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기러기 같은 영혼의 허기를 채우고자 사람들은 바삐 친구를 맺고 댓글을 단다. 하지만 필요할 땐 잠시 고독해도 좋다. 고독이야말로 당신의 외로움을 치유할 비상구다.
‘세상에 홀로 떨어져 있는 듯이 매우 외롭고 쓸쓸함.’ 고독의 사전적 정의다. 그리고 독일 출신의 신학자 폴 틸리히는 말했다. “’외로움’이란 혼자 있는 고통을 표현하기 위한 말이고, ‘고독’이란 혼자 있는 즐거움을 표현하기 위한 말이다.” 어쩌면 고독이란 감당할 수 있는 외로움일지도 모른다. 외로움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부딪힐 때 고독은 비로소 자유가 되고 유희가 된다. 완전히 혼자가 될 수 있다면 오히려 삶은 가벼워질지도 모른다.
사실 우린 너무 많은 관계에 둘러싸인 채 살아간다. <피로사회>는 성과주의에 찌든 채 극단적인 피로감에 시달리는 현대인들을 진단한 책이다. 독일의 대학에서 교수로 재직 중인 한병철 교수가 집필한 이 서적은 2010년에 이미 독일에서 큰 반향을 일으킨 뒤, 지난해 한국에서도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랐다. 현대인은 피로하다.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 이뤄야 할 것이 많다. 성취를 위한 관계 맺기에도 연연해야 한다. 그렇다면 한가지 질문. “당신은 당신과 관계하고 있습니까?” 수많은 관계 속을 전전하는 우린 정작 나 자신과 소통하고 있습니까? 만약 그렇다면 당신은 진짜 고독을 아는 사람일 게다. 고독이란 고립이나 결핍으로 정의할 수 없는, 나 자신을 위한 충만과 고뇌의 시간이기 때문이다.
OECD 국가 중 8년째 자살률 1위를 수성 중인 대한민국은 외롭고 지친 사회다. 고독이란 말이 사치처럼 들리는 건 우리가 진짜 외로운 사람들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우울증은 ‘마음의 감기’라고 했다. 진단과 치유가 필요하다. 감추고 숨겨야 할 것이 아니라 드러내고 기꺼이 도움을 청해야 할 일이다. 수많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야 있다 해서 외롭지 않을 리 없다. 외로움이란 되레 군중 한가운데서 새어 나온다. 벼락처럼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물처럼 스며들어 마음을 잠식한다. 만약 그 외로움을 견딜 수 없다면 당신은 고독한 사람이라기 보단 마음의 병이 있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다양한 네트워크 속에서 수많은 유무형의 관계를 전전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건 우리 자신 스스로를 보존하고 지키는 일이다. 그러니 당신은 어쩌면 진짜 고독해져도 좋다. 물론 고독해지겠다 하여 세상 사람들을 밀어내고 관계의 차단 속으로 자신을 가두라는 말이 아니다. 고독을 즐긴다는 건 홀로 남는다는 말이 아니니까. 고독이란 당신을 가두는 벽이 아니라 당신 스스로를 지켜내는 방패다. 세상이 뭐라 해도 우린 모두 가치 있는 사람이다. 고독을 통해서 우린 진짜 스스로를 발견하고 되새기며 보존할 수 있다. 그러니 고독을 두려워하지 말라. 고독은 언제나 당신 곁에 있다. 그 고독이 당신을 지켜줄 것이다.
한지민은 시간을 기다려왔다. 자신에게 날개를 달아줄 시간이 올 거라고 생각했다. 기다림은 충분했다. 이제 서서히 날개를 펼 때다.
벌써 10년이다. 한지민이 배우라는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한지가 말이다. 우연히 발을 들였던 일이 10년을 결정짓는 일이 될 줄은 몰랐다. “인생은 정말 작은 우연의 계기를 통해서 시작되는 일의 연속인 거 같아요.” 중학교 3학년 시절에 다니던 여자중학교가 남녀공학으로 바뀌면서 평범한 여학생의 삶에 변화가 깃들기 시작했다. 남자학교에서 새롭게 온 한 선생님이 매니저 일을 하던 친척에게 그녀를 추천했고, 결국 TV CF 모델로 데뷔하게 된 것.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녀는 배우라는 직업을 갖게 될 거란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하지만 대학교 1학년 시절이었던 2003년, 얼떨결에 오디션을 보고 출연하게 된 미니시리즈 <올인>은 배우 한지민의 인생에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송혜교의 아역으로 출연한 <올인>의 촬영 분량은 단 2회뿐이었지만 처음으로 카메라 앞에 서서 연기를 한다는 건 대단한 부담감이었다. “사실 연기를 한다기 보단 반복학습에 따른 결과였죠. 정말 연습을 많이 했거든요. 2회 분량 밖에 안 되는 걸 몇 달간 외운 거니까 툭 쳐도 대사가 나올 정도였죠.”
<올인>이 ‘대박’을 친 덕분에 ‘배우’ 한지민에 대한 주목도도 높아졌다. 다음 기회는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다. 미니시리즈 <좋은 사람>에서 주인공으로 캐스팅된 한지민에게 그 당시 촬영 현장에 대한 기억은 ‘죄책감’이란 단어로 정리된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나를 보면서 촬영이 끝나길 기다리는데 당연히 죄책감이 들죠. 모두가 피곤한 상황에서 내가 잘하면 금방 끝날 수 있는데 그렇게 되질 않으니까.” ‘연기에 대한 애정이나 열정으로 시작한 일이 아니기 때문’에 ‘이 자리를 얻고자 열심히 노력하는 누군가’에 대한 미안함까지 느낄 정도였다. 빨리 10년이 지나서 서른 살로 ‘점프’하고 싶었던 것도 ‘계속 연기를 하다가 10년쯤 뒤엔 지금보단 많은 경험을 하고 감정선도 풍부해질 테니 지금보단 실력이 늘어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었다.
그토록 기다렸던 10년의 시간이 지난 지금 한지민은 영화 <플랜맨>의 주연배우로 대중 앞에 설 채비를 하고 있다. “작품과의 인연에도 때가 있잖아요. <플랜맨>도 지금이니까 할 수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그녀가 바랬던 것처럼 10년이란 시간은 그녀에게 배우라는 정체성과 연기에 대한 열정을 가르쳐주기엔 충분한 시간이었나 보다. “잘하고 싶다는 욕심은 누구나 갖고 있고, 누구나 열심히 하잖아요. 결국 잘해야 되는 게 맞는 거 같아요. 똑같은 열정을 갖고 있다고 해서 누구에게나 기회가 주어지는 건 아니니까 기회에 감사해야죠. 그리고 분명한 책임감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플랜맨>은 초 단위까지 계획적으로 살아갈 정도로 강박적인 일상을 살아가는 한 남자가 발랄하고 엉뚱한 여자를 만나기 시작하면서 벌어지는 코미디다. “단순히 웃기는 장면이 많은 코미디가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 유발되는 코미디라서 좋았어요. 캐릭터가 저마다 살아있고, 여자 캐릭터에게서도 새롭게 보여줄 수 있는 매력을 느꼈거든요.” 그녀의 대답에서 그녀가 그토록 원했던 변화가 느껴졌다. 캐릭터에 대한 욕심과 작품에 대한 기대감. 지난 10년이 그녀를 위한 약속의 시간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득 그녀에게 어떤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건 아닌지 궁금해졌다. “예전에 출연했던 단막극에서 어떤 한 신을 찍고 나니까 그게 너무 후련했어요. 조금이나마 연기의 쾌감을 느꼈죠. 그리고 첫 영화였던 <청연>의 윤종찬 감독님을 만난 건 정말 감사한 일이었어요. 저에 대한 욕심을 버리지 않고 끝까지 기다려주시고, 대화를 통해서 감정선을 찾아가는 걸 많이 도와주셨거든요. 많은 용기를 얻었어요.”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드라마는 성장드라마다. 그리고 인생에서 가장 재미있는 시절은 성장기일지도 모른다. 한지민도 비로소 배우의 성장기를 만났다. ‘피하고만 싶었던 자리’였던 촬영 현장이 ‘부딪혀보고 싶은 자리’가 되는 순간 배우라는 직업이 운명적으로 받아들여지기 시작했다.
사실 한지민에게 촬영 현장이 무서웠던 건 어쩌면 가족 탓이다. “부모님으로부터 혼나본 적이 없어요. ‘졸리면 그냥 자라’ 이런 분이거든요. 공부하라고 강요하신 적도 없어요. 그리고 조부모님들도 뭔가를 할 때마다 칭찬만 해주셨어요. 그렇게 칭찬받기 좋아하는 아이로 자란 저에게 촬영 현장이 얼마나 무서웠겠어요.” 물론 그렇다고 그녀가 ‘온실 속의 화초’처럼 자란 건 아니다. 지금도 그녀의 인터뷰 기사를 꼼꼼히 살펴보신다는 할머니는 언제나 손녀에게 ‘책임감을 가져야겠다’고 일러주신다. 그리고 그녀에게 있어서 책임감이란 과거가 아닌 현재 혹은 미래를 위한 것이라고 여겨지는 것 같다. “돌아봤을 때 남는 아쉬움은 앞으로 채워나가야겠다고 생각하는 편이에요. 물론 작품에 대한 책임감은 점점 커지겠죠. 그러니까 그때마다 현실에 충실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미 선택한 건 뒤도 돌아보지 말고 해야죠. 왜 했을까라고 생각하기 보단 어떻게 해야 잘할 수 있을까라고 생각해야 할 거 같아요.” 무책임한 낙관이 아닌 책임감 있는 긍정이 느껴진다.
한지민은 좀처럼 후회하지 않는 사람이다. 하지만 유일하게 그녀가 후회하는 일이 하나 있다. “연기는 좀 달라요. 뭔가 연기를 못했다고 생각하게 되면 계속 남는 거 같아요. 그리고 오히려 이런 생각이 연기가 발전하는데 도움이 될 거 같다고 생각해요. 대사를 잘못하면 며칠이나 그 대사를 계속 하게 되는 것도 저만 그런 줄 알았더니 정재영 선배님이 배우는 다 그렇대요.” 그녀는 그 누구보다도 현장에서의 성장을 믿는 배우다. “현장에선 항상 배우는 게 많아요. 만약 어떤 배우가 좋지 않은 행동을 하는 걸 보는 것조차도 배울 점이 있는 거 같거든요. 나는 저렇게 하지 말아야지. 그리고 좋은 선배님들은 말할 것도 없죠.” 한지민은 <플랜맨>을 선택한 결정적 이유가 상대역을 맡은 배우 정재영 때문이라고도 말한다. “저 배우와 함께 작품을 할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상대 배역이 정재영 선배님이라니 너무 좋았죠. 그래서 선배님 때문에 이 작품하는 거라고 말씀드렸더니 ‘어디서 책임 전가하냐’고 하시더라고요(웃음).”
정재영과 한지민은 정확히 열두 살 차이 띠동갑이다. <플랜맨>에서 두 사람은 서로에 대해서 점차 애틋한 감정을 느끼는 사이로 발전해나간다. 실제로 띠동갑 차이의 남자를 사랑할 수 있을까? “말이 잘 통하는 친구가 꼭 동갑이 아닌 것처럼 나이가 많다고 해서 다들 어른스러운 것도 아니잖아요. 그러니까 나이 차이가 연인으로서 중요한 기준은 아닌 거 같아요. 이민정 씨도 12살 많은 이병헌 씨와 결혼했잖아요(웃음).” 물론 항상 타인의 시선을 의식해야 하는 배우이기에 연애라는 것이 마냥 설레는 일은 아니다. “요즘 대중들이 좀 쿨해졌다고 해도 여배우들은 어쩔 수 없이 끊임 없이 고민하게 되는 거 같아요. 아무래도 모든 사생활이 드러나기 쉬운 직업이다 보니까 누군가를 만나게 되면 상대방에게 좋지 않은 일이 될지도 모르겠구나 싶고요. 연애에 대해선 항상 예민할 수밖에 없죠.”
여배우들은 남자배우에 비해서 매력적인 캐릭터를 만나기가 쉽지 않다. 그만큼 캐릭터에 대한 경쟁도 치열해질 수밖에 없다. 한지민에게도 갈망하는 기회가 있다. “조금 막연할지 몰라도 메디컬 전문드라마의 의사 같은 전문직을 해보고 싶어요.” 한지민이 <플랜맨>에서 소정이의 발랄함을 드러냈을 때 주변에선 대부분 그녀가 새로워 보인다는 반응이었다고 한다. “아무래도 단아한 이미지의 캐릭터로 각인됐는지 제가 조용한 편일 것 같다고 하시는데 원래 활발한 성격이에요.” 한지민은 아직 보여줄 게 많은 배우다. 보여주고 싶은 것도 많은 배우다. <조선명탐정: 각시투구꽃의 비밀>(2011)에서 차갑고 섹시한 이미지를 선보였을 때 많은 사람들은 ‘변신’이란 단어를 프리즘 삼아서 한지민의 스펙트럼을 다시 살폈다. 그리고 그녀는 그저 자신에게 주어진 오늘에 충실해야 함을 잘 알고 있다.”지금까지 제가 해왔던 작품 중에서 소중하지 않은 작품은 없어요. 지금 해나가는 작품이 있기 때문에 다음 작품을 할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하니까요.” 그리고 그녀는 거듭 그래왔던 것처럼 기분 좋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 밝은 미소에 깃든 긍정적인 에너지는 어쩌면 그녀가 지금 이 순간을 충실하게 살아가야 한다고 믿어온 덕분에 얻은 결실일 것만 같다고, 문득 생각했다.
