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원희 인터뷰

interview 2008. 8. 19. 1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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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엌은 비좁아도 상관없지만 옷장만큼은 넓어야 한다는 캐리(사라 제시카 파거)의 마놀로 블라닉 구두는 <섹스 앤 더 시티>(이하, <섹스&시티>)에 대한 기호를 파악하는 기준과도 같다. 그 누군가에게 호가의 사치품으로 인식될만한 마놀로 블라닉 구두는 <섹스&시티>의 캐리에겐 필연적 기호다. 그 기호에 대한 수긍과 부정은 <섹스&시티>를 뉴요커에 대한 환상과 된장녀에 대한 질시로 구분하는 척도로 작동한다.

<섹스&시티>는 그녀들의 ‘라이프&스타일’을 대변하는 것이다. 섹스 칼럼니스트 캐리와 그녀의 친구들, 미란다(신시아 닉슨)와 샬롯(크리스틴 데이비스), 사만다(킴 캐트럴)의 노골적인 성담론과 진솔한 경험담으로 발췌되고 집약되는 뉴욕 커리어우먼들의 라이프 스타일을 6시즌의 대장정으로 진열한 TV시리즈 <섹스&시티>는 그에 대한 열광과 혐오를 통해 대중들의 관심사를 얻었다. 하지만 속물적 욕망을 거리낌 없이 드러내고 사소한 일상을 여백 없이 배치하며 그에 담긴 의미를 자문하는 <섹스&시티>의 미덕은 분명 그로부터 축적된 삶으로부터 진솔한 답변을 얻고 삶의 경지를 터득한다는 점에 있다. <섹스&시티>를 둘러싼 취향의 잡음은 섹스와 시티의 표면과 내면, 그 어느 쪽을 인정하느냐에 달렸다.

극장판으로 버전업 된 <섹스&시티>는 말줄임표처럼 늘어뜨려진 채 여운을 남긴 TV시리즈의 에필로그와 같다. 혹은 시즌6을 잇는 시즌7의 2시간 분량 압축이라 해도 무방하다. 게다가 TV시리즈와 극장판 사이에 놓인 3년간의 공백을 콜라주 영상으로 간략히 정리해주는 영화의 도입부는 이를 부정하지 않는다. 직장과 가정 생활로 바쁘게 지내는 미란다와 불임으로 고생하다 중국에서 입양한 딸과 함께 행복한 가정생활을 누리는 샬롯, 그리고 누구보다도 성적 유희에 충실했던 사만다가 배우로 일하는 연하애인과 할리우드에서 동거 중이란 사실을, 그리고 TV시리즈의 긴 에피소드 속에서 끈질기게 이별과 재회를 거듭하던 빅(크리스 노스)과 캐리가 다시 열애 중임을 캐리의 자전적 내레이션으로 총망라한다.

극장판의 형식은 TV시리즈의 그것과 다를 바가 없다. 캐리의 내레이션을 통해 던져지는 인생과 사랑에 얽힌 물음은 시크한 도시적 취향으로 포장되고 은밀한 성적 담론을 여과 없이 나누는 네 여성의 솔직한 대화와 주변 경험을 거쳐 역시 캐리의 음성으로 답변된다. 다만 2시간 여의 러닝타임으로 이뤄진 영화적 규격에 맞춰 TV시리즈의 리모델링이 불가피했음은 어쩔 수 없는 사실이다. 극장판은 빅과 재회한 캐리의 에피소드를 축으로 그녀의 세 친구들의 사연을 주변부에 고르게 배치한다. 이는 매회마다 중심인물을 바꾸며 그로 인해 발견된 명확한 주제의식으로 끝을 맺던 TV시리즈와의 차이라 할만하다. 이런 면에서 극장판 <섹스&시티>는 TV시리즈의 오랜 목차에 연연하거나 그에 대해 민감하게 의문을 품지 않는 이에겐 무난한 로맨틱 코미디 정도로 관람해도 무방할 만큼 평이한 구성으로 완성됐다. 특히나 ‘색칠(coloring)’이란 단어로써 이뤄지는 그녀들의 섹스토크는 TV시리즈만큼 노골적이진 못하지만 시리즈의 위상을 각인시킬 만큼 발칙한 웃음을 제공한다.

하지만 극장판은 되려 기존의 TV시리즈에 팬덤을 지녔던 이에게 또 한번의 지루한 동어반복으로 여겨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캐리와 빅의 지긋지긋한 구간반복 로맨스는 또 한번 열애와 파탄을 오가고, 그 안에서 캐리의 좌절과 극복 역시 또 한번 반복된다. 게다가 자신들의 배우자 혹은 애인에게 종종 불안감을 조성하는 여성들의 히스테리나 스스로 자책할 만큼 후회할 짓을 반복하는-특히 빅!- 남성들의 답답한 소심증은 극장판의 도처에 깔려있다. 이는 한 인물을 축으로 단락적인 에피소드에 집중한 TV시리즈의 에피소드를 매회 보는 것과 달리 극장판이 네 인물의 전반적인 사연을 한 시즌을 전방위적으로 구성했다는 점에서 발생할 수 밖에 없는 차이이며 극장판이 감수해야 할 당위과제처럼 보인다. 게다가 간결한 에피소드 안에서 순발력 있게 구성된 사연들의 재미에 비해 긴 러닝타임만큼이나 극장판은 지나치게 호흡이 긴 인상을 주며 사연 속에 농축된 성찰의 깊이도 분산되는 에피소드 속에서 다소 밋밋하게 다가온다.

하지만 <섹스&시티>극장판은 개별적 완성도 여부를 따지기 전에 시리즈의 서비스 정신을 높게 사는 편이 더 온당해 보인다. 화려한 패션에 열광하고, 개방적인 취향에 수긍하고, 뜨거운 사랑을 열망하면서, 서로의 우정을 중시하는 그녀들의 20여 년간의 뉴욕 연대기가 7년 동안 6시즌으로 지속될 수 있었던 건 이 시리즈의 매력이 그만큼 유지된 까닭이기도 하거니와 그녀들을 향한 팬덤이 그만큼 지속됐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만약 당신이 이 시리즈에 깊은 호감을 지닌 이라면 결말부에 이르러 그 지지부진한 연애에 확실한 종지부를 찍는 캐리의 모습에 감정이입될 가능성이 크다. 또한 캐리가 자신이 처음 뉴욕에 입성했던 20년 전을 회상하는 것처럼 당신도 언젠가 과거 스스로를 회상할 때 즈음, 이 시리즈를 회상할 것이다. 단지 캐리의 마놀로 블라닉을 흠모했건, 캐리의 내레이션에 담긴 예리한 경험적 성찰에 공감했건 간에 <섹스&시티>극장판은 그녀들의 네버 엔딩 스토리를 꿈꾸는 이들에 대한 무한한 보답과도 같다. 마흔을 자축하는 그녀들의 사연이 거듭 재생되지 않아도 팬심은 계속된다. 그리고 <섹스&시티>극장판은 분명 그 추억을 한 뼘 자라게 해줄 만한 요량은 된다.

(무비스트)
Posted by 민용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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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 영화가 많을 텐데, 인터뷰까지 하느라 바쁘시겠군요.
영화들이 계속 있지만, 그 사이마다 하면 될 것 같아요. 어차피 영화는 계속 봐야 하는 거니까.

오늘도 봤을 텐데.
매일 두어 편씩 보고 있죠.

심사위원으로서 영화를 바라보게 될 때, 평소에 영화를 보는 시선과 차이가 발생하는 측면이 있을까요?
영화를 평가함에 있어서 채점을 한다라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보고 저도 별로 좋아하는 일은 아니에요. 그렇지만 그 이전에 관객으로서 영화를 본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해지죠. 미장센 영화제 당시 모토가, 지극히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심사기준? 우리 그런 거 없고, 자기 꼴리는 대로 가면 된다.(웃음) 이거였는데, 지금도 그런 기준을 마음 속으로 변함없이 갖고 있어요. 물론 공식적으로 오피셜(official)한 척하기 위한 심사기준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사실 인엣지(inside edge), 아웃엣지(outside edge) 가지고 채점하는 피겨스케이트 심사위원이 아니기 때문에 영화제 심사위원에게 객관성이란 건 사실 존재할 수 없는 것이기도 하죠. 그래서 제 자신을 영화적으로 가장 새롭고 참신한 느낌으로 흥분시키는 작품들을 만나게 되면 자연스럽게 심사가 되지 않을까 싶어요.

그렇다면 감독님을 흥분시키는 영화란 주로 어떤 영화인가요?
되게 사소해도 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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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합니다.
전 이상하게 주인공이건 누구건 어떤 인물이 길이든 어디를 뛰어가면 왠지 이상하게 가슴이 막 뛴다고 할까요. 사람이 막 뛰어가면 카메라가 또 따라가겠죠. 뛰어가는 사람을 찍으려면 어쩔 수 없이 따라갈 테니까. 어쨌든 영화의 스토리나 앞뒤 맥락을 떠나서 그런 장면을 보면 이상하게 마음이 벌렁벌렁하면서, 그 영화가 좋아져요.(웃음) 예를 들면 트뤼포의 유명한 <400번의 구타>에서도 보면 고요하게 달리는 장면이 길게 나오잖아요. 그거 봐도 마음이 되게 이상하고, 어제 또 호텔 로비에서 보니까 전주영화제 게스트인 드니 라방이 도착했더군요. 차에서 내리는 걸 봤는데, 그 양반이 옛날에 출연했던 레오 까락스의 <나쁜 피>를 보면 엄청난 달리기 장면이 있잖아요. 컬러풀한 펜스 옆으로 막 지나가는, 그 때 아마 데이빗 보위(David Bowie) 음악이 나왔던 거 같은데 그 장면도 추억처럼 이렇게 떠오르네요. (뛰는 장면들이) 이상하게 저를 흥분케 하는 그런 게 있는 거 같아요. 제가 찍었던 영화에도 대부분 뛰는 장면들이 있기도 했고.

달린다는 이미지가 감독님의 감수성을 자극하는 측면이 있나 봅니다.
모르겠어요. 스트레스 해소가 잘 안 돼서 그러나.(웃음) 사실 저는 잘 뛰지 않거든요. 평소에 운동도 잘 안하고 뛸 일도 별로 없는데, 그래서 왠지 마음만이라도 뛰고 싶나 봐요. 지금 경쟁작 12편을 다 봐야 되는데 그 중 네 편을 봤거든요. 그런데 그 중에 세편에 뛰는 장면들이 있었고, 그 중에 한 편은 특히 아름다운 뛰는 장면이 있었어요. 심사 중이니까 (작품명을) 말씀드릴 수 없지만, 그래서 그 영화의 그 장면이 지금 머리에 되게 아른아른 거리네요.

아까 말했던 드니 라방은 레오 까락스 감독님의 작품에 상당히 많이 출연했었죠.
(레오 까락스의) 페르소나죠. 이번에 <도쿄!>옴니버스에서도 또 주인공을 했어요. 드니 라방이.

레오 까락스 감독 작품에 말씀이시죠. 이번에 <도쿄!>덕분에 레오 까락스 감독님도 만나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도쿄!>옴니버스를 찍을 때, 감독들 세 명의 스케줄이 다 달랐어요. 제가 제일 먼저 여름에 찍었고, 가을 겨울에 미쉘 공드리랑 레오 까락스가 각각 찍어서 도쿄에서 같이 촬영이 겹친 적은 없었죠. 그런데 홍보용 사진 찍는다고 해서 세 명의 감독이 딱 하루 모인 적이 있었어요. 스케줄이 아슬아슬하게 맞아서 간신히 성사된 건데 그 때 잠깐 봤어요. 말이 되게 없으시더라고요. 공드리는 되게 수다쟁이고, 덕분에 저랑 이야기도 많이 했고요.

사실 감독님을 포함해서 나머지 두 감독님의 영화적 면모를 생각해보자면 세 분의 조합으로 이뤄진 <도쿄!>라는 작품의 이미지를 상상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엄청 다 제 각각일 것 같아요. 그리고 그런 게 옴니버스의 재미 아닐까요? 세 명이 세 파트로 갔는데 비슷하면 좀…그리고 이제 각자 개성이 강하고 다른데 나중에 곰곰이 생각해보면 묘한 공통점이 있다거나 이런 옴니버스가 베스트일 거 같아요. 그런데 사실 저도 지금은 잘 몰라요. 다른 두 분이 어떻게 찍었는지 시나리오조차 못 봤기 때문에. 이번에 칸 영화제에 가야 저도 이제 볼 테니까요. 그래서인지 제 영화의 프리미어인데도, 남의 영화를 보러 가는 듯하군요. 옴니버스라는 게 기분이 묘하네요. 다른 사람 파트는 못 봤기 때문에, 공드리나 레오가 또 어떻게 했을지.

이번에 <도쿄!>에서 감독님께서 만드신 <흔들리는 도쿄>의 캐스팅도 인상적입니다. 아오이 유우와 카가와 테루유키를 함께 캐스팅한다는 게 만만한 일도 아니었을 것 같고요.
운이 좋았죠. 둘 다 일본에서 정말 엄청나게 바쁘더라고요.(웃음) 사실 근데 이 프로젝트를 하자고 제안이 들어와서 수락한 처음부터 카가와 테루유키는 이미 머리 속에 있었어요. 히끼꼬모리를 주인공으로 한 얘기란 점에서도. 카가와 작품을 예전에도 몇 번 봤지만 칸 감독주간에서 봤던 <유레루>가 결정적이었죠. 2006년에 <괴물>로 칸 감독주간 갔을 때, 같은 섹션에 <유레루>가 있었거든요. 그리고 <유레루>감독인 니시카와 미와를 제가 알고 있었어요. 2003~4년경에 일본의 한 영화제에서 만난 적이 있었는데, <유레루> 이전에 찍었던 작품들도 굉장히 잘 찍었었어요. 데뷔작인 <산딸기>도 성찰적이면서도 좋았고요. 그래서 <유레루>를 기대했었는데 보고 나니 영화도 물론 좋았지만 카가와 테루유키한테 아주 반했죠. 그래서 <흔들리는 도쿄> 처음 준비할 때부터 카가와를 염두에 두고 시나리오를 썼는데 (캐스팅이) 잘 됐어요. 아오이 유우는 저뿐 아니라 어떤 감독들이나 일해보고 싶은 매력적인 여배우인데 사실 반신반의했었어요. 과연 될까 싶어서. 스케줄을 이미 카가와 테루유키에게 맞춰놓은 상태에서 (아오이 유우의) 캐스팅에 들어간 것이기 때문에, 어쩌면 이게 안 될 수도 있겠다, 싶었죠. 카가와 테루유키도 거의 1년 스케줄이 다 나와있는 상태에서 비어있는 블록을 잡아 촬영일자를 잡은 건데, 거기에 또 아오이 유우를 맞춰야 되니까. 게다가 사실 아오이 유우는 더 바쁜 사람이고. 근데 아오이 유우 쪽을 처음 만났을 때, 아오이 유우 측에서, <살인의 추억>을 일본 개봉 당시 봤고 너무 좋아한다. 작품은 꼭 하고 싶다. 근데 스케줄이 조금 복잡하게 됐다, 그래서 한번 성사가 안됐었어요. 그래서 몇 달 지나고, 다른 여배우를 누구로 가야 하나 이렇게 찾아보고 있는 단계에서 다시 연락이 왔어요. 할 수 있게 됐다. 그래서 ‘우훗!’ 쾌재를 불렀어요.(웃음) 제가 원하던 대로 돼서 기뻤죠. 그리고 다케나카 나오토라고, 경력이 더 오래됐지만 일본의 오달수 씨라고 할까요. <쉘 위 댄스>에서 열연을 펼치시기도 했죠. 감독이시기도 하고. 아무튼 그 분께도 말씀 드려봤는데, 그분께서는 한국영화 팬이셨어요. 김기덕 감독님 영화도 좋아하시고, 제 영화도 세 편 다 보셨고 좋아하신다고, 한국영화를 해보고 싶었다면서 흔쾌히 수락하셨죠. 그래서 세 명의 배우가 전부다 바쁜 사람들인데 캐스팅하게 됐어요. 다 잘 돼서 행운이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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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는 도쿄> 中 아오이 유우와 카가와 테루유키

<도쿄!>는 감독님께서 처음으로 외국에 나가 찍은 영화이기도 합니다.
사실 로케이션의 문제보다도 언어가 관건이었죠. 영화의 대사가 일본어라서 한국어가 아닌 외국어로 디렉팅을 한다는 게 어떤 느낌인지 궁금했어요. 통역이 있긴 하지만 잘 할 수 있을까, 약간 무섭기도 하고. 하지만 결국 좋은 경험이 됐어요. 재미도 있었고. 외국어로 연출할 수 있겠구나, 이게 이번에 제 개인적으론 가장 큰 수확이었다고 생각해요. 물론 연재미 씨라고, 이제 뛰어난 통역사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기도 하지만 인간의 감정, 배우의 감정이 말로서 표현되는 것만이 아니라는 것을, 그 느낌이나 뉘앙스라는 만국공용어가 존재하구나, 라는 걸 느꼈어요. 자기의 슬픔을 일본말로 표현하건, 불어로 표현하건, 영어로 표현하건, 한국말로 표현하건 그건 결국 슬픔이 되더라고요. 그걸 깨닫게 되니까 어느 순간 되게 수월해졌어요. 비록 낱말들은 못 알아듣지만 배우가 대사를 할 때, 이건 NG다, OK다, 라는 것에 대해서 나중에 점점 느낌이 쉽게 왔고, 배우들도 저와 의사 소통하면서 마음이 잘 통하는지 제 결정에 따르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본질적으로 같은 거라는 걸 알았다는 게 큰 수확이었어요.

