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 잭맨은 할리우드의 호주 출신 톱스타 계보를 이어나가고 있는 배우다. 스크린과 무대를 종횡무진하는 그는 언제나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를 외면하지 않았다. 그렇게 그는 할리우드의 중심에 섰다.
호주 시드니 출신인 휴 잭맨은 활동적인 성격의 아이였다. 집안에 머무는 시간보다도 해변에서 놀거나 캠핑을 다니는 시간이 많았다. 기본적으로 여행을 좋아했지만 단순히 여행만을 좋아하는 아이는 아니었다. 호기심이 많았다. 이는 연기에 대한 흥미로 이어졌고, 재능에 대한 발견까지 나아갔다. 무대 경력을 쌓아나가며 재미를 느끼던 잭맨이 배우로서의 진로에 대해서 본격적으로 생각하게 된 건 22살 무렵이었다. 큰 키와 건장한 체격을 지녔으며 춤과 노래 실력이 빼어난 잭맨이 자신의 무대를 꿈꾸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에게 보다 중요한 건 ‘하고 싶다’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였다. 호주의 TV시리즈 <코레일>은 잭맨의 인생에 있어서 잊을 수 없는 작품일 것이다. 상대배우였고, 지금의 아내인 데보라 리 퍼니셔를 만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작품은 불과 한 시즌만에 막을 내렸지만 잭맨은 인생을 함께 할 동반자를 얻었다. 그는 말했다. “아내와의 만남은 그 작품으로부터 비롯된 가장 훌륭한 결과였다.”
대단한 지위에 오른 이들에게는 일종의 전환점이라 불리는 타이밍이 존재한다. 잭맨에게는 <엑스맨>의 히어로로 등장한 2000년이 그랬다. 아다만티움이라는 강철 골격을 지닌 불사의 몸과 다혈질의 성격을 소유한 뜨거운 남자, 울버린은 잭맨을 할리우드의 아이콘으로 격상시켰다. 사실 그 강철손톱은 원래 잭맨의 것이 아니었다. 브라이언 싱어의 <엑스맨>(2000)에서 울버린 역에 내정된 건 더글레이 스콧이었지만 그는 하차했고, 잭맨은 기회를 얻었다. 잭맨에게 있어서 울버린은 하나의 과제였다. 원작 코믹북의 팬이 아니었던 잭맨은 자신이 울버린 같은 남자가 아님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더티 해리>시리즈의 클린트 이스트우드나 <매드 맥스 2>(1981)의 멜 깁슨을 유심히 관찰하거나 마이크 타이슨의 경기 모습을 보며 울버린이 지닌 야수적인 본능, 다혈질적인 난폭성의 잠재력을 이해하고자 했다. 한편 소품에 불과했지만 강철손톱을 달고 연기를 하다가 상대 배우를 찌르거나 자신의 몸에 상처를 내는 등의 실수를 견뎌야 했다.
결과적으로 울버린과 함께 잭맨의 터프한 이미지는 <엑스맨>의 성공적인 스크린 안착을 상징하는 아이콘으로서 전세계에 배포됐다. 하지만 이는 잭맨을 오해하게 만들만한 소지가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2001년에 공개된 그의 출연작 세 편, <썸원 라이크 유>와 <스워드피쉬>, <케이트 앤 레오폴트>는 주요했다. 제각각 장르적인 차이를 지닌 이 세 편의 작품은 하나같이 잭맨에게 소득에 가까운 결과물이었다. 단순한 하드보디 액션 배우로 이해될 수 있었던 그는 1년 만에 다양성을 지닌 배우로서의 가능성을 드러낸다. 특히 부드러운 로맨티스트이자 자상한 아버지로서의 면모는 가장으로서의 삶에 충실한 잭맨의 실생활과 동떨어지지 않은 것이기도 했다.
<엑스맨>의 성공은 자연스럽게 속편의 제작으로 이어졌다. <엑스맨 2>(2003)와 <엑스맨 – 최후의 전쟁>(2006) 그리고 울버린을 주인공으로 삼은 스핀오프 <엑스맨 탄생: 울버린>(2009)까지, 울버린을 연기하는 잭맨은 일관된 이미지 속에서 안티히어로의 고뇌와 분노를 폭발시키는 노하우를 익혀갔다. 사실상 울버린으로 주목 받은 잭맨이 울버린과 같은 하드보디 캐릭터로 방어전을 치를 것은 어떤 면에서 당연했다. 기독교적인 사상을 판타지 액션의 모티프로 삼은 <반헬싱>(2004)의 롤타이틀에 캐스팅된 것도 어쩌면 울버린의 영향이었다. 그러나 <엑스맨>의 세 번째 속편의 공개와 함께 울버린으로서의 사명을 끝낸 직후, 그의 진가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2006년, 대가들과 함께 한 영화 세 편으로 새로운 면모를 드러낸 것이다. 우디 앨런의 <스쿠프>와 대런 아로노프스키의 <천년을 흐르는 사랑>, 크리스토퍼 놀란의 <프레스티지>가 바로 그것. 특히 앞선 캐릭터들과 달리 비열한 면모를 지닌 정치인으로 등장한 <스쿠프>와 질투와 야심으로 사로잡힌 마술사를 연기한 <프레스티지>는 잭맨의 연기적 내면에 대한 증명서에 가까웠다.
