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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2008.05.31 김보경 인터뷰
  7. 2008.05.31 조안 인터뷰
  8. 2008.05.31 진구 인터뷰
  9. 2008.05.30 유선 인터뷰
  10. 2008.05.30 류승룡 인터뷰

박진희 인터뷰

interview 2008. 5. 31. 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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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바쁘겠네요.
조금 바쁘게 지낼 때도 있었던 거 같긴 한데, 뭐, 촬영할 때보다야 바쁘겠어요.

드디어 내일 <궁녀>가 개봉하는데 기분은 어때요?
사실 어제까지만 해도 긴장돼서 되게 떨리고 걱정도 컸던 거 같아요. 이상하게도 막상 오늘, 개봉 하루 전날이 되니까 극히 평온하네요. 내 자식이 내 손을 떠나서 완전히 독립을 했으니까 이제 와서 좌지우지 할 게 없기도 하고, 일단 열심히 만들었으니 이젠 편하게 그냥 관객들한테 맡겨야 되는 거지, 내가 불안해하거나 혹은 어떤 감정을 갖는다고 해서 그다지 제 신상에 도움이 되진 않더라고요. 딱 오늘이 되니까 평온해진 거 같아요.

오늘 몇 시간 뒤에 일반시사회 무대 인사도 있다고 들었는데, 바로 옆에 있는 극장에서.
예. 그런데 오늘 여기 와서 저렇게 걸려있는 걸 보니까요. (극장에 걸린 <궁녀> 대형 포스터를 가리키며) ‘나 참 많이 컸구나’란 생각이 들어요. 진짜 너 사람 됐다, 그런 느낌?

너무 겸손하신 거 아니에요? 그래도 그리 낯선 풍경은 아니잖아요?
아니요. 낯설어요.

그래요?
음, 어쩌면 낯선 느낌이라기보단, 약간……, (고심하다가) 아! 그런 거 같아! 너도 이제 이렇게 대단한 배우들과 같이 나란히 있을 때가 있구나. 그런 생각이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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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잘 웃는 편인 거 같아요. 씩씩해 보이는 느낌이랄까.
예. 그런 게 있나 봐요. 많이들 그렇게 말씀해주세요. 씩씩하고 건강해 보이는, 그런 이미지가 있다고. 너무 다행이에요. 사실 제가 추구하는 인간형도 그렇고, 이렇게 건강하고 씩씩한 사람을 좋아하거든요. 나약하고, 그러니까 외모적으로 왜소한 게 아니라 성격 자체가 그런 사람들은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뭐든지 도전하고 할 수 있다는 생각을 지닌 긍정적인 마인드를 좋아하지, 아, 나 못할 것 같아, 이런, 해보지도 않고! 그런 적극적이지 않은 사람은 별로 안 좋아하는 것 같아요. 하여튼 건강하면서 긍정적인 이미지라는 건 적극적이고 뭔가 씩씩하게 해내려는 그런 의지가 있다는 게 아닐까 싶어요. 그래서 제 개인적으론 굉장히 듣기 좋아하는 말이에요.

그래서인지 천령이,
되게 씩씩해요?

너무 어울렸던 거 같아요. 무모할 정도로 용감하잖아요. 천령의 적극적인 모습이 그냥 박진희 그 자체로 느껴지기도 했어요.
가끔씩 ‘이 영화를 선택하신 이유가 뭐에요?’라고 물으시는 분들이 있어요. 사실 그 질문의 의도는 ‘천령이 굉장히 진희씨랑 닮은 데가 많다. 바르고 정의로운 면이라든지 여러가지로 굉장히 박진희랑 비슷하다. 그런데 혹시 그런 천령의 캐릭터가 자신과 비슷하다는 점이 시나리오를 선택하는데 있어서 굉장히 주요한 요소로 작용하지 않았느냐’는 분들의 질문과 비슷한 건데요. 사실 천령은 이성적이긴 하지만 이성적인 판단을 내리고는 감정에 치우쳐서 앞만 보고 달리는 스타일이잖아요. 사실 전 그렇지 않거든요. 그리고 한편으로 이제는 틀이 생긴 거 같아요. 박진희한테. 박진희라는, 사각의 액자 틀이 만들어진 거죠. 이제 박진희, 하면 좀 바르고 정직한 애라는 틀이 만들어져서 제가 그런 연기를 하면 사람들이 그런 이미지로 더 봐주고 그런 모습들이 이제 더 많이 부각된다고 할까요? 그래서 천령도 사실 그런 건 아닌데 굉장히 착하고 정의롭다는 이미지가 더 부각된 게 아닌가 싶어요.

올 해 들어서 예전보다 활발한 활동을 보여주는 것처럼 보여요. 물론 <만남의 광장>은 개봉일이 미뤄진 케이스지만 결국 올해만 드라마 한편과 영화 두 편으로 관객 앞에 섰네요. 하지만 올해는 분명 박진희란 배우를 각인시키는 해가 되고 있는 것만 같아요. 좀 더 이미지가 구체화된 것 같다고 할까요?
<돌아와요 순애씨>가 잘되고, <쩐의 전쟁>이 잘 되면서 잘 돼서 참 좋다, 다행이다, 즐겁다는 것도 느꼈지만 다른 한편으론 잘 되는 게 이런 거구나란 생각을 했어요. 그 이유가 그런 거였어요. 나는 늘 내가 원하는 연기를 했었고, 난 변하지 않았는데 사람들은 내 다른 모습들을 봐주고 관심 있어하고, 그래서 어느 순간엔 이것저것도 아니었던 내 이미지를 찾아주기도 하고, 나한테 없었던 이미지를 찾아주기도 하고. 그래서, ‘아, 주목 받는다는 게 이런 거겠구나’, 그런 느낌이었어요, 사실은. 지금까지 제가 어떤 이미지를 만들어 온 것이 아니라 이젠 나의 이미지를 대중들께서 많이 봐주시는 거 같아요. 그런 게 비단 연기를 잘해서였다면 배우로서 행복하고 뿌듯했을 텐데 사실은 그건 조금 아닌 것 같아요. 그 동안 작품을 안 해왔던 건 아니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에 와서 그런 말씀들을 해주시는 건 아마도 제가 최근에 출연한 작품들이 긍정적인 방향으로, 뭐랄까, 좋은 운을 탔다고 해야 하나? 그러다 보니 이제 관심들을 가져주시는 일부분에 속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심지어 난 옛날과 변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내 모습이 새롭다고 느낀다거나, 아니면 이제야 박진희의 진정한 모습을 찾았다라고 느끼는 게 아닐까요?

사실 데뷔 초의 이미지는 여성스럽고 가녀린 이미지가 부각됐던 것 같아요.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점점 억척스러운 내면을 드러내는 듯 했어요. 그런 변화가 어쩌면 세월의 흐름과 함께 자연스럽게 진행된 것처럼 보였어요.
당연하죠. 질문의 의도를 제가 제대로 받아들인 건지는 모르겠지만, (웃음) 제가 어렸을 땐 여성적이고, 가녀리고, 조금 얇은 이미지였다면 지금은 굵고 억척스런 이미지가 됐죠. 그런데 제가 아직까지도 소녀처럼 가녀리게 나오면, 그건 보기 힘들거든요. (웃음) 저도 나이를 먹었고 저보다 가녀린 분들이 가녀린 연기 많이 하고 계시는데 이젠 가녀리지도 않은 제가, 난 아직도 가녀리고 싶다고 가녀린 연기를 한다면 보시는 분들이 그다지 즐거울 것 같진 않아요. 그니까 말씀하신 것처럼 어떤 이미지를 변화시키려고 한 것이 아니라 이제 시간이 흐르면서 내가 변하고, 그러니까 캐릭터도 변하고, 이렇게 된 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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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예전의 모습들을 다시 보면 어떤 기분이 들까요?
참 연기적으로 순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게 뭐냐 하면 요즘은요, 감정이 때묻었나 봐요, 옛날에 비해서. 그래서 웬만큼 슬픈 영화를 봐도 그렇게 눈물이 안나요. 근데 옛날에는 조금만 슬퍼도 어떻게 그렇게 울었는지 몰라요? 그러니까 낙엽이 떼구르르 굴러가도 눈물이 났다는 것처럼, (웃음) 진짜 조금만 슬퍼도 너무 와 닿았다면 요즘엔 웬만큼 슬퍼도 눈물이 안 나는 거에요. 사실 제가 얼마 전에 부산영화제 개막작을 보면서 정말 엉엉 울었었거든요.

아, <집결호> 끝까지 보셨군요?
예. 근데 그게 사실 슬픈 영화는 아니잖아요. 근데 거기서 느꼈던 건 인간의 참혹함이란 거죠. 생과 사에 대한. 멜로, 사랑으로 슬픈 건 거기에 비하면 고급스러운 감정이죠. 이별해서 아프고, 그거에 비하면 너무나 고급스러운 감정이잖아요.

마치 밥을 먹는 것과 커피를 마시는 것의 차이처럼요.
그러니까요! 그건 진짜 먹고 살아야 되고 그런, 오늘 죽느냐 마느냐의 갈림길이니까. 그건 너무 슬프잖아요, 그 사람들이 얼마나 처참했을까,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저렇게 언제 죽을지 모를 그 상황 속에서 자기 자신을 달래도 보고, 다그쳐도 보고, 안심시켜도 보고, 그랬던 거잖아요. 그런 극적인 상황을 맞닥뜨리니까 너무 슬픈 거에요. 근데 그걸 보면서 엉엉 울고 나서 그런 생각을 했어요. 배우로서 때묻었구나, 짜증난다, 박진희, 너. 이런 생각을 했어요.

예? 왜요?
옛날 작품에서 연기하는 걸 보면, 별 것도 아닌 대사를 할 때도 막 울어요. 물론 연기적인 테크닉은 굉장히 부족했을지 모르겠지만 되게 감성적으로 마음껏 받아들이려고 노력했던 것 같아요. 그런 점에서 참 많이 틀려진 것 같고.

어쩌면 그게 때묻었다기보다 성숙했다는 의미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요?
그럴 수도 있죠. 사실 옛날에는 삼각 관계 같은 걸 잘 이해 못했었어요. 물론 성격상도 그렇지만, ‘삼각 관계를 왜 만드는 거야? 왜?’ 그랬어요. 만약에 기자님과 어떤 여자분이 좋아해서 만나고 있는데, 제가 기자님을 좋아하게 됐다고 쳐봐요. 그럼 그걸 왜 고백하는 거야? 그러니까 노출된 삼각관계 말이에요. 예를 들어 내가 짝사랑이라면 그건 거기서 그만 두면 되는데, 품고 있지 않고 ‘왜 말해! 말해서 어쩌자는 거야!’ (웃음) 이런 식으로 그런 감정을 이해 못했었어요. 근데 요즘에는 달라졌죠. 그 말할 수 없는 고통 속에, 암흑 속에 살고 있었을 그녀에게 말할 수밖에 없었던 그녀만의 이유가 왜 없었겠어요. 그녀도 왜 고민을 안 했겠어요. 이거 말하면 저렇게 사랑하고 있는 두 사람에게 몹쓸 짓 하는 건데, 왜 생각을 안 했겠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할 수 밖에 없었던 그녀만의 뭔가를 고민한다는 거죠, 지금은. 옛날엔 그건 너무 이기적이고 나쁜 거라고 치부했다면 지금은 그건 나쁜 것도, 좋은 것도 아니고 그냥 그녀의 감정에 충실했던 거라고 생각하는 거죠. 그걸 우리가 옳거나 그르다고 말할 순 없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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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시선에 변화가 생긴 것 같네요.
맞아요. 옛날에는 순수해서 직선적으로 감정을 받아들이고, 그렇기 때문에 슬픈 건 슬프게, 행복한 건 행복하게, 이런 순수한 마음으로 감정을 받아들였다면 지금은 행복하지만 슬픈 거, 슬프지만 행복한 거, 이런 걸 굉장히 찾게 되는 거 같아요. 외모적으로도 지금은 참 많이 사람이 됐어요. (웃음)

아니, 그럼 그전엔 사람이 아니었나요? (웃음)
예전에는 볼 살도 너무 통통했고.

에이~, 옛날에도 충분히 예뻤어요.
아이구~! 그냥 뭐 칭찬이시겠죠. (웃음)

아니에요. 알고 보면 박진희 씨 좋아하는 남자 팬들이 얼마나 많았는데요. 솔직히 전 박진희 씨가 낯설지 않은 이유가 하나 있어요.
뭔데요?

고등학교 때 1년 동안 같이 앉게 된 친한 친구 녀석이 항상 옆에서 박진희 씨 노래를 불렀거든요.
(웃음) 아, 정말이요?

그래서 오늘 그 친구한테 박진희 씨 인터뷰한다고 문자도 보냈었죠. 그랬더니 그 친구가 난 직접 손잡아 볼일도 없을 테니 싸인 이라도 받아주라는 간곡한 부탁을 하나 챙겨왔죠.
당연히 해드려야죠! (웃음) 사실 그런 게 있는 거 같아요. 저도 저랑 특별한 인연은 없지만 저랑 제일 절친한 친구가 너무나 좋아해서 맨날 노래를 부르는 가수가 있어요. 걔가 성시경 씨를 좋아해요. 그런데 성시경 씨가 라디오 DJ를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무슨 일만 있으면 거기 나갈 일 없는지 물어봐요. 꼭 자기를 위해서 한번만 나가달라고. 이번에 <궁녀>할 때도 그랬어요. (웃음) 그런데 얼마 전에 TV를 보는데 야심만만에 나오더라고요. 그런데 사실 저랑 별 관계도 없고 한번도 만난 적도 없는데 관심 있게 보게 돼요. 그러니까 그런 게 있나 봐요. 내 친구가 너무 좋아하면 난 관심이 없어도 그냥 유심히 보게 되고, 그러다 보면 괜히 좀 나랑 마치 인연이 있는 듯한 느낌 있죠? (웃음) 그런 거 같아요.

그래서 지금도 왠지 만나야 될 사람을 만난 것 같아요. (웃음)
그러게. (웃음) 나도 어제 야심만만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던 게 성시경 씨가 무슨 말을 하면 유심히 듣고, 저 사람은 어떤 사람일지 보는 거에요. 그리고 그에 대한 토론을 해요. 남자들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여자들끼린 그래요. (웃음) 야심만만 끝나고 그 친구랑 통화하는 거에요. 약간 선수 아냐? 이러면서. (웃음) 아무튼 그러면 남 같지 않은 그런 게 있는 거 같아요.

그래요. 참 남 같지가 않아요. (웃음) 다시 본론으로 돌아오죠. (웃음) 전 <궁녀>가 여성영화라고 생각해요. 시대극이면서 전문 장르지만 그전에 눈에 들어오는 건 여자들이었거든요. 그렇게 스크린의 전면을 여자들이 뒤덮어버리는 자체만으로 뭔가 이색적이었어요.
제가 예전에 류승완 감독님이 전도연 씨와 이혜영 씨와 했던 <피도 눈물도 없이>를 보면서 정말 멋있다고 생각했어요. 한국에서 여자들이 만든 액션영화인 거잖아요. 너무 멋있다고, 완전 브라보를 외쳤었거든요. 그러니까 그건 관객의 입장으로도 보겠지만 제가 여자고, 여배우이기도 하니까. 사실 제가 항상 아이러니 하다고 느끼는 게 한국 관객들 중 여자도 많지 않나요? 20대 초반, 20대 후반, 30대 초반까지. 그런데 참 여자영화가 없어요. 그래서 여자영화가 나오면 반가워요. 왜 관객들은 여자가 많은데도 불구하고, 여자 영화가 잘 안 나오고, 여자 영화가 잘되는 경우도 별로 없죠? 전 왜일까가 아직도 굉장히 궁금해요. 그런 의미에서 우린 여자끼리 만든 영화라는 자부심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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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님까지 여자분이셨으니까.
우리가 처음 영화를 만들기 위해 모였을 때 여자들이 쫙 모였죠! ‘우리 영화를 어떻게 만들었으면 좋겠어?’ 서로 질문하고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우리가 입을 모아 했던 말이 있었죠. 궁녀는 베일에 가려져 있고 중심이 아닌 겉도는 이미지니까 우리가 그것을 중심으로 끌어왔을 때, 기존 관객들이 가질 수 있는, 혹은 궁녀에 대한 어떤 조그만 정보라도 가진 사람들에게 그 고정관념을 깰 수 있는 그 무언가를 찾자. 그렇다면 그게 뭘까? 그래서 여자 영화지만 남자 영화만큼 힘있는 영화를 만들어보자는 저희의 의지가 결론으로 내려졌죠. 너무나 다행히도, 물론 감독님께서 연출을 너무나 잘 해주셨기 때문이겠지만, 영화를 보고 나니까 정말 힘있는 영화가 나온 것 같았어요. 남자 영화 못지 않게, 아주 강렬한 힘이 있는 영화가 나온 것 같아서 기분 좋더라고요.

최근 여성성을 전면에 내세운 영화들은 단순히 여성을 섹스어필의 소재로 소비하는 방식에 편중됐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궁녀>는 한복과 공포로 치장했음에도 여성의 날카로운 내면을 잘 묘사했단 생각이 들어서 흥미로웠어요.
사실 저희가 의도한 부분들이 굉장히 많죠. 배우들은 연기하면서 그런 부분들을 염두에 두지 못하면 연기할 수 없어요. 그래서 그런 내면들에 대한 고민도 굉장히 많이 했지만, 장르가 장르이다 보니까 관객들이 그것까진 알아주긴 굉장히 힘들 것 같고, 그건 어쩌면 배우의 욕심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아마 관객 분들은 천령의 내면, 혹은 여자들의 내면까지 생각 못하고 그저 ‘저 영화 잔인해, 저 영화 무서워’ 이런 것만 보지 않으실까 싶어요. 물론 아무래도 기자님이시니까 그런 내면까지 봐주신 게 아닐까…(웃음) 사실 배우의 욕심으로는 일반 관객도 그런 내면을 바라봐주셨으면 좋겠죠, 그런 욕심이 있어요. 음……만약 제 욕심만큼 관객들이 저희 영화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봐준다면 뭐, 천만만 보겠어요? 4천만 국민께서 다 보시겠죠. (웃음)

또 흥미로웠던 건 공포가 돌출되는 근원 지점이 사랑이란 감정이 억압된 여자의 내면에서 발생한 히스테리란 점이였어요. 그래서 전 궁녀가 결국 여자들의 사랑 이야기라고 생각했습니다.
잠깐, 아니, 저희 연출부셨나요. 혹시? (웃음) 저희 시나리오를 읽었어요?

시나리오는 아쉽지만 못 봤습니다. (웃음)
너무 영화에 대해서 꿰차고 계시는 것 같은데……(웃음) 예. 맞아요. 사실은 결국 사랑을 이루지 못하는 여자들의 얘기죠. 저희 영화에서 제일 불쌍하다고 생각되는 사람이 (전)혜진이가 맡았던, 마지막에 거의 미쳐가는 정열이. 그리고 그나마 가장 행복하게 살았다고 말할 수 있는 여자는 희빈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어요. 그 이유는 희빈은 어찌됐건 왕의 성은을 입고 왕의 사랑을 받은 셈이니까요. 물론 자신의 어떤 욕망을 채우지 못하고 결국 월령의 원혼이 그녀를 죽음으로 몰았지만, 천령도 자신의 사랑에 있어서 아이까지 낳고 그 사랑을 이루지 못했단 말이에요. 월령도 마찬가지죠. 대리인으로 사랑을 받았을 뿐이지, 자신의 사랑을 이룬 건 아니죠. 옥진이마저도 결국은 자기가 너무나 사랑하던 남자와 사랑을 이루지 못하고 죽음에 이르는 순간까지 그 사람을 그리워하다가 생을 마감하잖아요. 점 에로틱하게. (웃음) 근데 정열이 같은 경우는 남자인 누군가에게 사랑 받아보지도 못하고, 그걸 상상하고 질투만하다가 그냥 사그라진 여인이란 말이에요. 그니까 사실 누구 하나 완벽한 사랑을 충족 받지 못하고 떠나는 사람들인 셈이죠. 그런 것들의 시발(始發)은 궁녀라는 것 자체, 즉 그 당시 궁녀가 갇혀 지내고 외로워 하면서 남자들의 사랑을 받지 못했단 점이죠. 물론 <궁녀>에서는 어떻게 보면 남자들이 마치 여자들을 농락하고 버린 것처럼만 표현했지만 그건 영화적인 요소니까 어쩔 수 없었다고 생각하고요. 기본적으로 옛날의 궁녀들이 농락당했는지, 안 당했는지를 떠나서 늘 남자에 대한 그리움과 동경을 지닌, 굉장히 외로웠을 거란 말이죠. 거기서 시작된 실마리가 저희 영화에선 더욱 확대되고 그렇게 표현이 된 거죠. 그래서 궁녀라는 여성 자체가 굉장히 외롭고, 늘 이성에 관한, 사랑에 대해서 동경하고 열망하는 부분이 있는 사람들이지 않았을까라는 이야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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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에 천령이 고문을 당하고 나와서 모든 상황을 깨닫게 됐을 때 그냥 이젠 다 묻어두겠다는 뉘앙스가 느껴졌어요. 그건 어쩌면 자신은 이루지 못했지만 사랑을 이룬 다른 여성에 대한 동병상련이거나 대리만족이 아닐까 싶었죠.
음, 연출부를 하셨어야 했어. (웃음) 그렇죠. 사실 우리도 마찬가지지만 사회 초년생으로 열정만 가지고 부딪히고 깨지면서 일을 열심히 하다가 어느 순간, 어떤 타이밍이 되면 지금까지 어렵게 적응하던 사회에 잘 적응하게 되고, 순응하고, 합류하게 되는 지점이 있잖아요. 말씀하신 것처럼 천령이 굉장히 큰 사건을 통해서 자신이 이루지 못했지만 더 큰 무언가를 이루는 그녀의 모습을 보고 거기에 순응하게 되는 그런 감정을 표현하고 싶었어요. 아니, 그런데 생각해보니까 제가 활동할 때 고등학생이었던 거네요?

아, 네. 그렇죠. (웃음)
(윤)세아가 저랑 한 살밖에 차이가 안 나는데, 처음 만나서 밥 먹는 자리에서, ‘진희 선배, 진희 선배’ 이러면서 존댓말 하는 거에요. 그래서 나랑 한 살 차이밖에 안 나니까 말 편하게 하라고 그랬더니, 세아는 자기가 어렸을 때부터 TV에서 봐온 사람이라서 나이가 훨씬 더 많은 줄 알았대요. 그래서 굉장히 선배라고 생각을 했던 거죠. 그런데 자기랑 나랑 한 살밖에 차이가 안 나는데 무슨 어렸을 때부터 TV에서 봐, 그러니까 열아홉 살 때 내가 스무 살이었던 건데, 자기가 어렸을 때 나를 얼마나 봤겠어요. 심지어 전 스무 살 때 데뷔했으니까 최소한 세아가 날 TV에서 보기 시작한 건 그녀가 열아홉, 내가 스무 살 때란 말이에요. 그녀가 어린 나이도 아니었고. 근데 이미지가 그런 게 있나 봐요. 굉장히 어렸을 때부터 활동한 거 같고, 봐온 것 같은 이미지. 전 그래서 아까 그렇게 말씀하실 때 그런 느낌으로 생각했던 거에요. 진정한 고등학생이 아니라 그냥 그런 느낌으로 말한 거라고, 그런데 진짜 고등학생 때였네요.

진정한 고등학생이었습니다. (웃음)
(힘빠진 목소리로)이럴 때는요. 굉장히 세월이 빠르다라는 걸 느껴요. (웃음) 아니, 왜냐면 그런 거 있잖아요. 옛날에는 촬영장에 가도, 다 오빠들이었어요. 진짜, 인터뷰할 때도 저보다 나이 많으신 분들이었고.

기자 분들도 다.
예! 그래서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도 잘 모르겠고, 내가 얘기하는 게 맞는 건지 하나도 모르겠고. 근데 요즘은 거의 동년배들이 많아요. 촬영장에 나가도 뭐 이렇게, 스물 여덟, 아홉, 서른, 서른 하나, 서른 둘, 이 나이대가 딱 많은 거 같아요. 아니면 아예 그보다 어린, 이제 막 일을 시작하는 사람들이거나.

막내라고 부르는.
예. 그래서 촬영장에 나가면 이제 다 같이 늙어간다는 공감대가 형성되는 나이대라서 너무 편한 거에요. (웃음) 얘기하기도 편하고, 삐쳐도 옛날처럼 소심하게 고민하는 게 아니라 ‘소주 한잔 먹고 풀죠’ 해버리던지, ‘너 왜 그래~’ 이러면서 풀고. 옛날보단 굉장히 편안한 상황이 됐죠.

어쩐지 <궁녀>를 찍으면서 장녀 역할을 했을 것 같았어요. 어느 새 후배들을 아래 두고 있는 선배가 됐네요.
(짧은 한숨을 쉬면서)사실은 그런 생각을 잘 안 하려고 노력하는 편이에요. 선배로서 권위 의식을 가지면 정말 안되겠다라는 생각. 제가 후배일 때 굉장히 권위 있는 선배님들을 보며 느꼈던 장단점이 있는 것 같았어요. 그게 권위로 느껴지면 단점이고, 그게 그분의 아우라로 느껴지면 장점인 거죠. 근데 전 단점을 훨씬 더 많이 느꼈던 거 같아요. 그래서 저도 선배라는 이름 하에 권위를 누리고 싶지는 않아요. 그건 굉장히 위험한 거 같아요. 권위를 부리기 시작하면 그 사람과 소통하는 것이 아니라 명명하게 되는 것이니까요. 나보다 어린 사람들과 소통할 수 없으면 나는 내 시대의 것밖에 가질 수 없다고 생각해요. 나보다 어린 사람들이랑 동료가 되고 친구가 돼야 어린 사람들의 문화나 생각을 흡수할 수 있죠. 문화적인 일을 한다는 내가 어린 사람들의 생각을 흡수하지 못하면 그냥 나는 내가 태어난 78년생의 사람으로만 살고 있는 거니까. 그래서 선배라는 생각을 잘 안 하려고 하는 편이에요. 그리고 만약 선배라고 생각해야겠다고 마음먹을 때는 정말 좋은 선배가 돼야겠다는 생각을 할 때, 그러니까 모범이 되는 선배가 됐으면 좋겠어요. 뭐가 됐던지 간에. 저 선배는 연기를 잘 하는 배우라서 현장에서도 굉장히 놀면서 하나 보다는 말보단, 저 선배는 내가 보기엔 재능보다는 노력을 더 많이 하는 스타일 같다는 말을 후배들한테 듣고 싶어요. 현장에서 내 연기가 늘 부족하다고 느껴서 항상 뭔가 연구하는 모습이었으면 좋겠어요. 그래야 그들도 그럴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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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박하다는 인상이 느껴지네요. 그런데 그게 박진희 씨의 매력이라고 생각해요. 배우로서 평범함은 마이너스가 될 수도 있는데 박진희란 배우에겐 장점으로 작용하는 부분이 아닌가 싶어요. 물론 평범하지 않은 외모덕분인지도 모르지만.
아니에요. 외모도 굉장히 평범해요. (웃음) 요즘은 모든 게, 모든 상황에 양면이 있다는 생각을 해요. 정말 그 한 면만 가지고 있는 건 없는 거 같아요. 그렇기 때문에, 내가 어떻게 생각을 하느냐, 어떤 마인드를 갖느냐가 굉장히 중요한 거 같아요. 말씀하신 것처럼 평범하다는 건 사실 배우로서는 자랑거리는 아닐 수도 있어요. 하지만 단점만 있는 건 아니잖아요. 관객들이 조금 더 자연스럽게 같이 호응할 수 있고, 호흡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 수 있는 배우라고 느낄 수 있으니까. 아니면 제가 다른 여배우처럼 완전히 예쁘게 생겼다거나 정말 특별한 이미지를 지녀서 어떤 역할은 정말 박진희가 해야 된다는 말을 듣지는 못해도, 캐릭터 자체가 무난하다 보니 어떤 역할을 해도 어울리지 않냐는 말씀을 해주시는 분들도 있어요. 그러니까 그건 다 장단점이 있어서 어떤 장점을 좀 더 부각시키느냐가 중요한 거 같아요. 너무 예쁘게 생긴 여배우들은 사실 외모로는 지적할 게 없으니까 연기를 못 한다는 둥, 성격이 이상하다는 둥, 이런 지적을 받는다면, 우리같이 평범하게 생긴 사람들은 평범하게 생겼으니까 사실 그다지 지적 받을 게 없는 거 같아요. (웃음) 뭐, 이렇게 노멀(normal)하니까.

개인적인 생각에 평범한 외모는 아닌 거 같은데요. 서구적인 외모라고 생각하는데.
얼마 전에 저한테 도시적인 이미지가 있다는 말을 듣고 굉장히 깜짝 놀랬어요. 저는 도시형 인간이 아니거든요~! (웃음) 저는 도시가 너무 싫고, 커리어 우먼 이런 말 듣는 건 싫어요. 반짝반짝 거리는 게 싫고, 직선적인 것도 싫어요. 도시는 약간 그런 느낌이잖아요. 전 그냥 꾸불꾸불한 게 좋고, 나무가 좋고요, 그냥 설렁설렁 사는 게 좋아요. 깝깝하고 각박하고, 빠른 거! 전 빠른 도시가 너무 싫어요. 근데 저보고 도시적이라고 해서 저는 깜짝 놀랬죠. 그리고 저는 심지어 생긴 것도 이렇잖아요, 눈이 정말 큰 것도 아니고, 코도 이렇게 (손가락을 코 주변에 세우면서) 오똑한 것도 아니고, 그러니까 진짜 서구적, 아니면 도시적으로 생긴 분들은 고소영 씨나 한가인 씨 같은 분들 아닌가요? 그런 분들은 코도 정말이지, 와아~,(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며) 그렇잖아요. 저는 그렇지 않죠. (웃음)

이런 말 조심해야 되요. ‘박진희, 난 솔직히 못생겼다, 파문!’ 이럴지도 몰라요. (웃음)
그 누구시더라, 저기 <M>에 나오시는 저분이, (극장에 있는 강동원 사진을 가리키며) ‘제가 뭐가 잘 생겼어요.’ 이 말해서 굉장히 욕 먹었던 거처럼요? 에이~, (손사래 치며) 제가 무슨. (웃음)

<궁녀>에서 처음으로 극의 흐름에 중심이 되는 꼭지점, 즉 원톱의 위치에서 연기를 했잖아요. 이런 점도 본인에게 어떤 작용을 하지 않았을까요?
예. (잠시 생각하다가) 촬영 전에 시나리오 작업하고, 연습할 때는 그런 게 사실 부담으로 왔어요. 잘 해야겠다, 관객들을 2시간 동안 빨아들일 수 있는 에너지를 갖는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라고 스스로 조심하려고 했고 실제로 그랬던 게 있었죠. 근데 촬영을 들어가면서 그런 부담감에 휩싸이면 배가 산으로 가기 마련인 거 같아요. 내 자신에게 집중해도 모자란 연기를 가지고 관객들이 어떻게 받아들일까, 이 영화는 어떻게 나올까라는 생각을 하면 정말 배가 산으로 가거든요. 촬영할 때는 그런 생각들을 굉장히 배제했었고, 거의 하지 않았어요. 솔직히 이젠 결과물이 나왔으니까 요즘에서야 정말 내 연기의 장점과 단점이 어떤 부분인지, 또 어떤 느낌으로 연기를 했는지, 그런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그건 촬영할 때보단 촬영하기 전이나 촬영이 끝난 후, 지금에서야 훨씬 더 크게 와 닿죠. 시작지점에선 내가 원톱으로 한 이 영화가 과연 어떻게 시작될까라는 생각을 했다면, 끝나고 나선 이제 결과물이 나왔고, 그 결과물이 평가 받아야 되는 거잖아요. 그런 면에서 책임감이나 부담감, 의무감이 훨씬 더 커진 거 같아요.

한편으로 박진희라는 배우가 동적인 에너지를 지닌 배우라고 느꼈어요. 그래서 저런 활동적인 배우가 뭔가 보여주고 싶은 욕심이 많았을 텐데 너무 늦게 기회를 찾은 게 아닐까 싶기도 했어요.
제가 사실 보여주고 싶은 건 많은데 보여줄 게 없어요. (웃음) 보여줄 게 많은 배우였으면 좋겠는데 그다지 보여줄 게 많지 않아서 참 고민이죠. 그래서 제 스스로 아직 박진희란 배우는 참 조심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스스로 보여줄 것이 없기 때문에 이걸 한꺼번에 보여주면 사람들이 질려 할 것이다라고. 그러니까 계속 연마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을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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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일까요? 활동시기마다 약간씩 텀(term)이 있는 것 같더라고요. 학업에 열심이라고 듣기도 했지만, 어떤 연기적인 재충전의 시기를 스스로 유지하는 게 아닌가 싶네요.
그런 거 같아요. 작품을 끊임없이 하면서 연기에 대한 감을 늘 잃지 않으려는 배우들이 있는가 하면, 한 작품을 하고 나서 재충전을 가졌다가 다시 한 작품을 하는 배우들이 있는 거 같아요. 전 사실 후자 쪽이거든요. 그러니까 썼던 에너지를 다시 충전해서 쓰고, 작품을 하면 좀 쉬면서 뭔가 다시 정돈하고 시작하는 스타일인 거 같아요.

그러면 올 해는 일단 에너지를 쓰는 해네요.
굉장히 많이 썼죠. 사실 <만남의 광장>은 작년에 찍었는데 개봉이 늦어졌던 영화니까 괜찮지만, <쩐의 전쟁>이랑 <궁녀>를 하면서 사실 에너지를 굉장히 많이 소진했었죠. 당분간은 조금 쉬게 될 것 같아요.

만약 군대를 다녀온 남자라면 <궁녀>를 보면서 감정이입이 될 것도 같아요. 동성끼리 폐쇄적인 집단을 형성하니까 그 안에서도 계급적인 알력이 생기고, 그런 어떤 미묘한 집단적 동질감이 많이 느껴졌거든요. 그걸 여성의 입장에서 보니까 재미있었어요.
혹시 굉장히 여성적인 성향이 많다는 말 듣지 않으세요?

저요? 일단 세심하다는 이야긴 종종 듣긴 하는데, 남자를 사랑하는 정도까진 아니에요. (웃음)
사실 저는 지금까지 <궁녀>를 본 남자분들 중에 이렇게 여성적인 시각을 잘 이해하시는 분들이 되게 드물다고 느꼈거든요. 맞아요. 그런 게 있죠. 그러니까 말씀하신 것처럼 그 작은 공간 속에 있는 여자들끼리 서로 암투를 벌이고 그러잖아요. 권력싸움을 하면서. 그래서 우리 배우들끼리 <궁녀>는 사극판 여성 느와르다, 막 이런 얘기도 하고 그랬었거든요. 사실은 우리 영화가 전달하고자 하는 것 중 한가지가 그건데요. 어떤 사회도 다르지 않다는 거죠. 궁궐 안에서 궁녀들이 작은 소단위의 집단으로 모이니까 마찬가지로 계급이 생기고, 자기들끼리 아웅다웅하는 모습들이 보이잖아요. 그건 군대에서도 마찬가지죠? 넓게 보면 이 사회도 마찬가지잖아요. 결국 예전이나 지금이나, 그리고 우리가 속해 있는 어느 공동체나 다르지 않다는 얘기를 해주고 싶었어요. <궁녀>를 통해서.

그래서 사실은 귀신보다 여자가 더 무섭다고 생각했었어요. (웃음)
(박수 치면서)그렇죠! (웃음)

확실히 남자의 무서움과 여자의 무서움은 다른 거 같아요. 남자의 무기는 주먹이지만 여자의 무기는 손톱이니까. 눈에 띠지 않는 날카로움이나 사나움 같은 게 많이 느껴졌어요.
그렇죠. 오뉴월에 서리가 내린다는데~!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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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녀>는 사극으로서도 처음이었잖아요. 어땠어요?
사실 사극에 대한 두려움이 조금 있었어요. 말투도 사극 톤으로 써야 되고, 그래서 드라마 같은 경우도 사극이 싫었던 건 아닌데, 굉장히 두려움을 느껴서 선택하는데 있어 조심했던 거 같아요. 그런데 <궁녀>는 워낙 독특한 소재고, 또 제가 너무 좋아하는 영화사 아침의 정승혜 대표님께서 저를 추천해주셨기 때문에, 그리고 감독님을 만나 뵙고 확신했어요. 정말 이 영화를 통해서 보여주고자 하는, 보여주자고 하시는 게 너무나 확실했기 때문에 <궁녀>를 확신하고 정할 수가 있었죠.

그런 면에서 보면 10년 차 배우의 영화로서 <궁녀>는 부족함이 없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저도요. 그래서 참 복 받았다는 생각이 들어요. 배우를 10년 하면서 10번째 영화에서 원톱을 했고, 또 지금 시기도 나쁘지 않은 거 같아요. 지금 극장에 걸리는 영화들이 장르가 다 틀리잖아요. 그래서 정말로 나쁘지 않다, 그리고 복 받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여러 가지 의미가 있죠.

그럼 10년 뒤의 자신을 생각해본다면 어떨까요?
모르겠어요. 솔직히 그때까지 아직 연기를 하고 있을지는, 제 바람으로는 하고 있었으면 좋겠는데. 어떻게 될지 모르잖아요. 어쨌든 연기를 하고 있을지 안하고 있을진 잘 모르겠지만, 그때도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내가 생각하는 나의 장점을 잃지 않는 사람이 됐으면 좋겠어요. 제 기본적인 삶의 모토가 ‘긍정적으로 생각하자’거든요? 그런 생각들을 버리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이 됐으면 좋겠어요. 그렇다면 그걸 지키려고 스스로도 굉장히 노력해야 하지만 그에 큰 상처를 주는 어떤 일이 없어야겠죠.

그렇다면 여배우로서 살아간다는 건 어떤 거라고 생각하세요?
굉장히 고단한 일인 거 같아요. 하지만 고단한 일이면서 행복한 일이죠. 근데 저는 긍정적인 사람이니까 아주 행복하다고 생각해요. 아주 행복하고, 굉장히 많이 만족하고 있어요. 물론 힘들 때도 있죠. 하지만 어떤 사람들이 안 힘들겠어요. 다 힘들죠. 물론 정말 못 먹고 못 입는 사람과 좀 잘입고 잘 먹는 사람과의 행복을 단순히 비교할 순 없겠지만, 아주 월등하게 차이가 있지 않은 이상, 기본적으로 사는 사람을 비교하면 힘든 것 자체는 다 마찬가지죠. 행복이란 건 자기만의 기준에서 정해지는 거잖아요. 근데 힘든 건 늘 내가 제일 힘들게 느껴지는 거잖아요. 그래서 그건 수위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냥 힘든 걸 느끼는 내 자신이 제일 힘든 거 같아요. 그렇기 때문에 여배우도 힘들지만, 여대생도 힘들고, 아주머니도 힘들고, 우리가 다 힘들다는 거죠. 누구나 쉬운 삶을 살겠어요? 그래서 누구나 다 힘들지만 저는 사랑 받는 직업을 하며 사니까 나는 굉장히 행복하다고 생각해요.

앞으로도 그렇게 씩씩하게.
그럼요! (웃음) 아! 그거 해드려야죠! 친구분 싸인!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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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민용준
,

손병호 인터뷰

interview 2008. 5. 31. 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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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로에 오면 감회가 새롭겠다.
그렇지. 사실 내 텃밭이야. 텃밭. (웃음)

그런데 한참 연극하던 예전에 비해서 대학로의 경관이 많이 달라졌다. 낯설진 않나?
많이 달라졌지. 건물들이 점점 고급화되는 것 같고. 물론 이렇게 되는 건 좋은데 연극무대는 이제 옮겨져야 하는 게 아닐까 싶다. 이제 연극공간이 점점 없어지고 있거든. 왜냐면 연극 극장이란 게 건물에 속해 있는데 이렇게 건물들이 주점화되고 상업화되다 보니까 건물주들이 건물 임대료를 점점 올려. 임대료가 올라간다는 건 연극의 제작비가 올라간다는 거고, 제작의 여건이 힘들어진다는 거고, 그만큼 연극을 하기가 더 힘들어진다는 거지. 그니까 지원금을 못 받으면 아무 것도 못하게 되는 거야. 4~5년 전만 해도 소극장이 한 달 공연하기 위한 예산이 한 3~4천(만원) 정도였는데 요즘은 억 단위까지 가더라고. 그만큼 배로 뛰었지. 옛날엔 그래도 오백(만원)에서 천만(원)이면 했거든. 요즘은 꿈도 못 꿔. 지원금 없이 절대 안되지. 쉽게 말해서 요즘에 영화 한편을 단 돈 1억만으로 찍기 힘든 것과 똑같아.

그런데 대학로 같은 공간적 대안이 없다는 것도 문제 아닐까?
여기는 이동 인구는 많은데, 그 사람들이 다 극장에 오는 건 아니라고. 어쩌다 극장에 왔다가도 술집 보고 ‘야, 여기 분위기 좋네’, 하고 이쪽으로 다시 오는 거지. 난 문화적 공간이 참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예를 들면 한곳에 딱 포진된 예술의 전당 같은 곳처럼, 거길 갈 땐 아예 문화라는 체험 그 자체를 마음먹고 가는 거잖아. 난 그래서 용산 같은 곳으로 옮겨지면 어떨까란 생각을 자주해. 물론 거기에 극장 용도 있고 국립박물관도 있지만, 거기에 중소극장들이 옮겨가는 것도 좋지 않을까 싶어. 공원도 가까우니까 어느 극장 갈까 둘러보다가 자연도 보고, 그런 공간으로 좀 이동했으면 좋겠어. 음주문화와 거리를 둔 순수한 예술적 공간으로 변모할 수 있게.

그런 의견을 주변의 지인과 나눠본 적은 없나?
지금 대학로에서 연극하는 집단들이 ‘우리 떠나야 된다’는 마음을 많이 갖고 있어. 그래서 실제로 대학로에서 공연 안 하겠다는 친구도 많고. 사실 대학로의 처음 이미지를 지키기 위해서는 문화 공간이 많이 생겨야지. 갤러리가 생기든, 극장이 들어서든, 그래서 하나의 문화 공간으로서 대학로를 느낄 수 있어야 되는데 요즘은 그저 술집 많고, 먹거리 많고, 그저 그런 공간으로만 변질되어가니까 아쉽지.

대학로가 지닌 문화적 정체성이 상실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정체성이 많이 없어지고 있다고 보지. 사실 극장이 좋아야 공연을 좋아하게끔 끌어들일 수도 있는데 어렵게 저런 지하에 극장을 만들었다 이거야. 얼마나 옹색하겠어. 물론 소극장이 나쁘다는 건 아니야. 그런 소극장도 필요하지. 하지만 그것이 소극장이 지향하는 하나의 컨셉에 걸맞은 필요성에 따른 크기와 규모인가란 것이지. 질적으로 향상돼야지, 그게 아니라 단지 열악한 이유 때문에라면 힘든 거잖아. 작고 아담해서 단순히 귀엽고 예쁘다 할 수도 있지만 막상 의자 불편하고 그러면 다시 오고 싶지 않지. 솔직히 영화도 의자가 편한 극장에서 보고 싶어하잖아. 물론 진실되게 땀 흘리는 연기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게 얼마나 되겠어. 그런 면에서 우리도 좀 더 좋은 소극장 문화를 즐길 수 있는 공간을 좀 찾아야겠다 싶은 거지. 그래서 어딘가로 이동해서 다시 한번 포진을 잡던지 해야 되는데 아직까지 그러기엔 우리 여건이 열악하지. 사실 문화에 대한 인식이 열악한 탓도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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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이젠 연극 배우보단 영화 배우란 타이틀이 더 어울리는 것 같다. 필모그래피를 보니까 작품 수가 어마어마하던데.
이젠 그렇게 돼버리네. 연극을 하도 못하니까. 이제. 그렇다고 어마어마하진 않을 텐데. (웃음)

물론 단역으로 출연한 작품도 있지만 어쨌든 출연 편수가 상당하더라. 그리고 인상적인 작품들도 눈에 띠고. <야수>는 정말이지 강렬하게 기억에 남았다.
<야수>가 잘됐어야 했는데. 아~! (웃음)

흥행은 실패했지만 손병호란 배우 개인에겐 상당히 많은 것을 남긴 작품일 법 한데.
진짜 영화 배우라는 각인을 시켜줬으니까, 그래서 난 개인적으로 고마운 작품이지. (권)상우와 (유)지태가 들으면 미안하지만, 솔직히 자기들도 잘 알아! (웃음) 지태는 특히. 지태는 욕심이 많은 친구야. 그래서 지태가 내 역을 너무나 하고 싶어했지. 지태가 정말 좋은 배우라고 생각하는 게 마인드가 참 좋아. 젊은 시절의 청춘 스타보단 진짜 배우가 되고 싶어하는 거야. 배우로서 막 이기고 싶은 거야. 그래서 유강진을 그렇게 하고 싶어했던 거고. 자기가 조금만 더 늙었다면 그 역을 했을 거라면서 ‘선배님, 전 정말 빨리 늙고 싶었어요’ 그러더라고. (웃음) 며칠 전에도 전화 왔었어. 대학로에서 술 먹다가 전화해서, ‘형님, 형님 최고야!’ 이러더라고. 그래서 대답했지. ‘미안한데, 그래도 나 못나가.’ (웃음)

그런 이야기 들으면 그래도 뿌듯하겠다.
그런 말만 해줘도 고맙지. 사람이 만나면 서로의 장단점이나 모자란 점도 다 보이는 건데 서로가 그걸 다 이해하고, 격려해주고, 보완해주면 그게 다 좋은 거잖아. 미운 사람보단 예쁜 사람을 더 챙겨주고 싶은 것처럼, 그런 인간적인 면에서.

