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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2008.05.30 민지혜 인터뷰
  5. 2008.05.30 지진희 인터뷰
  6. 2008.05.30 황보라&유아인 인터뷰
  7. 2008.03.19 <인터뷰>캐스팅만큼이나 절묘한 리듬 감각

박지아 인터뷰

interview 2008. 5. 30.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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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소하더라.
영화 자체가?

아니, 박지아란 사람이. 내가 연극을 잘 보는 편이 아니기도 하고. <숨> 이전에 김기덕 감독의 영화 두 편에 출연했다는 사실 말곤 확실한 게 없더라.
그래. 내가 생소했겠지. (웃음)

일단 <숨>의 연은 평범한 캐릭터가 아니었는데 캐릭터를 이해하는 게 쉽진 않았을 것 같다. 물론 김기덕 감독의 영화가 다 그렇지만. 예전에 출연한 <해안선>이나 <봄여름가을겨울 그리고 봄>도 그랬듯이.
쉽지가 않았다. 항상 그렇듯이. <숨>은 표면적으로 남편의 바람으로 인해 사건이 벌어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내가 캐릭터를 이해하는 관점은 그보다 깊어질 필요가 있었다. 남편의 바람 때문에 발생한 치정문제로는 납득이 안 되더라. 그래서 과거를 스스로 설정하고 거슬러가야 했다.

캐릭터의 과거를 스스로 가정한 건가?
그런 셈이지. 이 여자에게 분명 결혼 전, 연애기간이나 중매 기간이 있었을 테고 결혼해서 애를 낳는 어느 정도의 세월을 짐작해가는 가정 하에서부터 시작을 했다. 이 여자가 이렇게 된 데에는 남편하고의 결혼 생활, 혹은 그 이전에 남편과는 상관없었을 수도 있는 과거의 기억들, 즉 유년 시절이나 가정사에 대한 개인적인 기억 같은 것들. 아예 캐릭터의 처음을 설정하고 상상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이런 이해를 지니고 있어야 드라마가 엉성해지지 않을 것 같았다. 그리고 그런 마음을, 짧은 기간이지만 촬영하는 내내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영화에서 드러나지 않는 캐릭터의 내면까지 다 받아들이고 생각하려고 한 거지. 물론 표현되는 게 쉽진 않으니까 그런 것들이 영화에선 단순히 그저 그렇게 표현됐을 수도 있겠지만, 난 <숨>을 위해서 캐릭터의 이전 상황들을 좀 많이 갖고 가는 것으로 시작해서 촬영에 들어갔던 거다.

<숨>을 보고 나니, 만약 ‘<시간>의 연인이 <숨>의 부부라고 생각한다면 어떨까?’란 생각을 했다. 그 지독한 사랑이 이런 애증으로 발전했다 생각하면 그것도 재미있을 거라고.
아까 말씀했던 것과 비슷한 맥락 같은데 내 상대역인 하정우 씨와 촬영하며 의견을 많이 교환했었다. 하정우 씨 같은 경우는 나보다 시나리오를 먼저 받았었고 시나리오가 조금씩 변해가는 과정을 봤던 상황이기도 했고.

하정우 씨보다 캐스팅이 늦었나보다.
하정우 씨가 이미 되어있었고 내가 나중에 된 거지. 어쨌든 정우 씨한테 내가 ‘이게 단순히 남편의 바람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더니 ‘자기도 여러 가지 추론도 해봤다’고 하면서 의견을 내놓는데 내 생각하고 많이 다르지 않더라. 그런 식으로 그 이전 상황들을 추측했지만 그 부분이 아까 말처럼 <시간>이 될 수도 있다. 어떤 한 사람의 작품이 지난 작품들과 연관을 가지면서 맥락이 이어질 수 있는 것처럼 김기덕 감독님의 영화도 그런 것 같다. <숨>의 부부관계를 놓고 생각해보면 <시간>과 연관 지을 수도 있고, 또 4계절을 묘사하는 걸 보면 <봄여름가을겨울 그리고 봄>을 그려볼 수도 있고, 또 여자가 추후에 남편의 아내로 복귀하는 양상을 보면 <해안선>이 떠오르는 부분이 없지도 않다. 작품 간에 일부일지라도 연관 지을 수 있는 코드들이 존재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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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에서 찰흙 공예 하는 장면 있잖나. 설마 직접 만든 것?
아, 그건 작가분이 만들어 주신 거다.

그래도 나름대로 작품에 손질하는 모습이 나오던데, 원래 취미가 있던 건 아닌가?
촬영 전, 그런 부분에 대한 대비가 필요할 것 같아서 조금 준비를 했다. 다행히 아는 분 중 공방하는 분이 계셔서 어설프지 않으려고 며칠 공방을 다니면서 연습을 하고 간단한 기술을 익혔다. 물론 쉽지가 않더라. 그냥 간단하게 감독님이 써준 시나리오 내에서 내가 따라할 수 있는 걸 배워서 흉내 낸 것뿐이지. 그리고 그런 걸 하려면 손톱을 기르면 안 된다 그래서 손톱도 다 잘랐었다.

일단 김기덕 감독 영화에 세편이나 나왔다. 그리고 세편의 영화에서 비중이 크건 작건 어두운 이미지의 역할을 소화했고. 그런데 이번 <숨>에선..
무슨 말 할지 알겠는데? (웃음)

짐작했겠지만 노래 부른 것에 대해 말해보려 한다.
어이없진 않았을까? (웃음)

당황스럽긴 했지. (웃음) 일단 배우한테도 놀랐지만 김기덕 감독 영화에서 이리 발랄한 장면을 본 적이 있었던가 싶어서 놀랍기도 했다. 어쨌든 일단 <숨>을 포함해 이 배우가 기존에 보여주던 이미지와 너무 상반돼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좀 깬다는 기분? (웃음)
내가 처음에 시나리오 받고 생각한 건 사실 근사한 그림의 4계절을 불러내는 멋진 여배우였다. 봄의 사랑, 여름의 사랑, 가을의 사랑들을 내가 멋지게 장첸에게 선물하는 모습들을 상상하고 준비했었다. 그러니까 시나리오를 봤을 땐 근사하게 4계절을 노래하는 프랑스 여배우 같은 그런 근사한 이미지를 생각하고 자뻑했던 거지. (웃음)

그런데 영화에서는 지독하게 발랄하지 않나? (웃음) 어쩌다가?
감독님 생각에는 그럴 수 있는 여잔데 그러지 못하는 상황을 보여주고 싶었던 게 아닐까 싶다. 충분히 따뜻하고 밝은 면이 있고 어설프더라도 누군가에게 애교도 떨 수 있는 여자인데 상황이 그 여자를 그렇지 못하게 만드는. 그래서 그 상황에서 그 여자가 보여주지 못하는 속내를 드러내고 싶었던 것 같고. 사실 난 노래만 할 거라 생각하고 노래만 그냥 외워서 와서 감독님한테 ‘노래만 하면 되죠?’하고 물었더니 ‘율동도 해야지’하시더라. (웃음)

율동도 직접 짠 건가?
직접 짠 거다. 점심시간에, 잠시 시간 줘서. 사실 내가 ‘노래도 못하고 율동도 어설픈데 지금 이렇게 급조하듯 하게 되면 굉장히 어색하고 화면에 이상하게 보일 텐데, 그냥 내가 애초에 생각했던 것처럼 근사하게 분위기 잡고 노래하는 걸로 가면 안 되겠냐’고 제안했었다. 그랬더니 ‘노래 못해도 되고 율동이 어설퍼도 된다. 그냥 그런 마음이 있는 여자의 모습을 보여주면 되는 거니까 노래도, 율동도 더 신나게 해라. 네가 진심으로 누군가에게 보여줄 수 있는 따듯한 마음을, 사랑을 보여주면 된다. 그러니 걱정하지 말고 그걸 해줬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시더라. 그런 선물을 주고 싶은 사람인데 줄 사람도 표현할 수도 없는 여자의 상황을 보여주고 싶으셨던 거지.

준비했던 이미지와 달라서 당황이 많이 됐을 것 같은데.
그것보다 그 장면 찍을 때 장첸이 심각하게 문을 열고 막 들어와서 내가 노래를 시작하니까 못 견디고 막 웃더라. 그래서 애먹었다. (웃음) 어쨌든 감독님 말씀처럼 굳이 근사하게 해야 될 게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니 내가 원래 생각했던 부분을 버리는 건 상관없었는데 좀 걸리는 부분이 있었다. 초반 작업할 때쯤엔 내가 노래도 잘 못하고 괜히 엉성하게 어설픈 코메디같은 장면이 될 것 같아서 부담이 많이 됐었는데 시사회에서 보니 그냥 애교스러운 정도와 비스무리하게 느껴져서 약간 안심이 됐다. 또 어떤 분들은 김기덕 감독님 영화에 이런 밝은 장면이 거의 없어서 그 점을 좀 예쁘게 봐주신 것 같기도 하다. 어쨌든 다행히도 잘 넘어가고 있는 것 같다. (웃음)

어쨌든 그 장면이 개인적으로 꽤 재미있었다. 그리고 솔직히 노래는 잘 못하더라. (웃음) 어쨌든 이야기 듣고 보니 노래를 잘 했으면 의도와 어울리지 않는 장면이 돼 버렸을 수도 있었겠단 생각이 든다.
난 잘 한 거 같은데. (웃음) 영화가 그렇게 나와서 어쨌든 다행스럽기도 하고. 감독님께서도 노래를 잘 하는가 못하는가가 보단 노래를 통해 마음을 전할 수 있는 부분으로 표현해주길 원하셨던 것 같고. 사실 그 때 일단 나부터 감기까지 걸렸고 현장이 막 급박하게 돌아가서 정신이 없었다.

하긴 서대문 형무소를 가봐서 알지만 바람도 잘 통하는 곳일 텐데. 겨울에 봄옷입고, 여름 옷 입고. 꽤 추웠을 것 같다. 감기를 달고 살았을 것 같은데.
정말 감기에 너무 많이 걸렸다. 콧물이 막 질질 흐를 정도로 심하게. 장첸이 보다 못해서 알약을 주더라. ‘이거 진짜 잘 듣는 거니까 먹으라’구. 그리고 난방기를 떼놔도 열이 오질 않더라. 그냥 닿는 부분만 잠깐 뜨겁고 그것마저도 촬영 들어가면 켤 수도 없었지. 그리고 조명기도 몇 대 없었고. 그래도 촬영 전에는 벌벌 떨고 있다가 슛 들어가면 아무렇지 않게 얼른 하고, 계속 그랬다.

길에는 눈이 버젓이 쌓여있는데 여름옷입고 걸어가는 장면은 보는 내가 다 춥더라. (웃음)
지금도 생각만으로 살 떨리는 것 같다. (웃음)

그런데 중간에 아이가, 속된 말로 오두방정 떨면서 (웃음) 노래하고 춤추는 장면도 뜬금없었다, 한 편으로 웃기기도 했고.
사실은 그 씬이 그냥 엄마가 들어와서 애가 잠든 모습을 보는 그런 장면이었는데 그렇게 바뀐 거다. 근데 내 생각엔 아마 감독님은 엄마가 없을 때는 그렇게 까불 정도로 밝은 어린 애가 엄마가 들어오는 모습을 보면서 갑자기 멈추는 아이의 행동과 표정을 보여주면서 이 여자의 삶도 같이 보여주려 했던 것 같다. 그러니까 애가 느끼는 엄마가 그런 거지. 엄마가 들어와서 반갑게 엄마한테 달려가는 게 아니라 자신이 했던 걸 멈춰야 될 것 같은. 함께 그림을 그리던 좋은 시절도 있었지만 그 시간이 지난 그 때, 아이에게 엄마가 조금 이상하다 느낄 수밖에 없는 직감적인 것. 애기 입장에선 엄마가 뭔가 이상하고 본능적으로 부담스러움이 느껴지는 불안감의 심리 같은 게 표현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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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숨>에 출연해서 김기덕 감독 영화만 세편 나왔는데 김기덕 감독과 인연이 된 계기는 뭔가? 처음 <해안선> 때 오디션이 있었단 말은 들었는데.
그 당시 오디션이 있었고 오디션을 봤었다. 그때가 김기덕 감독님께서 <나쁜 남자> 끝내고 <해안선> 준비할 때였고 난 공연을 하고 있던 중이었다. 그런데 내가 하던 공연에 <나쁜 남자>에 출연했던 배우가 출연하던 중이었고 감독님은 <나쁜 남자> 개봉 후, 격려차 공연 보러 오셨다가 나를 본거다. 그런데 그 이전에 한번 뵌 적이 있었다. 감독님께서 그 때를 기억하셔서 ‘아, 그때 만났던 사람이네.’ 하시더라. 그런데 <해안선> 오디션 있다는 말을 내가 듣게 되었고, 그래서 원서를 내고 오디션을 참가하게 됐다.

아. 우연찮게 눈에 띈 게 도움이 된 셈?
그런데 감독님이 날 염두에 둬서 오디션을 보러 오라고 했던 건 아니었다. 그냥 내가 예전부터 김기덕 감독님의 작품들을 워낙 좋아해서 오디션이 있단 말을 듣고 스스로 찾아간 거지. 운이 좋았다고 할까.

어쨌든 <해안선>은 오디션을 통했었지만 <봄여름가을겨울 그리고 봄>때는 감독님의 부름이 있었을 것 같은데?
<해안선> 촬영 후, 한참 시간이 지난 다음에 감독님과 우연찮게 만나서 같이 밥을 먹게 됐는데 감독님께서 말씀하시더라. ‘지금 준비하는 영화에서 얼굴을 다 가리고 나오는 여자가 있는데 역할이 그래서 캐스팅하기가 쉽지가 않네. 그냥 지아가 하면 되지 않으려나?’ 라고 농담같이. 그래서 내가 하겠다고 해서 하게 된 거다.

<숨>도 마찬가지인가?
감독님 말씀으론 <숨>의 시나리오를 써놓고 여러 배우들을 생각했다가 내가 해도 괜찮겠단 생각을 갖고 계셨다더라. 그러다가 내게 전화를 하셔서 스케줄이 어떻게 되냐고 한번 물으신 적이 있었다. 그렇게 통화 끝내고 한참 지나서 다시 전화가 왔다. 그 때 내가 공연 할 때였는데 공연 전에 시간 잠깐 낼 수 있겠냐고 해서 그렇게 만났다. 그리고 ‘시나리오를 썼는데 한번 지금 읽어봐라’고 하셔서 감독님과 만난 카페 그 자리에서 한 한 시간 동안 다 읽었다. 읽고 나니 감독님께서 ‘어떠냐, 해보고 싶은 생각 있으면 같이 하고 싶다’고 하셔서 하게 된 거다.

솔직히 <숨>도 쉬운 영화는 아니잖나. 일단 이야기의 맥락은 짚어지지만 세부적으로 상징과 은유로 채워져 있어서 그걸 읽어내는 건 쉽지 않다. 시나리오를 처음 받았을 때 만만치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을 법한데. 캐릭터 자체만 봐도 그렇고.
그러니까 욕심이 너무 나는데 사실 그 반대편에선 쉽지 않겠다는 생각 때문에 걱정이 들더라. 근데 너무 욕심이 나서 내가 하겠다고 덥썩했지. (웃음) 걱정은 일단 그 다음으로 미루고. 내가 처음 시나리오를 봤을 때 사람의 만남을 절박하게 갈구하는 상황이라는 게 와 닿더라. 물론 영화에 표현되는 현상을 보는 사람마다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겠지만 내가 처음 시나리오를 읽은 느낌은 그랬다. 그러니까 그냥 남편에 대한 문제뿐만 아니라 자기 삶에서 숨 쉴 수 없어서 어디선가 호흡하고 싶기에 편안한 숨을 필요로 하는 여자가 숨이 필요하지 않은 남자를 찾아간다는, 그게 너무 절박하게 와 닿아서 그걸 잘 표현해내지 못할까봐 일단 걱정이 많이 됐지. 그러니까 너무 안 됐더라고. 느낌이.

한편으론 연이 팜므 파탈스럽게 느껴졌다. 되게 악역 같다는 생각. 지독하게 고독한 장진의 낙을 끌어내어 이 남자의 밑바닥에 남겨진 생기를 죄다 빨아들인다는 느낌이랄까? 알고 보면 지독하게 나쁜 년인 거다. (웃음)
아, 그렇게 듣고 보니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일단 감독님 영화가 말이 별로 없잖나. 그래서 생기는 일 인거 같기도 한데. 물론 모든 영화가 다 보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 해석이 많이 틀려지기도 하지만 특히 김기덕 감독님 영화가 그런 면이 좀 큰 거 같더라. 영화의 코드를 자기의 생각들과 맞추는 거지. 결국은 영화를 보고 나면 정말 상상도 못했던 얘기들을 할 때가 있으니까. 그런데 방금 전의 이야기도 그렇게 이해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쉽게 보면 장진을 위로하러 간 거지만, 사실 결과적으론 그냥 가만히 내버려두면 될 사람을 일 년이란 시간을 주면서 괴롭힌 게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냥 살고 싶지 않은 사람이고 어차피 죽을 사람인데 괜히 내가 그를 구해줄 수도 없으면서 꼭 구해주는 양, 봄을 주고 여름을 주고 가을을 주고, 결국 자신은 아이가 있고 남편도 있어서 결국은 가정으로 돌아가 버리는 여자니까. 어떻게 보면 나쁜 여자인 셈이지. 누군가에게 선물을 주는 것 같지만 자기 욕심만 채우는 나쁜 여자인 셈이지.

한편으론 노골적이진 않아도 연이 남편에게 은근히 복수를 꾀하는 것 같았다. 남편의 외도를 자신이 답습하면서 그것을 남편 앞에 고의적으로 전시하는 듯한. 그러면서도 남편에 대한 일방적인 증오를 보이는 것도 아닌 것 같고.
남편 되게 사랑했나봐. 그래서 그런가. 그게 일방적인 시선에서 보면 연이 장진이라는 사람을 사랑하게 되는 것으로 보이지만, 다른 한편에서 보면 그 이전에 너무 사랑했었던 남편이 자신의 마음을 받아주지 않으니까 다른 누군가에게 표현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그 사랑이 다른 어디로 보내지는 걸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기도 하고. 너무 사랑했던 거 같아. 남편을. 그니까 미워서. 바람피워서 미운 게 아니라 너무 사랑하는데 그 사랑을 외면하니까.

그래서인지 장진이 불쌍하고 연이 사악해보이더라. 장진에겐 껍데기 같은 사랑을 전하니까. 자신의 욕심을 채우려고. 김기덕 감독님하곤 세 번째인데 현장에선 어떤가. 이젠 나름대로 익숙해졌을 법한데.
음, 질문하면 답해주는 편이다. 굳이 여기선 이렇게 해야 된다는 답을 갖고 계시진 않고. 본인이 쓰려고 생각한 그림들은 있겠지만 배우에게 그 그림처럼 해줘야 된다는 요구보단 이미 이 역할을 해줬으면 좋겠다고 맡긴 배우의 감정이 흘러가는 걸 기다려주고, 본인은 이렇게 생각했지만 배우는 저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며 배려해주는 것 같다. 그리고 이렇게 만들어야겠다는 정답에 배우를 맞추고 캐스팅한단 느낌은 안 든다. 그냥 같이 하자고 할 땐, 그 배우가 다르게 표현해도 진실 되게 표현할만한 애니까 같이 하자고 하는 것 같다. 이미 캐스팅할 때부터 그냥 그 배우를 믿는 느낌이랄까.

그다지 많은 걸 요구하기 보단 배우들의 본능적인 감각을 끌어내고, 요구할 것만 같은데.
일단 말이 없으시다. 그래서 여기서 이렇게 하고 여기선 어떻게 하고 그냥 그렇게 말씀해주시면 그렇게 따라가면 되는데 그걸 안하시니까 나름대로 더 생각을 많이 해야 된다. 반대가 되는 거지. 자신을 최대한 스스로 끌어내게 되는. 그러니까 지금 이 씬에선 내가 뭘 해야 맞는지를 본인 스스로 체크하지 않으면 뭘 할 수가 없다. 말씀을 잘 안 해주시니까. 한편으론 그런 게 감독님의 방법일 수 있는 거고.

오히려 무언의 압박이 되겠다.
그럴지도. 일단 그래도 자연스럽게 내가 뭘 하면 되겠단 생각이 드니까 큰 부담까진 아니고.

김기덕 감독은 언제나 그렇지만 이번에도 단기간에 영화를 완성했다. 쉽지 않은 내용과 어려운 캐릭터를 단기간에 이해하고 설정하는 것도 만만치 않았을 것 같은데?
뭐, 어렵지. 그냥 연기를 하는 것도 난 아직 어려운데 짧은 시간에 촬영이 끝나가니까. 촬영 전에 시나리오를 볼 땐, 이 씬에서 내가 취해야 될 반경이나 영화상에서 해줘야 될 부분들이 이런 느낌이란 걸 미리 파악하고, 오늘 이 씬은 이렇게 해야겠단 생각으로 현장에 간다. 그런데 막상 촬영이 끝나고 집에 와서 생각해보면 오늘은 이것도 못했고, 이 씬도 망쳤고, 이 씬도 망쳤고, 찍는 내내 그랬다. 그래서 촬영이 다 끝나고 걱정을 많이 했고, 시사회 한다는 말 듣고 긴장되더라. 내가 내 눈으로 봐야 되니까, 내가 망친 것들을. 그런데 영화란 건 나 혼자만의 작업이 아니다보니 내가 망쳐버린 것들을 이렇게 저렇게 편집하고, 음악도 들어가고, 많은 것이 더 첨가되면서 혼자 막연히 걱정했던 것보단 무난하게 넘어가게 된 것 같다. 그 짧은 시간동안 찍으면서 인물에 몰입하기 위해 걱정했던 것들이 내 능력과 무관하게 결과적으론 나왔으니까.