할리우드 톱배우 반열에 오른 잭맨은 대작에 출연하며 그 지위를 공고히 다져나갔다. 물론 그 지위가 언제나 안정적인 것만은 아니었다. 잭맨은 고향 호주에서 촬영된 <오스트레일리아>(2008)에서 역시 호주 태생인 니콜 키드먼과 호흡을 맞췄다. 아름다운 자연 경관이 대거 등장하는 이 영화는 대단한 규모와 반비례한 평가를 얻었고, 기대 이하의 흥행성적을 기록했다. <엑스맨>시리즈의 스핀오프 <엑스맨 탄생: 울버린>으로 다시 한번 강철손톱을 빼 들었고 흥행에는 성공했지만 영화적 평가는 대체로 좋지 않았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작인 <리얼 스틸>(2011)은 여러 모로 성공적인 복귀전처럼 보인다. 인간 대신 로봇이 복싱 선수로 활약하는 시대를 그린 SF 기반의 이 영화는 사실상 부자의 관계 회복과 루저의 승리를 그린 휴먼드라마에 가깝다. 자상한 아버지이자 가장으로서의 면모를 드러내곤 했던 그의 일상은 자연스럽게 영화 속 인물의 부성애와 밀착된다.
<엑스맨>에 발탁되기 전까지, 잭맨은 호주에서 무대를 비롯해서 몇 편의 영화와 TV시리즈에 출연했다. <엑스맨>으로 세계적인 스타 반열에 오른 뒤에도 잭맨의 무대 경력을 줄곧 이어져왔다. 브로드웨이까지 진출한 그는 2004년에 공연한 피터 앨런의 <오즈로부터 온 소년>을 통해서 대단한 호평을 이끌어냈으며 토니상 트로피까지 얻었다. 한때 <미녀와 야수>의 무대 위에서 가스통으로 자리한 적도 있는 그에게는 감회가 남다른 영광이었다. 그는 울버린의 강철손톱을 전시하는 사이에도 자신의 연기를 갈고 닦는데 게을리하지 않았다. 성실함은 생활연기자로서 잭맨을 설명하기 위한 유용한 단어일 것이다. 그는 여전히 브로드웨이를 비롯한 무대에서 공연을 펼치고 있다. 그리고 스크린을 통해서 그의 춤과 노래 실력을 구경할 수 있는 기회도 주어질 예정이다. 특히 지난 아카데미 시상식의 사회자로서 특별히 한번 뽐낸 바 있었지만, 브로드웨이를 찾아야만 <킹스 스피치>(2010)로 아카데미를 석권한 톰 후퍼 감독이 연출하는 <레미제라블>(2012)에 캐스팅된 것. 물론 울버린의 강철손톱도 여전히 녹슬지 않았다. 그는 말한다. “모든 것은 디딤돌과 같다.” 휴 잭맨은 여전히 디딤돌을 밟고 서있다.
스웨덴 재계의 큰 손으로 꼽히는 재벌의 뒷거래를 폭로한 기자 미카엘 블롬크비스트(다니엘 크레이그)는 되레 곤경에 처했다. 증거 불충분으로 명예훼손의 역공을 당한 그에게는 이를 맞받아칠만한 여력이 없었다. 정보원의 증발로, 심증은 충분했지만 물증이 없었던 것. 덕분에 재판에서 패소하고 막대한 벌금형 구형으로 전재산을 날리게 된 그는 한 통의 전화를 받는다. 스웨덴의 산업을 일으킨 기업으로 꼽히는 방예르 산업의 전직 회장 헨리크 방예르(스텔란 스카스가드)의 제안을 대신 전하는 변호사로부터였다.
펑크한 헤어스타일과 피어싱이 눈에 띄는 리스베트 살란데르(루니 마라)는 사실 유능한 정보원이며 천재적인 해킹 실력의 소유자다. 사회부적응자에 가까운 그녀의 외모는 모든 이들의 편견을 부르는 동시에 그녀의 공격적인 성향이 구체화된 결과에 가깝다. 문신과 피어싱으로 무장한 그녀는 한 남자에 관한 정보 수집을 의뢰 받게 되고 그로 인해 그가 곤경에 처했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녀는 이로 인해서 한 남자의 방문을 받게 된다. 그 남자의 이름은 미카엘 블롬크비스트, 바로 리스베트가 조사한 바로 그 남자였다.
고인이 된 스웨덴 작가 스티그 라르손의 스릴러 3부작 중 첫 작품을 두 번째로 영화화한 데이비드 핀처의 <밀레니엄: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은 스웨덴에서 제작된 <밀레니엄 제1부: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과 마찬가지로 원작과 다른 각색이 발견되는 작품이지만 그 결과물에는 차별점이 있다. 각색물로서 두 작품의 차이는 인물 간의 관계를 묘사함에 있어서 그 내면의 감정까지 포용하느냐의 여부에 있다. 스웨덴 버전은 미카엘과 리스베트의 관계를 동료라는 이성적 대상의 범위 안에 가두며 원작과 다른 길을 걷는 반면, 핀처는 두 남녀 사이의 미묘한 감정적 화학 작용을 보다 세심하게 다룸으로써 소설에 내재된 멜로적인 여운을 영화로 끌어온다.
미카엘과 리스베트의 만남이 성사되는 과정이나 결말부를 처리하는 방식에 있어서 원작에 충실한 건 핀처의 결과물이다. 이는 단지 원작의 모사를 염두에 둔 것이라기 보단 그 결정적인 순간을 스크린에 세워 넣을 것인까라는 고민이 원작의 감정까지 영화가 포용할 것인가라는 문제로 맞닿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이런 선택은 3부작으로 진전될 시리즈의 형태에도 미묘한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란 예감을 부른다. 특히 원작이나 스웨덴 버전과 달리 결말부의 사건 해결 방식을 보다 독립적으로 각색해낸 측면은 이런 추측을 보다 강하게 대변한다.