올해로 65회를 맞이한, 미국의 권위 있는 TV 시상식 에미상 후보작들 가운데서 눈에 띄는 작품은 9개 부문 후보로 이름을 올린 <하우스 오브 카드>였다. 영국의 보수당 정치인이자 작가인 마이클 돕스의 동명 소설을 극화한 BBC의 동명 TV시리즈를 리메이크한 작품으로 백악관 입성의 야심을 품은 한 정치인의 권모술수를 현실에 밀착시키듯 흥미롭게 그린 정치스릴러다. 테크니션의 대가 데이비드 핀처가 제작과 연출을 맡고, 케빈 스페이시와 로빈 라이트 등 신뢰할만한 배우들을 전면에 포진시키며 탁월한 조형도를 확보했다. 하지만 이 정치스릴러가 주목을 받은 건 작품의 외적인 요소 덕분이었다.
<하우스 오브 카드>가 공개된 건 올해 2월이었다. 대부분의 미니시리즈들이 그러하듯이 HBO 같은, 이름만 대도 알만한 유료 케이블 채널을 통해서가 아니었다. 온라인을 통한 독점적 공개였다. <하우스 오브 카드>는 인터넷 스트리밍 서비스 업체인 넷플릭스의 자체 제작 미니시리즈였기 때문이다. 그 이례적인 사실만큼이나 공급 방식 역시 파격적이었다. <하우스 오브 카드>는 기존의 TV 미니시리즈처럼 주 1~2회씩 순차적으로 방영되지 않았다. 13화를 한번에 공개했다. 넷플릭스의 유료 가입자라면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로 <하우스 오브 카드>의 전회를 시청할 수 있었다. <하우스 오브 카드>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됐다. 지난 4월 넷플릭스는 1분기 매출 실적이 10억 달러가 넘었다고 발표했다. 창립 이래 처음이었다. 이 발표와 함께 주가는 24% 폭등했다. 발표에 따르면 전년도까지 2700만명 수준이었던 유료 가입자 수도 3600만명을 상회했다. 미국 내 최대 유료 가입자를 지닌 케이블 채널 HBO가 2800만 명 수준임을 감안한다면 대단한 수치다.
1997년 인터넷 DVD 대여 서비스 업체로 출발한 넷플릭스는 2009년부터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 시장에 주력했다. 그 과정에서 주가 폭락 사태를 겪기도 했지만 영상 콘텐츠를 생산하는 회사들과 독점 계약을 맺고 콘텐츠를 강화하며 점차 저변을 넓혀나갔고 미국 내 최대 규모의 회사로 성장했다. 그리고 <하우스 오브 카드>와 같은 오리지널 시리즈 제작과 성공은 넷플릭스를 기존의 케이블 채널과의 경쟁자로 인식하도록 만들었다. 전통적인 TV 채널 중심의 방송 시스템을 흔든 결과다.
오늘날 사람들은 TV 앞에 앉아있지 않고도 TV를 볼 수 있다. 태블릿 PC, 스마트폰 등 인터넷 접속이 가능한 디바이스를 통해서 실시간으로 혹은 뒤늦게라도 다운로드를 받아서 감상할 수 있다. 미국의 한 시장조사기관은 온라인 스트리밍 사용자 중 60% 이상이 넷플릭스로 영화나 드라마를 감상했다고 전한다. 소비자가 확보된 만큼 자체 콘텐츠를 생산할 이유도 충분해진다. <하우스 오브 카드>의 성공은 포스트 TV 시대의 예고편일지도 모른다. 방송 콘텐츠를 TV로만 소비하던 시대에서 벗어났듯이 방송 시스템이 TV 채널에만 적용될 이유가 없음을 피부로 느끼기 시작했다. 망망대해에 좌표가 생겼다. 인터넷이라는 인프라에 전통적인 영상 콘텐츠 제작 시스템이 합병된 셈이다. 앞으로의 전망? <하우스 오브 카드>는 총 26부작으로 제작됐고, 아직 13부작이 남았다. 그 13부작은 넷플릭스의 미래이자 방송 패러다임의 새로운 미래를 잇는 교두보가 될지도 모른다. 넷플릭스가 확실한 조커를 쥐고 있다는 말이다.
진지하지만 무겁지 않게, 유쾌하지만 가볍지 않게, 최다니엘은 거침 없이 말했다. 그리고 한결 같이 호탕한 웃음 소리가 뒤따라왔다.
최근에 담배를 끊었다던데.
8월 즈음부터.
특별한 이유라도?
사실 한번도 담배를 끊어야겠다고 생각해본 적 없는데 갑자기 피우고 싶지 않아졌다. 가끔 담배를 피우지 않는 내 자신이 어색해서 다시 피워보면 맛이 없더라.
술은 약한 편이라던데.
소주 1병이 치사량이다. 거기서 1잔이라도 더 마시면 말 그대로 죽는다.
<열한시>를 연출한 김현석 감독이나 배우 정재영 씨 모두 술을 좋아한다.
덕분에 촬영 후 매일 같이 술을 마셨다. 김현석 감독님은 영화가 늦게 끝나는 걸 굉장히 싫어한다. 11시 전엔 무조건 끝내야 된다. 9시면 더 좋고. 그렇게 한잔 걸치는 맛에 일하는 것처럼. 재영 선배도 술 좋아하고, 다들 술을 좋아하더라. 나는 술을 잘 못 마셔도 그런 자리는 좋아해서 거의 매일 같이 늦게까지 앉아있었다.
잘 마실 것처럼 보이는데.
대부분 안 믿지. 맨날 클럽 가서 놀게 생겼다면서(웃음). 아버지께서도 술을 잘 못 드신다. 집안 내력이지.
클럽 같은 곳엔 잘 안가나 보다.
데뷔 전엔 클럽이나 나이트도 갔다. 그런데 이 일을 시작하면서 그게 노는 것 같지 않더라. 술자리나 노래방에서 노는 것도 연기처럼 끼가 필요하니까 일처럼 느껴지는 거다. 게다가 사람들 눈도 있고, 마냥 자유로운 입장이 아니니까. 그리고 그런 곳엔 괜히 어깨 부딪히고 노려보는 남자들도 한두 명씩 있잖아.
연예인은 좋은 표적이기도 하니까.
결국 나만 손해다. 그들은 나를 알지만 나는 그들을 모르니까. 그렇게 불안해하면서 노는 건 노는 게 아닌 거 같다. 잠깐의 쾌락을 위해서 많은 걸 희생할 필요도 없고.
얼마 전에 오락실에서 오락하는 사진이 기사화됐던데, 그런 일상조차 기사화되는 걸 보는 기분이란?
오히려 그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어디에서든 사진에 찍힐 수 있고, 그 사진이 인터넷에 돌아다닐 수도 있다는 것 정도는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알려질 거라면 차라리 내가 알리는 거지(웃음).
연애는?
안 한지 좀 됐다. 요즘은 하고 싶은 마음도 들지 않고, 이대로가 편하다.
본인만 감당하는 상황은 괜찮을지 몰라도 주변의 누군가를 감당하게 만드는 상황이 생긴다는 건 부담스러울 거다. 연애할 때는 더욱 그럴 테고.
맞다. 나로 인해서 다른 사람까지 들썩이게 만드는 건 아무래도 걱정스럽지. 그래서 하고 싶은 걸 더 못하는 경우도 없지 않고.
종종 유명인이라는 이유로 자신이 대변할 필요가 없는 분야에 대한 심각한 답변을 요구 받는 경우가 있을 것 같다. 예를 들면 오락실 사진을 빌미로 난데없이 게임 규제 정책에 대한 질문을 듣게 된다던가(웃음).
맞다. 정말 쌩뚱맞은 질문 받고, 그 답변이 기사화되고. 지난 번엔 <학교 2013>을 찍고 나서 뉴스에 나간 적도 있었다. 11시 뉴스였던가?
뭘 묻던가?
지금의 학교 생활에 관한 생각을 묻는데 내가 그걸 어떻게 알겠어. 우리 때도 왕따가 없진 않았지만 지금과는 또 다를 테고.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내가 나갈 일이 아니잖아. 드라마가 화제가 되면서 제작진에서 탄력을 받아서 부탁하길래 어쩔 수 없이 밀려나간 거지. 아마 나보다 더 곤란한 질문을 받는 사람도 있을 거다. 정치적인 질문을 받을 수도 있고. 하지만 본질은 결국 내가 영향력 있는 사람으로서 ‘얼마나 올바른 생각을 할 수 있는가’일 거다. 어떤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에 따른 책임도 내 몫일 테니까. 잘해도 내 몫이고, 못해도 내 몫이다. 그만큼 내가 서있는 위치를 정확히 알아야 한다. 잠깐 정신을 놓고 있으면 나뭇잎처럼 날리는 세상이니까 오히려 갈대처럼 흔들려도 자리를 지킬 수 있도록 뿌리를 박고 사는 게 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영향력이 있다는 건 어떤 면에선 낫다는 말이다.
유명세가 따를수록 일상의 불편함도 따르기 마련인데.
불편함은 있다. 하지만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을 순 없다. 조금 더 정확하게 구분하자면 토끼와 거북이 중에서 선택해야 한다는 거지. 내 삶을 영위할지, 내 삶의 일부를 희생해서 더 낫다고 여겨지는 무언가를 잡을지. 나는 항상 삶을 영위하는 쪽을 취했던 거 같다. 아무래도 삶을 희생해서 얻을 수 있다고 여겨지는 가치들은 불투명하게 느껴지니 선명해 보이는 쪽으로 눈을 돌리게 된다고 할까.
간절히 꿈꿔서 성취하는 일도 있겠지만 우연히 길을 따라오다가 그것이 자신의 인생이라고 인정하는 일도 있다. 연기란 당신에게 어느 쪽일까?
연기라는 것이 간절했던 적도 있었지만 처음부터는 아니었다. 사실 집안 사정이 좋은 편이 아니라서 닥치는 대로 아르바이트를 하던 시절에 거쳤던 일 중 하나였을 뿐이다. 그런데 조금 다른 일이더라. 다른 분야엔 만점이란 기준이 있는 것 같은데 이 바닥의 기준은 좀 더 개인적이라고 할까. 모두가 같은 라인에서 경쟁하는 게 아니라 저마다 다른 방향으로 뛴다는 느낌. 그래서 파고 들었다. 그러다가 어쩌면 내가 제일 잘할 수 있는 게 연기가 아닐까 생각하게 됐지.
그 뒤론 절박함이 생기지 않던가.
연기가 1순위일 순 있어도 0순위까진 아니었던 것 같다. 0순위라고 할만한 건 좀 더 궁극적이어야 할 것 같아서. 그래서 연기를 하면서도 매번 이걸 하는 의의가 뭔지, 내가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게 무엇인지 계속 생각했다.
혹시 ‘변했다’는 말 들어본 적 있나?
몇 번 있다. 그런데 상황에 따라서 사람이 변하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다만 내가 미쳐가고 있다는 게 느껴질 땐 뭔가 조치를 취해야 하는 거지.
최근에 동명이인의 인물이 일으킨 불미스런 사건 때문에 이름이 언급됐다. 실제로 연락도 많이 받았을 거 같다.
전화를 많이 받았다. “두부 사 들고 면회 갈게”라는 문자도 받았고(웃음).
새삼스레 흔치 않은 이름이라고 생각했었다. 영어 잘하냐는 얘기도 많이 듣지 않았나?
안 그래도 (정)재영 선배가 <열한시> 제작발표회장에서 “다니엘이라서 영어를 잘할 줄 알았는데 영어를 못한다”고 폭로했다(웃음).
최다니엘이란 이름은 본명인가?
맞다.
부모님께서 믿는 종교 영향이었을까?
아니다.
그런데 왜 다니엘이었을까.
어머니께서 형을 낳을 때 건강이 많이 안 좋아지셔서 아이를 더 갖지 않으려고 하셨다. 아버지는 많이 낳고 싶어하셨지만 어머니 건강이 안 좋으시니 정관수술을 받았다고 한다. 그런데 그걸 뚫고 내가 나온 거다(웃음). 그래서 하늘이 주신 자식이라며 성경책에서 찾아서 이름을 지어주셨다. 심지어 제우스도 생각하셨다고 들었다(웃음).
아찔하다.
제우스가 됐으면 나이트에서 일하긴 ‘딱’이었겠지(웃음).
