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는 선물하는 것이 쉬운 일일지 모르겠지만 선물하는 건 정말 쉬운 일이 아닌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물을 하고 싶다는 마음에 끌리는 건 그것이 비단 남을 위한 일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아주 어린 시절이었다. 대략 5살쯤? 어쨌든 크리스마스에 부모님으로부터 선물을 받길 내심 기대하는 나이였고, 부모님 역시 선물을 줘야 한다는 의무감이 팽배했던 시절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당시에 미취학 아동들 사이에 유행했던 장난감 로봇이 있었다. '코볼 로보트'라는 이름으로 당대 어린 남자애들 사이에선 우주의 기운을 모아서라도 갖고 싶은 장난감이었다. 소위 말하는 깡통로보트처럼 생겼지만 리모콘으로 조종을 하면 투명한 플라스틱 내부의 머리 부분에서 불이 번쩍거리고, 평평한 바닥에 조립된 바퀴로 전진과 후진도 가능한 것이었다. 소리도 났던 것 같은데,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훗날 나이가 먹고 나서야 그것이 <스타워즈>에 나오는 R2D2를 베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사실을 알게 됐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그 시절에는 코볼 로보트가 너무 갖고 싶어서 나도 모르게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 우주까지 전해진 것 같다.
크리스마스 당일 아침에 눈을 떴는데 머리맡에서 우주의 기운이 느껴졌다. 알록달록한 포장지에 싸인, 그럴싸한 크기의 네모난 선물상자가 있었다. 그렇다. 코볼 로보트였다. 아마 그 날 이후로 엄마, 아빠도 못 알아보고 한동안 코볼 로보트만 보고 살았던 것 같다. 다만 그 관심이 언제 시들해졌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을 뿐이다. 그 이후로 부모님이 주셨던 선물 중 기억나는 건 중학교 시절에 받았던 농구공이었다. 당시 나는 농구에 한창 빠져있었고, 농구공을 받은 이후로는 어머니께서 후회할 정도로 농구만 했다. 사계절을 가리지 않았다. 아마 부모님께서 사주신 선물이 이것만은 아니었을 테지만 그 이외의 선물들이 잘 기억나지 않는 건 내게 대단히 마음에 드는 선물이 아니었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선물을 받은 당시에는 기분이 좋았겠지만 그것이 기억될만한 기억으로 세월을 관통해 살아남지 못한 데엔 이유가 있을 것이다. 내가 간절히 바라지 않았거나 부모님께서 우주의 기운을 외면하셨거나. 그러니까 결국 누군가에게 마음에 드는 선물을 준다는 건 여간 쉬운 일이 아니란 말이다.
간단히 말하면 누군가에게 마음에 드는 선물을 줄 수 있는 확률이란 그 사람이 원하는 것을 얼마나 잘 아는가라는 질문에 답할 수 있는 확률과 유사하다. 물론 그 누구라도 좋아할 것이라 짐작할 수 있는 귀한 물건을 선물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 역시도 그의 형편이나 일상에 어울리지 않을 것이라면 역시 계륵처럼 여겨질 것이다. 이를 테면 면허도 없는 이에게 고가의 드라이빙 슈즈를 선물한다면, 상당한 기회비용이 느껴질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니까 선물을 준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타인에 대한 취향을 배려하는 동시에 가끔은 자신의 취향도 충족시켜야 하는 일이다. 그에게 필요한 것을 주고 싶은 동시에 스스로가 만족할 만큼 좋은 것을 사고 싶은 일이다. 게다가 우린 스스로의 취향을 아는 데에도 인색하다. 내 취향을 정확히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타인의 취향을 고려해야 한다는 건 정말 고역일 것이다. 그러니 선물을 한다는 건 항상 누군가에게 의견을 구하고 기대야만 하는 일이 된다. 포털사이트에 선물이란 단어로 검색해봐도 선물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묻는 질문과 선물을 어떻게 하면 좋은지를 알려주는 팁들이 넘친다.