스웨덴 버전이 남녀의 관계적 심리를 잔가지라 생각하고 쳐낸 결과물이라면 핀처의 작품은 캐릭터와 그 캐릭터가 이루는 관계에 보다 큰 흥미를 느낀 작가의 각색물이라는 차이로 보인다. 그만큼 스웨덴 버전이 사건의 추리와 해결에 공을 들인 작품이라면, 핀처의 작품은 사건을 해결해나가는 인물의 심리와 현재의 관계에 보다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처럼 보이며, 이는 이 작품을 보다 개인적인 야심이 깃든 작품으로 이해하게 만든다. 물론 핀처의 작품에서도 스웨덴 버전의 인용이라 이해할만한 아이디어가 발견되지만 이는 스웨덴 버전의 인용이라기보단 먼저 선점한 결과에 대한 차별적인 대안이 불필요했던 까닭처럼 보인다.
핀처의 작품을 이야기함에 있어서 스웨덴 버전의 영화와 원작에 대한 언급을 피할 수 없다는 건 이 작품이 결국 원작과 스웨덴 버전을 섭렵한 관객에게 더 큰 발견의 재미를 주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특히 원작을 먼저 숙지한 관객이 반대의 경우보다 영화를 보다 즐길 수 있는 확률이 크다. 사실 핀처의 영화는 두 인물이 만나기까지의 과정을 설명하는데 할애하는 분량이 책 한 권을 훌쩍 넘기는 원작을 충실히 반영하고 있으며 이는 속도감 있는 사건의 진전을 바라는 관객의 입장에서 기다림이 될 가능성이 크다. 또한 미카엘이 헨리크를 만나서 사건의 전말을 전해 듣는 광경에서 쏟아지는 수많은 정보는 복잡한 브리핑과 같아서 단숨에 들이키기 쉽지 않은 것이기도 하다.
무엇보다도 핀처의 작품에서 도드라지는 건 스타일의 양식이다. 비주얼리스트로서 핀처의 장기는 이 작품에서도 녹록하잖게 드러난다. 특히 극 초반 영화의 줄기와 상관이 없는 오프닝 시퀀스의 비주얼은 CF감독 출신다운 핀처의 감각을 체험할 수 있는 부록과 같다. 동시에 핀처의 감각은 스티그 라르손의 원작에 비해서 보다 정밀한 장르물의 형식에 가깝게 보인다. 특히 유령과 같은 시선으로 생물처럼 미끄러져나가는 카메라의 움직임과 유려하게 공간을 포착하고 응시하는 방식은 필요에 따라서 극적인 서스펜스를 최고조로 끌어올린다. 무엇보다도 배우들의 원숙한 연기와 캐릭터 표현력이 두드러지는데 그 중에서도 리스베트를 연기한 루니 마라는 단연 인상적이다. <소셜 네트워크>에서 무난한 인상으로 출연했던 그녀는 펑크한 스타일로 무장한 리스베트를 연기해냈다는 이슈를 넘어서 완벽하게 자신의 스타일로 승화했다. 단연 올해의 발견이랄까.
톰 하디의 경력은 전쟁터에서 시작됐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TV시리즈 <밴드 오브 브라더스>로 연기를 시작한 뒤, 리들리 스콧의 <블랙 호크 다운>(2001)을 통해서 영화에 데뷔한 것. 하지만 그에게는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크리스토퍼 놀란의 <인셉션>(2010)은 좋은 기회였다. 터프한 성격으로 꿈 속을 종횡무진하는 임스는 대중에게 하디의 매력을 ‘인셉션’시키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고독한 내면을 지닌 저돌적인 인파이터로 열연한 <워리어>(2011)의 하디는 강력한 훅처럼 자신을 내던졌다. <렛 미 인>(2008)을 연출한 토마스 알프레드슨의 할리우드 데뷔작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2011)가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 가운데, 보다 강력한 한 방이 예정돼 있다. <다크 나이트 라이즈>(2012)에서 배트맨의 새로운 숙적 베인으로 등장하는 것. “사내라면 이 정도 포부는 돼야지.” <인셉션>의 인상적인 그 대사처럼, 이 남자, 거침 없다.
제임스 프랭코는 수많은 학업을 병행하면서도 자신의 커리어를 다방면으로 넓혀나갔다. 빠르고 철저하게 자신의 영역을 점유해나갔다. 그 모든 과정을 즐기는 것, 그것이 그를 정의할 수 없게 만드는 궁극의 에너지원이다.
영광은 일찍 찾아왔다. TV영화 <제임스 딘>(2001)의 타이틀롤을 맡은 제임스 프랭코는 전설적인 미남 스타가 남긴 여운을 재현하며 ‘제2의 제임스 딘’이란 호평을 얻었고, 골든글로브 트로피까지 거머쥐었다. 이는 그를 메소드 연기의 포로로 만들었다. 로버트 드니로의 상대역으로 출연한 <시티 바이 더 씨>(2002)에서 마약쟁이를 연기하기 위해서 중독자들과 몰려다니며 길거리를 전전했고, 니콜라스 케이지의 연출 데뷔작 <소니>(2002)를 준비하고자 게이 스트립 클럽에 드나들며 스트리퍼들의 행위와 습성을 면밀히 관찰했다. 그리고 스파이더맨 슈트를 입고자 오디션을 봤지만 결국 해리 오스본 역으로 캐스팅된 <스파이더맨>(2002)은 그의 전세계적인 출세작이 됐다. 하지만 샘 레이미가 <스파이더맨> 트릴로지를 완성하기까지 5년 동안 프랭코가 이룬 경력들이란 대부분 무색한 것들이었다.