대부분 배우들이 겸손하게 그렇게 말하더라. 난 연기 못했는데 편집을 잘했더라고. (웃음)
난 진짜 못 했다. 그런데 촬영기간도 짧아서 걱정을 많이 했고.

영화에서 대사가 별로 없다. 처음 대본을 받아보고 ‘왜 내 대사는 별로 없어.’하고 투덜거렸을 법도 한데. (웃음)
처음 <해안선>때도 대사가 없었지. 그래서 이건 뭐, 막막했지. 가령 ‘화를 낸다’를 어떻게 화를 내라는 건지, 손을 올리라는 건지 아니면 인상을 쓰라는 건지. 그때는 그랬다. 그런데 이번엔 그런 걱정은 안했던 것 같다. 그러니까 최근 이런 질문들에 답하다보니 스스로 생각하게 된 건데, ‘아, 큰 걱정은 안하고 찍었네!’ 싶더라. 그러니까 <해안선> 땐, 대사도 없는데 어떻게 해야 되는 건지 고민스러웠는데 이번엔 걱정을 별로 안하고 찍었더라. <해안선>때와 달리 요령이 생겼다고 할까. 말을 하고 안하고에 따라 방법이 달라지면 된다는 것을 알게 된 거지. 예를 들면 배고프다는 걸 내가 ‘배가 고파’라고 말을 하는 것과 ‘아~’(배고픈 시늉)라고 하는 것과 같이 방법이 틀려지는 거라 생각하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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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서 김기덕 감독 영화 두 편에 나온 게 연습이 됐을 법도 한데.
나도 모르게 그렇게 되어있더라.

그런데 평범하지 않은 연기를 하다가 평범한 연기를 하면 되레 더 힘들지 않을까?
그런데 내가 사실 평범한 것도 많이 한다.

아, 연극 말인가?
맞다. 내가 영화를 통해 노출된 건 조금 세고 비정상적인 인물들이었기에 나 자신조차 많이 어둡게 보이는 게 사실이지만 연극에선 그렇지 않았다. 물론 연극도 무난하지 않은 연기를 해야 하는 경우가 종종 있지만 영화보단 훨씬 평범한 역할을 한 적이 많다. 어쨌든 나 자신은 내가 표현해내는 것들에 애정을 지니는 편이다. 그리고 사실 난 코미디영화도 너무 좋아하고, 재미있고 웃기는 걸 많이 좋아하는 편이기도 하고.

<숨>은 마치 연극을 보는 것 같기도 하더라. 특히 연이 장진을 면회할 때, 연이 벽지를 바꾸는 장면들은 마치 무대에서 배경을 전환하는 작업처럼도 느껴졌다. 연극을 한다는 기분도 느껴졌을 것 같은데?
물론 들었지. 그게 왜냐면 봐서 알겠지만 보안과장이 모니터로 보는 씬들 있잖나. 그게 결국엔 누군가의 관점에서 나를 보는 행위가 되니까. 마치 내가 창문을 통해서 누군가를 관찰하면 창문 너머의 광경이 무대가 되는 것처럼. 또 지금 이렇게 인터뷰하는 모습을 기자님이 카메라로 찍어주면 이게 무대가 되는 거고. <숨>에서도 보안과장의 모니터가 보는 공간은 무대가 됐던 거지.

그럼 영화와 연극을 겸한 입장에서 영화와 연극의 차이가 많이 느껴지겠다.
음. 물론 큰 차이가 있겠죠? 연극과 영화는 일단 크기부터 굉장히 차이가 나니까. 그런데 난 그 차이를 알겠지만 그냥 모른 척 하고 싶다. 배우는 누구인척 하거나 어떤 인물인척 하는 게 아니라 그 인물의 진심을 말하거나 대신 이야기해주면 되는 거다. 근데 그건 무대에서나 영화에서나 마찬가지다. 물론 카메라 앞에선 고갤 어떻게 돌려주면 예쁘게 나오겠단 생각을 할 수 있고, 무대에선 내가 어떻게 걸어야 그 인물답겠다 생각할 수 있지만, 그건 사실 부차적으로 따라오는 것일 뿐이지. 그 인물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하는 건 영화든 연극이든 마찬가지니까. 다른 부분이 많지만 난 크게 다르지가 않다. 결국은 연기를 하는 거니까.

그럼 혹시 무대나 카메라 중 어디가 더 편하다는 생각은 없나?
다 불편한데! (웃음) 무대는 무대대로 매일 매일이 너무 고통이고, 또 영화는 영화대로 카메라 앞에 서는 순간마다 그렇다. 그런데 그냥 아닌 척 할 뿐이지. 내가 얼마나 최선을 다했는가의 과정이 아니라 관객은 결국 결과를 보게 되니까.

그런데 연극은 극이 끝나면 바로 청중의 박수를 받을 수 있다. 그런데 영화는 그 결과물이 나오기까지의 시간을 기다려야 된다. 두 장르를 끝낸 뒤의 감흥의 차이는 있을 것 같은데?
조금 시간이 좀 달라지는 거지. 공연은 커튼콜이 끝나는 순간, 오늘 공연이 어땠는지 바로 듣게 되는 거고, 영화는 촬영이 끝나고 작품이 완성된 후에 영화를 본 관객의 평이 따르는 거고. <숨>도 개봉하면 관객 평이 막 올라오겠죠. 누군가는 인터넷에 ‘거지같았다!’ 이럴 수도 있는 거고. (웃음) 결국 공연보고 공연평 올라오는 거나 마찬가지지. 단지 연기 후 평가가 따르는 유예기간이 있는 거랄까.

김기덕 감독의 영화를 예전부터 원래 좋아했다는데 김기덕 감독의 영화는 사실 여성에게 불쾌하게 여겨질 부분이 있다. 물론 함의는 그게 아니라 해도 단순히 현상을 받아들이면 여성으로서 불쾌해질 수 있는 거다. 여자로서 그런 부분이 의식되진 않던가?
<해안선> 끝나고 몇몇 글에서 여자를 폄하하는 거 아니냐는 글을 봤다. 그 때 또 한참 페미니즘이니 하면서 여성인권에 대한 시선이 부각되는 때였고. 그런데 영화라는 건 그런 이야기들을 해야 되는 것 같다. 감독님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니 그 이야길 하면 되고, 거기 반대하는 의견이 있는 이는 글을 올리는 거고, 또 이 사람들의 말에 다른 의견이 있으면 그건 아닌 거 같다고 말하면 되고. 그런데 뭐가 옳다거나 나쁘다는 이야기를 할 건 아닌 거 같다. 현실적인 문제제기는 그런 부분을 이야기해주는 사람들이 하면 되는 거지. 저널리스트든 사회운동가든. 그리고 영화에서는 극단적일지라도 창조적인 허구를 통해 현실을 짚어주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하니까. <해안선>이 여성을 폄하한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지만 동시에 그런 상황을 통해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잖아.

<해안선>과 <사마리아>는 비슷한 국면이 있었다. 여성이 피해자처럼 보이지만 한편으론 남성들의 비루한 욕망을 구원하는 출구 같다는. 오히려 난 남자란 게 저 정도밖에 못 되는 존재인가 싶더라. 그런데 <해안선> 찍을 땐 힘들었을 거 같다, 김기덕 감독의 영화가 처음이기도 했고.
처음이어서 좀 힘들었지. 그런데 사실 내가 <숨>보단 <해안선>때가 나았다. (웃음) 그때는 멋모르기도 했고, 촬영하던 섬도 너무 좋았었다. 힘든 걸 되게 즐거워했었던 것 같고. 지금은 그때보단 나이도 좀 들었고, 그때와 다르게 책임감이 더 많아지기도 했고. <숨>이 더 힘들긴 힘들었던 거 같아. 심리적으로.

영화 찍다보면 시나리오도 많이 변하잖나. 그런데 듣는 바에 의하면 김기덕 감독님은 전환이 굉장히 빠르다더라. 그래서 영화도 단기간에 완성되는 거고. 그런데 기존 이야기의 포맷이 금방 금방 바뀌는 순간들을 박지아 씨는 적응하기 쉬울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왜냐면 즉흥적인 연기가 필요한 연극을 많이 경험했으니까. 그래서 어쩌면 김기덕 감독의 영화에 박지아란 배우가 참 어울릴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렇게 바뀌는 부분들이 내가 관통하고 있는 연이라는 인물 안에서 정해지지 바깥에서 뜬금없이 변화가 요구되진 않는다. 그러니까 배우가 그냥 그 인물만 잘 취하고 있으면 이렇게 저렇게 상황이 바뀌어도 이렇게 저렇게 취하면 되니까. 사실 감독님이 특별하게 요구를 하는 부분도 별로 없고. 그런데 그게 나여서가 아니라 다른 배우들도 아마 비슷할 거다. 그 인물에 대한 것만 갖고 있으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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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첸과 호흡을 맞췄는데 장첸이 한국말을 못하니까 애로사항이 없지 않았겠다.
그런데 알아듣는다. 내가 뭘 하려는지. 예를 들어서 뭘 살며시 들어서 ‘당신을 때리려고 해’를 표시 안 해도 알고 대응하는 식이다. 일단 시나리오 자체를 이해하고 있으니까. 그 정보 안에서 내 말의 뉘앙스와 감정의 표현을 받을 줄을 알더라. 사실 촬영 전에 만나기가 힘들어서 연기에 대한 의견 교환이 전무한 상태였다. 근데 촬영 때 의견을 교환한다면 통역을 통해서 이야기해야 되는데 굉장히 빨리 진행되는 상황 안에서 이런 과정은 어렵겠다고 생각하니 걱정이 많이 됐다. 하지만 첫 촬영해보니까 경험이 많고 워낙 연기 잘하는 배우니까 알더라. 예를 들어 탁구 치는 것처럼 쳐서 보내면 받아쳐온다. 그러면 내가 그걸 또 받아치면 되는 거고. 그러니까 장첸도 진이란 인물을 품고 있고 나도 연이란 여자를 품고 있으니까. 서로의 입장이 이렇더란 걸 잘 알고 있으니 말이 통하지 않아도 금방 할 수 있게 되더라. 그래서 처음 걱정했던 것보단 훨씬 수월하게 찍었지. 사실 많이 배웠다. 내가. 정말 영화를 이렇게 하는 거라는 걸. 워낙에 많은 경험을 했고 노력도 함께 하는 배우더라. 괜히 그냥 장첸이 유명한 배우가 아니구나 싶더라.

상대적으로 하정우 씨는 언어가 통해서 호흡 맞추는데 안정적이었을 것 같다.
처음 볼 때 예전에 내 공연을 봤다고 하더라. 나보다 나이가 어려서 누나라고 부르기도 하고. 그런데 나나 정우 씨나 그다지 성격이 쾌활한 편이 아니라 낯을 많이 가렸었다. 그래도 촬영 중간에 서로의 캐릭터와 연기에 대한 의견을 나누면서 도움을 많이 받았지. 직접 의사소통을 하니 편한 점이 많긴 했다.

<시간>에서도 그랬지만 <숨>에서 나온 집도 꽤 인상적이더라. 인테리어도 그렇고. 구조도 그렇고.
거기가 그 조각 만들어주신 분집이다. 그 분이 작업실도 빌려주시고, 댁도 빌려주시고, 결국 그렇게 그 근처에서 다 촬영했다. 집이 너무 예쁜데 영화현장이 되면서 막 긁히고 그래서 결국엔 감독님이 촬영보다 바닥 긁히는 걸 더 조심하라고 그럴 정도였다. 진짜. (웃음)

김기덕 감독은 자신의 영화에 출연했던 배우를 다시 쓰는 경우가 많다.
아니지 않나? (웃음)

조재현 씨는 다섯 번이나 출연했는데.
아~맞다.

하정우 씨도 두 편이었고. 일단 본인부터가 세 편째네!! (웃음) 그런데 평범한 여자 역할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은 없나?
많지~! (웃음)

특별히 영화를 통해 해보고 싶은 역할이 있나?
또 <숨>의 연 같은 역할을 준다 해도 또 해보고 싶고, 반대의 역할을 준다고 해도 또 해보고 싶다. 역할의 성향이 문제가 아니라 내가 재미를 느끼면서 연기할 수 있는 지가 중요하다. 내가 즐기면서 할 수 있는 작업 현장인가라는 것도 그래서 중요하고. 물론 하고 싶지 않은 캐릭터도 분명 있겠지만 그런 건 별개다. 그냥 <숨>보다 과해져도 상관없고 훨씬 무난해져도 상관없다. 그냥 조근 조근한 아줌마도 해보고 싶고, 옆집 언니 같은 거도 좋다. 있는 듯 없는 듯 저 여자가 나왔었나 싶은 것도 해보고 싶고.

옛날에 <버스 정류장>에서처럼? 그리고 그 전에도 출연작이라고 나온 건 많던데.
프로필에 경력 상으로 나온 건 많다. 사실 <마리아와 여인숙>처럼 엑스트라가 대부분이지. 어쨌든 그래도 경력은 경력이니까. (웃음) <버스 정류장>같은 일상적인 역할도 사실 재미있었다. 무난한 수학선생님이었는데 튀지 않는 그런 역할이 오히려 더 어려울 수 있다. 그냥 있는 듯 없는 듯 가만히 뭔가를 해야 되는데 튀어서는 안 되니까 그게 더 어려운거 같아요.

사실 <버스 정류장>은 개인적으로 기억에 뚜렷이 남는 영화다. 왜냐면 내가 극장에서 영화볼 때 정확히 7명 있었으니. (웃음)
정말? 요즘 케이블 채널에서 종종 하더라.

한번 기회 되면 확인해봐야겠는데. (웃음) 이제 다시 연극도 하겠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 하려 한다. 지금 영화를 찍고 있으니까 연극은 안하겠다거나 이런 건 아니고. 내가 하고 싶은 건 배우지, 영화배우도 연극배우도 아니니까. 내가 하고 싶은 역할이 영화에 있으면 영화배우가 되는 거고 연극에 있으면 연극배우가 되는 거고.

가장 최근에 했던 연극은 뭐였나?
<장군 슈퍼>라고, 극단 청국장이라는 곳에서 만든 거다. 요즘 새로 만들어진 극단인데 거기서 <춘천, 거기>라는 작품도 했었다. 그리고 <장군, 슈퍼>공연 중에 김기덕 감독님이 캐스팅 제의를 했었다. 사실 감독님이 그 공연 중에 촬영하시겠다고 박박 우기시는 걸, 공연과 영화를 절대 같이 할 수는 없고, 하고 싶긴 한데 그렇게 진행하시면 할 수가 없다고 했더니 감독님이 공연 끝나기를 기다려주셨다. 그래서 공연 끝나자마자 촬영을 시작하게 됐지.

혹시 그냥 뭔가 막연하게라도 자신의 미래를 생각한다면?
그냥 뭐, 연기 인생에서 대단한 배우가 되겠다는 이야기할 나이는 이제 지난 것 같네. (웃음) 내가 재미있는 건 꾸준히 쥐고 계속 하고 싶다. 그러다보면 내 그림이 점점 선명해지겠지. 그런 거지, 뭐. ‘뭐가 되겠습니다.’ 이런 건 이젠 아무래도 내겐 아니다. (웃음)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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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민용준
,

양진우 인터뷰

interview 2008. 5. 30.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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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좋아하나 보더라. 예전인터뷰 기사에서 콜드 플레이(coldplay)와 오렌지 페코(orange pekoe) 이야기하는 걸 들었다. 내가 좋아하는 그룹들이라 눈에 들어왔다.
원래 내가 작곡하려고 장비까지 다 구입했다. 어릴 때 호주에서 지낼 때 우연히 노래를 들었는데 너무 좋더라. 그래서 이게 무슨 노래인가 했더니 조빔 노래더라. 안토니오 카를로스 조빔(Antonio Carlos Brasileiro de Almeida Jobim). 그 때 처음 재즈를 접하고 동시에 음악을 좋아하게 됐다. 학생 시절 돈이 궁할 때도 CD사는 게 낙이었다. 비닐을 벗기 전까지의 설레임! 그러다가 막상 듣고 나서 맘에 안 들면 배신감 느끼고. (웃음)

CD도 굉장히 많겠다.
근데 호주에 다 놔두고 왔다. 형한테 다 주고 오고.

아까워서 어떡하나. (웃음) 여행도 좋아하나?
너무 좋다. 사실 다음 주에 <로맨스 헌터>끝나면 태국 가려고 했다. 너무 추울 때 촬영을 많이 해서 따뜻한 곳에 가고 싶더라. 그런데 19일부터 바로 영화 개봉하고, 일단 출연하기로 한 <세븐 데이즈> 준비도 해야 되고. 사실 아직 새로 나온 대본도 못 봤다. <로맨스 헌터> 때문에 아직 아무것도 못 하고 있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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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도 지금 따뜻하지 않나?
지금이면 많이 따뜻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호주로 다시 가고 싶은 생각은 없다. 안 가본 곳, 새로운 곳에 가고 싶기도 하고. 2년 전인가 3년 전에 일 때문에 잠깐 갔었다. 일주일동안. 내가 여기 어떻게 살았을까. 그런 느낌까지 들 정도로 낯설더라.

호주는 언제부터 산건가? 혹시 태생부터?
초등학교 때 이민갔다. 그리고 2001년도 쯤에 들어왔다. 대학교 졸업하고. 벌써 6년 전이네.

그럼 이젠 완전 적응됐겠다. 그래도 처음엔 좀 힘들었을텐데?
생각보다 많은 부분이 다르다고 느껴지니까. 자신도 모르게 외국 생활과 외국 사람들에 익숙해져 버리니까 처음에 와선 뭔가 조금 답답하고 그랬는데, 지금은 그냥 많이 무뎌졌다.

한국어에 익숙해지는 것도 힘들었겠다.
3년 걸렸다. 굴러가는 발음 빼는 것만. (웃음) 이젠 내가 먼저 그런 부분의 이야길 하지 않으면 사람들이 거의 모른다. 솔직히 사람들이 아예 모르는 게 낫기도 하고. 뭐랄까. 외국에서 왔다하면 시선이 곱지 않은 경우가 많더라. 그냥 그런 사람들 때문에 먼저 그런 이야긴 안한다. 나중에 알게 되더라도.

연기를 하기 위해 입국했다고 들었는데, 전공이 원래 연기였나?
아니다. 국제 경영학과. 사실은 연기보단 제작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대학 시절 방송 학과랑 복수전공을 하기도 했는데 졸업은 경영학과 전공이었다. 어쨌든 졸업반일 때 일본에 교환 학생으로 갔었다. 한 학기 정도. 그런데 그 당시 일본에 참 좋은 작품이 많았다. 미국이나 유럽 수준의 드라마나 영화들이. 부럽더라. 외국에서 인정도 많이 받고. 그 때쯤 한국에서도 영화 붐이 일어났다. <친구>같은 영화들이 꽤 많이 흥행되고. 그래서 한국에서 영화를 배우고 싶어졌다. 한국에서도 세계에 내놓을만한 작품을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교환 학생이 끝나고 호주로 돌아가서 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한국으로 나와버렸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텐데?
내가 크리스천인데 한국오기 전, 한 달 동안 기도를 많이 했다. 어떡해야 할지. 전공 다 버리고 갑자기 호주를 떠나 한국으로 돌아간다는 게 보통일은 아니잖나. 큰 회사들이 학교로 와서 컨택(contact)하고 다른 친구들은 면접보는데 나는 다른 짓을 하고 있으니, 엄청 고민되더라. 한 달 동안 기도를 하다가 ‘이게 길인가보다’라고 판단했다.

그런데 제작이 아니라 연기를 하고 있다.
사실 그 때 좀 어려서 아무 것도 몰랐다. 어리석었다고 할까. 그냥 연기하면서 영화를 배우면 되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서 그냥 무대포로 바로 나왔다. 연기 공부하면서, 전체적으로 훑어보듯 배울 수 있겠다고 생각했던 거다. 그런데 연기를 배우기 위해 학원에 갔는데 제일 처음에 그냥 알겠더라. “아, 나 진짜 직업 선택 잘 했구나.” (웃음) 사실 처음에 너무 못했다. 발음도 이상하고, 또 영어발음도 안 고쳐지고. 뭘 하는지도 모르고 그냥 무작정 했는데 사람이 살아있다는 느낌이 생기더라. 내가 진짜 사랑하는 일을 찾았구나 싶은. 지금도 그런 느낌을 가지고 한다. 매번 그렇게 그 마음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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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동물 좋아하나?
너무 좋아한다. 개들하고도 잘 논다.

<파란 자전거>에서 코끼리 사육사로 나오잖나. 개하고는 스케일이 다른데. (웃음) 코끼리와 촬영하는데 애 먹은 일은 없나?
사실 코끼리랑 찍는 게 2씬 밖에 안 된다. 아마 2~3일 촬영 분량 정도? 그런데 코끼리 가까이 갈 일은 없었다. 그냥 코끼리 용변 치우는 것만. 멀리서. 왜냐면 훈련된 코끼리가 아니고 그냥 동물원에 있는 그런 코끼리들이라 다른 누군가가 우리에 들어오면 되게 싫어한다. 누가 들어오면 막 달려온다. 그래서 촬영하는데 진짜 고생했다. 가만히 안 있어서. 아무리 저쪽에서 빵을 주고 그래도 우리가 들어가면 그쪽으로 막 달려오는 거다. 그것 때문에 조금 고생했다.

