고, 희한한 옷도 입고 다니고, 특이한 얘기도 많이 하고. 영화 얘기, 음악 얘기, 이런 걸 보고 들으면서 이런 게 예술가들인가, 싶었지. 머리만 길어도 저 아저씬 뭔가 심오한 게 있나 봐, 그랬고.(웃음) 다들 예술가의 기운이 있었으니까. 그런 게 신기해서 사람들을 구경하는데 몰두했다. 그런 게 꽤 오래갔지. 그런데 정작 감독님이 말하는 건 하나도 못 알아들었고. 감독님도 날 애기 다루듯이 했다. 이게 이해가 되니? 감독님이 물으면 예, 라고 하지만 뭘 알았겠어. 그렇게 영화 하면서 철도 들었지. 그런데 내가 너무 어릴 때부터 시작해서 그런지 어느 순간 내가 일해야 하는 분들과 개인적인 소통이 안 되더라. 날 애기 때부터 만 봐왔고, 난 늘 그 팀에서 애기였고, 그러다 보니 내가 이제 성인이 되도, 혜수는 애기니까 몰라, 이렇게 생각했는지 아무도 나랑 얘기를 안 해. 그런데 난 이제 나이가 들고 성인이 되면서 이 일에 내 시간을 가장 많이 보내는 만큼 이 일에 대해서 고민을 하기 시작했지. 내가 이렇게 시간을 보내는 만큼 일에 대한 어떤 의지나 방향, 내가 원하는 것, 그런 고민이 생기잖아. 근데 그게 좌절이랄 것도 없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듯한 상황이 늘 연출되는 거다. 근데 그것도 괜찮았다. 늘 그랬으니까 그런가 보다 그랬지. 그런데 어느 순간 못 참게 되는 순간이 생기면서 괴로워졌다. 이십 대를 그렇게 보냈지.
배우로서의 능동성을 고민하기 시작한 걸까? 능동성? 글쎄, 사실 그런 고민들은 20대부터 있었으니까. 개인적인 방황이나 좌절 같은 거, 물론 그땐 방송도 많이 하고 1년에 한편 꼴로 영화도 했지만 주로 밝은 드라마만 하면서 항상 웃기만 하고, 누가 봐도 지나치게 밝은 거 아닌가 싶을 정도로. 모른 척 하고 싶지만 절대 모른 척 할 수 없는 고민들이 자꾸 생기잖아. 왜냐면 내가 실제 생활하는 시간의 대부분이 거기 있었으니까. 그러다 내가 진심으로 이게 정말 쉽지 않구나, 라고 좌절했던 건 우리나라영화계가 다른 단계로, 다른 진화를 겪을 때였다. 영화계에서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의 세대가 좀 달라졌지. 세대 교체를 겪었다고 할까. 그때 나에 대한 시선은 여전히 늘 그런 거였지. 김혜수는 항상 하이톤에 건강미 넘치는 밝은 웃음만 보여주는, 영화에서 얘기하고자 하는 단면적이거나 이면적인 인간미를 찾아보기 너무 힘든 사람이 됐다는 걸 깨달았지. 어느 순간 내가 이지경이 됐구나, 그렇구나. 이런 좌절이 컸다.
스스로에게 가장 큰 변화를 제공한 건 <쓰리>가 아닐까 싶다. 조난실이 이해명을 만나 격변을 겪듯 본인도 <쓰리>를 만나서 어떤 변화를 경험한 것 같고 <얼굴 없는 미녀>로 확신을 찍은 게 아닐까 생각한다. 내적인 변화나 요동은 그 전부터 있었지만 그런 것들을 좀 다르게 보여줄 수 있었던 찬스가 <쓰리>였지. 그 지점은 분명해. 그리고 거기서 다른 어떤 불가해한 수렁으로 발을 내딛기 시작한 건 <얼굴 없는 미녀>가 맞고. 김지운 감독님이 자연스럽게 나에 대해서 다른 면을 보셨던 거 같다. 그렇다고 억지로 김혜수의 이런 면을 봐야겠다, 그런 건 아닌 것 같고.
김지운 감독의 시나리오를 받게 된 과정이 궁금하다. <신라의 달밤>때문에 압구정에 있는 카페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었을 때, 매니저였던 성혜 씨가 내가 김지운 감독님 좋아하는 거 아니까 아래 층에 김지운 감독님이 계시다고 알려주더라. 사실 감독이나 배우가 먼저 가서 인사하는 게 어려운 건 자존심 상해서가 아니라 어렵기 때문이거든. 내가 이 감독님 좋아한다고 해서 그 감독님에게 굳이 찾아가 인사하는 게 조용한 분들에겐 부담일 수도 있으니까. 그래서 망설이다가 그냥 가서 인사 드렸는데 뭔가 메모하고 계시는 거다. 뭐하세요? 물으니까, 단편 준비해요, 하셨고, 그렇게 잠깐 이야기하고 다시 올라온 게 전부인데 나중에 그 단편 시나리오를 받게 됐다. 개인적으로 대학 때 단편 작업을 좋아했기 때문에 공포건 뭐건 상관없이 단편이라 좋았고, 김지운 감독님과 너무 작업하고 싶었으니까 어쩌면 시나리오 안보고도 했을지 모르지. 사실 단편이라 개봉할 줄도 몰랐다. 그게 한국, 홍콩, 태국 합작으로 만든 같은 테마의 옴니버스 프로젝트라는 것도 나중에 알았고. 그런 건 상관없었으니까.
차기작에 대한 계획은 아직인가? 계획이 없다. 아직 못 정했다. 잘 안 들어오기도 하고. 그나마 다행인 건 몇 개월에 한번씩 간혹 들어오는 것들이 고민해보게 만든다는 거. 연기는 해야 되는데, 이러다 손가락을 빨면서 워크샵을 전전할 지도 모르지.(웃음)
최근 영화를 위주로 활동했던 배우들이 드라마로 진출하는 경우가 늘던데. 나쁜 것 같진 않다. 가뜩이나 시장도 좁은데 따질 필요도 없지. 배우는 연기를 하면 되는 거고.
예전엔 본인도 드라마에 많이 출연했다. 난 주로 드라마를 했었지. 배우는 지속적으로 연기해야 되는데 백 개를 해도 하나 잘하기가 힘들다. 그런데 사람들은 늘 이거보다 나아지길 바라지. 그건 불가능해. 왜 <타짜>의 정마담을 못 뛰어넘냐, 사실 그런 각도에서만 본다면 더 이상 그 지점에서 연기를 하지 않는 게 옳다. 그런데 그건 아니지 않나. 그럴 수만은 없지.
그건 단지 다른 사람들을 통한 고민만은 아닐 거다. 스스로 느끼는 어떤 강박이 될 수도 있다. 평가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도 내 인생을 통해 무언가 많은 것을 쏟아 붓는 일이기 때문에 그냥 정체돼있기만 하면 내 인생에도 의미가 없는 셈이지. 그걸 굳이 남들이 알아봐주길 바라는 건 아니지만 일부로 남 모르게 하는 것도 아니고, 물론 너무 못 알아봐주면 그것도 좀 서운하겠지. 그런데 정말 나로서는 최선을 다해서 하고 있다. 그리고 실은 그것보다 더 한 것도 해야 된다는 걸 이번에 배웠다. 이게 정말 다라고 생각했는데 거기서 또 다른 게 있더라. 그거 하나 이만큼 해내는 게 죽도록 힘들고 정말 이래야 하나란 생각이 들었는데 그래도 할 수 있구나, 해야 되는 구나, 라는 걸 알게 됐다. 물론 정말 그래서 뭔가 나아졌는지는 아무도 모르는 거다. 나도 모르는 거고. 다만 그걸 해보자는 거고. 쉽지 않겠지. 하지만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그림 실력이 대단하다고 들었다. 특별히 그 분야에 대한 공부를 했나? 대단한 건 아니고 그냥 하고 싶은 대로 하다 보니까 하게 된 거지. 정규수업도 다 못했던 애가 미술공부를 어떻게 하겠어. 어쩌다 몇 년마다 가끔 한번씩 심심할 때, 그려볼까 하면서 아무 생각 없이 하는 거야. 장난 같은 거지.
배우 김혜수 외에도 인간 김혜수에 대한 욕심이 많아 보인다. 10대 중후반부터 20대까지 열심히 살았지만 맘껏 살지 못했다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 강하게 남았나 봐. 욕심이 많다기 보단 그냥 놓치기 싫은 것들이 좀 많아. 그런 것들을 알게 된 뒤로 좀 안 놓치고 살려고 하지.
<멋진 하루>는 <밀양>이후 전도연 씨의 첫 작품이란 점만으로도 궁금증을 부릅니다. <밀양>은 아무래도 그 이전까지 전도연 씨의 연기에 대한 적정기대감을 파괴할만한 경지였으니까요. 어쩌면 배우가 세상보는 눈까지 달라지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였죠. <밀양>을 보신 많은 분들께서 어딘가 달라졌다고 말씀하셨어요. 전도연이 어련히 알아서 했겠어. 전도연은 안 봐도 잘 했겠지. 언젠가부터 이렇게 1등 해서 상 받는 게 당연하게 생각되는 우등생처럼 뻔한 애가 됐는데 <밀양>이 그 뻔함을 뒤집어 엎었다는 거에요. 생각해보면 그런 것 같아요. 뭔가 흠잡을 때 없이 연기는 잘 하지만 그 이상의 기대감을 주지 않는, 뭔가 더 이상의 호기심을 갖지 않게 만드는, 정말 정석처럼만 연기하는 배우라 느껴지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요.
스스로 그렇다고 느꼈던 건가요?
<밀양>때 이창동 감독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너 연기 되게 잘하는데 그냥 연기를 되게 잘 해. 이러시는 거에요. 연기를 되게 잘 한다는 건 말 그대로 연기처럼 보이는 거죠. 그래요. 그 말이 저에겐 충격이었어요. 그렇다고 제가 계산하면서 연기했던 건 아니지만 이창동 감독님께서 그 말씀을 하실 때 정곡이 찔리는 느낌이 들잖아요. 뭐라고 말은 못하겠고 들을 수 밖에 없었죠. 그 때 좌절도 하고, 불안하기도 했고, 그게 대체 뭘까, 뭐가 문제일까, 궁금하기도 하고. 갑자기 뒤돌아보니 모든 게 후회스러워지는 거 있잖아요. 감독님께서, 그 틀을 깨지 못하면 너와 내가 만난 의미가 없어진다, 하셨어요. 아마 감독님께서도 공직에 계셨던 이후로 첫 작품이라 자신에 대한 사람들의 기대나 관심에 부담을 느끼셨던 거 같아요. 물론 그건 제가 느껴온 것과 차원이 다른 것이겠지만. 어쨌든 그래서 그걸 뛰어넘어야 된다는데 도대체 뭔지 모르겠다 싶은 거죠. 뭐에요, 제발 가르쳐주세요, 그래도 감독님께서도 모르겠다 하시고, 너 스스로 답을 찾아라, 이러시니 전 또 얼마나 답답했겠어요.
지금은 그 뒤로 뭔가 달라졌다고 스스로 느끼십니까?
제가 진짜 억울한 건 그게 아직도 뭔지 모르겠다는 거에요. <밀양>을 찍고 나서는 아마 그 영향을 받아서 뭔가 달라지지 않았을까, 달라졌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결국 달라진 것 없이 제 자리에 있더라고요. 차라리 도대체 그게 어떤 차이인지 알면 좋을 거 같아요. 그럼 정말 깐느에서 상 받은 것도 자랑하고 다닐 수 있을 것 같고, 그렇게 되서 잘난 척도 해보고 싶어요. 나만의 비법을 가진 것처럼. 근데 그게 아니더라고요. 정말 모르겠어요.
아무래도 <밀양>은 전도연 씨에게 큰 산이었던 것 같습니다. 험한 일을 겪고 나면 그만큼의 여유가 생기기 마련인데 신애처럼 진폭이 큰 캐릭터를 연기한 이후로 연기에 접근하는 여유가 생기진 않던가요?
그것도 마찬가지인 거 같아요. (잠시 생각하다가) 저는 매번 항상 이번 작품만 잘하면 된다고 생각하면서 해왔기 때문인지 여유가 잘 안 생기더라고요. 끊임없이 달려야 돼, 이 정도까진 아니지만 저는 지금 저도 잘 모르는 미궁 속에 빠진 채 계속 길을 찾아나가는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여유도 잘 안 생기는 것 같아요. 생길 수도 없을 것 같고요. <밀양>에서 신애라는 연기를 했으니까 다음엔 어떤 연기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아, 여유가 생겼어, 이런 게 없더라고요. 그럴 거 같았지만 또 다시 똑같은 과정 속에 빠지고, 다시 힘들고, 그 과정이 다를 뿐 비슷한 거 같아요.
그렇다면 <멋진 하루>는 <밀양>이후로 첫 번째 작품이란 점에서 되려 부담이 있었을 법한데요.
이번 작품이 너무 두렵고 떨렸던 건, 사람들은 이제 전도연이 다음 작품에 어떤 연기를 할지 궁금증을 갖기 시작했는데 정작 저는 그 맛의 비법을 모르고 있다는 거였죠. 아무것도 가진 게 없고, 그때랑 똑같은데 말이죠. 그래서 심판대에 서는 것처럼 너무 무서운 거에요. 잘못하면 사람들이 다 날 잡아먹을 것 같고.
아무래도 <밀양>에 대한 의식을 떨쳐내는 것이 중요했을 것 같습니다.
저보다 오히려 제3자들이 어렵게 생각하는 것 같았어요. 그럴 것이다, 라고. 그런데 저 역시 제3자들의 시선이나 생각들로부터 영향받지 않을 수는 없어서 부담이긴 하죠. <밀양>으로 받게 되는 부담이 크기 때문에 좀 더 빨리 다음 작품을 선택하고 싶었어요. 제가 원래 작품을 작업할 때 다른 시나리오를 읽지 않는데 <멋진 하루>원작은 단편이고 짧아서 밀양에 있을 때 읽어봤어요. 희수 캐릭터는 보이지도 않았고, <여자, 정혜>의 남자버전 같은 이야기라 생각했죠. 책만으론 결정할 수 없고 나중에 시나리오가 나오면 결정하겠다고 했는데 서울로 올라와서 받은 <멋진 하루>시나리오가 너무 고마웠어요. 제가 좀 더 빨리 다음 작품을 선택할 수 있게 해줬으니까요.
<멋진 하루>외에 맘에 드는 시나리오는 없었나요?
아, 갑자기 정곡을 찌르시네요. (웃음) 다른 시나리오가 안 들어왔어요.
예? 정말인가요?
저도 밀양에 꽤 오래있었으니까 서울로 돌아가면 시나리오가 많이 쌓여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없더라고요. 매니저가, 누나, 이게 다에요, 이러면서 <멋진 하루>시나리오를 주는데 어머, 싶었죠. (웃음) 약간 당황스럽긴 했지만 아쉽지는 않았어요. <멋진 하루>시나리오가 너무 좋았으니까. 만약 시나리오가 아니었다면 차라리 선택하지 않았겠죠.
감독님들께서 전도연 씨에 대한 자기 검열이라도 했던 걸까요?
주변에서 많은 분들이 그런 말씀들로 위로를 해주시긴 했지만, (웃음) 그건 아닌 거 같고요. 아무래도 영화계 사정이 안 좋아지면서 영화 제작 편수가 많이 줄어든 탓에 많은 여배우들이 피해를 보지 않았을까 싶어요. 저도 그 중 하나고. 첫 주연작이었던 <접속>이후로 꾸준한 작품활동을 계속해왔습니다. 특별히 기복을 보인 적 없이 꾸준히 작품활동을 해오셨습니다. 제 자신은 내리막길 없이 늘 항상 평행선을 걸어왔다고 말하고 싶어요. 여기 오기까지 많은 사람들이 저를 내리막길에 내려놓기도 하고, 꼭대기에도 올려놓기도 했겠지만 그건 제 자신과 상관없이 저를 보는 사람들의 생각이고, 제가 어떻게 할 수 없는 부분이잖아요. 제 자신은 그냥 평행선을 쭉 걸어왔다고 생각해요.
그래도 자신의 위치에 대해서 인지하게 되는 순간이 있지 않나요? 그럼으로 인해서 어떤 결과에 대한 기대감이나 실망감을 얻을 수도 있고요.
제가 철저하게 제 자신을 제어하는 건 기대감을 없애는 거에요. 그건 스스로에 대한 기대감일 수도 있고, 그 무엇에 대한 기대감일 수도 있어요. 기대했다가 현실에 의해 배반당하는 걸 못 견디겠어요. 그러니까 자꾸 기대감을 스스로 없애버리려고 하는 것 같고요. 그렇기 때문에 그냥 이번 작품 하나만 생각하고, 그 무언가가 있을 다음 날을 생각하지 않는 거죠. 뭘 하더라도 이걸로 인해서 생겨나는 기대를 스스로 제어하는 것 같아요. 그건 실생활에서도 그렇고요. 기대했다가 배반당하는 게 너무 두려워요. 왠지 로또 당첨을 기다릴 때 끝자리 번호 하나 틀린 것처럼 너무 허무하잖아요, 그렇게 되면 어디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될지도 모를 거 같고. 복권을 다시 사야 하나, 말아야 하나. 그런 건 너무 싫어요.
크게 배반당했다는 기분을 느껴본 적이라도 있었나요?
느껴본 적은 없지만, (잠시 고민하다가) 아니, 없진 않겠죠. 소소하게는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으로부터 사소하게 섭섭함을 느끼기도 하잖아요. 생일날은 뭘 해주실까, 생일이니까 오늘은 집에 들어가면 손님들도 많이 와 있고 기쁠 거야,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고. 어렸을 때부터 늘 항상 그런 현실에 대한 좌절을 겪었던 거 같아요. (웃음) 물론 큰 좌절의 계기가 있었던 건 아니지만 그게 싫었나 봐요. 그런 게 은연 중에 배버린 것 같아요. 당연히 이번 여우주연상은 내가 받을 거라 생각했는데 상을 못 받으면 웃고는 있지만 얼굴이 파르르 떨리면서 표정 관리 안 되는 것처럼. (웃음) 어쩌면 그런 경우도 해당될 수 있겠죠.
기대감을 제어한다는 건 그만큼 먼 계획을 잡지도 않는다는 말처럼 들립니다.
이율배반적인 이야기지만 욕심은 굉장히 많은데 꿈이 없어요. 꿈은 눈에 보이지 않는 먼 곳에 있는 무엇이잖아요. 제가 만들어낸 어떤 모습이고. 전 그것보단 눈에 보이는 것에 대한 욕심이 굉장히 많아요. 하나하나 산을 넘는 것 같다고 하셨는데 그게 저한테 주어진 최선의 길이라면 저는 거기에 최선에 다하지, 이것을 넘으면 뭔가가 있을 것이다, 이런 꿈을 꾸는 것 같진 않아요. 만약 그 산을 넘었는데 오아시스가 있다면 그냥 고마운 일이죠.
전도연 씨의 연기가 매 작품마다 절박함을 느끼게 하는 것도 그 때문일까요. 마치 그 순간을 뛰어넘기 위해서 스스로를 소진하는 것 같습니다. 그만큼이나 작품을 끝낼 때마다 공허함이 크지 않을까 싶어요.
작품 끝나면 공허하죠. 뭔가 막 집중해서 열중하다가 갑자기 여운도 없이 하루 아침에 딱 끝나버리는 거니까요. 물론 그런 공허함은 누구나 다 있는 거 같아요. 저는 그걸 절박함이라고 생각해보진 않았는데, 그래요. 절박함이 틀린 말은 아닌 거 같아요. 제가 그런 생각을 늘 하는 건 아니지만 돌이켜 보면 이 작품이 정말 마지막인 것처럼 모든 열정을 다 쏟아 부었던 것 같긴 해요. 어쩌면 별 관심분야도 없고, 취미도 없고 그래서 평소에 뭔가 열정을 쏟을 만한 게 없어서 그렇게 되는 것일지도 몰라요. 일도 그렇지만 사랑도 그렇고요. 다시 무언가가 생길지도 모르지만 그 무언가를 생각하지 않게 돼요. 이게 정말 마지막 선택인 것처럼, 결국 남는 건 작품이죠.