“연기가 내 전부였을 때, 스스로에게 잘못된 생각이라고 거듭 말하면서도 내 연기가 나를 규정한다고 생각했다.” 세 편의 출연작이 공개됐던 2006년은 프랭코에게 있어서 대단한 실망을 안긴 한 해였다. <라파예트>를 준비하며 비행조종사 자격증까지 얻은 그는 <아나폴리스>를 위해서 8개월 간 링에서 복싱을 배웠고, 검술을 연마한 뒤 <트리스탄과 이졸데>에 출연했다. 결과적으로 이 세 작품은 흥행과 비평의 면에서 완전히 실패했다. “영화가 잘 되면 행복했고 그렇지 않으면 화가 났다. 배우로서 어떻게든 완성된 결과물에 책임져야 한다는 강박이 날 돌아버리게 만들었다. 그저 미친 짓이었다.” 그리고 그는 의외의 결단을 내린다.
2006년 프랭코는 부모의 바람을 등지고 10년 전에 자퇴했던 캘리포니아의 UCLA로 다시 돌아가서 철저하게 학업에 매진했다. 주전공인 문학과 창작뿐만 아니라 과학론, 프랑스어 등 다양한 학문들을 집어삼키듯 공부해나갔고 끝내 62학점을 이수했다. UCLA 수료 후, 프랭코는 뉴욕으로 거처를 옮겨서 세 개 대학을 옮겨 다니며 문학과 영화, 극작을 공부한다. 심지어 노스캐롤라이나에 머물 당시에는 잠시 시를 공부하기도 했다. 그의 수학은 촬영장에서도 이어졌다. <스파이더맨 3>(2007)를 촬영하는 세트 안에서 셰익스피어의 희곡, 존 밀턴과 제프리 초서의 시를 읽었고, <파인애플 익스프레스>(2008)를 촬영하며 16세기 영국 문학을, <밀크>(2008)의 세트장에서는 토마스 핀천의 소설을 읽고 있었다. 메소드 연기에 빠져들었던 것처럼 완벽한 연기를 위해서 연기적 지식으로 자신을 무장시켰다.
주드 아패토우가 제임스 프랭코를 처음 본 건 12년 전이었다. 아패토우는 의아했다. 멀쩡하다 못해서 여자들의 시선을 단박에 끌어낼만한 매력적인 20대 청년이 어째서 이 자리에 앉아있는 것일까. 아패토우는 당시 TV시리즈 <프릭스 앤 긱스>를 준비하던 중이었다. 부연하자면, <프릭스 앤 긱스>는 제목 그대로 괴물과 괴짜 같은, 문제아들과 얼간이들로 이뤄진, 덜 자란 아이들의 모자란 일상을 엿보는 너드 코미디물이었다. 그러니까 아패토우는 그가 이 작품에 출연을 희망한다는 것에 의문을 품었다. 하지만 프랭코는 원작자인 폴 페이그가 졸업한 고등학교가 있는 미시간까지 날아가서 자신의 역할에 대해서 조사했다. 그런 그를 보고 모두다 미쳤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는 결코 밑지는 장사가 아니었다.
저주 받은 컬트 코미디로 여전히 회자되는 <프릭스 앤 긱스>에 출연하며 주드 아패토우 사단의 웃기는 사내들과 맺은 인연은 결국 대단한 밑천으로 돌아왔다. 이 잘생긴 배우를 가장 고전하던 시기로부터 구원한 것이 바로 그 아패토우 사단의 <파인애플 익스프레스>(2008)였다. 세스 로건과 아패토우가 건넨 시나리오를 받아 든 프랭코는 하루 종일 약에 찌든 채 허허실실하며 얼간이 짓을 해대다가 진창 같은 상황 속으로 굴러들어가는 마약상 사울을 연기하며 새로운 연기적 자아를 얻었다. 치열한 준비 과정과 진지한 캐릭터를 도맡았던 지난 경력들과 달리 반쯤은 맛이 간 너드 역할이 일으킨 대단한 반향은 프랭코의 가치관을 흔들었다. “거기에는 많은 자유와 즉흥성, 창의성이 있었고 다른 이들의 조언이 수렴될만한 여지도 있었다.”
구스 반 산트의 <밀크>(2008)에서 하비 밀크의 애인 스콧 스미스로 등장한 프랭코는 그 뒤로도 <하울>(2010)의 비트제너레이션 작가 앨런 긴스버그 역으로 동성애자 역할을 맡았다. 이 두 독립영화는 동성애자가 등장함과 동시에 실존인물을 극화하고 있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이는 프랭코의 성정체성에 대한 루머로 번져나갔다. 하지만 되레 프랭코는 이런 반응에 관심을 보였다. “나는 반규범적인 생활양식 대로 살아가는 이 사람들이 반대 세력을 다루는 방식이 흥미로웠다. 그저 내가 게이일 거라 안다 해도.” 프랭코는 연기를 벗어나서 자신의 행위 자체가 끼치는 사회적 영향력을 거대한 예술적 행위로 인식하고 있다. 2009년 9월부터 낮 시간에 방영되는 3류 연속극 <제너럴 호스피털>에 프랭코라는 동명의 인물로 등장한 것도 그런 까닭이다. 그는 현실과 허구 사이에 놓인 배우와 캐릭터 사이의 상호연관관계와 그것이 작품의 안팎으로 미치는 영향력에 대한 탐구적 흥미를 직접 칼럼으로 써내기도 했다.
“그는 이미 잠정적으로 정해진 캐릭터를 연기했기에 새로운 가능성이 죽은 것이나 다름없었지만 그걸 잘 점령했다. 기적에 가까운 연기였다.” 협곡 사이로 미끄러지다 떨어져 내린 돌에 팔이 끼어서 사투를 벌이다 끝내 자신의 팔을 잘라내고 탈출한 아론 랄스턴의 실화를 영화화한 <127시간>(2010)의 대니 보일은 프랭코를 극찬했다. 비행기를 타고 뉴욕과 촬영지를 오가며 연기한 그는 틈나는 대로 마르셸 프루스트를 읽어가면서 바위 사이에 갇힌 한 남자의 고립된 감정을 감각적으로 환기시킨다. 이 연기로 첫 오스카 후보에 오른 프랭코는 애파토우 사단의 코믹 판타지물 <유어 하이니스>(2010)로 한숨을 돌리고 <혹성탈출: 진화의 시작>(2011)으로 오랜 시리즈의 기원을 세우는 일에 동참했다.