시스템의 차이도 많이 느꼈을 거란 생각이 듭니다.
일본은 타이트하죠. 한국은 보통 장편영화를 3~4개월 안에 찍는데, 일본은 한달 반에서 두 달, 대작이라 해도 2달 반 정도에 끝내죠. 스케줄이 되게 빡빡하고, 빨리 끝내는 편이에요. 대신 프리프로덕션(pre-production)부터 치밀하게 준비하는 타입이고, 촬영 중간에 좀처럼 쉬질 않아요. 일주일에 6일이건, 7일이건 쉬는 날 없이 막 가요. 스텝들이 월급제 계약식이라서 제작비 측면에서 촬영 기간에 민감하기 때문에. 사실 한국도 이제 작년에 단체협약이 성사되고 나서 그런 시스템으로 바뀌어가고 있죠. 한국도 아마 미래에 그렇게 되지 않을까 싶어요. 물론 다 장단점이 있겠고요. 일본 스텝들의 직업적인 숙련도나 집중력은 되게 뛰어났어요. 하드 하게 단련이 잘 된 덕분인지. 저보다도 나이가 많은 40대 중반의 직업 조감독과 일을 했었는데, 작품 경험한 숫자도 어마어마하게 많고, 그래서 조감독에 대해 다른 스텝들의 리스펙트(respect)나 권위도 장난이 아니었죠. 그 조감독도 그에 걸맞게 책임감이 강하더군요. 이 현장을 자기가 진행시킨다는 것에 대한 의무감이 강하고, 그만큼 아주 정교하게 시간단위로 스케줄을 짜고. 대신 약간 답답한 면이 있어요. 우리나라 같으면 쉽게 돌파할 수 있을 일인데 왜 저렇게 걱정을 할까 싶은 것들. 같은 일을 되게 어렵게 한다고 할까요. 좋게 말하면 돌다리도 두들겨본다, 고 말할 수 있지만 우리 입장에서 보기엔 왜 저런 걸로 에너지를 낭비할까, 싶은 소심해 보이는 측면이기도 하죠. 각각 장단점이 있는 거 같아요.

모든 상황에 대해서 세세하게 짚고 나가는 편인가 봅니다.
아주, 매우 그래요. 그래서 믿음직스럽고 안정감은 있는데, 만약 얘네들이 내가 현장에서 아이디어를 바꾸거나 급격하게 변화를 줄 때 어떻게 반응할까, 라는 궁금증이 생기더군요.

특히 한국 현장에서는 그런 변동성이 비일비재하지 않습니까?
그렇죠. 감독이 순간적으로 생각이 바뀐다던가. 그리고 그런 걸 순발력 있게, 탄력 있게 따라오는 게 한국 스텝들의 힘이죠. 사실 일본에서 제가 갑작스럽게 테스트를 몇 번 해본 적이 있긴 있어요.(웃음) 저는 제가 직접 콘티를 세밀하게 그려서 제시하는 편인데 스토리보드가 그렇게 있으니까 일본 스텝들도 좋아하더라고요. 그런데 몇몇 순간에 갑작스럽게 변화를 주면서 어떻게 되나 한번 살펴봤죠. 나름 잘 따라오려고 하더라고요.

시장조사를 했다고 봐도 되겠네요.(웃음) 방금 말씀하신 대로 감독님은 콘티를 상당히 디테일하게 그리기로 소문났던데, 아무래도 완벽하게 이미지 구상을 마친 뒤에 카메라로 그것을 완전히 재현하고 싶어하는 까닭이 아닌가 싶습니다.
공간이나 카메라 워크, 카메라의 위치나 프레임들, 이런 건 실제로 미리 세밀하게 준비하려고 하는 편이에요. 그러니까 완전히 정해진 촬영장소에서 제대로 관찰한 후에, 콘티를 그리죠. 머릿속으로만 담아두는 게 아니라 정말 실질적인 콘티를 하려고 애를 쓰는 편이죠. 다만 그런 화면 속에 배우가 들어갔을 때 발생하는 변화는 필요하다고 봐요. 배우와의 작업에 있어서는 순간순간적인 감정이나, 현장에서의 느낌을 굉장히 중시하는 편인데요. 배우들이 제가 생각하지 못했던 새로운 아이디어나 즉흥 연기 같은 걸 잘 구사하면 되게 좋아하는 편이죠. 드라마나 스토리, 캐릭터의 본질을 해치지만 않는다면 오히려 그런 걸 기대하는 쪽이고요. 오히려 현장에서 변화를 많이 주려고 하죠. (배우들과) 같이 대사도 많이 고치고.

작품마다 공간의 이면이 드러나는 점도 특징이라고 생각합니다. 일상적인 아파트 지하에서 서스펜스가 발생하고, 평온한 이미지의 농촌에서 살인의 스펙터클이 형성되고, 그리고 한강에서 괴물이 출몰한다는 것도 마찬가지고요.
어떻게 보면 괴물이 나오기에는 가장 썰렁한 장소이기도 하죠.(웃음)

작품마다 일반적인 공간의 이미지를 배반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더 크게 보면 공간성 이전에 뭔가 어색하고 안 어울리게 같이 뒤섞여 있는 것들이 있죠. 어떻게 보면 악취미이기도 한데,(웃음) 그런 부조화된 상태라던가, 그런 걸 좋아해서 그런 거 같아요. 그러니까 뭔가 되게 심각하고 장중해 보이는 장소에서 사람은 오히려 되게 조잡하고 뻘쭘한 짓을 한다거나,(웃음) 반대로 방금 말씀하신 것처럼 늘 지나가며 보던 논에서 살인사건이 벌어진다거나. 한강이란 어쩌다 휴일에 가서 오리배나 타는 곳인데 어이없이 거기서 괴물이 활보를 한다거나. 사실 되게 생경한 것들이죠. 예를 들어 울산에 있는 오래된 폐공장의 어두운 지하에서 괴물이 나온다면 분위기도 그럴싸하겠지만 이건 뭐, 자전거 빌려 타던 한강 다리 밑에서 (괴물이) 나오니까 뜨악해지는 거죠. 그런 이상한 부조화를 제가 좀 좋아하는 거 같아요.

어쩌면 그게 한국식 장르영화의 리얼리티가 될 수도 있겠습니다.
할리우드 장르영화와 한국영화 사이에서, 그러니까 (미국과) 한국현실 사이에 갭이 크잖아요. 할리우드 장르영화의 특징도 한때는 그게 사실적인 리얼리즘이었는데 그게 이제 장르의 컨벤션(convention)으로 오랜 세월 흘러오다 보니 굳어버린 거죠. 중절모를 쓰고, 기관단총을 쓰는 갱스터가 미국의 과거에, 1930년대 금주법 실행 당시엔 실제로 있었던 거잖아요. 근데 그게 하나의 장르가 되고 컨벤션과 클리셰(cliché)가 된 건데, 우리는 한국현실에 살면서 애초에 그런 미국적 리얼리티가 없이 장르만을 봐왔잖아요. 그 갭 자체가 영화상에 적용돼 들어가버린 거 같아요. 그래서 오히려 (제 영화가) 약간 웃기면서도, 생경하고 특이한 느낌으로 받아들여진 게 아닐까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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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의 이동 경로나 진행 방향에 따라 발생하는 감정의 양상도 다른 것 같습니다. 수직적인 이동이 야기되는 상황에서는 긴장감이 발생하지만 수평적인 상황에서는 처연함이 발생한다고 할까요. <괴물>을 예로 들면 현서(고아성)가 괴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하수구에서 탈출하려 안간힘을 쓸 때는 긴장이 발생하지만 희봉(변희봉)이 괴물과 맞서다 죽는 한강고수부지 씬에서는 처연함이 묻어납니다. 남일이 빌딩에 올랐다가 탈출하는 수직적 상황도 그렇고, 결말부에 강두가 괴물을 저지하는 상황도 수평적이라고 볼 수 있고요. 개인적으로는 비약해보자면 수직과 수평이라는 이미지에 어떤 의미부여가 있었던 건 아닌가 싶더군요.
그렇게 까지 거창하게 생각해본 적은 없습니다만,(웃음) 사실 제가 수직적인 것에 대한 집착은 있어요. <플란다스의 개>에서도 아파트는 수직적인 공간이었죠. 그래서 수평적인 복도에서 현남(배두나)과 윤주(이성재)가 쫓고 뛰어가면서 벌어지는 사건도 있고, 옥상에서 벌어지는 사건이나 깊숙한 지하실에서 벌어지는 사건도 있었고. 그리고 <괴물>은 명백하게 현서가 수직적인 공간에 감금되어 있는 거니까, 수직적인 비극이라고 할 수 있는 거죠. 불과 몇 미터의 높이를 올라가지 못해서 안간힘을 써야 하는 공포와 긴장이 있는 거니까. 그런데 수평이 어떤 감정과 연결됐다고 저는 크게 인식 못했는데 말씀하신 걸 듣고 나니까 <괴물>의 변희봉 선생 장면이나, 특히 <살인의 추억>의 백광호(박노식) 현장검증에서 아수라장에서 마무리되는 장면이 떠오르네요. 거기서 보면 고속촬영으로 흐르는 씬에서 논의 흙탕물이 막 튀고 사람들이 모두 뒤엉키죠. 그런 인간군상들이 어떻게 보면 약간 웃기기도 하면서도 처연하고, 우린 다같이 못난이 들이야, 잡혀온 사람들이나, 형사들이나 다같이, 그런 측면에서 처연하다는 표현이 맞는 거 같아요. 사실 난 잘 몰랐는데, 그랬던 거 같네요.(웃음)

아무래도 <괴물>은 괴물이 등장하는 장면의 비용대비효과를 극대화시키는 게 최대의 화두가 아니었을까 같습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죠.(웃음) 그 한정된 예산을 가지고 제가 사용할 수 있는 괴물 샷의 숫자는 이미 정해져 있었어요. 시나리오에 다 있는 장면이지만 단지 백 몇 십여 숏(shot) 안에 무조건 다 표현해냈어야 하니까 괴물 샷을 예산 때문에 줄여나가야 했죠. 그런데 그게 고통스러운 작업이었지만 할리우드에서도 다 겪는 일이더라고요. 이안 감독의 <헐크>메이킹을 보면 스토리보드상 CG샷이 4백여 개 정도되는데 이거 백여 개 정도를 줄여야 된다고 프로듀서랑 시각효과 감독이 이야기하면 이안이 영어 못 알아듣는 척하면서 눈만 깜빡이는 장면이 있어요.(웃음) 그런 걸 보면서 위안 삼았죠. 동시에 조금 좋게 생각하면 그런 현실적 한계가 저의 창의력을 자극한 부분도 있었던 거 같아요. 괴물이 카메라엔 안 잡히지만 같은 공간 안에 계속 존재하고 있다는 존재감을 유지시키면서 공포감, 긴장감을 유발시켜야 되니까 그런 연출을 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 아이디어들도 더 쥐어짜게 되고, 예를 들어 도입부에서 괴물이 처음 나타났을 때 컨테이너 박스 안으로 들어가는 장면이 있잖아요. 그 안에서 사람들 뒤엉키고, 컨테이너 박스가 이렇게 흔들리고. 그건 CG샷이 아니고 그냥 컨테이너 박스만 뒤에서 기계로 흔든 건데, 관객은 머릿속으로 그 안에 괴물이 존재하고 있다고 생각하게 되고 결국 그 안의 지옥의 아수라장을 예상하는 거잖아요. 그런 긴장감을 어떻게 끌고 가느냐가 관건이었죠. 오히려 좋게 받아들이면 좋은 상황이었던 거 같아요. 게다가 <괴물>이 순 제작비만 백억이 좀 넘은 영화니까 한국 기준으로 봤을 때 대작내지는 블록버스터라고 말하지만 특수효과를 비롯해 찍어내는 내용으로 봤을 때는 정말 저예산 영화나 다름없었거든요. 그래서 오히려 <플란다스의 개>나 <살인의 추억>때보다 저는 더 많은 압박을 느꼈어요. 그 와중에 무사히 끝난 게 다행이긴 한데, 사실 예산이 두 배나 세배로 더 풍족했었더라면 만약에 어떻게 됐을까, 약간 미련이 남는 지점이 있긴 했죠.

해외에서 감독님의 인지도가 높아진 만큼 감독 제의도 심심찮게 들어올 것 같습니다. 그 중에 제작비 여건이 한국보다 좋은 경우도 있을 법 한데요.
영화의 탄생 때부터 있었던 얘기지만 제작비의 지원이 클수록 그에 상응되는 더 많은 간섭이 있죠. 저는 다행히도 좋은 제작자들을 만나서 한번도 간섭 받은 적 없이 제가 하고 싶었던 걸 다 할 수 있었던 거 같아요. 그래서 극장에서 개봉한 제 세편의 영화들은 다 디렉터스 컷일 수 있었고요. 촬영에서건, 편집에서건, 별다른 큰 압박을 받거나 한 적이 없었어요. 그런 게 저의 행운이었다고 봐요. 내가 내 영화를 100% 컨트롤 할 수 있다는 것. 그게 저로써는 가장 중요한 부분이거든요. 이번에 <도쿄!>도 100% 저의 컨트롤로 완성한 영화인데 그게 충족이 된다면 해외에서도 영화를 해보고 싶어요. 근데 만약 그런 점이 잘 보장되지 않는 작업이라면 수천억, 수조를 줘도 별로 의미는 없는 거 같아요. 사실 미국 할리우드에 제 에이전시(agency)가 생긴 덕분에 할리우드 스크립트 시나리오들은 계속 들어오고 있고, 이런 저런 구체적인 제안을 받은 경우도 있었어요. 일본에서도 장편 영화 제안을 받은 적이 몇 번 있었고, 이미 제가 이미 하기로 한 프로젝트들도 일단 있고. 물론 이번에 <도쿄!>의 <흔들리는 도쿄> 30분 짜리를 짧게 경험해본 것처럼 지금은 조심스럽게 짚어보고 있는 상황이라, 선뜻 뭐라 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작품에 대한 컨트롤만 가능하다면 외국에서 영화를 찍어보는 것도 재미있는 일 같아요.

사실 전주국제영화제와 본격적인 인연을 맺은 건 ‘2004 디지털 삼인삼색’을 통해서였습니다.
<인플루엔자>라고. 2004년이었죠.

그 작품이 유일하게 감독님이 디지털카메라로 만든 영화이기도 한데요. 같은 방식의 장편영화를 찍어볼 계획은 없을까요?
지금의 트렌드나 산업의 흐름상 어쩔 수 없이 변하게 되는 부분을 떠나서 순전히 개인적으로만 말해보자면 사실 저는 필름광이에요. 필름으로 찍힌 사진을 좋아하죠. 물론 편하니까 디카를 쓰긴 하지만 그래서 가끔 필름으로 사진도 찍고 그래요. 필름에서만 전해지는 이상한 화학적 느낌과 그 맛을 너무 좋아하기 때문에.

네거티브한 질감 같은 것 말입니까?
예. 그래서 어떻게든 저는 필름을 써보려고 버티는 쪽이 될 거 같아요. 물론 마이클 만 영화에서의 HD는 아름답고 박력 있는 느낌을 주긴 하죠. 요즘은 배급의 경제논리로 디지털 상영도 많이 하지만 전 디지털 프로젝터로 상영되는 스크린의 느낌도 좀 싫어요. 순전히 개인적인 취향이 그래요. 그런데 최근에 그런 선입견을 깨뜨린 게 데이빗 핀처 감독의 <조디악>인데 HD로 촬영했더라고요. 바이퍼 카메라로 찍었는데 화면의 품격이나 느낌들이 정말 좋았고, 저 정도가 나올 수 있다면 HD도 해볼 만 하겠다 싶었어요. 중후한 살인 사건 영화임에도 화면이 묘하게 부드러우면서도 아름답고, 하여튼 그 느낌이 독특했어요. 인상적인 경험이었죠. 라이팅(lighting)이나 시각 효과 자체도 뛰어났던 거 같아요.