최근에 <최다니엘의 팝스 팝스>라는 라디오 프로그램을 진행하게 됐다. 신기하게도 영화 제목처럼 오전 11시에 시작하더라.
나도 신기했다. 사실 촬영한지 오래됐고 개봉이 확정되기 전이었으니까. 영화 제목이 <열한시>로 결정된 것도 나중에 포스터 촬영하면서 들었다.
원래 새벽 3시에 진행하는 라디오를 맡고 있었는데.
내가 진행했던 프로그램의 전 타임의 DJ인 나얼 형이 자신이 가을 개편에서 잘릴 거 같다고 하길래 ‘괜찮을 거라고’ 위로했는데 내가 잘렸다(웃음)! 그런데 동시에 오전 프로그램 DJ가 공석이 되면서 담당 PD님이 같이 하자고 불렀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오전 11시였던 거지.
라디오 DJ에 특별한 매력을 느끼나?
사실 사람들은 내가 맡은 캐릭터와 마주하기 때문에 인간 최다니엘은 잘 모를 거다. 그런 면에서 캐릭터가 아닌 사람으로서 사람들과 소통한다는 건 굉장히 매력적이다. 게다가 내 얘기를 할 수 있다는 것도.
특별히 갖고 싶은 능력이 있다면?
순간이동.
이유는?
지각하지 않을 거 같아서 좋겠다 싶었는데 영화 <점퍼>를 보니까 세계 어디든 마음대로 갈 수 있으니 부럽더라. 은행도 털고(웃음).
위험한 사람이네(웃음).
그러니까 절대 그런 능력을 가져선 안 된다(웃음). 남들 앞에선 위선적으로 행동할 수 있겠지만 알맹이까지 온전히 선한 사람이 될 자신은 없다. 그런데 그런 능력을 갖는다는 게 좋은 일 같진 않다. 특별한 걸 꿈꿀 수는 있지만 그 꿈이 현실이 되는 순간 내가 꿈꾸던 삶이 펼쳐질지는 모르는 일이니까.
<열한시>에서 공학박사 역할을 맡았는데 의사나 선생님 같은 지적인 분야의 캐릭터를 연기하기도 했다. 공부는 잘하는 편이었나?
혹시 수능 수리영역에서 5점 맞아본 적 있나?
수리영역이 80점 만점일 텐데.
다 풀었는데 5점을 맞았다. 시간이 정말 많이 남았었지(웃음). 나중에 보니까 3번으로 다 찍어도 12점은 맞았더라.
공부를 못한 게 아니라 안 했네.
필요를 못 느꼈다. 국영수부터 음악, 미술, 체육, 이렇게 다양한 메뉴판을 제시하면서 너한테 맞는 입맛이 무엇인지 알 기회를 주는 건 좋은데 사실 그게 아니잖아. 가두리 양식 같다고 할까? 사람들을 공장의 로봇처럼 획일화시키는?
바다로 나가고 싶었나 보군.
나는 연어인데 왜 나를 꽁치로 만드느냐(웃음)!
자기 기준이 확실하거나 주장이 또렷해 보인다. 보통 그런 사람들이 리더 역할을 도맡더라.
둘 중 하나지. 리더가 되거나 왕따가 되거나(웃음)! 그런데 예전엔 쑥스러움이 많은 사람이었다.
내성적이었단 말인가?
이름부터 네 글자라서 튈 수 밖에 없는데 눈에 띄는 게 이래저래 부담스럽더라. 내가 원하는 부분에 대한 기준은 확고했지만 대장이 되고 싶진 않았던 것 같다. 그저 주어진 환경에서 내가 하고 싶은 걸 찾는 편이었지. 그런데 어쩌다 보니 이런 일을 하게 됐네. 신기하게도.
연기하는 캐릭터로부터 영향을 받기도 하나?
사실 아닌 줄 알았는데 지나고 보니까 많이 받았더라. 그래서 카메라 앞에 있을 때와 카메라 밖에 있을 때 차이를 많이 두려고 한다. 촬영하지 않을 땐 평소보다 더 익살스럽게 장난을 치기도 하고.
효과가 있었나?
점심 시간이나 쉬는 날에도 일 생각할 때 있지 않나? 항상 작품이 끝나기 전엔 어쩔 수 없이 생각하게 된다. 아무리 캐릭터를 덜어내려고, 거리를 두려고 해도 내 생각은 이미 캐릭터에게 가있는 거다. 그 생각으로 꽉 차있는 거다. 그런데 육체적으로도 캐릭터에 적응해버리면 정말 헤어나오기 힘들더라. 그래서 최대한 거리를 두려고 한다. 그런데 거리를 두려고 해도 완벽한 거리감이 생길 순 없다. 예를 들면 카드를 치는데 내가 ‘아봉출’인거다.
아봉출이 뭔가?
처음부터 에이스 세 개가 손에 딱 들어온 거(웃음). 손에 쥔 에이스 세 개에 빠져서 남이 스트레이트를 완성하는지 플러쉬를 노리는지 모르고 무조건 풀하우스나 포커가 되길 기다리는 거지. 그러니까 전체 판을 못보고 내가 쥔 패만 보는 거다. 내 캐릭터로부터 빠져 나와야 하는 것도 그래야 작품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남의 대사를 듣지 않고 내 대사만 치면 대화가 아니라 독백이 되는 거니까.
개인적인 사정으로 하차하게 된 김무열 대신 <열한시>에 출연하게 됐다.
원래 처음부터 나한테 왔던 작품이었다. 다만 좀 쉬고 싶어서 사양했고 그게 김무열 씨한테 갔다가 다시 내게 돌아왔다. 내게 두 번이나 온 작품이고 시간관계상 꼭 해주길 바라는 느낌이 간절해서 다시 거절할 순 없었다. 그런데 정재영 선배는 내가 하지 않을 줄 알았다고 하더라. 대개는 그렇게 되면 남이 버린 걸 다시 주워서 한다고 생각에 잘 안 한다고 하더라.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돌아다니면서 닳는다던가, 헌 대본이 되는 것도 아니고, 맞는 사람을 찾아가기 마련이지 않나. 중요한 건 내가 그 역할을 할 수 있느냐의 문제이지, 내가 그 역할을 한다는 게 어떻게 보일까가 아니니까. 그런 생각을 털어버리면 가벼워진다.
<시라노; 연애조작단>을 연출한 김현석 감독과 두 번째 작업이다. 한 감독과 두 번 작업해본 것도 처음이다.
그게 선택의 이유이기도 하다. 대본을 다시 받은지 일주일만에 촬영에 들어가서 준비할 시간이 부족했지만 이건 나 혼자 하는 게 아니니까. 재영 선배도 믿고, 옥빈이도 믿고, 감독님도 믿고 가보자고 생각했다. 사실 어느 정도 준비된 상태로 작품에 들어가는 걸 선호하는 편이라 시간이 필요한 편인데 그걸 깨보고 싶었다. 그 전까진 나를 믿고, 사람보단 글을 믿고 작품에 들어갔다면 이번엔 내가 벼랑 끝에 서있다고 해도 내가 잡을 수 있는 사람이 있다고 믿으며 간 셈이지.
결과가 궁금하겠다.
벌써부터 조마조마하다! 사람을 믿고 갔다고 하지만 결국 그런 두려움을 극복하는 나와의 싸움이 제일 큰 관건이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매번 진 거 같다(웃음). 아직 영화를 보지 못했지만 이대로 개봉 안 했으면 좋겠다 싶기도 하고(웃음).
<그래비티>를 보고 난 사람들은 마치 우주에 다녀온 것 같았다. 우주를 그린 영화는 많았지만 <그래비티> 같은 우주 영화는 없었다. 하지만 당신이 다녀온 그 우주는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
지난 10월 17일 <그래비티>가 개봉된 이후로 지금까지 세상은 <그래비티>를 본 사람과 보지 못한 사람으로 나뉘는 것 같다. 혹은 아이맥스 상영관에서 <그래비티>를 본 사람과 그럴 수 없었던 사람으로. <그래비티>의 감독 알폰소 쿠아론이 입체적인 사운드 시스템을 갖춘 돌비 아트모스(Dolby Atmos) 상영관에서 <그래비티>를 관람하길 적극 추천한 덕분에 서울에 단 두 개밖에 없다는, 돌비 아트모스 시스템이 완비된 상영관의 예매율이 천정부지로 치솟기도 했다. 영화를 즐기는데 있어서 보다 나은 영사 방식이나 사운드 시스템을 찾아나서는 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그래비티>의 경우엔 그와 유사하나 다른 욕망이 읽힌다. <그래비티>를 정의할 때 한결 같이 동원하는 단어는 ‘체험’이다. 그러니까 아이맥스 상영관이나 돌비 아트모스 상영관이 <그래비티>를 좀 더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선택적 방법이 아니라 <그래비티>를 ‘제대로 볼 수 있는’ 필수적인 방법, 즉 최적화된 시스템이라고 인정한다는 것. 사실 모든 영화는 어떤 식으로든 체험의 산물이다. 여기서 체험은 두 종류로 나뉜다. 현실에서 결코 할 수 없는 비현실에 대한 체험과 현실에서 경험할 기회를 얻지 못한 현실적인 행위나 감정에 관한 체험. 그렇다면 우리는 <그래비티>를 통해서 무엇을 체험했을까?
일단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래비티>를 대단히 사실적인 영화로 인식하는 것 같다. 실제로 알폰소 쿠아론은 <그래비티>를 ‘다큐멘터리처럼 보이게 만들고 싶었다’고 밝혔다. 그러니까 하이퍼 리얼리즘의 영화를 추구했다는 것. <그래비티>는 프리프로덕션(Pre-production) 단계에서 100% 프리비즈(Pre-visualization)’을 거쳤다. 프리비즈란 전반적인 영화의 비주얼을 계획하고 그 실현 방법을 디테일하게 구성하는 방식인데 비주얼 전반의 연출 계획을 세세하게 설계하는 사전 작업에 가깝다. 일종의 도면 작업인 셈. 하지만 ‘당장 애니메이션으로 발표해도 상관없을’ 결과물을 원했던 알폰소 쿠아론의 요구에 의해서 <그래비티>의 프리비즈는 집을 짓는 방식으로 전개됐다. 프리비즈 단계에서 100%에 가까운 CG 작업으로 완벽한 비주얼을 구축한 것. 그리고 배우들은 집에 들어가듯, 완벽하게 구축된 이미지 안에서 철저하게 동선이 통제된 채 연기했다. 그렇게 연기한 배우들의 이미지를 화룡점정처럼 찍어 넣는 방식으로서 <그래비티>는 완성됐다. <그래비티>의 주인공이 우주라고 일컫는 건 전혀 이상한 게 아니다.
알폰소 쿠아론의 구상에서 <그래비티>의 우주는 관객들에게 그저 밤하늘을 바라보듯 멀게 느껴져선 안 되는 것이었다. 실제로 자신이 놓여 있다고 느껴지는 공간이어야 했다. 실제로 산드라 블록은 영화를 촬영하는 동안 매일 같이 10시간 정도의 시간을 수많은 LED 패널로 둘러싸인 ‘라이트 박스(Light Box)’라는 특수한 세트에서 갇히듯 연기해야 했는데 이를 두고 제작진은 라이트 박스가 마치 산드라 블록의 새장 같다며 ‘샌디의 새장(Sandi’s cage)’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우주에서 고립된, 그리고 끝내 홀로 남겨진 스톤 박사의 외로움은 실제 배우의 감정이 이입된 결과인 셈이다. 그리고 라이트 박스 안에서 세트의 벽에 지구나 국제우주정거장(ISS) 등 배우가 바라보는 시야에 해당되는 우주의 이미지를 투사함으로서 배우에게 우주라는 공간성을 인식시키고자 했다. 배우의 시점을 관객과 동일하게 만들었다. 이는 곧 배우들의 시점을 관객의 시야를 확보하는 수단으로 만들겠다는 야심이나 다름없다. <그래비티>는 이런 인물이 바라보는 시점을 대변하는 시점숏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객석의 중력을 무력화시킨다. 스크린 밖이 아니라 안에서, 영화에 동참하고 있다는 착시와 착각을 부추긴다. 게다가 진동과 저주파음 그리고 기습적인 묵음 효과를 교차시킨 사운드 전략을 통해서 공기가 없어서 음파의 전달이 불가능한 우주에서의 청각적 체험을 극대화시킨다. 시각과 청각이라는 공감각적인 체험은 <그래비티>를 지극히 현실적인 영화로 둔갑시켰다.