아, 그랬던 것 같다.
응? <파란 자전거>를 본건가?

난 올 초에 우연히 봤다. 일반 관객 모아놓고 하는 모니터 시사회로. 아, 아직 못 보셨나?
못 봤어요.

어째서? 아직 기술 시사도 안했나? (이 인터뷰는 기자시사회 전에 이뤄졌다.)
감독님이 기술 시사 때 부르질 않더라. 완전 편집이 확정된 상태가 아니었다나. 나중에 보라고 그러시더라. 어땠을까? 일단 나도 되게 궁금한데.

갑자기 주객이 전도되는 기분인데. (웃음) 일단 난 한 장면이 깊게 남았다. 영화는 못 봤지만 연기한 장면은 기억날까? 동규가 창고에서 철사로 만든 아기코끼리 발견하는 장면.
아, 알겠다. 사실 촬영 첫날부터 나흘 동안 밤을 샜다. 첫 촬영부터. 그 때 난 <전설의 고향> 촬영 끝내고 바로 전주로 넘어갔는데 바로 첫 촬영으로 밤을 샜다. 첫 날부터, 그 다음 날도 또 새고, 또 새고, 나흘 동안. 그런데 둘째 날인가, 셋째 날인가 제일 중요한 씬을 찍는다는 거다. 그 씬을. 나도 시나리오 읽으면서 ‘와, 이건 진짜 잘해야겠다.’고 염두에 둔 씬이었는데 그렇게 며칠 동안 촬영하니까 막 지쳐버린 거다. 몸이. 가만히 앉아있어도 죽겠더라. 그래서 완전히 이상하게 연기가 나와 버렸다. 눈물도 안 나오고, 감정도 안 올라오고. 그래도 억지로 어떻게 했다. 그런데 그 날 촬영을 마치고 잠을 못 자겠더라. 그래서 또 잠을 못 자고 그 다음날 아침에 현장에서 감독님을 뵀는데 감독님도 잠을 못 잤나보더라. 감독님도 굉장히 중요한 씬이라 생각했을 테니. 근데 감독님은 내가 힘들어하는 걸 봤다더라. 촬영 들어가기 전에, ‘얘가 좀 안좋구나’ 싶었던 거지. 그래도 저예산 영화니까 편차는 마쳐야 되니 안 찍을 수도 없어서 찍었던 거다. 그런데 감독님께서 “어땠냐? 어제.”라고 물어보시더라. 그래서 “솔직히 제가 하고 싶은 만큼 안 됐어요.”라고 솔직히 대답하니까 “다시 찍을래?”라고 물으시더라. 그래서 반갑게 “네. 다시 찍어요!” 그래서 그 다음날 다시 찍었다.

그래도 그렇게 찍어서 다행이다. 상당히 중요한 장면인데. 사실 그 장면이 이 영화에서 몇 안 되는 클라이맥스잖나.
그 장면은 나도 너무나 욕심이 났던 장면이라서. 무엇보다도 감독님께서 <파란 자전거>에 애정이 많았고, 나도 이 작품에 애정이 많았는데 경제적인 여유가 없다보니까 강행을 하게 됐고 그래서 놓친 부분이 굉장히 많았다. 감독님도 편집하며 아쉬움이 굉장히 많았을 거다. 여유가 있었으면 좀 더 멋지게 찍을 수 있었을 텐데. 우리가 아침을 굶어가면서, 야식을 굶어가면서 찍을 정도로 최선을 다해서. 그런데 모르겠다. 아직 영화를 안 봐서 너무 궁금한데. 어떻게 나왔을지!

그런데 도대체 어째서 처음부터 사흘이나 날을 샜을까? 사람을 안 재울 정도로 중요한 촬영이었던 건가?
그니까 해질 때 촬영하고 해 뜰 때 숙소로 갔다가, 다시 해질 때 갔다가 또 해 뜨면 숙소로 가고, 첫날부터 밤 씬을 강행했다. 우리가 전주에 있는 한옥마을에서 촬영했는데 조그만 슈퍼를 정리해서 자전거포로 만든 거다. 그런데 그곳을 빌릴 수 있는 기간 안에 그 분량을 최대한 빨리 많이 찍어야 되니 밤을 안 샐 수가 없더라. 마지막엔 구경하던 아저씨가 술 먹고 난리쳐서 애 먹기도 했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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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손에 장애가 있는 역할이라 의수를 끼고 연기했다. 꽤 불편할 것 같더라.
진짜 의수 만드는 분한테 가서 제작한 손이다. 최대한 우리는 진짜 손처럼 만들고 싶어서. 그 분이 굉장히 오래 하신 분이라 여러 장애우들과 접하셨나 보더라. 그래서 장애우 분들에 관한 말씀을 많이 해주셨다. 최대한 감추려고 한다더라. 장애우들이. 항상 주머니에 손을 넣고 다닌다고. 최대한 안보이게 하려고 장갑을 낀다던지, 주머니에 넣는다던지. 그래서 딱 달라붙는 바지도 안 입는단다. 헐렁한 바지만 입는다. 손이 주머니에 잘 들어가는.

나도 중학교 시절에 손에 장애가 있던 친구가 있었는데 항상 긴소매 옷을 입고 소매로 손을 감싸고 다니더라. 그 기억이 난다.
<파란 자전거>에는 장애를 극복하는 메시지도 많이 담겨있는데, 나도 촬영을 하고 나니 숨길 필요가 없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괜히 사람들이 어떻게 볼까봐 스스로가 먼저 선입견을 가지고 있어서, 다른 사람들이 차별하는 게 아니라 자기 자신이 먼저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으니까 문제가 되는 것 같다. 오히려 내가 마음을 못 열어서. 남들이 마음을 닫아놓는 게 아니라 내가 먼저 닫아서. 그러니까 상대방에게 다가가기 어렵고, 상대방이 나에게 다가오기 어렵고. <파란 자전거>는 그런 걸 극복해나가는 이야기가 담긴 영화다. 아버지를 비롯한 가족의 사랑을 통해서.

관계에 대한 이야기죠. 그런데 영화를 보기 전에 두 남녀의 로맨스로 오해할 여지가 있을 것 같던데. (웃음) 사실 그것보단 아버지와 아들의 부자 관계가 중요한데.
처음부터 감독님께서 대사, 캐릭터 분석하며 이야기하신 게, 가족영화다. 사랑이야기가 아니라. 나도 시나리오를 처음 읽었을 때, 아버지와의 관계 때문에 공감이 갔다. 그게 글로만 읽었는데 너무 와 닿더라.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굉장히 많아서. 그래서 읽자마자 바로 감독님 만나게 해달라고 했다. 너무 하고 싶다고. 이런 감정은 오랜만에 느껴서. 뭔가 와 닿는. 그래서 연기할 땐 그런 느낌이 안 살아날까봐 더 떨렸고.

공감했다니 실제 아버지가 어떤 분일지 궁금하다.
시나리오를 읽고 공감했었던 이유가 서로 사랑하지만 표현을 못하는 거, 표현의 장애랄까? 아버지가 무뚝뚝한 경상도 분이다. 말도 많이 없으시고 말을 해도 그냥 ‘촬영은 잘 하고 있냐. 밥 먹었냐. 아픈 덴 없냐.’ 그런 식의 일상적인 대화만 하게 된다. <파란 자전거>의 아버지와 동규처럼. 아버지는 뭔가 해 주고 싶은데 동규는 맘이 이미 닫혀있고 원하는 것도 없고, 오랜 시간을 그렇게 지내다 보니 서로 대화도 없어지면서 자연스럽게 서먹서먹해지고. 그런 아버지와 아들과의 관계. 그런데 한국에서는 그런 관계가 굉장히 많지 않나? 아무래도 많은 남자들이 공감할 것 같다. 나도 그런 느낌을 많이 받았고. 근데 또 그게 하루아침에 바뀌는 게 아니니까. 안 그러려 해도. 그래서 동규도 마지막에 후회를 많이 하는 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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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아버지께서 처음에 연기한다 그러니 뭐라던가.
사실 나도 아버지 반응이 제일 궁금했다. 일단 어머니께선 잘 생각했다면서 서포트를 많이 해 주셨다. 사실 아버지께서 의사다. 그래서 고지식하신 면도 많으시다. 근데 처음 뜻을 밝히니까 의외로 “이왕 할 거면 최고가 돼야지.” 하시더라. 뜻밖이었고 되게 고마웠다. 아버지께서 격려해주시니까. 내가 해보고 싶은 일을 이해해주시니까.

왠지 영화에서 오광록 씨가 연기한 아버지와 같은 인자함이 확 느껴지는데.
그래서인지 내가 광록이 형을 굉장히 가깝게 느꼈다. 매일 술 마시고 취해도 좋고, 힘든 거 없었고.

오광록 씨와 많이 친해졌나보다. 꽤나 독특한 캐릭터가 매력적인 분인데.
굉장히 샤프하시다. 그냥 뭐 하나 얼렁뚱땅 넘어가는 것도 없고. 되게 재밌으시다. 그리고 그냥 대충 하실 것 같은 상황에서도 놓치는 거 하나 없다. 다들 알아차릴 정도로 술이 취했단 생각이 들 때도 사람들을 다 관찰하고 있을 정도로. 되게 부드러우면서 굉장히 날카롭고.

섬세할 것 같다. 시인이잖나.
내가 광록이 형을 처음 봤을 때가 <파란 자전거> 촬영 때문에 전주 내려가기 전 첫 회식 때였다. 그런데 이미 광록이 형은 어디서 또 한잔 하시고 오셨더라. 그런데 오자마자 막 시를 읊으시더라. (웃음) 그런데 내가 술을 못 한다. 그런데 막 술을 먹이셔서 내가 막 도망쳤다. 그리고 나중에 광록이 형하고 술 자주 마셨다. 그런데 나중에 “난 네가 이렇게 서글서글한 애인지 몰랐다.”고 하더라. 첫인상이 자기 것만 챙기고 대충대충 하는 사람인 줄 알았다나. (웃음) 그런데 형한테 연락도 자주 하고 그러니까 달리 보였나보다. 광록이 형하고 영화하면서 많이 배웠다. 배우로서의 자세부터. 무엇보다 너무 좋은 분이다.

첫 주연이라 본인에게 <파란 자전거>의 의미가 클 것 같은데.
그래서 촬영할 때 힘든 게 힘든 게 아니었다. 애정이 생기니까. 많이 힘든 거 못 느끼고 촬영했던 것 같다.

혹시 왼손잡이?
아니, 오른손잡이.

그런데 의수는 오른손에 끼웠잖나. 의수 끼고 자전거까지 타던데.
촬영할 때만 끼긴 했는데 엄청 불편했다. 오른손이 없는 셈이었지. 양말을 신는 것조차 힘들었다. 안에 있는 오른손도 답답했고. 그런데 <파란 자전거>를 찍고 바로 <동갑내기 과오하기 레슨 2>를 촬영하러 갔는데 왜 자꾸 왼손으로만 연기를 하냐고 하더라. (웃음) 나도 모르게 모든 걸 다 왼손으로 하고 있는 거다. 오른손은 주머니에 들어가 있고. 아차 싶었지.

어떤 장르의 영화를 좋아하나?
<메멘토>같은 거. 특별히 좋아하는 장르는 없는데, 뭐랄까. 감독만의 특별한 스타일이나 독특한 상상들. 그런 게 돋보이는 그런 영화가 좋다. <펄프 픽션>이나 <파이트 클럽>같이 기발하고 독특한 스타일의 영화들을 주로 좋아하는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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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외다. 차분한 성격인 것 같은데. 정적인 영화 좋아할 줄 알았다.
많이 조용한 성격이긴 하다. 나가서 시끄럽게 나서고 그런 성격은 아니니까. 솔직히 그래선지 그런 역할의 제의를 많이 받더라. 그래서 이번에 <파란 자전거>의 동규가 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웃기만 하는 이미지가 싫어서. 웃는 얼굴이 익숙하고 그러다보니 사람이 부드럽게만 보인다고 그래서 그런 이미지에 틀어박힐까봐. <파란 자전거>의 동규는 영화에서 웃는 게 두세 번밖에 안 나온다. 그리고 이번에 준비하는 <세븐 데이즈>에선 완전 마약에 빠진 친구로도 나오고. 사실 <로맨스 헌터>의 정호재는 내 성격이랑 비슷한 면도 많고 그래서 하고 싶기도 했다.

그런 면에서 <세븐 데이즈>는 나름대로 기대가 될 것 같다.
나름대로 변신이니까. 미쳐버릴 수 있는 그런 캐릭터라서. 원래 선아 누나 때문에 하게 된건데.

김선아 씨 덕분에? 친하나?
같은 사무실이라 인사하면서 몇 번 이야기 나눈 정도? 그렇게 뭐 친한 것도 아닌데, 시나리오 읽고 나니 내 눈빛이 딱 생각나더란다. 그 캐릭터가. 그런데 영화에서 많이 등장하는 캐릭터는 아니다. 10회차 정도밖에 안 되는 분량이니까. 근데 좀 포인트가 있는 그런 캐릭터다. 영화에 전환을 주는.

선한 마스크가 오히려 악역에 어울릴 때가 많다. 악역 해보고 싶단 생각은 안 해봤나?
사실 악역을 굉장히 해보고 싶다. 난 사실 미소지으면서 부드러운 이미지 드러내는 역할을 정말 하기 싫다. 그런 이미지에서 벗어나고 싶기도 하고. 그래서 악역도 굉장히 하고 싶은데 쉽지가 않네. 그래서 <세븐 데이즈>같은 작품에 출연하는 것도 반갑고 앞으로도 조금씩 조금씩 변할 수 있겠죠.

일본 드라마에도 나왔다고 하던데.
사실 일본에서 출연한 드라마가 시청률이 굉장히 좋았다. 일본에선 드라마가 낮에 하는데 그 당시 동시간대 드라마 중 시청률이 제일 좋았으니까. 그래서 오히려 한국보다 일본에서 사람들이 알아보기도 하고. 그 이후로 일본에서 DVD나 영상화보집도 내게 되고, 덕분에 돌고래와 수영도 해보고.

돌고래?
원래 돌고래랑 같이 수영해보고 싶었다. 일본에서 영상집을 찍는데 내가 호주가서 하자고 제안했다. 일본에서 하지말고. 그랬더니 호주에서 뭐하고 싶냐고 묻길래 처음엔 상어 케이지에 들어가서 상어들 보는 거 하고 싶다고 하니 그건 촬영하기 너무 힘들다고 질색하더라. (웃음) 그래서 그럼 돌고래랑 같이 수영하고 싶다고 했고 그래서 호주 씨월드에서 촬영했다. 암벽타기 하는 것도 찍고, 서핑하는 것도 찍고.

운동 좋아하나? 자전거는 잘 타던데.
헬스 같은 건 재미없다. 대신 사람들과 모여서 할 수 있는 운동은 좋아하지. 등산도 좋아하고.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아서 해보지 못한 운동 있으면 그냥 한다. 그래도 특별히 잘하는 운동은 없다. 그래도 다 한다. 이번에 럭비클럽을 내가 만들었다. 사람들 모아서 여름에 시작해 보려고. 근데 우리나라에 럭비하는 사람이 별로 없어서 걱정이지. (웃음)

의외다. 정적인 것만 좋아할 줄 알았는데. 생각도 많을 것 같고.
엉뚱한 생각을 많이 하긴 한다. 걱정 같은 건 잘 안하는데 엉뚱한 생각들은. 나 혼자 생각하면서 웃기도 하고. 어이없는 생각들. 상황에 맞지 않는 느닷없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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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제대로 된 로맨스 연기는 해본 적 없다. <파란 자전거>에서도 막장에 다다른 연인과 새로운 예감이 보이는 연인 사이에 있고.
음..그런 생각은 안 해봤는데 말 듣고 보니 그런 것 같네. 약간 억울한데. (웃음)

현실에서라도 해야지. (웃음) 이상형은 아니더라도 좋아하고 싶은, 혹은 자신을 좋아하는 여자가 어땠으면 하는 거 있나?
독립적이면서도 도도하고 섹시하고 강한 여자, 그리고 가정적인 면이 있는 사람. 가정을 잘 꾸려나갈 것만 같은. 무조건 착한 여자보단 자기 의견이나 자기 생각들을 잘 표현할 수 있는 당돌함이 있는 게 좋다. 그러면서도 가정에 충실하고. 찾기는 힘들겠지만.

정말 찾기 힘들 것 같은데! (웃음) 어쨌든 마술사, 라디오 PD, 조선시대 선비, 그리고 코끼리 사육사까지 연기를 통해 해봤다. 조만간 마약 중독자도 될 테고. 그런데 만약 연기 안했다면 본인은 뭐 했을 것 같나?
아마 호주에서 조그만 회사에서 일하고 있을걸. 열심히. 조용하게 지내고 있을 듯.

경영학과 출신인데 전공에 대한 꿈은 없나?
지금도 전공을 살리고 싶은 생각은 있다. 그런데 그건 10년이나 20년 뒤의 미래 이야기고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제일 즐겁다. 지금은.

지금은 연기자다. 그리고 10년 뒤 다른 걸 할 수도 있다. 결과적으로 뭔가 막연한 목표라도 있다면?
난 연기를 처음 시작할 때나 지금이나 똑같다. 오랜 시간이 지나 할아버지가 되었을 때 손자 손녀들이 내가 출연한 영화를 봤을 때 ‘재미있다’, ‘멋있다’란 말 들을 수 있는 좋은 작품들에 많이 출연하고 싶다는 것. 오래오래 50년, 100년 동안 남을 좋은 영화들. 주인공이 아니라도 좋다. 그런 영화에 출연할 수 있다면. 그게 내 꿈이다. 오래 남고 싶다는 것. 지금은 일단 내가 하는 연기자로서.

<파란 자전거>는 그런 작품이 될 수 있을까?
일단 봐야 알지! (웃음) 그래도 개인적으로 큰 의미가 있는 작품인 건 확실하다. 그리고 앞으로도 기회가 많을 테고.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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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민용준
,

오정해 인터뷰

interview 2008. 5. 30.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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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학> 때보다 살이 많이 빠진 거 같아요. 솔직히 첨에는 못 알아봤어요. (웃음)
그러게! 그래서 너무 억울해요! (웃음)

영화 때문에 일부로 다이어트도 했다던데.
초반에만. 영화 들어가기 전까지 오랫동안 쉬다 보니 살들이 편해졌는지 살이 많이 쪘었죠. 아줌마같이 마냥 늘어지게 살았더니. 그러다 영화 들어가면서 나름대로 준비를 한 셈이죠.

일단은 정말 오랜만의 출연작이잖아요. 제가 <서편제>를 봤던 게 굉장히 어릴 때였는데.
몇 살 때였죠?

진짜 어릴 때였어요.
몇 살 때였는데요~? (웃음)

너무 어려서 말하기 민망한데 집요하시긴! (웃음) 그때가 93년도니까 아마 11살이었던 듯.
어머나! 정말 어릴 때네. (웃음)

그 어린 녀석이 뭘 알고 봤겠어요. 그런데 <천년학>을 보니 그 당시 생각이 났어요. 좀 묘했죠. 그런데 소리가 전공인데 어떻게 연기를 하셨네요?
사실 어린 시절 꿈이 연기자였어요. 그래서 어릴 적부터 집에서 연기 흉내를 곧잘 내니까 어머니께서 무언가를 가르쳐보고 싶었나 봐요. 그런데 내가 태어나 살던 전라도 목포에 그 당시 연기 학원은 전무했었죠. 대신 쉽게 찾을 수 있는 무용학원에 다니게 되었는데 그 때가 6살 때였죠.

고전무용? 소리가 아니라?
예. 그런데 갑자기 무용학원 선생님이 이혼을 하셔서 학원이 없어졌어요. 황당하죠? (웃음) 그래서 다른 곳을 찾다 목포 시립 국악원을 알게 됐는데 그곳은 판소리, 가야금, 무용을 다 가르쳤어요. 그래서 그곳을 다니면서 세 가지를 다 배우게 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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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위복이랄까. 종합예술인이 된 셈이네요! (웃음)
그렇죠. 어쨌든 그렇게 우연히 소리를 배워서 대회도 나가고, 결국 만전 김소희 선생님의 문하로 들어가서 소리가 전공이 돼버린 거죠. 어쨌든 모든 게 연기자의 꿈에서 출발했죠.

그럼 <서편제>는 꿈을 이룬 셈이네요. 그런데 어떻게 <서편제>에 출연을?
92년도에 미스 춘향 선발대회에 나갔는데 임 감독님께서 우연히 TV를 켰다가 날 보셨죠. 지금의 처제가 그 당시 내 친구였는데 자기 형부가 1인2역을 필요로 하는 연극이 있으니 해보라 해서 춘향 선발대회가 끝나고 그 연극에 출연했어요. 그런데 감독님께서 날 찾아서 연극을 보러 오셨고 그렇게 뵙게 되서 영화를 하게 됐죠. 그런데 사실 그때 임 감독님께선 <서편제>의 송화가 아니라 <태백산맥>의 소화를 찾고 있었어요.

<태백산맥>의 소화? <서편제>의 송화가 아니라?
원래 <태백산맥>의 소화로 날 염두에 두고 계셨는데 연극을 보시다가 제 소리하는 모습을 보시고 마음 한 칸에 있던 <서편제>를 떠올리게 되셨죠. 그리고 그 때 나라에서 <태백산맥>의 제작을 막았어요. 그래서 <서편제>가 먼저 들어가게 됐고 난 송화가 됐죠.