<이공> 프로젝트 당시에 다른 감독들이 디지털 촬영으로 갔던 것과 달리 혼자 16mm필름을 사용한 것도 그런 애정 때문이었습니까?
그 때는 이제 몇 가지 사정이 있었죠. 그 때 제가 6분짜리 원씬 원테이크를 찍었잖아요. 어두운 다리 밑에 있는 매점 앞부분에서 찍다가, 밖으로 나왔다가, 이게 다 원테이크다 보니까 큰 노출 변화나 밝기 변화가 생기는데 그걸 디지털 6mm카메라로 하자니 극복하기 힘든 핸디캡이 있어서 어쩔 수 없이 반칙을 좀 했죠. 디지털 프로젝트인데 저만 16mm필름으로 찍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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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마다 인상적인 캐릭터들이 등장합니다. 세 작품에 등장했던 캐릭터 중 특별히 개인적으로 애정이 컸다고 할만한 캐릭터가 있을까요?
다들 애정이 가지만 딱 하나만 꼽으라면,(잠시 생각하다가) 그냥 열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지만 지금 즉각적으로 떠오르는 한 명은 <괴물>에서의 현서, 고아성 양이네요. 모든 가족이 구하려고 하는 사람이니까, 어쩌면 오브젝트(object)가, 그저 단순히 대상이 될 수 있는 캐릭터인데도 걔는 거기서 더 약한 애를 구하려고 발버둥을 치잖아요. 결국은 끝에 가서 죽음을 맞이하지만 조그마한 남자아이를 보호하고 끝내 자기 아버지에게 인계한 셈이죠. 왠지 현서 생각이 나네.

세 작품은 인물들이 무언가를 찾는다는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강아지나, 범인이나, 현서나. <플란다스의 개>처럼 강아지를 찾아내는 경우도 있지만 결국 진범을 잡지 못한다는 아이러니가 있었죠. 그리고 <살인의 추억>에서 결국 진범을 찾지 못하는 것이나 <괴물>에서 살아있는 현서를 만나지 못한다는 것도 결국 인물들이 이루고자 하는 바가 해소되지 못한다는 맥락적인 공통점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러고 보니까 진짜 뭐가 제대로 성사된 적이 없네요.(웃음) 항상 빗나갔군요. 제가 좀 긍정적인 사고를 해야 하는데.(웃음)

어쩌면 그게 감독님께서 인지하시는 현실적 리얼리즘이 아닐까 생각되는데요. 그들이 하나같이 서민이란 점도 그래서 왠지 의미심장해 보이고요.
사실 살다 보면 참 뜻대로 안 되는 게 많죠. ‘쿵따리 샤바라’가사에도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을 때도 있고’란 가사도 있듯이,(웃음) 되지 않을 때가 되게 많은 거죠. 진짜 그렇죠. 월트 디즈니 영화를 보면 모든 것이 안락하게 봉합되면서 끝나는데 사실 그렇게 되는 게 나쁜 건 아니지만 그렇게 잘 안 되잖아요. 뭔가에 실패하거나 어긋나는 게 우리 삶에 가까운 모습이니까 오히려 관객들이 공감할 수 있는 거 같아요. 때론 좀 씁쓸하거나 잔인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사실 오히려 그게 위로 받는 것일 수도 있지 않을까요. 나도 저랬었지. 그렇지만 계속 살아야지 어쩌겠어. (<괴물>에서) 강두(송강호)도 딸을 못 구했지만 세주(이동호)와 함께 밥을 꾸역꾸역 먹잖아요. 산사람은 계속 살아야 하니까. 그게 한편으로 슬프면서도 약간의 낙관성인 거 같고.

비약이 될 수도 있지만 감독님의 정치적 자의식이 개입된 측면이라고 생각해봐도 될까요?
<괴물>이 괴수장르다 보니까 장르 전통에 맞게 직설적이고 썰렁한 정치풍자를 많이 하긴 했지만 정치 이전에 더 큰 생활, 내지는 삶의 영역인 거 같아요. 사소한 게 안될 때도 많잖아요. 짬뽕시켰는데 자장면 나오고.(웃음) 거대한 정치가 아니더라도 그런 것도 원하는 대로 안 되는 거잖아요. 속상하지만 배가 고프면 자장이라도 먹어야 되는 거죠.

<괴물>은 분명 진보적인 메시지를 품은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 영화는 1300만이라는 스코어를 기록했죠. 단순히 그 머릿수를 개개인의 정치의식으로 온전히 치환하는 건 무리겠지만 정말 많은 수의 관객들이 이 영화를 봤습니다. 그런데 불과 2년 만에 보수 정권이 들어서는 상황이 발생했습니다. 이는 감독님에게 어떤 아이러니한 단상을 줄만한 사안이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괴물>에 의도적인 풍자나 메시지가 있는 건 사실이죠. 그런데 관객 입장에서 받아들이는 건 여러 가지 맥락이 있을 것 같아요. 가까운 지인의 말로는 어린 초등학생 딸래미가 자기 아빠랑 영화를 보고 극장에서 손잡고 나오면서, 아빠도 내가 어디 잡혀가면 저렇게 해줄 수 있어? 이랬다더군요. 그 아이 입장에선 그런 면이 두드러져 보였을 테니까요.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될 때 득표수를 보면 1100만 표 정도되더라고요. 근데 방금 1300만이라고 말씀하신 얘기를 들어보니까 티켓 구매수가 득표수보다 많았군요. 물론 그래서 <괴물>이 잘 났다는 게 아니라.(웃음) 어쨌든 정치적인 투표행위, 정당과 인물을 선택하는 문제와 영화를 감상하는 행위는 다른 거 같아요. 영화는 다층적으로 받아들이는 거기 때문에. 변희봉 선생님을 보면서 자기 아버지가 생각나는 사람도 있는 거고, 미국에 대한 풍자나 정치적인 서브 텍스트들을 민감하게 보는 대학생이나 지식인도 있을 수 있는 거고, 내 아빠라면 어떻게 할까, 하고 울고 웃으면서 보는 꼬마도 있을 수 있고, 그렇게 광범위하게 볼 수 있는 거니까. 영화가 <화씨9/11>같은 마이클 무어 다큐멘터리처럼 어그레시브(aggressive)한 직접적인 정치 다큐멘터리가 아닌 이상, 특히나 극영화들은 대중의 정치적 성향과의 함수 관계 같은 걸 쉽게 짚어볼 수 있는 건 아닌 거 같아요. 훨씬 혼란스럽고 복잡한 문제겠죠. 일단 <괴물>이 약간이건 많이건 진보적인 성향의 풍자를 담고 있고, 그 영화를 1300만이 봤지만 그 다음해에 바로 보수적인 성향의 정권에 1100만여 명의 사람이 투표를 했다는 게 이상하지 않느냐, 라는 논리를 세울 수는 없을 것 같아요. 충분히 그럴 수 있는, 훨씬 더 복잡한 레이어(layer)들이 있다고 보고요.

감상의 방향은 다양할 수 있으니까요. 한편, <살인의 추억>처럼 <괴물>도 절망을 내포하고 있지만 결말부의 느낌은 좀 더 낙천적인 양상으로 전진하는 느낌이 있습니다.
<괴물>은 현서가 죽음에도 불구하고 낙천적인 면이 있는 거 같아요. 아까도 얘기했지만 영화가 밥 먹으면서 끝나잖아요. 먹는 걸 계속 강조하는 영화이기도 했고. 혈연관계가 아닌 괴상한 인연의 두 사람이 마주앉아서 꾸역꾸역 밥을 먹잖아요. 낙관적인 면이 있었다고 봐요. 반면 <살인의 추억>은 어쩔 수 없이 어둠을 직시해야 하는 영화였죠. 단순히 제목은 역설적으로 추억이지만, 실제론 추억이라 말할 수 있는 과거가 아니라 해결되지 않은 과거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의 현재란 것이죠. 우리가 80년대에 이렇게 연쇄살인범 하나도 못 잡고 여자들을 보호도 못하고 줄줄이 죽이면서 이런 꼬라지로 살았지만 지금 우리는 안 그래, 이런 안도하는 관점에서 과거를 봐서는 안 된다는 거죠. 그래서 이제 2003년 에필로그를 넣기도 했지만, 박두만(송강호)이 관객을 정면으로 바라보는 라스트 컷을. 과거에 우리가 이렇게 어두운 시절이 있었고, 그렇다면 그 어둠을 지금 우리는 완전히 다 씻어낸 것인가, 그런 질문을 던지는 거였죠. 만약 그걸 강하게 집중해서 봤다면 어둡고 막막해지는 느낌이 있었을 거에요. 좀 부담스러운 면이 될 수도 있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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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과거나 허구를 통해서 현재와 현실을 환기시키는 셈인데, 그것이 감독님이 추구하는 영화적 리얼리즘이라 할 수 있을까요?
사실 저는 리얼리티, 사실적이고 표면적으로 보이는 것에 대한 관심은 많은데 리얼리즘에 대한 특별한 관심은 없어요. 그걸 추구하지도 않고요. 영화는 판타지라고 믿는 쪽이죠. 대신 한국현실과 판타지가 이상하게 충돌했을 때, 아까 말한 한강둔치에서 뛰어나오는 괴물처럼, 거기서 나오는 생경한 영화적 흥분을 좋아하는 것일 뿐이에요. 대신 내가 한국현실에 대해서 의도적으로 목청 높여 메시지를 부르짖거나 발언을 하고 싶었던 건 아닌 것 같아요. 켄 로치나 올리버 스톤 영화처럼. 다만 제가 한국 사회에 관한 여러 가지 궁금증이나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부분들, 다들 미쳤나 봐, 왜들 저러지, 너무 무서워,(웃음) 이런 공포감은 있죠. 사회에 적응하기 힘들지 않아요? 누구나 힘들잖아요. 아마 한국사회뿐 아니라 모든 사회가 그럴 수 있겠지만 제가 외국에서 못살아봤고 한국에서만 살아봤기 때문에 저한테 사회나 시스템은 그냥 한국사회인 거죠. 그런 것들이 자연스럽게 영화에 투영되는 거 같아요. 다만 제가 어떤 계몽적인 메시지를 던질만한 주의, 주장을 가진 사람은 아니고. 제 자신의 생각에도 항상 회의를 품는 성격이기 때문에, 주장을 하는 데는 되게 소심한 사람이고요. 그저 제가 한국사회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의문이나 도저히 이해를 못할 부분, 막연한 공포감들이 영화에 반영되는 셈이죠. 사실 합동분양소처럼 집단 장례식을 한다는 건 그만큼 사람이 떼로 죽는다는 얘기니까 그것만으로도 엽기적이고 공포스러운 일인데, 그 와중에 거기서도 누군가가 2487차 빼라고 막 소리지르고.(웃음) 사실 우리가 매일같이 겪는 일이잖아요. 누구 차 빼달라는 거. 그게 웃기면서도 되게 슬프고 공포스러운 순간이죠. 그런 이상한 감정들이 한국사회에 용광로처럼 뒤얽혀있다고 보기 때문에 보는 이가 어떤 감정을 느끼건 전 그걸 고스란히 표현하고 싶은 거죠.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현실이 영화적 모티브가 된다는 것이군요.
예! 영화나 드라마가 따라갈 수가 없다니까요. 현실적으로 벌어지는 이 시츄에이션(situation)들을 보면 이게 뭔가 싶은 것들이 많이 보이죠.(웃음) 모든 창작자들이 그렇겠지만 주변 현실에서 받는 자극이나 영감이 큽니다. 소설이나 영화와 같은 타인의 창작물을 보면서 느끼는 자극보다도 제가 살아가고 있는 생활이나 주변, 한국 사회의 어떤 순간순간적 모멘트(moment)에서 자극을 받는 경우가 많죠. 개인적인 경험이나.

그런 순간적 자극을 기록해두기도 하나요?
그럼요. 특히 <플란다스의 개>는 소소한 일상적 디테일을 구성할 때 그런 걸 많이 활용했어요. 휴지를 백 미터 굴리는, 그 너무나 어처구니없는 장면 같은 경우도 실제로 해본 건 아니지만 제가 조감독 때 경제적으로 힘들게 살면서 했던 생각이에요. 조감독 때는 워낙 돈이 없잖아요. 그런데 애는 키워야 되고 생활은 쪼들리니까 맨날 아르바이트하고 그랬는데 그럴수록 예민해지거든요. 돈이 없이 지내보면 알겠지만 슈퍼에 가서 음료수를 살 때 용량 120㎖ 이렇게 써 있으면, 이게 120㎖ 맞는지, 안 맞는지 누가 알아, 누가 재봤어? 이런 생각이 드는 거에요. 아니면, 0.5ℓ 함유? 이 자식들 0.4ℓ넣어놓고 이렇게 파는 거 아냐? 막 이렇게 예민하게.(웃음) 휴지도 보면 겉에 보면 100m라고 써 있는데, 진짜 100m맞아? 이게 과연? 이것도 돈 내고 사는 건데, 운동장100m 트랙 위에 쫙 펴볼까? 이런 상상도 했거든요. 그러다 보면, 이런 건 내가 봐도 너무나 쪼잔하다, 내가 어쩌다 이런 인간이 됐지? 이렇게 생각하면서도 웃기니까 그런 걸 공책에 적게 됐어요. 그러다 그 이상한 시츄에이션들이 이제 시나리오 속으로 들어가게 된 거죠. 그런 경우가 많이 있었어요.

전주영화제가 끝나면 이제 <도쿄!>프리미어가 열리는 칸영화제로 가시겠군요. 이제 한국을 대표할만한 감독으로 꼽히고 있기도 한데.
김기덕 감독님이 대표할만한 분이죠.(웃음)

최근 영화주간지에서 조사한 영화인 파워리스트마다 감독 중에 가장 상위 랭커를 차지했다던데요.
그니까 그게 참 이상한 거에요. 사실 저를 규정하는 가장 명쾌하고 쉬운 방법은 영화 세편 찍은 감독이라는 거에요. 세 편밖에 못 찍었고, 계속 가봐야 알 수 있는 거죠. 저의 유일한 꿈은 임권택 감독님이나 마뉴엘 드 올리비에라(Manuel De Oliveira)처럼 끝까지 현역으로 남아서 영화를 계속 찍는 게 제 유일한 꿈이에요. 그러다 보면 언젠가 한번쯤 걸작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라는 막연한 희망을 가졌기 때문에 계속 하려는 것이기도 하죠. 지금의 파워리스트 같은 건 그저 형식적인 거 같아요. 제가 제작사나 영화사를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고 저는 그저 제가 찍고 싶은 스토리나 저를 흥분시키는 어떤 한 이미지나 장면에만 병적으로 집착하면서 살아가는 삶이니까. 어쩌면 파워리스트에서 조만간 사라지게 될지도 모르죠.(웃음) 만약 그래서 계속 영화를 찍을 수 없다면 개인적으로 영화를 찍을 수 있는 방법들을 마련해봐야겠죠.

하지만 김혜자 선생님이 <마더>에 캐스팅됐다는 게 현재 그 파워를 증명할만한 사례가 아닐까 생각되는데요?(웃음)
김혜자 선생님과 접촉했던 건 <괴물>찍고 나서가 아니고요. <살인의 추억> 그 직후에 처음 연락 드린 거에요. 그니까 <마더>는 <괴물>전부터, 이미 오래 전부터 준비해왔던 프로젝트였고, 김혜자 선생님을 전제로 해야만 성립되는 프로젝트라서 배우가 먼저 정해진 상태에서 시나리오도 쓸 수 있었죠. 김혜자 선생님을 처음 뵌 지는 벌써 4년이 흘렀네요. 선생님도 많이 기다리셨죠.

벌써 <마더>의 차기작도 정해졌다고 알고 있습니다. 2010년도 쯤에 <설국열차>도 제작하실 예정이죠?
2010년이나 2011년쯤에 되겠죠.