하지만 <그래비티>는 몇 가지 사실을 왜곡시킨 영화다. 일단 영화 속에서 조지 클루니가 연기한 코왈스키는 우주에서 우주배낭 추진체(MMU)를 타고 자유 자재로 유영한다. 그는 그 추진체를 타고 우주미아가 될뻔한 스톤 박사(산드라 블록)를 구출하며 국제우주정거장까지 그녀를 끌고 간다. 이는 모두 허구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KARI)의 김해동 박사에 따르면, 나사(NASA)의 우주인들이 착용하는 우주복엔 모두 추진장치가 달려있다. 다만 잠깐 동안의 이동이 가능한 소량의 연료가 들어있기 때문에 그만한 장거리 유영은 불가능할 것이라는 견해다. 물론 코왈스키가 타고 다니는 배낭식 추진장치가 영화를 위한 설정이었다면 이야긴 달라진다. 하지만 허블망원경 주변부에서 국제우주정거장(ISS)으로 그리고 중국 우주정거장 텐궁까지 다다르는 여정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추진장치나 소유즈만으로 이동할 수 있었다고 말하기엔 세 지점의 자전 궤도가 지나치게 멀고 궤도의 접점에서 마주칠 확률도 희박하다. 이 영화의 모든 것을 가능케 한 중요한 설정들이 모두 허구인 것이다. 그 밖에도 크고 작은 영화적 오류들에 대한 예시들이 존재한다. 하지만 이런 사실들은 별로 중요해 보이지 않는다.
<그래비티>는 나사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은 영화다. 실제로 촬영 현장엔 나사와 연결되는 직통전화가 있었고, 산드라 블록은 촬영 중 의문이 생기면 시간을 가리지 않고 수화기를 들었다. 결국 세계 최고의 우주 전문가들의 자문을 받은 우주 영화가 사실(fact)대로 완성되지 않았다는 건 그 비사실적인 결과물이 고의라는 것이다. 그 덕분에 우리는 <그래비티>의 거짓말을 통해서 놀라운 사실(reality)적인 체험을 할 수 있게 됐다. 결국 영화의 사실성에 대한 전제 조건은 현실의 복제가 아니란 말이다. <그래비티>라는 영화적 체험이 위대한 건 이 영화가 주는 체험적인 쾌감이 숭고한 감동으로의 착지를 유도하고 있다는 점이다.
“테크놀로지의 생존 방식이 아니라 생존의 조건이 우선시돼야 하지 않겠는가라는 근원적인 질문을 이 영화가 하고 있다고 본다.” 김지운 감독의 말처럼 진화한 테크놀로지의 과시도 중요하지만 테크놀로지의 진화가 어떤 영화적인 감동을 더해줄 수 있는가라는 고민이 더욱 중요하다. <그래비티>는 ‘놀라운 거짓말’로 ‘믿을 수 없는 감동’을 전한다. 무중력의 우주를 체험하게 만들지만 결국 두 발 딛고 살아야 하는 현실의 의지를 고취시킨다. 용기를 준다. 결국 <그래비티>가 증명하는 건 기술의 진보가 영화의 발전을 촉매할 순 있지만 영화의 발전의 절대적 조건일 수 없다는 교훈이다. 한편 미국의 라이브쇼 <SNL>에서 <그래비티>의 오류 하나를 지적했는데 내용인즉슨, 조지 클루니가 저렇게 오랜 시간 동안 동년배의 여성과 대화를 나눌 리 없다는 것. 이야말로 정말 날카로운 지적 아닌가?
변태가 나타났다. 여고 앞이 아니라 TV에서. 응큼하기 짝이 없다. 하지만 의외로 귀엽고 사랑스럽다는 반응이다. 이상한 일이 아니다. 알고 보면 어차피 당신도 변태니까.
JTBC의 <마녀사냥>에 특별 게스트로 배우 정경호가 출연했다. 좋아하는 할리우드 배우를 이야기하던 중 정경호가 “줄리아 로버츠”라고 답하자 신동엽이 다시 물었다. “입 큰 여자 좋아하나 봐요?” 정경호가 답했다. “예.” 그러자 음흉한 표정으로 신동엽이 말했다. “은근히 크다고 자랑하네.” 어디서 웃어야 할지 모르겠다는 표정의 정경호를 제외하고 스튜디오의 모든 이들은 파안대소했다. <마녀사냥>에서 신동엽은 정관장 혹은 산수유 같은 존재다. 그의 존재감만으로도 프로그램의 정체성이 선다. 이미 <SNL 코리아>에서 절정의 ‘섹드립’을 선보이며 변태적인 유머 코드를 대중적으로 삽입하는데 성공한 신동엽이였다. 이영돈 PD의 유명한 멘트 “제가 한번 먹어보겠습니다”를 음담패설처럼 비틀어버리는 건 분명 대단한 재능이다. <SNL 코리아>가 신동엽의 출연 이전과 이후로 나뉘는 것도 그런 덕분이다. 신동엽의 존재감이 <SNL 코리아>의 ‘섹드립’ 본능을 일깨우고 프로그램의 ‘성’ 정체성마저 각성시켰다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사실 <마녀사냥>은 <SNL 코리아>와 같이 섹스를 마음껏 희화화하는 성격의 콩트 프로그램이 아니다. <마녀사냥>은 섹스에 대한 솔직하고 자유로운 담론을 펼치는, 음담패설을 겸비한 토크쇼에 가깝다. 같은 소재를 다른 방식으로 다루는 두 프로그램에 신동엽이 발을 걸치고 있는 이유는 어쩌면 이렇다. 섹스라는 주제에 대해서 거리낌 없이 눙칠 수 있는 캐릭터이기 때문이다. 그 덕분에 빛을 보는 캐릭터들도 생겨나고 있다. 일찍이 ‘감성변태’라는 별명을 얻었던 유희열은 <SNL 코리아>에서 보다 적극적으로 자리매김하는 중이고, <마녀사냥>에서 신동엽의 섹드립을 발군의 만담으로 이끌어내는 성시경의 솔직한 입담은 그야말로 재발견이다.
‘변태’라는 캐릭터가 인기를 끌고, 섹스 어필한 소재가 예능의 저변으로 확대된다는 건 섹스를 저속하다고 여기는 사회적 분위기로부터 보다 자유로워질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누구나 섹스를 하면서도 누구도 섹스에 대해서 이야기하지 않는다. 마치 섹스하지 않는 사람들처럼, 수술과 암술로 꽃가루라도 교환해서 번식하는 종족처럼 행세한다. 공공장소에서 ‘섹스’라는 단어를 또박또박 발음했다가는 고해성사라도 받아야 할 것 같다. 섹스라는 단어를 단순히 야한 것이고 저속한 행위라고 인식하기 때문이다. 솔직하지 못하다. 올해 처음으로 집행된 콘돔 광고에 대한 갑론을박은 밑바닥에 놓여있던 이런 의식들을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아이들도 보는 TV에서 콘돔 광고를 하면서 섹스를 조장하는 것이냐’라는 반대 여론과 ‘오히려 감출수록 부작용이 더 크다’는 찬성 여론이 팽팽히 맞섰다. 그런데 콘돔만 있으면 섹스가 가능하나? 콘돔이랑 섹스한다는 말인가? 콘돔 광고가 섹스를 조장하는 것이라면 냄비 광고도 비만 환자가 급증에 일조하고 있다는, 맥주잔이 음주를 조장하고 있다는 비판에 시달려야 할 것이다.
어떤 식으로든 이런 논쟁 자체는 긍정적이다. 누구나 섹스한다. 콘돔도 쓰고, 피임도 한다. 콘돔도 피임약도 소비재다. 소비를 촉진하고자 광고를 집행하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21세기가 돼서야 광고가 집행된 건 콘돔의 소비가 민망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섹스는 건강한 행위다. 건강하지 않으면 하고 싶어도 못한다고. 하지만 우리 사회는 아직까지 섹스를 건강하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 같다. 제대로 된 성교육이 부재한 것도 어쩌면 그래서다. “나는 어떻게 태어났어?”라는 순진한 질문에 당장 상세한 브리핑을 하라는 말은 아니지만 평생 속이며 산다는 건 문제다. 만약 청소년들의 성교육을 담당하는 것이 인터넷이라면? 농담이 아니다. 지난 해 성폭력상담소에서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 성문화를 접하는 경로의 1순위가 인터넷이란 조사결과가 나왔다. 역시 인터넷 강국이다. 훗날 섹스를 인터넷으로 다운 받은 포르노로 배웠다는 자식의 고백을 듣기라도 한다면 기분 좋을 일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섹스에 대한 의식이 건강하지 않다면 결국 우리 사회의 미래도 건강할 수 없다. 콘돔 광고가 성관계를 조장하고 부추긴다는 어떤 기성세대들의 주장은 인터넷으로 성문화를 경험하는 청소년들이 대다수라는 설문조사 결과 앞에서 얼마나 무기력한가. 그런 의미에서 차라리 변태적인 유희의 소비는 차라리 좋은 변화다. 우리가 금기시했던 편견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는 기회라는 말이다. 남들이 들을까 무서워 말할 수 없었던 것들을 더욱 적극적으로 표현해야 한다. 이를 테면 동성애도 마찬가지다. 남자가 남자와, 여자가 여자와, 손을 잡고 다니든, 부비부비를 하든 그게 무슨 상관인가. 광장에서 섹스를 하면 범죄다. 하지만 섹스는 침실에서 일어나는 사생활이다. 그 누구에게도 피해를 입히지 않는 당사자만의 문제다.
동성애도 마찬가지다. 누구에게도 피해를 입히지 않는다. 섹스를 말해도 되듯이 동성애도 말할 수 있다. 남녀가 손잡고 걷듯이 ‘남남’이 손잡고 걸을 수 있다. 당사자들에게 일말의 지분도 없는 이들이 참견을 시작한다면 오히려 기회다. 갈등이나 충돌은 불편하고 어려운 일이지만 긍정적인 변화를 모색할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그 과정을 지날 수 없다면 어떠한 변화 자체도 존재할 리 없기 때문이다. 이게 무슨 불경한 짓이냐고 기도하고 불공을 드리거나 말거나 이건 대단히 건강한 변화다. 누구나 사랑을 하고 연애를 하고 결국 섹스한다. 하지만 섹스를 ‘말하면’ 변태가 된다. 그렇다면 어차피 이 사회에선 모두가 변태다. 그러니 솔직해져야 한다. 우린 변태가 아니라 그 섹스로 잉태된 존재니까. 자기 존재의 근원을 부끄러워할 수 있겠나.
태양은 음악으로 기억되고 싶은 남자다. 자신을 불태워서라도 강렬한 음악이 될 남자다. 태양이 돌아왔다. 태양의 무대가 다시 떠오른다.
촬영은 재미있었나?
마음에 든다. 컨셉트도 좋았고.
새 앨범 타이틀을 <Rise>로 정했다던데.
일단 내 이름이 태양이니까. 사실 본의 아니게 꽤 오랜 시간을 준비했다. 3년 전에 솔로 앨범을 낸 이후로 다시 솔로 앨범을 내고 싶다고 생각할 만한 영감을 받지 못했거든.
지난 솔로 앨범 <Solar> 말인가?
맞다. 그 앨범을 작업할 땐 굉장히 힘들었고 그래서인지 몰라도 내가 정말 즐기고 싶거나 하고 싶을 때가 아니면 하지 말자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앨범 자체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래서 시간이 약간 오래 걸렸다. 그냥 여행을 다니면서 그때마다 내가 좋아하는 아티스트들이나 프로듀서들을 인연이 되는대로 만나러 다녔고, 무작정 그들과 작업을 시작했다. 앨범에 넣을 곡을 작업했다기 보단 그저 그들과 같이 작업할 수 있다는 분위기에 취해서 작업을 해나갔다. 그러다가 한두 곡이 완성되면서 전체적인 앨범 컨셉트를 그릴 수 있게 됐다.
지난 솔로 앨범은 나름 좋은 평가를 받지 않았나?
사실 그래서 힘들었다. 그 당시엔 기분 좋게 받아들였지만 자꾸 그런 생각에 얽매이는 느낌이랄까. 앞으로 내가 하는 음악들은 모두 이런 식이어야 될 것 같고, 누군가가 정해주지 않았다고 해도 어떤 틀에 갇혀버리는 기분이었다.
하고 싶은 음악보단 인정받기 위한 음악에 대한 강박이 생겼다는 말인가?
맞다.
그렇다면 지난 앨범이 온전히 자기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나?
일단 내가 했던 음악이니 내 것이 아닐 리 없다. 다만 사람들이 좋아할지, 음악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지, 이런 집착이 생기면서 내가 남들의 평가를 의식하면서 음악을 대하고 있다는 게 너무 싫어졌다.
타이틀곡에 대해서 알려달라.
'링가 링가(Ringa Linga)’는 강한 느낌의 곡이다. 사실이번 앨범 자체가 다양하게 구성됐다. 보통 지금까지 앨범을 작업할 때는 하나의 큰 컨셉트를 두고 전체 앨범의 퀄리티를 높이는 방향으로 작업했지만 이번엔 다양한 장르의 곡들을 시도했고, 앨범에 담아냈다. 덕분에 듣는데 있어서 지루한 느낌은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지난 앨범에서 테디와 공동 프로듀싱을 했다. 이번에도 프로듀싱에 참여했다던데.