최근 예일대에서 영문학 박사 학위를 이수한 프랭코는 뉴욕대에서 시를 영화로 변환하는 강의를 맡았다. 지난 해에는 단편소설을 써내기도 했다. 현재 그는 연기 외에도 연출에 관심이 많다. 제임스 딘의 <이유없는 반항>(1955)에 출연했던 살 미네오에 관한 작품을 연출하고 베니스 오리종티 부문에 출품했다. “연기할 수 있는 역할을 원하는 것이 아니다. 그건 도전이며 그 도전들은 보람이고 즐거움이다.” 그는 안주하지도, 서두르지도 않는다. 그저 자신의 모든 것을 즐기는, 정의할 수 없는 에너지를 지닌 배우, 그가 제임스 프랭코다.
엠마 스톤은 TV시리즈 <히어로즈>의 오디션장에서 캐스팅 감독이 경쟁 배우에서 전한 말을 엿듣고 완전히 ‘밑바닥’에 떨어졌다. “10점 만점에 자네는 11점이야.”하지만 그녀는 좌절하지 않았다. 스톤은 11살 무렵부터 무대에 오르며 자신을 단련시켰다. 꿈은 이루어진다. 스톤은 영화 데뷔작 <슈퍼배드>(2007)로 수면 위에 떠오른다. 우디 해럴슨과 함께 출연한 코믹 호러물 <좀비랜드>(2009)는 결정타와 같았다. 전기톱을 들고 좀비들을 썰어나가는 당찬 헤로인의 모습에 대중과 평단은 열광했다. <이지 A>(2010)로 주연을 꿰차며 당찬 이미지를 어필한 그녀는 성공적인 평가 속에서 자신 있는 행보를 거듭하고 있다. 올해 미국 내 박스오피스 3주 연속 1위에 오른 유일한 영화가 된 <헬프>(2011)로 성숙한 연기력마저 과시했다. “오로지 자신감이 열쇠다.” 그녀는 그 자신감으로 자신의 시대를 열었다. 이제 엠마 스톤이 진정 대세다.
다코타 패닝과 엘르 패닝은 할리우드의 ‘뜨거운 자매’다. 다코타는 일찍이 연기 잘하는 아역배우 수준을 넘어서 할리우드의 블루칩으로 떠올랐다. 엘르 역시 그녀의 예쁜 여동생으로 유명세를 얻었다. 그러나 엘르는 선언하듯 말했다. “다코타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여배우죠.” 그리고 심상치 않은 행보를 걷고 있다. 지난 해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 수상작인 소피아 코폴라의 <썸웨어>(2010)에서 엘르의 존재감은 기대 이상이다. 화려한 일상을 전전하며 공허한 일생을 채우는 어느 스타 배우가 유일하게 자신의 삶을 수식해주는 딸과의 교감을 담고 있는 이 작품에서 엘르는 현재진행형의 성숙을 마음껏 자랑한다. 특히 근작인 <슈퍼 에이트>(2011)에서 그녀는 또래의 남자 아역배우들과 비교될 만큼의 성숙한 면모를 과시한다. “나는 다른 사람이 되고, 다른 이름으로 불리는 것을 사랑할 뿐이에요.”이제 엘르는 더 이상 타코타의 동생으로 불리지 않는다. 준비된 슈퍼 탤런트로 자신의 미래를 꿈꾼다.
미국과 영국만큼이나 호주 역시 주목할만한 배우의 산실이다. 오늘날 할리우드에서 입지를 차지한 호주 출신 스타의 새로운 계보를 잇는 건 바로 애비 코니쉬다. 샤를리즈 테론이나 니콜 키드먼을 연상시키는 그녀는 유년 시절 자칭 톰보이였으며 자애심이 강했다. 호주영화협회 여우주연상을 차지하며 ‘아찔한 십대’ 배우로 떠오를 수 있었던 것도 어쩌면 이런 자애심 덕분이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2006년, 코니쉬는 히스 레저와 호흡을 맞췄던 <캔디>와 리들리 스콧의 <어느 멋진 순간>으로 호주와 할리우드를 오가며 무대를 넓혀나간다. 특히 비운의 시인 존 키츠의 연인으로 등장한 <브라이트 스타>(2009)는 당돌하면서도 우아한 코니쉬의 기품을 발견하는 자리였다. 박력 있는 여전사로 열연한 <써커 펀치>(2011)에서 이미지 변신에 성공한 코니쉬는 <리미트리스>(2011)를 통해서 성인배우로서의 커리어를 완벽하게 이행한다. 그녀는 이제 더 이상 유망주가 아니다. 반짝이는 별이 새롭게 떠올랐다.
니콜 키드먼은 ‘될성부른 나무’였다. 키드먼을 ‘떡잎부터 알아본’ 제작자들은 그녀를 발 빠르게 할리우드로 인도했다. 일찍이 할리우드의 뮤즈 자리를 수성한 그녀는 여전히 가지를 뻗고 있다.
하와이 호놀룰루에서 태어난 키드먼은 호주 출신의 부모와 함께 시드니로 건너가 유년시절을 보낸다. 어려서부터 활동적이었던 키드먼은 발레를 배우고자 찾은 호주 유소년 씨어터에서 연기에 관심을 얻게 된다. 175cm에 달하는 장신이었던 열네 살 무렵, 영화 데뷔를 이룬 그녀는 우월한 유전자만큼이나 타고난 재능이 있었다. 1987년에 방영된 TV미니시리즈 <베트남>으로 호주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키드먼은 <죽음의 항해>(1989)로 할리우드 제작자들의 눈길을 끈다.