<서편제>나 <천년학>은 임 감독님께서 만드신 거지만 한편으론 오정해씨의 존재감을 증명하는 작품이에요. 마치 판소리로 치자면 오정해의 소리에 임 감독님께서 장단을 넣으셨다고 할까. 만약 <천년학>에 본인이 아닌 다른 사람이 출연했다면 어땠을까요?
솔직히 말하면 내가 아닌 다른 소리꾼 후배가 해도 <천년학>은 충분히 가능했다고 생각해요. 지금 국악도 중엔 소리 잘하고 얼굴도 예쁜 후배들이 많기도 하고. 내가 <서편제>에 출연했던 시대보다 요즘은 소리하는 젊은 친구들이 많아졌어요. 다양한 장르에서 활동하는. 단, 이게 단순히 소리만의 문제가 아니었던 거죠. 바로 송화이기 때문에 내가 해야 했던 것 같아요. <천년학>의 송화에겐 성숙된 세월이 필요했어요. 사랑을 알아야하고 희생을 배워야 하고. 내가 아닌 남을 먼저 배려해 줄 수 있는 자기 자제. 이건 인위적으로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분명 삶속에서 그런 과정을 겪어본 사람이 해야 되는 거죠. 그 과정을 아는 사람이냐 아니냐가 중요한 셈이랄까. 그래서 아무래도 <서편제>의 송화였던 내가 <천년학>의 송화도 돼야 한다고 감독님께서 생각하셨나 봐요. 하지만 제 솔직한 마음은 임 감독님이 연출했기 때문에 제가 아니었다 해도 충분히 <천년학>은 가능했을 꺼라 생각해요.

처음 <서편제> 당시 연기에 대해 기본적으로 배운 건 없었잖아요. 물론 아까 말한 다른 분야의 공부가 연기에 도움이 되었을 테지만 카메라 앞에 선 연기자의 입장으로서의 어려움이 있었을 텐데?
일단 소리를 해서 복식 호흡이 되니까 대사하는 건 별로 어색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또 송화라는 캐릭터에 대한 이해는 내 소리 공부과정을 많이 응용하니 어렵지 않았고. 한 가지 제일 어려웠던 건 카메라 앞에 섰다는 점이었죠. 그런데 임 감독님덕분에 내가 카메라 앞에 섰다는 걸 인식 못하게 됐어요. 내가 카메라 앞에 있다는 것을 의식 못하고, 그저 가방 들고 떠돌아다니는 송화로 생각하게끔. 처음부터 끝까지 내가 오정해라는 걸 잊어버렸었죠. 어느 순간, 촬영이 다 끝나고 생각하니까 내가 연기를 했더라고요. 그런데 내가 연기를 했다고 생각이 안 들게끔 최면에 걸린 것만 같았어요. 아무래도 그게 임 감독님의 힘인 것 같아. 만약 내가 카메라를 의식했다면 얼마나 어색하고 떨었겠어요. 신인연기자가 자기의 그 역량을 발휘한다는 건 힘들잖아요. 그런데 그렇게 잘 유도해주세요.

<서편제> 이후, <태백산맥>과 <축제>에도 출연했어요. 그런데 <천년학>까지의 공백이 길잖아요. 그때와 지금 달라진 것도 많고요.
많이 달라졌죠. 일단 영화 현장의 시스템들이 많이 바뀌었더라고요. <서편제> 땐 모니터라는 것도 없었고, 감독님 눈이 모니터였죠. 그런데 오랜만에 나오니까 모든 시스템들이 배우들에게 너무 너무 좋아진 시대가 됐더라고요.

요즘은 자신이 연기한 것도 바로바로 체크할 수 있죠.
네! 너~무 너~무 좋아졌어요. 현장에서 배우에 대한 대접도 예전과는 하늘과 땅 차이에요. 물론 그 때도 많이 좋아졌다고 했었죠. 그런데 지금은 더 좋아졌어요. 일단 인터뷰하는 느낌들도 많이 틀려졌고. 사실 처음에는 많이 바뀌어서 낯설었죠. 우리 마지막 씬 찍는 날 현장 공개를 했잔하요. 그 날 많은 분들이 오셨고, 우리 홍보팀에서도 그런 사실을 미리 알려줬어요. 그런데 전 그냥 현장 스케치만 하는 줄 알고 복장도 별로 신경 안 썼죠. 저는 항상 튀지 않는 걸 좋아해서 우리 스텝들이 현장에서 입는 파카 같은 옷이 좋더라고요. 그래서 전 그냥 그렇게 갔는데 그 자리에서 기자회견까지 할 줄 몰랐죠. 그 때 옷이 너무 초라해서 부끄러웠어요. 그런 것이 너무 낯설기도 했고. 또 맨 처음에 제작발표회할 때 웃지도 못했어요. 내 앞에 있는 저분들 눈에 내가 10년 전의 그 송화로 보일까 싶어서. 너무 편안해진 아줌마가 돼서 아직도 내가 배우로 보일까란 생각들 때문에 많이 부담스러웠죠.

연기는 어땠어요? 너무 오랜만이라 생소할 수도 있었을 것 같은데?
맨 처음 <서편제>할 땐 아무 것도 모르니까 오히려 자연스러웠던 것 같아요. 겁이 없기도 했고. 그리고 감독님이 유도한대로 따라가기만 하면 된다는 것도 있었죠. 하지만 <천년학>은 4번째 작품이라 더 어려웠던 것 같아요. 오랜만에 해서 그런 것도 있고. 사실 그 가운데 마냥 쉬진 않고 나름대로 연기 활동을 했거든요. 영화나 드라마가 아닌.

혹시 뮤지컬 말인가요?
네. 뮤지컬과 무대를 통해서 나름대로 연기경험을 조금씩 많이 쌓았는데 오히려 그걸 버리는 게 더 힘들었던 것 같아요. 임 감독님 영화는 배우가 연기에 대한 컨셉을 정해놓고 오면 힘들어져요. 마치 연기자가 아니라 그냥 그 사람을 그대로 화면에 넣은 것 같은 자연스러움을 원하시기 때문에 인위적인 느낌은 절대로 안 되거든요.

임 감독님 영화는 가끔 영화적인 연출이 자제가 돼서 그게 너무나 현실적이라 오히려 어색하게 느껴질 정도로 자연스러워 보여요.
맞아요. 내츄럴하죠. 그래서 임 감독님 영화엔 연기를 잘 하는 사람들이 힘들어요. 그래서 오히려 신인은 풋풋하기 때문에 자연스런 감독님의 연출 컨셉에 더 맞는 것 같아요. 오랜만에 하니 힘든 건 공백 기간 동안 어설프게 쌓은 연기 경험이 오히려 부자연스럽게 넘치는 거죠. 오버하고 있는 모습이 있었어요. 맨 첨에. 그걸 빼는 게 힘들었죠.

임 감독님 영화에 워낙 익숙하니까 그런 사실이 더 와닿았겠네요.
연기자들은 자기 역할에 대해 다양하게 연구하고 컨셉 정하고 이러잖아요. 그런데 그게 임 감독님 영화에선 오히려 해가 되요. 그냥 송화란 인물이 되기만 하면 돼요. 그래서 그 인물로 현장에 와서 감독님이 원하는 씬에 맞게끔 적절하게, 넘치지도 모자라지 않게 들어가고 나오면 되는 거죠. 그런데 너무 많이 준비를 해가지고 오면 그게 인위적으로 되요. 감독님 영화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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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에 매달리게 되니까.
네. 그래서 저도 초반엔 ‘너, 대사가 아냐. 내추럴하지 않아.’ 이런 식으로 많이 지적을 당했죠. 그리고 나중에 그걸 빼내고 나니 편해지고. 그래서 알겠더라고요. 연기 잘 하시는 분들이 감독님 영화에 오면 왜 힘들지. 어설프게 익힌 나도 힘든데 그분들은 아주 많이 힘들겠죠. 자기 걸 깨지 못하니까. 그런데 조재현씨 같은 경우는 첫 영화인데도 감독님의 그걸 너무 잘 따라가더라고요.

조재현 씨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일단 조재현씨는 국악인이 아니잖아요. 그런데 북채를 잡았어요. 전문인이 보기에 어땠어요?
일단은 노력을 굉장히 많이 하시죠. 하지만 이론적으론 알아도 실전경험이 짧으면 아무리 노력해도 잘 못하는 게 정답일 텐데, 이분은 집중력이 정말 뛰어난 사람이에요. 시작 전까진 막 “내가 어떻게 해, 어떻게 해” 하면서 투덜거리다가 슛만 들어가면 그걸 마치 오랫동안 한 고수처럼 자세를 잡고 하시는 거예요. 저는 너무 놀랐어요. 가르쳐주신 선생님이나 감독님도. 참 대단한 배우죠. 저런 면이 있으니까 조재현이란 이름을 갖는 거라 생각했고.

어떻게 보면 조재현 씨가 임권택 감독님 영화에 어울려 보이는데 뒤늦게 출연한 감도 있어요.
우리 임 감독님은 “저 사람하곤 언젠가 해봐야지.” 하면서도 작품하고 맞지 않으면 안 하세요. 이미지가 좋은 사람을 알고 있어도 작품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되면 안 쓰시는 거죠. 그런데 이번에 감독님께서 조재현 씨가 어떤 것도 소화해내시는 모습에 반하신 거 같아요. 감독님께서 “다음에 또 한 번 하자”고 말씀하시는 것 보면.

임 감독님 영화만 4편에 출연했어요. 반면에 다른 감독의 영화에는 출연한 적이 없네요.
그러게요. 의도한 건 아니고, 처음에 <태백산맥>과 <서편제>는 감독님의 염두에 있었고. <축제>는 솔직히 의외였죠. <축제>는 제가 아닌 다른 사람도 충분히 어울리는데 감독님께서 앞의 두 작품을 통해 저의 내면을 보신 것 같아요. 속마음을 들켰다고 할까. 제 바깥쪽의 한복 이미지, 한국적인 선에 가려진 배우로서의 욕심이. 어쨌든 <축제>에 출연했고 한참을 쉬었죠. 그동안 뮤지컬도 하고 결혼하고 아이엄마까지 되고 이런 저런 일하고. 사실 <천년학>은 임 감독님 스스로도 하시게 될 줄 몰랐던 영화잖아요. 그러니까 이 네 작품에 제가 출연하게 된 건 사실 저 자신도 알 수 없었던 일이었죠. 그런데 다른 분들이 감독님 외에는 영화를 하자고 안했느냐고 자주 물어요. 물론 있었죠. 하지만 그 역할들이 나와 어울리지 않기 때문에 안 했던 거뿐이죠. 딱 보니 ‘이건 내 것이 아니구나.’ 싶었어요. 제가 아무리 영화가 하고 싶어도 제 것이 아닌 걸 하고 싶진 않아요. 물론 그게 한국적인 이미지가 아니라 그런 건 아니에요. 저도 변신도 하고 싶죠. 또 연기자는 어떤 역할이든 매력을 느낀다면 미치광이가 되도 하잖아요. 저도 마찬가지거든요. 근데 그냥 제 것이 아닌 거 같더라고요. 사실 이번에 외국 감독님한테 섭외가 들어오기도 했었는데.
외국 감독님이요?
네. 그런데 그게 참 맘에 들었었거든요.

어떤 감독님이신지 물어도 될까요?
음..알아도 모른다고 할래요. (웃음) 어쨌든 그게 공교롭게 <천년학>과 같은 시기였던 거죠. 그런데 전 당연히 <천년학>을 했죠. 우리 임 감독님이 제겐 더 중요하니까!

본인한테도 의미가 있는 작품이기도 하고요.
그럼요. 요즘은 배우들이 여러 가지 일을 함께 많이 하기도 하는데 저는 능력이 안 돼서 한가지씩밖에 못 해요.

그만큼 집중을 하는 거겠죠.
맞아요. 저는 하나에 빠지면 그 하나 밖에 몰라요.

<서편제>는 <서편제>를 위한 오정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천년학>은 오정해라서 <천년학>이라고 불러도 될 것 같아요. 임 감독님께서 <천년학>을 결정하시곤 분명 오정해 씨한테 하자고 연락 주셨겠죠.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 어땠어요?
감독님께 그 말을 듣고 처음엔 일단 깜짝 놀랐고, 둘째론 “내가 괜히 해서 영화 망치면 어떡하나” 싶었어요. 그리고 임 감독님은 영화를 ‘하자, 안하자’가 아니에요. 일단 “천년학을 한다. 이번에. (네가 출연한) 첫 번째 이야기들(<서편제>) 가운데서 할 거니까 살 좀 빼라.’ (웃음) 이게 섭외였어요. ‘지금 상태로는 안 된다.’ 하셔서 그냥 바로 ‘예.’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운명이었군요. (웃음)
감독님은 항상 저에게 그런 식으로 이야기하세요. ‘할래? 안할래?’가 아니라, ‘해라!’ 이렇게. 왜냐면 감독님도 저를 잘 알고, 저도 감독님이 아버지 같기 때문에, 뭐 그런 건 전혀 안 이상해요.

<축제>이후에도 임권택 감독님과는 꾸준히 연락하셨겠죠?
그럼요. 그건 당연하죠. 감독님께서 좋은 상 받으시면 가서 축하해드리고, 영화 현장에 아이도 데려가 구경시켜주고 감독님 뵙고 오고. 저한텐 아버지 같은 존재니까. 물론 감독님께 잘 보이려는 게 아니라, 솔직히 제가 잘 보여서 뭐하겠어요. 세 작품이나 했는데~. 그리고 임 감독님 영화에 또 나오게 될 거란 생각은 하지도 못 했고. 그냥 저한텐 소중한 인연이니까요.

<서편제>와 <천년학>은 형제 같은 작품이잖아요. 그리고 <서편제>나 <천년학>은 임권택이란 영화계의 장인이 빚어낸 걸작이라고 생각해요. 판소리로 치자면 소리꾼이 절창할 수 있는 장기 같은 곡이랄까. <천년학>에서 송만석 선생님의 ‘적벽가’처럼. 그런데 오정해 씨는 두 영화에 모두 출연했죠. <천년학>은 임권택 감독님의 100번째 영화이기도 했고. 마치 임 감독님과 오정해 씨는 송화와 동호처럼 운명적인 만남이 아닐까요?
그냥 평범한 인연은 아닌 것 같아요. 물론 감독님이 사적으로 제가 예뻐서 저를 쓰신 건 아니고, 그 작품에 어울리는 여배우가 저라고 생각하셨겠죠. 사실 제가 맨 처음 감독님을 뵐 때 ‘거장 임권택’ 이런 느낌으로 접근한 건 아니었어요. 그냥 너무 평범하고 평탄하고, 그냥 뭐랄까. 아주 편안한 아저씨. 그 땐 아저씨였었어요. 지금은 할아버지지만. (웃음) 그런 느낌이었어요. 저는 영화를 했던 사람이 아니니까. 일반 관객들처럼 ‘임권택 감독님은 영화를 제일 잘 찍으시는 분’, 이 정도 상식밖에 모르고 봬서 그런지 별로 부담스럽지 않았죠. 현장에서도 감독님께선 ‘정해야, 이번에는 뭐 이렇게, 저렇게 해보자.’하시면 ‘예!’하고 대답하고, 이런 느낌이었거든요. 그래서 지금은 14년 이상이 지나니까 감독님은 저를 딸 같다고 하시고, 저도 임 감독님이 아버지 같다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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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나 아버지처럼 친근한 사이를 떠나서 감독님으로써 현장에선 뵙는 느낌은 또 다를 법한데요?
‘카리스마’란 말은 아무데나 붙이는 게 아닌 것 같아요. 감독님께서 현장에서 몰입하시는 모습을 보면 연세를 가늠할 수가 없어요. 정말 ‘카리스마’가 넘치시죠. 또 하나는 배우에 대한 판단이 빠르세요. 스텝들에 대한 판단도 빠르지만, 이 배우의 한계가 보일 땐 무리하게 요구하지 않으세요. 예를 들어 감독님의 기대만큼 배우가 못 따라갈 때, 그걸 억지로 막 밀어붙이면 배우한테도 무리가 가고 현장 자체의 분위기에 금이 가죠. 그래서 그 배우의 역량에 맞게 바꿔서 현장 콘티를 만드시죠. 배우들도 무리 없고, 씬에도 무리 없게. 그렇게 현장 콘티가 탄생하죠. 선장 혹은 지휘자처럼 임 감독님께서는 현장에서 배우들에게 눈에 띠는 부담으로 조율하는 게 아니라 현장의 느낌을, 스텝 한 명까지도 다 유심히 파악을 하세요. 그래서 그 날 컨디션이 아니다 싶으면 무리하게 진행을 절대로 안하시죠. 그리고 괜찮은 날은 최대한 밀고 나가고. 그 역할을 정확하게 하시는 분이세요.

일단 <서편제>에서도 그렇고 <천년학>에서도 맹인연기를 하셨어요. 맹인 연기에 어려움은 없었나요?
처음, <서편제> 때는 잘 몰랐어요. 힘든 건지도. 연기라는 걸 전혀 몰랐으니까. 그런데 이번 <천년학>에서 느낀 건, 배우에게 시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게 되니까 안타까웠죠. 부자연스럽고 많이 불편하고, 한계가 있잖아요. 또 사랑하는 마음을 은연중에 표현해내야 하는 역할이잖아요. 거기다 또 소리도 해야 되고. 그나마 이제 연기를 조금 알았다고 <서편제> 때보단 욕심은 더 나니까 이게 한계에 부딪치는 느낌이 들었어요. 보는 사람은 잘 모르겠지만 사실 하는 입장은 아주 많이 힘들죠. 무엇보다 조재현 씨처럼 눈빛을 활용한 그런 연기가 부럽고 그랬어요. 연기에 대한 욕심이 생기니까 나도 그런 연기를 해보고 싶더라고요.

<서편제>도 그랬지만 <천년학>에서도 우리나라에 이런 곳이 있었나싶을 정도로 아름다운 풍경들이 많이 등장하죠. 그런데 관객들의 눈엔 마냥 아름다워도 만드는 당사자들의 노고는 상당했겠죠? 이동도 많았을 것 같고. 본인은 어땠어요?
힘들지 않았어요. 본인도 기자분이 느끼시는 것과 똑같은 걸 느꼈어요. 촬영을 위해 그곳에 머물며 늘 보다가도 세팅을 하고 촬영을 한 뒤 모니터할 때, ‘아, 여기가 이랬나?’ 싶을 정도로 놀라운 풍경이 그려져요. 그런데 실제로 그곳들을 찾아가보면 실망하실 지도 몰라요. 영화는 정말 빛의 예술인 것 같아요. 빛에 따라 카메라에 빚어지는 앵글이 정말 틀려지거든요. 그니까 영화 속 현장을 실제로 찾아가서 그 영화의 느낌을 찾으시면 대부분 실망하게 되는 것 같아요. 그리고 극 중 산자락에서 ‘갈까부다’란 노래하는 장면 기억나세요?

물론이죠. 동호를 옆에 두고 부르는 장면.
거기가 임 감독님께서 그 근처에서 촬영을 하며 여러 번 지나다니던 길이었는데 사실 감독님께선 그 장소를 염두에 두시지도 않았었거든요. 그러다 그곳에 딱 빛이 떨어지는 순간에 거길 보는데 원하시던 영화의 느낌이 오셨나봐요. 그래서 그 자리에서 바로 내려서 세팅을 하고 부랴부랴 준비를 해서 찍은 거였어요.

장소 선택은 역시 감독님께서 하시겠죠?
예. 감독님께서 하세요. 직접.

혹시 여행 좋아하세요?
그럼요. 아주 좋아해요.

여행 다니는 듯 해서 좋았겠어요. 영화 찍으면서.
저는 여행을 했어요. 영화를 통해서. 주부가 여행을 하긴 참 어려워요. 더군다나 여자라는 특성상 한계도 있잖아요. 그런데 영화를 핑계 삼아서 안전하게 했죠. 다른 기자 분들이 아이를 떼어놓고 가족을 떠나서 힘들지 않았냐고 많이 물으시는데 사실은 가족들에게 미안한 말이지만 너무너무 즐거웠어요. 짐을 싸고 떠난다는 기분부터가. 그리고 현장에서 우리 스텝들하고 어울리는 그 시간들도 너무 좋았고, 이곳저곳 돌아다니는 그 느낌도 좋았고, 무엇보다 영화를 찍는 동안 지방에서 혼자 방을 쓰니까 나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어서 너무 좋았죠. 물론 아이가 보고 싶을 때도 있었지만 나름대로 굉장히 즐거운 여행이었어요.

<천년학>은 오정해 씨 자신 스스로를 찾는 계기이자 시간이었군요.
맞아요. 그동안 너무 편해서 게으르게 안주하고 있다가 정신이 딱 드는 거 있잖아요. 내가 아직 한 게 없는데 너무 안주하고 있었다는 생각. 그냥 ‘나는 애 엄마니까’ 이런 생각이 저를 너무 편안하게 만든 거죠. 그런데 영화를 위해 준비하며 나를 다시 가꾸는 과정에서 ‘맞아, 나도 여자였지.’이랬어요. 보통 아줌마들은 여자란 생각을 잊고 살잖아요. 자식을 위해서, 남편을 위해서. 저도 그랬던 거죠. 그런데 ‘아니야, 나도 여잔데. 내가 잊고 있었구나.’싶은 생각을 하게 된 거죠. 그러니까 <천년학>은 제게 여자로써도, 배우로써도, 소리꾼으로써도 다시 한 번 깨우침을 준 작품이에요.