가끔 연기를 통해서 사람의 선과 악은 백지장 차이란 생각이 들게 만든다. 그래서 말인데, 사람은 본래 선하다고 생각하나, 악하다고 생각하나?
난 항상 성선설을 주장하지. 그렇기 때문에 영화에서도 그런 모습이 나올 거야. 선천적으로 인간이 나쁘다고 보지 않아.

그렇다면 왜 사람이 악해진다고 생각하나?
환경이 사람을 그렇게 만드는 거지, 특히 어릴 땐 부모와 환경이 참 중요하다고 생각해. 가정 교육도 그래서 필요한 거고. 지금 문제아라고 불리는 청소년들 보면 그 친구들 가정의 절반은 문제가 있는 사람들이야. 부모가 이혼했거나 자식에게 어떤 애정이 없어서 방관했거나, 어릴 때 다독거려줘야지. 스킨쉽이 부족한 거야. 인간은 체온을 느끼면서 마음의 정서가 열린다고 생각하거든. 그리고 그렇게 교감이 트이면 내 마음도 훈훈해져. 이런 교감이 차단되고, 마음이 차가워지고, ‘너 뭐하는 거야! 저런 자식을 내가 왜 나아가지고.’ 이런 말 한마디에 그 사람의 마음은 이미 비뚤어지기 시작하는 거지. 그럼 그 사람이 사회를 보는 눈이 어떻겠어. ‘그래, 나 비뚤어진 놈이야. 누가 날 낳았어. 사회가, 너희들이 날 이렇게 만들었잖아’, 그래서 사회에 반항하고, 뭔가 불만만 터뜨리게 되고, 보는 사람마다, ‘왜, 나한테 뭐 불만 있어?’ 이렇게 되는 거지.

후천적이란 말인데, 그럼 다시 선한 사람으로 교화시킬 수도 있다고 생각하나?
그 사람과 다시 한번 정서적인 교환을 하거나, 조금씩 좋은 생각을 하게 만들면 교화시킬 수 있어. 결국 난 충분히 변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단지 그런 환경 자체가 그 사람을 몰아세우는 것이니까. 민기자가 한 달간 배가 고팠다고 생각해봅시다. 그런데 저 안에 먹을 거리가 있어. 그럼 결국 장발장이랑 똑같을걸. 장발장이 무슨 나쁜 사람이라 빵을 훔쳤나, 정말 배고파서 빵 하나 먹었을 뿐인데. 물론 훔친다는 게 죄겠지만 순순히 부탁하면 안 주는걸. 배고픈 사람에게 뭔가 줄 수 있어야 될 거 아닌가, 사회가, 아니면 인간이. 그러면 그 사람 감동받을 거야. 은혜를 입어서. 그렇지 못한 사회니까 훔쳐야 된다고. 사람을 자꾸 그렇게 만드는 거야. 환경이. 옛날엔 시골에서 잔치 있으면 거지도 불러서 먹였다고 하잖아. 그게 정이거든. 없는 사람, 있는 사람 같이 나눠먹는 정. 근데 점점 각박해지는 거지. 더군다나 요즘 사회는 있는 사람, 없는 사람 점점 빈부차가 심해지고, 또 일류끼리만 놀고, 거기에 못 끼면 완전 무시하고.

사회가 점점 몰인정해지는 건 사실인 것 같다. 그런 생각이 연기에 직접적으로 미치는 영향도 있을 것 같다.
영화마다 이 친구가 왜 이 지경으로 될 수 밖에 없었는지 그 요인을 찾는다. 그게 시나리오에 직접 나와 있기도 하지만, 숨어있기도 하고, 그걸 내가 찾아서 내 마음 속의 적절한 지점에 담는 거지. 어떤 것에 의해 내가 이렇게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그래서 이런 불만이 생기고, 그것 때문에 어떤 욕망이 생긴다는 것을, ‘그래, 네가 날 이렇게 했어?’라는 생각을.

결국 환경에 따라서 악함도 정의된다고 할 수 있겠다.
어떤 똑같은 환경인데도 사람에 따라 ‘내가 어떻게 할까’란 생각은 다 다르겠지. 그리고 행동도 마찬가지일 테고. 그래도 악한 사람은 없어. 단지 생각이나 마인드가 부여하는 가치의 차이지. 물론 아닌 사람들도 있어. 내가 <무방비도시>에서 형사를 연기해서 이번에 강력반 형사를 만났는데 형사님한테 똑같은 질문을 했거든. ‘형사님은 인간이 악한 거 같나요, 선한 거 같나요?’ 그럼 나하고 반대야. 형사가 되기 전엔 인간이 선하다고 생각했는데, 강력반 형사가 되니까 인간은 악하다고 생각이 변했대, 자기는. 내가 만약 형사여서 수많은 범죄자를 대하고 악한자만 상대하면 ‘정말 인간은 악한 놈이구나. 정말 태어날 때부터 악마가 있는 게 아닐까?’ 란 생각을 할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어. 그래서 감히 말하기가 두렵긴 하지만 그래도 내 스스로는 난 선한 쪽이라고 생각해. 난 선해, 아직까지. 결국 그런 생각도 환경에 따라서 이렇게 틀릴 수가 있겠단 생각이 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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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솔직히 <야수>의 유강진은 선천적으로 악하다고 느껴졌다. (웃음) 물론 그 완벽한 악함이 한 순간 무너지던 순간이 있었지. 자식 앞에 있을 때만큼은 어쩔 수 없더라.
자기 가족 앞에서는 누구도 악인이 될 수 없을 것 같다. 물론 그런 아버지들은 있겠지. 가족을 버리고, 책임지지 않고. 대신 그런 아버지라면 보스가 될 수 없겠지. <대부>를 보면 패밀리가 제일 중요하다고 하잖아. 그리고 유강진이 그렇지. <야수>에서 ‘나는 이 사람이 날 배신해도 이 사람을 버리지 않아.’라는 유강진의 대사가 중요하다고 생각해. 그리고 그만큼 유강진은 힘이 있었고, 그 힘이 보스의 힘이라고 생각하고. 버리지 않고 날 배신한 이조차 내가 감싸 안는 것. 얼마나 노력했겠냐고, 뭐든지 어떤 식으로도 노력하지 않으면 이루어낼 수가 없어. 리더라는 건, 내가 먼저 보여주고 내가 먼저 베풀지 않으면 날 안 따라와. 안 그렇겠어? 친구들한테도 내가 먼저 베풀고 내가 먼저 전화해야지, 날 더 기억해주지. 그렇지도 않으면서 이 친구들이 날 사랑해 줄거라 믿으면 그건 천만의 말이지. 그런데 유강진은 그런 인물이라고. 그럼 가족은 당연히 지키지. 가족이 생명인 걸, 가족 때문에 그러는 걸. <가족>을 지키고자 하니까 욕망이 생기는 걸. 만약 가족이 없었다면, 유강진은 국회의원 될 필요도 없었을 거야, 아마. 그냥 군림하다가, 흥청망청 살다가 망가졌겠지. 마약이나 하고. 하지만 가정이란 게 있으니까 욕망이 꿈틀거리지. 아버지로서 사회적 신분을 얻고 싶은, 자기가 국회의원이 된다면 어떤 이들도 깡패라고 함부로 말하지 못하거든. 그게 다 자식을, 가족을 위한 거죠. 그러니까 국회로 가는 거야. 난 그게 자식을 위해서라고 생각해.

가족을 명예롭게 하기 위해서?
그렇지. 난 아직까지 어린애가 다섯 살 밖에 안돼서 잘 모르는데, 우리 선배 중 한 분이 애들을 다 유학 보내고 기러기 아빠야. 왜 보냈냐고 하니까, 그것 참 신기하대. 그냥 TV에서 악역을 좀 많이 하다 보니까 아이가 학교에서 그렇게 놀림 당한다는 거야. ‘네 아빠 나쁜 놈이지’ 이러니까 얘는 충격이지. 몰랐어. 나도 그 정도까지 심할 줄은. 그런데 애들은 그렇게 놀린다고 하더라고. ‘너 나쁜 놈이지, 너희 아빠 나쁜 놈이니까 너도 나쁜 놈이야.’ 이런다는 거야. 그래서 그 애가 아버지랑 말도 안 했대. 그래서 ‘너 왜 그러냐?’ 물어보니까 ‘아빠, 그런 역 좀 하지 마요. 나 학교 가기 싫어.’ 이랬다는 거야. 거기에 충격을 받아서, 이거 안되겠다 싶어서 떠나 보낸 거지, 캐나다로, 가족 다. 그만큼의 환경이 중요하더라니까.

그런데 본인도 악역을 많이 하지 않나? 걱정 좀 안되나? (웃음)
그래도 내 딸은 아직 어리니까. (웃음) 다섯 살 유치원 짜리니까. 그리고 난 영화 하니까! TV는 잘 안 하잖아! (웃음)

부인께서는 악역을 자주 하는 것에 어떻게 생각하던가?
내 와이프가 송일곤 감독의 첫 영화 <소풍>에 같이 나왔잖아. 그전에 자기도 무용 공연하고. 물론 이제 내 와이프는 내가 정말 그런 사람이 아니란 거 알잖아. 그런데 뭐 영화적인 면에서 강인한 연기 코드를 지녔을 뿐이니까 괜찮아. 대신 마음속엔 조금 있겠지. 조금 더 좋은 역을 했으면 하는 바램이 있겠지.

그럼 요즘엔 더 뿌듯하시겠다.
그런데도 사람의 욕심이란 게 참 끝이 없어. 성이 안 차는 거야. 물론 내가 원해서 하는 경우도 있지만 나도 생활인이잖아. 경제란 게 필요하고, 가정이 있으니까. 필요해서 할 수 밖에 없는 배역이 있고, 하기 싫어도 해야 될 때가 있고. 다만 고마운 건 날 이제 만났던 감독이나 모든 사람들이 욕하지 않는다는 거. 조연출들이 만날 때마다, ‘저희 조연출들의 첫 상대가 선배님이신 거 아시죠. 입 봉하면 선배님 꼭 잡고 싶은 배우 선배님이 1위입니다.’ 라고 하면, ‘꼭 입봉하쇼.’ (웃음) 그런 말들이 고맙더라고. 그런 말이 내 힘이 되지. 하지만 배우는 항상 염려스러운 게 있어. 수많은 배우들이 그렇지만 어느 날 주목 받다가 어느 날 사라질 수 있거든. 진짜 두렵잖아. 내가 지금은 이렇게 인터뷰하고 그래도 어느 순간 날 아무도 안 찾아주면 난 두렵다니까. 그런 강박 관념이 있어, 배우들은. 그건 어쩔 수 없어. 그런 것들과 계속 싸워야 되는 거지. 생각보다 힘들어. 그게.

아무래도 인상이 강한 것이 그런 캐릭터를 자주 맡게 되는 원인 중 하나라고 생각되는데, 혹시 그로 인해서 손해 본 건 없나?
조금 괴로웠다. 어릴 때부터 눈매가 좀 강해서. 흰자위가 너무 많으니까. 조금만 눈을 부릅떠도 사람을 잡아먹을 듯 해 보인다는데. 어쩌겠어. 생긴 게 이런 걸. (웃음)

반면 우직한 신뢰감도 느껴진다.
고집스러워 보이니까. 자기 신념을 지킬 것 같고. 그런 점에서 보면 또 나쁜 건 아닌 것 같아. 어쨌든 배우로서 강렬하게 보인다니까.

<바르게 살자>의 경찰서장 이승우 역할은 좀 애매모호한 역할이다. 얄팍한 듯 하면서도 강직해 보이고, 얼핏 보면 악역인 척하는 인물처럼도 보인다.
악역인 척한다기 보단 얘가 좀 명석하고 두뇌가 빨랐던 거지. 정치를 너무 잘 한다는 거야. 매스컴의 힘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고 있는 놈이고, 이걸 어떻게 이용해야 대중들의 심리를 잘 구슬려 볼 수 있다는 걸 알고. 그러니까 그걸 감행하는 건 매스컴을 통해서 상황을 수습하려고 했던 거지. 그래도 정직한 놈이야. 아무래도 이승우가 내가 연기한 캐릭터들 중에서 저하고 좀 비슷한 거 같아. 그니까 본질에 대해서 어떤 것이 옳다는 걸 분명히 알지만 내가 이걸 옳다고 주장만 한다고 해서 되진 않는다는 거지, 이 사회가. 그래서 어떤 이슈를 벌려야 돼, 매스컴을 통해서 한마디 했을 때, 이게 더 천파만파란 거지. 내가 백날 혼자 떠들어봤자 미친 놈 취급만 당하고 앉아있어야 하는 거야. (웃음) 그런데 똑똑한 놈이라면 어떤 걸 통했을 때 진실이, 아니면 내가 말하고자 하는 명확성이 더 정확히 꽂힐 수 있는가를 아는 거야. 그런 면에서 이승우는 명쾌한 놈이고 똑똑한 놈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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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 때문에 오히려 위기에 직면한다.
일단 이승우는 나쁜 놈은 아니라는 거지. 너무나 똑똑하고, 사회의 구조를 너무 잘 알기 때문에 그 시스템을 끌어들였는데 그게 잘못이었어. 한 인간의 진짜 정직성에 이승우의 명석한 수가 반대로 당한 꼴이니까. 왜냐면 이승우는 정도만이 정직하다는 걸 알기 때문에 선택한 거잖아요. 어수룩하게 선택한 게 아니라 그런 고집 있는 애가 필요하고, 해낼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던 거죠. 물론 한 켠엔 얘가 제대로 해낼 까란 의심도 있었겠지만 그 안에선 정도만 밖에 없었던 거지. 그런데 얘가 예상 밖으로 앞서갈 때, 화는 나지만 그를 통해서 깨닫게 된 거죠. 그래서 놔두지. ‘끝내라면 끝내겠습니다.’라고 하는데, ‘아니야. 어차피 이제 다 포기했고, 어디 한번 가보자. 내가 굴복하든 나도 한번 너하고 싸우고 싶다. 진정으로 싸움하자. 너 같은 애가 없어서 내가 못 싸워 본거다.’라고 마음먹은 거야. 그래서 그냥 적당히 보여주고 풀려고 했는데 정말 정직한 놈을 만나서 진짜로 가는 거지.

어쩌면 정도만을 통해서 이승우란 인물의 본질이 복원되는 것 아닐까?
도지사와 대화하는 씬에서 도지사가 내가 와서 어쩌고 하는데, ‘도지사님, 방해하고 계시거든요. 가시죠.’ 냉정하잖아, 이승우가 나쁜 놈이라면 벌써, ‘아 오셨어요~.’ 이러면서 아부 떨었겠지. 그건 아니라고. 일에 대해 철저한 놈이야. 너무 철저하다 보니까 그 철저성에 대한 자신의 가오, 무너뜨리기 쉽지 않은, 자존심이 많은 사람이지. 대신 자존심을 건드리니까 거기서 이제 끝까지 가는데 결론적으로 옳은 건 옳다고 인정하고, 대신에 자신의 임무가 있으니까 잡아들이자고 애쓰는 거지. 그리고 다시 복권시키고, 복직시키잖아. 그러니까 참 메리트 있는 인물이야, 이승우가. 그래서 난 처음에 시나리오 보고 너무 좋았어. 철저하게 필요한 사람이야, 현실적으로. 현실적인 처세에 능하지만 마음속에는 바르게 살자고 하는 정도만 같은 색깔을 갖고 싶어하는 사람. 단지 그렇게 살아봤자 이 세상 날 그렇게 봐주지 않는다는 걸 아니까 다른 방식으로 행동할 수 있는 사람. 하지만 마음속으로 그리던 정도만 같은 인물을 봤을 때, 끝까지 한번 가고 싶은 거지. 어떻게 행동하는가에 따라서 그걸 스스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사람. 멋있잖아. 크으~! (웃음)

그런데 항상 리더역할을 많이 하는 듯싶다.
그게 아무래도 성향 같아. 실제로 내가 회장직을 세 개 맡고 있거든. (웃음)

아니, 어떤 회장직을 세 개씩이나.
그러니까 <먼 길>팀의 회장직을 맡고 있고, 산악회 회장직하고 스쿼시 동호회 회장직을 맡고 있지. 그게 성격 때문 같아. 리더라는 건 좀 나서고 싶어하고, 어떤 일을 할 때 결속적으로 책임감 있게 밀고 나가는 사람이잖아. 리더는 말보다 행동이 제일 중요한 거 같아. 그런 면에서 내가 제일 신뢰하는 건 말보다는 행동이거든. 말은 누구도 다해, 사실. 말로만 아프냐고 묻는 사람보단 캔 하나 사가지고 말없이 먹으라고 하는 사람이 더 따뜻한 사람이잖아. 말없이 그런 사람이 정말 리더거든. 그런 사람이 되고 싶은 욕심이 큰지도 모르겠지. 또 하나는 이제 모임을 갖다 보면 내가 분위기 메이커 노릇을 하게 되더라고. 연기자를 한 10년 하다 보면 무당 된다고 그래. 그래서 어떤 사람과 한 시간 동안 얘기하다 보면 ‘저 친구는 어떤 성격이구나, 저 친구는 어떻게 치고 들어가야 편하겠구나, 이렇게 하면 이 친구가 되게 불안해하겠구나’ 이런 걸 내가 빨리 아는 거 같아. 그러니까 빨리 친숙해지는 거지. 빨리 끌어오는 편이야. 내가.

그래서인지 나도 처음 만났는데도 참 편하다. (웃음)
그러니까 이게 편하게 사람을 끌어오는 거야. 끌어오다 보면 모이게 되고, 그런 다음엔 계속 모이게 되고, 그러다 보니까 모든 사람들이 회장을 맡아라, 그러는 것 같아. 그리고 난 정말 내 말에 책임을 지려고 하거든. <먼 길>팀도 신년회 때 내가 건방진 말을 했었는데 결국 했어. 내가 제작해서 우리가 단편도 만들었거든. 어차피 우린 영화 만남이니까, 우리 <먼 길> 영화팀 거기 다 있거든. 다들 프로페셔널이야. 우리 <먼 길>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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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길>이라면 <엄마>말인가?
그렇지. <엄마>팀이 다 모인다. 지금도 한 달에 한번씩 만나는데, 그게 벌써 2년 넘었잖아. 그 모임을 갖고 오다 보니 내가 한가지 깨달은 건 우리가 다 프로들인데 가격으로만 따져도 이게 지금 몇 백억의 자산 아닌가, 근데 우리가 술만 마시면 무슨 재미가 있겠냐, 영화로 만났는데 뭔가 좀 영화적으로 후배들한테 본보기가 되려면 우리도 영화작업을 하는 게 좋지 않겠냐. 해보자, 우리끼리. 우리가 배우 다 있고, 촬영감독, 조명, CG 감독, 녹음실 대표 다 있으니까 못하는 게 없지 않나.

모임 자체가 거의 프로덕션 급이다. (웃음)
프로덕션이지. 그래서 그런 꿈이 생기더라고. 왜 우리가 투자에 목숨을 걸고 우리가 끌려가야만 하나, 난 영화는 아직도 감독이 살아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 그런데 감독이 다 죽었잖아. 자기 색깔 내는 감독이 별로 없어. 이창동 감독이나 박찬욱 감독 같은 성공한 몇 명을 제외하면 없지. 하지만 그 분들도 투자자들한테 동의를 얻어야 되거든. 난 구성주 감독이 갖고 있는 힘이나 재치, 상상력이나 인간적인 마인드가 너무 좋아. 그래서 그 사람과 친숙해지고 용기 주고, 같이 어울려서 다음 작품 기약하고, 담에 또 만나면 해보자, 이렇게 되다가 이제 다음 작품을 단편으로 만들어보자 까지 온 거지. 그래서 이제 일이 추진되고, 단편을 만들었잖아. 그건 너무너무 행복한 거야. 그런 행동이란 게 난 중요하다고 생각해.

솔직히 쉬운 일은 아닐 것 같은데, 본인의 말에 대한 어떤 책임감을 많이 느끼나 보다.
내가 말을 뱉은 이상 책임을 져야 된다는 게 중요하지. 물론 다 지킬 수 없을지도 몰라. 나도 인간이라 그럴 수는 있겠지만, 그래도 10가지 중엔 한 8가지 정도는 지켜야지. 그니까 말이 중요하다니까. 그러니까 말을 함부로 뱉지 못하는 거지. 다른 사람들이 그걸 보고 있을 거 아냐, 또 내 얘기를 들을 거 아냐, 또 글을 읽을 거 아냐, 그럼 정말 저렇게 하는지 볼 꺼 아냐, 물론 내가 그렇게 쉽게 말하는 건 아닌데 하여튼 그만큼 말이 중요하다는 거지. 정말 옛말이 그른 게 없어, 말 한마디로 천냥 빚 갚고, 사람을 울릴 수도 있고, 죽일 수도 있고. 하여튼 말을 뱉은 이상 그 책임을 분명히 져야 된다라는 거.

그런 면에서는 이승우란 캐릭터가 상당히 와 닿는다.
그렇지. 이승우는 자신이 뱉은 말에 대해서 책임을 졌으니까!

물론 갑작스런 상황에 당황하긴 했지만 끝까지 지켜보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던 것 같다.
안 그런 놈이라면 다른 수습을 했겠지. 머리가 빠른 놈이니까. ‘넌 정리하고 뒤로 돌아가’라고 명령했겠지만 정작 내 가슴은 쓰라리겠지. ‘난 이런 적 없었는데’라고 생각했을 테니. 한편으로 이승우는 저런 친구를 만난 적이 없었는데 ‘아직 시대가 살아있구나’라고 생각했겠지. (웃음) 기분 좋았을 거야. 그 친구가 드러내진 않았지만.

<바르게 살자>는 장진 감독 특유의 연극적 코드가 강한 작품이다. 그런데 <바르게 살자>가 하나의 연극이라고 생각해본다면 은행은 하나의 무대라고 볼 수 있고, 이승우란 역할은 그 연극의 연출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 그럴 수도 있지. 맞네. 밖에서 다 연출하는 거지. 그런데 연출이 잘못된 거지! (웃음) 가끔 그럴 때 있거든. 연기자는 무대에 생활화되려 하고 그 인물이 돼버려, 완전. 사실 그 인물이 되면 안되거든. A도 아니고 B도 아니고 C의 인물을 만들어내야 되는데 그에 몰입해버리면 그 인물이 된다고 생각해버리는 사람도 있거든. 그건 연기가 아니야. 그건 나쁜 연기지. 연기를 그럴 듯하게 만드는 것이지, 내가 그 사람이 될 순 없어. 그건 잘못된 상상이고, 연기 안에서 저 사람은 저 사람이야. 손병호도 아니고 이승우도 아닌 걸 합쳐서 새로운 인물을 만들어내는 게 연기자지, 그게 좋은 연기고. 어떻게 내가 이승우가 돼. 손병호가 어떻게 완전히 없어져. 안 없어지지. 내 눈이, 내 코가 있고, 버릇이 있고, 목소리 톤이 있는데 어떻게 변해. 단지 이승우의 마인드 자체가 내가 갖고 있던 마인드에서 내가 그 사람을 닮아가려고 각자 분량의 소스를 바꾸는 거지, 비율을. 여럿 비율을 바꿔서 이 사람화되려고 노력하지만 내 비율의 반은 내가 갖고 있어. 이 사람 반의 비율을. 생각의, 마인드에 대한, 철학에 대한 비율도. 그래서 그게 교차돼서 새로운 생각과 사고가 생기고, 그 때문에 행동하게 되고 보게 되는 거지.

그래도 자신을 제어할 수 없을 정도로 캐릭터에 동화되기도 힘들지 않나? 그런 경지에 오르면 그게 진짜 엄청난 연기가 아닌가란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
물론 그럴 수도 있지. 그리고 그런 경우에 연출만 잘 하면 될 것 같은데, 흔한 말로 ‘이거 또라이 아냐’란 말 하잖아. 왜 군대에서도 뭐라 하잖아, 고문관이라고, 고문관. 그런 사람 있다니까. 연극하는 후배들 중에도 어느 날 같이하다 보면 완전 몰입해서 앞뒤 계산 없어지는 녀석들도 있거든. 연극은 연극다워야 좋지만 또 하나의 약속이 있는데 그걸 넘어서는 사람이 있는 거지. 영화 촬영 중에도 카메라가 여기 있는데 혼자 저기 쳐다보면서 몰입하면 좋겠어? 안 되잖아. 연기자는 그걸 지켜줘야지. 그런데 지나치게 몰입해서, 평상시에도 그 역에 빠져가지고 정신 못 차리고 있으면 그냥 때려주고 싶지! (웃음) 정도만이 그런 거야. 연출을 해야 하는데 너무 빠져버린 거지. 근데 어쩔 수도 없는 거야. 연극은 시작됐어. 무대는, 관객 앞에서 시작했다고. 연습도 안 했지만, ‘너 괜찮지. 할 수 있지. 자, 너 믿고 간다. 진짜 네 맘대로 해봐.’ 그런데 거기까지 갈 줄은 몰랐지. (웃음) 무대에서 약속대로 안 하는 거지. ‘야! 너 왜 그래! 임마!’ 이러는데 관객이 그걸 또 봤잖아. 미치는 거지. 끝날 때까지 기다려야 되는 거야. 계속 ‘야, 네가 들어가서 쟤 끌고 와.’ 그런데 그것도 안 되니까 미치는 거지. 무대에서. 그거랑 똑 같은 거 같아. 어쨌든 딱 맞는 비유네. 연극과 연출이라, 하나 건졌어.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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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정도만이란 인물이 연출가의 의도와 상관없이 혼자 즉흥적인 연기를 펼친 셈인데 궁극적으로 연극 자체는 성공한 것 아닐까?
살았지! 연극은 살았어! 그 예측할 수 없는 파장이 재미있지! 그것도 내가 어쩔 수 없는 거야. 관심이 없으면 모르는데 관객들이 재미있어하거든. 처음엔 별 반응을 안 보이던 관객도 너무 재미있어한단 말이야. 그럼 여기서 끌어낼 수도 없고, 막을 내릴 수도 없어. 그럼 관객들 미쳐. 막 내리면 이거 우리가 다 환불해줘야 돼. 그럼 안 되잖아, 그건. 어떻게든 가보는 거지. 그래서 가잖아. 관객들 눈치보고. ‘야, 끝까지 조심해. 일단 못나가게 막고 보자. 그리고 쟤도 그 이상은 못하게 해. 이 정도 선만 지키게 만들어. 자기가 결정짓게 해봐. 일단 잘 가고 있어. 그냥 끝까지 가.’ 그래서 끝까지 지켜보는 거지. 그리고 끝나고 나서 엄청 박수가 쏟아지는 거고. 하지만 연극으로 따지면 롱런 했지만 결국 대박은 안 나는 거지. 연극이 일관성이 없잖아. 다시 만들 수 없는 무대야. (웃음)

하지만 배우로서는 인정해줘야 되는 거 아닌가?
난 끝나고 나서 배우로서 자격을 인정해주는 거지. ‘인정한다. 너 정말 배우로서 아주 뛰어난 놈이고, 넌 배우 자격 있어. 하지만 이제 너하고 다시 작품할진 모르겠다.’ (웃음) 그렇게 되겠지. 무서워서 다시 하겠어? (웃음)

<바르게 살자>엔 연극 무대 출신 배우들이 많이 등장한다. 비슷한 계보를 걷고 있는 배우들과 함께 촬영한다는 게 반가웠을 것 같은데.
장진 사단만의 영화들이 그런 독특한 형태나 구조를 낼 수 있는 건 이유가 있어. 한 달간 연습을 하거든. 무대에서 씬 하나를 놓고 계속 만들어보는 거야. 연극 연습이랑 똑같지. 장진 감독하고 라(희찬) 감독도 보면서, ‘뭐, 불편한 거 있어요?’라고 묻고, 그럼 ‘이 구조가 좀 뭔가 그렇지 않나?’ ‘아, 그런가?’ 이런 식으로 배우와 감독이 의견 교환하면서 새롭게 고치고, 쓰고. 이렇게 연습하니까 뭐 그냥 영화 찍는 거지. 연극 연습한 걸 그대로 찍는 거 같은 거야.

하지만 무대와 현장과의 괴리감도 발생할 법한데, 그런 건 어떻게 극복하나?
물론 현장에 오면 카메라 구도에 신경을 써야 하지면 동선이나 연기적인 약속이 다 되어있으니까 훨씬 더 편하고 연극적일 수 밖에 없지. 상호 다 아니까. 단지 그걸 어떻게 영화적인 표현으로 카메라에 담을 것인가는 우리가 고심을 못 했겠지. 그건 이제 스텝 쪽에서 할 일이고, 라 감독이나 촬영 감독이 할 일이니까. 그러면서 이제 그 쪽은 우릴 믿으면 되는 거고. 그쪽도 리허설 보면서 어떻게 찍을까, 어떤 표정이 나을 것인가, 어떻게 가야 한다는 걸 아니까. 그니까 하나의 소재가 연극적으로 다 나오는 거지. 이게 좋을까, 저게 좋을까, 연습해보니까. 하나하나 아이디어들까지 검토해보고. 결국 감독만의 영화도 아니고 배우들이 감독의 생각만 따라가는 것도 아니지. 배우와 감독이 함께 연습하며 영화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 다양한 색깔들이 나오니까 독특한 거야. 일반적으로 영화는 그냥 콘티 짜 온대로 맞춰가면 되는데, 우린 그 전에 이미 어떤 게 좋을지, 이게 좋을까, 저게 좋을까, 직접 고민해보고, 함께 만들어보니까.

단단한 팀워크를 구축시키는 과정이라 볼 수 있겠다.
일단 우리끼리는 재미있겠단 믿음이 생기지. 다만 이게 실제로 관객에게 재미있을진 모르겠지만. 그래도 이건 한번 해보자는 믿음이 생기지. 그래서 장진 사단의 매력은 충분한 연습을 한다는 것, 씬 분석부터 시작해서 연극처럼 모여서 한 달간 연습해. 그게 너무 신나더라고. 그리고 나중에 실제로 촬영할 땐 편안하지. 그러니까 안정된 연기가 나오고.

그런데 요즘 스크린에서 맹활약하는 배우들 중 연극 출신 배우들이 많이 눈에 띈다.
좋은 현상이라고 봐. 나는 연극 무대가 영화나 TV, 그 밖에 모든 매체에서 활동하는 연기자를 위한 기본적인 보고라고 생각하거든. 배우는 연극 무대를 통해 연기를 다져야 되고, 그를 통해 다져지는 거라고 생각하지. 그리고 그렇게 성숙하게 자라난 배우들이 영화나 드라마 가서 자리를 잡아야지, 좋은 영화가 나오고 좋은 드라마가 나온다고 생각해. 우리가 신성일 시대의 영화와 지금 영화를 단순히 비교하면 배우들의 연기가 많이 향상됐지. 그게 다 연극 배우들이 향상시켜놓은 거라고 생각해. 물론 분야적으로 접근하는 생각이 많이 변해서 전문적인 공부도 많이 한 덕분에 작품의 질이나 감독들의 기량도 많이 발전했지. 하지만 제반적 조건으로 봤을 땐, 연기자들이 중심이 되는 거지. 결국 배우의 힘이 제일 중요한 거잖아. 결국 그 영화를 만든 배우들이 다 연극했던 사람들이야. 드라마도 마찬가지지. 다 연극에 있다가 TV로 가고, 영화로 가고. 물론 옛날부터 잘 생긴 사람들이 기회를 얻기 쉬웠지. 옛날에도 외모가 주가 된 건 사실이니까. 근데 외모뿐만 아니라 연기적인 면이 중요하다는 걸 아는 순간부터 그게 어느 정도 무너진 거 아냐. 진짜 연기자가 필요하게 된 거지. 그럼 연극 무대만큼 풍부한 연기자가 어디 있겠어, 없지. 그러니까 그만큼 풍부한 영화를 만들어내고 보여줄 수 있는 거지.

하지만 그런 배우들을 쉽게 찾을 수도 없는 것 아닌가?
그래서 난 영화 투자자나 프로듀서나 감독이나, 무조건 연극 무대는 지켜봐야 된다고 생각해. 찾아야 된다고, 좋은 배우를. 그래서 (설)경구도 찾고, (송)강호도 찾았고, 다 찾은 거 아냐. 처음부터 누가 스스로 나왔겠어. 찾아 다녔다고. 근데 왜 지금은 그 몇몇만 가지고 투자하려고 하느냔 거지. 지금도 찾아 다녀야 한다는 얘기야. (박)해일이도 그렇고, 다 연극에서 찾아낸 거 아니야. 지금도 강호 같은 인물, (최)민식이 같은 인물, 해일이 같은 인물을 또 찾아야지. 물론 지금도 누군가는 찾고 있겠지만 계속 찾아내야 하는 거지. 뭔가 투자가 있어야 돼. 그래야 젊은 후배들이 연극을 통해서 열심히 자기 모습을 다듬어야겠단 생각을 할 수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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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무대를 거치지 않고 데뷔하는 연기자들이 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지금 내가 선배로서 후배들을 보면 안타까운 건, 대학만 졸업하면 모든 것이 다 됐다고 생각하는 모습들, 그냥 무대에 잠깐 서면서 영화나 갈 수 있을까 생각하고. 난 그게 좀 안타까운 거야. 난 아직까지 대학이란 건 그냥 수박 겉핥기에 불과하고 이제 사회에서의 시간이 그걸 제대로 공부해야 시기라고 생각해. 자신이 좋아하는 어떤 연출가나, 좋아하는 극단이나, 아니면 좋아하는 작품이 있거나, 아니면 자기들만의 마인드가 맞는 사람이 있는가를 찾으면 일단 5년에서 10년간은 그 안에서 실력을 쌓고 있어야지. 내 풍성함을 위해서.

그렇다면 궁극적으로 연기가 지향할 수 있는 정점은 어디라고 생각하나.
나도 연기의 규정은 모르겠어. 연기가 잘 됐다 생각하는 어느 순간 딜레마에 빠지고, 그런 딜레마가 3~4년 가다가 다시 또 깨달음이 올 때가 있지. ‘아, 이런 거였구나!’ 그걸 믿었다가도 다른 순간되면 또 그냥 빠져. ‘어, 이건 아닌 거 같은데, 이게 아니라 다른 거 같은데, 뭘까? 모르겠어.’ 또 그러면서 바꿔. 그렇게 끝없이 바뀌는 게 연기라고. 그런데 고작 대학교 연극영화과 나왔다고 자기가 무슨 다 아는 양 구니. 물론 빠른 친구도 있어. 끼가 많은 친구들. 기본적인 연기를 위해서 우리가 노력도 하고 수행도 해야 되지만 선천적인 끼로 그걸 넘겨버리는 애들도 있어. 선천적인 재질이라고 생각하는데 그 친구들도 재질만 가지곤 안돼. 재질을 통해서도 노력이 있어야 되고 자신만의 후천적인 경험이 있어야 그 재질도 꽃이 피는 것이지. 재질만 가지고 믿으면 안돼. 오래 못 가, 그건. 깊이가 없거든.

오랜 경험을 통해서만 느낄 수 있는 교훈이라고 생각된다.
내가 젊었을 때 신구 선생님이 오셔서 그러시더라. ‘그냥 10년 동안 옆도 보지 말고, 뒤도 보지 말고, 널 믿고 그냥 가. 열심히 무대에서만 해. 그 뒤에 널 돌아보면 널 지켜보는 사람들, 네가 가야 할 길들, 다 보일 거야.’ 그때 그게 정말 딱 옳으신 말씀이셨어. 그 시기엔 내가 몰라. 아직 철학도 없었고, 날 다그칠 시간도 없었으니까. 진짜 서른이 넘어야 돼. 서른이 넘어야, 산도 보이고, 사회도 보이고, 인간도 보이지. 성숙한 만큼 내 가치관도 생기고, 어떤 철학도 생기고. 철학이 없는 사람은 예술가 못 해. 자기 철학은 뚜렷해야 돼. 연극 연출가든, 연기자든 자기 철학이 뚜렷해야지, 정확한 내 마인드를 가지고 어떤 코드를 표현할 수 있는 것이지.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면 아무것도 못해. 자신이 생각해본 인간적인 철학들이 분명히 무르익었을 때, 그 때 정말 또 하나의 연기적인 경험이나 풍부한 눈빛이 나올 수 있는 거라 생각하지. 그런 면에선 후배들이 좀 급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이 있어. 그런데 하도 초스피드한 빠른 시대라서. (웃음) 예를 들어보자고. 젊은 가수들만 봐도 금방 나왔다가 사라지고. 노래는 안 하고 그저 춤이나 외모만 신경 쓰니까 금방 질려서 그러는 거 아냐. 솔직히 그런 애들 홍대 앞이나 클럽만 가도 수두룩한데 오래 가겠어?

최근에 부산영화제에 대한 말도 많다. 개막식 날 과열된 열기부터. 어떻게 생각하나?
부산영화제 얘기가 잘 나왔는데, 이대로 가면 부산영화제 정말 위험하다. 이번에 유명한 감독들도 많이 왔잖아. 유명한 해외영화제 위원장들도 왔고. 그런 분들 정도는 알아서 잘 모셨어야지. 솔직히 우리 대중이 해외의 유명한 감독은 잘 모르잖아. 그러니까 솔직히 기자들도 그냥 아는 사람만 포토 하지. 수많은 배우들 중에서도 모르는 배우는 안 찍는 판에 그 사람들을 챙기겠어? 그거 무시당하면 얼마나 아픈지 알아? 그래서 안가는 배우들도 많을걸. 위원장을 비롯해 영화제 관계자들이 철저하게 교육을 시켜야 돼. 경호업체부터 시작해서 자원봉사자들까지. 이번에 누가 온다는 걸, 사진부터, 경력부터, 필모그래피까지 다 교육시켜야지. 왜? 문화를 모르기 때문에. 그 사람을 모르는데 그 사람 예술에 대해서 누가 알겠어. 엔니오 모리꼬네? 잘 모르지, 대중은. 연예인보고 소리지르는 20대 애들이 뭘 알겠어, 그 분을. 외국 영화를 보는 사람들도, 그 감독이 어떻게 생겼는지, 몇 살인지, 깊게 관심이 없으면 모르는 거야. 근데 그런 유명인사들을 다 데려다 놓기만 하고 무식하게 수행을 한다는 거야, 말도 안 되는 거지. 그럼 그 사람은 뭐가 돼. 사실 영화제가 제일 인정해줘야 할 사람인데, 얼마나 정말 무시당했다고 생각하겠냐고. 진짜 영화인을 무시하면서 어떻게 영화제라고 할 수 있어. 제대로 교육을 시켰어야지. 경호업체부터 자원봉사자까지. 최소한 엔니오 모리꼬네 같은 감독이나 선댄스 영화제 위원장 왔을 땐 기본적으로 동시 통역사까지 2명 정도 붙이고 수행했어야지.

내실을 다지기도 전에 규모가 너무 커져버린 건 아닐까란 인상이 들었다. 주객이 전도된 느낌도 있었고.
실속은 없고 뻥튀기만 됐지. 과장만 하고 실제로 뒤에 보면 아무것도 없어. 옷만 화려하게 입으면 뭐하냐고, 안에 때가 잔뜩 있는데. 올 해 부산영화제 정말 문제가 많다니까. 반성 많이 해야 돼, 정말. 사실 어제도 부산영화제 갔다 오신 이명세 감독님과 만나서 우리끼리 토로를 했어. 토로를.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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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보다도 일선에 계시는 분들의 느낌이 그렇다면 정말 심각한 거라고 생각된다. 이젠 다른 이야기를 해보자. 영화상에서 두드러지게 활약하는 중년 배우들이 단순한 희화화의 역할을 하거나 혹은 단순한 보조 역할로 소비되는 쪽에 치우쳤다고 생각한다. 어떻게 생각하나?
그래도 한편으론 옛날보단 참 좋아졌다. 그것이 방금 말한 대로 하나의 피상적인 볼거리, 아니면 끼워 맞추기라 치더라도. 다만 그 중간이 없어서 안타까운 거지. 그래도 남자 배우들은 좀 괜찮아. 근데 우리 여배우들의 아픔이 뭐냐, 한 이십 대에서 삼십대로 올라오면 막 없어지는 거야. 한때만 해도 강수연 씨도 있었고, 심혜진 씨도 있었고, 옛날엔 배우들이 다 있었다고, 여배우들이. 그런데 젊은 애들이 오지, 그럼 갑자기 사라지는 거야. 이건 감독, 영화의 문제가 아니라 대중이 문제라니까. 그 깊이나 삶을 쉽게 생각 안 하려고 해. 영화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문화 자체가 질서가 없는 거야. 위계질서도 없고, 모든 게 없어. 그러니까 이렇게 되는 거야. 위계질서를 지켜줘야 되고, 존중해줘야 되고, 전통을 이어가야 되는데 우리는 전부 다 어느 순간 무너져 버렸잖아. 그래서 이번에 오현경 선생님께서 영화 들고 부산영화제에 가셨다가 후배들한테 쓴 소리 많이 하셨잖아.

나도 그 소식은 들었다.
그 말씀이 맞아. 나도 요즘 배우들이 왜 그렇게 폼 잡고 다니고, 자기 맘대로 스케줄 조정해서 배우들에 맞춰서 영화들이 찍히고, 이게 뭐야. 정말 잘못된 방식으로 이뤄지고 있어. 그건 우리 영화뿐만 아니라 한국 자체의 문제이기도 해. 한국의 모든 체계가, 위계 질서가, 질서가, 전통이 하나도 지켜지는 게 없어. 기성 세대가 그렇게 만들어 놨으니까 다 그런 거지. 매니지먼트가 커지고, 매니저들의 힘이 점점 생기고, 그러면서 배우를 지들이 그렇게 만들어. 왜, 그것이 자본주의의 논리니까. 물론 이해는 해. 자본주의에 대해서. 하지만 일본이나 미국 같은 곳에서도 분명히 전통은 존재한다고. 그걸 인정하는 가운데 새로운 게 또 나오는 거지. 이렇게 다들 전후가 공존해 가는데, 우리는 그게 없어. 수요가 사라지면 그에 맞춰서 이상한 것들이 나오는 거지.

오래 지속되기가 힘든 것 같다. 전반적으로 어느 분야를 막론하고 말이다.
내가 연극할 때부터 일간지 기자들한테 이야기하는 게, 단순히 문화부 기자를 잠깐 컨택해서 넘어가는 시기라고 생각하지 말고 정말 문화부일 때 고작 5년만이라 해도 문화부 공부 좀 해라. 연극이 뭔지, 책도 보고, 인물도 누가 있는지 옛날 자료도 좀 찾아보고. 예를 들어서 인터뷰 올 때 그 사람의 모든 연극은 못 봤더라도 그 사람의 기본적인 색깔이나 사진, 예전에 인터뷰한 거라도 읽어서 그 사람을 다 이해하고 와서 이야길 해야지. 대뜸 이름 뭐냐, 나이는 몇이냐, 이런다니까. 게다가 예전에 나의 스승인 오태석 선생한테 그렇게 해서 정말 그 사람 때려 죽이고 싶었던 적도 있어! (웃음) 정말 그건 기본 예의가 없는 거 아냐? 그렇게 이게 만들어져 온 거야. 이런 판에 우리가 다시 질서를 지킨다는 건, 물론 좋은 마인드지. 그렇지만 너무 아픈 거야. 힘들거든. 그렇게 세월이 흐르면 이렇게 되는 거지, 부산영화제처럼.

그렇다면 전통을 지키기 위한 방법이 뭐라고 생각하나?
선별이 있어야지, 선별의 기준도 있어야 하고. 그게 바로 전통을 이해하는 모습이지. 나도 잘 모르겠어요. 전통이 없는 문화에서 살다 보니까, 모든 현실이 그렇게 되는 게 아닐까. 일본만 해도 잘 지켜지는데. 우리가 일본 무시하면 안돼. 우리도 배울 건 배워야 되니까. 일본만 해도 위계질서가 있거든. 커리어에 따라 틀려, 매니지먼트라도. 예를 들어서 내가 20대에 스타가 됐다 이거야. 그럼 다 필요 없어, 그냥 올인해! 이게 현실이야. 물론 배우는 자기한테 올인하니 좋지. 그러다가 결국은 이용당해. 배우로서 그 사람이 인간이고, 깊이를 만들어줘야 되잖아. 매니저란 게 작품 선택을 잘 해주고, 이렇게 하면 안 된다고 훈련시켜 줘야 그게 진정한 매니지먼트지. 잘 나갈 때 어떻게든 팔아먹으려고. 그러니까 권상우가 아프잖아. 상우가 나쁜 친구 아니거든. 남이 그렇게 만드는 거야. 그러다가 나중에 이용당한 거지. 돈만 벌어먹고. 배우로는 안 키워주고. 그래서 고소하고 고발하고.

