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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2008.05.30 박신혜 인터뷰
  9. 2008.05.30 펑 샤오강 감독 인터뷰
  10. 2008.05.30 조은지 인터뷰

윤진서 인터뷰

interview 2008. 5. 31. 0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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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 아닌가?
와인 맞다. 와인 좀 드실래요?

근무 중 음주는 안 된다. 그것도 대낮부터. (웃음)
오히려 낮에 마시면 좋은데.

그런가? 사실 와인에 문외한이라, 와인 애호가인가 보다.
사실 와인만큼 맥주도 좋아한다. (웃음)

그럼 술을 좋아하는 건가?
소주나 위스키 같은 건 잘 못 마신다. 그래서 잘 마시지도 않고.

다행이다. 소주 좋아했으면 지금 소주 마시고 있을지도 모를 일인데. (웃음) <올드보이> 당시엔 역할이 작았음에도 인상이 깊었다.
어쩌면 사람들이 그런 이미지를 원했던 것일 수도 있지. 왜냐면 한국에는 그런 이미지를 낼 수 있는 영화나 배우가 흔하지 않았으니까. 그런 이미지를 그리워했고, 그만큼 좋아했던 것 아니었을까.

사실 그 역할이 그런 선풍적인 반응을 끌어냈다는 것이 본인한테 의외였을 텐데.
맞다. 되게 의외였지. 사실 출연하기 전까지 고민 많이 했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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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장화, 홍련> 오디션에서 떨어진 인연으로 <올드 보이>에 출연하게 됐다고 들었다. 김지운 감독이 박찬욱 감독에게 추천한 덕분에. <장화, 홍련>은 어떤 역할이 탐났나?
무슨 역할인지는 몰랐고, 사실 (소속사에서) 오디션 보라고 해서 본거다. (웃음)

여행, 책, 그리고 음악을 상당히 좋아한다던데, 세가지 다 홀로 즐길 수 있는 취미다. 원래 혼자만의 독립된 공간을 선호하는 편인가?
사실 혼자 있을 수 밖에 없으니까 혼자 즐길 수 밖에 없는 거지. 혼자 있을 수 밖에 없는 걸 비관하고 슬퍼할 수는 없잖아.

환경적 요인으로 그런 취향에 빠져들게 된 거다?
친구들과 어울리는 걸 너무 좋아하고 사랑한다. 그만큼 혼자 있는 것도 좋아하고. 똑같이 좋아한다. 그런데 내 직업상 내가 원하는 시간에 친구들을 만날 수 있는 틈이 많이 없다. 친구들도 자기 인생이 있고, 자기 삶이 있기 때문에. 내 촬영이 새벽 2시에 끝나면 그 시간에, 친구를 불러서 놀 수 없는 거니까. 친구들도 그 다음날 출근해야 하고 나름대로의 일상이 있으니까. 하지만 친구는 많은 편이다. 연예인치곤 굉장히 많은 편이라고 생각한다.

뭔가 가려져 있는 이미지다. 신비롭다고 할 수도 있고. 그런 이야기 많이 듣지 않나?
많이 듣는다. 그건 의도한 건 아니지만 내 외모 때문에 그런 것 같다.

사실 <두사람이다>의 연기는 그 동안의 역할 중 가장 평범한 캐릭터였던 것 같다. 물론 외부적인 상황이 고생스러웠지만 캐릭터의 본질을 만드는 건 무난하지 않았을까.
말한 대로 다가가긴 쉬웠을 수도 있다. 그런데 다른 부분에서 힘들었다. 기자시사회 때도 했던 말인데, 다 아물었던 상처, 두꺼워진 딱지를 다시 떼내서 피 흘리는 느낌이었다고. 그 말대로다. 내 삶의 바탕에 힘든 일이 많았는데, 표연하게 살아왔던 게 있어서 다가가긴 쉬웠지만 힘들었다. 내가 내 몸을 다시 뜯어서 청소해내는 느낌으로 찍은 영화였거든. 그만큼 아파하면서 찍었고, 쉽지만은 않았다.

자신의 인생에서 있었던 어떤 심리가 영화 속 캐릭터와 닮아있는 부분이 많은 건가.
그렇다. 닮아있는 부분이 많아서 개인적으론 힘들었다. 연기를 해야 한다는 게.

그에 대해 묻는 것은 실례일까.
사실 난 말하는 게 전혀 아무렇지도 않다. 내가 걱정하는 건 동생과 언니다. 난 내 자신이 드러나는 것에 대해 거리낌없이 말하곤 하지만 그런 것들 때문에 우리 가족들이 상처를 받을 수 있으니까. 그리고 가끔씩은 자신의 보호를 위해서 혹은 자존심을 위해서 내가 모르는 곳에서 거짓말하게 되는 경우도 있나 보더라. 어쨌든 난 아빠 없이 살았다. 그리고 그런 이후로 경제적인 부분이 힘들어서 고등학교 때부터 일을 했었다. 그런 것에 대한 상처가 있었던 거 같다. 나도 모르게. 물론 그 당시엔 그냥 아르바이트 같은 거 하면서 친구들과 재미있게 어울리며 살았는데 은연 중에 상처가 된 거 같다. 애정 결핍이지.

그런 이야길 해야 한다는 것에 대한 거부감은 없나?
거부감은 없다. 난 그냥 배우이고 싶지, 내 이미지를 파는 사람은 아니니까. 그렇게 살고 싶진 않다. 그렇게 살면 정말 재미없을 것 같고. 내가 어떤 힘든 삶을 살았는데, 그걸 연기를 통해서 보여줬고 어떤 사람들에게 그게 공감이 됐다면 난 됐다. 힘들어하건, 부끄러워하건, 좋아하건, 아파하건, 그 사람들에게 어떤 느낌을 전해줘서 결국 눈물을 흘리거나 웃는다면 그게 좋은 영화인 거 같다. 영화를 보면서 웃는 것도, 우는 것도 좋은 거니까. 영화나 소설을 보거나, 음악을 듣고 웃거나 울 수 있다는 건 좋은 일이라 생각한다. 그것들이 만들어줄 수 있는 기억을 갖는다는 건 좋은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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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배우를 꿈꾸게 된 계기는 뭔가?
고등학교 때 연극반이었다. 사실 연극반에 들어가고 싶어서 들어간 건 아니고, 친구들과 다 같이 들어갈 수 있는 특별활동이 연극 반밖에 없었다. (웃음) 열명 정도의 친구들이 한꺼번에 다 들어갈 수 있어야 했거든. 그래서 그냥 연극반가서 다같이 놀기 위해서 들어갔지. 그런데 대회를 나가게 됐다. 선생님이 나가라 그래서 연극 대회를 나갔는데, 정말 안 그럴 것 같던 내 친구들이 땀 흘리면서 무대를 만들고 망치질 하더라. 난 배우였기 때문에 그런 작업은 안 했는데, 나도 정말 안 그럴 것 같던 내가 대사를 외우고 있더라. 그렇게 외우라고 해도 단어들은 외우지 않았는데. (웃음) 그런 게 되게 신기했지. 다같이 하나의 목표를 위해 열심히 하는 모습들이 뭔가 하나로 함축된 가족이 된 것 같은 느낌이었다. 내가 좀 불안정한 가정에서 살아서인지 하나의 완전한 집단에 있는 듯한 느낌이 너무나 좋았다. 보호받는 느낌이랄까. 지금도 항상 영화 현장에 있으면 보호받는 느낌이 든다. 물론 촬영도 끝나면 확 깨지지만 촬영할 때만큼은 그런 느낌이 되게 좋다. 물론 연기 자체에 대해서 이야기하자면 말할 것도 없고.

그렇다면 본인이 배우로서 생각하는 이상적인 연기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힘든 듯이 연기하는 걸 싫어한다. 이자벨 위페르, 줄리엣 비노쉬, 장만옥 이런 배우들을 좋아하고 사랑하는데 그들 중 힘들어 보이듯 연기하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한다. 이 사람들의 영화를 역시 너무 사랑하는데, 그녀들의 영화를 왜 사랑하냐고 묻는다면 그냥 영화 속의 그녀들이 누구인지 의문을 갖게 만들지 않기 때문이라고 대답할 수 있을 것 같다. 난 그녀들이 정말 영화처럼 그런 경험을 했을 것만 같고, 그렇기 때문에 연기할 수 있었을 거라 생각될 만큼 신뢰하고 믿을 수 있는 연기를 한다고 생각한다. 어떤 모자람도 없고, 넘치는 것도 없기에 가능한 게 아닐까. 그녀들의 연기는 항상 그런 게 느껴진다. 나도 그런 연기를 하고 싶고. 아직은 많이 부족하지만 그런 배우가 되고 싶다. 그런 영화들을 많이 보고 사랑하기 때문에, 그런 연기를 하고 싶다 생각하다 보니 그렇게 되는 거 같다. 그래서 <바람피기 좋은 날>처럼 농담하는 듯한 연기도 자연스럽게 하고 싶었다. <두사람이다>도 고통에 시달리면서 연기했지만 ‘정말’ 같은 연기를 하고 싶었다. 그게 욕심이지. 너무 오버스럽게 하고 싶진 않다.

캐릭터를 선택할 때 어떤 캐릭터에 끌린다는 특별한 이유라도 있나?
끌리는 이유? 그런 특별한 이유는 없지만 뭔가 잡아당기는 것 같다. 마치 자석의 마이너스가 플러스를 끌어당기듯.

그렇다면 자신이 택한 캐릭터 중에 특별한 애착이 남는 캐릭터를 꼽을 수 있나?
내가 <두사람이다>까지 (정식 개봉한 작품만) 7편의 영화를 찍었는데 정말 거짓말이 아니라 모든 작품의 캐릭터가 다 내 안에 있었다. 그렇지 못했다면 연기 못했을 거다. 난 아직 능력이 없어서 내 안에 없는 어떤 것들을 만들어서 연기할 순 없다. 내가 나이 먹고 연륜이 돼서 다 경험해보지 않았거나 생각해보지도 못했던 어떤 것들을 감독 이야기만 듣고 할 수 있는 그런 능력의 경지에 이를 만한 단계가 되면 모르겠다. 하지만 그게 언제가 될진 모르지. 지금의 난 경험해보거나 상상해본 적 없는, 내가 그런 사람이 될 수 있단 느낌이 없는 연기는 못하겠더라. 지금까지 내가 할 수 있었던 연기는 내가 뭔가를 상상할 수 있었던 것들이었다. 시나리오를 읽으면 춤을 추기 시작했거든.

캐릭터들이?
그 캐릭터들이 씬을 만들어서 연기를 하고, 난 그럼 그냥 그걸 따라 할 뿐이거든. 그런 게 없으면 연기할 수 없는 거다. 지금까지 했던 연기들은 그런 게 보여서 따라간 거였고.

자신이 할 수 있을 것 같단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란 이야기 같다. <두사람이다>는 육체적인 고통이 상당했을 것 같다. 영화에서 본인이 빠지는 씬이 없기도 했고.
일단 내가 빠지는 씬이 없고 촬영 일정이 촉박해서 힘들었다. 그런데 <두사람이다> 찍으면서 한번도 늦은 적이 없었다. 단 1분도. 한 시간이라도 일찍 왔으면 일찍 왔지. 그리고 그게 얼마나 중요한지 이번에 알았다. 사실 이전에 다른 영화는 늦은 적 있었거든. 그래서 혼난 적도 있고. 그런데 이번엔 그런 적 없었다.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아침잠이 없어졌거든. (웃음)

벌써? (웃음)
아마 걱정을 많이 해서 그랬을 거다. 그래서 두세시간 일찍 온 적은 있어도 일분도 늦은 적은 없었다. 그러니까 마음도 편하더라. 마음이 편하니까 혼자 있을 때처럼 모든 게 빨리 되고, 집중이 잘 되더라. 한마디로 그런 거지. 공부할 때 집중이 잘 되면 좋잖아. 벼락치기하듯. <두사람이다>는 그런 기분이었다. 맨날 맨날 벼락치기 하는 기분이었지. 버겁게 벼락치기하는 게 아니라 벼락치기해서 시험 잘 봤을 때, ‘내가 어떻게 기억했지?’ 이런 생각할 때 있잖아.

순간 집중했는데 그게 끝나니까 어떻게 했는지 모르겠다는 느낌?
맞아! 정확해! (웃음) 그런 기분이었어. 기자 시사회 때 누가 ‘어떻게 그렇게 잘 울었어요?’ 라고 물어보더라. 85분 중에는 40분 이상 우는 장면이 나왔으니까 너무 많이 울긴 했지. 하지만 전혀 힘들지 않았다. 가인이라면 많이 울었을 것 아니에요. 가인에게 많이 몰입했던 거 같다. 그리곤 항상 ‘내가 왜 울었지?’ 이런 느낌이었지. 하지만 가인을 연기하면서 힘든 건 눈물 흘리기 전에 계속 고통스러워하는 가인의 마음을 견디는 것이었다. 물론 고통스러워하는 걸 영화에 담기 위해 표현하는 게 힘들다는 것이 아니라, 그걸 내 안에 지니고 있어야만 한다는 게 힘들었지.

그 캐릭터의 내면에 담긴 고통을 직접 느껴야 한다는 것이?
그걸 항상 갖고 있어야 했다. 몇 달 동안, 그게 되게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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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릭터에 몰입하면 그 캐릭터에 본인 스스로가 많이 빠져드는 편인가?
정말로 그만 했으면 싶을 정도로 굉장히 많이 빠져들지. ‘그만 좀 해! 윤진서!’ 이렇게 나 자신에게 말할 정도로 많이 빠져드는 타입이다. 그래서 문제야. 그게 장점이자, 단점인 거 같아.

그런 경우엔 캐릭터에서 빠져 나왔을 때 허탈감이 크거나, 그 반대로 빠져 나왔다는 안도감이 들 것 같다.
다.행.히.도! 윤진서란 사람은 건망증이 심해서 촬영이 끝나면 딱 잊는다. (웃음) 마지막 촬영이 끝나는 순간 잊는 거지. 난 건망증이 정말 심하다. 일년에 핸드폰 몇 번씩 잃어버리는 사람, 내가 그렇고. 맨날 지갑도 잃어버려서 카드 재발급 받는 사람도 나고. (웃음) 난 그런 타입의 인간인데, 연기할 때도 마찬가지인가 보더라. 그러나 그런 사람들이 잊어버리지 않아야 될 순간에 대해선 잘 잊어버리지 않는다. 오히려 촬영 중엔 버리고 싶어도 절대 못 버린다. 사실 <두사람이다>는 제발 집중에서 빠져 나오고 싶었던 영화였거든. 물론 촬영할 때 말고 쉬고 있는 순간만큼, 그냥 2~3일 촬영 없을 때 제발 좀 편하게 있자고 스스로 다스리는데 그게 안되더라. 2,3일 있다가 있을 촬영을 그 때도 생각하고 있는 거지. 그리고 <두사람이다>는 특이했던 게, 내가 그 전까지 했던 작품들은 마지막 촬영이 끝나면 다시 나로 돌아와 있었거든. 그때부터 난 걔(자신이 연기한 영화 속 인물) 모르는 사람인 거야. 그런데 <두사람이다>는 그렇게 안됐어. 그런 경험은 처음이었다. 그래서 여행을 좀 오래 갔다 왔다.

어디?
유럽.

파리도 갔다 왔나? 프랑스 배우들 좋아하는 만큼 프랑스도 좋아하겠지.
편하다. 불어를 할 줄 아니까 그냥 편한 거 같다.

익히 들은 바로는 4개 국어를 한다던데.
그건 한국어까지 포함해서. (웃음) 영어, 불어, 일어.

대단하다. 특별한 계기라도 있나?
그 정도만 하면 여행하는데 불편함은 없는 것 같더라. 무엇보다도 언어는 문화를 담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냥 말이 아니라. 한국말에 존댓말도 있고, 반말도 있는 것처럼. 어떤 언어든지 그렇다. 그 나라의 문화가 언어에 있다. 언어를 잘 한다는 건 그 나라의 문화를 빨리 받아들인다는 거지. 그런 면에서 언어에 익숙한 건 배우로서도 좋은 일인 거 같다. 한번도 언어를 배우며 힘들어 한적은 없었다. 물론 모국어처럼 잘 하는 건 아니고 여행을 다니면서 사람 사귀는데 불편함이 없는 정도다. 되게 잘 하는 건 아니고. 오해하진 마라. (웃음) 어쨌든 언어를 통해서 사람들을 사귈 수 있다는 게 좋은 것 같다.

일단 대화가 되면 더욱 깊게 다가갈 수 있으니까.
그렇지. 그리고 그 사람들도 더 쉽게 이야기하고, 더 많은 얘기를 나눌 수 있으니까. 더 쉽게 표현할 수 있고. 물론 그런 것들을 얼마나 좋게 받아들일 수 있는가도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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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같아도 외국을 나가고 싶을 것 같다. (웃음) 그런데 <두사람이다>를 통해 펜싱도 했는데, 운동 좋아하나?
좋아하지.

사실 별로 안 좋아할 줄 알았다. 여행이나 독서, 음악 같은 정적인 취미를 즐기는 사람이라 그런 동적인 취미는 없을 줄 알았지. 특별히 즐기는 운동 있나?
운동하는 자체를 즐긴다. 일단 항상 개인 트레이너와 운동을 하는데, 개인적으론 등산을 좋아한다. (전)도연 언니와는 등산하다 친해지기도 했고. 그리고 물에 들어가는 걸 좋아하는데 그래서 수영도 좋아한다. 난 물속에 있을 때가 공기 중에 있을 때보다 편한 거 같아. (웃음) 그리고 이어폰 꽂고 음악 들으면서 달리는 것도 좋아하고.

그런데 이번에 <두사람이다>는 물 때문에 곤욕을 치렀다고 들었는데.
말하면 되게 긴데, 너무 힘들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생명의 위협을 느낄 정도로. 촬영을 위해서 투명하게 제작된 욕조가 있었는데 그 안에 1톤 가량의 물을 채웠다. 그리고 내가 그 안에 들어가서 수평으로 누워서 촬영을 했다. 그리고 그렇게 촬영한 걸 천장으로 거꾸로 뉘인 거지. 난 수영도 잘 하는 편이고 물속에 들어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서 당연히 거부감 없이 촬영을 했지. 그래서 물 속에 들어가 뒤로 누웠는데 그러면 코로 물이 막 들어온다. 그 때 내 입이 봉해져 있는 상태였고 눈엔 눈알만한 렌즈를 끼고 있었다. 본인이 끼지는 못하고 전문가가 와서 끼워주는 건데 그게 되게 아프다. 끼고 있는 상태에도 말을 할 수 없게 아팠다. (웃음) 근데 그걸 끼고 입도 봉하고, 코로 물이 들어온다. 물속에 있는데, ‘나 이러다 죽는구나’ 싶더라. 그래서 당장 나왔다. 얼굴이 파랗게 질려서 ‘감독님, 저 못하겠어요.’ 그랬더니 감독님도 얼굴이 새파랗게 질리면서 CG팀으로 막 달려가더라. 그래서 CG팀과 회의를 했는데, CG팀에서 촬영 장면 없이는 그 장면을 만들 수가 없다고 결론이 났다. 결국 감독님이 내게 와서 사정했다. ‘진서씨, 몇 초만 갈게요. 한번만 해주세요.’ 그런데 한번 그런 경험을 하고 나니까 일단 무서움이 앞서더라. 그래서 도저히 들어갈 수 없어서 일단 못 하겠다고 버티는데 그 상황에서 스텝들은 쥐 죽은 듯 조용하고, 그 와중에 ‘진서씨 한번만 부탁이에요.’라는 감독님 목소리는 스피커를 통해서 쩌렁쩌렁 울려대니까 안 할 수가 있나. (웃음) 감독님이 너무 미웠다. 그 상황만큼은. (웃음) 결국 스텝들한테 너무 미안해서 했다.

정말 그 순간만큼은 <두사람이다>를 선택한 걸 후회했을 것 같다.
후회했다. 배우란 직업에조차 회의를 느꼈으니까. ‘뭐야? 배우는 영화 찍다 죽어도 돼?’ 이럴 정도의 반발감이 들었지. ‘내가 영화 찍다 죽으면 너네 되게 시원하겠다.’ 이런 생각까지 할 정도로. 정말 너무 싫었다. ‘난 죽을 것 같은데, 어떻게 그런 사람한테 이렇게까지 시킬 수 있지? 배우는 정말 소모품이구나.’ 그 순간에 이런 안 좋은 생각들을 하면서 결국엔 했지. 아니나 다를까 다시 물이 막 들어오고 참다가 다시 나왔다. ‘다신 못해요. 죽어도 못하겠으니 더 이상 안되면 이 장면 없애버리세요. 정말로 못하겠으니까.’ 이런 심정으로 물에서 나오는 순간, 그 동안 내 코로 들어갔던 물이 안에서 내 얼굴을 밀어내는 거다. 처음으로 안압(眼壓)이란 걸 느꼈다. 정말 눈알이 빠져나올 거 같고 앞이 안보이더라. 안으로 들어간 물이 코에서 역류해서 눈 안에서 계속 도는 거다. 정말 거짓말 하나 안 보태고, 휴지 한 각을 다 꺼내서 코를 풀었다. 정말 휴지 한 각이 모두 흥건히 젖을 정도로. 그리고 그제서야 안압이 사라졌다. 정말 시력을 잃는 줄 알았다. 얼마나 무서웠겠어. 그래서 그 다음날 쉬라고 할 줄 알았는데 아침 11시부터 촬영하더라. (웃음)

그런데 그 씬에서 그것 말고도 또 고생담이 있다고 아는데, 위에서 쏟아낸 피를 침대에 누운 채로 맞는 장면도 실제로 직접 연기하지 않았나.
빨간 물이 쏟아져도 눈을 감지 말라더라. 그래서 ‘눈을 안 감아야지’ 하다가도 정말 많은 양의 빨간 피가 얼굴에 쏟아지면 마음과 달리 눈이 감긴다. 그래서 정말 하루 종일 그것만 찍었다. 결국엔 잘 찍었지만, 그 후로 며칠이 지나도 귀랑 코에서 핏물이 나왔다. 물론 다쳐서 나온 게 아니니까 아프진 않았지. 그냥 나오는 거니까. 하지만 기분이 너무 안 좋다. 생각해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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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로 생각 안하고 싶다. (웃음) 여러 가지로 고생 많았다. 지금까지 연기한 것 중 가장 노동적인 연기를 한 셈인데, 솔직히 본인이 생각하는 연기는 아니었을 것 같다.
내가 동적인 인간이긴 하다. 운동 좋아하고, 등산 좋아하고, 수영 좋아하고, 달리기 좋아하고, 그럼 말 다했지. 동적인 건 좋아하는데, 다만 고통스러운 걸 좋아하지 않을 뿐이다. 누가 좋아하겠어.

그렇다면 배우로서 스스로 연기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게 한 영화는 뭔가?
대중적으로 재미있는 영화는 아니었는데, 연기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했던 영화는 이자벨 위페르가 나온 <피아니스트>, 그리고 레나 올린과 줄리엣 비노쉬가 나온 <프라하의 봄>. 아무래도 내가 여자이다 보니까 여배우를 보고 생각하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그녀들을 보며 처음으로 멋있단 생각을 했다. 단지 그녀들의 연기가 멋있었다기 보단 그런 연기를 통해 살아가는 배우들이 멋있었다. 마치 맨 얼굴의 연기라고 할까. 그냥 그 사람들에겐 그게 느껴진다.

확실히 영화를 볼 때, 배우의 연기에 눈이 많이 가는 편인가 보다.
배우의 어떤 역동력 같은 걸 먼저 느끼는 편이다. 정말 좋은 영화를 봤을 때, 그런 작품으로부터 오는 느낌과는 다르다. 배우의 역량을 발휘하는 원동력은 개인적으로 배우들한테 있다고 생각한다. 좋은 연기를 보고 감독들이 영화를 칭찬하는 건 아니잖아. 좋은 영화를 보고 하지. 연기는 항상 똑같다. 이런 연기 한번 해보고 싶단 생각은 영화와 연기를 보고 하지. 대신 좋은 작품을 보면 이런 작품에 출연해보고 싶다고 생각을 하게 되고. 굉장히 좋은 배우를 보고 이런 배우가 되고 싶다고 생각을 하듯.

전도연 씨와 친하다고 했는데, 배우 전도연은 어떻게 생각하나?
도연 언니는 친해지고 나서 더 존경하게 된 선배다. 한국에서 몇 명 안 되는, 자신을 희생할 줄 아는 배우인 거 같다. 영화에 희생할 줄 아는 배우, 되게 힘든 건데. 그런데 담배 한대만 피워도 될까?

상관없다. 담배 피운 지는 오래됐나?
핀지 두 달 됐다. 지금 준비하고 있는 <비스티 보이즈>의 윤종빈 감독님이 담배를 정말 잘 피웠으면 좋겠고, 욕도 되게 잘 했으면 좋겠다고 하더라. 그 이야길 듣는 순간, 그 다음날부터 담배랑 욕을 입에 붙이고 살았다. (웃음)

그거야말로 연기에 희생하는 배우의 자세 아닌가? (웃음)
엄청난 희생이지! (웃음) 몸이 망가진다. 술이랑 담배, 욕까지 붙이고 사니까.

배우라는 게 본인을 망가뜨려도 될 정도로 그렇게 큰 욕심인가?
내 인생의 목표이고, 그래서 행복해지는데. 이게 다 그냥 날 위한 거다. 삶이 행복해지려고 이러는 거니까.

지금 장률 감독의 <이리>에도 캐스팅된 걸로 알고 있다. 사실 <비스티 보이즈>도 그렇고, 대중적인 느낌의 영화는 아니다. 배우로서 작품을 선택하는 기준이 뭔가?
일단 작품을 보고 결정하는 것 같다. 역할이 아무리 좋아도 작품이 별로라고 생각되면 어쩔 수 없이 역할도 내키지 않는 것 같고, (웃음) 역할이 별로라도 작품이 좋으면 내 역할마저도 살아나는 것 같다. 그래서 전체적인 작품을 보고 나서 내가 맡은 역할이 맘에 드는지 본다.

일단 편수로 따지자면 많은 작품을 했다.
그렇지. 편수로 따지자면. (웃음)

그 작품들 안에서 개인적으로 후회되는 작품은 없나?
후회되는 작품은 없다. 왜냐면 내가 만났던 감독들은 모두 좋은 감독님들이었거든. 왜 좋은 감독이란 소리를 듣는지 작품을 하고 나니 알 것 같더라. 난 시간으로 나이를 먹는 것 같지 않고 작품으로 나이를 먹는 거 같다. 한 작품 하면 나이를 먹는 거다. 그래서 후회되는 작품은 한 작품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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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본인에게 가장 많은 나이를 먹게 해준 작품은?
<두사람이다>. 다른 영화는 한 살쯤 먹게 해준 것 같은데, <두사람이다>는 두 살쯤 먹게 해준 것 같다. 물론 남들이 어떻게 평가할지 모르지만 작품과 상관없이 개인적으론 <두사람이다>를 찍으면서 연기가 많이 늘었다는 생각을 했다. 배우로서 표현하는 방법을 컨트롤하게 됐다고 생각한다. 출연 분량이 많아서 그런가? (웃음)

가장 큰 경험이라 그랬을지도 모르고. 본인은 스스로가 몇 사람이라고 생각하나?
셀 수 없다고 생각한다. 내가 여행을 다니는 건 새로운 나를 찾기 위해서다. 어쩌면 진정한 나를 찾는 것일 수도 있지. 진정한 나를, 새로운 나를 찾는 것. 가끔 나한테 이런 면이 있었나 싶을 때도 있다. 어떤 여행은 혼자 책보는 게 좋을 때도 있고, 어떤 여행은 술 먹고 취해서 클럽을 전전해야 좋을 때가 있다. 뭔가 마음에 와 닿는 여행이 될 때도 있고. 그건 정말 그날그날 기분에 따라 다르지만. 난 사실 여행을 하기 위해서 영화를 찍는다. 영화를 찍다가 정말 힘들면 ‘내가 이걸 안 하면 돈을 어떻게 벌겠어, 여행 가려면 돈을 벌어야지.’ 이렇게 인내하면서 참고 영화를 찍는다. (웃음)

여행 자금을 위해서 연기를 한다?
내가 어디 가서 얼마나 돈을 벌겠나. 그런데 여행을 하면서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영화 생각만 하고 있다. 여행 중엔 끊임없이 ‘내가 지금 뭐하고 있지? 넌 누구야?’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결국 ‘난 영화배우가 맞나 보다. 난 영화배우 구만.’ 이렇게 되더라. (웃음) 그리고 그런 생각들을 할 때 행복하다. 무엇보다도 결국 내가 나답지 않은 걸 찾아서 들고 왔을 때 되게 행복하고, 그런 의미에선 영화가 여행일 수도 있다.

자신의 새로운 모습을 찾는 사람의 입장에선 영화와 여행은 같은 목적이겠다.
맞다.

앞으로 계획된 여행 있나?
계획된 여행이 2개 있다. 사실 3일 전에도 필리핀 섬에 있다가 왔다. <두사람이다>가 개봉하면 며칠간 무대인사를 한다. 그 일정 끝나는 대로 일본 가려고 생각 중이지. 내가 일본어 까먹을만하면 일본에 가거든. (웃음) 그나마 가까우니까. 그런데 9월 6일날 서울영화제 개막식이 있다.

이번에 홍보대사를 맡은?
맞다. 그 일정 때문에 일단 귀국했다가 그 후에 또 파리에 갈까 생각중이다. 파리에 갔다가 이번엔 모나코도 가보고 싶다.

일상이 영화와 여행의 반복이다. 그런데 본인의 말대로 새로운 자신을 찾는다는 목적에서 영화도 여행이라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마치 평생 여행을 다니는 사람같이 느껴진다.
그게 내 인생인 거 같다. 그럴 때가 제일 행복하고. 그런데 요즘 어머니께서 ‘네 마이너스 통장을 어떻게 해야 하니? 그만 여행 다니고 이제 돈을 모아야 하지 않겠니?’ 이런 말씀 많이 하신다. (웃음) 그런데 여행하는 게 좋은데 어떡하나? 돈을 꾸준히 벌 수 있는 어떤 안정보다도 어떤 모험 같은 연기와 여행을 하는 게 내 인생인 거 같다. 그냥, 그래. 그게 나인 거 같다.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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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민용준
,

김보경 인터뷰

interview 2008. 5. 31. 0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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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는 날 좋아하나?
심하게 좋아했다, 예전엔 더욱.

지금은 예전보단 덜 좋아하나 보다.
비오는 날 참 좋아하는데, 오늘은 즐길 수 있는 여유가 없어서 잘 모르겠네.

벌써 서른이 넘었다. 시작부터 나이 이야기하면 실례일까.
아니, 전혀. (웃음)

서른이 넘어서니 어떤가? 벌써 이렇게 됐구나란 감상에 젖을 법도 한데.
눈에 안보이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지. 일단 난 지금이 좋다. 왜냐면 내 십대와 이십대는 아무것도 몰라서 너무 방황하는 시기였으니까. 너무나도 갈팡질팡, 도대체 어떻게 사는 게 맞는 건지 몰라서 너무나 힘든 시기였지. 사실 내 사춘기가 굉장히 길었다. 중학교 1학년 때부터 서른 살까지 사춘기였으니까. (웃음) 정말 사람에 대해서도 몰랐고, 뭐가 진실인지도, 뭐가 선이고 악인지, 정말 혼돈스러웠다. 그런데 작년부터 서서히 뭔가 잡혀가는 거 같아. 이제 내 인생을 이런 방향으로 살아가겠구나, 나의 토대는 이거고 목표는 이거다, 이런 것들이 잘 보이기 시작했다. 난 지금 내 나이가 좋아. 살 것 같다고 할까. 조금씩.

작년이라면 혹시 <여름이 가기 전에> 덕분에?
그건 아니다. <여름이 가기 전에>할 때가 더 힘들었으니까.

의외네. 난 그 작품이 상당한 의미가 있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우울증에 걸리면 하고 싶어도 말이 잘 안 나온다. 난 말하고 싶은데 소리가 안 나오는 거지. <여름이 가기 전에>할 때 내가 너무 다운됐었다. 마음이 행복하지 못해서. 대사를 해야 하는데 이게 나오기가 너무 힘들었지.

6년은 그렇게 긴 시간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친구> 이후, 김보경의 6년은 길어 보인다. 김보경이란 배우의 6년은, 마치 굽이굽이 돌아가는 길을 보는 것 같다.
지금도 돌고 있을 지도 모르지. 내 성격 탓인 거 같아. 그렇게 똑똑하지 못하거든. 다 아는 답이 보일 때도 있다. 그런데 난 답을 알면서도 결단을 쉽게 못 낸다. 마음이 여려서, 그런 덕분에 많이 돌게 됐고. 20대까진 그렇게 살았으니까 이젠 김보경이라는 아이의 인생을 위해서라도 좀 더 똑똑하게 결단도 내리고 그래야 되는데, 지금도 좀 그러지 못하는 것 같아서 답답하다. 나 스스로도.

사실은 데뷔도 빠른 편은 아니었다. <친구> 당시가 이십 대 중반이었으니까.
사실 데뷔는 그 전에 했었지, 95년도에 CF로 데뷔를 했고, 98년도에 영화를 했었으니까. 간간이 단역으로 TV드라마에도 나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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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제대로 연기를 하게 된 건 <친구>가 처음 아닌가?
제대로 연기한 건 이번에 <기담>이 처음이다. (웃음)

어쨌든 <친구>로 얼굴을 많이 알렸지만 그 후로 많이 돌아온 건 <친구> 때문이 아닐까? 개인적인 생각에 <친구>로 얼굴을 알린 후, 출연했던 작품들은 김보경이란 배우에게 어울리지 않는 옷이었다고 생각했다. 물론 본인에겐 의미 있는 작품들일지 모르지만.
영화가 흥행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게 말하는 게 아닐까. 만약 잘 됐다면 다르게 말했을 수도 있을 거다. 난 영화가 잘되고 안 되는 건 정말 운이라고 생각한다. 솔직히 <친구>란 영화가 잘됐지만 그 영화의 작품성이 뛰어나다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도 있을 테고, 굉장히 싫어하는 사람도 있겠지. 다만 그 시대에 맞는 운 때가 있어서 흥행할 수 있는 게 아닌가 싶다. 물론 정말 아닌 영화들도 있겠지만 굳이 그 영화들이 그만큼 사랑을 받는다는 건 모두 운명 같다. (웃음)

<기담>을 봤나? (이 인터뷰는 언론시사가 진행되지 않은 7월 16일에 진행됐다.)
다는 못 봤다.

독특한 소재 때문인지 몰라도 굉장히 궁금하다. 처음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 그렇다는 생각을 많이 했을 법도 한데.
<여름이 가기 전에>란 작품을 하고 <잘 지내나요, 청춘>이란 단막극을 했었다. 그 때, 너무 초연하게 연기한 덕에 연기가 다시 너무 좋아졌었다. 물론 내가 거기서 연기를 잘했다는 게 아니라 그냥 그 작품을 좋아했었지. 단막극이지만 그 작품을 찍는 과정이 너무 행복했었고. 내가 연기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다시 깨닫게 되는 시기였고. 그 때, 나도 좀 대중적인 작품 해서 대중들과 같이 살아가는 연기자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웃음) 근데 그때 <기담>이란 공포영화 시나리오를 받았다. 근데 공포영화란 장르가 대중적인 묘미가 있잖아. 그게 그 당시 내 생각하고 맞았다. 일단은 대중적이란 점이 맞았지. 그리고 내가 공포물을 굉장히 좋아하거든.

아, 그런가?
그렇다. 난 공포영화를 세 분류로 나누는데, 하나는 좀비 영화, 하나는 스릴러, 또 하나는 종교다. 그런데 거기서 막 피나거나 자르는 이런 건 무섭진 않고 속만 안 좋아서 싫더라.