배우로서 원대한 꿈이 없었다 해도 어느 순간 자신이 배우로서 살아가고 있다는 걸 자각하게 되는 계기는 있었을 것 같습니다. 배우로서 살아가야 한다는 걸 문득 인지하게 된 순간 말이죠.
<해피엔드>때였던 거 같아요. 그 전엔 제가 배우인지도 몰랐고 그냥 어리다 보니까 호기심이 많았을 뿐이죠. 배우라는 의식을 갖고 연기하지 않았을뿐더러 사람들이 많이 알아봐주니까 우쭐해지기도 했고. <접속>이 그랬고, <약속>도 마찬가지였죠. <약속>은 <접속>이 잘 되니 그 부담에 밀려서 그냥 얼떨결에 떠밀리듯 한 작품이기도 했고요. <해피엔드>는 나름대로 위험한 시도였고, 무모하다는 말도 들었죠. 무엇보다도 일단 그런 결정을 하려면 제 자신을 납득시켜야 하잖아요. 그 때 처음으로, 난 어떤 배우구나,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나는 예쁜 배우도 아니고, 예쁜 이미지만 쌓아서 결혼한 뒤 잘살 수 있는 배우도 아니고, 결국 나는 내가 원하는 길을 가는 배우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이 뚫렸어요. 그 때 잠깐 생각이 자유로워진 거 같아요. 남들 시선보단 내 자신이 뭘 원하는지에 귀를 더 많이 기울이게 된 시기였고. 내로라할만한 남자 배우들과 호흡을 맞춰왔습니다. 매번 그런 배우들과 함께 연기하다 보면 상대를 의식할 수 밖에 없을 텐데요. 저는 늘 제 자신이 몇 프로 부족한 거 같아요. 그래서 뒤쳐지고 싶지 않은 마음은 있어요. 어쨌든 상대방과 같이 호흡해야 하니까 이건 그냥 제가 못해도 저 사람만 잘하면 되는 작업이 아니잖아요. 그래서 제가 조금이라도 부족해서 혹시 나 때문에 작품에 민폐가 되진 않을까, 이런 마음이 들어서 그걸 채우기 위해서 열심히 했어요. 그러니까 상대방이 저렇게 잘 하니까 난 더 잘해야지, 가 아니라 나도 거기에 맞춰서 더 열심히 해야지, 라는 자극을 받았죠. 물론 경쟁까지는 아니지만.
<멋진 하루>에서 함께 호흡을 맞춘 하정우 씨는 예전에 TV드라마 <프라하의 연인>에서 함께 출연한 적도 있죠. 그 당시 얼굴을 알리기 시작한 신인배우였던 하정우 씨가 지금은 충무로의 블루칩이라는 수식어를 얻었습니다. 배우로서 이렇게 다른 배우의 성장적 변모를 지켜보는 느낌이 궁금합니다.
그냥 어느 순간 하정우란 배우가 배우로서 제 앞에 서 있었어요. <프라하의 연인>때는 제 파트너가 아니라서 함께 집중하며 호흡 맞출 여건이 아니었지만 그때도 이미 하정우 씨는 이미 준비된 배우였던 거 같아요. 단지 시간이 지나서 하정우란 배우와 집중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된 덕분에 그 때 발견하지 못했던 것들을 더 많이 느낄 뿐이지, 하정우 씨는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거 같아요.
스스로가 신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작품의 기준은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제 기준은 시나리오에요. 다른 것보다 절대적으로 시나리오인 거 같아요. 그래서 저는 가끔 신기한 게 있어요. 종종 남자배우들 보면 시나리오를 보지 않고 미리미리 몇 작품을 정해버리잖아요. 송강호 오빠도 그렇고, 너무 신기해요. 물론 강호 오빠는 대부분 다 좋은 감독님들과 작업하긴 했다지만, 아무리 그래도 저 사람은 어떻게 저럴 수 있을까 싶어요. 그래서 어떻게 보면 요즘 같이 어려운 불경기 때는 그럴 수 있는 게 좋을 거 같아요. 왜냐면 미리 찜을 해놓으니까. (웃음) 그런데 저는 그렇게 못하겠어요.
송강호 씨처럼 어느 정도 작품에 대한 신뢰성을 보장받을 만한 이력을 지닌 감독님들의 러브콜이 시나리오보다 먼저 들어온다면 어떨까요?
그래도 전 시나리오 달라고 할 것 같아요. (웃음) 저는 작품을 믿고 가고 싶어요. 그 작품으로 인해서 저란 배우도 있는 거고, 감독님도 있고, 다 있는 거지, 작품을 떠나서 좋은 배우, 좋은 감독이 있는 건 아니잖아요. 그건 예전에도 그랬지만 앞으로도 고집하고 싶어요.
<멋진 하루>도 당연히 시나리오가 선택의 배경이겠죠?
당연히 시나리오였죠. 그 동안 이윤기 감독님께서 좋은 작품들을 만드셨지만 선뜻 보게 되는 작품들은 아니었잖아요. 그래서 결정하고 나서 다시 작품들을 쌓아놓고 봤죠. 어떤 감독님일까 생각하면서 봤어요.
이윤기 감독님의 전작들이 속된 말로 상업적으로 큰 인지도를 얻을만한 영화는 아니었죠. 그런데 전도연 씨와 하정우 씨가 출연한다는 것만으로도 <멋진 하루>가 어쩌면 이윤기 감독님 영화 중 가장 상업적 인지도를 얻을지도 모르겠단 예감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시나리오 상으로는 그렇게 대중적인 영화가 아니었어요. 그래서 흥행에 대한 기대는 약간 접어놓고 시작한 작품이었는데 막상 영화를 보고 나니까 점점 욕심이 나기 시작하는 거에요. 영화도 시나리오보다 훨씬 밝게 나왔고, 요즘 하정우 씨도 블루칩이라니. (웃음) 어려운 감정이 아니라 느껴지는 대로, 생각하는 대로 볼 수 있는 영화니까 좀 많이 봐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멋진 하루>는 이윤기 감독의 전작들과는 좀 다른 느낌이 있습니다. 전작들과 다른 능동성이 느껴진다고 할까요? 그건 아무래도 두 배우의 영향력이 작용한 것 싶습니다. 두 분이 주고 받는 대사의 톤에도 활기가 있고요.
촬영 들어가기 전에 감독님과 프리(pre-production) 작업 하면서 제가 그랬어요. 저러니까 <여자, 정혜>같은 영화를 찍을 수 있으셨지. 아, 나쁜 뜻에서 하는 이야기는 아니고요. (웃음) 맨날 바늘 하나 비집고 들어갈 수 없을 정도로 너무 꼼꼼하게 고민하시는 걸 보고 있으려니까 숨이 턱턱 막히는 거에요. 그래서 제가 오히려, 감독님, 그냥 마음 편히 가지세요, 이랬을 정도니까요. 그래서 촬영에 들어가면 숨막히고 답답할 줄 알았어요. 너무 꽉 조이실까 봐. 그런데 오히려 촬영장에서는 배우에게 전적으로 맡기시고 진행도 너무너무 빨랐어요. 그래서 저는 너무나 놀랐죠. <여자, 정혜>를 비롯한 전작들을 대체 어떻게 찍었을지 너무나 궁금해진 거에요. 프리 작업을 보면서, 아, 저렇게 찍어오셨겠구나, 했는데 오히려 같이 작업하고 나니까 정말 어떻게 찍었을까 싶어질 정도로 놀랐어요. <멋진 하루>는 단 하루 동안의 이야기에요. 하지만 촬영이 하루 동안에 이뤄진 것은 아니니까 긴 촬영기간 동안 그 하루 동안의 감정을 긴밀히 간직하고 이어나가는 게 중요했을 것 같습니다. 다른 작품들도 다 마찬가지였지만 전 감독님들이 웬만하면 (서사에 따른) 순서대로 찍었으면 좋겠어요. 정 그럴 수 없을 경우엔 어쩔 수 없겠지만 웬만하면 말이죠. 저에겐 그게 중요해요. 무시할래야 무시할 수가 없더라고요. 난 희수야, 이렇게 처음부터 극중 인물이 될 수 있게 아니라 저도 그 상황을 겪으면서 그 인물이 돼가는 거니까 겪지 않은 걸 한다는 건 거짓말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번 작품도 거의 순서대로 찍었어요. 다만 어떤 톤을 유지하기 위해서 스스로 노력해야 하는데 저는 제 스스로 신경 쓰지 못해요. 제가 전체적인 걸 보긴 힘드니까요. 아무래도 감독님께서 전체적인 걸 봐주시니까 톤의 일관성을 유지할 수 있게 감독님한테 많이 맡기고 의지하는 스타일이죠.
예고편에 등장하지만 영화에는 나오지 않는 장면이 있더군요. 희수가 마주 앉은 누군가에게 병운에 대한 이야기를 털어놓는 것 같았고요.
개봉시기가 늦춰지면서 감독님께서 편집을 바꾸면서 다른 식의 영화를 만들고 싶으셨나 봐요. 희수가 집 앞에서 친구를 만나서 너스레 떨 듯 얘기하는 장면이 있었죠. 병운이를 만났는데 어쩜 그러니, 로부터 시작해서 이런 저런 얘기들을 하는. 제가 그때 감독님한테 그랬거든요. 분명히 이거 못 쓰실 거에요, 안 쓰실 거에요. 그래도 감독님께서 우기셔서 촬영했죠. 그래서 막 투덜투덜대면서 찍었어요. (웃음) 그런데 그 땐 스모키 메이크업이 아니라 저도 좀 새롭긴 했어요. 하지만 결국 제 말대로 못 썼죠. (웃음) 그런데 저희 영화 편집 정말 잘 하지 않았나요? 시간이 많아서 감독님께서 편집을 다양하게 해보셨나 봐요. 사실 감독님들께서 후반작업이 중요하다고 하시는데 전 그 의미를 잘 몰랐거든요. 편집에 대해서도 잘 모르고. 그런데 후반작업이 길었던 만큼 공들인 보람이 있는 것 같아요.
<멋진 하루>에서 보여지는 서울 시내 곳곳의 풍광들이 낯설지 않지만 이국적인 느낌이 있어요. 실제로 촬영하며 보던 풍경을 영화상에서 보니 어떻던가요?
저도 놀랐어요. 서울 시내 곳곳이 이렇게까지 아름답게 나올 줄 몰랐으니까요. 서울이 아니라 마치 제3의 도시 같잖아요.
자연광을 주로 활용했는데 전도연 씨는 피부가 좋아서 자연광이 두렵지 않을 것 같아요.
그건 아니고요. 이제는 뭐 나이 때문에......(웃음) 무엇보다도 HD카메라가 두려웠어요.
병운 같은 남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옆에 있으면 짜증나고, 없으면 보고 싶고. (웃음)
결국 희수는 병운에게 빚을 일부 남깁니다. 의외의 선택이죠.
소유하고 싶은 욕망일지 모르겠어요. 여자들 특유의. (웃음)
여자로서 그런 희수의 심리가 이해가 가던가요?
희수는 원래 욕심을 부렸던 거잖아죠. 하지만 병운을 만나 예전의 희수로 돌아오면서 결국 욕심을 부린 자기 자신에 대해 반성할 여지가 생기지 않았을까 싶어요. 이게 내 모습이야, 라는. 그래서 그 차용증이 병운에겐 어떨지 모르겠지만 희수에겐 큰 여지를 둔 거란 생각이 들어요. 후에 스페인의 막걸리집 간판이 나오잖아요. 어쩌면 나중에 그 차용증을 가지고 희수가 스페인까지 찾아갈지도 모르죠. (웃음)
남자가 봐도 결코 미워할 수 없는 상대 같아요. 하루 동안 그런 상대와 보낸다는 건 나름 특별한 이벤트가 될 수도 있겠죠. 물론 평생이 된다면 좀 곤란할지도 모르겠지만.
아까 저희 코디 언니가 재미있는 얘길 해주더라고요. 갑자기 누나 동생으로 지내는 남자 관계자 분에게서 전화가 왔는데 뜬금없이, 병운이가 어떤 남자야? 이렇게 물었대요. 알고 보니 시사회에 아는 여성 관계자 분을 초대해서 영화를 보여줬더니 그 분이 그 남자분한테 문자를 보냈던 거에요. 넌 병운이 같은 자식이야, 이렇게. 그래서 코디 언니가 그 분에게, 네 캐릭터가 어떤지 알겠다, 이러면서 전화를 끊었다고 해요. (웃음) 아까 그 얘기 듣고 너무 웃었어요. 넌 병운이 같은 자식이야! (웃음) 사실 찍을 때 짜증이 많이 났어요. 그런 캐릭터가 어딘가에 있다고 생각하니 같이 있는 사람은 얼마나 울화통이 터질까, 너무 짜증나는 거에요. (웃음) 그런데 영화를 보니 병운이가 너무 사랑스러웠어요. 병운이는 떨어져 있어야 알 거 같아요.
같이 있을 때는 모르지만 지나고 나서 생각나는 사람이니까요.
그게 병운이의 매력이 아닐까 싶어요. 굉장히 뜬금없고, 그런 애가 어디 있을까 싶지만 남자마다 다 그런 구석이 있는 것도 같기도 하고요. 곁에 있을 때는 얘가 너무 싫어, 짜증나, 하지만 결국 그게 나름대로 매력이었다는 걸 돌아 돌아 알게 되지 않을까 싶고요.
희수가 돌아왔던 것도 건 그래서일까요?
그럴 수도 있겠죠. (웃음)
이윤기 감독님의 영화에 출연한 여자주인공은 이윤기 감독님의 차기작에 카메오 출연하는 건 아시죠?
아, 이번에도 한효주 씨도 나왔죠. 그런데 전 까메오라 해도 시나리오보고 결정할거에요. (웃음)
(무비스트)
<영화는 영화다>의 원작이 김기덕 감독의 시나리오라고 들었다. 그 시나리오를 선택하기 이전에 본인이 구상했던 시나리오는 없었나? 개인적으로 쓰던 시나리오가 몇 개 있었지만 작업을 하다 보니 잘 안 풀리기도 하고, 그렇게 고민하던 중에 감독님께서 이 시나리오 한번 해보지 않겠냐고 하셔서 살펴보고 결국 하게 됐다. 내가 만든 이야기보단 원작이 있는 이야기로 첫 연출을 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았고. 나 자신에 대해서 더 많이 알게 됐고, 더 많이 배운 거 같다. 그래서 나에겐 더 좋은 선택이었던 거 같고.
김기덕 감독의 원작 시나리오로부터 가장 크게 각색됐다 할만한 바가 궁금하다. 전체적인 뼈대는 원작을 최대한 살리려고 했다. 그래서 원작의 느낌들은 그대로지만 일단 이야기를 그림으로 보여주는 화법을 각색함에 있어서 내가 보여줄 수 있는 화법을 선택했다는 게 가장 큰 변화다.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수타는 강패와 대등한 관계였던 게 아니라 지금보다 좀 더 비중이 적었다. 원래 7:3(강패:수타)에서 6:4정도였던 걸 반반 정도로 각색했다. 물론 두 남자의 이야기란 점에서 영화와 시나리오가 같은 이야기란 건 맞지만 원작에선 강패 이야기의 비중이 더 컸다. 그리고 봉 감독에게 코믹한 요소를 많이 가미한 점도 있고.
아무래도 원작의 영향력이 완전히 배제되진 않았나 보다. 영화상에서 캐릭터 무게중심이 수타보단 강패 쪽으로 살짝 기울어진 느낌이 없진 않았다. 그런데 두 남자의 비중을 대등하게 변화시킨 의도는 뭔가? 김기덕 감독님의 원작에서 하고자 했던 이야기도 서로 다른 삶을 동경하는 두 남자의 모습을 보여주고자 했던 것이다. 그래서 난 처음부터 비중이 비슷하게 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비슷해지면 두 남자를 모두 각자 돋보이게 할 수 있다고 생각했고, 그만큼 영화와 현실의 비중도 비슷하게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김기덕 감독과 연이 닿게 된 경위가 궁금하다. 대학교 때 학생회위원을 했는데 학교 축제에 저명하신 분들을 초청해서 특별강의 같은 걸 하는 명사 초청강연 시간이 있었다. 그때 내가 김기덕 감독님께 와서 해주십사 연락 드렸고 그 인연으로 가끔 이메일을 주고 받았다. 그러다 졸업하면서 영화가 너무 하고 싶어서 감독님께 영화를 해보고 싶다고 메일을 드렸다. 감독님께 답장이 왔는데 지금 들어가는 영화가 있으니 여기서 연출부로 일하면서 영화가 자신에게 맞는지 안 맞는지 일단 해보라고 하시더라. 경험을 해보면 알 수 있다고. 그래서 처음으로 영화를 하게 됐고 그 후로 여기까지 온 거다.
김기덕 감독의 촬영현장에서만 경험을 쌓은 건가? 일단 <사마리아>연출부로 영화를 시작했다. 그리고 <사마리아>가 끝나고 한번 <신부수업> 연출부로 참여했다가 다시 <빈집>연출부로 참여하고, <활>과 <시간>의 조감독을 맡았다.
김기덕 감독의 현장과 일반적인 영화 현장엔 차이가 있을 것 같다. 차이가 많다. 내가 다른 영화현장을 많이 경험해본 건 아니지만 일단 김기덕 감독님의 현장은 굉장히 빠르다. 현장에서 순발력 있는 상황대처를 보이시니까 촬영진행속도가 빠른 것 같다. 날씨나 외부적 환경요인으로 인해서 촬영이 어려운 날이 생겨도 그런 여건에 맞게 현장상황을 즉각 바꿔서 결국 본인이 원하는 내용을 담아내는 게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또 하나는 배우들에게 무리한 요구를 안 하신다. 뭔가 얘길 해보면서 배우들이 못하겠다고 하면 그걸 강요하진 않는다. 나 같은 경우도 그런 영향을 받은 게 약간 있나 보더라.
<영화는 영화다>는 한 편의 영화가 완성돼나가는 과정을 그린 영화다. 작품을 완성해나가는 감독의 입장에서 자신의 영화 속에서 영화를 완성해나가는 과정을 지켜본다는 것 자체에 대한 아이러니한 감정 같은 게 생기진 않던가. 영화에 대한 영화이기도 하지만 관객들에겐 두 캐릭터의 삶이 먼저 보였으면 좋겠단 생각을 했다. 그 이후에 영화와 현실에 대한 부분을 좀 더 생각해봤으면 좋겠다는 의도도 있었고. 물론 아이러니는 많았지. (웃음) 촬영하는 스태프들이 실제로 연기를 했는데 카메라 뒤에선 그렇게 활발하던 스태프들이 카메라만 보면 자꾸 도망가는 거다. 그래서 스태프 연기시키기가 너무 힘들더라. (웃음) 스태프 연기시키는 날엔 촬영도 오래 걸리고.
낙원상가 옆에서 촬영한 씬에서 촬영장의 스태프들과 그 사이로 걸어 들어오는 강지환 씨의 모습이 대비적이라 재미있었다. 전문연기자와 비 전문연기자들이 카메라를 대하는 방식의 대비가 발견되는 느낌이랄까. 차이가 크다. 사실 영화에서 스태프를 찍는 경우는 별로 없다. 오히려 영화에서 좀 더 리얼할 수 있다는 기대가 있어서 찍었는데, 막상 찍어보니까…..안 찍는 게 좋겠더라. (웃음) 물론 스태프들이 고생을 많이 했고 사실 갈수록 스태프들의 연기가 늘었다. 스태프들도 모니터하면서 자신들의 연기가 느는 것에 대해서 굉장히 좋아했다. 그런 면에서 행복한 촬영현장이었던 거 같다.