임 감독님만큼이나 오정해 씨한테도 큰 의미가 되었네요. 감독님한테 감사드려야 겠는걸요.
너무 감사하죠. 그런데 감사드린다하면 혼나요. “내가 널 위해서 만든 줄 아니!” 이렇게. (웃음)

일단은 극에서 송화가 눈이 멀게 되는 사연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잖아요. 영화 속 풍문처럼 송화를 명창으로 만들기 위해서 아버지가 일부로 눈멀게 하는 약을 탔다는 의견도 있고 실수로 우연히 그렇게 된 거라고도 하잖아요. <천년학>은 그것이 명확히 어느 쪽이다고 말해주진 않아요. 본인 생각은 어때요?
눈을 멀게 한 것이 인위적이란 생각을 <천년학>에서는 안 했어요. <서편제>에서는 그런 암시를 강했으니까 그럴 수도 있겠다 싶은데 이번 <천년학>에선 아비의 마음을 드러내는 대사도 있잖아요. ‘어느 아비가 그랬겠냐고’ 전 그 말을 믿고 싶어요.

그 국밥집 씬.
예. 맞아요.

소리꾼으로서 득음을 한다는 건 단순히 기술적 발전으로 설명할 수 없는 초월의 경지라고 생각해요. 그럼 그런 경지에 오르기 위해선 그만큼의 계기가 필요할 수 있겠죠. <서편제>나 <천년학>에서 시력을 잃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고요. 그리고 전승자로서 계승의 욕심을 위해 그런 계기를 위해 고의로 눈을 멀게 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생각한다면 관계에 대한 이해 구조가 달라질 것 같은데, 딸과 아버지의 관계와 전승자와 계승자에 대한 관계로. 어쨌든 그런 전통문화라는 분야에 몸을 담고 있는 사람으로서 아버지가 아닌 전승자로서 유봉의 입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사람이 어떤 일에 미치면 광기가 난다고 하죠. 서양의 어느 화가처럼 귀를 자를 정도로. 그렇게 한 분야에 미치면 그럴 가능성이 있어요. 그런데 내가 아이를 키워보니까 내가 이렇게 힘들게 공부한 과정을 아이에게 반복시키고 싶진 않더라고요. 부모의 진짜 마음은 그래요. 자기 자식이 아버지나 어머니 가는 길을 간다고 하면 반대하고 싶은 게 부모마음이랄까. 저희 만전 김소희 선생님께서도 따님이 소리하는 걸 반대하셨어요. 반대라기 보단 모른 척하셨죠. 왜냐면 힘들단 걸아니까. 그 과정이. 그런데 그것이 좋아서 그것에 미쳐서 평생을 가는 사람이니까 아까워서라도 이 맥을 이어주는 게 내 자식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죠. 어느 하나에 미친 사람은 그럴 가능성이 있어요. 선생님이 제자한테 갖는 광기는 분명 있어요. 제 스승님은 자식보다도 제자를 사랑하셨어요. 왜냐면 자기가 이 소리를 너무 좋아하셨고, 좋아하는 소리의 맥을 이을 당신의 제자가 소리를 제대로 이어갈 수 있도록 완벽하게 가르치고 싶으셔서 그 제자를 놓지 않고 있는 모습이 광기 자체죠. 그러다보니 오히려 자식을 챙겨줄, 간섭조차 할 시간이 없었어요. 제자한테 그렇게 쏟는 사람이라. 그래서 오죽하면 자식이 ‘엄마는 자식보다 제자를 더 사랑한다고.’ 할 정도로. 그런 광기, 그런 모습을 제가 봤기 때문에 그럴 수 있다고 봐요. 충분히 이해가 되요. 내가 이렇게 다른 아이들을 레슨을 시켜보니까 가르치는 마음이 자식이상이에요. 그 애정이. 그렇지 않으면 우리 소리는 가르칠 수가 없어요. 악보를 놓고 가르치는 게 아니라 입에서 입으로 가르치는 거니까요. 예를 들어 제자의 행동거지가 맘에 안 들면 소리를 가르치기 이전에 인간을 만들어놔야 해요. 그 과정에서 내 자식처럼 잘못한 거 야단치고 잘한 건 칭찬도 해줘야 되고, 그리고 그런 후, 그 안에 소리를 심어주는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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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그릇을 만드는 것 같네요.
일반 서양 음악 레슨과는 과정이 많이 달라요. 그런데 받는 제자의 입장에서는 그게 얼마나 혹독하겠어요. 그게 한이 되는 거죠.

<천년학>에서도 등장하는 말처럼 우리 것이 천대받는 시대에요. 물론 천대까진 아니라 해도 우리 것이 많이 간과되고 잊히고 있어요. 그 분야에 몸을 담고 있는 분으로서 후대에 대한 강압을 해선 안 되지만 그것이 끊겨갈 위기라 생각하면 안타까울 것 같아요.
이젠 대중이나 청중이 찾아오길 기다리지 말고 우리가 가야 되요. 그런데 전통의 소리를 젊은 층에게 권하기엔, 젊은 세대가 서양 문물에 젖어있는 정도가 심하기 때문에 그건 강요처럼 들릴 수도 있어요. 마치 숙제처럼. 그러고 싶은 마음은 없어요. 그런데 우리 음악이 당시 유행하던 유행가란 말이에요. 인기가 있던. 물론 그걸 다시 부활시키기 위해 전통을 뜯어 고치자는 것은 아니에요. 전통은 전통대로 고수하는 분이 계셔야죠. 그리고 그걸 제대로 익힌 다음에 퓨전이나 크로스오버적인 작업을 통해 대중들한테 가까이 가는 거예요. 그렇게 관심을 유발시킨 다음에 그 청중들을 다시 전통으로 안내하는 거죠. 그럼 전통도 고수하면서 동시에 관객들의 외면을 관심으로 돌릴 수 있고. 그런 역할에 <서편제>나 <천년학>같은 영화 이상이 없죠. 과거 <서편제>를 통해서 우리 국악이 한번 부흥을 하기도 했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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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솔직히 요즘 사람이다 보니 우리음악을 제대로 들어본 적도 별로 없고 관심 가져본 적도 거의 없었어요. 그런데 <천년학>을 보니까 우리 음악이 꽤 맛있더라고요. 그 구성진 가락부터 구슬픈 음율까지. ‘아, 이런 맛이 있구나!’ 싶었죠. 물론 그래서 한편으론 ‘내가 많이 늙었나?’ 생각을 하기도. (웃음)
늙어서 그런 건 절대 아닐걸요? (웃음) 그런 느낌은 젊은 마니아 분들도 많이 느껴요. 그런데 단지 그렇게 소리에 머무를 시간도 없고 여유도 없을 뿐이죠. 우리 소리나, 우리 <천년학>도 같은 느낌이에요. 이 소리를 만날 수 있는 기회만 준다면, 이렇게 들을 수 있게끔 여유만 준다면 충분히 우리 소리를 좋아할 수 있고 <천년학>에 빠질 수 있거든요. 그런데 바삐 바삐 가고 신나거나 달콤한, 감각적인 것에 길들여진 요즘 세대가 일부로 그 늦은 장단을 찾아서 들을 리는 없잖아요. 근데 영화란 매체를 통해 소리를 전달받을 수 있다는 것이 중요하죠. <천년학>을 보고 ‘어머, 이것이 소리였던가?’ 하시는 분도 계시고요.

이렇게 우리 것이 소외받고 서양의 것이 주류가 된 시점에서 우리 것이 낯설다보니 오히려 보편화된 서양의 것에 비해 우리의 것이 새로운 신선함이 될 수도 있어요. 마치 틈새시장을 공략하듯. <천년학>은 충분히 그런 역할이 될 법하고. 그런 면에서 <천년학>같은 영화는 전통 문화를 고수하시는 분들에게 힘이 될 만한 사례 아닐까요?
맞아요. 저희가 바라는 게 두 가지에요. 항상. 이 영화가 잘 된다면 우리 소리도 잘되는 것과 마찬가지거든요. 그니까 소리를 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두 가지를 다 함께 기대해요.

그럼 주변에 교류하시는 소리인들의 반응이 의식되진 않으세요?
사실 이번 <천년학>에서 소리가 참 많은데 그리 많다고 안 느껴지실 거예요. 그것은 소리가 씬과 씬 사이의 다리 역할을 했기 때문이죠. 백미가 될 만한 좋은 소리들만 골라서 느닷없이 끼워 넣은 게 아니라 그 씬에 필요한 가사나 내용이 있는 노래로 다리를 살짝 살짝 얹어가서 소리는 굉장히 많은데 그렇게 막 부담스럽지는 않단 말이죠. 다행히 <천년학>의 송화는 소리를 아주 절창(絶唱)하는 입장이 아니기도 하고요. <서편제>에선 그게 아니었잖아요. 맨 마지막에 득음의 소리를 들려줘야 했기 때문에 제 능력 밖의 일이라 안숙선 명창소리를 립씽크해야 했지만 이번엔 송화의 소리가 처음부터 끝까지 제 소리였잖아요. 그게 뭐 제가 소리가 많이 늘고 높은 경지에 올라서 그랬다는 게 아니라, <서편제>와 달리 <천년학>은 소리의 득음이 아닌 사랑의 이야기니까. 그리고 제가 아닌 다른 사람소리를 쓰면 어색하기도 하잖아요. 그런데 우리 국악하시는 분들 중, ‘아이구, 저보다 더 소리를 잘했으면.’하시는 마니아 분들도 계실 거예요. 그런데 신영희 선생님께서 <천년학>을 보셨어요. 그래서 ‘선생님 괜찮겠어요. 제 소리로도.’하고 여쭈니까 “충분히 괜찮다. 네 역할과 그 영화의 이미지에 맞게끔 소리를 적절히 냈기 때문에 소리의 감이 좋다.”고 격려를 해주셨어요. 그래서 다소 안심을 했죠. 사실 우리 음악하시는 분들이 욕심이 생길 거라 그 부분이 걱정스러웠죠. 영화를 통해 안숙선 명창이나 신명희 명창같은 분들의 절창한 소리를 들려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을까봐. 그런데 그런 대가가 오셔서 격려를 해주시니 마음이 놓였어요.

영화를 단순히 느낌으로 표현해보자면, <서편제>는 마치 피를 토하는 심정, 날이 선 느낌이었어요. 그런데 <천년학>은 무언가를 끌어안고 품고, 몸이 상승해 오르는 둥근 느낌이었거든요.
그 당시에 CG가 발달이 돼서 <서편제>가 ‘선학동 나그네’, 즉 <천년학>까지 품었다면 그 당시 관객들에겐 어색하고 당황스러웠을 것 같아요. 영화가 시대에 너무 앞서가도 관객에게 외면당하고 그 시대에 맞게 같이 잘 걸어가야 되는 거 같아요. 일단 작품성도 중요하지만 그 작품성을 살려줄 흥행성을 살핀다면. 임 감독님께서 지금에 와서 <천년학>을 말씀하시는 게 너무 다행이란 생각이 들어요. 감독님의 100번째라는 작품이라는 점에도 너무나 걸맞은 수준 높은 작품이고. <천년학>은 정말 다각도로 볼 수 있는 영화기 때문에, 출연한 배우인데도 불구하고 영화에 대한 느낌이 매번 달라지는 것 같아요. 느낌이 단순히 이거다고 할 수가 없어요. 오히려 <서편제>는 아까 말씀하신대로 날이 서 있어서 어느 한 방향으로 이야기를 할 수 있었는데, <천년학>은 제가 볼 때마다 느낌이 다르고, 이야기할 때마다 영화를 생각하면 또 틀려요. 어느 한 방향으로 이야기할 수 없게 통틀어서 어우러진 이야기가 되요. 이 시대에 나와야 할, 감독님의 연세나 작품 수나, 너무나 딱 맞는 작품인거 같아요. 100번째에 걸맞은 작품.

뮤지컬에도 출연하시고 강단에도 섰지만 그 이전에 가정주부의 삶에 충실했죠. 그런데 다시 영화에 출연한다하면 집안의 도움도 컸겠죠? 남편분의 이해도 필요했을 테고.
그렇죠. 절대적이었죠. 그게 없다면 제가 할 수 없었죠. 시어머님께선 항상 ‘네가 할 수 있을 때 안하는 건 죄다. 네가 그렇게 열심히 익혀놓고 그걸 써먹거나 풀지 않고 갖고만 있는 것도 죄다. 네 모든 걸 활용해서 알리고 그걸 사람들한테 사랑받게 하는 건 얼마든지 좋은 일이니까.’ 라고 하셨거든요. 애 아빠도 반대할 때 이유는 하나에요. 내가 힘들어하는 건 하지 말라고. “당신이 해서 즐거움 찾고 즐길 수 있는 일을 해라. 그럼 언제든지 뭘 하든지 이해해주겠다.” 제가 이렇게 영화를 다시 할 수 있었던 건 남편 덕분이죠. 그리고 우리 시댁 식구들. 제일 먼저 영화 시사도 해주시고, 우리 어머님이 직접 오시면 부담스러울 까봐 스텝들 회식이라도 시켜주라고 용돈을 주시기도 했어요. 아무래도 시집은 잘 갔죠?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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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것 같아요. 아드님이 올해 몇 살이죠?
11살.

아! 제가 딱 <서편제> 본 나이네요. (웃음)
네. 그래서 아까 11살이랄 때 깜짝 놀랐어요.

아~, 그랬군요. 혹시 아이가 혹시 노래 쪽에 흥미가 있다거나.
아주 많아요. <천년학>에서 그 ‘꿈이로다’라는 노래 있잖아요. 꿈타령.

아. 그 노래 기억나요. 너무 아름다운 장면이라 노래까지 또렷이 기억나네요.
엊그제 밤에 잠자면서 그 노래를 가르쳐줬어요. 영화보고 와서 하도 흉내를 내기에 이왕 흉내 낼 거면 제대로 배우라고. 그런데 그게 굉장히 어려운 노래에요. 그런데 밤 12시에 잠자면서 드러누워서 영화 속 장면처럼 가르쳤어요. (웃음) 그런데 웬걸! 금방 따라하지 않겠어요. 원래 애들이 모방을 잘해서 빨리 배우긴 해요. 그런데 음악적인 감각이 있긴 해요. 피아노도 잘 치고.

그럼 욕심이 좀 나실 법도 한데요?
전 안 내려고요. 아까도 이야기했던 것처럼 부모의 마음이니까. 그리고 음악한 사람들은 아무래도 예민할 수밖에 없어요. 전 남자아이가 그렇게 크는 게 싫어요. 그냥 털털하고 편안한 게 좋은데 음악을 하면 자꾸 예민해지니까요. 안 했으면 좋겠다는 게 진짜 제 마음이죠. 그런데 애 아빠는 막 그런 반응이 있을 때마다 너무 좋아해요. 소질 있는 거 자꾸 개발시키려 그러고 저는 막 묻어두려고 하고. (웃음) 뭐 어쩔 수 없는 것 같더라고요. 피는.

혹시 아이가 원한다면.
뭐 원한다면 반대 안 해요. 자기 인생이니까. 철저하게. 저는 아이가 원하는 건 반대 안 해요. 그러니까 강요도 절대 안 해요.

적극적이진 않더라도 지원해주실 의향은 있겠죠?
글쎄요. 크게 지원할 생각도 없어요. 스스로 알아서 해야죠. 왜냐면 어렵게 얻어야 그걸 안 놓죠. 부모가 쉽게 제 손에 쥐어주면 쉽게 놔버리는 법이에요. 자기가 정말 하고 싶으면 어떤 방법을 통해서라도 하겠다는 그 마음이 변치 않아야 끝까지 가거든요. 고생 없이 편하게 쥐어주면 절대로 안 돼요. 저부터도 쉽지 않게 배웠기 때문에 권하지 않아요. 스스로 필요하면 자기가 알아서 찾아가겠죠.

아이는 <천년학>을 재미있게 보던가요?
보고 와서 ‘넌 이해가 되니?’ 했더니 이해가 안 된다 하더라고요. 그리고 영화 속의 송화가 엄마로 보이니 탓도 있을 테고. 그래서 아까 11살 때 (<서편제>를) 보셨는데도 그런 느낌을 기억하고 있어서 깜짝 놀랐어요. 우리 아이도 11살인데.

아. 기억한다기 보단 지금와서 생각해보니 그런 느낌이었던 것 같아요. 다시 말하지만 그 어린 것이 뭘 알고 봤겠어요. (웃음)
어쨌든 제가 ‘어떻던? 이해가 되니?’ 하고 물으니까 ‘뭔지 잘 모르겠어요.’ 하더라고요. 사실 아이가 영화를 좋아해요. 굉장히. 요즘은 엄마보다도 영화를 많이 봐요. 그래서 저는 솔직히 기대를 많이 했죠. 어떻게 반응을 할까싶어서. 그런데 우리 영화가 주는 중요 장면들은 거의 다 기억을 해요. 그건 인상에 남았던 거죠. 그런데 전체 스토리를 이해하기에 11살은 너무 버거웠나 봐요.

양방언 씨는 만났죠?
네. 봤죠. <천년학> 시사회때.

일단 장르가 다르지만 음악이라는 공통적인 뿌리로 본다면 통하는 부분도 있었을 것 같아요. 또 양방언 씨의 음악이 동양적, 특히 한국적인 느낌이 담겨 있잖아요. 이번 <천년학>의 영화 음악을 들어봐도 그렇고.
제가 양방언 씨를 처음 안 건 2000년도에요. 제가 진행하던 라디오 ‘FM 풍류’의 시그널 음악이 양방언 씨의 ‘prince of cheju’, 제주의 왕자라는 곡이었거든요. 이분의 아버지가 제주도 사람이고 어머니가 신해주 사람인데 본인은 일본에서 태어났어요. 그 음악이 너무 좋더라고요. 근데 마침 음반 홍보차 방한해서 우리 프로에 출연했던 적이 있어요. 그리고 그 다음에 앨범을 제대로 들어보니까 음악이 너무 좋았어요. 사실 국악 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하는 음악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요. 너무 잘 알기 때문에, 우리 악기의 특성상 조심스런 부분도 많고. 그런데 이분은 그걸 잘 모르니까 자기가 원하는 대로 들리는 대로 음악을 편하게 만들어서 너무 좋았어요. 감독님도 저랑 같은 느낌으로 양방언씨를 선택했죠. 우리 악기와 서양악기의 협연을 했는데 부담스러움이 전혀 없어요. 너무 매끄럽게 음을 진열하는 거예요. 그래서 깜짝 놀랐어요. 6년간 라디오 진행하면서 많은 국악 작곡가들의 퓨전 된, 크로스 오버된 곡을 접했는데 이분 곡처럼 자연스런 곡은 처음 봤어요. 그래서 제가 그분 음악의 팬이 되었고 임 감독님께 자연스럽게 소개해 드릴 수 있었죠.

아, 오정해 씨가 임 감독님께 양방언 씨를 소개해 주셨군요.
예. 소개는 제가 해드렸죠. 왜냐면 양방언 씨라는 존재를 임 감독님은 모르셨고. 그런데 사실 처음 임 감독님께 소개해 드렸을 땐 <천년학> 때가 아니라 <취화선> 때였어요. 예전에 임 감독님께서 “국악 작곡가 중, 좋은 사람 없냐?”고 물으셔서 다른 작곡가들과 함께 양방언 씨를 추천했죠. 저는 그때 양방언 씨의 음악에 심취돼 있었고. 그렇게 소개해드렸는데 감독님께선 ‘누구? 재일교포? 내 영화에 무슨 재일교포야.’이러시면서 아예 거부하시더라고요. 그러다가 제 차에 양방언 씨 음반이 있어서 임 감독님을 차에 태워드릴 때마다 주로 들려드렸죠. 음악을 들어보시더니 누구냐고 막 물어보시길래 ‘아니, 잘 모르겠는데. 더 들어보세요.’ 막 이러면서. (웃음) 그렇게 들어보시게 하고 “음악 좋지 않으세요?” 하고 여쭈니까 “좋다. 누구냐?”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사실 감독님께서 그때 거부하셨던 재일교포 양방언 씨입니다.”라고 하니 깜짝 놀라시는 거에요. 그래서 “이번에 세종문화회관에서 공연 있는데 한번 보시겠어요?” 하고 또 여쭈었고 가셨죠. 근데 공연을 보고 너무너무 좋아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공연 후, 감독님이 직접 양방언 씨에게 가서 영화 음악을 부탁하셨죠. 그렇게 된 거 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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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방언씨는 이 사실을 아나요?
그럼요. 다 알죠. 임권택 감독님을 개인적으로 많이 좋아하셨어요. 근데 영화음악을 하면서 현장에 그렇게 많이 온 음악감독도 없을 거예요. 진짜 많이 왔어요. 와서 며칠 동안 보고가고. 왜냐하면 <천년학>이라는 작품도 모르겠고, 이게 무슨 내용인지 알아야겠다 싶어서 그랬다 하더라고요. 현장에서 분위기 보고 가고, 자기가 스텝인양 도와주기도 하고, 제주도에서 촬영할 땐 한국식으로 떡도 싸와서 스텝들한테 나눠주기도 하고. 그래서 금방 스텝들이랑 어울렸죠. 감독님한테도 끊임없이 여쭤보고. 그렇게 해서 만든 음악이라선지 심연으로 충분히 와 닿죠. 너무너무 감독님도 흡족해하시고.