아무래도 지금까지 감독님은 한국적 현실을 영화적 배경으로 삼아왔는데 <설국열차>는 원작만 봐도 범세계적인 프로젝트가 될 것 같습니다.
저의 새로운 도전이죠. 그 영화 찍고 나면 많이 늙을 거 같네요.(웃음) 정신과 육체를 많이 리프레쉬(refresh)하면서 잘 버텨야 할 텐데. 대작이 될 거 같아요. <마더>는 내용은 찐하지만 규모는 크지 않을 것 같고요. 아마 <설국열차>는 몸과 마음의 준비를 잘 해야 할 것 같아요.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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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2008. 5. 31. 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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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 포인트>만큼이나 <GP506>도 우여곡절이 많았다.
낯선 외국에서 찍느라 힘들었던 <알 포인트>와 달리 <GP506> 촬영현장에서 힘들다는 생각은 별로 들지 않았다. 조금 여유가 생겼다고 할까. 다만 촬영이 중단됐을 때 힘들었지. 이런 말하긴 뭐하지만, 마지막 컷으로 폭파씬을 찍는데 이런 생각이 들더라. 난 평생 우아하게 영화 찍긴 글렀나 보다라는.(웃음) 욕지거리하고 악다구니 쓰는 그런 스타일의 영화만 찍어야 되나 봐. 운명 비슷한 걸 느꼈다고 해야 하나.

<알 포인트>당시 했던 고생이 <GP506>의 불미스러운 과정을 견디는데 도움을 준 건 없었을까. 인내심을 함양시켜줬다던가.(웃음)
아무리 겪어도, 면역이나 단련이 안 되는 일이 있는 것 같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니라서 내 능력과 상관없이 벌어지는 상황을 마냥 바라봐야 했던 게 제일 안타깝고 힘들었지. 지금도 정신적인 후유증이 많이 남아 있는 것 같다. 그러다 보니까 스태프들이나 배우들에게 전우애 비슷한 위계감 같은 것도 좀 생겼나 보다.

자신의 군대 경험이 <GP506>의 모티브가 됐다고 종종 밝혔다.
아무래도 극단적인 상황은 드라마톤으로 만든 것이라 해야겠지만 군대에서 겪은 경험적인 부분들을 극화시킨 게 많다. 물론 지금 군생활 하는 젊은 친구들과 다른 건 많다. 가뜩이나 난 군사독재시절에 군대를 경험하기도 했고. 하지만 흔히 그런 얘기들 하잖아. 아무리 편해도 힘든 게 군대라고, 그런 점에서는 여전히 공통점이 있는 것 같다.

모티브를 얻은 건 오래 전이지만 본격적인 시나리오 집필은 1년 반 전에 이뤄진 것이라고도 했다.
본격적인 집필로만 따지면 1년 반 정도, 다만 구체적인 구상까지 포괄하면 한 3년 정도라고 보면 될 거다. 사실 모티브의 시작이 된 프롤로그는 10년 전에 써놨던 거다. 10년 전에 GP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생각하기 시작했는데 이상하게도 그때 작성된 시놉시스 중 프롤로그만 거의 시나리오 수준으로 디테일하게 작성이 됐다. 그리고 10년 전에 썼던 그 프롤로그를 그대로 <GP506>에 썼지. 물론 그 다음 이야기들은 상황을 많이 바꿨지만 아마 그게 계속 남아있었기 때문에 지금 <GP506>을 만들게 된 건 아닌가 싶다.

그 프롤로그는 분명 연출은 염두에 두지 않고 단지 시나리오로서의 완성만을 염두를 뒀을 텐데.
당연히 그땐 이야기를 완성하려고 했을 뿐, 연출까지는 생각을 안 했었다.

어쩌다 보니 직접 연출하게 됐다.
한번 연출을 하게 된 이상, 투자사에서 바라는 건 다음 작품에서도 연출하는 것이더라. 원래 이 이야기는 두 가지 설정으로 시작했었다. 지금 <GP506>같은 이야기가 하나 있었다면 해학적이라고 할 수 있는 코믹한 설정의 이야기가 있었다. 남북의 현상황도 결부가 되어있는 블랙코미디 같은 느낌. 그렇게 두 가지 설정을 잡아서 제작자들을 만났었는데 제작자들은 코미디 쪽을 많이 선호하더라.

그런데 어떻게 전자를 선택했을까?
코믹한 걸 먼저 만들어버리면 <GP506>을 못 만들 것 같더라. 하드하고, 오소독스(orthodox)한 이야기를 만들고 나서도 코미디를 만들 기회는 있을 것 같아도 코미디를 먼저 만들고 정곡을 찌르는 쪽으로 가긴 좀 힘들겠다 싶어서 <GP506>을 먼저 만들었다. 농담 삼아 이게(<GP506>) 잘 되면 이것도 만들겠다는 식이지.(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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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와 코믹이란 게 은근히 어울린다. 사실 개인적으로 군대에 있을 때 내무반에 몰래 CCTV하나 달아서 외부인에게 보여주면 이거야 말로 코미디 같겠다는 생각을 종종 했었다.(웃음)
그런 것들이 많이 있지.

사실 군대라는 조직이 조폭성과 비슷한 면도 많다.
그렇지. 그 조직의 특성상.

조폭성을 희화화시키는 것처럼 군대를 희화화시킬 수 있는 것도 어쩌면 같은 맥락이 아닐까 싶다.
그 의견은 좋은 거 같다. 내가 계속 군대이야기를 하게 되는 이유 중의 하나는 조직에 대한, 그런 시스템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고 싶기 때문이니까, 맞네. 사실 난 거기까진, 조폭과 군대를 등차 시켜서 비교해본 적은 없는데 그 얘길 듣고 생각해보니까 정말 비슷한 점이 많아 보인다.

사실 말투 자체도 기이하게 닮았다.(웃음) 언제부터 그렇게 된 건지 모르겠지만.
원래 그게 우리 때는 안 그랬다. 내가 83년 12월에 입대해서 86년 5월 1일에 제대를 했는데 그때까지도 그랬습니까, 알겠습니다, 그랬다가 정확히 언제부터 그렇게 된 건지 모르지만 90년대 후반에 들어서부터, 이렇지 말입니다, 이런 말투들이 등장하는 것 같더라. 근데 난 영화에 그런 말투를 안 쓰려고 굉장히 많이 노력했다. 그건 자칫 잘못되면 ‘동작 그만’ 같은 코미디 프로의 느낌이 날 것 같아서였다. 그래서 나름대로 자기 설정들을 하면서 말투도 준비해온 배우들에게 내가 되려 많이 자제하길 부탁해서 처음엔 배우들이 대개 당황스러워하더라. 자기가 애써 준비해온 설정을 자꾸 커트시키니까. 하지만 우리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에 비해 그런 부분들이 너무 깨는 느낌이라 주객이 전도될 것 같았다. 그래서 통제를 할 수 밖에 없었다.

아무래도 장르를 그릇 삼으려는 의도에 부합한 결과를 얻고 싶었던 거 같다.
미스터리 스릴러를 표방한 다른 장르영화들과 <GP506>이 다른 점은 누가 범인이냐, 어떤 일이 일어났느냐, 에 중점을 두지 않고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이냐, 에 중점을 뒀다는 거다. 누가 범인인지, 가해자인지, 가 아니라 가해자가 곧 피해자고, 피해자가 곧 가해자가 되는 혼돈, 카오스를 표현하는데 역점을 뒀다. 물론 미스터리 스릴러란 장르의 형식들을 취하지만 어디까지만 가져가고, 어디서부터 파괴시켜버려야 할지에 대한 나름대로의 특별한 시도를 해보려 했었다. 그래서인지 영화를 만들면서도 그런 부분에 대해 많은 논란이 있었다.

그에 대한 평가가 엇갈리고 있다.
많이 낯설어하는 것 같더라. 생각해보면 <알 포인트>때도 기자시사 후에 기자들 반응이 굉장히 싸늘했다고 느꼈었다. 그것도 나름대로 유추해보면 어떤 생소함 때문이라 해야 할 것 같다. 공포라는 장르적 형식을 벗어난 생소함이랄까. 어쨌든 <GP506>에 대한 평가들이 극단적으로 갈리는 것도 그 때문인 것 같다. 나도 처음부터 많이 갈릴 것이라고 예상했었고. 그런데 감염의 수위라던가, 그에 관련된 바를 세다고 받아들일 거라 예상하지 못했다. 그래서 관객들의 반응에 조금 당황한 건 그래서다.

많은 이야기를 담기엔 러닝타임이 버거웠던 것 아닌가.
많은 이야기 때문에 그런 것 같진 않다. 산만하다는 의견은 장르의 공식을 쫓아가지 않았기 때문에 나온 거 같다. <GP506>은 과거와 현재를 오간다. 현재에서 GP에 들어온 새로운 수색대원들이 사건을 풀어가는 와중에 어쩌다 그들이 몰살을 당하게 됐을까라는 과거의 이야기가 진행된다. 그런데 사실 현재와 과거의 이야기는 결국 똑같은 이야기다. 그래서 이 똑같은 이야기를 어떻게 보여줄까를 고민했다. 두 이야기를 각자 그대로 풀어가면 시간적인 제약에 오버가 되는 것도 있지만 여러 가지 면에서 비능률적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상징적인 씬들을 통해 계속 진짜와 가짜를 의심하게끔 이야기를 펼쳐갔다. 그런데 아마도 과거부분에서 이야기를 펼쳐가는 게 장르적 공식과 많이 벗어난 것에 혼동을 느낀 게 아닐까 싶다. 장르적 스타일대로 누가 범인인가라는 이야기를 하다가 5분의 3지점에서 그걸 다 풀어져버리고 드라마로 가니까 굉장히 낯설 수 있는 거다. 물론 내가 극복하지 못한 나름대로의 한계도 분명히 있었다. 내 나름대로 이야기나 장르적 플롯을 풀어간 갔음에도 불구하고 산만하게 느껴진다면 그건 내 한계 때문이다. 단지 해석의 측면에서 나름 상충되는 부분들이 있는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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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 포인트>는 전장을 배경으로 함에도 치열한 전투씬 한번 없다. 반면에 <GP506>은 실제 전장이 아닌 곳에서 전장보다 참혹한 상황을 그린다. 아무래도 그건 스스로가 과거의 베트남보다 현재의 GP를 더욱 민감한 사안으로 여기고 있다는 반증 아닌가.
사실 사람이 죽거나 (사람을) 죽인다는 게 무서운 거다. 하지만 군대는 합법적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는 곳이다. 물론 비상상황에 국한된 바겠지만 그런 폭력의 합당화가 아이러니했다. 그런 참상들을 관객들에게 가깝게 다가서게 하고 싶어서 두 번의 총격씬에 공을 들였다. 그 총격전에 참혹하고 끔찍한 느낌으로 다가서길 바랬고, 그렇게 만들기 위해 많이 노력했지.

<알포인트>와 <GP506>은 폭력성의 전의를 묘사한다. 하지만 <알포인트>가 빙의라는 초자연적 방식을 택한 것과 달리 <GP506>이 감염이라는 물리적 방식을 택한 것도 그 때문이 아닐까.
그렇게까지 의식하진 않았다. 집단 최면이나 집단 공황에 대한 메타포(metaphor)를 생각했고, 바이러스에 의한 감염은 그런 상황에서의 공포를 야기시키는 경로라 할 수 있다. 사람들이 감염에 대해서, 너무 정보가 없다, 이야기를 끌고 가다 포기한 거 아니냐, 이런 식의 반응을 보이는데, 거기에 너무 중점을 두면 <레지던트 이블>같은 영화가 될 것 같았다. 사실은 그에 대한 이유들이 다 있었지만 모두 배제시켰다. 정작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그 후에 과연 이 젊은 친구들이 어떻게 될 것인가가 중요했으니까. 나름대로 감염에 대한 상징성을 부여하려고 애썼다.

그 감염이란 게 군대라는 강압적 체제의 지지를 위한 체제적인 훈육, 노골적으로 세뇌와도 결부되는 느낌이었다.
군가를 통해 피와 생명을 요구하는, 그런 것과 마찬가지다. <GP506>에 논란이 많은 건 피상적으로 보여지는 걸 지적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지금 당신이 말하는 것처럼 상징과 알레고리를 통해 해석하는 사람도 있기 때문이겠지. 물론 전혀 엉뚱하게 이야기를 보는 사람도 있지만.(웃음) 물론 나는 관객들 각각이 나름대로 해석하는 게 궁극적으로 맞는다고 생각한다. 다만 스펙트럼이 너무 다양해서 한편으로 재미있지만, 한편으론 비의도적인 맥락이 보이기도 해서 아쉽기도 하다.

<알포인트>도 그렇지만 <GP506>도 많은 해석을 부르는 영화다.
물론 의도적인 건 아니지만 그런 얘기는 많이 들었다. 촘촘하게 짜놓은 이야기를 어떤 한정된 시간 안에 집어넣는 게 내 시나리오 스타일이다. 그렇다 보니까 영화상에서 함축되는 부분도 있고, 떨궈져 나가야 되는 부분도 있고, 군데군데 점프가 되는 부분들이 생긴다. 자기 나름의 해석을 통해 그런 부분을 좋게 보는 분들도 있지만 무책임하다고 지적하는 분들도 있다. 그리고 제작자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항상 내 이야기가 두 시간 안에 담기엔 굉장히 분량이 많다고 한다. 아무래도 난 어떤 한 상황에서, 어떤 한 샷에서, 어떤 한 장면에서, 어떤 하나의 이야기를 하는 것보단 이야기가 화면을 빡빡하게 채워주길 바란다. 예를 들자면 나와 당신이 이렇게 이야길 나누는 와중에 이 옆을 지나는 사람이든, 주변에서 뭔가를 하는 사람이건, 여기저기 일이 동시에 진행되는 듯한 꽉 찬 느낌이라 할 수 있다.

<알포인트>의 프롤로그가 원래 최태인 중위의 전사(前史)에 해당하는 쏭카우 전투였지만 촬영을 못해서 포기했다고 들었다. 본인도 그 부분을 찍지 못해서 상당히 아쉬워 했다고 하던데.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최태인 중위에 대한 이야기는 <알포인트>시점의 전이 됐던, 후가 됐건, 한번 더 해보고 싶다. 물론 후는 전사(戰死)한 상태겠지만. 쏭카우 전투는 최태인 중위라는 캐릭터가 왜 그렇게 시니컬하게 됐는지 잘 설명해주는 부분이다. 무엇보다도 히스토리를 갖고 있는 부분이라 굉장히 안타까웠다. 그래서 <GP506>시나리오 작업을 하면서 적어도 돈이 없어서 못 찍는 부분은 없게 하자고 마음먹었다.

그렇다면 최태인 중위의 쏭카우 전투만큼이나 <GP506>에서 아쉬운 부분은 없었나?
GP는 비무장지대 안에 있다. 그곳이 50년 동안 버려진 대자연 속에 외롭게 떠 있는 섬이라고 느껴졌고, 그런 것들을 표현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헌팅도 많이 다녔지만 좋은 장소도 많이 없었을뿐더러 좋은 장소를 찾으면 장비가 못 들어가더라. 우리는 계속 비를 뿌려야 했기 때문에 살수차나 발전차도 있어야 되고, 그 밖에 여러 가지 장비들이 들어가야 되는데 그럴 수 없어서 그 부분을 포기하게 됐고, 결국 시나리오를 다시 썼다. 그래서 GP안에서의 상황들만을 다룬 미시적인 이야기로 가게 됐다. 만약 그런 것들이 가능했다면 지금보다 더 풍부한 상황을 연출할 수 있었을 테니까 그런 건 아쉽지. 아까도 말했지만 총격전은 관객들한테 섬뜩한 느낌을 줄 수 있게 찍고 싶었다. 우리가 특효탄만 7~8천 발 쏘고 피탄효과나 파편효과도 냈지만 그래도 많이 부족하더라. 그래서 그 부분을 좀 더 잘 찍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GP506>은 호러적인 연출로 심리적 불안을 조성하지만 고어적 충격으로 물리적인 타격을 준다. 단순히 공포로 에두를 수 있지만 특정장르로 구분할 수 없는 복합성이 있다.
그 예는 분명하다. 일단 공포스럽게 연출한 씬에서 음악은 많이 배제했다. 심지어 목덜미에서 바이러스에 관한 정체가 발견됐을 때도 음악을 배제했다. 목덜미가 클로즈업될 때, 임팩트를 줄 수 있게 ‘쿵’하는 음악이 들어가야 되는데 그걸 다 빼버렸거든. 그런 방식을 한번도 사용하지 않았다. 난 그게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믹싱을 한 뒤, 영화를 본 몇몇 분들은 그에 대해서 음악을 집어넣는 게 좋지 않겠냐는 의견을 많이 개진했지만 내가 그렇게 의도한 게 아니라서 그냥 그렇게 갔다. 게다가 장르에 어울리지 않게 왈츠를 종종 배경음으로 깔아버리곤 했다. 아마 내가 무의식적으로 장르적인 느낌들을 많이 지워보려고 했던 게 아닌가 싶다. 공포심이 유발되는 부분에서 관객들이 특별한 분위기로 젖어 들게 하려고 그런 스타일로 연출했던 거지. 그래서 그런 부분들을 의식적으로 많이 배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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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P506>에서 두드러지는 건 아무래도 GP의 미로적인 구조였던 것 같다. 미로의 폐쇄성은 영화에서 많은 역할을 한다.
어떻게 보면 이 영화의 주인공은 GP라고 생각한다. 공간에 대해서 많은 고민을 했고 신경을 썼다. 그 공간 자체가 인간의 정신 밑바닥에 있는 복잡미묘한 느낌일 수도 있고, 우리 스태프 중 누구는 조직이나 시스템을 상징하는 게 아니냐는 얘기도 했다. 그리고 그게 틀린 생각은 아닐 거 같다. 우리가 찍어놓고 편집상에서 백지화시킨 부분에서 우리는 잠수함 속의 토끼와 같은 존재다라는 대사가 있다.