결국 시스템의 문제다?
배우들도 함부로 움직이면 안 되겠지만 배우들도 어쩌겠어, 매니지먼트가 없으면 안 되는걸. 매니지먼트가 다량으로, 이 배우면 끼워주기 세네 명. 다 그런 식으로 팔아먹어, 지금, 매니지먼트에서. ‘우리 배우 누구? 그럼 두세 명 더’ 그럼 다 해줘야 돼. 그럼 감독도 어쩔 수 없는 거야. 그러면 투자를 안 해주니까. 그니까 투자자의 문제지, 이거 문제가 많아. 어디부터 잘못된 건지 모르겠어. 근데 확실한 건 자본이 들어오면서부터 잘못된 거야. 자본이 들어오면서 자본에 대한 권력들이 좌지우지하다 보니까 감독들이 힘을 잃고, 감독이 원하는 색깔대로 시나리오도 못 쓰고. 흔한 말로 어떤 영화감독이 시나리오를 써서 갔더니 잘 고쳐오라고 해서 입봉을 해야 하니까 계속 조건대로 한 세네 번 걸쳐 그 짓을 하고 막상 뚜껑을 딱 열어보니 제 작품은 하나도 없고 이상한 영화가 됐다잖아. 그래서 못하겠습니다 하고 나왔대. 지금 그게 현실이라니까. 입봉하려면 어쩔 수 없이 웃기는 코미디나 해야 되고, 어떻게든 투자 받아야 되고, 일류 배우를 잡아야 되고. 자기가 아는 좋은 배우가 연극에 있어서 그 배우를 좀 데려가고 싶은데, 힘이 없으면 안 되는 거야. ‘쟤는 누구야, 모르는 애잖아, 투자 안돼!’ 이러니까. 그러니까 좋은 배우를 찾기 힘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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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가수들조차도 다들 연기로 전향하는 상황이다.
그걸 난 이해 못하겠어. 도대체 가수 애들을 왜 데려와서 연기하는지. 그런 게 다 매니지먼트 힘이라니까. 가수가 돈이 얼마 안되니까 연기로 다 튀는 거야, 요즘 가수 다 죽었잖아. 음반 시장 죽으니까 다 연기하잖아. 우스운 거지. 연기자가 수두룩 한데, 정말 잘 하는 애들 있는데 다 놔두고. 그 자체가 잘못된 거야. 벌써 영화 판에 전통이 무너진 거지. 배우란 개념도 무너진 거고, 이미, 이 판에서. 거기에 뭘 어떻게 하겠어. 그럼 결론은 생존게임이야. 어떻게든 먹고 살려면 인맥을 건지든지, 좋은 매니지먼트에 적을 두던지, 감독을 막 구슬려보던지, 뭐, 그것도 아니면 인터넷에서 옷을 벗던 사고라도 쳐서 이름을 내던지. (웃음)

연기자가 되겠다는 의식보다 스타성에 집착하는 게 문제 아닐까. 그러니까 젊은 배우들한테 지나치게 스포트라이트가 몰리는 것 같다.
그저 스타가 되면 된다는 생각이지, 검색 1위면 떴다 이거야. 이런 식의 사고를 갖고 있다고. 특히 인터넷도 문제야. 사람을 가볍게 만들어버려. 이게 어디서 잘못 된 거냐고 물으면 답답하지. 나도 메릴 스트립 같은 여배우들이 우리나라에도 나왔으면 좋겠어. 근데 지금 선생님들 다 웃기는 캐릭터밖에 못하잖아. 김수미 선생님조차도. 하지만 그나마 그거나마 다행인 거야.

다행이다? 어째서?
그 분들이 그나마 그 나이에 영화를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란 거지. 왜? 그래도 영화적으로 다양해진 거니까. 좋은 쪽으로 해석한다면 정말 다양성의 측면에서 좋은 배우들이 나이가 들어서도 뭔가 역할을 맡을 수가 있다는 걸 체감할 수 있지. 또 이렇게라도 보여져야 관객들도, 저 어른들도 대단하구나, 연기 잘 하시는 분들이구나, 애들만이 연기하는 게 아니구나, 라고 느낄 테니까. 그리고 그렇게 중년연기자들한테 익숙해지면 40대, 50대, 60대까지 점점 연령의 폭을 늘려도 관객들이 편하게 볼 수 있겠지. 익숙해져야 되니까. 개인적으로 난 좋은 청사진을 보기 위해서 이런 시기도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해. 그것이 아까 말한 대로 어떤 매개체가 될지언정 그래도 다양성의 면에서 배우들이 어떤 가능성을 염두에 둘 테니까. 나도 배우로서 열심히 생활하다 보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겠구나, 하는 자신감이나 긍정적인 마인드가 생길 수 있으니까. 그런 면에서는 참 좋은 거 같다.

<바르게 살자>에서 이승우의 본질적인 의도는 쇼맨십이었다. 그런데 그런 의도가 전복되면서 오히려 훈련의 본질을 회복한다. 지금까지 말한 어떤 지적들이 어쩌면 본질을 훼손했기 때문에 발생하는 사안들이라고 생각한다.
영국에서 수상이었던 처칠을 교통경찰이 교통위반으로 잡고 벌금 부과했다고 통보한 예가 있다더라. 우리 같으면 상상도 못할 일이야. 근데 정도만은 했잖아. 경찰서장인데도 불구하고. 그런 세상이 돼야지. 그걸 또 인정해줘야 되고. 그런데 자기의 어떤 일말에 대한 양심이 없고, 자기가 맡은 바에 책임을 다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 모든 구조에 있기 때문에 그게 힘든 거야. 물론 다 그런 건 아니야. 모두가 그렇다는 건 아니니까 오해하진 마시고. 다만 너무 만연해있기 때문에 그렇단 거지. <바르게 살자>는 우리가 잃었던 본질성에 대한 이야기지. 내가 맡은 바 책임을 다할 수 있게 그 책임을 인정해주는 사회 구조에 대한, 정확한 정직성을 바탕으로 자신에 대한 본질적인 책임을 다했을 때, 거기에 대한 배려, 그리고 인정, 그런 체제가 되야 된다. 그래서 이 사회가 따뜻해져야 된다라는 것. 그니까 결론은 바르게 되야 된다는 거지. 그런 구조에서 전통도 지켜지고, 내가 어떤 걸 해도 올바르게 할 수 있다는 믿음이 생기고, 그렇게 하고 싶단 욕망도 생기고. ‘나도 정직하게 하면 돼. 저 사람도 됐잖아. 나도 열심히 하면 언젠가 저렇게 될 수 있을 거야.’ 이런 꿈이 생길 수 있는. 그게 없으면 안돼. 정의가 없으면 그런 꿈을 못 그려. 정도만이 정말 인정받는 사회가 돼야지. 나도 저렇게 바르게 살면 복을 받는구나. 내가 저렇게 바르고 옳은 행동을 하거나 내 신념을 굽히지 않고 가면 언젠가 내게 돌아올 몫은 있겠구나 라는 믿음, 그런 믿음을 주는 꿈 있는 사회. 그래서 <바르게 살자>는 정말 따뜻한 영화인 거 같아. 그리고 난 아까 말했던 복원의 힘이 난 분명히 있으리라고 생각해. 게다가 상업적인 재미도 있잖아. 본인이 보기엔 어땠어? 복원의 힘이 느껴지던가? (웃음)

개인적으론 사회적인 불신감이 크기 때문에 <바르게 살자>같은 영화에 감정이입이 되는 게 아닌가 싶더라. 그런데 김지훈 감독과 마찬가지로 경상도 출신으로 알고 있다. <화려한 휴가>에 출연했는데 개인적으로 그 시대에 광주의 외부에서 그 사실을 직접 접한 이들 중 하나 아닌가? 어떤 감회가 있을 법하다.
나도 죄인 중 하나라고 생각했다. 80년대는 나도 방관자 입장이었으니까. 그 당시엔 알려진 대로 진짜 적색분자들, 빨갱이들이 데모하는 줄만 알았었다. 진상이 밝혀지면서 나도 뒤늦게 알게 된 거지. 아마 김지훈 감독님도 방관자적인 아픔이 있었거나 아니면 그에 대해서 학창 시절에 선배들하고 많이 접하다 보니 언젠가 그 얘기를 해봐야겠단 생각을 했나보더라.

지금 <무방비도시>에도 출연하는 걸로 알고 있다.
지금 한 60% 정도 찍었다. 부산 내려가서 찍었고, 서울 올라와서 찍으면 끝난다. 11월 초쯤 크랭크업될 듯 하네.

거기서도 경찰 역을 맡았다고 하던데.
형사반장! 나 이제 악역 안 하려고. (웃음)

하긴 따님도 학교 가실 때가 다가오는 것 같다. 근데 아무래도 대화를 나눠보니 국회로 보내드려야만 할 것 같다. (웃음)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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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민용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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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근석 인터뷰

interview 2008. 5. 31. 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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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좋아해요?
굉장히 좋아하죠.

어떤 부류의 음악을?
특별히 가리는 건 없는데, 일렉트로니카나 디제잉 음악을 주로 좋아해요. <즐거운 인생> 찍으면서 밴드 음악을 한창 미친 듯이 들었고.

사실 전자 음악에 대한 거부감이 있다면 <즐거운 인생>이 힘들었을 것 같아요. 지글거리는듯한 일렉기타음을 견디기 힘들었을 테니. 물론 나이를 생각하면 애초에 그렇지 않을 것이라 판단하기도 했지만 취향은 각기 다르니까.
사실 음악에 대한 선입견은 크게 없으니 만약 락이 아닌 다른 음악이었다고 해도 상관없었을 거라 생각해요. 일단 밴드라는 틀 안에서 각자의 캐릭터가 같이 호흡할 수 있는 기회가 굉장히 많았죠. 밴드란 게 혼자 음악을 만드는 게 아니니까. 그리고 내가 너무나 좋았던 건 선배님들과 감독님 간의 신뢰가 굉장히 크게 키워진 상태에서 작품에 참여했기 때문에 전혀 부담감을 느끼지 못했던 거 같아요.

마치 밴드가 하나의 식구처럼 느껴지던데요. 그런데 다른 세분 배우와 홀로 세대 차가 많이 나는 편인라 그런 차이를 극복하는 게 마냥 쉽진 않았을 것 같은데, 어떻게 극복했나요?
일단 그런 계기들은 선배님들과 감독님께서 만들어 주신 것 같아요. 감히 올려다보지 못할 것 같은 선배님들과 같이 있게 된 신인의 입장이다 보니 수용적인 자세와 방어적인 자세가 같이 나타났다고 생각해요. 선배이기 때문에 당연히 수용적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점도 있지만 반대로 방어적이란 건 나와 너무나 차이가 많은, 갭이 많은 선배이기 때문에 내가 깍듯해야만 하는 관계, 다시 말해 불편할 수 밖에 없는 관계니까.

어느 정도 거리감을 좁히기 힘든?
예. 사실 저도 처음엔 그런 것들에 대한 걱정을 많이 했었죠. 그걸 깨주신 게 선배님들과 감독님이세요. 같이 악기 연주하고, 같이 술 마시고, 같이 밤새고, 그런 관계가 단지 촬영이란 목적 때문만이 아니라 촬영이 끝난 후에도 계속 이어졌죠. 아침부터 반바지 차림에 슬리퍼 신고 같이 만나서 밥 먹으러 가고, 마치 정말로 옆집에 사는 이웃친구처럼, 한 멤버가 됐어요. 그 정도로 팀워크가 굉장히 높았던 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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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기 연주도 연주지만 보컬도 인상적이었다고 생각해요. 미성이 나올 것 같은 외모에서 그런지(grunge) 풍의 보컬이 나와서 놀라웠거든요.
일단 노래는 그 전부터 계속 배우고 연습하고 있었어요. 굳이 내가 음반을 내야겠다는 목적에서가 아니라 배우가 가지고 있어야 할 여러 가지 테크닉 중에 하나라고 생각했었기 때문이죠. 그것뿐만 아니라 다른 악기들도 배우고 있었고, 그런 것들이 <즐거운 인생>을 통해서 많이 도움이 됐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목을 긁는 창법 같은 경우, 음악 감독님과 연구를 좀 했었죠. 원래 내가 노래 부를 때 중저음인데 그것을 좀 더 거친, 굉장히 러프한 음악과 매치시키기 위해선 뭔가 변형이 있어야 할 것 같았거든요. 그래서 목을 좀 긁어서 노래를 부르는 연습을 했어요.

그럼 그 보컬은 일부로 만든 것?
맞아요. 일부로. 물론 원래 노래 부를 땐 그렇게까진 아니지만 영화에선 좀 더 터프한 느낌을 주기 위해서 촬영하면서 설정을 위해서 계속 계발을 했던 것뿐이죠.

솔직히 배우로서 연기를 하는 게 아니라 마치 밴드를 차리는 느낌이었을 것 같기도 해요. 음악을 좋아하는 이로서 음악 영화라니 반가웠을 법도 했을 테고.
솔직히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배우고 싶었던 욕심이 컸어요. 종종 어떤 기자 분들은 제2의 이준기가 될지도 모른다는 평들도 많이 해주시고 그런 기대감에 대해서 묻기도 하시는데 그런 것보다 난 그냥 무언가를 배우고 싶단 계기가 가장 컸던 거 같아요. 덕분에 악기를 또 하나 배울 수 있게 됐고, 그 외에도 굉장히 많은 것들을 얻었던 작품이었죠.

사실 기타를 잡고 무대에 선 모습을 스크린으로 볼 수 있었던 기회는 더 먼저 있었을 텐데, <도레미파솔라시도>가 예정보다 밀리지 않았다면. 아직 개봉일을 못 잡고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 그에 대한 아쉬움이 있을 것 같아요.
굉장히 아쉬웠죠. 굉장히 치열하게 준비했었고 치열하게 촬영을 했었는데 갑자기 스톱이 돼서 굉장히 안타까운 상황이었어요. 사실 저에게 <도레미파솔라시도>는 한국에서 처음으로 영화를 제대로 작업할 수 있었던 계기였거든요. 그런데 예상치 못했던 상황에 깜짝 놀랬죠. 그 때 스텝이나 배우들하곤 아직까지 만나요. 물론 영화가 올해 크랭크업됐고, 지금 일단 진행되고 있으니까 잘 되면 좋겠어요. 다들 열심히 힘들게 만들었으니까.

원래 기타는 문외한이었나요?
물론 그전에도 조금씩은 만질 수 있었는데, 이 정도로 능숙한 실력으로 오게 된 건 <즐거운 인생>하면서 배운 덕분이죠.

손가락에 물집도 많이 잡혔겠네요.
처음엔 많이 잡혔지만 나중엔 굳은 살로 변형됐죠. 그래서 나중엔 아무 느낌도 없게 되는데 그런 과정이 몇 번에 걸쳐 반복돼요. 나중엔 굳은 살 볼 때마다 흐믓해지곤 했어요.

그런데 아직 젊은 나이라서 그런 기타를 배우는 과정이 즐겁게 느껴졌을 수도 있었겠지만 다른 세 배우 분들은 나이도 있는 편이라 애먹었을 것 같은데, 옆에서 지켜본 바는 어땠나요?
일단 힘든 건 사실이었죠. 나뿐만 아니라 다른 선배님들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고. 각각 악기란 것에 대해서 익숙한 분도 있는 반면, 익숙하지 못한 분도 있었고 익숙하다를 떠나서 그걸 제대로 연주할 정도의 실력은 저를 포함해 전부 다 없었으니까. 그런데 우리가 촬영 전부터 팀워크를 다질 수 있었던 계기가 악기 연습실에서 하루 7시간에서 8시간씩 하루 종일 갇혀서 연습한 덕분이 아닌가 싶어요. 연습을 1시간씩 더하면 그만큼 더 잘되겠지 싶은데 이게 또 계속 하다 보면 더 안돼요. 그런 스트레스가 쌓여서 도중에 연습실에서 나와서 담배피고 쭈그려 앉아서 한숨 내쉬고 있을 때, 선배님들도 옆에서 같이 그런 경험을 하게 되는 거죠. 공동체를 느꼈다고 해야 되나요? 물론 제가 보기엔 굉장히 어려운 선배들이었지만 같이 이렇게 0이라는 숫자에서 출발해서 뭔가를 창작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즐거운 작업이었어요. 그리고 연습 끝나면 같이 밥 먹으러 가서 술도 마시고.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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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명성이 자자한 감독과 실력을 인정받는 선배 배우 분들과 함께 한다는 사실이 부담스럽지는 않았나요?
부담감은 물론 있었죠. 배우고 싶어서 시작을 했지만 그 계획을 어떻게 이어나가야 할지, 비유를 하자면 물과 기름 같은 성격을 가진 배우 분들이 그렇게 하나가 된 과정이 너무 궁금했어요. 그래서 ‘내가 어떻게 해야 될까? 어떻게 선배님들께 좀 더 다가갈까?’ 이런 고민을 한창 할 때, 먼저 선배님들께서 마음을 열어주셨어요. 사실 촬영 전에 나온 시나리오 초판본과 스크린에 나오는 완성된 필름의 50%가 틀려요. 그런데 그 50%를 비틀고 새롭게 설계해나가는 작업을 저희가 같이 해나가서 재미있었어요. 감독님들, 시나리오 작가, 연출부 스텝끼리만 참여한 게 아니라 배우들까지 직접 참여해서 각자의 아이디어가 어떤 씬에 반영되기도 하고, 없었던 씬이 생겨나기도 하고, 그런 설계 과정을 거치며 서로에 대한 믿음이나 신뢰가 굉장히 많이 커졌던 거 같아요. 그게 결국엔 팀워크를 다지거나 세대 차이를 줄일 수 있는 가장 큰 요소가 됐죠. 물론 악기도 굉장히 중요했지만 아까 말씀 드린 것처럼 연습이 잘 안되면 밖에 나와서 같이 투덜거리다가 친해져서 같이 술 한잔 마시게 되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술과 함께 하는 얘기들이 오갔죠. 인생이든지, 영화라든지, 이런 것들에 대한 서로의 생각을 자연스럽게 나눌 수 있었던 시간들이 많았던 거 같아요.

영화가 어쩌면 인생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됐을 것 같아요.
사실 전 아직 인생은 잘 모르겠어요. 단지 이제 <즐거운 인생>을 하면서 한가지의 꿈이 생겼죠. 내가 20년 후에, 30년 후에도 저렇게 행복한 삶을 살고 있었으면 좋겠다는. 그래도 한가지 깨달은 건, 난 굉장히 행복한 놈이다라는 것. 실제로 전 어디에서든 ‘전 굉장히 행복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라고 말할 수 있는 자신감이 있다는 게 너무 좋아요. 물론 그 전까진 너무 치열하고 바쁘게 살아서 그런 것들을 좀 모르게 살았던 것 같은데, <즐거운 인생>을 계기로 다시 저를 되돌아보고 살펴볼 수 있는 기회가 많았던 거 같아요.

사실 <즐거운 인생> 전과 비교하면 상당히 성숙했단 느낌이 들었어요.
사실 외적인 모습은 잘 모르겠어요. 물론 어느 새 내 모습이 바뀌었단 걸 느끼긴 했거든요. 어렸을 땐 굉장히 밝고 귀여운 이미지나 해맑은 모습이 많았었는데 커가면서 어느 순간 그런 모습이 많이 사라진 것 같아요. <즐거운 인생>의 촬영 후, 현준의 감성을 봤을 때 나에게도 저런 모습이 있다는 걸 알게 됐죠. 가장 중요한 건 이제 <즐거운 인생>을 하면서 배우로서 성숙할 수 있는 계기가 굉장히 컸다는 사실이죠. 사실 제가 배우라는 의식을 갖게 된 건 얼마 안됐었거든요. 그 전까지 그냥 <논스톱>같은 거 할 때까지만 해도 그냥 난 연예인이고 그저 사람들이 알아봐주고 그래서 난 굉장히 좋다, 행복하다, 이런 막연한 생각 정도였죠. 그러다 슬럼프가 한 번 있었고, 그런 후에 <황진이>를 하게 된 건데 그 때부터 아마 처음으로 배우라는 개념을 갖게 된 것 같아요.

사실 아이돌의 이미지가 강하다고 생각했는데 <황진이>와 <즐거운 인생>을 거치며 불쑥 커버린 느낌이었어요. 지금 스스로에게 나름대로 중요한 터닝 포인트라고 느껴지나요?
전 이제 시작되는 부분이죠. 제가 뭔가 내 업적을 남길만한 굉장한 걸 보여준 건 아니니까. 다만 <즐거운 인생>이 제가 배우란 걸 알게 해 준, 그런 사실을 끌어낸 작품인 거 같고, 자신감을 불어넣어 준 작품이란 점에서 지금이 성숙한 배우가 되기 위한 초반과정이라고 생각해요. 사실 나름대로 이제 데뷔한지 거의 10년째가 되가요. 그래서 이젠 베테랑이란 말씀해주시는 분들도 있는데 그건 MC나 라디오DJ같은 방송을 오래한 덕분에 듣는 말이지, 실제로 배우로서 연기할 땐 이제 막 발가락을 꼼지락거리는 아기인 거 같아요. (손가락을 발가락처럼 꼼지락거리며) 전 아직도 더 많이 배워야 하고, <즐거운 인생>을 통해서는 굉장히 많은 걸 얻었고, 앞으로가 중요한 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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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의 (<즐거운 인생> 포스터 속) 세 배우는 그런 걸음마에 많은 도움을 줬을 법한데 각각 어떤 면에서 도움이 된 것 같아요?
일단 정진영 선배님은 뭐랄까. 굉장히 큰, 그러니까 광범위한 부분에서 저에게 굉장히 좋은 말씀을 해주셨던 거 같아요. 연기나 영화, 배우 같은 전문적인 조언뿐만 아니라 인생에 있어서 추구해야 할 것들을 많이 알려주셨어요. 굉장히 좋았던 건 제가 아직까진 인생을 말하기엔 굉장히 어린애지만 제가 추구한 것을 말씀 드리면 ‘그건 아닌 거다, 잘못된 거야’라고 하지 않으셨어요. 그걸 받아주시고 또 거기에 대해서 덧붙여서 말씀해주시곤 했죠. 김윤석 선배님은 말씀이 많진 않아요. 스스로가 후배에게 특별한 조언을 잘 하지 않는데 저한테 처음으로 많이 해줬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배우가 가지고 있어야 할 테크닉이나 그것을 분석하면서 해야 될 것들, 배우로서 틀을 잡아주는 가장 기초적인 것들을 조언해주셨어요. 김상호 선배님은 제가 좀 더 솔직해질 수 있도록 도와주셨어요. 그 안에서 전혀 기죽지 않게끔 ‘너하고 싶은 대로 해. 형은 널 믿는다.’라면서 저를 굉장히 솔직한 인간으로 믿고 바라봐 주셨고, 작품 내에서도 실제로 그렇게 도와주셨죠.

혹시 저 세 배우 중 배우로서 자신의 이상형이라 꼽을 수 있는 배우가 있을까요? 근데 워낙 세분이 출중한 분들이라 꼭 찍어 말하긴 힘들겠지만.
아니, 틀려요! 다! 각각 매력이 다 틀리거든요. 정진영 선배님 같은 경우는 굉장히 지식도 많으시고 솔직하신데 지식을 탁 내뱉는 스타일은 아니고, 제가 말하는 걸 굉장히 감성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그런 분이세요. 지적이면서도 굉장히 감성적인 인간인 거 같아요. 그래서 굉장히 솔직한 모습도 많이 뵐 수 있었고, 저한테 좋은 말씀들도 많이 주셨고. 윤석 선배님은 굉장히 섹시해요.

그래요?
예. 은근히 섹시하세요. 목소리도 멋지시고, 키도 굉장히 크고 매력 있으세요. 촬영할 땐 한창 정승혜 대표님(영화사 아침)이 장근석과 김윤석 중 누가 더 섹시하냐고 투표하기도 했었어요. (웃음) 김상호 선배님께서는 워낙 유머가 많아서, 항상 편하게 해주셨어요. 이렇게 각자의 매력이 다 틀리죠. 그런 것들을 조합한 모습이 얘였으면 좋겠어요. (포스터의 자신을 가리키며) 나중에 2~30년 후에.

그런데 이준익 감독님께서 캐스팅 제의를 했을 때, 그리고 그 전에 이미 캐스팅됐다는 선배 배우들을 보았을 때, 자신을 왜 이 사이에 끼어 넣으려 하는 것일까란 의문이 들지 않았나요?
지금도 들어요. (웃음) 사실 제 나이 대에서 훌륭한 비쥬얼을 가지고 있는 배우 분들이 굉장히 많잖아요. 그래서 왜 날 뽑았을까, 아까도 감독님께 물어봤었어요. 그러니까 그냥 ‘너 눈이 예뻐서’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물어봤었어요. 감독님 그럼 만약 다른 기자 분들이 ‘왜 이준익 감독님 영화에 뽑힌 거 같은지, 자신의 매력이 뭐라고 생각하는지’ 물어보면 ‘저는 잘 모르겠는데요. 감독님이 시나리오 들고 저희 집 앞에서 기다렸어요.’ 라고 하면 안될까요? 라고 물었다가 맞을 뻔 했어요. (웃음)

혹시 이준익 감독님의 전작 영화들을 봤나요?
다 봤죠. <키드캅>까지.

그 중 개인적으로 맘에 드는 영화가 있다면?
아무래도 영화를 보는 관객 입장에서 중요한 건 대리만족 이라던지, 공감인 거 같아요. 제 입장에서 봤을 때 제일 공감되는 건 <라디오 스타>였어요. 그 때, <라디오 스타>를 심야영화로 보고 나서 새벽에 바로 <황진이> 촬영을 하기 위해 지방으로 내려가는데 계속 30년 후의 내 모습을 떠올리게 되더라고요. 그렇게 사람의 감정까지 침투할 수 있는 영화를 만드시는 순수한 감독님이라고 생각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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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 스타>가 공감된 건 아무래도 본인이 종사하는 업종 까닭일 것 같은데.
정말 내 얘기가 될 수도 있으니까. 실제로 저도 그런 적이 있었어요. 그게 전 슬럼프라고 했는데, 다들 그러더라고요. 나이도 어린 놈이 무슨 네가 슬럼프냐, 이러는데. (웃음) 열 아홉 살 때, 제 자신이 싫어질 때가 있었거든요. <논스톱>을 끝내고 나서 소위 말하는 것처럼 확 떴다가 확 졌죠. 그런데 같이 하던 사람들은 굉장히 잘 돼서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는데 난 어디론가 이렇게 사이드로 물러나서 그걸 지켜보는 입장이고. 그 때 굉장히 방황을 했었죠. 내가 지금까지 해왔던 게 올바른 것인지, 앞으로도 이렇게 해나가야 하는 것인지. 사실 그 당시에 <라디오 스타>처럼 그렇게 가까운 매니저나 친형 같은 형을 못 만나봤어요. 물론 그게 매니지먼트의 문제가 아니라, 제가 또 외동인 탓이죠. 외로움을 굉장히 많이 타는 성격이라서 누구에게 고민을 말하지도 못하고. 그래서 이제 혼자 고개 숙이면서 다니다가 그 당시에 어느 순간 뮤지컬 한 편을 하게 됐다.

혹시 <헤라클레스>?
예. 물론 그게 가족뮤지컬이긴 하지만,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이란 되게 큰 무대에였거든요. 거기서 공연했는데 그때 처음으로 배우가 돼야겠단 생각이 번뜩 들더라고요. 사람들 앞에서 내 감정을 동화시킬 수 있는 그런 배우의 모습을 꿈꿨어요. 그때부터 이제 다시 치열하게 살았죠. 물론 어떤 실패에 의해서 내가 치열하게 살아야만 했던 게 아니라 내 스스로가 나를 위해서 굉장히 치열하게 살았죠. 그때도 라디오 진행을 하고 있었는데 밤 11시까지 라디오하고, 12시까지 대학로 와서 새벽 2시까지 수업 받고 아침에 학교 가고, 이런 식의 생활을 한 5~6개월 가까이 하다가 이제 지금의 꿈꾸던 대학교에 들어가서 영화를 공부하고, 무대를 공부하고, 그러던 와중에 처음으로 들어온 작품이 <황진이>였어요.

아무래도 <황진이> 이후 사람들이 장근석을 배우로서 새롭게 인식했단 생각이 들어요. 그런데 드라마 <홍길동>에 캐스팅 됐단 소식 들었어요. 유난히 사극과 인연이 깊네요.
제 겉모습이 고전적인가 보죠. (웃음) 사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황진이>때 많이 인상적이었던 부분이 있었나 봐요. 사실 <홍길동>이란 작품에 섭외된 것도 <황진이>의 인연 덕분이기도 해요. <황진이>를 연출하셨던 김철규 감독님께서 추천을 해주셨거든요.

결국 사극의 인연이 다시 사극을 맺어준 셈이네요.
사실 고민을 많이 했었어요. 처음 대본 들어왔을 때, 사극이기 때문에 색안경을 끼고 보게 되기도 했고요. <황진이>의 사극 이미지가 지금도 워낙 강하게 인식되고 있기 때문에 그런 이미지에 좀 변화가 필요하지 않을까란 생각을 한 탓도 있었어요. 그런데 <홍길동>은 <황진이>와 성격이 워낙 틀린 사극이더라고요. 연출자와 작가분들이 전형적인 대하드라마와 무관한 스캔들 드라마로 유명한 분들이시고, 무엇보다 캐릭터 자체가 굉장히 맘에 들었어요. 굉장히 칼날이 바짝 든 악역이에요. 날카로운 캐릭터라서 하고 싶어졌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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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의 진행 중 악역으로 변모하는 캐릭터 같던데.
약간의 사이코적인 면모를 지닌 캐릭터죠. 후에 왕위에 오르면서 밑에 있는 신하들을 숙청하려 들면서 그런 성향이 짙어지죠.

그런데 의외로 대화를 나눠보니 애늙은이네요! (웃음) 그런 말 종종 듣지 않아요?
감독님도 저한테 그래요! (웃음) 아까도 같이 인터뷰하는데, ‘얘는 말하는 게 애늙은이야, 말하는 거 봐.’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웃음) 물론 저는 제가 애늙은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런데 어느 기자 분께서 인터뷰 후에 그러시더라고요. ‘장근석과 얘기를 하다 보면 그가 열 살이 많아지던지, 혹은 내가 열 살이 어려진다’고. 같은 주제에 같은 감성과 같은 공통점을 갖고 편하게 얘기할 수 있는 그런 게 제 장점이지 않을까 싶어요.

영화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봤을 때 어떤 생각이 들던가요.
사실 현준을 좀 더 꺼냈으면 어땠을까 하는 욕심이 있었어요. 그니까 촬영하면서도 사실 감독님과 계속 의견을 나눈 건데, 전 현준이를 더 보이고 싶었거든요. 현준이를 더 보이고 싶었는데, 감독님께서는 ‘넌 보이지 않아도 어쩔 수 없이 배치상 너 하나밖에 없어서 보이게 되는 역할이다. 나중에 관객들이 널 찾아서 봐야지, 네가 그걸 일부로 나타내려고 하면 더 역효과다. 앞으로 작품 할 때도 역시 마찬가지고.’라고 말씀해주셨죠. 그 땐 잘 이해를 못했어요. 그런데 나중에 영화를 보고 나니까 그 말씀이 대충 이해가 됐어요. 촬영 초반엔 더 나타내고 싶었지만 이젠 감독님 말씀이 맞았던 거 같아요. 가장 만족스러웠던 부분은 무대 위에서 노래 부르는 모습이 저도 만족스러웠던 거 같고 흡족했어요. 사실 악기 연주에 대한 부담감 때문에 촬영할 때도 긴가 민가 했는데 나중에 보니까 크게 어색한 거 같지 않아서 다행이었죠.

<즐거운 인생>이 자신에게 어떤 계기가 될 수 있을까요?
아직까진 제가 뭔가를 자신감 있게 말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라서 쉽게 말할 순 없지만 그런 과정은 있었어요. 감독님을 처음 뵀을 때가 제가 이제 배우라는 꿈을 막 안고 이제 제가 갈 길을 정해야 하는, 마치 사춘기처럼 어떻게 해야 되나 고민하는 방황의 시기였어요. 감독님을 처음 만났을 때, 이분은 내가 그런 걸 말했을 때 굉장히 진실적으로 받아주실 수 있는 분이다란 생각이 들더라고요. 처음 (인터뷰가 진행된) 이 자리에서 만났거든요. 이 자리에서 만나서 이야기했죠. ‘저는 배우가 너무 되고 싶습니다. 지금 제가 지닌 엔터테인먼트의 기질을 버리고 대학로 연극 무대에서 맨손으로 한번 해보고 싶습니다. 그런데 그러기까진 용기가 너무 부족합니다.’라고 시작했죠. 그렇게 제 맘속에 있는 진실된 말들을 많이 꺼내드렸더니, 감독님께서도 그만큼 저를 새롭게 보셨나 봐요. 단지 얼굴만 잘생긴 꽃미남 아이돌 정도로 생각하셨는데 그 내면에 대한 교감이 생겼던 거 같아요. 작품을 하면서도 얘기할 시간이 굉장히 많았고, 작품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제 인생에 대해서도 감독님께서 말씀을 많이 해주셨고, 그랬던 만큼 어떤 방향들에 대한 자신감을 얻기도 했죠.

연극 무대에 대한 동경이 있었나 보죠?
굳이 연극과 영화를 나누자는 것보단 그 당시엔 배우로서 가장 순수해진 제 모습을 보고 싶었거든요. 내가 화면에 어떻게 나올지, 머리를 이렇게 하는 게 나을지, 그런 비주얼적인 장면들을 기준 삼아 평가를 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그런 것들을 벗어 던지고 싶더라고요. 정말 0에서부터 맨손으로 다시 시작해보고 싶었어요. 실제로 그때 저희 학교 동기들이 대학로 무대로 나가면서 굉장히 발전한 모습을 보았고, 그랬기 때문에 굉장히 혼란스러운 시기였거든요. 그랬었죠. 굉장히 좀 어지러운 시기였는데, 전 <즐거운 인생>을 통해서 그만한 가치에 달하는 것들을 배울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연극 무대에 잔뼈가 굵은 세 배우를 만난 것도 하나의 복이라고 생각되네요.
천운이라고 생각해요. 실제로 저랑 나이대가 비슷한, 혹은 좀 더 나이가 많은 다른 배우분들도 부러워해요. 정말 넌 돈 주고도 배우지 못하는 것들을 배웠다고, 오히려 전 돈 받고 배웠잖아요. (웃음) 어쨌든 다들 부럽다는 말씀을 많이 하시더라고요. 그런 분들과 같이 작업을 한다는 건 엄청난 소득이 될 수 있을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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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인생>은 배우로서 좋은 계기가 된 것 같아요. 좋은 계기가 생긴 만큼 스스로가 앞으로의 청사진을 그려봄직도 한데.
일단 계획은 경험이 아닐까 싶어요. 제가 아직은 어리고 배워야 할 것도 굉장히 많지만 제가 너무도 존경하는 선배님들이나, 저희 학교에 계시는 교수님이나 공통적으로 배우로서 가지고 있어야 할 기초적인 경험들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씀해주셨어요. 그리고 그런 경험들을 알려주시기 위해서 나름대로 배운 지식들이나 경험을 쌓는 훈련법도 알려주셨죠.

학업과 연기를 병행하기 쉽진 않을 것 같아요.
사실 제가 중고등학교는 많이 못나갔지만 대학교는 악착같이, 정말 거의 매일매일 나갔어요. 그런데 한번은 주변의 동기들의 모습을 보면서 그들이 너무 부러워졌고 그들의 심정이 궁금했던 적이 있었어요. 그 모든 것들이 느끼고 싶어서 아르바이트를 한다고 거의 생떼를 쓴 적이 있어요. 저희 매니저한테. (웃음)

아르바이트?
사실 작년에 너무 아르바이트를 해보고 싶었던 적이 있었어요. 저와 동갑인 동기들은 방학에 아르바이트 하면서 한 시간 동안 번 몇 천원을 꿀맛처럼 여기고, 그렇게 번 돈으로 자랑스럽게 친구들한테 소주 한잔씩 사는 모습이 전 너무나 멋져 보였어요. 물론 저도 지금 돈을 벌고 있긴 하지만 전 그 친구들이 가지고 있는 그런 순수함이 부러웠어요. 내 또래 친구들이 돈을 어떻게 버는지에 대해서 되게 궁금했었고. 그래서 돈이고 뭐고 다 필요 없으니까 그냥 커피전문점 같은 데서 파트타임으로 하루 몇 시간만이라도 아르바이트 할 수 있게 해달라고 사정했죠. 결국엔 실패로 돌아갔지만, 그 땐 정말 그런 생각까지 가지고 있었어요. 앞으로도 그렇게 직접 경험해보고자 하는 의지를 많이 중요시해야 할 것 같아요.

만약 아르바이트를 했다면 좋았을 수도 있었겠지만 아마 영업방해가 되지 않았을까요? (웃음)
그렇죠. 그래서 안됐던 것 같고. 사실은 제가 유명한 커피전문점 본사에 연락해서 돈 안 받겠으니까 2시간만 일할 수 있게 해달라고 했었는데 실질적으로 하진 못했죠. 지금도 하고 싶은 맘은 있어요. (웃음)

그래도 배우들은 연기를 통해서 간접경험들을 하잖아요. 그런 부분에 대한 재미를 찾아가는 것도 괜찮겠어요.
네. 배우로서는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경우라고 생각해요. 어차피 우리는 다른 인물들의 인생을 간접적으로 작품 안에서 살아가는 인물들이기 때문에, 물론 그런 것들을 작품 안에서 경험할 수 있지만 결국엔 연기로 보여주는 것들은 진실인가, 거짓인가의 문제 같아요. 기초적인 연극무대에서도 그렇고. 그런 것들이 진실이 되기 위해서는 그만한 훈련이 필요하고, 실제로 그렇게 살고 있는 그들의 감정을 느껴야만 될 것 같고. 누군가가 그런 말 했었는데 ‘배우는 계속 배워야 하기 때문에 배우다’란 말을 들었던 적이 있어요. 그 말이 저에겐 굉장히 인상적이었어요.

<기다리다 미쳐>라는 영화도 찍은 것으로 아는데, 군입대를 소재로 했다고 들었어요. 고무신이라고 하나? (웃음) 군대에 대한 간접경험이 됐나요?
군복 입고 훈련 같은 걸 몇 번 연출했던 그게 뭐, 어디 경험이겠어요. 돌 맞을 거 같아요. (웃음) 경험했다고 하면. 군대 갔다 오셨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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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죠.
촬영한다는 건 지극히 간접적인 거라서, 사실 간접적이라고 말하기에도 무례할 수 있는 비주얼만 제가 입어본 거죠.

솔직히 난 20대 초반에 당장은 군대에 대해 깊이 생각 못 하다가 1,2년 지나니까 갑자기 피부로 와 닿는 고민이 되더라고요. 확실히 대한민국 남자라면 군대를 가기 전까진 군대에 대한 고민을 할 수 밖에 없는 것 같아요. 지금 본인의 나이가 딱 그 시기라고 생각되는데, 주변의 친구들도 지금 한창 갈 때니까.
대학 동기들은 하나 둘씩 가는 타이밍인 거 같아요.

그 때가 가장 번뇌가 밀려올 때에요. (웃음)
동기들이 한창 고민하다 하나 둘씩 가더라고요. 그리고 이번 학기 2학년을 마친 후가 피크인 거 같아요. 보통 다들 지금쯤 군대를 가는데 전 모르겠어요. 전 이제 막 배우가 되겠다는 제 도화선에 불을 붙인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실제로 지금의 결과물들도 많은 분들이 성원해주셨고, 그런 것들이 계속 이어져오는 거 같아요. 처음으로 이제 배우로서 나가야 할 길을 찾아서 가고 있는데 이 길을 아직 더 가보고 싶어요. 더 확고하게 밀고 가다가 정말 배우다, 쟤는 정말 배우다, 란 소리를 들었을 때, 아마 갈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일단 자신의 나이 대에 맞는 연기를 하고 있지만 본인의 의지대로 배우의 길 안에 머물러서 나이를 먹는다면 성인 연기를 보여줄 때가 오겠죠. 스스로 본인이 후에 어떤 연기자로 성장해 있었으면 하나요?
주변에서 그런 말씀들을 많이 하시는데, ‘너, 음반 언제 내냐’고. 계속 들어왔어요. <즐거운 인생> 하기 전부터. 구체적인 제의도 들어오고 그랬었는데 제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건 배우의 모습이거든요. 만약 나중에 제가 20년, 30년이 지나도 영화나 드라마에서 연기할 수 있는 배우의 모습이라면, 아주 솔직한 배우였으면 좋겠어요. 그 배우의 모습이, 그러니까 장근석이란 배우가 2~30년 후에 연기를 굉장히 잘 한다는 배우로 인식됐으면 좋겠고, 연기를 잘 하기 위해서 굉장히 노력하는 배우였으면 좋겠고, 그만큼 연기나 배우에 대한 직업에 매진할 수 있는 순수한 사람이었으면 좋겠어요. 가장 겸손한 사람이 될 수 있다면, 그 때도 오만함을 가지지 않고 순수한 열정으로 노력할 수 있는 배우였으면 좋겠어요.

사실 이준익 감독님 영화가 항상 노는 영화였는데 그 중, <즐거운 인생>이 제일 대놓고 노는 것 같았어요. (웃음) 어쨌든 배우로서 놀듯이 연기할 수 있다는 것도 즐거운 인생을 사는 방법 아닐까요. 배우로서 앞으로 어떻게 놀아보길 바라나요?
아직까지는 배우가 되기 위해서 배우고 있는 배우가 제 위치인 거 같아요. 그런데 배울 때는 겸손하고 성실하게 배우되, 그것을 캐릭터로 표출할 때는 과감했으면 좋겠어요. 물론 그렇게 과감하게 하기 위해 노력해야죠. 기죽거나 눌려서 내 자신을 표출하지 못하면 배우로서 굉장히 안타까운 일일 테니까. <즐거운 인생>같은 경우는 워낙 선배님들이나 감독님이 저에게 편한 자리를 만들어주셨기 때문에 제가 거침없이 카메라 앞에서 까불 수 있었고, 싸울 수 있었죠. 그런 모습, 그 기분을 앞으로도 이어가고 싶어요. 점점 하나씩을 내 거로 만들면서, 하나씩 배우면서, 카메라 앞에서도 자신감 있게 놀 수 있는 그런 배우가 되고 싶어요.

<즐거운 인생>이란 어떤 인생이라고 생각해요?
자신감. 자신감이 좋아요. 저는 누군가가 저한테 ‘넌 지금 행복하니?’ 라고 물어본다면 ‘네, 저는 너무 행복해요.’ 라고 말할 수 있거든요. 그런데 저는 ‘너무 행복해요’ 라고 말할 수 있는 자신감이 있어서 너무 행복해요. 그 자신감이 결국엔 저를 계속 밀어주고 있는 힘이고, 물론 이제 막 젊음을 누리는 이십 대 초반이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지만 앞으로도 이십 년, 삼십 년 그런 모습을 제가 갖고 있었으면 좋겠어요. 나이 육십이 돼서 어깨에 힘주는 모습보다는 자연스럽고 밝게 웃으면서 나는 너무 행복하단 자신감을 갖고 있는 그런 할아버지가 됐으면 좋겠어요.

그럼 일단 지금의 장근석은 <즐거운 인생> 중이군요.
저는 너무 즐겁죠. 그리고 굉장히 만족해요. 주어진 제 삶에 너무나 만족하니까, 물론 목표는 아직 저 멀리에 있어요. 지금의 내 인생에 만족하는데 목표는 저기 있으니까, 이제 목표를 향해서 만족할 수 있게 나아가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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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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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민용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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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우 인터뷰

interview 2008. 5. 31. 0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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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드라마 <키드갱>이 종영됐다고 들었다. 최근 <두사람이다>를 비롯해서 자신이 출연한 영화와 드라마를 각각 한 편씩 끝냈는데 소감이 어떤가?
<키드갱>과 <두사람이다>의 촬영시기가 비슷했는데 그 때 우정 출연으로 <기다리다 미쳐>란 영화까지 3개를 같이 했었다. 그래서 너무 힘들었는데 끝나고 나니 후련하기도 하다. 그 뒤로 조금 쉴 시간이 있어서 가까운데 여행도 다니면서 쉬다가 지금은 홍보에 총력을 다하느라 다시 바빠졌다. (웃음)

여행을 좋아하나 보다.
집에서 쉬는 것도 좋지만 한번씩 여행 갔다 오는 것도 좋아한다.

처음 짝사랑으로 시작했다. 처음 출연한 <클래식>부터.
그렇지.

그런데 <키드갱>에선 결혼도 했다. (웃음)
내가 듣기론 원래 결혼 예정이 없었다더라. 원래는 아마 도희(빈우)랑 다른 사람이 연결될 예정이었는데, 빠듯한 일정 속에서 촬영되다 보니까 스토리가 바뀐 것 같다. 아마도 해피엔딩으로 마무리하려고 그랬던 것 같다.