아무래도 영화적 리얼리티와 현실적 리얼리티의 차이를 생각해볼 수 있는 지점이 아닐까 싶다. 감독이라면 현실적 리얼리티를 고려하면서도 영화적 리얼리티를 고민해야 한다. 게다가 영화란 진실을 보여주기 보단 진심을 담아내는 작업에 가깝다. 진짜가 있고, 정말 진짜 같은 게 있다면 사람들이 진짜라고 생각하는 건 진짜가 아니라 오히려 같은 쪽이 아닐까 생각한다. 진심으로 얘기하는 경우가 있고, 진심처럼 느껴지게 잘 전달하는 경우가 있지 않나. 그런데 사람들이 진심이 있다고 생각하는 건 후자다. 그게 정말 리얼해서가 아니라 리얼한 느낌을 주면 그걸 보는 사람들은 리얼하다고 받아들이는 것 같다. 때론 그게 약간 슬프기도 하다. 물론 <영화는 영화다>를 통해 정직하게 찍으려 했던 부분이나 배우들과 그렇게 작업했던 분위기는 영화에 담긴 거 같아 다행이다.
수타와 강패란 이름은 상당히 직설적이다. 명쾌한 은유지만 반대로 노골적이다. 한편으론 희화화된 뉘앙스로 받아들여질 위험도 있어 보인다. 고민이 좀 있었겠다. 위험할 수도 있었지. 그래서 고민도 좀 했는데 원작의 느낌을 최대한 유지하고 싶어서 그대로 갔다. 제목도 사실 원작 그대로인 만큼 수타와 강패란 이름도 그대로 가보고 싶은 느낌이 있었다. 물론 그게 좀 코믹하게 보일 수도 있지만.
봉 감독은 상당히 리얼리티를 중시하는 감독이다. 아무래도 감독 캐릭터란 점에서 감독인 당신과 비교하고 싶어진다. 당신과 봉 감독의 거리감은 어느 정도일까? 차이가 좀 있지. 봉 감독은 결국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영화적 설정을 진짜로 찍는다. 그런데 나라면 봉 감독처럼 그렇게 못한다. 영화는 순서대로 찍는 게 아니지 않나. 만약 싸우는 씬을 찍고 난 다음날 싸우기 전 씬을 찍어야 한다면 실제로 싸움을 한다고 했을 때, 배우 얼굴에 상처가 나면 사소하게 나마 맥락적 연결상의 문제도 생기니까.
실제적인 공간의 형태를 과감히 드러내는 느낌이다. 그 공간의 기시감이 영화와 현실의 경계를 희미하게 만든다는 느낌도 얻었다. 실제로 찍을 때와 전체적으로 컷들이 붙었을 때, 공간의 느낌이 달라졌다. 총체적으로 오는 느낌이 찍을 때보다 좀 더 리얼한 느낌을 주더라. 더 자연스러운 느낌도 있고. 인사동도 그렇고, 갯벌도 그렇고, 그 공간의 느낌들이 완성된 상태에서 보니 새롭게 다가오는 느낌이 있더라.
인사동이나 낙원상가처럼 사람들이 자주 오가는 장소에서 촬영이 진행됐다. 인파를 통제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 같은데. 종로는 어차피 골목 앞을 막으면 사람들이 들어올 수가 없으니 무리가 없었다. 그런데 인사동은 완전히 열려있으니까 거의 전쟁이었지.
게다가 소지섭에 강지환이라, 그 심각한 엔딩 장면을 찍으면서 다들 집중하고 있는데 그 옆에서, 소지섭이다! 강지환이다! 다 이러고 있으니, (웃음) 전쟁이었지. 우린 사람이 죽어가는 심각한 장면을 찍고 있는데 주변에 모인 사람들은 소지섭이다, 강지환이다, 이러면서 웃으며 사진 찍고, 우리는 통제하느라 정신 없고. 사실 그걸 찍으면 진짜 리얼한 건데 말 그대로 그건 영화가 아니니까. (웃음)
상황 자체가 현실과 영화가 공존하는 아이러니처럼 들린다. 인사동에서 옆으로 빠지는 골목 안에 폐지 수집하는 곳이 있다. 몇 차례 헌팅을 갔을 땐 조용하다 싶어서 한적한 골목을 헌팅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정작 촬영날은 폐지 수거하는 날이라 끊임없이 폐지를 실어 나르고 자동차도 오가고, 할머니, 할아버지께서도 왔다 갔다 하시고, 개도 있고. (웃음) 그런데 그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소지섭, 강지환이 누군지도 모르는 분들이라 그런 점에선 무리가 없었다. 한편으론 그런 점이 노인분들의 생활고가 느껴지는 측면이라 그런 부분들에 대해서 아이러니가 느껴졌다. 영화라는 결과물을 위해서 작업한 것이지만 그 현장 자체가 나에겐 현실이었고, 그런 부분들이 소중한 경험처럼 느껴졌다.
액션도 꽤나 중요한 관건이었을 것이다. 김기덕 감독의 현장에서 액션연출을 경험해봤을 리는 없을 것 같고, 그에 대한 노하우가 전무했을 텐데. 마지막 갯벌 장면 같은 경우엔 두 배우가 지칠 때까지 싸우는 느낌을 담고 싶었고, 결국 싸움 자체에 의미가 없어지는 느낌을 전달하고 싶었다. 이건 처음 시나리오를 쓸 때부터 생각했던 부분이다. 그런 바가 화면에서 드러나는 거 같아서 다행이다. 그걸 담아내기 위해서 배우들이 고생을 많이 했으니까. 지섭 씨는 촬영 끝나고 일주일 정도 지났는데도 귀에서 갯벌 흙이 계속 조금씩 묻어나올 정도라니까, 고생 많이 했지.
사실 갯벌은 계획된 로케이션 장소가 아니라고 들었는데. 원래는 그게 뻘에서 하는 액션은 아니었다. 내가 각색하면서 조금 수정된 부분인데 두 배우가 뭔가에 흠뻑 젖어서 같은 색깔이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캐릭터 컨셉에서 강패는 블랙이었으면 좋겠고, 수타는 화이트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처음 옥상씬을 보면 강패는 블랙을 입고 있고, 수타는 화이트를 입고 있지 않나. 그리고 봉 감독의 영화 안에서도 강패는 계속 정장 안에 검은 셔츠를 입고, 수타는 흰 셔츠를 입고 있고. 나중에 둘 다 뻘이 묻어서 같은 색깔이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똑같아졌다는 느낌. 그래서 갯벌을 생각하게 됐다.
그 갯벌씬에서 강패는 결국 수타와의 싸움에서 진다. 결국 주인공이 이긴다. 그건 어쩌면 검은 돌을 지워나가던 강패가 스스로 흰 돌에 둘러싸인 자신의 처지를 인정하는 것처럼 보인다. 결국 그 갯벌씬은 온전히 영화적인 현실에 대한 자조처럼 보인다. 수타가 이겨야만 하는 어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으니까. 사실 영화 한편이 만들어진다는 게 쉽지 않다는 걸 보여주고 싶은 부분도 있었다. 영화가 완성되는 순간의 느낌이랄까. 관객들이 보는 영화는 스크린에 걸린, 완성된 영화다. 스크린에 걸리기 위해 촬영됐지만 극장에 안 걸려서 상영이 안 되는 영화들도 있고, 촬영이 다 끝났지만 개봉을 못하는 영화들도 있다. 그래서 극장에 걸리는 건 사실 행복한 경우인데 관객들은 그런 영화들을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보기 때문에 한편의 영화가 완성되는 느낌이나 스태프들이 얻는 그 순간의 느낌을 전달해주고 싶었다. 그리고 영화에선 해피엔딩이 가능하다. 목적했던 결말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현실은 그렇지 않으니까, 목적대로, 시나리오대로 안 되는 경우가 많지 않나. 하지만 영화는 시나리오대로 완성되고, 그래야만 한다.
그 라스트 씬은 원래부터 존재했던 건가? 원래 원작의 엔딩이다. 원작에서 온전히 그대로 가져가고 싶었던 부분이기도 했고.
사실 갯벌씬은 엄밀히 말해서 영화적 영역의 성취인 셈이다. 영화만의 쾌감이지. 영화적인 만족감이고.
그에 반해 그 다음으로 이어지는 엔딩은 대비적이다. 영화적 결말에 대한 환상을 거부하려는 현실적 거부감처럼 느껴진다. 현실이란 해피엔딩이 될 수 없는 것이니까. 캐릭터로 얘기한다면 수타는 성장하고 변모한다. 그런데 강패는 변하지 않는 캐릭터다. 변한 것처럼 보일 때도 있지만 결과적으로 똑같은 캐릭터다. 그래서 처음부터 끝까지 같은 옷을 입는 것이기도 하고. 그렇게 변하지 않는 모습이 굉장히 슬픈 거 같다. 현실의 사람들도 쉽게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거든. 마지막은 그런 현실적인 부분을 보여주고 싶었다. 결국은 그것도 영화라는 느낌을. 마지막 장면에서 스크린이 뒤로 빠지고 크레딧 올라가기 전에 프레임이 하나 더 생기지 않나. 그런데 그게 극장에서 상영할 때 많이 잘리더라. 그 극장의 이미지가 객석의 한 세줄 정도는 보이고 더 넓어야 하는데 객석은 안 보이게 잘리는 경우가 있더라.
스크린의 비율 문제 때문에? 맞다. 그래서 혹시 관객들이 그 부분을 놓치면 어떡하나 싶은 생각이 들더라. 결국 그것도 영화였다는 그런 느낌을 주고 싶었는데.
극의 말미에 피칠갑을 한 강패가 수타를 노려보는 장면은 마치 객석을 노려보는 느낌이기도 했다. 사실 소지섭 씨가 연기한 강패가 강지환 씨가 연기한 수타에 비해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측면이 있다. 그건 종종 영화 속의 악인을 동경하는 것과 비슷한 느낌인데 강패의 눈빛은 그 영화적 환상에 빠진 관객에 대한 경계심을 요구하는 것처럼 보인다. 선과 악이라는 경계에 대한 사유도 가능할 것 같다. 난 사람을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으로 구분하기 보단 모든 사람에겐 두 가지 면이 다 있어서 선한 행동을 하거나 악한 행동을 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강패는 악한 직업을 가지고 있으니까 마지막에도 선하지 않은 행동을 한 거다. 그런데 사람들은 일단 그것이 선이냐 악이냐를 따지지 않고 더 매력적인 부분에 끌린다. 사실 그것도 좀 슬픈 거다. 재미없는 선보단 재미있는 악에 더 끌리니까. 물론 강패가 악한 캐릭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냥 그런 일을 하는 것일 뿐이다. 사람들이 각자 직업이 다르고, 사회적인 입장이 다른 건 스스로 선택한 어떤 초기의 결정 때문이다. 그 사람 자체가 매번 그런 판단을 하는 건 아니라는 거다. 그래서 스스로 좋아하는 일들을 하면 좋겠다. 사람들이 안 좋은 일은 직업으로 삼지 않았으면 좋겠다. (웃음)
갯벌 장면은 정말 처절했다. 얼굴이 갯벌에 반쯤 잠긴 강지환의 얼굴이 열의를 대변하더라. 이런 장면을 주문하는 감독은 얼마나 악랄할까 궁금하기도 했다. (웃음) 악랄하겐 안 했다. (웃음) 그냥 두 배우들이 스스로 열심히 했다.
강패와 수타를 바라보며 봉 감독은 아무도 모르게 미소를 짓는다. 감독이라면 자신의 영화에서 캐릭터로 완성되는 배우들을 지켜보는 과정은 여러모로 즐거운 일일 거다. 굉장히 즐겁겠지.
똑같다고 말할 순 없겠지만 본인에게도 비슷한 즐거움이 있었을 것 같다. 강한 열의를 갖고 연기에 임하는 배우들을 지켜볼 수 있는 감독의 입장이라면 봉 감독 못지 않게 즐거웠을 거란 생각이 든다. 사실 이런 얘기 아무한테도 안 했는데 배우들은 무지하게 고생했지만 솔직히 난 속으로 즐거웠다. (웃음) 배우들한테는 고생해서 마음이 아파요, 이렇게 얘기했지만. 영화에 그런 강렬한 느낌들을 주니까 그런 광경을 찍을 수 있어서 즐겁지.
그 장면을 촬영하기 직전에 봉 감독과 강미나가 주고 받는 대사가 생각난다. 두 배우를 격려하고 돌아온 봉 감독에게 미나가 괜찮겠냐고 묻자 봉 감독은 ‘감독이라고 뭐, 다 아나?’라고 대답한다. 그리고 미나가 그럼 감독님은 뭘 아느냐고 되묻자, ‘내 배우 끝까지 믿어야 된다는 거’라고 답한다. 그 대사가 어쩌면 감독 본인이 하고 싶은 대사였을지 모르겠더라. 내가 하고 싶은 얘기를 봉 감독이 대신하는 대사가 조금 있다. 물론 그 이전에 봉 감독 캐릭터를 위한 대사다. 코믹하긴 하지만 결국 감독이니까 감독다운 모습을 마지막에 보여주고 싶었다.
감독으로서 배우를 믿고 가야 하는 순간이 있을 것 같다. 때론 갈등이 될 수 있지만 결국 감독이 배우를 신뢰할 수 있을 때 결과물의 가능성도 더 높아지는 게 아닐까 싶다. 배우들과의 소통은 어땠나? 두 배우가 시나리오를 처음 봤을 때, 하고 싶다고 했을 때부터 각자 캐릭터에 대한 애정들이 느껴졌다. 두 배우가 스스로 생각하는 강패, 수타라는 캐릭터에 대해서 고민해온 부분이 있지 않나. 내가 시나리오를 쓰면서 생각했던 캐릭터가 있고. 근데 두 배우가 많이 고민한 부분을 내가 일방적으로 여기선 어떻게 해야 된다고 지도하진 않았다. 일단 배우들이 만들어온 캐릭터를 최대한 담고 싶었고, 그게 전체적으로 큰 톤에서 벗어날 때만 얘길하는 편이었지. 어찌됐든 소지섭의 강패, 강지환의 수타가 될 수 밖에 없으니까. 오히려 편했다. 배우들과는.
사실 첫 영화부터 캐스팅이 화려하다. 일단 두 배우를 보는 것만으로도 만족스러웠을 것 같다. 촬영 내내 흐뭇했지. 어떻게 잡아도 그림이 나오니까 편한 것도 있고. (웃음) 두 배우가 굉장히 길지 않나. 만약 어느 한 쪽의 다리가 짧거나 머리가 컸다면 투샷을 잡기 보단 상대적인 표정 위주로 잡아야 되고 이런 걸 신경 썼을 텐데 그럴 필요가 전혀 없어서 카메라도 편하게 잡았다.
감독으로서 두 배우를 컨트롤해야 한다는 부담은 없었나? 두 배우와 작업하게 된 게 행운이었다고 생각하는 건 지섭 씨나 지환 씨가 각자의 캐릭터를 너무 잘했기 때문이다. 만약 컨트롤한다고 생각했으면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을 거 같다. 그런데 컨트롤한다기 보단 같이 만든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편하고 즐거울 수 있었던 거 같다.
감독으로서 자신의 배우를 처음으로 경험해본 셈이기도 했다. 감독과 배우의 관계에 대해서 생각해본 바는 없나? 아직 정의를 내릴 정도로 경험을 해본 것 같진 않다. 다만 누구나 자신과 결혼할 아내가 이런 사람이었으면 좋겠다는 이상형이 있다. 그런데 결국 만나는 사람에 맞춰서 달라지지 않나. 실제로 만나게 된 사람을 그 이상형으로 맞출 순 없으니까, 서로 같이 변해야 하는 부분도 있고, 같이 잘 살아야 된다. 감독과 배우도 마찬가지인 거 같다.
강패와 수타가 달리기를 하면서 테이크가 반복되는 장면은 마치 강패의 현실을 밀어내고 그 자리에 영화적 현실을 안착시키는 작업처럼 느껴졌다. 그건 봉 감독이 강패를 길들이는 광경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감독의 입장에서 배우를 다스려보고 싶었던 바는 없었나? 의견의 차이가 발생한 적은 종종 있었다. 하지만 솔직히 크게 마찰하거나 충돌했던 점은 없었다. 의견 차이가 있는 경우에는 그냥 배우들이 원하는 걸 선택했다. 대부분 내가 특별한 주문을 안 한 상태에서 기본적인 동선만 정해주고 배우들이 잡아온 캐릭터로 테이크를 갔다. 물론 만약 내가 전체적으로 봤을 때 더 표현돼야 하는 부분이 있다는 생각이 들면 내가 원하는 바를 배우들한테 얘기해서 한번 더 테이크를 갔다. 의견 충돌의 느낌은 없었고 그 테이크 중 좋은 걸 쓰면 됐다. 그래서 오히려 작업이 빨랐던 거 같다.
사실 고창석 씨가 연기한 봉 감독이란 캐릭터가 없었다면 이 영화가 꽤나 삭막해졌을지 모른다. 봉 감독이 어떤 사람이냐에 따라서 두 캐릭터가 같이 영화를 찍는다는 설정이 가능해지기도 하고, 불가능해지기도 한다. 시나리오를 각색하면서도 중요하게 생각했던 캐릭터였다.
남자로서 이런 말하긴 뭐하지만, 꽤 귀여운 캐릭터였다. (웃음) 무대인사 다닐 때마다 관객 분들이 귀엽다고 하더라. 봉 감독님이 인사하면, 귀여워요! 이러니 매번 봉 감독님께서도 당황하셨지. (웃음)
여성 관객들의 반응이 뜨거웠을 것 같다. 그래서 이 나이에 내가 이런 소릴 듣게 될 줄 몰랐다고 얼굴이 많이 빨개지시더라. (웃음)
말미에 강미나의 말처럼 끝까지 없어 보이지만 그만큼 인간미가 느껴진다. 인간적인 매력을 주고 싶었다. 사실 감독님들 대부분이 그렇지 않을까. 나도 김기덕 감독님을 많이 봤지만 현장에서 있어 보이게 폼 잡고 있기 보단 대부분 편하고 후줄근한 차림으로 작품 자체에만 몰두해서 계신다. 현장에서 본인이 어떻게 보일까를 고민하는 것보단 그런 게 오히려 멋있어 보이는 거 같기도 하고.
평소 김기덕 감독의 현장 분위기는 어떨지 궁금하다. 보편적으로 대중들이 가지고 있는 김기덕 감독님에 대한 어떤 이미지가 있지 않나. 김기덕 감독님과 작업해보거나 개인적으로 만나오신 분들과 많은 차이가 있는 것 같다. 실제로 만나보면 재미있고 귀여운 부분도 있다.
귀엽다? 약간 개구장이 같은 부분이 있다. 음, 여하간 그렇다. (웃음)
혹시 김기덕 감독에게 원작 시나리오의 모티브나 소재를 얻게 된 경로에 대해서 한번쯤 물어본 적 없나? 원작은 오랜 예전부터 김기덕 감독님께서 가지고 계셨던 시나리오라고 한다. 하나의 이야기가 나오기 위해서는 많은 요소들이 작용돼야만 하는 것 같다. 감독님께서 보시는 배우들에 대한 느낌, 영화 속에서 보여지는 조폭들에 대한 느낌, 그런 부분들에서 아마 시작되지 않았나 싶더라.