나도 그런 건 요즘 정서만 안 좋아지는 것 같아서 피하고 싶어지더라.
내가 95년도에 <트레인스포팅>이란 영화를 봤는데 그 작품은 충격이었다. ‘정말 저게 영화지!’ 이럴 정도로 정말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리고 <28일 후>란 작품을 봤는데 난 같은 감독 작품인지 몰랐다. 감독 보고 영화 보는 편은 아니라서. (웃음) 그런데 <28일 후>도 충격이었다. 무섭기도 하고, 그래서 재미있었지만 무엇보다 날 생각하게 만들었으니까 그 영화가 좋았다. <셔터>도 되게 무서웠다. 정말 있을 법한 일이잖아. 사랑한 여자친구가 임신했다가 죽어서 귀신이 되고, 난 정말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 그 당시에 남자친구가 있었는데 <셔터>보고 내가 ‘잘 해~! 아니면 나도 돌아올꺼야’ 했었다. (웃음) 어쨌든 <기담> 시나리오를 봤을 때, 내가 그 두 영화를 보면서 받았던 그런 느낌들이, 물론 똑 같은 느낌은 아니지만 그런 것들이 있었다. 단순히 이 영화가 여름방학 노려서 한철땡으로 만든 작품이 아니라 이걸 해도 난 부끄럽지 않겠다는, 내가 제작을 했다 해도 돈 벌기 위해서 단순히 했다는 소리는 안 듣겠다 싶어서 난 <기담>이 좋았던 거지. 그리고 사랑이라는 그 감정 때문에 모든 공포가 일어난 거다. 사실 시나리오엔 음향 효과가 없잖아. 난 시나리오 보면서 무섭다기 보단 마음이 아팠다. 그런데 안 무서울까 봐 걱정했지. 그래도 공포영화인데, 너무 슬프고 아리고, 아프기만 할까 봐. 근데 어떻게 될진 모르지. (웃음) 그래도 무서울 것 같다. 예고편 보니까.

전형적인 공포영화는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캐릭터들도 비밀스러운 느낌이 나고, 진구 말에 의하면 공포영화를 가장한 뭔가가 있다고 하던데.
맞다. 진구씨가 <기담>은 차가운 공포영화가 아니라 따뜻한 공포 영화라 했는데 난 그 말이 맞는 거 같다.

더욱 궁금하다.
그런데 이상하게 나오면 어떡하지. (웃음)

뚜껑을 열어보면 알겠지. (웃음) 난 개인적으로 김보경이란 배우가 <친구> 이후로 이름을 남긴 건, 단지 <여름이 가기 전에> 뿐이었단 생각이 든다. 그런데 본인에게 그 작품은 좋은 기억이 아닌가 보다.
난 내가 살아가면서 중요한 건 결과보단 과정이라 생각한다. 돈을 벌고 난 후나 엄청나게 유명해진 후보단 그렇게 된 과정이 중요하다 생각한다. 사람마다 틀리지만 난 그런 과정을 즐기는 사람이고. 영화가 흥행하고, 그로 인해 돈을 엄청 많이 버는 것도 중요하다. 그 전에 영화가 잘 나오는 것도 물론 중요하고. 근데 만약 그 과정이 너무 정떨어진다면 영화가 잘 나와도 사랑할 수 없다. 근데 <여름이 가기 전에>는 아까 말한 것처럼 그 과정이 그렇게 행복하지 않은 작품이었다. 물론 나도 영화는 잘 봤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나 자신과의 괴로운 싸움을 했던 작품이라 힘들었다.

다시 말하지만 굉장히 의외다.
그래도 부산 영화제에 참여할 수 있었던 건 나한테 의미가 있다. 사실 <여름이 가기 전에>의 기억이 아파서 안 가려고 했었다. 하지만 매니저들이 꼬시기도 하고, 생각해보니 영화인으로서 내가 안 갈 이유도 없어서 결국 갔다. 그러다가 영화제에서 <여름이 가기 전에>를 보게 된 제작사 대표님이 우연히 내가 걸어오는 걸 보곤 <기담>의 인영 역에 가깝겠다고 생각해서 제의하셨다고 하더라. 자신이 그려놓은 인영의 이미지랑 너무 맞아떨어졌다고 하시더라.

개인적으로 <여름이 가기 전에>가 배우로서 다시 멍석을 까는 지점이었다면, <하얀 거탑>은 굳히기에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혹시 <하얀 거탑>도 안 좋은 추억이 있을까. (웃음)
아니다. 너무 마음이 편안하게 작품을 할 수 있어서 정말 즐겁게 촬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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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하얀 거탑>의 강희재는 그 이전에 맡았던 역할들과 달랐다. 남자들 사이에 둘러싸인 건 마찬가지였지만, 그 이전까진 자신의 영역을 구축하기 위해 날을 세우는 것 같았다. 하지만 <하얀 거탑>의 강희재는 장준혁의 버팀목이 되어주는 인물이다. 좀 더 너그러워졌다고 할까.
난 사실 (배우로서) 별로 보여드린 게 없어서 그냥 내 안에 갖고 있던 캐릭터 중 하나를 강희재란 캐릭터와 이렇게 조합해서 연기했기 때문에 나 스스로에게 그렇게 색다른 건 없었다. 다만 이런 걸 느꼈지. <하얀 거탑>할 때, 처음엔 여자 주인공이라고 그러더라. 그래서 되게 좋아했었다. (웃음) 나를 뭘 보고 주연을 맡기나 했었지. 그런데 대본이 6회까지 나왔는데 나는 별로 안 나오는 거다. 어쩌다 한두 씬 나오고, 별로 중요한 씬도 아니고, 맨날 술만 따르고. (웃음) (김)명민 오빠를 비롯해서 주위 사람들도 드라마에서 별로 안 보인다고 안타까워하시더라. 그래도 난 이런 배우들과 감독님하고 한다는 것에 의의를 두고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사실 일본 원작 드라마 보라고 해서 DVD까지 봤는데, 케이코도 별로 나오진 않았지만 어딘가 강한 이미지가 남더라. 그래서 나도 강하게 하고 싶지만 강하게 하면 안 되는 인물이었고, 감독님이 원하는 연기 스타일도 그렇게 선 굵은 게 아니었지. 그래서 누르는 걸 좀 배웠던 거 같아. 전체적인 드라마 흐름을 위해 내가 있는 거니까 내가 튀면 안 된다, 난 자꾸 이렇게 묻혀가야 돼, 묻혀가면서 그냥 드라마와 전체적으로 같이 가는 거다. 이런 생각으로 연기했다.

비중은 작았지만 후반으로 갈수록 이미지를 은연중에 각인시킨 역할이었다고 생각한다. <하얀 거탑>에서 독자적인 공간을 지닌 유일한 사람이기도 하고, 다들 병원이라는 집합의 동선을 지니지만 희재의 바(bar)는 유일한 개인적 공간이다.
그래서 심심했다. (웃음) 난 드라마하면 연기자들하고 좀 친해질 줄 알았는데 나한텐 맨날 장준혁만 오니까. (웃음) 그나마 이정길 선배님과 친해졌다. 어쨌든 배우들하고는 볼일이 없어서 아쉬웠지. 어느 날 TV를 통해서 직접 봤더니 너무 답답해 보이는 거다. 자꾸 밖에 좀 나가고 싶다. 이런 생각이 들더라. 물론 끝끝내 밖에 나가진 못했지. (웃음)

하긴 계속 갇혀서 촬영하니까.
맞아. 그리고 비중이 작았지만 너무 잘 하고 싶었다. TV는 오랜만이고 제대로 된 드라마도 처음으로 하는 거니까. 내 나름대로 바뀔 수 있는 상황까지 계산을 하면서 준비를 했다. 그래서 현장에서 감독님한테 펼쳐 보이곤 했다. 그런데 내가 준비한 것과 또 다른 상황으로 바뀔 때가 많았지. 그래서 또 다른 여유, 연기에 있어서 여백을 남겨둬야 된다는 걸 배웠다.

영화와 다른 드라마만의 매력을 느꼈나?
사실 영화를 너무 오랜만에 해서, 다시 시작하는 느낌이었다. 새롭게. <하얀 거탑> 끝나고 <기담>을 했는데, <여름이 가기 전에>도 찍은 후 1년 뒤에 개봉을 했으니까. 내가 너무 작품을 띄엄띄엄 했었고, 그래서 처음 같은 느낌이었지. 영화찍은 지도 오래됐었고, 공백이 기니까 그런 걸 모르겠더라. (웃음) 물론 큰 차이점을 느낀 건 영화는 촬영 들어가기 전에 감독이랑 배우랑 이야길 많이 나누고, 이 인물에 대해서 디테일한 오고감이 있는데 드라마는 그냥 그런 회의 없이 한다는 거.

원래 캐릭터에 대한 준비가 철저한 편인가 보다.
난 대본 받으면 내 인물의 보이지 않는 과거와 보이지 않는 미래 같은, 그 인물들에 대해서 토론하는 걸 좋아한다. 연극을 해서 그런지도 모르고. 그런데 TV는 그런 시간이 안 되니까. 감독하고 그만큼의 친밀하지가 못하더라. <기담>같은 경우도 리딩을 한 달 넘게 했으니까, 충분히 인영에 대해서 얘기해보고, 이런 게 충분히 얘기가 된 후에 영화는 들어갈 수가 있는 거지. 서로 더 알고 들어가는 거랄까. 근데 TV는 그렇게까지는 못하는 게 틀린 점이지.

순발력의 연기를 더 요구하는 상황도 있었을 텐데, 익숙하지 않아서 어려웠을지도 모르겠다.
사실 <여름이 가기 전에>도 가벼운 생활적인 연기였는데, 그땐 확실하게 그게 그렇게 안 다가왔었다. 감독님이 직접 뭘 요구하지도, 어떤 연기 톤을 요구하시는 건지도, 뭘 하는 줄도 잘 몰랐다. 왜냐면 여태까지 했던 연기랑은 약간 틀린 톤이었으니까. 그런데 그렇게 다르단 사실에 대해서 내가 인식을 잘 못했던 거 같다. 그냥 소연이란 캐릭터에 빠져서 연기를 하긴 했는데 뭔가를 했다는 느낌은 들지만 뭔가를 배웠다는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하얀 거탑>을 하면서 확실하게 연기의 구분을 알게 된 거 같다. 그리고 안판석 감독님이 굉장히 세련된 분위기란 것도 알겠고. 이분이 추구하시는 연기 톤은 관객들에게 앞으로 더욱 환영 받고 사랑 받을만한 것이라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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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작품 수만 치면 영화를 꽤 많이 한 편이다.
수만 그렇지. (웃음)

그럼에도 아직 관객들에게 존재감을 인식시키지 못했는데, <하얀 거탑>이 대중적인 인지도를 마련해준 작품인 것 같다. 나름대로 대중에게 얼굴을 알린다는 욕심도 있었을 법한데.
처음부터 역할의 분량이 작은 덕분에 큰 부담을 안 가지게 됐고, 오히려 여기서 잘 해서 ‘넓혀가자, 내 씬을 늘리자’ 생각했었다. 드라마는 그게 가능하니까. 이게 목표였지. 오히려 씬 많이 줬는데 못하는 것보다 적게 줬는데 잘해서 내 걸 늘려가는 낫다고 생각했다. 사실, 그런 것 말곤 이걸로 인해서 내가 엄청나게 사랑을 받을 거라는 생각은 전혀 없는 상태였다.

이렇게 사랑 받는 드라마가 될 줄도 몰랐겠지.
당연히 몰랐다. 지난 6년 동안 힘들어 봤기 때문에, 별로 인기란 것에 민감할 수도 없었지. 사랑해주는 건 고맙지만 사랑해주지 않는다고 내가 연기 안 하는 것도 아니고, 또 지금 사랑해주셨다가 언제 외면할지 모르는 거니까. 인생의 굴곡이 있듯이. 사랑을 받는다는 건 참 감사한 일이지만 내가 거기에 휘둘릴 나이도 아닌 것 같고. 별로 그런 건 신경을 못 쓴 거 같다. 그렇지만 사랑 받으면 너무나 고맙지.

<기담>이란 작품은 어디에 매력을 느꼈나?
<친구>에 출연한 후, 그 캐릭터가 워낙 강했나 보더라. 그래서 나를 어딘가에 써먹어야 되는데 어디에 써먹어야 할지 그 당시에 고민했나 보더라. (웃음) 너무 캐릭터가 강해서. 그런 이야기 듣고 난 웃긴다고 생각했다. 난 강한 연기 한번 했을 뿐인데, 왜 그것만으로 나에 대해서 다 파악한 것처럼 저럴까. 저게 내 모습의 다는 아닌데 싶었으니까.

어쩌면 공백으로 인해 그런 이미지가 잘 떠오르지 않는 게 한편으로 도움이 된 셈일지도 모르겠다.
사실 <하얀 거탑>의 날 보고 <친구>의 진숙인지 모르고 본 사람도 굉장히 많았다더라. <기담>의 인영이란 역할은 굉장히 부드럽고, 온화하다. 정말 사랑 받는 아내이고. 이런 캐릭터는 내가 처음이라 너무 하고 싶었고, 나한테도 이런 모습이 있다는 걸 보여드리고 싶었다. 그런 계기가 될 수 있을 것 같기도 했고. 또 인영이랑 제가 꿈꾸는 사랑이 비슷했다. 마치 <사랑한다면 이들처럼>이란 영화 알까?

물론이다. 꽤 오래된 영화인데.
내 이상적인 사랑은 딱 그거거든. 그런데 그런 사랑은 없단다. 사람들은 내가 이런 이야기하면 정신차리라고, 그런 사랑은 없다고 얘기하지. (웃음) 물론 나도 만나진 못했지만 분명 있다고 생각하거든. 근데 그런 사랑이 <기담>에선 아름답게 표현된 건 아니지만 너무나도 잔인하고 슬프게 그 시나리오에 있었다. 그런 사랑을 인영이 하고 있었다. 대리만족이라 해야 할까. 난 현실에서 하기 힘든 사랑을 처음으로 알았다. 처음으로! (웃음) 연기자가 이래서 좋다는 걸 난 처음 알았다. 그 전엔 다른 연기자들이 연기 왜 하냐는 질문받으면 ‘여러 가지 일을 하잖아요’, 이런 대답이 난 재미없었거든. 그런데 내가 이번에 <기담>을 끝내고 나니 그걸 느꼈다. 내가 진짜 꿈꾸던 사랑이 아름답게 표현된 건 아니지만 아주 지독하고 잔인하게 느끼면서 했다. 그런 대리만족이 느껴지더라. 너무 마음이 아팠다. 그 두 사람 때문에 너무 아팠고 너무 부러웠지. 촬영하면서 많이 울었어. 너무 부러워서. (웃음)

이야기만 들으면 공포가 아니라 멜로같다.
맞다! 멜로! 그런데 그 멜로가 너무나도 잔혹하게 써진 거지. (웃음) 그런데 영화가 내 말처럼 잘 나왔어야 되는데! (웃음)

누군가의 아내 역할을 한 것도 처음이지만, 누군가에게 사랑을 받은 것도 처음이다. 항상 누군가를 좋아하거나 자신을 좋아하는 이의 사랑을 내치거나 그런 쪽이었는데.
그래서 좋았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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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회한을 풀어버리는 기분이었을 것 같은데.
난 전혀 그런 거 없을 줄 알았는데, 있더라. 실제로 촬영하면서도 너무 사랑 받으면서 촬영해서, 촬영 기간도 난 너무 행복했었다. 촬영이 끝나길 기다리는 게 아니라 촬영이 끝나가서 조마조마했다. 크랭크업되기 전에도 ‘감독님, 이제 어떡해요, 내일이면 끝인데~’ 막 이랬다. (웃음) 다들 이런 마음이었을 거다.

촬영이 크랭크업 예정보다 지연됐다고 들었는데, 오히려 그게 다행이었겠다. (웃음)
내가 여태껏 연기 했던 것보다 다른 연기를 할 수 있었고, 드디어 내 안에 있는 걸 꺼내는 작업을 처음으로 했던 거 같다. 그래서 <기담>은 영화배우로서 의미 있는 작품이었다. 그 집중하는 방법을 배웠다. 예전에는 이걸 어떻게 할까, 걱정 먼저 한 다음에 빠져들었는데, <기담>은 그냥 먼저 빠져들게 된 거다. 그래서 촬영 중에 고민하고 그런 건 없었다. 그냥 오로지 내 감정에 맡겼지. <기담>연기들은. 물론 너무 다양한 감정이 교차돼서 너무 힘들기도 했지만 그냥 인간 김보경이 살아갈 인생 속에서도 어떤 전환점이 되는 작품이라고 생각했다.

어떻게 보면 지금까지 선이 굵은 역할을 많이 했다. 단도직입적이기도 했고. 그런데 <기담>은 가녀리지만 입체적인 느낌이 드는 캐릭터 같다. 신비로운 느낌도 있고.
일단은 좀 헷갈렸지. 왜냐면 말한 것처럼 이 인물이 신비롭다는 느낌을 깔고 갔어야 했으니까. 부담도 됐었다. 어떤 식으로 신비감을 줘야 할지, 자세히 말할 수는 없지만 환상이란 설정을 처음부터 까는 인물이라면 연기라도 날리면서 효과의 도움을 받기라도 할 텐데. 그래서 지금 생각해도 내가 내 감정에 맡기고 갈 수 밖에 없었을 거 같다. 내가 여기서 어떻게 해야지, 그런 게 아니라 정말 내 감정과 감성대로 해야겠단 생각이 들더라. 그래서 내 느낌을 잡는 게 어렵기도 했다.

김태우 씨와 부부 연기를 해서 호흡을 많이 맞췄을 텐데, 어땠나?
처음에 만났을 땐, 막연히 사람 좋게 생겼네. 바른 생활을 한 사람 같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리딩을 하면서, 똑똑한 배우구나. 부럽다고 생각했고 촬영이 들어갔을 때, 진짜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느꼈다. 그리고 이제 촬영 끝나고 시간이 지나서 돌이켜 생각해보면 김태우란 배우가 있어서 우리가 영화를 좀 편안하게 찍을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나 또한 행복할 수 있었고, 처음으로 이렇게 편안하게 연기한 거 같다. 물론 선배 띄워주기나 같이 한 배우의 의리상 좋은 말 하는 건 아니고! (웃음) 김태우 씨가 배우들과 깊이 있고 편안하게 할 수 있게끔 분위기를 많이 도와줬다는 걸 느꼈다. 나도 나중에 선배가 되고 후배가 생기면 저럴 수 있을까 생각하면 난 그만큼 친절하지 못할 거 같단 생각이 들 정도로.

최근 호흡을 맞춘 남자배우는 다 안정감 있는 캐릭터다. 김명민 씨, 이현우 씨, 김태우 씨. 다들 그런 느낌이다.
사실 이현우씨는 본인 스스로가 그런다. 자신은 가수라고. 겸손한 편이지. 지금도 우린 패밀리다. (웃음)

그 친분 덕분에 라디오 방송도 하게 된 건가 보다.
라디오 개편할 때 온(on)하러 오라고 해서 갔다가 PD가 제안해서 한달 동안 일주일에 한 번씩 했었다. 현우 오빠 같은 경우는 인생에 있어서 참 똑똑한 거 같다. 여유롭게 즐길 줄 아는, 잘못 보면 욕심이 없어 보일 수도 있는데 그게 아니라 인생에 있어서 정말 소중한 걸 아는 거다. 예를 들면 이런 거다. 영화 하나 망하면 죽을 거 같고, 망했다고 하고 그런 사람이 있는 반면에, 영화가 흥행이 되고 망하든 그 과정이 행복했고 소중한 거라고 말할 수 있는 거지. 진짜로 인생에 있어서 지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솔직히 연기자로서는 모르겠다. 난 진짜로 연기가 하고 싶어서 정석으로 해온 사람이고, 이현우씨는 가수하다가 기회가 되니까 연기를 한 거라서 솔직히 연기자로서 뭐라 말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카메라에 익숙한 사람이라 편안하게 연기하는 것 같다.

어쩌면 김명민 씨가 뒤늦게 인정받고 있는 것에 대한 감상이 있을 것 같다.
김명민 씨는 사랑과 찬사를 받을 충분한 자격이 있다고 본다. 사실 오래 전부터 아는 사이였다. 김명민 씨 부인이 내 친한 언니라서. 그리고 한 동네에 살았었고, 같은 소속사에 있었고, 학교 선배이기도 하고. 힘들어하신 것에 대해서도 많이 들었었고, 연기에 대해서도 많이 들었었다. 참을 만큼 참으신 분이다. 연기자로서 난 좋아요~! (엄지손가락을 세우며) (웃음) 정말 그만큼 사랑 받을 가치가 충분히 있다고 생각한다. 진심으로.

공교롭지만 <리턴>이 <기담>과 한주 차이로 개봉하는데, 어쩌면 경쟁자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생각해본 적 없는데, 진짜! (웃음) 둘 다 잘 되면 좋지. 그런데 솔직히 <기담>이 조금만 더 잘 되면 좋겠네. (웃음) 지금 잘 되셨으니까, 이제 나도 솔직히~~. (웃음)

어쨌든 이제 결혼을 염두에 둘 나이가 됐다. 이상형은 없나?
난 이상형이 없다. 정말 어렸을 때부터. 난 그냥 모르겠다. 그냥 운명적인 만남? (웃음)

지금으로서는 뻔한 질문일지 모르지만 만약 결혼과 영화 중 하나를 택한다면?
영화지! 그럼. 결혼은 아직 아예 생각도 없어!

그러다 나중에 후회하는 사람 많다던데. (웃음)
그래도 아직은, 나중에.

어쨌든 공백기가 있었고, 이야기만 들어도 그 동안 많은 생각을 했을 것 같다. 원래 생각이 많아 보이기도 하고.
내가 한없이 긍정적이면서 한없이 부정적인 거 같다. 엄청 울고, 엄청 웃고, 딱 극과 극이다. 솔직히 그 몇 년 동안 많이 힘들었다. 나는 왜 태어났을까란 생각을 할 정도로. (웃음) 분명히 돌도 존재하는 이유가 있다고 했는데 난 이세상에 무슨 도움이 될까, 나도 태어난 이유가 있을 텐데. 이유를 못 찾겠더라. 그러다가 장기기증 신청을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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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기증을? 쉬운 결정은 아니었을텐데.
인터넷으로 찾아보니 내가 지금의 상태론 한 여섯 명까진 살릴 수 있더라. 그 때, 내 삶에 있어서 희망을 얻었다. 나도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살아갈 이유를 알겠더라. 삶에 있어서. 그래서 지금보다 더 운동해야 되고 술도 마시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왜냐면 좋은 걸 줘야 되니까. 사람이 너무 힘들어서 감정이 저 끝까지 가게 되면 좋아질 수 밖에 없다. 왜냐면 이제 더 이상 갈 때가 없으니까 무서워질 것도 없어지고, 기가 막힐 때도 있으니까. 정말 하느님, 정말 저 여기서 더 내려가는 건 진짜 저보고 죽으라는 거죠. 웃으면서 이랬던 적도 한번 있었다. 되게 심각하게. 내가 너무 힘들어서 자꾸 부정적으로 바뀌고 고민하면 해결되는 것도 없고, 내 마음이 너무 불행해지기 때문에 그럴 바엔 바보같아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자꾸 그렇게 하면 행복해지는 것 같더라. 한번은 내가 기적을 봤다. 기독교 집안이라 매일 기도하는데 난 나이 들면서 안 했었거든. 그런데 한번은 아침부터 너무 속상한 일이 있어서 기도를 했다. 최소한 이 기도가 끝나고 나면 그냥 행복하게 해달라고, 내 마음을 편안하게 해달라고, 정말 넓은 마음 갖게 해달라고, 이 기도 끝나면 그렇게 되게 해주셔야 한다고. 처음으로 그렇게 간절히 기도를 한 거 같다. 정말 내 마음이 부자가 되게, 내 마음이 아름다워지게, 꼭 그렇게 해주셔야 된다고. 그리고 기도가 끝나자마자 내 마음이 너무나 아름다워졌다. 난 그게 기적이라고 생각하거든. 항상 좋은 책 읽고, 좋은 말씀 듣고, 좋은 글귀 보고, 좋은 생각하고, 이러면 살아갈만하다. 자꾸 남들과 비교하고, 질투하고, 시기하면 자신한테 좋을 게 없더라.

혹시 본인에게 귀감이 되는 배우가 있나?
난 배종옥 씨 되게 좋아한다. 연기도 너무 좋고. 전도연 씨도 좋고. 난 계속 꾸준히 연기하시는 분들이 좋다. 정말 작품과 캐릭터에 대해서 꾸준히 고민하고 연기하시는 걸 보면 대단하단 생각이 들더라. 그런 분들이 정말 연기자지. 그래서 그 분들 보면 되게 기분 좋다. 정말 배우 같다.

대학교 시절에 연극도 했다고 들었는데, 연극 무대에 서고 싶은 생각은 없나?
그런 생각도 있다. 사실은 올해에 새로 소속사와 계약하면서 연극도 하게 해달라고 했는데 어쩌다보니 드라마랑 영화에 캐스팅되면서 바빠졌다. 아무래도 일단은 먼저 들어오는 게 있을 때 하려고 해야 하니까. (웃음) 어쨌든 좀 더 역량을 쌓아서 연극을 할 거다. 모노드라마 같은 거. 꿈이에요. 꿈.

청바지 사업도 한다던데?
작년 말부터 조금씩 생각하다가 올 초부터 준비했다. 사실 연기라는 걸 내 직업으로 생각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왜냐면 직업은 내게 밥도 먹여줘야 되고, 옷도 사 입게 해줘야 되고, 용돈도 줘야 되고, 어떤 지위도 줘야 되고, 항상 일을 해야지 직업이잖아. 안 하면 백수지. 근데 난 연기가 내 직업이라고 생각했는데, 지난 6년간 그 생각만큼 못 받쳐줬기 때문에 내가 너무나도 힘들었더라. 그 시간 동안에 연기는 나한테 직업이 아니고 하느님이 내게 주신 선물이라고 생각했다. 연기할 수 있는 기회가 선물처럼 온 것만으로 만족을 해야지, 이걸 통해서 뭘 얻고 뭘 얻겠단 건 욕심인 것 같더라. 무엇보다 못 얻었을 때, 그 아픔을 내가 견뎌낼 자신이 없더라. 그래서 직업으로서 뭔가 해야겠단 생각을 하게 된거다.

만약 연기를 안 했다면 뭘 하고 있었을까?
아니. 난 연기를 하고 있었을 거 같아! (웃음) 다른 걸 하면서도 연기는 했을 것 같아.

스스로 생각하기에 본인의 스물아홉은 어땠나?
지옥이었다. 너무 지옥이었어. 너무나도. 연기의 기회적인 면에서도 힘들었고, 사랑에도 굉장히 초짜였기 때문에. 좀 늦었었거든. (웃음)

사춘기였으니까. (웃음)
그래서 사랑 때문에도 너무 힘들었고, 지옥이었다. 사실 돌아보고 싶지 않아! (웃음)

지금은 스스로 자신이 인생에 있어서 어떤 계절을 지나고 있다고 생각하나?
음, 아마도 봄?

30대의 봄이라. (웃음)
난 봄이라고 생각하는데! 꼭 그건 써주세요. 김보경은 봄이다! 여름은 아직, 사춘기 이제 막 지났는데. (웃음)

사실 이게 제일 중요한 질문이었다. (웃음)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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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민용준
,

조안 인터뷰

interview 2008. 5. 31. 0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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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가 간다> 때 만났으면 좋았을 걸.
왜?

동갑이라 공감대가 많았을 테니까. <언니가 간다>가 과거로 돌아가는 이야기니까 할 이야기 많았을 텐데.
그렇겠다! 같은 시대를 보냈으니까.

그 때 영화를 보면서 고등학교 시절로 돌아간다는 게 부럽더라. 난 요즘 종종 그때가 좋았다는 생각 많이 하거든.
부러웠어? 오랜만에 교복 입으니까 재미있긴 했어. 그래도 내 나이대가 있는데 너무 어린 역할을 하는 건 아닐까란 생각이 들더라.

그런가? 하긴 또 생각해보면 우리 고등학교 때 듀스가 나왔던 것도 아니고.
음, 듀스가 아마 나 초등학교 때 나왔으니까. 서태지도 그렇고 그 비슷한 시기지? 솔직히 난 듀스에 대해 잘 모르는 편이었어. 그리 좋아하는 편이 아니었다고 할까.

그런데 난 서태지를 좋아했거든. 그래서 기억나는 거 같아.
난 그냥 노래만 떠라 하는 정도? 내가 유일하게 좋아했던 건 중학교 때, HOT.

하긴 중학교 고등학교 때, HOT 좋아하는 여자들 오죽 많았나. 아, 또 옛날 생각나네. 솔직히 난 남자라서 HOT를 좋아한 건 아니지만.
그렇지! 남자가 좋아할만한 애들은 아니지.

<언니가 간다> 때 당시에 좋아했던 그런 생각도 많이 났겠다. 열광적으로 좋아했어?
원래 그런데 관심 없었는데, 친구 따라 강남 간다고 친구 때문에 좋아했어. 그런데 내가 워낙 벽이 좀 있는 편이라서 팬클럽 같은 건 가입 안 했어. 그냥 혼자서 좋아했지.

어쨌든 이젠 이십 대도 꺾였고, 같이 늙어가는 처지네. (웃음)
(노려보면서) 이럴래? 흠! 그런 거 좋지 않아! (웃음)

음, 그 눈을 보니 <므이>의 마지막 장면이 다시 기억나는데, 독기 어린 눈빛.
독기 어렸어? 내가 보기엔 뭔가 부족했는데. 분장을 더 할 걸 그랬어. 귀신처럼 창백하게 한다거나, 뭔가 더 필요하지 않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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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 그 정도면 충분하던걸~! (웃음) 어쨌든 공포에 눌리는 대상에서 공포를 발산하는 대상으로 전환되잖아. 그런 눈빛을 표출하기 위해서 노력했을 것 같다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 그것도 아닌 것만..
참~노력한다. 애쓴다. 그렇게 비웃은 거 아냐? 그럼 속상한데. (웃음)

아니, 그런 건 아니고. 독한 구석이 있어 보이던데? 예전에 <여고괴담>때도 특수분장이 만만치 않아서 고생 많았는데, 그걸 꿋꿋이 잘 견뎠다는 것도 그렇고.
내가 그 특수 분장을 한 게 국내 최초였어. 그래서 여러 가지 시도도 많이 해보고 그래서 시간이 많이 걸렸지. 지금은 그 특수분장이 2시간정도면 된다고 알고 있는데 그 당시엔 8시간 넘게 걸렸거든. 정말 맨 처음엔 10시간이나 걸렸다니까! 그런데 막판에 가니까 2시간 반 걸리더라. 얼마나 배신당한 기분이던지, 속은 기분이랄까.(웃음) 그 때 정말 힘들었어. 예를 들면 그 다음 날, 8시 촬영 예정이면 그 전날 11시쯤에 미리 가서 분장을 시작했으니까. 정말 빡.셌.어. 생각해봐. 10시간 정도를 꿈쩍도 못하고 온몸에 실리콘이 줄줄 흐른다니까.

그런데도 그걸 용케 잘 참았다니.
솔직히 안 참으면 어쩔 거야? (웃음) 피하지 못하면 즐겨야지!

독한 거지. (웃음) 어쨌든 그 당시 고생은 어느 정도 보상받아서 다행이야. 그런데 <므이>도 베트남까지 몇 개월 동안 로케이션 갔다 왔고, 일단 고생스러워 보이던데 어땠어?
사실 걱정을 많이 했는데 베트남이란 나라가 생각보다 좋았어. 생각보다 밝고 괜찮은 나라였고. 사회주의 냄새가 났지만 크게 거부감은 안 들었어. 사람들도 되게 친절했고, 한국인에 대한 호감도 높아서 굉장히 좋았지. 단지 종종 한국에 대한 그리움이 커질 때가 있더라.

<여고괴담>시절의 동기들과는 연락해?
음, <여고괴담>이 끝나고 한동안은 연락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각자 일하느라 바쁘고 그러다 보니 이젠 서로 연락이 뜸하게 된 것 같네.

사실 <므이>를 보면서 <여고괴담> 생각이 많이 났거든. 왜냐면 <므이>나 <여고괴담>이나 여자들의 시기와 질투가 비극적 공포로 이어지니까. 그런데 여자들은 원래 질투가 많나?
여자들, 질투 많지. 그런데 여자들보다 남자들 질투가 더 장난 아니잖아.

그런가?
난 그렇게 생각하는데. 남자들의 질투도 만만치 않지. 여자들의 질투는 있는 만큼 드러나는 것 같아. 사람들이 누구나 알고 있잖아. 여자는 질투가 많다고. 그런데 남자들의 질투는 의외로 드러나지가 않지. 사실은 정말 많은데. 난 그래서 남자들의 질투가 장난 아니라고 생각해. 속을 알 수가 없잖아. 남자의 질투는 사람을 죽이기도 한다잖아.

예전에 비슷한 말 듣긴 했다. 여자가 한이 맺히면 오뉴월에 서리가 내리지만 남자가 한이 맺히면 살인을 저지른다고.
그래, 남자들도 얼마나 무서운데! 질투하는 게! 여자들 만만치 않아.

혹시 누구 질투해본 적 있어?
특정 대상보단 내가 못 가진 걸 가진 사람? 그런데 그건 누구나 마찬가지 아냐? 그리고 어쩌면 만약 내 남자친구가 있다면 그의 예전 여자친구들을 질투할 수도 있지 않을까? (웃음)

아~~~! 이건 개인적으로 귀가 솔깃한데. (웃음)
그럴 것 같아. 남자친구가 있는데, 그 사람이 예전에 사귄 여자친구를 기억한다는 걸 알면 기분 나쁘겠지.

연기자로서 질투 나는 사람은 없어?
그런 것도 있지! 근데 그건 질투보단 자극이라고 하는 게 맞겠다. 솔직히 나보다 나이가 많으면 괜찮은데, 또래 배우가 연기를 굉장히 잘하면 ‘열심히 해야겠구나, 내가 이럴 때가 아니구나’ 이런 걸 느끼거든.

영화를 찍는 중에도 느낀 적 없어? <므이>에서는 어땠어?
그런데 예련 씨나 나나, 둘 다 서로의 연기에 대해서 걱정이나 격려를 많이 하고 그랬거든. 질투라기보단, 슛 들어가기 전까지 계속 대사 외우고 그랬어요. 굉장히 걱정을 많이 해서. 그래서 더 안 좋게 연기가 나온 부분도 있고, 더 잘 나온 부분도 있고. 너무 연습을 많이 해서는 안되는 부분도 있었고, 연습을 많이 해서 잘 되는 부분도 있었는데 어떤 부분에 있어서는 연습을 많이 해서 좀 오히려 안 좋게 작용한 부분도 있었던 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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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현장에서 맏언니 역할을 한 건 이번이 처음 아냐? 항상 막내일 때가 많았잖아.
맞아. 굉장히 부담되더라! 내가 극을 이끌어가야 되기도 했고. 예전 같으면 누군가 기댈만한 선배 연기자 분에게 의지하면서, 코치도 받아가며 했을 텐데 그럴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는 거. 그런 부분에 있어서 걱정도 많이 했고. 과연 잘 할 수 있을까란 부담감이 굉장히 컸지. 나 기자 시사회 때, 굉장히 긴장한 거 같지 않아? 그 때 사실 속으로 나 오늘 겁나게 욕 얻어먹는 거 아냐~! 막 이랬었거든! (웃음) 굉장히 긴장 많이 했었어. 그런데 생각보다 그런 거 없더라. 다행히도. (웃음)

나도 개인적인 소견에 연기적으로 부족했다는 생각은 안 들었어.
다행이네. (웃음) 대체로 무난했다고 하더라. 욕 안 먹은 게 어디야. 휴우~ (웃음)

<므이>에서 차예련은 두려움을 만들어내고, 넌 두려움을 받는 인물이잖아. 그런데 그게 배우의 이미지와 대비적으로 어울렸던 거 같아. 그런데 만약 서로 역을 바꿨으면 어땠을까?
내가 만약에 두려움을 만드는 대상으로? 근데 솔직히 예련 씨 눈빛이, 차갑게 느껴지는 눈빛이잖아. 호러에 잘 어울리는 미스테리한 눈빛이랄까. 그래서 예련 씨는 서연 역이 확실히 어울리는 것 같은데. 모르겠어. 뒤바뀐 건 잘 상상이 안 돼.

그런가? 생각해보니 벌써 출연작만 6편째네. <므이>까지. 그런데 그 6편 중 이름을 전면에 내세운 건 처음이지?
그렇지. 이게 제일 크지. 그리고 봤으니 알겠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내가 계속 나오잖아. 정말 미치는 줄 알았다니까. (웃음) 솔직히 예전 작품들 시사회에선 맘 편안히 보다가 내가 나오면 긴장하고 또 지나가면 편하게 보고 그랬는데 이번엔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 나오니까 편하게 볼 수가 있어야지! (웃음) 왜냐면 나 나올 땐 너무 긴장되거든. 그래서 조금 스트레스 받더라. 관객 분들이 제발 좋게 봐주셔야 할 텐데.