그런데 개 좋아하나? 아까부터 눈이 자연스럽게 (인터뷰 장소에 있는 개한테) 가더라.
좋아한다.

덕분에 <해변의 여인> 생각이 났다. (웃음) 사실 그 때 개 끌고 다니는 청년은 예상밖이라 인상적이었다. <극장전> 생각도 났고, 그런 출연의 배경도 <극장전>과 무관할 것 같은데?
감독님은 <극장전>의 상원이가 감독을 지망하는 대학생 역할로 성장한 거라고 개인적으로 말씀해주셨다. 큰 의미는 없지만 전작과 연결되는 의미랄까.

올해 들어 본인의 이미지에 역행되는 연기를 보여주고 있다. 최근 <두사람이다>에선 과감한 어필이었던 것 같고, <좋지 아니한가>는 좀 깼다. (웃음)
약간의 반전이랄까. (웃음)

아주머니한테 접근하는 다단계 청년이라니. (웃음) 항상 건실한 청년으로만 생각했는데, 그래서인지 나름대로 신선했다.
방금 말한 것처럼 날 건실한 청년 이미지로 생각했던 분들이 <좋지 아니한가>나 <두사람이다>를 통해 다른 모습을 보고 당황스러워 하고 그로 인해 재미있다고 느낀다면 내게 그런 모습은 고소할 것 같다. 그 분들은 영화 속의 내 모습을 보고 재미있어 한다면 난 그런 날 보는 분들의 반응을 보고 재미있어 하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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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사람이다>가 <새드무비>이후로 두 번째다. 자신의 얼굴을 포스터에 내 건 영화는. 그런데 <새드무비>는 사람이 너무 많았고. (웃음) 여덟에서 하나보단 셋 중 하나가 더 낫지 않나? 확실히 비중이 커진 셈이니까.
내가 출연한 작품인데 불구하고 영화포스터에 내가 없는 경우가 태반이었기 때문에 그 동안은 무심결에 영화를 보다가 나를 발견해 준 분들이 반가웠다. 그 대신 이젠 내 얼굴을 간판으로 걸고 영화를 보게 될 분들이 생겼기 때문에 부담감도 조금 생기는 것 같다.

<두사람이다>는 기존의 작품들에 비해 출연량도 많았을 텐데.
드라마처럼 지속적으로 소화할 분량들은 일정한 에너지로 쭉 끌고 가야 한다면 <두사람이다>같은 경우는 굉장히 중요한 부분에서 뭔가 확실히 실어줄 수 있는 에너지가 필요했었던 것 같다. 사실 처음 시작할 때부터 부담됐다. 그 동안 해왔던 것들과 전혀 다른 모습이니까. 내가 그걸 한다면 과연 잘 어울릴까, 나랑 잘 매치가 될까, 그런 걱정을 되게 많이 했었다. 만약 안 어울린다면 배우로서 이건 정말 큰 타격이니까. 저 배우는 그냥 착한 동네 청년 같은 역할밖에 못한다고 낙인 찍힐까 봐. 그래서 시나리오 보면서 고민을 많이 했던 것 같다.

결과적으로 스스로가 봤을 때 어떻게 생각하나. 본인에게도 색다른 모습이었을 텐데.
나도 브라운관이나 스크린을 통해서 내 모습을 쭉 봐왔지만 지금 같은 모습은 처음이다. 극적인 분위기 자체가 음산한 공포영화도 처음이고, 피를 묻힌 것도 처음이었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고, 그래서 어느 정도 만족하는 부분도 있다. 하지만 내 눈에 계속 보이는 허점들을 보완해야겠단 생각도 든다. 그래도 한번 도전해봤기 때문에 잃은 것보단 얻은 게 더 많았던 역할이었던 것 같다.

새로운 모습을 통한 모종의 만족감도 있었겠다.
나에 대한 또 다른 자그마한 가능성을 발견한 것 같은 느낌이지.

그런데 <두사람이다> 현장에서 연장자 역할을 많이 했을 것 같다. 이런 경험도 거의 처음일 법한데.
그만큼 시간이 흘렀구나 싶더라. 데뷔한지 5~6년 정도 됐는데, <클래식> 때는 완전 막내였다. 스텝 분들도 다 형이었으니까. 그래서 막 형, 형, 그러면서 쫓아다니며 소주 한잔 받아먹고 그랬다. (웃음) 사실 그런 경우가 익숙했는데 지금은 어느덧, 나보다 어린 스텝들도 있고 심지어 <두사람이다>는 같이 하는 두 배우들조차 나보다 어렸으니까 묘하더라. 그렇다고 내가 그 두 사람보다 월등히 뛰어난 건 아닌데, 시간이 좀 흐른 탓에 은근히 맏형으로서의 부담감이 생기더라. 사실 난 현장 분위기가 재미있어야 촬영할 맛이 나는 편이다. 현장 분위기가 좀 삭막하고, 동료들 간에 불협화음이 있다던가, 사이가 안 좋으면 난 정말 못 하거든. 근데 <두사람이다>현장은 공포 영화지만 스텝들이 워낙 좋았다. 감독님도 밝은 성격이고, 촬영감독님, 조명감독님은 완전 밝은 분이셨고. 그에 잘 편승해서 스텝들과 촬영 중간중간 나머지 시간엔 잘 웃기도 하고, 떠들기도 하고, 그래서 부담감이 많이 줄었던 거 같다.

<두사람이다>가 첫 공포인데, 아이러니하지 않았나? 영화는 어두워도 현장은 밝으니까.
그렇지. 그런데 <두사람이다>의 스텝들이 모두 프로답다고 느꼈던 적이 많았다. 밥 먹거나 그런 쉬는 시간엔 다들 재주껏 놀다가 촬영이 들어가면 그 순간만큼은 정말 진지하게 영화에 대해서만 생각을 하는 것 같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영화란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한 작업이란 것도 깨달았지.

그런데 <클래식>에 캐스팅이 안 됐다면 군대 갔을 거란 이야긴 들었다.
인생이 바뀌었지. (웃음) 그 당시 내 친구들은 다 군대 갈 시기였고, 나도 날짜를 받아놓은 상태였고. 정말 우연히 <클래식>이란 시나리오가 내 손에 들어와서, 태어나 처음 오디션이란 걸 보고 <클래식>으로 얼굴을 알리면서 연기자의 길을 걷게 됐으니까.

그럼 그때 본격적인 연기자 준비를 했던 건 아니었나 보다?
모델 활동 하면서 생각은 가지고 있었다. 모델 활동을 좀 하다가 군대를 갖다 와서 일단 심리적으로 안정되고 뭔가 더 겪어본 다음에 배우를 해야겠단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그 당시 군대를 빨리 가려고 했었던 거고.

처음 카메라 대면할 때 어땠나?
진짜 완전 쫄았다. (웃음) 일단 내가 연극영화과 출신도 아닌 경영학과 출신이니 카메라를 경험한 적도 없었고, 그 당시엔 DVD같은 것도 없어서 영화 촬영 현장을 미리 접해볼 기회도 없었고, 일단 영화 현장이 어떻게 돌아가는 지도 전혀 몰랐다. 카메라가 어떻게, 무슨 렌즈가 어디를 얼마나 찍는지도 몰랐고. 그래서 난 무조건 전신이 다 나온다고 생각했다. 클로즈업이든 바스트건 상관없이. 그래서 전신이,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다 긴장한 상태에서 촬영했다. 종종 영화를 보면 배우들이 감독님한테 혼나는 경우 있잖아. 그래서 난 혹시나 그러지 않을까 싶어서 더욱 노심초사 긴장했었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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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함께 출연했던 조승우 씨가 많은 조언을 해주지 않던가?
그때 승우 형이 사소한 것들이지만 누가 알려주지 않는다면 지금도 굉장히 헷갈릴 수 있는 것들에 대한 팁을 많이 줬다. 예를 들면 이렇게 대면하고 있는 씬에서 카메라가 날 찍고 있을 때의 시선 처리 같은 거, 그 사람이 카메라 오른쪽에 있으면 그 사람의 오른쪽 눈을 보고 이야기하는 게 좋다라는. 그리고 내가 감정이 심어져 있는 대사를 할 땐 승우형이 눈을 감아줬다. 자신의 눈빛을 보고 연기하는 배우가 혼선을 갖거나 시선이 흔들릴 수 있기 때문에. 물론 대사는 제대로 쳐주지만 눈은 감고 있었던 거다. 그렇게 상대배우를 배려하는 어떤 방법도 배웠다. 그때그때마다 조금씩 팁을 주고 가는 거지.

별 거 아닌 듯 하지만 실속 있는 조언들이다. 그런데 배우이기 이전에 지니고 있던 꿈은 없었나?
아마 배우가 아니었다면 회계사나 세무사 쪽을 공부하고 있었겠지. 전공이 그 쪽이니까. 아니면 내가 약간 미술 쪽에 관심이 있어서 인테리어를 공부할지도 모르고. 그래서 원래는 미대를 가고 싶은 마음도 있었는데, 내가 머리 속에서 구상한 걸 꺼내서 실물화하는 작업인데 왜 정물화 시험을 봐야 하는지 그 당시엔 전혀 이해를 못했다. (웃음) 물론 기본적인 미술 감각을 테스트하는 것이란 걸 뒤늦게 깨달았지만 그 땐 공감이 안 갔던 거지. 왜 데생을 하고, 왜 아그리파상을 그려야 하는지. 그래서 사업가의 꿈을 안고 경영학과에 입학했다.

그렇다면 배우라는 길에 들어선 계기는 어디서 시작됐다고 생각하나?
중학교 때부터 학예회나 체육대회, 성당 발표회 같은 데 나가서 가수들 흉내 내면서 춤추고 노래하고, 그런 걸 좋아하는 편이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평소엔 얌전하다가 그럴 때만 그렇게 되더라. 그런 잠재된 끼가 있었나 보다. 그래서 중학교 때부터 막연하게 연예인이 되겠다는, 말 그대로 연기자가 아니라 연예인이 되고 싶단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연극영화과가 있는 예고에 시험을 봤다가 떨어졌다. 결국 서울고등학교에 입학했는데 그 땐 아직 어리니까 대학교가서 해봐도 늦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고등학교에서 친구들과 적당히 운동하면서 놀고, 적당히 공부해서 지금 대학에 입학했지. 한편으론 대학교 가면 나 스스로도 무언가 할 수 있는 폭이 넓어지고, 집에서도 약간 관대해질 것이라 생각했고. 그러다가 고등학교 때, 이창동 감독님의 <초록물고기>를 우연히 집에서 혼자 봤는데 너무 재미있게 봤다. 특히 한석규 선배님 연기에 감탄해서 마지막엔 펑펑 울 정도였지. 막연하게 연예인이 되보고 싶다는 생각이 조금 진지하게 바뀌는 계기였던 것 같다. 진짜 저렇게 한번 되보고 싶다는 생각을 지닐 수 있었던 계기. 그때부터 연기자라는 직업을 새롭게 인식했고 그에 대해서 계속 고민하고 생각했던 것 같다.

집에서 관대해 질 것이란 기대감은 그 당시 그런 일을 하는 것에 대한 반대가 있었다는 이야기인가?
요즘은 내가 활동하니까 부모님께서 종종 웃으면서 농담도 하시는데 ‘우리 집안에 그런 애가 한 명 나올 때가 되긴 했다.’란 말씀도 하셨다. (웃음) 사실 아버지께서도 키가 크시고 얼굴은 나보다 더 작다. 우리 집안 체형들이 다 길쭉길쭉한 편이라, 옛날부터 할아버지도 배우 하란 말을 들으셨단다. 그런데 그 당시는 ‘딴따라’라고 부르면서 사회적인 인식이 별로 안 좋았던 시절이라 생각도 못했었다고 한다. 또 우리 집안이 대대로 공무원 집안이다. 아버지께서도 공무원이시고. 그렇다고 집안에서 내가 이 일을 하겠다고 했을 땐 반대는 안 했다. 일단 부모님께서 내가 어렸을 때부터 터치는 잘 안 하시는 편이었다. 오히려 그 역할은 우리 집에서 다니던 성당에서 정신적으로 맡아준 거 같다. 지금 형이나 나나 부모님께서 맞벌이하실 때도 비뚤어지지 않고 자기 할일 잘 했던 게 성당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부모님께서는 우리한테 무언가를 던져서 맡겨주시면 그냥 지켜보신다. 그냥 지켜보시다가 크게 엇나갈 것 같으면 한마디 해주시는 정도. 그런데 정말 내가 나중에 가정을 갖게 되면 그럴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아버지의 교육 철학은 굉장히 좋다고 생각한다. 어쨌든 지금은 완전한 내 서포터시지. 아주 훌륭한 홍보 대사다. (웃음)

유전자의 영향인가. 외모에서 풍기는 이미지가 곱게 자란 느낌이다. (웃음) 반듯한 느낌이기도 하고. 그런 이야기 평소에 듣지 않나?
반듯해 보이는 건 우리 형이 좀 더 그렇다. 난 좀 모자람 없이 넉넉하게, 부유하게 자랐을 것 같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종종 있다. 사실 겉보기만 그렇고 부모님들께서 키우시느라 고생을 많이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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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오해가 캐릭터에도 반영된 게 아닐까 싶다. 그걸 올 해 들어서 2번에 걸쳐서 깬 셈이고. 그리고 아닐 것 같은 사람이 그럴 때 충격은 2배가 된다는 점에서 그 2번의 연기는 효과적이었다. 동시에 이는 본인에게 연기의 영역을 더욱 넓혀준 계기가 됐을 법하다. 그런데 평소에 그런 연기적 변신에 대한 욕구가 없었나?
<야수>의 권상우 씨처럼 남자답게 멋있고 강인한 인상을 심어줄 수 있는 역할이 굉장히 하고 싶고 부러웠던 게 사실이다. 그리고 그런 역할을 하면 관객들이 매력을 느끼는 것 같아서 늘 하고 싶은 마음을 갖고 있었지. 그런데 지금도 그런 강인한 역할을 연기하기엔 내가 좀 어리단 생각이 든다. 아직은 겉으로 풍기는 이미지도 남자다움보단 소년스러움을 많이 갖고 있는 것 같아서 그런 걸 스스로 잘 알기 때문에 도전을 못 했던 것 같다.

어쩌면 <두사람이다>이 그런 의미에서 어느 정도 자신감을 충족시켜주지 않았을까? 사실 <두사람이다>의 반전은 이야기보단 배우의 이미지가 깨진다는 점에서의 충격이 더 와닿았다.
내가 이 역할을 선택한 이유는 도전과제가 있는 역할이었기 때문이었다. 또 초, 중반부와 후반부에 달라지는 2가지 모습을 보여줄 수 있었으니까, 그것도 하나의 이유였던 것 같다. 한 작품 안에서 2가지 모습을 보여줄 수 있으니까. 하지만 아예 처음부터 강인한 역할을 했다면 너무 부담스러웠을 거다. 그런데 중간에 늘 하던 역할이 섞여있어서 조금은 쉽게 결정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예전에 <혼자가 아니야>란 시트콤에서도 은근히 웃겼던 기억이 난다. <두사람이다>를 통해서 처음으로 공포 연기를 보여줬는데 그런 새로운 이미지를 보여준 만큼 새롭게 뭔가 해보고 싶다는 목표가 생길 법도 하다.
남을 웃겨도 보고, 울려도 봤는데 이젠 <두사람이다>를 통해서 공포감까지 줬다. 그게 배우가 해야 할 일인 거 같다. 근데 내가 남들을 진짜 제대로 울려 본 적은 없었다. 물론 우는 것도 마냥 슬픈 게 있고, 혹은 연민의 정으로 울 수 있는 거지만. 그래서 나중엔 좀 제대로 울려줄 수 있는 그런 역할도 해보고 싶다.

울리고 싶다고 하니 여자 많이 울리는 스타일은 아니었나 보다.
물론 아니지! (웃음)

농담이고, 그런데 혹시 싫어하는 사람과 잘 만날 수 있는 편인가?
난 싫어하는 사람과 안면 씻고 정색하는 성격은 못 된다. 그래서 그 사람의 언행이나 태도가 맘에 안 들어도 같이 있을 수는 있다. 하지만 옆에서 계속 말해도 난 그냥 ‘그래. 넌 그래라.’란 식으로 그냥 신경 끄고, 그 사람을 위해서 뭘 해 주거나, 정을 주진 않는 거지. 그러니까 다 받아주긴 하는데 선을 정확히 그어놓는다. 친해지려고 안 하는 편이랄까. 그래도 좀 친해진 사람하고는 장난 아니게 친해지는 편이고.

아무래도 <두사람이다>에서 연기한 캐릭터가 증오를 숨긴 인물이기 때문에 본인은 어떤 사람일까 싶었다.
내가 AB형이라서 그런지, (웃음) 내 감정을 숨기는 건 잘한다. 많이 싫어도 싫은 내색 잘 안하고, 많이 기뻐도 역시 마찬가지다. 물론 내 사람들 사이에선 많이 표현하지만, 정말 아닌 사람들 앞에선 적당히 하고. 근데 정말 키까지 큰데 그래 버리니까 싱겁다고들 하지. 그런 모습을 본 사람들이. 싱거운 놈이라고.

외모 때문에 그럴 수도 있을 것 같다. 아까 말한 반듯한 청년 이미지 때문에. (웃음) 그런데 얼마 전, 모 TV프로에서 스스로 텔레마케터를 했다고 고백했다던데.
그게 모델 활동 시작할 무렵, 그러니까 2001년도 쯤에 스키를 장만하고 싶어서 아르바이트를 했었다. 텔레마케터도 해보고, 아파트 공사 현장에 보일러 설치하는 것도 해보고, 아르바이트 많이 했다. 커피숍에서 알바도 했고, 이것저것 많이 했다.

커피숍 다닐 때 고정 팬 확보 좀 되지 않았을까? (웃음)
사실 그 때부터 조짐이 보였던 거 같다. (웃음) 나이 많은 누나들 있잖아, 그 당시에 내가 대학교 1~2학년 때였는데, 3~4학년 정도 되는 그런 누나들이 종종 쪽지도 주고. (웃음)

갑자기 <좋지 아니한가>가 떠오르는데. (웃음) 어쨌든 올 해 예년에 비해 많은 활동 중이다. 나름대로 얻은 것도 많을 것 같은데.
가장 좋았던 건 사람들을 많이 얻었다는 것. <키드갱>을 통해 손창민 선배님이란 대배우와 어울리면서 함께 웃고, 힘들 게 촬영했던 것만으로도 고맙고 그런 기억들이 아마 평생 남을 것 같다. 물론 건달이 좋은 이미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내가 그전에 연기한 지극히 착해고 로맨틱한 남자들보단 훨씬 인간적인 냄새가 많이 나는 역할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칼날이란 역할에 굉장히 많이 동화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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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도 직접 돌보고.
아기도 좋아하는 편인데, 예준이가 너무 예뻤다. 그래서 나뿐만 아니라 다들 너무 예뻐했지. 아기가 울어야 할 때 울고, 웃어야 할 때 웃고 심지어 심각한 표정까지 지어버리니까 다들 감탄했지. 나도 빨리 결혼하고 싶다는 생각도 들더라.

약간 이른 질문일지 모르지만 미래의 가족 계획 같은 건 없나?
난 결혼을 일찍 하고 싶었다. 사실 내 목표는 28살에 결혼 하는 거였다. 사고적으로나 신체적으로 가장 왕성할 때가 이십 대 후반이라고 생각한다. 그때 아이를 가져서 그런 가정 안에서 내 생각들을 정리하고 뭔가 안정된 자세로 매진하고 싶은 마음이었던 거지. 우리 아버지께서 스물 여덟에 장가를 가셨다. 공무원 임용고시 붙자마자 장가를 가셨는데 장가를 일찍 가셔서 형이랑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편이 아니다. 근데 그게 너무 보기 좋았다. 한편으론 아버지를 닮고 싶단 생각이 많아서 그러고 싶었는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이젠 늦었지.

<두사람이다>에서 ‘찌르는 사람이 있으면 찔리는 사람이 있다’는 대사가 인상적이었다. 그런데 본인은 누굴 찌르는 편인가, 누군가에게 찔리는 편인가?
사람들이 보통 이기적인 거 같다. 그래서 찔리는 건 아는데 찌르는 걸 모르는 경우가 태반이다. 자기도 모르게 누구를 찌르긴 찌른 것 같은데, 자기 자신은 남으로부터 찔린 것만 기억하고자 하는 심리가 있지 않을까. 나도 그 대사를 보면서 살아가면서 나도 모르게 누군가를 찌른 경우가 분명히 있었을 텐데 싶더라. 친구들과 어울리는 순간에 나도 모르게 말실수를 해서 나도 모르게 상처를 주는 순간이 있었을 텐데, 그런 생각들을 하니까 좀 더 말과 행동을 신중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그리고 공인이기도 하니까.

관계에 대한 생각을 한번쯤은 하게 되는 영화인 것 같다. 그렇다면 자신에게 소중한 두 사람은 누구인가? 혹은 자신이 배우가 되는데 가장 기여한 두 사람은 누구라고 생각하나?
가장 소중한 두 사람은 아버지, 어머니. 그건 내가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아마 부지부동이었을 거다. 배우가 된 것도 모두 그분들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지금처럼 집안에 대한 걱정이나 고민 없이 내가 하고 싶은 일에 매진할 수 있게 환경을 잘 만들어준 것도 부모님 덕분이니까. 언젠가 아니, 언젠가 라기 보단 이건 계속 갚아나가야 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작게든, 크게든.

이제 첫 영화로부터 5년이 지났다. 그 동안에 출연한 영화들이 쌓였는데, 그 중 자신이 배우가 됐음을 실감한 작품이 뭔가?
내가 처음으로 배우를 하고 있긴 있나 보다 했던 게 <극장전>이었다. 그 전까진 연예인이란 타이틀이 어울렸다면, <극장전>덕분에 홍상수 감독님과 작업하고 나니 영화계에 계시는 분들이 배우라는 타이틀을 걸어주는 것 같더라. 감독님께서 날 믿고 캐스팅해주신 덕분이고 그 덕에 생애 첫 영화제가 칸 영화제가 되기도 했다. 내 인생에 있어서 배우라는 타이틀을 걸어준 건, <극장전> 그리고 홍상수 감독님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엄청난 인연이자 행운이다. 그렇다면 홍상수 감독님이 자신을 선택한 이유가 궁금했을 법도 한데.
나도 그게 의아했다. 왜 나일까? 그리고 홍상수 감독님은 예쁘거나 잘 생긴 배우조차 일상적으로 만들어서 표현하고, 그로부터 어떤 독특한 향을 느끼게 하는 영화를 만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키만 멀대 같이 크고 어린 날 뭘 보고 캐스팅하시나 생각했다. 촬영을 하는 중간중간에도 그런 의구심이 들었다. 하지만 촬영은 정말 재미있었고 그러다 보니까 결과물에 대해서 궁금증도 생기고 기대감을 갖게 됐다. 그리고 후에 완성된 영화를 보고 나서, 이래서 날 캐스팅 하셨구나 싶더라. 키 크고 트렌디한 느낌의 이기우를 옆집 수험생 같은 느낌으로 완전히 탈바꿈 시켜 주셨다.

지금까지 행보를 보면 차근차근 자신의 영역을 넓혀가는 느낌이다. 올해부터는 본격적으로 영역을 개척하는 듯한데, 앞으로 자신의 타이틀을 걸고 싶은 욕심은 없나?
시기라는 게 있는 것 같다. 내가 10편 가량의 영화를 하면서 현장에서 습득할 수 있는 기술이나 인간관계를 맺는 이런 것들도 다 시기에 따라 다른 것 같다. 처음은 호기심에서 출발하고, 중간은 알아가는 재미였지만 이젠 배우로서 너무 당연하고, 반드시 해야 되는 과정이 된 것 같다. 그리고 그걸 깨닫게 된 순간부터 난 한 영화의 주인공이 될 자격도 갖추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지금쯤 그걸 하면 참 좋지 않을까, 싶은 마음도 있다. 시기적으로 볼 때 10편 정도가 적은 편수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애초에 한두 편의 영화로 확 뜨는 스타가 되기보단 작게나마 조금씩 덧댄 이미지를 보여주는 게 내 계획이었거든. 조금씩은 계획대로 되가는 거 같다. 그래서 이젠 주연에 대한 욕심도 조금 생긴다.

혹시 정말 해보고 싶은 역할이나 함께 작업하고 싶은 감독이 있나?
예전에 <극장전>할 때, 이십 대 중반에도 종종 이야기했었지만, 군대 갔다 오고 서른 넘어서 홍상수 감독님 영화에 한 번 더 출연해보고 싶단 생각은 지금도 변함없다. 그리고 지금 원래 내가 촬영에 들어갈 영화가 있는데, 차승원 선배님과 한석규 선배님이 출연하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란 작품이다. <키드갱>의 칼날이 좀 진중한 역할이었다면, 거기선 좀 껄렁껄렁한 역할이다. 그런 역할을 지금 내 나이일 때 하면 잘 할 수 있을 것 같단 생각을 했다.

처음 데뷔했을 때가 23살이었는데, 그런데 지금은 서른 되기까지 3년 남았다. 서른 되기 전까지 이루고 싶은 목표 같은 건 없나?
벌써 그렇게 됐다. 생각도 못했는데. (웃음) 배우로서 영화를 만드는 분들이나 관객들한테 영화인이라는 것을 각인시켰으면 좋겠다. 이기우는 영화를 계속 할 사람이란 확신을 주거나 영화를 계속 해줬으면 좋겠단 바람이 남을 수 있는 배우. 사실 그건 서른 살이 아니라 마흔 살, 쉰 살까지 가지고 가야 할 목표인 거 같다. 끊임없이 수요가 있어야 공급이 있는 거니까, 이기우에 대한 수요를 느끼게 할 그런 작품들을 많이 하고 싶다.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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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민용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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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진서 인터뷰

interview 2008. 5. 31. 0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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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 아닌가?
와인 맞다. 와인 좀 드실래요?

근무 중 음주는 안 된다. 그것도 대낮부터. (웃음)
오히려 낮에 마시면 좋은데.

그런가? 사실 와인에 문외한이라, 와인 애호가인가 보다.
사실 와인만큼 맥주도 좋아한다. (웃음)

그럼 술을 좋아하는 건가?
소주나 위스키 같은 건 잘 못 마신다. 그래서 잘 마시지도 않고.

다행이다. 소주 좋아했으면 지금 소주 마시고 있을지도 모를 일인데. (웃음) <올드보이> 당시엔 역할이 작았음에도 인상이 깊었다.
어쩌면 사람들이 그런 이미지를 원했던 것일 수도 있지. 왜냐면 한국에는 그런 이미지를 낼 수 있는 영화나 배우가 흔하지 않았으니까. 그런 이미지를 그리워했고, 그만큼 좋아했던 것 아니었을까.

사실 그 역할이 그런 선풍적인 반응을 끌어냈다는 것이 본인한테 의외였을 텐데.
맞다. 되게 의외였지. 사실 출연하기 전까지 고민 많이 했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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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장화, 홍련> 오디션에서 떨어진 인연으로 <올드 보이>에 출연하게 됐다고 들었다. 김지운 감독이 박찬욱 감독에게 추천한 덕분에. <장화, 홍련>은 어떤 역할이 탐났나?
무슨 역할인지는 몰랐고, 사실 (소속사에서) 오디션 보라고 해서 본거다. (웃음)

여행, 책, 그리고 음악을 상당히 좋아한다던데, 세가지 다 홀로 즐길 수 있는 취미다. 원래 혼자만의 독립된 공간을 선호하는 편인가?
사실 혼자 있을 수 밖에 없으니까 혼자 즐길 수 밖에 없는 거지. 혼자 있을 수 밖에 없는 걸 비관하고 슬퍼할 수는 없잖아.

환경적 요인으로 그런 취향에 빠져들게 된 거다?
친구들과 어울리는 걸 너무 좋아하고 사랑한다. 그만큼 혼자 있는 것도 좋아하고. 똑같이 좋아한다. 그런데 내 직업상 내가 원하는 시간에 친구들을 만날 수 있는 틈이 많이 없다. 친구들도 자기 인생이 있고, 자기 삶이 있기 때문에. 내 촬영이 새벽 2시에 끝나면 그 시간에, 친구를 불러서 놀 수 없는 거니까. 친구들도 그 다음날 출근해야 하고 나름대로의 일상이 있으니까. 하지만 친구는 많은 편이다. 연예인치곤 굉장히 많은 편이라고 생각한다.

뭔가 가려져 있는 이미지다. 신비롭다고 할 수도 있고. 그런 이야기 많이 듣지 않나?
많이 듣는다. 그건 의도한 건 아니지만 내 외모 때문에 그런 것 같다.

사실 <두사람이다>의 연기는 그 동안의 역할 중 가장 평범한 캐릭터였던 것 같다. 물론 외부적인 상황이 고생스러웠지만 캐릭터의 본질을 만드는 건 무난하지 않았을까.
말한 대로 다가가긴 쉬웠을 수도 있다. 그런데 다른 부분에서 힘들었다. 기자시사회 때도 했던 말인데, 다 아물었던 상처, 두꺼워진 딱지를 다시 떼내서 피 흘리는 느낌이었다고. 그 말대로다. 내 삶의 바탕에 힘든 일이 많았는데, 표연하게 살아왔던 게 있어서 다가가긴 쉬웠지만 힘들었다. 내가 내 몸을 다시 뜯어서 청소해내는 느낌으로 찍은 영화였거든. 그만큼 아파하면서 찍었고, 쉽지만은 않았다.

자신의 인생에서 있었던 어떤 심리가 영화 속 캐릭터와 닮아있는 부분이 많은 건가.
그렇다. 닮아있는 부분이 많아서 개인적으론 힘들었다. 연기를 해야 한다는 게.

그에 대해 묻는 것은 실례일까.
사실 난 말하는 게 전혀 아무렇지도 않다. 내가 걱정하는 건 동생과 언니다. 난 내 자신이 드러나는 것에 대해 거리낌없이 말하곤 하지만 그런 것들 때문에 우리 가족들이 상처를 받을 수 있으니까. 그리고 가끔씩은 자신의 보호를 위해서 혹은 자존심을 위해서 내가 모르는 곳에서 거짓말하게 되는 경우도 있나 보더라. 어쨌든 난 아빠 없이 살았다. 그리고 그런 이후로 경제적인 부분이 힘들어서 고등학교 때부터 일을 했었다. 그런 것에 대한 상처가 있었던 거 같다. 나도 모르게. 물론 그 당시엔 그냥 아르바이트 같은 거 하면서 친구들과 재미있게 어울리며 살았는데 은연 중에 상처가 된 거 같다. 애정 결핍이지.

그런 이야길 해야 한다는 것에 대한 거부감은 없나?
거부감은 없다. 난 그냥 배우이고 싶지, 내 이미지를 파는 사람은 아니니까. 그렇게 살고 싶진 않다. 그렇게 살면 정말 재미없을 것 같고. 내가 어떤 힘든 삶을 살았는데, 그걸 연기를 통해서 보여줬고 어떤 사람들에게 그게 공감이 됐다면 난 됐다. 힘들어하건, 부끄러워하건, 좋아하건, 아파하건, 그 사람들에게 어떤 느낌을 전해줘서 결국 눈물을 흘리거나 웃는다면 그게 좋은 영화인 거 같다. 영화를 보면서 웃는 것도, 우는 것도 좋은 거니까. 영화나 소설을 보거나, 음악을 듣고 웃거나 울 수 있다는 건 좋은 일이라 생각한다. 그것들이 만들어줄 수 있는 기억을 갖는다는 건 좋은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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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배우를 꿈꾸게 된 계기는 뭔가?
고등학교 때 연극반이었다. 사실 연극반에 들어가고 싶어서 들어간 건 아니고, 친구들과 다 같이 들어갈 수 있는 특별활동이 연극 반밖에 없었다. (웃음) 열명 정도의 친구들이 한꺼번에 다 들어갈 수 있어야 했거든. 그래서 그냥 연극반가서 다같이 놀기 위해서 들어갔지. 그런데 대회를 나가게 됐다. 선생님이 나가라 그래서 연극 대회를 나갔는데, 정말 안 그럴 것 같던 내 친구들이 땀 흘리면서 무대를 만들고 망치질 하더라. 난 배우였기 때문에 그런 작업은 안 했는데, 나도 정말 안 그럴 것 같던 내가 대사를 외우고 있더라. 그렇게 외우라고 해도 단어들은 외우지 않았는데. (웃음) 그런 게 되게 신기했지. 다같이 하나의 목표를 위해 열심히 하는 모습들이 뭔가 하나로 함축된 가족이 된 것 같은 느낌이었다. 내가 좀 불안정한 가정에서 살아서인지 하나의 완전한 집단에 있는 듯한 느낌이 너무나 좋았다. 보호받는 느낌이랄까. 지금도 항상 영화 현장에 있으면 보호받는 느낌이 든다. 물론 촬영도 끝나면 확 깨지지만 촬영할 때만큼은 그런 느낌이 되게 좋다. 물론 연기 자체에 대해서 이야기하자면 말할 것도 없고.

그렇다면 본인이 배우로서 생각하는 이상적인 연기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힘든 듯이 연기하는 걸 싫어한다. 이자벨 위페르, 줄리엣 비노쉬, 장만옥 이런 배우들을 좋아하고 사랑하는데 그들 중 힘들어 보이듯 연기하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한다. 이 사람들의 영화를 역시 너무 사랑하는데, 그녀들의 영화를 왜 사랑하냐고 묻는다면 그냥 영화 속의 그녀들이 누구인지 의문을 갖게 만들지 않기 때문이라고 대답할 수 있을 것 같다. 난 그녀들이 정말 영화처럼 그런 경험을 했을 것만 같고, 그렇기 때문에 연기할 수 있었을 거라 생각될 만큼 신뢰하고 믿을 수 있는 연기를 한다고 생각한다. 어떤 모자람도 없고, 넘치는 것도 없기에 가능한 게 아닐까. 그녀들의 연기는 항상 그런 게 느껴진다. 나도 그런 연기를 하고 싶고. 아직은 많이 부족하지만 그런 배우가 되고 싶다. 그런 영화들을 많이 보고 사랑하기 때문에, 그런 연기를 하고 싶다 생각하다 보니 그렇게 되는 거 같다. 그래서 <바람피기 좋은 날>처럼 농담하는 듯한 연기도 자연스럽게 하고 싶었다. <두사람이다>도 고통에 시달리면서 연기했지만 ‘정말’ 같은 연기를 하고 싶었다. 그게 욕심이지. 너무 오버스럽게 하고 싶진 않다.

캐릭터를 선택할 때 어떤 캐릭터에 끌린다는 특별한 이유라도 있나?
끌리는 이유? 그런 특별한 이유는 없지만 뭔가 잡아당기는 것 같다. 마치 자석의 마이너스가 플러스를 끌어당기듯.

그렇다면 자신이 택한 캐릭터 중에 특별한 애착이 남는 캐릭터를 꼽을 수 있나?
내가 <두사람이다>까지 (정식 개봉한 작품만) 7편의 영화를 찍었는데 정말 거짓말이 아니라 모든 작품의 캐릭터가 다 내 안에 있었다. 그렇지 못했다면 연기 못했을 거다. 난 아직 능력이 없어서 내 안에 없는 어떤 것들을 만들어서 연기할 순 없다. 내가 나이 먹고 연륜이 돼서 다 경험해보지 않았거나 생각해보지도 못했던 어떤 것들을 감독 이야기만 듣고 할 수 있는 그런 능력의 경지에 이를 만한 단계가 되면 모르겠다. 하지만 그게 언제가 될진 모르지. 지금의 난 경험해보거나 상상해본 적 없는, 내가 그런 사람이 될 수 있단 느낌이 없는 연기는 못하겠더라. 지금까지 내가 할 수 있었던 연기는 내가 뭔가를 상상할 수 있었던 것들이었다. 시나리오를 읽으면 춤을 추기 시작했거든.

캐릭터들이?
그 캐릭터들이 씬을 만들어서 연기를 하고, 난 그럼 그냥 그걸 따라 할 뿐이거든. 그런 게 없으면 연기할 수 없는 거다. 지금까지 했던 연기들은 그런 게 보여서 따라간 거였고.

자신이 할 수 있을 것 같단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란 이야기 같다. <두사람이다>는 육체적인 고통이 상당했을 것 같다. 영화에서 본인이 빠지는 씬이 없기도 했고.
일단 내가 빠지는 씬이 없고 촬영 일정이 촉박해서 힘들었다. 그런데 <두사람이다> 찍으면서 한번도 늦은 적이 없었다. 단 1분도. 한 시간이라도 일찍 왔으면 일찍 왔지. 그리고 그게 얼마나 중요한지 이번에 알았다. 사실 이전에 다른 영화는 늦은 적 있었거든. 그래서 혼난 적도 있고. 그런데 이번엔 그런 적 없었다.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아침잠이 없어졌거든. (웃음)

벌써? (웃음)
아마 걱정을 많이 해서 그랬을 거다. 그래서 두세시간 일찍 온 적은 있어도 일분도 늦은 적은 없었다. 그러니까 마음도 편하더라. 마음이 편하니까 혼자 있을 때처럼 모든 게 빨리 되고, 집중이 잘 되더라. 한마디로 그런 거지. 공부할 때 집중이 잘 되면 좋잖아. 벼락치기하듯. <두사람이다>는 그런 기분이었다. 맨날 맨날 벼락치기 하는 기분이었지. 버겁게 벼락치기하는 게 아니라 벼락치기해서 시험 잘 봤을 때, ‘내가 어떻게 기억했지?’ 이런 생각할 때 있잖아.

순간 집중했는데 그게 끝나니까 어떻게 했는지 모르겠다는 느낌?
맞아! 정확해! (웃음) 그런 기분이었어. 기자 시사회 때 누가 ‘어떻게 그렇게 잘 울었어요?’ 라고 물어보더라. 85분 중에는 40분 이상 우는 장면이 나왔으니까 너무 많이 울긴 했지. 하지만 전혀 힘들지 않았다. 가인이라면 많이 울었을 것 아니에요. 가인에게 많이 몰입했던 거 같다. 그리곤 항상 ‘내가 왜 울었지?’ 이런 느낌이었지. 하지만 가인을 연기하면서 힘든 건 눈물 흘리기 전에 계속 고통스러워하는 가인의 마음을 견디는 것이었다. 물론 고통스러워하는 걸 영화에 담기 위해 표현하는 게 힘들다는 것이 아니라, 그걸 내 안에 지니고 있어야만 한다는 게 힘들었지.

그 캐릭터의 내면에 담긴 고통을 직접 느껴야 한다는 것이?
그걸 항상 갖고 있어야 했다. 몇 달 동안, 그게 되게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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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릭터에 몰입하면 그 캐릭터에 본인 스스로가 많이 빠져드는 편인가?
정말로 그만 했으면 싶을 정도로 굉장히 많이 빠져들지. ‘그만 좀 해! 윤진서!’ 이렇게 나 자신에게 말할 정도로 많이 빠져드는 타입이다. 그래서 문제야. 그게 장점이자, 단점인 거 같아.

그런 경우엔 캐릭터에서 빠져 나왔을 때 허탈감이 크거나, 그 반대로 빠져 나왔다는 안도감이 들 것 같다.
다.행.히.도! 윤진서란 사람은 건망증이 심해서 촬영이 끝나면 딱 잊는다. (웃음) 마지막 촬영이 끝나는 순간 잊는 거지. 난 건망증이 정말 심하다. 일년에 핸드폰 몇 번씩 잃어버리는 사람, 내가 그렇고. 맨날 지갑도 잃어버려서 카드 재발급 받는 사람도 나고. (웃음) 난 그런 타입의 인간인데, 연기할 때도 마찬가지인가 보더라. 그러나 그런 사람들이 잊어버리지 않아야 될 순간에 대해선 잘 잊어버리지 않는다. 오히려 촬영 중엔 버리고 싶어도 절대 못 버린다. 사실 <두사람이다>는 제발 집중에서 빠져 나오고 싶었던 영화였거든. 물론 촬영할 때 말고 쉬고 있는 순간만큼, 그냥 2~3일 촬영 없을 때 제발 좀 편하게 있자고 스스로 다스리는데 그게 안되더라. 2,3일 있다가 있을 촬영을 그 때도 생각하고 있는 거지. 그리고 <두사람이다>는 특이했던 게, 내가 그 전까지 했던 작품들은 마지막 촬영이 끝나면 다시 나로 돌아와 있었거든. 그때부터 난 걔(자신이 연기한 영화 속 인물) 모르는 사람인 거야. 그런데 <두사람이다>는 그렇게 안됐어. 그런 경험은 처음이었다. 그래서 여행을 좀 오래 갔다 왔다.

어디?
유럽.

파리도 갔다 왔나? 프랑스 배우들 좋아하는 만큼 프랑스도 좋아하겠지.
편하다. 불어를 할 줄 아니까 그냥 편한 거 같다.

익히 들은 바로는 4개 국어를 한다던데.
그건 한국어까지 포함해서. (웃음) 영어, 불어, 일어.

대단하다. 특별한 계기라도 있나?
그 정도만 하면 여행하는데 불편함은 없는 것 같더라. 무엇보다도 언어는 문화를 담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냥 말이 아니라. 한국말에 존댓말도 있고, 반말도 있는 것처럼. 어떤 언어든지 그렇다. 그 나라의 문화가 언어에 있다. 언어를 잘 한다는 건 그 나라의 문화를 빨리 받아들인다는 거지. 그런 면에서 언어에 익숙한 건 배우로서도 좋은 일인 거 같다. 한번도 언어를 배우며 힘들어 한적은 없었다. 물론 모국어처럼 잘 하는 건 아니고 여행을 다니면서 사람 사귀는데 불편함이 없는 정도다. 되게 잘 하는 건 아니고. 오해하진 마라. (웃음) 어쨌든 언어를 통해서 사람들을 사귈 수 있다는 게 좋은 것 같다.

일단 대화가 되면 더욱 깊게 다가갈 수 있으니까.
그렇지. 그리고 그 사람들도 더 쉽게 이야기하고, 더 많은 얘기를 나눌 수 있으니까. 더 쉽게 표현할 수 있고. 물론 그런 것들을 얼마나 좋게 받아들일 수 있는가도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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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같아도 외국을 나가고 싶을 것 같다. (웃음) 그런데 <두사람이다>를 통해 펜싱도 했는데, 운동 좋아하나?
좋아하지.

사실 별로 안 좋아할 줄 알았다. 여행이나 독서, 음악 같은 정적인 취미를 즐기는 사람이라 그런 동적인 취미는 없을 줄 알았지. 특별히 즐기는 운동 있나?
운동하는 자체를 즐긴다. 일단 항상 개인 트레이너와 운동을 하는데, 개인적으론 등산을 좋아한다. (전)도연 언니와는 등산하다 친해지기도 했고. 그리고 물에 들어가는 걸 좋아하는데 그래서 수영도 좋아한다. 난 물속에 있을 때가 공기 중에 있을 때보다 편한 거 같아. (웃음) 그리고 이어폰 꽂고 음악 들으면서 달리는 것도 좋아하고.

그런데 이번에 <두사람이다>는 물 때문에 곤욕을 치렀다고 들었는데.
말하면 되게 긴데, 너무 힘들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생명의 위협을 느낄 정도로. 촬영을 위해서 투명하게 제작된 욕조가 있었는데 그 안에 1톤 가량의 물을 채웠다. 그리고 내가 그 안에 들어가서 수평으로 누워서 촬영을 했다. 그리고 그렇게 촬영한 걸 천장으로 거꾸로 뉘인 거지. 난 수영도 잘 하는 편이고 물속에 들어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서 당연히 거부감 없이 촬영을 했지. 그래서 물 속에 들어가 뒤로 누웠는데 그러면 코로 물이 막 들어온다. 그 때 내 입이 봉해져 있는 상태였고 눈엔 눈알만한 렌즈를 끼고 있었다. 본인이 끼지는 못하고 전문가가 와서 끼워주는 건데 그게 되게 아프다. 끼고 있는 상태에도 말을 할 수 없게 아팠다. (웃음) 근데 그걸 끼고 입도 봉하고, 코로 물이 들어온다. 물속에 있는데, ‘나 이러다 죽는구나’ 싶더라. 그래서 당장 나왔다. 얼굴이 파랗게 질려서 ‘감독님, 저 못하겠어요.’ 그랬더니 감독님도 얼굴이 새파랗게 질리면서 CG팀으로 막 달려가더라. 그래서 CG팀과 회의를 했는데, CG팀에서 촬영 장면 없이는 그 장면을 만들 수가 없다고 결론이 났다. 결국 감독님이 내게 와서 사정했다. ‘진서씨, 몇 초만 갈게요. 한번만 해주세요.’ 그런데 한번 그런 경험을 하고 나니까 일단 무서움이 앞서더라. 그래서 도저히 들어갈 수 없어서 일단 못 하겠다고 버티는데 그 상황에서 스텝들은 쥐 죽은 듯 조용하고, 그 와중에 ‘진서씨 한번만 부탁이에요.’라는 감독님 목소리는 스피커를 통해서 쩌렁쩌렁 울려대니까 안 할 수가 있나. (웃음) 감독님이 너무 미웠다. 그 상황만큼은. (웃음) 결국 스텝들한테 너무 미안해서 했다.