잘은 모르지만 우리의 정서가 느껴졌어요. 웅장하지만 소박한, <천년학>의 너그러운 느낌이 많이 묻어났어요. 저도 좋았어요.
예. 맞아요. 정말 좋죠? 정말 너무 음악이 좋아요.

아마 <천년학> 때문에 외국도 좀 나가실 것 같아요. 좀 앞으로 바빠지실 텐데, 아마 아드님도 보고 싶어지겠어요. 하지만 이젠 진짜 해외로 여행가시겠네요. (웃음)
물론 공과 사는 철저하게 분리해야 하니까 상관없는데 바람이 있다면 <천년학>이 외국에서 큰 상을 받지 않아도, 물론 받으면 좋겠지만 그것보단 이 영화가 세계 방방곡곡에 널리 알려졌으면 좋겠어요. 왜냐면 우리나라를 알리는데 너무 좋은 영화잖아요. 우리 고유의 아름다운 풍경이라던가, 우리 옷도, 소리도 있고, 그래서 우리나라를 알리는데 이보다 더 좋은 작품이 없잖아요. 단기간에 어떤 사람 일부만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이 공유할 수 있게. 그리고 제가 그에 이바지할 수 있다면 어디든 가고 싶어요. 욕심 같아선 돈 안 받고도 막 보여주고 싶어요. 물론 제작사가 싫어하겠지만. (웃음)


<천년학>은 <서편제>를 기억하는 관객들에게 큰 선물이 될 거에요.
한편으로 어쩌면 <서편제>의 찡한 느낌을 미리 품고 오시는 분들에겐 실망스러울 수도 있어요. <서편제>의 남매가 밤샘을 하며 서로 울고불고 했던 그런 아픔을 간직하고 또 그걸 바라신다면 ‘왜 그런 장면이 없지?’하고 그럴수 있잖아요. 어르신들은. <천년학>은 머무는 영화가 아니라 훌훌 털어내고 정화시키고 승화되는 이야기에요. 단순하게 <서편제>가 좋았다면 그걸 만드신 임권택 감독님의 영화란 것만 알고 그렇게 오시면 좋겠어요. 그래서 하나하나 처음부터 마지막 장면까지 영화가 안내하는 길로만 쭉 따라가시다 보면 수준 높은 감동을 만나실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리고 동시에 <천년학>같은 영화는 요즘 젊은 관객들에게 생소할 수도 있어요. 그런 젊은 관객들이 <천년학>을 받아들였으면 하는 바람은?
<서편제>도 그랬어요. <서편제>도 ‘과연 이 영화를 젊은 관객이 좋아할까?’ 했죠. 근데 결국은 그 당시, 우리나라의 대부분이 이 영화를 봤어요. 물론 그 이유가 마치 이 영화를 안 봐서는 안 될 것처럼 애국심을 발휘하게 만드는 점도 있었죠. 하지만 한편으론 내 부모님을 보여드리기 위해 젊은 사람이 부모님들 손을 잡고 같이 보게 되다가 <천년학>의 아름다움에 빠져 들 수도 있겠죠. 저도 <서편제> 당시 젊었는데 그 영화가 너무 좋았었고. <천년학>도 그러지 않을까요. 나이를 떠나서, 지극히 한국적인 감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내 가슴에, 내 몸에 한국인의 피가 흐르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래 우리 거잖아’할 수 있지 않을까요. 젊은 사람도 부모님의 눈빛을 대신 느낄 수 있지 않을까. 그런데 <서편제>때와 비슷한 말인데 영화관에 올 때까지가 중요한 것 같아요. 영화가 좋으니까 극장에 와서 볼 수만 있다면 좋은데. <서편제>때도 그랬어요. 극장에 앉아서 보기만 하면 사람들이 분명 나쁘다고 욕할 사람은 없을 것 같은데 이 영화를 보러 극장에 오기까지가 힘들 수 있겠다는. 그때랑 많이 비슷해요. 10년이 넘었는데도.

오랜만에 연기를 다시 하셨지만, 잘 모르겠어요. <천년학> 때문에 나오시긴 했지만 다시 연기를 활발히 할 의사가 있는지는. 물론 임권택 감독님이 부르신다면 또 하실 것 같아요. (웃음)
제가 연기적 특성상 다른 배우들과 차별되는 면은 있죠. 순수 연기인도 아니고. 만약 저를 필요로 하신다면, 그것이 제가 하고 싶은 역할이라면 얼마든지 임권택 감독님이 아니라도 출연할 의사는 있어요. 어쩌면 이젠 임권택 감독님과 멀리 떨어져야 할 것 같아요. 자꾸 저를 통해 감독님이 언급되니까 감독님한테 불편 끼치는 것 같기도 하고, 일부로 그런 건 아니지만. 그냥 자연스럽게 제가 할만한 역을 준다면 그게 누구 감독님이라도 할 거고. 만약 정말 또 임 감독님과 하게 된다면 그것도 제가 할만한 역일 테니 하겠죠. 그런데 솔직히 그럴 일은 없겠죠. 설마~! 네 번이나 했는데? (웃음)

대가의 경지에 오른 소리꾼들을 많이 보셨잖아요. 스승님이신 만전 김소희 선생님부터가 그러셨고. 그런데 제가 봤을 때 영화에서 득음을 했다는 경지의 사람을 꼽으라면 임권택 감독님을 꼽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어쩜, 내가 하고 싶은 얘기를 처음부터 계속 하고 있어. 깜짝 깜짝 놀라게!(웃음) 맞아요! 그 경지에요. 그걸 제가 설명할 길이 없었는데. 저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솔직히 누구라도 그렇게 생각할 걸요? 임권택 감독님께서 100번째 작품을 만드셨지만 이제 또 101번째, 102번째 작품을 만드실 거예요. 그런 분을 가까이서 모시는 한사람으로서 감독님에 대한 개인적 바람이 있나요?
저는 이번 <천년학>이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야만 우리 감독님이 돌아가시기 전까지 편안히 작품에 몰입할 수 있으실 것 같아요. 어떤 부담도 드리지 않고, 편안하게. 우리의 세계적인 감독님이 어떤 시선에도 신경 쓰지 않고 원하시는 작품을 하실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해준다면 더할 나위가 없겠어요.

100번째 작품이 그래서 더 의미가 있는 것도 같아요.
솔직히 100번째 작품, 100번째 작품, 우리가 스스로 말하기도 부담스럽잖아요. 당신은 얼마나 버겁겠어요. 한편으론 마치 이 영화를 끝으로 돌아가시라고 하는 것처럼 들릴 때도 있어요. 제가 옆에서 느끼기도 그래요. 근데 감독님은 돌아가실 때 까지 현장에 계시고 싶은 분이세요. 근데 마치 밖으로 내모는 것 같고. 그래서 그런 100번째라는 숫자로서의 의미보단 이제 다시 첫 번째란 느낌으로 시작할 수 있게. 그런데 <천년학>이 사랑받지 못한다면 감독님께서 그 힘을 어디서 받겠어요. 감독님의 작품이 관객들의 이해를 필요로 하고, 그 이해가 사랑으로 되어야만 훌훌 털어버리고 마음껏 할 수 있을 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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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학>에서 대사 중 ‘소리에도 길이 있다’고 하잖아요. 오정해 씨도 길이 있겠죠. 본인은 그 길의 어느 정도 오셨다고 생각하세요.
10분의 1?

그럼 나머지 10분의 9는 무엇으로 채우고 싶으세요?
그건 앞서서 간다고 채워 넣을 수 있는 게 아니에요. 지금 제 나이에 자연스러운 템포대로 계속 꾸준히 가야돼요. 내가 막 지금 빨리 채워 넣는다고 채워지는 게 아니고. <서편제>때와 <천년학>때와 소리가 많이 달라졌다고 하더라고요. 그건 제가 막 공력이 엄청나게 좋아져서가 아니라 소리도 나이가 먹은 거예요. 내가 14년이란 생활을 그 안에 있었기 때문에 그 시간이 묻어나서 소리가 성숙해진 것처럼 10분의 9는 자연스럽게 성숙해져가야 하는 과정이거든요. 저는 뭐든지 막 앞서서 가는 걸 싫어해요. 지금 현재, 지금이 소중하니까 지금부터 다 채워 넣고, 그런 다음에 내일도 채워 넣어야죠. 내 앞에 보이는 것부터 차근차근 하는 걸 좋아해요. 막 어떤 한가지만을 보며 가는 건 싫어요. 욕심을 덜어서 다섯 가지가 나란히 천천히 가는 걸 좋아해요. 앞으로의 계획들을 많이 물어보시는데 그건 저도 몰라요. 저도 어디로 갈지. 단지 노력할 수 있는 자세를 항상 가지려고요. 최선을 다할 뿐. 그러지 않았을 때 오는 후회감이 너무 싫기 때문에, 일단 되던 안 되든 내가 할 수 있는 한계까진 가보는 거죠. 어떤 일이든 일단 맡았다면. 그랬을 때 다음에 오는 결과가 설령 나쁘더라도 저는 만족할 수 있으니까. 그렇게 할 준비가 되어있으면 어떤 일이든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어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여러 가지 다양한 경험을 해볼 수 있었어요. 다른 사람보다도 운이 좋았던 것 같아요. 부리나케 쫓아다닌 기억은 없어요. 다만 일이 찾아왔을 때 그것이 내 것이라면 잡아야죠. 그래서 항상 최선을 다할 수 있도록 준비를 하는 거예요. 그래서 그렇게 찾아온 일들에 최선을 다해서 빠져들었던 것 같고. 지금까지 제가 선택한 길에 후회가 없으니 앞으로도 그렇게 살고 싶어요.

이야기를 듣다보니까 아무래도 <천년학>의 비상학은 어쩌면 오정해 씨였던 것 같네요.
우리 이러다 나중에 십 몇 년 만에 또 인터뷰하는 거 아니에요? 우리 애 장가보내고! 그동안 뭐하셨어요? 이러면서! (웃음)

음..그때는 11살 때 <천년학>을 본 친구와 인터뷰하면 감회가 새롭겠네요. (웃음)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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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민용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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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지혜 인터뷰

interview 2008. 5. 30.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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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민용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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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진희 인터뷰

interview 2008. 5. 30.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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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의 개봉 날이 잡혔죠?
네. 3월 22일!

혹시 완성된 작품은 보셨나요?
아직 못 봤어요. 3월 7일 날 기술시사가 있으니까 그때 볼 예정이에요.(인터뷰는 7일 이전에 이루어졌다.) 저도 예고편만 봤고, 후시 녹음 때 관련 장면만 대충 봤죠.

그렇군요. 저도 일단 <수>의 예고편밖에 보지 못해서 궁금한데 영화와 캐릭터에 대해 간략하게 말해주시겠어요?
하드보일드 클래식! 국내에선 보기 힘든 신선한 장르죠. 어린 시절 헤어졌던 쌍둥이 형제가 19년 만에 만나요. 제가 연기한 형은 킬러고 동생은 임관을 앞둔 경찰이죠. 그런데 동생과 만나게 된 첫날, 동생이 제 눈앞에서 죽어요. 그래서 형은 동생의 복수를 인생의 목표로 삼게 되죠. 그 복수에 대한 이야기에요. 그 과정에서 적들을 상대하고 갈등하게 되는 거죠.

일단 ‘지진희’라는 이름은 사람들에게 젠틀한 이미지로 많이 부각되는데, 저는 지진희씨가 그것과는 다른 의외성을 많이 지니고 있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면 얼마 전 <오래된 정원>의 오현우나, <여교수의 은밀한 매력>의 박석규같은 은근한 껄렁함도 그런 부분들 중의 하나라고 봐요.
그렇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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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자신의 이미지가 고정된다는 것에 반감이 생기지는 않아요?
반감은 전혀 없어요. 한 가지 확실히 말씀드릴 수 있는 건 제가 맡았던 그 캐릭터들이 매력적이라는 사실이죠. 그게 가장 큰 공통점이죠. 제가 뭘 깨려고 사는 사람도 아니고 그저 세상의 순리에 순응하며 사는 사람이니까요. 그냥 보셨으면 아시겠지만 제가 연기한 캐릭터들이 일반적인 평범한 캐릭터들은 아니죠. 물론 저만의 느낌일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저는 그 캐릭터들을 아끼고 즐겁게 연기했어요.

이번 <수>가 지진희 씨에겐 액션이 처음이라고 봐도 되잖아요? 예전 <H>에서도 형사 역을 맡긴 했지만.
그렇죠. <H>는 <수>와 비교할 정도가 못되죠.

일단 <수>의 ‘수’는 예전 지진희 씨가 연기한 캐릭터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판이한 캐릭터에요. 그렇기에 본인에게는 상당히 즐거운 작업이었을 것 같은데요?
그렇죠! 상당히 즐거웠어요! 대충 아시겠지만 <수>의 작업이 굉장히 거친 액션이 많았거든요. 게다가 최양일 감독님이 원하시는 건 리얼 액션이었어요. 그냥 우리가 영화에서 쉽게 보는 연출된 액션이 아닌 진짜 리얼 액션이에요. 단적인 예로 목 졸리는 장면이 있었어요. 실제로 제 목을 노끈으로 졸랐고 저도 그렇게 하자고 했어요. 그때 진짜 숨 막혀 죽는 줄 알았죠. 그리고 그 상황을 벗어나 날 죽이려던 사람과 싸우고 결국 제거하게 되는 모든 과정이 거의 진짜였어요. 그런데 어차피 최양일 감독님에 대한 이야기를 익히 들었고 그 사람의 예전 작품을 보고 나서도 그래야만 할 것이라 생각을 했죠. 촬영하다가 몇 군데 부러질지도 모른다는 각오도 했어요. 어쩌면 그런 마음으로 덤벼들어서 생각보다 덜 다쳤던 것 같아요. 인대가 늘어나고 몇 군데 찰과상 입는 정도는 애초에 각오했던 바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그리고 온 힘과 정열을 쏟아서 촬영을 마치고 나면 굉장한 희열감 같은 것들이 느껴졌어요. 그리고 여태껏 제가 맡았던 역할들이 내면에 무언가를 꾹 눌러 담아 제대로 풀지 않는 역할들이었죠. 무언가를 분출하고 내뱉는 역할은 처음인지라 그런 것에 대한 희열감도 있었고 해보지 못했던 것을 한다는 해방감도 있었어요. 꽤 즐거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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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어쨌건 지진희 씨의 액션은 실감이 안 나는 것이 사실이에요. 그전의 역할들을 보았을 때는 말이죠. 그래서 <수>에 지진희 씨가 캐스팅 된 건 의외라고 생각했어요. 음..혹시 기분 나쁘신 건 아니죠?
물론! 전혀! 괜찮아요. (웃음)

일단 그래서 궁금했던 게 캐스팅의 과정이었어요. 최양일 감독이 먼저 요청을 한 것인지, 아니면 지진희씨 측에서 적극적으로 구애를 한건가요?
사실 캐스팅은 저의 문제이지만 캐스팅의 초반 과정은 제가 관여하는 문제는 아니에요. 어쨌든 일단 캐스팅을 하던 안 하든 감독님이 보자고 하셨어요. 그래서 만나 뵙는 자리에서 이런 저런 이야길 했죠. “감독님께서 저를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겠지만 제가 쓰러져 죽기 전까지는 최선을 다해서 연기하겠다.”라고 말했어요. 그걸 감독님께서 만족하셨던 것 같고 감독님 스스로도 <수>의 작업이 꽤 힘들고 어려운 작업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기 때문에 그걸 끝까지 참고 견뎌낼 수 있는 배우를 찾으셨다더군요. 저의 열의가 그런 고민에 통했는지도 모르죠.

최양일 감독님의 촬영 분위기는 소문으로만 익히 들었는데 직접 겪어본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요.
잘 아시겠지만 <수>는 공개촬영을 하지 않았죠. 감독님은 현장에 누가 오는 것을 싫어하시거든요. 현장 분위기를 흐리게 될 어떤 요소의 개입도 용납하지 않는 거죠.

영화 자체에 집중하고 싶어 하시는군요.
그렇죠. 그러니까 현장에 집중할 수 있도록 모든 시스템이나 도구가 갖추어져 있어야 해요. 배우들도 마찬가지고. 그런데 그것이 충분치 않았을 때는 굉장히 화를 내세요. 하지만 그건 지극히 당연한 거겠죠? 그리고 그런 부분이 잘 준비가 되었을 때는 상당히 만족하시죠. ‘정말 프로구나!’라는 것을 절실히 느꼈어요. 너무 많은 것을 배웠고 제가 예전에 영화를 찍으며 안이하게 생각했던 부분들을 버리게 되었고, 물론 <수>를 촬영하기 전 최양일 감독님의 명성을 들었기 때문에 이미 그런 것들을 많이 배제하고 준비를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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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영화의 정보를 듣고 시나리오를 접했을 때 이 영화가 만만치 않다는 것을 잘 알았을 텐데, 어떻던가요?
“이야! 이것 재미있겠다. 땀 좀 흘리겠는데! 이 감독님이라면 정말 제대로 만들겠지? 어떨까?” 이런 궁금증, 기대감 등. 일단 땀 흘리는 것도 좋아하니까 그런 부분에 대한 희열감도.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준비하기 위한 연습과정. 이런 것들을 모두 생각하니 사실 즐거웠어요.

액션 준비 기간은 얼마나 되었죠?

한 2달 정도. 하루에 4~5시간씩 심재명 액션 스쿨에서 준비했죠. 정말 꽤나 재미있는 작업이었고 좋았어요. 거기서 제가 준비했기 때문에 많이 다치지 않고 무사히 마친 것 같아요. 한번은 같이 촬영하던 스턴트맨이 저를 들어 올리다가 무릎이 뒤로 꺾여버려서 곧바로 이송된 적도 있어요. 일단 그 이외에는 크게 사고가 난 것은 없었어요. 그것은 그만큼 사람들이 긴장하고 실전처럼 임했기 때문에 그럴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지금 71년생, 30대 중반이 넘었어요. 그렇죠.

이제 그 정도의 나이라면 변신보다는 변화라는 단어가 점점 어울려지는 때인 것 같아요. 그런데 이번 <수>는 지진희 씨에게는 변신이라는 단어가 어울리겠죠? 어쩌면 더 나이가 들기 전에 이런 연기를 해보고 싶었던 것 같기도 하고.
개인적인 생각에 남자가 가장 일을 열정적으로 많이 할 수 있는 나이가 30대 중반부터 40대 중반이라고 생각해요. 이미 제가 30대 중후반이긴 하지만 모든 것을 안정적으로 가고 싶진 않아요. 지금이 가장 열정적으로 일할 때고, 그럴 수 있는 안정된 기반이 마련되었고, 좀 더 잘 될 수 있다고 느껴지기에 자신감도 생겨나고요. 이런 최고의 나이에 모든 길을 포기하고 안정적인 길을 가고 싶진 않아요. 지금 이제 시작이라 생각해요. 앞으로 어떤 역할이 주어질지 모르겠지만 훨씬 더 멋있게 잘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앞으로 또 다른 변신이 있을지도 모르겠죠. 물론 없을 수도 있어요. 그렇지만 저만이 표현하고 보여줄 수 있는 정말 매력적인 모습을 주목받았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한편으로는 인생에 또 다른 반전도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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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역할을 했지만 안 해본 역할이 있어요. 악역은 아직 한 번도 안 하셨죠? 그렇죠.

혹시 악역에 매력을 느낀 적 없나요? 하고 싶다거나.
이유 있는 악역이죠. <하얀거탑>에서 김명민 씨가 연기하는 장준혁처럼. 단순하게 결과를 놓고 보면 그 사람이 나쁘다고 쉽게 말하겠지만 그 사람의 사정을 들여다보면 그가 그렇게 욕심을 부려야 할 개인적인 이유가 있잖아요. 가정생활이라던가, 부모님에 대한 연민이라던가. 물론 그것들이 잘못에 면죄부를 줄 순 없지만, 그 사람이 남을 밟고 올라가야 할 이유가 있는 거죠. 무조건적인 나쁜 놈은 재미가 없을 것 같아요. 물론 역할이나 상대배우에 따라 많이 좌우되겠지만 악역에 대한 매력은 꽤 크죠. 악역의 이미지를 상상하기 힘든 배우가 아무렇지도 않게 악랄한 연기를 해냈을 때 느껴지는 충격의 강도는 엄청 커질 테니까요.

그전의 이미지가 오히려 반전이 되겠군요.
네. 그렇죠. 그전의 이미지들을 깨부수기 위해 일부로 세게 나가기보다는 아무렇지 않게..예를 들면 일상적으로 거리낌 없이 사람을 죽인다거나 하면 소름끼칠 것 같아요.