그런데 그렇게 자기 얼굴 보면 기분이 어때? 연기가 어떻고 그런 거 말고.
연기랑 관계없이 화면으로 보는 거라면, 외모적인 걸 말하는 건가?

그니까 그냥 거울을 보는 느낌과는 다를 거 아냐. 자신의 얼굴을 화면으로 보는 느낌은 묘할 것 같은데.
그런 걸 생각할 정신이 어디 있어~!(웃음) 내가 저기서 왜 저랬지. 내가 미쳤지. 저걸 다시 한번만 찍을 수 있으면 좋겠다. 저기서 왜 저런 실수를 했을까? 이런 생각들로 정신 없이 바쁜데. 그런데 되게 웃긴 건 내가 영화 보면서 다시 해본다니까. (웃음) 대사도 다시 한번 해보고.

<므이>는 어땠어? 후회가 남아? 잘 했다 싶진 않고?
잘 했다 싶은 장면은 없고. 그냥 전체적으로 더 열심히 했으면 좋았을 텐데 싶어. 그리고 특별히 후회하는 장면을 꼽을 수도 없어. 왜냐면 전체적으로 그 당시엔 나름 열심히 했다고 생각하니까.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보면 더 열심히 할걸 그랬다는 후회가 남더라. 사실 내가 너무 아팠던 적이 있었어. 열병에 걸려서. 그런데 그때 감정씬을 찍었지. 그래서 그런 건 찍은 뒤에 후회됐어. 그 때 내가 몸 관리를 잘 해서 컨디션이 더 좋았다면 그나마 좀 더 잘했을 텐데, 이런 생각. 왜냐면 다 에너지가 필요한 장면들이 많았으니까. 근데 몸이 안 좋으면 아무리 에너지가 나오질 못하니까. 마지막쯤에 동굴 같은 컴컴한 곳 들어가는 장면 있잖아. 사실 내가 무지 아팠을 때 찍은 거야. 정말 가만히 있는데 몸에서 식은땀 나고, 그래서 얼굴에 땀 분장할 필요 없었지. 계속 땀 흘릴 정도로 되게 몸이 아팠거든. 그런 장면들도 좀 더 내가 몸이 안 아팠다면 더 잘 할 수 있었을 텐데 싶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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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지에서 아프면 서럽다던데.
서러워. 그 때 눈물 좀 나더라. 그런데 누가 예전에 그랬어. 연기자는 아픈 것도 죄라고. 그런데 정말 맞는 말이라고 생각해. 내가 몸 관리 못하고 아파서 연기 못하면 그것도 자신에게 충실하지 못한 거니까. 아프면 아무래도 기력이 떨어지고 집중력이 떨어져서 연기력 자체도 떨어지게 되니까. 그러다 보면 작품도 전체적으로 떨어지고. 그래서 항상 컨디션 조절하는 게 연기자로서 굉장히 중요하다고 믿어왔고, 베트남에서도 그러겠다고 자신했는데 그 땐 한국오기 얼마 전이었거든. 긴장을 좀 놨었나 봐. 그래서 그렇게 아팠던 거 같아.

그 전에 너무 많이 했을지도 모르지. 처음으로 공포를 느끼는 연기를 한 것도 쉽진 않았을 거 같은데. 게다가 현장은 즐겁잖아. 그런 가운데 공포를 느끼라니 아이러니하지 않아?
진짜 방금 말한 것처럼 공포영화 촬영 현장은 되게 재미있어. 그리고 솔직히 촬영할 때도 좀 그래. 알고 있겠지만 아무것도 없어. 알지? 무슨 말 하는지? (웃음) 카메라만 있고 주변에 아무것도 없는데 혼자서 막 미친듯이 소리지르고, 알지? 그 상황? 그런 게 어쩌면 뻘쭘할 수도 있는데, 막상 닥치면 또 안 그래. 있다고 생각하면 있는 것 같아.

그게 바로 차예련 씨가 칭찬하던 순간 몰입 모드?
근데 나도 (기자 간담회 때) 말했지만 예련 씨야 말로 순간 몰입이 대단한 배우야. 솔직히 난 내가 그렇다고 생각해 본적 없는데, 예련 씨는 그렇게 봤나 봐. 그리고 의외로 그렇게 봐주는 분들이 하더라. 예전에 <홀리데이>때도 영화사 대표님께서도 비슷한 말 하셨거든.

권영탕 사진기자: 나도 감동했어요. 난 울었어. 그 장면에서.
고마워요. 기분 급 좋아지는 걸! 넌 좀 배워야겠다. 사회 생활 하는 방법을~ (웃음)

나도 감명 깊게 봤어~~. 늦었나? (웃음) 근데 예련 씨는 선의의 경쟁을 했다고 하던데.
예련 씨와의 선의의 경쟁은 할 수밖에 없었어. 예련 씨도 잘하고 나도 잘 하면 좋은 거라고 둘이 서로 생각했으니까. 왜냐면 그게 영화가 잘되는 길이잖아. 둘 다 잘하는 게 좋은 거지. 그래서 경쟁 아닌 경쟁을 했어.

아까 말했던 것처럼 비슷한 나이라 그랬던 부분도 있었을 것 같은데?
당연히 또래니까 그랬을 수도 있지. 어느 한쪽의 나이가 월등히 많거나 월등히 적으면 솔직히 그런 건 좀 덜했을 텐데. 선배님이거나 어리니까. 근데 또래이다 보니까 약간은 그런 게 있었던 거 같아. 또랜데 내가 연기를 상대적으로 못하면 좀 그렇잖아. 가끔씩 서로 ‘너무 잘 하는 거 아냐?’ 이러면서 몇 마디 주고 받기도 했는데, 마치 시험공부 해놓고 시험공부 안 했다고 그러는 것과 비슷한 거랄까. 물론 서로 가식적으로 군 건 아니지. 정말 선의의 경쟁을 하자. 윈-윈 했으면 좋겠다. 이렇게 서로 이야기까지 한 적도 있었어. 사실 내가 언니역할을 많이 못 해줬어. 나랑 이야기해보니 되게 밝은 편이라고 생각되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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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생각해. 아닌가?
나도 그렇다고 생각해. 같이 있으면. 그런데 떨어져 있으면, 예를 들면 난 집에 한번 틀어박히면 안 나와. 한번도. 그런데 예련 씨는 촬영 끝나고 나랑 같이 밥도 먹고, 얘기하고, 놀고 싶어했는데 내가 못 해줬거든. 난 촬영 끝나면 숙소 들어가서 좀 자고, 생각하고 그랬거든. 뭔가 혼자 있는 걸 되게 좋아해서.

의외네. 혼자 있는 걸 좋아하나 봐?
혼자 있는 걸 굉장히 좋아해. 안 그래 보여? (웃음)

어울리는 걸 좋아할 줄 알았어. 이렇게 발랄한 사람이 그런 줄 누가 알겠어! (웃음)
누군가와 같이 어울릴 때는 발랄해. 그런데 집에 한번 들어가면 안 나오니까. (웃음)

혼자만의 시간을 특별히 좋아하는 편인가 봐.
응. 좋아해. 그래서 친구들이 내 별명을 해녀라고 지어줬지.

해녀? 아~, 잠수타면 안 나온다고~? (웃음)
맞아! 그 뜻을 바로 파악하는구나! 모르는 사람도 많은데. 예리한 걸! (웃음)

집에 금송아지라도 있는 거 아냐? (웃음)
그게 아니라, 어렸을 때부터 혼자 생각하고, 혼자만의 시간을 굉장히 좋아했거든. 근데 그것이 버릇이 된 거지. 친구들이랑 같이 있는 것도 너무 좋아. 그런데 집에 혼자 있는 것도 너무 좋은 거야. 그리고 촬영할 때, 밖에 많이 있잖아. 계속.

하긴 계속 누군가와 부딪히면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싶을 때가 있어. 이해해. 그 마음. 그런데 어쩌다 이 바닥에 들어온 거야?
이 바닥이라니. (웃음) 사실 그건 수없이 이야기해서 들어도 재미없을걸. (웃음) 그건 너무 많이 얘기해서 이제 이빨에 땀날 거 같아. (웃음)

내가 궁금한 건 우연인지 필연인지. 연극영화과까지 진학했던 건 분명 뜻이 있었던 거니까. 필연 같긴 한데, 그 전에 사연이 있을 법도 하고.
그러니까 내가 대학 가기 전에 데뷔했거든. 그래서 내가 연극영화과를 들어간 거야. 맨 처음에 연기를 해보니까 이게 내 천직이구나, 라고 느껴서 이 쪽 길을 택했지. 사실 내가 그 전까진 만화가가 꿈이었거든.

그래서 기자 간담회 때 만화에 관련한 질문이 나왔었구나.
맞아. 그 분은 나에 대해 조사를 많이 했던 거지. 조사가 부족하시네! 나 한방 먹인 건가? (웃음)

윽, 이거 이러시면 이제 막 하자는 거지요? (웃음)
농담이야~. 진짜 농담인 거 알지? 설마 삐진 거 아냐? (웃음)

그건 아니고. (웃음) 사실 나도 만화를 꽤 좋아하는데 반갑네. 난 우리 누나 영향으로 어릴 때 순정만화보다 만화에 빠졌거든.
진~짜! 남자가! (웃음) 그런데 의외로 순정만화 좋아하는 남자 꽤 있더라! 순정만화보고 막 울고 그래, 남자들이! 의외로, 정말!

누나 있는 애들이 좀 그럴 수도 있어. (웃음)
하긴 내 동생도 어렸을 때 내가 여장시켰어. 머리 묶어서 핀 꽂아주고. (웃음) 지금도 가끔 꼬드겨서 화장해주고 그래. 궁금해서.

그나마 난 그런 누나까진 안 만나서 다행이네. (웃음) 아무튼 어릴 때 순정만화 잡지 같은 거 많이 봤어. 지금도 기억나는데, ‘나나’였나? 그리고 ‘빅토리 비키’란 만화도 기억나.
나랑 동갑이라 역시 그런 거 다 아는구나. (웃음) 나도 그거 되게 좋아했는데. 그럼 그것도 봤어? ‘인어공주를 위하여’

아, 기억나.
어머, 그럼 ‘은비가 내리는 나라’는?

아, 그것도 알지. 꽤 많이 봤어. 웬만한 건 거의 다 안다니까. (웃음)
가만히 보니 그런 거 좋아하게 생겼어. 예쁘장하게 생긴 편이거든.

설마! 말도 안 돼. 나 빌려줄 돈 없네요~.
진짜인데. 그런 얘기 안 들었어? 들었을 법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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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나랑 닮았단 이야길 종종 듣긴 하는데.
그게 뭐야! (웃음) 어쨌든 사실 난 어렸을 때 순정 만화를 좋아했는데, 초등학교나 중학교 땐 호러, 스릴러, 추리에 빠졌어. 내가 ‘셜록 홈즈’나 ‘괴도 루팡’ 시리즈를 읽으면서 추리에 빠졌고, 에드거 앨런 포우의 ‘검은 고양이’ 보면서 호러에 빠졌거든. 그래서 지금도 일본 공포 만화 같은 건 정말 좋아해. 사실 나 오늘 한 시간밖에 못 잤는데 그게 어제 밤 9시부터 새벽 4시 반까지 공포 만화 읽다가 잠을 못 잤거든.

어쩐지 꽤나 피곤해 보이더라. 대체 뭘 읽었길래?
이번에 새로 나온 건데 작가 이름은 잘 모르겠어. 그냥 일상에서 일어나는 괴담을 다룬 거야. 예를 들면 당신 몸에 점이 하나 있는데 어느 날 이게 점점 커지는 거야. 그리고 그에 대한 공포를 그린 거지. 결국 그 여자가 나중에 죽는데 마지막 멘트가 ‘혹시 요즘 당신 몸에 점이 점점 커지고 있지 않나요?’ 이거야. 그럼 점 한번 보게 돼. 커졌나? 이러면서. (웃음) 그런 재미가 있어.

혹시 이토 준지 만화도 좋아하나?
그럼. 이토 준지 만화 좋아하지. 단편 콜렉션도 다 봤어. 한번 두번 본 것도 아니고, 몇번씩 봤는 걸. 적어도 한 권당 세 번은 넘게 본거 같은데.

난 궁금해서 한번씩은 봤는데 다시 보고 싶진 않더라. 그 정도면 완전 매니아 수준인데. 그럼 만화를 그렸다면 그런 만화를 그렸겠네.
아니, 내가 그리고 싶은 건 ‘광수 생각’ 같은 거야. 귀여운 캐릭터를 이용해서 내 생각을 간단히 적을 수 있는 식의 카툰을 해보고 싶어. 독자들과 같이 생각을 공유하고 교감할 수 있는. ‘이런 건 그렇지 않을까?’ 라고 의문점을 집어 던지고, 독자들은 그걸 가지고 생각하고. 즐거운 작업이잖아.

사실 내 주변에도 그런 카툰을 그리는 사람이 있어서 가끔은 해보고 싶을 때가 있어.
재미있겠지. 그런데 내 그림이 아직 중, 고등학교 실력에 멈춰서 제대로 배워야지. 그래도 어릴 때 소질 있단 이야기 듣기도 했는데. 나중에 제대로 배워서 해보고 싶어.

배우가 아닌 만화가가 됐을지도 모를 일이었네. 그런데 우리 지금 삼천포로 빠진 지 오래된 거 같은데. (웃음)
괜찮아~. (웃음)

다시 영화로 돌아오자. 어쨌든 지금까지 출연 작품들은 다 개봉했네. 6편 모두. 그리고 결과적으론 주인공까지 맡게 됐고. 옛날과 달라진 것 같지 않아?
일단 그 부분에 대해서 감사하게 생각하지. 왜냐면 특히나 요즘 같이 영화계가 힘든데 난 2007년 올 해 들어서, 세 편이 개봉되는 거거든. <언니가 간다>랑 <므이>, 그리고 지금 찍고 있는 <어린 왕자>도 11월 개봉 예정이니까 그것까지 합하면. 요즘 영화판이 너무 힘들어서 배역이 잘 안 들어온다고 다들 그러시는데 난 지금 찍고 있는 <어린 왕자> 외에도 시나리오도 들어오고 있고. 감사할 일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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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단편영화도 찍고 있다며?
유지태 오빠가 감독님이고, 내가 배우로. 되게 즐거워. 되게 멋진 감독님이야. 사실 유지태 오빠가 배우잖아. 그래서 감독님이지만 배우의 입장을 잘 아니까 말이 잘 통해. 그래서 촬영 작업이 재미있고, 솔직히 연기하는 것 같지 않은 마음으로 연기해. 왜냐면 카메라 앞에서 나한테 말을 거시기 때문에 재미있어. 나한테 오빠가 같이 촬영하자고 했을 때도, 현장에서 놀자고 했기 때문에 놀러 갔어. 현장에 처음 갔을 때부터, 오늘부터 배우든 스텝이든 다 같이 놀기 시작하는 거라면서 이거 즐겁자고 하는 거라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다들 너무 즐겁게 작업하는 거 같아.

드라마도 종종 출연했는데 혹시 탤런트나 영화배우 중 더 듣고 싶은 건 뭐야?
그런 건 없고 그냥 다 좋아. 작업하는 거에 따라 장단점이 있는 거지. 사실 영화냐, 드라마냐가 아니라 작품에 따라서, 내 연기에 따라서 만족이 좌우되는 것 같아. 영화는 그걸 내가 극장에서 커다란 스크린으로 보는 재미가 있어. 매력 있지. 생각해봐. 내 얼굴이 어마어마하게 큰 스크린에 걸려서 나오면 그걸 관객들이랑 같이 보잖아. 가수들은 무대 위에서 그걸 직접 느끼잖아. 근데 난 연기자니까 관객들이나 시청자들이 내 연기를 보는 걸 못 보거든. 그래서 보통 개봉할 때, 모자 푹 눌러쓰고 분장을 해서 극장가! 그래서 한 구석에 앉아서 반응을 지켜봐. 이걸 어떻게 보는지 곰곰이 들어. 이렇게 귀를 쫑긋 세우고. (웃음) 그리고 엔딩 크레딧 올라갈 때, 사람들 나가는 것까지 지켜보면서 나가면서 뭘 말하는지 봐. 그런 재미가 있는 거 같아. 왜냐면 영화를 어떻게 봤을까, 이런 것들을 현장에서 직접적으로 볼 수 있으니까. 그런 재미가 있고. 그런데 영화는 한꺼번에 보게 되니까 후회될 때가 많은데, 드라마는 시리즈 별로 나가서 한 회 나가고 시청자들 반응을 보거나 내가 직접 화면을 보면서, ‘여기서 이건 아니구나.’하면서 잡아갈 수 있지. 캐릭터에 대해서. 왜냐면 그게 방송이 나가면서 계속 찍는 거니까. 그런데 영화는 그게 안되잖아. 물론 현장에서 모니터를 하긴 하지만 그게 나중에 완성돼서 다 붙여놓은 거랑은 또 다르거든.

그렇지. 순서대로 찍는 게 아니니까.
그러다 보니 후회해도 이미 늦게 되지. 그런데 드라마는 그렇게 고쳐나갈 수 있고. 그래서 마지막에 가서는 처음보다 좋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고. 그런 차이가 있는 거 같아.

그런 면에서 보면 드라마가 영화보다 좀 더 유리한 거 같아. 드라마는 확실히 만회할 기회가 많으니까.
그렇지! 그리고 시청자 분들한테 감사한 게, 좋은 건 그래도 좀 기억해주시는 편이거든. 나중에 후반 가서 잘 하면, ‘초반엔 그냥 적응 못해서 그랬는데, 후반 갈수록 괜찮구나.’ 이렇게 좋게 평가해주시는 거 같아. 특별히 날 싫어하시는 분 아니라면. 그런데 영화는 그럴 수가 없잖아. 딱 결과물만 나오니까. 그런 부분에 있어서 걱정이 많지. 그래서 더 순간적으로 몰입하게 되는 건지도 모르겠지만.

그럼 어쨌든 관객들이 많이 봐줄수록 좋겠네.
(불쌍한 눈빛으로) 정말 그래요. 진정으로~ (웃음)

스스로가 어떤 배우이길 원해?
가끔 내가 연기를 너무나 사랑해서 시작했는데, 자꾸 초심을 잃는 것 같다고 느껴질 때가 있어. 내가 이 일을 얼마나 사랑해서 시작했는지 잊어버리는 것 같을 때, 어느 새 내게 일이 돼버린 것 같을 때. 정신이 번쩍 나. ‘내가 미쳤나? 왜 이러지. 이게 아닌데. 나는 이 일이 너무 좋아서 시작한 건데, 이걸 그냥 단지 직업으로 생각하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 때. 이거 아니지. 이러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해. 내가 정말 초심을 잃지 않는 배우가 됐으면 해. 그런 배우가 된다면, 언젠간 관객 분들이나 시청자 분들이 정말 그렇게 알아봐주실 거라 생각해. 어느 분야에 있어서든지 초심을 잃지 않는 게 제일 중요하고, 제일 힘든 거라고 생각하는데, 난 초심을 잃지 않는 배우가 됐으면 좋겠어.

지금이라도 만화에 다시 한번 도전한다면..
그건 진짜 취미지! 정말 이러기야? (웃음)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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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민용준
,

진구 인터뷰

interview 2008. 5. 31. 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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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 많이 피는 것 같다.
담배를 피면 긴장이 좀 덜 되는 것 같아서, 그래서 보통 일할 땐 하루에 한 갑 반 정도 피는데 그냥 집에서 쉬는 날엔 이틀에 한 갑 정도 핀다. 아무래도 일하는 시간에 많이 피는 편이지. 대신 술을 끊었다.

술도 많이 마시는 편인가 보다.
거의 매일 마셨다. 그런데 요즘은 웬만하면 안 마시려고 하지.

난 담배를 끊었는데. (웃음) 의외로 긴장하는 편인가 보다. 사실 별로 그럴 것 같지 않은데. 긴장되니 인터뷰보다 사진을 먼저 찍자는 이야기에 의외라고 생각했다.
사진에 긴장하는 편이다. 인터뷰는 그냥 있는 대로 얘기하면 되는 거고, 그러다가 얘기가 잘 되면 재미있게 덧붙이면 되는 거라서 부담은 전혀 없다. 오히려 말하는 건 즐겨 하는 편이니까. 그런데 사진은 가끔 가다 막힐 때가 있더라. 가끔 가다 안 맞는 사진작가랑 만나게 되면 그렇다. 보통 찍으면서 ‘오케이! 좋습니다. 하나 더! 오케이! 하나 둘, 하나 둘!’ 이런 식으로 술술 진행되면 나도 덩달아 업 되는데, 첫 장 딱 찍고서, ‘음, 이거 아닌데~’ 이러면 더 안 나오는 거다. 솔직히 기분이 살짝 상하는 탓도 있고. (웃음)

그럼 우리 사진 기자는 편했을 것 같은데.
아, 최고! 근데 너무 빨리 끝낸 거 같은데. (웃음)

일단 믿어보시라. (웃음) 종종 스크린으로 웃는 얼굴 뒤에 쓸쓸한 무표정이 교차하는 걸 발견한다.
음, 그건 만든다고 나오는 건 아닌 것 같다. 만약 연기로 그런 게 나왔다면 자신감 만땅이겠지! (웃음) 근데 연기가 아니니까. 나도 모르게 그런 게 나오는 거 같다. 그리고 날 캐스팅하신 감독님들은 그런 면을 좋아해주신 것 같고. 어쩌면 나한텐 유일한 장점이지 싶다.

제2의 이병헌이다, 리틀 이병헌이다. 이런 말 듣게 되는 것도 그런 표정 덕분이 아닐까? 이런 말 듣게 되면 어떤가?
처음 들었을 때도 그랬지만 전혀 나쁘지 않다. 이걸 빨리 빼내야겠단 생각도 없고. 만약에 오늘 아침에 그런 기사가 그렇게 났다고 해도, 전혀 기분이 상할 것 같진 않다. 이병헌 선배는 알다시피 워낙 연기 잘 하는 배우잖아. 사실 데뷔 초기에는 롤모델로 삼았을 정도로 너무 존경하는 선배님이다. 그러니 제2의 이병헌이다, 이런 말은 내게 칭찬이었다. 결국 제2의 이병헌은 방해가 되는 것 같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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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긍정적인 효과로 받아들이는 것 같다. 지금도 그가 롤모델인가?
물론 지금은 연기자로서 롤모델이 없다. 한편으론 이젠 선배님을 언젠간 올라서야지, 라는 생각이 있긴 한데. 물론 그건 존경의 의미다.

<비열한 거리>의 종수가 진구란 배우를 사람들에게 많이 인식시킨 거 같다.
사실 <비열한 거리>가 진구란 이름을 알릴 수 있는 대표작이 될만한 작품이 되리라곤 꿈에도 생각 못했다. 그냥 마지막에 주인공을 죽인다는 그 포인트 하나만 잘 잡아서 연기를 잘 하는 조 단역으로 일단 어필하자는 생각으로 했을 뿐인데. 감독님께서 원하시는 게 많아서 이전 작품들에 비해 공부도 많이 했고, 현장에서 감독님의 디렉팅을 처음으로 받아본 작품이다. 그 전에는 감독님들이 굉장히 어려웠고 무서워했기 때문에 감히 ‘감독님, 저는 이 장면 이렇게 생각하는데, 감독님은 어떠세요?’ 이런 말을 못했다. 감독님들과 대화하는 방법을 몰랐던 거지.

그런데 어떻게 디렉팅을 받은 건가?
유하 감독님께서 오히려 먼저 나한테 오셔서, ‘진구야, 여기서는 이렇게 하는 게 어떠냐?’ 그러시더라. 물론 아마 답답해서 그러셨을 거다. 워낙 못하니까. (웃음) 그러다가 나도 점점 말문이 트이기 시작해서 나중엔 ‘저는 이렇게 생각해서 이렇게 했는데 어떠십니까?’ 이렇게 되묻기도 했다. 그리고 ‘그래, 그럼 그게 맞는 거 같다. 그렇게 가자!’, 이렇게 서로 의견을 잘 조합하다 보니 아마 내 연기가 튀지도 않고 영화 속에 잘 묻어난 거 같다. 그리고 그걸 보고 사람들은 연기를 잘 했다고 하더라. 사실 감독님께서 정말 날 살려주신 거지.

그런데 <달콤한 인생><비열한 거리><사랑따윈 필요없어>에서 연속으로 건달 이미지를 맡았는데 풍기는 느낌은 제 각각이더라.
그것도 다 감독님들께서 잘 잡아주셔서 그런 거다. 정말.

그래도 본인이 각각의 캐릭터를 찾아가는 방식은 있을 것 아닌가?
영화마다 틀리지. 작품마다. 그리고 상대 배우마다 틀리고. 상대 배우가 누가 되느냐에 따라서 많이 틀려지는 것 같다. 어떻게 보면 배우들을 잘 만난 운도 있는 것 같고. 확실히.

<기담>은 어땠나?
<기담>도 전적으로 감독님들의 디렉팅에 의해서 나온 연기라고 생각한다. 내가 잡아간 건 한 30%정도라면 동료 배우들과의 호흡이 20%였고, 감독님께서 가르쳐 주시거나 숙제처럼 준 그런 것들이 50%, 절반 이상?

사실 먹물 묻은 캐릭터는 처음이다.
먹물 묻었다는 게 어떤 의미지?

의대 실습생이잖아.
아, 좀 지적인 거? 사실 전혀 지적이지 않은데! (웃음)

음, 아직 <기담>이 공개되지 않은 상태라 잘 모르지만-이 인터뷰는 <기담>의 기자시사 전에 진행됐다.- 쨌든 외면적으론 그렇잖나. 생각해보면 공포라는 장르도 처음이고, 시대극 자체도 처음이고.
다행인지 불행인지, 사실 지금까지 했던 거와 거의 비슷하다. 하지만 일단 의대 실습생이라니까 ‘아, 쟤 공부 좀 했나 보다.’ 이렇게 막연히 느끼나 보다. 그리고 시대극이지만 특별히 어미가 두드러진 조선 시대 식의 대사를 한 것도 아니다. 시대극을 하며 배우로서 준비한 게 있느냐는 질문을 많이 하는데 그런 준비는 거의 분장팀하고 의상팀, 미술팀만 많이 했던 거 같고, 배우들은 그냥 연기만 했던 거 같다. 유약하고 섬세한 의대실습생이 시체실에서 당번을 서다가 시체와 사랑에 빠진다는 이야기는 시대가 2007년으로 옮겨졌다고 해도 난 분명 <기담>하고 똑같이 연기를 할 것 같다. 복장이나 환경만 틀릴 뿐이지. 그래서 별로 다를 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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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극이라는 점에 대해 특별히 인지할 필요는 없었다는 말인가?
어차피 사랑 감정은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으니까. 때리면 아픈 건 어느 시대나 마찬가지인 것처럼.

사랑에 빠지는 연기도 처음이다.
음, 그렇지! 그 동안 TV 단막극에서조차 사랑이 없었으니까. 가족간의 사랑이나 그런 것 밖에 없었지. 처음이네. 사실 듣고 보니 이제 알았다.

그런데 첫사랑이 좀 특이하다. 상대가 시체라니. (웃음) 감정을 끌어내는 건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쉽지 않더라. 그런데 시체가 하도 예뻐서. (웃음) 시체에 하얀 천을 덮어놓은 씬에서도 진짜 배우가 들어갔다. 솔직히 실제 사람이 들어갈 필요 없이 마네킹을 써도 괜찮을 것 같은데, 늘 내 앞에 눕혀놓았다. 아무래도 감독님이 내 연기를 끌어내는데 도움을 주려고 한 것 같다. 그리고 대본 중에 ‘마치 여고생 시체는 마치 살아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라는 지문도 있어서 그에 충실 하려고 했을지도 모르지. 어쨌든 살아있는 사람 같은, 그것도 예쁜 시체를 봐서인지 그렇게 어렵진 않았던 거 같다. (웃음)

시체이니 말도 없고, 표정도 없었을 텐데. 그런 상대를 앞에 두고 연기하는 건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처음부터 끝날 때까지 대사도 표정도 없는 시체가 내 연기 상대이다 보니 혼자서 연기를 끌어가야 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그런 연기적 고민을 함께 공유할 사람이 없었다. 선배님들과 함께 하는 장면은 거의 없었으니까 내 씬은 혼자 끌어가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상대 연기자가 없다 보니 연기에 대한 고민을 직접적으로 나눌 사람도 없었다. 그게 어려웠던 거 같다. 한편으론 외로웠던 것도 같고. 아무래도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조금 있었던 거 같다. 그래서 사실 숙소에서 혼자 술도 많이 먹었다. (웃음)

촬영이 디테일하게 이뤄졌다고 들었다. 그러다 보니 일정이 지연되는 상황도 많았고, 그런 부분에서 느껴지는 어려움은 없었나?
촬영이 지연되고 일정이 늦어진 건 어쩔 수가 없었던 일이라고 말씀 드리고 싶다. 촬영 분의 대부분이 안성병원세트였는데, 그 세트에 문제가 약간 있었다. 미술 감독님께서 미장센에 신경을 많이 쓰셔서 상당히 디테일하게 만들었는데, 막상 영화 촬영에 용이하지 못했다. 조명을 달아야 하는데 조명 설치가 어려운 복도가 있었고, 응급 침대를 이동하는 데도 벽에 걸려서 커브가 안 되는 곳도 있었고. 그래서 세트 공사를 다시 해야 했다. 물론 나를 비롯한 배우들보단 스텝들이 불편한 문제였다.

듣는 바에 의하면 한 씬을 세 버전으로 찍기도 했다는데.
똑같은 장면인데 카메라를 이렇게 들어가보고, 저렇게 들어가보면서 여러 각도에서 찍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어떤 장면은 2컷 찍는데 24시간 넘게 걸릴 때도 있었다. 솔직히 기다림에 대한 고통도 약간 있었지. 하지만 결과적으로 영화의 완성도를 위한 배려였으니 참고 견디는 것도 당연한 일이라 생각했다.

아버지께서 오래 전부터 영화계에서 활동하신 진영호 촬영감독님이라고 들었다. 영화배우가 된 건 아버지의 영향도 있었을 것 같다. 그것이 직접적인 유전이던 간접적인 영향이든.
여러 가지가 있다. 아버지의 피 때문인지, 어렸을 때부터 남들 앞에서 뭔가를 보여주고 박수 받고 싶단 생각을 많이 했다.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배우나 가수, 하다 못해 백댄서라도 좋으니까 남들 앞에서 뭔가를 보여 주고 싶은 게 내 꿈이었고 장래희망이었다. 결정적으로 군대에서 ‘나가서 뭘 하면 남들보다 나을 수 있을까.’란 생각을 차차 하게 됐다. 그러면서 하나씩 잘라가게 됐지. ‘가수? 그렇게 잘 할 거 같진 않아.’ 이런 식으로 하나씩 잘라가다 보니까 결국에 배우가 하나 남더라. 물론 배우를 만만하게 봐서가 아니라 나랑 가장 잘 맞을 거라고 혼자 생각을 했던 거지. 아버지께서 처음엔 반대가 심하셨다. 현장을 많이 겪어보신 분이시니까. 너 같은 애는 배우로서 성공 못한다고 적극적으로 반대하시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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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께선 상당히 회의적이셨나 보다.
그래서 <올인>을 몰래 했다. 근데 <올인> 촬영 감독님께서 아버지의 아주 아래 후배였던 거다. 결국엔 그래서 걸렸는데 나름대로 그 촬영 감독님께서 전화 통화로 아버지께서 내가 열심히 한다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한시름 놓으셨던 거지. 그런데 <올인>이 방영되기 전에 사람들의 반응이 나오지 않은 당시에도 나한테 항상 ‘다른 길도 생각해봐라. 만약 네가 방송 나왔는데 사람들이 널 별로 안 좋아할 수도 있고, 아니면 네가 한계를 느낄 수도 있으니까 다른 길도 생각해보거라.’라고 말씀하셨다.

본인도 그런 말에 고민 좀 하지 않았을까? 한편으론 경력자의 조언일 수도 있었을 텐데.
그런데 난 전혀 그런 생각 안 했다. 사람들이 안 좋아하면 좋아할 때까지 하면 되고, 내가 연기를 못 했으면 다음에 잘 하면 되는 거니까. 아버지는 촬영을 했던 스텝이고, 난 배우이기 때문에 영화를 사랑하는 마인드는 같지만 아무래도 분야적인 시각이 틀리다.

그럼 이제 배우로서 자리잡아가고 있는 아들에게 아버지께서 조언해주시는 건 없나?
물론 지금은 예전같이 반대는 하지 않지. 그렇다고 연기에 대해서 터치하시는 것도 없다. 다만 내가 점점 비중이 커진 역할을 맡으니까 거만해지거나 뻔뻔해지지 말라고 이야기해주신다. 인사성이나 스텝들한테 어떻게 하라는 인간적인 부분에 대한 조언을 많이 해주시지. 내가 잠시 놓칠 수 있는 인간적인 것들이나 내적인 걸 많이 잡아주신다. 스텝들은 이런 배우 좋아한다는, 그런 거. 그리고 나도 아직 현장에서 막내니까 막내 스텝들 챙기라는 말도, 그리고 그런 말씀은 나도 충분히 맞는다고 공감하니까 새겨 듣는다.

아버지와 이야기를 많이 나누나 보다. 살가운 사이 같은데.
전혀. 사실 세상에서 2번째로 사랑하는 사람이 아버지라면, 제일 싫어하는 사람도 아버지다.
어렸을 때 사연이 좀 있어서.

음, 아픈 부분은 건드리지 않겠다. 아버지께서 유하 감독의 <바람 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나가라>의 촬영감독이라고 알고 있다. 세대를 이어서 유하 감독하고 인연을 맺은 셈인데, 어쩌면 <말죽거리 잔혹사> 때 기회를 얻을 수 있었을 것 같다.
사실 그 때, <말죽거리 잔혹사> 오디션에 갔었다. <올 인>이 ‘빵!’ 터지고 나서. (웃음) 그때는 정말 멋모를 때였지. 배우로서 데뷔를 한다는 게 정말 쉬운 일이라고 생각했던, 머릿속에 똥만 가득 찼을 때. (웃음) 사실 거만은 몰랐다. 어떻게 하는 게 거만한 건지 몰랐으니까. 그러나 캐스팅이란 게 굉장히 쉽구나, 라고 착각했던 거 같다. 사실 <말죽거리 잔혹사>는 김인권 선배가 했던 찍새 역할로 갔는데, 감독님과 PD님이 보시더니 이정진 씨가 맡았던 우식이 시키자고 하더라. 그래서 나는 또 그렇게 캐스팅된 건 줄 알았지. <올인>때도 그렇게 됐으니까. 그런데 투자자들한테 신뢰가 없으니까 결국엔 떨어졌다. 그러다가 <낭만자객>을 하게 됐고, <논스톱>도 했고. <낭만자객>을 하면서 조금씩 배우게 됐지. 나한테는 굉장히 의미 있는 작품이다.

첫 현장 체험이었을 테니까. 그런데 <기담>을 선택하게 된 계기는 뭔가?
난 공포영화를 안 좋아한다. 너무 사람 놀래 키려 하는 게 장난치는 거 같아서. 오히려 그럼 오기로라도 더 안 놀래고 겁 안 먹거든. 개인적으로 공포영화를 무서워하지 않기 때문에 안 보는 것도 있다. 공포영화를 잘 만드시는 감독님들이나 배우 분들에겐 죄송한 이야기지만 난 그래서 개인적으로 공포영화를 아주 싫어한다. 그래서 <기담> 시나리오에서 그런 냄새가 났다면 난 결단코 누가 시켜도 안 했을 거다. 아무리 많은 돈을 줘도, 아니면 주인공 원 톱을 시켜줘도. 그런데 난 공포보단 멜로를 느꼈다. 그리고 이동규 선배나 김태우 선배, 김보경 선배랑 같이 할 수 있는 작품이라서 또 끌렸다. 주인공의 부담이 많이 덜어지니까. 확실히 뭔가 배울 수 있겠다는 확신이 섰다. 결국 정말 많이 배웠다. 감독님 두 분도 이제 입봉하시는 분들이라지만 내가 봤을 땐, 손꼽히는 프로라고 생각한다. 그 분들한테도 굉장히 많은 걸 배웠고. 육체적으로 참는 건 <비열한 거리>를 하면서 배웠지만, 정신적으로 참는 건 <기담>을 통해서 배웠다. 그리고 장르의 모호함, 겉으로 보면 공포지만 그 안에 뭔가 숨겨진 탄탄한 드라마 때문에도 하게 됐다.