정말 그 순간만큼은 <두사람이다>를 선택한 걸 후회했을 것 같다.
후회했다. 배우란 직업에조차 회의를 느꼈으니까. ‘뭐야? 배우는 영화 찍다 죽어도 돼?’ 이럴 정도의 반발감이 들었지. ‘내가 영화 찍다 죽으면 너네 되게 시원하겠다.’ 이런 생각까지 할 정도로. 정말 너무 싫었다. ‘난 죽을 것 같은데, 어떻게 그런 사람한테 이렇게까지 시킬 수 있지? 배우는 정말 소모품이구나.’ 그 순간에 이런 안 좋은 생각들을 하면서 결국엔 했지. 아니나 다를까 다시 물이 막 들어오고 참다가 다시 나왔다. ‘다신 못해요. 죽어도 못하겠으니 더 이상 안되면 이 장면 없애버리세요. 정말로 못하겠으니까.’ 이런 심정으로 물에서 나오는 순간, 그 동안 내 코로 들어갔던 물이 안에서 내 얼굴을 밀어내는 거다. 처음으로 안압(眼壓)이란 걸 느꼈다. 정말 눈알이 빠져나올 거 같고 앞이 안보이더라. 안으로 들어간 물이 코에서 역류해서 눈 안에서 계속 도는 거다. 정말 거짓말 하나 안 보태고, 휴지 한 각을 다 꺼내서 코를 풀었다. 정말 휴지 한 각이 모두 흥건히 젖을 정도로. 그리고 그제서야 안압이 사라졌다. 정말 시력을 잃는 줄 알았다. 얼마나 무서웠겠어. 그래서 그 다음날 쉬라고 할 줄 알았는데 아침 11시부터 촬영하더라. (웃음)

그런데 그 씬에서 그것 말고도 또 고생담이 있다고 아는데, 위에서 쏟아낸 피를 침대에 누운 채로 맞는 장면도 실제로 직접 연기하지 않았나.
빨간 물이 쏟아져도 눈을 감지 말라더라. 그래서 ‘눈을 안 감아야지’ 하다가도 정말 많은 양의 빨간 피가 얼굴에 쏟아지면 마음과 달리 눈이 감긴다. 그래서 정말 하루 종일 그것만 찍었다. 결국엔 잘 찍었지만, 그 후로 며칠이 지나도 귀랑 코에서 핏물이 나왔다. 물론 다쳐서 나온 게 아니니까 아프진 않았지. 그냥 나오는 거니까. 하지만 기분이 너무 안 좋다. 생각해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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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로 생각 안하고 싶다. (웃음) 여러 가지로 고생 많았다. 지금까지 연기한 것 중 가장 노동적인 연기를 한 셈인데, 솔직히 본인이 생각하는 연기는 아니었을 것 같다.
내가 동적인 인간이긴 하다. 운동 좋아하고, 등산 좋아하고, 수영 좋아하고, 달리기 좋아하고, 그럼 말 다했지. 동적인 건 좋아하는데, 다만 고통스러운 걸 좋아하지 않을 뿐이다. 누가 좋아하겠어.

그렇다면 배우로서 스스로 연기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게 한 영화는 뭔가?
대중적으로 재미있는 영화는 아니었는데, 연기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했던 영화는 이자벨 위페르가 나온 <피아니스트>, 그리고 레나 올린과 줄리엣 비노쉬가 나온 <프라하의 봄>. 아무래도 내가 여자이다 보니까 여배우를 보고 생각하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그녀들을 보며 처음으로 멋있단 생각을 했다. 단지 그녀들의 연기가 멋있었다기 보단 그런 연기를 통해 살아가는 배우들이 멋있었다. 마치 맨 얼굴의 연기라고 할까. 그냥 그 사람들에겐 그게 느껴진다.

확실히 영화를 볼 때, 배우의 연기에 눈이 많이 가는 편인가 보다.
배우의 어떤 역동력 같은 걸 먼저 느끼는 편이다. 정말 좋은 영화를 봤을 때, 그런 작품으로부터 오는 느낌과는 다르다. 배우의 역량을 발휘하는 원동력은 개인적으로 배우들한테 있다고 생각한다. 좋은 연기를 보고 감독들이 영화를 칭찬하는 건 아니잖아. 좋은 영화를 보고 하지. 연기는 항상 똑같다. 이런 연기 한번 해보고 싶단 생각은 영화와 연기를 보고 하지. 대신 좋은 작품을 보면 이런 작품에 출연해보고 싶다고 생각을 하게 되고. 굉장히 좋은 배우를 보고 이런 배우가 되고 싶다고 생각을 하듯.

전도연 씨와 친하다고 했는데, 배우 전도연은 어떻게 생각하나?
도연 언니는 친해지고 나서 더 존경하게 된 선배다. 한국에서 몇 명 안 되는, 자신을 희생할 줄 아는 배우인 거 같다. 영화에 희생할 줄 아는 배우, 되게 힘든 건데. 그런데 담배 한대만 피워도 될까?

상관없다. 담배 피운 지는 오래됐나?
핀지 두 달 됐다. 지금 준비하고 있는 <비스티 보이즈>의 윤종빈 감독님이 담배를 정말 잘 피웠으면 좋겠고, 욕도 되게 잘 했으면 좋겠다고 하더라. 그 이야길 듣는 순간, 그 다음날부터 담배랑 욕을 입에 붙이고 살았다. (웃음)

그거야말로 연기에 희생하는 배우의 자세 아닌가? (웃음)
엄청난 희생이지! (웃음) 몸이 망가진다. 술이랑 담배, 욕까지 붙이고 사니까.

배우라는 게 본인을 망가뜨려도 될 정도로 그렇게 큰 욕심인가?
내 인생의 목표이고, 그래서 행복해지는데. 이게 다 그냥 날 위한 거다. 삶이 행복해지려고 이러는 거니까.

지금 장률 감독의 <이리>에도 캐스팅된 걸로 알고 있다. 사실 <비스티 보이즈>도 그렇고, 대중적인 느낌의 영화는 아니다. 배우로서 작품을 선택하는 기준이 뭔가?
일단 작품을 보고 결정하는 것 같다. 역할이 아무리 좋아도 작품이 별로라고 생각되면 어쩔 수 없이 역할도 내키지 않는 것 같고, (웃음) 역할이 별로라도 작품이 좋으면 내 역할마저도 살아나는 것 같다. 그래서 전체적인 작품을 보고 나서 내가 맡은 역할이 맘에 드는지 본다.

일단 편수로 따지자면 많은 작품을 했다.
그렇지. 편수로 따지자면. (웃음)

그 작품들 안에서 개인적으로 후회되는 작품은 없나?
후회되는 작품은 없다. 왜냐면 내가 만났던 감독들은 모두 좋은 감독님들이었거든. 왜 좋은 감독이란 소리를 듣는지 작품을 하고 나니 알 것 같더라. 난 시간으로 나이를 먹는 것 같지 않고 작품으로 나이를 먹는 거 같다. 한 작품 하면 나이를 먹는 거다. 그래서 후회되는 작품은 한 작품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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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본인에게 가장 많은 나이를 먹게 해준 작품은?
<두사람이다>. 다른 영화는 한 살쯤 먹게 해준 것 같은데, <두사람이다>는 두 살쯤 먹게 해준 것 같다. 물론 남들이 어떻게 평가할지 모르지만 작품과 상관없이 개인적으론 <두사람이다>를 찍으면서 연기가 많이 늘었다는 생각을 했다. 배우로서 표현하는 방법을 컨트롤하게 됐다고 생각한다. 출연 분량이 많아서 그런가? (웃음)

가장 큰 경험이라 그랬을지도 모르고. 본인은 스스로가 몇 사람이라고 생각하나?
셀 수 없다고 생각한다. 내가 여행을 다니는 건 새로운 나를 찾기 위해서다. 어쩌면 진정한 나를 찾는 것일 수도 있지. 진정한 나를, 새로운 나를 찾는 것. 가끔 나한테 이런 면이 있었나 싶을 때도 있다. 어떤 여행은 혼자 책보는 게 좋을 때도 있고, 어떤 여행은 술 먹고 취해서 클럽을 전전해야 좋을 때가 있다. 뭔가 마음에 와 닿는 여행이 될 때도 있고. 그건 정말 그날그날 기분에 따라 다르지만. 난 사실 여행을 하기 위해서 영화를 찍는다. 영화를 찍다가 정말 힘들면 ‘내가 이걸 안 하면 돈을 어떻게 벌겠어, 여행 가려면 돈을 벌어야지.’ 이렇게 인내하면서 참고 영화를 찍는다. (웃음)

여행 자금을 위해서 연기를 한다?
내가 어디 가서 얼마나 돈을 벌겠나. 그런데 여행을 하면서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영화 생각만 하고 있다. 여행 중엔 끊임없이 ‘내가 지금 뭐하고 있지? 넌 누구야?’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결국 ‘난 영화배우가 맞나 보다. 난 영화배우 구만.’ 이렇게 되더라. (웃음) 그리고 그런 생각들을 할 때 행복하다. 무엇보다도 결국 내가 나답지 않은 걸 찾아서 들고 왔을 때 되게 행복하고, 그런 의미에선 영화가 여행일 수도 있다.

자신의 새로운 모습을 찾는 사람의 입장에선 영화와 여행은 같은 목적이겠다.
맞다.

앞으로 계획된 여행 있나?
계획된 여행이 2개 있다. 사실 3일 전에도 필리핀 섬에 있다가 왔다. <두사람이다>가 개봉하면 며칠간 무대인사를 한다. 그 일정 끝나는 대로 일본 가려고 생각 중이지. 내가 일본어 까먹을만하면 일본에 가거든. (웃음) 그나마 가까우니까. 그런데 9월 6일날 서울영화제 개막식이 있다.

이번에 홍보대사를 맡은?
맞다. 그 일정 때문에 일단 귀국했다가 그 후에 또 파리에 갈까 생각중이다. 파리에 갔다가 이번엔 모나코도 가보고 싶다.

일상이 영화와 여행의 반복이다. 그런데 본인의 말대로 새로운 자신을 찾는다는 목적에서 영화도 여행이라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마치 평생 여행을 다니는 사람같이 느껴진다.
그게 내 인생인 거 같다. 그럴 때가 제일 행복하고. 그런데 요즘 어머니께서 ‘네 마이너스 통장을 어떻게 해야 하니? 그만 여행 다니고 이제 돈을 모아야 하지 않겠니?’ 이런 말씀 많이 하신다. (웃음) 그런데 여행하는 게 좋은데 어떡하나? 돈을 꾸준히 벌 수 있는 어떤 안정보다도 어떤 모험 같은 연기와 여행을 하는 게 내 인생인 거 같다. 그냥, 그래. 그게 나인 거 같다.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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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민용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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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경 인터뷰

interview 2008. 5. 31. 03:33
사용자 삽입 이미지

비 오는 날 좋아하나?
심하게 좋아했다, 예전엔 더욱.

지금은 예전보단 덜 좋아하나 보다.
비오는 날 참 좋아하는데, 오늘은 즐길 수 있는 여유가 없어서 잘 모르겠네.

벌써 서른이 넘었다. 시작부터 나이 이야기하면 실례일까.
아니, 전혀. (웃음)

서른이 넘어서니 어떤가? 벌써 이렇게 됐구나란 감상에 젖을 법도 한데.
눈에 안보이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지. 일단 난 지금이 좋다. 왜냐면 내 십대와 이십대는 아무것도 몰라서 너무 방황하는 시기였으니까. 너무나도 갈팡질팡, 도대체 어떻게 사는 게 맞는 건지 몰라서 너무나 힘든 시기였지. 사실 내 사춘기가 굉장히 길었다. 중학교 1학년 때부터 서른 살까지 사춘기였으니까. (웃음) 정말 사람에 대해서도 몰랐고, 뭐가 진실인지도, 뭐가 선이고 악인지, 정말 혼돈스러웠다. 그런데 작년부터 서서히 뭔가 잡혀가는 거 같아. 이제 내 인생을 이런 방향으로 살아가겠구나, 나의 토대는 이거고 목표는 이거다, 이런 것들이 잘 보이기 시작했다. 난 지금 내 나이가 좋아. 살 것 같다고 할까. 조금씩.

작년이라면 혹시 <여름이 가기 전에> 덕분에?
그건 아니다. <여름이 가기 전에>할 때가 더 힘들었으니까.

의외네. 난 그 작품이 상당한 의미가 있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우울증에 걸리면 하고 싶어도 말이 잘 안 나온다. 난 말하고 싶은데 소리가 안 나오는 거지. <여름이 가기 전에>할 때 내가 너무 다운됐었다. 마음이 행복하지 못해서. 대사를 해야 하는데 이게 나오기가 너무 힘들었지.

6년은 그렇게 긴 시간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친구> 이후, 김보경의 6년은 길어 보인다. 김보경이란 배우의 6년은, 마치 굽이굽이 돌아가는 길을 보는 것 같다.
지금도 돌고 있을 지도 모르지. 내 성격 탓인 거 같아. 그렇게 똑똑하지 못하거든. 다 아는 답이 보일 때도 있다. 그런데 난 답을 알면서도 결단을 쉽게 못 낸다. 마음이 여려서, 그런 덕분에 많이 돌게 됐고. 20대까진 그렇게 살았으니까 이젠 김보경이라는 아이의 인생을 위해서라도 좀 더 똑똑하게 결단도 내리고 그래야 되는데, 지금도 좀 그러지 못하는 것 같아서 답답하다. 나 스스로도.

사실은 데뷔도 빠른 편은 아니었다. <친구> 당시가 이십 대 중반이었으니까.
사실 데뷔는 그 전에 했었지, 95년도에 CF로 데뷔를 했고, 98년도에 영화를 했었으니까. 간간이 단역으로 TV드라마에도 나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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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제대로 연기를 하게 된 건 <친구>가 처음 아닌가?
제대로 연기한 건 이번에 <기담>이 처음이다. (웃음)

어쨌든 <친구>로 얼굴을 많이 알렸지만 그 후로 많이 돌아온 건 <친구> 때문이 아닐까? 개인적인 생각에 <친구>로 얼굴을 알린 후, 출연했던 작품들은 김보경이란 배우에게 어울리지 않는 옷이었다고 생각했다. 물론 본인에겐 의미 있는 작품들일지 모르지만.
영화가 흥행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게 말하는 게 아닐까. 만약 잘 됐다면 다르게 말했을 수도 있을 거다. 난 영화가 잘되고 안 되는 건 정말 운이라고 생각한다. 솔직히 <친구>란 영화가 잘됐지만 그 영화의 작품성이 뛰어나다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도 있을 테고, 굉장히 싫어하는 사람도 있겠지. 다만 그 시대에 맞는 운 때가 있어서 흥행할 수 있는 게 아닌가 싶다. 물론 정말 아닌 영화들도 있겠지만 굳이 그 영화들이 그만큼 사랑을 받는다는 건 모두 운명 같다. (웃음)

<기담>을 봤나? (이 인터뷰는 언론시사가 진행되지 않은 7월 16일에 진행됐다.)
다는 못 봤다.

독특한 소재 때문인지 몰라도 굉장히 궁금하다. 처음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 그렇다는 생각을 많이 했을 법도 한데.
<여름이 가기 전에>란 작품을 하고 <잘 지내나요, 청춘>이란 단막극을 했었다. 그 때, 너무 초연하게 연기한 덕에 연기가 다시 너무 좋아졌었다. 물론 내가 거기서 연기를 잘했다는 게 아니라 그냥 그 작품을 좋아했었지. 단막극이지만 그 작품을 찍는 과정이 너무 행복했었고. 내가 연기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다시 깨닫게 되는 시기였고. 그 때, 나도 좀 대중적인 작품 해서 대중들과 같이 살아가는 연기자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웃음) 근데 그때 <기담>이란 공포영화 시나리오를 받았다. 근데 공포영화란 장르가 대중적인 묘미가 있잖아. 그게 그 당시 내 생각하고 맞았다. 일단은 대중적이란 점이 맞았지. 그리고 내가 공포물을 굉장히 좋아하거든.

아, 그런가?
그렇다. 난 공포영화를 세 분류로 나누는데, 하나는 좀비 영화, 하나는 스릴러, 또 하나는 종교다. 그런데 거기서 막 피나거나 자르는 이런 건 무섭진 않고 속만 안 좋아서 싫더라.

나도 그런 건 요즘 정서만 안 좋아지는 것 같아서 피하고 싶어지더라.
내가 95년도에 <트레인스포팅>이란 영화를 봤는데 그 작품은 충격이었다. ‘정말 저게 영화지!’ 이럴 정도로 정말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리고 <28일 후>란 작품을 봤는데 난 같은 감독 작품인지 몰랐다. 감독 보고 영화 보는 편은 아니라서. (웃음) 그런데 <28일 후>도 충격이었다. 무섭기도 하고, 그래서 재미있었지만 무엇보다 날 생각하게 만들었으니까 그 영화가 좋았다. <셔터>도 되게 무서웠다. 정말 있을 법한 일이잖아. 사랑한 여자친구가 임신했다가 죽어서 귀신이 되고, 난 정말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 그 당시에 남자친구가 있었는데 <셔터>보고 내가 ‘잘 해~! 아니면 나도 돌아올꺼야’ 했었다. (웃음) 어쨌든 <기담> 시나리오를 봤을 때, 내가 그 두 영화를 보면서 받았던 그런 느낌들이, 물론 똑 같은 느낌은 아니지만 그런 것들이 있었다. 단순히 이 영화가 여름방학 노려서 한철땡으로 만든 작품이 아니라 이걸 해도 난 부끄럽지 않겠다는, 내가 제작을 했다 해도 돈 벌기 위해서 단순히 했다는 소리는 안 듣겠다 싶어서 난 <기담>이 좋았던 거지. 그리고 사랑이라는 그 감정 때문에 모든 공포가 일어난 거다. 사실 시나리오엔 음향 효과가 없잖아. 난 시나리오 보면서 무섭다기 보단 마음이 아팠다. 그런데 안 무서울까 봐 걱정했지. 그래도 공포영화인데, 너무 슬프고 아리고, 아프기만 할까 봐. 근데 어떻게 될진 모르지. (웃음) 그래도 무서울 것 같다. 예고편 보니까.

전형적인 공포영화는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캐릭터들도 비밀스러운 느낌이 나고, 진구 말에 의하면 공포영화를 가장한 뭔가가 있다고 하던데.
맞다. 진구씨가 <기담>은 차가운 공포영화가 아니라 따뜻한 공포 영화라 했는데 난 그 말이 맞는 거 같다.

더욱 궁금하다.
그런데 이상하게 나오면 어떡하지. (웃음)

뚜껑을 열어보면 알겠지. (웃음) 난 개인적으로 김보경이란 배우가 <친구> 이후로 이름을 남긴 건, 단지 <여름이 가기 전에> 뿐이었단 생각이 든다. 그런데 본인에게 그 작품은 좋은 기억이 아닌가 보다.
난 내가 살아가면서 중요한 건 결과보단 과정이라 생각한다. 돈을 벌고 난 후나 엄청나게 유명해진 후보단 그렇게 된 과정이 중요하다 생각한다. 사람마다 틀리지만 난 그런 과정을 즐기는 사람이고. 영화가 흥행하고, 그로 인해 돈을 엄청 많이 버는 것도 중요하다. 그 전에 영화가 잘 나오는 것도 물론 중요하고. 근데 만약 그 과정이 너무 정떨어진다면 영화가 잘 나와도 사랑할 수 없다. 근데 <여름이 가기 전에>는 아까 말한 것처럼 그 과정이 그렇게 행복하지 않은 작품이었다. 물론 나도 영화는 잘 봤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나 자신과의 괴로운 싸움을 했던 작품이라 힘들었다.

다시 말하지만 굉장히 의외다.
그래도 부산 영화제에 참여할 수 있었던 건 나한테 의미가 있다. 사실 <여름이 가기 전에>의 기억이 아파서 안 가려고 했었다. 하지만 매니저들이 꼬시기도 하고, 생각해보니 영화인으로서 내가 안 갈 이유도 없어서 결국 갔다. 그러다가 영화제에서 <여름이 가기 전에>를 보게 된 제작사 대표님이 우연히 내가 걸어오는 걸 보곤 <기담>의 인영 역에 가깝겠다고 생각해서 제의하셨다고 하더라. 자신이 그려놓은 인영의 이미지랑 너무 맞아떨어졌다고 하시더라.

개인적으로 <여름이 가기 전에>가 배우로서 다시 멍석을 까는 지점이었다면, <하얀 거탑>은 굳히기에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혹시 <하얀 거탑>도 안 좋은 추억이 있을까. (웃음)
아니다. 너무 마음이 편안하게 작품을 할 수 있어서 정말 즐겁게 촬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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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하얀 거탑>의 강희재는 그 이전에 맡았던 역할들과 달랐다. 남자들 사이에 둘러싸인 건 마찬가지였지만, 그 이전까진 자신의 영역을 구축하기 위해 날을 세우는 것 같았다. 하지만 <하얀 거탑>의 강희재는 장준혁의 버팀목이 되어주는 인물이다. 좀 더 너그러워졌다고 할까.
난 사실 (배우로서) 별로 보여드린 게 없어서 그냥 내 안에 갖고 있던 캐릭터 중 하나를 강희재란 캐릭터와 이렇게 조합해서 연기했기 때문에 나 스스로에게 그렇게 색다른 건 없었다. 다만 이런 걸 느꼈지. <하얀 거탑>할 때, 처음엔 여자 주인공이라고 그러더라. 그래서 되게 좋아했었다. (웃음) 나를 뭘 보고 주연을 맡기나 했었지. 그런데 대본이 6회까지 나왔는데 나는 별로 안 나오는 거다. 어쩌다 한두 씬 나오고, 별로 중요한 씬도 아니고, 맨날 술만 따르고. (웃음) (김)명민 오빠를 비롯해서 주위 사람들도 드라마에서 별로 안 보인다고 안타까워하시더라. 그래도 난 이런 배우들과 감독님하고 한다는 것에 의의를 두고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사실 일본 원작 드라마 보라고 해서 DVD까지 봤는데, 케이코도 별로 나오진 않았지만 어딘가 강한 이미지가 남더라. 그래서 나도 강하게 하고 싶지만 강하게 하면 안 되는 인물이었고, 감독님이 원하는 연기 스타일도 그렇게 선 굵은 게 아니었지. 그래서 누르는 걸 좀 배웠던 거 같아. 전체적인 드라마 흐름을 위해 내가 있는 거니까 내가 튀면 안 된다, 난 자꾸 이렇게 묻혀가야 돼, 묻혀가면서 그냥 드라마와 전체적으로 같이 가는 거다. 이런 생각으로 연기했다.

비중은 작았지만 후반으로 갈수록 이미지를 은연중에 각인시킨 역할이었다고 생각한다. <하얀 거탑>에서 독자적인 공간을 지닌 유일한 사람이기도 하고, 다들 병원이라는 집합의 동선을 지니지만 희재의 바(bar)는 유일한 개인적 공간이다.
그래서 심심했다. (웃음) 난 드라마하면 연기자들하고 좀 친해질 줄 알았는데 나한텐 맨날 장준혁만 오니까. (웃음) 그나마 이정길 선배님과 친해졌다. 어쨌든 배우들하고는 볼일이 없어서 아쉬웠지. 어느 날 TV를 통해서 직접 봤더니 너무 답답해 보이는 거다. 자꾸 밖에 좀 나가고 싶다. 이런 생각이 들더라. 물론 끝끝내 밖에 나가진 못했지. (웃음)

하긴 계속 갇혀서 촬영하니까.
맞아. 그리고 비중이 작았지만 너무 잘 하고 싶었다. TV는 오랜만이고 제대로 된 드라마도 처음으로 하는 거니까. 내 나름대로 바뀔 수 있는 상황까지 계산을 하면서 준비를 했다. 그래서 현장에서 감독님한테 펼쳐 보이곤 했다. 그런데 내가 준비한 것과 또 다른 상황으로 바뀔 때가 많았지. 그래서 또 다른 여유, 연기에 있어서 여백을 남겨둬야 된다는 걸 배웠다.

영화와 다른 드라마만의 매력을 느꼈나?
사실 영화를 너무 오랜만에 해서, 다시 시작하는 느낌이었다. 새롭게. <하얀 거탑> 끝나고 <기담>을 했는데, <여름이 가기 전에>도 찍은 후 1년 뒤에 개봉을 했으니까. 내가 너무 작품을 띄엄띄엄 했었고, 그래서 처음 같은 느낌이었지. 영화찍은 지도 오래됐었고, 공백이 기니까 그런 걸 모르겠더라. (웃음) 물론 큰 차이점을 느낀 건 영화는 촬영 들어가기 전에 감독이랑 배우랑 이야길 많이 나누고, 이 인물에 대해서 디테일한 오고감이 있는데 드라마는 그냥 그런 회의 없이 한다는 거.

원래 캐릭터에 대한 준비가 철저한 편인가 보다.
난 대본 받으면 내 인물의 보이지 않는 과거와 보이지 않는 미래 같은, 그 인물들에 대해서 토론하는 걸 좋아한다. 연극을 해서 그런지도 모르고. 그런데 TV는 그런 시간이 안 되니까. 감독하고 그만큼의 친밀하지가 못하더라. <기담>같은 경우도 리딩을 한 달 넘게 했으니까, 충분히 인영에 대해서 얘기해보고, 이런 게 충분히 얘기가 된 후에 영화는 들어갈 수가 있는 거지. 서로 더 알고 들어가는 거랄까. 근데 TV는 그렇게까지는 못하는 게 틀린 점이지.

순발력의 연기를 더 요구하는 상황도 있었을 텐데, 익숙하지 않아서 어려웠을지도 모르겠다.
사실 <여름이 가기 전에>도 가벼운 생활적인 연기였는데, 그땐 확실하게 그게 그렇게 안 다가왔었다. 감독님이 직접 뭘 요구하지도, 어떤 연기 톤을 요구하시는 건지도, 뭘 하는 줄도 잘 몰랐다. 왜냐면 여태까지 했던 연기랑은 약간 틀린 톤이었으니까. 그런데 그렇게 다르단 사실에 대해서 내가 인식을 잘 못했던 거 같다. 그냥 소연이란 캐릭터에 빠져서 연기를 하긴 했는데 뭔가를 했다는 느낌은 들지만 뭔가를 배웠다는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하얀 거탑>을 하면서 확실하게 연기의 구분을 알게 된 거 같다. 그리고 안판석 감독님이 굉장히 세련된 분위기란 것도 알겠고. 이분이 추구하시는 연기 톤은 관객들에게 앞으로 더욱 환영 받고 사랑 받을만한 것이라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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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작품 수만 치면 영화를 꽤 많이 한 편이다.
수만 그렇지. (웃음)

그럼에도 아직 관객들에게 존재감을 인식시키지 못했는데, <하얀 거탑>이 대중적인 인지도를 마련해준 작품인 것 같다. 나름대로 대중에게 얼굴을 알린다는 욕심도 있었을 법한데.
처음부터 역할의 분량이 작은 덕분에 큰 부담을 안 가지게 됐고, 오히려 여기서 잘 해서 ‘넓혀가자, 내 씬을 늘리자’ 생각했었다. 드라마는 그게 가능하니까. 이게 목표였지. 오히려 씬 많이 줬는데 못하는 것보다 적게 줬는데 잘해서 내 걸 늘려가는 낫다고 생각했다. 사실, 그런 것 말곤 이걸로 인해서 내가 엄청나게 사랑을 받을 거라는 생각은 전혀 없는 상태였다.

이렇게 사랑 받는 드라마가 될 줄도 몰랐겠지.
당연히 몰랐다. 지난 6년 동안 힘들어 봤기 때문에, 별로 인기란 것에 민감할 수도 없었지. 사랑해주는 건 고맙지만 사랑해주지 않는다고 내가 연기 안 하는 것도 아니고, 또 지금 사랑해주셨다가 언제 외면할지 모르는 거니까. 인생의 굴곡이 있듯이. 사랑을 받는다는 건 참 감사한 일이지만 내가 거기에 휘둘릴 나이도 아닌 것 같고. 별로 그런 건 신경을 못 쓴 거 같다. 그렇지만 사랑 받으면 너무나 고맙지.

<기담>이란 작품은 어디에 매력을 느꼈나?
<친구>에 출연한 후, 그 캐릭터가 워낙 강했나 보더라. 그래서 나를 어딘가에 써먹어야 되는데 어디에 써먹어야 할지 그 당시에 고민했나 보더라. (웃음) 너무 캐릭터가 강해서. 그런 이야기 듣고 난 웃긴다고 생각했다. 난 강한 연기 한번 했을 뿐인데, 왜 그것만으로 나에 대해서 다 파악한 것처럼 저럴까. 저게 내 모습의 다는 아닌데 싶었으니까.

어쩌면 공백으로 인해 그런 이미지가 잘 떠오르지 않는 게 한편으로 도움이 된 셈일지도 모르겠다.
사실 <하얀 거탑>의 날 보고 <친구>의 진숙인지 모르고 본 사람도 굉장히 많았다더라. <기담>의 인영이란 역할은 굉장히 부드럽고, 온화하다. 정말 사랑 받는 아내이고. 이런 캐릭터는 내가 처음이라 너무 하고 싶었고, 나한테도 이런 모습이 있다는 걸 보여드리고 싶었다. 그런 계기가 될 수 있을 것 같기도 했고. 또 인영이랑 제가 꿈꾸는 사랑이 비슷했다. 마치 <사랑한다면 이들처럼>이란 영화 알까?

물론이다. 꽤 오래된 영화인데.
내 이상적인 사랑은 딱 그거거든. 그런데 그런 사랑은 없단다. 사람들은 내가 이런 이야기하면 정신차리라고, 그런 사랑은 없다고 얘기하지. (웃음) 물론 나도 만나진 못했지만 분명 있다고 생각하거든. 근데 그런 사랑이 <기담>에선 아름답게 표현된 건 아니지만 너무나도 잔인하고 슬프게 그 시나리오에 있었다. 그런 사랑을 인영이 하고 있었다. 대리만족이라 해야 할까. 난 현실에서 하기 힘든 사랑을 처음으로 알았다. 처음으로! (웃음) 연기자가 이래서 좋다는 걸 난 처음 알았다. 그 전엔 다른 연기자들이 연기 왜 하냐는 질문받으면 ‘여러 가지 일을 하잖아요’, 이런 대답이 난 재미없었거든. 그런데 내가 이번에 <기담>을 끝내고 나니 그걸 느꼈다. 내가 진짜 꿈꾸던 사랑이 아름답게 표현된 건 아니지만 아주 지독하고 잔인하게 느끼면서 했다. 그런 대리만족이 느껴지더라. 너무 마음이 아팠다. 그 두 사람 때문에 너무 아팠고 너무 부러웠지. 촬영하면서 많이 울었어. 너무 부러워서. (웃음)

이야기만 들으면 공포가 아니라 멜로같다.
맞다! 멜로! 그런데 그 멜로가 너무나도 잔혹하게 써진 거지. (웃음) 그런데 영화가 내 말처럼 잘 나왔어야 되는데! (웃음)

누군가의 아내 역할을 한 것도 처음이지만, 누군가에게 사랑을 받은 것도 처음이다. 항상 누군가를 좋아하거나 자신을 좋아하는 이의 사랑을 내치거나 그런 쪽이었는데.
그래서 좋았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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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회한을 풀어버리는 기분이었을 것 같은데.
난 전혀 그런 거 없을 줄 알았는데, 있더라. 실제로 촬영하면서도 너무 사랑 받으면서 촬영해서, 촬영 기간도 난 너무 행복했었다. 촬영이 끝나길 기다리는 게 아니라 촬영이 끝나가서 조마조마했다. 크랭크업되기 전에도 ‘감독님, 이제 어떡해요, 내일이면 끝인데~’ 막 이랬다. (웃음) 다들 이런 마음이었을 거다.

촬영이 크랭크업 예정보다 지연됐다고 들었는데, 오히려 그게 다행이었겠다. (웃음)
내가 여태껏 연기 했던 것보다 다른 연기를 할 수 있었고, 드디어 내 안에 있는 걸 꺼내는 작업을 처음으로 했던 거 같다. 그래서 <기담>은 영화배우로서 의미 있는 작품이었다. 그 집중하는 방법을 배웠다. 예전에는 이걸 어떻게 할까, 걱정 먼저 한 다음에 빠져들었는데, <기담>은 그냥 먼저 빠져들게 된 거다. 그래서 촬영 중에 고민하고 그런 건 없었다. 그냥 오로지 내 감정에 맡겼지. <기담>연기들은. 물론 너무 다양한 감정이 교차돼서 너무 힘들기도 했지만 그냥 인간 김보경이 살아갈 인생 속에서도 어떤 전환점이 되는 작품이라고 생각했다.

어떻게 보면 지금까지 선이 굵은 역할을 많이 했다. 단도직입적이기도 했고. 그런데 <기담>은 가녀리지만 입체적인 느낌이 드는 캐릭터 같다. 신비로운 느낌도 있고.
일단은 좀 헷갈렸지. 왜냐면 말한 것처럼 이 인물이 신비롭다는 느낌을 깔고 갔어야 했으니까. 부담도 됐었다. 어떤 식으로 신비감을 줘야 할지, 자세히 말할 수는 없지만 환상이란 설정을 처음부터 까는 인물이라면 연기라도 날리면서 효과의 도움을 받기라도 할 텐데. 그래서 지금 생각해도 내가 내 감정에 맡기고 갈 수 밖에 없었을 거 같다. 내가 여기서 어떻게 해야지, 그런 게 아니라 정말 내 감정과 감성대로 해야겠단 생각이 들더라. 그래서 내 느낌을 잡는 게 어렵기도 했다.

김태우 씨와 부부 연기를 해서 호흡을 많이 맞췄을 텐데, 어땠나?
처음에 만났을 땐, 막연히 사람 좋게 생겼네. 바른 생활을 한 사람 같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리딩을 하면서, 똑똑한 배우구나. 부럽다고 생각했고 촬영이 들어갔을 때, 진짜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느꼈다. 그리고 이제 촬영 끝나고 시간이 지나서 돌이켜 생각해보면 김태우란 배우가 있어서 우리가 영화를 좀 편안하게 찍을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나 또한 행복할 수 있었고, 처음으로 이렇게 편안하게 연기한 거 같다. 물론 선배 띄워주기나 같이 한 배우의 의리상 좋은 말 하는 건 아니고! (웃음) 김태우 씨가 배우들과 깊이 있고 편안하게 할 수 있게끔 분위기를 많이 도와줬다는 걸 느꼈다. 나도 나중에 선배가 되고 후배가 생기면 저럴 수 있을까 생각하면 난 그만큼 친절하지 못할 거 같단 생각이 들 정도로.

최근 호흡을 맞춘 남자배우는 다 안정감 있는 캐릭터다. 김명민 씨, 이현우 씨, 김태우 씨. 다들 그런 느낌이다.
사실 이현우씨는 본인 스스로가 그런다. 자신은 가수라고. 겸손한 편이지. 지금도 우린 패밀리다. (웃음)

그 친분 덕분에 라디오 방송도 하게 된 건가 보다.
라디오 개편할 때 온(on)하러 오라고 해서 갔다가 PD가 제안해서 한달 동안 일주일에 한 번씩 했었다. 현우 오빠 같은 경우는 인생에 있어서 참 똑똑한 거 같다. 여유롭게 즐길 줄 아는, 잘못 보면 욕심이 없어 보일 수도 있는데 그게 아니라 인생에 있어서 정말 소중한 걸 아는 거다. 예를 들면 이런 거다. 영화 하나 망하면 죽을 거 같고, 망했다고 하고 그런 사람이 있는 반면에, 영화가 흥행이 되고 망하든 그 과정이 행복했고 소중한 거라고 말할 수 있는 거지. 진짜로 인생에 있어서 지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솔직히 연기자로서는 모르겠다. 난 진짜로 연기가 하고 싶어서 정석으로 해온 사람이고, 이현우씨는 가수하다가 기회가 되니까 연기를 한 거라서 솔직히 연기자로서 뭐라 말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카메라에 익숙한 사람이라 편안하게 연기하는 것 같다.

어쩌면 김명민 씨가 뒤늦게 인정받고 있는 것에 대한 감상이 있을 것 같다.
김명민 씨는 사랑과 찬사를 받을 충분한 자격이 있다고 본다. 사실 오래 전부터 아는 사이였다. 김명민 씨 부인이 내 친한 언니라서. 그리고 한 동네에 살았었고, 같은 소속사에 있었고, 학교 선배이기도 하고. 힘들어하신 것에 대해서도 많이 들었었고, 연기에 대해서도 많이 들었었다. 참을 만큼 참으신 분이다. 연기자로서 난 좋아요~! (엄지손가락을 세우며) (웃음) 정말 그만큼 사랑 받을 가치가 충분히 있다고 생각한다. 진심으로.

공교롭지만 <리턴>이 <기담>과 한주 차이로 개봉하는데, 어쩌면 경쟁자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생각해본 적 없는데, 진짜! (웃음) 둘 다 잘 되면 좋지. 그런데 솔직히 <기담>이 조금만 더 잘 되면 좋겠네. (웃음) 지금 잘 되셨으니까, 이제 나도 솔직히~~. (웃음)

어쨌든 이제 결혼을 염두에 둘 나이가 됐다. 이상형은 없나?
난 이상형이 없다. 정말 어렸을 때부터. 난 그냥 모르겠다. 그냥 운명적인 만남? (웃음)

지금으로서는 뻔한 질문일지 모르지만 만약 결혼과 영화 중 하나를 택한다면?
영화지! 그럼. 결혼은 아직 아예 생각도 없어!

그러다 나중에 후회하는 사람 많다던데. (웃음)
그래도 아직은, 나중에.

어쨌든 공백기가 있었고, 이야기만 들어도 그 동안 많은 생각을 했을 것 같다. 원래 생각이 많아 보이기도 하고.
내가 한없이 긍정적이면서 한없이 부정적인 거 같다. 엄청 울고, 엄청 웃고, 딱 극과 극이다. 솔직히 그 몇 년 동안 많이 힘들었다. 나는 왜 태어났을까란 생각을 할 정도로. (웃음) 분명히 돌도 존재하는 이유가 있다고 했는데 난 이세상에 무슨 도움이 될까, 나도 태어난 이유가 있을 텐데. 이유를 못 찾겠더라. 그러다가 장기기증 신청을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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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기증을? 쉬운 결정은 아니었을텐데.
인터넷으로 찾아보니 내가 지금의 상태론 한 여섯 명까진 살릴 수 있더라. 그 때, 내 삶에 있어서 희망을 얻었다. 나도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살아갈 이유를 알겠더라. 삶에 있어서. 그래서 지금보다 더 운동해야 되고 술도 마시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왜냐면 좋은 걸 줘야 되니까. 사람이 너무 힘들어서 감정이 저 끝까지 가게 되면 좋아질 수 밖에 없다. 왜냐면 이제 더 이상 갈 때가 없으니까 무서워질 것도 없어지고, 기가 막힐 때도 있으니까. 정말 하느님, 정말 저 여기서 더 내려가는 건 진짜 저보고 죽으라는 거죠. 웃으면서 이랬던 적도 한번 있었다. 되게 심각하게. 내가 너무 힘들어서 자꾸 부정적으로 바뀌고 고민하면 해결되는 것도 없고, 내 마음이 너무 불행해지기 때문에 그럴 바엔 바보같아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자꾸 그렇게 하면 행복해지는 것 같더라. 한번은 내가 기적을 봤다. 기독교 집안이라 매일 기도하는데 난 나이 들면서 안 했었거든. 그런데 한번은 아침부터 너무 속상한 일이 있어서 기도를 했다. 최소한 이 기도가 끝나고 나면 그냥 행복하게 해달라고, 내 마음을 편안하게 해달라고, 정말 넓은 마음 갖게 해달라고, 이 기도 끝나면 그렇게 되게 해주셔야 한다고. 처음으로 그렇게 간절히 기도를 한 거 같다. 정말 내 마음이 부자가 되게, 내 마음이 아름다워지게, 꼭 그렇게 해주셔야 된다고. 그리고 기도가 끝나자마자 내 마음이 너무나 아름다워졌다. 난 그게 기적이라고 생각하거든. 항상 좋은 책 읽고, 좋은 말씀 듣고, 좋은 글귀 보고, 좋은 생각하고, 이러면 살아갈만하다. 자꾸 남들과 비교하고, 질투하고, 시기하면 자신한테 좋을 게 없더라.

혹시 본인에게 귀감이 되는 배우가 있나?
난 배종옥 씨 되게 좋아한다. 연기도 너무 좋고. 전도연 씨도 좋고. 난 계속 꾸준히 연기하시는 분들이 좋다. 정말 작품과 캐릭터에 대해서 꾸준히 고민하고 연기하시는 걸 보면 대단하단 생각이 들더라. 그런 분들이 정말 연기자지. 그래서 그 분들 보면 되게 기분 좋다. 정말 배우 같다.

대학교 시절에 연극도 했다고 들었는데, 연극 무대에 서고 싶은 생각은 없나?
그런 생각도 있다. 사실은 올해에 새로 소속사와 계약하면서 연극도 하게 해달라고 했는데 어쩌다보니 드라마랑 영화에 캐스팅되면서 바빠졌다. 아무래도 일단은 먼저 들어오는 게 있을 때 하려고 해야 하니까. (웃음) 어쨌든 좀 더 역량을 쌓아서 연극을 할 거다. 모노드라마 같은 거. 꿈이에요. 꿈.

청바지 사업도 한다던데?
작년 말부터 조금씩 생각하다가 올 초부터 준비했다. 사실 연기라는 걸 내 직업으로 생각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왜냐면 직업은 내게 밥도 먹여줘야 되고, 옷도 사 입게 해줘야 되고, 용돈도 줘야 되고, 어떤 지위도 줘야 되고, 항상 일을 해야지 직업이잖아. 안 하면 백수지. 근데 난 연기가 내 직업이라고 생각했는데, 지난 6년간 그 생각만큼 못 받쳐줬기 때문에 내가 너무나도 힘들었더라. 그 시간 동안에 연기는 나한테 직업이 아니고 하느님이 내게 주신 선물이라고 생각했다. 연기할 수 있는 기회가 선물처럼 온 것만으로 만족을 해야지, 이걸 통해서 뭘 얻고 뭘 얻겠단 건 욕심인 것 같더라. 무엇보다 못 얻었을 때, 그 아픔을 내가 견뎌낼 자신이 없더라. 그래서 직업으로서 뭔가 해야겠단 생각을 하게 된거다.

만약 연기를 안 했다면 뭘 하고 있었을까?
아니. 난 연기를 하고 있었을 거 같아! (웃음) 다른 걸 하면서도 연기는 했을 것 같아.

스스로 생각하기에 본인의 스물아홉은 어땠나?
지옥이었다. 너무 지옥이었어. 너무나도. 연기의 기회적인 면에서도 힘들었고, 사랑에도 굉장히 초짜였기 때문에. 좀 늦었었거든. (웃음)

사춘기였으니까. (웃음)
그래서 사랑 때문에도 너무 힘들었고, 지옥이었다. 사실 돌아보고 싶지 않아! (웃음)

지금은 스스로 자신이 인생에 있어서 어떤 계절을 지나고 있다고 생각하나?
음, 아마도 봄?

30대의 봄이라. (웃음)
난 봄이라고 생각하는데! 꼭 그건 써주세요. 김보경은 봄이다! 여름은 아직, 사춘기 이제 막 지났는데. (웃음)

사실 이게 제일 중요한 질문이었다. (웃음)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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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민용준
,

조안 인터뷰

interview 2008. 5. 31. 0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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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가 간다> 때 만났으면 좋았을 걸.
왜?

동갑이라 공감대가 많았을 테니까. <언니가 간다>가 과거로 돌아가는 이야기니까 할 이야기 많았을 텐데.
그렇겠다! 같은 시대를 보냈으니까.

그 때 영화를 보면서 고등학교 시절로 돌아간다는 게 부럽더라. 난 요즘 종종 그때가 좋았다는 생각 많이 하거든.
부러웠어? 오랜만에 교복 입으니까 재미있긴 했어. 그래도 내 나이대가 있는데 너무 어린 역할을 하는 건 아닐까란 생각이 들더라.

그런가? 하긴 또 생각해보면 우리 고등학교 때 듀스가 나왔던 것도 아니고.
음, 듀스가 아마 나 초등학교 때 나왔으니까. 서태지도 그렇고 그 비슷한 시기지? 솔직히 난 듀스에 대해 잘 모르는 편이었어. 그리 좋아하는 편이 아니었다고 할까.

그런데 난 서태지를 좋아했거든. 그래서 기억나는 거 같아.
난 그냥 노래만 떠라 하는 정도? 내가 유일하게 좋아했던 건 중학교 때, HOT.

하긴 중학교 고등학교 때, HOT 좋아하는 여자들 오죽 많았나. 아, 또 옛날 생각나네. 솔직히 난 남자라서 HOT를 좋아한 건 아니지만.
그렇지! 남자가 좋아할만한 애들은 아니지.