사실 김기덕 감독의 영화가 대중적으로 많은 지지를 얻는 경우는 없었다. 게다가 대중과의 충돌이라 할만한 상황도 벌어지지 않았나. 아무래도 그런 일련의 상황을 김기덕 감독의 옆에서 지켜본 입장에서 김기덕 감독이 얻은 몇몇 어려움에 대한 감정이 있지 않을까 싶다. 일단 개인적으로 안타까웠던 부분은 감독님이 많이 외로워 보였다는 점이다. 사회적으로 감독님을 생각하는 오해적 이미지들 때문에 더 그런 것 같고, 무엇보다도 감독들이 대체로 좀 외롭지 않나. 현장에서 얘기할 사람이 많지 않으니까. 일적인 얘기를 해도 그 전체를 보는 사람은 감독밖에 없기 때문에 그걸 다 이해해 줄만한 사람도 없고. 그런 부분들이 많이 외롭게 보이더라. 다른 감독들도 그렇겠지만 작품을 깊게 들어가다 보면 소통할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다. 누구나 아는 얘길 하면 공감을 많이 할 수 있듯이. 그런 부분들이 어려운 거 같다. 내가 한번 김기덕 감독님께 유치하게 여쭤본 적이 있다. 감독님, 영화가 더 힘든가요? 현실이 더 힘든가요? 그렇게 여쭤봤더니, 당연히 현실이 더 힘들지, 그러시더라. 그러면서 영화 찍을 때가 제일 행복하다고 얘기하시더라. 영화를 찍을 때 제일 행복하고 시간도 잘 간다고, 거기서 행복을 느끼시는 거 같다. 나도 이번에 처음 찍으면서 들었던 느낌은, 배우들 고생시키고, (웃음) 고생시키면서 나도 고생하고, 그렇게 몸은 힘들어도 정말 행복하더라.
<영화는 영화다>라는 제목 자체가 애증을 동반한 느낌이다. 영화 자체에 대한 애증이랄까. 현실을 넘을 수 없는 영화적 한계에 대한 인정 같기도 하고, 현실은 결코 이룰 수 없는 영화적 성취에 대한 선언 같기도 하다. 영화에선 현실에서 하기 어려운 얘기들도 가능하다. 거기엔 어떤 차이가 있는 거 같다. 다만 굳이 그 차이에 얽매여서 영화와 현실을 대비적으로만 볼 필요는 없다. 물론 영화는 끊임없이 현실적 리얼리티를 담으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영화는 현실을 모방하는 반면, 영화를 보는 현실의 사람들은 영화를 모방하려고 한다. 각자가 지닌 장점들을 따로 봤을 때 오히려 그게 더 정확하게 볼 수 있는 방법이 아닌가 싶다. 정말 리얼한 걸 보고 싶다면 현실을 일상적으로 스치듯이 지나치지 말고 차분하고 주의 깊게 뭔가 본인이 원하는 걸 찾아보면 된다. 그럼 좀 더 리얼한 걸 찾을 수 있다고 본다. 영화와 현실 사이엔 그런 차이가 있는 게 아닐까 싶다.
현실과 영화의 우열관계를 나누기 보단 평행우주라는 대등한 관점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의미 같다. 하지만 결말부의 뉘앙스는 아무래도 영화보단 현실에 비중을 준 느낌이다. 영화도 현실을 위해서 있는 부분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결국은 현실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강패와 수타라는 두 캐릭터가 대립적인 관계로 보이지만 은연 중에 서로에 대한 묘한 애정이 오가는 것 같다. 약간 가볍게 말하자면 싸우면서 친해지는 관계 같기도 하고. 그런 게 느껴졌으면 했다. 사실 더 친하게 보이는 테이크들이 더 있었다. 그런데 너무 그런 느낌이 강하게 느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찍으면서도 배우들과 얘길 했던 부분이기도 하다. 그런 느낌은 있지만 너무 친하게 보이면 안 될 것 같다는 느낌이 있었다.
만약 그랬다면 두 사람의 경계가 희미해지기 보단 느슨해졌을 것 같다. 둘이 너무 친해지면 그것도 너무 영화적인 거니까. 사람이 또 그렇게 쉽게 친해지지도 않지 않나.
사실 <영화는 영화다>에서 강패를 비롯한 조폭들이 현실적인 조폭의 모습은 아닌 것 같다. 영화에서나 등장할만한 느낌이랄까. 일단 조폭 영화로 보이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조폭에 관심이 많진 않았다. 솔직히 강패 캐릭터를 만들기 위해서 조폭들을 만나서 취재하거나 그러지도 않았고. 한국 조폭이라기 보단 한국 영화 안의 조폭이랄까. 기존 영화들에서 묘사된 느낌들만을 통해서 설명하고 싶었던 부분들이 있었다. 룸싸롱이나 공사현장처럼 영화에서 많이 나오는 상황들이 있지 않나. 그리고 누군가를 죽여야 되는 부분도 실상 영화적으로 가져온 부분들이다. 스타 영화배우와 조폭의 부두목이란 직업을 지닌 두 사람이 서로의 삶을 동경한다는 부분이 중요했다. 개인적으론 꼭 깡패일 필요가 있고 스타일 필요가 있는지가 중요하기 보단 모든 사람이 다른 사람을 동경할 수 있다는 게 중요했다. 물론 일단 영화에서 그렇게 설정을 한 이상 캐릭터 자체의 삶은 리얼하게 보여야 되는 부분이 있다. 그걸 개인적 의도에 의해서 소모시키거나 조금 사소하게 다룰 수 있는 부분은 또 아닌 것 같다. 그래서 그런 설정 안에서 최대한 캐릭터의 삶을 살리려 노력했다.
그렇다면 현실보단 영화적 참고 사례를 물어야 할 것 같다. 처음 시나리오를 받아보고 <태양은 가득히>와 <무간도>가 떠올랐다. 두 남자가 각자 살아보지 못한 서로의 삶을 동경하는 느낌이나 정서가 제일 먼저 떠올랐다. 그래서 그 부분을 굉장히 중시했고 영화의 기준으로 삼았다. 그리고 어차피 이건 영화에 대한 영화이기 때문에 영화적인 부분들을 의도적으로 차용한 부분이 있다. 예를 들어서 강패가 영화를 촬영하면서 겪는 일은 영화적인 부분들이 많다. 연애만 해도 수타의 연애는 현실적인 연애고, 강패의 연애는 영화적인 연애다. 바닷가에서 키스하거나 그런 전형적인 영화적 느낌들이 강패의 연애에 있다.
아무래도 두 남자가 겹쳐지는 국면의 세기가 상대적으로 그 주변부에 배치된 사람들에 얽힌 이야기보다 눈에 띄기 때문에 어떤 주변 캐릭터는 간과되게 느껴질 공산도 있을 것 같다. 아까 말했던 그 연애적 형태의 대비도 본인의 의도에 비해 가볍게 여겨질 가능성도 있을 것 같고. 둘의 이야기에서 중심축을 이뤄야 되는 부분이 분명히 있는데 다른 주변부의 비중이 커지면 둘의 에피소드가 전반적으로 산만해질 것 같았다. 둘에 집중시켜야 하기 때문에 일부로 키우지 않은 부분이 있다. 그리고 두 남자가 서로를 통해 변화를 느끼는 지점도 있지만 각자 서로 사랑하는 여자를 통한 변화의 느낌은 부수적으로 주고 싶어서 그렇게 설정했다.
사실 결말을 배제한다면 강패는 배우로서 더 좋은 미래가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결과적으로 엔딩은 감독으로서 캐릭터의 운명을 결정지어버린 셈인데 좀 가혹한 면이 있는 것 같다. 현실이 가혹한 거 같다. 현실은 잘 안 바뀌지 않나. 사람도 쉽게 안 바뀌고. 그런데 역으로 난 정말 사람들이 보다 좋은 자신의 모습을 찾아갈 수 있는 결정들을 했으면 좋겠다. 그런데 그런 희망사항을 영화적인 만족감으로 적용한 채 끝내고 싶었던 건 아니기 때문에 차라리 영화는 그렇게 끝내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반대로 관객들은 자신의 현실에서 가능한 변화의 지점들을 선택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영화적인 대리만족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엔딩에서 드러내는 스크린과 객석의 거리감은 현실과 영화 사이에 존재하는 일종의 안전거리처럼 보인다. 안전거리라는 표현을 해서 그런데 영화 자체에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서 필요한 부분들이 있다. 그게 때로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경우들도 있다고 하는데 그런 것들을 결국 한발 떨어져서 볼 수 있는 관점이 필요하다. 영화를 보면서 감성적으로 즐거운 느낌을 얻는 것도 좋겠지만 결국 마지막엔 이것도 영화라는 느낌을 이성적으로 감안할 수 있어야 할 것 같다는 바람이 있었다.
드라마틱하게 흐르던 영화가 가장 노골적인 작가의 의도를 드러내며 엔딩을 맞이하는 셈인데 한편으론 도발적이면서 그만큼 위험한 시도처럼 보인다. 허무함을 느끼는 관객도 적지 않을 것 같단 점에선 위험을 무릅쓴 선택 같기도 하고. 위험하지. 후반 작업 하면서 그런 의견들도 많았다. 하지만 결국 처음에 이야기가 출발된 지점이 있기 때문에 분명히 그 부분이 표현돼야 하는 이유가 있었다. 물론 관객들이 허무하게 느낄 수 있다는 걱정도 했다. 자칫 잘못하면 관객을 영화에 계속 참여시키다가 마지막에 가서 만든 사람만의 영화로 바뀌어버릴 수도 있는 거니까. 창작자의 화법이 너무 강하게 느껴지는 동시에 정서적으로 적절하게 살짝 거리를 두고 빠져 나온다는 느낌을 주기 위해서 수정을 많이 했다. 화면이 빠지는 타이밍이나 음악적인 부분을 고민했다. 결국 영화가 하려던 얘길 변질시킬 순 없는 거니까 강하지 않으면서도 조심스럽게 했던 거지. 그런데 결국은 객석이 좀 잘려서 나오는 경우가 있다고 해서 안타깝다. (웃음) 그리고 사실 지섭 씨는 이 엔딩 때문에 이 영화를 결정하기도 했다.
개인적으로 가장 애착이 남는 장면은 어딘가? 개인적으론 뻘 씬도 애착이 가고 다 애착이 가지만 지환 씨와 지섭 씨가 많이 얘기했던 부분이 있다. 지환 씨는 강패를 보는 수타 입장에서 강패가 부하랑 공사장에서 가짜 액션하는 장면을 많이 좋아한다고 했고, 지섭 씨는 수타를 보는 강패가 가장 좋아하는 장면은 까페에서 은선이랑 둘이 차 마시는 장면이라고 하더라.
그 두 장면은 각자 캐릭터의 변화를 가장 극명하게 드러내는 지점이라 해도 좋을 것 같다. 나도 개인적으론 강패의 가짜 액션 장면이 가장 좋았다. 사실 영화를 두 번 봤는데 두 번째 볼 땐 결과를 알고 봐서인지 그 장면에선 꽤나 슬픈 느낌이 나더라. 그 시점에선 유쾌한 느낌을 주지만 그게 결과적으론 좀 슬픈 장면이다. 현실로 돌아올 수 밖에 없는 강패가 느끼는 영화에 대한 안타까움이 상대적으로 더해지니까.
수타는 결국 성장했고, 강패는 모든 것을 잃는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마지막 순간에 웃고 있는 건 수타가 아니라 강패다. 하지만 그게 이겼다는 승리의 느낌이라거나 정말 기분 좋은 만족감에서 나오는 웃음은 아니다. 되려 웃음 자체가 역설적으로 슬픈 느낌을 대변하게 만드는 부분이었다.
언젠가 본인의 이야기로 연출을 하게 될 기회가 있을 거다. 본인이 주로 관심을 갖게 되는 부분이 뭔가? 사람에 대한 부분이다. 인생에 대해서, 사람에 대해서, 누구나 다 하는 생각일지 모르지만 사람에 대해서 생각한다. 사람이 중요한 거 같고. 아마 내가 글을 쓰게 되면 그런 부분들이 영화에 반영되지 않을까. 그리고 선악에 대한 이야기도 매력이 있는 거 같다.
확실히 구분할 수 없는 경계에 대해서 매력을 느끼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사실 그 경계가 그렇지. 어느 상황에서는 그게 선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어느 상황에선 그게 악으로 보일 수도 있다. 그 미묘한 경계에선 분명한 긴장감이 있다. 그래서 언젠가 한번 선악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이 있다. 내가 개인적으로 스릴러를 많이 좋아하기도 했었고. 물론 공포 빼곤 대부분 좋아하지만. 공포영화는 무서워서 잘 못 본다. (웃음)
첫 영화였던 만큼 지나고 나서 느끼는 아쉬움도 있을 것 같다. 많지. (웃음) 지금은 무대인사 다니느라 바쁘지만 무대인사 끝나고 이제 나 혼자 있을 수 있는 시간이 되길 기다리고 있다. 사실 빨리 혼자 있고 싶다. 물론 그 전에 무대인사를 열심히 다니고 싶고. 그 이후로 혼자 있을 수 있는 시간이 되면 내가 찍은 영화에 대해서 내 스스로 다시 한번 공부해봐야 될 거 같다. 어떻게 찍었으면 더 좋았을까라는 부분, 아쉬운 부분들은 왜 아쉬운지, 그런 부분들을 공부해야 개인적으로 영화가 마무리될 거 같다.
영화는 개봉했고 첫 번째 작품은 본인의 손을 떠났다. 기분이 어떤가? 홀가분한 느낌도 있고, 일단 배우들과 함께 무대 인사 열심히 다니면서 잘 되길 빌어야지. 그리고 빨리 혼자 있는 시간을 갖고 싶다. (웃음)
어쩌면 <다찌마와 리: 악인이여, 지옥행 급행열차를 타라>(이하, <다찌마와 리>)란 영화가 이 사무실의 벽면과도 같은 형태가 아닐까 싶다. 설마 저 트뤼포 같은? (웃음)
당신이 지닌 취향들의 콜라주(collage)같은 영화다. 그렇다! 이건 미술로 따지면 콜라주고, 문학으로 따지면 인덱스(index)지. 내 취향이 많이 들어간 거지.
순제가 어느 정도인가? 순제는 28억 5천, 마케팅비를 포함한 전체제작비는 정확하게 모르겠다.
겉보기보다 제작비가 많이 들진 않은 것 같다. 대작처럼 느껴지는 면이 있다. 많이들 그러더라. 그래서 순제를 말하면 다들 놀라지.
30회차라고 들었다.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도 36회차로 알고 있는데. 내가 지금까지 찍은 영화 중 회차가 제일 짧다.
노사단체 협약이 이뤄진 이후에 당신이 처음으로 찍은 영화다. 그런가? 벌써 그렇게 됐구나.
30회차로 타이트하게 찍었다 해서 혹시 그 부분에 대해서 염두한 바가 있는 건 아닌가 싶었는데 반응을 보니 그건 아닌가 보다. 전혀 상관없다. 내가 <아라한 장풍대작전>(이하, <아라한>) 이전까지만 해도 정말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 24시간 동안 촬영하고 그런 적이 많았다. 그런데 <아라한>때부터 정말 불가피한 상황이 아닌 이상 12시간 촬영시간은 지키려고 노력했다. <아라한>이후부터는 현장에서 시간을 운용하는 것에 대한 노하우가 생겼다. 그런데 그 이전에 내 영화 현장은 강도가 세다. 일단 찍어야 될 컷들도 많고, 준비해야 하는 것들도 많다.
철저하게 촬영 스케줄을 짜고 움직였어야 했을 텐데. 태도 자체를 영화의 기본 컨셉에 맞춰보고자 했다. 아예 옛날 방식의 영화 만들기 스타일을 추구했다라고 할까. 제한된 예산환경과 빠듯한 스케줄, 그걸 스스로 절제한 게 좀 있다. 이런 한계를 돌파해나갈 때 나타나는 것이 이 영화엔 진짜라는 생각을 했다. 다른 영화 만들 때처럼 하나하나 세심하게 가짜 이미지를 만들어낼 수도 있었겠지. 훨씬 더 세련된 방식으로. 그런데 그건 이 영화의 방향과 잘 맞지 않다고 느껴졌다. 직선으로 내지르는 현장, 전체적으로 그런 분위기 안에서 모두가 다 흉내 내고 어물쩡거리는 B무비 말고 진짜 B무비를 만들어보자 싶었다.
예전부터 <서극의 칼>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이 종종 있었다. 근래 들어 한 인터뷰를 보니 <다찌마와 리>에서 그 장면을 직접 재연해보고 서극이 그것을 이렇게 찍었는지 알게 된 것 같다는 이야길 했더라. 결국 방금 말한 그 태도는 <다찌마와 리>를 통해서 단지 과거와 비슷한 이미지를 재연하는 것만이 아니라 그 당시 영화의 제작 형태를 답습해보고자 하는 의욕이 있었던 것 같다. 요즘은 워낙 어떤 영화를 만들어도 현장 규모가 크고 그렇지 않나. 그런 건 사실 돈으로 이뤄지는 것들이다. 그래서 정말 최소한의 순수한 형태의 것들을 가지고 영화를 완성시켜보고 싶었다. 그렇다고 우리 영화 현장이 되게 가난하고 궁색해 보이는 현장이었단 말은 아니고. (웃음) 정신과 태도의 문제겠지. 진짜를 체험하는 것. 그건 사실 관객들에겐 별로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도 있을 거다. 그러나 만드는 사람으로서 지금 이런 한계지점을 돌파해봤을 때 뭔가 얻어지는 게 많을 거란 생각이 들었고, 그리고 실제로 얻은 게 많았다. 108회 차 촬영도 해본 내가 이제 30회차 촬영도 해보니까 정말 뭐든 할 수 있을 거 같더라.
<다찌마와 리>는 한국 영화의 전통과 오늘날 관객 사이의 괴리감을 느낄 수 있는 지표가 아닐까 싶다. 단순히 뻔뻔한 유머를 즐기는 관객도 있겠지만 개중엔 의도적으로 차용된 한국고전의 장면들을 즐기는 사람도 있을 거다. 그러나 후자보단 전자의 태도로 이 영화를 즐기는 사람이 월등할 것으로 보인다. 이는 한국고전영화들의 명맥이 그만큼 현대 관객들과 소통하지 못하고 있는 게 아닌가란 생각을 해볼 수 있게 만드는 여지다. 그건 지금 우리 영화문화의 현실일 수도 있겠지. 분명 아는 만큼 <다찌마와 리>를 더 즐길 수 있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나는 이 영화를 볼 때 많은 사람들이 같은 영화를 보고 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수많은 사람들이 같은 극장 안의 같은 프린트를 보는 것뿐이지, 보고 나올 때는 전부 다 다른 영화를 보고 나왔다고 생각한다. 다만 그 지점에서 갈리는 문제가 생긴다. 난 관객들의 반응을 보자면 이 영화가 희한하게 일종의 게임처럼 느껴진다. 이 영화야 말로 어쩌면 인터랙티브(interactive) 영화다. 이 쪽에서 뭔가 던져졌을 때, 반대쪽에서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서 다음 상황이 다르게 읽혀진다. 지금 말한 한국고전들, 그리고 아시아의 유치한 6~70년대의 활극영화들, 그리고 더 멀리 나아가서는 007시리즈까지, 이런 것과의 연결고리가 있는 관객일수록 이 영화와 더 잘 맞아떨어지긴 할거다. 하지만 다른 맥락에서 볼 수도 있다. 내게도 처음으로 이런 류의 영화에 관심을 갖게 된 순간이 있었을 것 아닌가. 저런 식으로 연기를 하다니, 저런 대사를 쓰다니, 지금으로서는 말도 안 되게 여겨지는 그런 것들이 흥미로웠고, 그 자체로 낄낄거릴 수 있었다. 그런 정보가 단절됐더라도 즐길 수 있는 방식이 있다. 그래서 이 영화로 그런 유희를 즐기면서 역으로 과거를 찾아갈 수도 있다고 본다. 물론 그런 시선은 내겐 부담스럽다. 사실 이 영화가 과거의 영화들에 대한 존경만 담아낸 영화는 아니니까. 그리고 내가 역사를 잇는다는 엄청난 사명을 띠고 만든 것도 아니고. (웃음) 하지만 이런 류의 영화가 오늘날엔 워낙 드물다 보니까 접근이 어렵다. 그래도 최근 영상자료원에서 활발히 프로그래밍 하고, 영화제 회고전를 통해서 소개되기도 하니까 어쩌면 다행이다. 지금보다 이런 상황이 더 나빠지기야 하겠나.