공포 영화를 싫어한다고 했지만 재미있게 본 공포 영화도 있지 않나?
아주 어렸을 때 본 것들은 재미있었다. 최근에는 <쏘우>가 기억에 남는데 스릴러적인 측면이 좋았다. 잔인한 슬래셔는 좋아하는 편이 아니라서. 요즘 스릴러 영화에는 잘리거나 내장 나오는 건 꼭 나오는 것 같더라.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보게 된다. 또 머리 풀어헤치고 이런 귀신 나오는 것도 너무 싫다. 좀 지겹다.

그럼 특별히 좋아하거나 애착이 가는 장르가 있나?
공포를 제외한 대부분의 장르는 모두 좋아한다! 생각해보니 공포를 싫어하는 건 아니고, 안 좋아하는 거네. 다시 번복한다. 안 좋아하는 거다. 싫어하는 건 아니고.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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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담>은 공포영화지만 예상 밖의 무언가가 있을 것만 같다. 어쩌면 진구 씨의 역할이 그런 예상 밖의 무언가를 끌어내는 역할이 아닐까 싶다. <비열한 거리>에서처럼.
이제 그게 역이지. 원래는 안 그런데 그걸 기대했다가 또 뒤통수 맞게 되는. (웃음) 그러니까 감독님께서 처음에 주문하셨던 게, ‘지금까지 진구가 맡았던 역할들은 뭔가를 감추다가 나중에 뻥 터트리는 건데, <기담>에서는 끝까지 감춰라’ 였다. 겁이 많고, 소심하고, 유약하기 때문에 가슴에 있는 분노도 밖으로 못 나오고, 슬픔도 밖으로 나와서는 안됐다.

그럼 상당히 절제된 연기를 많이 했을 것 같은데.
평생 비밀을 안아야 하는 캐릭터다. 나의 내레이션을 통해서 영화가 시작되고 마무리된다.

영화의 시작과 마지막을 장식하는 인물이라는 소리인데.
그렇게 큰 건 줄 전혀 몰랐다. (웃음) 시나리오 받을 때도.

시나리오도 쉽진 않았을 것 같은데.
난 그냥 대충의 이해는 했었다. ‘아, 이거 반전이 있구나. 재미있다.’ 이정도 생각으로 어려울 거란 예상은 못했지. 그리고 감독님들과 이야기할 때도 신뢰가 생겨서 믿고 갔지. 그런데 막상 찍어보니까 어렵더라. 얕봤던 거지.

지금까지 스스로를 누르는 연기를 많이 했다. <아이스케키>에서도 아버지에 대한 감정을 숨긴 채, 그것이 분노인지 연민인지 모를 속마음을 지녔었고, <비열한 거리>에서도 속내를 알 수 없었다. 역할 탓도 있지만 배우의 기질 탓 때문도 아닐까 생각했다.
원래 그런가 보다. 평소에도 내가. 사실 난 아까도 말했었지만 연기할 때 그걸 의도하고 연기한 적은 한번도 없으니까. 사실 <비열한 거리>에서도 종수는 본심을 감췄다기 보단 정말 병두(조인성)를 좋아해서 목숨까지 걸겠다는 충직한 캐릭터였다. 그런데 나중에 병두가 ‘친구는 내가 알아서 처리할 테니까 넌 건드리지마’ 했을 때, ‘우리 식구보다 그 새끼가 정말 중요합니까’라고 하니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건드리지마’ 이랬던 거다. 죽어도 자기 식구 사랑한다는 이야기를 안 한 거지. 그래서 종수는 ‘어? 이 사람이 이런 사람이었네, 알았어.’ 결국 그렇게 배신하게 된 거지. 쉽게 말하면 단순한 거다. 대단히 단순해서 믿음이 바뀐 것뿐이고 난 그렇게 연기했지. 근데 그게 원래 그런 속내를 감추고 있었던 것처럼 보인 거지.

다르게 보면 우직하단 인상에 가깝다. <달콤한 인생>에서도 그랬고.
상황 상황에 맞게 자꾸 변해야 했으니까. 여기선 드러내야 맞는 거고, 저기선 감춰야만 맞는 거라는 걸. 그건 사실 감독님들이 진짜 나를 캐릭터에 잘 붙여놔서 그렇지. (웃음)

그런 면에서 <기담>의 캐릭터가 궁금한데.
내가 생각할 땐 가장 평면적인 캐릭터가 아닐까 싶은데, 안 드러냈으니까. 솔직히 영화를 아직 못 봐서 어떻게 됐을지 잘은 모르겠고. (웃음)

예고편을 너무 잘 만들어서 기대되나? (웃음) 어쨌든 이번이 6번째 영화다.
아, 그런가? (손가락으로 세보더니) 아, 그렇네! (웃음) 6개 맞네. 와~ 많이 찍었다. (웃음)

이렇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6번째 영화까지 왔는데, 처음과 지금은 뭔가 달라졌을 것 같다. 3자 입장에서 보기엔 마치 계단을 밟아가고 있는 것 같다.
분명 계단은 밟고 있겠지. 전에 대한 반성과, 복습과 예습을 철저히 하려 하니까. (웃음) 그리고 장르가 거의 다 틀렸기 때문에, 이제 첫 계단일 수도 있다. 나한테 맞는 옷을 못 찾았을 수도 있고. 욕심이라면, 맞는 옷 따윈 필요 없이 어떤 옷이든 잘 맞추고는 싶다. 모든 장르를 해보고 이 장르의 내 약점은 이거다, 이 장르의 강점은 이거다, 이런 걸 많이 분석해보고 싶다. 그럼 아마 다음 공포나 다음 조폭 영화에선 <기담>이나 <비열한 거리>보단 더 업그레이드된 무언가가 생기겠지. 아직은 경험하는 단계? 아직까진 데뷔다. 아직도 난 신인.

함께 출연한 김태우나 김보경, 이동규는 모두 경험 많은 선배이자 인정받는 연기자다. 나름대로 배울 점도 많았겠다.
뭐, 세분이 연기 잘 하시는 건 다들 아니까 거기에 대해선 말할 필요도 없겠지. 그런데 카메라 밖에서, 연기자가 아닌 모습에서 세 분 다 배울 점이 아주 많다. 일단, 이동규 선배 같은 경우는 되게 진지하다. 스텝들의 고민까지 들어주시고. 또 그래 줄 수 있을 듯한 큰 형 같은 느낌이다. 오히려 김태우 선배가 막내 삼촌이나 작은 형 같다. 나한테만 일부로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사실 내가 굉장히 어려워할 선배인데 내게 먼저 와서 장난쳐 주고, 방금 전처럼(인터뷰 현장에 있던 김태우 씨가 도중 종종 장난을 걸어 왔음.). 덕분에 난 현장에서 기 죽어서 연기하지 않아도 됐다. 김보경 선배도 되게 장난 많이 쳤다. 김태우 선배랑 편 먹고. (웃음) 그런데 짓궂을 정도로 장난쳐도 나한텐 고마운 거니까. 김태우 선배의 가정적인 모습도 좋고. 롤 모델로 삼고 싶을 정도로. 연기는 롤 모델이 없지만 인간적으로 생활하는 건 선배님들을 롤 모델로 삼고 싶을 정도로 많이 배웠다.

그런데 항상 남자배우들과 엮이더라. 여자 배우와도 엮일 만 한데. 제대로 된 사랑 연기도 한번 해봐야 하지 않겠나?
아직 부족하다. 아직 큰 자신은 없는데, 언젠가는 해야지. 정통 멜로보단 가벼운 로맨틱 코미디나 그런 쪽부터 밟고 싶다. 물론 정통 멜로도 내가 소화할 수 있는 거면 얼마든지 하고 싶지만. 장르는 안 가린다. 어떤 장르를 하고 싶다가 아니라 내가 할 수 있는 걸 하고 싶은 거지. 정말 크고 백 씬 중에 팔십 씬 나오는 역할도 내가 못할 거면 안 하고. 단역이거나 한 씬밖에 안 나와도 간당간당 내 그릇에 넘칠 듯 말 듯 채울 수 있겠다, 싶을 정도면 욕심내서 하고. 무리하진 않고 싶다.

<논스톱> 시절 생각하면 코믹도 나름 어울리던데.
아니다. 솔직히 난 어색하던데.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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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이제 필모그래피가 쌓인 만큼 알아보는 사람도 많이 늘어났을 거다. 그럴 때 기분은 어떤가?
좋지! 굉장히. 처음부터 남들한테 박수 받고 싶고, 호응을 얻고 싶어서 생각했던 일이니까. 물론 결국엔 돈 벌기 위한 직업으로 배우를 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궁극적으론 관객이나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연기하는 거잖아. 그니까 그런 사람들이 날 알아보고 좋아해주고 그러면 좋지. 굉장히 신난다. 그리고 그럴 때 ‘나 아직 안 죽는구나. 다음 작품 또 들어오겠구나’ 하는 희망도 생기고. (웃음)

연기자 진구와 일반인 진구 사이엔 어느 정도의 간격이 있는 것 같나? 본인 생각에.
거의 차이가 없다. 연기할 때도 양면성을 갖고 있는 것 같고, 실제 생활에도 그렇다. 굉장한 이중 인격까지는 아니어도 양면성이 있지. 밝고 어두움이 확실히 있어. 극과 극의.

앞으로 <기담> 이후에 정해진 차기 계획 있나?
홍보팀에서 ‘<트럭>에 출연 예정 중입니다.’ 정도만 말하라던데? (웃음) <호로비츠를 위하여>의 권형진 감독님 작품이고 유해진 선배님과 함께 한다.

촬영은 시작했나?
프리 프로덕션은 들어갔고. 본격적인 1회 차 촬영은 내일 모레, 목요일(6월 19일)부터.

첫 주인공으로서 <기담>에 대해 어필한다면, 앞에 있는 나까지 포함해서.
생각해온 건 아니고, 아까 인터뷰 중에 문득 생각이 났는데, 이번엔 이 카피로 밀고 싶다! (웃음) 차가운 공포영화가 아닌 따뜻한 공포영화다. 보통 여름에 피서용으로 에어컨 나오는 극장가서 시원한 공포영화나 보자, 이런 분들 많은데 그런 시원한 공포영화는 아니다. 방에 에어컨 세게 틀어놓고 나중에 추울 때, 두꺼운 이불을 덮으면 따뜻함과 시원함이 공존하는 오묘한 상황이 된다. (웃음) 그런 느낌을 관객 분들께서 받아주셨으면 좋겠다. 만약 <기담>이 내 생각에 맞는 느낌으로 나왔다면 분명히 그럴 수 있고 흥행도 잘 될 거라 생각한다.

그럼 다음주에 나도 확인해보겠다.
나도 아직 못 봐서 장담은 못하는데, (만약 그렇지 않다면) 내 잘못만은 아닙니다! (웃음)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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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민용준
,

유선 인터뷰

interview 2008. 5. 30.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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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더워져야 극장에서 볼 수 있는 것 같다.
그러니까! (웃음) 의도했던 건 절대 아닌데.

원래 공포 영화를 좋아하는 편인가?
사실 공포 영화를 별로 좋아하진 않는다. 관객들을 자극하기 위해 만들어진 공포물은 좋아하지 않지만, 정말 짜임새 있는 스토리가 끌어 가는 힘있는 스릴러물은 좋아한다. <검은집>은 그런 점에서 맘에 들었고.

개인적으로 유선 씨는 액션 배우라고 생각한다. (웃음) 몇몇 드라마를 통해 종종 보여준 모습을 사례로 들자면. 이번엔 한 단계 업그레이드됐다. 단순 주먹다짐에서 살벌한 칼부림으로. (웃음) 몸을 뒹구는 격투씬을 비롯해 여러모로 힘들었을 것 같다.
사실 육체적인 면보단 정신적인 면에서 많이 힘들었다. 만약 내가 귀신이라면 차라리 쉬웠겠지만, 사람이란 존재 자체만으로 공포를 느끼게 하는 건 쉽지 않다. 내 캐릭터가 관객을 서늘하게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내가 그 몫을 할 수 있을 지부터 시작해서 머릿속으로 그런 고민들이 끊이질 않아 정신적 부담이 컸다. 사실 육체적으로 부딪치는 건 견디면 되니까, 그건 큰 고통은 아니었던 것 같다.

황정민 씨는 힘들어 보이더라. 코도 진짜 물린 걸로 알고 있다. 꽤 아파 보이기도 하고. (웃음)
괴성을 그냥~~, 끝나고서도 계~속~ 지르는데 어찌나 민망하던지. (웃음) 진짜 이빨 자국 제대로 남았더라. 아팠을 거야. (웃음)

설마 개인적인 감정을 그런 식으로?(웃음)
나름대로 조절한다고 한 건데. (웃음)

신이화라는 역을 처음 접했을 때, 어떻던가? 아무래도 만만해 보이는 역은 아니었을 텐데.
어쩌면 그 동안 나 스스로 강하고 흡입력 있는 걸 원했던 것 같다. 내가 지닌 격정적인 뭔가를 밖으로 분출하고 싶은 욕망들이 내면에 많이 있었다고 할까. 하지만 그런 캐릭터가 쉽게 찾아지는 건 아니고, 우리나라에서 여배우가 연기할 수 있는 캐릭터가 어느 정도 선에서 한정된 탓도 있고. 그런 측면에서 신이화는 너무나 단비 같았다. 내가 그 동안 갈구했던 캐릭터라서 너무나 반갑고 흥분되는 기회였지.

<검은집> 이전에 이미 2번의 공포 영화 경험이 있지만 어떤 주체가 되느냐에 따라 <검은집>은 새로운 경험이었을 것 같다.
사실 이거 스포일러 감인데. (웃음) <검은집>이 장르적으로 관객에게 책임져야 될 몫, 즉 관객에게 긴장과 스릴을 주며 공포로 몰아넣어야 하는 몫의 상당부분을 내가 떠맡았다고 생각했다. 영화의 진행과정과 스토리가 갖는 힘도 있지만 내 연기가 그런 어필을 할 수 있어야만 장르 자체가 살 수 있다고 판단되더라. 역할에 대한 부담이 그 어느 때보다도 컸던 것도 그래서였고. 작품에 내가 맡은 캐릭터를 얼마나 잘 녹여낼 수 있을까라는 건 늘 생각했던 문제지만 평소 이상의 부담이 지워진 듯한, 영화의 장르적 책임감을 내가 상당 부분 짊어져야 된다는 부담이 굉장히 컸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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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만나보니 연기를 통한 모습과는 확실히 다른 사람처럼 느껴진다. 그 동안 여자로서 선이 굵은 연기를 많이 했다. 여자배우로서 그런 이미지로 각인되는 게 부담스러울 때도 있을 것 같다.
그 동안 다소 선이 굵은 연기를 많이 보여줬으니 그에 비해 가늘고 섬세한, 좀 더 디테일한 작업들을 해보고 싶기도 하다. 편안하거나 일상적으로 풀어진 역할도 해보고 싶고. 근데 항상 난 임팩트가 강한 캐릭터에 많이 끌리더라. 예를 들면 <몬스터>의 샤를리즈 테론을 보고 몇 날, 며칠 동안 잠 못 이룰 정도로 설렌 적도 있다. 최근 <블랙북>의 여배우도 시작부터 끝까지 날 빠져들게 만드는, 흡입력 있는 캐릭터였다. 마치 영화 속 캐릭터가 아닌 실제 인물의 모습 아닐까 싶을 만큼. 늘 일상적이지 않은 캐릭터에 많이 끌리는 것 같다. 내 취향 탓인가? (웃음)

<검은집>의 신이화도 그런 측면의 선택일 법한데, 하지만 개인적인 갈등이 없었을까? 강한 이미지의 캐릭터가 대중적으로 각인된다는 것이 때론 불편할 수도 있다.
주변에서 그런 우려를 많이 해주시지만 오히려 막상 난 전혀 고민이 안된다. 만약 나란 배우의 가능성을 어느 한 캐릭터의 이미지로 몰아서 한계를 짓는다면, 오히려 난 그들의 안목이 문제라고 생각한다. 내가 배우로서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을 얼만큼 갖고 있는지는 물론 나도 모른다. ‘저 배우는 너무 강한 역할만 해서 좀 그렇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어느 한 켠에 있겠지만, 어딘가엔 내가 표현한 것을 보고 되려 그 외의 다른 건 어떻게 소화할지에 대한 궁금증과 기대를 지닌 사람들이 분명히 있을 거라 생각한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과의 작업 기회가 왔을 때, 기존 이상의 이미지들을 내가 창조하고 만들어가면 된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배우를 한 번 연기한 이미지로 한정 짓는다면, 배우가 작품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얼마나 두려움이 클까. 당연히 모두가 그렇진 않을 거라고 확신한다.

그런 자신감은 다양한 경험에서 비롯되는 게 아닐까 싶다. 연극과 뮤지컬 무대에서의 경험과 드라마와 영화로의 경험들까지. 어떻게 생각하나?
난 어려운 숙제를 만날 때 의욕과 활기가 더욱 충전되는 스타일이다. 어려운 과제를 만났을 때, ‘이걸 풀 수 있을까, 어떻게 풀지?’ 란 생각을 하기도 전에 직접 풀어보고 싶은 거지! (웃음) 과연 이걸 내가 감당할 수 있을지, 어떤 식으로 풀어낼 수 있을까란 그림이 머릿속에 그려지기도 전에 무조건 일단 달려들어서 풀어보고 싶은 욕망이 내 안에 있는 거 같다. <검은집>의 신이화 역은 누가 봐도, 어떻게 표현하면 된다는 그림이 명확하게 서는 인물이 아닌 어려운 캐릭터다. 자칫 잘못하면 영화 속에서 우스운 존재가 될 수도 있다. 식칼 들고 다니는 모습을 잘못 표현하면 엽기적이고 우스운 꼴이 될 수도 있으니까. 모험일 수도 있지만 그걸 다른 사람이 아닌 내가 풀어보고 싶다는 욕심이 좀 있었다.

싸이코패스(psychopath)란 소재가 낯설다는 점도 하나의 어려움이 아니었을까.
일단 그들의 존재에 대해 이해해야 된다고 생각했다. 그들이 어떤 사람인가를 알기 위해 많은 자료들을 참고했다. 예를 들면 기존의 연쇄살인범들에 대한 인터뷰나 연구 논문 같은 것들. 그것들을 통해 그들의 유년 시절 가정환경과 성장과정 등을 알게 됐고, 그들의 욕망이 분출되는 계기나 과정이 과연 무엇이었는지 계속 생각하게 됐다. 그런 고민을 신이화에게 대입해서 어떤 성장과정 속에서 어떻게 자랐을까를 추측했다. 예를 들면 '다리를 전다'는 사실은 장애를 지닌 것이고, 그로 인해 어렸을 때부터 대인관계에 위축되고 소외감을 많이 느꼈을 것이다. 또 불우한 환경 속에서 사랑이란 걸 받지 못했기 때문에, 자신에게 필요한 걸 직접 구하지 않으면 자신이 취할 수 있는 건 없다는 강한 생존 본능이 생겼을지도 모르고. 그렇게 인물에 대한 비하인드(behind)를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연기를 하기 전에 예습부터 하느라 애 먹었겠다. (웃음)
하지만 그 시간이 내겐 소중했다.

물론 자신의 캐릭터를 만들어가는 과정이었을 테니까, 나름대로의 설렘도 있었을 거다.
그렇지. 어떻게 보면 원작 속에 이미 존재했던 인물과 달리 <검은집>의 신이화는 한편으로 재창조된 인물이나 다름없다. 외형적인 느낌부터 시작해서 원작의 사치코로부터 내가 참고하거나 가져올 게 별로 없었을 정도로 다른 인물이라고 판단했다. 처음부터 괴기스러움을 풍기는 인물이 아닌, 자연스러운 일상 속에 묻혀 살아가던 사람의 정체기 드러나는 순간의 섬뜩함을 노린 영화니까. 나는 시나리오만을 토대로 더 깊숙이 들어가서 그 인물을 느끼려고 많이 노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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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뚱할 지 모르지만 혹시 주변에 그런 인물이 있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지 없나? (웃음)
글쎄. 만난 적 없길 바라고, 앞으로도 만나고 싶지 않은데. (웃음) 처음 준비할 때는 자료를 보면서 정말 이렇게 무서운 사람들이 있을까 싶더라. 평범해 보이는 이들이 알고 보니 무서운 자들이었단 사례들을 자꾸 접하다 보니 사람에 대한 벽이 생길 정도였다. 그러다가 그들의 성장 과정이 남다르다는 것, 예를 들면 어린 시절 심각한 폭력을 경험했다거나 가정에서 사랑 자체를 경험해보지 못했단 사실을 발견했다. 받지 못했기 때문에 주는 방법도 알지 못하는 거지. 마치 신이화처럼. 그리고 아까 말했던 것처럼 강한 생존본능에 의해서 우리가 아닌 자신만을 생각하게 되고, 일단 내가 살아가기에 급급한 상황에 집착하게 되는 것 아닐까. 그렇다면 태어날 때부터 전두엽에 문제가 있다는 부분의 사실을 떠나서 사회가 그들을 그렇게 만들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까지 하게 됐다. 그렇다면 그들을 암적인 존재나 다른 인격체로 치부하며 무조건 선을 긋고 격리하는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어쩌면 이렇게 급변하는 시대와 각자 살아가기 힘든 사회에서 오히려 누구나 이기적인 모습을 할 때가 많지 않나. 내가 잘 되기 위해서 다른 사람들을 밟고 일어서도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는, 어떻게 보면 그것도 죄의식을 못 느낀다는 측면에서 싸이코패스적 성향이 아닐까. 어떻게 보면 이건 우리 모두에 대한 고민이지 불과, 그들이 우리와 다르다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같이 연기했던 배우들과의 호흡은 어땠나? 특히 강신일 씨와는 예전에 연극 <날 보러 와요>로 친분이 있던 사이기도 했고.
사실 그분의 경력과 신뢰받는 위치가 내겐 부담스러운 부분일 수도 있는데 연극할 때부터 정말 너무 편안했다. 때론 후배로서 연기할 때, 자칫 선배 눈치가 보일 때가 있다. ‘나 잘하고 있는 거야?’ 싶은. (웃음) 그렇게 위축되거나 눈치 보일 수 있는데, 강신일 선배님은 사람 자체가 너무 포근하고 인자하시다. 한 6년 전쯤, 연극에 발 내디딘 지 얼마 안되던 신인 시절에도 선배님과 편하게 연기할 수 있었던 건 그만큼 사람이 주는 느낌 자체가 편안했던 덕분이었다.

개인적인 인상으론 덩치가 크진 않은데 후덕한 느낌을 주는 배우란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그런 분의 손까지 잘랐으니. (웃음)
이런! (웃음) 종종 선배니까 후배를 바라보는 입장에서 답답함을 느껴서 직접적으로 지적할 수도 있는데 강신일 선배님은 끝까지 그냥 지켜보신다. 그러다가 내가 도움을 얻고자 할 때나 정말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을 땐, 굉장히 조용하고 진지하게 한두 마디 던져주신다. 하지만 방법적인 부분에 대한 충고가 아니라 연기에 접근하는 방법에 대한, 즉 표현에 대한 방법이 아니라 결과적으로 내가 방법을 발견하고 찾을 수 있게끔 조언을 해주신다. 좀 더 멀찍하게 방향을 잡아주는 거다. 그게 나한텐 지혜롭게 다가오는 충고가 된다.

황정민 씨는 어땠나? 극 중에선 칼부림하는 사이였는데. (웃음)
정민 오빠는 굉장히 창의력이 있는 배우다. 내가 내 틀 안에 갇혀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들을 자꾸 넘나들어야 되겠다는, 내 틀 안에서만 생각하지 말고 그 이상의 뭔가를 자꾸 연구하고 끄집어내려고 해야겠단 생각을 갖게 만든 사람이다. 그만큼 자기 연기와 캐릭터를 놓고 고민할 때 항상 남들이 선택하지 않는 방법을 고민하고 뭔가 새로운 것이 없을지를 생각한다. 보통 사람들이 선택해서 갈법한 연기 스타일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좀 더 다른 선택을 많이 해보려고 노력하더라. 그래서 기존 영화 속 캐릭터들이 살아날 수 있었던 것도 그런 황정민스러운 선택과 노력들이 캐릭터를 조금 남다르게 만들 수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그런 것들을 많이 배웠지.

현장의 분위기 메이커는 주로 누가 맡았나? 의외로 강신일 씨가 많이 했을 것 같은데.
그렇진 않아! (웃음) 강신일 선배님은 촬영장에서 말씀이 많은 편은 아니지만, 종종 애써서 유머를 하다가 반응이 썰렁하면 혼자 자책한다. (웃음) “또 재미없는 거지. 아, 또 내가 괜한 말 한 거지.” 이런 식으로. 오히려 그 때문에 더 웃음짓게 된다. 그런 선배님의 존재 자체가 사람들한테 편안함을 준다. 어렵거나 부담스러운 느낌이 드는 선배가 아닌 그냥 편안한, 존재 자체가 훈훈해서 너무 좋은. 반면, 정민 오빠가 주로 코믹한 상황이나 웃음을 많이 유발시켰다. 많은 분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오빠만의 유쾌함이 있다. 늘 진지하기만 한 사람이 아닌, 굉장히 유쾌한 사람이다. 덕분에 현장에서 많이 웃을 수 있었던 이유를 많이 제공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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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습하고 어두운 세트 촬영이 많았다. 특히 지하실 같은. 그런 공간에서의 촬영으로 다소 지치진 않았나?
세트가 일단 지하로 설정돼서 천장도 거의 다 덮어버렸고, 결국 공간 자체가 많이 폐쇄적이라 답답했다. 일단 계단을 내려가서 지하실 들어갈 때까지 시간이 되게 오래 걸렸다. 그래서 계단 내려가는 것까지 하면 내 기억에 한 이 주 정도의 시간을 거기서 머무른 셈이다. 정말 정민 오빠 말처럼 빨리 탈출하고 싶을 정도로 답답해서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게다가 난 내 집이었으니까 내 집처럼 누비는 자연스러운 설정을 위해 맨발로 다녀야 했다. 그런데 지하가 과거 목욕탕이라 바닥에 깨진 타일도 있고 종종 치우지 못한 유리조각 같은 게 많았다. 테이핑을 발바닥에 해주긴 했는데 그게 자꾸 떨어져서 나중엔 그냥 맨발로 누볐다. 아무래도 공간 때문에 겪게 되는 어려움이 많았다.

단순하게 나이만을 따진다면 데뷔시기가 다소 늦은 편이다. 물론 나이가 크게 중요한 건 아니지만.
데뷔가 늦어서 필모그래피가 많이 쌓이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은 있다. 지금 시점에서 내 경력이 나만의 진지한 선택과 의미 있는 작업들로 좀 더 쌓여있다면 좋았을 거란 아쉬움. 하지만 일찍 데뷔했다 해도 지금 나이에 만난 작품들처럼 내가 소화할 수 있는 좋은 롤(role)을, 과연 그때도 만날 수 있었을까란 생각도 든다. 어떻게 보면 30대 이후가 연기를 하는 배우로서 안에 있는 것들을 끌어낼 수 있는 깊이가 마련되는 때가 아닐까 싶다. 무게가 좀 더 실리는 듯한. 그래서 내가 일찍 데뷔하지 못해서 놓친 작품들보다 지금부터 앞으로 만날 작품들이 더 설레고 기대되는 것 같다.

그래도 지금까지 실속은 차린 것 같다. 항상 주연급의 비중은 아니었는데도 나름대로 캐릭터들이 기억에 남는다. 아무래도 그건 선이 굵은 역할을 많이 맡았기 때문이 아닐까.
전면 주연이란 타이틀도 장단점이 있을 거다. 드라마든 영화든 타이틀 롤이 되는 배우는 필두에 서서 처음부터 끝까지 전반적인 작품을 끌어가야 한다. 그만큼 그 배우가 뭔가 전폭적으로 보여줘야 되는 책임과 부담감을 짊어지는 셈이지. 결국 잘 되면 그 배우 덕분이지만, 안 되도 그 배우 탓일 수 있다. 누릴 수 있는 혜택만큼 짊어져야 되는 부담도 많을 거다. 그렇다면 말씀하신 것처럼 난 실속 있는 거지. (웃음) 롤의 비중과 무관하게 난 작품에서 충분히 내 역량만 발휘하고 나올 수 있었으니까. 그런 롤이 그런 면에선 더 매력적일 수 있다. 하지만 물론 나도 전면에 나서고 싶은 욕심이 날 때도 있다. 그게 없으면 솔직히 사람이 아니지. (웃음) <검은집>도 정민 오빠 얼굴이 포스터를 다 차지하고 있잖아! (웃음) 물론 영화상으로 확인할 수 밖에 없는 역할의 한계가 있어서 뒤에 숨겨져 있어야 되는 탓도 있지만. 사실 <황진이>의 송혜교 씨가 부럽기도 하다. 그녀가 지금쯤 갖고 있을 법한 심리적 부담도 굉장히 크겠지만 배우가 원 톱으로, 영화에 대한 관심과 부각을 혼자 다 받고 누렸으니까. 물론 그 배우가 전적으로 모든 책임을 질 필요는 없지만 영화의 핵이었던 만큼 책임감과 부담은 여전히 계속되겠지. 얻는 게 있으면 잃어버리는 게 있는 거니까. 일단은 내 역할 안에서 편하게 생각하려고 한다.

사실 지금까지 본인이 출연한 영화가 흥행한 적은 없다. <4인용 식탁>이나 <가발>이나, 그런 면에서 <검은집>의 흥행을 내심 기대될 법하다. 공포영화치곤 상당히 많은 개봉관을 잡았다는 소식도 들었는데.
매번 열정적으로 한 일에 대해서만큼은 항상 스스로 많은 기대감이 든다. 사실 <가발>같은 경우도 많이 고생했다. 내가 말 못하는 설정이라 감정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를 굉장히 고민했고, 감독님과 많이 상의하면서 나름대로 정성껏 찍었다. 하지만 관객들한테 외면당한 결과로 인해 당시엔 상실감이 컸다. 영화가 안된 이유가 왠지 내가 강하게 어필을 못한 부분 탓이란 생각도 들었다. 사실 <가발>의 ‘지현’은 엔딩의 감정을 책임지는 인물이라 마지막의 표현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그에 대해 시종일관 많은 고민을 했지만 그게 관객에게 다가가지 못한 것 같아서 스스로 죄책감이 들었고 그로 인해 힘들었던 시간이었다. <가발>은 내가 열정적으로 깊이 몰입한다고 해서 관객도 같이 그 안으로 빠져들어 주는 간 아니라는 어려운 과제를 만나게 된 계기였다. 이번 <검은집>도 힘들게 고민하며 정성껏 찍었기 때문에 역시 기대감이 생기고, 애착이 가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다른 작품들보다 몇 배 많은 기대감과 관객에게 좀 더 인정받고, 평가 받고 싶은 욕심들이 자꾸 생겨나게 되는 작품인 것 같다. 그래서 그걸 좀 내려놓고 마음을 비우기 위해 노력하는데 쉽지 않다. (웃음) 결국 내게 그런 기대와 바람이 생기는 건 그만큼 내가 그 안에서 열심히 노력했고 고민을 많이 했다는 거라 생각한다. 결과와 상관없이 내겐 굉장히 의미 있는 작품으로 기억될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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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 역할을 해본 것도 이 영화가 처음이다.
맞다. 아이가 있었던 것도 처음이고.

그래서인지 처음인데 이런 식으로 하면 섭섭하지 않을까 싶더라.
너무 언발란스해서? (웃음) 근데 너무 다행스러운 건, 영화를 보신 분들은 보기 전엔 캐스팅에 갭이 큰 거 아닌가라고 생각했다가 막상 영화를 보고 나서 그게 부조화스럽다는 거북함은 전혀 느껴지지 않으셨다고 하더라.

나도 전혀 거북하지 않았다. (웃음)
만약 두 사람이 부부로서 생활하는 모습이 영화 속에서 장면으로 보여졌다면 관객에게 어색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검은집>은 부부가 맞물린 일반적인 생활보단 각자 다른 공간에서의 이미지들을 중심으로 표현해서 두 사람은 다른 개체로서 보여진다. 그렇기 때문에 그게 전혀 문제되지 않는 이유인 것 같다.

지금까지의 필모그래피를 보니까 로맨스의 혜택을 누려본 적은 없어 보인다. 여자배우로서 찐한 사랑연기도 한번쯤은 해보고 싶을 텐데.
정말 징글징글할 만큼 처절한 사랑 얘기를 한번 해보고 싶다. 아니면 그냥 가볍게 드라마에서 많이 봄직한 삼각 관계, 사랑의 줄다리기 뭐 이런 거라도? (웃음) 농담이고, 징글징글하게 처절하고 지독한 사랑 이야기 한번 해보고 싶다.

하긴 이제 눈에 힘 그만 줄 때도 됐다.
맞아! 이제 눈에 힘 빼야 돼! (웃음)

그래서인지 독신녀나 프리랜서 같은 이미지가 어울려보인다. 실제로 그런 역할도 많이 했고. 그런데 배우가 아니라면 과연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을 것 같나?
난 어렸을 때부터 배우가 되겠다며 한 우물만 판 케이스라, 다른 데로 눈 돌려본 적 없다. 내 친구가 한번은 나한테 “너 이거 안 하면 뭐 할래?" 라고 이야기할 정도다. (웃음) 사실 다른 재주가 없다. 그렇다고 내가 재미있어하는 것도 없고, 자랑은 아니지만 심지어 특별한 취미도 없다. 연기 외에 크게 즐거운 건 없는 것 같다. 물론 내가 연기를 특출 나게 잘 하는 건 아니지만, (웃음) 연기 말곤 재미있는 게 없다. 운동이나 레포츠를 즐기는 것도 아니고, 활발하게 사람들 만나러 다니는 외향적인 성격도 아니다. 일없을 때는 주로 집에 있거나 작품을 끝낸 뒤의 공허함을 채우기 위해 여행을 떠나는 게 전부다. 그래서 다른 직업이나 내가 잘 할 법한 뭔가를 생각해보면 문득 떠오르는 건 없다. 그래도 내가 MC를 몇 번 했었잖나. 중고등학교 때 방송반 이었다. 그냥 서클 활동에 불과하지만 어떻게 보면 그 때 했던 훈련들이 결국 내가 MC를 하는데 많은 도움이 됐던 것 같다. 만약 다른 분야를 한다면 그 정도? MC나 아나운서? 그 이외의 것은 생각하기 힘들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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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생각하면 일단은 카메라밖에 대안이 없다. (웃음)
다들 “결국은 카메라 앞에 서는 거네!” 라고 이야기 하더라. (웃음)

그럼 그런 계기는 어디서 시작된 건가?
일단 남들 앞에 서는 것 자체를 좋아했다. 초등학교 때 토요일마다 학예회 시간이 있었는데 그로 인해 내 자아를 깨닫게 됐다. (웃음) 내가 애들을 꾸려서 각자 역할을 정해주고 콩트를 만들거나, TV 프로그램을 패러디해서 발표하거나, 가수 모창을 한다거나 그런 걸 좋아했다. 무엇보다 내가 뭔가를 할 때 아이들이 웃고, 박수쳐 주고 환호하는 것들에 나름 희열을 많이 느꼈던 거 같다.

기획이나 연출자로써의 싹도 보이는데?
물론 역할을 분배하고 기획하는 건 필두에 나서기 위해서지! (웃음)

결국 주인공까지 다 해먹는 것이 목적? (웃음)
사실 기획이나 연출에 대한 꿈도 있다. 그런데 그건 배우로서 존재감 있는 위치에 선 뒤에 확장하고 싶은 꿈이다.

혹시 연기자가 됐단 사실을 후회해본 적은 없나?
음...앞에서 말한 것처럼 별다른 취미생활이나 연기 이외의 것을 통한 만족감이 없다 보니 연기를 못 하게 되면 실제는 너무 괴로운 거다. (웃음) 삶이 너무 단조롭고 무기력해지는 것처럼 내 존재감이 안 느껴지는 거지. 물론 올 해는 쉬더라도 조금 여유로울 수 있을 듯 하지만 신인 시절은 달랐다. 본의 아니게 갑자기 쉼이 길어진 적이 있었다. 자의가 아니라 특별한 기회나 프로포즈가 없어서였지. “배우가 되겠다는 내 선택만큼은 흔들림이 없고, 소신과 확신을 가지고 있지만 이렇게 남이 알아주지 않는다면 과연 이게 내 길이 맞는 건가?” 쉬는 동안 그 고민 때문에 많이 힘들었다. 결과적으로 우린 누군가 인정해주지 않으면 기회조차 얻을 수 없으니까. 배우가 남들에겐 화려해 보일지 모르지만 사실 인내의 시간이 많이 필요한 직업이다.