음, 아마 지난 앨범에서 내가 하고 싶은 곡이나 할 수 있는 곡들을 추려서 만드는데 참여했다는 점에서 프로듀서라는 큰 개념에서 내 이름을 더해준 것 같다. 사실 내가 프로듀싱에 참여한다고 해서 1번 트랙부터 마지막 트랙까지 다 작곡, 작사를 할 순 없다. 그렇게 하고 싶지도 않고. 그럴 경우엔 나한테 오는 책임도 훨씬 크겠지. 앨범의 완성도를 높이는데 있어서도 바람직하지 않고.
이번 앨범 작업을 하면서 특별히 괴롭혔다고 생각하게 되는 사람은 없나?
양 사장님?
어떤 면에서?
사장님의 배팅이 없으면 음반을 낼 수 없으니까(웃음). 어느 정도 앨범이 완성됐다는 판단이 서니까 계속 재촉하게 되더라.
지난 앨범처럼 이번 앨범도 예정보다 발매가 늦어진 감이 있다.
내 앨범은 유독 예정보다 지연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왜 그럴까?
굳이 이유를 들자면 내 고집이 너무 센 거 같다. 내 세계가 너무 강해지는 것 같다. 특히 이번 앨범 작업에서도 꼭 하고 싶은 게 생겨버리니까 점점 더 확실히 이 앨범에 담아내고 싶어하는 욕구가 강해지면서 그와 반대되는 색깔을 입히려고 하면 받아들이기까지 시간이 너무 걸렸다.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만 기울어진다는 게 좋은 앨범을 만든다는 의미는 아니지 않나. 그걸 알면서도 인정하기까지 시간이 많이 걸렸다. 사실 내겐 대중적인 감각이 없다. 대중적인 음악에 대한 감이 전혀 없다. 어쩌면 내가 좋아하는 음악들이 대체로 우울하고 어두워서일지도 모르겠다. 나를 잘 아는 우리 멤버들을 비롯해서 어렸을 때부터 나를 봐온 프로듀서 형들의 의견을 많이 수렴했다. 아무래도 지금의 나에겐 방향을 잡아줄 사람이 필요한 거 같다.
최근에 엠넷에서 방영하는 YG 연습생들의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 <WIN>에서 A팀의 멘토로 나왔다. 연습생 생활을 먼저 겪은 선배로서 할말이 많았을 것 같은데.
맞다. 실제로도 많은 얘기를 해줬다. 그 친구들 보면서 옛날 생각이 많이 나긴 했다. 우리 또한 치열한 서바이벌을 거쳐서 나온 그룹이기 때문에 그 친구들의 심정이 어떨지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니까.
정확히 몇 년간 연습생 생활을 했나?
(권)지용이랑 같이 6년 정도.
정말 절박한 6년이었을 텐데.
음악을 하겠다고 결정한 순간부터 내겐 절박함이 있었다. 음악을 하겠다고 했을 때 가족들이 반대했고, 그 순간부터 내 인생을 내가 책임져야 했으니까. 빅뱅으로 데뷔하기 위한 서바이벌 당시도 물론 그랬고. 정말 절박하고 힘든 시간이었지만 지금 와서 생각하면 그때만큼 행복했던 시간도 없었다. 가장 순수한 열정을 갖고 있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지금 연습생친구들을 보면 기분이 좋아진다. 그런 순수한 열정이 보이니까.
빅뱅이 아닌 솔로 활동만의 충족감이 있을까?
예전엔 솔로 활동으로 내가 보여주고 싶은 걸 보여줄 수 있다는 점에서 욕심이 났던 게 사실이다. 그리고 빅뱅으로 다시 돌아왔을 땐 뭔가 보람도 덜한 것 같은 생각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은 솔직히 빅뱅으로 활동하는 게 더 좋다. 지난 2년 사이에 우리 멤버들이 다양한 사건에 휘말리면서 크게 깨달은 점이 하나 있다. 우리 멤버들과 함께 있을 때가 가장 즐겁고, 지금의 나를 만든 것도 빅뱅이라는 사실이다. 그 친구들과 함께 있을 때 가장 많이 웃고, 뭔가를 할 수 있을 것 같아진다. 결국 빅뱅으로 활동하나, 솔로로 활동하나 어차피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하는 거니까 그저 그 순간들이 행복하길 바란다.
성숙과 변화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내게 중요한 게 뭔지 확실히 알게 됐다는 점에선 분명히 성숙해졌고 변화했다고 느낀다. 그 전엔 내가 많이 어려서 무조건 내 위주로 생각했던 것 같다. 나는 열심히 하는데 멤버들이 잘 따라와주지 않는다는 피해의식도 있었다. 사실 그들도 최선을 다하는 건데 내가 너무 어렸던 거지. 지난 3년은 그런 사실을 많이 깨닫게 된 시간이었다.
인터뷰에서 연애를 한번도 해본 적이 없다는 발언이 화제였다. 그 이후로 이 질문이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는 것 같고.
다시 그에 관한 애기를 하고 싶진 않았다. 그런 이미지 때문에 더욱 신경 쓰이는 것도 사실이고. 사실 그 당시엔 어린 마음에 정말 연애를 하면 안 되는 거란 생각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지금도 연애엔 큰 관심이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여자를아예 안 만난 건 아니었다. 다만 아직까진 연애라고 생각할 만큼 깊게 사랑한 적이 없었을 뿐이다.
특별한 이유라도?
예전에 한번 말했던 것 같기도 한데 나한텐 첫사랑이 있었다. 그 첫사랑이 내겐 너무 큰 감정이었기 때문에 그 이후에 내가 느끼는 감정을 그만큼의 크기가 아니라면 쉽게 마음이 열리지 않는 것 같다. 아무래도 내 욕심인 거지.
자꾸 이런 질문 받게 되면 기분이 어떤가?
휩쓸리는 기분이랄까? 나에겐 나만의 기준이 있고, 나만의 상황이 존재하는 건데 그 대답 하나를 두고 너무 확대 해석하니까.
하지만 외골수처럼 보일 수도 있다.
사실 내가 그렇게 외골수 타입도 아니다. 노는 것도 좋아하고. 물론 내가 놀아봤자 뭐……사실 나는 음악 말고 하는 게 없다. 그렇게 나를 가둔 거다. 그나마 지금은 예전보단 나아졌다.
음악 말고 하는 게 없다니.
물론 밥도 먹고.
밥은 누구나 살기 위해서 먹는다.
음……
주로 누구랑 놀까?
거의 멤버들하고만. 아니면 멤버들의 친구들.
술은 마시나?
멤버들하고만.
멤버들이 정말 편한가 보다.
멤버들과 있을 때 나는 진짜 웃긴 사람이다. 진짜(웃음)! 멤버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도 요즘은 위트가 더 느는 거 같다. 장난치는 것도 좋고. 사실 내 안엔 ‘흥’이 너무 많다(웃음).
흥보단 생각이 많은 사람 같다.
혼자 있는 시간엔 사색을 많아한다. 어떤 생각에 빠지면 그 답을 찾을 때까지 생각한다. 하지만 2년 전부턴 생각을 줄이려고 노력하고 있다. 생각이 강해지면 오히려 생각대로 맞아떨어지는 게 하나도 없더라.
생각이 많으면 잠을 자기도 힘들다.
원래 불면증이 있었는데 지금은 자연적인 방식으로 치유했다. 잠은 잘 잔다.
예전에 지드래곤이 솔로 앨범의 타이틀곡을 피처링했던 걸 개인 앨범에서까지 빅뱅의 흔적을 남겨야 하냐며 속상해하는 개인 팬들이 팬클럽 커뮤니티 안에서 갑론을박을 벌였다고 하더라. 빅뱅의 팬이 개인의 팬으로 나뉘어 갈등하는 걸 보는 기분이 궁금하다.
몰랐다. 지금 들어서 알았다. 나는 누구보다도 친한 지용이가 피처링을 해줘서 곡이 더 좋아졌으니까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어떤 식으로든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이겠지. 나는 정말 그 누구보다도 우리 팬들을 사랑한다. 그 사람들이 모두 행복했으면 좋겠다. 하지만 그런 갈등이 있다는 건 아쉽다. 우리가 해결해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우리가 팬들의 의견을 모두 수렴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해외 팬도 많이 늘었다. 오래 전 미국 진출이 꿈이라는 얘기를 한적도 있었는데.
아마 처음 데뷔할 때였을 거다. 지금 생각하니까 조금 오그라드는데, 지금은 그런 마음은 없다. 그저 내가 좋아하고, 나한테 멋지고, 내가 쿨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표현하고 싶을 뿐이지, 어떤 거창한 목표를 정해두고 달려가는 건 멋없는 일 같다.
지금 막 새벽 1시가 지났다. 보통 이 시간엔 깨어있나?
보통 이 시간엔 스튜디오에 있다.
야행성인가?
프로듀서나 엔지니어들이 밤부터 일을 시작하니까 아무래도 나 역시 뭔가를 시작하려면 그때부터 스튜디오로 나가있어야 된다.
이번 앨범이 어떤 앨범으로 남았으면 좋겠나?
이번 앨범은 정말 내가 기본적으로 할 수 있는 음악들은 다 넣었다. 그래서 많은 분들이 좋아해줬으면 좋겠다. 사실 지난 솔로 1집 앨범 이전에 발표했던 싱글들이 차트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했다. 사실 나는 그런 부분에 별로 신경 쓰지 않는 타입이지만 이젠 남의 일처럼 생각할 순 없는 거다.
그 정도로 성적이 안 좋았나?
좀 더 잘됐어야 했다고 하더라. 나도 요즘에 알았다.
권한에 책임이 생겼다는 걸 깨달았다는 말인가.
그렇다. 내게도 책임이 생긴 거지.
태양은 끝까지 하고 싶은 걸 했으면 좋겠다고 말하면 순진하게 들릴까?
나는 앞으로도 내가 하고 싶은 걸 할 거다. 그럴 수 없는 건 단지 내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내 생각과 색깔이 담긴 음악을 사람들이 듣고 싶게 만들 수 없다는 건 내 부덕이다. 그래서 이번 앨범에 애착이 남는다. 지난 앨범은 남들이 원하는 방향에 귀를 기울이는데 노력했다면 이번 앨범은 내가 원하는 방향을 보다 완성도 있게 닦아내려고 노력한 앨범이니까. 좋은 앨범이 나왔다고 생각한다. 진짜로.
지금의 위치에서도 이루고 싶은 무언가가 있을 텐데.
나는 아직도 가수가 되는 게 꿈이다. 아직도 하고 싶은 음악이 너무 많고, 음악이란 세계 안에서 자유로운 사람이 되고 싶다. 이런 꿈을 이루고 싶다기 보단 죽기 전까지 계속 쫓아가고 싶다.
너무 원대하게 들리는 꿈 말고 당장 해내고 싶은 목표는?
일단 이 앨범으로 많은 사람에게 좋은 영감을 줄 수 있다면 좋겠다. 그리고 계속 음악을 만들 수 있다면 좋겠다. 물론 계속 해나가겠지만 가장 컨디션을 좋다고 느껴지는 지금 같은 시기에 다른 데에 신경 쓸 필요 없이 집중해서 뭔가를 만들어내고 싶다.
누구나 스스로 빛날 수 있길 바란다. 기회를 꿈꾼다. 별을 꿈꾼다. 엄태웅과 김민준도 별을 바라봤다. 결국 별이 됐다. 그리고 잠깐의 반짝임이 아니길 다시 꿈꾼다.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톱스타>로 많은 관객들을 직접 만났다. 아무래도 배우에겐 가장 긴장되면서도 설레는 순간이 아닐까?
엄태웅(이하 ‘엄’)무대인사를 하면서 상영관을 헷갈릴 정도로 많이 긴장했다. 그런데 관객들이 재미있게 봐주는 거 같더라. 나도 부산에서 처음 완성된 영화를 봤는데 박중훈 감독님이 영화를 찍으면서 “이 장면에선 관객들이 이런 감정으로 받아들일 거야”라고 했던 게 대부분 와닿더라. 정확한 생각을 갖고 정확하게 준비한 신들이 잘 그려졌다고 느꼈다.
김민준(이하 ‘김’) 현장에서 배우로서 긴가민가할 때가 있다. 그럴 때 감독님이 말했다. “약속 하나 할게. 이 부분을 영화로 보면 전혀 이상하게 안 보일 거야.” 영화를 보니까 그게 다 지켜졌더라.
엄우리 영화가 공개되기 전에 사람들이 너무 올드하지 않을까 생각했다는데 내가 객관적으로 우리 영화를 볼 순 없겠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올드한 영화는 아니다.
김트위터에서 마음에 드는 리뷰 하나를 발견했다. 이번 부산영화제에서 어머니랑 함께 본 딸이 올린 것 같은데 ‘영화보고 나서 엄마랑 할 얘기가 많아서 좋다’고 했다. 할 얘기를 많이 만들어주는 영화가 좋은 영화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세대가 다른 어머니와도 할 수 있는 얘기가 있는 영화라고 생각하니까 기분이 좋더라.
배우가 영화를 볼 땐 무엇을 볼까?