게오르규의 작품에 나오는 ‘잠수함 속의 토끼’말인가?
맞다. 나는 GP가, 좀 더 거시적으로 보면 군대 자체가 우리 사회에서 잠수함 속의 토끼 같은 존재라는 생각을 했다. 병사들이 군대라는 조직적 시스템에 대해 갖는 생각들이 공간으로 표현된다면 이런 느낌이 아닐까. 그래서 GP라는 공간에 의도적인 장치들도 가미했다. 사실 GP안이 영화처럼 그렇지 않거든. 복잡한 파이프 라인이라던가, 콘크리트의 질감이라던가, 그런 부분들에 많이 신경을 썼었다.

그런 공간을 연출한 건 <코마>시리즈를 거쳐서 더 수월했을지도 모르겠다. <코마>에서 등장한 병원의 통로와 GP의 통로엔 유사한 면이 보이더라.
병원 지하의 느낌과 유사한 면도 있었지. 그리고 <GP506>세트팀장이 <코마>때 함께 했던 세트팀장이라 그런 점도 있을 거다.

<알포인트>와 <GP506>의 병사들이 결국 몰살당한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40년의 시대적 격차를 지닌 두 이야기가 군대란 체제 안에서 어떤 방식으로든 파국을 드리우는 건 변치 않는 체제의 속성에 대한 문제제기처럼 보인다. 게다가 <GP506>은 현실을 배경으로 한다는 점에서 더 심각해 보인다.
군대는 앞으로도 그러지 않을까. 군대라는 조직 자체는 끊임없이 자기 쇄신을 해야 되고, 자기 채찍질을 해야 되는 곳이다. 특히 우리는 분단상황을 비롯해 여러 가지 사안들이 있으니까 더더욱 철저해야지. 앞으로도 기회만 된다면 그런 조직이나 시스템이 유발할 수 있는 폭력의 참혹한 결과에 대한 이야기는 계속 해보고 싶다. 그건 자이툰이 됐든, 레바논에 있는 평화유지군이 됐든 상관없다. 물론 내가 해답을 지닌 사람은 아니기 때문에 그저 물음표를 던져주는 거지.

노성규 원사는 은폐된 사건을 밝히려는 사람인데 후에는 모든 걸 함구하는 쪽으로 선회한다. 이는 당신이 현상황의 체제로부터 느끼는 망연자실이 투영된 것 아닌가.
이거 국방부에서 보면 굉장한 블랙리스트가 될지도 모르겠는데.(웃음) 그런 건 당연히 있지. 노성규 원사는 최태인 중위와 더불어 가장 애착이 남는 캐릭터다. 아내 발인 날, 발인을 하지 않고 GP를 가게 된다거나 자기 자식 같은 병사들을 죽여야 하는 상황들 때문에. 나는 그가 내린 결정이 과연 옳은 결정이었냐에 대한 논란도 되길 바라고 있다. 어떤 사람은 그 사람을 파시스트처럼 볼 수도 있고, 군의관처럼 네가 무슨 자격이 있어서 걔네 들을 죽이냐고 따져 물을 수도 있다. 역으로 누군가 손에 피 묻히는 역할을 해야 된다는 딜레마에 빠질 수도 있고. 일단 노 원사는 묵묵히 자기 일을 해낸 사람이다. 내가 경험한 하사관은 두 부류였다. 아주 악랄하고 새디스트 같은 인물도 있지만 반면 아버지 같은 마초형 양반들도 있다. 노성규 원사는 그런 분들에 대한 내 나름대로의 헌사라고 생각한다. 그 양반들이야말로 청춘을 모두 군에 바친 분들이니까. 별 달고 있는 장군 같은 사람들은 청춘을 바쳤다기 보단 그저 출세를 위해 달려온 사람들이고. 그런 것에 대한 내 나름대로의 마음이 노성규 원사에게 들어가 있다. 난 그런 인물이 개인적으로 좋다. 예를 들자면 <아라비아의 로렌스>의 로렌스처럼, 이 사람이 과연 영웅인지, 제국주의의 꼭두각시인지 애매한, 어떨 땐 자기 멋에 취해서 오버하기도 하고. 그런 인물들이 나에겐 굉장히 깊이 각인된다.

혹시 노성규 원사의 선택과 다른 방향을 염두에 둔 적은 없었나?
난 노성규 원사는 그렇게 갈 수 밖에 없으리라고 생각했다. 대신 노성규 원사의 반대측에서 그와 강하게 대립하고 갈등할 수 있는 인물들에 대해 많이 고민했었지. 내가 개인적으로 아쉬움이 남는 것도 그래서다. 사실 군위관이나 유중위는 노 원사의 포스에 대해서 큰 상대가 못 되는 것 같아서 여러 인물들을 생각하기도 했다. 그래서 수색대 소대장을 대위나 소령 정도로 설정해볼까 생각했지만 리얼리티 때문에 포기했고, 자칫 그렇게 되면 지나치게 갈등상황이 노 원사에게 미화될 수 있겠구나 싶었다. 그래서 이게 최선은 아니지만 그나마 제일 낫다는 판단 하에 유중위나 군의관, 때론 선임하사까지 그와 대립하고 갈등하는 상황에 동원했다. 그래도 그런 부분이 조금 아쉽긴 하다. 노 원사와 대립각에 놓인 인물이 좀 더 강했다면 노 원사의 행위가 과연 옳은 행위인지, 옳지 않은 행위인지를 더 확실히 각인시킬 수 있었을 테고 그런 면이 관객들과 의사 소통하기에도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알포인트>가 최태인 중위의 전사를 궁금하게 만들듯이 <GP506>도 노원규 원사의 전사를 궁금하게 만든다. 그런데 그건 인물의 사연을 배제한 채 그들을 단지 이야기를 밀고 가는 역할에 집중시킨 까닭이기도 하다. 그건 본인의 캐릭터 취향에서 기인한 게 아닌가.
어떤 사람들은 나보고 굉장히 드라이(dry)하다더라. 노 원사가 상주로 앉아서 절하는 장면은 네 컷으로 이뤄졌다. 원래 세 컷이었는데 중간에 한 컷을 썰어서 네 커트가 됐다. 그런데 그 장면을 넣을까 뺄까, 백 가지 고민을 했다. 모두 다 일장일단이 있지만 난 노성규 원사의 캐릭터를 위해서 넣기로 했고 그 정도가 제일 적당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전사를 그렇게 네 컷으로 처리해버리니까 조금 더 있는 게 좋지 않았냐는 의견도 있었고 그러면서 내가 드라이하다는 말이 나왔다. 그리고 처음엔 노 원사의 아들을 어머니가 죽어서 관혼상제 명목으로 휴가 나온 군인이라 설정했었다. 그런데 이게 마지막에 노 원사가 다 죽이는 상황이 됐을 때 너무 직설적인 대비가 되는 거 같더라. 그래서 머리에 물도 들인 날라리 여중생으로 설정할까 했는데 그렇게 되면 너무 쓸 때 없는 의미를 두게 될 것 같아서 포기했다. 결국 어린 남자 중학생으로 정했다.

본인이 시나리오를 쓴 <하얀전쟁>과 <알포인트>는 같은 시대를 이야기하면서도 다른 시선을 느끼게 한다. 더 나아가 <GP506>도 마찬가지고.
<하얀전쟁>시나리오를 쓸 때 부담스러웠던 건 본격적으로 월남전을 다룬 영화가 처음이란 것이었다.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 그 때 정지영 감독님이 주문하신 건, 후에 시간이 지나서 우리에게 월남전은 무엇이었고, 월남전 참전에 대한 의미는 무엇이었는지에 대한 거시적인 느낌이었던 거 같다. 그 반대로 <알포인트>는 미시적으로 접근했던 거 같다. 월남전에 참전한 젊은 병사들의 개인적인 사연과 더불어 그들이 거기서 어떤 상처들을 받았고 그것들이 그들의 인성이나 인격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그런 것들에 관심이 많았다. <하얀전쟁>은 이데올로기적인 접근을 많이 하려고 노력했다면 <알포인트>는 그와 반대였다. 이렇게 나이를 먹다 보니 그들이 무슨 죄가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이 전쟁에서 범죄행위를 했지만 그걸 범죄라고 인식했을까? 예전에 오지마 나기사 감독의 영화가 생각나기도 했다. 재일교포청년이 누구를 죽여서 교수형을 당했다가 죽지 않고 혼절했는데 그가 깨어나고 보니 과거를 다 잃어버린 거다. 기억상실증에 걸린 사람을 또 죽일 것인가, 말 것인가, 그러다가 결국 다시 사형을 시키는 내용이었다. 과연 월남전에 참여한 개개인들에게 무슨 죄의식이 있었을지, 이들이 과연 자기들이 한 게 범죄행위라는 걸 알기나 할까, 그런 연민이 생각났다. <GP506>같은 경우는 일단 남북의 이데올로기 같은 건 젖혀놓기로 했다. 지금 군대를 가는 젊은 친구들도 그렇게 남북의 이데올로기에 관해 별로 신경 쓰지 않기도 하고. 그냥 이 애들한테 좀 더 집중해보자, 란 생각들을 했지.

<GP506>은 겉으로 강해 보이는 남성들의 나약한 내면을 드러내기도 한다. 특히 영화상에서 남성성을 바탕으로 한 군대의 나약한 본성이 드러나는 것도 그런 이유와 무관하지 않다.
그 나이대가 제일 그렇지 않나. 고등학교를 막 졸업한 스무 살, 스물 한 살 친구들이 군대를 많이 간다는 것에 대해서 난 많이 놀랐고 한편으로 굉장히 안타까웠다. 방황의 시기도 보내지 못하고 그냥 바로 청소년기의 마지막 찰나에 바로 군대를 경험하고 사회로 나오는 거니까. 그리고 제대하면 사회에선 성인 취급을 하지 않나. 이 친구들은 청년기 없이 바로 기성세대화 돼버리는 거다. 그리고 군대에선 체제에 순응하는 요령을 배운다. 내가 군대에서 가장 많이 느낀 건 억압이었다. 훈련소에서 종종 어두컴컴한 밤에 줄 맞춰서 어디론가 막 데려가서 그곳에 도착하면 영화를 상영했다. 그 영화는 주로 탈영했다 죽은 애들 이야기와 같은 국방부 정훈영화들이었다. 그건 결국 군대에서 사고 치지 말고 죽은 못처럼 있다가 제대하라는 억압이었고 그걸 본 뒤, 내무반으로 돌아왔을 때 찝찝함을 잊을 수 없다. 그런 억압들이 군대라는 조직이 조직원을 통제하는 수단이고 난 그게 너무 싫었다. 난 굉장히 피곤하면 군대 꿈을 꾸는데 그런 것들이 그런 억압에 대한 강한 반감이나 저항심 때문에 발생된 것이 아닌가 싶다.

제대한지 오래됐을 텐데 아직도 군대 꿈을 꾸나 보다.
그보다 더 피곤하면 고등학교 꿈을 꾼다.(웃음) 그런 억압에서 비롯된 데미지가 나에겐 굉장히 오래가는 거 같다. 요즘 주변에서 월남전 참전 용사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 사람은 아직도 자다가 마당에 뛰쳐나가서 포복한다더라. 벌써 40년 이상 세월이 지났는데도 그렇다고 한다면 그 사람에게 그런 억압이 얼마나 강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체제의 하위적 폭력에 대한 이야기가 본질이지만 그를 바탕으로 권력을 유지하는 이들에 대한 고발의지도 언뜻 보인다. 내몰린 자들을 배후에서 압박하는 건 그곳에 그들을 내몬 자들이다.
그렇다라고 할 수 있겠다. 일단 내몰린 자들의 이야기란 점은 확실히 맞는 이야기다. 그리고 화면밖에 존재하는 내 몬 자들 역시 무전을 통해서 계속 압력을 가하고, 수사 방향을 전환시키려고 하니까 그것도 맞는 이야기다.

아무래도 궁극적으론 당신의 영화적 뿌리가 반체제적인 것에서 출발한다는 걸 숨기기는 힘들 것 같다.(웃음)
아무래도 난 80년대를 살아왔고, <파업전야>같은 영화에 뿌리를 두고 있으니까, 그런 성향은 분명히 투영돼있을 거다. 나도 그런 부분은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그런 것들이 과연 직설적으로 표출되느냐, 우회적으로 표출되느냐, 그런 문제지. 아무래도 나이를 먹으니까 그런 것들을 되도록 우회적으로 표출하는 게 훨씬 좋지 않겠나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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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적 변화와도 관계가 있을 것 같다.
분명히 그에 따른 변화가 있지. 그와 함께 나도 퇴색된 부분이 있고, 더 유연해진 부분도 있고, 좀 더 닳아져서 모가 난 부분도 있고. 그래도 아주 커다란 원칙 같은 건 많이 변하지 않았던 거 같다. 그래서 언제나 그것과 갈등하지. 예를 들면 공분을 느끼거나 울컥하는 측면들은 분명히 아직 남아있지만 이젠 내가 총대를 매겠다는 생각이 굉장히 많이 닳아진 거다. 아무래도 가정도 생기고 자식도 있고 하니까 중산층의 꿈이 생겼다고 할까. 그런 부분과 내가 개인적으로 꿈꾸는 부분들과 충돌하게 된다.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 거지.

아무래도 좀 더 작가적 욕심이 늘어난 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직설보단 허구를 가미하고 싶은 창작욕이 늘어난 게 아닐까.
나는 관객들과의 소통이 가장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흥행과 직결되는 사안이기도 하지만 그 이전에 그것이 개인적으로 가장 소중하게 생각해야 하는 부분이라고 본다. 관객들과 소통하기 위해서 어떤 스타일로, 어떤 이야기들을, 어떤 방식으로 전달해야 되는가라는 고민을 많이 하고 있다. 특히 요즘처럼 영화계가 침체된 상황에서 그건 더더욱 중요하다. 어떤 이는 위기에 대한 원인을 자본에서 찾고 있는데 분명히 영화는 많은 자본이 들어가는 산업이기 때문에 그 얘기가 틀린 건 아니다. 하지만 그것보다 좀 더 근원적인 문제가 있지 않을까. 관객들의 패러다임에 어떤 변화가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관객들이 궁극적으로 보고 싶은 이야기가 지금 현재 우리가 만드는 영화들과 괴리가 있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많이 든다. 그렇다면 그게 과연 무엇인가가 중요하겠지. 지금 분명히 관객들은 영화를 하는 우리보다 한발자국 먼저 가있는 거 같다. 그 한발자국이 작을 수도 있고, 클 수도 있지만 그 갭을 메우기 위해서는 그런 것들을 빨리 캐치해야 되는데 쉽게 말하면 선호도가 될 수 있겠지. 어느 누구는 <추격자>처럼 그런 이야기가 대안이라고 하지만 그렇게 단편적이거나 직설적인 것보단 어떤 큰 게 움직이고 있는데 우리가 지금 그걸 쫓아가지 못하는 게 아닌가라는 고민이 든다.