<언니가 간다> 때 당시에 좋아했던 그런 생각도 많이 났겠다. 열광적으로 좋아했어?
원래 그런데 관심 없었는데, 친구 따라 강남 간다고 친구 때문에 좋아했어. 그런데 내가 워낙 벽이 좀 있는 편이라서 팬클럽 같은 건 가입 안 했어. 그냥 혼자서 좋아했지.

어쨌든 이젠 이십 대도 꺾였고, 같이 늙어가는 처지네. (웃음)
(노려보면서) 이럴래? 흠! 그런 거 좋지 않아! (웃음)

음, 그 눈을 보니 <므이>의 마지막 장면이 다시 기억나는데, 독기 어린 눈빛.
독기 어렸어? 내가 보기엔 뭔가 부족했는데. 분장을 더 할 걸 그랬어. 귀신처럼 창백하게 한다거나, 뭔가 더 필요하지 않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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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 그 정도면 충분하던걸~! (웃음) 어쨌든 공포에 눌리는 대상에서 공포를 발산하는 대상으로 전환되잖아. 그런 눈빛을 표출하기 위해서 노력했을 것 같다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 그것도 아닌 것만..
참~노력한다. 애쓴다. 그렇게 비웃은 거 아냐? 그럼 속상한데. (웃음)

아니, 그런 건 아니고. 독한 구석이 있어 보이던데? 예전에 <여고괴담>때도 특수분장이 만만치 않아서 고생 많았는데, 그걸 꿋꿋이 잘 견뎠다는 것도 그렇고.
내가 그 특수 분장을 한 게 국내 최초였어. 그래서 여러 가지 시도도 많이 해보고 그래서 시간이 많이 걸렸지. 지금은 그 특수분장이 2시간정도면 된다고 알고 있는데 그 당시엔 8시간 넘게 걸렸거든. 정말 맨 처음엔 10시간이나 걸렸다니까! 그런데 막판에 가니까 2시간 반 걸리더라. 얼마나 배신당한 기분이던지, 속은 기분이랄까.(웃음) 그 때 정말 힘들었어. 예를 들면 그 다음 날, 8시 촬영 예정이면 그 전날 11시쯤에 미리 가서 분장을 시작했으니까. 정말 빡.셌.어. 생각해봐. 10시간 정도를 꿈쩍도 못하고 온몸에 실리콘이 줄줄 흐른다니까.

그런데도 그걸 용케 잘 참았다니.
솔직히 안 참으면 어쩔 거야? (웃음) 피하지 못하면 즐겨야지!

독한 거지. (웃음) 어쨌든 그 당시 고생은 어느 정도 보상받아서 다행이야. 그런데 <므이>도 베트남까지 몇 개월 동안 로케이션 갔다 왔고, 일단 고생스러워 보이던데 어땠어?
사실 걱정을 많이 했는데 베트남이란 나라가 생각보다 좋았어. 생각보다 밝고 괜찮은 나라였고. 사회주의 냄새가 났지만 크게 거부감은 안 들었어. 사람들도 되게 친절했고, 한국인에 대한 호감도 높아서 굉장히 좋았지. 단지 종종 한국에 대한 그리움이 커질 때가 있더라.

<여고괴담>시절의 동기들과는 연락해?
음, <여고괴담>이 끝나고 한동안은 연락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각자 일하느라 바쁘고 그러다 보니 이젠 서로 연락이 뜸하게 된 것 같네.

사실 <므이>를 보면서 <여고괴담> 생각이 많이 났거든. 왜냐면 <므이>나 <여고괴담>이나 여자들의 시기와 질투가 비극적 공포로 이어지니까. 그런데 여자들은 원래 질투가 많나?
여자들, 질투 많지. 그런데 여자들보다 남자들 질투가 더 장난 아니잖아.

그런가?
난 그렇게 생각하는데. 남자들의 질투도 만만치 않지. 여자들의 질투는 있는 만큼 드러나는 것 같아. 사람들이 누구나 알고 있잖아. 여자는 질투가 많다고. 그런데 남자들의 질투는 의외로 드러나지가 않지. 사실은 정말 많은데. 난 그래서 남자들의 질투가 장난 아니라고 생각해. 속을 알 수가 없잖아. 남자의 질투는 사람을 죽이기도 한다잖아.

예전에 비슷한 말 듣긴 했다. 여자가 한이 맺히면 오뉴월에 서리가 내리지만 남자가 한이 맺히면 살인을 저지른다고.
그래, 남자들도 얼마나 무서운데! 질투하는 게! 여자들 만만치 않아.

혹시 누구 질투해본 적 있어?
특정 대상보단 내가 못 가진 걸 가진 사람? 그런데 그건 누구나 마찬가지 아냐? 그리고 어쩌면 만약 내 남자친구가 있다면 그의 예전 여자친구들을 질투할 수도 있지 않을까? (웃음)

아~~~! 이건 개인적으로 귀가 솔깃한데. (웃음)
그럴 것 같아. 남자친구가 있는데, 그 사람이 예전에 사귄 여자친구를 기억한다는 걸 알면 기분 나쁘겠지.

연기자로서 질투 나는 사람은 없어?
그런 것도 있지! 근데 그건 질투보단 자극이라고 하는 게 맞겠다. 솔직히 나보다 나이가 많으면 괜찮은데, 또래 배우가 연기를 굉장히 잘하면 ‘열심히 해야겠구나, 내가 이럴 때가 아니구나’ 이런 걸 느끼거든.

영화를 찍는 중에도 느낀 적 없어? <므이>에서는 어땠어?
그런데 예련 씨나 나나, 둘 다 서로의 연기에 대해서 걱정이나 격려를 많이 하고 그랬거든. 질투라기보단, 슛 들어가기 전까지 계속 대사 외우고 그랬어요. 굉장히 걱정을 많이 해서. 그래서 더 안 좋게 연기가 나온 부분도 있고, 더 잘 나온 부분도 있고. 너무 연습을 많이 해서는 안되는 부분도 있었고, 연습을 많이 해서 잘 되는 부분도 있었는데 어떤 부분에 있어서는 연습을 많이 해서 좀 오히려 안 좋게 작용한 부분도 있었던 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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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현장에서 맏언니 역할을 한 건 이번이 처음 아냐? 항상 막내일 때가 많았잖아.
맞아. 굉장히 부담되더라! 내가 극을 이끌어가야 되기도 했고. 예전 같으면 누군가 기댈만한 선배 연기자 분에게 의지하면서, 코치도 받아가며 했을 텐데 그럴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는 거. 그런 부분에 있어서 걱정도 많이 했고. 과연 잘 할 수 있을까란 부담감이 굉장히 컸지. 나 기자 시사회 때, 굉장히 긴장한 거 같지 않아? 그 때 사실 속으로 나 오늘 겁나게 욕 얻어먹는 거 아냐~! 막 이랬었거든! (웃음) 굉장히 긴장 많이 했었어. 그런데 생각보다 그런 거 없더라. 다행히도. (웃음)

나도 개인적인 소견에 연기적으로 부족했다는 생각은 안 들었어.
다행이네. (웃음) 대체로 무난했다고 하더라. 욕 안 먹은 게 어디야. 휴우~ (웃음)

<므이>에서 차예련은 두려움을 만들어내고, 넌 두려움을 받는 인물이잖아. 그런데 그게 배우의 이미지와 대비적으로 어울렸던 거 같아. 그런데 만약 서로 역을 바꿨으면 어땠을까?
내가 만약에 두려움을 만드는 대상으로? 근데 솔직히 예련 씨 눈빛이, 차갑게 느껴지는 눈빛이잖아. 호러에 잘 어울리는 미스테리한 눈빛이랄까. 그래서 예련 씨는 서연 역이 확실히 어울리는 것 같은데. 모르겠어. 뒤바뀐 건 잘 상상이 안 돼.

그런가? 생각해보니 벌써 출연작만 6편째네. <므이>까지. 그런데 그 6편 중 이름을 전면에 내세운 건 처음이지?
그렇지. 이게 제일 크지. 그리고 봤으니 알겠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내가 계속 나오잖아. 정말 미치는 줄 알았다니까. (웃음) 솔직히 예전 작품들 시사회에선 맘 편안히 보다가 내가 나오면 긴장하고 또 지나가면 편하게 보고 그랬는데 이번엔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 나오니까 편하게 볼 수가 있어야지! (웃음) 왜냐면 나 나올 땐 너무 긴장되거든. 그래서 조금 스트레스 받더라. 관객 분들이 제발 좋게 봐주셔야 할 텐데.

그런데 그렇게 자기 얼굴 보면 기분이 어때? 연기가 어떻고 그런 거 말고.
연기랑 관계없이 화면으로 보는 거라면, 외모적인 걸 말하는 건가?

그니까 그냥 거울을 보는 느낌과는 다를 거 아냐. 자신의 얼굴을 화면으로 보는 느낌은 묘할 것 같은데.
그런 걸 생각할 정신이 어디 있어~!(웃음) 내가 저기서 왜 저랬지. 내가 미쳤지. 저걸 다시 한번만 찍을 수 있으면 좋겠다. 저기서 왜 저런 실수를 했을까? 이런 생각들로 정신 없이 바쁜데. 그런데 되게 웃긴 건 내가 영화 보면서 다시 해본다니까. (웃음) 대사도 다시 한번 해보고.

<므이>는 어땠어? 후회가 남아? 잘 했다 싶진 않고?
잘 했다 싶은 장면은 없고. 그냥 전체적으로 더 열심히 했으면 좋았을 텐데 싶어. 그리고 특별히 후회하는 장면을 꼽을 수도 없어. 왜냐면 전체적으로 그 당시엔 나름 열심히 했다고 생각하니까.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보면 더 열심히 할걸 그랬다는 후회가 남더라. 사실 내가 너무 아팠던 적이 있었어. 열병에 걸려서. 그런데 그때 감정씬을 찍었지. 그래서 그런 건 찍은 뒤에 후회됐어. 그 때 내가 몸 관리를 잘 해서 컨디션이 더 좋았다면 그나마 좀 더 잘했을 텐데, 이런 생각. 왜냐면 다 에너지가 필요한 장면들이 많았으니까. 근데 몸이 안 좋으면 아무리 에너지가 나오질 못하니까. 마지막쯤에 동굴 같은 컴컴한 곳 들어가는 장면 있잖아. 사실 내가 무지 아팠을 때 찍은 거야. 정말 가만히 있는데 몸에서 식은땀 나고, 그래서 얼굴에 땀 분장할 필요 없었지. 계속 땀 흘릴 정도로 되게 몸이 아팠거든. 그런 장면들도 좀 더 내가 몸이 안 아팠다면 더 잘 할 수 있었을 텐데 싶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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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지에서 아프면 서럽다던데.
서러워. 그 때 눈물 좀 나더라. 그런데 누가 예전에 그랬어. 연기자는 아픈 것도 죄라고. 그런데 정말 맞는 말이라고 생각해. 내가 몸 관리 못하고 아파서 연기 못하면 그것도 자신에게 충실하지 못한 거니까. 아프면 아무래도 기력이 떨어지고 집중력이 떨어져서 연기력 자체도 떨어지게 되니까. 그러다 보면 작품도 전체적으로 떨어지고. 그래서 항상 컨디션 조절하는 게 연기자로서 굉장히 중요하다고 믿어왔고, 베트남에서도 그러겠다고 자신했는데 그 땐 한국오기 얼마 전이었거든. 긴장을 좀 놨었나 봐. 그래서 그렇게 아팠던 거 같아.

그 전에 너무 많이 했을지도 모르지. 처음으로 공포를 느끼는 연기를 한 것도 쉽진 않았을 거 같은데. 게다가 현장은 즐겁잖아. 그런 가운데 공포를 느끼라니 아이러니하지 않아?
진짜 방금 말한 것처럼 공포영화 촬영 현장은 되게 재미있어. 그리고 솔직히 촬영할 때도 좀 그래. 알고 있겠지만 아무것도 없어. 알지? 무슨 말 하는지? (웃음) 카메라만 있고 주변에 아무것도 없는데 혼자서 막 미친듯이 소리지르고, 알지? 그 상황? 그런 게 어쩌면 뻘쭘할 수도 있는데, 막상 닥치면 또 안 그래. 있다고 생각하면 있는 것 같아.

그게 바로 차예련 씨가 칭찬하던 순간 몰입 모드?
근데 나도 (기자 간담회 때) 말했지만 예련 씨야 말로 순간 몰입이 대단한 배우야. 솔직히 난 내가 그렇다고 생각해 본적 없는데, 예련 씨는 그렇게 봤나 봐. 그리고 의외로 그렇게 봐주는 분들이 하더라. 예전에 <홀리데이>때도 영화사 대표님께서도 비슷한 말 하셨거든.

권영탕 사진기자: 나도 감동했어요. 난 울었어. 그 장면에서.
고마워요. 기분 급 좋아지는 걸! 넌 좀 배워야겠다. 사회 생활 하는 방법을~ (웃음)

나도 감명 깊게 봤어~~. 늦었나? (웃음) 근데 예련 씨는 선의의 경쟁을 했다고 하던데.
예련 씨와의 선의의 경쟁은 할 수밖에 없었어. 예련 씨도 잘하고 나도 잘 하면 좋은 거라고 둘이 서로 생각했으니까. 왜냐면 그게 영화가 잘되는 길이잖아. 둘 다 잘하는 게 좋은 거지. 그래서 경쟁 아닌 경쟁을 했어.

아까 말했던 것처럼 비슷한 나이라 그랬던 부분도 있었을 것 같은데?
당연히 또래니까 그랬을 수도 있지. 어느 한쪽의 나이가 월등히 많거나 월등히 적으면 솔직히 그런 건 좀 덜했을 텐데. 선배님이거나 어리니까. 근데 또래이다 보니까 약간은 그런 게 있었던 거 같아. 또랜데 내가 연기를 상대적으로 못하면 좀 그렇잖아. 가끔씩 서로 ‘너무 잘 하는 거 아냐?’ 이러면서 몇 마디 주고 받기도 했는데, 마치 시험공부 해놓고 시험공부 안 했다고 그러는 것과 비슷한 거랄까. 물론 서로 가식적으로 군 건 아니지. 정말 선의의 경쟁을 하자. 윈-윈 했으면 좋겠다. 이렇게 서로 이야기까지 한 적도 있었어. 사실 내가 언니역할을 많이 못 해줬어. 나랑 이야기해보니 되게 밝은 편이라고 생각되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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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생각해. 아닌가?
나도 그렇다고 생각해. 같이 있으면. 그런데 떨어져 있으면, 예를 들면 난 집에 한번 틀어박히면 안 나와. 한번도. 그런데 예련 씨는 촬영 끝나고 나랑 같이 밥도 먹고, 얘기하고, 놀고 싶어했는데 내가 못 해줬거든. 난 촬영 끝나면 숙소 들어가서 좀 자고, 생각하고 그랬거든. 뭔가 혼자 있는 걸 되게 좋아해서.

의외네. 혼자 있는 걸 좋아하나 봐?
혼자 있는 걸 굉장히 좋아해. 안 그래 보여? (웃음)

어울리는 걸 좋아할 줄 알았어. 이렇게 발랄한 사람이 그런 줄 누가 알겠어! (웃음)
누군가와 같이 어울릴 때는 발랄해. 그런데 집에 한번 들어가면 안 나오니까. (웃음)

혼자만의 시간을 특별히 좋아하는 편인가 봐.
응. 좋아해. 그래서 친구들이 내 별명을 해녀라고 지어줬지.

해녀? 아~, 잠수타면 안 나온다고~? (웃음)
맞아! 그 뜻을 바로 파악하는구나! 모르는 사람도 많은데. 예리한 걸! (웃음)

집에 금송아지라도 있는 거 아냐? (웃음)
그게 아니라, 어렸을 때부터 혼자 생각하고, 혼자만의 시간을 굉장히 좋아했거든. 근데 그것이 버릇이 된 거지. 친구들이랑 같이 있는 것도 너무 좋아. 그런데 집에 혼자 있는 것도 너무 좋은 거야. 그리고 촬영할 때, 밖에 많이 있잖아. 계속.

하긴 계속 누군가와 부딪히면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싶을 때가 있어. 이해해. 그 마음. 그런데 어쩌다 이 바닥에 들어온 거야?
이 바닥이라니. (웃음) 사실 그건 수없이 이야기해서 들어도 재미없을걸. (웃음) 그건 너무 많이 얘기해서 이제 이빨에 땀날 거 같아. (웃음)

내가 궁금한 건 우연인지 필연인지. 연극영화과까지 진학했던 건 분명 뜻이 있었던 거니까. 필연 같긴 한데, 그 전에 사연이 있을 법도 하고.
그러니까 내가 대학 가기 전에 데뷔했거든. 그래서 내가 연극영화과를 들어간 거야. 맨 처음에 연기를 해보니까 이게 내 천직이구나, 라고 느껴서 이 쪽 길을 택했지. 사실 내가 그 전까진 만화가가 꿈이었거든.

그래서 기자 간담회 때 만화에 관련한 질문이 나왔었구나.
맞아. 그 분은 나에 대해 조사를 많이 했던 거지. 조사가 부족하시네! 나 한방 먹인 건가? (웃음)

윽, 이거 이러시면 이제 막 하자는 거지요? (웃음)
농담이야~. 진짜 농담인 거 알지? 설마 삐진 거 아냐? (웃음)

그건 아니고. (웃음) 사실 나도 만화를 꽤 좋아하는데 반갑네. 난 우리 누나 영향으로 어릴 때 순정만화보다 만화에 빠졌거든.
진~짜! 남자가! (웃음) 그런데 의외로 순정만화 좋아하는 남자 꽤 있더라! 순정만화보고 막 울고 그래, 남자들이! 의외로, 정말!

누나 있는 애들이 좀 그럴 수도 있어. (웃음)
하긴 내 동생도 어렸을 때 내가 여장시켰어. 머리 묶어서 핀 꽂아주고. (웃음) 지금도 가끔 꼬드겨서 화장해주고 그래. 궁금해서.

그나마 난 그런 누나까진 안 만나서 다행이네. (웃음) 아무튼 어릴 때 순정만화 잡지 같은 거 많이 봤어. 지금도 기억나는데, ‘나나’였나? 그리고 ‘빅토리 비키’란 만화도 기억나.
나랑 동갑이라 역시 그런 거 다 아는구나. (웃음) 나도 그거 되게 좋아했는데. 그럼 그것도 봤어? ‘인어공주를 위하여’

아, 기억나.
어머, 그럼 ‘은비가 내리는 나라’는?

아, 그것도 알지. 꽤 많이 봤어. 웬만한 건 거의 다 안다니까. (웃음)
가만히 보니 그런 거 좋아하게 생겼어. 예쁘장하게 생긴 편이거든.

설마! 말도 안 돼. 나 빌려줄 돈 없네요~.
진짜인데. 그런 얘기 안 들었어? 들었을 법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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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나랑 닮았단 이야길 종종 듣긴 하는데.
그게 뭐야! (웃음) 어쨌든 사실 난 어렸을 때 순정 만화를 좋아했는데, 초등학교나 중학교 땐 호러, 스릴러, 추리에 빠졌어. 내가 ‘셜록 홈즈’나 ‘괴도 루팡’ 시리즈를 읽으면서 추리에 빠졌고, 에드거 앨런 포우의 ‘검은 고양이’ 보면서 호러에 빠졌거든. 그래서 지금도 일본 공포 만화 같은 건 정말 좋아해. 사실 나 오늘 한 시간밖에 못 잤는데 그게 어제 밤 9시부터 새벽 4시 반까지 공포 만화 읽다가 잠을 못 잤거든.

어쩐지 꽤나 피곤해 보이더라. 대체 뭘 읽었길래?
이번에 새로 나온 건데 작가 이름은 잘 모르겠어. 그냥 일상에서 일어나는 괴담을 다룬 거야. 예를 들면 당신 몸에 점이 하나 있는데 어느 날 이게 점점 커지는 거야. 그리고 그에 대한 공포를 그린 거지. 결국 그 여자가 나중에 죽는데 마지막 멘트가 ‘혹시 요즘 당신 몸에 점이 점점 커지고 있지 않나요?’ 이거야. 그럼 점 한번 보게 돼. 커졌나? 이러면서. (웃음) 그런 재미가 있어.

혹시 이토 준지 만화도 좋아하나?
그럼. 이토 준지 만화 좋아하지. 단편 콜렉션도 다 봤어. 한번 두번 본 것도 아니고, 몇번씩 봤는 걸. 적어도 한 권당 세 번은 넘게 본거 같은데.

난 궁금해서 한번씩은 봤는데 다시 보고 싶진 않더라. 그 정도면 완전 매니아 수준인데. 그럼 만화를 그렸다면 그런 만화를 그렸겠네.
아니, 내가 그리고 싶은 건 ‘광수 생각’ 같은 거야. 귀여운 캐릭터를 이용해서 내 생각을 간단히 적을 수 있는 식의 카툰을 해보고 싶어. 독자들과 같이 생각을 공유하고 교감할 수 있는. ‘이런 건 그렇지 않을까?’ 라고 의문점을 집어 던지고, 독자들은 그걸 가지고 생각하고. 즐거운 작업이잖아.

사실 내 주변에도 그런 카툰을 그리는 사람이 있어서 가끔은 해보고 싶을 때가 있어.
재미있겠지. 그런데 내 그림이 아직 중, 고등학교 실력에 멈춰서 제대로 배워야지. 그래도 어릴 때 소질 있단 이야기 듣기도 했는데. 나중에 제대로 배워서 해보고 싶어.

배우가 아닌 만화가가 됐을지도 모를 일이었네. 그런데 우리 지금 삼천포로 빠진 지 오래된 거 같은데. (웃음)
괜찮아~. (웃음)

다시 영화로 돌아오자. 어쨌든 지금까지 출연 작품들은 다 개봉했네. 6편 모두. 그리고 결과적으론 주인공까지 맡게 됐고. 옛날과 달라진 것 같지 않아?
일단 그 부분에 대해서 감사하게 생각하지. 왜냐면 특히나 요즘 같이 영화계가 힘든데 난 2007년 올 해 들어서, 세 편이 개봉되는 거거든. <언니가 간다>랑 <므이>, 그리고 지금 찍고 있는 <어린 왕자>도 11월 개봉 예정이니까 그것까지 합하면. 요즘 영화판이 너무 힘들어서 배역이 잘 안 들어온다고 다들 그러시는데 난 지금 찍고 있는 <어린 왕자> 외에도 시나리오도 들어오고 있고. 감사할 일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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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단편영화도 찍고 있다며?
유지태 오빠가 감독님이고, 내가 배우로. 되게 즐거워. 되게 멋진 감독님이야. 사실 유지태 오빠가 배우잖아. 그래서 감독님이지만 배우의 입장을 잘 아니까 말이 잘 통해. 그래서 촬영 작업이 재미있고, 솔직히 연기하는 것 같지 않은 마음으로 연기해. 왜냐면 카메라 앞에서 나한테 말을 거시기 때문에 재미있어. 나한테 오빠가 같이 촬영하자고 했을 때도, 현장에서 놀자고 했기 때문에 놀러 갔어. 현장에 처음 갔을 때부터, 오늘부터 배우든 스텝이든 다 같이 놀기 시작하는 거라면서 이거 즐겁자고 하는 거라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다들 너무 즐겁게 작업하는 거 같아.

드라마도 종종 출연했는데 혹시 탤런트나 영화배우 중 더 듣고 싶은 건 뭐야?
그런 건 없고 그냥 다 좋아. 작업하는 거에 따라 장단점이 있는 거지. 사실 영화냐, 드라마냐가 아니라 작품에 따라서, 내 연기에 따라서 만족이 좌우되는 것 같아. 영화는 그걸 내가 극장에서 커다란 스크린으로 보는 재미가 있어. 매력 있지. 생각해봐. 내 얼굴이 어마어마하게 큰 스크린에 걸려서 나오면 그걸 관객들이랑 같이 보잖아. 가수들은 무대 위에서 그걸 직접 느끼잖아. 근데 난 연기자니까 관객들이나 시청자들이 내 연기를 보는 걸 못 보거든. 그래서 보통 개봉할 때, 모자 푹 눌러쓰고 분장을 해서 극장가! 그래서 한 구석에 앉아서 반응을 지켜봐. 이걸 어떻게 보는지 곰곰이 들어. 이렇게 귀를 쫑긋 세우고. (웃음) 그리고 엔딩 크레딧 올라갈 때, 사람들 나가는 것까지 지켜보면서 나가면서 뭘 말하는지 봐. 그런 재미가 있는 거 같아. 왜냐면 영화를 어떻게 봤을까, 이런 것들을 현장에서 직접적으로 볼 수 있으니까. 그런 재미가 있고. 그런데 영화는 한꺼번에 보게 되니까 후회될 때가 많은데, 드라마는 시리즈 별로 나가서 한 회 나가고 시청자들 반응을 보거나 내가 직접 화면을 보면서, ‘여기서 이건 아니구나.’하면서 잡아갈 수 있지. 캐릭터에 대해서. 왜냐면 그게 방송이 나가면서 계속 찍는 거니까. 그런데 영화는 그게 안되잖아. 물론 현장에서 모니터를 하긴 하지만 그게 나중에 완성돼서 다 붙여놓은 거랑은 또 다르거든.

그렇지. 순서대로 찍는 게 아니니까.
그러다 보니 후회해도 이미 늦게 되지. 그런데 드라마는 그렇게 고쳐나갈 수 있고. 그래서 마지막에 가서는 처음보다 좋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고. 그런 차이가 있는 거 같아.

그런 면에서 보면 드라마가 영화보다 좀 더 유리한 거 같아. 드라마는 확실히 만회할 기회가 많으니까.
그렇지! 그리고 시청자 분들한테 감사한 게, 좋은 건 그래도 좀 기억해주시는 편이거든. 나중에 후반 가서 잘 하면, ‘초반엔 그냥 적응 못해서 그랬는데, 후반 갈수록 괜찮구나.’ 이렇게 좋게 평가해주시는 거 같아. 특별히 날 싫어하시는 분 아니라면. 그런데 영화는 그럴 수가 없잖아. 딱 결과물만 나오니까. 그런 부분에 있어서 걱정이 많지. 그래서 더 순간적으로 몰입하게 되는 건지도 모르겠지만.

그럼 어쨌든 관객들이 많이 봐줄수록 좋겠네.
(불쌍한 눈빛으로) 정말 그래요. 진정으로~ (웃음)

스스로가 어떤 배우이길 원해?
가끔 내가 연기를 너무나 사랑해서 시작했는데, 자꾸 초심을 잃는 것 같다고 느껴질 때가 있어. 내가 이 일을 얼마나 사랑해서 시작했는지 잊어버리는 것 같을 때, 어느 새 내게 일이 돼버린 것 같을 때. 정신이 번쩍 나. ‘내가 미쳤나? 왜 이러지. 이게 아닌데. 나는 이 일이 너무 좋아서 시작한 건데, 이걸 그냥 단지 직업으로 생각하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 때. 이거 아니지. 이러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해. 내가 정말 초심을 잃지 않는 배우가 됐으면 해. 그런 배우가 된다면, 언젠간 관객 분들이나 시청자 분들이 정말 그렇게 알아봐주실 거라 생각해. 어느 분야에 있어서든지 초심을 잃지 않는 게 제일 중요하고, 제일 힘든 거라고 생각하는데, 난 초심을 잃지 않는 배우가 됐으면 좋겠어.

지금이라도 만화에 다시 한번 도전한다면..
그건 진짜 취미지! 정말 이러기야? (웃음)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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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민용준
,

진구 인터뷰

interview 2008. 5. 31. 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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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 많이 피는 것 같다.
담배를 피면 긴장이 좀 덜 되는 것 같아서, 그래서 보통 일할 땐 하루에 한 갑 반 정도 피는데 그냥 집에서 쉬는 날엔 이틀에 한 갑 정도 핀다. 아무래도 일하는 시간에 많이 피는 편이지. 대신 술을 끊었다.

술도 많이 마시는 편인가 보다.
거의 매일 마셨다. 그런데 요즘은 웬만하면 안 마시려고 하지.

난 담배를 끊었는데. (웃음) 의외로 긴장하는 편인가 보다. 사실 별로 그럴 것 같지 않은데. 긴장되니 인터뷰보다 사진을 먼저 찍자는 이야기에 의외라고 생각했다.
사진에 긴장하는 편이다. 인터뷰는 그냥 있는 대로 얘기하면 되는 거고, 그러다가 얘기가 잘 되면 재미있게 덧붙이면 되는 거라서 부담은 전혀 없다. 오히려 말하는 건 즐겨 하는 편이니까. 그런데 사진은 가끔 가다 막힐 때가 있더라. 가끔 가다 안 맞는 사진작가랑 만나게 되면 그렇다. 보통 찍으면서 ‘오케이! 좋습니다. 하나 더! 오케이! 하나 둘, 하나 둘!’ 이런 식으로 술술 진행되면 나도 덩달아 업 되는데, 첫 장 딱 찍고서, ‘음, 이거 아닌데~’ 이러면 더 안 나오는 거다. 솔직히 기분이 살짝 상하는 탓도 있고. (웃음)

그럼 우리 사진 기자는 편했을 것 같은데.
아, 최고! 근데 너무 빨리 끝낸 거 같은데. (웃음)

일단 믿어보시라. (웃음) 종종 스크린으로 웃는 얼굴 뒤에 쓸쓸한 무표정이 교차하는 걸 발견한다.
음, 그건 만든다고 나오는 건 아닌 것 같다. 만약 연기로 그런 게 나왔다면 자신감 만땅이겠지! (웃음) 근데 연기가 아니니까. 나도 모르게 그런 게 나오는 거 같다. 그리고 날 캐스팅하신 감독님들은 그런 면을 좋아해주신 것 같고. 어쩌면 나한텐 유일한 장점이지 싶다.

제2의 이병헌이다, 리틀 이병헌이다. 이런 말 듣게 되는 것도 그런 표정 덕분이 아닐까? 이런 말 듣게 되면 어떤가?
처음 들었을 때도 그랬지만 전혀 나쁘지 않다. 이걸 빨리 빼내야겠단 생각도 없고. 만약에 오늘 아침에 그런 기사가 그렇게 났다고 해도, 전혀 기분이 상할 것 같진 않다. 이병헌 선배는 알다시피 워낙 연기 잘 하는 배우잖아. 사실 데뷔 초기에는 롤모델로 삼았을 정도로 너무 존경하는 선배님이다. 그러니 제2의 이병헌이다, 이런 말은 내게 칭찬이었다. 결국 제2의 이병헌은 방해가 되는 것 같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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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긍정적인 효과로 받아들이는 것 같다. 지금도 그가 롤모델인가?
물론 지금은 연기자로서 롤모델이 없다. 한편으론 이젠 선배님을 언젠간 올라서야지, 라는 생각이 있긴 한데. 물론 그건 존경의 의미다.

<비열한 거리>의 종수가 진구란 배우를 사람들에게 많이 인식시킨 거 같다.
사실 <비열한 거리>가 진구란 이름을 알릴 수 있는 대표작이 될만한 작품이 되리라곤 꿈에도 생각 못했다. 그냥 마지막에 주인공을 죽인다는 그 포인트 하나만 잘 잡아서 연기를 잘 하는 조 단역으로 일단 어필하자는 생각으로 했을 뿐인데. 감독님께서 원하시는 게 많아서 이전 작품들에 비해 공부도 많이 했고, 현장에서 감독님의 디렉팅을 처음으로 받아본 작품이다. 그 전에는 감독님들이 굉장히 어려웠고 무서워했기 때문에 감히 ‘감독님, 저는 이 장면 이렇게 생각하는데, 감독님은 어떠세요?’ 이런 말을 못했다. 감독님들과 대화하는 방법을 몰랐던 거지.

그런데 어떻게 디렉팅을 받은 건가?
유하 감독님께서 오히려 먼저 나한테 오셔서, ‘진구야, 여기서는 이렇게 하는 게 어떠냐?’ 그러시더라. 물론 아마 답답해서 그러셨을 거다. 워낙 못하니까. (웃음) 그러다가 나도 점점 말문이 트이기 시작해서 나중엔 ‘저는 이렇게 생각해서 이렇게 했는데 어떠십니까?’ 이렇게 되묻기도 했다. 그리고 ‘그래, 그럼 그게 맞는 거 같다. 그렇게 가자!’, 이렇게 서로 의견을 잘 조합하다 보니 아마 내 연기가 튀지도 않고 영화 속에 잘 묻어난 거 같다. 그리고 그걸 보고 사람들은 연기를 잘 했다고 하더라. 사실 감독님께서 정말 날 살려주신 거지.

그런데 <달콤한 인생><비열한 거리><사랑따윈 필요없어>에서 연속으로 건달 이미지를 맡았는데 풍기는 느낌은 제 각각이더라.
그것도 다 감독님들께서 잘 잡아주셔서 그런 거다. 정말.

그래도 본인이 각각의 캐릭터를 찾아가는 방식은 있을 것 아닌가?
영화마다 틀리지. 작품마다. 그리고 상대 배우마다 틀리고. 상대 배우가 누가 되느냐에 따라서 많이 틀려지는 것 같다. 어떻게 보면 배우들을 잘 만난 운도 있는 것 같고. 확실히.

<기담>은 어땠나?
<기담>도 전적으로 감독님들의 디렉팅에 의해서 나온 연기라고 생각한다. 내가 잡아간 건 한 30%정도라면 동료 배우들과의 호흡이 20%였고, 감독님께서 가르쳐 주시거나 숙제처럼 준 그런 것들이 50%, 절반 이상?

사실 먹물 묻은 캐릭터는 처음이다.
먹물 묻었다는 게 어떤 의미지?

의대 실습생이잖아.
아, 좀 지적인 거? 사실 전혀 지적이지 않은데! (웃음)

음, 아직 <기담>이 공개되지 않은 상태라 잘 모르지만-이 인터뷰는 <기담>의 기자시사 전에 진행됐다.- 쨌든 외면적으론 그렇잖나. 생각해보면 공포라는 장르도 처음이고, 시대극 자체도 처음이고.
다행인지 불행인지, 사실 지금까지 했던 거와 거의 비슷하다. 하지만 일단 의대 실습생이라니까 ‘아, 쟤 공부 좀 했나 보다.’ 이렇게 막연히 느끼나 보다. 그리고 시대극이지만 특별히 어미가 두드러진 조선 시대 식의 대사를 한 것도 아니다. 시대극을 하며 배우로서 준비한 게 있느냐는 질문을 많이 하는데 그런 준비는 거의 분장팀하고 의상팀, 미술팀만 많이 했던 거 같고, 배우들은 그냥 연기만 했던 거 같다. 유약하고 섬세한 의대실습생이 시체실에서 당번을 서다가 시체와 사랑에 빠진다는 이야기는 시대가 2007년으로 옮겨졌다고 해도 난 분명 <기담>하고 똑같이 연기를 할 것 같다. 복장이나 환경만 틀릴 뿐이지. 그래서 별로 다를 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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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극이라는 점에 대해 특별히 인지할 필요는 없었다는 말인가?
어차피 사랑 감정은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으니까. 때리면 아픈 건 어느 시대나 마찬가지인 것처럼.

사랑에 빠지는 연기도 처음이다.
음, 그렇지! 그 동안 TV 단막극에서조차 사랑이 없었으니까. 가족간의 사랑이나 그런 것 밖에 없었지. 처음이네. 사실 듣고 보니 이제 알았다.

그런데 첫사랑이 좀 특이하다. 상대가 시체라니. (웃음) 감정을 끌어내는 건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쉽지 않더라. 그런데 시체가 하도 예뻐서. (웃음) 시체에 하얀 천을 덮어놓은 씬에서도 진짜 배우가 들어갔다. 솔직히 실제 사람이 들어갈 필요 없이 마네킹을 써도 괜찮을 것 같은데, 늘 내 앞에 눕혀놓았다. 아무래도 감독님이 내 연기를 끌어내는데 도움을 주려고 한 것 같다. 그리고 대본 중에 ‘마치 여고생 시체는 마치 살아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라는 지문도 있어서 그에 충실 하려고 했을지도 모르지. 어쨌든 살아있는 사람 같은, 그것도 예쁜 시체를 봐서인지 그렇게 어렵진 않았던 거 같다. (웃음)

시체이니 말도 없고, 표정도 없었을 텐데. 그런 상대를 앞에 두고 연기하는 건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처음부터 끝날 때까지 대사도 표정도 없는 시체가 내 연기 상대이다 보니 혼자서 연기를 끌어가야 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그런 연기적 고민을 함께 공유할 사람이 없었다. 선배님들과 함께 하는 장면은 거의 없었으니까 내 씬은 혼자 끌어가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상대 연기자가 없다 보니 연기에 대한 고민을 직접적으로 나눌 사람도 없었다. 그게 어려웠던 거 같다. 한편으론 외로웠던 것도 같고. 아무래도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조금 있었던 거 같다. 그래서 사실 숙소에서 혼자 술도 많이 먹었다. (웃음)

촬영이 디테일하게 이뤄졌다고 들었다. 그러다 보니 일정이 지연되는 상황도 많았고, 그런 부분에서 느껴지는 어려움은 없었나?
촬영이 지연되고 일정이 늦어진 건 어쩔 수가 없었던 일이라고 말씀 드리고 싶다. 촬영 분의 대부분이 안성병원세트였는데, 그 세트에 문제가 약간 있었다. 미술 감독님께서 미장센에 신경을 많이 쓰셔서 상당히 디테일하게 만들었는데, 막상 영화 촬영에 용이하지 못했다. 조명을 달아야 하는데 조명 설치가 어려운 복도가 있었고, 응급 침대를 이동하는 데도 벽에 걸려서 커브가 안 되는 곳도 있었고. 그래서 세트 공사를 다시 해야 했다. 물론 나를 비롯한 배우들보단 스텝들이 불편한 문제였다.

듣는 바에 의하면 한 씬을 세 버전으로 찍기도 했다는데.
똑같은 장면인데 카메라를 이렇게 들어가보고, 저렇게 들어가보면서 여러 각도에서 찍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어떤 장면은 2컷 찍는데 24시간 넘게 걸릴 때도 있었다. 솔직히 기다림에 대한 고통도 약간 있었지. 하지만 결과적으로 영화의 완성도를 위한 배려였으니 참고 견디는 것도 당연한 일이라 생각했다.

아버지께서 오래 전부터 영화계에서 활동하신 진영호 촬영감독님이라고 들었다. 영화배우가 된 건 아버지의 영향도 있었을 것 같다. 그것이 직접적인 유전이던 간접적인 영향이든.
여러 가지가 있다. 아버지의 피 때문인지, 어렸을 때부터 남들 앞에서 뭔가를 보여주고 박수 받고 싶단 생각을 많이 했다.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배우나 가수, 하다 못해 백댄서라도 좋으니까 남들 앞에서 뭔가를 보여 주고 싶은 게 내 꿈이었고 장래희망이었다. 결정적으로 군대에서 ‘나가서 뭘 하면 남들보다 나을 수 있을까.’란 생각을 차차 하게 됐다. 그러면서 하나씩 잘라가게 됐지. ‘가수? 그렇게 잘 할 거 같진 않아.’ 이런 식으로 하나씩 잘라가다 보니까 결국에 배우가 하나 남더라. 물론 배우를 만만하게 봐서가 아니라 나랑 가장 잘 맞을 거라고 혼자 생각을 했던 거지. 아버지께서 처음엔 반대가 심하셨다. 현장을 많이 겪어보신 분이시니까. 너 같은 애는 배우로서 성공 못한다고 적극적으로 반대하시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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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께선 상당히 회의적이셨나 보다.
그래서 <올인>을 몰래 했다. 근데 <올인> 촬영 감독님께서 아버지의 아주 아래 후배였던 거다. 결국엔 그래서 걸렸는데 나름대로 그 촬영 감독님께서 전화 통화로 아버지께서 내가 열심히 한다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한시름 놓으셨던 거지. 그런데 <올인>이 방영되기 전에 사람들의 반응이 나오지 않은 당시에도 나한테 항상 ‘다른 길도 생각해봐라. 만약 네가 방송 나왔는데 사람들이 널 별로 안 좋아할 수도 있고, 아니면 네가 한계를 느낄 수도 있으니까 다른 길도 생각해보거라.’라고 말씀하셨다.

본인도 그런 말에 고민 좀 하지 않았을까? 한편으론 경력자의 조언일 수도 있었을 텐데.
그런데 난 전혀 그런 생각 안 했다. 사람들이 안 좋아하면 좋아할 때까지 하면 되고, 내가 연기를 못 했으면 다음에 잘 하면 되는 거니까. 아버지는 촬영을 했던 스텝이고, 난 배우이기 때문에 영화를 사랑하는 마인드는 같지만 아무래도 분야적인 시각이 틀리다.

그럼 이제 배우로서 자리잡아가고 있는 아들에게 아버지께서 조언해주시는 건 없나?
물론 지금은 예전같이 반대는 하지 않지. 그렇다고 연기에 대해서 터치하시는 것도 없다. 다만 내가 점점 비중이 커진 역할을 맡으니까 거만해지거나 뻔뻔해지지 말라고 이야기해주신다. 인사성이나 스텝들한테 어떻게 하라는 인간적인 부분에 대한 조언을 많이 해주시지. 내가 잠시 놓칠 수 있는 인간적인 것들이나 내적인 걸 많이 잡아주신다. 스텝들은 이런 배우 좋아한다는, 그런 거. 그리고 나도 아직 현장에서 막내니까 막내 스텝들 챙기라는 말도, 그리고 그런 말씀은 나도 충분히 맞는다고 공감하니까 새겨 듣는다.

아버지와 이야기를 많이 나누나 보다. 살가운 사이 같은데.
전혀. 사실 세상에서 2번째로 사랑하는 사람이 아버지라면, 제일 싫어하는 사람도 아버지다.
어렸을 때 사연이 좀 있어서.

음, 아픈 부분은 건드리지 않겠다. 아버지께서 유하 감독의 <바람 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나가라>의 촬영감독이라고 알고 있다. 세대를 이어서 유하 감독하고 인연을 맺은 셈인데, 어쩌면 <말죽거리 잔혹사> 때 기회를 얻을 수 있었을 것 같다.
사실 그 때, <말죽거리 잔혹사> 오디션에 갔었다. <올 인>이 ‘빵!’ 터지고 나서. (웃음) 그때는 정말 멋모를 때였지. 배우로서 데뷔를 한다는 게 정말 쉬운 일이라고 생각했던, 머릿속에 똥만 가득 찼을 때. (웃음) 사실 거만은 몰랐다. 어떻게 하는 게 거만한 건지 몰랐으니까. 그러나 캐스팅이란 게 굉장히 쉽구나, 라고 착각했던 거 같다. 사실 <말죽거리 잔혹사>는 김인권 선배가 했던 찍새 역할로 갔는데, 감독님과 PD님이 보시더니 이정진 씨가 맡았던 우식이 시키자고 하더라. 그래서 나는 또 그렇게 캐스팅된 건 줄 알았지. <올인>때도 그렇게 됐으니까. 그런데 투자자들한테 신뢰가 없으니까 결국엔 떨어졌다. 그러다가 <낭만자객>을 하게 됐고, <논스톱>도 했고. <낭만자객>을 하면서 조금씩 배우게 됐지. 나한테는 굉장히 의미 있는 작품이다.

첫 현장 체험이었을 테니까. 그런데 <기담>을 선택하게 된 계기는 뭔가?
난 공포영화를 안 좋아한다. 너무 사람 놀래 키려 하는 게 장난치는 거 같아서. 오히려 그럼 오기로라도 더 안 놀래고 겁 안 먹거든. 개인적으로 공포영화를 무서워하지 않기 때문에 안 보는 것도 있다. 공포영화를 잘 만드시는 감독님들이나 배우 분들에겐 죄송한 이야기지만 난 그래서 개인적으로 공포영화를 아주 싫어한다. 그래서 <기담> 시나리오에서 그런 냄새가 났다면 난 결단코 누가 시켜도 안 했을 거다. 아무리 많은 돈을 줘도, 아니면 주인공 원 톱을 시켜줘도. 그런데 난 공포보단 멜로를 느꼈다. 그리고 이동규 선배나 김태우 선배, 김보경 선배랑 같이 할 수 있는 작품이라서 또 끌렸다. 주인공의 부담이 많이 덜어지니까. 확실히 뭔가 배울 수 있겠다는 확신이 섰다. 결국 정말 많이 배웠다. 감독님 두 분도 이제 입봉하시는 분들이라지만 내가 봤을 땐, 손꼽히는 프로라고 생각한다. 그 분들한테도 굉장히 많은 걸 배웠고. 육체적으로 참는 건 <비열한 거리>를 하면서 배웠지만, 정신적으로 참는 건 <기담>을 통해서 배웠다. 그리고 장르의 모호함, 겉으로 보면 공포지만 그 안에 뭔가 숨겨진 탄탄한 드라마 때문에도 하게 됐다.

공포 영화를 싫어한다고 했지만 재미있게 본 공포 영화도 있지 않나?
아주 어렸을 때 본 것들은 재미있었다. 최근에는 <쏘우>가 기억에 남는데 스릴러적인 측면이 좋았다. 잔인한 슬래셔는 좋아하는 편이 아니라서. 요즘 스릴러 영화에는 잘리거나 내장 나오는 건 꼭 나오는 것 같더라.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보게 된다. 또 머리 풀어헤치고 이런 귀신 나오는 것도 너무 싫다. 좀 지겹다.