그런 면에서 보면 프리랜서가 맞긴 맞다. (웃음)
그렇지. (웃음) 한번은 쉬는 동안, 할 일 없으니 운동하러 갔다가 옷 갈아입으려고 라커문을 열었는데, 갑자기 설움이 막 북받쳐서 눈물이 핑 돌더라. 결국 라커에 머리를 박고 숨죽여서 얼마를 울었는지! 지금도 생각하면 찡하다.

듣는 나도 찡하다. 이젠 그것도 추억이 아닐까 싶다.
예전에 문소리 씨가 토크쇼에서 “난 항상 다음 작품을 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을 하면서 작품을 선택했다.”고 했다. “이게 내 마지막일지도 몰라. 아무도 날 더 이상 안 찾아줄지도 몰라.”란 생각으로 항상 작품을 선택했다고. 대본을 수두룩하게 받아보는 몇몇 배우들을 빼면 모든 배우들에게 마찬가지로 그런 원초적인 불안함이 항상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어떻게 보면 직업 자체의 특성에서 비롯된 직업병일 수도 있겠지. 내가 직접 영화나 드라마를 제작하지 않는 이상, 날 신뢰하고 믿어주는 누군가에게 선택 받는 기회를 얻어서 연기할 수밖에 없는, 수동적인 초조함과 불안함이랄까.

그런 점에서 <검은집> 캐스팅은 꽤나 반가운 기회라 볼 수 있다.
그래서 <검은집>은 더욱 열정적으로 노력했던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그 어느 때보다도 그 결과가 기대되고 잘 됐으면 하는 염원도 더 많이 갖게 되는 거지.

아까 말한 것처럼 작품을 마치고 나면 공허함이 밀려든다. 물론 캐릭터에 따라 다르지만 강한 캐릭터일수록 그로부터 빠져 나오는 게 어려울 것 같다. 신이화도 만만찮은 캐릭터였는데 어떤가?
만약 영화 속 상황 안에서 정서적으로 굉장히 힘든 상황을 겪었거나 심리적인 고민이 많은 캐릭터였다면, 끝낸 뒤 그런 감정과 정서가 여운으로 남아 한동안 계속 슬픔에 젖거나 우울하고 다운되는 느낌을 갖게 되는 게 사실이다. 그런데 신이화 같은 경우는 사실 정서가 없는 사람이다. 그래서 내면에 뭔가를 많이 갖고 있던 인물들보단 오히려 빠져 나오기가 훨씬 수월했다. 다만 내가 이 인물을 짊어지고 관객에게 좀 더 다가갈 수 있게 잘 표현할 수 있을까에 대해 고민했던 시간들이 이젠 없어져버린 셈이다. 촬영 종료와 더불어 내 역할이 없어진 그 상황으로 인해 ‘이젠 내가 할 게 없다’는 허탈함과 공허함이 컸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배우는 누군가? 연기가 인상적이라던가, 꼭 롤모델이나 이런 게 아니라도.
배우가 아무리 연기를 잘 해도 매번 작품마다 빛이 날 수는 없는 것 같다. 자기한테 맞는 옷이 있는 거니까. 어떤 작품에선 정말 기막힐 정도로 배우의 열정에 감탄하지만, 다른 작품을 보면 아까 그 배우의 색깔이 없는 것 같을 때가 있다. 그래서 어느 배우 한 사람보단 그 배우의 가장 빛났던 작품이 더 인상적으로 남는다. 그런데 요즘, 유독 멋있다고 느껴지는 배우가 ‘공리’다. 최근 <황후화>를 보면서 그녀만이 표현할 수 있는, 그녀이기 때문에 가능한 강한 카리스마가 영화를 장악하고 있다고 느꼈다. 그러면서 동시에 안으로 머금은 비장한 슬픔과 상처 같은 것들도 느껴진다. 무게감 있는 배우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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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나 강한 캐릭터에 끌리나 보다.
그런가 봐!! (웃음) 이야기하다 보니 또 그렇네!! (웃음)

그냥 개인적인 목표나 바람 같은 거 있을까? 굳이 배우로서가 아니라도.
개인적인 욕심은 토끼 같은 자식을 낳고, 화목하고 예쁜 가정을 꾸미는 거다. 그리고 엄마가 배우를 하고 있다는 것만으로 아이들이 자부심이 느끼고 엄마에 대한 존경심을 갖고 자랄 수 있는, 엄마의 일을 인정하고 신뢰해주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나도 그만큼 자랑스런 엄마가 되고자 노력하는 그런 모습들. 그런 것들을 예쁜 그림처럼 그려본다. 물론 내가 배우로서 풀어야 될 숙제들을 좀 더 풀어낸 다음, 가장 좋을 때 아름다운 가정을 만들어 보고 싶다.

지금까지 액션 연기도 종종 했다. 어떻게 보면 <검은집>도 나름 액션아닌가. (웃음) 전문적인 액션 연기에 도전해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
해보고 싶다! 더 나이 먹기 전에! (웃음) 사실 어렸을 때부터 액션영화에 대한 흥미나 호감이 남달랐다. <다이하드>나 <터미네이터>, <에일리언> 시리즈 같은 영화들에 열광하면서 자랐고, 성장기 때부터 여전사에 대한 로망이 있었다. (웃음) 그걸 꿈꾸고 동시에 뭔가 실현해 보고 싶기도 했다. <킬 빌> 같은 캐릭터도 해보고 싶고.

그럼 해외로 나가야 할지도...
아니, 우리나라에서도 <킬 빌> 같은 거 찍을 수 있지 않을까? (웃음)

음..어쩌면 류승완 감독 정도면 가능할지도. 그런데 역시나 로망마저도 선이 굵은 거 같다. (웃음)
난 왜 이렇게 굵은 거야! (웃음)

드라마와 영화를 모두 경험했는데, 각각 쫑날 때 느낌은 어떻게 다른가?
사실 영화가 더 애틋하게 남는 거 같다. 드라마는 캐스팅 후, 첫 촬영까지의 시간이 많지 않아서 촬영 동안 그 캐릭터가 되어 가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영화는 사전에 이미 캐릭터에 대한 입력을 끝내고 철저히 준비한 후, 첫 촬영부터 이미 그 캐릭터가 되어 있어야 한다. 그런 면에서 영화는 드라마보다 준비 과정이 밀도 있고, 촬영 과정 중의 순간적인 고민들이 세심하게 녹아 들어가기 때문에 끝난 후에 작품에 대한 애정이 더 심하다. 여운도, 애착도 더 길게 간다. 영화 작업이 그래서 배우들한테 의미가 있는 거 같다. 그래서 자꾸 영화를 하고 싶어하는 것도 같고.

사실 배우에게 유리한 건 영화보다 드라마일 것 같은데? 드라마는 자신의 연기가 부족했던 순간을 만회할 수 있는 기회가 많으니까. 하지만 영화는 돌이킬 수 없다. 어쩌면 그래서 영화에 더 몰입하는 까닭일지도 모르지만.
드라마는 빠듯한 스케줄 속에서 다른 걸 생각할 겨를이 없다. 모니터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보니 내가 어떻게 하는지 체크할 수도 없다. 그래서 순간적인 몰입과 확신으로 연기를 하다 보면 어느새 내가 그 캐릭터와 이미 일체가 되어있다. 그런 후엔 이동하면서 대본을 훑어보고도 감정을 쭉 뽑아낼 수 있게 된다. 그런 게 드라마의 매력이다. 사실 영화는 한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서 이런 저런 방법을 고민한다. 근데 드라마는 그럴 시간이 없다! (웃음) 어떨 땐 대본을 받고 빠른 시간 내에 외운 후 그냥 연기하게 되는데, 순간 내가 그 인물의 감정을 쭉 외운 대사만을 통해 표현하고 있을 때의 짜릿함이 있기도 하다. 드라마만이 지닌.

어떻게 보면 드라마는 매일같이 학교에 등하교 하는 기분일 것 같고, 영화는 단체로 합숙수련회 다녀오는 기분이 아닐까 싶다. (웃음)
멀리 수련회 다녀오는. (웃음)

이번에 드라마 <엔젤>에 출연한다고 들었다.
미국에 가서 한 달 정도 로케를 하고 왔다. 비운의 죽음을 맞는 캐릭터인데, 일단 서울에서 야외 촬영 하루 분량 정도가 남았다. 난 특별 출연 개념이라 방송 땐 초반 분량 3회 정도만 나오고 빠진다. 그런데 역할이 나름 의미 있는 역이다. 초반에 장진영 씨가 맡은 캐릭터가 로비스트가 되는 계기와 원인을 제공하는 인물이니까. 초반 도입에서 중요한 의미를 부여하는 캐릭터라 개인적으로 마음에 들어서 참여했다. 특별히 새로운 이미지를 만드려는 개인적인 욕심보단 좋은 취지의 작품에서 짧게나마 중요한 계기가 된다는데 의의가 있다고 생각한다. 차인표 선배님도 <하얀 거탑>에서 짧게 출연했지만 굵은 인상을 남긴 것처럼. 짧지만 드라마에 중요한 인상을 남기는 역할이라 하게 된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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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차기작에서 해보고 싶은 장르나 역할이 있다면?
사실 내가 안 해본 캐릭터가 너무 많아서 뭘 해도 재미있게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래도 한번쯤 해보고 싶은 캐릭터는, <블랙북>이나 <혐오스러운 마츠코의 일생>에서의 여자 캐릭터도 너무 매력적이었던 거 같다. 사실 요즘 영화를 보면 여배우가 남자배우의 부속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 많이 본듯한 캐릭터에 적당한 롤이 아니라 영화 전체에 힘이 될만한 선 굵은 캐릭터랄까? 영향력 있고 흡입력 있는, 물론 그게 선이 강하고 안 강하고를 떠나서. 또 말하다 보니까 그 쪽인가? (웃음) 어쨌든 그런 역할을 해보고 싶다.

만약 공포영화 제의가 또 들어온다면?
공포영화 또 들어오면 화날 것 같은데! ‘이것 보세요!’ 막 이럴지도. (웃음)

하지만 시나리오가 좋다면 또 할 것 같은데.
그러겠지. 내 팔자가. (웃음) 이번엔 또 어떤 롤일까? (웃음)

다시 연극 무대에 서보고 싶은 생각은 없나?
물론 있다. 처음 연극을 할 당시가 연기 초년 시절이었다면 지금은 이런 저런 경험들을 한 다음이고, 인생을 조금 더 산 후니까. 지금 무대에 서면 느낌이 틀릴 것 같다. 어쩌면 마치 처음 서는 것처럼 설레고 떨릴 것 같기도 하고. 역시나 확실한 건 좋은 시기에 좋은 작품으로 서고 싶다. 일단 급한 욕망부터 좀 먼저 끄고, 영화 작품에 좀 더 몰두해보고 싶다.

취미가 없다고 했지만, 영화를 굉장히 많이 보는 것 같다. 그게 취미 아닐까?
전문 분야니까! 공부 차원에서 봐야지! (웃음)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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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민용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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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승룡 인터뷰

interview 2008. 5. 30.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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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타>의 원년 멤버다. 아직도 <난타>로 기억하는 사람도 많을 것 같다.
너무 오래했다. <난타>를. 5년 동안 했으니까. 사실 난 영화 하려고 프로필 찍어본 적도 없고, 오디션을 본 적도 없다. 내가 <난타>이후로 접한, 대사가 있는 정극이 연극 <웰컴 투 동막골>이었다. 알다시피 장진 감독이 연출한 작품이었고. 장진 감독은 한번 연을 맺으면 끌고 간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장진 감독의 다음 영화에 합류하다 보니까 또 자연스럽게 영화 쪽으로 합류하게 된 거 같다.

초창기 멤버라서 자부심이 강할 것도 같은데. 브로드웨이도 다녀왔고.
브로드웨이 뿐 아니라 외국을 너무 많이 다녔지. 누구도 안 부러울 만큼. 유럽 17개국은 그냥 기본이었고. 스코틀랜드, 아일랜드, 노르웨이, 두바이. 여기저기 막 다녔지. 너무 좋았다. 국가대표라는 마인드가 생길 정도로 자부심도 엄청 컸고. 난 등에 태극기까지 오바로크해서 달고 다닐 정도였으니까. 사실 지금은 로컬 쇼(local show)나 코리아 하우스처럼 관광객을 위한 쇼 형식이 돼버려서 약간 아쉽긴 한데, 어쨌든 외화를 벌어들이는 문화 상품이니까.

장진 감독과 1년 차 선후배 사이라던데. 대학 시절부터 친분이 돈독한 사이였나 보다.
그렇지. 졸업작품도 같이 했는데. 내가 주인공을 맡은 <길>이라는 작품이 있다. 전위극 <까>를 만든 강만홍 교수 작품. 그 때 우리 반 멤버가 황정민, 정재영, 장진 감독, 임원희. 와~! 진짜 빵빵 하지 않아? (웃음) 다 우리 반이었어. 내가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최고네. (웃음)

전에 장진 감독이 <거룩한 계보> 시절 인터뷰 때 류승용 씨가 대학 시절 연기가 좋았다고 칭찬했던 게 기억난다. 그런데 의외로 졸업 후 선택한 건 <난타>였다. 대사 한마디 없는.
배우마다 시작하는 지점과 정점, 그리고 하향 곡선 같은 게 각각 있잖아. 난 그시기가 내 동기들이나 다른 배우들에 비해 조금 다르거나 늦었을 뿐이지. 나이를 먹거나 안주하게 되면 할 수 없는 작업이 있다. 그게 <난타>같은 거지. 사실 영화는 배우의 길을 걷고자 하면 언제든지 할 수 있다고 생각했거든. 물론 지금 이렇게 된 게 당연한 결과라거나 이렇게 될 줄 알았다는 게 아니라, 차근차근 하다 보면 언젠간 할 수 있겠단 마음이 있었다. 하지만 <난타>같은 건 나이가 들면 절대 하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지. 직접적인 계기는 뉴욕의 라마마 극장에 <두타>가 초대받아서 공연하러 갔다가 거기서 <스톰프(stomp)>와 <튜브(tubes)>같은 넌버벌 퍼포먼스(non verbal performance) 공연을 봤다. 막 두들기는. 그리고 왜 우리나라엔 저런 게 없을까 생각하다가 귀국했는데 송승환 대표님이 <난타> 오디션을 보더라. 그래서 옳다구나 하고 오디션 본거지.

뉴욕에 가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을 텐데. 경제적인 여유가 있었던 것도 아닐 테고.
여비를 우리가 대서 고생했지. 밥도 다 사먹고, 비행기표도 우리가 사서 갔으니까. 그래도 그냥 뉴욕이란 곳에 가보고 싶었다. 그것도 연극을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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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적으로 그게 지금은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 필모그래피 적으로도 특별해 보이고.
사실 필모그래피 적으론 전혀 도움이 안 되지. 왜냐면 영화감독이나 영화 관계자들은 대사와 연기를 원하기 때문에. 물론 지금에 와선 도움되는 프로필이 됐지만, 아무 경력이 없는 배우에겐 되려 도움이 안 된다. 만약 <난타> 배우 출신이 영화오디션을 보러 와서, “저 <난타> 했습니다.” 그러면 도움이 안 되지~! 대사를 한마디도 안 했는데~! (웃음) 그런 면에 있어서 내가 <난타>를 좋게 홍보할 수 있는 사례가 된다면 좋겠다. 그런 배우들도 얼마든지 잠재력이 있다는 걸. <점프>나 <난타>에 출연하는 배우들처럼, 배고프지만 열정을 가진 친구들을 돌아볼 수 있는 어떤 계기가 됐으면 좋겠어요. 나로 인해서.

재미있는 이야길 들었다. 장진 감독과 10년 동안 별다른 연락을 안 하다가 연기를 하고 싶어서 찾아갔었다고.
사실 난 그때 대안이 장진 감독밖에 없었다. 내가 장진 감독한테 간 그때가 서른 둘 정도였으니까. 내가 다른 극단에 가기에는 나이가 굉장히 애매했다. 게다가 대부분의 극단은 동인제 시스템이라 오디션 봐서 들어가기도 어려웠고. 그래서 그때 학연이란 것에 처음으로 도움을 받았지. 장진 감독을 통해. 그리고 그 전엔 장진 감독도 바빴고, 나도 바빴고. 사실 그땐 내가 술을 많이 마시던 때였다. (웃음) 장진 감독은 지금의 직함을 위해서 진짜 열심히 일하고 있었고. 나도 <난타>로 창작 욕구를 한참 풀어내고 있었고.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이렇게 되기 위해서 각자의 길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었던 거 같다. 언젠가는 서로의 필요에 의해서 만날 인연이었는지도 모르지.

정재영 씨와도 대학 동기다. 거기서부터 이어진 인연이라 <거룩한 계보>에서의 어울림은 당연히 자연스러울 수 밖에 없었을지도 모르고. 정준호 씨한테는 미안한 이야기지만 난 정준호보단 류승룡이 더 인상적이었다. 그런데 표면적으론 거의 드러나지 않았다.
근데 지금 <황진이>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황진이>가 <거룩한 계보>처럼 마케팅하는 게 당연하다. 솔직히 그게 자본주의니까. 아무래도 스타들이 관객의 눈길을 끌기엔 적합하지. 물론 <거룩한 계보> 당시에 조금 서운한 감은 있었지. 사실 세 친군데~! (웃음) 근데 지금은 오히려 잘 됐다고 생각한다. 왜냐면 만약 장진감독이 날 밀어준답시고 ‘정재영, 정준호, 류승룡’ 이렇게 올렸는데, “어? 누구야?” 이러는 것 보단 나중에 영화를 보고 “어? 정재영하고 정준호밖에 없는 줄 알았는데 류승룡도 눈에 띠던데? 왜 이 배우는 포스터에 없지?” 이럴 수 있으니까. 그리고 이런 말 듣는 게 더 통쾌하다! (웃음) <황진이>도 마케팅 팀에서 필요한 만큼만 나를 적당히 활용하는 것 같다. 솔직히 마케팅은 상업적이어야 할 자본주의적 메카 아닌가? 그래서 이번에도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마케팅이 날 활용하는 게. 그리고 이런 모습은 내가 어느 정도에 와 있는가를 알 수 있는 척도가 된다. 기자시사 때 무대인사를 하느냐, 그리고 기자 간담회에 참석하느냐 뭐 이런 것들 있잖아. 무대 인사만 하고 기자 간담회 때 빠지느냐 안 빠지느냐. 이게 굉장히 예민한 부분이 될 수도 있다.

<황진이> 때도 기자 간담회 후 포토 타임 때, 사진 기자들 요청으로 다시 올라왔던 기억이 난다.
마케팅 팀이 실수를 했다. 되게 당황했지. 내 차례를 빼먹다니. (웃음) 그런데 많이 겪어본 일이기 때문에 오히려 무덤덤했지. 오히려 그런 걸 겪어봐서 다행인 거 같다. 나중에 꼭 그런 후배들한테 배려하고 싶다는 마음을 지니고 있으니까. 그 마음을 너무 잘 알기 때문에. 왜 그, 뻘쭘한 거 있잖아! 뻘쭘한 거! (웃음) <천년학> 때는 어떤 기자가 “이번 작품을 임하면서 임권택 감독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셨는지, 조재현 씨, 오정해 씨, 오승은 씨 이야기해 주세요.” 이러더라. 물론 무비스트는 아니었고. (웃음) 그러니까 재현이 형이 마이크를 들더니 어디 기자냐고 묻고 “배우도 기본이 있어야 되듯 기자도 기본이 있어야 한다. 이렇게 넷이 앉아있을 때 똑같은 질문을 할 땐 나중에 (코멘트를) 자르는 한이 있어도 넷에게 질문을 하는 게 예의다.”라고 하더라. 후배에 대한 배려였지. 재현이 형도 연극 출신이니까.

내심 고마웠겠다.
꽤 고마웠지. <거룩한 계보> 때, 현장 공개를 처음 해봤다. 갑자기 장진 감독이 “야, 승룡이! 너도 해!” 그래서 얼떨결에 끌려갔지. (웃음) 근데 그때 얼굴 표정 다시 보면 되게 슬프다. 기자 간담회 때 파란 마이에 흰 와이셔츠 입었는데, 재영이가 옷 빌려줘서 입은 거다. 내가 이런데 서도 될지 싶을 만큼 너무 어색했다. 그런데 재영이가 갑자기 정준호씨와 자기 가운데에 날 껴 넣는 거다. 그러더니 양쪽에서 막 어깨동무하고. 사실 그때 난 삐뚤어져 있었던 것 같다. 열등감이란 게 사람을 추하게 한다. 사실 난 열등감이 없는 남자라고 자부했었는데 아니더라. 결국 <거룩한 계보> 관련 사진에 그게 남더라. 만약 정재영, 정준호, 나 이 순으로 섰으면 난 잘렸겠지. 사실 요즘에 <황진이> 때도 많이 느끼거든. (웃음) 재영이가 그걸 안거지. 그래서 날 못 자르게 하려고 가운데 넣고 어깨동무까지 한 거다. 나중에 재영이가 그 얘기를 하더라. 그런 자그마한 배려가 솔직히 고맙더라.

그렇겠다. 지금 그 때 생각하면 감회가 새롭겠다. <황진이>에서는 중심인물 중 한 명 아닌가.
그런데 앞으로 그런 후배들이 많이 올라오겠지. 무대 인사엔 오고 기자 간담회 때는 안 오는. 이번에 <황진이> 때도 (오)태경이나 (정)유미 같은 애들이 막 뻘쭘한 게 보이더라. 왜냐면 올라가야 되는지 안 올라가야 되는지 헷갈리니까. 내가 막 당황했던 거 있잖아. <박수칠 때 떠나라> 때도 아무도 말을 안 해주는 거야. 홍보 팀이던, 마케팅 팀이든. 알아서 빠지라는 식이지. 근데 무대인사는 하라 그러고. 이번에 태경이나 유미한테도 그런 모습이 느껴지더라고. 그래서 내가 도와줬지. 그러니까 무대 인사를 시키던 나중에 간담회에 빠지던 그 기준에 따라서 준비가 안 된 배우들한테는 사전에 적절한 코멘트나 배려가 있어야 할 것 같다. 당황하지 않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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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수가 많지는 않지만 나름대로 유명세를 탈만한 작품이 많았다. 물론 본인 연기가 인상적이었지만 감독이나 동료 배우를 잘 만난 덕인 것 같기도 하고.
난 복이 많은 것 같다. 물론 내 뒤에서 하느님께서 도와주시는 덕분이지만. 일단 장진 감독처럼 유니크(unique)한 글을 쓰는 사람의 작품으로 첫발을 디딘 것부터가 복이었지. 그리고 <열혈남아>하면서 설경구 선배를 만났고. 그리고 임권택 감독님의 작품에 출연하게 됐고. <소나기는 그쳤나요>를 보고 캐스팅을 하셨단다. 어쨌든 감독님께서 총명하실 때 그분의 작품을 했다는 게 영광이지. 흥행의 성패를 떠나서. 가을에 겨울잠을 자려고 먹이를 많이 먹듯이, 에너지 충전을 굉장히 많이 한 것 같다. 앞으로 연기하는데 있어서 필요한 에너지들을, 임권택 감독님을 통해서. 촬영장에서 해야 되거나 하지 말아야 될 행동들, 또한 임하는 자세들 그런 것들을 너무 많이 배웠지. 임권택 감독님한테. 그리고 거기서 조재현 선배를 만났고. 그리고 또 <황진이>의 장윤현 감독님은 정말 조용한 카리스마다. 배우의 감정선을, 특히 여배우의 감정선을 가장 잘 표현해 낼 수 있는 그런 감독인 것 같다. 그리고 또 송혜교 씨나 (유)지태란 친구를 만났고. 계속 그렇게 연결이 되는 것 같다.

배우나 감독에 상관없이 영화를 하는 대부분의 사람들과 돈독해지는 편인가 보다. 실제로 그렇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은 것으로 아는데.
그건 내가 스타가 아니기 때문인가? (웃음) 영화는 혼자 하는 작업이 아니잖아. 화가나 시인이나 음악가들과 달리 영화는 철저하게 같이 하는 작업이니까. 차승원 씨도 같이 하는 배우들하곤 일단 굉장히 친해지려고 노력을 많이 하거든. 왜냐면 연기할 때 불편하니까. 물론 촬영 후에 모든 사람들과의 관계가 남는 건 아니지만 한번이라도 지방에 내려가서 동거동락하며 지낸 친구들은 다 담는 편이다.

처음 카메라 앞에 섰을 당시 느낌은 어땠나?
너무 편했다. 아마도 처음엔 <아는 여자>였기 때문에 너무 편했던 것 같고. 가벼운 씬이었으니까. 두 번째는 <소나기는 그쳤나요>의 농부 연기였는데 그것도 너무 편했다. 시골이잖아. 난 그런 게 편하거든. (웃음) 사실 난 개인적으로 <고마운 사람>이 너무 편했던 것 같아. 텐션(tension)이 없잖아. 나도 편한 호흡의 연기가 어울릴 수 있겠다고 느낀 게 <고마운 사람>이었지. 사실 긴장하기 시작한 건 <거룩한 계보> 때였지. 아무래도 앞의 영화보단 역할도 커지고 상업적인 성격이 강해지니까 내가 씬을 책임져야 된다는 걸 느꼈거든. 그리고 눈앞의 카메라가 관객과 소통하게 되는 지점이란 걸 깨달았거든. 저 렌즈가 10만 명의 눈이 될 수도 있지만 백만 명의 눈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니까. 또 대형 스크린으로 보는 눈도 있지만 DVD를 통해서, 아니면 추석날 TV를 통할 수도 있잖아! (웃음) 렌즈를 눈으로 딱 느끼는 순간, ‘아, 이게 장난이 아니구나’ 싶더라. 그만큼 촬영 기간 동안 자기 관리도 중요하게 되고. 대사나 이런 것도 자연스럽거나 그렇지 못하게 그 날 현장 분위기 때문에 대사도 연기가 어색하게 되는 경우도 있는데 그게 평생 남을 장면이라 생각하면 두고두고 후회될 것 같더라.

단순한 질문일지 모르지만 연극의 무대와 스크린의 카메라의 차이를 느꼈다면?
일단 영화는 이야기의 흐름과 무관하게 상황에 따라서 뒤죽박죽으로 씬을 가져가니까 그런 부분이 힘든 것 같다. 마지막 장면을 제일 처음 찍기도 하고, 첫 장면을 제일 마지막에 찍기도 하고. 근데 그게 영화만의 마력인 거 같아. 마치 퍼즐처럼 맞춰가는 작업이니까. 그리고 각각의 분야를 지닌 수십 명의 사람들과의 작업을 통해 완성된다는 점도 연극과 달리 영화를 리얼리티에 가깝게 만드는 작업이지. 또 대형 스크린을 통해 결과를 보게 된다는 것도 재미있고. 인터넷 관객 수치 등으로 평가를 살필 수 있다는 것도 묘하고. 연극은 관객과 그때그때 다이렉트(direct)로 호흡하고 느끼니까 그날그날에 따라 틀리잖아. 그런 짜릿함의 차이가 있는 것 같다.

연극과 상대적으로 영화만의 매력을 느껴본 적은 없나? 영화는 이런 거구나 싶은.
정말 짜릿한 건, 영화가 배우 혼자서 하는 게 아니라는 거지. 조명이나 기타 여러 가지 효과들이 배우를 돕는다. 사실 연극은 배우들과의 호흡, 연습량, 즉 배우들의 역량이 작품을 판가름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영화는 감독의 현장 디렉션에 따라 상황이 변하기도 하고, 분장, 조명 같은 장치적 효과가 배우의 결점을 채워주기도 한다. 그런데 막상 현장에 있으면 그걸 잘 모르지. 스크린의 결과를 보고 그분들한테 감사하는 거지. 그래서 갑자기 막 문자 보내게 되고. (웃음) 분장이나 빛을 통해 배우의 연기를 더욱 깊고 진하게 전달할 수 있게 되고. 내 부족한 연기를 채워주는 사람들한테 감사할 수 밖에.

영화의 장치적인 효과를 많이 느꼈나 보다.
많이 느꼈지! 음악도 그렇고. 무엇보다 <황진이>를 통해 조명과 카메라를 알게 됐다. 이제야 비로소! 그 전엔 그냥 연기만 하면 되는 줄 알았지 그런데 <황진이>는 촬영하고 조명, 분장 이런 효과에 유난히 공을 많이 들이길래 유심히 지켜보곤 했다. 촬영 기간이 길기도 했지만. 감정을 따라잡는 조명, 그거 알아? 분위기에 따라서, 반전에 따라서. 배우의 눈빛을 살려주는. 놈이가 옥사에서 이야기하다가 눈가가 갑자기 은빛이 되는 순간, 소름이 쫙 끼치더라. 그건 조명의 힘이거든. 못 느꼈나?

음..솔직히..
그럼 안 되는데! (웃음) 황진이와 옥사에서 대화를 나누는 씬에서 눈가에 은빛이 쫙 돈다. 눈물이 올라오는 순간을 조명으로 딱 잡아준 거지. 그때 너무 소름 끼치더라.

앞으론 그런 부분에 대한 고려도 많아지겠다. .
먼저 영화 캐릭터 전체에 대한 고민이 많이 있어야 되겠지. 전체 영화에서 내가 해야 될 몫이 있으니까. 물론 혼자만 잘 하겠다고 발버둥치는 건 보기 싫고, 영화에 내 캐릭터를 잘 녹여낼 수 있게 감독님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과 의견을 나눠야겠더라. 그리고 현장 당일 날은 정말 베스트를 해야지. 후회 없이. 한 컷, 한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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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열은 <황진이>에서 가장 입체적인 캐릭터다. 비열하지만 가장 솔직한 인간적 욕망을 드러내는 캐릭터. 그리고 내면적인 캐릭터를 만들어야 하지만 동시에 사극이니까 그 시대에 걸맞은 외관을 위한 노력도 있었을 거다.
<스캔들>에서 배용준 씨 캐릭터를 만든 분장 팀 한필남 팀장님이 외피적인 모습 때문에 굉장히 많이 고민했지. 왜냐면 내가 너무 없어 보이니까. (웃음) 재력가이자 권력가이며 쿨한 바람둥이고, 샤프한 척도 해야 되고, 그런데 그러기엔 내가 너무 없어 보이는 거지. 굉장히 많이 고민했다. 외피적인 모습을 만들려고 노력을 많이 했지. 살도 많이 빼고. 사실 극 초반이 힘들었다. 희열이란 캐릭터가 지니고 있는 속내, 까놓고 말하면 바람둥이지. 난 술도 안 마시고, 룸싸롱 같은데 가서 여자 끼고 놀아본 적도 없다. 그래서 그런 모습이 너무 어색한 거야. (웃음) 그래서 그걸 이겨내려고 초반엔 노력했었고, 그 뒤로는 쉽게 풀렸던 거 같다. 희열 같은 인물은 지금 이 시대에도 있고 앞으로도 있을 것이고. 결국 옛날부터 계속 있었던 거지. 그런 놈 죽으면, 그런 놈 하나 태어나고. 권력에 대한 야망과 여자에 대한 소유욕을 지녔지만 겉으론 드러내지 않는 이중적인, 이런 인물들은 항상 있었지. 평소엔 평강(平康)하지만 외부적인 자극이 닥치면 분노가 일어나고 막 질투도 일어나는 건, 인간 누구에게나 있거든. 나도 있고, 기자님에게도 있고. 난 그런 지점에서 접근했다. 주변 환경에 따라서 누구나 그럴 수 있다라는 생각으로 접근했지.

희열이 도덕적인 인물은 아니지만 인간적으론 이해할 수 있다는 말처럼 들린다.
난 충분히 그럴 수 있단 생각이 든다. 그 정도의 권력을 지닌 희열이 황진이한테 쿨하게 잘해줬는데, 이 여자가 딴 남자를 사모하고 목 빠지게 기다리면 질투가 안 나겠나?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 서리가 내리지만 남자는 살인한다. 여자들은 딱 끊고 말아버리지. 도마뱀처럼. 그런데 남자는 집요하단 말이야. 그런 면에서 희열은 굉장히 솔직한 인물인 거 같다. 단순한 선악 구도에선 악당이지만 탁 털어놓고 솔직하게 보면 제일 인간적이지. 상대적으로 놈이는 굉장히 유토피아적이고 비현실적인 인물이잖아. 지금 시대를 현재로 옮긴다면 희열은 현직 검사 정도, 되게 잘나가는! 근데 놈이는 자기 앞가림도 못하고 맨날 경찰서 들어갔다 나오고. 그런데 누굴 택하겠냐고, 요즘 여자애들이. 누굴 택하겠어요? (홍보사 이 모씨한테) (웃음)

(당황한) 홍보사 이모 양: 희..희열?
그래. 당연한 거야. 이 대답이! (웃음) 그런데 영화의 매력은 바로 그거지. 비현실적이지만 올바른 것에 대해 생각해보게 하는. 현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사랑에 대한 잘못된 가치관에 경종을 울려주는, 현실적이란 핑계로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가치관들에 경종을 울리는 순수한 사랑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자. 그 말을 하는 것 같아.

희열 같은 경우는 가장 솔직한 질투가 드러난 인물인 것 같다. 그런 면에서 <황진이>에서 가장 현실적인 캐릭터였던 것 같아요.
사실 놈이가 비겁한 놈이지. 안 그래? 황진이 시집간다니까 꼰 지르고 모른 척 하고. 결국 황진이가 기생 된 건 놈이 탓이지. 결국 끝까지 지켜주지도 못하고, 현실도피적인 인물이지. 안 그래? (또 홍보사 직원한테) (웃음) 아, 근데 이러면 홍보 잘못하는 건가? (웃음)

가만히 보니까 남자 배우 복이 참 많다. 정재영 씨부터, 차승원, 설경구, 조재현, 유지태, 정준호 씨.
이범수 씨랑 뮤직비디오도 찍었다. (웃음) 그냥 뭐 고맙지. <열혈남아>에서 윤제문 씨도 같이 했었고.

윤제문 씨는 연극도 많이 하시니까 연대감도 있었겠다.
그렇지. 나랑 동갑인데. 카리스마도 있고. 좋아요. 사람.

가만히 보니까 동갑 배우가 많다. 차승원 씨도 동갑이고.
70년생 너무 많아. 진짜. 정재영, 황정민 같은 내 동기들부터 시작해서. 친하진 않지만 감우성, 이병헌, 김수로, 김혜수 등 진짜 되게 많네! 아, 강성진도 있네. (웃음)

서울 예대 시절의 인맥들에게 도움을 많이 얻고 있는 거 같다. 직접적이든 간접적으로.
사실 공식적인 자리를 떠나 개인적으론 직접 연락하는 경우는 드물다. 서로 매체를 통해서 소식 듣고 그런 편이지. 어쨌든 든든하지. 얼마 전 어떤 잡지 같은 경우에 정민이가 <검은 집>으로 표지 모델을 했고, 중간에 내 인터뷰 기사도 세 면 정도 나오고, 재영이도 <신기전> 때문에 나왔다. 동기 셋이 한번에 딱 나온 거지. 그리고 각자들 다 봤겠지. 근데 서로 “야, 너 나왔더라.” 이렇진 않죠, 우리가. (웃음) 그리고 설마 걔네 들이 “아, 이게 이제 치고 올라오네.” 이러겠어? (웃음) “승룡이 고생하더니 이제 조금씩 주목 받는구나.” 하고 좋아하겠지. 설마 “아, 큰일났네.” 이러진 않을 거 아냐.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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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간의 좋은 자극이 될 것 같다.
음..사실 그런 건 전혀 없고. (웃음) 농담이고, 그렇지. 서로 각자 좋은 자극이 되겠지.

혹시 본인을 자극하는 배우가 있나?
자극뿐만 아니라 담고 싶은, 또 닮고 싶지만 닮을 수 없을 것 같은 배우가 송강호 선배지. 뭐 다들 많이 이야기하겠지만, 연기에 있어서는 거의 멘토(mentor)라고 생각한다. (신)하균이나 재영이나 정민이도 공히 말하는 게 강호 형 연기는 혀를 내두르게 한다고. 왜냐면 너~무 자연스러우니까. 제작자나 작가, 감독이 생각하지 못한 걸 배우가 만들어내니까 소름이 끼치는 거지.