엄요즘 밀린 영화들을 본다고 극장을 자주 찾는데 어제 <관상>을 봤다. 송강호 선배님 연기를 보니까 감탄이 절로 나오더라. 너무 잘하니까 질투하다가도 감탄하게 된다. 아무래도 단순하게 영화 자체를 보려고 하지만 결국 배우들의 연기를 많이 관찰하게 된다.
<톱스타>를 주목하도록 만드는 건 아무래도 ‘감독 박중훈’이라는 이름이다.
엄단순히 28년 동안 배우로 살아왔다는 이유로 감독이 되는 건 아닌 거 같다. 박중훈 선배님 자체가 그런 자질이 있는 사람이더라. 머리도 좋고, 리더십도 있고, 너무 좋은 감독이었다.
김항상 ‘만약 감독이 된다면?’이란 생각을 해왔던 사람 같았다. 그렇지 않고서야 감독으로서의 첫 현장에서 그렇게 스태프들과의 융화를 이끌어낼 수 없었을 거다. 아무래도 배우 입장에선 감독과의 소통이 중요한데 내가 이런 감독 앞에서 제대로 연기하지 못한다면 정말 자질이 없는 배우일지도 모르겠다 싶을 정도로 탁월하게 디렉션을 주셨다.
엄 컷이 이렇게 나뉘니까, 카메라가 이렇게 들어가니까, 여기서는 어떻게 행동하는 게 더 효과적인가. 이런 기술적인 요령을 지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일단 배우들을 잘 격려해주셨다. 그렇다고 연기에 대한 짐이 덜어지는 건 아니지만 그런 사람이 모니터로 나를 봐준다는 것 자체로 마음이 편해지더라.
두 사람의 친근한 모습만 봐도 현장 분위기가 좋았을 거라 짐작된다.
엄단언컨대(웃음), 현장 분위기는 정말 최고였다. 물론 다른 작품에서의 현장이 별로였다는 건 아니다.
김수습하는 거야(웃음)?
엄<톱스타>가 특별했던 건 감독님이 우리를 처음 만나서 했던 약속을 거의 다 지켰다는 점이다. 감독님이 자존심을 걸고 지킨 거지. 그래서 놀라웠다. 감독님이 현장에서 싫은 말 한마디 한 적이 없었다. 아무리 바빠도 현장의 모든 사람에게 ‘야!’ 혹은 ‘너!’라고 하지 않고 이름을 불렀다.
김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처음 감독으로서 현장에 서면서 머리 위에 물음표 하나 얹고 시작했을 텐데 그걸 다 설득시키고 증명해가며 현장을 끌어갔으니 얼마나 외로웠을까 싶다.
서로에 대한 첫인상은?
엄나는 예전부터 드라마에 나오는 걸 봤고, 가끔씩 산책하다가 운동하는 모습을 본적도 있었다. 멋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나랑 친해질 사람 같지 않았다. 취미나 취향을 봐도 나와 많이 다른 사람 같으니까. 그런데 <톱스타> 덕분에 김민준이란 사람을 알게 된 게 정말 고맙다.
김태웅이 형이 한번은 “김민준이란 사람을 지금이라도 알게 돼서 좋다”고 하시는데 그 말만으로도 마음을 열어주신다는 느낌이었다. 의지할 수 있고 기댈 수 있는 사람을 만났다는 게 너무 좋다. 사실 그런 속내를 남자들끼리 털어놓긴 힘들지 않나.
엄그러니까 울면서 손 꼭 잡고 털어놔야지(웃음).
작품을 같이 한 배우들끼리 꼭 친해지는 건 아니지 않나?
엄대부분 매일 보게 되면 서로 모나지 않은 이상 친해지기는 하는데 작품 끝나면 서로 바빠지니까 소원해지기도 한다. 어쩌면 민준이와도 그럴 수 있겠지. 그런데 나는 민준이가 형 같았다. 뭐랄까. 신체적인 위압감 같은 게 있잖아. <톱스타>에서 민준이가 양복을 입고 서있는 뒷모습을 보는 장면이 있는데 마치 격투기 선수가 등장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민준이는 동생들을 좋아하더라. 자연스럽게 동생들을 대하는데 나는 막내이다 보니까 사람 자체가 부담스러울 때도 있다. 그런 면에선 나보다 남자답다고 느껴졌다.
김아! 맞다. 박중훈 감독님이 뒷모습을 되게 잘 찍더라. 나도 굉장히 마음에 드는 형 뒷모습이 있었거든. 뒷모습을 잘 찍는 감독이라는 수식어는 굉장히 매력적이지 않나? 물론 앞모습이 별로라는 건 아니고(웃음). 뒷모습에 그런 페이소스를 담는 게 쉬운 일은 아닐 거란 생각이 든다.
뒷모습에 집중하면서 영화를 봐야겠다. 혹시 배우들 간의 기싸움을 경험한 적은 없나?
엄사실 기싸움보단 시샘이 더 정확한 단어 같은데(웃음). 가끔 그런 게 도움이 될 수도 있겠지만 그러다가 부각돼야 하는 인물이 죽고 다른 사람이 살아버리면 영화를 망치는 거다. 어떤 식으로든 그런 사람이 있다면 마음이 불편해질 수밖에 없다. 다행히도 이번 현장은 너무 좋았다. 캐릭터의 역할이 명확하게 구분돼있고, 감독님의 지시가 명확했으니까. 그걸 잘 못하는 감독을 만나면 정말 힘들다. 배우가 자기 캐릭터의 당위를 주장할 때마다 수긍하면서 결국 시나리오와 다른 영화를 찍어버리고 이상한 게 나오니까(웃음).
김 그런 면에서 박중훈 감독님은 명확한 기준을 갖고 있었다. 현장에서 감독들이 배우들 간에 스파크가 튀는 상태에서 영화를 찍어보고 싶다고 하지만 이론적으로 가능할지 몰라도 결과적으로 좋은 결과가 만들어지긴 힘들다고, 그게 좋지도 않다고 명확하게 선을 그었다.
감독의 능력이 의심스러울 때 배우 입장에선 가장 힘들지 않을까.
엄서로 믿음이 없으면 그렇게 된다. 일단 생각이 별로 없는 감독이 있다. 예를 들면 “배우들끼리 상의해서 좀 챙겨주세요.” 이러면서 배우들한테 다 맡겨버리는 경우엔 너무 답답하다.
감독이 된다는 것에 대해서 생각해본 적은 없나?
엄 없었다. 멋있고 재미있어 보이지만 내가 할 일은 아닐 거 같더라. 나는 이렇게 스태프들과 현장을 꾸려서 운영할 수가 없는 사람이다.
김나는 기술적인 호기심이 많긴 하다. 이 대사가 어떻게 녹음되는지, 카메라가 어떻게 움직이면서 배우의 연기를 극대화시키는지, 신기하다. 나날이 테크놀로지가 발달하면서 과거엔 힘들었던 일이 너무 쉬워진다. 필름 시절엔 불가능했던 리테이크를 디지털 시대에선 계속 가도 괜찮다. 퀄리티도 계속 좋아진다. 그렇다면 과거에 연기를 돋보이도록 만드는 방식과 지금의 방식의 차이가 얼마나 다를까라는 궁금증이 있다.
단순히 기계를 좋아해서가 아닐까?
김영화적인 호기심인 거 같다. 사실 고등학교 때부터 영화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있어도 배우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으니까.
배우라면 누구나 인지도 있는 배우가 되길 원한다. 그 간절한 시절을 되돌아보진 않았나?
엄처음 영화에 출연했을 땐 몇 번씩 극장에 가서 보고 그랬다. 누군가 날 알아보지 않을까 궁금하기도 했고. 어쩌다가 알아봐주는 사람이 생기면 쑥스럽지만 좋았던 시절이 있었다. 이번 작품이 다음 작품으로 이어질 수만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만으로 연기하던 시절이었지. 계속 작품이 들어와서 연기로 돈을 벌면서 살 수만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도 하고. 누군가에게 처음으로 싸인을 해주면서 기분 좋았던 순간들, 잘 나가는 배우를 부럽게 바라봤던 기억, 그 시절이 다 <톱스타>에 있었다. 그래서 캐릭터의 감정을 잘 알겠더라.
김7년 정도 모델 생활을 하다가 97년도에 IMF 위기가 터져서 모델 일이 없었다. 그래서 지방에 내려가 작은 옷 가게를 운영했는데 의상학과에 다니는 여학생들이 어느 잡지에서 스크랩한 사진을 보여주면서 사장님이랑 닮은 모델이 있다고 하더라. “이거 난데?” 그랬더니 “웃기지 마세요”라고 하는데 가슴속이 뜨거워지는 걸 느꼈다. 정말 난데(웃음)! 어느 날 함께 일하던 ‘절친’이 그러더라. 돈은 언제든지 벌 수 있으니까 지금은 하고 싶은 걸 하는 게 낫지 않겠냐고. 그 길로 가게 접고 서울로 다시 올라왔다. 그 친구 말이 아니었다면 지금 그냥 동대문에서 장사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정말 고마운 친구지.
엄사실 민준이는 재주도 많고, 이것저것 관심이 많은 친구다. 신기한 물건도 많이 갖고 있어서 덕분에 현장에서 재미있는 시간을 보냈다.
김박중훈 선배님께서 농담을 잘 하시는데 어느 날은 이러셨다. “민준이는 이런 것도 알고, 저런 것도 알고, 그런데 야, 연기를 똑바로 해야지. 연기를 그렇게 진지하게 하라고(웃음).”
김민준 씨는 레스토랑도 운영하고 있고, 뭔가 생활인으로서의 안정감이 느껴진다.
김사실 매형이 운영하는 가게다. 나는 적당한 자본을 투자하고 아이디어를 던져서 내 능력을 한번 시험해보고 싶었다. ‘내가 이런 걸 해볼 수 있을까?’라는 호기심과 ‘이런 거 해보면 좋을 거 같다’는 흥미가 첫 번째였다. 그런 생각 하나로 시도한 가게인데 결과적으로 재미있더라.
엄우리 부부도 가끔 가서 서비스도 얻어먹었다(웃음).
김 그런데 태웅이 형 소속사에서 우리 가게 주변에서 빙수 가게를 운영하는데 최근에 어묵을 판다더라. 우리 가게 메인이 어묵인데(웃음).
엄 빙수 팔다가 겨울에 굶어 죽게 생겼어. 그래도 우리 어묵이 너네 어묵처럼 고급스럽진 않잖아(웃음).
김어쨌든 태웅이 형도 알겠지만 연기에 도전하는 것만큼 두려운 일도 없다. 그러니까 뭔들 못하겠냐는 생각도 든다.
엄태웅 씨는 작년 초에 <네버엔딩 스토리> 제작보고회에서 관객 250만 명을 동원하면 결혼하겠다는 공약을 발표하더니 1년 만에 결혼했다. 250만도 안됐는데(웃음).
엄그때 웨딩 컨셉트의 기자회견을 했는데 그래서 농담처럼 했던 거다. 그런데 기사가 막 나가면서 어머니한테 혼났다. 결혼하고 나선 아내한테도 혼나고(웃음). 이번엔 공약 물어봐서 아무 것도 안했다(웃음).
결혼하고 나서 변한 것이 있다면?
엄인상이 많이 달라졌다고 하더라. 얼굴이 변했나. 어쨌든 결혼을 하고 아이가 생기니까 이제 아버지 역할도 할 수 있겠더라. 예전에 드라마 <추적자>에서 손현주 선배님 연기를 보면서 나는 할 수 없겠다고 생각한 적 있었는데 지금은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딸을 잃은 부모 심정을 알겠거든. 뭔가 연기할 아이템 하나가 더 생긴 것 같다고 할까? 그리고 안정적인 기분도 들고. 그래서 얼굴이 좋아 보일지도 모르겠다.
김민준 씨는 아직 싱글인데 아직 결혼 생각은 없나?
김(결혼을) 맨날 생각한다(웃음). 태웅이 형도 이렇게 긍정적인 면을 보여주지만 주변에서도 결혼하면 다 행복하게 살더라. 친구인 장혁도 결혼한 이후부턴 항상 형처럼 느껴진다. “네가 결혼도 안하고 애도 없어서 말인데…”라고 말하기 시작하면 항상 할말이 없어진다(웃음). 그래서 과연 그 기분이 뭘까 생각하기도 하고.
엄신기한 게 자주 만나는 고향 친구 두 명이 있는데 두 명 중 한 명은 단 둘이서 만나기엔 불편했는데 그 친구가 결혼하고 나도 결혼하고 서로 애도 생기니까 원래 만나던 친구보다도 그 친구한테 연락을 하게 된다. 신기하더라.
김그런데 왠지 결혼하면 책임감이 생겨서 어른스러워질까 걱정된다.
엄내가 어른스럽진 않잖아(웃음). 아마 민준이는 곧 할 거 같다. 나름 준비도 된 거 같고.
김뭔 소리야. 아직 한참 더 벌어야 돼(웃음).