그럼 특별히 좋아하거나 애착이 가는 장르가 있나?
공포를 제외한 대부분의 장르는 모두 좋아한다! 생각해보니 공포를 싫어하는 건 아니고, 안 좋아하는 거네. 다시 번복한다. 안 좋아하는 거다. 싫어하는 건 아니고.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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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담>은 공포영화지만 예상 밖의 무언가가 있을 것만 같다. 어쩌면 진구 씨의 역할이 그런 예상 밖의 무언가를 끌어내는 역할이 아닐까 싶다. <비열한 거리>에서처럼.
이제 그게 역이지. 원래는 안 그런데 그걸 기대했다가 또 뒤통수 맞게 되는. (웃음) 그러니까 감독님께서 처음에 주문하셨던 게, ‘지금까지 진구가 맡았던 역할들은 뭔가를 감추다가 나중에 뻥 터트리는 건데, <기담>에서는 끝까지 감춰라’ 였다. 겁이 많고, 소심하고, 유약하기 때문에 가슴에 있는 분노도 밖으로 못 나오고, 슬픔도 밖으로 나와서는 안됐다.

그럼 상당히 절제된 연기를 많이 했을 것 같은데.
평생 비밀을 안아야 하는 캐릭터다. 나의 내레이션을 통해서 영화가 시작되고 마무리된다.

영화의 시작과 마지막을 장식하는 인물이라는 소리인데.
그렇게 큰 건 줄 전혀 몰랐다. (웃음) 시나리오 받을 때도.

시나리오도 쉽진 않았을 것 같은데.
난 그냥 대충의 이해는 했었다. ‘아, 이거 반전이 있구나. 재미있다.’ 이정도 생각으로 어려울 거란 예상은 못했지. 그리고 감독님들과 이야기할 때도 신뢰가 생겨서 믿고 갔지. 그런데 막상 찍어보니까 어렵더라. 얕봤던 거지.

지금까지 스스로를 누르는 연기를 많이 했다. <아이스케키>에서도 아버지에 대한 감정을 숨긴 채, 그것이 분노인지 연민인지 모를 속마음을 지녔었고, <비열한 거리>에서도 속내를 알 수 없었다. 역할 탓도 있지만 배우의 기질 탓 때문도 아닐까 생각했다.
원래 그런가 보다. 평소에도 내가. 사실 난 아까도 말했었지만 연기할 때 그걸 의도하고 연기한 적은 한번도 없으니까. 사실 <비열한 거리>에서도 종수는 본심을 감췄다기 보단 정말 병두(조인성)를 좋아해서 목숨까지 걸겠다는 충직한 캐릭터였다. 그런데 나중에 병두가 ‘친구는 내가 알아서 처리할 테니까 넌 건드리지마’ 했을 때, ‘우리 식구보다 그 새끼가 정말 중요합니까’라고 하니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건드리지마’ 이랬던 거다. 죽어도 자기 식구 사랑한다는 이야기를 안 한 거지. 그래서 종수는 ‘어? 이 사람이 이런 사람이었네, 알았어.’ 결국 그렇게 배신하게 된 거지. 쉽게 말하면 단순한 거다. 대단히 단순해서 믿음이 바뀐 것뿐이고 난 그렇게 연기했지. 근데 그게 원래 그런 속내를 감추고 있었던 것처럼 보인 거지.

다르게 보면 우직하단 인상에 가깝다. <달콤한 인생>에서도 그랬고.
상황 상황에 맞게 자꾸 변해야 했으니까. 여기선 드러내야 맞는 거고, 저기선 감춰야만 맞는 거라는 걸. 그건 사실 감독님들이 진짜 나를 캐릭터에 잘 붙여놔서 그렇지. (웃음)

그런 면에서 <기담>의 캐릭터가 궁금한데.
내가 생각할 땐 가장 평면적인 캐릭터가 아닐까 싶은데, 안 드러냈으니까. 솔직히 영화를 아직 못 봐서 어떻게 됐을지 잘은 모르겠고. (웃음)

예고편을 너무 잘 만들어서 기대되나? (웃음) 어쨌든 이번이 6번째 영화다.
아, 그런가? (손가락으로 세보더니) 아, 그렇네! (웃음) 6개 맞네. 와~ 많이 찍었다. (웃음)

이렇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6번째 영화까지 왔는데, 처음과 지금은 뭔가 달라졌을 것 같다. 3자 입장에서 보기엔 마치 계단을 밟아가고 있는 것 같다.
분명 계단은 밟고 있겠지. 전에 대한 반성과, 복습과 예습을 철저히 하려 하니까. (웃음) 그리고 장르가 거의 다 틀렸기 때문에, 이제 첫 계단일 수도 있다. 나한테 맞는 옷을 못 찾았을 수도 있고. 욕심이라면, 맞는 옷 따윈 필요 없이 어떤 옷이든 잘 맞추고는 싶다. 모든 장르를 해보고 이 장르의 내 약점은 이거다, 이 장르의 강점은 이거다, 이런 걸 많이 분석해보고 싶다. 그럼 아마 다음 공포나 다음 조폭 영화에선 <기담>이나 <비열한 거리>보단 더 업그레이드된 무언가가 생기겠지. 아직은 경험하는 단계? 아직까진 데뷔다. 아직도 난 신인.

함께 출연한 김태우나 김보경, 이동규는 모두 경험 많은 선배이자 인정받는 연기자다. 나름대로 배울 점도 많았겠다.
뭐, 세분이 연기 잘 하시는 건 다들 아니까 거기에 대해선 말할 필요도 없겠지. 그런데 카메라 밖에서, 연기자가 아닌 모습에서 세 분 다 배울 점이 아주 많다. 일단, 이동규 선배 같은 경우는 되게 진지하다. 스텝들의 고민까지 들어주시고. 또 그래 줄 수 있을 듯한 큰 형 같은 느낌이다. 오히려 김태우 선배가 막내 삼촌이나 작은 형 같다. 나한테만 일부로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사실 내가 굉장히 어려워할 선배인데 내게 먼저 와서 장난쳐 주고, 방금 전처럼(인터뷰 현장에 있던 김태우 씨가 도중 종종 장난을 걸어 왔음.). 덕분에 난 현장에서 기 죽어서 연기하지 않아도 됐다. 김보경 선배도 되게 장난 많이 쳤다. 김태우 선배랑 편 먹고. (웃음) 그런데 짓궂을 정도로 장난쳐도 나한텐 고마운 거니까. 김태우 선배의 가정적인 모습도 좋고. 롤 모델로 삼고 싶을 정도로. 연기는 롤 모델이 없지만 인간적으로 생활하는 건 선배님들을 롤 모델로 삼고 싶을 정도로 많이 배웠다.

그런데 항상 남자배우들과 엮이더라. 여자 배우와도 엮일 만 한데. 제대로 된 사랑 연기도 한번 해봐야 하지 않겠나?
아직 부족하다. 아직 큰 자신은 없는데, 언젠가는 해야지. 정통 멜로보단 가벼운 로맨틱 코미디나 그런 쪽부터 밟고 싶다. 물론 정통 멜로도 내가 소화할 수 있는 거면 얼마든지 하고 싶지만. 장르는 안 가린다. 어떤 장르를 하고 싶다가 아니라 내가 할 수 있는 걸 하고 싶은 거지. 정말 크고 백 씬 중에 팔십 씬 나오는 역할도 내가 못할 거면 안 하고. 단역이거나 한 씬밖에 안 나와도 간당간당 내 그릇에 넘칠 듯 말 듯 채울 수 있겠다, 싶을 정도면 욕심내서 하고. 무리하진 않고 싶다.

<논스톱> 시절 생각하면 코믹도 나름 어울리던데.
아니다. 솔직히 난 어색하던데.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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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이제 필모그래피가 쌓인 만큼 알아보는 사람도 많이 늘어났을 거다. 그럴 때 기분은 어떤가?
좋지! 굉장히. 처음부터 남들한테 박수 받고 싶고, 호응을 얻고 싶어서 생각했던 일이니까. 물론 결국엔 돈 벌기 위한 직업으로 배우를 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궁극적으론 관객이나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연기하는 거잖아. 그니까 그런 사람들이 날 알아보고 좋아해주고 그러면 좋지. 굉장히 신난다. 그리고 그럴 때 ‘나 아직 안 죽는구나. 다음 작품 또 들어오겠구나’ 하는 희망도 생기고. (웃음)

연기자 진구와 일반인 진구 사이엔 어느 정도의 간격이 있는 것 같나? 본인 생각에.
거의 차이가 없다. 연기할 때도 양면성을 갖고 있는 것 같고, 실제 생활에도 그렇다. 굉장한 이중 인격까지는 아니어도 양면성이 있지. 밝고 어두움이 확실히 있어. 극과 극의.

앞으로 <기담> 이후에 정해진 차기 계획 있나?
홍보팀에서 ‘<트럭>에 출연 예정 중입니다.’ 정도만 말하라던데? (웃음) <호로비츠를 위하여>의 권형진 감독님 작품이고 유해진 선배님과 함께 한다.

촬영은 시작했나?
프리 프로덕션은 들어갔고. 본격적인 1회 차 촬영은 내일 모레, 목요일(6월 19일)부터.

첫 주인공으로서 <기담>에 대해 어필한다면, 앞에 있는 나까지 포함해서.
생각해온 건 아니고, 아까 인터뷰 중에 문득 생각이 났는데, 이번엔 이 카피로 밀고 싶다! (웃음) 차가운 공포영화가 아닌 따뜻한 공포영화다. 보통 여름에 피서용으로 에어컨 나오는 극장가서 시원한 공포영화나 보자, 이런 분들 많은데 그런 시원한 공포영화는 아니다. 방에 에어컨 세게 틀어놓고 나중에 추울 때, 두꺼운 이불을 덮으면 따뜻함과 시원함이 공존하는 오묘한 상황이 된다. (웃음) 그런 느낌을 관객 분들께서 받아주셨으면 좋겠다. 만약 <기담>이 내 생각에 맞는 느낌으로 나왔다면 분명히 그럴 수 있고 흥행도 잘 될 거라 생각한다.

그럼 다음주에 나도 확인해보겠다.
나도 아직 못 봐서 장담은 못하는데, (만약 그렇지 않다면) 내 잘못만은 아닙니다! (웃음)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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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민용준
,

유선 인터뷰

interview 2008. 5. 30.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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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더워져야 극장에서 볼 수 있는 것 같다.
그러니까! (웃음) 의도했던 건 절대 아닌데.

원래 공포 영화를 좋아하는 편인가?
사실 공포 영화를 별로 좋아하진 않는다. 관객들을 자극하기 위해 만들어진 공포물은 좋아하지 않지만, 정말 짜임새 있는 스토리가 끌어 가는 힘있는 스릴러물은 좋아한다. <검은집>은 그런 점에서 맘에 들었고.

개인적으로 유선 씨는 액션 배우라고 생각한다. (웃음) 몇몇 드라마를 통해 종종 보여준 모습을 사례로 들자면. 이번엔 한 단계 업그레이드됐다. 단순 주먹다짐에서 살벌한 칼부림으로. (웃음) 몸을 뒹구는 격투씬을 비롯해 여러모로 힘들었을 것 같다.
사실 육체적인 면보단 정신적인 면에서 많이 힘들었다. 만약 내가 귀신이라면 차라리 쉬웠겠지만, 사람이란 존재 자체만으로 공포를 느끼게 하는 건 쉽지 않다. 내 캐릭터가 관객을 서늘하게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내가 그 몫을 할 수 있을 지부터 시작해서 머릿속으로 그런 고민들이 끊이질 않아 정신적 부담이 컸다. 사실 육체적으로 부딪치는 건 견디면 되니까, 그건 큰 고통은 아니었던 것 같다.

황정민 씨는 힘들어 보이더라. 코도 진짜 물린 걸로 알고 있다. 꽤 아파 보이기도 하고. (웃음)
괴성을 그냥~~, 끝나고서도 계~속~ 지르는데 어찌나 민망하던지. (웃음) 진짜 이빨 자국 제대로 남았더라. 아팠을 거야. (웃음)

설마 개인적인 감정을 그런 식으로?(웃음)
나름대로 조절한다고 한 건데. (웃음)

신이화라는 역을 처음 접했을 때, 어떻던가? 아무래도 만만해 보이는 역은 아니었을 텐데.
어쩌면 그 동안 나 스스로 강하고 흡입력 있는 걸 원했던 것 같다. 내가 지닌 격정적인 뭔가를 밖으로 분출하고 싶은 욕망들이 내면에 많이 있었다고 할까. 하지만 그런 캐릭터가 쉽게 찾아지는 건 아니고, 우리나라에서 여배우가 연기할 수 있는 캐릭터가 어느 정도 선에서 한정된 탓도 있고. 그런 측면에서 신이화는 너무나 단비 같았다. 내가 그 동안 갈구했던 캐릭터라서 너무나 반갑고 흥분되는 기회였지.

<검은집> 이전에 이미 2번의 공포 영화 경험이 있지만 어떤 주체가 되느냐에 따라 <검은집>은 새로운 경험이었을 것 같다.
사실 이거 스포일러 감인데. (웃음) <검은집>이 장르적으로 관객에게 책임져야 될 몫, 즉 관객에게 긴장과 스릴을 주며 공포로 몰아넣어야 하는 몫의 상당부분을 내가 떠맡았다고 생각했다. 영화의 진행과정과 스토리가 갖는 힘도 있지만 내 연기가 그런 어필을 할 수 있어야만 장르 자체가 살 수 있다고 판단되더라. 역할에 대한 부담이 그 어느 때보다도 컸던 것도 그래서였고. 작품에 내가 맡은 캐릭터를 얼마나 잘 녹여낼 수 있을까라는 건 늘 생각했던 문제지만 평소 이상의 부담이 지워진 듯한, 영화의 장르적 책임감을 내가 상당 부분 짊어져야 된다는 부담이 굉장히 컸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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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만나보니 연기를 통한 모습과는 확실히 다른 사람처럼 느껴진다. 그 동안 여자로서 선이 굵은 연기를 많이 했다. 여자배우로서 그런 이미지로 각인되는 게 부담스러울 때도 있을 것 같다.
그 동안 다소 선이 굵은 연기를 많이 보여줬으니 그에 비해 가늘고 섬세한, 좀 더 디테일한 작업들을 해보고 싶기도 하다. 편안하거나 일상적으로 풀어진 역할도 해보고 싶고. 근데 항상 난 임팩트가 강한 캐릭터에 많이 끌리더라. 예를 들면 <몬스터>의 샤를리즈 테론을 보고 몇 날, 며칠 동안 잠 못 이룰 정도로 설렌 적도 있다. 최근 <블랙북>의 여배우도 시작부터 끝까지 날 빠져들게 만드는, 흡입력 있는 캐릭터였다. 마치 영화 속 캐릭터가 아닌 실제 인물의 모습 아닐까 싶을 만큼. 늘 일상적이지 않은 캐릭터에 많이 끌리는 것 같다. 내 취향 탓인가? (웃음)

<검은집>의 신이화도 그런 측면의 선택일 법한데, 하지만 개인적인 갈등이 없었을까? 강한 이미지의 캐릭터가 대중적으로 각인된다는 것이 때론 불편할 수도 있다.
주변에서 그런 우려를 많이 해주시지만 오히려 막상 난 전혀 고민이 안된다. 만약 나란 배우의 가능성을 어느 한 캐릭터의 이미지로 몰아서 한계를 짓는다면, 오히려 난 그들의 안목이 문제라고 생각한다. 내가 배우로서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을 얼만큼 갖고 있는지는 물론 나도 모른다. ‘저 배우는 너무 강한 역할만 해서 좀 그렇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어느 한 켠에 있겠지만, 어딘가엔 내가 표현한 것을 보고 되려 그 외의 다른 건 어떻게 소화할지에 대한 궁금증과 기대를 지닌 사람들이 분명히 있을 거라 생각한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과의 작업 기회가 왔을 때, 기존 이상의 이미지들을 내가 창조하고 만들어가면 된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배우를 한 번 연기한 이미지로 한정 짓는다면, 배우가 작품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얼마나 두려움이 클까. 당연히 모두가 그렇진 않을 거라고 확신한다.

그런 자신감은 다양한 경험에서 비롯되는 게 아닐까 싶다. 연극과 뮤지컬 무대에서의 경험과 드라마와 영화로의 경험들까지. 어떻게 생각하나?
난 어려운 숙제를 만날 때 의욕과 활기가 더욱 충전되는 스타일이다. 어려운 과제를 만났을 때, ‘이걸 풀 수 있을까, 어떻게 풀지?’ 란 생각을 하기도 전에 직접 풀어보고 싶은 거지! (웃음) 과연 이걸 내가 감당할 수 있을지, 어떤 식으로 풀어낼 수 있을까란 그림이 머릿속에 그려지기도 전에 무조건 일단 달려들어서 풀어보고 싶은 욕망이 내 안에 있는 거 같다. <검은집>의 신이화 역은 누가 봐도, 어떻게 표현하면 된다는 그림이 명확하게 서는 인물이 아닌 어려운 캐릭터다. 자칫 잘못하면 영화 속에서 우스운 존재가 될 수도 있다. 식칼 들고 다니는 모습을 잘못 표현하면 엽기적이고 우스운 꼴이 될 수도 있으니까. 모험일 수도 있지만 그걸 다른 사람이 아닌 내가 풀어보고 싶다는 욕심이 좀 있었다.

싸이코패스(psychopath)란 소재가 낯설다는 점도 하나의 어려움이 아니었을까.
일단 그들의 존재에 대해 이해해야 된다고 생각했다. 그들이 어떤 사람인가를 알기 위해 많은 자료들을 참고했다. 예를 들면 기존의 연쇄살인범들에 대한 인터뷰나 연구 논문 같은 것들. 그것들을 통해 그들의 유년 시절 가정환경과 성장과정 등을 알게 됐고, 그들의 욕망이 분출되는 계기나 과정이 과연 무엇이었는지 계속 생각하게 됐다. 그런 고민을 신이화에게 대입해서 어떤 성장과정 속에서 어떻게 자랐을까를 추측했다. 예를 들면 '다리를 전다'는 사실은 장애를 지닌 것이고, 그로 인해 어렸을 때부터 대인관계에 위축되고 소외감을 많이 느꼈을 것이다. 또 불우한 환경 속에서 사랑이란 걸 받지 못했기 때문에, 자신에게 필요한 걸 직접 구하지 않으면 자신이 취할 수 있는 건 없다는 강한 생존 본능이 생겼을지도 모르고. 그렇게 인물에 대한 비하인드(behind)를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연기를 하기 전에 예습부터 하느라 애 먹었겠다. (웃음)
하지만 그 시간이 내겐 소중했다.

물론 자신의 캐릭터를 만들어가는 과정이었을 테니까, 나름대로의 설렘도 있었을 거다.
그렇지. 어떻게 보면 원작 속에 이미 존재했던 인물과 달리 <검은집>의 신이화는 한편으로 재창조된 인물이나 다름없다. 외형적인 느낌부터 시작해서 원작의 사치코로부터 내가 참고하거나 가져올 게 별로 없었을 정도로 다른 인물이라고 판단했다. 처음부터 괴기스러움을 풍기는 인물이 아닌, 자연스러운 일상 속에 묻혀 살아가던 사람의 정체기 드러나는 순간의 섬뜩함을 노린 영화니까. 나는 시나리오만을 토대로 더 깊숙이 들어가서 그 인물을 느끼려고 많이 노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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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뚱할 지 모르지만 혹시 주변에 그런 인물이 있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지 없나? (웃음)
글쎄. 만난 적 없길 바라고, 앞으로도 만나고 싶지 않은데. (웃음) 처음 준비할 때는 자료를 보면서 정말 이렇게 무서운 사람들이 있을까 싶더라. 평범해 보이는 이들이 알고 보니 무서운 자들이었단 사례들을 자꾸 접하다 보니 사람에 대한 벽이 생길 정도였다. 그러다가 그들의 성장 과정이 남다르다는 것, 예를 들면 어린 시절 심각한 폭력을 경험했다거나 가정에서 사랑 자체를 경험해보지 못했단 사실을 발견했다. 받지 못했기 때문에 주는 방법도 알지 못하는 거지. 마치 신이화처럼. 그리고 아까 말했던 것처럼 강한 생존본능에 의해서 우리가 아닌 자신만을 생각하게 되고, 일단 내가 살아가기에 급급한 상황에 집착하게 되는 것 아닐까. 그렇다면 태어날 때부터 전두엽에 문제가 있다는 부분의 사실을 떠나서 사회가 그들을 그렇게 만들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까지 하게 됐다. 그렇다면 그들을 암적인 존재나 다른 인격체로 치부하며 무조건 선을 긋고 격리하는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어쩌면 이렇게 급변하는 시대와 각자 살아가기 힘든 사회에서 오히려 누구나 이기적인 모습을 할 때가 많지 않나. 내가 잘 되기 위해서 다른 사람들을 밟고 일어서도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는, 어떻게 보면 그것도 죄의식을 못 느낀다는 측면에서 싸이코패스적 성향이 아닐까. 어떻게 보면 이건 우리 모두에 대한 고민이지 불과, 그들이 우리와 다르다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같이 연기했던 배우들과의 호흡은 어땠나? 특히 강신일 씨와는 예전에 연극 <날 보러 와요>로 친분이 있던 사이기도 했고.
사실 그분의 경력과 신뢰받는 위치가 내겐 부담스러운 부분일 수도 있는데 연극할 때부터 정말 너무 편안했다. 때론 후배로서 연기할 때, 자칫 선배 눈치가 보일 때가 있다. ‘나 잘하고 있는 거야?’ 싶은. (웃음) 그렇게 위축되거나 눈치 보일 수 있는데, 강신일 선배님은 사람 자체가 너무 포근하고 인자하시다. 한 6년 전쯤, 연극에 발 내디딘 지 얼마 안되던 신인 시절에도 선배님과 편하게 연기할 수 있었던 건 그만큼 사람이 주는 느낌 자체가 편안했던 덕분이었다.

개인적인 인상으론 덩치가 크진 않은데 후덕한 느낌을 주는 배우란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그런 분의 손까지 잘랐으니. (웃음)
이런! (웃음) 종종 선배니까 후배를 바라보는 입장에서 답답함을 느껴서 직접적으로 지적할 수도 있는데 강신일 선배님은 끝까지 그냥 지켜보신다. 그러다가 내가 도움을 얻고자 할 때나 정말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을 땐, 굉장히 조용하고 진지하게 한두 마디 던져주신다. 하지만 방법적인 부분에 대한 충고가 아니라 연기에 접근하는 방법에 대한, 즉 표현에 대한 방법이 아니라 결과적으로 내가 방법을 발견하고 찾을 수 있게끔 조언을 해주신다. 좀 더 멀찍하게 방향을 잡아주는 거다. 그게 나한텐 지혜롭게 다가오는 충고가 된다.

황정민 씨는 어땠나? 극 중에선 칼부림하는 사이였는데. (웃음)
정민 오빠는 굉장히 창의력이 있는 배우다. 내가 내 틀 안에 갇혀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들을 자꾸 넘나들어야 되겠다는, 내 틀 안에서만 생각하지 말고 그 이상의 뭔가를 자꾸 연구하고 끄집어내려고 해야겠단 생각을 갖게 만든 사람이다. 그만큼 자기 연기와 캐릭터를 놓고 고민할 때 항상 남들이 선택하지 않는 방법을 고민하고 뭔가 새로운 것이 없을지를 생각한다. 보통 사람들이 선택해서 갈법한 연기 스타일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좀 더 다른 선택을 많이 해보려고 노력하더라. 그래서 기존 영화 속 캐릭터들이 살아날 수 있었던 것도 그런 황정민스러운 선택과 노력들이 캐릭터를 조금 남다르게 만들 수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그런 것들을 많이 배웠지.

현장의 분위기 메이커는 주로 누가 맡았나? 의외로 강신일 씨가 많이 했을 것 같은데.
그렇진 않아! (웃음) 강신일 선배님은 촬영장에서 말씀이 많은 편은 아니지만, 종종 애써서 유머를 하다가 반응이 썰렁하면 혼자 자책한다. (웃음) “또 재미없는 거지. 아, 또 내가 괜한 말 한 거지.” 이런 식으로. 오히려 그 때문에 더 웃음짓게 된다. 그런 선배님의 존재 자체가 사람들한테 편안함을 준다. 어렵거나 부담스러운 느낌이 드는 선배가 아닌 그냥 편안한, 존재 자체가 훈훈해서 너무 좋은. 반면, 정민 오빠가 주로 코믹한 상황이나 웃음을 많이 유발시켰다. 많은 분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오빠만의 유쾌함이 있다. 늘 진지하기만 한 사람이 아닌, 굉장히 유쾌한 사람이다. 덕분에 현장에서 많이 웃을 수 있었던 이유를 많이 제공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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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습하고 어두운 세트 촬영이 많았다. 특히 지하실 같은. 그런 공간에서의 촬영으로 다소 지치진 않았나?
세트가 일단 지하로 설정돼서 천장도 거의 다 덮어버렸고, 결국 공간 자체가 많이 폐쇄적이라 답답했다. 일단 계단을 내려가서 지하실 들어갈 때까지 시간이 되게 오래 걸렸다. 그래서 계단 내려가는 것까지 하면 내 기억에 한 이 주 정도의 시간을 거기서 머무른 셈이다. 정말 정민 오빠 말처럼 빨리 탈출하고 싶을 정도로 답답해서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게다가 난 내 집이었으니까 내 집처럼 누비는 자연스러운 설정을 위해 맨발로 다녀야 했다. 그런데 지하가 과거 목욕탕이라 바닥에 깨진 타일도 있고 종종 치우지 못한 유리조각 같은 게 많았다. 테이핑을 발바닥에 해주긴 했는데 그게 자꾸 떨어져서 나중엔 그냥 맨발로 누볐다. 아무래도 공간 때문에 겪게 되는 어려움이 많았다.

단순하게 나이만을 따진다면 데뷔시기가 다소 늦은 편이다. 물론 나이가 크게 중요한 건 아니지만.
데뷔가 늦어서 필모그래피가 많이 쌓이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은 있다. 지금 시점에서 내 경력이 나만의 진지한 선택과 의미 있는 작업들로 좀 더 쌓여있다면 좋았을 거란 아쉬움. 하지만 일찍 데뷔했다 해도 지금 나이에 만난 작품들처럼 내가 소화할 수 있는 좋은 롤(role)을, 과연 그때도 만날 수 있었을까란 생각도 든다. 어떻게 보면 30대 이후가 연기를 하는 배우로서 안에 있는 것들을 끌어낼 수 있는 깊이가 마련되는 때가 아닐까 싶다. 무게가 좀 더 실리는 듯한. 그래서 내가 일찍 데뷔하지 못해서 놓친 작품들보다 지금부터 앞으로 만날 작품들이 더 설레고 기대되는 것 같다.

그래도 지금까지 실속은 차린 것 같다. 항상 주연급의 비중은 아니었는데도 나름대로 캐릭터들이 기억에 남는다. 아무래도 그건 선이 굵은 역할을 많이 맡았기 때문이 아닐까.
전면 주연이란 타이틀도 장단점이 있을 거다. 드라마든 영화든 타이틀 롤이 되는 배우는 필두에 서서 처음부터 끝까지 전반적인 작품을 끌어가야 한다. 그만큼 그 배우가 뭔가 전폭적으로 보여줘야 되는 책임과 부담감을 짊어지는 셈이지. 결국 잘 되면 그 배우 덕분이지만, 안 되도 그 배우 탓일 수 있다. 누릴 수 있는 혜택만큼 짊어져야 되는 부담도 많을 거다. 그렇다면 말씀하신 것처럼 난 실속 있는 거지. (웃음) 롤의 비중과 무관하게 난 작품에서 충분히 내 역량만 발휘하고 나올 수 있었으니까. 그런 롤이 그런 면에선 더 매력적일 수 있다. 하지만 물론 나도 전면에 나서고 싶은 욕심이 날 때도 있다. 그게 없으면 솔직히 사람이 아니지. (웃음) <검은집>도 정민 오빠 얼굴이 포스터를 다 차지하고 있잖아! (웃음) 물론 영화상으로 확인할 수 밖에 없는 역할의 한계가 있어서 뒤에 숨겨져 있어야 되는 탓도 있지만. 사실 <황진이>의 송혜교 씨가 부럽기도 하다. 그녀가 지금쯤 갖고 있을 법한 심리적 부담도 굉장히 크겠지만 배우가 원 톱으로, 영화에 대한 관심과 부각을 혼자 다 받고 누렸으니까. 물론 그 배우가 전적으로 모든 책임을 질 필요는 없지만 영화의 핵이었던 만큼 책임감과 부담은 여전히 계속되겠지. 얻는 게 있으면 잃어버리는 게 있는 거니까. 일단은 내 역할 안에서 편하게 생각하려고 한다.

사실 지금까지 본인이 출연한 영화가 흥행한 적은 없다. <4인용 식탁>이나 <가발>이나, 그런 면에서 <검은집>의 흥행을 내심 기대될 법하다. 공포영화치곤 상당히 많은 개봉관을 잡았다는 소식도 들었는데.
매번 열정적으로 한 일에 대해서만큼은 항상 스스로 많은 기대감이 든다. 사실 <가발>같은 경우도 많이 고생했다. 내가 말 못하는 설정이라 감정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를 굉장히 고민했고, 감독님과 많이 상의하면서 나름대로 정성껏 찍었다. 하지만 관객들한테 외면당한 결과로 인해 당시엔 상실감이 컸다. 영화가 안된 이유가 왠지 내가 강하게 어필을 못한 부분 탓이란 생각도 들었다. 사실 <가발>의 ‘지현’은 엔딩의 감정을 책임지는 인물이라 마지막의 표현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그에 대해 시종일관 많은 고민을 했지만 그게 관객에게 다가가지 못한 것 같아서 스스로 죄책감이 들었고 그로 인해 힘들었던 시간이었다. <가발>은 내가 열정적으로 깊이 몰입한다고 해서 관객도 같이 그 안으로 빠져들어 주는 간 아니라는 어려운 과제를 만나게 된 계기였다. 이번 <검은집>도 힘들게 고민하며 정성껏 찍었기 때문에 역시 기대감이 생기고, 애착이 가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다른 작품들보다 몇 배 많은 기대감과 관객에게 좀 더 인정받고, 평가 받고 싶은 욕심들이 자꾸 생겨나게 되는 작품인 것 같다. 그래서 그걸 좀 내려놓고 마음을 비우기 위해 노력하는데 쉽지 않다. (웃음) 결국 내게 그런 기대와 바람이 생기는 건 그만큼 내가 그 안에서 열심히 노력했고 고민을 많이 했다는 거라 생각한다. 결과와 상관없이 내겐 굉장히 의미 있는 작품으로 기억될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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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 역할을 해본 것도 이 영화가 처음이다.
맞다. 아이가 있었던 것도 처음이고.

그래서인지 처음인데 이런 식으로 하면 섭섭하지 않을까 싶더라.
너무 언발란스해서? (웃음) 근데 너무 다행스러운 건, 영화를 보신 분들은 보기 전엔 캐스팅에 갭이 큰 거 아닌가라고 생각했다가 막상 영화를 보고 나서 그게 부조화스럽다는 거북함은 전혀 느껴지지 않으셨다고 하더라.

나도 전혀 거북하지 않았다. (웃음)
만약 두 사람이 부부로서 생활하는 모습이 영화 속에서 장면으로 보여졌다면 관객에게 어색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검은집>은 부부가 맞물린 일반적인 생활보단 각자 다른 공간에서의 이미지들을 중심으로 표현해서 두 사람은 다른 개체로서 보여진다. 그렇기 때문에 그게 전혀 문제되지 않는 이유인 것 같다.

지금까지의 필모그래피를 보니까 로맨스의 혜택을 누려본 적은 없어 보인다. 여자배우로서 찐한 사랑연기도 한번쯤은 해보고 싶을 텐데.
정말 징글징글할 만큼 처절한 사랑 얘기를 한번 해보고 싶다. 아니면 그냥 가볍게 드라마에서 많이 봄직한 삼각 관계, 사랑의 줄다리기 뭐 이런 거라도? (웃음) 농담이고, 징글징글하게 처절하고 지독한 사랑 이야기 한번 해보고 싶다.

하긴 이제 눈에 힘 그만 줄 때도 됐다.
맞아! 이제 눈에 힘 빼야 돼! (웃음)

그래서인지 독신녀나 프리랜서 같은 이미지가 어울려보인다. 실제로 그런 역할도 많이 했고. 그런데 배우가 아니라면 과연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을 것 같나?
난 어렸을 때부터 배우가 되겠다며 한 우물만 판 케이스라, 다른 데로 눈 돌려본 적 없다. 내 친구가 한번은 나한테 “너 이거 안 하면 뭐 할래?" 라고 이야기할 정도다. (웃음) 사실 다른 재주가 없다. 그렇다고 내가 재미있어하는 것도 없고, 자랑은 아니지만 심지어 특별한 취미도 없다. 연기 외에 크게 즐거운 건 없는 것 같다. 물론 내가 연기를 특출 나게 잘 하는 건 아니지만, (웃음) 연기 말곤 재미있는 게 없다. 운동이나 레포츠를 즐기는 것도 아니고, 활발하게 사람들 만나러 다니는 외향적인 성격도 아니다. 일없을 때는 주로 집에 있거나 작품을 끝낸 뒤의 공허함을 채우기 위해 여행을 떠나는 게 전부다. 그래서 다른 직업이나 내가 잘 할 법한 뭔가를 생각해보면 문득 떠오르는 건 없다. 그래도 내가 MC를 몇 번 했었잖나. 중고등학교 때 방송반 이었다. 그냥 서클 활동에 불과하지만 어떻게 보면 그 때 했던 훈련들이 결국 내가 MC를 하는데 많은 도움이 됐던 것 같다. 만약 다른 분야를 한다면 그 정도? MC나 아나운서? 그 이외의 것은 생각하기 힘들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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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생각하면 일단은 카메라밖에 대안이 없다. (웃음)
다들 “결국은 카메라 앞에 서는 거네!” 라고 이야기 하더라. (웃음)

그럼 그런 계기는 어디서 시작된 건가?
일단 남들 앞에 서는 것 자체를 좋아했다. 초등학교 때 토요일마다 학예회 시간이 있었는데 그로 인해 내 자아를 깨닫게 됐다. (웃음) 내가 애들을 꾸려서 각자 역할을 정해주고 콩트를 만들거나, TV 프로그램을 패러디해서 발표하거나, 가수 모창을 한다거나 그런 걸 좋아했다. 무엇보다 내가 뭔가를 할 때 아이들이 웃고, 박수쳐 주고 환호하는 것들에 나름 희열을 많이 느꼈던 거 같다.

기획이나 연출자로써의 싹도 보이는데?
물론 역할을 분배하고 기획하는 건 필두에 나서기 위해서지! (웃음)

결국 주인공까지 다 해먹는 것이 목적? (웃음)
사실 기획이나 연출에 대한 꿈도 있다. 그런데 그건 배우로서 존재감 있는 위치에 선 뒤에 확장하고 싶은 꿈이다.

혹시 연기자가 됐단 사실을 후회해본 적은 없나?
음...앞에서 말한 것처럼 별다른 취미생활이나 연기 이외의 것을 통한 만족감이 없다 보니 연기를 못 하게 되면 실제는 너무 괴로운 거다. (웃음) 삶이 너무 단조롭고 무기력해지는 것처럼 내 존재감이 안 느껴지는 거지. 물론 올 해는 쉬더라도 조금 여유로울 수 있을 듯 하지만 신인 시절은 달랐다. 본의 아니게 갑자기 쉼이 길어진 적이 있었다. 자의가 아니라 특별한 기회나 프로포즈가 없어서였지. “배우가 되겠다는 내 선택만큼은 흔들림이 없고, 소신과 확신을 가지고 있지만 이렇게 남이 알아주지 않는다면 과연 이게 내 길이 맞는 건가?” 쉬는 동안 그 고민 때문에 많이 힘들었다. 결과적으로 우린 누군가 인정해주지 않으면 기회조차 얻을 수 없으니까. 배우가 남들에겐 화려해 보일지 모르지만 사실 인내의 시간이 많이 필요한 직업이다.

그런 면에서 보면 프리랜서가 맞긴 맞다. (웃음)
그렇지. (웃음) 한번은 쉬는 동안, 할 일 없으니 운동하러 갔다가 옷 갈아입으려고 라커문을 열었는데, 갑자기 설움이 막 북받쳐서 눈물이 핑 돌더라. 결국 라커에 머리를 박고 숨죽여서 얼마를 울었는지! 지금도 생각하면 찡하다.

듣는 나도 찡하다. 이젠 그것도 추억이 아닐까 싶다.
예전에 문소리 씨가 토크쇼에서 “난 항상 다음 작품을 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을 하면서 작품을 선택했다.”고 했다. “이게 내 마지막일지도 몰라. 아무도 날 더 이상 안 찾아줄지도 몰라.”란 생각으로 항상 작품을 선택했다고. 대본을 수두룩하게 받아보는 몇몇 배우들을 빼면 모든 배우들에게 마찬가지로 그런 원초적인 불안함이 항상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어떻게 보면 직업 자체의 특성에서 비롯된 직업병일 수도 있겠지. 내가 직접 영화나 드라마를 제작하지 않는 이상, 날 신뢰하고 믿어주는 누군가에게 선택 받는 기회를 얻어서 연기할 수밖에 없는, 수동적인 초조함과 불안함이랄까.

그런 점에서 <검은집> 캐스팅은 꽤나 반가운 기회라 볼 수 있다.
그래서 <검은집>은 더욱 열정적으로 노력했던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그 어느 때보다도 그 결과가 기대되고 잘 됐으면 하는 염원도 더 많이 갖게 되는 거지.

아까 말한 것처럼 작품을 마치고 나면 공허함이 밀려든다. 물론 캐릭터에 따라 다르지만 강한 캐릭터일수록 그로부터 빠져 나오는 게 어려울 것 같다. 신이화도 만만찮은 캐릭터였는데 어떤가?
만약 영화 속 상황 안에서 정서적으로 굉장히 힘든 상황을 겪었거나 심리적인 고민이 많은 캐릭터였다면, 끝낸 뒤 그런 감정과 정서가 여운으로 남아 한동안 계속 슬픔에 젖거나 우울하고 다운되는 느낌을 갖게 되는 게 사실이다. 그런데 신이화 같은 경우는 사실 정서가 없는 사람이다. 그래서 내면에 뭔가를 많이 갖고 있던 인물들보단 오히려 빠져 나오기가 훨씬 수월했다. 다만 내가 이 인물을 짊어지고 관객에게 좀 더 다가갈 수 있게 잘 표현할 수 있을까에 대해 고민했던 시간들이 이젠 없어져버린 셈이다. 촬영 종료와 더불어 내 역할이 없어진 그 상황으로 인해 ‘이젠 내가 할 게 없다’는 허탈함과 공허함이 컸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배우는 누군가? 연기가 인상적이라던가, 꼭 롤모델이나 이런 게 아니라도.
배우가 아무리 연기를 잘 해도 매번 작품마다 빛이 날 수는 없는 것 같다. 자기한테 맞는 옷이 있는 거니까. 어떤 작품에선 정말 기막힐 정도로 배우의 열정에 감탄하지만, 다른 작품을 보면 아까 그 배우의 색깔이 없는 것 같을 때가 있다. 그래서 어느 배우 한 사람보단 그 배우의 가장 빛났던 작품이 더 인상적으로 남는다. 그런데 요즘, 유독 멋있다고 느껴지는 배우가 ‘공리’다. 최근 <황후화>를 보면서 그녀만이 표현할 수 있는, 그녀이기 때문에 가능한 강한 카리스마가 영화를 장악하고 있다고 느꼈다. 그러면서 동시에 안으로 머금은 비장한 슬픔과 상처 같은 것들도 느껴진다. 무게감 있는 배우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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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나 강한 캐릭터에 끌리나 보다.
그런가 봐!! (웃음) 이야기하다 보니 또 그렇네!! (웃음)

그냥 개인적인 목표나 바람 같은 거 있을까? 굳이 배우로서가 아니라도.
개인적인 욕심은 토끼 같은 자식을 낳고, 화목하고 예쁜 가정을 꾸미는 거다. 그리고 엄마가 배우를 하고 있다는 것만으로 아이들이 자부심이 느끼고 엄마에 대한 존경심을 갖고 자랄 수 있는, 엄마의 일을 인정하고 신뢰해주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나도 그만큼 자랑스런 엄마가 되고자 노력하는 그런 모습들. 그런 것들을 예쁜 그림처럼 그려본다. 물론 내가 배우로서 풀어야 될 숙제들을 좀 더 풀어낸 다음, 가장 좋을 때 아름다운 가정을 만들어 보고 싶다.

지금까지 액션 연기도 종종 했다. 어떻게 보면 <검은집>도 나름 액션아닌가. (웃음) 전문적인 액션 연기에 도전해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
해보고 싶다! 더 나이 먹기 전에! (웃음) 사실 어렸을 때부터 액션영화에 대한 흥미나 호감이 남달랐다. <다이하드>나 <터미네이터>, <에일리언> 시리즈 같은 영화들에 열광하면서 자랐고, 성장기 때부터 여전사에 대한 로망이 있었다. (웃음) 그걸 꿈꾸고 동시에 뭔가 실현해 보고 싶기도 했다. <킬 빌> 같은 캐릭터도 해보고 싶고.

그럼 해외로 나가야 할지도...
아니, 우리나라에서도 <킬 빌> 같은 거 찍을 수 있지 않을까? (웃음)

음..어쩌면 류승완 감독 정도면 가능할지도. 그런데 역시나 로망마저도 선이 굵은 거 같다. (웃음)
난 왜 이렇게 굵은 거야! (웃음)

드라마와 영화를 모두 경험했는데, 각각 쫑날 때 느낌은 어떻게 다른가?
사실 영화가 더 애틋하게 남는 거 같다. 드라마는 캐스팅 후, 첫 촬영까지의 시간이 많지 않아서 촬영 동안 그 캐릭터가 되어 가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영화는 사전에 이미 캐릭터에 대한 입력을 끝내고 철저히 준비한 후, 첫 촬영부터 이미 그 캐릭터가 되어 있어야 한다. 그런 면에서 영화는 드라마보다 준비 과정이 밀도 있고, 촬영 과정 중의 순간적인 고민들이 세심하게 녹아 들어가기 때문에 끝난 후에 작품에 대한 애정이 더 심하다. 여운도, 애착도 더 길게 간다. 영화 작업이 그래서 배우들한테 의미가 있는 거 같다. 그래서 자꾸 영화를 하고 싶어하는 것도 같고.

사실 배우에게 유리한 건 영화보다 드라마일 것 같은데? 드라마는 자신의 연기가 부족했던 순간을 만회할 수 있는 기회가 많으니까. 하지만 영화는 돌이킬 수 없다. 어쩌면 그래서 영화에 더 몰입하는 까닭일지도 모르지만.
드라마는 빠듯한 스케줄 속에서 다른 걸 생각할 겨를이 없다. 모니터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보니 내가 어떻게 하는지 체크할 수도 없다. 그래서 순간적인 몰입과 확신으로 연기를 하다 보면 어느새 내가 그 캐릭터와 이미 일체가 되어있다. 그런 후엔 이동하면서 대본을 훑어보고도 감정을 쭉 뽑아낼 수 있게 된다. 그런 게 드라마의 매력이다. 사실 영화는 한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서 이런 저런 방법을 고민한다. 근데 드라마는 그럴 시간이 없다! (웃음) 어떨 땐 대본을 받고 빠른 시간 내에 외운 후 그냥 연기하게 되는데, 순간 내가 그 인물의 감정을 쭉 외운 대사만을 통해 표현하고 있을 때의 짜릿함이 있기도 하다. 드라마만이 지닌.

어떻게 보면 드라마는 매일같이 학교에 등하교 하는 기분일 것 같고, 영화는 단체로 합숙수련회 다녀오는 기분이 아닐까 싶다. (웃음)
멀리 수련회 다녀오는. (웃음)

이번에 드라마 <엔젤>에 출연한다고 들었다.
미국에 가서 한 달 정도 로케를 하고 왔다. 비운의 죽음을 맞는 캐릭터인데, 일단 서울에서 야외 촬영 하루 분량 정도가 남았다. 난 특별 출연 개념이라 방송 땐 초반 분량 3회 정도만 나오고 빠진다. 그런데 역할이 나름 의미 있는 역이다. 초반에 장진영 씨가 맡은 캐릭터가 로비스트가 되는 계기와 원인을 제공하는 인물이니까. 초반 도입에서 중요한 의미를 부여하는 캐릭터라 개인적으로 마음에 들어서 참여했다. 특별히 새로운 이미지를 만드려는 개인적인 욕심보단 좋은 취지의 작품에서 짧게나마 중요한 계기가 된다는데 의의가 있다고 생각한다. 차인표 선배님도 <하얀 거탑>에서 짧게 출연했지만 굵은 인상을 남긴 것처럼. 짧지만 드라마에 중요한 인상을 남기는 역할이라 하게 된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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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차기작에서 해보고 싶은 장르나 역할이 있다면?
사실 내가 안 해본 캐릭터가 너무 많아서 뭘 해도 재미있게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래도 한번쯤 해보고 싶은 캐릭터는, <블랙북>이나 <혐오스러운 마츠코의 일생>에서의 여자 캐릭터도 너무 매력적이었던 거 같다. 사실 요즘 영화를 보면 여배우가 남자배우의 부속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 많이 본듯한 캐릭터에 적당한 롤이 아니라 영화 전체에 힘이 될만한 선 굵은 캐릭터랄까? 영향력 있고 흡입력 있는, 물론 그게 선이 강하고 안 강하고를 떠나서. 또 말하다 보니까 그 쪽인가? (웃음) 어쨌든 그런 역할을 해보고 싶다.