일본의 한 영화제에 참석 중이던 키드먼은 톰 크루즈의 측근으로부터 차기작 계획을 묻는 전화를 받는다. 토니 스콧의 <탑 건>(1986)으로 할리우드의 큰손이 된 크루즈는 <폭풍의 질주>(1990)로 심기일전을 다짐하던 차였다. LA로 키드먼을 초대한 그는 그녀와 출연 계획을 상의한다. 이는 키드먼의 할리우드 진출에 관한 이야기이자 세기의 커플이었던 키드먼과 크루즈의 인연에 관한 서두이기도 하다. 1990년 크리스마스 이브에 부부 서약을 맺은 두 사람은 론 하워드의 <파 앤드 어웨이>(1992)에서 또 한번 호흡을 맞춘다. 아일랜드의 보수적인 귀족 집안에서 자란 진보적인 여인이 자립을 꿈꾸며 미국 땅을 밟은 뒤, 한 남자의 야심에 동참하는 과정은 키드먼의 현실을 연상시키는 것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녀는 ‘톰 크루즈의 아내’라는 그림자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빛을 발산하기 시작한다.
구스 반 산트의 <투 다이 포>(1995)는 키드먼을 위한 영화였다. 수잔 역을 얻기 위해 구스의 집에 직접 전화를 건 키드먼은 그에게 말했다. “<드러그스토어 카우보이>(1989)를 봤어요. 당신과의 작업을 간절히 원해요.” 수잔은 섹슈얼한 매력을 이용해 남자를 물건처럼 이용하는 팜므 파탈이다. 이는 키드먼이 연기한, 강인하고 순정적인 여인들과 어울리지 않는 인물이었으나 그녀를 통해 키드먼은 골든글로브 여우주연상을 거머쥔다. 19세기 말, 보수적인 영국의 시대상을 배경으로 한 제인 캠피온의 고전 로맨스물 <여인의 초상>(1996)에서 지적이며 당돌한, 미모의 여인 이사벨을 연기한 키드먼은 자신이 그려왔던 도전적인 여인들의 면모에 보다 깊은 감수성을 이입해낸다. 진보적인 여인의 초상에 세심한 심연의 갈등을 새겨 넣으며 자신의 연기적 깊이를 증명해냈다.
스탠리 큐브릭의 <아이즈 와이드 셧>(1999)과 함께 키드먼은 내외적인 고난에 직면한다. 크루즈와 함께 부부로 출연한 이 작품은 금기와 욕망 사이에서 갈등하는 한 남자의 혼돈을 그리고 있으며 키드먼은 전신 노출까지 불사하는, 헌신적 열연을 펼쳤다. 큐브릭에 대한 깊은 애정은 부부의 공동출연으로 이어졌지만 이로 인한 세간의 지독한 관심은 두 사람의 관계에 치명타를 입혔다. 오랜 제작기간이 소요된 이 작품은 급기야 최종편집이 끝나기 전에 찾아온 큐브릭의 죽음으로 기로에 선다. 결국 영화의 불완전한 완성과 함께 두 사람의 관계도 흔들리기 시작한다. 2001년, 골든글로브 시상식장에서 각자 퇴장하는 두 사람의 모습이 포착됐다. 그 뒤로 키드먼은 다시 '힐을 신을 수 있'었지만 '삶이 붕괴되는' 극심한 상실감에 시달렸다.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그 해에 키드먼의 경력은 보다 반짝이기 시작했다. 환락가의 여신 사틴 역을 맡은 바즈 루어만의 뮤지컬 <물랑루즈>에서 다이아몬드와 같이 반짝이는 미모를 자랑한 키드먼은 빼어난 가창력과 안무까지 뽐내며 관객들을 현혹시켰다. 톰 크루즈가 기획자로 참여한 호러 <디 아더스>가 공개된 것도 같은 해였다. 이듬해, 이 두 작품으로 각각 골든글로브 두 개 부문 여우주연상 후보에 오른 키드먼은 <물랑루즈>로 두 번째 골든글로브 트로피를 얻게 된다.
영국의 여류 작가 버지니아 울프의 생에 얽힌 세 여인의 삶을 그린 <디 아워스>(2002)에서 메릴 스트립, 줄리언 무어와 같은 쟁쟁한 배우들과 함께 한 키드먼은 버지니아 그녀를 연기한다. 자살로 생을 마감한 예민하고 우울한 예술가의 생을 연기해내야 했던 키드먼은 인공적으로 제작된 모형 코를 달고 그녀를 연기한다. 자신을 잊은 채 온전히 버지니아라는 인물로 빠져들었다. 이는 여전히 그녀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던 이혼에 대한 아픔을 지울 수 있는 방편이기도 했다. 이는 그녀의 경력에 정점이 됐다. 2년 연속 골든글로브 수상을 이어간 그녀는 수상자 신분으로 오스카 단상에 오르는 첫 영광을 차지한다.
할리우드의 주류배우로 꼽히는 키드먼은 독립영화에서 보다 인상적인 연기를 선보여왔다. 그녀의 캐릭터를 설명하는데 있어서 자주 동원되는 건 예민한 심성과 불안한 정서다. 독립적인 여성의 의지를 강인하게 피력하던 그녀는 점차 히스테리한 여인으로서 존재감을 피력해왔다. 돌발적으로 공기를 불안하게 잠식하는 그녀의 캐릭터들은 극적인 분위기를 강화하는 요소로 영화에 기여해왔다. 연극적인 무대를 날것처럼 카메라에 담아낸 라스 폰 트리에의 <도그빌>(2003)이 178분에 달하는 러닝타임 동안 집중력을 유지할 수 있는 건 온전히 그녀의 연기 덕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탄생>(2004)과 <인터프리터>(2005)에서도 이는 유효하다. 결혼을 앞둔 여인이 죽은 옛 연인임을 자칭하는 소년을 만나 벌어지는 미스터리와 국제적인 정치적 음모에 휘말리는 한 여인의 정체적 모호함에서 비롯되는 서스펜스는 키드먼의 존재감이 발휘된 결과물이다.