예전 영화들에 대한 존경만이 담겨있는 영화가 아니란 말은 애증처럼 들린다. 결국 <다찌마와 리>엔 자신의 소스가 된 고전에 대한 조롱 섞인 위트가 포함된 것 같다. 그런데 사실 조롱의 태도는 B급 영화를 즐기는 방식과도 상통되는 게 아닐까. 그렇지. 지금 현대 관객들에겐.
사실 그것이 본래 일반 관객들을 대상으로 한 유희였던 것과 달리 오늘날엔 일부의 특별한 취향이 되어가기도 한다. 그런 면에서 <다찌마와 리>도 실상 매니악한 범주의 영화에 더 근접해 보인다. 지금 난 과연 순수한 형태의 매니아가 어떤 형태로 존재하는지 피부로 와 닿지 않는다. 모두가 다 인터넷 뒤로 숨어버린 것 같고. 만약 이 영화가 한 10년 전에 나왔다면 B무비 말고 컬트란 용어를 쉽게 갖다 붙이기 쉬웠을 거다. 근데 컬트는 장르의 개념이 아니라 현상이다. 그리고 그런 현상은 지구상에서 점점 사라지고 있다. 순수하고 열광적인 지지자들이 끊임없이 재관람하고 그런 행위 자체가 독특한 하위문화를 형성한 뒤, 그것이 주류문화에까지 강렬하게 영향을 미치는 현상. 그런데 지금은 모든 것들이 빠른 속도로 바뀌고, 심지어 특히 우리나라 같은 경우엔 A와 B의 경계가 사라진 지 오래됐지. 산업구조자체가 A와 B를 용납할 수 있는 산업구조가 아니다. 모두가 그냥 메인 게임을 뛰어야 되고, 패자부활전이 불가능한 시장에서 영화를 만드는 어느 누구도 자신이 B무비를 만든다고 생각하진 않을 거다. 예전에 비디오 시장이 있을 때는 진짜 그런 게 있었지. 하지만 소수의 취향만을 노리고 가는 건 이제 너무나 무모한 시도다. 물론 내가 <다찌마와 리>가 온 국민이 좋아할 영화가 아니라고 생각한 건 명백하다. (웃음) 당연히 취향을 타는 영화라고 생각했다. 다만 한국인이 더 많이 즐길 수 있는 강점이 확실히 있다고 봤다. 약간 모자라 보이는 영웅, 그리고 우리가 공통적으로 무의식 중에 지닌 과거에 대한 기억, 그리고 주류 영화에서 관습적으로 사용하는 패턴들, 이런 것들을 조합해서 만들어냈기 때문에 분명 소위 매니아라고 지칭되는 소수집단보단 훨씬 많은 사람들이 즐길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쿠엔틴 타란티노’를 비롯해서 영화를 만들 때마다 어떤 감독과 비교되곤 했다. 매번 그랬지.
종종 그에 대한 반박을 피력하기도 했다. 사실 그런 상투적인 표현들과 비교가 좀 지겨웠다. 물론 다 내가 좋아하는 감독들인 만큼 어떤 영향을 받은 건 사실이다. 다만 영화에 대한 오해가 생길 때, 그런 지겨움이 가중된다. 얘는 그런 쪽이야, 라는 판단으로 접근해서 영화를 완전히 다르게 파악해버린다. 심지어 영화를 좀 봤다는 사람조차도 그럴 땐 이건 좀 어리석은 게 아닌가라는 생각도 들었다.
사실 류승완 감독의 팬이라고 자처하는 관객들 사이에서도 매 영화마다 반응이 갈리는 것 같더라. 팬이라기 보단 일종의 지지층이라고 해두자. 그런데 그 지지층이란 것도 재미있는 거다. 사람들이 내가 비슷한 류의 영화를 만들어왔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영화 사이의 간극이 크다.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와 <피도 눈물도 없이>가 비슷한 거 같지만 장르적으로나 형식적으로나 내용적으로 상당히 다르다. 그리고 <아라한>과 <주먹이 운다>, <주먹이 운다>와 <짝패>, <짝패>와 <다찌마와 리>. 서로 많이 떨어진 영화 아닌가.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내가 같은 장르의 영화를 만들어왔다고 착각한다. 게다가 그 영화마다 지지하는 층이 다르다. 내가 만든 영화 중에 <아라한>을 제일 좋아한다는 사람도 있지만 그것만 제외한 나머지를 좋아한다는 사람도 있다. 그러니까 사실 난 류승완에 대한 팬은 없는 거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다만 관심을 가져주는 건 있겠지. 개별 영화의 지지자들이 존재할 뿐이라고 생각한다.
당신의 영화에서 장르영화의 형태를 보고자 하는 욕구가 강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만큼 당신의 영화를 장르영화의 포맷을 규정하고 싶은 욕구들도 때론 강한 탓일 수도 있다. 그게 편하니까 그렇겠지.
아까 언급한 것처럼 어떤 외국 감독들과 종종 비교되는 것도 국내에서 장르영화감독으로서 선례를 보여준 경우가 드물기 때문에 외국에서 비교군이 될만한 대상을 찾게 되는 게 아닐까 싶다.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90년대 후반 이후, 한국에서 장르영화라는 게 어느 정도 정착기에 접어들고 있지 않나? 명백하게 한국형 공포영화의 형식이 존재하고, 한국형 범죄 영화들이나 필름 누아르, 활극 액션영화, 여러 범주로 한국화된 영화들이 존재한다고 본다. 심지어 올 여름에 웨스턴까지 나온 판에 한국에서 장르는 이제 일상적이다. 이전에 멜로드라마는 워낙 강했었고. 그런 의미에서는 나는 오히려 특별한 거 같진 않다. 동세대 감독들이 다들 장르의 자장 안에서 영화를 만들고 있으니까.
지금까지 만든 6편의 영화들은 액션이라는 공통분모가 존재하지만 각각 장르적 분자들이 다른 영화다. 범죄스릴러나 느와르, 활극, 등 저마다의 추임새는 확실히 구분돼야 마땅하다. 다만 그 영화에서 보여지는 액션들이 어디선가 봤다 싶은 흡사한 이미지처럼 느껴지는 게 장르적 착시를 부르는 게 아닐까. 사실 그건 독창성의 문제가 아니라 클리셰의 영역이다. 그런 이미지를 희귀하게 인식시키는 희소성이 당신을 특수한 영역으로 구별 짓게 만드는 요인이 아닐까 생각된다. 아마도 내 영화에서 액션으로 펼쳐내는 장면이 눈에 띄니까 사람들이 생각하기에 그 액션을 둘러싼 방식에 말이 많아지는 것 같다. 이를 테면 <짝패>에서 마지막 세트의 미장센 때문에 <킬빌>과의 비교가 굉장히 많았다. 영화의 내용이나 전체적인 형식에 담긴 모든 것들이 굉장히 동떨어져 있는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그런 기시감을 갖게 되는 거다. 물론 그에 대해서 긍정도, 부정도 하고 싶지 않다. 내 의도와 다르지만 그렇게 자꾸 받아들여진다면 나조차도 뭔가 오해 받을 짓을 한 것일 테니까.
<다찌마와 리>의 드라마는 일관성을 유지하지 않는다. 내러티브가 아니라 씬의 드라마처럼 보인다. 난 이 영화의 드라마가 가장 마음에 든다.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드라마의 구성과 구조가 다른 지점인데도 그걸 착각한다. 이를테면 <다찌마와 리>엔 어떤 목적을 가진 주인공이 있다. 임무를 수여 받아서 어디로 떠났지만 거기서 기억을 잃고 전혀 다른 길을 걸었다가 다시 기억을 되찾아 원래의 자리로 돌아온다. 그래서 원래의 임무를 다시 수행하다 보니 앞서 깔아놨던 사건들이 뒤에서 함께 작용하면서 앞에서 만났던 사람들이 다른 사람으로 맞부딪히게 된다. 그러니까 사실 이영화가 내가 만든 영화 중 그런 복선 구조에 가장 충실한 영화다. 좀 덧붙이자면 사람들이 이 영화를 볼 때 유의점은 말투를 쫓다가 말뜻을 놓치게 되면 실패하게 된다는 거다. 이 게임에서 지는 거지. 이 영화에서 대사들의 스타일은 쉽게 얘기해서 사투리라고 보면 된다. 이 세계에서 이뤄지고 있는 말투가 그냥 이런 거다. 이 게임의 룰을 인정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결과적으론 이야기에 집중해야 극장을 나오면서 승리의 깃발을 들고 나올 수 있는 거다. 거기에 실패하면 간장게장 집에 가서 간장에 밥만 비벼먹고 게의 속살 맛을 놓치고 나오는 거다.
하지만 이야기에만 집중하기엔 그것을 방해하는 유혹이 많다. 장치들이 좀 현란하다고 할까. 과잉된 이미지로 이뤄졌으니까 그런 것에 헷갈리다 보면 길 잃어버리는 거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되는 거지. (웃음) 깔려있는 카드도 봐야 되고, 이 골목의 구조도 봐야 되고, 언뜻언뜻 나타나는 엉뚱한 존재들에게도 신경 써야 하고, 그렇게 노닥거리다 보면 자기가 오던 길을 잃어버리는 거지. 나도 몰랐는데 반응을 보니까 양념 맛이 너무 세서 사람들이 그 맛에 넘어가는 거 같다. 사실 그 모든 상황은 얽히고 얽힌 관계를 읽으면서 진행돼야 하는 건데 사람들은 표면 위로 흘러가는 것들을 쫓아가다가 딴 데로 가버리는 거다. 이 영화가 좀 정신 놓은 영화 같지만 사실 관객들은 빡세게 봐야 하는 영화다. 정신 바짝 차려야 게임에서 이길 수 있다.
인터넷 버전인 <다찌마와 LEE>보단 매뉴얼이 복잡해진 거 같다. 난 이 영화의 오리지널 역할을 하는 인터넷 버전도 있었으니까 관객들이 지금까지 내가 만든 그 어떤 영화들보다 더 준비된 상태에서 극장에 올 거라 생각했다. 이럴 땐 기대치가 너무나 명확한 관객들이 너무 위험하다. 각자 머릿속에서 자기가 생각하는 영화들을 보려 오기 때문에 자기 생각과 조금만 달라도 거부감을 느끼게 되니까. 그 영화가 원래 자신이 생각하던 것과 다른 것인데도 그걸 인정하지 않고 이 영화가 틀렸다고, 나쁜 거라고 생각하는 거다.
<다찌마와 LEE>가 <다찌마와 리>의 원류임은 확실하지만 그 원래의 소스만으로 이 영화를 채워내기란 무리이기도 하다. 그 첨가된 새로운 소스를 관객이 어떻게 받아들일까에 대한 고민은 없었나? 이런 식의 센 유머와 설정만으로 3~40분 이상을 끌고 가기 힘들다는 건 누구나 다 알 수 있을 거다. 그래서 나는 한편의 영화 안에서 장르를 이동시키면서 세 편의 영화를 보는 것과 같이 느껴지게끔 하는 전략을 택한 거다. 사실 만주 장면에서 희한한 음악을 깔거나 썰렁하게 갔으면 그 장면의 대사들이 여전히 웃긴 대사들이 됐을 거다. 그런데 진지한 음악을 깐 이유는 그냥 앞에서 봤던 것과 이건 아예 다른 거라고 강조하고 싶었던 거다. 사실 이 영화의 가장 이상적인 관객은 능동적인 관객들이다. 팔짱 끼고 앉아서 어디 한번 웃겨보라고 하는 사람들은 절대 이 영화에서 즐거움을 느낄 수 없을 거다. 류승완이 무릎팍도사에 나왔는데 쟤 좀 웃길 거 같다더라, 혹은 자기가 영화 좀 봤으니까 류승완 영화도 내가 한번 봐주지, 이러면 100% 실패다. 그냥 이 영화의 텍스처(texture)만을 보고 들어와서 메인 타이틀 시퀀스가 뜨기 전까지 게임 설명 안내를 숙지하고 타이틀이 뜨면 그 타이틀을 좀 즐긴 다음에 본편에 들어와서 좀 적극적으로 반응을 하면서 봐야 한다. 예를 들어 수수한 미장센들이나 ‘설마’와 같은 말장난들을 하나하나씩 보고 즐길 때, 그리고 그게 뒤에서 하나하나씩 어떻게 바뀌어가는지를 볼 때, 관객들이 이 영화를 이기는 거다.
아이템을 수집하듯 봐야 한다는 말 같다. 일종의 보물찾기 같은 것일 수도 있겠지.
장철의 <독비도>나 <서극의 칼>, 그리고 주성치 영화를 비롯한 몇몇 영화들의 특정 장면이나 분위기를 의도적으로 차용한 장면들도 눈에 띤다. 아무래도 그런 장면들을 선별하고 배열하는 과정도 중요했을 것 같다. 기본적으로 일단 ‘007’의 패턴 안에서 생각했다. 그건 옛날 한국에서 만들어졌던 일종의 첩보영화들이 기본적으로 007이 되고자 하는 전원일기 팀의 욕망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사나 행동들은 기본적으로 예전 한국영화에서 많은 것을 차용했지만 그런 스파이 영화들을 참조했다. 부분적인 액션 장면들은 당신이 언급한 영화를 비롯한 어떤 다른 영화들의 영향이 있었고. 다만 더 넣고 싶지만 넣을 수 없었다거나 이런 건 특별히 없었다. 사실 그저 생각나는 대로 갔던 거니까.
사실 ‘다찌마와 리’처럼 호환이 수월한 캐릭터도 없다. 이 작품이 그걸 증명하는 셈이고. 난 그래서 이렇게 위험한 캐릭터도 없는 거 같다. 대표적으로 이런 캐릭터 시리즈가 실패한 케이스가 ‘어니스트’ 시리즈다. 뭔가가 더 재미있는 게 나올 거 같았는데 점점 이상해졌으니까.
2000년도에 인터넷 버전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 당시에 그걸 극장판으로 만들어봐야겠단 생각을 해보진 않았나? 그 땐 다른 영화들이 더 당겼으니까. 예전에 무비스트에서 했던 장문의 인터뷰에 실린 적도 있지만 사실 <다찌마와 리>는 다른 영화를 준비하는데 중간에 브레이크가 걸리는 바람에 갑자기 시간이 붕 떠서 가게 된 거다. 사실 생존하기 위한 전략이었다. 뭔가를 해야 하니까, 지금 당장 시나리오를 써내려 갈 수 있는 게 뭘지 고민했다. 그러다가 작년 추석 연휴 때 이거나 한번 써볼까 해서 쓰기 시작했는데 그 연휴 3일 동안 초고를 다 썼다. 그리고 사무실 나와서 돌려보니까 사람들이 낄낄대고 보길래 이거다 싶었지. 그래서 숟가락 빨고 있을 순 없지 않느냐, 이걸 하자, 이렇게 된 거였다. 먹고 살려고 찍은 거지. (웃음)
인터넷 버전을 찍게 됐을 때처럼 돌발적인 기획이란 점에서 맥락이 비슷하다. 그렇지. 2000년도에도 사실은 느닷없이 제안 받고 맘대로 알아서 해보라고 했으니까.
김지운 감독의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이하, <놈놈놈>)의 만주 씬과 <다찌마와 리>의 만주 씬은 안드로메다급의 간격이 존재하는 것 같지만 아무래도 비교하고 싶어진다. (웃음) 그러게. 사람들이 다들 그러더라.
<놈놈놈>은 만주에 직접 가서 찍었지만 <다찌마와 리>는, 영종도에서 찍었지. 만주 가는 비행기를 타러 가기 전에 지나치는 땅에서. (웃음)
솔직히 그냥 만주라고 잡아뗐으면 영종도인지 몰랐을 거다. 우리가 찍은 장소는 사실 지평선이 뻥하고 뚫린 곳이 아니었다. 좀 넓은 공간이긴 했지만 나중에 촬영하고 나서 걸리는 장면들을 CG로 닦아내고 지운 거다. 사실 만들어진 이미지다.
만주에 가지 않고서도 만주를 찍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어느 정도 있었던 건가? 갈 돈이 없으니까 못 간 거지. 거기에 무슨 자신감이 있겠어. (웃음) 지금 <놈놈놈>이후에 얘기되고 있는 만주 웨스턴 영화들을 보면 과거 개발되기 전의 한강 둔치를 만주라고 찍어놓은 노골적인 장면들과 비슷한 거다. 그러니까 옛날엔 그런 것이 영화와 관객과의 일종의 규칙이었던 거 같다. 만든 사람들이 그냥 이런 거라 하면 관객은 그냥 알았다고 끄덕이는 암묵적인 동의지. 가짜 외국어의 사용도 사실 그런 거고.
자막처리는 정말 파격적이라고 생각한다. 그 설정도 스스로 착상한 건가? 그렇다. 난 요즘 현대미디어에서 활자가 차지하는 비중이 이미 과거와 다른 형태로 변질됐다고 생각한다. 사실 저래도 되나 싶지만 사람들은 어느 순간 이미 영상매체에서 활자를 하나의 미장센으로 즐기고 있다. 정보를 전달하는 단순한 활자로서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활자 자체의 디자인을 즐기기 시작한 거다.
최근 버라이어티 프로에서 보여지는 자막이 좋은 사례가 아닐까 싶다. 맞다! 사실 최근 버라이어티 쇼에서 활자와 이펙트 사운드(effect sound)를 걷어내면 되게 썰렁한 장면들이 많지만 활자가 개입함으로써 뭔가가 더 강렬하게 증폭되는 면이 있다. <다찌마와 리>를 만들 때 내부에서 그 자막에 대한 찬반양론이 있었는데 난 자신 있었다. 현대 관객들에게 활자는 그 이상의 기능을 하고 있다는 확신이 있었고, TV나 UCC에서는 가능한 걸 극장에서 못할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만강, 압록강, 흑롱강 씬에 사용하는 활자의 서체를 그런 식으로 활용하는 방식이라던가, 다운로드 족들이 사용하는 자막들, 그런 건 남들이 안 하는 것이기도 했고. 물론 내가 <주먹이 운다>를 하면서 이런 걸 할 순 없는 거니까.
사실 압록강, 두만강, 흑룡강 씬이 <다찌마와 리>의 농담조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라면 만주 씬은 그로부터 극단적으로 떨어진 정반대의 지점이 아닐까 싶다. 만주와 오페라 극장 씬은 좀 정색하고 찍었다. 이 영화에서 내가 무게중심을 둔 고민은 농담과 진담의 수위 조절, 가짜와 진짜의 경계에서 줄타기를 잘 해야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뻥도 한두 번 들어야 재미있지, 시종일관 계속 듣고 있으면 질리지 않나. 어느 순간 정색하면 오히려 집중하게 되고, 그러다 또 풀어지면 그대로 즐기면 되고, 그걸 논리적으로 설명하기 힘들지만 어쨌건 스스로에게 질문은 계속 던졌다. 그런 농담과 진담의 경계를 어떻게 할 것이냐에 대해서 영화 만드는 내내 생각했다.