개인적으로 태어나서 가장 많은 선물을 받았던 건 아마 결혼할 무렵이었던 것 같다. 결혼식을 하지 않기로 했기 때문에 가까운 지인들은 축의금 대신 선물을 주겠다고 했는데 아무래도 마음에 들지 않거나 필요 없는 물건을 받고 싶진 않았기 때문에 받고 싶은 선물 리스트를 작성해 제시했고, 지인들은 그 리스트에서 적절한 가격대의 선물을 선택해 전달했다. 그 리스트에 있었던 건 대략 두 가지 부류였다. 누군가가 선물을 했을 때 가격대가 부담스럽지 않지만 꼭 필요하다고 느껴지는 것 혹은 갖고 싶지만 직접 사기는 망설여지는 것. 결국 그 당시에 받은 모든 선물들이 하나같이 쓸모 있게 활용되는 건 아니지만 필요하다고 여겨지는 것 혹은 갖고 싶었던 것을 받았기 때문에 최소한 지금 살고 있는 집 안에서 그때 받았던 선물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다는 상황은 면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물론 선물을 할 때 상대방이 원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물어보기 힘든 경우도 존재한다. 심지어 잘 모르는 상대에게 선물을 해야 하는 경우에는 원하는 선물을 물어본다는 것 자체가 겸연쩍은 일이다. 예를 들어 업무상 출장이건 개인적인 여행이건 해외를 나갈 일이 생기면 직장 동료들에게 무언가를 사다 줘야 할 것 같다는 압박을 느끼게 된다. 사실 간단히 해결할 수도 있다. 기념품 가게에서 열쇠고리 같은 것을 종류별로 사서 공평하게 나눠주고, 공항 면세점 같은 곳에서 파는 대용량 초콜릿 같은 것을 사서 함께 나눠줘도 좋겠다. 하지만 조금 더 그럴싸한 것을 사다 주고 싶다는 마음이 들기 시작하면 머리가 복잡해진다. 대단히 보편적이고 공평하지만 성의 없어 보이는 것을 선물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에 사로잡히면 어느 순간 이러려고 선물을 하기로 했나 자괴감이 들고 괴로울 수도 있다. 나는 그랬다. 그래서 가끔은 마땅한 것을 찾지 못해 선물을 포기한 적도 있었다. 어줍잖게 초콜렛 같은 것을 사서 돌리고 싶진 않았다. 하지만 그럴싸한 것을 찾지도 못했다. 하지만 포기하면 마음은 편하다. 그런데 한편으론 아쉬움이 남는다. 받지 못한 이들의 아쉬움보다도 주지 못한 이의 아쉬움이라는 게 크게 느껴질 때가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 선물을 주고 싶다는 생각으로 탁월한 무언가를 찾아 나설 때도 있지만 어디서 문득 무언가를 봤을 때 그것에 어울리는 누군가가 생각나 선물해주고 싶다는 생각을 할 때도 있다. 그럴 때 문득 인간과 인간 사이의 애정이란 것이 물리적으로 구체화돼 눈앞에서 보인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그러니까 선물이란 너와 나의 연결고리를 우주의 기운으로 느낄 필요 없이 물리적으로 전달하고 체감할 수 있는 수단인 것이다. 새삼스럽지만 마음으로 품고 있었던 누군가에 대한관심을 확인하는 길인 셈이다. 누군가에게 선물을 했을 때 상대방으로부터 꼭 마음에 든다는 반응을 얻게 되는 건 그래서 기쁜 일이다. 필요한 물건을 줬다는 만족감 이상으로 당신을 생각하는 내 마음이 제대로 전달됐다는 뿌듯함. 이는 받는 이도 마찬가지다. 언어 그대로 예상치 못한 선물을 받았다는 놀라움도 있겠지만 정말 마음에 드는 선물을 받게 된다면 그 상대가 평소에 자신을 얼마나 관심 있게 지켜보고 고민했는지 깨닫게 될 것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마음과 마음이 교류하는 감동을 물리적으로 체감할 수 있다는 것, 어쩌면 우리가 선물을 주고 싶다고 생각하는 마음은 그런 감동을 느끼고 싶다는 욕망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벌써 한 해가 간다. 올해에는 어느 해보다도 심신을 고단하게 만드는 사건이 많았고, 여전히 많은 고단함이 남겨진 것 같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저마다 묵묵하고 성실하게 제 자리를 지키며 한 해를 잘 지나고 버텨왔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올 한 해의 끝에 다다르면 지금껏 함께 잘 버텨온 이들과 함께 수고했다는 마음을 전하고 싶다. 서로의 마음을 더욱 돈독하게 다지며 세상을 견뎌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세상이 흉악해질수록 개개인은 아름다운 것을 보며 저항해야 하는 것일지도 모르니, 세상의 한파를 견디게 만드는 온기가 내 주변에도 자리하고 있다고 더더욱 확인해보고 싶은 요즘이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어쩌면 나를 위한 진정한 선물일지도 모르겠다. 타인에게 전하고 싶은 온기를 마음에 품었을 때 이미 스스로의 마음부터 따뜻해지는 법일 것이니. 선물하고 싶은 얼굴들을 떠올려본다. 벌써부터 올 겨울이 따뜻해질 것만 같다.
(ELLE KOREA DECEMBER 2016 NO.290 'ELLE ESS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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