지금까지 맡았던 역할 중 가장 편하게 연기했다 싶은 역할이 있나?
<소나기는 그쳤나요>에서 농부. 그런 수더분한 아저씨 있잖아. 난 그게 너무너무 편하다. 그건 우리 동기들도 비슷할 거다. 우린 헝그리 족이었거든. (정)재영이나 (황)정민이나. 예대 시절에 두 부류가 있었어. 집에 돈 좀 있는 애들, 그래서 그때부터 일찌감치 차 타고 다니는. 근데 정민이나 나는 항상 야상, 등산화, 군복 바지나 입고 다니고. (웃음) <나의 결혼 원정기>나 <너는 내 운명>같은 순박한 연기들이 그런 데서 나오는 거지. 나도 그런 모습들이 그래서 좀 편하고. 물론 그것뿐만 아니라 <사생결단>이나 <피도 눈물도 없이>같은 마초적인 연기도 되잖아. 근데 전자보단 후자가 난이도가 조금 낮은, 쉬운 연기인 것 같다. 평탄한 호흡을 길게 가져가야 하는 연기가 굉장히 어렵지. 그래서 난 그런 연기에 도전하고 싶고.

현재 영화판에서 연기력을 인정받는 배우들을 보면 연극 무대 출신인 경우가 많다. 방금 말한 송강호 씨도 그렇고.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연극을 경험한다는 건 연기자에게 가장 좋은 경험이 아닐까 싶다.
일단 연극은 기본적으로 인간적이다. 먼저 그걸 깨닫게 하고 연기를 어떻게 해야 할지를 가르친다. 무엇보다 굉장히 엄한 곳이지. 그렇기 때문에 작품에 임하는 자세도 틀리고. 연극은 한 대본을 보통 3개월씩 연습을 하잖아. 결국 시나리오를 통한 작품 분석, 인물 분석에 굉장히 많은 도움이 되지. 호흡이나 발음, 발성 같은 것도 아예 안 배운 사람들 보단 낫겠지. 발음이나 발성 때문에 지적 받는 배우들 많잖아. 솔직히.

확실히 연극 출신 배우들은 발성이 좋은 것 같다.
그런데 그게 독이 되기도 한다. 물론 그땐 그걸 빼면 되지. 그러니까 <황진이>같은 경우엔 호통치는 연기가 많아서 발성을 이용할 때가 많았지만 <열한번째 엄마>같은 경우엔 발성을 전혀 안 썼거든. 하지만 분명 발성을 해야 될 때, 그 연습을 안 한 사람은 안 나는 거지. 그런 면에선 굉장히 유리한 거지. 그리고 질문 외적인 이야기지만 오디션을 봐서 그 사람을 얼마나 깊게 알겠어. 사실 연기는 하고 싶은데 기회가 없기 때문에 연극을 먼저 하는 경우가 많지. 난 그렇게 생각한다. 난 운이 좋아서 사진도 안내고 오디션도 안 봤지만 백날 프로필 넣고 오디션 봐도 안 되는 사람이 허다하거든. 영화는 그 바닥에서 검증된 배우들을 위주로 보기 때문에 새로운 인물이 등장하기가 쉽지 않다. 그런 면에서 (유)해진이는 참 대단한 사람이지. 해진이도 단역 오디션부터 시작했으니까. 그렇게 밟아간 경우는 굉장히 드물거든.

유해진 씨와도 같이 공연한 사이 아닌가.
같이 머리 빡빡 깎고 뉴욕 가서 <두타>했지. 고생 많이 했어. 같이 조치원 비데 조립공장가서 한달 동안 일한적도 있는데, 류사장, 유회장 막 이러면서. (웃음) 조치원 공장에서 일하는 아줌마들이 초등학교 선생님인 자기 딸 소개시켜준다고 눌러 앉으라고 막 그랬어. 진짜! (웃음) 왜냐면 일을 너무 잘하니까. 여담인데 한달 아르바이트로 갔다가 우리가 공장 시스템을 바꿔버렸어. (웃음) 너무 비효율적이더라고. 분업도 안되고. 그래서 우리가 되게 효율적으로 만들었지. 그리고 ‘오침(午寢) 시간을 줘야 한다. 그래야 효율적이다.’ 그래서 오침도 했잖아. (웃음) 어쨌든 해진이와는 같이 고생 많이 했지. 그 친구도 혈혈단신 연극하겠다고 청주에서 올라와서 맨날 후배들 자취방 돌아다니면서 자고, 세트 아르바이트도 굉장히 많이 하고.

최근 <이장과 군수> 주인공도 맡았고, 그런 모습을 보면 한편으로 뿌듯하겠다.
음..사실 이제 터닝 포인트가 필요할 시기지. 해진이가 나보단 부담이 훨씬 클 거다. 지금 그걸 고민해야 될 타이밍이니까. 지금까진 잘 왔잖아. 그런데 지금이 더 중요하잖아. 그래서 아마 해진이가 고민이 많겠지.

<황진이>는 첫 사극 연기였는데 어떻던가?
너무 좋았다. 난 사극 체질인가 봐. (웃음)

사극이랑 꽤 어울리는 캐릭터이긴 하다. 일단 턱수염만 봐도. (웃음) 분장을 안 해도 될 것 같은데?
그래도 분장 도움을 많이 받았지. 보면 알겠지만 눈썹도 다 깎아주고, 수염도 많이 다듬고. 볼도 많이 깎았다. 볼 터치로. (웃음) 옛날부터 내가 탈춤 반이나 민속극 같은 걸 선호했었기 때문에 이번에 많이 도움이 된 거 같기도 하고.

남자 배우 복은 많지만 아직 여자 배우 복은 없는데.
송혜교 씨가 처음이지. 이러면 오정해 씨가 섭섭해할 텐데. (웃음)

그래도 오정해 씨는 극중 거리를 둔 상대였으니까.
나만 많이 좋아하고 그랬으니까. 근데 오정해씨는 되게 특수한 케이스잖아. 국악인이자 음식점 경영자. (웃음) 그리고 또 강의도 하시고, 라디오 DJ도 하시고. 사실 깊은 공감대를 갖기는 힘들었던 거 같다. 그래도 학번은 나와 같았고. 그냥 작품을 떠나서는 편했지

송혜교 씨와의 연기 호흡을 맞추는 건 어땠나?
사실 (송)혜교랑은 호흡이 안 맞아야 잘 나올 것 같은 대립 구조잖아. 베드씬도 그렇고. 처음엔 너무 당황해서 대사도 까먹고 그랬다. “명월이 인사 드리옵니다.” 그러는데, 대사가 생각이 안 나는 거야! (웃음) 다 그렇게 한번 해보라고. 내가 “송도에 있는 모든 기생들이 권주가를 내게 올리는데..” 이대사를 해야 되는데, “아! 잠깐만요!” 그랬다. 대사가 생각이 안 나더라. 첫 촬영 전에 밥도 두세 번 먹긴 했는데 제대로 꾸며놓으니까 어지럽더라. 대사 다 까먹었어. (웃음) 어쨌든 호흡은 잘 맞았다. 그래서 나름대로 연기도 잘 나온 것 같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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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베드씬이 있다는 말을 듣고 망설였다가 15세 관람가라는 걸 알고 출연을 결정했다고 하던데.
사실 베드씬이라기 보단 보료씬이지. (웃음) 음..솔직히 그런 연기는 하고 싶지 않다. 물론 내가 이미지 때문에 안 벗거나 이런 건 아니고. (웃음)

사실 이미 <고마운 사람>에서 보여줄 건 다 보여준 걸로 아는데?
그거랑은 틀리지. 그건 그냥 샤워하는 거잖아. 난 적나라한 베드씬 같은 건 죽어도 못해. “연기인데 뭐 어때?”라고 할 수도 있지만 난 못할 것 같아. 난 못해! (웃음) 만약 내가 그렇게 돈을 벌어다 주면 아내가 기분이 상할 것 같다.

아내에 대한 배려 때문에?
철저하게.

지독하게 가정적이다. (웃음)
난 거기서 오는 행복이 너무 많고 크기 때문에, 가정에 대한 욕심이 연기에 대한 욕심보다 더 크다. 난 무조건 가정이 먼저에요. 물론 가정이 먼저라고 해서 일도 안하고 가정에 처박혀 있자는 건 아니고! 그럼 백수지! (웃음) 어쨌든 가정이 행복하기 때문에 내 일이 잘 되고 있는 거라고 생각한다.

<난타>의 주방장이었는데, 아내를 위해 요리를 해주기도 하나?
평소 집사람이 만든 요리를 내가 맛있게 먹어주는 우리 집사람의 가장 큰 행복이다. 집사람의 요리를 내가 맛있게 먹을 때 내가 행복할 정도로 제일 행복해하거든. 그런 행복을 자주 뺏고 싶진 않은데, 한 달에 한 두 번은 내가 할 수 있는 요리를 해주지. 특별 식으로. 그것도 와이프가 굉장히 행복해하거든. 나 추어탕 같은 건 나 되게 잘 끓이거든.

결혼은 인생에 많은 변화를 부른다. 류승룡 씨같은 경우는 상당히 안정적인 여유를 준 것 같다.
너무 좋다. 집은 어떤 것보다도 편한 안식처다. 온천보다도, 스위트 룸보다 더 좋은. (웃음) 비록 비좁고 조그만 집이지만, 난 우리 집이 제일 편하다. 왜냐면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우리 아내와 아들이 있기 때문에. 우리 아들이 한번 웃어주면 너무 행복한 것 같다. <황진이> 오백만 터지는 것만큼이나. (웃음) 그러니까 일단 지금 행복하게 살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는 거지.

어쨌든 가장으로서 경제적인 고민도 많아졌을 텐데. 그런 점에서 출연 기회가 많아져서 그만큼의 여유도 있을 것 같다.
솔직히 별로 그렇진 않고. (웃음) 사실 그제 세금을 처음 내봤다. 종합소득세. 사실 그전까진 환급을 많이 받았는데 이번엔 몇 백만 원을 그냥 냈다. 그래서 난 되게 당황했거든. 손이 부르르 떨릴 정도로. 그래서 재영이한테 전화했더니 재영이는 비교도 안되게 많이 냈더라. 물론 걔가 많이 낼 줄 알았지만 그 정도인 줄은 몰랐지. 난 아직 그 정도로 서민이다. (웃음) 어쨌든 세금 잘 내야지! 사실 돈이 생기자 마자 부모님 집 옮기는데 다 보탰다. 그래서 지금 돈이 하나도 없어. 마이너스 통장이야. (웃음)

어쨌든 이제 세금도 낼 만큼 수입이 생긴다는 이야기다. 그만큼 연기에 집중할 수 있는 여건은 좋아진다는 의미도 될 듯 한데.
그 동안 연기를 하기 위해서 일을 많이 했지. 가락시장에서도 일했었다. 결혼하고도 10개월 동안 실내 인테리어 일했다. 솔직히 말하면 잡부지. (웃음) 어쨌든 연기를 위해서 이런저런 일을 많이 했지. 생계 유지를 위해서. 이제는 여유로워졌다기 보단 연기를 위한 일만 할 수 있어서 좋다. 그러니까 그 동안은 연기로 생활비를 벌 수 없으니까 그걸 위해서 굉장히 많이 일을 했었거든. 근데 이젠 연기에만 몰입할 수 있고, 그래서 와이프도 굉장히 행복해한다. <아는 여자>나 <박수칠 때 떠나라> 때도 그랬고, 영화 없으면 난 일하러 나갔다. 연극이나 영화 하는 친구들이 일없으면 집에서 놀거나 맨날 술이나 마시는 이런 모습이 너무 싫었다. 그렇게 놀다가 여자 만나서 바람 피다가 이혼하는 사람도 많고, 이런 게 너무 싫었거든. 불과 작년만해도 난 거의, 아, 작년은 바빴구나. (웃음) 재작년만 해도 과수원에서도 일하고, 공장가서 일하고 그랬다. 틈만 나면. 근데 거기서 배운 게 많다. 거기서 만난 사람들 중 재미있는 사람 많거든. 관찰을 많이 했지. 그런 게 연기에 도움이 많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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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농부 같은 역할이 편한 게 아닐까? (웃음)
그런가? 이제 골프장 같은 데를 가봐야 회장님 연기도 할 텐데. (웃음) 하긴 내가 뭐 검사해봐서 검사했나? (웃음)

하긴 뭐 <황진이>에서 사또 역할도 어울리던데.
그렇지. 사또 해봤나? 내가 뭐, (웃음)

혹시 연기라는 길을 택한 걸 후회해 본 적은 없었나?
후회한 적 한번도 없다. 한번도 해본 적 없는 거 같아. 86년부터 했는데.

그럼 반대로 이 길을 택해서 참 다행이다 싶었던 적은?
음..그게 요즘인데. 전도에 도움이 되더라고. (웃음) 어떤 식으로든. 내가 영화도 나오고 그러니까 이 사람도 우리 교회 다닌다는 식으로.

신앙은 아내한테 영향 받은 건가?
내가 전도를 한 건데. 요즘은 그분이 더 독실해졌다. (웃음)

외모에서 풍기는 강한 인상 때문에 거칠고 험한 역할의 섭외가 많이 들어올 것 같은데.
그렇지. 형사 아니면 깡패. 그런데 우리 나라 남자배우들이 거의 그래. 깡패 아니면 형사 아니면 검사. 설경구 선배도 그렇고, 송강호 선배도 그렇고. <열한번째 엄마>도 보면 아마 기절할거다. 아동 학대, 여성 폭력, 도박. 이걸로 이제 악역의 마지막 종지부를 찍고 싶은데~. (웃음) 그런데 환경이 불우한 사람들은 그런 환경이 대물림 되는 경우가 많다. 어쩔 수 없는 환경에 태어나서 그렇게 자랄 수 밖에 없었던 사람들. 난 그 배역에 너무 연민이 가더라. 그리고 저예산 영화지만 시나리오가 너무 좋아서 참여했다. 많이 울었지. 함께 출연한 (김)혜수씨도 보고 많이 울었다.

혹시 본인이 해보고 싶은 역할이나 출연하고 싶은 장르가 있나?
난 진짜 웰메이드 휴먼 드라마 하고 싶다. 아름다운 영화 있잖아. 자극적인 영화 말고. <웰컴 투 동막골>에서 재영이가 같은 역할. 인간적이잖아. 아니면 <왕의 남자>에서 감우성 씨 같은. 매력적이잖아. 무엇보다 벗지 않아도 되니까. (웃음) 벗지 않아도 좋은 그런 역할들이 얼마든지 있어. (웃음) <아들>에서 차승원 씨 같은 역할도 되게 좋잖아. 사실 되게 욕심부렸었다. 너무 하고 싶었거든. 근데 그 놈의 인지도. 하아~.(웃음)

장진 감독과 대화 좀 했을 법한데?
장진 감독한테 하고 싶다고 했더니, “승원씨는 이거 2억에 하거든. 되게 싸게 하는 거야.” 그래서 “저 2천에 할게요.” (웃음) 또 그러니까 “야, 차승원 씨는 2억에 2백만을 책임질 수 있는 배우야. 근데 너는 2천 줘도 넌 2만?” (웃음) 그래서 “알았어요.”했지. 물론 반 농담으로 나눈 이야기다. 사실 난 유명해지거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것에 대한 욕심은 없다. 근데 이렇게 하고 싶은 역할을 못하는 경우가 생긴다는 걸 알게 되니까 인지도도 중요하더라. 왜냐면 시나리오가 너무 좋아서 난 하고 싶은데 투자자나 제작자는 인지도 없는 배우는 안 쓰려 하니까 이럴 때 너무 속상한 거다. 그런 면에서 <황진이>는 제작자나 투자자, 감독님한테 너무 감사하지. 왜냐면 내가 캐스팅될 때만해도 <박수칠 때 떠나라>밖에 개봉을 안 했었거든. <열혈남아> <천년학> <거룩한 계보> 이런 건 다 찍기 전이나 찍고 있었고. 장편 하나보고 이 역할을 결정했다는 건 그 분들이 혜안이 있다거나. (웃음)

연기가 자신을 흔든 계기가 무엇이었다고 생각하나?
연기라, 일단은 내가 방황하던 시절, 뭐 솔직히 안 놀아본 사람 없잖아. 중3, 고1때. 난 중3만 마치고 학교에서 배울 건 다 배웠다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그만 두려고 고등학교에 갔지. 그런데 교문에 들어가니까 선생님들이 막 달려오더니 발로 뻥 차고 머리를 막 깎는 거야. 완전 정신 못 차렸지. (웃음) 원래 풍생고 유명하거든. 근데 그때 교화로 연극부에 들게 했다. 그때 했던 게 <방황하는 별들>이란 뮤지컬의 복서였는데 너무 재미있더라. 그래서 그때부터 마음잡았지. 그게 나 뿐만이겠어? 연기를 통해서 많은 사람들이 나처럼 이렇게 바뀔 수가 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더라. 삶이. 어쨌든 교화가 계기가 됐지. 그리고 연기를 하기 위해서 그때부터 다시 공부도 했고. 정말 연기하려고 내가 하기 싫은 영어와 수학을 했다니까! 진짜. (웃음)

개인적으로 가장 큰 바람이나 목표가 있다면.
부끄럽지 않은 아버지 그리고 남편이 되고 싶다. 아들한텐 정말 존경 받는 아버지가 되고 싶고, 아내를 사랑하고 존경하는 남편이고 싶다. 주색잡기를 좋아하면 정말 추하게 늙잖아. 추접하게. 비참하게. 그러고 싶진 않다. 정말 며느리한테도 사랑 받는 멋있는 시아버지나 자랑하고 싶은 아버지가 되고 싶지.

다시 한번 느끼지만 정말 가정적이다. (웃음) 희열이란 캐릭터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여기서 희열이 느껴지면 큰일나지! 그리고 사실 내가 코메디에 자질이 있다. 장진 감독도 그걸 아는데 나중에 히든 카드로 써먹으려고 아직 숨겨두고 있는 거야. (웃음)

이거 기사화 시켜도 될까?
아, 뭐, 상관없다. 혹시 알아? 누가 먼저 배역 줄지? (웃음)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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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민용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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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환(이하 서): 힘들어 보인다.
유지태(이하 유): 난 하나도 안 힘든데, 혜교씨가 진짜 힘든 것 같다. 한국 여배우 중에 이렇게 인터뷰 많이 한 여배우는 없을걸.

민용준(이하 민): <황진이>에 대한 기대감이 크기 때문에 한국영화의 위기의식이 혜교씨에게 덧씌워진 탓도 있을 것 같다. 그런 영화 외적인 부분들로 인한 개인적인 부담감이 있을 법도 한데?
송혜교(이하 송): 연기할 때는 그런 부담감을 느끼거나 생각할 여력이 없었다. 연기만으로도 버겁고 벅찼기 때문에 다른 생각을 못했던 거지. 오히려 요즘 홍보하면서 만나는 기자님들이 하시는 말 한마디 한마디 때문에 더 부담이 되고 있는 게 아닐까.

서: 영화를 본 소감은 어떤가?
송: 처음 그리고자 했던 데로 잘 나온 거 같다. 그런데 작품을 본 모든 분들의 마음에 다 들 수는 없겠지. 처음 의도한대로 작품이 나왔기에 난 만족한다.
유: 메이킹이 마음에 들어서 흡족했지.

민: 원작을 봤겠지만, 개인적인 생각에 원작에 비해 영화는 무게감을 많이 줄인 느낌이다. 로맨스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냈기 때문인 것 같기도 하고.
유: <황진이>는 100억이 든 영화다. 소설이나 영화나 둘 다 대중 예술에 속하지만 두 분야는 각각 상업적으로 소비될 수 있는 규모나 지속성이 다르다. 마켓에서의 유효성을 보자면 소설에 비해 영화는 단기간이다. 아마도 원작을 고스란히 스크린에 옮기기엔 대중과 호흡에 불편한 느낌이 있었을 거다. 그래서 대중성을 살리다 보니 멜로 라인이 부각됐던 게 사실이지. 영화가 관객들에게 쉽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 것도 중요하니까. 단지 영화와 소설의 차이를 꼬집기 보단, 소설을 보는 재미만큼 영화를 보는 재미를 발견했으면 좋겠다. 종종 소설 원작 영화들이 소설에 짓눌리는 경우가 많지 않나? 예를 들면 <제5원소>나 <다빈치 코드>처럼. 난 <황진이>에 관해선 감독님의 선택이 현명하다고 생각한다.

민: <황진이>의 시나리오를 펼치기 전엔 기존의 황진이를 먼저 떠올리고 접근했을 법도 하다. 그런데 시나리오 속 황진이가 그런 관점과 다르다는 점은 묘했을 법도 한데.
유: 그게 우리 <황진이>의 매력이지.

서: 인간 황진이에 집중하기 위한 감독의 의도 때문에 상대적으로 예인 황진이의 모습은 많이 눌렸다. 반면, 놈이 캐릭터는 인간 놈이보다 의적 놈이에 더 많이 집중을 한 느낌이다. 그런데 황진이와 놈이 캐릭터를 함께 살리다보니 영화에 집중하기 힘들단 생각도 들었다.
유: 그럴 수도 있겠지. 하지만 <황진이>의 스토리 라인을 끌고 가는 건 놈이이기도 하다. 원작을 봤다면 알겠지만.

서: 원작은 놈이를 소위 임꺽정 같은 인물처럼 묘사하며 중요하게 다뤘지만 사실 <황진이>를 찾는 관객들에게 그 부분에 대한 기대치는 솔직히 없다고 본다. 황진이의 인생 굴곡과 사랑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놈이의 역할은 충분했을 텐데 굳이 놈이를 부각시켜서 영화에 끌고 와야 했을까란 의문이 들었다.
유: 서로 상호작용을 해야 되는데 방해가 된다고 느낀다면 그건 문제가 있는 거겠지. 편집을 잘못 했을 수도 있는 거고. 하지만 그와 반대로 황진이와 놈이의 교감에 대한 상호작용을 통해 감동을 느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또 황진이에만 집중했다면 예인 황진이를 부각시켜야 했을 수도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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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 둘 다 오랜 연기경력을 지녔음에도 사극은 처음이다. 어땠나?
송: 연기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감정 씬들에 대한 어려움보단, 처음이라선지 사극 대사가 너무 어려웠다. 간단한 의미의 대사들임에도 불구하고, 의도한 대로 나오지 않아서 방황하거나 긴장한 적도 있었다. 그런 것들 때문에 초반에 힘들었고,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지. 그런데 그때마다 감독님께서 도와주시고, 현장 분위기가 익어갈수록 나도 자리 잡기 시작하면서 그런 두려움들도 많이 없어졌다. 그 이후로는 수월하게 진행된 거 같다. 여러 가지로.

서: 기존의 연기와는 다른 점이 많은데 캐릭터를 잡아갈 때 어떤 것에 중점을 두었나?
송: 그런 질문들 참 많이 한다. 그런데 난 지금까지 어떤 모델을 두거나, 어디에 중점을 두면서 계산된 연기를 해본 적이 없다. ‘여기서 난 이렇게 표현을 할 거야.’했을 때, 정말 내가 원하는 대로 표현된다면 난 정말 천재겠지. 물론 계산된 연기를 하시는 분들도 있겠지만 난 그렇게 하고 싶어도 그렇게 되지도 않고. 영화를 찍는 몇 개월 동안 시나리오를 끼고 황진이로 살면서 매순간순간 느끼는 그대로, 그냥 매 순간순간의 몰입으로 연기를 할 뿐이다. 어떤 것에 중점을 두고 하는지는 모르겠고, 어떻게 하는 지도 모른다.

서: 결과적으로 본인의 연기에 대한 느낌은 어떤가?
송: 본인의 연기를 보고 만족하는 배우들은 없지 않나.
유: 잘 했지. (웃음)
송: 난 아쉬운 것도 많고, ‘의외로 나에게 저런 면이 있었구나’싶은 재미있는 부분도 있었고, 반반?
유: 그 정도면 잘 한 거 아냐? (웃음)
송: 억지로 막 이래. (웃음)

민: 개인적으로 혜교 씨의 황진이는 송혜교 절반에 황진이 절반을 섞어놓은 느낌이더라.
유: 연기에 배우의 색깔이 들어간다는 말처럼, 송혜교씨의 색깔이 드러나지 않으면 그 송혜교의 황진이가 아니겠지.

민: 매력적인 캐릭터를 연기한다는 건 배우한테 설레는 일이니까, 그런데 그런 캐릭터를 자기만의 느낌으로 지닐 수 있다면 더없이 특별한 일일 것 같다.
유: 배우는 자기 색깔로 연기하는 게 가장 중요한 거라고 생각한다.

서: 유지태 씨의 색깔은 뭐라고 생각하나?
유: 유지태의 색깔이겠지. (웃음)

서: 정말 만약이지만, <황진이>가 흥행에 실패해도 송혜교는 성공적으로 영화계에 안착할 수 있지 않을까란 생각이 든다.
송: 정말요? 다행이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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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파랑주의보> 때는 흥행 참패 여부를 떠나 드라마 속 이미지를 고스란히 스크린에 끌고 왔다는 인상이 있었다.
송: 그건 내가 수락한 거다. 왜냐면 스크린에 처음 진출하는 거고, 내 영향력이 어느 정도인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무작정 큰 역할, 큰 영화에 출연하고 싶지는 않았다. 너무 모험 없이 안전하게 가려는 게 아니냐는 말도 많이 들었지만, 일단 내가 기존에 잘 하는 것들로 새로운 곳에서 시작하고 싶었다. 남들이 뭐라 그러던 간에. 결국 좋은 결과는 안 나왔지만, 그 때 아팠던 건 그 때 다 털어버리면 끝이다. 물론 이번 <황진이>는 잘 됐으면 좋겠지. (웃음) 하지만 얻은 게 많다. 흥행을 떠나서 이렇게 큰 작품을 만났다는 것만으로 행운인 것 같고, 황진이를 연기했다는 것만으로도 영광스럽고, 그것만으로도 난 거의 다 가졌지. 거기서 흥행이라는 것까지 갖게 되면 더욱 좋겠지만, 일단 내가 연기자로서 갖고 싶었던 것들은 다 갖게 된 거 같다.

민: 작품에 대한 욕심도 있었겠지만 연기 변신에 대한 욕심도 분명 <황진이>를 선택하는데 작용했을 거란 생각이 드는데.
송: 그게 없다면 거짓말이겠지만, 기존의 이미지를 벗어버리고 싶다거나 탈퇴하고 싶다는 마음이 강하진 않았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날 지켜보는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이미지를 바꾸고 싶다고 생각했던 것보단, 본인 자체가 기존에 비슷한 인물을 계속 연기하다 보니까 재미도 없고, 흥도 안 나고, 어떤 연기를 해도 성취감도 안 들었던 것 같다.

민: 가끔은 역할에 갇히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송: 기존의 연기가 싫다는 건 아니다. 그냥 너무 많이 하다 보니까 내 스스로가 너무 재미가 없었다. 그렇다고 이제 또 다른 역할을 하고 싶다 해서 무작정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어느 배우건 새로운 역할을 하고 싶고, 또 다른 새로운 역할을 찾지만 그에 반해 영화를 만드는 분들은 그 배우의 한 가지 면만을 보고 비슷한 역할만을 주려고 하는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여러 장르의 캐릭터를 해보지 못하게 되는 것 같더라. 나도 비슷한 컬러(color)의 캐릭터들만 들어오다가 <황진이>라는 작품이 들어온 거지. 그래서 놓칠 수가 없었다.
유: 대부분 연기자들이 악수(惡手)를 두게 되는 게 타입캐스팅(type casting)을 할 때라고 본다. 칭찬받아 왔던 연기와 비슷한 것만 연기하는 거지. 송혜교씨는 이번 영화를 통해 자신이 해오지 않았던 연기를 했으니까 그만큼 값진 게 없겠지.

민: 유지태씨는 영화는 많이 출연했지만 드라마는 출연하지 않더라. 내 기억이 맞다면, 옴니버스 드라마 <유실물>밖에 없는 걸로 안다.
유: 맞다. 그거밖에 안 했다.

민: 특별한 이유라도 있나?
유: 그냥 영화 쪽에 공감대가 많았던 것 같은데. 관객으로서, 배우로서 영화를 좋아했었고. (권)상우랑 종종 서로의 필모그래피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난 영화만 16편을 했는데, 상우도 드라마까지 합치면 대략 나랑 비슷하다. 상우도 열심히 살았지만 나도 열심히 살았지. (웃음) 다만 난 영화를 팠고, 상우는 드라마와 병행한 거지. 결국 비슷한 거 같다.

민: 반면, 송혜교씨는 <파랑주의보> 때부터 드라마에 출연하지 않았다. 그건 영화에 매진하겠다는 의사인가?
송: 물론 영화만 할래, 이런 건 없다. 솔직히 난 영화만의 매력을 아직까진 잘 모르겠다. 이제 <황진이>가 두 번째 작품인데, 컷이 많다보니까 거의 드라마 찍듯이 너무 바쁘게 찍어서 정신없었다. 그래서인지 남들이 얘기하는 그 매력이 어떤 건지 잘 모르겠더라. 하지만 영화도 좋긴 하다. 그렇다고 이거 하나만 쭉 가겠단 생각은 없지. 연기데뷔 10년 만에 영화엔 데뷔했다. 그러다 보니 워낙 탤런트란 이미지가 강하더라. 그래서 이렇게 시작했으니 영화배우란 이름을 듣고 싶다. 그래서 영화 몇 편을 더 한 뒤에 드라마를 병행하고 싶다는 생각은 있다. 그래도 그런 와중에 정말 좋은 드라마가 있으면 할 생각 있다.
유: 생각해보면 나도 진짜 드라마를 했어야 했는데. (웃음) 드라마를 안 한 게 좀 후회가 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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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 두 사람은 나이차와 무관하게 데뷔시기가 비슷하고 경력도 그렇다. 그런데 호흡을 맞춘 건 처음인데.
유: 난 영화만 하고, 혜교씨는 드라마만 하고, 그래서 엇갈린 거겠지. (웃음)
송: 난 유지태씨랑 같이 연기할 일이 없을 줄 알았다. ‘저 배우랑은 연기할 일이 있을까? 왠지 없을 것 같아.’라고 생각했었지. 그런데 오히려 조만간 같이 연기하게 되지 않을까 짐작했던 배우와는 인연이 없고, 예상치 못한 분이랑 이번에 한 것 같다. 솔직히 마치 딴 세계의 사람 같았다. (웃음) 근데 만나보니까 안 그렇더라.

민: 애초에 친분 같은 건 전혀 없었나?
송: 전혀 없었다. 그러니까 딴 세계 사람인 줄 알았지! (웃음)

서: 지태씨도 마찬가지였을 것 같은데. (웃음)
유: 글쎄. 난 지금까지 상대배우들에 대해서 심각하게 생각해 본적이 별로 없는 것 같은데. 그냥 송혜교씨 같은 ‘좋은 이미지의 배우와 함께 하는구나. 잘 했으면 좋겠다.’ 정도? 그리고 난 시작할 때보다 끝날 때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 배우와 다시 만나서 연기를 또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그 배우에 대한 가장 좋은 상(像)이 아닐까.

서: 사실 지태씨가 예전에 비해 유독 이번엔 상대배우인 혜교씨 칭찬을 너무 많이 하는 것 같다. 마치 팔불출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웃음)
송: 나한테 힘을 넣어주시려고 그러는 거겠지. 사실 내가 기사 체크하는걸 알거든. (웃음)
유: 아니, 뭐, 잘 한 걸 잘 했다고 얘기하는 거니까.
송: 기자님이 그 말씀하셔서 이제 칭찬 안 하겠다.

서: 뭐, 어차피 이게 인터뷰 없는 걸로 아는데. (웃음)
유: 팔불출이어도 좋다! (웃음) 윤여정 선생님도 혜교씨를 참 좋아하신다. 혜교 씨가 그만큼 잘 한 거지. 나도 좋았다. 재미있었고.

민: 근데 유지태씨의 필모그래피를 살펴보니까 코믹한 연기를 제대로 해본 적은 없는 거 같다. 물론 <주유소 습격 사건>을 했지만 정극적인 코믹 연기는 아니었고.
유: 코믹이야 말로 감독색깔이 굉장히 중요한 장르라고 생각한다. 코미디가 개그화되면 저급해질 경우가 많다. 코메디와 멜로, 호러 같은 영화는 기획영화의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감독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좋은 감독님이 같이 코미디하자고 하면 할 것 같은데. 근데 사실 내가 좀 썰렁하다. (웃음) 다른 식의 코미디를 해야 되겠지.
송: 블랙 코미디같은? (웃음)

민: 혜교씨 같은 경우엔 <순풍 산부인과>의 코믹한 이미지도 어울렸다고 생각한다.
송: 나도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사실 그 당시엔 내 연기보다 고등학생의 나이에 딱 맞았던 것 같다. 사실 그 때 성격은 주위 사람들한테 오해 살만큼 내성적이었으니까. ‘조그만 게 왜 이리 도도해, 새침때기야’, 이런 소리 들을 만큼. 오히려 요즘 더 발랄하고 명랑해진 거 같다. 근데 지금 다시 보면 되게 웃기다. 내 모습 아닌 거 같아. 볼 살이 곧 터질 것처럼 너무 빵빵해!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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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 그 때에 비하면 살이 많이 빠졌다.
송: 많이 빠졌지. 그 때는 고등학생이라서 젖살도 있었고.

서: <파랑주의보> 때보다도 많이 빠진 거 같다.
송: 여자 배우들은 늘 다이어트 생각하고 있으니까. 근데 <황진이> 때는 일부로 다이어트 안 하고, 많이 챙겨먹었는데도 많이 빠지더라.

서: 혜교 씨는 지금도 그렇지만 연기할 때 약간 숨넘어갈 듯 대사치는 게 있더라. 호흡을 단절하면서 말하는 게 아니라 한번에 다 하려는 듯한.
송: 내가 약간 흥분하면 나오는 건데, <황진이>에서도?

서: 딱 한 씬에서. 초반에 발 걷고 등장한 이후, 수 놓으면서 대화할 때.
송: 내가 찝찝한 부분이 거기였던 거야! 얘기하지 마시지! (웃음) 그게 초반에 찍은 아씨 시절인데, 그래서 내가 영화를 보며 아씨 시절 나오면 귀를 막아버리잖아. 왜 그건 후시 안했나 몰라? (웃음) 처음인데, 그거 지적하신 분은. 굉장히 예리하네요.

서: 사실 송혜교 씨에게 관심이 많아서. (웃음) 드라마 볼 땐 그게 송혜교의 매력이라 생각했는데 스크린에서는 좀 아니더라.
송: 고쳐야 될 점이지. 매력은 아니고, 솔직히 나도 알고 있다. (웃음)

민: 영화배우로서의 갈망도 있을 것 같다. 특별히 스크린을 통해서 해보고 싶은 역할이나.
송: 해보고 싶은 역할이 정말 너무 많다. 요즘 내가 인터뷰를 통해서 독특한 캐릭터를 해보고 싶단 말을 많이 하기도 했고. 예를 드는 두 작품이 다 박찬욱 감독님 영화인데, <친절한 금자씨>에서 이영애 선배님이 했던 역할이나,

민: 혹시 나머지 작품은 <싸이보그지만 괜찮아>?
송: 맞다. 임수정씨 역할도 되게 매력 있었다. ‘야, 저 예쁜 배우가 저런 모습의 연기까지 되는구나.’라고 감탄하면서 봤으니까. 나도 한번 저런 캐릭터 만나보고 싶단 생각을 했다.

서: 확 와 닿네. 송혜교의 ‘너나 잘하세요.’
송: 그 정도로 독특한 캐릭터를 만나보고 싶다.

서: 그런데 아까 지태씨가 말한 것처럼 정형화된 타입의 연기를 하는 것이 악수가 될 수 있지만, 한편으로 그에 대한 강박관념으로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것도 독이 될 수 있다.
송: 강박 관념으로 도전하는 것보단 그냥 스스로 연기를 즐기기 위해서지. 일단 내가 연기를 즐기지 못하면 관객들도 똑같이 그걸 느낀다고 생각하니까. 일단 내가 메리트(merit)를 느껴야 되기 때문에 찾는 거다. 새로운 걸. 지금까지 지속해왔던 내 연기가 나 자신에게 재미있다면 계속 그걸 해야겠지만 내가 그걸 못 느끼니까.