미국의 여류 사진가 디앤 아버스의 삶을 모티프 삼은 <퍼>(2006)는 한 여인의 자립을 그린, 잉태적 삶에 관한 이야기다. 픽션과 논픽션의 경계가 모호한 이 작품에서 특유의 예민한 표정으로 등장하는 키드먼은 불안과 설렘의 경계를 부유하던 한 여류 사진가의 거짓말 같은 생에 사실적인 감정을 부여한다. 보다 현실적인 일상에 근접한 <마고 앳 더 웨딩>(2007)이나 <래빗 홀>(2010)에서도 이런 특성은 발견된다. 우연히도 두 작품에서 남편과 갈등을 빚는 아내이자 여동생과의 반목을 거듭하는 누이로 등장하는 키드먼은 각각의 영화에서 부풀어 가는 불화를 찔러 터트릴 것마냥 날이 선 심성을 휘두르는 불안 그 자체다. 롭 마샬의 <나인>(2009)은 키드먼이 여전히 빛나는 외모를 자랑하는 할리우드의 여신 자리에서 내려설 생각이 없음을 대변한다. 하지만 키드먼의 마이너한 감성은 그녀를 메이저 배우로 인식하길 방해하거나 거부하도록 만든다. “나는 영감을 주거나 강박적인 사람들과 일하길 좋아한다.” 가늠할 수 없는 방식으로 자신만의 빛을 발하는 할리우드의 뮤즈, 니콜 키드먼은 여전히 채워지지 않은 미완의 초상이다.
유년시절부터 ‘랄프로렌’이나 ‘갭’과 같은 의류 브랜드를 비롯해서 ‘버버리’의 캠페인 모델로도 활약한 바 있는 ‘훈남’이 할리우드에 진출했다는 건 딱히 놀라운 사연이 아니다. 하지만 알렉스 페티퍼에게서는 심상치 않은 조짐이 엿보인다. <트와일라잇>시리즈의 로버트 패틴슨이나 <해리포터>시리즈의 다니엘 래드클래프가 그러하듯이, 폭발적인 인기를 등에 업은 젊은 배우들은 대부분 특정한 캐릭터의 옷을 입고 태어난다. 페티퍼는 올해 초에 차례로 개봉된, <아이 엠 넘버 포>에서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외계인 초능력자로 분한 뒤, <비스틀리>에서 잘생긴 외모를 되찾고자 사랑을 갈구하는 추남으로 변신한 페티퍼는 혜성과 같은 등장을 뛰어넘어 상한가를 달리고 있는 신예다. 현재 후반작업 중인 SF스릴러물 <나우>(2011)에서 아만다 사이프리드, 저스틴 팀버레이크와 함께 이름을 올린 페티퍼는 올해 또 한번 새로운 면모를 과시할 전망이다. 어메이징한 영 건, 알렉스 페티퍼를 기억하라.
디즈니의 공주로서 화려한 데뷔식을 치룬 앤 헤서웨이는 궁전에 머무르지 않았다. 크고 작은 성장통을 헤치며 길을 닦아왔다. 이제 그녀 앞에 길은 열려 있다. 방향을 정하는 건 그녀의 몫이다.
미운 오리 새끼처럼 어수룩한 외모와 수줍은 성격을 지닌 소녀 미아는 친구들의 따돌림을 받기 일쑤였다. 하지만 그 소녀는 그네들에게 그런 대접을 받을 사람이 아니었다. 어느 날, 두 날개를 펴고 하늘을 날았다는 그 백조처럼 사회지도층 왕가의 피를 물려 받은 공주였다는 소식을 전해 듣게 된 소녀의 일상은 거짓말처럼 뒤바뀐다. 그리고 영화 속에서나 가능한 일은 할리우드에서도 가능한 일이었다. 앤 헤서웨이는 자고 일어났더니 스타가 됐다. 헤서웨이의 첫 번째 영화로 공개된 <프린세스 다이어리>(2001)가 그녀의 무명 시절을 하루 아침에 지워버린 셈이다.
뉴질랜드의 <천국의 맞은 편>(2001) 촬영장에 있던 헤서웨이가 오디션을 위해 태평양을 건넘으로써 그녀의 첫 번째 전환점이 마련됐다. 미약한 경력을 지닌 헤서웨이가 디즈니 공주의 왕관을 하사 받은 건 누구보다도 커다란 눈과 시원한 미소를 자랑하는 미인이라서가 아니었다. 물론 그녀에게는 처음치고는 괜찮은 경력이 있었다. 1999년, 폭스TV에서 방영된 미니시리즈 <겟 리얼>로 카메라 앞에 처음 선 16세의 헤서웨이는 이듬해에 영 아티스트 어워드의 TV시리즈 최우수연기자 부문에 노미네이트됐다. 하지만 <프린세스 다이어리>를 연출한 게리 마샬이 단 한번의 오디션으로 헤서웨이를 선택한 이유는 전혀 다른 곳에 있었다. “오디션 도중 앤이 의자에서 넘어졌고 이로 인해 캐스팅을 결정했다.” 미아 역을 위해서는 자신이 얼마나 어메이징한 여자인지를 깨닫지 못하는 미운 오리 새끼가 필요했다. “본래 나는 존재감이 없는 사람이다”라고 말하는 헤서웨이가 바로 그녀였다.