엄<톱스타> 대박 나면 되지. 어쨌든 자리도 잡았고, 할 자세도 됐으니까 결혼만 하면 될 거 같은데.
최근 <나 혼자 산다>에 김민준 씨가 출연해서 길고양이 밥을 주는 걸 봤다. 원래 동물을 좋아한다고 들었다.
김우리가 동물들의 자리를 뺏은 만큼 도의적인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고양이에게 약간의 사료와 물을 주는 게 어려운 일은 아니니까. 누군가는 그 우리에게 해가 된다고 생각하는데 대체 어떤 면에서 얼마나 해가 된다는 건지 반문하고 싶다. 요즘은 SNS를 통해서 고양이들 입지가 좋아져서 그나마 다행이다.
대중의 주목을 받는 입장에서 삶의 괴리를 느껴본 적은 없을까?
엄사실 배우로서만 알려졌을 땐 사람들이 ‘엄태웅이네?’라고 해도 선뜻 다가오진 않았다. 그런데 <1박 2일>을 하면서 그게 무너지기 시작하더라. 나는 원래 낯을 가리고 남들한테 친근하게 다가서지 못하는 편이다. 그런데 <1박 2일>에 출연한 이후부터 어디서나 낯선 이들이 친근하게 다가오는데 내가 거기에 부드럽게 대처하지 못하니까 자꾸 힘들어서 사람 많은 곳이 꺼려지고 피하게 된다. 아내도 나랑 연애할 때 부담스러워했다. 친근한 이미지가 생기는 건 좋지만 문제는 내가 항상 사람들에게 맞춰줄 수 있는 상황이 아닐 수도 있어서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거다.
김방송을 통해서 한 사람의 작은 면이 집중적으로 부각되니까 그게 그 사람의 전부라고 인식되는 면이 있다. 만약 내가 <1박 2일>에 출연했다면 나는 형과 다른 이미지를 선택했을지도 모른다. 어차피 그것도 나이긴 하겠지만 그 순간의 이미지가 극대화되는 거니까 그에 대한 고정관념이 생기고 사람들에게 고착되는 것 같다.
대중들은 스타에 대한 환상을 품기도 하지만 경멸하기도 한다. 이중적인 시선이 존재한다. 항상 조심해야 하는 위치일지도 모른다.
엄부산에서 중훈이 형이 그러더라. 우리가 저 멀리 있는 별을 바라보기도 하지만 손가락질도 하는 거라고. 그냥 어쩔 수 없는 일 같다. 말이나 글로 정하진 않았지만 어떤 규칙이 생긴 거 같다고 할까.
김정말 공인의 기준이 뭘까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도 있었다. 나는 배우로서 역할을 해주고 그 대가를 받으며 살아가는 국민 한 사람으로서 누릴 수 있는 자율권과 기본권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부분이 침해 당하게 되면 예민해질 수밖에 없는 게 당연한 거 아닐까. 내가 팬 미팅이나 시사회 같은 공적인 자리에서 사람들을 마주쳤을 땐 배우로서 최선을 다하는 게 맞겠지만 내 일상에서 주변 사람들이 나로 인해서 피해를 볼 정도면 양해를 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경계가 민감하게 느껴진다.
엄 그래서 가끔씩은 차라리 내가 그 자리에 안 갔으면 거기 계신 분들도 괜찮을 테니까 차라리 내가 집에나 있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 싶을 때도 있다. 내가 좀 더 성숙해지면 괜찮을지, 아직까진 가리고 싶은 게 많아서 그런 건지, 잘 모르겠다.
오래 전 연기를 하고 싶다는 초심이 있었듯이 지금 또 다른 초심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엄배우로서 연기하며 생활할 수 있게 된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때가 있었다면 이젠 그보단 큰 책임감을 느낀다. ‘열심히’가 아니라 ‘잘’ 해야 하고, 영화가 좋지 않은 평가를 얻게 되면 미안해지는 부분도 생긴다. 촬영 현장이 나를 중심으로 움직이지 않았던 시절엔 그래서 더 못하는 게 있고, 아쉬운 게 있고,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있었지만 이젠 나를 중심으로 움직이는 현장이 생긴 만큼 마음이 편해져서 더 할 수 있는 게 많아졌으니까 그만큼 잘 해야 한다. 그런 책임을 느낀다.
김나는 동료들의 신임을 얻는 배우가 되고 싶다. 그렇다면 관객이나 시청자들의 신임도 얻을 수 있을 거라고 본다. 김민준이 이 역할을 한다고 하면 ‘잘할 수 있을까?’가 아니라 ‘잘됐네’라는 말, 지금은 그게 가장 갖고 싶다.
술 취한 호랑이가 다시 신들린 음주 랩핑을 시작한다. 타이거 JK가 돌아왔다. 드렁큰 타이거가 나가신다. 그러니 손 머리 위로. 소리 질러!
마치 피사체가 되기 위해 태어난 사람 같았다. 셔터를 누를 때마다, 플래시가 번쩍일 때마다, 모니터에 떠오르는 이미지가 살아 숨쉬는 기분이었다. 타이거 JK의 에너지가 스튜디오를 기분 좋게 점령했다. 4년 만에 드렁큰 타이거라는 이름을 건, ‘드렁큰 타이거 with 윤미래 & 비지(BIZZY)’의 이름으로 낸 앨범 <살자(The Cure)>로 돌아온 타이거 JK와 비지와 테이블에 마주 앉았다. 개인적으로 모아온 드렁큰 타이거의 모든 앨범들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신기하다는 듯이 앨범을 집어들고 살피던 타이거 JK는 감회가 새롭다는 듯이 말했다. “내 인생이 여기 있네.” 잠시 상념에 젖었다가 입을 뗐다. “솔직히 지난 앨범을 꺼내서 듣는 일은 드물지만 가끔 내가 그 랩을 하던 그 시절이 궁금해서 꺼내볼 때가 있다. 그 시절에 얼마나 랩을 잘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 트랙을 노래했던 당시의 기억을 떠올리기 위해서.” 타이거 JK에게 드렁큰 타이거의 앨범은 목으로 써내려 간 일기장과 같다. 직접적인 기록 혹은 간접적인 기억의 매개체로서 그 모든 앨범에 지난 세월이 깃들어있다.
그러니까 1999년이었다. 뉴 밀레니엄이 온다고, 1년만 지나면 자동차가 날아다닐 것마냥 떠들썩했던 그 해에 드렁큰 타이거가 나타났다. “낯이 익지도 않았지만 같이 마치 달콤한 연인 같이 하나되는 우릴 봤지. 너를 원해. 이말 전해. 나를 너무도 원하는 너만의 눈빛이 내 눈에 정말 너무 훤해”라며 씨부렁거리는데 기똥차게 라임이 꿰이고 현란하게 오르내리는 플로우가 쌈박했다. 노래 제목부터 패기 넘치게 ‘너희가 힙합을 아느냐’라고 하는데 정말 힙합이 이런 것이라면 한번 제대로 들어보자 하여 음반을 구입하는 이들이 더러 있었다. 당시만 해도 힙합이라고 하면 언더그라운드에서나 유행한다던 마니아 장르 같은 것이라 아는 애들은 너무 잘 알았고, 모르는 애들은 너무 몰랐던, 그야말로 호랑이가 랩하던 시절이었다. 힙합이란 단어가 그리 생소한 시절도 아니었는데 드렁큰 타이거는 어딘가 낯설었다. ‘낯이 익지도 않았지만 같이 마치 달콤한 연인 같이.’ 정통 힙합을 표방한 드렁큰 타이거의 1집 앨범은 대중적으로 실패했지만 힙합의 역사에서 오버그라운드와 언더그라운드의 교두보 역할을 톡톡히 해낸 음반으로서 회자될만한 것이었다. 훗날 힙합신의 역사 안에서 회자될 ‘위대한 탄생’이었다.
2009년이었다. 강산도 변한다는 10년 동안 드렁큰 타이거라는 이름 아래 나온 앨범만 8장이다. 강산도 변했지만 드렁큰 타이거도 변했다. ‘하나하면 너와 나’라고 했을 때 ‘너’였을 것 같았던 DJ 샤인이 5집 앨범을 끝으로 탈퇴하고 타이거 JK 혼자 남아 음주 랩핑을 이어갔다. 그 사이 혈기 왕성한 도전자들 사이에서 힙합신에 군림하는 챔피언이 됐다. 다이나믹 듀오, 리쌍, 에픽 하이, 슈프림 팀 등 날고 긴다는 랩퍼들이 한데 모인 더 무브먼트 크루의 첨탑에 서서 힙합신을 아울렀다. 그 과정엔 순탄치 않은 삶이 깃들어있었다. 드렁큰 타이거의 앨범은 그 삶에 대한 녹록하지 않은 기록이다. 완치가 불가능하다는 척수염을 앓고 두 발로 설 수 없다는 진단까지 받으며 만신창이가 되는 와중에도 삶은 전진했다. 랩퍼이자 뮤지션인 윤미래와 결혼했고, 아들 조단이 태어났다. 삶은 피고 지고 다시 폈다.
2013년, 여전히 자동차는 날아다니지 않지만 힙합이란 단어는 가끔 그것이 그것이었는지 깜빡할 정도로 흔한 것이 됐다. 룰라가 힙합이었던 시대의 무지와는 또 다르게 질적으로 평준화된, 영혼이 증발된 힙합들이 저마다 왕이 나셨다며 전도 활동에 한창이던 시대에 드렁큰 타이거가 돌아왔다. 4년 만의 부활이었다. 지난 2009년에 발매된 드렁큰 타이거의 8집 정규앨범 <Feel gHood Muzik> 이후로 파도를 타듯 오르내리는 타이거 JK의 플로우에 취했던 것이. 하지만 드렁큰 타이거라는 활자가 선명한 신보 <살자(The Cure)>는 드렁큰 타이거만의 것이 아니다. ‘드렁큰 타이거 with 윤미래 & 비지(BIZZY)’의 첫 앨범이다. <1945 해방>이라는 타이틀로 홀로서기에 나섰던 타이거 JK에겐 아내이자 든든한 아군인 윤미래가 곁에 있었고, 척수염의 고통을 비롯해서 믿을만한 지인이 아니고서야 말할 수 없는 사연들로 주변의 관계가 낙엽처럼 떨어져나가는 가운데서도 DJ 샤인의 빈 자리를 든든하게 백업해준 랩퍼 비지가 마지막 잎새처럼 관계의 가지를 지켰다.
호랑이는 원래 무리 지어 다니지 않는다. 하지만 새끼를 기를 때만큼은 모여 산다. 타이거 JK와 윤미래는 이름만 대도 누구나 알만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한국 힙합계의 실력자다. 그들 사이에 자리한 비지는 분명 잘 알려지지 않은 랩퍼다. 타이거 JK는 자신을 믿고 따라온 비지를 어떤 식으로든 ‘책임지고 싶었다.’ 마치 호랑이가 자기 새끼를 키우듯이. “사실 자신의 스타일이 무엇인지 잘 몰랐다. 그냥 네가 가진 것들을 자연스럽게 보여줄 수 있어야 진짜 인정받을 수 있다는 것을 말로 해선 알 수 없었던 것 같다. 이젠 어느 정도 자신의 길을 찾은 거 같다. 대단히 실력 있는 친구다.” 그리고 올해 초 비지, 타이거 JK, 윤미래가 함께 했던 프로젝트 유닛 MFBTY를 통해서 비지의 진가는 어느 정도 드러났다. 이 세 사람이 주도한 기획이 아니었기에 오히려 멤버 개개인의 스타일에서 벗어난 일렉트로니카 베이스의 팝적인 센스가 돋보이는 넘버들이 탄생했다. “함께 하다 보니까 우리가 생각하지 못했던 스타일이 나왔다. 저마다의 솔로 앨범에 넣기엔 어울리지 않은 넘버들이었지만 함께 했기 때문에 가능한 것들이 나왔다. 재미있었다.” 딱히 활동을 염두에 두고 만든 곡들이 아니었기 때문에 국내에서 특별한 활동을 펼치지 않았지만 비주얼 아티스트 룸펜스의 비현실적인 비주얼 작업을 통해 완성된 뮤직비디오가 해외에서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덕분에 프랑스 칸에서 열리는 세계적인 음악축제 ‘미뎀 페스티벌 2013’에 초청됐고, 무대에 올라 엄청난 호응을 얻었다. 빌보드 공식 홈페이지의 메인 페이지에도 MFBTY가 점령했다. 아프리카부터 싱가포르까지 지구 반바퀴를 도는 팬덤이 형성됐다. 비지, 타이거 JK, 윤미래가 삼위일체로 지구를 흔들었다.