서: 그럼 그전에 재미없게 한 연기도 있었다는 소리?
송: 비슷한 연기를 하다보니까 너무 많이 해서 새로운 걸 찾는다는 소리죠! 내가 말을 잘 못하나? (웃음)

서: 스타와 배우의 간극이 분명히 있다고 생각한다. 혜교씨 본인이 느끼는 부분이 궁금하다. 본인은 그 간극에서 어느 정도의 위치에 있다고 생각하나?
송: 내가 느끼는 게 대중들이 느끼는 것과 같다고 본다. 일단 나도 배우지만 아직 스타 이미지가 많이 강하겠지. 그렇다고 굳이 그런 이미지를 부술 필요는 없다. 스타라는 이미지도 날 사랑해주시는 팬들이 만들어 주신 중요한 것이니까. 물론 연기를 기준으로 생각한다면 그게 큰 장애물이 될 수도 있겠지. 욕심이 많다고 할 수도 있지만 그 양쪽에 모두 충실하고 싶다. 나이를 한두 살 더 먹고 연기자의 이미지에 점점 더 가까워진다면 한쪽을 포기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두 가지 다 갖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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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항상 대중과 스타의 입장은 평행선을 달리는 것 같다. 스타이기 때문에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 부분도 있고, 스타이기 때문에 함부로 평가 할 수 없는 부분도 있고.
유: 그런데 난 스타와 배우를 어떻게 나누는지 잘 모르겠다. 솔직히 영화배우는 스타여야만 영화를 할 수 있다. 거대자본을 움직이는 상업영화는 스타여야만 선택 받을 수 있고. 배우와 스타를 어떤 기준으로 나누려하는지? 스타가 아닌 영화배우는 없는 거다.

서: 원론적으로 이야기하면 그럴 수도 있겠다.
유: 원론적이라기 보단, 단적으로 말해서 스타가 없으면 투자가 안 된다. 자본이 움직이지 않으면 영화는 존재하지 않고. 순수예술이 아닌 상업예술이니까.

서: 그렇지만 스타라는 존재 자체가 흥행과 바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잖나.
유: 그렇지. 그런 다음에 작품성과 같이 연동이 되는 건데.

서: 그렇기 때문에 배우들 스스로 그런 생각들을 갖는 것 같다. 본인이 지닌 스타로서의 인기가 연기적 역량으로 더해지면 좋을 것이란 생각을 하니까.
송: 연기하는 순간만큼은 그런 생각을 안 한다. 이런 공식적인 자리에서 비쳐질 뿐이지 거지 일할 때는 그렇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배우가 먼저 그런 말한다고 하셨잖아요. 그런 말을 하게끔 대중들이 그렇게 생각을 해요. 그런 말을 들을 수밖에 없게끔. 우리가 아무리 영화배우라고 외치면 뭐해요. 보는 관객들이 ‘넌 아직 덜 됐어’라고 말하면, 우리가 아무리 외쳐도 인정하지 않는데.

서: 그 평가의 기준을 다르게 볼 수도 있다는 것 아닐까. 단순히 스타와 배우의 구분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유: 난 스타라는 기준에 대한 피해의식 때문이라고도 생각한다.

민: 결국 스타라고 말할 수 있는 기준은 인지도의 여부로 판가름 나는 것 같다. 그게 관객이든, 투자자든. 그건 결국 영향력일 수도 있고. 그리고 그런 구분은 그런 영향력에 대한 반작용일 수도 있다. 방금 말한 것처럼 피해 의식일 수도 있고.
유: 물론 그런 위치를 부러워하는 사람도 있겠지. 스타성을 가지고 있다는 건 엄청 큰 거다. 사람들이 흔히 이야기하는 연기라는 기준은 매체의 특수성이 다 다르기 때문에 섣불리 평가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분명한 건 영화는 스타의 등장을 필요로 하고 스타가 주연을 하는 거지. 그 논리는 뗄 수가 없다. 물론 독립영화는 스타가 등장하지 않아도 되지. 하지만 <황진이>처럼 100억이나 들어가는 상업 영화에서 스타는 굉장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그런 부분을 고려하지 않을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민: 류승룡씨도 하고 싶은 연기를 위해서라도 인지도는 중요한 것 같다고 하더라.
유: 당연히 중요하다. 내가 드라마 안한 것이 후회된다고 했는데 그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연기적인 측면, 드라마 하시는 분들은 정말 순발력이 빠르다. 그런 부분에서 아쉽고, 또 하나는 대중적인 인지도다. 아무래도 드라마가 영화보단 대중적으로 친밀감이 높지 않나. 한류스타들의 파워도 드라마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많더라. 종종 내가 그런 파워를 지니지 못한 것이 아쉽다. 어떤 영화를 한류스타가 하고 싶다고 하면 그 순간 투자는 다 끝난다.
급이 다르다고 할까. 물론 드라마를 했느냐, 안했느냐가 결정적으로 중요한 건 아니겠지만, 분명 드라마를 하면서 얻어지는 부분이 있었을 거라 생각한다. 그런 것들을 내가 너무 한계지어서 생각하지 않았나 싶은 거지. 하지만 내 밥그릇이 영화를 좋아하는 밥그릇이니까 영화를 한 거겠지. (웃음)

서: 그렇다면 본인이 지금까지 끊임없이 캐스팅 될 수 있는 까닭은 뭐라고 생각하나?
유: 한 번도 생각해 본적은 없는데. 요즘에는 결정해도 못 들어가는 영화가 있으니까 요즘에 생각해봐야겠네. (웃음) 영화배우가 영화 찍는 게 뭐 큰일은 아니기도 하고. 영화배우 유지태로서 지금 입장에서 불만은 하나도 없다.

민: 그런데 요즘 연극 무대에 종종 서고 있다. 아무래도 영화에 한정된 자신의 영역을 확장하고자 하는 의지가 아닐까 싶은데.
유: 연극을 하는 건 여러 가지 의미가 있다. 자기 계발도 있고. 영화 연기를 하다 보면 미니멀(minimal)한 연기, 드라이(dry)한 연기를 하게 되고 절제하는 내면 연기들을 많이 하게 된다. 반면 다양한 것들을 채울 수 있는 외향적인 연기를 훈련해야 되는데 연기자로서 무대만큼 좋은 시험대가 없으니까. 내가 영화를 만들고 싶기 때문에 인프라를 형성하려는 의도도 크다.

민: 감독에 대한 열망도 있는 듯 한데, 이미 단편영화도 2편을 만들었다. 어떤가? 연기하는 것에 비해 연출하는 건?
유: 글쎄. 작품 하는 건 크게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연기자는 보여주는 매력이 있다면, 연출자는 만드는 매력이 있는 것 같다.

서: 배우와 감독으로서 지태씨의 자의식은 무엇인가?
유: 그냥 자유롭게 연기 생활을 했으면 좋겠고, 자유로운 영화인이 됐으면 좋겠다. 조지 클루니가 ‘그림이 되기 보다는 화가가 되겠다.’는 이야길 했는데 참 멋있는 비유 같다. 쉽게 말해서 배우보단 감독에 더 열의를 갖고 있다는 말이 될 텐데, 그 사람이 출연한 영화들도 참 매력적이지만 그 사람이 만드는 영화들도 참 멋있는 것 같다. <굿 나잇, 앤 굿 럭> 같은 영화도 그렇고. 자유로운 영화인이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는 거 같다.

민: 유지태씨는 오랫동안 영화계에 몸담고 있었던 만큼, 최근 한국영화 위기라는 상황에 대한 남다른 의식이 있을 법도 하다.
유: 지금까지 해왔던 방법 말고 다른 시스템에 대한 도전을 해봐야 되겠지. 일본 영화나 미국 영화처럼 프로듀서 중심의 영화제작 시도도 필요하고. 한국 영화가 찾아가야 할 길을 제대로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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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황진이> 이후, 계획이 궁금하다.
송: 올해가 가기 전에 영화 한편 더 하고 싶고, 내년쯤 드라마도 하고 싶다. 계획은 그런데 그렇게 될지 모르겠네. (웃음)
유: 단편영화 한편 만들 생각을 하고 있다. 올해 안에 영화 한 편 출연할 수 있으면 좋겠고.

민: 지태씨는 이제 어떤 연기보다 어떤 영화를 만들고 싶은지 여쭤봐야 할 것 같다. (웃음)
유: 영화는 여러 장르를 생각하고 있다. 연극을 했던 것도 영화화의 일환이 되는 거고. 시놉시스들이 다 영화화될 수 있으니까.

민: 혜교씨는 지금 당장은 푹 쉬고 싶겠지만, 영화든 드라마든 자극적인 캐릭터와 기존의 캐릭터가 둘 다 들어온다면 어떤 캐릭터를 선택할 것 같나?
송: 자극적인 거. 안 해봤던 거.

민: 너무 깨는 역이 들어와도?
송: 두렵지는 않은데, 예쁜 모습 많이 보여드렸는데, 뭐.

서: 그게 불만인 사람도 있을걸. 망가져도 예쁘잖아.
송: 꼭 망가져 드려야 되겠다(웃음).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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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민용준
,

박신혜 인터뷰

interview 2008. 5. 30.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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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고등학생이다.
몇 살인 줄 알았어요?

못해도 스무 살은 넘었을 거라 생각했지.
다른 분들도 다 그러더라.

그런 질문 받으면 기분이 어떤가?
원래 어렸을 땐 나이 들어 보인다는 이야기 듣는 사람이 나이 들어서는 어려 보인단 이야기 많이 듣는다더라. 그래서 그냥 그거 믿고 살고 있죠. (웃음)

학창시절에 쫓아다니는 남자 좀 있었을 것 같은데?
없었어요~~! 여중 여고의 슬픔을 모르시는군. 흑. (웃음)

여중 여고의 슬픔은 잘 모르지만 남중 남고의 슬픔은 잘 알지. (웃음) 조금 건방지게(?) 들릴 수도 있지만 ‘많이 컸구나’ 라고 생각을 했다. 그런데 난 박신혜하면 예전에 시트콤에 출연했던 모습이 아직도 많이 기억난다.
드라마에서의 모습을 많이 기억하는 사람도 있는 반면, 시트콤에서의 모습을 많이 기억하는 사람도 있더라. 다양하게 기억된다는 건 일단 좋은 일인 것 같아서 상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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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연기를 시작하건 <천국의 계단>이지만 아역 연기였다는 점에서 아무래도 자신의 캐릭터를 가지고 본격적으로 연기를 한 건 시트콤이 시작이었던 것 같다. 나이에 맞는 발랄함도 있었고. 그때에 비하면 많이 성숙된 연기를 보여주는 것 같다.
일단 아역 박신혜가 아니라, 나이와 상관없이 연기자 박신혜로 봐주는 것 같아서 오히려 그게 나에겐 더 플러스가 되는 것 같다. 이렇게 됨으로써 내 또래 연기자들이 가질 수 있는, 아역 연기자에서 탈피해야 한다는 부담감을 나는 자연스럽게 버린 채 시작할 수도 있고, 뭐가 됐건 나쁠 건 없다.

우리나라는 사실 청소년 연기를 이십 대 배우가 많이 한다. 그런 면에서 오히려 청소년기에 이십 대 연기를 한다는 건 특별해 보인다. 어떻게 보면 동년배의 어린 배우들 사이에서 박신혜를 두드러지게 보이게 만드는 요인이라고도 생각되고.
그런 것 때문에 날 부르는 감독님들이 있나 보다. 아까도 말했다시피 실제보다 나이 들어 보이는 덕분에 사람들에게 쉽게 어필할 수도 있는 것 같고. 물론 나이에 맞는 연기가 자연스러워 보일 수도 있겠지만 어떻게 보면 나와 동떨어진 성인 연기를 한다기보단 나와 어울릴법한 연기를 한다고 생각하니까. 아역도 아니고, 성인도 아닌 그냥 여자 박신혜가 나이와 무관하게 할 수 있는 연기를 했을 뿐이지. 어떻게 보면 풋풋한 연기를 원해서 나를 원하는 것 같기도 하고. 그리고 이십 대의 배우들이 청소년 연기를 종종 하는 건 내 또래 배우가 별로 없기 때문인 것 같다.

실제보다 많은 나이의 역할을 연기한다는 것에 대한 부담은 없나? 박신혜라는 배우를 나이에 상관없이 캐스팅한다는 건 그에 대한 모종의 기대감이 있다고 볼 수도 있는데?
기대감이란 바로 그런 풋풋함이겠죠? 그러니까 아직 세상과 많이 접촉하지 않은 느낌을 원하는 것도 있을 테고. 예를 들면 솔직히 난 아직 가슴 아픈 사랑을 해본 적이 없으니까 사랑에 대해서는 서툰 나이니까. 사람들이 보기에 사랑을 안 해본 사람이 사랑을 하려고 하니까 저렇게 서툰 거구나라고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어쩌면 감독들이 신인을 찾는 이유도 그런 것 때문이 아닐까 싶다. 어쩌면 상대 배우와의 서먹서먹한 첫만남이 호흡을 맞추면서 친숙해지는 것과도 비슷한 것 같다.

감정이 없던 사람들이 서로를 알아가면서 자연스럽게 감정이 생기는 것처럼?
개인적으로 나는 그런 느낌인 것 같다.

원래 연기를 지망했나?
우연찮게 오디션을 보게 됐다.

본인이 직접?
주변에서 오디션을 권유해서 보게 됐는게 붙어버렸다. 원래 뮤직비디오 주인공 공개 오디션을 봤는데 그땐 너무 어릴 때라 뮤직비디오에 출연은 못했고.

몇 살 때였길래?
초등학교 6학년 때. 그리고 원래 난 가수 준비를 하다가 연기를 하게 된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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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림팩토리의 보아가 될 뻔했다는 사연이 그것이었나 보다?
이승환 공장장님이 예전에 그렇게 말한게 아직도 떠돈다. (웃음) 어쨌든 노래와 함께 연기를 배웠는데 연기 선생님께서 노래보다 연기를 제대로 시켜보라는 권유로 뮤직비디오를 찍게 됐다. 그런데 그게 잘 어울려 보여서 결국 연기를 하게 된 거다.

그럼 춤과 노래 연습은 얼마나?
2~3년 정도? 처음엔 활동 중에도 계속 트레이닝을 했었다.

설마 나중에 판 내는 거 아닌가?
그건 아닐 것 같은데. 혹시 모르지. 그런데 솔직히 나 노래 별로 못한다. (웃음)

사실은 흔히 말하는 길거리 캐스팅 때문에 연기를 시작하게 된 것이 아닐까 했다. 외모상으로 눈에 띠고, 그 나이 때 연예인들이 종종 그렇듯이, 그런데 연기를 보면 준비를 거친 느낌이 들더라. 어색함보단 안정감이 있다.
한 3년 정도의 준비기간이 있었다.

가수에서 배우로 진로를 전향한 뒤에?
사실 가수 준비 중에 연기 교육을 병행했는데 연기를 배우는 속도가 더 빨랐다. <꽃> 뮤직비디오를 찍은 후, 프로필 사진 찍고 몇 달 뒤에 <천국의 계단> 아역 공개 오디션에 갔다. 사실 회사에서 오디션 신청 막바지쯤에 사실을 알고서, 결국 난 생각도 못하다가 오백 명이 넘는 경쟁에 갑자기 끼어들었지. 그런데 난 사람을 만날 때, 눈을 마주치려고 하는 습성이 있다. 다른 곳을 보고 대화를 하면 말은 하는데 마음이 통하지 않는 것 같아서. 그런데 감독님이 프로필을 보더니 쭉 둘러보시더라. 그런데 내가 거의 정면쯤에 있었는데 감독님과 제대로 눈이 마주쳤고 그 때 염두에 뒀다 한다. 눈빛이 좋았다고 나중에 말씀해주셨으니.

지금은 고등학생인데, 학업과 연기를 병행하는 게 쉽진 않을 것 같다.
난 일없으면 무조건 학교 간다. 쉽지는 않지만 하고 싶은 일을 놓치고 싶지도 않고, 학교 생활도 잘 해보고 싶다.

배우 이외에 다른 꿈은 없었을까?
사실, 어렸을 때는 여경찰이 꿈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연기가 너무 재미있고 즐겁기 때문에 이젠 다른 걸 한다는 생각을 할 수가 없는 것 같다.

하긴 6학년 이후로 계속 이 바닥에 있었으니 다른 생각이 들기도 힘들었겠다. 어쨌든 <전설의 고향>은 호러물이고, 동시에 사극이다. 둘 다 처음인데 한번에 겪었다.
너무 급하게 촬영해서 부담감은 있었는데, 다른 부분의 부담감은 없었던 것 같다. 워낙 새로운 걸 즐기는 편이기도 하고. 옆에서 도와주는 분들도 많았고, 다른 분들이 열심히 촬영에 임하셨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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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고생이 많아 보이던데. 물에 빠지는 씬도 유독 많고, 촬영이 끝나고 안도감이 들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사실 물에 빠지는 씬도 많고, 넘어지는 장면도 많아서 힘들었다. 더위가 심해서 짜증이 많이 나기도 했고. 그런데 나보다 더 일찍 현장에 나와서 준비하는 분들도 있고, 나보다 더 늦게 끝나도 빈틈없이 챙기시는 분들도 있는데 내가 불평을 할 수는 없더라. 그리고 내가 조금이라도 안 웃으면 심각해 보여서 그럴 때마다 무슨 큰일 있는 줄 알고 신경을 많이 써주더라. 그래서 난 촬영하면서 힘들어할 수가 없었다. 물론 그 전에 연기할 수 있는 것 자체만으로도 감사하면서 촬영을 했다.

첫 주연 영화인데 개봉일이 밀려서 조바심 나진 않았나?
<전설의 고향>은 촬영이 이뤄지면서 동시에 CG작업을 했다. 그런데 후반작업을 동시에 하니까 뒤죽박죽 섞이는 게 많더라. 그래서 더 걱정이 있었다. 만약, 시간이 더 있다면 여유를 갖고 마무리 작업까지 완벽하게 한다면 좋을 텐데 하는. 그런데 올 해 개봉하게 되니까 후반작업도 잘 된 것 같아서 다행이다.

오히려 전화위복이 된 셈이다. 혹시 무서운 영화 좋아하나?
좋아한다.

사실 호러 영화는 무섭지만 호러 영화 촬영장은 무섭지 않다. 촬영장 분위기는 어땠나?
나도 이번에 알았는데 스텝들끼리 서로 격려하는 것보단 배우들이 직접 격려해주는 게 분위기에 도움이 많이 되더라. 그리고 그런 걸 보고 인기 많은 배우들이 어째서 그런 건지 이해가 갔다. 스텝들 한 분마다 친절하고 소중하게 대하는 모습을 싫어할 수가 없더라. 그런 걸 보고 좋은 영화를 만들기 위해선 전체적인 분위기가 좋아야 한다는 걸 경험으로 느꼈다. 일단 내가 사람 만나는 걸 워낙 좋아해서, 현장 분위기를 굉장히 좋아할 수 있었다. 일단 영화의 분위기는 세트 분위기가 어두워서 분위기 조성은 잘 된 거 같더라.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많이 했겠다.
아무래도 막내니까 내가 많이 뛰어다녔다. 사람들이 많이 피곤해서인지 많이 힘들어하더라. 그래서 내가 많이 뛰어다니면서 장난도 치고, 오빠언니들 웃으라고 애교도 많이 부리고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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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 중에 귀신을 봤다고 들었는데.
사실 귀신을 제대로 본 건 아니고, 첫날에 가위에 눌렸었다. 그나마 누가 깨워져서 그나마 빨리 풀렸다. 그리고 수중씬 촬영을 위해 수면으로부터 2~3미터 밑에서 산소호흡기를 떼고 올라와야 되는 부분이 있었는데 수직이 아니라 대각선으로 올라와야 하니까 올라오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 그러다가 숨을 참는 시간이 1분 이상으로 길어져서 물도 먹게 되고 눈 앞이 깜깜해졌다. 그 때 숨을 못 쉬어서 죽는 줄 알았다.

일단 본인은 영화 경험이 거의 없었다. 촬영장에서 의지를 했던 사람이 있다면?
일단 감독님께서 많이 끌어주셨다. 그리고 재희 오빠도 그렇고, 진우 오빠도. 같이 맞춰가면서 같이 이끌어나갔다. 서로 연기에 대해 상의하고 조언도 해주면서 의견 교환을 많이 나눴지.

연기를 맞추는데 어려움은 없었나?
큰 어려움은 없었다. 평소 생활부터 워낙 즐겁게 지내서. 재희 오빠가 날 많이 챙겨줬다. 실제 촬영 때 어머니 다음으로 많이 호흡을 맞춘 탓도 있고.

1인 2역 연기를 했다. 또한 평면적인 캐릭터가 아니라 범상치 않은 입체적인 캐릭터라서, 연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내용을 다 알고 있는데도 좀 혼란스러웠다. 소현을 보여주면서 효진의 내면도 종종 드러내야 하고, 그런데 소현과 효진은 다른데 그걸 표현해내기가 너무 복잡하더라. 사실은 분리를 시키려고 많이 노력했다. 소현과 효진의 명확한 구분이 있어야 되니까. 소현은 굉장히 착하고 효진은 굉장히 못 된 캐릭터다. 그렇게 구분이 명확한 인물을 한 명에 담으려니까 혼란스럽고 그래서 힘들었다. 하지만 혼란스러워야 맞는 것 같더라. 그래서 차라리 이렇게 복잡한 심정을 그대로 감정 이입시켜서 연기를 하자고 했던 게 도움이 된 것 같다.

시나리오를 접했을 때 쉽게 이해가 되던가?
일단 처음에는 이해를 못했다. 내용상 이해를 쉽게 하기엔 어려움이 있어서. 그런데 여러 번 읽다 보니 이해가 되고 재미있더라. 그리고 중간중간 재미있는 소재도 많아서 끌리기도 했고.

연기가 잘 안 풀리는 순간에 어떻게 극복했나?
성격이 급한 편이라 쉽게 조급해진다. 하지만 그런 순간만 견디면 다시 원상태로 돌아올 수 있기 때문에 마음을 다시 차분히 가라앉히기 위해 노력했다. 가만히 앉아서 연기에 대해 생각하거나 귀를 막고 다시 한번 대본을 읽으면서 정리를 했다.

어린 나이에 알려졌다가 쉽게 잊혀져 가는 배우들이 많다. 그 나이에 누군가에게 주목 받고 있다는 사실이 버겁진 않나?
아직까진 확 못 느끼겠다. 물론 중간에 일을 쉴 땐, 몸이 좀 근질거리는 느낌은 있었다. 그리고 내가 작품은 많이 출연했지만 실제로 내가 크게 떴다고 말할 수 있는 작품이 없으니까 그런 것 같기도 하고. 내가 그렇게 크게 많이 알려졌다고 생각하지도 않고, 아직은 차근차근 나아가는 중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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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히 좋아하는 영화 장르 있나?
추리물 되게 많이 좋아한다. 사실 영화는 장르 구별 없이 대부분 좋아한다. 폭력적인 장면이 있어도 그게 내용이 있는 거라면 좋아한다.

제일 처음 카메라를 접했을 때에 비해 지금의 느낌은 얼마나 달라진 것 같나?
처음엔 카메라가 어디 있는지,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 시선을 어느 쪽에 맞춰야 하는지 하나도 몰랐다. 그런데 지금은 좀 여유가 생긴 것 같다. 그때에 비하면. 물론 아직도 카메라 앞에 서면 많이 긴장되고 떨린다.

해보고 싶은 연기나 역할이 있나?
좀 강한 거? <귀엽거나 미치거나>같은 왈가닥 역할도 다시 해보고 싶은데, 그 반대도 해보고 싶다. 조용한 아이. 슬픈 아이가 아니라 세상 앞에 무덤덤하고 재미없는 아이. 세상에 무관심한. 솔직히 딱히 정해놓은 건 크게 없는 것 같다. 물론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 시나리오가 좋고 내가 할 수 있을 것 같은 역할이라면 하고 싶겠지. 딱 이것만 할거라고 생각할 때도 아니니까.

연예계에 빨리 입문했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만만치 않았을 텐데.
누군가가 연예인을 하려 한다면 별로 추천하고 싶지 않은 직업인 것 같다. 물론 끼를 주체할 수 없을 정도의 사람이라면 어쩔 수 없지만. 물론 노력을 통해 되는 사람도 있고. 하지만 사람이란 게, 자신이 잘 되는 게 있고 잘 안 되는 게 있는데 욕심을 내야 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니까. 함부로 도전할 수 있는 일은 아닌 거 같다. 겉으론 화려하지만 알고 보면 불행한 사람도 많지 않나.

본인도 자신의 선택에 후회한 적 있나?
후회는 많이 했는데, 막상 이 일을 그만 두면 몸이 근질거려서 못 견딜 것 같더라.

존경하는 배우가 있나?
고두심 선생님, 나문희 선생님, 여운계 선생님. 왜냐면 지금도 인기가 굉장히 많지만 젊은 시절에도 인기가 많은 분들이었으니까. 젊은 시절, 하이틴 스타에서 출발했다고 생각해보면, 지금이 정말 대단해 보인다.

열 여덟 살이면 누구 말처럼 한참 좋을 나이다. (웃음) 이십 대가 될 날도 이제 몇 년 안 남았다. 스무 살에 대한 기대감 같은 거 있을까?
연기의 폭이 넓어지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시니컬한 연기를 해보고 싶다고 말했지만, 아직은 나이가 어려서인지 실제론 안 나올 것 같다. 솔직히 어색해 보일 것만 같다. 나이가 들고 눈빛이 좀 달라지고, 외관상 변화처럼 내적인 모습도 따라 바뀌는 부분이 있을 테고. 그럼 결국 연기 폭이 더 넓어지지 않을까. 아무래도 십대의 경험보단 이십 대의 경험이 더 깊을 테니까.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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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민용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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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소수의 지성인이 아닌 다수의 관객이 즐길 수 있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다수의 관객이 즐길 수 있는 영화란 어떤 영화라고 생각하나?
솔직히 한 편의 영화가 모든 관객을 만족시키기엔 어렵다. 어쨌든 다수라는 기준으로 생각한다면 아무래도 흥행이 기준이 될 수 있지 않겠나.

중국 본토의 영화시장이 성장하고 영화의 제작편수가 많이 늘어나고 있다. 중국의 영화인 중 한 사람으로서 이런 변화는 고무적일 것 같다.
전체적으로 보자면 긍정적인 방향으로 발전하는 게 아닐까 싶다. 요즘 중국의 영화 시장은
양적으로 팽창하는 게 사실이다. 거의 하루에 한편 단위로 제작 편수가 늘어날 정도로 활성화 되고 있으니까. 결과적으로 영화 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활동 공간이 더 많아진다는 건 분명 좋은 일이다.

반면에 시장의 확대라는 건 상업적인 기질의 영화에 대한 요구로 점철될 수도 있다. 일방적인 소비의 목적으로 영화가 취급 당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런 문제에 대해서 고민도 많이 하고 실제로 그런 문제에 대한 토론도 많이 이뤄진다. 그런데 과거를 보면 중국 감독의 95%가 거의 다 예술영화를 찍고 5%도 안 되는 감독들만이 시장성 있는 영화를 찍었다. 그렇게 예술성에 편중한 영화를 찍어내니까 관객들이 극장에서 중국영화를 보려고 안 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중국의 박스오피스 5위 내는 거의 다 할리웃 영화가 차지하고 있었다. 그렇게 시장이 죽어버리다 보면 시장이 없어져버리는 사태로 연결될 수 있다. 내 생각에 기본적으로 시장이 먼저 커져야 투자 회사에서도 이익을 기대하게 되고 그로 인해 투자가 이뤄져서 영화산업이 활성화된다. 그렇게 되야 영화 판에 여유 공간이 형성돼서 예술영화도 지원해줄 수 있고, 다방면의 시도가 이뤄질 수 있는 거다. 그런 관점에서 현재 중국 시장을 살펴본다면 시장성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가는 게 맞다. 그리고 중국영화를 박스오피스 3위 안에서 심심찮게 발견할 수 있는 건 분명 그런 노력을 통한 효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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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영화는 상품이기 전에 예술이다. 결국 흥행을 먼저 염두에 둔다는 건 목적이 전도된 거 아닌가.
예전에 중국에서 ‘흥행하는 영화라 해서 좋은 영화는 아니다’라는 설을 들었는데 나는 그 말이 이상했다. 좋다거나 나쁘다를 말하기 위해선 표준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예술창작에선 표준이 없다는 거다. (테이블을 가리키며) 내가 이 테이블을 이 쪽에 놓는 것도, 저쪽에 놓는 것도 모두 창작이라 한다면, 누가 와서 나에게 이건 저기에 놔야 된다 라고 하는 건 옳지 않다. 영화도 많은 돈이 투자돼서 만들어지는 만큼 일종의 사업이기 때문에 관중들을 불러모을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그렇지 못하면 그게 결코 좋은 영화라고 말할 수 없는 거다. 예를 들어 지금의 강제규 감독이 아시아와 한국에서 흥행을 이끌지 못했다면 과연 좋은 감독이란 명성을 얻을 수 있었을까? 강제규 감독 영화의 작품성은 결국 흥행성이 받쳐주었기 때문에 확인된 결과다.

작년, <황후화>의 국내 개봉을 위해 장예모 감독이 내한한 당시 기자회견에서 했던 말이 생각난다. ‘블록버스터는 할리우드에 대항하기 위한 전략이다.’ 이런 견해에 동의하나?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중국의 박스오피스는 거의 할리우드 영화로 채워져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중국영화를 박스오피스 상위권에서 심심찮게 발견할 수 있다. 할리우드의 영화를 단순히 시장성만으로 본다면 우리도 그에 대항할만한 시장성을 고집해야 한다. 자신만의 색깔을 드러내고자 하면 과거처럼 할리우드 영화에게 점령당하는 거다. 근래 중국 관객들이 중국 영화를 점차 선호하게 되는 변화는 모두 그런 고민을 통해 노력했던 부분들이 거둔 효과다. 난 감독이란 ‘동사(動詞)’같은 존재라고 본다. 왜냐면 움직여서 영화를 찍고 그런 행위를 계속해야 되니까. 영화는 말로만 찍는 게 아니다. 장예모 감독은 영화를 실천하는 사람이고, 중국 영화계에서 공헌이 큰 감독이다. 그런만큼 세태를 잘 파악하고 있다고 본다.

하지만 상업 지향적인 태도에 따른 비난도 따르고 있다.
몇몇 영화평론은 상업적인 영화를 찍는 감독들에게 공격적인 말을 서슴지 않는다. 내가 너무 대중성을 노리고 상업적인 영화만 찍는다고. 하지만 만일 내가 소수 관객의 권리를 위한 영화를 찍는다면 그게 오히려 가식적인 것 아닌가. 그냥 그런 영화로 상 하나 타기 위한 심산이 될 테니까. 난 영화를 찍기 전에 ‘관객들이 무엇을 원할까?’ 혹은 ‘관객들이 이 영화를 보려고 할까?’ 이런 생각부터 먼저 한다. 그런데 요즘 몇몇 젊은 감독들은 영화제에서, 예를 들면 칸 영화제나 베를린 영화제 같은 ‘영화제에서 어떤 영화를 좋아할까?’를 먼저 고민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니까 마치 상을 타기 위해서 영화를 만드는 것 같다. 그럼 그 영화 자체는 심사위원 몇 명을 위한 영화에 지나지 않는다. 결국 그런 관점에서 생각하면 오히려 상업영화가 더 낫지 않은가? 난 소수의 심사위원을 위한 영화를 만드는 게 아니라 다수의 관객들을 고려하며 영화를 만든다. 전문적인 영화 매체와 인터뷰를 하다 보면 감독들과 예술을 논하고자 하는데 나는 좀 더 현실적인 상황을 이야기하고 싶다. 내겐 이 시장, 즉 중국의 영화 시장에 대한 진실된 이야기가 더 중요하다. 좀 더 추가한다면 좋은 감독은 많은 관객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영화를 만드는 감독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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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웃 블록버스터에 대항하는 수단으로서 규모를 키운 영화들을 제작하는 건 좋다고 본다. 다만 그런 환경이 내실을 갖춘 소규모 영화들의 발달을 저해할 수도 있다는 거다. 예를 들면 작년 지아장커 감독의 <스틸 라이프>같은 경우는 중국에서 개봉관을 잡지 못해 난항을 겪었다고 들었다. 반면, 장예모 감독의 <황후화>는 같은 시기에 대규모 개봉이 이뤄졌다. 이런 사태는 우려스럽지 않나?
일단 확실한 건, <황후화>가 중국에서 개봉했기 때문에 <스틸라이프>의 시장이 줄어든 건 아니다. 일단 <스틸라이프>는 중국에서 관객들의 관심을 부를만한 영화는 아니었다. 아까도 말했듯이 그 영화가 영화제를 위해 만든 영화나 다름없기 때문에. 중국의 영화평론가들이 첸카이커 감독과 장예모 감독, 펑 샤오강 이 세 명의 감독들이 중국의 영화시장을 너무 크게 장악하기 때문에 소규모 영화를 만드는 감독들의 영화가 많이 눌렸다고 이야기 하곤 한다. 그런데 1년 12달 중, 내 영화가 극장에서 상영하는 건 기껏 한달 남짓이다. 내 영화가 개봉할 때 그럴 수 있다고 쳐도, 결국 11개월이라는 시간이 남는다. 그 나머지 시간 동안에 개봉되는 영화들의 흥행성이 떨어지는 건 결국 그들이 관객의 마음을 못 잡은 것 아닌가? 그건 우리 탓이 아니다. 작년, 중국에서 <스틸 라이프>보다 적은 예산으로 완성된 <크레이지 스톤(crazy stone)>이란 영화는 오히려 흥행이 좋았다. <스틸 라이프>보다도 더 소규모적인 영화였지만. 왜냐면 그건 영화제만을 고려한 영화가 아니라 관중들을 위한 영화였기 때문이다.

결국 예술성이 뛰어나도 흥행성이 전무하다면 좋은 영화라고 볼 수 없다는 의견인가?
그렇다. 그리고 나는 영화를 구분할 때, 상업영화와 예술영화로 구분하는 것보단 영화의 규모를 기준으로 구분하는 게 옳다고 본다. 대중을 위한 영화인가 소수를 위한 영화인가. 예술성이 뛰어난 영화는 처음부터 소수 관객을 위하는 영화니까 그런 영화가 흥행이 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문제 삼을 이유는 없다. 왜냐면 애당초 출발하는 지점이 그러했기 때문에.

영화의 성향에 따라 흥행성에 대한 기대감도 맞추어야 한다는 건가?
애초에 영화가 지니는 태도에 따라 이루고자 하는 결과를 정확히 짚어야 한다는 것이다.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긴 힘들다. 상도 타고, 흥행도 잘 된다는 건 상당히 어려운 일이기 때문에. 나도 심사위원을 해봤기 때문에 심사위원들이 어떤 영화를 좋아할지도 잘 알고 있다. 그런 영화들이 많은 숫자의 대중에게 관심을 얻고 흥행에 성공한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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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작 지향의 판세에 따른 부작용이 있을 수도 있다. 한국에서도 근래 몇 년 사이 대작영화의 흥행으로 규모가 큰 영화의 제작 편수가 많아졌고 그에 따라 제작비도 수직 상승했다. 그런데 그에 대한 부작용들이 오늘에 이르러 많이 발생하고 있는 실정이다. 또한 대작 영화들이 항상 관객에게 사랑 받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그런 영화들이 무너지면 시장 전체의 위기를 발생시키기도 한다. 물론 여러 가지의 사정이 다르기 때문에 중국과 한국의 씬을 단순 비교한다는 건 어림없지만 이런 사례는 중국에서도 검토 대상이 될만한 사안 아닐까?
일단 내가 한국의 상황을 잘 알 수는 없지만 그것이 만약 관객들이 소규모의 영화들을 선호해서 나타나는 상황이라면 변화를 수용해야 한다. 만약 블록버스터가 외면당한다면 그건 관객들이 그에 싫증을 낸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겠지만 한편으로 그것이 아니라면 분명 영화 내부적인 문제가 존재한다는 거다. 단지 규모에서 발생하는 문제만이 아니라. 그 때는 그 문제의 핵심을 먼저 파악하고 접근해야 한다. 관객이 좋아하는 방향에 따라 영화도 변해야 하는 것 아닐까? 그건 한국이나 중국이나 마찬가지다.