만주 씬의 스펙터클한 액션 씬은 다소 가볍던 영화에 일순간 비범함을 부여한다. 아무리 가벼운 영화라고 한없이 가벼워지게 하기엔 이 영화를 통해서 움직이는 자본의 크기를 무시할 순 없다. 마음이나 태도는 가볍게 먹는다고 하더라도 그런 자본을 운영하면서 굴러가는 현장 자체를 놀이터로 만들 수는 없는 거다. 그건 내 일이니까 내 일 자체를 가지고 장난치는 건 철부지 같은 짓이고, 비윤리적인 행위라고 생각한다. 영화 감독으로서 나의 직업윤리랄까. 농담과 진담의 경계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도 아마 그런 지점 같다.
핵심을 가져가면서 사람들이 영화를 체험했다고 느낄 수 있게 만드는 어떤 장면들을 상상하는 것이 만드는 사람에게 일종의 의무라고 생각했다. 감정적인 배우의 어떤 연기일 수도 있고, 화면의 스펙터클일 수도 있지만 TV쇼 프로그램이나 인터넷의 동영상을 넘어서는 어떤 것, 그러니까 스크린에서만 봐야 할 어떤 것, 그게 중요했다.
<다찌마와 리>를 포함한 지금까지의 영화들은 일종의 데이터 수집과도 비슷해 보인다. 데이터를 수집한다는 게 어떤 의미지?
매 영화마다 장르적 노선을 달리하면서 자신의 간접체험을 직접체험으로 바꿔서 수집한다 할까. 학습의 차원에서? 그런 바가 없진 않다. 그런 과정을 통해서 나 스스로에게 쌓이는 것도 많은 것이 사실이고. 전작의 성공이나 실패, 그건 부분적인 것부터 영화 전체를 포함한 경우도 있고 결과적으로 그런 것들이 내 다음 작업에 영향을 준다. 성취한 것들은 성취한 것이니까 그걸 다시 할 필요는 없다. 그래서 내가 아직까지 도달하지 못한 것, 혹은 해보려 했지만 실패했던 것을 치열하게 복기하고 그 다음작업에서 그것을 넘어서려는 성향이 있다. 지금까지 계속 그런 패턴의 연장이었다. 매번 영화마다 성취한 지점도 있지만 놓친 지점도 있고, 그렇게 반복되는 것 같다.
<다찌마와 리>는 어쩌면 당신의 필모그래피 안에서 쉬어가는 페이지나 일종의 중간결산이 아닐까? 전과에 있는 만화 페이지처럼? (웃음)
한편으론 화가가 아니라 목수가 되고자 한다는 출사표처럼 보인다. 영화를 찍으면서 생각해보니까 나란 사람은 예술가로서보단 기술자로서 영화에 접근할 때 훨씬 더 능동적인 태도가 생기는 거 같더라. 사실 나란 사람은 현장에서 영화를 만드는 노동자란 생각을 하니까 내 영화에서 숭고한 예술적 가치는 잘 모르겠다. 내가 가장 중요한 건 내가 만들려는 영화가 어떤 이야기를 다루고, 어떤 세계 안에 있고, 그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어떤 사람이고, 그 사람들을 표현하기에 가장 좋은 방식이 어떤 방식일 것인가의 문제다. 이런 고민으로 대본을 쓰고, 배우를 만나고, 영화의 쇼트를 계산해놓고, 그런 자체가 기능적인 방식으로 일을 하는 게 아닌가 싶다. 이러다가 어느 순간 그렇게 기능적으로 만들었던 어떤 영화가 아주 좋은 손재주를 보여준다면 그것이 어떤 예술적 성취를 이룰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다찌마와 리>에서 썰매 씬 같은 경우는 쉽지 않았을 거 같다. 경험치도 없고, 쉽게 제어되는 상황도 아니니까. 임원희 씨 말로는 스노모빌에 끌려 내려간 적도 있다고 하던데. 스노모빌로 끌고 가기도 하고, 보트에 태워서 밀어 넣기도 하고, 사람 따로 모빌 따로 달리기도 하고. 우리도 처음 찍어봤고, 어느 누구도 해본 적이 없어서 노하우가 전혀 없었다. 뭐, 완전 난리통이었다. 사실 국내촬영현장에서 운용되는 장비들 중 한국형으로 개발된 것들이 많다. 야매라고 할 수도 있고. (웃음)
뭔가 능동적인 시도들이 발생한 현장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 과정에서 예측하지 못했던 경험적 수치를 얻은 바도 있었을 것 같고. 역설적이지만 이 영화를 통해 규모가 큰 영화에 대한 자신감이 생겼다. 일단 내가 전체를 장악한 상태에서 세컨 유닛(second unit)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는데 결국 완전히 다른 두 개의 유닛으로 어떻게 현장을 운영할 수 있는지에 대한 학습이 된다. 그리고 사실 이 영화의 후시 녹음이 독특해 보이지만 지금 헐리웃의 주류영화 대부분인 90%가 후시녹음을 하고 있다. 오히려 이렇게 절박한 환경을 돌파하면서 학습한 것들이 많다. 영화를 만드는 기능적인 측면이랄까.
어쩌다 보니 정두홍 감독과 함께 한국액션의 프랜차이즈가 됐다. 그 상황이 때론 정두홍 감독과 류승완 감독을 한국액션의 마지노선처럼 보이게 만든다. 뭔가 내부적으로 느끼는 희소성의 위기를 두 사람의 이미지로 극복하려고 한다는 인상도 든다. 난 내가 액션영화 감독이란 건 내가 좋아하는 걸 하는 거니까 좋다. 그런데 그럼으로써 내게 뭔가 막 짊어 지우려고 하는 게 있다. 아니, 왜 나만 가지고 그래, 싶은 거지. (웃음) 솔직히 나와 정두홍 감독이 함께 작업한 작품은 별로 없다. 난 그게 그냥 붙이기 쉬운 방식이고, 말하기 쉬운 방식이니까 그렇게 끌고 가는 면이 있지 않나 싶다. 유하 감독과 신재명을 붙여서 뭔가 하는 건 이상하니까, 더 따지자면 정두홍은 김영빈 감독과도 묶였었고 장현수 감독과도 묶였었고, 오히려 김성수 감독과 묶였을 때 더 빛났다. 심지어 김지운 감독과 <반칙왕>으로 묶였었다. 그런데 나와 자꾸 묶이는 건 어쨌건 액션이 강하게 등장하는 한 감독의 세편의 영화에서 관련된 무술감독이었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
그런 이미지의 결정적 요인은 <짝패>가 아니었을까 싶다. 그게 컸겠지. 본질적으로 뭐가 어떤가를 떠나서 그냥 얘네들이 계속 일 저지르고 다니는 거 같으니까. (웃음)
젊은 액션배우를 발굴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 없나? 내가 키우고 싶은 생각은 없다. 우리 애들 키우는 것도 바빠죽겠는데 내가 무슨 배우까지 키우겠어. (웃음) 더 이상 다른 누군가를 책임지고 싶지 않기도 하고. 다만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한다. 예를 들어서 <스페어>에 출연한 임준일이라는 친구는 굉장한 액션 배우다. <짝패>에서도 나왔지만 뛰어난 기량도 갖고 있고, 연기도 잘할 수 있는 친구다. 다만 내가 부담되는 건 내 영화 찍기도 바빠죽겠는데 그런 것까지 책임을 져야 할 것 같은, 방금 말했던 것처럼 정두홍, 류승완이 액션영화계의 뭐다, 그런 걸 인정하는 순간 그런 의무감이 막 요구된단 말이다. 그 이전에 더 중요한 건 난 엑션영화를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다. 내가 지금까지 액션 장면이 많은 영화를 만들었지만 앞으로 액션이 완전히 빠진 영화가 떠오른다면 그걸 만드는 게 내 임무다. 물론 지금까지의 행위를 보자면 난 액션영화 감독으로 불리는 게 맞다. 하지만 그렇다고 당신이 이런 걸 해줘야 되는 게 아니냐는 의무를 짊어질 이유는 없지 않나. (웃음) 물론 좋은 액션배우가 있다면 좋겠지. 지금 정두홍 감독과 주축이 돼서 새로운 액션배우를 뽑은 ‘라이징 액션스타 프로젝트’에 기꺼이 참여하는 것도 그 때문이고. 그런 배우들이 존재한다면 언제든 내 영화에 기용해서 더 빛나게 만들 수 있다면 좋고, 그런 배우가 내 영화를 빛나게 해준다면 역시 좋은 거니까. 근데 그게 마치 의무사항인 것처럼 오해가 형성되면 부담이 된다.
사실 액션을 비롯한 장르영화 애호가로 많이 알려졌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 예전엔 장르 영화를 굉장히 좋아했지만 지금은 장르에 별로 흥미가 없어졌다. 다만 어떤 특정장르들이 몸에 붙는 감은 있지. <주먹이 운다>의 말미에서 보여준 권투 장면은 고의적으로 시선에 거리를 둠으로써 외부에서 감정이 발생할 가능성을 배제하고 사실적인 움직임을 통해 내부적인 감정을 전달하려는 경향이 있다. 피로감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고 할까. 그런 측면에서 보자면 당신의 영화에서 액션이 어떤 이미지적 목적만을 지닌 것은 아닌 것 같다. 피로감이라는 부분은 굉장히 정확한 표현이다. 액션 장면을 구축할 때, 그 영화를 지배해야 될 정서에 대해서 고민을 하게 된다. 이를 테면 지금 말한 장면에서는 인물의 어떤 피로감이 중요했지만 다른 장면에서는 분노의 폭발이 중요하다거나 혹은 분노한 자가 무너지는 과정을 통해서 겪는 애처로움이 중요하거나, 아니면 <다찌마와 리>처럼 통쾌함과 박력이 중요하다던가, 장면들을 구축할 때 매번 그 장면을 지배하는 정서를 생각하게 된다. 전해들은 말인데 외국에서 활동하는 한 영화관계자가 홍콩에서 견자단을 만났다가 <주먹이 운다> 얘길 했는데 견자단이 권투장면을 그렇게 찍는 건 처음 봤다는 거다. 그건 잘 찍었다, 못 찍었다, 이런 문제가 아니라 말 그대로 처음 봤다는 거다. 박진감 넘치는 권투장면을 보여주겠다 했다면 교차편집의 패턴으로 진행했다던지, 좀 더 빠르게 편집해서 카메라를 타이트하게 들이밀고, 머리에 물 좀 묻혀서 주먹이 강타할 때 물방울 좀 흩날리고 그런 테크닉들을 많이 구사했겠지. 그런데 전혀 멋있지도 않게 헛방질이나 하고, 그렇게 인물들의 지쳐가는 느낌이 중요했다. 그 영화와 그 장면을 지배하는 정서가 그래야 할 부분이었으니까.
몸과 몸이 부딪힌 후에 발생하는 극도의 피로감이 당신의 영화적 정서와 가까운 게 아닐까 싶다. 물론 그건 영화마다 다르다. <다찌마와 리>같은 경우, 내가 다찌마와 리가 피로한 모습은 전혀 보고 싶은 생각이 없으니까. (웃음) 어떤 세계 속에 어떤 인물들이냐, 어떤 이야기가 흘러가고 있느냐, 그걸 지배하는 정서가 어떠해야 되느냐, 그 영화가 요구하는 게 뭐냐가 가장 중요하다. 물론 끝까지 가는 것에 대한 애호는 있다. 그런 인물들에 대해 매력을 느끼는 점도 있고. 그러니까 내 필모그래피에서 그런 장면들이 많은 이유가 그런 까닭이겠지. 하지만 ‘핑크팬더’시리즈를 만들면서 그렇게 할 순 없는 거 아닌가. (웃음)
만약 2000년도의 <다찌마와 LEE>를 접하지 못하고 다른 영화를 통해 당신의 팬이 됐다고 말하는 관객이라면 <다찌마와 리>를 통해 당신에게 엄청난 이질감을 느꼈을지도 모를 일이다. 무비스트에서 보니까 승완이형은 어쩌고 하면서, 이렇게(엄지손가락을 내리는 시늉으로) 돼 있던데. (웃음) 보는 사람들 생각이니까, 그 생각을 틀렸다고 할 순 없지 않나. 만드는 사람과 다른 입장일 순 있겠지. 그런 것에 일일이 반응하기엔 내가 이젠 너무 나이 들었다. 늙었다는 게 아니라 그렇게 진심이 전달되는 게 아니란 걸 이젠 알아버린 거다. 오해나 편견에 대해선 내가 만든 영화로 명확한 해답을 주는 게 가장 정확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엔 그렇지 못한 지점이 있었다는 이야긴가? 오해 받고 그러면 욱하는 건 있었지. 그래서 당신 잘못 본거야, 이러는 마음이 있었다. 사실 다르게 볼 수 있지. 예를 들어서 어떤 영화에서 어떤 인물이 한 대사를 가지고도 어떤 사람은 거짓말이라 생각하고 난 진실이라고 해석하는 경우도 있으니까. 그건 각자의 생각이 다르고 입장이 다른 거다.
어떻게 보면 <다찌마와 리>는 겉으로 헐렁해 보이지만 정교한 계산에 따라 조작된 영화처럼 보인다. 배우들의 애드립이 끼어들 수 없을 정도의 장문의 문어체 대사들이 정해진 합에 맞아떨어져야 의도된 유희가 발생하니까. 결국 그 계산된 재미를 즐기지 못한 관객은 적응하지 못할 가능성도 존재하는 게 아닐까 싶다. 사실은 이 영화는 온통 진짜와 가짜가 뒤죽박죽으로 섞여있다. 그러니까 지금 말한 대로 정교함의 측면으로 접근하자면 되게 반대의 입장으로 얘기를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정교함을 가장한 헐렁함이 곳곳에 배치돼있으니까. 어떻게 보면 좀 허세부린다는 말이 정답인 것 같다. 진지한 체하거나 정교한 척하거나 허술한 척하는 영화인 거 같다. 이것이 진짜로 정교하거나 허술한 것이라기 보단 정교한 척하면서 또 다른 한편으론 허술한 척하는, 그러니까 그런 모든 게 허세인 거다. 호방하다, 잘 생겼다, 온갖 것들이 다 허세니까. 결국 주인공은 데굴데굴 구르면서 사람 살려, 라고 외친다. 허세의 실체가 드러나는 순간 대략 난감으로 끝나는 거지. 이 영화의 재미는 그런 지점에 있는 것 같다. 사실 요즘 사람들은 과연 자기 속에 있는 진심을 얼마나 밖으로 표출하면서 살아가는지도 잘 모르겠다. 더군다나 그러니까 영화는 특히 더 그렇고, 또 영화를 둘러싸고 이뤄지는 말들은 더 그렇고.
요즘은 점점 유희적인 형태의 감각적 자극을 요구하는 관객이 많아지는 것 같다. 블록버스터 규모의 스케일에 열광하는 관객들이나 버라이어티의 자막들이 주는 현란한 효과들이 통용되는 시대다. 그런 상황에서 진심으로 소통하길 바라는 감독의 입장이란 실로 고단할 수 밖에 없는 게 아닐까 생각된다. 영화가 점점 정보가 돼가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극장에서 영화를 볼 때 영화 끝나자마자, 심지어 영화 끝나기도 전에 마지막 컷의 대사를 하고 있는데 문쪽 커튼이 촥 열리면서 직원이 나오고 나가는 문 이쪽이라고 자세를 잡는 순간 불이 탁 켜지면서 관객을 막 내보내지 않나. 사실 지금 극장들이 안 그래도 된다. 예전 단관극장 시절엔 다음상영들이 많이 막힐 수 있고 영사실에서 해야 할 일이 많으니까 그랬다지만 지금은 영화와 영화 사이 텀도 기니까 관객들을 내쫓지 않아도 된다. 그런데 사람들이 그렇게 쫓기듯이 영화를 본다. 영화를 보고 즐기는 태도 자체가 거기서 그냥 시간을 때우는 거다. 엔딩 크레딧이 흘러가는 시간이 소중한 건 한편의 영화를 본 뒤 그 영화를 상징했던 음악들을 다시 한번 들으면서 그 장면들을 머릿속으로 한번 정리함으로써 자기 안에 영화가 쌓이기 때문이다. 내가 여러 나라의 영화제를 다니면서 느낀 건데 대한민국 극장이 세계에서 제일 빨리 극장에서 불을 켜는 것 같다. 영화가 상영되는 극장의 문화가 그럴 정도인데 다운받아서 보는 사람들을 붙잡고 내 진심을 얘기하는 건 진짜 어려운 일이 됐다. 하지만 입은 열려있으니 말은 해야 되겠고. (웃음)
그렇다면 대중영화라고 하는 것의 실체가 과연 무엇일까? 극장에 걸리는 영화들이 다 대중영화인 거지. <우린 액션배우다>도 대중영화고, <놈놈놈>도 대중영화고. 만드는 사람들이 대중을 대상으로 만드는 영화이기 때문에. 물론 크기의 차이는 있다. 박스오피스에서 성공하느냐, 실패하느냐의 차이도 있고.
우리나라 관객들의 성향이 많이 변했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이미 변한 지는 오래됐다. 난 사실 수년 동안 급격한 패턴으로 변했다고 생각한다. 그니까 영상매체를 소비하는 방식 자체가 완전히 바뀐 거 같다. 예를 들면 최근 재개봉 된 <영웅본색>을 20대 여성들이 박장대소하면서 본다더라. 성냥개비를 무는 순간 막 박수치고 웃고. 그 사람들은 우리가 본 <영웅본색>과 다른 걸 보는 거지. 몇 사람이 웃는 게 아니라 박장대소를 한다더라. 강호의 도가 떨어져도 너무 떨어진 거지. (웃음)
사실 <다찌마와 리>가 차용한 영화들도 그 당시엔 비범한 자태를 뽐내던 영화들이다. 그것들이 지금 와서 보니 꽤나 우스운 영화가 된 거랄까. 그런데 당신의 영화도 실상 10년 뒤에 어떤 식으로 비춰지게 될지 모를 일이다. 그냥 이런 영화가 있는데 사람들이 괜찮은 거 같다고 보면 성공한 게 아닐까? 사실 요새 남 생각 별로 안 한다. 내가 만드는 영화가 제일 중요하지. 다른 사람을 신경쓰기엔 내 일이 너무 중요하다. 할 일도 너무 많고. 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기엔 행동해야 될 것들이 너무 많다. 절박한 것들도 많고.
막연한 미래를 생각할 만큼 현실에서 여유가 없다는 말인가? 막연한 공상하고 있을 시간에 차기작 대본 한 줄이라도 더 치열하게 쓰는 게 낫다. 그러니까 난 지금 현재의 순간이 중요하다. 그리고 내가 다음에 만들 영화를 완성하기 위해서 지금 이 순간을 쓰는 게 중요하다. 이미 만들어진 영화에 대한 미련이나 애착도 없다. 내가 최선을 다해서 완성했으니까 이제 다른 살길을 찾아가는 거지.
고등학교 2학년 때 처음으로 구입한 8mm카메라기 결국 오늘날의 계기가 된 셈인데 그 카메라는 아직 갖고 있나? 있다. 집에 있는데 이젠 안 돌아가지.
어쩌면 그 카메라에서부터 류승완이라는 역사가 시작된 거라 봐도 될 것 같다. 어쨌든 당신도 언젠가 하나의 전통으로 남게 될 텐데, 분야에서 일가를 이루고 싶다는 욕심은 없었나? 예전엔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생각 안 한다. 내가 방금 말한 것처럼 그런 생각을 하는 시간에 내가 지금 준비하는 영화 대본 한 줄이라도 열심히 쓰고, 내가 만들 영화를 생각한다. 어차피 사람 인생이 자기 뜻대로 되는 게 아니니까 내가 그렇게 되고 싶다고 해서 그렇게 되는 것도 아니지 않나. 그런 생각은 좀 사치스러운 생각 같다 지금 현재를 충실하게 살아가는 게 더 중요한 태도 같기도 하고.