어쩌면 현재 국내 문화산업 전반에 걸친 총체적 문제와 연관된 사항일 수도 있다. 문학이 죽었다고 하는데 사실 시나리오의 기반은 문학이 아닌가. 결국 문학의 죽음은 시나리오의 창구가 되는 이야기의 감소와 연계되는 게 아닐까. 최근에 나온 좋은 미국영화들도 대부분 소설을 바탕으로 한 시나리오로 만들어진 작품이란 점은 우리에게 좋은 선례인 것 같다.
그래서 작가들이 파업도 할 수 있겠지.(웃음) 그런 고민들이 많이 있어야 될 것 같다.세미나든 심포지엄이든, 어떤 형식이 되던 간에 그런 것들이 공유될 수 있는 계기가 있어야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 말한 것처럼 어떻게 보면 문화전반의 문제와 연관된 사안일 수도 있다. 음악도 일개 통신사가 쥐고 흔드는 정도가 돼버리지 않았나. 문화전반적으로 그런 사안에 대해 같이 공유할 수 있는 부분은 공유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각개 약진을 해야 될 부분은 각개 약진을 할지라도 그런 부분은 분명 있어야 될 것 같다.

<알 포인트>현장에서 많이 고독했다고 밝혔었다. <GP506>현장에서는 어땠나?
아주 행복했다.(웃음) <알 포인트>는 마음의 준비를 하고 간 게 아니라 갑자기 발령받아서 간 느낌이었다. 마치 내가 해야 될 고민을 내가 안 해도 되는 고민과 같이 해야 되는 것과 같은 부분들이 있어서 많이 힘들었고 그만큼 고독했다. <알 포인트>당시 경험도 있어서인지 상대적으로 <GP506>현장은 굉장히 행복하게 느껴졌다.

<GP506>은 <알 포인트>에 비해 전체적인 인원이 늘었다.
무지무지하게 늘었지.

그래서 아무래도 현장에 대한 통솔이 <알 포인트>에 비해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일단 인원수가 많으니까 아무래도 의사전달이나 통제가 제대로 안되더라. 그래서 군대식으로 통제를 했지. 예를 들어 대기하는 중에 화장실 갈 사람은 주변에 얘기하고 가라고 지시하고, 디렉션을 위해서 모두 집합시켰을 땐 다 모였는지 모르니까 뒤로 번호 시키고. 이렇게 하다 보니까 내가 마치 중대장 같은 느낌도 들었다. 덕분에 재미있었다.

설마 2인 1조로 다닌 건 아니겠지.(웃음)
그러진 않았다.

인원은 많았지만 <알 포인트>보다 중심캐릭터는 상대적으로 적어진 만큼 캐릭터에 집중하긴 더 수월했을 것 같다.
아무래도 포인트가 있는 인물들은 많지 않았으니까. 그리고 <알 포인트>같은 경우는 전부 방점을 주려고 노력하기도 했었다. 게다가 <알 포인트>는 약간의 차이들은 있지만 배우 대부분에게 비중이 있다 보니까 그 땐 배우들 통제가 굉장히 어렵기도 했다. 근데 <GP506>같은 경우는 인원통제나 외에 배우들의 디렉션에 대한 통제는 더 좋았다. 우리 인원이 그렇게 많았음에도, 게다가 3개월 정도의 공백이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한 명이 일탈 없이 노력해준 게 일단 고맙다. 물론 영화계 시장상황이 안 좋아서 다른 영화촬영이 많이 못 들어간 것도 한몫을 하긴 했지만 그걸로만 설명이 될 수 없는 부분이 분명히 있었다고 본다. 배우나 스태프들에게 영화에 대한 애정도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런 면에서는 굉장히 고마운 부분이지.

<알 포인트>에 출연한 배우들에 비해 연기 경험이 적은 젊은 배우들 위주로 구성된 탓에 천호진 씨에 대한 의존도가 상대적으로 크지 않았을까 싶다.
천호진 씨는 있는 자체로도 힘이 됐다. 가끔씩 연기가 잘 안 되는 친구에게 이렇게 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 라고 그 친구만 들을 수 있게 흘리듯이 한마디 하면 그 친구가 딱 감을 잡더라. 그런 점이 굉장히 좋았지. 배우들이 내게 익숙하지 않고, 나도 배우들한테 익숙하지 않은 처음에는 소통이 잘 안돼서 테이크도 많이 가고 그에 따라 고민도 많이 했는데 테이크가 지나갈수록 서로 익숙해지니까 연기에 대한 것들이 많이 나아지더라. 그렇게 촬영이 진행되면서 몇몇 단역들조차 연기가 좋아지는 것들이 눈에 보이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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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영 작가에게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스스로 밝혔었다. 게다가 <알 포인트>는 황석영 작가의 단편에서 영감을 얻었다고도 했었고.
황석영 선생님은 내 인생을 좀 책임져야 될 필요가 있는 거 같다.(웃음) 지금 내가 여기로 오기까지의 여정은 작가로서 황석영 선생님에 대한 존경심에서 출발했으니까. 지금도 그 분의 작품은 많이 보고 있고. 몇몇 작품을 뺀 대부분의 작품은 보통 열 번 이상 읽었다.

본의 아니지만 <알 포인트>를 찍으면서 감독까지 겸임했고, <GP506>을 찍으면서 제작자까지 겸임하게 됐다. 이러다가 차기작에서는 배우까지 하게 생겼다.(웃음)
다음 작품에서는 배급사까지 차리는 거 아니냐라는 우스갯소리가 나오긴 한다.(웃음) 사실 작가에서 감독으로의 변화는 내게 천지개벽과도 같은 큰 변화였다. 그에 대한 압박도 굉장히 많았고. 그런데 제작자로의 변화는 내게 별다른 영향을 안 미쳤다. 게다가 지금도 제작자로서의 고민은 전혀 안 하고 있으니까. 이름만 제작사 대표일 뿐이지, 제작에 대한 모든 권한은 나와 함께 작업하는 PD들한테 나눠줬고, 앞으로도 나눠줄 거다. 난 비즈니스 쪽은 하지도 않을 거고, 아마 그전에 주변에서 날 말릴 거다.

<알 포인트>와 <GP506>, 그리고 멀게는 <하얀 전쟁>까지, 이 작품들을 관통하는 말은 살고 싶다가 아닐까. 그건 군대를 간 남자들의 공통적인 생각이기도 하다. 본인의 절실한 경험이 영화에 반영된 게 아닐까.
그런 의도는 없었지만 아마 그런 게 없진 않았을 거다. <알 포인트>나 <하얀 전쟁>은 군대 문제를 이야기하지만 정치체제에 대한 것이기도 하고, <GP506>같은 경우는 정치체제에서의 억압이나 중압감보단 군대라는 조직 자체가 갖고 있는 극단적 상황의 폭력성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런 게 항시 존재하는 건 아니지만 그런 상황이 되면 그런 폭력성이 어떻게 나오는가라는, 결국 인간의 존엄성이 상처를 입게 되는 상황을 이야기하는 것이니까. 이 정도까지 되느니 차라리 죽고 말겠다고 할 수 있는 선은 바로 인간으로서 지켜져야 할 최소한의 존엄성이 아닐까.

<GP506>을 반군대적 영화로 보는 사람도 있을 것 같다. <알 포인트> 당시에도 그런 시선이 없진 않았었고.
경계를 좀 해야지. 단순하게나마 그런 반군대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전혀 생각하진 않거든. 아까도 말했듯이 시스템이나 조직자체가 갖고 있는 한계나 문제점을 계속 건드리고 싶어서니까. 물론 내 영화에 대해서 반감을 갖고 공격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100%까진 아니지만 어느 정도는 일리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당신도 군대를 추억할 때가 있을 거다. 군대 제대한 모든 남자가 종종 그렇듯이.
난 아카시아가 필 때면 군대시절이 그리워진다. 우리 내무반이 아카시아 나무가 가득 찬 골짜기에 있었는데 평소보다 조금 늦게 일어나는 일요일 아침에 문을 열면 아카시아 꽃 향기가 내무반에 꽉 차거든. 그래서 담요 같은 걸 밖에 널어놓고 누워서 책도 보고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그런 게 정말 행복했었다. 그 느낌이나, 그 시절들이. 그래서 그 시절만 되면 군대로 가서 그 경험만 잠깐하고 다시 빠져 나왔으면 좋겠단 생각이 들곤 한다.

아무래도 그런 경험들이 영화가 지닌 연민을 부여하게 만든 게 아닐까.
아마도 그럴 거다. 나도 그런 연민에 대한 것들을 더욱 표현해보고 싶었고, 병사들의 그런 모습들을 관객들이 이해해줬으면 하는 마음도 있었다.

순수하게 장르적인 영화를 만들 생각은 없을까?
안 하겠다는 건 아니다. 다만 지금 딱히 떠오르는 게 없을 뿐이지. 막연하게 첩보 드라마를 차기작으로 한번 해보고 싶다는 생각은 있는데 대신 내가 생각한 이야기를 하겠다는 거지. 그것만 된다면 영화가 됐건, TV에서 하는 시리즈가 됐건, 가리지 않고 할 생각은 있다.

그렇다면 요즘 가장 큰 관심사는 뭔가?
영화적으로는 방금 말했던 첩보이야기고, 그 다음의 관심사는 황석영 선생님이 포탈사이트에 연재 중인 ‘개밥바리기 별’, 그리고 셰플 베다라고 하는 칠레 작가의 소설, 그리고 지금 내가 들고 다니는 (가방에서 '김학철 평전'을 꺼내면서) 김학철 선생의 작품에도 관심이 있다. 이 분들에 대한 이야기도 해보고 싶다.

전기적인 것에 대한 관심일까.
이분에 대한 일생이 굉장히 존경스럽다. 기회가 된다면 이분의 얘기를 한번 해보고 싶다.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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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2008. 5. 31. 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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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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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권 인터뷰

interview 2008. 5. 31. 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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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데뷔한지 10년이 넘었다. 스스로 뭔가 달라졌다는 게 느껴지나?
아무래도 영화에서 나한테 원하는 게 뭔지 좀 더 잘 보이는 거 같다. 내가 해야 될 부분과 하지 말아야 될 부분도 보이고. 예전 같으면 그걸 잘 몰라서 무조건 플러스 알파를 더 얹어서 하거나, 더 해야 될 부분이 있는데도 멍청하게 안하고 있었던 거 같은데 이젠 그에 조금 더 맞추게 된 거 같다. 물론 아직도 멀었지만! (웃음)

캐릭터에 접근하는 게 좀 더 수월해졌다는 말처럼 들린다.
기술적으로는 조금. 그래도 매번 역할을 만날 때마다 절대 호락호락하진 않지. 작품마다 감독님도 매번 다르고.

작년 한해는 정말 바빴을 거 같다.
2년 동안 쉬었던 걸 몰아서 했으니까. (웃음)

제대하자마자 바쁘게 출연하더라. 그래도 한동안 공백이 있었는데 캐스팅 제의가 꾸준히 들어왔나 보다. 어떤 면에서는 스스로 걱정되는 일이었을 법한데.
죄다 거절하지 못해서 많이 하게 된 것도 있지. 거의 시간되는 대로 출연했다. 근데 나도 많이 바랬다. 군대 있을 동안 나가서 일하고 싶다는 마음이 굉장히 컸으니까. 고마운 일이지.

연예사병을 한번쯤 염두에 두진 않았나?
군대에 있을 때는 자기 생각이 있을 수 없지 않나. 하나마나, 까라면 까야 되니까.(웃음) 나도 전투경찰로 가라니까 간 거지. 아니요. 저 연예사병갈래요. 이럴 수는 없는 거고. 병장 말년, 전경 식으로 말하자면 수경이나 되야 자기 의사표현이나 하고 말 좀 하지. 훈련소에서는 뭘 알았겠어.(웃음) 단지 내게 군대 2년은 너무나 무거운 짐이었기 때문에 빨리 덜어낸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사실 좀 더 일찍 가려고 했지만 그 때마다 캐스팅 제의가 들어와서 결국 애초 생각보다 늦게 가게 된 걸로 알고 있다.
사실 난 입대영장 받고 배우를 시작했다. 영장 받고 이제 군대가야지 했던 게 이제 스물 한 살 때, 98년도니까 10년 전이다. 그래서 군대 가기 전에 재미난일 없을까 하다가 학교 조교로 있었던 매형 권유로 오디션 봤다가 결국 그로 인해 배우생활을 하게 됐다.

그게 바로 <송어>?
그렇지. 그렇게 <송어>로 시작해 군대라는 짐을 계속 어깨에 얹고 배우 생활을 하다가 결국 <신부수업>까지 끝나고서야 이제 겨우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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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게 가면 그만큼 고생인데.
나이 먹어서 가면 안 좋다.(웃음) 군대는 아무것도 모를 때 일찍 갔다 와야겠더라. 그냥 고등학교 끝나고 대학에서 자유를 조금 맛봤다 싶을 때쯤이나. 자유가 완전히 몸에 배어버린 뒤에 가면 더 힘들어지는 것 같다.

군대 가기 직전에 안톤 체호프의 <갈매기>를 공연했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대학 시절 이후로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알고 있다. 혹시 더 있는데 내가 모르는 건가?
아니. 없다. 사실 내가 연극영화과 나오긴 했지만 전공은 영화연출이다. 동국대학교 연영과는 입학하면 2년 동안 커리큘럼이 같다. 영화로 들어왔어도 일단 무대 작업부터 먼저 해야 하고, 선배들 연기할 때 못질부터 먼저 해야 된다. 4학년이었던 이성재 선배님이나 김주혁 선배님이 무대에 오를 때 난 밤새도록 못질해서 세트 만들고, 의상 만들고 그랬다. 하지만 솔직히 난 연출 전공이라 연극에 뿌리를 둔 배우라고 말하긴 빈약한 게 사실이다.

예전에 농담처럼 주인공 친구 전문배우라고 스스로 말했다. 아무래도 조연배우로 인식된 자신의 상황에 대한 우회적 발언이 아닌가 싶다.
내가 인터뷰할 때마다 김인권씨는 조연인데 주연하고 싶지 않느냐, 주연배우를 한다는 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 이런 질문을 상당히 많이 듣게 된다. 그에 대해 내 마음을 솔직히 말하자면 주연은 하고 싶다. 하지만 그건 마치 하늘을 날고 싶다는 것과 마찬가지처럼 느껴진다. 날개를 달고 하늘을 날고 싶다는 게 누구나 지닌 생각이듯, 내가 주연을 하고 싶다는 생각도 그것과 비슷한 거 같다. 물론 그렇다고 내가 하늘을 못 난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다. 주연에 대한 생각은 당연히 갖고 있지만 단지 현실적으로 이에 대한 복잡한 문제들이 있고, 내가 아직 갖추지 못한 부분도 스스로 알고 있다 보니까 그건 아직은 안되겠다고 생각한다. 나를 주인공으로 내세워서 영화를 만든다는 것에 대해서는 아직은 조금 깊이 생각해야겠지. 하지만 열심히 하다 보면 어느 순간엔 김인권 씨가 주연을 해줘야 되겠다, 이런 날이 올 수도 있겠지. 물론 주연이 아닌 조연이라도 굳이 김인권 씨 아니면 안되겠다고 하면 그것도 어디겠냐.

조연이라고 같은 조연은 아니다. <숙명>에서도 캐릭터의 선은 상당히 굵은 편이었으니까.
시나리오에 세 번째 주인공이라 명시되어 있는 만큼 주연급 정도로 생각할 수 있는 비중은 된다. 하지만 난 주연이 확실히 있는 상황에서 도와주는 게 조연이라고 본다. 이번 영화에서 송승헌 씨가 연기한 우민이 확실한 주연 역할이고, 난 주인공 친구 역할로서 모든 사건에 동기부여를 해주는 거니까 말하자면 도와주는 역할로서 조연이 맞지. 우민 역할이 더 동기를 가질 수 있도록, 우민이가 더 불쌍하고 더 피폐해지는 모습을 보일 수 있게 그가 처한 상황을 더 암담하게 만드는, 그래야 영화의 마지막 장면까지 우민이가 끌고 가는 힘이 더 강해지지 않을까, 그런 상황을 염두에 두고 했으니까.

도완은 작년에 연기했던 캐릭터들보다 입체적인 성향을 지녔다. 데뷔작이었던 <송어>의 태주나 <플라스틱 트리>의 수처럼 어떤 트라우마가 보이기도 하고.
일단 그 트라우마가 상처, 결함의 의미로 이해하면 될까?

상처를 지니게 된 근본적 이유라고 할까, 단순히 말하자면 응어리라고 말할 수 있겠다.
그런 연기를 할 땐 내가 배우로서 풀어볼 수 있는, 정확히 뭐라 말할 수는 없지만 내공을 끌어내는 어떤 주머니가 있는 거 같다. 그런 트라우마가 나도 모르게 있을 수도 있다는 말이지. 그러다가 인물과 가까워지면서 그게 나왔을 수도 있고. <송어>에서도 정신 없게 굉장히 열심히 했는데 그때와 느낌이 비슷했다. 뭐랄까, 연기를 통제한다기 보단 그 통제를 벗어나 어느 순간 극단적 흐름을 타게 되는 순간이 있다. 그런 데서 인간의 본 모습이 보이기도 하잖아. 나도 트라우마가 있긴 있는 거 같다. 사람은 누구나 다 비슷하니까.