함께 출연한 문성근 씨나 이기영 씨 등은 악역에 일가견이 있는 배우들이에요. <수>에서도 그런 뉘앙스가 풍기던데, 그런 분들에게 악역에 대한 영감이라도 얻은 건 없나요?
글쎄요. 영감까지는 모르겠고. 문성근 선배는 일단 절대 악으로 <수>에서 등장해요. 그걸 보면서 ‘진짜 대단하구나!’라는 생각을 했어요. 정말 지금까지 보지 못한 문성근 씨를 보게 될 거에요. 문성근 선배님 또한 “여태껏 자신이 맡았던 악역 중에 최고로 나쁜 놈이다. 이것보다 나쁜 놈이 나오긴 힘들 거다.”라고 하셨어요. 그리고 그것을 지켜보며 ‘정말 나쁜 놈이구나’라고 생각을 했을 뿐이지 다른 생각은 잘 안했어요. 일단 제가 맡은 태수에 집중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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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이야기를 해보죠. 03년도에 <다섯개의 시선>에서 박광수 감독님의 작품에 출연했죠. 박광수 감독님과 인연이라도 있나요?
일단 박광수 감독님께서 ‘같이 찍자!’고 해서 했었죠. 사실 그 이야기를 하자면 조금 긴데..배우로서 일을 시작하려고 했을 때 처음 만난 영화감독님은 박광수 감독님이었어요. 그때 당시 감독님께서 <이재수의 난>을 한참 캐스팅 작업 중이셨죠. 매니저가 그 자리에 가자고 하는데, 저는 사실 준비된 것이 없다고 생각해서 싫다고 했죠. 그럼 그냥 인사만 드리러 가자고 해서 따라갔다가 얼떨결에 현장에 떠밀려 오디션을 보게 되었어요.

그런데 정말 저는 준비된 것이 없어서 솔직하게 못하겠다고 말하고 나와 버렸죠. 그런데 일주일 정도 되니 캐스팅되었다고 연락이 오더라고요. 하지만 제 스스로 준비가 안 된 상태라고 판단해서 우여곡절 끝에 제가 “죄송합니다. 제가 이제 처음 연기를 하고자 하는 거라 아직 준비된 것이 없습니다.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함께 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라고 정중하게 사절했죠. 그랬더니 박광수 감독님께서 “나중에 좋은 일 있으면 같이 하자.”고 하셨어요. 그리고 나서 시간이 지나고 박광수 감독님이 <방아쇠>라는 작품을 기획했고 그 작품에 캐스팅되어서 다시 뵈었죠. 나중에 엎어진 작품이긴 한데, 그 작품을 준비하던 중 <다섯개의 시선>에 박광수 감독님께서 참여하게 되었어요. 그래서 “<방아쇠>하기 전에 이거 한번 같이 하자”고 하셔서 감독님의 작품에 제가 출연하게 되었죠.

사연이 있었군요!
예! 그런 셈이죠. 꽤 길었죠? (웃음)

<퍼햅스 러브>에도 출연했는데 비중이 큰 역할은 아니었지만 극의 키워드가 되는 인물이었어요. 그런데 그 영화에 캐스팅된 건 아무래도 <대장금>덕분이겠죠?
예! 아무래도 그 덕이죠. 사실 <퍼햅스 러브>에서 제가 맡은 역할에 유덕화씨가 내정된 상태였어요. 방금 말씀하신대로 그 역할은 영화의 키워드이긴 한데 두드러져선 안 되는 역할이었죠. 그런데 유덕화씨가 그 역할을 맡는다면 분명 워낙 연기도 잘 하고 노래도 잘 하니까 두드러질 수밖에 없었을 거예요. 그래서 진가신 감독님께서 여러 가지 고민을 하시다가 어차피 그 역할이 ‘천사’니까 꼭 중국인이 연기할 필요는 없겠단 생각이 들었다더군요. 그러다가 어느 날 홍콩에서 진가신 감독님이 집에 들어가던 중, 웬 여자들이 어디론가 달려가는 걸 봤다고 하더라고요. 진가신 감독님도 워낙 유명하신 분이라 종종 자신한테 팬들이 뛰어오는 일이 있어서 의례 그런 줄 알았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그 여자들이 자신을 지나쳐 다른 곳으로 가더래요. 그래서 궁금해서 뒤를 따라가 봤다더군요. 그 여자들이 도착한 곳은 제가 있었던 곳이었어요. 그래서 진가신 감독님이 저 사람을 알아봐달라고 했다더라고요. 그래서 봄 영화사의 오정환 이사님한테 문의가 왔고 저한테 캐스팅 제의가 들어왔죠. 그런데 처음에는 거절했었어요.

거절? 좋은 기회였을 텐데 어째서죠?
그렇죠. 그런 감독님과 작업을 한다는 것만으로도 영광이죠. 그런데 중국어 노래에 춤까지 춰야 되는데 준비가 가능한 시간은 일주일밖에 없었어요. 그래서 못하겠다고 의사를 표시했어요. 그랬더니 오정환 이사님을 비롯해 주변에서 다들 이런 기회를 왜 안하느냐고 묻더라고요. 그런데 저는 일주일이란 시간 안에 그런 준비를 할 자신이 없었어요. 그런 감독님의 작품에 출연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자신 없는 일을 허락해서 훌륭한 감독님의 작품에 누를 끼치고 싶지도 않았고요. 그렇게 뜻을 전했는데 진가신 감독님이 얼굴이라도 보자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홍콩으로 가서 감독님을 뵀죠. 그런데 감독님이 말씀하시길 “영화는 편집을 할 수 있고 일주일 뒤에 촬영에 들어가긴 하지만 당신이 찍을 분량을 한 번에 찍는 것이 아니다. 찍는 동안도 충분히 연습이 가능하다.”라고 하시면서 재권유를 했어요. 그래서 결국 승낙을 하고 2달 촬영을 포함해 몇 달 동안 현지에 머무르며 춤, 대사, 노래 등 계속 연습하고 영화에 매진했죠. 거의 밥 먹는 시간 외에는 모두. 잠꼬대까지 중국어로 할 정도였어요. 저에게는 생각만 해도 즐거운 작업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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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스팅부터 모두 다 재미있는 사연들 투성이군요!
네. 정말 특별한 경험이었죠.

좀 경력이 특이한데 애초에 연기와 무관한 인생을 살았던 것 같아요.
사실 고등학교 때 금속공예를 했었고 대학교 때 시각디자인을 전공했어요.

포토그래퍼도 하셨죠?
네. 대학 졸업 후 디자인 일을 하다가 내 길이 아니라고 느꼈어요. 그래서 고민 중 사진을 찍게 되었는데 그 때 ‘사진이 내 길이구나!’하는 생각을 해서 그 쪽으로 눈을 돌렸죠. 나름대로 열심히 했고 또한 잘 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98년도에 IMF가 오면서 개인적으로 복잡한 일이 있었어요. 사실 97년도부터 매니저가 저한테 배우를 해보자고 권유하면서 쫓아다녔었거든요. 하지만 그 당시에는 관심이 없어서 계속 거절하다가 개인적으로 복잡하던 차에 다시 권유가 왔고 ‘일단 1년만 해보자!’라는 생각으로 시작했던 일이 여기까지 오게 되었죠.

연기를 시작하게 된 것도 꽤 우연스럽네요.
그렇죠. 원래 관심도 없고 할 생각도 없던 일이었는데. (웃음)

그런데 이것도 개인적 추측인데 사실 지진희씨 좀 깨는 사람 아니에요? 어떻게 생각해요.
네. 맞아요! 제대로 보셨네.

그런가요? 하하. 사실은 제가 <여교수의 은밀한 매력>을 재미있게 봤어요. 대중적 흥행과 평단의 평가와 무관하게. 왜냐 하면 지진희 씨의 연기가 이전과 달리 좀 특별했거든요. 깬다는 생각도 박석규 때문에 하게 되었고. 그런데 <여교수의 은밀한 매력>은 어쩌면 지진희 씨의 연기에 전환점이 되는 게 아닐까란 생각을 했어요. 최근 <오래된 정원>도 그렇고, 이번 <수>도 보진 못했지만 작품을 선택하는 눈이나 연기의 깊이가 좀 더 심화되었다고 생각해요. 어때요? 지진희 씨에게 <여교수의 은밀한 매력>이 특별한 의미가 있나요?
방금 이야기하신 게 맞아요! <여교수의 은밀한 매력>으로 인해 저의 많은 것이 바뀌었어요! 현장이 즐거워지고, 현장이 부담 없어지고, 현장에 가고 싶다고 생각하게 된 건 그 때가 처음이었어요. 그 이후로 제가 굉장히 편해졌어요. 현장이라는 곳이 저 스스로에게. 그래서 만약 누구든 제 자신이 ‘배우로써 업그레이드되거나 발전된 계기가 언제냐?’고 묻는다면 무조건 <여교수의 은밀한 매력>이라고 해요. 보셔서 그렇게 느끼셨다면 정말 저를 잘 보신듯해요. 그 감독님을 만난 것부터가 복이라 생각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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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 감독님 말이죠?
예. <여교수의 은밀한 매력>만 생각하면 아직도 기분이 좋아요. 그 영화 이후로 내게 현장에 대한 공포감이 많이, 아니 거의 없어졌어요. 그 전에는 현장에 가면 늘 “어떡해야 하지? 잘 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투성이었는데 <여교수의 은밀한 매력>을 하면서부터 “이야~! 정말 재미있다. 즐겁다. 이런 맛에 영화를 하는구나.”라는 것을 많이 느꼈어요. 그리고 그 이후부터는 굉장히 즐거운 작업이 되었어요. <퍼햅스 러브>가 그 이후에 하게 된 영화인데 <퍼햅스 러브>를 할 수 있었던 힘도, 그 다음인 <오래된 정원>을 할 수 있었던 힘도 모두 <여교수의 은밀한 매력>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해요.
<수>도 마찬가지고요.

음..역시나 큰 의미가 있군요. 그리고 많은 여배우들과 호흡을 맞췄어요. 고현정씨의 복귀작으로 화제가 되었던 <봄날>에도 상대역으로 출연하셨고 이번 <수>에서 강성연 씨, <여교수의 은밀한 매력>에서 문소리 씨, 염정아 씨는 2번이나 만났죠?
네. 예전에 <H>와 <오래된 정원>에서.

그 중 특별히 호흡이 잘 맞는 배우를 꼽으라면?
아무래도 염정아씨와 강성연 씨가 호흡이 굉장히 잘 맞았죠. 서로 배려도 잘 해주고. 그 뒤로도 꾸준히 연락하고 만나는 친구들이고요. 종종 술도 한잔씩 해요.

강성연 씨도 집중력이 대단한 것으로 아는데, 배우로서 함께 작품을 하며 지켜보니 어떻던가요?
굉장한 집중력과 치밀한 준비성! 진정한 프로죠. 현장에서 슛이 들어갔을 때의 집중력은 무서울 정도에요. 단적인 예로 이번 촬영에서 저에게 내동댕이쳐지고 머리끄댕이를 잡아당겨서 질질 끌려서 던져지는 등. 정말 장난 아닌 상황이 많았어요. 굉장히 어렵고 힘든 씬이 많았는데 그것들을 아주 훌륭히 소화해냈어요. 덩치도 작고 여려보이지만 굉장한 파워가 있고 아우라가 있는 사람이에요. 배우로서 부러울 정도로 배울 점이 많은 사람이죠. 춤, 노래, 연기 모든 것이 갖춰진, 그래서 그렇게 에너지가 넘치는 것일지도 모르고. 아마 제 생각에 뮤지컬을 한다면 정말 잘하지 않을까.

노래를 잘 하나 보죠?
그럼요. 예전에 음반도 냈잖아요.

아하! 그랬죠? ‘Bobo’라는 이름으로. 깜빡했네요. (웃음) 혹시 누군가 닮고 싶다고 생각하는 배우 있나요?
글쎄요. 저는 그 누구를 모델로 삼고 싶진 않아요.

어쨌든 지진희 씨는 이야기를 해보니 욕심이 많은 배우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럼 그 많은 욕심 중 정말 뚜렷한 한 가지가 있을 것 같아요. 정말 연기자로써 죽기 전에 ‘이런 역할은 해봐야겠다!' 싶은 것 있나요?
한 가지 해보고 싶은 건 코미디. 나중에 나이가 많이 들어서 중년 이후 노년쯤에 코미디를 해보고 싶어요. 그리고 죽기 전에 가능하다면 뮤지컬을 해보고 싶은 게 소원이에요. 그건 정말 힘든 작업이고 만능이어야만 되는 것이라 될지 안 될지는 모르지만 배우로써 그런 희망을 지니고 살아요.

<수>는 18세 관람가 영화겠죠? (필자가 인터뷰기사를 작성할 당시까지 <수>의 영상 심의 위원회의 등급 판정은 나오지 않은 상태였다.)
아마도 그렇게 될 거에요.

보나마나 그렇겠죠? 일단 힘들게 찍은 영화라 애착도 많이 남을텐데 그런 노력을 보여주고 싶은 관람 대상은 누구라고 생각해요?
일단 18세 이상의 분들은 누구나 봤으면 좋겠고요. 지금까지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엄청난 영화라고 생각하고 앞으로도 보기 힘들 영화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나중에 봐도 절대 질리거나 유치하게 느껴지지 않을 좋은 영화라고 생각해요. ‘우리나라도 이런 영화를 만들 수 있다!’라는 것을 느끼고 싶은 분들도. 특히 남성분들은 굉장히 좋아할 것 같고요. 명품 영화가 나왔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사실은 저부터가 기대가 큽니다!
그럼 꼭 보세요. 분명! 좋아하실 겁니다!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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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민용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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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이 개봉이네. (이 인터뷰는 <좋지 아니한가>의 개봉 전날인 2월 28일에 이뤄졌다.) 보라와 아인이 이름이 내걸린 첫 영화인데 긴장되지 않아? 언론 시사 때도 긴장한 눈치던데?
황보라(이하 '황'): 지금도 역시 긴장되긴 해! 그런데 최근 인터뷰를 자주 하니까 긴장이 좀 풀리는 것 같던데? 언론 시사 때보다는 훨씬 나아졌지. 일단 개봉한다 생각하면 기분 좋은 것 같아.
유아인 (이하 '유'): 긴장이 안 되기보단 실감이 안 나나봐. 당장 내일 개봉이라니..
황: 오늘 개봉하는 곳도 있다던데!

하루 정도 일찍 개봉하는 극장도 있더라고. 근데 어쩌다 연기를 하게 된 거야? 어려서부터 연기가 꿈이었어? 아님 우연찮은 입문?
황: 배우가 되겠다고 어렸을 때부터 생각한 건 아닌데..종종 가슴 찡한 소설책보면 이런 감정을 내가 잘 표현할 수 있겠다 느꼈던 것 같아. 그러다 내가 살던 부산에서 서울로 이사를 왔는데 덕분에 막연하던 꿈이 이뤄졌지.
유: 애초에 연기를 염두에 둔 적은 사실 없었어. 원래 고등학교 시절엔 미술을 하기도 했고. 그러다 흔히 말하는 길거리 캐스팅을 통해 픽업되고, <반올림> 오디션을 통해 시작하게 됐지. 연기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본 건 연기를 하면서부터인 것 같아. 연기를 해보지도 않은 상태에서 연기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은 없어. 일단 대구에서 살았으니까 실감할 수 없었을지도 모르고..

아인이는 노동석 감독님의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에도 출연했지? 근데 <반올림> 이후라 생각하니 좀 의외인데?
유: 사실 <반올림>이후, 공백 기간동안 많이 고민했어. 그러다 좋은 감독님만나서 좋은 영화를 하게 된 셈이지. 물론 <반올림>도 큰 공부였지만, 그것보단 내가 염두에 둔 연기의 방향은 그게 아니었지. 나름대로 좋은 계기였고 잘 했다고 생각해. 일단 그렇게 생각하니 갑자기 내 자신에게 칭찬을 해주고 싶은데?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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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찍게 된 거야?
유: 일단 감독님을 만났지. 특별히 오디션이나 리딩 과정은 없었어. 그냥 감독님과 30분 정도 대화 나누고 그러다 영화 찍게 되었어. 생각보다 특별한 것은 없었지? 그런데 말이야. 솔직히 만약 지금도 어떤 작품을 위해 오디션을 보게 된다면 꽤나 떨게 분명해. 남한테 민망할 정도로. 난 아직도 그런 건 쉽지 않나봐. 어쩌면 특별한 오디션이 없었던 게 내가 그 영화에 출연할 수 있었던 특별한 배경이었을지도 몰라. (웃음)

보라는 연기자이기 전에 CF로 유명해졌잖아. 일단 연예인이니까 유명해지는 건 중요한 일이야. 하지만 그것 때문에 속상한 일도 있을 것 같은데?
황: <좋지 아니한가>를 찍으며 많은 걸 느꼈어. 과거 모 라면 CF로 사람들이 나를 알게 되었고 그 이미지를 통해 ‘그것이 황보라야!’라고 쉽게 말해버려. ‘황보라는 엉뚱한 이미지!' 이런 식으로. 그건 솔직히 개인적으로는 불만이야. 예를 들면 김혜수 선배님이 <타짜> 정마담의 섹시한 이미지를 쉽게 연기했을 것이라 사람들은 생각하지. 하지만 알고 보면 김혜수 선배님도 그 연기를 위해 상당한 노력을 기울였다고 해. 그런데 관객은 원래 김혜수 씨가 원래 섹시해서 정마담이 나오는 것이라 생각하잖아. <좋지 아니한가>의 용선이도 사실 내가 아닌데..

맞어. 당연하다는 듯이 말야.
황: 당연하다는 듯! 맞아! 그렇게! <좋지 아니한가>의 용선이를 보고 ‘딱 황보라네!‘라고 말하는 것이 말야! 그래서 좀 답답해. 물론 이런 마음을 일일이 관객에게 설명을 통해 설득시킬 수는 없을테니 다음 작품을 통해 다른 면을 보여주는 것이 내 몫이자 욕심이야. <좋지 아니한가>는 나름대로 노력을 했고, 많이 깨지기도 해서 애착이 가는 작품이라 내가 쉽게 연기했을 것이라 생각한다면 속상해. 과거 CF 이미지가 너무 강한 탓도 있나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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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게. 아직 보라는 보여줄 게 많을텐데.
황: <좋지 아니한가>의 용선이가 되기 위해 나름대로 많이 고민하고 내 자신을 부수기도 하고..별 짓을 다했는데..쉽게 이야기되어 버리는 건 싫어.

노력을 안 해도 자연스럽게 나온 것처럼?
황: 응!

그렇다면 보라와 아인이는 스스로가 어떤 사람이라 생각해?
황 : 난 나를 모르겠는데?
유 : 역시 나도 잘 모르겠어. 음..그냥 영화 속 모습인 것 같아.
황 : 맞어! 영화 속 모습! 솔직히 자기 성격을 어떻게 알겠어?
유 : 왜 따지고 그래? (웃음) 싸우겠어! (웃음)

앗! 미안. 그냥 물어본 건데. (웃음)
황 : 아니, 따진 거 아냐~~. (웃음) 나도 나를 모르는 게 많아. <좋지 아니한가>에서 달의 이면을 볼 수 없듯이. 그래서 전면적으로 드러난 모습만 보고 나를 쉽게 생각한다는 것이 납득이 안 갈 때가 많은가봐. 나도 살아가며 알게 되는 내 자신이 신기할 때도 많아. 내 인생이 말 그대로 라이브지! (웃음) 가끔은 스릴있다고 생각도 해. 어쨌든 쉽게 단정 지어 말하긴 힘들어.

내 질문이 막연했나 보다. (웃음) 그런데 <좋지 아니한가>로 둘은 처음 만났지?
유 : 사실 촬영 중에 우리 별로 안 친했어. (웃음)

지금도? 그래도 가까워진 것 같은데.
유 : 지금은 친하지. 하지만 촬영 전부터 끝나기까지는 별로 안 친했어. 영화 속 용태와 용선도 그다지 친한 사이가 아니고.
황 : 우리가 캐릭터에 상당히 열심히 집중을 했지! (웃음)
유 : 캐릭터에 너~무 빠져들었지. 우리가.
황 : 그랬지. 너~무 빠져들었지.
유 : 응. 그런데 생각해보니 썩 그렇다기 보다도~~(웃음)
황 : 뭐~야~!(웃음)

그랬구나. 그런데 <좋지 아니한가>는 영화를 보기 전엔 코믹영화라고 생각할 것 같은데 생각보다 단순한 영화는 아니지 않아? 인물간의 관계도 그렇고. 처음 시나리오를 받을 때 쉽게 이해가 됐어?
유 : 일단 처음에는 그냥 재미있게 봤어. 다시 한 번 보니 극 속의 인물들의 상황이 좀 와 닿는 것 같던데?
황 : 나도 보면 볼수록. 나는 솔직히 촬영하며 몰랐던 부분을 인터뷰나 시사회를 통해 되게 많이 느꼈어. 진짜 솔직히 한때는 내 캐릭터 이외의 인물들에 대해서는 잘 몰랐어.
유 : 그건 보라가 몰라도 상관없었을걸! (웃음)
황 : 아. 그래?
유 : 용선이가 용태의 비밀을 알 필요는 없잖아. 어차피 다 개인적인 이야기니까.
황 : 아. 그런 건가? (웃음) 아무튼 뒤늦게 미안한 이야기지만 나는 솔직히 진짜 몰랐는데. 일단 나는 내 캐릭터 이해하기도 벅차서 크게 신경을 못 썼던 것 같아. 그런데 인터뷰하거나 완성된 영화를 보고 나서 조금 알게 되었지. 소품 하나하나에도 의미가 있더라구. 내가 좀 어리석어서 그래. (웃음)

자학하진 말고. (웃음) 이야기만큼이나 캐릭터들도 범상치 않아. 특별히 감독님께 지도를 받았겠지?
황: 난, 늘~ 지도받고! 늘~ 혼나고! 늘~ 고민하고! 되게 많이 깨졌어! (웃음) 아마 모든 배우들 중에 제가 제일! 아인이는 뭐 잘 하니까. 사실 내가 시트콤이나 광고 같은 이미지가 강해서 감독님도 우려가 많았데. 배우들도 많다보니 내가 오버해서 튀려하지 않을까 걱정했대. 그래서 좀 힘들었지. 표현하지 못한다는 것. 나를 누른다는 게. 나를 튀어보여서는 안되니까. 처음에는 답답하고 속이 꽉 막히는 기분이었다. 이걸 내가 지금 하는 건지, 하지 않는 건지. 사실 마지막 촬영에 되어서야 용선이를 알 것 같더라구. 그래서 아쉬웠어. 아무래도 그래서 감독님이 나를 많이 혼내고 가르쳐 주셨겠지?
유 : 용태는 엉뚱하기도 하고 진지할 때도 있지. 일단 연기하며 고민한 부분은 오버하거나 과장하지 않는 것이었어. 영화의 목적이 웃기는 건 아니었으니까 본인은 진지할 필요가 있었던 거지. 하지만 장치적으로 웃기거나 과장해야 되는 연기가 필요한 부분이 있더라. 캐릭터의 그런 모습까지 나 자신에게 진심으로 이해되게 설득하는 것이 조금 어려웠어. 예를 들면 내가 김혜수 선배님에게 "내가 왕이었소"하는 장면이 있었는데 그 장면을 스무 번도 넘게 테이크를 갔었지. 대선배를 앞에 두고! 물론 그때 감독님이 "더 (진심으로 이야기)해"라고 요구하셨는데 난 그게 너무 힘들었나봐. 내가 거기까지밖에 못해서.
황: 난 '눌러! 눌러!' 아인이는 '더해! 더해!' (웃음) 그래도 아인이는 잘 했어.
유: 잘하긴 뭘! 창피해죽겠어.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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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호진씨, 김혜수씨, 박해일씨 등. 대선배들이지? 일단 영광이었겠지만 부담되진 않았어? 둘 다 신인이고 어리니까.
유 : 일단 영광이었고 좋았지. 사실 팬의 입장으로서 볼 수 있다는 마음에 설레기도 했어. 처음 볼 때는 떨리기도 했지. 하지만 “부담스럽지 않을까. 내가 과연 잘 할 수 있을까”하는 고민도 있었지. 하지만 너무 좋으신 분들이고 편안하게 대해주시더군. 배려가 깊으신 분들이었어. 그러면서도 그리 티내시는 것도 아니고. 일단 질문처럼 둘 다 어리고 신인이니까 기죽고 주눅 들기 쉬웠을 텐데 선배님들께서 배려를 잘 해주셨어. 그냥 크게 울타리를 쳐 놓고 ‘마음껏 뛰어놀아라’ 하신 것 같아. 물론 제대로 뛰어논 건지는 잘 모르겠어.