그런데 <야차>는 어떻게 된 건가? 정보를 검색해보면 간단한 줄거리와 천호진 씨에 대한 캐스팅 정보만이 확인되던데. 수년 째 그렇다. (웃음) 지금으로서 대답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 9월말이 돼야 모든 것이 결정 난다. 지금의 시장 규모에서 적지 않은 예산이 들어갈 영화이기도 하고. 그렇다고 해서 기록적인 어마어마한 예산을 쓸 건 아니지만…… 하여간 지금 그것에 대해서 말하는 건 사실 조심스럽다.
차기작은 <야차>가 아닐 수도 있겠다. 차기작에 대해선 조심스럽다. 작년에 <야차>사태를 겪고 나니, (웃음) 되게 조심스럽다. 책임질 수 있는 정도의 선에서 모든 것을 공개하고 싶다 이전에 내가 뱉었던 말들이 나한테 돌아오게 되니까 신중해진다. 책임질 수 있는 만큼 발언을 해야겠구나, 정확하게 발언해야겠구나, 라는 생각이 자꾸 드는 거다. 예전엔 쉽게 얘기했었지만 지금은 뭐라고 말할 수 있는 단계가 아니다. 다만 뭔가는 준비를 하고 있다.
어쩌면 지금이 비워낸 것을 서서히 다시 채워가야 할 시기가 아닐까 싶다. 일단 어떤 구체적인 작품이나 장르가 아니더라도 뭔가 주시하고 있는 것이 있나? 사람에 대해서 먼저 생각하게 되는 거 같다. 내 취향이 좀 바뀐 거 같다. 그래서 작업 방식이나 접근 방식도 바뀐다. 어떤 사람들이 어떤 세계에서 움직이는 이야기인가가 궁금하다. 사람과 사람이 관계를 맺을 때 그 관계 안에서 어떤 드라마가 발생하는 것 같다. 그래서 어떤 구체적인 인물, 인물과 인물의 관계, 그들이 사는 세계에서 발생된 사건, 그런 것들을 생각한다. 그에 관해 몇 가지 메모를 해놓은 것이 있다. 사실 내 조감독을 오랫동안 맡았고 작년 미장센 단편영화제에서 액션 스릴러 부분 대상을 받았던 친구가 이번에 데뷔작을 만드는데 그 대본을 내가 써줬다. 그것이 이제 곧 영화로 만들어지는데 내가 작가로서 역할을 해주는 것이 지금 나에게 닥친 것 중 제일 시급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사실 초고만 넘겨놓고선 알아서 쓰라고 했는데, (웃음) 그게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는 것도 중요할 거 같다.
혹시 석환과 상환이 함께 등장하는 모습을 볼 순 없을까? 배우로서는 이미 은퇴했다. (웃음) 난 배우 못하겠어, 너무 힘들어. (웃음)
상당히 오랜 시간이군요. 20년쯤 됐으면 이젠 뭔가 보여줘야 되는데, 그런 게 없어서. (웃음)
그래도 많은 걸 얻고 있다고 믿는 팬들이 있을 겁니다. 그런가? 너무 쉽게만 해온 거 같아서. (웃음)
시네마디지털서울 2008 트레일러를 제작했더군요. 사실 짧은 트레일러 하나 만들었을 뿐이라 그냥 조용히 넘어갔으면 좋겠는데. (웃음) 사실 제 분야도 아니라 무슨 말을 해야 할진 모르겠지만 이 영화제의 주제가 아무라도 영화를 찍을 수 있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해서 참여하게 됐어요. 말 그대로 제가 그 ‘아무라도’니까. (웃음)
주로 활동하는 공간이 홍대인만큼 홍대를 카메라에 담았더군요. 사실 처음 카메라를 잡아본 게 너무 겁나서 아는 동생들 중 카메라를 만지는 친구에게 레슨을 받아가면서 찍었어요. 그런데 네가 다 찍어보라는 식으로 찍는 건 절대 안 도와주더라고요. 그리고 자기가 뭔데 그런 걸 다 찍냐 그러면서 텃세도 심하고. (웃음) 다 찍은 다음에 저희 아버지께 보여드렸더니 반응이 너무 안 좋아서…… 어젠 블로그에 들어가보니 이건 내가 발로 찍어도 더 잘 찍겠다는 댓글도 달렸고. (웃음)
텃세가 심했나요? 장난이죠, 장난. 그냥 대체 뭘 하겠다는 거야, 란 식으로. (웃음) 디지털 영화는 누구라도 영화를 찍을 수 있다는 점에서 강한 미디어라고 하더라고요. 영화제 프로그램을 보니, 음악으로 치면 펑크나 락과 같은 실험적인 작품들이 많이 있는 것 같았고요. 그래서 개인적으로 CinDi의 그런 면이 좋기도 했고요. 발로 찍어도 이거보단 더 잘 찍을 것 같은 제 트레일러를 보신 많은 분들이 용기를 얻어서 내년에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있다면 좋지 않겠어요? (웃음)
현대는 개인의 창작을 전시하기 용이한 시대라고 생각해요. 스스로 발로 찍었다고 말씀하신 그 트레일러처럼 많은 사람들이 직접 찍은 영상을 인터넷을 통해 전시하곤 하니까요. 아무래도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 용이해진 만큼 기록하고자 하는 욕구도 같이 커진 게 아닐까 싶습니다. 다들 기록광이 되어가고 있는 걸까요? 물론 저는 시대가 어떻게 변해간다는 게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냥 변하는 것에 맞춰서 살아가게 되는 것 뿐이고, 그 변화라는 것의 기준 자체도 계속 변하니까요. 음, 변화에 선과 악이 있을까, 그런 생각도 들고. 일단 변화라는 건 재미있는 거라고 봐요.
작년 10월 즈음에 발표한 13번째 정규앨범 ‘The 3rd place’는 전작들보다 대중적이라 말할 수 있는 앨범이 아닐까 싶어요. 아무래도 좀 더 편해진 느낌이랄까요. 저는 20대일 때 올림픽을 결코 안 봤어요. 그런데 그게 서른 다섯 정도 넘어가고, 지금 와서 보니까 너무 재미있는 거에요. 20대엔 우울한 척하면서 혼자 각 잡고 사는 게 멋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게 점점 없어진 거 같아요. 좋은 게 좋다고 해야 하나. 머리가 나빠져서 그런 거 같기도 하고. (웃음) 나이를 먹는다는 건 그런 변화일지도 모르죠. 억지로 20대 때와 같은 태도로 살 수는 없는 거니까요. 물론 언제나 앨범을 만들 땐 치열하지만 제 내면의 변화가 음악에서 드러나는 게 아닐까 싶어요. 어른이 되어가며 좀 더 성숙해지는 변화가.
성숙이라는 단어가 어울리는 것 같아요. 사실 ‘공무도하가’를 비롯해서 20대 당시 발매했던 앨범들은 내면적 갈망을 거칠게 드러내는 느낌도 있었거든요. 20대는 누구나 그런 것 같은데요. 제가 아까 말했듯이 그 때 저는 올림픽을 싫어했어요. 그런데 제가 언제 그랬냐는 식으로 이제 올림픽을 보고 있잖아요. 20대엔 뭔가 그런 우울한 생각들을 하거나 갈등도 있는 그런 상황을 표현하게 된 거죠. 다만 이제 지금은 나이를 먹으면서 생각이 바뀐 만큼 그 시선 그대로 솔직하면 되는 거죠. 내 스타일은 이거니까, 라는 것에 맞춰서 제가 억지로 늘 그런 걸 만들어낼 필요는 없으니까요.
그 변화를 순순히 인정하게 되던가요? 나이를 먹으니까 그런 게 너무 좋은 걸요. 그러니까 우울하고 어두운 걸 되게 좋아했었는데 취향도 바뀌고, 생각도 바뀌고, 그래서 <쿵푸팬더>도 너무 좋고. (웃음) 저만 그런 게 아니라 누구나 그렇게 바뀌는 거 같아요.
사실 강변가요제 당시 ‘담다디’를 부를 때만 해도 참 발랄했는데요. 그 때는 19살이니까 19살다운 모습이 나온 거겠죠. 그리고 20대에는 20대다운 게 있었던 거 같고. 20대엔 누구든지 고민도 많고, 어둡고 그렇지 않나요. 지금 어른이 돼서 뒤돌아보니 우울증 있었던 사람처럼 보낸 것 같기도 하고, 되게 오만하기도 했던 것 같고. 20대 당시엔 왜 우리가 하고 있는 것들이나 우리가 느끼는 것들을 세상이 받아들여주지 않을까라고 생각했었는데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렇게 우울한 걸 어떻게 받아들이겠어요. (웃음) 물론 지금 제가 20대에 대해서 뭔가 말하고자 하는 게 아니라 결국 전 ‘싱어 송 라이터’로서 제 인생을 노래에 반영했고, 제가 느끼고 있는 것들을 스스로 얘기하다 보니까 그런 변화들이 자연스럽게 노래에서 보이게 된 거란 얘기에요. 10대엔 10대 나름대로의 고민이 있었고, 20대엔 20대 나름대로의 고민이 있었고, 그리고 30대에도 30대다운 고민이 있었던 거 같아요.
스스로 뭔가 특별한 변화를 모색한 바는 없나요? 30대가 되면서 일을 정말 잘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던 거 같아요. 일이 완전히 몸에 밴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에요. 사실 20대일 때는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어요. 일을 잘 한다던가, 아니면 꼬박꼬박 고정수익이 생긴다던가, 에 대해서 포커스를 맞추지 않았으니까요. 그것과 다른 인생의 테마가 있었는데 30대엔 조금 변했죠. 그래서 일도 많이 했고. 이제 40대가 될텐데 40대가 되면 또 바뀐다고 하더라고요. 그렇게 계속 누구나 다 바뀌는 삶의 이야기를 하는 게 제가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고요.
여행을 많이 다녔습니다. 덕분에 ‘삶은 여행’이라는 베를린 여행기도 냈고요. 최근에도 여행기를 하나 쓰고 있어요. 스페인 여행기.
EBS에서 방영된 ‘세계테마여행’과 관련 있는 건가요? 맞아요. 일전에 낸 ‘삶은 여행’이 잘 된 덕분에 하나 더 하게 됐어요.
판매량이 괜찮았나 보죠? 예. 좀 괜찮다고 하더군요. (웃음)
과거 오래 전 인터뷰에서 자신의 여행을 행군이나 개척이라는 단어로 정의했던 것이 인상적이었어요. 그 때는 아마 음악을 하면서 여행을 한다고 할까요? 일과 병행한 여행이란 의미가 컸기 때문일지도 몰라요. 그래서 그런 센 단어를 사용했던 거 같고요. 20대 때는 그냥 여행을 가는 게 아니라 내 지도를 넓힌다고 생각했었죠. 자신만이 자신의 지도를 만들 수 있잖아요. 내가 가본 데까지가 내 지도겠죠? 세상을 탐험하고 세상에 대해 좀 알고 싶단 생각도 들고 그랬기 때문이겠죠.
사실 치열함과는 좀 거리가 있어 보이는데 말이죠. 특히 경쟁이라는 단어와 정말 어울리지 않는 사람처럼 보여요. 저는 치열한 경쟁 싫어해요. 그런 거 정말 좋아하지 않아요. 그런데 올림픽은 재미있어요! (웃음)
사실 올림픽의 슬로건은 경쟁이 아니라 화합이기도 하니까요. 누굴 이기기 위한 경쟁은 본래 의미와 무관하죠. 그렇죠. 그러니까 스포츠도 아닌 예술에 경쟁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전 잘 모르겠어요. 우열을 가리는 것도 이해가 안 가고. 물론 여기서, 강변가요제는 왜 나갔어? 라고 물어보면 할 말이 없지만. (웃음) 그래도 그 땐 19살이었으니까.
수상이란 결과물이 존재하지만 강변가요제 역시 말 그대도 가요제라는 축제의 의미가 먼저일 테니까요. 그렇죠. 그리고 예술은 경쟁의 대상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요즘은 상업예술이란 이름으로 단가를 매기는 경우가 비일비재합니다. 음반판매량이나 박스오피스의 순위가 결국 그 작품의 가치로 대변된다고 할까요. 그러니까요. 그건 이제 상품으로서 경쟁 같은 거죠. 저는 그래서 그 세계가 싫어서 어렸을 때 그 세계와의 연관성을 정리정돈 한 거에요. 덕분에 오래 살 거 같아요. (웃음)
13번째 앨범을 발표한 현재의 이상은을 아는 사람도 존재하겠지만 여전히 ‘담다디’라는 과거형으로 이상은이란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도 꽤 많을 거에요. 자신을 여전히 ‘담다디’로만 기억하는 사람이 본인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나이를 먹으면서 점점 그에 대한 생각도 바뀌죠. 20대 때의 저는 뭔가 새로운 걸 하고 싶은데 사람들이 그걸 몰라준다는 것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었죠. 그런데 나이가 드니까 작가주의까지는 아니더라도 경쟁적인 시스탬에서 벗어난 음악을 하는데 사람들이 아직도 기억을 해주고 있으니까, 앨범이 한 장이라도 더 나갈 수도 있겠지? 이렇게 생각하게 되요. 더 긍정적이 된다고 해야 할까? ‘담다디’가 저에게 이득이었을 거라고, 그게 없었다면 지금보다 좀 힘들지 않았을까라는 생각도 들고. 계속 나이를 먹고 변해가니까, 이 다음에 한 50대쯤 되면 ‘아침마당’같은 프로그램을 진행할지도 모르잖아요. (웃음) 그때는 그런 덕을 볼 수 있지 않겠어요?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나에게 무슨 일이 어떻게 생길지, 나이를 먹으면서 얼마나 생각이 바뀔지 모르는 거니까요. 돌이켜보면 그렇게 고민했던 것들도 답을 알았다고 해야 하는지, 아니면 그렇게 생각하는 편이 낫다고 해야 하는 건지, 어른이 돼가면서 이런저런 걸 알아왔지만 아직도 모르는 거죠. 언젠가 제가 60대가 되면 ‘담다디’라는 이름의 밥집을 내서 돈을 벌지도 모를 일이죠. (웃음) 저라고 맨날 이렇게만 사나요? 그래서 이렇게 생각해보면 나쁠 거 없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20대부터 30대 초반까진 그게 너무너무 싫었지만 지금은 ‘담다디’란 밥집을 낼까, 이런 생각도 하고. (웃음) 어떤 사물들을 보는 관점도 자연스럽게 바뀌더라고요.
스스로에게 너그러워진 건가요? 너그러워진 건가? 일단 20년이나 그렇게 살아왔으니 이젠 좀 아득바득하지 말아야 될 거 같은데요. 무슨 영화를 누리자고. (웃음) 그냥 여유가 생겼다고 해야 하나? 20년 동안 걸어오면서 해볼 거 다 해봤으니까요. 20대답게 치열하게 고민했고, 30대답게 열심히 일했고.
그렇게 말하시니까 20년이 간단히 들리지만 그 20년은 실제론 상당한 여정이었을 텐데요. 뭐 그리 상당했겠어요. (웃음) 물론 이제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아까도 말씀하셨듯이 그런 경쟁 시스템에서 벗어나 음악을 한다는 게 우리나라에서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었어요. 우리나라가 시장이 작아서 그런 것일 수도 있고요. 사실 일본에서는 경쟁이 필요 없는 예술도 많이 발달한 덕분에 거기서 좋은 사람을 많이 만났고, 좋은 회사도 소개받았어요. 우리나라 안에서만 보지 않고 밖으로 눈을 돌려서 좀 더 여유롭게 음악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여전히 호시탐탐 노리고 있죠.
아무래도 ‘공무도하가’ 이전에 앨범이자 ‘Darkness’란 타이틀로 알려진 셀프 타이틀 앨범의 마지막 곡인 ‘Twisted but Straight’에 처음으로 영어 가사를 쓴 걸로 압니다. 그 후에 발매된 앨범부터 본격적으로 영어가사를 쓰기 시작했고요. 아무래도 그것이 해외로 영역을 넓히고자 하는 욕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싶은데요. 여행을 너무 좋아하니까 외국에서 노래를 하면 계속 여행을 할 수 있을 것 같았죠, 그래서 계속 밖에서 음악을 하고 싶다는 생각에 영어가사를 쓰게 됐어요.
원래 연극영화과에 진학했던 것으로 아는데 연기를 지망하셨던 건가요? 고등학교 때 연극을 좋아해서 연극부에 있었어요. 원래 미대를 가려고 했다가 자신이 없어서 포기하고 이미 예체능계로 넘어간 마당이니까 실기 시험을 안 보고 공부만해서 들어갈 수 있는ㄴ 학교가 어딘지 찾아보고 그냥 진학한 거에요.
사실 그럼 연기라는 한 우물을 파고 싶어서 진학한 건 아니었군요. 그렇다면 지금도 파고 있었겠죠. (웃음) 고등학교 3학년 때, 연극부를 만들어서 한양대 연극제에 나갔었어요. 그런데 저는 상을 못 타고 후배들이 다 상을 타서 나는 연기하면 안되겠다 생각했었죠. (웃음) 그저 좋아했을 뿐이에요.
‘담다디’로 강변가요제에서 수상했고 결국 그것이 인생의 전환점이 됐습니다. 노래를 하고 싶다는 욕심은 얼마나 컸던 건가요? 그냥 소풍 가서 노래하면 다 뒤집어 지니까 이게 내가 해야 할 일인가 보다라고 생각했죠. 그냥 단순한 거였어요.
즉흥성을 중시하는 편인가요? 그때마다 하고 싶은 걸 사람들 앞에서 하는 게 좋았어요. 그래서 노래할 때 너무 행복했죠. 어릴 땐 뭘 하는 게 좋을까 싶어서 그림도 그려봤고, 연극부도 만들어보고, 그랬지만 뭘 했을 때 내가 전율할 정도로 행복한가, 생각해보니 노래할 때더라고요. 그래서 그럼 노래를 해야겠다 싶었죠.
결국 강변가요제에서 수상한 덕분에 많은 사람의 관심을 얻게 됐어요. 그 당시 불현듯 일본으로 유학을 떠난 건 의도하지 않았던 상황에 대한 부담 때문이었나요? 처음엔 노래한다는 게 그냥 노래를 하는 건 줄 알았는데 음악도 이제 산업이잖아요. 그게 저하곤 썩 안 맞더라고요. 그래서 그럼 앞으로 어떡해야 할지 고민하다 음악을 하는 건 좋은데 과연 어떻게 음악을 하는 게 내가 원하는 음악을 하는 걸까 생각하게 됐죠. 처음엔 그런 생각을 전혀 못했거든요. 그래서 가만히 공부를 해 들어가보니 자기가 직접 음악을 만드는 경우가 있더군요. 그냥 스타나 아이돌이 되는 길은 저하고 안 맞았던 거죠. 그런데 일본엔 제가 원하는 음악적 세계가 많이 발달돼있더라고요. 그러다가 이제 그 쪽에 있는 회사를 어떻게 알게 돼서 배웠다고 해야 하나? 그리고 여전히 전 경쟁적인 세계와 잘 안 맞는 거 같아요.
엔터테이너가 되고 싶었던 건 아니었으니까요. 그런 걸 너무 못해서, 저는 그런 게 굴욕적이라고 느껴졌어요. 그래서 그런 게 너무 싫고 저하곤 안 맞는다고 생각했어요. 저는 거짓말도 잘 못하는 성격이고 그냥 있는 모습 그대로 잘 있을 수 있는 방법이 있으니까. 그걸. 그런데 제가 원하는 길로 가려면 공부를 많이 해야 했죠.