그런 극단의 연기를 끌어내기 위해서는 자신과 소통하는 과정이 필요할 것 같은데.
인간도 동물이다. 사회에서 묻혀 살면서 도덕에 대한 교육, 학습을 거치고 그것이 몸에 배면서 동물적이고 야생적인 면은 거세당하는 거지. 게다가 요즘 시대가 남성성을 최대한 거세하려는 시대니까. <숙명>도 시대적으로 보자면 가위 들고 잘라버리기 위해 덤벼들만한 것이다. 그건 이 시대에 있어서는 안될 만한 것이거든. 여배우도 마찬가지지만 남자배우라면 자신의 야생성이나 동물적인 무의식과 의사소통을 하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걸 못하면 연기를 할 때 난해해진다. 연기를 해도 자기 안에 있는 그런 부분과 연결을 못하면 재미없어진다. 근데 김해곤 감독님의 영화를 보면 자기 속에 있는 남성성, 야생성하고 의사소통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배우 출신 감독으로서 배우로서의 직업병이 작용한 건지 모르겠지만 그래서 그런 동물성과 자연스럽게 의사소통을 하고 있지 않았을까. 멜 깁슨 감독이 만든 <아포칼립토>나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도 짐승처럼 잔인한 인간의 동물성을 드러내는 것처럼. 그래서 종종 (송)승헌이 형이나 (권)상우 형한테도 멀쩡하게 좋은 역할 다 놔두고 왜 지저분하고 망가진 역할 하냐, 이러는데 사실상 그분들도 자신의 야생성을 끌어내주는 걸 보면 거기에 매혹되고 매료 당하는 거겠지.

사실 <숙명>의 캐릭터 중 도완이 가장 잔인하게 느껴진다.
나 같은 경우는 피가 나오니까. 도완은 자기 몸을 막 그어버리고 그러기도 하고, 솔직히 푹 찌르는 거 보단 쪼잔하게 살짝 그어버리는 게 더 잔인해 보인다. 그렇다 보니까 지저분해 보이는 것도 있고.(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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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도칼로 미진의 얼굴을 긋는 장면은 섬뜩했다.
연기하는 입장에서도 섬찟했다. 내가 사랑하는 여자를 그렇게 한다는 게 그 자체로 상당히 끔찍한 거니까. 물론 그게 감독님이 이야기하는 방식이고 그걸 통해서 감독님이 보여주고자 하는 뭔가가 있었으니까 이해했다. 미진을 놓고 봤을 때, 이 여자도 도완이 못지 않게 밑바닥이다. 술집 나가서 맨날 담배나 뻑뻑 피고, 술이나 마시고, 그 와중에 남자친구라고 하나 사귀는 게 약쟁이지. 그런 상황에서 도완이는 자기도 밑바닥이지만 도완이는 너무 좋으니까 자기 입장에서는, 너 그렇게 살 바에는 내가 네 얼굴 긋고 내가 보살피고 살겠다. 차라리 네가 다른 남자 만나면서 지저분하게 살지 않게 하겠다. 나랑 있자, 는 진심이 포함된 거지. 아무 생각 없이 그걸 행동으로 보여주는 장면이었기 때문에 어떤 면에서는 진실됐다고 말할 수 있다. 이 여자를 끝까지 책임지겠다는 진짜 동물적인 남성의 마지막 결단이니까.

그 애정의 근거가 더 필요할 것 같다.
이렇게 하기 전에 했던 도완은 이미 자기가 죽으려고 했지 않나. 그럼 그건 아마 도완이에게 자기가 죽는 것보다 더 하기 힘든 행동이었을 거다. 만약에 그게 더 쉬웠다면 먼저 여자의 얼굴을 그었겠지. 그리고 그래도 안되면 죽었을 테고. 근데 자기 배를 찔렀는데도 우민이가 와서 살려놓으니까, 안되겠다. 내가 살아있는 이상 미진이가 없으면 안 된다. 미진이를 저렇게 지저분하게 살게 하는 것도 안되고. 난 도완이가 그렇게 생각한다고 느꼈다.

김해곤 감독은 상당히 거칠고 센 입담을 구사하는 편으로 유명하다. 그런 성격에 적응하는 것부터가 중요했을 것 같은데 어땠나?
겁나는 개가 짖기도 잘 한다고, 속으로는 알몸이라 여린 사람이 약점을 가리기 위해 겉으로 화를 잘 내고 욕하는 경우가 많다. 내가 욕하는 것만 봤다면 저 사람 무서운 인간이다, 이렇게 단정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게 아니라서 감독님 욕은 그렇게 지저분하게 들리지가 않는다. 굉장히 동정심이 가는 욕이다. 그래서 난 감독님이 굉장히 인간적으로 느껴진다. <숙명>에서도 부분부분 느껴지지 않나? 진짜 밑바닥에서 살아온 사람들만의 어떤 끈끈한 인간애라던가, 삶에 대한 집착이라던가, 이런 게 욕에 묻어나니까. 사실 예전부터 김해곤이라는 배우 때부터 감독님을 좋아했고, 덕분에 현장에서 만났을 때는 매료가 됐지. 지금 어떤 영화평을 떠나서 김해곤이란 사람이 써내는 대사만 봐도 그냥 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본다.

사실 조연으로 출연하면서 다작하는 경우가 많다. 작년에도 그랬던 것 같고. 그런 경우에는 캐릭터의 다양성을 극복하는 게 중요할 것 같다.
배우가 캐릭터와의 관계를 놔버리면 영화에 도움이 되게끔 연기가 나오긴 나온다. 그러나 그런 연기는 그 배우를 잊혀져 버리게 만드는 게 아닐까 싶다. 조연을 하더라도 그 캐릭터에 대한 애정과 이해가 필요하다. 연기하는 배우가 그걸 이화(異化)시켜 버리면 비호감이 된다. 그저 이 캐릭터가 이런 거 아니겠어?, 이렇게 대충 보여주게 되면 배우로서 생명력이 짧아지는 길이 될 수 밖에 없다. 그게 우리가 흔히 표현하는 가벼워진다, 망가진다, 란 것이 될 수 있는데 사실 그렇더라도 그걸 자신과 동화시켜서 끌고 가면 그건 배우로서 발전적인 연기라고 본다. 근데 그걸 자기로부터 이화시켜버리니까, 놔버리니까, 그럼 결국 관객이 똑같이 느끼는 거지. 저 사람에게 어떤 인생이나 인간미가 느껴져야 되는데 그냥 주연을 위해 도와준답시고 자신을 젖혀놓게 되면 그 배우도 젖혀져버린다. 다양한 역할을 할 때 놓치지 말아야 할 건 이 캐릭터에 내 자신을 동화시켜서 현장에 가져가야 된다는 걸 잊지 말아야 한다는 거다.

자신을 캐릭터와 동화시킨다는 의미를 좀 더 구체적으로 묻고 싶다.
내가 모르는 연기를 하면 안 된다는 거다. 내가 아는 것 내에서 연기해야지, 내 연기가 아니라 나 이외의 것을 끌어다가 연기해버리면 그건 그 캐릭터를 사랑하지 않는 거나 다름없다. 정말 그 캐릭터를 사랑한다면 이 캐릭터가 보여주는 것 중 나에게 있는 것만 남겨놓고 나머지 제 성격을 버리는 거다. 그런 식으로 연기하면 그건 내 모습이지. 내 어딘가에 있는 내 모습이 되는 거거든. 그럼 관객도 그렇게 느낄 테고, 결국 저 배우가 보이는 거다. 내가 그 캐릭터를 놔버리면 애정과 이해를 놓아버리는 것과 다를 게 없고 그 순간, 위험해진다고 봐야지. 어쩌면 그에 비해 조연보다 주연이 편할 수도 있겠다. 시나리오 책 한 권에 캐릭터의 역사가 다 나오잖아. 물론 그대신 그만큼 책임이 큰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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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명>은 어떤 전사를 배제하는 것처럼 어느 지점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래서 그 흐름에 대해서 유추해내는 게 중요하지 않았을까 싶다. 도완이란 역할에 대해서도 스스로 포인트를 잡아가야 했을 것 같은데.
도완이 같은 경우에는 내게 없는 부분을 미리 준비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게 있었다. 사실 도완이는 객관적으로 내가 표현할 수 있는 70%를 내게서 가져갔지만 한 30%는 놔버린 게 있었다. 그래서 영화를 보면서 안타까울 때가 있고 종종 감독님이 원망스러운 부분도 있다. 물론 내가 감독님을 너무 좋아하지만 날 좀 잡아주지, 하는. 현장에서 내가 너무 힘에 부쳐서 힘들어 하니까 아예 그냥 놔버리고 가게 될 때가 있었다. 그런 게 이제 나는 보였지. 그리고 관객들도 분명히 그걸 느낄 거다. 물론 거기서는 이제 100% 다 내게서 가져가고 이해할 수 없는 부분도 있기도 했지만 어느 부분에 있어서는 내게 없는 걸 가져다 놓고 스스로, 그냥 이런 거 아니겠어?, 했던 것도 없진 않았었다는 거지. 그래도 한편으로 많이 가져갈 수 있었던 건 감독님이 잡아준 덕분이기도 하다. 만약 내가 내 멋대로 했으면 더 많이 가져갈 수 없었을 텐데 감독님이, 그건 아니다. 도완이는 이거다, 라면서 현장에서 많이 교정해줬거든. 만약에 나대로 했다면 그 캐릭터를 내 맘대로 가져갔을지 몰라도 감독님이 원하는 도완이가 아니었겠지. 하지만 감독님을 내가 이해한다고 해도 서로 완전히 100% 같을 수는 없는 거다. 그걸 끝까지 물고 늘어질걸, 하는 생각이 있었는데 못한 부분도 있지. 만약 그럼 너는 뭐했냐고 하면 나도 나름대로 하긴 했지만 나는 부족하다고 느끼는 거다.

약물 중독에 대한 연기를 위한 구체적인 준비 과정도 있었을 것 같다.
구체적으로 약이 나오는 영화는 죄다 봤다. 다른 배우들은 약 먹은 연기를 어떻게 하는지, 심지어 약을 해본 경험자하고도 만나려 하니까 안 만나 주더라. 그래서 전화통화라도 해봤다. 일단 중독된다는 게 또 사람마다 다르더라. 약의 종류에 따라서도 다르고. 그걸 외형적으로 어떻게 표현하느냐, 의 문제 때문에 영화를 굉장히 많이 봤지. 한 40편 봤나? <레퀴엠>이나 <트레인스포팅>이라던가. <사생결단>에서 추자연 씨가 연기를 정말 잘 했더라. 그래서 상도 받았겠지만, 약에 취해서 씨익 웃는 게 정말 뭔가 있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잘 했다. 약을 먹었을 때의 어떤 흥분이 이런 느낌이구나, 라는 걸 디테일 하게 알아야 했거든. 막 약하고 자지러지게 웃는 모습이 정말 최고조의 기쁨처럼 느낄 수 있어야 하니까. 그리고 그게 끝난 뒤 찾아오는 금단 현상도 마찬가지였지. <친구>의 유오성 씨처럼 추워서 몸을 떠는 식이기도 하고, 장이 뒤틀리듯 속이 쓰린 사람도 있고. 도완이 같은 경우는 장도 아프고, 뼈도 쑤시고, 그래서 밥도 안 넘어가고, 그런 걸 이제 내가 다 가지고 가는 거지.

도완은 칼을 잘 다루는 캐릭터로 묘사되기도 한다.
도완이는 자기 배도 가르고, 여자친구 얼굴도 가른다. 내가 생각하기에 도완이는 상처를 입는다던가, 몸에 피가 난다는 거에 대해 굉장히 익숙한 애다. 우리는 그에 대한 두려움이 있잖아. 주사바늘 하나 들어가는 게 무서워서 병원에 안가는 사람도 많으니까. 근데 도완이는 그게 아니거든. 도완이는 그 공포를 이미 스스로 넘어선 놈인 거지. 그리고 일단 도완이는 송승헌 씨나 권상우 씨처럼 키도 크지 않고, 근육도 좋지 않다. 그래서 면도칼로 쓱 그어보고 피 나는 걸 찍어 먹어보는 식으로 사람들에게 위압감을 주는 거지. 쟤는 함부로 건들면 안되겠다는, 당장은 저놈을 두들겨 팰 수 있다 해도 언제 내 뒤통수에 저놈이 뭘 들이댈지 모르겠구나, 라는 걸 인식시키는 거다. 살아남기 위해서 스스로 극복한 거지. 한편으론 잃을 게 없는 거다. 그래서 남들이 봤을 때는 도완이를 잔인하고, 미친놈이고, 꼴통이라고 하지만 내가 느끼기에 도완이는 그런 행위를 스스로 합리화시키고 있다고 본다. 내가 죽이기를 했어, 목을 따기를 했어, 동맥을 끊었어, 살짝 얼굴에 그냥 몇 바늘 꿰매면 그만인데, 라고 생각하고 있는 거겠지.

도완이는 면도칼이 방패였을까?
걔는 사실 그거 말곤 방패가 없는 거다.

그렇게 생각하면 측은하다. 그 작은 면도칼을 방패 삼아 살아가는 인간처럼 비루한 인생도 없을 테니까.
우리도 마찬가지다. 내가 뭐 특별한 게 있어서 배우 하는 것도 아니고, 몸뚱어리 하나로 연기하는 거니까. 당신도 펜으로 사는 거고. 다들 자기가 가진 재주 하나로 사는 거지. 그게 도완이는 면도칼이었던 거지. 하지만 남한테 피해가 가니까 다수에게 통용되기 힘든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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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명>에서 네 남자의 공통점은 자신의 가족에 대한 애착이 있다는 거다. 결국 남자의 숙명이란 자신의 가족을 위해 비루해질 수 밖에 없는 운명인가 싶더라.
나도 그렇지만 남자는 대부분 가족을 위해서 산다. 가족을 위해서 돈 벌어오는 거 아닌가. 자기 꿈도 있고, 하고 싶은 것도 있지만 결국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모두 돈하고 연계될 수 밖에 없으니까 나가서 돈을 획득해오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기 때문에 24시간 자유가 주어진 인생을 다 털어서 돈 벌기 위해 열심히 사는 거지. 물론 하고 싶은 일 하는 사람은 그나마 행운이지만 하기 싫은 일 하는 사람은 처자식을 위해서 여자와 어린이들을 위해서 참고 사는 거겠지.

역시 남자라서 가족에게 약해질 수 밖에 없는 건가.
처자식은 끝까지 지켜야 된다. 남자가 밖에서는 아무리 칼 들고, 발 들고 해도 부모님과 처자식은 지켜야지.

결혼이라는 건 남자에게 안정감을 주기도 하지만 동시에 어떤 책임감을 부여하기도 하는 거 같다.
가장이 되는 것도 모 아니면 도로 가야 한다.(웃음) 가족한테 끌려가면서 허덕이면서 살던가, 확실하게 벌어서 가장으로서 당당히 끌고 가던가. 하지만 애매하게 일 핑계로 가장 못하고, 가장 핑계로 때문에 일 못하고, 이러면 안 되지.

아내를 두고 입대한다는 건 부담이었겠다.
(한숨을 쉬고) 부담이 있는 정도가 아니라 많았다. 군대 있을 동안 아기까지 태어났고,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었지. 2년 동안 마음은 집에 있었다. 그러니 군생활이 어땠겠어.

제대 이후, 오랜만에 현장에 복귀한만큼 다시 연기의 감을 찾는 것도 중요한 문제였을 것 같은데.
<외과의사 봉달희>(이하, <봉달희>)로 다시 시작해서 다행이었지. 드라마는 바로 반응이 보이니까, 내 연기를 바로 체크할 수 있었다. 만약 일주일에 몇 커트가 있는 영화였다면 익숙해진 연기로 감을 찾는 게 오래 걸렸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봉달희>처럼 빠른 리듬으로 막 흘러가는 드라마의 호흡을 내가 쫓아가다 보니까 어느 순간 이렇게 빨리 됐나 싶더라.