나름대로 잘 뛰어논 것 같은데? (웃음) 혹시 그럼 특별히 친해진 분은 없어?
유: 사실 특별하게라고 말할 수가 없는 게 다 가족이었잖아! (웃음) 보라누난 사실 나보다 연상인데 동생 같아. 내가 예의 없는 건가?(웃음)

일단 <좋지 아니한가>에서도 그랬고. 왠지 보라가 아인이보다 동생같아 보여!
황 : 다~! 다~들 그래! 물론 내가 어려 보여서겠지? (웃음)
유 : 그래도 나보다 어려 보이진 않잖아! (웃음)

일단 뭐 보라는 흔히 말해 동안이고 아인이가 진지해보여서 아닐까? 기존 이미지도 그랬고.
황 : 사람의 이미지라는 게 참 쉽게 굳어버린다니까. 하긴 어쩌면 그래서 알아갈수록 재미있고 신비한 일인 것 같아!
유 : 감독님도 아마 그런 부분을 보고 캐스팅 했을 거야.

둘 다 현장에서 막내였잖아. 나름대로 선배님들에게 재롱도 떨고 분위기 좀 띄우지 않았어?
유: 보라 누나가 많이 했지. 난 솔직히 재롱같은 건 잘 못해서.
황: 내가 그냥 애교 있게..
유: 워낙 밝고 명랑하니까 현장의 분위기 메이커였지.
황: 그런데 분위기 메이커하다가 연기들어가면 주눅 들고, 혼나고. (웃음) 혼자 막 신나서 ‘제가요~저번에요~.’ 이렇게 아양떨다가 '큐!’들어가면 완전 입 다물고 굳어버리고.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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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지 아니한가>에서 각각 누군가를 좋아하잖아? 아인이는 원조교제를 하는, 용태말에 따르면 ‘우주에서 제일 나쁜 년’을 사랑하지. 혹시 그런 여자 좋아할 수 있다고 생각해?
유 : 그럼!
황 : 진짜? 원조교제를?
유: 좋아질 수 있지! 원조교제했다 해서 그 사람이 씻을 수 없는 죄를 지은 건 아니잖아. 사랑하면 그런 것도 감싸줘야 돼.
황:그건 아직 네가 어려서 그래. 그게 솔직히 쉽니?
유 : 그래도 그거 하나 때문에 그 사람을 사랑하지 못할 일이라고 생각하진 않아. 내가 사랑하니까 그 사람이 그런 일을 못하게 계기를 만들어줘야 한다고 생각해!

워~워~. 둘 다 싸우지는 말고. (웃음)
황 : 난 경호 선생님같은 사람은 좋아할 수 있을 것 같아!

박해일 씨가 연기한 캐릭터? 용선이가 경호 선생님을 은근히 연모했잖아. 그래서 아마 양동이도 뒤집어썼겠지? (웃음) 혹시 실제로 학창시절에 선생님 좋아해본 적 있어?
황: 음..없었어. 학창시절에 누구 좋아해 본적이 없어. 그게 내 인생의 한이랄까. 10대에 사랑 못해본 것. 그 때의 감정이랑 지금 20대의 감정은 분명 틀릴텐데.

그렇지. 그럼 말야. 어차피 사랑이라는 건 나이에 구애되는 게 아니잖아. 혹시 누구 진~짜 많이 좋아해본 적 있어?
황 : 그럼. 있지. 물론. 없다면 거짓말이지.
유 : 당연히 있어야지.
황 : 난 사랑할 때는 굉장히 진지하고 확 빠져버려. 아무것도 못할 정도로 헌신하는 스타일이야. 그래서 사실은 겁이 나곤 해. 내가 날 잘 아니까. 하지만 난 사랑 없이 살지 못하는 아이야.

첫 사랑은 언제였어?
유 : 나는..열일곱? 한 5년 전쯤?
황 : 나는 늘 만나는 사람에게 첫사랑이라고 하는데..아! 있다!! (웃음) 우리 아버지! 나는 우리 아버지가 내 이상형이야! 얼마 전에 <1번가의 기적>을 봤는데 하지원씨가 아버지의 영혼을 보는 장면 있잖아.

거의 마지막 즈음에?
황: 응! 거기서 하지원씨가 ‘난 아빠가 내 첫사랑이고..’ 하면서 우는 장면. 암튼 그 장면 보면서 통곡을 하듯이 울었다니까! 내 마음을 대변하는 것 같아서. 사실 상영 전까지만 해도 극장에서 모자 푹 눌러쓰고 안경까지 낀 채 나 아닌척했지. 그리고 ‘내가 어제 <좋지 아니한가>를 봤는데 그게 그렇게 재미있다며!’라고 일부로 크게 떠들고. (웃음) 근데 그 장면 보면서 완전 ‘엉~엉~’ 울어버린 거야. 그래서 아마 사람들 다 알았을걸. 완전 깼지. (웃음) 암튼 내 첫사랑은 아버지야. 난 항상 그렇게 생각했어.

<좋지 아니한가>는 가족에 대한 이야기야. 혹시 둘 다 각각 자신의 가정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황 : <좋지 아니한가>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 솔직히 우리 가족이라고 생각했어. 근데 VIP시사회 때 어머니가 영화를 보시곤 ‘딱 우리 가족이네’라고 하더라구! 진짜 비슷한 부분이 많아. 사실 나도 태어나서 부모님께 사랑한다는 말을 해본 적이 없거든. 부끄럽기도 하고 무뚝뚝해. 난. 그런데 무관심한 척할 뿐, 사랑하지 않는 건 아니잖아. 비슷해. 우리 가족이랑. 감독님께서 ‘이해하려 하지 말고 인정해라’라고 하셨어. 만약 영화처럼 아버지가 원조교제 의혹을 받게 되면 가장 열 받는 건 딸이라 생각해. 그래서 용선이가 쪽팔리고 죽고 싶다을 것 같단 생각을 했어. 그런데 나 지금 질문에 맞는 대답하는 건가? (웃음)
유 : 나도 마찬가지인 것 같은데. 그냥 가족 중에 특별히 나만 그런 것 같아. 나만 동떨어져 있는 것 같고. 나만 관심에 벽을 치고 있는 것 같고.

대화를 자주 나누지 못하는 건가?
유: 어려서부터 떨어져 살기도 했고..어쩌면 내가 가족을 방관자의 입장으로 보는 것 같아. 부모님이 아니라 내가 말야.
황 : 왕따 들은 늘~ 그래.(웃음) 자신이 남들을 왕따 시킨다고 생각하지.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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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가족의 은밀한 비밀을 알았던 적 없어?
유: 그건 그야말로 비밀인데 어떻게 말해!
황: 맞아. 비밀인데!

아하! 그렇겠구나. (웃음) 내가 너무 생각없이 질문한 건가? (웃음)
황: 힝~. 우린 지금 이례적으로 최대한의 집중을 하는 건데. 원래 우리 집중 잘 못한단 말야~. (웃음)

그럼 나도 정신 차려야지. (웃음) <좋지 아니한가>는 아마 보라와 아인이한테 큰 계기가 될 지도 몰라. 영화배우로서 본격적으로 처음 이름을 알리는 거잖아. 기대되진 않아?
황: 난 첫 작품이기도 하지만 왠지 지금 모든 걸 처음 시작한다는 기분이 들어. 내가 은근히 방송생활은 오래되었거든. 이래 뵈도 2003년 공채 탤런트 출신이잖아. 활동을 하고, 쉬고, 다시 하고, 쉬고, 이런 식의 반복이었지. <좋지 아니한가>를 하면서 느낀 건 내가 세상에 많이 물들었고, 때가 많이 묻었구나라는 것이랄까? 모르면 모른다 말하고 잘 하는 척 안해도 되는데 연기를 잘 하지도 못하면서 잘 하는 척을 했던 것 같아. 이번 영화를 하고 나서 솔직히 내가 연기를 알았다고 감히 말할 수는 없는 것 같아. 아직도 모르는 것투성이지. 그런데 가장 중요한 건 다시 백지가 된 것 같다는 것. 그거 하나로도 굉장히 큰 것을 얻었다고 생각해! 난 <좋지 아니한가>가 황보라라는 배우로서의 첫 스타트라고 생각해!
유: 일단 촬영 중에 큰 공부를 했지. 그런데 이제 시간이 많이 지나고 개봉을 앞두게 되니 그 때 느꼈던 것들이 다시 실감나지 않아. 그냥 작년에 촬영할 때, 많이 행복했고 내가 느낄 수 있는 많은 것을 느꼈나봐. 현실적으론 개봉 후 얼굴이 많이 알려질지 모르고 그렇다면 연기 생활을 수월하게 할 수 있겠지. 그냥 뭐..그것뿐야.

아직 많은 나이는 아니지만 이제 어린 나이도 아냐. 성인 연기에 대한 고민도 해볼 만하지 않아?
황 : 난 일단 축복이라고 생각해. 임수정씨도 동안이라 어린 연기를 많이 하잖아. 이 나이에 어린 연기를 하는 것도 좋은 일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래서 그런 고민보단 이미지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해.....근데 나 또 질문하고 벗어난 이야기하는 것 같은데. (웃음)
유 : 아까도 헷갈리더니! (웃음)

내가 질문을 어렵게 하나? (웃음) 암튼 보라도 동안이잖아.
황 : 그래. 맞아! 동안이니까 동안연기 하는 거지! (웃음) 얼굴도 늙으면 나이 든 역할 하겠지. 뭐.
유 : 그니까 성인 연기에 대해 고민하는 거야! 안하는거야!
황 : 별.로? 쳇! 그럼 아인이 넌 하냐?
유: 나? 나도...없는 것 같은데.. (웃음)
황: 우린 그냥 어린 역할을 할 수 있다는 현실에 감사하고 있지! (웃음)
유: 근데 걱정되는 건 일단 지금은 무리겠지만 혹시나 당장 멜로 영화의 주인공이 된다는 건 불가능할 것 같아.
황: 왜? 뭐가 불가능해?
유: 그건 내가 그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건 아니고 외적으로, 내적으로 그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게 성숙하면 할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하거든. 만약 준비가 되었는데 할 수 없다면 그땐 조바심이 나겠지? 지금은 그냥 이 나이에 고등학생 연기를 할 수 있다는 것 자체로도 행복하다고 생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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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보라나 아인이는 가능성이 많은 나이야. 많은 것을 어필하면 미래를 위해 도움이 될지도 모르고. 혹시 어떤 연기자가 되고 싶다는 포부같은, 그딴 거 없어? 누굴 닮고 싶다던지.
유 : 사실 연기자가 다른 누군가를 목표로 삼고 좇아갈 수 있지만 그것은 단지 그 사람의 연기보다는 이미지가 아닐까? 연기에는 왕도가 없잖아. 그래서 목표라고 말하긴 애매한 것 같아. 만약 누군가가 되고 싶었는데 진짜 그렇게 돼 버리면 어떡해. 그건 그 사람도, 나도 당황스러운 일 아닐까? (웃음)
황 : 난~! 사람들이 보라를 생각하면 하트가 생각나는 배우가 되고 싶어.

하트?
황 : 사랑말야. 난 김혜수 선배님을 존경하는데 함께 영화를 하며 느꼈지만 이미지가 다가 아니야. 정~말 사랑이 많아! 그래서 나도 사랑을 베풀 수 있는 연기자가 될 거야. 모든 감정은 사랑 안에서 나오고 사랑은 모든 연기의 기초라고 생각하니까 생각하거든. 그래서 난 하트가 생각나는 보라가 되고 싶어.
유 : 또 원하는 답변이 아닌 것 같은데~. (웃음)
황: 그런가? 죄송합니다~. (웃음)

아냐. 괜찮았어. 일단 보라나 아인이나 본격적으로 출발한다는 것만으로도 좋지 아니한가 싶은데.
황: 와아~
유 : (정윤철) 감독님 개그인데. (웃음)
황: 맞아! 시사회때 했던! (웃음)

이런~들켰군. (웃음) 어쨌든 <좋지 아니한가>가 필요하다 생각되는 관객있어?
유 : 일단 모두가 본다면 좋겠지.
황 : 진짜! 모두가!
유 : 인간관계에 대해 고민에 놓여 있는 사람들이 봤으면 좋겠어. 굳이 가족에 대한 문제뿐만 아니라, 사랑이 되어도 좋겠지. 감독님은 연예인들이 봤으면 좋겠다고 하시던데?
황: 진짜?
유: 응. 어쨌든 인간관계의 문제 속에 놓인 사람들이 봤으면 좋겠어. 만약 보고나면 그런 고민들이 담담해지거나 그로부터 쉬어갈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 생각해.
황 : 맞는 말씀이에요. 동의합니다. (웃음)

어쨌든 이번 영화가 보라와 아인이한테 정말 ‘좋지 아니한가’ 싶길 바래!
황 : 아하~~~또 감독님 개그!!! (웃음) 암튼 고마워!
유 : 감사!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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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민용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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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의 사생활은 대중의 관심이며 이는 때로 기자를 위한 이슈가 된다. 동시에 스타는 자신의 발언에 적당한 제한선을 지정하고 스스로의 상품성을 부각시킨다. 그래서 인터뷰는 대화를 가장해 스타의 상품성을 매매하는 공식적인 협상테이블로 전락할 때가 많다. 인터뷰어(interviewer)는 상대에 대한 진심을 드러내기 위한 질문을 던지고, 인터뷰이(interviewee)는 상대의 의도를 파악해 적절한 답변을 내민다. 그 과정에서 대화는 도박이 되기도 한다. 비밀이란 믿음을 담보로 내보일 수 있는 최선의 카드이기 때문에 상대방의 진심을 얻기 전엔, 혹은 진심이란 것을 확신하기 전엔 함부로 내보일 수 없는 것이다. 톱스타의 인터뷰는 일반인들이 알 수 없는 그들의 비밀에 접근할 수 있다는 흥미를 유발한다는 점에서 매력을 부른다. 허나 동시에 그들이 드러내 보인 것이 완벽하게 진실을 기반으로 한 결과란 확신도 쉽지 않다. 이 과정에서 인터뷰는 수를 읽고 패를 던지는 심리전의 양상으로 발전한다.

2004년, 이슬람 여성의 인권유린을 고발한 <굴종>을 제작했다는 이유로 이슬람 근본주의자에게 살해당한 네덜란드의 국민감독인 테오 반 고흐-빈센트 반 고흐의 증손자이기도 한-의 영화 중 세 작품의 리메이크를 결정한 할리우드 프로젝트 중 첫 번째 기획에 해당하는 <인터뷰>는 톱스타와 기자의 인터뷰를 통해 펼쳐지는 미묘한 심리적 공박을 흥미롭게 끌어낸다. 연기보단 가십란을 주로 장식하는 카티야(시에나 밀러)를 인터뷰하게 된 정치부 기자 피에르(스티브 부세미)는 그녀와의 인터뷰보다도 워싱턴의 정세에 관심이 많다. 게다가 그녀의 출연작보다는 그녀의 가슴축소수술이 더욱 궁금한 그의 태도는 공격적이며 이런 태도에 질린 그녀는 결국 인터뷰를 거절하는 수순에 이르고 만다. 하지만 그 후, 피에르의 택시사고에 미약하지만 일조(?)하게 된 카티야는 그의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 부근에 있는 자택으로 그를 데려가게 되고 본격적인 인터뷰는 그곳에서 시작된다. 인터뷰어와 인터뷰이의 정치적인 태도에서 벗어난 카티야와 피에르는 진심을 가늠할 수 없는 본심과 위장의 줄타기를 서로 넘나든다. 하룻밤 동안 카티야의 집에서 술을 동반하며 계속되는 그들의 대화는 서로를 로맨틱한 연인처럼 끌어당기기도 하고 애틋한 부녀관계처럼 보이게도 하며 때때로 첨예하게 대립하는 원수지간으로 회귀시킨다. 진심을 엿보고자 하는 의도적 접근은 때론 예기치 않게 서로의 진심을 확인하게 만드는 친근함을 유발하기도 하지만 비의도적인 탐색과정에서 발견하게 되는 단서들은 돌발적인 공격을 유도하기도 한다.

<인터뷰>는 제목처럼 인터뷰라는 대화 방식이 내포할 수 밖에 없는 심리적 장벽 그 자체로 흥미를 유발한다. 인터뷰어든, 인터뷰이든, 자신의 솔직한 단면이 우연한 계기로 인해 상대방에게 하나씩 드러나게 되고 그를 통해 서로의 공감대를 형성하게 되는 (듯한) 과정은 피상적인 관계가 진심으로 인해 극복되고 있다는 믿음을 부여하며 그런 변화를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 자체에 쏠쏠한 재미를 부여한다. 하지만 결말부에 드러나는 믿음의 진실이야말로 <인터뷰>가 지닌 백미의 순간이다. 카티야에 대한 비밀을 쥐게 된 피에르는 그에 대한 대가를 카티야에게 지불하지만 이는 결국 <인터뷰>의 관계를 역전시켜버리는 반전으로 환전된다. 그 지점에서 지식인이 지닌 옹졸한 자만심은 결국 진심을 볼모로 잡히게 되는 치졸함으로 몰락하게 되며 그가 우습게 여겼던 셀레브리티의 천박함은 결국 그의 자존심을 구기는 백치미의 연기로 승화된다. 이는 결국 스타의 이면에 가린 인간적 진실에 대한 궁금증을 더욱 가중시키며 그 진실에 대한 명확한 답변에서 한발자국 물러남으로서 묘한 신비를 배가시킨다. 하지만 그 끝에서 카티야가 보게 된 피에르의 비밀, 그리고 피에르가 보게 된 카티야의 진솔한 모습은 그들의 인터뷰가 실상은 진솔한 대화가 될 수도 있었다는 것을 환기시킨다. 결국 그들의 피상적 관계는 결코 진심을 이룰 수 없다는 관계에 대한 믿음에서 비롯된 것이며 원인을 알면서도 그 폭을 좁힐 수 없다는 관계의 아이러니를 느끼게 한다. -그것이 비단 스타와 기자의 관계에 국한되지 않더라도-

미니멀한 공간을 가득 채울 정도로 걷잡을 수 없게 쏟아내는 그들의 대화는 인간의 다양한 심리적 양상을 풍부하게 드러낸다. 어떤 의도적 메시지를 읽어내려는 노력을 기울일 필요없이 그 자체로서 읽히는 인간과 인간의 심리적 양상의 변화를 체감하는 것 자체가 <인터뷰>를 즐기는 핵심에 가깝다. 스타의 사생활을 소비하는 행태의 이중적 위선을 허접하다고 말하는 정치부 기자의 허세와 화려한 셀레브리티의 얼굴로 위장한 교묘한 정치성이 서로를 고발하는 <인터뷰>는 천박하지 않은 풍자로 웃음을 던지고 지적이되 허영심이 없다. 마치 진짜 정치기자처럼 보이는 스티브 부세미와 진짜 셀레브리티의 탈을 쓴 시에나 밀러의 캐스팅만큼이나 영화는 적당한 높낮이를 조절할 줄 아는 절묘한 리듬을 지녔다.


(무비스트)
Posted by 민용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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