<집결호>는 최근 중국에서 제작되던 블록버스터들과 시대 배경이 고대에서 좀 더 현대로 옮겨져 왔다. 사실 고전적인 시대 배경과 무협적인 소재를 취하는 게 중국의 관객들을 공략하는 안전한 방법 아닌가? 그런데 <집결호>는 그런 코드와 무관하다. 어쩌면 일종의 모험이 될 수도 있다.
새로운 시도라고 본다. 난 처음에 코미디 영화로 데뷔해서 그 영화로 흥행 감독이 되었다. 그런데 이후에 다른 장르를 시도하니까 더욱 흥행했다. 관객들이 감독의 변화를 받아들이고 좋아한다는 건 다행스런 일이다. 사실 <집결호>는 감동을 위한 영화다. 다만 많은 사람들이 전쟁 영화를 선호하니까 전쟁으로 포장을 한 셈이라고 해도 좋다. 예전엔 중국에서도 전쟁영화를 많이 찍었다. 하지만 그건 국가 홍보용으로 찍은 영화들이라서 가식적인 메시지로 채워져 있었다. 홍보용이다 보니. 이번 영화를 위해 내가 직접 강제규 감독의 <태극기 휘날리며> 팀을 찾았고, 한국의 MK 픽쳐스의 투자를 받을 수 있었다. 특수분장이나 특수효과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한국의 스텝들과 같이 5개월 동안 많이 고생해서 찍었다. 그런데 지금 와서 찍어놓은 영화를 보면 여태까지 중국에서 봐왔던 전쟁영화와는 정말 다른 생생한 작품을 찍어냈다.

<집결호>는 여러모로 <태극기 휘날리며>를 닮았다. <태극기 휘날리며>는 감독 당신에게 꽤나 인상적인 영화였나보다.
<태극기 휘날리며>는 첫번째로 감동적인 스토리가 있다. 그 다음에 생생한 전쟁의 질감이 잘 묘사됐다. <태극기 휘날리며>는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이런 질감이 표현된 영화다. 난 유럽의 세일링(selling) 담당자들과의 대화 중, 전쟁영화를 언급해야 할 때는 <태극기 휘날리며>를 떠올린다. 이번 <집결호>를 위해 <태극기 휘날리며>의 스텝들이 많은 준비를 했고, 그 때보다 더욱 기술이 발전된 덕분에 <집결호>에 많이 응용됐다. <집결호>의 하이라이트 몇 장면을 중국의 스텝들에게 보여줬었는데 반응이 좋았다. 한국의 스텝들을 다 중국으로 초청해서 같이 하고 싶다는 의사를 보일 정도로. 구체적으로 지금 기획되고 있는 오우삼 감독의 <적벽>이나 루주안 감독의 <남경대학살>같은 영화에서도 적극적으로 그런 의견이 나올 정도다.

그런데 <태극기 휘날리며>는 외국의 힘을 빌리지 않고 한국의 기술로 완성된 영화다. 그런 의미에서 중국의 기술로만 완성하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을 법도 한데?
강제규 감독이 <태극기 휘날리며>를 찍을 당시, 한국 스텝으로만 이 영화를 만들어 내겠다는 결심을 하고 촬영에 임했다고 들었다. 그렇게 <태극기 휘날리며>를 찍었기 때문에 좋은 스텝들을 양성할 수 있었고 이렇게 수준 높은 스텝들이 한국에 많아졌을 거다. 그런 면에서 강제규 감독이 한국과 아시아 영화에 공헌한 부분이 많다. 한편으로 강제규 감독이 그런 결심을 했던 건 일종의 모험이었고 큰 용기가 필요했을 거다. 나도 처음엔 <집결호>의 모든 스텝들을 중국인으로 쓰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했지만 중국의 스텝들은 솔직히 그럴 정도의 수준에 많이 부족했기 때문에 모험하기에 위험부담이 너무 컸다.

헐리웃 스텝과의 작업은 생각해보지 않았나?
만약 <집결호>를 한국의 스텝들과 할 수 없었다면 헐리웃의 스텝들을 초청하려 했을 거다. 하지만 그들은 너무 비싸다. 그리고 만약 헐리웃의 스텝들이 중국까지 오려고 할 것인가도 미지수다. 그들에게 중국은 생소해서 위협적 일수도 있고 중국 시장의 성장을 생각한다면 경계심이 생겨 도움을 주려 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한국 스텝과의 작업에 문제는 없었나? 언어소통 이라던지.
별로 그런 건 없었다. 좋은 통역도 있었고. 영화인들과 작업하다 보면 꼭 말을 다하지 않고
절반만 이야기해도 무엇을 말하는 건지 다 안다. 한국 영화계에 기술적으로 훌륭한 인재들이 많은 까닭은 한국이 그런 블록버스터급의 영화들을 먼저 시도했기 때문이다. <집결호>를 통해서 본 한국 스텝들은 할리웃의 수준, 혹은 그 이상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한국이 소규모 영화의 제작만을 지향했다면 이런 인재들은 없었을 것이다.

의아했던 건 무술감독도 한국인이라는 것이다. 무술감독은 중국에도 많고, 오히려 더 유능할 것 같은데?
만일 쿵후 같은 무술 영화를 찍었다면 중국 무술 감독을 썼겠지만 <집결호>는 전쟁 영화이기 때문에 전쟁 영화에 정통한 좋은 무술 감독을 찾았지만 중국에 그런 분야에 걸맞은 무술 감독이 없었다. 그리고 폭파 장면 같은 위험한 특수효과를 위해서는 무술감독과의 싸인이 잘 맞아야 촬영 시 안전성 문제가 많이 줄어든다. 언어상의 소통이 되지 못해 사람이 다칠 수도 있으니까. 한국의 스텝들과 작업했다는 것도 하나의 이유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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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작 형태의 영화 제작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이는 헐리웃에 대항하는 비헐리웃 영화계의 대안이 될 수 있다. 이런 합작영화들이 앞으로 지닐 수 있는 비전을 생각해본다면?
합작영화는 좋은 발전이라고 생각한다. 예전에 홍콩과 중국의 합작영화가 많이 만들어졌고, 그 결과 현재 중국은 홍콩 감독들의 주류시장이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과 중국 영화계가 기술 교류를 하는 것도 좋은 일이다. 한국과 중국이 각자 서로의 기술을 교류하면서 서로의 장점을 취하고 시장을 넓히는 계기가 될 테니까. 난 종종 한국 드라마를 부모님께 권해드리는데 그럴 경우 부모님도 잘 보시더라. 그런데 아마 미국 드라마를 권해드리면 좋아하진 않을 것 같다. 아무래도 같은 동양 사람이니까 가족에 대한 관념을 비롯해서 문화적 공통점이 많기 때문에 공감대의 여지도 큰 것 같다. <집결호>는 아시아 영화인들이 함께 만든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중국의 스텝들이 한국 스텝들과 함께 작업하며 한국 스텝들의 우수한 기술력과 프로다운 의식수준을 많이 배웠을 거다. 결국 공동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긍정적인 현상인 셈이다.

오우삼 감독은 최근 본국으로 돌아와 <적벽>을 기획 중이지만 중국 감독 중 헐리웃에 진출해 성공한 대표적 케이스다. 본인도 헐리웃에 진출해서 영화를 만들어보고 싶은 생각은 없나?
헐리웃의 기술을 이용한다거나 자본을 끌어들여 찍는 건 괜찮다. 하지만 난 중국의 영화를 찍고 싶다. 왜냐면 난 중국의 생활에 익숙하고 그런 모습을 잘 찍어내기 때문에. 내가 헐리웃에 가서 미국의 생활을 영화로 담아내는 건 어색한 일이다. 그런 건 미국 감독들이 더 잘 할 테고. 한국 영화는 한국 감독들이 만들어야 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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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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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민용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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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은지 인터뷰

interview 2008. 5. 30.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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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거리 캐스팅으로 모델 활동을 시작했다고 들었다. 연기를 하게 된 계기는?
그 당시엔 모델들이 찍은 카다로그 같은 걸 보고 배우 섭외가 들어오곤 한다. 나도 예외는 아니었고.

다른 모델 출신 배우들처럼? 예를 들면 이나영 씨라든지.
이나영 언니는 나보다 몇 년 앞에 시작했고, 난 거의 마지막에. 배두나 언니, 공효진 언니나 다들 그런 식으로 먼저 배우로 진출했다. 나도 결국 막차를 탔고.

그럼 첫 영화가 된 <눈물>이 그렇게 찍게 된 건가?
그렇지. 그런 식으로 오디션 보러오라는 접촉이 왔다. 그리고 오디션 봤다가 출연하게 됐지.

그게 벌써 7년 전이다. 한마디로 배우경력이 7년차란 뜻인데 이런 말 듣게 되니 감회가 새롭진 않나?
아직까진 배우로서의 연륜이 쌓인 게 아니기 때문에 아직은 항상 신인 같기만 하고, 뭐 그렇지. 정말 많이 알려져서 유명세를 치르는 것도 아니니까.

그래도 출연 작품수가 꽤 많다. 영화도 10편 가까이 찍었고, 드라마도 세 편 정도. 그런데 그 중, 임상수 감독 영화는 2편이다. 임상수 감독님과의 특별한 친분이 생기진 않았나?
직품할 때마다 배우와 감독이란 사무적인 관계로 만났을 뿐, 그 이외에 사적으로 만나거나 연락하고 지낸 적은 없어. 아무래도 <눈물> 당시엔 내가 너무 어릴 때라 그다지 긴밀하게 친해지지 못한 탓도 있고.

첫 영화인 <눈물>에 노출씬이 있었어. 어린 나이에 엄청난 부담 아니었을까?
그땐 사실 너무 어렸을 때라 노출씬이 있을 거라 생각도 못 했었다. 노출해야 된단 이야길 들었을 땐 갑작스러워서 눈물이 막 나더라. 막 울다보니 촬영이 지연될 정도였지.

<눈물>을 찍기 전에 특별히 연기를 준비했던 것도 아닌 것 같은데 어떻게 연기를 했다.
처음엔 그냥 시키는 대로 했지, 아마? 그냥 그 땐 연기도 몰랐고. 사실 내가 배우나 연기자가 되겠단 생각을 전혀 못했을 때 갑자기 그런 기회가 왔었고. 우선 그 당시엔 한번 해도 좋을 것 같단 생각에 무턱대고 했지. 어떤 사람에게 그런 기회가 쉽게 오겠어. 결국 지금은 운명처럼 받아들인 셈이지만, 그 당시엔 좋은 기회라 생각했고 그래서 많이 따라갔고, 또 한편으론 하고 싶단 의욕을 많이 비췄기 때문에 많이 배울 수도 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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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눈물>은 조은지 본인에겐 연기자라는 터닝 포인트라고 봐도 좋다는 이야기인데, <아내의 애인을 만나다>는 조은지의 두 번째 터닝 포인트가 아닐까?
같은 생각이다. 사실 처음엔 <아내의 애인을 만나다>를 너무 하고 싶어서 덤볐지만, 그 이후엔 연기하며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왜냐면 30대 중년이 느낄법한 뼈아픈 심리를 내가 보여줘야 한다는 부분에서 부담감이 컸다. 때문에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고. 촬영 내내 오케이 사인이 나도 굉장히 신경 쓰였고. 마치 뒤가 구린 양? (웃음) 그래서 정말 ‘내가 잘 해서 오케이 사인을 받은 건가, 아니면 그냥 포기하신 건가.’ 이런 생각도 많이 했었고. 그리고 내가 스스로 항상 소옥의 심리를 마지막까지 유지해야 했기 때문에 그런 부분에서도 좀 쉽지가 않았지. 사적인 자리에서까지 그런 감정을 놓을 수가 없어서 굉장히 힘들었던 것 같다. 그 생활이. 그래도 노력했던 부분들을 어느 정도 많이 봐주시는 거 같아서 다행이다. 사실 내가 그 전에 해왔던 역할들이 조금 도발적이고, 캐릭터 있는 연기를 했기 때문에 더 눈에 띠는 것 같기도 하고.

하긴 <달콤, 살벌한 연인>이나 <파리의 연인>에서도 두드러지게 눈에 띠더라.
그래서 스스로에게 조금 변화를 줄 필요가 있단 생각을 하게 되니 많이 부담스러웠지. 하지만 오히려 이전에 전혀 다른 연기를 보여줬기 때문에 이번의 연기가 사실 어색하게 보일 수도 있지만 다른 뭔가가 묻어있다고 생각하게 된 것 같다. 내 노력이 묻어난다는.

유부녀 역할은 두 번째다. 02년도 <철없는 아내와 파란만장한 남편, 그리고 태권소녀>(이하 <철없는>)에 이어서. 정말 그 땐 철없는 아내였는데, 이번엔 나름대로 성숙한 느낌이 물씬 풍기더라.
그런데 내가 솔직히 <철없는> 이야기만 나오면 굉장히 마음이 아프다. 왜냐면 사실 너무 좋은 영화였는데 내가 망친 것 같아서. 훌륭한 감독님의 좋은 연출과 좋은 시나리오, 그리고 좋은 연기자들과 함께 할 수 있었는데 내가 그 역량을 못 쫓아갔다. 그런 반면에 난 너무 큰 것을 얻었다는 생각이 들고. 물론 <철없는>을 의식하며 <아내의 애인을 만나다>를 한 건 아니지. 솔직히 <철없는> 땐 중년의 원숙함이 드러나야 할 상황이 주어지지 않았지만 어느 정도는 보여줘야 했는데 그게 사실 안 됐거든. 난 다시 찍었으면 좋겠단 생각이 들 정도로 후회가 남을 만큼 너무 좋은 작품이다.

후회가 깊게 남았나보다.
우선 죄송할 따름이지. 분명 더 잘 할 수 있었기 때문에 그런 후회도 남고. 솔직히 그 당시 한국에선 쉽게 볼 수 없는 영화라서 사람들이 받아들이기 힘든 영화였을 것 같긴 했는데 난 시나리오 보면서 너무 재밌더라. 한국에서 이런 영화가 빨리 자리 잡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런데 의욕에 비해 실력이 부족했던 거지.

다르게 생각해보면 그때보다 지금 배우로서의 욕심이 더 생긴 탓일지도 모른다.
그럴 수도.

<아내의 애인을 만나다>라는 묘한 제목의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 기분이 어땠나?
솔직히 난 너무 의아했다. 내가 소옥 역을 봤을 때, 기본적으로 지금까지 해왔던 나의 연기와 성향 자체가 틀렸던 역할이었기 때문에 우선 첫 번째로 탐이 났고, 두 번짼 훌륭한 시나리오였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영화로 보인 만큼 혹은 그보다 더 훌륭한 시나리오였고 그래서 너무 재미있겠단 확신이 생겼다. 무거운 소재임에도 무겁지 않게 잘 풀어갔단 생각이 들어서 이 작품을 꼭 하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일단 시나리오보기 전에 제목만을 본다면 꺼림칙하진 않았을까? 불륜의 뉘앙스가.
일단 그 당시에 그냥 제목만 보고 정말 세다는 생각이 들었지. 그 밖에는, 글쎄. 사실 <아내의 애인을 만나다>가 불륜이란 상황에 놓여있는 사람들한테 보여주기 위한 영화는 아니니까. 물론 그런 부분에서도 공감할 수 있는 코드가 있겠지만 모든 사람들이 그냥 영화로 볼 수 있는 작품이기 때문에 난 그 캐릭터에 대해 욕심이 났었고, 내용 자체에서도 크게 거부감이 들지 않았다. 정말 재미있겠단 생각만으로 봤기 때문에.

나이차가 많이 나는 선배 연기자 두 분과 함께 출연했다. 나름대로 좋은 경험이었을 것 같은데.
일단 알다시피 두 분과 나이차이가 많이 나는데, 내가 나이가 많게 나오는 역할이었잖아. 연기를 하는 상황에서 날 그냥 아줌마로 봐주셨기 때문에 나도 거기에 많이 맞추려 했고 우선적으로 선배님들이 내 눈높이에 많이 맞춰주셨다. 그런데 사실 내가 연배가 많은 선배님들과의 연기 경험이 많거든. 의외로. 그런데 <아내의 애인을 만나다> 같은 경우는 인물이 많지 않고 대부분의 씬이 한 공간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이야기도 많이 나눴었고 덕분에 연기에 대해 많이 배우기도 했고.

많이 친해졌을 법한데.
지금은 말장난을 칠 정도로 친밀해졌다. 굉장히 좋으신 분들이라 많이 배려해주시더라. 사실 촬영 당시엔 서로 예민해지는 부분들이 많아서 그냥 일상적 대화만 했고, 깊게 나눌 수 있는 대화는 영화 끝나고 나서 더 많이 하게 된 것 같다. 크랭크업한 뒤에 부산 국제 영화제 같은데서 만나서. 좋은 소식이 많이 들려와서 그렇게 될 수 있었던 거 같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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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우연히 미니 홈피를 가봤는데.
다들 가 보셨나? 어째 다들 그러던데.

모 포털 사이트에 대놓고 떠 있다. 인터뷰 준비하는 입장에서 안 가보고 배길 수 있나. (웃음) 조은지 미니홈피 이렇게 당당히 떠있는데. (웃음) 그런데 영화 좋아하는 것 같더라. <아내의 애인을 만나다>를 찍는 동안, 두 선배님들은 영화를 통해 영화를 떠난다. 본인은 방에서만 찍어서 서운하지 않았을까?
사실 내 촬영분량이 없는데 촬영장에 놀러갔었다. 두 번 정도? 하지만 서운하고 그런 건 없었는데?

그래도 조금이라도 부러운 기분이나마 들지 않았을까?
아유~! 이거 뭐 부럽다고 대답해야 되는 건가? (웃음) 그건 아닌데. 아무 감정 없었어요.

협조를 안 해주시네. (웃음) 그럼 화제를 전환해서, 제작비가 많이 부족한 환경에서 영화를 찍었다고 들었다. 김태식 감독님은 집까지 저당 잡혔다고 간담회 때 밝히던데. (웃음) 어쨌든 그 결실이 드디어 빛을 본다. 외국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았고. 나름대로 뿌듯하겠다. 개봉한다니.
지금 이 영화 찍은 지 2년 만에 개봉하는 건데, 사실 처음엔 이런 영화는 개봉을 해야 되는 영화니까 개봉을 할거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1년이 지나도록 가물가물해지니..다들 열심히 찍었는데 잊힐 것 같다 생각하니 사실 마음이 너무 아팠다. 물론 모든 작품들이 그렇겠지만 정말 열심히 찍었기 때문에 이걸 선보일 기회조차 얻지 못하게 될 것 같아서 되게 서운하고 그랬었거든. 근데 해외에서 너무 좋게 봐주니까 그런 계기로 인해 기회가 주어졌다는 것 자체가 나로서는 다행이지.

나름대로 외국에서 인정받고 있는 건 참 좋은 일이면서 다행이다. 그렇게 생각되는 것도 한편으론 씁쓸하지만. 그런데 <아내의 애인을 만나다>가 첫 영화인 김태식 감독은 현장에서 어떤 편인가. 지도를 많이 해주시는 편?
우선, 박광정 선배님의 연기에 대해서 감독님 자신이 너무 만족하고 계셨지만 난 바꿔야 되고 버려야 될 부분이 많았다. 감독님께서 그런 부분에 대해 계속 주의주시고 조언해 주셨다. 그게 많이 힘이 됐지. 그리고 감독님이 굉장히 재미있는 편인데 어느 부분에선 심오하다. 무거움과 가벼움의 그 중간이랄까. 그런 분이라 특별히 뭔가 어렵지는 않았다. 워낙 상황에 잘 맞춰주셔서. 그리고 덕분에 마음이 잘 맞아서 영화가 잘 된 거 같아. 내 생각엔.

좀 섬세한 사람인 것 같던데. 그런데 의외로 위트도 많은 편 인가 보다.
아, 맞다. 되게 섬세하다. 그래서 가벼운 농담은 전혀 못하신다. 주로 이야기를 듣고 한 박자 뒤에 웃게 되는 그런 농담. 사람을 생각하게 하고 ‘아~!’하면서 머릴 탁 치게 되는.

하이 레벨 개그를 즐기시는구나.
맞아. 하이레벨, 혹은 블랙코미디? (웃음)

한영애 씨의 ‘누구 없소’를 부르던 장면이 인상에 남는다. 노래 좋아하나?
나 노래방 되게 좋아한다.

즐겨 부르는 노래는?
이글스(Eagles)의 데스페라도(desperado).

의외로 감성적인 느낌인데? 좀 시원시원한 노래 불러제낄 거 같은데.
배우는 누구나 다 감성적이다. (웃음)

사실 조은지는 <파리의 연인>이나 <달콤, 살벌한 연인>의 왈가닥 이미지에 가까운 사람 같다.
사실 지극히 평범한데. 그냥 매일 밝은 사람은 아니고. 음, 뭐라고 해야 하나. 그냥 되게 평범해. 웃길 때 웃고, 안 웃길 때 안 웃고. 하긴 이건 다 그렇겠다. (웃음) 그냥 스트레스 받을 땐 짜증내고. 그런데 대부분의 배우들도 그렇다. ‘저 사람 정말 특이해.’ 이럴만한 배우는 만나본 기억이 없거든. ‘저래야 배우 되는구나.’라고 생각될 만한 특별한 면은 없는 것 같다. 어쩌면 그래서 더 대단한 것 같기도 하고.

그런데 캐릭터가 강해보이는 외모다.
맞다. 외모!

그래서 더 오해가 생길 수도 있는 것 같다.
사실 모든 일에 있어서 어지간하면 웃어야 되고 그래야 좋은 인상을 남길 수 있다. <눈물>을 찍을 당시, 굉장히 화기애애했다. 그 같이 출연하는 배우들도 또래이고, 감독님도 많이 장난치면서 우리한테 많이 맞춰주고. 근데 현장의 분위기와 무관하게 촬영 때는 ‘아, 이세계가 보통이 아니구나!’라고 생각이 들 정도로 삭막해진다. 그때 당시엔 내가 웃고 싶지 않은데 웃어야 할 때가 너무 많았다. 사실 살짝 고민했던 게 내가 이 직업이 맞는 건가 고민하기도 했다. 웃지 않아도 부드러운 인상을 보여주는 사람이 있는 반면, 난 웃지 않으면 화난 것 같고 그 자리가 불편해 보인다는 오해를 산다. 그 공간에 있는 사람들의 분위기에 맥을 끊어버리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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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마음은 나도 충분히 이해할 것 같은데! 나도 사실 아무렇지 않은데 왜 안 좋은 일 있냐고 물어서 곤란할 때 많다! (웃음)
반가운데! (웃음) 어쨌든 그래서 그 후론 많이 웃고 그러려고 노력했던 것 같아. 그래서 처음엔 힘들었는데, 확실히 웃는 게 좋긴 좋은 것 같다. 즐겁지 않아도 웃으며 일하면 정말 이게 주문을 외우는 것처럼, 주문에 걸린 것처럼 정말 사람이 즐거워진다.

아줌마처럼 뽀글거리는 파마도 했다. 아줌마가 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을까?
음. 우선은 목소리. 뉘앙스나 목소리 톤 자체, 그리고 아줌마들이 할 수 있는 특유의 행동 있잖아. 제스처 같은 경우에 신경을 썼지. 그리고 내가 결혼은 안했지만 연애는 했다. 그래서 똑같다고 생각했다. 정말 사랑하는 사람이 날 두고 다른 여자를 만나고, 그걸 눈치 채게 되고, 또 그걸 모른 척 하고, 내지는 용서하고, 그런 심정을 많이 인정하고 끌어갔다.

사실 소옥이라는 여자가 남편의 바람을 알면서도 많이 묻어가는 느낌이 들지 않나?
어떤 부분에서?

일단 영화에서 직접 어필하는 건 아니지만 그런 뉘앙스가 보인다.
아, 그 전에 잘 넘겨줬다. 그런데 또 이번에 그런 상황이 터졌구나하는?

소옥이 태한에게 한탄하는 씬에서 많이 보이더라. 그렇게 생각하니 소옥이란 여자가 미련해보이지만 좋아하는 감정이 남으면 어쩔 수 없겠단 동정도 생기더라. 본인은 그 입장을 어떻게 이해했을지 궁금한데.
일단 정신 차려야지! (웃음) 그런데 이건 사람이라면 다 똑같은 거 같다. 사랑을 하게 되고 정말 이 사람 없인 못 살겠다는 기분, 정말 콩깍지가 씌워지는. 물론 냉정해서 감정을 잘 수습하는 분들이 있는 반면, 그 사람한테 목매는 사람도 있다. 소유욕 같은 게 강한 사람들 있거든. 그게 굉장히 크기 때문에 ‘그래도 난 이 사람을 가질 거야.’라는 생각을 하는 거지. 그리고 소옥이 그 후자 쪽이었던 거고. 뭔가 나한테 실수를 했어. 그럼 ‘다신 너 안 봐.’하고 돌아서는 사람이 있는 반면, 돌아서도 이 사람은 사랑하니깐 다시 돌아보는 거지. 그리고 어느 정도 동정도 있었던 거 같다. 중식에 대한.

중식 같은 경우는 ‘불륜은 없고 사랑만 있다’는 캐릭터다. 여자로서 그런 남자를 동정할 수 있단 말인가?
아으~! 솔직히 이해 안 되지! (웃음) 근데 사람들은 다 남이 하면 불륜이고 자기가 하면 연애라고 하듯, 자기가 그 상황에 있지 않은 이상 그걸 받아들이긴 힘들다. 그런데 난 연기로써 그 상황에 놓여 있었고 그런 부분을 이해해야 했던 거지.

사실 의도적인 건 아니지만 태한은 소옥을 통해 중식에게 복수를 하게 되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어쩌면 그건 소옥도 예상에 없던 한 번의 외도를 통해 남편의 외도에 역으로 복수를 하게 되는 것처럼 느껴지더라.
그럴 수도 있지. 같은 상황에 있는 사람들끼리 그 상황에 대해서 같이 이야기하게 되다보니. 왜 그 중간에 있잖아. ‘손님 와이프 바람났어요?’ 하고 소옥이 낄낄대다가, 태한이 ‘네.’ 라고 했을 때 엄습하는 침묵의 동질감처럼. 물론 감정에 의해 순간 이끌릴 수 있겠지만 은밀한 복수감도 있었던 거 같다. ‘너만 딴 여자랑 자냐? 나도 딴 남자랑 잔다’는. 태한 역시도 소옥이 중식의 아내란 걸 알고 왔지만 ‘내 아내와 잔 그 놈의 부인과 자면 복수하는 나도 거다’란 생각 같은 거 없이 동침하는 거니까. 그래서 그런 부분이 컸던 거 같아요.

뜬금없지만 나중에 진짜 아줌마가 되면 어떻게 살 거 같나?
나는 뭐, 그냥 잘? (웃음) 그냥 아줌마 되면 잘 살려고 노력해야지.

그럼 어떤 아줌마가 되고 싶어요?
네에~?? (웃음) 그냥 여유롭게 사는 아줌마 정도?

생각해보면 <철없는>도 단순히 인간관계만을 보면 삼각관계였다. 그런데 <아내의 애인을 만나다>도 결과적으론 삼각관계다. 본질은 달라도 외면적인 규격이 비슷하니 비틀어서 비교를 해볼 수도 있지 않을까?
<철없는>은 레즈비언, 즉 동성간의 사랑이 소재였기 때문에 <아내의 애인을 만나다>와는 비교할 수 없는 거 같다. 그리고 <아내의 애인을 만나다>는 막판에 그래서 그렇지, 그 이외엔 그런 인상이 없잖아. 사실 하룻밤의 불타는 사랑정도에 그칠 뿐이지 소옥과 태한이 끝까지 연을 이어가겠다는 의지가 보이는 것도 아니고. 그리고 태한과 소옥이 잠을 잤다는 사실도 의아하고.

명확하지가 않지.
맞다. 그런 게 명확하지도 않으니 한편으론 관계를 놓고 말하는 건 무의미한 것 같다.

일본과 미국에서 리메이크 된다고 하던데, 민망한 질문이 될 수도 있겠지만 본인 역할을 누가 해줬으면 좋겠단 배우 있나?
아하하!! 아~, 창피해. (웃음) 누가 했으면 좋을까? 근데 아무래도 적당히 젊은 여자가 했으면 하지. 난 개인적으론 여자 배우 중에 메릴 스트립을 좋아하는데 아무래도 메릴 스트립은 나이가 좀. (웃음) 케이트 윈슬렛? 푸근하면서도 매력적이고. 정말 아줌마스런 역할도 잘 어울릴 것 같아. 비디오 상으로만 봐도.

얼마 전 <리틀 칠드런>이 기억난다. 꽤 어울리겠는데?
그렇지! 그분한테는 죄송하지만! (웃음)

7년이면 나름대로 오래 활동한 셈이다. 그 동안에 애착이 간다거나 기억에 남는 캐릭터 있을까?
사실 모든 캐릭터가 다 애착이 가지만 그중에 나와 가장 비슷했다고 생각되는 게 있긴 하다. 내가 일본 영화를 한 번 찍었었다. <호텔 비너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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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기 씨와 함께 나왔던?
맞다. 그 영화에서 내 역할이 극중에선 나름 밝지만 꿈을 이루기 위해 발버둥을 치는 면이 두드러진다. 그런 부분에서 솔직히 이 친구가 되게 와 닿는 것까진 아니었는데 그냥 좋더라. 사실 그 때는 그 모습이 내 상황이었던 것만 같았다. 배우로서 길을 헤매는 기분이랄까. 그래서 그런 부분에 대한 애착이 많이 갔다. 그리고 아까 기자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내 두 번째 터닝 포인트가 된 <아내의 애인을 만나다>의 소옥 연기도 깊게 애착이 간다.

지금 캐스팅 돼서 준비 중인 영화가 있는 걸로 안다.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핸드볼 영화고 여자이야기다. 임순례 감독 작품이기도 하고. 그런데 예전에 <아프리카>로 여자이야길 한적 있다.
그게 내 두 번째 작품이었지. <아프리카>가.

그런데 뭔가 반복되는 느낌이 든다. 첫 영화였던 <눈물>과 이제 개봉할 <아내의 애인을 만나다>가 저예산의 독립영화로 작품성을 인정받았다면, 두 번째 작품인 <아프리카>와 차기작인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은 여자이야기라는 것.
그러네! 그렇게 이야기하시니까 맞네! (웃음) 우연이지. 뭐, 좋은 작품들이고.

김정은 씨와는 두 번째로 만난다. <파리의 연인>이후로.
감회가 새롭지. 사실 드라마 같은 경우는 되게 빨리 진행되니까 서로 이야기를 할 자리도 없고 여유도 없었다. 그런데 요즘 같은 경우엔 핸드볼 연습 끝나고 나서 수고했다고 격려해주면서 같이 이야기 할 수 있는 자리가 많아져서 우선은 좋다. 그리고 정은언니를 내가 어렸을 때 봐선지 항상 날 어리게만 본다. ‘네가 몇 살이라고? 말도 안 돼!’ 이러면서. (웃음)

처음 시작은 소녀였는데.
소녀? 양아치였지. 솔직히. (웃음)

너무 솔직한데. 나이는 소녀니까 그냥 소녀로 하자. (웃음) 어쨌든 이제 아줌마까지 왔다.
그럼 내년엔 할머니까지 가려나? (웃음)

본인은 자신이 어디정도까지 온 거 같나? 인생에서, 배우에서, 여자에서.
인생에서는 4분의 1정도 왔나? 그리고 여자로선..뭐라고 할까, 숙녀? (웃음) 그리고 배우는 한참 멀었지.

뭔가 하고 싶은 연기나 역할, 뭐 그런 거 없나?
사실 난 5년 전부터 똑같았다. 중성적인 이미지, 힐러리 스웽크처럼! <소년은 울지 않는다>에서 보여줬던 그거. 사실 5년 전부터 인터뷰를 통해서 어필했는데 아무도 안 불러준다! 그런데 주변에서 종종 넌 눈이 커서 무서운 역에 어울리니 공포물이나 해라! 그러더라. (웃음)

혹시 좋아하는 배우 있나? 구차하게 롤 모델까진 아니라도.
내가 친분이 있어서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난 솔직히 이야기하면 강혜정과 공효진. 물론 그 사람이 출연한 모든 작품들이 깊게 와 닿은 건 아니지만 그녀들의 최근 작품이나 대표작이 될 만한 작품을 보곤 욕했다. ‘미친년이야, 너는.’ 이러면서. (웃음) 정말 대단한 거 같다. 물론 더 훌륭한 연기 보여주는 분들이 많지. 그런데 지금 내 나이 또래에 저만큼의 성향이 있고 그걸 저만큼 뽑아낼 수가 있다는 것 자체가 난 되게 존경..같은 나이에 이런 말하려니 자존심 상하네. (웃음) 어쨌든 그러니까 대단하잖아! 솔직히 강혜정이 찍었던 작품은 세 번부터 여섯 번까지 다 봤거든. 한밤중에. 특히 강혜정의 <연애의 목적>이나 <올드보이>는 한 여섯 번 봤다. 그래도 볼 때마다 정말 대단하다.

연기자로서 배울 점이 많다는?
그니까 용기 있는 사람! 솔직히 강혜정이란 친구는 정말 배우라는 게 딱 맞는 사람이다. 그리고 진짜 용기 있는 배우다. 난 항상 강혜정을 보면 항상 배워야 될 것 같고 한참 멀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어떤 연기자들 같은 경우엔 항상 비슷한 이미지의 연기만 보여주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한 작품에 모든 걸 다 뽑아내지 않고 다음 작품을 위해 적당히 아껴두는, 머리로 생각하는 분들이 있다. 마음으로, 가슴으로 연기하는 배우들도 많지만 강혜정이란 배우는 한 작품에 혼신을 다하는 것 같다. 막말로 혼신을 다한다는 게 쉬운 건 아니거든. 그런데 강혜정은 그런다. 그래서 대단하구나라는 생각이 드는 거고.

상당한 호감인가보다. 강혜정 씨의 연기가.
난 진실된 게 좋다. 왜 그런 거 있잖아. 관객의 눈에 띠는 연기를 고민하기보단 남들 눈에 띠지 않아도 뒤에서 빛을 발하기 때문에 눈에 들어오는 연기를 주시하고 본다. 그리고 그런 걸 할 수 있는 게 참 대단한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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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젊은 나이인데 좀 평범하면서도 예쁘게 보이는 여자 캐릭터를 한번쯤 해보고 싶진 않을까?
아니, 내가 민망할 것 같아. (웃음) 사실 난 나와 친한 사람, 그러니까 내 지인들한텐 상당히 애교를 떤다. 귀여움을 피우는 거지. 그리고 그것도 사실 여성스러운 매력이잖아. 그런데 그런 것까진 할 수 있어도 굉장한 비련의 여주인공 내지는 굉장히 예쁘고 섹시한 캐릭터는 솔직히 좀 아니다. 솔직히 그건 아니지. (웃음) 그런데 <미녀는 괴로워>에서 김아중은 참 대단하더라. 본인 자체가 너무 예쁜데 그런 역할을 그렇게 멋지게 소화해냈다는 게 참 대단하더라.

그런데 본인도 감초 같은 역할을 많이 했다.
한약이다. 난, 몸에 좋은. (웃음)

그리고 아직 자신은 배우로서 연륜이 쌓이지 않았다고 했다. 앞으로 더 많은 경험을 하고 연륜이 쌓이면 하고 싶은 역할이나, 혹은 배우로서 욕심을 부리고 싶은 꿈이 있나?
아까도 말했듯 <소년은 울지 않는다> 같은 중성적 이미지가 될 수 있겠지. 물론 어떤 배우들이 됐건 역할의 비중 같은 부분에선 어느 정도의 욕심이 다 있기 마련이지. 내가 좀 더 잘 할 수 있고, 좀 더 많이 보여서 또 다른 기회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나도 그런 욕심은 많은데 솔직히 아직까진 그래서는 안 될 것 같다. 아직 배워야 할 것들이 많이 있기도 하고. 지금은 되게 어린 배우들이 많이 데뷔한다. 어린 친구들이. 어떻게 보면 내 나이를 봤을 때, 난 중간에 딱 걸쳐있는 그런 배우라고 생각해도 될 것 같다. 어쨌든 지금 아직도 난 배워야 할 게 너무 많으니까, 연기라는 것 사실 잘 모른다. 그래. 감초. 좋지.

나름대로 맛을 내려면 감초가 필요하니까.
그럼. 영화가 맛을 내려면 나같은 감초가 필요하지! (웃음)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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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민용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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