일본은 우리나라에 비해 문화의 다양성이 잘 유지되는 시스템을 갖춘 것 같습니다. 사실 일본처럼 엔터테인먼트 산업이 극도로 발전한 나라에서 다양한 장르들이 나름대로 씬을 유지하는 걸 보면 말이죠. 크건 작건 나름대로 시장규모가 유지되고 있으니까요. 그러나 우리나라에선 주류의 범주에 들지 않는 이상, 제약이 많이 발생하는 게 사실입니다. 그래서 저는 우리나라에서만 머물 생각이 없었고, 얼터너티브(alternative)의 길을 걷겠다고 마음먹었던 거죠. 평생 음악을 하고 싶으니까. 아무튼 우리나라는 좁지만 이 세계는 넓어요. 만약 우리나라에 제 팬이 백 명이 있고 일본에도 한 오십 명 있다면, 그리고 나중에 베를린에서 공연했더니 또 열명이 생겼다면, 그렇게 한 나라를 벗어나 여러 나라에서 조금씩 사람들과 만날 수 있다면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그런 식으로 일단 큰 욕심 없이 일본과 한국을 오가면서 활동해나갈 수 있는 무대가 있으니까요. 그리고 그렇게 외국에 나가서 음악을 하려면 어느 정도 음악에 난이도가 필요해요. 그게 예전에 ‘공무도하가’같은 난해함이 아니더라도, 약간 세련됐다고 해야 하나.
음악에 대한 기본적인 소양이 탄탄해야 한다는 의미인가요? 한국 사람들 듣기엔 너무 낯선데, 혹은 이건 한국에서 안 팔리겠는데, 정도가 돼야 일본에서 사가겠다고 하거든요. 약간 미안한 얘기지만 취향의 갭이랄까요? 그에 따른 숫자의 갭도 커요. 그런 특별한 취향을 갖고 있는 사람들의 숫자가 일본에는 많고, 한국에서는 소수니까. 그런데 일본의 얼터너티브에만 수준을 맞추면 그것도 좀 문제가 있고, 그러니까 대충 어느 정도의 선을 유념해야죠. 물론 일본에서도 메이져 음반사들은 그런 시도를 잘 안 하지만 건강한 인디 회사들이 나름대로 대세를 잡고 있기 때문에, 일본의 좋은 인디 회사들한테 인정받을 수 있는 레벨로 만들면 되거든요. 지난 7월 23일에 13집도 일본에서 발매됐어요. 일단 ‘Spitz’라는 밴드가 있는 인디 회사인데요. 거기에 저하고 ‘공무도하가’때부터 같이 작업했던 와다 상이란 분이 계세요. 사장님이라고 말할 수도 있고, 프로듀서라고도 말할 수 있는데 그 분과 친구분이신 한국 사장님이 권해주셔서 들어보시더니 일본에서 발매할만하다고 해서 그렇게 됐어요. 그러니까 한국 사람들이 들으면 쟤 왜 저러니? 하고 재수없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외국에 팔려면 대중성보단 음악성에 치중해야 해요.
최근작을 비롯해 그 이전에 발표한 ‘Romantopia’나 ‘신비체험’같은 앨범은 확실히 대중적인 친화도가 높아졌다고 생각합니다. 덕분에 판매량도 늘었다고 들었는데 그럼에도 여전히 비대중적인 이미지로 인식되는 건 대중적으로 친숙하지 않기 때문이 아닌가 싶어요. 요즘 얘길 들어보니까 엔터테인먼트 계열의 가수는 마케팅 비용만 4억 정도? 저는 그건 꿈도 못 꾸는 이야기죠. 그렇게 자본의 힘으로 크게 광고하니까 가만히 앉아있어도 자기 코앞까지 오는 마케팅에 취하기 쉬울 수 밖에요. 마케팅 비용이 4억이라는 건 저는 꿈도 못 꾸지만 만약 4억이 있다 해도 전 제작비로 쓰겠어요. 반대로 이 얼터너티브 쪽은 그런 자본력이 없어요. 영화도 그렇지 않나요? 인디영화나 예술영화들은 큰 자본력으로 움직이지 못하잖아요. 음반도 똑같아요. 그래서 스스로 발품을 팔아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걸 찾을 줄 아는 매니아들 아니고서야 접근이 힘든 거죠.
자본에 의해서 예술이 좌우 당한다고도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자본의 힘이 대단한 게 취향도 비슷하게 만들어버리잖아요. 그런데 제 음악에 자본력을 더한다는 것도 사실 우습죠. 만약 그 자본력에 무릎을 꿇어버리면 또 어떤 무언가를 잃어버리게 될걸요.
아무래도 얻는 바가 있으면 잃는 바도 있는 법이니까요. 영화도 음악과 똑같을 거에요. 그러니까 어떤 예술영화감독이 상업영화를 찍을 수도 있겠지만 예술영화만 고집하는 사람들도 이유가 있으니까 예술영화만 고집하겠죠? 음악도 마찬가지에요. 물론 그것이 꼭 자본만의 문제라고 보는 건 아니지만 그런 부분들을 고민하면서 저에게 맞는 길을 취하면 되는 거죠. 자본이 있어도 그걸 잘 다룰 수 있고, 그 자본을 가지고 움직이는 것이 좋다면 그 길로 가면 되는 거에요. 하지만 전 인디 분위기가 나는 홍대가 제 취향이고 너무 좋아요. 그래서 고집 피우고 싶다 해야 하나. 락이나 포크 음악을 통해 자기 얘기를 하는 외국 아티스트들은 안 그래도 되는데 왜 우리나라는 그런 사람들이 코미디 프로에 출연할 수 밖에 없는지 수긍하고 싶지 않을 때가 있어요. 우리나라에서도 거기에 타협하지 않고 음악으로 먹고 살 수 있다는 걸 보여주면 다음 세대도 그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지 않겠어요. 전 지난 20년간,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물론 아까 우스갯소리로 ‘담다디’ 식당을 내겠다고 했지만. (웃음)
그런 면에서 좀 더 본인의 경험담을 적극적으로 피력하실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작곡가에게 잘 팔릴 것 같은 곡을 받아서 노래 부르면 돈은 많이 벌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지금 제가 겪고 있는 일들을 경험하지 못했겠죠. 일본의 유명한 락밴드인 ‘스피츠(Spitz)’가 소속된 회사의 사장님에게 네 음악 좋다, 는 칭찬을 들었다던지, 내가 좋아하는 ‘커트(Cut)’나, ‘스위치(Switch)’같은 일본의 문화잡지에 내 이야기가 실린다던가, 이런 것들. 사실 일본에서는 상업적인 것과 작가적인 것을 엄격히 구분해요. 우리나라에서 매니아라고 부르는 사람들은 숫자가 적어서 그리 불리는 경우지만 사실 일본에는 매니아라고 불릴만한 사람들이 많아요. 실제로 동경에서 예술전문직에 종사하는 분들은 공부도 많이 했고 그만큼 돈도 잘 벌죠. 그런데 우린 왜 그렇게 뭔가 열심히 하는 사람들이 가난한 건지 모르겠어요. 동경 자체가 트렌드를 만들어서 발신하는 곳이니까 거기서 활동하는 디자이너들이나, 작가들은 트렌드 세터로서 인정받고 잘 살거든요. 그래서 우리도 그렇게 됐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아무래도 문화적 가치에 대한 인식 차이가 그런 대조적 상황을 발생시키는 게 아닐까 싶은데요. 문화적 가치를 인정하는 사회가 문화를 선도할 수 있는 거라고 생각됩니다. 특히 근래에 문화 자체를 그저 순간적인 유희로 소비하는 경향이 짙어지고 있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싶고요. 전 미리부터 포기를 했으니까 그렇게 됐다고 생각해요. 아시아의 중심이 동경이라면 왜 서울은 안 되는지, 그걸 미리 포기해버리고 있는 건 아닌지, 그렇다면 그게 누구를 위한 건지, 그런 생각이 필요하다고 봐요. 내가 있는 곳이 중심이라고 생각해야 하는 거에요. 왜 내가 있는 곳이 중심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다른 사람이 있는 곳을 중심이라고 생각하고 그걸 포기해버리는가 라는 거죠. 그리고 지금은 문화가 너무나 중요한 시대잖아요. 이번에 바르셀로나를 갔다가 완전히 반했는데 사실 바르셀로나라고 하면 스페인의 수도도 아니잖아요. 스페인에서 두 번째로 유명한 도시인데, 너무 멋있는 거에요. 우리나라 지방들은 다 서울 흉내만 내잖아요. 자기들만의 문화를 가지고 1등이냐, 2등이냐, 경쟁하는 게 아니라 자기 색깔을 잘 지키기만 하면 되죠. 동경이 1등하고 있으니까 우리가 따라가야지, 가 아니라 동경이 1등을 하건 말건 무슨 상관이에요. 엄마 친구 아들이 1등을 하건 말건 그건 남의 일이고 내가 공부를 해야 하는 게 중요하잖아요. 왜 누구를 이기기 위해서 뭔가를 하려고 해야 하냐는 말이죠. 그건 좀 아닌 거 같아요.
결국 외국으로 나가야겠다는 생각도 그런 점에서 비롯된 게 아닐까 싶은데요. 척박하니까. 내가 지금 여기 이 오아시스가 물이 있다고 생각하고 들어갔는데 물이 없다고 그냥 말라 죽을 순 없잖아요. 물을 찾아야지. 그건 그냥 본능적인 행동이라고 해야 할까요?
결국 자신의 이상을 찾아서 스스로 떠난 것이라고 봐야겠군요. 제가 한영애 선배님처럼 무슨 직접적인 정치적 압력을 받은 건 아니니까요. 사실 제가 노래를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던 계기가 고등학교 2학년 때, 라디오로 듣게 된 들국화의 ‘그것만이 내 세상’ 때문이에요. 많이 놀랬죠. 너무 아름다운 거에요. 우리나라에서도 내면을 노래하고 팝송보다 멋있는 음악들이 나오는 구나, 라는 생각을 해서 음악을 해야겠다고 마음 먹었죠. 그 때 80년도에 잠시 우리나라 음악계의 르네상스기가 찾아왔어요. ‘어떤 날’이라던가, ‘들국화’라던가, 한영애 선배님이라던가, 그런 대단한 분들이 활동하는 좋은 시기에 고등학생이었는데 그게 너무나 아름다워 보였어요. 그래서 나도 저런 음악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정부가 탄압을 하면서 그 싹이 완전히 없어졌거든요. 그 당시, 포크송을 비롯해서 한 단계 레벨이 높아진 음악을 국가가 억압한 거죠. 그런 맥락이 끊기지 않고 지금까지 계속 이어져왔다면 영국 저리 가라고 할만한 대중음악문화가 자라났을 거에요. 그렇게 문화적 싹을 잘라버리는 그런 국가에서 다음 세대는 어떻게 될까요? 그 길을 가고 싶어도 길이 없어졌는데 어떡하겠어요. 여기 없으면 그런 것들이 존재하는 나라에 가서 그게 뭔지, 공부도 좀 하고 그래야 하는 거죠. 내가 원하는 세계가 여기 없으니 나가야죠.
사실 그 당시가 어리다고 보면 어린 나이였을 땐데 일말의 두려움은 없었나요? 주변의 우려도 좀 있었을 거 같고요. 제가 날라리 신자긴 하지만 기독교 신자에요. (웃음) 성경을 보면 모세의 출애굽에서 약속의 땅인 가나안을 찾아간다는 내용이 나오잖아요. 제가 좋아하는 한대수 선배님께서도 날라리 기독교 신자신데, (웃음) 그런 사상이 한대수 선배의 노래 안에도 들어있어요. 내가 여기서 있기 어렵다고 생각하고, 억압받아서 자유롭지 못하다고 느낀다면 그렇지 않은 자유의 땅으로 가는 게 낫다고, ‘행복의 나라’가 바로 그런 노래죠. 저도 제가 꿈을 펼칠 수 있는 땅으로 가버린 거에요. 그런데 지금 제가 하고 싶은 얘기는, 지금도 제가 가야 하나요? 여기가 그렇게 되면 안 되나요? 여기가 그렇게 된다 해서 나쁠 게 뭐가 있나요? 이렇게 얘기하고 싶어요. 21세기인데 여긴 아직도 그런 가요? 아직도 여기는 행복의 나라가 아닌가요? 이렇게 물어보고 싶어지지 않겠어요?
절망적인 과거로부터 달아났다면 현재의 가능성을 되묻고 싶어지신 것 같습니다. 아니면 여기가 약속의 땅이 될 수 있다는 의지가 생긴 것일지도 모르고요. (희망이) 보이고 있고, 많이 좋아졌어요. 지금 제가 우리나라에서 7년 정도 있었는데 그건 홍대같은 곳에서 어떤 갈증들을 채울 수 있었기 때문이죠. 그리고 지금은 나가버려야 한다는 걸 느끼기 보단 여기 머물면서 더 발전하는 걸 보고 싶어요. 그리고 많이 좋아진 거 같기도 하고.
공연 문화도 확실히 과거에 비해 많이 좋아지고 있는 거 같습니다. 외국 뮤지션들의 내한도 변변하지 않던 과거에 비해 요즘은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 같은 큰 행사가 정착되는 분위기이기도 하고, 국내외 인디밴드를 망라한 쌈지 페스티벌 같은 공연도 잘 이어지고 있고요. 많이 활성화됐죠. 그런데 좀 더 욕심을 내야 될 것 같아요. 페스티벌은 외국 크루(crew)들이 가져 온 장비들을 잘 연결하고 하는 정도니까 겉치레에 불과할 수도 있고요. 실제론 음악을 만든다던가, 기획한다던가, 레코드 회사, 매니지먼트, 그리고 작은 공연장들과 같은 저변이나 인프라가 생겨야 하는데 그건 사실 열악하니까요. 겉보기엔 화려하지만 안으로 들여다보면 좀 더 시간이 걸릴만한 일이 많죠.
그 열악한 인프라를 버틸 수 있는 원동력은 소수 취향으로 구분되는 사람들의 성원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걸 원하는 사람들이 저만 있는 게 아니겠죠. 그런 취향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그런 취향을 바꾸지 않는 이상은 점점 좋아질 테고요. 그리고 물론 팬도 중요하지만 만드는 사람들이 더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고 할 수 있어야죠.
메인스트림과 인디펜던트가 분리된 영역으로서 정의되려는 것 같기도 합니다. 상호간에 자극이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도 좀 문제가 있는 게 아닐까 싶은데요. 제가 잭 블랙을 되게 좋아하는데, 사실 몇 년 전만 해도 젝 블랙은 매니아들의 아이콘이었잖아요. 하지만 지금은 <쿵푸팬더>목소리를 연기할 정도로 바뀌었죠. <쿵푸팬더>는 큰 자본을 이용한 영화지만 잭 블랙이 지닌 성향들이나 취향을 잠식하지도 않고요. 사실 우리나라에서의 문제는 그런 것들이 없다는 거죠. 코미디 프로에 나가지 않아도 좋은 작품을 투자 받을 수 있다는 걸 증명해줄 사람이 없어요. <터네이셔스 D>같은 영화를 찍던 잭 블랙이 지금 우리나라에 있었다면 그렇게까지 될 수 있었을까요. 미국 사람들이 <스쿨 오브 락>같은 영화에도 과감하게 돈을 지불할 수 있다는 건 정말 멋있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우리는 자본이 들어가는 영화일 수록 소재나 내용, 음악도 식상하잖아요. 왜 다 그렇게 해야 하는지 말이죠. 우리나라 자본은 왜 인디적인 성향을 절대로 도와주려 하지 않는지 저는 정말 이해가 안가는 부분이에요. 그런 일을 발견하기 힘들잖아요. <괴물>의 봉준호 감독님 정도뿐이랄까? 우리나라에서도 그런 현상이 자꾸 일어난다면 자본의 유입이 원활해지고 문화적인 조화가 이뤄지는 상황도 기대해볼 수 있을 거에요. 맨날 인디라고 해서 지지리 궁상으로만 있어야 할 이유는 없잖아요. 자본에 의한 기획들이 이뤄질 수 있다고 해야 하나. 잭 블랙이 <쿵푸팬더>를 했다고 해서 얘가 변절했다거나 이상하게 보이지 않는 건 그게 좋은 기획이기 때문이죠. 어느 날, ‘언니네 이발관’이 10억 짜리 음반을 만들었다는 사실이 아무렇지 않게 느껴진다고 상상해보세요. 그런 사실에 작품이 좋았나 보지, 라고 생각할 수 있다면 그런 사람들도 계속 살아갈 수 있는 거에요. 저는 아티스트들에게 자본 때문에 스피릿(spirit)을 버리는 걸 요구하기보단 그런 기획이나 투자가 좀 더 많아졌으면 해요.
쉬운 일은 아닐 거에요. 아무래도 돈을 가진 사람들은 당장의 수익을 원하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자본이 좀 더 지혜로워야 되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은 거 같아요. 돈을 벌기 위해서 투자를 하는 거니까 금방이라도 팔릴만한 것에만 투자하잖아요. 이게 당장 안 팔리더라도 조금 장기적인 안목을 갖고 농사를 지어가면 언젠가는 가능성이 보이는 것들이 있어도 그걸 할 바에야 손 쉬운 S라인한테 돈을 투자해버린다던가. (웃음) 그러니까 결국 씬이 맹목적인 자본에 의해 말라가고 고갈되고 종래엔 망하는 거에요.
자본이 예술을 위한 수단이 돼야 하는데 목적을 지니고 지배하려 하니까요. 물론 자본도 절반 정도 자신의 몫을 챙길 필요는 있어요. 투자를 한다는 게 죄가 아니니까요. 다만 투자해서 반은 현실에서 취한다 하더라도, 나머지 반 정도는 좀 더 장기적인 안목으로 미래에 투자해야죠. 좀 더 깊이가 생길 것 같은 아트(art)를 위해서 활용돼야 하는데 그런 장기적인 안목이 없으니 뭘 어떻게 하자는 건지 답답하죠. 가까운 일본만 해도 장기적으로 문화와 예술을 위해 자본이 동원되는 경우가 많아요. 이 아티스트가 당장은 그저 그렇다 해도 가능성이 있으니까 투자해보고 키워보자, 가르쳐보자, 그런 풍조가 있는데 여긴 그런 게 없어요. 자기 혼자 죽을 똥을 싸고 올라가야 해요. 아무도 도와주는 사람이 없어요.
오늘날 전통적인 예술 장인들이 점차 사라지는 것도 그것과 연관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생길 수가 없죠. 그걸 어떻게 해내겠어요. 누군가의 후원이 있고, 아티스트를 키우기 위한 투자가 있어도 가능할지 모를 일인데 자기 힘으로만 올라오라고 했을 때 누가 그걸 버텨낼 수 있겠어요. 그건 국가적으로 주도해나가거나, 사람들의 의식이 좀 더 깨어나서 먼 미래를 내다보고 스포츠만큼이나 우리나라의 명예를 높여줄 수 있는 깊이 있는 예술작품의 가치를 키워주고자 할 때 가능할 거라 생각해요. 하지만 지금은 그런 사랑이 느껴지지 않으니 열악하고 척박하죠.
어쩌면 20년 동안 자신의 영역을 찾아 떠돌았던 만큼 지금 발 디딘 이곳이 진정한 자신의 로만토피아(Romantopia)가 되길 바랄 것 같습니다. 저만 그렇게 생각하는 게 아니라 누구나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까요? 급하게 마음 먹을 것도 없고, 보챌 것도 없이 희망을 지니고 있다면 가능할 거라 생각해요, 물론 조금 다른 경험을 하고 싶다면 넓은 세계로 나가서 경험을 하면 되는 거죠. 그리고 여긴 여기대로 키워나가면 되는 거고. 그런데 질문들이 왜 이렇게 진지한 거에요? 나도 모르게 말이 길어졌잖아요.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