대부분의 아이돌 스타들이 그러하듯이, 할리우드의 신데렐라가 된 헤서웨이 역시 성장통을 건너야 했다. 디즈니의 공주가 되어 화려한 유명세를 드레스처럼 걸쳤지만 이는 점차 그녀를 불편하게 옥죄기 시작했다. <프린세스 다이어리 2>(2004)의 촬영 일정으로 인해 헤서웨이는 출연 성사를 목전에 뒀던 <오페라의 유령>(2004)을 포기해야 했다. 학창 시절 소프라노로 활동한 바 있는 그녀에게 이는 마치 목소리를 잃는 기분이었을 것이다. “내겐 <프린세스 다이어리>가 전부였고, 이는 당시 내 경력을 가로막는 벽이었다.” <엘라 인챈티드>(2004)와 <프린세스 다이어리 2>와 같이, 밝고 건강한 미소를 요구하는 가족영화들 속에 갇힌 헤서웨이의 갈증은 점차 심화됐다. 또 한번의 공주 놀이를 마친 헤서웨이는 <하복>(2005)에서 자신의 발랄한 이미지에 욕설을 퍼붓듯 파격적인 변신을 시도한다.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의 영화에서 노출 연기와 베드신을 선보인 그녀의 행보는 연기의 질을 떠나 놀라운 사건이었다. 이는 단순한 질풍노도의 일탈이 아니었다. 발랄한 공주로 박제처럼 남지 않겠다는, 일종의 선언이었다.
“내가 창조해낸 어떤 것보다도 그 영화가 더욱 자랑스럽다.” 여기서 헤서웨이가 경의를 표한 그 영화는 할리우드에 진출한 이안의 <브로크백 마운틴>(2005)이다. 두 남자의 애틋한 멜로드라마인 이 작품은 그녀에게 역할의 크기와 반비례한 자신감을 불어넣었다. 사랑스러운 매력으로 치장했던 젊은 날을 지나 결혼 뒤, 가난에 치여 거칠고 억척스럽게 변해버린 여인의 삶, 헤서웨이의 연기는 지난 날을 돌아보게 만들 정도로 인상적인 것이었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2006)의 앤디를 통해 그런 자신감은 구체화됐다. “그건 어떻게 어른이 되는지, 어떻게 어른답게 선택하는지, 희생의 유무가 어떤 후회를 남길 수 있는지에 대한 결과적 차이를 배우는 일이었다.” 악마 같은 편집장의 온갖 시중을 들어야 하는 비서의 고단한 일상이 결코 헛된 희생이 아니었음을 이야기하는 이 영화에서 헤서웨이는 스스로 자신의 삶의 방향을 결정하고 시행착오 속에서 진정한 희생의 의미를 깨닫는 인물을 연기해낸다. 점차 패셔너블해지는 인물을 연기해야 하는 헤서웨이에게는 몸매관리가 필요했고, 그 탓에 “배가 고파서 에밀리 블런트와 함께 손을 잡고 울었다”지만 이 작품으로 헤서웨이는 자신의 성장을 증명하는 동시에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다. 무엇보다도 “이루고 싶었던 모든 것”이었던 메릴 스트립과 호흡을 맞출 수 있었다는 건 그녀에게 더 없는 행운과도 같았다.
성취는 새로운 도전의 밑거름이다. 여류 작가 제인 오스틴의 사랑을 그린 <비커밍 제인>(2007)은 현대판 신데렐라로 익숙한 헤서웨이의 이미지를 생각했을 때, 쉽게 어울릴 수 있는 작품이 아니었다. 그녀 역시 이 영화가 자신을 위한 옷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안의 권유로 마음을 돌린 그녀는 제인 오스틴을 자신에게 맞는 맞춤복으로 완성하고자 노력을 기울였다. 피아노를 연습하고, 방언을 공부하며 고전적인 우아함에 사실성을 새겨 넣고자 했다. 스티브 카렐과 함께 한 첩보물 코미디 <겟 스마트>(2007)에서 액션까지 소화하는 팔방미인으로서 헤서웨이의 경력은 점차 다채로운 색을 띠어가기 시작했다.
2009년, 헤서웨이는 생애 첫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에 오른다. 약물중독으로 재활원을 전전하는 여인이 누나의 결혼식에 참여하며 벌어지는 사건을 그린 <레이첼, 결혼하다>(2008)에서 헤서웨이의 연기는 변신이라는 수사만으로 채워질 수 없는 진화한 연기력을 선보인다. 이 영화로 인해 생애 처음으로 흡연을 경험한 헤서웨이는 단지 방탕한 흉내를 내는 것이 아니라 마치 진짜 몰락의 수렁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여인의 딜레마와 이로 인해 얻은 상처들로 앙상해진 여인의 지독한 트라우마를 표출한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2010)의 하얀 여왕은 헤서웨이가 팀 버튼의 기괴한 세계관조차 어울리는 배우로 자라났음을 실감하게 만든다. <브로크백 마운틴> 이후로 또 한번 제이크 질렌할과의 연기적 궁합을 과시하는 <러브&드럭스>(2010)에서는 파격적인 노출 연기조차 안정적으로 소화해내면서도 다양한 감정을 소화하고 표현하는 능력까지 갖춘 배우로 거듭나고 있다. “영화가 나를 성장시킨다는 건 정말 좋은 일이다. 언제나 10대가 지나면 무엇이 있을지 두려웠기 때문이다. 모두가 그런 건 아니겠지만 그건 내게 대단한 변화였다.” 배우는 경험을 입고 성장한다. 그리고 자신을 성장시켜줄 새로운 경험을 갈아입는다. 헤서웨이는 지금 옷장 앞에 서있다. 자신의 성장에 걸맞은 새로운 옷을 고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