만약 공포영화 제의가 또 들어온다면?
공포영화 또 들어오면 화날 것 같은데! ‘이것 보세요!’ 막 이럴지도. (웃음)

하지만 시나리오가 좋다면 또 할 것 같은데.
그러겠지. 내 팔자가. (웃음) 이번엔 또 어떤 롤일까? (웃음)

다시 연극 무대에 서보고 싶은 생각은 없나?
물론 있다. 처음 연극을 할 당시가 연기 초년 시절이었다면 지금은 이런 저런 경험들을 한 다음이고, 인생을 조금 더 산 후니까. 지금 무대에 서면 느낌이 틀릴 것 같다. 어쩌면 마치 처음 서는 것처럼 설레고 떨릴 것 같기도 하고. 역시나 확실한 건 좋은 시기에 좋은 작품으로 서고 싶다. 일단 급한 욕망부터 좀 먼저 끄고, 영화 작품에 좀 더 몰두해보고 싶다.

취미가 없다고 했지만, 영화를 굉장히 많이 보는 것 같다. 그게 취미 아닐까?
전문 분야니까! 공부 차원에서 봐야지! (웃음)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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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민용준
,

류승룡 인터뷰

interview 2008. 5. 30.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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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타>의 원년 멤버다. 아직도 <난타>로 기억하는 사람도 많을 것 같다.
너무 오래했다. <난타>를. 5년 동안 했으니까. 사실 난 영화 하려고 프로필 찍어본 적도 없고, 오디션을 본 적도 없다. 내가 <난타>이후로 접한, 대사가 있는 정극이 연극 <웰컴 투 동막골>이었다. 알다시피 장진 감독이 연출한 작품이었고. 장진 감독은 한번 연을 맺으면 끌고 간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장진 감독의 다음 영화에 합류하다 보니까 또 자연스럽게 영화 쪽으로 합류하게 된 거 같다.

초창기 멤버라서 자부심이 강할 것도 같은데. 브로드웨이도 다녀왔고.
브로드웨이 뿐 아니라 외국을 너무 많이 다녔지. 누구도 안 부러울 만큼. 유럽 17개국은 그냥 기본이었고. 스코틀랜드, 아일랜드, 노르웨이, 두바이. 여기저기 막 다녔지. 너무 좋았다. 국가대표라는 마인드가 생길 정도로 자부심도 엄청 컸고. 난 등에 태극기까지 오바로크해서 달고 다닐 정도였으니까. 사실 지금은 로컬 쇼(local show)나 코리아 하우스처럼 관광객을 위한 쇼 형식이 돼버려서 약간 아쉽긴 한데, 어쨌든 외화를 벌어들이는 문화 상품이니까.

장진 감독과 1년 차 선후배 사이라던데. 대학 시절부터 친분이 돈독한 사이였나 보다.
그렇지. 졸업작품도 같이 했는데. 내가 주인공을 맡은 <길>이라는 작품이 있다. 전위극 <까>를 만든 강만홍 교수 작품. 그 때 우리 반 멤버가 황정민, 정재영, 장진 감독, 임원희. 와~! 진짜 빵빵 하지 않아? (웃음) 다 우리 반이었어. 내가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최고네. (웃음)

전에 장진 감독이 <거룩한 계보> 시절 인터뷰 때 류승용 씨가 대학 시절 연기가 좋았다고 칭찬했던 게 기억난다. 그런데 의외로 졸업 후 선택한 건 <난타>였다. 대사 한마디 없는.
배우마다 시작하는 지점과 정점, 그리고 하향 곡선 같은 게 각각 있잖아. 난 그시기가 내 동기들이나 다른 배우들에 비해 조금 다르거나 늦었을 뿐이지. 나이를 먹거나 안주하게 되면 할 수 없는 작업이 있다. 그게 <난타>같은 거지. 사실 영화는 배우의 길을 걷고자 하면 언제든지 할 수 있다고 생각했거든. 물론 지금 이렇게 된 게 당연한 결과라거나 이렇게 될 줄 알았다는 게 아니라, 차근차근 하다 보면 언젠간 할 수 있겠단 마음이 있었다. 하지만 <난타>같은 건 나이가 들면 절대 하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지. 직접적인 계기는 뉴욕의 라마마 극장에 <두타>가 초대받아서 공연하러 갔다가 거기서 <스톰프(stomp)>와 <튜브(tubes)>같은 넌버벌 퍼포먼스(non verbal performance) 공연을 봤다. 막 두들기는. 그리고 왜 우리나라엔 저런 게 없을까 생각하다가 귀국했는데 송승환 대표님이 <난타> 오디션을 보더라. 그래서 옳다구나 하고 오디션 본거지.

뉴욕에 가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을 텐데. 경제적인 여유가 있었던 것도 아닐 테고.
여비를 우리가 대서 고생했지. 밥도 다 사먹고, 비행기표도 우리가 사서 갔으니까. 그래도 그냥 뉴욕이란 곳에 가보고 싶었다. 그것도 연극을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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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적으로 그게 지금은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 필모그래피 적으로도 특별해 보이고.
사실 필모그래피 적으론 전혀 도움이 안 되지. 왜냐면 영화감독이나 영화 관계자들은 대사와 연기를 원하기 때문에. 물론 지금에 와선 도움되는 프로필이 됐지만, 아무 경력이 없는 배우에겐 되려 도움이 안 된다. 만약 <난타> 배우 출신이 영화오디션을 보러 와서, “저 <난타> 했습니다.” 그러면 도움이 안 되지~! 대사를 한마디도 안 했는데~! (웃음) 그런 면에 있어서 내가 <난타>를 좋게 홍보할 수 있는 사례가 된다면 좋겠다. 그런 배우들도 얼마든지 잠재력이 있다는 걸. <점프>나 <난타>에 출연하는 배우들처럼, 배고프지만 열정을 가진 친구들을 돌아볼 수 있는 어떤 계기가 됐으면 좋겠어요. 나로 인해서.

재미있는 이야길 들었다. 장진 감독과 10년 동안 별다른 연락을 안 하다가 연기를 하고 싶어서 찾아갔었다고.
사실 난 그때 대안이 장진 감독밖에 없었다. 내가 장진 감독한테 간 그때가 서른 둘 정도였으니까. 내가 다른 극단에 가기에는 나이가 굉장히 애매했다. 게다가 대부분의 극단은 동인제 시스템이라 오디션 봐서 들어가기도 어려웠고. 그래서 그때 학연이란 것에 처음으로 도움을 받았지. 장진 감독을 통해. 그리고 그 전엔 장진 감독도 바빴고, 나도 바빴고. 사실 그땐 내가 술을 많이 마시던 때였다. (웃음) 장진 감독은 지금의 직함을 위해서 진짜 열심히 일하고 있었고. 나도 <난타>로 창작 욕구를 한참 풀어내고 있었고.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이렇게 되기 위해서 각자의 길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었던 거 같다. 언젠가는 서로의 필요에 의해서 만날 인연이었는지도 모르지.

정재영 씨와도 대학 동기다. 거기서부터 이어진 인연이라 <거룩한 계보>에서의 어울림은 당연히 자연스러울 수 밖에 없었을지도 모르고. 정준호 씨한테는 미안한 이야기지만 난 정준호보단 류승룡이 더 인상적이었다. 그런데 표면적으론 거의 드러나지 않았다.
근데 지금 <황진이>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황진이>가 <거룩한 계보>처럼 마케팅하는 게 당연하다. 솔직히 그게 자본주의니까. 아무래도 스타들이 관객의 눈길을 끌기엔 적합하지. 물론 <거룩한 계보> 당시에 조금 서운한 감은 있었지. 사실 세 친군데~! (웃음) 근데 지금은 오히려 잘 됐다고 생각한다. 왜냐면 만약 장진감독이 날 밀어준답시고 ‘정재영, 정준호, 류승룡’ 이렇게 올렸는데, “어? 누구야?” 이러는 것 보단 나중에 영화를 보고 “어? 정재영하고 정준호밖에 없는 줄 알았는데 류승룡도 눈에 띠던데? 왜 이 배우는 포스터에 없지?” 이럴 수 있으니까. 그리고 이런 말 듣는 게 더 통쾌하다! (웃음) <황진이>도 마케팅 팀에서 필요한 만큼만 나를 적당히 활용하는 것 같다. 솔직히 마케팅은 상업적이어야 할 자본주의적 메카 아닌가? 그래서 이번에도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마케팅이 날 활용하는 게. 그리고 이런 모습은 내가 어느 정도에 와 있는가를 알 수 있는 척도가 된다. 기자시사 때 무대인사를 하느냐, 그리고 기자 간담회에 참석하느냐 뭐 이런 것들 있잖아. 무대 인사만 하고 기자 간담회 때 빠지느냐 안 빠지느냐. 이게 굉장히 예민한 부분이 될 수도 있다.

<황진이> 때도 기자 간담회 후 포토 타임 때, 사진 기자들 요청으로 다시 올라왔던 기억이 난다.
마케팅 팀이 실수를 했다. 되게 당황했지. 내 차례를 빼먹다니. (웃음) 그런데 많이 겪어본 일이기 때문에 오히려 무덤덤했지. 오히려 그런 걸 겪어봐서 다행인 거 같다. 나중에 꼭 그런 후배들한테 배려하고 싶다는 마음을 지니고 있으니까. 그 마음을 너무 잘 알기 때문에. 왜 그, 뻘쭘한 거 있잖아! 뻘쭘한 거! (웃음) <천년학> 때는 어떤 기자가 “이번 작품을 임하면서 임권택 감독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셨는지, 조재현 씨, 오정해 씨, 오승은 씨 이야기해 주세요.” 이러더라. 물론 무비스트는 아니었고. (웃음) 그러니까 재현이 형이 마이크를 들더니 어디 기자냐고 묻고 “배우도 기본이 있어야 되듯 기자도 기본이 있어야 한다. 이렇게 넷이 앉아있을 때 똑같은 질문을 할 땐 나중에 (코멘트를) 자르는 한이 있어도 넷에게 질문을 하는 게 예의다.”라고 하더라. 후배에 대한 배려였지. 재현이 형도 연극 출신이니까.

내심 고마웠겠다.
꽤 고마웠지. <거룩한 계보> 때, 현장 공개를 처음 해봤다. 갑자기 장진 감독이 “야, 승룡이! 너도 해!” 그래서 얼떨결에 끌려갔지. (웃음) 근데 그때 얼굴 표정 다시 보면 되게 슬프다. 기자 간담회 때 파란 마이에 흰 와이셔츠 입었는데, 재영이가 옷 빌려줘서 입은 거다. 내가 이런데 서도 될지 싶을 만큼 너무 어색했다. 그런데 재영이가 갑자기 정준호씨와 자기 가운데에 날 껴 넣는 거다. 그러더니 양쪽에서 막 어깨동무하고. 사실 그때 난 삐뚤어져 있었던 것 같다. 열등감이란 게 사람을 추하게 한다. 사실 난 열등감이 없는 남자라고 자부했었는데 아니더라. 결국 <거룩한 계보> 관련 사진에 그게 남더라. 만약 정재영, 정준호, 나 이 순으로 섰으면 난 잘렸겠지. 사실 요즘에 <황진이> 때도 많이 느끼거든. (웃음) 재영이가 그걸 안거지. 그래서 날 못 자르게 하려고 가운데 넣고 어깨동무까지 한 거다. 나중에 재영이가 그 얘기를 하더라. 그런 자그마한 배려가 솔직히 고맙더라.

그렇겠다. 지금 그 때 생각하면 감회가 새롭겠다. <황진이>에서는 중심인물 중 한 명 아닌가.
그런데 앞으로 그런 후배들이 많이 올라오겠지. 무대 인사엔 오고 기자 간담회 때는 안 오는. 이번에 <황진이> 때도 (오)태경이나 (정)유미 같은 애들이 막 뻘쭘한 게 보이더라. 왜냐면 올라가야 되는지 안 올라가야 되는지 헷갈리니까. 내가 막 당황했던 거 있잖아. <박수칠 때 떠나라> 때도 아무도 말을 안 해주는 거야. 홍보 팀이던, 마케팅 팀이든. 알아서 빠지라는 식이지. 근데 무대인사는 하라 그러고. 이번에 태경이나 유미한테도 그런 모습이 느껴지더라고. 그래서 내가 도와줬지. 그러니까 무대 인사를 시키던 나중에 간담회에 빠지던 그 기준에 따라서 준비가 안 된 배우들한테는 사전에 적절한 코멘트나 배려가 있어야 할 것 같다. 당황하지 않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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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수가 많지는 않지만 나름대로 유명세를 탈만한 작품이 많았다. 물론 본인 연기가 인상적이었지만 감독이나 동료 배우를 잘 만난 덕인 것 같기도 하고.
난 복이 많은 것 같다. 물론 내 뒤에서 하느님께서 도와주시는 덕분이지만. 일단 장진 감독처럼 유니크(unique)한 글을 쓰는 사람의 작품으로 첫발을 디딘 것부터가 복이었지. 그리고 <열혈남아>하면서 설경구 선배를 만났고. 그리고 임권택 감독님의 작품에 출연하게 됐고. <소나기는 그쳤나요>를 보고 캐스팅을 하셨단다. 어쨌든 감독님께서 총명하실 때 그분의 작품을 했다는 게 영광이지. 흥행의 성패를 떠나서. 가을에 겨울잠을 자려고 먹이를 많이 먹듯이, 에너지 충전을 굉장히 많이 한 것 같다. 앞으로 연기하는데 있어서 필요한 에너지들을, 임권택 감독님을 통해서. 촬영장에서 해야 되거나 하지 말아야 될 행동들, 또한 임하는 자세들 그런 것들을 너무 많이 배웠지. 임권택 감독님한테. 그리고 거기서 조재현 선배를 만났고. 그리고 또 <황진이>의 장윤현 감독님은 정말 조용한 카리스마다. 배우의 감정선을, 특히 여배우의 감정선을 가장 잘 표현해 낼 수 있는 그런 감독인 것 같다. 그리고 또 송혜교 씨나 (유)지태란 친구를 만났고. 계속 그렇게 연결이 되는 것 같다.

배우나 감독에 상관없이 영화를 하는 대부분의 사람들과 돈독해지는 편인가 보다. 실제로 그렇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은 것으로 아는데.
그건 내가 스타가 아니기 때문인가? (웃음) 영화는 혼자 하는 작업이 아니잖아. 화가나 시인이나 음악가들과 달리 영화는 철저하게 같이 하는 작업이니까. 차승원 씨도 같이 하는 배우들하곤 일단 굉장히 친해지려고 노력을 많이 하거든. 왜냐면 연기할 때 불편하니까. 물론 촬영 후에 모든 사람들과의 관계가 남는 건 아니지만 한번이라도 지방에 내려가서 동거동락하며 지낸 친구들은 다 담는 편이다.

처음 카메라 앞에 섰을 당시 느낌은 어땠나?
너무 편했다. 아마도 처음엔 <아는 여자>였기 때문에 너무 편했던 것 같고. 가벼운 씬이었으니까. 두 번째는 <소나기는 그쳤나요>의 농부 연기였는데 그것도 너무 편했다. 시골이잖아. 난 그런 게 편하거든. (웃음) 사실 난 개인적으로 <고마운 사람>이 너무 편했던 것 같아. 텐션(tension)이 없잖아. 나도 편한 호흡의 연기가 어울릴 수 있겠다고 느낀 게 <고마운 사람>이었지. 사실 긴장하기 시작한 건 <거룩한 계보> 때였지. 아무래도 앞의 영화보단 역할도 커지고 상업적인 성격이 강해지니까 내가 씬을 책임져야 된다는 걸 느꼈거든. 그리고 눈앞의 카메라가 관객과 소통하게 되는 지점이란 걸 깨달았거든. 저 렌즈가 10만 명의 눈이 될 수도 있지만 백만 명의 눈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니까. 또 대형 스크린으로 보는 눈도 있지만 DVD를 통해서, 아니면 추석날 TV를 통할 수도 있잖아! (웃음) 렌즈를 눈으로 딱 느끼는 순간, ‘아, 이게 장난이 아니구나’ 싶더라. 그만큼 촬영 기간 동안 자기 관리도 중요하게 되고. 대사나 이런 것도 자연스럽거나 그렇지 못하게 그 날 현장 분위기 때문에 대사도 연기가 어색하게 되는 경우도 있는데 그게 평생 남을 장면이라 생각하면 두고두고 후회될 것 같더라.

단순한 질문일지 모르지만 연극의 무대와 스크린의 카메라의 차이를 느꼈다면?
일단 영화는 이야기의 흐름과 무관하게 상황에 따라서 뒤죽박죽으로 씬을 가져가니까 그런 부분이 힘든 것 같다. 마지막 장면을 제일 처음 찍기도 하고, 첫 장면을 제일 마지막에 찍기도 하고. 근데 그게 영화만의 마력인 거 같아. 마치 퍼즐처럼 맞춰가는 작업이니까. 그리고 각각의 분야를 지닌 수십 명의 사람들과의 작업을 통해 완성된다는 점도 연극과 달리 영화를 리얼리티에 가깝게 만드는 작업이지. 또 대형 스크린을 통해 결과를 보게 된다는 것도 재미있고. 인터넷 관객 수치 등으로 평가를 살필 수 있다는 것도 묘하고. 연극은 관객과 그때그때 다이렉트(direct)로 호흡하고 느끼니까 그날그날에 따라 틀리잖아. 그런 짜릿함의 차이가 있는 것 같다.

연극과 상대적으로 영화만의 매력을 느껴본 적은 없나? 영화는 이런 거구나 싶은.
정말 짜릿한 건, 영화가 배우 혼자서 하는 게 아니라는 거지. 조명이나 기타 여러 가지 효과들이 배우를 돕는다. 사실 연극은 배우들과의 호흡, 연습량, 즉 배우들의 역량이 작품을 판가름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영화는 감독의 현장 디렉션에 따라 상황이 변하기도 하고, 분장, 조명 같은 장치적 효과가 배우의 결점을 채워주기도 한다. 그런데 막상 현장에 있으면 그걸 잘 모르지. 스크린의 결과를 보고 그분들한테 감사하는 거지. 그래서 갑자기 막 문자 보내게 되고. (웃음) 분장이나 빛을 통해 배우의 연기를 더욱 깊고 진하게 전달할 수 있게 되고. 내 부족한 연기를 채워주는 사람들한테 감사할 수 밖에.

영화의 장치적인 효과를 많이 느꼈나 보다.
많이 느꼈지! 음악도 그렇고. 무엇보다 <황진이>를 통해 조명과 카메라를 알게 됐다. 이제야 비로소! 그 전엔 그냥 연기만 하면 되는 줄 알았지 그런데 <황진이>는 촬영하고 조명, 분장 이런 효과에 유난히 공을 많이 들이길래 유심히 지켜보곤 했다. 촬영 기간이 길기도 했지만. 감정을 따라잡는 조명, 그거 알아? 분위기에 따라서, 반전에 따라서. 배우의 눈빛을 살려주는. 놈이가 옥사에서 이야기하다가 눈가가 갑자기 은빛이 되는 순간, 소름이 쫙 끼치더라. 그건 조명의 힘이거든. 못 느꼈나?

음..솔직히..
그럼 안 되는데! (웃음) 황진이와 옥사에서 대화를 나누는 씬에서 눈가에 은빛이 쫙 돈다. 눈물이 올라오는 순간을 조명으로 딱 잡아준 거지. 그때 너무 소름 끼치더라.

앞으론 그런 부분에 대한 고려도 많아지겠다. .
먼저 영화 캐릭터 전체에 대한 고민이 많이 있어야 되겠지. 전체 영화에서 내가 해야 될 몫이 있으니까. 물론 혼자만 잘 하겠다고 발버둥치는 건 보기 싫고, 영화에 내 캐릭터를 잘 녹여낼 수 있게 감독님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과 의견을 나눠야겠더라. 그리고 현장 당일 날은 정말 베스트를 해야지. 후회 없이. 한 컷, 한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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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열은 <황진이>에서 가장 입체적인 캐릭터다. 비열하지만 가장 솔직한 인간적 욕망을 드러내는 캐릭터. 그리고 내면적인 캐릭터를 만들어야 하지만 동시에 사극이니까 그 시대에 걸맞은 외관을 위한 노력도 있었을 거다.
<스캔들>에서 배용준 씨 캐릭터를 만든 분장 팀 한필남 팀장님이 외피적인 모습 때문에 굉장히 많이 고민했지. 왜냐면 내가 너무 없어 보이니까. (웃음) 재력가이자 권력가이며 쿨한 바람둥이고, 샤프한 척도 해야 되고, 그런데 그러기엔 내가 너무 없어 보이는 거지. 굉장히 많이 고민했다. 외피적인 모습을 만들려고 노력을 많이 했지. 살도 많이 빼고. 사실 극 초반이 힘들었다. 희열이란 캐릭터가 지니고 있는 속내, 까놓고 말하면 바람둥이지. 난 술도 안 마시고, 룸싸롱 같은데 가서 여자 끼고 놀아본 적도 없다. 그래서 그런 모습이 너무 어색한 거야. (웃음) 그래서 그걸 이겨내려고 초반엔 노력했었고, 그 뒤로는 쉽게 풀렸던 거 같다. 희열 같은 인물은 지금 이 시대에도 있고 앞으로도 있을 것이고. 결국 옛날부터 계속 있었던 거지. 그런 놈 죽으면, 그런 놈 하나 태어나고. 권력에 대한 야망과 여자에 대한 소유욕을 지녔지만 겉으론 드러내지 않는 이중적인, 이런 인물들은 항상 있었지. 평소엔 평강(平康)하지만 외부적인 자극이 닥치면 분노가 일어나고 막 질투도 일어나는 건, 인간 누구에게나 있거든. 나도 있고, 기자님에게도 있고. 난 그런 지점에서 접근했다. 주변 환경에 따라서 누구나 그럴 수 있다라는 생각으로 접근했지.

희열이 도덕적인 인물은 아니지만 인간적으론 이해할 수 있다는 말처럼 들린다.
난 충분히 그럴 수 있단 생각이 든다. 그 정도의 권력을 지닌 희열이 황진이한테 쿨하게 잘해줬는데, 이 여자가 딴 남자를 사모하고 목 빠지게 기다리면 질투가 안 나겠나?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 서리가 내리지만 남자는 살인한다. 여자들은 딱 끊고 말아버리지. 도마뱀처럼. 그런데 남자는 집요하단 말이야. 그런 면에서 희열은 굉장히 솔직한 인물인 거 같다. 단순한 선악 구도에선 악당이지만 탁 털어놓고 솔직하게 보면 제일 인간적이지. 상대적으로 놈이는 굉장히 유토피아적이고 비현실적인 인물이잖아. 지금 시대를 현재로 옮긴다면 희열은 현직 검사 정도, 되게 잘나가는! 근데 놈이는 자기 앞가림도 못하고 맨날 경찰서 들어갔다 나오고. 그런데 누굴 택하겠냐고, 요즘 여자애들이. 누굴 택하겠어요? (홍보사 이 모씨한테) (웃음)

(당황한) 홍보사 이모 양: 희..희열?
그래. 당연한 거야. 이 대답이! (웃음) 그런데 영화의 매력은 바로 그거지. 비현실적이지만 올바른 것에 대해 생각해보게 하는. 현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사랑에 대한 잘못된 가치관에 경종을 울려주는, 현실적이란 핑계로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가치관들에 경종을 울리는 순수한 사랑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자. 그 말을 하는 것 같아.

희열 같은 경우는 가장 솔직한 질투가 드러난 인물인 것 같다. 그런 면에서 <황진이>에서 가장 현실적인 캐릭터였던 것 같아요.
사실 놈이가 비겁한 놈이지. 안 그래? 황진이 시집간다니까 꼰 지르고 모른 척 하고. 결국 황진이가 기생 된 건 놈이 탓이지. 결국 끝까지 지켜주지도 못하고, 현실도피적인 인물이지. 안 그래? (또 홍보사 직원한테) (웃음) 아, 근데 이러면 홍보 잘못하는 건가? (웃음)

가만히 보니까 남자 배우 복이 참 많다. 정재영 씨부터, 차승원, 설경구, 조재현, 유지태, 정준호 씨.
이범수 씨랑 뮤직비디오도 찍었다. (웃음) 그냥 뭐 고맙지. <열혈남아>에서 윤제문 씨도 같이 했었고.

윤제문 씨는 연극도 많이 하시니까 연대감도 있었겠다.
그렇지. 나랑 동갑인데. 카리스마도 있고. 좋아요. 사람.

가만히 보니까 동갑 배우가 많다. 차승원 씨도 동갑이고.
70년생 너무 많아. 진짜. 정재영, 황정민 같은 내 동기들부터 시작해서. 친하진 않지만 감우성, 이병헌, 김수로, 김혜수 등 진짜 되게 많네! 아, 강성진도 있네. (웃음)

서울 예대 시절의 인맥들에게 도움을 많이 얻고 있는 거 같다. 직접적이든 간접적으로.
사실 공식적인 자리를 떠나 개인적으론 직접 연락하는 경우는 드물다. 서로 매체를 통해서 소식 듣고 그런 편이지. 어쨌든 든든하지. 얼마 전 어떤 잡지 같은 경우에 정민이가 <검은 집>으로 표지 모델을 했고, 중간에 내 인터뷰 기사도 세 면 정도 나오고, 재영이도 <신기전> 때문에 나왔다. 동기 셋이 한번에 딱 나온 거지. 그리고 각자들 다 봤겠지. 근데 서로 “야, 너 나왔더라.” 이렇진 않죠, 우리가. (웃음) 그리고 설마 걔네 들이 “아, 이게 이제 치고 올라오네.” 이러겠어? (웃음) “승룡이 고생하더니 이제 조금씩 주목 받는구나.” 하고 좋아하겠지. 설마 “아, 큰일났네.” 이러진 않을 거 아냐.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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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간의 좋은 자극이 될 것 같다.
음..사실 그런 건 전혀 없고. (웃음) 농담이고, 그렇지. 서로 각자 좋은 자극이 되겠지.

혹시 본인을 자극하는 배우가 있나?
자극뿐만 아니라 담고 싶은, 또 닮고 싶지만 닮을 수 없을 것 같은 배우가 송강호 선배지. 뭐 다들 많이 이야기하겠지만, 연기에 있어서는 거의 멘토(mentor)라고 생각한다. (신)하균이나 재영이나 정민이도 공히 말하는 게 강호 형 연기는 혀를 내두르게 한다고. 왜냐면 너~무 자연스러우니까. 제작자나 작가, 감독이 생각하지 못한 걸 배우가 만들어내니까 소름이 끼치는 거지.

지금까지 맡았던 역할 중 가장 편하게 연기했다 싶은 역할이 있나?
<소나기는 그쳤나요>에서 농부. 그런 수더분한 아저씨 있잖아. 난 그게 너무너무 편하다. 그건 우리 동기들도 비슷할 거다. 우린 헝그리 족이었거든. (정)재영이나 (황)정민이나. 예대 시절에 두 부류가 있었어. 집에 돈 좀 있는 애들, 그래서 그때부터 일찌감치 차 타고 다니는. 근데 정민이나 나는 항상 야상, 등산화, 군복 바지나 입고 다니고. (웃음) <나의 결혼 원정기>나 <너는 내 운명>같은 순박한 연기들이 그런 데서 나오는 거지. 나도 그런 모습들이 그래서 좀 편하고. 물론 그것뿐만 아니라 <사생결단>이나 <피도 눈물도 없이>같은 마초적인 연기도 되잖아. 근데 전자보단 후자가 난이도가 조금 낮은, 쉬운 연기인 것 같다. 평탄한 호흡을 길게 가져가야 하는 연기가 굉장히 어렵지. 그래서 난 그런 연기에 도전하고 싶고.

현재 영화판에서 연기력을 인정받는 배우들을 보면 연극 무대 출신인 경우가 많다. 방금 말한 송강호 씨도 그렇고.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연극을 경험한다는 건 연기자에게 가장 좋은 경험이 아닐까 싶다.
일단 연극은 기본적으로 인간적이다. 먼저 그걸 깨닫게 하고 연기를 어떻게 해야 할지를 가르친다. 무엇보다 굉장히 엄한 곳이지. 그렇기 때문에 작품에 임하는 자세도 틀리고. 연극은 한 대본을 보통 3개월씩 연습을 하잖아. 결국 시나리오를 통한 작품 분석, 인물 분석에 굉장히 많은 도움이 되지. 호흡이나 발음, 발성 같은 것도 아예 안 배운 사람들 보단 낫겠지. 발음이나 발성 때문에 지적 받는 배우들 많잖아. 솔직히.

확실히 연극 출신 배우들은 발성이 좋은 것 같다.
그런데 그게 독이 되기도 한다. 물론 그땐 그걸 빼면 되지. 그러니까 <황진이>같은 경우엔 호통치는 연기가 많아서 발성을 이용할 때가 많았지만 <열한번째 엄마>같은 경우엔 발성을 전혀 안 썼거든. 하지만 분명 발성을 해야 될 때, 그 연습을 안 한 사람은 안 나는 거지. 그런 면에선 굉장히 유리한 거지. 그리고 질문 외적인 이야기지만 오디션을 봐서 그 사람을 얼마나 깊게 알겠어. 사실 연기는 하고 싶은데 기회가 없기 때문에 연극을 먼저 하는 경우가 많지. 난 그렇게 생각한다. 난 운이 좋아서 사진도 안내고 오디션도 안 봤지만 백날 프로필 넣고 오디션 봐도 안 되는 사람이 허다하거든. 영화는 그 바닥에서 검증된 배우들을 위주로 보기 때문에 새로운 인물이 등장하기가 쉽지 않다. 그런 면에서 (유)해진이는 참 대단한 사람이지. 해진이도 단역 오디션부터 시작했으니까. 그렇게 밟아간 경우는 굉장히 드물거든.

유해진 씨와도 같이 공연한 사이 아닌가.
같이 머리 빡빡 깎고 뉴욕 가서 <두타>했지. 고생 많이 했어. 같이 조치원 비데 조립공장가서 한달 동안 일한적도 있는데, 류사장, 유회장 막 이러면서. (웃음) 조치원 공장에서 일하는 아줌마들이 초등학교 선생님인 자기 딸 소개시켜준다고 눌러 앉으라고 막 그랬어. 진짜! (웃음) 왜냐면 일을 너무 잘하니까. 여담인데 한달 아르바이트로 갔다가 우리가 공장 시스템을 바꿔버렸어. (웃음) 너무 비효율적이더라고. 분업도 안되고. 그래서 우리가 되게 효율적으로 만들었지. 그리고 ‘오침(午寢) 시간을 줘야 한다. 그래야 효율적이다.’ 그래서 오침도 했잖아. (웃음) 어쨌든 해진이와는 같이 고생 많이 했지. 그 친구도 혈혈단신 연극하겠다고 청주에서 올라와서 맨날 후배들 자취방 돌아다니면서 자고, 세트 아르바이트도 굉장히 많이 하고.

최근 <이장과 군수> 주인공도 맡았고, 그런 모습을 보면 한편으로 뿌듯하겠다.
음..사실 이제 터닝 포인트가 필요할 시기지. 해진이가 나보단 부담이 훨씬 클 거다. 지금 그걸 고민해야 될 타이밍이니까. 지금까진 잘 왔잖아. 그런데 지금이 더 중요하잖아. 그래서 아마 해진이가 고민이 많겠지.

<황진이>는 첫 사극 연기였는데 어떻던가?
너무 좋았다. 난 사극 체질인가 봐. (웃음)

사극이랑 꽤 어울리는 캐릭터이긴 하다. 일단 턱수염만 봐도. (웃음) 분장을 안 해도 될 것 같은데?
그래도 분장 도움을 많이 받았지. 보면 알겠지만 눈썹도 다 깎아주고, 수염도 많이 다듬고. 볼도 많이 깎았다. 볼 터치로. (웃음) 옛날부터 내가 탈춤 반이나 민속극 같은 걸 선호했었기 때문에 이번에 많이 도움이 된 거 같기도 하고.

남자 배우 복은 많지만 아직 여자 배우 복은 없는데.
송혜교 씨가 처음이지. 이러면 오정해 씨가 섭섭해할 텐데. (웃음)

그래도 오정해 씨는 극중 거리를 둔 상대였으니까.
나만 많이 좋아하고 그랬으니까. 근데 오정해씨는 되게 특수한 케이스잖아. 국악인이자 음식점 경영자. (웃음) 그리고 또 강의도 하시고, 라디오 DJ도 하시고. 사실 깊은 공감대를 갖기는 힘들었던 거 같다. 그래도 학번은 나와 같았고. 그냥 작품을 떠나서는 편했지

송혜교 씨와의 연기 호흡을 맞추는 건 어땠나?
사실 (송)혜교랑은 호흡이 안 맞아야 잘 나올 것 같은 대립 구조잖아. 베드씬도 그렇고. 처음엔 너무 당황해서 대사도 까먹고 그랬다. “명월이 인사 드리옵니다.” 그러는데, 대사가 생각이 안 나는 거야! (웃음) 다 그렇게 한번 해보라고. 내가 “송도에 있는 모든 기생들이 권주가를 내게 올리는데..” 이대사를 해야 되는데, “아! 잠깐만요!” 그랬다. 대사가 생각이 안 나더라. 첫 촬영 전에 밥도 두세 번 먹긴 했는데 제대로 꾸며놓으니까 어지럽더라. 대사 다 까먹었어. (웃음) 어쨌든 호흡은 잘 맞았다. 그래서 나름대로 연기도 잘 나온 것 같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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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베드씬이 있다는 말을 듣고 망설였다가 15세 관람가라는 걸 알고 출연을 결정했다고 하던데.
사실 베드씬이라기 보단 보료씬이지. (웃음) 음..솔직히 그런 연기는 하고 싶지 않다. 물론 내가 이미지 때문에 안 벗거나 이런 건 아니고. (웃음)

사실 이미 <고마운 사람>에서 보여줄 건 다 보여준 걸로 아는데?
그거랑은 틀리지. 그건 그냥 샤워하는 거잖아. 난 적나라한 베드씬 같은 건 죽어도 못해. “연기인데 뭐 어때?”라고 할 수도 있지만 난 못할 것 같아. 난 못해! (웃음) 만약 내가 그렇게 돈을 벌어다 주면 아내가 기분이 상할 것 같다.

아내에 대한 배려 때문에?
철저하게.

지독하게 가정적이다. (웃음)
난 거기서 오는 행복이 너무 많고 크기 때문에, 가정에 대한 욕심이 연기에 대한 욕심보다 더 크다. 난 무조건 가정이 먼저에요. 물론 가정이 먼저라고 해서 일도 안하고 가정에 처박혀 있자는 건 아니고! 그럼 백수지! (웃음) 어쨌든 가정이 행복하기 때문에 내 일이 잘 되고 있는 거라고 생각한다.

<난타>의 주방장이었는데, 아내를 위해 요리를 해주기도 하나?
평소 집사람이 만든 요리를 내가 맛있게 먹어주는 우리 집사람의 가장 큰 행복이다. 집사람의 요리를 내가 맛있게 먹을 때 내가 행복할 정도로 제일 행복해하거든. 그런 행복을 자주 뺏고 싶진 않은데, 한 달에 한 두 번은 내가 할 수 있는 요리를 해주지. 특별 식으로. 그것도 와이프가 굉장히 행복해하거든. 나 추어탕 같은 건 나 되게 잘 끓이거든.

결혼은 인생에 많은 변화를 부른다. 류승룡 씨같은 경우는 상당히 안정적인 여유를 준 것 같다.
너무 좋다. 집은 어떤 것보다도 편한 안식처다. 온천보다도, 스위트 룸보다 더 좋은. (웃음) 비록 비좁고 조그만 집이지만, 난 우리 집이 제일 편하다. 왜냐면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우리 아내와 아들이 있기 때문에. 우리 아들이 한번 웃어주면 너무 행복한 것 같다. <황진이> 오백만 터지는 것만큼이나. (웃음) 그러니까 일단 지금 행복하게 살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는 거지.

어쨌든 가장으로서 경제적인 고민도 많아졌을 텐데. 그런 점에서 출연 기회가 많아져서 그만큼의 여유도 있을 것 같다.
솔직히 별로 그렇진 않고. (웃음) 사실 그제 세금을 처음 내봤다. 종합소득세. 사실 그전까진 환급을 많이 받았는데 이번엔 몇 백만 원을 그냥 냈다. 그래서 난 되게 당황했거든. 손이 부르르 떨릴 정도로. 그래서 재영이한테 전화했더니 재영이는 비교도 안되게 많이 냈더라. 물론 걔가 많이 낼 줄 알았지만 그 정도인 줄은 몰랐지. 난 아직 그 정도로 서민이다. (웃음) 어쨌든 세금 잘 내야지! 사실 돈이 생기자 마자 부모님 집 옮기는데 다 보탰다. 그래서 지금 돈이 하나도 없어. 마이너스 통장이야. (웃음)

어쨌든 이제 세금도 낼 만큼 수입이 생긴다는 이야기다. 그만큼 연기에 집중할 수 있는 여건은 좋아진다는 의미도 될 듯 한데.
그 동안 연기를 하기 위해서 일을 많이 했지. 가락시장에서도 일했었다. 결혼하고도 10개월 동안 실내 인테리어 일했다. 솔직히 말하면 잡부지. (웃음) 어쨌든 연기를 위해서 이런저런 일을 많이 했지. 생계 유지를 위해서. 이제는 여유로워졌다기 보단 연기를 위한 일만 할 수 있어서 좋다. 그러니까 그 동안은 연기로 생활비를 벌 수 없으니까 그걸 위해서 굉장히 많이 일을 했었거든. 근데 이젠 연기에만 몰입할 수 있고, 그래서 와이프도 굉장히 행복해한다. <아는 여자>나 <박수칠 때 떠나라> 때도 그랬고, 영화 없으면 난 일하러 나갔다. 연극이나 영화 하는 친구들이 일없으면 집에서 놀거나 맨날 술이나 마시는 이런 모습이 너무 싫었다. 그렇게 놀다가 여자 만나서 바람 피다가 이혼하는 사람도 많고, 이런 게 너무 싫었거든. 불과 작년만해도 난 거의, 아, 작년은 바빴구나. (웃음) 재작년만 해도 과수원에서도 일하고, 공장가서 일하고 그랬다. 틈만 나면. 근데 거기서 배운 게 많다. 거기서 만난 사람들 중 재미있는 사람 많거든. 관찰을 많이 했지. 그런 게 연기에 도움이 많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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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농부 같은 역할이 편한 게 아닐까? (웃음)
그런가? 이제 골프장 같은 데를 가봐야 회장님 연기도 할 텐데. (웃음) 하긴 내가 뭐 검사해봐서 검사했나? (웃음)

하긴 뭐 <황진이>에서 사또 역할도 어울리던데.
그렇지. 사또 해봤나? 내가 뭐, (웃음)

혹시 연기라는 길을 택한 걸 후회해 본 적은 없었나?
후회한 적 한번도 없다. 한번도 해본 적 없는 거 같아. 86년부터 했는데.

그럼 반대로 이 길을 택해서 참 다행이다 싶었던 적은?
음..그게 요즘인데. 전도에 도움이 되더라고. (웃음) 어떤 식으로든. 내가 영화도 나오고 그러니까 이 사람도 우리 교회 다닌다는 식으로.

신앙은 아내한테 영향 받은 건가?
내가 전도를 한 건데. 요즘은 그분이 더 독실해졌다. (웃음)

외모에서 풍기는 강한 인상 때문에 거칠고 험한 역할의 섭외가 많이 들어올 것 같은데.
그렇지. 형사 아니면 깡패. 그런데 우리 나라 남자배우들이 거의 그래. 깡패 아니면 형사 아니면 검사. 설경구 선배도 그렇고, 송강호 선배도 그렇고. <열한번째 엄마>도 보면 아마 기절할거다. 아동 학대, 여성 폭력, 도박. 이걸로 이제 악역의 마지막 종지부를 찍고 싶은데~. (웃음) 그런데 환경이 불우한 사람들은 그런 환경이 대물림 되는 경우가 많다. 어쩔 수 없는 환경에 태어나서 그렇게 자랄 수 밖에 없었던 사람들. 난 그 배역에 너무 연민이 가더라. 그리고 저예산 영화지만 시나리오가 너무 좋아서 참여했다. 많이 울었지. 함께 출연한 (김)혜수씨도 보고 많이 울었다.

혹시 본인이 해보고 싶은 역할이나 출연하고 싶은 장르가 있나?
난 진짜 웰메이드 휴먼 드라마 하고 싶다. 아름다운 영화 있잖아. 자극적인 영화 말고. <웰컴 투 동막골>에서 재영이가 같은 역할. 인간적이잖아. 아니면 <왕의 남자>에서 감우성 씨 같은. 매력적이잖아. 무엇보다 벗지 않아도 되니까. (웃음) 벗지 않아도 좋은 그런 역할들이 얼마든지 있어. (웃음) <아들>에서 차승원 씨 같은 역할도 되게 좋잖아. 사실 되게 욕심부렸었다. 너무 하고 싶었거든. 근데 그 놈의 인지도. 하아~.(웃음)

장진 감독과 대화 좀 했을 법한데?
장진 감독한테 하고 싶다고 했더니, “승원씨는 이거 2억에 하거든. 되게 싸게 하는 거야.” 그래서 “저 2천에 할게요.” (웃음) 또 그러니까 “야, 차승원 씨는 2억에 2백만을 책임질 수 있는 배우야. 근데 너는 2천 줘도 넌 2만?” (웃음) 그래서 “알았어요.”했지. 물론 반 농담으로 나눈 이야기다. 사실 난 유명해지거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것에 대한 욕심은 없다. 근데 이렇게 하고 싶은 역할을 못하는 경우가 생긴다는 걸 알게 되니까 인지도도 중요하더라. 왜냐면 시나리오가 너무 좋아서 난 하고 싶은데 투자자나 제작자는 인지도 없는 배우는 안 쓰려 하니까 이럴 때 너무 속상한 거다. 그런 면에서 <황진이>는 제작자나 투자자, 감독님한테 너무 감사하지. 왜냐면 내가 캐스팅될 때만해도 <박수칠 때 떠나라>밖에 개봉을 안 했었거든. <열혈남아> <천년학> <거룩한 계보> 이런 건 다 찍기 전이나 찍고 있었고. 장편 하나보고 이 역할을 결정했다는 건 그 분들이 혜안이 있다거나. (웃음)

연기가 자신을 흔든 계기가 무엇이었다고 생각하나?
연기라, 일단은 내가 방황하던 시절, 뭐 솔직히 안 놀아본 사람 없잖아. 중3, 고1때. 난 중3만 마치고 학교에서 배울 건 다 배웠다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그만 두려고 고등학교에 갔지. 그런데 교문에 들어가니까 선생님들이 막 달려오더니 발로 뻥 차고 머리를 막 깎는 거야. 완전 정신 못 차렸지. (웃음) 원래 풍생고 유명하거든. 근데 그때 교화로 연극부에 들게 했다. 그때 했던 게 <방황하는 별들>이란 뮤지컬의 복서였는데 너무 재미있더라. 그래서 그때부터 마음잡았지. 그게 나 뿐만이겠어? 연기를 통해서 많은 사람들이 나처럼 이렇게 바뀔 수가 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더라. 삶이. 어쨌든 교화가 계기가 됐지. 그리고 연기를 하기 위해서 그때부터 다시 공부도 했고. 정말 연기하려고 내가 하기 싫은 영어와 수학을 했다니까! 진짜. (웃음)

개인적으로 가장 큰 바람이나 목표가 있다면.
부끄럽지 않은 아버지 그리고 남편이 되고 싶다. 아들한텐 정말 존경 받는 아버지가 되고 싶고, 아내를 사랑하고 존경하는 남편이고 싶다. 주색잡기를 좋아하면 정말 추하게 늙잖아. 추접하게. 비참하게. 그러고 싶진 않다. 정말 며느리한테도 사랑 받는 멋있는 시아버지나 자랑하고 싶은 아버지가 되고 싶지.

다시 한번 느끼지만 정말 가정적이다. (웃음) 희열이란 캐릭터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여기서 희열이 느껴지면 큰일나지! 그리고 사실 내가 코메디에 자질이 있다. 장진 감독도 그걸 아는데 나중에 히든 카드로 써먹으려고 아직 숨겨두고 있는 거야. (웃음)

이거 기사화 시켜도 될까?
아, 뭐, 상관없다. 혹시 알아? 누가 먼저 배역 줄지? (웃음)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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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민용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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