<봉달희>를 통해서 드라마의 대중적 파급력을 실감했을 것 같다.
일단 지명도가 높아지니까 도움이 될 수 밖에 없다. 드라마를 사람들이 좋아하게 되니까 나도 함께 유명해지고 호감을 얻게 되고. <봉달희>의 김형식 감독님은 내겐 은인이다. 내가 제대하자마자 그 역할을 주셨으니까, 거기에 대해서는 굉장히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

요즘처럼 영화시장이 어려울 때는 드라마가 나름대로 기회의 연장일 수도 있는데.
하지만 일단 지금은 영화를 하고 싶다. 드라마가 싫다는 건 아니고, 캐릭터를 따라가고 싶어서. 물론 대본을 봤을 때 진짜 하고 싶은 캐릭터가 있다면 그걸 연기하게 되겠지. 안성기 선배님 말씀대로 인기나 돈을 쫓아가기 보단 일을 쫓는 배우가 되고 싶다. 쉽게 말해서 이거 된다고 하는 말을 쫓기 보단 일을 쫓는 배우 본연으로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들어서.

드라마보다 영화에 대한 애정이 강한 덕분이기도 하겠지.
아무래도 난 영화를 되게 좋아하나 보다. 영화가 스크린을 통해서 나를 관객과 이어준다는 걸 사랑한다. 영화라는 공정이 내가 해왔던 일이기도 하고, 시나리오도 써보고, 연출도 해봤고, 그래서 그런지 이 매체를 굉장히 사랑할 수 밖에 없겠지. 깜깜한 극장에서 나 혼자 즐길 수 있는, 물론 다른 사람들도 존재하지만 깜깜하니까 나 혼자 즐기는 듯한 즐거움이 있지 않나. 편안하게 발 뻗고 온 가족이 보는 것도 좋지만 아무한테도 말걸 수 없는 깜깜한 곳에서 스크린을 보면서 꾸는 꿈이 좋다. 물론 악몽이 될 수도 있지만.(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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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드라마보다 영화에 친숙한 탓이기도 할 것 같다.
내가 추구하는 캐릭터도 스크린을 통해서 보여줄 수 있는 것에 가깝다. 그게 때로 TV를 통해서는 방영불가 될지 모를만한 것이기도 하다.(웃음) 그리고 TV가 선호하는 배우는 잘 생기거나 예뻐야 하는 경우도 많고, 재미난 이야기를 그만큼 건전하고 밝게 전달해줄 수 있는 캐릭터도 많으니까, 거기에서 오히려 난 돋보이기 힘든 탓도 있지. 그래서 여러 가지로 영화가 좋다. 영화라는 매체가 있었기 때문에 내가 배우가 될 수 있었고, 영화가 없었으면 오히려 배우를 할 수 없었겠지. 내 감성을 이용해서 연기를 보여줄 수 있어서 영화가 좋다. 그리고 지금 영화가 힘들다고 쉬운 길 찾아가면 말 그대로 내가 내 자신을 증명하지 못하는 거지. 난 내가 영화를 사랑한다는 걸 증명해 보이고 싶다. 사실 한국영화가 가장 흥행했던 2년 동안 난 군대에 있었으니까 그 혜택도 못 누린 거다. 그런데 만약 지금 내가 드라마에 치중하면 오히려 나도 같이 거품이었다고 말하게 될 수 있는 상황이니까, 내가 거품이 아니란 걸 증명하고 싶다. 당분간은 군대에서 벼려왔던 2년이 아까워서라도 남아있어야지.

공백이 길었지만 작년에 드라마 하나에 영화 세편에 출연했다. 그리고 사실 <숙명>도 작년부터 촬영했고, 스스로 힘에 부치는 상황도 있었을 것 같다.
역할을 기다리듯 하는 사람, 그러니까 강한 동기가 생겨서 하는 사람은 다를 수 밖에 없다. 그런 거 없이 그저 끌려가듯이 연기하게 되면 에너지가 딸릴 수 밖에 없지. 이건 체력이 딸리는 것과는 다른 거다. 그래서 배우는 갈급함을 모아둘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걸 모아두지도 않은 채 관객이나 대중들, 시청자들 앞에 서면 그건 안 하느니만 못하게 된다. 요즘 <온에어>에서 송윤아 선배님을 보면 그 연기가 잘했네 못했네 자체를 떠나서 대사 치는 게 바로 그런 거다. 사실 그게 리얼리티 수준을 굉장히 떨어지게 만드는 대사톤이라서 정말 엄청나게 연습하지 않고서는 저렇게 나올 수 없는 대사인데 그걸 끝까지 유지하는 거다. 그게 눈에 보인다. 진심이 보이는 거지. 저분이 이번에 저 캐릭터를 하고자 하는 갈급함이 느껴지는 거다. 그리고 그게 에너지로 느껴지는 거고, 그게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절실함이 있어야 된다는 건가?
그런 게 없으면 강렬한 캐릭터도 소용없다. 뭘 하더라도 관객을 감동시키는데 힘이 부치는 거지.

본인에게 그 갈급함은 얼마나 됐을까.
2년간의 갈급함이었지.(웃음) 그런데 네 작품이나 하니까 이제 많이 떨어지더라. 아직도 남아있는 게 없진 않지만 그걸 몰아서 풀어버리다 보니 오히려 위기감이 올 수도 있겠더라. 그래서 다시 좀 더 모아야 될 것 같다. 게다가 지금 영화판이 힘들다고 해서 냉큼 편한 자리 찾아서 가면 그게 모이지도 않는 거라 다른 생각도 배제하게 되는 거고.

영화가 김인권이라는 배우를 필요로 했기 때문일 수도 있겠지. 지금쯤이면 과거에 자신이 했던 연기를 돌아보게 되는 순간도 있을 텐데. 특히 군대 있을 때는 생각도 많았을 테고.
저거 진짜 못했네. 왜 저렇게밖에 못했을까. 그런 생각이 많이 들지. 나는 영화든 드라마든 작품을 찍고 내 연기를 관객입장으로 보기까지 한 10년 정도 걸리는 거 같다. 그 정도는 되야 완전히 당시 그 기분이 기억의 용량에 밀려서 갱신되고 잊혀져 버리는 것 같다. 그래서 나도 희망이 있지 않나. 앞으로 또 10년 뒤에 도완이가 과연 어땠을까, 하고 다시 보면 왜 저거밖에 못했을까, 이런 생각을 할 테니까. 그렇다면 난 분명 옛날에 했던 거보다 나아졌다는 거 아닐까. 그런 식으로 발전해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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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적어도 그 연기가 그 당시 자신에겐 베스트였을 텐데.
그 당시엔 그랬지. 그런데 그때도 비슷하다. 지금 도완이가 한 30%를 대충했다고 말하는 것처럼 그때도 최고에 달했다고 생각하지만 최고는 아니었다. 심지어는 초창기엔 카메라 앞에서 연기한 뒤 뒤돌아서 그걸 생각하지 말자고 되뇐 적도 있다.(웃음) 물론 지금은 그 정도는 아니다. 어느 순간, 이건 됐어, 이렇게 100%만족스러운 경우도 있고, 아쉬울 때는 한번 더 가자, 는 얘기도 할 수 있으니까. 그런데 그 당시에는 못해놓고, 혼자 속으로 씩씩거리다가 말았지. 모든 배우들 그런 경우 있을걸. 감독이 컷! 오케이!, 하면 (속으로) 오케이 아닌데, 이러는 거.(웃음)

사실 자신의 연기를 만족한다고 말하는 배우를 보기란 드물다.
만족하기란 쉽지 않지. 근데 요즘은 어떤 커트를 해놓고 너무 힘들어서 이제 더 이상은 못하겠다, 이런 경우도 있다. 정신 차려야지. 에너지가 없으면 그렇게 되는 거더라. 에너지가 있으면, 감독님, 한번만 더 하겠습니다!, 이렇게 되는데 그걸 다 써먹고 채우질 못하니까 힘에 부치는 거다.

도완같은 캐릭터에 몰입하다 보면 심리적으로 힘들어지는 순간도 있었을 거다. 심리적으로 날을 세운 캐릭터에 동화되는 연기를 하다 보면 그게 자신에게 전이되기도 할테니까.
오히려 그렇게 했어야 되는데 도완이가 너무 끔찍하기 때문에 내가 몰입을 많이 못했다. 내 집에 딸이 있고 걔한테 영향을 미치면 안되니까. 건달도 처자식 생기면 건달 끝이라고, <넘버3>에서 나오는 말이잖아. 배우도 조심해야 된다.

아무리 그래도 몰입하지 않고서야 연기가 가능하나?
컷이 끊어지고 연기가 끝나고 감독님한테 돌아갈 때, 저 어땠어요?(호들갑스럽게), 이런 식으로 바뀌는 버릇을 들이는 거지. 바뀌지 않고 거기에 계속 몰입해서 집까지 가져가면 감당이 안 된다. 얼마 전에 인터넷으로 <추격자>의 하정우 씨 인터뷰를 봤는데 흰자에 핏발이 서 있더라. 그거 조심하셔야 된다.(웃음) 빨리 빠져 나와야 돼. 관상학적으로 핏발이 선 게 사람 죽이는 건데, 걱정되더라.

캐릭터와 일체화되는 메소드 연기를 지양하나?
아니, 지향하지. 사실 더 그렇게 했어야 했다. 배우가 준비기간까지 포함해서 연기하는 동안, 캐릭터에 녹아 들어서 얼굴의 관상이 바뀔 정도가 돼버리면 가장 좋은 거지. 그러니까 <추격자>가 그런 에너지가 생기는 거잖아요. 그게 에너지죠. 그런 갈급함을 최대한 끌어올릴 수 있는. 다만 캐릭터로부터 빨리 빠져 나오는 기술을 확실하게 가지고 있으면 현장에서 들어가는 게 더 수월한데 그 합일점을 찾는 게 쉽지가 않거든.

대신 입구는 찾기 쉽지만 출구를 찾기가 힘들기 때문에?
출구가 없으면 안 된다. 특히 그런 역할은 출구가 없으면 더욱 안되고. 나도 옛날에 했던 역할의 잔재가 아직까지 남아있는 게 굉장히 많다. 그때마다 다 빼내지 못해서.

어쩌면 도완이란 역할의 출구를 만들어준 건 가족일 수도 있겠다.
(잠시 생각하다가)그렇네. 가족을 통해서 잊는 방법이 있네. 매일같이 가족을 만나서 잊게 되는 거니까. 근데 그게 기본적으로 적당한 시간도 필요하겠지. 그건 또 문제다. 하여튼 난 그런 합일점을 빨리 찾았으면 좋겠다. 내 연기가 집에 영향을 주면 안되니까.

<추격자>의 흥행은 고무적이지 않나. 인기에 편승하지 않아도 영화적 완성도와 배우들의 연기력이 훌륭하면 관객들에게 어필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사례 아닌가.
그 동안 투자자나 제작자가 인기에 편승해왔는데 그건 아니지. 이젠 나도 그건 아니라고 얘기하고 싶다. 물론 영화는 상업예술이기도 하지만 상업을 하는 사람이 감독예술은 건드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감독이 작품에 자기 영혼을 담아서 진짜 에너지를 쏟아 붓고, 그 역할에 맞는 캐스팅을 하고, 그렇게 해서 작품의 완성도를 이룰 수 있는 영화만의 신성함은 건드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 나머지 테두리는 그걸 도구로 해서 돈을 버는 분들이 열 배를 벌던, 백배를 벌던 상관없지만 감독예술이라는 영화자체만큼은 건드리면 안 된다. 물론 의견을 제시할 수는 있으되, 감독이 주도권을 잡아야 되고, 감독이 맞추고자 하는 일관성은 건드리면 안 된다. 그리고 감독님들도 그에 맞는 책임감을 확실히 기르고 그 외의 것을, 이 영화를 어떻게 해서 돈을 번다던가, 그런 걸 생각하시면 안되겠지. 난 배우니까 철저하게 감독님이 원하는 연기를 하면 되는 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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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의 위기 상황이란 게 그런 의식의 부재에서 원인을 찾을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러니까 이 위기가 감독예술이라는 본연의 의미를 찾아가는 기간이 됐으면 좋겠다. 그걸 찾으면 우리도 할리우드가 부럽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다만 그걸 못 찾고 계속 이대로 그냥 살아남겠다고 상업적인 돈의 논리로 인지도 높은 배우 쓰고, 작가 뭐야, 감독 뭐야, 그런 식으로 하면 답이 없겠지만. 하지만 완성도를 찾아갈 거라 믿는다. 만약 그래서 결국 다 떨어져나가고 C급만, D급만, 분야별로 최하급만 남더라도 상관없다. D급 배우에 D급 감독, D급 투자, 이렇게만 모여도 영화에 일관성이 생기니까 거기에 스피릿이 생기고 그 영화의 완성도가 생긴다.

가장 열악한 밑바닥까지 내려앉더라도 진정성을 찾으면 된다는 말인가?
A급 배우에, C급 뭐에, D급 뭐에, 이렇게 일관성이 없어지면 오히려 관객이 진정성을 못 느끼지. 그래서 그냥 최하급만 남더라도, 그 일관성 때문에 빛이 난다고 생각하는 거다.

원래 연출을 지망해서 연극영화과에 진학했던 만큼 그에 대한 관심도 남다를 것 같다.
연출적 마인드로 연기를 하면 도움은 많이 된다. 감독을 더 이해할 수 있고, 감독이 나를 이해시키기가 굉장히 쉬워지니까. 지금으로서는 그런 정도의 연출적 마인드만 지니고 있으면 된다고 생각한다. 물론 내가 감독이 되겠다고 하기엔 아직 재주가 없는 탓이기도 하고. 시적인 표현이든, 내러티브가 있는 이야기든, 이 시대로부터 영감을 받아서 이야기할 수 있는 작가적인 차원의 재주가. 난 배우로서 내 역할 하나 하기에도 아직도 부족하다.

졸업작품으로 예전에 <쉬바스키>라는 영화를 만들기도 했다. 나름대로 제작환경을 이해하는 좋은 경험이었을 것 같은데.
그냥 맨땅에 헤딩하듯이 내가 제작부터 배우까지 다 했으니까. 그때 같이 했던 재승이라는 친구는 시네마서비스에서 <강철중>PD를 맡고 있는데 가끔 전화할 때면 지금도 그때가 좋았다고 한다. 참 좋은 경험이었지. 가장 순수한 걸 해봤다는 그런 만족이 있다. 어렸을 때부터 소꿉장난으로 의사놀이를 해봤던 아이가 의사가 되는 것과 칼싸움했던 아이가 살다 보니 의사가 괜찮은 직업인 것 같아서 의사가 되는 것과는 차이가 있겠지. 어렸을 때 영화가지고 한번 놀아봤다는 게 내겐 남은 거지.

배우 경험이 많은 김해곤 감독과 다른 감독의 차이가 있었나.
다르지. 김해곤 감독님은 현장이나 무대에서도 그러잖아. 우리 배우들만 돋보이면 된다. 욕하려면 나를 욕해라. 굉장히 배우를 중심적으로 캐릭터에 염두를 둔다. 게다가 혹시나 감정 상할까 봐 배우들한테 함부로 하지도 않고. 배우한테는 더 없는 감독이지.

오래 전에 했던 인터뷰에서 종종 자신은 배우가 아니라고 했더라.
사실 배우가 쉽게 되는 게 아니거든. 너무 이상적인 생각인가? 내가 영화에 대해서 너무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것일 수도 있는데, 배우도 마찬가지다. 배우도 그냥 되는 게 아니지.

여전히 스스로를 배우라고 말할 수 없다는 건가?
멀었지.

어느 정도의 연기를 해야 스스로를 인정할 수 있을까?
꿈이 이뤄지는 것만큼 허황된 것이 없다. 만약 내가 요절하면 남들에 의해서도 배우로 평가될 수 있겠지만 살아있는 이상, 그냥 열심히 하겠다는 생각밖에 없다. 나도 그냥 살아가는 사람에 불과하고, 일에 대해서 뭔가를 추구할 뿐이지. 언젠가 이뤄질 것이다라는 생각을 하기 보단 그저 열심히 살려고 한다.

차기작으로 <나쁜 놈이 더 잘 잔다>란 작품에 캐스팅된 걸로 알고 있다.
영진위에서 시나리오 공모전 1위를 한 작품인데 영진위로부터 6억이 투자된 상태다. 캐스팅은 거의 됐고, 시나리오도 고치는 중이다. 감독님이 투자를 더 받아서 영화를 더 풍성하게 만들고 싶어하는데 돈줄이 말라버렸다. 대본이 너무 좋다. 매력이 있더라. 일단 일정이 좀 늘어지면서 기다리는 중이다. 진심을 가지고 열심히 하는데 잘 안되나 보다. 그래도 진심은 통하니까, 어떻게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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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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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민용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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