사실 비지, 타이거 JK, 윤미래가 함께 한 신보 <살자(The Cure)>는 계획에 없던 경로였다. 갑작스럽지만 반드시 해내야만 하는 과업이었다. <살자>라는 타이틀은 타이거 JK가 자신의 아버지에게 바치는 염원이다. 갑작스레 쓰러진 아버지에게 내려진 암 선고를 희망적인 음악으로 이겨내고 싶다는 열망. LP를 연상시키는 크기의 페이퍼 패키지 한가운데에 적힌 ‘살자’는 타이거 JK의 아버지 서병후가 직접 썼다. 삶에 대한 의지와 염원이 담긴 타이틀처럼 <살자>엔 새롭게 살아가겠다는 다짐이나 다름없는 넘버들로 시작된다. 암 투병 중인 아버지의 회복을 기원하는 ‘살다(The Cure)’를 비롯해서 평생의 반려자가 된 아내 윤미래와의 결혼을 통해서 깨닫게 된 아름다운 인생에 관한 송가 ‘Beautiful Life’ 그리고 사랑하는 아들에 대한 진심을 담은 ‘첫눈에 설레였던 꼬마아이(Time Travel)’까지, 드렁큰 타이거의 타이거 JK가 아닌 남편이자 아버지이자 아들인 타이거 JK가 저마다의 트랙 속에서 살고 있다. 드렁큰 타이거라는 이름 아래 이례적일 정도로 삶의 온기를 담아내고 있다. 비현실적이라고 느껴질 만큼. “현실적이지 않고 싶었다. 왜냐면 현실적이라면 아버지가 아플 테니까. 꿈 속에서 살아야만 했다. 그리고 허망함이 아니라 희망이어야 했다. 멋부리지 않고 아날로그적인 방식으로 직설적인 메시지를 라이브하게 전달하고 싶었다. ’아무리 힘들어도 (살자)’ 이런 가사가 너무 진부하고 지루하게 느껴질지는 모르겠지만 상처를 치유해줄 수 있는 사랑이라는 메시지를 담아보고 싶었다.” 타이거 JK는 <살자>를 통해서 자신이 살아온 그리고 살아갈 인생을 노래한다.
“리허설할 때와 공연할 때는 천국에 있는 기분이다. 콘서트에서 리허설할 때 사람들은 가끔 취한 줄 알더라. 미친 놈처럼 놀고 있으니까. 공연이 끝나고 들어가야 되는데 좀 더 하자 그러고. 어제도 공연을 하면서 깨달았다. 내가 정말 행복해서 이 일을 하는 거라고.” 타이거 JK는 무대에서 에너지를 얻는다. 무대를 향한 팬들의 함성과 환호 속에서 자신이 걸어온 길과 걸어갈 길을 본다. 그 가운데서 자신이 살아갈 무대에서의 삶의 방향 또한 고민하고 가늠한다. “법으로 정해진 건 아니지만 힙합에는 나이 제한이 있다고 본다. 빠져줘야 하는 나이가 있다. 그 빈자리에 젊은 보이스를 채워야 한다. 그리고 지금 새로운 길이 열리는 거 같다. 힙합을 버린다는 말이 아니라 다른 방향으로 가보고도 싶다는 말이다. 지금 미래를 점칠 순 없지만 내가 하고 싶은 음악이란 게 두 개 정도는 남아있는 느낌이고, 그 방향으로 끌려가는 기분을 느낀다.” 타이거 JK는 올해 드렁큰 타이거로서 낸 마지막 정규앨범 타이틀을 상호명으로 옮긴 ‘필굿뮤직(Feel Ghood Music)’이란 회사를 차리고 독립했다. 혹자는 타이거 JK가 혼자 다 해먹겠다고 회사를 차렸다고 말하지만 의정부의 집에 있는 지하실에 묵음실을 꾸리고 리허설 녹음을 하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특유의 낙관으로 미래를 내다 본다. 여전히 척수염으로 약 없이 버틸 수 없는 상황에서도 그저 넉살 좋게 웃으며 말한다. “언젠가 치료제가 나오겠죠.” 타이거 JK는 낙관적인 특유의 성격으로 주변의 비극마저 유쾌하게 왜곡시켜버린다. 세상에 유쾌한 에너지를 전파한다. 다시 일어서기 힘들 것이라는 의사의 진단이 무색하게 두 발로 세상을 걷고 있는 타이거 JK는 말한다. “기적을 믿고 싶다. 그렇게 살 거다.” 지금 못다한 이야기도 언젠가 웃으면서 털어낼 수 있는 그날까지, 가라. 타이거 JK.
든 자리도 알고 난 자리도 안다. 그 자리에 있어야 할 건 없어졌고, 없어야 할 것이 굴러다녔다. ‘내 집’에선 상상할 수 없던 일이 결혼 후 ‘우리 집’이 생기면서 벌어졌다.
“사람을 갑자기 바꾸려고 그러면 안돼. 그냥 서로 맞춰서 살아야지.” 장모님께선 신신당부하셨다. 하지만 인내심이 바닥을 치는 순간은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다. 아내는 종종 ‘조커’ 같았다. 집안 곳곳을 무질서하게 어지럽혔다. 여기가 신혼집인지 고담시인지 구별할 수 있을 때 무찔러야, 아니, 바로잡아야 했다. 질서를 확립해야만 한다. 복면을 쓸 필요까진 없었다. 대신 단호하게 언어를 던져야 했다. “외출하고 돌아와서 가방은 제발 식탁 의자에 던져두지 말라니까.” 그렇게 옥신각신한 이후에도 어김없이 그녀의 가방은 주문이라도 받을 사람처럼 식탁 의자에서 발견됐다. 종종 쇼파에서도 목격됐다. 목탁을 두드리며 반야심경이라도 읊는 마음으로 그 무질서를 견뎠다. 사실 잘 알고 있었다. 그녀가 아내로 업데이트 되기 전, 그러니까 여자친구 버전이었던 당시에 그녀가 혼자 살던 집에서도 이런 풍경을 적잖이 목격했으니까. 사실 낯익은 그림이기도 했다. 어릴 때부터 정리라는 단어와 멱살이라도 잡은 양 생활하는 누나를 보며 자랐고, 덕분에 여자와 정리라는 단어는 강남구와 캘리포니아주처럼 요원한 관계임을 암기해 왔다. 문제는 그것이 더 이상 남의 집 불구경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여기서 사람들이 종종 착각하는 한가지 개념을 정리해보자. 간혹 청소와 정리를 동일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는데, 아, 어쩌란 말이냐. 이 아픈 가슴을. 정확한 의미부터 짚어보자. 청소의 사전적 의미는 ‘더럽거나 어지러운 것을 쓸고 닦아서 깨끗하게 함’이며 정리는 ‘흐트러지거나 혼란스러운 상태에 있는 것을 한데 모으거나 치워서 질서 있는 상태가 되게 함’이다. 그러니까 바닥에 널브러진 지갑이나 옷 따위를 치우고 나서 우리가 ‘바닥을 깨끗하게 했어’라고 말하지 않는다는 것이 핵심. 간단히 정의해서 날 잡고 하는 게 청소라면 언제라도 그러하듯이 해야 하는 게 정리다. 그리고 다음 문장은 밑줄 쫙. 청소를 하겠다고 정리부터 시작하는 사람은 그냥 정리하지 않는 사람이란 말씀. 청소를 위한 정리란 말 그대로 청소 직전의 일상적인 행위 중에 불가피하게 어질러진 것을 치운다거나 청소기 헤드에 걸릴만한 것들을 임시적으로 옮기는 하등의 행위일 뿐이지 약속된 위치에 두지 않은 것들을 몰아서 제 자리로 되돌려 보내는 노동이 아니라는 것. 그리고 여기서 말하는 건 청소가 아니라 온전히 정리에 관한 것이다. 솔직히 청소는 주기적인 노동일 뿐이지 일상적인 습관이 아니니까. 중요한 건 정리가 되지 않는 상태에선 청소도 하기 힘들다는 말이다. 물론 항상 정리하지 않는 사람이 깔끔하지 않은 것만은 아니다. 하지만 깔끔한 상태를 좀처럼 유지하기 힘들 것이다. 정리가 안된 상태에선 청소도 힘드니까, 결국 자포자기하는 경우가 태반일 것이고.
정리에서 가장 중요한 건 정리의 대상이 되는 물건의 위치를 지정해주는 것이다. 자주 쓰는 물건과 그렇지 못한 물건을 구별하고 위치가 얼마나 자주 바뀔 것인지 그 가능성을 탐색한 뒤 물건의 용도와 어울리는 동선을 생각해야 한다. 간단히 말하자면 옷방에 국자를 두지 않고, 부엌에 옷걸이를 걸지 않는 이치랄까. 물론 이처럼 명확한 경우엔 고민할 필요도 없겠지만 공간의 특성에 딱 떨어지지 않는 물건들도 존재하기 때문에 고민이 필요하다. 집마다의 구조적인 특성에 기반한 노하우도 요구된다. 스스로 정리를 잘하는 사람이라면 이런 생각을 하는 경우가 드물다. ‘대체 그건 어디 있는 거지?’ 당장 필요한 무언가가 약속된 위치에 놓여있지 않아서 생기는 혼선에 익숙하다면 정리를 못하는, 어쩌면 안 하는 쪽인 셈이다. 아내를 비롯해서 몇몇 여자들이 가끔 핸드백이나 가방을 뒤적거리며 핸드폰을 찾는 모습을 보는데 그때마다 정말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건 그 작은 가방에도 작게나마 별도의 주머니가 있는데 굳이 그 핸드백 안의 잡동사니들 속으로 핸드폰을 묻어버린다는 사실이다. 그리곤 매번 겨우내 핸드폰을 발굴한다. 그때마다 핸드폰을 잃어버린 게 아닐까 긴장하기도 하면서. 문제는 실제로 잃어버렸음에도 잃어버린 건지 모르고 뒤늦게 그 상황을 파악하는 순간도 존재한다는 것. 정리란 물건의 공간을 확정 짓는 동시에 공간의 용도를 명확히 가져가는 일이다. 단지 집 안에서만 쓸모 있는 기술이 아니다. 정리가 필요한 건 비단 ‘집 구석’만은 아니니까.
원래 나는 물건을 쉽게 버리지 못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짐에 불과한 것들을 구별해서 최대한 신속하게 버리는 편이기도 하다. 방의 면적엔 한계가 있었고 넘치는 잡동사니들을 수납할 만한 공간의 견적을 파악해서 채워 넣는데 이골이 났다. 문제는 그런 덕분인지 빈 공간에서 어떤 강박을 느낀다는 사실이다. 신혼집을 방문한 몇몇 지인은 말했다. “신혼집이 아니라 이미 몇 년 정도 살아온 집 같은데?” 그러니까 무언가 꽉 채워진 공간 같다는 인상을 주는 건 아내보단 내 욕심이 반영된 결과다. 처음 신혼집으로 이사하던 날부터 집정리의 윤곽이 잡혀가던 3일 간 공간을 어떻게 채울 것인지 주도했던 건 아내가 아니라 나였다. 지금도 무언가 자리를 잡아야 할 가구가 생기면 으레 자리를 지정하는 건 아내보단 나다. 물론 의견을 교환하고 수렴하는 경우도 있지만 결과적으로 고민하고 선택하는 건 주로 내 몫이 됐다.
아무래도 더 많이 사랑하는 쪽이 약자가 되듯이 더 많이 정리하는 쪽도 약자가 되기 마련이다. 이를테면 빨래가 마르면 당장 치워야 속이 편한 쪽이 전전긍긍하다가 빨래를 걷게 된다. 설거지도 마찬가지이고, 청소 역시 그렇다. 그러다 보니 살짝 억울해지는 순간도 없지 않다. 그럼에도 한편으론 정리 페티쉬라도 있는 것마냥 정돈된 이미지로부터 쾌감을 느낄 때도 있다. 어쩌면 이건 피곤한 강박일지도 모른다. 규칙을 정하고 따르길 설득하며 실태를 확인하는 쪽이 자연스레 더욱 피로해질 수밖에 없는 법이니까. 딱히 정리에 신경 쓰지 않는 아내가 편해 보이기도 하고. 물론 아내도 조금씩 변하고 있다. 식탁 의자나 쇼파에서 아내의 가방이나 핸드백을 보는 횟수가 줄어들고 있고, 집 안을 떠돌아다니던 물건들이 본래의 자리를 찾아가는 물건의 가짓수가 늘고 있으니까. 반대로 내가 무장해제되는 순간도 생기는데 ‘포기하면 편해’라는 진리를 새삼 깨닫는 순간도 있다고나 할까. 노력하는 속도가 빠를지, 포기하는 속도가 빠를지는 모르겠지만.
사실 애초에 정리는 내 몫이라 생각했다. 그러니까 적당히 발만 맞춰준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다만 결국 우린 서로 다른 사람이라는 사실을 명확하게 깨닫는 과정이 필요했다. 생각하기에 따라서 그건 단점이 될 수도 있지만 장점이 될 수도 있더라. 각자 자신에게 어울리는 역할이 있다는 건 생각보다 나쁜 일이 아니다. 게다가 보다 인정받는 일이 있다면 생색도 낼 수 있기도 하고. 가끔 머슴처럼 살고 있다는 기분은 그저 착각이겠지. (응?)